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반도 2023-09/ 09.01 진화한 한·미·일 공조…- 09.28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미동맹 70년
위기의 한반도 2023-09/
09.01 진화한 한·미·일 공조…중국과 ‘충돌 방지책’ 마련해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무엇을 남겼나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공동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한·미·일 3국은 지난 18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층 진화한 공조 체계를 확립했다. 1994년 첫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된 이후 지난 30년간 북핵 대응에 집중했던 공조의 범위를 군사·경제·첨단과학기술·우주 등 전 영역으로 확대했고, 지역적으론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안보 협의체를 지향하게 됐다.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산하 한반도포럼에선 지난달 30일 외교·안보·통상 전문가들이 모여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의 의미와 과제를 점검했다. 참석자들은 “3국 공조의 포괄적 진화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할 기회인 동시에 많은 숙제를 안겼다”고 입을 모았다.
군사·경제 등 ‘포괄적 안보’ 확인
북·중·러와 대립·갈등 소지 부담
중국과 비정치 분야 협력 넓히고
‘북핵 우선순위’는 계속 지켜야
한국 정부의 대내외적 책임 커져
한·일 역사갈등은 계속 관리해야
박명림 연세대 교수 모두발언 요약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의 가장 큰 의미는 3국이 정상급의 협의체를 처음으로 정례화하고 ‘준제도화’했다는 점이다. 특히 정상회의 정례화에 이어 국가안보실장과 외교·국방·재무·산업장관 레벨에서 3국 간 정례적 협의를 갖고 주요 사안을 논의하기로 함에 따라 3국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고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할 다자 안보의 틀이 마련됐다.
다만 3국 공조 강화를 한반도 관점에서 봤을 때 상대적으로 북핵 문제가 방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남북 대화가 단절된 상태를 해소할 새로운 제안이나 해법이 도출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북한의 핵 무력 증강과 이에 대응하는 한국의 국방비 지출 확대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공조가 강화됨에 따라 자칫 한·미 동맹 관계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공약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또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와중에 미·중 관계가 개선될 때 한국의 출구 전략은 무엇인지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한·미·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그간 동맹·우방을 규합해 포괄적인 안보·경제 협의체를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 왔는데,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협의체), 오커스(미국·호주·영국 간 동맹).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이어 한·미·일 3국 체제는 화룡점정의 의미를 갖는다. 한·미·일은 단순한 협의체를 넘어 장기적으로 전략적 이해와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과거 미국 중심의 큰 질서에 보조적 역할을 하던 상황에서 이제는 이해 당사자이자 책임감 있는 주체가 됐다는 의미가 있다.
3국 공조 강화에 따른 과제와 부담도 적지 않다. 우선 한국은 그간 북핵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위협에 우선순위를 뒀는데, 앞으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나오는 위협이나 도발 역시 신경을 써야 한다. 위협의 수준이 북핵보다 더 엄중한지 등의 변수에 따라 자칫 북핵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 같은 부담은 다양한 도전에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비용이다.
또 3국은 이번에 특정국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위협(threat), 도발(provocation)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역내 평화를 위협하는 문제 행위에 대해 이런 강력한 표현을 썼다는 점에서도 3국 공조가 오히려 오커스보다 강하다고 본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가드레일, 즉 충돌방지 장치를 협의하는 것처럼 한·중 간에도 경제나 안보 측면에서 안전장치 협의를 강화해야 한다. 한·중 정상회의 계기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만 문제 연루될 가능성 대비해야

▲지난달 30일 한반도포럼에 참석한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왼쪽부터 시계방향). 김경록 기자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한·미·일 공조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와 가치 지향적이고 동맹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가 만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가 성사됐다고 본다. 한·미·일 공조는 한국 외교의 방향성에 큰 변화를 줄 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안보 위협이 거세지는 정세에서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3국 공조를 통해 억지력을 강화할 수 있지만, 한국의 어젠다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통일 추구는 어떻게 되는지 고민해야 한다. 또 3국 공조로 인해 북·중·러가 밀착한다면 대결선의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미·일이 안보를 강화할수록 다른 한편에선 북·중·러 결속으로 인한 안보 불안이 가중되는 안보 딜레마가 생긴다. 미·일과 공조함으로써 생기는 억지력의 이면에선 대만 문제 등에 연루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도 한국으로선 큰 과제다.
▶박태호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경제통상 측면에서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한·미·일 공조로 중국 시장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3국 공조 강화와 별개로 반드시 비정치적 분야에서 한·중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물에는 미국과 일본의 관심사는 한반도가 아닌 동남아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세계 시장으로서 갖는 중국의 역할이 줄어드는 가운데, 인도는 여러 가지 제한으로 중국을 완벽히 대체하지 못한다. 결국 동남아는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중요한 카드고, 미·일은 경제적 측면에서 동남아에 큰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 관계 관리가 가장 큰 숙제
▶이원덕 국민대 교수=한·미·일 공조 강화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의 한·일 관계 개선이 바탕이 됐고, 그 배경엔 윤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이 있었다. 다만 윤 대통령의 결단과 달리 일본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 일본과의 군사 협력에 대한 국민의 반감 등 갈등 요소도 여전하다. 한·일 양국 간 갈등의 원심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미·일 협력 구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기반이 다소 허약하다는 점이 숙제로 남아 있다.
이번 3국 합의를 계기로 한국은 중국 문제를 포함한 지역 문제에 대해 포괄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스탠스로 변화했다. 일견 미국의 요구에 한국이 화답한 것처럼 보이는데, 앞으로 대중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가 새로운 숙제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한국이 순회 의장국을 맡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중·일의 끈을 바짝 당겨서 한·미·일로 인해 생기는 과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아시아에 50여개 국가가 있는데, 흔히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한·일이 소위 세계 최고의 자유주의 연대를 미국과 함께한다는 것은 한국이 외교적·정책적 자율성을 갖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다만 우리는 미·일에 비해 외교 정책에 투입할 자산이 매우 부족하다. 미국은 중국과의 갈등 국면에서도 최고 수준의 교역에 나서고 있고, 일본 역시 중국은 물론 북한에도 공을 들이며 지평을 넓히고 있다. 반면 우리는 자산이 부족한 대신 특정 현안에 집중하는 ‘총력외교’를 특징으로 한다. 최근 국제정치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제는 총력외교라는 컨셉 이외에도 투입 자산 자체를 늘릴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 통일 과제 점검을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국제사회의 안보 리스크가 점증하는 최근의 정세를 감안할 때 한·미·일 공조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3국 공조 강화에 따른 청구서가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날아올지 고민이 필요하다.
3국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며 안보 위협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비핵화·평화 정착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북·미 간 ‘패키지 딜’ 가능성이 열려있고, 일본은 정상회담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며 북한과의 외교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운명이 걸린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 통일 문제를 놓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바라보는 일반적 인식은 ‘북핵 대응 강화’이고, 그런 차원에서 이번 정상회의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 3국 공조 강화로 인해 겪을 수 있는 복합적인 도전 과제들과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한·미·일 공조 강화라는 방향이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또 국민이 동의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3국 공조가 불러올 여러 리스크를 국민에 설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한·일 관계에서 갈등 요소가 여전하다는 점은 한·미·일 체제의 가장 큰 지뢰밭이다. 독도 갈등이나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가 다시 터졌을 때 캠프 데이비드 정신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미·일 협력이라는 대의를 앞세워 한·일 간 갈등을 덮어씌울 수 있는지, 이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리=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09.04 푸틴의 주문 목록이 김정은에 전달됐다… 북·러의 위험한 군사 밀월
러 국방장관 평양 방문, 탄약·포병장비 등 무기 거래 확대 시도
김일성, 스탈린에 전차 지원받아 남침… 지금은 푸틴이 김정은에 요청
북·러 무기 거래는 동북아 안보 위협… 한·미·일 협력이 효과적 대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6일 평양 ‘무장 장비 전시회’에서 세르게이 쇼이구(앞줄 왼쪽) 러시아 국방 장관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일본의 북한 전문가인 에야 오사무(惠谷治, 1946~2018)씨는 1998년 도쿄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북한 경제를 4중(重)경제라며 북한 정권의 돈줄을 분석했다. 북한 경제는 내각의 제1경제, 군수 경제인 제2경제, 김정은의 궁정(宮庭) 경제인 제3경제, 마지막으로 장마당 시장경제 등 4바퀴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 중 궁정 경제와 군수 경제가 북한 정권을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수령의 비자금 조달을 위한 궁정 경제(court economy)는 노동당 39호실이 담당한다. 1970년대 중반 조직된 39호실은 김일성, 김정일 등 김씨 일가의 외화벌이를 총괄한다. 20여 곳의 해외 지부와 국영 기관을 운영한다. 과거에는 궁정 경제가 4중 경제 중에서 가장 비중이 컸으나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제2경제가 빠르게 증가해 30%를 상회하며 제2경제위원회가 맡고 있다. 반대로 내각과 장마당의 민수(民需) 경제는 점점 쪼그라들어 40% 미만이다. 식량이 부족하여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인민들이 의식주 부족에 허덕이는 이유다.
