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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2023-09/ 09-01 전면 백지화 필요한 새만금 SOC - 09.30 ‘소록도 천사 마가레트 할매’ 오스트리아서 선종

상림은내고향 2023. 9. 22. 19:44

세상사 2023-09/

09-01 전면 백지화 필요한 새만금 SOC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초빙교수

최근 한덕수 총리의 “전북 경제에 실질적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새만금 빅픽처를 새로 짜라”는 지시와 국토교통부의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 정책 효과를 재검토해 내년 상반기 중 결과물을 낼 계획”이란 발표는 당사자들에겐 당황스럽겠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필요한 조치다.

잼버리 행사 부실 개최로 드러난 문제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문재인 정부의 새만금 투자는 선심성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감사원의 판단 때문이다. 긴축재정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현 정부의 고육책이지만, 새만금 기본계획의 전면 백지화는 아닐 것이다. 단지, SOC 시설과 같은 대형 재정 투자는 세밀한 과학적 검증이 필수다.

국민의 혈세인 재정의 투자 효과는 반드시 객관적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국가산업단지 등에서 민간기업의 투자도 각종 심의를 거치는 것은 기업 투자 손실도 자칫하면 혈세로 메우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인데, 재정으로만 진행되는 사업은 말할 것도 없다. 새만금 기반시설의 투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 타당성조사(예타) 후 국토부와 새만금위원회 심의 및 국회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이권 카르텔이나 묻지 마 선심 예산이 있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SOC 사업에서 예타 면제 건수가 많아진 데 대한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2019년도만 해도 예타 면제 사업이 15개가 넘으며, 그 가운데서 가덕도 신공항의 사업비가 가장 크다고 한다.

무안공항(838억 원)과 군산공항(163억 원)의 적자는 새만금 신공항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새만금에 계획된 신항만도 기존의 부산·인천·광양항 등에 비해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대규모 개발계획을 세울 때 지역 활성화 효과가 큰 콘텐츠보다 전시용 마스터플랜 홍보 효과에 더 치중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불명확한 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하고 최대한 엄격하게 적용해 면제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신속 예타 절차를 도입해 시급한 사업의 예타 선정 및 조사 기간을 단축하고, SOC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기준금액은 높이기로 한 바 있어 향후 큰 손실은 줄이게 됐다.

현재 새만금개발통합심의위원장 역할을 맡은 필자로서 새만금 전면 백지화에 대한 견해는, 전면 재검토할 것과 기존 방침을 고수할 것을 구별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1987년 이후 새만금 사업의 청사진은 여러 번 바뀌다가 2013년 새만금개발청 개청 이래, 2020년 새만금스마트도시는 착공됐고, 그 다음 해에는 새만금의 기능을 글로벌 신산업 중심지로 조정했다.

기본계획 수립 후 산업·연구 용지 등 7가지 권역별 조성 방향에 따라 각종 간선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므로, 이 토지 이용의 큰 틀은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해외 투자자나 민간기업에 자칫 그릇된 정보를 줄 수 있는 만큼 대규모 해외투자 유치와 대기업들의 관심이 쏠리는 관광·레저 용지와 산업·연구 용지 등에 대해서는 그 토지영역을 조속히 확정해야 한다. 다만, 정부가 전면 재검토할 부분을 경쟁력이 불투명한 신공항·신항만·철도 등 SOC 시설로 국한해야 정책 혼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09월 호 묻지 마 칼부림’ 시대

09.09 ‘1인 테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인 테러도 극단주의 테러·국가 테러 등과 통합 관리해야

⊙ 2006년 이후 미국에서 테러리즘으로 인한 죽음의 98%가 ‘외로운 공격자들’에 의해 발생
⊙ 평소 격투 훈련, 호신용품 사용 훈련 필요
⊙ 앞으로 3D 프린팅, 인공지능, 無人자동차, 드론 등이 테러에 활용될 수도
⊙ 테러 공격자 · 테러 타깃 · 테러 무기의 3축(軸)으로 나누어 예방 활동 이루어져야
⊙ 한국 對테러특공대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도심교통 정체 등 고려하면 20~30분 내에 현장 도착 불가능

윤민우
1972년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인디애나주립대 범죄학과 석사,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학대학 범죄학 전공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국제정치학 박사 / 가천대 경찰정보학과 교수, 現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 / 《폭력의 시대 국가안보의 실존적 변화와 테러리즘》 저술

▲8월 3일 발생한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1인 테러’가 한국에서도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사진=조선DB

 

최근 국내에서 끔찍한 일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신림역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며칠 뒤 다시 서현역에서 유사한 공격이 발생했다. 이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유형의 칼부림 공격에 대한 예고가 온라인을 통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외로운 늑대’에 의한 도심 테러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테러는 물리적 폭력인 동시에 행동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테러 행위는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어 미디어를 타고 다른 잠재적인 공격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러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생각’과 그 공격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은 마치 감염병처럼 사회 일반으로 확산된다.

이러한 현상이 한번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게 되면, 사라지지 않고 사회의 한 현상으로 생명력을 얻고 지속되게 된다. 마치 코비드-19와 같다. 우리가 이제 코비드-19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신림역-서현역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서 ‘외로운 늑대형 테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외로운 늑대형 공격자의 테러’

▲2022년 7월 8일 발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암살 사건은 사제 총기를 사용한 1인 테러였다. 사진=마이니치신문

 

1인 테러는 종종 증오 범죄, 혐오 범죄, 묻지 마 범죄, 무동기 범죄, 대량 살인, 스쿨 슈팅(School Shooting), 액티브 슈터(Active Shooter), 그리고 외로운 늑대 테러 등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용어들은 사실상 같은 역동성을 가진 현상을 다르게 지칭하는 것이다. 동기나 의도를 제외하면 공격자의 특성, 공격 양상, 그리고 공격 대상의 선정 등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최근 발생한 신림역-서현역 1인 테러는 21세기 뉴노멀 시대의 한 현상이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최근 3D 프린팅 총기를 이용한 아베 전 총리 암살 사건이 있었고, 나가노현에서 산탄총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이 같은 에피소드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빈번히 있어 왔다. 예를 들면, 2016년 프랑스 니스에서는 차량돌진 테러로 85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1인 테러’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나바머(Unabomber)라고 불린 시어도어 카진스키(Theodore Kaczynski)가 있으며,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빌딩의 폭탄 테러범인 티머시 멕베이(Timothy McVeigh)도 이 유형에 속한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폭탄 테러 사건과 2016년 플로리다 올랜도의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테러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 같은 1인 테러는 매우 치명적이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스타트센터(START Center)의 글로벌 테러리즘 인덱스(Global Terrorism Index)에 따르면, ‘외로운 늑대형 공격자’들이 서구 세계에서 가장 주된 테러 공격의 가해자들이다. 2006년 이후로 미국에서 테러리즘으로 인한 모든 죽음의 98%가 이들 ‘외로운 공격자들’에 의해 발생하였다.

 

‘인정의 욕구’

▲유나바머’로 유명한 시어도어 카진스키. 수학자이자 反기술주의자로 16번의 폭탄 테러를 자행, 3명을 죽이고 2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1인 테러, 무동기 범죄, 혐오 범죄, 스쿨 슈팅,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극좌 테러, 극우 테러, 환경 테러 등 다양한 폭력과 테러의 양상들로 발현되지만 사실상 이 같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폭력 행위들의 근원은 같다. 바로 ‘자존감’이다. 이는 ‘인정의 욕구’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높은 자존감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 욕구는 부자가 되거나 속칭 ‘출세’라고 불리는 지위나 신분이 상승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목과 인정, 사랑을 받고 싶은 것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욕구는 학교나 직장, 경력, 사업, 사회적 관계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수단을 통해 달성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수단이 박탈된다. ‘폭력’은 이 같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에 해당한다. 그것이 불법일지라도 폭력은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고 인정의 욕구를 충족하는 손쉬운 수단이 된다.

이 때문에 1인 테러의 공격자는 그 공격 행동을 통해 권력과 지위 상승을 경험한다. 타인(他人)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본인이 갖게 된다는 경험은 마약보다 더 자극적인 쾌락을 준다. 이는 신(神)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잃었던 자존감이 급상승하고 인정의 욕구가 즉각적으로 채워지는 인지적 경험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주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사이코패스’ 진단을 내리는 것은 훈장을 달아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훈장 수여 의식은 다른 많은 잠재적 공격자들에게 유사한 테러를 하도록 부추기는 좋은 동기를 부여한다.

 

리허설의 시간 ‘테러로의 여정’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빌딩을 폭파한 티머시 멕베이. 그의 테러로 168명이 사망하고 68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테러 공격의 에피소드는 이 같은 공격자에게 하나의 신성한 사냥 또는 전투 의식이 된다. 자신이 이후에 어떻게 처벌당할지와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받을지는 이 같은 공격자의 생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이 의식은 그 공격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많은 경우에 공격 이전에 많은 숙려(熟慮)와 준비, 리허설의 시간을 가진다.

이들 공격자들은 ‘테러로의 여정’을 경험한다. 이는 삶의 경로를 따라 퇴적되는 폭력적 극단화이다. 대체로 초기 단계에서 이들은 전사적(戰士的) 영웅주의, 사이코패스, 조현병(調絃病), 병리적 나르시시즘, 과대망상증, 과잉행동장애, 과도한 공격성, 우울증 등 심리적·성격적 이상 징후를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가정, 학교, 또래집단, 또는 직장 등에서의 긴장(strain) 또는 스트레스의 경험이 더해진다. 이 같은 긴장은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될 수도 있으며, 실직(失職), 진학 실패, 희망직업이나 지위 획득의 좌절 등과 같은 개인의 삶에서 직면하는 부정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사회적 관계의 리모델링이 진행된다. 이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는데 한쪽에서는 가족, 학교, 직장, 또래집단 등의 기존의 친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결속의 약화 또는 단절이 일어난다. 흔히 ‘은둔형 외톨이’ 현상으로 불린다. 이러한 단절은 범죄나 폭력행동을 억제하는 사회적 브레이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온·오프라인에서 반사회적 관계망과의 결박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폭력행동에 대한 생각과 방법의 학습이 일어난다. 이는 다른 방향으로의 사회학습이다. 이 사회학습 단계에서 어떤 종교적, 이념적, 가치적 속성을 가진 실체와 결박되는가에 따라 무동기 범죄, 스쿨 슈팅(학교 내 총기 난사), 혐오 공격, 조직화된 테러, 1인 테러, 사이비 종교 활동, 극단적 정치·사회 운동 등의 다양한 유형으로 발현된다.

구체적인 공격 이벤트에 시간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마지막 단계는 기회·상황 요인이다. 사회학습 단계까지 진행된 개인은 이미 완성된 폭탄과 같다. 언제든 폭발할 잠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정 개인이 경험하는 구체적인 기회조건(예를 들면 테러방지대응의 취약함, 쉽게 획득할 수 있는 무기와 공격표적 등)이나 상황요인(굴욕과 멸시의 경험과 같은 갑작스러운 일상의 이벤트 또는 유사한 폭력의 발생에 의한 동기화 등)이 주어지게 되면 잠재적인 개인의 공격행동이 격발되게 된다.

특정한 공격 수단이 사용되는 것은 그 사회의 제약조건 때문이다. 이 같은 테러 공격자는 본인이 쉽게 습득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공격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에서 총기 테러가 빈발하는 이유는 총기에 대한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칼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폭탄 테러는 기존에 폭탄을 다룰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이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차량돌진 테러나 칼부림 같은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한 테러 공격의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3D 프린팅, 인공지능, 메타버스, 무인(無人)자동차, 드론, 로봇 등의 신기술이 더 일상화되면 이러한 수단들이 테러 무기로 활용될 여지는 크다.
 

 

상담·교육, ‘절대 해결책’ 아니다

지금 국내에서 주장되는 여러 대응 방안은 실효적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는 1인 테러의 특성과 역동성(力動性), 그리고 대테러 현장의 실정이 반영되지 않는 단편적 아이디어 차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심리적·정신적 이상을 보이는 폭력성이 높은 대상들에 대해 신체적으로 취약한 상담사가 신변 위협을 느끼면서 가끔 진행하는 상담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폭력예방교육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형식적으로 운용되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안다. 상담사와 강사들은 안 그래도 이런저런 상담과 교육으로 과부하(過負荷)가 걸려 있다. 상담과 교육이 1인 테러,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갑질 등등 모든 문제에 대한 ‘절대 해결책’은 아니다.

사형제의 부활이나 가석방(假釋放) 없는 무기징역과 같은 강경한 대책도 효과가 제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범죄 억제는 처벌의 심각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처벌의 심각성의 효과에도 한계는 있다. 모든 범죄자가 범죄의 편익(便益)의 크기와 처벌의 심각성을 면밀히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의 상처와 인정 욕구에 의해 추동된 표현적인 폭력범죄는 특히 처벌의 심각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들의 생각의 시간적 스팬(span)은 매우 짧다. 이들은 범행 실행 과정에서 범죄 이후의 자신의 운명에 대해 거의 고려하지 않거나 매우 피상적으로만 생각한다.


美, 官-民-軍 연결한 긴밀한 對테러체제 구축

보다 통합적이고 전일적(全一的)인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이 같은 테러 대응을 위해 1인 테러와 혐오 범죄, 이슬람 극단주의, 극우·극좌 테러, 단일이슈 테러 등 여러 유사한 유형의 것들을 폭력적 극단주의 또는 테러리즘의 범주로 묶어 관리한다. ODNI(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국가정보국장실) 산하 NCTC(The National Counterterrorism Center·국가대테러센터)를 총괄 컨트롤타워로 국토안보부의 퓨전센터와 FBI의 JTTF(Joint Terrorism Task Force)가 미국 전역에 실핏줄처럼 분산 배치되어 미국 전역의 테러 및 이에 준하는 폭력 범죄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통합-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국적 단위에서 구체적인 시뮬레이션과 사례별 접근을 통해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한 예방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폭력적 극단주의 위험인물에 대한 식별과 선제적 개입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작동되고 있다.

총기와 폭발물 등 전통적 테러 무기에 대한 엄격한 관리, 렌털 차량, 화학 물질, 방사능 물질 등 테러 수단이 될 수 있는 일상 수단들에 대한 모니터링, 3D 프린팅과 드론 등 테러 이용 가능성이 높은 신기술 등에 대한 사전 연구와 규제, 단속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테러 관련 프로파간다, 리크루팅, 담론, 공격 방법과 수단의 전파, 커뮤니티 대화, 소셜미디어(SNS) 포스팅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으며 이러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테러 예방 활동을 오프라인에서의 테러 대응과 통합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이 밖에도 다중이해당사자주의의 원칙에 따라 정부-민간-군(軍)을 긴밀하게 연결하여 하나의 촘촘한 대테러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운용하고 있다.


