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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2023-10/ 10.03 국민연금 1000조 돌파, - 10.27 文정부서 ‘나이롱환자’ 폭증, 노동자 편들기의 도덕적 해이

상림은내고향 2023. 10. 23. 19:53

세상사 2023-10/

10.03 국민연금 1000조 돌파, 덩치 세계 3위인데 수익률은 꼴찌권

국민연금의 적립금이 지난달 1000조원을 넘어섰다. 1988년 기금을 만든 지 35년 만에 일본 공적 연금(1987조원), 노르웨이 국부 펀드(1588조원)에 이어 세계 3위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커진 덩치에 비해 수익률 성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지난 10년 연평균 수익률이 5%대에 머물러, 세계 연기금 중 수익률 1위 캐나다 연금(9.8%)의 절반에 불과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7.1%)이나 노르웨이 국부 펀드(6.8%)보다 훨씬 낮다. 주요 글로벌 연기금 중 꼴찌권이다.

운용 수익률을 높이려면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지배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캐나다 연금은 정부·정치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투자 전문가들에게 연금을 맡기고 ‘수익률 하나만 본다’는 목표를 법으로 명시해 놓았다. 반면 우리 국민연금은 정부 입김에 취약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자산 배분 비율 등을 결정하는 기금운영위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부처 차관 4명, 사용자·노동계 대표 각 3명 등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주요 연기금 중 이런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곳은 국민연금뿐이다.

국민연금이 5년 임기 정권에 의해 정치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문재인 정부 때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한전공대 설립 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정권 주문대로 움직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KT 이사회가 대표 연임을 결정하자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정부 입김에서 여전히 독립돼 있지 못하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 기업이 300곳에 가깝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개별 기업 간섭에 악용될 경우 기업 경영이 위축되고, 결국 국민연금 수익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치권 요구로 국민연금 본사를 전주로 이전한 이후 매년 운용 인력의 10%가량이 퇴직하는 문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일체의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오로지 ‘수익률 극대화’만 추구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의 모든 의사 결정 시스템과 지배구조를 수술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03 순댓국은 추석 아침에 사올 거니?

가사노동 스트레스 감안해
차례 줄이는 가족 늘어
지낼 자손 줄어들수록
간소화는 선택 넘어 필수일지도

그럼, 순댓국은 낼 아침 나가서 사올 거니?”

친구 A는 지난 28일 추석 전날 시어머니에게 이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고 했다. A가 시어머니에게 ‘순댓국’ 얘기를 꺼낸 것은 며칠 전이라고 했다. 결혼 16년 차 대기업 부장 워킹맘인 그에게 매년 설·추석 명절은 남자로 친다면 군대 화생방 훈련과도 같았다.

 

명태전·육전을 부치고, 문어 삶고 토란국 끓이는 것을 ‘디폴트(기본 설정 값)’로 여기는 차례상. A는 올해 큰맘 먹고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님이 육전이랑 토란국 좋아하셨어요?” “아니, 그 양반은 소주에 순댓국만 찾았지. 전은 기름지다 싫어했고, 토란국도 안 먹었고.” “그럼 차례상을 아버님이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으로 차리는 거네요. 순댓국 한 그릇 올리면 더 좋아하실 텐데.” “….”

 

A와 가족들은 결국 올해 추석에 순댓국 한 그릇 올리고 차례를 지냈다. 부엌에서 매년 음식 하느라 땀 흘렸던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은 가족들과 거실에서 커피 마시며 못 나눈 이야기를 했다. A는 말했다. “시어머니가 ‘차례를 지내고 이렇게 맘이 가벼운 건 처음’이라고 해서 놀랐어.”

 

2023년에도 ‘차례상’은 뜨거운 키워드다. 누군가는 ‘아직도 차례를 지내야 하느냐’고 묻고, 반대편에선 ‘그래도 지내야 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대목은 코로나 확산기를 거치면서 ‘그래도 …’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본지가 롯데멤버스와 지난 15일~16일 성인 남녀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절반 넘는 이들은 “올해 추석엔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했다. 남성은 49.7%, 여성은 61.2%였다. 차례를 안 지내는 이유에 대해 22.9%는 “요즘 시대와 맞지 않아서”라고 답했고, 16.6%는 “가사노동과 스트레스가 부담돼서”라고 했다. “고물가로 인한 차례 비용 부담이 커서”는 12.8%였다.

코로나 확산으로 온 가족이 반드시 모이지 않아도 되는 소위 ‘비대면 명절’을 겪으면서 우리는 명절이 끝나도 이혼율이 뛰어오르지 않는 경우를 처음으로 목격했고(2020년 통계청), 명분 없는 가사 노동에서 벗어났을 때의 평온함도 맛봤다. 한 대학병원이 명절 이후마다 실시하는 ‘스트레스 심각도’가 남녀 모두 제일 낮았던 해가 2020년이다.

고물가도 차례상을 줄이거나 차례를 건너뛰어도 좋다는 명제에 동의하게 만든 모양이다. 지난 29일 추석 당일 서울 한 중구의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점심 340여 좌석이 모두 만석이었다. 명절 당일 차례 대신 외식하는 가족이 늘었기 때문이다.

 

저출산 현실도 전통적인 차례상을 계속 고수할 수 있을지 질문을 계속 던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인구 15.7%였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30년 25.5%, 2050년 41.5%, 2070년 50.2%로 늘어나게 된다. 청·장년, 유소년 인구 비율은 그만큼 줄어든다. 차례상을 받을 어른은 늘고, 차례 지낼 자손은 모자라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차례를 지내는 분들의 정성과 마음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제 차례상 간소화는 선택을 넘어선 필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명절 막바지 무렵이면, 맘카페엔 이런 글이 올라오곤 한다. ‘여러분은 본인 죽고 제사·차례상 받는다면 자식에게 어떤 음식 올려달라고 할 거예요?’ 댓글은 수십개다. ‘치즈 케이크요.’ ‘전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이면 돼요!’ 눈에 밟히는 답도 있다. ‘그냥 쉬라고 할 거예요. 내가 21세기에도 못 누린 홀가분한 명절, 너희는 만끽하라고요.’

조선일보 송혜진 기자

 

 

10.03 100세 이상 노인 많은 ‘전국 1위 장수 마을’은 어디?

작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노인이 가장 많은 ‘전국 1위 장수마을’은 전라북도 무주군으로 나타났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이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제출 받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0세 이상 인구는 2018년 4232명에서 2019년 4819명, 2020년 5581명, 2021년 6518명, 2022년 6922명 등으로 늘었다. 5년 새 63.56% 증가한 것이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인구를 시군구로 나눠 살펴보면, 전북 무주군이 7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남 보성군 70.2명, 전남 고흥군 57.9명, 전북 고창군 56.8명, 경북 영양군 53.4명 등이 뒤따랐다. 장수 지역은 산간이나 바닷가에 많은 게 특징이다.

 

반면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인구가 가장 적은 곳은 경북 울릉군으로 0명이었다. 그 다음으로 울산 남구 3.3명, 경기 오산시 3.5명, 울산 중구 4명, 부산 사상구 5명 등의 순이었다.

조선일보 김태주 기자

 

 

10.03 창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박정희 대통령, 1973년 9월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 지시

 

⊙ 박정희, 1973년 1월 중화학 공업화 선언… 방위 산업 겸 중화학 공업 건설 착수
⊙ 분지형 지역으로 공장입지 확보 용이, 주변에 산이 많아 천혜의 요새 지역
⊙ 박정희, “공단을 설계할 때 주거 지역의 도시계획도 동시에 실시하라”
⊙ “창원 기계공업단지가 완성되면 각종 대구경 포에서 탱크·장갑차가 생산되고, 항공기용 제트 엔진에서부터 군함에 쓸 대형 엔진까지 모두 생산 가능”(오원철 경제 제2수석비서관)

 

▲1979년 4월 창원공단을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 창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로 탄생한 도시다. 사진=조선DB

 

1973년 9월 19일.

박정희(朴正熙) 전(前) 대통령은 “창원 기계공업기지 건설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다섯 달 전인 4월 1일, 창원은 종합기계 공업기지 개발을 위한 ‘산업기지 개발촉진 지역’으로 확정됐다. 창원 기계공업단지는 마산항 근처 총 1억6000만 평의 공업용지에 조성됐다. 이 중 7600만 평은 공장, 8400만 평은 주택부지였다. 단지 건설 목적은 1981년까지 104개 공장을 건설해 10만 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150억 달러 이상의 연간 생산량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창원은 원래 농경지 4200만 평 정도의 면적에 1700가구, 인구 1만 명의 작은 도시였다.

창원을 시작으로 여천·옥포·구미·포항 산업단지 탄생

박 대통령이 창원 단지 조성을 지시한 지 꼭 50년이 흘렀다.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인 창원을 필두로 박정희 정부는 1973년 12월 24일 ‘공업단지개발육성’을 공표했고, 석유화학(여천)·조선(옥포)·전자(구미)·제철(포항)·비철금속(온산) 산업단지가 탄생했다.

창원의 탄생은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 공업화 정책과 밀접히 맞닿아 있다.

박 대통령은 1973년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중화학 공업화 정책이 국가 계획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1980년대 초까지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정부는 중화학 공업 정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에게 제창하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모두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과학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개발을 해야 하겠습니다. 80년대 초에 우리가 100억 불의 수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체 수출 상품 중에서 중화학 제품이 50퍼센트를 훨씬 더 넘게 차지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연설문집, 제10집)

1971년 11월 10일, 방위 산업 육성 4인회의 멤버였던 오원철 수석은 김정렴(金正濂) 비서실장에게 방위 산업 추진에 관한 새로운 구상을 마련해 보고했다.

“병기(兵器)도 분해하면 부품 상태가 된다. 이 부품은 규정된 소재를 사용해서 설계도면대로 가공하면 생산 가능하다. 이렇게 제작된 부품을 조립하면 병기가 완성된다.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유관 민수공장을 선정해서 부품별로 분담 생산시키자는 것이다. 각 업체는 모든 노력을 다해 할당된 부품을 정밀 가공하라는 소리다. 이런 방식을 채택하면 당장에라도 병기 개발은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100mm분의 1 정밀 가공이 가능하냐” “병기에 대한 설계도는 있느냐” “소재는 어떻게 구하느냐”며 수많은 질문을 한 끝에,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1.국산 무기로 250만 병력을 무장시킴으로써 군사력을 증진시킨다. 이를 위해 병기 개발에 즉시 착수한다.

2. 방위 산업은 민영 회사 생산체제로 한다.

3. 현대 무기 대량 생산에는 선진국 수준의 중화학 공업이 절대적인 전제다. 중화학 공업화는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 수출 증대, 국제수지 개선을 위해 필수다. 우리나라 국방 산업 육성은 중화학 공업화의 필수 목적으로 추진한다.

4. 기술자와 기능공의 양성과 확보가 무기 제조 시설을 짓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5. 지금까지 경제기획원이 추진하던 ‘4대 핵 공장’ 사업은 취소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제2수석비서관실을 새로 만들고, 오원철 상공부 광공(鑛工)차관보를 임명했다. 오원철 수석은 “박 대통령은 이날 방위 산업 육성을 박 대통령 자신이 직접 총사령관이 되어 진두지휘하겠다고 결심을 했던 것 같다”면서 “방위 산업이란 중화학 공업을 기반으로 하기에, 우리나라는 중화학 공업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지역 분산과 방위 산업을 동시에”

박 대통령은 “방위 산업 체제는 될수록 후방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 좋겠다. 새로 짓는 공장은 처음부터 후방에 배치하고, 경인지구에 있는 방위 산업 공장도 중요한 시설을 후방으로 이전시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오원철 수석은 “중화학 건설 예정지로는 전자는 구미공단 주변을 확장해서 쓰고, 기계는 창원지구를 조사 중에 있다. 조선소는 전국 해안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지만, 경상남도 해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공단을 설계할 때 주거 지역의 도시계획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 울산공단을 건설할 때 공장 지역만 덩그러니 해놓으니, 후에 울산시가 도시계획을 다시 한다고 골치를 앓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각하! 창원 기계공업단지가 완성되면 각종 대구경 포에서 탱크·장갑차가 생산되고, 항공기용 제트 엔진에서부터 군함에 쓸 대형 엔진까지 모두 생산 가능합니다.

방위 산업의 기초 소재가 되는 특수강 공장도 최신 공장을 건설하겠습니다. 민수용(民需用)으로는 각종 기계뿐 아니라 산업용 기계 및 장치, 선박 또는 자동차 부품, 객차, 기관차, 선박용 초대형 엔진 등이 나오게 됩니다. 화학공장 등 각 플랜트도 마련됩니다. 과거에는 완전히 수입에 의존하던 발전소도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로 창원에 이런 시설을 갖추고자 합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어느 기업체가 만사가 불편한 시골 구석으로 가겠다고 나서겠습니까? 그러나 방위 산업을 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서 방위 산업의 보안 때문에 창원으로 가라고 하면, 그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지방 분산과 방위 산업의 안보 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습니다.”

