북한 이탈주민(탈북민) 이야기 2023-3/ 09.01 중·북 국경 개방, 중국 수감 탈북민 2000명 북송 비상 - 12.28 ‘북한판 홀로코스트 박물관’ 북 주민 참상 기록하고 알려야
북한 이탈주민(탈북민) 이야기 2023-3/
09.01 중·북 국경 개방, 중국 수감 탈북민 2000명 북송 비상

▲전국탈북민강제북송반대국민연합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탈북민 강제 북송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가 중국에 구금된 탈북민의 강제 북송을 막기 위해 유엔 인권사무소와 유엔난민기구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들은 “극도로 시급한 문제로 유엔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 따르면 코로나 기간 중국에서 붙잡혀 수감된 탈북민이 2000명에 달한다. 북한은 26일 폐쇄됐던 국경을 3년 7개월 만에 공식 개방했고 북·중 항공 노선도 재개됐다. 조만간 대대적인 탈북민 강제 북송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당국은 탈북민을 난민이 아닌 불법 체류자로 간주해 단속하고 구금해 왔다. 하지만 탈북민은 북한 당국의 정치·경제적 핍박을 피해 탈출한 난민이다. 강제 북송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져 학대·고문·폭행을 당하고 비인간적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난민 지위 국제 협약과 고문 방지 협약은 고문·박해 우려가 있는 곳으로 강제 송환을 금지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두 협약에 가입하고 있는 중국은 강제 송환 금지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도 중국 정부를 향해 “탈북민을 의사에 반해 북송해선 안 된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민을 전원 수용하겠다”고 했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지난 5월 방한 중 국회 연설에서 “북한 인권 개선에 나서는 것이 5·18 정신”이라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정부가 미국·영국·캐나다 등 각국 정부와 의회, 유엔 기구, 국제 인권 단체와 함께 중국을 설득한다면 대량 강제 북송 사태를 막을 수 있다.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슬로건이 ‘마음에서 마음으로’다. 이는 인간의 휴머니즘을 뜻하는 표현일 것이다. 탈북민 강제 북송이야말로 반(反)휴머니즘이다. 중국에 이 슬로건을 실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통일부는 국회에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요청하는 공문을 12번째 보냈다. 민주당이 여러 핑계로 이사 추천을 하지 않아 7년간 문을 못 열었다. 민주당이 또 재단 출범을 막는다면 5·18 정신에 반해 김정은 폭압 정권의 편에 서는 반인권 정당일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월간조선 09월 호
■탈북 기자의 ‘젊은 북한지도자 회의’ 참석기
북한 출신 청년들 ‘자유의 심장’ 미국에서 北 인권 논하다
⊙ 백악관·국무부 방문, 주유엔 미국 대사 등과 만나
⊙ “북한 주민과 북한 인권을 계속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를 비롯한 탈북 청년들의 사명”(임철 변호사)
⊙ “북한 주민도 우리와 같은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열망”(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
⊙ “그들의 용기에 겸허함 느껴… 유엔안보리는 북한 인권 문제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

▲2023년 7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북한출신 청년들 모습이다
2023년 7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실에 20~30명의 사람이 모였다. 한국과 미국에서 거주하는 20~30대 북한 출신 청년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모인 청중이었다.
이날 HRNK에는 북한 출신 청년 10명이 연사로 초청됐다. 연사로 참석한 이들은 ‘젊은 북한지도자 회의(North Korean Young Leaders Assembly)’라는 모임의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연단에서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로 ‘자유’와 ‘인권’에 대해 열띤 연설을 했다. 이들은 지옥 같았던 북한에서의 삶과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태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들을 ‘자유와 희망을 위한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청년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특히 과거 북한 출신 기성세대가 했던 북한 인권 활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이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전문성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하나의 연대(連帶)를 이루고, 이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자신들의 목표라고 역설했다.
“우리는 하나의 꿈으로 뭉쳤다”
이들 대부분은 현재 각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젊은 북한 출신들이다. 변호사, 건축설계사, 작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영화감독, 연구원 등의 직업을 갖고 한국과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날 총회 개최에 주요 역할을 한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나의 꿈으로 뭉쳤다. 그것은 자유롭고 통일된 한국에서, 북한 주민도 우리와 같은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열망이다. 북한에 자유가 유입되기 시작하면 김정은은 생존할 수 없다.”
이현승 연구원은 북한의 엘리트 양성소 가운데 하나인 평양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평양외국어대학을 거쳐 중국 동북재경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014년 가족과 함께 탈북, 현재 컬럼비아대 공공행정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북한의 KIST’라고 불리는 김책공업종합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해리 김 씨는 “북한에는 인권, 핵 등 많은 문제가 있는데, 해결책은 북한의 민주화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북한을 개방시키고 민주화의 길로 이끌 묘안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모여 함께 논의하다 보면 북한의 민주화, 한반도의 평화, 동아시아의 평화로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해리 김 씨는 김책공대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IT 기술자로 해외에 파견됐다가 자유에 눈을 뜨고 현지 미국대사관을 통해 탈출했다. 현재 그는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젊은 세대, 고등 교육과 다양한 경험 보유”
2022년 법무부 제11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임철 변호사도 이날 연단에 올랐다. 임 변호사는 북한 출신 중 두 번째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인물이다. 그는 열다섯 살 때 한국에 정착하고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임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병으로 여읜 어머니의 묘가 북한에 있다. 한국에 와서 변호사가 됐지만, 북한 사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 주민과 북한 인권을 계속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를 비롯한 탈북 청년들의 사명이다. 자유와 복지가 무엇인지 토론하며 북한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려 한다.”
2023년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해 주목받은 이서현 씨는 “이전 탈북민 세대는 국제사회에 눈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하지만 고등 교육과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우리 젊은 세대는 각자 경험과 북한과 중국에서의 생존 투쟁을 서술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이서현 씨는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졸업한 금성학원에서 초등 과정을 마친 뒤 평양외국어학원을 거쳐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를 2년 다녔다. 이후 중국 동북재경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이서현 씨는 이현승 연구원의 여동생이다. 그는 미국에서 유튜브 ‘평해튼(Pyonghatton·평양+맨해튼)TV’와 국제적인 강연 플랫폼 TEDx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운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오토 웜비어 재단의 장학금으로 컬럼비아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로 재학 중이다.
백악관·국무부 등 방문

▲2023년 7월 10일 백악관을 방문한 북한 출신 청년들이 드루 아베세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디렉터와 1시간 반가량 원탁회의를 하고 있다.
청년들은 HRNK에서의 행사가 끝나고 백악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부분의 청년은 백악관 방문이 처음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아직 용산 대통령실도 방문해보지 못했는데 미국에서 백악관을 방문한다는 것에 들떠 있었다.
이들은 드루 아베세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디렉터와 1시간 반가량 원탁회의를 가졌다. 해당 내용에 대해선 비공개로 진행된 관계로 밝히지 못한다. 청년들은 이 자리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북한 정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듣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드루 아베세스 한반도 담당 디렉터는 과거 한국에서 몇 년간 생활하면서 북한 출신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어서인지 북한 출신 청년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팅이 끝나고 그는 백악관 내 의미 있는 장소들을 안내해주었다.
청년들은 백악관을 나오며 북한 출신인 자신들이 미국의 심장부인 백악관에서 한반도 담당 디렉터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의견들이 미국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이들은 워싱턴DC에서 백악관뿐만 아니라 국무부도 방문해 한반도 관련 담당자들과도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이 밖에도 미국 상하원 의회를 방문해 북한 인권 관련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북한 인권에 대한 북한 출신 청년들의 의견을 그들에게 전달했다.
이현승 연구원은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과의 대화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 관계자들도 우리가 그냥 오니까 만나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얘기들을 듣고 미국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이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면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사람들이 북한 관련 정책을 만들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을 얻고자 할 것이다. 대북 관련 미국의 정책에 우리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주는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유와 인권의 챔피언이 된 용감한 청년들”

▲2023년 7월 11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주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조현동 대사와 ‘젊은 북한지도자 총회’ 모임 청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이틀째 되는 날 미국 공화당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을 방문했다. 마침 이날 헤리티지재단이 주최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동맹의 미래’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진행됐다. 세미나 패널로는 조현동 주미 한국 대사, 트럼프 행정부에서 주일 미국 대사를 지낸 빌 해서티 상원의원(공화·테네시), 하원 외교위 아태 소위원장인 영 김 의원(공화·캘리포니아)이 참석했다.
데릭 모건 헤리티지재단 부회장은 인사말을 한 뒤 청중석에 앉아 있는 북한 출신 청년들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북한을 탈출하고 이제는 자유와 인권의 챔피언이 된 용감한 청년들이 젊은 북한지도자 회의를 대표해 참석했다. 오늘 우리와 함께해줘서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용기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청중이 박수를 보냈다.
이후 이들은 자리를 옮겨 워싱턴DC 매사추세츠에 있는 주미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갔다. 조현동 대사는 자신의 부모님도 황해도 출신이라면서 참석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었다. 조 대사는 1시간가량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북한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날 저녁에는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을 찾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19인의 용사 상’에 경건한 마음으로 헌화했다. 추모의 벽을 한참을 응시하던 조의성(가명) 영화감독은 “정말 이곳에 와서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면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자신의 목숨을 서슴없이 바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조의성 감독은 함경남도 출신으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현재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서현 씨는 추모의 벽 옆에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쓰인 문구를 보며 “이분들이야말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알려주는 것 같다”면서 “이 문구대로 정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임철 변호사는 “한반도에서 6·25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하루빨리 북한 주민들도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를 만끽하게 하려면 우리 청년들이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
“정치 성향 달라도 모이는 것이 중요”
이들은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북한 인권, 대북제재, 대북식량지원, 통일한반도의 미래상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대부분의 청년은 북한 식량 지원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일부 청년들은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의 철저한 감시를 조건으로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2의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서 너무 강도 높은 감시 조건은 북한이 거부하기 때문에 느슨한 방법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밖에도 북한 출신 청년들이 앞으로 북한 인권과 한반도 통일에 대해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하며 앞으로 어떤 식의 활동이 필요한지도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아오지까지》란 책을 쓴 조경일 피스아고라 대표는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춘 전 국회사무총장 비서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청년들과는 이념 문제에서 조금 다르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정책이나 생각이 조금씩 달라도 한자리에 모여서 대화를 할 수 있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 청년들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당이나 정치 성향이 달라도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건축설계사로 일하는 남송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북한 인권 개선을 목적으로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 북한 인권 개선, 한반도 통일을 위해 이렇게 모였다. 각자 고향과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서로 생각도 각양각색이지만 고향에 대한 애틋함과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우리 청년들의 진심을 보는 시간이었다.”
주한 영국 대사관에서 미디어홍보 담당관으로 일하다 국제관계학 석사 취득을 위해 뉴욕대로 유학한 김미연씨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청년들이 모이니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로 항상 변화를 주도했던 이는 그 시대 청년들이었다. 우리 청년들도 한자리에 모여 이렇게 토론을 통해 좋은 생각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유엔 주재 美 대사 “그들의 용기와 인권 옹호에 감사를 표한다”

▲2023년 7월 14일 미국 뉴욕 유엔 총회의장에서 ‘젊은 북한지도자 총회’ 모임 청년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7월 14일(현지시각) 뉴욕에서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만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토머스 그린필드 대사는 북한 출신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공식 출근시각보다 20~30분 앞당겨 출근했다. 토머스 그린필드 대사는 “10명의 청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북한 인권의 심각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토머스 그린필드 대사는 이날 면담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북한의 인권 침해와 학대로 고통받았던 젊은 탈북민들을 만났다”면서 “그들의 용기에 겸허함을 느꼈고, 지속적인 인권 옹호에 감사를 표한다. 유엔안보리는 국제 평화와 안보의 문제인 이 문제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네이트 에반스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 대변인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토머스 그린필드 대사는 오늘 북한의 젊은 탈북민들과 만났다”면서 “대사는 북한 정부의 인권 탄압과 침해 속에서 살았던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인권 옹호를 위한 그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황준국 유엔 주재 한국 대사와도 점심을 함께했다. 황 대사는 “한반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 인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면서 “이 자리에 모인 북한 출신 청년들이 조금 더 준비해 새로운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서현 씨도 “대사님 말씀대로 우리가 앞으로 조금 더 준비해서 북한 인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인재들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북한인권간담회에 각국 외교관 100명 넘게 참석

▲2023년 7월 14일 북한 출신 청년들이 북한대표부가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 43가와 44가 ‘오토 웜비어 길’에서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다.
이날 유엔 주재 한국 대표가 주관한 북한 인권 간담회도 진행됐다. 처음에는 40명 안팎의 외국 외교관들이 자리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참석자가 늘어 결국 100명이 넘게 참석했다.
황준국 유엔 주재 한국 대사는 탈북 청년들을 소개하면서 “이들 개인이 초기에는 단순히 탈북민으로 분류됐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존재가 됐다. 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끊임없는 용기와 귀중한 전문성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을 젊은 지도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황 대사는 “이 같은 젊은 탈북민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깊게 하는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고, 북한 인권이 중요한 이유에 관한 귀중한 관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들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알리고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제안을 했다. 특히 중국 내 북한 출신들의 인권에 대해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설득해 북한 출신들이 중국에서 강제북송 당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임철 변호사는 나중에 “우리 청년들이 세계 각국 외교 실무자들 앞에서 얘기할 기회가 마련된 것 자체가 너무 의미 있고, 인상 깊었다”면서 “아마도 개인별로 갔으면 각국의 외교 업무에 바쁜 이들이 참석하기 어려웠겠지만 북한 출신 청년 리더들이 하나의 팀을 꾸려 왔다고 하니 다들 우리 얘기를 들으러 온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서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거나 받은 분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그들의 접근 방식으로,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니 듣는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박대현 북한 출신 지원단체 우리온 대표는 “저희 선배들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과 안타까움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국제사회가 그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 행동을 취하도록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저희 세대가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행사가 끝난 직후 뉴욕의 오토 웜비어 거리로 이동했다. 2019년 공화당 소속 조 보렐리 뉴욕 시의원은 북한대표부가 있는 맨해튼 43가와 44가를 잇는 길을 ‘오토 웜비어 길’로 이름을 바꾸고, 도로명 간판을 세우자는 조례(條例)를 발의했다. 이에 뉴욕시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오토 웜비어는 2016년 1월, 북한 관광 중 ‘반국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7개월 동안 불법감금돼 있다 2017년 6월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났지만 귀국 엿새 만에 사망했다. 북한 출신 청년들은 조화를 오토 웜비어 길에 헌화하고 모두 함께 묵념했다.
북한 인권 활동의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
북한 출신 청년들은 2023년 7월 10일(현지시각)부터 14일까지 진행된 미국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15일 귀국했다. 4박 5일간 미국에서 진행한 ‘젊은 북한지도자 회의’의 목적은 ‘북한 인권 활동의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이다. 물론 이번 회의로 바로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을 위한 홍보는 충분히 했다는 평가다.
이현승 연구원은 “우리는 기성세대가 해왔던 북한 인권 활동을 깎아내리거나 나쁘게 볼 의도는 전혀 없다”면서 “과거 선배들이 해왔던 활동에서 조금 더 발전하고 건설적인 북한 인권 활동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철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의 기성세대는 북한의 처참한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대안에 대해선 제시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정보 전달자 역할만 한 것이다. 여기에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 청년들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대현 대표는 “이 모임은 2년 전부터 준비를 했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린 것에 대해선 무시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젊은 북한지도자 모임’ 청년들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북한 인권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고민하면서 조만간 다시 모여 앞으로 방향성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할 계획이다.⊙
09.13 언론인, 교수, 국회의원, NGO 대표까지 박선영 물망초 대표

“40kg 그녀가 세상을 움직였다.”
2012년 3월 4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이다. 박선영 당시 자유선진당 의원은 주한 중국 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 반대를 외치며 12일간 단식했다. 우리 정부는 물론, 전 세계가 탈북민 문제를 새롭게 보는 계기였다.
박선영 (사)물망초 대표가 최근 저서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을 펴냈다. 사회와 국가 변혁에 앞장섰던 이야기, 가족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성적 학대를 당하는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은 무려 1만여 명,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우리 정부는 왜 침묵하고 있나” 같은 투사의 모습과 “백련잎을 따다가 씻고, 찌고, 채 썰어 말려서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덖어내면 마음은 한없이 평화롭고 즐겁다” 같은 시골 소녀의 모습 모두를 엿볼 수 있다.
박선영 대표는 MBC 기자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서 헌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수로 근무하던 중 자유선진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2012년 (사)물망초를 설립해 탈북민·국군포로·납북자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월간조선 09월 호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9-20 “핵실험 끝난 뒤 아들 친구 8명 앓다가 다 죽어”
탈북민들 회견서 생생 증언
“외아들과 어울리던 친구들 8명이 하나둘씩 결핵 진단을 받아오더니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들 죽었습니다. 아들도 같은 병에 걸렸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을 살릴 길이 없어 탈북 길에 올랐습니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위치한 함경북도 길주군 출신 탈북민 이영란 씨의 증언이다. 이 씨 등 길주군 출신 탈북민 4명은 북한자유주간 사흘째인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회의실에서 국제PEN망명북한센터 주관으로 열린 구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직접 증언했다. 이 씨는 “2006년 첫 핵실험 때는 몰랐는데, 2013년 3차 핵실험 소식이 알려지니 장마당에서 ‘미국놈들이 꼼짝 못하겠구나’ 하며 다들 기뻐했다”며 “한국에 와서야 핵실험이 사람들 몸에 이렇게 나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핵실험장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을 수원지로 삼고 있어, 길주군 주민들 모두 핵에 피폭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이 씨의 증언이다.
이날 탈북민들이 핵실험 피해 사례를 증언하는 자리엔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NKFC) 의장을 비롯한 국내외 대북 인권 운동가들과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등이 참석했다. 이 대사는 “풍계리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핵실험 관련 장소들에서도 방사성 물질 유출과 오염이 일어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국내외에선 풍계리 인근 주민들의 방사능 피폭 가능성을 계속 제기해 왔지만, 북한 당국은 관련 사실을 부인하며 과학적 조사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길주군과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은 800여 명에 이르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만성 두통·백혈구 감소증 등 다양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는 현재 풍계리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89명을 대상으로 피폭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11월쯤 검사를 마치고 이르면 연말 안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9-21 대북인권단체 “강화도서 대북전단 20만장 등 북한으로 날려보내”
문 정부때 ‘전단 살포’ 금지
현재 헌법소원 심판 진행 중
대북 인권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20일 대북전단과 USB, 소책자를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이날 “제20회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20일 오후 11시쯤 인천 강화도에서 대북전단 20만 장, USB 1000개, ‘진짜 용된 나라 대한민국’ 소책자 200권을 20개의 애드벌룬으로 북한에 보냈다”고 공개했다. 이 단체가 날려 보낸 대형 풍선에는 ‘김정은 폭정에서 신음하는 북한동포 해방되는 날까지 대북전단 살포는 계속된다’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달렸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사실과 진실을 전하는 것은 우리 탈북민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고 의무지만, ‘대북전단금지법’ 헌법소원이 아직도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며 “북한 인민의 인권과 자유 확산을 위해 더 많은 정보를 계속 북한으로 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북전단 살포는 문재인 정부 당시 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에 의해 금지됐다.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이라고 불리는 현행 남북관계발전법 제24·25조는 전단 등의 살포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요구에 따른 ‘김여정 하명법’이란 비판을 받고 있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소원 심판이 진행 중이다.
민간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엔 ‘북한의 자유화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탈북자들’이란 단체가 대북전단을 풍선에 실어 날려 보냈고, 5월과 6월에도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을 보냈다.
현 정부는 대북전단금지법이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해당 규정에 대해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우리 국민의 표현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고, 처벌이 과해 죄형법정주의와도 맞지 않는다”며 “정부는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지난해 11월 헌재에 ‘대북전단금지법은 위헌’이란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9.26 ‘김여정 하명法 논란’ 文정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위헌 결정

