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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반도 2023-10/ 10-01“ 150년 전 위안스카이가 할 법한 말” - 10.31 우크라이나, 중동 이후 제3의 前線은?

상림은내고향 2023. 10. 23. 20:00

위기의 한반도 2023-10/

10-01“ 150년 전 위안스카이가 할 법한 말”…박민식, 인천상륙 행사 비판한 중국에 일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

박민식 장관 페이스북 "중국 선 넘지 말아야…참전영웅 기리는 행사" 비판
우첸 중국 국방부 대변인 "美 동맹국 규합해 중국 집 앞서 도발적 군사 활동" 발끈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인천상륙작전 전승(戰勝) 행사를 ‘도발적 군사 활동’이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 "150년 전 (조선 내정을 간섭하고 국정을 농단한)위안 스카이가 할 법한 말로, 상대 국가에 대해 지켜야 할 선을 넘은 것"이라고 질타했다.

박민식 장관은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중국이 넘지 말아야할 선’이란 글에서 "중국은 인천상륙작전 당시엔 참전 당사국도 아니었으니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를 도발적 군사 활동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으며, 기념행사와 군사작전은 엄연히 다르다"며 "하면 안 될 장소에서 하면 안 될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대한민국의 영토와 영해에서 거행된 행사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이런 역사적 사실관계를 몰랐다면 무식을 안타까워할 것이고, 알고도 ‘중국 문앞에서’를 운운했다면 무례를 걱정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장관은 최근 중국이 독립운동가인 윤동주 시인 생가를 폐쇄한 것과 관련해 ‘중국은 진정 큰 나라인가’라는 SNS 글에서 "중국의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의 자세가 필요하다"며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통해 번영할 수 있다"며 중국의 자세를 비판한 적이 있다.

박 장관은 "‘중국의 집앞’ 이니 ‘군사도발’이니 이런 호전적인 논평보다 독일과 같은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지위에 맞지 않겠나?"라며 "한중 두 나라는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통해 번영할 수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이번 중국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은 상대 국가에 대해 지켜야 할 선을 넘은 것"이라며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이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들을 함부로 여기고, 나아가 이를 빼앗으려 드는 일들은 그 어떤 이익과도 맞바꿀 수 없다"고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중국이 넘지말아야 할 선’ 글. 박민식 장관 페이스북 캡처

박 장관은 "우리 정부가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고 헌신을 기리는 것에 대해 이웃나라라면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며 "중국의 국방부는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를 두고, ‘문앞에서 벌이는 도발적 군사 활동을 73년 전이나 현재나 좌시하지 않겠다’고 한다. 150년 전 위안스카이가 할 법한 말"이라고 했다.

이어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으로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고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다 잃을 수 있다는 절망의 구렁텅이 직전에서 희망과 기적을 만들어낸 역사적인 작전이고 위대한 승리였다"며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불굴의 승리를 일궈낸 참전영웅들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고 그날의 승리가 대한민국 번영의 방향타가 될 수 있도록 새기는 것 또한 소명"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인천상륙작전과 유사한 작전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대항해 승리의 교두보를 삼았던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있다. 매년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는 연합국 각국 대표들과 전범국인 독일 총리도 참석해 유감과 화해의 메시지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 해군은 인천시와 함께 지난 1일부터 인천 일대와 인천항 수로에서 인천상륙작전 전승 행사를 개최했다. 기념일인 지난 15일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내외 참전용사, 해군·해병대 장병, 유엔 참전국 무관단, 국민참관단 등 1600여 명이 참가하는 해상 전승기념식을 열었다. 해군 함정 20여 척, 미국·캐나다 해군 군함 각 1척, 항공기 10여 대, 장비 10여 대, 장병 3300여 명이 참가하는 ‘연합상륙작전 재연행사’도 진행했다.

이에 대해 우첸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동맹국을 규합해 중국의 집 앞에서 도발적인 군사 활동을 벌이는 데, 중국이 좌시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며 "73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예외도 아니다"고 발끈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10.05 미, 한국에 핵추진잠수함 용인해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위험한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북·러 정상회담 이후 대한민국의 안보의 사각지대를 다시 점검할 필요성이 커졌다.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의 합의 이행도 속도를 내야 한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워싱턴 선언’은 확장억제 기반 강화, 핵을 포함한 상호방위 개념으로 진화, 핵전력의 상시배치 효과 등으로 출범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하지만 선언의 구체적 평가에 대해 여전히 견해가 엇갈린다. 선언의 방점은 북핵 대응이다.

날로 거세지는 북한의 핵 위협
한·미 원자력협정 미비점 노출
호주 같은 ‘오커스2’ 서둘러야

 

반면 2040~2050년을 내다보는 주요 서방 국가의 정세 보고서는 대부분 그 시점까지도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함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글로벌 트렌드 2040’은 북한 핵 위협으로 한국·일본이 핵 무장에 나설 가능성을 거론했다. 영국의 ‘글로벌 전략 추세 2050’에 따르면 김정은이 체제 생존에 위험을 느끼면 여전히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호주의 ‘미래 작전 환경 2035’도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과 국제사회의 양보를 강요하기 위해 ‘핵 벼랑 끝 전술’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은 수중 핵 공격이 가능한 최초의 전술핵 공격잠수함을 건조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핵잠수함은 극초음속 무기,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과 함께 북한이 천명한 ‘5대 핵심과업’ 중 하나다. 최근 북·러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이 달려간 곳은 잠수함 건조 시설이었다. 향후 러시아가 소형 핵탄두 기술까지는 아니더라도 핵잠수함 및 미사일 엔진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힘의 균형이 바뀔 수 있다.

 

미국이 오커스(AUKUS)를 통해 호주에 핵추진잠수함을 허용한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호주는 영국의 설계와 미국의 기술을 지원받아 최대 8척의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기로 했다. 오커스는 핵잠수함과 인공지능·극초음속·양자기술·사이버의 두 기둥으로 구성된다. 오커스라는 ‘호주 모델’은 핵잠수함을 넘어서는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는 동맹국끼리 ‘역할 공유’가 이뤄졌음을 암시한다.

역할 공유는 ‘부담 공유’를 초월하는 개념이다. 후자의 방점은 공정성이다. 일례로 미국은 국력에 상응하는 수준의 국방비 지출을 요구한다. 전자에는 비교우위 개념이 적용된다. 역량·자원에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에서 역할·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역할 공유는 이를 통해 공정성을 넘어 동맹의 효율성·효과성, 나아가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즉,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효과적 사용을 통해 공동 안보위협에 대한 억제력·대응력을 제고할 수 있다.

오커스라는 호주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는 경우 최대 걸림돌은 한·미 원자력협정이다. 한·미 협정에는 고농축우라늄은 고사하고 20% 이하의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핵추진잠수함 도입도 막는 독소 조항이 들어있다. 이 문제는 한·미동맹의 역할 공유를 위해 미국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이제 미국이 한반도 주변 골목골목과 구석구석의 수호를 나 홀로 책임진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호주와 함께 한국·일본에 ‘오커스 참여’ 초대장을 보내야 한다. 미국도 ‘중심축과 바큇살(Hub and Spoke) 모델’이 수명을 다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오커스, 쿼드(Quad), I2U2(인도·이스라엘·UAE·미국), 한·미·일 등 소다자 협의체 구성에 박차를 가한다. 바람직한 경로는 한·미·일 3국 협력을 ‘오커스 2’로 격상하는 것이다. 호주도 인식했듯 미국은 더는 ‘일극 시대의 리더’가 아니다.

 

남·북의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둘러싼 피 말리는 경쟁이 막 시작됐다. 이제는 원자력협정 같은 족쇄가 아니라,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제공 같은 역할 공유를 통해 날개를 달아야 줘야 할 때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생태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적응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중앙일보 송승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 대전대 교수

 

 

10-05 美 정치 혼돈이 부를 안보·경제 후폭풍…선제 대응 나서야

미국 정치의 대혼돈 상태는 단순히 태평양 건너 딴 나라 내부 문제만은 아니다. 미 역사상 처음인 하원의장 해임 사태, 온갖 범죄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 등의 뿌리에는 경제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 국제적으로는 고립주의 경향을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4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남침 때 미군의 한국 방어에 대해 ‘찬성 50%, 반대 49%’ 응답이 나왔다. 찬성 비율이 지난해 63%에서 대폭 하락한 것은 미국 내 분위기 변화를 상징한다.

이번 하원의장 해임은 의회정치가 당분간 회복 불능 상태로 빠져들었음을 보여준다. 진앙은 공화당 초강경파 의원 모임인 프리덤코커스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미국판 개딸’이다. 공화당 강경파는 작은 정부와 ‘미국 우선’을 내걸고 동맹에 회의적인 고립주의자들인데, 이들 소수에게 미국 의회가 휘둘리는 것이다.

고립주의와 우선주의 강화는 첫째, 동맹보다 거래 중시로 이어져 국방수권법(NDAA) 예산안 등을 통해 주한미군 감축을 비롯해 전략자산 상시 전개, 한미 훈련 비용 한국 전가 가능성을 열어준다. 둘째, 경제적으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보다 더 강화된 미국 중심적 법안으로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 셋째, 규범 기반 국제 질서를 중시하는 가치 외교에서 후퇴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북·중·러 연대가 힘을 얻는 나비효과가 발생해 한반도 안보에도 비상등이 켜진다.

트럼프 재집권이 현실화하면, 워싱턴선언을 비롯해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 합의 등이 공수표가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안보·경제 후폭풍 대비책을 거국적으로 세워야 한다. 자강 외교를 강화하는 플랜B도 만들어야 한다. 동맹의 핵으로 북핵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핵 잠재력을 키우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는 한일의원연맹과 한중의원연맹처럼 한미의원외교를 위한 공식 플랫폼도 마련해야 한다. 한미동맹 70년을 계기로 초당적 의회 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10.06 김정은의 러시안 룰렛, 그 끝은 어디인가?

러시아에 베팅하는 건 도박으로 횡재 노리는 것
무기 대가로 식량 받으면 민생 문제는 잠시 해결
정찰위성·잠수함 기술 받으면 경제 회생 아득, 엘리트도 동요
核 진정한 목적은 세습 독재… 北 민초도 깨달으면 결국 파탄

 ▲북한 조선우표사는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기념해 오는 24일 5종의 우표를 발행한다며, 우표 도안을 공개했다.2023.10.5 /조선우표사 홈페이지 연합뉴스

김정은이 러시안 룰렛에 빠져들고 있다. 핵·미사일로 한껏 허세를 부리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진 러시아에 베팅하는 것을 보면 북한의 내부 사정이 얼마나 곤궁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핵·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야무진 꿈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도박으로 횡재를 노리는 것 같다. 도박 중에서도 목숨을 건 러시안 룰렛(실탄 하나를 장전한 회전식 권총을 자기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 가장 위험하다.

 

김정은이 도박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트럼프에게 영변 핵 시설을 폐쇄하는 대가로 핵심 대북 제재의 해제를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는 수모를 당했다. 이미 실체가 드러난 영변 단지를 포기하는 대신 영변 밖에서 가동 중인 우라늄 농축 시설을 이용하여 핵 전력을 계속 증강해 나가겠다는 어설픈 사기극에 트럼프가 걸려들 것이라는 어이없는 오판을 한 것이었다. 영변 밖의 비밀 핵 시설까지 폐기할 결심만 했다면 이미 제작한 핵무기를 고스란히 지키면서 제재도 풀 수 있었는데 과욕을 부리다 빈손으로 돌아간 것이다. 마땅한 대책이 없는 김정은이 선택한 고육지책이 자력갱생으로 제재 국면을 정면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방역을 위한 국경 봉쇄까지 겹쳐 자력갱생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이 되고 말았다.

 

작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김정은은 새로운 도박에 뛰어들었다. 3대에 걸쳐 고수해온 대외 정책의 기조를 뒤집고 침략자 편에 올인한 것이다. 2022년 3월 2일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에 북한은 반대표를 던졌는데 벨라루스, 시리아 등 정권의 생존을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국가 외에 러시아의 침략을 두둔한 회원국은 북한밖에 없었다.

 

비동맹의 창설 멤버인 북한은 타국의 영토고권(territorial integrity)과 주권의 존중, 상호 불가침, 국내 문제 불간섭 등 비동맹의 5대 원칙을 60년 이상 외교 정책의 금과옥조로 삼아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해도 된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더구나 우크라이나는 1994년 12월 5일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을 통해 자발적 핵 포기에 대한 보상으로 러시아·미국·영국으로부터 무력 불사용과 국경선의 불가침 공약을 포함한 안전 보장을 제공받은 나라다. 이런 나라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을 옹호하는 것은 비핵화를 거부하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고도 남는다.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는 김정은이 왜 자신의 묘혈을 파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러시안 룰렛에 뛰어들었을까? 북한이 핵 무력 고도화를 위해 어떤 도발을 감행하더라도 유엔안보리의 추가 제제를 막아주고 기존 제재를 허무는 데도 앞장서줄 든든한 후원자가 당장 더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가 고립무원의 궁지로 몰렸을 때 확실하게 편을 들어주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으로 북한을 지켜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2022년 3월 이후 북한의 거듭된 화성-17 및 화성-18 대륙간탄도탄(ICBM) 발사에 대해 안보리가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대응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도박이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셈이다.

이러한 도박의 연장 선상에서 지난 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은 판돈을 더 키우기 위한 모의였다. 러시아가 노리는 것은 북한의 포탄 재고와 신형 고체연료 미사일로 대체할 구형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이다. 다만 북한이 탄약과 미사일을 공급하더라도 러시아가 전세를 역전시킬 가망은 없고, 한국이 이에 대응하여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면 그나마 상쇄되고 만다. 북한으로서는 무기 수출 카드로 식량과 에너지를 받고 노동력을 대거 러시아로 송출하는 딜을 타결하면 당면한 민생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이를 정찰위성과 원자력 잠수함 기술 등을 확보하는 데 써버리면 그만큼 경제 회생은 멀어진다.

 

북한이 아무리 핵 무력을 고도화해도 김정은 체제의 종국적 운명은 경제와 사상 전선에서 결판난다. 2020년 12월 4일 북한이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김정은이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상적 동요는 민생 파탄으로 증폭된다.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문화·사상·정보 전쟁을 벌여 북한의 엘리트와 민초들이 자신들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 김일성 일가의 세습 독재와 이의 존속을 위한 핵무장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 김정은의 러시안 룰렛도 결판난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10-06 ‘북한 유엔 퇴출’ 재추진 필요하다

이미숙 논설위원

유엔의 성공한 아들 대한민국
北은 핵·미사일 도발로 어깃장
金·푸틴 거래는 유엔헌장 위반

인종차별 남아공보다 심각 北
유엔 회원국 자격 정지 필요성
정부가 유엔서 논의 주도해야

대한민국은 오는 24일로 설립 78주년을 맞는 유엔과 인연이 각별하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해에 설립된 유엔은 1948년 정부 수립 때 총회 결의 제195호를 통해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the only, lawful government in Korea)’로 공인했고, 북한의 남침 땐 평화 파괴행위로 규정한 뒤 유엔군을 파병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 전후엔 한강의 기적을 낳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토대를 마련해줬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유엔의 아들’로 불리는 이유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을 내세우면서도 민주주의와 공화 가치를 무시한 채 깡패집단처럼 유엔의 감시를 거부하며 소련식 공산 체제를 이식했고, 소련·중국을 등에 업고 침략 전쟁을 벌임으로써 유엔헌장을 위배했다.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이후엔 핵 개발에 골몰하며 평화를 위협했다. 유엔이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 결의 제1718호를 시작으로 제2397호에 이르기까지 총 10개의 초강력 제재를 부과한 배경이다. 유엔 역사상 북한처럼 많은 제재를 받은 나라는 없다. 이 같은 ‘제재 전과(前過)’는 북한이 시종일관 유엔의 가치 파괴에 앞장선 말종(rogue) 국가였음을 입증해준다.

북한의 ‘반(反) 유엔’ 행태는 러시아와 밀착하며 부쩍 심해졌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엔총회가 규탄 결의를 통과시킬 때 193개 회원국 중 시리아, 벨라루스, 북한, 에리트레아만이 러시아 편에 섰다. 내전을 겪은 나라거나 러시아 2중대 유의 소국들이다. 최근 김정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무기 거래 회담까지 벌였다. 김여정이 안전보장이사회를 “미국과 서방에 완전히 엎어진 신냉전기구”라고 비난한 뒤 북 외무성은 이를 유엔 무대에서 복창하고 있다. 유엔 제재 결의 위반에 이어 안보리 권능까지 조롱하는 것은 회원국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러·북의 일탈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국제 평화의 중추 기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통해 러시아의 권능을 줄이는 방식의 안보리 개혁을 제안한 이유다. 이번 기회에 ‘안보리가 부과한 예방·강제 조치를 위반할 경우 안보리 권고에 따라 총회가 회원국의 권한·특권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유엔헌장 제2장 제5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사례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로 1974년 자격이 정지됐고, 정책 폐지 후 복귀했다. 당시 유엔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우회, 총회 표결로 이런 결정을 했다.

북한의 거듭된 인권 침해, 김정남 독극물 살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 등 악행은 남아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북한의 5차 핵실험 후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결의 제2321호엔 ‘외교 제재’ 조항도 있다. 추가 도발 시 ‘회원국 권리와 특권의 행사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안보리 권고’ 조건이 있지만, 남아공 선례에 따라 총회 표결로 곧바로 갈 수 있다. 6차 핵실험 등으로 북한의 유엔 가치 훼손이 더 심화한 만큼, 이 조항을 적용할 때가 됐다.