일찍이 일본의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의 무기 개발과 거래 등 국가 기밀 사항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양이 일본 조총련을 통해 신무기에 들어가는 각종 센서, 회로 등 전자 부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세미나 이후 오사무씨와 소통하며 일본 측 자료를 확보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북한은 1980년대 들어서 제2경제위원회 산하에 항공우주 산업을 총괄하는 8총국을 신설했다. ICBM 등 각종 미사일 개발을 전담하기 위해서다.
제2경제위원회는 산하 용악산, 부흥무역, 창광무역, 연합무역 등 무역회사를 통해 홍콩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돈줄의 거래 통로를 마련했다. 용악산과 부흥무역은 러시아와, 창광무역은 중동을 주요 무대로 활동하였다. 연합무역은 미사일 부품과 기술의 수입을 담당하였다. 특히 잠수함과 전차 등 무기 제조에 필요한 집적회로(IC) 기판(基板)과 미사일 유도 시스템에 사용되는 스펙트럼 분석기를 일본에서 조달하였다. 일부 제품은 수화물로 위장하여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운반하였다. 북한 기업과 거래했던 조총련계 회사는 도쿄, 오사카, 니가타 등지에서 한때 약 30소에 달했다. 조총련을 통한 신무기 부품 조달은 2006년 1차 북핵 실험 이후 발동된 유엔 대북 제재 11건으로 한계에 도달했다. 신무기 부품 조달 루트는 미국의 감시가 미흡한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및 이란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그래픽=이철원
평양시 강동군에 위치한 제2경제위원회는 우리의 기재부는 물론 국방부, 방위사업청 및 전체 방산 업체 등이 결합된 무소불위 부서다. 노동당 군수공업부 직속 기구로 산하에 160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무기 수출을 통해 획득한 외화로 외국 신무기를 사들여 철저하게 분석도 한다. 지난해 북한은 100발 이상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부당한 무기 판매를 통해 얻은 이익을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재투자하고 있다. 3개월 동안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두 차례 실패하고 10월 재발사를 선언하는 이유는 제2경제의 금고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수 산업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각종 거래를 확대함으로써 대목을 맞고 있다. 지난 7월 전승절 행사를 빌미로 김정은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평양 ‘무장 장비 전시회-2023′에 초청하여 600㎜ 초대형 방사포, 미국이 보유한 정찰기 RQ-4 글로벌호크와 모양이 비슷한 전략무기 정찰기 및 무인 공격기 등 최신 무기를 과시하며 세일즈에 나섰다. 미 백악관은 김정은과 푸틴이 친서를 교환하며 무기 거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과거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사정하여 무기를 구매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김일성은 6·25 남침을 3개월 앞둔 1950년 3월 소련이 약 1억3000만루블어치 무기를 제공하면 그 대가로 총액 1억3305만루블 상당의 금 9t, 은 40t 및 우라늄이 함유된 희귀 광물인 모나자이트 1만5000t을 인도하겠다고 사정하였다(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 2023). 당시 북한이 자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무기는 7.62㎜ 기관단총에 불과했다. 결국 김일성은 당시 최강의 소련제 T-34 전차 242대를 지원받아 남침을 감행했다. 지금은 모스크바가 평양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는 묘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6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무장장비전시회장을 찾았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뉴스1
김정은은 지난달 2박 3일간 다수 군수 공장을 돌아보며 ‘국방 경제 사업’의 강화로 무기와 군수 물자의 대량생산을 강조했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만큼 수출용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려는 의도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고, 러시아의 주문 목록이 북한에게 전달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구소련에서 사용했던 표준형의 보병 및 포병 장비와 탄약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야전에서 가성비가 높은 무기들이다. 북한의 지대공(地對空) 미사일(SA-5)은 부품 상당수가 러시아제여서 무기 호환성이 높다.
북한은 보유 중인 재래식 무기들을 러시아에 넘기고 원유, 각종 신무기 부품 및 식량 등과 현물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제재로 달러와 유로화의 결제는 어렵고 루블화는 용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기존 노후 무기들을 실속 있게 정리하면서 신무기 개발에 나서는 등 일거양득이다.
북한의 수출용 무기 대량생산은 동북아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에 안보 불안 요인이다. 이제 북한의 군수 산업과 군사적 위협은 한국 단독으로는 대응하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북·러 간에 무기 거래는 단순 군수품을 넘어 북한군의 약점인 전투기 및 각종 미사일 무기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동북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평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만남이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이다. ‘언제든지(whenever)’, ‘어디서든지(wherever)’, ‘무엇이든지(whatever)’ 3국 간 협력이 가능한 ‘핫라인 구축’은 동북아 현실주의 국제정치에서 불가피하다. 북·러 간에 확대되는 군사협력은 동북아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고 우리 대응 중의 하나가 한미일 3국 간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 지도를 짚어가며 점령훈련을 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공약보다 효과적인 정책 대안은 없다.
조선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09-05 김정은·푸틴 무기거래用 회담 임박… 戰犯연대 본색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르면 다음 주 블라디보스토크나 모스크바에서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의 관련 보도에 미국 백악관 측도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정상급 외교 등을 통해 무기 거래 협의를 지속할 것이란 정보가 있다”고 밝혀 무기 거래용(用)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한 기류다. 회담이 성사되면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 회담 후 4년 반 만이다. 당시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두 달 만의 회담이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김·푸틴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궁지에 몰린 푸틴으로서는 북한의 실탄과 포탄 등의 무기가 필요하다. 북한은 러시아의 핵·미사일 주요 기술 이전을 원한다. 러시아와 북한은 중국과 함께 연합군사훈련까지 논의 중이다. 우크라이나 침략이 유엔헌장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금지’ 조항을 짓밟았다는 점에서, 김정은과 푸틴의 무기 거래는 전범(戰犯) 연합 형성에 해당한다. 푸틴에 대해선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이미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강제 이주시킨 전범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해 놓았다. 김정은은 73년 전 남침한 김일성의 전범 책임을 이어받았다.
두 나라의 무기 거래는 그 자체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다. 안보리 결의 제1874호와 제2094호에 따라 북한은 모든 무기 수출이 금지됐고, 제2270호엔 북한에 대한 탄도미사일 기술 제공 금지도 규정됐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결의를 위반한다면, 북한과 러시아를 유엔총회에 회부하는 외교적 응징에도 나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아세안 정상회의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국제 공조를 통한 제재 강화를 이끌어야 한다. 야당은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합의가 북·중·러 결속을 불렀다는 식의 본말전도 궤변을 해서는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9.06 김정은·푸틴의 핵잠수함 거래 강력하게 대응해야
북한 김정은이 이르면 다음 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탄약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북한의 포탄 등을 지원받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상회담 소식까지 전해졌다. 북·러 간 무기 거래가 본격화한 건 작년부터지만 러시아 용병 회사 바그너그룹을 통한 우회 지원 형태였다. 지금 논의되는 것은 북·러 간 무기 직거래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자신도 찬성했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큰 파장이 일 것이다.
김정은이 러시아에 포탄을 그냥 내줄 리 없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은이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태평양함대 부두, 우주 발사체 기지 등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핵 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등의 기술 이전을 요구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2021년 1월 김정은의 공개 지시에 따라 ‘전략무기 5대 과업’ 이행에 체제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찰위성 발사는 올해에만 두 차례 연속 실패했고,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역시 북한 기술로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다. 김정은은 푸틴을 직접 만나 이 기술 이전 담판을 지으려 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고 있는 모습. /로이터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현대화를 요구할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주력 전투기는 모두 소련제로 1980년대 도입한 미그-29가 최신형이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의 숙원인 최신 전투기와 방공 시스템까지 제공한다면 이것은 대한민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특히 북한이 핵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무제한 잠항이 가능한 핵 추진 잠수함까지 갖게 되면 우리의 북핵 감시는 무력화된다. 푸틴과 김정은의 거래를 주시하고 핵 추진 잠수함 등이 현실화되면 비상사태로 보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만약 푸틴이 북한에 핵 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첨단 전투기와 같은 무기를 지원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각종 치명적 무기를 직접 지원하면 전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인도적 지원에 그치고 있지만 푸틴이 한국 안보를 직접 위협한다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것을 러시아에 분명히 알려야 한다. 이제는 북한 잠수함을 상시적으로 감시할 우리 핵 추진 잠수함 확보를 미국과 본격 논의할 시기가 왔다는 사실도 분명해지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9-06 金·푸틴 거래 통한 ‘북핵 완성’ 모든 수단 동원해 막아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무기 거래’ 움직임에 대해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부품을 제공 받으면 핵·미사일 무장을 완성할 수 있고, 이것은 한반도는 물론 미국 등 전 세계 안보를 뒤흔들 게임체인저가 되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 국제 규범을 깡그리 무시한 북·러 결탁은 우크라이나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과 미국에 중대한 안보 위협이 된다. 러시아에 대한 압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하는 이유다.