對테러 3축 체계

이와 같은 해외 사례를 참조하고 그간의 테러 사건 양상들을 살펴보면, 테러 대응은 전일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먼저 ①테러 공격자 ②테러 타깃 ③테러 무기의 3축(軸)으로 나누어 각각에 대한 예방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테러 공격자’에 대한 예방은 앞서 언급한 생애주기에 걸친 ‘테러로의 여정’의 경로를 토대로 보다 입체적인 테러 위험인물 식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처럼 테러 위험인물을 가려낼 수 있는 어떤 단일한 심리적·성격적·정신적 이상 징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심리적·성격적 특성들이 다양한 다른 요인들과 결합되어 다양한 폭력 행동의 유형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식별된 테러 위험인물들은 선제적(先制的)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테러 타깃’에 대한 예방은 시설과 공간에 대한 방어의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경찰 또는 CCTV를 배치하는 단편적인 조치보다는 해당 장소나 시설에서 발생 가능성이 높은 구체적인 테러 공격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경찰 등 인력과 시설, 구조물, CCTV, 도로설계 등을 입체적으로 고려하여 디펜스 존(Defense Zone)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테러 무기’에 대한 관리·통제가 필요하다. 칼 등 일상도구에서부터 총기, 폭발 물질, 화생방 물질, 드론, 3D 프린팅 기술 등 다양하다. 이때 최근 자주 발생하는 국내외 테러 트렌드를 염두에 두고 우선순위를 정해 관리하면 효율적이다.

이러한 3축의 요소들은 서로 매칭해서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온라인에서 특정 지역에 대한 최근 칼부림 공격 예고를 포스팅한 사람이 있다면 해당 인물의 과거 이력을 살펴보고 이 사람의 최근 구매 패턴과 동선(動線)을 분석하면 어떤 무기를 가지고 누구를 대상으로 어디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사전에 식별해낼 수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의한 분석은 이러한 과정을 더욱 빠르고 정밀하게 할 수 있다.


테러 前兆 행위도 엄격 처벌해야

 ▲8월 4일 칼부림 테러에 대비해 서울 강남역 주변에 배치된 경찰특공대. 경찰특공대는 교통 사정 등을 감안할 때 신속한 출동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진=조선DB

 

테러 대응 역시 보다 현실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한국의 대테러특공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는 테러 사건이 실제 발생했을 때 그들이 현장에 없다는 사실이다. 경찰특공대건 군 대테러부대건 국내 도심교통 정체와 도로 사정 등을 고려하면 20~30분 내에 현장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행히도 일반적으로 최초 테러 공격 발생 이후 20~30분 내에 최대 1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그래도 가급적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이들이 20~30분 내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할 필요는 있다.

결국 서현역 사건과 같은 현실적인 테러 공격에 대한 대응은 오롯이 일반 경찰관들의 몫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상황 판단과 현장 대응의 재량권이 더 주어져야 한다. 이는 경찰의 치명적 무력(武力) 사용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령과 판례, 제도와 규정, 그리고 매뉴얼이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함께 당연히 무기, 장비의 보강과 함께, 경찰관들의 맨손격투와 각개전투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에 더해 민간인의 정당방위(正當防衛)에 대한 법적 기준이 적어도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선진국들 수준으로 완화될 필요가 있다. 경찰관들의 출동 이전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긴급 대응을 위해서나 출동한 경찰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싸움 능력’이 있는 인근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공격자를 제압하거나 물리칠 수 있도록 정당방위의 법적 범위를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이러는 편이 자원봉사대란 이름으로 맨손격투 능력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유니폼이나 조끼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할 자연법적 권리가 있다.

관련 법령 개선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물론 관련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미 테러 공격을 실행한 가해자를 엄격히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테러 공격으로 가는 전조(前兆) 행위들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온라인에서 테러 공격 위협을 포스팅하거나, 폭력적 극단주의 콘텐츠를 개시 또는 공유하거나, 테러 무기를 획득하거나, 테러 이용 물질을 구입하거나, 테러 공격을 계획하거나 하는 등 사소해 보이는 테러 예비 단계에 해당하는 행위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테러 관계 법령 정비 필요

한편 1인 테러와 증오 범죄, 무동기 범죄, 극단주의 테러, 국가 배후 테러 등 유사한 행위들을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법령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현행 테러방지법은 유엔이 지정한 테러 단체에 속한 조직원들이 벌이는 테러 행위에 그 적용이 국한된다. 통합방위법은 북한과 관련된 테러 공격 행위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서현역 사건 같은 폭력적 공격 행위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대테러센터, 국정원, 경찰 및 군 등 관련 대응 주체에게 현장의 공격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또한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를 먼저 식별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테러 공격자의 의도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긴박성, 위협의 정도, 피해의 규모, 현장 대응 공권력의 대응 역량 등을 기준으로 현실적인 대응이 되도록 관련 법령이 재정비되어야 한다.

일반인들은 이 같은 폭력 공격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사주(四周)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평상시에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주변을 살피고 혹시 있을 위협에 대응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만약 상황이 발생하면 가능한 한 현장에서 신속히 떠나야 한다. 하지만 칼 등의 흉기를 든 공격자로부터 도주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뒤를 돌아 등을 보이거나 고개를 숙이고 저항을 포기하는 행위 등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정면을 응시하면서 서서히 뒤로 물러서거나, 큰 소리로 도움을 구하거나, 저항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특히 칼로 공격당할 경우 장기 등의 주요 부위가 찔리지 않도록 손이나 팔로 적극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허리띠, 핸드백, 휴대폰 등이나 주위의 물건들은 적절한 방어 수단이 된다.


공권력에 기대지 마라

시간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유도, 검도, 이종격투기 등의 격투술을 미리 익히는 것도 좋다. 이 같은 경험은 개인이 신변 위험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격투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은 적대적 상대방과 맞선 상황에서 뇌 정지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익숙지 않은 공포 상황에서 그대로 얼어붙어 저항도 도주도 못 하는 일시정지 상태에 빠진다. 이런 현상이 신변을 위험하게 만든다. 일상에서의 격투 훈련은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뇌의 인지대본(Scripts) 형성과 신체적 역량 증대에 도움이 된다. 격투 상황에 대한 이 같은 인지적·신체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호신용품을 휴대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호신용품을 구입한다면 실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평소에 훈련을 해두어야 한다. 무기는 그것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들었을 때만 무기가 된다.

 

결국, 일반 시민들이 명심해야 할 사실은 자신의 생명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경찰이나 국가 공권력이 전지전능하게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관료 조직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경찰도 역시 결국 거대한 관료 조직이다. 지휘명령 체계에 따라 작동하고 미리 설정된 여러 법령과 규정, 가이드라인,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긴박하고 유동적인 상황에서 빠르고 유연하게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평소에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자기 주도적 역량을 개인 스스로 키워야 한다. 이번 신림역·서현역 사건으로 확인되었듯이 위험은 늘 여러 분의 곁에 있다.

실패로 끝난 ‘진보적 실험’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은 어쩌다 발생한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다. 이는 오늘날 인류사회가 직면한 시대적 도전이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전통적 권위의 해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역풍, 남성성(Masculinity)의 과도한 폄하와 억제에 대한 반동,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인터넷과 미디어 활용능력)의 문제, 가정과 학교의 붕괴, 첨단 과학 기술의 빠른 발전, 실업(失業)과 과잉 복지, 경제적·사회적 양극화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연동되어 나타난 문제들이다. 때문에 이 같은 1인 테러의 문제는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 없이는 근원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지난 수십 년간 이상주의자들은 인간의 선한 이성에 기반을 둔 비폭력과 평등한 공동체로의 진보를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왕국을 지상에서 건설하기 위해 전통적 권위와 양육과 교육방식, 가치관 등을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남자다움(Masculinity), 명예, 절제, 훈련과 규율, 신체적·정신적 강인함, 권위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남자아이들을 훈육하고 이끌었던 전통적 기제들이 붕괴되었다. 이 남성성의 롤 모델의 빈자리를 영화나 드라마의 조폭과 용병들 그리고 게임 캐릭터들이 대체했다. 이로 인해 남자아이들은 자신들의 남성성과 폭력성, 강인함에 대한 열망 등을 올바른 방향으로 다루고, 절제하고, 함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사회로 내던져졌다. 통제되고 훈육되지 않은 남성성은 범죄적 폭력성으로 비뚤어져 발현된다.

다양한 진보적 실험들에서 확인한 사실은 인간은 결국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의 가정, 사회, 그리고 국가는 어떤 이들의 낭만적 이상주의의 실험실이 아니다. 신림역-서현역 사건은 이와 같은 실험들의 의도치 않았던 결과이다. 이제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돌아볼 때인지도 모른다.⊙
 

 

09.09 일본의 무차별 살인 범죄가 주는 시사점 5가지

20대 히키코모리 어느덧 중년 외톨이로… 40~64세가 61만 명

⊙ 범죄 데이터베이스 구축해야… 미국은 전 세계 테러 범죄 분석해 온라인에 공개
⊙ 불특정 다수를 죽이고 자살하는 ‘확대 자살’ 확산 막아야
⊙ 일본 사례 보면 범행 장소가 학교와 병원 등으로 옮겨갈 수 있어

▲신림역 흉기난동 현장에 시민들의 추모글이 붙어 있다. 사진=조선DB

 

왜 우린 이런 것까지 일본을 따라가는 걸까. 신림역,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여러 면에서 일본의 무차별 살상 범죄와 닮아 있다.

무차별 살상 범죄를 일본에서는 도리마(通り魔·거리의 악마) 범죄라 부른다. 일본 사회가 우리보다 일찍 앓기 시작한 병리적 현상이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다섯 가지로 정리해봤다.

직업 없는 2030 고립 남성

▲2001년 오사카에서 일어난 ‘이케다 초등학교 살상 사건’ 현장. 초등생 8명이 사망했다. 사진=NHK 캡처

 

첫째, 직업 없는 20~30대 은둔형 외톨이 남성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법무성이 2000~2010년 무차별 살상 사건으로 수감된 52명을 분석했다. 조사 대상자의 70% 이상이 39세 이하였다. 대부분이 남성이고, 무직(80%)이었다.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정신병력자는 거의 없었다. 학력은 중졸(63%)이 많았다.

대표적 사례가 2001년 6월 8일 일어난 이케다 초등학교 살상 사건이다. 칼을 든 괴한이 수업 중인 초등학교 교실에 침입했다. 초등학생 8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 범인 다쿠마 마모루(범행 당시 38세)는 전과 15범으로 중졸에 무직이었다.

▲2008년 아키하바라에서 무차별 살상 사건을 일으킨 가토 도모히로가 현장에서 체포되는 모습. 사진=니혼테레비 캡처

 

아키하바라 살상 사건의 범인 역시 20대 남성이었다. 2008년 6월 8일 20대 남성 가토 도모히로(당시 26세)가 2t 트럭을 몰고 도쿄(東京) 아키하바라 상점가로 돌진했다. 마침 당일 아키하바라는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의 날이었다. 범인은 트럭으로 행인들을 친 다음, 차에서 내려 흉기를 휘둘렀다.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토는 직업은 있었지만, 비정규직 사원으로 계약 해지를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두 사건은 7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날(6월 8일) 일어나 6월이 되면 일본에서 함께 자주 언급된다.

신림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 조선(33) 역시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중학교를 중퇴한 후 검정고시에 합격해 중졸 학력은 갖췄다. 서현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22)은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였다.

둘째, 내부에 쌓인 폭력의 에너지를 범죄로 분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발현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상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2012년 6월 11일 일본 오사카에서 행인 두 명이 칼에 찔려 사망했다. 범인은 당시 36세의 이소히 교조(礒飛京三).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살인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케다 초등학교 살상 사건의 범인 다쿠마 마모루도 어릴 때부터 강간, 스토킹, 폭행 등 중범죄를 끊임없이 저질렀다.

조선 역시 폭력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신림역 범행 사흘 전 지인에게 “누구 죽여버리고 싶다” “저 1~2년 동안 못 볼 것 같아요” “교도소 들어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범행 한 달 전에는 “누구 죽여버리고 싶다” “법 없었으면 사람 많이 죽였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지난 5월 부산에서 과외 앱으로 만난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정유정(23)은 “범죄 수사 프로그램을 보며 살인 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살인을 해보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사이코패스들은 주로 사기범

이런 폭력적인 성향이 감경이나 면죄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히면 사이코패스(Psychopath) 여부를 크게 보도한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 테스트 결과에 집착하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은영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얘기다.

“사이코패스 테스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테스트 결과 사이코패스로 진단되면,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예측할 수 있거든요.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폭력 범죄자에게 형을 선고할 때 사이코패스 여부를 고려하기도 해요. 범죄가 또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더 길게 형을 주는 식이지요.”

 우리나라는 좀 다르다. 검사 결과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것으로 판명되면 사회가 안도(?)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그러면 그렇지, 범죄자로 태어난 사람이구나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었던 범죄였다’라는 식으로 집단 자기 위로하는 식이다. 김 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으면 일종의 면죄부를 받는 현재의 분위기는 옳지 않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반드시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거든요. 제일 많이 저지르는 범죄는 타인을 등쳐먹는 사기 같은 범죄예요. 소위 ‘제비’ ‘꽃뱀’ 이런 거죠.”


‘묻지 마 범죄’ 부적절

인간의 행동엔 패턴(Pattern)이 있다.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분석해야 한다. 도리마 범죄가 빈발하자 일본이 시작한 게 바로 통계 작성이다. 통계를 내기 위해서는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1981년 일본 경찰청은 도리마 범죄의 네 가지 요소를 발표한다. ①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범행이 일어날 것 ②범행 동기가 모호할 것 ③피해자가 불특정인일 것 ④흉기를 사용하는 등 위해를 가할 것. 이를 기준으로 1983년부터 도리마 범죄 통계가 담긴 범죄백서를 발표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선 뚜렷한 정의 없이 ‘묻지 마 범죄’라는 용어가 적어도 2000년대 초반부터 널리 쓰였다. 2004년에 일어난 유영철의 연쇄살인을 묻지 마 살인으로 표현했다. 경찰청은 ‘이상동기 범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김은영 교수의 설명이다.

“‘묻지 마’ ‘무동기’ 범죄 둘 다 부적절한 용어예요. 동기 없는 범죄는 없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이상동기 범죄’로 바꾼 건데, 동기가 이상하다는 말이잖아요. 차라리 동기를 알 수 없다고 하는 것보다 못한 개념 정의지요. 우리는 범행 동기를 상당 경우 범죄자의 진술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범죄자가 동기를 진술하지 못하거나, 동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 행정 편의적으로 ‘묻지 마’ ‘이상동기’로 분류해버리는 거죠.”

