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바른소리 2023-06/ 06.01(목) 전쟁도 아닌데 47조원 손실이라니… - 06-30 한국 인구위기 ‘퍼펙트 스톰’ 직면…발상 전환 시급하다

상림은내고향 2023. 6. 28. 20:35

바른소리 2023-06/

06.01(목) 전쟁도 아닌데 47조원 손실이라니…

세금 쓰는 권력의 ‘탈원전’은
세금 낸 기업·국민에 대한 폭력
땀 한 방울 없이 낸 47조 손실을
원전 戰士의 피땀으로 또 메울 것

▲2018년 11월 28일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 원자력 공장 옥외 작업장에 신한울 원전 3·4호기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에 들어갈 부품들이 벌겋게 녹이 슨 채 쌓여 있다. 두산중공업은 2015년 11월 한국수력원자력의 승인을 받아 신한울 3·4호기 원자로 제작에 착수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작업이 올스톱됐었다./김동환 기자

 

1966년생 장성호씨는 군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에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18세 때였다. 공부가 더 하고 싶어 대학이 없는 거제를 떠나 1987년 창원의 한국중공업에 입사했다. 현 두산에너빌리티(두산중공업)다. 전문대학에 진학해 용접을 전공했고, 지금은 박사 과정을 다니고 있다.

 

흔히 용접의 꽃을 조선소라 하지만, 원전 용접에 비하면 한 수 아래다. 용접 대상의 두께가 원자로는 30㎝ 수준이다. 크랙(갈라진 틈새)이 생기면 안 되니, 용접 부위에 수분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120~150도에서 예열 후 용접한다. 불가마가 따로 없다. 한번 지은 원전이 40년, 아니 80년도 넘게 버티는 데는 ‘신의 경지’인 용접 기술 덕분이다. 전압, 전류, 속도의 3박자를 절묘하게 조합해야 한다. 그 노하우는 인공지능도 쉽게 못 배운다.

 

사람 몸도 근육이 뭉치면 문제가 생기듯 용접 내부에도 응어리진 곳이 있을까 봐 용접 후 595~610도에서 열처리를 해야 한다. 사후 검사도 치밀하다. 표면 결함은 기본이고 초음파 검사, 방사선 투과 시험 등을 ㎜ 단위로 한다. 사람 몸을 X-레이와 MRI로 검사하는 수준이다. 아래 보기, 수평 자세, 수직 자세, 위 보기 자세 등 20가지가 넘는 기술마다 별도 전문가가 있을 정도다.

 

이런 기술을 죽어라 배운 장씨는 영광 원전 3, 4호기로 시작해 한빛 3, 4, 5, 6호기 등 국내 원전 17기, 중국 진산 3호기, 미국 VC 서머 2호기 등 해외 원전 11기까지 총 28기 원자로 용접에 땀을 바쳤다. 용접으로 국가명장 칭호도 받았다.

 

그런 그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겪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이었다. 탈원전 후폭풍으로 동료 절반 이상이 그만두는 상황에서도 후배 용접공들을 다독이며 버텨, 지금 기술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도 역경을 버티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원자로 34대, 증기발생기 124대를 한국과 중국, 미국 등에 공급했던 두산은 원전 핵심 기기를 일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공장이다. 그런 공장이 원전 공사를 다시 못 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으로 버티기에 돌입했었다. 한때 원자력 부문만 56개 팀, 1005명이었지만 2021년에는 49개 팀, 729명으로 30% 정도 쪼그라들었다. 초일류 기술진이 떨어져 나가는 건 생살이 찢기는 고통이다. 핵심 인력 지키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300명의 용접공 명단도 포함됐다. 일감이 30% 수준까지 줄어 할 일 없어진 용접공을 다른 부서로 배치하기도 했다. 심지어 손맛을 잃을까 봐 모형 원자로까지 만들면서 기술이 녹슬지 않도록 했다. 그래도 180여 명이 떠났다.

탈원전은 한국 산업사에서 정치가 산업을 무너뜨린 최대 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 참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발생한 손실만 22조9000억원에, 앞으로 날아올 청구서가 24조5000억원이다(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여기엔 장씨와 두산 같은 무너진 원전 생태계의 손실은 포함도 안 돼 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저지른 손실이 47조원을 넘는다니 믿기지 않는다. 선출된 권력이 정책 결정을 하는 시스템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이란 국민이 낸 세금을 대신 쓰는 주체란 뜻이다. 그들이 세금 내는 기업과 국민을 돕지는 못할망정 폭력으로 망가뜨렸다면 최소한의 사과라도 있어야 한다. 그게 수습에 나설 용접공 같은 원전 전사(戰士)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다. 사과는 일본만 하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 이인열 산업부장

 

06.01 김명수 대법원 교체 시작, 사법부 흑역사 끝나야 한다

대법관 후보추천위가 7월 퇴임하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의 후임 후보 8명을 선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들 중 2명을 선정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게 된다. 이 인사가 끝나면 김 대법원장도 오는 9월 퇴임하고, 내년에도 6명의 대법관이 교체된다. 윤 대통령 임기 안에 대법관(대법원장 포함) 14명 중 13명이 바뀌게 된다. 대법원 교체와 같다.

김명수 사법부 6년은 ‘사법의 흑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이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인권법 출신 판사들을 요직에 앉히고 권력 비리 재판에서 정권 측에 불리하게 판결한 판사들은 한직으로 보냈다. 대법원도 대법관 14명 중 7명을 우리법·인권법, 민변 출신으로 채웠다. 특정 성향 출신이 사법부를 이처럼 장악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대법원은 ‘TV 토론에서 한 거짓말은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판결을 내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 판결을 놓고 대장동 업자가 대법관을 상대로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있다. 사실이라면 대법원이 문을 닫아야 할 사태다.

 

하급심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1심을 맡았던 우리법 출신 판사는 15개월간 본안 심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2020년 1월 기소된 이 사건은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이다. 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후원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면죄부성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2년 5개월이 걸렸다. 조국 전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1심 판결도 3년 2개월 걸렸다. 판사가 정권 편에 서지 않았다면 이럴 수 있는가.

김 대법원장 스스로도 지난 정권 때 민주당이 탄핵 대상으로 지목한 후배 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 민주당에 잘 보이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래 놓고 사표 수리 거부한 적 없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그의 측근 판사들은 법복을 벗자마자 청와대 비서관이 됐고, 전임 사법부의 ‘사법 농단’을 고발했다는 판사들은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겉으론 사법 개혁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법부 독립을 짓밟은 것이다.

사법 행정도 엉망이었다. 김 대법원장 재임 5년간 전국 법원에서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로,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 그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판사들이 법원장을 투표로 뽑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하면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탓이 크다. 판사들 ‘워라밸’은 좋아졌지만 재판 지연으로 국민 고통은 더 늘어났다.

 

법원은 공정과 중립이 생명이다. 그래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법원이 딛고 서야 할 그 토대가 김명수 사법부에선 다 무너졌다. 이번 대법관 인사가 신뢰를 잃은 사법부를 정상화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1 대법원 불신 부채질한 김태우 유죄 판결

문재인 정권 시절 청와대 비리를 폭로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지난달 18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김 전 구청장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시절인 2018년 말 문재인 청와대의 비위 의혹 30여 건을 폭로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 희대의 농간을 부리고 있다”며 그를 고발했다. 하지만 그가 폭로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유재수 전 부산 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은 사실로 인정돼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이 났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청와대 인사비서관은 유죄가 확정됐고, 조국 민정수석과 백원우 비서관도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개울물을 흐리고, 농간을 부린 것은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도이치 문건 폭로 경관 선고유예
공익 기여 더 큰 김태우는 징역형
김명수 법원, 이중 잣대 의혹 자초

김 전 구청장의 폭로가 없었다면 이런 비리는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무상 비밀 누설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하급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부 보고 절차와 미확인 사실을 공개했고, 국민권익위나 수사 기관에 신고·고발하기에 앞서 언론에 폭로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납득하기 어렵다. 권력의 비리 고발자는 권력의 보복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당시 권익위나 수사 기관은 친정권 성향이 명백했다. 김 전 구청장이 이런 기관들에 먼저 제보했다면 제대로 처리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또 제보 사실이 청와대로 들어가, 중징계당했을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김 전 구청장 말고도 내부 고발자는 언론을 통해 비리를 폭로할 수밖에 없다. 김건희 여사가 언급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 내사 보고서를 폭로한 경찰관도 언론에 제보했다. 그는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내사가 중지된 사안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는 등 공익에 부합한 측면도 있다”며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김 전 구청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런 판례와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김 전 구청장이 보수 정권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내부 비리를 언론에 폭로했다면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현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을까 궁금하다.

 

‘공무상 비밀’은 국가 안보나 정책이지, 공직자 비리가 아니다. 공직자 비리를 ‘공무상 비밀’로 못 박고, 폭로한 신고자를 벌주는 건 파시즘 독재의 전형이다. 김 전 구청장이 서슬 퍼런 문재인 정부 초반에 정권 비리를 폭로해 유죄를 끌어낸 공익적 성과는 ‘도이치 보고서’를 공개한 경찰관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부 절차 누설 같은 형식 논리를 앞세워 징역형을 선고해 임기 1년도 안 된 구청장직을 상실케 한 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대법원은 김 전 구청장이 감찰을 받던 도중 폭로했다며 폭로의 동기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공무상 비밀 누설의 유무죄를 따지는 데 인사 불만 등 제보자의 개인적 동기는 상관이 없다”는 게 과거 대법원 판례니,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공익 신고를 할 수 있겠나.

 

이례적으로 신속한 유죄 확정도 의문을 자아낸다. 대법원은 김 구청장에 대해 2심 선고 후 9개월 만에 확정판결을 내렸다. 반면 김 전 구청장이 폭로한 감찰 무마 의혹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수석은 1심 판결에만 3년 2개월이 걸렸다. 의혹 폭로자는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는데 의혹 당사자는 1심 판결만 이뤄진 가운데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까지 열어 두고 있다. 적군 재판은 속전속결, 아군 재판은 질질 끄는 이중 잣대 사법부란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김 전 구청장 재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요즘처럼 사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적이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 그가 재직한 5년여 동안 1심 판결이 2년 넘게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2배 넘게 급증하는 등 재판 지연이 일상화하며 많은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추천제 도입으로 열심히 재판할 동기가 사라진 결과다. 김 원장이 재직한 5년간 전체 법관의 10%에 가까운 344명의 판사가 법복을 벗었다는 집계도 뼈아프다.

 

김 대법원장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도 두드러진다. 그의 아들 부부는 강남 아파트 청약당첨 뒤 1년여간 아버지 공관에 거주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또 김 대법원장은 2020년 5월 사직의 뜻을 표한 임성근 고법 부장 판사에게 “까놓고 탄핵하자고 설치는데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말한 것을 부인한 혐의 등으로 고발당해 수사 대상이 됐다. 차기 대법원장이 김 대법원장을 반면교사 삼아 사법부의 권위 회복에 전력해야 할 이유다.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06-02 공무집행방해 ‘大法 양형 기준’ 획기적으로 강화할 때

공권력은 법과 규범의 수호를 위해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국민의 권리와 안전에 대한 침해다. 선진국이 공무집행방해죄를 엄단하는 이유다. 한국 역시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공권력 남용이 아니라 ‘떼법’ 세력 등에 의한 공권력 공격을 우려할 상황으로 바뀐 지 오래다. 경찰청은 공무집행방해죄 처벌 기준을 강화하자는 개선안을 지난 1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감경 시 징역 1∼8개월인 기준을 3∼10개월로 바꿔 ‘징역 3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다. 또, 감경 요소인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을 삭제하는 대신 ‘상습범’과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해 만취 상태’는 가중처벌 요소로 신설하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경찰 일선에서는 가벼운 처벌 탓에 공권력 행사가 어렵다는 불만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경우 1심 실형 비율은 18%에 그쳤다. 더구나 불법 시위나 만취 행패를 제재하는 과정에서 경찰 측의 과실이 발생했을 경우, 경찰엔 대부분 징계가 가해졌다.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돼도 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폭행과 불법집회를 제지하는 경찰에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경찰 역시 불법을 방치하거나 흉기에 시민이 위협받는 현장을 이탈하기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경찰에 상해를 가하면 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초범도 징역 4년에 처해진다. 상습범은 종신형도 가능하다. 캐나다도 경찰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면 징역 14년을 선고할 수 있다. 권위주의 시대 행해진 공권력의 일탈과 잔재는 청산돼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공권력 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시민의 권리로 오인해 온정적으로 대응하는 인식과 관행도 벗어나야 한다. 차제에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양형 기준의 강화에 그치지 말고 법정 형량 자체를 상향 조정하는 법 개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02 선관위 “감사원 직무감찰 수용 불가” 최종 결정…박찬진 등 경찰에 수사 의뢰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에 앞서 눈을 감고 있다. 뉴시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일 고위간부 자녀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에 위원들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특별감사 결과에 따라 박찬진 전 사무총장, 송봉섭 전 사무차장 등 4명을 경찰청에 수사의뢰 하기로 했다.

선관위는 이날 오전 과천청사에서 노태악 선관위원장 주재로 위원회의를 연 후 보도자료를 통해 “선관위는 위원회의를 열고 고위직 공무원의 자녀 채용 관련 특별감사 후속 조치, 외부기관 조사, 후임 사무총장·차장 인선 등 현안을 논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선관위는 “국회의 국정조사,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및 수사기관의 수사에는 성실히 임한다”며 “다만 행정기관이 아닌 선거관리위원회는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며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인사감사의 대상도 아니므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에 위원들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전했다.

선관위는 헌법 제97조에서 감사원의 감사 범위에 선관위가 빠져있고, 국가공무원법 17조에 ‘인사 사무 감사를 선관위 사무총장이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감사를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 중이다. 반면, 감사원은 감사원법에 감사 제외 대상으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를 정해뒀지만, 선관위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직무 감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선관위는 앞서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박찬진 전 사무총장 등 간부 4명에 대해서는 이날 경찰청에 수사 의뢰하고, 채용 과정에서 부정적하게 업무를 처리한 공무원 4명에 대한 징계 의결을 다음주 요구할 계획이다. 아울러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까지 범위를 확대한 가족 채용 전수조사를 이달 중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선관위는 이번 특혜 의혹을 계기로 중앙위원회 내 독립기구로 감사위원회도 설치한다. 외부 견제와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위부 전문가를 위원으로 선임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조성진 기자
 

 

06-02 아빠찬스·세습채용 의혹에도… 끝내 감사 거부한 ‘특혜 선관위’

■ 간부 4명 근무지에 자녀 채용

아빠 선관위로 대놓고 뽑아
면접 등서 입김 가능성 커
‘형님찬스’ 경력채용 사례도

정치권 “감사원 감사받으면
특혜 전모 드러날까 두렵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전수조사에서 추가로 자녀 채용이 드러난 퇴직 간부 4명의 자녀가 ‘아빠 소속 근무지’에 채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채용자의 부친이 현직일 때 채용됐는지 여부는 최종 확인이 안 됐지만 근무지가 부친이 오래 근무했던 곳인 만큼 서류전형과 면접 등 경력 채용 과정에서 부친의 입김이 쉽게 작용할 수 있어 특혜 가능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선관위 전수조사 결과 인천선관위 2명, 충북선관위 1명, 충남선관위 1명 총 4명의 퇴직 공무원 자녀가 각각 부친이 근무하는 광역 시도선관위에 경력으로 채용됐다. 이들 부친은 앞서 의혹이 제기된 전·현직 간부 6명 외에 추가로 전수조사에서 자녀 채용이 드러난 4급 공무원들이다. 시도선관위 4급 공무원은 통상 과장직을 맡고 있고, 근무지 변경을 잘 하지 않기에 이들이 근무할 당시 자녀가 채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5급 이상 재직 중인 직원의 동의와 협조를 거쳐 자녀 채용현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전수조사 결과 인천선관위에서는 간부 2명의 자녀가 각각 2011년 7급, 2021년 8급으로 경력 채용됐다. 충북선관위 간부 자녀는 2020년, 충남선관위 간부 자녀는 2016년 각각 부친 소속 선관위에 채용됐다. 전 의원 측은 박찬진 전 사무총장이나 송봉섭 전 사무차장의 자녀의 경우 부친이 근무하는 곳이 아닌 지역 선관위에 채용됐지만, 이들의 자녀는 부친 근무지에 직접 채용됐다는 점에서 특혜 정황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도 선관위 간부의 친동생이 형이 일하는 선관위에 경력 채용됐고, 이직한 지 1년도 안 돼 승진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강원선관위 박모 사무처장(2급 이사관)의 친동생인 박 씨는 2014년 경기 고양시청에서 근무하다 경기 고양선관위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경기선관위가 2014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 내 7급 이하 행정직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전입 희망자 9명 모집 공고를 냈고, 박 씨가 여기에 응시해 합격했다. 당시 4급이었던 박 씨의 친형은 한국외국어대에 교육 파견 중이었다.

한편, 선관위가 이날 위원회의를 열고 재차 감사원 감사를 거부한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특혜 채용의 전모가 모두 드러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선관위는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와 수사기관의 수사는 허용했는데, 권익위의 경우 강제조사권이 없어 선관위가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조사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고, 수사기관은 고소·고발 피의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기에 선관위 특혜 채용 전모를 모두 밝히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문화일보 이해완·최지영 기자
 

 

06.02 복마전 선관위, 60년 ‘고인 물’ 체제 확 바꿔야 산다

외부 감사 등 단기 요법만으론 쇄신 요원

정파성 오염 차단할 근본적 구조개혁이 답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박찬진 사무총장 등 4명을 수사 의뢰하고, 국민권익위의 전수조사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 35년간 내부 승진으로 채워 온 사무총장직을 외부에 개방하고 외부 인사 중심의 감사위원회를 도입하겠다는 쇄신책도 내놨다. 하지만 그간의 행태를 보면 진심으로 혁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선관위는 지난달 10일 중앙일보 보도로 박 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의 ‘아빠 찬스’ 의혹이 드러나자 “법과 절차 따른 공정한 채용”이라고 발뺌하다 의혹자가 11명에 달하는 등 비리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3주 만에 등 떠밀리듯 외부 조사를 받겠다고 물러섰다. 선관위는 북한의 해킹 시도를 포착한 국가정보원이 보안점검을 권했으나 ‘헌법상 독립기관’이란 이유로 일축해 왔다. 그러다 지난달 3일 중앙일보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졌는데도 “국정원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변명하다 국정원의 자료 공개로 거짓말이 드러나자 뒤늦게 점검을 수용했다.

더 본질적 문제는 선관위가 정파성에 침윤돼 중립성이 흔들려 온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선관위는 친문 금융감독원장의 후원금 셀프 기부 의혹이 ‘위법’이라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을 내린 선관위 사무총장은 퇴임 후 선관위원 선임이 가로막혔다. 문재인 대선캠프에 적을 뒀던 인사가 선관위 상임위원이 되고, 임기 후에도 연임을 시도하다 직원들의 반발로 좌절된 일도 있었다. 선관위가 국정원의 보안점검을 거부한 것도 진짜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란 게 중론이다. 이렇게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선관위가 되다 보니 ‘부정선거’ 논란에 휘말린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지금 선관위는 전면적인 환골탈태를 하지 않으면 존폐가 우려되는 기로에 서 있다. 외부 감사를 통한 전·현직 직원 전수조사와 수사는 당연하고, 국민의 힘이 요구한 국정조사도 조속히 이뤄져 비리 책임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또 공석인 사무총장직에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외부 인사를 신속히 임명해야 한다. 일부 중앙선관위원들은 ‘선 인사위원회 구성’ 등을 주장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데, 총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안이한 처사다. 선관위원 9명은 합의를 볼 때까지 회의장을 떠나지 않는 ‘콘클라베’식 토론으로라도 새 총장을 속히 임명해 총선에 차질이 없게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지난 60년간 견제와 감시 없이 ‘고인 물’로 지내온 선관위 구조 전체를 손봐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대법관 중에서 선관위원장을 고르는 방식부터가 문제다. 게다가 선관위원장은 비상근이라 사무처의 전횡을 막을 능력이 없다. 선관위원장의 상근직 전환과 사무총장 외부 인사 임명 및 외부 감사 의무화 등이 전면적 쇄신의 길이다.

중앙일보 사설

 

06.03 지금 선관위가 ‘견제와 균형’ 내세우며 감사 거부할 처지인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커지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일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기로 했다.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 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라는 것이다. 헌법 제97조를 거론하며 감사원의 감사 범위에 선관위가 빠져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 제외 대상으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만 명시돼 있다. 감사원은 “선거 관리의 독립성 존중 차원에서 감사를 자제해왔을 뿐”이라며 “감사 거부에 대해 엄중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지금 선관위가 받고 있는 의혹은 선거 관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녀 특혜 취업과 북한 해킹에 대한 보안 점검 거부 등이다. 오랫동안 쌓여 온 이런 내부 비리, 태만 문제는 감사원의 감찰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내부 부정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기관이 ‘견제와 균형’을 내세우는 것도 맞지 않는다. 선관위는 외부인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했지만 그 효과를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선거를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선관위가 대통령 직속 기관인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주장은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동안 어떤 기관의 견제도 받지 않고 저들끼리 ‘신의 직장’을 만들며 쌓여 온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논리 역시 힘을 얻기 어렵다. 어제만 해도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새로 드러난 퇴직자 4명의 자녀가 모두 부친 소속 근무지에 경력 채용된 사실이 알려졌다.

전체 직원이 3000명이나 되는 선관위는 모든 시·군·구에 조직을 갖고 있다. 중앙선관위 밑에 광역시 선관위가 있고, 그 아래 구 선관위가 있는 구조다. 재외 국민 투표를 관리한다며 해외에 직원을 파견하기도 한다. 이렇게 비대해지는 것과는 반대로 소쿠리에 투표지를 담아 옮기는 황당한 업무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선관위 문제는 수사와 별개로 감사원의 종합적 감사로 조직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관위를 감사원의 정례 감사 대상으로 하느냐 마느냐는 그다음에 논의해도 된다. 차제에 요즘 시대에 이런 비대한 선거 관리 상설 기구가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근본적인 검토도 필요하다.

조선일보 사설

 

06-05 선관위, 채용세습 국민공분에 ‘2차회의’… 감사 전격수용 기류

■ 주내 긴급 전원회의

“헌법상 독립기구”서 한발 후퇴
감사 법 근거조항 등 따져볼 듯

국힘,‘위원 전원사퇴’ 요구 검토
민주 “독립기관으로 감사 불가”

 이른바 ‘자녀 특혜 채용’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5일 기존 결정을 뒤집고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수용할지를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근거로 감사원 감사를 거부해 왔지만 불공정 채용 문제를 기점으로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을 담보로 하는 선관위에 대한 비판이 연일 거세지자 입장을 선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정치권에 따르면, 선관위는 이번 주 내로 긴급위원회의를 열어 이번 자녀 특혜 채용 논란 과정에서 불거진 선관위 공무원 인사, 채용 업무와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를 수용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 2일 위원회의에서 헌법상 독립기구로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범위를 ‘행정기관 및 공무원’으로 명시한 헌법 제97조 등을 근거로 감사원 감사를 거부해 왔지만, 전·현직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선관위 고위 공무원 등 총 11명의 자녀 채용 논란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일파만파 커지자 기존의 입장을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주 회의에서 또다시 감사원 감사 거부 결론을 내린다면 여론의 비난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재검토 회의는 입장 선회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는 공식적으로는 “선관위원장 등 위원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결론을 내린 만큼 입장 변화는 없다”는 상황이지만, 감사원 감사 수용 여부 판단을 위해 논란이 되고 있는 법적 근거 조항 등도 다시 따져볼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원법 제24조 3항은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등 명시적인 입법, 사법 기관에 소속된 공무원만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2조도 국회와 법원, 헌재, 선관위를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 기관인 선관위도 직무감찰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헌법기관이라는 것은 독립성, 중요성 때문에 헌법에 규정된 기관일 뿐이지 그것이 곧 행정기관이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선관위의 감사원 직무감찰 거부에 대한 대응 논의를 위한 긴급 의원총회를 개최하고 노태악(사진) 위원장과 선관위원 9명 전원 사퇴요구를 검토하는 한편 감사원 감사 수용을 촉구하고 나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중앙선관위 감사는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실시한다고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제17조 2항을 제시하며 감사원 감사가 사실상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오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감사원이 국회와 법원, 헌재를 감사할 수 없듯이 독립기관인 중앙선관위도 감사원이 감사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최지영·김보름·김대영 기자

 

06.05 文정부 선관위원장들, 재판거래·소쿠리투표·세습채용 끝없는 논란

선관위, 왜 이렇게 무너졌나

문재인 정부 들어 현 노태악 위원장을 비롯한 3명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들로 채워졌다. 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권순일, 노정희,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왼쪽부터).

 

노정희 전 위원장 재임 때는 ‘소쿠리 투표’로 인해 부실한 대선 관리가 문제가 됐고, 현 노태악 위원장 체제에서는 ‘자녀 세습 특혜 채용’ 의혹이 터졌다. 권순일 전 위원장은 선관위원장 재임 기간에 대법 전원합의체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선거법 사건’의 무죄 법리를 주도했는데, 대장동 사업자 김만배씨와의 ‘재판 거래 의혹’이 뒤늦게 불거졌다. 비슷한 사안도 여야에 따라 상반된 결론을 내리는 정치적 편향성도 문제가 됐다.

 

◇文 정부 선관위원장 모두 논란

권순일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7년 12월 선관위원장이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0년 7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해 이 대표는 이후 지난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당시 권 전 위원장은 최고 선임 대법관으로 무죄 관련 법리를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김의균

 

2021년 말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만배씨가 ‘이재명 사건 파기 환송’을 전후해 ‘권순일 대법관실’을 8차례 방문했다는 대법원 출입 기록이 나왔다. 또 권 전 위원장이 퇴임한 뒤 화천대유에 고문으로 취업해 1억5000만원을 받은 것도 드러났다. 권 전 위원장은 ‘재판 거래’ 의혹의 수사 대상이 됐다.

권 전 위원장은 2020년 9월 대법관 임기가 끝났는데도 관례를 깨고 선관위원장에서 바로 물러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김세환·박찬진 전 사무총장을 각각 신임 사무총장(장관급), 사무처장(차관급)에 임명하는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두 사람은 자녀 채용 특혜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정희 전 위원장은 2020년 11월 취임했다. 노 전 위원장은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노 전 위원장은 대법원이 파기 환송했던 ‘이재명 선거법 사건’의 주심을 맡았었고 이는 취임 전부터 논란이 됐다.

