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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문화일보) 2023-09/ 09-01(금) 최인호 ‘바보들의 행진’ - 09-27(수) 비례대표 폐지론

상림은내고향 2023. 9. 22. 19:50

오후여담(문화일보) 2023-09/

09-01(금) 최인호 ‘바보들의 행진’

김종호 논설고문

하길종 감독의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대해, 평론가 박유희는 “‘바보’가 돼야 살 수 있는 청년들의 현실을 웃음으로 비틀며 비극보다 더 진한 슬픔을 자아낸다”고 했다. 영화에는 주인공 4명 중에서 한 사람인 Y대 철학과 남학생의 이런 대사도 나온다. “나는 다음에 무진장 돈을 벌 겁니다. 빨간 지붕 양옥집을 살 겁니다. 정원에는 장미도 심고, 자가용도 살 겁니다. 나는 내 힘으로 돈을 벌 겁니다. 그리고 난 고래 사냥을 갈 겁니다.” 이어서, 노래가 나온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하고 시작하는, 통기타 가수 송창식의 ‘고래 사냥’이다. ‘고래’는 평범한 청춘들의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통기타·청바지·생맥주·장발 등이 청년문화의 아이콘이던 시기에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최인호(1945∼2013)는 ‘고래 사냥’ 가사를 송창식에게 건네며 “답답한 현실에 얽매인 젊은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곡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장발 단속에 걸린 주인공이 도망치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는 송창식이 작사·작곡한 ‘왜 불러’다. 김상배 작사·작곡의 ‘날이 갈수록’도 여러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흐른다. ‘가을 잎 찬 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에 또다시 황금 물결’ 하는. 최인호는 그 영화 속의 ‘술 마시기 대회’ 심사위원으로 출연도 했다. ‘침묵의 다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문화’를 내세운 ‘청년문화 선언’을 1974년 발표한 그는 1976년 영화 ‘걷지 말고 뛰어라’의 감독으로도 나섰다.

‘청년문화의 기수’ ‘영원한 청년작가’ 등으로 불린 그는 한국에서 영화가 된 소설이 가장 많은 문인이다. 그의 소설 ‘별들의 고향’을 영화로 만든 이장호 감독이 추진위원장을 맡아 제정한 최인호청년문화상 제1회 시상식이 오는 22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 수상자는 ‘두근두근 내 인생’의 소설가 김애란이다. 23일에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 특별상영회를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주최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갖는다. ‘적도의 꽃’ ‘고래 사냥’ ‘깊고 푸른 밤’ 등 최인호 소설 6편을 영화화한 배창호 감독이 “그가 젊은이들에게 제시한 방향은 우리 가슴속의 사랑이었다”고 밝힌 취지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자리다.

 
 

09-04(월) 배터리 재활용 산업

문희수 논설위원

전기차가 보급된 지 10년이 넘으면서 사용 후 배터리의 재활용이 새로운 현안으로 부상했다. 앞으로 파손·고장, 차량 교체 등으로 폐기되는 배터리가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배터리의 핵심 원료 80∼90%를 중국 등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선 더욱 절실한 과제다.

사용 후 배터리 활용은 재사용과 재활용으로 구분된다. 재사용은 수명이 아직 70∼80% 정도 남은 배터리를 안전성 검증, 품질관리 등을 거쳐 다시 배터리로 쓰는 것이고, 재활용은 수명이 다한 배터리를 분쇄해서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을 추출해 새 배터리 제조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얻어진 니켈 등의 원료는 국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우회로도 된다. 채굴 등 자원 개발도 그만큼 감축되니 탄소중립에도 기여한다.

이런 배터리 재사용·재활용은 고성장이 예상되는 유망 산업이다. 전기차 확산에 따라 세계 시장 규모가 2025년 299억 달러(약 40조 원), 2030년 536억 달러(72조 원), 2040년 1741억 달러(233조 원) 등으로 빠르게 확대할 전망이다. 국내의 사용 후 배터리 역시 2020년 232개에서 2025년 3만1700개, 2030년 10만7500개로 급증할 것이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7월 전남 율촌산업단지에 폐(廢)배터리를 분쇄한 블랙파우더 처리 공장(1만2000t 규모)을 준공해 운영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달 대구시와 대구국가산업단지에 2025년 하반기부터 연 3000여 t 규모의 블랙파우더 처리 공장을 가동해 리튬을 회수하는 내용의 투자협약을 맺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내년 말부터 중국 현지 합작공장을 통해 양극재 원료를 추출할 계획이다.

소재 재활용은 확산하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의 액정화면, 케이스, 내부 필름 등을 재활용 소재로 만든다. LG화학 등 석유화학업체들은 폐플라스틱을 화장품 용기, 페인트, 가전제품 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미국 테슬라, 일본 혼다 등은 자동차·오토바이 등의 차체 제작에 재활용 알루미늄을 쓴다. 배터리 재활용은 안정적인 원료 공급 확보가 비상인 한국엔 필수다. 배터리 강국인 한국이 재활용 시대도 선도해야 한다. 

 
 

09-05 단풍 예감

 

박민 논설위원

새벽 출근길에 대기에서 가을의 향을 느낀다. 아득했던 폭염이 허무하게 물러서는 걸 보면서 세상사에 영원한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사실뿐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가을은 결실의 풍요와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기고 그 정취를 오롯이 품은 것이 단풍이다. 그래서 단풍을 표현한 시 중에는 강렬하면서도 짧은 시가 눈에 띈다. ‘보고 싶은 사람 때문에/먼 산에 단풍/물드는 사랑’(안도현), ‘그대가/오기 전/기다리는 그리움’(원태연), ‘너무 짧다/너무나 짧다/불타올랐던 그 순간/죽어도 좋았을’(박숙이).

