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소리 2023-08/ 08-01 폐해 쌓이는 한전공대, 이대론 안 된다 - 08.31 55년 전 세계은행 총재가 비웃었던 한국
바른소리 2023-08/
08-01 폐해 쌓이는 한전공대, 이대론 안 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가 좌초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대선 공약이라는 알량한 정치적 이유만으로 허겁지겁 문을 열고 고작 1년 5개월 만의 일이다. 예산의 불법 전용.유용도 모자라 이사회.감독관청에 대한 최소한의 절차도 무시했다. 그러지 않아도 지나치게 높다는 급여를 내부 결재만으로 13.8%나 인상해버렸다. 자본잠식 상태의 한전이나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위해 주머니를 털고 있는 서민의 어려움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전공대의 도덕적 해이는,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기업이 내놓은 골프장 부지에 달랑 세워놓은 건물 한 채 앞에서 1억 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어 개최한 요란한 입학식에서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사실 5대 중점영역과 16개 기술로 화려한 세계적 에너지 특화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겠다는 구상부터 국민 기만이었다. 가장 확실한 현재의 기술인 원자력과 미래의 기술인 핵융합은 의도적으로 빼놓았다. 연예인급 연봉으로 알음알음 모셔왔다는 교수진에 대한 학계와 세간의 평가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사실 현대의 ‘에너지’는 기초과학에서 공학·응용과학과 인문·사회에 이르는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가장 대표적이고 광범위한 융복합 분야다. 그런 에너지의 특화 대학은 교수 100명이 운영하는 단일학부가 섣불리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에너지 특화 대학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양성하는 융복합형 에너지 전문인력이 차고 넘친다는 현실도 외면했다. 당장 전력 수급에 올인해야 할 한전이 굳이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 전남의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사진 구성도 실망스럽다. 11명의 이사 중 5명과 감사 1명이 한전 경영진과 간부이고, 3명은 당연직 관료다. 총장과 나머지 이사 2명의 전문성도 에너지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재료과학·생물학·화학공학이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이 아니라 한전이 투자하는 평범한 벤처에나 어울린다.
한전공대는 2021년 졸속으로 제정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에 따라 설립됐다. 특별법이라지만, 사실은 한전의 사업 범위를 규정한 한전공사법 제13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한전도 대학을 운영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1962년에 설립한 수도공업초급대학을 2년 만에 4년제 수도공과대학으로 개편했지만 1971년 홍익대학에 흡수·통합시키고 말았다. 물론 당시의 한국전력주식회사법을 벗어난 시도였다.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었다고 한전공대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전공대가 한전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 정부의 탈원전·탈석탄으로 45조 원의 적자의 늪에 빠져버린 한전이 2031년까지 1조6000억 원을 지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혈세와 다름없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투입하는 것도 명백한 비정상이다. 기업 특혜 의혹도 확실하게 밝혀내야 한다.
한전공대의 설립은 학령인구 절벽으로 전국의 대학을 정리해야 하는 현실을 거부하는 억지다. 한전과 국민이 한전공대의 돈 잔치를 챙겨줘야 할 이유가 없다.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8-01 언론도 정치도 망칠 ‘당원 행세 기자’

박승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슬리퍼 기자’와 ‘건배사 기자’
언론윤리 파탄의 상징적 행태
특정 정당의 선전도구로 전락
정치권과 협업해 괴담도 유포
政·言 공동체 땐 공론장 붕괴
언론 기능 정상화할 노력 절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기자회견장에 세 줄무늬 슬리퍼를 끌고 나와 팔짱을 낀 채 노리다가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성 고함을 날리고, 비서관과 거친 설전을 교환한 어떤 용감한 기자가 출현했다. 이 사건 이후 대통령의 정례적 도어스테핑은 중단되었고, 해당 기자는 소속 언론사로부터 다른 기자들에게 모범이 된 ‘공적’을 인정받아 우수기자상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최근 한 야당의 비공개 출입기자단 오찬 모임에서, 주최 측 고위인사들이 “(여기 모인 출입기자들은) 입당 원서만 안 썼지 (우리 당) 당원이나 마찬가지”며 “우리 당 중앙위원급으로 모셔야 한다”면서 “기자들과 우리 당은 공동운명체”라고 연설했다고 한다. 이 행사에서 답례차 건배사를 맡은 한 기자가 “경제는 ○○당! ○○당을 위하여!”라고 선창하자, 다수의 참석 기자는 술잔을 높이 들고 구호를 따라 외치며 화답했다는 숨은 이야기가 보도된 바 있다.
두 장면은 구체적 양상에선 다르지만, 한국 일부 언론의 고질화하고 깊게 뿌리내린 왜곡된 직업윤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첫째 장면은, 일부 언론인이 자신들의 정치 신념과 배치되는 정당 또는 정치세력과는 대놓고 맞짱 뜨면서, 이들을 정복과 분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용맹스러운 정치 투사적 기자상이 본보기로 널리 인정되고 격려받는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둘째 장면은, 일부 언론인이 자신의 정치 이념과 부합하는 정당과는 능동적으로 하나가 되어 동맹 관계를 형성하고 결사옹위하는 임무를 당위로 받아들이는 직업적 소명의식과 가치체계를 상징한다.
언론계가 현실 정치 세계와 극단적으로 대립하거나 밀착되면,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제4부로서의 독립 언론은 불가피하게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그 결과, 언론은 현실 정치 밖에서 객관적·독립적·자율적으로 정치를 비판하고 조정해 낼 수 있는, 이른바 공론장(公論場)의 역할을 버리고 정치 세계의 한 분파로 편입되고 만다. 정치의 중심에 자발적으로 통합되고 동참하면서 정치에 식민화된 ‘제1부’로서의 언론은 이제 특정 정당의 선전선동 수단으로 변질한다. 일부 언론인은 자신이 정치에 진입해 정치를 주도하고, ‘당(黨)에 충성하는 언론’ ‘대의에 복무하는 언론’을 만드는 것이 사회악(惡)을 척결하고 국가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정치도 언론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언론인이 ‘기자’를 스스로 저버린 채 ‘용감한 당원’이 되고, 언론사가 특정 정당과 공동운명체가 되면, 국가 사회적 주요 현안들은 합리적 토론의 영역에서 쫓겨나, 막가파식 정쟁(政爭)의 영역으로 내몰리게 된다. 정치 중립지대에서 민주적 토론마당을 제공해야 할 독립적인 제4부가 사라지고 언론 자체가 정당의 부속기관으로 스스로 전향하면, 국가 운영과 직결된 수많은 긴급 정책 사안은 정쟁의 회오리에 흡인되어 정치적 합의와 해결을 맞이할 기회를 상실한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 정치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정책 사안들은 해결되지 못하고 속절없이 누적만 되고 있다.
언론은 언론대로 정당의 선전기구로 변질하면서 객관 보도와 사실 보도는 위축되고 정파적 편향 보도나 왜곡 보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심지어 언론이 정치권과 협업하여 가짜뉴스와 괴담뉴스를 조직적으로 생산하고 퍼뜨리는 사례까지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 1인 미디어와 생성형 AI 발전은 가짜언론의 범람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이처럼 정치는 정치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함께 부패하고 있다. 언론인에게 정치는 투쟁과 분쇄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고, 반대로 자발적 동조나 예속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우리 언론은 스스로 정치로부터 분립해 제4부로서의 독립성을 회복할 때 언론도, 정치도, 국가도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한국 언론은 ‘슬리퍼 기자’나 ‘건배사 기자’처럼 자신의 정치 신념을 구현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이라는 공적 자원을 도구화하려는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4부로서의 독립적인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직업적 소명의식에 헌신하는 새로운 직업윤리의 정착이 우리 언론에 긴급히 요구된다.
문화일보
08-01 文정부 통계 조작 ‘최고위층 연루’ 성역 없이 규명해야
문재인 정부의 “(3년간) 부동산 11% 상승” “최저임금 긍정적 효과 90%” 등 뜬금없는 주장들은 결국 통계 조작 때문이었음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고 한다. 특히 청와대는 한국부동산원(한국감정원에서 2020년 12월 변경)으로부터 ‘주간 주택 매매가격 변동률’ 잠정치를 공식 발표 2∼3일 전에 보고받았으며, 부동산원 실무진은 “위로부터 너무 높다는 평가를 듣고 압력을 느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원은 며칠 뒤 잠정치보다 훨씬 낮은 공식 수치를 수차례 발표한 바 있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낮은 값을 입력해 통계를 왜곡했다는 판단에 따라 장하성·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통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만간 수사 의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사자들이 감사원 감사에서 “기억 안 난다”고 버티고,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감사원 권한으로는 더 이상 진상 규명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줄곧 “정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홍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정적 통계가 나오면 통계청장을 갈아치웠고, 새 통계청장은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통계청장이 해외 출장 간 틈을 타 차장 대리 결재로 다른 기관에 비공개 통계자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는 꼼수까지 부렸다.
국가통계는 정책 수립은 물론 학술 연구, 민간 기업 경영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기초 자료다. 그래서 통계법은 제2조에서 ‘통계는 각종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공공자원’으로 규정하고 ‘정확성·시의성·일관성 및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을 의무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통계 조작은 국기 문란 범죄다. 이미 기획재정부는 ‘고용통계 분식’을 고백한 바 있다. 감사원은 집값·고용·소득 등 주요 통계 전반에 대해 조사 중이다. 청와대와 통계청 최고위층 연루 정황까지 드러난 만큼, 감사와 수사를 통한 성역 없는 규명이 더 시급해졌다.
문화일보 사설
08.04 통일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통일부는 존재 자체가 딜레마… 국가엔 통일이 축복이지만 통일되는 순간, 부처는 사망 선고
헌법 정신에 충실하려면 이북5도위와 통합해 행안부 독립 외청으로 둬야
“진보 좌파 경도됐다” 비난 말고 동기와 의욕 제공해야
통일부는 지금 실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장차관과 국가안보실 통일비서관이 동시에 교체되면서 전면적 조직 개편의 진통을 겪고 있다.
통일부를 위기로 몰아넣은 직접적 계기는 지난 4월 온라인으로 공개된 2023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에 포함된 ‘정확성은 책임 못 진다’는 면책 문구(disclaimer)이다. 북한 인권 문제를 대하는 통일부 관료들의 무책임한 자세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지만 이는 조직 문화와 매너리즘이 빚은 실무진의 실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통일부가 그간 쌓아온 업보가 임계치에 도달하는 티핑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통일부가 저지른 가장 부끄러운 과오는 3년 전 김여정의 ‘하명’에 따라 ‘대북 전단 금지법(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제정에 앞장선 일이다. 2020년 6월 4일 김여정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이를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라고 협박하자 통일부는 즉각 전단 살포를 막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화답했다.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근본 가치뿐 아니라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살행위를 김여정의 협박을 받고 4시간도 안 되어 결심한 것이다.
물론 정무직 장관이 청와대의 뜻을 받들어 정치적으로 결정한 것이겠지만 관료들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통일부의 장래를 걱정하는 간부라면 최소한 전단금지법의 문제점을 제기하여 장관과 청와대의 경솔한 결정을 막으려는 시도라도 했어야 한다. 전달 살포의 효과나 부작용에 대한 논란을 떠나 북한 주민에게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불법화하는 것이 북한 주민의 자각과 북한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가로막는 반통일 악법임을 통일부 간부들이 몰랐다면 통일 정책을 다룰 자질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도 이를 옹호했다면 통일부가 어떤 운명을 만나더라도 항변할 자격을 포기한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고 폭정의 공범자가 되는 악역은 종북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둘 일이지 통일부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통일부의 태생적 문제는 국가의 이익과 조직의 이익이 충돌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는 데 있다. 통일이 국가적으로는 축복이지만 통일부에는 사망 선고다. 통일부 관료들이 의욕적인 통일 정책보다 북한 체제의 연명과 강화에 도움이 될 교류 협력에 더 열의를 보인다고 이들을 탓할 수 없는 이유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는 북한에 비핵화를 거부할 체력을 키워주고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정책의 성공에 도움이 되더라도 제재 완화와 경제 협력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 대화를 북한 체제의 긍정적인 변화와 통일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여기고 ‘대화를 위한 대화’에 매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화 자체가 목표가 되면 억압받는 북한 주민 대신 대화 결정권을 가진 북한 정권의 편에 설 수밖에 없고,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북한 지도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의 대북 정책과 자세를 바꾸게 된다. 다만 통일부가 대북 굴종을 선택을 할 때도 이를 국가의 이익이나 평화를 위한 선택으로 포장하고 정당화할 그럴듯한 논리를 개발한다.
그렇다면 통일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소하고 헌법 정신에 충실한 해법은 행정안전부 산하 이북5도위원회와 통합하여 행안부의 독립 외청으로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 북한은 법적으로는 반국가 단체이지만 사실상 무허가 지방정부이므로 지방정부를 관할하는 행안부 산하의 북한 예비 정부(Shadow Government)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맞는다. 북한의 현행 행정조직에 따라 시장·군수까지 미리 임명하여 소관 지역의 세부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임시 행정 체제를 설계하는 임무를 부여하면 통일의 수혜 부처로 바뀐다. 다만, 이러한 발상은 여당이 입법권을 장악하기 전에는 실현 가능성이 없으므로 당장의 처방은 통일부 조직을 정비하고 체질을 바꾸는 것뿐이다.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기 전에는 대북 제재가 풀릴 수 없으므로 교류 협력과 개성공단 재개는 물론 의미 있는 대화도 당분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장기간 할 일이 없는 조직은 통폐합하되 업무의 우선순위에 따라 필요한 조직은 신설할 필요가 있다.
다만, 통일부가 진보 좌파 정부에 적극 ‘부역’했다는 이유로 이념적으로 진보 좌파에 경도된 집단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통일에 인생을 바칠 큰 뜻을 품고 통일부에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 이기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혼 없는 관료 집단이 되었을 뿐이다. 유휴 인력을 대폭 감축하기보다는 의욕적으로 일할 동기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08.04 메인 뉴스 편파 보도 KBS 46건, MBC 87건… 이러고도 공영방송?
[논설실의 뉴스 읽기] 편파 지적에도 꿈쩍 않는 공영방송




