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41] 진짜 노예들의 막말 - [270] 부지런해서 나라 망치는 군주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종로문화재단대표 조선일보
2023.04.28
[241] 진짜 노예들의 막말
꿇어앉은 여인 뒤에 불길한 손이 다가선 글자가 있다. 한자 초기 꼴인 갑골문에 자주 나타나는 살풍경의 하나다. 그 손은 핍박과 억압의 의미다. 이 글자는 노예, 노비, 노복, 머슴, 종 등을 가리키는 ‘노(奴)’다.
추측건대, 우선은 전쟁 등에서 붙잡혀 온 여성 포로를 다루는 모습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남녀 성별(性別)을 넘어 광범위하게 ‘노예’를 일컫는 글자로 발전한다. 쓰임새는 당연히 고약하다. 신분상 심한 차별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왕조 시대 혹독한 계급사회를 이어온 동양에서는 참 민감한 글자이기도 하다. 공산당이 건국한 현대 중국은 국가(國歌) 첫 소절에서 이를 먼저 다룬다. “노예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여, 일어나서 함께 성벽을 쌓자”는 맥락으로 말이다.

/일러스트=이진영
성벽을 함께 쌓아 침략자를 물리치자는 호소다. 그럼에도 중국인이 쌓는 성 안에서는 늘 주종(主從) 관계가 사라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통치 권력이 주(主), 그에 눌리는 성 안의 거주민이 종(從)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 나름대로 구별도 있다. 신노(身奴)와 심노(心奴)다. 앞은 그저 처지가 노예인 경우다. 뒤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종이나 머슴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만주족의 청(淸)나라 황제 앞에서 자신을 ‘종놈’이라는 뜻의 노재(奴才)라고 했던 중국인들이 실례(實例)다.
‘심노’이자 ‘노재’는 사실 통치 계급의 일원이다. 임금 등 지배 권력에 협력하면서 뭇 사람을 다스리는 이들이다. 예전 황제 밑의 벼슬아치, 요즘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공산당이나 방대한 관료 그룹이 그에 해당한다.
이들은 전제적 왕권이나 통치 권력의 수호에 매우 열성적이다. 주군과 체제 수호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요즘 세계를 상대로 막말을 해대는 중국 외교 라인의 관료들이 꼭 그 모습이다. 현대판 ‘심노’들의 언행에 높지 않던 중국의 국격(國格)이 또 무너진다.
[242] 제국 몰락의 조짐
쇠망에 이른 제국(帝國)의 황혼 녘에는 어떤 모습들이 먼저 아른거렸을까.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淸)의 패망 요인을 다룬 관영 매체의 글이 한때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글은 관료 문제를 우선 언급하면서 네 가지 현상을 함께 꼽았다.
제국이 몰락하는 근본 원인은 관료 정치, 즉 이치(吏治)의 타락이라고 봤다. 그 증상으로 나타난 것은 관료 부패(官場腐敗), 머슴 같은 벼슬아치의 득세(奴才得志), 혹독한 민간 학대(酷烈虐民), 태평세월로 가장하기(粉飾太平) 등이다. 관료의 부패는 단순한 뇌물 수수를 넘어 전체 구성원들의 도덕적인 타락까지 포함한다고 했다. 부패한 관료 사회가 무능과 무사안일로 일관해 급기야 스스로를 머슴으로 여기며 최고 권력에 맹목적으로 아부하는 관료 그룹의 발호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일러스트=김성규
이 무렵에는 비형(非刑)이 유행하고 반방(班房)이 성행한다. 비형은 법률에 없는 형벌, 반방은 관료들이 재량껏 만든 감옥이다. 부패한 관료들은 이들을 활용해 민간을 줄곧 핍박한다. 민생은 이로써 큰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력 있는 이는 실의에 빠지고 탐욕스러운 관리(貪才), 무능한 벼슬아치(庸才)에 이어 머슴 같은 벼슬아치(奴才)만이 날뛴다. 그럼에도 관료들은 서로를 봐주며 겉만 번드르르한 허문(虛文)으로 백성을 속이고 황제를 기만한다. 이들에 의해 난세(亂世)는 태평세월로 둔갑한다.
쇠망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를지 모르지만 이 네 가지 병증이 현재 중국에 다시 도지고 있지는 않을까. 10년 전인 2013년 선보였던 위 문장이 요즘엔 당국의 검열에 걸려 인용 즉시 삭제되는 현상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만의 현상은 아닌 듯하다. ‘관료’를 ‘정치인’으로 치환하면 이 또한 우리사회의 병증일 수 있다. 몰락과 쇠망은 자칫하면 금세 빠져드는 흔하며 너른 길이다. 중국의 상황에 우리의 우려도 깃드는 대목이다.
[243] 나쁜 백성을 길러내는 나쁜 관료
홍콩 배우 성룡(成龍)의 출세작 중 하나인 ‘사형조수(蛇形刁手·1978년)’를 우리는 “사형도수”라고 읽은 적이 있다. 악기인 징과 바라, 헝클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글자 조(刁)를 그와 비슷한 ‘칼 도(刀)’로 오독한 것이다.
마침 우리 한자 사전은 그 두 글자가 들어간 조도(刁刀)라는 단어를 ‘틀리기 쉬운 글자’라는 새김으로 올려놓고 있다. 둘의 모양은 매우 비슷해도 뜻은 전혀 다르다. ‘조’는 교활함, 간사함, 기만 등의 의미까지 있다.

/일러스트=김성규
그래서 나온 말이 ‘조민(刁民)’이다. 우리말 쓰임은 거의 없고, 중국의 용례는 매우 풍부한 단어다. 왕조의 통치 권력에 길들여져 순응만 하는 사람들을 순민(順民), 저항하는 이들을 폭민(暴民)이라 부르는 맥락과 같다. ‘조민’은 그 둘의 중간쯤에 있다. 말을 잘 들어 순종적인 사람, 드러내놓고 저항하다 체제를 뒤집으려 나서는 이들의 가운데다. 왕조의 명령에 제대로 따르지 않으며 사사건건 대들다가, 급기야는 조그만 말썽까지도 일으킨다. 이들은 왕조 권력을 통째로 흔드는 민란의 한 토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통치 계층이 몹시 꺼리는 대상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먼 곳에 떨어져 사는 주민들을 특히 경계했다. “험한 땅에서 나쁜 백성들이 길러진다(窮山惡水出刁民)”는 말까지 만들었다.
경찰을 여럿 살해한 사람을 영웅시하는 네티즌, 얼마 전 강력한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에 순응치 않고 저항하는 사람 등 요즘 중국의 ‘조민’ 출현이 아주 잦다. 전제주의 권력에 오래 눌렸던 사람들이 보이는 집단 반응의 하나다.
통치 권력의 핍박에 민간이 반기를 든다는 ‘관핍민반(官逼民反)’의 전통이 뚜렷한 중국이다. 따라서 조민을 길러내는 뿌리는 ‘험한 땅’이 아니다. 이들을 수탈하고 핍박하는 나쁜 관료가 주역이다. 중국에서는 그들을 조관(刁官)이라 적는다. 그 수가 퍽 많은 모양이다.
[244] 개인숭배가 살아나는 이유

/일러스트=김성규
할아버지, 아버지 등 부계(父系) 혈연을 강조하는 수식이 참 발달한 중국이다. 핏줄로 이어진 혈연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다른 이와의 관계도 혈연의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그 관계를 돈독하게 이어가는 사례가 퍽 많다.
할아버지라는 뜻의 조(祖)와 스승이라는 새김의 사(師)를 병렬하는 ‘조사(祖師)’도 그 하나다. ‘할아버지 스승’이라고 직역해도 좋지만, 여기서는 무언가를 처음 이룬 사람의 존칭이다. 창업자나 어떤 영역을 제대로 개척한 사람 등을 이른다. 우리도 잘 쓰는 시조(始祖)나 비조(鼻祖)가 동의어다. 중국에는 이 조사들이 즐비하다.
병법의 대가 손무(孫武)의 후손인 손빈(孫臏)은 신발 제조업의 조사다. 모함에 걸려 잘린 발목에 스스로 고급 신발을 만들어 신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유교의 창시자라고 하지만 직업의 영역에서는 교육학의 조사로 추앙받는다. 소나 돼지 등을 잡아 연명했던 이력 때문에 ‘삼국연의(三國演義)’ 속 불같은 성질의 주인공 장비(張飛)는 도축 업자들의 조사로 꼽힌다.
가사와 바리때인 의발(衣鉢)의 전승으로 법맥의 정통을 내세웠던 중국 불교에서도 조사의 맥락은 매우 뚜렷하다. 특히 중국 불교의 큰 산맥인 선종(禪宗)에서 옛 스승의 가르침과 어록(語錄)에 의존하며 이어갔던 조사선(祖師禪)이 유명하다. 석가여래(釋迦如來)의 본래 가르침과 방식을 따르는 여래선(如來禪) 수준을 오히려 넘어설 정도다. 혈연이나 그 개념으로 잇는 계보(系譜)에 따라 제 정체성을 자랑하는 중국만의 인문적 특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중국 집권 공산당의 ‘여래’는 마르크스-레닌일지 모르나, 그 ‘조사’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마오쩌둥(毛澤東)이 아닐까 싶다. 개혁·개방의 흐름을 접고 마오쩌둥 시대 개인 숭배를 되살리는 요즘 모습으로 보자면 중국은 역시 전통에 과하게 얽매이는 곳이다.
[245] 윤락(淪落) 중국인