▲지난 2020년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조선DB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북한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리는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위헌(違憲) 결정을 내렸다. 탈북민 단체가 지난 2020년 말 헌법 소원을 제기한지 약 2년 9개월만에 나온 결정이다.
헌재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3호 등에 대한 선고 기일을 열고 재판관 7(합헌)대2(위헌) 의견으로 위헌을 결정했다. 헌재는 재판관 다수 의견으로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한 것이어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남북관계발전법에 ‘대북 전단 살포’를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2월이다. 발단은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2020년 4~6월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대북 전단 50만장을 북한 상공으로 살포한 것이다. 그러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쓰레기들의 광대놀음(대북 전단 살포)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담화를 발표했고,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불과 4시간 만에 ‘대북 전단 금지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통일부는 43일 만에 자유북한운동연합의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대북 전단 살포가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신체에 위험을 초래하고 남북 관계에 긴장 상황을 조성해 공익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북한 김여정(왼쪽)과 대북 전단 살포 장면.
이날 위헌을 결정한 재판관 7명은 모두 해당 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봤다. 과잉금지원칙이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있어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상 원칙이다. 재판관 7명은 “심판대상조항은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면서 미수범도 처벌하고, 징역형까지 두고 있는데 이는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라며 “살포를 금지·처벌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제지하는 등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해당 조항이 초래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중대하므로,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라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다만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자에게 책임을 묻는게 옳은지’를 판단하는 책임주의 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서는 다르게 판단했다.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 등 4명은 국민 생명에 발생할 수 있는 위해·위험은 제3 자인 북한에 의해 발생하는데, 대북전단 살포 행위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그 책임을 전단 살포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책임주의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반면 유남석·이미선·정정미 재판관 등 3명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행위와 북한의 도발은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행위로 인한 결과에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주의원칙 위배는 아니라고 봤다.
반면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북한 주민을 상대로 ‘전단 등 살포’라는 방법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금지할 뿐, 표현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가하고 있지 않다”라며 “이는 ‘전단 등 살포’라는 표현 방법에 대한 제한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표현의 내용을 제한하는 법률에 대하여 위헌 여부를 심사할 때는 더 엄격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선례의 입장에 기초한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가치라는 점과 그 보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이슬비 기자
09.27 대북전단금지법 이제야 위헌, 헌재의 文 정권 눈치 보기
문재인 정부가 만든 ‘대북전단금지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이 법은 2020년 6월 북한 김여정이 대북 전단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남북 이벤트에 목을 매고 있던 문 정권이 허겁지겁 통과시킨 것이다. 대북 전단에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김정은 정권에 의해 눈귀가 막힌 북한 주민에게 실상을 알리는 일이 민주 국가에서 장려되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나.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근간이자 헌법상 권한이다. 그런데도 김여정의 요구에 따라 우리 국민을 감옥에 보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법을 만든 것이다. 헌재는 이에 대해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라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제한이 매우 중대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다.
헌재 결정은 예견된 것이었다. 앞서 지난 4월 대법원은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는 이유로 문 정부가 탈북민 단체 설립 허가를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전단 살포는 북한 주민에게 실상을 알리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문 정권이 내세운 전단금지법의 유일한 근거인 ‘접경지 주민 안전 우려’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했다. 법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최고 사법기관들이 다 인정한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2022년 8월 1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내각이 지난 10일 전국비상방역총회회의를 개최한 소식을 보도했다. 김여정 당 부부장은 이날 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남한이 '대북전단(삐라)'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유포했다며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다./뉴스1
이 법의 위헌성은 숱하게 제기됐다. 국회 입법조사관들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했고, 미국·영국·유엔까지 비판과 우려를 쏟아냈다. 그런데도 문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단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북에 유입될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설명 자료를 주한 외국 대사관에 보내기도 했다. 세계 최악 독재자 비위를 맞추기 위해 벌인 일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만든 이유부터 비상식적이고 내용은 위헌적이며 통과 과정도 비민주적이었다. 위헌 여부 판단은 그렇게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런데 헌재는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3년이 다 돼서야 위헌 결정을 내렸다. 문 정부 때 헌법재판관은 우리법·인권법·민변 출신 등 진보 성향이 다수였다. 그때는 결정을 뭉개다 결국 현 정부 들어 신임 재판관 2명이 임명되면서 위헌 결정이 나왔다. 문 정부 당시 헌재가 정권 편에 서서 고의로 결정을 미룬 것이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악법을 만든 문 정권 책임이 크지만 그런 법이 한국에서 시행되는 상황을 수년째 방치한 헌재 책임도 가볍지 않다.
조선일보 사설
10.03 ‘전단 금지법’ 총대 메더니 한마디 반성조차 없는 통일부·외교부

▲북한 인권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에서 대북 전단을 매단 풍선을 날리고 있다. /조선DB
문재인 정부가 만든 ‘대북 전단 금지법’이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이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3년 전 이 법을 밀어붙인 사람 누구도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3년 전 북한 김여정이 “법이라도 만들라”고 겁박한 지 4시간 만에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청해 “법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하고, 이후 민주당이 주도한 입법 과정에 적극 협력했다. 탈북 단체들이 전단 살포를 강행하자 수사 의뢰하고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그래 놓고 지금 와선 언제 그랬냐는 듯 남 일 대하듯 하고 있다.
역대 민주당 정부는 북한 정권의 거부감이 큰 전단 살포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다. 그때마다 통일부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해 왔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전단 금지법’을 만들거나 기존 법으로 옭아매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전단 풍선이 수소를 쓴다는 점에 착안해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으로 전단 살포를 막으려 했던 것도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랬던 통일부가 ‘김여정 하명’이 떨어지자 ‘접경 지역 주민 안전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개발해 전단금지법 제정에 앞장섰다. 전단 살포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한 해설 자료를 만들어 주한 대사관 수십 곳에 배포하기도 했다. 이 자료엔 ‘전단을 통해 북에 코로나가 유입될 수 있다’는 북한의 억지 주장까지 그대로 담겼다. 북한과 문 정권 눈치를 보느라 양심을 팔았다.
대북전단 금지법이 북한의 인권 개선 노력을 저해할 것이란 비판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거셌다. 서방 국가 대부분이 우려를 나타냈고 미 의회 초당적 기구는 청문회까지 열었다. 이 기구의 청문회 대상이 된 나라는 대개 중국과 아프리카·남미의 이른바 ‘인권 후진국’들이었다. 그런데도 유엔 인권기구 부대표 출신의 당시 외교부 장관은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나온 날도 외교부는 “통일부에 물어보라”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정부가 바뀌었으니 어물쩍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비겁함과 뻔뻔함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조선일보 사설
10-05 “인민학교도 못 나와 수용소까지 끌려갔던 탈북 청년, 국내 최초 정교수 됐다”

▲부산외대 김성렬 외교 전공 교수. 부산외대 제공
탈북과 북한 수용소 생활, 재탈북을 거쳐 우리나라에 정착한 북한 청년이 국내 대학 첫 정교수가 됐다. 주인공은 부산외대 김성렬(38) 외교 전공 교수다.
5일 부산외대와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김 교수는 2학기부터 국제정치이론, 남북 관계론, 미국 외교 정책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1985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하루 세끼를 다 챙겨 먹지 못했고, 풀과 국수를 섞은 풀 국수 죽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장마당(시장)에서 밀가루 장사를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지만, 외화벌이 업체들이 장마당에 나타난 뒤 살림이 더 쪼그라들었다. 이에 김 교수가 12살 되던 해 3월 그의 어머니는 자식들과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첫 탈북을 감행했다. 김 교수 가족은 탈북 후 중국 공장에 정착했는데, 3년째 되던 해 주변인 신고로 중국 공안에 붙잡혀 어머니, 누나와 함께 북송돼 3개월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겨우 수용소에서 나와 다시 청진으로 갔지만, 피폐한 삶을 견디지 못해 두 달 만에 또다시 탈북을 시도했다.
탈북과 북송, 수용소 생활, 재탈북을 거쳐 김 교수는 스무 살이던 2005년 한국에 정착했다. 북한에서 교육 격차가 신분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를 절감한 김 교수는 공부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국에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과정인 북한 인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김 교수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에 다니며 1년여 만에 초·중·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김 교수는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지만, 기초 학력 부족으로 휴학과 복학을 되풀이하다가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를 7년 만에 졸업했다.
국제 정치와 외교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했고, 연세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에 진학, 도서관에서 1년 6개월 동안 밤낮으로 피땀을 흘린 결과 박사학위를 땄다.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졸업한 정치학 명문 학교로 꼽힌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내가 대학교수가 된 것처럼 열정을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전을 갖고 끝까지 노력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일보 곽선미 기자
10-12 “중국 내 억류됐던 탈북민 2600명 전원 강제북송돼… 하마스 테러 버금가는 반인도 범죄”
인권단체 “중국, 아시안게임 직후
국제적 부담 털고 기습적 시행”
송환된 주민들 고문·처형 위기
중국 당국이 자국 내에 억류 중이던 탈북민 600여 명을 항저우아시안게임 폐막 직후인 지난 9일 전격 강제 북송한 것으로 알려지자 정부가 “어떠한 경우에도 중국 체류 탈북민이 자유 의사에 반하여 강제 북송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12일 내놨다.
코로나19 기간 중 중국에 억류됐던 탈북민 2600명의 북송이 마무리된 것으로 나타나며 이들이 북한에서 고문·처형을 당하는 것은 물론, 아직 체포되지 않은 탈북민들이 추가 억류·송환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강제북송은 강제송환금지라는 국제규범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고, 관련 상황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실제로 강제북송이 확인됐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탈북민 강제북송 반대 운동을 벌여 온 인권운동가들은 현지에서 대규모 북송이 진행됐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북한정의연대의 정베드로 대표는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중국 내 억류돼 있던 탈북민 2600명 전체가 강제 북송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하마스 테러에 버금가는 심각한 반인도 범죄고,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규탄해야 될 상황”이라고 밝혔다.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 역시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중국이 국제적 부담감을 털어낸 상태에서 신속하게 북송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과 지린(吉林)성의 구금시설에 억류돼 있다가 아시안게임 직후인 지난 9일 오후 8시쯤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탈북민은 약 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암암리에 탈북민들을 북송해 오던 중국이 수백 명 규모의 북송을 전격 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코로나19 기간에 체포·수감된 탈북민들의 강제송환이 사실상 완료되면서, 북한으로 끌려간 탈북민들이 고문과 처형 등 심각한 인도적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10.13 탈북자 북송은 살인, 야만적 중국과 무기력한 정부
중국이 자국 내 구금 시설에 가둬 놓았던 탈북자 수백 명을 지난 9일 밤 기습 북송했다고 한다. 이들의 한국행을 돕던 여러 인권단체들 설명이 일치하고 있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확인 중”이라며 말을 아끼지만 이미 관련 정황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코로나 기간 체포해 억류한 탈북자는 2000명이 넘는다. 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운명에 처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탈북자는 북한 정권의 정치·경제적 핍박을 견디다 못해 탈출한 사람들이다. 국제법적으로 엄연한 난민이다. 이들이 강제 북송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져 학대·고문·폭행을 당한다. 심하면 목숨까지 잃는다. 난민 지위 국제 협약과 고문 방지 협약은 고문·박해 우려가 있는 곳으로의 강제 송환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은 두 협약에 가입했으면서도 탈북자들을 북송해 왔다. 인권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문명국이라 하기 어렵다.

▲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19일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근처에서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 북송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북송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최근 북한이 3년 넘게 닫았던 국경을 열면서 대대적 강제 북송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얼마 전 통일부 장관이 중국을 향해 공개적으로 “탈북민을 의사에 반해 북송해선 안 된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민을 전원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이상으로 어떤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의 미수복 지역이고, 북한 주민은 우리 국민이다. 하물며 한국행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북한 주민은 정부가 전력을 다해 구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그러지 않았다.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쉬쉬했다.
이번 북송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해외 체류 탈북자 보호 정책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자유민주 진영 대부분이 탈북자 북송을 비롯한 중국의 인권 경시 행태를 ‘네이밍 앤드 셰이밍’(이름을 거론해 망신 주기)하는데 한국만 이런 흐름을 외면해 왔다. 무조건 조용한 외교가 능사가 아니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중국의 야만적인 탈북자 억류·북송을 규탄하고, 유엔 등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13 “탈북민 600명 기습 북송”… 中 반인도적 조치 중단하라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 2023.7.27/뉴스1
중국 훈춘 투먼 난핑 창바이 단둥 등 북-중 접경지역 도시 5곳에 수감돼 있던 탈북민 약 600명이 며칠 전 기습적으로 북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정의연대 등 북한 인권단체들은 그제 “중국 당국이 트럭을 동원해 동시다발 북송을 했고, 일부 지역에선 북한 보위부가 직접 와 데려갔다”고 주장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직후 북송할 가능성을 예상해 왔다”고 말해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중국 외교부는 기습적 북송 주장을 부인하지 않은 채 “책임지는 태도로 처리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북송됐다는 약 600명은 올 8월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중국에 구금된 탈북자 2000명 강제북송 가능성’을 경고했던 이들 중 일부로 추정된다. 북한은 코로나19 이후 3년 반 만에 올여름 북-중 국경을 개방했는데, 이후 북송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강제북송은 반(反)인도적 행위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 중국은 북송 조치 하루 전까지 아시아 화합을 다지는 스포츠 잔치를 열어놓고 폐막 다음 날 실행에 옮겼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목숨 걸었던 탈북자 600명에게 닥칠 운명은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중국이 북송 다음 날에는 유엔 총회에서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선출됐다. 중국은 “탈북민들은 경제적 이유로 국경을 넘었을 뿐”이라지만 북한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탈북자가 과연 없었을까. 명백한 유엔 난민지위 협약과 고문방지 협약 위반이다.
중국은 우리 정부의 한국행 요구를 묵살하곤 했다. 다만 드러나지 않게 체포된 탈북자라면 한국으로 보낸 적이 없지는 않다. 김 장관은 취임 후 “한국 정착을 바라는 모든 탈북자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신냉전 구도가 굳어진 지금 이러한 ‘조용한 한국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 시설에는 유엔이 북송에 반대한 2000명 중 일부가 여전히 떨고 있을 것이다. 북송 차단이 미룰 수 없는 눈앞의 과제라는 뜻이다. 중국 정부에 반인도적 정책 중단을 더 강하게 촉구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연대해 이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유엔 인권이사국’ 중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부담을 느껴야 비로소 작은 변화라도 시작될 수 있다.
동아일보 사설
10.16 탈북자 집단 북송에 한국 대사 “中 특성 이해해야” 안이한 정부 인식
중국의 탈북자 집단 송환에 대해 통일부가 13일 “사실로 보인다”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중국 측에 엄중하게 (문제) 제기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탈북자 수백 명을 기습 북송한 것이 지난 9일인데 기초적인 사실 파악에만 나흘이 걸렸다. 국제법상 난민이자, 헌법상 한국 국민인 이들이 북송되면 학대·고문·폭행을 당할 것이 확실한데 야만적인 일을 벌인 중국에 항의도 안 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정보 실패일 뿐 아니라 저자세 외교다.
중국이 코로나 기간 중 체포해 억류한 탈북자는 2000명이 넘는다. 북한이 3년간 봉쇄됐던 국경을 열면서 대대적 강제 북송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통일부 장관은 지난 8월 중국을 향해 “탈북민을 의사에 반해 북송해선 안 된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민을 전원 수용하겠다”고 했고, 방중했던 국무총리도 시진핑 주석에게 강제 북송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하지만 이뿐이었다. 북송을 막기 위해 정부가 국제사회와 공조해 중국에 압박을 가했다는 어떠한 얘기도 없다. 말뿐인 경고를 중국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
주중 한국 대사관에선 외교부·국정원·경찰 파견 직원들이 공조해 북송 가능성 등을 면밀히 살피고 필요시 중국 당국과 외교 교섭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능이 정상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대사관의 ‘깜깜이 대응’과 무기력한 대처가 질타당했지만 주중 대사는 반성이나 개선 노력은 언급하지 않은 채 “중국의 체제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만 했다.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지적하긴커녕 사실상 두둔했다.
이번 탈북자 북송은 한국 정부 주무 장관의 공개 경고와 총리의 협조 요청을 중국이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주한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고 규탄 성명을 내야 마땅하지만 아무 조치도 없다. 해외 체류 탈북자 문제를 총괄하는 외교부의 해당 부서 명칭부터 ‘민족공동체 해외협력팀’이다. 탈북자 문제를 껄끄러워하는 중국 눈치를 본 것이다. 왜 ‘해외 북한 이탈주민 구조팀’ 같은 명확한 이름을 못 쓰나.
아직 중국엔 1000명 넘는 탈북자가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제사회와 공조해 중국의 반문명적인 탈북자 억류·북송을 규탄해야 한다. 다음 달 한·영 정상회담을 비롯한 양자 회담과 각종 다자 정상회의 때마다 이 점을 부각해야 한다. 연말 유엔 총회에서 논의하는 북한 인권 결의에 북송 사태가 언급되도록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대중 저자세 외교를 고치지 못하면 제2, 제3의 탈북자 집단 강제 북송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 사설
10.18 국제사회가 中 압박하면 야만적 탈북자 북송 막을 수 있다
한미가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할 양자 협의체를 추진하기로 했다. 외교부가 방한 중인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면담해 합의한 내용이다. 최근 중국의 탈북자 대규모 북송 사태를 계기로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미가 공동 대응 틀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박근혜 정부 때도 비슷한 한미 협의체가 있었다. 하지만 두 차례 회의가 열린 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사라졌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 관행을 바꾸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국제법상 난민이자, 헌법상 한국 국민인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되는 상황에 한국이 지금처럼 무기력하게 대응할 수만은 없다. 탈북자 북송은 국경을 넘은 외국인을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아니다. 굶주리고 핍박받다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한 난민을 지옥으로 되돌려보내는 야만적 행태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 인권 특사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탈북자 북송을 비롯한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국제사회에 광범위하고도 효과적으로 알려나가야 한다. 즉각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기간 노력을 계속하면 중국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공산당 국가이기는 하지만 유엔 상임이사국에다 세계와 무역해야 하는 처지에서 국제사회의 평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 북한인권협의체 출범은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현재 북한엔 김정욱 선교사를 비롯해 우리 국민 6명이 억류돼 있다. 길게는 10년째 생사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납북자와 국군 포로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모두 한미 북한인권협의체에서 다룰 수 있는 인권 문제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억류자·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3국 공조’를 공동성명에 명시했다. 한미 북한인권협의체 출범은 그 정신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일본, EU와도 손잡아야 한다.
이번 탈북자 집단 북송 과정에서 정부는 무기력한 대처로 비판받았다. 충분히 예견된 사태임에도 이를 막기 위해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한미 협의체 출범 역시 쏟아지는 비판을 잠시 모면하려는 면피성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첫 회의가 열리면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을 규탄하고 이를 막을 실질적 조치부터 논의해야 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와도 공조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얼마나 절박하게 임하는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0-18 태영호 “中 탈북민 강제북송, 히틀러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추방 흡사”

