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023-01/ [201] 바른 정치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 - [220] 정치가 키우는 공포 괴담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소설가 조선일보

2023-02-15
[201] 바른 정치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

땅이 요동쳐 지표면 위의 모든 것을 내동댕이쳤다. 수많은 지붕과 기둥이 뒤집어지면서 동시에 온 도시에 부서지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금속에 떨어진 것인지, 번개가 한순간 황제상 위에 머물렀다. 그러자 청동상과 기둥이 흔들거렸다. 그것은 온 도시를 울리며 쓰러졌고 산산조각이 나 떨어져 그 아래 보도를 박살 냈다. 그 소리와 충격에 글라우코스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땅은 아직도 진동하고 있었다. - 에드워드 불워 리튼 ‘폼페이 최후의 날’ 중에서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규모 7.8의 강진이라지만 건물들은 발파 해체하는 빌딩처럼 폭삭 무너져 내렸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시민은 2000만명, 사망자는 적어도 수만, 많게는 10만명이 넘을 거라고 한다.
서기 79년, 글라우코스는 연적의 모함을 받아 살인 누명을 쓰고 폼페이의 원형경기장에서 처형될 위기에 놓인다. 그날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다. 땅이 흔들리고 도로가 갈라지고 건물들이 무너진다. 화산이 불을 내뿜는 아비규환 속에서 관중과 시민들은 달아난다. 글라우코스도 연인의 손을 잡고 달린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재지변을 막을 순 없다. 그래도 지진에 대비한 건축물은 흔들릴 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1999년부터 지진세를 걷은 튀르키예였지만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고 부실, 불법 건축물을 관리 감독해야 했을 정부가 사용 내역도 밝힌 적 없다며, 구조가 지연되고 있는 폐허 속에서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남의 불행 앞에서 자신의 안전에 뒤늦게 가슴 쓸어내리는 존재가 사람이다. 발생률이 낮긴 해도 지진 노출 지역인 우리나라는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관리 감독이 철저한 덕에 지진으로 건축물이 무너질 확률은 낮다고 한다.
정치는 멀리 있지 않다. 교육, 일자리, 주택, 교통, 방역, 재판, 세금 심지어 드라마와 영화까지 정치와 무관한 건 하나도 없다. 법과 제도를 결정하는 정치가 전쟁은 물론 자연재해 앞에서도 생사를 가른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정치인들을 다그치고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202] 국회의원은 국민보다 더 평등한가?

“이젠 눈이 보이지 않는군.” 클로버가 말했다. “젊었을 때도 난 저기 씌어 있는 글들을 읽지 못했어. 그런데 저 벽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일곱 계명이 그대로 있긴 있는 거니?” 벤자민은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자신의 규칙을 이번 한번만은 깨기로 하고 벽에 씌어 있는 글들을 클로버에게 읽어주었다. 일곱 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 조지 오웰 ‘동물 농장’ 중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동료 의원들이 반대하면 ‘현행범이 아닌 이상, 회기 중’엔 체포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는 그러한 면책특권 포기를 공약했다. 보궐선거 때도 국회에서 상정되면 ‘100% 동의’하겠다고 호언했다. 국회에 입성, 민주당 대표가 된 그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권을 포기할 것인가 묻자 그는 ‘상황이 다르다’고 답했다.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은 죽어라 일만 시키고 자기 배만 불리는 것 같은 주인을 쫓아낸다. 그들은 동물이 주인이 되는 농장을 운영하겠다는 돼지 나폴레옹을 따르며 다 같이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천명한 일곱 개의 계명은 차례로 지워진다. 농장에는 평등하게 고통받는 다수의 동물들과 소수 지배자들의 방종과 특권만 남는다.
국회의원의 구속이 가능해지면 집권 세력이 비대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의정 활동이 아닌 개인의 비리를 무마하는 데 면책특권이 이용되어 국회의 힘만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구속되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다 해도 휠체어 타고 방송에 몇 번 나오면 이내 사면되고 복권된다. 독재 정권의 희생자, 민주 투사라고 하면 다음 선거에서 쉽게 당선되기도 했다.
그래도 구속 가능성을 열어두긴 싫을 것이다. 27일 열릴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국회의원도 잘못하면 소환되어야 한다’는 주장 뒤에 ‘나만 빼고!’라는 말을 감춰놓았다는 걸 시인하는 셈이 된다. 민주, 정의, 평등을 큰소리로 주장하는 집단일수록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평등하다. 자기 자신은 그 모든 사람들보다 ‘훨씬 더’ 평등하다.
[203] 아이가 없는 세상
먼저 어린이 놀이터가 철거되었다. 그네는 단단히 줄로 묶여 고정되었고, 미끄럼틀과 정글짐은 새로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그러다 종내는 없어졌다. 학교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는데, 판자로 막아버리거나 성인 교육 센터로 쓰고 있다. 오디오 테이프와 레코드로만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만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못 견디게 괴로워 못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약을 하듯 아이들의 영상을 보면서 살아간다. - P. D. 제임스 ‘사람의 아이들’ 중에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한 학급 학생 수가 70~80명일 때가 있었다. 한 학년은 15학급 내외, 전교생이 수천 명이었다. 현재 지인의 아이가 다니는 지방 학교는 한 학년에 두세 학급, 한 반에 15명, 또 다른 지역 학교의 전교생은 겨우 아홉 명이다. 서울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 듯, 수십 년 역사를 가진 학교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1992년에 출간된 소설은 번식 능력을 잃어버린 인류의 미래를 그린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 어디에서도 아기는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왜 인류 전체가 불임이 되었는지, 원인도 치료법도 모른다. 세상은 종말을 향해 천천히 늙어간다.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낳는 아이는 0.78명, 이대로라면 30년 후 한국인 절반이 사라진다. 국가 소멸이 코앞이라며 출산 휴직, 육아 재택근무,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 등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책을 마련한다고 법석이다. 그러나 출산율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 지금 나도 힘든데?” 젊은 친구들은 말한다. 그른 걸 옳다고 가르치는 교육, 매번 바뀌는 입시 정책, 나날이 높아지는 취업과 내 집 마련의 벽, 치솟는 물가와 세금, 밑 빠진 독이 된 국민연금. 무엇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바보가 되는 나라.
저출산은 젊은 세대의 이기심 탓이 아니다. 자기 핏줄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 애착 때문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식’에게 그 무거운 짐을 떠넘기기 싫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믿음,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이 땅은 한국인 없는 한국이 될지도 모른다.
[204] 가짜 주인공, 진짜 주인공
당신은 나의 마술 극장에 와 있습니다. 당신이 탱고를 배우고 싶든, 장군이 되고 싶든, 알렉산더 대왕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든, 모두 당신 마음대로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하리씨, 당신은 나를 적잖이 실망시켰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까맣게 잊었어요. 당신은 내 작은 극장의 유머를 깨뜨리고 추한 짓을 했습니다. 당신은 잘못을 저질렀어요.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장기 말을 다루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중에서

