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외교) 2023-05/ 05.01(월) 정권 오고 가도 한미동맹의 기본 원칙만은 공유돼야 - 05.30 “우크라, 한국 두고 저울질 안해… 통일된 입장 가져주길 간청”
危機의 韓半島(외교) 2023-05/
05.01(월) 정권 오고 가도 한미동맹의 기본 원칙만은 공유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5박 7일간의 국빈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대통령실은 이번에 채택한 ‘워싱턴 선언’에 대해 “가장 중요한 성과” “제2의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라고 자평했다. 여야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국민의힘은 “한미 동맹의 역사적 전환점” “가장 성공적인 정상 외교”라고 평가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텅 빈 쇼핑백만 들고 돌아왔다” “대국민 사기극에 사죄하라”고 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출국 당일부터 “불안과 공포의 한 주가 시작됐다” “또 어떤 사고를 칠지 걱정”이라며 마치 사고·실수가 일어나길 기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 열망이 얼마나 컸던지 넷플릭스의 25억달러 한국 투자 소식을 한국의 넷플릭스 투자로 오독(誤讀)해 대통령을 흉보는 글을 올렸다 급히 삭제한 의원까지 나왔다. 야당의 존재 이유가 정부를 견제·감시하는 데 있다 해도 방미 기간 내내 악담을 쏟아낸 민주당의 행태는 도를 넘었다.
‘당파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는 외교 격언이 있다. 냉전의 막이 오른 1948년 미국 공화당의 반덴버그 상원 외교위원장이 민주당 정부의 ‘트루먼 독트린’에 초당적 지지를 선언하며 던진 말이다. 여야가 국내 문제론 싸우더라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외교·안보에서만큼은 정파를 뛰어넘어 공유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치 말아야 할 가치를 꼽는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미 동맹일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일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평화·번영의 토대이기도 하다. 특히 군사 분야에서 시작한 한미 동맹은 이제 경제를 넘어 기술·글로벌 동맹으로 확장·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북한의 핵 폭주로 한반도의 안보 위협이 나날이 커지는 데다,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국제 질서의 새 판 짜기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시점에 이뤄진 한미 정상 외교를 민주당은 오로지 정파적 이해에 따라 재단하는 편협한 자세로 일관했다. 이번 회담에 걸린 대한민국의 안위 문제에 무관심한 채 대통령 흠집을 찾아내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런 야당의 태도를 바꾸는 데는 대통령의 노력도 요구된다. 방미 기간 상대국의 공감을 이끌어낸 소통 노력을 국내 정치에서도 발휘해야 한다. 야당을 만나 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하는 것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5.01 "미7사단 철수 최대 위기…박정희·존슨,이명박·부시 최상 조합"
"소련의 수소폭탄은 파괴된 우리나라의 도시 위에 떨어지기보다도 오히려 먼저 미국의 대도시에 떨어질는지도 모를 일인 것입니다." "한국 전선은 우리가 승리하고자 원하는 싸움, 아시아를 위한 싸움, 세계를 위한 싸움, 자유를 위한 싸움의 일개 소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시아의 자유를 안정하게 하기 위한 여러분의 중대 결정이 지금 필요합니다."

▲1954년 7월 28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한국 대통령 최초로 영어로 연설하는 모습.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7일 상하원에서 영어로 연설했다. 약 70년의 시차를 두고 두 대통령은 자유와 동맹을 한목소리로 역설했다. [이승만기념관 사진 캡쳐, 대통령실사진기자단]
1954년 7월 28일 당시 79세 이승만(1875~1965)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영어로 또박또박 연설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미국 의회 연설이었다. 1953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었지만 당당하고 단호한 어조였고, 짧은 연설 중에 기립박수가 33차례나 터졌다.
"자유는 평화를 만들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자유·인권·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가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정의롭습니다. 우리의 동맹은 평화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번영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미래를 향해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지난 27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내용의 일부다. 역대 일곱 번째 한국 대통령의 연설이었다. 44분 동안 매끄러운 영어 연설 중 ‘자유’를 46회 언급했고, 기립박수 26차례를 포함해 56차례 박수를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이 6·25전쟁 직후 한·미동맹의 절박함을 국내외에 알렸다면, 윤 대통령은 글로벌과 우주로 진화하는 한·미동맹을 천명했다. 70년의 시차를 둔 연설의 공통분모는 자유였다.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유래와 우여곡절을 되돌아보기 위해 『한미동맹 70년 한미 역사 140년』의 저자인 김열수(70)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을 만났다.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서울 남산 자유총연맹 마당에 세워진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상' 앞에서 인터뷰에 응한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 한미동맹을극적으로 성사시켰고 지난 70년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에 주춧돌을 놓았다"고 높게 평가했다.김종호 기자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서울 남산 자유총연맹 마당에 새겨진 이승만 전 대통령 부조 앞에서 "어렵게 한미동맹을 탄생시킨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로가 크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NPT 탈퇴 권리 포기로는 볼 수 없어"
-이번 정상회담을 총평하면.
"지난 70년의 한·미동맹을 회고하고 향후 동맹 강화를 위한 발전 방안을 논의한 회담이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협의그룹(NCG) 창설에 합의하고, 북한이 핵으로 공격하면 즉각적·압도적·결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이로써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은 큰 성과다."
-워싱턴 선언의 NPT 준수를 놓고 논란인데.
"워싱턴 선언에서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의무를 준수한다고 했을 뿐 탈퇴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NPT 10조에 규정된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지난 70년 한·미동맹은 어떤 기여를 했나.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제2의 6·25전쟁을 도발할 수 있는데, 한·미동맹이 전쟁 억제자 역할을 했다. 둘째, 미국은 1988년까지 무상 55억 달러를 비롯해 유·무상 군사 원조를 통해 한국군의 군사 전력 및 전략 발전에 기여했다. 덕분에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권으로 도약했다. 셋째, 한·미동맹은 한국의 국방비를 절감하게 해줬고, 한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조약 체결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반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8월 8일 서울에서 가조인됐고, 10월 1일 워싱턴에서 정식 조인식을 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정전협정 체결을 맞교환했지만, 비준서는 1년이 훨씬 지난 1954년 11월 17일에야 교환했다. 한·미합의의사록 타결을 놓고 1년간 치열한 밀당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북진 통일을 염려한 미국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엔사가 한국군 작전을 통제하는 내용을 담은 합의의사록을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일에 맞춰 조인했다."

▲1952년 12월 3일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 수도 부산의 대통령 관저에서 방한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악수하고 있다. 미국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승만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이승만 제거 계획 세워
-이 대통령은 '벼랑 끝 전술'을 발휘했다.
"일본군 무장 해제를 위해 진주했던 미군이 1949년 6월에 철수하는 바람에 6·25전쟁이 일어났다고 판단한 이 대통령은 미국이 아무런 안전보장조치 없이 정전협정만 체결하고 한국을 떠난다면 제2의 6·25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것이 벼랑 끝 전술로 나타났다. 첫째,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정전협정 체결 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먼저 체결해야 하고 그 조약에 미국의 '즉각 개입 조항'을 넣자고 요구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머뭇거리자 이 대통령은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했다.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정전협정 체결을 방해하겠다는 신호였다. 둘째, 이 대통령은 휴전이 되면 통일이 물 건너간다고 봤기 때문에 휴전회담에 한국군 대표를 보내는 것도 꺼렸고 휴전회담에 참석한 한국군 대표는 끝까지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고집 덕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탄생했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동맹을 출범시켜 안보와 번영의 주춧돌을 마련한 이 대통령의 공로가 가장 크다."
-미국이 당초 조약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당시 한국의 전략적·경제적 위상을 낮게 본 미국은 미군이 일본만 방위하면 소련의 팽창을 봉쇄할 수 있다고 봤다. 약소국이던 한국과 동맹 조약을 체결하면 미국만 손해라는 인식이 있었고, 조기에 종전해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당시 미국 조야를 지배했다."
-미국은 '이승만 제거 계획'까지 세웠다는데.
"트루먼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미국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고 군사정권을 수립하려고 '에버레디 계획'(Plan Eveready)을 짰다. 그러나 미국의 특사(월터 로버트슨 국무부 극동 담당 차관보)가 한국에 파견돼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협상을 타결해서 에버레디 계획은 발동되지 않았다."

▲1968년 4월 19일 미국 하와이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월남전 파병 등으로 두 대통령은 호흡을 잘 맞춘 것으로 평가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정희, 동맹 흔들리자 핵 개발 추진
-지난 70년 한·미동맹의 최대 위기는.
"큰 위기가 두 번 있었다. 첫째, '닉슨 독트린'에 따라 1971년 2만명 규모의 미군 제7사단이 철수할 때였다. 1968년 북한의 1·21 청와대 습격 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으로 한국의 안보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군을 막을 수 없자 핵무기 개발을 위한 ‘무궁화 꽃’을 피우려 했다. 둘째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자주파와 동맹파가 대립하던 시기였다. 반미 감정이 대규모 촛불시위로 표출되자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한국민이 원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02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면 좀 어떠냐'고 돌출 발언했으나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 기지 결정, 한·미 FTA 협상 타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 등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한·미 현안을 해결했다."
-한·미동맹이 위력을 발휘한 사례는.
"철통 같은 안보태세로 북한의 재침을 막아온 것이 가장 좋은 사례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 미국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전쟁을 염두에 둔 '데프콘 3'을 발령했다. 미국 항공모함이 발진 대기하고 전폭기가 한반도 주변에 전개된 상태에서 한국군 1공수여단 등이 투입돼 판문점 미루나무를 절단하고 북한군 초소를 파괴하자 북한군이 도망갔다. '폴 버니언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그 직후 북한이 요청한 비밀회담에서 김일성의 유감 표명 편지가 낭독됐다. 베트남전·걸프전·이라크전·아프간전 등 미국 주도 전쟁에 한국군이 참여하면서 한·미동맹의 위력은 외부로 확대되고 있다."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캠프 데이비드에서 골프 카트를 몰고 회담장으로 가고 있다. 진보 정권 10년 이후 한미동맹의 신뢰를 복원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중앙포토]
-한·미동맹을 가장 잘 활용한 대통령은.
"동맹을 탄생시킨 이승만 대통령을 빼고 본다면 한국군 31만 2853명을 8년간 베트남전에 파병해 경제적·군사적 이득을 챙긴 박정희 대통령이다. 미국이 제공한 참전 수당과 차관을 한국 경제 번영의 쌈짓돈으로 활용했다. 군사원조 외에도 한국군은 미국산 장비를 확보하고 전투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역대 한·미 대통령 중에 가장 잘 맞았던 조합은.
"이승만·박정희·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으로 초청됐다. 찰떡궁합처럼 '케미'가 잘 맞는 대통령을 초청했다고 본다. 현직인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조합을 제외하고 본다면, 베트남 파병으로 관계가 밀착됐던 박정희-린든 존슨, 진보정권 10년에 대한 반대급부로 친밀했던 이명박-조지 W 부시 조합을 꼽을 수 있겠다."
-한·미 동맹의 발전 방향은
"한반도 차원에서는 안보 동맹을 더 강화하고, 경제동맹과 기술동맹을 추구하며, 지역 및 지구적 차원에서는 가치동맹을 포함한 다양한 국제 이슈를 다루는 포괄적 글로벌 동맹을 지향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발전을 위한 미래 궤도에 진입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05-01 한미 NCG 가동 위한 4가지 필수 요건

권태오 前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예비역 육군 중장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해 많은 일을 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핵전쟁에 대비한 ‘핵협의그룹(NCG)’을 이끌어낸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공개한 핵준비태세보고서(NPR)에서 북한을 핵무기를 사용할 적국 중 하나로 적시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정권의 종말(end of regime)’을 맞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표현했다. 또한, 재개된 한미 연합훈련에 전략폭격기·핵잠수함·항모전투단 등 미국의 많은 핵전력을 전개해 확장억제 공약이 확고함을 보여주려 했다.
미국의 핵정책은 크게 3가지 원칙이 있다. △핵무기는 전략적 방어와 억제를 위해서만 사용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는 핵확산은 용인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우방일지라도 핵무기 개발은 불가하며, 대신 이들 국가가 적국으로부터 핵공격을 받는 경우 미국의 핵무기로 지켜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철저하게 이 원칙을 지켜왔고 오랫동안 핵확산과 핵전쟁을 예방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확장억제가 과연 언제, 어떻게 시행될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장 북핵 위협에 직면한 국민의 답답함은 우려를 넘어 확장억제의 시행 의지와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가질 지경이었다. 일각에서 요구하던 자체 개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식 상시 배치, 핵 공유 같은 방안을 채택할 수 없는 입장에서 이 문제에 답을 준 것이 NCG 운용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이 그룹에서는 지금까지 개념적 논의만 해 오던 차관급 조직(확장억제전략협의체)과는 달리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다.
첫째, 핵전쟁 계획 수립을 위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의 핵능력과 의도를 공동 평가하고 어떤 수준의 핵전쟁이 발발할지를 상정해 핵무기 운용의 규모와 범위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 양국에서 투입해야 할 소요 전력을 제기해야 한다, 여기에는 공격할 표적의 수와 강도, 공격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 등이 포함된다.
둘째, 이를 뒷받침할 투발·방호 수단 등 무기체계와 부족한 자산의 개발·도입·배치 시점 등을 결정해야 한다.
셋째, 이 계획을 검증하고 실제 시행을 숙달하기 위한 연습과 훈련 소요를 결정해야 한다.
넷째, 북한의 핵 사용은 단순한 한반도작전구역(KTO)에서만의 전쟁으로 한정되지 않고 대규모 핵전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연히 역내 국가들과의 협의도 필요하다.
이러한 한반도 핵전쟁을 상정한 전쟁 억제와 대응 등 모든 논의와 조치의 총괄 창구로서 이 NCG는 작동돼야 한다. 그리고 이 업무는 군사적 차원을 넘어서 외교·안보를 망라한 종합적 판단이 요구되는 것이므로 당연히 그 업무 수행 주체는 대통령실이 돼야 할 것이다.
나토에서 운용되는 핵기획그룹(NPG)과는 핵무기를 현장에 전개해서 상주(常駐)시키느냐 그렇지 않고 사전 합의한 시점에 전개시키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북핵에 대응해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조치가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이뤄졌다고 평가하며, 신속한 NCG의 구성과 가동을 기대한다.
문화일보
05-02 북 核장난 막을 한미 핵동맹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빈껍데기 선언·윤석열 못난 인간·무능”(북한 김여정 당 부부장), “빈손 외교·대국민 사기극·아전인수식 정신 승리·글로벌 호갱 외교”(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 ‘워싱턴 선언’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북한과 민주당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보인 반응이다. 이를 두고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어쩌면 그렇게도 북한과 민주당이 한마음 한뜻으로 찰떡 공조를 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라고 비꼬았다.
워싱턴 선언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를 향해 ‘핵 선제타격’까지 거론한 북한의 핵 위협이 미국의 전략적 인내의 임계점을 넘었다고 판단해 내린 최종 결론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전쟁을 일으킬 엄두조차 못 내도록 미국이 동맹과 공유할 수 있는 최대치를 약속한 것이다. 미국이 개별 국가와 핵자산 관련 핵우산 약속을 구체화한 최초의 문서다. 신냉전 미·중 패권시대 미국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한반도 등 동북아가 된 구도에서 미국이 한미동맹을 재래식 전력동맹에서 핵동맹으로 진화시킨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석이자, 본격적인 북한 비핵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미일·아시아판 확장억제 협의체’로 진전하기 위한 토대다. 군사 전략적 의미를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이는 김여정이 ‘빈껍데기 선언’이라면서도 “극악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약화된 산물”이라며 게거품 물고 비난하는 모순적 태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온갖 제재를 감수하고 경제까지 희생하며 ‘만능의 보검’이라 주민들에게 선전해온 핵무기가 핵동맹으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초조감·좌절감이 읽힌다. 김여정이 ‘억제력의 제2의 임무’ 즉, 핵 선제공격을 통해 남한을 무력통일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까발린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과 맞짱을 뜨며 이판사판 갈 데까지 가보자고 광분하는 북한을 앞에 두고 여야는 적어도 북핵 공조 등 안보 현안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북한은 민족 공멸로 갈 핵 선제공격을 수시로 들먹이며 핵전쟁에 광분하는, 가장 호전적이고 위험천만한 집단이다. 그런데도 워싱턴 선언을 두고 ‘묻지마 대통령 성과 깎아내리기’에 급급한 야당의 태도는 걱정스럽다.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하고,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하고, 핵 선제공격으로 위협해도 그 흔한 대북경고 결의안 한번 채택하지 않은 것도 걱정을 키운다. ‘평화 구상’으로 북한 사기극에 놀아나다 한미동맹과 한일관계만 균열 냈고, 중국·러시아는 핵 전략폭격기로 영공을 위협해 한때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우물 안 개구리식 ‘양다리 걸치기 중립외교’ ‘전략적 모호성’은 신냉전 시대에는 시대착오적 탁상공론으로, 중국과 미국 등 모두로부터 버림받는 악수였음을 문재인 정부가 온몸으로 보여줬다.
비록 핵을 가진다 해도 한미동맹이 무너지면 북·중·러의 위협에 대항할 수 없다. 핵은 못 가진다 해도 강한 핵동맹만으로 북·중·러 위협에 맞설 수 있다. 핵보다 강한, 제대로 된 핵동맹을 진척시켜야 북한의 핵전쟁·핵불장난 모험을 막을 수 있다.
문화일보
05-02 빅터 차 “워싱턴선언, 1953년 방위조약과 나란히 자리할 것”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평가
“전쟁 부추긴다는 야권 주장과
보수의 ‘비핵화 비판’ 근거 없어”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빅터 차(사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는 1일(현지시간) “워싱턴선언은 미국의 핵 보장 의미와 실행을 명확히 하는 중요한 문서로 1953년 상호방위조약과 자리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수출통제 등에 대해 윤석열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앞으로 일방적인 (법안) 공개보다 한국 등 주요 파트너와 더 많은 협의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이날 CSIS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의 백악관 국빈방문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물은 워싱턴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한·미 동맹이 한국 내 핵무기 사용에 대한 공동 의사결정 체계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두 동맹이 사실상 핵 계획에 참여하기로 약속했다”며 “NCG에는 유사시 미국의 핵 작전 관련한 공동 핵 계획·실행과 미 전략사령부와의 훈련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차 석좌는 “진보 성향 야당은 정상회담 결과가 전쟁을 부추긴다고 비난했고 보수진영 일부 인사는 윤 대통령이 한국의 비핵 지위와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를 재확인한 것에 대해 비판했지만 둘 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며 “워싱턴선언은 전쟁을 부추기기보다 핵 억지력이 북한을 막을 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한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고 윤 대통령의 NPT 관련 발언은 기존 한국의 정책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차 석좌는 IRA·반도체법·수출통제 등에 대해서는 “새로운 조치가 제안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문화일보
05-03 “中은 한미 안보협력 비판 앞서 북핵 제재 동참해야”
한일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을 이뤄낸 윤석열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입장을 명료하게 밝혔다. 대통령실 취재 기자들과의 2일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다소 투박한 어투의 발언이었지만, 정곡을 찔렀다는 점에서 중국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한미 안보협력 강화에 반발하는 중국을 향해 워싱턴선언을 언급하면서 “핵 기반으로 안보 협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하려면, 핵 위협을 줄여주든가, 적어도 핵 위협을 가하는 데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는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유엔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도 했다.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지만, 안보리의 북핵 제재 결의를 대놓고 조롱하는 북한을 제재하긴커녕 옹호하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도 상임이사국으로서 합당한 역할을 당부한 바 있는데, 다시 환기한 셈이다. 지금도 중국 관영 매체는 한미 양국을 겨냥해 “핵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전략적 수준의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중국은 북핵 공격에 대비한 사드 배치에 대해선 보복하면서도 북한 도발은 ‘안보 우려 때문’이라며 두둔한다. 지난달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도발 때도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며 안보리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중국이 우리한테 적대 행위만 안 하면, 서로 계약을 정확히 지키고 상호 존중하면 얼마든지 경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도 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과 별개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또 양국을 위해 서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 우려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워싱턴선언에 대해 “미국에 알아서 퍼준 글로벌 호갱(호구 고객) 외교” “중국·러시아를 향한 위험천만한 행동”이라고 했다. 북한 및 중국 입장과 유사한 위험한 발상이다.
문화일보 사설
05-03 외교 헐뜯는 야당의 反국익