▲집회 참석한 태영호 의원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5일~16일(현지시각) 백악관 앞에서 열린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시위에 나선 모습. 태 의원실 제공.
탈북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국회 외통위 해외 국정감사 기간 미국 방문
북한 인권 단체들 주최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시위 참석
태 의원 “한국만의 노력으로 강제북송 막기 어려워, 미국·EU 등 국제사회 공조해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으로 해외 국정감사를 위해 미국에 체류 중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과 16일(현지시각) 이틀에 걸쳐 미국 백악관 앞에서 열린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시위에 참석했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로 활동한 태 의원은 지난 2016년 우리나라로 망명한 탈북 외교관 출신 인사다.
태 의원은 지난 15일 오후 백악관 앞에서 통일광장기도회(대표 : 이중인 목사) 등 단체 주최로 열린 탈북민 강제북송 중단 시위에 이어 16일 오후에는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NKFC) 의장,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 최근 중국에서 북송된 것으로 알려진 김모 씨의 고모 김 에스더씨가 주최한 시위에 참석했다. 태 의원은 참석자들과 함께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중국은 탈북자 강제북송을 중단하라”고 강조했다.
태 의원은 이날 집회에서 “오늘 우리 모두는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중국 정부에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지난 몇 주 간 중국 정부는 탈북민 수백 명을 북송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직 얼마나 많은 탈북민이 중국 감옥에 구금돼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 의원은 강제북송된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고문을 당하거나 극형에 처해지는 현실을 언급하며 “중국 정부가 탈북민들을 강제 북송하는 것은 (독일 나치 정권의)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에 추방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강조했다.
태 의원은 지난 주 강제북송 사실이 알려진 김철옥 씨를 언급하며 “북한이 그를 처형하거나 수용소에 보내지 않도록 외부에서 캠페인을 통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태 의원은 향후 우리나라의 독자적 노력만으로는 강제북송을 막기 어려운 만큼 앞으로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일본 등 국제사회와 공조해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북한 인권 단체인 북한정의연대는 지난 11일 중국 랴오닝성(遼寧省)과 지린성(吉林省)에 억류됐던 탈북민 600여 명이 지난 9일 밤 8시쯤 북중 접경 지역 등을 통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최지영 기자
10.18 탈북민은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탈북을 결심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필자도 쥐약 네 봉지를 샀다. 도중에 붙잡히면 무조건 자진(自盡)하려고 했다. 동생들에게도 한 봉지씩 나눠주며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북한 주민에게 탈북은 이처럼 목숨을 거는 일이다. 탈북하다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간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북한은 2020년 1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자 일방적인 국경 봉쇄조치로 탈북민의 북송을 중단했다. 그해 2월에는 북한의 파견근로자와 불법체류자의 송환 업무를 잠정 중단한다는 공문을 중국에 보냈다. 하지만 북한 보위부와 중국 공안은 불법체류 탈북민에 대한 공조 수사를 계속해왔다.
그 무렵 중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전국적 방역 감시망을 설치·가동하고 얼굴 인식 프로그램까지 도입했다. 주민등록 및 이동 통제를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중국에서 주민등록이 없는 탈북민이 색출되고 체포됐다.
중국의 탈북민 북송은 인권유린
문 정부 방관, 윤 정부 속수무책
이제라도 재발 방지책 제시해야

▲[일러스트=김지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입국한 탈북 여성 다수는 인신매매로 한족이 사는 농촌이나 유흥업소로 팔려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중국의 많은 유흥업소가 영업정지 되면서 탈북 여성들은 이마저 일자리를 잃었고 신분이 노출돼 대거 체포·구금됐다.
탈북민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프리덤 조선’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2020년부터 체포·구금한 북한 여성을 중국 노동교화소 수감자노역장에 집단 배치했다. 극히 적은 인건비만 지급하고 강제노역으로 노동 착취했다.
지난 7월 북한의 코로나19 봉쇄 완화정책으로 북·중 국경에서 인적 왕래가 가능해졌다. 중국 공안당국은 여러 교화소의 강제 노역장에 배치했던 탈북민을 단둥·옌지·투먼 등지에 설치된 임시 구금시설로 집결시켰다. 지난 3년간 불법체류 탈북민을 체포·수사하는 데 들어간 비용과 의료비·식비·숙박비 등을 북한 당국에 청구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자 탈북민은 곧바로 송환되지 않았다.
북한 보위부가 지난 7월 송환 절차를 진행하자고 중국 공안에 통보했지만, 중국 측은 송환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는 안 된다고 통보했다. 중국 공안은 탈북민의 강제노역에 따른 노동 착취로 이득을 봤고, 이번엔 탈북민 관리 비용을 받아 이득을 또 챙겼다. 지난 8월 말 탈북민 250~300명이 1차로 북송됐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 600여 명을 추가 북송했다.
북한 정권은 강제 북송된 탈북민을 제3 의료원(간염 및 결핵 격리병원)에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월 1차 송환 탈북민은 함경북도 무산군과 온성군에 준비된 격리시설에 옮겨진 뒤 보위부로 넘겨졌다. 최근 북송된 600여명도 격리시설로 이송됐을 것이다.
북한의 반인륜적 고문과 처형 등 인권 탄압은 널리 알려져 있다. 탈북민의 강제 북송이 얼마나 참혹한 인권유린을 초래할지 뻔하다. 그런데도 난민협약을 위반해 탈북민을 강제 북송한 중국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개탄한다. 이러고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경기 등 각종 국제 행사를 유치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김정은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해 탈북자 송환에 소극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고 본다. 특히 지난 2019년 11월 문 정부는 배를 타고 한국으로 내려온 탈북 청년 어민 두 명을 흉악범으로 낙인 찍어 비밀리에 강제 북송해 공분을 샀다. 1945년 전에 벌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현재 진행형인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와 성범죄 피해에는 침묵한다. 탈북민을 배신자 취급하며 인권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인권에 대한 이중 잣대가 아닌가.
이번 탈북민 600명의 강제 북송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모습도 실망스럽다. 중국의 북송 움직임이 감지됐고, 북송을 막아달라는 탈북민의 호소가 있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부는 중국의 행위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해야 한다.
탈북민은 최상위법인 헌법에서 명시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탈북민의 강제 북송을 막지 못한 것은 국민의 생명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부의 직무유기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분명한 대책을 제시하기 바란다.
중앙일보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전 북한인권총연합 상임대표
10.21 거짓의 유토피아, 北 탈출 작전에 내 전부를 걸었다
[아무튼, 주말]
[정상혁 기자의 행각]
탈북 다큐 ‘비욘드 유토피아’
구출 진두지휘한 김성은 목사
“지금 압록강 물은 어때요?”
비가 와서 강물이 불었다는 현지 브로커의 대답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그럼 애가 위험한데…. 거기 군대들이랑 얘기 된 거죠?” 소년 한 명이 국경을 넘어 백두산 인근에 도착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먼저 탈북한 소년의 어머니가 김성은(58·갈렙선교회) 목사에게 북한에 남아 있는 아들의 구출을 부탁한 것이다.
가장 가까운 나라, 그러나 가장 먼 나라. 북한을 빠져나와 공산국가인 중국~베트남~라오스, 그리고 태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그 길은 사선(死線)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북송(北送)은 사실상의 죽음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잡히면 인신매매로 팔려갈 수 있다. 김 목사는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23년째다.
그가 진행한 실제 탈북 과정이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Beyond Utopia)’로 제작돼 올해 초 공개되자 세계는 경악했다. 1월 미국 최고의 독립영화제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고, 지난 1일 ‘우드스톡영화제’에서는 베스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크리틱스 초이스 다큐멘터리 어워즈’ 4개 부문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오는 23~24일 미국 전역 600여 극장에서 상영된다. 자유의 열망이 더 멀리 알려질 것이다. 영상 속에서 한 탈북자가 증언한다. “북한 정권은 우리가 낙원에 살고 있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 있었다.” 도망치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에서 김성은 목사가 탈북자들과 함께 라오스 밀림 지대를 통과하는 장면. /비욘드 유토피아
–영화 홍보 투어를 다녀오셨다고요.
“지난달부터 뉴욕· LA·콜로라도·샌프란시스코·워싱턴DC·보스턴 등 수십 지역을 40일간 돌았습니다. 난생처음 할리우드 사람들도 만났네요. 관객들이 많이 환호해주셨어요. 펑펑 울어주시고. 사람 목숨 구하는 영웅이라고요.”
–탈북 촬영이라니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실 안 하려고 했어요. 영화감독이 미국인(마들렌 개빈)인데 노랑 머리랑 같이 다니면 얼마나 눈에 잘 띄겠어요. 전화 요청은 계속 거절했어요. 그러자 2019년에 감독이 천안의 저희 교회로 찾아온 거예요. 결국 조건을 걸고 승낙했죠. 중국에는 감독 없이 우리 선교회 인원만 간다. CCTV도 철저하고 요새 정말 살벌하거든요. 그리고 제작비가 부족하니 탈북은 딱 한 팀만 진행한다. 촬영은 대부분 휴대폰으로 했어요.”
–영화엔 탈북자 두 팀이 등장하지요?
“그해 촬영에 돌입하자마자, 딱 맞춰 연락이 하나 왔어요. 탈북자 가족 5명이 백두산 근처에 마련해놓은 저희 교회 안가(움막)에서 구조 요청을 한 거예요. 가만 두면 잡히니 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데다, 이미 북한을 빠져나왔으니 탈북 비용이 확 줄어든 상황이었죠. 추가 촬영이 가능해진 겁니다.”

▲다큐멘터리가 비추는 압록강의 겨울. 폭력과 굶주림에서 탈출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저 위를 건넌다. /비욘드 유토피아
1시간 55분 길이의 이 영상은 북한에서 아들을 빼내려는 이소연씨, 그리고 부모, 조모, 두 딸과 함께 탈북하는 노씨 가족의 두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탈북은 첩보 작전과 다름없다. 현지 브로커와의 통화는 도청 우려로 1분을 넘기지 않고, 채팅 메시지로는 은어를 쓴다. ‘한국 올 때 맥주 안주로 명태 다섯 마리만 가져와(한국행 탈북자가 다섯 명 있다)’ 같은. “신고 보상금이 있으니 택시만 잘못 타도 중국 공안에 잡혀요. 돈이 더 들어도 무조건 안전이 먼저예요.” 탈북자들은 주머니에 청산가리를 넣고 다녔다. 여차하면 삼킬 심산으로.
–난관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동남아 밀림 지날 때가 가장 힘들어요. 벌레는 어찌나 큰지…. 밟았는데 물컹해요. 보니까 뱀이에요. 기절한 애도 있죠. 한번은 낭떠러지에서 굴러서 허리 수술도 받았어요. 담낭도 적출했죠. 긴장해서 당시엔 통증도 못 느끼고 벌떡 일어나서 걸었어요. 가시에 베어도 피가 흐르는 걸 못 느낄 정도로. 근데 아이들한테는 여행 같은가 봐요. 산도 넘고 강도 건너고 야생 코끼리도 보고…. 밀림은 백번 천번을 다녀도 길을 몰라요. 반드시 그 구간만 오가는 현지인을 섭외해야 해요.”
–탈북 루트 노출 위험은 없나요?
“욕 많이 먹었어요. 다큐멘터리로 탈북 경로 다 까발린다고. 그런데요, 중국만 놓고 봐도 육로로 수천㎞예요. 경로와 교통수단의 경우의 수도 여럿이고요. 주로 밤에 이동합니다. 손전등을 켜도 공중에서 안 보이는 우거진 숲으로요. 영상에서 장소를 특정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지금도 넷플릭스와 또 다른 탈북 다큐멘터리 촬영을 논의 중입니다.”
◇자유를 향해 뛰다가 목이 부러졌다

▲2000년부터 통곡의 땅에서 북한 주민을 구출하고 있는 김성은 목사. ‘한국의 쉰들러’로 불리는 그가 지난해 세운 충남 아산의 탈북민 공동체 센터에서 탈북자들과 함께 웃고 있다. “데려오지 못하면 평생을 울며 살아 갈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김 목사가 ‘탈북 사역’을 시작한 건 2000년부터. 평소 다니던 교회 은사(이형렬 목사) 때문이었다. “인생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뭔가 하나 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1월 4일, 중국 선교에 따라나섰다. 두만강 투먼. 하루에도 수십 구씩 북한에서 시신이 떠내려왔다. 굶어 죽거나 처형당한 이들이었다. 강가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손을 당겼다. “동포끼리 같이 좀 삽시다.” 구걸하는 꽃제비였다.
–충격이 크셨다고요.
“처음으로 진짜 현실을 본 거죠. 당시엔 그 꽃제비가 일곱 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오래해 보니 이제는 알겠어요. 열 살은 됐을 거예요. 남한과 발육 차이가 크니까. 그 아이를 본 순간 내가 할 일이 바로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슨 일을 하셨나요.
“헌 옷 수백 벌을 모아 탈북자들에게 건네줬어요. 옷도 탈북의 중요한 수단입니다. 차림새 보면 바로 들통나거든요. 가방 하나에 보통 30㎏ 넘게 나갔어요. 그걸 하나는 목에, 두 개는 양 어깨에 메고 국경을 건넜죠.”
어김없이 그날도 두만강을 건너는 길이었다. 쾅, 빙판에 대자로 뻗었다. “우두둑, 목이 꺾이는 소리가 들렸죠. 일단은 일어나서 다시 달렸어요. 그런데 밤이 되니 목이 안 움직여요. 다음 날 한국으로 들어와 병원에 갔죠. 목뼈에 철심 6개를 박았어요. 9시간짜리 대수술이었죠.” 셔츠 너머로 14년 전의 흉터가 보였다.
–첫 탈북 구출자는 누구였나요.
“제 아내요. 인민군 출신이에요. 부친이 엘리트 과학자였는데도 ‘고난의 행군’ 당시 아사하셨죠. 국경 근처 교회에서 예배 드리다 만났는데, 처음에 대뜸 저보고 ‘김정일 장군님 닮았다’고 하대요. 키 작고 배 불룩하고. 북한에서는 김정일 닮은 게 최고의 칭찬이래요. 서로 정이 깊어졌죠.”
–사랑엔 국경이 없군요.
“신앙심도 깊고 똑똑해서 한국행을 권했어요. 탈북을 마음먹은 뒤 경로를 고민했죠. 배로 와야 하나, 비행기를 타야 하나. 마침 하얼빈에서 아내와 같은 나이의 여자가 결핵으로 죽었는데, 사망 신고하지 않은 그 여자의 신분을 뇌물 주고 샀어요. 중국 여권을 만들었어요. 거기서 혼인 신고까지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하늘길로 한국에 왔습니다.”
탈북은 그렇게 ‘가족’의 일이 됐다. 알음알음 다른 탈북자들과 교류하며 ‘탈북 로드’ 개척에 나섰다. 시행착오도 숱하게 겪었다. “아내 데려오는 데 23년 전에 6000만원이 들었어요. 몇백 만원이면 될 일을…. 지금은 중국에만 도착하면 태국까지 일주일이면 갈 수 있어요. 네트워크가 있으니까요. 초창기에는 동생들부터 어머니까지 총동원됐죠. 베이징에서 대학 다니던 조카는 운전수 역할까지 해주고요.”
◇사상 첫 公海上 탈북 작전

▲2009년 12월, 중국 밀항선을 타고 건너온 탈북자를 끌어올려 한국행 배에 옮기고 있는 김성은 목사. /조선일보DB
김 목사는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의 사업이 기울어 서울에서 군산으로 내려갔다. 돈을 벌어야 했던 소년은 중학교 때부터 어선을 탔다. 벌이가 제일 좋은 일이었다. 연근해 고깃배에서 인부들에게 밥을 차려줬다. 밥을 태워 먹을 때마다 날아오는 뱃사람들의 발길질과 구박을 견뎠다. 이후 회사원으로 개인 사업자로 목회자로 살아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고단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은 좋은 일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던 2009년 12월, 또 한 척의 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해상 탈북이었죠?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의 가족 4명을 데려오는 일이었어요. 그들을 인도할 조력자 한 명이 배를 탄 적이 있었고, 저도 어릴 적 바다 경험이 있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시간이 단축되니까요. 중국서 빌린 목선을 타고 탈북자들이 서해 공해(公海)로 나오면, 마중 나간 우리 배가 그들을 태우고 돌아오는 계획이었어요.”
–계획대로 됐습니까?
“처음엔 인천에 갔어요. 배를 아무도 안 빌려줘요. 가진 돈은 2000만원뿐인데, 턱도 없다는 거죠. 그래서 예전 살던 군산으로 내려갔어요. 교회 전세금을 담보로 배를 빌렸죠. 그런데 하필 출발 당일 풍랑주의보가 내렸어요.”
–위험천만이었네요.
“선장이 안 가겠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만 믿고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소연해도 안 통해요. 자기도 처자식이 있다고. 당장 다른 배를 구해야 했어요. 수제비 식당하는 여동생에게 전화했죠. 돈 좀 부쳐달라고.”
겨우 출항했지만, 약속된 접선 시간보다 9시간이 지체돼 있었다. 탈북자들은 집채 같은 파도 위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수시로 무전을 타전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디 버텨주기를. 기다려주기를. 20시간 가까이 내달렸을 때, 저 멀리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목선 한 척이 보였다. “그때 같이 간 선장이 그러더군요. 기적이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 일화는 조선일보가 기획·제작한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2′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그해 그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다. 뇌병변을 앓던 일곱 살짜리 아들. 후원을 받기 위해 부부가 다른 교회에 다녀오던 날이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들의 눈이 뒤집어져 있었다.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때 다 그만두려고 했어요. 아내는 자기도 죽겠다고 40일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다 환상을 봤나 봅니다. 내가 너희 아들을 천국으로 인도했는데, 지금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아들의 유골을 바다에 뿌린 뒤, 그는 다시 지옥의 국경으로 향했다.
◇돈 없이는 목숨도 없다… 냉혹한 현실

