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탈주민(탈북민) 이야기 2023-2/ 월간조선 04월 호 탈북민에게 무료로 영어 가르치는 케이시 - 08-31 북한인권법 사문화 7년, 野 더는 재단 출범 막지 말라
북한 이탈주민(탈북민) 이야기 2023-2/
월간조선 04월 호
탈북민에게 무료로 영어 가르치는 케이시 라티그 씨
“탈북민 스스로 본인 이야기 세상에 알려 자긍심 갖길 바라”
⊙ “가장 중요한 건 자유, 선택, 협력”
⊙ “탈북민은 특수 집단 아냐… 우리 사회 한 구성원일 뿐”
⊙ 2012년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 이후 북한 인권에 관심
⊙ 상처뿐이었던 첫 한국 방문… ‘하버드 간판’ 떼고 다시 찾은 이유

▲사진=월간조선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원어민 교사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의 공동 대표인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Casey Lartigue Jr.) 씨 얘기다. 지난 9년간 탈북민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모두 ‘일대일’ 수업이다. 지난 2월 28일 서울 마포구 FSI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500여 명 탈북민에 일대일 무료 영어 수업
지난 2020년 설립한 비영리단체인 FSI는 단순한 영어 교육 기관이 아니다. 탈북민이 겪은 참혹한 경험을 국제사회에 영어로 알리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영문 자서전 출판과 연설을 통해서다. 라티그 대표는 “FSI의 가장 큰 목표는 탈북민 개개인의 자신감 고취 및 역량 강화”라면서 “탈북민들의 영어 능력 향상은 그 과정일 뿐”이라고 했다.
FSI의 전신(前身)은 2013년 설립한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이다. ‘탈북민을 가르친다’는 뜻처럼 한때는 알파벳부터 가르치던 영어 교육 기관이었다.
북한에는 외래어가 없다. 한국에서 일상처럼 쓰는 바나나, 컵, 버스, 커피 등의 단어가 탈북민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통일부가 탈북민 1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들은 국내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외래어로 인한 의사소통 문제(41.4%)’를 꼽았다. 미국에서 ‘교육 자유권’을 연구한 라티그 대표는 이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2014년부터 2020년까지 500명 이상의 탈북민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마찬가지로 모두 일대일 수업이었다. 물론 라티그 대표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자원봉사자들의 힘도 빌렸다. 다만 원칙은 분명히 지켰다. ‘철저히 탈북민 주도의 수업이 되도록 할 것.’ 탈북민 스스로 강사는 물론, 수업 장소를 선택하도록 했다.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목적을 먼저 듣고, 맞춤형 내용을 준비했다.
그러다 위기가 왔다.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어려워지면서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했다. 이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탈북민 교육 인원 수를 줄이고 ‘출판’ 영역을 포함시켜 FSI가 탄생했다. 위기가 TNKR을 FSI로 ‘진화’시킨 셈이다.
영문 자서전으로 탈북민 실태 알려

▲FSI 사무실 벽면에 붙은 사진들. 이곳에서 영어를 배운 탈북민들이다. 가장 오른쪽 사진은 2014년 BBC 선정 세계 100대 여성으로 선정된 박연미씨. 사진=월간조선
“탈북민들 스스로 입을 열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를 가지기까지는 서로 간 신뢰 구축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도, 얼굴도 숨겼던 탈북민들이 대중 앞에 서고, 한국말로도 하기 어려운 ‘인권’ 이야기를 영어로 하려면 많은 시간과 공이 필요하죠. 이 시간 끝에 자신의 이야기를 비로소 털어놓다 보면, 탈북민들은 스스로 치유를 받기도 하고, 자신감과 정체성을 찾는 데에서 나아가 자긍심까지 갖게 돼요.”
탈북민 중에서는 일반 사설 기관에서 영어를 배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자신감 고취, 치유, 인권에 초점을 둔 기관은 FSI가 유일하다.
현재 FSI에서 공부하는 탈북민은 25명 정도다. 이들 대부분은 과거 TNKR 시절부터 오랫동안 FSI와 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이날 막 수업을 마친 한송미(31)씨를 만날 수 있었다. 2011년 탈북한 그는 2019년부터 케이시 대표에게 수업을 받았다. 한씨는 “처음에는 탈북민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친다는 얘기를 듣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영문 서적까지 출판했다”고 했다.
한송미씨는 FSI 첫 공식 저자다. 지난해 10월 라티그 대표와 공동으로 《Greenlight to Freedom(자유를 향한 청신호)》을 펴냈다. 한씨와 그의 어머니가 북한에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 그리고 탈북을 결심한 이유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한씨는 이 내용을 토대로 지난 3월 16일 미국 뉴욕 UN에서 스피치까지 했다.
박은희(31)씨는 TNKR에서 ABC부터 배웠다고 한다. 자신감을 얻은 뒤 호주 연수와 미국 인턴십까지 한 그는 이제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를 구사한다. 박씨는 일련의 경험을 통해 ‘내가 왜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 하지’ ‘북한에서 온 건 결코 창피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2014년 영국 BBC 선정 ‘세계 100대 여성’에 뽑힌 북한 인권 활동가 박연미씨도 TNKR 출신이다. 박연미씨는 2014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북한 장마당 세대의 희망”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인물이다. 이후 이곳 탈북민들은 박씨를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탈북민 개개인 역량 강화에 집중”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라티그 대표는 워싱턴 DC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에서 경제적 약자, 흑인들의 교육권을 위한 교육정책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또한 미국 비영리단체(Fight for Children)에서 경제적 약자(弱者)를 위한 장학금 지원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근무하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외국어대학교대학원 겸임교수, 《코리아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 특히 기억에 남는 탈북민 사례가 있나요.
“너무 많아요. 그간 거쳐 간 약 500명의 수강생들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특별한 개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특정할 수가 없네요.”
— 수많은 탈북민을 만나며 느낀 그들만의 공통된 특성, 혹은 정서가 있다면요.
“탈북민을 ‘특수한 집단’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그들만의 공통된 사연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뭉뚱그려 한 집단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탈북민 또한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명, 한 명의 개인이니까요.”
— 책 출판과 연설 등 이들의 목소리를 영어로 세상에 알림으로써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북한 인권의 인식 개선과 같은 거창한 목표라기보다는, 넓은 차원에서 상호 간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탈북민 개개인의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외국인들은 탈북민의 결정을 ‘개인의 삶이자, 자유를 찾기 위한 선택’으로 보지만, 외려 일부 한국인은 아직까지 이들에게 선입견을 갖는 것 같아요. 때문에 선을 넘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죠. ‘너희 엄마는 어떻게 너를 남겨두고 먼저 탈북을 할 수가 있어?’와 같은 거죠. 이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영어로 더 넓은 세계에 알리면 포용적인 반응을 경험할 기회가 더 많을 거라고 봤습니다. 자연히 개개인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찾을 가능성이 더 커지는 거죠. 나도 인정받을 수 있구나, 내 삶도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하고 여길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확장되는 셈입니다.”
자유·선택·협력

▲케이시 라티그 FSI 공동대표는 지난 9년간 탈북민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궁극적인 목적은 탈북민들의 자긍심 고취다. 사진은 FSI의 전신 TNKR 시절, 탈북민들과 함께. 사진=조선DB
그는 지난 2004년 《교육적 자유(Educational Freedom)》라는 책을 공저(共著)하기도 했다. 12세 때는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자유의 예언가(Prophet of Freedom)》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한다.
— 올바른 교육이란 뭘까요. 본인의 교육 철학을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자유’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유고, 선택, 그리고 협력이에요. 예를 들어 공부보다 농구를 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고 쳐요. 그건 그의 선택할 수 있는 자유죠. 그에게는 공이 필요할 수도, 농구 골대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개개인의 필요에 맞춰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고, 이게 교육자와의 협력인 거죠. 사제 간이라는 상하 구조가 아니라, 파트너 관계로서의 협력. 앞서 TNKR 당시 학생 스스로 교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차원입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줘야 책임감이 뒤따르니까요.”
— 그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교육 방식은 어떻게 보는지.
“자유와 선택권이 거의 없죠. 정해진 커리큘럼 안에서 움직이고, 그 틀을 벗어나면 낙오자가 되는 구조입니다. 한때 이를 탈피하고자 ‘자기주도학습’이라는 게 유행한 적이 있잖아요. 한데 이마저도 또 다른 시스템으로 정착해버리더라고요. 한국인들은 이미 정량적 학습에 길든 것 같아요.”
상처뿐이었던 한국 첫 방문
한국에 처음 방문한 건 1992년 5월이었다. 대만을 여행하던 중 비자 연장을 위해 잠깐 들렀다. LA폭동(1992년 4월 29일~5월 4일) 직후여서인지, 한국인들의 ‘눈총’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첫 이미지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런데 인연의 끈이라는 게 희한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워싱턴 DC 카토연구소에서 일하는데, 한국의 자유기업원(CFE)에서 이 연구소로 견학을 왔고, 그에게 방문 연구원(비지팅 펠로)으로 와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고심 끝에 받아들였고 2010년부터 한국에 아예 둥지를 틀게 됐다. 2년간 CFE에서 일한 이후 시민단체 프리덤 팩토리의 국제협력실장과 탈북자학교인 물망초학교에서 국제협력자문위원도 맡았다.
— 탈북민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요.
“2012년 중국에서 30명의 탈북민이 강제 북송 당했다는 뉴스를 본 게 결정적 계기였어요. 그 문제로 박선영 전 국회의원(물망초 이사장)이 중국 대사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그 투쟁에 참가했다가 박 전 의원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를 통해 여러 탈북민을 만나게 됐고,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 떠난 이들을 보고 내가 외치던 자유는 그저 ‘샴페인 파티(배부른 소리)’였구나, 하고 느꼈죠. ‘누군가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텐데’에서 나아가 ‘그 누군가가 내가 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나?’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고,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님 등과 함께 세미나를 열고, 북한 이슈를 알리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케이시 덕분에 삶이 바뀌었다”
그는 탈북민들의 자신감 고취를 위해 영어 말하기 대회도 정기적으로 연다. 매년 2월과 8월, 두 차례다.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이 대회를 후원한다. 지난 2월 25일에는 올 들어 첫 대회를 성황리에 치렀다.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관과 연계한 탈북 청소년 영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미래 인재를 키우고 한미(韓美) 양국의 가교 역할도 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처럼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9일에는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도 받았다. 라티그 대표는 “탈북민을 돕는다는 걸 인정받아 명예시민이 된 것이므로 이 일을 지속하는 게 내 역할일 것”이라고 했다.
FSI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단체다. 후원금으로만 운영한다. 때로는 자비를 들여야 할 만큼 사정이 넉넉지 않다. 지금도 서울 마포구 한 작은 빌라의 1층을 사무실로 쓴다.
— 계속 미국에 있었으면 교육 정책 분석관으로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었을 텐데요.
“미국 저명 일간지에 칼럼을 내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죠. 한국에 온 이후에도 다양한 회사에서 고연봉의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FSI는 제가 선택한 숙명입니다. 재정적으로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돈이나 유명세를 좇는 삶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기사에 기재할 나이를 묻는 질문에 “내가 몇 살인지보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답한 그는 앞으로의 계획 또한 거창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라티그 대표는 “규모를 더 키우겠다는 욕심은 없고, 지금처럼 즐겁게 현상 유지를 하는 게 내 본분”이라고 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도 여러 탈북민은 “케이시 덕분에 삶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월간조선 06월 호
김건희 여사 만난 납북자 가족들
“위로의 말 한마디에 수십 년 응어리 풀어져”
⊙ 김건희 여사 납북자 가족 만나 “늦게 찾아와 죄송”
⊙ “北에서 내려온 간첩이 아들 잘살고 있다고 전해”
⊙ “이명박 정부 때 납북자에게 편지 전해주려 했다”
⊙ “납북자 문제 해결 위해 정부 전담 부서 신설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2023년 4월 12일 경기 파주시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자·억류자 가족 김태옥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위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우리 가족들은 기시다 일본 총리의 파란 리본을 보고 너무나 부러웠어요. 총리까지도 납북자 문제를 잊지 않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고 한국과 너무 비교됐어요.”
납북자 가족 박연옥씨의 말이다.
지난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방한했다. 첫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해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때 눈에 띄었다. 양복 재킷 오른쪽 옷깃에 단 파란색 리본 말이다.