마약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세상 근심 하나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향기로운 꽃밭에 나른히 누워 햇빛의 애무를 받는 느낌일까? 일반인에게 마약이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마피아, 짧은 깍두기 머리에 용 문신을 한 폭력배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유명인들에겐 마약의 유혹이 훨씬 가까운 데 있는 모양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무대 공포증이 있어도 카메라와 대중 앞에서 웃어야 한다. 주삿바늘 공포증을 견디고서라도 더 예쁘게, 더 젊게 보이도록 시술받는다. 그들이 연기하는 인물도 평범하지 않다. 촬영 기간 내내 반항아, 폭력범, 살인자의 심리에 몰입한다. 꼭 악역이 아니더라도 내공이 깊지 못하면, 배역과 본성 사이의 괴리감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 없다.
사회의 모순을 냉소하며 고립된 채 살아가던 하리 할러는 관습에 길들여진 인간과 본능을 잃지 않은 이리가 내면에 공존하고 있다고 믿는다. 두 인격 사이의 거리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꿈꾸기도 하고 마약에도 손을 대던 그는 마술 극장에서 자기 안에 숨어 있던 다양한 자아를 마주한다. 그들과 함께 웃고 즐겁게 춤출 때 인생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수많은 자아를 연기하는 유명인들은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멀어 자기를 잃기도 한다. 그들만 위태로운 건 아니다. 소설 문장처럼 삶은 종종 ‘무시무시한 공허와 적막감, 끔찍한 위축 상태, 사랑받지 못하고 절망한 자의 텅 비고 황량한 지옥’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견디고 이기며 살아간다. 그들이야말로 삶의 주인, 인생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다.
[205] 마스크서 벗어나기
그녀의 눈물이 내 이마에 떨어지는 게 느껴졌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물이었지. 그녀의 눈물이 내 가면 뒤에 있는 얼굴 전체를 적셨고 내 눈물과 섞여서 뒤범벅이 되었다네. 난 그녀의 눈물을 단 한 방울도 버리고 싶지 않아서 가면을 벗어던졌어. 그런데도 그녀는 날 피하지 않더군. 그녀는 분명 나를 위해서 함께 눈물을 흘렸지. 우리 두 사람은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린 거야. 오, 신이시여. 이제야 최고의 행복을 선물해주셨군요. -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중에서

대중교통의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여부가 15일 결정된다. 하지만 지하철, 버스, 택시에서 필요 없다 해도 병원과 약국 등 의무 지역이 남아 있는 한 마스크는 여전히 외출할 때 꼭 챙겨야 할 필수품이다. 그런데 마스크는 정말 코로나 예방 때문에 쓰는 것일까? 실외는 진작 해제되었는데도 많은 행인들, 등·하굣길 학생들 대부분은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다닌다.
에릭은 천상의 목소리를 타고났지만 흉한 외모 탓에 오페라 극장 지하에 숨어 산다. 그의 얼굴을 혐오하며 가면을 씌워준 건 엄마였다. 마스크는 못생긴 얼굴과 수치심을 감춰주었지만 보는 사람에겐 신비감과 공포심을 주었다. 에릭은 세상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그의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에릭은 가면을 벗고 생긴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었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완전 해제되더라도 계속 쓰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봄이 되니 미세먼지나 자외선 차단에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마스크가 건강을 지켜준다는 믿음, 서로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공중도덕이라는 생각에 길들여진 탓이다. 여기에 더해 ‘뉴욕 타임스’는 한국인이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건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 전엔 열 나고 기침하는 사람을 보면 쾌유를 빌어주는 마음이 먼저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마스크도 안 쓰고 다녀? 옮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앞서지 않을까. 못생겼든 아프든 인간은 자기 모습 그대로 사랑받길 원한다. 외모 집착과 감염공포증은 인간혐오증이 된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건 자기가 자기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는 세상이다.
[206] 타인의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
“주간지 기자라는 여자가 요즘 매일 오는 것 같던데요.” 모리야의 말에 마지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주 열렬한 신자가 되었나 봐. 다음 호에서는 교조님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겠다는 거야.” 그 말에 모리야가 몸을 흔들며 웃었다. “그 여자, 몸매가 상당히 괜찮던데, 어떠세요?” 그러자 마지마가 얼굴을 찡그리며 손사래를 쳤다. “난 그런 근육질은 별로야. 마음에 들면 자네나 어떻게 해 보든지.” “그래요? 그럼 그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 ‘허상의 어릿광대’ 중에서
요즘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특정 종교 단체들의 허상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신이 안 보이면 나를 봐라. 나는 메시아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정말 신이라 믿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신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은 강간, 납치, 폭력 등 혐의로 10년간 형을 살았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성폭력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상태다.
‘용의자 X의 헌신’ ‘방황하는 칼날’ 등 영화로 각색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는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나오는 교주는 몸과 마음이 나약한 사람들을 현혹하여 사기 행각을 벌인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의 믿음과 재산을 빼앗고, 간부들은 신도 부러워할 만한 향락을 누렸다. 진실을 알고 탈퇴하려는 교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오래전엔 버스나 기차에 작은 항아리를 버린 사람이 경찰에 잡혔다는 기사가 종종 나곤 했다. 조상신이 들었다는 신줏단지는 모시는 사람의 정성이 부족하면 해코지한다고 했다.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매일 정성을 들여야 집안이 잘되고 자식이 잘된다니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귀신이 쫓아오지 못하게 먼 데까지 가서 버리고 온 거라 했다.
마음만큼 강한 것도 없지만 마음만큼 약한 것도 없다. 힘들 때는 어딘가 기대고 싶고 한순간에 고통이 사라지길 바라며 신을 찾는다. 그러나 기적을 원하고 마술처럼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성급한 마음이 더 큰 불행을 불러오기도 한다. 타인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노리는 건 언제나 우리의 연약한 마음이다.
[207] 일반인의 자신감, 정치꾼의 열등감
“자신의 나라 말은 익힐 필요가 없다는 거죠? 아일랜드 말예요.” 옆에 있는 사람들도 아까부터 이쪽을 바라보고 힐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난처한 처지에서도 명랑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썼으나 이마에까지 붉은 빛이 번져갔다. “우리나라에도 당신이 모르는 곳, 가보지 않은 곳이 많지 않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우리나라에 질렸소. 지긋지긋하다고요!” 가브리엘은 갑자기 쏘아붙였다. 그녀는 발끝으로 서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친영파!” -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중에서

