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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2023-04/ 04.01(토) 이승만 대통령과 아데나워 독일 총리 - 04.29 제주 4·3사건’에 대해 말할 ‘자유’

상림은내고향 2023. 4. 30. 19:00

바른소리 2023-04/

04.01(토) 이승만 대통령과 아데나워 독일 총리

 지난 3월 26일은 이승만 대통령 탄신 148주년을 맞는 날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박민식 보훈처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는 “공칠과삼(功七過三)이 아니라 공팔과이(功八過二)로도 부족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한 민족이 두 나라로 나뉘어, 북한은 세계 최빈국이 된 것에 반하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가 된 것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친미, 반공산주의 노선을 채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이승만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독일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를 공부하다 보면 자꾸 오버랩되는 분이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여러 면에서 비슷한 대목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고, 아데나워 총리는 1949년 새롭게 출발한 독일연방공화국의 초대 총리입니다. 두 분 모두 건국의 아버지인 셈이고, 집권 시 나이도 73세 고령으로 같았습니다. 그들은 풍부한 경험과 경륜을 가진 준비된 리더였으며 권력의지도 강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2년, 아데나워 총리는 14년이나 장기 집권하였습니다.

▲일러스트=김영석

 

두 분 모두 한 민족이 분단되어 두 국가가 만들어지는 부득이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현명하게 대처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 성립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유엔 감시 아래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 선거를 통하여 정통 정부를 구성하였습니다. 아데나워 총리도 전승 연합국의 방침에 따라 독일의 분단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으나 장차 통일을 염두에 두고 헌법을 헌법(Verfassung)이 아닌 임시적인 기본법(Grundgesetz)으로 제정하고 총선거로 정부를 구성하였습니다. 두 분 모두 북한과 동독을 전 국민의 선거로 구성된 국가가 아닌 만큼 공산권 괴뢰 정부로 보고 정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본 정책 노선도,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농지 개혁 등을 통하여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였습니다. 아데나워 총리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보장과 사회적 연대를 위한 최소한의 국가 개입과 조정을 허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채택하였습니다.

 

두 분 모두 외교에서 큰 역량을 보여 준 외교의 신(神)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을 명분으로 내세워 미국의 6·25전쟁 휴전 협상에 반대하며 이를 지렛대로 미국과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경제 원조를 획득하였습니다. 아데나워 총리도 친미 노선으로 미국의 마셜 플랜에 의한 경제 원조를 잘 활용하며 독일을 하루빨리 정상 국가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독일에 가해진 중공업 공장 시설 해체 및 선박 건조 제한 등 페널티를 중단·철폐시키고 마침내 1954년 체결된 파리조약으로 외교권·국방권까지 완전히 회복하였습니다.

 

두 분에게는 각기 친일파와 나치 정권 부역자에 대한 고민스러운 처리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시급한 국가 발전을 위하여 중한 책임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 관용하였습니다. 아데나워 총리도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입장에서 처리하였습니다.

 

두 분은 집권 말기 저지른 실수의 점에서도 비슷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기 집권과 후계자에 관련한 선거 부정으로 민심 이반을 겪으며 결국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아데나워 총리는 후임 총리로 순리에 따라 떠오른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을 외교적 역량 부족을 이유로 무리하게 견제하며 계속하여 집권하려 하였습니다. 결국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의 압박에 의하여 퇴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두 분 모두 신생 국가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으나 말기에는 과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에서 아데나워 총리는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독일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 점이 한국과 독일의 큰 차이입니다.

조선일보 김황식 전 국무총리

 

04.01 두 달 만에 50억달러 적자, 30년 對중국 무역흑자 끝나나

지난 30여 년간 줄곧 흑자를 냈던 대(對)중국 무역이 올 들어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1~2월 대중 무역 적자는 50여 억달러로, 무역 상대국중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천연가스와 원유 수입국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교역보다 적자 폭이 컸다. 중국산 제품의 수입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대중 수출이 1년 전 대비 30%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연간 무역수지가 1992년 수교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전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중국 수출 부진은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중국의 수출액은 세계 1위였다. 중국의 수출이 늘어나면 중국에 중간재와 부품 등을 수출하는 우리의 대중 수출도 같이 늘어나 서로 윈윈하는 무역 구조였지만 지난해엔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은 재작년까지 우리의 무역 흑자국 1~3위에서 빠지지 않았지만 작년엔 이 순위가 22위까지 내려갔다. 코로나 봉쇄 탓으로만 돌리긴 어려운 구조적 요인이 함께 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이제 우리와 같은 수출 품목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배터리 소재인 정밀화학, 무선통신 부품 등 중간재 분야에서 지난 2년 연속 두자릿수 수출 증가세를 보였다. 중국 전체 수출의 절반이 중간재였다. 더 이상 우리 중간재를 받아 완성품을 수출하는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의 만성 적자 품목인 자동차도 전기차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자동차 수출액도 우리를 넘어섰다. 첨단소재, 컴퓨터·통신 등 하이테크 9개 분야 중 7개에서 중국의 흑자가 확대되거나 적자가 축소됐다. 수출 자급도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경제는 소재 원료 등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중국산 수입을 줄이기 쉽지 않다. 이차전지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구체, 수산화리튬의 중국 수출 물량 가운데 57~76%가 한국으로 향한다. 반도체도 전체 수출의 40%가 중국으로 가지만,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저사양 시스템 반도체 등의 물량도 전체 수입액의 30%가량 된다. 중국이 저가·범용 제품이 아닌 고부가 가치 분야에서도 우리의 턱밑까지 올라온 것이다. 중국과의 기술 경쟁력 격차를 유지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설 자리가 급격히 좁아진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04 文 정부 4대강 적대시 정책, 5280만t 귀중한 물 그냥 흘려보냈다

▲전북 임실군 옥정호(湖) 출렁다리의 조감도(위 사진). 지난해 10월 임시 운영을 시작한 출렁다리는 지난달 정식 개통했다. 조감도에선 길이 420m인 다리 바닥은 수면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투명하게 제작됐지만, 지난달 30일 찾아간 옥정호에선 아래 사진에서 보듯 지금은 가뭄으로 물이 빠져 갈라진 흙바닥만 보인다. /임실군·신현종 기자

 

한국수자원공사 분석에서 지난 정부가 금강·영산강의 5개 보(洑)에 대해 상시 또는 부분 개방 상태를 유지하는 바람에 총 5280만t의 물 손실이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왔다. 금강·영산강의 보를 정상 운영했다면 밭에 모종 싹이 말라비틀어지고 호수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최악 피해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물관리위원회는 2021년 2월 금강·영산강의 3개 보를 해체하고 2개 보는 상시 개방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주민 반대 여론으로 해체하지는 못하고 최저 수위에 가까운 수준에서 수량을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작년에 장마철인데도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가뭄이 계속되면서 호남 일대는 극도의 물 부족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작년 여름부터 수문을 잠그면서 겨우 물 흐름을 다소 회복해 영산강에서 광주광역시에 소량의 수돗물 원수를 공급하고, 금강은 도수로를 통해 충남 서북부로 물을 보내 가뭄 극복을 돕고 있다.

 

지난 정부는 2018년부터 겨울철이면 수문을 다 열었다. 작년 2월엔 환경 단체 모니터링에서 멸종 위기종이 발견됐다면서 예정보다 수문을 1주일간 더 개방하는 일도 벌어졌다. 농민들이 마늘·양파 농사 망치니 수문을 닫아 달라고 하소연하자 환경부는 마을마다 2000만원짜리 대형 양수기를 설치해주기도 했다. 문 정권의 4대강 적대시 아집이 빚은 일들이다.

 

‘4대강’은 장마철 외엔 물이 부족한 한국에서 물을 자원으로 보관하는 사업이다. 또 개천처럼 변한 썩은 강보다는 보를 쌓아 풍부한 수량을 갖는 강의 모습이 훨씬 좋다는 사람이 더 많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아 잦은 홍수를 겪다가 우리의 4대강 사업과 비슷한 시기에 강바닥 준설, 강폭 확대, 제방 보강 등 ‘강에 여유 주기’ 사업을 벌였다. 그 덕에 2021년 7월 서유럽 폭우 때 독일과 벨기에에서 200명 이상 사망·실종자가 나왔지만 네덜란드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4대강 보를 해체하자는 주장은 댐, 도로, 도시도 다 없애버리자는 것처럼 허무맹랑한 얘기다. 선진국 수준에 와 있다는 나라 정부가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에 휘둘렸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다.

조산일보 사설

 

04.05 “건국대통령 적힌 父 이승만 묘비, 땅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養子 이인수 부부 인터뷰

“1992년 세운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묘비
DJ정권 들어서자 당시 여권이 반대
너무 억울해 땅에라도 묻자고 했다
올해 추모식 땐 세상 나왔으면...
나폴레옹 재평가도 200년 걸려”

 

“1998년 ‘건국 대통령 내외분의 묘’라 적힌 묘석(墓石)을 아버님 옆에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땅속에 묻힌 묘비가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와 햇볕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92·오른쪽)씨와 아내 조혜자(81)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이화장(梨花莊)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건국 대통령 내외분의 묘’라 적힌 묘석(墓石)을 (정치적 이유로) 아버님 옆에 묻을 수밖에 없다”며 “그때 땅속에 묻힌 묘비가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와 햇볕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이태경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이화장(梨花莊)에서 만난 이인수(92)·조혜자(81)씨 내외는 본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1961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養子)로 입적됐고, 부부는 이 전 대통령 서거 후 약 50년 넘게 사저인 이화장을 지켰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가보훈처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등 여권을 중심으로 이 전 대통령 공(功)을 재평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인 가족들도 그간의 서운함에 입을 뗀 것이다.

 

현재 서울 국립현충원에 있는 이 전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 묘지 앞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내외분의 묘’라 적힌 비석이 서 있다. 묘비문은 서예가인 송천(松泉) 정하건 선생이 썼다. 조씨는 “1992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합장을 하면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라 새긴 묘석을 세웠는데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당시 여권이 반대해 땅에 묻어야 했다”며 “조심스럽지만 오는 7월 19일 있을 58주기 추모식 땐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적통을 1948년 8월 15일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에서 찾으려는 정치권 일각에서 ‘건국’이란 표현을 문제 삼으면서 ‘초대’로 수정했다고 한다. 이를 억울하게 여긴 이씨가 “내가 다 책임질 테니 묘석을 땅에라도 묻자”고 했다.

 

2012년 7월 19일 서울 동작구 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역에서 비문을 쓴 정하건 선생이 묘석을 바라보고 있다. 묘석에는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내외분의 묘"라고 써있다./ 조선일보 DB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수립,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농지 개혁 등 이 전 대통령의 공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도 비공개 회의에서 종종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역사적으로 너무 저평가돼 있다” “과오가 있더라도 공에 대한 평가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보훈처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위한 기초 작업에 나서 곧 부지를 선정할 예정이다. 또 지난달 26일 이화장에서 열린 이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 때는 박민식 보훈처장, 박진 외교부 장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등 장관급 인사가 셋이나 참석해 화제가 됐다.

 

부부는 “기념관 건립 소식을 듣고 정말로 기뻤다”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씨는 “이 전 대통령이 광범위한 유엔 외교를 펼쳐 1948년 12월 ‘신생국 코리아’가 국제 무대서 어엿한 나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며 “과거엔 이를 기념하는 ‘유엔 데이’도 국경일로 존재했는데, 이런 이 전 대통령의 노력을 젊은 사람들이 꼭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1961년 하와이에서 - 이승만 전 대통령 부부가 1961년 12월 13일 미국 하와이 자택 테라스에서 양아들 이인수(가운데)씨를 맞이하고 있다.

