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문화일보) 2023-08/ 08-01(화) 니코틴 살인사건 - 08-31(목) 꼬임의 정치학
오후여담(문화일보) 2023-08/
08-01(화) 니코틴 살인사건

박민 논설위원
국내 최초의 니코틴 살인사건은 2016년 4월 경기 남양주시에서 발생했다. 오모(53) 씨는 가족과 외식 후 돌아와 맥주를 마시고 방에 들어가 잠들었는데 갑자기 사망했다. 부인 송모 씨는 장례지도사 권고로 마지못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부검은 거부했다. 5일 만에 실시된 부검 결과는 니코틴 중독이었다. 오 씨는 생전에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송 씨는 남편 사망 열흘 만에 남편 전 재산을 상속받아 2년 전부터 내연 관계를 맺어온 황모 씨에게 1억500만 원을 송금했고 황 씨는 도박 빚을 갚았다. 황 씨는 사건 보름 전 미국 사이트를 통해 순도 99%짜리 니코틴 원액 20㎎을 주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살인의 직접 증거를 찾지 못한 채 정황 증거만으로 기소했다. 당시 무죄 확률이 50%라는 관측도 나왔다. 1심은 “정황 증거가 확실하고 범행 동기, 방법이 매우 비열하고 치밀한 전형적인 교살”이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해 모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2017년 4월 모방범죄가 발생했다. A(22) 씨는 신혼여행지인 일본 오사카에서 주사기로 부인 B(19) 씨의 몸에 니코틴 원액을 주입했다. 앞서 A 씨는 출국 당일 공항에서 1억5000만 원짜리 여행자보험에 가입했다. 부인이 죽자 현지 경찰에게 자살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이 일본 측 부검 자료를 확인한 결과, 니코틴 중독이었다. A 씨 집에서 범행 계획이 담긴 일기장이 발견됐고 A 씨가 남양주 사건을 검색한 사실도 확인됐다. 2016년에 여자친구에게 니코틴 원액이 든 음료를 먹여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해 형이 확정됐다.
세 번째 사건은 2021년 5월 화성에서 발생했다. 부인 C 씨가 준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먹은 남편 D 씨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부검 결과는 니코틴 중독이었다. C 씨는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의문점이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파기 환송심이 정황 증거를 어떻게 볼지 주목된다.
08-02 폭염 최고책임자(CHO)

이미숙 논설위원
올해 7월은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찜통’인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로마, 그리스 아테네, 스페인 마드리드, 중국 베이징의 7월 기온은 40도를 넘어서는 날이 많았다. 우리나라 7월 기온도 35도를 넘나들며 폭염 벨트 대열에 들었다. 8월의 폭염 추세를 볼 때 올해는 온도계가 생긴 뒤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구 온난화 시대를 넘어 이젠 지구가 펄펄 끓는(boiling) 시대”라고 선언한 게 실감이 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최근 고온 관련 백악관 대책 회의에서 폭염을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여행 면에 ‘무더운 유럽에서 시원하게 여행하는 방법’을 특집으로 게재했는데, 에어비앤비 등 예약에 앞서 에어 컨디셔닝 시설 체크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유럽 국가들은 극단적인 더위에 대처하는 데 취약점이 많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 지난해 유럽의 폭염 관련 사망자는 6만1000명이 넘었는데 열사병 등 온열 질환 사망자는 올해 더 늘어날 듯하다. 이 신문에 따르면 유럽의 일반 가정 열에 아홉은 에어컨이 없으며, 몇몇 국가는 에어컨 설치 제한법까지 만들어놓았다. 환경보호를 위해 에어컨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이유다. 따라서 유럽, 특히 남유럽에서 휴가를 보내려면 냉방 시설이 갖춰진 숙소에서 지내고, 야외 활동은 오전 10시 이전이나 해가 진 뒤에 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한여름 폭염이 글로벌 트렌드로 굳어지면서 기후 변화에 따른 ‘폭염 대응 최고 책임자(Chief Heat Officer)’란 신종 직책도 생기고 있다. 미 공영라디오 NPR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CHO는 플로리다주 최대 도시 마이애미가 위치한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에서 2021년 등장했다. 이어 피닉스와 로스앤젤레스도 CHO를 임명해 폭염의 위험성을 시민 및 기업에 알리고 시 정부 차원의 대응책을 총괄토록 했다. CHO직 신설은 비영리기구인 에이드리엔 아슈트-록펠러재단 탄력성센터가 ‘폭염 대응 최고 책임자 지명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본격화했다. 최근엔 그리스 아테네, 칠레 산티아고도 CHO를 임명했다. 우리나라 최고 기온은 아직 30도를 넘어서는 수준이지만, CHO를 임명해야 할 시기가 곧 올지 모른다.
08-03 자객 공천

오승훈 논설위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얼마 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느닷없이 “(내년 총선에서 경기) 고양갑에 원 장관을 자객 공천한다는 보도가 있는데 출마하느냐”고 물었다. 심 의원은 다른 자리에서도 “(원 장관이 출마한다면) 어금니 꽉 깨무시라, 많이 아프실 것”이라고 재차 겨눴다. 원 장관의 출마 예상지역이 10곳이 넘는다는데, 심 의원은 표적이 되기를 자청하는 듯하다. 자객 공천은 상대 당의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려는 표적 공천을 뜻하는 언론 용어다. 통상 인물 대결 구도나 열세지역 보강 등 전체 선거 전략에 따라 다양한 전략 공천이 이뤄지는데, 그중에서도 표적 공천은 정치적 맥락의 차원이 다르다. 권력 유지·재창출, 아니면 균열·반격 측면에서 상대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정적 제거 의미가 들어 있다. 심상정-원희룡의 대결 구도가 누군가에게는 관심을 끌기 위해 필요한 ‘빅매치’일 수 있으나 권력 수준까지 거론할 만한 대진표는 아닐 듯싶다.
표적 공천의 대표 사례는 박정희-김대중(DJ) 대결이다. 1967년 대선에서 승리한 박정희는 여세를 몰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3분의 2 이상 의석 확보를 노렸다. 3선 개헌을 염두에 뒀다는 게 정설이다. 박정희에게 사사건건 맞섰던 신민당 DJ는 목포 출마를 결심했다. 상대는 육군 소장 출신으로 5·16의 공신이자 체신부 장관을 지낸 거물 김병삼.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고향 진도를 포기하고 DJ와 대리전을 치러야 했다. 시중에는 ‘박정희가 김대중만 낙선되면 뭘 해도 좋다고 했다더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박정희는 목포를 찾아 국무회의를 열어 발전 방안을 내놓았고, 유일하게 직접 지원유세도 했다. 관권 선거였다. 결과는 6500여 표 차, DJ의 승리였다. 표적 공천 실패의 후유증은 컸다. 박정희는 4년 뒤 대선에서 신민당 후보가 된 DJ와 맞닥뜨려야 했고, 이후로도 정치적 대척점에 서게 했다. DJ는 야당 총재 시절 선거유세 때면 기자들에게 이 사연을 여담처럼 들려주곤 했다.
여권에서 가장 호감도가 높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누가 알겠는가. 한 장관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인천 계양구을)에 출마할지. 그 정도는 돼야 표적 공천이지 않을까.
08-04(금) 이재명의 유유상종