기계공학 박사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었던 천병두는 창원이 공업단지 지역으로 적절한지를 조사하는 책임을 맡았다.


“공학 박사들, 전쟁터에 나선 산업 전투 부대원이라 생각”

창원은 주변이 천주산, 정병산, 불모산, 장병산, 팔용산으로 연결되고 500~800m 높이를 가진 분지형 지역이다. 공장입지 확보가 용이했고, 무엇보다 국가 보안상 천혜의 요새 지역이었다. 방위 산업과 관련된 대규모 개발에는 한국중공업, 기아산업, 대우중공업, 럭키금성 등 총 84개 회사가 애국적 행동으로 동참했다. 중화학 공업의 국내 최고 전문가(공학 박사)들이 기획단 싱크탱크에 참가했다.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가 쓴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에 따르면 이들 기획단은 자신들을 ‘산업군단’으로 생각했고 마치 전쟁터에 나선 산업 전투 부대처럼 자신들의 민족주의적, 반공주의적 사명,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안보 기밀을 다루는 사명에는 실수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9월 19일 “창원 기계공업기지 건설을 시작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어 1974년 4월 1일에는 건설부 고시 제92호로 마산시의 두대동, 덕정동, 삼동동, 반송동, 연덕동, 용지동, 목동, 토월동, 외동, 정동, 가음정동, 남산동 등 12개 동 전역과 서상동과 27개 동 일부 지역 4만3342㎡가 대규모 기계공업기지 건설을 위한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기계 공업의 메카 창원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월간조선 10월 호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도시, 창원

“전방에는 국산 戰車, 후방에는 국산 자주포”

⊙ 국내 유일의 전차 생산업체 현대로템… 14년 연구 끝에 ‘K2’ 개발
⊙ 현대로템, 방산 매출 2014년 7500억원에서 올해는 상반기에만 1조원 돌파
⊙ 한국의 무기체계 기술 수준은 세계 9위지만, K9 자주포 등으로 화포 부문은 세계 4위
⊙ “수십 년 전 미국의 포를 받아서 사용하던 국가가…”(에드먼드 마일스 소장)
⊙ 폴란드에 수출한 K2 전차는 폴란드 맞춤형 모델, 사막에 특화된 ‘중동형 K2’ 전차도 있어
⊙ “수출 선적에 전차 실을 때 딸 시집보내는 기분”(현대로템 공장장)

 ▲현대로템의 K2 전차 폴란드 첫 수출 물량의 모습. 사진=뉴시스

 

창원이 ‘방산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생산 공장이 이곳에 있어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은 지상전(地上戰)의 핵심 전력(戰力)인 전차(戰車) ‘K2’를 생산한다. 전차의 중요성은 과거 레바논 전쟁·이라크전·걸프전에서 볼 수 있었다. 전쟁은 공중 폭격, 화력에 의해서만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지상부대가 투입돼야 끝난다. 그런 차원에서 지상전의 핵심은 강력한 화력·기동력·장갑으로 보호된 전차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를 생산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前身)은 삼성테크윈이다.

한화그룹은 2015년 6월에 삼성테크윈 지분을 인수해 2017년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사명(社名)을 변경했고, 한화디펜스(2022년 11월)·한화방산(2023년 4월)을 합병했다. 화포는 근거리 또는 원거리에서 탄체를 투발해 적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소화기·박격포·로켓포·자주포 등이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3사업장에서는 K9A1 자주포, K10 탄약운반장갑차, K56 탄약운반장갑차, K77 사격지휘장갑차, K105A1 차륜형 자주포, KAAV 상륙돌격장갑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험준한 지형에서도 사격 가능, 세계 최고의 기술력”

 ▲한화지상방산(現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노르웨이 현지 시험평가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현대로템이 본격적으로 한국형 전차 개발을 시작한 것은 1976년이다. 전차 생산 1급 방산업체로 지정되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1984년에 최초의 한국형 전차인 ‘K1’ 전차를 개발했다. 1990년대 성능 개량을 통해 ‘K1A1’ ‘K1E1’ ‘K1A2’ 등을 생산했다. K2 전차 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간 것은 1995년이다. 현대로템은 2008년에 K2 전차의 운용시험을 종료하고, 2014년부터 양산 및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현재 현대로템은 지상군 작전 수행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3차 양산을 진행 중이다.

현대로템의 K2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현대로템 관계자의 설명이다.

“K2 전차에 적용된 장포신 120mm 활강포(滑腔砲)는 현재 북한이 보유한 모든 전차를 파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동장전장치를 채택해 3명의 승무원으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기동 간에 6초 이내 재사격이 가능합니다. K2 전차에는 1500마력 고출력 엔진을 탑재해 포장도로에서 70km/h, 야지에서는 50km/h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또 실시간 궤도장력 제어장치를 통해 궤도 이탈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유기압 현수장치(질소 가스로 충전된 실린더와 유압유로 충전된 실린더)’라는 것을 적용해 산지가 많고 험준한 지형에서도 다양한 사격 각도를 확보할 수 있고, 노출면적을 감소시킬 수 있는 자세 제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군요.
“전투 중에 아군과 적군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피아식별장치가 있고, 사격 목표의 이동을 고려해 자동으로 추적이 가능합니다. 수심(水深) 4.1m까지 잠수도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하천지대에서도 작전 수행이 가능합니다. K2 전차의 진면목은 자체 방호(防護) 능력입니다.”

― 적군의 포탄을 자체적으로 방호합니까.
“K2 전차에 탑재한 능동방호시스템입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회피하는 유도교란형인 소프트킬(Soft-kill)과 직접 무기를 타격하는 대응파괴형인 하드킬(Hard-kill) 모두 가능합니다. K2 전차에 들어간 소프트킬 시스템으로는 방호용 레이더와 레이저 경고장치·유도교란 통제장치·각종 발사장치·복합 연막탄이 있습니다. 적군의 대전차 유도미사일이 날아오면 이를 감지해 미사일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즉각 복합연막탄을 발사해 미사일을 교란하고 신속하게 피할 수 있습니다.”


지상 전투 최고의 전차를 우리 손으로

― 전차에 탑승한 3명의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는군요.
“네. 승무원의 생존력을 극대화한 수동방호체계는 K2 전차의 강점입니다. K2 전차 전면부에는 특수 복합 장갑이 설치됐고, 핵 공격 시 발생하는 방사선을 차단하기 위한 중성자 차폐 라이너, 승무원이 별도 방독면 착용 없이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양압 화생방 장치를 적용했습니다.”

현대로템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차를 생산하는 회사다.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K2 전차를 기획·개발·양산하는 데까지 1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전차를 개발하는 과정은 복잡하다. 김의환(金義煥) 현대로템 고문의 설명이다.

“처음엔 머릿속에 여러 가지 개념을 그립니다. 이걸 각종의 공학적 분석과 운용 효과를 분석해가며 문서와 도면으로 대략적인 설계를 하는 거죠. 이 단계를 개념 설계라고 합니다. 다음에 이 구상이 구현이 가능한지 구체화하는 탐색 개발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체계 개발 단계로 들어가는데 이때 실제로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 평가를 합니다.
 

― 보통 힘든 과정이 아니겠지요.
“가령 120mm 장포를 만들 때는 그냥 그림을 그리고, 장포 모양으로 설계하는 게 아닙니다. 전차에 올렸을 때 힘을 얼마나 받느냐, 또 포탄 발사시 주퇴(포탄 발사 시 반동 충격 완화를 위한 포신 후퇴)를 하는데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일일이 따져야 합니다. 전차와 탄을 함께 개발하려면 정말 긴 시간이 걸립니다.”

― 이미 성능이 검증된 것을 가져다가 조립만 하면 시간이 확 줄겠죠.
“물론입니다. 자동차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개발된 부품을 수입해서 우리나라에서 조립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가 ‘포니’를 개발하기 전에 그런 식으로 생산했죠. 그러면 우리는 생산만 할 뿐 그 기술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지적재산권도 물론 우리가 가질 수 없습니다. 현대로템이 과거에 만든 K1 전차는 미국이 개발한 것을 우리가 생산만 해서 전력화한 전차입니다. K2 전차는 완전한 우리 기술로 만든 전차입니다. 지상 전투 장비 중 최고인 전차를 우리 손으로 개발한 겁니다.”

독일·미국 전차와 어깨 나란히

 ▲K2 전차의 수출 계약 대수 및 경쟁 제품과의 제원 비교. 사진=현대로템

 

현대로템에 따르면 고유한 자기 전차 모델을 가진 국가는 독일·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이스라엘·러시아·일본·중국 등이 있으나 몇몇을 제외하고는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떨어진다. 우리가 50여 년 남짓한 기간 만에 독자 모델을 가진 것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지난 9월 5일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에서 3대의 전차가 전시됐다. 왼쪽 독일의 ‘레오파드2’, 오른쪽에 미국의 ‘M1 에이브럼스’, 가운데에 대한민국의 K2가 나란히 서 있었다.

‘자주국방’이라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들 손으로 전차를 만들려다 물먹은 나라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아준(Arjun) 전차’는 50년 전인 1974년부터 개발이 시작됐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전력(戰力) 취급을 받지 못하고 소량만 생산됐다. 2010년엔 국내 언론에서 가장 긴 개발기간으로 소개됐고 이듬해엔 ‘무기 개발 역사에 남을 실패작’이라고 평가받았다. 아준 전차 개발이 시작된 1974년은 박정희(朴正熙) 정부가 창원에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한 해다.

 

10년 연구 끝에 1998년, K9 자주포 개발

 ▲K9 자주포의 수출 계약 대수 및 경쟁 제품과의 제원 비교.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차도 그러하지만, 현대에 와서 1970년대까지 우리 손으로 제대로 만들어낸 총포류는 하나도 없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의 얘기다.

“창군(創軍) 이후 우리 군은 105mm M3 곡사포를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155mm 곡사포, 평사포, 8인치 자주포, 견인 곡사포, 175mm 무포탑형 자주곡사포 등으로 무장해 전투종심(戰鬪縱深·접촉하지 않고 종심상의 적 부대를 타격하는 전투)을 증가시킬 수 있는 포병 화력을 준비했으나, 대부분 미국의 군원 또는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인수한 것들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1971년 ‘번개사업(자주국방을 목적으로 시작된 무기 국산화 산업)’을 통해 자체 무기 개발에 들어갔고, 박격포를 스스로 개발해냈습니다. 그럼에도 사거리 20~30km의 화포 필요성이 대두했고, 군 당국은 155mm 곡사포를 개발키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1979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한국형 곡사포, KH179가 탄생해 1984년부터 작전 배치가 본격적으로 됐지만 군 당국의 위기감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 왜 그랬습니까.
“우선 북한과 비교해보면 화포의 경우, 당시 북한은 우리 군보다 수적으로 5000문이나 더 많았고, 그중 50%가 자주화 및 차량 탑재용이어서 기동화가 쉬웠습니다. 우리 군으로서는 양적인 열세를 질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화포체계실은 1989년 1월부터 자주포체계팀을 편성하고 새로운 자주포, 즉 신형 155mm 자주곡사포에 대한 개념 형성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 왜 하필이면 155mm 구경입니까.
“105mm처럼 구경이 작은 탄보다 위력이 세고, 175mm처럼 구경이 큰 탄약에 비해서는 운반과 장전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K9 자주포의 포신은 155mm·52구경장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발된 155mm·52구경 자주포입니다. 우리 군은 국제 간 탄약 호환성을 고려해서 이 규격을 채택했습니다.”

― 순수 우리 제품이군요.
“1998년 10여 년간의 개발 끝에 탄생한 K9 자주포는 애초 육군에 의해 개발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에 연평해전이 발발하며 인근 해역 긴장이 고조되자, 군 당국은 K9을 해병대용으로 전환 배치키로 결정했습니다. 연평도에서 북한 해주까지 거리는 32km로, K9 자주포의 최대 사거리 40km 내에 포함됐습니다. K9은 창원 공장에서 출고식 행사를 마친 뒤 해군상륙함으로 운송돼 연평도에 배치됐습니다.”

미군이 감탄한 K9의 성능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은 개머리 진지에서 연평도를 향해 방사포 170여 발을 쏴댔다. 우리 군 해병대는 80여 발을 응징 사격했다. 이때 사용된 총포가 우리의 K9 자주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북한이 포탄을 쐈지만 K9 자주포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아 바로 대응 사격을 할 수 있었다. K9이 튼튼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고 말했다.