 

좌파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했지만 거짓으로 판명 난 ‘백년 전쟁’ 등 그간 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이 전 대통령의 과거사에 대한 왜곡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엔 박삼득 당시 보훈처장이 이 전 대통령을 ‘이승만 박사’라 칭해 폄훼 논란이 일었다. 조씨는 “어머님(프란체스카 여사)께서 생전에 ‘나폴레옹도 다시 평가하는데 200년이 걸렸는데 우리 국민은 훨씬 더 똑똑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공로를 알아줄 것’이라 말해 왔다”고 했다.

 

부부는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과 이달 말 예정된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訪美)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씨는 “지금 동양에서 한국과 미국만큼 소중한 동맹이 없다”며 “혈맹이 앞으로도 세계 평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회담에서 좋은 결과를 내서 동맹의 다음 100년을 도모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으로 최근 몇년간 갈등을 빚은 일본에 대해서는 “일본이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면 다시 우리와 가까워질 수 있다”며 “떨어질 수 없는 이웃 국가니 상부상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기에 앞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 대통령과 서한을 주고받았다. “세계 침략자들을 억지하는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라면서 때로는 미 대통령을 압박하며 조약 체결을 이끌어내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동맹의 법적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씨는 “전쟁의 참화에 직면한 약소국 대통령이 끈질긴 협상을 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04.07 선거 땐 이승만 참배, 선거 없으니 기념관에도 “독재 부활”

▲4·19 혁명의 주역 50여명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이날은 이 전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이었다. /박상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의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에 대해 ‘독재 정치의 부활’ ‘헌법 정신 훼손’이라며 “중단하라”고 했다.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국민에게 총탄을 발사했던 독재자를 미화하다니 윤 대통령은 3·15 의거와 4·19 혁명 민주 열사 영령 앞에 부끄럽지도 않으냐”고도 했다. 민주당 말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말년에 독재로 비판을 받았다. 당시 경찰이 시민과 학생들의 독재 반대 시위에 총격을 가하는 큰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6·25 남침에서 나라를 지키고 한미동맹을 맺어 국가 번영의 기틀을 다진 사람이다. 이 업적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업적 중 어느 하나라도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도 없다. 이런 지도자의 기념관 하나가 없다는 것은 국가로서 정상이 아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이율배반은 헤아릴 수도 없지만 이승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쓰레기”라며 참배를 거부했지만 대통령 후보가 되자 이승만 묘소를 참배한 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5년 야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묘소를 참배하고 방명록에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라고 썼다. 그러더니 대통령이 되자 철저히 이승만을 지우고 배척했다. 지금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것은 내년 총선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승만 하야”를 외쳤던 4·19 혁명의 주역들이 얼마 전 “과오뿐 아니라 공을 다시 봐야 한다”며 이승만 묘소를 참배했다. 분열해 서로 헐뜯기만 하는 사회 풍토에서 모처럼 통합의 희망을 주는 소식이었다.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이들도 독재를 미화하고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인가. 이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올해로 58년이 지났다. 초대 대통령 기념관이 아직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소련의 위성국화를 막아내고 고도성장의 경제·안보 토대를 마련한 이 전 대통령을 제대로 평가하는 작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4.08 억지로 늘린 호남 태양광, 송전망 투자 안해 못 쓴다니

▲사진은 전남 고흥군에 있는 태양광 발전 설비. 최근 호남 지역에 태양광이 급증하면서 이달부터 과잉 전력 생산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을 막기 위한 조치로 태양광 전력의 공급을 끊는 출력 제한이 시행될 전망이다. 

 

전력 당국이 이달부터 호남 지역을 대상으로 전력 생산이 수요보다 많을 경우 태양광 발전을 강제로 줄이는 ‘출력 제한’ 조치를 실행하겠다고 한다. 전력 공급량이 소비량보다 많을 경우 주파수 변화에 민감한 발전 터빈이 멈춰 서면서 광역 정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태양광·풍력 설비가 급증하는 바람에 출력 제한 조치가 작년에 132회나 내려졌다. 호남 지역에 출력 제한이 취해진다면 처음 있는 일이다.

 

전남·북과 광주 등 호남 경우 2016년 1751MW이던 태양광 설비가 현재 9371MW로 5배 이상 늘었다. 국내 태양광의 40% 이상 차지한다. 햇볕이 강하고 토지 비용이 적게 먹혀서다. 문제는 태양광은 수요에 맞춰 발전량을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봄철은 전력 수요는 많지 않은 반면, 햇빛은 좋아 태양광 발전이 증가한다. 남는 전력은 타 지역으로 보내야 하지만, 호남~수도권 송전망이 부실해 과잉 생산 전력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 송전망을 확충하려 해도 지역 주민들 반대로 여의치 않다. 전력 당국이 기대를 걸었던 전력 저장장치(ESS)도 2017~19년 잇단 화재로 최근엔 거의 신규 설치가 없는 상태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질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신재생 전력 비율을 문재인 정부 시절 목표 30.2%에서 21.6%로 크게 낮춰 조정했다. 그랬어도 워낙 목표치가 높았던 탓에 향후 8년간 5300MW씩 늘려가게 된다. 게다가 태양광·풍력은 분산형인 데다가 이용률(가동률)이 워낙 낮아 원전 등 집중형 설비보다 3배 이상 송전선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전은 작년 적자 32조원에 부채는 116조원이나 쌓여 재정이 극히 부실해진 데다가, 갈수록 송전선 건설에 대한 지역 반발이 거세지면서 송배전망의 충분한 확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규 원전과 석탄발전소가 속속 완공되고 있는 동해안의 경우도 원래 계획대로라면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4000MW 용량의 신규 송전망 두 개가 2021·22년 완공됐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송전선 건설에 손을 놓다시피 하는 바람에 작년 10월에야 착공됐다.

 

앞으로도 호남엔 태양광·풍력 설비가 대거 건설될 수밖에 없고, 동해안 쪽엔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본격화된다. 송전망이 대폭 보강되지 않으면 호남 태양광과 동해안 발전 설비는 지어놓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 한국의 전력 공급 시스템이 총체적 혼란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10 1분에 1억원씩 느는 나랏빚, 머지않아 한계 상황 올 것

 윤석열 정부가 ‘건전 재정’을 약속했지만 올해도 나랏빚은 66조원 넘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까지 3년 내리 연 100조원 안팎으로 나랏빚이 늘면서 작년 말 기준 국가 채무가 1067조원에 달한다. 국회에서 확정된 올해 예산상 국가채무는 1134조원이다. 지난 정부 때보다는 줄었어도 올해도 66조원 넘게 증가하게 된다. 하루 1827억원꼴로, 1분에 1억2700만원씩 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뉴스1

 

국가 채무는 문재인 정부 5년간 가파르게 늘었다. 코로나 대응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재정 건정성을 무시한 채 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0차례나 추경을 편성해 퍼주기 국정을 한 탓이 컸다. 추경은 본예산 수립 때 예상 못 한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예외적으로 하는 것인데, 문 정부는 한 해 평균 2회꼴로 상습 편성했다. 모자라는 세입을 메우느라 국채를 마구 찍어 내면서 국채 이자로 쓰는 비용만 향후 4년간 93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도 문제다. 경제가 좋아서 세금이 잘 걷힌다면 나라 살림도 개선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경기 침체로 인해 올 1~2월 세수는 54조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조원 넘게 줄었다. 부동산·증시 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소득세·증권거래세·부가가치세 수입이 각각 20~50% 감소했다. 이제부터 모든 세금이 예정대로 걷힌다고 해도 예산상 계획치보다 20조원 넘게 부족하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기업 실적이 부진하고 경기 침체가 심해지면 세수 결손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나라 살림에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정치권의 무책임한 폭주는 변할 줄 모른다. 남아도는 쌀을 사들이는 데 매년 1조여 원의 세금을 쏟아넣어야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거대 야당은 이를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고 저소득 청년에게 월 10만~2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정부·여당도 선심 행정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권 내에선 올 하반기에 경기 부양용 추경을 편성할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여야는 포퓰리즘 경쟁의 수위를 높일 것이다.

 

나랏빚이 계속 1분당 1억원씩 늘어난다면 머지않은 시점에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한계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 비율을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재정 준칙’을 조속히 처리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 채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선심성 돈 풀기로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정치인과 정당은 유권자들이 단호하게 선거 때 표로 심판해야만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10 ‘KBS 수신료 분리’ 찬성이 96%, 이게 국민의 냉정한 평가

 대통령실이 ‘국민 제안’ 공개 토론에 부쳤던 ‘KBS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해 참여자의 96.5%가 찬성했다. KBS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비판적 시각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결과다. 월 2500원인 KBS 수신료는 한전의 전기요금과 함께 세금처럼 의무 징수하고 있다. 하지만 ‘KBS를 보지도 않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공영방송 수신료는 폐지하거나 인하하는 추세다.

 

KBS는 방만 경영과 편파 방송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 눈높이는 높아졌는데 방송 품질은 떨어지고 내부 혁신도 없다. 문재인 정부 땐 노골적으로 정권 나팔수 노릇을 했다. 조국 전 장관 지지 시위는 헬기를 띄워가며 응원했고, 정권 편드는 미디어 프로그램을 수시로 내보냈다. 좌파 패널은 수십 차례 출연시키면서 우파 패널은 배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장기에만 경례를 했다는 황당한 오보도 냈다.

 

억대 연봉자는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보직 없이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30%(1500명)다. 인건비 비중은 36%로 다른 방송의 두 배다. 그런데도 인력 감축이나 구조조정 노력을 하지 않는다. 미등록 TV에 대해 5년 치의 수신료를 한꺼번에 부당 징수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수신료 환불도 연 4만 건에 이른다. 그래 놓고 수신료를 38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국회에 냈다. 이러니 수신료 거부 운동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수신료 납부 개선 방안을 만든다고 한다. 전기요금에 붙여 강제 징수하는 게 아니라 KBS가 따로 걷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려면 방송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노골적으로 KBS 편을 들고 있다. 수신료 인상은 쉽게 하면서 수신료 면제는 어렵게 하는 입법까지 추진 중이다. KBS 이사 구성과 사장 임명 방식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바꾼 방송법에 이어 KBS 특혜법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정상화는 뒷전인 채 오로지 ‘KBS 장악’에만 몰두하고 있다. KBS에 대한 국민의 냉혹한 평가와 거꾸로 가겠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10 이인규 “盧 돕지 않던 문재인·좌파 언론… 서거 후 喪主 코스프레”

[김윤덕이 만난 사람]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통해
‘노무현 사건’ 수사 내용 공개한
이인규 前 대검 중앙수사부장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서울 종로구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이태경기자

 

“지금이 이재명 정권이었어도 책을 출간했겠느냐”고 묻자,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미간이 살짝 패었다. “물론입니다. 팩트잖아요. 이걸로 제가 시달릴 수는 있어도 저를 십자가에 매달 순 없습니다. 출간하지 않을 거면 제가 왜 5년 동안 이 책을 썼겠습니까.”

 

이인규(65)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지난달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조갑제닷컴)는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란 부제가 암시하듯,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관련자들의 실명(實名)과 함께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2억짜리 명품 시계를 비롯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가 대부분 사실이었고, 노 대통령을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문재인 당시 변호사에게도 있다고 주장해 노무현재단과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정치 검사의 2차 가해”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란 비난을 받았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발간한 회고록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뇌물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회고록. / News1

 

지난 5일 만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좌파 언론과 민주당 정치인들은 지금까지도 ‘논두렁 시계’ ‘망신 주기’란 말로 검찰이 모욕을 줘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선동한다. 인터넷에는 온갖 억측과 허위 사실이 진실인 것처럼 떠돈다. 국민의 알 권리, 올바른 역사의 기록을 위해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가족의 금품 수수 사실을 몰랐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권양숙 여사가 노 대통령 모르게 박연차 회장에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실은 없다”고 했다. 책은 출간 2주만에 4만3000부를 찍고 종합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 “유족 위해 공소시효 끝난 뒤 출간”

-부제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가 사실상의 제목이다.