▲기시다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치인들이 옷깃에 다는 푸른색 리본은 납북일본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진=뉴스1
블루리본은 일본인 납북자가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인 17명이 아니라 많게는 100명에 달할 가능성을 제기한 시민단체 ‘스쿠우카이’의 상징물이다. 일본 총리와 주요 각료들은 공식석상에 나설 때마다 이 리본을 달곤 한다. 납북 일본인 전원의 석방과 구출을 촉구하는 의미다. 일본은 1970~80년대 실종된 일본인이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드러나면서부터 줄곧 일본인 납북자 송환에 힘쓰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대조적이다. 정부가 6·25전쟁 이후 북한에 강제로 끌려가 억류된 국민에 대한 송환 노력을 하지 않고 있고, 북한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인 납북자·억류자 문제 처음 논의”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먼저 작년 11월 13일 한·미·일 정상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3국 정상회담을 갖고 납치자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상과의 회담에서 한국인 납북자·억류자 문제가 논의되고,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이 발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중 채택된 한·미·일 3국 정상의 ‘프놈펜 공동성명’에 북한 내 한국인 억류자와 납북자 문제가 언급된 건, 정부가 이들의 송환을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집중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북한 인권, 남북 간 인도적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겠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4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경기도 파주시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자·억류자 가족 10명을 만났다. 김 여사는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면서 “이제는 정부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납북자·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힘쓰겠다”고 위로했다.
김건희 여사를 만난 가족들은 “그동안 역대 어느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는데 우리의 아픔을 잊지 않고 만나준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긴다”며 “오늘의 따뜻한 위로가 버텨낼 힘이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겨레》 신문은 이튿날 신문 사설을 통해 김 여사가 납북자·억류자 가족을 만난 것을 비판했다. 사설 내용의 일부다.
〈김 여사가 어려운 처지의 이들을 만나 위로하는 것을 탓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납북자·억류자 관련 사안은 남북 실무회담 등에서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 등의 우회적 표현을 사용할 만큼 남북관계에서 민감한 문제다. 이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 배우자가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고, 나아가 북한을 향한 ‘강한 태도’까지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고 선을 넘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신문이 말하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 신문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납북자 가족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수십 년간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무슨 큰 잘못인가. 신문사 사장이나 그 임직원들의 가족 중에 납북자나 억류자가 있어도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는가”라며 “북한 노동당 선전 기관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언론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납북자 가족 박연옥씨는 “지난 50년간 그 어떤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우리 얘기를 들어준 적이 없었다”면서 “김건희 여사가 우리를 찾아와 한 위로의 말 한마디에 50년 쌓인 응어리가 다 풀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들 생존 소식 20년 만에 北 간첩한테 들어

▲납북자 가족들이다. 왼쪽부터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 납북자 이민교씨 어머니 김태옥 할머니, 1971년 1월 납북된 휘영37호 선원 박동순씨의 딸 박연옥씨다.
박씨는 “나는 일반 주부라 정치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을 놓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비판하는 이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하다”면서 “북한에 대해 옹호할 거면 차라리 그 사람들을 북으로 보내고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는 민간인이라 활동을 하면 안 된다고 했던데 그러면 그 전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은 민간인이 아니었나요? 그분은 민간인 신분에 국민의 혈세로 심지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타지마할까지 가서 관광하다 왔는데, 이것에 대해선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지 궁금하군요.”
박씨 아버지는 1971년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에 의해 납북됐다. 당시 박씨는 겨우 중1 어린 학생이었다.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명예이사장은 “김 여사가 납북자 가족들을 만난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하다”면서 “그 사람들도 부모 형제가 있을 텐데 만약 자신이 당사자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납북자 가족들과 김건희 여사의 만남 이후 진보 매체와 인사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가족들은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기자가 만난 납북자 가족의 사연은 모두 절절했다. 이 중 40년 전인 1977년 수학여행 중 전라남도 홍도에서 북한에 의해 납북된 이민교씨의 어머니 김태옥씨의 얘기는 유독 기억에 남았다. 김씨는 올해 91세다. 나이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 빼곤 건강한 편이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 이 말만 반복했다.
“이 늙은이, 이제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아들 민교가 살아 있는 것은 확인됐고, 평양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하니 굳이 데려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거기서라도 잘 살면 되지요. 그런데 내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꼭 한번 보는 것이 늙은이 평생소원입니다.”
김씨의 아들 이민교씨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의외의 인물로부터 알게 됐다. 바로 1995년 10월 부여에서 우리 군경(軍警)과 총격전 끝에 검거된 대남공작원 김동식씨다. 김씨는 당시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저를 찾아왔었어요. 어디로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죠. 함께 간 곳은 경기도 성남시 인근인 것으로 기억나는데 인적이 드문 외딴집으로 갔죠. 그곳에서 한 남성을 만났는데 그분이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이라고 하더군요. 그분 말이 우리 민교가 키도 크고 잘생기고 착하게 자랐다면서 2000년대 초까지 평양 용성구역에 있는 이남화(以南化) 환경관에서 일을 했다고 말해줬어요.”
이남화 환경관은 간첩들이 남파(南派)되기 전 남한 내의 생활 경험을 위해 만든 일종의 교육시설이다.
“아들에게 피해될까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
김씨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들의 생사를 확인했지만 만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들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이명박 정부 때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있는 휴민트(내부 협조자)를 이용해 이민교씨와 또 다른 납북자에게 가족의 소식을 전하려고 했다. 김씨는 편지를 전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뻤지만 이내 포기했다.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얘기에 아주 기뻤지요. 편지를 쓰려고 보니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편지가 전달되는 도중 북한 당국에 적발된다면 나보다 아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차마 편지를 쓸 수가 없더군요.”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정부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모자(母子) 만남을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북한 내부 협조자를 통해 소식을 전달해주려 노력했다”면서 “그래서 여러 차례 편지를 써보라고 권했지만 김씨는 아들의 안전 때문에 포기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며 한창 들떠 있을 당시 김씨는 이 기회에 아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문 대통령에게 절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김씨가 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수학여행을 보낸 이 어미의 죄요, 그래서 북에 납치된 것도 어미의 죄입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에게 북에 납치된 사건을 용서할 테니,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 번 보게 해달라는 것이 그렇게 죄가 되나요.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속히 아들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 지옥에서 늦게 해방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1960~1970년대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는 납북어부 31명이 1985년 9월 강원도 원산에서 사상교육을 받으면서 ‘라진혁명전적지’를 답사한 뒤 찍은 단체사진을 입수해 2008년 5월 19일 공개했다. 사진 속 33명 중 2명은 북한 지도원이라고 최 이사장은 설명했다. 사진=최성룡 이사장
기자가 만난 납북자 가족 중 이민교씨의 어머니처럼 자녀가 북한에 납치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가족들 대부분이 아버지가 납북된 경우였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성의 이사장도 아버지가 6·25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갔다.
이 이사장의 아버지는 1949년 충주지방검찰청 검사로 일하다가 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 퇴직했다. 그 후로 변호사로 일했다.
북한은 6·25전쟁 당시 남한에서 활약하던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 등을 강제로 북한으로 끌고 가는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납북된 사람은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이들의 소식은 전쟁 발발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뚜렷이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북한에 끌려간 가족을 잊을 수 없었던 이들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구성해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이사장은 “아버지는 9명의 가족을 모두 데리고 피란 가기 어려워 서울에 남으셨다. 아버지는 북한군을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시다 당시 북한을 지지하던 친구의 밀고로 잡히셨다”면서 “처음엔 잡히신 것도 몰랐다. 어느 날 서대문형무소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던 사람이 아버지가 쓴 편지를 건네줘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이사장의 넷째 언니는 마당에서 놀던 중 북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둘째 언니와 오빠 한 명을 당시 개성 외가로 보냈는데 지금껏 소식을 모르고 있다. 큰오빠는 6·25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지리산 토벌에 동원됐다. 전쟁 이후 파출소장으로 근무하다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까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으로 일했던 이미일 명예이사장의 아버지도 6·25 때 납북됐다. 이미일 명예이사장은 김대중 정권 시절이던 2000년 11월 6·25사변납북자가족회(협의회의 전신)를 만든 이후 지난 17년간 6·25 납북자 진상 규명 활동에 앞장서 왔다. 2010년에는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 명예이사장은 “북한 정권이 하루빨리 끝나야 한다. 우리 납북자 가족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김정은 정권이 막을 내려야 한다”면서 “만약 북한이 무너지고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지옥 같은 북한에서 늦게 해방해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납북자 전담 부서 만들어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70년 가까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 살아온 납북자 가족들은 윤석열 정부의 관심에 감사할 뿐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날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은 우리 정부가 일본처럼 납북자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도 함께해 주길 바라고 있다. 이성의 이사장은 “정부나 역대 대통령들마다 5·18이나 4·3사건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6·25전쟁 피해자인 납북자들에 대해선 아무 관심이 없다”면서 “많은 사람이 북한에 끌려갔는데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역사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 납북자 가족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다시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대들에 잘 전달해야 한다”면서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 “프놈펜에서 대통령이 납북자들을 언급하고 영부인께서 우리를 찾아와 위로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그동안 가슴에 맺혀 있던 한(恨)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관심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일 명예이사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김건희 여사를 만나 많은 얘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납북자 가족들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전달한 것 같아요. 이번을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더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이 명예이사장은 덧붙여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처럼 정부부처에 납북자 관련 전담 부서를 만들어 국내와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된다”며 “여러 차례 통일부에다 납북자 전담 부서 문제를 건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월간조선 07월 호
北 김정철 모교서 인권 강연한 탈북민
베른국제학교 학생들, “김정철이 우리와 동문? 미친 거죠!”
⊙ 강연서 “북한, 주민들 살 수도 떠날 수도 없게 만들어”
⊙ 수업 들은 학생들, “북한은 나쁜 나라… 실상 실감한 자리”
⊙ 주스위스 북한 대사관 가보니… 마당에 벤츠 두 대, 초인종 위엔 거미줄

