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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 2023-11/ 11-01 먼저 한 도발을 바로잡는 건 도발이 아니다 - 11-30 국정원 난맥 본질과 4가지 긴급 과제

상림은내고향 2023. 11. 21. 11:55

자주국방 2023-11/

11-01 먼저 한 도발을 바로잡는 건 도발이 아니다

‘赤化 없는 독립은 없다’는 빨치산이 서훈되고
서훈을 근거로 유해가 현충원에 안장되고
국방부와 육사에까지 흉상이 만들어지고
국민의 포괄적 추념의 대상이 되는 역사 도발

계봉우는 이동휘와 함께 볼셰비키 노선을 따르는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활동하다가 소련에 정착했다.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 당한 후에는 그곳에서 한국어 학자와 한국 역사가로 행세했다. 그는 1952년 펴낸 ‘조선역사’에서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미구(美寇)가 남선(南鮮)으로 붙어 북선(北鮮)까지 강점하기 위해 고금에 유례없는 비행(非行)을 범하고 있다”고 썼다.

계봉우의 유해가 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 전용기로 옮겨져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김영삼 정부 때 독립운동 경력이 있는 공산주의자에게 대거 건국훈장을 줄 때 그도 독립장을 받았다. 서훈은 그저 서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훈이 근거가 돼 현충원 안장으로 이어졌다.

크질오르다는 홍범도도 살다 죽은 곳이다. 홍범도 집 근처에는 계봉우 최계립 이인섭 등 왕년의 빨치산이 이웃하며 살았다. 그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물론 소련에 살다 보니 6·25전쟁을 미제의 침략 전쟁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먹고살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갔다가 졸지에 공산 혁명을 당해 소련 치하에 살게 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다. 왕년의 빨치산들은 ‘적화(赤化) 없는 독립’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여기고 소련을 택한 사람들이다. 최소한 그들은 그런 변명을 늘어놓을 자격이 없다.

 

물론 홍범도는 6·25전쟁 발발 전인 1943년 죽었다. 그러나 홍범도는 1939년 소련이 독일과 싸우게 되자 자신을 전선에 보내달라며 행정기관까지 찾아가 호소한 사람이다. 그가 죽었을 때 고려인 신문 ‘레닌기치’는 부고 기사에서 그를 소련 공산당의 충직한 당원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가 살아서 6·25를 맞았다면 어떠했을까. 그런 사람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놓고 생도들이 경례를 하고 다닌다.

독립군은 일본군에 쫓겨 러시아령 이만으로 들어갔다가 일부는 간도로 다시 돌아가고 일부는 자유시로 향했을 때부터 민족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로 확연히 갈라졌다. 홍범도는 1919년부터 빨치산이 됐다고 나중에 밝혔지만 공산주의자였음이 외부로 분명히 드러난 건 1921년 자유시로 향할 때부터였다. 다만 그가 그저 한인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일부 한인 공산주의자에게만 주어진 소련 공산당원 자격을 부여받는 등의 자유시 사변 이후 행적은 소련 붕괴 후 소련 문서를 볼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홍범도에게는 윤보선이 대통령이고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주어졌다. 자유시로 향하기 전 돌아선 이범석조차 1971년 펴낸 회고록 ‘우등불’에서 “홍범도가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원의 권유로 공산주의자가 됐지만 그 속에서 할 일도 없고 이름만 빌려준 셈이 돼 그 후 자유시 부근에서 방황하다가 병들어 불쌍하게 사망하고 말았다”고 쓸 정도로 잘못 알고 있던 시절 주어진 훈장이다.

 

홍범도는 자유시 사변 직후 간도 독립군을 갖다 바치는 데 앞장 선 공로로 레닌에게 포상까지 받는 등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냈다. 왕년의 한인 빨치산 중 상당수가 스탈린 치하에서 수감생활까지 하며 치른 교화 과정도 홍범도는 치르지 않았다. 민족을 사지로 내몬 강제이주에 대해 한마디 불평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홍범도는 ‘방황하다가 병들어 불쌍하게 사망한 것’이 아니라 소련 공산당의 충직한 당원으로서 연금과 복지 특혜에 극장 수위까지 하면서 ‘넉넉히 살다가’(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표현) 당시로서는 장수인 75세에 사망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육사에 홍범도 흉상을 설치하고 2021년 홍범도의 유해를 가져오면서 그의 건국훈장도 대통령장에서 대한민국장으로 올렸다. 육사에 흉상 따위를 설치하지 않고 훈장 등급을 그대로 뒀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주제넘게 역사의 재조산하(再造山下)를 한다며 침묵의 균형을 깨고 먼저 도발을 감행한 것은 문 대통령이다.

홍범도의 유해를 가져올 때 공군기 6대가 호위하고 대통령이 늦은 밤 공항에서 직접 맞는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괴이한 기분이 들었다. 홍범도 흉상을 설치할 당시 딸의 친구인 육사 여생도로부터 전해들은 생도들의 ‘말 못 하는 분노’를 잊을 수 없다. 먼저 한 도발을 바로잡는 건 도발이 아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1-01 합참의장 후보자 “軍은 호랑이처럼 존재하고 싸우면 사냥개처럼 행동해야”

▲김명수 신임 합동참모본부 의장 후보자가 1일 오전 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용산 국방부 별관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후보자 "9·19합의, 방위태세에 군사적 제한사항 있어"
"육해공·해병대 합동성 기반으로 적 억제"…사무실 첫 출근

김명수(해사 43기) 합동참모본부 의장 후보자는 1일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군사적으로 틀림없이 제한 사항이 있다"고 밝혔다.

최근 대장으로 승진한 김 후보자는 이날 오전 용산 국방부 별관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9·19 합의가 방위태세에 영향을 미쳐 효력 정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후보자는 북한 핵위협이 어느 때보다 고도화하는 시기에 합참의장 후보자로 내정된 것을 두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대한민국 군은 호랑이처럼 존재하고 싸우면 사냥개처럼 행동하는 군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북한 주민 4명이 소형 목선을 타고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순할 당시 군이 아닌 어민에 의해 먼저 발견된 건 군의 ‘경계 실패’ 아니냐는 지적에는 반박했다.

김 후보자는 "합참 발표가 아주 잘 됐다고 본다"며 "작전의 전반적인 것을 다 공개할 수는 없다. 공개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공개 자체가 저희에게 취약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군이 문재인 정부에서 주변국의 해상 팽창에 대비해 역점을 둬 추진했던 경항공모함(3만t급)이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을 도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에 개인적인 생각은 있다"면서도 "합참의장 후보자로서는 다양한 전체적인 국가적, 전략적, 작전적 판단을 해볼 필요가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해군 출신 합참의장 발탁은 2013년 최윤희 의장(재임기간 2013∼2015년) 이후 10년 만이며, 역대 두 번째다.

이를 두고 김 후보자는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본질은 동일하다. 국가와 국민을 방어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며, 존재 자체로서 (적을) 억제하고 위협이 되어야 한다"라며 "그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육군이냐 해군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합동성에 기반해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싸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합참에는 경험이 많은 장군 참모들과 훌륭한 영관장교들이 있다"며 "그들의 지혜를 모아 팀워크를 유지한다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오는 15일 전후로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11.03 북한의 하마스식 기습공격을 막으려면

340문 이르는 北 장사정포
초정밀 미사일로 무력화 가능
더 큰 우려는 정보 실패 문제
9·19 남북군사합의서는
대북 감시·정찰 능력 약화시켜
굳이 폐기 선언할 필요도 없다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게 최선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이스라엘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북한이 하마스식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 우리 군이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다. ‘가자’ 사태를 계기로 ‘9·19남북군사합의’를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군이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을 즉각 제압할 군사적 역량은 갖고 있으나 정보실패가 대응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당한 재앙의 본질도 정보실패에 있다. 압도적 군사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도 정보실패를 만회하기는 어렵다.

 

군사적으로는 우리 군이 북한 장사정포 전력을 제압하는 것이 이스라엘군(IDF)이 하마스를 제압하는 것보다 쉽다. 하마스는 거미줄같이 연결된 수백㎞의 ‘가자’ 지하통로를 이용해 신출귀몰하면서 주로 민가, 유치원, 병원 등 민간 시설을 방패로 삼아 로켓을 발사한다. 발사 위치를 이스라엘 군이 사전에 탐지하기 어렵고, 하마스를 소탕하거나 ‘가자’를 점령하려면 막대한 민간인 살상이 불가피하므로 이스라엘이 국제적 지탄과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북한의 경우에는 모든 장사정포가 지하갱도에 배치되어 있고 발사할 때는 갱도 밖의 사격진지로 이동한다. 우리 군은 지하갱도와 사격진지의 정확한 좌표를 파악하고 있고 다행히 표적 근처에 민간인은 없다. 현재 전력화가 진행 중인 초정밀 전술지대지미사일(KTSSM)의 배치가 완료되면 일거에 갱도 입구를 파괴하고 갱도 내의 북한 포병을 궤멸할 수 있다. 이미 사격진지로 나온 장사정포는 재장전을 위해 갱도진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리 군의 포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기술적으로는 340문의 북한 장사정포를 10분 이내에 무력화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이러한 최선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모든 핵미사일 기지와 장사정포 진지에 대한 제약 없는 감시·정찰이 가능하고, 우리 군이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타격자산 운용에 숙달되어 있다는 두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물론 북한이 장사정포로 수도권을 포격하는 것은 전면전을 의미하므로 핵미사일을 두고 굳이 장사정포로 전면전을 개시할 이유는 없고, 재래식 포격전이 핵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여기서는 재래식 공격에 국한된 상황만을 상정해본 것이다.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가장 취약한 부분은 우리 군의 대북 감시정찰(ISR) 능력이다. 미국이 수백 기의 정찰위성을 운용하고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다양한 공중정찰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북한군의 동향을 실시간 연속적으로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탐지 빈도를 늘리고 정보실패의 가능성을 줄일 뿐이다. 대북 감시·정찰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해도 모자랄 판에 이를 오히려 약화시킨 것이 바로 2018년의 ‘9·19남북군사합의서’다.

 

이 합의서의 치명적 독소 조항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0~40㎞ 폭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1조 3항이다. 언뜻 보면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미사여구로 가득하지만 그 실체는 대북 감시정찰의 사각지대를 넓힘으로써 북한의 기습공격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데 있다. 북한 장사정포 진지에 대한 감시·정찰 능력은 우리 정찰자산의 항로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증가하는 반면,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감소하고 북한 포병이 은밀하게 기습공격을 준비할 공간은 그만큼 늘어난다. 그렇다면 군사합의서는 평화에 기여하기는커녕 북한이 평화 파괴를 시도할 경우 사전 탐지를 피할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군비통제합의의 근본 목적은 적대 세력 간 긴장을 완화하고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데 있고 이는 군사 활동의 투명성 제고와 신뢰 구축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런데 남북군사합의는 이러한 군비통제의 기본원리에 역행하여 북한 군사 활동의 투명성을 오히려 저해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북한이 이미 합의의 취지를 부정하는 도발을 일삼아 온 만큼 우리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준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굳이 폐기나 효력정지 선언 같은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간주하면 그만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는 현 상황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과 적대 행위 방지에 필요한 군사합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아니라 1992년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국 간에 체결된 ‘항공정찰자유화 조약(The Open Skies Treaty)’을 모델로 한 남북 간 상호정찰 제도 도입이다. 또한 해상완충구역과 육상의 군사훈련 금지 구역을 철폐하는 대신 대규모 군사훈련의 사전 통보와 상호 참관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11-03 “북한은 핵무장 상태… 단 한번의 대북 정보 실패도 치명적”

■ 한국국방연구원 정책토론회

“최근 이·팔 전쟁 사례서 보듯
첨단기술에 정보 의존땐 위험”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보듯 핵으로 무장한 북한에 대한 단 한 번의 정보 실패는 치명적인 결과로 직결될 수 있으며, 첨단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방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정책토론회에서 제기됐다.

3일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관으로 열린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이 한반도에 갖는 안보·군사적 함의’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 산학협력교수인 방종관 예비역 육군 소장은 이스라엘 초기 대응을 군사적 실패로 평가한 뒤 “관료화된 군사정보 조직과 인간정보자산(HUMINT·휴민트)의 감소와 더불어 북한 위협에 대한 문제 해결보다는 첨단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군의 정보 분야 문제점을 꼬집었다.

방 예비역 소장은 “남북한의 군사력 비대칭성이 심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또한 이스라엘군이 실패한 정보 획득과 분석, 이스라엘 이동식방공시스템 아이언돔(Iron Dome)의 한계, 시가지에서의 지상작전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며 “북한은 170㎜ 자주포를 포함한 다량의 장사정포를 대비하고 있는데, 한국도 잠재적 피해가 클 수 있으므로 적 원점 타격체계의 공격수준을 높이고 경보체계와 대비시설, 훈련 등을 통해 피해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호령 KIDA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은 서해 해상 완충구역에서 군사합의를 3000건 넘게 위반했으며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 노력은 2019년 1월부터 중단했다”며 “북한은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적대 정책과 기습 역량, 반미연대를 강화하고 있어 우리는 억지에 기초한 안정과 평화를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억지의 작동원리에 착안해 북한의 9·19 군사합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보다 큰 틀인 ‘남북기본합의서 준수’와 ‘정전협정 준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월간조선 11월 호

■‘사회주의 과학기술 전문가’가 말하는 북핵·미사일

“7차 핵실험은 실제 사용할 전술핵실험 될 것”

⊙ 北, 핵무기 30~100발 보유 추정… 목표치는 최다 230발
⊙ 국방부, 북핵 위력 과소평가, 美中 기준 따르면 150~200kt
⊙ “北 사실상 ICBM 보유, 액체에서 고체추진제로 전환해 기습 발사 가능”
⊙ “3축 체계, 지나치게 미사일 의존적… 공중 레이저 무기 등 개발해 선제적 대응해야”
⊙ 6개월이면 자체 핵무장? 낭설… 3~4년은 걸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명예연구위원. 서울대 공학 박사, 중국베이징사범대 교육학 박사 / 중국 옌볜과학기술대 부총장, 중국과학원·베이징대학·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연구, 통일부·합동참모본부 자문위원 / 저서 《북한의 과학기술》 《러시아를 넘어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우주굴기》 등

지난 7월 13일 조선중앙TV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북한이 새로운 무기를 공개하거나 미사일을 쏘면 사회과학을 공부한 전문가들이 등장해 정치적·외교적 관점에서 사안을 해설한다. 평생 재판만 해온 변호사도 종편에 나와 한마디씩 보탠다.

핵무기와 그 투발 수단(ICBM, 잠수함, 장거리 폭격기 등)을 이해하려면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설명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일반인들은 원자탄과 수소탄, ICBM과 인공위성의 차이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도 6개월이면 핵무장을 할 수 있다’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으니 한국도 ICBM 기술을 확보했다’는 식의 피상적 이해에 그친다.

 

▲202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

 

북한의 핵개발은 하나의 주기(週期)를 바탕으로 한다. 각종 도발은 핵탄두·투발 수단·핵전술을 고도화하는 기나긴 과정에서 벌어지는 단편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고작 김일성 태어난 날(태양절)을 기념하고자 김정은이 값비싼 미사일을 폭죽 쏘듯 발사하는 게 아니다. ‘대남적화 통일을 위한 최종병기’가 만들어지는 복잡다단한 과정은 생략한 채 개별 현상에만 집중하니 태양절, 한미연합훈련과 같은 배경을 갖다 붙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풍토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사회주의 과학기술 전문가가 책 《북한의 핵패권》을 냈다. 저자는 공학도인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중국·북한 과학기술 분야, 특히 핵·미사일 전문가다.

이춘근 박사는 사회주의 국가들(소련, 중국,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온 경로가 같으며 앞선 소련·중국의 사례를 파악하면 북한의 미래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박사와의 인터뷰에는 합동참모본부에서 북핵 대응 실무를 맡았던 정경운(예비역 육군 중령,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서울안보포럼(SDF) 연구기획실장도 함께했다.


中 개혁개방기에 中 과학기술 공부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 사회주의 과학기술을 공부한 계기가 있습니까.
“서울대 공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치고 1992년 중국 옌볜과학기술대 교수로 갔어요. 교수는 한국인, 학생은 중국인이었죠. 당시 중국의 현실이 잘 이해되질 않아 중국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교무처장과 학사부총장을 하게 됐어요. 더 깊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또 공부했죠.”

— 어떤 공부입니까.
“사회주의 국가의 정책이 어떻게 수립·변화되고 그 논리는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1990년대 초 당시 중국이 한창 개혁·개방을 할 때였죠. 과학기술·교육 분야에서도 정책 변화가 있었어요. 북한에도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해 재밌게 공부했습니다.”

개혁·개방으로 혼란스러웠던 중국은 과학 분야에서 거둔 성과인 ‘양탄일성(兩彈一星)’을 자랑했다. ‘두 개의 폭탄(원자탄·수소탄 또는 원자탄·유도탄)과 하나의 인공위성’이라는 뜻으로 1960년대 중국이 진행했던 핵무기·ICBM 개발 계획을 말한다.

1990년대 초 중국은 체제 안정을 위해 국방과학 분야의 성과를 적극 홍보했다. 관련 전문 자료도 공개됐는데 이 박사는 이 경로를 파악해 자료를 수집하며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이 박사의 고향은 경기 파주 자유의 다리 앞이다. 집 앞을 지나가는 거대한 전차와 화포를 볼 때면 ‘저게 뭐기에 힘이 그렇게도 센가’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다.

그는 1980년 육군화학학교(현 화생방학교)에서 군 복무를 시작하면서 핵무기와 처음 만났다. 특기병학교에서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배우고 자대에서는 병기와 탄약을 관리하며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무기체계 전반을 공부했다. 3년 동안 눈에 띄는 교범이란 교범은 다 봤다. 100권은 넘게 봤는데 더는 볼 책이 없어 상급 부대에서 빌려오기까지 했다. 여기에 7년간 중국에서 현지 과학자들과 교류하며 고급 정보도 습득했다. 남북교류가 시작된 2002년부터는 방북해 북한의 과학기술도 지켜봤다. 지금까지 15번가량 다녀왔다.

“北, 국방 관련 주요 분야에만 투자”

— 북한 과학기술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사회주의의 과학기술은 선형적, 직선형으로 발전합니다. 기초연구→응용연구→개발연구→개발(생산) 등 각 선행 단계를 거칩니다. 문제는 한 단계에서 막히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못합니다. 연구기관마다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죠. 자본주의는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든 혁신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북한에는 시장이 없으니 이런 혁신도 없죠.”

 

— 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둡니까.
“예산에 한계가 있기에 국방과 관련된 주요 분야에만 투자합니다. 국가 투자에만 의존하니 수익성도 취약하고 장기적으로는 성과를 내는 것도 미흡합니다. 원자력 분야만 봐도 핵무기는 개발하지만 민수용(民需用) 원자력 기술 분야에는 성과가 없죠.”

— 북한은 ‘과학에서의 주체’도 강조합니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산 원료·기술로 국내 개발한다는 뜻입니다. 김일성이 ‘공업에서의 주체(원료 70~80% 국산)’를 말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화학공장에 고압 탱크가 필요한데 두꺼운 고압 강관이 없어 철판을 둘둘 말아 밀착시키곤 위아래를 용접해서 만듭니다. 이런 자력갱생 방식도 첨단기술 분야로 갈수록 한계가 드러나죠.”


“물리대학, 핵무기 운용 인력 양성”

 핵개발 인력 양성 기관은 어떻게 됩니까.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김책공대), 리과대학, 물리대학 등이 있습니다. 김일성종합대·김책공대 모두 최고 수준의 학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김일성종합대가 기초 학문에 중점을 둔다면, 김책공대는 핵무기와의 연결을 위한 응용 분야를 강조하며 실험 실습을 주로 합니다.”

— 리과대학, 물리대학은요?
“리과대학은 우리의 과학기술원(KAIST)처럼 연구 중심 대학입니다. 기초교육과 연구 능력 배양에 치중합니다. 증폭탄과 수소탄에 적용되는 핵융합을 연구하는 곳이기도 하죠. 졸업생 중 상당수가 연구원으로 진출해요. 물리대학은 핵무기 운용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현장실무형 대학입니다.”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단일학과에서 원자력 분야를 폭넓게 학습하지만 북한은 연구진과 실무진(물리대학)을 구분해 기릅니다. 민간 원자력 분야 기술은 우리나라가 월등하죠.”

— 핵개발 인력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규모를 정확히 산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른 전공 출신도 핵개발에 참여하기 때문이죠. 전체 규모는 1만 명을 넘어서리라 추정합니다. 중국 핵무기 개발의 총본산인 공정물리연구원의 총원이 1만 명인데 이와 비교하면 작은 규모가 아니죠. 중국은 핵물질 생산기관이 국영에서 민간으로 이전하면서 직접 핵무기를 생산하는 데 관여하는 인력이 줄었지만 북한은 핵물질을 포함한 전체 원자력 주기가 핵무기를 목표로 하고 있죠.”

— 북한은 언제부터 핵개발을 한 겁니까.
“일제 시기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본격적인 무기급 핵물질과 원자탄 생산을 추진한 시점은 영변에 5MWe 원자로(1985년 준공)를 가동한 1980년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드부나연구소

— 자체적인 개발입니까.
“사회주의 국가가 모여 만든 연합핵연구소(JINR, 드부나연구소)가 있습니다. 핵 확산의 경로죠. 1956년에 소련·중국·북한 등 12개 사회주의 국가가 참여해 만들었죠. 각 회원국이 과학자를 파견해 공동연구를 하며 이론물리, 입자물리, 핵반응 등을 연구했어요.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초 학문이죠.”

— 핵무기를 확산시키고자 만든 연구소입니까.
“핵 확산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사회주의권의 고급 인재를 유치해 공동연구를 통한 과학 발전을 의도했다고 볼 수 있죠. 소련 자체 인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중국처럼 인구가 수억 명인 나라에선 천재들도 많잖아요.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만이 아니라 소련에도 이득이 있다고 생각해 연구소를 지원했죠.”

— 중국은 이 연구소를 어떻게 활용했습니까.
“1960년대 중·소 관계가 악화하기 전까지 200명 정도를 파견했습니다. 당시 드부나연구소에 다녀온 인력 중 80%는 중국으로 돌아와 핵무기연구소에 배치됐죠. 이를 바탕으로 중국도 소련의 핵개발 경로를 답습해 1964년 핵무기를 개발해냈습니다. 특히 원자탄과 수소탄을 개발한 경로가 초기 소련 핵개발 방식과 유사하죠. 중국은 소련을 보고서 처음부터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도록 원자탄을 소형화해 만들었습니다.”

중국과 북한은 핵개발 과정에서 이른바 ‘후발국의 우세’를 활용해 미국과 소련이 겪은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참고했다. 대표적으로 우라늄 농축 방식과 핵탄두 소형화였다. 핵무기 원료에는 고농축우라늄(HEU)과 플루토늄이 있다. HEU를 만들기 위해선 천연 우라늄 중 0.7%만 존재하는 우라늄 235를 90% 이상 농축해야 한다.

최초 핵무기 개발 당시 미국은 고비용인 ‘기체확산법’으로 우라늄을 농축했다. 반면 소련은 저비용인 ‘원심분리기’를 개발해 HEU를 확보했다. 중국도 처음에는 기체확산법을 활용하다가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농축했다. 미국도 지금은 원심분리기를 활용한다.

핵무기가 처음 세상에 등장할 때는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미사일에 곧장 장착할 수 없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위력 15kt, HEU)는 무게 약 4500kg, 길이 3.3m, 지름 70cm였고,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21kt, 플루토늄)은 약 4670kg, 길이 3.3m, 지름 1.5m였다. 두 원자탄 모두 폭격기 B-29에서 투하됐다. 소련은 핵탄두를 소형화하면 미사일에 실어 발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만들어진 핵탄두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도록 소형 원자탄으로 계획됐다.

— 북한은 드부나연구소에 몇이나 파견했습니까.
“초기 30여 명 수준에서 점차 늘어 300명을 넘어섰습니다. 중국(200명)과 비교해도 많죠. 중국 연구진은 이론과 응용을 병행 학습했지만 북한은 파견 인력의 80% 이상이 핵개발과 연관된 원자로, 중성자물리, 방사화학 등 응용 분야에 주력했습니다.”

북한은 소련과 원자력 협력을 통해 영변에 IRT-2000(1965년 준공), 5MWe 원자로를 세웠다.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당시 사용한 핵물질은 5MWe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이다.

“中, 北에 레이저핵융합 설비 제공”

지난 9월 출간한 《북한의 핵패권》(인문공간).

 

《북한의 핵패권》에 따르면, 북한은 1980년대 들어 전반적인 원자력 주기가 완성됐다고 봤다. 이 시기에 원자력 분야에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분리하고 핵무기 개발(응용연구)에 주력하게 됐다. 응용 분야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은 영변으로 대거 이전했다. 앞서 소개한 물리대학은 1980년 영변 지역 과학자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만든 물리학원을 확대 개편해 만든 것이다.

—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에 어떤 도움을 줬습니까.
“1980년대 중국과학원이 레이저핵융합 설비를 평화적 목적으로 북한에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설비를 이용해 수소탄 개발에 드는 시간을 단축했죠. 2010년 북한이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밝혔는데 당시 다른 국가들은 평가절하했지만 중국 측은 격한 논조로 북한을 비난했죠.”

— 레이저핵융합 설비는 어떤 장비입니까.
“인공적으로 고온·고압 플라스마를 만들고 이를 반사거울로 작은 점에 집중시킵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수천만 도의 고온·고압 환경이 돼 어떤 핵물질이 핵융합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실험할 수 있습니다. 수소탄 개발에 필요한 이론연구를 할 때 유용하게 쓰이죠.”

— 북한은 왜 지하에서 핵실험을 하는 겁니까.
“핵실험은 크게 지상 실험(고공, 공중, 지면, 수중)과 지하 실험(수직·수평갱도)이 있습니다. 방사능 위험과 생태계 파괴 때문에 1963년 미국과 소련이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LTBT)을 통해] 협의를 맺고 핵실험 지하화가 이뤄졌습니다. 1945년 최초 핵실험 이후 최근까지 파악된 2065회 실험 중 약 80%가 지하 실험입니다.”

 

 풍계리가 핵실험장이 된 이유

2017년 9월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했다. 사진=뉴시스

 

— 지하 핵실험의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지하 핵실험은 수평갱도와 수직갱도로 구분합니다. 수평갱도는 시공이 간편하고 각종 모사 실험을 원만하게 할 수 있죠. 다만 폭발 위력이 큰 실험은 안 돼요. 수직갱도는 지형 제한이 적고 동일 지역에서 여러 번 실험할 수 있죠. 위력이 큰 핵실험도 합니다만 시공 기술 수준이 높아야 하고 지하수 유입으로 높은 수압과 오염이 유발됩니다.”

— 북한은 어떤 방식입니까.
“처음에는 달팽이관 형태의 수평갱도를 이용했고 바로 직선형 갱도로 전환했습니다. 핵무기 현대화와 기술 개선을 위해서는 직선형의 수평갱도 방식이 가장 유리하죠. 넓은 기폭실에 핵장치를 설치한 후 각종 측정 장치를 활용해 근거리 핵물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거리 핵물리 결과 값은 지하 핵실험에서만 얻을 수 있어요. 또 핵폭발로 발생하는 X선과 감마선은 핵무기 고공 폭발 시 발생하는 중요 살상 요인입니다. X선의 열역학 효과와 방호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수평갱도 실험에서만 가능합니다.”

— 북한은 왜 풍계리를 핵실험장으로 삼았습니까.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는 화강암 지대입니다. 시멘트를 만들 때 쓰는 석회암 지대에서 핵실험을 하면 석회암을 이루는 탄산칼슘이 높은 열을 만나 이산화탄소 기체가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부피로 팽창해 핵물질이 외부로 유출돼 안전에 문제가 생깁니다.”

— 화강암은 어떻습니까.
“화강암은 석영을 함유합니다. 석영은 열을 받으면 녹아내려 유리처럼 변해요. 화강암 지대에서 핵실험을 하면 핵폭발을 봉쇄하기도 쉽고 방사능 물질을 유리체에 담아둘 수 있기에 오염도 방지할 수 있죠. 다만 암석 특성상 큰 위력 실험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 6차례에 이르는 핵실험으로 풍계리 일대 지반이 약해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충격파는 위아래로 전파됩니다. 10~20km 아래 단층이 부서져야 자연 지진이 일어납니다. 핵실험은 기껏해야 800m, 1km 깊이에서 실험해요. 일부 영향이 있지만 심각하진 않습니다.”

핵실험, 백두산 폭발에 영향 안 줘

— 핵실험이 120km 떨어진 백두산 화산 활동에 영향을 주진 않습니까.
“핵실험은 지표에서 가까운 곳에서 합니다. 충격파가 지하 단층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이미 많이 잃죠. 풍계리와 같은 수평갱도는 산 위에서 실험하므로 이런 경향이 수직갱도보다 더 심합니다.”

— 메가톤급 수소탄 실험을 하면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수Mt 이상(진도 7)의 대형 수소탄을 터뜨려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텐데 풍계리에서는 아예 이런 규모로 실험할 수가 없어요. 미국이 알류샨열도 섬에서 Mt급 대형 지하 핵실험을 여러 번 했어요. 이를 계기로 그린피스가 탄생했는데, 어쨌든 이 실험이 근처 알래스카 화산에 영향을 주진 않았죠. 지금껏 2000번 넘는 핵실험 중 화산 폭발을 유발한 사례는 없어요. 일부는 발해 멸망설까지 꺼내는데 발해 멸망은 926년이고 백두산 대폭발은 20년 후인 946년입니다.”

