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3-04/ 04-04 민족 외치는 이들의 민낯 - 04.29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自主國防 2023-04/
04-04 민족 외치는 이들의 민낯

김석 정치부 부장
몇 년 전의 일이다. 기자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한 장성급 전역 인사가 갑자기 “국내에서 통일을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당시 청년층의 통일 반대 답변이 많다던 여론조사들이 나오던 때여서 이런 질문을 하나 하는 생각에 “통일되면 경제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청년들 아닐까요”라고 답했더니 그는 “나는 지금 국내에서 ‘민족’을 외치는 사람들이 가장 통일을 반대할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민족’을 내세우는 사람들 상당수가 북한에서 돈을 받았을 거야. 이 사람들은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돈 받았다는 자료가 다 공개될 텐데 좋아하겠나”고 설명했다. 당시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너무 음모론적인 시각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서 그 판단이 사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 ‘민족’이라는 단어는 우파가 점유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좌파가 장악하고 있다. 국내 좌파 정치세력이나 시민단체, 노동단체들은 민족을 내세워 북한과 대화하고 공존할 것을 주장해 왔다. 한때 이들은 냉전적·대결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줬으나 지금 이들의 행태는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민족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는 관심 따위를 두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보고서 공개를 미뤘고, 더불어민주당은 북한 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지금도 미적대지만, 이를 비판하는 좌파 정치·노동·시민단체를 찾기는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7년 만에 내놓은 북한 인권보고서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침해 상황이 드러났음에도 북한에 쓴소리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은 북한 주민뿐 아니라 한국 국민 생존에도 위협 요인이다. 남측 전역을 겨냥해 핵 위협을 하고, 이에 대비한 한·미 연합훈련을 전쟁놀음이라는 적반하장 주장을 펴는 북한을 옹호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을 자극한다며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하는 결정을 내리거나,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시위를 한다. 한국 국민은 북한 핵 위협에 무릎 꿇게 하고, 북한 주민은 4대 세습을 꿈꾸는 김씨 일가의 폭압 정치에 희생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 독일 통일이 이뤄졌을 때 동독 슈타지(국가보위부)가 기밀문서를 대거 파쇄했음에도 많은 자료가 남았다. 이른바 슈타지 문서라 불린 이 자료들에는 서독에서 활동하던 간첩 3만 명의 명단과 활동 상황이 담겨 있어 독일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서독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정보원 등 방첩 당국의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등 국내 여러 조직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에서 이들이 북한 공작원을 해외에서 만나 자금을 받고, 지령에 따라 활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대북전단 살포 반대 여론전 등을 펼쳐 왔다. 민족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민족의 생존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들의 민낯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다.
문화일보
04-06 간첩에 너무 관대한 나라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2015년 발생한 북한 연계 목사 사건의 경우, 첩보 당국이 확인한 것만 3차례나 북한 공작원과 해외에서 접선, 회합·통신하고 북한 노선을 고무·찬양하며 1만8900달러 공작금까지 수수했는데도 국가보안법 제4조 ‘목적수행(간첩)죄’ 적용이 안 됐다. 올해 발각된 전북 지하조직 간첩 혐의자들은 2007년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접선한 후 2013년 베트남, 2016년 3회에 걸쳐 중국서 북 공작원과 접선, 회합했고 스테가노그래피 같은 첨단 암호화 방식 교신을 수십 회 했는데도 국보법 회합·통신(8조), 편의제공(9조)만 적용됐다. 최근 발각된 창원·제주 간첩단도 자진지원·금품수수(5조), 특수잠입·탈출(6조), 찬양·고무(7조)와 8·9조 죄목이 적용됐으나 간첩죄는 적용하지 못했다.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공작금을 수령하고, 지령받고 반정부·반미투쟁하고 북한을 찬양하며 각종 정보를 수집, 전달해도 ‘기밀’이 아니라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법부 현주소다. 국민 정서상 간첩이 틀림없는데도 실정법상 간첩을 간첩이라고 못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간첩죄 적용은 하늘의 별 따기다.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가하며 적화통일 야욕을 멈추지 않는 분단국가 현실과 동떨어진 ‘초현실적 법 논리’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간첩에게 ‘너무 관대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른바 진보 정부 사법부가 간첩 혐의자 인권 등을 이유로 간첩 연루 안보사건 때 국민 정서와는 판이한 솜방망이 판결을 잇달아 내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통상 북한 간첩단이나 북한 지령에 의해 결성된 지하조직에 대해 국보법 제3조 반국가단체 구성, 가입죄를 적용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일심회 사건 때 ‘반국가단체’ 적용 대신 형량이 약한 ‘이적단체’를 적용한 것이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청주간첩단 사건도 이적단체를 적용했다. 실정법상 간첩죄 관련 조항은 32∼70년 지난 조항들로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원인도 있다. 정치·사회·군사적으로 변화된 환경과 급속한 정보통신(IT) 발전 등에 따른 간첩 활동 수단과 방법의 진화 등을 감안해 온라인상 사이버 간첩들도 적극 처벌하는 등 간첩죄 관련 법 조항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사법부가 추구하는 법 정의 구현이 간첩을 위한 것인지 자유 대한민국을 위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간첩이 활동하기 좋은 여건을 사법부가 제공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북핵보다 더 위험한 국가안보 위협 요인인 간첩 활동을 막기 위한 법 개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형법 제98조 간첩죄 개정이 급선무다. 이 조항은 적국(敵國)을 위해 간첩 활동을 했을 때 처벌토록 하고 있으나, 적국뿐 아니라 우방국 및 비국가행위자들의 간첩 활동도 처벌할 수 있게 개정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 국보법 제4조 목적수행죄에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아 각종 정보를 탐지·수집·전달·중계한 경우도 처벌하도록 하는 조항 신설 또한 필요하다.
문화일보
04.10 “김정은 집권 후 北경제 안정세” 이게 우리 고교 교과서
文정부때 검정 통과한 역사책들
대부분 김정은 집권 미화·왜곡
최근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과 인권침해 실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들은 김정은 집권 후 “북한 경제가 안정세”라며 김정은 업적을 사실상 미화하거나 북한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세계 최악인 북 인권 실상을 제대로 다룬 교과서는 거의 없었다. 지금 남북 현실은 김정은이 ‘남한 핵 공격’을 대놓고 협박하는 상황인데도 교과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 사진을 실으며 남북 관계가 개선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본지가 고교 검정(檢定) 한국사 교과서 9종을 살펴본 결과, 대다수 교과서는 ‘남북 화해와 동아시아 평화 노력’이란 단원에서 북한 문제를 다뤘다.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했지만 북한 경제는 좋아졌고 북 사회에 긍정적 변화가 있다는 식의 내용이 많다.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은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더욱 확대했다” “일부 산업 설비를 자체 생산할 정도로 경제가 안정세를 보였다” “경제 특구를 확대하여 개방 정책을 펼쳤다” “남북은 종전 선언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것이다.