WBC 최종 우승컵이 일본 야구팀 품에 안겼다. “우리가 우승해야 아시아 다른 나라 야구도 자신감을 갖는다”며 결승전에 임했던 오타니 선수는 최우수선수상을 받자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일전 패배로 속상했던 우리나라 야구 팬들도 오타니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두 편이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에 따른 해외여행 규제가 풀리면서 한국인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나라도 일본이다. 일반인은 K 문화가 일본에서 사랑받는 것이 자랑스러운 만큼 그들의 문화도 편견 없이 즐긴다. ‘수탈과 배상’을 곱씹으며 정치인들이 내건 ‘비굴, 망국, 굴욕 외교’라고 적힌 플래카드만 거리마다 철없이 펄럭인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한 가브리엘은 왜 하필 런던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글을 싣느냐는 비난을 듣는다. 국내가 아닌 외국을 여행할 거란 계획조차 힐난하던 지인은 ‘친영파’라는 말을 내뱉고는 떠나버린다. 가브리엘은 화가 나면서도 그를 연민한다. ‘아일랜드를 사랑한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의 이면에는 자기만의 삶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왕년에 내가” 하고 말한다. 가까스로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오른 사람이 “내가 누군지 알아?” 하고 거들먹거린다. 꿈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자기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은 남을 탓하는 대신 이해하고 배려한다. 스스로 일어설 자신이 없는 사람만 “어떻게 나한테 이래? 사과해, 책임져”라는 요구를 반복한다.
[208] 시시콜콜 정치의 부메랑

“절 살려주시겠어요?” 소년은 흐느끼며 속삭였다. 내가 담당한 사람들은 언제나 이렇다. 불가능한 일을 의사에게 요구한다. 의사는 모름지기 외과의의 손으로 만사를 해내라는 것이다. 그대들이여, 나를 성스러운 목적을 위해 쓰라. 나 같은 시골 의사가 얼마나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다가와 나의 옷을 벗기고 노래를 부른다. ‘놈의 옷을 벗겨라. 그러면 치료하리라. 그래도 치료하지 않으면 죽여 버려라. 놈은 의사일 뿐이니. 의사일 뿐이니.’
- 프란츠 카프카 ‘시골의사’ 중에서
소아과를 닫겠다고 전문의들이 선언했다. 저출산에 의한 환자 감소, 정치계의 선심성 진료비 동결, 보호자의 잦은 소송 등 지속적인 어려움에 부딪혀온 결과라고 한다. 소규모 의원들이 살길을 모색하는 것뿐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산부인과, 흉부외과처럼 소아과도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시골 의사는 멀리 사는 소년을 치료하러 가야 하지만 그의 말은 겨우내 무리해서 왕진을 다니느라 지쳐 죽었다. 다른 말을 빌려주겠다는 불한당은 그 대가로 의사의 하녀를 달라며 추근거린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사는 환자를 보러 왔다. 그러나 이미 손써볼 수 없는 상태다. 말이 쓰러져 죽을 만큼 정부가 부여한 과중한 의무, 하녀를 희생시켜서라도 돌봐야 하는 환자에 대한 책임, 어떤 경우라도 환자를 살려내라는 보호자와 세상의 과도한 기대에 짓눌린 의사는 무력감에 빠진다.
어린이를 보호한다며 ‘민식이법’을 만들고, 좁은 골목까지 강제했던 ‘3050 속도제한’은 효과적이었을까. 한때는 동네 산책로에 중앙선을 긋고 보행자 통로 절반을 자전거에 내주더니, 이번엔 자전거 통행 금지 플래카드를 달아놓았다. 그러자 부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꽃놀이 나온 아이들에게도 꼬장꼬장한 어른들이 호통을 친다.
비행기를 탄 의사는 술부터 한 모금 마신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있다. 위급 환자가 생겼을 때 애써봐야 성추행범이나 살인자로 몰려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치와 법이 시시콜콜 제재하고 간섭할수록 개인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노력할 여지는 줄어든다.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건 언제나 그들의 배려와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209] 공공장소 TV, 서비스일까?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기록된 역사의 마지막 글자에 다다를 때까지 죽음은 이렇게 살금살금 걸어서 날마다 조금씩 다가오고 있지. 그리고 우리의 과거는 모두 바보들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비춰 주었을 뿐. 꺼져 간다, 꺼져 간다,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단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 나와서 뽐내며 걷고 안달하며 시간을 보내다 사라지는 서툰 배우: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찬 백치의 이야기. -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중에서

