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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主國防 2023-05/ 05.02 민노총, 20년간 114회 방북 - 05-31 진화하는 간첩, 붕괴하는 방첩

상림은내고향 2023. 5. 30. 20:42

自主國防 2023-05/  

05.02 민노총, 20년간 114회 방북... 이석기는 가석방 기간에도 방문

민주노총이 2000년 이후 약 20년간 북한을 114회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진보당(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민노당)은 총 96회, 내란음모 협의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2014년 해산된 통진당 계열 인사들의 경우 101회 방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방북 횟수는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제외한 수치로 대부분 평양 방문이라고 한다. 정부는 그간 이들 단체의 별도 방북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남북 노동 3단체 (민주노총,한국노총,조선직총)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남측 대표단이 지난 2015년 10월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북한 평양으로 가는 전세기를 타기위해 출국수속을 밟고 있다. /조선일보 DB

 

1일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2003년 6회를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 기간인 2005년~2008년 87회 북한을 방문했다. 가장 최근은 2019년 2월로 한노총, 정의기억연대와 함께 ‘6ㆍ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새해맞이 연대모임’에 참석하는 등 총 114회 방북했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북한지령대로 주한미군철수를 외치고 (핵심 간부가)대북충성맹세문을 쓰기도 한 민노총이 지난 20년 동안 114회나 방북한건 남북한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한 교류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동안 북한을 방문해 누구를 만나 어떠한 일을 했는지 정확한 방북 목적과 결과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국민들 앞에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인사들 가운데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는 등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조직국장 A씨의 경우 세 차례 방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4월30일~5월2일, 2004년 5월1일, 2005년 12월이다. 세 차례 가운데 2001년과 2004년은 각각 금강산과 평양에서 5월1일 남북노동자 통일대회 참석이 목적이었다.

 

A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운동과 민주노총 활동을 하기 시작해 2005년 평택안성지구협 사무차장을 지냈다. 이후 2010년 민주노총 비정규직 국장에 이어 정치국장, 교육국장, 조직국장 등을 지냈다. 과거 A씨와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한 노동계 인사는 “A씨가 북한 지령을 받는 등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A씨는 반북 성향이 강했고 강성 종북인 경기동부 세력에 대해서는 극도의 반감을 표현했던 사람인데 언제부터 사람이 변한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사당국은 A씨가 수년간 북한과 통신으로 연락하면서 100여차례에 걸쳐 대북 보고문, 대남 지령문 등을 주고 받고 동남아 등 제3국에서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A씨는 정부에 단 한건의 사전ㆍ사후 북한 주민 접촉신고서나 사후접촉결과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남북교류협력법상 북한 주민과 접촉하거나 통신을 주고 받는 경우 통일부 장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0년 창당된 민노당은 2003년 4회를 시작으로 총 96회 방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2004년 8회, 2005년 33회, 2006년 16회, 2007년 25회, 2008년 10회였다. 2005년과 2007년의 경우 월 평균 2회 이상 북한을 방문한 셈이다.

 

민노당 이외에 경기동부 등 통진당 계열 인사들의 경우 방북횟수는 총 101회였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의 경우 2005년 3월과 2007년 3월 두 차례 방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2005년 3월 방북의 경우 가석방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이 전 의원은 2003년 3월 반국가단체 구성 등의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실형 선고를 받은 이후 그해 8월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고 2005년 8월 특별사면 복권이 이뤄졌다. 이 전 의원의 첫번째 방북이 이뤄진 2005년 3월31~4월1일은 가석방 기간으로, ‘금강산 관광’ 목적으로 정부로부터 방북 승인을 받은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가석방 상태에서 방북 승인이 이뤄진건 대단히 부적절한 처사”라며 “아무리 과거의 일이라고는 하나 당시 무분별한 방북 승인이 이뤄진 사례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 인사 접촉에 따른 사전 또는 사후 신고 건수의 경우 이명박 ㆍ박근혜 정부 기간 연평균 약 400명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2017년 407건, 2018년 1048건, 2019년 928건이었다가 2020년과 2021년엔 302건과 224건으로 감소했다. 북한 주민과 접촉한 이후 신고하지 않은 건수는 이명박 정부 기간 11건, 박근혜 정부때 17건, 문재인 정부때 총 9건이었다. 문 정부 이전에는 최소 30만~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으나 문 정부때 북한 인사 접촉 신고를 하지 않은 9명에 대해선 모두 서면경고에 그쳤다고 한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 처분이 달라진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하고 북한 인사 접촉 신고를 하지 않은 이들이 다시 방북 신청을 하는 경우 신청을 불허하는 등 제도 보완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민서 기자

 

05.02 北지령, 이젠 총선 겨냥… “친윤·비윤 갈라치고 촛불들라”

최근 지령문 보니 정치 개입 노골화

북한이 최근 보낸 대남 지령문에서 보수 정당 내홍을 유발하는 선전·선동 강화와 반(反)정부 시위를 통한 사회 분열 조장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국가 주요 인프라 파괴나 반미(反美)·반일(反日) 선동에 치중했지만,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남 공작도 ‘총선 모드’로 전환한 셈이다. 이른바 ‘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으로 지령들 다수가 외부에 노출되자 북한이 대남 공작 전략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일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대남 선전 매체와 해외에 파견한 공작원 등을 통해 ‘반정부 분위기 조장’에 공을 들일 것을 지시하고 있다. 대남 지령 중에는 지난 3월 당선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리더십을 “대통령실의 막가파식 총력전 때문”이라 폄훼하고, 국민의힘을 윤석열 대통령의 ‘사당(私黨)’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많다고 한다. 특히 안철수계·이준석계 등 비윤(非尹)계 의원들에 대한 ‘공천 대학살’ 가능성을 언급하며 “결국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수순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친윤 대 비윤’ 프레임과 제3신당론을 띄워 여당, 나아가 보수 진영 내 갈등을 조장하라는 것이다.

 

이런 프레임은 총선 때 ‘민생 파탄’ ‘권력욕에만 눈이 멀어 있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 같은 구호를 앞세워 국정 심판론을 자극하자는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대남 지령문에는 “야권, 종교계, 사회단체 등이 파쇼 독재자, 검찰만능주의자 윤석열을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반드시 심판해 쫓아내야 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한 표출시켜 제2의 촛불 집회를 일으키는 데 목표를 두고 열심히 활동해야 할 것”이라고 돼 있다. 방첩 당국 관계자는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유리한 정치 환경을 조성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전술 제시에 집중하는 ‘총선 개입 정치 공작’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이 계파 갈등이나 보수 신당 창당론까지 들고 나와 여당 내 갈등 유발을 부추기는 것은 최근에 두드러지는 경향이다. ‘창원 간첩단’ 사건 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과거 북한의 대남 지령을 보면 “청와대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송전망체계 자료 입수”같이 국가 기간 시설에 대한 마비와 사회 혼란 유도 등에 주안점을 둔 내용이 많았다. 또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기습 시위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괴담의 인터넷 유포 등 반일·반미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 집중했다. 전직 국가정보원 간부는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진보당이 재보궐선거로 원내(院內)에 입성했고, 대통령 지지율도 박스권에 갇혀 있는 만큼 지금이 정치 개입의 적기라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을 노골화한 것은 북한에도 내년 총선이 갖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지금의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계속되면 집권 3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가 바로 레임덕에 들어갈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제2 촛불 집회’ 같은 대규모 대정부 투쟁을 전개할 유리한 환경이 갖춰지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좌파 단체들이 연합해 도심에서 주말마다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반면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각 협력 강화, 북한 인권 문제 공론화 같은 외교 기조가 지속돼 북한의 고립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05.03 민노총·통진당 수백 차례 방북, 간첩 활동과 관련 없나

민주노총이 2003년 이후 단체 명의로 북한을 114차례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내란 선동 혐의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인사들은 101회나 방북했다.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이 아닌 대부분 평양 방문이었다. 민노총은 전·현직 간부들이 북한 지령에 따라 반국가·이적 활동을 벌인 간첩 협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런 간첩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빈번했던 방북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민노총과 통진당 인사들의 방북은 주로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 집중됐다. 민노총은 노 정부 시절 87회, 문 정부 때 5회 북한을 다녀왔다. 통진당 방북도 노 정부 때 집중됐다. ‘남북 노동자 통일 대회’ ‘6·15 남북공동선언 연대 모임’ ‘남북 축구 대회’ 등 명목이었다. 전세기까지 동원한 방북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의 북한 행적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청와대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송전선망 체계를 입수해 마비시키도록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북한에서 반미·반정부 시위 지침을 받고 핼러윈 참사 땐 ‘퇴진이 추모다’ 등 시위 구호까지 전달받았다.

 

핵심인 민노총 조직국장은 개인 자격으로만 3차례 방북했다. 민노총 단체 방북 때도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후 100여 차례 북한과 접촉해 대남 지령문과 보고문을 주고받으며 활동 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평택·오산 기지 등에 접근해 활주로, 탄약고, 미군 정찰기, 패트리엇 포대 등을 촬영해 북한에 보고했다. 그 역시 수차례 방북 때 북에 포섭됐을 가능성이 있다.

 

통진당을 이끈 이석기 전 의원은 2005년 등 두 차례 방북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민혁당 사건으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가석방 상태였다. 국가보안법 사범이 형기 중에 북한을 방문하도록 노무현 정부가 허가한 것이다. 이런 무차별 방북이 통진당의 세력 확장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좌파 정당과 단체, 노조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에서 한편처럼 행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이 방북 때 누구를 접촉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실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북 주민 접촉 신고를 하지 않아도 과태료는커녕 서면 경고뿐이다. 민노총을 비롯해 창원·진주·제주 등 전국에 지하 간첩 조직이 판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5.08 전 세계 정보기관 고급 정보는 시긴트… 북핵 감시 위해 더욱 강화해야

北, 가상화폐 해킹으로 1조원 탈취… 해킹, 도·감청 기술 최첨단 수준
우리는 6·15 정상회담 이후 ‘휴민트’ 약화, ‘시긴트’도 잘 작동 안 해
동맹국도 감청하는 정보 전쟁… 최첨단 보안 기술로 北 내부 파악을

과거 평양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 회담은 물밑에선 도·감청(盜·監聽)과의 전쟁이었다.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이나 백화원 초대소 등에서는 아예 몰래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호텔 객실이 춥다고 혼잣말로 읊조렸는데도 나갔다 오면 특별 난방이 돌아갔다. 실내 대책 회의는 포장을 치고 필담(筆談)으로 진행해 추적을 뿌리치는 데 필사적이었다. 하이라이트는 평양 회담장과 서울 삼청동 대화사무국 간의 교신 내용을 둘러싼 창(矛)과 방패(盾)의 대결이었다. 보안요원들이 통신 비화기를 사용해 주파수를 수시로 바꿔가며 방어에 나서지만 가끔은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남북한 정보통신 기술력 간 진검 승부였다.

 

북한은 국민소득 1000불의 가난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체제이지만 해킹과 도·감청 기술은 최첨단 수준이다. 평양 권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미림대학 등에서 10대 수재 학생들을 전문 해킹 프로그래머로 육성하는 군사용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에 주력했다. 최근에만 가상화폐에 대한 국내외 해킹으로 최소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탈취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이 발사한 71발의 미사일 도발의 재원이다. 필자의 학교 이메일은 연간 1~2차례 북한 측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을 당했다고 국정원의 주의를 받는다. 북한 정찰총국 해킹조직 라자루스의 선관위 해킹 여부를 둘러싸고 국정원과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으나 선관위 역시 국내 통신망의 일부로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반면 우리의 대북 통신정보 수집은 갈 길이 멀다.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첨단 정보 수집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대면 접촉 정보 수집인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는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 휴민트를 중단하였고 이후 중국 공안들의 감시로 동북 3성을 통한 인적 정보 수집은 정보요원이 감금되는 등 한계에 부딪혔다. 한번 무너진 휴민트 네트워크는 좀처럼 복원되지 않았다. 서울의 정권 교체로 한미 공조가 여의치 않을 때에는 국정원과 미 중앙정보국(CIA) 간에 정보 공유가 순탄치 않았다. 핵과 미사일의 최고급 군사정보는 말할 필요도 없고 김정일의 사망, 장성택의 처형과 김정은의 방중(訪中) 등 굵직굵직한 대북 현안에서 좀처럼 우리 첩보망에 적시에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가끔은 일본 정보 부서가 구축한 거점 협조자들이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2010년대 중반 일본의 TV아사히 방송사 등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중국 다롄 등 해안 지역에서 방송 장비를 설치하고 일주일간 기다린 끝에 서해로 날아간 미사일 발사 장면을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8월 광복절 즈음해 심근경색으로 김정일이 쓰러졌으나 초기 일주일간 전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평양 의료진의 치료에 불안을 느낀 수뇌부는 프랑스 당국에 명의(名醫) 지원을 요청하였다. 평양은 뇌 사진을 파리로 보냈고 비밀리에 프랑스 의사들이 정보요원들과 평양에 도착하면서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외부에 노출되었다.

 

프랑스 정보 당국(DGSE)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정보를 공유했다. 우리 정보 당국이 CIA로부터 프랑스 뇌신경외과 전문가가 평양을 방문했다는 정보를 전달받은 것은 8월 29일이었다. 대북 정보 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안보 부서는 ‘깜깜이 수준’이었다. 미국과의 정보 공조로 겨우 북한 최고지도자의 위중 상태를 파악하였다. 한미 정보 공동체(intelligence eyes)의 중요성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당시의 첩보 수집 능력과 상황도 2008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51시간 만에 유고(有故)를 공식 발표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와 비교하면 17시간이 더 걸렸다. 평양 기온이 영하 12도를 기록한 날 겨울 아침 특별열차 편으로 현지 지도에 나선 김정일은 심근경색(stroke)으로 사망했다. 12월 18일 새벽 1시 북한 국경 경비대가 두만강과 압록강 국경을 봉쇄했다. 사망 당일 북한이 중국 측에 중대 사건이 일어났음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하루 뒤 사망 관련 억측을 차단하기 위해 평양은 부검을 실시했다. 조선중앙TV는 “2011년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 해부 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었다”고 보도했다. 모든 조치들을 마치고 평양은 232명의 장의위원과 영결식 일정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의 시긴트(SIGINT·신호 정보, 각종 장비를 활용해 통신·통화 등을 도·감청해 얻은 정보)와 휴민트는 작동하지 않았다. 정보 당국이 김정일 사망을 북한의 공식 발표 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국정원장의 국회 증언을 통해 이틀 후에 알려졌다.

 

과거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 사례를 장황하게 복기하는 것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에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에서 CIA가 한국 국가안보실장 주재 회의를 도청한 듯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우리의 대응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행태에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하책(下策)이다. 외교 채널을 통한 유감 표명으로 향후 도청이 중단된 사례는 없다. 도·감청에 대해 모든 국가는 이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NCND 입장이다.

 

동맹국 미국의 ‘친구 도·감청’ 논란은 역설적으로 대북 시긴트 수집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싫든 좋든 남의 은밀한 이야기를 엿듣는 국익 정보전쟁의 시대다. 전 세계 정보기관이 수집하려는 고급 정보는 거의 시긴트에 의존하고 있다. 대북 휴민트를 통한 정보 수집이 벽에 부딪힌 이상 시긴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국 공안의 거친 단속과 스파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으로 북중 국경은 접근 불가다. 북한도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광케이블을 구축하여 통신망 보안에 주력하고 있다.

 

북핵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평양의 내부 상황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정보 수집은 필수적이다. 최첨단 보안 기술을 개발해 초격차로 도·감청을 막아내면서도 철저한 준비로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방화벽(fire wall)을 튼튼히 하는 동시에 평양의 방화벽은 뚫어야 하는 것은 정보 전쟁의 냉엄한 현실이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결정적 행동’ 운운하며 다양한 도발에 나설 태세다. 평양의 인사이드 스토리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월간조선 05월 호

‘문재인 정부’ 때 집행된 ‘남북협력기금’ 4300억원 용처

기금 대부분이 인건비·운영비 등 ‘고정비’로 나가는 현실

 

⊙ 친북단체, 간첩단에 흘러들어 간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
⊙ ‘북한 독재정권’이 존재하는 한 ‘대북 지원’은 ‘정권 유지비 지원’
⊙ 문재인 때 173억원 들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김정은이 폭파!
⊙ ‘남북협력’ 불가능한데도 5년 동안 880억원 지원받은 사업들의 ‘실상’
⊙ 19년 동안 468억원 투입했는데도 완성 기약 없는 《겨레말큰사전》
⊙ 2016년에 개성공단 폐쇄했는데… 2017~2021년 개성공단 명목으로 집행된 432억원은?
⊙ 30년 전 시작된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환상’ 거두고 ‘법 개정’ 논의해야

사진=뉴시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 집행 실태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는 2월부터 ▲남북교류협력기금 집행 ▲보조사업 실태 ▲보조사업자 선정 과정 ▲사업의 적정성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박원순(朴元淳) 전 시장 시절 집행된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지원받은 민간단체들이 세금으로 ‘친북적’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대대적인 감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창원 간첩단’ 사건과 관련된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의 조직원들이 5개 민간단체를 통해 김경수(金慶洙) 전 경남지사 재임 당시 경상남도 등으로부터 4억600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으면서 역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미·친북(反美·親北) 교육’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사례를 고려하면,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은 ‘통일운동’이란 이름으로 전개되는 친북·종북·이적(親北·從北·利敵) 세력의 ‘국가 전복 활동’으로 흘러들어 갈 위험이 있고, ‘정치적 위상’을 올리거나 ‘대외 선전용 치적’을 쌓고 싶어 하는 단체장의 ‘쌈짓돈’ 식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월간조선》은 지난 3월호 기사 “‘쌍방울 불법 송금’ 계기로 본 지자체 대북사업 실태”를 통해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 집행 실태를 집중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기금 규모가 가장 큰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은 제외했었다. 이번에는 편성 기금이 1조8000억원(2023년 기준)에 달하는 통일부 남북협력기금의 지난 5년간 집행 내역을 입수해 그 지원 목적과 효용성에 문제가 없는지를 들여다보았다.


32년 전, 노태우 정부 때 만든 ‘남북협력기금’

▲노태우 정부는 남북한 사이의 상호 교류·협력 사업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91년 3월 ‘남북협력기금’을 만들었다. 사진=조선DB

 

 남북협력기금은 노태우(盧泰愚) 정부 당시인 1990년 8월 1일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과 그 이북 지역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하 남북교류협력법)’과 ‘남북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남북협력기금을 설치하고 남북협력기금의 운용과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정한’ ‘남북협력기금법(1990년 10월 1일 시행)’에 근거한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한 사이의 상호 교류·협력 사업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91년 3월 ‘남북협력기금’을 만들었다.

‘남북협력기금법’에 ‘남북협력기금’의 용도는 ▲남북한 주민의 남북 간 왕래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지원 ▲문화·학술·체육 분야 협력 사업에 필요한 자금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지원 ▲교역 및 경제 분야 협력 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보증 및 자금의 융자, 그 밖에 필요한 지원 ▲교역 및 경제 분야 협력 사업 추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영 외적인 사유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보험 ▲남북 교류·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환전 등 대금 결제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자금을 융자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 지원 및 손실 보전과 금융기관으로부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지정통화(非指定通貨, 북한에서 발행·유통하는 화폐)의 인수 ▲그 밖에 민족의 신뢰와 민족공동체 회복에 이바지하는 남북 교류·협력에 필요한 자금의 융자·지원 및 남북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사업의 지원 ▲차입금 및 ‘공공자금관리기금법’에 따른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의 예수금의 원리금 상환 ▲기금의 조성·운용 및 관리를 위한 경비의 지출 등이다.


현 상황에서 ‘남북 교류·협력’은 불가능

‘남북협력기금’이 집행되는 사업 분야는 크게 ▲인적 왕래 지원 사업 ▲사회문화 교류 지원 사업 ▲교역 및 경제협력 지원 사업 ▲인도적 지원 사업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지금처럼 ‘북한 독재 정권’이 존재하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일 수밖에 없다.

인적 왕래 지원 사업의 실상을 보면, 북한 주민의 방남(訪南)이 제한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남한 주민만의 일방적인 방북(訪北)에 불과하다. 또한 방북한 남한 주민이 접할 수 있는 건 북한 독재 정권 특성상 ‘대외 선전용’으로 조성된 시설이나 ‘정권 홍보용’으로 기획한 행사에 독재 정권이 붙인 안내원 명목의 ‘감시원’이 고작이다.
 

이를 고려하면, 해당 사업 목적인 ‘남북한 주민의 접촉 및 왕래의 활성화를 통한 남북 분단의 이질성 극복 및 민족공동체의 회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소위 ‘국제 체육경기 단일팀 구성’ ‘공동조사 연구’ ‘합동 공연’ 등으로 진행되는 사회문화 교류 지원 사업도 마찬가지다. 해당 행사들에 참여하는 북한 측 인사들을 북한 독재 정권이 계급, 사상 무장 등을 따져 선별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진정한 ‘교류’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또한 그 사업 내용이 ‘일회용 전시성 행사’에 그칠 뿐 아니라, 북한 독재 정권의 ‘대남(對南) 선전·선동’ ‘위장 평화 공세’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 가까운 예로 문재인(文在寅) 정부 당시 북한 김정은이 ‘비핵화 사기극’을 추진하기 전에 태권도 시범단과 공연단을 보내고, ‘평창 동계올림픽 단일팀’을 구성했던 일을 떠올릴 수 있다.