▲그래픽=김하경
KBS의 수신료 분리 징수를 규정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지난달 12일 시행된 이후 KBS는 “정부의 수신료 분리 징수는 방송 장악 음모”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는 공영방송에 대한 부당한 억압”이라고도 한다. 지난 정권 내내 공영방송 KBS의 정권 나팔수 행태를 지켜본 시청자들 생각은 다르다. 특정 정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인 MBC와 YTN도 편파 방송으로 비판받고 있다. 실제 편파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공영방송 감시 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대표 최철호)와 함께 주요 공영방송의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지난 6월부터 7월 말까지 두 달간 살펴봤다. “이러고도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편향과 왜곡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편파적 패널, 진행자의 노골적 편들기
지난달 20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듣겠다며 민주당 정권 출신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출연시켰다. 이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외눈박이’ ‘지난 1년간 이 나라의 평화가 진전된 게 뭐냐?’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진행자 주씨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멀어지고 있다”며 거들었다. 앞서 12일에도 민주당 정부 출신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같은 방송에 출연해 현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판했다. 정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선제 타격 발언에 대해 “한 방, 진짜 귀싸대기 때려줄 건가? 못 때려요” “양치기 소년이라 그러느냐?”고 했다. 두 출연자가 진행자와 함께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민주당을 대변하는 스피커 노릇을 했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도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의미를 살펴본다며 지난 정부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를 출연시켰다. 최 교수는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전쟁 불씨를 한반도에 불러 대한민국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행보”로 규정했다. 당시 국내에서 집중호우 피해가 생긴 것에 대해선 “재난에는 보이지 않는 대통령”이라고도 했다. 진행자는 “지금 교수님을 단독으로 모셨기 때문에 균형 감각을 위해 한번 질문을 드려야 한다”며 “총리가 대행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방송을 들은 한 언론학자는 “그런 질문은 비난할 기회를 한 번 더 준 것에 불과하다”며 “정말 균형을 맞추려면 패널 균형부터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파적 패널 구성은 양평 고속도로 사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 10일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은 정의당과 참여연대 등 야권 인사 3명을 출연시켜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판했다. 반론을 펼 여권 인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픽=김하경
왜곡, 누락, 여론 몰이...자막 조작 시비도
7월 10일 MBC 뉴스데스크는 태평양 도서국(태도국)과 일본·IAEA의 화상 회의 개최 사실을 전하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한 사람의 발언만 11차례 내보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인물도 화면에 여럿 보였지만 다른 이들 코멘트는 없었기 때문에 태도국 전체가 방류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줬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해당 발언자는 반핵 환경 운동가이고 미국인이어서 태도국 전체를 대변할 위치에 있지 않았는데도 MBC가 반론을 함께 다루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갔다”고 지적했다.
뉴스데스크는 자막 조작 시비에도 휘말렸다.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홍콩 어민의 인터뷰 자막은 “오염수가 여기저기 퍼질 텐데, 그리고 하루이틀 만에 퍼지는 게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거라서”라고 돼 있다. 비(非)언론노조 계열인 MBC노동조합은 “여러 전문가에게 확인했더니 앞부분은 ‘소금에 절였다’였고 뒷부분은 사투리가 심해 알아듣기 어려웠는데도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고 반대하는 내용으로 단정하는 자막을 내보냈다”고 지적했다.
KBS MBC YTN...편파의 트라이앵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게) 관련 뉴스도 균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KBS 뉴스9는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최종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세 문장짜리 단신으로 다뤘다. “내 몸이 전자파에 튀겨진다” “성주 참외는 전자파 참외” 같은 괴담과 선동으로 우리 사회가 겪은 혼란과 갈등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작게 다뤄선 안 될 뉴스였다. 반면 이튿날 일부 성주 주민의 사드 반대 시위는 ‘안전 결과에도 믿을 수 없어 반발’이란 제목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산골 마을에 100명밖에 살지 않는데 1년 사이 암 환자가 10명 발생했다”는 주민 주장도 그대로 내보냈다. 암과 사드의 연관성에 대한 전문가 견해나 반박은 없었다.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사드 환경영향평가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사실이 최근 정부 문서를 통해 확인됐지만 이 뉴스는 누락했다.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는 지난달 26일 뇌물 6000만원 수수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을 출연시켰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 기각부터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까지 야당의 일방적 주장을 내보냈다. 19분짜리 방송의 마지막 5분을 노 의원의 검찰 공격에 할애했고, 노 의원은 ‘정치 검찰’ ‘야당 때려잡기’ ‘증거 조작’ ‘공작 수사’라며 검찰을 비난했다. 앞서 KBS 더라이브도 돈 봉투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송영길 전 대표를 출연시켜 30분이나 피의자 신분인 그에게 마이크를 쥐여 줬다.
공언련이 지난 두 달 KBS MBC YTN 등 공영방송의 불공정 보도 사례를 집계해보니 총 482건이었다. KBS는 뉴스9 46건, 주진우 라이브 64건, 최경영의 최강시사 44건, 더라이브 25건이었다. MBC는 뉴스데스크 87건,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107건, 김종배의 시선집중 70건 등이었다. YTN은 TV와 라디오를 포함해 28건이었다. 이홍렬 공언련 공정언론감시단장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기능이 객관적 토론을 할 수 있는 공론장 기능인데 편파 방송은 공영방송의 존재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가 장악한 방송...정치갈등 격화되며 공영은커녕 용병 언론 됐다
언론학자들은 편파 방송의 근본 원인으로 공영방송이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 장악된 점을 꼽는다. 언론노조 정치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언론노조의 목적은 ‘조합의 강령과 규약, 정치 방향에 따라 조합의 정치 활동 역량을 강화하고 민주노총과 제 민주 단체 및 진보 정치 세력과 연대하여 노동자 민중의 정치 세력화’다. 방송이 정치 투쟁 도구라는 뜻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방송을 통해 특정 정치·노동 이념을 추구한다고 밝힌 이 규약은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방송법 6조 1항과 위배된다”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현재의 노영 방송 구조부터 혁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장악한 KBS와 MBC는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을 버리고 언론의 반대 진영을 공격하거나 자기 이념을 전파하는 도구로 쓴다는 점에서 일종의 ‘용병 언론’이 됐다”고 진단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최근 펴낸 ‘MBC의 흑역사’에서 “MBC와 언론노조는 자기들의 편향성을 ‘선과 정의’라고 떼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공영미디어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공영방송의 이해’에 필진으로 참여한 심석태 세명대 교수는 책에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의도적으로 왜곡된 주장이나 허위 사실을 유포해 여론을 조작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 저널리즘은 각 분야의 갈등을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는 쪽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썼다. 영국 BBC 등 유럽 방송들은 공영방송이 편향성에 빠지지 않도록 방송 종사자가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하는 ‘내적 다원성’(internal pluralrism) 원칙을 강조한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08-04 文정부 통계 조작 ‘몸통 수사’ 당위성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시 한국부동산원이 집값 통계인 ‘주간 주택가격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을 조작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이에 개입한 당시 청와대 및 관련 부처 고위 공직자들을 수사 의뢰할 것이라고 한다. 감사원의 이번 감사 이전에도 문재인 정부의 주택가격 통계 조작 의혹은 여러 차례 제기됐었다. 지난 2021년 6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문재인 정부의 집값 통계 조작 의혹을 정식으로 제기한 바 있다.
그간 감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문 정부의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부동산원으로부터 ‘주간 주택가격 동향 조사 잠정치’를 공식 발표 2∼3일 전 매주 사전 보고를 받았고, 특히 청와대에 사전 보고 된 잠정치보다 며칠 뒤 부동산원이 발표한 집값 통계 수치가 더 낮았다는 것이다. 당시 부동산원의 동향 조사는 정부 고위 인사들이 “집값 폭등은 과장됐다”는 주장의 근거로 매우 자주 사용했다. 2020년 7월, 국회에 출석한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간) 아파트값은 14%, 주택은 11.3%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는데, 그때 인용한 통계가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 KB의 민간 매매가격지수(25.6%) 상승률은 물론 부동산원의 실거래가지수(40.9%) 상승률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문 정부가 국가통계를 조작했다면 이는 중대 범죄며, 국정농단이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집값 통계가 윗선에 보고된 뒤 “너무 높다”는 취지의 평가를 듣고 압력을 느꼈다는 국토부와 부동산원 실무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통계 조작을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통계 내용을 매주 보고받고 피드백을 하는 것 자체도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감사원의 시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는커녕 “감사를 통한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한다. 더 나아가 감사원의 감사 개시와 수사기관 고발 등을 할 때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감사원법을 개정해서 감사원의 권한을 아예 축소·박탈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감사원의 서해 공무원 피격, 탈원전, 백신 수급 지연 등에 대한 감사 때도 ‘정치 감사’라며 감사원 때리기에만 열을 올렸다.
잘못된 국가통계는 국가정책의 방향을 왜곡시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 잘못된 국가통계를 신뢰한 기업인, 투자자 등 일반 국민도 커다란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리스 정부가 재정 적자 통계를 조작했다가 결국에는 국가 부도에 이른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국가통계 조작은 ‘독재의 산물’이라고도 한다. 국제사회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통계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통계는 선전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조작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통계를 조작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만약 언론에 보도된 대로 문 정부가 국가통계를 조작했고, 통계 조작에 청와대와 고위 공직자들이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가통계를 국제사회와 우리 국민이 신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문화일보
08.05 편파 방만 KBS, 수신료 흔들리자 철밥통 지키기 대못 박겠다니
KBS가 직원들의 업무 배치나 휴직, 희망퇴직 등에 노조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노사 협의 안건으로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이런 논의가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 이후 시작됐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협약안은 직원 배치와 전환, 휴직, 해고 등을 노사 동수가 참여하는 고용안정위원회가 다루고, 회사의 분할과 합병 매각 등으로 구조조정이 있을 때 이를 막는 방안도 담고 있다. 국민이 편파 방송과 방만 경영에서 벗어나라며 수신료 분리 징수라는 회초리를 들자 노사 협의로 철밥통 지키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KBS의 경영 비효율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다. 전체 임직원 4400명 가운데 2200명 이상이 억대 연봉자이고 그중 1500명이 무보직이다. 세상에 이런 회사가 어디에 있나. 인건비 비율은 다른 방송사의 두 배에 달한다. 직원 중 상위 네 직급 비율이 60%나 돼 시정 명령을 받기도 했다. 지난 1분기 적자는 400억원을 넘었다.

▲2014년 5월 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노동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공동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조선일보 DB
방송 환경 변화에 따른 조직과 구조 개혁도 시급하다. 유선방송과 OTT 등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도래했고 시청자들은 TV 수상기가 아니라 휴대전화로 콘텐츠를 내려받아 원하는 시간에 본다. 이런 변화에 맞춰 세계 각국 공영방송은 개혁에 나서고 있다. 수신료에 의지하던 과거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다양한 수익원 개발에도 힘쓴다.
지금 KBS에서 이런 변화 노력은 눈 씻고도 볼 수 없다. 수신료에 의지해 살던 과거 관행에 젖어 내부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다다랐다고 한다. 연간 6900억원에 이르는 수신료만 믿고 방만하게 지내온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남영진 KBS 이사장이 고향 근처에서 법인 카드로 수백만 원을 쓰고, 회사 주변 중식당에선 한 끼에 자장면 수백 그릇에 해당하는 식대를 결제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로 수입이 줄어들 것이 예상되자 공익적 프로그램 축소와 폐지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내부의 낭비 요소를 개선할 생각은 않고 대국민 방송 서비스부터 축소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 철밥통 지키기 대못 박기를 하겠다고 한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수신료를 폐지하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09 文정부 ‘대못 박기’의 비극

박정민 경제부 차장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1기 행정부에서 수립된 대북 비핵화 원칙이다. 부시 행정부 이후 미 대통령들도 이 같은 원칙에 준해 북한에 핵 포기를 종용했지만 ‘불가역적’, 즉 대못을 박는 수준의 폐기를 북한이 거부했고, 결국 비핵화는 실패했다. 사실 ‘불가역적’이란 단어 자체는 매우 극단적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가 북핵을 동북아는 물론 세계 질서·안보를 위협하는 ‘악’으로 간주했기에,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폐기 원칙 적용이 가능했다. 어떤 정책을 불가역적 상태로 만들기 위해선 다수의 동의와 승인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민적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불가역적’ 정책은 부작용이 막대하고, 현재 한국 사회는 이를 생생하게 확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환경단체 인사들의 ‘탈원전’과 ‘4대강 복원’이 대표적 예다. 보수 정부의 원전 정책과 4대강 치수사업에 대한 이들의 혐오감·거부감은 해당 정책들에 불가역적 폐기 수준의 선고를 내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문 정부의 탈원전 선언 이후 원전 산업은 말 그대로 ‘붕괴’됐다. 원전 강국으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성공적으로 원전을 건설·가동한 기술력과 경험은 무시됐고, 건설 중인 원전은 공사가 지연됐으며,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모조리 백지화됐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국가에서 전력 공급의 중요한 축을 배제하고 불안정한 재생에너지에 예산을 올인했다. 탈원전 정책은 결국 폐기됐지만, 후유증은 심각하다. 원전 산업 메카인 창원 공단 기업들이 도산하고, 우수 인재들은 원자력 분야를 떠났다. 엄청난 대못이 박힌 셈이다.
치수 관련 토목사업도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문 정부 환경단체 인사들의 반감은 혐오에 가깝다. ‘물은 무조건 흘러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이들에게 담수력을 갖춘 보는 자연을 훼손하는 ‘토목 적폐’의 상징이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이들의 무한한 적개심은 보 해체를 넘어, 기본적인 하천 준설·제방 보수 작업에 쓰일 예산도 반 토막을 내버렸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도의 수자원 부문 예산 총액은 2조4407억 원이었으나, 문재인 정부 기간인 2020년엔 1조2910억 원으로, 1조1497억 원이나 줄었다. 특히, 하천관리 및 홍수예보 예산은 2014년도 1조9110억 원이었으나 2017년에 1조5597억 원, 2020년엔 9551억 원까지(문화일보 7월 21일자 1면 참조) 깎였으니 지역 하천 지류 등의 제방 관리와 강바닥 준설 등은 엄두도 못 냈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건 역시 부실한 제방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이다.
환경운동가들의 지금까지 역할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 대응은 더 늦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은 운동가들의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하루아침에 뒤집혀서는 안 된다. 과거 정책은 다수 국민이 편익을 누리고, 필요했기 때문에 존재했음을 이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도산한 원전 기업을 되살리는 것도, 삭감된 치수 예산을 회복시키는 것도 여의치 않다. 박힌 대못 뽑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문화일보
08-10 서기석 차기환 이사 선임, 공영방송 정상화 출발점 돼야
정치적 편파 보도와 방만한 경영이 심각한 공영방송의 이사진 개편이 가시화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에 대한 KBS 이사 추천안을 의결했다. 차기환 변호사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임명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 전 재판관을 이사로 공식 임명할 것으로 보이고, 방통위는 두 기관 이사진의 일부 후속 개편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합리성과 경륜을 두루 갖춘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의 이사 선임은 공영방송 정상화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지낸 서 전 재판관은 법조계 안팎에서 ‘원리원칙주의자’로 평가받아 왔다. 2010년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KBS본부가 사측을 상대로 낸 소송의 재판장을 맡아 “사측은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판결한 것도 그런 예다. 보수적 성향의 판사 출신인 차 이사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합리성을 확연하게 보여왔다. 이미 방문진 이사를 두 차례 지냈고, KBS 이사도 경험해 공영방송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다.
KBS와 방문진 모두 다수인 여권 추천 이사 중 연장자가 이사장을 맡는 것이 관례다. 두 신임 이사는, 방통위가 해임 절차를 진행 중인 남영진 현 KBS 이사장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의 후임이 될 개연성이 크다. 책임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공석 이사 등에 대한 임명이 추가로 이뤄지면, 현재 이사진의 여야 구도인 KBS ‘4 대 7’이 ‘6 대 5’로, 방문진 ‘3 대 6’은 ‘5 대 4’로 역전될 것이다. 그런 구도 변화가 방송 내용과 경영 행태 시정(是正)으로 이어져,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 재탄생하게 이끌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8.11 1945년 8·15< 1948년 8·15
1948년 8·15의 정부수립 좌파는 親美·單政이라며 ‘태어나선 안 될 나라’ 비판
이는 목적론적 역사서술일 뿐 실증과 체험은 반대로 증언
그 뒤 대한민국 성취를 보라… 도둑같이 온 45년 해방보다 48년의 건국이 훨씬 값지다

▲1948년 8월 15일 중앙청 광장에서 오세창의 사회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하 기념식. 이 자리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가 넘치는 새나라 건설을 다짐했다./국가기록원 제공
며칠 뒤면 다시 ‘8·15′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기리는 국경일인지 늘 애매하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뜻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출범을 경축하는 의미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나쁠 건 없다. 오히려 ‘기쁨 두 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개의 8·15 가운데 막상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 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무릇 국경일이란 국민 통합을 위한 것일진대, 광복절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해마다 8·15만 되면 대한민국이 언제 세워졌는지를 놓고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한데 이번에는 다소 의외의 곳에서 불이 댕겨졌다. 광복회장이 상해임시정부에 의한 1919년 대한민국 건국설을 제기하면서 1948년 건국론을 매국(賣國)으로까지 규정한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보수·우파 진영 내부에서 비판과 반격이 오가는 가운데 해묵은 건국절 제정 논쟁까지 소환되는 분위기다.
1945년 8·15와 1948년 8·15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이와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입장이 맞서 있다. 우선 진보 진영에서는 1945년 8·15를 단연코 더 높이 챙긴다. 식민지 시대에 누적된 계급모순이 사회주의 혁명의 희망으로 분출한 날이라는 이유에서다. 수정주의 역사가(歷史家) 커밍스의 말마따나 압력밥솥 뚜껑이 열린 날이다. 그런 만큼 반공·친미·단독 정부가 출범한 1948년 8월 15일은 민족사의 예정된 진로가 좌절된 날이다. 이로써 두 8·15는 서로 ‘역접(逆接)’ 관계를 이룬다. 좌파 사관은 단정(單政) 수립에 대한 거부감으로 통일·민족주의 사관에 어필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론적 역사서술은 그러나 당대인들의 체험과 기억 및 실증사학의 벽을 넘기 어렵다.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은 1945년 8·15와 1948년 8·15를 ‘순접(順接)’ 관계로 보는 것이다.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준비하지 못했다. 당시 대다수 조선인에게는 해방의 감격보다 (대동아)전쟁의 질곡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당일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잡음이 심했던 데다가 난해한 ‘황실 언어’였기 때문이다. 해방의 주역인 연합국들 또한 한반도 전후 처리를 놓고 동상이몽이었다. 결국 해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독립을 외치는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해방공간 3년은 평탄대로가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의 남북한 분할점령이 있었고, 신탁통치 프레임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의 오랜 공전(空轉)이 있었다. 이남에서는 좌우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던 반면 이북에서는 공산정권이 속전속결로 수립되었다. 미군정은 내치(內治)에도 미숙했다. 이런저런 애로와 난관을 감안하자면 대한민국 탄생은 초기 국가건설자들의 현명한 선택과 불굴의 집념이 만들어낸 위업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훗날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취가 증명하는 바이다. 졸지에 맞이한 8·15 해방보다 우리 손때가 묻은 8·15 건국이 훨씬 값지다. 건국은 해방을 독립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3년 터울의 8·15 형제도 그래서 생겼다.
‘건국’이라는 용어가 불편할지 모른다. 역대 왕조는 뭐고 임시정부는 또한 뭐냐는 반문일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1948년에 선포된 대한민국은 ‘근대국가(modern state)’였다. 권력, 지배, 통치 등을 포괄하는 광의의 국가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과 개념적으로 구분되는 근대국가는 유럽 근대사의 독특한 산물이다. 근대 사회과학의 태두 막스 베버가 ‘영토의 획정,’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 ‘국정의 공공성과 합리성,’ ‘전 국민 정치공동체’라는 특성에 주목하여 근대국가를 따로 정의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서구에서 발원한 근대국가 모델은 싫든 좋든 글로벌 스탠더드로 진화했고, 해방정국에서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근대국가는 정통성이라는 이름의 족보(族譜) 보강을 위해 역사와 민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 대통령 드골이 5세기의 프랑크 왕국을 언급하고,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11세기 ‘카노사의 굴욕’을 환기할 정도다. 그렇다면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전사(前史)’에 대해서도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다. 독립운동사가 특히 그렇다. 다만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화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는 학문의 영역이다.
조선일보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08.13 문재인과 ‘햄버거’
文정권의 유엔사 무력화… 어떤 명분도 없었다