틀니를 맞춰야 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 치과에 간다. 치료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으려면 정면에 걸려 있는 TV에 저절로 눈이 간다. 하루는 사람이 많아 입구 쪽에 앉았다. 맞은편 넓은 창문과 그 너머로 펼쳐진 하늘과 구름, 저 멀리 울창한 벚나무 숲이 보였다. 그 뒤로는 대기자가 없어도 창을 마주보고 앉는다.
한번은 늦은 밤,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에 간 적 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이 한가득이어서 대기실에 크게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를 견디기 힘들었다. 언제 호출이 올지 모르니 밖에 나갈 수도, 이어폰을 꽂고 다른 걸 들을 수도 없었다. 다른 보호자라고 달랐을까. 담당자에게 소리를 줄여 달라 부탁했는데 별 이상한 요구를 한다는 듯, 안 된다고 했다.
미용실, 식당, 병원, 공항, 은행 등 어디에나 TV를 틀어놓는다. 보기 싫으면 고개를 돌리거나 눈감을 수 있지만 소음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텔레비전이 귀한 시절엔 공공장소 TV 시청이 서비스였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것을 보고 듣는다. 조용한 음악과 달리 공간 소유주의 결정으로 틀어놓은 TV는 폭력에 가깝다. 아무도 안 본다면 전력 낭비다.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맥베스는 ‘인생은 그림자, 잠시 무대 위에 선 배우일 뿐’이라는 유명한 대사를 읊조린다. 공공장소에서 리모컨을 쥔 사람은 무엇을 보거나 보지 않을 자유, 무엇을 듣거나 듣지 않을 자유를 빼앗는다. 서툰 배우처럼 살다 가는 그림자 같은 인생인데도 현대인은 그 짧은 무대 위에 펼쳐진 더 작은 무대, 더 서툰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분노’에 눈과 귀, 생각과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간다.
[210] 복수 드라마 전성시대

도둑이나 살인자를 결코 무서워해서는 안 돼. 그건 외부의 위험일 뿐이며 조그마한 위험이야. 우리가 두려워할 건 우리 자신이야. 편견이야말로 도둑이야. 악덕이야말로 살인자야. 큰 위험은 우리 내부에 있지. 우리의 머리나 지갑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실로 우리의 영혼을 위협하는 것이야. 위험이 다가온다고 생각될 때는 다만 기도하면 돼.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형제가 우리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를 드리기만 하면 돼.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중에서
분노와 복수를 미화하는 영화, 드라마가 인기다. 주연과 조연 구분 없이 욕설을 대사마다 후렴처럼 붙이며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싸운다. 죄책감 없이 마약을 하고 주먹과 칼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히고 온갖 비행을 일삼는다. 그 후 피해자는 폭력과 살인을 계획, 사주하고 가해자를 파멸시킨다. 시청자는 통쾌한 복수라며 환호한다.
사법이 불공정해 보일수록 대중은 사적 복수에 공감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큰 벌을 받는데, 어떤 사람들은 큰 죄를 짓고서도 별별 특권을 누리며 세상의 주인공처럼 살아간다. 나쁜 짓을 잘 할수록 떵떵거릴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악을 모방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인간의 정의감은 사적 제재가 유일한 해법이라 믿는다. 피해자의 감정에 몰입한 관객은 저마다 사형선고를 내리고 가해자를 해치는 또 다른 가해자 즉, 살인자, 폭력 집단, 킬러 편에 선다. 하지만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 생각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엄연한 범죄다.
장 발장의 도둑질을 용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 비앵브뉘 주교는 산적이 출몰하는 산골 마을에 간 적 있다. 위험하다고 모두가 말렸지만 주교는 소임을 무사히 마친 뒤 산적에게 선물까지 받아 들고 내려온다. ‘무서운 건 산적이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편견과 악덕’이라 말한 주교는 장 발장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그를 집요하게 쫓던 자베르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이 납치돼 살해당했다. 투자 손실에 대한 보복으로 드라마처럼 살인을 사주, 청부한 사건이었다. 선과 악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러나 착하게 살면 바보가 된다며 우리는 너무 자주 원한과 복수에만 눈과 마음, 시간과 열정을 할애하며 살아간다.
2023-04-26
[211] 왕이 된 원숭이
춤을 춰서 좌중을 즐겁게 한 이유로 원숭이가 동물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여우는 그런 원숭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고기가 놓인 덫을 발견한 여우는 원숭이를 찾아가서 귀한 음식을 발견했는데 왕에게 진상하려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고 말했다. 원숭이는 지체하지 않고 달려갔다가 덫에 걸리고 말았다. 원숭이는 여우가 자기를 함정에 빠뜨렸다며 화를 냈다. 여우가 말했다. “야, 원숭아. 넌 네 자신을 동물의 왕이라고 부르지만, 넌 그렇게 속아 넘어갈 정도의 지각밖에 없는 놈이야.” - 이솝 우화 ‘왕이 된 원숭이’ 중에서