/일러스트=김성규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좌천된 적이 있다. 이어 장시(江西)의 외딴 지방에서 낮은 관직을 맡아 우울한 시절을 보낼 때다.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배웅하던 강가에서 그는 우연히 만난 퇴기(退妓)와 크게 교감한다.
수도 장안(長安)에서 잘나가던 기생이었으나 어느덧 그녀는 초라한 말년을 맞이했다. 백거이 또한 정쟁에 휘말려 좌천된 하위 벼슬아치 신세다. 둘의 상황을 백거이는 ‘비파행(琵琶行)’에서 “우리 모두 하늘가를 떠도는 나그네(同是天涯淪落人)”라고 적었다.
우리는 이 ‘윤락(淪落)’을 조금 이상하게 쓰지만 본래 새김은 곤경에 빠지거나 떠도는 상황을 지칭한다. 매우 불우해진 처지를 일컫는다. 인생의 버젓한 경로에서 벗어난 두 사람이 ‘떠도는 나그네’라는 말로 큰 공감을 이뤘다.
번화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를 우리는 주변(周邊)이라 적는다. 중국에는 황제가 있는 곳, 권력이 이어지는 장소로부터 멀리 벗어난 이 주변을 기피하는 심리가 발달했다. 그에 따라 성(城)의 안팎을 매우 차별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삶의 정처(定處)를 잃고 부평초처럼 떠도는 처지를 극도로 꺼린다. 물처럼 덧없이 떠도는 유랑(流浪)이 싫다. 전쟁과 재난으로 그런 신세에 놓인 사람을 유민(流民), 그런 경우를 유리(流離)나 유락(流落)으로 적는다. 위의 ‘윤락’이 그 맥락이다.
요즘 중국어 매체에서 유행하는 말은 ‘선 위를 걷다’는 뜻의 주선(走線)이다. 멕시코 등 남미에까지 가서 미국으로 입국을 시도하는 중국인들을 일컫는다. 국내에서 떠돌다 결국 해외로 도망을 가는 유망(流亡)의 대열이다.
중국이 살 만한 곳, 희망이 있는 땅이라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높아지는 실업률, 하강하는 경기 등으로 중국 민생이 위기에 서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경계선에 다가서는 중국인들 모습이 또 애처롭다.
[246] 고립된 성에 지는 해

세상을 뜨기 전 유비(劉備)가 자신의 아들을 제갈량(諸葛亮)에게 맡기는 일화가 있다. 임종을 앞둔 유비가 측근 제갈량에게 “내 아이가 괜찮다 싶으면 황제 자리를 잇게 하고, 못났다 여겨지면 그대가 자리에 오르라”는 내용이다. 제갈량은 유비의 ‘황제 자리에 오르라’는 제안을 당연히 물리치고 그의 아들 유선(劉禪)을 받들어 촉(蜀)의 새 황제에 오르도록 한다. ‘남겨진 자식들을 부탁하다’는 뜻의 탁고(託孤) 사례는 퍽 흔하나 유비의 이 스토리가 가장 유명하다.
부모가 세상을 뜨면 그 남은 아이들을 고아(孤兒)라고 부른다. ‘고(孤)’의 초기 꼴은 어린아이의 모양, 줄기에서 떨어진 오이 모습의 두 글자가 서로 합쳐진 그림이다. 그로써 일찍이 ‘고아’의 뜻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이 아니다. 홀로 내쳐진 경우를 일컫는 데도 많이 등장한다. 외로이 홀로 있는 모습이면 고립(孤立)이나 고단(孤單), 외로움에 겹친 고생은 고고(孤苦)나 고궁(孤窮), 홀로 두드러짐은 고고(孤高) 등으로 적는다. 쓰임새가 많은 단어 고독(孤獨)은 본래 부모를 여읜 고아와 아이가 없는 노인을 함께 지칭하는 말이었다.
싸움을 연구했던 중국의 병가(兵家)도 이 글자 ‘고’에 주목한다. 일정한 세력을 형성할 수 없어 아주 위험한 경우를 부르기 때문이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은 홀로 떨어져 지원군을 받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포위된 성에서 저녁 맞을 때의 상황인 고성낙일(孤城落日)도 그 분위기다. 병가는 아예 그런 군대를 고군(孤軍)이라고 적어 극도로 경계한다.
당나라 때 황제 의전을 재연하며 아주 화려하게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대접했지만 서방국가들로부터 중국의 고립은 외려 깊어진다. 아직 제대로 숙성하지 않은 국력을 과신해 미망에 빠진 탓일까. 중국의 요즘 처지가 그야말로 황혼 무렵의 외딴 성(城)이다.
[247] 세월이 말해주는 진상

▲일러스트=김성규
시간이 지나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뚜렷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려진 진상(眞相)이 드러나는 상황을 형용하는 말들이 중국에는 풍부하다. 그만큼 여러 가지 조작과 은폐 등으로 참모습을 숨기는 일이 잦다는 얘기다.
공자(孔子)는 그 발언의 대열에 일찍 선 사람이다. “날 차가워져야 소나무 잣나무의 꿋꿋함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말을 남겼으니 말이다. 비슷한 언어 흐름은 많다. 물이 말라 바위가 드러난다는 수락석출(水落石出)은 앞서 소개한 적이 있다.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려 했던 자객(刺客) 형가(荊軻)의 성어도 있다. 그는 진시황을 회유하려 준비한 지도(地圖)에 칼을 감췄다. 두루마리 지도 끝에 숨긴 비수가 드러나는 대목을 이르는 말이 도궁비현(圖窮匕見)이다. 본래 모습이 죄다 밝혀진다는 진상대백(眞相大白)도 있다.
이 산, 저 봉우리에 가려 여산(廬山)의 진면목(眞面目)을 가늠할 수 없다며 철리(哲理)에 가까운 푸념을 적은 소동파(蘇東坡)의 시도 유명하다. 가슴에 품은 음모와 이미 저지른 죄행이 백일하에 까발려지는 상황은 동창사발(東窓事發)이라는 성어로 적는다.
민간의 속언에도 이 흐름은 이어진다. “먼 길 갈 때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지나 봐야 사람 마음 안다(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는 식으로 말이다. 그와 비슷한 “센 바람에 질긴 풀 알아보고, 맹렬한 불에 순금 드러난다(疾風知勁草, 烈火見眞金)”는 말도 퍽 잘 쓰인다. 전쟁과 재난 등 혹독한 삶의 환경 속에서 속내를 감추며 살아야 했던 중국인들의 경험칙이다.
중국이 과거로 회귀하면서 요즘 공산당의 붉은 이념이 다시 범람한다. 지난 40여 년의 개혁·개방은 그저 잠깐의 가리개였던 모양이다. 그 너울이 걷히니 중국은 변함없이 전제주의적인 공산국가일 뿐이다. 그 ‘진상’을 두고 우리가 이제 더 이상 헛갈릴 일은 없겠다.
[248] 인사불성의 나라