▲일러스트=유현호
“지금 나한테 이거 던진 놈 누구야?”
정문고등학교의 대장인 종훈(이종혁)은 똘마니들을 이끌고 현수(권상우)의 반에 난입한다. 평소 종훈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학생이 학교 공터에 있던 종훈에게 먹던 우유를 던졌는데, 그 학생이 하필 현수네 반이라서 그랬다. 현수네 학급 ‘짱’은 햄버거(박효준).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종훈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자 할 수 없이 그가 나선다. “야야, 우리 반 아니야. 나가서 이야기하자.”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내 가오 좀 살려주라, 응?”
하지만 화가 난 종훈은 햄버거 따위가 끼어드는 걸 용납할 수 없었기에, 햄버거는 종훈에게 먼지 나게 맞는다. 교실 뒤편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현수는 가방에서 쌍절곤을 꺼내 주머니에 넣은 뒤 도시락 통을 종훈에게 던진다.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종훈네 패거리에게 현수는 일갈한다.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올라와.”
그 뒤 펼쳐지는 장면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전설로 만들어준 옥상 신. 태권도 사범의 아들이자 그날의 싸움을 위해 맹훈련한 현수가 종훈 패거리를 물리치는 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명장면이지만, 난 주인공 현수보다 교실에서 먼지 나게 맞던 햄버거에게 관심이 갔다. 햄버거는 싸움을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종훈과 맞먹는 싸움 실력을 지닌 우식(이정진)이 그 반 대장이었고, 햄버거는 우식의 비위를 맞추며 반 애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다. 그런데 우식이 종훈에게 진 뒤 학교를 떠난 탓에, 햄버거는 얼떨결에 학급 대장이 됐다. 종훈이 범인을 찾는답시고 반 아이들에게 행패를 부릴 때, 햄버거도 끼어들고 싶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 경우 반의 대장으로서 위신이 안 서기에, 얻어맞을 줄 알면서도 앞으로 나선 것이다. 종훈에게 맞으면서 “잘못했어” “한 번만 봐줘”라며 우는소리를 한 건 그 대가였다.
정권 교체가 좋은 점은 과거 정권 때 잘못한 일들이 밝혀진다는 것. 그중 하나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유엔사 무력화 작전이다. 유엔사는 한국에서 6·25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1950년 7월, 일본 도쿄에 만들어졌고, 1957년 7월 용산으로 옮겨온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평상시 정전협정 체제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지만, 유엔사의 진가는 전시에 드러난다. 알다시피 유엔군 파견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중국·소련 중 하나라도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1950년 우리나라에 유엔군 파견이 가능했던 것은 소련이 회의에 불참했고, 중국은 지금의 대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유엔군이 파견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러니 북한의 침략이 있을 때 일본에 기지를 둔 유엔사 참여국들이 한미연합사에 병력과 장비를 지원해 준다면,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이 한동안 유명무실했던 유엔사를 재활성화하려는 건 이런 취지건만, 문재인 정권은 이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2019년 외교 안보 특보 문정인이 “(유엔사는)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 한 바 있고, 송영길 외교통상위원장은 “유엔사가 남북 관계에 간섭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유엔 대표부 김일철 서기관이 2018년 10월 유엔에서 "유엔사는 괴물 같은 조직"이라며 해체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더 황당한 일은 다음이다. 원래 유엔사는 6·25 참전국이 주축이 된 17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핵 위기가 심각해진 2020년 초, 6·25 당시 한국에 의료 지원을 한 덴마크가 유엔사 참여를 요청한다. 한국 정부로선 당연히 환영할 줄 알았던 이 요청은 문 정권에 거부당한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던 덴마크는 “그 방침이 맞는지 재확인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국방부와 외교부 모두 그게 사실임을 확인해줬다. 이를 포함해 덴마크는 17차례나 재검토 요청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는데, 덴마크가 유엔 전력 제공국이 된 것은 정권이 교체된 뒤였다. 미국이 가입시키려 했던 독일도 한국과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국방부는 주한 독일 대사관 무관을 초치했다. 심지어 “한국군도 유엔사 참모부에 들어와 달라”는 미국의 요청마저 거부했다니, 기가 막힌다. 오죽했으면 한 유엔사 관계자가 “전쟁에 직면한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제안을 거절한 것과 같다”고 했을까.
유엔사 무력화에 정당한 명분이 있었다면 그 얘기를 해주면 된다. 하지만 전 정권 누구도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말해주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 같은 좌파 언론은 “유엔사가 남북 관계에 번번이 ‘딴죽’을 걸었다”고 하지만, 남북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한반도 평화고, 지난 70년간 이게 가능했던 일등 공신은 한미 동맹과 유엔사 아닌가? 바꿔 말하면 유엔사 해체를 가장 바라는 세력은 북한일 터,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문 정권의 유엔사 무력화 기도를 이 지점에서 찾는다. 예컨대 2018년 10월, 김인철 유엔 북 대표부 서기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 있는 유엔사는 괴물 같은 조직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해체돼야 합니다.” 유엔 주재 북한 대사 김성은 2021년 10월과 2022년 2월 유엔사 해체를 주장했고, 그 전엔 리용호 전 외무상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유엔사 재활성화에 반대하고, 유엔사 해체로 이어질 종전 선언을 주장하는 건 북한으로선 굉장히 고마워할 일이었으리라.
그런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서 난 ‘말죽거리 잔혹사’의 햄버거를 떠올렸다. 평소 북한의 비위를 맞추며 한반도 문제에 그 나름의 역할을 하려 했지만, 정작 북한에서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한 게 햄버거와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비핵화를 한다는 김정은의 말에 속아놓고선 제대로 항의 한번 못 한 것도 억울한데, 삶은 소대가리라는 조롱에,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당하는 수모까지 겪지 않았는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에 나오는 “우리는 남쪽의 바보들을 약간 놀라게 했고 이는 퍽 재밌었다”는 대목은 대통령 본인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모욕이었다. 먼지 나게 맞긴 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의 햄버거가 종훈을 제지하려 한 것은 위기에 몰린 자기 반 학생들을 지키려 함이었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핵을 개발한 북한을 응징하는 대신, ‘종전 선언’을 줄기차게 주장함으로써 북한의 이익을 대변해줬다.
퇴임 후 양산에서 SNS에 몰두하고 있는 그분께 한 말씀 드린다. 문 전 대통령님, 현수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햄버거 정도의 역할은 해주셨어야죠. 그래 놓고도 반성은커녕 계속 자화자찬만 해대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조선일보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08.14 입시 비리 조국 “차라리 남산 보내라” 민주화 투사 흉내 내나
조국 전 법무 장관이 딸 조민씨가 입시 비리 혐의로 기소되자 “차라리 나를 남산이나 남영동에 끌고 가 고문하길 바란다”고 했다. 남산은 옛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남영동은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의미한다. 남산은 28년 전, 남영동은 18년 전에 없어졌다. 어처구니없는 망상이 아니라면, 자기 가족 입시 비리 수사를 정권의 탄압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려는 선동이다.
조민씨는 부산대 의전원에 위조된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제출하고, 서울대 의전원에 허위로 작성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장 인턴십 확인서를 제출해 입학 사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조씨가 단순 수혜자가 아니라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했다. 검찰은 애초 조 전 장관과 아내 정경심씨가 기소된 점을 감안해 딸 조씨 기소 여부는 신중히 검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씨가 조 전 장관 1심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된 혐의마저 부인하고, 조 전 장관도 ‘사회 활동을 하는 아버지로서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기 어려웠다’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원칙대로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조씨 때문에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뉘우침이 없다. 조 전 장관은 재판을 받을 때도 결백을 주장하는 회고록을 내고 ‘출간 하루 만에 10만부 판매 돌파’라고 자랑했다.
조 전 장관 같은 이른바 ‘86운동권’은 민주화 이후 권력 집단이 됐다. 권력을 실컷 누리다 자신들의 부정·비리가 드러나면 갑자기 1980년대로 회귀해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송영길 전 대표는 검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두 번이나 출두해 “나를 구속하라”고 외쳤다. 민주당에서조차 “불법 자금 혐의를 받는 사람이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
과거 운동권 주변에서 어슬렁대던 사람들이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법적 심판을 받게 되자 민주화에 대한 탄압인 양 투사 흉내를 내고 있다. 이러니 진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고초를 겪었던 사람들이 과거 운동권 동료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다며 팔을 걷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14 삶은 소대가리 치욕, 中에서의 혼밥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격을 언급하다

▲사진=조선DB.
국격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의 품격을 뜻한다. 잊혀져 조용히 살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만금 잼버리와 관련 "국격을 잃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실망이 컸을 국민들, 전 세계의 스카우트 대원들, 전북도민들과 후원기업들에게 대회 유치 당시의 대통령으로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사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윤석열 정부 때문에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실패했고 우리 국민이 부끄럽게 됐다는 취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격을 언급했는데, 북한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 소리를 듣고, 외신으로부터 김정은 대변인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들은 문재인 정부 때의 우리의 국격은 어땠을까.
그땐 국민이 부끄럽지 않았을까. 문재인 정부 내내 중국이 우리나라를 속국 대하듯 했을 때는 어땠을까. 그때 우리 국민들은 국가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자랑스러워했을까.
대한민국 국민의 77%가 중국을 비호감 국가로 생각한다는 여론조사에 답이 담겨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지난 2월 20일부터 5월 22일까지 전 세계 24개국에서 성인 3만8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 전 대통령이 중국 방문 당시 혼밥을 한 것에 대해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문 전 대통령이 혼밥을 한 것은) 중국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반드시 가보기를 원해서 이뤄진 일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 전 대통령의 혼밥은) 중국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울렁이게 하는 일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혼밥을 보면서 중국인들 가슴은 설렜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우리 국민은 어땠을까. 우리 국민도 중국인들처럼 설렜을까.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08.15 “오후 6시까지만 재판” 황당 합의, 더 심각해질 재판 지연

▲서울중앙지법 2021.7.19/뉴스1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법원장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후 6시 이후 재판이 진행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애초 중앙지법과 법원노조 중앙지부의 단체협약에 담긴 내용이었지만 고용노동부가 시정 명령을 내려 단협에선 빠졌다고 한다. 이후 노조가 ‘정책 추진서’ 방식으로 추진하라고 요구하며 법원 곳곳에 현수막을 거는 등 압박하자 법원장이 이를 수용한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노조 압박에 법원장이 굴복한 것도 어이없지만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더 심각해질 재판 지연이다. 실제 재판하다 보면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앞으로는 판사들이 오후 6시 전에 끝내고 다시 재판 기일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5년 동안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 여기에 ‘오후 6시까지 재판’ 원칙까지 더해질 경우 재판 지연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피해 보는 재판 당사자와 사법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4년 전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와 법원노조가 정기 인사(人事)가 있는 매년 1월 초와 7월 초에 약 2주일씩 재판을 열지 않기로 합의한 적도 있었다. 직원들의 새 부서 적응 부담을 줄여주자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권고 사항”이라고 했지만 국민이 재판 지연으로 피해를 보건 말건 내부 직원 사정만 감안해 노조에 선심을 베푼 것이다.
법원 내부의 이런 기류는 김 대법원장 취임 후 특히 심해졌다. 법원 노조는 취임 초부터 ‘사법 적폐 청산’을 외친 김 대법원장을 사실상 측면에서 도왔고, 김 대법원장은 지방법원을 돌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노조원들을 만났다. 그런 상황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합의들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 임기는 다음 달 끝난다. 법원노조가 ‘오후 6시까지 재판’을 밀어붙인 데는 대법원장 교체 후에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 법원노조의 이런 행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15 잼버리 ‘남 탓’하며 정쟁 뛰어든 文, ‘부끄러움은 국민 몫’ 맞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부실 운영과 관련해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며 “국격과 긍지를 잃었고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부디 이번 실패가 쓴 교훈으로 남아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고도 했다. 현 정부를 탓하며 행사를 실패로 규정하고 국격 실추라고 비난한 것이다.
이번 대회 초반 폭염·해충 대비나 화장실·샤워장 문제 등이 불거진 것은 현 정부와 전북도 책임이 크다. 그러나 대회 유치 결정이 이뤄진 것은 문재인 정부 때였고 대회 준비도 문 정부 5년간 이뤄졌다. 나무 한 그루 없이 물이 흥건해 부적격지로 판명난 신규 매립지를 대회 장소로 결정한 것도 문 정부 때다. 대회 관련 예산 상당액이 문 정부에서 집행됐지만 배수·전기 설비를 비롯한 기반 시설 공정률은 37%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자기 책임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게 윤 정부의 준비 부족 때문인 것처럼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왜곡된 부동산 정책으로 ‘미친 집값’을 만들고, 소득 주도 성장 실험으로 일자리를 없앴으며, 탈원전으로 에너지 백년대계를 무너트리는 등 수많은 정책 실패로 국정에 무거운 부담을 남긴 장본인이다. 그러나 잘못이 드러나도 한 번도 사과한 일이 없다. 오히려 “5년 성취가 무너져 허망하다” “전문가에게 경제를 맡기면 안 된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감사원 감사엔 “무례하다”고 꾸짖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때 “잊힌 삶을 살겠다” “정치를 떠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퇴임하자 마자 소셜미디어에 수시로 일상을 올리고 야권 정치인들을 만나 정치적 메시지를 날렸다.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책방 사업까지 했다. 최근엔 호남 지역에서 열린 ‘수해 극복 생명 위령제’에 참석, “생명·안전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달 말에는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친문 의원들과 만찬을 하며 수도권 민심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정치를 떠난 퇴임 대통령이 왜 총선 대책을 논의하나. 사실상 정치를 재개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정치적 언동을 계속하며 현실 정치에 개입한 전직 대통령은 여태껏 없었다. 더 큰 갈등과 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은인자중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15 尹대통령 “반국가세력 여전히 활개... 조작 선동으로 사회 교란”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단순히 빼앗긴 주권을 되찾거나 과거의 왕정국가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었다”며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도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자신을 던진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며 “이분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정체성, 국가 계속성의 요체요, 핵심”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어 “우리의 독립운동은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는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그리고 경제 발전과 산업화, 민주화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독립운동의 정신이 세계시민의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기여를 다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의 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자 한미동맹 체결 7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는 공산 침략에 맞서 유엔군과 함께 싸워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그 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를 성공시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세우고 한미동맹을 구축한 지도자들의 현명한 결단과 국민들의 피땀 위에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성장과 번영을 이루어 낸 것”이라고 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온 북한은 최악의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추구한 대한민국과 공산전체주의를 선택한 북한의 극명한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며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한·미·일 협력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에 대해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평화의 동맹이자 번영의 동맹”이라고 했다. 또 일본에 대해선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며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간에 긴밀한 정찰자산 협력과 북한 핵 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되는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3국 공조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경축식은 독립운동가 고(故) 이희승씨의 시 ‘영광 뿐이다’를 유동근 배우가 낭독하면서 시작했다. 태극기와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는 주제영상 상영, 독립군가를 배경으로 한 경축 공연 및 경축 대합창, 독립유공자 포상, 광복절 노래 제창,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경축식장에 미리 도착해 오성규 애국지사와 김영관 애국지사를 직접 맞이하고 행사장에 함께 입장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경축식에는 일본에 거주하는 마지막 생존 애국지사인 오성규 애국지사가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8.16 국가로서의 한국은 왜 무능해졌나
새만금 잼버리 진심 부끄러워
안일·무능·부주의… 국가에 만연
입법 교착·입법 폭주, 국회는 엉망
사법부·선관위도 빨간불
법·원칙은 진영 논리로 대체
한국 민주주의는 자살 중
빠른 해결 없으면 정말 위험해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보며 진심 부끄러웠다. 어떻게 이토록 안일하고 무능할 수 있나. 잼버리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애초 잘못된 장소를 고집한 전북도에 있다. 무능한 데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다. “대회 준비에 차질이 없다”고 큰소리친 여가부도 책임이 가볍지 않다. 중앙 정부의 책임은 없는가. 이 정도 국제 행사라면,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 사전에 꼼꼼히 점검해야 했다. 사실 국무조정실은 다섯 달 전 범정부TF를 꾸렸다. 두 달 전 한덕수 총리가 현장 점검까지 했다. 그게 다 맹탕이었다. 문제가 터지자, 총리는 몸소 변기 오물까지 닦았다. 총리가 진짜 할 일은 그게 아니다. 대통령실 국정상황실도 부주의했다. 국가의 주요 현안이 어떤 상태인지 대통령은 사전에 알지 못했다.
이런 안일과 무능, 부주의가 국가 전반에 만연해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속이 탈 것이다. 지난 6월, 대학입시를 담당하는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이 갑작스레 경질되었다. 대통령이 교육 개혁에 관해 “몇 달간 지시하고, 장관도 이에 따라 지시한 지침을 국장이 버티고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국정원 인사를 둘러싼 내부 분란도 자못 심각했다. 그동안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강조해 온 윤 대통령이 최근 통일부 장관을 교체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지난 7월, 윤 대통령은 11개 정부 부처 차관을 새로 임명했다. 부처에 회초리를 들고 간 ‘대통령의 차관들’이다.
주요 헌법기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입법교착과 입법폭주가 일상화된 국회가 대표적이다. 새 정부 이래 국회는 방탄국회다. 각종 범죄 혐의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다수 의원들이 불체포특권 뒤에 숨어 있다. 한편 심각한 입법교착으로 국정 수행은 꽉 막혔다. 지난 5월 초까지 집권 1년간 윤 정부의 국정과제 법률안은 약 35%만 통과되었다. 그 반면 야당은 국정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검수완박법,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을 강행했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과 관련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거짓말을 했다. 조국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재판은 하염없이 시간만 끌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검수완박법 판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 통과를 위해 위장탈당했지만, 헌재 다수의견은 국회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시했다. 최근 고용세습의 부패가 드러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때 여야에 따라 선거법 적용이 편파적이었다.
정부는 물론 모든 헌법기관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안일과 무능, 도덕적 불감증이 널리 퍼졌다. 한때 한국의 국가는 유능하고 헌신적이며, 높은 공인의식을 자랑했다. 물론 국가가 기업보다 무능해진 건 오래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양태는 퇴영적이기까지 하다. 왜 이렇게 됐나. 모든 기관에 공통된 현상은 진영 논리의 침투다. 새만금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은 모두 진영에 따른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되었다. 그게 전북도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다. 오늘날 공무원의 무능은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희생양이 된 그들로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사법부 등 헌법기관은 문재인 정부 때 특정 진영에 점령되었다. 법과 원칙은 진영논리로 대체되었다.
상황이 정말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였다. 한국 민주주의는 위험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세계 민주주의도 2005년 정점을 찍고, 침체기에 들어섰다. 정치적 양극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20년간 미국외교협회를 이끈 하스(Richard Haass) 전 회장은 ‘미국 민주주의’는 “국가안보적 우려 사항이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아니라 국내정치가 미국과 세계에 더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도 심각하다. 단순한 이념적 차이를 넘어 상대당에 적대감을 느끼는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가 심화되고 있다. 조국에 대한 입장 차이로,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각각 집회가 열린 게 대표적 사례다.
조국 사태 이후, 1987년 민주화 이래 공유해 온 국민의 상식이 깨졌다. 21대 국회의 상임위 구성이나 선거법 개정 때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 관습을 모두 깼다. 상대를 경쟁자로 보는 상호 인정(mutual toleration), 그리고 주어진 권한을 신중하게 행사하는 제도적 절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무너졌다.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정치는 이제 ‘경쟁’에서 ‘전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목하 자살 중이다. 강대국의 갈림길에 선 한국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8.21 결국 팩트가 진영을 이길 것이다
정의에 대한 열망, 독선과 결합하면 파국의 카운트다운일 뿐
국민 눈귀 흐리는 진영 논리 난제 해결 주역은 결국 언론
언론은 정의보다 팩트 믿어야