이현종 논설위원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몸은 빌릴 수 없다”고 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인재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명박, 노무현, 이회창, 이인제, 손학규, 정의화, 김문수, 홍준표 등 쟁쟁한 인물들을 YS가 정치에 입문시켰다. 대통령, 대통령 후보, 국회의장 등 1990년대와 2000년대 정치권 주역 상당수는 YS가 정계 입문시킨 인물이다. 그만큼 정치인이 될 싹수를 알아보는 ‘선구안(選球眼)’이 탁월했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도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들을 발굴해 키웠다.
그런데 근래 10여 년 사이 정치권에 새로운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인물 보는 선구안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168석의 제1당을 이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물 보는 눈은 심각하다. 정치 경험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인재를 보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았다.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로 흔들리는 당 지도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선임했던 이래경 전 혁신위원장과 김은경 현 혁신위원장이 대표적이다. 혁신은커녕 되레 당에 큰 어려움만 주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명되자마자 9시간 만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천안함 자폭’ 주장이 파문을 일으키며 낙마했다. 이뿐만 아니라, 재산권이 다음 세대로 계승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비합리적이고 정치적으로 비민주적이라고도 했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자 헌법이 보장한 ‘모든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부정하는 인사를 혁신위원장으로 선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래경 리스크’를 만회하기 위해 임명된 김은경 위원장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취임 초기부터 이런저런 설화(舌禍)는 있었지만, 노인 폄하 발언은 매우 심각하다. 1000만 명이 넘는 노인 표를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 있는 역대급 발언이기 때문이다. 중학생 아들의 주장에 동조한 ‘여명’(남은 생애)에 따라 청년과 노인의 투표 경중을 달리할 수 있다는 그의 황당한 언급은 당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치욕” 운운 발언도 심하다. 친명 핵심인 양이원영 의원이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그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고 언급하며 김 위원장을 동조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왜 이렇게 이 대표 주변엔 ‘평균적 인물’이 없을까.
08-07(월) 상온 초전도체의 꿈

이철호 논설고문
국내 퀀텀에너지연구소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LK-99가 진짜 상온·상압 초전도체로 판명되면, 인류 역사상 최대 발명 중 하나가 된다. 당장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세트로 로켓 배송돼 올 ‘기술의 성배(聖杯)’다. 10분 만에 서울↔부산을 왕복하는 자기부상열차, 핵융합 발전 등 꿈의 기술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류의 운명이 바뀐다.
초전도체는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헤이커 오너스가 액체헬륨으로 수은을 4.2K(영하 약 269도)까지 낮추자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관측해 처음 발견했다. 2년 뒤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 그러나 왜 초전도성을 띠는지 이론적 뒷받침이 되기까지는 46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초전도 이론에 매달렸지만 실패했다. 결국, 1957년 미국의 존 바딘·리언 쿠퍼·로버트 슈리퍼 박사가 자신들의 성 머리글자를 딴 ‘BCS 이론’을 내놓았고, 이들은 15년 뒤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바딘은 1956년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이미 노벨상을 받은 바 있다)
특정 물질이 초전도 성능을 띠는 ‘전이온도’를 높이는 길은 험난했다. 1987년 스위스의 게오르크 베드노르츠와 카를 알렉산더 뮐러가 전이온도 35K(영하 238도)인 란타늄과 구리 기반의 페로브스카이트 산화물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고온 초전도체’ 시대를 연 것이다. 이후 치열한 고온 초전도체 경쟁이 벌어졌지만, 현재까지 전이온도 최고 기록은 영하 123도이고, 압력도 173만 기압 이상 가해야 한다. 여전히 초저온·고압이어서 상용화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번 상온(영상 20도)·상압(1기압) 초전도체 논문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다.
주식시장에서 초전도체 광풍은 삼일천하로 끝났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가 “사전 논문 데이터와 영상으로는 상온 초전도체로 보기 쉽지 않다”고 하자 관련 테마주들이 4일부터 추풍낙엽 신세다. 아직 동료 전문가들의 평가를 거치지 않은 논문이지만, 마지막 교차 검증까지 신중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제2의 황우석 사태’가 될지, 아니면 수억 도에 달하는 플라스마를 초전도 자석 안에 가둬 마치 태양처럼 핵융합 발전이 가능한 날이 올지는 이번 주 내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08-08 원내1당의 ‘사법방해’