▲지난 1월 미국 ‘선댄스 영화제’ 초청 당시 기념 촬영 중인 김성은 목사와 매들린 개빈(오른쪽 옆) 감독, 그리고 실제 탈북자들. 맨 오른쪽이 이소연씨, 다른 네 명은 노씨 가족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금껏 1000명을 구하셨다고요?
“과장된 숫자예요. 1000여 명에게 도움을 주긴 했어요. 데려온 건 300명이 약간 안 돼요.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하겠어요. ‘영끌’해도 안 됩니다. 코로나 사태 직전에 북한에서 중국으로 오는 데만 2000만원 들었어요. 지금은 5000만원이 넘어요. 한국까지 오는데 한 명당 1억원 가까이 들죠.”
–구조 요청은 늘었을 텐데요.
“지난여름에도 4명 데려왔어요. 더 구하고 싶어도 돈이 없으니 괴롭습니다. 자꾸 돈 얘기 하면 ‘무슨 종교인이 저래’ 사이비 같겠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당장 가진 게 없으니 ‘나중에 한국 도착하면 꼭 지불하겠다’고 현지 브로커한테 각서도 써요.”
–언제나 돈이 문제군요.
“100만원 들 거 200만원 쓰면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승합차를 한 대 더 빌리면 검문소를 더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거예요. 투자한 만큼 돌아오는 거죠.
탈북 사역은 후원금으로 진행된다. “정기적으로 마음을 보태주시는 교인이 300명 정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교회 건물 전세금이 올라 방을 빼야 할 상황까지 몰렸다. 그 때마다 기적이 찾아왔다. 홀연히 60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 사라진 익명의 부부, 은행 대출까지 받아 위기 극복에 힘 보탠 김밥집 주인, 하나님께 바친다며 1억원 넘게 건넨 의사…. 이 돈으로 사람을 구했다. 그러나 보상은 없다.
–섭섭하지는 않으세요?
“칭찬은커녕 험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결국 당신 유명해지고 싶은 거 아니냐고. 영웅 놀음 그만 하라고. 어느 외교부 공무원은 ‘자꾸 이러면 중국과의 관계만 껄끄러워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계속 하십니까.
“열네 살 때 탈북하다가 붙잡혀 중국에 팔려온 여자가 있었습니다. 13년간 사창가에 있었다더군요. 얻어맞을 때마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요. 저희와 연결됐을 때도 당연히 믿지 않았대요. 팔려가더라도 그저 한 번 더 팔려가는 거니까, 속는 셈 치고 따라나선 거죠. 그랬던 여자가 마지막 관문 메콩강을 건너자 울더군요. 하나님이 뭔지 교회가 뭔지 잘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받은 경험이 생전 처음이라고. 예전엔 억울해서 울었지만 이번엔 고마워서 운다고.”
◇거저 주어지는 유토피아는 없다
지난해 김 목사는 충남 아산에 탈북민 공동체 센터를 지었다. 독지가 등의 후원으로 2100평 땅을 마련해 30~40명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꾸린 것이다. “4년 전 서울 봉천동에서 탈북자 모자(母子)가 집에서 굶어죽은 일도 있었고…. 누구나 와서 쉬면서 고민도 털어놓고 음식도 나눌 그런 곳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지난 7일 찾은 이곳 텃밭에서 탈북자 일고여덟 명이 고구마를 캐고 있었다. “북한 있을 때 다 농장원이었고 강냉이 심던 경험이 있으니까, 흙을 밟으면서 내적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탈북자 자활 운동도 하셨죠.
“탈북이 끝이 아니잖아요. 여기서 잘 살아야죠. 제 전 재산에 어머니가 보태주신 돈, 대출금을 합쳐 천안에 3층짜리 교회 건물을 8년 전에 샀어요. 1층 전체를 탈북자에게 무료로 내줬죠. 가게 차리라고요. 고기 잡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사는 잘됐습니까.
“세탁소도 하고, 카페도 있었고, 그런데 코로나가 왔죠. 쉽지 않아요.”
–기업 등의 외부 후원은 있나요?
“없습니다. 큰 기업일수록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복잡할 테니 이해는 합니다.”
–정부의 도움은요?
“아뇨. 지난 정권은 특히 힘들었습니다. 귀순한 북한 주민을 추방하기까지 했잖아요. 자세히는 말 못 하지만, 똑같은 국가기관인데 정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게 참 웃깁니다.”

▲노르웨이 '오슬로 자유포럼'에 참석한 김성은 목사가 탈북자 인권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저지하는 철조망이 김 목사의 뒤쪽 스크린에 펼쳐져있다. /유튜브
국제 정세도 녹록지 않다. 중국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 지난 9일 탈북자 약 600명을 강제 북송했다. 이 같은 대규모 북송은 코로나 발발 이후 처음이다. 김 목사는 지난 6월 노르웨이에서 열린 국제 인권회의 ‘오슬로 자유 포럼’에 연설자로 참가해 중국 정부의 각성을 호소한 바 있다.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한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중국이 탈북민들의 주요 탈출 루트에 있는 만큼, 중국 정부가 인권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팬데믹 기간 중국에 구금돼있던 2000명 가까운 탈북민이 북송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헌신을 모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북송의 두려움에 떨며 물건처럼 팔려 다니는 탈북민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요.
“더는 이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날을 보고 싶습니다.”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
10.24 [단독] 北 4명, 목선 타고 속초 항구 통해 귀순
북한에서 미상 인원 4명이 강원도 속초 지역을 통해 귀순한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소식통은 “북한에서 4명이 속초 한 항구에 귀순 의사를 밝히며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다른 소식통도 “북한 인민군인지 주민인지 확인되지 않은 인원 4명이 24일 오전 속초의 외옹치항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속초 지역 치안 관계자는 “이들이 목선을 타고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옹치항은 속초 해변과 대포항 사이에 있는 작은 항구다.
해상 귀순은 2019년 11월 동해 삼척항에서 북한 어민 4명이 목선을 타고 귀순 했다가 당시 문재인 정부의 강제 조치로 북송된 이후 4년 만이다.
10.25 목선 귀순 北 일가족 4명 “너무 배고파서... 살려고 왔다”
부부·딸 등 속초 앞바다로 넘어와

▲군 선박이 24일 북한 주민 4명이 타고 온 목선을 양양군 기사문항으로 예인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군·경을 보자마자 “북한에서 굶주렸다” “먹고살기 위해 내려왔다”며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TV
북한 주민 4명이 24일 소형 목선을 타고 강원도 속초의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내려오다 우리 해경과 해군에 나포됐다. 30대 성인 남자 1명과 그의 아내, 딸, 그리고 아이의 할머니로 추정되는 50대 여성 등 일가족 4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우리 군경에 “북한에서 굶주렸다” “먹고살기 위해 내려왔다”며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이 동해상으로 귀순한 것은 2019년 6월 15일 삼척항으로 북한 어민 2명이 목선을 타고 귀순했다가 그해 11월 당시 정부에 의해 강제 북송된 지 4년 만이다. 정부는 평양을 제외한 북한 전역에서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어 추가 탈북 동향 가능성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4시부터 동해 NLL 이북 해상에서 북한 해군으로 추정되는 특이 움직임이 추정돼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감시 등 작전 조치에 들어갔다”면서 “이후 5시 30분쯤 레이더를 통해 동해 북쪽 먼바다에서 내륙 남쪽으로 다가오는 미상 물체를 파악했으며 오전 6시 30분쯤에는 열상감시장비(TOD)로도 탐지했다”고 말했다. 미상 물체는 어선 신호 없이 저속으로 일정하게 내려왔다고 한다. 군은 미상 물체가 북한 선박인지 불분명한 가운데 상황 파악을 위해 초계기와 고속정을 인근 해역으로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양인성그래픽=양인성
이런 가운데 동해상에서 어업 활동 중이던 민간 어선의 어민이 오전 7시 10분쯤 “이상한 배가 보인다”며 육안으로 미상 물체를 확인해 해경에 신고했다. 군 관계자는 “어민의 신고가 군경의 탐지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군경은 레이더와 TOD에서 점 형태로 보이는 미상 물체가 ‘북한 목선’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해경 선박을 급파했다. 이에 오전 8시쯤 속초 외옹치항에서 동쪽으로 약 11㎞, NLL 이남 약 45㎞ 지점 해상에서 길이 7.5m의 목선에 타고 있는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인원 4명의 신원을 확보했다.
해경이 “어떻게 내려왔느냐”고 묻자 이들은 “살려고 왔다”며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들은 우리 당국에 ‘북한에서 생계가 어려웠다’ ‘살기 위해 내려왔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경 도착 전 우리 어민이 선박을 잡고 있을 때 북한 한 인원은 “배가 참 좋다”는 반응도 보였다고 한다. 해군 함정도 현장에 도착해 합동으로 북한 선박을 강원도 양양 기사문항으로 예인했다. 북한 인원은 동해항에서 관계 기관에 넘겨졌다. 정부는 정부합동정보조사팀을 구성해 이들의 월남 목적 등을 면밀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귀순 조치는 군경과 어민의 3각 공조로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합참과 해군은 오전 4시 이전부터 동해 NLL 이북의 특이 동향을 탐지했지만 그것이 대남 도발 작전인지 월남 목선을 잡기 위한 추격 활동인지 알지 못한 상태였다. 이후 미상 물체가 감시 장비로 잡혔을 때도 단순 부유물인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어선 신고가 들어왔다. 군 관계자는 “서해 NLL에는 섬이 많고 짧아 경계·감시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동해는 섬이 없고 NLL 길이가 400㎞가 넘어 북한 소형 목선이 넘어오는 것을 모두 잡아내기 어렵다”고 했다. 어민의 신고 덕에 속초에서 11㎞라는 원거리에 떨어진 북 목선을 조기에 나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군은 지난 2019년 6월 북한 목선이 NLL을 넘어 삼척항 앞바다에서 수시간을 보내다 부두에 들어와 주민들에게 발견될 때까지 탐지하지 못해 경계 실패 논란을 불렀다. 당시 목선은 10m로 이번 7.5m 목선보다도 컸었다. 안보 당국 관계자는 “최근 북한 전 지역에서 식량난 악화로 탈북 행렬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군 당국과 협력해 경계 태세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했다.
10-25 “배고파서 왔다” 목선 귀순이 새삼 보여주는 北 주민 참상
일가족으로 보이는 북한 주민 4명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순한 뒤 군경에 “북한에서 굶주렸다” “먹고 살기 위해 내려왔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제 막 추수가 끝났음에도 북한 주민의 식량난이 심상찮음을 시사한다. 함경북도 청진에 살던 김만철 씨 일가가 굶주림과 추위 등을 피해 동해를 통해 1987년 귀순하면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외쳤던 것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40년 가까이 북한 주민의 삶은 그대로임을 새삼 보여준다.
이들이 타고 온 배는 성인 4명이 타면 꽉 찰 정도인 길이 7.5m의 목선이었다. 쉽게 뒤집히거나 조난당할 수 있음에도 목숨을 걸고 탈북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동해상 귀순은 2019년 11월 북한 어민 2명 귀순 이후 4년 만인데, 문재인 정부는 그들을 강제 북송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북한 주민이 다시 동해 루트를 이용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문 정부와 다르다는 사실이 북한 내부에 전파됐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 5월 초 북한 주민 9명의 서해상 탈북 후 이뤄진 가족 단위 귀순이라는 점에서 해상 탈북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지난 8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을 개방했지만, 중국이 탈북자를 강제 북송한다는 사실도 해상 루트를 택하게 하는 배경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코로나를 거치며 악화됐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2월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식량문제 해결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올해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는 139명이다. 지난해의 3배 수준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9월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결정을 내린 만큼, 전단 등을 통해 북한에 새로운 정보를 들여보내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이 탈북자 북송을 중단하도록 유엔 등과 연대해 압박하고, 북한의 인권 침해 규탄 활동도 병행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0.25 지옥 같은 북송 또 1000여 명 대기 중, 유엔에 호소해야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센터포인트 회의실에서 '재중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응'을 주제로 '2023 통일과 나눔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가 '최근 중국 탈북민 강제 북송 현황과 송환된 탈북민들이 처한 위험'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연합뉴스
북 주민 일가족 4명이 24일 소형 목선을 타고 속초 앞바다로 귀순했다. 동해상 탈북은 2019년 11월 북 어민 2명이 삼척항으로 귀순했다가 문재인 정부에 강제 북송당한 지 4년 만이다. 국제 제재와 코로나 봉쇄로 경제난이 가중되자 북·중 국경이 아닌 해상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북·중·러 밀착에 따른 탈북자 단속 강화로 중국 등을 통한 한국행이 힘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과 북한정의연대는 ‘통일과나눔 재단’ 긴급 콘퍼런스에서 올 8월 북·중 국경이 다시 열린 후 10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탈북자 620여 명이 5~7곳 세관과 변방대를 통해 강제 북송됐다고 밝혔다. 중국 변방대 등에는 아직도 1000명 넘는 탈북자가 북송 대기 중이라고 했다. 언제든 더 북송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송된 이는 대부분 여성이었고 임신부와 영아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 측 호송 버스와 승합차에 실려 북에 넘겨지면 북한 보위부로 이송된다. 가혹한 고문과 조사가 기다리는 곳이다.
북한정의연대 등은 북이 이들을 벌거벗겨 때리고 7~9평 감방에 50명 이상을 수감한다고 했다. 물과 밥을 제대로 주지 않고 수시로 가혹 행위와 고문을 하는 등 지옥 같은 환경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행을 시도했거나 한국인·교회 등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거나 즉결 처형한다고 했다.
중국 내 탈북자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 지린성과 랴오닝성 일대 감옥과 구류장에는 잡혀 온 탈북자가 수백 명에 이르고 강제 노역까지 한다고 했다. 북한이 탈북자 일가를 몰살하고 브로커도 처형한다고 협박하는 통에 중국으로 넘어가는 도강(渡江) 비용이 10배 가까이 뛰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탈북 브로커 단속 강화와 일부 사기 행각 때문에 태국·라오스 등으로 가는 남방 탈북 경로는 사실상 끊겼다. 북한 동포를 구원하는 생명 줄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유엔 총회에서 채택할 북한 인권 결의안에 탈북자 강제 송환 반대를 명시해 중국이 함부로 탈북자를 송환하거나 단속·구금하지 못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한중 관계를 강화해 대중 협상력을 높이고, 중국이 스스로 가입한 난민 협약과 고문 방지 협약을 지키도록 촉구해야 한다. 재외공관의 탈북자 보호 지침을 정비하고 탈북 경로를 되살릴 민간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조선일보 사설
10-26 [단독]25년 中거주 탈북민도… 中, 강제 북송 시켰다
14세때 탈북 여성, 中공안에 체포
수감중 태어난 손주도 못보고 북송

▲지난 9일 오후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 뉴스1
“엄마 이제 북한으로 갈 것 같아. 잘 지내야 해….”
9일 오후 7시 반. A 씨는 엄마에게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떨렸다. 엄마는 북한을 탈출한 뒤 지린성 창바이현에서 25년간 살다 올해 4월 중국 공안의 불심 검문에 걸려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변방대 구류시설로 끌려갔다.
A 씨는 엄마가 수감돼 있던 5월 아이를 낳았다.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불길함을 직감한 A 씨는 손주 얼굴이라도 보여주려고 면회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한 그날 북한으로 송환됐다.
40대인 엄마 김연화(가명) 씨는 1998년 열네 살 때 북한에서 탈출했다. 북한 전 지역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고난의 행군 시절,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 탈북 브로커의 말에 속아 두만강을 건넜다. 배고파서 죽으나 도망치다 잡히나 매한가지란 생각에 가진 돈을 모두 브로커에게 줬다. 그런 김 씨를 기다린 건 50대가 다 된 중국인 남편. 인신매매였지만 그녀는 꾹 참고 가정에 최선을 다하며 정착했다. 탈북 이듬해인 1999년 딸 A 씨를 낳았다.
김 씨처럼 중국에서 체포돼 강제북송된 탈북민의 숫자는 이달 9일 약 500명을 포함해 올해만 62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봉쇄한 국경을 일부 열면서 중국의 강제북송이 재개된 것. 우리 정부는 김 씨처럼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중국에서 살며 정착한 탈북민까지 북송하고 있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20년 넘게 산 탈북민을 북송한다는 건 이제 중국에서 그들을 털어내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북송된 탈북민들은 조사 과정에서 고문·폭행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인권단체들이 지적했다.
中서 10년넘게 산 탈북여성들 올해 집단 북송… 아이와 생이별
中, 올해 620명 강제북송
탈북뒤 인신매매로 中남성에 팔려
아이 낳고 살다가 줄줄이 체포
中전역 수감 탈북민 2000명 추산

“파란 하늘이 보고 싶어요.”
중국 동북 지역 소도시에 살던 30대 탈북민 최금순(가명) 씨는 2020년 이후 집 밖을 거의 못 나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정부가 방역 통제를 위해 주민 불심 검문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탈북민은 검문에 걸리면 꼼짝없이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컸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웃이 생기면 방역 요원들이 최 씨의 집 현관문을 더 자주 두드렸다. 그때마다 최 씨는 어린 딸을 꼭 끌어안고 숨을 죽였다.
최 씨는 2015년 중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가고 싶어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왔지만 나이 많은 중국인 남편에게 팔려갔다. 딸을 낳은 뒤엔 일단 위험 부담이 큰 한국행 대신 숨어 사는 길을 택했다. 딸 곁에서 살기 위해 최 씨는 철저히 신분을 숨기며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렇게 죽은 듯 숨어 살던 최 씨가 올해 중국 공안에 검거된 뒤 이달 9일 대규모 강제 북송 당시 함께 송환돼 여덟 살 딸과 헤어졌다고 탈북 여성을 돕는 통일맘연합회의 김정아 대표가 밝혔다. 김 대표는 “중국 정부가 방역을 위해 집집마다 수색하는 과정에서 검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올해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돼 북-중 국경 봉쇄가 느슨해지자 중국이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최 씨처럼 중국에서 가정을 이뤄 살거나 십수 년 동안 생활해 정착한 탈북민조차 강제 북송하고 있어 “중국의 탈북민 송환 정책이 강경하게 바뀐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中서 10년 이상 생활 탈북 여성 다수 북송