▲지난 6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짜뉴스VS팩트체크 : 끝날 수 없는 전쟁'을 주제로 열린 2023 KDF 언론포럼에서 팩트체크 플랫폼 폴리티팩트을 설립한 빌 아데어 듀크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겨운 재방송 장면 같은 후쿠시마 오염수 파동, 잼버리 책임 공방, 방송통신위원장 자격 논란 등을 혼미한 정신으로 멍하니 바라보던 필자의 귀에 대고 8월 16일 자 김영수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이 외쳤다. “정신 차려!”
그는 진영 갈등으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목하 자살 중이라고 썼다. 그 격한 어휘들이 필자의 의식을 깨운다. 공감한다. 차제에 자못 도발적인 주장을 더하려 한다. 이 망국병은 정치 영역을 넘어 국민적 현상이 되었다. 그 뿌리에 역설적이지만 정의의 열망이 존재한다.
정의에 대한 열망은 사회가 발전하며 자연스레 자라난 국민의 집합적 심성(mentalite)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절대 쉽지 않은 정의론 저서들이 날개 돋친 듯 나가고, 눈에는 눈 식으로 악을 응징하는 드라마며 영화가 흥행 몰이를 하는 현상이 방증하듯, 그 에너지는 가공할 만하다. 그 힘이 제대로 쓰일 때 우리 사회는 도약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열망이 내로남불식 독선, 타 집단에 대한 혐오, 제도에 대한 불신과 결합될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수 있다.
그 키를 쥔 것이 사회적 소통과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언론이다. 문제는 이들 역시 진영화되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기, 서로 연대하여 권력에 맞서던 언론은, 이제 진영과 병행하며 그 관점과 논리를 증폭시키고 자기끼리 상호 갈등하는 관계를 기본 구조로 삼는다.
진영화된 언론이 국민의 의식을 오도하는 이 아찔한 상황의 중심에 공영방송이 위치한다. 진영의 이명(異名)에 다름 아닌 정의 추구 방송으로 일관한 MBC는 논외로 쳐도, KBS의 경우 2015년 3월 중요한 분기점이 있었다.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수립이 그것이다. 이때 공정성은 사실성과 불편부당을 넘어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우선 배려하고 이를 위해 직접적 현실 참여도 불사하는 원칙으로 정의되었다. 공영방송의 역할이 선택적 정의의 구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일이 공영방송을 망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지만, 공영방송이 진영을 넘어 국민의 방송으로 정립될 기회는 그때 사라졌다고 본다.
이런 문제에 대한 중립적 성찰을 제공하는 게 학계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그 논의의 대종 역시 진영 극복의 논리가 아닌, 진영 논리를 재생산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 사례로 올해 4월, 한 진보 성향 언론학 학술단체에서 낸 ‘언론 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라는 연구서를 들 수 있다. 필자들의 면면에 끌려 정독한 책의 내용은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기억을 소환했다. “언론이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수록 시민의 자유, 특히 약자의 권리가 침해된다.” “언론은 억압하는 권력에는 자유를 헌납하고 관용하는 주권자에게는 자유를 남용한다.”
필자들은 한입으로 정의롭지 못한 언론을 질타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 소유권,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급진적 주장들 속에 진영화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보이지 않았다. 시민의 역할이 거듭 강조되었지만, 이 ‘순정한 그대’가 누구이고 역할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모호했다.
그 한 달 후인 5월, 뉴욕 타임스의 사주 겸 발행인인 설즈버거(A. G. Sulzberger)가 미국의 유명 저널리즘 스쿨 학술지에 이와는 사뭇 다른 관점의 글을 실었다.
“이념을 앞세우는 것이 진솔하고 존경받을 일처럼 부추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적 의견을 진리로 간주하는 맹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의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겐 공공연히 총기를 휴대할 수 있는 권리, 다른 이들에겐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 권리가 정의일 수 있습니다. (중략) 정의를 신봉하는 언론인은 아무리 지혜롭고 선한 의도를 지녔다고 해도 결국 세상을 밝히기보다는 어지럽게 할 것입니다.”(‘언론의 본질적 가치’ 중 ‘대안의 위험’ 발췌 정리)
2017년 3월, 진영이 모든 것을 삼킨 아득한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 같은 SNU 팩트 체크 사업을 시작하며 필자가 지녔던 생각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 하루하루가 역사였다. 올해 6월에는 75국 550여 명이 참가한 국제 대회도 치렀다. 이제 30개를 훌쩍 넘긴 제휴 언론사의 팩트 체커들은 최근 한 입장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보수를 지향하지도, 진보를 지향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팩트를 지향합니다. 격하고 거친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팩트 체커로서 진실의 세례에 조력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정리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흐리는 진영 논리의 극복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정의”가 아닌 “팩트”를 중심에 둔 언론이 그 주역이다. 팩트가 진영을 이길 것이다.
조선일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08.21 이인호 “대한민국의 75번째 생일을 축하하기가 이리도 힘든가?”
[김윤덕이 만난 사람] 역사학자 이인호의 ‘1948 건국론’

▲2023년 8월 16일 조선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그는 "대한민국 건국 75주년 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하지 않는 모습에 역사학자로서 비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1919년이냐, 1948년이냐.
최근 재점화된 ‘건국 논쟁’에 역사학자 이인호는 단호했다. “1919년 건국설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해 내놓은 주장입니다. 1948년 5·10 선거로 국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해 대통령을 선출한 뒤 건국의 마지막 단계로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해 세계에 선포한 이 명백한 사실을 왜 부정하려 합니까.”
그는 8·15 광복절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도 아쉽다고 했다. “해방 후 공산주의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마침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출범시킨 건국 75주년의 의미를 강조했어야 하는데, 그걸 언급하지 않아 이 소모적인 논쟁을 잠재울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87세 노(老)학자는 대한민국의 75번째 생일을 축하하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냐며 “비애를 느낀다”고 했다.
◇건국 원년은 1948년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이라는 주장에 대해 ‘역사 왜곡’이라고 반박하셨더군요.
“반(反)대한민국 세력에게 이용당하기 딱 좋으니까요. 그리고 ‘광복 78주년’이라는 올해 경축식 제목부터 틀렸어요. 제대로 쓰려면 ‘해방 78주년, 건국 75주년 기념 광복절’이라고 해야지요. 해방이 광복은 아니었잖습니까.”
-해방과 광복이 다른가요?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일제 치하에서 놓여난 겁니다. 그 감격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우리 힘으로 해방을 얻은 게 아니고, 나라도 미국 소련으로 분단 점령된 상황이라 독립국가가 되지는 못했어요.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하면서 광복은 비로소 이뤄집니다.”
-윤 대통령의 경축사는 왜 아쉬웠습니까.
“독립운동은 건국운동이었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은 성취를 이뤘는가에 대해선 말씀하셨는데, 그게 다 1948년 나라가 건국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언급이 없었어요.”
-건국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건국이 어떻게 논쟁이 됩니까? 대한민국 사람이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탄생한 걸 기뻐해야 당연하지요. 세계 어디라도 물어보세요. 대한민국 탄생이 언제인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대한민국 원년이 되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의 단체였고, 국가적 기능을 하진 못했어요.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고, 국민들도 임정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임정과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들리지 않을까요?
“그분들이 추구했던 게 독립이고 독립을 이룬 게 1948년인데, 그게 왜 독립운동가를 폄훼하는 겁니까.”
-미국도 독립 선언을 한 1776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하지 않았나요?
“미국은 영국 식민지였지만 처음 형성될 때부터 각 주별로 자치정부가 있었어요. 독립을 선포한 건 영국에서 부과하는 세금이 과다해 그걸 못 내겠다고 한 데서 출발한 거지, 나라는 이미 스스로 운영하고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독립 선포가 곧 독립이 될 수 있지만, 우리는 달라요. 일본 법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가 독립을 선언했다고 해서 그게 독립이 됩니까?”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광복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대통령실
◇단독정부? 공산화 막기 위한 고육지책
-이승만 대통령도 대한민국 원년이 1919년이라고 했다던데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독립선포 식사(式辭)에 ‘대한민국 30년’이란 대목이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앞부분엔 이렇게 썼어요.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하는 것을 겸하여 경축한 것입니다.’ 국가의 새로운 탄생이 1948년 8월 15일에 드디어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1948년 건국론’을 비판하는 사람은 모두 좌파입니까?
“1948년이 건국의 해라고 말하길 주저하는 사람들 중에는 좌파가 아닌 사람도 물론 있었어요. 영구 분단에 대한 우려 때문이죠. 김구 선생도 그중 한 분인데, 이승만 박사는 나라 전체가 공산화되는 위협을 막으려면 남한만이라도 독립을 시켜야 한다고 설득한 겁니다.”
-실제로 좌파 역사학자들은 1948년 단독정부 수립이 분단의 시작이라고 비판합니다.
“북한은 이미 1946년 2월부터 공산국가 체제를 만들기 시작해요. 이를 간파한 이승만이 우리도 서둘러 주권국가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쪽에 넘어갈 수 있다며 ‘정읍 연설’을 합니다. 좌파들은 이를 분단 획책이라 비판하지만 남한까지도 공산화되는 걸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보는 게 맞아요. 그리고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 전체라고 명시돼 있어요. 아직 우리 법의 권능이 북한까지 미치진 못하지만 언젠가 회복해야 할 영토로 남아 있는 겁니다.”
-KBS 이사장 시절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에 공로가 없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었지요?
“난 사실을 말한 겁니다. 김구는 이승만처럼 국제 정세에 밝지 못해 한반도가 분단으로 가고 있는 걸 인지하지 못했어요. 처음엔 김구도 정읍 연설에 동조했는데 ‘장덕수 암살 사건’을 계기로 두 분 사이가 갈라지면서 단독정부 추진을 비난하기 시작하죠.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로서 큰 공헌을 했지만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유엔에도 지지하지 말라고 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건국에 공로가 없다고 한 겁니다.”

▲1965년 7월 27일, 이승만 대통령 장례식 모습. 영결식이 열린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남대문과 제1한강교를 지나 동작동 국립묘지까지 10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고인을 애도했다./공보처
◇김구 앞세운 이승만 죽이기
-이승만과 김구 모두 공산주의에 반대했는데 두 분은 왜 좌우의 대립 구도에 서게 됐을까요.
“좌익이 김구를 이승만 죽이기의 도구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암살당한 김구를 성역화해서 대한민국 하면 김구 선생이 떠오르도록 기획한 거죠. 그 일환으로 이승만을 악마화한 ‘백년전쟁’이 만들어졌고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독재 하면 박정희, 전두환을 떠올렸어요. 그런데 1990년대 소련이 무너지고부터 독재자 하면 이승만을 떠올립니다. 이상하잖아요? 이승만은 합법적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4·19 의거도 헌법이 국민의 항의권을 보장하는 민주적 토대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런 이승만이 갑자기 독재자의 상징이 된 건 운동권에 종북 세력이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김구를 이용해 이승만 죽이기 작업을 하고, 1948년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되고요. 이 대통령의 운구가 하와이에서 돌아와 서울에서 장례식 치를 때 어마어마한 인파가 도심을 메우고 애도했습니다. 4·19 주역들이 왜 이승만 대통령 묘역을 찾아갔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혁명은 1948년 건국혁명이라고 하셨더군요.
“북한과 우리를 보세요. 똑같이 능력 있고 부지런하고 자식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민족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어떻게 달라져 있습니까. 우리가 국민의 역량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선진국 반열에 올랐어요. 1948년 제헌 헌법이 계급 간 차별 금지, 남녀 평등을 선포해 모두가 평등하게 투표하고 교육받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건국은 혁명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위에 합류하셨지요?
“이승만 기념관은 한 사람의 공과를 평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니에요. 독립 투쟁과 건국, 그리고 13년 동안 대통령을 한 사람의 족적을 알아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웠고 어떤 난관에 부딪혔으며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게 됩니다. 또, 이 대통령은 기록을 꼼꼼히 남긴 분이에요. 기념관이 생겨 모든 자료가 다 공개되면 이승만뿐 아니라 동시대 활동했던 김구, 안창호 같은 분들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혀지겠죠.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건 그간의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입니다.”
-이승만 우상화, 신격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누가 이승만을 신격화합니까. 이승만의 족적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거지. 기념관의 장점은 사료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한다는 거예요. 이 박사가 프린스턴 대학에 다닐 때 쓴 일기를 보고 내가 충격을 받았어요. 학교 생활에 대한 건 없고, 오늘 제일감리교회 가서 강연을 하고 2달러를 벌었다, 오늘은 어디서 8달러를 벌었다…. 그만큼 하루하루 절박하게 살며 독립운동을 했어요. 그런데 좌파들은 이승만은 어딜 가든지 돈 냄새가 난다고 비하해요. 참 나쁜 사람들 아닙니까?”

▲2023년 8월 16일 조선일보에서 인터뷰 하고 있는 이인호 교수. 그는 "광장의 국민들은 건국 75년을 축하하는데, 이 나라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다"면서 "1919년 건국론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세력에 이용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조작과 선동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386세대가 공부를 안 해서 종북세력에 이용당했다고 개탄하셨지요?
“독재 타도하자고 싸운 기간이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인데 이때 제대로 된 역사서를 읽고 고민하고 토론했다면 시비를 가릴 능력이 생겼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386 운동권 세대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들이라고 봅니다. 80년대 초 내가 일간지에 기고한 글이 있어요. 시위하는 학생들을 전부 폭도로 몰면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고. 그런데 그들이 기득권이 되면서 민주화 정신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된 겁니다.”
-문재인 정부 때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나는 죽어 마땅하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 학자들의 비겁함이죠. 역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면서 현대사를 가르치지 않았어요. 이 공백을 우리 역사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이들, 선전선동의 귀재인 좌파들 손에 다 내주게 된 겁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건 조작과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 지성을 키우기 위해서라고도 하셨지요.
“지도자의 판단은 49대51의 상황에서 51을 택하는 거지, 흑백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통찰과 지혜는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하는데 파렴치한 자들이 역사를 조작하고 정치도구화해 나라를 흔들고 있어요. 사실 요즘 나는 비애에 빠져 있어요. 내가 얼마나 게으르게 살았는가, 완전히 어항에서 살았구나, 하는.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녔을 만큼 빚이 많은 내가 후대들은 그렇게 교육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큽니다. 그래서 미안하고 아픕니다.”
☞이인호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았다. 서울대 사학과에 다니다 미국 웰슬리대로 유학,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 하버드대에서 러시아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서울대 교수를 거쳐 1996년 핀란드 대사로, 1998년 러시아 대사로 임명돼 건국 최초 여성 대사가 됐다. 박근혜 정부 때 KBS 이사장을 지냈다.
조선일보 김윤덕 선임기자
08.22 “새만금 공항부터 취소합시다” 호남 청년의 7가지 제안
잼버리 사태 반복되지 않도록 호남이 스스로 변해야 할 때
새만금 1.5㎞ 거리에 군산공항, 무안·광주 공항도 수백억 적자
‘호남독점’ 안 돼… 민주당 구미시장처럼 국힘 신안군수 나와야

▲일러스트=이철원
호남인 여러분.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습니까. 광주가 고향인 저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실의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남 탓을 할 때는 더욱 아닙니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호남이 스스로 변해야 할 때입니다.
먼저 재경 학숙을 없앱시다. 은평구와 동작구의 남도학숙, 서초구의 전북장학숙 3곳의 땅과 건물만 팔아도 수천 억은 족히 나올 겁니다. 이 돈을 호남 지역에 뿌리 내린 청년을 위해 씁시다. 속인주의가 아니라 속지주의를 하자는 겁니다. 이미 지방은 타 지역, 심지어 타국에서 온 사람이 많이 정착해 있습니다. 이분들과 주민들이 쓸 돈도 부족한데 왜 돈이 넘쳐나는 서울에 쏟아부어야 합니까. 어차피 상경한 청년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세금으로 지역 인재를 유출시키는 꼴이지요. 지역 인재들이 중앙에서 성장해서 훗날 예산을 많이 끌어올 거라고요? 그렇게 예산을 따 온다고 지역의 자생적 성장 역량이 생기던가요? 결국 건설사들만 배 불리고 끝나지 않았습니까.
둘째로, 세금 낭비하는 사업들을 호남이 솔선수범해서 정리합시다. 새만금 공항 건립부터 취소합시다. 불과 1.5km 떨어진 곳에 군산 공항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국민의 피 같은 세금 그렇게 길바닥에 쏟아부어선 안 됩니다. 매년 800억 적자가 나는 무안 공항과 200억 적자가 나는 광주 공항 둘 중 하나는 정리해야 합니다.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이 한전 공대를 짓는 게 맞습니까? 기존 전남대나 GIST(광주과학기술원)로 통폐합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야 다른 지역도 수익성 없는 사업 추진을 멈출 것입니다.
셋째, 기업을 우대합시다. 호남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도 민족 최고 대기업 경성방직을 키워냈습니다. 그랬던 호남이 지금은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반대한다며 새만금 LG스마트팜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대기업이 소상공인의 유통업에 침범한다며 복합 쇼핑몰 입점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신 광주·군산형 일자리처럼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에만 혈안입니다. 심지어 전 전북 교육감 김승환은 과거 전북 지역의 학생들을 삼성에 취직시키지 말라는 지시까지 했습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투자와 고용을 통해 지역의 자생적 성장 역량을 갖게 해주는 것은 결국 기업입니다. 입주하려는 기업을 우대하고 무리한 기부 채납을 요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넷째, 반(反)대한민국 세력과 역사적 상징 인물을 단호히 배격합시다. 김성수와 송진우 같은 호남의 인재들이 주도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했습니다. 그랬던 호남이 내란 선동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 정당 정치인을 뽑아주고,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의 이름을 딴 길을 만들고 동상을 세워서야 되겠습니까. 호남도 대한민국 아닙니까.
다섯째, 호남에 ‘민주화의 성지’라는 단어를 그만 붙입시다. 존경하는 고향 어르신들의 피로 이룬 민주화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남을 특정 정당에 가두고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인 권력 분립과 상호 견제가 이뤄지지 못하게 막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견제하지 못하니 잘못된 잼버리 부지 선정 과정을 중단시킬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성지’라는 단어는 호남인에게 성역화를 강요합니다. 마치 신성불가침인 폐쇄적 종교 집단처럼 민주라는 가치를 독점한 집단이 독재를 하는 것이지요. 이러면 다른 의견을 말하고 실정을 비판했다간 이단이 돼 버립니다. 국민의힘에도 광주를 위해 투쟁했던 민주화 운동가가 많은데 5·18 묘역 참배도 못 하고 쫓겨나기 일쑤입니다. 이래도 민주화의 성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호남인이 진정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대다수 국민은 호남인이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호남이 민주당의 가장 강한 지지 세력이니까요. 그런데 실제 한 분씩 그 정책들에 동의하시는지 물어보면 아니라고 합니다. 호남에서 농사짓는 분들은 영산강 보 해체를 반대합니다. 목포 출신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불태워 죽임을 당했는데 아무 말 못 하는 대북 정책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민의가 왜곡되고 있는 겁니다. 이걸 바꾸려면 한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거둬야 합니다. 박정희의 고향 구미에서 민주당 시장이 나온 것처럼, 김대중의 고향 신안에서도 국민의힘 군수가 나와야 민주당 정치인들도 긴장하고 호남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요? 호남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이제 좀 바꿔봅시다.
조선일보 박은식 의사·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08-22 새 대법원장 최우선 과제는 ‘사법 정치화’ 혁파다
사법부 안팎의 기대 속에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22일 새 대법원장에 지명됐지만, 그가 직면할 사법부의 현실은 참담한 수준이다. 다음 달 24일 임기가 끝나는 김명수 대법원장 6년 동안 진행된 ‘사법의 정치화’는 위험 수위다. 법원 민주화를 빌미로 내부 경쟁 및 통제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재판의 질 저하와 지연도 심각하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이다. 사법부가 입법·행정부와 한통속이 된 듯한 일탈로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까지 위협받는 지경이 됐다.
국회 임명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차기 대법원장의 최우선 과제는 ‘사법 정치화’의 혁파다. 첫째, 전면적 인사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법관의 양심으로 착각하거나 재판을 소신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간주하는 판사는 퇴출도 불사해야 한다. 사실관계의 확정과 법률 해석 및 적용에 미숙한 실력 없는 판사들은 충분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보직에 배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엄격한 인사 평가와 재임용 심사가 필요하다.
둘째, 법원 내부의 경쟁 시스템 회복이다. 고법 부장 승진제 폐지로 좋은 판결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는 경쟁 시스템이 사라졌다. 2022년 기준으로 1심에서 1년 넘게 처리되지 않은 재판이 민사의 경우 65%, 형사의 경우 68% 급증했다. 법원장 추천제도 즉각 폐지해야 한다. 현행 법관 임용 시스템은 변호사 시험 통과 후 5년 이상의 실무 경험을 거치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 정도 경력으로는 법관으로서의 소양을 갖추기 힘들다. 지방법원 배석 판사 등을 통해 집중적인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셋째, 이 지명자 스스로 처신에 엄격함으로써 사법부 구성원으로부터 존경을 받도록 해야 한다.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판사 사표 수리와 관련한 거짓말, 대기업 법무실 근무 변호사 며느리의 대법원장 공관 회식 사건 등으로 신뢰 훼손을 자초했다. 이 지명자는 재임 기간 대부분을 재판 업무에 전념해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고, 엘리트 법관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다.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해 사법 정의와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길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
08.22 "법원 조롱거리 전락" 김명수 체제 직격했던 '보수 법관' 이균용
이균용(61·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새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임명되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후 6년 만에 다시 보수 대법원장 시대가 열리게 된다. 임명에 이르려면 이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동의를 얻어야 한다.