“지난 14년간 끊임없이 저와 검찰을 향해 조작 수사, 망신 주기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공격하며 자신들 정치에 이용해 온 세력에 대한 반박 질문이다. 진짜 누가 대통령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는지 따져보자는 심정으로 붙였다.”

 

-집필을 결심한 건 언제인가.

“대선을 앞둔 문재인 후보가 자서전 ‘운명’을 출간한 2011년이다.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노 전 대통령 장례식 직후인 2009년 6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는 ‘검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 보복에 의한 타살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가 2년 뒤 자신의 책 ‘운명’에서는 ‘(검찰엔) 언론을 통한 모욕 주기와 압박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정치적 타살이나 진배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때 바로 반박할까 생각했으나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그만뒀다. 다만 그날 기사를 오려두었다가 ‘운명’과 함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번 책에 인용했다. 수사 개요를 부록으로 붙인 건 이걸로 (그간의 논쟁을) 끝내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 1년 시점에 책이 나와 말들이 많다.

“책 말미에 노 대통령 수사 개요를 부록으로 첨부했다. 이것이 공개됐을 때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면 우파 진영에서 대통령의 유족을 기소하라는 요구가 강하게 나왔을 것이다. 이 경우 유족은 물론 검찰도 입장이 난처해질 거라 판단했다. 유족을 사법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공소시효(2023년 2월21일)가 끝난 뒤 책을 냈다. 윤석열 정부와는 아무 관련 없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치 검사가 검찰 정권에 바친 글”이라고 비난했다.

“책에는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검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적었다. 내가 정치 검사였다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유리한 내용만 썼을 것이다. ‘검찰 정권’ ‘검찰 공화국’ 하는데 문재인 정권 때는 적폐 청산한다고 임기 내내 얼마나 많은 수사를 했나. 그때 수사는 로맨스이고 지금 하는 수사는 불륜인가. 검찰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검찰 공화국인가.”

 

-사자명예훼손 등 법적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여야 하는데 내 책에 허위 사실은 들어 있지 않다. 공무상비밀누설죄는 기밀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 누설에 의해 위협받는 국가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공소권 없음’ 처리된 사건의 수사 내용을 공무상 비밀로 인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의 수사 내용에 대해서 국가가 비밀로 유지해야 할 아무런 이익이 없다. 또한 대한민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우월한 가치는 없다. 모든 비난과 책임은 감수할 것이다.”

 

-유시민 전 이사장은 ‘윤석열·한동훈 검찰에 사건을 줘야 하므로 고소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은 검찰만 있는 게 아니고 경찰, 공수처도 있다. 그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책 내용은 수사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고소를 할 경우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수사 기록 공개가 불가피해지니 고소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된다.”

 

-법조계에서조차 ‘피의자의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수사 지휘자가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출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판을 수용한다. 그러나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권양숙 여사, 형 노건평씨, 아들 노건호씨, 딸 노정연씨, 조카사위 연철호씨, 그리고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유족 측에서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논두렁 시계는 검찰에 씌운 올가미”

-노 전 대통령 측은 ‘박연차 회장의 진술 말고는 (검찰이) 아무런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박연차의 진술을 배제하고 사건을 설명해 보겠다. 명품 시계 수수에 관해 형 노건평씨는 ‘2006년 9월 27일 박 회장으로부터 노 대통령 회갑 선물로 2억원 상당의 피아제 남녀 명품 시계 1세트를 받아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가족 모임에서 노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했으며, 박 회장에게 노 대통령 내외의 감사 인사를 전해 주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자신의 진술과 다른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을 전해 듣고도 기존 진술을 재차 확인해 주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권양숙 여사가 시계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회갑일 청와대에서 받은 것이 아니고, 노건평씨의 처가 1년 5개월간 보관하고 있다가 퇴임 후 봉하마을 사저에서 전달했으며, 권 여사는 이러한 사실을 1년 이상 숨겼다가, KBS 보도 후 권 여사가 밖에 내다 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다. 시계 수수 후에도 봉하마을 사저 부지 매매, 미국 주택 구입 자금 140만달러 수수, 아들 사업 자금 500만달러 수수는 물론 퇴임 후에도 노 대통령이 직접 15억원을 빌리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권 여사가 그런 박 회장의 선물을 대통령에게 숨길 이유가 없다.”

 

-권 여사가 박 회장에게 100만달러를 받아 미국 뉴저지에 주택을 구입한 사실은 노 전 대통령이 모를 수 있지 않나.

“아내, 딸, 아들, 친구 정상문 비서관, 김만복 국정원장, 박연차 회장 등 주위 사람은 미국 주택 구입을 알거나 인식하고 있는데 노 대통령만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서 100만달러는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있어 빌린 것이며, 미국에 집을 사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박 회장 최측근인 모 사장은 노 대통령이 IOC 총회 참석차 과테말라로 출국하기 3, 4일 전인 2007년 6월 100만달러를 보내달라는 정 비서관 요청에 따라 직원 130여 명을 급히 동원해 100만달러를 환전한 뒤 출국 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는 정상문도 검찰에서 진술한 바다.”

 

-노건호, 연철호 등이 박 회장으로부터 사업자금 500만달러를 받아 쓴 것도 두 사람이 박 회장에게 사업을 설명하고 받은 투자 자금으로 노 대통령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투자 대상, 이익 배분, 투자 회수 방법 등도 정하지 않았고 투자 계약서도 없다. 박 회장 지분은 하나도 없음이 확인됐다. 500만달러 중 일부를 사용해 노 전 대통령이 개발한 인력 관리 프로그램 ‘노하우 2000′을 업그레이드해 봉하마을에서 시연까지 했다. 500만달러를 송금한 태광실업 최모 전무는 ‘어차피 주기로 한 돈인데 따지지 말고 송금해 주라’는 박 회장 지시를 받고 ‘대통령과 무슨 이야기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으며 대가 없이 준 것이라고 명백히 진술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박 회장이 500만달러라는 큰돈을 사업 경험도 없는 노건호, 연철호에게 주었을까. 대부분의 혐의에 관여돼 있는 정상문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검찰에서 ‘(금품 수수를 포함한 모든 혐의에 대해) 이렇게 부인해서 될 일이 아니다. 변호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대(對)국민 사과를 하는 방안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 “권양숙 여사에 굴레 씌우는 건 가혹”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가장 억울한 이는 권양숙 여사인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권 여사가 정상문 비서관에게 부탁해 빌렸다고 주장하는 3억원 외에 노 대통령 모르게 박 회장에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수수한 사실은 없다. 권 여사에게 남편을 죽게 만든 사람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은 가혹하다. 노 전 대통령도 바라지 않으실 거다.”

 

-문제의 ‘논두렁 시계’ 논란을 촉발한 SBS 보도에 격분했다. 배후에 이명박 정부와 국정원이 있다고 주장했다가 고소도 당했다.

“‘논두렁 시계’는 좌파 정치인들이 검찰에 씌운 프레임이자 올가미다. 문재인, 전해철 변호사는 노 대통령 조사 당시 입회해 시계 관련 발언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 내외가 명품 시계 받은 사실은 감추고 ‘밖에 내다 버렸다’고 한 노 대통령의 검찰 진술이 ‘논두렁에 내다 버렸다’고 잘못 보도된 것을 빌미 삼아, ‘논두렁에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마치 시계 및 금품을 받지 않은 것처럼 교묘하게 논리를 만들었다. 더구나 이는 청와대와 국정원이 명품 시계 수수와 관련한 KBS와 SBS 보도에 개입한 바람에 생긴 것이라 더욱 화가 났다. ‘논두렁 시계’를 보도한 SBS는 취재원 보호라는 명분으로 거짓 내용을 흘린 사람을 끝내 밝히지 않았고, 내가 SBS ‘논두렁 시계’ 보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고 발표하자 나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검찰은 그 사건을 4년이나 방치하다가 나에 대한 소환 조사도 없이 2022년 10월 무혐의 처분했다.”

 

-노무현의 죽음엔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고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기 직전 7일 동안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극단적 선택 다음 날인 5월 24일 권 여사에 대한 조사가 예정돼 있음에도 ‘현안이 없었다’면서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서 한 장 제출한 적이 없으며, 검찰과 접촉해 수사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솔직한 입장을 묻고 증거와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대통령이 죽음으로까지 내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진보 진영과 진보 언론도 노무현을 가혹하게 비난하면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썼다.

“비판을 넘어 인격 모독,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한 것은 사람보다 진영 논리를 우선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랬던 그들이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검찰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노무현 정신을 외치며 상주 코스프레를 했다. 그 모습에 제일 당황한 이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유언한 노 전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그는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이 자신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을 것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2017년, 왜 미국으로 떠났나. 문 정권이 두려웠나.

“일하던 로펌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7년간 변호사로 일했는데 즐겁지 않았다. 로펌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원망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은 두렵지 않았다.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며 출국을 결심했다. 홈앤쇼핑 강남훈 대표는 고교 동창으로 둘도 없는 친구다. 경찰과 검찰은 홈앤쇼핑을 수사해 나와 관련된 비리를 찾으려고 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제가 출국한 뒤에도 강 대표를 취업비리로 기소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구속됐으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하지만 강 대표는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는 민간인 사찰의 DNA가 없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는데 그러한 위선이 가증스럽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에서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좌표’를 찍은 뒤 당신은 물론 가족이 악플에 시달렸다. 미국 유학 중이던 딸의 페이스북에 ‘살인자의 딸’, ‘노무현을 죽인 대가로 공부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같은 댓글도 달렸다.

“추적해 보니 댓글을 단 사람은 미국 버지니아 애난데일에서 에어로빅 강사를 하는 미씨 USA 소속 우리나라 교포였다.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또한 무지해서 그런 일을 벌인다고 생각하고 참아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딸은 예상치 못한 신상털이와 황당한 인신공격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고, 아내는 자식들이 고통 받는 걸 보고 가슴 아파했다. 잘 이겨내 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 “권력 하명받아 수사한 적 없다”

-이인규는 정치 검사인가.

“정치 검사의 뜻이 뭔가. 정권의 하명을 받아서? 자기의 출세를 위해 수사? 맹세코 나는 권력의 하명을 받아서 수사한 적이 없다. 출세는 하고 싶었을 거다. 총장도 되고, 장관도 되고 싶고. 그렇다고 누구의 구미에 맞춰 수사를 하는 건 검사가 아니다.”

 

-책 출간 후 한 언론은 2003년 불법대선자금 수사시 이인규가 삼성·LG·롯데 등에게 ‘부당내부거래’를 수사하겠다고 겁을 주어 대선자금 진술을 받은 것을 ‘협박 수사’라고 비판했다.

“불법대선자금 수사의 핵심 과제는 삼성·LG 등 거대 재벌로부터 여야 정치권에 대한 대선자금 제공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 내에 그들의 입을 열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기업 공시 내용에서 ‘부당내부거래’로 의심되는 내용을 지렛대로 사용한 것이다. 불법적인 내용이 있었다면 그쪽 변호사들이 가만히 있었겠나. 제 책에는 1991년 해당 신문사 기자가 삼성반도체통신 뇌물 공여사건 수사와 관련해 저에게 삼성그룹을 대신해 돈 봉투를 전달하려 했다고 기술한 내용이 나온다. ‘협박수사가 자랑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나를 과하게 비판한 것은 이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를 검찰 정권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권 당시 적폐 수사라는 이름으로 전 정권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수사를 했다. 그때의 문 정권도 검찰 정권이었나. 검찰이 수사를 많이 하는 건 부패한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재벌 등 ‘거악’이 많아서다. 그들이 죄를 짓지 않으면 검찰이 수사할 일이 없다.”

 

-그러나 검찰 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현재 검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영화 조짐이다. 현 정권 검사들이 지난 정권 검찰이 한 수사를 자기들이 한 것이 아니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준사법기관인 검찰 조직이 진영화되고 있다는 증좌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검찰 인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문 정권은 소위 ‘빅4′라는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반부패수사부장,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경력과 능력에 상관없이 코드 인사로 채웠다. 그들은 분에 넘치는 자리를 준 문 정권에 보은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는 다 아는 대로다.”