중국이 9일 기습 강제 북송한 탈북민 500여 명 중에는 중국에서 10년 이상 생활해온 탈북 여성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들 대부분은 생활고로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 남성에게 인신매매로 팔려 와 자식까지 낳고 길러온 여성들이었다.
탈북 후 중국에서 10여 년간 살아온 탈북 여성 8명은 올해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하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변방대 구류장에 구금됐다. 인신매매로 중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들도 대부분 아이를 기르는 엄마였다. 이들 중 일부는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벌금을 낼 돈이 없는 여성들은 구금돼 북송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한 대북 소식통은 “공안이 일부 여성을 풀어주면서 ‘한국과 연락해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고 전했다.
올해 중국이 강제 북송한 탈북민 수는 62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과 휴먼라이트워치(HRW)에 따르면 중국은 8월 29일(80명)과 9월 18일(40여 명), 탈북민을 태운 버스를 북한 신의주로 보냈다. 이후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인 이달 9일에도 탈북민 500여 명을 기습 북송했다. 이때 500여 명은 각각 중국의 단둥, 투먼, 훈춘, 창바이, 난핑 등 5곳 변방대를 거쳐 북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과 북한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기간 체포돼 중국 전역의 감옥에 수감된 탈북민을 2000여 명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 만큼 북송되는 탈북민 수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 “올해 장기체류 탈북민 북송 재개”
국제사회는 “사선(死線)을 넘어온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강제 북송을 단행 중이다. 중국 내 탈북 여성이 포함된 가족 해체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탈북민이 북한으로 송환되면 강제 구금은 물론이고 폭행, 고문 등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23일 제78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 회의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민이 고문, 성폭력, 적법 절차를 밟지 않은 살인 등에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25일 전했다.
중국 정부는 탈북민을 불법 체류자로 보고 강제 북송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탈북민들은 박해 위험에 놓인 난민이라는 입장이다. 그런 만큼 중국이 강제 송환 금지 원칙도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신희석 법률담당관은 “정부는 31일 유엔총회와 북한인권 결의안 작성 과정에서 중국의 탈북민 강제 송환 중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이 중국 내에서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중국 정부에 요청하는 것도 방안으로 거론된다.
정부 소식통은 “중국이 장기 체류 중인 탈북민들까지 강제 북송한다는 건 탈북민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메시지일 수 있어 더 걱정”이라며 “우리 정부도 강제 북송 반대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낼 방침”이라고 전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10-26 “강제 북송 않는다” 北 주민에 알릴 때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엑소더스(대탈출)의 시작인가? 북한 주민이 귀순해 올 때마다 주목하는 부분이다. 1987년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김만철 씨 일가가 굶주림과 추위 등을 피해 동해를 통해 귀순하면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외쳤던 시절부터 북한 내부를 주시하고 있다. 대량 탈북의 급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북한 정권의 철저한 통제로 대남 봉쇄가 심해지자 주민들은 북·중 국경 루트를 이용했다. 해상 탈북을 위해서는 무동력의 목선이나마 선박이 필요한데, 오호(五戶)담당제로 서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어 목선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 24일 북한 주민 4명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순해 왔다. 그들은 “북한에서 굶주렸다”며 “먹고 살기 위해 내려왔다”고 했다. 가을걷이 철이지만 하위 30% 주민의 먹거리 사정은 여전히 악화일로다. 1990년대 중반 100만 명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에 버금간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 주민의 동해상 귀순은 2019년 11월 북한 어민 2명 귀순 이후 4년 만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그들을 강제 북송하는 반인도적 만행을 저질렀다. 귀순 주민이 다시 동해 루트를 이용한 것은, 윤석열 정부는 문 정부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일부 북한 주민들 사이에 알려져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 5월 초 북한 주민 9명이 서해상으로 탈북한 이후 이뤄진 가족 단위 귀순이라는 점에서 해상 탈북이 늘어날 가능성을 키우는 것은 북한 내부의 절박한 사정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8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경을 재개방했지만, 중국이 항저우아시안게임 폐막 이후 탈북자를 강제 북송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고육책으로 해상 루트를 택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정찰위성 등 첨단 군사기술을 받기 위해 포탄과 탄약 등을 실은 컨테이너 1000여 개를 먼저 러시아에 보내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는 러시아의 밀 지원을 거부하고 군사 기술에만 관심을 보였다. 일반 주민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빵보다는 군사 도발용 군사력 제공에만 매달렸다. 말로는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고 허풍 떨지만, 민생은 그의 안중에 없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9월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결정을 내린 만큼, 전단 등을 통해 북한에 새로운 정보를 들여보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정보로 무장한 인민을 가장 두려워하는 만큼, 첨단 기술을 동원한 정보 유포로 북한 주민을 일깨워야 한다. 외부 세계의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정보전달(information delivery)’이 필요하다.
윤 정부는 문 정부와 같은 강제 북송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려야 한다. 북한은 2020년부터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같은 억압적 법령을 계속 만들어 주민들을 외부와 최대한 격리시킨다. 지난주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대북 정보 유입을 위한 새로운 전략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북 라디오 방송을 비롯한 민간단체의 외부 정보 유입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과거 동서독이 교류 협력을 하던 시절에도 서독은 동독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산주의의 문제점과 민주주의의 실상을 전하는 정보전달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외부 세계와 북한 주민 간의 접촉면을 확대하는 정책만이 김정은 정권의 비인도적 폭정을 중단시킬 수 있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11월 호
■대공수사권 이관 앞두고 탈북자 대북송금 수사 나선 경찰
“수사권 이관 앞두고 대공실적 내라는 압박 내려와”(일선 경찰서 간부)
⊙ “정치권 관련 첩보는 부담스럽다고 거절… ‘탈북민 사건이 수월하다’”
⊙ 탈북민 수사, 혐의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내용은 ‘간첩’
⊙ “최근 벌어진 탈북민의 대북송금 단속, 경찰청 안보수사국 지침 사항은 아니다”(경찰청 관계자)
⊙ “국보법 위반 정황 들여다보기 위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든 것”(경찰서 관계자)
⊙ “이걸 범죄라 한다면 나 포함 모든 탈북민이 범죄 가담자”(서재평 탈북자동지회장)

▲최근 경찰로부터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은 탈북민들. 사진=월간조선
최근 경찰에게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는 탈북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간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 명목의 돈을 부쳐왔고,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인도적(人道的) 차원에서 묵인해왔다. 탈북한 지 23년 된 한 탈북민은 “매년 고향에 송금을 해왔는데, 이 건으로 조사를 받은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들은 “죄명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지만 수사 내용은 완전히 ‘간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대공(對共)수사권 이관을 앞둔 경찰의 ‘무리한 실적 올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경찰서 한 간부는 “수사권 이관을 앞두고 경찰청에서 일선서( 署) 상대로 대공실적을 내라며 압박 섞인 독려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400만원 송금에 ‘압수수색’
지난 7월 17일 서울에 거주 중인 탈북민 김모(某)씨는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죄명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다. 김씨는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데 경찰이 10명 가까이 들이닥쳤다”면서 “영장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수색이 필요하다면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포렌식했다”고 했다. 탈북 5년 차인 김씨는 그간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소액의 돈을 부쳐왔는데, 이따금씩 지인(知人)의 부탁으로 돈을 대신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의 영장에는 “외국환 업무를 하려면 업무를 위한 충분한 자본, 시설 및 전문 인력을 갖춰 미리 기획재정부에 등록해야 하지만, 등록한 사실 없이 지난 2022년 12월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달라’는 지인의 의뢰를 받고 400만원을 이체받아 그 돈을 중국에 있는 북한 송금 브로커 계좌로 이체했다”고 돼 있다. 김씨는 “우편 고지나 전화 확인 없이 이렇게 압수수색부터 나오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면서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송금 업무를 통해 북한에 정보를 넘겨준 게 아니냐’며 ‘이중 스파이’라는 용어까지 썼다”고 했다. 지금은 해제됐지만 8월경 ‘출국금지’까지 당했다고 한다. 김씨는 현재 해당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황모씨 또한 최근 똑같은 일을 겪었다. 그는 “지난 4월 탈북민인 아내가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4명의 경찰에게 압수수색을 받았다”면서 “현재까지 세 차례 경찰에 출석한 상태”라고 했다. ‘범죄 사실’은 김씨와 같다. 황씨의 부인 또한 지인으로부터 몇 차례 돈을 건네받아 중국으로 보냈다. 황씨는 “죄명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지만 수사 내용을 살펴보면 간첩으로 몰고 있다”고 했다. 황씨 아내의 영장에는 이런 문구가 기재돼 있다.
“대북(對北)송금 대금이 재북(在北) 가족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북한 내 상선(총책)과의 공모와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피의자가 이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금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북한 내 공범이 수수료 일부를 반국가단체 구성원 등에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고, 외화벌이 사업이나 국내 탈북민 정보 수집을 위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 직접 브로커로 활동하거나 공모(정보원 운영)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씨는 “영장을 받기 위해 죄명은 확실한 혐의인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하고, 추정에 기반한 간첩 혐의를 묶어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것 같다”면서 “경찰은 아내의 휴대폰은 물론 남편의 가담 여부도 조사해야 한다며 내 휴대폰까지 모두 포렌식했다”고 했다.
“경찰에서는 북한으로 돈이 가는 절차도 잘 모르고 있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줬다. 또한 아내 계좌로 돈을 부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떼인 일은 없느냐’ ‘고소할 생각은 없느냐’고 일일이 묻기도 했다. 이제껏 이래왔는데 왜 갑자기 문제가 되냐고 했더니, 경찰은 ‘합법적으로 돈을 보내라’고 했다. 북한으로 돈을 ‘합법적’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으면 제발 알려달라고 했더니 대답이 없었다.”
“작년에는 혐의가 안 됐던 것이 최근 혐의가 된다니…”

▲탈북민들은 고향 송금 후 브로커들로부터 돈을 잘 받았다는 가족의 영상을 전달 받는다. 영수증 역할인 셈이다. 사진은 한 탈북민의 재북 가족. 사진=월간조선
한국에서 북한 가족에게 송금하려면 세 단계를 거친다. 한국 내 브로커, 중국 내 브로커, 북한 내 브로커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는 약 40~50%라고 한다. 100만원을 부치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건 그 반 정도인 셈이다. 이들 브로커 조직들은 ‘암거래’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시중 은행을 통하면 송금액 한계 등 제한이 많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국과 북한 정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가 크다. 실정법상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맞지만, 그간 인도적 차원에서 정부와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묵인해왔고 적극적인 단속은 없었다.
돈을 보내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중국이나 북한의 브로커가 떼먹거나, 북한 내에서 단속에 걸려 뺏기는 경우 등이다. 때문에 브로커들은 ‘돈을 잘 받았다’는 재북 가족들의 영상을 찍어 함께 보내준다. 이게 영수증 역할을 한다. 황씨는 “재북 가족 송금은 내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끈이자, 가족들의 안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면서 “경찰은 휴대폰 압수 후 해당 영상을 보고 ‘돈 보낸 증거가 여기 있지 않으냐’고 했다”고 했다.
서울에서 식당일을 하는 탈북민 최모씨 또한 유사한 일을 겪었다.
“작년 7월 말에 서울경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경찰 두 명이 보자고 해서 만났다. ‘당신을 국가보안법 위반(목적수행)으로 5년간 내사(內査)를 했는데, 혐의 입증이 안 돼서 종결지으려 한다. ‘불입건 결정 통지서’가 집으로 갈 테니 알고 있으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내사 과정에서 살펴보니 북한에 돈을 꾸준히 보냈던데, 이걸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걸 수는 있지만 먹고사는 일이라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올해 9월, 타(他) 지역 경찰서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출석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최씨는 “상황이 변한 것도 없는데, 작년에는 혐의가 안 됐던 것이 최근 혐의가 된다는 것이 황당했다”면서 “경찰서 거리가 머니까,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이송해달라고 하니 안 된다고 했다.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한다기에 갔고, 7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했다. 최씨는 이어 “2007년 한국에 정착해 17년째 같은 방식으로 북한의 노부모에게 돈을 보내왔고, 지인의 부탁을 받아 대신 부치기도 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황씨 또한 “탈북 14년째이고, 이제껏 해오던 일인데 송금 건으로 이렇게 수사를 받은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문제로 다발적 수사 벌이는 경우 처음 봤다”
울산에서 거주 중인 김모씨는 올해 5월 ‘외국환거래법 위반’ 약식기소 처분으로 7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앞서 세 명의 탈북민과 마찬가지 이유였다. 그사이 경찰 조사를 7~8차례 받았는데 아침 9시에 가서 저녁 6시에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김씨는 “경찰에서는 ‘북한 보위부나 군부에 돈을 상납하지 않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면서 “5년 동안의 내 계좌 거래내역에 더해 남편의 계좌, 매달 5만원씩 기부하는 계좌와 거래내역상 입금·송금인의 계좌까지 모두 열어봤고, 타인 명의로 입금된 돈은 무조건 외국환거래법 위반 액수에 포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하루에도 지인들의 전화가 수십 통씩 왔다”면서 “무슨 큰 불법을 저질렀기에 경찰이 계좌까지 열어보냐고 했다. 수치심이 들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현재 탈북민 수는 3만 명이 넘는다. 한 탈북민 인권 재단 관계자는 “북한에 가족을 둔 탈북민은 모두 생활비를 송금한다. 수십 년간 재단 일을 하며 이 문제로 다발적 수사를 벌이는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10여 년 전 1000억원대 규모의 돈을 환치기한 국내 탈북민 브로커가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례는 봤지만 자기가 번 돈과 몇몇 지인에게 받은 돈을 보내는 걸로 단속을 하는 경우는 없었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탈북민의 신변 보호를 위해 처음 탈북 5년 동안은 신변보호관이 따라붙고, 경찰은 이들의 동향을 꾸준히 파악한다”면서 “경찰에서 탈북민의 송금 생리를 모를 리가 없는데 이 같은 수사를 한다는 건 납득되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탈북 5년 차인 김씨는 압수수색 이후 자신의 신변보호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 안팎에서도 ‘무리한 수사’ 지적
서재평 탈북자동지회장은 “국내 탈북민은 다들 재북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있다”면서 “이걸 범죄라고 하면 나 포함 수많은 탈북민이 범죄 가담자 내지 연루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수사를 받은 사례자들의 계좌에 만일 다수 불상자의 돈이 수차례 입금됐다고 하면, 탈북민 브로커로 의심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탈북민 브로커 또한 필요한 존재다. 개별적으로 중국 브로커에게 송금했다가 만일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브로커를 업(業)으로 하지 않더라도 탈북민들은 대부분 지인의 돈을 대신 받아 보내준 경험이 있다.”
경찰 안팎에서는 대공수사권 이관을 앞두고 실적을 올리기 위한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선 경찰서 한 간부는 “수사권 이관을 앞두고 경찰청에서 일선서 상대로 실적을 내라고 압박 섞인 독려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경찰은 유(有)의미한 첩보보고서 등으로 인사고과를 받기도 하지만, 피의자 송치가 이뤄지면 실적에 반영된다. 앞서 5년 차 탈북민 김씨의 관할 경찰서의 경우 최근 6명의 탈북민을 송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벌어진 탈북민의 대북송금 단속이 경찰청 안보수사국 지침 사항은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중국 내 탈북민 2000명이 강제 북송(北送) 위기에 처해 있다. 때문에 이들을 구하기 위한 국내 탈북민들의 송금 또한 활발히 이뤄지는 중이다. 방첩(防諜)기관 한 관계자는 “최근 이 상황을 이용해 경찰에서 탈북민 송금 건을 평소보다 강도 높게 수사 및 단속하는 중이라는 정보가 들어온 적이 있다”고도 했다.
“탈북민 송금은 대한민국 체제 선전 효과”
앞에서 언급했던 탈북민 황씨는 14년 전 먼저 탈북한 가족에게 생활비를 받는 이웃집의 사례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남한은 아직 거적때기를 입고 산다’고 교육한다. 한국이 훨씬 우월하고 잘사는 나라라는 것을 이웃집 탈북민 가족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방첩기관 출신 한 인사는 “탈북민 재북 가족 송금은 이처럼 대한민국 체제를 선전(宣傳)하는 효과도 낸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 같은 점 때문에 남한으로부터의 송금을 철저히 단속 중이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장은 “김정은 또한 이를 인지하고 2018~2019년 북한 브로커 80~90%를 모두 잡아서 수용소에 보내는 대소탕전을 벌였다”고 했다.
송금이 막히면 탈북민의 추가 유입이 줄어드는 이유는 또 있다. 탈북민을 빼오기 위한 비용 또한 이들 브로커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30여 년간 방첩 업무를 담당한 또 다른 인사는 “북한에서는 일가족이 한 번에 탈출하기가 어려워 먼저 넘어온 가족이 남은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보낸다”면서 “때문에 그간 인도적 차원에서 수사기관에서는 북한 가족들 간 돈이 오가는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다. 경찰이 이 부분을 집중 단속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탈북민 구출 활동을 하는 한 인사는 “탈북민 한 명당 구출을 위한 비용이 2만 달러(약 2700만원)다. 1년에 3명만 데려와도 6만 달러(약 8310만원)다. 그런데 시중은행을 통하면 1년에 5만 달러(약 6700만원)까지만 송금이 가능하다”면서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이들을 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시중은행을 통하겠나. 더군다나 이들은 다들 북한, 중국 정권의 발각 위험에도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그렇게 따지면 탈북 자체도 다 불법”이라고 했다. 서재평 회장은 “이런 이유에서 수사기관에서는 탈북민 브로커들도 웬만하면 손대지 않아 왔다”고 했다.
브로커들을 통해 공작금이 오가기도 한다. 정보기관 한 관계자는 “탈북민과 탈북민 브로커를 통해 대북공작에 활용하는 비용이 오가기도 한다”면서 “이들 브로커를 단속하기 시작하면 대북공작에도 차질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불법 정황 수사 안 할 수는 없어”(경찰)
정보기관에서는 탈북민을 통해 북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황씨는 “나 또한 탈북민 구출 활동을 도우며 북한 동향을 정보기관에 제공하기도 했고, 국가보안법 사범도 3명이나 제보했다”면서 “때문에 휴대폰에는 민감한 자료가 많은데, 경찰이 포렌식으로 이를 다 들여다본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최근 같은 건으로 조사를 받은 탈북민들이 여럿 있는데, 무서워서 나서지를 못하고 있다”면서 “나를 받아준 대한민국이 고마웠고, 내 나라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 마음이 식어버렸다. 요즘에는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어디에도 고향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황씨는 “내년부터 대공수사권이 이관되는 걸로 아는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까 겁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최씨와 황씨를 조사 중인 관할 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5년 차 탈북민 김씨를 기소한 관할 경찰서 담당자는 “탈북민이 계속 유입돼야 하고, 이들의 송금 행위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용인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면서 “그러나 불법적 정황을 수사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김씨가 지인의 돈을 북한에 송금한 직후 그 집에 보위부가 들이닥쳤다는 제보를 받았다. 때문에 김씨의 보위부 측과의 공생(共生)관계 혹은 이중 스파이 정황을 의심, 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의심점 하나로 처음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 수는 없으니까, 불법적 정황을 들여다보기 위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든 것이지, 외국환거래법 위반 자체를 처벌하려는 건 아니었다. 수사를 진행하다 보니 중국에 있는 ‘큰손’ 브로커가 친 사기임이 드러났고, 김씨의 대공 용의점(容疑點)은 없는 것으로 파악 중이다. 물론 인도적인 차원에서 수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돈이 입금된 중국 쪽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활용되는 경우 등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경찰은 경위 파악을 위해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탈북민의 재북 가족 송금에 대해서 한동안 묵인하고 방관해왔지만 실정법(實定法) 위반인 건 맞다”면서 “엄밀히 말하면 국가보안법상 편의제공죄에도 해당하는데, 최근 국보법의 엄격한 적용을 않다 보니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음은 아프지만 이 같은 송금 건으로 브로커들이 활개 치고, 북한에 있는 가족이 인질로 잡히는 등 악용되는 사례도 많다”면서 “공신력 있는 대북인권기관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송금하는 절차 마련 등 어떤 식으로든 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공식적 송금 절차 마련 필요”
30년 이상 대공 업무를 수행한 한 인사 또한 “투명한 송금 절차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돈이 북한 무기자금이나 통치자금으로 쓰이는 게 아니다. 북한에 있는 부모는 굶는데 내가 여기서 잘산다 한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 경찰 입장에서는 이 일을 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하겠지만, 북한에서는 송금 문제를 강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암거래 형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들이 역(逆)탈출하지 않도록 나서야 한다. 불법성이 문제라면 이를 제도화시키는 방책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브로커한테 떼이는 수수료도 너무 많다. 한중 간 은행과 북한의 고려은행과 중국 은행 간 MOU를 맺어 투명하게 거래하도록 하는 방안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방첩기관 간부 출신 한 인사는 “경찰은 기존 방첩기관보다 더 광범위한 대공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면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해당하는 이적(利敵)단체가 아닌 일반 이적사범까지 수사가 가능하다 보니, 실적주의 조직 특성상 굵직한 대공 업무보다, 처리하기 쉬운 약자(弱者)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가 늘어날까 우려된다”고 했다.
실제로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수사기관 관계자 A씨는 “작년 말 한 정치권 인사의 국보법 위반 혐의와 관련, 경찰에 첩보를 넘긴 적이 있는데 경찰 측에서는 정치권 인사는 부담스럽다고 거절하며 ‘탈북민 사건이 수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11.06 북 억류 6명에 뒤늦은 보상, 납북자 송환은 국가의 기본 책무