‘경협’이란 핑계로 진행된 ‘퍼 주기’

▲북한 김정은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하지 않는 한, ‘남북 교류·협력’이란 미명을 앞세운 ‘대북 지원’은 불가능하다. 사진=뉴시스  

 

인도적 지원 사업은 북한 독재 정권의 폭압과 착취 속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사업이다. 이런 까닭에 남북한 정세와 무관하게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 역시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적화(赤化) 망상’을 버리지 않고, ‘민생’을 외면하며 ‘군비 증강’에만 몰두하는 북한 독재 정권의 ‘체제 유지비’를 우리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북경협’ 참여 기업들에 시중 금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빌려주고, 사업을 지원하는 ‘교역 및 경제협력 지원 사업’ 역시 ‘경제적’ 측면에서 봤을 때는 쓸모없다. 정권에 대한 신뢰도, 정치적 안정성, 사회 투명성, 각종 규제 정도를 고려하면 북한은 애초에 투자 또는 사업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미 전 세계와 교역하는 것은 물론 다수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상호 간 시장을 개방한 우리 입장에서 각종 손실 발생 위험을 감수하고, 국민 세금으로 사업자들에게 혜택을 줘가면서까지 불리한 교역 또는 대북 투자를 할 ‘경제적 이유’는 없다. 소위 ‘대북 교역·경협’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사업이다. 따라서 ▲남북 간의 협력상황 정도 ▲국내외 정치상황 변화 등에 직간접적 타격을 입을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교류·협력 기반 조성 사업 역시 핵을 포기하지 않고, 대남 적화 야욕을 버리지 않는 ‘북한 독재 정권’이 있는 한 진행하기 어렵다. 우리의 일방적인 대북 지원에도 북한 독재 정권은 그걸 수용하는 대가로 또 다른 ‘요구’를 하는 행태를 지금까지 보였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이른바 ‘교류·협력 기반 조성’은 국민 정서와 들어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상기한 문제와 무관하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또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하지 않으면 ‘대북 제재 완화 또는 해제’를 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지금의 북한 독재 정권이 있는 한 ‘남북 교류·협력’이란 미명을 앞세운 ‘대북 지원’은 불가능하다.
 

 
 

대북 제재하에서 4300억원 집행한 ‘文 정부’

‘남북협력기금’ 관리 업무를 수탁한 한국수출입은행의 〈연도별 기금 지원 현황〉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2017~2021년) 기간, ‘남북협력기금’ 집행 실적은 1053건 4305억원이다.

지금도 사정은 같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우리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2010년 3월)’에 대응해 독자적인 대북 제재인 ‘5·24 조치’를 시행했다. 2016~2017년,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강행할 때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과 독재체제 유지에 쓰는 자금의 유입을 차단하는 대북 제재 결의안(2270호, 2321호, 2371호, 2375호, 2397호)을 연달아 내놨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전에 이미 안보리 대북 제재 2270호·2321호가 시행됐고, 그해 하반기에 추가로 2371호(8월 5일)·2375호(9월 12일)·2397호(12월 23일)가 나왔다. 미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 개인을 제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실상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대북 지원’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악(惡)조건’ 속에서도 ▲2017년 684억원 ▲2018년 2117억원 ▲2019년 750억원 ▲2020년 442억원 ▲2021년 312억원 등 총 4305억원을 지출했다. 연평균 861억원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이 돈을 어디에 썼을까. 통일부가 작성한 〈연도별 남북협력기금 편성·집행 현황〉과 〈남북협력기금 집행단체 내역〉으로 그 용처를 확인했다.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의 사업비 집행 항목은 크게 ▲통일 정책 ▲남북 사회문화 교류 ▲인도적 문제 해결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협력 등이다.


매년 기금 받는 단체들의 ‘정체’는?

▲문재인 정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운영’에 ‘남북협력기금’ 173억원을 썼지만, 북한 김정은은 이를 2020년 6월 16일 ‘폭파’했다. 사진=뉴시스

 

이 중 사업 추진 명분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인도적 지원(642억원)과 ▲이산가족 교류 지원(134억원) ▲남북 경협·교역(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기업 피해 지원(2103억원)을 제외하고서, 대표 사업들을 추렸다.

사업별 지출 현황을 보면, 통일부가 ‘통일 정책’ 명목으로 진행한 세부 사업은 ‘한반도통일 미래센터 운영’뿐이다.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한반도통일 미래센터는 통일부 소속으로 2014년에 개관한 통일 체험 연수 시설이다. 문재인 정부 기간(2017~2021년), 해당 시설에 투입된 ‘남북협력기금’은 총 217억원이다. 이 중 센터 시설 관리비로 152억원, 인건비로 36억원(통일부 예산으로 지급되는 공무원 급여 75억원은 인건비에서 제외) 등 총 188억원이 지출됐다. ‘남북협력기금’ 집행 항목 중 ‘통일 정책’ 분야의 단 하나뿐인 사업인 ‘한반도통일 미래센터’의 경우 투입된 기금의 약 87%가 시설 유지비와 인건비로 쓰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시설 설립·운영 취지에 맞게 ‘체험 연수 프로그램 운영’ 명목으로 집행된 기금은 5년 동안 29억원, 연평균 약 6억원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이 밖에 ‘남북 사회문화 교류’ ‘개성공단 등 남북 경제협력’ 등의 명목으로 진행된 사업에는 또 기금이 얼마나 집행됐을까. 통일부가 작성한 〈연도별 남북협력기금 지출 내역〉을 보면, ‘문재인 5년’ 동안 ‘남북협력기금’이 집행된 대표적인 지원 사례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등의 사업이다. 이들 단체는 매해 같은 사유로 ‘남북협력기금’을 받았다. ‘문재인 5년’ 동안의 단체별 지원 기금 규모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52억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144억원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255억원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432억원 등이다. 총 880억원이나 된다. 이들 단체는 무슨 명목으로 해마다 기금을 지원받았고, 대체 어떤 성과를 냈을까. 이 밖에 금액이 많은 사업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운영’이다. 통일부는 2018년 9월에 개소한 이 시설을 운영하는 데 총 173억원을 썼다. 이 같은 세금이 투입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20년 6월, 북한 독재 정권에 의해 ‘폭파’됐다.

 
 

19년째 소식 없는 《겨레말큰사전》

▲2005년부터 시작된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에는 19년 동안 468억원을 투입했으나, 사전 완성·발간은 기약이 없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5년’ 동안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 유물 자료 정리 사업(2018년)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운영(2018~2021년) ▲개성 만월대 열두해의 발굴전 순회 전시(2020~2021년) 등을 진행한다는 이유로 ‘남북협력기금’ 52억원을 받았다. 같은 기간, ‘남북협력기금’ 255억원을 받은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정권 교체 뒤에도 비슷한 규모로 기금을 지원받는다. 2022년의 경우에는 ▲남북 교류·협력 관리 업무 등 ▲남북 및 국제사회 대북 협력 온라인 소통채널(웹 페이지) 구축 사업 ▲대북지원사업 통합 관리 체계 구축 및 대북 지원 정보시스템 운영 ▲산림 협력 사업 등의 명목으로 46억원을 받았다.

‘문재인 5년’ 동안 144억원을 받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하 편찬사업회)’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이다. 2005년에 발족한 해당 단체의 이사장은 원래 시인 고은태(필명 고은)씨였다. 고씨는 2006년 1월부터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2018년까지 줄곧 해당 단체의 이사장을 했다. 고씨 사임 후 이사장은 ‘문재인 멘토단’으로 활동한 바 있는 염홍경(필명 염무웅) 전 영남대 교수였고, 현 이사장직은 염씨의 뒤를 이어서 민현식 전 국립국어원장이 맡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노무현(盧武鉉) 정부 때인 2005년부터 진행된 사업이다. 해당 사업과 관련한 근거 법률까지 있다. 이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의무적으로 세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근거 법률인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의 유효기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애초 2007년 해당 법률 제정 당시 부칙으로 규정한 ‘유효기간’은 7년(2007~2014년)이다. 2013년, 사업 진척도가 60%에 불과하자 법률을 개정해 12년(2007~2019년)으로 연장했다. 2018년에 또 유효기간을 15년(2007~2022년)으로 하는 법률 개정을 통해 사업 종료 시점을 2022년으로 늦췄다.

이처럼 두 차례 개정을 통해 사업 기간을 연장했는데도 사전 완성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21년에는 또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법률 유효기간을 21년(2007~2028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같은 해 12월 2일에 개최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애초에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 금액은 250억원이었으나, 2005년부터 2022년까지 투입된 금액은 441억원에 달한다. 매년 약 25억원이 든 셈이다. 올해 편성된 27억원을 모두 집행한다고 가정하면, 19년 동안 468억원을 쏟아붓는 격이지만, 이럼에도 남과 북의 30만~40만 개 어휘를 추려 담겠다는 《겨레말큰사전》이 과연 언제 편찬될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가 돈 내고 北에 애걸하는 ‘이상한 사업’

‘민족 동질성 회복’이란 그 사업 취지 자체는 긍정할 대목이 있지만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사업 추진 시기의 적절성 ▲사업 진행 과정의 투명성과 안정성 등을 따질 경우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편찬 작업 진척도는 사업 시작 19년이 된 지금까지도 80%에 불과하다. 통일부나 편찬사업회는 “남북관계가 경색된 탓에 남북공동회의를 열지 못해 사업 진척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해명하는데, 이는 해당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인 ‘대북 종속성’을 자백하는 것과 같다.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 제공자는 북한 독재 정권이다. 핵을 비롯한 각종 대량살상무기를 개발·보유하고, 대남 적화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 독재 정권이 각종 도발을 자행하며 우리 안보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소위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할 수 없다. 설사 표면적으로 북한이 이른바 ‘평화 공세’를 펼 때도 이는 마찬가지다. 북한이 ‘사대 매국 파쇼 독재’라고 비난했던 박근혜 정부 당시 해당 사업 진행차 이뤄진 접촉이 5회였던 반면, ‘문재인 5년’ 동안에는 단 1건도 없다.

바꿔 말하면, 좋게 말해 ‘대북 유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상당수 국민에게는 ‘대북 굴종적’이란 비판을 받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강조하고, 현 정부 역대 통일부 장관들이 수시로 ‘재개 희망’을 밝혔는데도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다. 결국 사업비는 분명히 우리 국민이 부담하는데, 해당 사업 소요 기간과 완료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은 김정은이 쥔 이상한 사업을 계속 진행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가 아무리 애걸해도 ‘북한 최고 존엄’ 김정은이 ‘허락’하지 않으면 진행될 수 없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에 앞으로 5년 동안 125억원(추산치)을 추가로 집행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편찬사업비’는 지원금의 ‘12%’에 불과

이런 입장에 대해 “분단 후 남북 언어 이질화가 심각하므로 사전을 꼭 발간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소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김정일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과 김정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등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이 밖에 각종 남북 접촉에서도 마찬가지였던 점을 고려했을 때 ‘언어 이질화’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이와 함께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가 쏟아내는 각종 궤변, 강변을 우리가 너무도 명확하게 이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자금을 들여 해당 사업을 왜 십수 년째 진행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겨레말큰사전》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남한에는 어휘 약 50만 개를 수록한 《표준국어대사전》, 북한에는 44만 개 어휘를 담은 《조선말대사전》이 있다. 남북한 서로 뜻풀이가 어려운 단어가 있을 때는 기존의 어휘를 집대성한 사전을 참고하면 충분하다. 분단 이후 우리는 《조선말큰사전》을 비롯한 각종 국어사전을 편찬했다. 1999년에는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을 발간했고, 2008년에는 개정판을 냈다. 북한도 1992년에 《조선말대사전》을 편찬했고, 2007년과 2017년에 증보판을 발행했다. 즉 남한과 북한의 어휘를 종합하고 신규 어휘를 추가 수록하면 되는데도 왜 이토록 오랜 기간, 많은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서 무조건 ‘남북한 통합 사전’을 발간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작업은 남북한이 진정한 ‘교류·협력’을 할 수 있을 때 단기간에 추진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비용 측면에서도 ‘경제적’이다. 굳이 지금, 많은 돈을 들여, 비효율적인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의문은 사업 진척은 더딘데 왜 돈은 비슷한 규모로 계속 쓰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5년’ 동안 ‘편찬사업회’가 받은 ‘남북협력기금’은 ▲2017년 28억원 ▲2018년 29억원 ▲2019년 28억원 ▲2020년 31억원 ▲2021년 33억원 등이다. 이 지원금 대부분은 편찬사업회 인건비와 사무실 임차료 등 ‘고정비용’으로 쓰인다. 편찬사업회가 공개한 ‘수익비용계산서’에 따르면 해당 기간의 인건비(급여+퇴직금+4대 보험료)와 사무실 임차료는 각각 사업비(남북협력기금+기부금+이자수익+기타 사업 수입) 144억원의 63%, 11%다. 즉 전체 사업비의 74%가량이 인건비와 사무실 임차료로 지출되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편찬 사업비’로 쓴 금액은 전체 사업비의 12%인 17억원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서, 국회 예산정책처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은 남북 집필진 간의 공동회의가 개최되지 못하여 진척도가 부진한 반면 보조금의 8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 및 경상경비 등 고정비 지출이 매년 발생하고 있으므로, 향후 보다 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개성공단 폐쇄 7년 지났는데 ‘매년 86억원’
 

▲2016년 2월 이후 개성공단 가동은 전면 중단됐는데, 공단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설립된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는 연평균 86억원이 투입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관리위원회에 432억원을 지원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기관이다. ▲개성공업지구의 개발에 대한 지원 대책의 수립·시행 ▲개성공업지구 관리기관에 대한 지원 및 운영 지도·감독 ▲개성공업지구 현지 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의 수립·시행 ▲개성공업지구 관리기관의 각종 증명 발급 및 민원 업무의 대행 등의 사업을 수행한다. 재단 이사장이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한다. 현재 이사장은 ‘문재인 청와대’에서 국가안보실 통일정책비서관 등을 역임한 서호 전 통일부 차관이다. 서 전 차관은 2021년 12월에 임명돼 지금까지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 대한 지원과 관련한 문제는 바로 개성공단이 이미 가동이 중단된 지 7년이 됐다는 점이다. 개성공단의 가동은 2016년 2월 10일부로 전면 중단됐다. 이는 당시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1월 6일)과 미사일 발사 도발(2월 7일)에 따라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북한 지역에 머무는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북한 독재 정권이 개성공단에서 발생하는 외화 수입을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전용할 수 없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정부의 결정이었다. 당시 통일부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무기와 미사일을 동원한 무력도발이 심화함에 따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며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이제는 우리 정부 의지, 북한 김정은의 바람과 무관하게 국제사회가 개성공단 재개를 허용치 않는다. 안보리 대북 제재는 ‘대규모 대북 송금 시스템 구축’을 금지하고 있다. 즉 개성공단처럼 북한 독재 정권에 연평균 1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안겨주는 개성공단은 북한이 핵을 포기해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재개될 수 없다. 한마디로 북한 독재 정권이 붕괴하지 않는 한, 개성공단은 가동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북 제재 대상’ 개성공단은 재개 불가

대북 제재가 아니어도 우리 정부가 재개를 추진할 이유는 없다. 2016년 당시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는 연이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결과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우리 국민 안전을 보장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이뤄졌다.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도 핵 개발을 멈추지 않는 등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도 개성공단을 재개한다면, 이는 반성하지 않는 북한에 굴복해 ‘나쁜 보상’을 하는 것과 같다.

또한 개성공단은 우리 사회 남남(南南)갈등을 심화하고, 대북 협상력을 훼손해왔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할 때 개성공단 진출 업자들은 ‘개성공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정부의 ‘가동 중단’ ‘폐쇄’ 조치에 반대했다. 이해 당사자의 ‘반대’ 목소리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북 협상력은 일정 부분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독재 정권도 이를 노리고 항상 개성공단을 놓고 ‘공갈’ 또는 일종의 ‘대남 갑질’을 해댔다.

북한이 도발하고,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에 나간 국민이 북한의 인질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적극적인 대북 조처를 하지 못했다. 우리 언론은 북한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궁금해하며 개성공단을 주시했다. 북한은 2009년 3월 3회에 걸쳐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했다. 우리 측 근로자를 억류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상습적으로 비현실적인 북한 근로자 임금과 토지 임대료 인상을 요구했다. 북한의 일방적 조치에 따라 공단 가동이 불확실해지고, 우리 근로자 안전이 불안해졌다.

 

 유사시 우리 근로자와 생산시설이 북한의 볼모로 전락할 가능성 때문에 북한이 대남 도발을 자행해도 단호히 대응할 수 없었다. 개성공단은 우리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개성공단으로 인해 우리가 감수해야 할 ‘정치·군사적 위험’은 너무나도 확실했던 반면, 그 경제적 이점은 불명확했다. 개성공단의 유일한 장점은 ‘저렴한 인건비’다. 이런 이유로 매출원가에서 ‘인건비’ 비중이 높은 ‘노동 집약적 산업’ 부문의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진출했지만, 냄비나 신발을 만들어 파는 게 국가 경제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를 할까. 이미 시장에서 도태됐어야 할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진출해 정부의 ‘정치적 도움’과 ‘경제적 지원’을 받아가며 수익을 올린다고 해서 그게 우리 경제 성장에 그 무슨 도움이 될까. 이처럼 개성공단은 극소수 업자에게는 ‘기회의 땅’일지 몰라도,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재가동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실익이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기왕에 조성한 공단과 현지에 있는 우리 기업들의 생산시설 때문에 재가동해야 한다고 해도, 이는 북한이 완전하게 핵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고, 한반도 적화 야욕을 포기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기금 지출 행태는 ‘尹 정부’ 들어서도 같아

문제는 앞서 살핀 사업들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출은 문재인 정부 때만의 일이 아니란 점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박근혜(朴槿惠) 정부 때도 그랬고, 현재 윤석열(尹錫悅) 정부에서도 같은 사업에 비슷한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인건비·사무실 운영비 등 고정비로 대부분 지출되는데도 기금 지원을 명시한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사업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기왕 시작했다는 이유로 세금을 계속 쏟아붓고 있다.

이런 까닭에 차기 총선 이후 정부와 국회는 ‘남북교류협력법’과 그 관련 법의 당위성에 대해 재검토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북 지원’의 근거가 되는 ‘남북교류협력법’의 경우가 그렇다. 해당 법률이 제정될 당시인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은 전 세계가 ‘탈냉전 시대가 오고 있다’라고 ‘착각’하던 때였다. 이와 같은 시기, 노태우 대통령은 이 같은 대외 환경 변화, 경제성장에 따른 자신감에 힘입어 1988년 7월 7일, “민족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공동체를 이룩해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 선언)’이다.

그 이듬해인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됐다. 그 시기, 동유럽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공산 정권이 붕괴하고 ‘민주화’가 진행됐다. 당시 북한은 ‘공산 경제 블록’이 소멸하면서 ‘경제난’에 허덕였다. 소련과 중국은 북한을 지원할 여력 자체가 없었다. ‘북한 붕괴론’이 대두했다.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됐다. ‘남북교류협력법(1990년 8월 제정)’은 이 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환상’ 버려야 할 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너무 다르다. 국제 정세가 급변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실상과는 다른 상황이었던, 30년 전에 만든 법률에 사로잡혀서 국민 세금을 헛되이 쓰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남북교류협력법’ 제정·시행 당시는 ‘탈냉전 시대’로 접어들어 북한이 기댈 곳이 없었지만, 지금은 ‘신(新)냉전’ 시대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는 처참한 상황이지만, 대북 제재를 피해 중국과 러시아가 ‘체제 유지’에 필요한 금품을 제공하고 있다. 또 북한 독재 정권 역시 대북 제재로 ‘돈줄’이 막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가상자산 탈취’다. 2022년에만 북한은 전 세계에서 약 8000억원에 달하는 가상자산을 탈취했다. 이는 2020년 기준 북한의 무역적자 6억8000만 달러를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아무리 대북 제재를 한다고 해도 북한 붕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군사적 역량 역시 ‘남북교류협력법’ 제정·시행 당시와 너무 다르다. 과거 북한은 재래식 전력만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핵무기를 비롯한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불시에 핵 공격을 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갖고 있다. 이런 공격용 무기를 앞세워 이제는 대놓고 우리를 향해 ‘핵 공갈’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을 가진 북한 독재 정권의 ‘체제 유지비’를 대신 부담하는 ‘대북 지원’을 하는 것은 ‘자살(自殺)’과 다름없다.

이런 까닭에 윤석열 대통령 역시 3월 28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앞으로 북한 퍼 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에 핵 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라”고 통일부에 지시했다고 할 수 있다.


기금의 ‘용도 전환’과 ‘법 개정’ 검토해야

교류(交流)란,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함”, 협력(協力)은 “힘을 합하여 서로 도움”을 뜻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남북한의 문화와 사상 따위가 통하고, 서로 돕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돼야만 한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 정부 또는 지자체의 ‘일방적인 퍼 주기’는 ‘남북 교류·협력’과 거리가 멀다. “서로 통한다”는 교류는 북한 독재 정권의 태생적 속성을 고려했을 때 남북한 사이에서 불가능하다. 북한과의 ‘협력’ 또한 마찬가지다. 북한 독재 정권이 있는 한, ‘남북 협력’ 또는 ‘남북 경제협력’은 ‘환상’이다. 우리 경제력의 1/50도 채 되지 않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북한과 대체 어떤 분야에서 ‘경제적 협력’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런 노력과 자원을 다른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쓴다면 국가 경제 성장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또한 ‘남북 교류·협력’의 근거인 ‘남북 사이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규정한 ‘남북교류협력법’ 취지와 부합한다고 평가하기 쉽지 않다. 해당 법률에는 남북 교류·협력의 목표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진정한 ‘교류·협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이뤄지는 대북 지원은 우리 국민 세금으로 사실상 북한 독재 정권의 체제 유지비를 대납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교류협력법’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 국가 최상위법인 ‘헌법’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30년 전 시대 상황에 따라 제정·시행된 법률을 이제는 재검토할 때가 됐다. 거기서 비롯된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미몽’ ‘환상’을 거두고, ‘남북 교류·협력’의 최종 지향점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 지향점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라면, 지금의 ‘남북협력기금’을 ▲북한 독재 정권 붕괴 ▲북한 민주화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 연대 등에 쓰는 식으로 용도 전환과 그에 필요한 ‘남북교류협력법’의 개정을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05월 호 

대북·통일 협상의 실패사 연구

북한의 내재적 불성실과 허위, 惡을 직시해야

⊙ 이용준, “지난 30년간 북한 핵 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되거나 해결의 문턱에 접근한 적 없어”
⊙ 송민순, “북한이 체제 유지 위해 무슨 일이든 해도 핵 카드는 끝까지 유지하려 할 것”
⊙ 안인해, “한반도 문제는 주변국과 외교와 협상으로 풀어야 종국적인 목적 달성할 수 있어”
⊙ 한용섭, “북핵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외교적 조치가 남아 있어”
⊙ 강인덕, “‘민족감상주의적 통일’론 또는 ‘무조건 통일’론 등을 표방하는 자들은 ‘얼치기 민주주의자들’”

[편집자 註]
이 글은 ▲이용준(李容濬)의 《북한 핵, 새로운 게임의 법칙》(2004) ▲송민순(宋旻淳)의 《빙하는 움직인다: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2016) ▲안인해(安仁海)의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 패권의 딜레마 Ⅱ》(2021) ▲한용섭(韓庸燮)의 《핵 비확산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핵 정책》(2022) ▲강인덕(康仁德)의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편조백방(遍照百邦), 투시백년(透視百年)의 기세로》(전 2권, 2022)에 대한 종합 서평이다. 이 책들을 통해 북한체제의 본질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2008년 6월 27일 북한은 영변 핵 냉각탑을 폭파했다. 당시 북한의 냉각탑 폭파를 ‘핵 폐기’ 의지로 받아들인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지만 북한은 핵 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냉각 시설을 복구해 핵 시설을 재가동했다. 사진=뉴시스

 

새해에 들어와서도 핵탄두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북한의 핵 위협은 끊이지 않고 있다. 동시에 그사이 한국 안의 여러 곳에서 북한이 은밀하게 전개했으나 지난날의 몇몇 ‘진보·좌파’ 정부가 포착하지 못했거나 ‘묵인’했던 것으로 의심되는 조직적 간첩 활동들이 작년에 출범한 ‘보수·우파’ 정부에 의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자연히 대한민국의 안보상황 그리고 현 정부를 포함한 우리 역대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주제와 연관된 몇몇 저술을, 그 저술 전체가 아니라 그 저술에 포함된 북핵에 관한 설명이나 언급에 초점을 맞춰, 출판된 해의 순서에 따라 살피기로 하겠다.