—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위력을 어떻게 추정합니까.
“지형마다 산출 공식이 있어요. ‘화강암 지대에서는 00kt의 위력의 실험을 하면 지진파 00이 나온다’처럼요. 또 갱도 깊이를 알면 추정할 수 있죠. 갱도 입구부터 산 정상까지의 높이차를 계산합니다. 핵실험 갱도는 아래로 뚫지 않고 조금 상향해서 굴착해요. 아래로 뚫으면 지하수를 배출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약간 비스듬하게 위로 뚫는다고 생각하면 그 높이를 추정할 수 있죠.”

— 풍계리에서는 몇kt까지 실험할 수 있습니까.
“산 높이(기폭실에서 상부 정상까지)가 800m면 최고 위력 250~300kt까지 실험할 수 있다고 봐요. 제 생각에는 150kt이면 적당하고 200kt이 최고치일 거 같아요. 우리 국방부는 6차 핵실험 당시 위력을 50kt 정도라고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봐요.”

— 다른 나라는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38노스에서는 기폭실 깊이(800m)를 바탕으로 향후 282kt까지 실험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실험할 때 적용하는 공식으로 계산한 값이에요. 풍계리에 적용하면 안 됩니다.”

부드러운 암석에서는 큰 위력을 실험해도 폭발로 발생하는 충격파가 적다. 샌드백을 생각하면 된다. 화강암은 단단하기에 큰 위력으로 실험하면 충격파가 강하게 전파돼 주변 봉쇄가 어려워진다. 수평갱도에서 핵실험을 하는 북한은 Mt급 핵실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방부, 북핵 위력 과소평가”

정경운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정경운 연구원은 6차 핵실험의 폭발력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발표한 진도 5.7을 바탕으로 당시 국방부에서는 위력을 50kt이라고 계산했습니다. 이게 공식화돼버렸죠. 그런데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진도를 6.3으로 측정해 산출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위력이 150~200kt까지 나와요.”

이에 이춘근 박사는 “핵폭발에 따른 전체 에너지 중 지진파로 나오는 충격파는 약 5%에 불과하다”며 “북한 핵실험이 가진 경향성을 바탕으로 경험식을 만들어야 위력 규모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화강암은 단단하고 수분도 꽉 찬 암석이라 위력을 판정할 때 그 값이 작게 나온다. 또 같은 화강암이라도 암석 내 수분 유무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위력치를 고정하지 말고 하한선(50kt)과 상한선(150kt)을 두고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정 연구원은 “우리(국방부)가 너무 보수적으로 위력을 계산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1차 핵실험 당시 썼던 위력판별식을 지금도 쓰고 있어 문제”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질자원연구원은 핵폭발 위력을 상한선과 하한선으로 나눠 청와대와 국정원에 보고했지만 당시 수뇌부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하한선’이 북핵 위력 판단의 기준이 됐다고 한다. 여기에 북한을 과소평가하려는 국방부의 시각이 더해져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낮은 위력 값을 발표한다.

— 정치·외교적으로 분석을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통일연구원만 봐도 인문사회계 출신이 대부분이죠. 통일부 공무원들도 문과 출신이 대다수이고 보직을 순환하기에 전문성을 축적하기도 어려워요. 핵 분야는 특히나 장기 학습이 필요하거든요. 여기에 영어권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 이들이 많다 보니 정치·외교적으로만 접근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와 관련해 정경운 연구원도 의견을 더했다.

“동의합니다. 저도 핵·미사일을 두고 처음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7~8년 정도를 따로 공부해가며 나름의 관점을 세웠죠.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들과 핵·미사일을 기술적으로 분석해 합참에 보고하면 합참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내용을 이해하질 못했어요. 기존에 갖고 있던 어떤 관념이나 생각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 같아요. 윗사람들도 각종 이론을 동원해 설명하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춘근 박사는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1~6차 핵실험의 목표

▲핵실험 시뮬레이션 누크맵(Nuke map)으로 본 핵실험 피해 범위. 나가사키에 떨어진 20kt을 기준으로 했다. 출처=조선DB

 

— 핵실험(1~6차)마다 어떤 목적이 있었습니까.
“1차는 폭발 실험, 2차는 위력 개선, 3차는 소형화와 경량화, 4차는 수소탄, 5차는 표준화된 핵탄두의 위력 판정, 6차는 ICBM용 수소탄 실험이었습니다. 3차까지의 실험을 통해 각종 핵 기술을 개발했다고 판단하고 5차에서는 실전 배치를 위한 표준화를 추진했습니다. 4·6차에서는 위력을 대폭 확장한 수소탄을 실험했죠.”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30~100개로 추정된다. 하한선과 상한선의 차이가 큰 이유는 북한이 HEU를 확보하는 속도를 높이거나 기폭장치를 개량하는 방식으로 핵탄두 수를 빠르게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 활용했던 P2 원심분리기 대신 탄소섬유로 만든 원심분리기를 사용할 경우 HEU 확보 속도가 P2 대비 10~30배까지 빨라질 수 있다. 또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통상 플루토늄은 5~7kg, HEU는 20~25kg이 필요하다. 여기에 기폭장치를 개량하면 적은 양의 핵물질로도 핵탄두 1개를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수량 파악이 어렵다.

정경운 연구원은 북한이 계획하는 핵무기의 수량과 7차 핵실험의 방식 등 북한의 핵전략 전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전략적, 전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으로 타격할 수 있는 최적의 표적 개수를 계산해놓았을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핵무기의 위력과 개수도 설정했을 테죠. 미국 핵 전략가들이 만든 이론을 대입했더니 북한이 필요한 핵탄두가 220~230발로 나왔습니다.”


“北 정찰위성, 과소평가할 필요 없어”

▲김정은 앞에 놓인 전술핵탄두 ‘화산-31’.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3월 28일 김정은이 핵무기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정 연구원은 “핵무기에도 개발 경로가 있다. 처음에는 원자탄에서 수소탄처럼 위력을 증가하는 경로로 간다. 그다음은 소형화해 전술핵을 개발한다. 앞으로 7차 핵실험은 전술핵실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도·파키스탄이 6차 핵실험까지만 한 이유는 핵무기를 공격 수단이 아닌 억제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전술적으로 실제 사용하려는 북한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이어지는 정 연구원의 이야기다.

“북한이 공개한 소형 전술핵탄두인 화산-31형을 보면 아주 작습니다. 여기에 적용한 기술을 검증하려면 결국 실험할 수밖에 없죠. 더욱이 소형 전술핵은 내부 기폭장치를 소형화해야 하기에 반드시 실험해야 합니다. 풍계리 3번 갱도는 주 갱도와 보조 갱도가 있어요. 높이는 각각 500m, 300m.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전술핵실험뿐이에요. 주 갱도는 50kt, 보조 갱도는 15kt까지 할 수 있죠.”

이 박사가 화산-31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화산-31형을 투발(投發) 수단(8종)에 모두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문제는 투발 수단만 다양하다는 점이에요. 각 투발 수단마다 특성이 다르기에 핵탄두 겸용에서 가장 앞선 미국도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에는 다른 핵탄두를 사용하죠.”

— 북한이 발사체 천리마-1호에 정찰위성 ‘만리경-1’을 탑재해 발사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우리 군 당국은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해상도가 낮다는 이유입니다.
“‘해상도가 1m급에 미치지 못하니 효용이 없다’는 생각은 우리식 사고입니다. 북한 입장에선 해상도 10m급 정찰위성으로 바다에 떠 있는 이지스함만 발견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에 왜 이게 필요하지 않겠어요? 너무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화성-18형, 사실상 미 본토 타격 가능 ICBM”

▲지난 9월 14일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니치 우주기지를 참관했다. 사진=뉴시스

 

— 지난 7월 12일 북한이 화성-18형을 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고체추진제 ICBM 비행시험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화염의 색도 달라졌어요.”

— 무슨 의미입니까.
“74분51초 동안의 비행으로, 정점고도 6648.4km, 사거리 1001.2km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1만5000km죠. 이만큼 비행했다는 것은 고성능추진제를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북극성을 발사할 때 볼 수 있었던 진한 흰색과 비교하면 화성-18형은 붉은색 화염이 확연합니다. 고성능 NEPE 추진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장거리를 날아갔다는 것은 화염을 내뿜는 노즐목의 방열도 성공했다는 의미죠. 노즐목에 사용하는 소재(탄소복합섬유) 기술이 재진입체 방열 소재와 비슷합니다. 이 말은 곧 대기권 재진입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증명된 겁니다.”

정경운 연구원의 설명이다.

“ICBM의 핵심은 결국 재진입 기술과 원하는 목표를 타격하는 능력입니다. 미국의 지상 기반 중간단계 미사일 방어체계(MD)는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까지만 있습니다. 이 말은 ICBM이 재진입에만 성공하면 워싱턴 상공에선 요격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거죠. 천천히 낙하해도 요격되지 않으니 ICBM의 속도가 마하 20~24까지 빠를 필요도 없죠. 속도가 줄면 그만큼 탄두부에 발생하는 열도 줄어들죠. 북한이 원하는 지점에 충분히 탄두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북한이 ICBM 능력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춘근 박사는 누리호에 대해 설명하며 누리호는 ICBM과 다르다고 했다.

“ICBM과 우주발사체는 어떤 추진제를 쓰는지로 구분해요. 누리호에 쓰는 저온추진제(케로신과 액체산소)는 취급이 불편하고, 발사 준비 시간이 길며, 고정식 발사대가 필요해요. 상단이 포물선이 아닌 지구와 거의 평행한 궤도로 활공하면서 진입해 위성을 투사(投射)하고 재진입은 하지 않으므로 ICBM과 다르죠.”

 

— 푸틴과 김정은의 만남을 어떻게 보십니까.
“앙가라 로켓 실험을 참관했어요. 우리 나로호의 원형이죠. 북한이 운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발사체이니 북한이 이 로켓을 도입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북한이 당면한 문제는 2단, 3단 로켓 부분인데, 이를 실험하려면 진공(眞空) 챔버를 갖춘 연소시험장 등이 필요해요. 러시아가 실험 설비를 지원하거나 실험을 대행(代行)해줄 수도 있죠. 또 위성 발사용 고공 엔진을 직접 제공할 수도 있고요. 다음은 위성 분야인데, 러시아가 개발한 위성 플랫폼을 제공하거나 기존 러시아의 위성을 임대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내부 통제, 외부의 경제 지원, 최종적으로 대남적화통일.”

— 북한이 주장하는 기술 수준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기술성숙도(TRL, 1~10단계)라는 게 있어요. 1~6단계가 기초·응용 연구, 7~8단계는 체계 통합·실험 평가, 9~10단계가 운영·유지, 대량 생산입니다. 지금 북한은 대부분 7~8단계 수준입니다. 미국은 미사일의 경우 20~24발을 쏘아 90% 이상의 신뢰성이 확보돼야 대량 생산을 해 실전배치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 정도로 실험하는 무기 체계가 별로 없어요. 북한의 기술 수준을 종합적으로 신뢰하기에는 아직 이르죠.”


“워싱턴 선언, 아쉬움 있어”

이춘근 박사는 핵전력을 향후 유지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에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전체 경비의 10~20%를 차지한다면 나머지는 투발 수단과 핵전력을 유지·보수하는 데 소모된다. 이 박사는 핵무기와 관련된 각종 사고도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북핵·미사일 대응 수단으로 우리 군은 이른바 ‘3축 체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중요한 대응 수단을 찾았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문제가 있어요. 지나치게 미사일 의존적입니다. 미사일에 미사일로 대응하는 것은 북한을 따라가는 방법에 불과해요. 북한의 전략·전술에 놀아나는 것일 수 있어요. 지금 북한이 SLBM을 개발해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상대하고 있잖아요. 앞에서 막고 뒤에서 따라갈 수 있도록 선제적인 방법을 찾아야죠.”

— 앞서가는 대안 같은 게 있습니까.
“상시 체류 무인기(無人機)나 과거 미국이 개발하다가 포기한 ‘공중 발사 레이저(ABL)’도 좋아요. 부상(浮上)·상승 단계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입니다. 미국이 개발을 포기한 이유는 사전 공격에 취약하고 저공에서는 레이저가 산란(散亂)된다는 점, 원거리에서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 때문이었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종심(縱深)이 짧은 곳에서는 굉장히 유용한 방법이에요.”

— 과학자로서 워싱턴 선언은 어떻게 보십니까.
“내용상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라든지 우리가 받아낼 수 있는 것도 있었을 텐데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협상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미국 입장에선 대(對)중국 견제에 한국을 동참시켰고, 한국 사회 일부에서 제기하는 자체 핵무장론도 완전히 잠재웠죠.”

“6개월 핵무장설, 위험한 이야기”

— ‘한국이 마음먹으면 6개월 내에 핵무장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입니까.
“그런 주장이 나올 때면 참 답답해요.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예요.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나 정책을 경험해본 사람은 2년 이내도 어렵다고 봐요. 실제로 3~4년 걸리겠죠. 또 ‘마음만 먹으면’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겁니다. 전시(戰時)에는 그 긴급성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진행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전시에는 우리 작전통제권이 미군(한미연합군사령부)에 넘어갑니다. 평시(平時)에 개발하겠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지금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에도 이 난리인데…. 오히려 기술적인 문제보다 정치적인 문제가 훨씬 더 커요.”

동아일보 1977년 5월 26일자 4면 과학란에는 미국이 연구 중인 원자법 레이저 농축 동향 기사가 등장한다. 여기에 ‘3.5일, HEU 20kg 생산 가능’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하지만 이 기술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한 방법이다.

2000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전자총으로 우라늄 극소량을 증기화해 레이저로 농축한 실험이 있었다. 3회에 걸쳐 총 10시간을 가동해 무기급(90% 이상)에는 미치지도 못 하는 우라늄(약 30%) 0.2g을 얻었다. 이를 쉬지 않고 1년 내내 가동해도 얻을 수 있는 우라늄은 175g에 불과했다.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인 HEU 20kg을 얻으려면 이런 설비가 680대 이상 필요하다. 이런 설비를 갖춘 나라는 세상에 없다. 1977년 기사와 2000년 한국 연구진의 실험 헤프닝이 합쳐져 ‘6개월 핵무장설’이 탄생했다. 6개월 핵무장설을 퍼뜨리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극렬히 반대하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 모 교수가 있다.⊙

 
 

월간조선 11월 호

간첩 잡던 국정원 요원 5人에게 듣는 ‘수사관의 삶’

‘아버지 직업란’에는 늘 無職, 순직하면 ‘이름 없는 별’

⊙ “대공수사권 폐지는 文 정부가 김정은에게 건넨 선물”
⊙ “수사국은 국정원 내에서도 험한 직무… 고집스러운 충성심과 사명감 하나로 일했다”
⊙ “밀실서 북한공작원과 단둘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어떻게 갖고 있나, 귀신이 곡할 노릇”(전 통진당원)
⊙ “짤막한 단서로도 국정원 수사관들은 대상자 신원 정확히 특정”
⊙ “평양 한복판에서 간첩 잡는 심정이었다”(일심회 수사한 이한중 전 국정원 수사국장)
⊙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간첩 사건의 90% 국정원이 전담
⊙ “국정원은 정보기관+방첩기관… 정보 가치 판단과 분석 빠르고 대응력 높아”
⊙ “경찰청 안보수사과 4개 과에 불과… 정상적 시스템 구축에 수년 걸릴 것”
⊙ “대공수사, 비밀·장기간 수사 필수적… 경찰, 공개수사와 ‘수사 일몰제’ 적용”
⊙ “대공수사 有가치 단서 95%는 수사권한 가진 상태에서 얻어진다”

 

 

작전이 끝나면 비로소 허기가 돈다. 해외 출장 마지막 날. 전직 국정원 수사관 우모(某)씨는 “그제야 쌀국수 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노가다가 따로 없었다. 간첩 행위를 채증(採證)하는 일은 국경을,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몇 년 전 정찰총국 간첩 사건으로 동남아 한 국가에 갔다. 대상자가 모처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나서다. 차 안에서 카메라를 들고 대기했다. 예기치 않게 비행기가 몇 시간 연착했다. 페트병에 볼일을 봐가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간첩에겐 ‘퇴근’이 없다. 일주일여 출장 기간 동안 잠은 스무 시간도 못 잤다.

“수사 책임자였던 터라 요원들을 먼저 귀국시키고,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편한 비행이란 없었다. 인천국제공항 도착방송이 들리면, 그제야 긴 숨을 뱉었다. ‘살았다.’”

이제 다 지난 얘기다. 2024년 1월 1일 대공(對共)수사권이 폐지된다. 이를 앞두고 전직 국정원 수사관 5인(人)을 만나봤다. 모두 이 분야에서 약 30년 이상 활동한 요원들이다. 작년까지 근무했던 이도 있다. 국정원의 간첩 수사 과정은 철저히 기밀이다. 이들은 “수사 과정을 조금이라도 알면 국정원 수사권 폐지가 곧 안보 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민노총에서 압수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베이징(北京) 소재 식당 밀실(密室)에서 북한공작원과 단둘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어떻게 갖고 있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지난 2014년 1월 구속기소된 전식렬이 한 말이다. 통합진보당(통진당)원이었던 전씨는 북한의 대남(對南) 공작 기구인 225국(현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접촉하고 정보를 넘긴 인물이다. 전식렬 사건을 맡았던 하모(某) 전 수사관은 “수사국을 주축으로 여러 부서와의 공조(共助)가 유기적(有機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물증’의 확보다. 요즘 간첩들은 해외에 거점을 두고 대상자를 포섭하고 지령을 내린다. 2004년 12월 잠수함을 이용한 직접 침투가 막히면서 대남 공작원들은 중국·동남아 등을 거친 우회 침투 작전을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해외 대공망(網)은 필수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등을 담당했던 남모(某) 전 수사관은 “국정원에서는 첨단기술 역량을 동원해 전반적인 간첩 활동을 포착한다”고 했다.

회합 장면과 물건을 주고받는 장면 등을 확보하는 과정은 말처럼 순탄치 않다. 간첩들은 잡히지 않는 것을 생명처럼 여기고, 요원들은 사력(死力)을 다해 쫓는다. 창과 방패의 싸움인 셈이다. 우 전 수사관의 말이다.

“이들은 A 지점에서 다음 장소의 정보를 공유하고, B 지점으로, 이후 최종 목적지로 이동하는 식으로 움직인다. 도보서부터 오토바이, 자전거, 툭툭, 택시, 예비 교통수단에 대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총기, 독침 소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방탄조끼는 필수다.”

KAL 858기 폭파 사건 등을 수사했던 윤모(某) 수사관의 말이다.

“피의자를 따라 해외로 출국할 때 상호 간 암묵적으로 극도의 경계 상태가 된다. 자칫 역(逆)감시를 당할 수도 있다. 수사관을 해당국 기관에 넘긴 사례도 있었다.”

“합법적으로 수집해야 증거 채택”

친북(親北) 국가에선 목숨도 걸어야 한다. 2014년 3월. 한 공산권 지역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이때 인근에서 간첩을 쫓던 국정원 요원들은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전역 주요 시설에 실탄을 가진 경찰이 2인 1조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우 전 수사관은 “공산권 국가들은 방첩(防諜)이 워낙 강해 정보기관에서 북한 공작원도 감시한다”면서 “더군다나 국가 비상 상태였던 터라 눈에 띄면 바로 끌려가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하 전 수사관은 “사건 때마다 이들의 접선 수법은 진화했다”고 했다.

“접선 몇 시간 전 돌연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식당, 호텔이 주요 접선지였는데, 독채 방갈로에서 모이기도 했다. 24시간 동안 일절 출입도 없었다. 그럼에도 요원들은 회합 장면을 채증해 법정에 제출했다. 이들이 철통 보안을 강화할수록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증거를 수집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위법(違法)하게 수집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 하 전 수사관은 “2008년 공판중심주의로 바뀌면서 아무리 확실한 물증이라도 합법적으로 수집해야 증거로 채택된다”고 했다.

합법적으로 물증을 수집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적지정(利敵知情·적을 이롭게 함을 인식하는 것) 또한 함께 입증해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일반 형사범들은 범죄행위의 증거만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은 대상자의 범죄행위, 예컨대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났다’는 걸 함께 입증해야 해서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한 줄의 첩보로도 대상자 특정

수사의 시작은 ‘단서’다. 목숨을 건 채증은 첩보(諜報)에서 출발한다. 국정원은 휴민트(HUMINT·인간정보)·시긴트(SIGINT·신호감청)·테킨트(TECHINT·기술정보)를 통한 고급 첩보망을 보유 중이다.

그러나 최초 첩보 내용은 다소 막연한 수준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주사파 출신인 남성 사업가가 수년째 제3국을 오가며 간첩 활동 중.’ 때문에 치밀한 검증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이러한 짤막한 단서만 가지고도 국정원 수사관들은 대상자의 신원을 정확히 특정해낸다”면서 “물론 그 과정에서 들이는 공력(功力)은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지하혁명조직 RO’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가 체제 전복을 시도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간첩 사건 또한 처음엔 단 몇 줄의 첩보였다. 당시 RO 조직원 이모(某)씨는 국정원에 “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은 도외시한 채 이념적으로 주체사상만을 맹종하는 이 집단에 회의를 느낀다”며 그 실체를 알렸다. 하 전 수사관의 말이다.

“RO 조직원들은 모두 1998년 국정원이 수사한 반국가단체 민혁당 출신이다. 한 번 재판을 받으면 기록이 남는데, 압수수색을 갔더니 과거 수사기록을 모두 복사해 증거 수집 방법 등을 밑줄 그어가며 학습한 상태였다. 당연히 더 은밀히 회합했고, 증거 수집 과정이 특히 까다로웠다. 특히 RO의 우두머리가 당시 현역 국회의원인 이석기였기 때문에 수사 보안 누설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결정적 증거는 끝내 얻어냈다. 2013년 5월. 이석기가 소집한 ‘RO 조직원 마리스타 회합’에서다.

“2013년 3월 남북휴전협정 폐기 선언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이석기는 조만간 북한이 남침할 것으로 속단했다. RO 조직원들은 전쟁 발발 시 대한민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교란해야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2013년 5월 10일 자정경 마포구 소재 마리스타 수사회 강당에서 비밀리에 회합했다. 새벽까지 대한민국 정부 전복을 위한 내란 실행 방안을 모의했다. 평택 LNG 기지 폭파, 분당·혜화전화국 파괴, 코레일 철도 마비, 경기 북부 지역 미군부대 교란, 사제폭탄 제조방법 등 다양한 주제를 발표했다. 적기가·혁명동지가 제창을 끝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회합 현장의 생생한 음성은 수십 개의 녹취 파일로 남았다. 하 전 수사관은 이석기 압수수색 현장에도 직접 나갔다. 현직 국회의원의 압수수색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1988년 서경원 평화민주당 의원의 밀입북 사건이 있었지만, 시대가 달랐다.

“간첩 사범은 보통 극렬히 저항하기 때문에 압수수색 때 경찰 1~2중대를 대동한다. 이석기 때는 5개 중대가 갔다. 국회에 경찰이 진입하려면 국회의장이 경찰권을 발동해야 한다. 한데 당시 국회의장은 해외출장 중이었고, 수사관 40명만이 이석기 의원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요원들이 살짝 멈칫했다. 현직 국회의원을 압수수색하는 건 우리에게도 부담인 게 사실이다. 선배 입장에서 같이 망설일 수는 없어서 앞장섰는데, 보좌관들을 비롯해 수십 명의 통진당 관계자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몸싸움을 해가며 간신히 진입했더니, 이석기 방 앞에는 의도적으로 여성 당직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밟고 가라’고 했다. 강제집행이 가능했지만, 여성 당직자와는 부딪칠 수 없었다. ‘논점 흐리기’를 당할 게 분명해서다.”

그사이 100여 명의 통진당 측 인원이 더 합세했고, 국정원 직원들은 한동안 갇힌 신세가 돼야 했다.

“2013년 8월 말, 한여름이었다. 당직자들이 선풍기도 다 치워버린 방에, 통진당 수세(守勢)에 몰려 이틀간 감금당해 있었다. 그때 이석기 방을 출입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변호사가 있었다. ‘영장 집행에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저는 대한민국 법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럼 사법고시는 왜 쳤냐’고 하니, ‘그만하세요!’라고 하더라.”

이 과정을 거쳐 얻어낸 압수물과 회합 당시 음성 파일은 이석기 포함 조직원 10명 구속에 이어 2013년 12월 통진당 해산 선고까지 끌어냈다.

 

일심회 수사 후 국정원 떠난 수사국장

 ▲국정원 수사국장 출신인 이한중 전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회장. 간첩단 사건 일심회를 총지휘했다. 사진=월간조선

 

“평양 한복판에서 간첩 잡는 심정이었다.”

이한중 전(前)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회장의 말이다. 국정원 수사국장 출신인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일심회’ 사건을 총지휘했다. 일심회는 1980년대 대학 운동권 출신들이 2002년 결성, 북한 지령에 따라 통일전선 체제 구축을 기도한 사건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들은 2004년 총선, 2006년 지자체 선거 동향 등 국내 정세와 민주노동당(민노당) 내부 동향 및 개성공단 입주기업 경영실태 등 각종 국가 기밀을 수집, 총책인 재미동포 장마이클(장민호)을 통해 대북 보고했다. 장씨 등 일당 5명은 2006년 6월 구속 송치됐다.

정권의 외압으로 인해 특히 난항(難航)이었던 수사였다. 원칙대로 수사를 밀어붙였던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은 경질됐고, 이 회장 또한 국장 신분으로 청와대에 불려 갔다 와야 했다. 이 회장은 “그날 원(院)에 복귀해 펑펑 울었다”고 했다.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국정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겠다는데 하지 말라니, 억장이 무너져 눈물까지 났다. 국정원 수사국장은 경찰, 방첩사령부 포함 대한민국 대공수사의 실무 총책임자다. 인생에서, 국정원사(史)에서, 대공역사에서 비겁한 존재로 남고 싶지 않아 강행했다.”

이 회장은 일심회 잔당 처리 계획서까지 만들었지만, 수사 완료 이듬해인 2007년 6월 국정원을 떠나야 했다.

이처럼 간첩 수사는 부득불(不得不) 정권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수사관들은 정부 성향에 상관없이 꾸준히 대공 활동을 하지만, 특정 정권 때는 수사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교묘한 방해와 압박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인사 대부분이 국보법 위반 사범들이었다. 간첩 전력자(前歷者)들에게 간첩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간첩들의 동향(動向) 또한 정권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남 전 수사관은 “‘대한민국 제거’의 본질적 목표 활동에는 차이가 없으나 보수 정권에는 반(反)정부 치명타 강도를 더 높여 공세적으로 활동하고 진보 정권에서는 통일전선, 즉 ‘대남포용침투전략’에 치중하며 반국가 세력 확장·결집을 위해 ‘위장평화’ 선동에 나선다”고 했다.


사상범, 목적범, 고의범, 확신범

이한중 전 회장은 “북한에서는 대남 공작의 만조(滿潮)기와 간조(干潮)기를 구분한다”면서 “문재인 정부처럼 남북 화해 분위기가 높을 때를 만조기로 친다. 그때 대남공작은 더 강렬하고 과감하게 이뤄진다”고 했다. 하 전 수사관은 “문재인 정부 때 방치된 국가안보 환경 속에서 간첩들이 활개를 쳤으니 ‘이제 수사 건수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간첩 피의자는 사상범(思想犯)이다. 목적범(目的犯)이자, 고의범(故意犯)이고 확신범(確信犯)이다. 일반 범죄자와는 다르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우리 법도 무시한다. 주체사상의 신념을 가족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충성하는 대상에게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신문(訊問)한다는 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이념으로 완전무장한 확신범에 대한 신문은 곧 ‘이론 논쟁’이고 그 논쟁에서 수사관이 이겨야 하는 일”이라면서 “일반범을 대하듯 언제, 어디서, 뭘 했느냐고 하면 답도 안 한다. 다문 입을 앞에 두고 자유민주주의 이론을 지속적으로 설파해야 한다”고 했다.

피의자들은 대부분 고(高)학력자인데다, 누범(累犯)이라 국가보안법과 형사소송법 제반 절차도 꿰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허점을 보이면 고소·고발을 당하기 십상이다. 하 전 수사관은 “입사 이후 국보법, 형사소송법을 마르고 닳도록 학습하는 이유”라면서 “거기에 386세대 운동권 계보, 사회주의 및 북한 주체사상에 대한 배경지식과 뛰어난 언변까지 갖춰야 신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사와 관련된 사안에는 묵비권(默秘權)을 행사하지만, 다른 질문에는 대답을 한다. 예컨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진정한 조국 통일’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내 꿈도 조국 통일이다’는 말로 동질감을 형성한 다음, ‘그러나 그 방식이 다르다’며 설득에 들어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와 인간적인 유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우 전 수사관은 “인간 대(對) 인간으로 대하면 전후 사정을 다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동갑내기던 한 간첩의 경우 중국서 활동하는 간첩을 노출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이렇게 신문 중 전향(轉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法도 눈물이 있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피의자 동의 아래 야간수사가 가능했던 과거에는 한 공간에서 먹고 자며 정(情)이 들기도 했다”고 했다.