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정치는 국경에서 멈춘다고? 해외순방 중인 디샌티스(론 디샌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에게는 그렇지 않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월 25일(현지시간) 공화당 유력 대권주자 디샌티스 주지사에 대해 비판 조의 기사를 게재했다. 플로리다주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비롯해 일본·이스라엘·영국 등 4개국 순방에 나선 디샌티스 주지사가 해외에서 미국 유권자들을 겨냥한 국내 정치용 발언을 늘어놨기 때문이다. 그는 첫 방문지 일본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 외교정책을 겨냥해 “바이든이 세계 무대에서 매우 약했다는 사실이 중국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WP는 ‘지도자들이 해외에서는 단합된 전선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디샌티스) 주지사는 미국 내 평소 정치적 목표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고 평했다.
정치는 물가, 즉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는 격언이 힘을 잃은 건 기실 미국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5박 7일간 미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출국 첫날부터 방미 기간 내내 악담을 쏟아냈다. 미국에 도착한 윤 대통령이 화동에게 볼 키스하자 장경태 최고위원은 “성적 학대행위”라며 신고 핫라인 운운했고 양이원영 의원은 넷플릭스 CEO의 한국 투자 약속을 오독해 “지금 해외투자할 땐가”라고 공격했다. 회담 성과에 대한 평가도 헐뜯기 수준이다.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 국빈방문을 “글로벌 호갱 외교”라고 싸잡아 비난했고 김의겸 의원은 “백악관이라는 역대 최고 비싼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 부르고 왔다”고 혹평했다. 미 의원들도 칭찬한 윤 대통령의 영어 의회 연설에 대해 문진석 의원은 “사대주의자”라고 비꼬았다. 외국을 방문 중인 정상이라고 비판해선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금도도 없이 정상외교의 신뢰를 훼손하고 제3국이 회담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이용당할 정도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월 초 백악관이 윤 대통령 국빈방문을 발표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상은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기자회견이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을 직접 불러일으킨 뒤 “생큐”를 세 차례나 연발했다. 회담 직전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394억 달러(약 44조 원) 투자 보따리를 풀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경제사절단 참여 때마다 자의 반 타의 반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유례없는 북한 핵 위협·미사일 도발로 확장억제 강화 합의가 필요한 데다 바이든 대통령 재선 도전 발표 등으로 ‘퍼주기 외교’ 우려가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다행히도 국빈방문 기간 59억 달러 투자 유치를 한 반면, 국내 기업의 대규모 신규 대미 투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민주당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한국 기업이 1000억 달러를 투자했다 비판하지만, 실상 상당 부분 2년 전 정상회담을 비롯해 문 정부 당시 발표됐다. 야당은 태생이 반대하는 당(opposition party)이다. 하지만 외교안보에 있어서만은 무조건 폄훼보다 원칙에 따라 성과를 평가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기대하면 지나친 욕심일까.
문화일보
05.08 기시다 답방으로 셔틀외교 복원, 관계 개선 화답 카드도 내놔야

▲윤석열 대통령과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확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했다. 지난 3월 윤 대통령 방일 이후 52일 만에 이뤄진 기시다 총리의 답방으로 양국 정상이 빈번하게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고 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식민 지배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사죄와 반성’을 언급하는 대신에 강도 낮은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한국 사회가 바라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왕복 외교 복원으로 최근 1년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 낸 주역들이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양국 관계를 질식시켜 온 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배상하는 방안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그러자 기시다 총리가 방일한 윤 대통령을 국빈(國賓)처럼 환대한 데 이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두 정상은 오는 19일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날 계획이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찾아 참배도 한다.
지난 1년간 신뢰를 쌓은 양국 정상은 한일 신(新)시대를 열었던 김대중-오부치 관계를 재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998년 DJ·오부치 선언은 “한일 관계를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며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도약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2002년 고이즈미 일 총리의 방북, 2003년 북핵 6자 회담도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일 양국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주변 국가를 위협하는 해양굴기(海洋崛起)로 더욱 큰 협력이 절실하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더욱이 두 나라는 경제 위기, 인구 감소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얽매여 있을 시간이 없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반일(反日) 좌파와 일본의 혐한(嫌韓) 우파에게 휘둘리지 않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윤 대통령이 국내 정치의 부담을 안고 선도한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 기시다 총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용기와 성의를 보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08 53년전 세운 한인 원폭 위령비, 민단 “총리 참배 상상못한 일”
위령제에 日 정치인 참석 드물어
“교포들 아픔 위로, 뜻깊은 성과”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함께 참배키로 합의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히로시마시(市) 평화기념공원(이하 평화공원)에 있다. 이 평화공원은 1945년 8월 미군의 원자폭탄 공격으로 죽은 희생자를 기리는 장소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강제징용 등으로 히로시마에 왔다가 희생당한 조선인 2만~3만명(추정)을 기리는 비석이다. 1970년에 평화공원 건너편에 비석을 세웠고, 1999년에 공원 안으로 옮겼다. 높이 5m에 무게 10t인 비석에는 “1945년 8월 6일의 원폭 투하로 2만여 명의 한국인이 순식간에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다. 히로시마 시민 20만 희생자의 1할에 달하는 한국인 희생자 수는 묵과할 수 없는 숫자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일본 총리 가운데는 1999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헌화했다. 당시 평화공원 행사에 참석했던 오부치 총리는 당일 오전에 재일대한민국민단(민단) 관계자에게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의 존재를 듣고는 일정을 바꿔 위령비에 참배했다. 기시다 총리의 참배는 일본 총리로서는 오부치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공식 참배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단의 서원철 사무총장은 “일본 총리가 원폭으로 희생당한 재일교포에게 참배하는 건,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며 “일본 사회가 재일 한국인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뜻깊은 성과”라고 말했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재일교포에게는 그만큼 서럽고도 상징적이란 뜻이다. 민단을 중심으로 재일교포들은 매년 8월 5일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위령제를 지내지만, 일본 정치권의 유력 인사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민단 관계자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와 사이토 데쓰오 국토교통상 등 공명당 정치인들이 찾아오는 정도”라고 말했다. ‘평화주의’를 주창하는 공명당은 2010년 전후부터 매년 위령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공원에는 ‘히로시마평화도시기념비’도 있다. 1952년 설립된 이 기념비는 원폭 후유증 사망자를 포함해 32만4000여 명(2020년 기준) 희생자 명부를 두고 원폭의 무서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도쿄=성호철 특파원
05.08 한·일 셔틀외교 복원, 진정한 미래협력 발걸음 되길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 셋째)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양국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안보·경제 협력 강화키로…일부 진전 입장 눈길
첫술에 배부를 수 없어, 교집합 점차 늘려 가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어제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한·일 관계 개선을 시도한 지 52일 만의 답방이다. 이로써 한·일은 2011년 10월 이후 12년 만에 양 정상이 수시로 오가며 현안을 실무 협의하는 셔틀외교를 복원했다. 기시다 총리는 당초 6~7월께 방한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일본 측이 기시다 총리의 조기 방한을 제안했다고 한다. 한·미의 대북 억제력 강화(워싱턴 선언)에 이어 북한 위협의 실질적 당사자인 한·일 양국의 안보 연대와 협력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양 정상이 어제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100분 넘게 외교안보 분야 소인수 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합의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양 정상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위한 협의를 환영하고, 한·미·일이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를 위한 워싱턴 선언에 일본의 참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업체 간 공급망 협력을 확대하고,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한국 전문가의 현장 시찰단 파견을 일본 측이 수용한 것 역시 평가할 만하다. 양측이 실무협의를 통해 투명하고 객관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G7 정상회담 기간 중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함께 히로시마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키로 하고 과거사 문제를 치유하려는 시도는 셔틀외교 재개의 성과로 볼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식민지 시절)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비록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기존보다 한걸음 진전된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고, 일본 정부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지난 3월 16일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양측이 차근차근 인식의 공통점을 확대해 교집합을 늘려 나가는 것이 이제 막 첫 단추를 끼운 관계 복원을 가속하는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다.
일본에서 오무라이스 회동을 한 두 정상은 이날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숯불 불고기를 메뉴로 만찬을 하며 신뢰의 탑을 한층 더 쌓았다. 12년 만에 재개한 셔틀외교와 정상의 신뢰 회복이 정부 및 민간 교류 확대로 이어져 실질적인 미래 협력을 위한 걸음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나아가 과거사 피해자들의 아픔도 달래는 등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관계 복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5.08 尹 내실서 한·일 정상 부부 145분 만찬…메뉴는 화합의 구절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7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인 유코 여사와 구절판, 탕평채, 한우갈비찜 등으로 차려진 만찬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7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만찬을 함께 하며 친교의 시간을 보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만찬은 오후 7시30분쯤 시작돼 2시간25분 동안 이어졌다. 별도의 친교 시간을 가졌던 김건희 여사와 기시다 유코 여사도 함께했다.
윤 대통령 부부가 관저 입구로 나와 기시다 총리 부부를 맞이했고, 네 사람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어 윤 대통령의 사적 공간인 관저 내실로 이동해 만찬을 했다. 대통령 부부 거주 공간인 주거동으로 초대해 환대와 정성을 보여줬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해외 VIP의 주거동 식사는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한남동 관저는 윤 대통령 부부가 거주하는 주거동(내실)이 160평(528㎡), 참모들이 드나드는 업무동이 260평(859㎡) 규모로 구분돼 있다. 메뉴로는 한국 전통 음식인 구절판과 한우 불고기 등 한식 상차림이 올라왔다.
여덟 가지 재료를 밀쌈에 싸먹는 구절판은 여러 가지 재료가 결합해 하나의 맛을 만드는 화합의 상징성이 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이 외에도 잡채, 탕평채, 한우갈비찜, 우족편, 민어전, 한우불고기, 자연산 대하찜, 메밀 냉면 등이 메뉴로 나왔다.
기본 찬으로는 백김치와 물김치를 비롯해 더덕구이·담양 죽순나물이, 후식으로는 한과·과일·식혜 등이 나왔다.
갈비찜과 불고기, 우족편은 모두 횡성 한우로 만들어졌다. 우족편은 궁중 연회나 민간 잔칫상에 오르던 음식이다. 민어전은 목포산, 대하찜은 충남 태안산, 잡채는 충청 속리산 능이버섯·표고버섯, 제주 당근·부추·실고추채 등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만찬용 술로는 경주법주 초특선이 나왔다. 사케를 선호하는 기시다 총리의 취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우리 청주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천년고도의 명주”라고 설명했다. 양국 정상은 만찬 뒤 업무동으로 자리를 옮겨 전통공연을 함께 관람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요리사, 통역관만 배석한 가운데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친교의 시간은 오후 9시55분 마무리됐다.
앞서 한·일 정상회담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고, 양 정상은 밀착 행보를 과시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용산 대통령실 1층 현관에 나가 기시다 총리 부부를 직접 맞았다. 윤 대통령은 웃으며 기시다 총리와 악수를 나눴고, 김 여사도 유코 여사와 반갑게 악수했다.
대통령실 청사에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리고 레드 카펫도 깔렸다. 두 정상은 잔디마당으로 내려가 나란히 걸으며 의장대를 사열했다.
윤 대통령의 지난 3월 방일 때 양국 정상은 일본 도쿄 긴자의 노포 ‘요시자와’에서 스키야키와 우동으로 만찬을 하고 2차로 ‘렌가테이’로 자리를 옮겨 오므라이스·돈가스·햄버그 스테이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진로 소주와 일본 에비스 맥주를 섞어 ‘화합주’로 이름 붙인 술과 히로시마 특산 일본 술(사케)인 ‘가모쓰루’ 등을 마셨다. 이번과 비슷한 2시간 반에 걸친 친교의 자리였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05-08 한일 셔틀외교 복원…미래지향적 안보·경협 토대 닦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7∼8일 방한은 예상됐던 수준에서 무난하게 진행됐다. 과거사에 대한 파격적 입장 표명은 없었고, 체류 시간도 24시간 남짓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3월 16∼17일 방일이 선제적·주도적 외교 행보였던 것에 비하면, 한국 입장에선 기대에 다소 못 미친다. 그러나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중단됐던 한일 정상이 셔틀외교를 복원함으로써, 북한 핵무기 위협과 중국 시진핑 독재체제 강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중대한 안보·경제 전환기에 한국과 일본이 협력할 토대를 닦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양국이 다양한 후속 조치를 통해 ‘윈윈’ 할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해졌다.
기시다 총리는 국립묘지 참배로 일정을 시작했다. 과거에도 일본 총리가 관행적으로 참배했지만, 일본 내 혐한 분위기가 커졌음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는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에 더해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개인 소감 형식이었고, 징용 문제를 특정하지도 않았지만, 전후 세대 일본 정치인들의 새로운 망언을 경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현안과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짝도 내디뎌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힌 것도 적절한 호응이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양국에서 큰 선거가 없는 올 연말까지의 8개월 정도가 골든 타임이다. 두 정상의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인 희생자 위령비 참배, 원전 오염수 논란에 대응한 한국 전문가의 후쿠시마 파견, 청년 교류 확대, 항공편 증설도 의미 있는 일이다. 가장 긴요한 일은 경제 협력의 강화다. 기시다 총리는 8일 경제 6단체장도 만났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과 일본의 소·부·장 기업들이 함께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양국 사이엔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럴수록 셔틀외교 역할이 커진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수시로 정상이 만나는 관행이 중단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월간조선 05월 호 특집 / 미·중 신냉전 시대의 동맹과 안보
안보위기 심화와 한미동맹 진화 방향
韓美동맹을 넘어 韓·美·日 안보협력체제로
⊙ 6·25는 蘇·中·北 공모로 일어나… 최근 중·러·북 연대 강화 주목해야
⊙ 中의 대만 침공 틈타 北이 전쟁 일으킬 가능성 높아
⊙ “자유민주국가들끼리는 전쟁 않는다”… 같은 민주국가인 韓日은 안보공동체
⊙ 한국, 쿼드 가입하고 유엔사를 유사시 다국적군체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김영호
1959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美 버지니아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 대통령 통일비서관, 외교통상부 인권대사 역임. 現 성신여대 교수, 통일부 통일미래기획위원장 /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 《대한민국과 국제정치》 《대한민국의 건국혁명》(1, 2)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작년 5월 22일 오산공군기지(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방문, 한미동맹 의지를 과시했다. 사진=대통령실
한국의 안보 상황은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국면에 직면해 있다. 북한은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를 실전 배치했고 최근 공중 폭발 훈련을 하면서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신냉전이 전개되면서 북한·중국·러시아 북방 독재 3국 연합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소모전이 계속되면서 국제정치의 불안정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를 예의주시하면서 대만 침공 시기를 엿보고 있다. 6·25전쟁 당시 봤던 것처럼 대만과 한반도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1950년 북한이 남침(南侵)했을 때 미국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제7함대를 대만해협으로 보내 대륙 공산중국의 대만 침공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시진핑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김정은도 남한에 대한 국지전(局地戰) 혹은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심각한 안보 상황에 직면한 한국은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기초한 국가안보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해나가지 않으면 한반도와 동북아 70년 장기간 평화는 무너지고 우리가 땀 흘려 이룩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한미의 북핵 대책, 완전 실패
지난 30년간 한국과 미국의 북핵(北核) 대책은 완전히 실패했다.지난 1월 30일 최종현학술원이 내놓은 국민안보의식 조사를 보면 국민의 76.6%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이 독자 핵 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1994년 1월의 미북 제네바 합의, 2003년의 6자회담, 2018년과 2019년 두 번의 미·북 정상회담 등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이 한국과 미국 지도자들과 정부의 북핵 폐기 주장을 믿지 않는다는 강한 불신감을 반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정치인들이 자신들도 믿지 않는 말을 하는데 국민들이 그 말을 실제로 믿는 것을 보고 정치인들도 속으로 깜짝 놀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과연 그동안 한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주장한 외교적 해법이 완전히 무위(無爲)로 돌아가면서 우리 국민의 북핵 위협에 대한 불안감과 한국과 미국 정부의 북핵 해법에 대한 불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이런 불안감과 불신감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에 대한 불신, 한국의 독자 핵 무장에 대한 국민적 여론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은 3월 28일 화산-31이라는 전술핵탄두를 전격 공개했다. 그 이전 북한은 3월 19일 단거리탄도미사일 KN-23을 상공 800m, 3월 22일 순항미사일을 상공 600m, 3월 27일 전술핵무기를 상공 500m에서 공중 폭발시키는 훈련을 했다. 3월 23일에는 핵어뢰를 수중 폭발시키는 훈련을 통해 부산과 같은 항구를 쓰나미로 초토화시킬 수 있는 훈련도 했다. 미국은 1945년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상공 500여m에서 폭발시켰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더 이상 시험이 아니라 실전(實戰)과 같은 핵공격 훈련으로서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한국 도시 상공에서 핵을 공중 폭발시키겠다는 것이다.
한미, 핵무기 공동 운용해야
2019년 미국 랜드연구소가 내놓은 북핵의 서울 강남 지역 투하 시 살상력 조사 보고서를 보면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북한이 1만 톤의 핵무기를 강남 상공에서 폭발시킬 경우 9만 명이 사망하고 33만 명이 부상당한다. 10만 톤의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40만 명이 사망하고 153만 명이 부상당한다. 이 보고서가 말하지 않은 부수적 피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자탄이 투하된 나가사키의 평화공원에 가보면 그 앞에 커다란 분수대가 서 있다. 나가사키의 경우 핵폭발뿐만 아니라 핵 낙진(落塵)에 의해 식수(食水)가 오염됨으로써 더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핵 낙진에 오염된 물을 마셔서 죽거나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북한의 핵 공격이 있을 경우 랜드연구소가 보여주는 피해뿐만 아니라 강들과 식수원이 오염되어 마실 물이 부족해서 생겨나는 인명피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핵 공포의 균형’을 통해 북한이 절대로 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핵 억제력을 어떻게 실효성 있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북핵 대응 방안으로 미국의 확장 억제력 강화, 나토식 한미 핵 공유 협정, 미국 전술핵무기 재배치, 한국의 독자 핵 개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핵 능력, 기획과 관련하여 한미가 정보를 더욱 많이 공유하고 공동 기획을 통해 확장 억제 실효성을 강화시킨다고 하더라도 뚜렷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확장 억제 방식이 되었든 나토식 한미 핵 공유가 되었든 핵무기 사용 최종적 권한은 미국 대통령만이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핵 공격 결정과 실행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과 핵 작전을 함께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북한의 핵 공격 시 미국이 정찰 자산을 통해 아무리 빨리 그것을 포착한다고 하더라도 작전 종심(縱深)이 매우 짧기 때문에 거기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전략 자산, 핵무기와 관련하여 한국이 그것을 미국과 공동 운용하는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수준으로 확장 억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美 전술핵 재배치 필요