미국은 1940년대부터 대량 살상 범죄가 자주 일어났다. 여러 명을 살해하는 범죄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대량 살인, 연속 살인, 연쇄 살인이다. 대량 살인(Mass killing)은 단일 사건에서 3명 이상을 살해하는 것을 뜻한다. 2007년 일어난 버지니아공과대 사건을 들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는 대학 건물에 침입해 32명을 살해했다.

연속 살인(連續殺人·Spree Killing)은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이, 여러 장소에서 두 명 이상의 피해자를 살해하는 범죄를 뜻한다. 2002년 일어난 벨트웨이(Beltway) 저격 살인이 대표적인 예다. 존 앨런 무하마드(당시 41세)와 존 리 말보(당시 17세)는 주차장, 주유소, 쇼핑몰 등에서 행인들에게 총을 쐈다. 한번에 대량 난사하는 식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 한번에 한 명씩 저격하는 식으로 죽였다. 2002년 2월부터 10월까지 17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연쇄 살인(Serial Killing)은 같은 범죄자에 의해서 발생한 2건 이상의 구분된 살인이다. 사건 사이에 냉각기가 존재한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모티브였던 테드 번디를 들 수 있다. 그는 주로 여대생을 죽였다.

 

피루스와 GTD

▲1948~2021년 사이에 미국에서 일어난 극단주의 범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피루스(Pirus) 데이터베이스

 

미국은 대량 살상 범죄와 범죄자의 특성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고 있다. 피루스(Profiles of Individual Radicalization in the United States·Pirus)와 글로벌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Global terrorism database·GTD)가 대표적이다. 피루스는 1948~2021년 사이에 일어난 극단주의 사건들을 분석했다. 극우, 극좌, 이슬람주의부터 극단적인 환경 운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3200명 이상의 폭력 및 비폭력 극단주의자의 속성과 급진화 과정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 온라인에서 통계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해놨다. 단순히 자료만 열거하는 게 아니라, 한눈에 알 수 있게 도표로 정리했다.

 

▲글로벌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는 미국 국토안보부의 지원을 받아 1970~2010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을 정리한 범죄 통계다.

 

GTD는 테러리즘 연구 및 대응을 위한 컨소시엄 조직인 스타트(The National Consortium for the Study of Terrorism and Responses to Terrorism·START)가 만든 데이터베이스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폭력 범죄 사례를 정리했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하는 프로젝트다. 통계 자료는 역시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다. 신원과 소속, 이용 목적 등을 보고한 후 내려받을 수 있다.

민족별 범죄 패턴 정리

기자도 신원과 ‘취재 목적’을 알려준 후 파일을 내려받았다. 자료를 읽어보니 1970년에 일본 후쿠오카에서 일어난 범죄도 기록되어 있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일어난 테러 사건을 살펴본 후,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흉기와 수법이 사용됐는지 기록했다. 국가별, 민족별 테러 특성을 이해하고 대응책을 세우는 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초 자료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세금을 들여 전 세계 범죄를 분석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신림역 범죄가 일어나자 일각에서는 ‘조선족’이 아니냐는 의문이 일었다. 조선과 조선족의 상관관계는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엔 ‘조선족포비아’가 깔려 있다. 오원춘, 박춘봉 등 조선족 출신 살인범들 탓도 있을 터다. 피루스처럼 정교하게 작성해 공개된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면 조선족포비아가 과장된 건지, 실체가 있는 건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확대 자살’

일본의 경험이 알려주는 시사점 세 번째는 ‘확대 자살’이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2009년 7월 5일 오사카에서 파칭코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5명을 숨지게 한 범인은 “직장이 파산하고 생각한 일도 제대로 안 돼서 자살을 생각했다. 어차피 죽는다면 누구라도 좋아서 끌어들였다”고 진술했다.

2019년 5월 28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초등학생들을 흉기로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범인 이와사키 류이치로(당시 51세)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당시 범죄심리학 전문가인 하라다 다카유키 쓰쿠바대학 교수는 이와사키의 범행을 ‘확대 자살’로 분석했다. “자신과 관계없는 제3자를 끌어들여 자살해 사회 이목을 모으는, 뒤틀린 자기 현시 욕구 같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스이 마후미 니가타세이료(新潟靑陵)대학 사회심리학과 교수 역시 ‘확대 자살’로 분석했다. “인생의 최후에 많은 사람을 살해하면서, 자신을 바보 취급한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알리고 싶어 한다.”

이와사키는 한집에서 함께 살던 큰아버지 부부와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혼자 살았다.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다. 당시 일본 사회가 놀랐던 데는 이와사키의 나이(51세) 때문도 있었다. 도리마 살인은 주로 이삼십대가 저지른다는 일종의 법칙이 깨졌다. 20~30대부터 고립 생활을 시작한 히키코모리들이 20년 후 중년 히키코모리가 되어 등장한 것이다.

이와사키의 범행 며칠 후 아버지가 중년의 아들을 죽인 사건도 일어났다. 구마자와 히데아키(당시 76세) 전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이 장남 에이이치로(당시 44세)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오랜 기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부모에게도 폭력을 휘두른 아들이 이와사키처럼 범죄를 저지를 것 같아’ 죽였다고 아버지는 진술했다. 당시 일본 내각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40~64세의 중년 히키코모리는 61만여 명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의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까.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사형’과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신림역, 서현역 사건 후 법무부는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신설하기로 했다. 형법 개정안이 8월 14일부터 9월 25일까지 입법예고된다. 형벌 강화로 무차별 살상 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형벌에는 크게 4가지 기능이 있다. 사회에서의 격리, 갱생을 위한 교화, 국가 차원의 응징, 범죄 예방이다. 한국은 교화를 중시하지만 미국은 격리에 초점을 둔다. 경범죄라도 3번 이상 저지르면 중형을 선고하는 ‘삼진아웃(Three Strikes and Out) 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마트에서 비디오 테이프 9개를 훔치고 50년형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삼진아웃 제도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범죄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 중이다.

형벌 규정 강화가 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있는지 정교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 자료 확보가 우선이다. 현장에서는 재소자 인권을 보호한다며 범죄심리학자들의 연구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일어난 현상이다.


학교, 병원으로 범행 옮겨가

넷째, 학교, 병원 등으로 범행 장소가 옮겨갈 수 있다. 경비가 허약한 다중이용시설의 경비를 강화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그랬다. 아키하바라, 시모노세키역 사건 등 지하철역과 도심 번화가를 노린 사건들이 일어난 후 경비가 강화되자 학교와 병원, 일반 건물로 범행 장소가 옮겨갔다.

2021년 11월 9일 미야기현 도메시에서 유아원 흉기 난입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직원들이 잘 대처해 범인을 조기에 제압할 수 있었다. 범인 오오쓰키 와타루(당시 31세·무직)는 “아이들을 죽이고 사형을 받기 위해서 침입했다. 아이들이라면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한 명을 죽인다고 사형을 받지는 않기 때문에 최소한 2명 이상을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3월 1일 일본 사이타마현 도다(戶田)시의 한 중학교에 남자 고교생(17)이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찔렀다. 이 학생은 “평소 무차별 살인을 동경했다”며 학교를 택한 이유로는 “학교라면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학교 문이 잠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방화 살인

▲2019년 일어난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사건 현장. 사진=위키피디아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사건(2019년)과 오사카 병원 방화 사건(2021년)도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아오바 신지(당시 41세·무직)는 유명 애니메이션 회사인 교토 애니메이션의 제1스튜디오에 들어가 불을 질렀다. 36명이 죽고 33명이 다쳤다.

2021년 오사카(大阪)시의 한 병원에서 불이 나 용의자를 포함해 25명이 숨졌다. 범인 다니모토 모리오(谷本盛雄·당시 61세)는 가연성 액체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병원에 들어간 후 출입구 근처 난로 옆에 봉투를 놨다. 그런 다음 봉투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불이 크게 번지는 사이, 그는 탈출구 앞에 서서, 도망치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범인은 고립 생활을 오래 한 히키코모리였다. 그는 “외롭고 고독해 자살을 생각했지만, 죽는 것이 무서웠다”며 “누군가를 죽이면 나도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다섯째, 범행의 실행 비용을 높여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범죄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를 군데군데 배치해야 한다는 얘기다.

방화 사건이 난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원래는 출입카드가 있어야만 외부에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사건 당일엔 방송 촬영 관계로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다. 범죄의 문턱이 일시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도리마 범행이 잇따르자, 외부인의 이동 경로를 통제하고 투명 칸막이가 있는 접견실을 설치하는 학교나 병원도 생겼다.

 아키하바라 사건(2008) 후 일본은 흉기 소지 금지 법안을 강화했다. 당시 범인은 칼날 길이가 13cm인 검을 휘둘렀다. 당시 법은 칼날 길이 15cm 이상만을 소지 금지 대상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총포도검법을 개정해, 2009년부터는 칼날 길이가 5.5cm 이상인 나이프 등의 양날형 검 소지를 금지했다. 차량 침입 방지 매뉴얼도 만들었다.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는 행사장 주위에 차벽을 쌓도록 했다.

한국은 흉기 휴대 처벌 조항이 미비하다. 경범죄처벌법 3조 2항은 ‘칼·쇠몽둥이·쇠톱 등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치거나 집이나 그 밖의 건조물에 침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연장이나 기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숨겨서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일본처럼 칼의 길이까지 명시해야 실효성이 있지 않을까.

은둔 청년 24만 명

물론 근본적인 대책은 은둔형 외톨이들을 사회로 데려오는 것일 터다. 국무조정실이 조사해 지난 3월 발표한 통계를 보면 한국엔 약 24만4000명의 은둔 청년(만 19~34세)이 있는 걸로 추정된다. 청년 인구의 2.4%다. 서울시의 조사를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서울시는 올해 1월 만 19~39세 청년을 대상으로 고립·은둔 실태를 조사했다. ‘고립 청년’은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청년 중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유지된 경우이고, 이 중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머문 지 최소 6개월이 된 경우는 ‘은둔 청년’으로 정의했다.

조사 결과 서울 청년의 4.5%가 고립·은둔 생활 중이었다. 서울시 청년 인구로 환산하면 12만9000명이다. 고립·은둔 청년 상담 지원 전문단체 ‘씨즈’의 오오쿠사 미노루(大草稔) 고립청년지원팀장은 “4.5%라는 수치는 일본에서도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굉장한 수치”라며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보다 훨씬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형 8050문제를 마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사회가 히키코모리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고 있는지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할 이유다. ‘8050문제’는 50대 자녀가 80대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걸 뜻한다.

미니 인터뷰
범죄학 전공 김은영 교수

“커뮤니티 안에서 배설물 같은 감정 쏟아내며 더 동조해”

▲사진=김은영

 

김은영(金恩玲·50)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 플로리다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글로벌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조선(신림역 살인)이 최원종(서현역 살인)에게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종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겁니다. 칼로 사람을 막 찌르고 싶었는데, 누가 나보다 먼저 실행에 옮긴 걸 보면, ‘나도 해야겠다’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김 교수는 최원종이 활동한 디씨인사이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의 역할을 지적했다.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험을 하게 돼요. 오프라인에서는 말 못 할 배설물 같은 감정들을 쏟아내면서 거기에 더 동조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도 거기에 맞춰지게 돼요. 심리학에서 보면 어떤 행동에 참여하게 되면 거기에 믿음을 갖게 되고, 그러면 또 행동이 변화된다고 해요.”

바로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반향실) 효과다.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면서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는 현상이다.

김 교수는 범죄를 대하는 미디어의 행태도 지적했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너무 자세하게 보도해 사람들이 해당 뉴스에 노출이 많이 될수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아요. 세월호 사고도 몇 달 동안 정말 많이 보도됐잖아요. 국민들이 죽음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이제는 누가 죽기만 하면 다 가서 헌화하는 문화가 생길 지경이 됐어요.”

김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범죄를 다룹니다. 미국에는 CSI 시리즈처럼 범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많지만 한국처럼 범죄를 유쾌한 분위기로 풀어놓는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없어요.”⊙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09.09 알려지지 않은 통계로 본 한국 사회의 정신질환

某소년원 정신질환자 유병률 92.5%

⊙ 소년원 내 정신질환 처치 못 받는 환자 많게는 70%… “정신질환 소년원생에 대한 특단의 조치 필요”
⊙ 정신病歷 소년원생 2013년 13.7%→2020년 33.6%
⊙ 신림역·서현역 칼부림 살인 사건… ‘외톨이 테러’ 일상화 우려
⊙ 한국 10~30대에서 사망 원인 1위 자살
⊙ 정신장애인 범죄의 발생, 2014년 6301명→2020년 9058명… 6년간 43.8%p 증가
⊙ 10년(2011~2020) 사이 상급 종합병원 내 정신과 보호병동 18% 줄어

▲2023년 8월 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인근 AK플라자 백화점 앞에 마련된 흉기 난동 사건 피해자를 위한 애도 공간. 시민들이 두고 간 국화꽃과 편지들이 놓여 있다. 사진=조선DB 

 

근래, 치료를 중단한 중증 정신질환자의 ‘묻지 마 범죄[이른바 이상(異常) 동기 범죄]’가 연이어 발생해 지역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7월 21일 서울 신림역 칼부림 살인에 이어 8월 3일 경기도 분당 서현역에서도 칼부림 살인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살해했다. 하루 뒤 8월 4일에는 대전 대덕구의 한 고교에서 교사(49)의 얼굴과 가슴, 팔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도주한 제자(28)가 검거되기도 했다.

정신질환 탓에 범행했다?

잇단 칼부림 살인 이후 이를 모방한 ‘살인 예고’ 글이 소셜미디어상에 확산되고 정신질환자들의 ‘액팅 아웃(acting out·행동화)’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우려가 일파만파로 퍼졌다.

8월 7일 경기도 광주에서는 흉기를 소지한 채 도서관을 드나든 50대 남성이 체포됐다. 그는 등산용 손도끼를 허리춤에 맨 채 광주시립중앙도서관 내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남성은 과거 정신질환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전문가들은 “사회 내 은둔해 있다가 어떤 계기로 갑자기 나타나 테러를 일으키는 ‘외톨이 테러’가 일상화 단계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고 우려한다. 잇단 흉기 난동 사건 범인 중 대개가 과거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거나 현재 진행 중인 사실도 알려졌다.

 분당 서현역에서 차량과 흉기로 무차별 습격 난동을 벌인 최원종(22)은 경찰 조사에서 “사람을 죽여서 경찰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끔찍하게도 최씨는 경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행인 5명을 치었다. 최씨는 전과는 없었지만 2020년 조현병 직전 단계인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판정을 받았고 대인기피증으로 분당구의 한 고교를 1학년 때 자퇴했다고 한다. 또 체포 직후 “경찰이 날 보호해줘야 한다”거나 “특정 집단이 나를 스토킹하며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 내 사생활을 전부 보고 있다”고 횡설수설했다.