 

작년 3월 5일 대선에서는 선관위가 코로나 확진·격리 유권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소쿠리, 라면 박스, 비닐 쇼핑백 등에 모아 옮기는 ‘소쿠리 투표’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인 직접·비밀투표 원칙을 깨뜨리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는데도 ‘비상근’이라며 출근하지 않아 논란을 키웠다. 노 전 위원장은 선거정책실장, 선거국장 등 실무 책임자들만 교체했다가 44일 만에 사퇴했다.

 

▲지난해 3월 대선 당시 일부 선거구에서 코로나 확진자들의 사전투표용지를 운반했던 플라스틱 소쿠리. 선관위의 선거관리 부실이 드러난 한 사례다. /뉴시스

 

노태악 현 위원장은 작년 5월 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선관위 간부 11명이 ‘채용 비리 의혹’에 휘말린 상황이지만 선관위는 선관위원 만장일치로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특혜 채용’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1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조국 사태로 ‘아빠 찬스’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극심한 시기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선관위는 국회 국정조사, 권익위 조사, 선관위가 수사 의뢰한 경찰 조사만 받겠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감사원의 전면적 감사를 받을 경우에 개표 등 다른 선거 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날까 봐 선관위가 감사 거부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주요 선거 때마다 ‘정치적 편향’ 논란

선관위의 편향성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잇따라 문제가 됐다. 2021년 4월 보궐선거 당시 선관위는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시민 단체 캠페인을 제지했다. “이미 유권자가 선거 실시 사유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비위를 연상시키면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내로남불’ ‘위선’ ‘무능’이란 단어도 현수막에 쓰지 못하도록 했다. 선관위는 이 낱말들이 특정정당을 떠올리게 유도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선거 두 달 전인 2021년 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4차 재난지원금은 가급적 (선거 전인) 3월 중에 집행이 되도록 속도 내달라”고 지시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선관위가 판단했다.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 방극렬 기자

 

06-05 ‘답정너’ 경력채용… 선관위서 함께 일한 사람이 평가위원

■ 2016∼2018 채용 8건 분석

지방선관위 경력 있는 응시자
정성평가에서 75점 받을 때
일반 응시자 최고점은 57.5점

합격 10명 모두 ‘선관위 경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치른 총 8건의 경력경쟁채용 서류전형 시험에서 선관위 근무경력이 있는 응시자 10명 모두가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 근무경력이 있는 응시자들은 주관적 판단이 크게 개입하는 정성평가에서 선관위 근무경력이 없는 응시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응시자와 같은 부서에 근무한 직원이 시험위원으로 위촉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아빠 찬스’(자녀 특혜 채용), ‘형님 찬스’(형제 특혜 채용)로 논란의 중심에 선 선관위가 과거에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경력 채용을 통해 공직을 사유화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도 ‘눈 가리고 아웅’으로 사건을 덮은 것이다.

5일 문화일보 취재에 따르면, 감사원이 선관위를 대상으로 2019년에 진행한 기관운영감사 결과, 2016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치른 총 8건의 경력경쟁채용 서류전형 과정에서 선관위 근무경력이 있는 응시자 10명이 모두 합격했다. 감사원이 당시 입수한 정성평가 결과를 보면, 응시자 10명 중 1명(2016년 행정주사 채용)만이 선관위 근무경력이 없는 응시자 중 최고 점수를 받은 사람보다 점수가 낮았고, 나머지 9명은 선관위 근무경력이 없는 응시자 중 최고 점수를 받은 사람보다 높거나 같은 점수를 받았다.

예컨대 2017년 전문 임기제 나급(여론조사 심의) 경력 채용 서류전형 심사에선 선관위 근무경력이 있는 한 응시자는 정성평가로 75점(80점 만점)을 받았는데, 당시 선관위 근무경력이 없는 응시자의 최고 점수는 57.5점(최저 40점)으로, 선관위 근무경력이 있는 응시자와 최소 17.5점에서 최대 35점 차이가 났다. 2016년 전문 임기제 다급(전산) 경력 채용 서류전형 심사 때는 선관위 근무경력이 있는 응시자는 2명의 시험위원으로부터 각각 54점(65점 만점)을 받았고, 당시 선관위 근무경력이 없는 응시자의 최고 점수는 49.5점에 그쳤다. 선관위 근무경력이 있는 응시자가 근무경력이 없는 최고 득점자보다 점수가 4.5점 높았다.

이와 같은 결과에 감사원은 “선관위는 시험위원 제척 등에 관한 규정이 없어 응시자와 같은 부서에 근무한 직원 등을 시험위원으로 위촉했다”며 “채용의 공정성에 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 시험위원 위촉 시 공정성을 우선시할 수 있도록 시험위원 제척에 관한 사항을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선관위는 “경력채용 서류전형 시험위원을 모두 외부위원으로 위촉하겠다”고 의견을 냈으나 끝내 지키지 않았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

 

06-05 채용세습·소쿠리투표… ‘총체적 부실’

■ 감사 거부로 논란 키운 선관위
위원 9명중 7명 文정부와 가까운 인사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인사들이 장악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소쿠리 투표’와 위원장의 ‘재판 거래’ 의혹 등으로 잇달아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쇄신을 미적대다 자녀 특혜 채용 비리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아빠 찬스’와 ‘형님 찬스’에 이어 ‘근무지 세습’ 정황까지 불거졌음에도 선관위가 끝내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거부하면서 국민 여론도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고 있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선관위 중앙위원회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7명의 위원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3인을 임명하고 국회가 3인을 선출하며, 대법원장이 3인을 지정한다. 이 가운데 현재 국민의힘 몫으로 선출된 남래진·조병현 위원 2명을 제외하면 7명 모두 문재인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김필곤 상임위원과 이승택·정은숙 위원은 문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노태악 위원장과 김창보·박순영 위원은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 몫이다. 조성대 위원 역시 2021년 더불어민주당 추천 인사로 선출됐다.

2017년 이후 선관위를 이끈 위원장들 역시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들로 채워졌다. 2017년 12월 임명된 권순일 전 위원장은 최고 선임 대법관으로 재직할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사건과 관련해 무죄 법리를 주도해 대선 출마 길을 열어줬다. 2020년 11월∼2022년 5월 재직한 노정희 전 위원장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며, 노태악 현 위원장은 김 대법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처럼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선관위를 장악한 기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대선 출마를 도운 권 전 위원장은 대장동 사업자 김만배 씨와의 ‘재판 거래’ 의혹이 뒤늦게 불거졌고, 노 전 위원장은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을 훼손하는 ‘소쿠리 투표’ 사태가 터졌음에도 실무 책임자만 교체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44일 만에 물러났다. 노 위원장은 전·현직 간부 11명이 채용 비리 의혹에 휘말렸음에도 독립적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06.06 정부 돈은 줘도 안 받겠다고 해야 시민 단체다

윤석열 대통령이 시민 단체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비리에 대한 단죄와 환수 조치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3년간 보조금 유용·횡령 등 부정·비리가 총 1865건, 314억원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수사와 단죄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민 단체의 활동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핵심은 ‘공익’과 ‘자발’이다. ‘사익’이 아니고 ‘직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치 권력이나 기업 등의 문제를 지적하려면 정치적·재정적 독립 유지가 필수다. 당연히 활동 자금은 뜻 맞는 사람끼리 모금하거나 자체 사업을 벌여 마련해야 한다. 이는 시민 단체의 대원칙이다.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는 일절 정부와 기업 도움 없이 개인 후원금만으로 운영한다. 의료 구호 활동을 펼치는 ‘국경 없는 의사회’, 멸종 위기 동물 보호 활동을 하는 ‘세계자연기금’도 개인 회비, 기부금으로 자금 대부분을 조달한다.

 

그런데 우리 시민 단체는 대부분 많든 적든 정부 보조를 받는다. 지난해 2만7215단체에 국민 세금 5조4500억원이 들어갔다. 환경, 장애인, 소비자 등을 위한 공익 활동을 한다며 정부 보조를 받아 간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돌본다며 후원금을 받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윤미향 의원이 속했던 정의기억연대도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 세력,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한다’며 1998년 이후 정부·기업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의 보조금 감사에 대해선 “시민 단체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나라에서 수많은 좋은 자리를 받아 갔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연대 출신들의 잔치판처럼 됐다. 도저히 시민 단체라고 할 수 없다.

정부가 시민 단체에 국민 세금을 나눠주는 것은 공익성 때문이다. 정부가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영역을 시민 단체가 대신 챙겨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문제가 된 단체들은 공익은 내팽개치고 사익 추구에만 열중했다. 서류를 조작해 보조금을 받은 후 횡령해 사적 용도로 썼다. 보조금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유흥업소를 드나들었다. 휴대폰 사고 가족들 통신비까지 냈다. 시민운동이 아니라 생계 활동을 한 것이다.

문 정부 5년간 시민 단체 국고보조금이 연평균 4000억원씩 늘었지만 관리·감독은 소홀했다. 정권과 시민 단체가 밀착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민주당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운동권 생태계에 연간 7조원씩 퍼주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재정 건전성 높이는 법과 연계하고 있다. 세금 아끼고 싶으면 먼저 세금으로 운동권에 퍼줘야 한다는 논리다.

 

정권이 시민 단체에 돈을 뿌려 어용 단체로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고질이 됐다. 제대로 된 시민 단체라면 정부 돈은 줘도 받지 않는다고 해야 정상이다. 선진국처럼 보조금 대신 세금 감면 등으로 간접적 혜택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기회에 국고보조금을 이렇게 많은 단체에 지원하는 것이 옳은지 근본적 문제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6 참혹한 아이러니

외부와 차단된 곳에 서식하는 악(惡)이 세상을 기만하고 농락하는 플롯은 소설과 영화에서 범죄 수사물에 주로 사용된다. 그런 장르가 생겨난 건 세상에 그런 게 실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픽션은 정제되거나 확장된 논픽션일 뿐이다. 인간으로서 깊이 방황하고 작가로서 오래 써보면 확신하게 된다. 현실보다 더 지독한 픽션은 없다는 것을.

선관위에서 만장일치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부통령 당선 사퇴가 아니라 ‘사퇴 고려’를 발표했던 이기붕이 떠올랐다. 선관위가 헌법과 법률에 무식한 건 알겠으나 뭔가 극도로 절박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기붕이 1960년 3월 17일 서대문 자택 기자들 앞에서 엉겹결에 말한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게 아니다”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줄 ‘역사적 개소리’는 언제 나올지 기대가 크다. 나 같으면 감사는 물론 수사까지 받고 말겠다. 안 그러면, 만장일치로 감옥에 들어갈까 봐 무서워한다는 오해를 사기에 딱 좋으니까.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세워진 계기는 자유당 부정선거와 4·19혁명이었다. 자유당 패거리 같은 부패를 보호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부정 취업과 인사 부정은 시대를 초월해 역사적 사달의 시작점이 되곤 했다. 선관위는 세습 비리만이 아니라 성범죄, 절도 등 하루가 다르게 추한 본색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더러운 비닐 장판을 걷어 올리면 우글거리는 버러지 떼만이 아니라, 어디로 이어진 이상한 굴이 나올 수도 있다.

 

역사는 대체로 이런 ‘우연’에 의해서 ‘폭발’한다. 선관위는 한국인들이 대통령도 밥 먹듯이 감옥에 집어넣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까먹었나 보다. 이해한다. 자기들끼리만 행복하게 살다 보면 현실 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이기붕 가족은 전원 권총 자살했다. 독립기관을 외치다가 감옥 독방에 갇힐 수는 있을지언정 대한민국에 치외법권은 없다.

선관위 일원들은 가장 깨끗하고 가장 성실하고 가장 사명감 있는 공무원이어야 한다. 법관들이 사조직에 가입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난 대선 때 ‘소쿠리 투표’에 경악하고도 선관위를 그냥 둔 것부터가 이 나라가 뭐에 ‘홀려 있다’는 증거다. 민주화 이후의 어느 시점에 사실상 선관위는 그 실효를 다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조직이 외딴섬에서 절대 권력을 누리니 타락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결정적 자기모순’이라는 게 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북한 인권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 그런 예다. 선관위는 결정적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국민들이 선관위를 ‘돌이킬 수 없이’ 불신하기 때문이다. 저런 선관위를 법에 따라 심판하고 개혁하지 않는다면, 여야 국회의원들은 멍청이고 국민들은 노예이며 현 정권은 망해도 싸다. 이 참혹한 아이러니를 어찌할 것인가. 선관위가 자유당이다.

조선일보 이응준 시인·소설가시인·소설가

 
 

06-07 시대착오 KBS 수신료 폐지하고 조직 대폭 축소해야

세금과 다름없이 사실상 강제 징수하는 공영방송 KBS 수신료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시정(是正)에 나섰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도입 후 30여 년간 유지해온 수신료와 전기료의 통합 징수 방식에 대한 국민 불편 호소와 변화 요구를 반영해, 분리 징수를 위한 관계 법령 개정을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3월 9일부터 한 달 동안 ‘TV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 국민참여토론을 진행하며 실시한 투표에서, ‘현행 통합 징수 반대’가 총투표수 5만8251표의 97%인 5만6226표였던 사실 등에 따른 조치다.

민간의 다양한 매체가 전방위로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현실에서, 공영방송은 이제 시대착오다. KBS가 한국전력에 위탁해, 수신료를 전기료 고지서에 병기함으로써 강제 징수하는 것은 시민 권리 침해다. 스마트폰 일반화 등으로 TV 수상기가 없는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KBS를 전혀 시청하지 않아도 수신료는 낼 수밖에 없다. 일단 냈다가 환불받을 수는 있다고 해도,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는 시민 몫이다. 그래도 2016년 1만5746건이던 환불이 2021년 4만5266건이었다. 통합 징수의 법적 근거인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2항을 당장 바꿔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수신료를 폐지하고, KBS 조직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다른 공영방송들엔 별도로 없는 수신료가 KBS만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왜곡 편향 방송으로 ‘정권 나팔수’ 오명까지 자초하며, 여러 채널의 TV와 라디오 방송 등 방대한 조직을 유지할 필요도 없다. KBS가 시대착오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게 하는 것은 국가적 당위다.

문화일보 사설

 
 

06.07 구시대 유물 된 KBS 수신료, 왜 국민이 강제로 내야 하나

/그래픽=김현국

 

정부가 한전 전기료와 통합 징수해 온 KBS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국민 참여 토론에서 참여자의 96.5%가 분리 징수에 찬성한 데 따른 것이다.

KBS 수신료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구시대 유물이다. 과거 지상파 채널 서너 개밖에 없던 시절 도입돼 30년째 세금처럼 강제 징수하고 있다. 지금은 유선 방송에 각종 OTT까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채널과 콘텐츠가 수도 없이 많다. 1인 가구가 늘고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TV 수상기 자체가 없는 집도 적지 않다. 같은 지상파 공영방송인 MBC는 수신료가 없다. ‘KBS를 보지도 않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 입장에선 전기료와 같이 징수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내지만, 나중에 수신료 환불을 요청한 건수가 2016년 1만5746건에서 2021년 4만5266건으로 급증했다.

 

수신료가 전기료 징수와 분리되면 KBS가 자체적으로 걷어야 한다. KBS는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일본 NHK는 징수원이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수신료를 받아간다. NHK뿐 아니라 영국 BBC, 프랑스 FTV 등 각국이 수신료를 폐지 또는 인하하는 추세다. 그런데 KBS는 도리어 수신료를 현재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올려 달라고 한다. 염치가 없다. KBS는 직원의 절반가량이 억대 연봉자다. 보직 없이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1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인건비 비중이 다른 방송사의 두 배인데도 구조조정 노력을 하지 않는다. KBS가 수신료를 받는 명분인 공영방송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땐 노골적으로 정권 나팔수 노릇을 했다. 지금도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자 131명 중 80명이 야당 성향이고, 여당 성향은 11명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신료 분리 징수든 폐지든 법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KBS는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 편을 들고, 민주당은 공영방송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KBS 편을 드는 게 고착화됐다. 민주당은 수신료 인상은 쉽게 하고 면제는 어렵게 하는 법까지 추진 중이다. 민주당과 KBS가 손잡고 자기들 잇속 챙기는 대가를 왜 국민이 치러야 하나.

조선일보 사설

 

06.08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자” 지금 더 절실한 메시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대표되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新)경영 선언’이 어제 30주년을 맞았다.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시키고 한국 산업계에 일대 충격을 주었던 ‘이건희 신경영’의 시작이었다.

해외 유명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교재에도 오른 이건희식 경영의 핵심은 ‘양(量)에서 질(質)’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것이었다. 대충대충 만들어도 국내에서는 1등이던 삼성이 해외 시장에서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2류, 3류 제품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이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삼성 사장들을 소집해 격정적으로 쏟아낸 신경영 구상을 계기로 삼성은 ‘품질 경영’과 ‘초격차’에 매진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뉴스1

 

휴대폰 불량률이 11%에 달하자 수백억원어치 휴대폰을 쌓아 놓고 ‘화형식’까지 하면서 최고의 제품에 도전하는 조직 문화를 구축했다. 삼성이 세계 일류 기업의 반열에 오른 것도 이처럼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최고 품질을 만들어낸 신경영 덕분이었다. 질을 위해서는 양도 포기할 수 있다고 각오했지만 오히려 최고 품질을 달성함으로써 매출도, 자산도 30년 새 10배 넘게 늘고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겨루는 초우량 기업이 됐다. 삼성의 변신은 다른 대기업과 산업계에도 충격의 파도를 일으켜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중저가 이미지로 통하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 1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 경제에 자신감과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만든 변화 이전까지 우리는 2류, 아류 의식에 젖어 있었다. 그 정도가 우리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꾸자’는 이건희 선언 이후 우리는 글로벌 일류 국가를 넘보고 있다. 국민들의 의식 자체가 한 단계 성장했다.

 

이건희 신경영이 우리 사회에 던진 통찰과 메시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오히려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국제 질서는 30년 전 삼성이 느끼던 위기감을 능가한다. 미·중 패권 갈등과 안보 긴장 속에 수십년간 유지되어온 세계 경제의 큰 틀이 바뀌고 있다. 격변의 시기에 중국에서 빠져나온 돈이 일본, 인도, 베트남 등지로 향하고, 미국·EU·일본이 반도체 자립 등을 위해 다 뛰고 있다. 안으로는 가계·기업·정부 다 합해 5500조원이 넘는 빚더미, 심화되는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적 현상’으로 고착될 판이다.

 

30년 전 벼락처럼 던져졌던 이 회장의 선언처럼 지금도 한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혁신이 절실하다. 나라가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던지고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새 질서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모두가 자신에게 올 수 있는 일시적 손해를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모두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8 업무비 부정까지 드러난 선관위, 이래서 감사 거부하나

선거관리위원회의 일탈이 자체 감사와 비리 관련자 수사 의뢰 정도로 넘어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드러난 자녀 특채 등의 문제만 보더라도 조직 전체가 한통속이 돼 짬짜미하는 게 아니냐의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는데, 업무추진비 의혹까지 추가됐다. 수사와 감사, 국정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노태악 위원장 등 중앙선관위원들에 대한 사법적 행정적 책임 추궁도 불가피해졌다.

중앙선관위 고위 간부들은 최근까지도 주말에 호텔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금으로 받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받은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따르면, 간부들은 2018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주말에만 53건, 업무추진비 997만 원가량을 지출했다. 주말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공명선거추진 활동비’ 명목으로 식사를 하거나, 호텔에서 ‘정치관계법 의견 수렴’ 명목으로 밥을 먹었다. ‘바둑동호회 운영방안 논의’ 명목으로 스테이크하우스, ‘일선 의견 수렴’ 명목으로 한우 식당을 찾기도 했다. 비용이 많지 않고, 선관위도 “선거 업무”라고 해명하지만, 도덕적 해이 여부를 감사와 수사로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2018년 지방선거 경비와 업무추진비 등을 부적절하게 사용해 감사원으로부터 주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업무 추진비는 카드로 계산하고 증빙 서류로 남겨야 하는데, 현금으로 주고받으며 서류도 꾸미지 않았다. 이런 행태만으로도 불법이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휴일에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일어 낙마한 적도 있다.

회계 문제는 지금도 감사원 감사 대상이다.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 감찰에 대해서는 중립성 훼손 우려 등의 비판도 있지만, 선거관리 업무도 행정업무로서 그 대상이라는 헌법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제라도 감사원 감사를 흔쾌히 수용해야 한다. 노 위원장이 즉각 물러나는 게 비리 척결과 선관위 조기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대법관의 중앙선관위원장 겸임 문제도 개혁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08 편파·타락 심판 척결할 때

 

방승배 정치부 부장

스포츠에서 심판의 공정성은 생명과도 같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 하나는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승패를 뒤집을 수 있다. 심판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스포츠 종목에 판정 시비를 줄이고 공정성 확보를 위한 과학기술 보조장치가 도입되고 있다. 축구·야구·배구 경기에서 카메라가 찍은 영상으로 경기 과정을 판독하는 VAR(비디오보조심판) 등이 대표적이다. 태권도는 게임화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자호구를 도입했고, 이도 모자라 인공지능(AI)까지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선거의 심판’이다. ‘아빠 찬스’ ‘형님 찬스’로 불리는 특혜 채용 의혹들과 도덕적 해이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는 선관위는 스스로 중립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조직이 곪아 터지는데 ‘내부 고발’ 한번 없었다는 것은 조직 전체가 사실상 ‘한통속’이 된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정하지 않은 심판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기관에 감사원 감사 같은 외부 통제를 받게 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이참에 중립적이지 않은 심판 구성을 바꾸는 구조개혁도 함께 논의됐으면 한다. 현재 중앙선관위원은 헌법상 대통령 3명, 국회 3명, 대법원장이 3명 지명하도록 돼 있다. 헌법재판소와 유사하게 외견상으로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분할하는 선관위원 인적 구성을 하고 있지만 대통령과 여당 몫 위원은 사실상 같은 색깔이고, 대법원장도 실상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 사람이다. ‘임명 방식’으로 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려는 나라는 전 세계 우리나라밖에 없고, 그 효과가 상실된 것을 이미 국민 모두가 눈으로 봐 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관례를 깨고 캠프 특보 출신의 조해주 전 선관위 상임위원의 연임을 시도하다 직원 반발에 좌초된 것은 정권이 대놓고 개입한 사례다.

친여 성향의 선관위 인적 구성과 편향성 시비도 전 정부 시절에 가장 심했다. 2021년 4월 보궐선거 당시 선관위는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시민단체 캠페인을 막았다. “이미 유권자가 선거 실시 사유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들의 성 비위를 연상시키면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내로남불’ ‘위선’ ‘무능’이란 단어가 특정 정당을 떠올리게 유도한다며 현수막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편파 판정들은 선관위가 집권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돼야 막을 수 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라는 큰 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심판의 자격 문제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검도는 공정성 확보가 안 돼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검도 경기에서는 ‘기(氣·기합)-검(劍·칼)-체(體·몸)’가 일치되고 타격 이후에 기세를 유지하며 방심을 경계하는 ‘존심(잔심)’까지 있어야 점수로 인정받는다.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도, 기준도 없는 요소들이 오로지 고단자인 심판의 경험과 양심에 의해 결정된다. 한마디로 ‘심판 마음대로’다. 지금의 선관위를 개혁하지 않고 선거를 계속하는 것은 검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는 것과 유사하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는 올림픽 경기보다 더 공정해야 한다.

문화일보

 

06-08 선관위의 ‘헌법 97조’ 해석 황당하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헌법학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하는 근거로 헌법 제97조를 들고 있다. 참으로 황당한 논리다. 헌법은 분명히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감찰을 감사원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말하는 행정기관은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뜻이지, 그 설치 근거나 소속과 관련된 개념이 아니다. 중앙선관위가 수행하는 선거관리 및 정당사무 처리는 당연히 행정업무다.

삼권분립 국가에서 입법기관인 국회와 사법기관인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기관은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행정기관이다. 그 설치 근거가 헌법이냐 법률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또, 그 소속이 어디냐도 중요하지 않다. 맡은 업무가 행정업무라면 헌법기관이라도 당연히 행정기관이다. 법률에 의해 설치된 국가인권위나 국민권익위도 그래서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받는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직무를 정하는 감사원법에서 국회와 법원 및 헌법재판소만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도 앞서 말한 헌법 규정을 근거로 한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지금이라도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제한 없이 수용해야 한다. 소쿠리 투표 같은 엉성한 직무 수행과 인사 비리가 끊이지 않는 중앙선관위가 무슨 염치로 헌법을 왜곡하면서까지 버티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국민의 공분 대상이 된 중앙선관위는 이번 기회에 감사원의 철저한 직무감찰을 통해 모든 누적된 불법과 비리를 척결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대의민주정치에서 선거는 대의정치의 출발점이다. 가장 공정하고 빈틈없는 철저한 선거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중앙선관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중앙선관위의 정치적인 중립성과 독립성은 선거관리 행정업무의 알파요 오메가다. 감사원이 대통령 소속이기 때문에 감사원의 직무감찰이 중앙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는 논리는 다분히 정치적인 예단이 섞인 비법률적인 견해다. 감사원은 조직 면에서 대통령 소속이지만, 업무 수행에서는 독립적인 기관이다.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언제나 불법과 비리를 근거로 사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선거관리의 독립성 및 중립성과는 무관한 일이다.

선거관리의 독립성 및 중립성을 해친 것은 오히려 중앙선관위다. 이념 편향적인 정치적 인사로 구성된 결과다. 국민은 지난 서울시장 등 재보궐선거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념 편향적인 불공정한 선거관리의 한심한 실상을 똑똑히 경험했다. 이제 중앙선관위는 반드시 혁신해야 한다. 우선, 선관위원들이 호선하게 돼 있는 중앙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당연직으로 맡고 지방 선관위 위원장직도 법관들이 차지하는 위헌적인 관행부터 폐지해야 한다. 삼권분립의 헌법질서에서 독립한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를 사법부의 구성원인 대법관이 대표한다는 그 자체가 위헌적인 관행이다. 선관위의 수장으로서 공정한 선거관리의 책임을 진 대법관이나 법관이 사후에 선거범죄의 재판까지 하는 구조는 자기재판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

앞으로 중앙선관위의 위원장은 법관이 아닌 공정하고 중립적인 인사가 상근직으로 맡아야 한다. 국가 의전 서열 5위인 중앙선관위원장을 비상근 대법관이 맡는 것은 통치구조의 민주적 정당성 요청에도 맞지 않는다.