▲북한은 신형 고체연료 사용 ICBM을 비롯해 핵무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만약 미국이 이런 수준의 핵 운용 권한을 한국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할 경우 한국은 독자 핵 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독자 핵 개발로 나아가기 이전에 언제든지 핵을 개발할 수 있는 잠재적 핵 개발 역량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수 있고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이미 일본 영토 내에 확보해두고 있다. 한국도 이런 잠재적 능력을 확보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핵실험을 하지 않고 다양한 기술적 방식을 동원하여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한국은 이스라엘의 모델을 따라서 필요할 경우 즉시 핵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잠재적 능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북핵 위협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식의 전략적 터부를 설정하고 스스로 족쇄를 채워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로 있는 공화당 제임스 리시 상원의원은 최근 북한 핵 위협에 대비해 미국의 확장 억제력을 강화하는 조치와 동시에 1991년 한국으로부터 철수시킨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 의회 내의 분위기도 북핵 위기가 심각하고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의 안전이 걸려 있어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할 경우 북한의 공격 타깃이 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미국 내 일부 핵 전문가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미국은 나토 핵 공유 협정 체결국 5개 국가에 전술핵을 배치해두고 있다. 미국은 이 전술핵무기들이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을 알면서 왜 거기에 두고 있는가. 전술핵 배치가 억지력으로 작용하여 러시아의 핵 공격을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도 똑같은 효과를 낼 것이기 때문에 유력한 대안의 하나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1991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표되면서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미국 전술핵이 철수되었다. 북한은 이 공동선언을 어기고 비밀리에 핵 개발에 나섰다. 미국의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안보딜레마’
한국이 북핵 대응 방안을 모색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국제정치에서 작동하고 있는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이다. 이 개념은 1950년 초 미국의 유명한 존 허즈(John Herz)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적대 국가들 사이의 군비 경쟁이 안보딜레마의 대표적 사례이다. 북한이 체제 유지와 적화(赤化) 통일을 위해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해서 한국과 미국을 위협할 경우 거기에 상응하는 대응이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의 핵 개발은 김정은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안보딜레마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여 미국이 한국에 전략 자산을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오하이오급 핵추진 잠수함을 군항에 정박시켜 공개하고 확장 억제력을 강화하는 정책 등이 북한이 직면한 안보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미국 전술핵의 재배치와 한국 독자 핵 개발 논의도 북한의 안보딜레마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보딜레마는 모든 국가에 작동하는 구조적 요인이기 때문에 한국도 북핵에 대응해나가는 과정에서 이 딜레마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국의 동의 없이 독자적 핵 개발에 나설 경우 미국은 ‘글렌수정법안’에 따라서 한국에 자동적으로 제재를 가할 것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핵 개발을 하는 국가에 대해 미국은 무기와 군사기술 등을 금수(禁輸)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재 조치와 관련하여 대통령이라 해도 면제를 해줄 수 없다. 한국의 원전(原電)에 핵연료를 공급하는 국가들은 한국 핵 개발에 대한 보복으로 핵연료 공급을 중단할 것이다. 20기가 넘는 한국 원자력 발전소 가동과 수출은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한국은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 제10조에 의거하여 합법적으로 이 조약에서 탈퇴하여 핵을 개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적대국의 핵 위협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국가는 3개월 이내에 유엔안보리와 핵 조약 당사국들에 통보만 하면 독자 핵 개발에 나설 수 있다. 한국은 이런 권리를 갖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안보딜레마를 항상 염두에 두고 국익(國益)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전략은 북한의 안보딜레마는 최대화시키고 한국의 안보딜레마는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국가 전략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6·25는 蘇·中·北이 공모한 것

▲지난 3월 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연대를 다짐했다. 사진=AP/뉴시스
작년 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베이징(北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무제한 협력’을 약속했다. 그 직후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3월 두 지도자는 모스크바에서 다시 정상회담을 갖고 ‘연대(連帶)’를 약속했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어기고 탄도미사일 도발을 했지만 결의안에 따른 추가 제재에 반대하고 나섰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계속해서 핵미사일 도발을 하고 있다.
북·중·러 3국 연대를 등에 업고 중국은 대만을 군사적으로 침공할 수 있고 북한도 그 기회를 이용하여 또 다른 남침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북방 독재 3국의 연대는 한국 안보에 커다란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이런 정세 변화에 분명한 전략적 인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한반도 안보 정세는 과거 미·중·소와 현재 미·중·러 ‘3각 외교’의 변화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아왔다. ‘3각 외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의 강대국들인 세 나라 사이의 이합집산을 말한다. 이런 양상은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그 영향은 미·중 신냉전이 전개되고 있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중·러, 북한에 미사일 기술 지원
1949년 10월 공산혁명에 성공한 신생 공산국가 중국은 ‘대(對)소련 일변도 정책’을 채택하고 1950년 2월 14일 소련과의 군사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는 중·소(中蘇)가 제3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 서로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자동개입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 조약 협상을 위해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던 바로 그 시점인 1950년 1월 30일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남침을 지원하겠다는 극비의 전문을 보냈다. 그 전문에서 스탈린은 마오쩌둥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마오쩌둥이 동의함으로써 북·중·소 북방 공산 3국의 사전 공모에 의해 6·25전쟁이 일어났다. 이것은 북방 3국의 연대 강화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이다. 미·중 신냉전 하에서 한국의 국가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도자들과 전략가들이 ‘역사 감각’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6·25전쟁 직전 북방 3국의 연대와 같은 현상이 미·중 신냉전 시기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 안보와 관련하여 예사롭지 않다.
미국은 1972년 미·중 외교관계를 개선하는 새로운 ‘3각 외교’를 추진했다. 이것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 쐐기를 박아 중국을 미국의 파트너로 삼아 소련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는 키신저의 전략이었다. 중국이 대만을 대신하여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었고 국제정치는 양극(兩極)체제에서 다극(多極)체제로 바뀌었다.
이런 새로운 전략을 바탕으로 미국은 소련을 붕괴시키고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었다. 지난 40년간의 미·중 협력체제는 이제 막을 내리고 2017년부터 미·중 신냉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신냉전은 미·중·러 3각 외교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세를 뒤바꾸어놓고 있다. 6·25전쟁 직전과 같은 상황으로 북방 3국의 관계가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은 북한이 핵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더욱 심각하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능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중거리 핵미사일도 실전 배치해두고 있다. 북한은 전술핵무기를 이미 실전 배치해두고 언제 어디서든지 8종의 운반체계에 실어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미사일 기술을 비밀리에 제공하고 있다. 2017년 이후 북한이 이렇게 빨리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중·러의 지원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시진핑, 미국 정면 비판
북·중·러 3국의 연대 강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진핑은 3월 초 정협 연설에서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봉쇄하고 포위하고 억압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중국의 관변 언론들은 중국 지도자가 미국을 비난할 경우 나라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국 이름을 정면으로 거론하고 나왔다.
반면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경쟁을 원하지, 갈등은 원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미국 헤리티지재단 보고서는 미·중 신냉전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비현실적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중 신냉전의 가장 중요한 분쟁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 대만이다. 시진핑은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대만을 통일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대만 통일이 시진핑 3연임의 중요한 명분이었고 향후 장기 집권에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침공할 경우 북한도 그 기회를 이용하여 남한을 상대로 국지전을 일으키거나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중·러 북방 3국의 연대 강화가 우크라이나 전쟁뿐만 아니라, 대만·한반도 분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하여 한·미·일 안보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안보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자 변제라는 해법을 통해 일제(日帝) 징용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한 것도 이런 안보 정세에 대한 판단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는 유엔사 후방 기지 7곳이 있다. 여기에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과 한국군, 유엔군이 사용할 무기와 탄약, 연료 등이 비축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협력적 한일관계가 한국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자유가 평화를 만든다”
일본은 전후(戰後)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한국과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거듭났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마이클 도일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을 제시하고, 이것을 지난 150년 국제정치사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전후 같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갖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 서로 전쟁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같은 체제를 갖고 있는 미국과 일본이 서로 전쟁을 한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한·미·일 사이의 관계는 남북관계와 미북관계에서 드러나는 ‘안보딜레마’가 아니라 ‘안보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안보딜레마와 달리 안보공동체는 갈등을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관계를 말한다. 나토가 전형적 안보공동체이다.
한·미·일도 일종의 안보공동체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가 평화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주장은 바로 ‘민주평화론’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런 정책적 기조 위에서 한일관계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전략가들은 이 점을 공론화하고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북·중·러 3국 연대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6·25전쟁과 같은 또 다른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민주평화론적 인식을 갖고 한·미·일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중국의 도전
중국은 소련보다 훨씬 더 잠재력을 가진 미국에 대한 심각한 도전 국가이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소련의 GDP는 미국의 30%에 불과했다. 소련이 냉전 기간 중 미국 대비 GDP가 최고로 올라간 것이 42%였다. 소련은 핵무기 등 군사력에 있어서는 미국과 대등한 수준에 올랐지만 취약한 경제력 때문에 냉전 대결에서 몰락하고 말았다.
미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군사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을 훨씬 뛰어넘어 군비를 확장한 국가들은 모두 과대팽창의 전략적 오류로 인하여 몰락했다는 것을 지난 500년의 외교사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소련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북한도 이런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내놓은 국가들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 통계를 보면 북한이 23%로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안보딜레마에 빠진 북한은 소련처럼 과대팽창의 부담에 짓눌려 체제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소련과 달리 신냉전이 시작된 현시점에 중국은 경제력에서 미국의 70%, 군사력에서 미국의 60% 수준까지 따라와 있다. 미·중 신냉전의 기점으로 잡는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해 본격적 견제와 제재에 나서지 않았다면 미국은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서방 국가들과 연대해 중국에 대해 반도체 분야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도 중국에서 동남아시아와 우방 국가들로 공장을 이전하여 재편돼가고 있다. 지난 40년간 심화된 상호의존관계는 미국과 중국에 서로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상호의존성이 심한 국가가 덜 심한 국가보다 불리한 것은 자명하다.
미중관계의 단절이 가속화되면서 그 여파가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미·소 냉전과 달리 미·중 신냉전은 군사적 대결과 경제·기술적 갈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신냉전 시기 한국이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엔사 강화 노력 동참해야
냉전의 붕괴는 소련과 동구권의 자유화와 몰락으로 촉발되었다. 냉전의 종식은 아시아 지역 공산국가들의 붕괴로 연결되지 않았다. 소련 붕괴 당시 중국은 앞서 얘기한 ‘3각 외교’에 의해 미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외교적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미·중 신냉전은 두 나라 사이의 생사를 건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신냉전 과정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으로 인해 중국 정치체제에 변화가 발생할 경우 한반도에서 한국에도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미·중 신냉전이 대만을 둘러싸고 열전(熱戰)으로 비화(飛火)할 경우 아시아 지역은 제3차 세계대전의 진원지(震源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북한이 기회로 이용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동북아 지역 평화를 위해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를 강화해나가야 한다. 한미 확장 억제를 양국 차원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일본과 호주까지 포함시키는 다자적 확장억제 협의체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다자적 협의체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국제협의체)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도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월간조선 05월 호
안보 측면에서 보는 한일관계
한일관계 개선 없이 한미동맹 강화는 환상
⊙ “요코스카 기지의 미군 함정은 100% 일본인 기술자들이 수리… 이들이 없으면 한반도를 지키는 미군 함정은 존재할 수 없다”
⊙ “한·미·일 3국 협력은 세계 평화와 안보, 인도·태평양과 세계 전역의 법치를 촉진하는 데 필수적”(2021년 3월 美 국무부)
⊙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윤석열 대통령의 삼일절 경축사)
⊙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신뢰관계를 지금보다 더 두텁게 만들어야”(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李河遠
1968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졸업 / 《조선일보》 워싱턴·도쿄 특파원, 국제부장, TV조선 정치부장·메인뉴스 앵커 역임. 現 《조선일보》 논설위원 / 저서 《남북한과 미국, 변화하는 3각관계》 《조용한 열정, 반기문》(공저) 《세계를 알려면 워싱턴을 읽어라》 《시진핑과 오바마》 《사무라이와 양키의 퀀텀점프》