앞서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 조선(33)도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았다. 조선은 사이코패스 테스트 40점 만점 중 사이코패스 기준인 25점 이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교사를 흉기로 찌른 A씨의 모친은 참고인 조사에서 “아들이 평소 망상 증세를 보여왔다”며 정신질환 탓에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난 2021~2022년 인근 병원에서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입원이나 치료를 권유받았으나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나는 사이코패스”라고 했다고 한다.

정신질환 소년원생 연구를 보니…

기자는 법무부(소년과)가 의뢰해 작성된 〈정신질환 소년원생의 효과적 처우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는 2016년 작성됐으며 서울대병원 김붕년 교수팀(소아청소년 정신과)이 연구를 진행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소년원 입원(入院)자 중 정신질환자 비율이 2010년 15.9%에서 2015년 31.3%로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 이상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수용사고(收容事故)가 전체 소년원 사고의 40%를 차지해 정신질환 원생들의 수용 안정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에 법무부가 정신병력 전력이 있거나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소년원생을 ‘특별지도소년’으로 지정하고, 이 중에서도 집중 의료 처우가 필요한 이들을 구분해 대전소년원 부속의원에서 치료와 특수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인력과 시설, 치료 프로그램 등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2016년 보고서임을 감안하면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

다른 충격적인 자료도 있었다.

국립서울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이 의뢰해 인제대병원 김봉석 교수 연구팀(소아청소년 정신과)이 2014년 8월부터 11월까지 서울보호관찰소의 모든 보호관찰 대상자 중 자발적 동의를 한 성인 206명과 19세 미만 청소년 12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상태를 조사한 일이 있다.

이 연구에서 보호관찰 대상자의 정신건강 상태는 일반 인구군에 비해서 매우 ‘불량’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인 대상자의 45.63%, 청소년 대상자의 45.00%가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 이들 중 정신의료기관 이용실태는 매우 저조해 성인 대상자의 10.76%, 청소년 대상자의 19.40%만이 치료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치료 중인 대상자는 성인 대상자의 8.23%, 청소년 대상자의 7.46%에 불과했다고 한다.

김봉석 연구팀은 2015년 11월~2016년 1월 사이 수도권 모(某)소년원에 있는 10~19세 미만 소년원생 200명(본인과 보호자 모두가 서면조사에 동의한 참여자)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유병률(有病率)을 조사했다.

유병률은 특정 시간에 질병의 영향을 받는 특정 개체수의 비율을 말한다. 연구 대상인 총 사람 수와 질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사람 수를 비교하는데 보통 백분율, 1만 명 또는 10만 명당 사례수 등의 단위를 사용한다. 설문지 연구에 자주 사용된다.

 

소년원 청소년들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개입 필요

임상심리 전공 연구원 3명과 함께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란’(DSM-5) 등을 포함한 여러 면담지로 임상면담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알코올 사용 장애 58.5%, 품행 장애 55.0%, 반사회성 인격 장애 48.0%, 양극성 정동 장애 47.5%, 적대적 반항 장애 43.5%,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 34.0%, 틱 장애 29.5%, 인터넷 게임 장애 18.0%, 주요 우울 장애 16.5% 순으로 정신 장애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놀랍게도 전체 정신질환 유병률이 92.5%였다.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얘기였다. 소년원에 머무르고 있는 청소년 대다수에서 정신질환 진단이 가능하며 대부분이 2개 이상의 공병(共病) 질환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중복된 정신질환 공병 개수가 1개인 경우가 11.5%, 2개 13.5%, 3개 12.5%, 4개 15.0%, 5개 13.5%, 6개 이상 26.5%였다. 정신질환 공병 개수가 많아질수록 자살 경향성, 아동기 외상 기왕증(旣往症·과거 경험한 질병), 문제행동 등이 통계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소년원 청소년들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개입이 필요하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이를 계기로 법무부가 소년원 내 정신질환자를 자체 조사했더니 2016년 5월 기준 소년원생 1068명 중 정신병력자가 275명(25.7%)으로 파악되었다. 이 수치는 김봉석 연구팀이 정신질환자 유병률을 92.5%라고 보고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서울대병원 김붕년 교수는 “서울보호관찰소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정신질환 청소년 비율이 45.00%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년원 내에 실제 정신질환이 있음에도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가 적어도 25%, 많게는 약 70% 정도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자의 수용은 국내외 성인 교정시설은 물론 소년 구금시설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소년원에 수용된 인원 가운데 정신병력을 지닌 소년원생들은 2013년 13.7%에서 2020년 33.6%까지 증가하였다. 이들의 주된 진단명은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 적대적 반항 장애, 주요 우울 장애, 간헐적 폭발성 장애 등으로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했다.

이러한 정신병력은 사회와 격리된 공동생활을 하는 시설에서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공동생활을 하는 시설에서 정신질환자가 함께 있다는 것은 본인도 힘들지만 동료, 직원들 모두에게 힘든 상황을 초래한다.

이를 증명하듯 소년원 내 전체 징계자 중에서 정신질환 소년원생이 반수를 넘었다. 소년원 내 정신질환 징계자 현황(2016~2020년)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징계자 1001명 가운데 정신질환 징계자가 606명(60.6%)이다가 2018년 1272명 가운데 840명(66.0%), 2020년 926명 가운데 543명(58.6%)이었다.

소년원 내에서 소동을 일으켜 징계받은 이들 가운데 반 이상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얘기다. 정신질환 소년원생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전문가 자문단들도 의료소년원 증설과 전문 상담사 상주를 통한 치료와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소년보호과가 의뢰해 작성한 〈소년원생 재범 방지를 위한 소년원 교육과정 개선연구〉(2021) 인용]

심각한 청년 자살률
“자살은 10~30대 사망 원인 1위”

한국은 2003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한 이래 2017년을 제외하고 안타까운 1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3195명으로 전체 사망자 30만4948명의 4.3%다.

전 세계 주요 사망 원인 상위 10위 안에 자살은 포함되지 않으나 한국에서 자살은 다섯 번째다. 자살 과정에서도 치명적 수단[목맴(51.6%)]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의뢰해 작성한 용역 보고서 〈한국 절망사(絶望死) 연구〉 (2022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의 특성으로 청년은 정신과적 문제, 중장년은 경제적 문제, 노인은 신체질병 문제로 인한 자살이 타 연령보다 높다.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방송통신대 강상준 교수(사회복지 전공)는 “자살은 10~30대의 사망 원인 1순위, 40~50대에서는 사망 원인 2순위”라며 “사망 원인에서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대 41.1%, 20대 54.4%, 30대 39.4%, 40대 20.8%, 60대 4.7%”라고 했다.

전 세계 15~29세 청년층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은 네 번째 주요 원인이나 한국에서는 첫 번째가 자살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청소년과 청년들의 정신건강 혹은 심리적 문제가 심각하고 위태롭다는 이야기다.

다른 통계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의 2020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른 동기별 자살 현황을 살펴보았다. 안타깝게도 정신과적 문제로 인한 자살자가 4905명(38.4%)이었다. 경제생활 문제 3249명(25.4%), 육체적 질병 문제 2172명(17%), 가정 문제 891명(7%) 순이었다.

 

강력범죄 범죄자의 2.1%가 정신장애

기자는 2020년 범죄 발생 현황 자료인 〈대검찰청 범죄분석 2021〉을 입수해 분석했다. 한 해 동안 발생한 범행 161만2424건 중 범죄자에게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가 0.6%, 건수로 9058건이나 됐다. 이 가운데 강도, 방화, 살인 등 강력범죄(흉악)인 경우 범죄자의 2.1%가 정신장애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자의 정신상태를 성별로 나누면, 정신장애가 있는 남성(67.8%)이 여성(32.2%)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정신장애인 범죄의 발생 추이를 살펴보면 2014년 6301명에서 2016년 8343명→2019년 7818명→2020년 9058명 등으로 6년간 43.8%p가 늘었다. 같은 기간 정신장애인의 범죄 비율 역시 0.3%에서 0.6%로 두 배 증가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의 재범(再犯) 가능성은 어떨까.

정신장애인 재범자는 2014년 4142 명에서 2020년 6137명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6년간 48.2%p나 증가했다. 정신장애 재범자 비율도 2014년 64.7%에서 2020년 67.8%로 늘었다. 정신장애를 지닌 범죄자 3명 중 2명이 재범을 저지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기자는 법무부의 〈2021 범죄예방정책 통계분석〉 자료를 입수해 정신건강 상담·치료를 조건부로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고 기소유예한 사례가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2016년과 2017년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구체적으로는 2016년 11명에서 2017명 184명으로 늘어났다. 또 2018년 121명, 2019년 160명, 2020년 99명 등으로 2010년대 초반에 비해 처벌 대신 상담·치료를 권유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었다. 이를 문제유형별을 살펴보면, 정신질환이 96건(97.0%), 알코올 중독이 3건(3%) 등으로 대부분 정신질환인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 정신건강 상담·치료 조건부 기소유예 접수 사건을 사범에 따라 구분하면, 폭력사범이 35건(35.4%)으로 기타사범 39건(39.4%)에 이어 가장 많았다.

 

조현병 감호자 증가… 2014년 509명→2020년 575명

2020년 12월 31일 기준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 치료감호소에 수용 중인 감호자(監護者)를 병명(病名)에 따라 구분한 결과, 조현병이 575명(56.6%)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정신지체 84명(8.3%), 조울증 79명(7.8%) 순이었다.

최근 7년간(2014~2020년)의 병명별 수용 현황을 살펴보면, 조현병이 가장 많은 인원수와 비율을 차지할 뿐 아니라 매년 인원과 비율이 증가하고 있었다. 2014년 44.3%(509명)→2019년 53.7%(543명)→2020년 56.6%(575명)로 나타났다.

또 정신지체는 매년 7~9%, 조울증은 6~7%, 기타는 5~7%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망상 장애는 2014년 4.5%에서 2019년 8.4%로 증가했다가 2020년에는 5%대로 줄었다. 알코올 사용 장애는 2014년 9.9%에서 점차 감소하는 추세로 2019년과 2020년에 6% 수준을 보였다.

이와 함께 2014년부터 2021년까지 8년간 정신질환을 가진 교정시설 수형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인 것으로 확인됐다. 2021년 교정시설 수형자를 병명에 따라 구분한 결과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는 4869명(22.0%)으로 고혈압 7949명(35.9%)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당뇨(20.4%)보다 정신질환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충격적이다.

2021년 정신질환 수용자를 병명에 따라 나누어 살펴보면 전체 정신질환 수용자 4869명 가운데 비기질적 수면 장애(25.9%, 1265명)를 가진 정신질환 수용자가 가장 많았으며, 우울병 에피소드, 정동 장애 등을 포함한 기타 장애가 19.6%(954명), 양극성 정동 장애(14.2%, 693명), 조현병(8.5%, 413명) 순으로 확인되었다.

참고로 양극성 정동 장애는 ‘양극성 장애’라고 불리는데 일종의 조울증, 조울병으로 불린다. 기분이 들뜨는 조증(躁症)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의미에서 양극성 장애로 불린다. 법무부에 따르면 특히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가진 수용자가 2017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정신응급’ 신고 건수 2만6000여 건(2021)… 출동은 1268건

 

 자살, 폭력, 기타 정신과적 응급이 필요하고 급성 정신병 범주 등을 포함한,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정신과적 접근을 긴급히 필요로 하는 경우를 ‘정신응급’이라고 부른다.

자살 시도로 외상을 입어 수술이 필요한 양극성 장애 환자, 뇌전증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조현병 환자, 의식불명의 주취 환자 등이 그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 ‘정신응급’과 관련한 정신 이상을 신고한 사례는 얼마나 될까.

서울시 정신응급 통계(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2021)에 따르면 정신 이상 관련 신고 건수는 연간 2만6000여 건에 달했다.

평일 주간에 신고하는 경우는 25%에 불과하고 대개는 주말과 휴일 및 야간에 신고하는 경우가 75%나 됐다. 또 2021년 정신응급 대응 모니터링 결과, 연간 1268건(2020년 1038건)의 출동이 이뤄졌는데 이 중 경찰이 직접 요청한 사례가 74.6%(946건)로 대부분이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 상황을 보고 대개의 경우를 ‘정신응급’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신응급 발생 환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 2014년 1만2994명에서 2019년 1만5439명으로 5년 사이에 19%나 늘어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5년 서울 지역 종합병원 응급실 이용자 수 172만여 명 중 응급진료를 목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해 접수한 이는 7422명(전체 0.4%)이었다.

5년 후인 2019년 응급실 이용환자 178만여 명 중 응급진료를 목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한 이는 8219명(0.5%)이었다. 10.7%가 증가한 셈이다.

서울 지역 종합병원에 자해나 자살과 관련해 응급실을 이용한 환자 수가 2015년 5572명에서 2016년 5627명→2017년 5902명→2018년 6938명→2019년 7220명으로 계속 느는 추세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손지훈 교수는 “급성기 정신건강의학 병상이 절대 부족하고 입원 가능한 종합병원도 부족하다”며 “응급실을 운영하지 않는 일반 정신병원은 사실상 24시간 대응이 불가능한 곳”이라고 했다.

지난 4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세미나 〈중증 응급 정신의료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손지훈 교수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병철 이사는 “만성적인 ‘초(超)저수가(低酬價)’와 인력, 시설, 서비스 부족으로 정신건강의학 입원 치료의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조현병의 경우 급성기 치료에 많은 자원(3~5배)이 소모된다. 자원 소모에 따른 의료 수가 구분이 없으면 가장 힘든 환자를 가장 취약한 영역에서 감당할 수밖에 없다. 진료비 증가 억제 방향은 중증 응급환자 기피를 유도하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

급증하는 은둔형 외톨이
코로나19 이후 전 연령에서 고립·은둔 증가

‘은둔형 외톨이’ 인구도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 통계(2021년 6월 기준)를 활용해 추정해 보니 전국 은둔형 외톨이는 23만4788명, 비율로는 2.15%였다. 이를 성별로 나눠 추정하면 남성은 2.05%(11만7119명), 여성은 2.28%(11만8715명)였다.

연령으로 보면 18~24세가 1.97%(8만2785명), 25~34세가 2.25%(15만1156명)로 20~30대에 은둔형 외톨이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G’L 학교밖청소년연구소 관계자는 “18~24세 연령에서 코로나19 이후 은둔형 외톨이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또 2019년 이후 여성 청년의 발생률도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은둔형 외톨이의 대략적인 정의다.


[문제1] 귀하는 평소 얼마나 외출하십니까?

① 직장이나 학교로 평일은 매일 외출한다
② 직장이나 학교로 일주일에 3~4일 외출한다
③ 여가생활을 위해 자주 외출한다
④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끔 외출한다
⑤ 보통은 집에 있고, 자신의 취미생활만을 위해 외출한다
⑥ 보통은 집에 있고, 인근 편의점 등에 외출한다
⑦ 자기 방에서 나오지만, 집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⑧ 자기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문제2] (문1에서 ⑤, ⑥, ⑦, ⑧ 응답자만) 현재의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습니까?