문화일보 

 

06-08 박근혜 1심까지 1년… 울산 선거개입 3년째 ‘질질’

■ 김명수 사법부 ‘선택적 재판’

조국 입시비리, 3년 1개월 걸려
이명박 다스 사건은 6개월 신속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6년간 진보 성향 인사들에 대한 판결 선고는 기간이 지연되는 반면에 보수 성향 인사들에 대한 심리 판단은 신속하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이념 성향에 따른 ‘고무줄 잣대’와 ‘선택적 재판 지연’으로 인한 사법부의 신뢰 붕괴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8일 문화일보가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주요 형사사건 재판 현황(1심 기준)’을 분석한 결과, ‘불공정’ 논란 등을 불러일으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감찰무마 사건은 3년 1개월, 더불어민주당에서 출당 조치된 윤미향(무소속)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사건은 2년 5개월 걸렸다. 또 채널A 기자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최강욱 민주당 의원 사건은 1년 9개월이 되어서야 선고 결과가 나왔다. 황운하·한병도 민주당 의원 등이 연루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재판은 3년 5개월째 진행 중이고,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은 2년째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명수 코트의 진보 진영 인사들에 대한 주요 사건의 1심 선고 기간은 최소 1년∼최대 3년 안팎으로 장기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보수 성향 인사들의 주요 사건은 최소 6개월∼최대 1년 안팎으로 1심 선고가 이뤄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은 약 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 실소유주·횡령 사건은 6개월 만에 선고 결과가 나왔다. 권성동·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의 강원랜드 채용비리, 뇌물수수 사건은 각각 11개월, 10개월 만에 1심이 마무리됐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법원의 ‘고무줄식’ 판결이 늘어나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법원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
 

 

06.09 이런 大法 전원합의체는 처음 본다

過半 차지한 ‘진보’ 대법관들
정치·노동 사건서 몰표 던지고 특정 진영 원하는 판례 만들어
김명수, 사실상 ‘정치 기구’로 활용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기의 대표적 ‘흑역사’ 중 하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를 사실상 ‘정치 기구’로 활용한 것이다. 대법 전합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등 모두 13명으로 구성된다. 지금의 전합은 우리법연구회, 인권법연구회, 민변 출신 등 소위 ‘진보’ 인사가 과반(7명)을 차지한다. 김명수 체제 초기부터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다.

대법원에는 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소부(小部)가 3개 있다. 여기서 합의가 안 되는 사건이 전합에 올라간다. ‘김명수 대법원’ 전합은 작년 말까지 100여 건 정도를 처리했다. 문제는 정치 사건, 이념 사건, 노동 사건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표결’로 결론을 내리는데 ‘진보 대법관’들은 한 묶음으로 움직였다. 과거에도 대법관들 성향을 분석해 전합 결과를 점치곤 했지만,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고의 법률가들이 법리(法理)로 접근해 결론을 내린다는 컨센서스가 작동했었다.

 

지난 6년간 논란이 된 대법 판결들은 대개 ‘소부 합의 불발→전합 표결’ 경로를 거쳤다.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원하는 법안을 갖고 실랑이하다가 본회의로 직회부해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작년 11월 전합에 회부된 ‘현대차 불법 파업 손해배상 사건’도 그런 경우다. 현대차 생산 라인을 63분간 불법 점거한 비정규직 노동자 5명에게 회사가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사건인데, 전합은 마침 ‘노란봉투법’의 쟁점을 다루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으로 재산상 손해를 끼친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배상 청구를 사실상 봉쇄하는 내용이다. 법원 내에선 “김 대법원장이 9월 퇴임을 앞두고 노조와 야당에 선물을 주려 한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이 사건의 소부 주심은 우리법 출신 노정희 대법관이다. 노 대법관은 과거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의 소부 주심도 맡았었다. 그 사건도 전합으로 올라간 뒤 2020년 7월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당시 ‘7(무죄)대5(유죄)’로 피선거권을 유지한 덕분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이재명 판결’ 몇 달 뒤, 김 대법원장은 노 대법관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지명했다. 노 대법관은 법원장 경력도 없는 데다 남은 임기가 1년 미만이었던 대법관 2명,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서열 6위였는데도 그 자리에 앉았다. 그의 대법관 임기가 2024년 8월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2024년 총선 관리를 노 대법관에게 맡긴 것이다. 당시 ‘문재인 청와대의 뜻’이란 얘기가 파다했다. 노 대법관은 결국 2022년 3월 ‘소쿠리 대선’ 사태로 사퇴 압박을 받다가 44일 만에 선관위원장에서 물러났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허위로 채워진 좌파 단체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문제가 없다고 한 2019년 대법 판결,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취업 규칙 변경도 근로자 및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한 2023년 판례 변경도 전합을 통해 이뤄졌다. 둘 다 ‘진보’ 대법관이 소부 주심이었다가 전합에 올라갔고 표결 결과는 ‘7대6′이었다.

 

20년 넘게 판사 생활을 한 법관은 “이토록 정치화된 전원합의체는 처음”이라고 했다. 법리가 아니라 머릿수로 판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대법관들이 바뀐 다음 다시 표결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 대법원 판례의 힘과 권위가 무너진 것이다. ‘김명수 체제’는 정말 회복하기 힘든 해악을 끼쳤다.

조선일보 최재혁 사회부장

 

06.09 독재 때보다 편향, 도 넘은 방만, KBS 수신료 강제 징수 끝내야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에서 대통령실이 추진중인 'KBS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김의철 KBS 사장이 철회를 촉구하자, KBS 일부 이사진들이 경영진과 이사진에게 동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3. 6. 8 / 장련성 기자

 

KBS 사장이 8일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면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전기료에 묻어 수신료를 강제 징수해 온 것이 오늘날 공영방송 KBS의 위기를 불렀다. KBS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한 정부의 국민제안 공개토론에서 96.5%가 분리 징수에 찬성했고, 64%는 이참에 아예 폐지하자고 한 것은 왜곡과 편파를 일삼는 KBS의 행태와 방만 경영에 대해 국민이 내린 심판이다. 수신료 환불 요청 건수도 2016년 1만5000여 건에서 2021년 4만5000여 건으로 급증했다. 김의철 사장 주장에 대해 KBS 이사 일부는 “편파성이 독재정권 때보다 심하다”며 “경영진과 이사진 모두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했다.

KBS는 문재인 정권 내내 정권의 응원단 역할을 하더니 정권이 바뀐 뒤에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듯 정부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 국기에만 경례한 것처럼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도 이런 심리 상태의 결과다. 대통령 방미를 평가하는 라디오 출연자의 성향은 131명 중 80명이 민주당과 친야 성향이었다고 한다.

KBS는 강제 징수한 수신료로 도를 넘은 방만 경영을 하고 있다. KBS는 직원의 절반 가량이 억대 연봉이고 그 가운데 30% 넘는 1500명은 무보직이다. 세상에 이런 조직이 있을 수 있나. 이러니 올해 1분기에만 400억원 넘는 적자를 냈다. SBS는 수신료가 없는데도 지난해 1000억 흑자를 냈다.

 

이날 KBS 사장은 수신료 강제 징수를 유지해준다면 자신이 사퇴하겠다고 했다. 지금 문제는 KBS의 도를 넘은 편파와 방만 경영이지 사장의 거취가 아니다. KBS 수신료 강제 징수는 이제 끝나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9 KBS 사장 궤변이 거듭 보여준 수신료 폐지 당위성

‘공영방송’ 자처부터 낯뜨거워야 할 KBS가 수신료 폐지 당위성을 거듭 보여준다. 김의철 사장은 8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영방송 근간을 뒤흔드는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즉각 철회해 달라”고 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철회 즉시 물러나겠다”고 했다. 궤변이다.

고질화한 왜곡 편향 방송과 방만 경영이 ‘공영방송 KBS’의 근간과 위상을 허문 주범이다. 그런데 김 사장은 “지난해 수신료 수입은 징수 비용을 제외하고 6200억 원 정도였으나, 분리징수가 도입되면 1000억 원대로 급감할 것이다. 이는 KBS에 부여된 다양한 공적 책무를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했다. ‘공적 책무’가 뭔지부터 새삼 되묻게 한다. 수신료를 따로 받지 않는 공영방송이 흑자를 내기도 한다는 사실마저 외면하고 있다. 분리징수는 그의 사퇴 여부와도 무관한 일이다.

여권 추천 KBS 이사 4명이 반박 기자회견을 한 배경도 달리 없다. 이들은 “김 사장이 자리를 두고 대통령과 내기나 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객관적 시각이 없음을 드러낸다”고 했다. “보도국장을 민노총 노조위원장 출신이 3연속 맡고 있다. 그러라고 국민이 수신료를 줬나” “적자인데, 왜 ‘주진우 라이브’라는 편파 불공정 보도를 하는 인사에게 연간 수억 원으로 추정되는 출연료를 주고 있나” 등의 지적도 했다. KBS 간부들부터 경청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사설

 
 

06.09 편향·왜곡 보도로 공영방송의 역할 저버린 게 본질

김의철 KBS 사장이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철회하면 자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제가 사장직을 내려놓겠다”면서다. 정파성에 치우친 왜곡·편향 방송, 방만 경영 등에 대한 자성 없이 분리징수 문제를 정치적 다툼으로 몰아가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마치 자신을 사퇴시키기 위해 정부가 트집이라도 잡고 있는 양 ‘자리 흥정’을 하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지난 5일 대통령실은 전기요금과 통합징수하는 KBS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했다. ‘국민참여토론’을 통해 여론을 수렴한 결과, 징수 방식 개선을 추천하는 의견이 97%에 달했다는 것이 근거가 됐다. 통합징수가 폐지되면 현재 연간 6200억원 정도인 수신료 수입이 1000억원대로 급감할 것이란 게 KBS 측 추산이다. 김 사장은 이날 “공영방송의 근간이 흔들리는 중차대안 사안”이라고 말했지만, 이를 범사회적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다. 그동안 특정 정파 편들기로 국론 분열을 앞장서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온 KBS의 자업자득적 측면이 강하다.

최근 사례만 봐도 지난달 18일 KBS ‘뉴스9’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박2일 노숙 집회의 불법성 논란을 다룬 뉴스를 보도하면서 “경찰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사실과 다른 앵커 멘트를 했다. 이후 문제가 제기되자 사전 고지 없이 다시보기 영상을 교체해 ‘오보 은폐’ 의혹까지 불거졌다. 지난달 31일에도 한국노총 금속노련 간부의 고공 농성 장면을 보도하며 노조원의 정글도·쇠파이프 사용 정황은 간과한 채 경찰의 ‘강경 진압’만 강조했다.

또 보직 없이 억대 연봉을 받는 직원이 전체의 30%(1500명)에 이를 정도로 방만 경영 문제가 심각한데도 본질적인 쇄신 노력 없이 지속적으로 수신료 인상만을 추진해 국민의 반감을 키웠다. 수신료를 받으면서도 광고 수익까지 올리는 기형적 재원구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KBS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혁신안을 내놓지 않으면 수신료 분리징수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매체 시대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과 공정 방송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KBS 개혁의 초점이 돼야 한다. 물론 정치권 역시 수신료 문제를 방송 길들이기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될 것이다. 2017년 분리징수 방안이 포함된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이 8일 “분리징수로 인한 공영방송 황폐화, 방송산업 침몰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함을 명심하라”는 성명을 내놓은 것도 낯뜨겁다.

중앙일보 사설

 

06.10 강규형 前이사 “방송 장악이 뭔지는 현 KBS 경영진이 잘 알 것”

文정부 7개월만에 불법 해임
강규형 前KBS 이사 인터뷰

▲2017년 KBS 언론노조 출입 저지 시위에… 전치 2주 상해 - 2017년 9월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KBS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강규형 당시 KBS 이사에게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달려들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 이사는 이날 좁은 공간에서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안경이 벗겨지고 신체가 압박을 받는 등 피해를 입어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다. /고운호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KBS 이사에서 강제 해임됐다가 문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벌여 승소한 강규형 전 KBS 이사(59·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9일 “현 KBS 경영진은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방송 장악인 것처럼 말해선 안 된다. 김의철 KBS 사장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전날 김 사장이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전임 정권에서 사장이 된 저 때문이라면 제가 사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한 것에 대해 “전 정부에서의 방송 장악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라고 했다.

 

강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김 사장이나 현재 KBS 주요 경영진은 문 정부 5년 동안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민노총의 기간 방송으로 만드는 주역을 했던 인물들 아니냐”면서 “김 사장 역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각종 선동적인 내용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고, 저를 포함한 KBS 이사들을 몰아내는 집회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2017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당시 야당(현 국민의힘) 추천 KBS 이사였던 강 교수에 대한 해임을 건의한다. 강 이사만 찍어 올린 ‘표적 해임’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바로 승인했다. 이후 강 교수는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해 3년 8개월 만인 지난 2021년 9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지난 정부에서 문 대통령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리한 유일한 사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KBS에선 언론노조KBS본부 소속 노조원들이 앞장서 강 교수를 포함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KBS 이사들을 몰아내는 퇴진 운동을 거세게 벌였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KBS 사장을 바꾸고 싶은데 KBS이사회에서 당시 여당 추천 이사 숫자가 적었어요. 저를 포함해 전 정부 시절 임명된 이사 2명만 쫓아내면 수적(數的)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 노조가 나섰던 것이죠.”

 

▲2017년 이사 퇴임 앞장선 김의철 - 2017년 당시 이사 퇴진 시위에 참석했던 김의철 KBS 사장. /KBS노동조합

 

당시 KBS언론노조 조합원들은 강 교수를 포함해 일부 이사들의 직장인 학교나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강 교수의 학교에 비방 벽보를 붙이고 학교 정문에 확성기를 틀고 집회를 벌이는 등 집단 린치에 가까운 압박을 가했다. 강 교수 집 근처에 노조원들이 숨어 있다가 가족들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다. 강 교수는 “그때 언론노조 위원장이었던 사람이 지금은 보도국장석에 앉아서 현재 KBS의 편향 왜곡에 항의하는 사람을 불러 겁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KBS 이사 교체의 본질은 결국 ‘방송 장악’이었으며, 결국 김 사장 등을 포함해 언론노조KBS본부가 선봉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강 이사와 함께 퇴진 요구에 시달렸던 나머지 이사들은 모두 언론노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는 길을 택했다. 그 탓에 해임 무효 소송을 벌이지도 못했다. 강 교수만 혼자 해임되는 길을 택한 뒤 소송을 벌여 해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강 교수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크고 작은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문 정부는 강 이사 등을 몰아 내고 KBS 이사회에서 수적 우위를 점한 뒤 고대영 당시 사장 등을 해임하고 경영진을 교체했다. KBS판 적폐 청산 기구인 ‘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도 만들어졌다. 2018년 6월 ‘전 정권과 경영진 시절 벌어진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 훼손 사례를 밝히겠다’는 명분으로 설립되어 10개월간 활동한 진미위는 2019년 4월까지 총 22건의 KBS 내 보도 공정성·독립성 사례를 조사, 이 중 5건을 근거로 총 19명에 대한 징계를 권고했다. 강 교수는 “진미위는 직원들의 과거 정권 시절 행적을 파악해 인적(人的) 청산을 하는 역할을 했다”면서 “김 사장도 당시 4명이었던 진미위 위원 중 한 명으로 활동한 만큼 정부가 마음먹고 방송을 장악할 때 어떤 식으로 하는지 잘 알 것”이라고 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정필모 위원장을 비롯해 김 사장과 김덕재 부사장 등 ‘진미위’ 위원들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KBS나 MBC 모두 문재인 정부 이후 지금까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다”면서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전(全) 국민한테 수신료를 달라고 할 수 있나. 수신료는 공정 방송을 할 때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 역시 KBS 이사 시절 수신료 문제를 깊이 고민했었다. 강 교수는 “수신료를 받는 것은 이제 옛날 방식이다. 일본과 영국도 수신료를 없애거나 낮추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미국 공영방송 PBS와 NPR은 마침 제가 미국 유학 시절 박사과정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던 맥아더 재단(John 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면서 “이들은 수신료 없이도 국민들에게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외국과 달리 수신료를 준조세처럼 받고 있는데, 이는 KBS가 공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면서 “지금처럼 편파적으로 진영을 앞세운 방송을 하는 KBS가 국민들한테 수신료를 강제 징수할 수 있느냐, KBS는 결코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KBS는 억대 연봉자가 전체 직원의 51%에 이르는 등 불필요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그 사람들의 지나치게 높은 급여를 부담해주기 위해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도 이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했다. 또 “국민들 중 상당수는 이제 OTT(동영상 스트리밍)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보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KBS를 시청하지 않는 국민들의 선택권도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신동흔 기자편집국 문화부 기자

 
 

06.11 정치에 휘둘린 대법...김명수의 6년이 사법부에 던진 숙제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가 올 9월에 종료됩니다. 김 대법원장의 6년, 어떻게 보시는지요?

2017년 9월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다음 날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면담을 위해 춘천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상경한 모습, 법원 내 핵심 요직인 법원행정처 출신이 아닌 법정에서 사실심 판결만 해온 판사라는 점, 대법관 경험 없이 바로 대법원장에 임명되었다는 점에서 대법원에 새로운 ‘정의’를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저도 한껏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6년간 김 대법원장은 ‘정의’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시나요?

대법원장의 명함엔 영문으로 직위를 ‘CHIEF JUSTICE’로 명기하고 있습니다. 판사들이 대법원장을 약칭으로 ‘CJ’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의’를 직위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입니다. 그러므로 대법원장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모두 정의로워야 합니다.

 

첫째, ‘사법 독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5월 22일 사표를 제출한 임성근 부장판사와 면담했을 때 김 대법원장은 “더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그치?”라고 말했습니다. 국회의 법관 탄핵을 이유로 사표를 반려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사법부 독립을 지켜야 하는 수장이 사법부 독립을 온전히 다 저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둘째, ‘인사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2년 4월 초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일부 판사들이 ‘법원장 2년’이라는 인사 기준과 관행을 어기고 3년씩 법원장을 지내는가 하면 인사 관례를 깨고 지방법원 지원장 근무 직후 서울중앙지법에 발령되는 일이 반복됐다. 이에 대한 해명을 요청한다”라는 공문을 법원행정처로 발송했습니다. 5년 동안 이루어진 코드인사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 굵직한 현안을 담당한 판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4년 연임된 건 여러 논란을 낳았습니다.

셋째, ‘재판 지연 문제’입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첫 인터뷰에서 ‘사실심만 30년 한 판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임기 초부터 ‘좋은 재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최악의 재판 지연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대전 특허법원에서 근무하는 고법 판사는 “재판의 실패,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글을 법률신문에 기고했습니다. 이 고법 판사는 현재의 재판 지연에 대해 사건을 덜 처리하는 법원, 점점 더 길어지고 만족도도 높지 않은 재판, 오래되고 어려운 사건은 미루는 재판이라고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참으로 타당한 의견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화된 대법원 문제’입니다. 2018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후보가 TV토론에서 친형 입원과 관련한 발언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2020년 7월 16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으로 공개할 의무가 없는 질문에 대해 일부 사실을 소극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허위사실의 공표라고 할 수 없고, 말하는 배경이나 맥락을 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활발한 토론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2심에서 유죄가 난 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심을 맡았던 권순일 대법관은 지금 여러 구설에 올라 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동안 약 100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민감한 정치·이념·노동 사건들이었습니다. 작년 11월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현대자동차 불법 파업 손해배상 사건’에선 불법 파업으로 재산상 손해를 끼친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어렵게 하는 ‘노란봉투법’의 쟁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향후 대법원장과 대법원이 나갈 방향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대법원에서 ‘여의도 문법’이 통해선 안 됩니다.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법관이 대법원으로 와선 안 됩니다. 지금의 정치는 옳고 그름의 세상이 아니라 좋고 싫음의 세상입니다. 정치적 성향이 맞으면 그 사람이 어떤 불법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지켜야 합니다. 이러한 정치 논리에 대법원이 휘둘려선 안 됩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후보자는 “탁월한 법률적 식견이 있는가?”, “어떠한 정치적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옳은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주저함 없이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DB

조선일보

 

06.12 매일 지각 국민권익위원장, 그 자리 있는 것 자체가 국민권익 침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거의 매일 지각하는 등 근태가 엉망이었다고 감사원이 감사 보고서에서 공개했다. 전 위원장은 공식 외부 일정이 있거나 서울 청사에서 근무하는 날을 제외하고 세종 청사의 권익위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날 89일 중 83일(93.3%)을 지각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는 하루도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간 기업이었으면 벌써 쫓겨났을 것이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의 출퇴근은 국민과의 약속이자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다.

전 위원장은 세종시에 있는 권익위원장 관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서울 자택에서 출퇴근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지각에 대해 6차례 소명을 요구했지만 전 위원장은 응하지 않았다. 전 위원장은 “감사원의 일방적 추정일 뿐”이라면서도 감사원 발표가 뭐가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있다.

 

전 위원장은 지난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해충돌 방지법’을 추 장관에게 유리하게 유권 해석하는 과정에 관여한 사실도 감사 결과 드러났다. 그래 놓고 직원들을 시켜 자신의 개입을 부인하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게 했다. 거짓말까지 한 것이다. 당시 권익위는 추 장관 아들 의혹을 제보한 당직 사병에 대해서는 “공익 신고자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서해 피살 공무원 월북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도 권익위가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 권익 대신 권력 편에 서서 노골적으로 문 정권을 비호해왔다.

 

전 위원장은 청탁금지법 시행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이 법에 따른 식대 상한 1인당 3만원이 넘는 점심을 먹고, 이를 감추기 위해 직원들이 허위 문서를 만든 사실도 드러났다. 전 위원장 수행 비서는 공금 2400여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국민권익위는 고충·민원을 해결하고 공무원 부패를 방지해 국민의 권익을 지키라고 만든 기관이다. 전 위원장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국민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2 박정희 공대, 50년 후 문재인 공대

별도 법 만들어 세운 대통령 공대들
과학자들 주도한 KAIST… 반세기 과학기술입국에 공헌
정치인 주도 한전공대는 무슨 기여를 할 것인가

 ▲전남 나주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 전경. 2023.3.8 /연합뉴스

 

지난 5월 22일 자 칼럼에 박정희 대통령이 발탁한 30대 중반의 엔지니어 출신 신동식 초대 경제수석 이야기를 소개했더니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보여주셨다. 일부 독자는 KIST 설립 비화를 보면서 댓글에 ‘문재인 공대’에 대한 우려를 남겼다. KAIST와 한국에너지공대(일명 한전공대)는 교육부 산하가 아니고 별도 법을 만들어 세운 ‘대통령 공대’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설립 과정은 천양지판으로 다르다.

 

1966년 과학기술입국의 출발점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있었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 손으로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기관 KAIS(한국과학원, KAIST 전신)가 1971년 만들어졌다.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산파 역할을 하고 초대 부원장도 지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69년 은사였던 존 해너 미시간대 총장이 미국 국제원조처 처장이 됐다는 뉴스에, 정근모 당시 뉴욕공대 교수가 그를 찾아갔다. 해너 처장 제안으로 과학기술 특수대학원 설립 제안서를 만들고 이것이 한국 정부에 전달됐다. 하지만 이 제안서만으로 성사된 건 아니었다. KIST 초대 소장이었던 고 최형섭 전 과기처 장관 회고록을 보면, KIST 주도로 대학원 교육 육성 방안을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공계 특수대학원 설립을 건의했다. 그만큼 과학기술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애국적인 과학자들 사이에 인재 육성에 대한 염원이 컸다.

 

1970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과학원 설립을 지시했다. 6월에 미국 국제원조처가 600만달러 차관 공여를 승인하고, 7월 국회에서 ‘한국과학원법’이 통과됐다. 불과 몇 달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듯 보이지만 내막은 달랐다. 육사 8기 출신으로 5·16 핵심세력이었던 홍종철 문교부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도 극구 반대했다. 기존 대학의 반발 때문이었다. 남덕우 재무부 장관이 한국과학원을 과학기술처 소관에, 교육 예산 아닌 경제개발 특수예산으로 추진하자고 대안을 냈다. 그럼에도 교수들 반발이 가라앉질 않자 문교부 장관이 김학렬 경제기획원 장관을 찾아가 미국에서 받기로 한 600만달러 차관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두고 두 장관이 심한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과학원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미국에 진정서까지 보냈다. 이에 닉슨 대통령의 과학 고문이 한국과학원 설립에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최형섭 KIST 소장이 그를 설득해서 생각을 바꿔놓았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 논리를 중시했다면 당시 반대 목소리를 대변한 ‘실세’ 문교부 장관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제안한 ‘국가 미래’에 손을 들어줬다. KAIST 초창기 역사를 들여다보면 과학입국의 꿈을 실현하려는 걸출하고 애국적인 과학자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그 간절한 열망이 오늘날 KAIST를 가능케 했다.

그로부터 50년 후 전남 나주에 문을 연 한전공대는 정반대 논리로 탄생했다. 대학이 남아돌아 걱정인 시대에 과학자, 경제 관료, 한전 이사회가 내릴 법한 합리적 판단은 외면한 채 정치 논리로 추진됐다. 당초 구상은 386 운동권 출신의 민주당 나주·화순 지역위원장이 지역 개발을 위해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낙연 당시 전남 도지사와 조환익 한전 사장을 설득해 호남권 숙원 사업으로 띄웠고, 민주당 대선 공약으로도 채택됐다. 대선 후 100대 국정 과제로 선정해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 개교를 약속했다. 그 일정에 맞춰 특별법 만들고 허허벌판에 건물 한 동 짓고 서둘러 개교했다.

 

졸속 개교나 시설 미비는 부분적 문제다. 천문학적 적자를 낸 한전에 계속 손벌리고 지원받아 학교를 완성해야 하는데, 에너지 정책조차 비과학적이고 이념적 아집에 사로잡힌 정부에서 만든 에너지 공대가 전기요금 내는 전 국민을 설득할 만큼 지속 가능한 비전을 못 보여준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정치인들은 남의 돈 써서 생색 내고 공치사하는 데는 능하지만 조직의 존립 이유와 지속 가능한 발전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KAIST 교수들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영입된 한전공대 교수와 구성원들이 존립 필요성을 입증하고 장차 KAIST 못지않게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야 할 텐데 안타깝게 아직 단초는 보이질 않는다.