김세동 논설위원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법률 용어인 ‘사법방해’가 최근 회자(膾炙)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북한 방문 대가와 대북사업 비용을 쌍방울그룹이 대납한 의혹과 관련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이 대표에게 사전에 보고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는 보도 이후 민주당 관계자들이 전방위적으로 이 전 부지사를 겁박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과 김승원·주철현·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4일 수원지검을 찾아 연좌시위를 하며 “검찰은 압박과 회유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제3자 뇌물죄로 엮을 수 있는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하는 것인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를 “최악의 사법방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이 전 부지사 특별면회를 신청하는 것이나, 지지자들이 그가 수용된 구치소에 편지와 영치금을 보내자고 제안하는 게 모두 ‘이화영의 입’을 막으려는 사법방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의 정치 생명을 끊을 수 있는 800만 달러 대북 송금을 이 전 부지사가 ‘보스’에게 보고하지 않고 혼자 알아서 했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 국회 제1당의 힘을 동원해 진실을 틀어막으려는 게 민주당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다.
미국, 프랑스, 중국 등의 형법에는 거짓 진술이나 허위자료 제출 등으로 수사나 재판 절차를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중하게 처벌하는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 조항이 있다. 미국에서는 증거를 은닉·인멸하거나, 증인·배심원의 출석을 방해·위협하는 경우 5년 또는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 원 범죄보다 사법방해죄로 더 무겁게 처벌되는 예도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나 빌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 사유도 사법방해였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명문 규정이 없다. 증인이 법정에서 위증하면 처벌받지만, 참고인은 수사기관에서 허위 진술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검찰은 과거 수차례 사법방해죄 도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영어로 법무부 장관은 Minister of Justice이다. 정의부 장관까지 지낸 인사가 민망한 표정도 없이 백주에 사법방해를 시도하는 듯한 모습으로 사법방해죄 도입 찬성 여론이 높아질 것 같다.
08-09 고대 ‘치수 선진국’ 고조선

문희수 논설위원
최근 극한 폭우로 물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치수(治水)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치수는 특히, 중국에 민감한 과제다. 얼마 전 140년 만의 베이징 폭우에서 보듯 태풍의 영향도 크지만, 지형적인 특성 탓에 양쯔강(6300㎞), 황허(5464㎞)가 툭 하면 범람해 대형 수재가 잦다.
치수에 어두웠던 고대 중국에선 나라의 명운이 걸린 문제였다. 흥미로운 고사(古事)가 전해진다. 고조선이 요순시대 때의 요왕에게 치수법을 알려줬다는 내용이다. 서기전 2267년 요왕은 9년간 홍수를 겪었으나 치수에 실패해, 순(훗날 우나라의 순왕)에게 임무를 맡겼다. 이 무렵 고조선은 여러 제후를 현재 저장성의 도산(현 회계산)으로 불러 회의를 열었다. 태자 부루가 주관한 이 도산회의에 순은 사공 우를 보냈다. 고대 하·상(은)·주의 시작인 하나라를 연 그 우왕이다. 부루는 우에게 고조선의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이 담긴 금간옥첩을 줬다. 물을 막는 게 아니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특성에 맞춰 물길을 트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우는 이를 통해 1년 만에 치수에 성공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실록을 기록하는 찬수관을 지낸 이맥이 쓴 ‘태백일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부루가 도산에 가기 전 낭야성(산둥성)에 머물렀는데, 순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중국 ‘서경(書經)’의 순전(舜典)은 이를 ‘사근동후(肆覲東后)’라고 썼다. 제후인 순이 동쪽으로 가 부루를 ‘접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선 순이 제후를 동쪽에서 만났다고 곡해한다. 순왕이 자기보다 아래인 제후를 만나려고 먼 산둥성까지 갔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당시 부루가 현 허베이성의 유주·영주를 고조선에 귀속시키는 국경 변경 임무를 순에 맡겼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은 고대 동북아 역사를 왜곡한 동북공정을 완료했다. 고조선으로부터 치수법을 배웠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을 게 뻔하다. 물론 ‘태백일사’를 수록한 ‘환단고기’ 등의 우리 측 고대 사료는 위서·조작 논란 등으로 신뢰성이 떨어져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사실 파악이 최우선이다. 국내 고대사학계가 왜곡된 중국·일본 사료는 수용하면서 국내 사료는 무턱대고 부정하는 바람에 고대사는 신화가 돼 간다.
08-10 듀엣 유심초

김종호 논설고문
시인 김광섭의 1969년 시 ‘저녁에’는 다양한 장르로 변주된다. 그 한 대목을 제목으로 삼은 김환기 화백의 1970년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그중 하나다. 미국 뉴욕에서 ‘전면 점화(點畵)’를 창조하던 김 화백은 서울에서 가까이 지냈던 시인이 별세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짙푸른 색의 작은 점을 무수히 찍어서 담아냈다. 그 제목의 노래도 있다. 1951년생인 유시형이 두 살 아래 동생 유의형과 1975년 결성한 듀엣 유심초(有心草)가 1980년에 발표했다. 이세문 작곡이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하고 시작하는 시를 가사로, 유시형이 작사한 대목을 덧붙였다.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 하고.
그 앨범의 또 다른 불멸의 명곡 ‘사랑이여’는 최용식 작사·작곡으로,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머물고 간 바람처럼 기약 없이 멀어져간 내 사랑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지지 않는 사랑의 꽃으로’ 하고 시작한다. 최용식은 군 복무 중에 서세건 작사·작곡인 유심초의 데뷔곡 ‘너와의 석별’을 듣고 감명받아, 유심초에게 주고 싶은 노래로 ‘사랑이여’ 등을 만들었다. 이 밖에 남화용 작사·작곡의 ‘사랑하는 그대에게’ 등도 유심초 명곡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유심초는 오래 활동하지 않았어도 굵직한 궤적을 남겼다. 지금 들어도 눈물 날 것 같은 소슬하면서 아린 감성, 시적인 가사는 다른 어떤 음악에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각별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활동 당시 유심초는 작명 이유에 대해 “온통 음악으로 이뤄지고, 음악 속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마을 ‘유심초’가 이탈리아 전설 속에 있다는 이야기를 동화에서 읽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주위를 동화 아닌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맹랑한 생각을 해보곤 한다”고 했다. 이제 무대에 오른 유심초를 보기는 어렵지만, ‘순수(純粹)’보다 ‘타락’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세태여서 그 노래들을 더 듣고 싶어진다.
08-11(금) 이재명-이해찬-김성태