K9 자주포가 적군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자유아시아방송’ 보도(2012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방송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한 군인 1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북한군의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간한 ‘2021년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 조사서’에 따르면 한국의 무기체계 기술 수준은 세계 9위다.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분야는 K9 자주포 등으로 대표되는 화포로 세계 4위다. 연구소는 “한국 화포 분야는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자주포 성능 개량을 위해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K9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2년 9월, 미국 애리조나 YUMA 사격장에서 미 육군 자주포 사업 관계자를 초청해 K9 자주포 사격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운용 시범 행사를 가졌다. 이를 통해 미군이 운용 중인 다양한 탄과 K9, K10과의 호환성, K9의 운용 성능을 성공적으로 입증했다.

에드먼드 마일스 브라운 사령관(소장)은 K9, K10의 시범이 끝나고 장비를 샅샅이 살피고는 “수십 년 전 미국의 포를 받아서 사용하던 국가가 오히려 미국에 첨단 장비를 가져와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브라운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은 K9의 자동장전 사격 체계, K10의 탄약 적재, 이동 능력에 감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군의 최신 장비(M109A7)는 여전히 병력이 30~40kg에 달하는 탄을 직접 손으로 장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병이 러시아의 키이우 점령 무산시켜”

화포는 화약의 발명으로 탄생한 오래된 무기다. 초정밀 미사일과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현대전(戰)에서 여전히 도태되지 않고 발전하는 이유가 의아할 수 있다. 군사 전문가가 말한 바로는 첫째, 화포는 가성비 좋은 고효율 무기 체계다. 미 육군이 운용하는 전술 탄도미사일인 ATACMS는 미사일의 성능은 매우 우수하지만, 한 발의 가격이 82만여 달러(10억원)로 고가(高價)다. 둘째, 야포(지상전투에 사용되는 화포)는 융통성과 운용성이 뛰어나다. 야포는 전투기와 달리 사격하는 데 있어서 기상이나 지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운용할 수 있다. 또 야포는 사격에 걸리는 시간이 짧고, 화력을 동시에 집중(또는 분산)할 수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포병은 전쟁 초기 키이우 주변에서 러시아군을 제압했다. 우크라이나 2개 포병여단은 집중 사격을 통해 러시아군의 키이우 점령을 무산시켰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전에서도 화포의 중요성이 입증된 사례이다.


2022년 8월에 첫 해외 진출

 ▲지난해 8월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가 폴란드 군비청과 K2 흑표 전차 및 K9 자주포 수출을 위한 57억6000만 달러(약 7조6780억원) 규모의 1차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손재일 한화디펜스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수출 기업으로 우뚝 서고 있어서다.

현대로템의 방산 매출은 2014년 7500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매출이 늘어 8225억원(2020년), 8965억원(2021년)에 이어 2022년에 1조원을 넘어선 1조59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에는 1분기에만 2600억원, 2분기 7444억원을 기록했다. 수출 호조에 따른 변화다.

현대로템은 2008년에 튀르키예(터키)에 K2 전차 기술을 수출했다. 이후 회사는 방산 부문 사업 확대를 위해 해외 시장 수출 기회를 꾸준히 모색했다. 첫 기본 계약은 2022년 7월에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 긴급소요 및 폴란드형 K2 전차를 포함, 1000대 물량에 대한 기본 계약이다. 현대로템 측이 말한 바로는 기본 계약은 폴란드 획득 절차상 앞으로 진행될 개별 실행계약 체결 이전에 하는 절차다. 다음 달인 2022년 8월에 현대로템은 폴란드 군비청과 총 4조4992억원 규모의 K2 전차 수출 계약을 맺으면서 K2 전차의 첫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두 달 뒤인 2022년 10월에 폴란드로 향하는 K2 전차 초도 물량 10대가 출고됐고, 약 50일 만인 12월에 폴란드 현지에 도착했다. 이어 2023년 3월에 K2 전차 5대가 기본 납기(納期)보다 무려 3개월 앞서서 현지에 도착했다.

현대로템 관계자의 얘기다.

“K2 전차의 빠른 출고를 위해 회사는 업무 부하가 예상되는 팀을 중심으로 인력을 재배치하고, 특별연장근로 신청을 통해 근무시간 연장으로 업무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물론 K2 전차가 빨리 출고될 수 있었던 데는 군, 관계 기관의 적극적 협조도 일조했습니다.”

― 행정 절차를 간소화한 모양이군요.
“국방부와 방사청, 군은 유기적인 업무 대응으로 K2 전차 수출과 관련한 행정 절차를 크게 단축했고, 국방기술품질원은 K2 전차에 대해 신속하게 품질 검사를 진행해 생산·출고에 이르는 일정을 앞당겼습니다. 1차 긴급 소요분 180대는 2025년까지 납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폴란드를 공략한 방법은요.
“현재 폴란드에 납품 중인 한 K2 전차는 ‘K2GF’ 폴란드 맞춤형 모델입니다. 폴란드의 긴급 소요를 충족하기 위해 정보통신 체계만 폴란드형으로 개조한 K2 전차입니다. 이를 후속하게 될 ‘K2PL’은 여러 가지 폴란드 군 요구사항을 반영해 K2를 개조한 폴란드형 K2 전차가 될 것입니다. 이 전차는 폴란드에서도 생산이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제안해 현재 총괄계약이 체결된 상태입니다.”

국가별 맞춤형 전차로 세계 시장 공략

현대로템은 폴란드군에 최적화된 K2PL처럼 이미 각국의 전투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모델로 세계 시장 문을 두드려왔다. 섭씨 50도가 웃도는 사막 기후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도록 개량한 중동형 K2 전차는 중동 현지에서 성공적인 운용평가를 받았다. 영하의 북유럽 노르웨이의 동계 환경에서도 성능이 입증돼 세계 어느 지역으로든지 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

현재 현대로템은 2023년 4월, 폴란드 국영방산그룹 PGZ 및 PGZ 산하 업체인 WZM과 체결한 전차 본 계약 협상을 위한 컨소시엄 이행 합의서를 바탕으로 폴란드형 K2 전차 본 계약 협상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K2PL 컨소시엄은 2022년 7월 현대로템과 폴란드 군비청이 맺은 총괄계약 내용을 기반으로 체결된 것으로, 폴란드 측의 K2PL 전차 생산 역량 구축을 위한 지원 사항을 포함해 현지 생산 및 적기 납품을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 관계를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컨소시엄은 올해 후반기 폴란드 군비청과의 이행계약 체결을 목표로 내부적인 협의를 지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현지 기술지원과 교육, 생산시설 구축 등 K2PL 전차를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한 제반 세부사항들을 검토하고 조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국내 유일의 전차 생산 기업으로서 수십 년간 축적해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최신예 K2 전차의 해외 수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꾸준한 연구 개발을 통해 자주국방의 핵심 전력인 전차 부문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 방위에 변함없이 일조하는 데 매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게 없다”

 ▲지난 8월 31일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가진 김현우 현대로템 창원공장 방산공장장.

 

현대로템 창원공장엔 K2 전차를 만드는 ‘방산 공장’과 고속철도를 만드는 ‘철도차량 공장’이 공존하고 있다. 수주 사업에 따라 일감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현대로템 창원공장은 한울타리 안에서 두 공장을 서로 전환 배치하며 인력을 공유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폴란드 수출 계약 체결로 인해 철도 부문 인력 80여 명을 방산 부문으로 전환 배치했다. 김현우 공장장에게는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처음 K2 전차 10대를 계약과 동시에 납품해야 했습니다. 전차 안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언어를 다 영어로 바꿔야 했습니다. 도색(塗色)이나 표시, 지시판도 영어로 바꾸고, 어떤 부분은 폴란드어로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직원들이지만 대단한 것이 그걸 한 달 만에 다 해냈다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도면을 리뷰해서 바로 색칠하고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영어 작문하고, 다른 나라 같으면 1년 걸릴 걸 우리는 금방 하는 걸 보면, 천재들이 많은 것 아닌가요(웃음). 제가 볼 땐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게 없습니다.”

― 그렇게 애쓴 K2 전차를 처음으로 보낼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내 딸 시집보내는 마음이었습니다. 폴란드로 가는 배에 K2를 실은 시각이 새벽 두 시였습니다. 저도 직원들도 모두 나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방산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했는데 수출은 처음입니다. 그때 기분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방산 물자는 배에 싣는 것부터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항로도 운송도 전부 기밀이었습니다.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모든 직원은 납기를 맞추기 위해 ‘현대 정신’을 발휘했습니다(웃음).”


인도 사막에서 제품 테스트

 ▲이종섭(왼쪽) 국방부 장관과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럽법인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해 2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K9 자주포 2차 이행계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01년 튀르키예에 K9 기술 이전을 시작으로 수출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4년에 폴란드에 K9 차체를 수출했고, 2017년에는 인도·핀란드·노르웨이에 중고품 및 완제품을 수출했다. 지난해에는 이집트와 2조원 규모의 K9·K10·K11 완제품 수출 및 기술 이전 현지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방산 수출이 증가하면 기업의 생산시설 가동률이 높아지고, 이는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진다. 또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 인하를 통해 우리 군의 무기 체계 획득·운용·유지 비용까지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며 “적시적인 군수 지원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기업뿐 아니라 국가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수출 실적을 쌓기 위해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의 얘기다.

“2017년에 수주한 인도평가시험 때는 모래 바람과의 싸움이 관건이었습니다. 당시 인도 차기 자주포 도입 사업에는 러시아 자주포가 K9과 경합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군은 사막 언덕에서 등판 시험을 진행하기를 원했습니다. 수주를 하기 위해서 한국과 러시아 자주포는 인도군이 요구하는 시험 테스트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혹독한 테스트였네요.
“러시아 자주포는 몇 번 시도 끝에 등판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우리 K9은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재차 도전해 통과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18년에 수주에 성공한 에스토니아의 공략법은 또 달랐다. 한화는 ‘편의성’을 강조해 수출 계약을 맺었다. 에스토니아 수주전이 한창일 때, 에스토니아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고위 관계자가 우리 육군 운용 부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우리 군 관계자는 K9 운용을 부대에 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에게 맡겼다. 갓 배치된 신병이 K9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고 에스토니아 군 장성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글로벌 무기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국방 예산 증가 추세와 비례해 무기 체계 개발과 생산, 운영 유지를 포함한 무기 획득 예산이 늘고 있다. ‘Aviation Week’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무기 획득 예산은 5500억 달러였으나, 러시아발 전쟁 이후 늘어 2023년에는 68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앞으로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장래가 기대된다.


인터뷰
김의환 현대로템 고문

“K2, 현존하는 어느 전차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전차

 ▲지난 8월 25일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가진 K2 전차 개발자 김의환 현대로템 기술고문.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의환 고문은 1979년에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사해 장갑차ㆍ전차 개발을 맡아왔다. K2 전차개발단장ㆍ한국시스템공학회장을 역임한 그는 2020년부터 현대로템 고문을 맡아 기술 자문을 맡고 있다.

“국방연구소 입구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국방(國防)의 초석(礎石)’이라는 휘호가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을 밝히면서 기업들에 방위 산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우리에게 북한은 살아 있는 위협이고, 외국의 지원은 정치ㆍ경제ㆍ외교 환경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우리 손으로, 우리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부터 시작한 우리 무기 개발 능력 확보에 대한 절실함, 필요성, 이것이 현재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자주국방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죠.
“이스라엘이 ‘메르카바’라는 전차를 개발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에 지원을 약속했던 영국이 중동전이 터지자 하루아침에 지원을 끊으면서부터입니다. ‘내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차 독자 개발을 하게 했고 우리도 같았던 겁니다. 창원공단은 평상시에는 민간 수요를 담당하지만, 전시(戰時)에는 방산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조성했습니다. 창원은 흔히들 ‘폭격이 어려운 지형’이라고 하는데, 방산 기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겁니다.”

― 전차 개발의 100년 역사를 가진 독일에 비하면 우리의 역사는 미천한데요.
“정부 ADD의 주도하에 군(軍)ㆍ연구소ㆍ학계ㆍ기업이 모두 힘을 합친 국민 염원의 결과물입니다. 튀르키예에 ‘알타이’라는 전차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튀르키예에 기술 지원, 양산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을 합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대한민국이 불과 50년 만에 튀르키예에 전차 관련 기술과 부품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느냐’며 부러워합니다. 폴란드가 물론 소련의 위성 국가였지만, 독립 후에 자주국방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하고 전차를 수입하는 형편입니다. 군ㆍ연구소ㆍ기업 등이 삼위일체가 돼 오늘날의 쾌거를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

― 숱한 시행착오, 실패가 있었겠지요.
“연구개발은 테스트, 실패, 보완 과정을 돌고 도는 겁니다. ‘어떻게 실패의 빈도를 줄일 수 있을까’ ‘한 번에 성공하는 방법은 없을까?’ 매일 이런 생각만 하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웃음). 실패를 할 때마다 비용이 들어가고, 시간을 버리는 겁니다. 장갑을 두껍게 하면 전차가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면 엔진이 커져야 하고 엔진이 커지면 전차가 더 커지고 그러면 전차가 더 무거워져 주행 장치도 더 강인해져야 하고 전차 움직임은 둔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성능과 기능 요소를 조화롭게 최적화해 최소의 시행착오로 최고 전차로 만들어 나가는 게 일이 아닌가 합니다.”