▲베른국제학교는 상당히 소규모 학교로 전교생이 3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사진=박지현 기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차로 약 2시간. 베른 기차역에서 내려 택시로 약 20분간 달리면 북한 김정철이 다녔던 국제학교가 나온다. 베른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Berne)다.
지난 5월 15일 오전 10시. 이 학교 단상에 탈북민 한송미(30)씨가 올랐다. 북한 인권 강연을 위해서다. 커스티 드 와일드(Kirsty de Wilde) 베른국제학교장은 “오늘 학생들에게 매우 특별한 강연을 들려주기 위해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며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달라”고 했다. 강연을 진행한 중앙 강당에는 10대 학생들과 교사들까지 약 40명이 모였다.
“北, 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곳”

▲김정철의 모교 베른국제학교에서 탈북민 한송미씨가 북한 인권에 대해 강연을 했다. 사진은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인권 강의라고 해서 딱딱한 이론 수업이 아니었다. 지난 2011년 탈북한 한씨는 먼저 탈북한 어머니가 그를 구하려 한 과정을 차분히 털어놨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늘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이에 학교를 가는 대신 나무를 베고, 농사를 지어야 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한씨는 5월 17일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The Geneva Summit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에서도 북한 인권에 대해 연설했다. 제네바 연설에서 ‘북한 어머니들의 강인함’과 ‘자유를 향한 용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날은 청소년이 대상인 만큼 ‘기회’에 방점을 찍었다. 한씨는 “2011년 3월 나는 무지(無知)에서 깨어나, 마침내 자유로 탈출할 기회를 잡았다”면서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기회를 잡거나, 만들길 바란다”고 했다.

▲강연 중인 한송미(중간)씨와 이은구(왼)·케이시 라티그 주니어(오) FSI 공동대표.
이날 한씨는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를 통해 단상에 오를 기회를 잡았다. FSI는 탈북민의 국제무대 연설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Casey Lartigue Jr.)와 이은구 공동대표는 한씨의 발제 이후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라티그 대표는 “북한은 주민들을 살 수도(live), 떠날 수도(leave) 없게 만든다”고 했다.
집중하던 학생들은 연이어 질문을 쏟아냈다. 동시에 손을 든 학생도 많았다. 주로 ‘탈북 이동 시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서울과 북한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 북한에서 여타 외국 소식은 어떻게 접했는지, ‘북한 정권’만의 특징은 무엇인지, 북한의 선전(宣傳) 문화는 어떤 것인지’와 같은 질문이었다.
“북한 나쁜 나라인 것 실감”

▲한송미씨의 저서와 자필 서명을 받겠다고 줄을 선 학생들(사진 왼쪽)과 한송미씨의 탈북기를 담은 저서 《Greenlight to Freedom》를 받아든 학생들.
약 1시간가량 질의응답까지 마치고선 한송미씨와 라티그 대표가 공저(共著)한 한씨의 영문 자서전 《Greenlight to Freedom(자유를 향한 청신호)》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북한에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 탈북을 결심한 이유와 그 과정이 담겨 있다.
학생들은 책머리에 한씨의 자필 서명을 받겠다며 줄지어 섰다. 출판기념회를 방불케 했다. 한씨는 책머리에 서명과 함께 ‘오늘 당신의 자유를 만끽하세요(Enjoy your freedom Today)’라는 글귀를 적었다.
강연 이후 몇몇 학생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자이납 알하즈니(Zaynab Alhasni·16) 양은 “눈물겨운 강의였고, 특히 질의응답 시간은 굉장히 교육적이었다”고 했다. 보딘 스피치거(Bodine Spichiger·16) 양은 “굉장한 강의였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조피아 헬럭(Zofia Helak·17) 양은 “북한이라는 곳이 나쁜 나라인 것은 알았는데 얼마나 나쁜지는 잘 몰랐다”면서 “이번 계기로 이를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 학생은 모두 김정철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김정철을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한때 북한의 지도자 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정철이 이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들은 입을 모아 “미친 거죠(It’s Crazy!)”라고 했다. “불명예스럽다는 뜻이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했다. 헬럭 양은 “김정철은 우리와 다른 건물에서 공부했지만, 북한의 정체 등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같은 학교였다는 건, 그냥 ‘미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재학생 대부분 외교관 자녀들
김정철은 1994년 9월부터 1998년까지 이 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나이로 14~18세 때다. 학교에서는 ‘박철’이라는 가명을 썼다. 당시 김정철의 스위스 보호자였던 이모부 박건의 성과 자신 이름 뒤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한편 김여정은 1997년 무렵 김정은과 함께 베른의 헤스구트 공립초등학교에 다녔다. 김정은은 이듬해 같은 부지에 있는 슈타인휠츨리 공립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립학교는 학비가 무료다. 2023년 현재 베른국제학교의 1년 학비는 11~12학년 기준, 3만8160CHF(약 5500만원)이다. 당시 후계자로 키워진 게 누군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김정철의 후계구도 탈락 배경과 관련해서는 여성호르몬 과다 분비, 유약한 성격 등 여러 분석이 뒤따랐다.
커스티 드 와일드 교장과도 잠깐 대화할 수 있었다. 다음 수업이 있다며 바삐 걸어가던 차라, 간단한 질문만 할 수 있었다. 부임한 지 약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그는 김정철이 학교 졸업생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최근에 부임한 만큼 어떤 학생이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 김정철은 한때 북한의 유력한 차기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추측건대 아마도 소규모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규모 학교보다 익명으로 지내기에 용이하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이곳의 외관은 학교라기보다 작은 연수원처럼 생겼다. 나지막하고 긴 건물 두어 개가 전부다. 주변은 한적한 시골 마을 같다. 길 건너엔 마구간도 있다. 학생은 모두 247명이다. 약 30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 김정철이 다녔던 만큼 고위층 자제를 위한 학교로 알려져 있는데요, 주로 어떤 학생들이 다닙니까.
“굳이 상류층 아이들이라기보다, 각국 대사관이 위치한 베른에 있는 만큼 외교관 자녀들이 많고, 외국계 기업 자제들도 있습니다.”
한때 전 세계 언론으로 몸살 앓던 곳
― 김정철 외에 다른 북한 학생이 다닌 적이 있습니까.
“과거 김정철 외 다른 북한 학생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지금은 없습니다.”
― 김씨 가문이 모두 스위스에서 공부한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중립국인데다, 미국의 영향을 덜 받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은데요.
“아무래도 그런 이유겠죠. 스위스가 교육으로 유명하기도 하고요. 그들(김씨 가문)이 자녀를 유학 보낸다면 이왕이면 중립국인 게 낫겠죠.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될 테니까요.”
― 김정철이 이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어땠습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지금 묻고 계신 의문점들을 저 또한 마찬가지로 가졌었답니다.”
한때 이 학교는 전 세계 취재진으로 몸살을 앓았다. 김정철 후계설은 지난 2005년 불거졌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철이 만찬에 참석한 사실이 외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당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등은 “후진타오의 북한 방문은 후계구도가 김정철로 정해졌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무렵인 2006년 학교는 홈페이지를 통해 “언론이 우리 학교의 한 졸업자(김정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동문들과 접촉하려 하니 주의를 바란다”는 안내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학교에 17년 뒤 탈북민이 찾아와 북한 인권 강연을 한 셈이다.
브리티시 스쿨 교장, “北 인권 문제 교육 필요”
베른국제학교 강연 이후에는 15분 거리에 있는 브리티시 스쿨(British School)도 찾았다. 마찬가지로 국제학교인데, 학생 연령대는 더 낮다. 대부분 10세 이하다. 때문에 별도의 강연은 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 미셸 플라이어(Michelle Flieler) 교장을 만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향후 관심을 촉구하고, 한송미씨의 자서전을 도서관에 기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플라이어 교장은 “북한 인권 문제는 책과 국제사회 목소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고 했다. 이은구 FSI 공동대표는 “중요한 건 이 같은 사실을 젊은 세대, 어린 학생들에게 교육을 통해 정확히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플라이어 교장은 이에 “실제로 전쟁 세대와 거리가 먼 어린 아이들은 별도로 배우지 않으면 진실을 모를 수 있다”면서 “예컨대 히틀러와 나치의 홀로코스트, 안네 프랑크를 모르고 자랄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인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대사관 가보니… 인기척 없고 초인종엔 거미줄