박민 논설위원
2017년 7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던 이해찬과 이 의원 측근 이화영은 쌍방울 그룹의 중국 훈춘 공장을 방문했다. 검찰이 확보한 사진에는 ‘이해찬 의원님 훈춘 TRY 공장 방문 환영’이라는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이해찬과 이화영 등 20여 명의 동북아평화경제협회 회원이 담겨 있다. 해당 협회는 당시 쌍방울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던 이화영이 2008년 만들었고 쌍방울은 협회의 중국 워크숍 비용을 지원했다.
1년 뒤인 2018년 7월 이화영은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 지사인 경기도의 평화부지사로 발탁됐고 같은 해 8월 이해찬은 여권 2인자인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이재명은 9월 발표된 평양 남북정상회담 방북단에서 제외됐다. 반면, 대선 경쟁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포함됐다. 친문이 자신을 차기 대권 구도에서 배제하려는 것으로 본 이재명은 반격에 나서 2개월 뒤인 11월 ‘2018년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이해찬과 북측 조선아태평화위원회 핵심 인사가 대거 참석, 화제를 모았다. 그사이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스마트팜 건설 등에 합의한 이화영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해 문제의 800만 달러 대북 불법 송금이 이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2021년 5월 이재명 대선 외곽 조직인 ‘민주평화광장’이 출범한다. 민주당의 ‘민주’, 경기도 도전 가치인 ‘평화’, 이해찬이 이끄는 연구재단 ‘광장’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지난 8일 ‘쌍방울 대북 송금’ 재판에서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변호사였던 민변 출신 김형태는 재판부에 이화영 검찰 진술을 부인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쌍방울에 대북 송금을 요청했고 이를 이재명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이 김성태의 회유·압박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는 취지다. 문제는 의견서에 “김성태가 ‘이재명 재판 당시 재판부에 로비한 일’ ‘이재명 측근 김용을 통해 후원금을 기부한 일’ ‘이해찬 등이 이재명을 도와주고 있는 조직에 비용을 댄 일’ 등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했다”고 적시한 것. 이화영이 허위 진술을 했다는 건 김성태 압박이 통했다는 거고, 이는 압박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반증이다. 최근 5년간 구축된 이재명-이해찬-이화영-김성태의 커넥션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재명 방탄 변론이 이재명의 혐의 추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08-14(월) 로라 스펠먼과 박두을

이미숙 논설위원
석유왕으로 불렸던 스탠더드오일 창립자 존 D 록펠러는 19∼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자 자선사업가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비즈니스 및 자선사업에서 쌍벽을 이루며 자주 비교가 된다. 카네기의 경우 살아생전 영웅적 자선활동에 집중했고, 사후엔 그의 유지(遺旨)에 따라 다양한 기금이 운용되고 있다. 록펠러는 74세가 되던 191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며 자선활동을 시작했는데 이후 자녀 및 후손들도 재단을 만들어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록펠러는 동갑내기 부인 로라 스펠먼(1839∼1915)이 먼저 세상을 뜨자 7400만 달러를 출연해 여성을 위한 로라 스펠먼 록펠러 메모리얼 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여성과 YWCA, 스카우트 지원에 집중했는데 1929년 이후 록펠러재단에 통합됐다. 로라는 흑백차별 철폐에 관심을 가졌고, 결혼 후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도 여성 및 흑인 권익 활동에 앞장섰다. 특히, 흑인 여성 교육에 진심이었다. 1881년 남부 조지아주에 미국 첫 흑인 여성 교육기관으로 애틀랜타 침례교 대학이 세워지자 로라는 남편과 학교 부지 매입 및 건물 신축을 지원했다. 이후 학교 측은 감사의 표시로 학교명을 스펠먼 칼리지로 바꿨는데 작가 앨리스 워커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현재적 관점에서 흑백차별 철폐는 당연하지만,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는 점에서 로라는 선구적 사회운동가였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다양한 자선활동을 해왔다는 점에서 카네기와 록펠러에 비견된다. 자녀 등 후손도 다양한 재단을 통해 자선활동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카네기형보다는 록펠러형에 가깝다. 이 회장의 부인 박두을(1907∼2000) 여사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의 이사장 인사가 최근 보도됐다. 두을장학재단은 박 여사를 기리며 자녀들이 2000년 설립한 여성 전문 장학재단이다. 초대 이사장은 이 회장 부부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맡아 19년간 운영했는데 얼마 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제2대 이사장이 됐다. 이 고문의 유지에 따른 인사라고 한다. 이 신임 이사장은 “21세기를 주도할 여성 지도자 육성에 힘쓰겠다”고 했다. 100년 전 ‘로라 스펠먼 펀드’처럼 세상 변화를 주도할 리더의 산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08-16 엔니오 모리코네

오승훈 논설위원
“엔니오는 우리 인생의 사운드 트랙이다.”(한스 짐머) “그의 음악은 눈에 보인다.”(쿠엔틴 타란티노)
극장 스크린에 ‘미션’ ‘시네마 천국’ 등의 명장면과 음악이 등장할 때마다 옛 추억의 봉인이 풀려나갔다. 환희와 눈물을 눌러 담은 ‘인생 영화’의 오랜 일기장을 펼친 듯했다. 시청각의 자극이 모든 감성을 연쇄 촉발하는 공감각이 시종 전율했다. 이탈리아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가 유작처럼 남긴 생전 인터뷰와 영상, 명작들을 절묘하게 엮어낸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다.
엔니오는 악보들과 책, 음반이 가득 찬 작업실에서 오케스트라를 앞에 둔 듯 지휘봉을 허공에 내저었다. 악보는 머릿속에서 완성돼 악기가 아닌 구음으로 나왔다. 신부가 원주민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연주한 ‘가브리엘의 오보에’, 소년과 노인이 자전거를 탄 풍경을 감싸는 ‘토토와 알프레도’처럼 엔니오가 멜로디 마술사가 되기까지 편곡과 작곡의 무한 축적이 있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찰스 브론슨이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악당 헨리 폰다의 입에 물리는 하모니카의 불협화음이 실험음악의 소산인 것도 알게 됐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음악이 먼저 완성되고 나서 촬영에 들어갔다. 엔니오의 비중이 그 정도였다. ‘데보라의 테마’를 틀어놓고 연기하는 로버트 드니로의 당시 현장 영상이 나오자 절로 눈물이 주르륵했다. 감히 비유할 바가 못 되는데,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이 연상됐다.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세상을 떠난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홀로 객석에 앉아 보던, 사제가 불경스럽다고 잘라낸 키스 신들을 이어붙인 영화를 보며 감격해 하는 장면과 이때 흐른 ‘러브 테마’ 말이다.
클래식이 아닌 영화음악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았던 엔니오는 “자격지심을 이겨내고 싶었다”고 했다. 할리우드의 냉대도 못지않았다. 5번이나 후보로 올라갔으나 87세인 2016년에야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국내 개봉된 지난 7월 5일부터 이달 15일까지 4만4011명이 봤다. 대작들의 여름 전쟁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관객 발길이 꾸준하다. 아직 전국 20여 개 스크린에서 하루 1∼2회씩 상영 중이니, 거장에 대한 예우 같기도 하다.
08-17 사법부 망치는 ‘정치 판사’