 

이용준 北核대사의 경고

▲이용준(李容濬)의 《북한 핵, 새로운 게임의 법칙》(2004)

 

저자 이용준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면서 외무고시를 통해 외무부(오늘날의 외교부)에 입부한 뒤 여러 부서를 거쳐 차관보와 말레이시아 대사 및 이탈리아 대사를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북한경수로협상 한국대표 및 사무국 정책부장,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 남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 6자회담 차석대표, 북핵 담당대사 등 중책을 맡으며 통산 30년 동안 북한을 상대로 한 협상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에 참여했다. 이론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던 그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 이후 15년에 걸쳐 4권의 책을 펴냈다. 《북한 핵,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비롯 《게임의 종말: 북핵 협상 20년의 허상과 진실 그리고 그 이후》(2010),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 한반도 핵게임의 종말》(2018), 《대한민국의 위험한 선택: 전환기 한국 외교의 네가지 위기》(2019) 등이다.

일련의 책들은 북핵의 진상과 북핵 협상의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내주면서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거듭하고 있다. 이 대사는 우선 6·25전쟁이 휴전으로 매듭지어진 1953년 7월 직후부터 김일성이 일관되게 추진한 핵 개발의 역사를 추적했다. 북한 핵 개발의 역사는 핵 개발에 대한 북한의 끈질긴 욕망을 보여주면서 핵 개발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님을 확신시켜준다. 이 대사는 이어 북한의 평안도 영변에서 핵 시설이 관찰된 1989년 이후 북핵이 한국 그리고 미국·러시아·중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쟁점으로 등장하고 전개된 과정을 정확히 복원했다. 여기서도 북한이 얼마나 집요하게 핵 개발에 매달려왔던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대사는 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시키려던 국제사회에서의,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쳤던 남북정상회담에서의 외교적 노력이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2000년의 6·15공동선언을 비롯해 몇 차례의 화려한 다짐이 발표됐지만, 글자 그대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을 뿐,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건 불용인하건 관계없이 북한은 이제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러한 결과가 빚어진 것일까? 이 대사에 따르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지난 약 30년의 세월 동안 온갖 오판과 시행착오와 고의적 방치를 반복한 결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고, 북한은 결국 이 게임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 결론에 대해, 그는 “과거 우리나라의 어느 정부는 북한 핵 문제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모르는 체하기도 했고, 어느 정부는 핵 문제가 모두 해결이라도 된 듯이 과장된 홍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북한 핵 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되거나 해결의 문턱에 접근한 적이 없었고, 단 한 순간도 상황이 호전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왔을 뿐”이라고 부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북한의 전쟁불사 협박에 굴복해 미국의 대(對)북한 유엔제재 추진과 군사압박 움직임을 막은 김영삼(이하 YS) 정부, 그리고 대북 압박이나 응징보다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견제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김대중(이하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등을 비판했다. 또 《중앙일보》와의 지난 3월 13일 자 인터뷰에서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한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여기서 그는 ‘북핵 협상 과정에서 고비마다 번뜩였던 북한의 외교술’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현실과 희망사항을 혼동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자 한’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를 비판하고 “판단은 항상 실체적 진실과 사실의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송민순 장관의 ‘차가운’ 관찰과 ‘3M 방식’

 ▲송민순 당시 베이징 6자회담 수석대표 등 한·미·일 3국의 수석대표들이 2005년 7월 14일 서울 외교통상부 청사에 모이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북핵을 걱정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구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빙하는 움직인다》이다. 송민순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통해 외무부에 입부했다. 동서분단의 현장이었던 서베를린총영사관의 부영사로 출발해 YS의 국제안보비서관, DJ의 외교비서관,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거쳐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1999년 제네바 4자 평화회담 대표 및 2005년 베이징 6자회담 수석대표로 봉직했으며 뒤의 경우 9·19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폴란드 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송민순은 외교관 생활을 마친 뒤, 18대 국회의원에 이어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하던 때 이 책을 썼다. “지나온 현장에 밀착해봐야 앞으로 갈 길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는 특히 2005년 1월에 6자회담 수석대표로 시작해 2006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은 때의 일을 기록에 근거해 되살렸다. 송 장관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참으로 많은 일화를 실감 나게 소개했다. 북핵 협상에 참여한 북한 외교관들, 예컨대, 외무성의 김계관(金桂寬) 부상의 경력과 행태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다. “산전수전을 겪은 협상가[인] 그는 매우 노련해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바깥세상의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는 구절이나 “북측 대표는 배석자 없이 남측과 대화하는 것을 꺼렸다”는 구절, 그리고 “북한은 한국과는 가급적 대화를 회피하다가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는 우리를 찾아왔다”는 구절 등은 북한체제의 성격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북핵에 관한 여러 기록과 저술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북핵에 관한 다자회담에 여러 차례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송 장관은 몇 가지 ‘차가운 교훈’을 제시했다. 그것들 가운데 으뜸은 “북한은 체제와 정권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핵무기 옵션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하나의 작은 자료로 북한이 중국의 고위 인사들에게 전한 말을 소개했다.
 

 

“북한은 1999년 NATO 공군이 세르비아 폭격을 개시하고 이어 2001년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대통령을 국제전범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보고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강해졌고, 이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과 리비아의 카다피(Múammar al Qaddafi)가 비슷한 운명에 처하자 핵 보유를 정권 보장의 뗄 수 없는 장치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송 장관은 “북한은 정권과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핵 카드는 끝까지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핵 개발을 계속한 사실을 상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북한은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위장하고(mendacity), 호전적으로 나오며(militancy), 억지 지원을 요구하는(mendicancy) 전술을 혼용한다”고 지적하며 그것을 ‘3M 방식’으로 명명했다.


‘석양이 지고 나면 별들이 하늘을 채운다’

▲송민순(宋旻淳)의 《빙하는 움직인다: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2016)

 

상황이 이처럼 불길한데도, 송 장관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앞으로도 서로 책임을 넘기면서 표면적으로는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제스처를 이어갈 것[이지만…] 모두 독자적으로나 합작으로나 해결에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한반도는 냉전의 바닥에 다가가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송 장관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협상과 외교를 포기하자는 뜻을 비치는 것도 아니다.

노련한 외교관답게 “적대적 상태에서도 서로에 이익이 되면 협상을 개시한다”고 말하면서, “협상은 작은 성공에서 시작해서 큰 성공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동시에 “통일이 규범이나 당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특히 ‘정권을 초월하는 통일 정책의 지속 능력, 즉 사회적 응집력’의 필수불가결을 중시하면서, “우리 내부의 통합 없이는 북한이나 주변국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송 장관은 독문학도 출신이다. “겨울이 추웠던 만큼 꽃향기도 진했다”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이탈리아의 시성(詩聖) 단테(Alighieri Durante)의 《신곡》과 보헤미아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선고(宣告)》를 접하고, 멋진 문학적 표현을 접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인간의 지혜는 가보지 않은 시간의 영역에 잘 미치지 못한다”는 구절,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석양이 지고 나면 낮에는 볼 수 없던 별들이 하늘을 채운다’라고 했다. 내가 현장에서 보지 못했던 별들이 한반도 미래로 가는 생각의 지도에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구절,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쓴 “위대한 발견의 길은 새로운 땅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땅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 있다”라는 구절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쉽지 않은 국제정치학의 용어가 곳곳에서 나오는데도, 많은 외교적 비화들이 소개된 데다가 이러한 문학적 향기가 배어나오기에 초판 1쇄로부터 3주 만에 8쇄를 기록할 정도로 널리 읽혔을 것이다.


‘통일교수’ 안인해 교수의 관찰과 ‘투키디데스 함정’

▲안인해(安仁海)의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반도: 패권의 딜레마 Ⅱ》(2021)

 

안인해 교수는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특히 중국의 정치와 국제관계를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중국에서의 엘리트 정치: 1978~1989년 시기 경제개혁과 중·일경제관계에 대한 엘리트 정치의 관계(Elite Politics in China: Its Relationship to Economic Reform and Sino-Japanese Economic Relations during 1978~1989)〉라는 논문으로 1991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통일연구원의 전신인 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출발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봉직하면서 중국 베이징대 및 일본 게이오대에서 연구를 계속했고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다.

이 책은 안 교수가 1992년 9월 1~6일에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에 관한 제3차 평양토론회’에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고, 그 계제에 김일성이 주석궁에서 베푼 오찬에도 참석한 경험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중·미관계와 남북대화’라는 분석의 기본적 큰 틀을 제시하고, 곧 YS 정부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통일 정책을 비교했으며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시도한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의 미·북정상회담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핵’이라는 별개의 장(章)을 설정하고, 북핵의 현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여기서 저자는 “‘북한 정권’은 오로지 핵무기만이 자신을 보호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정권 유지를 위한 생존전략이라면 북한의 핵 포기는 결코 쉽지 않다”고 보았으며,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를 주제로는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고 있는 현실을 중시했다. 특히 관심을 갖게 하는 부분은 ‘전망’이라는 장으로, 북핵 해결을 위한 여러 모델에 대해 설명했다. 거기에는 ‘북한 핵 시설 제거, 제한적 정밀공격’을 비롯해 ‘미·중 담판, 김정은 체제 붕괴 후 미군 철수(키신저빅딜)’ ‘북·미 수교, 중국 견제(베트남 모델)’ ‘북한 핵 포기, 남북 경제협력’ ‘북한 핵 보유, 남한 핵 배치(파키스탄 모델)’ 등이 포함됐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로서 안 교수는 세계정세는 물론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해,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갈등과 새로운 냉전을 매우 설득력 있게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상승하는 국가’와 ‘기존 패권국가’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서 지엽적으로라도 충돌하게 된다면 한반도 평화도 요원해진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중·미 관계의 퇴보가 동북아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기도 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국가 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꿰뚫어 양국에 호소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 양측을 의식하면서도 한반도가 처한 시련을 자주적으로 이겨내기 위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종국적으로, 안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북한 핵을 포함하여 주변국과 외교와 협상으로 풀어나가야 종국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건의를 제시했다. 이 건의는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처지에 비추어 우리의 외교력을 끌어올려서 평화적으로 통일의 염원을 이루고 싶다”던 여고생 때 꿈의 연장이었다. 1997년 6월 30일에 베이징의 캠핀스키 호텔에서 남북한 학자들이 참석한 ‘제2차 남북학술회의: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 때 남북학자들로부터 생일축하를 받으며 ‘통일교수’로 불렸던 실향민 가족의 후손인 안 교수의 이 책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책으로 읽히길 기대한다.


한용섭 교수의 넓은 시야와 마지막 ‘희망’

▲한용섭(韓庸燮)의 《핵 비확산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핵 정책》(2022)

 

한용섭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방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비장학생으로 하버드대 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랜드대학원에서 안보 정책을 전공해 〈재래식 군비통제 조치의 설계 및 평가: 한반도의 사례(Designing and Evaluating Conventional Arms Control Measures: The Case of the Korean Peninsula)〉라는 논문으로 1991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남측 전략수행요원으로 일하면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제네바의 유엔군축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자신의 연구를 심화시켜 1995년에 《동북아시아의 핵 군축과 비확산(Nuclear Disarmament and Nonproliferation in Northeast Asia)》을 출판했다. 국방대 부총장을 역임하고, 한국핵정책학회를 출범시켜 회장을 맡았으며, 현재 국방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 교수는 그사이 《동북아시아의 핵무기와 핵군축》(2001), 《한반도 평화와 군비통제》(2004), 《국방정책론》(2012), 《북한 핵의 운명》(2018) 등을 출판했으며, 이 주제로 몇몇 영문 저서도 출판했다. 그리고 이 연장선 위에서 앞에서 적시한 저서를 출판했다.

한국정치학계에서 핵 문제와 관련해 하영선(河英善) 교수와 백진현(白珍鉉) 교수에 이어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한 교수는 핵 문제에 관한 자신의 깊고도 풍부한 지식을 동원한 이 책을 통해 북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와 이해를 훨씬 넓혀주었다. 그는 우선 핵비확산조약(NPT)의 기원과 성장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이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한 강대국들(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핵 개발을 시도하다가 포기한 국가들(알제리, 나이지리아, 캐나다, 칠레, 이라크, 리비아, 일본, 호주, 서독, 스페인, 노르웨이,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국가들(남아프리카공화국,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핵무기를 개발하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한 국가(대만)와 미국의 중재로 포기한 국가(이집트), 핵무기를 개발하다가 이웃 국가들 사이의 협상으로 포기한 국가들(아르헨티나, 브라질), 핵 개발을 한다고 의심받던 국가들(이란, 시리아, 미얀마), 사실상 핵 보유 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 국가들(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여러 사례를 상세히 설명했다.

또한 6·25전쟁 때 미국이 한때 핵무기를 사용하려 했던 역사적 사례를 돌이켜보았고, 박정희 대통령과 그 이후 정부가 북핵에 대해 취한 조치들을 비교 분석했다. 여기서 한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핵무장 국가도 되고 경제개발도 성공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허구임을 논증했다. 이 점과 관련해, 그는 “박정희 시대 청와대 비서관과의 인터뷰와 비밀 해제된 미국 국무부의 자료를 통해 본 바로는 박정희 시대인 1976년에 한국이 핵 개발 계획을 완전히 포기했음이 증명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한국에서 민간 원자력이 발전한 과정도 상세히 설명한 뒤, 문재인 정부 때 시작된 탈(脫)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한 교수의 표현으로, “우리의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의 점진적 도태를 상수로 설정해놓고 그 격차를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무조건 대체해왔는데, 이것은 과학과 계산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한 교수는 북핵에 관한 그사이의 회담과 협상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엄중한 현실 속에서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외교적 조치가 남아 있다고 설명하며 마치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으로 ‘희망’이 남아 있었듯 한반도의 장래가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강인덕 박사의 통일지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강인덕(康仁德)의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편조백방(遍照百邦), 투시백년(透視百年)의 기세로》(전 2권, 2022)

 

북핵 문제를, 그리고 역대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의 물음과 관련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바로 강인덕 박사의 회고록인데, 이 책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막 만 90세를 넘긴 강 박사는 6·25전쟁 때 월남해 학도병으로 참전한 뒤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1회로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자 곧바로 입부해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자료들을 다루기 시작했고, 남북대화가 시작된 1971년에는 해외정보국장을 맡았다. 이듬해 북한정보국장 겸 남북대화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은 데 이어 1975년에 심리전국장을 맡았고, 1978년에 공산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극동문제연구소를 세우고 국문과 영문으로 논문집을 발행했다. 그사이 남북대화의 한국 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외대 대학원 아시아지역사회연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희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공산주의의 통일전선에 관한 연구: 조선로동당 전략을 중심으로〉(1977년 2월)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것은 그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정상급 북한·공산권 전문가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작은 자료들 가운데 하나가, 1970년대 중반 이후 일정 기간에 걸쳐 《로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주요 출판물들에 ‘당 중앙’이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스러운’ 새 용어가 등장했을 때, 이 용어가 다름 아닌 김정일을 의미하며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기 위한 상징조작(象徵操作)의 일환임을 최초로 간파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다.

이렇게 이론과 실무 양면에서 북한을 관찰하고 분석한 강인덕 박사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북한에 관한 그의 기본적 인식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북한 공산주의 집단의 대남전략의 기본 형태로 적용하고 있는 전술 역시 코민테른이 통용해온 기본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 공산집단의 대남전략은 1920년대 이후 통용해온 코민테른의 혁명이론의 범주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제시한 대표적 슬로건인 ‘3대 혁명 역량의 강화’도 국내적으로는 반정부 반보수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국제적으로는 반미 반한국 통일전선을 형성하며 이를 결합함으로써 제1단계의 혁명, 즉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2단계, 즉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 포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인덕 박사는 자신의 이러한 대북관에 기초해 KBS 사회방송국을 통해 북한 ‘지도자’들에 대한 방송을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했다.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안겨줘야 북한의 대남노선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김대중 정부 때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통령국가안보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앞에서 살핀 강인덕 박사의 대북관과 관련해 중요하게 상기돼야 할 점은 그의 이러한 인식은 이후 변함없이 일관되게 유지됐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 이 회고록 제2권 제5부에 포함된 ‘양호민(梁好民) 선생과의 대화: 우리 사회의 이념 혼란 문제’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 그는 국내에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와 김일성 체제의 연구를 선도했던 양호민 교수를 높이 평가한다. 또 ‘남조선 해방의 방식으로 이룩되는 공산주의 통일’을 철저하면서도 끈질기게 추구하는 ‘극좌적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민족감상주의적 통일’론 또는 ‘무조건 통일’론 등을 표방하는 ‘통일지상 민족주의자들과 얼치기 민주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이 비판은 우리가 북핵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접촉의 확대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북핵을 저지시키거나 중단시킬 수 있다는 낙관론으로 접근한 역대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공산주의에 대한 기존의 토론을 재음미하며

 ▲베이징 남북차관급 회담에 나갈 정부대표들이 1998년 4월 9일 통일부 장관실에서 강인덕(가운데) 당시 통일부 장관을 면담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필자는 이 글을 쓰며 1917년에 러시아에서 공산국가가 성립된 이후 공산주의와 공산국가의 미래에 관해 지도적 사회과학자들이 전개했던 토론을 재음미하게 됐다.

널리 알려져 있듯, 한 그룹의 학자들은 자본주의도 변화할 것이지만 공산주의도 변화해 결국 하나의 공통점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수렴설’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와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게 하는 이론적 근거로 작용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에 다른 그룹의 학자들은 공산주의, 특히 레닌과 스탈린이 추구한 공산주의와 그 국가는 그 본질이 ‘악(惡)’이기 때문에 그 ‘악성(惡性)’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것이 ‘이산설(離散說)’이다.

미국의 세계적 공산주의 및 소련 연구자였던 조지 케넌(George F. Kennan) 교수는 레닌 집권기에 소련에 인접한 라트비아 주재 미국공사관의 서기관이었으며, 소련 주재 공사에 이어 대사로 봉직하는 가운데 스탈린 체제의 본질을 ‘악’과 ‘타고난 불성실’로 이해했다. 여기서 ‘봉쇄’라는 용어를 창안하고 그 유명한 봉쇄 정책을 정립했고, 그 연장선 위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공언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의 강경 정책은 소련 안에서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체제의 등장을 불러왔고 양자의 결합은 결국 소련과 동유럽 공산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북한체제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북핵의 해결을 위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협상과 외교의 수단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협상을 시도하고 계속하는 까닭은 그것만이 전쟁을 중단시키고 평화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송민순 장관이 강조하듯, “중국의 협조나 묵인이 없이는 북한체제 붕괴가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북한체제의 본질에 대한 사색을 게을리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내재적 불성실과 허위 그리고 악의 성격을 무겁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임기 안에 남북 관계에서 큰 돌파구를 열겠다는 정치적 공명심에만 매달려 접근하다가는, 더구나 핵 개발을 돕는 결과로 나타나는 정책을 구사하다가는 종국적으로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글 :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월간조선 05월 호

민노총 침투 간첩 사건 등 어떻게 볼 것인가

中·北의 ‘한국 흔들기’ 전략의 일환

⊙ 中·北, 대중여론 뒤흔들어 親美정부 전복 획책
⊙ 광우병·세월호·촛불·핼러윈참사(이태원참사) 선동 등은 자유민주주의·한미동맹 와해시키기 위한 지속적 공격
⊙ 좌파의 내러티브 속에서 反美·反日은 한미동맹 해체, 통일은 中·北 진영으로의 편입 의미
⊙ 제2차 중국·북한의 南侵은 은밀한 내러티브 전쟁의 형태로 이미 진행 중

윤민우
1972년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인디애나주립대 범죄학과 석사,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학대학 범죄학 전공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국제정치학 박사 / 가천대 경찰정보학과 교수, 現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 서울대학교 아시아센터 객원연구원 / 《폭력의 시대 국가안보의 실존적 변화와 테러리즘》 《모든전쟁:인지전, 정보전, 사이버전, 그리고 미래전쟁에 대한 전략 이야기》 저

▲1월 14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는 촛불행동이 주최한 ‘윤석열 퇴진’ 요구 집회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민노총 간부가 연관된 북한 연계 간첩단 관련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이 한국에서 친중 영향력 공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일반 대중은 적국(敵國)의 간첩과 영향력 공작 위협, 전쟁 등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두려운 위협에 직면하면 인지적(認知的) 불균형(imbalances)과 불안감(nervousness)을 느끼게 된다. 이때 대중은 흔히 자신들이 직면한 위협을 인지적으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하거나 그 위협 정도를 평가절하해서 개인의 심리적, 인지적 불균형을 회복하려 한다. 최근 보도되는 북한과 중국의 스파이 활동과 영향력 공작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이러한 인지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같은 정보를 접해도 다른 인식과 판단을 도출한다. 부분적으로는 인지편향 때문이다. 인지편향에는 다음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정상화 편향 ▲ 자신의 희망과 관련된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적 지각 ▲ 결과가 낙관적일 거라는 희망적인 사고로 들여다보는 낙관주의 편향이다.