단풍은 보통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물들기 시작한다. 잎이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가 파괴돼 자가분해가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나무는 붉은색 또는 갈색의 단풍이 든다. 안토시안이 생성되지 않는 나무는 카로틴 색소로 인해 노란 잎으로 변한다. 안토시안과 카로틴이 혼합되면 화려한 주홍색이 된다. 일기예보에서 첫 단풍이 들었다고 표현할 때는 산 전체의 20%가량이 물든 경우를 기준으로 한다. 절정의 기준은 80%다. 단풍 시즌은 1주일이면 끝나는 벚꽃 시즌보다는 다소 길다. 우리나라는 설악산에서 단풍이 들기 시작해 남하하는데 지난 2022년에는 9월 29일 시작돼 10월 21일 절정을 맞았고, 2021년에는 9월 30일 시작돼 10월 26일까지 이어졌다. 2018년 9월 27일∼10월 12일이었던 데 비하면 1주일가량 늘어났는데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산림청이 예상한 2023년 지역별 단풍 절정 시기는 설악산이 10월 20일, 속리산이 10월 21일, 내장산이 10월 22일, 한라산이 11월 1일이다. 단풍이 예쁘게 들기 위해서는 기온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일교차가 크고 일사량과 습도가 적당해야 한다.

인생이든, 권력이든 내리막길이 있기 마련이다. 열매로 이어지는 낙화(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보다 동면을 예고하는 단풍이 삶의 이치를 더 절실하게 표현한다.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도종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올가을 꼭 화려한 단풍의 낙하를 가슴에 담아두었으면 한다.

 
 

09-06 이재명의 ‘출퇴근 단식’

이현종 논설위원

1983년 5월 김영삼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은 뉴욕타임스 도쿄 지국장 헨리 스토크에게 “미국이 전두환을 버려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차 가택연금에 들어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YS는 언론 통제의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화 5개 항을 내걸고 단식에 들어갔다. 23일 동안 목숨을 건 투쟁을 지속했다. 전두환 정부는 YS의 건강이 악화하자 5월 25일 서울대병원 특실에 강제 입원시켜 링거 치료를 받게 했으나 6월 9일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정권의 언론 통제로 5월 18일부터 6월 8일까지 신문에 ‘단식’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은 ‘모 재야 인사의 식사 문제’ ‘정치 현안’ ‘정치 관심사’ 등으로 겨우 1단 기사로만 보도할 수 있었다. 이때 YS의 목숨 건 단식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민주산악회원들의 눈물겨운 활동이 있었다. 골목길에서, 버스 안에서, 등산길 입구에서 단식을 알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손명순 여사가 직접 외국 언론에 전화해 성명서를 낭독해 줬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은 YS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 병실 밖에서 불고기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고 한다.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민주정의당 권익현 사무총장을 YS에게 보내 단식 중단을 종용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단식 중단을 간곡히 권유한 뒤에야 YS는 단식을 중단했다. 언론에 처음으로 단식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YS가 단식을 중단한 뒤였다. 동아일보는 6월 10일 자 사설에서 ‘우리는 언론의 정상적인 기능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비정상의 유언통로(流言通路)를 확산시켜온 바를 자성한다’고 했다. YS는 아무 준비도 없이 단식에 들어가는 바람에 장폐색이 발생해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오인환 전 공보처 장관은 “수십 년 후에도 YS는 단식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일그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40년이 지난 지난달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등 3개 항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출퇴근 단식’에 유튜브 생중계도 한다. 의원들의 표정도 침울하지 않고 밝다. 괴이한 단식이다.

 
 

09-07 ‘왜 바이든을 싫어할까’

 

오승훈 논설위원

뉴욕타임스의 대표 필진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브렛 스티븐스가 지난 5일 자 신문에 쓴 칼럼의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왜 그렇게 많은 미국인이 바이든을 싫어할까.’ 요약하면 이렇다. 미국의 최근 실업률은 사상 최저치에 가까워졌고 인플레이션은 상당히 낮아졌다. 미군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도 우크라이나를 무장시켜 러시아에 굴욕을 주고 있다. 주요 30개 도시에서 살인율이 지난해보다 10% 감소했다.

그런데 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0%만이 경제를 ‘좋다’고 평가할까. 왜 미국인은 국가 미래에 대해 압도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할까(퓨리서치 센터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성인 70% 이상이 2050년에 미국은 더 약해지고, 정치적 분열이 더 심해지며, 빈부 격차도 더 커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왜 조 바이든 대통령은 91개의 중범죄 혐의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도 인기가 없는 것일까(4일 월스트리트저널의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 지지율은 양자 대결 시 각각 46%로 동률이었다.)

스티븐스는 “백악관 참모들은 좋은 소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탓을 하겠지만, 국민은 신문 제목이나 통계에 나타나지 않으나 쉽게 볼 수 있는 것들 때문에 불안정해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바이든이 취임한 이후 38% 상승한 달걀, 25% 오른 식빵, 63% 치솟은 휘발유 가격 등을 열거했다. “또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거리의 공공질서가 자주 붕괴되는 모습”이라며, 뉴욕·시카고·보스턴에서 발생한 폭동 사건 등을 거론했다. 불법 이민자 체포 건수가 8월에 월간 최대인 9만1000명을 기록하고, 뉴욕시에서만 밤마다 5만7000명 이상이 음식과 쉼터를 찾아 헤매는 ‘국경 위기’도 포함됐다. 한국과 일본 간의 전략적 화해를 중재한 것 등은 공적이지만,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물론 바이든의 나이도 언급됐다.

