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조선일보) 2023-05/ 05.01(월) 초등학생끼리도 존댓말 - 05.31(수) ‘언제 죽느냐’ 암 환자에게 퍼붓는 저주
만물상(조선일보) 2023-05/
05.01(월) 초등학생끼리도 존댓말
1990년대 서울의 한 고교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인사법부터 바꿨다. 교사에게는 물론이고 친구 사이에도 ‘저는 효자입니다’라고 존댓말 인사를 하게 했다. 취재차 찾아가 이유를 물었더니 “그렇게 해보니 예의 바른 학생이 되더라”고 했다. 실제로 학교엔 “반말하고 버릇없던 아이가 존댓말 쓰는 아이로 바뀌었다”는 학부모 감사 편지가 쇄도했다. 말에는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언어철학자인 이규호 전 연세대 교수도 저서 ‘말의 힘’에서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 사람됨을 이룩한다”고 했다.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하는 일본인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한국인의 거친 입이다.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는 서울대에서 조선의 유학을 연구한 것을 토대로 저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냈다. 이 책에서 오구라 교수는 한국인의 입이 거친 이유를 사무라이와 유교 문화의 차이에서 찾았다. “일본인은 칼로 싸우는데, 한국인은 말로 싸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칼의 나라 일본에서 입을 함부로 놀렸다간 자칫 목숨이 위태롭다. 반면 유교 문화권인 한국에선 ‘죽음을 걸 정도로 말싸움이 격렬해진다’고 했다. 한국인은 말을 칼처럼 쓴다는 의미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이라고 다를 리 없다. 교육부가 올해 초·중·고 학생 380여 만명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 실태를 조사했더니 5만여 명이 피해를 호소했다. 그중 언어 폭력이 41.8%로 가장 많았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학생 중 초등학생 비율은 3.8%로 고교생(0.3%)보다 12배 많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말만 곱게 쓰도록 가르쳐도 갈수록 흉포화하고 어려지는 학폭 추세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친구 사이에 존댓말 쓰고 ‘00님’으로 부르게 하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는 기사가 지난 주말 조선일보에 실렸다. 10여 년 전 일부 기업이 시작한 존댓말 쓰기를 도입해 학폭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한다. 소파 방정환도 1923년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끼리라도 존댓말을 쓰자고 제안했다. 오늘날 학폭 사태를 미리 내다본 듯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한테만 존댓말 쓰라고 할 일도 아니다. 필자의 학창 시절 선생님 몇 분은 교단에 오르면 꼭 존댓말을 썼다. 돌이켜보면 그게 살아있는 언어 예절 교육이었다. 초등학교에서 확산하는 존댓말 쓰기를 우리 사회의 언어 순화 운동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아이들 따라 한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19세기 영국 시인 워즈워스도 일찍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하지 않았던가.
05.02 달리는 MZ세대
지난 30일 서울하프마라톤이 열린 광화문광장은 출발 2시간여 전인 오전 6시부터 열기로 들썩였다. 티셔츠를 맞춰 입은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수십 명씩 뭉쳐 기념사진을 찍고 몸을 풀었다. 음악에 맞춰 다 같이 춤추고 함성 지르며 한바탕 축제처럼 대회를 즐겼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다양한 색깔의 대형 깃발이 등장해 응원전이 펼쳐졌다. 20~30대 중심의 달리기 팀 ‘러닝 크루(running crew)’를 상징하는 깃발들이다.

▲2023 서울하프마라톤에 나선 참가자들이 지난달 30일 오전 8시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옆 출발선에서 힘차게 발을 내딛고 있다. /남강호 기자
▶2010년대 중반부터 생겨난 ‘러닝 크루’는 현재 서울에만 100여 개로 추산된다. 온라인으로 팀을 결성해 비슷한 또래끼리 함께 뛰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면 수십 명이 집결해 대열을 이뤄 함께 달린다. 코치와 포토그래퍼 같은 전문 인력을 갖춘 곳도 있다. 올해 서울하프마라톤 참가 신청자 중 60%가 20~30대였다. 배우 임시완, 가수 션, 전 축구선수 조원희 등도 ‘언노운(Unknown) 크루’ 영문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뛰었다.

/일러스트=김성규
▶MZ세대는 편한 옷차림으로 새벽에 동네 한 바퀴 도는 조깅,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마라톤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달리기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들에게 달리기란 스포츠이면서 ‘멋’이다. 몸매를 드러내는 운동복에 화장까지 하고 배경이 멋진 곳을 골라 달린다. 자신이 달리는 모습을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유행하면서 ‘런스타그램(런+인스타그램)’ ‘런플루언서(런+인플루언서)’ 같은 신조어도 생겨났다. 스포츠 브랜드가 직접 조직한 크루, 친목을 중시하는 크루, 별도 회원 가입 없이도 일정만 맞으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함께 달리고 흩어지는 크루 등 개성도 다양하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팀은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건강 관리도 즐거워야 한다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를 글로벌 트렌드로 분석했다. “밥 한 끼는 걸러도 여덟 가지 영양제는 절대 거르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요즘의 건강은 단지 질환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스스로의 삶과 몸 상태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뜻한다”고 했다.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됐다는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정치·경제적 불안감이 건강에 대한 투자로 표현된다는 분석도 있다. 달리기에 푹 빠진 젊은이들은 건강은 물론이고 성취감과 연대감, 배려와 도전의 가치, 진실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달리기의 참맛을 보았으면 한다.
05.03 국회의원과 보좌진... 동지냐 저승사자냐
고모 보좌관은 국회의원 1명을 초선 때부터 5선 의원이 될 때까지 모셨다.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자 차관보급 의장 정무수석에 올랐고, 공무원 연금 수급권도 얻었다. 정책 전문가 김모 보좌관은 1989년부터 30년간 모신 의원만 7명이다. 김씨처럼 국회에 경제·안보·교육·복지·환경 등 전문 분야를 갖고 있는 보좌관이 100여 명쯤 된다고 한다. 이들이 국정감사 때 신문 1면을 장식할 이슈를 발굴해낸다. 의원들이 서로 모셔가려 한다.

/일러스트=김성규
▶보좌관은 파리 목숨이기도 하다. 의원 갑질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집안 행사 등 사적인 일에 보좌진을 동원하는 경우는 흔하다. 보좌관 면접을 보러 갔더니 의원 부인이 채용 여부를 결정했다는 경우도 있다. 보좌진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가는 의원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전직 의원 보좌관은 기자에게 “의원이 내 월급에서 매달 100만원씩 가져간다”고 하소연했다. 보좌관으로부터 정치 후원금으로 500만원씩 받는 의원도 봤다. 이런 의원실은 ‘보좌진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의원과 보좌진 관계는 ‘원수’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996년 국회의원을 물러난 것도 승진이 안 된 데 앙심을 품은 보좌관의 선거 비용 폭로 때문이었다. 민주당 3선 의원도 수석 보좌관이 불법 후원금 수수를 폭로해 2년 넘게 감옥살이를 했다. 운전기사가 비리를 폭로해 유죄 판결을 받은 국민의힘 의원도 있다. 보좌진이 내연녀 의혹을 제기해 도지사 도전을 포기한 의원도 있었다. 2016년 의원 보좌진 24명이 갑자기 국회를 떠났다. 민주당 의원이 동생과 딸을 보좌진으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나자 다른 의원들도 친인척 보좌진을 일제히 정리했다. 당시 의원들은 “보좌진이 언제 배신할지 몰라 친인척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원과 보좌관 관계가 아름답게 끝나는 경우도 있다.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과 백원우·이화영 전 의원 등이 보좌관을 하다 그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물려주기로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모 보좌관은 의원으로부터 한 번만 더 하고 물려주겠다는 각서까지 받았지만 의원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각서를 내밀었더니 의원이 눈앞에서 찢어버렸다고 한다.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보좌진에게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에 대해 지지 발언을 요청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보좌진이 녹음해서 방송사에 제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태 최고위원은 “과장을 섞어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의원에게 보좌관은 동지일 수도, 저승사자일 수도 있다.
05.04 부동산·주식으로 일확천금...“큰손들은 이렇게 돈 벌잖아요.”
SG증권발(發) 대규모 주가 하락 사태에 연일 폭로가 쏟아진다. 금융 당국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하루에 0.5~1%씩 미미하게 주가를 올리는 거래를 장장 1~3년간 해오면서 주가를 10배 넘게 띄운 신종 주가 조작이다. 이 주가 조작 세력도 예기치 않게 매도 물량이 쏟아져 돈을 잃게 되자 ‘피해 호소인’으로 나서는 희한한 금융 사건이다.