▲일러스트=김성규
중국에서는 성(省)이 우리의 도(道)와 같은 최상급의 지방 행정 구역 명칭이다. 허난(河南)과 허베이(河北) 등 23성이 직할시 4곳, 자치구 5곳과 함께 면적 960만㎢의 중국 국토를 촘촘하게 구획한다.
오늘은 그 ‘성’이라는 글자가 주제다. 우리 사전 풀이로는 ‘살피다’와 ‘덜다’가 새김이다. 본래 글자꼴은 사람의 눈(目) 위에 식물이 돋아나는 모습(生)이다. 사람들이 막 자라난 곡물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로써 우선은 ‘무언가를 자세히 살피다’라는 뜻을 얻었다고 푼다. 되돌아보며 면밀하게 따지거나 곱씹는 행위를 반성(反省)이라고 적는 이유다. 아예 대상을 깊이 살피는 행위까지 덧대 성찰(省察)이라는 단어도 만들었다.
중국 측 풀이에 따르면 궁궐 등 지배층의 치소(治所)가 있는 곳, 출입금지 지역을 이 ‘성’이라는 글자로 적을 때가 있었다. 이로써 관아(官衙) 등 일반인의 통행이 어려운 지역을 가리키면서 지금의 행정구역 개념도 얻었다고 설명한다.
제 자신의 허물을 살펴 불필요한 과오를 줄이려는 노력은 유가(儒家)의 큰 덕목이었다. ‘논어(論語)’에 등장하는 증자(曾子)의 “나는 매일 세 번 스스로를 돌아본다(吾日三省吾身)”는 말은 요즘에도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린다.
‘덜다’라는 뜻의 글자 발음은 ‘생’이다. 생략(省略)이라고 적는 경우다. 그럼에도 우리는 반성과 성찰의 맥락에서 이 글자를 자주 쓴다. 특히 옳게 살아가려는 노력을 깡그리 잊고 막 나가는 사람에게는 “인사불성(人事不省)”이라며 꾸짖는다. 제 잘못을 살피지 않고 너무 엇나가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외교관으로서 막말을 해댄 주한 중국 대사, 그를 거리낌 없이 두둔만 하는 중국 외교부 모두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리와 사리조차 잊었으니 그 상태가 꼭 ‘인사불성’이다.
[249] 중국의 ‘소림사 현상’

▲일러스트=박상훈
소실산(少室山) 안쪽 숲[林]에 있는 절이라서 얻은 이름이 소림사(少林寺)다. 중국 허난(河南)에 있는 큰 사찰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무술(武術)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 주지와 승려들은 아주 ‘잘나가는’ 중국인이다. 화려한 무술 시범으로 세계를 순회하며 공연하고, 절집의 식사나 복장 등을 팔기에 바쁘다. 아예 ‘소림 실업’이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돈 벌어들이기에 열중하는 일로도 퍽 유명하다. 회사 이름으로 등록한 상표만 600개가 넘는다.
소림사는 서기 495년에 세웠으니 1500년이 넘는 고찰이다. 아울러 중국 불교의 대표적 산맥인 선종(禪宗)의 발상지다. 그러나 이제는 지나치게 왕성한 상업적 행위 탓에 이곳 승려들은 본분인 종교적 수행을 깡그리 저버렸다는 의심을 받는다. 제 처지를 잊고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분위기를 두고 ‘소림사 현상(現像)’이라는 말도 나왔다. “불교가 한적한 산간에만 머물 수 없다”며 제 행위를 두둔하지만 이들의 과도한 상업적 행위에는 따가운 시선이 훨씬 더 많이 간다.
‘소림사 현상’은 지난 개혁·개방 시기의 중국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입 닥치고 돈 벌자(悶聲發大財)”는 구호까지 나돌았던 사회 풍조를 고스란히 웅변하는 말이다. 그 소림사 무술을 모티브로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영화가 2001년 나온 ‘소림 축구’다. 거침없는 과장으로 축구라기보다 패싸움을 코믹하게 연출한 홍콩 영화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볼은 차지 않고 상대 선수에게 태클 걸고 헤딩하는 중국 축구를 ‘소림 축구’라 부른다. 최근 한국의 24세 이하 축구 대표팀이 그 수준의 축구에 패했다.
결은 조금 달라도 소림사나 중국 축구 모두 ‘마구잡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국력이 커졌다고 거침없이 부리는 중국의 우격다짐 또한 이와 같은 패턴이다. 단단한 태권도 실력으로 무장한 뒤 ‘소림 중국’을 상대해야 할 상황이다.
[250] ‘통제인민공화국’

▲일러스트=박상훈
속이 빈 대롱을 가리키는 한자가 관(管)이다. 숨을 불어 넣으면 소리까지 낼 수 있다. 그래서 얻은 새김의 하나가 ‘피리’ 등 관악기다. 그러나 자물쇠 구멍에 찔러 넣어 닫힌 것을 여는 기물도 가리켰다. 바로 열쇠다.
우리도 자주 쓰는 ‘관할(管轄)’이란 단어가 그 흐름에 있다. 앞의 ‘관’은 열쇠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뒤의 ‘할’은 수레의 바퀴를 축(軸)에 고정하는 장치다. 따라서 ‘관할’은 열거나 잠그는 행위를 가리켰다고 할 수 있다. 열고 닫는 동작은 결국 남의 행동을 허가하거나 거부하는 권한 행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관할’은 남에게 문을 열거나 닫는 단순한 행위에서 ‘지배력’ ‘통제’ 등의 뜻을 지닌 단어로 발전한다. 특히 행정 영역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관’이라는 글자는 이후 풍부한 단어로 이어졌다. 우선 관리(管理)가 그렇다. 상황을 제 권한으로 조율하고 이끄는 일이다. 어떤 일을 주도하는 행위는 주관(主管)이다. 일을 모두 맡아 처리하면 총관(總管)이다. 그런 권한으로 남을 통제하면 관제(管制)다.
중국은 이 ‘관제’를 무척 즐겨 사용하는 곳이다. 왕조시대가 그랬고, 현대 공산당의 중국 또한 그렇다. 도시의 불법행위 등을 단속하는 공무원 집단인 속칭 ‘성관(城管)’이 대표적이다. 영세 상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엔 ‘농관(農管)’도 등장했다. 농사 일반을 지도하는 취지에서 가동했다. 그러나 농촌 주민들의 일상을 통제할지도 모른다는 시비에 휘말렸다. 급기야 이달 초에는 ‘문관(文管)’도 출범했다. 문화 행위 전반을 감독하고 검열한다.
도시와 농촌에 이어 문학과 예술 등 모든 문화 영역에서 사람의 의식과 행위를 간섭하고 통제할 분위기다. 중국의 정식 국호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지만, 그 실제 내용은 ‘통제인민공화국’이라고 해야 할 상황까지 왔다.
2023.07.07
[251] 체념과 순종의 문화

▲일러스트=김성규
가고 오는 것의 중간 어디쯤에 중국인들의 심성은 잘 머문다. 그들은 흐름의 가운데에 서서 앞뒤 상황을 살피며 행동하는 데 능하다. 그래서 ‘가는 것을 보내고, 오는 것을 맞이하다(送往迎來)’는 식의 수사(修辭)가 발달했다. 이 말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순환 속에 서 있는 사람의 시선도 담는다. 새해 맞을 때 우리도 자주 쓰는 송구영신(送舊迎新)과 같은 맥락이다. 가는 것은 그대로 보내고, 오는 것 역시 그저 오는 대로 덤덤히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인들이 키운 대표적 처세훈(處世訓)이 있다. “어려운 시련이 닥쳐도 그냥 받아넘기다(逆來順受)”라는 말이다. 이 경우 중국의 인문은 강가를 자주 가리킨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에 다 버려라(付諸東流)”는 권유다. 일찍이 소개했듯 중국의 큰 하천은 대개 지형이 높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그 강물에 원한, 미움, 설움 등을 모두 버리자는 뜻이다. 제아무리 어렵더라도 그저 참고 견디자는 이런 식의 말은 중국인 특유의 체념적 인생관을 형성한다.
모욕을 참고 견딘다는 순종(順從)과 인욕(忍辱)의 태도가 그 뒤를 따른다. 제 뜻을 접고 욕됨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굴욕(屈辱)이라고도 한다. 아무리 욕되더라도 그저 살아남고자 한다는 뜻에서 투생(偸生)으로 적기도 한다. 중국 민간에 오래 뿌리 내린 이런 심리는 “남이 제 얼굴에 침을 뱉어도 말라 없어질 때까지 놔둔다(唾面自乾)”는 식의 기이한 인내 문화로도 이어진다. 남을 다스리는 치자(治者)가 볼 때 중국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순한 군중이다.
압정(壓政)과 학정(虐政)에 시달리다 중국의 민간은 결국 반기(叛旗)를 올릴 수 있다. 그러나 평소에는 순종과 인욕에 참 익숙하다. 그렇게 말 잘 듣는 순민(順民) 13억명을 거느렸으니 영구 집권을 꿈꾸는 중국 공산당이 그리 이상치만은 않다.
[252] 망국의 위기