① 6개월 미만
② 6개월 이상~1년 미만
③ 1년 이상~3년 미만
④ 3년 이상~5년 미만
⑤ 5년 이상~7년 미만
⑥ 7년 이상


[문제3] (문1에서 ⑤, ⑥, ⑦, ⑧ 응답자만) 현재의 상태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②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
③ 인간관계가 잘 되지 않아서
④ 장애가 있거나 몸이 불편해서
⑤ 임신이나 출산 때문에
⑥ 기타

이상의 문항에 대한 응답 중 [문제1]에서는 ⑤, ⑥, ⑦, ⑧ 응답자, [문제2]에서는 은둔기간이 6개월 이상자, [문제3]에서는 은둔 계기가 ④, ⑤가 아닌 경우를 ‘은둔형 외톨이’로 개념화하고 있다.


정부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 검토

손지훈 교수는 “퇴원 환자의 지역사회 출구 전략도 부재하다”며 “10년(2011~2020년) 사이 상급 종합병원 내 정신과 보호병동의 18%가 줄어들었다. 광주세브란스병원은 2014년, 청량리정신병원은 2018년, 성안드레아병원은 2022년 폐쇄되었고 경기도립정신병원과 용인정신병원은 보호병동이 축소되었다”고 말했다.

신림동·서현역 흉기 난동 등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법무부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하기로 했다.

사법입원제는 법원이 강제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의 대부분 주와 독일, 프랑스 등은 법원 심사를 거쳐 강제 입원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정부는 ‘치료명령제’를 운영하고 있다. 치료명령제는 주취, 마약, 정신질환 상태에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자를 법원이 형의 선고나 집행을 유예하면서 지역사회 내에서 치료받을 것을 명령하는 제도다. 지난 2016년 시행 첫해 16명으로 시작해 2021년 2월 현재 4824명에게 치료명령제가 집행되었다. 다만 치료명령 비용은 원칙적으로 환자(범죄자)가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비용을 못 내면 치료가 불가능하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사회 회장은 “정신질환 환자와 가족들이 느끼는 경제적 부담, 편견 등을 개인에게만 부담시켜선 곤란하다”며 긍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사법입원제가 본질과 먼 땜질 처방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입원제가 정신질환자를 집단혐오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미 강제입원 대상이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입원해 치료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09-11 줄짓는 교사 극단 선택, 野 더는 교권4법 발목 잡지 말라

극단 선택을 하는 교사가 줄짓는 상황에서도 교권 보호를 위한 입법은 야당(野黨)의 발목 잡기로 표류 중이다. 대전광역시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학부모 민원에 4년 동안 시달리다가 지난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것으로, 10일 공개된 기록은 교권 침해의 참담한 실상과 함께 교장·교육지원청 등의 무책임한 방관도 새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느 학부모는 학교로 찾아와 자녀 일탈을 지적한 교사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공개적 지도는 정신적 학대’라며,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그런데도 교장과 교감은 교사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다.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요청조차 무시했다. 조사기관마저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의견을 경찰에 제출했다. 그 교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어떠한 노력도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이라고 밝힌 배경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문턱부터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인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등 교권 회복을 위한 4법의 개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아동의 정신 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한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의 개정도 절박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학생의 교권 침해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게 한 교원지위법 개정안에 대해, 재력 있는 학부모의 소송 제기가 증가할 수 있다는 이유로 4법의 일괄 처리를 거부하고 있으나, 그럴 때가 아니다. 소송 증가 대책은 별도로 마련하더라도, 9월 정기국회 회기 내에 교권 4법과 아동복지법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14 경쟁체제 없애자는 철도 파업, 시대착오적 철밥통 투쟁

기어이 철도 파업이 강행됐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이 노사협상이 결렬됐다며 14일 오전 9시부터 4일간 한시적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고속철도(KTX), 새마을호 등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20∼60% 감축 운행키로 해 국민 불편과 수출입 화물 운송 차질이 우려된다. 당장 추석 연휴 전에 벌초 등을 위해 열차를 이용하려는 귀성객, 주말여행을 계획한 관광객, 서울 병원으로 가려는 지방 환자 등 40여만 명이 ‘운행 중지 예정’ 문자 메시지를 받고 큰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2019년 11월 이후 3년10개월 만이다. 노조 측은 공공 철도 확대, 4조2교대 전면 시행,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공공 철도 확대를 위해 서울역 기반 KTX와 수서역 기반 SRT(수서고속철도)의 통합 운행, 수서행 KTX 운행 허용 등을 주장하며 2차·3차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노조 측은 정부가 SRT를 KTX와 분리 운영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정부는 철도 민영화는 전혀 검토한 바가 없으며, 현 경쟁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안 한다는데, 노조 측은 민영화를 반대한다며 파업을 벌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억지다. 결국 SRT와 경쟁하기 싫다는 것일 뿐이다. SRT가 운행을 시작한 것은 2016년 12월로, 거의 7년이 됐다. 이제 와서 KTX·SRT 분리 운행을 하지 말라는 것은 명분도 없는 시대착오적 밥그릇 지키기에 불과하다.

문재인 전 정부를 거치며 코레일의 방만 운영과 부실화가 심각해졌고, 안전사고가 빈발했다. 경쟁 체제는 국민이 원할 뿐만 아니라 KTX 체질 개선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임금인상, 4조2교대 등은 노사 간 협상으로 풀면 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 파업은 정치 투쟁이나 반정부 투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철밥통을 지키겠다고 추석 연휴를 앞둔 시점에 국민의 발을 묶고 물류대란을 빚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국민 고통과 경제 차질이 없도록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노조 측의 운행 방해 등 불법 행위는 엄단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15 방만 철도노조 파업을 전면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철도노조가 14일부터 나흘간 파업을 시작하면서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KTX, 새마을호 등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20∼60% 감축해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40여만 명이 ‘운행 중지 예정’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수출입 화물 운송 등 산업계 물류도 차질을 빚었다. 일부러 주말에 파업을 해 추석 전에 열차를 이용하려는 귀성객, 주말여행객 등의 불편을 가중시켰다.

철도노조는 4조 2교대 전면 시행, 임금 인상, 공공 철도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서울역 기반 KTX와 수서역 기반 SRT를 분리 운행하는 것은 철도 민영화 수순이라며 이를 합치고 코레일의 수서발 KTX 운행도 허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철도 민영화는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밝히는데도 억지를 부린다. 더구나 SRT가 운행을 시작한 지 7년이 돼가는데 이제 와서 이를 파업의 이유로 내거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철도노조는 주기적으로 파업을 벌여 국민에게 큰 불편을 주고 코레일 경쟁력도 깎아내린 대표적인 공기업 노조다. 그런 노조가 SRT도 자신들처럼 만들라면서 파업을 한다. 2016년 SRT 출범 이후 KTX가 독점하던 고속철에 경쟁이 도입되면서 서비스 개선, 요금 차별화 등 편의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결국 SRT와 서비스 경쟁하기 싫고 편한 철밥통이 되고 싶다는 것이 이번 파업의 진짜 이유일 것이다.

이번 파업은 오히려 철도 경쟁 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SRT 없이 철도 단일 체제였다면 철도노조 파업으로 인한 국민 불편과 물류 피해가 훨씬 컸을 것이다. 경쟁 체제는 국민이 원할 뿐만 아니라 KTX 체질 개선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것이다.

코레일은 낙하산 사장이 이어지면서 방만 운영과 부실화가 심각해졌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1조2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낼 전망이라고 한다. 지난해 오봉역 사망, 영등포역 탈선 사고 등 근래에는 안전사고도 빈발했다. 그럼에도 노조는 자구 노력과 철도 안전 체계 구축에 동참하기는커녕 엉뚱한 요구 사항을 내걸고 2차, 3차 파업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불법 행위에 엄정히 대응하고, 국민 서비스를 높이는 철도 개혁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15 서울 유치원 교사 신규 임용 ‘0′명, 세계 최저 출생률 충격파

 서울교육청이 내년 신규 공립유치원 교사를 한 명도 뽑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의 2024년도 공립 유치원·초등학교 교사 신규 임용 계획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세계 최악 저출생 영향으로 유치원 원아 수가 급감하면서 문을 닫는 유치원이 속출해 교사를 새로 뽑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전은 1명, 광주 3명, 대구 4명만 뽑기로 하는 등 다른 지역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서울의 공립 유치원 신규 교사 선발은 2019년 229명이었는데 90명(2021년) → 42명(2022년) → 10명(2023년)으로 거의 수직 낙하해 왔다.

 

초등학교 신규 교사도 17개 시·도교육청을 합쳐 올해 3561명 뽑았는데 내년엔 404명이 줄어든 3157명을 선발한다. 교대생들 가운데는 최근의 교권 추락 논란까지 겹치면서 미래가 어둡다고 보고 재학 중 자퇴하고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10~20년 전 교사직이 선망의 직업이었는데 저출생이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다.

근본 이유는 출생률이 세계 최저인 0.78명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미래가 어둡다고 보고 결혼을 안 하고, 결혼한 부부도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 아이 낳기를 기피하거나 낳아도 하나가 고작이다. 곳곳에서 한탄이 나오지만 단기간에 초저출생 위기를 극복할 뾰족한 대책은 안 보인다.

장기적으로 출생률을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중요한 것이 중·단기적 적응 대책이다. 지금 유아교육학과, 교대 졸업생들이 임용 절벽의 고통을 겪는 것은 교수들 철밥통을 지켜주느라 필요한 학과·대학의 정원 감축을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년 뒤 또 한 번 심각한 출생아 급감의 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10년 사이 연간 출생아 숫자가 70만명에서 45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때 태어난 연령대가 아이를 낳을 세대가 되는 2030년부터는 아무리 부부당 출생아 수를 끌어올린다 해도 출생아 절대 숫자가 다시 한번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육만 아니라 사회 각 부문이 5년, 10년 뒤를 내다보면서 인구 급감의 충격에 대비한 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15 전교조 2.7배 교사노조… 국민 신뢰 관건은 탈정치 초심

교사노동조합연맹 가입자가 급증했다. 교사노조가 14일 밝힌 조합원 수는 13일 기준 11만6493명으로, 지난해 말 5만5708명에서 8개월 만에 109%인 6만785명이나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9월 기준 4만2900명 안팎으로 집계됐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2.7배다. 전교조 조합원은 크게 줄어드는 반면, 전교조 탈퇴 교사들이 설립한 노조의 조합원은 급증하는 현상으로 그 의미가 크다.

전교조 조합원은 2003년 9만4000명을 정점으로 감소해 왔다. 2021년엔 4만3756명으로, 4만5098명이던 교사노조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교원 노조 본연의 역할보다 정치적 투쟁과 이념 선동을 앞세우기 일쑤였기 때문일 것이다. 교실 안팎에서 ‘친북 반미(親北反美)’도 노골화해왔다. 그런 일탈에 반기를 든 교사들이 2016년 결성한 서울교사노조를 2017년 확대 개편한 것이 현행 교사노조다. 그때만 해도 조합원이 36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탈(脫)정치’ 기조 실천이 교사 다수 참여로 이어졌다.

지난 7월 18일 서울 서이초등 교사의 극단 선택으로 재확인된 교권 확립의 절박성도 교사노조 조합원 대폭 증가를 불렀으나, 그전부터 많은 교사가 전교조에는 등을 돌려온 셈이다. 20대 27.8%, 30대 38.2% 등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MZ 세대’가 교사노조 조합원의 66%에 이르는 배경도 달리 없다. 교사노조가 교육계는 물론 국민 전체의 신뢰도 지속해서 얻기 위한 관건은 ‘탈정치’ 초심의 일관성이다. 김용서 위원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활발한 소통과 집단지성의 힘으로 학교 및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친절한 노조, 현장 목소리를 대변해 교사 권익을 확보하고 교육 전문성을 위해 진력하는 노조를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취지를 벗어나는 일이 앞으로도 없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15 명분 없는 철도 파업과 대개혁 시급성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철도노조가 정치투쟁의 일환으로 프레임 전쟁에 나섰다. 철도노조가 파업의 이유로 공공철도 확대, 4조 2교대 전면 시행, 성실 교섭 등을 꼽으면서 노사 협상의 대상이 아닌 공공철도 확대로 민영화를 저지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검토한 바 없다고 하는데도 민영화 저지 투쟁을 벌이는 것은 파업의 불법성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번 파업의 의도는 일부 건설노조의 불법행위, 노조 간부 출신의 간첩 연루 의혹 및 대선 개입을 위한 허위 인터뷰 의혹 등 노조의 일탈이 밝혀지는 상황에서 노조가 지지 세력을 규합해 투쟁력을 재정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철 지난 민영화 프레임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불법성 파업으로 노조의 설 자리가 없어질 뿐이다.

철도는 노조가 멈출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철도는 국민의 발이고 물류의 혈이다. 철도 파업으로 국민이 고통을 받는다. 국민 고통의 대가로 노조가 경영권을 흔들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길 순 없다. 정당한 대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에는 철도 운영의 비효율이 보이고, 경쟁을 회피하고 공공의 이면에 안주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철도노조가 어려운 시기에 명분 없는 파업을 하는 것도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근로자의 파업권은 다른 권리에 우선해서 설정된 특권이다. 이 특권을 행사하는 데는 엄격한 의무가 따른다. 특권보다 의무를 먼저 지키는 게 공정한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노조와 정치적 연대를 도모하는 정권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외면하고 노조의 폭력과 불법파업을 용인해 온 측면이 있다. 힘없는 국민은 노조의 폭력 앞에 고개 숙였지만, 안하무인의 행태에 노조는 국민에게서 외면받는다. 일부 편향적 언론도 이를 인식해선지 고령층은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지지하고, 청년층은 노조 파업에 동조하는 것처럼 선택적 인터뷰를 보도했다.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편향적 언론도 불법파업을 명시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조가 민심을 읽지 못하고 동조 파업을 시도한다면 노조의 건전한 발전을 어렵게 만든다. 만약 동조 파업을 선동한다면 철도 파업의 의도가 경제의 악영향이 큰 운송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경제 불안을 가속화해 민심을 동요시키려는 의도로 의심받을 수 있다. 동조 파업 선동 행위는 단순한 파업이 아니라 국민을 위기에 빠뜨리고 국민경제를 파괴하려는 행위로 읽힌다.