“수사관과 피의자로 만나 단죄(斷罪)는 해야지만, 인간적으로 미워하지는 않았다. 공감대도 있었다. 나이가 비슷하고,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인 경우가 많았다. 추울 때 모포를 덮어주고, 야식도 나눠 먹는 과정에서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이어 “법(法)도 눈물이 있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이니, 옛날 얘기다. 지방에서 우체부를 하던 청년이 있었다. 일본 조총련 소속 외삼촌이 어느 날 그를 일본으로 불러 돈을 주며 ‘한국에서 내 지시대로 움직여라’고 주문했다. 공작원을 하라는 의미였다. 첩보를 입수하고 그 지방으로 내려갔다. 해안가 10평 미만 아파트에 부인과 어린 남매, 여동생, 그리고 아픈 노모(老母)까지 함께 살고 있더라. 대소변을 받아내며. 차마 데려 나오기 망설여졌다. 가장(家長)을 잡아가면 이 가족들은 어쩌나. 그렇다고 안 잡을 수 있나. 어린 아이들에게 용돈을 건네주며 ‘아빠 금방 올 거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수사 과정에서 큰 복병(伏兵)은 따로 있다. 이른바 ‘신문투쟁’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지대한 역할을 한다. 이한중 전 회장의 말이다.

“일심회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5명인데, 민변 소속 변호사 17명이 따라붙었다. 구속수사 당시 오후 6시가 되면 유치장에 데려다주고, 아침 9시면 데리고 나왔는데, 변호인들이 돌아가면서 접견신청을 했다. 수사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 직접 참여해 진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조사실 CCTV로 신문 과정을 지켜봤더니, 피의자 진술에서 ‘그 얘기를 왜 하느냐’며 막는 식이었다. 법적으로 변호인은 동석은 가능하나 관여해서는 안 된다. 수사관이 변호인을 제지하자, ‘당신 이름이 뭐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하 전 수사관 또한 “왕재산 총책의 최초 신문 때도 변호인들의 극렬한 방해가 있었다. 이들은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고 알려주고, 전자증거 열람 확인서에조차 서명하지 말라고 한다”면서 “기소 후에는 ‘국정원의 간첩 조작’으로 몰고 가는 게 그들의 레퍼토리”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신문투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다 사법부 구속기간인 6개월이 넘어가면 풀어줘야 한다”면서 “그때 풀려난 조직원들이 타(他)조직원과 다시 회합하며 활개를 치기도 한다.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우 전 수사관의 말이다.

“수사에 비협조적인 정도가 아니라 수사의 본질을 흐리는 비열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은 회합 때부터 ‘사법방해’ 방식을 구체적으로 공유한다. 묵비권 행사는 양반이고, 어떻게든 악질 수사관으로 만들며 불법 수사를 유도한다. 여성 피의자의 집에 압수수색 가면, 수사관을 일부러 몸으로 막는 식이다. 우리 법을 인정 안 하면서, 이 법에 근거해 수사관들을 고소·고발하는 셈이다.”

안보사범 특례법 도입 필요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우리나라는 안보사범과 일반 형사범의 처벌 과정이 차이가 거의 없다”면서 “때문에 국가적 위협 요인에 대한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고 했다.

“변호인들은 증거인멸, 묵비 등을 사주하고, 수사 방해 목적으로 명분이 미약한 준항고를 수시로 제기한다. 정당한 수사 절차를 과잉수사로 왜곡 선전하기도 하며, 재판관 기피(忌避) 신청 등 노골적 시간 끌기도 한다.”

실제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을 꾸린 혐의로 2021년 9월 기소된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은 피고인들이 법관 기피 신청, 위헌 심판 신청 등 지연책을 동원해 아직 1심 재판 중이다. 그사이 피고인들은 구속기간 만료와 보석 등으로 다 석방됐다.

“여러 선진국은 국가안보사범에 대한 특례법이 있다. 분단국가이거나 적화(赤化)통일 위협이 있는 나라도 아닌데, 일정 한도 내에서 감청과 영장주의 예외를 허용하며 증거인멸 등 국가적 손실 예방을 위해 변호인 접견권, 외부인 접촉, 교통권도 제한한다. 또한 가택이나 사무실을 폭넓게 수색하는 것도 허락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안보사범에 있어서는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점을 우리나라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 전 수사관은 “미국은 스파이방지법에 따라 국가안보를 해쳤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더 큰 범죄를 숨기기 위한 의도가 명확하다’고 판단, 법정 최고형을 내린다”고 했다.

“우리는 법정에 가면 피고인 측 변호사가 이렇게 말한다. ‘국정원의 감시로 피의자는 수년간 사생활이 없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입을 열지 않겠느냐, 묵비권의 행사도 억울함을 항변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고 최저형을 받는다. 미국은 또 안보형사법에 따라 판사가 명(命)하면 모든 공판 절차가 비공개다. 우리는 증인석에 앉을 때 칸막이 하나가 전부다. 증언 내용이 다 들린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나중에 이를 두고 ‘거짓 증언을 했다’며 물고 늘어진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이처럼 수사관들은 근성과 끈기로 총성 없는 대공사범과의 전쟁을 사건마다 극복해왔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간첩 천국”

흔히 ‘언제 적 간첩 얘기냐’고 한다. 모르는 소리다. 간첩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내사(內査) 중인 건이 있어 구체적 수치는 기밀이지만, 경우에 따라 수백 명에서 수만 명까지 추산한다.

우 전 수사관은 “지구상 모든 국가에 기술, 무기 정보 등을 위한 간첩이 있는데, 분단국인 우리나라는 오죽하겠느냐”면서 “A·B급 정범(正犯)에 호응 세력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 이상 될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최근 적발된 세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자생적 종북(從北) 세력을 포함하면 이적(利敵) 세력이 수십만은 될 것”이라면서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암약(暗躍) 중으로, 지금 대한민국은 간첩 천국”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간첩 얘기가 구(舊)시대 냉전논리, 색깔논쟁, 공안몰이라는 건 대남간첩 정체를 숨기기 위한 북한의 위장선전과 안보여론조작 전술”이라고 했다.

“해방 정국 성시백 간첩 사건부터 올해 민노총 침투 간첩까지, 북한은 지난 75년간 대남침투 간첩 활동을 중단한 적이 없다. 김정은 체제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민주, 평화, 진보, 인권, 통일, 양심인사로 위장한 골수 종북 세력들은 간첩 얘기만 나오면 구시대적 발언이라 주장하지만, 이들 핵심 인사 뒤에는 북한 간첩이나 고첩이 있다. 국정원이 그동안 수사한 반국가단체 및 이적단체가 도합 수십여 개가 넘고 개별 사건 관련자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이들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조선혁명’은 조선노동당 규약 맨 위에 걸린 문구다. 자유대한민국을 제거하고 공산화·초강경 독재 체제화하는 게 최대 목표라는 거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사회혼란과 인명피해도 일으킨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KAL 858기 사건으로 중동근로자 등 115명이,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용사가 전사했다. 고첩 조창희에 의해 51명이 탄 KAL기와 동·서해상에서 수천 명 이상이 납북됐다. 대량의 군사기밀뿐만 아니라 내·외국인이 납치됐고, 청와대 디도스(DDoS) 공격, 금융망 사이버 공격 등으로 극심한 혼란도 겪었다. 북한은 사과는커녕 자작극이라 선동했으며 반국가 세력은 이를 그대로 따라 주장하며 극심한 분열 상황까지 조장한다.”

이들이 정치권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치명적인 점이다. 왕재산 총책 김덕용의 주거지에서는 ‘야당이 힘을 합쳐 반정부 단일대오를 형성토록 여론 조성하라’는 내용의 지령문이 발견됐다. 실제로 당시 통진당과 민주통합당은 합당해 총선 때 통합 공천했다. 일심회 총책 장마이클 압수물에서 발견된 지령은 민노당 당직자 명단과 일치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북한 대남공작원과 연계한 충북동지회, 민노총 침투조직 등과 또 다른 북한공작원과 연계한 제주 ‘ㅎㄱㅎ’, 경남 지역 자통민중전위 등은 진보정당, 지역부문조직 및 민노총에서 상당 기간 암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한중 전 회장의 말이다.

“조합원 100만 명이 넘는 국내 최대 노동단체의 조직국장으로 있던 사람이 20년간 북 대남공작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 핵심 시설 등 기밀을 수집했다.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전원의 휴대전화 번호와 노동단체 내부 통신망 아이디(ID) 및 비밀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다. 전달된 국회의원의 전화를 북한에서 해킹한다면 얼마나 많은 국가기밀이 빠져나갈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석기 RO 사건처럼 결정적 시기만 온다면 그들은 언제든 체제 위협 세력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간첩들의 위험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윤 전 수사관은 “이번에 문제가 된 모(某) 국회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좌진도 국보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회 내에 그만큼 정체성을 숨긴 간첩 또는 종북 주사파가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조직돼 있을 입법 간첩망도 색출해내야 한다”고 했다.

“입법 간첩망 색출해야”

이들 간첩조직들은 각종 시민단체장(長)으로 활동하거나 핵심적 위치에서 국내 집회를 주도하기도 한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최근 검거된 간첩단에게 북한이 내린 지령을 살펴보면 ‘진보당 지지 활동을 하라’ ‘통치기관 송전선망 체계 자료를 입수하라’ ‘한미 군사 훈련 중단을 요구하라’ ‘일장기 화형식을 하라’ ‘제2의 촛불 국민 대항쟁을 일으켜라’ 등이 있다. 특히 ‘국민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퇴진이 추모다’ 등 피켓 구호까지도 정해줬고, 이는 집회 현장에 그대로 등장했다. 반국가 세력의 여론조작, 선동공작과 시위의 규모가 커지는 추세로 볼 때 정예 핵심 간첩이 상당수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인민학교(초등학교) 때부터 남파공작원을 집중 양성한다. 교육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까지 이어진다. 호송, 침투, 지원 병력 등을 합치면 이 인원은 대략 수십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남공작 기법도 날로 진화한다. 대표적인 게 간첩 통신이다. 과거에는 난수방송, 두뇌난수 등의 아날로그식 지령을 내렸는데, 이제는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를 쓴다. 기밀 정보를 파일, 메시지, 이미지 등에 숨기는 심층 암호기술을 의미한다. 윤 전 수사관은 “북한의 스테가노그래피는 난수 암호까지 이중으로 잠겨 있어 해독하기 굉장히 힘들다”면서 “암호 분야 세계 최고인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에서도 난수 때문에 이를 풀지 못했다”고 했다.

스테가노그래피가 처음 등장한 건 일심회 사건 때다. 총책 장씨의 노트북 압수물에서 발견된 한 대학 캠퍼스 사진 속에 지령문이 들어 있었다. 이한중 전 회장은 “당시 이를 풀기 위해 외국 정보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는데, 처음 보는 형식이라고 했다”면서 “그사이 국정원 과학수사팀에서 이를 3일 만에 해독했고, 외국 정보기관에서는 국정원의 과학수사 능력이 세계 최상위라고 인정했다”고 했다.

스테가노그래피도 고도화를 거듭했다. 올해 적발된 민노총 간부의 압수물에서 발견된 스테가노그래피는 무려 삼중으로 잠겨 있었다. 슈퍼컴으로도 1만 년 걸리는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국정원은 이 또한 결국 해독해냈다.

‘文 정부가 김정은에게 주는 선물’

이들의 공(功)은 아무도 치하하지 않았다.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 폐지’가 핵심인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024년 1월 1일부로 시행된다. 이때부터 대공수사는 경찰이 전담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숙원(宿願) 사업이었다. 201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그는 연설에서 국정원을 언급하며 ‘혁명’ ‘대청소’라는 단어를 각각 95번, 25번 썼다.

국정원은 1961년 6월 중앙정보부로 창설 이래 63년간 북한 대남공작에 대응해온 ‘컨트롤타워’였다. 국내 대공수사의 90% 이상을 국정원이 전담했다. 우 전 수사관은 “국정원은 국가정보기관과 방첩기관이 함께 들어 있는 형태다. 미국으로 치면 CIA와 FBI를 묶어놓은 격”이라면서 “정보에 대한 가치 판단과 분석이 빠르고 대응력도 높기 때문에 분단된 국가에서는 최적의 조합”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버마(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와 KAL 858기 폭파가 북한 소행임을 신속히 규명할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다. 전국에 걸친 사노맹, 남한조선노동당 같은 사건의 경우 일거에 50~70명을 수사했고, 관련 참고인도 수백 명을 조사했다. 이 밖에도 30~40명 단위 이적단체 등 역대 대규모 사건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의 ‘완전 검증된 수사 능력’ 때문이었다.”

흔히 ‘경찰로의 대공수사권 이관(移管)’이라 표현한다. 한데 경찰은 원래 대공수사권이 있다. 따라서 이관이 아닌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폐지’가 맞다. 요컨대 기존 1+1이었던 대공수사가 이제 0+1이 되는 거다.

전직 수사관들은 “이 같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대공 참사이자 안보 참사’”라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종북(從北) 주사파 정권에서 자행한 대한민국 자해(自害) 행위이자 문 정부가 김정은에게 주는 선물”이라면서 “검찰과 군(軍) 수사권 박탈에 이은 ‘국가안보기관 무력화(無力化)’의 완결판”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통해 국회에 침투한 제5열 세력이 시민사회에 기생하고 있는 종북 주사파 세력들과 연대한 결과다. 대공수사권 폐지에는 정상적이고 순리에 입각한 절차도 없었고, 국민적 합의나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었다. 강한 반대 여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힘을 동원해 북한 김가 세력의 ‘3대(代) 염원’을 한 번에 해결해 갖다 바친 반국가 행위다. 이 땅을 북한과 그 추종 모리배들이 마음 편히 활약할 수 있는 ‘적구화(敵區化) 놀이터’로 만들어버렸다.”

“민주당 주류 의원들에게 수사국은 눈엣가시”

 ▲2021년 6월 1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국회비준동의 및 종전선언 평화협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영길 전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 사진=조선DB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법 개정 당시 “그야말로 비분강개(悲憤慷慨)했다”면서 “2017년 11월부터 1만 명의 양지회원들과 함께 수사권 폐지 반대를 위해 방송국, 국회, 세미나 발표 등 동분서주(東奔西走)했지만 허사였다”고 했다.

법 개정의 근거는 ‘국정원의 간첩조작과 인권침해, 그리고 정치개입’이다. 남 전 수사관은 “국정원을 무력화하려는 집단은 국가안보는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점만 집중 부각하는데, 수치상으로 따지면 1% 미만으로 여태 쌓아온 역량을 일순간 빼앗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과거 임무 수행 중 몇몇 뼈아픈 실수를 한 요원들은 처벌받았고, 국정원법에 정치관여금지, 직권남용금지 등의 제한장치도 면밀히 뒀다. 자정(自淨) 노력에 더해 검찰 및 사법부의 인권보장, 입법부의 심도 높은 견제까지 받으며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데, 다수 권력의 민주당 정권이 대책 하나 없이 무조건 밀어붙여 버렸다.”

민주당이 대공수사권 폐지에 필사적인 데 대해 하 전 수사관은 “전제는 북한”이라고 했다.

“민주당 주류(主流) 의원들 상당수가 국보법 위반자들이다. 386세대 민변 변호사 중에서도 국보법 전력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국정원 수사국은 눈엣가시다. 자신들의 통일 열망과 청춘을 빼앗아간 철천지원수로 여기며 적대시(敵對視)한다. 수사국 무력화는 북한의 간절한 희망사항이었다. 입법 폭주로 얻은 결과에 그들은 지금도 환호한다.”

남 전 수사관은 “수사국 폐지를 위한 이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용의주도했다”고 했다.

“1998년 민주화 보상심의위와 간첩 장기수 정보사범의 대거 사면, 2000년 비전향장기수 63명 북송과 의문사 진상규명위, 2003년 준법서약제도 폐지, 2004년 과거사진실발전위, 2019년 보안관찰법 폐지까지. 지난 세 번의 진보 정권은 이를 통해 국정원의 인권침해 등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켰다. 국정원 무력화를 위한 집요하고 끈질긴 세력의 힘이 대공수사권 폐지에까지 닿은 거다. 다음 단계는 국가보안법 철폐임이 분명하다.”


경찰, 해외 수사 불가능

윤 전 수사관은 “이 상태로 대공수사 폐지는 무리”라면서 “이는 (앞으로 수사를 전담할) 경찰 폄훼(貶毁)가 아니라, 지금처럼 국가수사 역량을 보존하는 게 국가안전보장 시스템의 무결성(無缺性)을 유지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경찰들이 본분을 다해주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미비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단적으로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단 4개 과만 편제된 상태다. 안보기획관리과, 안보수사지휘과, 안보범죄분석과, 안보수사과다. 이 체제로는 간첩 수사의 특수성을 극복할 수 없다. 해외정보자산, 대북정보자산, 과학정보자산, 사이버정보자산 및 휴민트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찰이 대공수사 시스템을 갖추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 수사 활동이 막혀 있다는 게 큰 문제다. 경찰이 외국에서 정보 수집이나 내·수사 활동을 하면 주권(主權) 침해가 된다. 경찰 조직에도 해외 파견 인력이 있지만, 이는 범죄인 인도 차원의 행정직이다. 이한중 전 회장은 “과거 직파간첩 위주일 때는 경찰도 간첩을 잘 잡았다”면서 “그러나 중국, 동남아 심지어 유럽, 남미 등 세계를 무대로 한 대남공작에 대응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과학·사이버 수사 분야도 마찬가지다. 윤 전 수사관은 “이 분야는 경찰도 훌륭한 조직과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이라는 대상에 대한 경험과 숙련도 차이가 있다”면서 “현재 대부분의 대북 정보와 대북 사이버 견제 활동은 국정원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도 있는 간첩 사건 발표 안 될 것”

경찰 조직 특성상의 한계도 있다. 윤 전 수사관은 “대공수사는 철저한 비밀 활동을 기반으로 하며 장기간 수사가 필수적인데 경찰은 공개 수사가 원칙이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면서 “때로는 십수 년이 걸리는 사업을 비공개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간첩 수사는 그야말로 장기전이다. 윤 전 수사관은 “수사 발표를 하면 국민들은 그저 ‘간첩 하나 잡았구나’ 하지만 한 사건 처리에 10년, 20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 일몰(日沒)제’ 등에 따라 진척이 없으면 ‘수사기간 도과(徒過)’로 사건을 종결하기도 한다. 입건 전 장기 조사를 하는 경찰은 승진도 잘 안 된다.

잦은 직렬(職列) 이동도 걸림돌이다. 하 전 수사관은 “국정원 수사관은 입사 후 간첩 수사에만 올인하는 반면, 보안경찰은 정보경찰이나 치안 전담으로 계기마다 전보(轉補)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북한 공작망은 엄중한 비(非)노출의 ‘단순연계 복선포치(單純連繫 複線抛置)’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어 통상적 수사 활동으로는 연계망 색출이 곤란하다”면서 “게다가 북한의 대남공작과 국내 주사파 종북 세력에 대한 많은 경험과 이해도 수반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단언컨대 앞으로 민혁당, 일심회, 왕재산, RO와 같은 심도 있는 사건들은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간첩 수사 하지 말라는 얘기”

 ‘국정원과 경찰이 공조하면 되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당이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민주당 측은 “개정 국정원법상 국정원은 수사권만 사라졌지 정보 수집이나 조사 권한은 보유한다”면서 “경찰과 정보 공유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 전 수사관은 이에 “‘양쪽 발목을 잘라놓고 최선을 다해 달리라’는 것처럼 매우 비현실적인 말”이라고 했다.

“공판중심주의로 바뀌면서 법정에서는 정보 증거를 정당한 절차를 통해 확보했는지, 또 권한 있는 자가 제대로 수집했는지가 관건이 됐다. 수사권이 없는 국정원 직원은 간첩 혐의자나 그 관련자의 자발적 협조가 전제된 면담조사를 통한 정보만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정신 나간 간첩 혐의자가 수사권 없는 국정원 직원에게 자발적 조사 협조를 하겠나. 결국 국정원은 간첩 수사의 가장 중요한 분야인 수사권이 수반되는 증거 수집과 피의자 내·수사는 하지 말고 사이드 업무만 하라는 건데, 이건 간첩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설사 유의미한 정보를 얻더라도, 외부 기관인 경찰과의 공유는 쉽지 않다. 윤 전 수사관은 “정보 활용이 편재화(수사는 경찰, 정보는 국정원)되는 것은 대공수사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으로 상호 불신과 불만을 키울 수 있다”면서 “대공수사는 가외성(加外性)의 원칙이 충분히 적용돼야 할 영역”이라고 했다. 남 수사관은 “그 말은 대공수사 메커니즘 및 적법절차 사법 시스템과 북한의 대남공작 역량 및 보안수칙을 간과한 채 둘러댄 정치적 수사(修辭)”라고 했다.

“대공수사 유(有)가치 단서 95%는 수사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얻어진다. 수사 권한 없이 획득하는 대공정보 및 조사서류는 분석·판단·조정·기획 정도에만 활용되는 게 다반사(茶飯事)다. 이를 성급하게 사법처리에 현출(現出)하면 당사자 변호인 및 공판중심주의에 따른 정보 출처나 직권남용, 증거 능력 등 위법 소지에 휘말릴 위험성이 다분하다.”

우 전 수사관은 “지금처럼 이원화(二元化)된 상태에서의 공조는 국가 예산의 낭비일 뿐”이라고 했다. 이한중 전 회장은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망의 출처 보호로 인해 정보 협력이 완벽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타 기관으로 자료를 이관하는 불필요한 절차를 거치다 보면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이 걸린 국가안보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들이 국가안보를 자신들의 정파(政派)에 이용하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라고 했다.


“北, 총선 앞두고 대남공작 총가동할 것”

 ▲지난 2022년 11월 12일 ‘퇴진이 추모다’라는 피켓을 들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이 구호는 북한의 지령문에서도 등장했다. 사진=뉴시스

 

‘안보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 특히 총선을 앞둔 내년 혼란이 예상된다. 남 수사관은 “그때 북한은 대남공작을 총가동해 사회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내년 선거가 시금석(試金石)이 될 거다. 북한은 기존망 정비와 함께 새로운 지하당을 구축해 남한 내 통일전선 전위 세력을 확장하는 한편 노동단체, 시민단체, 진보정당 등에 침투한 간첩과 종북 세력을 조종해 각종 시위를 선동할 것이다. 지령을 받고 시위를 주도하는 자를 잡는 기관이 무력화됐으니, 시위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들불이 퍼져나가듯 사회 혼란을 부추기면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도로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정원 철폐 등을 비롯 자유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동이 빈발(頻發)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평화협정 체결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대규모 사이버테러 및 교란도 예견된다. 윤 전 수사관은 “김정은은 집권 초기 사이버전(戰)을 ‘만능의 보검(寶劍)’이라고 했다”면서 “북한은 인터넷 공간을 남조선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해방구로 여기며 이를 ‘전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한 전위 공간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나 안보기관의 핵심 인물을 대상으로 정보 절취를 위한 해킹 메일 유포, 국가 핵심 시설에 대한 디도스 공격과 악성웨어 유포를 통한 마비·파괴 등과 침해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는 트로이목마 공격을 수단으로 허위사실 유포나 여론조작, 여론의 왜곡 등 갖은 방법을 동원, 종북 인물을 제도권으로 진출시키기 위한 진보 세력 단일화 등 사이버 정치 공작을 더욱 강화하고 나설 것이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법 개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안보 공백을 막으려면 적어도 대공수사권 폐지 시점을 연장하는 등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 수사관은 “자유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위해 여야(與野)가 합의해 하루빨리 원상회복하는 것이 최상이고, 차선은 원상회복에 공감하는 당의 의석이 다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로 국가 대공수사 역량은 명백히 약화됐다. 국정원과 경찰 협업 등 그 어떤 보완 조치로도 만회하기 어렵다. 하루속히 복원돼야 하며, 관련 법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분단 현실과 간첩 활동 실태에 제대로 대응하는 국가 대공수사 역량을 갖추게 된다. 국가 안보기관의 정상화를 통해 동독 슈타지 문서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살아 있는 동안 평양의 대남공작문서를 꼭 열어볼 수 있길 바란다.”

‘눈과 귀는 있고 입은 없다’

남 전 수사관은 “임용 당시 훈육관에게 들은 말이 아직도 맴돈다”고 했다.

“이제 여러분은 눈과 귀는 있고 입은 없다. 국정원장을 대신해 대외 활동을 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간첩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국정원 수사관들은 문무(文武)를 갖춘 최정예 안보전사들로 양성된다”고 했다. 수개월의 신원조사 후 임용 때는 원장 앞에서 국가에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실무 투입 전에는 상당 기간 연수를 받았다. 공수 훈련, 해양 훈련, 권총 사격, 태권도, 합기도 등 무술뿐만 아니라 법률, 휴민트 및 테킨트를 활용한 수사정보 수집과 활용 능력, 어학 및 소양을 익혔다.

윤 전 수사관은 “이를 통해 확고한 국가관, 대적(對敵)관과 보안의식을 장착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출근 1개월간은 볼펜 선 똑바로 긋기, 종이 바로 자르기, 스테이플러 규격대로 찍기 등을 했고, 보안상 청소부를 쓰지 않아 선배들 책상 닦기, 재떨이 비우기를 직접 했다”면서 “그 단계를 지나니 선배들이 작성한 수사서류를 열람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교춤과 악기 같은 것도 배웠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대상자가 갑자기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야 하는 게 우리 직업”이라면서 “엉거주춤 서 있다가는 금세 들통 나니 배운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습니다’

 ▲국정원 요원들은 업무 중 순직하면 ‘이름 없는 별’이 된다. 사진은 순직자들의 추모석. 사진=뉴시스

 

하 전 수사관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력 무장”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분을 위장하여 뭐든 돼가며 살아야 했다. 사업가로, 회사원으로, 노점상으로, 때로는 노숙자로. 다만 ‘아버지 직업란’에만큼은 늘 무직(無職)이었다. 만일 순직(殉職)하더라도 ‘이름 없는 별’이 된다.

성장기 아들딸에게 공연한 자랑이 못 된 애석함은 끼어들 새가 없었다. 365일 중 휴가를 단 하루도 못 간 해도 있었다. 야근 없는 날은 ‘땡잡은 날’이었다. 이 전 회장의 말이다.

“수사국은 국정원 내에서도 험한 직무다. 누군들 양복 빼 입고 다니고 싶지 않겠나. 훈육관이었을 때 후배들에게 강조한 말이 있다. ‘힘들 때마다 뿌리 깊은 큰 나무를 생각하라.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모두들 오직 북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 국민의 생명과 자유, 행복을 지켜주겠다는 고집스러운 충성심과 사명감 하나로 일했다.”

수년이 지났지만 미결(未決) 사건은 여전히 사무친다. 우 전 수사관은 “출장 당시 채증에 실패한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장탄식이 나온다”고 했다.

“저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뻔한데, 역적질을 눈앞에서 보고도 수집을 못 하면 약이 오르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는데, 간첩에게는 거액의 공작금을 줘가며 이런 활동을 시킨다는 역사적 현실이 한편으로 참담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기도까지 해봤다.

“어릴 때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거기서 ‘도깨비감투’ 이야기를 봤다. 감투를 쓰면 투명인간이 되는 거다. 갑자기 그게 떠오르더라. 이렇게 빌었다. ‘하느님,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습니다.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만 할 테니, 도깨비감투 하나만 주세요.’”

동남아 어딘가에서 밤을 지새울 때 한 기도였다. 돌아보면 숱한 불면(不眠)의 밤이었다. 이제 이들은 다른 이유로 잠 못 들게 됐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월간조선 11월 호

한국 軍·정부·국민은 전쟁 준비가 되어 있나?

軍, 유사시에 모든 국민을 다 지킬 순 없다고 고백하는 용기 필요

⊙ 첨단 무기가 ‘참혹함’이라는 전쟁의 본질 외면하도록 만들어
⊙ 현행 국방혁신, ‘전면전은 없다’는 판단에 기초해 군사력 건설
⊙ 2015년 북한이 도발하자 공터에 포탄 29발 쏘고는 ‘완전작전’이라 자축
⊙ 2010년 연평도 사태 이후 포병 병과는 질 하락… 무의미한 비상 대기로 피로 누적
⊙ 전쟁에서 위험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감수하는 것
⊙ 북한 무인기에 영공 뚫리자 선배는 후배 탓… 軍內 세대 갈등 심각
⊙ 정치권, 문민통제라는 권한에 걸맞은 실력과 품격 갖춰야

조성원
1987년생. 예비역 대위 / 육사(66기) 졸업,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재학 / 미 육군 포병학교 고등군사반, 한미연합사단 화력계획장교 / 합참의장 표창

 ▲지난 8월 28일 육군 7포병여단 K9A1 자주포가 포탄을 쏘고 있다. 우리 군은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즉각 대기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포병부대가 번갈아가면서 북한 도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포상에서 대기하며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 사진=뉴시

 

지난 10월 7일 가자지구를 근거지로 삼은 하마스 병력이 백주대낮에 공중·해상·지상 3차원으로 이스라엘 남부에 침투했다. 이스라엘은 미국 9·11테러에 버금가는 물리적·심리적 타격을 입었다. 10월 10일을 기준으로 이스라엘 국방부는 일시적으로 상실한 영토를 모두 회복했으며 가자지구에 대한 총포위를 명령하고 지상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필자는 지난 《월간조선》 2월호에서 ‘육사 출신 예비역 청년장교가 말하는 국방개혁 4.0’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국방부의 초점 없는 유행 따라잡기식 국방혁신을 비판했다. 그 후 9개월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충돌은 근본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유행을 좇는 주도권 없는 국방혁신이 실전에서 어떤 취약점을 드러내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국군의 국방혁신을 지적하는 연장선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우리 군(軍)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국군의 이스라엘 사랑

한국군은 이스라엘을 사랑한다. 그 근원이나 출발점을 알 순 없다. 현재 장군단의 주류인 장년층 장교와 군(軍) 원로들이 결정하는 정책과 지시 사항에는 유달리 이스라엘군에 대한 동경(憧憬)이 넘쳐난다. 이 동경의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적은 없지만 개인 경험에 기초하자면 이렇다.