 

-정치에 뜻이 있어 책을 출간했나.

“저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이지 정치에 맞는 사람이 아니다. 요즘 정치를 보면 마치 프랑스혁명 전 앙시앵레짐을 보는 것 같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진영 논리만 넘쳐난다. 원칙과 품격은 사라지고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젊고 합리적인 분들이 정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530쪽 분량의 회고록에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수사 때 막내 검사로 활약한 한동훈 현 법무장관에 관한 일화도 나온다.

“저는 저보다 뛰어난 후배 검사를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동훈 장관도 그런 검사였다. 머리가 정말 좋고.”

 

-국회의원들에게 또박또박 말대답을 해서 지적을 많이 받던데.

“옛날에도 그랬다(웃음). 상사에게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스타일이) 갑자기 바뀌겠나. 시대가 바뀌었다. 팩트로 반박하고 논쟁이 이뤄져야 정치도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불법대북송금 사건을 비롯해 김대업 병풍(兵風) 수사와 관련된 검찰 비리,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에서 시작된 제16대 불법대선자금수사의 전말 등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수사 관련 정치인들과 검찰, 국정원 관계자들의 이름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實名)으로 등장한다.

“책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분들은 공인(public figure)들이다. 공인들은 역사와 국민 앞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명을 썼다. 그 분들로 하여금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이다.”

 

-노무현 수사로 천직으로 여겨온 검사직에서 물러났다. 억울한가.

“다 잊었다. 책을 탈고한 뒤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겠는가.

“2009년 1월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바로잡고 싶다.”

조선일보 김윤덕 선임기자

 

04-10 가짜뉴스 前科, 법적 결함…최민희 방통위원 임명 안 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에 관한 규제와 이용자 보호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소속’ 기관이다. 그러나 위원회가 대통령 지명(2명)과 국회 추천(여당 1명, 야당 2명)에 의해 구성되게 됨으로써 정파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 몫 상임위원으로 추천된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을 둘러싼 문제는 주로 정치적 편향성과 관련됐던 기존의 논란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최 전 의원은 지난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경기 남양주병)했을 당시 TV 토론에서 “경기도지사에게 경기북부 테크노밸리 유치를 약속받았다”고 한 것이 허위사실로 확인돼 벌금 150만 원형이 확정,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그런데 2021년 연말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가짜뉴스 단속이 주요 업무의 하나인 방통위원에 관련 범죄로 전과(前科)가 있는 인물을 임명해선 안 된다. 그 뒤에도 윤미향 의원 비위에 대해 “보수 우파와 친일 세력의 거짓 프레임”이라고 주장하는 등 ‘가짜뉴스’를 반복·유포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다음으로, ‘방송·통신 관련 사업에 종사하거나 위원 임명 전 3년 이내에 종사하였던 사람’은 위원이 될 수 없다는 위원회법 제10조 위반 소지도 크다. 최 전 의원은 2019년 7월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상근 부회장으로 선임됐으며, 퇴임 이후 아직 3년이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연합회는 정보·통신 회사들의 단체인데, 관련 사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상근 부회장 연봉은 1억7000여만 원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봐야 한다. 또, 한 달 평균 20여 차례 방송 등에서 정치 평론을 함으로써 결격 사유가 더 커졌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으로 추천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실은 이런 사정들을 고려해 최 전 의원을 방통위원으로 임명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타당한 판단이다. 유사한 전례도 있다. 2018년 당시 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2명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에 대해 비슷한 규정을 들어 285일 동안 임명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횟집 ‘일광(日光)’이 친일식당이라는 등 가짜뉴스가 판치는 만큼, 민주당 스스로 최 전 의원 추천을 철회하는 게 옳다.

문화일보 사설

 
 

04-11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사실상 조작한 文정부 죄책

문재인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감축하겠다는 목표(NDC)가 사실상 조작 수준으로 부풀려진 사실이 드러났다. 문 전 대통령이 국내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임기 종료 6개월을 앞두고 전임 정부 대비 13.7% 포인트나 끌어올린 무리한 목표치를 보고해 국제사회에 생색은 냈지만, 이를 뒷감당해야 할 산업계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0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회의에서 “(문 정권에서) 원료 수급 및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과 분석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의 ‘후퇴 금지’ 조항에 따라 전체 목표를 수정하면 국가 신뢰에 큰 타격을 입는다. 윤석열 정부는 산업계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3.1%포인트 줄이는 ‘제1차 탄소중립·녹생성장 기본 계획안’으로 응급조치만 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들이 비현실적인 감축량 수치를 제시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석유화학 분야가 가장 심각하다. 나프타를 ‘바이오 나프타’로 대체, 1180만t의 탄소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실제 가능한 감축량은 23분의 1인 50만t에 불과했다. 석유·화학 분야는 2018년 4690만t에서 2030년 3740만t으로 줄인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5480만t으로 증가한다. 최근 기공식을 한 S-OIL의 ‘샤힌 프로젝트’에서만 330만t의 온실가스가 추가된다. 건설·레미콘 업계도 탄소중립 정책에 맞추다 보니 출하량이 급감, 공사와 입주가 중단되는 대란 사태를 맞고 있다.

2030년까지 활용이 어려운 기술을 적용했다는 문제 등은 이미 제기됐다. 감사와 수사를 통해 구체적 경위와 고의성 여부를 규명해야 한다. 문 정부는 이미 원전 경제성을 조작한 것이 확인됐고, 소득·부동산·고용 등 3대 통계 조작 의혹도 받는다. 통계와 데이터 조작은 국기 문란 범죄다. 이런 책임을 엄히 물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4.12 ‘정파적 스피커’ 최민희 방통위원 임명은 부적절

사실 왜곡하며 반대 세력 헐뜯는 활동 일관

방송·통신의 독립·공정 위해 천거 철회해야

‘준비 안 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때문에 우크라이나 국민이 희생되고 있다.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준비된 대통령, DJ 계승자 이재명 대통령!’ 최민희 전 의원(19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이 지난해 2월 SNS에 쓴 글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피해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탓으로 돌린다.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준비 안 된 지도자’로 몰면서 이재명 후보를 치켜세우기 위해 쓴 글이었다.

 

최 전 의원은 이처럼 왜곡된 ‘팩트’를 들이대며 자기가 지지하는 쪽은 두둔하고 상대편은 헐뜯는 비지성적 태도를 숱하게 보여왔다. 윤 대통령이 여성 식당 주인과 어깨동무를 한 사진이 공개됐을 때 그는 “성희롱으로 보일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에 대한 확인은 없었다. 식당 주인은 “내가 어깨동무를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 뒤 최 전 의원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포옹한 모습의 사진이 공개돼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는 비난을 샀다. 윤 대통령이 선거운동 때 거제시의 한 시민으로부터 대구(어류)를 받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무속’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건넨 시민은 무속과 상관없는 순수한 선물이라며 최 전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최 전 의원은 “이재명은 성공한 전태일”이라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대장동 비리 등 각종 범죄 혐의를 받는 데다 가족에게 상습적으로 욕설을 한 이재명 대표를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에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윤미향 의원 횡령 의혹이 불거졌을 때 그는 “보수 우파와 친일 세력의 거짓 프레임”이라고 우겼다. 횡령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위안부 피해자였다. 최 전 의원의 행보에선 ‘사실 존중’ 자세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이런 최 전 의원을 더불어민주당이 차관급인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천거했다. 방송과 통신의 독립성·객관성·공정성을 지켜내야 하는 자리에 정파성·편향성이 짙고 독선적인 사람을 앉히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더군다나 2018년에 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판결을 받아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2021년 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사면·복권을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참정권이 제한됐을 사람이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부 시절에 MBC 사장이었던 최승호씨가 “그냥 정파적 정치인이었다. 방송에 나와 주로 민주당 스피커 역할을 해 온 분”이라고 최 전 의원을 평가하며 “최 전 의원은 독립적 역할을 해야 할 방통위원 직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겠는가. 민주당의 추천 철회나 본인 고사가 바람직하다. 그러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이 재량권을 활용해 임명을 유보해야 옳다.

중앙일보 사설

 

04.13 보면 볼수록 황당하고 기막힌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인다는 ‘2030 온실가스 국가감축목표(NDC)’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됐다. 로드맵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10월 정했던 내용을 탈원전 폐기 등 정책 변화를 반영해 수정한 것이다.

 

이번 2030 감축 로드맵 확정 과정에서 특히 산업 부문 감축 목표 조정을 놓고 진통이 컸다고 한다. 문 정부 로드맵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실현 불가능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석유화학 원료 물질인 석유 기반 나프타를 콩·야자 등 바이오 나프타로 대체해 온실가스 1180만t을 줄인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바이오 나프타 대체는 기껏해야 50만t 감축 성과를 내는 것이 최선일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바이오 나프타 생산에 필요한 어마어마한 양의 피마자콩과 야자를 해외로부터 조달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실 콩·야자 확보는 문 정부 때부터 실무자들이 우려했던 내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2021년 7월부터 두 차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지만 위에서 ‘숫자’가 내려와 억지로 끼워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정부 발표 자료에 ‘원료 수급이 가능하다면’이란 전제를 달아 봉합했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것부터 터무니없는 목표였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대한 신의’를 거론하며 40% 감축을 언급해 그것이 국가 목표가 됐다는 정황과 증언들이 있다. 문 대통령은 온실가스 감축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전임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유엔에 제출한 감축 목표를 2018년 1차 손보면서 박 정부 정책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효과적인 원자력 에너지는 적대시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돌연 2020년 10월 ‘2050 탄소 중립’을 들고나왔고, 2021년 10월엔 ‘2030년까지 40% 감축’이라는 국가 자해와 같은 선언을 했다.

 

온실가스 감축은 각국이 힘을 합쳐야 할 목표다. 하지만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은 국가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최선의 노력을 할 경우 어느 정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지 면밀히 따진 후 실현 가능한 국가 전체의 목표치를 정할 것이다. 그러나 문 정부에선 대통령 한 사람이 근거 없이 40%란 숫자를 정했고, 부처 공무원들은 달성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대통령이 정한 숫자에 맞추기 위한 분야별 목표치를 책상 위에서 만들어냈다. 사실상 조작이다.

 

이 목표치는 더 강화시킬 수는 있어도 완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파리협약 조항이다. 문 정부에서 정한 40% 감축 목표치가 두고두고 나라에 큰 질곡이 되게 됐다. 대통령 한 명이 국제 사회에 멋지게 보인 대가로는 너무 가혹하고 엄중하다. 이 황당하고 무책임한 결정의 책임자들을 모두 밝혀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13 광주 청년이 바라본 신군부 시대… 정말 모든 게 ‘암흑기’였나

 박은식 의사·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캠퍼스의 낭만을 버리고 스펙 전쟁에 뛰어들어도 취직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대기업들이 서로 학생들을 스카우트하려 캠퍼스에 입사 원서를 뿌려댔다던 이야기는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거 다 운 좋게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 맞아서 그런 거야’라는 말도 들었지만, 막상 일해보니 스스로 준비돼 있지 않으면 운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으며 무엇보다 내 고향 광주 시민들에게 큰 아픔을 준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해선 당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정치에만 초점을 맞추고 신군부 시대를 ‘암흑기’로만 평가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신군부 시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공부해봤다.

 

먼저 구조 개혁에 성공한 점이 눈에 띄었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1980년은 2차 오일 쇼크로 물가가 치솟았고 재정 적자와 외채 증가에 중화학공업 과잉 중복 투자 문제까지 겹쳐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위기 상황이었다. 경제수석비서관 김재익은 먼저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근로자 임금과 추곡 수매가는 묶고 예산까지 동결한 다음 수입 자유화를 추진해 보호받던 국내 기업의 경쟁을 유도하고 독과점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제정했다.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인기 없는 구조 개혁에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전두환은 ‘경제 대통령은 당신이야’라며 김재익을 전폭 지원했다. 결국 물가가 잡히고 만성적 무역 적자도 흑자 구조로 바뀌고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 이상을 기록했으며 중산층도 두꺼워졌다.