▲주스위스 북한 대사관 전경. 자세히 보면 기와 지붕이 일부 파손돼 있다(사진 왼쪽). 금색 현판만이 대사관임을 알리고 있다.
BBC 중국 특파원을 지낸 재스퍼 베커는 저서 《불량정권(김정일과 북한의 위협)》에 “김정철은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관의 운전기사 자녀로 위장해 국제학교를 다녔다”고 썼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씨가 북한 대사관 숙소에 거주하며 벤츠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정이 끝난 후, 북한 대사관에 직접 찾아가 봤다. 앞서 베른국제학교의 한 교사는 “현재 북한 대사관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나가다 본 적이 있다”면서 “알바니아 대사관과 붙어 있다”고 알려줬다. 굳이 그에게 물어본 이유는 인터넷으로는 정확한 주소지를 알기 힘들어서였다.
포탈레스트라세(Pourtale´sstrasse) 43번지. 주스위스 북한 대사관의 주소다. 베른국제학교에서 3.2km 거리다. 트램을 타고 10분, 도보로 10분을 이동해야 한다. 트램에서 하차하자 맑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졌다. 급기야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펴고, 구글 지도를 보며 걸었다.
조용한 주택가가 이어졌다. 린덴베그(Lindenweg) 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30초 직진하니 길 건너편에 북한 대사관이 보였다.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곡선의 검은 대문과 그 위를 수놓은 금색 장식. ‘높으신 분이 살법한 저택’의 느낌이었다. 대문 옆 ‘스위스련방주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라는 현판을 제외하곤 대사관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은 없었다. 인공기도 걸려 있지 않았다. 현판 아래 초인종이 눈에 들어왔다. 누르려고 보니, 거미줄이 쳐 있었다. 고장 난 지 오래된 듯했다.
파손된 지붕, 마당엔 벤츠 두 대

▲북한 대사관 내부에 주차된 벤츠 차량 두 대.
한편 담벼락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는 꽤 신식(新式) 같았다. 하얗고, 길고, 반짝거렸다. 우산으로 황급히 얼굴을 가렸지만, 이미 다 봤을 거다.
대문 밑 틈새로 안을 들여다봤다. 대지는 어림잡아 800㎡(약 250평)로 보였다. 대사관 건물은 대문에서 서른 걸음 정도 안쪽에 자리해 있었다. 총 3층이었다. 전체적으로 상아색인데, 삿갓 모양의 적색 기와지붕이 얹혀 있었다. 몇몇 기와는 파손된 상태였다.
건물 정면에는 직사각형의 커다란 창문이 6개 나 있었다. 그중 2층 가장 오른쪽 유리 창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창문마다 반투명 커튼이 쳐 있었다. 만일 사람이 있다면, 실루엣이 보일 수도 있는 구조였다. 보인다면 호러가 따로 없을 것 같았다.
북한은 보통 별도의 관저를 두지 않고, 대사관 내에서 대사와 직원이 모두 숙식한다고 들었다. 스위스 북한 대사는 주제네바북한대표부 대사가 겸임한다. 한대성이다. 문틈 사이로 소리쳐 봤다.
“계십니까?” 당연히 묵묵부답이었다. ‘만에 하나 누군가 대답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다’는 오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외쳐봤다.
“아무도 안 계세요?” “한대성 대사 혹은 직원 분 안 계십니까?”
들리는 건 우산을 때리는 우박 소리뿐이었다. 바짓단이 젖어 발목까지 축축해졌다. 그때 대사관 건물 앞마당. 나무로 짜인 지붕 아래 주차된 검은색 벤츠 두 대는 도도히 비를 피하고 있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월간조선 07월 호
국제사회에 울려 퍼진 北 인권 목소리
“점점 파렴치해지는 북·중·러 독재자들… 이젠 학대자들에 대항할 때”(힐렐 C. 노이어 유엔워치 상임이사)
⊙ 세계인권선언 75주년… 스위스 제네바서 25개 민간단체 주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 열려
⊙ 러시아·중국·이란·북한 등 반체제 인사, 한입으로 ‘자유’ 외쳐
⊙ “시진핑 박해 막을 것은 국제사회 압박과 제재뿐”(지얄 로 박사)
⊙ 연단 오른 탈북민 한송미씨 “공개처형 강제 관람 후 탈북 결심”
⊙ 韓 국적 탈북민 제네바 연설 6년 만… 文 정권 때는 없었다
⊙ 케이시 라티그 FSI 대표, “국제사회에 北 인권 인식 높이는 계기”

▲탈북민 한송미씨가 지난 5월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The Geneva Summit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지현 기자
배고프면 숟가락을 들고, 밖에 나갈 땐 옷을 챙기고, 졸리면 눕는다. 당연한 일상이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당한 사람들. 전 세계엔 아직도 많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 개발, 탈레반 정권의 재집권, 중국의 소수민족 박해. 세계 곳곳에서 자행 중인 탄압 아래서다.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인 2023년에도 인권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핵심 과제다. 지난 5월 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인권이 화두였다. G7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고 홍콩, 신장(新疆), 티베트의 인권을 문제 삼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북한 정권이 자행하는 인권 유린은 반인도적 범죄 행위로서 국제사회가 더 이상 이를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난 정부에서 소외했던 북한 인권 문제를 전면에 떠올린 셈이다.
이후 5월 22일 채택한 ‘한-EU’ 공동성명에서도 인권 문제를 부각했다. 두 정상은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맞아, 우리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굳건한 공약을 재확인한다”면서 ‘북한 내 인권 침해 및 유린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앞서 윤 정부는 지난 5년간 공석이었던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하고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도 다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에는 북한인권보고서를 처음으로 공개 발간하기도 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차츰 집중되는 가운데,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인권 문제의 바로미터가 되는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그 현장을 찾아 각국 인권 참상의 현주소를 짚고,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살펴봤다.
“독재자들에게 책임 물어야”

▲기조연설을 맡은 힐렐 C. 노이어(Hillel C. Neuer) 유엔워치 상임이사. 사진=박지현 기자
세계 곳곳에서 인권 탄압을 받은 이들은 매년 제네바에 모인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The Geneva Summit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 참석을 위해서다. 인권재단(HRF)과 유엔워치(UN WATCH) 등 25개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 회의는 인권 피해자들이 연단에 올라 그들 입으로 직접 그 실태를 증언하는 자리다. 올해는 지난 5월 17일 제네바 국제회의센터(GICG)에서 열렸다.
중국(중국·신장 위구르·티베트),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이란, 북한,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쿠바 등의 반체제 인사, 운동가, 정치범과 그들의 가족 및 외교관, 언론인까지 수백 명이 참석했다. 한국 언론은 본지가 유일했다.
이날 기조연설을 맡은 힐렐 C. 노이어(Hillel C. Neuer) 유엔워치 상임이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인권 침해 대두로 1948년 유엔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했다”면서 “그러나 75년이 지난 지금 독재자들과 권위주의자들은 하바나(쿠바)에서 하라레(짐바브웨), 니카라과, 북한, 모스크바(러시아), 베이징(중국)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파렴치해지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세계 인류의 5분의 1인 15억 인구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대륙 내 반체제 인사들을 징역 보내고, 티베트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강제 흡수 교육시키고 있으며, 아시아 민주주의의 마지막 전초기지인 홍콩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신장에서는 수백만 명의 위구르족들이 수용소에 갔습니다. 러시아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인들을 짓누르고 밤낮으로 폭격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25년형을 선고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난에 허덕이는데, 독재자 김정은은 세계를 협박하기 위해 핵무기에 국가의 모든 돈을 퍼붓습니다.
이 같은 독재 정권을 퍼지도록 내버려 두면 언젠가 큰 대가를 치릅니다. 독재자들은 서로 단결합니다. 우리도 이들에 대항해 단결해야 합니다.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임무는 세계인권선언의 약속을 현실로 끌어내고,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학대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이번 회의가 변화의 촉매제가 되길, 억압에 맞서고 독재 정권에 도전하며, 모든 이가 마땅히 누릴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러·중·이란 연사들, 한목소리로 ‘자유’ 외쳐

▲왼쪽부터 피터 양(Peter Yang), 에브게니아(Evgenia), 시마 바바에이(Shima Babaei). 액자의 사진은 각각 아버지, 남편, 아버지. 사진=박지현 기자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 이는 러시아 기자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Vladimir Kara-Murza)의 부인인 에브게니아(Evgenia)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25년형을 받고 수감 중인 남편을 대신해 나온 그는 “푸틴 정권이 옹호하는 거짓말, 폭정, 테러의 반대편에 선 남편이야말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면서 “남편의 멘토이자 친구인 보리스 넴초프가 생전 언급한 ‘자유의 비용은 크다’는 말을 요즘 수차례 곱씹게 된다”고 했다. 넴초프는 지난 2015년 크렘린 근교에서 암살당한 러시아 전 야당 지도자다.
5년 전. 14세의 나이에 과감히 히잡을 벗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여 유명해진 이란 여성 시마 바바에이(Shima Babaei)도 이 자리에 섰다. 악명 높은 ‘에빈 감옥’ 독방에서 목숨을 건 탈옥 후 국경수비대의 총격을 피해 이란을 탈출, 국제사회에 이란의 인권 실태를 알리고 있다.
시마 씨는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는 나라에서 왔다”면서 “우리는 체포, 고문, 돌팔매질, 채찍질, 투옥, 강간 및 처형이 난무해 ‘자유’란 찾아볼 수 없는, 역사상 가장 무자비한 독재자 중 하나에게 점령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슬람 반체제 인사인 아브라함 바바에이(Ebrahim Babaei)의 딸이다. 아브라함은 지난 2021년부터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시마 씨는 “오늘은 아버지가 실종된 지 513일째 되는 날”이라면서 “이슬람공화국에 의해 삶을 빼앗긴 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투옥된 아버지를 위해 나온 대학생 아들도 있었다. 중국에서 ‘맨발의 변호사’로 알려진 인권 운동가 궈페이슝(Guo Feixiong)의 아들 피터 양(Peter Yang)이다. 양씨는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이유로 12년간 수감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국제사회에 중공의 박해를 알릴 것”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아버지가 감옥에서 고문당하는 동안 대장암 말기였던 어머니의 임종을 홀로 지켜야 했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중국의 인권 운동가 양젠리(Yang Jianli) 씨는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중국 내 인권 침해는 폭증하고 있다”면서 “그의 통치하에서 전에 없던 거대한 인권 사건들이 계속 터져 나온다”고 했다.
티베트 문화 근절하는 중국
중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티베트 내 학교를 체계적으로 없애고 중앙 집중식 기숙학교로 대체했다. 티베트의 정체성과 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방책이다. 티베트 출신 지얄 로(Gyal Lo) 박사는 “기숙학교뿐만 아니라 기숙유치원도 존재한다”고 했다.
“기숙유치원에 간 4세, 5세짜리 아이들은 티베트어를 하지 못합니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못해요. 마치 외국에서 자란 아이가 됩니다. 중국공산당은 티베트 아이들이 중국인이 되도록 강요합니다. 정원사가 땅에서 나무를 뜯어내는 것처럼 중국공산당은 우리를 근절하기 위해 티베트의 문화적 뿌리를 캐내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계속된다면 5000년 된 티베트 문명은 끝날 겁니다.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을 막을 것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뿐입니다.”
코트디부아르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NGO 활동을 하는 마리-클레어 카크포티아(Marie-Claire Kakpotia)는 ‘할례(FGM·Female genital mutilation)’가 단지 서아프리카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내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그 역시 할례 피해자다.
2020년 NGO를 설립해 FGM 생존자를 무상 치료 중인 그는 “유럽에만 강제 시술 피해자가 50만 명에 달한다”면서 “이것이 서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주변에 알려달라”고 했다.
이 밖에도 이날 최연소 강연자였던 16세의 아프가니스탄 소녀 닐라 이브라히미(Nila Ibrahimi)와 체 게바라 경호원의 손자이자 망명을 강요당한 쿠바의 언론인인 아브라함 히메네스 에노아(Abraham Jiménez Enoa) 등의 연사들이 한목소리로 ‘자유’의 가치를 역설하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연사들에게는 약 8분씩이 주어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울림은 길었다.
“정부, 지원 많이 해줬다”
이런 무대에 탈북민도 섰다. 한송미(30)씨다. 힐렐 노이어 상임이사는 “한씨는 가난과 억압이 만연하고, 수용소에서는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북한에서 간신히 탈출한 생존자 중 한 명으로, 북한 정권을 상대로, 북한 주민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순서를 기다리던 한씨는 “이렇게 큰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라 너무 떨린다”고 했다. “특히 한국 정부(주제네바대한민국대표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준 자리라 어깨가 더 무겁다”고 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의 뒤로 약 600명의 청중이 보였다. 얼마나 연습했는지, 대본은 이미 해져 있었다. 드디어 돌아온 차례, 트위드 소재의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한씨가 총총히 연단으로 올라섰다. 관중은 일제히 집중했다. 첫마디는 이랬다.
“엄마는 제게 두 번의 삶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1993년, 저를 낳았을 때이고 두 번째는 2011년 북한에서 저를 구출했을 때입니다. 제 삶에 영웅이 있다면, 바로 그녀입니다.”
제네바로 출발하던 날, 새벽. 딸을 배웅하러 인천공항에 온 한씨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몸조심하고 잘 하고 오래이”라며 연신 다 큰 딸의 손을 매만지던 그였다.
한씨는 한때 북한에 홀로 남겨졌었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먼저 탈북했고, 그는 이모 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이후부터는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고, 나무를 베고 농사를 지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저를 버린 줄 알지는 않았을까. 한씨가 말을 이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아이를 키우기에 최악의 장소일 수도 있지만, 북한의 어머니들은 용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제 이름은 한송미입니다. 저는 북한의 한 시골,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제가 3세 때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이혼했고, 이는 이제 돈도, 먹을 것도, 살 곳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엄마는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는 일을 하고 계셨는데, 과수원 주인은 2년 동안 우리가 삶은 풀을 먹고, 소들과 함께 헛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청중석 곳곳서 눈물