스티븐스는 “이 실패들이 모두 바이든의 잘못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선택적 통계에 눈이 멀고 내년 선거를 확신하는 옹호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가 있다”고 했다. 본래 대통령이란 자리에서 ‘보이는 것’과 국민이 ‘쉽게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다.

 
 

09-08(금) 중국과 G20 동반 쇠락

이미숙 논설위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08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주도로 시작된 정상회의다. 당시 미국은 기존의 주요 7개국(G7) 체제로는 위기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 한국 및 중국 등 12개 신흥 경제국과 유럽연합(EU)을 추가해 G20 정상회의를 출범시킨 뒤 그해 11월 워싱턴에서 첫 회의를 개최했다. G20 정상회의 출범은 중국의 G2 부상 기류와 맞물리면서 그 자체로 욱일승천하는 중국 파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중국은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미국 파워의 쇠퇴 신호탄으로 해석하면서 ‘숨어서 실력을 기른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폐기했다. 중국이 2010년 세계 경제규모 2위 국이 되자, 골드만삭스 등은 중국이 2026년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장밋빛 보고서를 냈다. 이런 낙관론 속에서 2012년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가 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대국굴기(大國굴起)와 중국몽을 내세우며,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바꾸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시 주석 3기 출범 후 대형 부동산 개발 회사 헝다(恒大·에버그란데) 등이 연쇄 파산 위기에 빠지자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모먼트”란 평이 나온다. 지난해 인구가 감소로 돌아서는 데드크로스를 맞은 뒤 ‘중국 피크’론이 제기된 와중에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위기가 거론되는 것은 심상치 않다. 미 금융회사의 파산에 샴페인을 터뜨렸던 나라가 이제 똑같은 위기에 빠져드는 셈이다.

시 주석은 9∼10일 인도 뉴델리 G20 정상회의에 불참한다. 리창(李强) 총리가 대신 참석하는데 정상회의 후 발표될 공동성명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주석이 G20 정상회의에 가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 주석은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해 회원국을 5개국에서 11개국으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그런 그가 G20 정상회의에서 발을 빼는 것은 미국의 들러리가 되기보다는 반미(反美) 성향의 브릭스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그 이면엔 G20과 함께 떴던 중국 파워가 추락 중이라는 불편한 현실이 있다. 시 주석의 과도한 패권주의로 중국몽이 파산 위기에 처하며 G20 체제의 유용성도 사라지는 셈이다.

 
 

09-11(월) 인공지능의 그림자

이철호 논설고문

인공지능(AI) 열기가 6개월 만에 시들해지고 있다. 생성형 AI인 챗GPT의 온라인 방문자 수는 두 달 연속 10%씩 감소했다. 최대 18억 명에서 15억 명으로 주저앉았다. AI 혜택은 빅 테크에 집중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메타·구글 등의 주가가 골고루 올랐다. 단연 최대 수혜는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로, 올 들어 주가가 200% 넘게 뛰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엔비디아에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3’를 공급하면서 곁불을 쬐고 있다.

빛만큼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생성형 AI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화된 반도체, 대형 서버, 엔지니어, 전력요금 등에 조(兆) 단위가 필요하다. 소셜미디어(SNS)는 가성비 뛰어난 온라인 광고로 성공한 반면, 생성형 AI는 아직 사업 모델을 찾느라 헤매고 있다. 쥐꼬리만 한 구독료와 광고판매로는 운영비조차 대기 힘들다. 워싱턴포스트(WP)가 AI 거품을 우려한 이유다. 일부 매체는 챗GPT의 오픈AI조차 내년 말 파산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네이버만큼 AI 명암을 잘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 사상 최대인 2분기 영업이익 3727억 원을 공개하면서 ‘인공지능 효과’를 강조했다. 전자상거래와 웹툰, 음악 등 콘텐츠 분야에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로 매출이 40% 이상 늘어났다고 자랑했다. AI가 맞춤형 프로필 사진을 생성해 주는 ‘스노우’도 유료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네이버 시가총액은 그동안 4조 원 증발했다. 토종 생성형 AI인 ‘하이퍼클로바 X’ 때문이다. 답변이 지체되거나 오답을 내는 등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다.

AI 명암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생성형 AI는 막대한 자금력과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갖춘 MS·구글·아마존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방대한 데이터·고성능 컴퓨팅 비용의 높은 진입 장벽 속에서 대형 클라우드 기업과 AI 반도체 업체만 떼돈을 벌고 있다. 반면, 틈새시장에서 반짝 인기를 끌던 스타트업들은 고난의 행군에 들어갔다. 의료용 AI 업체들도 건강보험 수가에 막혀 고전 중이다. 결국, AI에도 극소수 글로벌 대기업들이 최후의 승자로 굳어져 가고 있다. 불편하지만, 외면하기 힘든 현실이다.

 
 

09-12 ‘한중일’ 대 ‘한일중’

김세동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덮쳤을 때 아세안과 한일중 3국 정상들은 함께 연대하고 공조해서 위기를 극복해 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며 그간 관례로 사용해온 ‘한중일’ 대신 ‘한일중’이란 표현을 썼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아세안 정상회의 땐 ‘한중일’이라고 했던 윤 대통령이 이번에 중국보다 일본을 앞세운 것은 지난달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 협력이 새 차원으로 격상된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데, 뒤늦은 정명(正名)이다.