이 같은 인지편향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중대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따금씩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1590년 사신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년)은 선조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공할 개연성이 매우 낮다고 보고했다. 1950년 한국전쟁 직전 당시 채병덕(蔡秉德·1915~1950년) 육군참모총장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보고받았지만 무시했다. 국가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북·중의 간첩 활동과 영향력 공작 위협에 대한 인지편향이 가져올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신냉전은 글로벌 패권 투쟁

최근 관찰되는 북한과 중국의 간첩 활동과 영향력 공작은 한국에 대한 거대하고, 구조적이며, 통합적이고, 전략적인 위협의 한 퍼즐 조각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북한의 글로벌 패권(覇權) 충돌이 진행되고 있다. ‘신냉전(新冷戰)’이다. 지난 3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으로 전체주의 진영과 그에 대항하는 자유민주 진영 간의 전선은 더 명확해졌다. 현재는 미국·동맹국의 대(對) 중국 신냉전이 반도체와 공급망 재편 등 산업과 과학기술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대만 문제를 두고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3~4년 내에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만을 침공하고 이로 인해 중국과 미국 및 동맹국이 직접적으로 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尹錫悅) 정부는 미·일과의 군사적·경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자 북한과 중국은 위협적인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대만과 한반도를 포함한 유라시아판 동쪽에서의 이 같은 안보위기는 유라시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북한의 거대한 지정학적(地政學的) 충돌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인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로 대변되는 전체주의 진영은 대체로 유라시아 대륙의 초승달 연안 지역에 해당하는 림랜드(Rimland)에서 지정학적 단층선(斷層線·fault line)을 따라 서로 대치 또는 충돌하고 있다.

이 지정학적 단층선을 따라 두 세력의 충돌 압력이 가중되면, 지정학적으로 약한 지점에서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그리고 한반도는 약한 지점에 해당한다. 현재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바로 지정학적 압력이 폭발로 이어진 사례다. 그러므로 대만과 한반도에서도 언제든 이 압력이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야망

이런 측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만, 한반도의 위기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과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는 이유는 미국과 나토(NATO)의 군사적 역량과 관심을 유라시아판의 서쪽 전선에 붙들어놓기 위해서다. 그러면 유라시아판 동쪽 전선에 실리는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적 압력을 덜어낼 수 있다.

중국의 전략적 비전은 미국을 하와이 동쪽으로 후퇴시키고 동부 유라시아판에서 중화(中華)제국 질서를 재현하는 것이다. 서부 유라시아판에서 러시아세계(the Russian world)를 재현하겠다는 푸틴의 글로벌 전략과 상호보완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중국의 전략적 비전은 과거 일본제국이 추구했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과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중국이 중화제국 질서를 복원하기 위해 공략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要衝地)가 두 곳이 있다. 대만과 한국이다.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게 되면 중국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교통로를 차단할 수 있다. 그러면 남북으로 연결된 인근 권역 모두에서 미국·동맹국과의 세력 충돌에서 상당한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식량과 에너지 등 교역을 해상교통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의 목줄을 틀어쥐게 된다. 한국과 일본을 친중(親中)세력권으로 포획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군사력 전개의 핵심축인 괌을 군사적으로 직접 위협할 수도 있다. 괌이 군사적으로 무력화(無力化)되면 필리핀의 고립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중립지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하와이 동쪽으로의 철수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서태평양 제국 질서의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대중봉쇄선의 GP

중국에 한국은 양날의 칼이자 방패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을 공격할 수 있는 스프링보드(Springboard·도약판)이자 동아시아·서태평양의 대중국 봉쇄선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전선의 GP(Guard Post·초소)다. 오호츠크에서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미국의 대중(對中)·대북(對北) 봉쇄선에서 일본이 GOP(General Outpost·일반전초)라면 한국은 GP에 해당한다. 반대로 중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으로부터 스스로의 심장부를 방어할 수 있는 방패이자 미국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스프링보드다. 한반도 서안(西岸)에서 중국의 정치·경제·군사력의 심장부인 발해만·베이징·상하이·칭다오 등은 모두 공격 사정거리 내에 있다. 반대로 만약 중국의 군사력이 한반도 동남부 연안과 제주도에 배치된다면 일본과 주변 해역 전 영역이 중국의 군사력 위협 아래 놓이게 된다.

한반도 북부 지역이 극동 지역 보호를 위한 만족스러운 완충(緩衝)지대가 되었던 냉전 시대의 소련과 달리, 중국 입장에서 현재 남한과 북한의 분단선은 중국의 심장부가 노출된 불완전한 절충점이다. 분단된 한반도 남쪽의 서쪽 해안선 전체가 중국 본토 공격의 발사대(launching pad)가 될 수 있다. 미군 해외 기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기지가 평택항에 들어선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남북 분단에 만족했던 냉전 시기 소련과 달리, 중국이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친중국 영향권으로 포획하는 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 대한 중국의 군사 전략적·경제적 관심도 이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우선 중국은 서해를 자신들의 내해(內海)로 만들고자 한다. 중국 해군이 한국 해군에 동경(東經) 124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동해 또한 노리고 있다. 제3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루트인 북극항로 활용을 위해선 동해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을 확보한다면 러시아의 묵인하에 미국을 상대로 중국 전략핵잠수함을 오호츠크해와 북극해에서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中·北의 한국 흔들기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자학원에서는 중공군의 6·25 참전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북한은 공통적으로 한국을 미국과 동맹국이 구축(構築)해놓은 유라시아판 내부의 전체주의 진영에 대한 봉쇄망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와일드카드로 활용하여 한·미·일 연대(連帶)체제를 이완시키려고 하며, 북한 입장에서 중국은 한·미·일의 군사적·경제적 압박에 맞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버팀목이다. 중국·북한은 한국의 내부체제를 흔들어 이 동맹체제로부터 한국을 이탈시킴으로써, 미국의 영향력을 동북아시아 역내(域內)에서 걷어내려 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 가해지는 중국·북한의 군사적, 경제적, 역사·문화적 압박과 회유, 그리고 스파이 활동과 영향력 공작들은 모두 이러한 한국 흔들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국의 한국 내 부동산 투자, 중국의 한일 간의 역사 갈등 증폭, 중국·러시아의 독도 상공과 동해 방공식별구역(KADIZ) 침입, 한국 내 비밀경찰서 운용, 그리고 공자학원을 통한 영향력 공작 등은 한국을 친중 국가로 길들이기 위해 조율된 작전의 개별 사례들이다.

북한의 핵 도발과 최근 적발된 민노총 침투 간첩들, 그리고 그들에게 하달된 북한의 윤석열 정권 퇴진 선동 등도 이 같은 한국 흔들기의 전략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북한 간에 어떤 전략적 조율이나 교감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러한 것들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중국·북한의 한국 흔들기는 결국 양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중국·북한이 과거 한국전쟁이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직접적인 군사적 침공이 아니라 ‘한국 흔들기’라는 간접접근전략을 채택한 것은 군사적 결전이 초래할 비용부담 때문이다.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한미동맹의 힘을 고려할 때 직접적인 군사적 결전은 중국·북한에 막대한 희생과 비용부담을 강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북한은 직접적인 군사결전보다 대중여론을 뒤흔들어 선거를 통해 친미적인 정부를 전복하고 친중·친북적 정부를 세우는 것을 비용 대비 더 효과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AI 시대의 선전선동과 심리전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 사이버를 포함한 정보통신의 급격한 혁신, 정보량의 폭발적인 증대, 그리고 초(超)연결·초개인 사회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의 파괴적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이에 따라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주요한 한 전쟁 양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오늘날의 전쟁에서는 누구의 군대가 이기는가보다 누구의 이야기가 이기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늘날의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의 파괴력은 과거의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과거의 선전선동은 신뢰하기 어려웠고, 그 효과 측정도 불가능했다. 오늘날은 AI, 빅데이터, 딥러닝, 여론조사, 인지심리, 신경과학, 행동과학의 발전 등으로 마치 첨단유도미사일을 통한 정밀타격(pinpoint strike)과 같이 선전선동을 위한 정확한 대상청중 식별과 메시지 전달, 그리고 공격 후 영향력 검증에서 피드백까지 정교하게 행할 수 있다.

 

러시아의 정보·심리전

미국·나토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인지전(cognitive warfare)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땅, 바다, 하늘, 우주,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 이어 ‘인간 도메인(Human Domain)’을 새로운 전쟁의 공간 또는 안보위협의 공간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인지전은 한마디로 인간 도메인을 장악하기 위한 공격·방어이다. 이는 미국 국방부 특별작전지휘본부의 지원으로 발간된 2015년 인간 도메인에 대한 작전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인간 도메인은 일반 대중의 관점, 의사결정, 그리고 행동으로 구성된다. 오늘날 미군은 인간 도메인을 점령하여야만 전쟁의 궁극적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지전에 대한 미군의 최근 인식은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발전되어온 러시아와 중국의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에 대한 대응이다. 러시아는 정보·심리전, 중국은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fare) 개념으로 이를 발전시켜왔고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대만,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유럽 등 주변 국가들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을 상대로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을 오랫동안 수행해왔다.

특히 러시아는 2014년 러시아 연방 군사독트린과 게라시모프 제안들에 따라 정보·심리전을 발전시키면서 소비에트 시기부터 존재했던 과거의 특수 프로파간다, 재귀통제, 그리고 적극조치 등의 전통적 심리전·선전·선동·프로파간다 기제들을 인지심리·설득심리의 최신 지식들과 결합시키며 오늘날의 정보통신 환경에 접목시켰다.

특수 프로파간다는 과거 소련 시절 공산당과 정보기관의 이데올로기 공작을 의미한다. 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전파·확산을 위한 정치교육, 선전·선동·프로파간다와 관련된다. 재귀통제는 오정보(誤情報)와 역정보(逆情報), 그리고 위장 등을 사용해 특정 개인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공격 대상을 통제하려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적극조치는 적의 정부와 대중, 그리고 다양한 대중 사이를 분열시켜, 혼란과 공포를 조장하고 적의 정부, 가치와 제도, 질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려 적의 정책 수행을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련 시기의 정보작전들을 뜻한다.


역사·문화의 武器化

중국의 초한전과 북한의 영향력 공작도 기본적으로 이 같은 소련·러시아의 정보·심리전 전통과 궤를 같이한다. 중국과 북한은 문화·역사·경제를 무기화(武器化)한다. 자국 대중에 대한 애국심과 지지를 결집시키고, 적측 대중의 가치나 사기를 떨어뜨리며,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또한 적국의 정부와 대중을 분열시키고 정부를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킨다.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을 통해 정보를 유포, 확산시켜 심리적 영향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필요하다면 법규범을 위반하면서까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다.

인간 도메인을 장악하기 위한 인지전투의 핵심적인 수단은 ‘무기화된 내러티브(weaponized narrative)’다. 인간의 감정상태, 신앙체계, 행동패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에 대한 인식과 대응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내러티브가 극단주의, 갈등, 권력투쟁, 전쟁 또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면 정치권력을 장악하거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중요한 전투의 영역이자 수단이 된다.

내러티브는 지지층을 동원시키고, 지지층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지층의 일체감을 지속시킨다. 또 이탈자를 통제하고, 전략을 구성하며, 신념을 확산시킨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의식, 굴욕, 그리고 저항에 관한 내러티브의 서사를 이용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과거와 유사한 상황으로 데자뷔 된 현재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개인적 좌절과 공공의 소명을 연계시키고, 자신이 더 넓은 정치·사회 운동의 한 부분이라는 권능감을 부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내러티브 형식으로 정보를 전달받으면 가치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정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효과적인 내러티브는 반드시 사실에 입각할 필요가 없다. 결국 내러티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청중의 경험에 근거해 심금을 울리는 것’이지 사실 여부가 아니다.


통일전선

내러티브의 전략적 기획과 운용에는 ‘최적분할’이 고려된다. 내러티브는 다양한 이질적인 정치·사회 세력과 대중을 핵심 적에 대항하도록 공고히 결박시키는 접착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고 운용된다. 미셸 푸코는 이 최적분할을 ‘분산 프로파간다(distributed propaganda)’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푸코는 ‘분산 프로파간다’를 자본주의 적들을 고립, 포위, 섬멸하기 위해서 어떻게 다양한 이질적인 세력을 하나의 통일된 힘으로 결집시킬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중국과 북한에서 사용되는 ‘통일전선’도 이 푸코의 ‘분산 프로파간다’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세력과 그들의 이야기들, 신념들을 하나로 결박하기 위해,핵심 적대 세력에 관한 차별, 소외와 배제, 죽음, 그리고 피해의 기억들이 활용된다. 부정적 경험과 기억들은 공감과 연대를 통해 다양한 세력과 그들의 내러티브들을 견고히 결박한다. 이 과정에서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함께하는 경험을 거치면서 이들은 하나의 연대된 실체(實體)가 된다. 적은 교활하고, 음모론적이고, 우둔하며, 폭압적이고, 사악한 세력으로 채색된다.

내러티브로 결박된 다양한 이질적인 네트워크 참여자들을 지휘·통제·조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제가 사용된다. 하나는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명령체계로 상층 전략지휘부의 결심이 전투 현장의 지휘관과 전투원들에게 전달되고 이것이 실제 내러티브 공격으로 구현된다. 적대국 군과 정보·공작기관, 그리고 적국의 지원·지시를 받거나 협조관계에 있는 언론사, 온라인 미디어, 또는 정치·사회·노동 단체 등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좌표 찍기

다른 하나는 ‘양떼몰이(shepher-ding)’로 양치기가 양떼몰이를 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우선, 주요 인사, 오피니언 리더, 셀럽 선동가, 또는 선동매체가 선동 메시지를 사용해 다수의 불특정 대중을 각성시킨다. 그러고 이들의 혐오, 분노, 증오 등이 향할 공격의 좌표를 찍어준다.

이렇게 되면, 선동된 다수의 불특정 개인은 마치 양떼 또는 좀비처럼 각성된 상태로 목표를 향해 돌격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초개인화되고 온라인을 통해 초연결된 사회에서 다수의 이질적인 불특정 개인들을 동원하기에 적합하다.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명령체계와 ‘양떼몰이’는 내러티브 공격·방어를 위해 통합적으로 운용된다.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통제에 따라 코어(core) 조직들이나 행위자들이 거리시위나 추모제 등의 선도 공격을 감행하고 이를 기폭제로 양떼몰이로 동원된 자발적 개인이나 그룹이 여기에 올라타서 내러티브 공격이 증폭된다. 이를 ‘밴드왜건(bandwagon·편승) 효과’라고 한다.

이러한 내러티브 공격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를 형성한다. 이 시위나 추모제, 온라인 댓글 공격 등과 같은 공격의 파도는 이슈별로 같은 공격 타깃을 향해 시간차를 두고 1파, 2파, 3파로 순차적·지속적으로 밀어닥친다. 소련·러시아의 종심(縱深)전투교리에 따른 제파(諸波)전술과 유사하다.

이 일련의 과정은 마치 폭탄이 작동하는 원리와도 같다. 폭탄은 전기 공급의 1단계와 뇌관 격발의 2단계, 그리고 폭발물 폭발의 3단계로 구성된다. 여기서 전기 공급의 1단계는 이슈나 의혹, 폭로 등의 최초 제기에 해당한다. 뇌관 격발의 2단계는 주요 방송사나 미디어, 유명 저널리스트, 외교관, 유력 정치인, 저명학자나 전문가, 싱크탱크 등의 전통적 권위를 가진 이슈메이커들이 제기된 이슈나 의혹 등에 권위나 정당성, 논리와 신뢰성을 부여함으로써 의혹을 증폭시키는 과정이다. 마지막 단계인 폭발은 동원된 다수가 공격·방어에 대규모로 동참하는 단계다.

 

대체로 이 폭발 단계는 두 개의 하위 단계로 구성된다. 1차 폭발은 앞서 언급한 대로 군대식 지휘통제에 따라 특정 조직이나 단체 등이 선도 공격을 감행하고 여기에 양떼몰이로 각성된 불특정 개인이 자발적으로(?) 올라탐으로써 2차 폭발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스웜(swarm·군단) 전술이 나타난다.

다수의 각성된 개인과 단체들, 미디어들, 댓글들이 마치 벌떼처럼 윙윙거리며 공격 좌표로 찍힌 대상이나 대상 내러티브를 타격한다. 이렇게 되면 마치 한 국가 또는 사회 전체가 거대한 위기에 처해 있고 공격 대상 정부나 그룹, 세력이 붕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심리적 착시(錯視) 효과를 청중에게 가져다준다.

과거 냉전 시기 이래 소련·러시아, 중국, 북한 등의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자유민주체제를 흔들기 위한 선전선동 및 영향력 공작은 이와 같은 체계적·조직적·전략적 기조 아래 실행되어왔다. 2014년 이래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정보·심리전, 2016~2018년 사이에 러시아가 행한 미국 대선(大選) 개입, 독일 총선 개입, 프랑스 대선 개입,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입 등도 이러한 방식 아래 수행되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인지전 공세와 선거 개입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조용한 침공 역시 이와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에 대한 중국 영향력 공작과 북한 간첩 활동, 선전선동 공작,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국내 토착 친북·친중 세력들의 선전선동에서도 이와 같은 전략적 특성들이 쉽게 발견된다.


민노총 침투 간첩단 사건

▲1월 18일 국정원은 민노총이 반발하는 가운데 간첩 사건 수사를 위해 민노총 서울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조선DB

 

민노총에 침투한 북한 간첩단 사건이 위험한 이유는 북한의 한국에 대한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의 수행을 위한 핵심 인프라가 구축되고 운용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민노총의 모든 조직원이 북한 간첩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선 민노총의 모든 조직원이 간첩이 될 필요도 없다. 민노총의 핵심 지도부를 북한의 간첩으로 포획함으로써 민노총 전체의 지휘통제권을 장악할 정도면 충분하다.

북한 간첩에 포획된 지도부는 다시 여타 다른 정치·사회·노동 단체, 정치 세력, 미디어, 오피니언 리더, 선동가들과 네트워크로 연계하고 그 확장된 ‘척도 없는 네트워크(scale-free network)’에서 허브(hub)의 역할을 함으로써 전체 친북 내러티브 네트워크를 지휘·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민노총 이외의 다른 정치·사회·노동·언론 분야에 포진한 다른 간첩들은 이 네트워크 결박에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간첩들이 앞서 설명한 내러티브 공격 파도의 구현 과정에서 중요한 국면마다 전체 저항 네트워크 전선을 움직이는 키맨(keyman)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촛불·광우병 선동의 구조

▲다양한 세력들을 하나로 결박하기 위해 죽음과 피해의 기억들이 활용된다. 사진은 2022년 12월 13일 열린 핼러윈참사 유가족들의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 사진=조선DB

 

내러티브 인지전 차원에서 광우병 사태, 세월호 사건, 촛불시위, 그리고 최근의 핼러윈참사(이태원참사) 관련 선동 등을 되짚어보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선동들은 파편적인 에피소드 또는 이명박(李明博) 정부 또는 박근혜(朴槿惠) 정부라는 개별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이 아니다. 긴 시간적 호흡에서 순차적·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밀어닥친 내러티브 공격의 파도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체제와 한미동맹 자체를 와해시키고 한국을 중국·북한의 전체주의 진영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긴 전쟁의 개별 전투들이다.

여기서 사용된 핵심 내러티브는 반미(反美)·반일(反日)·자주·민족·통일·평화다. 반미와 반일, 자주는 신식민지 담론을 통해 미국의 동맹체제로부터 한국을 이탈시키겠다는 의미이며, 민족통일은 중국·북한 진영으로의 편입을, 그리고 평화는 한국의 군사적 무장해제와 미 군사력의 한반도로부터의 철수를 의미한다.

푸코의 ‘분산 프로파간다’는 위에 제시된 일련의 사건들에서 이해관계가 다양한 여러 정치·사회 시민 세력들을 반정부·반우파·반미 전선에 동참시키고 결박하며 한국의 보수우파 세력과 정부를 포위 섬멸하는 전략적 프레임워크로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반일 또는 반미 감정의 자극은 과거 일제 강압통치 시절을 소환시켜 현재의 상황에 데자뷔 시킴으로써 대중동원을 위한 선동 기제로 활용되었다. 종종 추모와 제사 의식, 죽음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되새김질함으로써 대중의 감정과 정서를 자극하여 내러티브 공격 파도에 추동력(推動力)을 제공했다.

이와 같은 정교한 내러티브 공격의 핵심 키맨들에 국내 토착 친중·친북 세력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배후에는 중국과 북한의 공작기관들의 은밀한 지원과 지휘통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민노총 관련 북한 간첩단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핼러윈참사 직후 제2의 촛불대항쟁’ ‘윤석열 대통령 퇴진’ ‘반일괴담 유포’ ‘국내 선거 개입’ 등을 지시한 북한 지령문은 이 거대한 실체의 단면들이다.