/일러스트=김성규
▶탐욕으로 벌어지는 투기의 역사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미국 영국에서도 심했다. 카리브해에서 침몰한 보물선을 한 선장이 건져내자 탐사 비용을 댄 사람들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는 소문이 퍼졌다. 영국 전역이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천재 과학자 뉴턴도 주가가 급상승하는 남해(South Sea) 기업 주식에 투자해 짭짤한 이익을 챙겼다. 그런데 주식 팔고 나서 몇 배나 더 오르는 걸 보고는 도저히 못 참고 다시 그 주식을 사들였다. 고점 매수였다. 주가 폭락으로 입은 손실이 2만파운드, 지금 돈으로 20억원이 넘는다. “천체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있는데 주식시장에서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었다”는 뼈아픈 투기 후회담을 남겼다.
▶1861년 남북 전쟁 초기에는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1억5000만달러 규모의 화폐를 발행하자 투기꾼 천지가 됐다. 대표적 투기꾼 대니얼 드루는 서커스단의 동물 조련사였는데, 이후 에리 철도회사 이사로 영입되면서 동물 다루던 솜씨를 증시에서 십분 발휘했다. 자신의 손발이 될 젊은 투기꾼들을 증시에 풀어놓고 주가를 쥐락펴락했다. 불법으로 신주를 발행해 시장에 풀기도 했다. 월가 최초의 ‘물타기 수법’이었다. 판사와 관료들까지 매수했다. ‘거대한 곰’이라는 별명의 이 투기꾼은 자신이 키운 더 비열한 제자들에게 밀려났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일확천금은 투기 거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부동산 투기로 수천억 거액을 챙긴 대장동 사태, 세입자 돈으로 집을 수백, 수천 채 챙긴 전세 사기범, 살인까지 벌어진 코인 투자 광풍 등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 광풍의 후유증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SG증권 사태에서 연예인, 의사 등 돈 많은 사람 1000명이 1조원 넘는 돈을 맡겼다고 한다. 본인도 30억원을 맡기고 다른 사람에게 투자 권유도 한 것으로 지목되는 한 연예인이 “큰손들은 다 그렇게 돈 벌잖아요”라고 말했다. 큰손들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일확천금하는 일이 계속되면 사회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없애야 한다.
05.05 청군·백군 경쟁이 사라졌다...요즘 어린이들 운동회

▲어린이 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연지초등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 참가한 5학년 학생들이 대형 풍선 넘기기 경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회가 열리면 면 전체가 떠들썩했다. 지금은 전교생 60여 명인 소규모 학교지만 당시엔 학생 수가 1000명이 넘었다. 주민들까지 차려입고 참석해 넓은 운동장 외곽이 꽉 찼다. 문방구 아저씨도 피에로 가면을 쓰고 운동장 한쪽에 장난감을 늘어놓았다. 청군·백군으로 나뉘어 깃발을 흔들며 펼치는 응원전도 치열했다. 하이라이트인 달리기 계주를 시작하면 동네 사람들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계주 선수로 뛰지 못하더라도 달리기에서 3등 안에 들면 손목에 찍어주는 도장을 자랑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박상훈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운동회가 한창이다. 그런데 운동회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운동회 대행 업체도 등장했다. 초등학교에 여교사들이 많아지면서 만국기, 천막을 설치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들에겐 안전 관리가 최우선이다. 하나같이 귀하게 자라는 아이들이라 안전의 중요성이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학생 수가 줄면서 전교생이 수십 명에 불과한 학교가 늘자 여러 학교가 모여 연합 운동회를 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 중 하나다. 학생 수가 적으면 큰 공 굴리기 같은 단체 체육 활동을 하기 어렵다.
▶15년 전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운동회에 갔더니 딸아이가 울고 있었다. 운동회 청·백군 종합 점수에서 자기 팀이 졌다고 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금은 청군·백군으로 나누지도 않지만 나눈다고 해도 따로 점수를 집계하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최근 교육 목표이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자기가 청군인지, 백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초등학교 운동회 풍경 중 가장 달라진 게 경쟁이 없어진 것이다. 순위를 정하는 달리기가 사라졌다. 달리기를 해도 같이 달리는 협력 달리기,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서 달리는 미션 달리기 등으로 순위가 드러나지 않게 만든다. ‘경쟁’은 다 금기 사항이다. 상품이 있으면 모두 같은 것을 주는 것이 기본이다. 전교조 영향과 학부모들 요구가 합쳐졌다고 한다.
▶운동(스포츠)은 경쟁이 본질이다. 경쟁이 없으면 스포츠가 아니다. 선진국들은 학생 스포츠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이겼을 때 겸허해하며, 졌을 때도 신사답게 승복하는 법을 가르친다. 경쟁은 힘들고 경쟁하지 않으면 편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 발전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세상은 경쟁이 치열한 무대다. 결국 세상이란 무대에 나갈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05.06(토) 역풍 맞은 ‘평양 스타일’... ‘탈북자 손절’로 몰면 안되는 이유
1994년 MBC 개그맨이 된 전철우(56)씨는 북한의 동독 유학생 출신이다. 방송과 냉면 사업으로 유명해졌다가 활동이 뜸해졌다.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연이 나중에 전해졌다. 1998년엔 북한 배우 김혜영(51)씨가 귀순했다. 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두 차례 이혼하는 등 한국 정착이 순탄치 않았다. 일부 유명 탈북민만의 얘기가 아니다. 3만명이 넘는 탈북민 상당수가 적응에 애를 먹는다.

/일러스트=박상훈
▶국민의힘 태영호(61) 의원은 스스로를 ‘태미넴’이라 부른다. 미국의 전설적 힙합 가수 에미넴(넘)과 자신의 성을 합성했다. 2020년 총선 유세 때 시작한 랩을 지금은 능숙하게 구사한다. 랩, 막춤, 먹방 콘텐츠를 선보이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8만명이 넘는다. 보수 정치인 특유의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미지를 깨고 국회의 탈(脫)꼰대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그 주인공이 환갑을 넘긴 평양 출신이란 사실이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여세를 몰아 두 달 전 최고위원에 올랐다.
▶최근 며칠 ‘대통령실 공천 개입 의혹’ 녹취 유출, 쪼개기 후원금 의혹, 청년 보좌관 특혜 채용 의혹 등 태 의원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보도가 쏟아졌다. 태 의원과 함께 일한 전·현직 보좌관들이 제보자로 지목됐다. 휴일도 없이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밤 11시 이후 퇴근하는 ‘천리마운동’식 업무 방식, 일주일에 스무 번이 넘었다는 상호 비판식 보좌진 ‘총화’ 등 북한식 업무 스타일에 MZ세대 보좌진이 학을 뗐다고 한다.
▶회사에서 젊은 직원들이 업무 지시를 받으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물어 임원들 사이에 ‘3요 주의보’가 도는 세상이다. 기존 ‘3요’에 ‘지금요?’까지 더해져 ‘4요’란 말까지 나온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가 입에 밴 50~60대뿐 아니라 젊은 축인 30~40대 상사들도 난감해한다. 엄격한 상명하복식 관료주의에 익숙한 태 의원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문화일 것이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곧 태 의원 징계를 결정한다. 쪼개기 후원금 의혹과 청년 보좌관 특혜 채용 의혹은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잘못이 확인되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탈북자 손절’이 돼선 곤란하다. 대한민국이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탈북자 출신 여당 최고위원을 배출할 수 있는 체제라는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어떤 대북 정책보다 강력하다. 대북 확성기보다 효과적이고 핵미사일보다 강한 비대칭 전력을 죽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05.08(월) 괴물 수비수 김민재