중국은 발끈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 자매지인 환추스바오는 8일 ‘윤석열 한일중 발언, 한국인만 이상하게 들은 것이 아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 언론은 윤 대통령이 과거 관용적으로 사용됐던 ‘한중일’ 대신 ‘한일중’으로 바꾼 순서에 주목했다. 많은 한국인이 이상하게 들었고, 일부 네티즌은 ‘일한중’이 정확한 순서라고 비꼬았다”며 “윤 정부는 일본 친화적인 태도를 표하는 데 신경 쓰지만, 한국과 주변에서 의구심과 반대를 불러온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는데, 가당찮다. 우리 외교부 관계자는 “어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중일’ ‘한일중’ 모두 쓸 수 있다”고 외교적 발언을 했지만, 대통령실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대통령실은 “가치와 자유의 연대를 기초로 미국·일본과 더욱 긴밀한 기술, 정보, 안보협력이 현재 이뤄지고 있다”며 “같은 관점에서 ‘북미’보다 ‘미북’으로 부르고 ‘한중일’보다 ‘한일중’으로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아무 생각 없이 ‘한중일’로 언급해 온 관성적 행태에 문제가 있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동맹이라고 볼 수 있다. 6·25전쟁 때 중국의 참전으로 대참화를 겪은 점에 비춰 보면 ‘한일중’ 순서가 맞다. 참고로 중국은 ‘중일한’, 일본은 ‘일중한’으로 쓰고 있다. 과거사 반성에 인색한 일본이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중일전쟁’ ‘러일전쟁’ 식으로 지구상 모든 나라 뒤에 일본을 놓는 것은 그만 바꿀 때가 됐다. 좌파·진보 세력은 아직도 ‘북미’ ‘북일’이라고 쓰는데, 유아적·감상적 민족주의 또는 우리 민족 중심주의 때문으로 보인다.
 

 
 

09-13 ‘셔틀콕 퀸’ 안세영

김종호 논설고문

배드민턴 라켓으로 치는 셔틀콕(shuttlecock)은 무게가 5g 안팎으로, 새끼 염소의 가죽을 씌운 반구형(半球形) 코르크에 깃털 16개가 둥글게 꽂혔다. 공식 경기용은 거위의 날개 아래 겨드랑이 근처 깃털을 사용한다. 선수들이 친 순간 시속은 300㎞를 넘는다. 골프공 290㎞, 양궁 화살 240㎞, 야구 투수의 공 150㎞ 등보다 훨씬 빠르다. 하지만 타격 순간에 깃털 사이의 폭이 좁아지면서 낸 속도는, 날아가며 다시 폭이 넓어져 급속히 준다. 아무리 힘껏 쳐도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13.4m를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 여자 배드민턴의 간판선수 안세영(21)은 별명이 ‘셔틀콕 퀸(Queen)’이다. 셔틀콕을 지배하는 여왕이라는 의미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배드민턴을 처음 배웠다. ‘셔틀콕의 천재’로 불린 그는 중학교 3학년 때인 2018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다. 출전 선수 중 최연소 나이였지만, 세계 랭킹 상위권인 기존 국가대표들까지 모두 꺾고 여자단식 1위를 차지했다. 만 15세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승률 100%는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처음이었다. 2019년 프랑스 오픈에서 최연소 우승한 그는 2021년 도쿄올림픽에선 발목 부상으로, 8강전에서 당시 세계 랭킹 1위이던 중국 천위페이 선수에게 아쉽게 졌다. 체력과 기량을 키우기 위해 이를 악무는 계기로 삼았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의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종목에서 지난 8월 27일, 남녀를 통틀어 한국인 최초의 우승을 차지한 배경이다. 이에 앞서 ‘배드민턴의 윔블던’으로도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전영오픈 여자단식에서 지난 3월 우승하고 세계 랭킹 1위가 된 것도 그렇다. 1996년 방수현 이후 한국 선수로는 27년 만이었다.

올해 세계대회에서 9차례나 우승한 그는 “목표는 항상 금메달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공식 훈련을 쉬는 날도 혼자서 따로 연습한 후에야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 시합이든, 훈련이든 내 에너지를 다 쏟은 느낌이 들지 않으면 결과가 좋아도 아쉽다.” 오는 23일 개막하는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은 물론, 2024년 7월 26일 시작되는 프랑스 파리올림픽에서도 그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09-14 AI 인력 구인난

문희수 논설위원

말 그대로 인공지능(AI)시대다. 전 세계에 출시된 AI 서비스가 지난해 503개에서 올해는 5704개로, 1년 동안 10배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오픈AI가 처음 출시한 대화형 AI인 챗GPT가 화제를 모았던 것이 불과 지난해 11월이었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기업마다 AI 인력이 부족해 인재 확보·영입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특히, 전문가 수준의 고급 인재는 유치 경쟁이 뜨거워 몸값이 금값이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난 7월 연봉 90만 달러(약 12억 원)의 구인 공고를 내기도 했다. 월마트·골드만삭스 등도 연봉이 25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국내 업계 상황도 이에 못지않다. 삼성전자, 포스코, KB국민은행, 이마트 등 전문 인력 영입 경쟁은 업종 구분이 없다. 현대차는 미국 AI 로봇연구소를 통해 해외 인재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일각에선 인력 빼가기라며 충돌까지 벌어진다.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처럼 AI 기술을 총괄하는 최고AI책임자(CAIO) 자리를 기존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별개로 만드는 추세다. 정보기술(IT) 업체들조차 CAIO 직책을 두며 전문가를 우대할 정도다.