▲일본 요코스카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동북아 미 해군력은 여기서 일하는 일본인 기술자, 노동자들에게 크게 의지한다. 사진=미 해군
미·중(美中) 간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는 가운데, 최근 국제정세 변화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필리핀에 미군 기지가 4곳 더 늘어나는 것이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필리핀에 기지 4곳을 추가, 총 9개의 미군 기지를 운영하기로 한 사실이 4월 초 로이터 통신 등의 보도로 알려졌다.
특히 추가되는 미군 기지 중 3곳은 대만과 약 4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필리핀 카가얀주(州)의 랄로 공항, 카밀로 오시아스 해군 기지와 이사벨라주의 멜커 델라 크루즈 캠프에 위치하게 된다. 이에 앞서 올 초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필리핀을 방문, 필리핀 내 미군 기지를 확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작년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전임자인 두테르테 대통령의 친중(親中) 정책을 폐기했다. 취임 직후인 작년 9월 미국을 방문,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회담하며 양국 간 ‘관계 정상화’를 선언했다.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왜 필리핀이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미군 기지를 두 배 가까이 늘리기로 했느냐다. 한마디로 중국이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주석 3연임(連任) 전후로 1인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은 미국이 일본 열도-대만-필리핀을 잇는 방어선을 더 촘촘하게 구축하게 함으로써 중국의 해양굴기(海洋崛起)에 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각해지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필리핀의 선택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고도화되는 北의 핵 무력
최근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은 어떤가. 중국의 위협이 잠재적이라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북한의 연속 도발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수의 안보전문가가 “한반도 안보 환경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이라고 평가하는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만 살펴보자. 북한은 3월 22일 모의 핵(核)탄두를 탑재한 전략순항미사일을 지상으로부터 600m 상공에서 폭발시키는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틀 후인 3월 24일 수중공격정(수중 핵 드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모의 핵탄두가 탑재된 수중공격정 ‘해일’이 목표를 정확히 명중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50여 차례의 각종 최종 단계 실험을 거쳤다고도 했다.
북한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한국군이 발사 원점을 파악해 선제(先制)타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형 3축 체계(킬 체인)는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은 3월 28일엔 KN-24, KN-25 등 8종의 공중·해상 미사일에 탑재할 전술핵탄두를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화산-31’이라는 명칭의 규격화된 전술핵탄두는 직경 약 50cm 미만인데, 마치 총알을 갈아 끼우듯 8종의 미사일에 탑재해 위협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바이든, 한일 간 ‘이혼 카운슬러’ 자처
여러 설명할 필요 없이 중국의 잠재적 위협과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의 안전보장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한미(韓美)동맹과 이를 기반으로 한 한·미·일(韓美日) 3각 협력은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는 필수적이라는 삼단논법이 성립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안보의 주축인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미국이 한일 간 긴밀한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두 달 만인 같은 해 3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한국, 일본을 잇달아 방문할 때였다. 미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의 일본 방문을 설명하면서 한·미·일 3국 협력을 “세계 평화와 안보, 인도·태평양과 세계 전역의 법치를 촉진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했다. 아예 ‘미국·일본·한국의 협력 강화’를 별도 항목으로 만들어 공개했다. 이 문서는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과 우리 동맹들의 관계, 그리고 그 동맹 간의 관계(한일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관계도 일본과 한국의 관계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일 3국 협력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일화가 있다. 바이든은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자 매우 기뻐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2016년 미국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요청으로 박근혜(朴槿惠) 당시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나는 (위안부) 합의를 만드는 협상을 하진 않았지만 두 사람과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고 그들이 나를 신뢰했기 때문에 중재자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부부관계를 복원시키는 ‘이혼 카운슬러’ 같았다”고 했다. 그는 2017년 문재인(文在寅) 당시 대통령에 의해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되자 크게 실망감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일 차관협의회에서 연설했던 바이든
바이든이 2016년 7월 하와이 방문 당시 한·미·일 3국 차관협의회에 참석한 것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주 거론된다. 바이든은 당시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으로 환태평양 군사훈련(RIMPAC) 참관 후 호주로 향하게 돼 있었다. 그는 하와이 출장 직전 이곳에서 제4차 한·미·일 3국 차관협의회가 열리는 것을 알게 됐다. 즉각 회의를 주재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부 부장관에게 연락해 “3국 협의회에 참석해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이 회의에 나타난 바이든은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한국·일본 3국은 기본적인 가치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이 가치를 계속 지켜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미 부통령이 한·미·일 3국 회의에 참석해 연설한 것은 전례 없었다.
당시 차관협의회를 주도한 이가 현 블링컨 국무장관이다. 그가 2015년 국무부 부장관 당시 가장 먼저 구상한 것이 2000년대 초반 활발했던 한·미·일 3국 대북정책조정그룹(TCOG)의 부활이었다. 그는 위안부 문제로 다투던 한국·일본을 화해시키고 중·북 문제에 협력·대응하기 위해 차관협의회를 신설했다.
2015년 제1차 워싱턴 회의에 외교부 1차관으로 참석했던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존 케리 장관은 중동 문제를 맡고, 블링컨은 아시아를 담당하기로 역할 분담을 한 후 차관협의회가 만들어졌는데 블링컨이 매우 적극적이었다.”
3국 정책 조율에 효율적이었던 이 협의회는 트럼프·문재인 정권이 발족한 2017년 7차 서울 회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문재인 정권은 중국·북한이 문제 삼는다는 이유로 적폐시했다. 이후 한·미·일 3국 협의는 문재인 정부에서 금기어(禁忌語)에 속했다. 문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하는 일본을 빌미 삼아 3국 협의를 기피했다.
한국을 지키는 주일 유엔사 후방 기지
문재인 정권이 무시했던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주일 유엔사 후방 기지다. 1951년 2차 세계대전을 법적으로 종결지은 샌프란시스코 협정 이후, 미국 주도의 유엔사령부는 일본 내 7개 미군 기지를 한반도 방어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 본토에 요코다 공군 기지, 요코스카·사세보 해군 기지, 자마 육군 기지 등 4곳이, 오키나와에 가데나 공군 기지와 화이트비치 해군 기지, 후텐마 해병대 기지 등 3곳이 있다.
이들 유엔사 후방 기지는 약 70년간 가공할 만한 전력(戰力)을 유지하며 전쟁억지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코스카 기지엔 웬만한 국가의 국방력과 맞먹는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상주한다. 이 기지에 비축 중인 디젤유가 1억 갤런, 폭약이 500만 파운드다.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보다 많은 규모의 미군과 유엔국가 병력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증원된다. 오키나와의 미 공군 기지에는 언제든 북한을 향해 출격할 수 있는 미군 폭격기가 대기 중이다.
필자는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18년 일본 본토의 요코스카, 요코다 기지와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 등 유엔 후방사 기지를 취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요코스카 기지의 드라이 독(Dry Dock·큰 배를 만들거나 수리할 때에 배가 드나들 수 있게 땅을 파서 만든 구조물)이었다. 당시 약 30m 깊이의 드라이 독 속엔 충돌 사고가 난 후 이곳으로 옮겨져 수리 중인 미군 이지스 구축함이 있었다. 헬멧을 쓴 30여 명의 기술자가 수리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들이 미국인 같지 않았다. 그때 요코스카 기지를 안내해주던 한국계 미군 대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했다.
“이곳의 미군 함정은 100% 일본인 기술자들이 수리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술자들의 지원이 없으면 한반도를 지키는 미군 함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머리를 둔기로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코스카 기지에 근무 중인 1만 명의 일본인 기술자와 근로자들은 모두 일본 정부로부터 임금을 받고 있다. 일본인 기술자, 근로자들에 의해 정비, 수리받은 미군 함정들이 한국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한국인의 몇 %가 알고 있을까.
도쿄 서쪽에 위치한 요코다 미군 기지는 활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이 활주로 위에 C-130 수송기 10여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유사시 언제든 한반도로 출격 가능한 편대였다. 미군은 2018년부터 이곳에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오스프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오스프리는 한반도 비상사태 발생 시 특수부대를 태우고 가서 내려놓는 역할을 하는 항공기다. 미국과 일본은 요코다 기지 인근 일본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스프리 배치를 결정했다.
윤 대통령의 ‘미래를 위한 한일관계 결단’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일본을 방문,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사진=대통령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흔들렸던 한·미·일 3각 협력은 지난해 5월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전기를 맞았다. 윤 대통령은 끊임없이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일본 측 인사들의 면담 요청을 모두 수용해 만났다. 문재인 정부가 방치한 징용 문제에 대해서도 수습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104주년 삼일절 기념식 기념사에서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共有)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
매번 삼일절이 되면 한국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비판이 관례였는데, 일본에 대한 비판 한마디 없이 ‘협력 파트너’라고 칭한 것이다. 그는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北核)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어 3월 7일 국무회의에서 ‘제3자 변제(辨濟)’를 핵심으로 한 일제(日帝) 강제동원 배상 해법에 대해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입장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미래 발전에 부합하는 방안을 모색해온 결과”라며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은 한일 양국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전체의 자유, 평화, 번영을 지켜줄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한 이유로 경제·안보 위기를 거론하고, 미래지향적 양국 협력이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3월 16~17일 일본 방문에서 치밀하지 못한 회담 준비와 미숙한 대응으로 오점을 남겼다. 이리저리 얽혀 있는 매듭을 하나씩 풀기보다 단칼에 끊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점도 있다. 그러나 그 결단의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서는 전례 없는 복합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번영의 측면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大法 판결,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동안 한일관계를 가로막았던 징용 문제와 관련해 크게 볼 때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삼권(三權) 분립 정신에 비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반일 시민단체들도 제3자 변제 결정이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위배되니 대통령이 이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의 역할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는 대통령과 관련한 규정이다. 이 중 제66조 1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元首)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돼 있다. 66조 4항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에 앞서 국가의 원수로 국가를 대표한다고 돼 있다.
만약 헌법에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의 역할만 하도록 규정돼 있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대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서 한일관계가 악화되든 말든 신경 쓸 바 아니다. 하지만 헌법에 의해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기에 대법원의 판결이 있다 해도 국익(國益)에 저해되면 외교적 갈등을 피하며 국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책임 또한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 방식은 원고들에게 물적(物的) 위로를 조기(早期)에 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100점짜리는 아니지만 나쁜 차선책 또한 아니다.
한국, 징용 피해자에게 이미 배상
대한민국 정부가 징용 피해자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하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1974년 특별법을 제정, 8만3519건에 대해 청구권 자금 3억 달러의 9.7%에 해당하는 92억원을 배상했다. 이어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는 2007년 당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도 참가한 위원회의 결정으로 7만8000여 명에 대해 약 6500억원을 다시 배상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배상금을 변제하기로 한 것은 보수·진보 정부 가릴 것 없이 계속 징용 피해자를 도우려고 한 이런 흐름 속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와 관련해 여러 미숙한 점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의 근간(根幹)과 같은 1965년 체제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2018년 대법원 배상 판결, 2019년 일본의 반도체 부품 등 수출규제 이후 관계 악화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1965년 체제는 위기에 처했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 투자한 일본 기업, 일본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적잖게 불안해했으나, 이젠 양국 간 과거사 갈등으로 인한 걱정거리가 줄어들었다.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또한 다시 살아났다.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된 후, 양국의 여행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오갈 수 있게 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갓끈 전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사진은 1998년 10월 7일 천황 초청 만찬에서 아키히토 천황과 건배하는 김대중 대통령. 사진=조선DB
윤석열 정부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의 발판이 되는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북한의 소위 ‘갓끈 전술’은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갓끈 전술은 대한민국이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갓끈에 의해 유지되기에 이 중 하나만 잘라내도 머리에서 갓이 땅으로 떨어지듯이 한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일 청구권 협정 이후 한·미·일 3각 협력이 시작되자 1965년 이 체제를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해 ‘갓끈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갓끈 전술은 북한의 대남(對南) 핵심 전략인데, 지난해 10월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판할 때 언급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그는 이 대표가 한·미·일 3국 군사 훈련에 대해 ‘극단적 친일 행위’라고 발언하자 “이재명 대표의 ‘친일 몰이’는 북한 김일성의 ‘갓끈 전술’”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주장은 반일(反日) 프레임으로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야 한다던 김일성의 ‘갓끈 전술’을 그대로 따르는 것 같다. 이 대표의 주장이 어쩌면 이렇게도 북한 노동당의 주장과 완벽히 부합하나”라고 지적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가 2020년 펴낸 《조선반도와 일본의 미래》는 지난 문재인 정권이 일관된 반일 정책으로 북한의 갓끈 전술에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잘 보여준다.(이 책은 당시 일본 미디어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포스트 아베’ 1순위로 떠오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방위상이 자신의 독서 목록 중의 하나로 꼽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강 교수는 재일동포 2세 정치학자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사망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초청받아 강연할 정도로 진보 성향이다. 이런 강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친북반일(親北反日) 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문 대통령과 그 정권에 결여돼 있는 것은 남북 접근과 화해 진전을 도모할 때 일·한(日韓) 간의 의사소통을 깊게 하는 것, 양자(남북관계와 한일관계)를 평행하게 진행해가는 복안(複眼)적인 외교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신뢰관계를 지금보다 더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재인 정권, 日韓 갈등에 정치적 자원 낭비”
그는 2020년 당시 한일관계를 ‘복합골절’ 상황이라고 규정, 문 전 대통령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교해가며 비판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남북화해를 진전시키기 위해 한국의 모든 과거 정권은 특히 일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다대한 외교적 리소스와 에너지를 할애해왔다”며 “김대중의 햇볕 정책은 남북통일의 프로세스가 주변 나라, 특히 일본에 바람직한 영향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지침을 명확히 했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은 김대중 정권에 비해서 일본과 강한 관계 구축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불신감과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일·한 갈등에 정치적 자원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이 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지일(知日)’”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을 읽어보면 일본에 특정한 평가를 동반하는 언급은 거의 없다”며 “문 대통령에게 있어서 일본에 관한 평가는 사실상 ‘백지(白紙) 상태’”라고도 했다.⊙
월간조선 05월 호
중국이 보는 미·중 갈등과 한미동맹
“‘한미동맹 공고해야 중국이 존중한다’고 오판 마라”《환구시보》
⊙ 시진핑, 3연임 넘어 4연임 노리면서 2027년 이전 대만 침공 가능성 높아져
⊙ “대만을 이용해 중국 제어하려 도모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가 지른 불에 타 죽을 것”(주미중국대사관)
⊙ 중국, 미국과의 경쟁을 자본주의·사회주의 간 체제 경쟁으로 인식
⊙ 왕지쓰·옌쉐퉁 등, “미·중 갈등은 국력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두려워하고 질투하는 데서 비롯”
朱宰佑
1967년생. 美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석·박사 / 국가안보정책연구소(現 국제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무역협회 무역연구소(現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現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한중사회과학회 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 / 저서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 한국전쟁에서 사드 갈등까지》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 전략》 《북미관계: 그 숙명의 역사》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방미와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의 만남 이후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매카시 트위터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전면적으로 확산되면서 갈등의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주지하듯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관세 경쟁에서 비롯된 미·중(美中) 갈등은 무역전쟁으로 확산되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이후 중국에 대한 강경책을 이어나가면서 미·중 갈등과 경쟁은 계속 심화되고 있다.
두 대통령은 확연하게 다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의존하면서 대중(對中) 압박책을 구사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와의 공조를 통해 입법화된 법안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공식화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와 미 의회가 법안으로 중국과의 경쟁에 맞서겠다는 것은 이를 미국의 국가 정책으로 공식화한다는 의미다. 미 백악관이 작년 10월 12일에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도 드러나듯 미국은 앞으로 10년을 ‘결정적인 10년(a decisive decade)’으로 보고 있다.
4연임 향해 가는 시진핑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미국의 보고서가 출간된 직후에 가진 제20차 중국공산당대표대회(당대회)에서 발표한 〈공작보고〉에서 향후 5년을 ‘관건적인 시기’로 명명했다. 이는 6년 전 개최된 제19차 당대회에서 이미 2035년까지를 ‘관건적인 시기’로 정의한 것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4연임(連任)을 예견한 포석(布石)이라 할 수 있다. 미·중 양국은 앞으로 10년, 즉 최소한 2033년까지를 양국의 명운을 결정할 숙명적인 대결의 시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중국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의 4연임 가능성은 이미 점쳐졌다. 중국공산당에서 단행한 인사 결과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지방에서 고위 직책을 경험한 이들이 시진핑의 후계자로 고려되려면 중앙정치 무대에서 대략 10여 년의 ‘수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 예전의 사례에 비춰보면 후계자로 점지된 이는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의 제1서기, 중국공산당중앙당교 교장,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제1부주석으로 동시에 임명되었다. 지난 당대회에서 각기 다른 이들로 이들 자리에 임명한 사실은 시진핑의 4연임을 중국공산당이 이미 확정했다고 봐도 무난한 대목이다.
그러자 세간에서는 그가 4연임할 수 있는 정당성에 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는 중국의 대만 통일 시도를 해답으로 꼽았다. 비록 중국이 ‘리오프닝(reopening)’을 하면서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으나 코로나19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세계경제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대중(對中) 경제 견제와 압박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고 있는 사실도 한몫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전략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만큼 초조하고 불안하다는 방증(傍證)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4연임하기 위해서는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정치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성과는 대만 통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의 4연임이 확정될 2027년의 당대회까지 이를 이룩하기 위한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데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
中, 일주일 내 대만 정복 가능
이런 전망을 제일 먼저 제기한 측은 당연히 미국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합참의장,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등도 이 같은 전망에 가세했다. 더욱이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建軍) 100주년인 해이기도 하다. 중국 경제가 호전되지 못하면 시진핑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즉 대만 통일이라는 과업을 달성해 4연임의 정당성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풀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대만의 방어 능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미 의회는 2021년부터 이와 관련된 법안을 10여 개 상정했다. 이 법안들의 내용은 작년 12월에 통과된 ‘국가수권법’에 모두 반영되었다.
이와 행보를 같이한 것이 한·미·일 3국의 군사관계 강화다. 비경제 영역에서 3국의 공조(共助)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시급한 조치였다. 대만 방어는 미국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하와이의 인도·태평양 함대가 도달하기 전까지 중국군의 침공에 대한 조기 대응을 하려면 이들 동맹과의 공조가 필수불가결하다. 중국군의 규모와 무기체계가 이론적으로 대만을 일주일 이내에 정복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게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의 대만통일 전략 구상이 이처럼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이 현실화되면서 차질을 보일 가능성이 높게 되었다. 중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인태 전략)과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개국 안보협의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 정보기관 협의체), 한·미·일 군사관계 강화 등에 최근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전략 구상에 매우 과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중 전략, 특히 바이든 정부 이후에 추진된 압박·견제 전략과 한·미·일 군사관계가 강화되는 것까지 포함된다. 또한 대만 방어 및 방위 능력을 빌미로 미국의 군사·외교·정치적 지원이 강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까지 이에 찬조하는 양상을 보이자 중국은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경쟁을 체제경쟁으로 정의한다. 중국은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초를 닦고,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의 강국으로 우뚝 서려는 국정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체제로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입증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현재 모든 경쟁을 체제경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관념과 세계관을 가지고 행동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회주의의 힘으로 정당화되고 합리화된다. 2021년 9월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하면서 관련 인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에서 시진핑은 이는 사회주의 방역(防疫)체계의 승리이며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위대함이라 과시했다.
이런 관점에서 시진핑의 중국의 대외관, 대외(對外) 정책의 기조 또한 체제경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프레임은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드러났다. 2021년 3월 앵커리지에서 열린 첫 번째 미·중 고위급 전략대화 당시 외교 담당 국무위원 양제츠(楊潔篪), 외교부장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차관) 러위청(樂玉成)·셰펑(謝鋒) 등과 같은 이들은 연이어 미국의 대중 전략을 비판했다. 차관급까지 동원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미·중 갈등의 근원은 미국이 중국을 ‘가상적(假想敵)’으로 설정한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다고 비판했다.
시진핑, “설교 절대 듣지 않겠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외부 세력이 괴롭히면 14억 명의 강철 만리장성에 부딪혀 피가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신화/뉴시스
중국 내 전문가들도 이에 합세했다. 왕지쓰(王緝思) 베이징대 국가전략학원장과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교수 등은 이 같은 상황을 미국과 중국의 국력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미국이 두려워하고 질투한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이들 전문가와 중국 정부는 미국이 대중 경쟁관계를 ‘협력, 갈등, 경쟁’ 등 세 개로 나눠 접근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갈등과 경쟁의 해결은 협력이 전제되기에 건강한 협력관계의 발전이 전제된다고 반박했다. 또한 중국의 인권 문제는 내정 문제임으로 협력의 의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상호 존중의 원칙에 따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는 것을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이들은 미국의 가치와 여론의 보편성을 부정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대만 문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중국의 비판 여론은 거세졌다. 중국은 대만 문제에 미국이 관여할 경우 “머리를 깨부순다” “불에 타 죽는다” 등의 강한 경고를 내보냈다. 급기야 미국이 중국과의 고위급회담에서 내보인 태도와 요구사항에 대해 불만을 공개적으로 토로했다.
2021년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연설에서 시진핑은 “중국은 앞으로 그 어느 누구라도 ‘선생’처럼 기고만장한 설교를 하는 것을 절대 듣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외부(미국)의 압박과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가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그들의 확신과 신념을 피력한 대목이다.
“대만 문제는 첫 번째 한계선”
중국은 4월 6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의 회담 직후 이례적으로 5개 부처를 일제히 동원해 이를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 국방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만사무판공실,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외교위원회와 심지어 주미중국대사관 대변인들까지 나섰다.
외교부는 대만 문제를 미국이 넘을 수 없는 ‘첫 번째 한계선’으로 규정하고, 넘을 시 단호하고 강력한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방부는 미국의 행동을 ‘난폭한 간섭’으로 정의하고 인민해방군의 대만해협 수호 결의를 다시 한 번 밝혔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만사무판공실 또한 ‘대만 독립’ 분리주의 세력과 그 행위를 단호히 처벌할 것이라며 “독립을 추구하는 그 어떤 행위도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외교위원회도 한계선을 넘는 미국의 위험한 행동의 중단을 촉구했다. 주미중국대사관은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제어하려 도모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가 지른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中, 과거 미일·한미동맹 긍정하기도
이상과 같은 중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한·미·일 군사관계 강화를 위한 3국의 협력에 대한 중국의 반대는 일찍이 예고되었다. 중국은 이미 문재인(文在寅) 정부 때 ‘합의’했다는 이른바 사드 ‘3불(不)’에서 한·미·일 군사관계의 강화를 반대하는 조항을 삽입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런 중국의 두려움은 지금까지 중국이 체결한 3개의 동맹조약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 조약은 공교롭게 모두 러시아제국, 소련과 맺은 것이다. 1896년, 1945년, 1950년에 체결한 동맹조약의 제1조는 동맹의 대상을 일본으로 명시한다. 그리고 1972~1974년 열린 일련의 미중회담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 겸 외교부장이 미일동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실도 이런 중국의 두려움을 방증한다. 그는 회담 자리에서 헨리 키신저 전 안보보좌관에게 미국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야욕을 억누르는 덮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저우언라이의 평가도 이와 맥을 같이했다. 북한과 입장을 늘 같이해왔던 중국의 당시 입장으로서는 미중관계 정상화의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의 폐기를 미·대만동맹과 같은 반열에 올렸다. 이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1972년 저우언라이에게 미국이 수용할 수는 있으나 그 후과(後果)를 생각하라는 ‘신(神)의 한 수’를 던졌다. 그 권력공백을 누가 메울지를 말이다. 이에 저우언라이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이후 한미동맹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들어 한·미·일 3국이 중국과 북한 위협 억지를 위해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해왔다. 특히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은 한국과 미국이 자국의 안보이익을 위해 남의 것을 훼손한다고 비난해왔다.
우리의 인태(인도·태평양) 전략 참여에 대한 중국의 비판도 일찍이 시작됐다. 2021년 5월 22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인태 전략 가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공식화되자 중국은 서슴없이 비난했다.
그해 6월 9일 한·중 외교장관 통화에서 왕이 당시 중국 외교부장은 “인태 전략이 냉전적 사고가 충만하기에 집단적 대결 구도를 추동한다”면서 “지역 평화의 안정적 발전에 추호도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고,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며 정치적 공감대를 지키고 잘못된 (미국의) 장단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훈계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에 일치된 정치적 인식을 가졌는데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에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 기조에 대해서는 작년 3월 9일 대선을 전후한 무렵부터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경고를 날리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은 3월 9일 자 사설을 통해 “청와대의 주인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사드 ‘3불’이었다. 이를 수호하며 중국과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한국이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전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역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한국의 안보를 담보한다는 뜻을 전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덧붙여 중국은 ‘미국이 우리를 압박하고 회유하는 작금의 행태’를 동북아의 지정학적(地政學的) 대립 구조에서 우리를 전진기지로 이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당시 윤석열 당선자에게 경고했다. 미국의 행태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설은 한국이 한중관계와 한미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교량(교두보)이 되어야지 누구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엄중 경고하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에 명확한 답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태 지역은 북대서양 아니다”