유엔에서의 북한 퇴출 캠페인은 박근혜 정부 때 시도된 적이 있다. 2017년 2월 북한 공작원들에 의한 김정남 독살을 비판하면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은 “규범 파괴자에게 규범을 만드는 회의장에 앉아 있을 자격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후 대통령 탄핵으로 북한 퇴출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극에 장단을 맞추며 대북 제재 해제 여론전을 벌였던 흑역사의 유산을 남겼다.

윤석열 정부가 유엔에서 북한의 회원국 자격 정지 및 퇴출을 위한 외교전을 벌여야 한다. 안보리 대북 제재를 비웃으며 푸틴과 무기 거래 중인 김정은은 ‘핵 무력 발전 고도화’를 헌법에 명기했다. 러시아·중국을 뒷배 삼아 제2의 6·25전쟁을 준비하겠다는 심산이다. 우리나라가 2024년부터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활동을 시작하니, 앞으로 2년은 북한의 일탈을 저지할 절호의 기회다. 북한에 의한 유엔 무력화(無力化) 저지가 곧 국제 및 한반도 평화의 길이다. 그것은 유엔 덕분에 생존하고 번영해온 유엔의 아들 대한민국이 해야 할 기본 책무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10-06 한미동맹의 새로운 70년

 

 민병기 정치부 차장

10월 1일로 한미동맹 70주년이다. 70년 동안 확 달라진 한국의 위상만큼이나 양국 관계도 양적으로 두터워지고 질적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그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한미동맹은 저절로 주어진 것도,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이지도 않았다. 반미(反美)가 반전(反戰)의 동의어(同義語) 혹은 유의어(類義語)였던 적도 있고,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는 무리도 있다. 일방적인 동맹의 수혜자로 미국의 그늘에 머무르는 것도, 동맹 관계를 종속 관계로 여기는 것도 모두 동맹을 바라보는 극단의 시각이다.

한미경제연구소(KEI)가 8월 미국 내 응답자 11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미동맹의 현주소, 그리고 새로운 70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동맹국의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1%가 한국이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critical partner)이라고 답했다. 51%는 ‘의견 없음(no opinion)’이라고 답했다. 동맹국이라는 응답은 멕시코(38%)나 우크라이나(28%)보다는 높았지만, 영국(69%)이나 캐나다(67%)보다는 확연히 낮았다. 이외에도 유럽연합(EU)이 57%, 일본(48%), 호주(44%), 이스라엘(43%)이 한국보다 높았다. 한국이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 입장에서 한국보다 응답이 높은 여섯 곳 중 한국보다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할 곳은 없을 게다. 동맹의 현주소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글로벌 정세에서 한미동맹은 제쳐 둘 수는 없지만, 다른 중요한 과제들 앞에 둘 만큼은 아니다.

이 조사는 동맹의 나아갈 방향도 보여준다. 한미 간 협력해야 할 부문을 묻는 질문에 ‘북한(North Korea)’이라는 응답은 51%였다. 같은 질문에 ‘동아시아 및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Security in East Asia & the Indo-Pacific)’는 55%, ‘공급망(Supply chains)’은 54%의 응답자가 답했다. ‘국제 무역 규정의 진전(Development of international trade rules)’, 5G 등 기술 인프라라는 응답도 각각 47%, 45%에 달했다. 북한을 앞세운 세력의 위협에 맞서 자유민주 진영을 사수하는 최전선으로서 ‘안보동맹’ 성격이 짙었던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을 기반으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자유민주 진영의 질서를 주도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질적 전환을 꾀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 하나, 주목할 조사가 있다. 일본과 한국을 동시에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한 응답자의 63%는 더 많은 3국 간 협력을 희망했다. 일본을 향해 먼저 손을 내민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4월 워싱턴선언부터 일본 정상과 함께한 8월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회동까지, 윤석열 정부의 일련의 대미 외교 행보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위험한 일본책’에서 “우리 선조들은 일본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다”며 “일본과 자유·민주·법치·평화·인권·복지의 경쟁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는 한미동맹은 글로벌 가치동맹으로 진화할 때 새로운 70년을 그릴 수 있다. 문화일보가 ‘한미동맹 70주년, 새 미래로 간다’ 기획을 준비한 이유다.
문화일보 

 
 

10-06 [단독]기상청 납품 중국산 장비 ‘악성코드’ 심어져 있었다

▲기상청이 올해 6월 악성 프로그램(악성코드)을 발견한 중국산 ‘연직바람관측장비’의 모습. 빨간 네모 안은 악성코드가 발견된 신호처리부 장치.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 기상청 제공

장비 5대서 발견돼 백신 설치
해킹 불안 한데 연말 2대 추가
일부는 보안조치 불가 시스템

최근 중국 등 국가로부터 해킹, 사이버 공격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기상청이 경기 파주, 강원 철원 등에 설치한 중국산 ‘연직바람관측장비’에서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훼손할 수 있는 악성 프로그램(악성코드)을 발견해 뒤늦게 후속 조치를 한 사례가 5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17년부터 도입된 중국산 연직바람관측장비는 바람측정장비의 일종으로, 기상청은 악성코드가 발견된 중국 제조사의 장비와 똑같은 모델을 울산, 전남 영광 등에 추가로 2대를 반입할 예정인 데다 이 중 1대는 기존의 컴퓨터 운영체제(OS)와는 다른 시스템으로 작동되면서 악성코드에 대한 조기 보안 조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기상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상청은 올해 6월 중국산 연직바람관측장비 총 5대에서 악성코드를 발견해 백신 설치 등 사후 조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직바람관측장비는 지상에서 약 5㎞ 고도에 이르는 구간의 바람 속도, 방향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다. 악성코드가 발견된 장비 5대 중 3대는 중국 A사에서 제작된 모델로 현재 경기 파주와 전북 군산, 제주 서귀포에 배치돼 있고, 나머지 2대는 중국 B사에서 제조됐으며 국내 도입 이후 강원 철원, 경북 울진에 설치돼 가동 중이다. 기상청이 이번에 발견한 장비의 악성코드는 모두 컴퓨터 운영체제(OS·윈도 체제와 같은 구식 시스템)를 기반으로 하는 ‘신호처리부’(연직바람관측장비의 부대 장치로 수신부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경하는 장치)에서 발견됐다. 기상청은 제조사인 중국 A사 장비 3대의 악성코드는 국내 통관 이전에 이미 설치돼 들어온 것으로 파악했지만, 또 다른 중국 B사 장비 2대는 비교적 조기에 발견해 조치했으나 침투 경로, 감염 시점 등 정확한 경로는 파악하지 못했다.

문제는 악성코드가 발견된 제조사의 장비가 추가 도입된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올해 연말쯤 A사의 연직바람관측장비를 총 2대 들여와 울산과 영광 안마도에 각각 1대씩 설치할 계획이다. 울산에 도입될 장비는 악성코드가 발견된 장비와 동일하게 OS 기반의 신호처리부가 탑재되어 있어 조기 대응이 가능하지만, 영광에 설치될 장비는 신형 장비로 OS가 아닌 ‘임베디드 시스템’이 적용된 모델이다. 에어컨, 냉장고, 엘리베이터 등에 내장되는 ‘임베디드 시스템’은 하드웨어(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조합된 전자제어 시스템으로 해당 시스템에 대한 접근은 제조사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애초에 악성코드가 심어져 들어오더라도 조기 파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의원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국토와 기상 관측 장비에 대해서는 안전한 장비를 선별적으로 도입하고 각종 장비의 보안 매뉴얼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

 
 

10-06 포화속 산화한 마틴 대령… 추모비엔 ‘잊지 않겠다’

▲6·25전쟁 격전지인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 개미고개에 설치된 군인상. 중상을 입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병사를 동료가 품에 안고 비통해하고 있다. 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11일 12시간 전투에서 미군 667명 중 517명이 희생됐다. 세종=조재연 기자

■ 한미동맹 70년, 새 미래로 간다 - (6) 6·25 전적지 ‘천안 마틴공원’ 가보니

전장 80곳 순례중인 이귀형씨
‘자유는 공짜 아니다’ 배너설치
시민들과 한 뜻 모아 십시일반

개미고개 격전지의 병사 동상
‘피로 지킨 자유’ 온몸으로 웅변

천안·세종=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북한군이 기습 남침한 6·25전쟁 초반,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군이 급히 투입됐지만 그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소련으로부터 넘겨받은 T-34/85 전차를 몰고 진격해 오는 북한군에 비해 주일미군은 전력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중과부적이었지만, 미군은 본토로부터 증원군이 전개되기 전까지 북한군의 남하를 늦추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웠다. 주일 미 극동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켄터키 출신의 48세 대령, 로버트 마틴도 그중 하나였다. 제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의 긴급 호출을 받고 한국에 온 마틴 대령은 제34연대장으로 임명된 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7월 8일 아침 충남 천안 시가지 전투에서 산화했다.

 

▲국군과 미군이 함께 싸운 전장을 찾아다니며 한·미 동맹을 기리는 배너를 세우고 있는 이귀형(51) 씨. 사진은 경기 가평군 용문산전투 기념비 입구.

73년이 흐른 지난 5일, 고 마틴 대령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천안 마틴공원은 전쟁의 포화를 긴 세월 속에 잊기라도 한 듯 고요했다. 전몰미군 추모비가 홀로 서 있고, 그 옆에선 유엔기·태극기·성조기가 나란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추모비 곁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세워둔, ‘6·25전쟁 승전 73주년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한·미동맹 기념 배너가 쓰러진 채 흙과 낙엽에 덮여 있었다.

“6월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 배너가 없었습니다.” 함께 마틴공원을 찾은 이귀형(51) 씨의 말이다. 오산에서 개척교회 목사로 활동하는 이 씨는 2020년부터 전국에 흩어진 6·25전쟁 전투의 현장을 순례하고 있다. 지금까지 찾은 전투 현장만 70∼80곳에 달한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국군과 미군이 함께 어깨를 맞대고 싸운 전장 30여 곳을 찾으며 한·미동맹을 기리는 배너를 세웠다. 마틴공원 추모비 옆에 쓰러져 있던 것과는 다른 배너로, 한·미동맹 70주년의 의미를 담아 ‘We will remember you forever’ ‘Go together’ ‘Freedom is not free’란 문구가 담겼다. 미군 외의 유엔 참전국들을 위한 배너도 따로 만들었다. 이 씨의 뜻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배너를 만드는 비용을 십시일반 보탰다고 한다. 다만 이 씨가 앞서 세웠던 배너는 이날 마틴공원에선 사라져 있었다.

이 씨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전투 기록이 남아 있는데도 기념비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곳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단장의 능선 전투는 미군과 프랑스군이 북한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며 고지를 점령한 전투인데, 기념비가 없어 국가보훈부에 설치를 건의하니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전투 현장은 군사분계선 안쪽이기에 갈 수는 없지만, 바깥쪽에라도 기념비를 만들어 유엔군의 희생을 기려야 합니다.” 이 씨는 기념비가 설치된 곳도 일부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풀이 제멋대로 자라고, 찾아가려면 풀숲을 헤쳐야 하는 곳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마틴공원에서 차로 30여 분 걸리는 세종 전동면의 개미고개 격전지에도 인적은 드물었다. 천안 전투 이틀 뒤인 7월 11일 북한군이 개미고개의 미군을 공격, 12시간에 걸친 전투 결과 제24사단 제21연대 미군 667명 중 517명이 희생됐다. ‘자유 평화의 빛’ 기념비 오른쪽엔 참전 미군의 용맹한 기개를 기리는 군인상이 서 있었다. 미군 병사 3명이 전방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동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눈길을 끈 것은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한 병사를 다른 병사가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의 또 다른 군인상이었다. 여섯 중 다섯이 목숨을 잃은 처절한 개미고개 전투의 모습은 이 동상에 차라리 더 가까웠을 성싶었다. 전쟁이 멈춘 지 70년,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후세의 몫으로 남았다.
문화일보·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10.06 미국인 50%만 “북 침공 시 한국 방어”… 대미 외교 다각화를

미 의회, 싱크탱크 등에 친한파 네트워크 확장하고

“한국 방어가 미국 이익에도 부합” 여론 늘려 가길

북한이 한국을 침공할 경우 미군이 한국을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 국민의 비중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쳐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년 재선 가능성이 거론되는 시점이라 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 정부의 대미 외교에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특히 북한이 최근 핵 무력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하며 위협을 강화하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미국인 32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4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0%만 북한의 한국 침공 시 미군이 방어에 나서는 것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반대는 49%였다. 2021년 조사에서 63%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던 것과 비교하면 13%포인트나 하락했다. 정치 성향별로 보면 민주당 지지층은 57%가 공감했고, 공화당 지지층은 46%만 찬성했다. 동맹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미국 보수층 내에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CCGA는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한 무력 사용에 대해 점점 더 당파적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조사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의 미국 정치는 162년 전의 남북전쟁 시절을 연상시킬 정도로 분열과 갈등이 극심해 ‘정치적 내전’ 상태라는 말도 나온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 결과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강한 고립주의 성향을 보였던 트럼프 1기 집권 시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며 당시 문재인 정부에 미군 철수 카드로 압박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이 더 확산돼 북한이 도발하는 경우에도 미국의 여론이 참전 반대로 기운다면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더군다나 한·미 동맹 조약에는 자동 개입 조항이 없다.

 

미국은 국민 여론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대통령과 장관 레벨의 한·미 고위층 양자회담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국의 여론에 큰 영향을 주는 의회나 싱크탱크 전문가 집단, 언론을 상대로 한 외교도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펼쳐야 한다. 친한파 네트워크를 확충하고 한국의 상황을 정확히 알려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교부와 국제교류재단,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등도 함께 나서야 한다.

 

미국의 정·관·재계 등을 상대로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가 미국의 안보까지 직접 위협한다는 사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최전선을 지키는 한국과 함께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직결된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10.06 중국의 체면 손상한 김정은의 오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대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선언했다. 이례적인 이 발언이 가져올 파장이 심상치 않다. 러시아가 중국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기에 외교적 관점에서 중국의 체면을 구긴 장면이다.

경제적·정치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북한이 불필요하게 중국의 체면을 손상하는 것은 좋지 않다. 더군다나 중국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에 이어 북한 등 동북아 문제를 미국과 논의 중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김정은은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이번 발언으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건 북·러 관계 강화다. 이번 발언은 북한 지도부가 빠져 있는 망상을 여실히 드러낸다.

김정은 “러시아가 가장 중요해”
러시아 과대평가, 중국은 불편
미·중 대화에 북한의 향배 달려

 ▲에버라드 칼럼

지난달 말에 열렸던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신냉전’이 어떻게 북한에 우호적인 상황인가를 언급했다. 냉전은 불쾌한 기억이지만, 러시아와 중국 모두 북한에 손을 내미는 상황을 교묘하게 잘 이용했던 시기로 북한은 기억한다. 김정은은 아마도 좋았던 냉전시대로 세상이 복귀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북한이 빠져 있는 또 다른 망상은 북한을 도와줄 러시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방러에 큰 기대를 걸었다. 지난달 20일 개최한 정치국회의에서 김정은은 “(북·러 관계가) 새로운 전략적 높이에 올라서고 있다”며 큰 기대를 나타냈다.

 

러시아는 조심스러운 태도다. 푸틴은 기자들에게 “북한 위성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김정은에게는 자폭 드론을 선물했다. 김정은은 러시아 방문 중 다양한 군 시설을 시찰했지만, 러시아는 북한 공군이나 해군 현대화 지원으로 비칠 수 있는 언급은 자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항공기와 함정 엔지니어가 부족한 러시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북한에 필요한 곡물이나 석유를 러시아가 지원할 수는 있겠지만, 러시아는 중국 수준으로 북한에 재정 지원을 해줄 여력이 없다.

그 반대로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에 원한 것은 탄약과 값싼 노동력뿐이다. 북한이 얼마나 많은 포탄을 제공할 의지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북·러가 주고받는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북한이 더는 러시아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러시아는 지속해서 받기만 바라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거둘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러 관계도 시들해질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석한 김정은은 미국의 지원을 크게 기대하면서 북한이 치러야 할 대가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고, 하노이 정상회담은 실패했다. 다시 한번 비현실적인 기대를 안고 김정은은 방러했다. 음흉한 푸틴은 김정은의 망상을 단박에 깨지는 않았지만, 서로 기대하는 것이 너무 다른 북·러 관계가 오래갈 수가 없다.

 

중국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처음엔 냉랭한 침묵으로 대응했던 중국은 지난 9월 23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방중한 한덕수 총리에게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증진에 힘쓸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방한을 진지하게 고려하겠다”고 직접 언급했다. 북한이 중국을 버리고 러시아와 손을 잡는다면 중국은 한국과 친밀해질 수밖에 없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낸 것이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북한 입장에서 국내외적으로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하노이 노딜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듯이 러시아에 대한 구애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 지고 중국이 김정은의 선을 넘는 불복종의 언어에 불쾌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김정은의 위상은 다시 한번 타격을 입을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이번에 당한 망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탈북자 색출과 송환 중단 등 중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표출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얼마나 오래 비용을 부담하면서 대북 지원을 지속할지에 달렸다. 미·중간 대화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원 축소는 더 급진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북한이 원하는 대로 신냉전이 도래한다 해도 이번에는 전혀 다른 대치 국면이 예상된다. 북한엔 만만치 않은 세상이 될 것이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월간조선 10월 호 중국의 샤프파워 공작

●인터뷰 | 케리 거샤넥 나토 펠로·대만국립정치대 교수

“中의 실존적 위협 직면한 韓… 중국인 선거권 부여는 ‘국가적 자살’”

⊙ ‘전 세계 공산화’ 위해 총성 없는 전쟁(정치전) 벌이는 중국
⊙ 중국공산당 정권은 집단학살적 전체주의 정권… 未반격 시 대대로 공산체제서 살 것
⊙ 韓 수사기관, “中 공작 활동 적극 조사·방해·기소해야”

케리 거샤넥(Kerry Gershaneck)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펠로 겸 대만국립정치대 교수. 사진=월간조선


 

 “중국은 러시아보다 더 위험하다. 러시아는 세계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가졌지만,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체제를 파괴하기 위해 노력 중인 것은 중국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파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전(政治戰·Political Warfare)을 펼친다. 이를 반격하지 않으면, 당신 아이들과 먼 미래의 손주들까지 모두 중국 공산당 체제하에서 살 것이다.”