인지전 개념에 따른 대응 필요

결국 이러한 중국과 북한의 선전선동 공작에 대한 대응은 인지전의 개념에 따라 전략적·체계적·포괄적·통합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정보·심리전과 영향력 공작에 수년간 곤욕을 치른 미국과 유럽은 인지전과 인간 도메인의 전장 공간으로의 편입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이에 대한 정부·군·민간의 대응 역량을 강화시켜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의 미국 국내 선거개입 공작을 경험하면서 국가 핵심기반 시설에 자유민주주의 선거제도 자체를 포함시켜 보호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2014년 군사독트린에 이미 우주 기반 위성에 인지무기를 배치하고 정보조작 공격 능력을 구축하겠다고 담았다. 최근 각광받는 챗GPT 등 AI 기술, 신경과학과 다른 정보통신과학기술, 우주위성기술, 새로운 물리법칙에 기반을 둔 무기체계들의 빠른 발전은 전자전, 사이버전, 정보전, 심리전, 인지전 등의 융합을 촉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의 치명성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이에 대한 심각한 위기인식을 가지고 인지전 수행 역량을 전략적,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네트워크 방패 구축해야

▲중국과 북한의 영향력 공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정부·군·민간이 함께 네트워크 방패를 구축해야 한다. 사진=공자학원추방국민운동본부  

 

낡은 반공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버리고 오늘날의 과학기술 발전과 정보통신 환경, 그리고 정치·사회·문화 지형을 반영하여 인간 도메인에서의 인지전 승리를 위한 내러티브 개념으로 국가안보 전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를 들면 북한·중국의 반미·반일, 민족자주, 평화 등의 핵심 내러티브에 대응할 수 있는 대응 내러티브가 마련되어야 하고 이를 확산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정부·군·민간이 파트너십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여 핵심 대응 내러티브를 가동시킬 수 있는 넓게 펼쳐진 네트워크 방패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같은 네트워크 방패는 참여 당사자들의 수평적 네트워크적인 상호 연대와 협력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를 ‘다중이해 당사자주의(multistakeholderism)’라 표현한다.

정부의 최고 정책결정 지휘부나 정치·사회 엘리트가 톱 다운(Top down)으로 주도하고 위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전통적인 방식은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의 상층 전략지휘부와 정치·사회 엘리트는 전체 대응 내러티브 네트워크의 허브로 전략적 가이드와 지원을 제공하고, 다양한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자기 주도와 자발성이 강조되는 방식으로 서로 연대하고 함께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가동되어야 한다.

전쟁은 의지와 의지의 충돌이고 적의 의지를 부러뜨리고 나의 의지를 적에게 관철시켜야만 승리가 확정된다. 오늘날 선전선동 또는 영향력 공작으로도 불리는 무기화된 내러티브는 이 의지의 투사와 관철의 핵심전장이자 기제이다. 제2차 중국·북한의 남침(南侵)은 열전(熱戰)이 아니라 은밀하고 조용한 내러티브 전쟁의 형태로 올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전투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05.09 法 이용해 法 피하고 농락하려는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

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제주 ‘ㅎㄱㅎ’ 사건 피고인들이 지난달 24일 법원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고 한다. 각각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법과 제주지법에 같은 날 같은 신청을 한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하는 제도다.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효력만 있지만 재판부가 그와 다른 판결을 선고하려면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하기 때문에 재판부로선 배심원 평결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 사건 변호인들은 “낡은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피고인들을 처벌할 가치가 있는지 국민의 상식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상 법률 전문가가 아닌 국민을 상대로 ‘여론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반대 입장을 냈다. 간첩 수사 정보가 공개되면 향후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두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게 될 수십명이 수사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이다. 이런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면 수사기관의 수사 방식을 공범이나 북측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이전에 간첩 사건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재판 지연 우려도 있다. 제주 ‘ㅎㄱㅎ’ 사건의 증거 기록만 1만여 쪽에 달한다. 일반 국민을 상대로 방대한 양의 사건 기록을 설명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두 사건은 올해 안에 1심 선고도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창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1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3.1.31/뉴스1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두 사건 피고인들은 앞서 검찰에 송치된 후 검찰의 출석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일부는 단식 투쟁까지 벌였다. 간첩 사건 피의자가 진술 거부를 한 적은 많지만 출석 자체를 거부한 건 드문 일이다. 두 사건의 변호인으로 참여하는 민변 소속 변호사는 2011년 간첩단 사건 변호 중 핵심 증인에게 묵비권 행사를 종용했던 사람이다.

 

두 사건 피고인들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반정부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무리 간첩이라도 법적 권리는 갖고 있다. 그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간첩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법을 이용해 우리 사회를 지키려는 노력 자체를 농락하고 무력화하는 것까지 용인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 사설

 

05.10 워싱턴 선언을 넘어 핵 잠재력 확보에 나서자

한미 정상 ‘워싱턴 선언’으로
미국의 핵우산 신뢰 높였지만
핵 잠재력 확보 포기 안 돼
‘핵확산금지조약’이 허용하는
평화적 우라늄 농축 기술 개발해야
미국이 지지하기는 어렵겠지만
반대할 명분도 없을 것

지난달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 선언’의 본질은 북한이 핵·미사일 전력의 증강과 기술적 고도화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에 대한 신뢰를 높임으로써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안심시키는 데 있다. 그간 미국은 북한이 핵 공격을 감행할 경우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 즉각 압도적·결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공약을 되풀이해왔다. 심지어 2022년 10월 공개된 ‘핵 태세 보고서(NPR)’에서는 북한의 핵 사용이 체제 종식을 초래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과연 로스앤젤레스(LA)와 뉴욕을 희생할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을 지켜줄 것인지에 대한 국내 일각의 의구심을 불식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4.27/대통령실

 

워싱턴 선언에서 ‘한미 핵협의그룹(NCG)’ 창설을 통해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한 전략 수립에 한국이 참여하고, 미국의 핵 작전을 한국의 재래식 역량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공동으로 기획·이행하는 한편, 핵 전력 운용 주체인 미국 전략사령부가 참여하는 한미 연합 도상 훈련을 실시하기로 한 것은 주목할 성과다. 이는 확장 억제라는 난해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공약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한미 동맹이 영구히 건재하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에만 무한정 안주할 수는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여 한국이 스스로 챙겨야 할 몫은 핵 잠재력 확보다. 단기간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산업적 기반을 갖추는 것은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이 신뢰성을 잃을 상황에 대비한 보험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핵 잠재력을 확보할 유일한 현실적 방법은 우라늄 농축 기술과 공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원전을 20기 이상 가동 중인 대한민국에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평화적 목적으로 농축 시설을 보유할 당당한 명분과 논리가 있다. 농축 시설이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에 전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만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허용하는 평화적 농축 권리를 더 이상 포기할 수는 없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 에너지 안보는 경제적 사활뿐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국가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전력 공급에서 원전 몫이 거의 30%에 달하는 나라가 원전 원료인 농축우라늄 공급을 전적으로 해외 독과점 업체에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를 포기하는 위험한 도박이기도 하다.

 

원전 부지에 저장된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무기 수천 기를 제조할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지만 이는 원전의 원천 기술을 제공한 국가와 핵연료를 공급한 국가의 사전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전 동의를 해줄 나라는 없으므로 결국 미국 등과 체결한 원자력협력협정을 위반하여 국제적으로 불량 국가로 낙인찍히지 않고는 재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재처리를 통해 얻을 플루토늄은 핵무기 원료 외에는 용도가 별로 없으므로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경제성도 없고 환경적으로도 너무 위험하다. 핵무장을 위해 NPT를 탈퇴하는 나라에는 국제적으로 핵연료 수입을 포함한 평화적 원자력 협력이 거부되므로 농축 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핵무장을 시도하면 원료 공급을 못 해 원전 가동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에 반해 평화적 목적의 농축은 미국에서 도입한 장비나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지 않는 한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란에 농축을 허용하는 협정(JCPOA)에 서명한 미국이 한국의 평화적 농축을 시비할 명분이나 근거도 없다.

 

다만, 농축을 추진하면서 대한민국이 NPT의 당사국으로서 농축 시설을 오로지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가장 엄격한 사찰을 수용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농축을 결심하기 전에 미국과 상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농축해도 되느냐고 미국에 물어보는 것은 미국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이 농축에 반대할 명분도 법적 근거도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과 부합하는 것도 아니므로 선뜻 지지하기도 어렵다. 대신 우리의 결정을 통보할 때 워싱턴 선언에 따라 NPT상 의무를 성실히 준수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05.10 [단독] 北이 두려워한 김관진의 귀환...국방혁신위 부위원장 내정

▲2014년 6월 25일 국회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겸 국방부 장관./조선일보DB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출범할 국방혁신위원회의 부위원장급 위원으로 김관진(74) 전 국방부 장관을 내정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국방혁신위원회에 김 전 장관을 사실상 부위원장으로 임명해 국방 혁신을 주도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과학기술 강군을 향한 윤석열표 국방 혁신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로 몰려 구속됐다 풀려난 김 전 장관이 6년 만에 안보 현장에 복귀하게 된 셈이다.

 

안보 소식통은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국방혁신위 위원으로 낙점했고, 국방부 청사에 김 전 장관 사무실도 별도로 마련됐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국방혁신위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고, 김 전 장관도 최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혁신위는 작년 12월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 강군을 지향하는 국방 혁신 추진을 위해 제정된 국방혁신위구성운영규정(대통령령)에 따라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위원장 포함 11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국방혁신 계획 수립과 법령 제·개정, 정책 조율 등을 담당하고 국가안보실장, 국방부장관이 당연직 위원을 맡는다. 대통령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그가 지명한 위원(부위원장급)이 그 직무를 대행한다.

 

정부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국방장관을 지냈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내며 북한에 가장 강력한 대응 기조를 견지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 육군 3군 사령관과 합참의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였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임돼 2014년 6월까지 3년 6개월간 국방장관을 맡았다. 이후 곧바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됐고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후 물러났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12일 째인 2010년 12월 4일 오후 연평도를 방문한 김관진 국장장관이 연평도 주민 피해현장을 돌아보고있다./조선일보 DB

 

김 장관은 당시 국방장관 취임사에서 “북한이 또다시 우리의 영토와 국민을 대상으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해 온다면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대응으로 그들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해야 한다”고 했다. 북 도발 시 ‘선조치-후보고’ 지침을 내리고 원점 타격을 주문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국방장관’이란 평을 들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인 2017년 11월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댓글’ 사건으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고 구속됐다가 풀려나 재판을 받아왔다. 아직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이 2017년 구속됐을 때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대통령이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과학 강군 육성을 기치로 한 국방 혁신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역 자원 부족 현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군을 과학기술에 기반한 군대로 전환하고 부대, 병력 구조나 전술 교리도 미래전에 맞게 혁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국방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윤 대통령은 작년 12월 대통령령을 제정해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국방혁신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했다. 그런 국방혁신위 부위원장 역할을 김관진 전 국방장관에게 맡겨 ‘윤석열표 국방혁신’을 추진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일찌감치 김 전 장관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급 위원으로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방장관과 안보실장을 맡았을 때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 의지를 바탕으로 대북 억지 확보에 성과를 냈다는 점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인 2010년 12월 취임했는데, 북 도발 시 ‘선조치-후보고’ ‘원점 타격’ 등 강력 응징을 군에 주문했었다. 군인이 도발을 맞아서도 정치적 고려를 하느라 머뭇대지 말라는 지침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에 걸쳐 국방장관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때는 국가 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지냈다. 당시 현 조태용 안보실장이 안보실 1차장을, 김규현 현 국가정보원장이 2차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었다. 안보실장 시절인 2015년 8월엔 DMZ(비무장지대)에서 터진 목함 지뢰 사건에 대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강력 대응했고, 이에 당황한 북한이 협상을 제안해와 황병서 당시 북한 노동당 총정치국장과 판문점 담판을 통해 사과도 받아냈다. 북한군은 표적에 김 전 장관 사진을 붙여 놓고 사격 훈련을 할 정도로 적대감을 드러냈지만 도발에 대해선 타협 없는 그의 원칙 대응 기조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한다는 뜻에서 ‘김관진 효과’란 말도 나왔다.

▲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2015년 8월 25일 새벽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접촉에서 6개 항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남북은 이날 북측의 지뢰 도발 유감 표명과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당국 회담 개최 등에 합의했다. /통일부 제공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는 한때 옥고를 치르는 등 수난을 겪었다. 2017년 11월 ‘사이버사 정치 댓글’ 사건으로 재수사를 받고 구속됐다가 11일 만에 풀려났지만 지금까지 재판을 받아왔다. 김 전 장관은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이어 2020년 10월 2심에서 징역 2년 4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직권남용 등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상태다. 그런데 김 전 장관에 대한 문재인 정권 시절 재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이 국방부를 방문해 사이버사 댓글 사건 수사 기록을 무단 열람한 의혹이 불거져 김 전 장관에 대한 정권과 군 검찰의 표적·기획 수사 의혹도 불거진 상태다.

 

윤 대통령은 아직 김 전 장관의 형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그가 국방혁신위원을 맡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도 “안보가 위중한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면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항소심 선고 후 기자들이 심경을 묻자 당시 안보 상황에 대해 “연작처당(燕雀處堂)이라는 소회가 든다”고 했었다. 연작처당은 제비와 참새가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안락하게 지내면서 경계심을 잃어 집에 위험이 닥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일삼는 상황에서 김 전 장관은 대북 안보 태세 강화를 내보일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최경운 기자

 

05.10 백마고지 영웅의 마지막 길,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호펠스씨
“장례 때 아리랑 불러달라” 유언

8일(현지 시각) 오후 룩셈부르크 남동부 레미히의 한 성당에서 열린 장례식 미사 도중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지난달 24일 별세한 룩셈부르크의 6·25 참전 용사 질베르 호펠스(90)씨를 위해서다. “장례식 때 꼭 아리랑을 불러 달라”는 유언장을 그의 조카 파스칼 호펠스(62)씨가 서재에서 발견, 현지 한인회에 연락했다.

고인은 19세이던 1952년 6·25에 참전했다.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전투 등에 참전했다. 불과 10m 거리에 포탄이 떨어지는 생사의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6·25 당시 인구가 약 20만명이던 룩셈부르크는 연인원 100명을 파병했다. 참전 22국 가운데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전투병 파병으로 기록돼 있다. 이 중 15명이 전사하거나 다쳤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2명뿐이다.

▲지난달 24일 90세로 별세한 룩셈부르크인 질베르 호펠스씨가 1952년 19세로 6·25전쟁에 참전한 당시 모습.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

 

‘장례식에서 아리랑을 불러 달라’고 당부한 룩셈부르크의 6·25 참전 용사 호펠스씨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조차 몰랐고, 부모도 참전에 반대했지만, ‘침략당한 나라의 자유를 되찾는 데 기여하겠다’며 자원했다.

 

“아이랑, 아이랑, 아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감다.”

호펠스씨는 생전 ‘아리랑’을 유독 좋아해 서투른 한국말로 따라 부르곤 했다. 그에게 아리랑은 애락이 담긴 노래였다. 자녀가 없었고 수년 전 아내도 먼저 떠났다. 작년 11월 그의 생일 파티에서도 ‘아리랑’이 연주됐다. 8일 열린 장례식에서는 아리랑을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이 노래 부르고, 연주는 고인이 참전 후 재직한 현지 세관의 관악단이 맡았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룩셈부르크 레미히의 한 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 국가보훈처가 전달한 추모패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날 장례식에 참석한 박성호 주벨기에 유럽연합 대사관 무관은 국가보훈처에서 제작한 추모패를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조카 파스칼씨는 “지금으로 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며 “삼촌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한국인들이 참전 용사의 헌신을 잊지 않아 감사하다”고도 했다. 룩셈부르크도 독일에 점령됐다가 미국 등 우방국의 도움으로 해방된 역사가 있었다.

 

1951년 5월 자국군에 입대한 호펠스씨는 군 복무가 끝나갈 때쯤 한국전에 자원해 1952년 3월 부산에 도착했다. 이후 1953년 1월 룩셈부르크로 복귀할 때까지 벨기에와 통합대대 소속의 일등병 기관총 사수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치열했던 하루하루를 일기로 기록, 현재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사료로 전시돼 있다. 그가 참전한 철원 백마고지 전투(1952년 10월 6~15일)에서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이 맞붙어 국군이 승리했다. 열흘간 고지 주인만 12차례 바뀌었고, 중공군 1만4000여 명과 국군 350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전투 당시 포탄 27만 발로 고지의 수목이 완전히 사라져, 마치 하얀 말이 누워있는 듯 보여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달 24일 90세로 별세한 룩셈부르크의 6·25전쟁 참전 용사 질베르 호펠스씨의 생전 모습.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 

 

호펠스씨는 참전 뒤 10여 차례 한국을 찾았다. 몇 년 전까지 룩셈부르크 참전용사협회장으로 활발히 활동했고 한국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2019년 한국전쟁유업재단(KWLF)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난 1975년 첫 방한 당시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오래된 기차역들이 아직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 지어진 역들도 많았다”면서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한국에 사과해야 한다”면서 한국 역사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조선일보 정석우 기자

 

05-10 ‘김수키’ 새 악성코드로 北정보수집기관 겨냥 ‘사이버 공격’ 포착

▲게티이미지뱅크

 

북한 해커들이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관들을 겨냥해 새로운 악성코드를 이용한 사이버 공격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1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미국 사이버보안업체 ‘센티넬원’은 최근 북한 해킹 조직인 김수키가 북한 관련 정보나 현황을 다루고 분석하는 업체를 겨냥해 새로운 스피어 피싱(Spear Phishing)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스피어 피싱’은 해커가 신뢰할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로 가장해 이메일로 접근한 뒤 문서 파일을 보내는 것으로, 이 파일을 클릭하면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가 빠져나간다.

북한 해커들은 이번 사이버 공격에서 ‘레콘샤크’라고 불리는 새로운 악성코드를 사용했는데, 지난해 사이버 공격에서 사용하던 ‘베이비샤크’라는 멀웨어(악성 소프트웨어)의 변종인 것으로 밝혀졌다. 센티넬원은 김수키가 북미와 유럽, 아시아의 정부기관과 연구센터, 대학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개인들에게도 해당 공격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해킹에 미끼로 사용된 문서 형태. 센티넬원 홈페이지 캡처

 

센티넬원의 연구원인 톰 헤겔(Tom Hegel)과 알렉산다르 밀렌코스키(Aleksandar Milekoski)는 “합법적으로 보이는 내용과 문구, 디자인 요소들을 사용해 이메일을 만들기 때문에 공격 대상자가 이를 열어볼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악성문서가 첨부된 이메일에는 실존하는 인물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센티넬원에 따르면 이 문서를 열 경우 수신자의 컴퓨터에 백도어(backdoor)가 설치되면서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에 접근이 가능해진다. 백도어 공격은 주인 몰래 뒷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비유한 말로 보안 허점을 이용해 인증 절차 없이 공격 대상의 시스템에 접근해 가하는 공격을 의미한다.

이어 이들 연구원은 “레콘샤크는 정보유출 외에도 피해자가 어떤 종류의 탐지기능을 활용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춘 페이로드를 추가로 설치하기도 한다”며 “베이비샤크보다 능동적이고 맞춤형 공격을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키는 201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커조직으로, 전 세계 기관과 개인을 대상으로 사이버 공격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일보 곽선미 기자

 
 

05.10 北은 ‘본사’ 민노총은 ‘영업1부’...지령문엔 “20년 뜨거운 동지”

前 쟁의조직국장 통신문건 해독해보니
민노총 홈피나 유튜브 댓글 통해 지령 오가
“미행 있으면 담배 물어라” 첩보영화 같은 접선도

 ▲박광현 수원지방검찰청 인권보호관이 10일 수원지검에서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지령을 수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민노총 전직 간부들이 받은 지령문에는 서로 접선하고 지령을 수신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총책인 전 민노총 조직쟁의국장 A(52)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암호키를 발견해 이들이 주고받은 통신문건을 해독했다. 북한의 지령문이 90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중 역대 최다였고, 보고문 24건도 확보했다.

 

10일 수원지검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민노총에 침투해 지하조직을 구축한 A씨는 지난 2018년 10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약 4년 동안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과 통신으로 지령문과 보고문을 주고받았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A씨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확인해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와 북한 공작원들이 사전에 약속한 ‘대북통신문 약정 음어’에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의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총회장님’으로 표기됐다. 북한 문화교류국은 ‘본사’로, 지하조직은 ‘지사’ 등으로 불렸다. 민노총은 ‘영업1부’로 지칭됐다.

 

각각 지사장과 팀장으로 불린 A씨 등은 지하조직으로 새 인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이 지령한 5단계 절차인 ‘친교 관계 형성→사회 부조리에 대한 불만 촉발→사회주의 교양→비밀조직 참여 제안→적극적 투쟁 임무 부여’ 과정을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민노총 홈페이지 게시판과 유튜브 동영상 댓글도 대북 연락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페이지 게시판 특정 ID 명의의 게시글에 취지와 무관한 내용을 삽입하도록 했다. 2020년 8월 북측의 지령문에는 “출장을 나올 수 있다면 유튜브 동영상 댓글에 문자 ‘토미홀’ 포함시킨 필명이나 글을 올리고, 불가능하면 ‘오르막길’을 포함시켜라”는 취지의 내용과 함께 유튜브 동영상의 링크를 보내기도 했다.

 

북측은 또 A씨 등과 접선하기 위해 영화 시나리오와 유사한 보안수칙 등 구체적인 지령도 보냈다. 지난 2019년 7월 지령문을 보면 “지사장은 8월 8일 베트남에서 예정된 접선 약속 시간 5분 전에 약속 장소 위치에서 대기하다가 정시에 손에 들고 있는 생수 물병을 마시는 동작을 실행하라”고 했다.

 

이어 북측 공작원이 지사장의 동작을 확인한 뒤 7∼8m 거리에서 손에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손수건으로 두세차례 닦는 동작을 하면 양측이 은밀히 만나기로 계획을 짰다. 만약 미행이 포착되면 휴대전화로 ‘두통이 오는데 병원이 가겠다’고 알려주겠다며 지사장에게 미리 고지한 2차(예비) 장소로 갈 것을 지시했다. 통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면 북측 공작원이 담배를 피워 물면 미행이 달렸다는 신호로 알고 지사장에게 자연스럽게 장소를 이탈하라는 강령도 전파했다.