미래 과학기술에 투자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과학기술비서관 오명에게 ‘전자 산업 육성 대책반’을 맡겨 통신·전자·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인프라 구축을 시도했다. 하지만 자금과 기술력 부족으로 주변 반대가 심했다. 전두환은 일본에 ‘한국이 공산 세력으로부터 일본을 지켜주고 있으니 안보 경협 자금 100억달러를 내라’고 요구했다. 결국 40억달러를 받아내고 반도체 생산 장비의 수입 허가도 이끌어냈다. 이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반도체 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다. 또 기업이 반도체 장비를 수입할 때 관세를 면제해 주고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도록 토지 매입을 허가해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투자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기술이 됐다.

우민화 정책이라 평가 받던 ‘3s(screen·sports·sex) 정책’도 다시 보게 됐다. 성 묘사에 대한 검열을 완화하고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활성화하는 정책 추진은 소득 성장에 따른 국민의 사회 문화적 자유화 요구를 수용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해당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제성장에 대한 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일까?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지만 국민의 선택은 노태우였다. 노태우 정권은 북방 외교, 평시 작전권 회수,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을 추진해 성공시켰다. 그리고 국민 의료보험 및 국민연금 제도를 확대했다. 이 시기 호남 지역에 광양제철과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됐고 새만금 개발 사업도 추진됐다.

 

그 시대엔 목숨 걸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분들도 있었지만 이념을 떠나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던 엘리트 관료들과 그들의 제안을 외압 안 받게 보호해주며 추진케 한 리더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한 국민들이 있었다. 이 시기는 암흑기가 아닌 모두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완성한 시대인 것이다.

 

아픔과 차별을 겪어야 했던 고향 광주 어르신들의 마음을 알기에 이런 글을 쓰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또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갚을 수 없는 원한을 대물림할 순 없다. 지금 광주 시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도 과거를 딛고 일어나 성숙한 민주주의를 갖춘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5·18 피해 유족들에게 사죄하러 온 전두환·노태우의 후손들이 환대받은 것도 그런 의미 아닐까. 공과 과를 담담히 바라보고 교훈을 얻어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노동·연금 분야의 구조 개혁과 미래 과학기술 투자를 통해 다시 성장 발판을 마련하길 기대해본다.

조선일보

 

04.14 대한민국 정통 세력의 한국사 교과서는 왜 아직 없나

북한 주민 41% 영양실조
현실이 이런데도
한국 교과서는 반대로 기술
“북 경제 성장, 민생은 개선…”
우파가 더 좋은 교과서 써서
사상의 시장에서 압도해야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다수가 북한 김정은을 미화하거나 북한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조선일보 DB

 

 지난 3월 21일 이코노미스트지는 북한이 다시 굶주림의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2019~2021년 당시 41%의 북한 주민이 영양실조 상태임을 확인했다. 최근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인권보고서는 참담한 북한의 실상을 보여준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은 대체 무슨 근거로 김정은 정권에서 북한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고 민생이 개선됐다고 기술했는가? 왜 그들의 눈에만 북한의 참혹한 현실이 보이지 않는가?

 

역사학자들이 역사학의 기본 윤리를 저버린 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역사의 현실을 구성하는 까닭이다. 판사가 정치에 휘둘리면 증거를 무시하고 법리를 배반한다. 역사가가 정치 편향에 빠지면 사실을 외면하고 진실을 거부한다. 역사가의 역사 왜곡은 지극히 교묘하여 쉽게 들춰낼 수도 없다. 그런 역사가가 어디 있나 묻겠지만, 이미 사가(史家)의 상사(常事)일 수도 있다.

 

일례로 2008년 2월 21일 뉴욕타임스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전남 영암군 구림에서 좌·우익 교차 학살로 3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사건에 관해 보도하면서 그 마을 최초의 학살을 이렇게 묘사했다.

 

“1950년 10월 7일 미국이 이끄는 유엔군이 북진할 때, 공산 게릴라와 좌익 촌민들은 구림에서 경찰과 친하다고 여겨진 기독교인 6명을 포함한 28명을 여관에 가두고 불 질러 죽였다.”

 

이듬해 <<한국전쟁>>(2009년)이란 책에서 미국의 한 저명한 역사가는 바로 그 대목을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경찰과 우익분자들 몇 명을 죽였다(Some villagers killed some policemen and right-wingers)”고 축약했다. 역사가가 “경찰과 친하다고 여겨진 기독교인 6명을 포함한 28명”을 “경찰과 우익분자들 몇 명”으로 뒤바꾸고, “공산 게릴라와 좌파 촌민들(Communist guerrillas and leftist villagers)”을 “몇 명의 마을 사람들”로 고쳐 썼다면, 원문을 악의적으로 곡해했단 혐의를 벗을 수 없다. 현장 답사도, 문서 검증도 없이 달랑 신문 기사 하나를 옮겨 쓰면서 이처럼 황당한 오독과 왜곡을 범한 이 역사가는 누구인가?

 

▲2019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역사학 교수./연합뉴스

 

바로 1980년대 한국전쟁에 관한 수정주의 이론을 제창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다. 1980년대 한국의 지식계에서 그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우상처럼 군림했다. “반미·구국 투쟁”을 외치던 운동권은 전쟁의 책임을 온전히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전가한 그를 존경하고 추종했다. 덕분에 1990년대 구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수정주의가 무너진 후에도 그는 2007년 제1회 김대중 학술상을 받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

 

한국 좌파의 우상 커밍스는 미국의 한 역사가가 혹평했듯 고작 “미국의 결점에 관한 설교를 원하는 독자들만의 필독서”를 썼을 뿐이다. 그는 유엔 16국이 참전한 한국전쟁이 아무것도 해결 못한 무의미한 전쟁이었다고 선언한다. 미국의 군사 개입 덕택에 공산화를 피한 대한민국이 최첨단의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음을 그는 절대로 인정할 수가 없다.

 

바로 그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옹호해온 한국의 좌파 세력은 커밍스의 충실한 제자들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도 그 부류에 속하나? 그렇지 않고선 남북관계 등 최근의 민감한 이슈에 관해 특정 정파에 치우친 일방적인 서술을 할 수는 없다. 하물며 북한의 참혹한 현실엔 눈을 감고서 김정은 정권의 성과만을 미화했음에랴.

 

문제는 교육부가 개입해서 논란되는 구절을 삭제해도 미봉책이라는 점이다. 집필진의 정치 편향은 이미 한 문장, 한 문장에 배어 있다. 편향된 한국사 교과서는 한국 역사학계의 편향성을 반영할 뿐이다. 그 숱한 논란에도 교과서가 개선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세계적인 성공의 사례지만,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는 그 역사를 폄훼하고 부정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현대사엔 분명 역사의 신이 살아 숨 쉬지만, 교과서에서 그 신은 이미 매장당했다. 그 신을 과연 누가 죽였는가? 좌파를 탓하기 전에 우파 세력의 지적 태만을 비판해야 한다. 해결 방법은 단 하나, 대한민국 정통 세력이 더 좋은 교과서를 써서 사상의 시장에서 당당히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 그 길만이 자유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정도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04.15 세계 생산량 300배 필요하다니, 한 명 허세에 국가 경제 발목 잡혔다

문재인 정부가 세계에 약속한 ‘2030 온실가스 40% 감축’을 실현하려면 남한 면적의 최소 4배, 최대 87배 면적에서 캐슈넛(피마자콩) 또는 야자를 재배해 확보한 만큼의 식물성 오일이 필요하다는 산업부 분석이 나왔다.

실로 충격적이다. 문 정부는 당시 석유 기반의 나프타를 식물성 오일로 만든 바이오 나프타로 대체해 온실가스 1180만t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만한 바이오 나프타를 만들려면 캐슈넛이 적게는 3억2800만t, 많게는 13억1200만t이 있어야 한다. 그 정도 양을 위해선 남한의 22~87배의 경작 면적이 필요하다. 야자 팜유를 쓰는 방법은 남한 면적의 4~17배 경작 면적이 있어야 한다.

 

황당한 이야기다. 코트디부아르·인도 등이 주 산지인 캐슈넛의 세계 생산량은 2020년 기준 418만t밖에 안 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서 세계 생산량의 78~313배를 갖고 있어야 가능한 바이오 나프타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팜오일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팜오일 생산국 인도네시아의 연간 생산량의 3~11배 팜오일을 확보해 그걸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 말도 안되는 계획을 들고 영국 세계기후총회에 가서 허세를 부리고 자랑을 했다. 세계 지도자들과 언론의 박수를 받았다. 한 명의 허세와 체면을 위해 한국 경제는 추산하기도 어려운 타격을 받게 됐다. 이 감축 계획을 만든 당시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은 “꼭 가야 하는 길이어서 비용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나중 보니 태양광·풍력 확충에 꼭 필요한 전력 저장 장치(ESS) 제작 비용이 787조~1248조원 든다는 계산을 해놓고 숨기고 있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대한 신의로 볼 때 40% 이상은 돼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언급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적 추론과 산업 경제적 영향 검토가 아니라 ‘신의’를 기준으로 결정된 것이다. 국가 경제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머릿속에 없는 대통령 한 사람의 터무니없는 망상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17 미래세대 부담 1600조… 국민연금, 왜 못 밝히나

회피만 하는 국민연금 빚 계산… 정치권·특정 지역·투자자 눈치
연금 적립액 2055년이면 고갈… 국가 존립 위해 연금 개혁 필수

 국민연금에서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빚을 파악하는 것은 연금 개혁의 출발점이다. 그 빚 규모를 정확히 알아야 연금 적립금이 얼마나 부족한지, 개혁을 어느 강도로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국회, 국책연구소, 학계는 물론 국민연금에 물었더니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서로 떠넘기기 바빴다. 국민연금은 “법상 공개 의무가 없고, 충분한 연구·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국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회 예산정책처가 재정 적자 문제를 제기했다가 여야 정쟁이 격화되고 예정처만 중간에서 시달렸다”며 난색의 이유를 설명했다. 한 연금 전문가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금 개혁은 교수·공무원도 이해 당사자이므로 동료 눈치를 살핀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연구위원의 추계가 거의 유일하다. 그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경우 2500조원의 부채가 있고 현 920조원 적립금을 적용할 때 약 1600조원이 미래 세대 부담으로 떠넘겨진 상황이다.

 

개혁 착수에 미적대는 사이 위기의 실체는 ‘회색 코뿔소’처럼 눈앞까지 닥쳤다. 최근 추계에서 국민연금은 2041년이면 적립금이 줄기 시작해 2055년이면 바닥나는 것으로 나왔다. 2013년 추계 때보다 고갈 시점이 10년 만에 5년 당겨졌다.

 

해결책은 더 내고 덜 받는 구조 개혁과 운용 수익률 향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난달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는 ‘얼마를 받을지(소득대체율)와 낼지(보험료율)’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맹탕 보고서를 내놨다. 위원들 사이에서 복지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같은 ‘결정 장애’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작년 역대 최악(-8.2%)을 기록한 국민연금 수익률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평가 손실은 80조원으로 작년 말 기준 적립금은 900조원 밑으로 내려갔다. 캐나다국민연금(CPP)의 경우 지난 10년간 연평균 10% 수익을 냈고, 전체 연금 자산(520조원)의 절반이 넘는 투자 수익(299조원)을 거둔 것과 대조적이다.