필자가 위관(尉官)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2015년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이 발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하면, 북한의 도발에 수세적(守勢的)인 대응에 그치는 우리 군과는 달리 적(敵)의 도발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이스라엘군의 풍토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싶다. 북한이 도발해도 국제규약 범위 내에서 대응하는 한국군과 달리 이스라엘은 강한 보복 행동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악명 높다. 한국군은 조직 문화상 혈기 왕성한 위관 장교 시절부터 자신의 전술적 행동 능력을 표출하지 못하고 영관(領官) 장교가 된다. 영관 장교가 돼 고급 장교를 양성하는 육군대학을 수료해도 안정적인 조직 문화를 좇는 ‘모범생’이 되길 강요받는 환경이다. 한국군이 가진 답답함과 이스라엘군의 과감한 행동력이 극명하게 비교돼 한국군의 이스라엘에 대한 동경은 대리만족으로 분출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추론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대한민국 육군에서 기계화부대에 근무하면 사단장이나 군단장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골란고원의 영웅들》이라는 책을 추천도서로 읽도록 한다. 이 책은 이스라엘 기갑장교들의 활약상을 담은 책으로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스라엘 77전차(戰車)대대장이었던 카할리니 예비역 중령의 회고록이다.

카할리니는 자기 집 지붕을 고치던 중 동원령이 선포되자 골란고원 전장(戰場)으로 영화처럼 달려와 소련제 전차로 무장한 아랍군 기갑부대를 격멸했다. 골란고원 전역은 아랍군 전차의 무덤이 됐다. 이스라엘 전차보다 더 우수한 성능의 소련제 전차로 무장한 아랍군을 제압한 카할리니의 회고록은 장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더구나 한반도라는 좁은 작전 지역에서, 전차가 달릴 만한 충분한 공간도 없는 상황에서 이 회고록은 ‘전차무용론’에 시달리는 기갑장교들에게 충분한 대리만족을 줬다.


이스라엘군, 한국에 공산권 장비 제공

 ▲2022년 9월 21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전 2022’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현상은 한국군만의 일방적인 이스라엘군에 대한 짝사랑이 아니었다. 한국군이 교육용으로 보유한 공산권 군용 장비에는 불곰사업으로 획득하지 못한 장비들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스라엘이 아랍권에서 노획한 장비를 우리에게 공여(供與)해준 것이다. 필자도 현역 시절 국외 군사 교육을 받으며 이스라엘군 장교들에게 단지 한국군이라는 이유로 대가성 없는 친절과 순수한 환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런 상호 간의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 한국군이 대리만족재로서 이스라엘군에 갖는 순수한 동경심은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비롯한 소위 ‘군사강국’들이 최근 10여 년간 추진한 군사혁신을 단지 동경심 때문에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안 된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로부터 수천 발의 로켓 공격을 받고 난 뒤에야 한국은 ‘아이언돔도 뚫렸다는데, 우린 안전한가’라고 부랴부랴 질서 없는 우려만 쏟아내고 있다.

2010년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유의미한지에 대한 논쟁은 논외로 하더라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저마다의 국방혁신 계획을 쏟아냈다. 2020년대에는 이 국방혁신에 대한 강조가 절정에 다다랐다.

나라마다 서로 붙은 이름은 달랐지만 세계적 추세는 명확했다. 바로 ‘더 슬림하게, 더 세련되게, 그리고 국민의 정부 지지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세 도발에 더 잘 대응할 수 있게’였다. 각국은 이 혁신에 자신이 부르고 싶은 대로 그럴듯한 명칭을 부여했다. 이 국방혁신은 전면전을 잊은 채 육중한 군사력을 죄악시했다. 이에 각국 정부는 국방혁신을 명분 삼아 전면전에 대한 비중을 줄이는 것을 합리화했다.

‘스마트전쟁’에 대한 환상

세계 각국은 기술집약적인 방산 아이템들을 선보였다. 제품에는 항상 ‘스마트’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유행이 됐다. 세계의 군인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이자 전쟁의 본질을 망각하게 됐다. 즉 전면전이 갖는 추악함을 잊게 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가 일으킨 인종청소 사태로 발발한 코소보 사태(1998~1999년)에서 우리는 공군의 정밀 타격 능력은 전쟁을 종결시키기 힘들다는 ‘EBO(Effects Based Operations·효과중심전) 무용론’을 확인한 바 있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20세기 말에 얻은 이 교훈이 무색하게도 20년도 되지 않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과 함께 ‘과거보다 더 진보한 스마트 무기체계라면 전쟁을 더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게 됐다.

마치 불필요한 피해는 아예 없는 핀 포인트(Pin point) 타격이 가능할 것 같고, 보병이 투입되기 전에 상당한 수준의 위험 요소를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보병마저 스마트한 디지털 장비를 착용해 충분히 안전하게 작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인공지능(AI)이 도입된 무인 차량과 전차 덕분에 국방은 한층 더 스마트해지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내뿜을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이 이미지가 국민에게 가져다주는 효과에 만족스러워했다. 이러한 군인들의 망상과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아 방산(防産) 업계는 이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들을 내놓았다.

최근 방산 박람회는 명품 자동차 업계의 신차 박람회나 IT 업계의 기술 박람회의 행사 방식을 따르며 매년 세련미를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는 앞서 언급했듯 우리에게 전쟁에 관한 중요한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전쟁의 본질은 바로 ‘전쟁은 추한 것(War is Dirty)’이라는 점이다. 이는 반박할 수 없는 명제다.

 

‘위험 감수’ 하지 않으려는 한국군 지휘관들

시대가 발전하면 무기체계도 함께 발전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무기체계의 발전이 군인과 정치인들의 오판(誤判)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 오판이 군인과 정치인들의 전략적 사고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부전승(不戰勝)은 가능할지 모르나 한번 전쟁이 일어난 후 무혈(無血) 승리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군인과 군인을 문민통제하는 정치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결점(無缺點)’ 작전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과거 육군에서 GOP 경계를 맡은 사단에서는 GOP에 투입된 대대가 큰 사고 없이 GOP 경계 임무를 마치고 다음 대대와 임무 교대 후 FEBA(전투지역전단)로 내려오면 이를 ‘완전작전’이라고 자축했다.

2015년 있었던 ‘서부전선 포격 사건’을 육군에서는 ‘8·20 완전작전’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완전하지 않음에도 무결점, 완전작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병적(病的)으로 집착한다. 이는 우리 군의 문화가 이미 전략적 사고에서 오염이 시작됐다는 의미이다.

한국군에서는 그 어떠한 지휘관도 위험 감수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휘관들은 체크리스트 내에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을 명시해서 당직 장교들에게 야간 내내 그 모든 것을 확인하라고 지시한다. 심지어 병사가 영내를 걷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발목을 삐는 것도 위험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한 예방 대책을 ‘위험성 체크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중대장들이 작성한다. 또한 이를 육군 인트라넷망 ‘위험성 보고 시스템’에 탑재해야 한다.

전쟁에서 인간이 제거할 수 없는 변수는 ‘우연’과 ‘게임’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지휘관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모든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지휘관의 기동 계획은 그 어느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적이 예측가능한 계획이 된다.

실제로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대한민국 육군 포병은 그야말로 사람을 혹사시켜가며 ‘대응도발태세’라는 ‘실체 없는 캐치프레이즈’를 구축했다. 도발 가능성과 그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리스트에 명시된 대로 측정한 다음, 그 수준에 따라서 즉각 대기 ‘A 수준’ ‘B 수준’ ‘C-1 수준’ 등 수준별로 대기해야 할 주요 직위자의 보직과 화포 문수를 지정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창끝부대(일선부대)의 피로도를 조절하면서도 유사시 적의 포격 도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합참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화면에서만 예쁘게 구현된 허수(虛數)였다.

실상은 A 수준이든, B 수준이든, C-1 수준이든 현장에서는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이에 창끝부대 간부들은 대기 발령이 떨어지면 곧장 출근해 막사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주말도 없고 밤낮도 구분이 없었다.

비효율적인 대기 태세는 ‘포병 병과(兵科) 기피 현상’을 야기했다. 사관생도들과 장교 후보생들은 포병 장교로 임관하기를 기피했다. 이에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현재까지 포병장교의 질은 급격히 낮아졌다. 1, 2, 3지망 병과 지원에 모두 탈락한 자원들이 포병으로 흘러들어 갔다. 포병장교들은 ‘병과 존폐의 위기’를 느꼈다.

戰力 사용할 전략도, 배짱도 없어

이 비효율적인 대기 태세는 5년 동안 전군(全軍)을 괴롭힌 후 실전(實戰) 데뷔를 했다. 2015년 8월 4일 1사단 수색대대 부사관 2명이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를 밟고 중상을 입었다. 사건 발발 직후 전선의 수많은 군인이 대기 태세에 돌입했다. 그러나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은 고작 대북심리 방송을 재개하는 것뿐이었다. 목함지뢰 사건이 있고 16일 뒤 북한은 고사총 수 발을 우리 영토로 발사했다. 약 1시간 뒤 26사단 소속의 포병대대가 고폭탄 29발을 임진강변 빈 땅에 쐈다.

이것이 2010년부터 전군을 피로하게 만들고 대화력전의 핵심 병과인 포병 간부의 질을 대폭 하락시킨 ‘대응 태세’와 ‘8·20완전작전’의 실체다. 결국 대부분의 전선에서 창끝부대 병력들이 규정된 시간 안에 사격 준비를 갖췄지만 적을 응징하진 못했다. 영토가 공격당하고 군인이 영구장애 부상을 입었음에도 정치인과 군 수뇌부는 지난 5년간 주야장천 대기한 이 포병 전력(戰力)을 사용할 전략도, 배짱도 없었던 것이었다.

적이 도발할 때마다 군은 ‘동종동량(同種同量)’이나 ‘비례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미 250년 전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논할 때 단순히 물리와 계량, 수치와 통계의 영역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전쟁에 관한 논의를 관념과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전쟁론》을 저술했다. 한국군은 이와 같은 전쟁 철학의 발전을 무시하듯 적이 도발할 때마다 ‘발을 맞았으니 우리도 발만 쏴야지’라는 생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편협한 사고의 결과물이자 현실과 동떨어진 대응책은 과연 어떤 효과가 있었는가. 적이 그 이후로 도발을 멈추었는가?

장교들의 반감 부른 합참의장의 질책

이러한 관료주의적 병폐는 2022년 말 북한 무인기(無人機)가 영공을 침범한 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문민통제의 상징인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여야(與野) 의원들이 육사 선후배 기수를 따지며 격조 없는 언쟁을 벌이며 한 의원을 간첩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현역 장성을 앉혀놓고는 고성을 지르고 호통을 쳤다. 문민통제라는 이름으로 문제 해결과는 무관한 수준 낮은 정쟁(政爭)을 보여줬다. 전략적 차원의 비판은 없었다. 그들에게 이 이슈는 단지 먹기 좋은 당쟁(黨爭)의 재료일 뿐이었다.

무인기 영공 침범의 하이라이트는 합참의장이 주요 지휘관 회의를 소집해 일갈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예하 부대와 실무 장교들 사이에서 얼마나 반감이 컸는지 군을 떠난 이들에게도 전파될 정도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가 사단장, 군단장을 할 때는 방공방어 태세를 이 따위로 허술하게 하지 않았다. 너희가 훈련을 실전적으로 안 한 탓이다. 똑바로 안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합참의장은 중대장 시절 현역 군인 중 유일하게 북한군과 직접 교전(은하계곡전투)을 치러 승리한 인물이다. ‘은하계곡전투의 영웅’이자 4성 장군이 부하에게 공개석상에서 할 말이었을까?

손자(孫子)는 싸움에 능한 자는 세(勢)를 구하지,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故善戰者 求之於勢 不責於人). 실상은 합참의장이 사단장, 군단장일 때 잘됐던 것을 지금 후배들이 망쳐놓은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실체 없이 엉성했던 것을 지휘관인 자신만 잘 돌아가는 줄 착각하고, 현상 개선을 위한 여건 보장도 제대로 못 해준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합참의장이 볼멘소리를 하는 부하들에게 시원하게 일갈해 군의 기강이 잡힌 것처럼 보도를 했는데, 이는 실상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軍內 세대 갈등 심각

이미 군내(軍內) 장교단 사이에선 세대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불신이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섰다. 젊은 장교들은 선배들의 군사정권 시절 과거 타령과 ‘요즘 후배들이 문제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책임 전가에 질려버렸다. 최근 젊은 층의 장교 지원율이 하락한 것과 관련해 언론은 병(兵) 급여 인상을 꼽지만 이것은 피상적인 이유일 뿐이다.

젊음을 바쳐 군에 헌신하는 후배 장교들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 사람 귀한 줄 모른다. 자기 진급을 위해 병사들의 소원수리와 부모들의 민원처리를 최우선 기조로 삼아 젊은 중대장들과 행정보급관들을 끼니마다 도시락 포장요원으로 만든다. 배달 광고업체처럼 부모들에게 보여줄 사진 촬영을 시켜 보고하도록 한 자들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경제적인 요인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돈 몇십만원에 개인의 신념을 저버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인재를 제대로 처우하지 않고 대증요법으로 그때그때 피상적인 정책에 사람을 혹사시키는 문화가 싫은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에서도 사관생도들이 ‘한국군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없어’ 자퇴(自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군 수뇌부는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야전에선 소총으로 드론 잡는 훈련

 ▲김승겸 합참의장(가운데)이 지난 7월 31일 5사단 GOP관망대를 찾았다. 김 의장은 적이 도발하면 가차 없이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기껏 합참의장이 젊은 장교들의 지지를 잃어가며 일갈한 결과는 야전 일선 부대에서 ‘소총수가 드론을 소총으로 격추하는 사격술’ 교육이다. 얼마나 부끄러운 행태인가? 그 훈련을 시키는 교관, 훈련을 받는 병사 모두 얼마나 우습다고 생각했겠는가.

실제 작전에서 항공사진으로 정지 화면을 보듯이 일반 전투원이 육안으로 드론을 관측해 피아를 식별하고 사격까지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이렇게 말단의 인력들을 혹사시켜놓고는 ‘무엇 하나라도 얻어 걸리겠지’라는 식의 대응은 2023년 우리 군의 전략적 사고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포격 도발을 겪었다고 그 해결책으로 전군의 포병 부대들을 당번 세워가며 즉각 대기를 시키는 것이나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현실성이 전무한 대공사격술을 교육시키는 것은 바로 적이 원하는 수준의 대응이다.

적은 우리의 자원이 그들보다는 많지만 유한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의 특성상 당장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보여주기식 미봉책에 급급하다는 단점도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적은 우리의 방어 태세를 실험하기 위해 유엔 정전 수칙과 여러 국제 제재를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본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가 모든 자원과 정력을 소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철통방어’라는 것은 환상 속의 얘기일 뿐 애당초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군 수뇌부와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현재 우리의 기술과 능력으로서는 대규모 화력전 시 국민 모두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해야 한다. 이는 ‘전쟁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다. 기술이 더 발달하더라도 ‘물 샐 틈 없는 방어’는 불가능하다. 피상적인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전략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쟁 3일 만에 이스라엘은 동원령을 통해 30만 명 이상의 예비군을 동원해 기존 영토 내 질서를 회복했다. 현재는 가자지구로 지상군 투입을 앞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략적 차원에서 하마스가 대규모 군사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국민의 머슬 메모리가 과거 4차례의 중동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아 매우 단기간에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외향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러한 내부 심리적인 공세 근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아이언돔이 아니다. 무제한의 폭력을 추구하는 군의 본질과 문민통제의 주체인 민간 정치인들의 전략적 사고다.

대한민국 안보의 三位一體

이 글에는 제갈량이 조자룡에게 위급할 때 열어보라고 쥐여준 지혜의 주머니와 같은 것은 없다. 안보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신묘한 계책’은 없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해결책이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이 아직 국가대전략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기에는 그 밑바탕이 극히 부실하기 때문이다. 대국(對局)을 논할 환경 자체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다만 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한 경이로운 삼위일체의 부차적 요소로서의 삼위일체의 틀을 빌려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이 조건이 선결되면 비로소 우리는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1. 軍은 무자비한 폭력 추구하는 집단

군은 높은 인권 수준이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극단으로 추구해야만 하는 모순을 내포한 집단이다. 군 수뇌부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연금이 ‘안전제일주의’ 처세술에 대한 포상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허용된 폭력의 행위자로서 문명인에게 주어지는 도덕적 보상임을 인지해야 한다. 적이 도발하면, 지휘관은 지금처럼 지킬 것들 다 지켜가면서 그 누구의 경력도 다치게 하지 않고 그 누구도 비난받지 않는 ‘빈 땅에 포탄 쏘기’ 조치가 아닌, 누군가는(적이든 아군이든) 생명을 잃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입고, 자신은 역사와 대중에게 맹렬히 비난받을 가능성이 큰 과감한 결심을 해야 한다.

높은 확률로 그 결심을 내린 자신과 그 지시를 수행한 일선 간부와 병사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희생 망령의 원한과 저주에 시달릴 것이다. 훈장과 연금, 명예는 국민 대신 이런 전쟁의 무게를 감당할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각오가 돼 있지 않은 자는 무인이 아니다.

군 내부의 충언과 직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젊은 장교들은 이미 이 모든 문제를 인지하고 개탄하고 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단순히 급여와 같은 1차원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대증요법으로 대충 때우려 해선 안 된다. 그들의 철학, 신념을 존중하는 인사 정책과 조직 내 합리적 소통 문화를 정착시켜 정상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외부의 노이즈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라 내부의 충신들을 잃어선 안 된다. 이 문제를 소홀히 생각하면 훗날 현 젊은 세대가 군 수뇌부가 되는 시대가 왔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군 리더십 붕괴를 겪을 수 있다.

2. 정치, 문민통제할 수 있는 실력 키워야

우리 정치인들은 현재 우리 정치의 수준이 세계 10위권 군사력을 가진 국가의 문민통제 수행자로서 격에 맞지 않음을 반성해야 한다. 안보와 관련된 일련의 정치 활동을 단기 포퓰리즘이 아닌 실제 안보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그 지향점을 맞추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무인기가 영공을 한 번 침범했다고 부랴부랴 드론사령부를 창설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얽혀 있는 국제규약과 각종 조약에 얽매이지 않고 적의 추가 도발 의지를 분쇄하면서도 국가의 경제·통상·외교에 지장을 주지 않는 국가전략 기조를 구축해야 한다. 전쟁지도부의 수장은 국방부 장관이 아닌 대통령임을 잊어선 안 된다. 특히 군 출신 의원들은 현역 후배들을 통해 음성적으로 군 기밀을 획득해서 민간 출신 의원들과의 정보 격차를 이용해 국방위원회를 주도하거나 그것이 대단한 자신만의 지식인 양 후배 장성들을 불러 앉혀다 놓고 호통치는 데 사용해선 안 된다. 전략적 사고 확장을 위한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민간 출신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내 군 부지 반환을 통한 지지율 향상처럼 지엽적인 지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을 대표해서 국가 전략을 위해 국방부에 어떠한 질문을 던지고, 어떠한 정보를 요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전까지는 군 출신 의원의 역할로 여겨지던 국가전략 분야도 공부해야 한다. 민간 출신 의원들이 군 출신 의원들에게 국방위 운영을 맡기면 현재와 같이 군의 갈라파고스화는 더욱 심각해지고 민주주의의 강점인 문민통제는 더욱 요원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3.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안보를 갖는다

삼위일체의 마지막 퍼즐은 국민이다. 나를 대표하는 의원들이 국방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고 있는지, 현상을 넘어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 국군의 날 특전사들의 격파쇼나 보여주기식 화력시범 영상을 보고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민주주의의 주체로서의 식견을 갖고 요구해야 한다. 항공모함과 원자력추진잠수함, 육사와 비육사 등 정치인이 정치적 편의에 따라 만든 이분법적 틀에 갇혀선 안 된다. 중동에서 전쟁이 한 번 일어났다고 언론에서 ‘아이언 돔이 뚫렸다’고 뽑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보고 놀라 호들갑을 떨어선 안 된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현상을 보도하는 언론, 국민 개개인의 정당 선호도를 뛰어넘는 혜안으로 의원들을 통제해야 한다. 국민이 자신의 대표자인 의원들에게 똑똑하게 요구하지 않으면 정치인은 국익이 아닌 철저한 당익과 사익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이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인 이기심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는 ‘국민은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는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의 격언이 유행이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그에 걸맞은 안보를 가진다.’⊙

 

 

월간조선 11월 호

《한국군의 뿌리》 쓴 육사 출신 청년 작가의 고발

■문재인 정권, 육사를 이렇게 망가뜨렸다

“홍범도 흉상 설치 후 6·25전쟁사 안 가르치고 ‘홍범도실’ 신설”

⊙ “유격훈련·과학화전투훈련 안 받고 졸업한 육사 기수도 있어”
⊙ “각 군 사관학교 면접·장병 정신교육, 항일 활동에만 유독 집중”
⊙ “육군참모총장, 육사에 ‘소대장 수준의 지식만 갖고 졸업하면 된다. 영어 공부만 잘하라’”
⊙ “영관급 장교 교육하는 육군대학에서는 북핵·북한군에 대한 교육보다 항일·독립운동에 집중”
⊙ “한국군의 뿌리는 독립군,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까지 다양… 이것이 불편한 진실”
⊙ “亡者 기리는 동상 두고 싸울 때 생도 기숙사는 낙후돼 천장까지 무너져”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들이 화랑의식을 하며 분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육사) 생도들이 수업을 듣는 충무관 앞에 항일·독립운동가 5인(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흉상이 설치됐다. 동상 설치 닷새 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는 10년 만에 육사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했다(3월 6일). 이날 육사는 ‘명예 육사 졸업장’을 만들어 독립군·광복군 출신에게 수여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28일 국방부에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역사를 우리 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것을 검토하라”며 육사 교육과정 개편을 지시했다. 이어 국군의 날을 10월 1일로 정한 것도 정통성이 없다며 광복군 창설일(9월 17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라고 했다.

 

 ▲김세진 작가.

 

2018년 2월 7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당시 의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가 육사에서 특강까지 했다. 주제는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재조명과 문재인 대통령의 북방정책’이었다.

2021년 8월 15일에는 특별수송기를 투입해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의 유해를 봉환해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홍범도의 묘지석엔 현충원 최초로 ‘신영복체’가 사용됐다. 김일성주의자인 신영복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밝혀왔다.

2011년 육사 67기로 임관해 5년간 복무하고 2016년 사회로 진출한 김세진 작가(예비역 육군 소령). 2018년부터 육사에서 이상한 일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모교를 찾아가 직접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 2018년 6월 육사에서 처음으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경희대학교가 뿌리로 삼고 있습니다. 갑자기 육사에서 기념식을 열고,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70년도 더 됐는데 사관생도들을 항일독립투사로 만들려는 듯한 시도에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습니다.”

— 당시 육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요.
“충무관에는 생도들이 휴식하고 토론하는 공간인 ‘백선엽실’이 있었습니다. 2018년 홍범도 동상이 설치된 후 육사에 가보니 백선엽실이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밀려나고 ‘홍범도실’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소련군 복장에 레닌이 하사한 권총을 찬 홍범도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있었죠.”

— 홍범도 때문에 책 《한국군의 뿌리》를 쓴 건가요.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김원봉을 한국군의 뿌리라고 말했어요. 6·25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 간 모든 분을 욕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정작 군인의 아들이자 군인이었던 저조차도 한국군의 뿌리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알려준 사람도 없었고 어디서도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군의 뿌리를 규명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자료를 수집하며 원고를 써나갔습니다.”

“김원봉 띄우기 실패하자 홍범도 띄운 것 아닌가”

 ▲김세진 작가가 쓴 《한국군의 뿌리》(2022)

 

김 작가는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2년 넘는 시간을 들여 2022년 3월 1일 책을 완성했다. 그는 “홍범도의 항일·독립투쟁 활동은 있는 사실 그대로 인정해야 하지만 대한민국이 추구한 자유민주주의와는 이질적인 삶을 살았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김원봉 띄우기에 실패하자 그 대체재(代替財)로 홍범도를 띄운 것은 아닌지 의심도 된다”고 밝혔다.

— 책을 쓸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냉철하게 지피지기(知彼知己)하자’는 원칙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국제 관계와 국내 상황을 최대한 연결하고, 그 당시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입체적으로 추적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진영논리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역사를 서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제 책은 도서 분류도 ‘역사’로 돼 있습니다.”

—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참고할 만한 자료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기존 선행(先行) 연구 자료는 특정 시기만 다루거나 특정 사관(史觀)에 치우쳐 객관적이지 못했죠.”

— 왜 한국군의 뿌리를 모르고 있었나요.
“배울 기회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죠. ‘배워야 한다’는 고민조차 부족했고요.”

— 육사에서는 안 가르쳐주나요.
“육사에는 군사사학과가 있습니다. 주로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를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이 학과에서도 건군사나 창군(創軍) 배경은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대장(大將)까지 오르신 분, 국방부 장관을 지내신 분 등 많은 선후배 전우들에게 한국군의 역사와 뿌리를 물어봤지만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 이유가 있나요.
“한국군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 뿌리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건군’이 ‘건국’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민감하기 때문이죠.”

— 왜 정치적으로 민감한가요.
“건군의 문제가 곧 대한민국 건국을 1919년 상해 임시정부로 볼 것인가, 1948년 정부 수립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 진영별로 지향하는 이념과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달라 여전히 논쟁이 치열한 부분입니다.”

 

— 한국군의 뿌리는 무엇인가요.
“의병, 독립군, 광복군부터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 출신까지 다양합니다. 제 책에서는 한국군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뿌리까지 인적, 제도적, 문화적 차원에서 밝혀놓았습니다. 뿌리가 다양하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 왜 불편한가요.
“34년 11개월의 식민지배를 당하고 해방됐습니다. 그런데 현대 한국군을 만들고 이끈 주역들의 면면을 보니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 대다수이고 독립군·광복군 활동을 했던 분들은 소수였습니다. 건군 주역들의 공(功)을 인정하자니 일제시대가 딸려왔고, 이 분들의 과(過)를 드러내자니 한국군의 핵심이었죠. 모순을 동시에 품어야 하고, 또 정치 권력의 정통성과 이념 논쟁으로까지 곧장 이어지니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 광복군을 뿌리로 삼아야 ‘민족 정통성’이 살지 않나요.
“진실은 한국군을 지탱하는 뿌리에 광복군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광복군, 그 이전에 대한제국이 망한 후 나타난 독립군도 매우 다양한 갈래로 나뉩니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이념과 가치관, 활동 지역·시기에 따라 성격이 달라요. 수많은 단체와 개인을 ‘독립군’이라는 하나의 관념으로 재단(裁斷)할 수 없어요. 저도 참 불편하지만 지피지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입니다.”


자유시 참변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다양한 독립군 단체가 조직됐다. ‘육사 흉상 5인’ 중 한 명인 김좌진은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만들었는데 주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참여했다. 서간도에선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해 ‘서로군정서’를 조직했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1기생 김학소는 ‘흥업단’을, 의병 출신 홍범도는 ‘대한독립군’을, 최진동은 ‘군무도독부’를 만들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계기로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에 나서자 독립군 단체들은 ‘대한독립군단(1920년 12월)’으로 통합해 규모를 키웠다.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고려공산당 소속 상하이파(이항부대, 다반군대)와 이르쿠츠크파(자유대대)도 대한독립군단과 협력했다.

일본군을 피해 대한독립군단 각 부대는 1921년 초 자유시로 모였다. 대한독립군단, 상하이파, 이르쿠츠크파가 모여 연합부대의 지휘권을 두고 다퉜다. 레닌이 이끄는 적군(赤軍)은 모든 조선인 부대를 직접 지휘하겠다고 선포했고 홍범도 등은 이에 따랐다. 그해 6월 28일 적군은 강제로 독립군을 무장 해제했다. 적군·자유대대는 독립군을 공격해 수십 명을 죽이고 약 970명은 포로로 삼아 적군에 편입시켰다. 이 사건이 ‘자유시 참변’이다.

적군에 협조한 홍범도, 지청천 등은 이르쿠츠크로 이동해 홍범도를 중심으로 ‘고려혁명군’을 만들고 고려혁명군관학교(교장 지청천)를 세웠다. 자유시 참변에서 살아남은 이범석, 김홍일 등 일부 독립군과 김좌진 병력은 북간도 지역에서 무장 해제를 당했다.


자유시 참변 이후의 독립군

 ▲소련군 복장에 레닌이 하사한 권총을 찬 홍범도. 오른쪽 아래는 육사 충무관 앞에 설치된 흉상. 사진=김세진

 

— 자유시 참변 이후 독립군은 어떻게 됩니까.
“각종 단체를 조직합니다만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간의 대립으로 갈등이 계속됐습니다. 일부는 중국군 양성 기관에서 훈련받아 중국군이 됐는데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공산군, 민족주의자는 중국 국민당 계열에 속했죠. 소련군에 속한 대표적인 사례가 김일성입니다. 여기에 1932년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자 출세하고 싶었던 조선 청년들이 만주군에 입대합니다.”

— 만주군에서 활동한 이들은 누가 있나요.
“만주의 군간부 양성기관은 크게 봉천군관학교(2년제), 신경군관학교(4년제)가 있습니다. 만주에서 두각을 보인 이들은 일본 육사로 편입시켰죠. 봉천 출신으로는 5기 정일권(일본 육사 55기 편입)·김백일·신현준, 9기 백선엽 등이 있습니다. 신경 출신으로는 2기 박정희·이한림(일본 육사 57기), 5기 강문봉(일본 육사 59기) 등이 있죠.”