케리 거샤넥(Kerry Gershaneck)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펠로 겸 대만국립정치대 교수는 “중화인민공화국(PRC·중공)은 한국과 미국 등 자유세계를 파괴하고, 종국적으로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정치전을 전개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세계지역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중국의 정치전과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 8월 18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만났다.

미(美) 해병대 장교 출신인 그는 35년 이상 국가 정보, 방첩, 국제관계, 전략적 소통 등을 연구해왔다. 《중국은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다》를 비롯해 《중국의 정치전》 《중국의 미디어전》을 저술했다. 지역 안보 및 지정학을 연구하는 글로벌위기완화재단(GRMF) 선임연구원이자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거샤넥 교수는 “1990년 초 소련 붕괴 후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사실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소련은 실제로 붕괴했지만, 중공으로부터의 공산주의 위협은 지하로 잠입해 작동했다. 1950년 한국전에서 나타난 중공의 편집증적 민족주의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했다.

“중국이 왜 가장 큰 위협인지 알려면 우선 중국공산당 정권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억압적이고 집단학살적인 전체주의 정권이다. 이 같은 통치 비전을 한국과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부과하려 한다. 중국공산당은 대한민국과 미국 등이 추구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치명적인 위협으로 인식한다. 그들은 이를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식별한다.”


차이나타운과 공자학원

▲2017년 당시 사드 배치와 관련 중국 당국의 단체관광 금지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줄었다. 사진은 그해 3월 한산한 서울 명동의 화장품 상점 거리 모습이다. 사진=조선DB

공격적 패권, 가짜 뉴스, 정보전, 여론전, 사이버전, 법률전, 심리전, 통일전선. 이는 중공이 정치전에서 사용하는 전략 중 일부다. 미국의 정치가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은 정치전을 대규모 운동적(Kinetic) 전쟁 이외의 모든 것으로 정의했다.

‘총을 쓰지 않고 이긴다’는 정치전은 상대를 기만하면서도 은밀하게 침투한다는 특징이 있다. 탈(脫)원전으로 들여온 중국산 태양광, 한국군에 납품된 화웨이 통신장비, 기무사 소령의 한국 정보 중국 유출부터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조선구마사〉, 차이나타운, 공자학원, 그리고 중국학생학자연합회, 중국우호연락회, 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까지 모두 ‘은밀한 기만’의 결과다.

중국이 지난 7월 개정한 반(反)간첩법도 정치전의 일부다. 법률전에 속한다. 반간첩법은 기존에 규정한 간첩행위 외에 ‘기밀정보 및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 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취득·매수·불법 제공’을 추가하고 특정인의 행위가 ‘간첩죄’에 부합하지 않아도 당국이 자의적으로 행정구류 등의 처분을 통해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만일 한국과 정치·경제적 갈등이 불거질 경우 중국은 이 법을 통해 한국 기업인 등을 볼모로 삼을 수 있다.

 

거샤넥 교수는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어에서 그칠 게 아니라 실제적인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공을 막는 것만으로는 축구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은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중국이 국가를 파괴하려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2017년 고고도 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놓고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보복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사드 부지를 내준 기업을 괴롭히고, 한국 콘텐츠의 수입을 비공식적으로 막는 한한령(限韓令)을 내리며, 관영 매체를 총동원해 중국 내 반한(反韓)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한국행 단체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이는 극히 일부다. 이제는 중공의 공격에 반격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긴 싸움을 시작할 때다.”

중국의 목표는 ‘세계 공산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의 공자학원 또한 중공의 정치전 중 하나다. 사진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내 있는 공자학원 모습이다. 사진=조선DB

어느 국가든 정치공작을 한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공작이 유독 위협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정치전의 목표가 ‘당의 자기 보존’ 수준을 넘어선 ‘세계 공산화’이기 때문이다. 거샤넥 교수는 “정치전을 통한 중공의 종국적인 목표는 유라시아 동부뿐 아니라 먼 대륙과 해양 영역에서 중공이 생각하는 중화제국으로서의 중국을 복원하는 것”이라면서 “만일 정치전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인식한다면, 그들은 물리적 전투 작전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 것”이라며 비동적(Non-kinetic) 전쟁과의 혼합전 형태로도 진행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현재 이들이 목표치를 어디까지 달성했는지 정확한 수치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승리를 거뒀다고 봐야 한다. 이미 대부분의 인도-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속국이거나 무력화됐다. 또한 중공은 해양 패권을 장악하겠다고 도련선(島鍊線·Island Chain)을 그어 목표를 설정했다. 중국 근해인 1도련선(한반도~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과 2도련선(캄차카반도~오가사와라~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을 차례로 돌파해 중국 인민공화국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서태평양을 장악한다는 게 중국의 구상이다.”

1도련선 내에 있는 한반도의 미군과 전략무기는 당연히 배제 대상이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보복에 나선 것도 그래서다. 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반도를 중국의 영향권 안에 둔다는 전략인데, 이는 한국과 일본(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둔 미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태평양 독점 지배를 저지하고 초강대국에 오르겠다는 계산이다.

이 과정에서 중공이 쓰는 전략은 ‘목표 국가들이 반격할 수 없거나 대항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게 거샤넥 교수의 설명이다.

“예컨대 ‘잔인한 내부 탄압’은 종교 박해와 대량 학살을 포함한 중공의 정치 전쟁의 한 형태다. 최근 신장위구르인에 대한 탄압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중공은 한 세기 동안 중국인들을 잔인하게 탄압해왔다. 이들은 1949년 중국 정복을 시작으로 대규모 테러 통치를 시작했다. 역사학자들은 중공의 방향과 정책의 결과로 최대 1억 명의 중국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중공은 나아가 세계적으로 정치전을 벌이며 유혹, 정복, 침투, 강요 등의 무기를 통해 다른 나라의 주권 영토를 빼앗고 있으며, 인도와의 국경분쟁으로 인도 군인들을 냉혹하게 살해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같은 악의 없는 이름 뒤에는 음흉한 본성이 숨어 있다.”

거샤넥 교수는 “뿐만 아니라 중국은 거대 자본을 이용해 태평양 섬 국가들뿐만 아니라 인도-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전역 국가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기도 한다”면서 “호주와 뉴질랜드의 비판자들을 폭력적으로 침묵시키고, 한국, 대만, 몰디브의 선거에 대한 간섭 등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인 선거권 부여는 ‘국가적 자살’

한국은 내년 총선 및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다. 거샤넥 교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그동안 포섭해온 친중 전문가·정치인·정치집단, 주한 중국 대사관 인력을 동원해 선거를 앞두고 정치전을 펼칠 것”이라면서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한국이 중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면 이는 ‘국가적 자살(National Suicide)’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한국은 영주권 취득 3년이 지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여권을 제공한다. 이들 중 80%(10만 명)는 중국인이다. 이에 대해 거샤넥 교수는 “미국에서는 자국의 독립적 헌법의 가치는 오직 자국민만이 수호할 수 있다”면서 “굳이 자멸적일 수도 있는 투표 시스템을 통해 ‘국가적 자살’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의 정치 개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태국과 대만을 들었다. 태국에서는 친중 군부 쿠데타가 성공했고, 현재의 정치 상황이 지속될 경우 태국은 실질적인 친중 종속 국가로 전환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또 대만 총통 선거와 지방선거에 친중 정치인을 선정하고, 전폭적 지원을 통해 정치 권력을 장악하도록 지원해오고 있다. 하지만 대만은 중국의 2019년 홍콩 접수 사태를 보고 뒤늦게나마 중국의 정치전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거샤넥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대만은 특히 중국의 침투를 막기 위해 ‘반(反)침투법’을 제정해 효과적으로 중국의 정치전과 정치 개입을 차단할 수 있었다”며 “이것은 대만이 2020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선거 무결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대만은 중공 정치전의 제1 목표이자 시범 장소다. 중공은 대만에 효과가 있었던 것을 종종 다른 국가에도 적용한다. 내년 1월 13일 치러지는 대만 총선에 중공의 정치전이 다시금 집중될 것이다. 내년 11월 5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도 마찬가지다.”

北 이용해 원하는 바 획득

▲케리 거샤넥 교수의 저서 《중국은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다(Political Warfare)》

거샤넥 교수는 “중국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북한을 이용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북한 또한 중국의 속국(Vassal State)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완전한 속국의 형태는 아니고, 전적으로 중공에 의존하는 노예국가(Slave State)”라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중국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전적으로 중공에 의존하는 노예국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통해 한국, 미국 등 서방 민주 국가들로부터 식량, 연료 등 자원을 조달받아 집권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항상 마땅히 취해야 할 여러 조치로부터 북한을 보호한다. 최근 중국이 북한의 인권 유린과 관련한 미국의 추가 조치를 막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북의 공격으로 천안함 용사들이 살해당했을 때도, 북한을 방어하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했다.

중국은 북한을 일부 순진한 미국 정치인들을 이용하는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테니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라’는 식이다. 일부 순진하고, 멍청한 (미국) 정치인들은 이때 ‘기술 유출 등 불법 행위들을 모른 척할 테니 북한 문제에 대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 패턴은 1993년 1차 북핵위기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중국은 북한 문제에 대해 미국에 도움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중국 정치전에 무지했던 미국

‘일부 순진하고 멍청한 정치인.’ 이는 과거 미국이 중국 정치전에 무지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거샤넥 교수는 “서구가 소련을 제압한 냉전 말기부터 미국은 안보의식이 느슨해졌고 정부 내에 무지함이 확산되면서 냉전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공의 위협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냉전 중에 만든 정치전 담당기관을 폐쇄했다. 군대와 상급 학교는 ‘정치전’에 관한 교육을 중단했고, 외교 기관과 외교관 사관학교 및 외무 교육 기관에서도 이를 가르치는 것을 중단했다. 미국은 이후에도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국제사회와 자주 교류하면 민주화되리라고 착각했다.”

그사이 중국 정부는 ‘통일전선 전술’로 미국의 정치, 기업, 문화계 엘리트를 조종했다. 중공 관리들이 ‘마법의 무기(Magic Weapon)’라고 부르는 통일전선 전술은 적과 내통하거나 제3의 적을 내세워 반대 세력 내에 동조 세력을 심는 전술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화 교류, 기업가 모임 등 민간단체를 설립해 이를 기반으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을 쓴다. 이를 통해 해당 국가 내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움직임도 억압한다. 또한 기업, 연구소, 정부기관, 정당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고 중국으로 기술을 빼돌리거나 기술 이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통일전선의 핵심 내용은 국제기구를 흡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형사경찰기구(Interpol)와 같은 기관을 활용해 정치공작 활동을 한다. 실제로 WHO는 지난 몇 년간 헌장을 위반하면서까지 대만을 세계보건회의에서 배제하는 등 중국의 지시에 순응적 태도를 보였다.”

미국서 암약하는 中 통일전선 조직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 자리한 파룬궁 회원. 중국인이 지나갈 때마다 현수막을 펼쳐드는 모습. 사진=조선DB

세계 각지에 설립된 각종 명목의 수천 개 중국 관련 단체들은 통일전선 전술의 말단 조직이다. 단체 대부분은 당 기관인 ‘중국공산당 통일전선 공작부’ 하부에 편성돼 조직적으로 운영된다. 미국 《뉴스위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에서만 약 600개의 단체가 발견됐다.

거샤넥 교수는 “미국 싱크탱크와 학계에서 활동하며 중공의 통일전선 전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켜봤다”고 했다.

“통일전선 전술의 타깃이 된 관료, 교수, 재계 지도자 등 엘리트들은 만찬에 초대되거나, 중국으로 초대돼 중국 공작원들과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했다. 공작원들은 종종 공산당 내부, 고위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밀스러운 정보를 일부 이들에게 흘리기도 했다. 이들 엘리트들은 자신이 VIP라고 생각하지, 공작의 대상인 걸 모른다. 실제로 미국의 모 부합참의장은 유력 매체에 중국을 지지하는 글을 기고하고, 화웨이의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로비까지 했다고 한다. 일부 선출직 관료들은 선거운동 모금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중국의 위협을 임기 중에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비단 엘리트만이 포섭 대상은 아니다. 상대국의 중국인 단체나 우호협회 관계자, 기자나 언론사 사주, 관계 당국 실무자도 포함된다. 연예인, 엔터테인먼트 거물, 영화제작사도 통일전선의 타깃이다. 최근 미국 영화의 ‘자체 검열’이 확산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공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티베트, 대만, 신장위구르, 남중국해 및 심신 수련단체인 파룬궁, 천안문 민주화운동, 2019년 홍콩 등의 내용을 영화에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 거다. 실제로 마블 스튜디오의 〈닥터 스트레인지〉의 원작 만화에는 티베트인 남성 승려 에인션트원(Ancient One)이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영국 여배우가 켈트족 여성 승려로 분(扮)해, 연기했다.

거샤넥 교수는 “자국 내 통일전선 공작 단체와 그 공작원들을 식별하고 폭로해 이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은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중국 공산주의가 스며들었음을 알아차렸고,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 미국 기술 절취 등 전방위에서 중공의 약탈 행위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고 했다.


中 정치공작 활동 감시, 추적, 공개해야

한국도 이 같은 대응 조치를 시급히 따라야 한다는 게 거샤넥 교수의 말이다. 그는 “중국이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전개하고 있는 정치전을 한국에서도 강도 높게 전개하고 있다”며 “한국도 이를 하루빨리 인식해 다른 국가의 성공적 대처 사례와 한국만의 특수한 대응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주권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몇 가지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제안했다. 우선 중국 위협의 본질이 정치공작임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국가 차원에서 중국발 정치공작에 대응할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정치공작 대응을 위한 국가기구를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교육·학계 차원에서는 중국 정치공작 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아시아 정치공작 전담센터 싱크탱크를 설립해 중국 정치공작 작전을 정기적이고, 공개적으로 논해야 한다. 중국 정치공작에 대한 학술 연구도 장려돼야 한다”면서 “정보·수사기관에서는 중국 정치공작 활동을 조사하고, 방해하고, 기소할 수 있도록 이들의 정치공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감시, 추적, 공개해야 하며 입법기관에서는 중국공산당 간섭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시민을 위협한 중국인들에 대한 법적 조치와 중국 언론의 공격적 힘을 약화시킬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거샤넥 교수는 “한국이 아시아와 세계 자유 진영의 모범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산업기술 등의 역량을 감안하면 중국·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의 악의적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선두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샤프 파워(sharp power)

샤프파워란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 ‘민주주의 기금’(NED,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이 제시한 개념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다른 나라의 내정이나 국제기구의 운용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외교 전략이다. 소프트파워가 상대를 설득해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것인 반면 샤프파워는 막대한 음성자금이나 경제적 영향력, 유인, 매수, 강압 등 탈법적 수법까지 동원해 상대로 하여금 강제로 따르도록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중국 및 해외 여론에 샤프파워를 행사하기 위해 댓글 부대를 운영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망명 시 위조 한국 여권을 소지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스파이 왕리창은 대만 선거에서 친중국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수십만 개의 가짜 계정으로 댓글을 다는 여론 조작이 이루어졌다고 폭로했다. 2017년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도 보고서를 통해 약 1100만 명 규모로 추정되는 중국의 댓글 부대가 SNS에 올리는 댓글 수만 매년 5억 건에 달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정부가 중국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해외 대학에 설치한 교육기관인 공자학원이 일각에선 스파이 활동을 벌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인터뷰 | 클라이브 해밀턴 호주 찰스스터트대학 교수

“中, 각국의 민주주의 시스템 전복하는 대신 이를 조종해 이익 관철”

⊙ “한국, 중국의 정치공작에 대항하려면 큰 고통 참아낼 각오 필요”
⊙ “中, 수십 년간 호주 정치인 포섭해 자기편 만들어”
⊙ “中, 내년 트럼프 재집권 시 동맹국 이간질할 것”
⊙ “시민사회가 직접 나서 중국의 침탈에 맞서야 ”
⊙ “中 연구자금 받을 바엔 교수직 내려놓을 것”
⊙ “시민권 없어도 투표권 부여하면 韓 정치인 中 눈치 볼 수밖에 없어”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스터트대학 교수. 해밀턴 교수는 지난 2018년 《중국의 조용한 침공: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출간하며 중국 정부의 입국 금지 명단에 올랐다.


 

“중국으로부터 연구자금을 지원받을 바엔 차라리 교수직을 내려놓을 겁니다.”