현행 교과서는 근현대사(19세기 중반 이후) 분량이 기존 50%에서 75% 정도까지 늘어났다. 교과서 좌편향 문제를 연구해온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은 “교과서에는 역사적 평가가 끝난 내용을 실어야지, 몇 년 전 일어난 일까지 싣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정권 홍보를 위해 왜곡한 교과서 내용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새 교과서는 현재 집필 중이며 내년 검정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교육 현장에는 내후년부터 사용된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에서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사진을 크게 실은 씨마스 교과서 등 한국사 교과서들.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은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북한의 인권침해 문제나 핵 폭주 등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김지호 기자
현행 고교 교과서 9종은 2019년 11월 검정 심사를 완료했고 2020년부터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2018년 김정은은 한미를 상대로 ‘평화 쇼’를 벌였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회담이 깨진 이후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9년 여름부터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 대가리” “겁먹은 개” 등 막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그해 11월까지 교과서 검정을 하면서도 북을 미화, 왜곡한 내용을 손보지 않았다. 특히 남북 관계는 변동이 심할 수밖에 없는데도 문 정부 시절 1년 남짓한 상황을 보편적 사실인 양 기술한 것이다.
현행 교과서 중 천재교육은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은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더욱 확대하고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였다”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외 무역 규모가 확대되고 일부 산업 설비를 자체 생산할 정도로 경제가 안정세를 보였다”고 기술했다. 그런데 김정은은 조금이라도 체제가 이완할 조짐을 보이면 통제를 바로 강화했다. 2017년 핵과 탄도미사일 폭주를 하면서 북한 경제는 고꾸라졌고 최근엔 황해도 지역에선 아사자가 속출하는 지경이다.
금성출판사는 “2013년에는 경제 건설에 주력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밝혔다”며 “이에 지방의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건설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소와 공장 운영에서도 자율성이 확대되어 기업 경영 능력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고, 수익을 많이 낸 기업들의 노동자 임금이 크게 오르는 경우도 나타났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보여 주기식 건설 공사 때문에 자원 배분이 왜곡돼 북 경제는 더 곪아갔다는 지적이 많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속 김정은 시대 미화 내용
미래엔은 “최근에는 신의주 등에 시장경제 체제를 부분 수용한 경제 특구를 확대하여 개방 정책을 펼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평양의 고층 건물 사진을 보여줬다. 김정은은 제대로 된 개방 정책을 펼친 적이 없고, 지금 북에 정상적인 경제 특구는 단 하나도 없다.
비상교육은 ‘최근 북한의 경제 성장의 모습’이란 코너를 마련해 2016년까지 북한의 경제성장률 그래프를 보여주며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경제는 2015년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흑자 성장세를 보였다”고 했다. 이어 “김정은 체제 이후 시장의 활성화와 무연탄, 수산물, 의류 위탁 가공 수출 확대를 기반으로 대외 무역의 증가 등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적었다. 2018년 한국은행 발표 자료로 북 경제성장률을 소개하면서 성장률이 추락한 2017년 수치는 빼고 2016년까지만 소개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김정은이 집권 후 핵 개발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바람에 인민 경제는 더욱 피폐해지고 부촌인 개성까지도 아사자가 나올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북한 경제가 나아졌다는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교과서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침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9종 중 6종은 북 인권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거론한 교과서도 “식량난과 인권 탄압으로 북한 주민들이 탈북하는 사례가 늘어났다”(리베르)는 식으로 간단히 서술했다.
현대사의 북한 문제에서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것이 ‘핵 폭주’다. 민족을 절멸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교과서는 김정은의 핵 도발을 얼버무리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 초 핵 개발을 강행하면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었으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2017년까지 수소폭탄을 포함한 4차례의 핵실험을 했다.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여러 차례 쐈다. 교과서는 북핵 위험은 설명하지 않고 2018년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극’을 중요한 변화인 것처럼 서술한 것이다. 교과서 검정이 진행되던 2019년에는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한 교과서는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 미북 회담에 적극 나선다”고 적었다.
특히 남북 관계는 변화가 심할 수밖에 없는데 9종 모두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개선됐다고 서술했다. “(2018년) 4월 27일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4·27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언문에 완전한 비핵화 및 적대 행위 금지가 명시되어 있어 남북은 종전 선언에 한 걸음 더 다가갔고, 철도 연결과 평화 수역 설정을 명시하여 공동 번영의 발판을 마련하였다”(리베르)는 식이다. 9종 가운데 7종은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사진을 실었고, 1종은 같은 해 백두산에서 두 정상이 부부 동반으로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위협은 ‘레드 라인(금지선)’을 이미 넘었다. 고등학생들이 거꾸로 된 역사, 가짜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04-10 ‘김정은 미화’ 文정부 국사 교과서 실상과 시급한 대책
현행 고등학교 국사(國史) 교과서 대다수는 ‘반(反)역사 선동 매개체’와 다름없다는 참담한 실상이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검정(檢定) 심사를 완료해 2020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채택해 사용 중인 ‘한국사’ 교과서 9종 대부분이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을 미화(美化)하며 북한 현실을 거짓 서술한 것으로 10일 보도됐다. ‘김정은 등장 이후 기업 활동 자율성을 더욱 확대했다’ ‘개방정책을 펼쳤다’ 등은 대표적 사례 일부다. 김정은은 ‘기업 자율성 확대’ ‘개방정책’ 등을 제대로 펼친 적 없다.
김정은의 핵 도발조차 얼버무린 것도 그 저의부터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2017년까지 4차례 핵실험을 강행한 김정은의 2018년 ‘비핵화 사기극’을 두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 미북 회담에 적극 나선다’는 교과서도 있다. ‘평화 쇼’에 집착한 문 전 대통령의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거짓’ 선동을 반영한 왜곡으로 비친다. 잘못된 내용은 매년 고칠 수 있지만, 그냥 둔 배경도 달리 있기 어렵다.