▲2021년 이균용 당시 대전고등법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자는 1990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용된 후 법원 내 주류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의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과 대전고법의 법원장을 역임했다. 전·현직 법관과 학자들의 학술단체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이 후보자는 2021년 대전고법 원장 취임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해 화제가 됐다. “법원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등 재판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내려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한 것이다. “정치권력, 여론몰이꾼, 내부 간섭 등 부당한 영향에 의연한 자세로 용기 있는 사법부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도 했었다.
그는 특히 “헌법 1조 2항에 기초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은 집단적인 감정 표출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그런데도 ‘국민 정서’나 ‘국민의 의사’를 내세워 어떤 편향된 주장을 실정법에 우선시하려는 위험한 여론몰이가 온 사회를 뒤흔들고 법원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너진 사법의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법의 지배를 실현한다는 ‘불변의 이념’을 기반으로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공정하고 충실한 재판 절차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외길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당시 취임사가 회자되자 “누군가는 해야할 말을 했을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후보자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같은 부산 출신으로 개인적으로는 서로 잘 아는 사이다. 한 판사는 “이 후보자는 그만큼 개인적인 친소 관계에 얽매임 없이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 의견을 내고, 이후 대장동 개발 의혹의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취업해 거액의 고문료를 받은 권순일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사석에서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 후보자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 고전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을 필독서로 꼽을 만큼 이념적 정체성도 분명한 편이다. 현 대법원의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내린 노동 사건 판결에 대해서는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판사라면 경제학을 잘 알아야 국민 실생활에 혼란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은 없지만 법원장을 두 차례 역임하며 사법행정에도 밝은 편이다. 특히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유능한 판사들이 격무와 자긍심 훼손으로 대거 사직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일본의 경우 아예 헌법에 법관 급여가 명시된 사례를 들며 법관 처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게이오대 유학파 출신으로 법원 내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도 화제다. 1990년대 초반 윤 대통령이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해 3년차 검사로 춘천지검 강릉지청에 근무할 때, 이 후보자는 연수원 동기로 당시 강릉지원에 근무하던 문강배 변호사를 매개로 윤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의 서울법대 1년 후배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국정감사 때 윤 대통령과의 친분에 대해 “제 친한 친구와 (윤 대통령이) 친한 친구“라며“(나도) 친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2일 대법원장으로 지명되기 이틀 전 모친상을 당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08-22 산업장관 교체, 탈원전 폐기와 공기업 개혁 속도 내야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후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을 지명한다. 분위기 전환용 개각을 꺼려온 윤 대통령이 이례적인 ‘원포인트 장관 교체’를 단행한 것은 통일부 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탈원전, 이념적 환경정책에 매몰돼 새로운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다면 과감한 인사 조치를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산업부 2차관도 교체했다. 이번 인사는 그 후에도 여전히 탈원전 폐기 등 국정 추진 속도가 미흡하다고 본 때문이다.
산업부는 지난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던 실무 공무원들이 그대로 탈원전 폐기 정책을 수행하는 등 원전 확대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기·가스 요금 조정 과정에서 당·정 갈등이 빚어졌고, 지난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산하에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가스공사·석탄공사·강원랜드 등 가장 많은 41개 공기업을 거느리고 있지만, 정권 교체 이후 별다른 개혁 조짐은 없었다. 민영화된 포스코 등은 아예 독립 소왕국처럼 됐다.
국회 인사청문회 등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신임 산업부 장관은 탈원전 폐기 후속조치 등을 통해 국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인위적인 전기요금 억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으로 망가진 한전과 같은 공기업들도 개혁해야 한다. 알박기 인사들은 반드시 걷어내야 할 대못이다. ‘국면 전환용 인위적 개각은 없다’는 기조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차관 교체로 ‘땜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는 장관은 수시로 경질 인사를 통해 교체해야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복지부동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8.23 대법원장 후보 이균용, 무너진 사법 신뢰 다시 세울 막중한 책임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달 6년 임기가 끝나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임으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이균용 지명자는 2년 전 대전 고법원장 취임사에서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했다. 실제 지금의 사법부 현실은 참담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초부터 자신이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인권법 출신 판사들을 요직에 앉히고, 대법원도 대법관 14명 중 7명을 우리법·인권법·민변 출신으로 채웠다. 그 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들이 쏟아졌다. 대법원은 ‘선거 TV 토론에서 한 거짓말은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다’라는 전대미문의 판결을 내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 판결을 놓고 대장동 업자와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사실이면 사법부 전체가 문을 닫아야 한다.
하급심 판결도 마찬가지다. 3년 전 재판에 넘겨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1심을 맡았던 우리법 출신 판사가 15개월간 본안 심리를 진행하지 않아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이다. 판사가 정치를 하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1심 판결도 무려 3년 2개월 걸렸다. 얼마 전엔 판사가 돼서도 ‘친민주당’ 성향 글을 쓴 판사가 노무현 명예훼손 혐의 사건에 이례적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하는 일도 있었다. 판결을 제 정치 무기로 쓴 것이다.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 /뉴스1
이균용 지명자는 2년 전 “사법 신뢰와 재판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공정하고 충실한 재판 절차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고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재판 원칙이지만, 그것이 전체 법관들에게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이균용 지명자에게 부여된 최우선 과제다.
김명수 사법부에서 무너진 사법 행정도 바로잡아야 한다. 김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판사들이 법원장을 투표로 뽑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했다. 그로 인해 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재판 지연 현상이 심화돼 국민 고통이 커졌다. 김 대법원장 재임 기간 동안 전국 법원에서 2년간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 소송은 3배로, 형사 소송은 2배로 늘었다. 판사는 편해지고 국민은 괴로운 ‘사법 포퓰리즘’이다. 이 폐해도 없애야 한다.
쉽지는 않다. 법원에 정치 그룹화된 판사들과 법원 노조가 그대로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도 이 지명자 인준에 발목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반발에 타협하면 사법 신뢰 회복은 또 물 건너간다.
조선일보 사설
08-23 차기 대법원장 과제는 코드·무능 척결

김현 변호사, 제49대 대한변호사협회장
사법개혁은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법부가 좋은 판결을 신속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 달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김 대법원장이 6년간 실시한 정책 중 칭찬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그는 자신이 회장을 지낸 이념 편향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을 편파적으로 중용했다. 2021년에 대법원 재판연구관 97명 중 33명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분류됐다.
유능하고 중립적인 엘리트 판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고법부장 승진제를 폐지한 결과 법원의 재판 능률이 급속히 떨어졌다. 판사들이 열심히 일해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는 통로가 막히면서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법원은 존경받는 엘리트 집단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평범한 직장으로 추락했고, 의욕이 사라지자 퇴직 판사도 크게 늘었다. 특히, 한창 일할 고법 판사가 많이 퇴직했다.
그 결과 재판 지연이 심각해졌다. 지난 6년 동안 장기 미제 재판이 급증하고 재판 불복률도 올라갔다. 1년 초과 1심 민사사건이 2016년 2만6879건에서 2022년 5만3084건으로 2배가 됐다. 많은 법원의 판사들이 1주 2∼3건만 처리하기로 담합한다고 한다. 이 같은 웰빙 분위기로 피해를 보는 것은 재판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는 국민이다.
김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 문제다. 일선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법원장 후보인 부장판사들이 인기에 영합해 후배 판사들을 지도하기를 꺼리는 나머지 재판의 질이 떨어졌다. 또, 대법원장이 자신의 측근을 법원 수석부장으로 임명해 법원장 승진 코스를 밟게 했다. 김 대법원장이 임명한 수석부장들이 12개 지방법원 중 10곳에서 법원장 최종 후보가 됐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폐지해야 한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및 문재인 정권 비리 재판에 특정 성향 법관을 배치하고 장기간 유임시킨 것은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직권남용이라 할 수 있다. 김 대법원장이 제청하거나 지명한 특정 성향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이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로 법치주의를 후퇴시킨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법관 인적 청산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김 대법원장의 대표적인 과오는 거짓말 해명 사건이다. ‘사법농단’에 관련돼 국회에서 탄핵이 추진됐던 임성근 고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내자 김 대법원장은 국회의 탄핵 추진을 언급하며 수리하지 않았다. 이를 부인하며 거짓말한 김 대법원장은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퇴임 후 조사를 받게 된다.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명됐다. 그는 법원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정통파 법관으로서 “법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재판의 권위가 무너져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소신을 보였다. 새 대법원장은 6년간의 사법의 정치화를 벗어나 철저히 실력 위주로 사법부를 이끌어야 하고, 진보 이념에 치우쳐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법을 바로잡아야 한다. 4만 건 이상이 적체돼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위협하는 상고심 제도는 사법개혁의 핵심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추진됐던 상고법원 신설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8.23 공공기관 경영평가, 평가위원은 돈받고 기재부는 눈감았다
감사원, ‘공공기관 경영 평가’ 부실 적발
평가받는 기관들 회계 조작으로 성과급 타내

▲지난 6월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 모습./장련성 기자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 지급률을 결정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부실하게 운영돼 왔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은 평가 대상 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으면서도 평가위원으로 위촉돼 점수를 매겼고, 평가 주관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이들이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경우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다수를 평가위원으로 다시 위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평가 위원들은 몇몇 항목에 대한 점수를 잘못 매긴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여러 기관들 간의 ‘종합 순위’를 유지시키기 위해 다른 항목 점수를 깎는 등 ‘엉터리 평가’를 한 사실도 확인됐다.
평가 점수를 높게 받기 위해 회계를 조작하고 평가 담당자를 속인 공공기관도 적발됐다. 이 기관 임직원들은 이런 조작을 통해, 원래 점수대로라면 한 푼도 받지 못했어야 할 성과급을 78억여 원 챙겼다. 이렇게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부당하게 타낸 성과급의 원천은 국민들이 낸 세금과 공공요금이다.
감사원이 23일 공개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운영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재부는 2008년부터 매년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 100여곳을 대상으로 경영평가를 한다. 대학 교수나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민간 전문가들을 위촉해 ‘경영평가단’을 구성하고, 이들이 각 기관에 대해 미리 정해진 평가 지표에 따라 점수를 매기게 한다. 점수를 종합해 가장 높은 ‘S’에서 가장 낮은 ‘E’까지 6단계로 등급을 부여한다. 등급이 높을수록 임직원들이 성과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반면 ‘D’·'E’ 등급을 받으면 성과급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기관 차원에서 ‘경영 개선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임원은 경고를 받거나 해임된다.
그런데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경영평가단 구성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평가 대상으로부터 연구 용역을 수주하거나 강의를 의뢰받은 사람은 평가위원으로 위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평가위원 임기 동안 이런 활동을 하다가 적발된 경우에는 해촉되고, 이후 5년간 평가위원으로 다시 위촉될 수 없다.
그러나 2018~2020년에 평가위원으로 위촉된 323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56명(48.3%)이 평가 대상 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에 위촉된 A교수는 그해 4월부터 12월까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문에 응해주고 한 번에 30만~500만원씩 9차례에 걸쳐 1755만원을 받았다. 역시 2018년에 위촉된 B교수는 임기 중에 국가철도공단 등 9개 공공기관으로부터 26차례에 걸쳐 ‘자문료’, ‘심사료’, ‘회의 참석비’ 등의 명목으로 970만원을 받았다.
기재부는 이런 사람들을 평가위원으로 위촉하기 전에 검증을 통해 걸러내야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이 누구에게 돈을 주고 있는지를 기재부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기재부도 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서 검증이 이뤄지지 못했다. 2020년에 위촉된 C교수는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임기 중에 2차례에 걸쳐 670만원을 ‘수당’ 명목으로 받았지만, 한수원은 이 사실을 기재부에 알리지 않았다. 기재부도 ‘최근 5년간 모든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돈이 도합 1억원 이하면 괜찮다’ 등의 기준을 임의로 세워, 자격 미달 인사들을 위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평가위원들이 점수를 임의로 뜯어고쳐 온 정황도 확인됐다. 각 기관을 평가하는 지표는 30가지, 여기에 딸린 세부 평가 내용은 87가지에 달한다. 그런데 평가위원들은 2019년에만 401개 항목의 점수를 중간에 고친 것으로 확인됐다. 합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정당한 이유 없이 임의로 점수를 고치거나, 점수 부여를 잘못한 것을 덮기 위해 다른 항목 점수에까지 손을 댄 경우였다.
2019년 경영평가에서는 ‘사회적 가치 구현’ 항목에서 평가위원들이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국가철도공단,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아시아문화원 등 4개 기관에 등급을 잘못 부여했다. 이를 정정하자 종합 등급이 바뀌게 되어, 다른 기관들과 함께 매긴 순위까지 바뀔 상황이 됐다. 그러자 평가위원들은 ‘노사관계’, ‘안전 및 환경’ 등 다른 항목 점수를 임의로 깎아서 종합 등급이 변하지 않게 했다. 순위에 점수를 끼워맞춘 것이다.
한국도로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전력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LH)·코레일 등 5개 기관은 2019년에 중대 재해를 일으켰고, 원칙대로라면 해당 항목에서 2~3등급 감점돼야 했다. 그러나 평가위원들은 ‘감점이 과하다’며 코레일은 봐주고, 나머지 4개 기관은 1등급만 감점하는 것으로 바꿨다. 반대로 울산항만공사와 부산항만공사는 2019년 실적을 평가하는데, 2020년에 안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는 이유로 감점을 했다.
‘국민 눈높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두 공사에서 일어난 사고는 중대 재해가 아닌 경미한 것이었다. 반면 한국중부발전에 대해선 사망 사고가 났는데도 ‘회사 책임인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점을 하지 않고, 오히려 2차례에 걸쳐 점수를 올려 줬다. 그래놓고는 ‘그래도 사망 사고가 났는데 종합 등급이 높게 나오면 국민 정서에 위배될 수 있다’며 안전 문제와 관련 없는 ‘일자리 창출’ 등 9개 항목을 감점해 전체 등급은 낮췄다.
기재부는 평가위원들이 이렇게 평가 규정과 기준을 무시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 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는 “평가는 경영평가단의 고유 권한으로, 기재부가 이들이 기준을 준수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기재부가 감독을 하지 않는다면, 경영평가의 주체인 기재부가 자기의 기본 임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2018년 경영평가를 받으면서 인건비 인상률을 실제보다 낮아 보이게 조작했다가 적발됐다. 당시 평가 규정에 따르면, 임직원 총인건비 인상률이 2.6% 이하여야만 관련 항목에서 3점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난방공사는 무기계약직 직원들에게 지급한 복리후생비를 ‘실집행액’으로 산정하면 총인건비 인상률이 2.6%를 넘고, ‘인원 비례’ 방식으로 산정하면 2.59%가 된다는 것을 알고, 평가 실무자에게 인원 비례 방식으로 산정한 숫자를 제출했다. 평가 실무자가 증빙 자료를 요구하자, 지역난방공사는 ‘실집행액으로 산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이런 방법으로 실제 받았어야 할 점수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종합 등급 ‘C’를 받았다. 그 결과로 지역난방공사 임원은 기본연봉의 10%까지, 직원은 월 기본급의 25%까지를 성과급으로 받을 수 있었다. 성과급은 총 78억여원이었다. 원칙대로 ‘D’나 ‘E’ 등급을 받았다면 전혀 지급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감사원은 지역난방공사의 담당 직원을 징계하는 한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이미 지급한 성과급을 회수하는 등의 조치를 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2021년 1월 기재부에 최근 5년 치 경영평가 관련 자료를 제출을 요구했으나 기재부가 제출을 거부했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기재부는 평가 실무를 수행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도 보유 자료를 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득점 집계표 등의 자료가 ‘비공식 참고 자료’일 뿐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기재부는 6개월 뒤 감사원이 업무용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봉인 조치한 뒤에야 자료를 제출했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08.24 인요한 “官이 아닌 民을 앞세운… 박정희는 위대한 지도자”
인요한, 與의원 공부모임 강연
인요한(64·존 린턴) 연세대 의대 교수가 23일 “박정희는 위대한 지도자였고 대한민국은 박 대통령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고 했다. 전남 순천 태생으로 2012년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된 인 교수의 가문은 구한말 이후 4대째 한국에서 선교와 의료·교육 활동을 해오고 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친윤계 중심의 공부모임 ‘국민공감’에서 인요한(왼쪽) 연세대 의대 교수가 무릎을 꿇고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이종성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의 공부 모임 ‘국민 공감’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강연을 하며 “제가 전라도에서 크면서 경상도와 다르다고 교육받고 자랐다”며 “지나고 보니 박정희는 위대한 지도자였고, 그분은 5000년 한반도 역사에서 관(官)이 아닌 민(民)을 앞세웠다”고 했다. 인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끈 ‘한강의 기적’을 통해 조선·철강 등 산업을 발전시켰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열심히 일하며 피와 땀을 바쳐 국가를 발전시켰다”고 했다.
인 교수는 20대 시절 광주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기자회견에서 시민군의 통역을 맡아 ‘푸른 눈의 목격자’로도 불린다. 이후 군사정권에서 ‘사상이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추방당할 뻔하기도 했다. 인 교수는 통화에서 “순천에서 자랄 때 김대중은 신이었고 주변에서 박정희는 다들 엄청 싫어했다. 인권 탄압과 유신 등 박정희 대통령도 잘못한 게 많다”면서도 “지금 보면 철이 안 든 어렸을 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막연히 받아들인 거고, 링컨은 (노예 해방 과정에서) 헌법 위반 논란이 없는 줄 아느냐”고 했다. 인 교수는 작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43주기 추도식에서 “미국에선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링컨을 내세우지만, 저는 뼛속 깊이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 민족에게는 더 훌륭한 분이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인 교수는 “대한민국이 너무 빨리 발전해서 요즘 젊은 세대가 잘 모르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제일 큰 죄가 뭔지 아느냐”며 “경제 발전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 하도 고기를 많이 먹게 돼 요새 동맥경화로 많이 죽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인 교수는 또 이날 강연에서 “한국(인)이 타협을 잘 못 하고 단합을 잘하지 못하는데 좀 더 발전하려면 이런 점을 고쳤으면 한다”며 “한국말로 타협은 ‘내가 손해 보는 것’인데 미국에서는 ‘내가 손해 보고 이기는 것’이다.
(한국이) 그 문화를 좀 고쳐야 하고 여러분(국회)도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 교수는 “(한국은)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고 단합을 잘하지 못한다”며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배타적이고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도 고쳐야 한다. 비행기가 안 뜬다고 데모하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고, 한국은 미워하는 사람을 제쳐버린다”고 했다. 인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데 이건 추방돼야 할 나쁜 생각”이라고도 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있는 서울 서대문갑 지역구에 인 교수를 인재 영입 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인 교수는 이날 “(어제 기자가) 전화가 와서 ‘당신 국민의힘 출마하냐’고 해서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했다. 학생 가르치고 있으니 끊으라고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
08-24 엉터리 공공기관 경영평가로 거듭 확인된 文정부 타락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하는 공공기관은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운영된다. 투명한 책임 경영과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은 기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기재부의 경영평가는 엉터리였으며, 이와 관련된 감사원 감사는 지연돼 ‘봐주기 의혹’까지 제기됐다. 공공기관-기재부-감사원이 결탁한 문 정부 타락상을 보여준다.
교수·변호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경영평가단은 대상 기관으로부터 연구 용역 등으로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23일 공개된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0년 위촉된 평가위원 323명 중 절반 가까운 156명(48.3%)이 이런 규정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규정 위반 시 5년 내 위촉이 제한되지만, 기재부는 기준을 완화해 문제의 평가위원을 다시 위촉했다. 2019년에는 특정 항목에서 공공기관 4곳의 점수를 잘못 매겼다. 정정하면 종합 등급이 바뀌게 되자 다른 항목 점수를 임의로 깎는 조작까지 했다. 2018년에는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인건비 인상률을 실제보다 낮게 보이도록 조작해 임직원들이 성과급 78억 원을 받았다. 감사원이 2021년 이에 대한 감사에 나섰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유병호 사무총장이 취임하면서 해당 감사팀원 5명을 직위해제하고 재감사에 나서야 했다.
이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공공기관의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남는다. 사법적 행정적 책임을 추상같이 물어야 한다. 봐주기 감사는 더욱 죄질이 나쁘다.
문화일보 사설
08.25 더 드러난 라임·옵티머스 위법 행위, 수사 않고 봐준 文 정권