민심은 원칙에 따른 강경한 대응을 원한다. 국민은 생활 속에서 노조의 특권으로 잇속만 채운 사람들을 알고 있다. 과거 허울 좋은 말에 속아 노조의 불법행위에 동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 속을 사람은 없다.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는 국민을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 취급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정부도 침묵하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이번 파업과 선동 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으로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과감한 철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노조가 특권 위에 군림하던 시대는 지났다. 노조도 국민이 외면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국내 경제 상황이 불투명해졌다. 노조는 성난 민심이 폭발하기 전에 경제 지키기에 앞장서기 바란다. 국민 모두 자신의 소임을 다할 때 경제는 발전한다.
문화일보

 
 

09.17 우상혁, 한국 육상 새 이정표... 다이아몬드리그 정상 등극


 

▲17일 미국 유진에서 열린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서 우승했다. /다이아몬드리그 SNS

 

두 번 모두 실패한 뒤 맞이한 3차 시기. 실외에선 한번도 넘지 못했던 높이였다. 이번에도 넘지 못하면 역전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상혁(27·용인시청)은 망설임없이 내달렸다. 큰 보폭으로 펄쩍펄쩍 뛰어가더니 배면뛰기(몸을 새우등처럼 뒤로 눕혀서 뛰는 기술)로 날아올랐다. 웬만한 농구 선수 키보다 더 높은 2m35를 훌쩍 뛰어넘었다. 우상혁은 내려오자마자 뒤를 돌아 바(bar)가 떨어지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포효했다. 한국 육상 사상 첫 다이아몬드리그 정상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우상혁은 17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3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남자 높이뛰기에서 2m35를 넘어 우승했다. 우상혁의 개인 실외 최고 기록이다. 한국 선수 최초로 파이널에 진출한 우상혁은 정상에 오르며 우승 상금 3만 달러(약 4000만원)도 챙겼다.

 

다이아몬드리그는 세계육상연맹이 매년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 10여 명을 초청해 진행하는 대회다. 1년에 총 13개에서 쌓인 랭킹 포인트로 순위가 매겨지고, 상위 6명만이 ‘왕중왕전’ 격인 14번째 대회 파이널 진출권을 얻는다. 올해 4위로 파이널에 오른 우상혁은 우승까지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챔피언이자 현역 최강자인 무타즈 에사 바르심(카타르)과 올해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장마르토 탐베리(이탈리아)가 출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다이아몬드리그 개별 대회에서 3번이나 우승한 주본 해리슨(미국) 등 최정상급 선수 6명이 출전했다.

우상혁은 2m15, 2m20, 2m25, 2m29, 2m33을 모두 1차 시기에 넘었다. 그리고 2m35에서 두 번 연속 실패했지만, 마지막 시기에서 바를 건드리면서 살짝 넘는 데 성공했다. 해리슨 등은 2m33을 3차 시기에서 넘지 못하면서, 우상혁이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다이아몬드 리그 정상에 오른 우상혁의 다음 눈은 아시안게임으로 향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우상혁은 항저우 대회에서 금메달을 노린다. 만약 우상혁이 금메달을 따낸다면 이진택(1998년 방콕·2002년 부산 우승) 이후 21년 만이다.

조선일보 이영빈 기자

 

09.18 디지털 시대, 노인은 ‘버그’가 아니다

다수가 온라인 뱅킹 한다고? 지금 동네 은행 지점 가보라… 정보화 약자 곳곳 줄 서있다
키오스크·현금 없는 버스·무인 주차장·추석 기차예매… 구겨진 자존감과 열등감…
선진국은 디지털 속도 조절중… 우리가 가장 심하다

 2023년 4월 19일 대구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현장체험활동을 나온 대구내일학교 늦깎이 학습자들이 무인결제기(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운 뒤 직접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뉴스1

 

정년퇴직 이후 집 근처 동네에서 볼일을 볼 때가 많아졌다. 어느 날 은행 한 곳을 들르게 되었는데 객장(客場) 풍경이 꽤 낯설었다. ‘금융 정보화’ 시대를 맞아 대다수 국민이 온라인 거래 방식을 이용하는 줄 알던 터였다.

점포 개수의 급감과 창구 업무의 소멸 또한 당연한 대세라 믿던 터였다. 그런 나에게 아침부터 수많은 고객들로 북적거리는 은행 내부는 마치 딴 세상 같았다. 서민 밀집 지역의 여느 평범하고도 번라(煩羅)한 시장통에 위치한 그곳은 각종 ‘정보화 약자’로 그득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정보화 기기 이용에 서툴러 은행 직원들의 ‘자비로운’ 과잉 친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노인이 생각보다 많았다. 순번 대기표 뽑는 일에서부터 경비원의 안내를 받는 노인도 적지 않았다. 노인들은 당당한 금융 고객으로서가 아니라, 각종 정보 시스템이나 자동화 프로그램에 과부하를 초래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일종의 ‘버그(bug)’ 같은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키오스크 매장에서 기계 주문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식당 테이블에 설치된 태블릿 메뉴판 오더 시스템 역시 어색해하는 노인들이 많다. 관리자 하나 없는 최첨단 전자동 주차장에서 진땀을 뺐다는 고령 운전자 이야기도 있다. ‘현금 없는’ 버스를 탔다가 다른 승객의 카드 도움을 받았다는 사연의 주인공도 노인이었다. 이번 추석의 경우 코레일 승차권은 전부 비대면 예매 방식이었는데, 노인들 사이에 “우리보고 어쩌라고” 하는 볼멘소리가 충분히 튀어나올 만했다.

 

물론 노인이라고 모두 정보화 취약자는 아니다. 그들 가운데도 IT 능력자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무관하게 기존 아날로그적 삶을 연장하며 살아가는 상류사회 부자 노인들도 보란 듯 존재한다. 독립형 부스, 호화 인테리어, 퍼스널 컨설팅 등으로 대변되는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 서비스가 그 보기다. 결국 문제는 한편으로는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기가 귀찮거나 벅차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사회를 외면할 만한 재력도 갖추지 못한, 보통 노인들의 사정이다.

 

젊은 세대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이라면 노인 세대는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이다. 말하자면 살아생전 재(再)사회화가 싫든 좋든 불가피해진 세대다. 이들은 디지털 약자로 탄생한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그렇게 분류될 따름이다. 그런 만큼 생활방식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모드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수고와 고통은 각별히 이해되고 배려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구겨진 자존심과 열등의식은 결코 스스로 책임질 사안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심리적 불편함이 구조적 불이익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도록 나서는 일은 사회 공동체의 의무이자 도리다.

선진국들은 디지털 혁명에 관련하여 나름 속도 조절을 한다. 현찰 거래에 미련을 갖는 나라도 있고, 컴퓨터 조기 교육을 지양하는 나라도 있으며, 종이 신문을 계속 가까이하는 나라도 있고, 도어록 대신 열쇠 꾸러미를 선호하는 나라도 있다. 특히 노인 문제와 관련하여 이른바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 개념을 널리 받아들인다. 자신이 살던 집이나 동네에서 늙어가는 것이 최상의 노인 복지라는 판단에서다. 사실 노인들이 가게나 시장, 은행 등을 찾아 나서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그립고 스몰 토크(small talk)가 하고 싶어서이다. 이는 ‘디지털 세상에서 늙어 가기’(aging in digital)를 사실상 강요하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사뭇 기대하기 힘든 사회적 가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대한민국 초거대 AI 도약’ 회의를 주재하면서 ‘전 국민 인공지능 일상화’ 시대를 약속했다. 그런데 이처럼 나라 전체가 정보화 강국을 향해 ‘앞으로 돌격’하는 모양새가 반드시 바람직하기만 할까? 아무리 정보화 시대를 역행하기 어려워도 말이다. IT 혁명이란 본질적으로 자본과 권력이 주연(主演)인 공급자 중심의 발상이다. 농업혁명을 농민이 선도하지 않았고, 산업혁명을 노동자들이 주도하지 않았듯 말이다. 노인 세대의 디지털 지체가 엄존하는 현실 앞에서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디지털 혁명인가를 국가적 차원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가면 어떨까. 게다가 스마트 문명의 종착지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조선일보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09.18 특허 받은건 사실이었다..."특허받은 로또 예측" 그 업체의 민낯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 처리 33% 늘어
“지난주에만 2등 17명 당첨” 소비자 유인
특허 업체 찾아가 보니 다른 이름 간판
특허청 “로또 당첨 예측은 불가능”

만약 일주일 뒤를 알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된다면 사람들은 로또복권부터 살 테다. 오는 23일에 추첨하는 1086회차의 당첨 번호 6개를 미리 보고 1, 2등에 적중하면 몇백억원을 번다.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는 회사들이 있다. 다음번 로또 당첨 번호를 수학적으로 계산했다고 주장한다. 특허청 특허를 앞세운 솔깃한 제안에 수십만~수백만원을 내고 예상번호를 받는다.

 

‘로또 예측 기술’ 내걸고 현혹

피해가 속출한다. 한국소비자원에서 올해 들어 8월까지 처리한 로또 예측 피해 구제 사례가 52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91건)보다 33% 늘었다. 지난달 29일 충북 음성의 소비자원에서 만난 관계자는 “이 회사들은 먼저 ARS 전화로 마케팅한 뒤 관심을 보이면 다시 전화를 걸어 본격적으로 끌어들인다”고 귀띔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로또 예상 번호를 알려준단다. 안내대로 몇 개 번호를 누르자 통화가 끝났다. 1시간 47분 뒤 한 여성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로또 번호 신청자가 많아 전화가 늦었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19만9000원을 내면 20개월 동안 2등과 3등 당첨을 보장한다”며 “특허청에서 특허를 받은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2, 3등에 당첨이 안 되면 전액 환불해 준다고 밝혔다. 그는 “4, 5등 같은 잔 등수는 말고 지난주만 2등 17명, 3등 132명 당첨됐다”는 놀라운 얘기를 했다.

 

통화가 끝나자 그는 이○○ 수석팀장이라고 적힌 명함 사진과 회사 사이트 주소를 보냈다.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첫 화면에 특허청 특허를 부각한 배너가 뜬다. 거기에 적힌 정보를 검색해보니 진짜로 ‘로또 당첨예상번호…’라는 특허가 나온다. 특허공개전문의 ‘발명의 효과’ 항목에 “당첨확률이 높은 로또 당첨예상번호 서비스가 가능한 효과가 있다”고 적었다.

 

전화번호는 서울, 주소지는 대전

로또 번호를 맞히는 게 가능할까. 지난 13일 오후 주소지인 대전의 빌딩에 가보니 빼곡한 간판과 층별 안내 어디에도 회사 이름이 안 보인다. 해당 호수엔 전혀 다른 이름의 간판이 붙어있다. 유리문 너머로 보니 집기가 거의 없다. 안에 있던 사람에게 “로또 복권 서비스를 문의하러 왔다”고 하니 다른 층의 회의실로 안내했다. 로또 복권 예측 시스템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빈 테이블만 있다. 천장에는 CCTV로 보이는 장치가 설치돼 있다.

회사 관계자는 “아까 사진을 찍던데 전부 지우라”고 요구했다. 사무실 외경과 층별 안내 게시물을 찍었을 뿐이라고 설명했으나 “전부 지워달라”고 반복했다. 잠시 법률적인 부분을 생각해봤으나, 회사의 답변을 들어야 하겠기에 보는 앞에서 삭제했다.

 

-여기에 이○○ 팀장이 근무하는가.
“모르는 사람이다. (잠시 휴대전화에서 뭔가를 찾더니) 예전에 근무했던 사람인데 그만뒀다. 마케팅할 때 실명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긴 대전인데 가입 전화는 서울 지역 번호로 왔다.
“다 그렇게 한다. 마케팅 회사가 서울에 있다.”

 

-로또 당첨 번호 예측이 가능한가.
“우리는 특허청에서 공식적으로 특허를 받은 기술이다.”

 

-당첨 번호 예측 시스템과 번호를 추출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나.
“곤란하다.”

 

-사기업자들 때문에 문제가 많은데 예측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면 이 업체는 다르다는 걸 입증하는 기회가 되지 않나.
“안 된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로또를 불신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당신이 명함을 줬지만, 진짜 중앙일보 기자인지 어떻게 믿나.”

 

-(얼굴 사진이 함께 게재된 칼럼을 인터넷에서 찾아 보여주며) 이 기사를 보라. 얼굴이 똑같지 않나.
“그래도 보여줄 수 없다.”

 

-지금까지 3등 이상 당첨된 횟수가 어느 정도 되나.
“알려줄 수 없다.”

 

-로또 회사들이 가입할 땐 당첨이 안 되면 전액 환불해준다고 하고선 막상 돌려달라면 연락을 끊는 등 피해가 크다.
“우리는 그런 적 없다. 전부 환불해줬다.”

 

로또 예상번호를 추출하는 과정도, 당첨 실적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로또 번호를 맞히는 기술이 있다면 자신들이 직접 복권을 사도 큰돈을 벌 텐데 사무실은 휑했다.

 

당첨과 무관한 임의번호만 추출

그렇다면 특허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정부대전청사에 있는 특허청을 찾아갔다. 특허청 관계자는 “로또 당첨 확률을 높이는 기술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어떻게 특허를 받았을까. 관련 부서에 확인하더니 “기술의 진보성 등으로 특허가 결정된 사안일 뿐 당첨 확률을 높인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특허는 특허청에서 지난 6월부터 무효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회사도 알고 있느냐고 묻자 “당연하다”고 했다. 특허청의 무효 청구를 알면서도 계속 특허를 앞세워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허청에 따르면 로또와 관련한 특허는 여러 건 출원됐다. 그러나 ‘판매 시스템’ ‘복권 대행’ 등 당첨 확률과 무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출현 가능성이 높은 당첨예상번호 추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허를 거절하거나 무효 절차를 밟는다.

 

지난해 4월 특허심판원이 무효로 심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정문에는 ‘복권 당첨 결과는 회차 간에 독립적으로 시행되는 독립 사건으로, 이전 복권 당첨 결과는 다음 복권 당첨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기술상식’이라고 판단했다. 당첨 예상 번호에 대해 ‘당첨 가능성과는 무관한 임의의 번호를 추출할 수 있을 뿐’이라고 못 박았다. 로또복권의 당첨확률을 높인다는 주장을 검증한 학계 연구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입증됐다. (‘로또복권의 당첨번호에 대한 무작위성 검정’ 임수열·백장선)

 

“로또 안 맞아 환불 요구하니 욕해”

그런데도 피해는 이어진다. 올해 들어 1372 소비자상담센터로 접수된 사례만 3600건을 넘어섰다. 30대 회사원 박모씨는 “당첨 번호를 보내준다는 ‘로또○○’ 회사에 가입했는데 몇 달 동안 당첨이 안 돼 환불을 요구했더니 욕을 하더라”고 말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복잡한 로또 예상 번호 계산 수식을 그럴듯하게 올려놨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최우성 사무국장은 “사업자 대부분이 과거 당첨번호를 분석하고 조합하는 단순한 시스템을 이용할 뿐이며 당첨되지 않으면 100% 환불해준다고 현혹한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 공공기관을 사칭하면서 피해 소비자에게 접근해 추가 피해를 유발한다”고 했다.