▲김영호(왼쪽)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월 3일 취임 후 첫 대외 일정으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납북자, 억류자, 국군 포로 단체 대표·가족들을 초청해 면담을 하고 있다./뉴스1
북한이 장기 억류 중인 선교사 3명과 탈북민 3명의 가족에게 통일부가 최고 2000만원씩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실질적인 납북 피해자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이들은 북한 감옥에서 복역하는 등 반인권적 억압 상태에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이들의 생사조차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미국·캐나다 등 외국 국적 억류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풀어주면서도 대한민국 국적자에게는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길게는 10년 이상 억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방치하던 북한 억류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뒤늦게나마 법적 보상을 해주고 앞으로 송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통일부는 지난 9월 국군 포로, 납북·억류자 문제 해결을 위해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 대책 팀을 설치했다. 전례없는 조치였다. 지난 8월 한미일 3국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선언에 ‘납북자, 억류자, 국군 포로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문구를 포함하기도 했다.
일본은 북한이 저지른 납북 문제를 정권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있다. 2002년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가 김정일에게 일본인 납치를 사과받은 후 납북자 17명 중 5명을 데려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서 끈질기게 납북자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다뤄 달라고 요구해 관철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 각료들과 자민당 의원들은 납북자 송환을 상징하는 파란색 배지를 달고 다닐 정도다.
반면, 전후 납북자가 500명이 넘고 한국인 6명의 북한 억류가 장기화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국민의 관심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른바 진보를 자칭하는 정부에서 탈북자·납북자·억류자는 금기어에 가까웠다. 대화 문을 걸어 잠그고 핵무장에 집중하는 김정은 체제에 맞서 국군포로, 납북자와 억류자 문제를 해결하기는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렵다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북한이 성의를 보일 때까지 국제사회에 끈질기게 호소하고 북한을 압박해 반드시 우리 국민을 이 땅으로 데려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07 25년간 북한 분석해온 CIA 출신, 탈북 다큐 제작자로 변신
수미 테리 前 윌슨센터 국장 방한

▲일가족의 탈북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유토피아를 넘어서’의 공동 제작자인 수미 테리 전 윌슨센터 국장이 6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등을 거쳐 25년간 북한 문제를 연구한 테리 전 국장은 “북한에 대한 보고서를 쓰고 의회에서 증언을 해도 그때뿐이었다. 그래서 대중의 기억에 남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장련성 기자
“북한에 관한 보고서를 열심히 쓰고 의회에서도 부지런히 북한 상황에 대해 증언했지만 그때뿐이었어요. 대중의 뇌리에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영화 제작으로 잠시 눈을 돌리게 됐죠.”
탈북민 일가족의 탈북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유토피아를 넘어서(Beyond Utopia)’의 외교부 상영을 위해 방한한 수미 테리(52) 전 윌슨센터 국장은 6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테리 전 국장은 미 조야(朝野)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다. 뉴욕대 정치학과,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을 졸업한 그는 중앙정보국(CIA)·국가정보위원회(NIC)·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서 약 25년을 일하며 북한 분석을 해왔다.
그런 테리 전 국장이 지난 5년 이상을 북한 인권에 관한 영화 제작에 매달렸다. 영화는 탈북민 일가족의 실제 탈출 여정을 다루는데 “나도 이론으로만 북한을 알고 있었고 실체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올해 1월 영화가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에는 본업을 잠시 미뤄둔 채 런던·토론토·서울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영화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이민길에 오른 테리 전 국장은 “미국 입국 직후 찾은 영화관에 ET, 소피의 선택 같은 작품이 걸려있던 것을 기억한다”며 “나는 북한 전문가이기에 앞서 1주일에 1~2번은 영화관에 가야 하는 ‘영화 덕후’였다”라고 했다. 3명의 공동 제작자 중 한 명으로 모금 활동을 하고, 스태프를 섭외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고 한다.

▲일가족의 탈북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유토피아를 넘어서'에서 북·중 국경 지대에 은신해 있는 우모씨 가족이 영상 통화를 통해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한 북한 주민이 탈북을 위해 강을 건너고 있는 모습. /유튜브
영화는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고, 지난달엔 미 600여 개 극장에서 상영되는 등 ‘바람 몰이’에는 일단 성공했다. 테리 전 국장은 “내년 3월 있을 아카데미상 ‘쇼트리스트’ 15개 작품에 올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카데미상은 회원 수백 명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이들이 영화를 보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 그는 “고급스러운 식당을 섭외하거나 화려한 파티를 주최해 소문을 낼 수도 없으니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3대로 이뤄진 탈북민 가족과 이들의 구출에 관여한 김성은 목사를 대동해가며 우리의 진정성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다른 다큐 영화들이 사후 증언을 바탕으로 하는 것과 달리 우리 영화에는 재연 장면이 하나도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도 했다.
테리 전 국장은 “많은 미국인들이 여전히 북한 하면 핵·미사일이나 김정은 일가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만을 떠올린다”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 인권 문제를 알리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공을 들였던 넷플릭스에서 상영할 수는 없었지만, 내년 1월 한국과 미국의 주요 OTT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테리 전 국장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을 때 탈북민 강철환씨의 책을 읽었고 여기에 감명받아 북한 인권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며 “눈물이 많고 감성적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꼭 이 영화를 보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영화는 오전 외교부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직원 수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단체 상영됐다. 박 장관은 “해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보호는 외교부의 핵심 임무”라며 “이들이 강제 북송될 경우 극심한 고초를 겪게될 것을 우려해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있다”고 했다. 테리 전 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이전 정부와 비교하면 중국에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이 바른 소리를 한다고해서 결코 중국이 보복하지 못한다.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11-07 탈북자들과 미국 방문한 태영호, “유엔 결의안에 탈북자 북송은 중국 책임 명시해야”

▲연합뉴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탈북자 북송은 중국의 책임’이라는 문구가 명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 북송 피해자 가족 등이 결성한 ‘탈북민 강제 북송 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 미국을 방문 중인 태 의원은 6일(현지시간) 뉴욕 특파원들과 만나 “강제 북송의 책임을 져야 할 나라는 중국”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태 의원은 유엔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책임을 북한인권결의안에서 언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면서도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중국의 책임 문제에 대해 모두 침묵한다면 중국은 계속 오만하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탈북자 강제 북송 비상대책위원회는 인권단체 관계자 등과 이날 오후 뉴욕 맨해튼의 북한대표부 앞에서 탈북자 북송과 금지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태 의원과 탈북자 강제 북송 비상대책위원회는 7일 워싱턴DC에서 줄리 터너 미국 국무부 북한 인권 특사 등을 만날 예정이다.
문화일보 황혜진 기자
11.09 美 우파 스타로 떠오른 탈북민…“생각 강요하는 미국, 北과 다를 게 없다”
2014년부터 美 정착 박연미씨

▲최근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탈북자 박연미. 그는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올바름(PC)' 문제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어디에 사는지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이사를 하게 된다"면서 사진 배경이 되도록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윤주헌 특파원
“북한 총알에 죽을지 중국 총알에 죽을지 또는 미국 좌파 총알에 죽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정말 힘들게 갖게 된 자유고, 너무 소중하잖아요. 이러다 죽으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탈북민 출신 박연미(29)씨는 한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한때는 인권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얼마 전부터 미국의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를 거침없이 공격하는 ‘반(反)PC 활동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민주당 등 미 진보 진영과 학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PC주의는 소수의 권리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틀어막아 버림으로써 폭력적인 전체주의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진보 언론인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은 그의 ‘변신’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한편, 과거 그가 한 말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을 최근 내놓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박씨는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미국의 PC주의 문제를 왜 자꾸 지적하나.
“컬럼비아대에 2016년 편입을 했다. 당시 가장 많이 주입당한 얘기가 ‘감정(feeling)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생물학적인 남성인데 자신이 여성이라고 느끼면(feel) 그 사람은 여성이므로 나도 이를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얘기였다. 누가 봐도 남성인데 자기가 여성이라고 느낀다고 하면 여성 화장실·탈의실 가도 된다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과학적 진실보다 감정이 중요하다는 얘기 아닌가. PC가 이렇게 말이 안 된다.”
-진보 기류가 강한 대학 내에서 PC주의를 지적하면 공격당하지 않나.
“당혹스러운 경험을 적잖이 했다. 한 교수님이 어느 날 ‘남성이 여성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이유는 강압으로 여성을 사로잡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나도 자주 문 잡아 주는데 그냥 호의일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랬더니 ‘연미, 너는 강압적인 북한에서 와서 잘 몰라서 그런다’라고 하더라. 그냥 생각이 다른 것이지, 북한이랑 무슨 상관인가. 또 PC의 위험에 대해 말하면 ‘너 지금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물고기가 물에만 있으면 물이 귀한 줄 모른다. 나는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언어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사상을 강요하는, 북한이 떠올랐다.”
-어떤 측면이 북한과 닮았나.
“많은 미국 학교에선 요즘 어린이들한테 ‘남자도 여자가 될 수 있고, 여자도 남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의를 제기하면 ‘증오 발언’이라고 공격한다.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므로 ‘나는 고양이다’라고 믿는다면 사람이 고양이인 것이고, 80대가 ‘나는 두 살’이라고 하면 아이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식이다. 과학과 거리가 먼 사상을 강요하고 주입하는, 북한에서 경험한 세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박씨는 2020년 발생한 이른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의 ‘워크(woke·깨어 있다는 뜻으로 과도한 PC주의를 뜻함)’ 운동이 도를 넘는 수준으로 치달았다고 했다. 흑인인 플로이드가 경찰 체포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후 미국에선 흑인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박씨는 “BLM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너무 많다. 당시에도 북한을 연상했다”고 했다.
-BLM은 인종 차별 반대 시위인데 북한을 떠올린 이유는.
“시위가 한창 격해졌을 때 시카고에서 아들과 길을 걷다가 흑인 여성에게 강도를 당했다. 나는 강도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나에게 다짜고짜 ‘인종주의자’라고 하더라. 당시 도시가 완전 전쟁터였다. 편의점이 다 깨져서 우유도 사올 수가 없었고, 쇼핑몰은 시위대가 쳐들어와 물건을 다 가지고 나갔다. 유리 조각이 거리에 날아다니는 전장(戰場) 같은 상황이었는데 주류 언론에선 이런 문제를 거의 보도하지 않으면서 평화 시위만 부각했다. 사람들이 굶어 죽고 여성들이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도 ‘우리 나라가 제일 좋다’고만 선전하는 북한과 비슷하구나 싶었다.”
-시위가 그렇게 과격했나.
“흑인 문제는 미국에서 너무 정치화가 돼버렸다. 폭동이 일어나면 잡아야 하는데, 시카고 시장이 나와서 진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경찰이 손을 못 댔다. (흑인 인권을 존중하라는) ‘워크’ 앞에서 법도 질서도 없었다. 미국은 법의 국가 아니었나. (진보당인) 민주당은 계속 식민지 시대 노예 제도 얘기를 하면서 ‘너희(흑인)는 피해자다’라고 강조한다. 오늘 살아 있는 사람 중에 노예였던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런데도 흑인에게 계속 피해 의식을 심어주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 한국 정치권이 위안부 문제를 계속 이용하는 것과 똑같아 보였다.”
WP는 올해 7월 박연미가 처음엔 국내 방송에서 부유하게 자랐는데 나중에는 ‘생존을 위해 풀과 잠자리를 먹었다’고 주장하는 등 여러 진술이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이런 지적에 어떻게 생각하나.
“전부 설명을 해왔고 앞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나의 언어적·문화적 미숙함이 오해를 일으켰다. 예컨대 영어를 못했을 때 나는 미나리 같은 것을 생각하고 ‘풀’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는데 ‘grass(잔디)’가 나와 그걸 먹었다고 했다. (더 정확한 단어는 ‘vegetable’<야채>이었을 것이다.) 다만 NYT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 후 내가 트럼프를 비판했을 때는 나를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PC를 비판하고 나서자 변하더라. WP는 내가 책에서 제프 베이조스(WP 소유자)를 비판하니 내 발언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기사를 썼다. 내가 쓴 책만 읽어봐도 그렇게 기사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위의 여러 문제들에도 미국이 나은가.
“한국에서 탈북자는 편견 때문에 살기 힘든 부분이 없지 않다. 택시를 타면 억양이 다르니 어디서 왔냐고 자주 물어보는데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은 어떤 나라라고 ‘강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귀찮아서 그냥 ‘저 미국 교포예요’라고 하면 엄청 태도가 호의적으로 달라지기도 하더라. 다른 탈북자들도 그랬다고 한다. 미국은 그런 식의 차별은 없으니까, 탈북자로선 정착이 오히려 쉽다.”
미국인 사이에서도 지나친 PC주의에 대한 반발이 공화당 등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지속적으로 PC주의를 비판하면서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씨는 “미국에는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업 등 곳곳에 있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과도한 PC주의를 이끌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탈북 초기와 달리 미국에서 너무 화려하게 변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여자니까, 원래 그랬다. 전에는 가난해서 꾸미지 못했을 뿐이다. 요즘은 부자를 증오하는 세계가 됐지만 나는 부자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 일론 머스크처럼 테슬라도 만들고 우주선도 만들어서 부자가 되면 인류에게도 너무 좋은 일 아닌가. 내가 만약 책을 써서 누군가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그렇게 돈 버는 게 왜 나쁜가. 나는 자본주의를 너무 좋아한다. 북한에서 ‘부’는 나쁜 거고 똑같이 평등하게 살라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악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좋다.”
박연미는 최근엔 미 전역에서 초청 받아 대학과 정치 단체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강연이 직업인 이후의 삶에 대해 박연미는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게 꿈이다. 내가 중국의 실체를 알려서 중국에 반대하는 미국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라고 했다.
◇박연미는
1993년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나 2007년 탈북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 다녔다. 201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에서 북한 내 인권 유린의 실상을 다룬 연설로 주목받은 뒤 미국으로 갔고, 2016년 미 동부 명문 컬럼비아대에 편입했다. 2015년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 올해 2월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등 책 두 권을 썼다.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11.15 弔旗는 이재명도 보냈다
尹취임식 참석 뿌듯해한 국군포로 김성태翁 숨져
대통령이 빈소 찾았다면 ‘국가 품격’ 높아졌을 것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2일 오전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귀환 국군포로(참전유공자) 고(故) 김성태 옹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2023.11.2/국가보훈부
육군 7사단 1연대 3대대 김성태 이등중사(하사)는 북한의 남침 당시 18세였다. 부상한 중대장을 업고 뛰다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참전 닷새 만에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포로수용소와 교화소 3곳을 합쳐 20년 가까이 복역한 뒤 함경도 탄광으로 끌려갔다. 4차례 탈출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김 하사처럼 정전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는 최소 5만명이다.
북한 사회 최하위 성분이 된 이들은 감시와 차별 속에 오지의 탄광·광산에서 강제 노역에 내몰렸다. 탄광은 3교대로 24시간 돌아갔고 휴일은 한 달에 하루였다. 폭발, 붕괴 사고가 빈발해도 구조 작업은 없었다. 대를 이어 그렇게 살았다. 특작부대 구출 작전도, 남북 간 석방 교섭도 없었다.
2000년 봄 한국 대통령이 곧 방북한다는 소식이 지하 막장에도 전해졌다. 칠순이 된 포로들은 대통령과 함께 고향 갈 생각에 들떴다. 말쑥한 차림으로 부모·형제를 보겠다며 옷도 맞췄다. 한국을 너무 몰랐다. 몇 달 뒤 조선중앙TV는 남파 간첩,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벤츠 38대에 나눠 타고 평양에서 카퍼레이드하는 광경을 방송했다. 그즈음부터 국군 포로들의 탈출이 본격화했다. 귀환 국군 포로 80명 중 72명의 탈북 시기가 2000년 이후다. 4전 5기로 한국행에 성공, 2001년 8월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연병장에서 전역 신고를 한 김성태 하사도 그중 하나다.
국가 도움은 없었다. 80명 대부분이 자력 탈출이거나 지원 단체 조력을 받았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중국으로 탈출한 국군 포로들의 구조 요청을 외면해 논란이 됐다. 돌아온 뒤에도 홀대했다. 국군 포로 등급제란 것이 있다. 강제 노역까지 ‘간접적 적대 행위’로 규정해 낮은 등급을 부여하고 지원금에 차별을 둔다. 전쟁 포로를 영웅시하는 문명국들이 귀를 의심할 일이다. 일제의 잔재다. “포로가 될 바엔 자결하라”던 도조 히데키의 ‘전진훈’(戰陣訓)식 발상이다.
김성태 예비역 하사가 보름 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작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은 것을 구십 평생 가장 뿌듯한 일로 꼽았다. 국군의날 행사에도 초청받아 대통령과 조우했다. 이런 일을 정부의 태도 변화로 여긴 유족과 지원 단체들이 대통령 조문을 기대했을 법하다. 대통령이 빈소를 찾았다면 “국가의 품격은 국가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렸다. 제복 입은 영웅을 끝까지 예우하는 건 국가의 책무”라고 한 현충일 추념사의 울림은 더 컸을 것이다.
용산 참모들이 대통령 조문에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바쁜 대통령이 이분들 작고할 때마다 갈 순 없잖느냐”는 식이었다. 국군수도병원 빈소엔 관례대로 대통령 명의 조화(弔花)가 전달됐다. 화제가 된 것은 민주당 대표가 보낸 조기(弔旗)였다. 최초였다. 국가 품격까지 거론한 군통수권자와 안보관을 의심받아 온 사람의 예우가 결과적으로 비슷했다.
2009년 10월 29일 C-17 수송기가 카불에서 도버 공군기지로 공수해 온 전사자 유해 18구 앞에 거수경례를 붙이기 위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헬기장에서 마린원에 탑승한 시각은 새벽 3시였다. 2011년 8월 9일에도 이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운구돼 온 전몰 장병 유해 30구에 예를 표하기 위해 몇 달간 준비한 연설을 당일 취소했다. 강한 국가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 하사의 유언은 “전우들이 잠든 국립묘지에 묻어달라”였다. 서울현충원 측은 공간 부족을 이유로 매장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유골을 화장해 봉안당에 갖다 놓았다. 서울현충원 면적은 143만㎡, 묘역만 35만㎡다. 이장(移葬)으로 생긴 공묘(空墓)도 200기가 넘는다. 고인은 생전에 “공묘도 상관없다”고 했다. 육군 현역 군인으로 적지에서 반세기를 분투한 6·25 참전 용사의 마지막 소원이다. 인색할 게 따로 있다. 생존 국군 포로는 이제 10명이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11-20 일본 해변에서 떠올린 북녘 고향