전 정권 수장의 퇴임 후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홍보 영상이 공개되었다. 허연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주인공은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에 허망하다”고 말했다. 정치, 안보, 외교, 경제 등 국가의 눈부신 발전을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은 그가 성취한 것이 무엇이냐 되묻고 있다.
집권 기간, 나랏빚은 400조가 늘었고 집값, 물가, 금리는 치솟았다. 출산율은 최저를 기록했고, 탈원전과 태양광 부정 특혜 사업, 정권의 성공 신화를 위한 통계 조작도 뒤따랐다. 남북 군사 합의, 판문점 USB 전달,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 대응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 등 이해 못 할 북한 관련 행보는 셀 수도 없다.
성취(成就)는 ‘목적한 대로 일을 이룬다’는 뜻이다. 홍보 영상의 또 다른 출연자 대사처럼 ‘밤잠 설쳐가며’ 그가 달성하려던 목표는 대한민국의 성공이었을까? 탈원전 폐기, 부동산 감세, 스쿨존 속도 제한 완화, 마약 수사권 복원, 북한 도발 강력 대응, 한일 한미 관계 회복 노력이 허망함의 이유라면, 지난 정부가 목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화 속 원숭이는 멍청해서 덫에 걸렸지만 지난 정권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구호 속에서 무너뜨리고 싶은 거 다 무너뜨리며, 건국 이후 성장해 온 대한민국을 과거로 되돌렸다. 많은 국민이 분노하다 못해 허망해하던 5년이었다. 퇴임 1년,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연금 월 1400만원과 65명의 경호 속에서 국민 세금으로 풍족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면, 겸손해야 한다.
[212] 한 달 밥값 안 돼도 뇌물

이제야 알겠군. 나는 허버트의 오랜 친구이고, 그의 업적을 몹시 존경하는 사람이오. 그런데 당신이 직접, 간접적으로 나를 공격했소. 그래서 당신을 천거하지 않는 것은 보복 행위라고 오해될 소지가 있었소. 나는 두 사람의 장점을 면밀히 대조했고, 그 결과는 당신이 알고 있는 바와 같소. 나는 아마도 내가 복수심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허영심에 무릎을 꿇었던 것 같소.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당신의 전략은 적중했소.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뇌물’ 중에서
2021년 민주당 내 선거에서 의원 수십 명에게 돈 봉투가 뿌려졌다는 의혹이 터졌다. 야당 최고위원은 ‘당과 캠프는 구분해야 한다’며 책임에서 발을 뺐다.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하지만,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50만원은 실무자에게 지급할 수 있으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300만원을 욕심낼 이유가 없다’는 말도 했다.
소설 속 교수는 학술회의에 보낼 두 후보 중 한 명을 추천해야 했다. 그가 허버트와 좋은 관계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고 에이나르손은 교만한 사람이었다. 때마침 교수를 공격하는 논문이 발표된다. 익명이었지만 에이나르손이 썼다는 건 학계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었다. 교수는 자기가 공정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에이나르손을 뽑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소설의 제목은 ‘뇌물’이다. 공개적 비판과 공격이 금품보다 확실하게 선택에 영향을 미쳤으니 영악한 뇌물이 된 셈이다. 하물며 돈이다. 국회의원에겐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푼돈’이라지만 받은 게 있으면 갚고 싶은 게 인간의 양심이다. 더구나 선거 기간 중 금품 요구나 알선, 제공은 범법 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현직 야당 최고위원이 방송에 나와 ‘밥값도 안 되는 돈’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선거 때마다 금품과 뇌물이 오가는 건 다반사인데 왜들 놀라고 검찰까지 나서서 수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법은 우리가 만든다. 우리가 만든 법이니 우리는 법 위에 있다’는 생각이 없다면 가능한 말일까. 면책특권, 불체포특권까지 누리며 위법을 죄라고 생각 못 하는 사람들이 1인 헌법 기관,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현주소다.
[213] 삶의 이유를 발견한 여행

사람들은 굳이 집단 자살을 감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고향 핀란드에서 엄청나 보였던 문제들이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아주 사소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운명을 짊어진 동료들과의 긴 여행은 다시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유대감은 자의식을 굳건하게 다져주었다. 그리고 좁은 생활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자살자들은 새롭게 삶의 재미를 발견했다. 초여름에 생각했던 것보다 미래가 훨씬 더 밝게 보였다.
- 아르토 파실린나 ‘기발한 자살 여행’ 중에서
자살은 어느 시대, 어떤 세상에서든 벌어진다. 지난달에도 서울 강남에서 10대 여학생이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며칠 전에는 한남대교에서 죽음을 생중계하려던 10대 여학생이 경찰에 제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자살을 고민한 적 있다고 한다. 자식을 살해하고 자살한 부모도 있다.
소설 속 남자는 우연히도 같은 장소에서 자살하려던 대령을 만나 이야기하다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 두 남자는 덤으로 얻은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자며 자살 희망자들을 모집한다. 마음을 털어놓다 보면 그들도 죽음을 재고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수백명이 연락해왔고 그중 20명 이상이 집단 자살을 하자며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에는 희망과 꿈과 위안’이 존재한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언제부턴가 자살이라 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이라 한다. 선택이란 심사숙고 뒤의 판단, 자유로운 결정에 따른 책임,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 하지만 자살은 균형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저지르는 최후의 결행이다. 거기엔 책임도 없고 기회도 없다. 상실감과 슬픔, 떠난 이의 인생까지 떠맡아야 할 책임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남겨질 뿐이다. 하물며 가족을 살해한 뒤의 자살일까.
오랜 가뭄을 풀어줄 단비가 주말마다 내렸다. 초록은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보는 이의 마음까지 푸르게 물들인다. 우리를 눈부시게 하는 건 온실에서 핀 꽃의 화사함이 아니다. 모진 겨울에도 꽃과 열매를 꿈꾸며 이 악물고 애써온 모든 생명의 눈물겨움이다.
[214] 관객 수 적어도 성공하는 영화들
2주도 못 되어 그는 사랑에 빠졌다. 극장에서 순진한 애인 역을 맡고 있는 벨트너양이었다. 그는 먼저 그녀의 얼굴에 반했고 그다음에는 그녀의 손에 반했으며 그다음에는 고대 연극에 나오는 어떤 배역을 할 때 맨살이 드러나곤 하는 그녀의 팔에 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녀를 완전히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영혼까지도. 그의 사랑에는 엄청난 돈이 들었다. 이틀에 한 번씩은 극장의 일층 상등석 표를 사야 했다. - 토마스 만 ‘타락’ 중에서