▲작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자 중국 외교부는 이를 비난했다. 사진=나토
3월 10일 자 《환구시보》는 사설 “한중관계는 ‘존중’이 필요하나 ‘상호’를 더욱더 잊어서는 안 된다”를 통해 윤석열 당선인에게 직접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윤석열 당선자가 유세 당시 대중국 정책 기조로 ‘상호 존중하는 한중관계’를 선전한 데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표출한 것이다. 사설은 “한국 내 일각의 ‘중국이 한국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편집적인 주장이 문제”라면서 이들이 주장하는 ‘상호 존중’이 한국을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중국의 책임과 의무로 전가된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사설은 한미관계가 공고해야만 중국이 한국을 존중한다는 이들의 주장이 잘못된 발상에서 착안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설은 “한국의 진정한 안보가 한중 공동의 것으로 승화하고, 종합적이고 협력적인 지속가능한 면모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은 사드를 앞으로 ‘내정’이나 ‘주권’ 문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엄중 경고한 셈이다. 또한 사드 문제의 본질이 동북아에 미국이 쐐기를 박으려는 것에 있다며 현혹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중관계를 한미관계의 부속품으로 치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더 나아가 한국인들이 “한미동맹이 공고해야 중국이 한국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한중관계를 오독(誤讀), 오판(誤判)하지 말게 하라고 요구했다.
작년 6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아태 지역은 북대서양의 지리적 범주가 아니다”라며 “아태 지역 국가와 국민이 군사집단을 끌어들여 분열과 대항을 선동하는 어떤 언행에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이 우리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하는 행위로 간주한 대목이다. 중국이 이제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내로남불
중국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참 많다. 중국은 지난 6년, 특히 문재인 정부 때 우리에게 참 많은 ‘훈계’를 일삼았다. 그러나 이런 훈계에는 상당히 많은 어폐가 존재했다. 중국은 한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면서 대등하고 평등한 건설적 관계를 위한 협력과 소통을 강조해왔다. 한국의 안보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중관계의 건강한 발전에도 있다면서 균형을 잡으라는 이상적인 주문도 해댔다. 한미동맹만으로 중국의 존중을 살 수 없다는 부연 설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지하듯 우리의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보복 조치를 자행한 것은 결국 우리의 의사 결정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우리 고유의 정체성(正體性), 우리 주권의 범주의 것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도 주권 원칙은 물론, 중국이 주장하는 문화와 인류의 다양성 존중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영토 주권의 상호 존중을 강조하면서도 우리의 영해와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군사적 도발 행위를 일삼고 있다. 임시적인 서해 해상 경계선이라 할 수 있는 ‘중간선’을 중국 해군은 거의 매일 넘나 든다.
중국이 언행 불일치를 일삼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국제법과 국제규범에 대한 인식 차이다. 중국은 국제법에 근거한 국제질서의 유지를 원한다. 여기서 국제규범은 중국에 무의미하다. 중국은 ‘중간선’과 방공식별구역이 국제법적 효력이 없고 단지 규범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어기는 것은 위법행위가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은 국제사회의 공감대이자 공인된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규범)’이라고 주장한다. 규범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가 할 소리는 아니다.
中의 예속 시도 경계해야
상기한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관련해 발표된 중국의 두 사설의 핵심 논조를 보면 중국은 우리의 대중외교 행보에 민감하다. 민감하다 못해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 중국의 불안감은 이런 이례적인 훈계와 경고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결과로 중국의 역설은 모순으로 가득 차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중국의 모순된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합당하고 합리적인 전략 대응을 마련하는 기초로 활용해야 한다.
우선 중국이 우리의 주권, 정체성, 안보 이익을 무시하는 언행에 대해서는 우리를 예속하려는 시도로 경계해야 한다.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어도 한중관계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정치처럼 외교도 생물이다. 대외정세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대외 전략도 상응하게 변화해야 한다. 한중관계도 변했다. 중국은 실제로 우리의 정체성, 가치와 영토 주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浮上)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리 국민 70%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중국이 우리의 영해와 영공, 하늘 주권을 무시하면 우리에게는 세력 균형만이 우리의 영토 주권과 평화를 지켜내는 가장 평화적인 수단이다. 중국이 우리에 대한 군사적 도발과 외교적 공세로 우리 주변 지역의 세력 균형을 깨뜨리려 한다면 우리로서도 이를 저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중국이 비대칭적인 세력 구도를 조장해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가 강력해질 때 우리도 한미동맹의 세력을 확대해야 하는, 불가피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해야 한다. 즉 진정한 상호 존중의 의미를 중국에 설파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쿼드 주도해야
마지막으로 따라서 인태 전략과 쿼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인태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가장 가치 있는 요충지(要衝地)는 한반도다. 이런 지리적 위치와 여기서 파생되는 지정학적 전략 가치를 우리는 한미동맹은 물론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레버리지로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군사안보 전략에서부터 재편되는 경제안보 전략과 글로벌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를 한미동맹이 주도하는 구조로 바꾸는 노력도 해야 한다. 이걸로 우리의 참여를 중국이 이해할 수 있는 명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에도 한미동맹 주도형의 인태 전략과 쿼드가 미일동맹이 주도하는 것보다 덜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우리와 한미동맹이 인태 전략과 쿼드를 주도하면 한미관계의 신뢰와 믿음도 증강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이 전략 구상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의 전략질서에 유의미한 한 축이 되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조선 05월 호
정치·경제·안보 多者협력
G7·쿼드 가입 추진… 한미동맹 보완해야
⊙ 5월 G7 정상회담, ‘경제 나토’ 논의 예정
⊙ 일본, 영국·호주와 상호접근협정 체결… 대만·인도 등과 전략적 소통
⊙ 호주, B-52 전략폭격기 배치… 한국 안보에도 도움
⊙ 지난 80여 년간 한국의 발전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가능
홍태화
1998년생. 미국 스탠퍼드대학 국제관계학부 졸업.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국제정치학 석사 과정 중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정상회담 기간 중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났다. 사진=AP/뉴시스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은 1991년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아시아의 안보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양자동맹(hubs and spokes)’으로 지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토(NATO)라는 집단방위체제를 갖춘 유럽과 달리, 미국과 지역 내 각국의 개별적인 동맹을 통해 안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은 지역 안보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일본이 특히 눈에 띈다. 미국에만 크게 의존하던 행태에서 벗어나 다른 미 동맹들과의 협력을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호주와 상호접근협정(RAA·Reciprocal Access Agreement.‘원활화협정’이라고도 함)을 체결하여 서로 군대와 군수물자 등을 원활하게 파견·수송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100년 전 영일(英日)동맹의 부활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 또 대만과는 집권당 간 교류를 통해 행정부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전략적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3자 협력 플랫폼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호주·일본·인도, 미국·대만·일본 3자의 협력, 협의가 가시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일본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일대 방위를 위한 전진 기지를 구축하면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호주, 대만 등과 긴밀히 조율 중이다.
호주, B–52 배치
지난 2021년 미국, 영국과의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협정 이후 호주의 움직임도 돋보인다. 작년 10월에는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를 호주 최북단에 배치하기로 했다. 전략폭격기 배치 그 자체는 게임체인저가 아니다. 호주는 이미 2006년부터 미국 전략폭격기들을 수용해왔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에 따른 기지 인프라 건설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애슐리 타운센드는 이제 호주 북부에 미국 전략사령부 폭격기 태스크포스(Bomber Task Force)의 거점 기지가 생긴 것과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호주가 스스로를 하와이, 괌, 디에고 가르시아에 이은 미국의 네 번째 전진기지로 자처한 셈이다.
얼핏 보면 미국·호주 양자관계 이슈 같지만, 미국은 아시아 지역 유사시 가용 미국 전폭기들을 호주에도 분산시켜 생존력을 키움으로 억제력을 강화했다. 타운센드는 이 결정으로 대만뿐 아니라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도 득을 볼 것이라 예상했다. 호주는 자국의 안보가 인도·태평양의 안보와 미국에 유리한 힘의 균형에 결부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지역 방위태세에 기여하기 위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물론, 중국 인근이 아닌 오세아니아라는 위치이기에 가능한 도박이었을지도 모른다. 호주에 있는 미국 기지이지만 지역 통합방위 차원에서 다른 파트너들과도 활발한 협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흔들리는 미국의 안보 정책
이들이 미국과의 양자동맹을 두고도 다른 유사 입장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전략적 공간을 창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다양한 외교 옵션을 확보해 미국의 잠재적 태도 변화에 따른 충격을 관리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 내 자국 우선주의 성향은 민주당·공화당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실질적인’ 능력 저하보다 정치적 의지가 더 문제다. 소위 미국의 흔들리는 역량에 대한 인식은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 내에서 가장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대결을 강조하며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고 중동에 있던 사드·패트리엇 대공미사일을 철수시켰다.
하지만 인도·태평양, 특히 대만 방위태세에서 공언했던 반사이익은 보이지 않는다. 상당수의 공화당 의원들은 작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경제’와 ‘중국’을 거론하며 백악관의 대(對)우크라이나 지원 축소를 요구했다. 공화당의 대권 잠룡(潛龍)으로 분류되는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최근 “우크라이나 지원이 중요한 미국 국익은 아니다”라고 발언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소위 ‘중산층을 위한 외교’는 미국이 국제리더십 고수와 자국우선주의 사이에서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미국의 세계 대전략은 불안한 격동기를 거치고 있다. 중국·러시아와의 강대국 경쟁, 자유민주주의 확산, 에너지 확보, 국내 경제 안정, 환경보호 등 충돌하는 목표들 속에서 명확한 우선순위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 학계에서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헤게모니보다 사회 정의와 환경주의를 통한 ‘구조적 불평등 해소’를 추구해야 한다는 소위 ‘진보적 대전략(Progressive Grand Strategy)’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다자안보협의는 미국의 잠재적 입장 변화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다.
둘째, 미국 내 해외 개입주의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우리(미국)가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그들(동맹들)이 우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닌, 그들 또한 건설적인 이니셔티브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변론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속칭 ‘블롭(the Blob)’이라 불리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 엘리트는 트럼프의 고립주의 쇼크를 겪으며 변모해가고 있다. 동맹의 무임(無賃)승차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방위비 인상 요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019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나토가 ‘뇌사(腦死) 상태’에 빠졌다며 비판했을 때, 트럼프 행정부 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유럽 국가들이 서로 간의 조율도 없이 각기 안보는 미국에, 에너지는 러시아에 의존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동맹이 잘 작동할 리 없다는 것이다.
반면 중동의 미국 동맹들은 미국의 철수를 두려워해 선제적으로 상호 협력을 개시했다. 지난 2020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맺어진 아브라함 협정은 이들의 대미 합동 외교의 주춧돌이 되었다. 영국과 일본은 함께 ‘인도·태평양 안보와 유럽 안보의 불가분성’이라는 개념을 꾸준히 역설하며 상호 지원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변화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역내, 역외 유사 입장국들과의 연대는 미국 외교의 향방에 부분적으로나마 영향을 주는 소중한 지렛대로 작동할 수 있다.
미국의 짐 분담
셋째, 여러 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개입하는 미국의 짐을 분담할 수 있다.
핼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중국, 러시아, 이란이 상호 조율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지역 불안정을 초래하는 상황을 경고했다. 저명한 대외 정책 전문가 월터 러셀 미드는 우크라이나에서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이란의 방공(防空) 시스템 구축을 도와 다급해진 이스라엘의 조기 폭격을 유도하는 섬뜩한 시나리오를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자원을 다른 곳에 묶어두려는 시도다.
이때, 미국의 시선이 분산되면 가장 위험해지는 것은 각 지역에 있는 미국의 동맹들이다. 싱크탱크 ‘폴리시 익스체인지(Policy Exchange)’는 2020년에 발간한 〈영국의 인도·태평양 기울기(Indo-Pacific Tilt)〉 보고서(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가 의장을 맡았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서문을 썼다)에서 “영국이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미국이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부문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영국의) 작은 군사적 기여도 미국의 짐을 분담해줄 수 있다”는, 다소 자존심 상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리고 일본, 인도, 호주, 한국 등과의 협력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기술했다. 또한 1943년 대서양 헌장이 전후 자유 진영 질서를 정립하였듯이 21세기 인도·태평양 헌장을 통해 항행의 자유와 협력적 안보를 추구하자고 주장했다. 인도·태평양에 위치하지도 않은 영국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은, 국제안보의 현황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유사 입장국 간의 협력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한국 포함하는 新쿼드 제안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은 지난 3월 13일 호주를 방문, 리시 수낙 영국 총리(오른쪽), 앤서니 앨버리지 호주 총리와 함께 AUKUS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AP/뉴시스
넷째, 파트너들의 강점과 노하우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장 명확한 장점이다. 호주는 가장 먼저 중국의 영향력 공작을 적발하고 대응한 나라 중 하나다.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대화)는 물론이고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 정보기관 협의체)의 일원이자 AUKUS 멤버이기도 하다. 국제 인권 외교의 핵심 플레이어인 캐나다는 최근 한국, 미국, 일본과의 ‘신(新)쿼드’를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의 신남방 정책과 미국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의 시너지를 모색하며 동남아시아를 주요 협력 분야로 꼽았다. 미·중을 제외한 동남아 인프라의 최대 터줏대감은 일본이다. 이미 수십 년간 원조외교와 무역을 통해 지역 내 경제협력의 기반을 닦아왔다. ‘인도·태평양 전략’ 개념을 주창하고, 유럽보다도 먼저 ‘연결성(connectivity)’ 이슈를 등판시켜 인프라 협력의 양뿐 아니라 질 또한 강조한 것도 일본이다. ‘빚 함정’이라는 비판을 받은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인도·태평양의 한국, 호주, 일본, 필리핀 모두 중국의 무역보복을 경험해봤다. 유럽의 노르웨이, 리투아니아도 마찬가지다. 향후 일종의 집단경제안보체제도 논의해볼 만하다. 대만의 반도체 기술은 익히 알려졌고, 칩(Chip)4 동맹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잠재적 협력 분야는 말 그대로 차고 넘친다.
多者협력 적극 나서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30일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지역회의를 주재했다. 사진=대통령실
다섯째, 중국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국과 동맹들이 주둔 미군의 지위와 방위금 분담 문제로 실랑이하는 시대는 지났다. 파트너들끼리 과거사를 두고 현재를 놓치는 우(愚)도 더 이상 범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때때로 휘청거릴 수 있지만 동맹의 도움으로 역내 존재감을 고정시킬 것이다. 우리는 중국 측의 주장처럼 미 제국주의자들의 압박 때문에 중국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주도의 양자동맹뿐 아니라 그 외 역내, 역외 국가들 간에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지 않나. 불과 3년 전에 미군 철수를 요구했던 필리핀마저도 이제는 대만과 남중국해의 안보에 올인하고 있다. 백인과 아시아인의 대결이 아닌, 충돌하는 세계관 간의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의 대결 및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협력도 필수다. 상호존중과 규범준수에 기반한 생산적인 관계를 희망한다.”
한국도 다자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 한국의 안보는 한반도의 안정만으로 확보할 수 없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신냉전의 종속변수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북한과 이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고, 중국이 북한을 미국에 대항할 장기말로 활용하는 시대다. 대만해협 분쟁이 세계경제를 파탄 내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시기다. 한반도에 국한된 좁은 시야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에만 매달리고 있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모두 각자의 이유로 지나친 미국 의존도를 경계한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 정책으로 외교의 지평을 넓히려 힘썼고, 윤석열 정부는 일본, 유럽과의 공조를 강화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향후 우리가 어떤 폭넓은 외교술을 구사할 것인지, 어느 나라와 어떤 어젠다로 협력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다퉈야 하지 않는가? 특히, 호주와의 안보협력은 대일(對日)외교보다 국내 정치적 비용은 적은 반면 잠재적 이익은 매우 크다. 올해 세계 인구 1위, GDP 세계 5위에 오른 인도의 거대한 전략적 잠재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에서 이러한 전략적인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한국은 ‘서방’의 일원
전략적 파트너 확보는 한미동맹의 대체재(代替財)가 아니라 보완재(補完財)이다. 한국이 다른 유사 입장국들과 협력을 증진시킨다고 한미동맹이 약화되지 않는다. 일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프랑스가 인도·태평양과 유럽에서 추구하는 ‘제3의 길’이나 ‘전략적 자율성’과는 또 다르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은 2020년 뮌헨안보회의에서 ‘서방’을 ‘지리적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 국가주권을 존중하는 모든 국가’라 정의했다. ‘서방’의 일원인 대한민국이 가치를 공유하는 다른 서방 국가와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이러한 전략적 전환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외 전략의 기본은 ‘가용한 자원’과 ‘추구하는 목표’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다. 활동반경이 넓어지면 그만큼 의무와 책임이 늘어난다. 비용과 효용 모두 고스란히 우리 것이다. 2020년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둘러싼 논란은 세계 속 한국의 위치와 책임을 우리 사회 속에서 재고시켰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고조되는 긴장 속에서 우리의 입장은 늘 모호해왔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중국과의 관계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G7 정상회의의 의미
G7 가입 추진, 세계 경제 10위권 진입 등 상징적인 지위 상승에 대한 열망 속에 이들이 실질적으로 수반하는 의미에 대한 논의는 적다. 요컨대, 5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서는 ‘경제 나토’가 논의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이 한 국가에 부당한 제재를 가하면 다른 국가들이 함께 역(逆)제재를 가한다는 발상이다.
G7 국가들의 정상들은 예외 없이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하여 자유 진영의 결속을 다졌다.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놓인 우리로선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이는 곧 외교의 영역이며, 오히려 우리가 적극적인 플레이어로 나서야 게임의 룰을 정하는 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기존의 대한민국의 국가 서사(敍事)는 내부적인 프로세스에 초점이 있었다. 식민 지배와 전쟁 피해 회복,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까지 국민들의 자생적인 노력을 조명해왔다.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자립적인 회복과 발전 서사’와 더불어 ‘자유주의 질서의 수혜자 & 수호자’ 내러티브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80여 년간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원하게 된 것도, 완성한 것도, 유지하고 발전시킨 것도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가능했다. 이런 질서가 위협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유사 입장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우리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월간조선 05월 호
한·미·일 동맹 가로막는 정치 세력들의 실체
‘민주당의 통진당화’… 中·北과 더불어
⊙ 주사파 운동권, DJ의 ‘젊은 피 수혈’ 틈타 제도권 진출… 현 민주당 성향은 그 귀결
⊙ “한미군사훈련 중단”(민노총 위원장), “간첩단 수사는 철 지난 공안 정국 소환”(민주당)
⊙ “용공조작은 없었다. 통혁당 사건 등은 남한변혁운동의 피어린 발자취”(1980년대 운동권 교육)
⊙ 노무현-문재인 정권 거치면서 자기 확신, 대결의식 격화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 現 《미래한국》 편집위원,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 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을 개최했다. 사진=조선DB
4월 5일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당선됐다. 2위는 무소속의 임정엽 후보였다. 그런데 임 후보는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다. 전주을 재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이상직 전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진 선거였다. 때문에 민주당은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러자 민주당 소속이었던 임정엽 후보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었다.
국민의힘 후보는 8% 득표로 후보 6명 중 5위에 그쳤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득표율의 절반 정도였다. 하지만 낙선은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지역’의 재확인이다. 그런데 사실상의 민주당 후보인 임정엽의 낙선과 진보당 후보의 당선은 간단찮은 문제다. 진보당은 2013년 8월 28일 내란음모 사건으로 이석기 등이 체포되고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통진당)의 후신이기 때문이다.
전주을에서 당선된 진보당 강성희 후보는 2014년 전북 완주군 군의원 선거에 바로 그 통진당 후보로 출마했던 인물이었다. 통진당의 이석기 등이 내란음모로 체포되고 그 혐의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이 진행 중이던 때였다. 게다가 강성희는 이석기의 대학 직속 후배이기도 하다.
민노총 후보의 승리
전주을 선거전이 진행될 당시 임정엽 후보는 3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점을 문제 삼아 진보당과 강성희 후보를 공격한 바 있었다. 임 후보는 “많은 시민이 운동권 정당이, 주사파(主思派) 정당이 전주를 점령했다고 불안해한다”며 “타지(他地)에서 몰려든 운동권 1200여 명이 전주 거리와 골목까지 장악했다”고 했다. 아울러 “지금 전주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진보당 당원들로 점령당했다”며 “전주 발전을 이끌 인물을 뽑는 재선거에 왜 전국의 운동권 당원들이 전주를 점령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덧붙여 임 후보는 “전주를 반미(反美)투쟁기지로 만들 수 없다.… 우리 자식들을 반미운동권 자녀로 키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때늦은 우려요 탄식이었다. 위험은 예전부터 이미 현재진행형이었다. 임 후보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가 소속된 민주당의 전통적 세력 스스로가 이런 위험을 자초했다. 민주당의 전통 세력들이 이념적 경각심 없이 지역 기반에만 편승한 정치를 해오는 동안 그 지역의 성향 자체가 통진당 출신을 당선시킬 만큼이 돼버린 것이다.
한편 강성희 후보의 당선은 민노총 후보의 당선이기도 하다. 그는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지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현재는 민노총 산하 서비스산업노조연맹 택배노조 전북지부 사무국장이다. 민노총은 강성희를 민노총 후보로 공식 지지했다.
4월 5일 함께 치러진 울산의 교육감 보궐 선거도 그랬다. 민노총은 전교조 출신의 천창수 후보를 공식 지지했다. 그리고 천 후보가 당선됐다. 그런데 그의 이력은 교사만이 아니었다. 그는 민노총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다. 천창수 교육감은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를 지휘하는 민노총 금속노련 울산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민노총과 그 동조 매체들은 “4·5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민주노총 조합원이자 지지 후보가 전원 당선됐다”고 자축했다. 이러며 “노동자 정치 세력화로 한걸음 더 나아가자”고 했다. ‘어떤 정치’로 ‘어떤 세력화’를 하겠다는 것일까? 반미투쟁을 앞세우고 통진당처럼 하겠다는 것인가? 그런데 실제로 민노총은 반미종북의 행태에 거리낌이 없다.
민노총의 反美 선동