스물일곱 살 축구 대표팀 수비수 김민재는 2012년 아버지와 생선 트럭을 타고 경남 통영에서 경기 파주까지 달린 7시간을 ‘나를 만들어준 순간’으로 꼽는다. 17세 이하 대표팀에 처음 선발돼 들뜬 마음을 안고 파주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테이블 6개가 전부인 작은 횟집을 하던 아버지는 멍게 배달 트럭에 아들을 태우고 한밤중에 통영을 출발해 장시간 운전 끝에 파주에 도착했다. 김민재는 “그땐 부끄럽기도 했지만 고생하는 부모를 생각하며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김민재의 아버지는 유도 선수, 어머니는 육상 선수 출신이다. 김민재는 190㎝·88㎏의 탄탄한 체격과 순간 최고 속도 시속 35㎞의 빠른 스피드를 모두 물려받았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연세대를 자퇴한 그는 K리그 전북 현대에 입단하며 ‘제2의 홍명보’가 될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중국과 튀르키예를 거쳐 올 시즌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적하면서 유럽 중앙 무대에 도전장을 냈다.
▶수비는 한국 축구에서 늘 약점이었다. ‘카테나치오(Catenaccio·빗장 수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 축구에서 한국 출신 수비수가 통할 것인지 우려도 있었다. 김민재는 곧바로 주전을 꿰차더니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 리그 최소 실점과 최다 득점을 기록한 나폴리는 ‘전설’ 마라도나 시절 이후 33년 만에 우승컵을 들게 됐다. 우승에 핵심 역할을 한 김민재에게 찬사가 쏟아진다.
▶김민재는 패스 차단과 태클, 헤딩 등 수비수 본연의 임무에 뛰어나다. 유럽·남미 정상급 선수들을 압도할 만한 체격과 파워를 키웠고, 스피드까지 겸비해 상대 공격수에겐 공포의 대상이 됐다. 경기 흐름과 상대 선수 움직임을 읽는 능력, 배짱과 투지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ESPN은 “빗장수비를 장려하는 조직적 축구를 하는 세리에A는 김민재의 재능을 보여주기에 가장 이상적인 리그”라며 “뚫리지 않는 김민재의 능력이 드러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괴물’이라는 별명이 “수비수로서 나의 긍정적 자질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며 정말 마음에 든다고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김민재 영입에 6000만유로(약 874억원)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박지성은 2005년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됐고, 2021-2022시즌엔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번엔 한국인 수비수가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05.09 간호조무사의 울분, 의료계 ‘카스트’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에서 인도계 직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30% 정도다. 그런데 이런 굴지의 기업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인도인끼리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의 한 온라인 매체는 얼마 전 “(실리콘밸리에서도)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낮은 계급임이 드러나면 같은 인도계 동료들이 더는 점심을 함께 먹으려 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인도 정부가 1947년 카스트제를 공식 폐지했지만 이 제도가 아직도 얼마나 뿌리 깊게 남아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 연구소에도 박사·석사, 정규직·계약직에 따라 업무와 대우에 차이가 있는데 때로는 ‘신분제’ 같은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박사 연구원은 주로 과제를 따거나 논문을 쓰고 석사 연구원들은 실험 측정 등을 하는데, 석사 연구원이 연구에 착수해도 박사 연구원이 오면 넘겨주고 보조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 무기계약직까지 가세해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 우리나라 연구소야말로 카스트제처럼 위계질서가 엄연한 조직이라는 말이 나온다.
▶간호법 제정 문제로 의사와 간호사가 충돌하는 가운데, 간호조무사(간무사)협회장은 “간호계에 신분제인 ‘카스트제도’가 있다”고 했다. 간호사들이 있는 간호스테이션에 오지 못하게 하는 등 간호사들이 간무사들을 차별하면서 무시한다는 것이다. 간호조무사 자격을 고졸로 제한하고 대졸은 간호조무사를 못 하게 막는 것은 이 제도를 고착화하려는 의도라고도 했다. 간호사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수직적 관계가 더 문제라고 반박한다.
▶의료계 직역 사이만 아니라 직역 내부에서도 카스트제 같은 경직적인 문화가 여전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병원에서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으로 이어지는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간호사 사회에서도 고참 간호사와 신참 간호사들 사이 ‘태움(교육을 명목으로 후배를 괴롭히는 행동들)’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직역 간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간호법 문제에 대해 국민들은 판단을 하기 쉽지 않다. 그 사이 의사, 간호사, 간무사 간에 오가는 말이 흑색선전, 마녀사냥,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병원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간호법 문제의 핵심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다. 현행 의료법에서 의료인의 업무 범위 조항은 1962년 이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시대 변화에 따라 직역별 업무 범위를 그때그때 조정했으면 지금처럼 한꺼번에 분출해 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05.10 로제타 홀 여사를 아십니까
지난달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 도중 “19세기 말 한국에 온 미국의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며 구한말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2대에 걸쳐 의료 봉사 활동을 했던 로제타 홀 여사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 연설에서 함께 언급된 언드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과 달리 로제타 홀은 생소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러스트=박상훈
▶25세 젊은 미국인 여의사 로제타가 1890년 제물포항에 발을 디딜 때 어렵고 힘든 삶을 각오하긴 했다. 그러나 가혹한 시련이 될 줄은 몰랐다. 1894년 11월, 청일전쟁 격전지였던 평양에 의료봉사 하러 갔다가 남편 윌리엄 홀을 감염병으로 떠나보냈다. 결혼 3년도 안 됐고 배 속엔 둘째가 자라고 있었다.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낳아 데리고 들어온 둘째 딸마저 이질로 잃었다. 남편과 딸을 한국 땅에 묻었다.
▶이후 로제타 여사의 삶은 개인의 불행을 봉사로 승화하는 과정이었다. 교회사 연구가인 박정희의 저서 ‘닥터 로제타 홀’엔 역경 속에 인류애를 꽃피운 그녀의 삶이 기록돼 있다. 로제타는 거듭된 불행을 신앙으로 이겨내며 이렇게 기도했다. ‘하느님, 저는 길을 모릅니다. (중략) 비록 이 땅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잃었지만, 제 아들 셔우드와 한국에서 오래 사역할 수 있게 해 주소서.’
▶다시 일어선 로제타 여사는 남편과 딸 이름으로 기념 병원을 지었다. 여성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광혜여원도 설립했다. 국내 첫 시각장애인 학교인 평양여맹학교를 세웠고, 한글 기반 점자를 최초로 개발했다. 고려대 의대의 모태가 된 조선의학강습소도 개소했다. 조선 여성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여의사 양성에 힘썼다. 그녀가 미국에 보낸 박에스더는 첫 여성 의료 유학생이자 첫 여의사였다. 1933년 68세 노인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43년간 가난하고 병든 조선인을 돌봤다. 부모처럼 의사가 된 아들 셔우드와 며느리 매리언도 식민지 조선인을 괴롭힌 결핵 퇴치에 앞장섰다.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는 홀 집안 5명이 안장돼 있다. 1951년 로제타 여사가 별세하며 남편과 딸이 있는 한국 땅에 묻어달라 했고, 1991년 같은 해 세상을 뜬 아들 셔우드 박사 부부도 양화진 묘역에 묻혔다. 셔우드 박사는 “아직도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대한민국의 지금 모습은 한국이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홀 집안의 70년 봉사 덕분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연설이 새삼 그 헌신을 떠올리게 한다.
05.11 “북한 기 못꺾으면 또 당한다”... 돌아온 강골 김관진

나라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 군인’은 많다. 로마 명장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군 개혁, 게르만족 격퇴 공로로 ‘제3의 건국자’ 소리를 들었다. 은퇴했던 그는 동맹 도시들의 반란이 나자 장군으로 돌아와 반란을 잠재웠다. 이순신 장군도 부당하게 파직됐지만 백의종군으로 군에 돌아왔다. 결국 명량에서 대승을 거뒀다.
▶해병 사병 출신인 미국의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걸프전과 아프간·이라크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거뒀다. “상대 숨통을 끊을 준비를 하라’는 그의 강골 리더십에 부하들은 믿고 따랐다. 스스로 ‘해병대와 결혼했다’고 했다. 그가 전역 후 4년 만에 국방장관으로 돌아올 때 의회는 ‘전역 후 7년 경과’의 예외를 인정했다. 그는 트럼프에게 직언한 유일한 장관이었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평생 야전의 강골 군인으로 살았다.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역한 그를 불렀다. “북에 대응하다 서울에 포탄이 떨어지면 어떡하느냐”는 대통령 물음에 김 전 장관은 “불안을 이겨내고 확실히 응징하면 도발 못 한다”고 했다. 국방장관이 된 그는 연평도에서 대규모 훈련을 했다. 미 국방부가 “위험하니 미루자”고 했지만 “북한 기를 꺾지 못하면 또 당한다”며 강행했다. 실제 미사일을 실은 전투기도 발진시켰다. 북한의 지뢰 도발 땐 휴전선 너머로 포탄 29발을 날려 보냈다. 북은 처음으로 도발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워싱턴에선 ‘김관진 효과’라고 했다.
▶그의 장관 지휘 서신 1호는 이순신 장군의 ‘적을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였다. “북 도발 시 10배 보복하고 적 지휘부와 원점을 타격하라”고 했다. 집무실에 김정은과 북한군 수뇌부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적장의 생각을 읽었다’고 한다. 적에게 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며 주말에도 일했다. 적 얘기 할 때 눈에서 불꽃이 쏟아져 ‘레이저 김’이라 했다. 그를 두려워한 북한은 살해 위협을 하고 사진을 사격 표적으로 썼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사이버사령부 정치 댓글 사건으로 수사받고 구속도 됐다. 6년째 재판 중이다. 그래도 “부하들은 잘못 없다. 내가 안고 간다”고 했다. 법정은 늘 옛 전우와 부하, 친구들로 꽉 찼다. 변호사비도 1억3000만원이나 모였다. 그가 국방 개혁을 추진할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에 내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가 구속될 때 서울중앙지검장이었지만 “반드시 모셔오라”고 했다 한다. 두 사람은 11일 첫 만남을 갖는다. ‘김관진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05.12 ‘카톡 감옥’에서 조용히 탈옥하기
세상 소식을 빨리 들어야 하는 직업 때문에 잠잘 때도 카카오톡 알림음을 켜놓고 지냈는데 새벽 4시경 “카톡, 카톡, 카톡” 소리에 몇 번 잠을 설친 뒤로는 무음 처리했다. 급한 일인가 싶어 잠을 깨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번번이 아니었다. 사람을 100명 넘게 모아놓은 단톡방에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난 멤버가 아름다운 일출 사진과 함께 인생 명언을 구절구절 띄웠다. 그 단톡방을 나오고 싶어도 ‘OOO님이 나갔습니다’라는 알림이 뜨니 미안해서 나갈 수도 없었다.
▶'국민 메신저’라는 카카오톡의 단체 채팅방(단톡방)은 성인 94%가 이용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대화와 정보를 나누는 편리함 때문에 단톡방을 1인당 평균 6.5개 이용할 정도로 보편적이다. 반면 단톡방 스트레스를 경험했다는 사람도 82%가 넘는다. ‘늦은 시간에도 알람이 쉬지 않고 울려서’ ‘그냥 보기만 하려는데 답장을 요구받아서’ ‘머무는 것이 곧 의리로 비쳐지니 퇴장하기 곤란해서’ 등이 이유다.