 

검찰 관계자는 “북측의 지령문을 보면 A씨에 대해 ‘20년 동안 서로 만나 굳게 손잡고 뜨겁게 포옹하며 밤새도록 따뜻한 동지’라는 표현이 있어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간첩 사건에서 유튜브 동영상 댓글을 통한 의사 소통을 적발한 것은 처음으로, 암호장비가 없어도 간편하게 의사를 밝힐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권상은 기자

 

05.10 北 지령 받은 간부 구속기소날에...민노총, 대통령실 앞에서 “尹 정권 퇴진하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우리 투쟁은 세상을 바꿀 것”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간부가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가운데, 민주노총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10일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퇴진 선포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10일 오후 2시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경찰 추산 2000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모여 ‘윤석열 정권 퇴진 선포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가자 총파업’ ‘윤석열 OUT’ 등이 적힌 손팻말과 플래카드를 들고 “열사의 염원이다. 윤석열 정권 끝장내자” “노조탄압 검찰독재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같은날 수원지검에서는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이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고 반정부 투쟁을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날 집회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마이크를 들고 “오늘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1년이 되는 날. 365일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다”면서 “노동자와 농민의 힘으로 윤석열 정권을 반드시 끌어내릴 것”이라고 외쳤다. 이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고 공갈 갈취범으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밟은 윤 정권을 용서할 수 없다”며 “우리 투쟁은 세상을 바꿀 거다. 민주노총 단위노조 이름으로 윤 정권 퇴진 투쟁을 선포한다”고 했다.

 

이양섭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역본부장은 “건설 현장에 들어가 보면 외국인 노동자가 100~200명씩 되는데, 건설 노동자는 20명밖에 안 되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지금도 고용이 안 되고 있다”면서 “경찰은 표적 수사를 하며 (건설 노동자를) 현장에서 돈을 뜯어먹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갔다”고 했다. 이후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모(50)씨가 분신한 뒤 사망한 것을 두고 조합원들은 “제2의 양씨가 나오지 않게 해달라” “살려내라 살려내라 양씨를 살려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호응했다.

 

본집회가 끝난 오후 2시 55분쯤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 퇴진투쟁 선포문을 낭독하고 한강대로 왕복 10개 차로 중 2개 차로를 점거한 채 서울역을 거쳐 시청역 인근까지 행진했다.

조선일보 김광진 기자  오유진 기자

 

05-10 민노총 홈피 ‘처음처럼’, 유튜브 댓글 ‘오르막길’…北과 교신 암호였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 정원두)는 10일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을 간첩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기면서 이들이 민노총 홈페이지와 유튜브 댓글 등을 대북 연락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북한은 작년 8월 8일 이들에게 보낸 지령문에서 “현재 보안상 소식을 보낼 조건과 환경이 되지 못하여 주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안심할 수 있게 영업1부(민조노총) 자유게시판에 ‘처음처럼’이라는 필명 혹은 제목에 반영한 글이라도 올려주기 바람”이라고 했다. 검찰은 실제 민노총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들은 교신을 주고받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총회장님’, 북한 문화교류국은 ‘본사’, 지하조직은 ‘지사’로 지칭했다. 민주노총은 ‘지사’의 지도를 받는 조직이라는 차원에서 ‘영업1부’로 불렸다.

 

북한은 또 2019년 9월 7일 보낸 지령문에서 “연락문을 주고받는 과정이 정상화되기 전까지 본사(문화교류국)에서는 신호선을 이메일과 함께 종전의 ‘실개천’을 병행 이용하도록 하겠음”이라고 했다. 검찰 확인 결과 실제 민주노총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개천’ 명의로 쓴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 글엔 난수표를 포함해 암호해독 코드 등이 담겼다고 한다.

 

북한과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은 유튜브 동영상 댓글을 통해서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북한은 작년 8월30일자 지령문에서 “소식을 받는 즉시 유튜브 동영상 댓글에 문자 ‘토미홀’을 포함시킨 필명이나 글을 올리면 출장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준비하겠음. 9~10월이 불가능하다면 문자 ‘오르막길’을 포함시킨 글을 매달 18~20일에 올리다가 출장이 가능한 두 달 전에 ‘토미홀’로 해주기 바람”이라며 유튜브 링크를 보냈다. 해당 링크는 오토바이 관련 영상으로 연결됐는데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사려졌다고 한다.

 

북한은 A(52) 전 민노총 조직쟁의국장과 해외에서 접선하기 위해 구체적인 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2019년 7월 10일자 지령문엔 “만남 5분 전에 약속 장소 위치에서 대기하다가 정시에 ‘손에 들고 있는 생수 물병을 마시는 동작을 실행하라’”고 적혔다. 이어 “북측 공작원이 동작을 확인한 뒤 7∼8m 거리에서 손에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손수건으로 두세차례 닦는 동작을 하라”고 했다.

 

만약 미행이 있을 경우 휴대전화로 “두통이 와서 병원에 가겠다”고 알려주겠다면서, 이후 미리 알려준 2차 장소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전화 통화가 어려울 경우엔 북한 공작원이 담배를 피워 물면 미행이 있다는 신호로 알고 현장에서 이탈하라고 했다.

조선일보 송원형 기자

 

05.11 北 지령문만 90건, 민노총·北 관계 안 밝혀진 게 더 많을 것

노조 간판을 달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민노총 전직 간부 4명이 구속 기소됐다. 이들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에서 발견된 북한 지령문만 90건으로, 역대 간첩 사건 중 최다라고 한다. 한국의 대표적 노조 간부들이 이렇게 북한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 이들이 북에 보고한 문건 24건도 적발됐다. 북한 지령은 한국에 정치 이슈가 있거나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하달됐고, 주로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이었다.

 

작년 핼러윈 참사 때 하달된 지령문에는 “역도놈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 촛불 시위, 추모 문화제 같은 항의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라”며 ‘이게 나라냐’ ‘퇴진이 추모다’ 같은 구호들을 전면에 내걸라는 구체적 지시까지 담겼다. 이 구호는 실제 집회 현장에서 그대로 쓰였다.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2019년에는 “노동자 결의대회 등을 통해 민심을 ‘검찰 개혁’에로 최대한 견인해 나가라”는 지령을 내렸다. 당시 일부 시민단체들은 조국 수사 반대 집회에서 검찰 개혁을 주장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 이번에 기소된 이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북한은 이들에게 청와대 등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 마비를 위한 자료 입수와 화성·평택 2함대 사령부, 평택 화력·LNG 저장탱크 배치도와 같은 비밀 자료 수집을 지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자료가 북에 전달됐다면 심각한 일이다.

 

이들은 북과 교신을 주고받을 때 북한 김정은을 ‘총회장님’, 북한 문화교류국을 ‘본사’, 민노총 자신들은 ‘영업1부’로 불렀다고 한다. 사기업 형태로 활동을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이 중 한 명은 20여 년간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면서 ‘따뜻한 동지’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는 표현을 주고받았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 최악의 실패 집단으로 입증됐는데 아직도 한국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들이 기소된 날 민노총은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어처구니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노총은 간첩 수사를 ‘공안 탄압’이라고 해왔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 북한과 민노총 관계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조선일보 

 

05-11 ‘정치투쟁 北 지령’ 前간부 기소된 날 민노총 “尹 퇴진”

여러 간첩단 수사 과정에서 일부 알려지긴 했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직 간부 4명이 기소되면서 드러난 행태는 충격적이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는 북한 지령을 받아 노조 활동을 가장해 반정부 시위와 선거 개입과 같은 정치투쟁을 벌이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 혐의로 이들을 구속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같은 날 민노총은 대통령실 인근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 투쟁”을 선언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들이 노동단체를 외피 삼아 북한 지령에 따른 정치투쟁 등에 집중하도록 주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북한으로부터 90차례 지령을 받았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총회장, 대남 공작기구인 문화교류국을 본사, 민노총은 ‘영업1부’로 지칭했다. 이들은 기존의 간첩들처럼 청와대, 해군 2함대사령부 등 국가 주요 시설 기밀 수집과 휴민트 구축을 지령받기도 했다.

그러나 핵심은 정치 투쟁이었다. 북한은 국내 주요 이슈에 맞춰 촛불시위 등으로 반정부 투쟁, 반미·반일 감정을 조장하고 민노총을 정치투쟁 선동에 동원하도록 지시했다. 지난해 10월 핼러윈 참사 이후에는 추모 문화제 등으로 반정부 시위를, 지난해 12월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에는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라는 지령을 내린 게 대표적 예다. 지난해 3월 대선 직후에는 “윤 대통령 탄핵의 불씨를 지피라”는 지령을 내렸다. 진보당에 대한 민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지시하고 정의당에 대해선 분열 와해 지시도 내렸다. 2020년 총선 이후에는 국회의원 당선인 전원의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해 보고토록 했다.

북한이 민노총을 정치투쟁에 동원하는 대남공작을 펴고 있는데도 민노총은 한차례도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지령문이 많은 만큼 향후 수사에서 민노총과 연계를 보여줄 추가 혐의가 드러날 수 있다. 제주와 창원 등에서 적발된 간첩단과의 상호 연계도 일부 확인된 만큼 낱낱이 전모를 밝혀야 한다. 여전히 암약하는 세력도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5.12 尹 “北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 김관진 “국방혁신 나서야”

김관진 前국방장관에 “제2 창군 수준 혁신을”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국방혁신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했다. 국방혁신위는 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김 전 장관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 전 장관을 “부위원장님”이라 부르며 ‘제2 창군’ 수준의 국방 혁신을 주문했다. 2017년 5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서 물러난 뒤 6년 만에 안보 현장에 복귀한 김 전 장관은 “국방 혁신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방혁신위 모두 발언에서 “제2 창군 수준의 대대적인 변화가 있어야 이길 수 있는 전투형 강군을 만들어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가 있다”며 군의 ‘대대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또 3군 합동성 강화와 전력 통합 등을 위한 ‘전략사령부’ 창설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 북한 핵·미사일 대응력 강화도 주문했다.

 

국방혁신위는 대선 때 과학 강군 육성 등을 공약한 윤 대통령이 작년 12월 제정한 대통령령에 따라 발족했다. 위원장을 맡는 윤 대통령은 이날 김 전 장관 등 위원 8명을 위촉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압도적 대응 역량을 갖추고 대내외 환경 변화에 부합하는 효율적인 군 구조로 탈바꿈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감히 싸움을 걸어오지 못하게 하는 강군으로 군을 바꾸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 군의 지휘 통제 체계도 최적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존경받는 군 원로이신 우리 김관진 전 장관님을 모시고 위원회를 출범하게 됐다”면서 김 전 장관을 ‘부위원장님’으로 불렀다. 김 전 장관이 좌장을 맡아 혁신위를 이끌어달라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회의에선 김 전 장관에 대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이라고도 언급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 전 장관과 오찬도 했다.

 

김 전 장관은 회의에서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는 군이 되도록 준비하는 동시에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첨단 기술을 군사작전에 접목하는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재임 시절 군 상부 지휘 구조 개편 등 ‘국방개혁307계획’을 추진했고, 사회 전반에 걸친 심리전, 사이버전 공격이 접목된 4세대 전쟁 양상에 대한 대비를 강조해 왔다. 김 전 장관은 통화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시화하고 미·중·러 갈등 등 세계 안보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방 혁신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과거 북한의 대남·대미 대화 공세에 대해 “연작처당(燕雀處堂)”이라고 했던 김 전 장관은 이날도 “지금도 경계로 삼아야 할 말”이라고 했다. 연작처당은 제비와 참새가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안락하게 지내면서 경계심을 잃어 집에 위험이 닥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도 정부가 추진하는 ‘국방혁신4.0′에 대해 “목표는 위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최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해 군의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적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 정부에서는 국군 통수권자가 전 세계에 북한이 비핵화할 것이니 제재를 풀어달라고 해 결국 군이 골병들고 말았다. 정치 이념에 사로잡혀 북핵 위험에서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라면서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최경운 기자

 

05.18  6개월내 가능할까? 조기 독자 핵무장의 4대 장애물

한국의 진짜 핵무장 잠재력은?

“한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는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이같이 밝힘에 따라 우리나라의 핵무장 잠재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핵무장 잠재력에 대해선 “6개월이면 가능하다”는 낙관론과 “1~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엇갈려왔다.

 

지난 2015년 미국의 핵군축 전문가 찰스 퍼거슨 미 과학자연맹(FAS) 회장이 발표한 이른바 ‘퍼거슨 보고서’는 조기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에 불을 지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북한에 월등히 앞선다. 한국 원자력 설비 용량은 세계 5위이고 운전 기술력은 세계 1위, 핵무기 제조 잠재력은 세계 10위권 내에 들어 있다. 이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에 버금가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보다 높은 것이다.

 

 

 

◇ “월성 원전서 핵무기 4330개 분량 플루토늄 추출 가능”

한국의 레이저 우라늄 농축 기술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지로 플루토늄이 없이도 단기간에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퍼거슨 보고서는 주장했다. 특히 경북 월성에 있는 4기의 가압중수로형 원자로에서 그동안 추출해 쌓아놓은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무기급 플루토늄 26t을 얻을 수 있다. 이는 핵무기 433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월성 원자로에서는 매년 핵무기 416개를 만들 수 있는 2.5t의 준(準)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되고 있다.

 

증폭 분열탄이나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도 상당량 확보돼 있다고 한다. 또 핵무기 제조 과정의 핵심인 고농축이나 재처리 시설도 자체 제작이 가능하고 핵물질, 핵탄두, 운반체도 자체적으로 확보돼 있다는 게 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도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내에 핵무기를 터뜨리는 기폭(起爆) 장치와 탄도미사일 등 투발 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며 낙관론에 힘을 보태왔다.

 ▲경주 월성 원전에 있는 건식 임시저장시설 '맥스터'. 직육면체형 콘크리트 건물 하나당 사용후핵연료가 담긴 강철 원통을 40개씩 보관할 수 있다. / 한국수력원자력

 

그러면 실제로 6개월 내 독자 핵무장이 가능할까? 핵무기는 원료에 따라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으로 나뉜다. 천연 우라늄 중 핵분열을 하는 우라늄 235는 0.7%에 불과한데 핵무기 원료로 쓰려면 이를 90% 이상으로 고농축해야 한다. 고농축 우라늄 1㎏을 얻기 위해선 1000t의 천연 우라늄이 필요한데 우라늄탄 1기 제조엔 고농축 우라늄이 15~20㎏가량 있어야 한다. 고농축 우라늄은 보통 원심 분리기를 활용해 얻지만 레이저를 활용한 최신 농축법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원심분리기 시설이 없다. 다만 지난 2000년 최신 레이저농축법으로 0.2g의 순도 77% 농축 우라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레이저 농축 기술을 갖고 있어 언제든지 레이저농축으로 고농축우라늄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핵무기 개발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양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플루토늄탄은 퍼거슨 보고서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월성 중수로 원전 때문에 독자 핵무장에 우라늄탄보다 유리한 방식으로 거론돼왔다. 중수로 방식인 월성 원전은 경수로 방식인 다른 원전에 비해 플루토늄 함량이 높은 폐연료봉이 나온다.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방법은 전기분해(건식), 습식 재처리(퓨렉스 등)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기술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아 우리도 만들 수 있지만 현재 재처리 시설은 없는 상태다. 대규모 재처리 시설을 만드는 데에만 6개월~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플루토늄탄 1기 제조엔 과거엔 플로토늄 6~8㎏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기술 발전으로 4~6㎏ 정도면 가능하다.

 

◇핵기폭장치 등 개발 40년 이상 중단 상태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충분히 확보되더라도 이를 핵무기로 만드는 기폭장치 등 무기 기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기폭장치 개발엔 100만분의 1초까지 타이밍을 맞추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 핵기폭장치 개발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밀 핵개발 당시 추진됐지만 핵개발을 포기한 뒤엔 40년 이상 중단 상태다. 핵기폭장치 및 탄두 개발에는 국산무기 개발의 총본산인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참여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 국방과학연구소에 핵무기 관련 기구와 인력은 전무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개발에 대해서도 상당히 진척됐다는 시각과 함께 부풀려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전 국방대 부총장)은 저서 ‘핵비확산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핵정책’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개발이 마치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신화 만들기’가 있었고, 이 신화 만들기가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불신 가중과 우리의 평화적 핵이용 정책 면에서 국익 손실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재처리 시설 도입 美와 협상 필요”

이에 따라 독자 핵무장에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윤 대통령이 ‘1년 이내’를 언급한 것도 그런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핵자강론자’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핵공학자와 기술자들을 선정해 팀을 만들고 시설을 건설하는 데에도 일정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3~6개월 내 핵무기 개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나친 낙관론에 빠져있기보다 우리 핵잠재력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토대로 적극적으로 잠재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동북아외교안보포럼(이사장 최지영)은 지난달 30일 사용후핵연료 습식 재처리 시설의 국내 도입을 위해 미국과 협의해 나갈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외교부에 제출했다. 최 이사장은 “오는 2030년쯤 고리와 영광 원전 부지 내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 등을 언급한 것이 핵잠재력 포기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핵잠재력 확보 추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 핵무기 보유량, 20~90기로 다양한 추정

현재 북한의 핵무기 수는 20~90기 범위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추정하는 전문가와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해 북한의 비밀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이 계속 활발하게 가동되며 핵무기 원료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2016년 공개한 구형(球形) 핵탄두(왼쪽 사진)와 2023년 공개한 ‘화산-31형’전술핵탄두. 화산-31형은 직경 50cm 이하로 작아져 다양한 미사일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1월 한국국방연구원(KIDA) 박용한 선임연구원과 이상규 현역연구위원은 ‘북한의 핵탄두 수량 추계와 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탄두 수량이 80~90기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국 핵군축 전문 민간연구소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발간한 ‘북한 핵무기 보유고-새로운 추정치’ 보고서는 지난달 북한이 핵무기 45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022년 말까지의 북한 핵무기 수에 대해 “경우에 따라 북한이 만들 수 있는 핵무기는 35~65기 사이인데 중간값은 45기”라고 분석했다.

 

북한 핵무기는 숫자뿐 아니라 각종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 등 소형화 측면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북한은 지난 3월 ‘화산-31형’이라 불리는 소형 핵탄두 실물과 명칭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화산-31형은 직경 40~50㎝, 길이 90㎝가량으로 북한이 지금까지 공개한 핵탄두 중 가장 작다. 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물론 600㎜ 초대형방사포, 무인수중공격정 ‘해일’, 화살-1·2 장거리 순항미사일, KN-24 미사일,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8종의 무기에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5.19 "최고영도자 김정은 만세" 민노총 간첩단, 北에 '충성맹세'했다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규탄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이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들어갔다. 국정원은 제주 'ㅎㄱㅎ', 창원 '자통' 등 간첩단 혐의 지하조직 사건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강제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민주노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았다. 뉴스1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 만세!. 아름찬 투쟁의 역사 조선노동당 만세!. 김일성-김정일주의화 실현 투쟁 만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출신의 석모(52)씨 등이 북한에 이런 충성 맹세문을 여러 차례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가 19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석씨와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을 지낸 김모(48)씨, 민주노총 산하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54)씨, 제주평화쉼터 대표 신모(51)씨 등 4명의 공소장엔 이들이 북한에서 받은 지령문과 보고문 등이 상세하게 적시됐다. 이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총회장님’으로, 북한 문화교류국은‘본사’, 지하조직은 ‘지사’, 민주노총은 지하조직의 지도를 받는다는 의미로 ‘영업1부’로 부르는 등 활동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 정원두)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편의 제공 등) 혐의로 지난 10일 이들을 구속기소했다.

“대를 이어 충성하자” 김정은에 충성맹세

공소장에 따르면 석씨는 2018년부터 북한 문화교류국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부자(三父子) 대한 충성맹세문과 사상학습 결과를 주기적으로 보고했다. 북한 문화교류국은 같은 해 12월 3일 이들에게 “새해와 1월 8일(김정은 생일)을 맞아 총회장님(김정은)께 드리는 축전을 15일 전까지 보내라”고 지시하는 등 주기적으로 충성맹세를 요구했다.

 ▲경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공소장에는 이들이 2018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북한에 전달한 5개의 충성맹세문 일부가 적시됐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조선반도에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온 겨레 성원 모두가 우러르는 주체 혁명의 새 세상을 열어주시었습니다”(2018년 12월 9일)

“수령님과 장군님의 사상과 업적을 빛나게 계승하여 이남 사회에 김일성·김정일주의화 위업을 빛나게 실현함으로써 이 땅 위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 통일을 이룩하는데 한 몸 바쳐 투쟁할 것을 결의합니다”(2020년 9월 30일)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의 영원한 수뇌부를 결사옹위로 정의롭고 아름찬 역사를 계승하고, 경애하는 영도자 김정은 동지께 대를 이어 바쳐가자”(2021년 1월 11일)


“김정은 동지의 손을 잡고 태양조선, 백두산 민족의 기백으로, 선군의 총열에 붉은 기 묶고, 앞세워, 억척같이 어깨 걸고 한발 한발 진군 또 진군해 나갈 것입니다.”(2022년 1월30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받들어 대를 이어 충성하자”(2022년 4월 4일)

 

‘생수병 마시는 동작’ 은밀하게 접선·활동했지만…

이들은 북한 지시에 따라 민노총을 장악하려 시도하는 한편, 정권 퇴진 및 반미 등 주요 사회 이슈와 관련한 정치 투쟁을 주도했다고 검찰은 적시했다. 석씨는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102차례에 걸쳐 북한 지령문을 받고 북한에 전달했다. 민노총 위원장 선거 후보별 계파 및 성향, 평택 미군기지·오산 공군기지 시설·군사 장비 등 사진을 수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미행·감시 등을 피하기 위해 하부 조직원이 상부 조직원과 1대 1로 연락하는 ‘단선연계 원칙’을 적용해 비밀스럽게 활동했다. 북한 문화교류국과 연락할 때도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간첩 통신’으로 불리는 스테가노그래피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게시판, 유튜브 동영상에 은밀한 댓글 달기 등을 활용해 북한 공작원과 지령문과 보고문을 주고받았다.

 ▲지난 10일 박광현 수원지방검찰청 인권보호관이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브리핑실에서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서로를 ‘지사장’ ‘2·3팀장’ 등으로 부르고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할 때도 ‘계단에서 대기하다가 정각에 손에 들고 있는 생수병을 열고 마시는 동작’ 등 약정 신호를 주고받고도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 뒤를 따라가며 역 감시하면서 만나는 등 보안을 유지했다.