 

연금 전문가들은 철저히 수익률을 따지는 캐나다 등 해외 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1300만 개인 투자자 눈치를 살펴야 하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 30년간 미국 다우평균이 22배 오르는 동안 코스피는 5배 오르는 데 그쳤는데도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세계 증시 시가총액에서 한국 증시 비율은 2%에 불과하나, 국민연금은 총투자의 15%를 국내 주식으로 채워넣고 있다. 한 연금 관계자는 “세계 증시 내 한국 비율만큼 투자하는 것이 맞지만, 해외 비율을 늘리면 ‘국내 매도를 부추긴다’며 투자자 반발이 거세다”고 말했다.

 

고급 운용 인력 유치는 지역 여론의 벽에 막혔다. 한 공적연금 투자 책임자는 “자산 운용은 정보 귀동냥이 업무의 90% 이상인데, 국민연금은 본사가 전주에 위치해 한계가 있다”고 했다. 면접관들이 주로 서울에서 운용역 채용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민연금의 서울 복귀 주장도 나오지만, 법을 개정해야 해 당장 어렵다.

 

수많은 시어머니의 눈치 아래 진척이 더디긴 하지만, 연금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국가 과제다. 현 세대의 빚을 미래에 떠넘기는 무책임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현직 공적연금 최고위 관계자가 한 말은 절박했다. “현 한국의 연금 체제 아래에서는 자식을 낳지 말든지, 이민을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일보 최형석 기자

 

04-18 방향 옳은 근로시간 개편안, 책임감 있게 재추진해야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한 근로시간 개편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사전 여론 수렴 미흡으로 인해 ‘주 69시간 장기 노동’이란 오도된 프레임에 휘둘리고, 입법예고 기간이 끝날 때까지도 보완을 위한 방향조차 못 잡으면서 개편안의 장기 표류를 초래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입법예고 기간 종료일인 17일 기자 간담회에서 “충분한 숙의 기간을 더 갖고 보완책을 마련해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7∼8월 국회 제출보다 지연된 것으로,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를 고려하면 연내 입법화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개편안을 어떻게 보완할지 방향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자, 고용부는 앞뒤가 막힌 처지가 돼 한 발도 나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장관은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집단 심층면접을 실시해 세대·업종·직종·노사의 의견을 모두 포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노동계는 주 69시간 프레임이 성공했다며 반윤(反尹) 기세를 올린다. 윤 정부 노동개혁 1호인 개편안이 동력을 잃어 내년 4·10 총선 이후에나 재추진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노동 유연성 강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539개 중기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주 12시간 이상의 연장근로가 필요했다”고 밝힌 곳이 31%였다. 제조업체는 40%를 넘었다. 일률적인 현행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 폐해가 심각한 것이다. 개편안은 옳은 방향이다. 주 69시간은 극단적인 산출이다. 그런 계산 방식이면 현행 제도에선 주 129시간도 가능하다. 개편안은 연간 기준으론 평균 주 48.5시간으로 줄어든다. 더구나 노사 합의를 전제하고 있다. 이런 개편안조차 좌초하면 윤 정부의 노동개혁은 끝장이다. 그간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무능과 무책임 공직자에 대해선 문책해야 한다. 그리고 더 책임감을 갖고 국민의 올바른 이해를 구하는 문제까지 포함해 개편안을 재추진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4.19 文 “5년 성취 무너졌다” 무슨 ‘성취’ 있었다는 건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음 달 개봉할 본인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져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퇴임한 지 1년도 안 된 대통령이 본인 영화를 찍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제 자랑까지 하는 것은 겸손 자중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문 전 대통령이 말하는 ‘5년간의 성취’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렇게 성취가 크다면 왜 5년 만에 정권을 잃었겠나. 문 정부 5년은 국고 탕진과 천문학적 국가 부채 증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위선과 내로남불, 불공정과 무능으로 점철됐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으로 수백만명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좋은 일자리는 급감하고 노인·알바 자리만 늘었다. 반기업·반시장·친노조 정책으로 성장률은 떨어지고 빈부 격차는 커졌다. 세금 퍼붓기로 국가 부채는 1000조원을 돌파했다.

 

집값을 잡겠다며 수십 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되레 집값이 폭등했다. 임대차 3법 강행으로 전세 대란이 벌어졌다. 최근 서민들이 목숨을 끊는 전세 사기 사건은 이때 싹이 튼 것이다. 탈원전으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원전 산업은 몰락 위기를 맞았다. 멀쩡한 원전의 경제성을 조작하고 공문서를 파기했다. 4대강 보를 개방해 가뭄에 물 부족 사태를 가중시켰다. 대통령 체면 세운다고 국제사회에 온실가스 40% 감축이라는 터무니 없는 약속을 해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북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미국에 보증까지 서며 정상 회담 이벤트에 매달렸다. 하지만 북한은 핵 어뢰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이 사살당하고 불태워져도 북한 눈치만 봤다. 김여정이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들라니 곧바로 법을 만들었다. 간첩 수사도 중단해 전국에 간첩이 활개쳤다.

 

조국 일가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비호만 했다. 대통령 친구를 울산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청와대·부처·경찰이 총동원됐다. 이상직 전 의원은 문 전 대통령 딸의 해외 이주를 도운 뒤 국회의원이 됐다. 이 모든 일이 국민들을 살기 힘들게 하고 분노하게 했다. 그런데 무슨 성취를 이뤘다는 것인가.

 

문 전 대통령은 “‘잊히고 싶다’고 했는데 나를 현실 정치에 소환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잊힐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은 언행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퇴임 후 이렇게 열심히 자기 정치를 한 전임 대통령은 없었다. 이제는 영화까지 찍는다고 한다. 이 사람에게 5년간의 실정에 대해 사과부터 하라는 것은 소용없는 요청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19 彼我 구분 못하는 나라의 국민들

1948년 ‘통일정부 수립 운동’은
대한민국 탄생 막으려던 구호
아직도 그 미사여구에 속은 채
체제 전복 선동에 넘어가다니

한 소셜미디어 이용자가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뉴질랜드는 1893년에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됐는데, 한국은 1948년이 돼서야 여자에게 투표권을 줬다.’ 너무 늦었다는 의미였다. “그전까지는 식민지였기 때문에 남성 역시 보통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며 답답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역사적 맥락을 모른 채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의 일을 평가하려 할 때 나타나기 쉬운 오류의 사례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연구서 ‘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에서 이런 언급을 했다.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홀로 나치 독일과 맞선 것에 대해, 1970년대 일부 수정주의 학자들은 “히틀러와 맞서 싸우지 말고 타협해서 영국의 국력이 소모되는 것을 피했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당시 처칠이 히틀러와 손을 잡았다면 영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온전하게 보전되리란 보장이 있었을까. 그마저 굴복해 히틀러가 유럽 전역을 장악했더라면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지도상에서 사라졌거나, 살아남았더라도 전체주의 제국의 속국 정도로 전락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과거사 해석은 ‘1950년 9월 더글러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는 민족의 염원대로 통일됐을 것’이라는 국내 일각의 주장과 통하는 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뉴질랜드보다 훨씬 늦은 한국의 여성 참정권’이란 식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단순하게 과거사를 해석한다면 얼핏 그럴듯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분명 그때 맥아더가 아니었더라면 ‘남북통일’은 불과 몇 개월 안에 실현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어떤 통일이었을까. 북한군은 부산까지 침공해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을 테고, 대한민국 정부는 미 극동군사령부의 비밀 작전계획처럼 사이판이나 파푸아뉴기니 같은 해외로 망명했을 공산이 크다. 적화(赤化)통일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산주의 진영 내 소련의 위성국으로 자리 잡는 동시에, 대한민국은 수립 2년 만에 멸망한 나라로 역사에 기록됐을 것이다.

 

역사의 맥락을 가린 채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분식하고, 거기에 불순한 의도까지 더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의 화살촉이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속아 넘어가게 된다. 한 예로, 1948년 제주 4·3 사건이 ‘통일정부 수립 운동’이었다는 미사여구는 이제 전직 대통령까지도 자연스러운 듯이 쓰는 말이 됐다.

 

그 말은 4월 3일 제주에서 무장폭동을 일으킨 남로당의 슬로건이었고, 진짜 의도는 5·10 총선거를 무산시켜 대한민국의 탄생을 막는 것이었다. 무고한 제주도민에 대해 군경이 탄압과 학살은 자행한 것은 비난받을 일이지만, 폭동의 주체 세력이 말살하려 했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서 윤택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통일정부 운동 운운한다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피아(彼我) 구분에 혼란이 일어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0년 전 지방 도시에서 광복절 행사 때 시립 청소년 합창단이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나와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체 게바라가 쿠바의 공산 혁명을 세계로 ‘수출’한 인물이자 1960년 쿠바 정부 대표로 방북해 김일성을 만난 친북 인사였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한 채 그저 혁명과 저항의 아이콘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그런 현상은 더 심해졌다. 국가 기간시설을 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방안을 논의했던 사람을 ‘양심수’로 미화해 사면을 요구하고, 급기야 한국사 교과서에서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확대했다’며 북한 김정은 정권을 미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역사를 남이 떠먹여 주는 대로만 공부한다면 선전과 선동이 잘 먹히는 우중(愚衆)이 되기 쉽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04.20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어떤 이유들

尹 대통령 긴 발언에 ‘59분’ 별명
참모들 말 줄이고 주로 듣기만
작은 일도 대통령에게 깨알 보고
말하기보다 귀 여는 정치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학습 능력이 남다르다고 한다. 판단도 빠르다. 대통령실 인사들은 “핵심을 파악해 단박에 정리한다”고 말한다. 관심 분야도 다양하다. 양자(量子) 정책에 대한 회의가 있었는데 대통령이 장시간 전문적 물리 지식을 쏟아냈다. 전문가가 “나보다 설명을 더 잘한다”며 놀랐다고 한다. 외교·안보·경제 분야도 “그건 이런 것 아니냐”며 쉽게 결론을 낸다. 노동·연금·교육 개혁과 신산업 성장 정책, 대미·대일 외교 강화라는 큰 방향도 직접 틀을 잡았다.

 

윤 대통령은 막후 접촉 범위가 넓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교수·기업인·종교인·기자·유튜버 등과 수시로 전화하고 텔레그램으로 소통한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대통령 메시지를 받았다는 이가 많다. 대통령이 답을 하니 사적 경로로 조언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정책·정무적 조언뿐 아니라 정치권 분위기와 각종 소문까지 모두 대통령 귀에 들어간다. 대통령이 직접 듣고 보고 말하고 결정하는 일이 그만큼 많다.

 

어느 때부턴가 대통령실 주변에서 ‘59분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다. “무슨 의미냐”고 물었더니 “회의 1시간 중 59분을 윤 대통령이 말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발언이 그만큼 길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검사 때도 후배들과 어울려 말하기를 좋아했다. 대선 후보 시절 회의 중 상당 시간을 본인이 발언했다. 각 분야 지식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취임 후엔 발언 점유율이 더 올라갔다. 90%라는 말도 있다. 각 부처 보고가 더해지니 대통령이 알고 말할 게 더 많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듣기 좋아할 정보만 주로 올라올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땐 대통령 말을 받아 적기만 해서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듣기만 한다’고 해서 ‘듣자생존’이란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의 말을 경청하다 보니 참모들이 말할 시간이 자연스레 줄어든 이유일 것이다. 제대로 준비 없이 튀거나 다른 말을 했다가 질책받은 참모도 적잖다고 한다. 대통령은 직언도 듣지만 근거와 논리가 있어야 받아들인다. 함부로 언급해선 안 되는 ‘금기’가 있을 수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보고서 쓸 때 대통령 생각을 미리 잘 살핀다”고 했다.

 

참모들이 작은 일까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판단을 구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자기 생각대로 잘못 결정했다가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결이 줄어드니 자연스레 ‘보고 병목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보고하려 기다리다 결정이 미뤄지는 것이다.