 

다른 로또 업체를 먹잇감 삼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해킹 등으로 빼낸 우리 고객 정보로 연락해 환불을 유도한 뒤 더 비싼 서비스에 가입시켜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걸려온 가입 유도 전화 내용을 검토한 전문가들은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소비자원 “사기죄로 처벌 가능”

변웅재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은 “로또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 거래하는 경우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에 규정된 계속거래업자의 금지행위 위반에 해당한다”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하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로또복권에 여러 차례 당첨됐다며 TV에 나왔던 인사가 100만원을 낸 유료회원에게 당첨 예상 번호를 보내주는 식으로 고객을 유치했다가 법원에서 징역 1년 8월형을 선고받았다. 가입비만 받고 폐업해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변 위원장은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준다는 서비스에 속아 피해를 보는 사람이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신고를 당부했다.

 

“특허 받았다고 효과 우수한 것 아니다”

▲안철균 대표변리사

 

로또 관련 특허가 결정된 것에 대해 안철균 특허법인 그루 대표변리사(사진)는 17일 “특허를 받았다는 사실이 곧 뛰어난 효과를 가진 기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로또 관련 특허는 “미래에 발생할 일에 대한 확률의 문제라 실제 효과를 검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왜 이런 특허가 심사를 통과하나.

“우리나라 특허법상 중요한 것은 이전 발명과 동일한지를 보는 신규성, 이전 발명부터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진보성, 그리고 산업상 이용 가능성 여부다. 출원된 발명 이전에 공개된 선행 특허나 논문 자료를 검색해 신규성과 진보성을 부정하기 어려우면 특허결정을 한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 안 따지나.

“출원 발명의 효과가 실제 발현되는지를 심사 과정에서 확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사 과정에서 발명을 실제 재현해서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허가 효과를 입증하는 건 아닌가.

“특허를 받았다는 사실은 심사관이 유사한 선행기술 자료를 못 발견했다는 뜻이지, 효과가 우수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비자는 이런 점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중앙일보 강주안 논설위원

 

09.22 민노총 노숙 시위까지 허용한 법원, 시위 자유만 우선인가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25년 불법파견 방조 윤석열 정권 퇴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신명희)가 민노총 금속노조의 국회 앞 1박 2일 노숙 집회를 허용했다. 노숙 집회를 금지한 경찰 처분을 멈춰달라는 금속노조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이 노숙 집회를 허용한 것은 처음이다. 민노총 건설노조원 5000여 명이 서울 광화문 도로를 점거하고 불법 노숙 집회를 한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당시 광화문 주변엔 쓰레기 천지였고, 조합원들은 노상 방뇨까지 했다. 그렇게 될 우려가 큰 노숙 집회를 법원이 아예 허용해버린 것이다.

 

법원은 “전면 금지하면 집단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노숙 집회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정작 금속노조는 비가 내리자 노숙 집회를 취소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노숙 집회를 법원이 허가한 것이다.

 

우리처럼 집단 시위가 일상화된 나라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집회·시위가 신고제여서 주요 도로 등 일부 지역만 빼고 신고하면 경찰이 제어할 방법도 없다. 도심 대로를 막고 하는 집회·시위가 일상이 돼 시민들이 겪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집회·시위 자유가 아무리 기본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평온한 일상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권리다. 집회 시위의 자유만 우선이고 다른 사람의 일상은 그 때문에 함부로 짓밟혀도 되나.

더구나 지금은 미디어 등을 활용해 얼마든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민노총 등은 시민들에게 일부러 불편을 줘 주목을 끌려는 방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법원이 이런 시위 방식을 제어하지 않고 도리어 봐준다면 불편을 당하는 국민은 어디에 호소해야 하나. 이번에도 법원은 금속노조 노숙 집회를 허용하면서 “편도 4개 차로 중 3개 차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차선 4개 중 3개를 막고 시위를 하는데 심각한 교통 불편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은 앞으로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평일 출퇴근 시간대 집회·시위에 대해선 제한·금지 통고를 적극으로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법을 개정해야 하거나 판사들 인식이 달라져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요원한 문제다.

조선일보 사설

 

09.22 천하제일 횡령대회, 경남銀 1위

▲서울 강남구 경남은행 강남지점 모습./뉴스1

 

“천하제일 횡령대회, 신기록 경신!”

20일 경남은행의 부동산 투자 담당 직원 이모(50)씨가 13년에 걸쳐 은행 돈 2988억원을 횡령했다는 금융감독원 발표가 나오자, 네티즌들이 재빨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횡령액 순위표도 함께였다. ‘새로운 우승자’인 경남은행 밑으로 작년 2215억원대 횡령이 일어난 오스템임플란트, 우리은행(707억원), 계양전기(246억원) 등 기라성 같은 명단이 주르륵 달렸다. 순위표 순서는 진위 확인이 필요하지만, 경남은행 횡령 금액이 금융권 사상 최대라는 것만은 사실이다.

경남은행의 작년 당기 순이익이 2790억원이다. 직원 한 명이 회사가 1년에 벌어들이는 금액 이상의 회삿돈을 훔친 것이다. 횡령은 77차례 일어났다. 평균적으로 2개월에 한 번씩, 한 번에 약 39억원어치를 빼돌린 셈이다. ‘곶감 빼먹듯’이라는 표현보다는, 아예 곳간을 거덜냈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이씨는 이 돈으로 부동산, 주식을 사거나 자녀 유학비 등에 보태 쓴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은행은 자산이 50조원에 이르는 회사다. 지방은행 중에선 부산·대구은행에 이어 3위다. 이런 규모의 회사인데도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부 통제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이씨는 투자금융부에서 15년간 일했다. 경남은행보다 훨씬 작은 금융사라도, 이런 경우 비위 발생 우려 때문에 순환 인사를 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방치했고, 결과적으로 그는 근무 기간 대부분을 횡령하며 보냈다.

일이 터지자 경남은행은 “대체할 인력이 없었다”며 항변했다. 그러나 금융업계 사람들은 이 핑계를 듣고 콧방귀를 뀌며 입꼬리를 올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돈을 들이면 대체 인력은 얼마든지 뽑는다. 의지의 문제”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경남은행 회사 차원에서 관여한 부분이 없는지 금융 당국이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변명도 그럴듯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남은행은 횡령 사실을 먼저 파악하지도 못했다. 은행은 지난 6월 검찰이 이씨의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금감원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자 금감원은 이를 수상하게 여겨 “이씨에 대해 감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이씨의 횡령 혐의가 포착됐고, 이후 금감원이 직접 검사에 나서 횡령의 전모가 밝혀진 것이다. 검찰의 수사와 금감원의 지시가 없었다면 이씨는 지금까지도 ‘횡령 중’이었을 수 있다.

 

네티즌들은 ‘천하제일 횡령대회’ 순위표를 업데이트하며 “경남은행 대단하다” “레전드(전설)를 찍었다”는 반어(反語)적인 댓글을 달았다. 긴 웃음 표시(‘ㅋㅋㅋㅋ’)와 함께였다. 은행에서 천문학적인 돈이 쉽게 새는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오히려 가벼운 헛웃음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웃음 속에 담긴 실망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긴 고객들이 횡령 소식에 느낄 자괴감을, 경남은행은 뼈저리게 돌아다봐야 한다.

조선일보 권순완 기자

 

09-22 출퇴근 때 도로 시위 금지 立法 타당성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지난 19일 서울행정법원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심야집회를 허용하는 판결을 했다. 지난 5월, 법원이 민노총 건설노조의 야간행진을 허용한 데 이어 이번에는 야간집회까지 허용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집회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가치에 부합하는 합당한 판단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헌법 제21조가 규정한 집회의 자유가 우리 헌법상 최상의 가치인지는 검토해 봐야 한다. 헌법 제10조에서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도 국가에 부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집회와 시위 등으로 고통받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법 제도가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대통령실에 보고된 제3차 국민참여토론 결과에서도 참여자 18만2704명 가운데 71%가 국민 생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집회·시위는 제한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한다. 이는 국가가 법 제도를 통해 국민에게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는 집회·시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법원은 이번에 민노총이 1박2일 노숙 농성을 하더라도 심각한 교통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인되지 않았고,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는 집회·시위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집회를 허용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숙 집회를 허가받은 민노총은 집회 허용 시간 이전인 20일 낮 12시부터 의사당대로 편도 4차로 중 3개 차로를 막고 무대 설치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날 노숙 집회를 날씨 등의 이유로 취소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는 집회·시위가 심각한 교통 불편을 초래한다는 우려를 경찰이 입증하지 못하는 한 어디에서든 노숙집회가 가능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노조가 국민의 행복추구권 등을 볼모로 잡고 의도적으로 집회·시위를 해도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정부에서는 국민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평온, 건강권 등을 보장하고 공공질서 유지를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심야 시간대의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국무총리실과 경찰청이 21일 발표한 ‘집회·시위 문화 개선 방안’이 그것이다.

현행법상 노숙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 규정으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5조와 제10조를 들 수 있다. 제5조는 금지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해 규정하고 있으며, 제10조에서는 시위의 금지 시간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2014년에, 야간시위를 제한할 필요성은 크지만 이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중하다는 이유를 들어 제10조에 대한 한정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제10조의 경우에는 문구를 개정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즉,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문구 대신에 ‘출퇴근 시간에 주요 도로를 점거’로 대체하고 이에 해당하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면 이 대체 규정을 제5조 제1항 3호에 신설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법률의 규정을 너무 구체적으로 만드는 경우 법을 적용할 때 유연성이 떨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명확성의 원칙에는 부합하는 만큼 법 적용상의 혼란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일보

 

09.23 이발사 아들이 꿈을 이룰 골든타임

욕망 통제한 文정부 부동산 정책
은평구 혁신파크 잃어버린 10년
결국 아들은 서울 떠나 원주로
우리에겐 허비할 시간이 없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 부지. 서울시가 이곳에 주거와 일자리, 문화시설을 갖춘 융복합도시를 건설할 예정이다. /고운호 기자

 

1년 전 이맘때 아들이 가출을 했었다. 작년 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못 하고 있는 아들에게 남편이, “언제까지 집에서 놀 거냐, 앞으로 뭘 할 건지 계획을 내놔봐라”고 채근했다가 사달이 났다.

 

여덟 살에 내 품에 온 후로 한 번도 나를 힘들게 한 적 없는 아들이었다. 이전 칼럼에서 쓴 적 있듯이(<출산 장려 홍보 강사가 되고 싶은 이유>) 아들은 살면서 처음으로 생긴, 나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나는 아들을 키우며 행복할 자격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졌다. 아들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랬는데 작년에 집을 나가 연락을 안 받는 동안, 그 전에 십여 년간 나를 기쁘게만 해줬던 값을 톡톡히 치르는구나 싶도록 마음이 썩어 문드러졌다.

 

두 달을 밖에서 버틴 아들을 불러내 만난 자리에서 아빠와 화해하고 집에 오라고 말하는데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안 그래도 미래가 두렵고 막막했을 텐데 부모까지 미워하느라 지쳤을 아들이 너무 안쓰러워서 울었다.

 

아들은 집 나가 있는 동안 이발사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프리미엄 바버숍에 견습생으로 들어갈 비용을 줄 수 있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돈을 줄 테니 그 대신 아빠와 대화하라고 했고, 며칠 후 두 남자가 회담을 했고, 아들의 3개월 가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6개월 견습 과정을 마치고 이발사 면허를 딴 아들은 서울에서 취업 자리를 못 구해 원주로 갔다. 원주에 있는 숍에서 즐겁게 일하면서 “머리 자르는 일 너무 재밌어!”라고 카톡 보내주는 우리 아들은 집 가까운 데 일자리를 찾을 순 없었을까.

 

내가 사는 은평구 녹번동에는 서울혁신파크라는 곳이 있다. 과거 국립보건원이 지방으로 이전할 때 서울시가 사들인 땅에 당시 오세훈 시장이 서울 서북권 랜드마크 고층 복합 센터를 짓고 지역 경제를 살릴 기업을 유치할 계획을 세웠으나 후임 박원순 시장이 이 역세권 대규모 부지를 사회적 기업과 시민 단체들이 상주하는 저밀도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은평구는 서울 다른 지역보다 기업체가 적고 일자리가 부족한 곳이라 주민들의 개발 욕구가 강하다. 2021년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 후보가 다시 혁신파크에 뉴미디어, 바이오 산업 특화 랜드마크 건물과 산업 문화 주거 복합 시설을 조성한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은평구 전 지역에서 선거 승리했다. 박원순의 10년이 아니었으면 우리 아들은 오늘날 집 근처에서 프리미엄 바버숍에 취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경제는 보수 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했지만 은평구 혁신파크의 정체된 10년은 그건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한다. 당연한 욕망을 통제하는 부동산 정책을 고집한 끝에 서민들이 영원히 서울 안에 집을 살 수 없게 만든 정권,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살게 될 미래 세대에게 국가부채 1천조원까지 떠넘긴 정권, 그것도 모자라 집값 소득 분배 고용 통계를 조작한 정권의 대통령이 “조작된 신화” 운운을 입에 올린 것부터가 양심과 염치의 실종이다.

사드 반대 집회에서 노랑색 가발을 쓰고 “전자파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싫어” 노래하며 춤 췄던 우리 동네 국회의원조차도 플래카드를 걸고 혁신파크 재구성 홍보에 나섰을 정도로 은평구민들의 개발 욕구는 절실하다. 절실한 구민 중에는 나도 있다. 내년 총선 후 대통령 임기 3년은 우리 아들이 언젠가 자기 바버샵을 열고 싶다는 꿈을 이룰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혁신파크의 잃어버린 10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허비할 시간이 없다.

조선일보 오진영 작가·번역가

 

09.23 한국 1호 金 주인공은 누가 될까

오늘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

‘큰 연꽃[大蓮花]’으로 불리는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 앞은 22일 분주했다. 개회식 준비를 위해 150㎝ 높이 담벽을 설치하고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아시안게임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적잖은 시민들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주변에 모여 이 독특한 건축물을 휴대전화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개회식 예행 연습을 위해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버스에서 내려 일사불란하게 경기장으로 향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23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16일간 열전에 돌입한다. 역대 최다 1140명 선수단을 파견한 한국 목표는 금메달 50개 이상.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 49개를 땄다. 그 장도(壯途)를 향한 첫걸음은 개막 다음 날인 24일이다. 시작이 반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이날 한국 금메달 유망주들이 대거 출동한다.