 

그러나 은밀한 접촉은 수사기관이 지난 1월 석씨가 근무하던 민노총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암호 해독키를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검찰과 국정원, 경찰청은 이번 수사로 90건의 북한 지령문과 24건의 대북 보고문을 확보했다. 역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중 가장 많은 지령문·보고문이 확보된 사건이다.
하지만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진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05.20 진짜 전략자산

▲6.25전쟁 때 만 33세의 나이로 한국군 첫 대장이 됐던 백선엽 장군(왼쪽)과 북이 가장 두려워했던 김관진 전 국방장관./조선일보 DB

 

작년 취재차 워싱턴DC 미 국방부(펜타곤)에 갔을 때다. 세계 최강 군의 심장부로 불리는 곳. 화염 뿜는 핵폭탄, 첨단 무기의 사진과 모형물이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 인물 사진이 많았다. 오각형 펜타곤을 둘러보는데 복도 양옆으로 ‘너무 빽빽하다’ 싶을 정도로 참전용사, 역대 각군 부대 지휘관, 보직자 인물 사진 액자가 줄지어 전시됐다. 인디언·흑인·무슬림·장군·병사 등 인종·종교·계급 불문이었다.

 

왜 이렇게 인물 위주로 전시를 했을까. 펜타곤 인솔 장교에게 물었다. “사람, 즉 우리가 중요하다는 거죠. 무기를 개발하고 쓰는 것도 사람 아닙니까. ‘저 액자 속 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국이 있다’ ‘우리도 후배에게 저 선배처럼 되기 위해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이런 의미입니다.”

 

이날 펜타곤에선 한미 국방부 장관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열고 미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상시 배치에 준하는 수준으로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가 마중물돼 올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협의그룹(NCG)’ 창설이란 성과가 나왔다. 북 도발 시 “정권 종말”이라는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하기 위해 미국의 전략 자산을 적시에 한반도에 전개하고 미 핵무기 운용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NCG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협의체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양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북 억지력으로 우리 안보를 강화하겠지만 동시에 미 전략 자산에 대한 의존성은 커져 자주 국방 역량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최고인 미군과 훈련하고 이들 핵심 전력 노하우를 공유받는다면 그 자체로 얻는 혜택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다만, 결정적일 때 ‘미국이 지켜주겠지’라는 막연한 의존성이 역병처럼 우리 군에 퍼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륙간탄도미사일·전략폭격기·전략 핵잠수함도 좋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빠져선 안 되는 전략 자산은 ‘찐 군인’이다.

 

김정은도 태평양 등에서 한반도에 일시적으로 왔다가는 미 전폭기나 항모보단 침과대적(枕戈待敵)과 같은 기세를 뿜어내는 코앞의 한국군 사령관이 더 위협적일 것이다. 실제로 김관진 장군이 국방장관일 당시 북한은 그의 결기에 눌려 도발 한번 제대로 못 했다. ‘겁먹은 개가 짖는다’고 북 선전 매체는 표적물에 김 장군 얼굴을 그려 넣고 훈련하며 불안 심리를 드러냈다. 김 장군이 군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 미 전략 자산의 한반도 상시 배치와 같은 효력을 냈던 셈이다. 6·25전쟁 당시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고 했던 고(故) 백선엽 장군의 일성은 지금도 울림이 크다. 그의 유산은 미군도 ‘공유’받고 싶어 하는 한국 전략 자산이다. 한반도의 인적 전략 자산은 계속되어야 한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5.20 “계엄문건 문제없다던 송영무 말바꿔… 옷벗을 각오로 폭로”

2018년 기무부대장이었던 민병삼 예비역 대령 인터뷰

 ▲민병삼 전 국방부 100기무부대장(예비역 육군 대령)이 현역 시절인 2018년 7월 24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증언하는 모습. 민 대령은 지난 18일 본지 인터뷰에 응하면서 사진 촬영은 끝내 거부했다. 그는 “군복을 입은 군인의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TV조선

 

문재인 정부에서 이른바 ‘계엄 문건’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국방부 담당 기무부대장이었던 민병삼(59·육사 43기) 예비역 대령은 본지 인터뷰에서 “2018년 당시 군사 2급 기밀이었던 ‘계엄 문건’이 군인권센터 등으로 유출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 대령은 100기무부대장으로 근무하던 2018년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 송영무 국방장관 면전에서 “송 장관이 ‘위수령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송 장관은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했고, 민 대령에겐 “공개 하극상”(더불어민주당) 같은 공격이 쏟아졌다.

 

5년이 지난 현재, 송 전 장관은 당시 자신은 민 대령이 증언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문서를 만들어 부하들에게 서명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민 대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국민 앞에서 진실만을 답변하는 것이므로 두려움은 없었다”며 “진실을 부인하는 송 장관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국방위 출석 직전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는 그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데 상대는 살아있는 권력이니 군 생활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계엄 문건’ 논란은 2018년 7월 6일 민간단체인 군인권센터가 해당 문서 전문(全文)을 공개하며 촉발됐다. 기무사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대규모 소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비상 상황을 가정하고 작성한 문서였다. 사흘 뒤인 7월 9일, 송 장관도 국방부 간담회에서 “위수령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 검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는 것이 민 대령 증언이다.

▲2018년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계엄문건과 관련한 이석구 기무사령관의 답변을 듣고 있다./이덕훈 기자

 

당시 민주당 등은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 음모”라며 기무사 해체를 주장하고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 방문 중에 “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게 수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송 장관이 ‘문제없다’고 한 게 사실이라면 수사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송 장관은 “그런 발언 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서’를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서명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 대령은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 본지는 송 전 장관의 반론을 듣고자 휴대전화와 문자로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민 대령의 국방위 증언 다음 날 ‘장관 명령서’를 든 사람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컴퓨터를 뒤졌다. 민 대령은 “나중에 들으니 송 장관이 나에 대한 징계나 법적 조치 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다섯 번이나 내렸다고 하더라”고 했다. 민 대령은 문재인 정부가 기무사를 해체하고 당국의 먼지 떨기식 수사에 일부 기무 요원들이 목숨을 끊는 모습을 보며 낙심했고, 2019년 23사단 부사단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계엄 문건’에 대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했었다. 그러나 민 대령은 “국가 안전 보장이 최우선 임무인 군이 마땅히 수립했어야 하는 계획”이라고 했다. 문건 내 실병(實兵) 배치 계획이 ‘내란 음모’라는 주장에 대해선 “실제 작전이 이뤄지려면 3군사령관과 예하 사단장 등이 지휘소 연습을 하고 구체적인 훈련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현장 지휘관들은 계획의 존재도 몰랐다”며 “문건은 아주 기초적인 대비 계획일 뿐이었다”고 했다.

 

계엄 문건 합수단은 검사 37명을 동원해 100여 일간 200여 명을 조사하고 9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그러나 내란 음모 혐의 대신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 관련자 3명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민 대령은 “도끼 들고 호랑이 잡겠다더니 모기 세 마리만 잡은 꼴”이라며 “기무사 해체 등 정치적 목적을 띤 여론 몰이이자 수사였다”고 했다. 민 대령은 “문재인 청와대도 정권 초 문건의 존재를 인지했지만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군이 정말 쿠데타를 모의했다면 2급 기밀로 정식 등재했을 리가 만무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5.20 13년의 절치부심… 천안함, 더 강력해져서 돌아왔다

천안함, 최신 호위함으로 재탄생… 전투력 강화하고 대잠 성능 향상

 ▲19일 경남 창원시 진해군항에서 열린 최신 호위함 천안함(FFG-826) 취역식에서, 김명수 해군작전사령관이 한규철 천안함장과 승조원들로부터 경례를 받고 있다. 2010년 북한의 공격으로 폭침됐던 초계함 천안함(PCC-772)은 최신 전투 능력을 갖춘 호위함으로 부활해 올 연말 옛 천안함이 속했던 2함대에 작전 배치될 예정이다./김동환 기자 

 

2010년 북한에 폭침됐던 초계함 천안함(PCC-772)이 전투 능력을 갖춘 최신 호위함 천안함(FFG-826)으로 13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해군은 19일 경남 진해 군항에서 신형 호위함 천안함 취역식을 열고 “천안함 46용사의 애국 충정과 국민 염원을 담은 천안함이 해군 핵심 전투 함정으로 부활했다”면서 “전력화 과정을 거쳐 올 연말 옛 천안함과 같은 2함대에 작전 배치돼 서해 수호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취역식은 군함이 시험 항해 등을 마치고 정식으로 해군의 전투 세력으로 편입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사다. 이날 취역식에는 김명수 해군작전사령관, 원종대 국방부 전력정책관, 김종철 합참 전력기획부장 등 군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성우 천안함 유족회장,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예비역 대령) 등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도 함께했다.

▲19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군항에서 열린 해군 신형 호위함 천안함(FFG-826) 취역식에서 천안함(PCC-772) 참전장병인 박연수 중령(왼쪽)과 류지욱 중사가 취역기를 게양하고 있다. /해군 제공

 

해군은 취역기 게양을 옛 천안함 참전 장병인 박연수 중령(진)과 류지욱 중사에게 맡겼다. 류 중사는 “하늘에 있는 46명의 전우와 군과 사회에 있는 생존 58명 전우와 함께하는 마음으로 게양을 했다”고 했다. 류 중사는 새 천안함에도 승조원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최 전 함장은 “천안함의 수호 임무가 2010년 3월 26일에 멈췄는데, 신형 호위함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새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면서 “북한이 다시 도발한다면 새 천안함이 옛 천안함 전사자와 참전 장병의 몫까지 더해 강력히 응징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새 천안함 함장인 한규철 중령은 “취역식에 참전 장병을 비롯해 유가족분들이 함께해 더욱 뜻깊다”면서 “용사의 고귀한 희생과 수호 의지를 이어받아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어떤 상황에도 서해를 완벽 수호하겠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새로운 천안함./HD현대중공업

 

통상 해군에서는 취역식에 앞서 건조한 배를 처음 띄우는 진수식이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신형 천안함 진수식은 최 전 함장과 생존 장병들이 참석을 거부해 반쪽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진수식 참석으로 위해 기차표까지 예매해 놓은 상태였지만,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천안함 좌초설’ 등 각종 음모론을 제기한 유튜브 영상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자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발길을 돌렸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쇼’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진수식에서 국방장관은 유가족을 앉혀 놓은 채 북한 폭침에 대해선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한반도 평화’ ‘세계 평화’ 등 모호한 표현의 연설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진통을 거쳐 이례적으로 취역식 때 생존 장병이 참석하며 2년 만에 온전한 행사가 열린 것이다.

 

군에 따르면, 새 천안함은 당초 6월 취역 예정이었지만, 빠른 작전 임무 수행을 위해 일정을 한 달가량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새 천안함은 배수량 2800t으로 구형(1000t)보다 함급이 한 단계 격상된 호위함이다. 길이 122m, 폭 14m, 높이 35m이며, 최고 속력 30노트(시속 55㎞)에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할 수 있다. 무장은 5인치 함포, 20㎜ 팔랑스(Phalanx), 함대함유도탄, 한국형수직발사체계(KVLS)로 발사하는 함대지유도탄, 장거리 대잠어뢰, 유도탄방어유도탄 등을 탑재했다. 또 선체고정음탐기(HMS)는 물론 과거 천안함에는 없었던 예인선배열음탐기(TASS)를 탑재해 원거리에서도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 추진 전동기와 가스 터빈 엔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추진 체계’를 탑재해 대잠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고 해군은 전했다. 평상시 소음이 작은 추진 전동기를 운용해 잠수함의 탐지를 피해 은밀히 항해하고 유사시엔 가스 터빈 엔진으로 전환해 고속 기동이 가능하다.

▲새 천안함 탑승한 유가족 - 2010년 폭침된 초계함 천안함(PCC-772) 용사의 유가족들이 19일 최신 호위함 천안함(FFG-826) 취역식에 참석한 뒤 신형 천안함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맨 오른쪽은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 /김동환 기자

 

이날 천안함 폭침 전사자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 등 유가족들이 새 천안함에 탑승해 선상과 내부를 둘러보기도 했다. 윤 여사는 2020년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분향할 때 다가가 “천안함 (폭침이) 누구 소행인지 말씀 좀 해달라”고 말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윤 여사 등 유가족은 이날 해군 측으로부터 새 천안함 제원 등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최 전 함장 등 생존 장병들과 함께 함선 앞에서 파이팅 구호를 외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에 앞서 해군은 지난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전사한 고(故) 윤영하 참수리 357호정 정장(당시 대위)을 포함한 6명 전사자의 이름을 각각 딴 전투 함정 6대를 평택 2함대에 작전 배치해 운용 중이다. 해군은 “윤영하함 등 제2연평해전 여섯 용사 함정의 탄생 그리고 이번 천안함의 재탄생은 국가와 군이 전사한 우리 장병을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한다는 의미”라면서 “북한 도발에 강력한 응징 의지도 담겨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5.20 사드괴담 이긴 성주 참외가 富農 만들었다

성주군, 작년 참외 5763억원어치 팔아… 농가 절반 억대 매출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조상범(33)씨는 지난 2017년 회사를 그만두고 참외 농사를 지으러 고향 성주로 내려왔다. 정부가 성주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한 이듬해였다. 당시 ‘전자파가 참외를 썩게 한다’는 괴담이 돌았고, 성주 참외는 ‘전자레인지 참외’ ‘사드 참외’라고 불렸다. 사드에 반대하는 일부 농민은 참외밭을 갈아엎었다.

 ▲지난 15일 경북 성주군 성주참외원예농협 참외선별 작업장에서 직원들이 노랗게 익은 참외를 들어 보이고 있다. 풍부한 일조량으로 당도가 높기로 유명한 성주 참외는 전국 참외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조씨가 농사를 시작하던 2017년 봄엔 사드가 처음 배치돼 성주는 연일 찬반 시위로 들끓었다. 조씨는 “괴담 때문에 조롱받는 것 같아서 기분은 나빴다. 가격이 떨어질까 봐 걱정했지만 실제 타격은 없었다”며 “괴담은 괴담일 뿐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6년, 조씨는 지난해 매출 7억5000만원을 올리며 ‘청년 부농(富農)’이 됐다. 사드 괴담으로 홍역을 치렀던 경북 성주는 이제 도시인들의 귀농지로 주목받고 있다.

 

성주는 전국 참외 생산량의 80%가 넘는 국내 최대 참외 생산지다. 모래와 흙이 절반쯤 섞인 사양토(砂壤土)와 참흙인 양토(壤土), 혹한이 거의 없는 풍부한 일조 시간 등 참외 재배에는 최적지로 꼽힌다. 19일 성주군에 따르면, 지난해 총매출액은 5763억원이다. 1970년 성주군이 참외 시설 재배에 성공한 이후 52년 만에 최고치였다. 2019년부터 4년 연속 5000억원대 매출을 달성했다.

/그래픽=양진경

 

조씨처럼 억대 매출을 올리는 참외 농가도 늘었다. 지난해 참외 농가 3841호 가운데 1억원 이상 매출을 기록한 농가는 1713가구로,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전체 농가의 평균 매출도 1억4900여 만원에 달한다.

 

가장 돈을 많이 번 농가는 매출 9억7300만원을 기록했다. 성주에서 45년간 참외 농사를 짓고 있는 정인휴(68)씨는 “거짓말을 퍼뜨리는데 먹힐 리가 있겠느냐”며 “그렇게 시끄러웠던 ‘사드 전자파 괴담’도 농민들 땀 앞에서는 통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성주로의 귀농 역시 매년 늘고 있다. 2017년 한 해 귀농 농가는 106가구였는데 2021년엔 148가구로, 약 40% 늘었다. 30~40대 청년 농가 역시 같은 기간 매년 20~40여 가구가 증가했다. 성주군은 농업 교육 기관인 ‘참별 미소 농업인대학’을 운영하며 농가에 참외 재배 기술을 가르쳐주고, 귀농인들의 정착을 돕는다. 성주군 관계자는 “30대 남짓 신혼부부가 귀농을 문의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며 “잠시 해보다가 떠나겠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착하는 청년 농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성주군의 올해 목표는 매출 6000억원. ‘껍질째 먹는 참외’ 등 신품종을 키워 참외 초콜릿과 참외 막걸리, 참외 반려견 간식 등 여러 가공품을 만들고, 참외가 자랄 때 실시간으로 병·해충 여부를 진단하는 시스템도 만들 예정이다. 이병환 성주군수는 “젊은이들이 떠나는 농촌이 아닌, 모여드는 농촌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성주군 초전면의 사드 기지 주변에는 7년이 다되도록 반대 시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동력을 잃은 상태라고 한다. 사드 배치가 결정된 2016년, 사드가 반입된 2017년에는 기지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수백 명씩 몰려 차량 진입을 막았다. 현재 천막 두 곳이 설치돼 있고 시위 참가자는 적을 때는 5~6명, 많아야 50명 수준이라고 한다.

 

시위대는 가끔 기지로 들어가는 차량을 막는데, 경찰이 해산 조치에 들어가면 쉽게 흩어진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반대 단체에는 고령자가 많은 데다 각자 생업이 있어 요일과 시간을 정해 집회를 열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올해 사드 반대 집회와 관련해 입건·송치된 사람은 3명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이승규 기자

 

05.22 성주 참외 또 매출 최고치, 시장이 퇴출시킨 사드 괴담

▲경북 성주군의 한 농가 비닐하우스/연합뉴스

 

지난해 성주 참외 총매출액이 5763억원을 기록했다. 1970년 성주군이 참외 시설 재배에 성공한 이후 52년 만에 최고치였다. 올해 목표치는 6000억원이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흔한 농정(農政) 뉴스 중 하나였을 이 소식이 관심을 끈 것은 성주가 사드 괴담으로 홍역을 치른 곳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6년 성주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결정하자 사드 반대 단체 등은 ‘사드 전자파가 참외까지 오염시킬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괴담을 퍼트렸다. 그들은 성주 참외를 ‘전자레인지 참외’ ‘사드 참외’라고 불렀다. 성주는 전국 참외 생산량의 80%를 넘게 차지하는 국내 최대 참외 생산지다. 괴담을 걱정한 일부 주민이 참외밭을 갈아엎으며 사드 장비와 물품 반입을 막는 등 반발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사드 반대 집회에 참석해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다”는 노래를 부르며 동조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한때 참외 가격이 30% 폭락하고 4000억원이 넘던 성주 참외 매출액은 3000억원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괴담의 수명은 얼마 가지 못했다. 정부가 환경 영향 평가를 위해 측정한 결과 사드 레이더 전자파 수치는 ㎡당 0.003845W로 기준치인 ㎡당 10W의 2600분의 1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해발 400m에 있는 사드 레이더가 하늘을 향하기 때문에 땅에 미치는 전자파 영향은 의미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괴담을 퍼트리고 증폭시킨 세력 중에서 누가 사과했다는 소식은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사드는 북한 미사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방어 체계다. 대한민국 생존이 걸린 방어 시설을 제대로 설치하는 데 황당무계한 괴담을 퍼뜨려 큰 혼란과 갈등을 유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사드 정식 배치 절차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아 기지 내 인프라 구축과 건설을 본격화하지 못하고 있다. 성주 참외의 최대 매출 소식은 시장이 사드 괴담을 아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정 내리고 퇴출시켰다는 뜻이다. 국민이 외면한 가짜 뉴스로 국가 기반을 흔드는 일을 멈추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사설

 

05.23 부활 천안함에도 기관총 기부한 어머니, 진정 나라를 지키는 분

최신 호위함으로 재탄생한 천안함에 ‘46용사’의 충정이 새겨진 ‘3·26 기관총’ 2정이 탑재됐다고 한다. 천안함 폭침일을 딴 이 기관총은 전사한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가 해군에 기부한 것이다. 윤씨는 아들의 죽음을 가족의 비극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유족 보상금 1억원과 성금 등 1억898만원으로 새로 취역하는 해군함에 아들의 충정을 담아 기관총을 기부해 왔다. 지금까지 18정의 기관총이 초계함 9척에 배치됐는데, 최근 퇴역한 초계함의 기관총을 천안함에 옮겨 달았다. 군은 천안함 기관총을 ‘민평기 기관총’으로 부르려 했지만 윤씨가 죽은 46용사 모두를 기려야 한다고 해서 ‘3·26 기관총′이 됐다. 그는 영화 ‘연평해전’ 제작에도 100만원 성금을 냈다. 천안함 취역식에서 윤씨는 “아들아, 네가 죽어서도 서해를 지키는구나”라고 했다. 윤씨의 이 말에 더 보탤 것이 없다.

천안함 전사자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가 기증한 천안함 3.26 기관총을 윤씨와 군 관계자들이 시연해 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씨에게 지난 13년은 피눈물 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싸늘한 아들의 주검을 끌어안다 실신했고, 아들의 묘비를 외투로 덮으며 통곡했다. 천안함 괴담이 나올 때마다 “제발 그만하라”고 절규했다. 가슴에 피멍이 들었지만 “침략자를 응징하는 데 써달라”며 정부가 준 보상금을 전액 기증했다. 2020년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이게 누구 소행인지 말씀 좀 해달라”고 호소했다. 문 전 대통령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입장이 있다”고만 했다.

 

윤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천안함 장병들을 욕보이는 가짜 뉴스였다. 문 정부 때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천안함 괴담 유포자의 요구에 따라 서류까지 바꿔 천안함을 재조사하려 했다.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사실을 흐리고 조작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이미 당시 국방장관은 천안함 폭침을 “우발적 사고”라고 하는 지경이었다. 대통령은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계속 불참하다 선거를 앞두고 보여주기 이벤트 한 번을 벌였다. 천안함 유족을 초청한 자리에서 김정은과 손잡고 찍은 사진 책자를 돌렸다. 천안함 주범인 김영철을 불러 국빈 대접했다. 민주당 인사는 북한이 아니라 천안함 함장이 “부하들을 수장시켰다”고 했다. 김정은과 쇼에 정신이 팔려 안보는 뒷전이었다.

 

이번 천안함 취역식에는 고(故) 김태석 원사의 딸이 해군 장교 후보생으로 참석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해군을 지망해 천안함 위에 선 것이다. 그는 해군 소위로 임관하면 천안함을 타고 서해 바다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진짜 대한민국 안보를 지키는 이들은 가족 잃은 고통을 호국으로 승화시킨 46용사의 어머니와 딸일 것이다. 이분들의 희생과 헌신 앞에 고개를 숙인다.