 

대통령 입김은 여당에도 전달된다. 전당대회에서 윤 대통령은 나경원 전 의원 출마를 막았고, 안철수 의원에겐 “국정 훼방꾼이자 적”이라고 했다. 친윤 지도부를 만든 것도 대통령의 힘이었다. 최근 당직 인사 때도 대통령 뜻이 전해졌다고 한다. 김기현 대표의 존재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총선 공천 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30% 아래로 떨어졌다. 여당 지지율은 ‘이재명 민주당’에도 뒤진다. 밤잠을 줄여가며 일하는데 왜 이러는지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국정의 큰 방향이 맞더라도 디테일을 잘해야 한다. 정치는 국민 마음을 얻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한 지 1년도 안 돼 대통령이 됐다. 아직 정치에 익숙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지시할 수는 없다. 말하기보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모나 전문가에게 맡길 건 맡겨야 한다. 실수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 지지율이 낮아진 이유를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 미래도 달라진다.

조선일보 배성규 논설위원

 

04-20 전기료 인상 ‘정치적 유예’는 국가 에너지 재앙 키운다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전기는 국민 생활 편익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망상과 신재생 에너지 비리에 전기요금 포퓰리즘이 더해지면서 국가 에너지 대계를 재앙 수준으로 망가뜨렸다. 한국전력공사가 천문학적 적자를 내는 기업으로 추락하고, 당장 요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으면 첨단·기간 산업과 금융시장까지 뒤흔들 지경이 됐다. 이런 폭탄을 넘겨받은 윤석열 정부도 내년 총선 등 정치적 이유 때문에 좌고우면하면서 에너지 재앙은 나날이 악화한다.

여름철 냉방 시즌 이전인 2분기가 전기·가스 요금을 현실화할 골든 타임인데도, 당·정은 3주째 우왕좌왕한다. 한국전력은 이달에만 1조34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중이다. 국민의힘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내년 총선을 망칠 수 있다”며 민심 이반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 불안을 앞세워 “(요금 인상은) 당이 결정할 문제”라며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다. 윤 대통령 미국 방문 이후 분위기를 봐가며 재론할 태세다. 그러나 전기요금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그만큼 세계 최일류인 전력 생태계 자체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100원의 비용을 들여 70원에 파는 현재의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부작용이 심각해졌다. 한국전기공사협회는 “송·배전 발주가 반 토막 나면서 전력 생태계가 저변부터 무너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한국의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은 일종의 보조금”이라 지적하는 등 외풍도 거세진다. 전기요금 인상의 ‘정치적 유예’는 국가 에너지 재앙을 키울 뿐이다. 요금을 최대한 정상화하고, 한전과 정부는 뼈를 깎는 자구책으로 국민 이해를 구하며, 국민은 에너지 절약에 나서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폐교는 상징적 조치가 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4.21 가짜 뉴스로 美는 1조원 배상, 韓은 오히려 돈 벌고 정치 이득

▲폭스사가 지난 미국 대선 후 반복적으로 방송한 ‘개표기 조작’ 의혹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투·개표기 제조업체 도미니언에 7억8750만달러(약 1조391억원)를 물어주기로 18일 합의했다. 사진은 2020년 11월 ‘네바다 투표소에서 투표 사기가 벌어졌다’고 주장한 인물의 얼굴을 가리고 인터뷰한 폭스뉴스 화면./FOX뉴스 화면캡처

 

2020년 11월 미국 대선 후 개표 조작 가능성을 반복해서 보도한 폭스사(社)가 약 1조원을 배상하게 됐다. 미국 50주 중 28주에서 사용한 투·개표기 제조 업체가 고소한 사건에서 폭스는 잘못을 인정, 약 1조원 배상에 합의했다. 폭스의 배상액은 지난해 매출의 5%로 미국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개된 합의금 중 가장 크다고 한다. 폭스는 트럼프가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상황에서 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이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을 지펴 2021년 1월 워싱턴 DC의 연방 의회에 트럼프 지지층이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 사태로 이어졌다.

 

미국은 건국 이래 언론·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 헌법 1조를 거의 신성시해왔다. 악의만 없으면 사실이 다소 틀린다고 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도가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이다. 거짓임이 명확하며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이 판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정착됐다고 평가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8회원국 중에서 한국처럼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휴대폰,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가 되면서 가짜 뉴스도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이로 인한 좌우·남녀·세대 갈등과 국력 소모는 심각하다.

 

2008년 MBC PD수첩 보도로 시작된 광우병 사태는 그 핵심 보도 내용이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법원이 그렇게 판결했다. 그런데도 사과도 한마디 없었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자가 MBC 사장이 됐다. 2010년엔 천안함 폭침이 ‘자작극이다’ ‘좌초됐다’ ‘미군 잠수함 충돌’ ‘우리 기뢰 폭발’ 등 온갖 가짜 뉴스가 난무했다. 국제 조사단이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로 결론 냈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침몰 때는 미군 잠수함, 한국군 잠수함 충돌설이 마치 진짜인 듯 돌아다녔다. 세월호가 인양돼 배 어디에도 충돌 흔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이 나자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는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고 했다. 실제는 핸드폰 전자파보다 훨씬 더 약한 전자파인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사드 레이더에 몸이 튀겨진다’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2017년 최순실 사건 때는 민주당 중진 의원이 “박정희 통치자금이 300조원, 최순실 일가 은닉 재산이 조(兆) 단위”라고 했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가짜 뉴스를 서슴없이 퍼뜨린다. 이 의원은 그 뒤에도 여러 가짜 뉴스를 퍼뜨렸으나 한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 최근에도 ‘무속인의 대통령 관저 결정 개입’ ‘대통령·법무장관의 청담동 술자리’가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한 허위로 판명됐으나 괴담 유포자들은 아무런 사죄도 않고 있다. 도리어 지지층에게 박수를 받고 돈을 벌었다. 민주당 일부는 지난 정권에서 채널A 기자 사건 등 적극적으로 가짜 뉴스를 꾸며내기도 했다.

 

가짜 뉴스와 오보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오보는 보도하는 측이 납득할 만한 확인 과정을 거쳤지만 사실로 잘못 오해한 것이다. 이런 오보는 최대한 줄여야 하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하곤 한다. 오보로 밝혀지면 책임 있는 사람이나 기관은 즉각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러나 가짜 뉴스는 처음부터 정치적 의도를 갖고 사실을 왜곡 과장하거나 심지어 조작하는 것으로 애초에 사실 여부엔 관심도 없다. 그러니 가짜 뉴스로 드러나도 사과하지 않는다.

 

법원이 오보와 가짜 뉴스를 구별하고 가짜 뉴스에 대해선 엄벌에 처하는 판례를 쌓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도 가짜 뉴스로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이들은 퇴출시킨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한 국민 통합은 불가능하다.

조선일보 사설

 

04.21 거짓말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그들(권력자들)이 거짓말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1971년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에서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백악관은 기밀 문서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고소했지만, 결국 대법원은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권력을 쥔 이들의 거짓말은 탄로 났다.

 

▲18일(현지 시각)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 델라웨어 최고법정에서 폭스뉴스로부터 1조원의 합의금을 받아낸 도미니언 측 변호인들이 기자회견을 하고있다./AFP 연합뉴스

 

이처럼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나라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는 미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여겨진다. 거짓이 아닌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공인에 대해 일부 틀린 정보를 보도하더라도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입증되지 않는 한 명예훼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 미국에서 지난 18일(현지 시각)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2020년 미국 대선에 대해 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수차례 보도했던 폭스사(社)가 투·개표기 제조 업체 도미니언에 1조원에 달하는 돈을 물어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미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개된 합의금 중 가장 큰 금액이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온 미국에서 언론 보도 관련 재판이 이처럼 거액의 배상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번 소송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승리한 2020년 11월 미 대선이 끝난 후 폭스뉴스가 보도한 음모론에서 시작됐다. 폭스뉴스는 “도미니언이 바이든의 당선을 위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을 수 있다”는 내용을 잇달아 내보냈다. 지난 대선에서 전국 50주 중 28주에 투·개표기를 제공한 도미니언은 폭스뉴스의 허위 보도로 자사의 명예가 심각하게 손상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인 폭스 측은 자신들의 보도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이번 소송을 두고 “수정헌법 1조에 대한 공격”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폭스뉴스가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방송을 내보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판세가 불리해지자, 폭스는 합의로 재판을 마무리하는 쪽을 택했다.

 

폭스뉴스의 거짓 보도는 도미니언의 명예뿐만 아니라 미 민주주의까지 훼손시켰다. 폭스뉴스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부채질하자, 패배를 부정하던 트럼프 지지층 사이에서 대선 불복 기조가 확산했다. 이는 이듬해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 의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밖에도 2020년 대선을 전후로 미국 사회는 온갖 가짜 뉴스로 몸살을 앓았다.

 

폭스 소송과 1·6 사태가 전하는 교훈은 명확하다. 누군가는 코웃음 칠 ‘틀린 진실’은 의회를 부술 정도로 힘이 셌다. 좌건 우건 가짜 뉴스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

조선일보 김나영 기자

 

04-21 탈원전이 부른 한전 손실 26조…이게 文 ‘성취’인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탈원전과 전기요금 인상은 관계없다. 전기요금 인상은 ‘연료비 연동제’ 도입 때문”이라고 우겼다. “2022년 원전 발전량이 16만GWh로 2019년보다 9.8% 늘었고, 전체 발전량 중 원전 비중이 29%를 차지했다”는 변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일 국회입법조사처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 구매비 상승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탈원전으로 인해 한국전력이 지난 5년간 약 26조 원의 추가 손실을 떠안은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탈원전에 따른 손실 비용이 산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전 대통령이 재난영화 ‘판도라’를 보고 결심했다는 탈원전으로 인해 신규 원전 6기 중 4기의 건설이 미뤄졌고, 멀쩡한 월성 1호기는 폐쇄됐다. 입법조사처는 탈원전 없이 7차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작년 원전 생산 전기량은 20만GWh에 달했을 것이고, 부족분 4만GWh를 메우기 위해 5배나 비싼 LNG 추가 수입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한전의 추가 전기 구매 비용 12조 원은 결국 전기요금을 인상하거나 국민 혈세로 떠안아야 한다.

천문학적인 한전 적자의 절반 가까이가 탈원전이 부른 재앙이었음이 객관적 통계로 확인됐다. 경제 논리와 현실을 외면한 채 환경과 안전만 내세워 밀어붙인 탈원전의 후폭풍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민·당·정 간담회는 3주째 진통 중이고, 신한울 3호기가 완공되는 2032년까지 정책 실패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은 최근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으면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그 정신세계가 궁금할 따름이다.

문화일보 사설

 

04-24 시민단체 국고 보조 ‘외부 감사’ 획기적 강화 당연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국고에서 사업비를 지원한다. 다른 법정 기구들은 물론 노동조합 등도 관련 법에 따라 국가보조금을 받는다. 그런데 그런 지원을 ‘눈먼 돈’처럼 여기는 행태가 급속히 악화했다.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면서 그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9월 “지난 10년간 시민단체에 보조 및 위탁금으로 총 1조원 가까이 나갔다”며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의 ATM(현금인출기)이 됐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가 최근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오는 7월부터 1억 원(현행 3억 원) 이상의 보조금 사업은 의무적으로 외부 회계감사 업체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1억5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 외주업체에 부풀려 발주해 리베이트 4000만 원을 기부금으로 돌려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지원 보조금도 호화여행·김정은 신년사 학습 등에 유용됐다. 경우는 다르지만, 양대 노총이나 광복회, 정의기억연대 등도 불투명한 회계가 문제가 됐다.

문 정부 기간 동안 연간 국가보조금 규모는 59조 원에서 102조 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부정 사례는 15건 적발(34억 원 환수)에 그쳤다. ‘보조금=눈먼 돈’ 얘기가 나올 만하다. 시행령 개정은 첫 단추일 뿐이다. 모법인 보조금법 개정, 외부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 공개도 필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4.26 출범 때 검사 13명 중 8명 사표, 왜 있는지 모를 공수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당시 임용됐던 검사 두 명이 또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이로써 2년 전 출범 때 임용된 검사 13명 중 8명이 떠나게 됐다. 정상적인 조직에선 있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 없다. 기관으로서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수처 신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내세웠던 공약이었다. 명분은 “검찰 견제”였지만 실제론 ‘정권 친위 부대’처럼 수사했다. 지난 대선 때 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관련 사건은 무리하게 수사하고, 문 정권 불법을 뭉갠 친정권 검사는 ‘황제 조사’로 모셨다. 문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 학자 등은 ‘전화 뒷조사’를 했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하라고 만든 기관이 그 반대로 움직였다.