이현종 논설위원
“판결문은 마지막 물기 한 방울까지 짜내고 짜낸 메마른 문장이다. 판결문의 강력한 힘 때문에 오독은 최악이다. 오독을 피하려면 문장은 명확해야 한다. 주어와 목적어와 서술어가 중요하다. 그리움, 후회, 사랑 따위 감정언어와 정의, 도덕, 선, 악 따위 형이상학적 언어의 자리 역시 없다. 상징과 은유는 상상할 수도 없다.”
어느 판사가 판결문을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을 설명한 글이다. 판결문에 마치 성명서와 같이 주장과 감정이 들어간다면 좋은 판결문이 아니다. ‘판사는 판결로 이야기한다’는 원칙은 그만큼 누가 판결문을 읽어도 수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의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한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예전 고교·대학 시절 글이 논란이 됐다. 대학 시절 자신의 블로그에 ‘법조계의 적화를 꾀하라는 지하당의 명령을 받아서 한양대 법대에 침투하여 예비 법조인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황당한 글을 올렸다. 당시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을 벌일 때 이를 풍자한 글로 보이는데 섬뜩하다.
박 판사는 정 의원 판결문에서 쟁점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다투고 가출했다’는 부분을 명예훼손으로 인정했는데, 정작 왜 사실이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가치 중립적인 용어인 ‘사망’ 대신 ‘서거’, ‘권양숙 씨’ 대신 ‘여사’라는 표현을 줄곧 사용한 것도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공인이 아니다’고 한 부분은 다른 전직 대통령 판결에서 못 보던 논리다.
박 판사의 판결이 논란이 되면서 변호사들은 사건 의뢰인이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묻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혹시 판사가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나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아닌지부터 판사의 SNS 내용까지 살펴볼 것을 요구받는다고 한다. 또, 기업들은 민변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 등 친야 성향의 대법관에게 배당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들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을 선임해 기피 신청을 하는 꼼수까지 사용한다고 한다. ‘판사 쇼핑’이라는 얘기까지 나오자 ‘AI법관’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법원의 신뢰 추락이 심각하다.
08-18(금) ‘힘내라 중국경제’

이철호 논설고문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이 디폴트 위기다. 신용등급이 B1에서 Caa1으로 떨어져 기술적 파산 상태다. 기존 채무조차 롤 오버(만기 연장) 되기 어렵다. 불똥은 금융에도 튀어 대형 부동산 신탁회사들까지 지급불능 상태다. 2년 전 같은 운명이었던 헝다는 아직도 어렵게 채무조정 중이다. 중국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재깍거리는 시한폭탄”이라 할 만큼 ‘총체적 난국’이다. 디플레이션에다 수출과 외국인 투자마저 쪼그라드는 복합골절 상태다.
중국 정부는 정책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 규제를 걷어내는 등 안간힘이다. 아직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지만 여전히 “관리 가능한 리스크”라고 장담한다. 워낙 대외 자본 통제를 엄격히 해온 만큼 금리를 크게 낮추거나 재정을 퍼붓더라도 위안화 가치 급락이나 자본의 해외 탈출 등 외환위기 가능성은 제한적이라 믿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5년 핫머니와의 전쟁도 그렇게 돌파했다. 독재 국가의 힘이다.
그럼에도 ‘피크 차이나’는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핵심 동력인 인구·수출·외국인 투자·부동산 등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전성기는 끝났다”는 성장 종말론이 무성해지자 중국도 긴장하는 기색이다. 당장 불리한 통계부터 차단하고 있다. 청년실업률, 토지거래가격, 달러 표시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모두 비공개로 돌렸다. 더 큰 불신을 부를 선택적 공개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한 수치임을 반증한다. 국내 SNS에는 그동안 누적된 반중(反中) 정서 탓인지 “차라리 잘됐다”는 ‘악플’이 넘쳐난다.
문제는 한국이 맞을 유탄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 경제 둔화는 이웃 아시아 국가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했다. 중국은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고,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부동산이 실제로는 25∼28% 급락해 공식 통계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이미 한국은 환율부터 전염돼 원·달러 환율이 1335원대로 치솟고, 수출 감소와 무역 수지 적자 등 기초 체력도 떨어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내년 성장률 전망을 1%대로 끌어내릴 만큼 서해를 건너오는 먹구름이 짙다. 지금 외쳐야 할 건 반중 악담보다 “힘내라 중국(中國 加油·중궈 자유)”이라는 응원이 아닐까 싶다.
08-21(월) 21세기의 ‘원님 재판’

김세동 논설위원
민주주의는 입법·행정·사법이 분립해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으로 유지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법원에 3권분립의 한 축을 맡겨 선출 권력이 전체주의나 파시즘으로 폭주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민주주의와 봉건·전체주의를 가름하는 기본 중의 하나가 법치주의 유무이고, 그 법치주의를 지키는 전제가 재판의 독립성이다. 우리 헌법(제103조)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검찰 구형량(벌금 500만 원)보다 현저히 높은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사건’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박 판사가 대학생 때부터 열렬한 노무현 숭배자였으며, 판사가 된 뒤에도 이재명·조국 등을 지지하고 국민의힘 계열 정당을 혐오한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글을 스스로 작성해 페이스북에 올린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판사도 정치적 선호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게 판결로 연결돼선 안 된다. 정 의원에게 내린 징역 6개월은 기존 판례나 법 적용의 형평성에 맞지 않아 판사 개인의 정치 성향과 감정이 개입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박 판사는 정 의원이 6년 전 페이스북에 ‘노무현의 자살은 권양숙 여사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 여사는 가출하고, 혼자 남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고 올린 데 대해 “글 내용은 거짓이고,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유죄 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수백만 달러의 돈을 받은 건 사실인 만큼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중형’을 선고한 근거가 기껏 ‘권 여사의 가출’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으로 짐작된다.
박 판사는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 배속된 후 문제의 글들을 지웠다. ‘정진석 판결’이 나온 뒤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는 방증으로, 법관의 양심을 지운 것이다. 박 판사는 글을 지울 게 아니라 스스로 재판을 회피했어야 옳았다. 법관의 양심은 개인의 소신·신념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상식·양식에 근거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직업적 양심을 말한다.
08-22 인공위성 통신망 비상