▲옵티머스 금융피해, 금융당국-금융사 책임'촉구 기자회견/뉴시스
금융감독원이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3개 자산 운용사를 재검사한 결과 수천억원 규모의 펀드 자금 횡령 등 추가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라임·옵티머스는 각각 1조원대, 디스커버리는 25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으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대형 경제 범죄다. 모두 문재인 정부 때 벌어졌는데 당시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이들 의혹은 거의 묵살됐다.
라임은 투자자 수천명에게 1조원 넘는 돈을 돌려주지 않고 환매 중단을 했다. 그러면서 라임 펀드가 투자한 5개 회사 대표와 임원들은 허위 매매계약서 작성 등의 방식으로 회삿돈을 빼돌리고 2000억원 규모를 횡령했다.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최근 민주당 기동민, 이수진 의원 등이 라임 핵심 인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옵티머스 펀드에서도 수십억원 횡령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다. 한 공공기관 기금운용본부장은 전체 기금의 37%에 해당하는 1000억원을 옵티머스에 투자하고 1000만원을 받았고 그의 자녀도 관계사로부터 급여를 받았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문 정부의 펀드 수사가 부실했다는 반증이다. 문 정부 검찰은 옵티머스와 관련해 청와대, 민주당 등 정·관계 인사 20여 명의 실명이 기록된 문건을 확보했었다. 그런데 각종 로비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다. 전 검찰총장이 옵티머스 사업을 위해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에게 청탁했다는 의혹, 전 민주당 대표가 옵티머스 관계사로부터 선거 지원을 받은 것 등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문 정부 실세였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이 운용한 디스커버리 펀드의 경우, 25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낳고도 경찰이 3년 만에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 전 실장 동생은 지난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펀드 돌려 막기, 임직원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부정 행위가 드러난 만큼 철저한 재수사가 불가피하다. 펀드 사기에 대한 재수사는 물론이고 대형 경제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당시의 수사 라인도 수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25 3대 펀드 不法 추가 확인… 文정권 비호 의혹 전모 밝혀야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사건은 문재인 정권 때 발생했고, 권력층 비호 의혹도 제기됐었다. 환매 중단 사태로 여권 연루설이 나오자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을 폐지했고, 검찰은 정관계 인사가 다수 적시된 내부 문건을 확보하고도 무혐의 처리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금융감독원이 검사한 결과, 기존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라임 펀드는 2010년 10월 환매 중단 선언 한 달여 전에 김상희 의원에게 2억 원, 농협중앙회에 200억 원 등을 환매했다고 한다. 투자 손실로 돌려줄 돈이 없어 다른 펀드 자금 125억 원과 고유자금 4억5000만 원이 동원됐다. 김 의원 등은 정상적 절차에 손해를 보고 환매했다지만 특혜 소지가 짙다. 라임이 투자했던 5개 회사가 2000억 원 규모의 횡령을 한 혐의도 적발됐다. 금감원은 “정상적이지 않는 곳으로 흘러들어 간 것 같다”며 검찰에 통보했다. 실제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당시 수사를 막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였고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이 김 회장에게 금감원 내부 문건을 제공해 37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기동민·이수진 의원과 김영춘 전 의원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추가 연루자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옵티머스펀드의 경우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등 20여 명의 정·관계 인사가 등장했지만, 검찰은 대부분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데 이번 검사에서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1060억 원을 투자하는 대가로 1000만 원을 받은 사실 등이 새롭게 드러났다. 기존 수사가 부실했다는 방증이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 장하원 대표가 운용한 디스커버리펀드의 경우, 상황이 어려워지자 다른 펀드 자금으로 돌려막기 하면서 거짓 투자 제안서를 동원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장 대표에 대해 3년 만에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지난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펀드 사기 행각을 거드는 배후·비호 세력이 있으며, 정권 차원의 조직적 봐주기도 의심되는 정황들이다. 횡령 자금 사용처를 추적해 전모를 밝혀내고 비호 세력은 물론 부실·은폐 수사 관련자도 전원 수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8.26 지금 한국에 절실한 興亡의 감각
한국 정치인, 역사의 패잔병·세계의 낙오병 길 걷겠는가
그렇다면 당신 앞 거울 속 얼굴에 침을 뱉어라

▲2022년 8월 13일 경남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한산대첩이 재현되고 있다. 한산대첩 재현은 세계 4대 해전이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학익진(鶴翼陣) 전법을 사용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로 남해 제해권을 지켜 왜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김동환 기자
대국(大國)이란 어떤 나라일까. 이번 기회를 놓쳐도 다음 기회를 기다릴 여유가 있는 나라다. 그들에겐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있다. 100년·200년·1000년 세계를 쥐락펴락 했던 로마·영국·미국 역사에도 주기적(週期的)으로 위기가 찾아왔다. 개혁 적기(適期)를 놓쳐 위기가 깊어졌던 시대도 있었다. 그렇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10년 20년 후 나라를 고쳐 세워 국가 수명을 연장하고 번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소국(小國)은 다르다. 항상 이번 위기가 결정적 위기라고 각오하고, 이번 기회가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는 강하지만 작은 나라다. 기회 한 번, 위기 한 번이 나라 운명을 결판낸다. 1970년대 초 두 나라 총리 골다 메이어와 리콴유(李光耀)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메이어가 ‘우리는 잠시 한눈 팔면 동(東)지중해로 가라앉는다’라고 하자 리콴유는 ‘우리는 남(南)중국해로 침몰하지요’라고 받았다.
대국은 자기가 원하는 장소·원하는 시간을 골라 싸울 수 있는 나라다. 작은 나라는 상대가 도발한 장소·도발한 시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침략에 대비해야 할 장소는 많고 대비해야 할 시간은 짧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후 아랍 국가와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상승(常勝)의 군대였다. 그러던 이스라엘이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의 기습 일격(一擊)으로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방심 탓이었다. 작은 나라에게 자만심(自慢心)은 독약과 같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한 치 차이다.
한국은 긴 역사에서 싸울 시간과 장소를 선택한 적이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도 마찬가지였다. 시간과 장소의 선택권이 적(敵)에게 있는 전쟁은 불리한 전쟁이다. 영국과 미국은 최성기(最盛期)에 상대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전쟁을 벌인 적이 몇 번 되지 않는다. 영국은 나폴레옹전쟁, 1·2차 세계대전 정도다. 최강대국 미국도 원하지 않던 장소와 시간에 싸운 베트남전쟁에선 고전(苦戰)을 면치 못 했다. 본토(本土)에 총성(銃聲)이 울린 것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나치의 런던 공습(空襲)밖에 없다.
일본의 식민지로 굴러 떨어진 조선 500년 역사에서 나라를 바로 세울 중흥(中興)의 기회가 몇 번 있었을까. 현군(賢君)이었다는 영·정조 때가 기회였을까. 영명(英明)한 군주였던 정조는 유럽 세력에 의한 서세동점(西勢東漸)시대의 새벽에 중국 옛 문체(文體)를 되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 후론 기회다운 기회도 없이 미끄러져갔다. 독립 기회가 거의 사라져버린 시대에 ‘개화당(開化黨)’과 ‘독립협회’가 탄생했다.
대국과 소국 사이에 걸린 한국에게 절실한 건 ‘역사의 흥망(興亡)에 대한 감각’이다. 대국들이 한 번 놓쳤던 기회를 두 번째, 세 번째에는 결코 놓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사회에 흥망의 감각이 쇠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은 흥망 감각을 1000년 제국 로마 역사를 통해 얻었다. 영국 역사가 기번은 유럽이 임박한 프랑스 혁명으로 요동치고 식민지 미국의 독립전쟁 발자국 소리가 귓전에 울리던 때 20년 걸쳐 ‘로마제국 쇠망사’를 썼다. 몇 백 부 인쇄된 책의 절반은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식민지 미국 지도자들이 구입했다. 독일 역사가 몸젠은 독일 통일을 앞두고 유럽이 들끓던 1850년대 장장 50년 세월을 ‘로마사’ 집필에 쏟아부었다.
국가가 혼란과 위기에 휩싸인 시대에 이들은 왜 로마사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흥망 감각 없이는 위기를 위기로, 기회를 기회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기의식과 흥망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지자 미국과 영국은 그 후 여러 차례 기회를 놓치고 위기를 키웠다. 최강대국 미국 발밑에는 지금 놓친 기회와 바로 보지 못한 위기의 퇴적물(堆積物)이 쌓이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과 시진핑(習近平) 간 흥망 감각의 격차가 ‘뻗어가는 중국’과 ‘벽(壁)에 갇힌 중국’의 차이를 만들었다.
한국은 오랜 소국의 옷을 벗고 새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혼란을 키우는 세력’이 ‘혼란을 억제하는 세력’을 누르면 모든 것이 허사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이자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입구이기도 하다. 흥기(興起)의 기운과 몰락(沒落)의 증거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기회를 걷어차고 위기를 불러들이면 역사의 패잔병(敗殘兵)·세계의 낙오병(落伍兵)이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 그래도 괜찮다면 먼저 당신 앞 거울 속 얼굴에 침을 뱉어라.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
08-26 대한민국에 공항이 24개나 필요한가

인구소멸 시대, 지방공항 11곳 이미 적자
정치권 예타면제 남발로 ‘혈세공항’ 우려
“또 고추나 말리겠죠.”
정부가 부산 가덕도신공항 기본계획과 대구경북(TK)통합신공항 사전타당성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인 25일 한 지방공항 임원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보안지역인 공항서 고추 말릴 일은 없지만, 이용도가 워낙 낮으니 활주로를 고추 말리는 용도로 쓴다는 우스갯소리다. 실제 전남 무안공항의 활주로 이용률은 평균 0.1%. 순손실이 지난해 200억 원 등 최근 10년간 1300억 원을 넘는다.
전국에 공항이 15곳이지만, 인천 김포 김해 제주공항을 제외한 11곳은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공항이 가덕도공항, TK신공항, 새만금공항, 서산공항, 백령공항, 울릉공항, 흑산공항 등 8곳이다. 여기에 경기도와 포천시도 경기남부국제공항(수원)과 경기북부공항(포천)을 만들겠다고 나선다. 기존 대구공항이 TK신공항으로 이전하는 걸 감안해도 신공항 9곳이 추진되거나 논의 중이다. 모두 건설하면 공항이 24개 된다.
신공항이 모두 필요한 것일까. 공항 개발이 타당한지 따져보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가 있는데 예타에서 탈락해도 당정이 끼워 넣는다. 충남 서산공항이 올해 5월 예타에서 경제성 부족으로 탈락했지만, 23일 당정 협의를 거치며 부활했다. 서산공항은 인천공항이나 청주공항과도 멀지 않아 제 역할을 하겠느냐는 걱정이 벌써 나온다.
특별법으로 예타를 면제하는 경우도 많다. TK신공항은 지역 숙원 사업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광주 군공항 이전과 TK신공항 추진을 원샷으로 처리하는 법을 검토하겠다”고 하며 급물살을 탔다. 광주 군공항 이전은 광주시가 10년간 추진했던 숙원 사업. 올해 4월 여야가 모처럼 손잡고 TK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여야 빅딜’로 20조 원이 넘는 초거대 국책사업을 결정했다.
잼버리 사태에도 발주돼 여전히 추진 중인 새만금공항도 2019년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예타가 면제됐다. 차로 10분 거리인 군산공항이 서울과 제주 운항을 목표로 했다가 서울 운항을 중단한 상황에서 새만금공항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사업비 15조4000억 원이 투입되는 가덕도 공항도 특별법으로 추진돼 이쯤 되면 특별법은 ‘예타 면제법’으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특히 대구와 부산에 ‘메가 공항’이 생기는데, 여객이든 화물이든 수요 분산으로 상충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본도 과거 정치권 주도로 공항이 건설돼 지방공항이 100곳에 육박한다. 하지만 대부분 적자일 정도로 애물단지가 됐고 국가 부채 증가의 원인이 됐다. 우리도 나랏빚이 여전히 1000조 원을 넘는다. 이미 경북 예천공항은 승객이 없어 문 닫았고, 울진공항은 비행훈련원으로 용도를 바꿨다.
공항 유무는 지역 위상을 드러내는 징표여서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공약이 쏟아진다. 공항이 생겼다고 없던 수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항공사가 무조건 취항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단 유치하면 나랏돈으로 지어주니, 지자체도 정치인도 공항에 혈안이다. 한번 지으면 돌이키기도 힘들고 유지 관리 비용도 꽤 되는 게 공항이다. 공항 연결성을 강화해 네트워크 효과를 높이고 국제 환승도 유치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 97%가 공항 반경 100km 안에 살고, 전국이 KTX 등으로 반나절 생활권이 됐다. 인구 소멸 시대에 24개 공항이 모두 필요한 것인지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김유영 산업2부장 abc@donga.com
08-28 라임 25억 민주당 추가 유입 정황과 더 짙어진 비호 의혹
문재인 정권의 조직적 비호 의혹을 받아온 라임 펀드의 자금 수십억 원이 더불어민주당 관련 인사들에게 흘러간 정황이 추가로 포착됐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4일 검사 결과 발표에서 “정상적이지 않는 곳”으로 흘러갔다고 밝힌 투자 자금의 사용처 일부가 드러난 것이다.
2018년 라임으로부터 3500억 원을 투자받은 부동산 시행사 메트로폴리탄 회장 김영홍 씨는 필리핀 리조트 인수 명목으로 300억 원을 유용했는데, 이중 19억6000만 원을 민노총 출신 사업가 장모 씨에게 건넸다. 장 씨는 2021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 산하 금융혁신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22년에는 이 대표 대선 캠프 외곽조직인 ‘기본경제특별위원회’ 집행위원을 맡아 출범식에서 발족 취지문을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라임 사태와 관련 이 대표 측 인사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씨는 제21대 총선 당시 강원도 민주당 의원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전모 씨에게 5억3000만 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김 씨는 2020년 초 라임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2019년 10월 해외로 도피해 잠적 중이다.
라임 사태와 관련 민주당의 기동민·이수진(비례) 의원, 김영춘 전 의원 등이 재판을 받고 있지만, 비호 세력의 몸통으로 보긴 어렵다. 당시 문 정권은 라임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전담 기관인 금융증권합동수사단 폐지를 강행했다. 의혹 전모를 규명할 전면 재수사 당위성이 더 커졌다.
문화일보 사설
08-28 3대 펀드 실상과 文정부 3인 책임 문제