▶원하지 않는 메시지가 쏟아지는데 단톡방을 나가기도 힘드니 ‘카톡 감옥’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카톡 감옥’은 훨씬 심각한 사이버 학폭 현장이다. 단톡방에 친구를 초대해 집단으로 욕설을 퍼붓는 ‘떼카’(떼지어 카톡)가 일어나고, 그걸 못 견딘 피해 학생이 나가기 버튼을 눌러 단톡방에서 나가면 또다시 초대해 더 심한 욕을 퍼붓는 ‘카감’(카톡 감옥)이 벌어진다.
▶카톡 단톡방에서 ‘OOO님이 나갔습니다’라는 알림 없이 조용히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카카오톡에 대한 오랜 민원이었다. 드디어 그 기능이 도입됐다. “눈치만 보던 카톡 감옥, 드디어 탈출하세요” 등의 제목과 함께 ‘조용히 나가기’ 사용법이 블로그와 유튜브에 주르르 뜬다. 메타의 ‘와츠앱’, 중국의 ‘위챗’ 등은 일찌감치 가능했는데, 카카오는 기획자와 개발자들 간에 이 기능을 도입할지를 놓고 치열한 내부 논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서비스 도입이 늦어졌다고 한다.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단체 채팅방에 초대받는 불편함도 덜게 됐다. 단톡방에 초대받을 때 수락 여부를 확인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조용한 퇴장이 가능해졌으니 불필요한 단톡방을 정리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리 전문가 윤선현씨는 단톡방도 물건 정리하듯 ‘필관목행(필요·관심·목적·행복)’ 잣대로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불필요한 메시지가 쌓이거나, 마음이 불편한데도 눈치 보느라 남아있던 단톡방을 싹 정리해서 카톡 메시지에 시간 뺏기지 말라는 것이다.
05.13(토) ‘야구의 전설’ 장훈의 조막손
‘일본 프로 야구의 전설’ 장훈(張勳·83)은 원래 오른손잡이였다. 왼손잡이가 된 것은 네 살 때 입은 화상 때문이다. 가난한 재일교포의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장훈이 한겨울 모닥불에 고구마를 익혀 먹으려 할 때 트럭이 후진해서 밀어버렸다. 불 속에 오른손을 짚어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어 버렸다. 엄지와 검지도 심하게 구부러졌다. 조막손이 된 것이다. 어머니 박순분 여사가 그를 업고 사방팔방으로 뛰었으나 허사였다. 장훈은 “오른손으로는 작은 널빤지 하나만 들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했다.

▶타자가 스윙할 때는 두 손으로 배트를 잡고 회전하면서 끝까지 뻗어줘야 한다. 장훈의 오른손 힘은 다른 선수보다 현격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23년간 2752경기에서 통산 3할1푼9리, 안타 3085개, 수위 타자 7회의 대기록을 남겼다. 전무후무하다. 백인천 전 롯데 감독은 “그런 손으로 그런 기록 낼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없다”며 “새벽 1시에 팬티만 입고 연습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장훈은 그렇게까지 피나는 연습을 한 이유로 어머니를 꼽는다. “성공해서 어머니에게 비단저고리 사주고 돈을 많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크게 야단맞은 적이 있다.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하면서 일본에 귀화하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조국을 팔겠다는 것이냐. 당장 야구를 그만두라”고 했다. 장훈은 “그때만큼 어머니가 화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장훈은 귀화하지 않았고 프로 계약금 200만엔을 신문지에 싸서 전부 어머니에게 바쳤다.
▶일본 특파원 시절, 장훈 선수를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일본 방송에 출연 후 한국인이 많은 식당과 술집에서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팔순의 나이에도 언제나 당당한 ‘한국 사나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한국 미디어와 인터뷰에서는 “국적은 종이 하나로 바꿀 수 있지만, 민족의 피는 바꿀 수 없다”고 얘기해왔다.
▶항상 웃는 얼굴의 장훈이 본지 인터뷰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누나를 잃은 사실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한일 양국 지도자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기로 한 데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가 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다”고 한 데 대해 “사과한다는 말은 안 썼지만 (재일교포인)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히로시마 생존 피폭자인 그의 눈물은 한일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숨죽여 지내야 하는 교포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 같다. 노(老)영웅이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
05.15(월) 대학 중간고사 강타한 챗GPT 커닝
시험 있는 곳에 커닝이 따라붙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조선 시대 과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정행위를 막으려 응시자들을 여섯 자(약 1.8m) 간격을 두고 앉게 했지만 커닝 페이퍼를 콧구멍이나 붓 속에 숨기는 사례 등이 숱하게 적발됐다고 한다. 눈동자 굴려 답안 훔쳐보기는 기본이었다. 걸리면 곤장 100대에 3년 이상 중노동에 처했지만 커닝을 막지 못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커닝도 진화한다. 2005년 대규모 수능 부정행위 사건에선 원격 통신 수법이 등장했다. 일명 ‘선수’라는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고사장에 들어가 어깨나 허벅지 부위에 부착한 뒤 정답 번호 숫자만큼 두드려 신호음을 보내면 근처 고시원에 있던 후배 ‘도우미’들이 그 답을 다른 수험생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달했다. 광주에서 발생한 이 부정행위로 314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됐다. 2012년엔 미국 하버드대에서도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당시 125명이 조사를 받았는데 이때도 휴대전화 등 통신 기기가 사용됐다고 한다.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가 나온 뒤 첫 대학 중간고사가 최근 실시됐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선 책과 인터넷을 활용해 ‘오픈북’ 방식으로 답하는 시험을 치렀는데 한 학생이 챗GPT가 알려준 답을 그대로 적어내고도 80명 중 22등을 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 학생은 취업 준비하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한다. 챗GPT로 ‘공개 커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수업 열심히 들은 친구는 24등을 했다고 한다. 공정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 몇몇 대학은 교내에서 챗GPT 사용을 금지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등은 이용을 금지했고, 미국 시애틀의 일부 공립고도 교내에서 사용을 제한했다고 한다. 최근 미국에선 특정 글의 작성에 AI가 사용됐는지를 분별하는 AI 감지기인 ‘GPT 제로’ 기술까지 등장했다. 챗GPT를 둘러싼 ‘창과 방패’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무조건 못 쓰게 막는 것이 정답일 순 없다. AI와 함께 살아야 하는 시대이고, 자료 검색에서 아직 이보다 좋은 수단이 없다. 잘 쓰는 것도 능력이 될 수 있다. 철학자 플라톤은 문자가 처음 등장하자 인간의 기억력을 망칠 거라고 사용을 반대했다. 하지만 스승 소크라테스의 말을 문자로 기록해 남긴 것도 그였다. 과학자들은 남의 논문 보며 연구하지만 출처를 밝히면 인용이 되고, 안 밝히면 표절이 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당하게 쓰는 것이고, 평가도 정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숙제가 우리 앞에 놓였다.
05.16 우크라이나 여성 교향악단의 전쟁터
러시아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불렸다.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870여 일간 이 도시를 봉쇄해 시민 100여 만명이 굶어 죽었다. 시민들이 항전을 이어가자 이 도시 출신인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작곡을 시작했다. 레닌그라드 라디오교향악단이 곡이 완성되기를 기다려 연습을 시작했지만 아사자가 속출했다. 그 때마다 연주를 할 줄 아는 군인과 시민들이 대신 악기를 들었다. 1942년 8월 9일, 목숨과 맞바꾼 곡이 마침내 울려 퍼지자 시민들은 눈물을 쏟았고, 세계는 나치의 만행을 규탄했다.