문희수 논설위원
지구 밖 상공은 텅 빈 공간이 아니다. 인공위성의 파편 같은 우주 쓰레기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지구의 저궤도인 고도 250∼2000㎞에는 통신위성이 즐비하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우주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이미 4500여 기의 통신위성을 540∼570㎞ 저궤도에 올려놓고 있다. 스타링크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1단계 1만2000기, 2단계 3만 기의 위성을 올린다는 대담한 계획이다.
이런 저궤도 통신위성은 급증할 전망이다.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은 카이퍼 프로젝트를 통해 2029년 7월까지 위성 3236기를 발사할 예정이고, 중국도 위성 1만3000기를 쏘아 올릴 계획이다. 영국(원웹·648기), 캐나다(텔레셋·1600기 이상) 등도 가세하고 있다.
저궤도 위성통신은 지구 표면에 가까운 만큼 위성 비용이 적고, 통신 지연시간이 짧은 게 장점이다. 고산지대·바다·사막 같은 오지에도 사각지대 없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드론, 자율주행 같은 미래 산업은 물론 군 통신망 등 안보에도 필수적인 인프라다. 반면, 위성의 수명은 5년 정도로 짧다. 수명이 다한 위성은 대부분 우주 쓰레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충돌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스페이스X의 위성들은 우주 충돌을 피하려고 지난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무려 2만5000회 이상 경로를 바꿨다고 한다.
인공위성 자리가 갈수록 비좁아질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로선 비상이다. 독자 우주통신망이 원천 봉쇄되면 외국의 위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도·감청 등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정부 차원의 대비가 시급하다. 사실 국내 통신 3사는 위성통신망 구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무래도 요금이 비싸질 테니, 이용자가 적어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기득권을 없앤다며 제4 이동통신사 선정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메기 세 마리 속에 미꾸라지를 풀어본들 헛일이다. 진출하려는 업체도 없다. 차라리 위성통신망 투자를 독려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게다가 우주항공청 신설은 여야 공통 공약인데도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렇게 허송세월하는 사이에 우리 인공위성이 들어설 공간은 급속히 쪼그라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주통신망을 준비해야 한다.
08-23 오펜하이머와 한반도

이미숙 논설위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불리는 미국 핵무기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30분,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서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하자 “나는 이제 죽음의 신,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고 말했다. 실험 예정일 태풍급 폭풍우가 몰아치자 맨해튼프로젝트 총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대령은 “실험을 더 이상 연기하면 절대 안 된다”며 초조해했다. 그러자 현지 풍토에 밝은 오펜하이머가 “새벽녘이면 폭우가 그칠 것”이라고 안심시켰고, 실험은 이튿날 비가 멎은 뒤 이뤄졌다.
미·영·소 3국의 마지막 전시 정상회담인 포츠담회담에 참석 중이던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실험 직후 “결과가 만족스럽다”는 보고를 받은 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게 알렸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겐 일주일 후 알렸는데, 원폭 개발 경쟁에서 뒤진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요구하며 8월 6일 히로시마(廣島)에 원폭을 투하하자 스탈린은 대일 참전을 앞당기며 군부대를 급히 이동시켰다. 일본의 항복 이후엔 한반도 38선 이북 지역을 점령했다. 미국은 유럽을 장악한 나치 독일이 먼저 핵폭탄을 만들 것을 우려해 3년간 20억 달러를 투입하며 속도전을 벌였다. 그러나 핵무기 완성 전 아돌프 히틀러 체제는 패망했고, 미국은 이것을 일본 항복용으로 쓰기로 했다. 이오지마(硫黃島), 오키나와(沖繩) 점령 때 수천 명의 미군이 희생되자, 일본 본토 점령 작전 대신 원폭 투하로 선회한 것이다. 종전 후 트루먼이 오펜하이머에게 “원폭 덕분에 수많은 미군의 생명을 구했다”고 치하한 이유다.
원폭 실험이 몇 달 앞당겨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본의 원로 정치학자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는 저서 ‘한반도 분단의 기원’에서 “원폭 완성이 수개월만 빨랐다면 소련은 대일 참전 기회를 잃었을 것이고 한반도 분할 점령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핵실험이 7월을 넘겼다면,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했을 수도 있다. 그나마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핵실험 예정일 악천후에도 배수진을 친 채 실험을 압박한 그로브스 대령 덕분이라고 자위를 해야 할까. 요즘 대세 영화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를 보며 든 생각이다.
08-24 달의 남극