다음 주로 예상되는 김정은·푸틴 회담에서는, 러시아가 탄약과 포탄 등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위해 절실한 무기를 받는 대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군사위성,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할 수 있는 핵잠수함 전력(戰力) 등을 제공하는 식의 거래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북·러 사이에서는 고위급 교류 등을 통해 그런 조짐을 보여 왔다. 북한은 ICBM 재진입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ICBM 발사에 필수적인 군사위성 발사도 최근 두 차례 실패했다. SLBM을 장착한 핵잠수함을 보유하면 미국 앞바다에서 핵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다. 모두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러시아가 인도에 핵잠수함을 임대한 것처럼 북한에도 그런 편법을 쓸 수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부족한 각 무기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이번에 러시아에서 받아 끼워 맞추려는 것”이라고 했는데, 타당한 분석이다.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북·중·러 합동 군사훈련도 “당연히 논의 중”이라고 했다. 북한 군인의 우크라이나 파병 주장도 나온다. 러시아나 중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경우엔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진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면 한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 안보가 위협을 받는다. 이런 우려 때문에 미국은 5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총력을 다해 대응해야 한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검토하고, 호주처럼 미국에 핵잠수함 기술 등을 요구해야 한다. 러시아를 향해서는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도발이나 다름없다는 신호도 보낼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9.06 일본의 ‘한반도 통일’ 문서로 지지, 처음이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합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
한미일 3자 협력 순항하려면
한일관계 돌출 막아야
독도 문제 휘발성 줄이기 위해
양국 해양경계협정 서둘러야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은 동아시아의 전략 지형과 역학 관계를 재편할 세기적 사건이다. 여기서 3자 협력의 비전과 원칙, 목표, 이행 체제 등을 명시한 3개의 문서가 채택된 것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외교적 이변이다.
이러한 이변은 동아시아의 시대적 요구와 이에 부응하려는 3국 정상의 절묘한 의기투합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무모하고 과감한 베팅을 한 것이 캠프 데이비드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역대 미국 정부가 20년 이상 3자 협력체 수립에 지대한 공을 들여왔지만 한일 간의 과거사를 둘러싼 반목과 갈등이 성사를 가로막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푼 한일 관계의 매듭을 3자 정상회담으로 연결하는 리더십과 순발력을 발휘함으로써 동아시아 외교의 숙원을 달성했다. 동맹을 ‘기생충’으로 여기는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일본의 총리가 아베의 추종자가 아닌 것도 요행이었다.
3자 간 안보 협력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 원동력은 3국이 공유하는 위협 인식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과 김정은도 주역 못지않은 조역의 몫을 한 셈이다. 시진핑이 ‘중국몽(中國夢)’을 앞세워 공세적 팽창 정책으로 역내 안보 불안을 조성하고 대한민국의 방어 주권을 부정하는 횡포를 부리지 않았다면 미·일의 중국 견제 전략에 한국이 선뜻 동참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김정은이 핵미사일 전력의 증강과 기술적 고도화에 광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다면 일본과의 군사협력 확대와 제도화는 국내 정치적으로 가당치 않은 발상이다.
그렇다면 3자 협력체 출범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한국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leverage)를 강화하고 패권적 횡포나 경제적 강압에 휘둘리지 않을 보험을 든 것이다. 3자 협력체가 군사동맹과는 거리가 멀지만 3국의 이익과 안전에 대한 역내 “도전·도발·위협”이 있을 경우 대응책을 조율하기 위해 신속히 협의하기로 한 것은, 중국이 한국을 겁박하려면 3국의 공동 대응을 각오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핵심 소재·부품의 공급망 교란에 대응할 체제를 마련함으로써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견제할 레버리지도 강화되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대한 우리의 발언권도 강화되었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여 과잉 대응을 시도할 경우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이를 순화할 틀을 제공해준다.
일각에서 미·일과의 밀착이 중국의 반발을 초래하고 한국 외교의 독자적 공간을 제약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으나 중·러·북 3자 간 결속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레버리지를 희생하여 운신의 폭을 넓힌다고 도움 될 것이 없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받들고 ‘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 아부하면 중국의 반발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반발을 피하려고 레버리지를 포기하면 굴종을 자초할 뿐이다.
북한도 그간 민생을 희생해가며 개발해온 핵미사일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3국 간 미사일 경보 데이터의 실시간 공유와 함께 연합 훈련을 정례화함에 따라 북한이 핵미사일 발사를 시도하더라도 이를 더 효율적으로 탐지하고 요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해킹과 암호화폐 절도를 차단할 실무 그룹이 구성됨으로써 북한의 불법 외화 벌이는 더 힘들어졌다.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 것도 주목된다. 통일의 방법에 대한 언급 없이 통일의 최종 상태만 명시한 것도 특이하고 일본이 한반도 통일을 공동성명을 통해 명시적으로 지지한 것도 처음이다.
그런데 3국 협력체의 출발은 창대하나 그 토대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참사가 발생하면 3자 협력은 동력을 상실한다. 한국에서 반일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해도 한일 관계는 무사할 수 없다. 한일 관계가 파탄되면 3자 협력도 끝이다. 3자 협력을 되돌리기 어렵게 하려면 이를 내실화하고 한일 관계의 잠재적 악재를 제거해야 한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시도 때도 없는 영유권 주장이나 동해 표기 문제가 3자 협력의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따라서 독도 문제의 휘발성을 줄이는 방안으로 한일 간 해양경계협정 체결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2016년 상설국제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판결을 원용하면 독도가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들어오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동해에서 한·미·일 간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려고 해도 훈련 해역 표기 문제가 본질을 퇴색시키는 돌출 악재가 될 수 있다. 해양경계협정과 동해 표기 문제를 일괄 타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09.07 ‘북·러 무기 거래’ 러 침략 불똥 韓으로, 좁은 소견 인사들 뭐라 할 텐가
북한 김정은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내주 정상회담을 갖고 러시아가 북한의 포탄을 받고 그 대가로 북한에 핵 추진 잠수함과 정찰위성 관련 기술 이전을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치명적 위협이다. 우리가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검토하자 민주당 이해찬 고문은 지난 5월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신세 질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인데 왜 우크라이나 전쟁에 말려들어 가야 하나”라고 했다. 민주당은 “외교 자살골”이라고 했다. 우리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우리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러시아와 북한이 순전히 자신들 필요에 의해 무기 거래를 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안보 위협을 받게 됐다. 전 세계가 경제·외교·안보적으로 긴밀히 엮여 있고 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생각이 얼마나 좁은 소견인지 또 한 번 드러났다.
지금 자유 진영 국가들은 러시아의 핵 협박에도 국제 원칙을 기준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6·25 남침 때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16개 유엔 회원국의 도움으로 회생할 수 있었다. 그런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이 내심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외면하자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만있는데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똥은 결국 한국으로 튀었다. 좁은 소견으로 나섰던 정치인들은 이 사태에 대해 뭐라 할 건가.
대만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대만 무력 침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대만 문제 불개입”을 주장한다. 하지만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군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2개 전선’ 전략을 펼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 일대 안보 위기다. 그때도 ‘남의 일’이라 할 텐가.
조선일보 사설
09-11 한·인도 첨단산업 협력 강화… 우주청法 더 급해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 뉴델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방산 협력의 상징인 K-9 자주포 2차 사업을 비롯해 전기차·우주 항공 등 첨단 제조업 공급망 협력의 폭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인도는 14억 명이 넘는 세계 1위 인구 대국인 데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7.2%를 기록할 정도로 고성장을 거듭하는 신흥 경제국이어서 양국 협력의 시너지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와의 전방위 협력은 포스트 차이나 시대를 개척한다는 측면에서도 함의가 상당하다.