▲2022년 8월 13일 열린 ‘8·15 전국노동자대회 및 자주평화통일대회’에는 ‘한미연합 군사연습 중단’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등의 구호가 등장했다. 사진=뉴시스
2022년 6월 11일 민노총은 시청역 앞을 점령하고선 ‘효순 미선 20주기 반미자주 노동자대회’라는 것을 열었다. “종속적 한미관계 끊어내자” “주한미군 몰아내자”는 등 반미구호가 난무했다. 같은 해 8월 13일에는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한미동맹 해체” 등을 주장했다. 북한 노동당의 통제를 받는 조선직업총동맹(조선직맹)이 보내온 연대사(連帶辭)도 읽었다. 전교조 소속인 오은정 통일위원장이 대독(代讀)했다. “미국과 남조선의 윤석열 보수 집권 세력은… 침략 전쟁 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려 놓고 있으며,… 북침을 겨냥한 대규모 합동 군사 연습을 강행하려 한다.… 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는 내외 반통일 세력의 대결망동을 단호히 짓뭉개버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무분별한 망동과 북침 전쟁의 하수인이 돼 날뛰는 (남한) 보수 집권 세력의 추악한 친미 사대와 북남 대결 책동에 준엄한 철추(철퇴)를 내려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북한의 이 주장 그대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이쯤 되면 ‘종북 앵무새’다. 이런 민노총이 이번 4·5 재보궐 선거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민노총과 관련한 간첩 사건도 있었다. 지난 1월 18일 국정원과 경찰은 서울의 민노총 본부와 보건의료노조본부 그리고 광주의 기아자동차 노조 등 10여 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혐의는 민노총 전·현직 간부 등 4명이 2017년 캄보디아 프놈펜,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것이었다.
간첩 수사 방치한 문재인 정권
‘민노총 관련 간첩 사건’은 최근 연이어 적발된 청주·창원·제주 등의 간첩단 사건과는 또 다른 별개의 사건이었다. 이 외에도 간첩단은 계속 적발되고 있다. 어지러울 정도의 간첩단 창궐이다. 북한은 이제 남파간첩을 직파할 필요도 없다. 기회만 닿으면 직접적으로 포섭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발적인 종북 세력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종북좌경화 경향이 심화되고 나라 전역 온갖 영역에 만연해간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은 연이은 간첩단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삼갔다. 하지만 공식 논평은 없었지만 일부 의원과 문재인 정권 인사들은 간첩단 수사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저항”이라고 했다. “철 지난 공안 정국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고도 했다. 적반하장이다.
2011~17년 간첩 적발 건수는 26건으로 연간 4건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당시에는 전 기간 동안 청주 간첩단 3명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박근혜 정부 시절 인지해 수사 중이던 사건이었다. ‘방치’라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문재인 정권은 이른바 국정원 개혁을 내세우며 2020년 12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의도가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들은 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답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 스스로 이미 다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권 시절 보여준 행태 자체가 통진당 못지않았다. 이런 가운데 나라 전역의 온갖 영역에서 위태로운 일들이 빈발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반공 정체성 지켰던 정통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공간 당시의 우익 정당인 한국민주당이 뿌리다. 한민당은 이승만 대통령과 간단찮게 갈등을 빚기는 했다. 하지만 공산좌익 세력에 맞서며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의 위업을 강력하게 뒷받침했다. 한민당을 이은 민주당 세력은 박정희 시대 내내 박 정권에 맞섰다. 그러나 그럼에도 민주당 세력은 우파로서의 기본 정체성(正體性)은 지켰다.
그런데 우익 정당인 한민당을 뿌리로 하고 그 맥을 이은 당이 이제는 좌익 정당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적 경과와 굴곡을 거치는 동안 이렇게 되어 갔다. 그 양상을 1971년 대통령 선거전의 모습에서부터 따라가 보겠다. 더 이전부터도 있지만 당시 대선(大選)에서부터 좀 두드러져 보이는 대목이 이어진다.
1971년 대선에서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는 4대국 안전보장론과 대중경제론을 들고나왔다. 4대국 안전보장론은 한미동맹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대중경제론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종속이론이라는 좌파 이론의 아류(亞流)였다. 그럴 만했다. 김대중 후보 명의의 《대중경제론》의 실제 저자는 소년 빨치산 출신으로 좌파 성향이 여전했던 박현채였기 때문이다.
신민당은 1972년 이후 유신 시대에 박정희 정권에 강하게 맞섰다. 반유신 민주화투쟁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서 좌경(左傾) 세력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싹의 발호는 이미 그 이전부터였다. 1964년 인혁당 사건, 1968년 통혁당 사건은 명백한 친북좌익공산 세력의 사건이 있었다. 1974년의 2차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었다. 용공(容共)조작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이른바 민주 인사들의 상당수는 이 점을 헤아리지 못했다. 민청학련 사건 당사자들 상당수도 그 배후의 인혁당을 모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민당은 좌익 정당이 되지는 않았다. 신민당의 이철승은 해방공간 당시부터 강경한 반공주의자였던 만큼 ‘안보와 반공’에 있어선 박정희 정권에 확실히 협조했다. 김영삼도 박정희 정권에 강경하게 맞섰지만, 좌익은 아니었다.
“용공조작은 없었다”는 고백
그러나 이른바 재야 민주 세력 속에선 좌경화가 만만찮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학생운동도 그랬다. 공단의 야학운동, 농민회운동도 그랬다. 교회에서는 민중신학이라는 게 등장했다. 해방신학을 베낀 것이었다. 리영희 등의 책도 나왔다. 1979년 남민전 사건은 이런 좌경적 흐름의 연장선에 있던 공안 사건이었다.
남민전 관련자들은 2006년 노무현 정권 당시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남민전의 주도 인물로 사형 선고를 받고 1981년 옥사(獄死)한 이재문과 1982년 사형당한 신향식은 제외되었다. 남민전 사건 관련자 모두가 친북좌익은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으로서도 주동자인 이재문과 신향식은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할 수 없었다.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뒤 ‘서울의 봄’이 있었다. 민주화의 열망이 들끓었다. 그러나 돌연 찾아온 봄은 전두환 정권의 수립으로 좌절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 진영의 좌경화 흐름이 격화돼갔다.
전두환 정권 시대 학생운동권은 특히 완연하게 좌익운동이 되었다. 1970년대 반유신 시대만 해도 좌익 이론 학습은 나름 은밀했다. 그러나 전두환 시대 386세대 학생운동권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습은 공공연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지하서클’만이 아니라 공개된 학과별 과학회(科學會)와 ‘오픈서클’에서도 공공연히 좌익 이론 학습이 이루어졌다.
서울대의 경우 ‘5대 패밀리’ ‘10대 서클’로 불리는 학생운동 핵심 지하서클들은 이렇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본으로 각종 좌익 이론을 학습함과 아울러 선배로부터 ‘한국의 변혁운동사’를 배웠다. 선배는 이렇게 가르쳤다.
“용공조작은 없었다. 박정희 시대의 4대 공안 사건인 인혁당·통혁당·해방전략당·남민전 등은 모두 남한변혁운동의 피어린 발자취이다.”
운동권 주류, 본래 親北
이렇게 배운 이들은 이다음의 후배들에게 또 이렇게 똑같이 가르쳤다. 그리고 ‘5대 패밀리’로 일컬어진 핵심 서클들은 각각의 서클의 역사 또한 자랑스럽게 학습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전후 시기의 좌익운동에 맥이 닿는다는 것, 그리고 인혁당이나 통혁당 관련 인사의 맥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빨치산 출신 박현채와 통혁당의 신영복 등이 떠받들어진 데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학생운동권은 그러면서 내부적으로 노선투쟁을 벌이고 이론투쟁도 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덧 노선투쟁은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확장되고 MT(민투), CA(제헌의회파) 등 급진적인 흐름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주류(主流) 세력을 자부한 MC(Main Current) 세력은 표면적으로는 민주화운동을 앞세우는 노선을 일단은 고수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MC가 온건파인 것은 아니었다. MC는 본질적으로는 오랜 뿌리를 갖는 민족해방, 즉 NL 노선을 내면화하고 있는 세력이었다.
MC의 노선은 말하자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선행(先行)하자는 것이었다. 먼저 민주화를 앞세워 정권을 타도하고 이어서 북한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분단체제를 무너뜨린다는 것이었다. 이게 민족해방이었다. 이것은 사실 북한이 일찍이 제시한 노선과 동일했다. 386운동권의 종북 노선은 1980년대 중반 ‘강철서신’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대두된 게 아니다. 운동권 주류 세력은 본래가 친북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단지 조심스럽게 삼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PD(민중민주)는 MC 계열 가운데 한 세력의 재정립이었다. PD는 노동운동에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던 세력의 연장선에 있기도 했다.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향했다. 직접적인 친북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민주화운동의 중요성도 인정했지만 그것을 넘어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동자 계급의 역량 강화를 해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운동권 투쟁은 민주화운동 아니었다

▲동구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전대협 등 운동권은 ‘민족’을 내세웠다. 1991년 8월 12일 경희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 개막식. 사진=조선DB
그런데 주사파가 대두되고 운동권 내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돼가면서 운동권 내부에서 격변이 있었다. MC 계열은 주사파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그럴 만한 귀결이었다. NL이며 친북이라는 본질에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운동권 내 노선 대립은 NL 주사파 대(對) PD로 정리돼갔다. PD 계열은 노동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반면 NL 주사파는 김일성주의 추종을 노골화하면서도 ‘민주화’를 당면과제로 하여 대중 노선을 내걸고 학생운동을 장악해나갔다.
이렇게 하여 학생운동권에서 NL 주사파의 주도권이 확립돼가는 가운데 1987년이 왔다. ‘6월 항쟁’이 있었다. 이어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선언이 있었다. 그런데 6·29선언이 있은 뒤인 1987년 8월 전국적 학생운동 조직인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 결성됐다. 전대협의 발족 선언문은 ▲ 외세 배격과 독재 종식을 통한 자주적 민간 정부의 수립 ▲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에 기여 등을 내걸었다. ‘외세 배격’과 ‘자주’는 북한이 늘 앞세우는 상투적 구호였다. 전대협의 노선은 NL 주사파 노선이었다.
당시 운동권의 투쟁은 결코 단순한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다. PD와 NL 등 노선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가 분명한 좌익혁명운동 세력이었다. 하지만 87체제가 수립되어 ‘민주화운동’이라는 프레임이 시대를 지배하는 ‘정치적 훈장’이 되면서 더 이상 그 점을 문제 삼을 수 없게 돼갔다. 때로는 또 다른 훈장의 행세를 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87체제 시대는 민주화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좌익운동의 흐름이 사회 도처로 공공연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좌경화의 창궐(猖獗)이 만연하기도 했다. 1987년 대선은 야권 분열로 인해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어떻든 운동권의 핵심 분자들은 이념적 확신을 그대로 가진 채 도처의 각 영역으로 퍼져갔다.
주사파의 운동권 장악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시작된 소련 동구 사회주의권의 와해가 이 같은 흐름에 동요를 가져오기는 했다. 당시를 계기로 운동권을 떠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상당수는 그대로 ‘운동’을 이어나갔다. 굳어진 습관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아이러니한 양상이 있었다. 주사파 계열의 경우 운동을 떠나거나 전향(轉向)을 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향한 PD 계열의 입장에선 소련을 필두로 한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이념적 직격이었다. 하지만 주사파는 이념적·심리적인 탈출구가 있었다.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김일성주의는 단지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족’을 내걸고 있었다. 이것을 상징화한 기치가 ‘우리민족끼리’다. 주사파는 애초에 사회주의를 이론적으로 심도 깊게 학습하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까지 했다. 때문에 사회주의의 한계에 대한 이론적 고민 자체가 별로 없었다. 민족이 중요했고 감성이 중요했다. 주사파의 입장에선 북한이 존재하는 한 자신이 그간 고수해왔던 것들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더욱더 북한에 집착하게 되기까지 했다. 어떻든 결과적으로 운동권 전체적으로 주사파는 더욱더 다수가 돼버렸다.
김대중의 ‘젊은 피 수혈’