▲약 600명의 청중이 한송미씨의 연설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관객은 눈물을 훔쳤다. 사진=박지현 기자
어머니가 탈북한 건 한송미씨가 12세 때였다. ‘꼭 다시 오겠다’며 한씨에게 곱셈표를 건넨 엄마는 ‘돌아오면 시험을 볼 테니 공부하고 있으라’고 했다. 구구단을 몇 번이고 외웠지만, 약속한 날에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했어요. ‘엄마는 어디 있는 거지?’ 그때 저는 이모 댁에 살고 있었는데, 기차소리가 들리면 역으로 달려가곤 했어요. 낯선 사람들을 붙잡고 ‘이렇게 생긴 여자를 본 적이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 아이는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차역은 노숙(露宿)하는 아이들로 가득했어요.”
어느 날 엄마로부터 편지가 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와 삼촌은 아사(餓死)했고 또 다른 삼촌은 기차로 투신했습니다. 길에는 죽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여러 번 굶어 죽을 뻔했고, 자살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제게 중개인(브로커)을 세 번이나 보냈지만, 그때마다 이모는 ‘중국에서 팔려가거나, 장기 적출을 당할 것’이라고 했고, 저는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이 메었다. 청중석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송미씨는 15세 때 처음으로 공개처형을 본 이야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이를 지켜보는 게 의무였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앞줄에 서야 했어요. 처형당한 여성의 남편과 4세짜리 아이도 그 광경을 봐야 했습니다. 줄에 묶인 여성은 세 번이나 총을 맞았습니다. 총격 이후 앞으로 굴러 떨어지던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딸 구하려 中 남성에게 스스로 팔려간 엄마
끔찍한 경험은 이듬해에도 해야 했다. 이번에는 22세의 청년. 한국 영화 CD를 팔았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17세가 되던 해, 북한에는 미래가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몇 년 전 엄마가 보낸 중개인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중국행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중개인과는 떨어져 앉아야 했습니다. 한 정거장에서 경비원이 ‘어디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혜산에 있는 할머니에게 간다고 하자, ‘중국에 가는 거지?’라며 저를 때리고, 발로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길로 하차해야 했고, 내린 기차역에서 다른 경비원은 저를 강간하려고 했습니다. 힘겹게 밀쳐내고 달렸습니다. 그러자 한 무리의 군인이 보였습니다. 제발 도와달라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할 동전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공중전화를 찾은 그는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여곡절 끝에 그를 만나 북·중 접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이따금씩 총알들이 발치에 떨어졌다. 중국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엄마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한씨는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2011년 5월 20일, 한국 땅을 밟았다.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단연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엄마의 첫마디는 ‘왜 이렇게 키가 작은 거야’였죠. 저는 평생 굶다가 겨우 150cm가 됐거든요. 제가 이 연설을 준비하고 있을 때 엄마가 일기장을 보여줬습니다. 2006년 8월 26일. 저를 구하려면 돈이 필요했던 엄마는 중국 남성에게 스스로를 팔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뒤 한국으로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북한에는 먼저 탈북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늘 아이들이 있다고요. 어머니들은 그 끔찍한 정권으로부터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요.”
“더 많은 탈북민 이 자리 서길”

▲2023년 제네바 인권 정상회의에 참석한 연설자들. 사진=박지현 기자
‘김정은은 독재자고, 북한 정권은 악마다.’ 한송미씨는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직접 겪은 일상을 덤덤히 털어놨을 뿐이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 일상 자체가 너무도 비일상적이라서다.
청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작게 환호를 지르는 이도 있었다. 일부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행사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쏭미한’을 찾았다. 몇몇 연사는 작은 한씨를 꼭 안아줬다. “자유를 향한 용기를 높이 산다”면서다.
한송미씨는 “북한에 남아 있는 자녀들이 먼저 탈북한 부모의 사랑을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계기로 북한 인권의 실상이 세계에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고, 다른 여러 탈북민에게도 이 자리에 적극 참여하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연 이후 한씨는 제네바 국제회의센터를 찾은 제네바 최초의 국제학교인 에콜린트 스쿨(Ecolint school)과 추크 루체른 국제 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Zug and Luzern) 학생들 30명을 대상으로 별도의 강연을 하기도 했다.
FSI, 탈북민 국제무대에 세워

▲탈북민인 한씨가 국제무대에 선 건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가 있어서 가능했다. 왼쪽부터 이은구 대표, 한송미씨,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Casey Lartigue Jr.) 대표. 사진=박지현 기자
인권은 북한에 치명적인 약점이다. 인정과 명망, 존중에 목마른 김정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살아남은 탈북민은 독재 정권의 실상을 폭로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다. 탈북민이 국제무대에 서는 건 그래서 큰 의미다. 그런데 탈북민에게 영어는 커다란 장벽이다.
탈북민인 한송미씨가 국제무대에 설 수 있었던 건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가 있어서 가능했다. 지난 2014년부터 탈북민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던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의 후신(後身)이다.
2020년 재탄생한 FSI는 단순한 영어 교육 기관이 아니다. 탈북민이 겪은 참혹한 경험을 국제사회에 영어로 알리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영어 연설과 영문 자서전 출판을 통해서다. TNKR 시절부터 FSI와 연을 맺은 한씨는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 국제무대에까지 섰다. 지난해 10월에는 영문 자서전인 《Greenlight to Freedom(자유를 향한 청신호)》도 펴냈다. 한국에서 가져간 한씨의 저서도 현지에서 상당한 인기였다.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Casey Larti gue Jr.)와 이은구 FSI 공동대표는 일정 내내 한씨 옆에서 지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라티그 대표는 워싱턴 DC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에서 경제적 약자, 흑인들의 교육권을 위한 교육정책연구원으로 근무한 교육 전문가다. 2010년 자유기업원(CFE)에서 일하며 한국에 둥지를 틀었고 2012년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을 계기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민단체 프리덤 팩토리의 국제협력실장과 탈북자학교인 물망초학교에서 국제협력자문위원도 지냈다.
라티그 대표는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킨 송미가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FSI는 앞으로도 여러 탈북민이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이들 공동대표는 이날 참석한 세계 곳곳의 NGO 관계자들과 부지런히 교류하며 향후 협력을 다짐하기도 했다. 라티그 대표는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히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적 움직임’이 중요하다”면서 “이번 회의에서 교류한 세계인들과 함께 북한 인권 관련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은구 대표는 “제네바 인권 정상회의와 국제학교 강연을 통해 탈북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더 많은 탈북민이 국제사회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FSI는 오는 7월에도 7명의 탈북민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6년 만에 연단 오른 韓 국적 탈북민