—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국민당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김구를 중심으로 광복군에 참여합니다. 여기도 뿌리가 다양합니다. 일본 육사에서 공부한 지청천, 중국 운남 육군강무학교 출신 이범석(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 대한제국군 출신의 황학수 등이 있습니다.”

— 광복군의 규모는 어떠했나요.
“1945년 4월 작성된 임시정부 문서에는 339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반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광복군은 560명입니다. 한 광복군 출신은 339명을 두고 ‘중국에 물자를 타기 위해 가족 등을 포함해 광복군 숫자를 부풀렸다’고 증언했습니다.”

 

‘광복 이후 광복군’

— 광복 직후 광복군의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임시정부는 해방 직후 국내 진공을 앞두고 일본군, 만주군 출신 조선인을 모집해 ‘해방 후 광복군’이란 부대를 창설했습니다. 규모가 커야 협상에 유리하니까요. ‘광복 이후 광복군’으로는 대표적으로 만주군 출신이자 간도특설대원이었던 신현준 초대 해병대사령관, 만주군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습니다.”

— 조선인들이 일제 34년 11개월간 활동한 군대를 정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의병, 독립군, 한국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국민당 소속 중국군, 공산당 소속 중국군, 소련군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이들은 광복 후 어떻게 됐나요.
“남한만 놓고 보면 광복 직후 건군준비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났어요.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크고 작은 단체 70여 개가 있었죠. 좌우익 대립이 심해지자 미군정은 건군준비단체를 모두 해산시켰습니다.”

미국은 모든 건국·건군 활동을 부정했지만 치안 유지를 위한 병력은 필요했다. 1945년 10월 12일 북조선이 ‘보안대’를 설립하자 미군정은 다음 날 국군의 전신인 ‘남조선경비대’를 창설했다.

미군정을 이끈 하지는 정규 군대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미국 정부는 반대했다. 이에 하지는 경찰 예비대 성격을 가진 소규모 군대를 만들기로 했다. 이를 ‘뱀부 계획(Bamboo plan)’이라고 한다. 미군정은 1946년 1월 초 국방부를 만들고 곧이어 1월 14일에는 육군부, 해군부를 각각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로 명명한다. 다음 날 서울 태릉(현 육사 부지)에 국방경비대 제1연대가 창설된다. 국가와 정부는 없지만 현대의 한국군이 최초로 조직된 것이다.

— 군대를 유지하려면 간부도 필요하지 않나요.
“미군정은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를 창설했어요. 원래 ‘군사언어학교’였지만 당시 가르친 언어가 영어여서 군사영어학교(군영)라고 불렀습니다.”

— 군영이 대한민국 장교 양성의 출발점인가요.
“현재 우리 육군은 군영에 대해 ‘미국이 국군 창군을 주도할 간부를 양성하려고 만들었다’고 평가하지만 사실과 차이가 있어요. 미국은 말 그대로 ‘통역요원’을 구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 군영에는 누가 들어갔나요.
“미군정은 일본군, 만주군, 광복군 출신을 각 20명씩 할당해 1기에 60명씩 교육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광복군은 자신들의 정통성과 법통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며 입학을 거부했죠. 여기에 광복군 중 다수가 중국에서 귀국하지 못한 상태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군영의 학생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 주를 이뤘습니다.”

— 당시 광복군 출신들은 어떠했나요.
“해방 당시 약 800명 규모였습니다. 다른 출신들보다 나이도 많고 현대적인 전투기술을 교육받지 못해 주류에서 밀려났죠. 광복군 출신은 ‘남조선국방경비대’를 향해 ‘미국 용병 집단이자 친일 집단’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어요. 유동열, 이범석, 안춘생, 송호성 등을 제외하면 건군 초기에는 참여하지 않았죠.”

— 군영은 간부를 얼마나 양성했나요.
“약 4개월간 총 110명이 군영을 졸업했습니다. 출신별로는 일본 학도병 72명, 만주군 21명, 일본 육사 12명, 일본군 지원병 5명, 독립군 2명이었습니다.”

— 군영은 한국군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군영 졸업생은 국방경비대에 속한 각 연대를 창설하고 초기 한국군을 건설한 핵심입니다. 졸업자 110명 중 78명이 장군으로 진급했고 23명은 각군 참모총장이 됐습니다. 역할과 비중을 보면 현대 한국군의 뿌리죠. 미군 교리를 우리 군에 적용해 한국군을 미국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군영은 1946년 4월 30일 폐교됐다. 다음 날 5월 1일, 미군정은 한국군 장교를 양성하는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창설했다. 육사는 이날을 개교기념일로 삼는다.


“해군 창설 주축은 민간 선박회사 출신”

— 해군·공군 창군에도 일본군 출신이 대다수였나요.
“해군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일제는 1943년까지 조선인을 해군에 입대시키지 않았습니다. 전시에도 조선인은 함정 근무 대신 육상 근무나 가미카제 자살특공대 임무를 줬죠. 일본 해군으로 해상 함정 근무 경험을 한 조선인은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해군 창설의 주축은 식민지배기 중국·일본 등 민간 선박회사에서 일했던 이들입니다.”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은 중국에서 항해과를 졸업하고 중국 국민당 소속 해군으로 3년간 독일에서 유학했다. 그 뒤 한중일 무역회사를 만들어 활동하다 해방 후에는 해방병단(海防兵團)을 만들어 오늘날 해군으로 발전시켰다.

해병대는 신현준이 주도해 창설했다. 그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 직후 해군본부에 ‘일제 해군육전대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다면 더 수월하게 진압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손원일은 육상전 경험이 풍부했던 일본군·만주군 장교 출신과 일본 해군육전대 출신에게 해병대 창설을 맡겼다. 2대 해병대 사령관은 김석범(봉천 5기, 일본 육사 54기)이었다.


“다양한 뿌리가 현대 한국군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성장”

공군은 육군 항공부대로 존재했다. 1949년 10월 1일 육군에서 약 1600명과 연락기 20기를 떼어내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했다. 1948년 5월 항공부대가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장교는 7명에 불과했지만 인력 양성에 힘써 1950년 6·25전쟁 직전에는 조종사가 약 240명까지 늘었다.

공군 창설의 주역 7인으로는 ▲최용덕(초대 국방부 차관·2대 공군참모총장, 중국 육군군관학교 졸업, 중화민국 공군 소령) ▲김정렬(초대 공군참모총장, 일본 육사 54기) ▲김영환(김정렬의 동생, 일본 학병) ▲박범집(초대 공군참모부장, 일본 육사 52기) ▲이근석(초대 공사 교장, 일본 소년비행병 2기, 만주군 활동) ▲장덕창(4대 공군참모총장, 일본 이토비행학교 졸업) ▲이영무(공군비행단장, 중국 운남육군학교 졸업, 중화민국 공군 소령)가 있다. 김세진 작가는 “한국 공군의 대부(代父)인 미 공군 딘 헤스 대령도 한국 공군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인적·제도적·문화적 차원에서 분석했을 때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 건군 당시 대부분을 차지했다”며 “6·25전쟁을 계기로 다양한 뿌리가 현대 한국군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성장한다. 여기에는 한국군의 각종 제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밴 플리트 미 8군사령관 등 미군의 노고도 담겨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각 군 사관학교 면접, 군 장병 정신교육, 영관급 장교를 교육하는 육군대학 등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나 북한군의 실체에 대한 교육 대신 항일·독립운동에 대해서만 유독 강조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2018년 책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를 펴내 일본 근현대사에도 밝은 김 작가에게 군에 있는 지인(知人)들이 연락해왔다. 자신들도 이런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김 작가에게 물어온 것이다.

 

— 문재인 정권 시절 군 수뇌부가 육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도 합니다.
“학군 출신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육사에 ‘소대장 수준의 지식만 갖고 졸업하면 된다. 영어 공부만 잘하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육사 교육도 부실해졌죠. 유격훈련과 과학화군사훈련(KCTC)을 없애고 공수훈련도 없애려고 했죠. 육사 78기는 과학화훈련을, 79기는 유격훈련과 과학화훈련을 하지 않고 졸업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그간 육사 생도들이 반드시 들어야 했던 필수과목인 6·25전쟁사를 선택과목으로 바꿨죠. 이 때문에 육사생도 4명 중 3명은 6·25전쟁사를 배우지 않아도 됐습니다. 6·25전쟁사를 필수과목에서 제외한 게 문제 되자 육사는 임관을 앞둔 4학년 생도를 대상으로 급하게 6·25전쟁사 보충 교육을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 왜 그런 지시를 내렸습니까.
“육사 생도들은 4학년이 되면 대대급·연대급 이상의 전술 지식을 배우고 졸업합니다. 육사의 교육목표가 육군과 국가안보를 책임질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사를 제외한 다른 출신들이 볼 때 육사 생도들이 받는 교육이나 훈련을 특혜라고 본 것이죠. 다행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정상화됐습니다.”

육사 교장 면박 준 육사 출신 정치인

 ▲김세진 작가는 육사 생도 4년 생활을 총정리한 《나를 외치다!》(2016)와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를 추적한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2018)를 펴내기도 했다.

 

— 육사에서 홍범도 흉상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국방부에 있는 동상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어려운 문제가 됐습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돼버렸거든요.”

— 홍범도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홍범도가 대한민국 건국과 호국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홍범도는 독립운동을 했던 하나의 인물로 기려도 충분해요. 문제는 자유시 참변이나 홍범도에 대한 연구가 아직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치적 주장에 앞서 역사적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육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홍범도 동상 정쟁화에 가장 앞장서고 있습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 함께 육사에 가 사관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육사 교장에게 면박을 주고 생도들의 수업 시간에 행패를 부렸습니다. 희극이자 비극입니다.”

이에 대해 지난 10월 20일 김병주 의원실 측은 “행패를 부린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혀왔다.

— 동상 때문에 육사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학교 밖에서는 육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육사 앞에는 ‘일본군의 후예’와 같은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생도들은 혹시 테러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심적(心的)으로 굉장히 괴롭다고 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들에게 돌아오는 건 비난뿐이니까요. 이번에도 국군의 날 행사와 시가행진 준비하느라 생도들은 비를 맞으면서 연습했습니다.”

— 육사에 백선엽, 맥아더 동상을 세운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지금은 망인(亡人)의 동상을 두고 아무것도 안 하면 좋겠습니다. 이미 백선엽 동상은 칠곡 다부동에, 맥아더 동상은 인천에 있습니다. 육사 생도들은 곰팡이가 핀 숙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시설이 너무 열악해 천장이 무너질 정도입니다. 오늘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역량과 관심을 쏟기도 부족합니다. 망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거두고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군, 뿌리부터 무너지고 있다”

 ▲충무관 앞에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안 의사의 유묵인 위국헌신 군인본분이 새겨진 비석. 사진=김세진

 

김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생도들이 가장 많이 마주하는 육사의 조형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 적힌 석상(石像)입니다. 생도 기숙사(화랑관) 입구에 있습니다. 생도들은 오전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갈 때, 점심을 먹으러 생활관에 올 때,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갈 때, 다시 생활관으로 들어올 때마다 이 상을 수없이 마주합니다. 육사 생도들은 지금도 항일투쟁정신을 충실히 기리며 사관생도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에서 한국군의 뿌리를 말했습니다만 지금 한국군은 정치권과 군 수뇌부의 무관심과 불통으로 인해 뿌리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 육사에서도 생도들의 자퇴(自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3·4학년들이 많습니다. 심각합니다. 정치인들은 동상이 아니라 이런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군의 뿌리를 규명한 김세진 작가는 이 불편한 진실이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안다. 그럼에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존경해 생애 처음으로 돈을 주고 샀던 책도 《충무공 정신》이었다”며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실천하기 위해 퇴직금을 털어 일본어와 일본을 공부했다. 국내외 온갖 독립운동 유적과 사적지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이다. 앞서 2016년에는 4년의 육사 생도 생활을 다룬 책 《나를 외치다!》도 출판했다. 그는 군을 사랑하기에 역설적으로 군을 떠났다고 말한다. 예비역 장교로서 책임감을 갖고 사회에서 활동한다면 동료 군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고향이 어딘지를 물었더니 아버지(고 김영수 육군 대령)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기에 자기 고향은 ‘코리아’라고 답했다. 여러 사람과의 소통창구로 유튜브 채널 ‘코리아세진’을 운영하고 있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문재인 정권, 공군 역사도 흔들려했다

‘공군 창설 7인’ 기리는 전통 깨고 모든 전투비행단에 최용덕 동상 건립 추진

⊙ 역대 공군참모총장들 반대로 공사·공군교육사에만 최용덕 흉상 세워
⊙ 공사총동창회에서 수여하는 상도 ‘보라매상’에서 ‘최용덕상’으로 변경
⊙ 김정렬, 일본 육사 나와 초대 공사 교장·공군참모총장 역임… 돈암동 김정렬 자택에서 공군 태동
⊙ 최용덕, 의열단 출신의 독립운동가… 초대 국방부 차관, 공군참모총장 지내

張浩根
1946년생. 공군사관학교(17기) 졸업, 전북대 정치학 박사 / 공군 작전사령부 참모장, 한미연합사 공군구성군사령부 부참모장, 공군 전투비행단장, 연합사 정보참모부장, 국방대학교 부총장, 공군 소장 전역, GE 군용엔진 동북아판매담당 전무이사·고문, 공군협회 연구위원장, (사)한국독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임 / 저서 《예방외교》

 ▲문재인 정권은 공군 창군의 주역으로 초대 공군참모총장 김정렬 장군이 아닌 최용덕 장군을 띄우면서, 2019년 공사에 최용덕 장군 동상을 세웠다. 사진은 제막식에서 축사를 하는 원인철 당시 공군참모총장. 사진=뉴시스/공군

 

10월은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하나 필자의 기억 속에는 군(軍)과 관련된 달로 자리 잡혀 있다. 대표적인 날이 국군의 날이다. 물론 개천절과 한글날도 있고, 유엔의 날도 있지만, 특히 1949년 10월 1일은 한국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독립하여 창설된 날이고, 1950년 10월 1일은 6·25전쟁 중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하여 북진(北進)을 개시한 날로써 10월 1일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날이다. 더구나 70년 전 10월 1일은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뜻깊은 날이기도 하고, 올해는 6·25전쟁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70년 되는 해이기도 해서 그 의미를 더한다.

이제 희수(喜壽)의 나이로 팔순을 바라보는 늙은 보라매 축에 속하는 필자는 1949년 10월 1일이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독립해 창군한 날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 서울에서 태어난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이날을 공군의 날로 기억하고 있다. 그 후 1956년에 육·해·공군을 통합해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하였다.

공군 창설의 7인

공군이 창설된 날, 즉 공군의 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이 어려운 창군을 누가 시작했는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1945년 해방을 계기로 중국, 일본, 만주, 미국 등지에 흩어져 있던 항공인들이 대거 귀국해 국내 항공 분야를 새롭게 일궈보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이들은 비록 소속과 출신 성분이 달랐지만, 대한민국 공군 창설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이들 중에서 공군 창설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공군 창설 7인’ 덕분이었다. 최용덕(崔用德·1898~1969년. 국방부 차관, 제2대 공군참모총장, 체신부 장관 역임), 김정렬(金貞烈·1917~1992년. 초대·제3대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주미 대사, 국무총리 역임), 박범집(朴範集·1917~1950년. 공군 소장 추서), 이근석(李根晳·1917~1950년. 공군 준장 추서), 장덕창(張德昌·1903~1972년. 제4대 공군참모총장), 이영무(전 육군항공사령관), 김영환(金英煥·1921~1954년. 공군 준장 추서) 등이 그분들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세 분(최용덕, 김정렬, 김영환)의 공로가 가장 컸다”라고 김두만(金斗萬) 장군(6·25전쟁 100회 출격, 제11대 공군참모총장)은 회상한다. “왜냐하면, 당시 김정렬이 주도했던 돈암동 자택 모임에서 ‘공군 창설 7인’으로 명명된 사람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그곳에 모여서 공군 창설을 실질적으로 주도해나갔기 때문이다. 또 그곳은 국내에 있던 항공인들이라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다녀갔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김정렬 장군이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돈암동 자택에 대해 김두만 장군은 2017년 그의 회고록에서도 이렇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모임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집안 인심이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항공인들의 방문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었고 식사와 잠자리 제공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 공군 창설은 그들 가족의 따듯한 ‘밥 인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고맙고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작은 부탁으로 “더 늦기 전에 김정렬 장군의 돈암동 자택을 찾아낸 후, 그곳에 ‘이곳이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발상지입니다!’라는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워놓고 죽고 싶다”고 했다.

공군 창설의 발상지 ‘돈암동’

 ▲서울 동선동에 있는 공군 창군 발상지 표지석과 동판을 살펴보는 필자.

 

공군본부(이하 공본)에서는 공군 창군 70주년을 기념하여 (2019년 9월 19일) 창군 발상지 표지석을 설치했다. 필자는 표지석 장소를 찾아가 보았다. 표지석은 동대문을 지나 성신여대로 가는 큰길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도로(서울 성북구 동선동, 과거에는 돈암동)의 작은 빌딩 앞 보도에 있었다. 첫 느낌은 매우 초라해 보였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러나 공군에서 외부에 크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소규모 행사로 설치한 것은 매우 섭섭하고 아쉬웠다. 그래서 우리 연배의 예비역들은 이런 역사적인 행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이곳 답사가 필자에게 뜻깊은 이유는 또 있다. 1980년대 말 필자가 미국 워싱턴 대사관에서 공군무관으로 근무할 때, 고(故) 김영환 장군(김정렬 장군의 동생, 1954년 비행사고로 순직)의 부인을 자주 뵈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공군 창설을 논의할 때 김영환 장군 부부도 돈암동의 부모님 댁에서 함께 살았다고 김두만 장군은 기억하고 있었다.

해방 후 미 군정이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국방경비대와 해상경비대를 만들어, 육군과 해군은 그들의 토대가 마련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공군의 경우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항공 기술이라는 것이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시작된 것이라 이런 기술이 우리나라에 있을 리가 없었다.

‘공군 창설 7인’은 항공부대 창설을 승인받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나이들이었음에도, 장교 최하위 계급인 소위로 임관해 군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대를 창설시킨 후에는 독립을 위해 항공기 도입과 같은 전력(戰力) 증강에 전력(全力)을 다했다. 그 결과 1948년 9월 미군으로부터 L-4 연락기 10대를 인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락기로 여순반란 사건에 참가해 활약한 공을 인정받아, 더 나은 성능의 L-5 연락기 10대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49년 10월 1일 마침내 공군이 독립하였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었다. 비록 1600명의 병력과 20대의 연락기, 그리고 연간 유지비가 1만 달러 정도로 초라했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공군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이었다. 김정렬 장군이나 김두만 장군 모두 그의 회고록에서 해방 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군의 독립은 기적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공군 창설의 7인’

 ▲최용덕 제2대 공군참모총장

 

공군은 전통적으로 공군 창설의 주역 7인 중에서 어느 한 분을 콕 집어 창설의 아버지라고 내세우지 않아 왔다. 8·15해방 후 중국, 일본, 만주, 미국 등지에 흩어져 있던 항공인들이 대거 귀국해 불모지의 국내 항공 분야를 일궈보려고 노력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한 분을 창설의 주역으로 내세우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고참 예비역들 사이에는 김두만 장군처럼 은연중에 창군에 공이 많았던 김정렬 초대 공군참모총장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분들이 많았다. 김정렬 장군은 일본 육사(陸士)를 나온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전략가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시절이던 2019년 11월(19일) 갑자기 최용덕 장군을 ‘공군 창군의 아버지’라고 내세우면서 공군사관학교와 공군교육사령부에 동상을 건립했다. 대부분 예비역은 알지도 못했다. 코로나19의 만연으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필자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후에 알려진 이야기는 이렇다. 2019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공군 모든 비행단에 최용덕 장군 동상을 건립한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그러자 역대 공군참모총장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최용덕 장군은 ‘공군 창설 7인’의 한 분으로 존경받는 분인 건 맞다. 최 장군은 일제(日帝)강점기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러고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펼쳤고, 항공학교에 입교해 조종사가 됐다.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도 고위직에 있었고, 해방 후에는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하여 공군을 창군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 장군은 당시 최연장자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인 높은 인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최 장군은 초대 국방부 차관을 거쳐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공군 선후배들이 항상 부르는 ‘공군가’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 장군은 김정렬 장군보다 19세 연장자로 대우를 받았지만, 특별한 업적은 없었다.

2019년 갑작스러운 최 장군 동상 건립은 추측건대 2018년 육사 홍범도 외 4인 흉상 건립과 일맥상통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정권에서 중국·만주 독립군 출신들을 부각시키면서 일본군 출신의 흔적을 지우려던 시도의 하나로 보인다.

 

늦게나마 나이 먹은 예비역(늙은) 보라매들이 이런 식으로 공군 창설의 역사를 흔드는 것을 바로잡으려고 움직이고 있다. 직접적인 동기는 금년도 3월 공사 졸업식에서 ‘최용덕 상’이라는 명칭의 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공사 졸업식에는 공사총동창회장이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상이 있는데, 원래는 ‘공사총동창회장상’이었다가 ‘보라매상’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이 상의 이름이 어느 사이엔가 ‘최용덕 상’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총동장회장이 선배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거듭 말하거니와 필자는 최용덕 장군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분도 공군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선배이다. 하지만 공군은 전통적으로 ‘공군 창설의 7인’ 모두를 ‘공군의 아버지’로 기려왔는데,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누구의 흔적은 지우고 누구는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정렬 장군

 ▲김정렬 초대·3대 공군참모총장

 

필자는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할 때 김정렬 장군을 두 번 만나 뵌 적이 있다. 당시 공군의 원로들이었던, 워싱턴 보라매 선배들은 공군 역사의 산증인이신 김 장군님께 더 늦기 전에 자서전을 쓰라고 권했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김정렬 장군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1949년 1월에 육군항공사관학교(1949년 10월 1일 공군이 독립하자 공군사관학교로 명칭 변경)를 개설하고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1949년 4월 육군항공사관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항공의 경종》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주변에 북한의 위협을 각성시킨 바도 있었다. 그는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진 차원 높은 군사 전략가였다.

1949년 10월 1일 공군이 독립하자 그는 초대 참모총장에 임명되었고, 이임 후에도 전역하지 않고, 도쿄의 극동공군사령부 연락단장으로 갔다. 그리고 그 시절의 미군 고위층과의 인맥은 후에 대방동 공군본부를 신축하고, 한국 공군이 F-86F 세이버(Saber) 최신예 제트전투기를 보유하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 공군에 F-80 슈팅스타(Shooting Star)를 주려고 했었다. 이처럼 공군 초창기 기록을 보면 공군 창설을 주도하고 정착시킨 분이 김정렬 장군이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공군의 군번 1번(50001번)인 김정렬 장군을 기리는 기념물은 거의 발견할 수가 없다. 계룡대 공본 대회의실에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는 말은 들은 바 있다. 내년이면, 공군 창설 75주년이다. 이때를 기념하여 ‘공군 창설 7인’ 중의 한 분이고, 초대 공군참모총장과 초대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김정렬 장군의 기념물 건립 논의를 다시 해보는 것은 어떠할는지 생각해본다. (과거에 공군 창군 60주년, 공사 개교 60주년을 맞아 1기생 선배들이 김정렬 장군 동상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한 바 있었다.)

혹자는 김정렬 장군이 일본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비난한다. 이 때문에 전(前) 정권에서는 공군의 역사에서 그분을 지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2005~2009년 특별법으로 설치했던 대통령 소속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완성한 1005명의 친일파 명단에 그분의 이름은 들어가지 않았다.

김정렬 장군을 기리자는 것은 특정인을 특별히 기억하자는 것이 아니다. 모두 함께 기리고 보존해야 될 공군의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우리 공군은 광복군 출신, 일본군 출신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는 분들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 그분들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지켰다. ‘공군 창설의 7인’ 가운데 박범집, 이근석, 김영환 세 분은 하늘에서 산화했다.⊙

월간조선 11월 호

 

 

11-06 땅굴은 대한민국이 최고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북한 땅굴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이 무력화해야 할 하마스의 땅굴이 북한의 기술로 건설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북한이 기술을 수출할 정도로 대단한 땅굴 건설 실력을 갖고 있는지 착각할지 모른다.


▲평양 지하철 노선도. 1987년까지 총연장 34km의 2개 노선과 17개 역을 만든 이후 경제난으로 연장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현실은 어떤가. 공교롭게 북한은 최근 지하터널을 자랑했다. 지난달 노동신문은 평양 지하철이 개통 50주년을 맞았다며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민의 지하궁전, 지하 평양을 일떠세워 준 어버이 수령들의 하늘 같은 은덕을 잊지 마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 지하궁전의 확장은 36년 전에 멈췄다. 1967년부터 1987년까지 20년 동안 총연장 34km의 2개 노선과 17개 역을 만들었는데 이후엔 더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평양 지하철은 대동강을 건너지 못하는 반쪽짜리다. 대동강 남쪽의 동평양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통에서 소외된 2등 시민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북한은 대동강 관통 노선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하저터널이 붕괴돼 100여 명이 죽는 참사를 포함해 다섯 차례의 시도에도 끝내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이 없어 평범한 지하철 연장 작업도 못 하는 지금 실정에선 하저터널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국에는 북한이 서울 지하철까지 연결하는 비밀 땅굴을 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자면 서울과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개성공단 인근에서 시작해도 약 40km나 남쪽으로 조용하게 파고 들어와야 한다. 대동강 하저도 뚫을 기술이 없는 북한이 한강이나 임진강 바닥을 폭약도 안 쓰고 삽과 마대로 파서 넘었다는 이야기다.

난제는 그뿐이 아니다. 숱한 버력은 어떻게 처리하며, 수십 km 밖에서 땅굴의 물을 퍼낼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양수기는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 군사분계선 이북을 손금 보듯 하는 우리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1983년 탈북해 땅굴 관련 증언을 남긴 신중철 대위 이후 3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더 왔지만, 땅굴을 파는 데 동원됐거나 또는 사돈의 팔촌 중에 관여했다는 증언은 없다. 한국에서 발견된 북한 땅굴 4개는 모두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1990년에 발견된 마지막 땅굴도 굴착 형태로 봐서 다른 땅굴과 건설 시기가 같은 것으로 판명됐다.

김일성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땅굴 때문에 고전하자 적의 배후에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파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북한이 판 땅굴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남방한계선조차 넘지 못하고 발각됐다. 가장 많이 내려온 것이 군사분계선에서 1.5km 내려왔다.

 

땅굴의 용도는 선제공격용이다. 북한이 남침으로 한국을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1970년대 중반까지였다. 이후엔 한미연합군과 격차가 너무 벌어져 선제공격으로 남침한다는 꿈을 접은 지 오래다. 금강산발전소 건설을 위해 45km의 도수터널을 판 것이 마지막 대규모 땅굴 건설이었는데 군단급 병력이 1996년까지 10년 동안 동원돼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겨우 완성했다. 북한의 땅굴 기술은 수십 년 전 수준에 멈춰 있다.

지난해 10월 김정은은 동서 대운하를 파겠다고 전 세계에 큰소리를 쳤지만, 실제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게 귀신도 모르게 서울 지하철까지 땅굴을 연결했다고 일각에서 두려워하는 북한의 진짜 실력이다. 오히려 최근까지 열심히 땅굴을 판 하마스가 북한에 땅굴 건설 비법을 전수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북한의 땅굴을 대단하게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사실 세계 최고 수준의 땅굴(터널) 건설 능력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다. 세계를 돌아보면 우리나라처럼 면적당 터널이 많은 나라도 없다.

서울처럼 인구 밀집도가 높고 고층건물이 꽉 찬 도시의 하부에는 지하철 터널이 겹겹이 거미줄처럼 건설돼 있다. 고속터미널역처럼 이미 있던 지하 노선들까지 땅속에서 엮어 하나의 역으로 재창출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50km가 넘는 철도 터널도 건설사 한 곳만 들어가 41개월 만에 완공한다. 지금도 서울 지하 40∼50m 깊이에 최고 시속 200km로 열차를 달리게 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터널이 3개 노선이나 뚫리고 있다.

이런 우리가 아직도 망치와 정으로 갱도를 파는 북한에 신비감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땅굴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1-09 “K-방산에 써달라” 100만 달러 기부한 강춘강 여사 애국

재미교포 강춘강(80) 여사가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노력해온 과학기술자들에게 감사한다”며 국방과학연구소(ADD)에 100만 달러 기부를 결정한 것은 나라 사랑 정신을 새삼 일깨워준다. ADD 창립 멤버로 일하다 이민 간 뒤 필라델피아에서 교육자로 일해온 강 여사는 한국 무기의 폴란드 수출 뉴스를 접한 뒤 ADD에 유산 기부 의사를 밝힌 편지를 보냈고, 최근 방한해 약정서를 썼다.

ADD는 지난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위해 설립한 연구소로 K-방산 수출 신화를 이끄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군의 날 시가행진 때 첫선을 보인 전술핵폭탄급 위력의 현무 시리즈도 ADD 작품이다. 강 여사는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자주 들러 브리핑을 받던 일, 해외에서 귀국한 인재들이 밤을 새워 연구했던 일을 회고하면서 “한국 안보를 지키는 데 ADD가 많이 노력했다”며 “방산의 성장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앞서 원로 배우 신영균 씨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끈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을 위해 땅 4000평을 내놓은 뒤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강 여사도 “내 기부 결정이 한국 국방연구 분야 기부 릴레이 시작점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용 돈 풀기 재원을 마련한다며 정찰위성 등 북한 도발 대응을 위해서 필수인 핵심무기의 개발 예산을 깎겠다고 한다. “북핵 위협에 대비하려면 국방 연구개발이 중요하다”는 강 여사의 애국적 K-방산 제언에 민주당부터 귀 기울이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11-09 3개 전쟁에 ‘외주 국방’ 리스크 확대… 韓, ‘동맹+자주’ 안보 함께 가

 

美 최우선 대외정책은 中 패권 방어… 우크라·중동·대만戰 이어 한반도전쟁 전면 개입 불가능
한국, 동맹 바탕 위에 자체 방위 역량 키워야… 대북 감시·정찰과 미사일방어망 강화 급선무

 미·중 패권 대결로 시작된 신냉전 국제체제 속에 3개의 전쟁이 등장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신냉전의 불씨를 지난해 유럽 무대로 확산시킨 우크라이나 전쟁, 그 불길이 중동의 화약고로 옮아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만 전쟁이다.