이런 교과서로 국사 교육을 더 망칠 수는 없다. 대책이 시급하다. 내년 검정 심사를 위해 집필 중인 ‘한국사’ 새 교과서들이 사용될 2025년까지 학생들에게 계속 거짓을 가르치게 해선 안 된다. 윤석열 정부 교육부는 출판사 측에 왜곡 교과서 부분 시정(是正)이라도 요청해야 한다. 대체 교육 자료 보급 등도 검토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04월 호
천안함 당시 기무사·정보사 관계자들의 증언
정보사, ‘가미카제 공격’ 정보 입수, 해작사 기무부대–해작사 전달
⊙ “北 고위 대남공작관, ‘이제 남측 상대할 방법은 수중 가미카제밖에 없다’… 해작사 기무부대장에게 전달”(前 정보사 부산부대장)
⊙ “‘가미카제의 유형’이라는 단어 포함해 기무사에 계통 보고… 해군작전사령관에게도 알렸다”(해작사 기무부대장)
⊙ “연평해전 때도 북한의 어뢰 공격 시도 있었다”(前 해군 지휘관)

▲인양된 천안함 함수. 사진=조선DB
천안함 폭침 당시 첩보의 존재 여부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백히 드러난 게 없다. 있었다, 혹은 없었다는 말만 나돌 뿐이다. “사전 징후는 있었으나, 정보나 첩보는 없었다”는 게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한마디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수 있다. 당시 군(軍) 정보기관은 뭘 했을까.
폐쇄적인 군 정보기관의 특성상 그간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국군방첩사령부)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에서는 천안함 관련 첩보를 수집, 공유하며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천안함 첩보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를 비롯해 복수의 군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통해 당시 비화를 들어봤다.
北, “수중 가미카제밖에 없다”

▲백령도에서 천안함의 함수 인양 작업 중인 장병들. 사진=조선DB
천안함 폭침 당시 정보사 부산부대장이었던 A씨는 “2009년 9월 무렵 대북접경지역의 핵심 에이전트(정보원)로부터 ‘북한 고위 대남공작관이 ‘이제 남측을 상대할 방법은 수중 가미카제밖에 없다’고 했다’는 내용을 입수, 첩보 보고서를 작성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A씨는 “그때 북한의 발언이 이것저것 시도해본 뒤 ‘최후 작전 개시’를 결심한 뉘앙스였던 만큼, 계통 보고 후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기무부대장을 만나 첩보 내용을 전달했다”면서 “첩보의 심각성을 공감한 기무부대장은 이날 해군작전사령관에게 즉각 보고하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보사에서 기무사로, 기무사에서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첩보가 전달된 셈인데, A씨는 “지휘계통상 없는 일이지만, (가미카제라면) 당장 오늘 밤에라도 일어날 수 있는 급박한 사안”이라면서 “만일 합참에 보고서를 올리면 내려오는데(회신 오기까지) 한 달이 걸릴 수도, 정보 사용권자에 따라 응답이 없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9년 9월 무렵은 앞서 박왕자씨 피살 사건, 비핵개방3000, 2차 핵실험 등으로 남북 관계가 극도로 긴장된 상태였다. 그런 한편 싱가포르에서는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인사의 비밀회동(2009.10)이 이뤄졌고, 이때 사정을 잘 아는 A씨에 따르면 이는 ‘성사 직전’에 결렬됐다. 그러던 중 그해 11월 10일 대청해전이 발발, 북한이 완패했다. 이때부터 ‘절치부심 후 돌아간 북한이 서해에서 뭔가 일을 벌일 것’이라는 수준의 이야기는 공공연히 군과 외교라인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A씨는 “그러나 대청해전 훨씬 이전부터 북한은 수중 침투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천안함 폭침은 북한이 장기간에 걸쳐 준비한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이후 2010년 1월 북한은 서해 4군단장으로 김격식 전 총참모장을 부임시켰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는 서해에서 합동화력을 점검했고, 한국에도 새로운 ‘통항 질서’를 제시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발했다.
해군 작전지휘관 출신인 한 인사는 “2011년 고위 탈북자도 증언했듯이 북한은 제1 연평해전(1999년) 이후부터 (천안함) 보복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면서 “(A씨가 언급한) 대남공작관의 말처럼 실제로 북한에 남은 방법은 ‘가미카제식’ 공격밖에 없었다”고 했다.
“연평해전 당시에도 북한의 어뢰 공격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우리 배의 폭뢰 때문에 계속 실패했다. 북한 잠수정은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폭뢰를 맞으면 수중 폭발 수압에 의해 그대로 파괴된다. 때문에 이들 입장에서 어뢰 한 발을 갖고 올 수 있고 수심 2.5m 아래서 움직이는 반잠수정이건, 잠수정이건 잠수함을 이용한 어뢰 공격은 모두 ‘가미카제식’ 공격이다.”
참고로 천안함도 함미 갑판에 잠수함 공격용 폭뢰(MK9)를 좌우 6기씩 모두 12기를 갖고 있었다.
해작사령관, 당일 헬기 타고 2함대로
A씨의 말을 교차검증하기 위해 당시 해군작전사령부 기무부대장이었던 B씨를 만나봤다. 천안함 폭침 얼마 뒤 전역한 만큼 그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B씨는 “2008~2009년 사이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게 100회 가까이 될 정도로 서해 군사정세가 매우 엄중했다. 부대장 재직 1년간 내가 쓴 보고서만 273건일 정도”라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접한 가미카제 첩보라 신빙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보고서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가미카제의 유형’이라는 단어를 포함해 기무사에 계통 보고를 하고, 해군작전사령관에게도 첩보 사실을 알렸다”면서 “해군작전사령관 또한 해당 내용을 중대하게 받아들였고, 보고받은 당일 헬기를 타고 평택 2함대로 가서 상황을 살피고 대비할 것을 지휘했다”고 했다.
B씨는 또 “기무부대장이 작전사령관에게 정보사의 첩보 내용을 알리는 것은 생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시간이 흘렀다지만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B씨는 “기무부대에서는 작전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서로 남긴다”면서 “그날 사령관의 출타 일정과 목적 등의 기록은 작전사는 물론 기무사에도 남아 있다”고 했다.
수많은 첩보와 한 명의 사용권자
천안함 폭침 당시 기무사령관은 김종태 중장이었다. 김종태 사령관 또한 ‘수중 침투’ 관련 사전 징후를 언급한 기록이 있다. 폭침 약 5개월이 지난 2010년 8월 12일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위원단이 해군 2함대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 사령관은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수중 침투 관련 징후를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했으나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면서 “침투 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고 이런 군 기강 해이 사항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해당 발언은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일행 부대 행사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에 기록돼 있다.