▶예술가에게도 싸워 지켜야 할 조국이 있다. 자원 입대한 쇼스타코비치가 소방 부대에 배속되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불타는 소련 도시를 배경으로 그가 소방 모자를 쓴 모습을 표지로 제작했다. 음악으로 전쟁의 불을 끄고 싶어 했던 대 작곡가의 염원을 그렇게 응원했다. 80년이 흐른 뒤, 이번엔 러시아가 침략자가 됐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예술가가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필하모니도 그중 하나다. 남성 단원 대부분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여성만으로 교향악단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 여성들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젤렌스카 여사와 함께 조선일보가 개최하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15일 내한했다. 연주회는 17일 서울에서 열린다.
▶체르니우치 필하모니가 내한하기까지 여러 난관을 뚫어야 했다. 때론 목숨마저 위험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에 있는 체르니우치에서 서울에 오려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거쳐야 했다. 평소 같으면 차로 7시간이면 도착할 바르샤바까지 폭격 위험이 덜한 시간을 골라 조금씩 이동하느라 이틀이 걸렸다. 수도 키이우 등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일부 단원도 “서울행에 동참하겠다”며 위험을 무릅썼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은 독일의 침략을 규탄하는 세계 여론을 일으키려 부심했다. 세계 주요 국가에 교향곡 ‘레닌그라드’ 악보를 내보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나치 독일이 훼방 놓자 마이크로필름으로 제작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막을 우회, 감시망을 뚫었다. 런던 초연에 이어 뉴욕과 보스턴 등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60회 넘게 연주되자 소련을 돕자는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음악은 부드럽지만 그 속에 담은 염원은 강철처럼 단단하다. 체르니우치 필하모니의 여성 음악인들이 온갖 난관을 뚫고 서울에 온 이유도 음악의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05.17 해삼위(海蔘威)와 中·러의 밀착

/일러스트=박상훈
1856년 러시아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크림전쟁에서 패해 파리강화회의에서 영토가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지중해로 나가는 흑해의 군항을 상실했다. 영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러시아로서는 큰 타격이었다. 부동항이 절실한 러시아가 눈을 돌린 곳이 유라시아 대륙 맨 끝의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러시아는 제2차 아편전쟁 와중에 중국을 협박했다. 1858년 헤이룽장성 북쪽 아무르강의 아이훈(璦琿)에서 불평등 조약을 맺고 연해주 지역을 모두 품었다. ‘동쪽을 정복한다’는 의미의 블라디보스토크 역사가 러시아어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한국·중국·일본을 지척에 둔 블라디보스토크를 당시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버금가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극동 해군기지와 자유무역항을 동시에 만드는 계획을 착착 실현시켰다. 뿔 모양으로 파고드는 만(灣)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금각만(Golden Horn)’과 똑같이 이름 지으며 흑해를 갖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1891년 시베리아 횡단철도 착공식엔 당시 황태자이던 니콜라이 2세가 참석했다. 상인이던 배우 율 브리너의 할아버지가 이곳을 동북아 주요 항구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은 이곳을 중심으로 태평양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APEC 정상회의도 여기서 개최했다. 2015년부터는 매년 한·중·일과 몽골 등을 초청, 동방경제포럼을 열고 있다. 2018년엔 러시아 극동 관구의 행정수도를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전했다.
▶연해주 전체는 고구려 영토였다가 698년 건국한 발해 땅이 됐다. 우리 선조들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해삼위(海蔘威)라고 불렀다. 1860년대부터 한인들이 이주해 신한촌(新韓村)이 만들어졌다. 인근 도로는 한인 거리를 뜻하는 ‘카레이스키 스카야’로 명명됐다. 1900년 블라디보스토크 동방대학은 세계 최초로 한국문학과를 개설했다. 이동휘, 신채호 등 일제시대 독립투사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가 ‘단지(斷指) 동맹’을 결성한 곳도 여기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중국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을 줬다. 이번 조치로 옛 영토를 통해 동해로 진출한다는 중국의 소망이 이뤄졌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다 러시아가 국력을 소진하고 연해주에서 중국에 사실상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한다. 앞으로 중국 함대가 이 항구를 기지로 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등장한 중국이 우리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
05.18 우크라의 비밀 병기 젤렌스카

/일러스트_양진경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는 내조자가 아닌 국정의 동반자였다. 흑인 인권과 남녀 평등을 위한 법을 만들자고 정치인들을 직접 설득했다. 전국을 돌며 뉴딜 정책을 홍보하고 신문에 칼럼을 썼다. 매주 여기자들과 간담회도 열었다. 그래서 ‘엘리너 행정부’라는 말이 나왔다. 존 애덤스 대통령의 부인 애비게일은 여권 운동가로 정치에 적극 참여해 ‘미세스 프레지던트’란 별명을 얻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는 공식 직책까지 맡아 백악관 회의를 이끌었다. ‘빌러리 부부 대통령’으로 불렸다.
▶하지만 나라가 전쟁의 참화에 빠졌을 때 직접 나선 대통령 부인은 흔치 않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 젤렌스카는 러시아 침공에 맞서 소셜미디어 전사가 됐다. 주변국으로 피신하라는 권유도 거절했다. 인스타그램에 희생된 아이들 사진을 올리고 ‘나는 증언합니다’라는 글을 썼다. “아이와 여성들이 죽거나 고통 받고 있다. 지금 푸틴을 막지 못하면 전 세계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남편 대신 외교 특사로 나섰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각국을 돌며 지원을 호소했다. 각국 정상 부인들과 네트워크도 공고히 했다. 미 의회에서 외국 정상 부인으론 처음 연설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작가 출신인 그의 말은 호소력이 있었다. “제발 전쟁에 익숙해지지 말아 달라. 무관심은 간접 살인이다. 외국이 돈 계산 할 때 우리는 사상자 수를 센다”고 했다. 전 세계 330만명의 팔로어가 그를 지지했다. 해외 언론은 “젤렌스카는 국가 수호자이자 비밀 병기”라고 했다.
▶그는 “코미디언이었던 남편은 늘 무대 위에 있었지만 난 무대 뒤가 좋다”고 했다. 그가 전면에 나서자 러시아는 살해 위협을 했다. “나도 두렵지만 수백만명의 엄마들이 나를 보고 있어요. 공포에 굴해선 안 돼요.” 그는 국민 절반이 가족·친구를 잃고 60%가 정신적 외상을 겪고 있다고 했다. 미숙아 수는 무려 50% 늘었다. 국제 의료 지원을 요청하며 고통 치유사로도 나서고 있다.
▶그가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고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도 참석했다. 한국 경제·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도 재건한 한국은 우리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우리에겐 한국이 큰 위로이자 희망”이라고 했다. 그의 이 말엔 큰 울림이 있다. “1950년대 한국의 자유를 위해 모였듯이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뭉쳐주세요. 지금 우리 아이들을 구하면 그 애들이 내일 당신의 목숨을 구할 겁니다.”
05.19 55년 만에 간판 바꾸는 전경련, 과거 영광 재현할까

▲서울 여의도 전경련 빌딩./뉴스1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55년간 사용한 명칭을 바꾸고 미국 헤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변신하겠다고 어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새로 사용하게 될 이름 ‘한국경제인협회’는 1961년 설립 당시의 첫 이름이다. 1968년에 전경련으로 바꿨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생전에 유일하게 쓴 ‘감투’가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직이었다. 기업인들을 부정 축재자로 지목한 장면 내각에 이어, 1961년 집권한 군사 정권도 기업인 손보기에 나설 참이었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이병철 회장이 “기업인들을 부정 축재자로 몰아 처벌할 게 아니라 경제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일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러면서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을 모델로 기업인을 모아 경제 단체를 만들고 직접 초대 회장을 맡았다.
▶기업이 경제 건설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하고 출발한 만큼 전경련이 한국 경제사에 남긴 발자취도 크다. 이병철 회장의 바통을 이은 2대 이정림 회장은 울산공단과 구로공단 설립 등을 건의했다. 이병철(삼성), 정주영(현대), 구자경(LG), 최종현(SK), 김우중(대우) 등 거물 기업인들이 회장을 맡아 재계 맏형 역할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77년부터 10년간 전경련을 이끌며 전성시대를 열었다.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앞장 서면서 “전경련이 아니었으면 못 해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 퇴임 압력을 받자 “회원들이 뽑아준 회장이라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며 버틴 일화로도 유명하다.
▶출발부터 정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던 전경련은 정치자금 조성 등 정·경 유착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대로 기업 입장을 대변하다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적도 있다. 최종현 회장은 정부의 재벌 소유 분산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다가 대대적인 세무 조사를 받았다. 김우중 회장은 1998년부터 전경련을 맡아 의욕을 보였지만 대우그룹 몰락으로 임기를 못 채웠다. 그 이후로는 4대 그룹 출신 회장이 못 나왔다. 이 어려운 자리를 다들 고사해 극심한 ‘회장 구인난’을 겪었다. 급기야 국정 농단 주범으로 몰려 4대 그룹이 다 탈퇴하고 위상은 급락했다.
▶2011년 취임한 허창수 GS 그룹 회장이 12년간 이끌다 올 초 사임했다. 기업인 출신도 아닌 회장 직대 체제하에서 이번 개혁안이 나왔다. 첫 이름을 내걸고 새 출발하겠다는 전경련의 변신에 귀추가 주목된다.
05.20(토) 韓 좌파 우상 촘스키, 위선도 닮은 꼴