▲2003년 8월 10일 남북경협 지속 발전을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대협 출신 새천년민주당 정치인들. 이들 대부분은 제16대 총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됐다. 사진=조선DB
그런데 이 같은 양상은 운동권 출신의 정치권 진입과 관련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갖게 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은 이른바 ‘젊은 피 수혈’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당시 30대였던 386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영입했다. 물론 그전부터도 운동권 출신들의 정치권 진입은 계속 있었다.
운동권 출신들이 결국에는 통속적 출세 지향을 택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권 주류 세력의 오래된 전략적 선택이었다. 제도권 정당에 거점을 만들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래서 김영삼 쪽으로 향하는 것도 굳이 터부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김대중 쪽으로 간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그 상당 정도가 학생운동권의 본래 주류인 MC 계열에서 NL 주사파 성향의 전대협 출신으로 이어지는 부류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이미 운동권 내부는 NL 주사파가 다수였다. 그리고 PD 계열들은 본래 노동 현장 진입을 기본으로 했다. 그리고 정치권 진출도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를 위한 노동당 건설을 기본으로 삼았다. 그래서 기존 정당 특히 김대중의 민주당으로 진입한 것은 결국 NL 주사파 성향의 세력이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성향은 그 귀결이다.
운동권 시절 가졌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PD든 NL이든 마찬가지다. 변화하고 발전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운동권 당시의 사고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NL 주사파 출신들은 그런 경향이 더했다. 물론 그들도 동요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위축 정도였다.
中·北과 더불어
그런데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까지 연이어 집권에 성공하게 되자 그나마의 조심스러움도 사라지고 자신들이 결국 근본적으로는 옳았다는 확신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이런 경향은 정치권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별달리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던 이들이 새삼스레 들뜨고 과격해지는 양상도 나타났다.
그러다가 정권을 잃고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을 거치게 되자 대결의식이 격화됐다. 이런 와중에 김대중의 민주당을 이은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2월 28일 문재인 당시 당대표의 주도로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었다. 왜 하필이면 ‘더불어’민주당일까?
어떻든 그 ‘더불어’의 대상에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골수 세력 외의 대한민국의 최소한 절반 남짓에 달하는 자유민주 지향의 국민들은 배제돼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동으로 기회를 잡아 정권을 탈취한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시절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더불어’의 대상에는 일본은 물론 미국도 빠져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더불어당은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을 끊임없이 능멸하는 중공(中共)과 핵과 미사일로 끊임없이 우리를 도발해대는 북한과는 더불어 가고자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민주당은 문재인 시절 통진당을 닮아가더니 이재명 때에 이르러서는 ‘좌경화’와 ‘범죄적 행태’가 한 덩어리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좌익 세력은 이런 행태가 드물지 않다. 원리주의적인 좌경적 확신이 양심을 증발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좌익은 그래서 위험하다.⊙
05-10 한미일 北미사일 정보 공유 계기로 요격 역량도 키워야
한·미·일 정상이 다음 주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북한 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3국 공유를 공식화할 것이라고 한다. 실무 논의는 이미 마무리 단계인데, 한국과 일본 군 당국이 각각의 레이더 지휘통제 시스템을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접속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도 3국 정보공유약정(TISA)을 활용한 논의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다. 한미 정상이 핵우산 강화 관련 워싱턴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한일 정상회담도 마무리되면서 3국 안보 협력 강화가 본격화하는 셈이다.
북한 미사일 정보 공유 원칙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의 때 합의됐다. 6개월 만에 실행 단계로 들어선 것은 북핵 위협 저지에 대한 3국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준다. 한미일 정보 실시간 공유 시스템이 가동되면 북한 미사일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은 미사일 발사 직후 상승 단계, 일본은 하강 단계 추적에 강점이 있어 정보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정찰위성과 이지스함 등 풍부한 정찰 자산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탐지, 한일과 실시간 공유·협의하면 요격도 할 수 있다. 어느 나라의 미사일 요격기가 어느 지점에서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공조도 가능하다.
북한은 탐지 및 요격을 회피하기 위해 고체연료 기반 탄도미사일을 개발했고, 저수지와 열차에서도 미사일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형 3축 체계는 갈 길이 멀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공조로 북한의 미사일 관련 탐지 능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만큼, 당장 요격 역량을 키우고 과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 핵 미사일을 선제타격할 킬체인은 물론이고,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를 강화하는 일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5.11 한미일 대북 감시 레이더 연결이 이제야 된다니

▲한국 해군 잠수함사령관 이수열 소장과 미 7잠수함전단장 릭 시프 준장,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함대사령관 타와라 타테키 중장이 지난달 18일 미국 괌 미군 기지를 방문해 SSBN '메인함'에 승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미 국방부·DVIDS 제공
한국·미국·일본 3국이 북한 미사일 비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대응하는 시스템을 이르면 다음 달 구축한다. 한일 양국이 자국의 레이더를 통해 각각 입수한 발사원점, 비행 방향, 탄착 지점 등의 북한 미사일 정보를 미국의 인도·태평양 사령부를 거쳐서 즉각 공유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중심으로 주로 사후에 북한 미사일의 제원, 궤적 관련 정보 등을 교환하는 차원에 그쳤다. 이번 조치로 한국군과 주한 미군, 일본 자위대와 주일 미군의 레이더 등 지휘 통제 시스템이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와 24시간 연결돼 북한의 도발에 좀 더 신속,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한·미·일 3국의 레이더 연결 조치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아직 이런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았다는 뉴스에 놀라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제라도 가능하게 된 것은 윤석열 정부 이후 한미 동맹이 굳건해지고 한일 관계가 정상화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인근 수역에서 한·미·일 3국 군사훈련까지 거부했다. 일본과 최악의 관계로 서로 수출 규제와 GSOMIA종료로 맞서기도 했다. 한·미·일 레이더 연결은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미·일 안보 협력이다.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도발은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모의 핵탄두 탑재 미사일을 상공에서 폭발시키는 시험에 성공하고, 수중 폭발 핵 드론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8종의 공중·해상 미사일에 탑재할 전술 핵탄두를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이 오늘 당장 7차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관측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3국의 연합 경계 태세와 안보 협력은 우리 국민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다시는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3국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11 그 연설이 미국을 홀린 진짜 이유

"한·미동맹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가치 동맹이다."
23번의 기립박수가 터진 43분간의 연설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지난달 27일(미국 현지시간)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윤석열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었다.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1세대 영어 강사' 오성식씨가 "영어에도, 스피치에도 일가견이 있더라. 정말 만점이었다. 영어 실력이 제 상상을 초월했다"고 평가했다. 북핵·북미 관련 주요 보직을 두루 섭렵한 경력 38년의 외교관 출신도 사석에서 "발음이 나보다 훨씬 좋고, 영어 실력도 나보다 위"라고 고백했으니 굳이 다른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겠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자유의 동맹, 행동하는 동맹'을 주제로 연설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영어 발음보다 솔직히 더 놀랐던 건 대통령의 '무대 매너'였다. "백악관엔 BTS가 먼저 갔지만, 의회엔 다행히도 제가 먼저 왔다"며 적절한 타이밍에 농담을 섞었다. 우리 기업이 공장을 지은 지역의 의원들을 일으켜 세우며 '정밀 타격'하는 장면도 있었다. 당연히 사전 연출이 있었겠지만 무대 울렁증이 있는 이들은 소화하기 쉽지 않은 퍼포먼스였다. 시선 처리나 동작들에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별로 없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위축되거나 겁먹지 않는다는 특유의 강심장이 외교 무대에서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했다.
대통령 영어 연설에 미 강한 호응
극한 진영 대결에 지친 미국인들
자유·법 지배 등 가치 화두에 열광
미 CBS 방송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의 조회수가 16만회를 넘는 등 흥행도 기대 이상이었다. 92세의 한국전 참전 용사가 "한국을 지키기 위한 우리들의 헌신을 지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자 윤 대통령이 "진심 어린 메시지에 감사드린다"란 답글을 단 그 영상이다. 대통령실은 "평범한 미국 시민들도 공감을 보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터져나온 의원들의 반응이나 아직도 워싱턴 정가에 남아있다는 연설의 여운은 단순히 영어 발음이나 퍼포먼스의 완성도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정치에 밝은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설파한 과거 미국의 모습과 현재 미국이 직면한 현실의 차이에 주목한다.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신념에 의해 세워진 나라, 미 의회는 234년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함께 자유를 지켜낸 미국의 위대한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피와 땀으로 지켜온 소중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힘을 합쳐 용감하게 싸워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등 과거 미국의 가치들은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희석돼 왔다. 트럼프의 기소는 정치보복 대신 협상과 타협으로 갈등을 풀어온 미국 정치의 전통까지 바꿔놓았다. 진영 대립도 극심해졌다. 이런 현실에 지친 미국인들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미국적 가치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윤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설 속에 등장한 한·미 동맹이란 거울을 통해 미국인들이 자신의 원래 모습과 마주하게 됐다는 뜻이다. '자유'가 신념인 윤 대통령의 가치 중심 연설이 우리에겐 익숙한 레퍼토리지만, 미국인들은 다른 각도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대통령 연설을 보도한 일본 언론들 역시 공교롭게도 "자유란 표현을 40회 이상 사용했다"(요미우리)며 이 부분에 주목했다. 개별 현안 대신 큰 틀에서 묵직한 화두를 던지겠다는 윤 대통령의 연설 전략이 결과적으로 맞아 떨어진 것일까.
극단적 정치 양극화와 상대의 악마화, 진영 대결로 인한 마음의 병은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결코 덜 하지 않다. 미국인들 마음을 움직인 윤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못 살 이유가 없다. 취임 1주년, 새로운 다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
중앙일보 서승욱 논설위원
05.12 中의 대만 침공 가능성… 우리도 선제적 대응을
심각한 경제침체 불만 덮으려 예상보다 앞선 2025년 설도
전쟁 막기 위해서라도 노력 필요
우크라서 러시아 패배하면 중 침공 의지 꺾일 것
우크라 항전 적극 지원하고 만일의 사태 대비 위해 對중국 수출·투자 재조정도

▲지난 4월 9일 중국인민해방군 동부전구의 대만침공훈련에서 중국 항공모함 산동에서 J-15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신화/AP 연합뉴스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 이후 북한과 중국의 격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 전략 핵잠수함의 정례적 한국 기항 소식이 무엇보다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급 핵잠수함 1척에는 히로시마 원폭 32배 강도의 핵탄두 192개가 탑재된다. 히로시마 원폭의 무려 6000배에 달하는 거대한 위협이다. 그에 대한 북한의 거센 비난과 협박은 북한이 직면한 좌절과 초조감을 여실히 말해준다.
그러나 북한보다 더 심대한 충격을 받은 건 아마도 중국일 것이다.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은 중국 핵탄두 총량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핵탄두를 적재한 미국 핵잠수함이 탄착 오차 90~120m의 트라이던트2 핵미사일로 중국 주요 도시를 3~5분 내에 초토화할 수 있는 거리에 정례적으로 체류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불사하고 대만 침공을 맹렬히 준비 중인 현시점에 미국의 최종 병기가 북핵 억제를 명분으로 한국에 정박하는 데 대한 중국 지도부의 당혹감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중국이 스스로 초래한 재앙이다. 중국이 지난 30년간 북한의 핵 개발을 방관하고 후원하고 국제 제재를 방해함으로써 핵무장 완성에 조력해 온 데 대한 응당한 대가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기는 시진핑 주석의 4기 연임 결정을 앞둔 2026년이 되리라는 것이 중론이나, 중국의 심각한 경제 침체에 대한 불만을 덮고자 2025년으로 앞당겨지리라는 견해도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의 참전은 불가피해 보이고, 일본도 참전을 공언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전쟁에 대비해 금년 초 대만과 400km 거리의 필리핀 북단에 육‧해‧공군 상주 기지를 각 1개씩 확보했고, 의회는 대만에 대한 100억달러 무기 구입 금융 지원을 의결했다. 일본은 대만으로부터 100~200km 떨어진 오키나와 열도의 3개 무인도를 무장화해 대공‧대함 미사일 부대를 주둔시켰고, 오키나와 주둔 육군 전력도 증강 중이다. 그에 더하여 미국 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은 중국 견제를 위한 중요한 추가 억지력이 될 전망이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 개방을 주도했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중국의 국력이 충분히 강해질 때까지 칼날을 숨기고 몰래 힘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책을 100년간 유지하라는 훈시를 후계자들에게 남겼다. 그러나 덩샤오핑 사후 20년도 안 된 시점에 시진핑 주석은 다분히 국내정치적 이유로 미국에 대한 패권 도전을 서둘러 천명했다. 푸틴 대통령이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듯이, 시진핑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대미 일전 불사와 대만 점령을 공언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전쟁에서 미국을 꺾고 승리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 시진핑 주석이 4기 집권 연장을 정당화할 업적을 만들어내려 무리한 대만 침공을 강행하리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대만전쟁이 실제로 발발할 경우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대만에 대한 군사 지원에 대거 나서고 미국이 대중국 무역과 금융거래를 전면 봉쇄하게 될 신냉전 체제하의 미·중 무력 충돌 상황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때처럼 인도적 지원만 제공하고 중국 눈치 보며 방관자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주한미군 일부가 대만 전선으로 차출되고 중국이 미국 군사력을 분산시키려 동맹국 북한을 부추겨 군사행동을 일으킬 가능성까지 있어, 한국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 전쟁이 초래할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2~3년 후 벌어질지 모르는 대만전쟁은 결코 남의 전쟁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전쟁 발발을 최대한 방지하고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적 노력을 지금부터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패배는 중국의 대만 침공 의지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므로, 우크라이나의 성공적 항전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둘째, 우방국들과 더불어 중국의 대만 침공 움직임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을 지속 표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국의 사주에 따른 북한의 국지적 미사일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미사일 방어망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넷째, 전쟁 발발 시 미국의 강력한 대중국 경제봉쇄가 장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므로 한국 기업의 대중국 무역과 투자에 대한 선제적 재조정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이용준 前 외교부 북핵대사
05.13 “日에 언제까지 사과하고 돈 내라 할 건가” 장훈씨의 고언

▲하리모토 이사오는 말을 참으며 반생을 돌아본다 = 2020년 1월 13일 도쿄에서 찍은 사진/2023.05.11마이니치 신문 도쿄 본사 사진영상보도센터
과거 일본 최고 야구 선수였던 재일교포 장훈씨는 “언제까지 일본에 ‘사과하라’ ‘돈 내라’ 반복해야 하느냐. 부끄럽다”고 했다. 장씨는 “그때는 우리가 약해서 나라를 뺏겼지만 이젠 자부심을 갖고 일본과 대등하게 손잡고 이웃나라로 가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장씨는 많은 회유에도 끝까지 한국 국적을 지킨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는 한국인이고 내 조국이니까 하는 말”이라며 가슴에 담아온 고언(苦言)을 던진 것이다. 장씨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많은 우리 국민도 이제 한국은 선진국이 됐는데 언제까지 일본과 비정상적 관계를 끌고 가면서 ‘사과하라’ ‘돈 내놔라’ 할 것이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외세 침략을 받고 식민지가 됐던 나라들은 많다. 하지만 우리처럼 80년 동안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나라는 없다. 베트남은 프랑스 통치와 일본군 진주, 미국과 전쟁 등으로 국민 800만명을 잃었다. 하지만 상대국에 배상 요구 대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고 했다. 김대중 정부가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의혹’에 대한 보상 의사를 밝히자 ‘필요 없다’고 했다. 독일과 러시아의 침공으로 560만명이 숨진 폴란드는 독일과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 과거는 잊지 않되 미래로 간 것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징용 피해자 보상이 명백히 명시돼 있고 보상도 했다. 노무현 정부도 ‘일본에 다시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때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참여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자 반일 몰이에 이용했다. 위안부 합의도 사실상 파기했다. 윤석열 정부가 어렵게 징용 대위 변제 방안을 내놓았지만 민주당은 ‘굴종 외교’라고 비난하기 바쁘다.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오로지 국민 감정을 자극해 정치 이득을 볼 계산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6위 수출 대국이고 1인당 GDP는 일본과 비슷하다. 국가경쟁력 순위는 일본에 앞섰다. 일본에선 “이러다 한국에 뒤진다”는 우려가 높다. 그런 우리가 끝없이 ‘돈 내라’고 하면 국제 사회가 어떻게 보겠나. 역사의 교훈은 잊지 말되 피해의식에선 벗어나야 한다. 그럴 때가 됐다. 반일 몰이를 돈벌이와 정치에 이용하는 세력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16 우크라戰 변곡점…한국 기여 높일 때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침략 15개월 만에 러시아 비틀
1948년산 구형 전차까지 동원
우크라軍 대반격 초읽기 돌입
한국은 포탄 생산량 세계 최고
러 의식해 정의 저버려선 안 돼
재건사업 참여 위해서도 필요
15개월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큰 변곡점을 예고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로부터 무기 지원과 훈련을 받아 수십 개 전투여단을 창설한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세 좋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러시아도 가진 무기를 다 소모하고, 서방의 제재로 추가 생산이 원활치 않아 무척 힘겨운 모습이다. 북한에서도 2선급 전차로 취급받는 T-62 전차가 등장한 건 오래됐고,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1948년산 T-54 전차가 전선에 등장할 정도니 러시아의 무기 부족은 숨길 수 없는 상황이다.
전쟁은 화력 싸움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현대전의 신은 포병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공산권 출신 군대는 포병 화력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러시아군은 그 중요한 야포가 부족해 1960년대에 퇴역한 포를 꺼내오고, 포탄이 부족해 소총수만 전장에 밀어 넣는 등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발표 기준으로 최근 8일간 러시아군의 야포 127문과 다연장로켓 8문이 격파됐다. 우크라이나군이 대공세 전 여건 조성 작업에 들어가며 러시아군 포병을 집중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도 포탄 부족은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화력의 수적 부족을 정밀도로 커버해 왔다. 서방 국가들이 계속 지원해 주고는 있지만, 전장에서는 항상 부족을 호소한다. 유럽연합(EU)은 100만 발의 포탄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독일과 프랑스가 나서 EU 자금으로 지원하는 포탄인 만큼 오래 걸리더라도 EU에서 생산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버티는 바람에 아직 지원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는 한국을 주시한다. 포탄 생산량도 세계 최고다. 현재 연간 미국의 155㎜ 포탄 생산량은 17만 발, EU는 30만 발이다. 그러나 한국은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이 나서기만 하면 우크라이나는 즉각 화력 우위에 나설 수 있다. 곡사포탄뿐 아니라 전차포탄도 세계 최강이다. 특히, 독일 등 몇 나라가 지원하는 레오파르트1 전차는 105㎜ 주포를 사용해서 공격력이 빈약하고, 퇴역한 지 오래된 전차여서 105㎜ 전차포탄도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도 105㎜ 포를 장착한 K-1 전차를 1027대나 운용 중인 한국은 105㎜ 전차포탄을 꾸준히 개발해 120㎜ 포탄에 필적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수량도 많다. 한국은 그야말로 게임체인저급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러시아가 비인도적인 전쟁 행위를 계속한다면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후에도 러시아는 계속 민간 아파트와 마을에 미사일과 포탄을 쏟아부으며 민간인을 살상한다. 명분은 충분하다. 이번 전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 국가 간의 신냉전 구도는 명확해졌다. 중립은 허용되지 않을 정도다. 6·25 때 우리를 도와준 국가 상당수가 나토다. 그들에게 우리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진영임을 보여줘야 한다.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이 아쉬워서 정의를 외면한다면, 한반도 유사시 중국과 대립을 감수하고 우리를 도와줄 나라가 있겠는가?
우리 육군이 보유한 러시아제 무기 T-80U 전차와 BMP-3 전투장갑차, 메티스M 대전차미사일, 이글라 지대공미사일은 우크라이나가 내일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무기다. 이런 무기들과 포탄을 공급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 미국은 개전 이후 현재까지 369억 달러(약 49조4000억 원), 영국은 57억 달러(7조6300억 원)를 지원했다. 독일은 57억 유로(8조2800억 원), 일본은 61억 달러(8조1600억 원) 지원을 약속했다.
일각에서는 무기 지원은 하지 말자며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수주를 주장한다. 지난 3월 23일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은 4110억 달러(550조1600억 원)다. 이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전후 신무기 구매도 엄청날 것이다. 도움을 주지 않은 국가에 이권을 줄 리 없다. 당당히 자유민주주의의 일익임을 과시하며 나설 때 대한민국의 높아지는 위상과 함께 부수효과가 동반된다. 세계인에게 세계 최강·최대 포탄 생산국의 위엄을 보여주자. 이번 주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도 열린다.
문화일보
05.22 G7 무대에서 韓美日 협력 복원… ‘자유의 축’ 된 한국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주요 7국 회의(G7)가 열린 히로시마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와 다시 만났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6월, 11월에 이어 세 번째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다. 정상들은 각자 발표한 성명을 통해 북한 문제, 3국 정보 공유, 경제 공급망과 관련한 협력을 강조했다. 3국의 안보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방안도 거론됐다고 한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2주 만에 다시 회담을 갖고,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도 함께 참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3국 회의에서 “한·미·일 3국 파트너십과 인도태평양 지역이 (윤 대통령·기시다 총리) 두 정상의 노력 덕분에 더욱 강력해진다”고 평가했다. 한일 두 정상을 워싱턴DC로 초청, 한·미·일 3국 정상회의를 또 개최하겠다고도 했다.
이로써 윤 대통령 취임 1년 만에 한미, 한일관계가 정상화되고, 문재인 정부 5년간 사라졌던 한·미·일 3국 협력이 완전히 복원됐다고 할 수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 잘못 보일까 봐 3국 협력을 극도로 꺼렸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다.
G7은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회원국으로 남아 있는 주요 20국 회의(G20)를 대체, 국제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중요한 회의체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이어 이번 G7 회의에 초청받아 국제사회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대통령은 G7 확대회의에 참가해 세계 시민의 자유, 번영을 확대하는 데 한국이 더 큰 역할과 기여를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신속하게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은 세계 질서가 급속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NATO, G7 정상회의를 활용하는 적극적인 외교로 전환, 자유사회의 중요한 축(軸)으로 부상하는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G7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과 비슷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다 보면, G8 국가가 되는 것도 한낱 꿈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지역에 있음을 잊지 않는 지혜도 필요하다. 중국은 G7 회의에 맞대응하는 성격의 중국· 중앙아시아 5국 정상회의를 18일 시안에서 개최했다. G7 회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에 당당히 우리의 원칙을 밝히면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하는 것이 상호 이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사설
05.22 세계가 귀 기울일 때 크게 외쳐야 할 것들
인간이 자아실현 추구하듯 국가도 차원 높은 욕구 강렬
우리 국력은 지금이 절정… 세계에 자유·인권 크게 외쳐야
차이잉원 총통의 방미로 세계가 떠들썩했던 지난 3월 말 대만에선 ‘2023 스마트시티 서밋 & 엑스포’라는 4박5일짜리 국제 행사가 열렸다. 43국 112개 도시가 IT 기반 협력·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댄 자리였는데 대다수 시장들이 발표 때마다 “대만 자유를 지지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한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를 권하고 있다./연합뉴스
행사 파트너로 참석했던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박정숙 사무총장은 “감동이었다”고 했다. 장소가 대만인 점을 감안해도 중국이 코앞에서 눈 부릅뜨고 있는데 이토록 많은 사람이 아랑곳없이 대만을 응원하는 모습은 놀라웠다. 민간 행사였기에 정치적 발언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심이었다는 얘기다.
우린 어땠을까. 문재인 정부 땐 집권 세력의 친중 성향 때문에 대만 편드는 언행은 금기시됐다. 지금도 거대 야당이 툭하면 “중국을 자극 말라”고 윽박지른다. 이런 상황에선 정파를 떠나 공개적인 대만 지지는 상당한 결기를 요한다. 박 총장은 “외국 시장들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자유 등 보편적 가치를 위해 국제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손을 내민 적이 얼마나 있었나 반성하게 됐다”고 했다.
근래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다. BTS와 블랙핑크 음악에 지구촌이 열광하고, 반도체와 휴대전화, 자동차가 세계로 팔려나간다. ‘기생충’ ‘미나리’가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땐 어깨가 으쓱으쓱했다. 노래, 드라마, 화장품, 음식 등 ‘K’가 붙은 문화 상품은 글로벌 ‘핫(hot)’ 아이템으로 각광받는다. 조지프 나이 교수가 말한 ‘소프트파워’가 극강이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등 외국 지도자들은 우리가 가장 성공한 민주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치켜세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칭찬을 들으면 뭔가 중요한 게 빠졌다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 욕구를 5단계 피라미드로 설명했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등 하위 단계가 충족되면 존경·자아실현 등 상위 단계 욕구에 관심이 생긴다고 했다. 고차원적 욕구까지 충족돼야 인간은 행복해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시절 우린 나라를 되찾는 데 모든 걸 바쳤다. 전쟁이 났을 땐 조국을 지켜야 했다. 굶주렸을 땐 잘살기 위해 뼈를 깎았고, 다음엔 민주주의 투쟁에 피를 흘렸다. 그 결과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롭게 자유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았다. 세계사적 존재로서 자아실현과 자부심이다. 이 경지는 전쟁과 폭력, 기아로 고통받는 세계인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도달한다. 우리는 잘산다고 뻐기면서 남을 돕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우크라이나 거울’로 우리 자신을 비춰보자. 이웃 일본만 해도 총리가 직접 현지로 날아가 연대를 과시하고 거액을 지원금으로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지원 금액은 76억 달러에 달한다. 앞으로 5억 달러를 더 지원한단다. 반면 우린 2억3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경제 규모 세계 12위, G8(주요 8국) 자리를 노리는 국가치고 너무 초라하다.
안타까운 건 우리가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점이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합친 우리의 국력은 지금이 절정이고, 곧 하향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경제 성장은 정체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인구학 분야 세계적 권위자는 한국이 출산율이 계속 낮아져 이대로라면 2750년 소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먼 훗날 역사에 “한국이 한때 보편적 가치의 편에서 싸웠고, 인류 진보에 기여했다”고 기록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쳐선 안 된다. 세계가 우리에게 귀 기울이는 지금 우린 때와 장소, 상대를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 인권을 지지한다고.
조선일보 장일현 기자
05-22 무너지는 NPT… 핵능력 보유 나설 때다