올해로 수교 50년을 맞은 인도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서, 대한민국 수립보다 꼭 1년 앞선 1947년 8월 15일 독립 국가가 됐으며. 6·25전쟁 때는 의료부대를 파견해 한국을 도왔다. 신냉전이 깊어가는 현 정세 속에서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회원국으로서 협력할 부분도 많다. K-팝 등 한류의 영향으로 현지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좋은 편이어서 삼성과 LG, 현대, 기아 제품 선호도 높다고 한다. 특히, 인도는 우주 분야 세계 5대 강국이라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우주 협력 강화는 주목할 만하다. 양 정상은 지난 5월 누리호 발사 및 인도 찬드라얀 3호의 지난 8월 달 남극 착륙 성공을 언급하면서 양국 간 우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인도 우주 협력은 1999년 우리별 3호가 인도 극위성 발사체에 탑재돼 발사되면서 시작됐는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가속화할 전망이다. 인도는 2008년 달 탐사선에 이어 2013년 화성 탐사선을 발사했을 정도로 우주 발사체와 탐사에 강점이 있다. 우주산업은 첨단 기술과 방위산업의 결정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우주항공청 설치 특별법’ 제정이 더욱 시급해졌다.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5개월째 표류 중이다. 본질적 내용보다 우주청 소재지 등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라고 한다. 여야는 다른 현안과 연계하지 말고 신속히 입법 절차를 완료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9-12 중국 ‘핵 오염수’ 선동의 진짜 노림수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과학적 근거 없이 반일 캠페인
日 수산물 수입 막고 항의 사태
내부 심각할 때 관제 민족주의
시진핑 체제의 내부 불안 확산
일본 때리기 통해 불만 돌파구
한국 동조 땐 한미일 결속 약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방류를 둘러싸고, 중국의 반발이 거세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리창(李强) 총리는 오염수를 ‘핵오염수’라고 비판하면서 일본을 몰아붙였다. 중국은 이미 일본의 수산물 수입을 모두 중단했고, 후쿠시마(福島)현에 전화로 항의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에 반대하는 국가는 중국·러시아·북한 등 소수다. 그중에서 중국의 반발은 유독 강하다. 중국의 강력 반발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과학을 도외시한 중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내심으로는 중국의 강한 비판에 당황하는 측면도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사 결과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태도는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0여 년의 중일 관계 역사를 돌아볼 때 중국의 대일 강경 태도는 국내 정치가 배경인 경우가 있었다. 우선, 중일 관계가 최악이었던 1990년대 후반은 중국 국내 정치와 연관성이 컸다. 당시 국가주석은 장쩌민(江澤民)이었다.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발탁된 장은 당과 군의 기반이 약했다. 역사문제에서 장이 앞서 반일 내셔널리즘을 주창하면서 장의 권력은 안정화될 수 있었다. 또, 2012년 9월 중·일이 대립한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중국이 일본의 국유화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장 전 국가주석에게서 권력을 장악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대일 관계 개선에 전향적이었다.
그러나 경쟁자들의 비판을 저지하기 위해 후 주석은 강경한 대일 노선으로 전환했다. 중국의 권력자가 일본 때리기로 전환하면 중국의 관제 미디어들도 동원돼 일본 비판에 가세한다. 반일(反日) 시위가 확산하면서 일본계 공장과 백화점, 음식점 습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한중 관계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오염수 문제도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자국 내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지나치게 일본 때리기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현재 중국은 부동산 불황이 심해지고, 청년실업률도 20%를 넘어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중 압박으로 중국의 성장은 한계를 보인다. 오염수에 대한 반일 감정은 시진핑에게는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기 좋은 소재임이 분명하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 중국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중국도 오염수 문제로 계속 중일 관계를 파탄으로 가져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7일 열린 아세안 회의에서도 그 조짐은 보였다. 리 총리는 아세안 회원국 간 정상회의에서는 오염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으며, 그 비판의 톤도 억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도 정식 회담은 아니지만, 대화를 했다. 국내적 이유로 중국이 오염수 문제에 강경 대응을 한다면 협상하기보다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중·일 간 갈등을 양국 문제로만 봐선 안 된다. 복합적 상호 의존과 경쟁이 공존하는 국제 관계에서는 모든 문제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염처리수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간 갈등은 언제든 한일, 한미일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한미일 3국은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을 통해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대중(對中) 관계를 염두에 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른 중국의 위기 인식도 높아진 건 분명하다.
따라서 북중러는 최근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한국이 오염처리수 문제를 감정적으로만 대응한다면 중국의 의도대로 한국과 미일과 관계를 소원(疏遠)하게 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오염처리수 문제는 감정 차원을 넘어 국제정치 역학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과거 중국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냉정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9-13 북·러 무기 거래 현실화 땐 러시아를 ‘준적국’ 검토해야
침략국 러시아와 최악 독재국 북한의 ‘무기 거래’가 임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곧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갖는다. 그 뒤에는 러시아 국방장관과의 후속 회담도 예정돼 있다. 회담 결과가 어느 정도 투명하게 발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막후 합의가 있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정은은 포탄 생산책임자인 조춘룡 군수공업부장, 군사위성을 담당하는 박태성 우주과학기술위원장 등을 대동, 러시아에 절박한 포탄 등을 건네는 조건으로 핵·미사일 첨단 기술을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근원적 문제는 러시아의 선택이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은 “유엔의 대북 제재에 대해 북한 측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 “정상회담에서 민감한 사안도 다뤄질 것” 등의 입장을 밝혔다. 무기 거래를 넘어 북한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도 허물겠다는 취지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궁지에 몰린 푸틴이 북한에 핵잠수함·정찰위성·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제공하면, 대한민국 안보 환경은 완전히 바뀐다.
비상한 각오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러시아가 직접 대한민국에 대한 핵 공격 위협의 간접적 당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1990년 수교 이후 ‘우호협력 관계’(1992) ‘포괄적 동반자 관계’(2004) 등을 거쳐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한·러 관계는 군사적으로 ‘준(準)적국’ 상황으로 급변한다. 북한의 핵 공격을 거드는 나라를 용납할 수는 없다.
물론 러시아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외교부 차관은 “한국이 원한다면 김 위원장 방러 계획에 대한 세부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며 한국 달래기 시늉도 했다. 그러나 안보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1950년 김일성의 6·25 남침은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밀약과 소련 무기 지원을 배경으로 이뤄졌다.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을 제공하거나 대북 제재 시스템을 파괴한다면, 대한민국 적국임을 자인하는 행위다. 그럴 경우 정부는 상응한 대응에 나설 것임을 러시아에 분명히 전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9.14 푸틴 北에 무기기술 지원은 韓 직접 위협, 대가 치르게 해야
북·러 정상이 13일 러시아 극동의 우주기지에서 만나 회담했다.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 포탄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북한의 포탄을 지원받기 위해 어떤 대가를 제공하느냐가 관심사였다. 북한은 역점 사업인 ‘전략무기 5대 과업’ 이행을 위해 핵 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등의 기술 이전을 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은 회담 직전 북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이냐는 물음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올해에만 두 차례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했지만 다음 달 3차 발사를 예고한 상태다. 3차 발사마저 실패하면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까운 나라에도 첨단 무기 기술을 이전한 전례가 없다. 더구나 북한은 핵개발에 따른 유엔 대북 제재로 어떤 무기 거래도 할 수 없다. 위성 발사도 금지돼 있다. 이 제재는 러시아 스스로 찬성해 채택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런 모든 원칙과 규범을 어기려고 하고 있다. 전쟁 중인 나라의 정상이 국방장관을 비롯한 ‘전시 내각’을 수도에서 수천㎞ 떨어진 극동 지역까지 통째로 옮겨 김정은을 만난 것 자체가 상식 밖이다. ‘국제 왕따에게 구걸한다’는 미국의 지적 그대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만약 러시아가 북한 포탄을 받고 위성 발사만이 아니라 ICBM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을 넘긴다면 한반도를 넘어 국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핵 추진 잠수함 기술도 마찬가지다. 일부 전문가들은 푸틴이 북한이 가장 원하는 전투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실제 김정은이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 생산 공장을 방문한 것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최신 전투기와 방공 시스템까지 제공한다면 이것은 한국민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것이다. 단순히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러 관계에서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것이다. 그 경우 우리도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도 여러 선택지가 있으며 그중에는 북한의 낡은 포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조치도 있다. 푸틴의 이성적인 판단을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9-14 金-푸틴 밀거래 역이용할 발상의 전환

박노벽 前 駐러시아·우크라이나 대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상호 관계의 전환점을 만들 회담을 했다. 4년5개월 전 북·러 회동 당시 러시아가 중재자처럼 김 위원장에게 미국과 대화를 잘 진행해서 북핵 문제를 풀어 가라고 훈수를 두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형국이다.
이번 회동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로 인해 서방이나 유엔으로부터 고립된 양국이 서방 패권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분 아래 결속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김 위원장은 고립 탈피와 절실한 지원 기회를 붙잡기 위해 평양으로부터 2300㎞ 열차 여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푸틴은 ‘우주 개발을 돕겠다’고 화답하며 자신이 야심 차게 세운 우주기지를 김 위원장과 함께 둘러보고 회담과 만찬을 했다. 양측은 사전 예고대로 ‘군사기술 협력’ ‘경제 협력’ ‘인도적 지원’ 등에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회담 직전 단거리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시켜 러시아를 뒷배 삼아 안보리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까지 내보였다.