폴란드 출신의 좌파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내 조국은 프롤레타리아’라고 했다. 선동적인 연설문을 잘 써서 좌파의 두뇌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작 사생활에선 부르주아를 꿈꿨다. 동료 요기헤스에게 보낸 구애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 방을 장식할 예쁜 장신구들을 샀어요, 내 사랑이여. (중략) 이렇게 모험적인 삶을 시도하기보다 당신과 함께 스위스 어딘가에서 살았어야 했는데.’ 사상적 지향과 물질적 풍요 사이에서 방황한 좌파 혁명가의 모순된 내면 고백이었다.
▶좌파의 ‘이념 따로 생활 따로’ 행태를 미국에선 ‘리무진 좌파’라고 한다. 1960년대 리무진 타고 다니며 선거운동 하던 좌파에서 비롯된 말이다. 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촘스키 교수는 언어학자이지만 명성을 누리는 분야는 진보적 관점에서 해온 미국 사회 비판이다. 그런데 ‘말 따로 행동 따로’다. 미 국방부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악(惡)’이라 비난한 뒤 국방부가 발주한 수백만 달러 연구 계약을 따냈다. 미국 기업을 독재자라 하면서 그런 회사 주식에 투자해 빈축을 산 적도 있다.
▶최근 새 추문이 더해졌다. 아동 성범죄로 복역하다가 2019년 옥사한 억만장자 금융가 제프리 엡스타인과 여러 해 교류하면서 거액의 금융 이체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엡스타인 생전에 그의 전용기를 애용했고 그가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저택에서 만찬을 즐긴 사실도 있다. 엡스타인의 성범죄가 공개된 후에도 그와 교류를 지속했다고 한다.
▶미국 진보 진영조차 이런 촘스키에게 등 돌린 지 오래다. 극단적인 좌파 정치 성향도 배척당하고 있다. 촘스키는 적화통일된 베트남을 도덕적 체제라 치켜세웠고, 킬링필드 학살극을 자행한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정권을 “휴머니즘에 입각해 사회혁명을 이뤘다”고 해 좌파 동료들조차 당혹스럽게 했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지낸 진보 법학자 앨런 더쇼비츠는 그를 “사실을 조작해 온 협잡꾼”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 좌파들 사이에선 여전히 ‘세계적 석학’이고 ‘시대의 양심’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종전선언을 지지했고, 지난달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을 두고도 “한국이 미국의 신냉전에 동참하면 한반도 평화가 위험해진다”고 했으니 그럴 것이다. 내로남불 행태도 닮았다. 남의 자식은 가지 말라 하고선 자기 자식은 외고 보낸 게 한국의 강남 좌파 행태다. “돈 없어 라면만 먹었다”며 가난을 팔던 한 국회의원은 수십 억대 코인을 보유한 게 들통났다. 좌파의 내로남불은 DNA에 들어 있는 것인가.
05.22(월) 분실물 주인 품으로 ‘K-양심’

/일러스트=이철원
한국을 찾은 외국인의 분실물이 빠른 시간 안에 제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며칠 전 서울 동대문에서 중국인이 현금 500만원, 신용카드 2장이 든 분홍색 명품 백을 잃어버렸다. 이것을 40대 한국 남성이 주워서 인근 지구대로 넘겼고, 이 가방은 경찰청 유실물 통합 포털인 ‘로스트112′를 통해 주인을 찾았다. 분실 신고가 있은 지 불과 50분 만이었다. 신용카드에 적힌 한자 이름을 보고 중국인으로 짐작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러시아 관광객이 공항~호텔 버스에서 현금 300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다 되찾았고, 그 앞 달에는 일본 관광객이 현금 800만원, 여권, 비행기표 등을 잃어버렸다 돌려받았다. 그들은 한국인의 품성을 다시 봤을 것이다. 오래전에 한 화장품 업체가 쇼핑백 100개를 지하철에 두고 내리는 실험을 했는데, 이 중 87개가 돌아왔다는 인터넷 글도 있다. 부분적으로 연출된 영상이란 의심을 샀으나 크게 화제가 됐었다. 서울 지하철은 작년 분실물이 지갑, 휴대폰, 가방 순이었는데, 본인 인계율이 63%였다.
▶미국·스위스 연구진이 실험했더니 ‘돈이 든 지갑’이 ‘돈 없는 지갑’보다 돌아올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현금 유혹이 있을 경우 정직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돈이나 열쇠가 든 지갑은 “습득한 사람의 자존감을 자극하면서 오히려 도둑으로 몰리는 것을 혐오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 실험에서 습득물 반환율로만 따졌을 때 정직성 선두는 스위스·노르웨이였다. 최하위는 상상에 맡기겠다.
▶미국에서는 물건에 ‘ID 라벨’을 붙이는 서비스를 제공해서 분실물의 회수율을 75%까지 끌어올린 적도 있다. 라벨에 고유 추적 번호 7자리를 부여하는 방식인데, 핵심은 분실물이 돌아올 경우 사례 금액을 명확히 밝혀 놓는다고 한다. 주변에 어떤 지인도 휴대폰에 ‘돌려주시면 30만원 사례함’이라는 스티커를 붙여놓은 걸 봤다. “그보다 확실한 호소는 없다”고 했다.
▶시골서 자랄 때 ‘서울 가면 눈 뜨고 코 베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택배 물건을 아파트나 단독 주택 앞에 며칠씩 놔두어도 손 타는 일이 드물다. 한국에 온 외국인은 이런 ‘K-양심’에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한국에서 소매치기는 ‘거의 사라진 업종’이다. 곳곳에 설치된 CCTV, 차량 블랙박스를 피해갈 담 큰 도둑도 없을 것이다. 시민 의식이 크게 높아진 점도 뿌듯하다. 어제 로스트 112에는 ‘K-양심 습득물’ 1200여 개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05.23 세 딸 잃은 아버지의 그 후 30년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은 소설가 박완서는 작품집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아들 잃은 아픔이 더 컸다고 했다. ‘내가 이 나이까지 겪어본 울음에는, 그 울음이 설사 일생의 반려를 잃은 울음이라 할지라도, 지내놓고 보면 약간이나마 감미로움이 섞여 있기 마련이었다. (중략) 오직 참척(慘慽·자식 사망)의 고통에만 전혀 감미로움이 섞여 있지 않았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조각상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이다. 자식 잃은 아픔은 신도 위로할 수 없기에 그저 불쌍히 여길 뿐이다. 하지만 세상엔 그런 아픔을 큰 사랑으로 승화한 부모들이 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숨진 여대생 이승영씨의 부모는 승영장학회를 만들었다. 천안함 용사 정범구 병장과 차균석 중사의 어머니들은 보상금을 아들의 모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서울 서대문의 이진아기념도서관은 평소 책 좋아했던 딸을 사고로 떠나보낸 부모가 세웠다. 성악 하던 아들을 학폭으로 잃은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도 장학회를 만들었다.
▶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영국에선 등교한 아들을 심정지로 떠나보낸 부모가 전국 학교에 심장제세동기 6000여 개를 보내는 운동을 펼쳤다. 지난 12년간 60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미국에서 9·11 테러로 아들을 잃은 뒤 장학재단을 만들고 공원과 도서관, 테니스장을 조성해 아들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기부한 이도 있다.
▶예술가들도 작품을 통해 비슷한 일을 한다. 가수 에릭 클랩턴은 아들을 추락사로 잃고 방황하다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을 발표했다.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을 그 노래로 일으켜 세웠다. ‘나는 강해져야 해/ 그리고 살아가야 해/(중략)/ 나는 네가 있는 이곳, 하늘에 머물 수 없으니까.’ 시인 김현승도 자식을 잃고 시 ‘눈물’을 썼다. 그 슬픔을 꼭 이겨내겠다는 다짐을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라는 시행에 담았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한꺼번에 세 딸을 잃은 정광진 변호사가 19일 별세했다. 정 변호사는 생전에 “우리 내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세상이 아주 끝나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고 했지만 세상을 오래 원망하지 않았다. 장학재단을 만들어 30년 가까이 시각장애 학생들을 지원했다. 눈물 속에 딸들을 보내지 않고 세상의 빛으로 되살려 냈다. 비극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정 변호사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05.24 독재 국가의 황제 의전