▲일본 홋카이도 서부의 한 해변. 기자의 북한 고향과 위도상으로 정확히 맞은편에 있는 곳이다. 북한에는 백사장이, 일본에는 검은 몽돌 해변이 있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내 고향은 한반도 최북단 바닷가 마을이다. 약 50m 너비의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 고향 집이 있었다. 파도 소리를 자장가로 알고 자랐고, 매일 문을 열면 탁 트인 바다가 맞아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이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성장하면서 세계지도를 통해 바다 건너에 일본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여름에 태풍이 오면 어린 소년의 피는 끓었다. 태풍이 지나간 뒤 해변엔 쓰레기가 가득했다. 그런 날 아침이면 맨 먼저 바닷가 해변에 나가 천천히 걸으며 간밤 해변에 도착한 색다른 쓰레기를 주워봤다. 그것이 세상을 향한 소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에겐 쓰레기일지라도 소년에겐 바깥세상의 비밀을 푸는 퍼즐이었다.
쓰레기는 일본에서 밀려온 것이 가장 많았고, 남조선에서 온 것도 있었다. 주로 빈 페트병, 캔 등이 많았지만 가끔은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쓰레기도 있었다. 일본 슬리퍼 한 짝을 들고 ‘이런 건 왜 신고 다니지’ 궁금했던 적도 있고, 의족 하나를 들고 어떻게 발에 붙이고 다닐까 한참 상상했던 적이 있다. 파란색 일제 플라스틱 파리채를 주워 와 몇 년 잘 썼던 적도 있다.
그 동네에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바다 건너 세상. 그곳에서 매년 꼬박꼬박 건너오는 쓰레기들을 소년은 연애편지를 바라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커갈수록 해변에 앉아 건너편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결국 피 끓는 20대에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중국과 북한에서 여섯 번이나 감옥을 옮겨 다녔어도 바깥세상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2002년 마침내 한국에 왔고, 하나원을 나와 4개월 뒤부터 기자가 돼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꿈은 늘 가슴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내 고향 건너편엔 무엇이 있을까.’
2005년에 구글어스 서비스가 시작됐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고향과 위도가 분초까지 똑같은 일본 해변을 찾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그곳엔 검은 해변이 있었다.
어렸을 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꿈도 꾸지 못했던 그 해변에 서서 이번엔 맞은편 고향을 바라보는 것이 오랜 세월 나의 버킷리스트 1번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보름 전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삿포로에서 니가타까지 일본 북서부 해변 도로를 5박 6일 동안 차로 달렸다.
고향 집과 정확하게 위도가 일치하는 해변은 콩알처럼 작은 검은 몽돌이 깔린,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외진 해변이었다. 그곳에 서서 고향 하늘을 바라볼 때 만감이 교차했다.
어렸을 땐 바다 건너 일본은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꿈을 마침내 이뤘지만, 이번엔 바다 건너 고향이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어찌하여 이 바다는 이렇게도 건너기 힘든 것이 됐을까.
1300년 전 발해인들은 열악한 목선으로도 일본을 오갔는데, 지금의 북한은 그 어떤 배를 타도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발해인들이 타고 왔던 계절풍과 해류를 타고 부서진 북한 목선들만이 백골을 실은 채 일본 해안에 도착할 뿐이다. 발해 사신 양태사는 계절풍을 기다리는 반년이 너무나 길어 ‘한밤의 다듬이소리’라는 애달픈 시를 남겼는데, 니가타항에서 떠난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일본 서해에 머물렀던 엿새 동안 나는 점점 더 외부와 고립돼 가는 북한 동해의 도시와 마을들을 헤아릴 수 없이 떠올렸다. 북한 바닷가 마을 어디에선가 40년 전의 어린 나처럼, 외부 정보가 담긴 쓰레기를 들고 호기심에 반짝이는 두 눈으로 살펴보는 소년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검은 몽돌 해변에서 나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다시 저 건너에 서리라. 어쩌다 보니 나는 또 바다를 건너는 것이 목표인 인생을 살게 됐다. 그것은 바다 건너 북한 인민들의 꿈이기도 할 것이다. 같은 땅에서 태어난 우리가 같은 꿈을 꾸다가 문득 그 꿈이 이뤄지는 날이 온다면, 나는 고향에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저 바다 건너편엔 풍차가 가득한 아름다운 해변이 있더구나. 나는 평생을 바쳐 다녀왔지만, 이제 너희들은 배를 타고 한나절 만에 갔다 오거라.”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2.02 ‘강제 북송 중단’ 결의안 기권한 의원들, 中 야만에 동조한 것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이 재적 의원 260명 중 찬성 253명, 기권 7명으로 가결됐다. 윤미향(무소속), 강성희(진보당), 강은미(정의당), 김정호·민형배·백혜련·신정훈(이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권했다. /국회
국회가 중국 정부에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지난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구금 중이던 탈북민 500~600명을 기습 북송한 지 50여 일 만이다. 결의안은 이 같은 상황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중국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난민 인정 절차를 시행하지 않고 체포, 구금, 강제 북송하는 것을 규탄한다’는 내용이다. 국회가 여야를 초월해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한목소리로 규탄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 결의안은 정파적인 내용이 없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자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은 것이다. 이에 반대할 사람은 북한 김정은 정권과 중국 공산당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서 표결 참석 의원 260명 중 253명이 찬성하고 7명이 기권을 했다. 민주당 김정호·민형배·백혜련·신정훈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 그리고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었다. 대부분이 노동·인권 운동 경력을 발판 삼아 정치에 입문했다.
강은미·강성희 의원은 유사시 우리 주요 시설 타격을 모의한 통진당 출신이다. 북한을 대놓고 추종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기권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는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민주주의와 인권, 국제법을 짓밟는 북한 중국의 행태에 사실상 동조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위안부 할머니들 인권을 위한다더니 할머니들 후원금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는 윤미향 의원이 탈북민 인권을 무시하는 행태와 다를 게 없다.
탈북자는 거의 대부분 굶주리다 못해 탈출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북송되면 가혹한 폭행 고문 구금을 당하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는다.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다. 국제법적으로 엄연한 난민이고, 중국도 난민 규약에 가입한 나라인데 중국은 이를 무시한다. 그런데 국내에서 ‘약자들과의 연대’, ‘사회적 약자를 대변’ ‘약자의 인권 존중’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인권을 짓밟는 중국 공산당의 야만적 행동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 나중에 민주당 백혜련·신정훈 의원은 “전자투표기 오류였다”며 뒤늦게 결의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행이지만, 비판이 쏟아지자 나중에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닌가.
중국의 강제 북송을 중단시키려면 국제사회와 연대해 중국이 야만 국가란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우리 국회가 단합된 목소리로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규탄하면 아무리 중국 공산당이라 해도 이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2.10 윤미향씨, 당신의 조국은 어디입니까?
[아무튼, 주말]
中 탈북자 북송 중단촉구 결의안 기권표 던지고 해명 안하는 이유

▲일러스트=유현호
“꽁꽁 언 두만강 얼음 위에 한 여성의 시체가 놓여 있었어요. 근데 중국도 북한도 그 시체를 안 치우는 거예요. 아마 2주 넘게 얼음 위에 있었을걸요.”
몇 달 전 만난 탈북민 A씨는 10여 년 전 광경을 회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만강은 수심이 얕고 강폭이 좁은 데다, 겨울에는 강물이 얼기까지 해 탈북의 주요 경로였다. 총을 든 경비병이 지키고 있지만, 자유를 향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A씨 역시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사람. 하지만 그가 목격한 여인은 A씨만큼 운이 좋진 않았다. 어떤 이유였는지 그녀는 중간에 넘어졌고, 그대로 얼어 죽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두만강을 건너는 데 성공했다 해도, 그렇게 원하던 자유를 찾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중국으로 간 탈북민 앞에는 숱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가장 무서운 건 탈북 루트에 잠복 중인 중국 공안. 탈북민을 난민이 아닌 불법 이민자로 규정한 공안은 탈북민을 붙잡으면 강제 북송해 버린단다. 그렇게 북으로 끌려간 탈북민을 기다리는 건 교도소나 정치범 수용소 수감, 즉결 처형 등이니, 북한 주민에게 탈북은 목숨을 건 도박이다.
현재 중국에는 탈북민 2000여 명이 갇혀 있다는데, 얼마 전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600명을 기습적으로 강제 북송하기도 했단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회가 11월 30일 열린 본회의 도중 ‘중국은 탈북민 강제 북송을 중단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재석 의원 260명 중 찬성표를 던진 이가 무려 253명이니, 늘 대립하던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 셈이다.
문제는 이렇듯 당연해 보이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안 던진 의원이 7명이나 된다는 점이었다. 그중 한 명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전자투표기 오류로 기권이 됐다며 “시정 조치를 못 해 송구하다”고 사과했지만, 나머지 6명은 지금까지 아무런 해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소신 투표를 했나 보다. 위장 탈당으로 유명한 민형배를 비롯해 김정호, 신정훈 등등 민주당 의원이 셋이고, 이 밖에 정의당 강은미와 진보당 강성희도 기권해 강제 북송에 찬성하는 뜻을 내비쳤는데, 저 명단에서 가장 주목할 이는 바로 윤미향이다.
위안부 할머니를 이용해 모은 돈을 횡령해 유죄판결을 받은 거야 그렇다 치자. 없는 살림에 딸 미국 유학도 보내야 하고, 갈비 먹고 발 마사지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횡령 유혹을 느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탈북민 강제 북송 규탄에 기권표를 던진 건 해도 너무했다. 100년 전 위안부 할머니가 겪은 고통에 공감한다는 이가 탈북민이 마주한 처참한 현실을 외면하는 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에 이해의 단초를 제공한 이가 바로 임수경 전 민주당 의원이다. 임수경은 대학생이던 1989년, 당국 허가도 받지 않고 북한에 가서 45일을 머문 덕분에 ‘통일의 꽃’ 소리를 듣다 결국 비례대표로 국회의원까지 됐는데,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고 사진을 같이 찍자던 탈북민 백모씨에게 다음과 같이 폭언한다.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너 그 하태경하고 북한 인권인지 하는 이상한 짓 하고 있다지?...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 이 변절자 ××들아. 너 몸 조심해.” 그러니까 임수경에게 탈북민은, 그리고 북한 인권을 부르짖는 하태경은 수령을 배신한 변절자인 셈, 윤미향이 임수경과 같은 세계관을 가졌다면 탈북민 강제 북송 규탄에 찬성하지 않은 것도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그녀는 탈북민과 관련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2016년 중국의 류경식당이란 곳에서 일하던 지배인 허강일씨는 같이 일하던 여종업원 12명과 함께 탈북했는데, 그는 2018년 윤미향 등 정대협 관계자들이 자신들을 안성에 있는 위안부 쉼터에 초대한 뒤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윤미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그녀의 결백을 믿어주기엔 그간 보여준 언행에 수상한 점이 너무도 많다.

▲중국 류경식당 탈북 종업원들이 2018년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의 남편 김모씨 초청으로 경기 안성시 위안부 할머니 쉼터에 초대받아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
-평소 윤미향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한미 연합 훈련 반대를 외쳤으며, 주한 미군 철수로 이어질 종전 선언에 찬성해 왔다.
-윤미향 남편인 김삼석과 시누이 김은주는 한통련이라는 반국가 단체와 접촉하고 자금을 받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소위 남매 간첩단 사건. 윤미향은 재심에서 무죄가 나왔다며 이 사건이 억울하게 조작된 것이라 우기지만, 이건 안기부가 영장 없이 구금해 자백을 강요했기 때문이지, 한통련을 만나 금품을 받은 건 여전히 유죄 선고를 받았다.
-윤미향은 간첩을 보좌관으로 뽑았다. 보좌관 B는 베트남에서 북한 인사를 접촉하고 북한에 난수표(암호문)를 보고하는 등 간첩 활동을 하다 적발됐는데, 그가 친북 언론인 ‘통일뉴스’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윤미향과 ‘김복동의 희망’을 비롯해 여러 시민 단체에서 같이 활동한 적도 있으니, 윤미향도 B가 친북적 인물임을 알았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윤미향은 B를 4급 보좌관으로 채용했다. B가 국회에서 빼냈을 국가 기밀은 대체 얼마나 될지 궁금한데, 윤미향 측은 이에 대한 답변을 일절 거부했다.
-조총련은 북한을 지지·찬양해 반국가 단체 판결을 받은 단체. 그런데 윤미향은 지난 9월 1일 조총련에서 주최한 관동 대지진 10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장에서는 한국을 ‘남조선 괴뢰 도당’으로 지칭하는 등 반국가 단체스러운 발언이 나왔지만, 윤미향은 한마디 항의도 안 한 채 자리를 지켰단다. 논란이 되자 윤미향은 “일본 어느 곳에든 조총련은 있다. 헌화만 하고 나왔다”고 변명했다.
윤미향의 행적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이가 민주당 덕에 비례대표 의원이 되고, 숱한 악행에도 불구하고 4년 임기를 거의 마쳤다는 게 화가 난다. 그녀에게 권한다. 윤미향씨,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북으로 가세요. 거긴 좀 시원하니, 땀 흘릴 일도 없을 것 같은데요.
조선일보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12-11 文정부 월북몰이 지휘자의 형사책임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감사원은 2020년 9월에 발생한 공무원 이대준 씨 서해상 피살 사건이 문재인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조작의 산물이라는 최종 감사 결과를 지난 7일 발표했다. 사건 당시 문 정부가 보여준 대응은 한마디로 국가의 본분을 망각한 국기 문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우선,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 씨가 실종 38시간 만에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사실을 합참으로부터 보고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국민의 생존이 확인된 이상 매뉴얼에 따라 신변보호 조치를 했어야 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대북 전통문 발송 등 후속 대책도 논의했어야 했다. 하지만 안보실장과 위기관리센터장은 상황평가회의조차 열지 않고 퇴근했다. 통일부에선 장·차관 보고도 없었다. 피살 사실을 인지한 후 안보실은 책임 회피를 위해 보안유지 지침을 내렸다. 국방부는 합참에 군사정보체계상의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이 씨가 여전히 실종 상태인 듯이 보이도록 기자들에게 가짜 문자를 배포하고 가짜 해상 수색까지 벌였다. 조직적 은폐와 사실관계 조작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 씨 사망이 언론에 보도된 후 문 정부는 이 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발표했다가 나중엔 그 의도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월북몰이의 근거는 부실하거나 잘못된 것이었다. 게다가 피해자인 이 씨의 사생활까지 부당하게 공개함으로써 명예훼손 등 인권을 침해했다. 이상이 감사원 판단의 요지다.
북한군은 월경한 공무원을 발견한 후 아무런 원조를 제공하지 않다가 무참히 총격 사살했고 시신을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북한은 국제법에 반하는 비인도적 처사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결과를 초래한 전 정권의 책임도 절대 가볍지 않다. 초동대응을 잘했더라면 차가운 바닷속에서 문 정부를 향해 살려 달라고 절규했을 고귀한 인명을 구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점에서 관계기관의 구호 조치 태만, 고의적인 증거 자료 은폐와 진실 왜곡, 짜깁기 거짓 발표는 정권의 부도덕성을 말해줄 뿐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다.
서해상 공무원 피살은 문 정부의 ‘김정은 바라기’ 정책과 대북 굴종의 저자세, 특히 종전선언 추진 과정에서 북한을 의식해 우리 국민을 희생시킨 불행한 과거사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평가다. 하지만 자국민 보호는 정부의 으뜸가는 존재 이유이자 무한책임을 져야 할 영역이다. 반면 위난(危難)에 처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임의로 방기하는 건 중대한 직무유기다. 지금까지 문 정부의 고위급 인사는 발뺌으로 일관할 뿐 이씨의 원혼을 달래거나 제대로 된 사과 등 책임지는 자세를 보인 바 없다.
이 사건에는 두 측면이 있다. 국가기관들이 직무를 포기한 채 진상을 호도하고 자료를 파기·은폐한 국가범죄란 측면과 국민의 생명·안전은 안중에 없고 정치적 고려에 의해 국민 보호 의무를 게을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반인륜적 살인을 방조한 측면이다. 국정농단이라 해도 반박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런 나쁜 사례는 앞으로 반복돼선 안 된다. 그러려면 지휘계통에 있던 공무원들의 철저한 수사와 형사책임 추궁은 꼭 필요하다. 아울러 후대에 경계로 삼도록 하고 재발 방지 보장을 위한 확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문화일보
12.25 "북에 최고 성탄선물은 자유, 너무 늦지 않게 배달되길"

탈북 다큐 주역 김성은 목사와 이현서 작가
두 가족의 생생한 탈북 현장 영상과 스토리를 담은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Beyond Utopia·지상천국을 넘어)'가 지난 10월 미국의 60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됐다. 북한 관련 다큐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된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세계 독립영화계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미국 선댄스 영화제(SFF)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지난 9월엔 우드스톡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상과 편집상을 받았다.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국회의원(국민의힘) 주최로 이달초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시사회에 참석한 김성은 목사와 이현서 작가가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은 '가짜 유토피아'에서 고통 받는 북한 주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장세정 기자
미국 감독 제작 '비욘드 유토피아'
'지상낙원' 탈출한 두 가족 스토리
1000여명 탈북 도운 목사 김성은
기획부터 참여, 탈북 현장도 동참
TED 강연 유명 탈북작가 이현서
총괄프로듀서와 내레이션 맡아
내년 3월 10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앞두고 오스카 사무국은 지난 21일 출품된 다큐 114편 중에서 선정한 예비후보 15편에 '비욘드 유토피아'를 포함했고, 유명 영화 잡지 '버라이어티(Variety)'는 '비욘드 유토피아'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이 영화를 만든 여성 감독 매들린 개빈은 앞서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은 다큐 '기쁨의 도시(City of joy)'를 제작했는데, 영화의 소재가 된 주인공 콩고민주공화국 산부인과 의사 드니 무캉게르 무퀘게(68)는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통일부 등 시사회, 1월 31일 개봉
'비욘드 유토피아'는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공개될 당시 티켓이 매진됐을 정도로 호평받았다. 최근엔 외교부·통일부·국방부·국가인권위원회에서 VIP 시사회를 열었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내년 1월 12일 일본에서 개봉되고, 31일엔 국내에 개봉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카데미상 수상 등 적절한 분위기가 마련되면 이 영화를 직접 관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언도 들린다.