김성천 중앙대 교수·법학
지난 2019년 10월 라임자산운용은 대규모 환매 중단 선언을 했다. 당시 라임은 코스닥 기업들의 전환사채(CB)를 편법 거래해 펀드 돌려막기를 하는 등 부실 운영을 하다가 막대한 손실을 발생시켰다. 피해 규모는 1조7000억 원에 이르렀다. 더구나 피해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자로, 평생 모은 돈을 투자했다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대부분의 라임 펀드를 판매한 대신증권 반포지점장은 거짓 설명 자료까지 동원해 사기를 벌였다.
라임은 부실 의혹이 보도되고 사태가 심각해져 환매 중단 선언을 하기 직전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상희 의원 등 여권 유력 인사들에게 연락해 미리 환매를 해줬다. 또한, 라임의 전주(錢主)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평소에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하면서 인맥을 과시했다고 한다. 실제로 청와대에 근무 중이던 김모 행정관이 김 회장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고 금융감독원 검사 보고서를 넘겨주기도 했다.
라임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이에 대한 금감원의 태도는 매우 미온적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나서도 4개월 보름이 지나서야 결과를 발표했다. 펀드 판매에 연루된 증권사나 은행에 대해 제재도 하지 않고 미적댔다. 또한, 법원이 대신증권 반포지점장에 대해 사기 혐의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한 마당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비율을 전액이 아닌 80%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금감원의 이 분쟁 조정에 관여한 인물이 당시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이던 김은경이다.
청와대와 금감원 등 권력기관의 라임 봐주기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가득한 상황에서 믿을 곳은 검찰뿐이었다. 그런데 2020년 1월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라임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해 버렸다. 이어 그해 10월에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라임 사건 수사권을 박탈했다. 펀드 사기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3대 사모펀드 사건은 문재인 정권 때 발생했고, 당시 여권에서 조직적으로 덮으려고 한 건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이 많다. 금감원 검사 보고서를 김봉현 회장에게 넘겨준 김모 행정관에 대해 2020년에 감찰을 하고도 청와대는 아무런 조치도 않았다. 민주당의 기동민·이수진(비례)·김영춘 의원이 김봉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확인돼 올해 2월 재판에 넘겨졌다. 옵티머스의 주식을 보유하고 사내이사로 근무했던 윤석호는 민주당 당무감사원 활동을 했으며, 그의 아내는 금감원을 관장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 장하원은 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장하성의 동생이다.
문 정부에서 펀드 사기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사람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이다. 어느 모로 보나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검찰 출신 이복현 금감원장이 3대 사모펀드 사건에 대해서 다시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추가로 밝혀진 위법행위와 관련해서 부활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제대로 수사를 해서 모처럼 속이 시원해졌으면 한다. 수사를 방해한 추미애 전 장관에 대해서도 엄정히 수사하는 게 당연하다.
문화일보
08.28 유인촌 “예술을 정치 도구 삼는 건 공산국가나 하는 일… 새 틀 짤 것”
[김윤덕이 만난 사람] 대통령 문화체육특보 유인촌

▲유인촌 대통령 문화체육특보가 8월 15일 오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햄릿보단 돈키호테에 가까운 유인촌은 "특정 이념에 치우친 문화예술계의 쇄신과 글로벌 컨텐츠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태경기자
대통령 문화특보 임명에 ‘올드맨의 귀환’이란 조롱이 나오자 유인촌은 코웃음을 쳤다. “올드맨? 아직 꿈도 많고 에너지도 넘치는데?” 장관 퇴임 후 굴착기 면허부터 땄다. 소년원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쳤다. 작년 가을엔 자전거로 유럽 2000km를 종주했다. 돌아오자마자 대작 ‘파우스트’에 돌입했다. 가슴에 돈키호테를 품고 산다는 일흔두 살의 유인촌은 “낡은 이념에 치우친 문화 산업 전반에 쇄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블랙리스트 원조?
-진보 진영은 이동관 방통위원장과 묶어 ‘언론·문화계 탄압 기술자’라고 한다.
“그분들은 변한 게 없다. 문체부 장관에 취임한 직후 동아마라톤 행사에 갔더니 한 진보 언론이 내가 점령군처럼 서 있다고 썼더라. 난 장관이기 전에 모든 마라톤 대회를 뛰었던 애호가로 개막식에 나간 것뿐인데도. 또, 장관 마치고 이해랑 탄신 100주년 연극 ‘햄릿’으로 무대에 복귀했더니 ‘이 뒤틀리고 뒤틀어진 세상’이란 대사를 트집 잡아 자기가 뒤틀린 세상 만들어 놓고 저런 대사를 한다고 비아냥대더라(웃음). 어떻게 해야 이분들과 대화가 될 수 있을지 참 암담하다.”
-장관 시절 진보 예술인들을 탄압하셨나?
“내가 그들을 탄압했다면 지금까지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난 척박한 예술 환경을 개선하고 지역 문화를 살리려고 장관이 된 사람이다.”
-취임 후 기관장들을 쫓아냈다고 해서 지탄을 받았다.
“서울시장이 이명박에서 오세훈으로 바뀌었을 때 내가 서울문화재단 대표였다. 같은 보수당이라도 새로운 시장은 새로운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의를 표했다. 장관이 됐을 때도 그런 맥락에서 가볍게 말한 거다. 새 정부와 생각이 다른 기관장들은 더 있으라고 해도 안 있을 거라고. 근데 다음 날 신문에 ‘지난 정부 기관장 물러가라’는 제목으로 나오더라.”
-블랙리스트의 시작이 유인촌 장관이라고 한다.
“증거는 없다면서 그냥 우긴다(웃음). 그렇게 믿고 싶겠지. 누가 조사 좀 해주면 좋겠다. 내가 장관할 때 지원 배제 명단이나 특혜 문건은 없었다. 나 역시 어떤 특혜도 받지 않았다. 청문회 때 민주당에서 1973년 문화예술진흥원이 생긴 이래 2008년까지 유인촌을 지원한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퇴임 후 연극계로 돌아왔을 때 나와 일했던 스태프들이 지원을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 그게 블랙리스트 아닌가.”
-작가 임옥상은 화이트리스트인가.
“200여 점이면 전국 공공 미술 분야를 싹쓸이한 수준이다. 과연 실력만으로 수주를 따냈을까. 그런데도 자기들은 늘 정의롭단다. 나는 ‘상식적인 진보 우파’라 자처했는데 근래는 진보란 말을 떼버렸다. 진보라는 말 자체가 아주 더러워졌다.”
-진보 우파?
“예술가란 과거를 되새기고 현실의 밑바닥까지 성찰하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나는 왕 역할을 많이 했지만 ‘임금도 땀 흘리지 않으면 밥 먹지 마라’고 했던 조광조 같은 개혁적 인물에게도 끌렸다. 그런데 요새는 진보란 말을 꺼내기도 싫다. ‘파우스트’에 악마 메피스토의 대사가 있다. ‘인간 세상에 내려가 보니 나보다 더 나쁜 놈들이 많아서 졸지에 실업자가 될 판’이라고. 요즘이 딱 그런 세상 아닌가? 죄 지은 사람이 더 당당하고, 억울하다며 악다구니한다.”
◇문화·예술도 경쟁해 살아남아야
-대통령은 왜 유인촌을 문화특보로 임명했을까.
“새 틀을 짜라는 것 아닐까? 특보를 맡은 이상 난 끊임없이 묻고 두드리고 저지를 것이다.”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나.
“내가 장관 했을 때가 12년 전이다. 그 사이 문화, 미디어 환경이 급변했는데 우리는 어떤가. 할리우드 작가와 배우들은 챗GPT와의 저작권 투쟁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넷플릭스 하나 컨트롤 못 한다. 지상파 3사를 봐라. 언젠가부터 정권의 나팔수가 되더니 요즘은 노영(勞營) 방송이라고 한다. 머리띠 두르고 정치 싸움만 하니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겠나. 지상파 3사가 투자해 만들었다는 플랫폼 웨이브도 망했다. 그 사이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본 갖고 들어와 불공정 계약은 물론 인건비만 엄청 올려놨다. 문화 정책도 그저 살려달라는 이들에게 지원금 나눠주는 수준이다.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장르의 칸막이를 없애고 융·복합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원 정책을 바꾸겠다는 건가.
“문화·예술도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쥐꼬리만한 예산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경쟁이 될까? 생계 보조형 지원은 그만해야 한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확실하게 밀어줘야 한다.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는 영화들까지 왜 정부가 돈을 줘야 하나.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
-공정성 논란은 없을까.
“대신 도전할 기회를 많이 주면 된다. 간접 지원, 사후 지원, 인큐베이팅 지원으로 다양하게. 심사도 당사자들이 책임을 지는 책임심의관제로 가야 한다.”
-좌파 예술인들 몰아내려고 유인촌을 특보로 앉혔다는 말도 있다.
“하하! 호사가들 얘기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문화계에서 이념 논쟁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속칭 좌파 예술인들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건 공산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다. 굳이 정치적 표현을 하고 싶다면 말릴 수 없다. 부모 말도 안 듣고 이 바닥에 나온 사람들이 누구 말을 듣겠나. 다만 정부 예산을 지원하라고 요구해선 안 된다.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
◇장관 퇴임 후 굴착기 면허 따
-저작권법 정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한글박물관 건립 등 장관 재임 시 한 일이 적지 않더라.
“장관 시절 날 무지하게 괴롭혔던 야당 의원이 ‘기관장 문제로 이미지가 나빠져서 그렇지 일은 정말 잘했다’고 하더라(웃음). 나는 늘 현장에 있었다. 지구 7바퀴 반을 돌았다고 할 정도로 주말이면 국도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회피 연아’, ‘찍지 마’ 동영상은 아직도 유튜브에 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김연아 선수를 내가 안으려는 것처럼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이다. 유포자들을 다 고소했다. 이를 생중계한 KBS 영상이 나와 거짓으로 드러났는데도 날 공격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 한마디 안 하더라.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다며. 어떻게든 망신과 모멸감을 주려는 게 이 나라 정치다. 후쿠시마 오염수 선동처럼 가짜뉴스가 여전히 판치는 현실에 화가 난다. ”
-장관 끝난 뒤 굴착기, 지게차 면허를 땄다는 게 사실인가.
“내 꿈이 숲속에 작은 문화 공간을 직접 짓는 거다. 땅 파는 것부터 배우려고 파주 중장비 학원 가서 굴착기와 지게차 운전법을 배웠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실습을 해보고 싶었는데 초짜들은 안 써준다더라(웃음).”
-비행 청소년들과 7년째 자전거로 국토 종단을 하신다고.
“장관을 3년이나 했으면 여생은 봉사를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의왕소년원에 가서 연극을 가르치다가 7년 전부터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종단을 한다. 첫해는 자전거 집어 던지며 성질을 부리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더라. 재범률도 뚝 떨어졌다.”
-71세에 자전거로 유럽을 종주해 화제다.
“유로벨로라고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자전거 루트 17개가 있다. 방송사 PD였던 친구와 카메라를 장착하고 스위스에서 독일,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15번 길을 달렸다. 막판엔 체력이 달려 욕이 다 나오더라(웃음). 앞으로 뭔들 못 하겠나 싶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 자전거 인구가 1300만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자전거 길은 이명박 대통령 때 만든 4대강 외엔 없다. 유럽의 자전거 길을 조사해 보고 싶었다. 이정표는 물론 신호등도 따로 돼 있고, 자전거텔(숙박), 도시로 연결되는 길도 잘돼 있더라. TV나 유튜브를 통해 이 다큐를 곧 공개할 생각이다.”

▲지난 4월 전석 매진을 기록한 연극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 역의 박해수와 파우스트 박사 역의 유인촌이 열연하는 모습.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지난 봄 LG아트센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한 연극 ‘파우스트’에서 악마 역 박해수와 열연을 펼쳤다.
“스타가 된 배우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모든 일정을 접고 연극에만 올인하더라. 연습 1시간 전에 와 있고 맨 마지막에 연습장을 떠났다. 보석을 발견했다.”
-이번엔 파우스트지만 과거엔 메피스토(악마)를 주로 연기했다.
“메피스토 연기는 즐겁다. 악에는 확실히 쾌락이 있다(웃음). 인간 파우스트가 힘들었다.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 끝없이 욕망하는 인간. 겉으로 드러나는 희로애락의 표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인물이라 괴로웠다. 내가 메피스토를 연기할 때 윤주상이 파우스트를 연기했는데, 그때 왜 윤주상이 그렇게 고통스러웠했는지 알 것 같더라(웃음). 다이아몬드를 캐는 심정으로 연기했다.”
-인생작은 6번 연기한 햄릿일까?
“홀스또메르. 폐기 처분된 경주마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이 연극을 본 한 남자가 내게 편지를 보냈다. IMF 때 사업이 망해 자살하려고 했는데 당신 연극을 보고 나서 다시 살기로 했다고. 꼭 성공해서 당신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연기와 정치, 뭐가 더 어려운가?
“내겐 연기가 훨씬 어렵다. 100점을 맞는 게 불가능하니까. 물론 정치도 어렵지만 거긴 성과물이 있지 않나. 그런데 연기는 다르다. 95점까진 할 수 있는데 나머지 5점을 채우려고 발버둥 치다 끝내 못 하고 떠나는 게 연기다.”
-고생은 안 하고 살았을 것 같다.
“내가 피란 중에 태어났다. 한겨울 어머니가 연탄난로에 물을 팔팔 끓여서 찬밥을 끓이던 장면이 기억난다. 한 공기만 넣어도 양이 불어나서 온 식구가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김치 한 가지도 볶음김치, 조림김치로 바꿔가며 도시락을 싸주셨다. 내 창의력의 원천은 어머니 도시락이다(웃음).”
-나이 듦이 좋은가?
“그럴 리가. 한 20년만 뒤로 갔으면 좋겠다. 아직 별도 따고 달도 따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돈키호테!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유인촌
1951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1974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전원일기’ ‘야망의 세월’ ‘조선왕조오백년’ 등 다수 드라마에 출연했고, KBS 역사스페셜도 진행했다. ‘햄릿’ ‘파우스트’ ‘맥베스’ ‘리어왕’ ‘문제적 인간 연산’ 등 연극에 가장 열정을 쏟았다. 이명박 정부 때 문체부 장관을 지냈다.
조선일보
08.29 경찰은 치안 전념, 대공수사권은 국정원 존치로 가야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국정원 “대공수사 조정권 축소” 규정 입법예고
전문성·여력 부족한 경찰은 민생치안 집중해야
국가정보원이 검찰과 경찰의 공안사건 수사에 직접 관여하는 근거로 삼았던 안보(대공) 분야의 ‘수사조정권’을 축소하는 내용의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12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2024년부터 경찰에 넘기기로 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의 후속조치다. 10월 2일까지 예고한 개정안은 중요 정보사범, 즉 내란·반란·이적·군사기밀누설·암호부정사용·국가보안법위반 등 공안사범의 신병처리(8조 1항)나 공소보류(9조 1항) 과정에서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현재의 조항을 “의견을 듣는다”로 수정한 게 핵심이다. 대공수사권을 이전하는 국정원법 개정에 맞게 하위 규정을 손질하고, 검찰이나 경찰 등과 협조관계를 보완하겠다는 게 국정원이 밝힌 수정의 이유다.
바꿔 말하면 국정원 도움 없이는 대공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뜻도 된다. 국정원이 규정을 손질하면서도 “정보사범을 신문할 때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8조2항)을 존치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은 홈페이지에 “대공수사 역량 강화”를 주요 업무라고 소개했다. 정보 수집 역량 강화를 비롯해 ▶협업체계 구축을 통한 관문(Hub) ▶북한의 진화하는 대남공작 대응 등이 그 세부 내용이다. 그러나 대공수사의 주도권을 경찰에 넘겨주면서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중에 책임소재를 따지기도 어렵다.
국정원이 아무리 뒷받침하더라도 경찰의 대공수사 능력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정보 수집과 풍부한 노하우, 예산,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발견’이 대공수사의 핵심인데 국정원의 조력만으로는 시행착오가 불 보듯 하다. 경찰 내부에서도 대공수사권 이전을 마냥 환영할 수 없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정원은 지난해부터 한길회, 민중자주통일전위, 전북민중행동 관계자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비용의 결과다. 공안범죄는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 수사권 이양에 따른 혼란이나 경찰의 경험을 축적할 시간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경찰의 본연 업무는 치안”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치안업무 중심으로 경찰 조직개편안을 마련키로 했다. 의무경찰제도를 부활시키려는 검토도 있었다. 민생치안만으로도 벅차다는 방증이다. 이번 기회에 경찰은 윤 대통령의 말대로 민생치안 업무에 집중해 국민 불안을 덜어주고, 대공수사권은 ‘프로 선수’인 국정원에 존치시키는 방향으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8.30 나랏빚 62조원 더 늘리는 내년 예산, 이게 무슨 ‘건전 재정’인가
윤석열 정부가 집권 후 두 번째 짜는 2024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657조원 규모로 올해보다 18조원 더 늘렸다. 정부는 예산 증가율(2.8%)이 문재인 정부 5년 평균치(8.7%)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들어 “지난 정부의 ‘재정 만능주의’를 배격하고, 건전 재정 기조로 확실히 전환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눈에 띈다.
재정 중독에 빠진 문재인 정부는 집권 5년간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2.3%에 불과한 상황에서 정부 지출을 10번의 추경을 포함해 연평균 10.8%나 늘렸다. 그 결과 한 해 예산 규모가 집권 초 400조원에서 말기엔 600조원대로 50% 이상 불어났다. 걷히는 세금이 모자라니 국가 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윤 정부는 이런 왜곡된 예산 구조를 넘겨받았지만 근본 수술을 미뤘다. 집권 후 첫 예산을 5.2%나 늘려 편성했다. 당시에도 다른 기준을 제시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강조했었다.
그동안 윤 정부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적자 국채 발행은 최대한 억제하고, 선거 매표용 돈 풀기 정책은 안 하겠다고 누누이 밝혀 왔다. 내년 예산안은 말과 행동의 괴리를 보여준다. 정부는 올해 경기 침체로 내년 세수가 33조원이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수입보다 지출이 92조원이나 많은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적자 국채를 80조원이나 발행할 예정이다. 국가부채가 또 늘어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병사 월급을 월 135만원에서 165만원으로, 0세 아동 부모급여를 월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노인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33만4000원으로 각각 올리고, 노인 알바 일자리를 사상 최대인 103만개로 늘린다는 대목에선 선거용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한국의 안보 상황이 의무병 기준으로 세계 최고액의 월급을 지급할 처지인가. 가덕도 신공항(5363억원), 새만금공항(66억원) 등 선거용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대한 예산 배정도 적지 않다. 대규모 적자 예산 편성 결과 내년에도 국가채무가 62조원 더 늘어나 120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심각한 일이다.
윤 정부의 시대적 사명 중 하나는 문 정부가 망친 국가 재정 건전성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다. 윤 정부는 120대 국정과제 중 ‘재정 건전화’를 다섯 번째 중요 과제로 올려놨지만, 집권 3년 차 예산에서도 뚜렷한 개선을 찾아보기 어렵다. 2024년 예산안을 보면 한번 불어난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한국 경제로선 재정 건전성은 최후 방어선이나 다름없다. 남은 해법은 하나뿐이다. 선진국처럼 국가 부채·재정 적자를 일정 수준 이하로 강제 관리하는 ‘재정 준칙’을 법제화해 정부의 의무로 만드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30 4대강 보 수질 미스터리 풀려간다
보 막으면 상류에, 보 열면 하류에 녹조
서동일 충남대 교수 “원인은 외부 유입 인(燐)… 보는 오염 분포 바꿀 뿐”
금강·영산강·낙동강 같은 패턴… 보 수질 소모적 논란 피해야