▲제네바 국제회의센터(GICG) 내부에는 직전 해 연설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은 2022년 연단에 오른 탈북민 티모시 조 씨. 사진=박지현 기자
올해로 15회째. 제네바 인권 정상회의에서 북한 인권은 빼놓지 않고 다룬 주제다. 그러나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한국 국적’의 탈북민이 연단에 오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했던 전 정부 영향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작년에는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 티모시 조 씨가 참석했다. 두 번의 탈북과 네 번의 수감 생활을 증언한 그는 “고문과 기아로 죽은 수감 동료들이 동물 시체처럼 내버려졌다”면서 “아직도 그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애원하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2021년에도 영국에 거주 중인 탈북민이 연사로 나섰다. 박지현씨다. 박씨는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 조직에게 성노예로 팔려가고, 강제 송환된 후 노동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한 경험을 알렸다. 2018~2020년 세해에는 탈북민 연사가 아예 없었다.
다만 2018년에는 선교 활동을 갔다가 북한에 억류당했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Kenneth Bae) 씨와 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웜비어의 부모가 참석해 북한 정권을 규탄했다. 배씨는 “나는 억류된 2년 동안 자유를 박탈당했지만, 북한의 2500만 주민들은 지난 70년 동안 자유 없이 살고 있다”고 했다. 오토웜비어의 모친인 신디 웜비어는 “북한은 전 세계 모든 정권 중에서 가장 끔찍한 정권”이라고 했고, 부친인 프레드 웜비어는 “우리 가족을 1년 반 동안 인질로 잡은 북한은 지금 국제사회를 상대로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 이전에는 북한의 대외보험총국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다 탈북한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2017),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호원 출신인 이영국씨(2016), 2014년 영국 BBC 선정 ‘세계 100대 여성’에 뽑힌 북한 인권 활동가 박연미씨(2015), 북한 정치범 수용소 경비대원 출신 안명철씨(2014) 등이 연사로 참석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월간조선 07월 호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 탈북민 방사선 피폭 가능성 조사
文 정부, ‘탈북민 방사선 피폭 검사’ 결과 은폐
⊙ 통일부, 비흡연자인데도 “흡연만으로 방사선 피폭될 수 있어”
⊙ 통일부, 검사 결과 보고서 여러 개 받고도 일부만 국회 제출
⊙ “과거 방사선 피폭 있었을 개연성 有라는 원자력의학원 소견도 공개 안 해”
⊙ ‘불안정형 이상 염색체 수’ 105개… 2011년 후쿠시마 취재진 10배 이상
⊙ ‘건강검진 분석’ 제출 안 한 이유? “방사선 피폭과 인과관계 갖는 질환 없어서”
⊙ 당시 검사 전후로 ‘1~3차 남북정상회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줄줄이 개최
⊙ 尹 정부, 5월부터 ‘방사선 피폭 전수조사’ 재개

문재인 정부 시절 탈북민을 대상으로 시행된 ‘방사선 피폭·방사능 오염 검사 종합 분석’(2017·2018)에서 통일부가 검사 결과 일부를 공개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통일부는 당시 검사에서 이상 수치가 검출된 피검자들에 대해 “흡연력 등 교란변수에 의해 다소 높게 측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일관해 왔다. 그러나 《월간조선》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피검자 대다수는 ‘비흡연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인의 수백 배’ 방사선 피폭 흔적 검출

▲2018년 11월 30일 작성된 ‘중간 보고서’ 일부
2017년 10~11월과 2018년 9~12월 통일부와 그 산하 기관인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하나재단)은 한국원자력의학원(의학원)에 의뢰해 각각 탈북민 30명과 10명을 대상으로 ‘방사선 피폭 검사 및 건강검진’을 실시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핵실험장 주변 출신 탈북민의 방사선 피폭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한 검사였다.
2017년 12월 27일 통일부는 검사 결과를 백 브리핑 형태로 출입기자단에게 구두(口頭)로만 설명했다. 2018년도 검사 결과의 경우, 이듬해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병국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자료를 요구하기 전까지 제출되지 않았다. 두 검사 결과가 ‘보고서’ 형태로 국회에 제출되기까지 2017년도 검사로부터 약 2년, 2018년도 검사로부터 약 9개월이 걸렸다. 검사 결과를 곧바로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통일부는 “건강 관련 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에 더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다”면서 “공개 여부를 매우 신중하게 검토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검자에게는 피폭 검사와 건강검진 결과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2017년 ‘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에서 ‘선량 중앙값’이 이상 수치로 나온 사람은 모두 4명이었다. 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은 체내에 누적된 방사선 피폭선량을 평가하는 데 유용한 검사다. 선량 중앙값이란 체내 축적된 방사선 에너지의 중앙값을 의미한다.
선량 중앙값 이상 수치가 나온 피검자 4명 중 가장 낮은 사람은 279mGy, 가장 높은 사람은 394mGy였다. 나머지 2명은 모두 320mGy로 동일했다. mGy(밀리그레이)는 피폭된 물체의 단위 질량당 흡수되는 에너지의 양(흡수선량)을 보여주는 단위로 mSv(밀리시버트)와 같은 단위다.
2018년도 검사 결과는 더 심각했다. 피검자 10명 가운데 절반인 5명이 선량 중앙값 이상 수치를 보였다. 특히, 4번 피검자는 무려 1386mGy의 선량 중앙값과 59개의 염색체 이상이 검출됐다. 미·일 공동 방사선 영향 연구 기관인 RERF(Radiation Effects Research Foundation)에 따르면 1000mGy 이상은 ‘발암(發癌) 위험 급증’에 해당한다. 나머지 피검자 4명도 각각 493mGy, 394mGy, 394mGy, 279mGy의 선량 중앙값을 기록했다. 한국인의 연간 평균 자연방사선 피폭량이 3mSv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일반인의 수백 배에 이른다. 이에 따라 피검자 표본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방사선 피폭 검사는 2018년 검사를 끝으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북한의 눈치를 살피며 탈북민의 인권을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당시 검사를 전후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2018년 4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2018년 5월), ‘제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2018년 9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019년 2월) 등 굵직한 행사들이 연이어 개최됐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일반인 수백 배 수준”
당시 전문가들은 위 검사 결과에 우려를 나타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북민들의 검사 결과는 일반인들의 수백 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준”이라면서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수치”라고 말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도 “수백 mSv 이상의 수치는 일상생활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다”면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지하 갱도가 무너졌을 수도 있고, 상황 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가 공개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검사 결과 공개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비판했다. TV조선은 2019년 10월 1일 자 보도에서 “통일부는 검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구용으로도 활용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도 10월 2일 자 보도에서 “통일부는 국회 제출 자료에도 상세 내역은 비공개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같은 날 ‘보도해명자료’를 내고 두 언론의 지적에 반박했다. 통일부는 “2018년 검사 결과 보고서를 원본 그대로 국회에 제출(금년 9월)했다” “통일부는 탈북민 방사선 피폭 검진 결과를 숨기거나 축소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월간조선》의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통일부는 의학원으로부터 검사 결과 보고서 여러 개를 제출받아 국회엔 그중 일부만 내놓았다. 《월간조선》은 그간 공개되지 않은 검사 결과 보고서를 입수했다. 2018년 12월 26일 작성된 〈방사선 피폭·방사능 오염 검사 종합 분석〉(이하 ‘최종 보고서’)과 2019년 1월 4일 작성된 〈생물학적 선량평가 검사 결과 설명〉(이하 ‘선량평가 보고서’), 그리고 2017·2018년도 〈건강검진 종합 분석〉이다. 그간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과 국회 국정감사 당시 논의된 내용은 모두 2018년 11월 30일 작성된 ‘중간 보고서’를 기초로 한다.
‘최종 보고서’에는 ‘중간 보고서’엔 없는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결과가 포함돼 있다. ‘선량평가 보고서’에는 ‘중간 보고서’와 ‘최종 보고서’엔 빠져 있는 2018년도 피검자의 흡연력이 포함돼 있다.
문제의 4번 피검자 ‘비흡연자’

▲2019년 10월 31일 통일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흡연력 만으로도 피폭될 수 있음”이라고 발표했다.
‘선량평가 보고서’에는 그간 통일부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2018년도 피검자의 흡연력이 나와 있다. ‘선량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이상 수치가 나온 피검자 5명 중 3명은 ‘비흡연자’다. 문제의 4번 피검자 역시 비흡연자다. 나머지 2명은 각각 ‘과거 흡연자’와 ‘흡연력 0.75갑년’의 흡연자다. 갑년(匣年)이란 사람이 흡연한 양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하루에 피운 담뱃갑 수와 흡연 연도수를 곱해 계산한다. 가령, 1년간 매일 담배 1갑을 피웠다면 흡연력은 1갑년이 된다.
이 같은 검사 결과를 보고받고도 통일부는 “‘대상자의 연령, 의료 피폭력, 흡연력, 유해화학물질(살충제 등) 노출과 같은 교란변수에 의해 다소 높게 측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의학원의 분석 결과”라고 주장해왔다. 교란변수(攪亂變數)란 두 변수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려고 할 때 외부에서 개입하는 요소를 뜻한다.
또 통일부는 2019년 10월 31일 ‘북한 핵실험 탈북민 피폭 검사 및 방사능 유출 관련 설명자료’를 내고 4번 피검자를 콕 짚어 “1386mGy라는 수치는 방사선 치료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검출 가능하며, 흡연력만으로도 피폭될 수 있음(30갑년 시 최대 180mGy)”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선량평가 보고서’에 나온 의학원의 소견은 통일부의 주장과 다르다. 보고서는 “1번과 3번 피검자의 경우, 모두 비흡연자이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교란변수는 없음”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95% 신뢰구간에 0을 포함하고 있어, 과거 방사선 피폭에 의한 결과인지 확정할 수는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통일부가 줄곧 부정해 온 북 핵실험과 방사선 피폭 사이 인과관계를 짚은 소견도 있다. 보고서는 2번 피검자에 대해 “연령(만 26세), 흡연력(0.75갑년)이 교란변수로 작용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바 벤젠이나 크롬 같은 중금속 노출 특이력이 없다면 과거 방사선 피폭이 있었을 개연성이 있음. 그러나 방사선 피폭이 의료 피폭력에 의한 것인지, 북 핵실험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음”이라고 썼다. 과거 흡연자인 5번 피검자의 경우에도 “연령(만 60세)과 흡연(37갑년)이 교란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벤젠이나 크롬 같은 중금속 노출 특이력이 없다면 과거 방사선 피폭이 있었을 개연성이 있음”이라면서도 “2번 피검자와 마찬가지로 방사선 피폭이 의료 피폭력에 의한 것인지, 북 핵실험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음”이라고 돼 있다.
실제로 담배 안에는 ‘폴로늄-210’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의미한 피폭 사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유명 담배 제조 기업도 “흡연 때문에 방사선에 피폭됐다고 회사 측에 항의 또는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의학원의 설명처럼 북 핵실험과 방사선 피폭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통일부가 내놓은 보고서와 보도자료 어디서도 “과거 방사선 피폭이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의학원의 소견은 확인할 수 없다.
‘선량 중앙값’ 1167mGy, ‘이상 염색체 수’ 105개
이번 취재로 입수한 ‘최종 보고서’에는 2018년도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 결과가 포함돼 있다. 그간 2018년도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 결과는 공개된 적이 없었다.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는 최근 3개월 이내의 피폭선량을 분석할 경우 가장 효과적이다. 선량 중앙값이 100mGy를 초과하면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고 본다.
통일부와 의학원은 2017·2018년도 ‘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에서 선량 중앙값이 최소검출한계(250mGy) 이상으로 보고된 9명에게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를 추가로 실시했다.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도 문제의 4번 피검자는 무려 1167mGy에 달하는 선량 중앙값이 검출됐다. 이상 염색체 수도 105개나 관찰됐다. 한 핵공학 전문가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면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에서 수치가 다소 높게 나올 수는 있다”면서도 “그렇다 하더라도 선량 중앙값이 1167mGy에 달하고 이상 염색체 수가 105개가 나온 것은 매우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현지에 파견된 국내 방송 취재진의 피폭 수치와 비교해보면 ‘이상 염색체 수 105개’가 얼마나 많은 수치인지 짐작할 수 있다. 취재진은 후쿠시마 현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의학원에서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를 받았다. KBS 취재진 가운데 이상 염색체가 8개 이상 검출된 사람은 1명, 6개 이상은 2명, 5개 이상은 1명, 4개 이상은 6명이었다. 다른 언론사 소속으로 후쿠시마 현지에 파견됐던 취재 기자는 《월간조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선량 중앙값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 염색체 수는 11~13개 정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특화 프로그램으로 연 1회 검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의학원 측은 “당시 4번 피검자의 몸에서 국소 외부 피폭이 발견됐고, 2017년에 방사선 치료 이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에서 높은 수치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측의 소견”이라고 밝혔다.
방사선 치료 검사의 경우 충분히 ‘교란변수’로 설명이 가능한데도 통일부가 검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다. 2017년도 검사 결과 보고서에는 “최소검출한계(0.1Gy)를 초과한 피검자 없음”이라고 밝혀둔 것과 대비된다.
반면, 통일부는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 결과가 기록된 ‘최종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당시 언론 보도에서 2018년도 피검자들의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 결과는 찾아볼 수 없다. 2019년 10월 1일 자 TV조선, 10월 1일 자 《아시아경제》, 10월 2일 자 《조선일보》, 10월 10일 자 ‘연합뉴스’, 10월 17일 자 《한국일보》는 검사 결과를 보도했지만,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월간조선》 12월호는 정병국 의원실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보고서를 사진으로 실어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 역시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 결과가 빠져 있는 ‘중간 보고서’였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10월 17일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중간 보고서’에 나온 ‘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방사선 피폭과 북 핵실험 사이의 연관성을 질의했다. 이날 국회 속기록에서도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 검사’에 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의사 소견에도 ‘C형 간염’ ‘HIV 감염’ 검사 안 해