한국의 AI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915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81.7%에 달했다. 이런 기업이 2020년 48.8%, 2021년 71.2%로 급증세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달 31일 개최한 인력 수급 포럼에서는 2023∼2027년 5년간 빅데이터(1만9600명), 클라우드(1만8800명), 나노(8400명)와 함께 AI 인력도 1만280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석·박사급 인력 수요는 2만1500명인데 공급은 1만3000명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올 가을철 취업시즌도 여전히 고용절벽이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애를 태우고, 기업들은 신산업 인력난을 호소한다. 취업난 속 일자리 미스 매치가 심각하다. AI·반도체·빅데이터 등 미래 신산업에선 새로운 일자리가 대량으로 쏟아진다. 새 시대에 대응하려면 국가의 인력 수급 구조도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인력이 필요한 곳에 인력이 공급돼야 취업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09-15(금) 바티칸의 김대건 성상

이미숙 논설위원

한국인 최초 천주교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는 1845년 8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작은 배를 타고 귀국 길에 오르다 풍랑 때문에 제주도 해안에 닿는다. 박흥식 감독의 영화 ‘탄생(2022)’에는 김대건(윤시윤 분)이 제주 최서단 차귀도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거센 풍랑을 맞아 28일간의 표류 끝에 도착한 김대건은 10여 명의 동행자와 첫 미사를 봉헌한 뒤 용수리 포구에서 배 수리를 마치고 충남 강경으로 떠났다. 용수리 포구에는 이를 기념해 김대건 신부표착기념관과 기념성당이 세워졌다. 갓을 쓴 김대건 신부상도 있다.

김대건은 한국인 최초로 유학을 가서 서양 학문을 배웠고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다. 서양의 항해술과 측량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귀국 후 1846년 6월 체포되면서 그의 사목 활동은 1년도 안 돼 끝났지만, 참수 전 3개월간 옥중에서 세계 지리 개략을 편술했고 세계 지도 번역작업도 했다. 조선 대신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그의 손길이 닿은 지도는 헌종에게 헌정됐다. 이후 일부 대신들이 박학다식한 인재 김대건을 살려야 한다는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헌종실록 제13권엔 ‘사학죄인(邪學罪人) 김대건 효수’ 기록이 나온다.

천주교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사제가 되라는 운명을 받아들여 마카오 유학길에 나섰고, 신부가 된 후 귀국해 천주교 교의를 전하다 순교했다. ‘탄생’에서 김대건은 서해 뱃길이 위험하다는 이들을 향해 “길이 없다고요?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바다라는 게 모르면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면 길이 되어준다”고도 했다. 죽음을 각오한 그런 도전정신이 한국 천주교의 길을 열었다.

이후 천주교 박해 시대는 김대건의 선종 40년 만인 1886년 조선이 프랑스와 수교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 때 시복된 데 이어 1984년 5월 교황 바오로 2세가 한국 천주교 전래 200년을 기념해 방한했을 때 순교자 103인과 함께 성인으로 선포됐다. 김대건 신부 성상이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 16일 봉헌 기념미사가 열린다. 동아시아 출신 성인으론 처음이다. 이탈리아 순례 코스가 한 곳 더 늘었다.

 
 
 

09-18(월) 말종(末種) 국가

오승훈 논설위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험한 만남’을 두고 미국 국방부 매슈 밀러 대변인은 지난 13일 “국제적으로 버림받은 국가(pariah nation)에 지원을 구걸(begging)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을 따돌림당한 국가, 러시아를 걸인 국가로 규정했다. ‘pariah’의 사전적 뜻은 사회적 존중이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을 말한다. ‘파리아 국가’는 국제 외교나 관련 학계에선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유형은 여러 가지다. ‘정치 체제, 이념, 통치 행태로 인해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고, 도덕적 비난을 받는 국가’ ‘국제 행동 규범을 위반한 국가’ ‘세계 공동체에 심각하게 악영향을 끼친 국가’ ‘외교 수단이 없으면서 핵무기를 획득해 다른 국가에 해악을 줄 상황인 국가’. 이 범주들에 대부분 해당하는 게 북한이다.

국내에선 ‘왕따 국가’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적절해 보이진 않는다. 왕따라는 말은 다수가 특정 소수를 겨냥해 집단 따돌림(bullying)을 하는 행위나 대상을 지칭한다. 국제사회에서 지탄받는 행동을 한 국가나 통치자를 왕따라고 하면, 되레 피해자란 오해를 줄 수 있다. ‘파리아’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낮은 신분인 불가촉천민(untouchables)을 지칭한다. 법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사라졌지만, 인도인들은 아직도 파리아를 ‘더는 타락할 수 없고, 더 더러울 수 없는 사람들’로 인식한다. 막스 베버가 중세 시대 천민 출신 유대인의 상업 행태를 비판하는 데 사용한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도 거기서 나왔다. 그때만이 아니다. 몇 년 전 코로나19의 최초 발생지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을 때 영국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중국이 대대적인 개혁이 없다면 국제사회에서 ‘불가촉천민 국가(pariah state)’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어원을 따지면 ‘왕따 국가’보다는 ‘천민국’이 낫지 않을까. 김숙 전 유엔대사는 ‘말종(末種) 국가’로 번역한다. 행실이 매우 나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니 북한의 행태나 상황에 맞는 표현일 듯하다.