 

― 전차는 적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도구 아닙니까.
“그렇죠. 무조건 좋은 부품 사용한다거나 많은 기능이 있다고 좋은 전차가 되는 게 아니라 전차의 고유 임무인 쏘고 달리고 막고 하는 모든 기능의 ‘최적화’와 ‘최고화’가 필수입니다. 또 성능이 좋으면서도 특정 기간 내에 완성해야 하고, 그 과정에 소모되는 비용이 적절해야 합니다. 특히 전차를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물건의 품질 외에 정치, 외교가 필수입니다.”

― K2를 수출했다는 것은 그 국가와도 끈끈한 관계라는 증명이죠.
“만약에 어느 국가가 ‘성능ㆍ납기일ㆍ가격 등을 모두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K2 전차를 쓰겠다’고 해보죠. 그런데 그 국가가 전차 강국인 경쟁국과 역사적으로 유대관계를 갖고 있거나, 만일 경쟁국 제품을 쓰지 않으면 곤란한 정치ㆍ경제 상황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모든 면에서 우리의 K2 전차가 경쟁국 전차보다 우수해도 수출할 수 없습니다. 전차 수출은 전차 성능, 가격 자체만이 경쟁력이 아니라 정치ㆍ외교ㆍ안보와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정부의 역할 또한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가 50여 년에 불과한 현대로템이 이제 K2 전차 완제품 수출을 시작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 K2가 정말 그렇게 뛰어납니까.
“지구상에 현존하는 어느 전차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는 전차입니다. 네티즌들이 말하는 세계 전차 순위에서 항상 3위 안에는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서양 열강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아시아 국가 가운데 국제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전차를 생산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 현대로템 입장에서는 수출 이외에 내수용은 군납이다 보니 수익성이 높은 사업은 아닐 텐데요.
“제가 알기로 정주영(鄭周永) 창업주께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습니다. ‘북한 때문에 편히 잘 수가 없다. 우리 기술력으로 전차라는 것을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로 시작한 사업입니다. 개발연대의 창업주들이 그러했듯이, 나라가 온전해야 비즈니스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전통이 지금도 현대로템에 우직하게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다른 국가가 우리를 쫓아오는 상황이 됐으니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K3, K4 전차를 만들어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일이 남았습니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10.04 사실혼 자녀 안 되고, 연 끊은 동생 된다…이상한 존엄사 결정권

 
 

▲서울적십자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

 

지난달 중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가 '연명의료 결정의 사각지대' 심포지움을 열었다. 이날 행사 토론자 조정숙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11개월째 연명의료를 받는 생후 20개월 영아의 예를 들며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아이는 지난해 11월 생후 9개월 때 30대 친모의 학대를 받아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충남대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 '임종 상태'라는 판정을 받고 혼수상태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아이의 고통을 멈출 방도가 없다.

 30만 8923명 존엄사 이행

신재민 기자

 

길민정 서울시 북부병원 의료사회복지사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사실혼 부부의 안타까운 사례를 소개했다. A씨는 사실혼 관계인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20대, 남편 자녀로 등록)에 의지해 살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아들이 가족인데도 법정 대리 결정을 할 수 없다. A씨에게는 수십 년 연락하지 않은 여동생이 있다. 현행법을 따르려면 여동생을 반드시 찾아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A씨의 인생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데도 중요한 결정을 맡겨야 한다.

가족 변화 못 따르는 연명의료
친모 학대로 뇌사된 영아 고통
조카 보호자도 가족 포함 안돼
"법정 대리인제 도입 서둘러야"

이날 심포지엄에서 가족이 환자의 뜻을 제대로 대신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일반적인 형태의 가족이 아닌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 같은 문서가 있으면 연명의료를 중단(유보)할 수 있다. 이런 게 없으면 가족 2명이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확인(의사 추정)하면 가능하다. 환자의 뜻을 모르면 가족 전원이 합의한다. 가족은 19세 이상의 배우자·자녀·부모를 말한다. 이런 사람이 없으면 조부모·손자녀가, 이마저 없으면 형제·자매가 대신한다. 지난 5년 6개월 동안 30만8923명이 인공호흡기 치료 등의 7개 연명의료 행위를 중단(유보)하고 존엄사 했다. 

신재민 기자

 

 "연락 말라" "알아서 해라"

가족 구성이 점점 복잡해진다. 1인 가구나 독거노인이 급증하고, 연락이 두절됐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도 많다. "알아서 해라" "연락하지 말라"며 의사 표시를 거부하는 이도 있다. 반면 가족 역할을 하는 조카가 있어도 연명의료 결정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 사실혼·동성 커플도 법적 권한이 없다.

영아 사건의 경우 5월 법원이 친모에게 징역 4년 형을 선고하면서 친권을 정지하고 관할 구청을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병원 측은 선고 직전 친모에게서 연명의료 중단 동의를 받았다. 당시에는 친모의 친권이 있는 상태라 '가족 전원 합의' 과정에 하자가 없었다. 환자가 미성년자이면 법정대리인(친권자에 한정)이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학대 주범에게 서명받는 게 옳으냐"는 논란이 일면서 동의서가 무용지물이 됐다. 구청은 생명권을 결정하지 못한다. 가정법원의 결정을 구하는 길밖에 없지만, 아직 움직임이 없다. 지금의 연명의료가 아이에게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는 걸까.

조정숙 센터장은 다른 가족 사례를 소개했다. 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뇌사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병원 측은 임종 환자라고 판단해 연명의료를 중단했고 곧 숨졌다. 외국에 사는 자녀의 동의를 받았다. 이메일로 문서를 주고받았다. 중증 지적장애인인 다른 자녀, 이혼한 배우자는 제외했다. 조 센터장은 "가해자가 상해치상에서 상해치사로 혐의가 바뀌었다면서 연명의료 중단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환자 가치관 아는지 안 따져

길민정 복지사는 '조카 보호자의 비애'를 강조했다. 환자의 형제가 숨졌거나 치매를 앓고 있고 환자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가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조카는 법적 가족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도 대리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가족 2명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의 녹음이나 일기장 같은 객관적·구체적 증거가 없어도 된다. 심수현 서울대병원 법무팀 변호사는 "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만 있으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는데, 그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며 "환자의 평소 가치관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했는지, 진술 시기가 적합하고 신뢰할만한지 등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당한 경우도 있다.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의료진에게 "계속 치료해 달라"고 얘기하고 의식이 없어졌는데, 가족 2명이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센터장은 "나쁘게 말하면 두 사람이 짜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 양심에 호소할 뿐"이라고 말한다. 심 변호사는 "가족 2명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심 변호사는 "현행 법률의 대리 결정권자를 가족으로 한정하지 말고 환자의 평소 선호도와 가치관을 아는 사람을 포함하고, 최선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거나 권한을 포기한 가족, 연락 두절 가족 등은 대리 결정에서 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환자가 지정한 대리인, 임의후견인, 성년후견인 등을 대리 의사 결정권자에 포함하고 이런 이가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가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조정숙 센터장은 "현행 법률에서 규정하는 가족은 '정상적인 가정'으로 제한된다. 그렇지 않은 가족이 느는데 지금의 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법정 대리인을 미리 지정하는 제도가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10.06 월 678만원 맞벌이도 받는다...기초연금 16년, 손봐야할 두가지

2008년 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에게 주는 기초연금(당시엔 기초노령연금)을 처음 지급할 때 금액은 월 8만4000원(1인 기준)이었다. 이 금액이 16년째인 올해 32만3180원으로 올랐고 내년엔 33만4000원으로 오른다. 기초 연금에 드는 예산은 2014년 6조8000억원에서 올해 22조6000억원으로 연평균 14.2%씩 증가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10만원씩 오른 데다 65세 이상 인구도 내년에 1000만명을 넘을 정도로 급증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2030년엔 기초연금 예산이 46조원으로 불어난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예산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지표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시가 16억 아파트 있어도 받아

이승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지난달 25일 낸 ‘소득과 자산으로 진단한 노인빈곤과 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면 근래 65세 이상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소득·재산이 기존 연령층에 비해 높다. 빈곤율이 1930년 후반 출생은 56.3%, 40년대 전반 출생은 51.3%, 40년대 후반 출생은 44.5%이지만 50년대 전반 출생은 27.8%, 50년대 후반 출생은 18.7%로 낮아졌다. 1950년생을 기준으로 그 이하 연령대로 갈수록 어느 정도 노후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65세 이상의 약 10%는 소득은 적지만 자산은 많다. 자산까지 고려할 경우 빈곤율이 1930년 후반 출생은 45.9%, 40년대 전반 출생은 37.2%, 40년대 후반 출생은 31.6%로, 50년대 전반 출생은 19.7%, 50년대 후반 출생은 13.2%로 낮아졌다. 이 수치에서 보듯,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본격적으로 65세 이상에 이르면서 소득·자산 면에서 빈곤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는 소득 하위 70%로 그대로다. 그렇다 보니 기초연금을 주는 기준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다.

 

2008년 기초노령연금 선정 기준액은 월 소득인정액 40만원(단독가구 기준)이었다. 그런데 이 선정기준액이 2014년 87만원으로, 2016년에는 100만원으로 오르고 2020년 148만원, 2022년 180만원 등을 거쳐 올해는 202만원으로 올랐다. 15년 만에 5배 이상으로 상승한 것이다.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를 포괄할 수 있게 선정 기준액을 해마다 대폭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득인정액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소득이나 재산에서 일정 금액을 빼주는 각종 공제를 계속 확대했기 때문에 실제 소득·재산 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다. 다른 재산과 소득이 없고 근로소득만 있을 경우 올해 기준으로 혼자 사는 노인이 매달 397만원, 맞벌이 부부는 678만원을 벌어도 기초연금을 탈 수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연구원 최옥금 연구위원 보고서를 보면 근로소득이 500만원이 넘는 사람도 9명, 400만~500만원을 버는 사람도 479명이나 기초연금을 받고 있었다. 주택만 있을 경우 시가 16억원 자산가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2021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1인 가구 299만원, 2인 가구 456만원이다. 그런데 그 이상을 버는 65세 이상에게도 기초연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기초연금은 본인이 보험료를 내지 않고 전적으로 세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인 월 201만원을 받고 일하는 젊은 층이 상당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아닌지 고민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세대 간 형평성 면에서도 맞지 않을 수 있다.

 

◇우선 소득 하위 70% 기준 고쳐야

기초연금 덕분에 노인 빈곤율은 2014년 44.5%에서 2021년 37.6%로 6.9%포인트 낮아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노인 빈곤율이 높다. 특히 75세 이상과 여성의 빈곤율이 높은 편이다. 소득인정액이 0원인 65세 이상(128만명)에서 각각 64.4%, 72.4%를 차지할 정도다. 각종 공제가 있기 때문에 소득인정액이 0원이라고 해서 소득·재산이 없는 건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진짜 빈곤한 노인이나 그렇지 않은 노인이나 똑같은 액수를 주기 때문”이라며 “OECD 기준으로도 현행 기초연금 수급자의 3분의 1가량은 빈곤한 노인이 아닌데도 동일한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 소득 양극화가 문제인데 평균의 함정에 빠져 70% 노인들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니 예산 증가에도 빈곤 완화 효과는 떨어진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 제도를 도입한 이후 16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져 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지금의 ‘소득 하위 70%’라는 선정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65세 이상의 소득·재산이 올라가는데 계속 70%에게 지급할 것이 아니라 소득 기준을 정해 그 이하에게 지급해야 수급자 증가 폭을 낮추고 진짜 취약한 노인을 보다 두껍게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KDI 이승희 연구위원은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의 일정 비율 기준으로 전환하고 지급액을 증액해야 한다”며 “그러면 덜 빈곤한 1950년대생과 그 이후 세대가 대상 연령대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기초연금 수급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옥금 연구위원도 선정 기준액을 기준중위소득 등으로 조정하면서 액수를 인상하려면 우선 저소득층부터 하자고 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소득인정액이 0원인 노인 128만명(기초연금 수급자의 19.1%)부터 우선 40만원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윤석명 연구위원은 “기존 수급 자격을 뺏을 수는 없으니 빈곤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초연금 액수를 지금 수준으로 묶고, 앞으로 새로 들어오는 65세 이상에 대해서는 소득인정액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해 기초연금 수급자를 서서히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 내년엔 기준 중위소득 넘을 듯

복지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당장 내년부터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이 여러 복지정책의 선정 기준인 ‘기준 중위소득’을 넘을 수 있다고 했다. 생계급여는 기준 중위소득의 32% 이하에게 지급하는 등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 등 정부의 70여 개 복지사업 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기준으로 활용하는 지표다. 중위소득이 우리나라 가구 소득을 순서대로 나열한 뒤 정 가운데 있는 소득임을 감안하면 65세 이상은 소득인정액이 국민의 중간 소득 이상이어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은 단독 202만원, 부부 323만원이다. 내년에도 올해 선정 기준액 인상률(12.2%)만큼 오른다고 가정하면 각각 227만원, 363만원이다. 정확한 내년도 선정 기준액은 12월 나올 예정이다.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은 1인 가구 223만원, 2인 가구 368만원이다. 이를 비교할 경우 내년엔 단독의 경우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이 기준 중위소득보다 높아지고 부부의 경우 엇비슷해진다.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은 2015~2023년 연평균 10.2% 증가했는데, 중위소득액은 평균 3%대 증가에 그쳤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국회예산정책처 자료).