양측은 북한이 가진 탄약 등 군수물자 지원과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 등 러시아 측이 언급한 대로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문제들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700만 발의 포탄이 필요한 데 비해 자국 생산량은 250만 발밖에 되지 않아 포탄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경제 협력과 관련해서는, 러시아 내 부족한 노동력을 채울 북한 노동자 파견, 북한에 대한 식량과 연료 지원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주요 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하바롭스크 인근의 수호이 전투기 생산 공장 시찰에 이어 극동함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후속 협의를 할 예정이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의 공·해군력 증강을 지원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푸틴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 등 북한과 밀착 행보를 통해 한·미·일의 연대에 대항하며 동북아에서 북한을 부추겨 신냉전 대결 구도를 형성, 한반도 안보 지형을 흔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래 북한의 수차례 미사일 도발과 대북 제재 결의 위반에 대해 안보리에서 경고하고 저지하려는 새로운 제재 결의 논의 때 한·미의 확장억제력이나 연합훈련을 이유로 무산시키기를 반복했다.
향후 러시아의 대북 무기 거래나 군사 기술 전수가 밝혀진다면 러시아는 거부권이라는 특권을 가진 유엔 안보리 체제의 붕괴 자초를 회피하려 하겠지만,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대처를 위해 쌓아온 안보리 결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자칫 북한의 재래식 도발을 부추기며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안보 상황 악화도 재현시킬 수 있다.
한편, 러시아 외교차관은 러시아는 한반도 상황의 안정을 지향한다면서 회담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했다. 그런 만큼 설명 후 평가가 있어야겠지만,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 등 러시아식 논리나 기대를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 북·러 밀착 행보가 앞으로 계속될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에 주게 될 악영향에 대처하기 위해 다각도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문화일보 사설
09-14 북, 포탄 100만t 이달 제공 논의 중… 러는 위성기술로 호응

▲우주기지에서 만난 김정은-푸틴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네 번째)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위성통신 기술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4일 김 위원장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 북·러 회담 ‘검은 거래’
북, 포탄·대전차미사일 제공땐
러, 우크라전쟁에 바로 투입 가능
우크라 “북, 이미 러에 공급 중”
러, 위성·ICBM기술 이전 검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거래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양국의 무기 거래는 약속을 넘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약 없이 길어지며 재래식 무기가 바닥난 러시아는 북한과의 ‘검은 거래’로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대거 지원받고, 북한은 그 대가로 정찰위성 등 핵심 군사기술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당장 북한은 대량의 포탄을 9월 중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크렘린궁과 북한 당국은 북·러 정상회담 다음 날인 14일까지도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 결과 무엇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 알리지 않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회담 소식 보도에서 두 정상이 “인류의 자주성과 진보, 평화로운 삶을 침탈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 강권과 전횡을 짓부수기 위한 공동전선에서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협동을 더욱 긴밀히 하고 강력히 지지·연대하면서 관련 문제와 협조사항들을 허심탄회하게 토의했고, 만족한 합의와 견해 일치를 봤다”고 전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할 ‘선물’로는 북한이 보유 중인 대량의 포탄과 대전차 미사일 등이 꼽힌다. 북한이 보유한 탄약은 최소한 100만t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구소련에서 기술과 장비를 이전받은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현재 사용하는 무기와 호환이 용이하다. 반대급부로 러시아는 북한에 정찰위성·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밀접하게 연관된 우주기술을 이전할 것으로 관측된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 외교장관이 10월에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혀, 정상회담 후에도 북·러 협력의 구체적 내용이 계속 논의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당국은 북한이 이미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 등 무기를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뉴보이스오브우크라이나(NV)에 따르면 키릴로 부다노프 군사정보국장은 “북한은 (이미) 한 달 반 동안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해왔다”며 “122㎜, 152㎜ 포탄과 방사포 미사일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 7월 방북한 이후 무기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화일보 조재연·김현아 기자
09.15 '위성 협력'으로 포장했지만 고립·제재 부를 자충수
김정은·푸틴의 '위험한 만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난 13일 '잘못된 만남'으로 한반도가 신냉전의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위험한 '무기 거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진단하고 앞으로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대응 전략 등을 진단하기 위해 중앙일보가 긴급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장세정 논설위원의 사회로 진행한 좌담회에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문상균 서울사이버대 겸임교수(전 국방부 대변인)가 참석했다.
여행 금지 인물까지 버젓이 동행
유엔 안보리 결의 정면으로 도전
북·러, 국제사회 고립 심화될 듯
한·미·일 공조 더욱 굳건히 하며
'신3축 체계' 등 안보역량 점검을
조율되고 통합된 대외 전략 필요
한·러 관계 중대 전환점 맞아
-4년 5개월 만의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을 총평하면.
▶위성락 사무총장=회담 준비 과정이나 장소 등을 고려하면 유엔 안보리 결의를 포함해 기존의 국제 질서와 규범을 완전히 무시하고 도전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협조도 어렵게 됐다. 한·러 관계는 전환점에 서고, 북·러 관계는 다른 점에서 이번이 전환점이 될 것이다.
▶박원곤 교수=김정은 위원장의 자충수다. 푸틴 대통령은 전범으로 판단이 난 상태다. 두 불량 국가의 정상이 만난 것은 국제사회의 고립과 제재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동시에 북한을 견제·제재하는데 동참할 가능성도 커졌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발을 담그려 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과의 관계도 복잡해졌다.
▶문상균 교수=보스토니치 우주기지에서 회담이 열렸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첨단 우주 관련 기술과 재래식 무기의 성능 개량이 필요한 북한, 여기에 북한의 소모성 전쟁 물자가 필요한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한 상황이라는 점은 과거의 정상회담과 결이 다르다.

▲지난 13일 열린 북·러 정상회담이 국제정치 구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중앙일보가 14일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초대해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사진 왼쪽부터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전 주러시아 대사), 문상균 서울사이버대 겸임교수(전 국방부 대변인), 장세정 중앙일보 논설위원(사회). 김성룡 기자
-가장 주목한 장면·발언·메시지를 꼽는다면.
▶위=우주 발사기지에서 두 사람이 조우하고, 발사장 현장을 같이 투어한 장면이다. 전 세계를 향해 치밀하게 계산해 내보낸 메시지다. 푸틴 대통령이 “위성 발사”라고 표현하며 북·러의 협력을 정당화하려 했지만, 이는 대북 제재의 빈틈을 찾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박=위성과 우주개발 분야는 아직 명확한 국제 규범이 없는 회색 지대다. 평화적 개발이라는 최소한의 명분을 찾으려 우주기지를 택한 것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우주 개발을 통해 선대 지도자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푸틴은 전날 현지에 도착해 30분 동안 김 위원장을 기다려 절박함을 드러냈다.
▶문=올해 두 차례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을 지원받기로 한 것을 주목했다. 2019년 4월 방러 당시엔 총참모장 등 극소수가 수행했는데 이전과 달리 이번엔 대규모 군부 인사들이 동행한 것이 눈에 띄었다. 특히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조춘룡 당 군수공업부장 등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대상으로 해외여행이 금지된 인물도 포함됐다.
기술 전수, 생각만큼 쉽지 않을 듯
-무기 거래는 '빅딜'일까, '스몰 딜'이었을까.
▶문=노후한 미그기와 함정 등 재래식 무기 현대화와 관련한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그동안 의문시됐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기술이나 종말 유도와 관련한 기술 제공도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언급했던 핵잠수함 개발이나 북한 잠수함의 잠항 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기술 지원을 눈여겨봐야 한다. 다만, 기술 전수에 합의해도 협상에서 넘어야 할 벽은 존재한다.
▶박=옛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는 핵심 기술을 이전하거나 제공한 적이 없다. 미그-29 부품 공급이나 식량 지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핵잠수함 기술을 주더라도 실전 배치까지 15년 넘게 걸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몰 딜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생각보다 북한과 러시아의 신뢰가 두텁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고, 북한도 이를 잘 알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크렘린 궁은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영역의 협력"이라는 표현을 썼다.
▶위=의미심장한 뭔가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안보리 결의에 저촉되는 것일 수 있다는 모호성을 드러낸 것이다. 행간을 굳이 읽어보자면 안보리 결의를 개의치 않겠다, 무시하겠다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
▶문=북한은 이미 미사일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위성의 궤도 진입 기술과 정찰위성 렌즈 같은 정보 획득 수단을 협력하는 부분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정상회담 한 시간 전에 미사일 두 발을 쏜 의도는.
▶박=북한은 최근 외교 문법과 군사 문법을 새롭게 쓰고 있다. 과거엔 최고 지도자가 평양을 비우면 도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전술핵무기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사일을 쐈다. 핵 통제 능력을 보여주면서 김 위원장이 평양에 없어도 핵무기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다.
합의문도 공동성명도 없는 회담
-이번엔 합의문도 공동성명도 없다고 했는데.
▶위=러시아는 합의문 등 문서를 작성하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회담은 푸틴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는 시점에 맞춰 급하게 진행됐을 수 있다.
▶박=반면 북한은 합의문을 잘 만들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자회견도 꺼린다. 합의문이 있더라도 내용이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것일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이 향후 국제정치 질서에 어떤 영향을 줄까.