이 자리에는 3군 출신 장군(10명)과 민간인 전문가(4명) 등 총 16명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한 한 인사는 “김종태 사령관의 그러한 발언을 틀림없이 기억한다”면서 “다만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데 대해 일부 참석자들은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기무사 관계자는 “기무사에서 정보사용권자는 사령관 단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수집과 분석만 하며, 서로 공유하지도 않기 때문에 당시 사령관이 B씨의 정보를 사용한 건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 “다만 당시 극도로 긴장된 서해상의 작전을 총괄 지휘하는 부대인 해군작전사령부의 기무부대장이 올린 보고서인 만큼 그냥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윤종성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이에 “‘5% 지시, 95% 확인’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지휘관이 설사 지시를 했더라도 이행되지 않았다면 지시를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뜻”이라고 했다.
왜 막지 못했나
첩보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쏟아진다. 정보사 한 관계자는 “1998년 김대중 정권 때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처음 쐈을 당시도 수십 군데에서 받은 첩보들을 넘겼는데, 사용권자가 쌓아두기만 하다, 미사일 발사 이후 ‘왜 이런 첩보가 없었느냐’고 추궁했다가 쌓아둔 기록을 뒤늦게 확인한 후 망신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2009년 9월 수중 가미카제 첩보’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의 극히 일부일지도 모른다. 해당 첩보 외에 천안함 관련 첩보들이 더 있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복수의 군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일촉즉발의 남북정세, 북한 잠수정 속도를 따져봤을 때 1시간 내로 돌아가려면 20km 이상 내려와서는 안 된다는 북측의 전술적 위치, 북한 대동강, 압록강 하구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3월이라는 시기 등을 미루어봤을 때다. 하지만 ‘기습 공격’이었던 만큼 막을 재간이 없었다고 했다.
평택 2함대 기무장교였던 한 인사는 “우리 군이 결코 무방비 상태, 혹은 속수무책으로 있었던 건 아니다”라면서 “해군은 물론 당시 모든 부대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바 임무를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막지 못했다. 매년 이 시기, 특히 올해 계속되는 북의 도발을 보면 그때의 일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월간조선 04월 호
천안함 폭침 영화화 나선 윤종성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진실 밝히는 것보다 진실 수호가 더 힘들었다”
⊙ 과학을 초월해버린 이념… “매년 나오는 음모론에 영화화 결심”
⊙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에서 과학수사 분과장 활약 “조사의 귀착점은 ‘증거’”
⊙ 선체 일일이 거즈로 닦아 결정적 증거 ‘폭약 성분’ 검출
⊙ 실체적 진실 찾는 과정과 軍·국가의 자기반성 담을 것
⊙ 폭침 13주기, 천안함이 남긴 것… “우리 사회는 더 나아졌을까”

▲사진=월간조선
이미 13년 전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과학수사 분과장을 지낸 윤종성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사력을 다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혔으나, 매년 이맘때면 여전히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나온다”면서 “국민에게 이를 다시금 일목요연히 정리해 알릴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영화화에 나선 배경이다.
육사 37기로 5군단 헌병대장, 대통령비서실 경호실장 보좌관 등을 역임한 그는 2007년 4월 장군 진급 이후 육군헌병 병과장 겸 수사단장을 거친 ‘수사 통’이다. 2010년 12월 만기전역(소장) 후에는 11년간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했다.
윤 전 본부장은 영화 제목을 〈증거(Evidence)〉로 정했다. 그는 “당시 작전, 해양, 선박 전문가들은 시뮬레이션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사를 해본 사람들은 ‘증거’에 집중한다”면서 “모든 조사의 귀착점(歸着點)인 증거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열쇠”라고 했다.
영화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극명한 대립 속에서도 실체적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과 사건의 비극성, 생존 장병과 유가족의 아픔과 희망, 그리고 이 사회에 던진 교훈 등을 모두 담을 예정이다. 지난 3월 2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그는 결정적 증거를 향한 여정부터 언급했다.
증거를 찾는 과정
# “성공했습니다. 영상이 복원됐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없습니다.”
-김옥년 중령
2010년 3월 31일 구성된 민군합동조사단은 이후 4월 12일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한국까지 5개국의 국제민군합동조사단으로 재편, 통신 분석, 생존자 진술 분석, 폭약 성분 분석, 사체 검안, 영상 및 사진 분석, CCTV 분석, 어뢰추진동력장치 수거 등의 절차를 밟았다.
“사건 한 달이 지난 시점인 2010년 4월 25일이었어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미 좌초설, 미(美) 잠수함 충돌설 등 온갖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이날 함수가 올라와 11개소 CCTV를 획득했고, 즉각 영상분석업체에 이를 보냈습니다.”
목적은 단 하나. 사고 당시 장면의 확보.
“그 장면만 확보하면 온갖 억측을 잠재울 수 있었죠. 그런데 디스크에 묻은 이물질 때문에 복원이 불가하더군요. 그때 조사본부원이 ‘본부장님, 폭발이 있었다면 디스크에 묻은 이물질은 알루미늄일 것이고, 이는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쓰면 녹일 수 있습니다’고 하더군요.
증거가 훼손이 되지 않게 수백 번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작업을 했고, 이 중 6개소 CCTV를 복원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결정적 장면은 획득하지 못했죠. 폭발과 같은 외부 충격이 있을 시 전후 1분간 작동을 멈추는 게 해당 CCTV의 메커니즘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허탈한 순간이었죠.”
폭약 성분 검출

▲폭침 이틀이 지난 2010년 3월 28일 오전 백령도 사고 해역에서 해군과 해경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조선DB
# “쉽지 않아요. 아니, 불가능합니다(It is not easy, No, it is impossible)”
-美 해군제독 에켈스 준장
윤 전 본부장은 “정황상 근거는 확실하지만, 이를 결정적 증거로써 밝히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대부분 시뮬레이션과 정황 근거들밖에 없었어요. 폭침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폭침이 확실하다면 선체에 폭약 성분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MIT공대 출신인 미 조사 팀장 에켈스 해군 제독에게 물었습니다. ‘선체에서 폭약 성분을 검출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요. 그랬더니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시도해본 적이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지는 않대요. 이론적으로 안 된다는 거였죠. 그럼 한 번 해보자 싶었던 거죠.”