2017년엔 영화 ‘노무현입니다’, 2019년엔 ‘시민 노무현’이 나왔다. 작년엔 ‘그대가 조국’, 이번 달엔 ‘문재인입니다’가 개봉되었다. 법원과 인권위원회에서 사실로 인정한 성추행 사건과 관련,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결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도 7월에 상영될 예정이다. 현 야당과 뿌리가 닿아 있는 정치인들이 영화 주인공으로 재탄생, 영웅인 양 미화되고 있다.
‘노무현입니다’는 관객 180만명을 동원했다. 전주영화제에서 제작 지원금 1억원을 받은 ‘문재인입니다’는 영화제 기간에 특별 상영회도 열었다. 일반 후원금도 단 몇 시간 만에 1억원을 모았고 개봉 첫날 관객 수도 1위를 기록했다. 자녀 입시 비리 사건으로 아내가 4년형을 받아 복역 중인 전 법무부 장관을 피해자로 그린 ‘그대가 조국’은 30만 관객, 네티즌 평점 1위에도 올랐다.
소설 속 청년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청순해 보이는 여배우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행복도 잠깐, 그녀가 청년 몰래 몸을 팔아 돈을 벌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짓은 누구나 하는 일이잖아요. 화장품 같은 것도 사야 하고. 내가 그렇고 그런 여자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여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청년의 사랑은 끝났다.
일반인은 실체를 알고 나면 가슴이 찢어져도 연인과 헤어진다. 이념과 정당에 인생과 밥줄이 묶여 있지 않은 이상, 거짓에 속기 위해 영화표를 사지도 않는다. 그러나 180만명의 흥행 기록을 깨지 못했다고 실패한 건 아니다. 기존 지지자들의 결속력을 높일 뿐 아니라, 휴대폰과 TV로 시청할 수 있게 되면 공감의 파급 효과는 무한해진다. 그들만의 영화를 계속 제작하고 끊임없이 홍보하는 이유다.
[215] 정치인의 내면에도 부처가 있다고 하는데
죄인도 언젠가는 열반에 이를 것이고 붓다가 될 것이네. 그런데 이 ‘언젠가는’이란 것은 한낱 미망이요, 비유에 불과한 것일세. 죄인은 부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네. 죄인은 발전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일세. 죄인의 내면에는 오늘 이미 미래의 부처가 있네. 죄인의 미래는 이미 죄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이지. 그러니 자네는 죄인 속에서, 자네 속에서, 모든 사람들 속에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부처를, 숨어 있는 부처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네.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중에서
2018년, 국가 비상사태를 대비한 군의 계엄령 실행 계획을 군 인권 단체가 폭로했다. 전 정권은 군사기밀 문서가 어떻게 민간 단체에 유출되었는지는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내란을 음모한 쿠데타 세력으로 몰아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했다. 지난해 가을, 여당은 2018년 당시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령관, 군인권센터 소장을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인터넷 뉴스 창엔 하루도 빠짐없이 세상의 소란과 혼란이 보도된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정치계의 부정부패가 매일 쏟아진다. 수많은 실정을 벌인 전 정권의 퇴임 공직자는 기무사 해체와 관련해서도 직권남용으로 고발당했다. 하지만 영화도 찍고 달력도 팔고 책방도 열고, 봉하 마을과 광주에 다니며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싯다르타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다. 그러나 가르침을 통해 진리를 얻을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세속으로 돌아와 인생의 희로애락을 두루 경험한다. 마침내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뱃사공이 된 그는 강을 건너는 수많은 사람과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스승 삼아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 주말엔 연등 축제가 열렸다. 대규모 모임이 허락되지 않아 지난 3년간 볼 수 없던 장관이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많은 것이 금지된 시절이었다. 소설 속 깨달음에 따르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미 부처다.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북한과 권력에만 머리 조아린 전 정권의 주역들도 나의 스승이고 미래의 부처다. 과연 범부에게 부처의 길은 멀고, 부처님의 자비는 바다보다 크고 넓고 깊다.
[216] 영화, 세상을 넘어뜨리거나 일으켜 세우거나