 

건학이념을 보려고 한국에너지공대 홈페이지를 방문했는데 영문판을 기본으로 구축했다. 한국어 버전을 치면 ‘대통령 윤의준 박사 창립 회장’이라는 황당한 문구가 뜬다. 자동번역기 솜씨인듯 ‘총장’을 ‘대통령’으로, ‘초대 총장’을 ‘창립 회장’으로 엉터리 번역한 것이다. 기본에서조차 간절함과 열정이 결여돼 있다. 이런 식이면 교수들은 거액 연봉 챙기고 학생들은 공짜 공부하면서 한전 등골과 세금 빼먹는 그저 그런 ‘나주공대’로 표류할 것이다.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

 

06.12 원전보다 4배 비싼데...태양광 무조건 사주는 한전

전력 우선 구매 규정 내걸지만 실제로는 강제 아닌 권유 조항… 한전 스스로 재무 악화시켜

 ▲지난 정부의 무분별한 태양광 설비 확대와 한전의 태양광 우선 구매 탓에 비싼 태양광 발전이 한때 전체 발전의 40%까지 치솟고, 값싼 원전 발전을 줄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전이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구매하는 단가는 올 들어 kWh(킬로와트시)당 171원으로, 42원인 원자력의 4배가 넘는다. 사진은 태양광 발전이 설치된 서울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 옥상 모습./조선일보 DB

 

전국 낮 최고기온이 영상 20℃ 안팎을 기록하며 맑은 날씨를 보였던 지난 4월 9일 일요일. 이날 낮 12~1시 사이 전국 태양광 발전기 출력은 평균 2만1779㎿(메가와트)로 이 시간대 우리나라 전체 전력 수요(5만5577㎿)의 39.2%를 차지했다. 태양광이 원전이나 석탄,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제치고 전체 전력 수요의 40% 가까이 차지한 것이다.

 

탈원전과 동시에 태양광 확대를 밀어붙인 지난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한전이 싼 원전 대신 비싼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우선 매입한 데 따른 비용 청구서가 속속 날아오고 있다.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 설비가 급증해 햇빛이 좋은 봄철 태양광 발전이 크게 늘자, 전력 수급 조절을 위해 값싼 원전 발전을 줄인 탓에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11일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전이 태양광 발전업체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구매 단가는 올 1~5월 평균 kWh(킬로와트시)당 171원으로 원전(42원)의 4배를 웃돌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전은 원전보다 4배 비싼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우선 구매하고 있다. 올 들어 원전 감발(출력 감소)로 인한 단순 비용만 20억원이 넘는다. 탈원전을 LNG로 대체하면서 2030년까지 예상되는 47조원 손실에 더해 숨어 있던 청구서인 셈이다.

 

한전은 전기사업법 31조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사업자의 전기를 우선 구매할 수 있다’를 근거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우선 구매는 강제 조항이 아닌데도 천문학적인 영업 손실을 내는 한전이 원전·석탄 대신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무조건 사들이면서 스스로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한전이 비싼 태양광을 먼저 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지금은 고비용 구조를 낮추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철원

 

11일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4월에는 2·8·9·30일, 3월에는 19·26일 등 올 들어 6차례 태양광 비율이 낮 12~1시 때 전체 전력 수요의 35%를 웃돌았다. 한 시간 단위지만 2036년까지 정부가 계획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30.6%)을 태양광 혼자 크게 넘어서는 수치다. 지난 한해 태양광 발전 비율은 전체 4.5%에 불과했다.

 

◇봄철 원전 감발 20차례 달해

냉난방 수요가 덜한 데다 날씨가 좋은 봄철에 태양광 발전이 급증한 여파는 값싼 원전의 감발 운전으로 이어졌다. 전기는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도 송배전망에 문제를 일으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태양광 발전이 급증하며 전기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자 전기 구매 단가가 태양광의 4분의 1 수준인 원전 출력을 낮춰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봄철 태양광 발전이 급증하면서 원전은 3, 4월 모두 20차례 출력을 낮췄다. 지난해와 2021년에는 전력 수요가 급감하는 설과 추석 연휴에만 각각 한 차례 원전 감발이 있었지만, 올해는 1월 설 연휴 외에도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면 출력을 줄여야 했다. 봄철은 일조량과 기온이 적절해 태양광 발전이 많이 늘어나지만 공장과 사무실이 문을 닫는 일요일에는 전력 수요가 뚝 떨어지자 가장 값싼 에너지원인 원전의 출력을 낮춘 것이다. 태양광 과잉 발전 탓에 원전 발전을 멈춘 규모는 전력량으로 1만6750MWh(메가와트시)에 달했다. 월평균 332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 기준으로 5만450여 가구가 한 달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이 기간 원전 대신 태양광 전기를 구매해 한전이 추가 부담한 비용은 20억원이 넘는다.

 

 ▲제주시 한경면 한경풍력 발전단지./뉴스1

 

◇원전·신재생이 2036년 되면 3분의 2 차지

값싼 원전 대신 태양광을 더 돌리는 것과 같은 역설적인 상황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전체 발전량의 7.5%에 그쳤던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030년에는 21.6%, 2036년에는 30.6%로 급증하게 된다. 같은 기간 원전도 27.4%에서 32.4%, 34.6%로 크게 늘어난다. 2036년이 되면 신재생에너지와 원전만으로 전체 전력 수요의 3분의 2를 충당하게 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강하기 위한 설비 등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금과 같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를 쓰겠다는 건 모순적”이라며 “저장 설비나 전력망에 충분한 투자가 된 뒤에야 제대로 재생에너지가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비용은 한전 차원을 넘어 이곳저곳에서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 전력 소비자들이 동의하고 이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재희 기자

 

06.12 “선관위 계셔” “공직 종사”… 채용특혜 자녀 자소서는 ‘아빠 소개서’

가족이 함께 쓴 선관위 아빠 찬스

‘아빠 찬스’ 특혜 채용 의혹을 받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직원이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신다”면서 사실상 ‘아빠 소개서’를 쓴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이 외에도 부친이 인사 담당자에게 자녀의 지원 사실을 사전에 알리고, 자녀는 자기소개서에 “공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라고 적어내면서 은근히 ‘누구 자녀’임을 드러낸 사례도 있었다. 여기에 ‘특혜 채용 의혹’을 받고 있는 직원들은 모두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권은 “입시 비리가 드러나고도 의사 면허를 붙들고 있는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一家)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에 따르면 ‘아빠 찬스 특혜 채용’ 선관위 직원 9명은 자기소개서에 부친의 직장을 드러내 놓고 밝히거나, 기본소득 업무 공로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로부터 표창받았다고 적는 등 당시 집권세력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입맛에 맞춘 듯한 내용을 써내기도 했다.

 

일례로 인천선관위 간부 딸인 정모씨는 2011년 10월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셔서 선관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선거가 국회의원·대통령 선거 말고 다양하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며 “선관위로 전입하게 된다면 다시 공직생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제 자신을 낮출 것”이라고 썼다. 당시 면접관 3명은 정씨에게 동일한 점수(4개 항목 ‘상’, 1개 항목 ‘중’)를 부여했다. 정씨는 ‘아빠 근무지’인 인천선관위에 경력직으로 채용됐다.

 

이번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인사 담당자들이 지원자가 누구의 자녀인지 사전에 알고 있었던 사례는 3건(송봉섭 전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선관위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선관위 총무과장)으로 나타났다. 자기소개서에서 부친이 선관위에 근무한다거나 공직에 종사한다고 밝힌 특혜 채용 직원들도 3명으로 집계됐다.

이 밖에 2016년, 2020년 각각 충남·충북선관위에 채용된 선관위 간부 자녀들 또한 ‘아빠 동료’들이 면접위원인 상황에서 면접을 봐 합격했다. 선관위는 2015년 ‘면접위원 절반 이상은 선관위 소속이 아닌 공무원으로 구성하라’고 내부 규칙을 개정했지만, 충북·충남선관위 경력 채용 과정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집권 세력 입맛에 맞춘 듯한 자기소개서 내용도 논란이 되고 있다. 신우용 제주선관위 상임위원 아들은 서울선관위 경력 직원으로 응시하면서 자기소개서에 기본소득과 관련된 업무를 했다고 반복적으로 기재했다.

 

2020년 재난 기본소득 업무 성과로 경기도지사(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로부터 표창받았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2021년 근무하던 안성시에서도 ‘지자체를 빛낸 공무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식이다. 자기소개서가 제출된 시기(2021년 10월) 이재명 대표는 집권 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상태였다. 신씨는 자기소개서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저는 국민 주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그래픽=이철원

 

‘아빠 찬스’ 의혹 선관위 직원들은 자기소개서에서 공직자의 미덕으로 공정, 정의, 청렴을 강조했다. 공직 지원자들이 자소서에 청렴 등을 강조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이들의 채용 방식에 비추어보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봉섭 전 선관위 사무차장 딸이 자기소개서에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는 청렴이 중요하다”고 적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송 전 차장 딸은 “신뢰라는 것은 한 번의 실수로도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며 “한 사람의 부정부패로 국민 전체가 피해 볼 수 있고, 어렵게 만든 국가라는 전체의 그림을 망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릇도 깨끗하게 비워내야 맑은 물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국민 뜻이 선거에 그대로 담길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내용의 자기소개서가 제출될 무렵, 선관위 고위 간부였던 송 전 차장은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딸을 직접 추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면접관들은 송 전 차장과 지역·직장 연고가 있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송 전 차장의 딸은 면접관들 전원으로부터 만점을 받고 선관위에 채용됐다.

김정규 경남선관위 총무과장 딸은 자기소개서에서 “공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일상 속에서 쉽게 준법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며 “이런 성장 환경 덕분에 저도 공무원이 되어서 법령을 준수하여 처리하는 습관이 형성됐다”고 썼다. 자신의 좌우명인 ‘나를 속이지 말자’와 관련해선 “나에게 떳떳해야 남에게도 떳떳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 특별감사에서 김정규 과장 또한 인사 담당자에게 지원자가 자신의 딸임을 사전에 알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원자가 ‘김 과장 딸’이라고 미리 알았던 면접관들은 5개 면접평가 항목에서 동일한 고득점을 줬다. 이렇게 선관위에 채용된 이후에는 김 과장 본인이 직접 딸의 승진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경기남부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박찬진 전 사무총장, 송봉섭 전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선관위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선관위 총무과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향후 감사원 감사, 국민권익위원회 전수조사, 국회 국정감사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현재까지 아빠 찬스 채용 특혜 정황이 드러난 선관위 직원들은 모두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선관위 소속인 김모씨만 이번 특혜 채용 논란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1월 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봉민 의원은 “선관위 특혜 채용 대부분이 조국 사태로 사회적 공분이 극심한 시기에 이뤄졌다”면서 “‘아빠 찬스’ 선관위 직원들의 모습에서, 입시 비리가 드러나고도 궤변을 늘어놓는 조국 전 법무장관 딸인 조민씨가 겹쳐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

 

06.13 선거 때 휴직, 그 자리에 ‘아빠 찬스’, 이러니 ‘소쿠리 투표’ 나오는 것

특혜 채용 의혹을 받는 선관위 간부 자녀가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신다” “공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보며 준법정신을 배웠다” 등 부친이 선관위 직원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선관위 인사 담당자들은 이들의 지원 사실을 사전에 알았고, 면접관들은 높은 점수를 줘 합격시켰다. 자기 자녀 채용을 최종 결재한 간부도 있다. 입사 지원부터 면접, 채용 결정에 이르기까지 ‘아빠 찬스’가 작동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경력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선관위에 결원이 생긴 이유는 중요 선거가 닥칠 때마다 휴직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0년 휴직자는 107명이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 전해인 2021년에는 휴직자가 193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선관위 직원들이 큰 선거를 앞두고 대거 휴직했고, 간부들은 그 틈을 이용해 자기 자녀를 선관위에 집어넣었다. 공직을 가족끼리 대물림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이 분노했고, 선거 관리를 위해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선거 앞두고 대규모로 휴직했다는 사실에 또 한번 혀를 찼는데, 알고 보니 그 둘 사이에 인과관계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선관위 직원들끼리 자식들 취직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휴직하자는 공모가 있었다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선관위 조직 전체가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이러니 선관위 본연의 임무인 선거 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지난 대선 때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기고 이미 기표한 용지를 유권자에게 나눠준 일까지 발생했다. 북한의 해킹 공격을 8차례 받고도 알지 못했다. 이를 지적한 국가정보원과 행정안전부의 보안 점검 권고도 거부했다. 일이 터질 때마다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도 거부했다.

선관위는 지난 60년간 어떤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 1년 예산 4000억원, 직원 3000명 규모의 거대 기관이 됐다. 자기들끼리 ‘신의 직장’을 만들며 쌓아온 적폐가 지금 터지는 중이다. 도덕성, 중립성은 물론 업무 능력까지 의심받고 있다. 선거 관리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이다. 이번 기회에 선관위의 썩은 부위를 완전히 도려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13 中에 ‘삼성 복제공장’…기술 유출 막을 특단 대책 급하다

첨단 기술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갈수록 기술 각축전이 격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수십 년 엄청난 투자와 연구 끝에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확보했다. 특히 반도체 기술은 앞으로 수십 년 한국 경제를 지탱해야 할 버팀목이다. 그런데 이를 통째로 도둑 맞을 뻔한 일이 발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빼돌려 중국에 복제 공장을 세우려던 삼성전자 전직 임원 등이 기소됐다. 충격적이다. 최근 5년간 적발된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 국내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이 93건에, 예상 피해 규모가 25조 원이라고 한다.

수원지검에 따르면, 삼성전자 전직 임원 최모 씨 등이 대만 전자 제품 업체로부터 8조 원의 투자를 약정받아 빼돌린 설계 자료로 중국 시안에 똑같은 공장을 지으려 했다. 투자가 불발되자 2020년 중국 청두시로부터 4600억 원을 투자받아 공장을 짓고 지난해 시제품을 생산했다. 최 씨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반도체 전문 인력 200명 이상을 국내 연봉의 2배를 제시하며 영입했다. 지난 5월에 이 회사가 개발한 19나노 D램과 관련, 중국 언론이 ‘반도체 굴기의 큰 진전’이라고 보도했을 정도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2021년 고부가가치 선박 핵심 기술을 중국 경쟁 업체에 넘긴 H조선 출신 인사가 기소됐다. 디스플레이 분야의 전문가는 중국 경쟁 업체로 이직하면서 기판 설계 도면을 빼내다 검거돼 징역 2년이 선고됐다. 현대·기아차 설계 도면 등 영업비밀 130건이 중국 자동차 설계를 맡은 국내 업체에 넘어간 사례도 있다.

반면 대책은 너무 허술하다.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33건의 사건 중 60.6%가 무죄, 27.2%가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법적·제도적 장치도 마찬가지다. 대만은 첨단 기술 인력이 중국에 취업할 때 정부 심사를 받도록 했고, 일본은 외국 연구자금을 받을 때 당국에 신고하도록 했다. 기술 개발 못지않게 기술 보호와 유출 방지도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긴밀하게 협력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의 기술 방첩 역량 강화도 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6-13 ‘공영 미디어’ 근원적 개혁 필요하다

김종민 변호사, KBS 이사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 본질은
KBS 존재 필요성에 대한 의문
정치 도구 전락하고 방만 경영

현 경영진 전면 사퇴가 출발점
대수술 없이는 회생 불능 상태
多민영 체제로 개편 검토할 때

수신료 분리 징수를 둘러싼 KBS 사태의 본질은, 공영방송의 책무를 망각한 KBS에 납부 방법의 자유를 달라는 국민의 정당한 요구다.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김의철 KBS 사장은 “전임 정권에서 사장이 된 저 때문이라면 수신료 분리 징수 방침 철회를 조건으로 사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편파 불공정 방송과 무능 방만 경영의 주인공이 수신료 분리 징수가 마치 자신에 대한 정치적 탄압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신료가 특별부담금 성격이라 하지만, 60여 개 특별부담금 중 전기요금 납부와 연계된 다른 사례는 없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수신료 분리 징수에 찬성하는 배경에 KBS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가 자리 잡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이사로서 지켜본 KBS는 근본적인 대수술 없이는 회생 불능 상태의 중환자 모습이다. 민노총 소속 언론노조가 장악한 가운데 정파적 이념적 편향성을 선전하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의 성재호 보도국장까지 3회 연속 KBS 언론노조위원장 출신이 보도국장을 맡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김어준 씨와 함께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왔던 주진우 씨에게 매회 수백만 원, 연간 수억 원으로 추정되는 거액의 출연료를 지급하며 라디오 시사 프로 진행자로 고집하고 있다. 이사회 때마다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방송의 독립성과 제작의 자율성’을 내세우며 무시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KBS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무능 방만 경영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1분기 실적은 당기손익 425억 원 적자를 기록했는데, 광고 수입이 목표 626억 원 대비 230억 원 미달했다. 전년 대비 283억 원이 줄어든 수준이다. KBS 광고점유율의 지속적인 하락 추세는 더욱 우려스럽다. MBC 31.3%, SBS 32.2%인 데 비해 KBS는 20.9%로 전년 대비 1.2% 하락했다.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1분기 방송제작비 집행을 전년 대비 83억 원 줄였는데 제작비를 줄이니 콘텐츠의 질과 경쟁력이 떨어지고 광고 수입도 줄어드는 구조적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재무위험 수준이 ‘심각’ 상태로 빨간불이 켜졌지만, 연봉 1억 원 이상 직원이 50% 이상인 인력 구조조정이나 임금 삭감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1분기 경영 실적을 보고하는 지난 이사회도 ‘비상경영’의 절박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현 경영진과 이사회가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것은 전문성 부족 때문이다. 전문 경영인들이 사장과 이사를 맡고 있는 일본 NHK와는 달리 KBS는 연간 1조4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쓰면서도 기업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비전문가 일색이다. KBS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할 목적으로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경영 전문성이 없으니 KBS를 효과적으로 감독하기에 역부족이다. 현 남영진 이사장은 미디어오늘 사장 출신으로, 노무현 대선후보의 언론특보를 지냈다.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장 시절 점수 조작으로 구속됐다가 1심 재판 중인 이사도 있다. 대선 캠프 활동 후 3년이 지나면 이사 임명에 결격사유가 없지만, 정치적 임명으로 오해받을 소지는 충분하다.

이런 이사회 구성이 KBS의 1년 성적표라 할 수 있는 경영평가 보고서 작성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다수의 야권 이사가, 전 KBS 김인규·고대영 사장과 전 MBC 김장겸 사장 등이 상임고문으로 참여한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 대해 작성 지침상의 ‘전문가 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인용한 불공정 편파보도 평가를 표결로 삭제했다. 창사 이래 최초의 일이다. KBS의 현주소가 이러한데 더불어민주당은 경영 혁신에 역행하고 공영방송의 정치화를 가속화할 뿐인 방송법 개정안 강행 처리로 방송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오늘의 KBS 사태 해결은 김 사장과 이사 전원의 퇴진으로 시작돼야 한다. 미디어 환경 변화를 반영해 KBS 1TV만 남기고 ‘1공영 다(多)민영’ 체제로 구조개혁 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방만 경영과 편파 불공정 방송으로 일관하며 변화와 혁신을 거부한 ‘김의철의 KBS’는 국민에게 수신료를 말할 자격이 없다.

문화일보 

 
 

06.14 탈원전 첨병 文 정권 산업부, 원전은 조작하며 태양광으로 돈벌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산업부 과장들과 사무관이 안면도에 국내 최대인 300㎿급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는 업자의 로비를 받고 태양광 부지로 쓸 수 없는 목장용 초지(草地)에 태양광이 허가될 수 있게 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로비를 들어준 산업부 과장은 2년 뒤 해당 업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 문제가 2019년 국회에서 논란이 되자 산업부 공무원들은 국회 제출 답변 자료까지 허위로 작성했다고 한다. 또 태안군 공무원들은 충남도가 해당 부지의 차후 원상 복구 계획을 요구하자 서류는 제출한 뒤 실제로는 지목을 잡종지로 바꿔 원상 복구가 필요 없도록 해줬다.

산업부는 에너지 정책 담당 부서로, 문 정권의 탈원전과 태양광 확대 정책에 앞장섰다. 특히 산업부 실장 출신인 채희봉 전 청와대 비서관은 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월성 1호기 영구 폐로를 주도했고 그 뒤 가스공사 사장이 됐다. 그는 가스공사 농구단에 연봉 1억원이 넘으면서 하는 일은 없는 ‘총감독’과 ‘외부단장’ 직을 신설해 고교 동문들을 앉혔다. 백운규 전 산업부장관은 월성 1호기를 2년 반 더 가동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과장에게 “너 죽을래”라고 윽박질러 월성 1호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게 했다. 산업부 국·과장급 공무원들은 휴일 밤중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증거를 인멸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문 전 대통령은 차관이 두 명이던 산업부에 제3 차관을 신설해 조작 공로로 선물을 줬다.

 

▲목장 초지에 들어설 수 없는 태양광 단지가 건설되고 있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 태양광 사업 부지. /감사원 제공

 

문 정권은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그 대신 태양광 확대 정책을 폈다. 탈원전 주도 부서인 산업부 공무원들이 이 태양광 확대 정책의 이면에서 돈벌이까지 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시 등 지자체 단위에서 운동권 출신의 태양광 업체들에 보조금을 몰아줬다가 물의를 빚은 적이 있지만, 중앙 부처 공무원들이 태양광 이권 카르텔에 직접 연루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확인된 사례 말고도 산업부 공무원들이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익을 취한 사례가 더 있을 수 있다.

감사원은 산업부 공무원들 외에도 한국전력, 에너지공단 등 관련 8개 공공기관 직원 250여 명이 직접, 또는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어 보조금을 챙겨온 사실을 적발했다. 인허가 업무를 맡고 있던 이들은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겸직할 수 없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내부 정보를 활용해 돈을 벌었다. 탈원전을 추진하던 산업부와 인허가를 담당하는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이 문 정권이 판을 벌여 놓은 태양광 비리 복마전의 이곳저곳에서 돈을 챙긴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4 국방·외교·경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옳은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오해하고 있다, 선관위와 방탄 국회를 보라… 중우정치, 군중독재 유혹 점점 커져
민주주의 제대로 작동하려면 법의 지배, 공공선 지켜야
공화국 정신 파괴하는 ‘민주팔이’들에게 법의 철퇴를

공정 선거를 책임지는 중앙선관위가 북한 해킹을 당하고도 보안 점검을 거부하다가 불법 채용 의혹에 또 휩싸였다. 불체포 특권 포기를 공약했던 거대 야당은 자당 의원들의 구속엔 무조건 반대하는 ‘방탄 국회’를 연출했다. 몇 년 전 ‘국정 농단’ ‘경제 공동체’ 등 기묘한 법률 용어를 엮어 대통령을 탄핵했던 특검은 스스로 특대형 비리에 휘말려 있다.

이 정도면 법치의 붕괴다. 일부의 비위라면 법으로 처리하면 되겠지만, 선관위, 정당, 특검 등의 부정은 법만으론 치료될 수 없는 국가적 중병이다. 헌정사적 위기의 전조일 수 있다. 그 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진단이 다르겠지만, 나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병인이라 생각해 왔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선 어떤 세력이든 다수 여론만 장악하면 헌법을 무시하고 무슨 조치든 자의적으로 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중우정치의 미망과 군중 독재의 유혹이 판을 쳐왔다. 사흘돌이로 쏟아지는 여론조사에서 잠시라도 여론이 한쪽으로 쏠릴 때면, 정치꾼들은 재빨리 ‘다수’를 선점한 후 ‘국민’을 사칭하는 여론몰이를 펼친다. 정권만 잡으면 모든 죄과가 씻겼기에 선거전에선 언제나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범람한다. 대권을 잡고 나선 대통령은 권력이 제 것인 것처럼 정부 요직에 코드가 맞는 제 사람들만 박아 넣는 파당적 행태를 과시한다.

상식적으로 국방, 외교, 치안, 교육, 경제, 전략 자산, 공공 사업 등 국가의 중대사를 가변적 여론에 맡기고 다수결로 결정하는 국가는 실패를 면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도 다수 의견만 좇는 ‘완전 민주정(pure democracy)’은 최악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했다. 그 점을 잘 알기에 자유민주주의를 설계한 근대 정치사상가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다수 독재, 군중 지배, 폭민 통치의 위험을 막기 위한 헌법적 제약을 명시했다. 국민주권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엄격한 감시와 감독, 관리와 통제가 필요함을 인류 정치사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던 까닭이었다.

 

실제로 오늘날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다수 여론만을 따르는 완전 민주정이 아니라 엄격한 법의 지배로 유지되는 입헌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보편 인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독려하고 공공선과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민주공화제를 지향한다.

놀랍게도 한국 헌정사를 돌아보면, 너도나도 자나 깨나 민주주의만 강조할 뿐, 공화주의에 관해선 공적 논의조차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래 건설될 나라의 정체를 ‘민주공화제’로 정했다. 그 법통을 계승한 1948년 제정의회는 ‘민주공화국’을 천명했고, 그 결과 오늘날 헌법의 제1장 총강 제1조 1항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명기돼 있다. 무늬만 공화제일 뿐, 한국 정치가들은 공화주의를 전혀 모르거나 경시하거나 오해하고 있다. 한국 정치는 공적 가치와 공공 이익을 저버린 채 여론의 추이를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완전 민주정의 위험을 보인다. 한국 헌정사는 이미 인기가 급락한 대통령은 형식적인 절차만 거쳐 졸속하게 탄핵당할 수 있다는 불행한 선례까지 남겼다.

공화주의의 원칙에 따르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는 국가의 근본 가치와 공익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무엇보다 법의 지배를 구현해야 한다. 공화국이 존속하려면, 국가권력의 분립, 국가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이 필수적이다. 국가적 중대사의 결정은 권력 집단의 독단이 아니라 전문가와 지성인 등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공적 담론을 거쳐야 한다.