중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면 학문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벽안(碧眼)의 교수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는 “순간의 달콤함에 유혹당해 중국과 연을 맺게 되면 학문의 자유(academic freedom)를 잃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세계지역학회가 주최한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스터트대 공공윤리학 교수. 그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책 《중국의 조용한 침공: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중국이 전 세계 여러 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정치·경제·외교·문화 공작의 수법을 자세히 담고 있다. 책은 출판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7년 가을 초고가 완성됐으나 출간을 하기로 예정돼 있던 출판사가 중국의 보복을 우려해 출간을 거절했다. 다른 출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형 출판사는 물론 대학 출판국까지 출판을 거부했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2018년이 되어서야 한 독립 출판사의 도움으로 책은 출간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해밀턴 교수는 중국 정부의 입국 금지 명단에 올랐다. 막바지 폭염특보가 내린 지난 8월 21일 서울의 한 호텔 카페에서 그와 만났다.

정치 후원금·여행자금·연구기관 일자리 제공

▲폴 키팅 호주 전 총리. 호주가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구매를 결정하자 그는 지난 3월 “호주 역사상 최악의 거래(the worst deal)”라고 비난했다. 사진=뉴시스

― 이번 국제회의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중국의 정치전(政治戰·Political Warfare)과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제로, 중국이 펼치는 다양한 정치전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그중 저는 ‘호주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정치전과 호주의 대응(The CCP’s Political Warfare in Australia and Australia’s Responses)’이라는 제목으로 호주에 대한 중국의 정치전과 정치 개입 문제의 심각성을 발표했습니다.”

― 중국은 호주 정치인들을 상대로 영향력을 확대해온 것으로 압니다.
“네, 그렇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공산당은 호주의 정치인들, 특히 노동당 의원들을 포섭해 호주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예컨대 폴 키팅(Paul Keating) 전 총리는 중국의 ‘충실한 친구’로 유명했습니다. 키팅 전 총리는 중국이 호주의 국토를 사들이고, 각종 이권(利權)을 침탈하는 행위에 대해 늘 ‘중국의 의도는 평화적’이라고 변호했죠. 중국공산당에 완전히 포섭된 겁니다. 키팅 전 총리 외에도 봅 카(Bob Carr) 전 외교장관, 대니얼 앤드루스(Daniel Andrews) 빅토리아주(州) 주지사, 마크 맥고완(Mark McGowan) 서호주 주지사 등이 중국의 영향력에 포섭된 대표적인 인사입니다.”

―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 호주 정치인들을 ‘친구’로 만들었습니까.
“거액의 정치 후원금을 제공하거나 여행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대표적이죠. 또 정계 은퇴 후 이들이 연구기관 등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도 자주 쓰입니다. 이런 식으로 호주 정치인들은 중국의 ‘그루밍(grooming)’ 작전에 넘어갔습니다. 결국 이들은 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 왜 하필 호주가 타깃이 된 건가요.
“중국은 호주를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로 이뤄진 비밀 정보 공유 공동체) 가운데 가장 약한 사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호주는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고 다문화주의를 중시합니다. 또 국토 크기에 비해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죠. 또한 호주에는 전체 인구의 5%가 넘는 중국계 이민자가 살고 있습니다. 중국은 여기에 틈이 있다고 봤습니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죠. 중국계는 호주를 비판해도 되고, 호주인이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냈으니까요.”

― 위기감을 느낀 호주는 지난 몇 년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호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2015년 집권한 턴불(Turnbull) 자유당 정부는 중국의 정치전에 대응하는 다양한 정책을 전개했습니다. 2018년 들어선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내각도 중국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결성한 3자 안보동맹) 출범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죠. 다행히 여야 가리지 않고 대다수의 의원은 모리슨 내각의 대중국 강경 정책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현재 집권당인 노동당과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 내각도 오커스에 협조적이고요. 지금은 노동당 내에서도 친중 인사를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마크롱, 스스로를 ‘숙련된 외교관’이라고 착각”

― 그런데 서방의 대(對)중국 연대가 마냥 견고하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4월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회담을 가진 것이 대표적이죠. 회담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패권(覇權) 다툼 속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유럽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고도 했죠. 이 같은 발언이 서방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마크롱은 자신을 서방과 중국 사이 생긴 균열을 메울 수 있는 ‘숙련된 외교관’이라고 착각하는 듯싶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인지전(認知戰·Cognitive Warfare)이 얼마나 고도화된 전술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인지전은 상상을 초월하죠. 이에 대한 공산당 내부의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인지전을 통해 중국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친구’를 만듭니다. 그들이 말하는 친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와 다른 개념이죠.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조종할 수 있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크롱의 행태는 중국의 꾐에 자발적으로 넘어간 것과 다름없어요.”

― 내년엔 미국 대선이 예정돼 있습니다. ‘고립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중국엔 호재(好材)가 되겠죠?
“호재가 될 수도, 악재(惡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중국이 기대하는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트럼프 정권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입니다. 이를 이용해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들에 ‘미국은 믿을 수 없는 국가’라며 이간질을 할 겁니다. 미국 중심의 동맹에 균열을 내기 위해 집요하게 파고들겠죠. 그러면서 자신들은 미국과 달리 안정적인 국가라고 선전할 것이고요. 실제로 중국은 트럼프 정권의 ‘미국 우선주의’와 자신을 대비시키며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다자주의(多者主義)의 수호자’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 반면, 중국이 원치 않는 시나리오는요?
“트럼프가 지난 재임 때보다 중국에 더욱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미국 공화당의 반중국 정서는 고조돼왔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바이든 정부만큼은 아니겠지만,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에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中, ‘세계 최고의 지배력’ 목표”

―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세계 최고의 지배력(dominant power)을 갖추는 것이죠.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이 작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이전까지 그 작업이 물밑에서 이뤄졌다면 최근 10년은 공산당의 주도하에 대놓고 진행됐죠. 물론 시진핑은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요. 특이한 점은 중국의 지배력 확장 방식이 과거 소련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소련은 주변국에 포진한 공산당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중국은 이 방법이 더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국은 각국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전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민주주의 시스템을 조종(manipulate)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 있죠. 각국의 정치인, 기업가, 교수, 언론인 등 엘리트 집단을 자신의 ‘친구’로 포섭하게 되면 그 나라 정부는 곧 친중 행보를 띠게 된다는 것을 이용하는 겁니다.”

― 글로벌 산업·금융 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중국의 공작은 무역, 투자, 경제, 사이버 공간, 국제 원조, 금융,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금융 분야에서도 이뤄지고 있죠. 이런 전략은 중국과 경제 관계가 깊은 국가일수록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중국은 이들에게 자신과의 거래가 서로 ‘윈윈(win-win)’이 될 것이라고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이익을 줄 테니 중국을 비판하지 마라’는 압력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돈으로 다른 국가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속셈이죠.”

― 중국공산당은 세계의 언론 또한 조종하려 들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집니까.
“미디어망이 발달하지 않은 아프리카의 경우, 중국이 자본을 직접 투자하는 ‘언론 실험장’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훈련받은 언론인이 수만 명이나 탄생했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은 ‘중국 예찬’ 보도나 ‘중국 비판에 대한 반론’ 보도도 외국인에게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우수성’을 설파하는 것보다 외국의 입을 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전 방법임을 아는 것이죠. 신화통신(新華通訊), 《인민일보(人民日報)》 등 중국 언론은 해외 언론과 제휴를 맺어 이른바 ‘중국식 언론 신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신화통신 특파원, 중국공산당 스파이”

― 말씀하신 신화통신의 경우, 중국 정부(국무원)에 속해 있으며, 흡사 스파이 집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공격적인 취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공신력 있는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과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신화통신 특파원이 중국공산당의 스파이라 하더군요. 기자 신분이 되면 해당 국가의 다양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죠. 예컨대, 특정 정치인이 누구와 친한지, 누구와 적대 관계인지부터 시작해 가족 관계, 내연 관계 등을 샅샅이 캐내 본국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 해외 주재 중국 대사관 혹은 총영사관에도 스파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습니까.
“사실 모든 국가가 자국 대사관 혹은 영사관에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같이 파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의 경우 그 수가 과할 정도로 많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외교관 수는 다른 국가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단순히 영사 업무만 한다고 보긴 어려운 수준이죠. 또 한 가지 사실은 중국 공관에서 대사나 총영사는 실권자(實權者)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 그럼 누가 가장 큰 실권을 갖고 있나요?
“공관마다 중국공산당 관계자가 직접 파견돼 나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진짜 ‘실권자’입니다. 이는 해외 주재 중국 공관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이나 대학 등 모든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중국은 전 세계 각지에 자국의 경찰도 몰래 파견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호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곳곳에서 중국의 비밀경찰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중 몇몇은 언론 보도나 수사로 공식 확인 및 발각되기도 했죠. 중국의 비밀경찰은 해당 국가 내 자국민의 활동을 감시하거나 해당 국가의 여러 정보를 빼돌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내정 간섭입니다. 국제사회가 중국 내 인권 문제 혹은 홍콩 문제에 관해 지적할 때면 중국은 이를 내정 간섭이라고 몰아세웁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외국 정부가 모르게 해외에서 비밀경찰을 운영하는 것이죠.”

― 호주는 이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는 비밀경찰이 적발되면 이들을 강력하게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호주 경찰은 중국 비밀경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 왜 그런 겁니까.
“호주 경찰은 중국 공안과 정보 교환 협정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이 협정은 호주 경찰이 마약 유통책을 검거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호주 경찰이 중국 비밀경찰을 문제 삼게 되면, 중국 공안과의 이런 정보 교환은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 뻔합니다. 이런 까닭에 호주 경찰은 이 문제를 소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중국 자금과 맞바꾼 학문의 자유

― 중국공산당은 전 세계 많은 대학에 막대한 연구자금을 지원하며 이들을 포섭하려 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중국의 손아귀에 넘어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학문의 자유가 사라질 겁니다. 학문의 자유는 서구의 지성(知性)을 지탱해온 가장 큰 힘입니다. 학자들 또한 외부의 압력이 있더라도 진실을 추구해왔죠. 그런데 중국은 전 세계 많은 대학이 연구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을 노리고 연구자금을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죠. 이를 받아들이는 대학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 돈이 달콤하겠지만, 대가는 가혹합니다. 바로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를 지불해야만 하죠. 그렇게 되면 대학 내 모든 연구가 중국의 입맛에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 교수님은 중국으로부터 연구자금을 받으려는 생각은 안 해보았습니까.
“전혀 안 해봤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연구자금을 지원받을 바엔 차라리 교수직을 내려놓을 겁니다.”

―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민 단체 관광을 재개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이런 관광객마저 상대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면서요?
“네. 대부분의 국가에서 관광 산업은 자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죠.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여행을 가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조종해 상대 국가와 관계가 경색될 경우 이들의 유입을 막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 국가에 경제적 타격이 따르게 됩니다. 결국 관광 분야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중국이 이를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는 겁니다.”


“시민사회가 나서야”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는 전국 대학을 돌며 공자학원 추방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해밀턴 교수는 “시민단체가 중국의 침탈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 한국 정부는 영주권을 획득하고 3년 이상 거주한 19세 이상 외국인에게 지방선거의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18세 이상 한국 영주권자의 80% 이상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 정치계에도 중국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선 안 됩니다. ‘중국계라면 무조건 우리의 뜻을 따라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중국공산당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방법을 활용, 이들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조종하려 들 겁니다. 투표권을 가진 많은 중국인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의 정치인들은 1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3년이 지난 외국인에게 한국 정부가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한 것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다. 일본 정부의 재일동포 참정권 부여를 촉구하기 위해 선제로 법을 개정한 성격이 짙다. 우리가 먼저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해야 외국에도 이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는 논리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과 중국에서 외국인 참정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사이 한국 내 중국인 영주권자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8세 이상 영주권자(전체 16만1359명)의 81%인 13만1112명이 중국 국적이다. 단일 국가 중 최대 증가세다.

― 한국이 중국의 정치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한국이 중국에 대해 정상적 외교 정책만을 유지한다면 반드시 중국의 정치전에 희생되고 말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직접 나서 중국의 침탈에 맞서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의 침탈에 단호하게 나서면 나설수록 중국은 ‘보복’ 조치의 강도를 높일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의 정치공작에 대항하기 위해선 큰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중국의 인지전과 여론전에도 각별한 경계와 주의를 해야 하죠. 이를 위해선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중국의 전략을 분석해 중국의 영향력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인터뷰 | 한국에서 중국 ‘비밀경찰’ 감시받다 미국으로 떠난 중국 유학생

“어디 살든지 상관없어… 말 조심하라”(공안과의 통화)

⊙ 집 문 앞에서 감시하는 수상한 중국인들 보고 다음 달 미국으로 출국
⊙ “한국은 중국 비밀경찰이 집 문 앞에서 기다릴 정도로 활동하기 쉬운 나라”
⊙ “중국 비밀경찰이 자국민 감시 활동을 했더라도 주권 침해”(조정현 교수)

⊙ 유명해지면 조금 더 안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인터넷 시작… 구독자 40만 명 육박

 

진씨가 하이난성 하이커우시 인민검찰원 앞에서 ‘범죄 혐의인 소송 권리 의무 고지서’를 들고 사진을 찍은 모습. 사진=진씨

“문 앞에서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저의 개인정보와 외출 시각을 나누는 두 명의 중국인이 서 있더군요.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도 없었어요. 바로 다음 달에 급하게 미국으로 떠났어요.”

중국인 청년 진모(27)씨는 2021년 8월 국내 모(某) 대학 재학 시절 자취방 문 앞에 서 있던 ‘수상한 중국인’을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 망명 절차를 밟고 있다. 익명(匿名)을 전제로 진씨와 화상(畵像)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넷 검열 뚫으면서 꼬이기 시작한 삶

▲중국 하이난성(海南省) 하이커우시(海口市) 공안국이 발부한 진씨의 취보후심(取保候審ㆍ보증금 또는 보증인을 내세워 일시적으로 석방하는 처분) 결정서. 사진=진씨

진씨는 “한국은 중국 비밀경찰이 집 문 앞에서 기다릴 정도로 활동하기 쉬운 나라”라며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진씨에게 비밀경찰이 따라붙은 계기는 무엇일까.

2022년 12월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실태를 폭로했던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중국 비밀경찰서는 중국 장쑤성(江蘇省) 난퉁시(南通市) 공안국 소속이다. 진씨는 장쑤성 옆 안후이성(安徽省) 출신이다.

어렸을 적 유수아동(留守兒童)이었던 진씨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중국에선 부모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고 지방에 남겨진 아이들을 ‘유수아동’이라고 부른다. 조부모 밑에서 크며 홀로 있는 시간이 길었던 진씨에게 세상을 보는 창(窓)은 인터넷이 유일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 ‘만리방화벽’을 뚫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화근(禍根)이 됐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가상 사설 통신망(VPN·Virtual Private Network)을 통한 만리방화벽 우회 접속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한국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정치와 관련된 것들도 접하게 됐다. 특히 이웃 나라인 한국, 일본, 대만은 중국과 달리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19년, 중국의 소셜미디어(SNS) ‘웨이신(微信·국외판 WeChat)’에 중국공산당의 방역 지침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공안으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검열이 심한 중국에서 VPN 우회 접속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진씨는 이 방법을 친구에게 알려줬다. 더 나아가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도 전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결국 2020년 6월 10일, 진씨의 집에 공안 10명이 들이닥쳤다. 혐의는 ‘다른 사람에게 VPN 우회 방법을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공안들은 사복(私服)을 입고 있었고, 소속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전자제품도 압수당했다. 그렇게 취조실로 끌려가 심문을 받다 이튿날 취보후심(取保候審·보증금 또는 보증인을 내세워 일시적으로 석방하는 처분)으로 풀려났다. 이마저도 진씨가 마침 열이 났기 때문에 이뤄진 임시 조치였다. 코로나19에 민감했던 시기여서 구치소에선 진씨의 수용을 거부했고, 보석금을 내고 조건부로 풀려났던 것이다. 그가 위험을 감수해가며 이렇게까지 행동하게 된 건 대만 유학 시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대만 유학 시절 자유민주주의 알게 돼”

▲중국의 비밀경찰로 추정되는 인물이 서울에 있는 진씨의 자취방 앞에 있을 때, 진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모습. 사진=진씨

진씨는 20세였던 2016년 대만 유학을 갔었다. 그는 이때 느낀 점을 이렇게 회상했다.

“4개월 동안 대만 유학을 다녀왔다. 당시 20세였고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전혀 없었다. 대만에 가서야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은 대로, 대만은 중국의 일개 성(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마음대로 정부에 항의할 수 있었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조차 비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샤오펀훙(小粉紅·중국의 맹목적 애국주의자)을 거부하게 되었다. 긴 잠에서 깬 듯한 기분이었다.”

2020년 6월 중국 공안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진씨는 한국행을 앞두고 있었다. 자신의 혐의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진씨는 그해 12월 31일 ‘일반연수(D-4)’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곧 중국 공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귀국을 종용(慫慂)하는 것이었다. 진씨가 응하지 않자 2021년 5월 그의 계좌가 동결됐다. 진씨는 이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그랬더니 3개월 만인 2021년 8월, 중국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공안이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진씨가 올린 유튜브 영상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며칠 뒤, 진씨의 자취방 문 앞에 수상한 2명이 지키고 서 있기 시작했다. 현관문 너머로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수상한 남성이 중국어로 진씨의 이름과 주소, 외출 시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속엔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그들은 이웃도 아니었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며칠 전엔 중국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집에 공안들이 찾아왔었다는 전화가 온 참이었다. 이때 공안이 진씨의 아버지, 할머니, 친구, 사촌, 이모, 중학생 동생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씨는 문 앞에 상주하던 이들을 한국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한국 경찰이 오고 나서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두려움이 엄습해, 결국 다음 달인 2021년 9월 21일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진씨는 중국 공안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계좌가 동결된 이유를 따져 물었다. 하지만 공안은 계좌 동결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는커녕 어서 귀국하라며 어르고 달랬다. 그는 중국 공안과의 통화를 녹음해 그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다음은 통화 내용 일부다.