/일러스트=이철원
중국 당나라 전성기인 현종 때 수도 장안(시안)엔 70여 국 사신이 모여들었다. 금은보화와 특산품 등 조공이 가득 쌓였다. 현종은 사신들을 맞는 화려한 연회를 열고 조공보다 더 많은 하사품을 내렸다. 토번국(티베트) 왕에겐 공주까지 아내로 보냈다. 중국은 ‘주변 오랑캐’를 다루기 위해 다섯 가지 미끼를 썼다고 한다. 음식과 음악, 곳간, 옷감, 술로 상대의 입·귀·배·눈·마음을 홀렸다.
▶중국은 2006년 미 재무장관이 방문하자 자금성의 모든 야간 조명을 켜고 불꽃놀이까지 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때는 자금성 문을 닫고 만한전석(滿漢全席·한족과 만주족의 모든 요리)과 경극으로 황제 대접을 했다. 텐안먼 광장도 통째로 비우고 의장대 사열을 했다. 흡족한 트럼프는 “무역 불공정은 중국 탓이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땐 100여 국 정상급 인사들을 인민대회당에 초청해 성대한 점심을 대접했다. 정상들이 후진타오 주석과 악수하고 사진 찍으려고 수십m 줄을 섰다. 시진핑 주석은 2022년 동계올림픽 때 푸른 물과 용의 형상을 한 수십m의 초대형 식탁에서 정상·외빈들과 황제식 연회를 열었다. 중국 언론은 “당나라 때 만방래조(萬邦來朝·각국이 조공 바치러 온다)가 느껴진다”고 했다.
▶중국은 최근 중앙아시아 5국 정상회의에서 다시 황제 연회를 열었다. 시안의 당나라 황궁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미녀 수십명이 용무늬 호롱을 들고 정상을 맞았고 예술단 500명이 공연을 펼쳤다. 정상회의는 축구장 크기 회의장의 지름 10m가 넘는 대형 테이블에서 열렸다. G7 정상회의에 맞서 세 과시를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유치함을 지우진 못했다. 중국 보도기관들은 또 ‘만방래조’를 읊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시 주석을 크렘린궁으로 초청해 ‘차르 연회’를 열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성 게오르기 홀에 수십m 길이 대형 식탁을 놓고 4시간 동안 산해진미를 대접했다. 푸틴은 회의나 보고도 초대형 홀에서 왕처럼 혼자 떨어져 앉아 받는다. 정상회담도 5m 길이 테이블에서 한다. 김일성은 1990년 북·일 수교를 위해 일본 유력 정치인 가네마루 신이 방북하자 수십만 군중의 환영식과 매스게임으로 그를 눈물 흘리게 했다. 김정은도 2014년 시 주석의 첫 방북 때 이를 따라 했다. 독재자들이 황제 의전을 좋아하는 건 스스로를 황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동원되는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나라가 우리 바로 옆에 세 곳이나 있다.
05.25 먹는 비만 치료제

/일러스트=이철원
인류 역사에 비만이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중국 시안에 있는 양귀비 동상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풍만한 것이 미의 기준인 시대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얼마 전까지도 아이가 토실토실하면 “복스럽다” “장군감이다”고 칭찬했다. 1983년까지 몸무게 등이 주요 기준인 우량아 선발대회가 열려 큰 인기를 끌었다.
▶비만 치료제가 처음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것이 1959년이었다. 나비약으로 잘 알려진 펜타민은 뇌 식욕조절 중추에 작용해 식욕을 덜 느끼거나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약물이었다. 그러나 의존성 위험에다 부작용도 커서 단기(4주 이내) 처방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엔 장에서 지방 분해를 차단하는 지방흡수 억제제가 등장했다. 그러나 효과가 크지 않았고 대변실금 등 부작용이 있었다. 2008년 나온 백영옥 소설 ‘스타일’에서 주인공 31세 여성은 하필 애인을 만났을 때 이 약 부작용이 나타나 낭패를 겪는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약 임상시험 중 시험 대상자 체중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발견했다. ‘GLP-1 유사체’가 체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할 뿐 아니라 포만감을 주어 식욕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회사는 곧바로 임상시험에 들어가 2014년 주사 방식의 비만 치료제 ‘삭센다’를 FDA로부터 허가받는 데 성공했다. 현재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1위 제품이다. 투여 주기를 늘린 ‘위고비’도 개발했는데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등이 사용하며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 성공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이 ‘초거대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라이릴리도 비만 치료제 최종 임상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22일 먹는 비만약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했다. 효능은 현재 나온 비만약과 비슷한데 기존 방식과 달리 먹는 약 형태라 훨씬 편리하다는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인류가 약으로 비만을 다스리는 시대가 임박한 것일까. 인류는 원시 시대부터 기아에 적응하느라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꺼내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비만 치료제는 수많은 인체 작용 중 한두 가지 정도에 영향을 주는 수준이다. 비만 치료제의 부작용도 줄었다고 해도 아직 만만치 않다. 의료계는 아직 약물만으로 인간이 적정 체중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역시 적절한 음식 섭취와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05.26 1000만 감독도 100만 성적표... 발길 끊긴 영화관

/일러스트=이철원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드림’은 ‘극한직업’으로 1600만명을 동원한 이병헌 감독이 만들었다. 코로나 이후 썰렁해진 극장에 다시 관객을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100만명을 가까스로 넘겼다.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로 ‘드림’ 이전에 100만명을 넘긴 작품은 황정민과 현빈이 주연한 ‘교섭’이 유일하다. 극장 주변에선 “참혹하다”는 말이 흘러 나돈다.
▶극장가에선 코로나 전인 2019년을 ‘극장이 가장 사랑받았던 해’로 꼽는다. 2억2600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1000만 관객 영화도 5편 탄생했다. 칸과 아카데미를 거머쥔 봉준호의 ‘기생충’도 그해 제작됐다. 하지만 영광은 지나갔다. 영화계는 한국 극장가에 ‘2억 관객’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697만명으로, 2019년 기준 절반에 불과했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반 토막 났다는 기사가 25일 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한 조사에선 ‘티켓 값을 내려도 영화관 갈 생각 없다’는 응답이 20%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는 티켓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 첫 이유로 꼽히지만, 근본적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극장 이용 방식에 변화를 줬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58년 문을 연 대한극장은 한국에 처음 등장한 ‘창문 없는 영화관’으로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 사태 때는 오히려 이 조건이 극장을 기피하는 이유가 됐다. 각 가정마다 대형 TV를 장만하고 넷플릭스 등 OTT가 극장을 대신하게 된 것도 극장 가는 발길을 붙잡는다. 한 대형 가전 매장은 코로나 이듬해 초대형 TV 판매량이 두 배로 늘었다. 초대형 TV 구매층도 전엔 주로 5060세대였지만 2021년엔 구매자 절반 이상이 3040세대로 바뀌었다. 영화 주고객층인 3040이 극장 덜 가고 집에서 영화 본다는 의미다. 방해받기 싫어하는 청년들이 앞사람 머리 신경 쓰느니 집에서 편하게 보겠다는 것이다.
▶극장(theater)은 객석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테아트론(theatron)에서 비롯됐다. 당시 객석은 연극만 감상하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모여서 신에게 제사 지내고 술과 춤을 즐기는 축제 공간이었다. 극장의 이런 모임 기능은 2000년 넘게 이어졌다. 최근까지도 극장은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었다. 청춘 남녀가 처음으로 손을 잡아보는 데이트 공간이었고, 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가족애와 우정을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수천년 지속된 극장이 코로나 복병을 만나 최고의 시련을 맞고 있다.
05.27(토) ‘한강의 기적’ 일군 경제개발 60년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60주년이 되는 지난해 조촐하게 행사가 열렸지만 한국의 성공 경험을 국제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전직 경제 관료들의 조언에 따라 61주년인 올해 큰 규모의 국제 회의를 개최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만 수립한 게 아니었다. 1950년대에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대유행이었다. 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네팔·파키스탄 등이 3~5개년 개발 계획을 세웠다. 당시는 인도가 최고 우등생으로 인정받았다. 1차 5개년 계획으로 좋은 성과를 내더니 2차 목표를 더 높였다. 반면 미국에서 교육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스탈린 방식”이라며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첫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60년 11월 장면 내각에서 만들어 이듬해 1월 발표했다. 미국 원조 없이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시절이어서 5년간 경제개발에 4억2000만달러가 필요하다고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 당국자들이 “쇼핑 리스트 같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1961년 5·16 군사정부가 집권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작성하라고 각 부처에 명령을 내렸다. 당시 상공부 오원철 화학과장이 갱지 10여 장에 사인펜으로 그린 차트를 들고 재정위원장을 맡은 장교 앞에서 화학공업 5개년 계획을 브리핑하고 승인받았다. 각 부처에서 ‘오원철 모범답안지’를 구하려고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계획을 총괄할 조직도 없어 혼란도 겪었다. 1961년 7월 22일 경제기획원이 신설돼 경제 사령탑이 됐다.
▶남북한이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체제 경쟁을 벌였다. 1961년 북한은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3년을 연장했다. 1970년에 6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자력갱생’ 노선을 택했다. 반면 한국은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개방 노선을 택했다. 그것이 남북한의 경제력을 바꿔놓았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35년간 총 7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정부가 청사진을 제시하고 민간 기업이 뛰는 성장 모델로 6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400배, 수출은 3900배 커졌다. 반도체·철강·자동차·조선·화학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한다.
▶우크라이나 교과서에서 한국의 경제 기적을 자세히 소개했다. 어깨가 으쓱해질 만큼 세계가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전직 경제 부총리와 장관들은 한목소리로 “지난 60년은 성공했지만, 포퓰리즘을 근절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60년은 어렵다”고 경고한다. 과거 성공에 취해 있기에는 갈 길이 멀다.
05.29(월) 항공기 테러, 창과 방패의 숨바꼭질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 각국 정부와 항공사들은 항공 보안 규정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무기가 될 수 있는 소지품의 검색이 철저해졌다. 조종실 문도 비행 중엔 반드시 잠그게 했다. 테러범에게 납치된 여객기가 조종실 문조차 잠그지 않고 비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테러 방지는 비행기 설계에도 반영돼, 조종실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일러스트=박상훈
▶그런데 2015년 봄 발생한 독일 저먼 윙스 여객기 추락 사고의 테러범은 승객이 아니라 조종사였다. 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 부기장이 문을 안에서 잠그고 비행기를 알프스 산맥에 추락시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강화된 조종실 안전 장치가 오히려 테러를 도운 아이러니였다. 이후 항공사들은 테러 대응 메뉴얼을 다시 뜯어고쳤다. 조종실에 한 사람만 남겨두지 않는 규정이 추가됐다. 항공기 테러 대응은 이처럼 어디서 날아올지 예측할 수 없는 창과 그에 맞서는 방패의 싸움이다.
▶한국도 항공기 테러 위험이 높은 편이다. 1969년 12월 대한항공기가 납북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보안 검색을 강화했는데도 2년 뒤 23세 청년이 강원도 홍천에서 이륙한 여객기에 사제 폭탄을 반입했다. “북으로 가자”며 3000m 상공에서 폭탄을 터뜨려 승무원이 사망하고 비행기 동체에 20㎝ 구멍이 뚫렸다. 다만 범인이 조종실에 들어가지 못해 조종사가 비행기를 비상착륙시킬 수 있었다. 대한항공기 납북을 계기로 비행 중 조종실 문을 잠그는 규정을 도입한 게 최악의 사태를 막았다. 1987년 칼기 폭파 테러에 액체 시한폭탄이 쓰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기내 액체 반입도 엄격히 금지됐다.
▶테러 못지않게 비행기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기내 난동이다. 항공기 특성상 작은 사고로도 자칫 큰 인명 피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기내 난동을 항공기 테러 못지않게 엄하게 처벌한다. 지난해 미국에선 “비행기에서 내리게 해달라”며 행패를 부린 승객이 기내에서 체포돼 8만달러 넘는 거액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대구공항에 착륙하던 아시아나 여객기의 비상문을 열어 탑승객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승객이 28일 구속됐다. 이번 사고로 항공사들은 비상구 옆 좌석의 운용 방침을 바꿔야 하게 됐다. 아시아나는 당분간 해당 좌석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보완책을 내놨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사고를 일으킨 승객은 최근 실직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니 이런 위험 요소까지 미리 파악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05.30 ‘300야드 장타 골퍼’ 방신실에 열광하는 까닭은