손바닥만 한 거즈로 일일이 선체를 닦아보기로 했다. ‘미쳤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 영국의 ‘브롬’이라는 과학수사요원이 희망 섞인 발언을 했다. 본인도 시일이 한참 지난 급조폭발물의 폭약 성분을 검출한 경험이 있다는 거였다.
“수사관들이 엄청 고생 많았습니다. 그 추운 4월 바닷가에서 밤낮없이 출렁이는 그 거대한 배를, 요 손바닥만 한 거즈로 일일이 닦았어요. 뿐만 아니라 선체로 유입된 벌(진흙)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일일이 손으로 걷어내서 따로 수거했어요. 그 안의 조그마한 쇳조각이라도 확보하려고요.”
다 쓴 거즈는 트럭 2대 분량이었다. 분석 결과 함수(8개소), 연돌(8개소), 가스터빈실(13개소), 해저(7개소)까지 총 36개소에서 HMX, RDX, TNT 폭약 성분이 검출됐다.
흔히 ‘1번 어뢰’를 결정적 증거라고 본다. 그러나 윤 전 본부장은 “단 한 가지 증거만 말할 수 있다면 ‘폭약 성분’을 꼽겠다”고 했다. 그는 성분 검출 당시 “폭침이 확실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어뢰 추진 동력 장치 수거

▲천안함 피격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핵심 증거 중 하나인 어뢰추진체. 사진=조선DB
# “그물 속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 있어요!”
-대평 11호 김남식 선장
어뢰 추진 동력 장치 수거에도 난관이 많았다. 대형자석, 준설선 이용에서부터 스웨덴 조사팀의 아이디어로 수면 아래 일정 부분을 동결(凍結)시키는 방법까지 고려했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모두 무산됐다.
“그때 국방과학수사연구소장인 양승주 공군 대령이 와서 ‘전투기 추락 시에 ‘쌍끌이 어선’을 이용한다’면서 2006년 동해안(372m), 2007년 서해안(45m) 수거 사례를 들려줬습니다. 이튿날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이를 보고하니까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즉각 작업에 착수하게 됐어요.”
해군본부에서 파견된 조영두 중령의 지휘로 약 보름간 하루 최대 8차례 시도 끝에 5월 15일 어뢰를 건져 올렸다. 수거 작업 계약업체인 대평수산의 대평 11호 김남식 선장은 이날 오전 9시 25분 “그물 속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 있다”고 했다. 국정원 확인 결과 이는 북한에서 제조, 사용 중인 CHD-02D 어뢰였다.
북한에서 제조 사용한 CHD-02D 어뢰 추진체가 ‘총알’이었고, HMX, RDX, TNT 폭약 성분이 ‘화약’이었다. 두 동강 난 천안함 선체가 ‘피해 물품’이었고, 46명의 용사가 피해자였다. 2010년 5월 20일 합조단은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증거를 종합해보면 천안함은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된 어뢰의 수중 폭발(비접촉)로 침몰했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음모론자들
# “천안함은 좌초된 겁니다, 여러분!”
-음모론자 신상철
윤 전 본부장은 “진실을 밝힌 후 그 진실을 수호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했다. 실제로 조사 결과 발표 이후 각종 음모론은 더 거세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상철 전 천안함 합동조사단 위원이다. 지난 2010년 《천안함은 좌초입니다!》를 펴낸 신씨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합조단에 위촉됐지만, 단 1회만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군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은폐·조작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당시 합조단은 과학수사분과, 폭발위험분과, 선체구조분과, 정보분과까지 네 개의 분과가 있었는데, 신씨는 김정수 제독이 분과장으로 있던 선체구조분과 소속이었습니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하다, 언젠가 김정수 제독과 서로 고성을 낸 일이 있어 처음 그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이후 조사단에서 나간 뒤부터 엉뚱한 소리를 하고 다니더군요.”
결국 지난 2010년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박정이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군측단장, 윤종성 전 본부장 등은 신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 또한 신씨의 주장이 ‘허위사실’임을 인정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2022년 6월 9일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신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비접촉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했다. 좌초 후 잠수함 등과 충돌하여 침몰했다는 피고인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 또한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인정한 셈이다.
“신씨와의 소송으로 고등법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좌초라고 주장하느냐, 좌초의 증거를 내놔봐라, 했더니 그가 ‘선체가 이렇게 북 찢어지지 않았느냐’면서 부유물에 의해 난 자국을 가리키더군요. 그때 판사가 앞에 놓인 종이를 찢으면서 그에게 ‘북 찢어진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하고 면박을 주기도 했어요.”
‘無知의 知’

▲수중 비접촉 폭발로 완전히 두 동강 난 천안함 선체. 사진=조선DB
# “(천안함 사건이) 뭐가 확인됐나. 폭발이 있었는지, 물기둥이 있었는지 (확실치 않고), 생존한 승조원들은 언론 접촉도 하지 않았다.”
-유시민(2018.3.1. JTBC 〈썰전〉)
비단 신씨뿐만 아니다. 진실을 왜곡한 서적과 다큐멘터리는 수십 종에 달하며, 민주당은 물론, 친(親)민주당 성향 인사들은 최근까지도 의혹 제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이 대표적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선체 절단 문제다.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천안함은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수심 6~9m 위치에서 발생한 어뢰 폭발에 의한 충격과 버블효과 등으로 절단됐다. 의혹 제기자들은 “버블효과로는 천안함이 절단될 수 없고, 폭발이 있었는데 왜 화재도, 파편도 없느냐”고 말한다.
“폭발에는 육상 폭발이 있고 수중 폭발이 있습니다. 수중 폭발은 다시 접촉과 비접촉으로 나뉩니다. 접촉의 경우 육상 폭발처럼 화염, 불꽃을 동반하고 파편도 생깁니다. 그런데 어뢰가 배 하부로부터 7~9m 아래 수중 비접촉 폭발을 할 경우 충격과 버블효과가 일어납니다. 그 충격파는 에너지의 53%를 차지하는데 급격히 소멸되는 특색이 있습니다. 그리고 버블은 팽창, 수축, 팽창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파에 의해 1차 폭발이 일어나고 이후 수축했다가 다시 팽창하면서 버블이 붕괴돼요. 이때 2차 폭발이 일어나면서 버블 제트에 의해 배가 절단됩니다. 접촉 폭발의 경우 절단되지 않죠. 통상 함몰되거나, 파공이 생긴다거나 합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니 여러 정치인, 언론들, 심지어 과학자들도 선체 절단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더군요. 육상 폭발만 생각해서 왜 파편도 없고 화재 흔적도 없냐는 거죠.”