 

2년간의 수사 실적도 거의 없다. 처리한 사건은 대부분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 고소·고발한 것이다. 자체적으로 범죄 혐의를 포착한 인지(認知) 사건은 물론 체포·구속 실적이 한 건도 없다. 출범 후 ‘1호 기소’ 사건인 전직 부장검사의 뇌물 의혹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한 해 200억원 가까운 예산을 쓰면서 검사 20여 명, 수사관 40여 명이 수사한 결과가 이렇다. 아무리 신생 조직이라고 해도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공수처 자문위원장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해 “공수처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실적을 내지 못하면 월급만 축내는 기관이 된다”고 했다. 지금 공수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딱 이렇다. 전면적인 쇄신을 통해 탈바꿈하지 못하면 아예 문 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월간조선 04월 호

제주 4·3사건’에 대해 말할 ‘자유’

‘4·3사건’은 양심·표현·학문의 자유 명시한 ‘헌법’보다 위에 있나?

⊙ 태영호,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4·3 발언’으로 이목 끌어
⊙ 일부 사실과 다른 얘기 했지만, 희생자·유족 위로하는 취지… 그런데도 ‘망언’ 비난 쇄도
⊙ 1948년 4월 3일 무장폭동 배후에 ‘남로당 중앙’이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 무장폭도는 ‘무장대’, 무장폭동과 그에 대한 군경의 진압을 ‘충돌’이라고 표기한 정부 보고서
⊙ 정부 보고서, 4·3단체와 다른 내용·입장 밝힐 경우 ‘법적 처벌’까지 각오해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2월 12일 제주 4·3평화공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사진=태영호 의원 페이스북 캡처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 의외의 인물이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탈북자 출신 태영호(太永浩) 의원이다. 당내 기반이 없는 탈북자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당 지도부에 입성한 것은 그야말로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변’인 만큼, 다수 언론매체가 태 의원이 최고위원에 선출된 배경에 대해 ▲래퍼 흉내를 내는 파격적인 행보로 청년층 관심 유도 ▲외교 경험, 국제정세에 대한 지식 갖춘 전문가란 강점 등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견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기자는 그것보다 태 의원의 ‘제주 4·3사건’ 관련 발언과 이후 논란 진행 과정에서 그가 보인 ‘소신’이 국민의힘 당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고 평가한다.

태 의원은 2월 13일, 제주도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첫 합동연설회에서 “4·3사건의 장본인인 김일성 정권에 한때 몸담은 사람으로서 유가족분과 희생자분들에게 진심으로 무릎 꿇고 용서를 빈다”고 밝혔다. 당연하게도 더불어민주당이 들고일어나고, 소위 ‘4·3단체’들이 반발했다. 태 의원을 향해 ‘최고위원 후보 사퇴’ ‘망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럼에도 태 의원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좌파에 의해서 잘못 쓰인 현대사를 다시 쓰겠다” “잘못된 역사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선거가 끝나면 기회가 될 때마다 역사적 사실을 강하게 말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4·3은 공산당 폭동으로 일어났다”던 DJ

더불어민주당은 2월 15일, ‘태영호 징계안’을 국회 윤리위에 제출했다. 제주 서귀포시가 지역구인 위성곤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박용진 의원 등 19명이 공동발의했다. 이들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위하여 강성 보수 표심을 잡으려는 목적으로 제주도의 역사적 비극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해묵은 색깔론을 꺼내 들었다”며 “제주도민들로 하여금 국회에 대해 불신하고 절망케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회의 명예와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태영호 징계’를 요구했다. 이들이 밝힌 ‘징계 사유’는 다음과 같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태영호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규탄과 제주 4·3희생자유족회 등 6개 단체의 공동 규탄성명이 있었음에도, 사과는커녕 또다시 2023년 2월 14일 페이스북에 “나는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억지 주장을 고집하였음. “김대중 대통령도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했다…”라고 주장하는 등 4·3사건의 전후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의 진의까지 왜곡하는 악의적인 발췌로 고인의 명예까지 훼손하였음.

 

2000년 1월 여야 합의로 제정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억울한 희생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 또한 2003년 정부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도 제주 4·3사건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이 희생된 사건”으로 규정했고,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음.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 결과 대한민국의 군과 경찰에 의한 양민 희생 사건으로 결론이 난 사건에 대해, 국회의원 태영호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유족과 제주도민들의 아픈 상처에 다시 상처를 내었음.〉

참고로 제주 지역 신문 《한라일보》에 의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11월 23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당 폭동으로 일어났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남로당 중앙’의 ‘건국 방해’ 지령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 폭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주민들이 국군 경비대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사진=조선DB

 

태영호 의원 발언의 진위와 더불어민주당 측 징계 요구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단 ‘제주 4·3사건’의 정의를 살필 필요가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시절인 2003년 12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가 펴낸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역시 이런 취지로 ‘제주 4·3사건’을 정의한다. 참고로 당시 진상조사 보고서 기획단장은 전 서울시장 박원순(朴元淳)씨다.

발언 맥락상, 태영호 의원이 얘기한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라고 해석할 수 있다.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는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도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5·10 총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자칭 ‘인민유격대’를 결성해 제주도 관내 경찰지서 12개소와 우익 인사들을 습격한 무장폭동을 말한다. 폭도들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반란 세력’이 됐다. 김달삼의 뒤를 이어 폭도 수괴(首魁)가 된 이덕구가 1948년 10월 ‘대한민국 정부’를 ‘괴뢰 정부’로 매도하며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폭도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기 위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와 뒤이어 대한민국에 항적한 반란과 관련해서 남로당 당수 박헌영(朴憲永)의 영향력을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 1946년 5월 ‘조선 정판사 위폐 사건’ 이후 월북한 박헌영은 1948년 초부터 남한 내 남로당 잔당에게 ‘단독선거, 단독정부’ 저지를 위한 ‘무장폭동’을 일으키란 지령을 내렸다.

1948년 4월 3일 무장폭동이 있기 전인 2월 7일에 남로당이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5·10 총선거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방해하라고 내린 지령에 따라 좌익 세력이 전국적인 파업과 동맹휴학을 강행했고, 일각에서는 과격화된 세력들이 경찰지서를 습격한 소위 ‘2·7사건’이 있었다. 이는 ‘4·3특별법’이 얘기하는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의 전초전 성격이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독자행동’으로 단정한 정부 보고서

이와 관련한 남로당의 지령은 1948년 4월 3일 무장폭동 발발 이후에도 변경·취소되지 않았다. 이런 점과 함께 오로지 상부의 지시에만 움직이는 공산당 조직 운영 원리를 감안했을 때 1948년 4월 3일 무장폭동과 관련한 남로당 중앙의 직접적인 지령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남로당 중앙 지령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거나, ‘제주도당 독자행동’으로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른바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를 주도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소위 ‘군사부장’ 겸 인민유격대장 김달삼(본명 이승진)이 1948년 8월, 북한의 소위 ‘조선 인민 대표자 회의’에 가서 보고할 목적으로 작성한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 보고서》와 4·3사건 당시 폭동에 참여한 김봉현, 김민주(본명 김태봉)가 1963년에 발간한 《제주도 인민들의 4·3 무장투쟁사》에도 ‘중앙당 지령’을 언급하는 부분이 수차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과 달리 태영호 의원은 김일성을 “4·3사건의 장본인”이라고 했다가 “망언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망언’은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말’이다. 앞서 살폈듯이 태 의원 발언은 지금까지 드러난 역사적 사실과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언을 했다”거나 “4·3을 왜곡했다”고 몰아붙일 정도의 ‘실언’은 아니다. 태 의원이 얘기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뒤에는 김일성이 있지는 않았지만, 상기한 것처럼 최소한 박헌영 또는 ‘남로당 상부’의 지령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정황들은 존재한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 때 발간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1948년 4월 3일 무장폭동에 대해 ‘남로당 중앙’의 지령에 따른 게 아니라 남로당 제주도당의 단독 범행이란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4·3사건은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과 3·1절 발포사건 이후 비롯된 경찰 및 서청과 제주도민과의 갈등, 그로 인해 빚어진 긴장 상황을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과 접목시켜 일으킨 사건으로 판단할 수 있다.〉

 

‘4·3’에 대한 일방 시각 강요하는 사회

▲2월 20일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주 4·3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노무현 정부 때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기술 내용은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정설’을 넘어 ‘정론’이 됐다. 또한 제주 4·3사건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당한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얘기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 ‘1948년 4월 3일 소요사태’를 언급하고 이를 공산 세력이 대한민국 건국 방해 목적으로 일으킨 무장폭동이라고 얘기했다가는 ‘망언’이라는 소리를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태영호 발언 논란’에서 살필 수 있듯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정부 진상 보고서 내용 또는 4·3단체들의 입장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실을 주장하거나 의견을 개진할 경우에는 법적 책임까지 감수해야 한다.

문재인(文在寅) 정부 당시인 2021년 3월에 전부개정하고, 그해 6월에 시행된 ‘4·3특별법’은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 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 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제13조, 희생자 및 유족의 권익 보호)”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와 관련해 판례가 나오지 않아 구체적인 처벌 기준은 알 수 없지만, 그 누구든 의도와 무관하게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또는 제주 4·3사건 관련 단체의 입장과 다른 주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에 불려다닐 위험이 있는 셈이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발간 당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고건 국무총리는 분명히 서문에서 “4·3사건 전체에 대한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이는 후세 사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는데도 상황이 이렇게 됐다.


억울한 희생자 ‘명예회복’과 ‘추모’는 당연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4·3 추념사를 통해 “제주도민들은 오직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으며 되찾은 나라를 온전히 일으키고자 했으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왔다(2020년 4월 3일)”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당시 국가 권력은 제주도민에게 ‘빨갱이’ ‘폭동’ ‘반란’의 이름을 뒤집어씌워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죽음으로 몰고 갔다(2021년 4월 3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소위 ‘보수정당’이라는 국민의힘마저 ‘태영호 발언’ 논란과 관련해서 “제주 4·3은 7년간 제주도민이 국가 권력에 희생된 역사적 비극(정진석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라고 하고 있다.

 

앞으로는 폭도들을 ‘무장대’라고 지칭하고, 남로당의 무장폭동·반란과 군경의 진압을 ‘서로 맞섬’이라는 뜻을 가진 ‘충돌’이라고 표기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표현을 따르지 않으면, 벌을 받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를 ‘공산 세력의 무장폭동’이라고 규정하는 걸 ‘망언’이라고 몰아세우는 행태, 폭동 주모자와 그 배후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까지 막을 위험이 있는 법률은 ‘양심의 자유(제19조)’ ‘표현의 자유(제21조 1항)’ ‘학문의 자유(제22조 1항)’를 명시한 ‘헌법’에 반하는 것 아닌가.

물론 ‘제주 4·3사건’은 비극적인 사건이다. 다만, 그 사건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4·3사건’의 핵심 대목인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는 공산 세력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할 목적으로 자행한 무장폭동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뒤에 이들이 전개한 ‘반란’과 군경의 진압 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4·3 당시 제주도는 준전시 상황이었으므로 양민을 폭도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폭도의 가족들을 연좌제로 묶어 처형하거나, 소개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폭도로 간주해 죽이고 옥살이를 하게 한 실례가 다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이에 대해 반성하고, 억울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추모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억울한 희생’과 ‘무장폭동’은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전 국민이 ‘4·3사건’에 공감하고, 무고한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박희석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