/일러스트=이철원
비거리가 300야드를 넘나드는 압도적 장타자 방신실은 골프 좋아하는 부모를 따라 7세 때 취미로 골프를 시작했다. “잔디에서 골프 치는 게 너무 좋고, 홀컵에 공 떨어지는 게 짜릿해서” 이듬해 부모를 졸라 정식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올해 19세인 그는 국내 프로 무대에 데뷔해 한국 여자 골프 사상 최장타자 중 한 명으로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태권도 유단자인 아버지에게 173㎝의 훤칠한 키를 물려받았다. 스윙 스피드는 최고 시속 109마일, 평균 104마일 정도로 국내 남자 투어 선수 평균에 육박한다.
▶지난겨울 스윙 스피드 훈련에 집중해 비거리가 20야드 늘었다는 그는 “이 정도로 늘 줄은 몰랐는데 열심히 하니까 되더라”며 수줍게 웃었다. 순한 인상인데 마음만 먹으면 290야드를 넘기고, 쇼트게임과 기본기도 탄탄해 그린 적중률과 평균 타수까지 KLPGA 투어 1위다. 국내 최강자로 군림하다 미국 투어에 진출한 최혜진은 지난주 방신실과 함께 경기한 뒤 “거리뿐 아니라 쇼트게임도 잘해서 많이 놀랐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방신실의 스타성은 골프 팬들을 대회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첫 우승을 달성한 28일엔 빗속에 수백명이 그를 따랐다. 이날 그는 페어웨이를 지키는 안전한 경기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티샷 때 3번 우드를 자주 잡아 15번홀까지 페어웨이 적중률이 100%였다. 하지만 1타 차 단독 선두로 들어선 16번홀 승부처에선 과감한 공격 전략을 택해 팬들을 열광시켰다. 드라이버로 292야드를 보내 버디를 잡았는데, 같은 조 선수들보다 30~50야드가 더 나갔다.
▶그는 갑상샘 항진증 때문에 빈 스윙만 해도 숨이 찰 만큼 힘든 상황을 극복해본 경험이 있다. 비거리 늘리는 데 필수로 통하는 체력 운동은 완치 단계인 현재까지도 못 하고 있다. 국가대표 에이스였는데 지난해 시드전 40위에 그쳐 올 시즌 2부 투어를 병행했다. 최근 한 달 사이 두 차례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실망과 좌절을 겪어내면서 나이보다 성숙한 멘털을 갖췄다. 감정을 누르는 데 익숙하다는 그는 간절히 기다리던 우승을 하고도 수줍게 웃으며 두 팔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얼른 내리는 세리머니를 했다.
▶'방신실 열풍’은 한국 골프가 압도적 대형 스타의 등장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보여준다. 세계 최강으로 통하던 한국 여자 골프는 최근 몇 년간 침체에 빠져 국제 무대에서 부진하고 새 얼굴을 찾기 어렵다. “LPGA 투어에 꼭 가보고 싶다. 목표는 세계 랭킹 1위”라는 방신실이 활력이자 희망으로 떠올랐다.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05.31(수) ‘언제 죽느냐’ 암 환자에게 퍼붓는 저주

▲일러스트=박상훈
이집트 람세스 3세의 정적들은 그의 얼굴 인형을 만들어 ‘죽어라’ 저주했다. 바늘로 찔러 상대를 저주하는 ‘부두 인형’으로 발전했다.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죽이려고 인형에 활을 쐈다는 이야기도 있다. 친구에게 전 재산을 뺏긴 사람이 원한에 사무쳐 매일 친구 사진을 송곳으로 찌르며 ‘죽어라’ 했더니 1년 만에 병들어 죽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꽃에 계속 ‘죽어라 죽어라’ 말하면 정말 말라 죽는다는 말도 있다. 저주가 그만큼 무섭다는 뜻일 것이다.
▶2000년 언론사 기자들이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인터넷에 저주 글이 올라왔다. “기자들 암 발생 기쁜 소식. 신속하게 사망에 이르기를 바란다. 암세포야 힘내라.” 20여 년 전 미국에서 항공기 추락 사고로 많은 이가 숨졌을 때 반미 네티즌들이 “잘 죽었다” “쌤통이다”라고 악플을 달았다. 동일본 대지진 때도 일부 네티즌은 “당해도 싸다”고 했다. 모 인사가 단식하자 “굶어 죽어라”라고 했고, 전염병에 걸린 상대편에겐 “빨리 가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때 야권 출신 방송심의위원은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박근혜) 즉사’라는 피켓 사진을 올렸다. 그러곤 “이게 민심”이라고 했다. 작년 윤석열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할 때 어느 신부는 “전용기가 추락하도록 온 국민 염원을 모으자”고 했다. 다른 신부는 ‘비나이다 비나이다 기체 결함 사고’라는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는 그를 저주하는 인형과 부적이 나돌았다.
▶손흥민 선수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바이러스 몰고 온 동양 원숭이는 다리가 부러져 죽어라” 하는 저주를 수시로 들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팀이 연패하자 “구단주를 불태워 버리자”며 화형식 저주를 퍼부었다. 한국 농구 리그에서 뛰는 흑인 선수들도 “교통사고 나서 죽어라” 하는 악플에 시달렸다. 미국의 한 풋볼 선수는 연이은 실축에 “표백제 마시고 죽어라” 하는 저주를 받았다.
▶전여옥 전 의원이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자 ‘언제 죽느냐’는 악플이 쏟아졌다. ‘대한민국이 바로 서는 것을 보고 싶다’는 그의 글에는 ‘그거 못 볼걸. 그때까지 못 살지’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남국 의원 코인 사태를 비판한 민주당 대학생 위원장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편 가르고 남 비난하는 게 정치권 생리라지만 ‘죽어라’ 하는 저주는 그런 차원을 넘는다. 입으로 하는 살인이나 다름없다. 옛말에 “남 저주하려면 묏자리를 둘 파라”고 한다. 남에게 한 저주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