 

그 점에서 공적 임무를 저버리는 선관위원들, 분파주의에 찌든 입법자들, 헌법을 농단하는 법률가들, 국가적 근간 산업을 허무는 행정가들은 공화국의 공적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여론을 들먹이며 ‘민주’를 팔며 도망 다니지만, 공동체의 가치를 허물고 공익을 파괴한 세력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주역들이다. 인류의 정치사가 증명하듯, 민주주의는 공화국을 떠나선 단 하루도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본 가치를 허무는 위헌 세력엔 한 치의 관용도 없이 엄중한 법의 철퇴를 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민주공화국에서 민주팔이로 연명하며 공화국을 망치는 정상배와 모리배를 영원히 추방할 수 있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06-14 산업부 공무원도 연루 태양광 비리, 수사로 전모 밝혀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태양광 ‘과속’을 둘러싼 불법과 비리는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주무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과 한국전력공사 직원까지 무더기로 연루됐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믿기 힘들 만큼 충격적이다. 13일 발표된 사례들을 보면 공직자가 아니라 범죄 조직을 연상케 할 정도다. 산업부는 이미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 전직 장관 등이 재판을 받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 서기관 A씨는 안면도에 5000억 원대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의 로비를 받은 뒤 행정고시 동기인 담당 서기관 B씨를 소개해줬고, B씨는 개정 전 법률로 유권해석을 내려 부지 용도변경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퇴직 후 A씨는 해당 업체 대표, B씨는 협력 업체 전무로 취업했다. 이후 A씨는 태안군 공무원과 공모해 토지 원상복구 의무를 면제받아 8억 원에 가까운 혜택을 봤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새만금 육상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면서 고교 동문의 회사가 연대보증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사업자로 선정해 110억 원대의 손실을 초래했다고 한다.

한전 등 8개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 임직원 250여 명은 내부 규정을 어기고 본인 명의나 차명으로 태양광 업체를 설립했다. 태양광 사업은 직간접적으로 보조금을 받는다. 이들은 국민이 낸 전기요금에서 나오는 태양광 보조금을 나눠 가진 셈이다. 감사원은 공무원 13명을 포함해 38명을 사기, 보조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그러나 이는 4개의 대규모 사업에 대한 것으로 태양광 복마전의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철저한 수사로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14일 “태양광 비리 결재 라인 전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며 공직 감찰을 지시했다.

문화일보 사설

 

06-14 文정부가 키운 ‘혈세 도둑질’ 카르텔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前 한국선거학회 회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보조금 부패·이권 카르텔’에 대한 강도 높은 척결을 지시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보조금은 불법 부당하게 용도를 벗어나 사용하는 단체에는 절대 지급돼선 안 된다”며 “각 부처에 무분별하게 늘어난 보조금 예산을 전면 재검토해서 내년 예산부터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몇 가지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첫째, 정부의 기본 책무에 대한 성찰이다. 문재인 정부 때 민간단체 보조금이 2조 원 가까이 늘어나는 동안 관리·감독 시스템이 없어 도덕적 해이와 혈세 누수가 만연했다. 정부가 지난 1월부터 29개 부처별로 최근 3년간 민간단체에 지원된 국고보조금 사업을 감사한 결과 부정 사용 집행 사례는 1865건이었다. 총 6조8000억 원의 사업에 대해 314억 원의 부정 사용이 확인됐다. 민간단체들은 서류를 조작해 보조금을 횡령하거나 리베이트 수수, 허위 수령, 서류 조작 등 다양한 행태의 부정을 통해 보조금을 빼돌렸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잘못된 것은 즉각 제대로 도려내고 바로잡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이런 기본 책무를 이행하지 않은 문 정부는 ‘무책임하고 참 나쁜 정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조치는 문 정부 정책의 적폐청산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둘째, 정치 본연의 기능 회복이다. 공자는 정치란 ‘올바르게 하는 것’,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 교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했다. 부패와 비리를 척결해 사회를 올바르게 하고,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희소성을 지닌 가치가 적절하게, 모두가 수긍하도록 배분하는 것은 ‘좋은 정치’의 표상이 될 수 있다. 보조금 비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연간 정부 조달액 중 약 7조 원을 사회적 기업 등에 몰아주는 사회적경제기본법, 일명 ‘민간단체 퍼주기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치의 포기이며 몰염치의 극치다.

셋째, 망국적 정치 포퓰리즘에 대한 거부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혈세가 정치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되고 지난 정부에서만 400조 원의 국가채무가 쌓였다”며 “이는 납세자에 대한 사기행위이고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 행위”라고 비판했다. 내년 총선까지 10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집권 세력은 과거처럼 표를 얻기 위해 각종 지원금·보조금을 통한 돈 풀기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현 정부가 당리당략보다는 국익을 우선하며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정부가 각종 국고 보조금 집행의 투명성을 높여 낭비 요인을 차단하고 부정 수급을 통한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보조금 구조조정은 보여 주기 식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계속 추진돼야 한다. 또한, 정부는 국고보조금의 부정 사용이 확인됐거나 그 정황이 드러난 경우 형사조치뿐 아니라 환수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보조금이나 공공기관의 보조금 등도 철저하게 감사해서 실태를 밝혀야 한다. 감사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문 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고보조금 사용 실태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보조금 부패 카르텔’ 척결은 국민이 기대했던 ‘윤석열다움’의 표출이다.

문화일보

 
 

06-14  4배 비싼 태양광이 원전 安全도 위협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설·추석 연휴에 어쩌다 예외적으로 실시하던 원전의 ‘감발(減發)’이 올 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원전의 출력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감발을 지난 5월까지 무려 23차례나 실시했다. 출력 제어의 규모도 상당해서 원전 4기에 가까운 4.13GW나 됐다. 전국에 무분별하게 설치해 놓은 태양광·풍력 설비의 극심한 간헐성·변동성이 만들어낸, 당혹스럽지만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탄소중립을 핑계로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늘어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올해 들어 전력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주말·공휴일의 날씨가 유난히 따뜻하고 맑았던 게 문제였다. 평소 고작 4.5%의 전력을 생산해주던 태양광이 갑자기 전기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던 지난 4월 9일 정오 무렵에는 태양광 전기가 무려 39.2%까지 치솟았다.

전력의 ‘과잉’ 공급으로 대정전(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는 위중한 상황이었다. 제주·호남에서 하던 강제적인 출력 제어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다급해진 전력거래소가 대표적인 기저 전원인 원전의 감발을 지시했다.

당장 적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kWh당 42원에 구매하는 원전의 전기를 포기하는 대신 태양광 사업자에게 4배나 되는 172원을 지급해야만 했다. 계통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6배가 넘는 248원의 LNG 전기도 마다할 수 없었다. 이미 20억 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물론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을 망설이고 있는 정부에도 난처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뾰족한 대안이 없다. 태양광·풍력의 극심한 간헐성·변동성은 단순히 송전망 확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주·호남의 태양광·풍력에서 과잉으로 생산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한다고 전국적으로 발생한 전력의 공급 과잉이 해결되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쓰지도 않을 송전망이 감당할 수 없는 낭비가 될 수 있다. 오히려 경부하 시간대의 전력 소비를 유도하는 ‘심야요금’ 제도의 부활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남아도는 전력을 저장해주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투자 확대도 비현실적인 억지다. 휴대전화·전기차용으로 개발한 ‘소형’ 리튬이온배터리는 100GW가 넘는 ‘초대형’ 국가 송전망에 어울리는 게 아니다. 전문성과 경제력이 턱없이 부족한 영세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관리를 맡겨도 될 정도로 안정화된 것도 아니다. 빈번했던 ESS 화재는 어쩌다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

잦은 감발은 기술적으로도 원전에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원전은 ‘100% 가동’을 목표로 설계된 것이다. 장거리 정속 주행(定速走行)을 위해 설계·제작된 고속버스를 복잡한 도심용 시내버스로 사용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일시적인 출력 제어가 지나치게 잦아지면 원전의 예기치 못한 고장·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태양광·풍력의 갑작스러운 출력 상승에 따른 계통 불안정은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태양광·풍력 설비의 규모가 26.6GW로 원전 24.7GW를 넘어설 정도로 늘면서 발생하는 난처한 일이다. 설익은 미래 기술인 재생에너지의 성급한 확대가 오히려 기술 개발의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일보

 
 

06.14 캐도 캐도 끝없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비리

무리한 대선 공약 추진하다 비리의 온상 돼

중앙부처 관료와 현직 시장까지 이권 챙겨

지난 정부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둘러싼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감사원은 어제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를 공개하고, 비위 혐의가 드러난 38명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아직까지 혐의 차원이고, 검찰이 자세한 진실을 밝혀내겠지만, 이번에 감사원이 밝힌 실태가 ‘관료와 공공기관 직원 버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감사원의 보고서에는 토지 용도변경에 어려움을 겪는 태양광 사업자에게 행시 동기인 담당 과장을 소개해 줘 불법적으로 변경하게 해 준 중앙부처 과장, 국회에 출석해 용도변경을 소명하면서 답변 서류를 조작한 사무관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언뜻 보기 드문 ‘적극 행정’ 사례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문제가 된 두 과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앞서 부탁을 받았던 태양광 업체의 대표와 협력업체의 전무로 각각 변신했다. 두 사람의 비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국회에서 서류를 조작한 사무관은 “승진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과장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억울해했다고 한다.

현직 기초자치단체장도 감사원에 적발됐다. 이 단체장은 고교 동문인 태양광 사업가의 회사가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하게 해주는 특혜를 제공했다. 감사원은 이 단체장이 해당 지자체에 110억원 이상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두 사례 모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더니, 아예 생선가게를 노린 도적단으로 변신해 버린 꼴이다. 전북 지역의 한 국립대 교수의 실태는 불법 재테크의 ‘끝판왕’ 격이다. 그는 친형을 대표로 내세운 기업을 사실상 경영하면서 주주명부를 조작하는 등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새만금 풍력사업권을 따냈다. 이 교수는 사업권을 따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금보다 600배 많은 5000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해외 업체에 매각했다.

 

지난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던 태양광·풍력 사업의 비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시 여권의 주도 세력이었던 운동권 출신 인사를 중심으로 한 태양광 사업 비리도 있었다. 국무조정실의 지난해 9월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약 12조원이 투입된 태양광 등 ‘전력산업기반기금 사업’과 관련된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12곳의 표본조사 결과 2267건의 불법 집행으로 2616억원이 잘못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 동안 값싼 중국산 태양광 자재가 판치면서 국내 태양광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 건 또 다른 아픔이었다. 이번 태양광·풍력 사업 비리 실태는 정책 전반에도 뼈아픈 교훈이 돼야 한다. 정권을 떠나서 경제 논리가 부족한 무리한 대선 공약은 비리로 점철되기 쉽고, 종국엔 추진 동력도 잃어버린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6-14 선관위, “헌법기관”이라며 전면감사 거부했는데… 12년 전 법사위 전문위원은 “행정기관” 유권해석

민주,당시 “선관위, 감찰 제외”
전문위원 “신중검토 필요” 제안
선관위 주장과 대치되는 해석내려

12년 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감사원 감찰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감사원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국회 소관 상임위 전문위원 단계에서 선관위는 본질적으로 행정기관이고, 감사원의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은 선관위 업무의 중립·공정성을 훼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검토의견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행정기관이 아닌 헌법기관임을 내세워 감사원의 전면 감사를 거부한 선관위 주장과 대치되는 해석이다.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1년 7월 당시 민주당 의원 10인은 감사원법 제24조(감찰 사항)에 적시된 감찰 대상 제외 공무원에 선관위를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장세환 대표발의)을 발의했다. 감사원법에는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은 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돼 있는데,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선관위는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고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선거 사무를 처리하도록 헌법에 근거해 설치된 기관”이라며 “감사원이 선관위 소속 공무원에 대해 직무감찰을 하는 것은 각종 선거 사무 처리의 적정성이나 정책 결정에 대한 통제가 될 수 있어 그 직무의 중립과 공정을 훼손할 수 있다”고 선관위의 감사원 감사 대상 제외 이유에 대해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민주당의 개정안에 대해 몇 가지 사항을 거론하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이란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공무원의 직무수행에 대한 합법성과 타당성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으로, 공무원의 비위 사실을 적발하는 비위감찰과 행정관리의 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행정사무감찰을 포함한다”며 “행정사무감찰의 경우 구체적인 집행 부분에 관해서만 개선요구를 할 수 있을 뿐 행정정책 면에는 관여할 수 없으므로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을 통해 선거 업무의 중립과 공정성이 훼손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선관위의 선거나 투표 관리 업무는 그 성질상 행정작용 또는 집행작용으로서 선관위는 본질적으로 행정기관”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아빠 찬스’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선관위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한해서만 한시적으로 감사원의 부분 감사를 받기로 했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

 

06.15 죽은 성범죄자 방조자까지 단죄한 美, 성범죄자 미화하는 韓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매매용 자금 거래를 방조한 혐의로 제소돼 피해자들에게 합의금 3741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도이체방크도 같은 이유로 967억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억만장자인 엡스타인은 2019년 수감 중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사후에도 범죄 연루자에 대한 단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엡스타인은 2008년 미성년자 성범죄로 13개월을 복역했지만 JP모건은 그와 금융거래를 끊지 않았다. 엡스타인은 JP모건 등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성착취 대가로 거액의 돈을 이체했다고 한다. JP모건 직원들이 감사팀에 ‘의심 거래’로 신고했지만 경영진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연방법원은 피해자들 증언을 듣고 JP모건 임직원과 CEO를 법정에 세우며 끝까지 책임을 물었다. 과거 엡스타인과 어울렸던 앤드루 영국 왕자와 빌 게이츠 등 정·재계 인사들은 줄줄이 사임하거나 사과했다. 그에게 고액 후원을 받은 대학 총장과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성범죄자가 죽은 후에도 주변에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그냥 덮으면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엡스타인의 성매매 관련 자금 거래를 방조한 혐의로 제소된 JP모건체이스가 피해자들에게 천문학적 합의금을 내기로 했다. 성범죄자 사후에도 범죄 연루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은 결과다.

 

우리는 이와 정반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여직원 성추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자 민주당은 그를 “맑은 분”이라고 칭송했다. 피해자를 위협하고 조롱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피해호소인’이란 해괴한 용어를 만들어 냈다. 미국이라면 이들도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을 것이다. 경찰은 박 전 시장 측근과 서울시 간부들의 성추행 방조 혐의에 면죄부를 줬다. 피해자가 제시한 증거와 호소는 묵살당했다. 국가인권위와 법원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공식 인정했는데도 일부 인사들은 박 전 시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다큐까지 만들었다. 이들은 “성폭력이 전혀 없었고 피해자가 그냥 마음대로 얘기하는 것”이라고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거침없이 하고 있다.

미국처럼 박 전 시장 사후에도 명확히 진실을 밝히고 주변의 책임을 물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성범죄를 방조한 사람들,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6.15 편파 논란 시사방송 6년째… “KBS, 전 국민에 수신료 받을 자격 있나”

[KBS 수신료] 분리 징수 현실화에도 방만·편향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앞에 수신료 분리 징수와 김의철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14일 TV 수신료와 전기요금 분리 징수를 못 박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방통위 전체 회의에 보고됐다. 이르면 두 달 뒤, 전기 요금과 합산 징수하던 한국식 TV 수신료 징수 시대가 30년 만에 끝난다. 현재 연간 5만건에 달하는 수신료 환불을 감안할 때, TV가 없는 1인 가구나 방송 내용에 불만이 많은 국민을 중심으로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는 일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KBS가 그동안 공영방송으로 책임과 기능을 다해왔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수신료 징수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성격과 KBS의 위상 및 체질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의 본질은 편파 보도와 경쟁력 약화” 내부 비판 나와

지난 13일 KBS아나운서협회와 경영협회, 영상제작협회 등 세 협회 공동으로 ‘공영방송의 미래를 위해 김의철 사장은 퇴진하라’는 성명이 나왔다. 이들은 “위기의 본질은 공영방송의 책무와 역할을 제대로 못 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분리 징수라는 최대 위기에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고립무원 상황”이라며 김의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나 현 KBS 경영진은 수신료 분리 징수를 부당한 ‘방송 장악 음모’인 듯 몰아가고 있는 반면, 직원들 내부에선 위기를 직시하자는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이다. KBS 임직원 전용 내부 게시판엔 실명(實名)으로 “도대체 이념이 뭐고 진영이 뭐길래, 뻔히 보이는 구조 조정에 남은 사람마저 박봉에 시달리고, 재방 삼방 사방 하는 허접한 회사가 되길 원하는 거냐”(지역정책실 직원), “편파 보도와 콘텐츠 경쟁력 하락(경영 수지 악화)이라는 위기의 최대 당사자일 수 있는 기자협회와 피디협회가 보이지 않는다”(1TV편성부 직원) 등 평소 듣기 어렵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신료는 전 국민에게 받으면서 특정 진영만 편 들어”

KBS 라디오와 시사 프로그램에선 문재인 정부 시절 KBS에 입성(入城)한 유튜버 출신 진행자들이 여전히 시사 프로그램 마이크를 잡고 있다. 나꼼수 출신 주진우가 대표적이다. 공영 언론 감시 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KBS1라디오 주진우라이브에선 ‘욱일기를 단 일본 자위대 함정이 우리나라에 입항했다’면서 ‘지난 정부 때는 없던 일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에도 일본 함정 2척이 같은 깃발을 달고 입항한 적이 있는데, KBS 시사 라디오에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내용이 나간 것이다.

‘공정언론국민연대’의 5월 치 모니터링 보고서를 종합하면, KBS1라디오 ‘주진우라이브’에서 나온 발언 중 허위 사실이나 특정 진영에 유리한 구도가 담긴 발언은 26건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 아침 시사 프로그램 ‘최경영의 최강시사’(KBS1라디오) 18건, ‘한밤의시사토크 더라이브’(KBS2TV)는 10건 등으로 나타났다. 최철호 공정언론국민연대 대표는 “아무 거리낌 없이 특정 정치 집단을 편드는 방송이 지난 6년 동안 이어져 왔다”며 “KBS는 편파·불공정 보도로 수신료에 상응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개선책부터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수신료의 가치 실현하는 방송 해야”

수신료와 전기 요금 분리 징수가 방만하게 운영해 온 KBS의 공영성을 검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문기 한세대 교수는 “현재 KBS는 수신료와 광고 수입을 동시에 재원으로 삼고 있어 수신료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면서 “광고를 재원으로 하는 2TV를 분리해 민영화하고, 국민이 내는 수신료만으로 운영하는 진정한 공영방송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민(변호사) 현 KBS 이사는 “KBS 경영진이 국민을 상대로 마치 대결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신동흔 기자

 

06.16 차라리 공영방송 민영화가 낫겠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권고하자 KBS에선 반발이 터져 나왔다. 지난 5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성명을 내고 "수신료 분리징수는 어떠한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에도 기대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봉사하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아름다운 말이지만 과거 정부에서 제대로 실현됐는지 묻고 싶다. 결과적으로 편파방송 시비만 커진 것이 아닌가.

김어준이 TBS에서 뉴스공장을 장기간 진행한 것은 공영방송이 특정 정파의 전리품이 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책 『정치 무당 김어준』의 제3장 제목이 ‘민주당을 장악한 김어준 교주’다. 강 교수는 진보는 ‘보수의 김어준’을 용인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남의 행동을 용인할 수 없다면 나 역시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

 

공영방송, 정권의 전리품 전락
KBS 신뢰 하락, 분리징수 불러
민영보다 공정한지 자성해야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진보의 스피커로 볼 수 있는 인물들이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의 진행자 자리를 꿰찼다. 당연히 보수층에선 이런 프로그램과 KBS를 신뢰하지 않는다. 트루스가디언과 한국여론평판연구소의 지난 3월 조사에서 KBS 뉴스 보도의 공정성을 묻는 말에 35%가 '공정', 59%가 '불공정'이라고 응답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해서는 66%가 찬성했다.

15일 발표된 데일리안 여론 조사에 따르면 분리징수 찬성은 58.2%, 반대는 31.2%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77.2%,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36.9%가 분리징수에 찬성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42.4%)보다 찬성 의견이 높게 나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대체로 KBS에 대한 불만과 수신료 분리징수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KBS를 보지 않는데 왜 수신료를 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지난 8일 김의철 KBS 사장의 기자회견에서 KBS 측은 통합징수의 효율성과 적법성만 강조했을 뿐 신뢰 회복에 대한 가시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김 사장은 “분리징수가 철회되면 사퇴하겠다”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마치 거래를 시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현재 연 6200억원의 수신료가 걷히는데 앞으로 1000억원대로 준다고 하니 분리징수는 KBS 입장에서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분리징수에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분리징수에 대한 여론에 나빴다면 대통령실에서 쉽게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분리징수 뒤에 있는 시청자의 불만을 읽어야 한다.

 

KBS 스스로 방만 경영을 해소하고 신뢰도를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파업과 탄핵을 거치면서 KBS나 MBC는 전국언론노조 산하 본부가 다수 노조로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한직으로 밀린다. 이런 구조에선 인력이 제대로 활용될 수 없다. 내부의 탕평 인사가 필요하다. 공영방송 보도국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도록 해야만 다양한 시청자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공영방송의 틀을 지킬 수 있다.

 

분리징수가 시행되면 사실상 수신료 폐지 수순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이때는 당연히 공영방송의 운영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 단계에서 KBS의 주장이 제대로 반영되려면 지금부터라도 변화해야 한다.

 

현재의 구조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장악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공영방송이 비대하다. 군사 정권 시기 방송 통폐합의 유산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쪽은 임명권이 있으니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방송사 내부도 정치권의 힘을 빌려 조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구조가 됐다.

 

민주당에선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시민단체나 직능단체에 주자고 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친민주당 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이 영구화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덩치 큰 공영방송을 어디가 통제할 것이냐를 논의하지 말고 아예 공영방송을 지금보다 축소해야 한다. 재난방송 등 핵심 기능만 예산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민영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선 방송이 민영화가 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민영방송인 SBS가 KBS·MBC보다 편파 논란이 덜 하다고 본다. 비대하고 논란 많은 공영방송이 지금처럼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06.16 ‘1심 3년’ 김명수 법원…‘지연된 정의’ 막을 대법원장 절실

조국 재판 현재 3년6개월, 끝 모를 소송들 산더미

새 사법부 수장 ‘정의 지체’ 해결 적임자 임명해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기소에서 1심 판결까지 3년2개월이 걸렸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수개월 안에 2심이 끝나도 법정구속되지 않고 대법원으로 넘어가면 내년 4월 총선 전에 선고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늑장 재판이 그의 출마 가능성을 키운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황운하·한병도 의원이 기소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3년5개월째 1심에 머물러 있다. 재판 결과에 의해 이들이 21대 국회의원직을 잃을 가능성 역시 제로에 가깝다. 1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다 해도 2, 3심이 남는다. 지난 2월 2년5개월 만에 첫 선고를 받은 윤미향 의원의 재판도 기약이 없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만 질질 끄는 것도 아니다. 2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는 1, 2심 재판이 법원에 산더미다. 예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부터 부쩍 늘었다. 2년 이상 소요된 1심 민사합의부 사건이 2017년에는 3000건 수준이었는데 지난해에는 약 5000건이다. 재판 장기화가 빚은 기막힌 사연이 법원 주변에 넘쳐난다. 뒤늦게 승소했지만 이미 회사가 문을 닫아 재판이 의미 없게 된 기업인, 오매불망 배상금만 기다리다가 판결 전 세상을 떠난 연로한 원고 등의 사연이 쌓인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물론 우리의 경우 판사 수 대비 재판 수가 많다. 이 수치는 전 세계에서 최상위권이다. 그렇다고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 판사가 줄었거나 재판이 불어난 것은 아니다. 판사들의 평균적 사건 처리 기간이 증가했을 뿐이다. 판사들이 예전보다 업무에 시간과 에너지를 덜 쓴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김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 승진 제도를 없앴고, 법관들이 법원장을 추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재판 공정을 관리하는 법원 행정 기능도 대폭 축소했다. 이에 따라 법관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줄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괜스레 욕이나 먹지 않으려고 후배들 독려를 피하는 선배 법관도 많아졌다. 판단이 어렵고 복잡한 사건은 미루는 게 관행이 됐다. 그 와중에 젊은 층의 ‘워라밸’ 지향은 초고임 공직자들이 있는 법원으로도 번졌다.

김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 사태만으로도 실패한 사법부 수장으로 평가받게 됐다. 그가 개선을 위해 한 일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 김 대법원장 임기는 이제 석 달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차기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한다. 새 대법원장이 ‘지연되는 정의’ 문제를 바로잡을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물이기를 기대한다. 사법부 신뢰 회복의 첫 단추다.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 27조 3항의 선명한 규정이다.

중앙일보 사설

 

06.17 피의자에게 30분간 마이크 쥐여 준 KBS, ‘수신료’ 반발인가

KBS가 시사 프로그램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나란히 출연시켰다. 현직 대표들 출연이 안 되자 전직을 초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송 전 대표는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 피의자가 방송에 나와 “(민주당이) 검찰 독재 정권의 무지막지한 독단에 대해 싸워야 한다”는 등 정치 주장을 쏟아 냈다.

요즘 그는 검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두 번이나 검찰청에 나가 “나를 구속하라”고 외치고 결백을 주장하는 회견을 열고 있다. 돈 봉투가 전달된 것은 사실이고 그로 인해 득을 본 사람은 송 전 대표인데 무작정 ‘결백’하다고 한다. KBS가 이런 사람에게 30분 가까이 수사하는 검찰을 비난할 판을 깔아 줬다. 공영방송이 수사받는 피의자에게 이런 식으로 장시간 일방적 주장을 하게 해 준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앞서 KBS는 지난 4월 대통령 방미 기간 라디오 5개 프로그램 출연자를 일방적으로 야당 성향으로 채웠다. 여당 성향의 7배였다. 공영방송이 가장 멀리해야 하는 게 편파 방송인데 정반대로 했다. 대통령이 일본 국기에만 경례한 것처럼 허위 보도도 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된 간부들이 정권이 바뀌자 방송을 이용해 정치를 하고 있다.

 

앞으로 KBS의 이런 행태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수신료 강제 징수를 폐지하려 하자 노조가 거의 ‘전쟁’을 선포한 지경이다. 직원 절반이 억대 연봉이고 이 가운데 30% 이상인 1500명이 무보직인 회사가 편파 방송을 하면서 수신료 강제 징수를 없앤다고 하자 편파의 도를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7 공영방송서 12번, 17번째로 밀린 뉴스

방탄국회 날 KBS·MBC 뉴스 오염수·이동관 보도로 도배
방탄국회는 면피성 언급… 수신료 요구할 염치는 있나

KBS 9시 뉴스를 빼지 않고 보려 한다. 호불호를 떠나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대표 뉴스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영국의 ‘오늘’을 알기 위해 NHK와 BBC 뉴스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뉴스 판단은 언론사마다 다를 수 있다. A신문이 1면 톱으로 다룬 기사를 B방송이 단신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6월 12일 KBS와 MBC의 메인 뉴스는 이런 상식에서 너무 벗어났다.