▲2017년도 ‘건강검진 종합 분석’ 일부. ‘C형 간염 감염’ ‘성매개질환 및 HIV 감염’ 검진의 필요성이 지적됐지만 2018년도 검사에서 시행되지 않았다.
2017·2018년도 전체 피검자 40명의 ‘건강검진 종합 분석’ 결과도 이번 취재로 처음 확인됐다. 2017년도 ‘건강검진 종합 분석’을 살펴보면, 양기영 종합암검진센터장은 ‘종합 소견 및 기타’란에 “C형 간염에 대한 검사가 포함되지 않았었는데, B형 간염 표면 항원 양성률이 높은 것으로 보아 C형 간염 감염에 대한 검진도 향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썼다. 이어 “VDRL 양성률과 견주어, 다른 성매개 질환 및 HIV 감염에 대한 검진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소견을 밝혔다. 그러나 2018년도 건강검진에서 해당 검사는 시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2018년도 건강검진은 2017년도 검진의 연장선상에서 동일한 검사 항목으로 진행된 것”이라면서 “2023년에 실시하는 건강검진에는 ‘C형 간염’ 및 ‘HIV 감염’을 추가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혈액 검사’ 결과를 보면, ‘종양표지자(tumor marker)’가 2017년도는 ‘5건’, 2018년도는 ‘1건’이 나와 있다. 종양표지자란 몸 안에 암세포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물질을 뜻한다. 혈액에서 종양표지자가 검출된다고 해서 무조건 암에 걸리진 않지만, 일반적으로 암 발생 확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통일부는 이들에게서 “특별한 건강상의 질환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학원 측도 “이들 피검자가 암을 앓고 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 “종양표지자가 검출된 피검자에게는 추적 관찰이 필요하니 진료를 받으라고 안내했었다”고 말했다.
종양표지자 외에도 2017년도 건강검진에선 ‘(전)고혈압(5건)’ ‘고지혈증(6건)’ ‘일반혈액검사 이상(5건)’ ‘간염(6건)’ ‘빈혈(3건)’ ‘간 기능 이상(2건)’ ‘혈뇨(3건)’ ‘위염(17건)’ ‘담낭용종(4건)’ ‘폐 촬영 이상(2건)’ ‘유방 촬영 이상(2건)’ 등이 보고됐다. 2018년도 건강검진에선 ‘간염(1건)’ ‘간 기능 이상(1건)’ ‘헬리코박터(1건)’ ‘혈뇨(1건)’ ‘위염(8건)’ ‘십이지장 용종(1건)’ ‘위상피하종양(1건)’ ‘십이지장궤양(1건)’ ‘세포검사 이상(2건)’ ‘가슴 촬영 이상(1건)’ ‘유방 촬영 이상(1건)’ 등이 보고됐다.
의학원으로부터 ‘건강검진 종합 분석’을 보고받고도 이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 통일부는 “방사선 피폭과 인과관계를 갖는 질환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월부터 ‘방사선 피폭 전수조사’ 재개

▲지난 2018년 5월 북한 인민군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2번 갱도 출입구 앞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월 21일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주민들의 방사선 피폭 가능성을 조사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2월 24일 통일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탈북민 방사선 피폭 전수조사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효정 통일부 대변인은 “2017년과 2018년 검사에서 핵실험에 따른 인과관계가 특정되거나 별도 치료가 필요한 방사선 피폭 사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면서도 “당시 조사는 대조군이 없었고, 표본 수가 40명으로 한정적이었으며, 흡연과 중금속 등 교란변수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해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길주군 및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80명(최근 입국 순)과 지난 검사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피검자 9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부터 검사를 시작했다. 오는 11월까지 89명에 대한 검사를 마무리하고 12월 결과 보고서를 공개할 계획이다. 또 내년 이후에도 순차적인 조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번 조사에 식수원 조사가 포함된 점도 고무적이다. 그간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 식수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지하 핵실험 과정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타고 우물, 계곡, 상수도 등으로 확산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이 주변에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총 44회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150kt 규모로 추정되는 6차 핵실험 이후 지반이 계속 무너지고 뒤틀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50kt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배에 달하는 폭발력이다. 이에 따라 방사성 물질 유출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최근에야 공개된 2017·2018년도 식수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차례의 검사에서 이상 수치가 나온 피검자들은 모두 지하수와 수돗물을 식수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식수원 조사는 물을 통한 방사선 피폭을 연구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피검자 전원, 로데이터 공개해야”
그러나 이번 검사에도 미흡한 점은 있다. 우선, 지난 2차례 검사에서 이상 수치가 나온 9명의 피검자는 방사선 피폭 검사를 받지 않는다. 이들은 대장 내시경 검사와 갑상선 초음파 검사 등이 추가된 “강화된 건강검진”만 받을 예정이다. 통일부는 “피폭 검사 재수검의 필요성 및 유용성이 낮다는 점”과 “피폭 검사 비용이 크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 피검자 전원의 ‘로데이터(raw data)’가 공개될지도 의문이다. 이번 검사 이후 피검자의 탈북 전 최종 거주지, 탈북 시점, 의료 피폭력, 흡연력 등 비교 데이터가 상세히 공개되면 북 핵실험과 방사선 피폭 사이 인과관계를 보다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피검자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만 가려 공개한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결과 보고서에 나와 있지 않은 정보의 제공을 요청받을 경우, 탈북민의 개인정보와 민감 정보 보호, 정보 제공의 필요성·유용성 여부, 알권리 보장 등을 고려하여 정보 제공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심각성을 축소·발표하다가 잠정 중단된 방사선 피폭 검사를 현 정부가 재개했다는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나머지 피검자 31명의 흡연력, 의료 피폭력 등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통일부는 기존 피검자 및 앞으로의 피검자 전원의 로데이터를 공개해 국내외 의료·과학 전문가들이 방사선 피폭 원인을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7.12 젊고 영어도 유창… 워싱턴서 뭉친 전문직 탈북민들
‘젊은 북한 지도자 회의’ 개최

▲10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의 아이젠하워 행정동 앞에 ‘젊은 북한 지도자 회의’의 탈북민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이날 드루 아베세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디렉터와 원탁회의를 가졌다. 이 가운데 가족이 북한에 남아있는 2명은 사진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얼굴을 흐리게 처리했다./이현승씨 제공
10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실. 20~30대 탈북민 10명이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로 “자유”와 “민주” “인권” “꿈”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눴다. 이 모임 이름은 ‘젊은 북한 지도자 회의(North Korean Young Leaders Assembly)’. 고통스러웠던 탈북의 순간을 뒤로하고, 북한에 남은 이들의 자유와 희망을 위해 통일 시대를 준비하겠다고 나선 청년들이다. 탈북민이란 개념에 연연하지 않고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을 담았다.
10명 중 절반 이상이 컬럼비아대, 뉴욕대 등에서 유학하거나 해 억양이 거의 없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다른 이들도 변호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건축설계사 등의 직업으로 한국과 미국에 정착했다. 회의를 주도한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은 “자유롭고 통일된 한국에서 북한 주민들도 우리처럼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가 공유하는 꿈”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 사회도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곳으로 만드는 일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판 대원외고’로 불리는 평양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평양외국어대학을 거쳐 중국 동북재경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던 중 2014년 가족과 함께 탈북했다. 현재 컬럼비아대 공공행정학 석사 과정에 다니고 있다. ‘오토 웜비어 장학금’을 받고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 석사를 밟고 있는 그의 여동생 서현씨도 함께했다.
이날 참석한 임철 변호사는 함경북도 출신의 탈북민이다. 열다섯에 한국에 정착한 뒤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병으로 여읜 어머니의 묘가 북한에 있다”며 “한국에 와서 변호사가 됐지만 북한 사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북한 주민과 북한 인권을 계속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를 비롯한 탈북 청년들의 사명입니다. 자유와 복지가 무엇인지 토론하며 북한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려 합니다.”
북한의 명문 김책공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해리 김씨도 “북한에는 인권, 핵 등 많은 문제가 있지만 해결책은 북한의 민주화뿐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 파견됐다가 자유에 눈을 뜨고 현지 미국대사관을 통해 탈북, 2015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당장 북한을 개방시키고 민주화의 길로 이끌 묘안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모여 함께 논의하다 보면 북한의 민주화, 한반도의 평화, 동아시아의 평화로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들도 했다. 주한영국대사관에서 미디어홍보 담당관으로 일하다 국제관계학 석사 취득을 위해 뉴욕대로 유학한 김미연씨는 “우리는 정말로 북한의 변화를 원하지만 많은 경우 (관심의) 초점은 탈북민으로서 얼마나 우리가 고통을 겪었는가에 맞춰진다”고 지적했다. “언론에 등장하는 소수의 탈북민들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고 음식이 없어서 바퀴벌레를 먹었다는 등의 얘기를 해요. 그러다 보면 (북한의 변화란) 궁극적 목표로부터 관심이 돌려질 수 있어요. 또 탈북민이라고 밝히면 가난하고 못 배웠다는 딱지가 붙기 때문에 그 사실을 숨기게 되지요.”
함경남도 출신으로 탈북 후 연세대를 졸업한 영화제작자 조의성씨도 “탈북민 친구의 8살 아이가 ‘북한 억양을 쓰는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이 창피하다’며 학부모 회의에 못 오게 했다더라”면서 “통일 이후를 내다보고 미리 해결하지 않으면 (이질적 문화 등으로) 더 큰 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탈북민들의 한국 정착을 돕는 비정부 기구 ‘우리온’의 박대현 대표, 조경일 피스아고라 대표, 남송 건축설계사,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등도 참석했다. 이들은 회의 후 백악관으로 자리를 옮겨 드루 아베세스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디렉터와 1시간 30분간 원탁회의를 가졌다. 오는 14일까지 워싱턴과 뉴욕에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영 김 하원의원, 조현동 주미대사, 황준국 주유엔대사 등을 만나고 UN도 방문할 예정이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08-05 밀착 북·중·러 탈북민도 차단, 여건 어려워도 방치 안 된다