북한은 오랫동안 불량국가(rogue nation)로 불렸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미국이 새로운 적을 규정한 용어다. 2002년 9·11 사태 직후엔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됐다. 이름이 바뀐다고 본질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09-19 정치와 나이

이현종 논설위원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도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두 사람이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나이 문제.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80세, 트럼프 전 대통령은 77세. 트럼프는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전혀 나이가 많은 게 아니다. 그는 심하게 무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의 카린 장피에르 대변인은 지난 15일 최근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미국인이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를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질문에 “요즘 여든은 예전으로 치면 마흔(80 is the new 40)”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에도 같은 비판을 받았으나 매번 안 된다고 한 사람들을 이겼다”고 옹호했다. 올해 81세인 미치 매코널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경우, 최근 공식 자리에서 발언을 이어가다 돌연 말을 30초 멈추고 일시 정지된 듯한 모습이 몇 차례 포착되면서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올해 83세로 직전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 의원은 내년 11월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내년에 당선되면 20선인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고령 정치의 표본이 되는 미국 정치권에서도 올해 76세인 밋 롬니 상원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는 “솔직히 말해, 이제는 새로운 지도자들이 필요한 때다. 그들의 결정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모습이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가최근 유권자 1329명을 상대로 여론 조사한 결과, 75세 이상 정치인에게 강제적인 정신 능력 테스트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하자는 의견에 응답자 76%가 지지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한덕수 국무총리가 74세로 최고령이고 이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임명되면 72세로 장관 중 최고령이다. 그런데 유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를 위한 첫 출근길에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자전거로 약 20㎞를 이동해 사무실로 출근했다. 청문회 기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21대 국회의원 중 최고령은 76세의 김진표 국회의장인데 내년 총선에서는 박지원(81) 전 국가정보원장, 정동영(70)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출사표를 낼 예정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우려도 크다.

 
 
 

09-20 가난한 유럽, 부유한 소국

이철호 논설고문

“유럽이 가난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쏟아지는 뉴스 보도들이다. 10년 전 엇비슷했던 미국과 유럽 경제 규모 격차가 1.8배로 벌어졌다. 가난해진 프랑스는 와인을 아껴 마시고 독일은 고기 소비까지 줄였다. 디지털 혁신이 늦은 데다 코로나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유럽은 복합골절 상태다. 독일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유럽의 병자 신세다. 영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코로나 이전의 경제 규모를 회복하지 못한 나라다.

이렇게 쪼그라드는 유럽을 한 꺼풀 벗겨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지난 3년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일랜드·덴마크·네덜란드·아이슬란드 등이 유럽에 숨겨진 강소국들이다. 아일랜드는 글로벌 기업의 메카로 우뚝 서면서 28.7%의 기록적 성장을 이뤄냈다. 영어권인 데다 법인세가 유럽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반사이익까지 챙겼다. 네덜란드의 비밀 병기는 반도체용 극자외선 노광장비(EUV)를 독점 공급하는 ASML이다. 이 세계적 ‘슈퍼을(乙)’은 시가총액에서 글로벌 석유 메이저인 로열더치셸은 물론, 전통 강호인 하이네켄·ING금융그룹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네덜란드 간판 기업으로 올라섰다.

올해 유난히 뜀박질하는 나라는 덴마크다. 낙농업과 레고, 칼스버그 맥주의 나라에서 노보노디스크의 나라가 됐다. 100년 전통의 당뇨병 치료제 전문 기업이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대박을 친 것이다. 당뇨병 임상시험에서 체중이 크게 줄어든 ‘부작용’이 특효약으로 둔갑했다. 이 약으로 일론 머스크 등이 감량에 성공하면서 한 세트 180만 원짜리 주사약도 못 구해서 난리다. 이 회사 시가총액은 839조 원으로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의 1.5배를 넘어섰고, 압도적 유럽 1위다. 덴마크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6%에서 1.2%로 두 배나 끌어올렸을 정도다.

가난해진다는 유럽 곳곳에서 초격차 기업 활약이 눈부시다. 압도적 경쟁력으로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린다. 핀란드 노키아 신화가 아일랜드 바이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덴마크의 비만 치료제로 부활하고 있다. 단일 기업 비중이 너무 높지 않으냐는 비딱한 시선은 사치다. 부러울 따름이다.

 
 
 

09-21 우주인 머스크 활용법

이미숙 논설위원

미국 빅테크 기업 설립자나 CEO는 미국 대통령이나 유엔 사무총장보다 더 높은 지명도와 영향력을 가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설립자인 빌 게이츠나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가 대표적인데, 이들의 주요 발언은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해외 방문 때도 취재진의 주목을 받는다. 몇 해 전 미국의 한 빅테크 분석 보고서는 아마존과 MS를 미국의 국가적 챔피언으로, 애플과 구글은 글로벌리스트로 규정하면서, 머스크와 저커버그를 ‘테크노 유토피언’으로 규정한 바 있다. 아마존·MS가 미국 중심적이라면 애플·구글은 세계 시장을 우선시하는 기업이라는 뜻이다.