▲그래픽=양인성

 

첫 금빛 낭보를 전할 주인공은 근대 5종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근대 5종 여자 대표팀은 이미 지난 20일 펜싱을 시작으로 결전에 들어갔다. 근대 5종은 선수 한 명이 펜싱과 수영, 승마, 레이저 런(육상·사격 복합 경기)을 모두 치르는데 대미를 장식하는 레이저 런이 24일 오후 1시(한국 시각)부터 펼쳐진다. 근대 5종은 개인전과 단체전이 따로 열리지 않고 국가당 최대 4명이 출전하고, 이 중 상위 3명 성적으로 단체전 순위를 가린다. 한국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개인전 은·동메달을 따낸 김세희(28)·김선우(27)에 작년 세계선수권 준우승 멤버 신예 성승민(20)·장하은(19)이 가세한 단체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 개인전까지 따낸다면 첫 2관왕이 탄생할 수 있다.

근대 5종에 이어 다음 주자는 태권도 품새 종목. 품새는 겨루기와 달리 태권도 동작 정확성과 표현력을 보는 경기다. 직전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 품새 개인전에 나선 강민성(24)이 대회 첫 금메달 영광을 안았다. 오후 3시부터 열리는 태권도 남녀 품새 개인전엔 강완진(25)과 차예은(22)이 출전한다. 자카르타-팔렘방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강완진이 첫 개인전 우승을 노린다.

태권도까지 순항하면 다시 근대 5종 남자 선수들이 기세를 이어받아야 한다. 도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전웅태(28)가 이끄는 남자 근대 5종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 싹쓸이에 나선다. 전웅태와 이지훈(28), 서창완(26), 정진화(34)가 속한 한국 대표팀은 오후 6시 최종 순위를 가릴 레이저 런을 시작한다.

‘골든 데이’ 폭죽이 계속 터질지는 저녁 경기들에 달려 있다. 자카르타·팔렘방에서 금 4·은 6·동 3으로 준수한 성적을 거둔 유도는 첫날 오후 5~7시 66kg급에선 안바울(29)이 아시안게임 2연패(連覇)에 도전한다. 안바울은 직전 대회 결승에선 마루야마 호시로(일본)를 시원한 한판승으로 꺾고 정상에 섰다. 지난 5월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딴 60kg급 이하림(26)도 다크호스다.

한국 수영의 자랑인 황선우(20)는 오후 9시 26분 남자 자유형 100m 결선에서 중국 홈 팬들 응원을 등에 업은 판잔러(19)와 맞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항저우 근교 도시로, 이번 대회에서 축구와 드래곤보트가 열리는 원저우 출신인 판잔러는 지난 5월 47초22로 황선우가 보유한 아시아 기록(47초56)을 깨며 항저우에서 치열한 라이벌전을 예고했다.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2002년 남현희 이후 20년 만에 여자 에페 정상에 선 송세라(30)는 이날 금빛 행진 피날레를 장식할 후보다. 여자 에페 결승은 오후 9시 45분 막을 올린다.

전체 대회 첫 금메달은 사격(여자공기소총 10m 단체전)이나 우슈에서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이 강세인 종목들이다.

그래픽=김하경

조선일보 항저우=장민석 기자 항저우=박강현 기자 

 

09.26 한 재일동포 작가가 말하는 ‘내가 책을 쓴 이유’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19일 도쿄(東京)도 마치다(町田)시,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주스 한 잔을 쭉 들이키더니 일본어로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재일동포 작가 박경남씨다. 그를 만나게 된 건 100년 전 일어났던 간토(關東)대지진 때문이었다. 1992년 그가 내놓은 『두둥실 달이 떠오르면』엔 당시 조선인 300여 명을 구한 쓰루미(鶴見) 경찰서장 오카와 쓰네키치(大川常吉·1877~1940)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괴담에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무참히 살해당한 비극. 그 속에 존재했던 오카와 서장의 이야기를 그는 어떤 연유로 책에 담았을까.

 

▲재일동포 2세로 일본에서 에세이 책을 내고 학교에서 인권 강연을 이어 가고 있는 박경남씨. [사진 박경남]

 

“저는 돗토리(鳥取)현에서 태어났어요. 학창 시절, 할아버지가 대지진 당시 도쿄에 갔다가 살해당할 뻔한 이야기를 들은 뒤론 마음속에 공포가 움텄어요. ‘만약 이런 대재난이 또 일어나면 내 친구들, 이웃들은 나를 구해줄까’ 그런 생각이요. 일본 속 자이니치의 이야기, 조선반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40대가 되고서야 글 쓰는 일을 시작했어요. 우연히 오카와 서장 이야기를 들었고, 희망을 품게 됐어요.” 어렵사리 만난 오카와 서장의 아들은 당시 자료들을 그에게 보여줬고, 서장의 이야기는 그렇게 책에 담겼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책을 본 한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오카와 서장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연락을 해왔다. 서장의 아들은 고령이라 동행하지 못했고 대신 손자 오카와 유타카(大川 豊)가 그와 1995년의 어느 날 한국을 찾았다.

 

“강연 뒤 손자분 인사 차례가 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조부가 그렇게 칭찬받을만한 일을 한 걸까 생각했습니다. 조부가 한 일은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왜 조부의 이야기가 미담이 되고, 책에 실리게 된 걸까요. 당시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너무 심한 짓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조차도 칭찬받게 된 겁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밖에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오카와 서장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오히려 조선인 학살 사실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고요.” 그는 이 이야기를 또다시 책에 담아 알렸다.

 

도쿄에서 간토대지진 100주년 행사가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지난 100년이 그러했듯, 불과 한 달 만에 무참히 스러져간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잊히는 건 아닌가 조바심마저 난다. 한·일 관계가 훈풍을 탔다는데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우리 정부도 뒷짐을 지고 있다. 박 작가의 말이다. “적어도 무엇이 중요한지, 사실을 전하는 것부터가 중요하지 않나요?”

중앙일보 김현예 도쿄 특파원

 

09.26 집에 환자가 생겼다, 내 삶이 무너진다

몇 년 만의 회식이다. 하지만 민성씨는 어머니 간병을 위해 집에 가야 한다. 1970~80년대에는 가족이 입원하면 전업주부인 엄마나 며느리가 병원에서 숙식 간병하는 게 상식이었다. 기대수명이 짧았던 만큼 간병 기간도 길지 않았다. 이후 의학은 놀랍게 발전했고,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가족 돌봄의 시간도 길어졌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유영규)은 남이 아닌, 바로 내일 나의 모습일 수 있다.

2023년 현재 간병이 필요한 환자는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3년 뒤 2026년이면 3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략 10가구 중 한 집에 환자가 있고 누군가 돌봐야 한다. 출산과 육아는 선택이지만, 내가 환자가 되는 일, 내가 간병인이 되는 일은 벼락처럼 벌어진다. 『아픈 이의 곁에 있다는 것』(김형숙 외)은 간병 가족의 절망과 한계 상황을 보여준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요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은 현대판 “호랑이가 온다”는 말처럼 두렵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우에노 치즈코)는 일본간병보험 20년의 명암과 간병의 사회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코로나19 이래 간병인은 ‘교대 없는 24시간 입주’ 근무만 되니,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기괴한 해악을 낳고 있다. 신원 확인도 안 되는 무자격자들의 학대 상황도 자주 보고된다. 코로나 이전처럼 병원의 간병자 교대가 다시 허용돼야 한다. 최소 하루 2교대만 되도, 간병 인력 풀이 훨씬 늘고, 가족이 퇴사 없이 환자를 돌볼 수 있다.

 

무자격자 간병비가 입원비보다 훨씬 비싸고 30대 여성 중위 소득 270만원의 2배에 달하니, 결국 가족은 직장과 생업을 포기한다. 사무·주방 등 노동인력이 사라지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경력단절 140만 명 중 간병 비중을 볼 때다. 3년 후 재택환자 300만 명, 간병가족 300만 명, 무려 600만 명이 우리나라의 일터에서 증발할 수 있다.

중앙일보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09.28 그 거미줄은 지점장님 눈에만 보이는 겁니다

연봉 1억 은행에서 꼬리 무는 비리
“은행 못 믿겠다” 지경 되면 어쩌나
쓸고 닦지 않으니 깨지는 금융 신뢰
‘금융의 삼성전자’ 이대로는 헛꿈

올해 초 국민은행 한 지점에 새로 부임한 지점장이 1.5m가 넘는 긴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자동화기기(ATM) 3대가 놓여있는 지점 입구의 365코너 천장 구석에 거미줄이 있었다. 이리저리 걷어내고 있는데 거래처 사장이 지나가다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거미줄을 걷어내고 있다”고 하다가 신임 지점장이 유난스럽게 군다는 말이 나겠다 싶어 “직원들이 바쁘니까 그동안 못 봤던 모양”이라고 덧붙였는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지점장님, 그 거미줄은 지점장님 눈에만 보이는 겁니다.”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 가려진 곳의 흠은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책임을 진 사람에게는 크게 보인다고 하더란다. 그 지점장의 눈에 거미줄이 보였던 것은 내가 맡은 지점, 다른 지점보다 실적도 좋고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내 지점, 승진과 미래가 달려있는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임을 지면 달라지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성스럽게 된다. 은행장이든, 일선 지점장이든 같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은행에서는 눈 밝은 사람이 드문 모양이다. 거미줄을 넘어서 곳곳에 금이 가고 벽이 무너질 지경인데도 아무도 보지 못한다.

 

경남은행은 투자 담당 직원이 2988억원을 횡령했다. 경남은행 연간 순이익보다 큰 액수다. 무려 13년이나 이어졌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은행에서는 10년간 벌어진 707억원 횡령 사건이 적발됐다.

 

국내 1위 국민은행도 다를 것 없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국민은행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일부 직원들이 지난 2년간 60곳이 넘는 상장사들의 무상 증자 업무를 대행하면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0억원 넘게 챙겼다고 한다. 무상 증자 공시 전에 사서 공시 후 주가가 뛰면 되팔았다. 이런 기막힌 돈벌이가 은행에서 벌어졌다.

사상 최대 횡령이 터져도 은행은 잔칫집이다.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로 만들어낸 4대 은행의 상반기 이자 이익이 16조원을 넘는다. 한때 유행하던 ‘따뜻한 금융’이라는 구호는 이젠 고객이 아니라 은행원들이 대상인 모양이다. 은행원 월급은 최상위권이다. 국민은행의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이 넘는다. 직장인 평균 연봉의 3배쯤 된다.

퇴사도 최고 대우다. 희망퇴직을 하면 퇴직금에 최대 35개월 치 월급인 특별퇴직금(희망퇴직금)을 합쳐 6억~7억원을 받는다. 대학생 자녀가 있으면 몇 명이든 졸업 때까지 학기당 350만원 학자금을 지원한다. 자녀가 없으면 재취업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3000만원쯤 준다. 퇴직 후 2년간은 본인과 배우자의 건강검진도 제공받는다.

 

은행마다 횡령과 비리가 꼬리를 물고, 금융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지만 이런 잔치가 벌어진다.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해마다 수조 원 이자 따박따박 챙기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어깨 펴고 다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처지인데 “금융의 삼성전자는 왜 등장하지 않는가”라고 궁금해하면 안 된다. 비리 백화점 처지를 면하면 다행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범죄심리학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는 거리에는 낙서와 쓰레기가 늘어나고 범죄가 생긴다. 유리창을 갈아 끼우고, 거미줄은 걷어내야 한다. 내일 할 일이 아니고 당장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이다. 은행만의 일이 아니다.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든 마찬가지다. 무슨 무슨 협회나 단체,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다.

조선일보 이진석 경제부 선임기자

 

09.30 ‘소록도 천사 마가레트 할매’ 오스트리아서 선종

39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하다 2005년 귀국...대퇴부 골절 수술 중 급성 심장마비로

▲한센병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봐 '소록도 천사'로 불린 마가레트(왼쪽)와 마리안느 간호사. 마가레트 간호사가 9워 29일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선종했다. /김연준 신부 제공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동료 마리안느 스퇴거(89)씨와 함께 39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2005년 모국 오스트리아로 조용히 귀국해 큰 울림을 줬던 ‘소록도 천사’ 마가레트 피사렛(88) 씨가 29일 오후 3시 15분(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선종(善終)했다. 2016년 소록도성당 주임 시절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레트’를 설립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했던 천주교 광주대교구 김연준 신부는 30일 “명절 인사차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레트’ 강인혜 상임이사 등이 마가레트의 부음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귀국 후 요양원에서 지내온 마가레트는 최근 대퇴부 골절을 당해 수술을 받던 중 선종했다고 한다.

 

마가레트는 동료 간호사인 마리안느와 함께 ‘소록도의 천사’로 불렸다. 마리안느는 1962년, 마가레트는 1966년 소록도에 왔다. 오스트리아에서 간호학교를 졸업한 후 ‘소록도병원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 오랫동안 ‘수녀’로 알려졌으나 이들은 자원봉사 간호사였다. 두 사람은 마스크, 장갑, 방역복도 입지 않고 흰 가운만 걸친 차림으로 환자들의 짓무른 손·발가락을 소독했으며, 피고름이 얼굴에 튀어도 개의치 않았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후원을 받아 소록도에 의약품을 보급하고, 영아원과 결핵병동, 목욕탕 등도 지을 수 있도록 도왔다. 섬 밖으로 퇴소하는 이들에겐 정착금도 지원했다. 그렇지만 자신들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심지어 사망한 환자의 옷을 수선해 입기도 했고 지네가 출몰하는 낡은 사택에 살면서 한 번도 집 수리에 돈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헌신 덕분에 ‘소록도의 천사’로 불렸고 환자들은 ‘마리안느 할매’ ‘마가레트 할매’로 불렀다.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왼쪽)와 마가레트 간호사의 귀국 후 모습. /연합뉴스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하던 두 사람은 지난 2005년 11월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홀연히 오스트리아로 귀국했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할 때”라며 새벽에 조용히 섬을 빠져나갔다.

 

그때만 해도 이들은 ‘수녀’로 알려졌기 때문에 귀국 후에도 수녀원에서 노후를 보낼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리안느와 마가레트는 수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귀국 후에도 수녀원이 아닌 가족들의 도움으로 생활했다.

 

이들의 오스트리아 소식이 알려지며 국내에서도 두 천사를 돕기 위한 활동과 노벨상 추천 운동이 펼쳐졌다. 2016년 4월엔 소록도병원 100주년을 맞아 마리안느가 소록도를 찾아 2개월 가량 머물다 돌아가기도 했다.

 

2016년 만해대상 실천대상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명예국민이 됐다. 당시 소록도성당 김연준 신부가 이들을 기념하는 사단법인을 설립하고 다큐 영화를 제작하면서 노벨평화상 추천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2016년 한국을 떠난 지 11년만에 소록도를 찾았던 마리안느는 본지와 통화에서 “소록도에 다리도 생기고 다들 부자됐다”며 좋아했다. 이들을 대리해 2016년 8월 만해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관계자들은 “두 사람이 2005년 귀국한 후에도 무슨 일을 하다 돌아왔는지 고향사람들이 모를 정도로 자신들이 한 일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김연준 신부는 “2016년 당시 만해대상 상금도 남미 볼리비아의 단체를 위해 기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