그는 “그러한 주장을 보며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후 합조단의 조사 결과는 국제사회에서도 검증됐다. 지난 2010년 6월 14일 참석한 미국 뉴욕 유엔(UN) 안보리 설명회에서다. 설명회는 중국·러시아를 비롯 15개 이사국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조사가 충분하고 철저하며 포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여러 이사국이 질문을 했지만 조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는 없었다. 윤 전 본부장은 “미국 부대사와 일본 대사는 설명회 리허설부터 참석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면서 “설명회 당시 중국 대사는 눈치만 봤고, 러시아 대사는 북한을 비판하는 튀르키예·프랑스 대사에게 ‘이곳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군의 전략적 책임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좀 더 명료하게 풀릴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든다. 폭침 당일의 기록이다.
# “뭔 거 같애?” “어뢰 같은데요. 함미가 아예 안 보입니다.”
-2010년 3월 26일 22:32~22:42 전대장과 함장 대화
# “귀국 침몰 사유 통보할 것.” “본국 어뢰, 어뢰, 어뢰로 사료됨. 이상.” “어뢰가 정확한가?” “어뢰로 판단됨.”
-2010년 3월 26일 21:51~21:52 무선병과 통신장 대화
“보시다시피 처음부터 이미 ‘어뢰’가 언급됐습니다. 그러나 2함대 사령관 등 해군 수뇌부는 상부에 ‘어뢰’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보고했죠. 원칙대로라면 현장 지휘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정부에서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정치적 고려로 인해 조심스러웠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사고 발생 시 국가 및 군사지도자의 초기 대응 실패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애초 사건 발생 시각 발표에도 혼란이 있었다.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21시22분 백령도 서남방 2.5km에서 침몰했다.
“당시 우리는 최초 사건 발생 시각 발표를 2함대에서 합참에 보고한 시각이었던 21시45분으로 했습니다. 이후 함대에서 구조 요청을 보낸 시각인 21시30분으로 정정했다가 21시22분으로 최종 발표를 한 것이죠.”
영화에는 이러한 군(軍)의 자기반성도 담을 생각이다. 윤 본부장은 “천안함 폭침 직후 함장을 비롯한 승조원의 전술적 대응은 허점이 없었지만, 합참과 국방부 등 군 수뇌부의 전략적 책임에 대해서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선체는 당시 98% 침수된 상황이었어요.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대원들은 서로를 살리려고 애썼습니다. 여기에 최원일 함장은 인명구조, 통신유지, 하선지점 파악 등 침착한 리더십으로 58명의 장병 구조를 유도했습니다.
한편 군 측의 조사 발표 과정이 다소 매끄럽지 않았던 점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사단은 총 다섯 차례 결과 발표를 했습니다. 최초 상황 발표, 함미 인양 때, 함수 인양 때, 그리고 최종 결과 발표, 이후 조사 결과 보고서까지죠. 여기에 국방부와 합참, 해군에서도 각개 대응을 했고, 통합이 안 되다 보니 뒤죽박죽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컨트롤타워가 없었던 겁니다.”
‘국가 위기 대응 문제는 왜 반복되는가’
윤 본부장은 이어 “우리 사회가 천안함 사건을 교훈으로 삼고 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6·25 이후 최대 안보 참사’를 겪은 지 13년이 지났지만, 국가 대응 방식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폭침 사실을 29분 만에 보고받았습니다. 합참의장은 49분, 국방부 장관은 52분 만이죠. 12년 이후 벌어진 핼러윈 참사는 어떻습니까. 윤석열 대통령은 46분 만에, 행안부 장관은 65분, 경찰청장은 119분 만에 보고를 받았죠.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 침범 때도 책임만 묻고 끝났습니다. 평생을 군(軍)에서 보낸 입장에서 변한 게 없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더군요.”
그는 “‘변한 게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고 했다.
“‘옳은 일’을 하지 않아서예요. 사후강평(AAR·After Action Review)하지 않고, 교훈으로 삼지 않는 거죠. 국방부 조사본부가 증거를 획득하는 과정은 2개월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전에 무수히 많은 학습과 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한 국가의 위기관리시스템은 만들어놓는 게 능사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 ‘작동’하는 게 관건입니다. 그러려면 평시에도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훈련해서 몸이 자동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의 삶
# “군인 여러분,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
-천안함 생존자 전우회
윤 전 본부장은 또한 “생존 장병들의 삶과 절규도 중점적으로 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58명의 생존 용사들 중 24명이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는데, 2021년 3월 기준 12명만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대부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고요. 상이연금 증빙자료로 트라우마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수년간의 의무 기록을 제 손으로 정리하고, 심사를 기다리는, 말도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다 다쳤는데, 그 고통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니요. 국가기관에서 치료와 보상에 먼저 나서는 사회, 아직 기대하기 어려운 겁니까. 국가의 보훈 책임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요. 이 또한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매년 3월, 기일과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을 찾은 정치인들 옆에서 ‘반짝’ 주목받을 뿐이다. 아직까지 천안함 폭침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제대로 실리지도 않았다.
그는 “매 순간 지속되는 아픔 속에서도 또 다른 희망을 찾아가는 유가족들을 보면 가슴이 저민다”고 했다. 고 한주호 준위의 딸은 교직원의 꿈을 접고 지난 2015년 해군 군무원이 됐다. 고 김태석 원사의 딸은 2021년 8월 해군 군 가산 복무 장교로 합격해 2025년 임관을 앞두고 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 모든 이야기가 스크린에 어떻게 담길지 궁금하다. 윤 전 본부장은 “3월 말부터 영화사와 교섭에 들어갈 계획”이라면서 “차질 없이 진행하면 약 2년 뒤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04.11 ‘김정은 미화’ 文 정부 국사 교과서, 교과서 아닌 정치 선동 책자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다수가 북한 김정은을 미화하거나 북한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했지만 북한 경제는 좋아졌고 북 사회에 긍정적 변화가 있다는 식의 내용이 많다고 한다. ‘김정은 등장 이후 기업 활동 자율성을 더욱 확대했다’ ‘개방 정책을 펼쳤다’ ‘남북은 종전 선언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등이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거꾸로 갔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 9종은 문재인 정부가 2019년 11월 검정 심사를 완료해 2020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다. 2018년 북한이 한국, 미국을 상대로 ‘평화 이벤트’를 벌인 것은 기존 핵을 보유한 채 대북 제재를 풀려는 작전이었다. 이를 알고 있는 미국이 북핵 폐기를 요구하자 즉각 본색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교과서가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식으로 쓴 것은 가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교과서가 문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개선됐다며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나 두 정상의 부부 동반 백두산 등정 사진을 실고 있다. 정권 홍보를 위해 엉터리 내용을 넣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정치 선동 책자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겨냥한 것이라며 방사능 쓰나미를 일으킨다는 핵 어뢰 위협까지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교육을 하나. 근본적으로는 고교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분량이 75~80%에 이르는 것은 누가 보아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불과 수년 전 일을 역사 교과서에 싣는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좌파가 다수라는 역사학계 교수들이 자신들의 정치 편견을 학생들에게 심으려는 것 아닌가. 역사 교과서 근현대사 부분을 대폭 줄이고 학계에서 정설로 굳어진 사실만 가르치는 것이 맞는다.