3개 전쟁은 모두 자유민주진영과 전체주의진영 사이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신냉전 체제와 직결돼 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3개 전쟁이 한국의 ‘외주 국방’ 리스크를 키운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중동전쟁은 한국이 강력한 동맹의 토대 위에 자주 안보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발 묶인 미국

과연 미국은 3개의 전쟁을 동시에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만일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은 한국을 지원할 여력이 있는가.

냉전시대 미 국방부는 2개의 큰 전쟁과 1개의 작은 전쟁을 동시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군사력을 유지했었다. 예컨대 구소련의 서유럽 침공과 북한의 남침이 동시에 발생하고 중동에 작은 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 후 군사력이 감축되면서 미국의 목표는 1개의 큰 전쟁과 1개의 작은 전쟁을 수행하는 쪽으로 옮아갔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국내외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2021년 돌연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청산하고 서둘러 철수를 단행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중국과의 대규모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다른 전쟁들을 조기에 종식하고 동아시아 지역에 군사력을 집중시켜야 할 긴박한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현시점에서 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전쟁은 무엇보다도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전쟁이다. 따라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에 깊이 개입해 큰 전쟁을 벌일 여력은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는 군수 지원만 제공하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시아파 이슬람 세력의 참전을 막고자 항모전단을 파견해 억제하고 위협하는 수준의 제한적 개입에 머무는 것이다.


◇능력과 의지

현재 미국이 당면한 3개 전쟁의 당사국인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은 모두 미국과 동맹조약을 맺지 않고 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거의 동맹에 준하는 지원을 받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유민주진영의 일원이며,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합치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쟁에 임하는 세 나라의 자세와 능력은 크게 다르다. 이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 또한 그러한 요소들을 감안하는 맞춤형 지원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크라이나는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는 강하나 자체 군사력이 매우 취약해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무기 공급을 받아 어렵사리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와 능력이 모두 강해서 미국이 제한적 측면 지원만 제공해도 자력 방위가 가능한 나라다. 이에 비해 대만은 군사력도 중국과 비교가 안 되고 국가 방위 의지도 매우 취약하다. 야당인 국민당과 그 지지세력은 중국의 대만 흡수통일 움직임에 대해서도 별 거부감이 없다.

한국은 위 세 가지 모델 중 어디에 해당할까. 한국은 세계 6위 군사 강국이니 능력 면에서는 이스라엘 모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세의 위협에 대응하는 의지가 이념과 정파에 따라 크게 다르고, 자주국방보다는 미국에 의존하거나 중국에 굴종해 나라를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니 자세 면에서는 대만 모델에 가깝다.


◇전쟁의 교훈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 그리고 언제든 가능성 있는 대만 전쟁 등은 한국의 안보에 많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무엇보다 유사시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함께 싸워줄 강력한 동맹국을 보유할 필요성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었다면 러시아의 침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한과 중국이 한국을 함부로 범하지 못하는 것도 무엇보다 한·미 동맹의 위력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안보를 동맹국 미국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이스라엘처럼 국가 방위에 대한 확고한 주인의식을 갖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향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미국의 지원은 핵 억지력 투사와 대중국 견제 및 해·공군 지원에 국한되고, 지상전은 한국군이 전담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대만과 한국에서 2개의 큰 전쟁이 동시 발발할 경우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에 주력하고 한반도 전쟁은 세계 6위 군사력을 가진 한국의 손에 맡길 가능성도 있다.

그 연장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과 같은 기습공격에 대비하는 대북 정찰과 조기경보 능력이 강화돼야 한다. 북 핵무장에 따른 감시·정찰 강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문재인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로 그 능력을 자진 포기함으로써 북핵 대비도 대북 정찰도 미국에 떠맡기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줬다.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미사일방어망

3개 전쟁은 북한의 핵 공격과 원거리 미사일 공격을 차단할 고도의 다단계 미사일방어망 구축이 절실한 과제임을 일깨운다. 이스라엘 방공망이 하마스의 로켓포탄 5000발을 막아내지 못한 건 당연한 일로서 결코 미사일 방어의 실패가 아니다.

미사일 방어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탄도미사일을 방어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며, 지금도 이스라엘과 미국 항모전단의 미사일방어망은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반군이 이스라엘로 쏘아대는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인 한국의 미사일방어망은 북한이 보유한 1000발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모두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시급히 질적·양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에 이어 이르면 2025년에 발발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중국의 대만 침공 전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 전쟁이 현실화하면 이는 진영 간 전쟁의 양상을 띠게 되므로 한국이 팔짱만 끼고 구경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경우 중국이 미국의 군사력 분산을 노리고 북한을 부추겨 대남 군사 도발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다각적 대비

북한이 처한 경제난과 식량·유류난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의 대남 도발은 전면적 군사 대결보다는 미사일·방사포·무인기·잠수함 등을 이용한 원거리 국지적 도발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므로, 미사일방어망 강화 등 다각적인 대비태세의 마련이 시급하다.

세종연구소 이사장, 전 외교부 북핵 대사


■ 용어설명

‘신냉전’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했던 1950∼1990년의 ‘냉전’과 이후 한 세대에 걸친 ‘탈냉전’을 지나 다시 양 진영이 대립하는 세계 체제. 미·중 패권 대결이 본격화한 2020년이 신냉전 기준.

‘3개 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간 중동 전쟁, (미래의) 중국-대만 전쟁을 가리킴. 여기에 남북 군사 충돌을 가정한 ‘3+1개 전쟁’, ‘3+α 전쟁’도 나오고 있어.


■ 세줄 요약

발 묶인 미국 : 신냉전 체제 속에 우크라이나·중동·대만戰 등 ‘3개 전쟁’론이 등장. 미국은 3개의 전쟁을 동시에 감당할 여력과 능력이 없어. 미국에 가장 중요한 건 중국의 패권 확장을 위한 대만 침공을 막는 것.

능력과 의지 : 전쟁에 임하는 당사국의 국방 능력과 의지는 모두 달라. 우크라이나는 의지는 있으나 능력 부족. 이스라엘은 두 가지 모두 있고, 대만은 모두 없어. 한국은 국방 의지가 정파에 따라 다르고 동맹 의존성이 강해.

3개 전쟁의 교훈 : 전쟁은 동맹의 소중함과 함께 국가 방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줌. 특히 중동전에서 보듯 기습공격에 대비한 감시·정찰 능력과 다단계 미사일방어망 강화가 절실한 상황.

문화일보 이용준 저널리스트

 

11.14 1만원의 기적, 위트컴 장군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이 열린 11일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에서 시민 1만8300여 명의 성금 모금을 통해 조성된 '리차드 위트컴 장군 조형물'의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2023.11.11./뉴시스

 

이름은 때로 호칭이나 식별 이상의 특별함을 담고 있다.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안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Wall of Remembrance)’가 그렇다. 2006년 10월 제막된 이 추모명비에는 6·25전쟁 때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산화한 17국의 유엔군 전몰장병 4만896명(실종자 포함) 이름이 적혀 있다.

 

‘AUSTRALIA/ABELL, DONALD WILLIAM… WYOMING/SAMUEL L WOLFE.” 호주군 아벨씨를 시작으로 미국 와이오밍주 출신 새뮤얼씨까지 알파벳 순서로 새겨진 이름들은 높이 1.5~2m, 폭 0.73~1.2m 크기의 화강석 140개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추모명비 입구엔 이해인 수녀가 쓴 짧은 헌시가 적혀 있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지난 11일 70년 전 이들의 이름에 ‘오늘의 이름’이 답했다. ‘감경태… 황희경, 무명… Unkown.’ 이날 제막된 리처드 위트컴(Richard S. Whitcomb) 유엔군 산하 미군 제2군수사령관 동상 성금 기부 시민 1만6000여 명의 명단이다.

 

위트컴 장군은 6·25 막바지인 1953년 부임했다. 그해 11월 27일 발생한 부산역 대화재 때 군수창고를 열어 피란 이재민 3만여 명을 도왔다. 상부 허락 없이 군수물자를 멋대로 민간인에게 나눠줬다는 이유로 미국 의회에 불려가 추궁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은 총칼만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다”라고 당당하게 말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예하 88개 부대와 지역 보육 시설을 연결해 전쟁고아들을 후원했고, 메리놀병원·성분도병원·고(故) 장기려 박사가 초석을 다진 복음병원 등의 건립을 도왔다. 협소한 부지에 있던 부산대를 지금의 금정구 장전동 50만평(165만㎡)으로 이사 갈 수 있도록 땅도 마련해 줬다. 퇴임 후 한국에 정착해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엔기념공원에 묻혔다.

 

그의 활동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부산에서 훈장 추서 운동이 일었고 정부는 작년 11월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내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 시민 위원회’가 꾸려졌고, “1인당 1만원씩, 3만명 참여로 3억원을 모으자”는 캠페인이 시작됐다. 누군가 SNS에 “국가 예산 말고 기업들 팔 비틀지 않고 70년 전 부산역 대화재 때 수혜를 입은 3만명, 딱 그만큼만 3억원을 모은단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참여다. 1만원의 기적이 한국병을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썼다.

 

1년도 안 된 지난 6월 10일 3억원이 달성됐다. 1만3000여 명이 참여했다. 7월 말 모금 완료까지 모두 1만8300여 명이 3억6500만원을 모았다. 1인당 1만원씩은 아니었지만, 진영과 당파를 떠나 부산 시민들에게는 ‘1만원의 기적’이 이뤄졌다.

조선일보 박주영 기자

 

 

11.15 김정은 향해 “무력 공격 시 공동 대응” 밝힌 유엔사 17국

▲한·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 2023.11.14/뉴스1

 

신원식 국방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을 비롯한 유엔군사령부의 17국 대표가 참여한 회의가 14일 서울에서 처음으로 개최됐다. 참가국들은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 중단을 요구하며 “유엔의 원칙에 반하여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 행위나 무력 공격이 재개될 경우 공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한미동맹과 유엔사 회원국 사이의 연합 훈련을 활성화, 상호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증대하기로 합의했다.

 

유엔사 회원국은 6·25 때 전투병을 파병한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벨기에·네덜란드·그리스·튀르키예·필리핀·태국·콜롬비아·호주·뉴질랜드·남아공 14국과 의료지원단을 보낸 이탈리아·노르웨이·덴마크 3국이다. 북한과 중공 침략에 맞서 함께 피를 흘렸던 나라들이 7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유사시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나서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북한이 또다시 남침할 경우,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유엔사 회원국 17국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김정은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북한이 끊임없이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유엔사 17국 대표들이 모여 공개적으로 북한에 경고한 셈이다.

 

유엔사 창설 73년 만에 유엔사의 존재감을 알리는 회의가 처음 열린 것은 만시지탄이다. 1950년 북한의 남침 직후 유엔 결의로 창설된 후, 정전협정을 관리해 온 유엔사는 한국 방위에 필수적 조직이다.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는 북한이 남침하면 유엔 안보리 차원의 결의가 없어도 자동으로 항공모함, 핵 폭격기 등을 동원해 개입하게 돼 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유엔사 대표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는데,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에서도 국방 장관들이 참여하도록 격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한국군이 유엔군사령부 참모부에 참여, 유사시 우리 입장이 더욱 반영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엔사 확대에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독일은 의료지원단 파견이 정전 이후 이뤄졌다는 이유로 2018년에야 의료지원국에 포함됐다. 독일은 그 후 유엔사 회원국에도 가입하려 했으나 문재인 정부가 거부했다. 북한 눈치를 보면서 반대한 것이다. 환영받을 것으로 생각한 독일은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을 당해야 했다. 독일이 회원국이 되면 G7 중 일본을 제외한 6국 전부가 유엔사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이 세계 10위권 주요국이 된 대한민국을 함께 지킨다는 상징성은 매우 클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15 中 업체가 국내 언론 가장해 반미 내용 유포, 배후 있을 것

▲중국 언론홍보업체 Haimai가 만든 위장 국내 언론사 웹사이트./국정원

 

중국의 언론 홍보 업체가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사이트 38개를 개설해 미국을 비난하거나 중국을 옹호하는 글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실제 국내에 존재하는 지역 언론사와 이름·인터넷 주소가 유사한 가짜 사이트를 만들고, ‘주한미군 세균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깜깜이 실험’ ‘한국은 주권 국가인가? 아니면 미국 식민지인가?’ ‘중국 정부의 코로나 공조 성과’ 등 친중·반미 콘텐츠를 유포했다고 한다. 국내 여론 조작을 시도한 것이다. 국정원이 해당 사이트를 차단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민간 업체라고 하지만 중국 체제 특성상 배후에 중국 공산당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넘어갈 일이 아니다. 배후를 규명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사이버 심리전을 펼치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일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강화된 한·미 동맹에 균열을 내려는 각종 시도의 하나였을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의 목적 달성을 위해 국제 규범은 물론 보편적 인권도 완전히 무시하는 나라다. 전 세계 50여 국에 100개가 넘는 비밀 경찰서를 몰래 운영했다. 정찰 풍선을 띄워 미국 등 세계 40여 국의 영공을 침범했다. 남중국해에선 주변국 해역을 침범해 가며 인공섬을 만들었다.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수시로 넘나들고 ‘사드 보복’도 모자라 ‘3불(不)’을 강요했다. 남의 나라 주권은 침해하면서 한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평화 원칙’을 언급했다고 ‘불타 죽을 것’이라고 극언을 했다.

 

자국 내에선 간첩 범위를 확대한 법을 만들어 외국인을 자의적으로 체포·구금하고 외국 기업을 맘대로 수사한다. 미·중 갈등이 첨예화할수록 중국의 행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최근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가 우리 청와대와 외교부를 해킹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번 일은 가짜 뉴스에 취약한 국내 인터넷 환경 탓도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한·중 축구 경기를 문자 중계하던 국내 포털에서 90% 넘는 사람이 중국을 응원한다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외국으로부터의 여론 조작 시도를 철저히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인터넷 댓글에 국적이나 접속 국가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15 北 도발 날 골프·주식거래 했다는 김명수의 부적절 처신

해군 작전사령관에서 대장 승진과 함께 파격적으로 발탁된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15일 열린 가운데, 김 후보자의 주식 거래 및 골프 등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청문회를 앞두고 야당 측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일반인이라면 문제 삼기 어려울 정도다. 주로 상장지수펀드(ETF) 주식인 데다 거래 규모가 크지 않고, 골프를 쳐 문제가 된 날도 주말이었다. 그러나 엄혹한 안보 환경 속에서 군령권(작전 지휘·명령)의 정점인 합참의장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태다. 명령 한마디에 때로는 목숨도 걸어야 하는 군대에서 최고 지휘권자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불가결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 2년간 52차례에 걸쳐 총 5700만 원의 주식 거래를 했고, 북한이 각종 미사일 도발을 자행했던 지난해 1월 5일과 1월 17일에도 했다고 한다. 당시 국방부 국방운영개혁추진관이던 김 후보자는 “작전 조치 요원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군인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로 비친다. 김 후보자는 2018년 이후 5년 동안 77차례 군 골프장을 이용했는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쏜 지난해 3월 5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을 한 지난해 5월 7일에도 태릉골프장에 간 것으로 드러났다고 야당이 주장했다. “미사일 도발 발생 전 이용을 종료했거나, 상황이 종료된 후 이용했다”고 했는데 군색하다. 특히 도발 후에도 골프를 쳤다면 더욱 그렇다. 김 후보자의 자녀가 11년 전 학교 폭력에 가담해 징계 처분을 받은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강한 군대’보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을 군대’를 지향하면서, 군 최고 지휘관의 인재 풀이 좁아진 건 사실이다. 그 때문에 현 정부는 최근 대장 7명 보직을 중장에서 진급시켜 기용하는 고육책도 동원했다. 그렇더라도 인사 검증에 구멍은 없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11-19 북한판 하마스는 ‘5천여 정찰군’…‘사이버 정찰군도 7200여명’

北 정찰군은 정찰총국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최고사령부 직속 기관
정찰총국 잠수함, 공기부양정, AN-2기, 헬기 등 다양한 침투수단 보유

"전략군 로켓 공격, 특수작전군 작전 앞서 정찰군 잠수함 공격 등 기습작전 전개"

지난 10월 7일 동력형 패러글라이더와 오토바이까지 동원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계기로 ‘북한판 하마스’로 불리는 북한 정찰총국 소속 정찰군 및 ‘사이버 정찰군’이 재조명되고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작전 사례는 북한에 의해 100% 변형 적용돼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며 "기습공격에 능한 북한 정찰군은 약 5000여 명, 사이버 정찰군은 모두 7200여 명에 이르며 이들은 전략군의 로켓공격, 특수작전군의 작전에 앞서 이들이 보유한 잠수함, 공기부양정, AN-2기, 헬리 등 다앙한 침투수단으로 맨 먼저 기습공격하고, 사이버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지난 10월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합참은 북한이 하마스식 전술을 사용할 것에 대비한 시나리오와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북한의 기습작전이 단행된다면 먼저 주목해야 할 전력이 정찰총국 소속의 이른바 ‘정찰일군(꾼)’, 즉 ‘정찰군(偵察軍)’"이라고 소개했다. 정찰군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5년 6월 개최된 ‘제1차 정찰일군대회’를 통해서다. 당시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이 ‘제1차 정찰일군대회’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당시 연설을 통해 "우리의 미더운 정찰정보일꾼들과 전투원들은 당이 맡겨준 가장 어렵고 위험한 정찰정보전선을 지켜 청춘도 가정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우고…(중략) 기어이 원쑤를 치고 이 땅에 온 세계가 울어러 보는 백두산 통일강국을 반드시 일떠세우라"고 독려했는데, 김 위원장이 언급한 ‘정찰일꾼’이란 대남공작원(간첩), 정찰정보요원과 대남침투 전문 전투원 등 간첩을 포함한 정예화된 특수침투요원들을 일컫는다.

유 원장은 "김정은이 정찰일군대회를 최초로 개최하고 가장 보안이 요구되는 대남침투공작에 종사하는 요원들과의 기념사진까지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그 배경은 남조선혁명의 최일선에서 이를 비밀리에 수행하는 대남침투요원들을 격려하고 더 나아가 대남공작의 자신감을 대내외에 과시해 우리를 위협하려는 대남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2015년 1차 대회 이후 현재까지 정찰일군대회 개최 사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유 원장에 따르면 북한의 정찰군은 정찰총국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로 편재된다. 정찰총국의 공식명칭은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조선인민군 586군부대)으로 북한군 최고사령부의 직속 기관이다. 대외적으로 북한군 총참모부 정찰총국이라 알려져 있고 정찰총국장이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을 겸임하고 있으나, 정찰총국의 대남사업에 대해서 총참모장은 전혀 개입하지 못하고 김정은의 직접 지휘를 받는 독립부서이다. 유 원장은 "일부 북한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정찰총국을 국방성(구 인민무력부) 소속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분석"이라며 "정찰총국은 북한 정권의 목표인 이른바 남조선혁명을 위한 대남(스파이)공작의 총본산"이라고 진단해다.

정찰총국은 총국장(중장 리창호), 수 명의 부총국장, 정치위원, 수 개의 국(육해상 정찰국, 정찰국, 해외정보국, 기술정찰국, 후방국 등) 및 예하 독립 정찰부대로 구성되어 있다. 본부는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하 정찰부대는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다.

정찰총국 정찰국에는 대남침투 전담 해상연락소(4개소)와 제22전대 등 잠수정(함) 침투부대 및 제1 정찰대대 등 수 개의 정찰대대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전연지역(전방) 4개 군단(1·2·4·5군단)에 4개의 정찰대대를 파견하고 있다. 인력 규모만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찰군의 임무는 군사정찰 외에 대남침투정보 수집, 대남침투를 통한 요인납치, 암살, 폭파 등이다. 정찰군은 10개 여단 규모의 특수작전군(5만여 명)보다 뛰어난 침투작전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소수 정예군이다.

유 원장은 "현재 북한 김정은이 심혈을 기울여 육성하고 있는 ‘3대 정예군’은 전략군과 특수작전군, 그리고 정찰군"이라며 "전쟁이 시작된다면 정규군 공격에 앞서 이 3개 군의 기습작전이 단행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전략군의 미사일 등 로켓 공격과 특수작전군의 작전보다 앞서 침투역량이 탁월한 5000여 명의 정찰군과 잠수함 공격 등 다양한 기습작전이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정찰총국이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 공기부양정, AN-2기, 헬기 등 다양한 침투수단으로 전·후방지역에 침투해 주요 부대·시설 타격, 요인 암살, 후방 교란 등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유 원장은 "앞으로 사이버 기습 남침도 주목해야 한다"며 "오프라인상에서의 기습 공격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기습 공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특히 특수작전군(구 11군단·폭풍군단)과 같은 비정규 특수전부대의 후방 침투 및 교란 등도 예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찰군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부대가 정찰총국 기술정찰국 소속의 ‘사이버 정찰군’"이라고 밝혔다. 사이버 정찰군을 운용하고 있는 기술정찰국(일명 전자정찰국)은 해킹, 사이버테러 등 사이버공작, 암호통신 분석, 통신감청 등 대남공작 관련 기술연구, 개발, 기술공작을 실행하는 부서이다. 특히 ‘110연구소’는 정찰총국의 사이버공작을 전담하는 부서로 종래 121소(일명 기술정찰조)와 100연구소를 통합한 부서인데, 사이버공간을 활용해 한국·미국 등에 대한 전략정보 수집, 댓글 공작 등 사이버심리전, 디도스 공격, 사이버 테러 등을 전담하고 있다. 북한의 사이버 작전 전담인력은 정예 공작인력 1700여 명에 지원 및 기술 인력까지 합산하면 72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정찰총국 기술정찰국에 배속돼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 원장은 "사이버 정찰군이 기습작전을 감행한다면, 제1 우선 순위는 사회교란의 핵심인 통신망, 교통망, 금융망, 방송망, 에너지망, 의료망, 사회안전망 및 민간 상용망 등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휴대폰 및 전화가 두절되고 지하철, 버스, 항공 등 대중교통망과 TV, 라디오 등 방송망이 마비되면 우리 사회에 혼란과 교란이 확산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에너지망이 해킹당해 전력이 송전되지 못하면 아파트나 상가가 소등되고 공장 가동이 중지되며 암흑세계가 연출될 것이다. 금융망이 해킹당하여 은행에 가도 돈을 인출할 수 없고, 의료망이 마비돼 병원에 가도 진료내역을 못 찾고 진료조차 받을 수 없으며,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수단으로 이동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세상이 초래될 것이다. 이 사실을 북한 김정은이 모를 리 없다.

북한 사이버 정찰군은 중국 선양, 다롄, 광저우, 베이징 등 전 세계에 무역회사 등으로 위장한 ○○개의 사이버공작 거점을 두고 사이버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엔 연 3조 원 규모의 사이버 금전탈취도 자행하고 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11-21 북 위성 도발 임박…9·19에 막힌 UAV 정찰부터 재개해야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며, 대한민국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또 다른 도발이다. 군 당국과 한미동맹 차원에서, 나아가 국제무대에서 강력히 대응하는 게 당연하다. 북한은 오는 22일부터 다음 달 1일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라고 21일 일본 해상보안청에 통보했다. 기상 여건만 좋으면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발사한다는 점에서 위성 발사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위성 궤도 진입엔 실패했지만, 북한은 지난 5월과 8월 정찰위성 발사 때에도 일본 측에 통보한 뒤 곧바로 실행했다.

엄중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우선, 합동참모본부가 20일 이례적인 ‘대북 경고 메시지’를 통해 “국가안보 위협 행위”로 규정하고 “안전보장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힌 대로 안보 태세를 크게 강화하는 일이다. 특히 “9·19 합의에 따라 접적지역 정보감시 활동에 대한 제약을 감내하는 것은 군의 대비 태세를 크게 저해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중요하다. 따라서 9·19 합의 중 가장 문제 조항인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고정익 항공기 및 무인기(UAV)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효력 정지’를 당장 실행해야 한다. 9·19 합의에 묶여 원정 훈련을 감내했던 K-9자주포 실사격 훈련도 배치 현장에서 실시해야 한다. 북한은 이미 완충구역 내 포사격 위반 110여 회, 군사 합의에 따른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 위반 3400여 회 등으로 9·19 합의를 묵살해 왔다.

다음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거래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일이다. 지난 9월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의 포탄 등 무기 지원이 이뤄진 데 대한 반대 급부로 러시아의 기술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에 대한 무기 공급과 북한에 대한 군사기술 제공 모두 국제법 위반이다. 북한이 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리면 대남 공격 정확성을 높이게 되고, 미 본토 공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도 획기적으로 향상된다. 9·19 합의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실효성 있는 전방위 대책을 마련해 실행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11-21 文정부, 2018년 3개월 졸속협상… 北입장 그대로 반영해 9·19 합의

 9·19 합의 어떻게 성사됐나
“수도방비 무력화 우려” 비판

윤석열 정부가 효력 정지를 검토하는 9·19 남북군사합의는 2018년 문재인 정부가 3개월짜리 졸속 협상을 거쳐 체결한 것이다. 체결 때부터 북한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북한이 일본 정부에 통보한 대로 조만간 정찰위성 발사를 실시하면 정부는 이 합의 효력을 정지한다는 방침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취재를 종합하면,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선언을 합의한 뒤 후속 조치로 같은 해 9월 약 3개월의 협상을 거쳐 9·19 합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육·해·공 최전방 방어선을 조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군사분계선(MDL) 기준 5㎞ 이내 일체의 포병사격 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의 전면 중단, 비무장지대(DMZ)의 감시초소(GP) 11개 우선 철거 등이 합의에 담겼다.

9·19 합의에는 북한의 입장만 그대로 반영됐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MDL을 기준으로 평양까지의 거리는 140㎞, 서울까지는 40㎞인데 정찰 비행 금지 구역을 MDL 기준 20㎞까지로 설정해 우리 수도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해상 완충수역에 백령도와 연평도가 포함되면서 해당 일대에서 우리 군의 포 사격과 해상 훈련이 금지된 점 또한 9·19 합의가 남측에 불리하게 체결됐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9·19 합의를 어길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남북이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점은 북한이 수차례 합의를 위반하도록 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지난 9월 국방부는 북한이 지금까지 해상 완충수역 내 포사격,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의 미사일 발사, 무인기 침범 등 총 17차례의 위반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일본 해상보안청 해양정보부에 통보한 대로 오는 22일부터 다음 달 1일 사이 정찰위성 도발이 현실화할 경우 9·19 합의의 효력 정지에 들어갈 방침이다. 9·19 합의는 남북 대화에 몰두했던 문 정부의 레거시와 다름없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는 사실상 군사 충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11-21 “北 도발땐 상응대응”… 南 손발만 묶는 9·19합의 단계폐기 나선다

▲北은 어디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임박한 21일 새벽 경기 파주 오두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마을 일대 모습. 주민들이 밭 사이로 이동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 정부, 9·19 효력정지 경고

北, 3차 정찰위성 발사 임박
무인기 침투·해안포 발사 등
남북합의 수차례 위반해 와

안보 위협에도 감시자산 묶여
강행땐 비행금지 해제 등 조치


 북한이 오는 22일부터 내달 1일 사이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21일 일본에 통보함에 따라 정부는 북한이 3차 정찰위성을 실제 쏠 경우 즉각적인 군사분계선(MDL) 비행금지구역 해제 등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9·19 남북군사합의) 부분 효력정지 대응에 들어가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북한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면서 사실상 우리 감시자산은 무력화시켰던 9·19 남북군사합의는 5년여 만에 단계적으로 폐기 수순으로 들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21일 당국에 따르면 북한의 3차 정찰위성 발사 직후 개최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결정에 따라 시행될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 첫 단계는 MDL로부터 서부 지역은 10㎞, 동부 지역은 15㎞까지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해제인 것으로 파악됐다. 합의 내용을 보면 전투기·정찰기 등 고정익 항공기의 비행금지구역은 MDL 기준 동부 지역은 남북 각각 40㎞, 서부 지역은 20㎞까지다. 무인기(UAV)는 MDL 이남 10㎞(서부), 15㎞(동부)까지 비행이 금지됐다. 공군 유인 정찰기의 경우 비행금지구역으로 인해 RF-16 ‘새매’와 금강 정찰기의 정찰 범위가 동부 지역 기준 40㎞ 남쪽으로 밀려 대북 감시 범위가 크게 축소됐고, 최전방에서 운용하는 UAV 역시 무인기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돼 발이 묶였다. 비행금지구역 효력정지에 들어가면 UAV가 MDL 5㎞까지 접근이 가능해 북한의 장사정포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MDL 인근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군단급 이하 사단, 연대, 대대급 부대가 북한군 동향을 감시하는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 장사정포가 갱도에 나와서 사격을 하는지, 북한군이 전방에 배치돼 이동하는지 알 수 없어 한국군을 전방지역에서 ‘깜깜이군’으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한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감시정찰 전력이 마비되면서 장사정포가 있는 갱도, 북한군 주요 지휘소, 탄약 저장시설에 대한 공대지 타격 능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다.