▶박=2019년 정상회담 때는 북한이 '보통 국가'를 추구하며 주변에 정상적인 모습을 어필(호소)하려 했다.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도 당시엔 적대적이지 않았다. 이번엔 북·러 정상회담이 우크라이나전쟁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미국이 사전에 여러 차례 경고했다. 북한이 전쟁에 개입하면 이는 세계 질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위=북한과 러시아는 비밀로 포장하겠지만,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북한의 무기 지원이 있을 것이고, 미국이나 서방의 제재 움직임이 예상된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문=이렇게 북·러 군사협력이 가시화해 북한의 기술적 진전이 이뤄진다면 남북 대치와 대립 국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선 러시아를 뒷배로 대북 제재의 틀이 무너진 틈을 타 7차 핵실험이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고체형 ICBM, 극초음속 미사일 등 유엔 결의를 대놓고 위반하는 고강도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9·19 합의를 위반하는 전술적 도발에도 대비해야 한다.
중·러 상대 외교 공간은 남겨둬야
-상황이 위중한데도 유엔 안보리는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위=기능부전 상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이미 기존 질서, 유엔 정신을 위반했다. 불행하게도 유엔 차원에 할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다. 독자 제재나 나토 또는 주요 7개국(G7) 등 유엔 이외의 조직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박=러시아와 중국은 그동안 북한에 뒷문을 일부 열어줬을지언정 기존 안보리 결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가 동의한 기존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최근 행위는 더 심각한 문제다. 러시아의 자기 부정이자 안보리의 정당성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다.
-한국은 이런 러시아에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할까.
▶위=우선 국제 규범과 안보리 결의 위반을 지적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하거나 한미가 연대해 경고 메시지를 발신할 수도 있다. 필요하면 개인과 조직을 제재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도 고려하되 보완책도 생각해야 한다.
▶박=러시아에 대량살상무기(WMD)나 관련 기술 제공 등 '레드 라인(red line)'을 절대 넘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면서도 더 적극적인 대러 외교 노력이 필요하다.
단호히 대응하되 기회비용은 줄여야
-북·러와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위=중·러 사이에 미묘한 공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기류가 있더라도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미묘한 흐름이 있지만 한·일,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는 다른 길을 가기보다 공조와 연대에 방점이 찍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북·러 회담 이후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위=한·미 동맹이나 한·미·일 협력 강화는 맞는 선택이다. 그러나 과도한 액션은 리액션과 기회비용을 초래할 수 있어 범위와 내용을 신중하게 해 기회비용을 줄여야 한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되 중·러에 대한 외교 공간을 남겨 둬야 한다. 동시에 대외 정책 전반에 대한 조율되고 통합된 전략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박=한·미·일은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방향과 액션 플랜을 확보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러시아·북한에 대해서는 구체성이 잘 보이지 않다. 동시에 유럽과 나토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도 포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문=이번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군사력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중장기 계획의 그림을 다시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군사 전력 향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3축 체계(킬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를 재점검하고 보완해 ‘신 3축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잠재적인 핵보유국이 될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미국에 제안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09.15 김정은·푸틴 회담 본 美, 러 연루 150곳 제재…동맹도 예외없다
미국이 북·러 정상회담이 끝난 지 하루 만인 14일(현지시간) 북한에서 러시아로 무기를 운송하는 데 관여한 러시아인을 비롯해 150여 곳의 개인과 단체·기업에 대한 대규모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무기거래를 벌일 경우 제재에 나서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제재 대상엔 미국의 동맹국 등 제3국의 기업도 포함됐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과 국무부는 이날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 물자 등을 공급한 각국 개인과 단체, 기업 등 150여 곳을 제재했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에 있거나, 미국인의 소유로 등록된 해당 기업의 모든 자산이 동결되고 거래도 금지된다.
미국은 이번 제재에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그룹에 북한이 탄약 등 군수물자를 제공하는데 관여한 러시아 국적자 파벨 파블로비치 셰블린(34)을 포함시켰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북한의 탄약을 러시아로 옮기는 데 간여한 바그너그룹 관련 인사가 제재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북·러 무기 거래 가능성에 대해 재차 경고했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도 이날 “북한이 러시아에 어떤 종류든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또다시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동맹국 기업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며 대러 제재 위반 시 예외가 없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재무부는 핀란드에 기반을 둔 물류 회사 ‘시베리카’와 ‘루미노’, 조선업체 ‘덴카르’를 포함한 튀르키예 기업 5곳, 벨기에 업체 ‘그리브다이아몬즈’,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보이스루게살루’, 아랍에미리트(UAE)의 ‘그린 에너지 솔루션스’ 등 제3국 기업들이 포함됐다. 이 중 벨기에와 핀란드,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으로 미국의 동맹이다.
재무부는 시베리카·루미노에 대해 “러시아에 근거를 둔 최종 사용자에게 외국 전자기기를 배송하는 데 특화된 네트워크”라며 “드론 카메라, 고성능 광학 필터, 리튬 배터리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러시아에 보냈다”고 제재 사유를 밝혔다. 튀르키예 기업 중엔 이중용도(민간과 군용으로 모두 사용 가능한 물품) 품목을 러시아 측에 공급한 마르기아나와 사턴EK 등이 포함됐다. 사턴EK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된 러시아 군용 무인기 공급망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재무부는 밝혔다. UAE의 그린 에너지 솔루션스는 러시아의 북극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기술을 제공한 건으로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AP=연합뉴스
이에 따라 이번 제재를 계기로 러시아와 거래한 제3국 기업·개인에 대해서도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적용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년 동안 미국과 동맹국들은 주로 러시아 기업을 상대로 금융 및 무역 전쟁을 벌였다”며 “이번 제재는 러시아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물품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서방의 노력이 확대하고 있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우리는 러시아의 침략과 러시아와의 친밀함으로 이득을 보는 기업들에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무부는 자동차기업 모스크비치, 에너지기업 가즈프롬 네드라, 금융기관인 신코은행 등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러시아 기업도 제재대상에 포함했다.
미국의 제재에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린 트레이시 주러 미국대사를 초치해 미 외교관 2명에 대한 추방을 통보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해당 외교관들이 간첩 혐의자로부터 정보를 받았다며 “미국이 옳은 결정을 내리고 대결적 조치를 자제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러시아가 건설적·외교적 관여보다 충돌과 긴장 고조를 택했다“며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09.15 "대만 사람들이 상처받았다"

“한국과 대만의 미래 관계에 대해 말해 달라.”
한국 언론에도 종종 기고하는 왕신셴 국립정치대 교수에게 누군가 던진 질문이다. 이달 초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쟁과 양안 관계’란 관훈클럽 세미나에서였다. 그는 미래 아닌, 과거로 갔다. “1992년 한국과 대만이 단교했을 때 막 대학을 졸업한 상황이었다. 사실 한국이 명동에 있는 대사관을 중국에 넘겨줬을 때 많은 대만 사람이 상처받았다. 많은 이가 한국 관광 때 명동에서 중국 대사관을 보면서 ‘이게 원래 우리 것이었는데’ 했다고 한다.” 직전의 그는 상냥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처’라니. 그럴 만했다.
31년 전 단교 때 협의 소홀로 불신
이번엔 한·미·일 협력 강화 격변기
주변국과는 제대로 소통하고 있나
과거 대만은 혈맹 이상이었다. 처음엔 항일, 이후엔 반공을 함께했다. 단교 때 대만 정부의 항의문의 일부인데, 모두 사실이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후 대일본항쟁에서도 중화민국 또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해 왔다. 일본과의 전쟁 후 한국민의 안전 확보와 귀국을 도왔으며 생활비까지 지원한 바 있다.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 장제스 총통이 한국의 자유 독립을 주장해 조선독립 조항이 삽입됐으며, 양국 수교 후 50년대 초에는 한국이 양식 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김신 대사의 요청으로 장 총통이 식량을 지원한 바도 있다.”

▲한중 수교로 대만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된 1992년 8월 24일 오후4시, 서울 명동소재 대만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거행된 하기식에 운집한 화교들이 대만국기인 청천백일기가 내려지는 모습을 울면서 지켜보고 있다. [중앙포토]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 대사를 장 총통은 집안사람으로 여겼다. 장 총통의 최측근이자 초대 한국대사 샤오위린은 대사관저가 김구 선생이 살던 곳인 걸 알곤 암살 장소인 서재를 침실로 바꾸고 꿈에서라도 김구 선생을 만나길 고대했다. 한국전이 발발하자마자 파병 의사를 밝힌 나라가 대만이었다. 미국의 지속적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중국의 부상 이후엔 물론 달라졌다. 일본(1972년), 미국(1979년)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는 단교했다. 우린 노태우 정부 때인 92년 8월이었다. 우리가 아시아권에서 마지막까지 수교국이었으니 의리 있었다고 할 순 있으나 대만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막판까지 잡아떼서다. 노 대통령은 5월에도 “새 친구를 얻기 위해 옛 친구를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단교를 며칠 앞두고서야 대만대사에게 “한·중 간 실질적 진전(substantial progress)이 있다”고 언질을 줬다. 내심 대만이 명동 대사관을 팔아버릴까, 노 대통령의 임기 내 한·중 수교와 9월 말 중국 방문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만 했다. 일본이나 미국이 고위급을 보내 사전 설명했던 것과 달랐다. 하물며 중국도 7월 중순 김일성에게 설명했다.