그날 국회에선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부결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현역 의원 5명에게 체포 동의안이 제출됐다. 그중 민주당 의원은 전원 부결되고 국민의힘 출신 의원 1명만 가결됐다. 야당 내부에서조차 방탄을 넘어 철갑 수준으로 방어막을 쳤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KBS 9시 뉴스는 톱 뉴스부터 연속 다섯 꼭지를 도쿄전력 오염수 문제를 다뤘다. ‘도쿄전력 오늘부터 시운전’ ‘어민은 고사 위기, 상인들은 걱정 태산’을 다루더니 앵커와 기자가 나와 정부가 어민 피해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다시 ‘홍콩은 일본 수산물 검역 강화’ ‘국회 대정부 질문, 오염수 안전성 논쟁’이었다. 다섯 꼭지에 두 특파원이 등장했다. KBS에 해외 특파원이 많은 것은 수신료라는 재정적 뒷받침 때문이다.

 

정부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오염수를 일본이 방류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 국민이 안심할 때까지 설명해야 한다. 과학적 안전 기준을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다. 그러나 KBS 뉴스의 초점은 안전성에 있지 않았다. 일본은 검증되지 않은 오염수를 곧 방류할 것이고, 정부는 일본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여기에 과학이 설 틈이 없다. KBS만 보고 있자면 소금 사재기가 당연하다. 소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이 증발하기 때문에 삼중수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과학은 KBS의 관심 밖이다.

KBS는 12번째에 이르러서야 ‘윤관석·이성만 체포안 부결’이라는 제목으로 방탄 국회를 다뤘다. 뉴스에서 방탄 국회가 사실상 증발한 것이다. 이런 보도를 업계에선 ‘면피성 보도’라고 한다. 그냥 보도했다는 기록만 남기는 것이다. 뒤이어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에서 자사 입장을 강변하는 두 꼭지를 내보냈다.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는 KBS 뉴스보다 더했다. 톱뉴스부터 네 번째까지 모두 도쿄전력 오염수 뉴스였고, 방탄 국회 뉴스는 KBS보다 훨씬 뒤로 밀린 17번째로 다뤘다. 대신 방통위원장에 내정도 안 된 이동관 특보를 비판하는 뉴스로 네 꼭지를 채웠다.

KBS와 MBC가 진보라서 그렇다는 데 사실 그것도 아니다. 다음 날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보면 안다. KBS와 MBC가 진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특정 정파의 입장에서 뉴스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로 ‘돈 봉투 의혹 감싼 방탄 민주당’을 보도했고, 경향신문도 1면에 ‘체포안 부결, 혁신 걷어찬 민주당’이라는 제목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공영방송만 뺀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이 방탄 국회를 1면이나 주요 뉴스로 다뤘다. 6월 12일은 KBS와 MBC만 딴 나라 뉴스를 만든 날이었다. KBS와 MBC가 이런 지는 몇 십년 됐다. 진보 좌파 정부에선 그들의 박자에 맞추고 보수 우파 정부에선 그들의 입맛에 맞췄다.

 

내가 대선 때 1번을 찍었는지 2번을 찍었는지 상관없이 수신료는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신문이나 민영 방송은 시장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지만, 공영방송 수신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 공영방송에선 절반 가까운 국민이 숨 쉴 공간이 없다. 야당의 스피커가 된 공영방송 라디오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메인뉴스가 이 지경이다. 중립이나 공정 같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수신료로 먹고사는 공기업 직원들의 염치와 상식에 대한 이야기다.

조선일보 정우상 정치부장

 

06.17 이동재 “인격살인한 최강욱·김어준·유시민 건재… MBC는 기자상 받아”

‘채널A 사건’ 무죄 이동재 인터뷰

이동재 전 채널A기자가 8일 오후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2023.6.8 이태경기자

 

2020년 3월 MBC가 이른바 ‘검·언 유착’ 보도를 내보낼 당시 이동재 채널A 기자는 35세의 6년 차 검찰 출입 기자였다. 그는 MBC 보도 석 달 만인 그해 6월 해고당했고 7월 17일 구속됐다. 지난 1월 3년 만에 무죄가 확정되기에 앞서 202일간은 구치소에 있었다.

 

억울하게 구속됐던 기간에 대해서는 형사보상금 수천만원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전 기자는 “그런다고 말살당한 내 인생의 피해가 보상되겠느냐”며 “당시 집권 세력과 검찰, MBC, 김어준씨가 합작한 ‘권·언 유착’에 대한 단죄는 아직 미완”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시민씨 취재는 왜 시작했나.

“서민에게 수조원대 피해를 안긴 ‘신라젠’ 사건에 관심이 생겼다. 신라젠 행사에 유시민씨가 등장해 ‘놀라운 일’이라고 극찬을 하는 영상을 보게 돼 (2020년 2월) 취재를 시작했다. 수감된 (신라젠 전 대주주) 이철씨(전 VIK 대표)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나를 향한 권력의 공격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당시 이 전 기자는 편지에서 ‘윤석열 총장이 직관(직접 지휘)하는 만큼 수사는 과도하게 이뤄질 것이다. 대표님은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가족을 지키고 싶으면 전략에 따라 어느 정도 가능할 수도 있다. (내가) 검찰 고위층에 대표님의 진정성을 직접 자세히 수차례 설명할 수는 있다’ 등의 내용을 썼다. 이에 대해 법원은 “특종 취재에 과도한 욕심으로 검찰 간부의 선처 가능성을 언급하며 취재원을 회유하려 했다”며 취재 윤리 위반을 지적했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그 편지에 정당한 취재로 볼 수 없는 내용이 있다.

“이철씨 측에서 1조원대 금융 비리 사건의 로비 장부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니 나도 기자로서 의욕이 앞섰다. 하지만 편지의 주된 내용은 제보를 해주면 잘 보도하고, 검찰에 다시 이를 전달하겠다는 것이었다.”

 

–편지로 상대가 함정을 팠다는 건가.

“내가 쓴 편지는 이씨 변호인이 소속된 민병덕 민주당 의원의 로펌으로 들어갔고 그 과정에 이씨와 일면식도 없던 사기 전과자인 ‘제보자X’ 지현진씨가 개입해 나를 상대했다. 이들은 김어준씨와 편지 내용을 논의한 뒤 MBC에 제보했고, 최강욱·황희석씨와 내용을 공유했다. MBC는 나와 지씨의 만남을 몰래카메라로 찍었다.”

 

MBC는 2020년 3월 31일 이 전 기자가 검찰 고위 간부(한동훈 당시 검사장)와 공모해 이철씨에게 편지를 보내 협박하고 유시민씨 등의 비리를 캐려 했다는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을 보도했다. 이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고발로 서울중앙지검 수사가 시작됐으며 이 전 기자는 강요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MBC 보도 내용대로 이 전 기자 혐의를 구성했다. 그런데 한동훈(현 법무장관) 검사장 기소는 수사팀 내부의 이견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강요죄 구성 요건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올 1월 2심 역시 “협박이 성립하려면 (이 전 기자가)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임의로 조종할 수 있다고 객관적으로 평가돼야 하는데 그렇게 평가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MBC 보도 전후 어떤 일이 있었나.

“MBC 보도 며칠 전에 열린민주당 총선 후보였던 최강욱·황희석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갑니다’라는 글과 함께 황씨의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MBC 보도 당일 밤부터 최강욱(현 민주당 의원)·황희석씨는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의 유튜브 ‘정봉주TV’에 나와 허위 사실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철씨에게 ‘유시민 이사장, 문재인 청와대 인사들에게 돈 줬다고 얘기하라’고 협박했다고 했다. 그런 내용은 편지에도 없고 (나와 한동훈과의) 녹취록에도 없다. 곧바로 열린민주당이 성명서를 내며 공격했고 추미애 법무장관은 이튿날 아침 KBS 라디오에 나와 ‘심각하게 보고 있다. 감찰 등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그게 끝인가.

“최강욱 의원은 (2020년) 4월 3일 페이스북에 내 발언의 요지라며 내가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유시민에게 돈 줬다고 하라’고 했다는 장문의 허위 게시글을 올렸다. 이는 각종 유사 언론과 유튜브의 생계형 음모론자들을 통해 유포되면서 확대 재생산됐다. 4월 6일 김어준씨는 TBS 라디오에서 ‘유시민 이사장을 상대로 한 공작’이라고 사건을 규정했다. 다음 날 유시민씨는 자신의 ‘알릴레오’ 유튜브에서 ‘그 기자가 유시민에게 돈 줬다고 얘기만 하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게’라고 했다며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들은 ‘조국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당시 검사장과 엮기 시작했다. ‘조국 수사’에 대한 보복으로 더없이 좋은 땔감이었을 것이다.”

–왜 반박하지 않았나.

“나를 검찰에 고발한 민언련을 필두로 각종 유사 언론과 정치 아류 단체, ‘서울의 소리’ ‘김용민TV’ 같은 친민주당 성향 유튜브 수백 곳에서 매일같이 허위 사실이 유포됐다.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방송에서 태연하게 그런 얘기를 했다. 광풍이었다. 하지만 한 개인이 특정 정치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은 힘들었다.”

 

–당시 현직 기자였는데.

“민언련은 채널A 재승인을 취소하라고 국민청원을 벌였다. 당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직전 민언련 대표였다. 유사한 이름의 언론 단체 수십 곳이 동아일보 사옥 앞으로 몰려와 나를 비난하며 채널A 재승인 취소 집회를 이어갔다. 내가 나설 수가 없었다.”

 

추미애 전 장관은 당시 국회에 출석해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했다. 추 전 장관은 그해 7월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 사건 지휘를 못 하게 했다.

 

–수사는 ‘지휘권 발동’ 전에 시작됐다.

“MBC 제보자 지씨가 4월 23일 내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동재야 놀자’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조롱했다. 그 5일 뒤 압수 수색을 당했다. 나 한 명을 수사하는 데 ‘친문재인 성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 인력 수십 명을 동원했다. 내 가족 집을 압수 수색할 때는 냉동실 속 소고기도 반으로 쪼개 확인했다. 내 가족 노트북에 포렌식 장비를 꽂고 ‘한동훈’ ‘한’ ‘윤석열’ 등의 검색어만 반복해서 입력했다. 총 16차례 소환돼 9번 조사가 진행됐다. 검사와 수사관은 조사 도중 카카오톡 횟수를 언급하면서 ‘한동훈과 연인 관계냐’고 조롱했다. 어이가 없어 ‘조서에 적어 달라’고 하니 질문도 답변도 빼더라. 200명에 가까운 법조계 취재원과 그 정도 카톡 대화를 나눴다. 수사팀 간부와는 전에 식사도 했는데 그건 뭔가.”

 

–그때 KBS 오보도 있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내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살인범, 성 범죄자와 구치소 한방을 쓰는 동안 저들이 어디까지 나를 몰아붙일지 늘 불면증에 시달렸다. 구속된 이튿날 곧바로 KBS에서 한동훈 검사장과 내가 총선 개입 공모를 한 녹취록 내용이 있다고 보도했다. 오보(誤報)로 드러나고 KBS도 사과 방송을 했지만 ‘공영방송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중앙지검 3차장이었던 신성식 검사장이 KBS에 잘못된 정보를 흘린 혐의로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신 검사장 공소장에 보면 그가 ‘구속되면 이동재가 한동훈을 안 불겠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진짜 검·언 유착이었다.”

–무죄가 확정될 때 든 생각은.

“MBC는 자신들이 먼저 검·언 유착이라고 한 적이 없다며 최강욱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나를 ‘인격 살인’했던 최강욱·유시민·김어준·황희석·민언련 등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MBC 기자들은 기자상을 받았고 ‘사기꾼’ 제보자인 지현진은 공익제보자상을 받았다.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버티면 모든 게 해결되나. 자신들이 ‘조작·선동 면허’라도 가진 초법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건가.”

 

MBC 기자들은 보도 두 달 만인 2020년 5월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2021년 7월 이 전 기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채널A는 “MBC 기자상 수여를 재심사하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기자협회는 “무죄 판결과 MBC가 보도한 의혹은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MBC 제보자 지현진씨는 2020년 12월 ‘호루라기 재단’에서 양심적 공익 제보자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받았다. 재단 측 역시 “공익 제보를 하다 보면 내부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상 취소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무엇을 할 건가.

“잔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사필귀정을 믿지만 너무 요원하다. 선거 공작과 날조를 일삼던 그들은 여전히 국회의원을 하고 라디오를 진행하며 유튜브로 돈을 번다. 최강욱·황희석씨에 대한 최근 검찰 송치만 해도 1년 6개월이 걸릴 정도로 사건 처리도 더디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끝까지 책임을 물으려 한다. 안 그러면 똑같은 공작이 일어나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

  
 

06.19 채널A 기자의 파괴된 삶에 MBC·최강욱·유시민은 할 말 없나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으로 202일간 옥살이 끝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의 분노에 공감한 독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씨는 “선거 공작과 날조를 일삼던 이들은 여전히 국회의원을 하고 라디오를 진행하며 유튜브로 돈을 번다”며 “‘조작·선동 면허’를 가진 초법적 존재라도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했다. ‘검·언 유착’ 의혹은 애초부터 실체가 없었다. 문재인 정권과 그에 잘 보이려는 검찰·방송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검사장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권·언 유착’ 조작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MBC는 2020년 3월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손잡고 금융 사기로 기소된 전 신라젠 대주주 이모씨에게 ‘유시민씨 비위를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9일 전 최강욱 의원은 조국 법무부 인권국장 출신인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과 함께 ‘둘이서 작전에 들어간다’고 했다. 김어준씨는 이 사건을 ‘유시민을 상대로 한 공작’이라고 규정했고, 유씨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그 기자가 ‘유시민에게 돈 줬다고 얘기만 하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게’라고 했다며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MBC도, 최강욱 의원도, 유시민씨도 검·언 유착이라는 것이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전 기자의 특종 취재 욕심을 이용해서 한 검사장을 함께 엮는 공작을 한 것이다. 이 전 기자가 지난 3년간 겪은 고초는 그의 취재 방식에 일부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너무 가혹했다.

 

당시 MBC 기자들은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탔고, 이 전 기자를 유인해 MBC 보도를 도운 사기 전과자 출신 제보자는 공익제보자상을 받았다. 최 의원과 유시민·김어준씨는 이 전 기자에게 여태 사과 한마디 없다고 한다. 유씨는 오히려 “전 채널A 기자의 비윤리적 취재 행위를 방조하는 듯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한동훈 장관이 저한테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지어낸 허위 사실 때문에 삶이 파괴되는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0 태양광 범죄의 철학적 재구성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TV에서 한 유명인이 지리산에 있는 공동체를 찾아간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도시에서 상처 입은 남성이 산속에서 홀로 자족하며 늙어가는 ‘나는 자연인이다’와는 또 달랐다. 그들은 ‘순수한 행복’을 구해 식구들과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비슷한 대여섯 가족이 촌락은 못 되는 형태로 살고 있었다. 초중반까진 멍하니 보며 그냥 그런가 싶었다. 한데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스멀스멀 이성(理性)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 ‘유명인’이 말과 태도로 전하던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자연 속 인간은 욕심이 없고 선량하다. 사람이 먼저다. 반면, 도시인들은 이기적이며 어리석다. 물질(돈)이 먼저다. 도시는 병균과 죄악 천지다. 삶의 가치는 청정한 자연 속에 있다.’

 

망하는 나라는 나무를 보면 안다. 조선 말기와 현재의 북한은 민둥산뿐이다. 대한민국이 산림 국가가 된 건 한국인들이 자연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산업(Industry)이 발전해 나무를 베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노총 연봉 1억 이상과 온갖 혜택이 전태일 덕분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 ‘역설의 당연함’을 깨달아야 ‘천동설 인간’을 탈출한다. 정치권력자와 환경 단체들의 공조는 ‘태양광 사기’의 양 날개다. ‘전기가 부족해져야 태양광 장사가 흥하니 정치를 동원해 원전을 파괴하고 환경 단체들은 이를 지원한다.’ 이 문장의 주인은 ‘운동권 이권 이득 범죄 생태계’다. 피땀으로 어머니 가슴 같은 국토에 심고 길러낸 나무 수억 그루가 잘려나갔고, 그 붉게 파헤쳐진 자리는 조선 말기와 북한이 돼버렸다. 중국산 태양광 폐기물은 금수강산 우리 바다를 암덩이와 독극물로 만들고 있다. 건국 이래 이토록 위선적이고 가공(可恐)할 국가 약탈 세력은 없었다.

 

은연중에 저 다큐는 도시와 문명을 원전 대하듯 저주한다. 산속에서 살든 바다 밑에서 살든 개인의 자유일 뿐 세금도 내지 않는 그게 가치중립을 넘어서 도덕적 자랑이 될 순 없으며 무엇보다 ‘순수한 행복’ 따윈 없다. 인생은 원래 고해(苦海)라서 인간은 자신이 있는 곳이 힘겹다. 근대 문명 덕에 만인은 전근대의 왕들보다 낫게 살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던 루소를 벤치마킹한 마르크스의 최대 맹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라 원시 공산 사회에 대한 ‘에덴동산적 환상’에 있다. 원시인 유골은 대부분 돌도끼에 부서져 있다. 원시는 폭력과 야만과 굶주림과 질병이다.

 

코뮤니즘의 아시아적 변종이 ‘농촌 공산주의’다. 그게 마오쩌둥도 되고 크메르루주도 되고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으로도 둔갑한다. 도시에서도 농사를 장려하던 전직 서울시장은 인간의 뇌에 벼를 심고 싶었을 것이다. 루소는 자식 다섯을 고아원에 버린 주제에 교육에 관한 책 ‘에밀’을 썼다. 악마는 모국어가 없다. 천사의 말을 하기 때문이다. 저 유명인은 저 산속이 불편해 사흘도 못 버틸 것이다.

조선일보 이응준 시인·소설가

 

06-20 경제단체들의 ‘불법쟁의 노정희 판례’ 규탄, 당연하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의 지난 15일 불법파업 손해배상 판결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불법 쟁의행위 참여자의 배상책임 비율을 개별적으로 산정하라는 취지가 민법 제760조와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 조문으로 확립된 연대책임의 원칙은 너무나 명확하다. 공동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고, 어느 사람의 행위가 손해를 가했는지 알 수 없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며, 교사자나 방조자도 공동행위자로 본다는 것이다. 이처럼 포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교묘한 공동불법행위를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가급적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런 한계를 넘어섰다.

오죽하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단체가 20일 ‘규탄’ 표현까지 쓴 공동성명을 발표했겠는가. 이번 판례가 공동불법행위에 가담한 조합원을 보호하고, 피해자인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봉쇄하는 결과로 이어져 산업 현장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주장이다. 많은 기업이 툭 하면 소송에 휘말려 법원의 판결에 노심초사하고 있는데도 ‘꼼수 판결’이라며 정면 반발한 것은, 그만큼 폐해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경제단체들은 현재 야당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의 문제도 거듭 상기시켰다. 이번 판결이 입법 구실이 될 가능성도 걱정하는 것이다.

김명수 체제 대법원의 변명은 더욱 가관이다. 법원행정처는 19일 “해당 판결과 주심 대법관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면서 “이번 판결로 기업의 입증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다. 달라지는 게 없다”고 했다. 어이가 없다. 무능한 행태와 편향된 판결이 사법부 신뢰 훼손 주범이다. 이번 판례와 다른 판단을 했던 재판부로 파기 환송된 만큼 바로잡을 기회는 있다.

문화일보 사설

 

06-20 연대책임 법리도 파괴한 정치적 판결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원이 지난주 현대자동차 불법파업에 참가한 사내하청 노조원들에 대해 개별적으로 배상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판결함으로써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판결은 현행 법체계와도 맞지 않고 종전 대법원의 입장과도 다를 뿐 아니라, ‘노조법(제2, 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안)’의 국회 심의 중 나왔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동불법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 및 판례에 명백히 배치된다는 점이다. 민법 제760조(공동불법행위자의 책임)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보인 경우, 이에 대한 손해는 공동불법행위자가 연대해서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부진정(不眞正) 연대책임’이므로 공동불법행위자 중 한 사람이 손해를 전부 배상할 경우 모든 채무가 소멸되는 게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은 노동법 영역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다수 근로자들의 불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들에게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법리가 정착돼 있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종전 판례와는 달리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특별히 개별적으로 손해액을 산정토록 한 것은 명분도 설득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입증을 어렵게 하여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를 어렵게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선, 공동불법쟁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조합원 개개인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손해액을 개별적으로 산정하라고 판시했는데, 이는 공동불법행위자들이 부담하는 손해에 대해 책임비율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손해배상 법리와 결을 달리한다.

각계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추가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판결이 공동불법행위 및 부진정 연대책임의 원칙을 부정한 게 아니라 기존의 판결에서 인정한 ‘책임 제한 비율 개별화’ 법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법이 제시한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며, 적어도 공동불법쟁의에 대해서는 부진정 연대책임의 법리가 정착돼 있다는 점에 비춰 이번 판결은 매우 이례적이다.

결국,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책임을 개인별로 그 귀책사유와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으로 산정토록 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입증을 어렵게 하여 위법한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불법파업을 조장할 우려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또, 기업 측에서는 파업에 따른 소송에 대비하여 파업 초기부터 증거를 수집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 등 사업장 내 혼란 가중이 우려된다.

이외에도 이번 판결은, 민주당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동일한 취지의 노란봉투법안과 시기적으로 맞닿아 있어 혹시 사법부와 정치권이 사전에 교감을 하지는 않았는지 많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러다 보니 세간에서는 정치로부터 가장 초연해야 할 대법원이 고도의 입법행위를 넘어 정치행위까지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비판을 자초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6.21 ‘파업 조장 판결’ 비판에 “사법부 독립 훼손”이란 김명수 대법원

불법 파업에 가담한 노조원의 행위 정도에 따라 배상 책임을 개별 산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대법원이 “사법권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문과 “기업의 입증 책임은 기존과 달라지는 게 없다”는 해명 자료를 동시에 냈다. 노조의 불법 파업 현장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노조원 개개인의 불법 정도를 파악하고 그것을 일일이 입증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방 안다. 이 판결대로 하면 앞으로 노조는 별 부담 없이 불법 파업을 벌일 수 있다. 이런 현장 상황을 모르는 데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대법관이 황당한 판결을 내렸는데 대법원이 나서서 또 황당한 변명을 하고 있다.

대법원 해명과 달리 실제 소송에선 노조원 개개인의 행위 정도를 입증하는 책임을 기업이 질 수밖에 없다.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배상 범위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해 그동안 대법원도 불법 파업에 대해선 가담한 노조원들에게 연대 책임을 물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이 그간의 판례와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달라진 게 없다고 하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는 와중에 나왔다. 노란봉투법 내용이 이 판결과 사실상 똑같다. 당연히 기업들은 ‘파업 조장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대법원이 같은 취지의 판례로 이 법안을 뒷받침했다. 경총 등 경제 6단체가 “대법원이 불법 행위에 가담한 조합원을 보호하는 새로운 판례법을 창조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이 사건 주심인 노정희 대법관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대법원은 그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과도한 인신 공격성 비난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노 대법관에 대해선 이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TV 토론에선 거짓말해도 무죄’라는 황당 판결이 나온 사건의 주심이 노 대법관이다. 그렇게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가 했던 대법원 판결이 하급심에서 뒤집히는 일도 있었다. 법 조문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재판해 망신을 당한 것이다. 그가 중앙선관위원장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사법부 독립을 가장 훼손하고 있는 쪽은 문재인 정권 비리 재판을 질질 끌고 나중에는 재판 거래 의혹까지 받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2 [단독] 임기 석달 김명수, 검찰 수사 본격화…현직판사 부른다

임성근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 국회에 거짓 해명을 한 혐의로 고발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박혁수)는 최근 김인겸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김 부장판사는 임 전 부장판사 사건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으로서 전후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김 대법원장은 2020년 5월 이른바 ‘사법농단’사건으로 국회에서 탄핵안이 거론되던 임 전 부장판사가 사표를 내자, 임 전 부장판사에게 탄핵안 의결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 이후 김 대법원장이 현직 판사의 탄핵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김 대법원장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대법원 역시 국회에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적 없다”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과 임 전 부장판사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녹음파일에는 김 대법원장이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며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또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대법원장이)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고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녹음자료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라며 사과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2021년 2월 김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현직 대법원장이 고발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미루다가 올해 초 김인겸 부장판사를 방문 조사했다. 검찰은 방문 조사 외에 별도의 소환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리고, 최근 김 부장판사에게 소환 통보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올해 9월 퇴임하는 데 맞춰 검찰도 수사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도 수사 선상에 오른 데 대해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처벌이 불가피한, 법리적으로 똑 떨어지는 사건”(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김 대법원장에게 사표를 수리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06.22 한국인 팔자를 고친 역사적 베팅

 

세계에서 나라 팔자 가장 사나웠던 우리
자유 민주에 베팅하고서 2천년 악몽 벗어나 세계 10위권 국가 도약
中과 우호 관계 바라지만 中 공산당에 베팅하라면 ‘꿈 깨라’고 하고 싶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사주(四柱)라고도 하는 팔자(八字)는 흔히 타고난 운명이나 숙명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삶의 조건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이 조건이 운명이자 숙명이기는 하겠지만 절대 바뀔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에도 운명이나 숙명과 같은 팔자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팔자가 가장 사나운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과 같은 대륙 세력에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했다. 일본 같은 해양 세력에서 본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큰 전쟁만 50여 차례 당했다. 중국이 김일성과 모의한 6·25 남침은 한 사례일 뿐이다. 왜구 정도의 침략은 헤아릴 수도 없다. 나라를 통째로 들어 이사를 갈 수 있다면 정말 이사 가고 싶은 숙명을 안고 살아온 것이 우리다.