최고위층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죠. 하지만 이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얀시의 하루를 되풀이합니다. 그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그가 믿는 것을 따라 믿으면서. 우리는 11년 동안 쉴 새 없이 대중을 조작해왔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안에 어떤 종류의 다양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세대 전체가 모든 문제에 있어 얀시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길러졌습니다. 영화, 드라마, 공연, 광고 등, 얀시의 물결은 꾸준히 공급되고 있습니다. - 필립 K. 딕 ‘얀시의 허울’ 중에서
전 정권이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원전을 했다 아니다 말이 많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450만 관객을 중심으로 과장된 원전 공포에 노출된 사람들이 그 정책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탈원전으로 지난 5년간 한국전력공사는 손실을 수십조원 입었고 태양광 사업으로 국토는 황폐해졌다. 국가와 국민이 감당해야 할 피해는 앞으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로 끝나지 않는다. 가령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는 1980년의 광주를, ‘태일이’는 노동운동을, ‘변호인’ ‘킹메이커’는 현 야당 출신 대통령들을 미화한다. 반면 ‘백년 전쟁’ ‘남산의 부장들’ ‘26년’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을 이룬 대통령들을 부정한다. ‘쉬리’ ‘베를린’ ‘공조’는 북한이 주적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리고 ‘괴물’ ‘귀향’ ‘암살’은 반미 반일 감정을 부추긴다.
소설 속 사회는 얀시라는 인물을 통해 대중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얀시를 삶의 모델이자 정신적 멘토라고 믿는다. 일상생활을 모방하는 것은 물론 정치, 역사, 교육, 과학, 문화에 대해 그와 똑같이 말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얀시는 엄청난 자본과 수많은 인력을 투입해 만든 정부 정책의 광고 모델로 영상에서만 존재하는 가상 인물이다.
6월 1일 개막하는 제3회 서울락스퍼영화제는 원전에 대한 인식을 바꿔줄 영화 세 편을 공개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뉴 클리어 나우’를 개막작으로 선정하고 ‘판도라의 약속’과 ‘아토믹 호프’도 함께 상영한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북한 인권, 한국전쟁 영화 특별 기획전도 갖는다.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영화가 사회를 기울게 할 수 있었다면 영화로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217] 시민 단체라는 이름의 국민 혈세 절도단

“세계 의회의 계획 없이는 태양도 떠오를 수 없다. 전 세계 양초 관리 의회들의 허가를 받아, 전 세계에서 필요한 양초 수량을 결정하고, 횃불을 대체할 양초 생산 계획을 최적화하는 데 무려 5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이는 수십 국가에서 일하고 있는 수백만 명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계획을 수정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우리는 이렇게 빨리 또다시 계획을 변경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매우 사악한 일이다. 이것은 파괴되어야 한다.” - 아인랜드 ‘우리는 너무 평등하다’ 중에서
국고지원금은 ‘눈먼 돈’이라고 불렀다. 방법만 알면 쉽게 타낼 수 있다고 했다. 사업 성과 보고서도 대충 제출하면 토해낼 일은 없다고 들었다. 지난 정권 아래, 지자체를 제외하고도 민간 단체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연평균 5조원, 해마다 4000억원 늘었다. 지원 단체도 수천 곳 늘었다. 최근 정부가 시민 단체 일부를 감사한 결과, 지난 3년간 1865건 부정 수급, 314억원 불법 착복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국민 혈세 절도단이다.
노후한 신호기 고장으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로 사상자를 1400여 명 낸 인도에서 건설 중이던 대교가 또 무너졌다. 정부의 부정부패 탓이라는 그 나라 정치인의 비난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철도 시스템 보완과 교량 건설에 쓰일 세금과 자금이 엉뚱한 주머니로 들어갔으리라는 추측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사회는 평등하다.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시민은 신체 조건이 우월한 것도, 지능이 뛰어난 것도 죄다. 모두가 평등한 건 아니다. 지식을 금지하고 과거를 은폐하고 개인을 통제하는 건 의회다. 결정에 불복하면 감금하고 채찍질한다. 주인공은 사라졌던 전기 사용법을 찾아내 인류에게 빛을 선물하려 하지만 의회는 양초를 고집하며 폐기하라 명령한다.
민주, 평등, 정의를 외치지 않는 권력자와 시민 단체가 있을까. 그러나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는 정치인에겐 돈이 먼저이고, 평등을 크게 주장하는 단체일수록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 법이다. 차별화를 부추기고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는,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수백억짜리 고급 아파트 광고가 차라리 솔직하다.
[218] ‘기브 앤드 테이크’도 모르는 KBS
“나는 관객들이 재미있어하는 게 정말 즐거워. 나는 그들을 약간 간질여주고 돈을 받는 거지. ‘빌어먹을 칼잡이 녀석은 정말 겁이 없어. 그런데 나는 언제나 겁이 난단 말이지. 젠장’ 하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지. 왜냐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겁을 내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공포심을 무거운 그림자처럼 자신들 뒤에다가 매달고 다닌다네. 그런데 나는 그들이 공포심을 잊고 잠시라도 즐거워하는 게 좋아. 그것이 내가 미소를 지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단 말인가?”
-하인리히 뵐 ‘칼로 먹고사는 사나이(der mann mit den messern)’ 중에서
텔레비전 없이 산 지 10년이 넘었다. 이후 시청료를 내지 않는다. 한국전력 고객센터나 KBS 수신료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텔레비전이 없다고 하면 전기료에서 시청료가 빠진다. TV가 아니어도 OTT 서비스가 다양해진 요즘, 필요한 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지상파 방송들이 경쟁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정치 편향, 역사 왜곡, 가짜 뉴스를 쏟아낸 지 오래다. 특히 직원 절반 이상이 억대 연봉자라는 KBS는 적정 수신료가 9500원이라며 평양 지국 설립 계획안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분리 징수를 권고하자 야당과 함께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유프는 서커스단에서 칼 묘기로 먹고산다. 그는 관객에게 더 큰 재미와 웃음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관객에게 사랑받는 길이었다. 그는 살길이 막막해 찾아온 전우를 설득해 무대에 세운다. 눈 깜짝할 사이, 칼 13자루가 날아가 남자의 몸 주위에 박히자 관객들은 열광한다. 서커스단장이 유프와 친구의 출연료를 대폭 올려준 것은 당연했다.
인생도 하루하루 전쟁이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게 어디 쉬운가. 그래도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화질 좋은 기기를 사고, OTT 매체에 돈을 내고, 퇴근 후 선택한 프로그램을 보며 피로를 푸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작은 행복이다.
공영방송은 국민에게 어떤 재미와 이익을 주었을까? 그들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기에 애써 번 돈을 내놓으라 당당히 요구할까?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반대하는 야당과 강제 징수를 유지해 달라고 떼를 쓰는 KBS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 대다수가 지상파와 공영방송을 시청하던 시절은 끝났다.
[219] ‘말 궁둥이에 붙은 파리’를 꿈꾸는 사람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영채신이 말했다. “당신은 세상에 나쁜 평판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나는 남의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오. 일단 발을 한번 잘못 디디면 그야말로 몸을 망치고 창피를 사게 될 뿐이오.” 처녀가 말했다. “한밤중이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걸요.” 영채신은 다시 꾸짖었다. 처녀가 그래도 머뭇거리자 영채신은 호통을 쳤다. “냉큼 돌아가지 못할까! 그러지 않으면 남쪽 방의 서생을 불러서 알릴 테다!” 처녀는 겁을 내면서 그제야 물러났다.
-포송령 ‘천녀유혼’ 중에서
▲천녀유혼의 원작 소설
주한 중국 대사는 야당 대표를 만찬에 초청하고, ‘한국의 대단한 정치인’이라고 띄워주며 많이 가르쳐달라고 했다. 대표가 한중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양국의 신뢰와 존중을 이야기하는 동안 생중계 중이던 민주당의 유튜브 댓글 창에는 ‘대통령 포스, 진짜 대통령, 실질적 대통령’이라는 지지자들의 감탄사가 올라왔다.
외교관은 공식적 스파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국 정치인과 밥 먹고 농담하는 것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중국 대사는 ‘한중 문제의 책임은 중국에 없다, 미국에 베팅하는 건 잘못이다, 후회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200자 원고지 16장 분량을 14분 동안 읽었다. 어른이 아이를 혼내듯, 양복 깃에 태극기 배지를 단 야당 대표를 옆에 앉혀놓고 대한민국의 외교 현안을 조목조목 비난했다.
홍콩 배우 왕조현과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 ‘천녀유혼’은 청나라 작가 포송령의 소설이 원작이다. 영채신은 우연히 묵게 된 곳에서 만난 천하절색 섭소천의 유혹을 단호히 내친다. 그녀가 내민 황금도 ‘도리에 어긋난 재물은 주머니만 더럽힌다’며 내던진다. 젊은 남자들을 홀려 죽이던 처녀 귀신 섭소천은 올곧은 마음을 지킨 영채신에게 감동, 그를 살리고 성공과 행복도 선물한다.
부적절한 제안과 불의한 재물을 물리치지 못하면 신세를 망치지만, 정치 세계에는 수치심도 없고 책임도 없다. ‘대단한 정치인, 진짜 대통령’이란 찬사를 들었지만 당대표는 한중 외교의 골만 깊이 팠다. 그 와중에 야당 의원들은 중국 초청으로 공짜 여행을 했다. 일본 대사관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중국이라는 말 궁둥이에 붙어 만 리를 가는 파리’가 되자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바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3.06.28
[220] 정치가 키우는 공포 괴담