▲탈북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국회 시사회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이와 별도로 지난 2일 태영호 의원(국민의힘)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600석)을 가득 채울 정도로 성황을 이룬 가운데 특별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의 핵심 주인공인 두 탈북민 가족 외에도 주한 로마 교황청대사관과 스웨덴·튀르키예·멕시코·라트비아·에스토니아 대사관에서 외교관들이 같이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영화는 지난 10년간 북한 주민 1000여명을 구해내 미국·유럽에서 '한국판 쉰들러(Schindler)'로 불리는 충남 천안 갈렙선교회 김성은(58) 대표목사가 노용길(53)씨와 이소연(48)씨 가족의 탈북을 기획해 실행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에 담았다. 북·중 국경 지역은 중국 농민과 '탈북 도우미' 등이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했고, 중국-베트남 구간은 먼저 탈북한 가족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날아가 동행 촬영했다. 베트남·라오스 영상과 국내 영상은 한국팀이 맡았다.
시사회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노용길씨의 둘째 딸 진평(10)양은 "탈북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 생각하니 북한 정권은 악마 같다"고 말했다. 이소연 씨는 "북에 남겨진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마주 앉아 아들과 같이 밥 한 끼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해 관객들이 안타까워했다.

▲탈북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출연자와 제작진이 국회 시시회에서 관객과 대화하는 모습. 사진 맨 왼쪽은 시사회를 주최한 탈북민 출신 태영호 국회의원(국민의힘). 장세정 기자
꽃제비 참상 보며 탈북민 돕기 결심
이 다큐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 김성은 목사를 별도로 인터뷰했다. 백석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98년부터 사역을 시작했다. 전북 군산의 개척교회(에이스 중앙교회) 국장으로 일하던 2000년 무렵 두만강 인근 중국 투먼(圖們)에서 구걸하는 북한 어린이, 즉 '꽃제비'들의 참상을 보면서 탈북민 돕기에 앞장서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북·중 국경 지역에서 만난 탈북 여성을 아내(53)로 맞았고 아내의 한국 행을 궁리하면서 탈북 루트를 다각도로 개척했다. 그는 중국에서 탈북민을 돕다가 쓰러져 크게 다쳐 지금도 몸에 철심을 박고 있을 정도로 후유장해를 앓고 있다. 2019년 라오스 밀림을 다녀온 뒤 담낭을 적출했다. 특히 아내의 출산 당시 후유장해를 얻은 어린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계기는.
"2019년 초 마들렌 개빈 감독 측이 연락을 해와 '북한 주민의 실상과 중국에 머무는 탈북민 상황을 영화로 담고 싶다'며 협조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수많은 탈북민을 구했다던데.
"내가 구한 1호 탈북민이 아내다. 직접 구한 사람이 300여명이고, 브로커를 통한 경우를 포함하면 누적 1000명이 넘는다. 지난 11월에 구한 탈북민 3명 중에는 중국 농촌에 씨받이로 팔려갔던 여성도 들어 있다."

▲2024년 1월 31일 개봉 예정인 탈북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스틸 컷.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탈북엔 1인당 200만~300만원이 든다던데.
"탈북민이 입국한 뒤 정착금의 일부를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하니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브로커는 '필요악'이다. 브로커도 여러 종류인데 중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도우미들은 믿을 만하다."
-영화를 보니 먼저 떠난 아들을 '밀알'이라 표현했는데.
"유골을 뿌린 서해에서 아내와 함께 울면서 '하느님이 너무 일찍 데려가셨다. 북한 아이들과 주민을 구하기 위해 밀알로 쓰셨다'며 이를 악물었다."
-지난 10월 중국이 탈북민 500여명을 강제 북송했다.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최소한 난민으로 인정해주기 바란다. 중국은 최근 유엔에 '북한의 고문 증거가 없다'고 회신했지만, 탈북민 3만5000명이 살아 있는 증거다."
의원 7명, 북송 규탄결의안 기권
-국회 본회의에서 중국의 탈북민 북송을 규탄한 결의안에 국회의원 260명 중 253명이 찬성하고, 윤미향·민형배·백혜련·김정호·신정훈·강성희·강은미 등 7명은 기권했다.
"기권한 국회의원들은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문재인 변호사는 1996년 원양어선 페스카마 15호에서 선상 살인 사건을 저지른 조선족 범죄자들을 변호했다. 문 대통령 재임 시절 정부는 탈북 청년 어민 2명을 비밀 강제 북송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온 86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막고, 유독 탈북민 인권에는 침묵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윤석열 정부에 바라는 것은.
"탈북민이 북한의 인권 실상을 증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 고맙다. 중국 정부와의 물밑 교섭을 통해 탈북민들이 제3국으로 갈 수 있도록 정부가 더 노력해주기 바란다."
-성탄절이다.
"지금도 중국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동포가 많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에 비하면 가장 소외된 탈북민을 돕는 과정에서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쁜 일이다."

▲17세에 탈북해 미국에서 출간한 영어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현서 씨가 지난 4월 한국어로 발간한 책 표지.
탈북민 최초 TED 강연 큰 반향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서 영어 내레이션을 맡았고 총괄프로듀서로도 참여한 탈북 작가 이현서(43)씨도 인터뷰했다.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나 17세에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고, 2008년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외대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전공했고 2013년 대학 재학 중에 탈북민으로는 최초로 TED 강연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일곱살 때의 공개 처형 목격담, 가족을 북에서 구출한 사연 등을 담은 12분짜리 TED 강연이 폭발적 반응을 일으켜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4000만회를 넘었다. 2018년 2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다른 탈북민 8명과 함께 백악관을 방문해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 북송을 제지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탈북한 동기는.
"북한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배웠는데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북한 정권에 세뇌당한 것 같아 내 눈으로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TED 강연 이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처음엔 거절했으나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해달라'는 한 출판사의 간곡한 제안을 수락해 2015년 『The Girl with Seven Names(일곱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를 출간했다. 지난 4월엔 한국어로 『이현서, 나의 일곱 번째 이름』을 냈다."
커피 한 잔의 소박한 자유에 감사
-책이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 계기는.
"2016년 미국 현지에서 저자 사인회를 했는데 할리우드 유명 배우 로버트 드니로(80)가 다가와 '현서, 당신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까'라고 물었다. 탈북민 스토리가 영화로 만들어져 할리우드에서 상영되길 바라니 꼭 도와달라고 했더니 그날 현장에 있던 다른 분이 '비욘드 유토피아' 제작진에 내 책을 전달하면서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뭔가 신비로운 힘이 작용한 것 같다."

▲2016년 탈북 작가 이현서씨를 만나 격려해준 미국 유명 영화 배우 로버트 드니로. 이날 만남을 계기로 영화 제작의 기적이 일어났다.[이현서 제공]
-관객에게 미리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는 보수·진보의 얘기가 아니다. 북한이라는 가짜 유토피아를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치를 배제하고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람들의 실상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이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나.
"대한민국이 내가 죽으면 묻힐 수 있는 '집'이라 느끼기까지 입국 이후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거창한 자유가 아니라 햇볕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커피 마시는 소박한 자유에 감사한다."
-북한 주민에겐 어떤 성탄 선물이 가장 필요할까.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엔 성탄절이 없지만, 북한에 최고의 성탄 선물을 보낸다면 자유가 아닐까. 점점 요원해져 보이는 그 자유가 절실하다. 내가 살아 있을 때 북한에도 자유라는 성탄 선물이 배달되길 바란다.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12.26 "통일 후 '北 인권' 가해자 책임 묻겠다"…범정부 '종합 계획' 공개
"북한 인권 침해의 실상을 체계적으로 기록해 통일 이후 가해자의 책임을 묻겠다."
윤석열 정부 북한 인권 정책의 로드맵 격인 '북한 인권 증진 종합 계획'이 26일 공개됐다. 북한 당국이 자행하는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고 북한 주민 스스로가 인권 의식을 갖도록 정보 접근권을 확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2023 북한인권 국제대화'에서 개회사를 하는 모습. 뉴스1.
'기본 계획' 어렵자 '종합 계획' 발표
통일부는 이날 외교부, 법무부와 합동으로 ▶북한 인권 실태조사 체계화 및 실효적 책임 규명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강화 ▶이산가족·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 등 8개 과제를 포함한 '북한 인권 증진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종합 계획'은 2016년 9월 발효된 북한 인권법에 근거한 '기본 계획'의 발표가 국회의 비협조로 어려워진 데 따른 대안이다.
현행 북한 인권법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이 3년마다 발표하게 돼 있는 '북한 인권 증진 기본 계획'은 여야 동수 추천으로 꾸려지는 북한 인권증진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해당 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부터 가동이 멈췄으며, 윤석열 정부 들어 통일부가 국회에 공문을 보내며 위원 추천을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묵묵부답인 상태다.
▲지난달 7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통일부의 북한 인권 증진 활동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열린 '덴바람 마파람' 행사를 찾은 한 시민이 전시물을 둘러보는 모습. 뉴스1.
이날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자문 위원회의 정식 절차를 거친 기본 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워 종합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당시 나왔던 '제2차 북한 인권 증진 기본 계획'(2020~2022)과 차이점에 대해선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실효적 책임 규명과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을 주요 추진 과제로 포함하고 이산가족·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도 별도 과제로 포함해 비중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수립됐던 2차 기본 계획에는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수용 가능성을 고려한다", "대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대목이 담겨,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마저 북한에 저자세를 보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통일 후 가해자 책임 묻겠다"
통일부는 북한 당국을 향한 실효적 책임 규명을 위해 향후 1년간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 입소한 탈북민 조사를 강화하는 등 인권 침해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기록하는 데에 힘을 쏟기로 했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중·장기적으로는 통일 이후 북한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법 절차의 기초 자료로 쓰일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앞서 지난 2014년 유엔은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통해 북한 당국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인도에 반한 죄'로 규정하고, 북한 최고지도부에 대한 책임 규명을 권고했다.
▲지난달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공군 주요 시설을 방문한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민간 활동도 인권 증진 기여"
한편 북한 주민의 인권 의식 제고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민간의 다양한 활동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동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원 계획을 밝혔다.
다만 접경 지역에서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와 관련해선 "이번 종합 계획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2020년 12월 제정됐던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의 일부 조항에 대해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앞으로 대북 전단을 살포하더라도 형사 처벌을 받는 일은 없게 됐다.
통일부는 북한 인권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한 작업에도 박차를 가한다. 우선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일대에 내년도 예산 46억원을 들여 '국립 북한 인권센터'를 세울 예정이다. 북한의 인권 침해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될 예정이라 벌써부터 '한국판 홀로코스트 박물관'이라는 비유가 나온다.
내년 6월에 국·영문 등으로 발간될 연례 북한 인권보고서에도 통일부는 생생한 시각화 자료를 추가해기로 했다.
▲지난해 3월 영국 북한인권단체 코리아퓨처가 3D로 구현한 함경북도 온성 수용소 모습. 코리아퓨처.
납북·억류·국군포로…국제사회와 협력
통일부는 또 이산가족과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에도 방점을 찍었다. 이산가족이 급속히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당초 5년 단위로 실시되던 법정 실태조사를 2년 앞당겨 내년에 하기로 했다. 또한 이산가족 1세대를 중심으로 지원하던 유전자 검사를 가족의 의사에 따라 2~3세대 및 해외 거주자, 탈북민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의 생사 확인과 송환 요청도 정례화하고 국제사회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8월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는 "납북자, 억류자 및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문구가 반영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내년에는 북한에 대한 유엔의 '보편적 정례 인권 검토'(UPR)가 예정돼 있고 유엔 COI 보고서가 발간된 지 10년이 되기 때문에 국제사회 주의를 환기할 주요 계기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 인권 특사를 만난 모습. 연합뉴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12.27 유엔 “중국 내 탈북민 처우 개선하라”, 한국도 목소리 내야

▲지난 9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시민 단체 회원들이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 북송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중국 내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이들이 받는 처우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보호가 필요하다 판단되는 이들이 합법적으로 중국에 거주할 수 있는 신분증과 서류를 발급하는 등 인도적 공간을 마련하라”고 했다. 탈북자 강제 북송을 자제하라는 권고와 같다. 유엔난민기구가 최근 몇 년 간 중국 내 탈북자 문제에 침묵해온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지난 10월 구금 중이던 탈북자 수백명을 기습 북송한 중국의 야만적 행태에 국제사회가 공분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이것이 유엔의 태도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유엔난민기구는 최근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의견서에 이 같은 입장을 담았다. 인권이사회는 유엔 회원국 193국의 인권 상황을 4년 6개월마다 검토하는 제도(UPR)를 운영하는데, 내년 1월 중국에 대한 UPR을 앞두고 난민 문제를 총괄하는 UNHCR의 의견을 받은 것이다. UPR은 해당국의 인권 문제를 조명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에 인권 단체들과 서방 인권 선진국들의 관심이 높다. 이번 중국 UPR을 앞두고 전 세계 인권 단체 162곳에서 중국에 탈북자 보호를 촉구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것도 이 같은 관심을 반영한다.
모든 유엔 회원국은 UPR에서 발언권을 갖고 질의·권고를 할 수 있다. UPR 당일 허용되는 발언 시간은 1분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전 질의를 통해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나라보다도 이번 UPR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나라가 한국이다. 2018년 중국에 대한 UPR 당시 문재인 정부는 탈북자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 당사국도 아닌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정부가 탈북자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윤석열 정부는 달라야 한다.
탈북자는 거의 대부분 굶주리다 못해 탈출한 사람들이다. 북송되면 가혹한 폭행 고문 구금을 당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난민이다. 중국은 난민 규약에 가입한 나라인데도 탈북민을 강제 북송한다. 이런 반인도적, 반문명적 행태를 저지하려면 국제사회와 연대해 중국이 야만 국가란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중국도 국제사회의 평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12.28 ‘북한판 홀로코스트 박물관’ 북 주민 참상 기록하고 알려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2023 북한인권 국제대화'에서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의 과제를 주제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북한 인권 증진 종합 계획’의 하나로 국립북한인권센터를 짓기로 했다. 북한 인권침해 실상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북한판 ‘홀로코스트 박물관’이다. 홀로코스트는 ‘대학살’이란 뜻이다.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북한의 실상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탈북민 증언을 토대로 작성해 지난 3월 공개한 북한 인권 보고서엔 북한 주민들의 끔찍한 참상이 담겨 있다. 손가락으로 김일성 초상화를 가리켰다고 임신 6개월 여성을 2017년 처형하고, 한국 드라마를 봤다고 16~17세 청소년 6명을 2015년 원산에서 공개 총살하는 곳이 북한이다. 정치범 수용소 등 각종 구금 시설에선 고문과 비밀 처형뿐 아니라 생체 실험까지 자행되고 있다. 탈북했다 잡혀온 임신부가 낳은 아이를 그 앞에서 죽였다. 1990년대 중반에 북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수많은 주민이 북한을 탈출했고 그중 여성들은 인신매매로 팔려나갔다. 탈북민들은 한국에 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아보았다”고 한다. “북에서 우리는 짐승이었다”고 증언한다.
이런 북한의 인권 참상에 대해 우리는 누구보다 분노하고 앞장서 알려야 할 입장이다. 그럼에도 북한 인권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전시할 국립 기관이 아직 하나도 없다. 친북 정권들은 아예 북한 정권 편을 들었고 보수 정권들은 끈질긴 관심이 없었다.
통일 전 동독은 서독으로 넘어가다 잡힌 사람들을 총살하거나 수용소에 감금하는 등 여러 인권침해 행위를 자행했다. 서독은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를 만들어 동독의 인권침해 관련 증거를 차곡차곡 수집·기록했다. 서독은 이를 통해 끊임없이 동독 정권을 압박했고 통일 후에는 수집한 증거를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근거로 활용했다. 북한인권센터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정파와는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2016년 북한인권법이 시행되면서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했어야 하지만, 민주당이 7년째 이사 추천을 하지 않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진보는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민주당은 북한 인권 문제에 보수 정부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