“(소셜미디어에서) 발언하고 싶으면 하세요. 괜찮아요. 다만 미국에선 말 때문에 잡혀간 사람이 없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당신이 돌아온다면 우리가 법원 측에 이야기를 해서 좀 더 관대한 처벌이 내려지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걸 다 정부와 체제의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뒤늦게 귀국하면 정말 오랫동안 징역을 살게 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법원에 잘 얘기해드리겠습니다. (중략) 조언 하나 해드리지요. 돌아올 것인지 정말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 공안이 나서서 법원 측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살든지 상관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다 정부의 탓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국외(國外)에 있을 때는 말 조심하세요.”

중국 전문가인 A씨는 진씨의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은 국외에 있는 자국민이 ‘문제의 인물’이 되면 행적 조사부터 시작한다. 진씨의 경우, 그가 우연히 문 앞에 있던 이들을 발견했을 뿐, 사실 24시간 내내 그에 대한 감시가 이뤄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문제가 되는 학생은 보통 1개월에서 2개월 내에 중국으로 송환된다.”

“비밀경찰이 또 따라붙을 수 있다고 생각”

진씨는 한국이 좋아 머무르고 싶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되면서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공안이 자취방 앞에 상주하고 가족은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그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망명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난민(難民) 신청을 검토하다가 금방 단념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 국적의 사람들에게 난민 신분을 준 경우가 굉장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난민으로 인정된 사례를 찾아보니 중국에서 탈북자(脫北者)들을 도왔던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중국인이 난민 신청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중국인을 난민으로 받는 건 부담스러울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비밀경찰이 또 따라붙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진씨가 말한 사례의 인물은 2018년 법무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중국인 투아이룽(塗愛榮·60)씨다. 그는 중국에서 12년 동안 500여 명의 탈북자들을 동남아시아 등지의 제3국으로 보내 ‘중국인 쉰들러’로 불리기도 했다. 투씨도 처음엔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난민 불인정 취소 소송을 거쳐 2년여 만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6월 29일 법무부가 낸 〈2022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국적자가 신청한 난민 인정 심사는 총 8224건으로, 카자흐스탄(9637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그러나 같은 기간 난민으로 인정받은 중국 국적자의 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극히 적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조정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난민을 인정하는 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엄격한 편”이라고 말했다. 진씨와 같은 사례에 대해선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특히 진씨의 경우처럼 당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또한 있으면, 관련 탄압이나 박해를 받을 우려로 인해 한국에서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진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도 ‘유명해지면’ 중국 정부가 함부로 자신과 가족을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첫 영상은 2021년 5월에 올라왔다. 진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8월 26일 기준, 39만7000명이다. 구독자들의 64%는 대만인, 10%는 홍콩인이다. 나머지는 미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순이다. 구독자의 성별은 78%가 남성, 22%가 여성이다. 연령별로는 25~34세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으며 35~44세가 뒤를 잇는다. 그의 영상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주로 중화권에 거주하는 젊은 남성들이다. 지난해 12월 진씨는 일본 TBS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당시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과도하다며 일어난 ‘백지(白紙) 시위’의 의미를 소개했다.

방첩 당국, ‘비밀경찰서’ 수사 종결

한편 방첩 당국은 지난 8월 ‘중국 비밀경찰서’ 관련 수사를 종결했다. 당국은 처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식품위생법 위반’ 등 첩보 활동과는 관련 없는 혐의만 살펴봤다. 현행 형법상 중국을 ‘적국(敵國)’으로 규정할 수 없어 간첩죄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페인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2022년 12월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한국에도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후 수사에 나선 방첩 당국이 지목한 ‘중국 비밀경찰서’ 거점은 서울 한강변에 있는 식당인 ‘동방명주’였다.

진씨도 문 앞에 있던 수상한 이들을 한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마땅히 처벌할 근거가 없어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립외교원 교수를 지낸 조정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법에 마땅한 처벌 근거가 없어도 국제법적으로는 문제가 된다”면서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자국민(自國民)을 감시만 했더라도 주권(主權)이 있는 타국(他國) 내에서 경찰력 또는 행정 관할권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주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외교원 교수를 지낸 이지용 계명대 중국어중국학과 교수도 “우리 주권을 침해당한 문제인데 처벌 근거가 없다는 건 손발이 묶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반체제 중국인들은 한국에 와서도 보호받지 못한다고 토로한다”며 “그(진씨)의 경우도 중국의 집중 관리 대상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우리 정보기관이 중국의 국제법 위반 소지를 알고 있음에도 국가 단위의 비밀스러운 활동이기에 어느 정도 덮고 넘어갔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관련 전문가의 이야기다.

“주재국에서 경찰 활동을 하는 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하지만 국가 간에는 항상 명쾌하게 두부 자르듯이 딱 떨어지지 않는 ‘회색 지대’가 있다. 그러한 활동 영역엔 적과 우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동방명주에 대한 수사도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측면이 있다고 본다.”⊙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과 2024년 총선

中, 총선에서 親中 세력 지원… 사이버 공격으로 선거 결과 뒤집을 가능성도

⊙ “이번에 선거 한 번만 더 이기면 한국은 우리 것”(작년 대선 당시 국내 중국인 커뮤니티에서 나돈 글)
⊙ 작년 대선 때 중국이 4000만 명의 댓글부대를 동원했다는 주장도 있어
⊙ 中, ▲엘리트층 매수 ▲지자체 투자·협력사업 통한 지역 거점 구축 ▲공자학원 통한 공산이념 확산 ▲여론조작 ▲투자이민 장려 등 방법으로 영향력 확산 공작
⊙ 美 국가정보국, 중국이 2020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고 공식 확인
⊙ 호주, 2000~2016년 기간 중 해외에서 유입된 정치자금의 80%가 중국에서 들어온 것
⊙ 中, 유학생·교민 동원해 캐나다 총선에서 보수당 후보에 대한 가짜 뉴스 퍼뜨려

金忠男
1940년생. 육사(21기), 서울대 대학원 졸업, 美 미네소타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 육사 교수,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정무비서관·공보비서관, 美 하와이대 동서센터 연구위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역임. 現 한국군사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의 국가건설혁명》 《미국의 21세기 전쟁》 《한국의 10대 리스크》 《민주시대 한국안보의 재조명》 《대통령과 국가경영2: 노무현과 이명박 리더십의 명암과 교훈》 《대통령과 국가경영: 이승만에서 김대중까지》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 당시 국내 중국 유학생 등은 탈북자 및 티베트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국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했다. 사진=조선DB

지난 6월 8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는 방송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미국 승리에 베팅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한중(韓中) 수교 이래 중국이 갖가지 방식으로 영향력 행사를 시도해왔지만 중국 대사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의 영향력 행사가 노골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중국은 한국에서 무엇을 노려온 것이며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우리는 중국에 대해 경제적 이익만 생각했을 뿐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의도와 전략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소홀히 해왔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

중국의 핵심 대외(對外) 전략은 미국과의 패권(覇權) 경쟁에 대응하는 것이며, 따라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도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주된 관심사일 것이 틀림없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과 연대(連帶)를 강화해왔다. 이에 맞서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특히 한미일(韓美日) 안보협력을 중국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면서 한국을 한미일 협력에서 분리시키려 노력해왔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한국을 위성국(衛星國)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사실상 그들의 영향권에 있는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2018년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習近平)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미국에, 한국에서 손을 떼라는 발언인 것이다. 사드 갈등 당시 경험했듯이 중국은 그동안 한국에 대해 고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한국은 중국에 대해 당당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이 중국 영향권에 머물러 있었고 또한 문화적 동질성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나 거부반응이 희박했다.

구한말(舊韓末)에 경험했듯이 대외 정책을 둘러싸고 국론(國論)이 분열되면 외세(外勢)는 개입을 노리게 된다. 중국은 한국의 외교 정책이 정권에 따라 크게 바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의 주요 선거를 앞두고 갖가지 방식으로 선거에 영향을 주려 할 것이 틀림없다. 친중적(親中的)인 정당과 정치인들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중국에 적대적인 정당을 견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중국의 대외 정치공작인 샤프파워(sharp power) 전략이 주요국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 전략이 한국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현시점에서 어떤 점들을 주목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자 한다.


은밀, 강압, 매수

샤프파워란 중국공산당의 통일전선공작 지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나라에 은밀하게 침투하여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동시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활동을 말한다. 중국은 공산당 정권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국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해 샤프파워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이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통일전선공작이다.

중국은 샤프파워 전략을 통해 자국(自國)의 노선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단체들을 대상으로 압박이나 위협을 가하며, 현지 중국 동포와 유학생 등을 감시 통제하여 친중 여론 조성에 앞장서게 하며, 또한 대상 국가의 정치인, 학자, 언론인, 관료 등 중국을 대변해줄 현지 여론 선도층을 포섭하는 활동을 벌이고, 나아가 댓글부대를 동원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등 여론조작 활동도 벌인다. 그래서 샤프파워 전략의 특징은 은밀함(covert), 강압적(coercive), 매수(corrupt) 등 3C로 알려지고 있다.

 샤프파워는 소프트파워(soft power)와 대조되는 개념이다(표 참조). 소프트파워는 공공외교에 동원되는 것으로 문화를 매개로 공감과 설득을 유도하는 등, 국가의 매력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반면 샤프파워는 직간접적 압력, 뇌물, 보상 등을 통한 포섭, 여론조작 등을 통해 상대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시 말하면, 샤프파워는 상대국에 대해 정보를 왜곡하고 조작함으로써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하며, 나아가 상대국의 정치체제, 사회제도, 가치 등의 신뢰를 저하시킨다. 마오쩌둥은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했다. 샤프파워 전략은 중국공산당의 정치전(political warfare)이며 이념전쟁이다.

1990년대 초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중국 공산주의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중국에 팽배했다. 그래서 중국공산당 정권은 국가안보의 범위를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이 약화되는 것까지 확대 해석했다. 그러나 중국이 시장경제를 확대하면서 민주적 사조(思潮)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통치 방식이 민주적 방식보다 못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국제사회에서 중국 위협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은 공산당 통치 방식이 민주적 방식보다 우월하다는 확신을 주지 않는 한 국내외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2007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중국 소프트파워의 취약점을 인식하고 중국 문화로 소프트파워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뒤를 이은 시진핑 주석은 이와 달리 보다 적극적인 전략으로 전환했다. 2014년 9월, 시진핑 주석은 통일전선공작을 통해 정치사상전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중국공산당은 통일전선공작부를 획기적으로 확대 개편하여 해외 영향력 확대에 적극 나섰다.

 

 

“공자학원은 중국의 중요한 해외선전기구”

▲국내 공자학원 교재.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중국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샤프파워 전략의 목표는 무엇인가? 시진핑 주석은 2017년 10월 중국공산당 대회 연설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국을 세계 최대 강대국으로 올려놓겠다는 중국몽을 선언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몰아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하면, 샤프파워 전략의 최종 목표는 미국이며,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약화 또는 파탄시키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 샤프파워 전략의 주요 대상국이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샤프파워 전략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통일전선공작을 위한 조직과 인원, 그리고 기능과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조직적 차원에서 보면, 중국공산당과 국무원 산하 수많은 조직이 통일전선공작과 연계되어 있다. 해외에서 통일전선공작 업무를 수행하는 주요 조직은 인민해방군 정치공작부, 인민해방군 산하 중국국제우호연락회, 외교부와 대사관 및 영사관, 그리고 대사관에 연계된 해외 중국학생학자연합회 등이다.

중국의 해외 통일전선공작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공자학원도 포함된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에 541개소의 공자학원을 두고 있다. 중국공산당 간부 스스로 “중국의 중요한 해외선전기구”라고 인정했을 정도로 샤프파워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DNI, 中의 美 대선 개입 확인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은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국가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은 주요국을 상대로 ▲특정 정당 및 후보에 은밀한 자금 지원과 반대 정당 및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 등 선거 개입 ▲댓글부대와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여론조작 ▲사이버 공격을 통한 국가기밀 및 기업 정보 탈취 ▲중국공산당 정권을 비판하는 해외 거주 중국인 납치를 위한 비밀경찰서 운영 ▲공자학원을 통한 중국공산당 이념 전파 등을 해왔다.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 선거는 물론 모든 주요 선거에서 가짜 뉴스를 전파하고 친중 후보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벌였으며, 또한 미국 사회에 친중국 논조를 확산시키는 동시에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켜왔다. 2021년 1월 18일, 중국이 2020년 미국 대선(大選)에 개입했다는 미국 국가정보국(DNI)의 공식 확인이 있었다. 2022년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두고도 중국의 페이스북 등을 통한 선거 여론조작 시도가 있었다고 그해 9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 있다.

대학을 대상으로는 공자학원 중심의 침투 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중관계가 갈등관계로 변하면서 미국에서 공자학원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2017년 4월 전미(全美)학자연합(NAS)은 “공자학원은 미국의 대학에 침투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도구”라고 비난했고,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020년 9월 “공자학원은 중국공산당의 통제와 자금 지원을 받아 간첩 활동을 하고 있다”며 모두 퇴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공자학원은 한때 110곳에 달했으나 공자학원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현재 30곳 이하로 크게 줄어들었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은 미일동맹 약화가 주된 목적이었으나 일본의 중국과의 경쟁의식, 중국의 위협에 대한 경계심리, 그리고 확고한 미일동맹 때문에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인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2019년 미국의 퓨 리서치 여론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 34개국 중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부정적 인식이 85%로 가장 높았다. 그럼에도 미군기지가 집결해 있는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의 독립을 부추기고 동시에 미군철수운동을 지원하는 등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어서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이 두드러진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타이완, 캐나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뉴질랜드: 전 중국군 정보장교가 의원 당선

▲중국군 정보장교 출신 뉴질랜드 정치인 양젠. 사진=퍼블릭 도메인

뉴질랜드는 중국 샤프파워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중국의 WTO 가입,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 참여 등, 중국의 주요 대외 정책에 대해 서방국가 중에서 뉴질랜드가 가장 먼저 찬성했다. 또한 뉴질랜드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과 군사기지 건설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않았다.

중국은 뉴질랜드를 샤프파워 전략의 주요 목표로 삼고 조직적으로 침투했다. 그 이유로서 ① 뉴질랜드는 남태평양의 전략적 요충(要衝)이고 ②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또한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5개국 정보동맹인 파이브아이즈(Five Eyes)의 회원국이며 ③ 뉴질랜드가 쿡 아일랜드 등 인접한 남태평양 3개 도서 국가의 외교·안보를 관장하고 있어 중국의 남태평양 지역의 군사기지 건설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를 대상으로 한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의 목표는 뉴질랜드 내 중국 동포 사회와 중국 유학생을 관리하고 활용하여 친중국 여론을 조성, 또한 경제적 수단을 동원한 매수나 회유 또는 협박을 통해 뉴질랜드의 정치계, 언론계, 학계, 경제계에 침투하여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종식시키고 중국 주도의 전략적·경제적 블록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교두보 확보를 위한 선거 개입이다. 뉴질랜드의 인구는 450만 명 정도이고 중국계 인구는 20만 명 정도이지만, 수도 오클랜드의 중국계 인구는 10%나 된다. 중국은 통일전선공작을 통해 선거에 출마한 중국계 후보 또는 친중국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또한 중국계 주민들에게 몰표(block voting)를 던지도록 유도하였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3명의 중국계 후보가 의원으로 당선됐으며, 특히 국민당(the National Party)의 양젠(Yang Jian·楊建) 의원은 과거 중국군 정보장교로 15년간 근무한 사람으로, 정치인이 된 후 친중 정책노선 구축에 매진했다.

 
 

 호주: 중국 샤프파워 전략의 핵심 목표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 최대 자원부국이며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어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나라이다. 세계 5대 자원이라 일컫는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석탄, 구리에 있어 세계 톱3 공급국이며, 특히 세계 최대의 석탄 및 철광석 수출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전략 환경은 한국과 비슷하다. 안보에서는 미국과 동맹관계이고, 특히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국가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수출의 3분의 1 정도가 중국으로 나갈 정도로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최대 무역 파트너다. 또한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남중국해와 가깝기 때문에 중국은 남중국해를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지지 확보가 절실했다. 그래서 중국은 경제력을 앞세운 샤프파워 전략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친중 국가로 만들려 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상대로 한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은 어느 나라보다 조직적이며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중국공산당 예하의 통일전선부와 인민해방군 정치공작부 요원들이 오스트레일리아 현지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이용해 현지 중국 동포 사회, 중국 유학생 및 중국 학자, 그리고 호주의 언론, 중앙정부, 지방정부 등에 침투하여 중국의 국익을 추구하고자 노력해왔다. 2000년대부터 중국 자금의 현지 중국인 언론매체 인수 또는 신설 등을 통해 정보와 여론을 장악하고,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매수하고자 노력해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보국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중국어 언론매체의 95% 이상이 중국의 통일전선공작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또한 최소 10명 이상의 정치인이 중국에 매수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의 로비를 받은 오스트레일리아 정치인들이 중국의 기업과 공산당이 진입하기 용이하도록 친중 정책을 입안하고, 그렇게 들어온 중국 기업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토지와 기업을 사들였다. 이런 상황을 비판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언론에 대해서는 중국계 기업들이 광고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압박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중국공산당의 입맛에 맞는 정보, 역사, 문화를 가르쳤다. 중국공산당의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중국공산당의 영향력이 확산된 것이다.