 

그 숙명 중에 가장 가혹했던 것은 중국이라는 존재였다. 육지로 바로 연결된 중국은 수천 년간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조선은 생존 전략으로 사실상 무력을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들어갔다. 그에 따른 피해나 수모도 전쟁 못지않게 고통스러웠다. 처녀들을 바치라, 금을 바치라, 은을 바치라, 사냥용 매를 바치라, 말을 바치라는 등 조공 요구는 끝이 없었다. 바치라는 단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물산이 부족한 나라가 거덜 날 지경일 때도 있었다. 이 가혹한 조공을 피하고자 조선은 중국 조정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생존 수단이 됐고 그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글도 읽은 적이 있다. 뇌물로 조선에 가는 사신이 된 중국인들이 조선에 와서 금과 은을 내놓으라며 부린 행패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중국이 러시아의 연해주 진입을 막는다고 조선군 부대 파병을 요구하고선 조선군이 총을 잘 쏘자 조선군 총을 다 뺏고 무장 해제한 일을 다룬 내용도 읽었다. 조선이 미국에 외교관을 파견하자 가로막고 미국 대통령도 만나지 못하게 방해했다. 20대 중국 애송이가 조선에 와 대신들을 때리고 조선 왕 위에 군림하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숙명 속에서 우리는 한 순간도 빛나는 순간을 누리지 못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 때 구한말 한국에 와 뼈를 묻은 미국 선교사들을 언급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과 같은 분들은 환생한 예수가 아닐까 느낀 적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왜, 무엇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가장 더럽고, 가장 희망 없는 나라에 와서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했을까. 이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은 지금 우리나라의 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

로제타 홀 여사는 가족 전체가 한국에서 봉사하다 전염병으로 남편과 딸을 잃었다. 둘을 한국 땅에 묻고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한국에서 더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고대 병원, 이대 병원을 세우는 등 43년간 봉사하다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죽으면 한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지금 서울 양화진엔 홀 여사와 아들 부부까지 5명이 묻혀 있다. 고개가 숙여지고 목이 멘다.

조선일보가 홀 여사를 보도했더니 한 분이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중국과 2000년 이상 관계를 맺어왔지만 미국 선교사들과 같은 도움을 준 중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 지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명 없습니다. 그들의 억압과 행패만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과 100여 년 관계를 맺은 미국은 세계 변방의 이 나라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피 흘려 싸우고, 식량을 주고, 돈을 주고, 미국으로 불러 가르쳤습니다. 미국 세계 전략의 한 부분이기도 했겠지만 중국과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세계 10위권 국가가 된 것은 우리 지도자들과 우리 국민의 노력 덕분입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마침내 중국에서 벗어나 미국을 만났다는 우리의 역사적 선택과 행운이 있습니다.’

 

한국은 과거와 차원이 다른 나라가 됐지만 중국은 한국과 맺은 관계를 과거 조선과 맺었던 관계로 고착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 대통령 특사를 중국 지방 장관이 앉는 자리에 앉혔다. 시진핑은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주한 중국 대사는 계속 부국장급 정도의 하급 관리를 보내고 있다. 모두 의도하고 계산한 행동이다.

 

그 중국 대사가 얼마 전 “한국이 중국에 베팅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앞으로도 중국과 정상적이고 대등한 우호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특히 중공(중국 공산당)에 ‘베팅’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베팅한 것도 아니다. 정확히는 한국과 미국 모두 같은 베팅을 했다.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한 베팅이다. 이 베팅으로 한국은 팔자를 고쳤다. 2000년 악몽을 벗어났다. 중국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꿈을 깨야 한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6.23 공직자의 ‘용서받지 못할 죄’

청와대 관저에서 사용하던 가구·집기 사라지고
前 국회 과방위원장은 올 해외 시찰 예산 다 써버려
공공 기관 직원 250명, 보조금 받아 ‘태양광 장사’
베네치아 공화국이 천 년 동안 번성한 비결은
공직자의 예산 낭비를 ‘대죄’로 엄벌한 것

얼마 전 조국 전 장관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올린 사진 한 장에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재밌는 댓글을 달았다.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청와대에서 가져온 것이 확실해 보이는 봉황 문양 술병이 식탁에 놓인 걸 보고 한 말이다. 이런 댓글도 있었다. “문이 찬 시계를 보니 자기 이름이 들어간 시계네요. … 스스로 날마다 잊히지 않을 듯싶습니다.”

잊어라 해놓고 계속 나타나는 심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횡령은 다른 문제다. 소위 ‘오피스 빌런’이 소소하게 커피믹스나 복사 용지를 빼돌릴 때도 숨어서 하는데, 전직 대통령이 청와대 물품을 가지고 와서 쓰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하는 건 ①아직도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②애초에 횡령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증거다.

 

횡령 규모도 결코 소소하지 않다. 청와대 관저에서 사용하던 가구와 집기류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지난해 4월 3주에 걸쳐 양산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외국 유명 화가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으나, 어떤 물건이 양산으로 갔는지 밝히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보통 하루면 끝나는 이사에 3주가 걸릴 정도로 많은 이삿짐을 모두 재임 시 받은 월급으로 샀다고 보기는 어렵다. 통상 국가 예산으로 구입한 모든 것은 물품관리법 적용 대상이다. 여기에는 가구와 집기, 선물 등이 포함되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풍산개까지 대통령기록물로 포함해 양육비까지 챙겼다(가 파양했다). 횡령도 문제지만, 국가기록물 관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여기까지는 전주곡에 불과하다. 이제야 드러나는 지난 정부의 도덕적 해이와 몰염치와 예산 독식과 낭비는 그 규모와 방법이 혀를 찰 정도다. 지난해 모 부처에 새로 부임한 차관급 공직자는 문 정부가 그해 연구 용역 등의 예산을 이미 모두 집행한 것을 보고 “지독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정상적 조직이라면 후임이 사용할 몫의 예산은 남겨놓는 것이 상식이다. 이달 초에는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상임위원장 교체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도 올해 과방위에 배정된 해외 시찰 경비 예산 약 5000만원을 사실상 전부 사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쓸 돈과 자리만 생기면 득달같이 모두 쓰는 것이 지난 정부 인사들의 상식인 모양이다. 이 정도면 각종 인사 알박기나 전현희 권익위원장의 버티기는 애교 수준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자식을 채용해 대를 이어 세금으로 먹고살려다 적발되었고,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연일 정쟁에 매달리며 방탄 국회를 전전하는 국회 역시 나랏돈을 낭비하는 큰 구멍이다. 문 정부는 연간 2조원에 가까운 민간 단체 보조금을 늘렸는데, 이렇게 지원한 각종 보조금은 특정 정파의 정치 운동에 사용되는 등 부정하게 줄줄 새어 나갔다. 최근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보조금 314억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282억원이 부정 사용되었다. 드러난 것만 그 정도다.

 

지난 정부가 밀어붙인 탈원전과 태양광 사업의 수혜 구조는 정권이 바뀌면 필연적으로 드러날 대표적 이권 카르텔이었다. 역시 최근 감사원은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를 통해 공공기관 8곳 임직원 250여 명이 본인이나 가족 이름으로 태양광 사업을 하며 보조금을 나눠 가진 것으로 확인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국가 에너지 정책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은 에너지 정책을 뿌리부터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거기에 들러붙어 뒷돈과 자리를 챙겼다. 그리고 잘못된 정책에 따른 부담 수십조 원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겼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패악이 아닐 수 없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한 소설에서 소금과 생선밖에 없던 베네치아 공화국이 천년 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로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를 들었다. ‘용서받지 못할 죄’로 번역되는 이 라틴어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엄벌한 ‘대죄’를 뜻한다. 그 죄는 첫째 공직자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 둘째 기업가가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적영역의 생산 체계가 자유롭고 원활해야 하고, 공적 영역에서는 그 이윤을 공정하게 사용하고 분배해야 한다는, 현대사회의 정치 경제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공직자의 위선과 무능, 기업인의 나태와 방관을 큰 죄로 묘사한다.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은 이런 ‘대죄’를 하느님의 은혜에서 분리된 ‘죽음에 이르는 죄’라고 부른다. 대죄의 성립 요건으로 첫째 죄의 사안이 중대하고, 둘째 죄를 짓는 자가 그걸 알고 있으며, 셋째 자신의 완전한 의지에 따라 죄를 짓는 것이다. 이 분류에 따르면 세금을 낭비한 각급 공직자들이 사안의 중요성을 몰랐을 리 없고, 누구의 강요에 따른 것이 아니었으며, 제정신으로 저질렀을 테니 ‘용서받지 못할 죄’임이 분명하다.

 

성경이 다시 이르시길 ‘죽음에 이르는 큰 죄’는 고해성사를 통해서만 사할 수 있다고 했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용서는 그렇게 구하면 된다. 그러나 현대 법치 사회에서는 사무실 용품을 빼돌리는 ‘소확횡’이나 직원 절도 행위도 엄연한 처벌 대상이다. 용서는 교회가, 처벌은 국가가 해야 한다. 피 같은 국민 세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철저하고 투명하게 알고 싶다. 공금으로 구입한 물품은 공직이 끝나면 그대로 두고 나오는 것이 원칙이고, 염치이며, 상식이다. 이런 원칙과 염치와 상식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법으로 다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조선일보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06-23 ‘김명수 거짓말’ 사법 신뢰 회복 위해 철저히 수사해야

김명수 대법원장의 허위공문서 작성과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다. 2021년 2월 국민의힘이 고발한 지 2년4개월 만이다. 검찰은 22일 방문조사를 했던 김인겸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진술 내용이 사실관계와 어긋난다는 이유로, 해명성 수사에 그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의 측근인 김 부장은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2020년 5월 사표를 제출하며 대법원장 면담을 요청할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임 전 부장과의 면담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탄핵하자고 설치는데 내가 사표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나”라며 수리를 거부했다가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국회에 ‘탄핵 문제로 사표 수리를 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 없다’는 공문을 대법원 명의로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녹음 파일 공개로 거짓말이 드러난 뒤엔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 사직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 말했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했다. 사법부 수장이 거짓말을 했다면 백배사죄하고 사퇴해도 부족한데,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드러난 사실만으로 김 대법원장은 형사처벌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이 일이 아니라도 김명수 사법부 6년 같은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이 많다.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재판·인사 농단 의혹은 물론 개인 비리 의혹에 대한 성역 없는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 특정 성향 판사들을 요직에 임명했다.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 재판은 전례 없이 지연되거나, 상식 밖의 판결이 나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1심 판결은 3년2개월, 윤미향 의원 1심 판결은 2년5개월 걸렸다. 울산 선거개입 사건도 3년2개월이 지났지만 1심이 진행 중이다. 한진그룹 사내 변호사인 며느리는 ‘땅콩 회항’ 사건 집행유예 선고 직후 한진 법무팀을 공관에 초청해 만찬을 했다.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당시 검찰은 김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 없이 불기소 처분했다.

문화일보  사설

 
 

06.23 박원순 성희롱 면죄부, 용납 못 한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에 나오는 문장이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은 사회적 명성과 힘을 지닌 한 남자의 자살로 인해 한순간에 ‘마녀’로 몰렸다. 주인공은 명백히 피해자였지만 그의 아픔과 상처를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위협에 시달리다 못해 도망치듯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주인공의 사연은 소설 속 허구지만 현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성추행 가해자로 경찰에 고소될 것이란 얘기를 들은 고위 공직자가 지극히 무책임한 방법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2차 가해’ 다큐 영화 다음 달 개봉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도 불인정
피해자 인권 침해 당장 철회해야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를 향해 악담과 저주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지 않으려고 ‘피해 호소인’이란 희한한 말까지 만들어 냈다. 성추행을 저지른 이에게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는 피해자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어느새 3년이 지났다. 조금씩 잊혀 가던 이 사건에서 2차 가해라는 ‘망령’이 다시 떠오른다. 다음 달 극장 개봉을 예고한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이다. 영화 제작진은 지난달 제작 발표회를 열고 영화의 2차 예고편(트레일러)을 공개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예고편을 보면 기가 막힌다. 등장인물들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이런저런 의문을 제기하며 박 전 시장을 변호한다. “박 전 시장의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도 인정하지 않는다. 원래 1차 예고편의 제목은 ‘비극의 탄생’이었다. 한 인터넷 언론 기자가 박 전 시장을 옹호하며 쓴 책의 제목과 같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에게 고민도 없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비판이 역설적으로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네거티브 마케팅’이 걱정돼서다. 어쨌든 이런 영화에 유료 관객으로 수익을 보태줄 생각은 전혀 없다.

박원순 사건에서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명백하게 밝혀내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건 박 전 시장에게 죄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망한 가해자는 재판에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어쩔 수 없이 ‘공소권 없음’이란 처분을 내렸다. 만일 박 전 시장이 떳떳했다면 죽지 않고 살아서 경찰 수사를 받고 사실관계를 밝혔으면 됐을 것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할 것이란 얘기를 듣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종적을 감췄던 건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

 

법정에서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가 기관이 종합적인 상황을 조사·발표한 기록이 남아 있다. 국가인권위가 2021년 1월 공개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등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다. 피해자 면담(2회)과 서울시 전·현직 직원 등 참고인 51명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했다.

 

여기에 인권위 발표 자료의 일부를 인용한다.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고, 이와 같은 박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 당시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박원순 시장 시절에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박 전 시장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판단을 내릴 이유가 없었다. 인권위 결론까지 부정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셈이다.

 

사실 피해자로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조사 결과는 아니었다. 피해자는 “사건에 대한 국가 기관의 명확한 판단을 기대했는데 ‘성희롱’이란 단어로 내가 겪은 피해를 축소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다시금 절망스러웠다”고 자신의 책에 적었다. 그렇더라도 박 전 시장에 의한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제작진은 이런 인권위 조사 결과마저 인정하길 거부하면서 피해자에게 또다시 ‘2차 가해의 돌’을 던지고 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 당장 2차 가해를 멈추고 영화 개봉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이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다.

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06.24 유공자 명단이 어떻게 비밀이 되나

국가보훈부가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란 지적을 받는 ‘민주유공자법’ 대상자의 행적 확인을 위해 국가기록원에 관련 기록을 요청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절 당했다고 한다. 보훈을 담당하는 부처가 유공 대상자의 공적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그런데 그것을 할 수 없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유공자의 공적은 물론 명단 자체가 비밀로 돼있다는 점이다. 보훈부도 문재인 정부 시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유공자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대법원도 2020년 5·18 민주화운동유공자 명단과 공적 사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유공자 명단은 개인식별정보에 해당하고 개인의 부상 내역, 장애등급 등을 공개하는 것은 사생활 비밀 침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사생활 보호의 이익이 공개로 인한 공익보다 크다고 했다. 상식에 맞지 않는다. 나라에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공을 세운 것이 어떻게 비밀이 될 수 있나.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부상이나 장애 등만 비공개로 해도 될 것이다. 법이 문제라면 법을 고쳐서라도 유공자의 이름과 공적을 널리 알려 귀감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유공자 예우에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국민의 알 권리도 있다. 일부에서 유공자 공개를 극력 피하는 것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가 지난 6월 10일 서울 종로에서 윤석열 정부 규탄,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행진을 하고 있다./뉴시스

 

민주당은 이미 유공자 예우를 받는 4·19, 5·18 유공자 외에 1987년 6월 항쟁,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9년 부산 동의대 사건, 1979년 남민전 사건 등 145개 사건 관련자 829명도 유공자로 예우하자는 것이다. 이들 자녀에게 대입 특별전형을 신설하고 정부·공공기관에 취직 가산점을 주는 등 특혜가 포함돼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일부 특혜를 삭제하고 6월 내 상임위 통과를 목표로 재추진 중이라고 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을 예우하고 보살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려면 그 공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부산 동의대 사건의 경우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7명이나 희생됐고, 남민전은 실제 북한과 연계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있다. 6월 항쟁, 민청학련 사건이 민주화에 도움이 됐다고 해도 참여자에 따라 기여도가 다를 것이다. 민주당이 이 법을 추진하고 싶다면 대상자 명단과 공적을 먼저 밝히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앞으로 관련 법도 개정해 유공자 명단을 비밀로 하는 이상한 일도 없어져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24 법원에서도 인정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의 파렴치 혐의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뉴스1

 

종편 재승인 점수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면직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기각했다. 면직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그가 “직무를 방임하고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 의무를 방기했다”며 직무를 계속 수행할 경우 “방통위 심의·의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뿐만 아니라 공무 집행의 공정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해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혐의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소명된다고 판단했다. 행정소송 가처분 사건에서 사실상 혐의까지 인정한 것은 드문 일이다. 그의 혐의가 그만큼 명백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2020년 TV조선이 재승인 심사에서 기준 점수를 넘었다는 보고를 받고는 “미치겠네요. 그래서요?”라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후 방통위 담당 국장과 과장이 심사위원장에게 평가 점수를 알려주며 점수표 수정을 요청했고, 심사위원장은 이들과 함께 심사위원들에게 점수를 수정하게 했다. 일부 심사위원들이 ‘공적 책임과 공정성’ 점수를 깎아 다시 제출토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TV조선은 점수 미달로 ‘조건부 재승인’ 처분을 받았다. 사실상 한 전 위원장이 점수 조작 지시와 승인을 한 것이다.

 

이 일로 이미 담당 국·과장 등 관련자들은 줄줄이 구속됐다. 혐의가 대부분 드러난 것이다.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설령 기관장이 몰랐다 해도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한 전 위원장은 그동안 혐의를 부인하며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지난달 초 불구속 기소된 후에도 사퇴하지 않고 버티다가 지난달 30일 면직 처분을 받고는 집행정지 신청까지 냈다. 이렇게 뻔뻔하고 파렴치할 수 있는가. 법원의 이번 판단은 그런 인물에겐 방통위를 하루도 맡겨선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4 법원, 한상혁 면직 유지… “방통위 신뢰 저해시켜”

면직 처분 집행정지 신청 기각
“TV조선 재승인 심사 조작 묵인”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점수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면직 처분 효력을 멈춰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강동혁)는 23일 한 전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낸 면직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 전 위원장의 면직을 재가했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1일 면직 처분 취소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

 

재판부는 “한 전 위원장이 TV조선 심사 평가 점수 수정을 알고도 그 경위를 조사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방통위원장으로서 직무를 방임하고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 의무를 방기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직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할 경우 방통위 심의·의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 공무 집행 공정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해될 구체적 위험이 발생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 전 위원장은 2020년 TV조선 종편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평가 점수가 조작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2일 불구속 기소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한 전 위원장은 2020년 3월 TV조선이 재승인 기준을 충족했다는 담당 국장의 보고를 받고 “미치겠네” “욕을 좀 먹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검찰은 한 전 위원장 반응을 본 해당 국장이 심사위원장인 윤모 교수를 통해 심사위원들을 움직여 점수를 깎도록 했다고 보고 있다. TV조선은 총점으로는 기준을 넘어섰지만 공정성 관련 항목에서 미달하면서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 전 위원장이) 법률상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고 법원 결정이 이를 명확히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전 위원장은 “면직 처분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며 항고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유종헌 기자

 

06-26 본격화하는 제2 중동 붐…경제 위기 넘을 돌파구 열린다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와 2년 뒤 베트남 공산화 등 전방위 경제·안보 불안이 대한민국을 덮쳤을 때, 중동에서 오일머니를 벌어오자는 역발상은 국가적 위기 극복은 물론 중공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그 출발점은 1976년 2월 현대건설이 정주영 당시 회장의 지휘로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를 따낸 것이었다. 반세기가 지나 경제·안보 어려움이 다시 심각해진 상황에서 지난 24일 현대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인 아람코와 사업비 50억 달러(약 6조5000억 원) 규모의 아미랄 프로젝트 계약에 서명한 것은 의미가 크다. 사우디 동부 주바일에 짓는 석유 플랜트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정상회담에서 40조 원 규모의 투자 약속을 끌어냈으며, 이를 신호탄으로 아람코의 울산 석유단지 9조 원 투자와 이번 아미랄 프로젝트 등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런 사우디발 훈풍은 한국의 수출입 구조상 큰 의미를 가진다. ‘자원 빈국’의 고난기는 ‘자원 부국’엔 호황기라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작년 무역적자가 472억 달러였는데, 중동 4국(사우디·UAE·카타르·쿠웨이트) 적자만 그 두 배에 가까운 762억 달러였다. 거꾸로 이런 오일 머니 덕에 중동 국가들은 ‘포스트 석유’에 대비한 첨단 산업과 인프라에 거액을 쏟아붓는다. 값비싼 석유를 수입하고, 그만큼 중동에서 벌어와야 하는 게 한국의 숙명이다.

이번 낭보가 시대적 의미를 갖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중국 특수’가 사라지면서 지난해 대중 경상수지는 21년 만에 적자를 냈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탈중국’은 시대적 화두가 됐다. 중동 붐은 유력한 대안의 하나다. 사우디 네옴시티, 이라크의 비스마야 신도시 및 바그다드 경전철, 인도네시아 신수도 사업 등 거대한 시장이 형성됐다. 윤 대통령도 “제2 해외 건설 붐을 위해 직접 발로 뛰겠다”고 했다. 반세기 전에 “오일 쇼크로 인한 외환위기는 오일 쇼크로 부자가 된 중동에서 풀어야 한다”며 기적을 만들었다. 이제 ‘원팀 코리아’의 제2 주바일 신화로 경제 위기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6-26 김명수 비위 규명이 사법 정상화 첫발

 

서정욱 변호사, 前 영남대 로스쿨 교수

인사농단·재판농단·개인비리 등으로 ‘역대 최악의 대법원장’이라고 비판받는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법과 양심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 수장의 ‘연쇄 거짓말’에 대해 검찰이 수사의 칼끝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2020년 제출한 사표 수리와 관련해 ‘허위공문서 작성’과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이 김인겸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출석을 통보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출석을 거부했고, 앞으로도 소환에 응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 법치를 철저히 무시하고 조롱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자신은 검찰 수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거짓 진술을 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재판에서 증인들의 출석과 진실한 증언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김 부장판사가 국회 답변 자료의 최종 결재권자인 만큼 추후 김 대법원장과 공범으로 의율(擬律)해서라도 반드시 소환 조사해야 한다.

위 혐의를 떠나 김명수 사법부 6년은 우리 헌정 사상 최악의 흑역사다.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특정 성향 판사들을 요직에 임명한 인사 농단은 법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마저 정치에 오염시켜 국민의 신뢰를 잃게 했다. 엄정하고 공정한 판결로 사회 정의의 기준을 세워야 할 사법부는 소수 정치 판사들의 놀이터가 돼 버렸다. 이러니 ‘불법 파업에 가담한 노동조합원 책임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사실상 ‘노란봉투법’ 취지의 판결 같은, 상식을 짓밟는 황당한 판결이 쏟아진다.

전례 없는 재판 지연으로 국민 일상이 큰 고통을 받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2013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재판 기간이 10% 지연되면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는 약 2% 감소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5년간 1심 판결조차 안 나온 소송이 민사는 3배, 형사는 2배로 폭증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 재판은 전례 없이 지연돼 조국 전 장관 1심 판결은 3년2개월, 윤미향 의원 1심 판결은 2년5개월 걸렸고,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도 3년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이는 결국 김명수 사법부가 문 정권의 각종 불법과 비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게 아닌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김 대법원장 개인 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는 물론 재판·인사 농단에 대해서도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땅콩 회항’ 사건 후 사내 변호사인 며느리를 포함해 한진 법무팀을 공관에 초청해 만찬을 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은 반드시 재조사해야 한다. 아들 부부가 ‘로또 청약’에 당첨된 후 공관에 들어가 1년3개월 동안 거주하고, 공관 리모델링에 16억7000만 원 세금을 쏟아부어 손자들을 위한 놀이터까지 만든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것만이, ‘판결의 권위’와 ‘법의 지배’가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 상황을 수습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근간으로서 사법부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전에 김 대법원장 스스로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떳떳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함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김 대법원장은 ‘권력 앞에 누워 버린 대법원장, 국민 앞에 거짓말하는 대법원장은 헌정사의 치욕’이라는 역대 대한변호사협회장들의 비판을 무겁게 되새기기 바란다.

문화일보

 
 

06.27 “전남 72%가 이승만 지지… 그때는 전라도가 우파 본산이었다”

‘정읍 선언’ 올해가 77주년… 이승만이 극우라는 친구에게

 ▲일러스트=이철원

 

광주에서 올해 설을 보내고 고향 친구와 시간이 맞아 서울로 가는 SRT에 같이 탔다. 첫 번째 정차 역은 정읍. 친구에게 창밖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저기 아파트 너머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남한만이라도 선거해서 정부 세우자’고 연설한 정읍동초등학교야. 지금 돌아보면 잘한 거 같지 않냐?”

 

“6·25 터지니깐 국민들 보고 안심하라 방송해놓고 다리 끊고 도망쳤는데 뭘 잘해?” “전쟁 나면 당연히 ‘우리 군이 잘할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방송하지 ‘큰일 났으니 도망가세요’라고 방송하냐? 갑자기 밀고 내려오니깐 반복해서 틀어주던 라디오 못 끄고 후퇴한 거지. 한강 철교도 이승만이 끊으라고 한 게 아니고 군에서 안 되겠다 싶어 끊은 거야.”

 

“이승만은 반민특위 해산시킨 친일파잖아.” “그때는 국민 80%가 글도 못 읽고, 제주 4·3, 여순 사건 터져서 혼란스러운데 정치인들끼리 테러하고, 조폭이 주름잡던 시대였어.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랑 일 좀 같이 했다고 관료들 다 내쳐버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 이승만은 일본이 반대해도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 주장하면서 대한해협에서 고기 잡던 일본 어선들 막 잡아들였어. 이래도 이승만이 친일파냐? 네 말대로면 이승만보다 친일파 훨씬 많이 기용한 김일성도 친일파겠다.”

 

“미국 꼭두각시 노릇 하느라 민족이 분열되고 전쟁까지 했는데?” “남한에서 선거도 하기 전에 김일성은 이미 소련 지원 받아서 군대 만들고 정부 만든 상태였어. 이런 상황에서 김구랑 김규식이 김일성을 만나봐야 협상이 되겠냐? 난 전 세계 절반이 공산화되는 이 거대한 물줄기를 조그만 반도 끄트머리에서 온 몸을 바쳐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게 민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봐. 그 과정에서 이승만은 미국에 전혀 순종적이지 않았어. 오히려 빨리 휴전하고 싶은 미국이 이승만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정권 세우려 했을 정도지. 굴하지 않고 직선제 개헌 해서 2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불리하게 진행되는 휴전 협상을 뒤집으려 반공 포로를 석방해버리는 벼랑 끝 전술을 썼어. 그렇게 미국한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 내. 대한민국 침범은 곧 최강대국 미국 침범과 같게 되는 시스템을 만든 거라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언제 먹힐지 모르던 나라가 안보 문제를 해결해서 번영의 기반을 마련한 거야. 우크라이나 봐. 미군이 주둔했다면 감히 러시아가 쳐들어오기나 했을까?”