이미숙 논설위원
이란 맞서 사우디 핵개발 행보
美 대신 中과 손잡으며 가속화
다른 권위주의 나라로 번질 것
한미 핵우산 강화만으론 부족
‘포스트 NPT’ 적극 대비 필요
日 수준 역량 보유가 1차 과제
주요 7개국(G7) 정상이 히로시마(廣島)공동성명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국제 비확산 체제의 토대로 규정하며 핵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NPT 체제 붕괴 기류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러시아가 핵무기 양산 수순에 접어든 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도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 겸 총리는 OPEC+(플러스)와 손잡고 최근 잇달아 원유 감산 조치를 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대미(對美)시위 성격이 짙다. 최근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6월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찾는 배경이다.
사우디와 미국의 갈등 이면엔 핵 문제가 있다. 사우디는 10여 년 전부터 미국에 원자력 협력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국무부는 농축 및 재처리 금지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워 관계는 점점 더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에서 아브라함 협정을 밀어붙일 때 사우디는 핵 협력을 참여 조건으로 제기해 일부 진전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없던 일이 됐다.
그러자 MBS는 중국으로 눈을 돌려 지난해 12월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핵 협력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사우디는 올 초 우라늄 채광 및 우라늄 농축 원전 연료 수출 계획을 밝혔다.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 개발의 길을 걷겠다는 뜻이다. MBS는 “이란이 핵을 가지면 사우디도 가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시아파 종주국이 핵을 갖게 되면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도 가져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란의 핵 개발을 보며 조급해진 것이다.
1970년 NPT 발효 후 미국은 비확산 중심의 외교정책을 견지했지만, 그 과정은 실패였다. NPT 전 핵 개발을 한 이스라엘을 논외로 하더라도 인도와 파키스탄, 북한이 NPT 밖에서 핵 보유에 성공했다. 중국의 지원에 힘입어 사우디가 핵무기를 갖게 되면 남미·아프리카 국가도 잇달아 중국에 손을 벌릴 것이다. 미국 핵우산에 의존하는 한국 등 자유 진영이 중국 도움으로 핵무장에 성공한 권위주의 진영의 핵 협박에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달 정상회담 때 발표한 워싱턴선언에서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를 천명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회담 전 브리핑에서 “한국이 비핵 국가 지위(non nuclear status)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핵우산 강화는 한국이 핵무장을 않는다는 약속과 맞바꿔진 것이란 주장이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하버드대 강연 때 “한국도 1년이면 핵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선언에선 비핵 국가 지위를 받아들였지만, 필요한 상황이 오면 핵 개발을 하겠다는 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사시에 대비하려면 지금부터 잠재적 핵 능력 개발을 위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일본은 6개월 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비핵 3원칙을 준수하면서도 미·일원자력협정을 통해 플루토늄 재처리 등으로 핵무기 원료를 확보해둔 덕분이다. 윤 대통령이 말한 ‘1년 내 핵 제조’가 현실화하려면 NPT 회원국으로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칙을 준수하며 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 임기 내 우라늄 농축을 위한 인프라 구축부터 해야 한다.
중국의 비협조로 이미 글로벌 비확산 체제는 무너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보수 성향의 미국 외교전문가 월터 러셀 미드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버락 오바마 등 민주당의 역대 대통령들이 비확산 체제를 지키지 못한 탓에 ‘포스트 NPT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비판했다. 북한·이란에 소극 대응하는 바람에 독재 국가들의 핵 무장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유 진영에만 엄격하게 비확산 규범 준수를 압박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선언 후 일부 전문가는 자체 핵무장론을 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잠재적 핵 능력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미국이 진심으로 한국 안보를 걱정한다면 한국이 일본 수준의 핵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원자력협정 개정 등의 조치에 나서야 한다. 한국의 핵 능력 확보는 워싱턴선언을 보완하며 유사시를 대비하는 최적의 보험이자 중국을 정점으로 한 권위주의 독재 국가의 핵 무장에 맞서 자유 진영을 지키는 최후의 보검(寶劍)이다.
문화일보
05-30 北 군사위성 도발 예고…한미일 新안보체제 가동할 때다
북한이 발사하겠다는 ‘군사정찰위성 1호기’는 유엔의 대북 제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은 물론 탄도미사일 기술을 적용한 비행체 발사를 전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 북한의 핵무장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거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워싱턴에서 별도 3국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 협력을 논의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신(新)안보체제를 시험 가동할 필요가 있다. 또, 북한이 1년 전인 지난해 5월 탄도미사일을 무더기 발사했을 때,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13개국이 추가 제재 결의안에 찬성했음에도 중국·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된 바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책도 필요하다.
북한은 31일 0시부터 다음 달 11일 0시 사이에 군사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일본 해상보안청에 29일 공식 통보했다고 한다. 미사일 아닌 위성일지라도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사실은 불변이다. 위성 발사와 ICBM은 모두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2006년 1차 핵실험 뒤 채택된 대북 결의 1718호 때부터 탄도미사일 금지는 일관되게 포함됐다. 일본과는 무관한 서해를 거쳐 필리핀 쪽으로 비행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북한이 한국을 ‘패싱’하고 일본에만 통보한 것은 한·일 틈새를 노린 안보 이간책일 것이다. 북한이 느닷없이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요격 지시” 등 적극적 대응에 나선 것은 최근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다행한 기류다.
당장 안보체제 강화가 급하다. 한·미·일 정상은 히로시마 회담 때 3국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발전시키기로 하면서 북한 미사일 정보 실시간 공유도 심화시키기로 한 바 있다. 워싱턴 회담에서는 더 광범위한 새로운 안보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감시·추적·요격 능력 강화는 기본이다.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봉쇄 수위도 높여야 한다. 북한의 해상 불법 활동에 대한 감시·차단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유엔 제재의 ‘뒷문’ 역할도 넘어 제재를 방해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중요하다.
문화일보
05.30 “우크라, 한국 두고 저울질 안해… 통일된 입장 가져주길 간청”
戰場 키이우에서… 젤렌스키, 한국 언론과 첫 인터뷰
“70여 년 전 한국이 다른 나라의 절실한 도움이 필요했을 때를 떠올려 주십시오. 당시 정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뻗었기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번영한 한국이 탄생했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70년 전 한국과 같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3년 5월 키이우 시내의 집무실에서 조선일보 정철환 유럽특파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5)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인터뷰는 수도 키이우의 집무실 중 한 곳에서 단독으로 진행됐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시내 모처에서 대통령실 보안 요원과 접선해 창을 가린 검은 밴으로 이동, 여러 차례의 보안 확인을 거치고 다시 20여 분을 기다렸다. 그제서야 젤렌스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장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군복 차림이었다. 티셔츠엔 우크라이나 사이버 보안 기관 이름인 ‘UA30′이 새겨져 있었다. 전장에서의 대면 인터뷰는 이례적이다.
러시아의 키이우 야간 공습이 격화하는 가운데 만난 젤렌스키는 한국 국민과 정부를 향해 우크라이나 지지를 호소했다. 한국이 6·25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두 세대 만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사실을 언급하며 “전쟁과 분쟁을 겪고 폐허에서 일어난 국가의 경험에서 배우고 싶다. 한국은 그런 나라 중 하나”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이어진 격전으로 젤렌스키가 최근 “남은 것이 없다”고 표현한 동부 전선의 바흐무트 등과 비교하면 키이우 상황은 나은 편이다. 그럼에도 키이우의 밤과 낮은 점점 격해지는 공습으로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도시 곳곳이 피해를 입었다. 폭약 냄새가 일상이 된 키이우에서 젤렌스키는 여러 차례 ‘재건’의 구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한국은 전쟁과 그로 인한 희생, 복구 과정을 경험했기에 지금 우리가 처한 사정을 더 잘 이해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쟁 후 우리 국민이 평화롭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며 고통과 상처를 보듬고 재활하는 과정에 (한국의 경험을 살려) 많은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질문에 쉴 틈 없이 답을 이어가던 젤렌스키는 한국 정치권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한 찬반 논쟁에 대해 묻자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서 “한국의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침략을 받은 이의 입장을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우크라이나의 사람들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국가로서, 한국에 대해 매우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편에 섭니다. 저와 우크라이나는 한국을 두고 저울질하지 않습니다. 한국을 지지하고 한국과 함께 발전해 가려고 합니다. 한국 국민도 우리와 같이, 통일된 입장을 가져주시기를 요청하고 또 간청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전후 우크라이나의 경제 재건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면 좋을 분야에 대해선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자원과 한국이 보유한 기술을 고려할 때 리튬 배터리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 과정에 한국과 어떤 협력이 가능한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난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 우리의 경험과 결합해 국가를 재건해 나가려 한다. 안보와 방위산업, 첨단 기술과 사이버 공간, 그리고 전후 우리 국민의 재활 과정에서 많은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녹색 에너지와 녹색 제철 분야의 협력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자원과 많은 매장량, 한국이 보유한 기술 역량을 고려하면 리튬 배터리 분야가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리튬을 채굴하는 것에 이어 관련 제품 생산까지 가능하다. 우리는 구(舊)소련 시절부터 리튬 생산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평가는. (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2억3000만달러 이상의 인도적 지원을 했다. 최근엔 지뢰 제거 장비 등의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우선 한국 정부와 국민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전쟁을 겪은 한국이 우리를 (다른 나라보다) 더 잘 이해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면적의 약 3분의 1이 지뢰로 덮여 있다. 수많은 농부와 민간인, 어린이들이 러시아가 설치한 지뢰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장애인이 되었다. 지뢰 제거 장비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우크라이나의 매우 중요한 방어 시스템 중 하나다. 한국이 지원하기로 한 지뢰 제거 장비가 수많은 농부와 어린이들의 목숨, 그리고 손발을 구해낼 것이다.”
-아직 한국의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만 머무르고 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여러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한국의 이러한 원칙이 (한국이 아직 지원하지 않는) 방어 시스템과 전력 시스템 보호 장비 등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공 방어 시스템은 무기가 아닌 순수한 방어적 장비다.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위해서 ‘하늘의 방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우리를 지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러시아의 공습을 경고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 있는데 여기도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젤렌스키는 적국(敵國)의 수장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러시아의 지속적인 핵위협에 대한 자신의 판단과 중국의 평화 중재 노력에 대한 평가, 러시아와 중국 간에 벌어지는 위선적 행위에 대한 지적도 과감하게 밝혔다. 과거 해외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좀처럼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핵위협을 이유로 최근 벨라루스에 전술핵 이전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아야 하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엔 아무 의미가 없다. 러시아가 핵위협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워낙 오래 반복됐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더는 러시아의 핵무기 관련 위협과 조치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이전하는 일 또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위협하려는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 타국의 영토 주권을 침해하면서 핵무기를 위협으로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전 세계가 동의하지만, 러시아는 쉬지 않고 핵위협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른다. (핵을 악용한) 정치적 협박은 그들에게 남은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밀접해지는데, 전쟁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푸틴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러시아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중국은 ‘바깥’의 어딘가에서,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려는 입장이다. 그런데 푸틴은 어떻게 했나.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영토 밖 핵무기 배치에 반대한다’고 해놓고 바로 그다음 주에 벨라루스에 핵 배치를 발표하지 않았나. 러시아는 자국과 어느 정도 가까웠던 국가들, 러시아를 정직한 동맹국으로 여겼던 국가들에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핵을 둘러싼 러시아의 말들은 그저 정치다. 실패한 정치, 잘못된 정치다.”
-지난달 시진핑 주석과 통화하기도 했다. 중국이 성공적인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중국은 직접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세운 평화 이니셔티브(청사진)에 대해 우리는 ‘평화를 위한 다른 국가들의 그 어떤 노력에도 감사하지만 우리 자신의 평화 공식, 우리의 이니셔티브가 기본이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모든 영토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명확하고 강력한 입장을 밝힌다면, 그리고 그 경우에만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부터) 우크라이나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푸틴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라고 보나.
“소련의 회복. 그것이 그의 인생 목표다. 이를 외교적으로 이룰 방법이 없으니 온갖 협박과 에너지 무기화 등을 시도해 왔다.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노골적인 침략자가 되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고, 고문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점령해 핵 재앙 위협까지 하고 있다.”
-푸틴과 만날 의향이 있나.
“그는 2년 가까이 나와 전화 통화조차 피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우리와 함께 있고, 그는 진실 앞에서 할 말이 없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강제로 빼앗으려는 자신의 억지에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니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푸틴은 전쟁을 통한 우크라이나의 침탈,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Ukrainianness) 파괴를 원할 뿐이다. 푸틴의 다음 목표는 벨라루스다. 벨라루스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다. 오늘의 푸틴은 분명, 우리가 이전에 보았던 것과 다른 사람이다. 푸틴이 자신의 군대를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모두 물리기 전에, 그와 대화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나와 우크라이나 국민은 한국에 대해 대단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수많은 도전과 고통을 이겨내고 강하고 용감한 국가,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경제를 만들었다. 한국은 한마디로 ‘멋진 나라’다. 과거 한국처럼, 우리도 지금 불의의 침략으로부터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내가 지금 한국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조선일보 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