▲일러스트=김성규
궁궐의 높은 섬돌에 앉아 있는 이는 임금이다. 그러나 국권을 빼앗기고 적군에게 붙잡혀 ‘계단 밑의 죄수(階下囚)’로 나앉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 그 사람 심정은 어떨까. 참담하다 못해 살아 있음이 부끄러울지 모른다. 오대십국(五代十國) 때 남당(南唐) 황제로 있다가 북송(北宋)에 패해 포로로 살며 그 경우를 겪은 이가 이욱(李煜)이다. 그는 임금이라기보다 천재 시인이라고 할 정도로 문재(文才)가 아주 빼어났던 인물이다.
그 심정을 읊은 사(詞) ‘우미인(虞美人)’이 전해진다. 덧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지난 일을 떠올리다가, 잃어버린 제 나라가 있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달빛 속 내 나라 쪽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겠다(故國不堪回首月明中)’고 적는다. 이 구절은 요즘도 중국인의 일상 대화에 심심찮게 오른다. 제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아예 잃거나 귀속(歸屬) 장소를 상실한 사람들이 곧잘 입에 올리는 말이다. 그러나 원전(原典)의 뜻을 살리자면 나라를 빼앗긴 경우가 가장 적합하다.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최근 이 구절을 공식 연설에서 사용해 화제다. 그는 분명히 중국의 위기감을 언급하며 공산당이 망하고, 국가가 무너지는 망당망국(亡黨亡國)의 절박함을 입에 올렸다. 그런 위기의식이야 탓할 게 없다. 단지 위기를 자초한 공산당의 국정 운영 능력이 슬쩍 빠졌다는 점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그렇듯 중국은 위기 등을 미리 언급하는 데 능하다. “평안한 시절에도 위험을 생각하자”는 거안사위(居安思危) 식의 오래된 문화 심리다.
이욱의 우미인은 이렇게 맺는다. ‘내 슬픔이 얼마인 줄 아시는가? 마치 강을 가득 채운 봄물이 동쪽으로 흘러가는 듯…(問君能有幾多愁? 恰似一江春水向東流).’ 날 풀려 크게 불어난 봄물과도 같은 우환이 닥칠 것인가. 중국의 위기가 깊어지는 모양이다.
[253] 비틀거리는 중국 외교

▲일러스트=김성규
우리는 꽃에 날아드는 벌과 나비를 탐화봉접(探花蜂蝶)이라 적은 뒤 그 속뜻을 여색(女色) 밝히는 남자로 이해한다. 바람기가 많아 여성 홀리는 데 공을 쏟는 남성, 풍류만 좇아 제 있을 곳을 쉬이 잊는 남자에게도 쓸 수 있는 말이다.
중국에서 이런 행위를 일컫는 단어는 많다. 남성의 경우를 빗댄 말은 ‘꽃과 버드나무를 찾아 기웃거리다(尋花問柳)’다. 여성이 그럴 때는 ‘빨강 살구꽃이 담장 위로 고개 내밀다(紅杏出牆)’다. 나름대로 운치 있게 적은 성어들이다.
보통은 남녀 모두 바람을 피우면 외우(外遇)라고 한다. ‘밖에서 벌인 만남’이란 뜻이다. 혼외의 즐거움이나 연애라고 해서 외환(外歡) 또는 외련(外戀)으로도 적는다. 정해진 궤도를 넘어섰다고 해서 출궤(出軌)로도 부른다.
여색 탐하는 남성이 주로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여성도 ‘닳아빠진 신발(破鞋)’이라는 식의 멸칭을 듣는다. 남자와의 관계가 매우 복잡한 여성을 해진 신발에 비유했다. 때로는 혼인한 부부 사이에 ‘끼어든 제3자(小三)’라고도 적는다.
다른 남성이나 여성에게 배우자를 뺏긴 사람에게는 “녹색 모자를 썼다(戴綠帽)”고 표현한다. 과거 중국에서 비천한 신분을 가리켰던 녹색 때문에 유래했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녹색 모자를 선물하거나 그에 관한 표현을 하는 일은 금기(禁忌)다.
요즘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이 단연 화제다. 한 달 가까이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주미(駐美) 대사 시절 여성 언론인과 정을 나눠 사생아를 낳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제 정치적 생명마저 위태로운 모양이다.
‘싸움 늑대(戰狼)’의 태도로 일관해 고립을 부른 중국의 외교다. 이제는 그 ‘간판 스타’인 장관의 스캔들까지 도져 망신이다. ‘바깥에서(外) 이성 사귀기(交)’로 ‘외교’를 이해하지는 않았을 텐데, 장중했던 중국 외교가 줄곧 비틀거린다.
[254] 동그라미 몽상

▲일러스트=이진영
스스로 큰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 원(圓)의 복판을 세상의 중심(中心)이라고 했던 주장은 중국이 오래 전부터 내세웠던 도형(圖形)이다. 그 한가운데는 ‘원심(圓心)’이라는 한 단어로 적어도 그만이지만 중국은 이를 요란하게 치장한다.
왕조 시대에는 그 복판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천자(天子)나 황제(皇帝)라 적었고, 요즘은 핵심(核心)이라거나 일존(一尊)이라고 부른다. 예나 지금이나 중심을 설정해 그에 늘 집착하는 중국의 문화적 심리는 여전하다. 이 맥락에서 중국인들은 제 나라를 중국(中國), 문화적 자부심으로는 중화(中華)라고 불렀다. 지역적으로는 제 있는 곳이 중원(中原)이라며 뽐냈다. ‘나 아닌 남’은 대개 오랑캐로 치부한 못난 전력도 있다.
요즘도 중국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최근에는 ‘동심원(同心圓)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중심’에서 동그라미가 무수히 퍼져나가는 그림이다. 주변 국가를 대상으로 한 주도권 확보, 미국과의 대국(大國) 관계 재(再)설정, 지구촌 차원의 영향력 확대가 목표다.
그러나 중국의 동그라미에는 문제가 숨어 있다. 복판이 늘 정당(正當)한가의 여부다. 정당함은 주변을 가운데로 이끄는 구심력(求心力)으로 작용하지만, 그를 상실할 경우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원심력(遠心力)의 증대가 나타날 수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그런 구심력과 원심력에 따라 부침(浮沈)한 흔적이 역력하다. ‘동심원 외교’를 표방하는 요즘의 중국 공산당은 어떨까. 몸가짐과 뜻이 의로워 중국 국내는 물론, 세계를 충분히 설득할 정도일까.
높은 실업률에 줄곧 하강(下降)하는 경제 사정으로 ‘동심원’의 가장 안쪽인 중국 국내마저 위태롭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 받들었던 외국 기업의 ‘탈중국’ 현상도 매우 거세다. 이런 마당에 ‘동심원’을 운운하면 그야말로 잠꼬대지 싶다.
[255] 슬픈 방문객들

▲일러스트=박상훈
먹으면 오줌발이 세져 요강을 엎는다고 해서 붙은 식물 이름이 복분자(覆盆子)다. 코믹한 이 이름이 사람 머리에 얹힐 경우 슬퍼진다. 복분지원(覆盆之冤)의 사례다. 사발 뒤집어 쓴 사람의 캄캄한 시야를 원통함과 연결했다.
눈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답답함으로 ‘가려진 진실’ ‘하소연할 데 없는 억울함’을 가리킨 말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풀리지 않는 민원(民怨)이라는 얘기다. 이럴 때 사람들은 제 원한을 권력자에게 직접 전달코자 길을 나선다. 월소(越訴)라는 옛말이 있다. 하급 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상급 기관에 민원 내용을 전달하는 행위다. 위로 민원을 전달해 최고 권력자인 천자가 직접 듣게 한다는 상달천청(上達天聽)의 백성들 염원이 담긴 말이다.
그 맥락에서 나온 현대 중국어가 상방(上訪)이다. 부정부패 공무원 등에게 당한 억울함을 그 위의 행정기관에 하소연하고자 길을 나서는 행위다. 그들을 대개는 방민(訪民)으로 적는다. 현대 중국은 신방국(信訪局)을 설치해 이들의 고충을 듣고자 한다.
서신과 이메일, 팩스, 전화 등 통신 방문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만든 정부 공식 기구다. 신문고(申聞鼓)나 등문고(登聞鼓) 등 민원을 경청하고자 만든 옛 장치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신방국 또한 민간의 접근이 결코 쉽지 않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황제’가 있는 수도 베이징(北京)을 직접 찾아간다. 그러나 베이징 신방국을 찾은 이들은 주변에 포진한 고향의 공안들에게 붙잡혀 강제로 귀향당하거나, 그들이 만든 불법 감옥(黑監獄)에 갇혀 시달릴 때가 많다.
상방에 실패한 이들 일부는 빈민가에 몰려 비참하게 살아간다. 그를 다큐로 찍은 ‘상방’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다. 그들은 대낮에도 사발을 뒤집어쓴 채 어둠에 갇혀 살아가는 슬픈 나그네들이다. 그들의 눈물과 중국의 ‘강대국 꿈’은 과연 어울리는 그림일까.
[256] 역사를 희생시키는 권력