▲지난 16일 전남 나주시 영산강 승촌보 지점에 녹조가 발생한 모습. 보를 닫으면 강의 상류, 보를 열면 하류에 녹조가 집중되는 패턴이 확인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번 칼럼에서 2019년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가 보(洑) 해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 ‘금강·영산강 3개 보 해체’의 결론을 냈던 사안을 다뤘다. 위원회는 영산강 하류 죽산보 경우 수문 개방 후 수질이 아주 나빠졌는데도, 보 해체 후엔 좋아질 것이라는 (위원들 스스로 ‘무식하다’고 했던) 가정 아래 보 해체 결론을 도출했다. 감사원이 회의 녹취록을 입수해 조작·왜곡을 밝혀낸 건 다행이다. 하지만 의문이 하나 남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금강·영산강 수문을 열었다. 그랬는데 죽산보 수질은 왜 그렇게 나빠졌을까 하는 점이다.
4대강 사업 반대 진영은 수문을 열어 유속이 빨라지면 녹조가 줄어든다고 주장해 왔다. 그 주장이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죽산보는 보 개방 전인 2013~16년 녹조의 원인인 남조류 갯수가 mL당 3000개였던 것이 수문 개방 1년이 지난 2018년 6~10월 2만1000개로 악화돼 있었다. 반면 상류 쪽 승천보는 1200개에서 190개로 개선됐다. 보를 개방하자 상류 수질은 개선, 하류 수질은 악화됐다.
궁금해하던 차에 지난 7일 한국물환경학회의 녹조 학술 포럼 발제를 위해 서울에 온 충남대 서동일 교수를 만났다. 그의 발표 자료 속에 의문을 해소할 열쇠가 담겨 있었다. 금강 역시 보를 개방한 다음 상류인 세종보는 녹조(엽록소인 클로로필-a 농도)가 개선됐고, 중류의 공주보는 변화가 없었고, 하류 백제보는 상당히 악화돼 있었다. 영산강과 같은 패턴이었다.
서 교수는 ‘리비히의 최소량 법칙(Liebig’s law of minimum)’이라는 생태학 원리를 갖고 설명했다. 리비히는 1800년대 독일 생화학자다. 그에 따르면 생물 증식은 필수 영양소 가운데 ‘가장 결핍된 단일 영양소’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의 결핍 영양소를 ‘제한 인자’라고 한다. 부(富)영양화를 일으키는 식물 플랑크톤 경우 탄소, 질소, 칼슘, 마그네슘, 인 등의 필수 영양소가 있다. 질소는 강물에 워낙 많고 다른 대부분도 공급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 하천에서 녹조 현상을 일으키는 독성 남조류엔 인(燐)이 제한 인자다. 다른 필수 성분이 아무리 많아도 인이 공급되는 만큼만 플랑크톤이 증식한다. 인 성분은 축산분뇨, 비료, 생활하수 등에서 나온다.
그런데 보를 닫아 놓으면 상류에선 물 흐름이 느려지는 만큼 인을 활용한 플랑크톤 증식이 활발해진다. 따라서 상류의 녹조 현상은 악화된다. 대신 상류에서 인을 많이 소모하느라 하류로 흘러가는 인의 양은 줄어든다. 그만큼 하류의 녹조는 줄어든다. 반대로 보를 열어 유속이 빨라지면 상류에서 인을 소모할 시간이 줄면서 녹조가 개선되고, 대신 하류로의 인 유입량이 증가해 하류 녹조가 악화된다. 예를 들어 금강 3개 보(세종·공주·백제보)를 모두 개방할 경우 상류 세종보의 여름철 남조류는 감소하지만 하류 백제보 오염은 2배까지 악화한다고 서 교수는 설명했다. 금강·영산강·낙동강은 최하류를 하구둑이 막고 있다. 하구둑까지 연다면 강에서 소모되지 못한 인은 바다에서 적조를 만들어낸다.
낙동강 경우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아주 이따금씩만 보를 개방했기 때문에 보 개방의 작용은 확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보 건설 전(前)과 후(後)를 비교한 연구가 있다. 인제대 박재현 교수 주도로 2019년 7월 작성된 ‘낙동강 보 평가 체계 및 적용 방안 연구’다. 보 해체를 염두에 둔 용역 연구였다. 박 교수는 4대강 사업 반대 ‘3총사 교수’ 중 한 명이다. 문 정부 시절 그가 내정자를 제치고 수자원공사 사장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환경단체들이 지지 성명·집회로 뒤를 밀었을 정도다. 박 교수 보고서를 보면 낙동강 상류 4개 보(상주·낙단·구미·칠곡보)는 보 건설 후 녹조 오염도(클로로필-a 농도)가 높아졌고 하류 4개 보(강정·달성·합천·함안보)는 낮아졌다. 역시 보가 있으면 ‘상류 악화, 하류 개선’, 보가 없으면 ‘상류 개선, 하류 악화’의 결과다.
물론 생태계는 복잡하다. 다른 많은 요인이 함께 얽혀 다양한 변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세 강 모두에서 의미심장한 패턴이 확인된다. 보의 유무(有無), 또는 개폐(開閉) 여부는 녹조 생성 자체를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다. 녹조가 상류에 집중될지, 하류에 집중될지의 배분에 작용한다. 강물에 결핍 영양소인 인 성분이 있기만 하면, 그것은 어디에선가 녹조를 만들어낸다. 결국 4대강 녹조를 해결하려면 농지에 살포되는 비료, 축산 퇴비와 도시 하수처리장 방류수의 인을 줄여야 한다. 외부 유입 오염을 줄이지 못한 상태에서 보를 열거나 해체한다고 녹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녹조와 보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소모적 논란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08-30 한국 ‘원전 연료 허브’ 추진할 때다

이미숙 논설위원
캠프데이비드 합의에 포함된
“러시아産 에너지 의존 탈피”
로사톰의 저농축 우라늄 겨냥
한미 원자력위원회 가동하고
3국 공동 연료공장 추진할 만
尹 이니셔티브 발휘하면 가능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핵동맹으로 승격시킨 워싱턴선언 발표 후 113일 만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캠프데이비드 원칙과 공동성명 등을 채택함으로써 한국 외교는 전인미답(前人未踏) 경지로 들어섰다. 워싱턴선언에 따라 핵협의그룹(NCG)이 가동되면서 핵 공동 운용 길이 열렸고, 캠프데이비드의 ‘3자 협의에 대한 공약’에 따라 북핵 위협 시 3국이 공동 대응 조치를 조율하게 돼 안보도 이중삼중으로 강화됐다.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및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 조율과 더불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감축 가속화”가 명시된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 원유·천연가스 수출 규제를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 일본도 러시아산 화석 연료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원전 연료, 즉 저농축 우라늄 수입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한국은 원전 연료의 33%, 미국은 23%를 러시아에서 구매한다.
한미일 정상이 공동성명에 러시아산 원전 연료 의존 탈피를 명시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독일과 폴란드, 발트해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전 연료 수입 제한, 신규 원전 투자 금지 등을 대러 제재에 포함시킬 것을 유럽연합(EU) 이사회에서 제기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세계 원전 연료 시장의 강자인 러시아 로사톰 등에 대한 의존을 과감히 줄여야 제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이 원전 연료 문제를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5월 21일 서울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에너지 공급망 확보를 위한 공동 협력”이 명시됐다. “이를 위해 원자력고위급위원회와 같은 수단을 활용하기로 약속한다”고도 했다. 지난 4월 26일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엔 “에너지 안보 위기 극복을 위해 원자력 에너지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는 부분과 함께 “보다 회복력 있는 원자력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우라늄 농축 협력을 거듭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이행된 것은 없다. 실제로 원자력고위급위원회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양국 당국자들은 정상 간 원전 협력 의기투합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식으로 손 놓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에서 ‘탈(脫)러시아’ 의지가 적시된 만큼 이번엔 달라야 한다. 대통령실이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와 워킹 그룹을 조직해 미·일과 원전 연료 러시아 의존 탈피 액션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최종현학술원 주최 콘퍼런스에서 “미국의 핵을 기반으로 한 자강(自强) 외교를 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1년 반이 골든 타임”이라고 했다. NCG를 통해 부지런히 핵무기 운용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인데, 원자력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행정부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다. 푸틴이 원전 연료를 언제 무기화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한시가 급하다.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은 강대국이 주도해온 원전 연료 시장에 뛰어들 기회를 열어줬다. 잘만 하면 러시아를 대체하는 아시아의 저농축 우라늄 생산 허브가 될 수 있다. 한국 원전 기술은 최고 수준임에도 연료를 전량 수입해 “아궁이는 잘 만드나 땔감은 못 만든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진정한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福島) 사태 이후 54개 원전 중 5개만 가동하는 데다 연료 수입도 미미해 우리만큼 절박성이 없다.
윤 대통령이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2015년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후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원자력고위급위원회를 소집해 원전 협력을 협의하고, 한미일 원전 연료 워킹 그룹도 만들어야 한다. 워싱턴선언에서 한국의 독자 핵 개발 중단 의지를 밝힌 만큼 우리가 우라늄 저농축을 주도한다고 해서 핵 개발 의도로 오해받을 일도 없다. 서둘러야 윤 대통령 임기 내 한미일 공동의 저농축 우라늄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
08-30 내년 ‘알뜰 예산’ 위협하는 3대 복병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657조 원 규모의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이 나왔다. ‘알뜰 재정, 살뜰 민생’이라고 이름 붙인 이번 예산의 기본 방향은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최대로 사회적 약자를 돕고 동시에 미래를 위한 투자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가의 본질적 기능인 국방·국격·국민정신건강 및 재난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정책들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재정건전성과 사회적 약자 보호 및 미래 전략산업 육성 투자를 강조했던 2023년 예산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 특별히 다른 점이라면 2023년 예산에서는 관리재정 적자 규모를 GDP 3% 이내로 묶는 단순하고도 엄격한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예산안에는 2025년부터 3%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점이다. 실물경제와 세수가 유난히 부진한 상황에서 2024년 관리재정 적자 규모를 GDP 3% 아내로 줄이기 힘들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내년 예산안은 먼저, 국세 수입을 357조 원으로 대폭 낮춰 잡았다. 2023년 예산의 국세수입보다는 약 34조 원, 8%나 낮춰 잡은 것이다. 다음으로, 총지출 증가율을 2.8%로 유난히 낮게 잡았다. 19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물가가 4%대로 상승하면 경직성 지출도 자연스럽게 그만큼 커질 것이므로 당연히 임의성 지출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대대적인 재정지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타당성·효과성이 없는 사업은 단호히 폐지·삭감하는 재정 정상화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유사·중복 같은 낭비적 지출은 물론, 부정수급 등 재정 누수 요인을 강력히 차단하는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재정 지원 받기가 훨씬 까다롭고 복잡해질 것이다. 방만하고 무절제하게 지출돼 온 연구·개발(R&D) 투자 지원은 성과연계형 투자로 전환하고 성과가 미흡하거나 부당한 보조금 지원 사업도 과감히 재정비하겠다고 벼른다.
이번 예산안에 대한 복병은 세 갈래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지출증가율을 더 높이자는 주장이다. 나오던 보조금이나 지원금이 깎이거나 끊기는 일이 발생하면 갈등과 불평불만이 크게 증폭될 것이므로 이를 예방하고 부진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재정지출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 이른바 ‘쪽지 예산’을 관철하려는 여당 의원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수가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지출을 크게 늘릴 수 없는 것은 정답이다.
둘째, 증세하자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세수 부진이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부동산세 인하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이 이런 주장에 크게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최근의 세수 부진은 경제침체 때문에 거의 모든 세목에서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올릴 수 있는 세목도 별로 없다.
셋째,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지출을 늘리고 세수 부족을 메우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국가채무가 GDP의 50%를 넘어선 상황에서 국채를 더 발행할 여력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국회가 이런 이유를 가지고 정부의 예산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확실한 정부 발목 잡기다.
문화일보
08.31 55년 전 세계은행 총재가 비웃었던 한국
제철소와 고속도로의 꿈 이어 방산 누적 수출액 곧 100조 돌파
남들은 ‘맨땅의 헤딩’이라지만 우주항공청도 성공시키자

▲방위사업청이 지난 6월 28일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보라매)의 마지막 시제기인 6호기가 경남 사천 제3훈련비행단에서 오후 3시 49분 이륙해 33분 동안 비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방위사업청
“13년을 검토했지요. 의사 결정이 미뤄지는 건 워낙 익숙한 일이라…. 그래도 조금 빨리 시작했더라면….”
얼마 전 만난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의 말이 귓가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말한 건 KF-21 사업. 우리 공군의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다. 2001년 3월, 정부는 처음으로 국산 전투기 개발을 천명했고 이듬해인 2002년 11월, 한국형 전투기(현 KF-21) 개발이 국방 계획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 13년간 논쟁을 벌였고, 전투기 개발 경험이 없었던 우리 전문가들은 사업 타당성 검토만 일곱 번 진행했다. 지금 그 모든 것이 대부분 기우였음을 확인하고 있다. 2500여 명의 엔지니어와 700여 개 산학연 기관들이 항공기 개발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KF-21 사업은 생산 유발 효과 24조원, 기술 파급 효과 49조원, 1·2차 협력업체 고용만 1만 명(5년간)이 넘는다.
T-50 고등훈련기 사업도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개발 초기 전문가들은 우리 기술 수준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제 T-50 계열 항공기는 K-방산의 핵심으로 미 해군의 고등 전술 입문기 및 공군 전술 훈련기 사업에 뛰어들 정도다. 이 사업은 총 500여 대, 50조원 규모로, 파급 효과가 340조원이다.
흔히 한국 산업의 기적을 얘기할 때 반도체, 휴대폰, 제철소, 조선소를 꼽지만 방위산업도 무시하면 안 된다. 6·25 전쟁 때 소총 한 자루 못 만들던 나라가 방산 누적 수출액 100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기적이란 이런 걸 두고 일컫는 말일 것이다.
잠시 55년 전쯤 얘기로 돌아가자. 박정희 대통령 시절 9년 3개월간 역대 최장 대통령 비서실장을 한 김정렴의 회고록 135페이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계은행 총재이던 유진 블랙씨는 IMF 연차총회 연설에서 ‘개발도상국에는 세 가지 신화(헛된 꿈)가 있다. 첫째는 고속도로 건설, 둘째는 종합제철 건설이고, 셋째는 국가원수의 기념비 건립이다’라고 말했다”
그 무렵 인도와 터키, 멕시코 등이 앞다퉈 제철소를 세우려다 실패하고 있었고, 이 와중에 한국도 제철소 짓겠다며 돈 꾸러 다니고 있었다. 세계적 경제 석학이기도 했던 유진 블랙의 전망을 무색하게 한 것은 ‘박정희-정주영’ ‘박정희-박태준’ 콤비가 주역으로 나선 ‘맨땅의 헤딩 기적’이었다. ‘맨땅의 헤딩’하면 개발시대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쯤으로 치부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매사를 맨땅의 헤딩 식으로 밀어붙이는 건 기자도 반대다. 하지만 역사에 길이 남는 일이란 대부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그나마 조기에 진화시켜준 mRNA 백신을 보라. 당시 세계적 의학자, 보건학자들의 어록에는 “코로나 백신 개발은 단기간에 불가능하다”는 장담들이 차고도 넘친다. 세상을 바꾼 것들에는 대부분 이런 과감하고도 신속한 도전이 숨어 있다.
저출산, 고령화를 물려줄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우고 떠나는 슬픈 운명을 안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최소한의 책무는 있을 것이다. 그 출발점은 55년 전처럼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 앞에 따르는 망설임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모두 잘 안다. 신속한 결정, 과감한 규제 철폐로 재무장한다면 ‘맨땅의 헤딩 기적 2.0′ 몇 개쯤 가능할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우주항공청 설립도 ‘우주 경제 육성’이란 새로운 개념의 도전이다. 하지만 우주항공청 설립은 또 미뤄지고 있다.
조선일보 이인열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