테크노 유토피언으로 불린 저커버그와 머스크의 길은 최근 뚜렷이 갈라졌다. 저커버그가 메타에 집중하면서 글로벌리스트로 기운 반면, 머스크는 화성 진출 등 우주 비즈니스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엔 스타링크를 발판으로 테크노 파워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통신위성 4500여 개로 구성된 머스크의 스타링크 위성망이 우크라이나에 인터넷을 제공해 전황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가 크름 반도에 위성망을 제공해 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거부한 사실이 최근 출간된 월터 아이작슨의 ‘일론 머스크 평전’에서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어느 날 그가 스타링크 위성망을 끊으면 전쟁의 판세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미국에 정착한 그가 변덕스럽고, 독단적인 데다 충동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개별 기업인의 결정에 대해 미국이나 유엔 등이 제재하기도 어렵다. 머스크는 테크노 파워를 바탕으로 지구를 넘어선 우주의 권력자가 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국빈 방미 때 머스크를 접견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아시아 지역 내 완성 전기차를 위한 기가 팩토리 투자를 요청했다. 그런데 한반도에 급한 것은 기가 팩토리보다 스타링크 위성망 활용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실시간 감시와 함께 북한을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세상과 북한을 연결시키는 것인데, 머스크가 결심하면 북한 서비스가 가능하다. 우주 시대 북한을 고립된 섬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주인 머스크를 설득해볼 만하다.

 
 
 

09-22(금) 김수철 ‘꿈의 출발점’

김종호 논설고문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님 찾아 꿈 찾아 나도야 간다’. 최인호 소설을 배창호 감독이 1984년에 영화로 만든 ‘고래사냥’의 주제곡 ‘나도야 간다’ 한 대목이다. 싱어송라이터·기타리스트·국악인·영화음악감독 등으로 다양하고 특출한 재능을 보여온 ‘작은 거인’ 김수철(65)이 작사·작곡·노래했다. “고래는 내 마음속에 있어요” 하는 대사 등이 인상적이던 그 영화의 남자주인공 병태를 연기해 배우로도 데뷔한 그를 두고, 박찬욱 감독은 “음악으로 모든 것을 최고 수준으로 해낸 사나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77년 4인조 록 밴드 퀘스천을 결성했으나, 이듬해인 1978년 밴드 이름을 작은거인으로 바꿨다. 그 밴드는 그가 작사·작곡한 ‘일곱 색깔 무지개’로 1979년 전국대학축제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1983년에 낸 그의 솔로 제1집 앨범에도 ‘못다 핀 꽃 한 송이’ ‘내일’ 등 명곡이 많다. ‘별리(別離)’는 국악 가요의 효시로도 알려졌다.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보석보다 찬란한/ 무지개가 살고 있는/ 저 언덕 너머’ 하는, 그가 작곡해 불러 1984년 발표한 안양자 작사 ‘젊은 그대’는 각종 경기의 응원가로도 사용된다.

국악과 현대음악을 꾸준히 접목해온 그는 임권택 감독의 1993년 판소리 영화 ‘서편제’의 OST인 ‘천년학’ ‘소리길’ 등도 작곡해, 대금(大금)·소금(小금) 소리와 신시사이즈 구현 현악기 소리의 절묘한 조화로 한(恨)의 정서를 극대화했다. 1989년에 발표한 ‘불림 소리’, 1998년 ‘팔만대장경’ 등도 명곡이다. 2002년 작품 ‘기타 산조(散調)’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평가된다. 1986년 아시안게임 행사에서 초연된 뒤로, 88서울올림픽과 2002년 축구월드컵 등 국가적인 주요 행사 다수에서 연주됐다. 그가 데뷔 45주년 기념 무료공연을 오는 10월 10일과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갖는다. 그가 기타를 메고 이끌, 세계 최초로 국악기와 서양 악기 연주자 100명을 모은 오케스트라도 동원한다. “국악의 새 장르를 개척하는 일로, 그동안 내가 품어온 ‘국악 대중화’ 꿈의 출발점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가 또 새롭게 편곡한 대표작들이 색다른 감동을 줄 것이다.

 

 

09-25(월) 홍범도 논란의 본질

김세동 논설위원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흉상 이전 방침을 철회하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엔 ‘민족의 장군 홍범도’ 평전을 쓴 작가를 양산의 평산책방으로 초청해 북콘서트를 열었다. 재임 중이던 2021년 8월 홍범도 유해 봉환을 위해 카자흐스탄에 공군기를 보냈고,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안장식에도 참석했으며, 2018년 육사 생도 교육관 정중앙 현관 앞에 홍 범도 외 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흉상을 설치토록 해 국군이 독립군·광복군을 계승하고 있으며 육사 역시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던 문 전 대통령으로선 예견된 행보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을 ‘친일파’로 몰아대는 데 여념이 없는 야권으로선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은 호재다.

총선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여론 조성 작업도 없이 갑자기 불거져 나온 홍범도 흉상 이전 이슈는 여권이 능력에 맞지 않게 전선을 지나치게 확대한 것으로, 정치적으론 패착으로 보인다. ‘봉오동·청산리 대첩의 영웅 홍범도 장군’으로 기억하는 여권 지지자들의 등을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다. 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홍범도의 소련공산당 입당을 문제 삼아 공산주의자를 육사 교정 안에 둘 수 없다는 사상·이념 논쟁으로 끌고 간 것도 잘못이다. 1920년 봉오동전투 때 이미 52세였던 홍범도가 항일투쟁 일선에서 물러난 1927년에 공산당에 가입한 것을 문제 삼는 건 억지스럽다. 김일성과 북한 정권 수립, 6·25전쟁에 연관되지 않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까지 폄훼하는 건 자해나 다름없다.