▲일러스트=김성규
홍수가 일으킨 재난으로 중국이 들썩인다. 여러 곳이 난리지만 허베이(河北) 줘저우(涿州)가 심하다. 이곳은 ‘삼국연의’의 서막인 도원결의(桃園結義)의 현장이자, 소설의 두 주역인 유비(劉備)와 장비(張飛)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어디 그뿐인가. 북송(北宋)을 세운 태조 조광윤(趙匡胤)을 비롯해 역학(易學)의 대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강절(邵康節) 등을 낳은 땅이다. 수도 베이징의 서남 관문(關門)이자 중원(中原)의 인문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곳이다.
이곳이 얼마 전 물에 잠겼다. 피할 수 없는 경우였다면 원망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위적 피해로 보여 문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곳은 슝안(雄安)이다.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의 지시로 세운 신도시다. 베이징을 대체할 새 수도로 각광을 받는다. 그러나 슝안은 본래 와지(窪地)다. 홍수가 나면 물이 몰려드는 저지대라는 얘기다. 지난달 말 140년 만의 홍수가 베이징 북부에서 발생하자 공산당 관리들은 이 슝안을 지키고자 무리수를 뒀다.
도원결의의 현장이자 유비와 장비의 고향 일대 제방을 헐어 큰물이 줘저우를 삼키도록 하는 대신 시진핑의 ‘업적’인 슝안을 지켜낸 혐의가 짙다. 홍수로 불어난 물은 본래 저지대인 슝안에 몰려들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허베이 당국자는 그 무리수를 감행하면서 줘저우 등을 ‘호성하(護城河)’로 지칭했다. 권력의 정점을 ‘성(城)’, 그 주변을 성벽 호위용 ‘해자(垓子)’에 비유했다. 당의 집권, 권력 핵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역사와 국민의 안전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촉한(蜀漢)의 옛 황제였던 유비의 자취도 새 ‘황제’의 안전을 위해서는 금세 뭉갤 수 있다는 태도다. 역사와 인명을 안중에 두지 않는 공산당의 습성이 물난리 속에 또 도졌다. 거셌던 물길처럼 인심도 흉흉(洶洶)하다.
[257] 공산당이 바꾼 ‘학습’의 뜻
집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모습의 한자가 있다. ‘배우다’라는 뜻의 ‘學(학)’이라는 글자다. 새끼 새가 나날이 날갯짓을 하는 동작으로 추정하는 한자가 있다. ‘익히다’는 새김의 ‘習(습)’이다. 둘을 합치면 바로 학습(學習)이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 첫 구절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나왔으리라 보이는 단어다. 이 구절 풀이에는 이론이 없지 않으나, ‘배우고 익힘’을 소중히 다룬 공자의 의도만큼은 아주 명백하다.
요즘 중국에서 ‘학습’은 색다른 의미다. 배우는 ‘학’의 의미는 그대로되, 익히는 ‘습’의 의미가 달라졌다. 이제는 연임에 성공해 1인 독재의 길을 단단히 다진 공산당 최고 권력자 시진핑(習近平)을 노골적으로 가리킨다. 따라서 현재 중국의 ‘학습’은 “시진핑을 배우자”는 의미에 더 가깝다. 2019년 시진핑의 사상과 발언을 익히도록 만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학습강국(學習强國)’이 대표적이다. 출시한 해에 1억명이 내려받은 일로 유명하다.
급기야 올해 중국 대학 입시 논술 영역은 시진핑의 어록(語錄)을 출제하기에 이르렀다. 옛 공산당 독재자 마오쩌둥(毛澤東)이 누린 개인숭배에 바짝 다가선 수준이다. 이로써 중국은 더욱 강고한 전제(專制)적 틀을 구축할 듯하다.
그러나 공산당이 놓친 부분이 있다. 공자의 배움에 관한 논설은 간단치 않았다. “따라 배우기만 하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미망에 빠진다(學而不思則罔)”고도 했으니 말이다. 무조건 배우거나 그렇게 강요하는 일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평범한 ‘학습’이 다른 생각을 가로막는 ‘세뇌(洗腦)’로 이어지면 심각한 화를 부른다. 사람들은 지독한 우민(愚民)으로 전락해 국가와 사회의 큰 재앙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개인숭배를 되살리는 중국 공산당이 정말 심각하게 여겨야 할 일이다.
[258] 교만이 부른 위기

▲일러스트=박상훈
청(淸)대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에 앞서 그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은 광서제(光緖帝·1871~1908)다. 그는 기울어가는 왕조의 명운을 되살리고자 나름대로 변법유신(變法維新)의 개혁까지 꿈꿨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쓰디쓴 운명을 맞는다. 꿈을 펼칠 만한 현실적 방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품성을 두고 중국인들이 흔히 지적하는 말이 있다. “뜻은 거창하나 재주는 부족하다(志大才疏)”는 내용이다.
이런 사람의 성격을 중국인들은 ‘대의(大意)’라고도 적는다. 나아가 조심대의(粗心大意)라는 성어로도 표현한다. 꼼꼼하지 않고(粗心) 매사에 데면데면하거나 신중치 못한(大意) 사람의 성격이다. 뜻만 거창해 디테일을 죄다 놓치는 경우다.
광서제는 자신의 은인이자 정치적 최대 자산인 서태후(西太后)와 반목하면서 스스로 입지를 크게 좁혔다. 이어 서태후의 안배로 맞이한 황후(皇后)와도 자주 다퉈 고립을 부른다. 그가 신뢰했던 이들은 변법의 이론 토대를 제공한 학자 그룹이었다.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등 이론가들은 학식이 뛰어났을지 몰라도 정치적인 역량은 부족했다. 이들만을 오로지 신뢰한 광서제는 결국 서태후에 의해 감금당하고, 그녀가 죽기 하루 전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포부가 거창하다고 일이 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의리와 충절로 유명한 ‘삼국연의’ 주역 관우(關羽)도 이 점에서 큰 비판을 받는 사람이다. ‘조심대의’의 전형으로 꼽히며, 교만함과 부주의로 인해 촉한(蜀漢)의 핵심 거점인 형주(荊州)를 내주다시피 한 인물이다.
눈만 높고 손은 더딘 안고수비(眼高手卑)의 본보기다. 요즘 중국이 그렇다. 자만심 가득한 강대국 몽상에 빠졌다가 미국의 경계심만 키웠고, 내부의 문제에는 제때 대응치 못했다. 현실에 어두웠던 광서제, 형주를 내준 촉한의 위기 속으로 공산당이 스스로 빠져들었다.
[259] 다시 도진 아부 문화

▲일러스트=김성규
예부터 중국엔 손님 맞아들이는 의례가 풍성했다. 중국인이 만들어낸 어휘에서도 그 점은 충분히 두드러진다. 환영(歡迎)이라는 말이 우선 그렇다. ‘기쁘게 맞이하다’라는 뜻의 단어다. 그와 더불어 상대를 높이는 방식도 발달했다. 광림(光臨)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영광스러운(光) 방문(臨)’이라는 맥락이다. 같은 흐름으로는 광고(光顧)라고도 적고, 은혜로운 그것이라서 혜고(惠顧)라고도 한다. 아예 ‘내려오시다’라고 해서 강림(降臨)으로 할 때도 있다.
손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신다는 뜻에서 탓할 바가 없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굴곡이 지고, 그늘마저 드리우니 문제다. 지나친 위계(位階)나 이해(利害)에 눌려 비굴하다 못해 상대에게 제 모든 것을 맡기고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영합(迎合)이라고 하는 경우다. 손님 또는 상대를 맞이해 나아가(迎) 그에 자신을 아예 합쳐버리는(合) 일이다. “대중에 영합하다” 하는 식으로 우리도 자주 쓰는 말이다. 제 이해관계에 따라 본뜻을 굽혀가며 누군가를 추종하는 일이다.
봉영(逢迎)이 같은 행위다. 매사에(逢) 남의 뜻에 따르는(迎) 일이다. 사실상 아첨(阿諂)이나 아부(阿附)와 동의어다. 그저 남의 것을 받드는 봉승(奉承)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때론 아유봉승(阿諛奉承)이라는 성어로도 적는다.
시진핑(習近平) 중심의 1인 지배가 굳어지면서 국무원을 비롯한 중국의 방대한 관료 체계가 이 ‘영합’의 길로만 치닫는다. 공산당의 이념적 지배를 현실적 논리로 견제하며 조정할 수 있는 행정 체계의 마비와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의 ‘황제 권력’이 주변을 제 심복(心腹)으로만 채우고, 주종(主從)의 고리타분한 위계 관념을 크게 되살린 탓이다. 그로써 권력 정점의 판단 미스가 곧장 전체의 패착을 부를 형국이다. 숫자와 통계로도 헤아릴 수 있는 요즘 중국 위기의 진짜 원인이다.
[260] 문명 후진국