더구나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은 기준 중위소득보다 공제하는 항목이 많아서 같은 금액이더라도 실제 소득·재산은 휠씬 많을 수밖에 없다. 소득인정액은 소득에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더한 것이다. 기초연금 선정의 경우 근로소득에서 108만원을 뺀 다음 다시 30%를 공제하고 재산에서도 지역에 따라 1억3500만원 등을 빼고 산정하고 있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수입(월 27만원) 등도 소득으로 잡지 않는다.

여기에다 기초연금의 경우 선정 기준액 이하이면 무조건 받을 수 있지만 기준 중위소득을 적용하는 복지 혜택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의 경우 내년엔 기준 중위소득의 32% 이하, 의료급여는 40% 이하, 주거급여는 48% 이하, 교육급여는 50% 이하여야 받을 수 있다.

 

한 복지 전문가는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이 기준 중위소득보다 높아지는 것은 기초연금을 얼마나 후하게 주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인정액

소득에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더한 것이다. 기초연금의 경우 근로소득에서 108만원을 뺀 다음 다시 30%를 공제하고 재산도 기본재산액을 빼주는 등 후하게 산정하고 있다.

기준 중위소득: 중위소득은 우리나라 가구 소득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정 가운데 있는 소득. 기준 중위소득은 중위소득에 정부가 소득증가율 등을 반영해 정하는 값으로, 기초생활보장 등 70여 개 복지사업 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기준으로 쓰고 있다.

빈곤율: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개인(또는 가구) 비율.

조선일보 김민철 논설위원

 

 

10.06 “주한미군 정문에 버려진 내가 주한미군으로… 부임날 펑펑 울었다”

[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행] [8] 주한미군이 열어준 새로운 삶

외할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었고, 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주한 미군이었다. 자신은 주한 미군으로 7년을 복무했다. 지난 7월 24일 대구 ‘캠프 헨리’에서 정보 장교로 전역한 이준(50) 예비역 중령 이야기다. 전역 날은 주한 미군 혼혈 자녀였던 모친이 역시 주한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 중령을 대구 ‘캠프 헨리’ 앞에 버린 지 꼭 50년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인 아내와 아들 - 이준 중령의 가족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중령, 이 중령의 한국인 아내 이효진씨, 아들 이주원군. 아내 이씨는 "한식만 먹는 남편의 피는 천생 한국인"이라고 했다. /장련성 기자

 

지난달 20일 미국 출국길에 만난 이 중령은 “한국은 내게 정체성을 줬고 미국은 내게 기회를 줬다”며 “3대에 걸쳐 주한 미군으로 한미 동맹 강화에 노력했다. 이제는 민간에서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1973년 7월 24일 모친이 갓 태어난 자신을 ‘캠프 헨리’ 정문에 버린 날을 이 중령은 “삶이 새로 시작된 날”이라고 했다. 이 중령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모친은 아버지 부대를 찾아내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갓난아기를 버렸다. 아버지는 아기를 맡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당시 부대 중대장이 아기를 거두라고 명령했고 아버지는 이 중령을 대구 위탁 가정에 보냈다. 이 중령은 “당시 혼혈은 한국에서 심한 차별을 받았다”며 “위탁 가정에서 학교는커녕 노예처럼 학대를 받았다”고 했다. 국적도 없이 미군 물품 암시장에서 사탕을 받으며 심부름꾼으로 일했다.

 

1984년 열한 살에 전역한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가면서 인생 전환점을 맞았다. 워싱턴주립대에 진학해 프로 풋볼 선수를 눈앞에 두던 1994년 아버지가 한국 흥신소를 통해 찾아낸 생모와 21년 만에 만났다. 공교롭게도 어머니는 다른 미국인을 만나 이 중령의 워싱턴주 자택 근처에 살고 있었다.

 

▲"제가 버려진 곳이 여기예요" - 이준 중령이 자신이 갓난아기일 때 바구니에 담겨 버려진 채 발견됐던 대구의 캠프 헨리 정문 앞에 서 있다. 그는 주한 미군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미 육군 홈페이지

 

이 중령은 “아버지에게 나를 거둬 키우라고 명령했다는 ‘캠프 헨리’ 중대장 이야기를 듣고 나도 군인이 되기로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 이라크와 나토(NATO), 미 국방부에서 복무한 이 중령은 2005년 주한 미군 발령을 받았다. 미국으로 떠난 지 21년 만이었다.

이 중령은 “어린 시절 멸시와 차별의 기억에 다시는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았다”며 “하지만 막상 한국 땅을 밟으니 집에 온 것처럼 감정이 북받쳐 펑펑 울었다”고 했다. 경북 칠곡과 용산, 의정부 등에서 근무하며 한국인 이효진(43)씨와 결혼해 아들 주원(9)군도 뒀다. 아내 이씨는 “한식만 먹는 남편의 피는 천상 한국인”이라며 “죽어서도 꼭 한국 땅에 묻어달라고 한다”고 했다.

‘이준’이라는 이름도 대구 위탁 가정에 있을 때 미아 상태의 이 중령을 발견한 대구 경찰이 지어준 것이었다. 이 중령은 “대구는 내 조국”이라며 “이제는 받은 만큼 은혜를 갚을 때”라고 했다. 마지막 군 생활 2년을 자신이 버려졌던 대구 ‘캠프 헨리’에서 운명처럼 마친 이 중령은 대구 수성대와 고아원, 아파트 단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영어 강습 봉사 활동을 꾸준히 했다.

 

인생 2막으로 미국에서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는 이 중령은 “주한 미 대사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이 중령은 대구에 있을 때 홍준표 대구시장과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등을 만나 다문화 가정 교류를 위한 간담회를 갖고, 이상봉 디자이너와 다문화 학생 ‘진로 멘토링’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찾았다. 그는 “70년이 된 한미 동맹은 더욱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나 역시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양국 관계를 더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

 

 

10-06 토요타도 인정한 K-배터리… 中 넘어 초격차 키워야 한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이 최소 30조 원을 넘는 초대형 주문을 받아냈다. 완성차 세계 톱인 일본 토요타자동차에 10년간 전기차 250만 대에 장착할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LG엔솔은 5일 토요타에 2025년부터 매년 20기가와트시(GWh)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전기차의 주행거리와 출력을 높이기 위해 니켈 비중을 90% 이상으로 높인 배터리(NCMA 계열)를 공급할 것이라고 한다. LG엔솔은 이를 위해 미국 미시간주 공장에 4조 원을 투자해 시설을 증설, 토요타 켄터키공장에 공급한다. 이 회사는 이로써 폭스바겐, 현대차 등 글로벌 빅5 모두와 파트너가 됐다.

토요타는 자동차 판매량 기준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차에 강점을 가진 여파로 전기차 전환이 늦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인 전략을 펴면서, 2030년까지 총 350만 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다. 신중하고 자존심이 센 토요타가 LG엔솔을 파트너로 정한 것은 K-배터리의 초일류 경쟁력을 거듭 확인하는 결과다. 그간의 한일관계를 돌아볼 때, 산업적·외교적 의미도 상당하다.

이번 계약으로 K-배터리 3사의 총수주잔액이 1000조 원을 넘게 됐다. LG엔솔 470조 원, SK온 290조 원, 삼성SDI 260조 원 등이다. 놀라운 성과다. 이런 신화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1992년 2차전지 독자 개발을 지시하는 등 선도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전 정신이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제 배터리는 반도체에 비해 소재·부품·장비 등 국내 생태계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고비가 한둘이 아니다. 핵심 소재와 원료를 90% 이상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중국산 의존도가 너무 높다. 중국산 저가 리튬이온 배터리는 성능 향상으로 세계시장 점유율이 60%를 넘는다. 저가 전기차라고 해도, 중국 3대 업체 점유율이 세계 1위인 미국 테슬라를 추월했다.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 경쟁에서도 계속 앞서 나가야 한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초격차를 키워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

 
 
 

10.07 ‘타다’만 죽여 놓고 택시 회사도, 기사도, 승객도 모두가 패자

올해 초 서울 등 전국 지자체가 택시 기사 수입을 보전해 주고자 택시 요금을 올렸지만 택시 승차난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오른 요금 때문에 택시 이용객이 줄고, 그 탓에 기사 감소세가 가팔라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 택시 기사는 코로나 확산 전인 2019년엔 10만명이 넘었는데 올 7월 7만여 명으로, 4년 사이 3만명 넘게 급감했다. 기사 숫자가 택시 수(8만4000여 대)보다 적어졌다. 법인 택시 1대를 주야로 운영하려면 기사 2.3명이 필요한데, 기사 부족으로 법인 택시 야간 가동률은 30% 안팎에 불과하다. ‘노는’ 택시가 늘자 택시 회사도 문 닫고 있다. 그 바람에 심야 번화가의 택시 대란도 여전하다. 자정이 넘으면 호출 택시 잡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웃돈을 요구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요금만 올려놓고 택시 회사도, 기사도, 승객도 모두를 패자로 만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이른바 ‘타다 금지법’을 만들어 모빌리티 산업의 혁신을 막고 택시 업계 보호에 나섰다. 하지만 업계 기득권을 지키기는커녕 소비자 부담과 불편만 가중시킨 채 택시 업계가 더 큰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타다’ 같은 대안이 있었다면 택시 대란이 이렇게 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택시 수요가 많은 시간에는 공급을 늘리는 게 핵심인데 기존 택시 업계를 보호하려고 공급을 막은 채 경직된 요금제로만 대응하니 부작용이 커진 것이다.

‘우버’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가 잠깐 생겼지만 검찰이 불법 영업으로 기소하자 곧 철수했다. ’ 타다’조차 규제에 막혀 사라진 사이 해외에서는 새로운 모빌리티 혁신이 꽃을 피우고 있다. ‘우버’는 전 세계 70국에서 월 1억2000만명이 이용하고, ‘그랩’은 동남아 8국에서 운전 기사 500만명이 매달 승객 운송을 3500만건 맡고 있다. 모빌리티 혁신과 경쟁을 통해 소비자는 편리하게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고, 이런 플랫폼을 통해 수백만 명이 본업이나 부업으로 승객을 나르는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기득권을 보호한답시고 혁신을 외면하면 모두가 패자가 된다는 걸 국내 택시 업계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선일보 사설

 

 

10.08 정우영·조영욱 ‘역전 듀오’...한국축구, 日 잡고 亞게임 첫 3연패

일본과 결승전에서 2대1 승

한국 남자 축구가 아시안게임 최초로 대회 3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황선홍(55)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U-24(24세 이하) 축구 대표팀은 7일 중국 항저우 황룽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22세 이하 선수를 주축으로 꾸린 일본을 2대1로 물리치고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정상에 섰다.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종목에서 처음 나온 3연패(連覇). 최다 우승국인 한국은 이번 금메달로 대회 우승 횟수를 6회로 늘렸다.

 

 ▲7일 오후 중국 항저우 황룽스포츠센터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일본의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일본에 2-1 승리하며 금메달을 차지한 대표팀이 환호하고 있다. /송정헌 스포츠조선기자

 

이번 우승으로 선수단 22명 중 이강인(PSG) 등 19명이 병역 특례 혜택을 받고, 상병 신분인 조영욱(상무)은 조기 전역을 하게 됐다. 골키퍼 김정훈(전북)은 상무에서 병역을 마쳤고, 주전 수문장 이광연(강원)은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이미 면제를 받았다.

 

한국은 5년 전 자카르타 대회 결승에서 이승우와 황희찬의 골을 앞세워 일본을 2대1로 꺾은 데 이어 이번에도 한일전에서 이기며 아시안게임에서 절대 우위를 지켰다. 이번 승리는 한국이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일본에 거둔 8번째 승리(1패). 현역 시절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두 골을 넣어 3대2 승리를 이끄는 등 한일전에 강했던 황선홍 감독은 지도자로 맞은 중요한 고비에서 또 한 번 일본을 울렸다.