박민 논설위원
글로벌 공급망과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달 탐사로 확대되면서 달의 남극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3일 오후(현지시간) 인도 찬드라얀 3호가 인류 최초로 달의 남극에 착륙했다. 그러나 남극은 탐사선 착륙이 쉬운 지역은 아니다. 소행성이나 운석의 충돌로 생긴 분지나 크레이터(crater·운석 충돌구덩이), 구릉과 산맥 등으로 지형이 험하기 때문이다. 에이킨 크레이터는 지름이 2500㎞에 달하고 엡실론 산은 높이가 9050m로 에베레스트 산보다 높다. 운석 충돌로 생긴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 확보도 쉽지 않다.
그러나 남극은 달 기지 건설에 필요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상대적으로 기온 차가 작다. 남극을 제외한 지역의 표면 온도는 130도∼영하 200도를 오간다. 이런 지역은 기지 건설과 탐사장비 운용에 상당한 기술력과 비용이 든다. 그러나 남극의 경우 햇빛이 계속 비치는 지역 온도는 50도 정도고 크레이터 내부 등 연중 햇빛이 들지 않는 지역은 영하 200도의 기온이 유지된다. 달은 지구와 달리 자전축이 거의 수직이어서 남극에서는 해가 수평선 바로 아래 또는 위에서 비스듬하게 뜨고 지기 때문에 햇빛을 받는 지역의 온도는 그리 높지 않고 영구음영지역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구음영지역에는 물이 증발하지 않고 얼음 상태로 남아 있다. 물은 거주를 위해 필요한 자원인 동시에 수소와 산소로 분해해 로켓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드라이아이스 형태로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산화탄소도 중요한 자원이다. 이산화탄소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산소와 탄소는 다른 유기 화합물의 원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탐사선 착륙지나 기지는 동력원인 햇빛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돌출 지역이면서 물과 이산화탄소를 확보할 수 있는 영구음영지역을 끼고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
2024년과 2025년 각각 달 남극 탐사에 나서는 중국과 미국의 착륙 예정지 상당수가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2022년 발표한 유인 탐사선 아르테미스 3호의 착륙 후보지는 13곳인데 여기에는 2020년 중국이 공개한 창어 6호와 7호 착륙 예정지 10곳 중 일부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최종 착륙지 선정은 두 강대국이 향후 우주 개발에서 어떤 관계를 구축할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08-25(금) 유동룡미술관

김종호 논설고문
“훌륭한 건축은 압축된 음악이며, 빛과 그늘의 조화다.” “사람의 온기와 생명을 밑바탕에 두고,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을 어떻게 건축물에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유동룡(1937∼2011)의 말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在日) 한국인이던 그는 일정 기간마다 외국인 등록을 위해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귀화는 거부했다. 그의 예명이 이타미 준이다. 성씨 유(庾)는 일본에선 사용하지 않는 한자여서 예명을 지었다. ‘이타미’는 그가 한국을 처음 방문하며 이용한 일본 오사카의 공항 이름이다. ‘준’은 본명이 최치정으로 일본에서도 활동하며 가까이 지내던 작곡가 길옥윤의 ‘윤(潤)’ 일본어 발음을 따왔다.
‘시간의 결을 표현한 바람의 건축가’로 불린 그에게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은 1889년 개관 후 아시아인 최초로 2003년 건축 전시회를 열어줬다. 그는 사유(思惟)의 과정을 추상화한 연작 ‘흔적’ ‘심해(深海)’ 등 그림에도 걸출한 역량을 보였다.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로도 일컬어진 이유다. 전통 민화, 고가구, 불상, 백자 등에 매료된 고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한 그는 1968년 이후에는 거의 매달 한국을 찾았다. “생각과 감성을 불어넣어 손으로 빚는 달항아리처럼 건축은 사람과 자연을 잇는 예술”이라며 흙·돌·쇠 등 토착적 소재로 ‘인간적이면서 따뜻한 한국 전통의 미(美)’를 건축에서도 구현하려고 한 배경이다. 정다운 감독은 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에 그런 궤적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는 제주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다. 전통 가옥을 모티브로 삼은 포도호텔, 물·바람·돌을 주제로 한 수풍석(水風石)박물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방주(方舟)교회 등 제주 섬의 명소 건물들을 설계하며 마지막 건축 열정을 쏟았다. 그의 건축 철학을 이어받은 딸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는 유동룡미술관을 제주시 한림읍에 세워 지난해 12월 6일 문을 열었다. 개관 특별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이 오는 11월 1일까지 이어진다. 초기작 ‘어머니의 집’ 등 그가 설계한 대표적 건축물의 모형과 회화 작품 앞에서 관람객의 눈길이 오래 머문다.
08-28(월) 사법입원

김세동 논설위원
최근 서울 관악구 신림역과 경기 성남 분당 서현역 인근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칼부림’ 난동이 잇따르면서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는 사법입원은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현행 제도가 가족이나 의사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면이 있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입법 추진 배경이다. 실제 서현역 인근에서 승용차로 사람들을 들이박고 백화점에 들어가 흉기를 마구 휘둘러 14명을 사상케 한 최원종은 2015년 정신과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으나 3년 전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중증 정신질환자 방치에 따른 위험성을 환기했다. 2019년 4월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 5명을 살해하고 15명을 다치게 한 안인득도 조현병을 앓고 있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현행법으로도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이 가능하지만, 실제 실행에 어려움이 많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강제입원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신청과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 전문의의 일치된 진단으로 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갈등에 악용 우려 등으로 강제입원을 까다롭게 규정해 놓고 있다. 환자가 격렬히 거부할 경우 노부모가 대부분인 보호자에 의한 입원 결정이 인륜상 쉽지 않다. 2명 이상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에 따라 자치단체장이 입원을 의뢰할 수 있는 ‘행정입원’도 가능하지만, 인권침해 시비에 따른 소송 등의 우려로 소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사법입원은 안인득 사건 후 제20대 국회에서 입법이 시도됐지만 무산됐다. 복지부, 대법원, 환자단체 등이 모두 인권침해 등을 우려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의사나 가족에게 정신질환자 관리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환자의 신체 구속을 법적으로 정당한 경우에만 법관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권에 부합한다는 지적이 더 타당해 보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최근 “사법입원제는 사법 선진국이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며 “누가 그랬다시피 자기 인척을 그냥 정신병원에 가둬 놓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돌려 비판하기도 했다.
08-29 머그샷