조선일보 사설
04-13 북한, 또 탄도미사일…군 “고체연료 ICBM 가능성”

▲조태용 안보실장, 첫 NSC 주재 조태용(왼쪽 두 번째) 국가안보실장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북한의 중장거리급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정은 추대 11주년 맞아 도발
합참“새로운체계 실험여부 주목”
일본“레이더 탐지 직후 소실됐다”
13일 북한이 중장거리급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1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추대 11주년이 되는 이날 북한이 도발을 전격 감행하면서, 이틀 뒤로 다가온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 111주년에 맞춰 초대형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이날 오전 7시 23분쯤 평양 인근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중장거리급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 이 미사일은 고각으로 발사돼 약 1000㎞를 비행한 뒤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바깥 동해상에 탄착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올해 들어 9번째로, 지난달 27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발사 이후 17일 만이다.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중장거리급 탄도미사일이거나 기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일 가능성이 있다. 지난 2월 8일 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고체연료 기반 ICBM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합참 관계자도 “고체 ICBM 포함, 새로운 체계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사는 북한이 남북 간 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정기 통화에 응하지 않은 지 엿새 만에 이뤄졌다.
국가안보실은 이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해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NSC 상임위원들은 “북한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자 한반도·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심각한 도발”이라고 규탄했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미사일이 홋카이도(北海道)에 낙하할 가능성이 있어 탐지한 결과, 탐지 직후 레이더에서 소실됐다”며 “이후 우리나라(일본)로 날아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 “현재 방위성에서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문화일보 조재연 기자·정충신 선임기자
04-13 박민지·장미란·진미령·최원일 등 보훈처 ‘히어로즈패밀리’ 멘트로

▲국가보훈처 ‘히어로즈패밀리’ 멘토로 나서는 프로골퍼 박민지 선수. 국가보훈처 제공
보훈처, 전몰·순직군경 자녀 지원 강화…13일 ‘히어로즈패밀리’ 출범
국가보훈처는 전몰·순직 군경의 남겨진 자녀들을 지원하는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 출범식을 13일 서울 63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미성년 자녀들의 진로 희망 분야에 맞춰 경제·언론·문화·체육·교육 등 사회 각계 인사 100여 명이 멘토 역할을 하는 후원·지도단으로 참여한다.
한국 역도의 전설 장미란, 프로골퍼 박민지, 6·25전쟁 화령장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고(故) 김동석 대령의 장녀인 가수 진미령 등이 멘토로 활동한다.
성우 안지환, 배우 정동환, 홍선미 삼육대 무용과 교수, 이민구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 이수희 스튜디오수이 대표, 가수 빅맨 등 여러 분야 전문가도 함께한다.
국가유공자와 유족, 순직 영웅들이 몸담았던 군·경찰·소방의 현직 근무자들도 멘토로 나선다.

▲히어로즈패밀리 프로그램 출범식 포스터. 국가보훈처 제공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여사, 전 천안함 함장 최원일 예비역 대령,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이찬호 예비역 병장, 박칠호 공군 군수사령관, 최주원 경북경찰청장, 김문용 광주소방안전본부장 등이다.
후원·지도단장은 오준 전 유엔대사가 맡는다. 오 전 대사는 2006년 애족장을 받은 오우홍 애국지사의 아들로 보훈 가족인 동시에 현재 한국아동단체협의회 회장과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으로 있다.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 14일 보훈처·우미희망재단·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세부 사업계획 수립에 착수했고 이날 출범식으로 본격적 활동을 개시한다.
보훈처는 앞으로 후원·지도단 활동과 함께 생일이나 성탄절 등 가족의 빈자리가 느껴질 수 있는 기념일에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전달할 계획이다. 또 자녀 연령별 치유 프로그램, 진로 특강 및 진로 체험, 가족여행 지원, 성년 축하 선물 등을 제공한다.
이날 출범식에 앞서 박민식 보훈처장은 2020년 한강 투신 실종자 잠수 수색 중 순직한 고 유재국 경위의 유가족 가정을 방문해 위로할 예정이다. 박 처장은 "영웅을 기억하고, 남겨진 가족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보듬는 것이 국가를 위한 헌신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며 이것이 곧 일류 보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전몰·순직 군경 가구 중 만 19세 이하 미성년 자녀는 126가구 185명이며, 이 가운데 군인 자녀가 85명(48%)으로 가장 많고 소방 자녀 51명(27%), 경찰 자녀 49명(26%)이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4-13 한미 “핵공격은 김정은 종말 초래” …KIDD 공동보도문 명시
KIDD(통합국방협의체) 회의결과 공동보도문 발표
한미 "‘핵우산’ 실행력 강화 위해 한국 역할 확대 가속화 합의"
한미가 확장억제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합방위체계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한미는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한미 국방부는 지난 11~1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제22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를 개최하고 북핵 위협에 대비한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측에서 허태근 허태근 국방정책실장이, 미 국방부에서는 일라이 래트너 인태안보 차관보와 싯다르트 모한다스 동아시아 부차관보가 각각 수석대표를 맡았다.