외교관(노창희)의 술회다. “그때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어도 대만의 불만과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만으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해서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해선 우리의 입장에서도 반성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문제는 우리가 좀 더 일찍 대만 측에 사전 통보하고 좀 더 진지하게 장래 문제에 대해 협의하는 자세를 보이지 못한 데 있었다.” 실제 양국 간 항공 노선이 복원되는 데 12년 걸렸다.
당시 대만 대사관 1등 서기관이었던 조희용은 지난해 펴낸 책(『중화민국리포트 1990-1993』)에서 이런 외교의 고질적 문제로, 정권마다의 단기적 성과지향에 외교 당국이 매달리면서 대국 몇 나라와 북한 중심의 외교를 하다 보니 여타 주요 국가와 중·소국에 대한 시의적절한 배려와 투자를 소홀히 한다는 취지의 비판을 했다.
외교적 격변기다. 당시 북방외교란 큰 방향은 옳았다. 대만 다루기엔 미흡했다. 이번엔 한·미·일 협력 강화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북·중·러를 다루는 세기(細技·세심하게 다루는 기술)가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진심으로 나아졌길 바란다.
참고로 왕 교수는 긍정적인 얘기를 더 많이 했다. 한국과 대만이 비슷한 처지라 협력할 게 더 많을 거라면서다.
중앙일보 고정애 chief에디터
09.15 역사는 돌고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말고, 일본놈 일어나고, 되놈들(중국) 돌아온다, 조선사람 조심해라.'
해방직후 만들어진 도참(예언)성 유행어로 추정된다. 어려서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얘기인데 지금도 생생한 것은, 70여년전 도참이 현실로 확인된다는 신통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과 푸틴 정상회담은 오래된 도참을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키 플레이어(Key Player)' 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다시 러시아로 국명은 바뀌었고, 국제적 위상은 부침을 거듭했지만, 러시아는 여전한 4대 강국이다.
러시아는 조선말인 1896년 고종이 정동 러시아공사관으로 들어간 '아관파천' 당시 최강의 존재감을 보였다. 그러다 1904년 러일전쟁 패배로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1945년 소련이란 이름으로 재등장해 한반도 북쪽을 접수하고 한국전쟁을 사주했다.
남한 입장에서 철천지 원수였던 소련은 1990년 수교로 갑자기 절친이 되었다. 이듬해 러시아로 이름을 바꾸고 더 친근해졌다. 볼쇼이 공연마다 관객이 미어터졌다. 러시아는 탱크와 유도탄까지 한국에 넘기는 군사기술협력(불곰사업)을 자원했다. 미국도 알려주지 않는 우주로켓 핵심 엔진기술을 넘겨준 곳도 러시아다. 덕분에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남한은 우크라이나 편에 섰다. 러시아는 북한 손을 잡았다. 4대 강국은 그대로인데, 역사의 수레바퀴가 한바퀴 돌아 다시 냉전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조선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09.22 벼랑 끝에 선 북한과 러시아의 ‘포탄 외교’
푸틴 실각 예고하는 러의 對우크라 전쟁 실패
핵보유국 된 북한도 현실선 생존의 위기
북·러 무기 거래 실현되면 우리도 정책 전면 재검토
우크라 살상무기 공급과 남북군사합의 폐기 고려를
한때 세계 2위 군사력을 자랑하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깊은 수렁에 빠져 존망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사흘이면 끝나리라 예상했던 우크라이나 정복의 꿈을 1년 반이 넘도록 이루지 못한 채 병력과 무기 부족이 심각하다. 러시아가 자랑하던 최첨단 전차, 전폭기, 극초음속 미사일, 대공방어망 등이 대거 소진되고, 20세기 전반에 사용하던 골동품 전차와 기관총까지 동원되는 형국이다. 러시아는 최후 수단으로 핵위협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아무도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패퇴할 경우 푸틴 대통령 실각과 연방의 분열까지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러시아가 서 있는 벼랑의 다른 한편엔 북한이 서 있다. 북한은 세계 아홉 번째 핵보유국을 꿈꾸었고 마침내 성공했건만 그 ‘성공의 저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남 적화통일의 집념을 이루고자 30년의 모진 난관을 감내하고 핵보유국이 되었지만, 거기에 ‘약속의 땅’은 없었다. 핵보유국이 되면 한국과 미국이 핵 위협에 굴복해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복속이 곧 이룩되리라 믿었지만, 아무도 굴복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이룩되지 않았다. 게다가 핵무장이 초래한 유엔 경제제재는 북한의 경제력과 전쟁 수행 능력을 고갈시키고 있어, 북한 체제를 생존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이처럼 벼랑 끝에 나란히 선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주 돌연 동병상련의 손을 잡았다. 주된 이유는 북한의 대규모 포탄 보유량 때문이다. 극초음속 미사일, 스텔스 전폭기, 무인항공기 등 21세기 무기가 날아다니는 우크라이나의 하늘과 달리 지상에선 전차, 대포, 지뢰, 기관총 등 구시대 무기들이 대세다. 장기간의 소모전으로 양측 모두 포탄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한반도가 이를 해결할 무기 창고로 주목받고 있다. 냉전 종식 후 세계 군사력의 대대적 감축이 이루어진 지난 30년의 평화기에 유독 한국과 북한은 냉전시대의 군사적 대치를 계속하면서 수백만 발의 포탄을 비축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나토 표준 155㎜ 포탄을 하루평균 6000발, 연간 약 200만 발 소모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진영의 연간 포탄 생산량은 나토 30만 발, 한국 20만 발, 미국 12만 발 정도에 불과해 공급이 절대 부족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비축한 300여 만 발의 155㎜ 포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포탄 사용량은 하루 평균 5만 발, 연간 약 1800만 발인데, 러시아의 연간 포탄 생산량 100만~200만 발은 수요량의 1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북한이 비축한 수백만 발의 포탄에 관심이 많으나, 그중 100만 발을 구입해 봐야 20일분 소모량에 불과해 전쟁의 대세를 바꾸기는 어렵다.
따라서 북한산 포탄 수입 문제보다는 그 대가로 북한이 무엇을 받아낼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가로 거론되는 위성발사 기술,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 핵잠수함 기술 등은 미국의 안보와 직결된 사항이어서 워싱턴의 강경한 보복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 시 “한반도 상황 관련 어떤 합의도 위반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 걸음 물러섰으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적다. 러시아가 북한산 포탄 100만 발을 구입할 경우 대금은 최대 5억~6억 달러가 될 것이며, 러시아는 그 대가로 민수용으로 위장된 첨단 무기 기술을 제공할 수도 있고, 수호이35 스텔스 전폭기나 대량의 정찰드론, 자폭드론을 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포탄 수입 대금으로 북한에 어떤 첨단 무기나 제조 기술을 판매하건, 이는 북한의 대남 핵 위협을 고도화하고 재래식 군사력 위협까지 가중시키는 중대한 안보상 위해가 될 것이다. 또한 만일 북한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전세 역전에 기여하게 된다면,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고무하게 되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직접적 안보 위협을 초래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러 무기 거래가 현실화될 경우, 정부는 대우크라이나 살상무기 불제공 원칙을 응당 수정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에 의해 이미 파기되어 한국만 홀로 준수하고 있는 남북군사합의와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의 폐기 문제도 차제에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09-22 북·러 군사 야합과 ‘안보리 개혁’ 카드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여의도 국내정치는 세(勢)와 명분(名分)의 싸움이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그럴듯해도 세력이 없으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결국, 민주주의는 수(數)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력은 있지만 명분이 없으면 목적 달성에 실패한다. 야당 대표의 단식은 세력은 있지만 명분 부족으로 21일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때 이탈표를 막지 못했다.
국제정치 역시 세와 명분의 대결이다. 국제정치에는 한스 모겐소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주장했던 현실주의(realism) 이론과 국제연맹·유엔의 토대가 된 이상주의(idealism) 이론이 주류를 이뤄 왔다. 세력 확보는 현실주의 접근이며 명분을 얻는 것은 이상주의 사고다. 두 가지 접근이 시너지 효과를 낼 때 국제정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 시베리아 우주기지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과 북한 김정은의 러·북 정상회담은 위험한 군사 야합이다. 각종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는 북한을 상대로 한 러시아의 비밀 군사 거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악용하는 행태다. 대의명분을 설파해 세력을 확보하는 스마트한 외교로 모스크바와 평양 간에 진행될 악마의 거래를 저지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파괴무기(WMD)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러·북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세력과 명분 확보에서 의미가 크다. 러시아가 유엔 결의를 명백히 위반하면서 핵·미사일 기술 등을 북한에 제공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간접침략과 다름없고, 한국이 러시아를 준(準)적국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음을 외교 무대에서 천명한 것은 명분 확보에 중요하다.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안에 위반되는 협력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으나 정황상 면피성 해명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주권국가를 침공하고 무기와 군수품을 안보리 결의 정면 위반 정권으로부터 지원받는 현실은 자기모순적”이라며 러시아의 부당성을 논리적으로 지적했다. 대북 제재 결의를 준수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의 안보리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 표명으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 반감을 가진 국가들의 세를 규합할 수 있다.