반면 북한은 2018년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를 반복적으로 위반해 왔다. 2019년 11월 창린도 해안포 사격을 시작으로 △중부전선 전방 감시초소(GP) 총격도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미사일 발사 △수도권 지역 소형 무인기 침투 △해안포의 포문 폐쇄 등 위반행위가 지금까지 34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군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강호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지금까지 북한이 보인 행태는 합의 준수에 대한 그 어떤 의지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70)가 이날 부산에 입항한 것은 비행금지구역 해제에 따른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에 대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는 차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11-22 북 도발로 이미 사문화한 ‘9·19’ 전면 효력 정지 급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평양에서 채택된 ‘9·19 남북 군사 합의서’는 당시에도 수많은 허점 때문에 실효성을 의심 받았다.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조항이 없고, 남측에 불리한 비대칭성이 심각하며,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책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합의마저 북한은 대놓고 묵살·위반하면서 이미 사문화(死文化)한 지 오래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21일 밤 북한의 기습 정찰위성 발사를 계기로 9·19 합의 일부에 대해 효력 정지를 결정한 것은 미흡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정부는 22일 한덕수 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군사합의 제1조 3항의 효력 정지를 결정했고, 영국을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이 곧바로 재가함으로써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북한의 발사 직후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건의한 내용이었다. 해당 조항은 ‘모든 기종의 군사분계선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핵심이다. 한 총리는 “국가 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 조치”라고 했다. 또 “우리 법에 따른 지극히 정당한 조치”라고도 했다. 남북관계발전법 제23조 3항에 명시된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정부의 이번 일부 효력 정지 결정은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를 고려한 고육책 성격도 있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9·19 합의를 위반한 북한의 지난 5년 도발 전과(前過)를 볼 때 이번 조치는 미봉책이다. 군사분계선 일대 항공기와 무인기 정찰만 겨우 복원해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면 오판이다.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연습 중지, 해상 포사격과 기동훈련 중지를 규정한 제1조 2항을 그대로 둔 것은 연평도 등에서의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 중단을 지속한다는 말이다. 이래선 안 된다. 9·19 합의는 거듭된 북한 도발과 불이행으로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 남북군사당국 직통전화 운영,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남북관리구역 3통(통행·통신·통관) 보장 등 장밋빛 합의는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 도발 대응에 족쇄가 된 9·19의 전면적 효력 정지가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11.22 군사분계선 비행 금지 풀었다... 9·19 합의 일부 효력정지 돌입

한총리 주재 국무회의 의결

 ▲한덕수(가운데) 국무총리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안건이 의결됐다. /연합뉴스

 

정부가 22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9·19 남북군사합의에서 우리 군의 대북 정찰 능력을 제한하는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북한이 21일 밤 이른바 ‘군사정찰위성’을 기습 발사한 데 따른 대응 조치다.

 

정부는 이날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9·19 군사합의 제1조 제3항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 조항은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20㎞(서부 지역)~40㎞(동부 지역) 공역에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내용으로, 한·미의 항공기를 활용한 감시·정찰 능력이 북한보다 월등한 상황에서 한국에 크게 불리한 조항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한 총리는 “북한이 우리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어젯밤 소위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다”며 “이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북한의 어떠한 발사도 금지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자,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도발”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더 이상 9·19 군사합의에 따라 우리 군의 접경 지역 정보·감시 활동에 대한 제약을 감내하는 것은 우리 대비 태세를 크게 저하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한 총리는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가 “우리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자 최소한의 방어 조치이고, 우리 법에 따른 지극히 정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9·19 군사합의의 일부 효력 정지를 통해 과거 시행하던 군사분계선 일대의 대북 정찰·감시 활동이 즉각 재개됨으로써, 우리 군의 대북 위협 표적 식별 능력과 대응 태세가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도발을 멈추고 남북 공동 번영의 길로 나와주기를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정부는 9·19 군사합의 조항의 효력 정지가 국무회의 심의·의결과 북한에 대한 통보로 가능하다고 봤다. 남북관계발전법 제2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남북 간 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해당 합의서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체결됐거나 국회 비준을 거친 경우에는 효력 정지 역시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9·19 군사합의를 체결한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서는 별도의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없고 원칙과 방향을 담은 선언적 합의”라며 국회 동의를 건너뛰었다. 따라서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역시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각) 영국 국빈 방문 행사 중간에 화상으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대응 조치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소위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에 대한 감시·정찰 능력 강화와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성능 향상에 그 목적이 있다”며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실행에 옮기는 조치”라고 했다. NSC는 9·19 군사합의 1조 3항을 정지시키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정찰·감시 활동을 복원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11-22 북 정찰위성 본질과 압도적 대응 당위

 

신범철 前 국방부 차관


북한이 21일 밤 10시42분쯤 군사정찰 위성을 발사했다.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어떠한 발사도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 시기를 노려, 그것도 북한 스스로 발사를 예고한 시간보다 몇 시간 앞서 강행한 기습 도발이다. 무엇보다 올 들어 3번째 발사하며, 마침내 위성체의 궤도 진입에 성공한 북한의 기술력을 고려할 때 국가안보 차원의 심각한 도전이다.

북한의 군사정찰 위성 발사는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개발 실험이다. 과거의 실험이 추진체의 성능 테스트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위성 발사체의 자세 제어 등을 통해 ICBM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우리에 비해 크게 뒤처진 감시정찰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목격되는 북·러 간 군사 기술 협력은 설상가상이다. 러시아로부터 제공받은 기술이 북한의 감시정찰 능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간 북한은 ‘9·19 군사분야 부속합의서’를 국군의 대북 감시정찰 능력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삼으며 시간을 벌어 왔다. 그러면 이제 우리도 대북 감시정찰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야 한다. 9·19 합의는 군사분계선(MDL)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고정익 항공기는 20∼40㎞, 헬기 같은 회전익 항공기는 10㎞, 무인기는 10∼15㎞ 등이다. 이 거리만큼 국군은 북한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9·19 합의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겐 가장 큰 위협인 북핵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내용도 담지 못한 채 북한이 두려워하는 우리의 감시정찰 능력을 제한했다는 데 있다. 그 출발부터 비대칭적이고 불리한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이 합의를 수없이 위반하며 위협했고, 이제는 우리의 전략적 우위마저 따라잡으려 감시정찰 능력을 키우고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이날 영국에서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 건의대로, 9·19 합의의 제1조 3항에 대한 효력을 정지시켜 대북 감시정찰 능력을 복원한 것은 마땅한 조치다. 북한의 군사정찰 위성 발사는 우리에 대한 감시정찰 능력 강화와 ICBM 성능 향상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9·19 합의의 일부 조항을 정지시키면 북한의 군사 도발을 초래해서 한반도에 긴장을 다시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거 북한의 도발 양상은 이러한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대화 여부와는 무관하게 기습적으로 도발해 왔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북한의 도발은 남북 대화 유무가 아니라 국군의 대비태세와 직결된 문제였다. 북한군 수뇌부가 ‘도발을 해봐야 승산이 없다’고 인식할 때 비로소 예방할 수 있다는 게 그간의 교훈이다.

우리 정부의 신속한 9·19 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 조치는 당연하다. 북한의 이번 군사정찰 위성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제1718호와 제1874호 등 수차례의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도발이기 때문이다. MDL 일대의 감시정찰 복원은 그 첫 번째 조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북측에 전할 수 있고 북한군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파악해 추가 도발을 예방할 수 있다.

문화일보 

 
 
 
 

11-22 軍, MDL 대북정찰 재개… ‘9·19 족쇄’ 풀렸다

▲北 정찰위성 도발 북한이 21일 저녁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한 ‘천리마-1형’ 로켓이 화염을 뿜으며 솟구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2일 “정찰위성 발사는 공화국 무력의 전쟁준비 태세를 확고히 제고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국빈방문중 NSC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호텔에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은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안을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연합뉴스

 

국무회의, 北기습발사 대응 일부 효력정지… “최소한 방어조치”
尹, 영국서 재가… 軍, 즉각 무인기 투입해 장사정포 동향 파악

정부는 22일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9·19 남북 군사합의 중 우리의 대북정찰능력을 제한하는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즉각 대북 정찰 자산을 투입해 북한 접경지역 감시 강화에 들어갈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9·19 군사합의 효력의 일부를 정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빈 방문 중인 영국 현지에서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안을 전자결재로 재가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이번 조치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상공에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내용의 9·19 합의 제1조 제3항 효력이 정지됐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효력의 일부를 정지하고자 한다”면서 “우리 국가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이자 최소한의 방어 조치이며, 우리 법에 따른 지극히 정당한 조치”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국무회의 및 대북통지 등의 절차를 거쳐 오늘 오후 3시부로 9·19 군사합의 1조 3항은 효력 정지된다”고 밝혔다. 군은 남북 통신선이 두절 상태인 만큼 언론통지 형식으로 북한에 대한 통보를 대체했다. 정부는 이르면 이날 오후 즉각 MDL 일대에 무인기(UAV) 등을 투입해 북한의 장사정포 동향 파악 등 활동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2018년 11월 1일 이후 5년 이상 손발이 묶였던 한·미의 항공기가 감시·정찰 활동에 들어가면서 북한의 기습 도발 우려에 더욱 철저히 대비할 수 있게 됐다. 한·미·일은 현재 부산항에 정박 중인 미 해군 핵추진항공모함 칼빈슨호와 한국 해군 및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참여하는 해상 훈련을 실시하고자 관련 내용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칼빈슨호와 같은 미 해군 제1항모강습단 소속인 미국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잠수함 ‘산타페함’(SSN-763)도 이날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했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이 전날 밤 10시 42분에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문화화일보 김유진 기자, 정충신 선임기자

 
 
 

11.22 북한 군사정찰위성 도발, 9·19 합의 효력정지 불가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둘러 보고 있다. 당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절실한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러시아의 군사 기술을 받는 비밀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AP 연합뉴스]

 

어제 3차 발사 강행, 안보리 결의 정면으로 위반

비행금지 족쇄 풀고, 포 사격훈련도 정상화해야

 

북한이 어젯밤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22일 0시부터 12월 1일 0시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라고 통보한 후 당일 발사를 강행했다. 지난 5월과 8월에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연이어 실패한 북한은 당초 10월에 3차 발사를 공언했었다. 발사를 강행하면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하겠다는 한국 합참의 최후통첩과 미국 측의 공개 경고를 보란 듯이 무시함에 따라 강력히 대응해야 마땅하다.

 

북한의 발사에 앞서 우리 정보당국은 최근 북한의 발사 준비 동향을 미리 포착, 이번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은 상태다. 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강변하지만,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하는 군사정찰위성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번 발사는 유엔 안보리의 기존 대북 결의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오는 30일 우리 군의 첫 독자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앞두고 선수를 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북한은 2021년 초음속 미사일과 다탄두 유도기술을 포함한 '5대 국방 과업'의 하나로 군사정찰위성 개발을 공언했지만, 그동안 핵심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러시아에 재래식 포탄 등을 제공하는 반대급부로 일부 기술적 도움을 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만약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북한에 민감한 국방 기술을 전수했다면 매우 무책임한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북한이 결국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함에 따라 대통령실이 어제 경고한 취지대로 9·19 군사합의의 즉각적인 효력 정지를 선언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9·19 합의에 서명하고도 북한은 그동안 무인기 기습 침투, 서해 완충구역에서 110여 회의 포 사격 등 번번이 약속을 깨뜨려 왔다. 반면에 우리 군은 불합리한 족쇄 때문에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감시할 역량이 큰 제약을 받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발사 도발을 함에 따라 9·19 합의 사항인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효력부터 바로 정지하고 대북 정찰·감시 활동에 나서야 한다. 9·19 합의 때문에 그동안 백령도·연평도 등 서해 도서에 배치한 K9 자주포 등 주요 화기를 화물선·바지선에 싣고 경북 포항까지 왕복 1200㎞의 원정을 떠나 훈련해야 했던 비정상 상황도 신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동맹인 미국의 협력도 필수다. 미군의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어제 부산항에 입항, 북한 동향을 예의주시해 왔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합의에 따른 한·미·일 삼각 공조도 이번에 가동했을 것이다. 최근 한·미·일 국방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연내에 실시간 공유하기로 한 만큼 준비된 시스템의 작동 여부도 철저히 점검하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11.23 北, 9·19합의 전면 파기선언…“강력한 무력·신형 장비 전진 배치”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연합뉴스

 

북한은 23일 9·19 남북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며 이 합의에 따라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국방성은 이날 성명을 통해 “현 정세를 통제 불능의 국면으로 몰아간 저들의 무책임하고 엄중한 정치 군사적 도발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방성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취하였던 군사적 조치들을 철회하고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남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충돌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전적으로 ‘대한민국’것들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소한 우발적 요인에 의해서도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군사분계선 지역의 정세는 ‘대한민국’정치 군사 깡패무리들이 범한 돌이킬 수 없는 실책으로 하여 수습할 수 없는 통제 불능에 놓이게 되었다”고 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1일 밤 10시 42분 군사정찰위성 1호기 ‘만리경-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해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다고 22일 발표했다. 이에 우리 군은 같은 날 오후 3시를 기해 9·19 남북군사합의 1조 3항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효력정지를 의결했으며, 즉각 최전방에 감시정찰자산을 투입해 대북 정찰을 재개했다.

 

국방부는 “9·19 합의로 인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접경지역 북한군 도발 징후에 대한 우리 군의 감시정찰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까지 발사해 우리에 대한 감시정찰능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군은 9·19 합의 이전에 시행하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 감시·정찰 활동을 복원할 것”이라며 “북한 도발에 대한 상응 조치이고 최소한의 방어적 조치”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가연 기자

 

 

11-23 北 “위성 수 개 더 발사”… 우리도 ‘24시간 정찰 체제’ 서둘러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전날인 21일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은 11월21일 22시42분28초에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에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라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그제 밤 군사정찰위성을 기습 발사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어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운반 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며 이 위성이 다음 달 1일부터 정식 정찰 임무에 돌입할 것이라고 전했다. 5월과 8월 연이은 실패 후 석 달 만에 세 번째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9·19 남북 군사합의 중 대북 정찰 능력을 제한하는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고, 곧이어 군사분계선 인근에 무인정찰기를 전격 투입했다.

북한의 첫 정찰위성 발사는 군사 공격의 효율성과 정밀성을 높일 ‘눈’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남한의 주요 군사기지 동향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움직임을 들여다볼 우주에서의 감시·정찰 활동에 첫발을 떼게 되는 것이다. 위성의 해상도는 3∼5m급의 조악한 수준으로 추정되지만, 향후 기술력을 높여 더 정밀한 영상 정보들을 확보하는 건 시간문제다. 러시아가 기술 지원에 나선 정황들도 포착되고 있다.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연달아 쏘아 올리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장거리 로켓의 발사 기술은 기본적으로 ICBM 기술과 같아 언제라도 전용 가능하다. 위성의 반복적 발사가 핵무기를 장착한 ICBM의 성능 향상으로 직결된다는 의미다. 핵 개발을 비롯한 군사 도발을 지속해온 북한이 이를 발사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지만, 제재가 무력화한 틈을 타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5년 내 다량의 군사정찰위성을 다각 배치하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른 시일 내 여러 개를 추가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군사정찰위성을 확보한 북한의 향후 도발 강도는 더 세질 가능성이 있다. 고도화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우리 군의 대북 감시·정찰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그간 미국의 감시 자산에 의존해온 우리 군도 30일 첫 독자 정찰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모두 5기의 정찰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위성 주기에 따라 발생하는 정찰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북한 내부를 24시간 들여다볼 수 있는 촘촘한 위성 감시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9·19 군사합의의 일부 효력정지를 빌미로 한 북한의 국지 도발 가능성에도 각별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는 만큼 군 당국은 복원된 감시, 정찰 활동을 통해 북측 동향을 면밀히 살펴가며 대응해야 할 것이다. 다음 달부터 가동되는 한미일 실시간 미사일 정보공유 체계도 차질 없이 운용돼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11.23  9·19 합의 일부 파기만으로 북한 ‘질주’ 막을 수 있나

군, 어제 오후 휴전선 일대 감시 정찰 재개해

더 수위 높은 조치 검토하고, 추가 도발 대비해야

정부가 어제 오후 3시부터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대북 감시·정찰 활동을 재개했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그제 밤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하자 남북 군사합의서의 일부 효력을 정지하며 즉각 대응에 나선 것이다.

 

남북은 2018년 9월 휴전선 일대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군사합의서를 채택했다. 비무장지대 안의 근접감시초소(GP) 철수 ▶군사분계선 5㎞ 이내 포사격 및 야외 기동훈련 금지 ▶공중·해상 적대행위 금지 구역 설정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남북 유해발굴 추진 등이 골자다. 그러나 이런 합의 이후에도 북한은 수시로 포문을 개방하고, 지난해 말엔 무인기를 서울에까지 보내는 등 오히려 군사적 긴장을 고조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는 북한에 보내는 경고이자 한국군의 감시·정찰 능력 확충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을 동원해 위협 수위를 높이는 북한이 제한적인 군사합의서 효력 정지에 위축돼 추가 도발을 중단할지는 의문이다. 당장 북한은 군사합의서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한국군의 최후통첩을 보란 듯 무시하며 오히려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점을 앞당겼다. 나아가 북한은 빠른 시간 안에 군사정찰위성을 추가로 쏘고, 연말에 열리는 노동당 전원회의에 관련 계획을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군사합의서 효력 정지나 국제사회의 경고에 눈도 깜짝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북한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저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따라서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긴장 고조로 일관한다면 9·19 남북 군사합의서 전체의 효력 정지는 물론이고, 보다 수위가 높은 수준의 다양한 조치를 검토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선 오는 30일 미국에서 예정한 한국군의 첫 정찰위성 발사를 성공시켜 독자적인 감시체계를 갖추는 건 필수다. 또 전략폭격기·F-22스텔스기·잠수함 등 북한이 꺼리는 미군의 전략무기를 수시로 동원해 대북 억제력을 키우는 것도 시급하다.

 

정부의 독자 제재나 군사합의서 효력 정지에 대해 북한이 무시 전략으로 일관한다면 대북 압박을 위한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마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어제 성명을 통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기술을 포함한 우주발사체(SLV)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과 NSC는 우리 동맹 파트너와 긴밀히 공조해 상황을 평가하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은 우리 군의 정찰활동 재개를 빌미로 오히려 전방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 고조에 나설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군 당국이 북한의 기습적인 군사행동을 감시 및 억제하고, 철저히 대응하는 태세를 갖춰야 할 때다.

중앙일보 사설

 

 

11-23 급기야 北 9·19 전면 파기…野 이런데도 尹정부 탓할 건가

북한이 급기야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군사정찰 위성 발사 이틀 만인 23일 북한은 국방성 성명을 통해 “지상과 해상, 공중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취했던 군사적 조치들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도발에 9·19 합의 부분 정지로 절제된 대응을 한 데 대해 북한은 ‘전면 철회’로 맞받으며 충돌 사태 발생 시 전적으로 남측 책임이라고 오히려 협박까지 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9·19 합의 일부 효력 정지에 대해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규탄한다는 말은 한 줄 붙였을 뿐, 도발한 북한보다 9·19 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한 윤 정부를 나무란 것이다. 권칠승 수석 대변인은 22일 “대통령의 의무는 긴장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공포를 조장하지 말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일각에서는 선거 상황이 나빠지면 혹시 과거 북풍처럼 휴전선에 군사 도발을 유도하거나 충돌을 방치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한다”면서 시중 얘기를 전하는 식으로 북풍설을 꺼냈다. 윤 정부가 북풍을 유도할 수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다.

민주당은 북한이 9·19 합의 후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완충구역 내 포사격 위반 등을 한 것에 대해선 눈감은 채 ‘9·19는 한반도 평화의 안전핀’이라고 강변해왔다. 윤 정부가 ‘최소한의 방어 조치’로 꺼낸 9·19 부분 정지에 대해 전쟁 공포 조장이라고 반발하는 민주당은 이번에도 북한의 9·19 전면 파기를 두둔하며 윤 정부를 탓할 것인가. 민주당이 수권 정당이 되려면 김정은의 시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안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안보 족쇄였던 9·19 합의가 북한의 파기 선언으로 사문화한 만큼, 윤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오판(誤判)이 낳은 잘못된 유산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국방부는 북한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 감시 정찰 활동을 9·19 이전으로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접경지역에서의 육·해·공 훈련도 전면 정상화해야 한다.

문화일보

 
 
 

11-23 사문화 ‘9·19 합의’ 당초부터 文 실책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북한 국방성이 23일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지상·해상·공중에서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한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군사정찰 위성 발사에 대응해 9·19 합의 제1조 3항을 효력 정지시킨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한 반발이다. 그러면서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더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며 ‘남북 간에 돌이킬 수 없는 충돌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전적으로 대한민국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에 체결된 9·19 남북 군사합의는 전선에서의 대북 군사정보 획득을 어렵게 한다는 등 문제점 지적이 많았다. 9·19 합의의 핵심은 육상·해상·공중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금지였기 때문이다. 9·19 합의로 고정익 정찰기, 헬기, 무인기의 비행금지 구역이 확대되자 국군의 정찰 자산은 족쇄가 채워졌다. 사단 및 군단 무인기들도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이에 따라 우리는 휴전선 직후방에 있는 북한의 미사일과 장사정포, 그리고 병력에 대한 정보 획득이 어려워졌다. 결국, 북한의 기습에 취약한 구조가 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이런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9·19 합의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며 준수했다. 금지된 지역에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포도 쏘지 않았다. 심지어 서해 5도의 해병대원들은 K-9 자주포 훈련을 하기 위해 100억 원 넘는 국방비를 들여 육지로 싣고 나와야 했다.

우리가 비행금지구역을 준수하면서 정보 획득을 제한받는 가운데, 김정은은 지난 21일 한밤에 ‘정찰위성’을 발사해 우주 궤도에 진입시켰다. 국군과 일본 자위대, 그리고 태평양상의 미군에 대해 실시간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김정은은 “만리를 굽어보는 ‘눈’과 만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을 수중에 틀어쥐였다”며 감격해 했다.

앞서 북한은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를 하기로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적대행위 금지지역에서의 포사격이 금지돼 있지만, 북한은 이것도 무시했다. 북한은 2022년 10∼12월 중 동·서해의 해상완충구역에 무려 8차례에 걸쳐 각종 포와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그 수를 합해 보면 포탄 사격 1300여 발, 방사포 10발, 그리고 단거리탄도미사일 25발 등이다. 단거리탄도미사일 중 1발은 북방한계선(NLL) 이남 우리 영해 부근에 떨어져 울릉도에서는 공습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12월 말에는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침범해 서울 상공까지 비행했다. 9·19 합의를 해 놓고도 3400회나 위반한 북한은 그 합의를 벌써 사문화했던 것이다.

정부가 북한의 감시정찰 위성 발사를 계기로 MDL 상공에서 모든 기종의 비행금지를 규정한 9·19 합의 제1조 3항의 효력을 정지시켰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이제는 북한이 사실상 9·19 합의 파기를 먼저 선언한 이상 9·19 합의의 전면 백지화를 밝혀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책임은 수천 회의 합의 위반에 이어 정찰위성을 쏘고도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함으로써 9·19 합의를 전면 백지화한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적반하장인 북의 무력 도발에 대비, 정찰활동을 포함한 군의 대비태세를 더욱더 강화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11-23 천안함 가짜뉴스 13년째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전사자 부모님 중에는 암 투병으로 50∼60대 초반 젊은 나이에 4명이 돌아가셨고, 2명이 암 투병 중에 있다.” “최근 수년간 유가족 중 9명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가짜뉴스 등에 의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무관치 않다.” 천안함재단과 자유민주연구원(원장 유동열)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개최한 ‘천안함 피격사건 가짜뉴스 대응과 호국보훈’ 세미나 현장. 이성우 천안함 46용사 유족회장과 윤공용 천안함재단 이사장이 천안함 유족 근황을 얘기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2018년 6월 한 언론 여론조사에서 이전 1년간 천안함 생존 장병 24명 중 절반인 12명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있다’고 했고, 그중 절반인 6명(25%)이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는 조사 결과도 소개됐다. 암적인 존재인 가짜뉴스가 생존 장병 및 유족들에게 한 2차 가해와 사회 전반에 끼친 폐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천안함 피격 후 13년째 가짜뉴스와 망언 제조자들이 제지받기는커녕 독버섯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한국적 사회병리 현상에는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윤 이사장은 “북한과 종북세력 및 가짜뉴스 전문가들은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하지 않고, 진실 그 자체에는 관심도 없다”고 개탄했다. 이어 “가짜뉴스 전문가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개인적 이익을 위해 맹목적으로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이 진실인 양 주장하며 비과학적인 음모론을 생산하고 무차별적으로 유포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 이상희 하사 부친 이성우 유족회장은 “유가족들은 우리 아들들의 희생에 대한 폄훼와 허위사실 유포, ‘북한에 사과해야 한다’ ‘부하들을 수장시켰다’ ‘경계 실패다’ 등 입에 담기 힘든 망언을 쏟아낼 때마다 폭침 당시 자식들의 처참한 얼굴이 떠오르고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괴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살아서 돌아온 장병들은 물론 저희 부모들 모두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저희 부모들은 세상 어디에다 아픔을 하소연도 못 하고 가슴속 깊이 응어리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의 천안함 피격사건 관련 조사 결과, 2010년 사건 발생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총 279건의 가짜뉴스가 있었으며 그중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니다’는 가짜뉴스가 전체의 65%인 총 181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유동열 원장은 “우리 사회에 천안함을 둘러싼 왜곡 선동과 가짜뉴스는 천안함 피격 도발을 부정·왜곡하는 북한 당국의 천인공노할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며 “가짜뉴스가 북한 당국의 반문명적 군사모험주의 노선에 면죄부를 주고 정당화하고 있다”고 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합동조사단의 발표를 왜곡·부정하는 가짜뉴스 제조자들의 무분별한 행태는 정부 당국의 공신력을 훼손하며, 정부와 국민을 이간질하는 폐해를 초래했다. 더구나 여야 갈등을 증폭시켜 정치 혼란도 가중시켰다. 유족과 사회를 병들게 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도록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문화일보

 
 
 

11-23‘위성도발’ 北의 적반하장 9·19 파기… DMZ내 GP도 다시 구축할 듯

▲북측 점검단이 지난 2018년 12월 12일 9·19 남북군사합의로 철거된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 남측 감시초소(GP)를 검증하고 있다. 23일 북한의 남북군사합의 완전파기 선언으로 DMZ 내부 1㎞ 인접 지역에서 철거된 남북 GP도 다시 구축될 전망이다. 뉴시스

 

■ 北 ‘9·19 합의’ 파기 선언

5년간 3000번 위반해놓고
北 “남측이 모든 책임져야”

신원식 국방 “9·19 효력정지
손실 1원이라면 이익은 1조”

북한이 23일 ‘9·19 남북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고 밝히며 합의 단계부터 북한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 논란이 됐던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완전 파기됐다. 그간 북한은 버젓이 합의를 위반해 왔음에도 남측만 합의를 준수, ‘안보의 족쇄’가 됐던 군사합의가 파기되며 ‘안보의 정상화’가 이뤄진 셈이다. 당장 우리 군 당국은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구축 재개 등 육·해·공에서 전방위적 대비태세 강화에 나설 전망이다.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지역에 더욱 강력한 무기 배치를 공언하고 나선 상황에서 우발적인 충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차원이다.

북한 국방성은 이날 성명에서 “상대에 대한 초보적인 신의도, 내외에 공언한 확약도 서슴없이 내던지는 대한민국 것들과의 그 어떤 합의도 인정할 수 없으며 상종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다시금 내린 결론”이라며 9·19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다. 전날 정부가 북한의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9·19 합의의 일부 효력을 정지하자 북한이 맞불 성격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숱한 합의 위반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 것들은 현 정세를 통제불능의 국면에로 몰아간 저들의 무책임하고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며 남쪽에 책임을 전가했다. 우리 국방부는 지난 5년 동안 북한이 17차례가 넘는 합의 위반 행위를 벌여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에 들어간 22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 제1항모강습단의 칼빈슨호에서 제1항모강습단장 카를로스 사르디엘로 준장으로부터 작전태세 브리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적반하장식 반발에 우리 군 당국은 9·19 합의로 묶였던 육·해·공 일대의 각종 훈련을 재개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우선 DMZ 내 GP 구축을 재개해 북한의 기습 도발에 대응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GP는 DMZ 내 지상·공중 활동을 감시하고 북한의 대남 침투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9·19 합의로 철거된 GP가 다시 설치되면 북한의 각종 침투전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지상에서는 MDL 5㎞ 구역에서 사격 등 기동훈련이 재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해상에서는 동·서해 포사격 및 기동훈련 재개와 함께 포신에 설치했던 덮개를 해제해 포문을 개방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북한은 2018년 9·19 합의 체결 이후 백령도와 연평도 등 우리 서북 도서를 겨냥해 북한 섬과 인근 내륙 해안에 배치된 포문을 지난 5년간 총 약 3400회 개방한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이 하루에 3∼4회, 매년 100여 회에서 1000여 회에 걸쳐 버젓이 합의를 위반하는데도 우리 군은 합의를 지키느라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셈이다.

공중에서는 전날 오후 3시를 기해 대북정찰 작전, 비행훈련이 정상화된 상태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날 비행금지구역 효력 정지에 대해 “1조 원의 이익이 있다면 그로 인해 초래되는 손실은 1원”이라고 강조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11-23 국방부 대변인 “北 9·19군사합의 파기선언은 적반하장 행태, 엄중 경고”

▲브리핑 중인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국방부 제공

 

"북한 조치 주시하며 대응조치 강구"

국방부는 23일 북한이 사실상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그 책임을 남측에 돌린 데 대해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이는 것에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군은 향후 북한의 조치를 예의주시하면서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 국방성은 이날 새벽 성명에서 9·19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뒤 "《대한민국》것들의 고의적이고 도발적인 책동으로 하여 9·19북남군사분야합의서는 이미 사문화되여 빈껍데기로 된지 오래"라며 자신들의 거듭된 합의 위반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채 남측을 비난했다.