한국은 이날 일본을 맞아 조영욱이 최전방에 나섰고, 이강인과 고영준(포항), 정우영(슈투트가르트)이 2선 공격수로 뒤를 받쳤다. 중원은 백승호(전북)와 정호연(광주)이 책임졌다. 포백은 박규현(드레스덴), 박진섭(전북), 이한범(미트윌란), 황재원(대구)으로 구성됐다. 이광연(강원)이 골키퍼 장갑을 꼈다.

쉽게 풀린 경기는 아니었다. 한국은 이른 시간에 실점했다. 일본이 초반부터 몰아붙이면서 전반 2분 사토 게인이 한국의 왼쪽 측면을 허물었다. 게인의 패스가 한국 수비를 맞고 뒤로 흘렀고, 시게미 마사토가 침착하게 내 준 공을 우치노 고타로가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허용한 첫 선제골. 한국은 일본의 강한 전방 압박에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은 전반 19분 이강인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조영욱이 머리를 갖다댔지만, 공은 골문을 한참 빗나갔다. 전반 21분 정호연의 패스가 페널티박스 안의 조영욱에게 향했지만, 조영욱은 슈팅 기회를 잡지 못했다. 고영준의 중거리 슈팅도 골문을 외면했다.

 

한국은 전반 27분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황재원의 오른발 크로스를 정우영이 절묘한 헤더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이번 대회 득점 1위를 달리는 정우영의 대회 8호 골. 정우영의 물오른 득점 감각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쿠웨이트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정우영은 키르기스스탄과 16강전 2골, 우즈베키스탄과 4강전 2골에 이어 이날도 골맛을 봤다.

 

전반 30분엔 조영욱의 날카로운 헤더를 일본 골키퍼가 가까스로 걷어냈다. 수비수 박진섭이 부상을 당하며 붕대를 감고 경기를 치르는 투혼을 선보였다.

 

 ▲7일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한민국과 일본의 결승전. 후반 조영욱이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후반 들어 중국 관중들의 파도타기가 이어진 가운데 양 팀은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이번 대회에서 보통 한국 상대 팀을 응원했던 중국 팬들은 이날 한국과 일본이 맞붙자 특별히 한 쪽 팀에 성원을 보내진 않았다.

 

한국은 후반 11분 조영욱이 역전 골을 터뜨렸다. 황재원이 단독 드리블로 상대 진영을 침투해 패스를 내줬고, 이 공이 정우영과 일본 수비의 경합 과정에서 흘렀다.

 

이를 잡은 조영욱이 오른발 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2019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 주역으로 뛰는 등 연령별 대표팀 경기에서 맹활약한 조영욱의 결정력이 빛난 장면. 이날 경기는 그가 연령별 대표로 뛴 85번째 경기였다.

 

황선홍 감독은 후반 17분 고영준과 정우영을 빼고 홍현석과 송민규를 투입했다. 후반 21분 조영욱이 단독 돌파 끝에 날린 슈팅이 허공을 갈랐다. 후반 26분 이강인이 날린 프리킥을 상대 골키퍼가 겨우 쳐냈다.

 

황 감독은 후반 27분 조영욱과 이강인을 빼고, 엄원상과 안재준을 넣으며 공격진을 모두 교체했다. 안재준이 후반 37분 날린 벼락 같은 중거리 슈팅이 살짝 빗나갔다. 1분 뒤 엄원상이 돌파 끝에 날린 슈팅이 골키퍼 손에 살짝 걸렸다. 후반 추가시간 안재준이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지만, 골키퍼에게 막혔다.

 

일본은 막판 공세를 가져가며 동점골을 노렸지만, 종료 휘슬이 울렸다. 한국 선수들은 환호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2023년 10월 7일 오후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2-1로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이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기뻐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조선일보 항저우=장민석 기자

 

 

10.08 한국야구, 아시아 정상 지켰다... 대만에 설욕하고 4연패

수중전서 2대0 승리하며 금메달
선발 문동주, 6이닝 무실점 호투

한국 야구가 아시안게임 4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1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 한국 선발 투수 문동주가 6회말 2사 2루 위기에서 삼진을 잡은 뒤 포효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중일(60)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1구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대만을 2대0으로 눌렀다.

 

이날 경기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굵은 빗줄기가 경기장을 적셨지만, 경기는 중단 없이 ‘수중전’으로 진행됐다. 다행히 6~7회부턴 비가 약해졌다.

 

한국은 대만 선발 좌완 린위민(20)을 상대로 벌인 ‘리턴 매치’에서 경기 초반 점수를 뽑아내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갔다. 지난 2일 조별리그에서 그를 상대로 산발 4안타에 그치며 1점도 내지 못하는 등 0대4로 무릎을 꿇은 무기력한 모습을 반복하지 않았다.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1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 대만과 대한민국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시상식 뒤 마운드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회초 선두타자 문보경(23·LG)이 우측 2루타를 날리며 밥상을 차렸다. 이어 강백호(24·KT)가 타석에 들어선 뒤 폭투가 나와 문보경이 3루로 진루했다. 강백호는 침묵했지만, 1사 3루에서 김주원(21·NC)이 왼쪽으로 희생플라이를 치며 선취점을 뽑아냈다. 이후 김형준(24·NC), 김성윤(24·삼성)이 연달아 안타를 쳤고, 상대 폭투가 겹치며 1점을 추가했다. 한국 2-0.

 

잘 버티던 한국은 6회말 잠시 위기에 몰렸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쩡종저(22)가 한국 선발 우완 문동주(20·한화)를 상대로 큼지막한 우전 타구를 만들어냈다. 타구는 담장을 맞고 튕겨 나왔고, 쩡종저는 2루까지 내달렸다. 대만은 홈런이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판독 결과 2루타로 인정됐다. 흔들릴 법도 했지만 문동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후 타석에 들어선 두 타자를 헛스윙으로 돌려세우며 대만의 추격 불씨를 꺼버렸다.

그리고 경기는 추가 득점 없이 그대로 끝났다.

 

▲10월 7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에서 대만을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한 선수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고 있다./로이터 뉴스1

 

이날 선발 투수 문동주가 6이닝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대만 타선을 조기에 무력화했다. 그 뒤 차례대로 마운드를 이어받은 최지민(20·KIA), 박영현(20·KT), 고우석(25·LG)이 한 점도 내주지 않고 뒷문을 닫았다. 고우석은 9회말 1사 1·2루 위기에 몰렸지만, 병살타를 유도해내며 승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문동주는 “일단 이겨서 기분이 너무 좋다. 그래도 한 몫을 한 것 같다”며 “모든 선수들이 준비를 잘했는데 그 결과가 나타난 것 같아서 모두에게 감사하다. 나도 모르게 (포효가) 나왔다. 그렇게 포효할 것이라 생각 못했다. 그만큼 간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어렵게 금메달을 따서 기분이 좋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열심히 뛰었다”며 “오늘 선발 문동주가 최고의 피칭을 했다. 뒤에 나온 최지민, 박영현, 고우석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9회에 위기가 있었지만 잘 넘어갔다. 이번 대회는 세대교체를 알리는 대회가 아니었나 싶다”고 자평했다.

 

앞서 한국은 B조 조별 예선에서 홍콩전(10대0 승), 대만전(0대4 패), 태국전(17대0 승)을 거쳐 조 2위로 수퍼라운드에 진출했다. 이후 ‘실업팀’ 일본을 2대0으로 따돌렸고, 홈팀 중국을 8대1로 격파하며 결승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만난 대만을 상대로 이번엔 웃으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이로써 한국은 2010 광저우 대회부터 이어온 대회 4연패(連霸)를 달성했다. 결승에서 대만을 3차례(2010, 2014, 2023) 꺾었고, 2018년엔 일본을 제쳤다.

 

아울러 야구 대표팀 멤버들은 올림픽 3위 이내,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는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한다는 병역법에 따라 병역 혜택을 받게 됐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과 544시간의 체육 분야 봉사활동으로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오싱=박강현 기자

 

 

10.08 해외 놀래킨 '벌떼 축구'…1983년 멕시코 4강 신화 박종환 별세

▲박종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7일 밤 별세했다. 향년 85세. 중앙포토

 

지난 19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FIFA 20세 이하 월드컵의 전신)에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이끈 박종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별세했다. 향년 85세.

대한축구협회는 “박종환 원로가 7일 밤 별세했다”고 8일 밝혔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했다.

 

박 전 감독은 1938년 황해도 옹진 출생으로 춘천고와 경희대, 대한석탄공사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60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AFC 20세 이하 아시안컵의 전신)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우승했고,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와 국제심판 활동을 병행했다.

 

1970년대 전남기계공고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실업팀인 서울시청(현재는 해체) 감독으로 여러 차례 우승을 이끌며 프로축구 K리그가 출범하기 전 성인 무대에서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1986년 서울시청 우승을 이끈 직후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는 박 감독. 중앙포토

 

1980년부터 1983년까지는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을 맡아 2년 주기로 열리는 세계청소년선수권에 2차례 참가했다. 특히나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역사상 첫 4강에 올랐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이 4강 신화를 쓰기 전까지 한국 축구 역사상 FIFA 주관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박 전 감독이 이끈 한국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패하며 출발이 좋지 않았지만 이후 개최국 멕시코와 호주를 내리 2-1로 잡고 2승1패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이어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마저 2-1로 잡는 기염을 토하며 4강에 올랐지만, 당시 베베투, 둥가 등이 포진한 최강팀 브라질에 1-2로 패해 결승 진출 문턱에서 멈춰 섰다.

 

박종환호가 선보인 기동력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감탄한 해외 언론이 빨강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한국을 ‘붉은 악령(red furies)’이라 표현한 게 계기가 돼 한국 축구가 ‘붉은 악마(red devils)’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 축구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의 명칭이기도 하다. 모든 선수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휘몰아치는 특유의 축구 스타일은 ‘벌떼 축구’라는 별칭으로 남았다.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를 이끈 직후 서울 시내에서 열린 카퍼레이드에 참석해 국민들의 환호에 답하는 박 감독. 중앙포토

 

박 전 감독은 1983년 4강 신화를 계기로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승격해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1996년 아시안컵 본선에서 이란에 2-6으로 완패를 당한 이후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1989년 일화 천마(성남FC의 전신) 창단 감독으로 K리그 무대에 도전장을 낸 박 전 감독은 프로축구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또 한 번 지도력을 뽐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K리그 우승을 이끌어내 명장 반열에 올랐다. 지난 2001년에는 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을 맡았고, 이후 대구FC와 성남FC 감독을 맡았다.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잔디축구장 마련 기금 1000만원을 박종환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전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에 남측대표팀 사령탑으로 참여해 북한 감독과 손을 맞잡고 들어보이는 박종환 감독(오른쪽 두 번째). 중앙포토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10-10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K리그 3연패 “박종환 前감독,열정·카리스마 넘치는 분”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박종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으로 추모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영결식 엄수…축구인 애도물결
한국 축구 거목(巨木) 영면의 길을 축구인들이 함께했다.

대한축구협회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박종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영결식을 거행했다. 축구협회는 고인이 각급 대표팀과 프로축구, 여자축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힘썼던 만큼 지난 7일 별세 후 장례를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진행했다. 영결식에선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 이후 박 전 감독의 약력 보고와 추도사, 유가족 인사, 축구인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멕시코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신연호 고려대 감독이 추도사를 전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역대 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냈던 이회택, 허정무, 박경훈 등 축구인들이 참석해 함께 추모했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황선홍 감독도 자리를 지켰다. 신연호 감독은 추도사에서 “(박 감독은) 정말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셨다”며 “여건이 힘들었던 시절에도 직접 호텔 주방에 들어가서 끓여주셨던 김치찌개를 먹고 힘을 냈던 기억이 난다. 정도 많고 의리도 많았던 분으로 기억한다”고 스승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허정무 전 축구협회 부회장도 “축구인으로서 존경한다. 축구계에서 오랫동안 힘써주신 분”이라며 “우리나라 축구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발전할 수 있는 획을 그어주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변방으로 취급받던 한국 축구는 벌떼를 연상하게 하는 기동력을 앞세워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상위권에 자리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청소년대표팀의 활약 덕분에 국제무대엔 ‘붉은 악마’라는 한국 축구의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박 전 감독은 프로축구 일화 천마(현 성남FC)의 창단 감독을 맡아 1993년부터 전례가 없던 K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오해원 기자 ohwwho@munhwa.com
 

 

 

10.10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특례 재검토해야

▲7일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 시작 직전 한국 선수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금메달을 딴 한국 대표팀 가운데 19명이 병역 면제 혜택을 받게 됐다.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현역 군인 조영욱은 조기 제대를 하게 된다. / 연합뉴스

 

야구·축구 대표팀 38명과 e스포츠팀 6명을 포함해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무더기로 병역 면제를 받게 되면서 이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50년 전 한국의 스포츠 경쟁력이 취약했을 때 만든 제도를 계속 운영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아시안게임의 일부 종목은 경기 내용에서 세계 수준과 큰 격차가 있다. 축구만 해도 결승전 상대인 일본은 아마추어 사회인팀 중심으로 선수진이 구성됐다. 골프도 다른 나라 선수는 대부분 아마추어인데 우리는 미국 프로 투어에서 뛰는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해 손쉽게 금메달을 땄다. 야구 역시 참가국이 8국에 불과했고 한국만 프로 선수들이 대거 나와 금메달을 땄다. 어깨 통증을 이유로 한 게임도 뛰지 않고 병역 면제를 받은 투수도 있었다. 야구협회가 ‘팀별 3명 이내’ 원칙으로 대표팀을 선발한 것도 병역 혜택을 골고루 나눠 갖자는 뜻으로 해석됐다. 수준 낮은 아시안게임에서 ‘병역 바겐세일’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부 선수들은 수준이 훨씬 높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더 결사적이다. 일본 미디어들은 ‘한국 축구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건 병역 혜택 때문’이라고 비꼬는 일본 내 반응을 전했다. 우리 수영 금메달리스트들 회견장에서도 외국 기자들은 군복무 면제 혜택을 거론했다.