“中, 조직적으로 호주 정계 침투”

▲샘 데스티에리 전 호주 상원의원. 사진=AP/뉴시스

2017년 12월 노동당 중진 샘 데스티에리(Sam Dastyari) 상원의원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등 친중국 행보를 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노동당 주요 직책에서 물러났다. 그는 정치자금 수수 등 중국계 사업가들과 유착(癒着)관계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3~2015년 기간 중 오스트레일리아 주요 정당이 중국 관련 단체나 기업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이 2300만 오스트레일리아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0~2016년 기간 중 해외에서 유입된 정치자금의 80%가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국인 정치 후원금 문제가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2017년 12월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총리는 “해외 강대국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역사상 유례없는 정교한 시도를 증가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보다 6개월 전 오스트레일리아방송공사는 “중국이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정치계에 침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찰스스터트(Charles Sturt)대학의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교수는 자신의 저서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져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주권까지 위협받고 있다”면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이에 맞서 권리와 자유를 지키지 않는다면 결국 중국의 조공국(朝貢國)이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중국은 “그동안 중국공산당이 전략적 계획에 따라 오스트레일리아에 체계적으로 침투하는 노력을 차근차근 실행해왔다”며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이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침투와 전복 방법을 시험하는 무대가 됐다”고 했다.

타이완, ‘反침투법’ 제정

중국은 외형적으로는 타이완(臺灣)에 대해 ‘일국양제(一國兩制)’ 통일을 표방하고 있으나 홍콩의 경우에서 보듯이 실제로는 흡수통일을 노리고 있다.

타이완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은 선전선동, 가짜 뉴스 살포, 경제적 압박, 정치적 압박, 비밀공작에 의한 혼란 조성 등 다양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타이완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다. 중국에 대한 비판여론은 잠재우고 중국공산당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여론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타이완의 민주체제와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정당과 시민단체 간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타이완은 2020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중국의 공작으로부터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반(反)침투법’을 제정하여 적극 대응했다. 2020년 타이완 총통 선거 당시 중국은 차이잉원(蔡英文)과 민진당이 타이완을 일본에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지만 역풍(逆風)이 불어 차이잉원의 재선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중국과 거래하는 타이완 기업들에 친중적 입장을 공식화하고 친중적인 정당과 후보를 지원해달라고 압력을 행사해왔다. 나아가 중국은 타이완의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킴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자 했다.

비밀경찰서, 캐나다 총선 개입 주도한 듯

▲마이클 청 캐나다 연방하원의원. 사진=마이클 청 페이스북

중국은 미국 공략의 교두보로 삼고자 캐나다에 대한 샤프파워 전략을 벌여왔다.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는 국가 정체성(正體性)이 불분명한 국민이 적지 않다. 2021년 기준 캐나다의 중국계 이민자는 170여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7%에 달하며, 특히 그들은 도시에 밀집되어 살고 있고 정치자금 지원, 소셜미디어 선전 활동, 중국계 후보에 대한 몰표로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대 도시인 토론토는 인구의 10%가 중국계이며, 밴쿠버의 경우도 비슷하다. 중국 정부의 풍부한 자금 지원, 중국계 기업의 영향력, 그리고 중국계 언론 등으로 인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래서 선거 개입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캐나다 언론들은 자국 정보기관인 보안정보국(CSIS)의 비밀문서를 입수해 중국 정부가 자국에 유화적인 자유당의 집권 연장을 위해 유학생과 교민 등을 대거 동원해 2019년과 2021년 캐나다 총선에서 최소 11명의 자유당 후보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에 있는 중국계 교민 사회와 협회 등을 활용해 불법적으로 자유당 후보들에게 현금을 기부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밴쿠버와 토론토에서 유학생들을 동원해 야당인 보수당 후보들에 대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도록 했다고도 밝혔다. 캐나다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10만여 명이나 있다. 중국의 캐나다 총선 개입은 비밀경찰서가 주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유당은 야당인 보수당보다 중국에 타협적인 정책을 주장해왔다.

중국이 캐나다 의원을 상대로 한 ‘인질 공작’이 표면화되면서 양국이 서로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정면충돌하기도 했다. 캐나다 언론들이 CSIS 비밀문서를 입수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해온 보수당 소속 마이클 청 연방 하원의원을 압박하려고 홍콩에 거주하는 그의 친인척을 사찰해왔다는 것이다. 홍콩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청 의원은 2021년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인종 학살’로 규정하는 캐나다 의회의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중국 정부의 제재 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바 있다.

이처럼 캐나다와 중국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 정부는 최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점점 더 파괴적인 글로벌 파워(increasingly disruptive global power)’로 규정하고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小國이 大國에 대항해서 되겠느냐”

한중수교 이후 한국은 중국에 대해 기대가 컸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경제와 사회, 문화 부문에서는 교류와 협력이 획기적으로 확대됐지만 정치 및 외교, 안보 부문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 했지만 한국과 중국 관계에서 적절한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 중국은 6·25전쟁 당시 우리의 적국(敵國)이었고 지금도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후 한미 양국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이 사드 배치 허용을 선언한 지 1시간도 안 돼 중국 외교부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항의했다. 다음 달에는 베이징(北京) 당국이 연이어 27건이나 성명을 발표했고 중국 매체들도 한국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250건 넘게 보도했다. 또한 한국 경제의 높은 중국 시장 의존도를 약점으로 삼아 중국은 1년 반 동안 경제적 보복과 정치·외교적 압박을 가했으며, 대대적인 한국제품 불매운동도 벌였다. 2017년 1월 서울에 온 천하이(陳海)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의 발언은 경악할 수준이었다. 국내 5대 그룹 회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 되겠느냐” “너희가 계속 사드 배치를 고집하면 단교 수준의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는 등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이처럼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에 과민하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을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의 가장 약한 고리로 보고 한국에 압력을 가하여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한국 내 사드 찬반 여론을 겨냥하여 한국 여론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심화시키고자 함이다. 사드 찬성은 친미로, 사드 반대는 친중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고 한중관계를 강화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압박을 해제할 목적으로 2017년 11월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주장에 가까운 합의를 했다. 한국에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주도의 미사일망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체제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을 뿐 아니라 배치된 사드의 작전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이 안보주권은 물론 한미동맹 문제를 중국에 양보한 것으로 한국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언론 등 엘리트층 매수

 그동안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중시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행보를 보였지만, 이는 전략부재(戰略不在)를 의미한다.

반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전략은 분명했다.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중국의 영향권을 확대하기 위해 한국을 가장 중요한 공략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더구나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우호적 인식을 가지고 있고, 또한 한국 여론이 친미-친중으로 양분돼 있기 때문에 중국은 한국에 별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초기 고도성장기인 1990년 이후 약 25년간 한중 간 경제관계는 상호보완적이었고 미중관계도 원만했으며,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경계의식 또한 희박해 중국은 한국에 대해 전방위(全方位) 침투 및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에 대해 중국의 샤프파워 전략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돼왔는지 한번 살펴보자.

첫째, 엘리트층 매수를 통한 영향력 확대다. 그들은 정당 및 정치인, 언론인, 학자,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자금 제공, 매수공작 등 은밀한 활동을 해왔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궁극적 목적은 친중 정권이 장기 집권하게 만듦으로써 한반도 전체를 중국 영향권에 묶어두는 것이다. 언론매체를 통한 중국식 사회주의 장점 홍보와 중국의 정책 지지 여론 조성, 나아가 한국 언론매체에 대한 투자를 통해 영향력 확산을 노렸다고 본다.

특히 2014년 시진핑 주석의 방한(訪韓) 후 한국 언론에 친중 바람이 불었다. “미국은 지는 해, 중국은 떠오르는 해이자 미래”라는 느낌을 주는 특집 프로그램이 제작, 방영됐다. KBS는 2015년 신년특집으로 〈슈퍼차이나〉라는 대형 다큐멘터리를 방영했고, SBS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 부(富)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일간지들의 논조도 비슷했다.

여론조작 통한 보수 정권 약화 시도

둘째,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투자와 협력사업을 통한 지역사회 내 친중 거점 구축이다. 강원도에 건설하려 했던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의한 중국복합문화타운 건설 시도는 중국공산당의 노골적인 침탈 시도다. 중국인들은 제주도는 물론 전국 주요 관광지와 주요 도시에 차이나타운 같은 거점을 구축해왔다. 또한 기술 침투에 의한 감시, 해킹, 사회통제 등을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셋째, 공자학원을 통한 공산이념 확산이다. 공자학원은 2004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설립됐고 지금은 모두 23개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다. 중국은 대학 내 공자학원을 세울 때 약 10억원을 지원하고 매년 1억~2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대학생 중국 탐방단, 장학금 제공, 중·고교 교직원 중국 연수도 지원하는 등 매수 활동도 자행한다. 공자학원은 중국어와 중국 문화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지침에 따라 공산당 체제와 이념 또한 선전하고 있다.

 넷째, 여론조작을 통해 보수 정권의 약화와 반일·반미 여론의 확대는 물론 친중 여론도 조성한다. 7만 명에 육박하는 중국 유학생은 물론 100만 명에 가까운 조선족과 중국인들은 중국공산당의 조직적인 통제하에 여론조작에 앞장설 수 있는 자원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중국공산당이 방침을 정한 뒤 중국 외교부가 발표하면 국내에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 앞장서고 국내에 체류 중인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포털사이트,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에서 가짜 뉴스와 가짜 정보를 범람시키는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은 사드 배치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에 중국계가 대대적으로 활동했던 정황이 있으며, 현재 야당 중심의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放流) 반대운동과 어민 집단 선동은 물론 각종 반정부 시위에도 조선족 단체 등 중국인들이 간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섯째, 투자이민의 장려다. 중국은 모든 면에서 인해전술(人海戰術)을 동원한다. 한국 내 중국인이 많아지면 한국은 중국화 될지도 모른다. 중국이 티베트와 신장위구르를 장악하게 된 것은 대대적인 한족(漢族) 이동을 통해서다.

反中 정당에 대한 가짜 뉴스 살포 가능성

▲2012년 9월 일본 정부가 센카쿠 제도를 국유화하자 국내 체류하던 재한중국학생학자연합회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반일집회를 열었다. 사진=조선DB

마지막으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한 선거 개입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친중 교두보 확보가 목표지만 한국에는 이미 막강한 친중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지원하여 계속 집권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본다. 지난 5월 23일 ‘뉴데일리’ 보도에 의하면, 2022년 한국 대통령 선거 당시 한국 내 중국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에 선거 한 번만 더 이기면 한국은 우리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해서 ○○당과 ○○○ 후보를 찍게 하자”고 독려했다고 한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중국이 4000만 명의 댓글부대를 동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내년 총선과 관련하여 중국은 친중 세력을 적극 지원하는 동시에 친미·반중 세력을 견제하려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위해 중국은 친중적인 정당 및 후보들에게 은밀하게 정치자금을 후원하고 지지 여론 조성 활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반중적인 정당 및 후보들에 대해서는 가짜 뉴스 등을 통해 패배하도록 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로 중국은 우리 선거 시스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통해 선거 결과를 뒤집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총선 앞두고 친중 세력 적극 지원 가능성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북한과 동맹관계임에도 한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무감각했다. 체제보호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도 별로 없었다.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체제파괴공작을 펴고 있음에도 우리가 사실상 무방비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중국이 대외적으로 벌이는 모든 활동은 중국공산당의 해외통일전선공작 기조하에 이뤄진다. 중국공산당이 모든 것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며 전략적 포석을 깔고 접근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더구나 선거는 국민의 주권 행사이며, 이에 외세가 개입하는 것은 주권 침해다. 특히 선거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보안태세 유지는 대한민국의 주권 수호는 물론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이다.⊙

글 : 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정치학 박사

 
 
 

10-12 [단독]“중동 충돌 속 한반도 전쟁 나도 미국은 한국방어에 전력 다할 것”

 

■ 한미동맹 70년, 새 미래로 간다

스캐퍼로티 前한미연합사령관
“한미동맹, 어떤 동맹보다 강력”

커티스 스캐퍼로티(사진) 전 한미연합군사령관은 12일 “한·미동맹은 다른 어떤 동맹보다도 강력해지고 있다”며 “모두가 이 동맹의 가치를 깨달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캐퍼로티 전 사령관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충돌 상황에서도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캐퍼로티 전 사령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의 핵심은 신뢰”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동맹의 가장 밑바닥에 신뢰가 있고 그것을 통해 한·미는 안보와 자유를 누린다”면서 “북한과 이란,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불안과 분열, 붕괴를 조장할 때 우리는 민주국가로서 그들의 전략이 성공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함께 행동한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한국인은 이제 한국의 국방장관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에 참석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을 무대로 활약하는 모습을 본다”며 “그것이 우리가 민주국가로서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스캐퍼로티 전 사령관은 이날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미 육사 6·25전쟁 전사자 추모비’ 제막식 참석차 방한했다. 육사는 이날 6·25 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미국 육사 1945년도, 1951년도 졸업생들의 넋을 기려 2개의 추모비를 새로 세웠다. 기존에 세워진 5개의 추모비까지 총 7개의 추모비가 한미동맹기념공원에 들어서게 된다.

이날 오후에는 경기 파주 임진각 보훈단지에서 한·미동맹의 상징적 인물인 고 윌리엄 E 웨버 대령, 존 싱글러브 장군 추모비 제막식이 열린다. 13일에는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미동맹 콘퍼런스를 열고, 이어지는 만찬에서는 제1회 아너스 상 시상식도 개최될 예정이다.

김유진·서종민 기자
문화일보·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10.17 북·러 컨테이너 1000개 무기 거래, 우리에게도 심각한 안보 위협

▲존 커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3일(현지시간) 북한이 러시아에 컨테이너 1000개 이상 규모의 군사장비와 탄약을 인도했다고 밝혔다. NSC는 러시아 선박이 북한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운송하는 모습을 담은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뉴스

북한이 지난달 컨테이너 1000개 이상 분량의 탄약과 군사 장비를 러시아에 보낸 사실이 미 백악관 발표로 드러났다. 미국이 공개한 위성사진에 따르면, 김정은이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하기 전 나진항을 거쳐 군사 물자가 실린 컨테이너를 넘겨주었고 이후 러시아 철로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290km 떨어진 곳까지 옮겼다. 북한이 상응하는 대가를 약속받았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지원을 했을 것이다.

 

김정은은 2021년 조선노동당 대회에서 극초음속 무기 개발, 초대형 핵탄두 생산, 핵 추진 잠수함과 수중 발사 핵 전략 무기 보유 등의 ‘5대 과업’을 제시했다. 러시아에 탄약 등을 보내는 대가로 5대 과업과 관련한 기술을 전수받으려 한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올해 두 차례 정찰 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을 위해 러시아가 북한을 위해 위성을 쏴줄 가능성도 거론된다.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북한에 최신 전투기와 첨단 정찰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의 대북 군사 지원은 우리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정부는 한국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중대한 안보 문제라는 사실을 러시아에 경고하고, 자위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러·북 두 불량 국가가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어겨가며 동북아시아의 안보를 해치고 있음을 알려가며 미국은 물론 우방 국가와 네트워크를 더욱 철저히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불량 국가들의 위험한 무기 거래에 단호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민에게 주지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어쩌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남의 일’이 아니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가 위험한 안보 환경에 처해 있음을 모든 국민이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응책일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사설

 

 

10-16 北·러 컨테이너 1000개 무기 거래… 김정은도 ‘戰犯’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 정황이 더 뚜렷이 포착됐다.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북한이 러시아에 보낸 컨테이너 1000개 가량이 지난달 8∼9일 나진항에서 러시아 두나이 항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통해 지난 1일 전방 보급기지인 티호레츠크로 옮겨졌다. 탄약과 포탄 등 재래식 무기로 추정됐다. 또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보내지는 컨테이너도 포착됐는데, 내용물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김정은 환대는 그 답례로 보인다.

북·러 무기 거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결의 제1874호 등 복수의 대북결의 위반이라는 점에서 불법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어린이 대량 유괴 등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지난 3월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전범(戰犯)이다. 유엔총회는 결의안을 통해 푸틴의 침공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러시아의 즉각 철수를 요구한 바 있다. 김정은은 불법 전쟁을 일으킨 전범과 우크라이나 전황을 바꿀 무기 거래를 함으로써 전범 대열에 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하는 보상이다. 북·러 회담 때 크렘린궁은 “공개하면 안 될 민감한 영역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핵잠수함과 정찰위성 기술 등을 제공하면 안보를 위협하는 게임체인저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 때 북·러 군사거래를 “대한민국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로 규정한 이유다. 조현동 주미 대사도 15일 국정감사에서 “결단력 있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북 첨단 군사기술 제공을 레드 라인으로 설정하고, 러시아에 공식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김정은을 전범으로 규탄하고 처벌하는 일에도 앞장설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10-20 첫 착륙 B-52 핵 탑재 NCND…핵우산 실질 강화 계기 돼야

우크라이나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위기로 중동 정세 유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H가 한국에 처음 착륙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B-52H는 북한 도발이 심각할 때마다 한반도 상공에 출격해 경고를 해왔는데, 지난 19일 청주 공군기지에 착륙해 있으면서 22일 한미일 공중연합훈련에 참여한 뒤 미 본토로 복귀한다. 핵무기 탑재와 관련해 미 공군 관계자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겠다(NCND)”고 했다. 미국이 전략폭격기 착륙 사실을 공개하고 “한국군과 협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것은, 그 자체로 핵우산 강화 과시인 동시에 유사시 대북 핵 반격을 할 수 있다는 경고도 된다.