전하규 대변인은 추후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남북 간 충돌이 예상된다는 지적에는 "억제는 힘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라며 "우리 군은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북한이 도발한다면 한미연합방위태세와 능력을 바탕으로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정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한 방어 조치라고 거듭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한 국방성의 성명이 9·19군사합의에 대한 "사실상의 무효화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기 선언을 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파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군은 북한이 전날 밤 11시경 평안남도 순안 일대에서 탄도미사일을 기습 발사한 것과 관련, ‘실패한 도발’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 미사일은 지상에서 발사되자마자 불과 수 킬로미터도 날아가지 못한 채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발사하자마자 실패했다고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며 "사거리와 기종, 의도에 대해서는 한미 정보당국이 분석 중에 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11.24 적은 안 지키고 우리만 지키는 ‘합의’는 안보 자해일 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1일 오후 10시 42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진행된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발사를 현지에서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이 예상대로 23일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했다.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른바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우리가 9·19 합의 일부를 효력 정지시킨 데 대한 반발이다.

 

북한 입장에서 9·19 합의는 이미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2018년 합의 이후 위반한 사례는 헤아릴 수도 없다. 북한은 해안포의 포문을 3400회 이상 개방하며 언제든지 쏠 수 있는 태세를 갖췄다. 금지된 실사격 훈련도 했다. 북한은 2022년 10월 이틀에 걸쳐 서해 해상 완충 구역에 약 600발의 포탄 사격을 가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북한이 보낸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서울 상공까지 침투했다. 이는 9·19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북한이 거의 매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과 정찰위성 발사도 유엔 안보리 결의의 정면 위반이다.

 

9·19 합의는 우리만 지켜 왔다. 우리 군은 서해에서 포 사격 훈련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포문도 폐쇄했다. 북한은 무시하는 이 합의를 지키기 위해 해병대가 연평도·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육지로 이동시켜 사격 훈련을 하느라 쓴 돈만 100억원이 넘는다. 이런 북한에 맞서 대북 감시·정찰 활동을 위해 9·19 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중지시킨 것은 최소한의 방어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정부가 ‘전쟁 불사’ 태세를 만들어 위기를 조장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22일 “일각에선 혹시 과거 ‘북풍’처럼 휴전선에 군사도발을 유도하거나 충돌을 방치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했다. 아무리 선거에 목을 매도 안보만은 예외로 해야 한다. 적(敵)이 지키지 않는 합의를 우리만 지키자고 하는 것은 안보 자해 행위일 뿐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야당은 없을 것이다.

 

북한은 국제 법규와 상호 합의를 지켜야 할 의무로서 대하지 않는다. 법규와 합의는 이용하는 수단이고 이용 가치가 없으면 즉시 무시한다. 이런 집단에 대처하는 가장 나쁜 방법이 그들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다. 큰 화(禍)를 부른다. 북에 대해선 협상을 하되 강력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최악에 대비해야 한다.

 

어제는 2010년 서해의 북이 느닷없이 방사포 170여 발을 발사, 민·군 4명이 사망한 연평도 포격 13년이었다. 북한은 9·19 합의 파기와 함께 기습 도발로 우리를 흔들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신속하고 단호하게 응징해 더 이상 도발로 이득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24 한반도비핵화선언 폐기도 필요하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前 통일연구원장

역시 북한은 기만과 기습에 강했다. 북한은 지난 22일에서 오는 12월 1일 사이에 정찰위성을 쏜다고 발표하곤 21일 한밤에 기습적으로 발사했다. 북한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695호, 제1874호, 제2087호 등을 또다시 여지없이 무시했고,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중단’에 합의했던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도 거듭 유린했다.

국무회의가 9·19 합의의 효력 일부 정지를 의결하기가 무섭게 북한은 23일 아침 기민하게 ‘전면적 파기’를 선언하고 ‘혹독한 대가’를 경고했다. 73년 전에도 그랬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간부회의를 소집해 “북침한 남조선 괴뢰군을 인민군이 격퇴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은 이미 새벽에 38선이 돌파한 인민군이 쾌속 남진하고 있을 때였다.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전면전·국지전 도발도 이런 식일 것이다. 세계는 10월 7일 이스라엘의 허를 찌른 하마스의 기습 테러에 혀를 내둘렀지만, 북한의 솜씨는 하마스가 흉내 낼 수준이 아니다.

이렇듯 국가안보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는 시기이기에 정부와 국방부가 유념해야 할 것이 많다.

우선, 북한의 군사정찰 위성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미 가공할 수준에 이른 핵 타격력에 ‘눈’을 다는 것이어서 핵 위협은 그만큼 가중된다. 지난해 12월 북한이 위성사진을 공개했을 때 우리 합참은 “군사적 가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능력을 감추고 있을 가능성, 러시아 기술로 급속히 성능을 개선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가 자신들이 갈급했던 탄약과 재래무기를 제공해준 북한에 우주 기술만 제공할 것으로 봐서도 곤란하다. 핵추진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극초음속미사일 등의 기술도 제공할 수 있다.

북한이 9·19 군사합의의 ‘전면 파기’를 선언한 이상, 우리도 똑같은 조치를 함과 동시에 공중 감시정찰 활동과 서북도서 지역에서의 군사훈련을 전면 복원해야 한다. 휴전선 감시초소(GP)들을 북한의 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늘리는 문제도 시급하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보고도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해 준다는 망상에 안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북한군 초소의 수가 우리의 3배에 가까운 상황에서 서로 11개씩의 초소를 철거한 것이나, 국군의 북침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격자인 북한을 향해 24시간 눈을 부릅떠야 하는 방어자인 한국의 공중 감시정찰 활동을 크게 제약한 비행금지구역에 합의하고는 ‘동일 숫자, 동일 면적’이므로 공정하다고 했던 것 자체가 우스운 말이었다. 북한이 ‘혹독한 대가’ 운운했지만, 서북도서방어사령부와 인천해역방어사령부의 경계태세 격상도 필요하고, 동원예비군 소집 훈련도 필요해 보인다.

차제에, 1991년 12월 남북이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한다. 북한은 농축·재처리는 물론 핵무기에 핵독트린까지 갖춘 ‘핵보유국’이 된 마당에 우리만 ‘농축·재처리 상호 금지’와 ‘상호 핵무기 생산 금지’에 합의한 공동선언을 끌어안고 있겠다는 것인가. 이를 정식 폐기함으로써 주권적 결정과 동맹 협의에 따라 언제든 농축·재처리 활동과 핵무장에 나설 수 있음을 내외에 선포해야 한다.

문화일보 

 

 

11.25 연평도 전사 해병 어머니 “나도 안보 불감증이었다”

▲지난 23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포격전 제13주기 전투영웅 추모 및 전승기념식에서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여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3일은 북한이 서해 연평도에 포탄 170여발을 쏟아부어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 13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전사한 해병대원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씨는 대전 현충원 추모식에서 “안보 위협 상황에서 누구도 희생의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절감한다”고 했다. 본지와의 통화에선 “내가 바로 ‘안보 불감증’이었다. 전방도 아니고 평생 광주에서 교사로 지냈다”며 “북한 도발에 따른 희생엔 예외가 없다는 걸 아들이 휴가 나오다가 그렇게 처참하게 전사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했다.

 

북한은 헌법과 노동당 규약에 ‘핵무력 고도화’와 ‘적화 통일’을 명시한 채 우리의 두 배가 넘는 120만 군을 거느리고 각종 재래식·화학·핵무기로 중무장한 집단이다. 불과 70여년 전 남침해 국토를 도륙한 뒤로도 셀 수 없는 무력 도발을 해왔다. 지금도 주민은 굶주리게 하면서 온갖 무기 만드는 데만 광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심각한 실상에 경계심을 갖는 국민은 많지 않다. 안보 불감증은 아마도 한국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질환일 것이다.

 

이 질환엔 민주당에 큰 책임이 있다. 이들은 북한의 남침도 ‘그럴 이유가 있었다’고 하고, 핵무기를 만들어도 ‘방어용’이라고 변호한다. 북핵이 그대로 있는데 대북제재를 해제하자고 한다. 북한이 도발하면 ‘우리 때문’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천안함 폭침을 일으켜도 ‘북한 소행일 리가 없다’고 했다. 도리어 ‘전쟁이냐 평화냐’는 선전으로 국민 불안 심리 자극에만 열중했다. 북에 현금을 못 줘 안달이었고 전 정권은 임기 내내 남북 이벤트에만 매달렸다. 그 사이 북은 한국 타격용 전술핵까지 완성했다.

 

이번 북의 정찰위성 발사와 정부의 9·19 합의 효력정지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대표는 러시아의 대북 군사 기술 제공을 두고도 “우리 정부의 대러 적대 정책, 적대 발언 때문 아니냐”고 했다. 러시아의 대북 지원은 한국의 대러 정책과 상관없이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을 지원한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문제를 호도해 우리끼리 내분을 일으키려 한다.

 

김오복씨는 “안보의 소중함을 모든 국민이 머릿속에 각인해야 한다”고 했다. 혈육을 잃고 난 뒤에야 안보 불감증에서 벗어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진심 어린 조언이다. 민주당이 들어야 할 고언이다. 하지만 추모식에 민주당 인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27 안보 위기 속 국정원의 1년 6개월 난맥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김규현 국정원장과 권춘택 1차장·김수연 2차장 사표를 수리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신임 1차장에 홍장원 전 영국 공사를 임명해 당분간 원장 직무대행을 맡기기로 했다. 국정원 2차장에는 황원진 전 북한정보국장이 임명됐다. 사진은 지난 1일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권춘택 1차장(왼쪽부터), 김 원장, 김수연 2차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해외 담당 1차장, 대북 담당 2차장을 전격 경질했다. 북한이 군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하고 9·19 군사 합의를 전면 파기한 상황에서 국정원 지휘부가 한꺼번에 교체된 것이다. 지난 6월 이후 내부 인사 갈등이 연이어 표출된 데 대한 지휘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한다. 최근 김 전 원장은 권춘택 전 차장에 대해 직무 감찰을 지시했는데, 인사 잡음이 보도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보안이 생명인 정보기관의 내부 문제가 외부에 표출된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은 끊임없는 인사 잡음에 시달렸다. 윤 대통령의 측근인 검찰 출신 기조실장은 임명 4개월 만에 돌연 사퇴했다. 전 정부 인사를 대거 물갈이하려는 김 전 원장 측과의 인사 갈등 때문이란 말이 무성했다. 지난 6월엔 대통령 재가를 받은 김 전 원장의 인사안이 번복됐다. 김 전 원장 측근이 부적절하게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가 안보에 헌신하라”고 지시했지만 최근 갈등이 재연됐다. 국정원은 정권 교체기마다 인적 교체로 몸살을 앓았지만 1년 반이 넘도록 인사 갈등이 이어진 것은 전례가 드물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고도화하고 군사위성까지 쏘아올린 상황에서 대북 정보력을 키우기는커녕 내부 싸움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정부 때 정보기관이 아니라 남북 대화 창구로 변질됐다. 북이 핵 개발을 계속하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장은 남북 정상회담 현장에서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대북 정보력이 급격히 떨어져 2018년 김정은의 특별열차가 중국에 들어간 것도 몰랐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땐 첩보 보고서를 무단 삭제했고 북 귀순 어민은 강제 북송했다. 전국에 북한 간첩단이 활개를 치는데도 국정원 수뇌부는 북한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수사를 막았다.

 

지금 북한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군사위성을 쏘아올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까지 고도화하려 한다. 군사합의 파기 이후 언제 천안함·연평도와 같은 도발을 해올지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 대북 정보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할 때다. 전 정권이 없앤 간첩 수사권도 정상화해야 한다. 신속한 후속 인사를 통해 내부 갈등을 잠재우고 대북 정보 역량 강화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27 정체성 상실과 내부 암투 요지경…국정원 대개혁 급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 등을 한꺼번에 경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권 교체기를 제외하면 앞으로도 유사한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국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당 기간 공백이 불가피하다. 윤 정부 출범 이후 인사 등 온갖 암투로 1년6개월 동안 바람 잘 날 없더니 결국 극약처방이 내려진 셈이다. 국정원을 이 지경으로 만든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책임이 가볍지 않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25년 이상 오락가락한 국정원 정체성과 정치권 줄 대기 폐해의 누적이 화근이라는 점에서 근원적 개혁도 절실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외교관 출신 ‘외부 인사’ 김 전 원장과 내부 인사들 간의 갈등이다. 김 전 원장이 권춘택 전 1차장에 대해 직무 감찰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내부 정보가 유출됐다. 앞서 윤 정부 출범 4개월 만에 검사 출신인 조상준 기조실장이 석연찮은 이유로 사퇴하고, 지난 6월에는 대통령이 재가한 1급 간부 인사가 뒤집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윤 대통령이 제대로 문책했어야 하지만 김 전 원장을 재신임했다. 그럼에도 암투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김 전 원장은 이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이번 사태의 뿌리에는 ‘국정원의 정치화’가 있다. 민주화 이후 정권 교체가 본격화하면서 대선 때마다 각 후보 진영에 줄 대기가 성행했다. 게다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대북 정보·방첩기관에서 대북 대화·협상의 보조 기구처럼 활용했다. 많은 대공 업무 전문가가 수모를 겪고 퇴직당하기도 했다. 특히 문 정권은 국정원에 ‘적폐 청산 TF’를 설치해 직원들을 대거 ‘숙청’하고 핵심인 대공 수사권도 폐지해 버렸다. 윤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1급 보직 국장 27명 전원을 대기 발령 조치하는 등 반작용을 보인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국내 정치 싸움에 휘둘리면서 하마스 공격을 예측하지 못해 안보 위기를 자초했다. 윤 대통령은 후임 국정원장을 신속히 지명하고, 국정원을 정보 및 방첩 기관으로 재정립하는 근본 개혁에 나서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27 국정원장 전격 경질, 무너진 기강 다잡는 계기 돼야

▲지난 23일 당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전 1차장, 김 전 원장, 김수연 전 2차장. [국회사진기자단]

 

윤 대통령, 김규현 원장과 1, 2차장 교체 단행

커진 안보 위기 속 최고 정보기관 역할 다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권춘택 1차장(해외 담당) 및 김수연 2차장(대북 담당) 등 핵심 수뇌부를 전격 경질했다. 영국 국빈 방문과 프랑스에서 열린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외교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내려진 갑작스러운 인사다. 그동안 국정원에서 몇 차례 볼썽사나운 내홍이 외부로까지 알려지면서 원장 교체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래도 지휘부 동시 경질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은 이미 몇 차례 국가 최고 정보기관답지 않은 행태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던 조상준 기조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표를 냈고, 지난 6월에는 대통령이 재가한 국정원 1급 인사안이 뒤집히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장 측근 인사와 그와 친분이 있는 간부들이 승진 대상에 포함됐다는 의혹을 샀다. 얼마 전에는 원장과 1차장이 조직 주도권을 놓고 암투를 벌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기밀을 다루는 정보 조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논란에도 윤 대통령은 김규현 전 원장을 재신임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방치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 정보기관의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고, 그 잡음이 외부에까지 노출된 이상 책임자들의 문책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막강한 군사력과 정보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은 지난달 초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민간인 등 1400명이 살해되는 비극을 생생히 지켜봤다. 세계 최강이라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정치적 노선 차이에 따른 내부 갈등으로 정보 수집과 판단 기능이 마비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오각성이 없다면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실패가 국정원의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국정원장 후보자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새 원장 정식 임명 때까지 홍장원(전 주영 공사, 육사 43기) 국정원장 특별보좌관을 1차장으로 임명해 당분간 직무대행 체제로 가기로 했으나, 국정원의 특성상 이런 임시 체제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에 이어 군사정찰위성까지 발사할 정도로 안보 위협이 커진 상황이다.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이 내홍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후임 국정원장에 최적임자를 신속히 임명해 조직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국정원도 이번 전격적 인사를 해이해진 국정원의 조직 기강을 바로 세우는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院訓)을 다시 새기며, 새 안보 위협 속 정보기관의 역할을 다잡아야 흐트러진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11.27 판문점 선언 ‘부속물’의 운명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2020년 6월17일에 공개한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모습./노동신문 뉴스1

 
 

요즘 뜨거운 키워드인 ‘9·19군사합의’는 정식 용어가 아니다. 공식 문서를 보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라고 돼 있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채택한 ‘판문점 선언’의 여러 부속물 중 하나로 그해 9월 19일 체결된 것이 ‘9·19군사합의’라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이 ‘뿌리’고 9·19 군사합의는 ‘곁가지’라는 얘기다.

 

‘판문점 선언’은 김정은이 비핵화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걸 견인하기 위해 종전 선언, 남북 교류 확대 등 여러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게 판문점 선언의 제1조 제3항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다. 정부는 선언 140일 만인 9월 14일 개성공단 기존 건물에 100억원을 투입해 지상 4층, 지하 1층짜리 사무소를 열었다. 남북 관리들이 상주하며 일할 공간을 탄생시켰다. ‘판문점 선언’의 상징물이다.

 

하지만 이 상징물은 2020년 6월 16일 두 돌도 되지 않아 폭파돼 잿더미가 됐다. 김여정의 지시였다. 사무소는 일종의 외교 공관으로 간주됐기 때문에 이를 파괴한다는 건 비상식적이었다. 폭파의 이유는 대북 전단 ‘삐라’였다. 김여정은 폭파 12일 전인 6월 4일 담화를 내고 “(한국이 대북 전단 관련)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하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단 완전 철거가 될지 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삐라’는 사무소 폭파의 작은 이유일 뿐, 큰 맥락에서 북한은 이미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의 수모로 더 이상 ‘판문점 선언 이행’ 같은 걸 할 마음을 싹 접은 상태였다. ‘하노이 노딜’ 이후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 ‘특등 머저리’ ‘오지랖 넓은 중재자’ 같은 원색적 비난이 문재인 정부에 작정하듯 쏟아져 나온 것이 그런 이유이다.

 

그 흐름에서 트집을 하나씩 잡으며 행동으로 옮긴 것 중 하나가 ‘삐라’고 ‘사무소 폭파’였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벌써 이때부터 사문화됐고, 이에 따라 그 하위 문서인 9·19 합의의 운명도 다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걸 최근까지 머리맡에 붙여 놓고 지켜왔다.

 

얼마 전 정부가 9·19 합의의 일부분을 효력 정지하고, 이에 북한이 합의 전면 파기 선언을 하자 일각에서 “한반도 안전핀이 빠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어불성설이다. 9·19 합의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지난 5년간 3600여 차례나 어길 정도로 ‘안전핀’으로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다. 안전핀으로서는 유엔정전협정이 지난 70년간 역할을 하고 있다. 정전협정이 우리가 자유 평화 통일이 될 때 뺄 수 있는 유일한 안전핀인 것이다. 북한은 9·19합의를 했든 안 했든 그 이전이고 이후고 전략적 필요에 따라 도발해 왔다. 여든 야든 이제는 9·19 논쟁으로 괜한 국력 낭비를 하기보다는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로 무언가를 꾸미는 북한에 어떻게 맞설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11.28 GP 재무장 북, 한국민 안보 불안 부추길 궁리 하고 있을 것

북한군이 9·19 남북 군사 합의에 따라 철수했던 비무장지대 내 GP(최전방 소초) 11곳을 복구하고 병력과 중화기를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주 유엔 안보리 제재를 어기고 정찰위성을 발사한 북한은 우리 정부가 9·19 합의 효력 정지로 대응하자 지난 23일 9·19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GP 재무장은 그 후속 조치로, 우리 군이 예상한 대로다.

 

우리 군의 최전방 방어 체계는 요새화된 초소·소초, 한미 연합 정찰 자산, 대북 심리전 등 3대 요소의 유지·강화가 기본이었다. 서울이 군사분계선에서 40여㎞밖에 떨어지지 않은 특수한 작전 환경 때문이었다. 3대 요소 모두 우리 군이 북한군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3대 요소를 보류·중단한 것이 문재인 정부의 9·19 합의였다. 북한은 이 합의조차 지금까지 3000회 이상 위반했다. 북이 GP 재무장을 한 이상 우리도 상응 조치를 미룰 이유가 없다.

 

▲지난 24일부터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내 GP(최전방 소초) 복구에 나선 모습이 우리 군의 열영상장비(TOD) 등 감시 장비에 포착됐다. 국방부가 관련 영상 자료를 27일 공개했다. /국방부

 

GP 재무장에 나선 북의 계산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 북한은 주요 사단들도 보급 체계가 붕괴된 상황이다. GP까지 유지하려면 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 군의 정찰 재개로 느끼는 피로도 빠르게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북은 9·19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GP 재무장에 나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 내 여야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 안보 불안 심리를 증폭시켜 그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리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도 각종 미사일 발사와 이른바 정찰위성 발사가 이어질 수 있고 어쩌면 전술핵 실험을 실시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보 불안 심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천안함 폭침 같은 예상하기 어려운 형태의 실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 경우 우리 사회에 다시 ‘전쟁이냐, 평화냐’ 같은 남남(南南) 갈등이 벌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군은 모든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28 군, GP 복원 착수… “북 도발 땐 즉강끝 응징”

▲한·미 공군 쌍매훈련 막강한 화력으로 ‘탱크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미 공군 A-10 선더볼트 지상공격기 조종사들이 원주기지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한·미 공군은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원주기지에서 23-9차 쌍매훈련(Buddy Squadron)을 실시한다. 공군 제공

 

■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

교체된 군 수뇌부 전원 참석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대응
북 군사행동에 상응조치 시행”

서해5도 해상사격훈련 검토
장병 정신무장 강화도 주문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28일 오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지난 23일 9·19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한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내에 병력과 고사포 등 중화기를 투입해 2018년 11월 철거한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 및 서해5도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안포 개방 등 군사행동을 노골화한 데 대해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7일 취임한 신 장관이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2번째로 북한의 9·19남북군사합의 파기에 따른 상응조치를 지시하고 비상경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소집됐다. 이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는 25일 취임한 김명수 합참의장을 비롯해 장관 취임 후 임명된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새로 물갈이된 군수뇌부가 전원 참석했다. 일선 주요지휘관들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신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일전불사의 각오로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강력 대응할 것을 지시할 예정이다. 또 “북한이 시행하고 있는 복원조치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조치들이 즉각 시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주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신 장관은 김 합참의장 취임식 훈시문에서 “북한에 평화를 해치는 망동은 파멸의 전주곡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것”이라며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빌미로 도발한다면 ‘즉·강·끝’ 원칙대로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군당국은 지난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철거된 DMZ 내 11개 철거 GP(1개 원형 보존) 복원에 착수할 예정이다. 당시 남북은 우리 GP(60여 개)와 북한 GP(160여 개) 가운데 상호 11개 시범 철수에는 합의했지만 전체 GP 동시 철거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GP는 지뢰지대 설치와 요새화를 통해 감시정찰은 물론 유사시 적 기계화부대 공격 지연을 위한 포사격 등 화력유도 진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GP 철수로 인한 안보 공백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GP 철수로 DMZ가 숲지대로 변모하면 과학화경계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돼 ‘정찰 깜깜이 지역’이 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7일 ‘9·19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 조치와 북한의 파기선언’ 주제 세종연구소 포럼에서 “북한의 선의에 기대어 진행한 9·19군사합의는 검증체제가 없는 위험한 합의로 진작 효력 정지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11-29 ‘GP 맞대응’은 9·19 시정의 최소한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1973년 1월 개최된 파리평화회담은 월맹(공산베트남)이 월남(자유베트남)에서 미군을 축출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협정 이후 60일 이내에 주월(駐越) 미군과 한국군 등 외국군이 철수함에 따라 월남은 2년 만에 월맹의 대공세 전략으로 공산화됐다. 위장 평화를 내세워 적을 무장해제시키고 최종적으로 공산화 목표를 달성하는 전술은 공산주의자의 대표적인 기만정책이다.

파리평화협정에 고무된 북한은 1974년 3월부터 줄곧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평화 전략을 구사해 왔다. 평화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도모한 베트남 모델을 한반도에 적용하려고 온갖 궁리를 다했다. 북한이 큰 성과를 거둔 게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이며, 2단계로 9·19 군사합의를 통해 남측의 무장해제를 시도했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도록 북한을 지원하는 합의여서 ‘역사적인’이라는 형용사를 붙였는지, 5년이 지나서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간파하게 됐다. 당시 남북 최고 지도자들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무엇을 논의했는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최근 북한이 9·19 합의 파기 선언에 이어 중화기를 반입하는 등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에 들어갔다. 남측을 겨냥한 해안포도 개방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2018년 합의 당시 비무장지대 남측 초소는 60여 개, 북측 초소는 160여 개였는데 남북 GP 11개씩 철수는 사실상 불평등한 합의였다. 북한 GP는 땅굴로 연결돼 있어 지상에 돌출된 특정 초소를 철거해도 대남 정찰 및 감시에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우리 초소는 절대 수도 적고 감시 영역도 넓어 11개의 초소 철수로 비무장지대 중 6분 1의 감시 공백이 생긴다. 9·19 합의 24개 세부 사항 중 남북이 완료한 9개 항목을 보면, 북한은 자신들에 유리하거나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행했다.

6개 항목으로 된 9·19 합의는 애초부터 출발이 잘못됐다. 평양 140㎞, 서울 40㎞ 거리인 군사분계선 기준 남북의 수도 거리 차이는 우리 안보에 구조적인 함정이다. 북방한계선(NLL) 서해 끝단을 기준으로 북으로 50㎞, 남으로 85㎞ 등 거리가 다른 점도 고려하지 않아 9·19 합의 당시 문재인 정부가 NLL 기준선을 포기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파리평화회담처럼 상대는 변하지 않는데 평화 구호에 매몰돼 우리만 불리한 군비 통제를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운용적 군사합의는 이행 검증이 필수다. 검증 없는 군비통제 합의는 무용지물이었다. 1970년대 미국과 소련 간에 합의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은 양측이 협정 준수 여부를 정찰위성으로 서로 철저히 감시하는 검증으로 성과를 거뒀다.

상대방의 선의에 의존하는 비대칭적 합의였던 9·19 합의는 북한군의 GP 복원으로 완전 사문화했다. 국군도 GP 복원 등 상응 조치에 들어가야 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근무하는 북한군이 권총으로 무장하는 등 비무장화를 파기한 만큼 유엔군사령부의 동의를 얻어 동등한 화기를 반입해야 한다. 적시에 대처하지 않으면 하마스식 기습공격을 방치하는 셈이 된다.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 철저한 맞대응(tit-for-tat)은 유사시에 희생을 줄이는 최선의 방책이다. 장병들의 굳건한 대비태세 확립이 필요한 엄혹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문화일보 

 

 

11-30 국정원 난맥 본질과 4가지 긴급 과제

 
 

염돈재 前 국정원 1차장, 前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김규현 국가정보원장,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의 사표를 전격 수리하고 이례적으로 원장 자리는 비워둔 채 신임 1차장에 홍장원 전 주영국 공사, 2차장에 황원진 전 북한정보국장을 임명했다.

김 원장을 하루라도 더 놔둬서는 안 되겠다는 강력한 불신임의 표시이자 국정원 조직 전체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초토화된 국정원을 되살릴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김 원장이 국정원을 더 망쳐 놨기 때문이다. 김 원장의 가장 큰 과오는 옥석을 가리지 않고 문 정부 부서장 27명 전원을 해임하고 2·3급 120여 명을 해임·좌천시켰다는 점과 측근의 부적절한 인사 개입으로 인사 파동과 내부 갈등 노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특히, 국정원 내부에서는 김 전 원장이 문 정부 병폐 청산을 내세우며 추진한 마녀사냥식 ‘잘라내기 인사’를 해 간부급 인적자원의 ‘씨가 말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로 2·3급 간부직위 보직 대상자가 부족해 자격이 안 되는 하위 직급자를 임시 대리직으로 임명한 사례도 많다고 한다. 그동안 인사 관련 파문의 배경을 직원들의 기강 해이나 파벌 다툼보다는 김 원장의 리더십 부족으로 보는 해석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국정원은 더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정신 차리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과 위성 기술 고도화 및 군사 도발 가능성, 북·러 군사 협력과 중국의 대북 지원 강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등으로 한반도 안보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어 국정원의 기능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큰 안보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보 환경 변화 대처와 국정원 정상화를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신임 원장을 임명해야 한다. 원장 후보로는 대통령이 신뢰·존경하는 지면 인사와 포용적인 인사가 좋을 것 같다.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의 위상과 자부심을 높일 수 있고 문 정부와 김 전 원장 시기에 상처받은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신임 원장 임명과는 별개로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 수집 역량 강화에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 1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데다 북한의 사실상 9·19 군사합의 파기와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재구축, 미국 등 전문가들의 경고 등 각종 이상 징후가 잇따르고 있다.

셋째, 광범한 탕평 인사가 필요하다. 문 정부에서 중용됐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업무에 종사했던 직원, 김 전 원장 때 좌천 또는 대기 발령된 직원도 재등용하고 앞으로는 문 정부 시기의 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히는 게 좋겠다. 평생을 국가안보에 헌신한 선배들이 파리 목숨처럼 잘려나가는 것을 지켜본 직원들의 분노와 자괴감·불안감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넷째, 대공수사권 복원, 업무상 직권남용죄와 대북심리전 사업의 한계 등에 관한 자료 수집과 검토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내년 총선이 끝나면 바로 대공수사권 복원에 들어가야 하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북한의 대남심리전 사업(댓글) 대폭 강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