아시안게임 메달을 국가 위상을 높인 업적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진 발상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류의 종주국이자 10대 경제 대국인 우리가 병역 혜택으로 동기 부여해야 하는 수준은 이미 넘어선 지 오래다. 국위 선양으로 본다면 BTS만 한 공로가 없을 텐데 BTS 멤버에겐 왜 면제 혜택을 주지 않느냐는 형평성 문제도 있다.

 

손쉬운 금메달에 병역 면제를 남발하면 군 복무는 요령껏 피하는 게 좋은 성가신 의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다. 헌법상 의무이자 명예로워야 할 군 복무가 이렇게 하찮게 여겨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병역 특례 도입 50년이 지났으면 달라진 시대 상황에 맞춰 손을 봐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12 전국 224개 시·군·구에 영화제만 220개

 

매년 220개 이상의 영화제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익히 아는 부산·전주·부천영화제 등 국제영화제부터 일반인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듯한 무주 산골영화제, 목포 국도 1호선 독립영화제, 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도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이런 영화제가 41개이고 전국의 크고 작은 영화제를 합치면 시·군·구 기초지방자치단체 숫자(224개)에 육박한다.

이처럼 영화제가 많은 이유는 가성비가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 콘텐트이고, 인기 배우나 연예인을 초청해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고, 적당한 예산으로 가격 대비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축제로 인식된다.

지역마다 앞다퉈 영화제 남발
주민들 외면받아 상당수 폐지
예산낭비 따지는 계기 삼아야

 ▲[일러스트=김지윤]

 

영화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다 보니 부침이 심하다. 평창·제천·강릉·전주·울주 산악 영화제 등은 영화제의 정체성 논란과 예산 문제, 지역민의 무관심 등으로 사라지거나 내홍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에 시작한 평창 영화제는 태동 자체가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 보였다. 주로 북한 영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등 강원도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행사였다. 4년간 세금 84억5000만원이 투입됐지만 편향된 영화인, 그들만의 잔치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같은 강원도에서 열렸던 강릉 영화제도 3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지역 호응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폐지됐다. 제천 영화제의 경우는 영화제 집행부의 도덕적 해이가 논란이 됐다. 결국 엉터리 회계와 부실 운영으로 혈세가 투입됐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부산·부천·전주 영화제 등에 지자체 지원과는 별도로 매년 많게는 최대 12억8000만원(2022년 부산영화제)부터 적게는 1000만원(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까지 모두 53억원 안팎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이런 지원과 영화제 숫자의 폭발적 증가가 한국영화 발전과 지자체 주민의 문화복지에 얼마나 기여해왔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부산·전주·부천 등 이른바 ‘빅3 영화제’ 관계자들조차도 국내 영화제가 난립해 이미 포화 상태라고 지적한다.

영화제 전문인력 부족과 계약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 영화제 밥그릇 싸움에다 지자체와의 갈등, 불안전한 재원 확보 등으로 제살깎아먹기식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최근 영화제 예산이 삭감되자 일부 영화 관련 단체들은 “영화제 지원 축소는 영화 산업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한다.

주지하다시피 올해 들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비상 국면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일찌감치 긴축재정 기조다. 이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 예산도 지난해 1100억을 정점으로 올해 850억으로 줄었고, 2024년엔 734억원으로 축소된다. 영진위 모든 사업에서 40~50% 삭감이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영화제들도 각 지자체 지원과 자체 수익사업 확대를 꾀할 수밖에 없다. 영화제 규모부터 줄여야 한다. 나라 전체 기조가 긴축재정으로 가고 있는데 지원금 챙기기 투쟁에 나서는 것이 공감을 얻겠나. 120억원으로 가장 큰 부산영화제의 경우 영진위(국고) 13억 지원에, 부산시가 절반 (60억원)을 지원하고 자체 수익사업으로 영화제를 치르고 있다. 영진위 지원금 중 50%가 삭감되지만 이젠 국고에 기대지 말고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하거나 자체 사업으로 해결하는 게 합리적이라 본다.

 

코로나19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장으로 영화제의 위상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더 문’ 등의 추석 연휴 극장가 흥행 참패가 말해주듯이 코로나 사태 이후 대중이 모이는 행사에 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OTT 등장으로 관람 행태도 크게 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군중이 모이는 영화제에 집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프랑스·이탈리아에도 적지 않은 영화제가 개최되지만 한국과 비슷한 규모의 나라에서 220개의 영화제가 열린다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정부 지원금에 손을 벌리기 전에 지역 영화제를 전반적으로 문제점을 점검하는 것이 순서다. 지자체 주민과는 상관없는 영화인들만의 영화제에 이중삼중으로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김병재 문화자유행동 영화분과 위원

 

 

10.21 빈대 ‘40년만의 습격’… 외국인 머문 곳서 출몰하는 이유

1980년대 자취 감췄다 재등장

 ▲19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계명대 기숙사에서 방역 업체 관계자와 기숙사 관리 직원이 빈대 박멸을 위해 소독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스1

 

20일 오전 대구광역시 달서구 계명대 기숙사. 방역 업체 직원들이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고 소독약을 뿌렸다. ‘빈대’가 발견된 이 기숙사에선 19일부터 긴급 방역을 벌이고 있다. 빈대가 나온 침대는 영국 국적 학생이 쓴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이 자주 찾는다는 인천 서구의 한 찜질방에서도 최근 매트에서 빈대가 발견돼 임시 휴업 후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

‘후진국 해충’이라는 빈대가 난데없이 다시 출몰했다. 과거 우리나라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빈대가 흔했다. 그러나 1960년대 새마을운동과 1970년대 DDT 등 살충제 방역이 일반화하면서 1980년대 들어 토종 빈대는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그런데 2006년 무렵부터 ‘빈대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빈대가 나온 장소 대부분은 ‘외국인이 머문 곳’이란 공통점이 있다. 최근 대구와 인천에 등장한 빈대도 ‘외국인과 관련 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빈대의 역사는 인류보다 길다. 2019년 10국 연구 기관이 전 세계 빈대의 DNA를 분석한 결과, 빈대 출현은 중생대 공룡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학술지에 발표했다. 빈대에 물린 첫 동물은 공룡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류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피도 빨기 시작했다. 박쥐에 기생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지구상에는 총 75종(種)의 빈대가 존재한다. 이 중 사람의 피를 빨아 먹어 피해를 주는 종은 국내에 서식했던 ‘시멕스 렉툴라리우스(Cimex lectularius)’다. 다만 종 분석만으로는 국내 발생인지, 해외 유입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빈대는 납작한 타원형 몸통에 다리는 6개이고 길이는 6~9㎜ 정도다. 빈대에 물리면 피부가 빨갛게 붓고 가렵다. 모기에 물렸을 때와 비슷하지만 빈대는 모기보다 7~10배 많은 피를 빤다. 더 가렵고 붓는 면적도 넓다고 한다. 많은 빈대가 동시에 문다면 고열이 생길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심하게 가려우면 병원에서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거나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냉찜질도 증상을 완화한다.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해 가려운 부위에 더운 바람을 쏘이거나 온찜질을 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 빈대는 몸집의 2.5~6배까지 흡혈할 수 있다. 양영철 을지대 교수는 “빈대는 피를 소화하는 일주일 동안 흡혈 활동을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며 “전염병 등을 매개하는 곤충은 아니다”고 했다.

 

빈대는 빛을 싫어한다. 낮에는 가구나 벽 틈에 숨어 있다가 야간에 사람 피를 빤다. 저녁보다 이른 새벽에 더 활발하다. 빈대는 유충일 때보다 성충일 때 더 오래 사는 곤충이다. 실내 어두운 곳에서 알을 까며 번식한다. 유충으로 6~8주, 성충으로 12~18개월을 산다. 성충은 가정집 실내 온도인 18~20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한 번 부화해 성충이 되면 2~3년간 한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빈대를 제때 박멸하지 않으면 오래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빈대는 고온에 약해 45~50도 열을 쏘이면 죽는다. 빈대를 발견했을 때 스팀(증기) 소독을 하면 대부분 사라진다. 빈대의 천적은 바퀴벌레라고 한다.

 

빈대를 발견하면 지역 보건소에 신고해야 한다. 해충의 경우 생태계를 교란하면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전염병을 옮기면 질병관리청이, 한국에 없는 외래종이면 국립생태원이 관리한다. 그런데 빈대는 이 조건에 모두 들어맞지 않아 평소 관리되는 대상이 아니라 출몰했을 때마다 방역을 통해 조치하고 있다. 최근 후진국은 물론 일부 선진국에서도 빈대가 출몰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빈대 습격이 더 잦아질 수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위생 관념이 높아 평소 관리만 잘해도 크게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며 “다만 외국인 밀집 지역 등에선 빈대가 계속 발견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박상현 기자  노인호 기자

 
 

10-23 [속보]유진그룹, 3199억 여원에 YTN 최종 낙찰자 선정

보도전문채널인 YTN의 최종 낙찰자로 유진그룹이 선정됐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YTN 매각 측인 한전KDN과 한국마사회는 인수가로 3199억 여원을 써낸 유진기업을 최종 낙찰자로 선정했다.

이번 매각은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YTN의 지분 30.95%(보통주 1300만 주)가 대상이다. 앞서 YTN 인수전에는 유진그룹을 포함해 한세실업과 원코리아미디어홀딩스(글로벌피스재단) 등 3곳이 뛰어들었다.

최고가를 써낸 유진그룹은 유진자산운용과 유진투자증권 등 10여 개의 계열사가 있는 중견 기업이다. 유진그룹은 방송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의 변경 승인 등을 얻은 뒤 내년 초 최종 인수자로 확정될 전망이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

 

 

10-24 원칙 대응이 개혁의 正道임을 보여준 한노총 회계 공시

노동조합의 ‘깜깜이 회계’는 온갖 비리의 원천으로 지목돼왔다. 그렇지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은 매년 수천억 원을 쓰면서도 사용 내역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조차 불만과 의문을 제기하고, 회계자료 공개 등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회계자료 공개 요구를 노조 탄압이라고 거부하던 한노총이 23일 “정부의 공시 시스템에 회계 결산 결과를 등록하기로 했다”고 입장을 선회한 것은 주목할 진전이다. 앞으로 과연 깨끗한 회계자료를 성실하게 공개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1961년 결성된 한노총이 62년 만에 회계 투명성을 위한 한 걸음을 뗀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노조 부패를 공직·기업 부패와 함께 3대 부패로 규정하고 노조의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해왔다. 회계 자료를 규정에 맞게 사무실에 비치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데 이어, 일반 국민도 볼 수 있는 회계 공시 시스템을 만들고, 공시에 불응할 때는 조합비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도록 관련 시행령을 개정했다. 노조 내부에서도 “정당하게 돈을 썼다면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는 불만이 제기됐다고 한다. 한노총으로선 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공은 민노총으로 넘어갔다. 한노총과 같은 처지인 만큼 더 늦지 않게 동참하는 게 마땅하다.

노조의 회계자료 공개와 비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 규정된 노조의 의무다. 잘못된 관행을 이번에 바로잡았을 뿐이다. 법치를 통한 정상화 과정이다. 회계 문제뿐만 아니다. 불법 파업부터 조합원 탈퇴 금지 등의 부당행위까지 잘못된 행태가 한둘이 아니다. 마지 못한 공시 수용은 원칙에 입각한 대응이 개혁의 정도(正道)라는 것을 새삼 보여준다. 이제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노조 정상화를 위한 노조·정부·국회 등의 전방위 노력이 절실하다.