B-52H의 한국 첫 착륙 및 3박4일 체류는 사실상 전술핵 재배치 효과도 있다. 전술핵 탑재 전략폭격기가 한국 땅에 체류하는 것은 1991년 전면 철수된 전술핵무기가 들어온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예행 연습 성격도 갖는다. 지난 7월엔 미국의 확장억제 계획에 한국의 참여를 제도화한 한미핵협의그룹(NCG)의 첫 회의에 맞춰 오하이오급 미핵잠수함 켄터키함도 부산항에 3박4일 기항했다.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에 명시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정례화’ 약속이 한층 강화된 형태로 이행되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까지 포함했고, 지난 8월엔 대남 핵 타격 훈련도 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서 ‘전술핵 재배치 등을 위한 환경 조성’ 등의 정책권고가 나오는 이유다.

우크라이나전 장기화에 이어 중동전이 확대되면 미국이 2개의 전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김정은이 도발 강도를 높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러에 이어 중·러 정상회담이 열려 독재 3국의 반미 연대도 뚜렷해지고 있다. 김정은이 무모한 도박을 벌이지 않도록 확장억제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김승겸 합참의장이 B-52H 착륙 후 확장억제 작전 수행 태세를 점검하며 “북한은 핵무기 사용 시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핵에는 핵으로 맞선다’는 원칙에 따라 핵우산을 실질적으로 확대해 강력한 대비 태세를 유지해야 도발을 막을 수 있다.

문화일보 사설

 
 
 

10-23 한·사우디 경협 전방위 확대… 저성장 돌파 디딤돌 삼아야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방문을 계기로 양국 경제 협력의 범위가 전방위로 넓어지고 속도도 빨라지게 됐다. 윤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2일 156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11월 왕세자 방한 때 합의했던 290억 달러(39조 원)와 합치면 60조 원에 달한다. 사우디의 원유 530만 배럴을 울산 저장기지에 비축하고 원유 공급망 위기 때 한국이 우선 구매할 수 있는 계약도 성사됐다. 양국 협력 분야도 건설·조선은 물론 청정 에너지와 전기차·방위산업·스마트팜 등 첨단산업으로 크게 확장됐다.

사우디는 아랍의 맹주로도 불리는 중동의 G20 국가이며, 세계 유가를 좌우하는 걸프협력회의(GCC) 좌장으로서 국제적 비중도 높다. 올해는 한국 기업이 사우디에 진출한 지 50년 되는 해이며, 한국 기업의 우수성과 근로자의 근면성은 사우디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결과 양국은 지난해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의 언급대로 양국은 ‘포스트 오일’ 시대의 최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사우디는 석유 위주의 경제 구조를 제조업 중심의 신산업 구조로 바꾸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발전 수요의 5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계획이다. 사우디 입장에선 오랜 경협 관계에다 첨단산업 경쟁력까지 갖춘 한국과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우디와 함께 ‘중동 빅3’에 속하는 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와의 경협도 가속화하고 있다. 당장 이들 3국과의 교역 규모는 코로나 사태 직전이던 2019년보다 61.6%나 증가했다. 특히 사우디는 지난해 합의한 MOU와 계약이 1년도 안 돼 60% 정도나 이미 성사됐을 정도로 사업 속도도 빠르다. UAE와는 얼마 전 자유무역협정의 일종인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타결했다. 아랍권 첫 자유무역협정으로, 핵심인 개방도 역시 높다. 이번 사우디 방문에는 삼성·현대차·한화·GS 등의 사령탑을 포함, 기업인이 130명이나 동행했다. 중동은 탈중국 대안이며, 당면 현안인 저성장·고유가를 돌파할 좋은 디딤돌도 된다.

문화일보 사설

 

 

10.25 운전기사 자청 빈살만, 尹에 “다음엔 사우디 생산 현대차 타자”

尹 태우고 행사장까지 ‘15분 드라이브’
양국 합작 전기차 공장 건설 염두 둔 듯
영빈관 깜짝 방문, 예정없던 단독환담도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영빈관을 방문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함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포럼 참석을 위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24일(현지 시각)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와 단독 환담을 했다.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의 이번 만남은 예정에 없었는데, 빈 살만 왕세자가 윤 대통령 숙소인 영빈관을 전격 방문해 이뤄졌다. 환담 후 윤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운전한 벤츠 차량 운전석 옆자리에 동승해 미래투자 이니셔티브 포럼(FII)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행사장 이동엔 15분이 걸렸다.

 

빈 살만 왕세자가 운전하는 차량에서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차량 뒷자리엔 통역 요원이 탑승했다고 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다음 번에 오시면 사우디에서 생산하는 현대차 전기차를 함께 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현대차와 사우디가 합작 투자를 통해 사우디에 반조립(CKD)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을 염두에 두고 양국 간 관련 협력을 더 심화하자는 뜻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사우디 협력을 통해 예상보다 빨리 전기차가 사우디에서 생산되기를 바라는 빈 살만 왕세자의 절실한 염원이 담긴 것으로 본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리야드의 킹 압둘아지즈 국제 콘퍼런스 센터(KAICC)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포럼에 참석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윤 대통령 오른쪽) 왕세자 겸 총리도 동행했다./연합뉴스

빈 살만 왕세자는 미래투자 이니셔티브 포럼에서도 윤 대통령 연설과 좌담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윤 대통령은 포럼에서 “아랍 속담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함께 갈 친구를 선택하라’는 말이 있다”며 “대한민국은 미래를 위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했다.

조선일보 도하=최경운 기자

 

 

10.25 중국의 西海 강점, 지금 막아야 한다

6국 이해관계 걸려 있는데도 90% 소유 주장하는 남중국해처럼
中의 불법적 해양 영토 확장은 한반도 서해에서도 진행 중
동경 124도선 일방적으로 긋고 중간선 넘어와 빈번한 군사훈련
침묵·순응으로 방치하면 큰일… 서해 수호 의지 행동으로 보여야

 ▲지난 8월 22일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안경비정이 필리핀 군용 물자 보급선 한 대를 막아서는 모습. 필리핀은 이날 중국 해경의 방해를 뚫고 스프래틀리 군도 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 정박 중인 군함에 물자를 재보급했다고 밝혔으나, 중국은 인도적 차원에서 배려한 것이라고 응수했다./AFP 연합뉴스

동남아시아에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중국 등 6국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라는 커다란 바다가 있다.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로 둘러싸인 지중해와 같은 형상의 이 바다는 면적이 한반도의 15배, 지중해의 1.5배에 이를 만큼 광활하다. 이곳에는 동남아 국가들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주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 소유도 아닌 국제법상 공해 지역이며, 동아시아와 중동‧유럽을 연결하는 유일한 해상 통로다. 이는 한국행 유조선과 LNG 운반선의 90% 이상이 통과하는 에너지 생명선이기도 하다.

 

그런데 1970년대 이래 중국이 남중국해 전체의 90%에 이르는 방대한 해역의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군사적 강점(強占)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14년부터는 이 해역에 인공섬을 약 30곳 만들어 군사 기지화하면서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들에 통행 허가를 받으라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 범위는 중국의 최남단 영토인 하이난섬에서 무려 1800km 떨어진 보르네오섬의 말레이시아 영해 북단까지 이르고 있다. 한마디로 황당하다. 중국이 영해권을 주장하는 유일한 근거는 조상들이 그 해역에서 수백 년간 어업에 종사하는 등 역사적 주권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마치 이탈리아가 옛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지중해 전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다.

 

이에 항거하는 필리핀 정부의 법적 제소에 대해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16년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근거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현존하는 국제해양법 체계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판결 불복을 선언했다.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강점을 막고 통항 자유를 지키고자 2015년부터 아태 지역 동맹국들과 더불어 매년 3-10차례 ‘항행의 자유 작전’이라 부르는 다국적 해상 시위를 시행 중이다. 이 작전에는 역내 미국 동맹국이 거의 모두 참여하고, 때로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 함대까지 합류한다. 미국의 역내 동맹국 중 불참국은 한국 한 나라뿐이다.

 

이러한 중국의 불법적 해양 영토 확장 기도는 남중국해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근해에서도 진행 중이다.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국가 사이의 중첩된 영해나 경제수역의 경계는 등거리 원칙에 따라 중간선을 택하는 것이 상식이나, 중국은 대국이 훨씬 넓은 면적을 차지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중 서해 경계선은 합의하지 못했고, 양국 영해 사이에는 남한 면적과 비슷한 크기의 잠정조치수역이 설정되어 있다. 이론상으로는 그 수역의 중간선이 우리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선이다.

그런데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백령도 서측 해상을 통과하는 동경 124도선을 일방적으로 중국군 작전 경계선으로 선포하고 빈번한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 중이다. 중국은 한국 해군이 그 선 너머에서 작전을 실시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면서 막무가내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남중국해 불법 점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동경 124도선을 한·중 해상 경계선으로 굳히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런 중국의 의도가 성공한다면 서해의 70%와 한·중 잠정조치수역의 거의 90%가 중국의 바다가 된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과 방공식별구역(CADIZ)에 이어도를 포함해 숨겨진 야심을 드러냈다. 만일 이어도에 한국 해양 과학 기지가 없었다면 중국 군사 시설이 이미 그곳에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군의 대응은 불투명하고 미적지근하다. 중국의 부당한 서해 강점에 대한 정부의 반대 논리는 명확하고 강력한지 몰라도 그 논리를 행동에 옮겨 해양 주권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항행 자유를 수호하려 중국 해군과 잦은 갈등을 빚고 있듯이 한국 해군이 서해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해 중국 해군과 충돌을 빚는다는 얘기는 들은 기억이 없다. 중국과 군사적으로 맞서기가 부담스러워 중국의 부당한 서해 강점을 침묵과 순응으로 방치하다 보면 이는 곧 익숙한 선례와 관행이 되고 언젠가는 실효적 지배의 증거로 굳어지게 된다. 그때 가서 대세를 뒤엎으려면 훨씬 큰 갈등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만일 우리 정부와 군에 서해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조선일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10.26 “경제·안보 모두 충족”...빈 살만의 파트너, 일본서 한국으로

사우디의 尹대통령 특급 환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의 접견을 받고 있다./로이터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24일(현지 시각).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숙소(사우디 영빈관)에서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포럼(FII) 참석을 준비하던 윤 대통령을 찾아왔다. 예정에 없던 깜짝 방문이었다. 두 정상은 23분간 통역만 대동한 채 환담했다. 이후 빈 살만은 벤츠 옆자리에 윤 대통령을 태우고 직접 운전해 포럼 행사장까지 데려다줬다. 빈 살만은 이동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다음번에 오면 사우디에서 생산하는 현대의 전기차를 함께 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빈 살만의 외빈 특급 환대를 두고 사우디가 상정한 핵심 협력 파트너의 무게 추가 한국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사우디는 과거 동북아의 핵심 협력국으로 일본을 상정했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기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고, 오히려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 입장에선 일본이 한국보다 큰손이다. 그러나 빈 살만은 작년 11월 방한해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2시간여 함께 보낸 뒤, 일본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외교 관계자는 “첨단 제조업 기술력은 일본도 막강하지만 사막 지역에서 공사 기한을 맞추는 건설 경쟁력과 막강한 방산 역량까지 갖춘 한국은 사우디의 경제와 안보 수요를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파트너”라고 했다. 일본은 여러 제약이 있는 방산 분야가 한국에는 강점으로 꼽힌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 불리는 빈 살만은 어지간한 국가 정상들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 외교가에서 ‘은둔의 군주’로 불린다. 그런 빈 살만의 파격 의전의 기저에는 한국에 대한 신뢰가 깔렸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1973년 삼환기업이 알울라~카이바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수주하면서 시작된 양국 경제 협력에서 다져진 신뢰가 사우디 지도부에 확실히 각인돼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국의 위상과 국가 전략에도 변화가 있었다. 1970년대 중동 붐에 올라타 벌어들인 외화를 압축 성장의 마중물로 삼은 한국은 이제 건설은 물론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 기술과 디지털 역량을 갖춘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런 한국 발전 모델을 빈 살만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사우디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도로와 교량을 공기(工期)에 맞춰 완공하는 나라’ 정도로 인식했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이웃 아랍에미리트(UAE)가 2009년 12월 한국에 약 20조원 규모 바라카 원전 건설을 맡겼을 때, 사우디 왕가는 UAE 왕가에 “한국 기술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당시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의 기술력을 지켜본 UAE 왕가에선 “한국은 다르다”고 사우디 왕가에 소개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우디 석유 관계자들이 국제 유가가 오를 때 종종 연락해 ‘미안하게 됐다’며 양해를 구한다”며 “과거엔 보기 어려웠던 일”이라고 했다.

 

사우디와 UAE는 수십 년간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중동 지역과 세계 석유 시장에서 경쟁도 벌이고 있다. 두 나라의 이런 경쟁 관계가 사우디를 한국으로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의 사우디 국빈 방문도 올 1월 있었던 UAE 국빈 방문 이후 사우디 측이 강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이슬람 다수인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는 최근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 하마스·헤즈볼라 등이 잇따라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안보 불안감이 커진 상황이다. 최근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에 대한 안보 보장을 조건으로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고 나서면서 빈 살만은 중동 평화 복원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빈 살만은 UAE가 지난해 35억달러(약 4조7300억원) 규모의 천궁-Ⅱ 지대공미사일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8월 UAE 전투 부대가 한국에서 첫 연합 훈련을 하는 등 양국의 활발한 군사 협력 관계를 관심 있게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소식통은 “사우디로선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지역의 맹주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70여 년간 수십만 상비군을 유지하고 무기 체계를 발전시켜온 한국의 방산 경쟁력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빈 살만은 올해 38세인 젊은 군주다. 또 사우디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 청년층이다. 반면 미국발 셰일 혁명으로 인해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유가 통제권이 약화되고 청년 실업률도 높아지고 있다. 빈 살만이 ‘비전 2030′ 국가 전환 프로젝트를 들고 나온 까닭이다. 이 프로젝트는 석유 수출 의존형 경제 구조를 제조업 기술이 바탕이 된 신산업 구조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신산업 기술을 일궈낸 점은 빈 살만에게 좋은 협력 모델일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23일 킹사우드대 강연에서 “여러분의 선조인 아라비아인들이 동서양 문물 교류의 선도적 역할을 했고 인류 문명의 발전과 풍요로운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한 것도 양국 협력 강화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차원이다.

 

외교가에선 K팝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 경쟁력도 빈 살만을 한국으로 끌어당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빈 살만은 사우디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며 “빈 살만은 체제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젊은 층이 좋아하는 K콘텐츠에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빈 살만이 이끄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투자를 확정했고, 사우디 문화부 장관은 작년 방한해 CJ ENM 등 여러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방문했다.

 

사우디 매체도 윤 대통령에 대한 빈 살만의 특급 의전을 소개했다. 현지 매체 ‘사우디 가제트’는 24일(현지 시각) 빈 살만과 윤 대통령의 운전석 환담에 대해 “왕세자는 윤 대통령을 줄곧 따뜻하게 대했으며, (공식 일정) 시작부터 윤 대통령을 진심으로 반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기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사우디와 한국은 획기적인 협력을 통해 성공적인 미래를 위한 길을 열었다”고 했다. 사우디 일간 ‘아샤크알아우사트’는 “빈 살만 왕세자와 윤 대통령은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정을 체결했다”고 했다. UAE 매체 ‘알아라비야뉴스’는 이날 FII에 참석한 윤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 “사우디는 한국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신뢰하고 인정한 국가 중 하나”라고 했다.

조선일보 최경운 기자 김지원 기자

 
 

10-26 경제 넘어 안보까지 지평 넓어진 한·중동 관계와 미래

무역 적자의 가장 큰 부분이 원유 수입인 만큼 고유가는 한국 경제의 커다란 위협 요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중동 순방을 통해 고유가 위기를 기회로 바꿀 길을 열었다. 반세기 전 건설산업을 중심으로 이룩했던 ‘중동 신화’가 이제는 첨단산업과 방위산업 등 경제·안보·외교 전방위로 지평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국빈방문하고 26일 귀국했다. 사우디와는 전방위 협력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고, 카타르와는 방산과 조선에서 초대형 합의를 이뤄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우디 방문에서 156억 달러, 카타르 46억 달러 등 총 202억 달러(약 27조2300억 원) 규모의 양해각서(MOU)와 계약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방한과 올해 윤 대통령의 UAE 방문 등 중동 주요 3개국에서 유치한 투자액만 792억 달러(약 106조8000억 원)를 넘는다.

카타르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6개월치 물량인 LNG선 17척(약 5조2000억 원)을 수주했는데, 그 분야 단일 계약으로 사상 최대다. 한국 조선산업의 압도적 경쟁력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다. 사우디와는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한 것이 돋보인다.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24일 윤 대통령이 머물던 영빈관을 방문, 자신이 운전하는 차량 옆자리에 윤 대통령을 태우고 “다음에는 사우디에서 생산하는 현대의 전기차를 함께 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얘기도 했다. 공동성명을 통해 ‘전략 파트너십 위원회’를 설립해 건설 인프라는 물론 방산, 전기차, 디지털, 의료 등 전방위적 협력을 하기로 했다.

방산 협력 강화도 큰 의미를 갖는다. 무기 수출을 넘어 ‘보이지 않는 동맹’ 효과도 갖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카타르 방산 사업에 천궁-Ⅱ와 같은 K-방산이 참여할 길이 열렸다. 중동의 맹주, 걸프협력회의(GCC) 좌장이라는 사우디 위상을 고려할 때,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의 친분은 글로벌 외교력 확대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훼손되긴 했지만, 한국은 약속을 지키는 나라라는 신뢰를 되살린다면 ‘제2의 중동 붐’은 현실이 된다.