이현종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머그샷(mug shot)’ 하나로 1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진기록을 남겼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이런 사진으로 엄청난 돈벌이를 하는 사람은 트럼프밖에 없을 것이다. 천부적인 장사꾼이자 선동가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을 한 머그샷이 공개되자 이를 새긴 티셔츠, 포스터, 범퍼 스티커 등 굿즈가 온라인을 통해 판매됐다.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Never Surrender!)’라는 문구가 쓰였으며, 가격대는 12∼34달러(약 1만6000∼4만5000원) 정도로 책정됐다. 트럼프가 미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서 20분간 수감 절차를 밟고 풀려난 이후 총 710만 달러(약 94억2000만 원)의 후원금도 모금됐다고 한다. 그는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다가 조직범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지아주 검찰에 기소돼 구치소에 20분간 수감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벌게 된 것을 보면 머그샷 한 장으로 남는 장사를 했다.
머그샷의 정식 명칭은 ‘경찰 촬영 사진(police photograph)’. 18세기 ‘머그(mug)’라는 말이 얼굴의 은어로 쓰였는데 머그잔에 얼굴 모양의 부조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9세기 서부 개척시대 현상수배범 공고를 만든 관행이 굳어져 미국은 어떤 범죄건 피의자가 되면 머그샷을 찍고 공개한다. 마이클 잭슨, 빌 게이츠, 타이거 우즈의 머그샷도 다 공개됐다.
그러나 우리는 머그샷 촬영이 강제 사항이 아니다. 분당 서현역 흉기 살해범 최원종은 머그샷을 거부해서 찍지 않았다. 특정강력범죄법은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등에 한해 신상공개위원회 심의를 거쳐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할 수 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공개할지는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2019년 법무부가 내린 “피의자가 사진 촬영을 거부할 경우 촬영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적용돼 왔다.
이러다 보니 신림동 흉기 난동 주범인 조선은 신상을 공개하면서도 CCTV 화면 사진이 공개됐고, ‘부산 또래 여성 살해’ 범인 정유정도 ‘뽀샵’한 사진이 공개돼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모두를 다 공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흉악한 현행범조차 찍지 못하는 우리는 더 문제다.
08-30 중국의 ‘오염수’ 과유불급

이철호 논설고문
중국의 반격은 화끈했다. 후쿠시마 오염처리수가 방류되자마자 일본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 국제 항의 전화, 일본인 학교 계란 투척 등이 꼬리를 물었다. 일본 대사관은 “외출할 때 일본어를 크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얼핏 보면 중국이 절대 우세다. 일본의 중국·홍콩 수산물 수출 비중은 40%를 넘고, 중국의 일본산 수입은 4%다. 게임이 안 된다.
그렇다고 일본이 쉽게 굴복할 것 같지 않다. 노무라 경제연구소는 “전체 수출에서 중국·홍콩 수산물 수출 비중은 0.17%”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과학적 통계를 앞세워 역공에 나서고 있다. 매일 후쿠시마 앞 바닷물을 측정해 “삼중수소 농도가 ℓ당 기준치인 7∼8베크렐(㏃)을 밑돈다”고 공식 발표한다. 서방 언론들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영국 BBC 방송은 “모든 과학자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의 압도적 메시지는 안전하다는 쪽”이라고 거들었다.
가장 먼저,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쪽은 일본 수산업계다. 하지만 중국의 내상도 만만치 않다. 지난 주말 소금 사재기가 벌어지자 당국은 “한국을 닮지 말라”며 경고했다. 중국은 단일 국가로는 압도적 세계 1위 수산물 수출국이다. 무차별 방사능 공포는 국내 소비는 물론 수산물 수출까지 위축시킨다. 홍콩 언론은 중국 수산업계를 인용해 “소비자들이 수산물을 먹지 않는다면 그게 더 위험한 신호”라고 전했다.
국내에선 “방관하는 우리 정부보다 오히려 중국이 정상 아닌가”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하지만 황사와 대기오염으로 우리를 괴롭혀온 중국이 환경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것부터 어색하다. 또 일본이 내년에 22조 ㏃의 삼중수소를 방출한다면, 중국은 해마다 112조 ㏃을 내보낸다. 연일 반일 감정을 부추기던 중국 관영 매체들도 자국 수산물 기피 풍조가 번지고, 전방위 일본 때리기로 일본이 피해자처럼 비치기 시작하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반일 집회에 집중해온 더불어민주당도 역풍을 계산할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지나치게 공포를 자극하면 국내 수산·유통업계가 유탄을 맞게 된다. 후쿠시마 앞바다를 엄중히 감시하다 삼중수소 농도가 기준치를 넘을 때 과감히 손해배상 요구에 나서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08-31(목) 꼬임의 정치학

오승훈 논설위원
아름다운 다리는 주로 현수교다. 다리 양쪽 말뚝(앵커리지)과 중간 주탑을 쇠밧줄(케이블, 와이어로프)로 연결한다. 그 발명의 시작은 꼬임이었다. 강선을 새끼줄처럼 꼰 와이어로프다. 압축력의 주탑과 인장력의 케이블을 이은 꼬임의 연결이 현수교를 지탱한다. 선구자는 독일 태생의 미국 이민자 존 로블링이다. 와이어로프가 나왔다는 소식에 이를 적용해 현수교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의 걸작이 미국 뉴욕의 명물 중 하나인 브루클린 브리지(1883년 건설)다. 고딕 양식의 석탑과 강철이 만난 다리는 미학적인 완성미까지 더해져 지금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듯 꼬임은 역학적으로 유용하지만, 사회적으론 부정적일 때가 많다. ‘갈등’이라는 단어가 그러하다. 한자로는 칡(葛)과 등나무(藤)의 합성이다. 꼬임의 방향이 왼쪽인 칡과 오른쪽인 등나무가 얽힌 것이다. 이를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상태’에 비유했다. 갈등은 개인, 조직, 지역사회, 국가가 모두 겪는 원초적 문제다. 알렉산더처럼 꼬임의 끝판왕 같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잘라버렸다고 해서 갈등의 근원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 꼬임에도 생명의 특성과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칡과 등나무 줄기는 수직 압박에는 약하나 탄성이 강하고 질겨 쉬 꺾이지 않는다. 공원 벤치에 드리운 등나무 그늘은 꼬임이 만드는 연결성의 힘이다. 이솝우화에서 농부가 아들들에게 “뭉쳐야 산다”를 알려 주려 한 ‘막대기 다발’ 이야기도 꼬임의 역학을 알았다면 이렇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너희가 꼬여 있을 땐 누구도 덤비지 못한다. 흩어지면 파멸이다”라고 말이다. 꼬여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연결성과 방향성의 본질을 파악하고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정치 갈등을 빗대 “새는 날아가는 방향이 같아야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가 힘을 합쳐 그 방향으로 날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새들이 V자 대형으로 나는 데는 리더가 이끄는 방향만이 아니라 새들 간에 협력과 연결이 필요하다. 한 줄로 세워 평행선을 그리는 배척이 아니라, 엉클고 헝클어져 보여도 단단한 꼬임의 지혜가 전체의 힘을 견인하는 방법이 아닐까.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