문화일보 사설

 

 

10.25 양대 노총 회계 공개, 정부가 원칙 지키니 바로잡히는 것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 공시 제도 도입에 반발해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결국 회계를 공시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조합이 조합원에게 회비를 걷는다면 얼마를 걷어 어떻게 썼는지 알리는 것은 법을 떠나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유독 노조들은 이를 감춰왔다. 뭔가 구린 곳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회계 공개 제도 도입을 추진하자 두 노총은 “노동 탄압”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당연한 일을 하는데 무슨 탄압인가. 떳떳하면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노조 저항에도 원칙을 지키며 단호하게 추진해나가자 결국 손을 들었다.

 

한국노총과 민노총에 가입한 근로자는 각각 100만명이 넘는다. 매년 걷는 조합비가 각각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일부 정부 지원금까지 받고 있다. 그동안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불법 집회·시위 자금으로 쓰이는 것은 아닌지, 일부 간부가 비리를 저지르는지 제대로 검증받은 적이 없다. 노조 회계는 일부 노조 간부만 아는 비밀이었다. 어떤 조직이든 투명한 회계 관리는 민주적 운영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4월 21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실 앞에서 노조 관계자들이 회계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나온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을 막아서고 있다./연합뉴스

 

 

이 노총들이 상식을 되찾아 회계를 공개하기로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정부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는 노조엔 연말정산 때 조합비 15%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러면 조합원들이 노조 지도부에 반발할 수 있다. 이를 우려한 양대 노총이 회계 공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노조 회계 공시는 노동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 노조 병폐는 말 그대로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 양대 노총 산하의 거대 노조만큼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인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2012~21년 임금 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근로 손실 일수가 38.5일로 일본(0.2일)의 192배에 이를 정도다. 영국(12.7일), 미국(8.8일) 등 다른 주요국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특히 민노총은 노조 본연의 활동과는 무관한 반미·반정부 정치 투쟁으로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해왔다. 강경 투쟁과 불법 파업, 폭력, 갑질, 회사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과도한 요구, 정치 파업, 무분별한 집회, 고소·고발·진정 남발 등도 우리나라 거대 기득권 노조의 고질적 병폐다.

노조 병폐를 바로 고치기는 힘들다. 정부가 이번처럼 원칙을 지키며 흔들림 없이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고 불법행위에 대해선 신속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나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26 연예계선 연이은 마약 추문, 대학가선 마약 광고까지

▲홍익대에서 발견된 마약 광고물 카드. /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서울과 경기 일대 대학가에서 액상 대마 광고 수백 장을 살포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명함 크기의 이 광고엔 ‘영감이 필요한가? 한 모금만 들이켜면 맛 간다’ 등의 내용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지난 4월 서울 강남 학원가에 필로폰 등이 섞인 ‘마약 음료’가 배포되더니 대학 캠퍼스에 마약 광고까지 뿌려진 것이다. 마약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일상으로 퍼져가는지 보여준다.

마약 사범 증가세도 확연하다. 올 8월까지 경찰에 검거된 마약 사범은 1만2700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작년의 1만2387명을 벌써 넘어섰다. 정부가 작년 10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영향도 있겠지만 그만큼 마약이 우리 주변에 많이 퍼져 있다는 의미다. 얼마 전엔 캄보디아·태국 등 6국 밀수 조직과 연계해 마약을 국내에 유통한 범죄 조직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한때 마약 청정국이었던 한국이 이젠 해외 마약 조직이 노리는 소비처가 됐다.

 

과거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건도 연이어 터지고 있다. 지난 8월엔 ‘마약 모임’에 참석한 경찰관이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고, 약물에 취한 외제차 운전자가 인도로 돌진해 행인을 뇌사에 빠뜨렸다. 지난 6월엔 필로폰을 투약한 10대 승객이 비행기 비상문을 강제로 열려다 붙잡힌 일도 있었다. 배우 유아인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최근엔 배우 이선균씨와 K팝 스타인 지드래곤도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시중의 화제에 ‘마약’이 연일 등장하는 자체가 이례적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집에서 소셜미디어로 마약을 피자 한 판 값에 구매하는 것도 가능해지면서 10~20대 마약 사범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올해 마약 사범 중 20대가 3731명으로 가장 많았고, 10대도 659명으로 작년의 배 이상 늘었다. 마약을 막을 ‘골든 타임’을 놓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검찰은 마약 사범이 다른 사람의 마약 범죄를 진술하면 형벌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필요하겠지만 그런 수준만으론 마약을 막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검찰·경찰·관세청·해경 등으로 나눠져 있는 마약 수사 체계를 일원화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마약수사청’ 설립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10.26 故 최원석 前회장, 20세기 대역사 ‘리비아 대수로’ 신화 쓴 재계 풍운아

최원석 前 동아그룹 회장 별세

‘재계의 풍운아’ 최원석(80) 전 동아그룹 회장이 2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총 길이 4000km가 넘는 송수관을 건설하는 ‘20세기의 대역사’라 불리는 리비아 대수로(大水路) 공사를 수주하며 동아그룹을 재계 10위로 성장시켰지만, IMF 외환 위기로 그룹이 공중 분해되는 아픔도 겪었다. 배우·아나운서 등 유명인과 4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말년에 동아예술대학교가 속한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장 직함만 유지한 그는 최근 유튜브에 나와 시한부 투병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최 전 회장은 동아그룹 최준문 창업주의 장남으로 한양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타운대학교를 졸업 후 1960년대 초반 동아건설에 들어갔다. 23세였던 1966년 동아콘크리트 사장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했다. 지역 기업이던 동아그룹은 1968년 대한통운, 1971년 대전문화방송 등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1979년엔 반정부 단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이 활동 자금 마련을 위해 최 전 회장 집을 털었던 일도 있었다.

최 전 회장이 한국 재계에 이름을 남긴 사건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였다. 남부 사하라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북부 지중해 해안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총 길이 4000km가 넘는 송수관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계약을 따내기 위해 최 전 회장은 직접 20여 차례 해외 출장을 다니며 리비아의 최고지도자 카다피를 면담했다. 결국 최 전 회장은 전 세계 30여 건설사를 제치고 1983년 33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2조6000억원) 규모 리비아 대수로 공사 1단계 사업을 따냈다.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10조4000억원) 4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최 전 회장은 1989년에는 53억달러 규모 리비아 대수로 공사 2단계 사업을 수주했는데, 이는 당시로선 역대 세계 최대 규모였다. 수주를 위해 최 전 회장은 경쟁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밤 비행기를 이용해 리비아를 오갔다. 최 전 회장은 카다피를 ‘카 선생’이라 부르고, 카다피는 최 전 회장을 ‘혜잔님(회장님)’이라고 부르며 친분을 쌓은 일화는 유명하다. 최 전 회장은 이를 계기로 건설과 물류를 주력으로 한 동아그룹을 1990년대 초에는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0위 기업으로 키웠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당시 현장을 방문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현지 직원들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고인의 현장 모습을 담은 몇 안 남은 사진이지만, 정확한 촬영 시기와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공산학원

 

하지만 최 전 회장의 사업은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를 계기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성수대교를 지었던 동아건설의 부실 시공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업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논란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특히 최 전 회장은 1990년대 중반 김포 매립지와 인천 청라지구 등 수도권 주택 사업에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한 상황에서 IMF 사태를 맞으며 급격히 몰락했다. 최 전 회장은 자신의 사재와 선영까지 회사에 털어 넣었지만, 2001년 그룹 해체는 막지 못했다. 훗날 최 전 회장은 “당시 정부가 사재를 넣으면 그룹은 살려준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서 파이프가 매설되는 모습. /조선일보DB

 

최 전 회장은 사생활로도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최 전 회장은 1964년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신도환 전 국회의원의 딸인 신정현씨와 결혼했다가 약 2년 만에 이혼했다. 두 번째 부인은 1960년대 유명 배우였던 김혜정씨, 세 번째 부인은 펄시스터즈의 멤버로 큰 인기를 누렸던 가수 배인순씨였다. 최 전 회장은 1999년에는 자신보다 스물일곱 살 어린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장은영씨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도 2010년 마침표를 찍었다.

최 전 회장은 약 4개월 전 한 유튜브 인터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사우디 가고, 리비아 갔던 때가 좋았다”며 “다시 태어나도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유족으로는 아들 최우진, 최용혁, 최재혁, 딸 최선희, 최유정. 발인은 오는 28일 오전 7시 10분. (02)3010-2000

조선일보 이성훈 기자

 

 

10-26 타임오프 위반 처벌해 불법 관행 끊자는 MZ노조 옳다

서울지하철공사 한국노총·민주노총 노조가 다음 달 9일 전면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제3 노조인 2030세대 중심의 올바른노동조합(MZ노조)이 두 노조를 비판했다. MZ노조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양 노조 간부들이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를 악용한 무단 결근을 남발하는 탓에 현장 근로자들이 휴가를 못 쓰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불법 행태는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노동 탄압이라며 이들에 대한 처벌과 감사원 감사도 요구했다. 옳은 주장이다.

서울지하철 노조의 타임오프 위반은 오래된 불법 관행이다. 최근 서울시의 감사 결과, 노조는 공사 측과 합의한 면제자가 32명임에도 10배 가까운 315명으로 늘려 일하지 않고 월급을 받게 해 왔다. 정상 근무를 해야 하는 113일 동안 지하철 역사 출입 기록이 아예 없거나, 2명이 근무하는 야간에 타임오프에 따른 무단 결근으로 1명이 역무를 책임지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공사 측은 대규모 만성 적자인 경영의 정상화를 위해 2026년까지 정원의 13.5%인 2211명을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하지만, 노조 측은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면서 파업을 겁박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양 노조가 불법으로 ‘무노동 유임금’을 즐기면서 인력이 줄면 안전이 우려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궤변이다. MZ노조의 비판대로 파업을 언급할 자격도 명분도 없다.

타임오프는 2010년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반대급부로 도입돼 시행되고 있지만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최근 고용노동부 조사에선 대기업 노조 480곳 중 13.1%가 타임오프를 위반했다.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타임오프를 위반해도 회사 측만 형사처벌할 뿐 노조에 대해선 아예 처벌 규정조차 없다. 무노동 무임금이 대원칙이다. 차제에 타임오프 제도를 전면 개혁할 필요도 있다.

문화일보 사설

 

 

10.27 文정부서 ‘나이롱환자’ 폭증, 노동자 편들기의 도덕적 해이

▲2015년 5월 일터에서 넘어져 디스크가 생겼다며 산재 승인을 받은 A씨는 지금껏 9년째 요양을 하고 있다. 그에게 들어간 보험급여는 총 6억6886만원. 그는 2021년 상세불명의 사지부전마비로 추가 산재 승인을 받았고, 지난해엔 신경인성방광과 발기부전, 변비, 변실금도 추가됐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사지부전마비인 그가 편의점 앞에 휠체어를 세워 놓은 뒤 한 손으론 전화를 받으며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물건을 산 뒤 걸어 나오는 장면이 포착됐다. 

 

산재보험 혜택을 받은 업무상 질병자 수가 2017년쯤까지 7000명대였다가 해마다 급증해 2021년엔 2만명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은 산재 환자가 5년 만에 3배 이상으로 급증한 데는 이른바 ‘나이롱 환자’를 방치하는 근로복지공단의 도덕적 해이가 있었다.

 

우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8년부터 산재 판정에서 이른바 ‘추정의 원칙’이 도입됐다. 다치는 상해와 달리, ‘업무상 질병’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질병 원인이 다소 불분명하더라도 근무 기간 등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폭넓게 산재 판정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 의사들의 진료 계획이 객관적인지 외부에서 검증하는 절차도 없앴다. 이 때문에 산업 현장에서는 ‘쉽게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산재 신청 자체도 폭증했다고 한다. 전 정부의 무분별한 노동자 편들기가 도덕적 해이를 부른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또 2017년부터 ‘집중 재활 치료’ 같은 산재 환자만의 특별 수가 항목을 만들었다. 공단 직영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하겠다는 이유로, 일반 병원에선 건강보험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비급여 항목을 직영 병원에선 산재보험기금을 통해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직영 병원이 이런 특별 수가로 최근 5년간 산재 환자를 통해 2707억원의 산재보험기금을 타냈다. 공단은 일반 병원에서 수술한 산재 환자들에게 이런 혜택을 얘기하며 직영 병원으로 데려와 실적을 높였고, 지사별로 집계해 수천만원의 포상금까지 지급했다고 한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과 달리 사업주가 100% 부담하는 것이라 다른 보험에 비해 도덕적 해이가 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럴수록 기업 부담은 물론 사회적 비효율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공단 직영 병원을 독립시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리·감독을 받도록 하는 것 같은 개선 방안을 찾아서 ‘나이롱 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감사원이 근로복지공단 산재 운영에 대해 감사를 벌여 실태를 파악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