문화일보 사설

 

 

10.30 유엔군사령관은 왜 문재인 정부에 발끈했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1년 8개월을 넘었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침공이 보복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사각지대에서 터진 무력 분쟁의 틈바구니에 '불량 국가' 북한의 불법 무기들이 출몰하고 있다. 두 개 또는 세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를 미국의 역량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면서 대한민국의 안보가 걱정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유엔사 주요 직위자 초청 간담회장에 입장하며 폴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과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연합뉴스]

이처럼 위협이 커지는 만큼 가용한 안보 자산을 총동원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한·미동맹 강화는 기본이고, 한·미·일 안보 협력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가 보유한 안보자산 중에 소홀히 취급한 존재가 유엔군사령부(UNC)다. 북한의 1950년 6·25전쟁 도발 직후 유엔 안보리 결의(84호)로 탄생한 유엔사는 지난 73년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묵묵히 지켜왔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 눈치를 유달리 본다는 지적을 받아온 문재인 정부 시절에 유엔사는 찬밥 신세였고, 때로는 불청객 취급을 당했다. 3성 장군 출신의 국회 국방위원장 한기호 의원실에 따르면 제20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이던 지난해 3월 8일 북한 군인 6명과 민간인 1명이 탄 선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사건이 있었다. 북한 경비정이 선박을 뒤쫓다 NLL을 침범하자 우리 해군 고속정이 40㎜ 함포로 경고 사격했다.

NLL 침범 북 경비정 조사 못 해
한국군 장교 40여명 파견 해제
유엔사 존중하고 안보에 활용을

선박이 백령도 용기포항으로 예인되자 해병대와 군사안보지원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간단한 조사만 진행했고, 국가정보원이 주도하는 관계부처 합동신문도 없이 국방부 지시로 대선 당일 오후 2시에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무엇보다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 도발 행위는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9·19 군사합의의 첫 위반 사례인데도 유야무야됐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당시 사정에 밝은 군사 전문가 A씨는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엔사가 합동신문에 나서려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유엔사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유엔군사령관(폴 러캐머라) 측이 몹시 불쾌해했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그 사건 여파인지, 유엔사는 참모부에 파견 나가 있던 한국군 영관급 장교 40여명을 갑자기 돌려보냈다. 영관 장교들은 유엔사 간부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정전협정 관련 동향을 파악해 우리 국가 안보에 상당한 도움을 줬는데 유엔사를 자극하는 바람에 그 채널이 차단된 것이다.

 

▲2018년 9월19일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합의문에 서명 후 교환하는 모습. 뒤에서 박수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공동사진기자단]

유엔사의 불만이 터진 배경에 대해 군사 전문가 A씨는 "문재인 정부 시절 유엔사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앞서 2019년 11월에는 북한 청년 어민 두 명이 동해 NLL을 넘어 귀순했지만, 판문점을 통해 몰래 강제 북송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을 관할하는 유엔사에 강제 북송 사실을 알리지 않아 당시 유엔군사령관(로버트 에이브럼스) 측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커지면서 유엔사가 전투지휘 기능회복 등 재활성화를 추진했을 때도 문재인 정부가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 갈등을 빚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의료지원국이던 독일과 덴마크가 유엔사에 회원으로 참여하려 하자 문재인 정부 국방부는 "전투병 파병국이 아니면 안 된다"며 거부했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에 집착했고, 북한은 유엔사 해체를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2020년 8월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유엔군사령부라는 것은 족보가 없다. 이것이 우리 남북관계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처럼 유엔사를 무시하는 언행이 쌓이자 참다못한 유엔사 측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활동하는 유엔사는 한국 정부가 국내 정치적 이유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강한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겸직) 등 유엔사 주요 직위자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별도의 안보리 결의 없이도 유엔사 회원국의 전력을 즉각적이며 자동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국방 소식통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유엔사 회원 확대 등 재활성화를 지지하는 입장이고, 한국군 영관장교 40여명을 다시 유엔사에 파견하기 위한 물밑 논의가 긍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유엔사의 존재와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최대한 활용해야 국가 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10-30 “미국 핵무기 180개 북한 겨냥하고 한국에 전술핵 배치해야”

북한이 지난 2월 18일 평양 순안 일대에서 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을 발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아산연구소·미국 랜드연구소 발표

지난 1년간의 공동연구 결과
“한국 안보 지원용 공언하고
재래식·핵전력 통합 전환을”
“북·중 핵전력 미국에 심각 위협”

 

한국 안보 지원을 위해 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미국 전략핵잠수함 탑재 핵무기 등 최대 180여 개 핵무기를 북한 겨냥 용도로 투입하고 B61 핵폭탄 등 제한된 수의 미국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해야 한다는 한·미 안보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북한과 중국의 핵무기 전략은 한반도와 미국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단계에 이르렀으며 기존 미국 핵우산의 전략적 모호성은 억제는 물론 한국에 대한 보장을 위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내용은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랜드연구소가 지난 1년간 공동 연구해 30일 발표한 ‘한국에 대한 핵보장 강화 방안’ 보고서에 담겼다. 보고서에서 한·미 전문가들은 “일부 미국 핵무기가 한국 안보 지원용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공언해야 한다”며 “향후 몇 년 내 한국 안보를 목적으로 최대 180여 개의 미 핵무기를 투입하고, 상징적 및 군사작전 목적으로 B61 핵폭탄 8~12개를 한국에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다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한국 내 전술핵무기 저장시설 현대화 혹은 재건설 △미 전략핵잠수함에 적재된 핵무기 일부 또는 전부를 북한을 겨냥하도록 지정 △해체 앞둔 미 전술핵무기 100기가량 현대화에 한국이 비용 부담하고 한국 지원 △일부 미 전술핵무기 한국에 전개 등을 거론했다.

북한의 핵 위협 심각성에 대해 한·미가 공통된 인식을 가질 필요성과 대응 방안 모색을 위한 양국 국가안보 인력의 교육 필요성도 제시됐다. 이 밖에 한·미가 지난 4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출범시킨 핵협의그룹(NCG)은 전략자문단의 지원을 받도록 하고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쟁계획을 재래식·핵전력을 통합하는 유동적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양 기관의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에서 북한과 중국의 핵무기 전력은 한반도는 물론 미국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함께 현재 운용되고 있는 미국 핵우산의 전략적 모호성은 억제는 물론 한국에 대한 보장을 위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세계적인 핵확산 가능성 등을 우려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향후 미국의 핵전력 사용에 대한 추가 공약이 나와야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세계 55개 국가에 연구소… 1800명 직원 근무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

1948년 5월 설립된 랜드연구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 위치한 초당적 비영리기관으로 국방, 안보, 공공정책 등 분야 연구에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전망 등을 내놓아 주목받았다. 1800명가량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전 세계 55개 국가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 특히 이번 공동 연구에 참여한 랜드연구소의 국가안보연구부는 미 국방부 장관실, 미 국무부 등을 상대로 한 각종 연구 및 분석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군사안보 싱크탱크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랜드연구소가 30일 공개한 보고서 ‘한국에 대한 핵 보장 강화 방안’은 지난 2021년에 발표된 보고서 ‘북핵 위협,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와 2022년 발표된 보고서 ‘화생무기, 전자기펄스, 사이버 위협 : 특성과 대응 방안’의 후속 성격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08년 2월 정몽준 명예이사장이 세운 연구기관으로 한국의 외교·안보 어젠다 세팅에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매년 4월 개최하는 ‘아산 플래넘’은 미국, 유럽, 중국 등 세계 각국의 안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내 대표적 외교·안보 국제포럼이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10-31 핵우산 ‘전략적 명확성’ 제안한 아산·랜드硏 보고서

한미 양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연구소가 30일 발표한 ‘한국에 대한 핵 보장 강화 방안’ 보고서는 핵우산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경청할 만하다.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전술핵무기(B61) 100기를 ‘한국 안보 지원용’으로 지정하고, 핵잠수함도 지정 배치하자는 것이다. 또, 한국 내 전술핵 저장 시설 건설과 10여 기 안팎의 핵무기 및 투발 항공기 배치 등을 단계적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았다. 이처럼 핵우산을 구체화하는 등 ‘전략적 모호성’ 아닌 ‘전략적 명확성’에 입각한 액션 플랜을 1∼2년 내 마련할 것도 건의했다.

전술핵 100기 한국용 지정 주장은, 미국이 나토 동맹국에 B61 240기를 배치해놓은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다. 구형인 B61 100기 현대화 비용(20억 달러 추정)을 한국이 부담하자는 발상도 참신하다. 예산 확보에 허덕이는 미국으로선 구형 무기 개량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 한국은 전술핵무기에 대한 ‘실질 권한’의 근거를 마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독자 핵 개발에 나설 경우의 핵확산방지조약(NPT) 위반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고,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도 경제적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 4월 워싱턴선언을 통해 핵운용 공동훈련 및 전략자산 배치 정례화를 약속했지만, 나토형 핵공유보다 한참 떨어진 게 사실이다. 연초에 이미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전술핵 재배치를 위한 환경 조성에 나서라는 정책 제언을 했고, 미 의회에서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핵우산의 모호성을 해소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10-31 북-러 군사 밀착 맞서 선언 이상의 北核 억지책 서둘러야

▲6일 북한 나진항에서 러시아 선박 안가라호가 화물을 싣고 있는 장면을 포착한 위성사진.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8월부터 최근까지 이 같은 방식으로 북한제 탄약과 무기가 러시아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진 출처 RUSI

러시아의 침공으로 600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우리에게도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고 있다. 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대한민국이 이 전쟁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북-러 정상회담 이전에도 북한은 다량의 무기탄약을 러시아에 전달한 정황이 속속 포착된 데 이어 회담 이후로도 나진항을 통해서만 최대 50만 발의 포탄이 제공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가 북한의 탄약 제공을 대가로 핵과 위성 기술을 김정은에게 전수할 경우 우리 안보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북한의 ‘핵 비수’가 더 날카롭게 벼려져서 대한민국을 겨누게 될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러 간 군사적 밀착과 이를 부추기고 방조하는 중국의 태도가 북한으로 하여금 더 대담한 ‘핵 도박’을 시도하는 불쏘시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명무실해진 것이 그 증거다. 김정은은 이런 상황을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서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일각에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을 용인하기로 암묵적 합의를 본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두 나라가 대한민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을 대미 견제 수단이자 전략적 경쟁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노골화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가 그나마 형식적으로 붙잡고 있던 북한의 ‘핵 제어 고삐’를 완전히 놓아버린 격”이라고 지적했다. “핵탄두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대”(2022년 12월), “무기급 핵물질의 생산 확대”(3월)에 이어 핵 무력 정책의 헌법화(9월) 등 김정은이 보란 듯이 핵 무력 고도화에 몰두하는 것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7차 핵실험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닌 시간문제일 뿐이다. ‘화산-31형’을 비롯한 전술핵을 다종다양한 투발수단(미사일, 핵어뢰 등)에 최적의 조건으로 장착하려면 최소 3, 4차례의 핵실험으로 성능과 기술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 북-중-러의 반미 결속, 이로 인한 국제질서의 소용돌이가 북한에는 핵 개발을 가로막는 ‘족쇄’에서 풀려나는 절호의 기회가 된 셈이다.

현 국제질서 위기는 대한민국에 미증유의 안보 도전이 될 수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북한만큼 호전적으로 핵 공격을 위협한 세력이 여태껏 없었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지난달 미 국무부가 북한이 전쟁 단계 어디에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이 여러 차례 용산 대통령실과 평택 미군기지 등을 손으로 가리키며 전술핵 공격 훈련을 지휘한 것은 개전 초 한국 지휘부와 군사 거점을 핵으로 초토화해 일거에 대남 적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협박 그 자체다.

한미 양국은 ‘워싱턴 선언’을 계기로 대북 확장억제 강화 조치를 빈틈없이 하겠다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 본토와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 무력이 고도화될수록 확장억제의 실효성에 대한 도전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이 고도화할수록 ‘선언은 멀고 주먹(북핵)은 가깝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1992년 미국의 전술핵 철수와 북한의 핵 포기 약속을 맞바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진즉에 사문화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의 임박하고 가공할 핵 공격 위협에도 한국의 핵무장 옵션을 제약하는 ‘불평등 선언’인 만큼 파기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한미가 선언 수준을 넘어서 북한의 핵을 저지할 실질적 조치를 서둘러 강구해야 할 때라고 본다. 북한의 핵 도발에 대응한 한미 간 핵연합작전계획 수립과 유사시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의 대북 사용 선언, 우리 군의 대북 3축 체계와 미 전략사령부의 핵전략 통합 운용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핵 사용에 대비해 핵무기 대응 및 봉쇄에 관한 훈련을 한국 부대에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한국군은 핵 사용 시 한반도 밖 미국의 전문 부대를 기다리기보다 핵 사용 시나리오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기습에 크게 허를 찔린 이스라엘의 사례는 안보의 주적이 ‘방심’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금부터 2020년대 후반까지가 대한민국 안보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안보는 한번 실기하면 되돌릴 수 없는 파국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10.31 우크라이나, 중동 이후 제3의 前線은?

세계는 대만과 한반도 우려
아무리 美라도 동시 감당 힘든데
불행히도 세계는 전선 다변화中
이 와중에 野 대표는
또 한번 ‘더러운 평화’ 주장
美도 北도 그 주장 활용할 것

▲이스라엘군 탱크 등이 가자지구 내에서 진격하고 있는 영상을 이스라엘 국방부가 28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었다”고 했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국방부

전 세계에서 강대국이 개입하는 군사적 충돌의 개연성과 가능성이 있는 곳은 4군데로 집약된다. 물론 아프리카 등지의 내전(內戰)은 제외하고 말이다. 첫째가 나토와 러시아 간의 유럽 전선(前線·front)이고 다음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으로 대표되는 중동 분쟁이다. 세계 군사 전략가들이 꼽는 셋째 전선은 미·중 간의 군사력 시위가 빈발하는 대만해협이며 넷째가 한반도다.

 

유럽의 분쟁은 1년 반 전 우크라이나에서 터져 현재진행 중이고 중동의 분쟁은 엊그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격화일로에 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이제 아시아에서 제3의 전선이 터질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간의 군사적 충돌은 새로운 화약고로 등장하고 있다. 한반도는 북한의 끊임없는 미사일 도발과 전쟁 준비로 전운(戰雲)이 고조되고 있다.

 

이 4곳 무력 충돌의 중심에 미국이 있다. 모두 미국이 개입하거나 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의 산물이다. 아니, 미국의 외교적 개입이나 군사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일찌감치 무너졌을 전선들이다. 나토 국가들은 아마도 러시아의 에너지 봉쇄를 견디어내지 못하고 우크라이나를 외면했을 것이다. 이 마당에 터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미국, 특히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에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 내 아랍계와 이스라엘계 대립은 미국 정가를 강타하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마저 뒤흔들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여러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게다가 스스로 팍스 아메리카나 지위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동 전선이 터지자 제일 좌불안석에 빠진 쪽은 우크라이나다. 이제 세계의 눈동자는 중동으로 몰리고 우크라이나는 뒷전인 것처럼 처졌다. 세계나 미국의 주목이나 지원 없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물리칠 길은 없다.

 

미국은 그들의 전선이 더 이상 여러 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차제에 하마스 박멸을 노리는 이스라엘은 미국의 만류에도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진퇴양난이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이 두 곳의 전선도 감당하기 버거운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아시아에서 제3의 전선이 형성되는 것을 우려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바로 대만을 노리는 중국과의 충돌이다. 거기다가 미국이 여러 전선에 묶여 허덕이고 있는 것을 감지한 북한의 기회주의적 움직임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은 뒤늦게나마 중국을 무마하기 위해 시진핑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나섰지만 제3세계는 미국의 약세를 부각시키는 중국의 외교적 놀이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미국을 어느 한 전선에 묶어두는 전략은 구(舊)소련의 스탈린이 이미 써먹은 수법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유엔 안보리는 미국의 재빠른 주도로 유엔군을 창설해 한국을 구했다. 그때 소련의 주유엔 대사(말리크)가 안보리에 참석해 거부권을 행사했더라면 유엔군 창설은 불가능했다. 소련은 왜 안보리에 불참했을까? 30년 후에 공개된 미 국무성의 자료에 의하면 스탈린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낸 비밀 문서에서 ‘미국을 아시아에 묶어둠으로써 동유럽의 공산화가 보다 자유롭고 활성화하도록’ 하는 공작이었음을 토로했다. 스탈린으로서는 미국의 한국전 개입이 오히려 중국을 끌어들여 모택동의 세력 약화로 이어지길 바란 속셈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시선(視線)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는 것은 결코 한국에 이로울 수 없다. 미국 국방력의 약화와 국론의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세계는 지금 전선의 다변화의 길로 가고 있다. 북한은 그 틈새를 노리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또 ‘더러운 평화’를 꺼내들었다.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이끄는 정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고 정권을 잡으면 이에 괴리감을 느낀 미국 역시 ‘너희가 더러운 평화가 좋다는데 우리가 왜 거기에 목을 매겠는가’라는 여론에 밀려 방위 조약의 전선을 이탈할 수도 있다. 북한의 리더십은 의당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더러운 평화’를 택하면 목숨(命)은 부지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목숨[生命]이 아니라 이미 죽은 목숨[死命]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