▲일러스트=박상훈
아름다운 한반도 우리 국토를 흔히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부른다. 비단에 수놓은 듯 눈부신 강과 산이라는 뜻이다. ‘강산’이 나라의 땅, 즉 국토를 직접 지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달리 산하(山河)라고도 적는다.
나라 사이 경계는 강(疆)이라는 글자로도 표기한다. 따라서 그 안쪽 땅은 강역(疆域)이나 강토(疆土)라고 해 국토를 일컫는다. 때론 ‘금속 그릇’이란 뜻의 금구(金甌)라고도 쓴다. 금구무결(金甌無缺)이란 성어 사례다. 쇠 그릇처럼 튼튼한 국토를 말한다.
판도(版圖)는 주민의 호적[版]과 땅 모습[圖]을 합친 말이다. 어떤 세력의 힘이 미치는 권역 등도 가리키지만 국토의 뜻으로 자주 쓰인다. 요즘 이를 지칭하는 말로 가장 쓰임이 잦은 단어는 영토(領土)다. 구역에 따라서는 영공(領空)이나 영해(領海)라고도 쓴다. ‘영’은 관할권이나 영향력을 지칭한다. 직접적인 뜻은 ‘거느리다’ ‘지배하다’ 등이다. 아울러 ‘소유’의 뜻도 있다. 영유(領有)라는 말을 떠올리면 좋다.
그 크기를 일컫는 말로는 폭원(幅圓)이 있다. 땅의 넓이[幅]와 둘레[圓]를 가리키는데, 국토의 크기를 지칭한다. 광무(廣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 단어의 두 글자는 각기 동서(東西)의 너비, 남북(南北)의 길이를 가리킨다.
예부터 성을 쌓아가며 땅 차지하기 놀이에 골몰했던 중국이다. 거대 판도를 지녔음에도 땅에 대한 욕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최근에는 남중국해의 광대한 수역과 히말라야 등 이웃과 분쟁 중인 곳을 제 것이라 주장하는 새 지도를 펴내 또 화제다.
국제 협약과 규범에 어긋나는 자화자찬(自畫自讚)식 지도 제작은 지금껏 부른 고립을 더욱 심화하는 자충수다. 다양한 가치 체계의 ‘입체’보다는 땅에만 집착하는 ‘평면’ 지향의 오랜 고질(痼疾)이 다시 도졌다. 문명의 행보로 보면 중국은 아직 후진국이다.
[261] 人性의 소멸

▲일러스트=박상훈
물은 생명의 원천, 불은 문명의 토대다. 그러나 둘이 일으키는 파괴적 작용도 만만찮은 모양이다. 한자 세계에서 물과 불은 수화(水火)라는 말로 흔히 적는데, 옛 중국인들 기억에선 재앙이나 재난을 의미할 때가 많다.
민생의 험난함을 수심화열(水深火熱)이나 수화지중(水火之中)으로 적는 사례가 우선 그렇다. 아울러 물이 번져 질퍽거리는 땅[塗], 숯불이 이글거리는 길[炭]을 합쳐 ‘도탄’이라고 한다. 홍수와 가뭄, 전쟁을 뜻하는 병화(兵火)의 요소가 들어 있다.
그런 물과 불의 재앙 요소가 한데 모인 글자가 있다. ‘없애다’ ‘사라지다’라는 새김을 지닌 멸(滅)이다. 앞의 ‘삼 수(氵)’를 뺀 원래 글자 혈(烕)은 ‘전쟁’ 요소[戉]와 불[火]이 함께 등장하는 꼴이다. 그 뜻은 역시 ‘멸’과 같다.
거기다가 물을 뜻하는 ‘삼 수’가 보태져 한자 ‘멸’은 불 또는 전쟁, 더 나아가 물까지 합세해 대상을 없애거나 사라지게 하는 뜻의 글자로 발전한다. 따라서 이 글자가 붙는 단어들의 의미가 심상찮다. 우선 소멸(消滅)이다. 작고 희미해지다가 사라지는 현상이다. 닳아서 형태가 무너지면 마멸(磨滅), 아예 끊겨 없어지면 절멸(絶滅)이다. 깨뜨려 없애면 파멸(破滅), 헐어서 망치면 훼멸(毁滅), 자취나 흔적을 아예 없애면 민멸(泯滅)이다.
중국의 유명 가수가 얼마 전 러시아 찬양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장소가 문제였다. 1년여 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를 침범한 러시아가 폭격해 사상자가 600여 명 발생한 마리우폴 극장 폐허였다. 비극 현장에서 가해자 찬양 노래를 부르다니….
현대 중국의 큰 문제는 인성(人性) 타락이다. 수많은 어린이도 사망한 현장에서 전쟁 범죄를 찬양한 행위는 그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인들의 좋았던 품성은 어느덧 사라졌다. 소멸일까, 마멸일까. 아니면 파멸이자 훼멸일까.
[262] 이지러지는 달

▲일러스트=김성규
탁월한 문학적 감성과 언어 조탁에 철리(哲理)까지 보태면서 이름을 떨친 북송(北宋)의 문인이 동파(東坡) 소식(蘇軾)이다. 우리가 흔히 ‘소동파’라 부르는 이다. 달을 다루는 글에서도 그의 감성과 언어는 빼어나다.
“밝은 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술잔 잡고 파란 하늘에 묻노니…”로 시작하는 그의 사(詞)가 있다. 한가위를 맞아 오래전 헤어진 동생 소철(蘇轍)을 그리며 쓴 작품이다. 그리움만 재촉하는 달을 푸념하다 문득 이런 헤아림에 닿는다.
“사람에게는 슬픔과 기쁨, 헤어짐과 만남이 있듯 달에는 어두움과 맑음, 가득 차오름과 이지러짐이 있으니…(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다. 사람의 슬픔과 기쁨 등을 가득 찼다가 기우는 달의 모습에 견줘 감흥이 깊다.
둥근 은쟁반 같다고 해서 은반(銀盤), 옥토끼가 산다고 해서 옥토(玉兎), 계수나무 있는 궁궐이라고 해서 계궁(桂宮), 자태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해서 선연(嬋娟) 등이 달의 별칭이다. 춘향과 이몽룡이 만난 광한루(廣寒樓)의 앞 두 글자도 그렇다.
둥그런 모습이었다가 이지러지는 달의 모습은 영허(盈虛)로 적는다. 가득 찼다가[盈] 비워지는[虛] 현상을 표현했다. 소동파가 적은 원결(圓缺)과 동의어다. 우선은 늘 변하는 사물의 모습을 가리킨다. 우리도 잘 쓰는 성어 영고성쇠(榮枯盛衰)가 그렇다.
피었다 시드는 꽃, 번성했다 쇠락하는 것의 모습이다. 인문적 맥락에서는 넘침과 모자람, 더 나아가 성공과 실패를 함께 일컫기도 한다. 때로는 성공했을 때의 득의(得意), 실패했을 때의 실의(失意)도 가리킨다.
중국 달이 기운다. 개혁·개방의 흐름을 접으면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일본 달이 기울어 30여 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보냈는데, 이번은 중국 차례일까. 그러나 남의 일만은 아니다. 어느새 어두워진 우리의 달도 조금씩 이지러진다.
[263] 바닥난 국민의 고혈