▲김영호(맨 왼쪽) 통일부 장관이 3일 취임 후 첫 대외 일정으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납북자, 억류자, 국군 포로 단체 대표·가족들을 초청해 면담을 하고 있다. 통일부는 김 장관 취임과 더불어 '납북자 대책반'을 장관 직속으로 설치하는 조직 개편을 추진 중이다. /뉴스1
최근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밀착이 가속화되면서 중·러가 탈북민의 한국행 차단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주(駐)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총영사관에서 북한 외교관의 아내와 아들이 탈출하자 러시아의 연방수사위원회가 나서서 수일 내에 체포, 북측에 넘겼다고 한다. 북한 무역대표부 소속 남편을 대신해 현지에서 북한 식당을 운영해온 아내는 탈출을 시도했으나 공항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유엔 난민 협약에 가입해 있는 러시아는 이 여성을 ‘정치적 난민’으로 다루지 않고 곧장 북측에 인도했다. 러시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중요 범죄를 수사하는 연방수사위원회가 탈북 외교관 가족 수사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중국은 최근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민들의 중국 방문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강화된 비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출생 장소는 물론 국적 취득일 등이 기록된 증명서들을 요구한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 조치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중국을 방문, 새롭게 북한을 탈출한 가족과 만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본다.
러시아와 중국의 이런 움직임 뒤에는 북한의 요청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고,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에 가까이 가면서 반대급부로 탈북 차단을 요청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 1인 독재가 가속화하고,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주도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상태다. 이런 나라들에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탈북민들의 절박한 처지를 생각하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탈북민들은 헌법상 한국 국민이다. 중국, 러시아와의 공식, 비공식 채널을 통해서 탈북민들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지 대사와 외교관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탈북민들의 운명이 바뀔 수 있음을 그동안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18 중국 내 감금 탈북자 2000명 “대한민국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받을 것”
코로나 기간 중 중국에서 붙잡혀 구금 시설에 수감돼 있는 탈북민이 2000명에 달하며 북·중 간 국경이 개방되면서 대거 북송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밝혔다. 3년여 봉쇄됐던 북·중 국경은 최근 신의주~단둥, 무산~난핑 등이 부분 개통됐고, 중국은 일부 지역 변방대 시설을 증축하는 등 송환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개방된 국경을 통해 탈북자들을 북송하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져 학대·고문 등의 비인권적 처우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탈북민을 난민이 아닌 불법 체류자로 간주해 단속하고 구금해 왔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북한 당국의 정치·경제적 핍박을 피해 탈출한 난민임에 틀림없다. 난민지위 국제 협약은 고문·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곳으로 강제 송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은 난민지위 협약과 고문 방지 협약에 가입한 나라다. 탈북민 강제 송환은 이런 국제 인권 협약들을 어기는 일이다.

▲전국탈북민강제북송반대국민연합 회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탈북민 강제 북송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 북한 주민과 탈북민 인권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4년 연속 불참했고 북한인권재단은 6년간 표류시켰다. 대북 전단은 법까지 만들어 금지했다.
2019년엔 귀순 의향서를 쓴 탈북 어민 2명을 안대를 씌우고 포승줄에 묶어 강제 북송해 국제사회에서 반인권적 조치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그 후 탈북자 수는 20분의 1로 급감했다. 한국으로 가도 언제 송환돼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컸을 것이다.
김영호 신임 통일부 장관은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민을 전원 수용할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협조를 촉구했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인 중국이 탈북민 인권을 유린하는 북송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유엔 기구와 국제 인권 단체 등과 협력해 다각적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까지 골든 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8-24 “북한 인권증진 적극 나설 것” … 국내외 52개 단체 뭉쳤다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 출범
“정부의 민관 협의 파트너 역할”
통일부 내 ‘납북자 대책팀’ 신설
북한의 인권 유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확대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북인협·NCNKHR)가 결성됐다. 북한 인권에 방점을 둔 통일부 등 정부 조직의 개편과 맞물려 민·관이 함께 북한 인권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하겠다는 뜻도 깔려 있다.
북인협은 오는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창립총회 및 출범식을 개최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 이날 기준 참여 의사를 밝힌 민간단체는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탈북자동지회, 비욘드더바운더리, 북한인권정보센터, NK지식인연대, 한반도선진화연대, 겨레얼통일연대 등 52개(국내 44개, 해외 8개)다. 이들은 회원단체 간의 협력, 회원단체 역량 강화, 대정부 북한인권 정책 협의체, 국제기구·인권 비정부기구(NGO)와 협력을 주요 사업으로 선정했다.
대북 협력 민간단체들의 대정부 협의체로 활동하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와 달리 ‘북한인권 비정부기구 협의 플랫폼’을 표방할 것이라고 북인협 측은 설명했다. 손광주 창립준비위원회 임시의장은 “국내의 최초 북한인권단체 협의체로서 정부의 민·관협의회 파트너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정부는 통일부 내 장관 정책보좌관이 이끄는 ‘납북자 대책팀’을 신설했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등 사안을 맡는 장관 직속 부서다. 억류자 송환 요구뿐 아니라 피해 가족을 위한 정부 보상에도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신설 ‘통일협력국’ 산하 ‘통일인식확산팀’을 두는 것 또한 객관적 북한 실상을 알리겠다는 취지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08-29 탈북단체, 文전대통령 고발…“강제북송 어부 16명 살인은 조작”

▲북한전략센터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탈북청년 강제북송 관련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휴민트 동원 검증… 살인 없어
文정부 북송 명분은 허위사실”
2019년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어민 2명을 문재인 정부가 강제 북송한 사건과 관련, 탈북민 단체가 ‘살인사건을 조작했다’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29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탈북민 사회와 다수의 휴민트(인적 정보)에 따르면 김책시와 단천시 어디에도 16명 살인사건은 없었다”며 정부가 북송 명분으로 내세웠던 ‘배 위에서 16명을 살해했다’는 혐의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전략센터와 북한인권국제연대는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북 어민 강제북송 당시 16명 살인사건을 조작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문 전 대통령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김책시·단천시 출신 탈북자 상당수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데, 탈북민과 북한 내 가족들의 증언을 교차 검증한 결과 16명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6명이 살해된다면 이는 북한에서도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으로 소문이 순식간에 지역 전체에 퍼지지만 그런 정황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들 단체는 탈북 어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단체들은 “문재인 정권은 탈북 어민을 2019년 11월 3일 단 하루 조사했고, 11월 7일 탈북 어민 강제북송이 언론에 알려지자 ‘이들이 16명을 선상에서 살해한 살인자’라고 발표한다”며 “16명 살인사건을 단 하루 조사해 살인죄를 확정하는 세계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정권”이라고 꼬집었다. 이들 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탈북 어민들을 흉악범으로 조작 색칠을 했어도 그들이 대한민국 사법 주권을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통째로 넘긴 사실은 그 자리에 있다”고 주장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폐쇄된 사회지만 집단 살인은 매우 드문 사건이기 때문에 만약 벌어졌을 경우 엄청난 파장이 있는데, 다수의 휴민트를 통해 검증한 결과 살인사건이 없었다는 결론이 일치했다”고 강조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8-31 북한인권법 사문화 7년, 野 더는 재단 출범 막지 말라
통일부가 북한인권법에 따른 북한인권재단을 발족하기 위해 이사 추천 요청 공문을 30일 국회에 보냈다고 한다. 2016년 법 제정 이후 12번째 발송이라고 하는데 국회가 지난 7년간 무응답으로 일관해 북한인권법은 사문화된 상태다. 북한인권법 제10조에는 북한 인권 관련 실태조사와 연구, 정책 개발 등을 위한 재단 설립이 명시됐고, 12조에는 재단 이사진 구성과 관련해 12명 이내의 이사를 통일부 장관이 2명, 나머지는 여야 동수로 추천하도록 돼 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016년 법 시행 이후 국민의힘은 네 차례 이사 추천을 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한 번 추천을 한 뒤엔 “내부 논의 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김여정이 ‘하명’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선 6개월 만에 입법하는 속도전을 폈던 민주당이 재단 이사 추천을 막는 편법으로 북한이 반발하는 북한인권법을 식물 상태로 만들어온 셈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핵·미사일만큼이나 중대한 안보 문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7일 공개 회의를 갖고 52개국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올해는 유엔인권위원회가 최초로 ‘북한인권규탄결의안’을 낸 지 20주년이 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신화 북한인권대사가 지명됐고, 줄리 터너 미 국무부 인권특사도 최근 상원 인준 후 활동을 시작해 북한 인권 관련 한미 공조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더는 북한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이사 지명을 신속히 마무리해 재단 출범에 협력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