우리는 1990년 수교 이후 줄곧 러시아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면서 외교적 요구는 자제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러 관계 발전에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1950년 스탈린의 불순한 계략과 김일성의 남침야욕 등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데 러·북의 군사 모험주의 시도는 한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대(對)러시아 외교 레드라인이 설정된 만큼 러·북 간 불법 군사 거래를 저지하기 위한 명분을 확산시키고 국제사회의 동조를 유도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대러시아 제재 공조를 모색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저농축우라늄을 대체하기 위한 미국과의 협의도 불가피하다. 명분을 축적하고 외교의 깊이와 외연을 전략적으로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문화일보
09-25 한 걸음 다가선 한중관계, 규범 기반 새 원칙 추구할 때
항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을 계기로 지난 23일 현지에서 이뤄진 외교 이벤트이긴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상당히 파격이다. 시 주석과 한 총리는 양국의 국가 의전 서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데도 마주 앉아 30분 정도 회담하고, 개막식 참석 각국 인사 환영오찬 때 시 주석은 한 총리와 함께 입장하며 최고위급 대우를 했다. 특히 한 총리와의 회담에 정치국 상무위원을 2명이나 배석시켜 격을 높였는데,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 때 ‘혼밥’ ‘기자 폭행’ 등으로 홀대받았던 상황과는 크게 달라졌다. 회담 내용에 있어서도 시 주석이 한 총리에게 먼저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회담 한 번으로 한중관계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진 않겠지만, 최근 들어 등을 돌리고 멀어지던 양국 관계가 돌아서서 마주 보고 한 걸음 가까워지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21세기 황제로 불릴 만큼 중국 국가 권력을 장악한 시 주석의 이런 외교 프로토콜은 중국 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물론 양국 사이에는 수많은 현안이 있고, 당장은 넘기 힘든 높은 장벽도 있다. 한 총리가 공급망 불안정 등을 거론하면서 “규칙·규범에 기반한 성숙한 한중관계”를 언급한 데 대해, 시 주석은 “한국이 중한관계 중시를 정책과 행동에 반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 총리가 국제 규범에 따른 한중 관계 미래상을 제시하자 시 주석은 ‘중국 입장 존중’을 압박한 셈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도 이와 흡사한 입장을 보였다.
항저우 회담은 새로운 한중관계를 추구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지금까지는 정·경 분리 입장에서 안보·인권 등 불편한 문제는 묻어두었지만, 이젠 국제 규범을 존중하면서 조율해야 한다. 중국에 ‘핵심 이익’이 있는 것처럼, 한국도 북핵 폐기는 양보할 수 없는 의제임을 관철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26 러시아에 ‘응분의 책임’ 물어야 한다

권태오 前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 대표, 예비역 육군 중장
김정은과 위성 개발 지원 약속
미사일·드론 유도 장치에 활용
한국 겨냥한 무기 개발 돕는 셈
핵심기술 이전할 가능성 낮고
중국도 가세하지는 않겠지만
북중러 밀착은 韓 핵무장 강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한 북한 매체의 아첨과 찬양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온 행성이 주목하는 행보” “역사적 대외혁명 활동”이라고 잔뜩 치켜세우는 모습에서 김정은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전전긍긍, 노심초사했던 김덕훈 내각총리를 비롯한 북한 지도층의 마음고생도 엿볼 수 있다.
김정은의 방러는 지난 10∼19일로 날짜상 10일간이었지만, 열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빼면 실제 방문 기간은 5일 정도였다. 양국 간의 정상회담 결과에 관한 공식 합의문 발표가 없어 정확히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방문 기간의 행적을 통해 김정은의 주 관심사는 엿볼 수 있다.
푸틴과 정상회담을 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선으로부터 1600㎞ 이상 떨어진 곳이며, 최근 우리에게 ‘홍범도 장군과 자유시 참변’으로 잘 알려진 스보보드니 북쪽 50㎞ 지점에 있다. 회담은 만찬을 포함해 3시간 30분간 진행됐다는데, 이 만남을 보도한 러시아 매체에서 푸틴이 김정은에게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지원할 의사를 표명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다른 전략무기 기지를 방문한 행적도 있었지만, 바로 최초로 언급된 이 인공위성 관련 사항이 김정은이 푸틴으로부터 받고 싶었던 선물이었음을 말해준다.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에서 재래식 포탄이 고갈되는 러시아로선 북한제 포탄의 지원이 절실했고, 이를 간파한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요구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은 2012년 12월, 광명성-3호라는 작은 고체 덩어리를 우주궤도에 쏘아 올렸는데, 이를 가지고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6년에도 이와 비슷한 발사체를 쏘아 올렸으나 모두 우주 쓰레기 수준이었고, 그나마 최근에 낙하·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올해 들어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 위성 발사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10월에 다시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위성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는데, 북한이 원하는 군사용 위성은 평시에는 지상의 표적을 촬영하고 추적하며 통신을 감청하거나 중계하는 등의 목적으로 운용하지만, 전시에는 무인기와 드론을 조종하고 중·장거리 미사일을 유도하며 원거리에서 작전하는 항공기나 잠수함을 통제하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다. 이런 기능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미사일을 쏘고 나서 고도와 탄착 등 정밀한 비행 제원을 파악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한·미의 발표를 참고해야만 했으니,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전략무기 완성에 위성 운용은 절실한 과제였다.
그런데 푸틴이 언급했다고는 하나 과연 러시아가 인공위성 기술을 북한에 제공할지는 상당한 의구심이 있다. 1949년 10월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대륙 공산화에 성공한 후 곧바로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달려갔다. 명분은 스탈린의 생일 축하였지만, 실상은 소련으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때 마오쩌둥은 석 달 이상을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끈질기게 스탈린에게 핵무기 제조 기술을 이전해 주기를 요청했으나 스탈린은 이를 끝내 거절했다. 공산 진영 내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김일성도 핵무기 확보를 위해 소련과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결국 독자적 노력으로 완성했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지금 김정은이 필요로 하는 러시아의 위성 기술 이전도 쉽게 성사될 것 같지는 않다.
비록 북한으로부터 재래식 탄약을 얻어 쓰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위성 핵심 기술을 이전해 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러시아는 계산할 것이다. 현재로선 북한의 다음번 위성 발사가 러시아의 지원으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지원일 뿐 완전한 기술 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한, 중국이 왕따들의 유혹에 넘어가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북·중·러 연대가 성사되고 러시아가 분별없이 군사 정찰위성의 첨단 기술을 북한에 이전해 주게 된다면 이는 북한의 전략무기 완성에 결정적인 판을 깔아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며 종국에는 대한민국의 핵 개발을 추동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문화일보
09.28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미동맹 70년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변영태 한국 외무부 장관(왼쪽)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식을 갖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한국과 미국이 군사적 동맹 관계를 약속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10월 1일로 체결 70주년을 맞는다. 6·25 전쟁의 포화를 뚫고 탄생한 한미동맹은 70년간 북한의 도발을 막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 번영의 토대가 됐다.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벌써 공산화되고 우리 국민은 세계 최악의 빈곤·위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중국·러시아·일본에 둘러싸인 한국이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이 없는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것은 천운에 가깝다.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도 한미동맹이다. 1960년대까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군사원조는 매년 3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한국이 사용하는 국방비의 87%에 해당했다. 한국은 국방비에 쓸 돈으로 경제 개발에 매진했다. 덕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최빈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다.
세계 많은 나라가 한미동맹을 부러워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한미동맹에 준하는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군 파견을 요구하고 미군이 영구 주둔할 기지를 만들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것도 미국과 군사동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과 싸운 베트남도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협이 커지자 최근 미국과 안보 파트너십을 맺고 미 항공모함을 받아들였다. 반면 1992년 미군을 철수시킨 필리핀은 이후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 일부를 무력 점령하고 자국 어선에 총격을 가해도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70년간 수많은 시련을 이겨냈다. 북한은 동맹을 와해시키려고 집요한 공작을 해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내부에서 촉발된 도전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연합훈련이 4년간 중단됐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검토했다. 양국 정부가 교체되면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만들고,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통해 동맹이 제자리를 찾았다. 앞으로 누가 집권하더라도 동맹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