“어떻게 부정선거 저지른 독재자를 옹호하냐?” “이승만은 경쟁 후보였던 조병옥 사망으로 당선 확정이었어.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사람들이 장난친 거지. 독재자는 말이야, 국민의 재산을 국유화해놓고 제 맘대로 해. 김일성이 한 무상 몰수, 무상 분배가 바로 그거야. 맘대로 매매·상속도 못 하는데 뭔 분배? 독재 강화 수단이지. 이승만은 유상 몰수, 유상 분배해서 국민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사유재산을 늘려줬어. 국민에게 ‘지켜야 할 나의 것’을 만들어줘서 6·25 때 용감히 싸울 원동력이 된 거야. 그리고, 세상 어느 독재자가 시위 좀 한다고 하야하냐? 탱크로 밀어버리지. 이승만은 시위하다 다친 학생이 있는 병원에 가서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학생들이 참으로 장하다’고 말했어. 게다가 국민이 한 사람이라도 더 똑똑해지길 바라며 부족한 재정에도 초등 의무교육을 시행한 이승만이 과연 독재자일까?”

“그래도 초대 대통령은 목숨 바쳐 무장 투쟁한 김구였어야 해!” “넌 왜 잘사는 대한민국에서 누릴 거 다 누리면서 건국에 몸 바친 이승만은 싫어하고 김구만 좋아하냐? 국제 정세를 잘 알고 활용한 이승만 아니었으면 우리는 김씨 왕조 밑에서 노예로 굶주리고 있었을 거야. 이승만이 원자력을 육성했으니깐 이렇게 싼값에 SRT 탈 수 있는 거지. 물론 이승만이 잘못한 점도 있었지만 넌 구구단도 못하는 상태에서 바로 미적분 할 수 있냐? 미국도 1965년에 흑인한테 처음 투표권 줬고, 스위스는 1971년에 여성한테 처음 투표권 줬어. 식민지를 막 벗어나서 모든 게 취약했던 나라의 첫 지도자가 생존 문제를 해결했으면 잘한 거 아니야?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게 ‘정읍 선언’이야. 이승만이 옳았다고!”

 

“와, 너 고등학생 때는 안 그랬잖아. 전라도 놈이 어쩌다 극우로 변해버렸냐.” “이승만 존경하면 다 극우냐? 3대 대통령 선거 때 보면 오히려 대구가 좌익 조봉암을 72% 지지하고 전라남도가 이승만을 72% 지지했어. 전라도가 우파의 본산이었다고.”

조선일보 박은식 의사·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06.28 경제 발전의 초석 다진 이승만 대통령

1950년대 이승만 정부
소득분배 개선, 인적자본 형성, 수입대체화로 민간기업 성장
경제에서도 ‘건국의 아버지’

 ▲2022년 7월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중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57주기 추모식'에서 유족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2022.7.19/뉴스1

 

흔히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가장 큰 공적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한 안보의 확립으로 본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경제적 성과는 박정희 대통령의 고도성장 신화에 비유되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 정부가 단행한 경제 및 사회정책의 성공이 없었다면, 6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먼저 단행한 정책은 농지개혁이었다. 대지주의 농지를 정부가 지가증권을 발행해서 구입하고, 이를 낮은 가격으로 소작농 및 소농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이를 통해 소작농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자작농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여 소득분배가 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일부 대지주들은 이때 받은 지가증권을 이용하여 근대산업에 투자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농업자본의 산업자본화가 이루어졌다. 또 하나 중요한 개혁은 바로 교육개혁이다. 정부 수립 직후 빡빡한 재정상황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문화는 정부의 재정지출 중 8%를 넘는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또한 6·25전쟁 중에도 교육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대학생의 경우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징집이 면제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1954년부터 초등교육을 의무화하면서 교육의 혜택을 전 국민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농지개혁과 교육개혁의 성공으로 소득분배가 개선되고 향후 산업화를 위한 인적자본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을 연구한 미국의 로드릭 교수는 한국과 대만이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산업화 초기의 양호한 소득분배와 높은 교육 수준이라고 하였는데, 이 기반이 1950년대 이승만 정부에 의해서 구축된 것이었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자산의 처분 즉 적산불하도 대부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들 자산 중 사회간접자본 및 기간산업은 공기업으로 전환되었지만 나머지는 민간기업에 불하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민간에 불하되었으며, 이런 과정에서 특혜 시비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적산불하는 실보다 득이 많았던 정책이다. 우선 정부의 재정수입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주요 기업들을 민간에 불하함으로서 민간 기업에 기반한 자유시장경제의 확립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1953년 종전 이후 추진한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작이었다. 이는 중요한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생산으로 대체하자는 전략이며, 3白산업(설탕, 밀가루, 면방직) 육성을 시작으로 시멘트, 다이너마이트, 라디오 등 주요 공산품들의 국산화에 성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서 빠른 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1960년대 이후 수출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특히 면방직 산업의 경우 50년대 말이 되면 이미 내수를 충족하고 생산 과잉 상태에 빠져 있었으며, 1961년 원화가치의 평가절하로 수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자 적극적으로 수출에 나설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1950년대의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은 1960년대 수출진흥 정책의 초석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승만 정부는 소득분배의 개선과 인적자본의 형성, 민간기업의 성장과 산업화의 초석을 다진 정부였으며 그 이면에는 자유시장경제를 신뢰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철학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정치와 안보에서만 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 경제에 있어서도 건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들어 마땅할 것이다.

조선일보 이두원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06.28 TV조선 점수조작해 불이익 준 방통위, 재허가 조건 어긴 KBS엔 면죄부

감사원, ‘TV조선 점수조작’ 방통위 책임자 파면‧해임 통보

감사원은 2020년 TV조선의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결과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방송통신위원회 양모 전 방송정책국장과 차모 전 운영지원과장을 각각 파면, 해임하라고 방통위에 통보했다. 감사 결과 방통위는 KBS의 경우 조건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재허가 승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28일 공개한 방통위 정기감사 보고서에서 “이들의 비위 정도가 중대하고 고의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방통위는 2020년 3월 16~20일 닷새간 한 연수원에서 그해 상반기 종편‧보도채널 재승인 심사를 평가했다. 심사위원장 윤모 교수를 제외한 심사위원 12명이 채점한 결과 TV조선의 총점은 650점을 넘었다. ‘방송의 공적책임’ 등 중점 심사사항 항목에서도 50% 이상의 점수를 얻었다. 이는 별도 조건 없이 TV조선에 재승인 결정을 해야 하는 점수였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가 나온 후 차 전 과장은 심사위원 2명에게 이미 제출된 심사평가표를 돌려주며 중점 심사사항 점수를 수정하게 했다. TV조선 채점 결과를 보고받은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은 ‘시끄러워지겠네, ‘욕 좀 먹겠네’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양 전 국장이 심사위원장인 윤 교수에게 점수 조작을 제의했고, 윤 교수가 심사위원 2명에게 사후 수정을 제안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방통위는 수정된 채점 결과를 토대로 TV조선에 ‘유효기간 3년’의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양 전 국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차 전 과장에게 점수 수정을 상의한 적 없고, 일부 심사위원과 개별적으로 만나지도 않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합숙 도중 방통위 직원들과 뒤풀이 회식 중이던 차 전 과장이 양 전 국장에게 전화를 받고는 심사위원들과 2차 술자리를 했다는 방통위 직원 진술 등을 토대로 양 전 국장 주장이 거짓이라고 봤다.

 

감사원은 방통위가 TV조선에 원래 기준인 ‘4년’이 아닌 ‘3년’을 조건부로 제시한 근거가 된 법률 자문도 두 사람의 공모로 허위 작성됐다고 판단했다.

 

반면 방통위는 2017년 진행한 KBS(한국방송공사) 재허가 심사에서는 허술하게 점검한 것으로 드러났다. KBS는 2017년 감사원 정기 감사에서 상위직급(2직급 이상)이 전체 직원의 60%를 초과하는 등 인력구조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방통위는 2017년도 지상파 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 때 감사원의 이런 지적을 반영해 KBS에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2020년 KBS에서 제출받은 이행 실적에 따르면 상위직급 비율은 57.4%였다.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방통위는 조건이 이행됐다며 ‘재허가’로 심의‧의결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방통위 관련자들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한상혁 전 위원장은 TV조선 평가점수가 조작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로 지난달 2일 재판에 넘겨졌다. 양 전 국장과 차 전 과장, 심사위원장이었던 윤 교수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지난 7일 보석 석방됐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06.29 KBS엔 봐주기 조작, 비판 종편엔 감점 조작, 한상혁의 방송 농단

KBS가 2017년 ‘상위 직급 감축’을 조건으로 재허가를 받은 뒤 이를 시정하지 않았는데도 방통위가 2020년 다시 재허가를 내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한상혁 방통위’가 재허가 조건 위반을 눈감아 준 것이다. 반면 TV조선은 재승인 기준 점수를 넘었는데도 점수를 조작해 조건부 재허가 처분을 내렸다. 정권 응원단 방송엔 특혜 조작을 하고 비판적 방송엔 감점 조작을 했다. 공정해야 할 방통위가 정권의 하수인이 돼 방송 농단을 벌였다.

KBS는 2017년 감사원 감사에서 ‘전체 임직원 중 상위 4개 직급자 비율이 60%에 달한다. 이를 줄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방통위도 그해 말 ‘상급자 감축과 직급별 정원 조정’을 KBS 재허가 조건으로 달았다. KBS는 보직 없이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30%가 넘는다. 이런 기관이 국민으로부터 강제 수신료를 받고 있다. 방만 경영 시정은 재허가 조건으로 합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KBS는 재허가를 받은 후 이를 이행하지 않고 버티다 방통위에서 두 차례 시정 명령을 받았다. 재승인 심사를 1년 앞둔 2019년 말에야 ‘직급 정원을 조정했다’고 보고했지만 거짓이었다. 상위 2개 직급 정원을 줄이는 대신 그 위에 옥상옥 직급 3개를 신설했다. 그 결과 상위 직급 전체 정원은 2765명에서 2820명으로 도리어 55명 더 늘었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2020년 ‘KBS가 조건을 이행했다’며 재허가를 내줬다. 이때는 ‘상위 직급 감축’이란 조건조차 달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지난해 KBS 1인당 평균 임금은 1억29만원, 1억원 이상 연봉자는 50.6%에 달했다. 보직 없는 억대 연봉자도 30%(1500명) 그대로다.

지난 정권 동안 KBS는 공영방송 아니라 정권의 나팔수였다. 조국 지지 시위는 헬기를 띄워 보도하고 반대 시위는 맨 뒤로 미뤘다. 정부 편드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우파 패널 없이 좌파 패널만 80여 회 출연시켰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편들고 피해자엔 2차 가해를 했다. 한상혁 방통위의 KBS 봐주기 조작은 이런 편향 보도의 대가였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9 “재정 중독은 미래 약탈” 이권 카르텔 척결 제대로 해야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빼먹는 ‘혈세 도둑질 카르텔’이 태양광 등 온갖 신재생 비즈니스는 물론 정치권력과 결탁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핵심은, 문재인 정부에서 급속히 늘어난 현금성 보조금 지출을 둘러싼 비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 중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빚을 내 현금성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은 전형적인 미래 세대 약탈”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정치적 성격의 보조금은 제로 베이스에서 재점검하겠다”면서 “선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건전 재정을 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집권 세력으로서 어려운 결단인 만큼, 정교한 대책으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R&D) 예산을 재점검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새로운 언급도 매우 중요하다. 소수 연구자들이 연 30조 원 규모의 연구 과제 선정과 평가를 독식해온 ‘연구비 카르텔’을 정조준한 것이다. 그 대신 “사병들 처우 개선, 약자를 위한 서비스, 첨단 R&D엔 더 과감하고 효과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두 정확한 지적이고 옳은 방향이다. 그럼에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문 정부의 포퓰리즘이 심각했고, 많은 국민도 부지불식간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문 정부 때 나랏빚이 400조 원 늘어 국가부채는 1000조 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경제가 위기일수록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35조 원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위기 때 최후의 보루가 건전 재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올해 세수가 35조 원 부족해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대세다. 정부는 불요불급한 지출부터 재조정하고, 민주당도 재정 준칙 도입에 협력해야 한다.

대중을 속이려는 정치꾼과, 속아 넘어간 대중의 합작품이 포퓰리즘이다. 중독성이 강하고 금단 증상도 심각하다. 민주주의를 살해하는 마약인 이유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200여 년 전 이렇게 경고했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의해 낭비되고 탈진해 스스로를 죽인다.”

문화일보 사설

 

06-29 “선동으로 나라 흔드는 세력 너무 많다”는 尹 인식 옳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가 커다란 도전에 처했다고 진단하고, 결연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다소 직설적이긴 하지만, 국가 보전의 최고·최종 책임자로서 올바른 인식이다. 윤 대통령은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조직적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가짜 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 완화를 추진한 데 대해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한 가짜 평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문 정부라고 적시하진 않았지만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에 그런 잘못된 인식을 가진 공직자가 여전히 많다는 의미로도 들렸다. 실제로 문 정부 5년 동안 북한에 저자세를 보이며 그것이 평화의 길인 양 포장했지만, 현실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로 돌아왔다. 대북전단금지법, 강제 북송 등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지만, 개성공단 사무소 폭파와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등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대중 저자세와 반일 정책으로 한미동맹의 근간을 훼손하는 자충수도 서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우병·사드 괴담이 허위로 밝혀졌는데도 반성하긴커녕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를 ‘핵 폐수’ 운운하며 선동을 이어간다. 그로 인한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는데도 개의치 않으니 ‘반국가 세력’ 지적까지 받는 것이다. 민주당은 “일베와 다를 바 없다”고 윤 대통령을 비난하기 앞서 과오를 겸허히 돌아보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6.30 첫발 뗀 이승만 초대 대통령 기념관, 화해와 통합의 계기 되길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정부가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국민 성금을 모금해 기념관을 짓기로 했다. 이 전 대통령 서거 58년 만에 비로소 기념관 건립 첫걸음을 뗐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기념관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박정희·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 기념관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제헌국회 의장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정을 이끌었다. 초대 대통령에 취임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잡았다. 이 전 대통령이 당시 유행하던 공산주의 풍조를 거부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 6·25 남침에서 나라를 지키고, 거부하는 미국을 설득하고 강권해 기어이 한미동맹을 맺었다. 대한민국 번영의 주춧돌이 놓인 역사적 업적이다. 농지개혁을 결단해 수천년 낡은 체제를 없애고, 지금의 교육제도를 정착시켰으며, 황무지 같던 나라에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대한민국은 2차 대전 후 독립한 140여 나라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그 기틀을 닦은 사람이 이 전 대통령이란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최초 원자력 연구소 건물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인터넷 이승만 기념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은 그동안 민주당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윤석열 정부가 기념관 건립을 다시 추진하자 민주당은 ‘독재 정치의 부활’이라며 반대했다.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쓰레기”라며 참배를 거부했지만, 대통령 후보가 되자 묘소를 참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5년 야당 대표가 되자 묘소를 참배하고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라고 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자 이 전 대통령을 철저히 무시했다.

민주당 말대로 이 전 대통령은 집권 연장과 독재라는 분명한 과오가 있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공과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처럼 위대한 업적을 세우고도 철저하게 잘못만 부각된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최근 4·19 혁명 주역들이 이 전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묘소를 참배하고 “이 전 대통령의 과오뿐 아니라 공을 다시 봐야 한다”고 했다. 이들 중 일부는 기념관 건립 추진위에도 참여했다.

추진위에는 이승만 정부 당시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 박정희·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 아들 4명도 참여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은 그 과정 자체가 이 전 대통령의 공과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역사적 화해와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민주당도 여기에 동참하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6.30 이승만 기념관, 4·19 주역도 박정희·YS·DJ 아들도 뭉쳤다

이승만·노태우 前대통령 아들 포함, 건립추진위 발족
4·19 시위 주역들까지 참여… “통합의 계기 만들어야”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이인수 박사 배우자인 조혜자 여사,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 안병훈 기파랑 사장,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추진위원장), 이영일 대한민국역사와미래 고문,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회장,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이윤생 오성회계법인 대표, 김군기 영남대 교수,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황성욱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 복거일 소설가, 주대환 죽산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정용상 동국대 명예교수, 조태열 전 주유엔대사, 조보현 배재학당 이사장, 이진만 변호사./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제공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1875~1965) 기념관 건립 사업이 닻을 올렸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28일 발족돼 민관 합동으로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추진위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자유 가치가 다시 확립되고 한미 동맹이 재건되고 있다”며 “잠시 잊힌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되찾는 길에서 꼭 해야 할 것이 우남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일”이라고 했다. 추진위에는 오래전부터 이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을 추진하던 인사들은 물론 전직 대통령 아들 등 각계 인사들이 두루 참여한다.

 

우선 이 전 대통령의 양자(養子)인 이인수 박사를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 EG 대표이사,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이사장 등 전직 대통령 아들 5명이 고문으로 위촉됐다. 김현철·김홍업씨는 2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발족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인 김현철 이사장은 본지 통화에서 “분위기가 훈훈했고 진보·보수 위원들이 같이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초대 대통령 기념관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매우 뜻깊은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홍업씨도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 참여 제안에 적극 응했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사후 약 60년 동안 “건국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 왔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놓고 진영 간 평가가 엇갈리면서 기념관 건립 시도가 매번 좌절됐고, 과거 행적에 대한 일각의 폄훼·왜곡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일에 이 전 대통령의 정적(政敵)이라 불렸던 죽산 조봉암(1898~1959) 기념사업회의 주대환 부회장을 비롯해 4·19 학생 시위 인사, 전직 운동권, 진보 정치인 출신 등 다양한 정파·배경의 인사들이 두루 참여해 국민 통합의 의미가 극대화됐다. 김황식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이 대통령을 바로 알리고 함께 참여하는 국민 통합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죽산은 항일운동을 했던 인물로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2~3대 대선에도 출마해 이 전 대통령과 경쟁했다. 1959년 이른바 ‘진보당 사건’ 때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이 집행됐는데 유족들과 정치권 일각에선 이를 ‘사법 살인’이라 주장해왔다. 이런 가운데 기념사업회의 고위 인사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라 의미가 적지 않다. 주대환 부회장은 “유족들의 한은 아직 풀리지 않았고 사업회 회장에게 허락을 구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라면서도 “무죄를 선고한 2011년 대법원 재심 판결도 12년이 지난 만큼 얽힌 매듭을 풀 때가 됐다 생각한다”고 했다.

 

주 부회장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거치며 중국의 오랜 속박에서 벗어나 미국을 끌어들여 민주공화국을 세우자는 기본 노선이 정해졌다”며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세계에 박헌영을 비롯한 친(親)소련 공산주의자들이 쏟아졌는데도 이 전 대통령은 해방 후에까지 살아 남아 민주공화국 노선을 고집스럽게 지켜 이뤄낸 분”이라고 말했다.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십이 있었지만 호오(好惡)를 떠나 이승만 전 대통령 정도 되는 사람이 기념관 하나 없다는 건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기념관 건립은 당연하고 소박한 일”이라고도 했다.

주 부회장은 “대한민국이 건국 75년 만에 성공한 나라로 거듭난 건 ‘건국의 아버지들’이 처음에 기초를 잘 세웠기 때문”이라며 “숨가뻤던 역사를 돌아보고 하나하나 재평가하는 작업을 해야 대한민국이 100년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기승전결을 갖춰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었는지 말해줄 수 있다. 이승만 기념관을 짓는 것도 그런 일이라 생각해 조그만 보탬이라도 되고 싶었다”고 했다. 4·19 직후 이승만 전 대통령 흉상이 무너진 자리에 김구 선생 동상이 들어선 것을 언급하며 “우리는 당장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모든 일을 해왔다”고도 했다.

주 부회장이 말하는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죽산 조봉암, 인촌 김성수, 해공 신익희 등이다. 특히 죽산은 1950년 소수의 대지주에 집중됐던 토지를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분배 혹은 유상 지급하는 ‘농지 개혁’을 주도했는데 주 부회장은 이를 우리 현대사의 가장 결정적 순간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 전 대통령과 죽산이 없었다면 농지 개혁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농지 개혁이 성공하면서 대한민국이 유례없이 평등한 나라로 출발할 수 있었고 이게 우리 경제가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며 “건국의 아버지들이 손을 잡고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오랜 기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좌해 ‘DJ의 가신(家臣)’이라 불린 인물이다. 그는 올해 3월 이 전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4·19에 함께한 50여 명과 함께 국립현충원 묘소에 참배했다.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고 굳건한 안보의 기틀을 확보한 분”이라고 했다.

이영일 대한민국역사와미래재단 고문은 4·19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으로 학생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 고문은 “당시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을 ‘장기 집권을 하려던 독재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국회의원을 하고 세계 각국의 정치를 보며 오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서총련에서 연대사업국장을 지냈던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는 “예전에는 ‘우남은 나쁘다’ 덮어놓고 욕만 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를 살리지 못한 다른 나라 사례를 접하며 생각이 바뀌었다”며 “해방 정국 당시 정치 리더십이 혼란할 때 총의를 모아 토지 개혁을 추진한 건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 작업이 탄력을 받는 건 현 정부 리더십의 의지도 작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전 대통령의 공은 공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계속된 북한의 핵 폭주와 올해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 등이 계기가 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이 전 대통령이 기반을 다진 한미 동맹이 재조명받고 있다. 추진위원인 김군기 영남대 교수는 “유연한 생각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가 기념관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업적과 정신을 자연스레 접하면 ‘이승만 재평가’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김민서 기자

 

06.30 ‘먼저 보는 게 임자’ 연구개발 예산 30조원, 브로커까지 활개

정부가 연 3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개선에 나섰다. 정부 R&D 예산은 2014년 17조원에서 올해 30조원으로 10년 새 72%나 늘어났는데,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 못 먹으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방만하고, 부실하게 운영돼 왔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비 비율은 4.9%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지만 연구·개발 성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정부 지원 R&D의 98%가 ‘성공’ 판정을 받지만, 상용화로 이어져 실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연구·개발비 100만달러당 특허 건수가 0.03건으로 OECD 37국 중 11위에 그친다. 그 결과 R&D 투자액 대비 지식재산 사용료 수입 비율이 9.9% 수준으로 OECD 평균(30%)을 크게 밑돌고 있다.

 

주된 이유는 연구비 나눠 먹기, 과제 쪼개기, 건수 채우기식 후진적 관행이 과학기술계에 광범위하게 뿌리 박고 있기 때문이다. 2004~2018년 15년간 우리나라 양자 분야 연구비는 2300억원이었는데, 과제 수가 235개에 달해 과제 1건당 연구비가 10억원이 채 안 됐다. 양자와 같은 첨단 연구에 10억원으로 무엇을 하나. 한국과학기술원의 한 연구원은 한 해에 무려 20개 연구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다. 말도 되지 않는다.

현재 국내 대학 이공계 교수 10명 중 6명이 정부의 연구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이들이 낸 특허는 쓸모 없는 ‘깡통 특허’가 대부분이다. 본지가 대한변리사회에 의뢰해 반도체·인공지능(AI)·신약·헬스케어 분야에서 상위 10개 대학이 지난해 하반기에 등록한 특허를 전수조사한 결과, 10개 중 7개는 상용화가 불가능하거나 사업성이 전혀 없는, ‘특허를 위한 특허’였다.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R&D 예산의 46%는 50대 교수가 차지하고, 30대 이하 젊은 연구자들의 몫은 5%에 불과하다. 대학가엔 정부 보조금을 따먹기 위한 연구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연구비 따먹기 카르텔이 있는 것이다.

한국이 제조 강국이 된 것은 세계 최초 64D램,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이동통신 상용화, 자동차 엔진 국산화 등 연구소, 대학, 기업이 한몸이 돼 연구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가 끼어 국민 세금이 들어가면 ‘눈먼돈’이 된다. 충격적일 정도의 쇄신이 불가피하다.

조선일보 사설

 

06-30 한국 인구위기 ‘퍼펙트 스톰’ 직면…발상 전환 시급하다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한 나라가 될 것이고, 인구 감소로 인해 국가 소멸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암울한 경고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저출산 고령화가 내수 위축과 연금 부양인구 확산으로 인한 정부 재정위기 등 국가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을 ‘퍼펙트 스톰’에 직면하는 정황이 뚜렷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21세기 국가 흥망의 열쇠’를 주제로 29일 열린 국제심포지엄 ‘문화미래리포트(MFR) 2023’에선 인구 위기의 본질과 해법에 대한 국내외 석학들의 탁월한 진단과 제안이 쏟아졌다.

주제 발표자들은 기술 혁신의 나라 한국이 최악의 저출산 국가가 된 것에 당혹감을 표했다. 제임스 레이모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출산율은 극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했다. 하야시 레이코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부소장도 “한국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고 지적했다. 출산율 추락이 국가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발상의 전환이 화급하다는 주문이다. 출산 장려를 위한 현금 지원과 관련해 레이모 교수는 “효과가 없다”면서 ‘바늘로 산을 움직이려는 것’에 비유했고, 일과 가정이 양립되는 라이프 스타일 혁신을 주문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도 “가족 친화적 새 패러다임이 근원적 인구 해법”이라고 진단했다.

인구 감소가 난제이긴 하지만, 과도한 공포는 금물이다. 사회 혁신과 업그레이드 기회로 삼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 볼프강 러츠 비엔나대 교수는 “인구 감소를 재난으로 볼 필요는 없다”면서 “인구통계학적 추이를 바탕으로 고령 인구의 노동 참여를 늘리면서 기술 생산성을 향상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상 축사에서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 위기는 국가경쟁력의 핵심 어젠다”로 규정했는데, 바른 인식이다. 저출산 방치는 국가 쇠락을 낳는다. 그렇다고 정부 정책만으로 풀 수가 없고, 단시간에 해결할 수도 없다. 인구 위기를 혁신적 장기적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한 MFR 제언을 새겨들어야 할 이유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