홍범도 논란의 본질은, 육사가 독립군만을 숭모하고 전범으로 삼으면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 되는 관념과 정서를 장차 육군의 동량이 될 생도들에게 심어 줄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이걸 강조해야 한다. 우리의 분명한 주적은 100년도 넘은 과거에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본이 아니라 하루가 멀다고 미사일 도발을 일삼고, 핵 공격을 위협하는 북한이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한미·미일 동맹이 굳건한 상태에서 일본이 우리를 침략할 것이란 우려는 망상이다. 문 대통령 때 육사 필수과목에서 6·25전쟁사를 뺀 것도 주적관을 흐릿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논란을 만든 문 전 대통령의 원죄가 크다.

 

 

09-26 항저우 ‘女 바둑’ 삼국지

문희수 논설위원

여자 프로바둑은 한중일 3국의 각축장이다. 남자 프로바둑은 한중 양강 체제가 된 지 오래지만, 여자 바둑은 중국이 압도하던 판세가 한국 쪽으로 점차 기울고, 일본도 실력을 키워 3파전 양상을 띠고 있다.

현재 3국의 간판 기사로는 한국의 최정(27) 9단, 일본의 후지사와 리나(25) 6단, 중국의 위즈잉(26) 7단이 꼽힌다. 모두 20대다. 최근엔 최정이 오랜 라이벌 위즈잉을 제치고 최강을 굳혀 간다. 최정은 2021년 위즈잉을 꺾고 중국 우칭위안 세계여자대회를 두 번째 우승했다. 지난해엔 메이저 대회인 삼성화재배에서 남자 강호들을 꺾고 여자 기사로는 처음으로 준우승해, 과거 마녀로 불렸던 루이나이웨이 9단(은퇴)을 넘어섰다. 루이는 불세출의 천재 우칭위안의 제자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국수전에서 막강 이창호·조훈현을 꺾고 우승했고, 세계 최대 기전인 응씨배 4강까지 올랐던 여류 최강자였다. 위즈잉은 2021년 일본의 여자 세계대회인 센코컵을 3연패 했고, 현재 중국 여자 명인 타이틀을 갖고 있다. 리나는 일본의 최대 기전인 기성전을 6연패 해 ‘괴물’로 유명했던 후지사와 슈코 9단의 손녀이자 제자다. 지난해 일본 여자 명인전 5연패와 함께 여자 본인방 3연패(총 7회 우승)를 이뤘다.

3국의 차세대 주자로는 한국의 김은지(16) 6단, 중국의 우이밍(17) 5단, 일본의 나카무라 스미레(14) 3단 등이 돋보인다. 김은지는 최근 최정과 두 대회 연속 우승을 다툴 만큼 성장한 무서운 신예다. 중국 최연소(11세) 여자 프로인 우이밍은 루이에 빗대 ‘작은 마녀’로 불린다. 스미레는 일본 남녀를 통틀어 최연소(10세) 프로 기사로, 올 2월에는 최연소(13세) 일본 여자 기성이 됐다. 스미레는 최근 한국기원에 객원기사를 신청해 화제인데, 자존심이 강한 일본기원이 이적을 승인해 내년 3월부터 한국에서 뛸 예정이다.

바둑은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13년 만에 정식 종목이 됐다. 2010년 광저우대회 때 한국은 3개 전 종목(남녀 단체전과 남녀 페어)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번엔 남녀 페어 대신 남자 개인전이 열리고, 여자 개인전은 없다. 중국이 신진서에 이어 이젠 최정도 경계하는 모양새다. 여자 단체전엔 3국의 간판과 차세대 6명이 모두 출전한다. 승전보를 기대한다.

 
 

09-27(수) 비례대표 폐지론

오승훈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검찰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대학 동기인 영장전담 판사를 골랐다고 주장했다. 허위였다. 그는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의 유포자이기도 하다.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로펌 인턴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결국 의원직을 잃었다. ‘짤짤이’ 성희롱 논란이 일어 당원 자격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은 적도 있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윤미향 의원은 최근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내년 5월까지 의원직이 유지돼도 이미 윤리·도덕적으로 파탄 상태다.

이들은 의원 자질 시비의 한가운데 서 있다. ‘비례 위성정당’ 출신이라는 점도 똑같다. 김 의원은 지난 제21대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 탈락자들이 모인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김진애 전 의원이 선거 출마로 사퇴하면서 의원직을 승계했고,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합당하면서 민주당 소속이 됐다. 최 전 의원도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윤 의원은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출신이다.

사정이 이러니 또 ‘비례대표 무용론’이 나온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입법에 반영하기 위해 뽑아놨더니 제 역할은커녕 문제만 일으켜서다. 대결 정치를 부추기는 첨병이란 비판도 많다. 비례대표가 지역구 공천의 발판이 되는 것도 폐지론의 논거다. 직능 대표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이는 대정부질문에서 ‘코이의 법칙’을 일깨워준 김예지 의원 정도다.

하지만 정치권과 관련 학계에선 되레 비례대표 확대 논의가 더 활발하다. 사표(死票) 최소화가 명분이다. 민주화 이후 제12대부터 제21대 총선까지 평균을 내보면 사표 비율이 49.98%란다. 50%의 의사는 버려지는 것이다. 양극단의 혐오 정치를 바꿀 대안으로 비례대표 확대가 제기돼온 근거이기도 하다. 내년 4·10 총선의 룰을 정하는 선거구제 개편 협상이 교착 상태다. 권역별로 할지 연동형으로 할지 ‘비례대표 퍼즐’을 풀지 못해 선거구획정까지 지연되고 있다. 현재는 지역구 253명, 비례대표 47명으로 단순다수제와 비례대표의 혼합형이다. 문제가 생기는 건 제도 탓일까, 사람 탓일까. 지금은 두 가지 모두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