조선일보 사설

 

05.23 “강해지는 것 말고 우리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외교전사 된 젤렌스카를 비롯해
전쟁의 최전선과 후방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우크라이나 여성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그들처럼 싸울 수 있을까
폭력에 맞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서부 우즈호로드에서 제128 산악여단 소속 여군들이 동료 남성 군인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타임지는 우크라이나군의 약 15%는 여성이며, 3만여 명의 여성이 전쟁터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3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 올레나 쉐겔은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통역한 한국외대 교수다. 젤렌스카의 조선일보 인터뷰(본지 5월 17일 자) 때 아들을 전쟁터로 보낸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통역하다 울음을 터뜨린 바로 그 여성이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쉐겔 교수는 인터뷰 때 눈물을 쏟은 진짜 이유를 들려줬다.

 

지난해 2월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한국에서 반전 시위를 주도했던 쉐겔 교수는 틈나는 대로 모국에 구호물품을 보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군인들이 입을 내복 100벌과 양말, 비타민을 보냈고, 이를 전달받은 병사들이 따뜻하기로 유명한 한국 내복을 입고 기뻐하는 사진을 그의 어머니들을 통해 받았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그 부대가 전멸했다. 넋이 나간 그녀에게 한 병사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 아들은 비록 전사했지만 하늘나라에 갈 때 당신이 보내준 따뜻한 내복을 입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니 울지 말라고. 젤렌스카 여사가 어머니들을 이야기할 때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던 병사들과 그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라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의 소설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젤렌스카는 “현재 우리의 저항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건 남성들이지만 구호물품과 식료품 배달, 피란민 지원, 의료 활동 등 국경 지역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펼쳐지는 자원봉사는 대부분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참전하는 여성들도 급증했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군대의 여성은 3만여 명으로 전체의 15%였지만 전쟁 발발 후 그 수가 4만명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죽음의 숙녀’로 불리는 저격수 등 최전선에서 싸우는 여성도 5000명이 넘고, 그중에는 아이를 둔 엄마도 있다. 우크라이나 지역 방어군에서는 기관총을 멘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민간인 여성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싸운다. 키이우의 한 여성이 절임 토마토가 담긴 유리병으로 러시아 드론을 격추시킨 얘기는 유명하다. 탱크를 몰고 코노토프로 진격한 러시아 군인들은 “코노토프에는 여자 두 명 중 하나가 마녀야. 넌 내일 아침 죽어있을지도 몰라”라는 경고를 받았다. 러시아 무장 군인들에게 ‘주머니에 해바라기 씨를 넣어 두라’고 충고한 여성도 있다. 그들이 죽은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국화(國花)인 해바라기가 자랄 거란 저주였다. 이 밖에도 여성들은 방탄복을 만들고, 위장그물을 짜고, 화염병을 만들며 후방을 지킨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가 배경인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차르의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던 여인들처럼, 쉐겔 교수는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백년 식민지 기간 동안 이뤄진 러시아의 민족 탄압과 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남자들이 죽자 인구 불균형이 일어났고, ‘남자는 머리지만 여자는 (머리의 방향을 정하는) 목’이란 속담이 생겼을 만큼 남성의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던 할머니, 어머니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일어난 잔혹한 전쟁은 이들을 또다시 강하게 만들고 있다. 대중 앞에 나서는 걸 끔찍이 싫어했지만 지금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외교 전사가 된 젤렌스카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겐 강해지는 것 말고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는 그는 “파괴된 나라의 재건에도 여성들이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쉐겔 교수는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있었다면 그들처럼 용감하게 싸울 수 있었을까, 자문했다.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처럼 치열하게 싸울 수 있을까, 반문했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여성은 생명과 평화의 상징인데, 총을 들어도 되는 걸까.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반(反)평화적인가.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에서 한국 여성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가?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2016년까지 여성의 전투 참여가 허용되지 않던 법을 개정했다.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공 후 일어난 변화다. ‘피렌체의 식탁’이라는 온라인 매체와 인터뷰한 40대 초반의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는 말했다. “당신의 도시에 폭탄이 떨어지고, 건물이 불에 타고, 민간인이 죽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도 무기를 들고 나올 것이고, 당신 나라 여성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조선일보 김윤덕 선임기자

 

05.23 진보당 前공동대표·전교조 간부도 간첩단 조직원... 8곳 압수수색

방첩 당국이 23일 ‘창원 간첩단’으로 불리는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의 추가 조직원에 대해 압수 수색을 하는 가운데, 이 조직원들은 A 전 진보당 공동대표와 전교조의 한 지방 지부의 B 지부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방첩 당국은 현재 A씨와 B씨의 자택·차량, 전교조 강원지부 등 8을 압수 수색 중이다. A씨와 B씨는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제작·편의 제공 혐의 등을 받고 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이들에 대해 압수 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고, 검찰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16일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2021년 6월 ‘녹슬은 해방구’라는 제목의 북한 사상 찬양한 이적 표현물을 제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작년 6월엔 자통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구속 기소된 김모씨에게 우체국노조 등의 목록을 전달하고, 작년 7~9월 사이 대학생이나 진보당 인사들의 목록을 전달한 편의 제공 혐의도 받고 있다고 한다. 방첩 당국은 A씨가 자통 조직원 김모씨에게 전달한 노조·인사 목록이 이른바 ‘포섭 목록’은 아닌지, 북한에 전달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수사 중이다.

 

B씨는 2020년 4월 ‘태양절 110주년을 맞이하여’라는 제목으로 주체 사상을 창시한 김일성을 찬양하고, 작년 2월엔 ‘김정일 동지 탄생 80돐을 축하드리며’라는 제목으로 김정일도 찬양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작년 6월엔 자통 조직원 김씨에게 전교조 강원지부에서 노조 현황, 회원 포섭 대상자 등의 신원을 전달하고, 작년 9월엔 전교조 강원지부의 7~8월 활동 내역이나 하부 조직원들이 북한 사상 관련 학습을 받았던 내용 등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작년 11월엔 서울에서 김씨와 접선한 혐의(국가보안법상 회합)도 받고 있다.

 

앞서 방첩 당국은 자통 조직원 5명을 구속 기소했다. 지난 2월엔 자통과 연계됐고, 작년 ‘대우조선해양 파업’에 깊이 연루된 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회장과, 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장도 압수 수색했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05-24 전교조 간부도 가담 정황… 간첩단 뿌리 어디까지 뻗었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진보당 등을 숙주로 조직을 확대해온 간첩단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까지 침투한 정황이 드러났다. 중학교 교사 출신 전교조 간부가 포섭돼 김일성·김정일을 찬양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미 중간 간부들이 구속 기소된 진보당의 경우에는 전 공동대표의 연루 사실도 확인됐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간첩 수사 방치와 드러난 북한의 지령 등을 감안하면, 간첩단 뿌리가 어디까지 뻗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은 23일 전교조 강원지부장 A 씨와 진보당 전 공동대표 B 씨가 창원 간첩단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 하부 조직원으로 활동한 혐의를 잡고 자택과 전교조 강원지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A 씨는 2020년 ‘태양절 110주년을 맞이하여’ 제목으로 김일성을 찬양하고 지난해 2월 김정일 탄생 80돌을 축하했다고 한다. 강원지부 활동, 포섭 대상, 북한 사상 학습 등을 보고한 혐의도 나왔다. 2010∼2022년 재임한 강원도 교육감은 전교조 강원지부장 출신일 정도로 지부장 지위는 간단치 않다.

B 씨는 이적표현물을 제작하고 민주우체국노조와 시설관리공단노조, 진보당 인사와 대학생 등의 명단을 전달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진보당 공동대표로 선출됐다가 지난 2월 민노총 간부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된 다음날 사퇴했다. B 씨는 당시 압수수색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간첩단 조직이 긴밀하게 연계돼 있거나 북한 지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통 연루 혐의자만 해도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북한 공작조직과 연계된 ‘이사회’가 전국 6개 조직을 관리하는 구조라고 한다. 제주지역에서는 ‘ㅎ ㄱ ㅎ’으로 불리는 간첩단이 2017년부터 이적 활동을 벌여왔다. 이들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포섭돼 장기간에 걸쳐 활동해왔다. 유튜브 등 감시가 거의 불가능한 통신 수단도 활용한다. 해외 정보망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 기관과 인력이 없으면 수사가 불가능하다. 내년 1월 1일부터 국정원 수사 기능을 폐지토록 한 국정원법을 재개정하고, 그 전에도 방첩수사에 허점이 없도록 비상 체계를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5-24 북한 해킹 보안점검 ‘뒷북 수용’ 선관위… 작년에만 사이버 공격 4만건 당했다

피해 현황엔 “자료제출 못해”

특혜채용 의혹 2건 추가 확인
국힘 “수사 통해서 규명해야”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고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국가정보원의 보안 점검 권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지난해 한 해에만 약 4만 건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국민의힘은 북한의 사이버 공격 7건 중 6건은 인지 자체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가운데, 선관위는 국정원의 보안 점검 권고에 대해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가 특혜 채용 파문 이후 비판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국정원 보안 점검을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다.

24일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실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2022년 3만9896건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선관위가 받은 사이버 공격 건수는 2019년 2만27건에서 2020년 2만5187건, 2021년 3만1887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4월까지도 9759건의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 유형별로 보면 지난해에는 의도적으로 정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서비스 거부 시도’가 1만1111건에 달했다. 인터넷 트래픽의 폭주를 발생시키는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이 대표적인 서비스 거부 공격이다. 선관위는 사이버 공격 피해 현황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이 없어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사이버 공격 시도 발생 시 사이버 보안 시스템을 운영해 즉시 차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선관위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 시도 7건 중 6건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에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가 국정원 등의 보안 컨설팅을 받을 경우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압박이 이어지자 국정원, 한국인터넷진흥원과 3자 합동으로 보안 컨설팅을 수행하겠다고 지난 23일 발표했다. 한편, 이만희 의원실에 의하면 세종 선관위 상임위원(1급)으로 퇴직한 윤모 씨의 딸이 2021년 대구 선관위에 경력 채용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선관위는 경남지역 선관위에서 일하는 김모 과장(3급)의 자녀도 2021년 경남 지방공무원에서 경남 선관위 직원으로 옮긴 사실을 파악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결국 수사를 통해 문제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

 

05-24 진보당 전 대표가 북한에 보낸 충성문엔 “난 총회장님의 충실한 전사”

■ 자통 전국지하망 구축 드러나

“임원으로 선발돼 더없는 영광”
10여년간 충성서약·대북보고

북한 지령문엔 “윤석열 퇴진 위해
제2 촛불 국민대항쟁 일으켜라”
“전교조내 영향력 확대”지시도

‘창원 간첩단’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의 하부조직인 ‘전국회’ 조직원으로 활동해온 전 진보당 공동대표 A 씨와 전교조 강원지부장 B 씨가 10여 년간 북한의 대남 지령에 따라 ‘전국 지하조직망’을 건설하고, “총회장(김정은)의 충실한 전사가 되겠다”는 등 충성 서약을 북한에 보고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문화일보가 방첩 당국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0월 19일 A 씨에게 “이사회(자통) 임원들 속에 총회장님에 대한 흠모심을 깊이 심어주는 데 선차적 힘을 넣으라”며 “특히 진보당과 민주노총 산별노조들, 청년 학생 단체들에 비합(비합법) 소조들을 많이 조직, 핵심대열을 늘이라”는 지령문을 하달했다. 이에 A 씨는 1주일 뒤인 10월 26일 대북보고문에서 “임원으로 선발돼 더없는 영광이고 총회장님의 충실한 전사가 되고자 하는 열의가 충만하다”고 보고했다.

또 북한의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은 지난해 11월 3일 A·B 씨에게 “윤석열 역적 패당 퇴진 제2 촛불국민대항쟁을 확대하라”는 지령문을 하달했다. 북한은 지령문에서 “이사회에서는 윤석열역도놈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2의 촛불국민대항쟁을 일으키는데 목표를 두고 촛불시위를 확대해나가기 위한 사업에 새끼회사(지역조직 하부망)들과 전국회를 적극 불러일으키라”며 “지역 전국회를 통해 진보·대중운동단체들은 물론 반(反)보수 투쟁단체들도 윤석열 역적 패당의 퇴진을 위한 촛불 행동에 적극 참가시켜 반윤석열 투쟁 역량의 폭을 넓혀나가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북한의 지시 이후 서울지역 담당인 A 씨는 진보당 중앙사업을 맡았다. 북한은 지난해 6월 14일, 11월 3일 각각 내린 지령문에서는 A 씨를 진보당 공동대표에, B 씨를 전교조 강원지부장에 출마하도록 독려했고, 둘 다 지난해 7월과 12월에 각각 당선됐다. B 씨의 경우 강원도 지역 전교조 노조지부 명단과 택배노조 및 전국회 후보회원 명단 등을 북한에 보고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23일 방첩 당국은 북한이 ‘이사회’ 내 ‘A 사장’ ‘B 사장’이라 호칭한 전국회 간부 2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또 이들 조직이 자통 이사회와 새끼회사들, 전국회 등을 통해 전교조·민주노총·진보당 및 노동·농민·학생·정당 등 대중 현장에 침투해 엄청난 규모의 전국 지하조직망으로 확대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5-31 北 위성 가장 ICBM 도발 강행, 가혹한 대가 치르게 해야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도는 일단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북한 역시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미국·일본 등 국제사회와 연대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조롱하고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한 데 대한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제2, 제3의 도발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31일 “북한이 평안북도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쏜 우주발사체가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발사했는데 1단계 분리 후 2단 엔진의 비정상으로 추진력을 상실해 추락했다”고 시인했다. 중도 폭발과 상관없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으로서, 유엔 대북제재결의 위반이다.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어떠한 발사도 금지했기 때문이다. 유엔 결의를 위반한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정부는 즉각 안보상황점검회의 및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했는데, 앞서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예고했던 것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북 심리전 재개 등 ‘레짐 체인지’까지 노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유엔 안보리를 소집토록 해 추가 대북 제재를 추진하고,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상임 이사국 자격까지 문제 삼아야 한다. 지난 2006년 대북결의 제1718호 이후 17년 동안 안보리 결의를 묵살해 온 북한의 유엔 퇴출 공감대도 넓혀야 한다. 불법 활동 온상인 북한대사관을 폐쇄토록 자유 진영 국가들에 촉구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 30일부터 오는 2일까지 제주에서 열리는 대량파괴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 20주년 회의는 의미가 크다. 첫날 채택된 공동성명은 북핵·미사일 등을 진화하는 WMD 위협으로 보고 해상 차단을 넘어 가상화폐·첨단기술 분야로 PSI 범위를 확장키로 했다. 그 실행에 한국이 앞장서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화일보 사설

 
 

05-31 북한 정찰위성 서해 추락… “곧 2차발사”

▲北발사체 로켓연료통 합동참모본부가 31일 오전 8시 5분쯤 북한이 발사한 우주발사체의 로켓 연료통 등 잔해물 등을 전북 군산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수거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로켓 연료통의 내부 모습. 합참 제공

“2단계 발동기서 추진력 상실”
北, 발사 150분만에 실패인정

어청도 서방 200㎞ 해상 낙하
합참, 발사체 추정 물체 인양
NSC “심각한 도발” 강력 규탄

북한이 사전 발사를 예고한 첫날인 31일 오전 군사정찰위성(만리경-1호)을 탑재한 위성운반로켓(천리마-1형)을 발사했지만 엔진 고장으로 서해상에 추락했다. 북한은 발사 2시간 30여 분 만에 사고 발생 사실을 인정하고 빠른 시일 내 재발사하겠다고 예고했다. 대통령실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도를 장거리탄도미사일 도발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발사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인양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오전 6시 29분쯤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했지만, 비정상적 비행으로 전북 군산 인근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 낙하했다고 합참이 밝혔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오전 9시쯤 “‘천리마-1’형은 정상 비행하던 중 1계단 분리 후 2계단 발동기(엔진)의 시동 비정상으로 하여 추진력을 상실하면서 서해에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북한은 이달 31일 0시부터 내달 11일 0시 사이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국제해사기구(IMO) 등에 통보한 바 있다. 북한이 위성을 탑재했다고 주장한 발사체를 쏜 것은 2016년 2월 7일 ‘광명성호’ 이후 7년여 만이다.

국가안보실은 NSC 회의 뒤 보도자료를 통해 “NSC 상임위원들은 이번 발사가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자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도발임을 강조하고 이를 규탄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발사 직후부터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다고 대변인실은 전했다. 합참은 “군은 오전 8시 5분쯤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북 주장 우주발사체’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인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양 물체는 로켓 연료통으로 추정된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조재연 기자
 

 

05-31 대통령실 “6월11일 이전 재발사 가능”… 北, 책임자 처벌할 듯

일부 전문가 “한달 내 힘들어”

이례적으로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 실패를 빠르게 인정한 북한이 조만간 재발사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이번 발사 실패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등 책임 추궁 가능성도 함께 거론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31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처음에 예고했던 6월 11일이라는 기한 내에 또 발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이달 31일 0시부터 다음 달 11일 0시 사이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국제해사기구(IMO) 등에 통보한 바 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엄중한 결함을 구체적으로 조사 해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기술적 대책을 시급히 강구하며 여러 가지 부분 시험들을 거쳐 가급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6월 초로 예정된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가 열리기 전에 발사를 성공시켜 군사 분야 성과로 과시하고, 내부적으로 결집하려 했다”며 “우리가 누리호 3차 발사 당시 하루 연기했던 것처럼, 북한 역시 실패 원인을 찾아 조만간 재발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발사 실패로 북한 내에서 적잖은 충격이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북한이 이번 정찰위성에 대해 ‘1호기’라고 명명했고, 리 부위원장도 계속 발사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재발사가 뒤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기술적 보완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아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급해해도 한 달 이내 재발사 시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내놨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5-31 진화하는 간첩, 붕괴하는 방첩

박민 논설위원

최근 적발된 간첩단들 특징은
정치계·교육계 고위직 침투에
최첨단 통신과 수사·재판 방해

기존 역량 총동원해도 역부족
수사권 경찰 이전 안보 무력화
국정원법 재개정 등 대책 시급

최근 적발된 간첩단들의 ‘진화’는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치계와 교육계 침투다. 386 출신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일심회 사건(2006년) 등이 있었지만, 양적·질적 차이를 보인다.

창원간첩단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사건과 관련, 방첩 당국은 지난 23일 진보당 전 공동대표 A 씨에 대해 이적 표현물 제작 혐의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A 씨는 북한이 지난해 6월 진보당 공동대표에 당선시키라는 지령을 내린 인물이었고 실제로 한 달 뒤 당선됐다. 진보당 경남도당 정책위원장은 북한 공작금과 지령을 받아 반정부 투쟁을 한 혐의로, 전 제주도당 위원장은 ‘ㅎ ㄱ ㅎ’을 결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2021년 적발된 ‘자주통일충북동지회’의 핵심 관계자 4명은 총선과 지방선거에 출마하거나 문재인 대선 캠프 충북지역 노동 특보를 맡는 등 모두 정치권 진입을 시도했다.

전교조 현직 강원지부장 B 씨는 전교조 내 포섭 대상자 신원을 자통에 전달한 혐의로 압수수색 대상에 올랐다. B 씨 역시 북한이 지난해 11월 자통에 전교조 지도부 진출 지령을 내린 지 한 달 만에 강원지부장에 당선됐다. 또 다른 자통 조직원은 경남도 교육감의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자통과 연계된 시민단체들은 경남교육청 등으로부터 수억 원의 보조금을 받아 북한 관련 대중 강연 등의 사업을 진행했는데 자통 조직원들이 강사로 초·중학생들에게 반미·친북 교육을 했다.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북한이 좋은 나라였다’는 취지의 후기를 남겼다.

북한과 간첩단 간의 최첨단 통신 기법도 문제다. 통신은 외국계 보안 메일 등을 활용하고 통신 내용은 그림 파일 등에 숨겨 메시지의 존재 자체를 은닉하는 스테가노그래피 방식으로 암호화한다. 압수수색으로 암호키나 지령문을 확보하지 않으면 해독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최근 간첩단들은 문재인 정부 5년간 느슨해진 대공 관련 형사·사법 체계를 적극 활용한다. 수사 중에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재판에서는 혐의를 부인하면서 제출된 모든 증거에 부동의한다. 이 경우 공개적으로 수집된 자료만이 증거 능력을 갖게 되고 법정 공방으로 유무죄를 다퉈야 해 혐의 입증이 어렵고 재판 기간이 한없이 길어진다. 자통은 일반 국민이 방대한 간첩사건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기존 역량을 총동원해도 간첩단 수사는 수시로 한계에 부딪힌다. 그런데 7개월 뒤인 2024년부터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간다. 경찰로는 불감당이다. 최근 적발된 간첩단은 모두 해외에서 북한에 의해 포섭됐다. 간첩의 90% 이상이 제3국을 우회하거나 탈북자로 위장해 침투한다. 경찰은 해외 대공 수사·정보망이 없고 갖출 수도 없다. 법 집행기관이라 해외에서 수사하면 해당 국가 주권 침해가 된다. 최첨단 비밀통신에 접근할 역량은 물론 없다. 대공 수사는 장기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 인력이 수년간의 집요한 추적을 거쳐야 단서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수시로 인사이동이 이뤄지는 데다 일반 수사 분야도 기피하는 게 경찰의 현주소다.

실제로 전국 안보 경찰의 72%는 행정 지원과 탈북민 신변보호 담당이고 수사 인력은 28%에 그친다. 안보 수사 지휘 간부의 절반은 관련 경력이 없다. 정치권에 쉽게 휘둘리는 경찰이 정치권에 침투한 간첩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북한과 연계되지 않는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권 박탈도 치명적이다. 대공 정보 특성상 정보 수집과 수사를 거쳐야 판단이 가능한 ‘북한과의 연계’ 여부가 정보 수집의 요건이 된다는 것은 정보 수집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공 수사 역량이 무력화되면 진화 중인 간첩단이 전국에 걸쳐 모든 분야로 확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부·여당은 당장 국정원법 재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여소야대라고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당면한 안보 위기를 국민에게 호소해 야당을 압박해야 한다. 이번 국회에서 재개정이 안 되면 차기 국회에서라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더불어 내년부터 현실화할 대공 수사 공백을 메울 대안을 현행법과 제도 안에서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 안보는 작은 구멍에도 붕괴하는 댐과 같다. 나태한 대응이나 방임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과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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