▲일러스트=김성규
먹을 것이 늘 부족해 기름기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던 때의 사람들과 현대인의 영양 개념은 사뭇 다르다. 특히 지방(脂肪)에 관한 선호는 극명하게 차이를 드러낸다. 그 ‘기름기’에 관한 대표적인 한자를 꼽으면 우선은 ‘고(膏)’다.
몸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분인 피[血]와 병렬해 ‘고혈(膏血)’이라고 적는 단어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기름기와 혈액을 가리키지만, 속뜻으로는 백성들이 힘들여 모은 재산을 지칭한다. 백성에게는 제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금 술잔 향긋한 술은 천인의 피요, 옥쟁반 맛난 음식은 만인의 기름이로다(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라는 시문에도 등장한다. 과거 급제 뒤 걸인으로 변장한 어사 이몽룡이 부패한 변 사또의 생일잔치에서 적었다는 글이다.
중국에서는 북송(北宋) 이후 줄곧 관료들의 백성 착취를 경계했던 명문(銘文)에 나온다. “네가 받는 봉급은 모두 백성들의 기름이다. 뭇 사람들은 마구 대하기 쉬워도 하늘은 속이지 못한다(爾俸爾祿, 民脂民膏, 下民易虐, 上天難欺).”
이 글은 북송 태종이 관원의 부패를 경계하려 돌에 새겨 각 관청에 두게 했다는 ‘계석명(戒石銘)’으로 자리 잡았다가 후대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후촉(後蜀) 황제 맹창(孟昶)의 글을 16자로 줄여 쓴 내용이다.
현대 중국 집권 공산당의 부정부패는 아주 유명하다. 부패한 관료들의 수탈 대상이 바로 국민의 ‘고혈’이다. 이제 그마저 바닥나 지방 관료들의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기 어렵다고 한다. 공산당 통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얘기다.
윗부분을 늘 베어 먹히는 신세라서 중국 국민의 처지를 부추[韭菜]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뜯어 먹힐 여지가 없는 듯하다. 그로써 관료들의 궁핍도 심해진다고 하니 중국의 하늘도 꼭 무심치만은 않은 모양이다.
[264] 끊이지 않는 후궁 스캔들

▲일러스트=김성규

▲중국 광둥성 선전에 있는 중국 헝다그룹 본사. / 로이터
옛 가옥에서 안채와 사랑채 나누듯이 임금이 살았던 곳도 안팎을 구분했다. 뜰이나 마당을 가리키는 글자가 들어가는 곳이 안쪽이다. 임금이 거주하는 곳의 뜰이나 마당은 정(廷), 일반 집채의 그곳은 정(庭)이다. ‘엄(广)’이 있고 없음의 차이다.
그래서 제왕이 사는 곳의 마당은 궁정(宮廷), 일반 민가의 그곳은 가정(家庭)이다. 권위주의 시대 높고 낮음의 존비(尊卑) 관념을 드러내는 조어다. 그 궁정은 내밀한 곳이다. 임금의 기거(起居)가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외조내정(外朝內廷)이라고 해서 궁궐 전체 중 공무를 집행하는 밖이 ‘외조’, 권력자의 살림이 이뤄지는 안이 ‘내정’이다. 그 내정에서도 권력자의 여인들인 후비(后妃)와 비빈(妃嬪) 등이 사는 곳이 또한 안쪽이다. 궁위(宮闈)나 궁액(宮掖)으로도 적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어는 후궁(後宮)이다. 궁궐 맨 안쪽에 있어 외부인들이 발 들여놓기 아주 어려운 곳이다. 구중심처(九重深處)라고도 적는 궁궐의 가장 깊숙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후궁’은 장소를 가리키지만, 그 안에 사는 숱한 여인들을 지칭할 때도 있다. 정실인 ‘후비’를 비롯해 숱한 처첩(妻妾)을 다 포함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을 모시는 더 많은 수의 궁녀(宮女)까지 다 포함한다.

▲지난 2020년 헝다 민족가무단의 연습 장면. 쉬자인 헝다 회장은 이들 미녀 무용단을 접대에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웨이보 캡처
권력의 엄격한 위계(位階) 의식에 젖으면 사랑채와 안채를 두고 숱한 여인까지 거느려야 제맛일까. 부패 스캔들이 터져 조사가 벌어지면 중국에서는 꼭 ‘후궁’의 문제가 도진다. 이번에는 중국 최대 부동산 업체였다 파산한 헝다(恒大)의 사례다.
본부 건물 42층에 비밀 클럽을 차려 놓고 대규모 ‘기쁨조’를 거느렸다는 소문이다. 이곳 ‘단골’은 다수의 중국 권력자들이란다. 제왕적 권력 앞에 복종하며 그를 또 흉내 내는 못난 문화적 습성이 늘 그렇게 일을 만드는가 보다.
[265] 거짓 번영의 노랫소리

▲일러스트=김하경
이번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중국 항저우(杭州)는 퍽 유명한 도시다. 이곳에는 이름이 별난 음식점들이 사람들 이목을 끈다. 산 바깥의 또 하나 산이란 뜻의 ‘산외산(山外山)’, 누각 너머의 누각이란 의미의 ‘루외루(樓外樓)’ 등이다.
뭔가 거듭 이어져 있는 모습의 표현이다. 그러나 웬만한 수준을 능가하는 더 상층의 존재를 부각하는 속뜻도 지녔다. 그래서 ‘하늘 바깥의 하늘(天外天)’ 또는 ‘사람 위의 사람(人外人)’이라는 조어까지도 등장한다.
본래는 여진(女眞)의 금(金)에 밀려 장강(長江) 이남의 항저우로 도읍을 옮긴 남송(南宋)의 거짓 평화를 비판한 시에서 나온 말이다. 원문은 “산 밖 청산에 거듭 이어진 누각들, 서호의 노랫소리는 언제 멈출까(山外靑山樓外樓, 西湖歌舞幾時休)”이다.
항저우의 명소는 예나 지금이나 서호(西湖)라는 유명 호수다. 남송 시인 임승(林升)은 그곳의 산이 이어진 경치와 큰 집이 즐비한 풍경을 묘사했다. 이어 시인은 서호 인근의 안일과 환락이 언제 멈출까를 묻는다.
국토와 함께 옛 도성을 빼앗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남송의 황제와 대신 및 관료들, 더 나아가 백성들은 그 설움을 벌써 잊은 모양이었다. 서호 주변 요릿집과 누각에서는 거짓 번영의 노랫소리가 그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성세(盛世)를 가장하고 있으나 정작 국가와 사회는 쇠망 기운을 품고 있는 경우에 읊어볼 만한 시다. 실제 남송은 시인이 활동하던 시절부터 약 100년 뒤에 몽골의 원(元)에 패망하면서 역사 무대에서 사라진다.
호기롭게 개최한 아시안게임에서 풍성한 금메달 잔치를 벌였지만 중국의 속사정은 어둡다. 기우는 경제, 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견제로 위기 요소가 부쩍 늘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곰곰이 씹어볼 옛 시인의 시구다.
[266] ‘맥주 공장 오줌 사건’의 문화 심리

▲일러스트=김성규
중국인에게 ‘한가한 일’은 ‘남의 일’이다. 어른이 아이를 타이를 때 곧잘 나오는 표현이다. 대개는 부모가 자식에게 “한가한 일에 끼어들지 말라(別管閑事兒)”고 자주 이른다. 나랑 상관없는 남 일에 말려들지 말라는 훈계다.
중국인들은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란다. 그래서 자신의 이해와 관련 없는 남의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길에서 누군가 다쳐 뻗어 있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고 있어도 선뜻 돕는 사람이 적다. 이웃에 재난이 번져도 강 건너 불을 바라보는 격안관화(隔岸觀火)의 냉정한 시선, 팔짱을 끼고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수수방관(袖手傍觀) 태도가 발달했다. 아예 관심 자체를 꺼버리는 치지도외(置之度外)도 있다.
요즘도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속언이 있다. “제 집 문 앞 눈을 치우지, 남의 집 지붕에 있는 서리는 상관 말라(各人自掃門前雪, 莫管他人瓦上霜)”다. 제 앞가림부터 하라는 충고지만, 속뜻은 남의 일에 왜 신경을 쓰느냐는 핀잔에 가깝다.
그러나 오래전 중국은 ‘남과 나’의 관계 설정을 고민한 흔적이 있다. ‘무리’와 ‘나’라는 뜻의 군기(群己)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불가에서는 ‘뭇사람’과 ‘나’라는 새김의 인아(人我)라는 단어도 만들어 둘의 상관관계를 깊이 탐구했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남을 감싸 안는 일에 늘 서툴다. 오직 제 이해에만 몰두하는 습성이 더 강하다. 튼튼한 담벼락에 자신을 가두기 좋아하고, 낯선 이를 적대하며 성을 쌓는 축성(築城)의 문화적 심리가 아무래도 그 토대일 듯하다.
따라서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 않는 편이다. 유명 중국 맥주 공장에서 최근 벌어진 ‘술 원료에 오줌 누기’가 그 좋은 사례다. 오랜 정신문명사가 남긴 박애(博愛)와 이타(利他)의 공백이 아직도 여전히 커 보이는 중국이다.
[267] 개혁·개방 시대의 弔鐘