“애초에 수국 저택의 유령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우습게 여긴다거나, 유령을 보았다는 소문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본 사람도 있으리라. 다만 그것은 눈의 착각이다. 저택에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 들리기 시작했다는 괴상한 목소리의 정체도 바람소리나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가 아닐까 짐작했다. 수국 저택에서 일어났던 괴상한 일은 전부 설명할 수 있다. 다만 그 설명으로 진정되지 않는 마음이 있는 한, 아무리 가르치고 꾸짖고 비웃어도 소용이 없다.”
-미야베 미유키 ‘안주’ 중에서
며칠 전 이웃 집 현관 앞에 천일염 10kg이 배달돼 있었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작은 포장만 눈에 익은 터라 처음엔 쌀 포대인 줄 알았다. 소금을 사재기한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해산물 시장도 한산하다고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2년을 무탈하게 살고도 우리 사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던 2011년보다 더 큰 공포에 떨고 있다.
사려 깊은 소설 속 부부는 조용한 폐가를 얻어 은퇴 후 삶을 시작한다. 집값도 싼 데다 수국이 아름답게 피는 저택이었지만 유령이 산다는 소문이 자자한 흉가였다. 원혼이 있다 해도 자신들을 원망할 이유가 없고, 나타나면 하소연이라도 들어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유령은 없었다.
공포는 유령과 같다. 뇌 송송 구멍 탁 광우병, 전자파에 튀겨진 참외, 세슘 우럭, 방사능 소금. 오싹한 괴담은 한번 귀에 박히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알을 깨고 나와 처음 본 것을 어미라고 인식하는 오리처럼, 조금만 노출돼도 병들어서 죽을 거라는 공포가 각인되면 과학적으로 아무리 증명해주어도 대중은 안전을 믿지 않는다.
야당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드 환경영향평가도,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피해가 과장되었다는 원자력학회의 성명도 묵살하고 장외투쟁에 나섰다. 북한과 중국 관련 문제는 억지를 써서라도 편들고 감싸면서 반미 반일 선동에는 늘 열심이다. 미숙한 정치인들은 ‘세상은 틀리고 나만 옳다. 너의 분노는 정의로우니 나만 믿고 따르라’며 앞장선다. 그들이 원하는 건 악당을 물리치고 유토피아를 안겨줄 영웅처럼 보이게 할 혼란, 이것은 국민을 불안에 빠뜨릴 공포와 분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