▲일러스트=양진경
“십 년을 차가운 창 옆에서 공부했지만 찾아주는 이 없다가, 과거 급제로 이름 내니 세상이 다 알아주다(十年寒窓無人問, 一擧成名天下知)”라는 시가 있다. 오랜 고생 끝에 지도층에 오른 옛 문인(文人)의 경우를 읊은 시구다.
‘차가운 창[寒窓]’에서의 노력은 힘겨운 학습이다. 함께 공부한 사람을 우리가 동창(同窓)이라고 적는 유래다. 글을 습득해 지식을 쌓는 사람, 그로써 옛 사회의 엘리트 반열에 오른 이들의 호칭은 퍽 풍부하다.
재자(才子), 문사(文士), 문인, 유생(儒生), 학자(學者) 등이 다 그렇다. 대부분은 배움에 나선 사람을 우아하게 부르는 아칭(雅稱)이다. 서생(書生)은 그에 비해 배우는 자의 좋은 점이나 그렇지 못한 점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지식 쌓기에 몰두하되 현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백면서생(白面書生)이다. 서고(書庫)는 본래 ‘책 창고’, 달리 지식을 아주 많이 쌓은 사람이다. 서록(書簏)은 책 상자, 나아가 쌓기만 했지 지식 운용에 무능한 이다. 서치(書癡)는 책에 푹 빠진 지식인, 서충(書蟲)은 잎사귀 먹는 벌레처럼 깊이 독서에 파묻힌 사람, 서미(書迷)는 글에 젖어 헤매는 이를 일컫는다. 현실 대응 능력이 부족한 지식인을 은근히 얕보는 말들이다.
그럼에도 지식과 전문성을 천대하는 사회에 진보란 있을 수 없다. 개혁·개방 시기의 공산당은 이념과 함께 전문성도 중시했다. 그로써 세계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이제는 폐쇄적으로 바뀌면서 정치성만 내세운다.
학력과 능력을 겸비했지만 1인 권력에 짓눌려 ‘서생’이라 놀림까지 받았던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의 사망은 그 상징이다. 그를 향한 중국인의 애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정작 슬퍼하는 것은 지식과 전문성을 우대했던 개혁·개방 시대의 조종(弔鐘)일 듯하다.
[268] 중국판 “누가 기침 소리를 냈는가?”

▲그래픽=김성규
잘못한 일도 없는데 한자(漢字) 속 여인들은 늘 꿇어앉아 있다. 여자를 가리키는 글자 ‘녀(女)’의 본래 꼴을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얕보거나 깔보는 흐름의 새김이 두드러진다. 이 한자의 우리식 훈이 또한 ‘계집’이다.
더 억울한 일도 있다. 좋지 않은 뜻을 지닌 한자 행렬에는 이 ‘계집 녀’를 부수로 쓰는 경우가 흔하다. ‘종놈’, ‘종년’을 가리키는 단어 노비(奴婢)의 두 글자가 우선 그렇다. 간사하다는 새김의 간(奸)도 눈에 띈다.
간통을 하면 남성의 잘못도 클 텐데, 그 행위에는 글자 셋을 겹친 간(姦)이 쓰인다. 기생의 기(妓), 시샘할 때의 지칭인 질(嫉)과 투(妬)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질투가 때로는 여성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때가 많은데도 말이다.
여성의 이름으로 쓰는 좋은 뜻의 글자도 많다. 또 아내를 일컫는 처(妻), 아이를 배는 임(妊), 좋다는 뜻의 호(好) 등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글자도 있다. 그럼에도 ‘꿇어앉은 여성’이라는 본래 꼴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요망(妖妄), 망상(妄想)의 ‘망’은 쓰임이 많다. 거짓과 엉터리를 가리키지만 함부로, 멋대로 등의 뜻을 지녀 부사로도 곧잘 쓰인다. 공산당이 “중앙의 결정에 함부로 지껄이다”는 뜻의 ‘망의중앙(妄議中央)’을 경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윗선의 결정에 왈가왈부하거나 토를 달지 말라는 얘기다. 그로써 건의(建議)와 제의(提議)가 사라져 상의(商議)와 논의(論議)가 없어지고 말았다. 왕조시대 황제와 다름없는 1인 최고 권력이 등장한 뒤 더욱 커져가는 폐단이다.
“추운 날 소리 멈춘 매미(噤若寒蟬)”라는 말이 떠오른다. 가뜩이나 서슬 퍼런 위계에 눌리기 마련인 지금 공산당 내부 의사결정 라인이 꼭 그 모습이다. 미국의 견제나 경기 하강에 앞서 중국이 먼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269] 대중운동의 망령

▲일러스트=박상훈
조그만 아치형 다리에, 아담한 하천이 흐르는 곳. 중국에선 흔히 성어 식으로 ‘소교류수(小橋流水)’라고 적는다. 그런 풍경을 지닌 곳의 일반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물길에 조그만 교량이 퍽 발달한 중국 강남(江南)을 오로지 일컫기도 한다.
그곳을 배편으로 지났던 옛 시인의 시가 퍽 유명하다. “달 지고 까마귀 우니 서리 찬 하늘이라(月落烏啼霜滿天)”로 시작하는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전란을 피해 강남을 떠돌았던 시인이 밤중에 잠을 못 이루며 객수(客愁)를 달래는 내용이다.
강가에 선 단풍나무, 고기잡이배에 켜진 등불, 문득 느껴지는 만리타향, 컴컴한 밤중에 뱃전으로 날아드는 한산사(寒山寺) 종소리…. 마치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펼쳐지는 정경이다.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의 절창(絶唱)이다.
시 제목의 ‘풍교’는 단풍나무와 함께 있는 교량을 지칭하나, 현대 중국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1960년대 초반 군중을 동원한 대규모 정치운동을 가리킨다. 군중이 군중의 문제를 직접 해결한다는 명목 아래 벌어진 운동이다.
저장(浙江)의 ‘풍교’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이 운동은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옛 잔재들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혹독한 틀을 유지했고, 무분별한 인민재판(人民裁判)의 운동방식을 따라 해 문제였다.
중국 공산당은 당시의 이 흐름을 ‘풍교경험(楓橋經驗)’이라고 규정한 뒤 필요할 경우에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쓰고는 했다. 개혁·개방 시기에는 자취를 감췄다가 요즘 공식 기념행사 등이 열리며 다시 각광을 받는다.
혹독한 계급투쟁으로 이어져 무수한 지식인을 죽게 했던 문화대혁명의 사실상 첫 단초가 이 ‘풍교경험’이다. 공산당 지도부가 망령(亡靈)과도 같은 이 불길한 대중운동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뒷걸음질이 한국 의회정치의 퇴행만큼 빠르다.
11.24 [270] 부지런해서 나라 망치는 군주

▲일러스트=박상훈
경복궁의 핵심 건축은 근정전(勤政殿)이다. 앞의 ‘근정’은 “정무에 힘쓰다”라는 유가(儒家) 가르침에서 나왔다. 통치자인 군왕의 부지런함을 강조한 맥락이다. 정치는 결국 게으름에서 망하고, 부지런함에서 일어난다는 논리다.
그러나 통치자의 상태가 정상일 때만 그렇다. 역량과 깜냥이 갖춰지지 않은 통치자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저지를 수밖에 없는 치명적 문제도 있다. 그때에는 평범함으로 일관하는 무사안일(無事安逸)이 더 나을 수 있다.
망국지군(亡國之君)은 나라를 망쳐 먹은 임금이다. 그런 군주는 중국 역사에 즐비하다. 근세에 들어 가장 유명한 임금은 숭정제(崇禎帝)다. 명(明) 왕조 276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군주다. 이 사람 특기가 바로 ‘근정’이었다.
기울어가는 명나라 말기 상황을 고쳐보려고 시도한 부패 척결 등의 개혁 조치는 지나친 독선과 아집으로 오히려 전횡(專橫)에 머물고 말았다. 이어 그에게 닥친 것은 농민군으로 황궁에 침입한 이자성(李自成)의 군대였다.
그는 마침내 북경(北京) 자금성(紫禁城) 뒤에 있는 경산(景山)에 올라 목을 매 자살했다. 유명 역사가가 그에게 내린 평가는 “나라 다스림에 무능했고, 어리석은 조치만 일삼았다(治國無能, 昏招頻出)”이다.
명나라 패망을 부른 숭정제의 면모가 중국에서 다시 책으로 나왔다. 제목은 ‘숭정: 부지런했으나 망국을 부른 군주(崇禎: 勤政的亡國君)’다. 지난 9월에 선을 보인 이 책은 그러나 한 달 뒤에 사라졌다. 공산당의 조치였다.
아무래도 현재의 1인 권력자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를 몰래 겨누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받은 것이다. 치적으로 내세우나 오히려 중국 경쟁력을 갉아먹은 반(反)부패, 일대일로(一帶一路), 대외 강경 외교 등 그의 정책과 조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여전한데, 실제 중국 분위기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