회의 후 한미가 발표한 공동보도문에 따르면 양측은 KIDD 세부 회의인 ‘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한미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하고, 한미동맹이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한반도 내 분쟁을 억제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와 능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대규모 야외훈련 복원의 중요성을 공동 인식하고, 후반기에도 실전적 연합연습 및 훈련 필요성에 공감했다. 특히 한미는 "미국이나 동맹국 및 우방국들에 대한 어떠한 북한의 핵공격도 용납할 수 없으며,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국방부의 연합합동다목적실사격훈련장 조성 계획과 사드 기지에 대한 ‘일상적이고 자유로운 접근’ 방안도 다뤄졌다. ‘한미 억제전략위원회’(DSC)에서는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방안이 다뤄졌다.
한미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정보공유, 공동기획 및 실행, 협의체계 및 위기 시 소통 등 확장억제 분야별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연합방위체계 하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에 속도를 더 내기로 했다.
미국은 핵·재래식 미사일 방어능력 및 진전된 비(非)핵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하는 미국의 한국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
‘전작권 전환 실무단(COTWG)’ 회의에서는 현재까지 승인된 능력·체계를 검토해 올해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추진하는 데 동의했다.
아울러 이번 KIDD 고위급 회의에서 한미는 한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미국의 인도태평양젼략을 이행하는 데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양측은 지난달 최초로 열린 한미 지역협력실무협의회의 결과를 논의하고 아세안 및 태평양도서국과의 협력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한미는 "제22차 KIDD가 한미동맹의 공조를 강화하며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제고했다"고 평가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4.18 원고 5명 중 3명 죽은 뒤에야 열린 국군포로의 김정은 상대 재판

▲국군 포로 김성태씨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6·25전쟁 당시 북에 끌려갔다 탈출한 국군 포로 5명이 김정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어제 열렸다. 함경도의 탄광 등에서 수십 년간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며 2020년 9월 소송을 낸 지 31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법정에 출석한 사람은 김성태(91)씨 혼자였다. 3년이 흐르는 동안 원고 3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1명은 거동이 불편해 출석하지 못했다. 소송 대리인 측은 “원고들이 고령임을 감안해 재판을 서둘러 달라고 부탁했지만 재판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재판을 지연시켰다”고 했다.
이번 소송은 한재복씨 등 또 다른 국군 포로 2명이 2020년 7월 유사한 사건에서 승소한 지 두 달 뒤 제기된 것이다. 한씨 사건은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우리 법원이 재판권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한 첫 판결이었다.
이 사건은 소송 시작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는데 피고 김정은에게 소장(訴狀)을 전달할 방법을 좀처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변호인단은 소장 내용을 인터넷 등에 공지하면 피고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公示送達)을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가까스로 재판이 열릴 수 있었다.
김성태씨 사건도 이를 따랐다면 진작 재판이 시작됐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무슨 이유인지 재판을 뭉갰다고 한다. 소송 대리인 측은 “공시송달 신청을 3차례, 변론기일 지정 신청을 5차례 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그러는 사이 재판부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과 김명수 사법부가 북의 눈치를 봤을 수 있다.
1994년 고(故) 조창호 소위의 귀환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돌아왔다. 대부분 자력 탈출이거나 인권 단체가 도운 경우이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구출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국방부와 외교부는 과거 중국으로 탈출한 국군 포로 구출 노력을 소홀히 했다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생존한 국군 포로는 13명이다. 대부분 90대다. 2020년 승소한 한씨도 지난 2월 숨졌다. 나라를 지키다 포로가 돼 고난을 겪은 이들을 국가가 돕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대우할 수가 있는가.
조선일보 사설
04.18 ‘국가 기간 시설 타격’ 이석기派 핵심들 줄줄이 국회 재진입

▲진보당 강성희(가운데) 국회의원이 11일 전북도의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 민생정치, 전주 발전을 꼭 이루겠다"면서 전주 시민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오은미 전북도의원, 오른쪽은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연합뉴스
통합진보당의 주축이었던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진보당 강성희 의원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왔다고 한다. 경기동부연합은 강성 주사파 운동권 그룹이다. 그 핵심 멤버들은 과거 이석기·이정희·김재연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이들 중 한 명은 이석기 전 의원 경기도구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진보당은 자신들이 내란 선동으로 강제 해산된 통진당 후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당을 만든 핵심 인사들은 통진당 멤버였다. 강 의원도 이석기 전 의원의 후배로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강 의원의 보좌관들도 마찬가지다.
통진당은 폭력 혁명으로 북한 체제 실현을 목적으로 했던 위헌 정당이다. 애국가를 거부하고 유사시 국가 기간 시설 타격을 모의한 반국가단체였다. 대표 격인 이석기 전 의원은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9년을 받았다. 진보당은 최근 간첩 수사와 관련해 ‘국정원을 해체하라’고 했고, 한미 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강 의원은 국회 등원 첫날 “이석기 전 의원은 조작과 정치 탄압에 의해 희생됐다”며 복권을 주장했다.
최근 간첩단 혐의로 기소된 제주 지하조직 총책은 통진당 출신의 진보당 당원이었다. 창원 ‘자주통일 민중전위’ 관계자도 진보당 당직을 맡아 정계 진출을 시도했다. 진보당은 아직도 이들 간첩 당원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통진당과 다르다’는 믿지 못할 말만 되풀이한다.
강 의원은 국회 국방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국방위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군사 기밀 정보를 다룬다. 여기에 국가 전복을 시도했던 세력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첨단 무기 체계와 작전 계획 등 기밀이 새나갈 수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늦게나마 국민의힘이 소속 의원을 국방위로 보내 강 의원의 국방위 진입을 막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이다.
과거 이석기 등 통진당 의원들은 국방부에 한미 훈련과 북 도발 대응 기밀 자료 등 70건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진보당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2012년 통진당은 민주당과 선거 연대를 통해 원내 13석을 얻었다. 이번 진보당 당선도 민주당의 불공천 덕분이었다. 진보당은 선거 내내 ‘고맙습니다. 민주당’ 현수막을 걸고 한 몸인 듯 행동했다. 내년 총선에서도 민주당과 연대를 추진할지 모른다. ‘제2의 통진당’은 막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18 [단독] '짝퉁 쿠쿠' 말고 또 있다…北, 개성공단 공장 30곳 무단가동

▲북한이 최근 개성공단 내 우리 기업의 공장 30여곳을 무단으로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성공단은 2016년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전면 폐쇄됐다. 연합뉴스
북한이 2016년 2월 전면 폐쇄된 개성공단 내의 한국 공장 30여곳을 무단 가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북한이 무단 가동하던 우리 기업의 공장은 10여곳에 불과했는데, 최근 그 규모가 3배 가까이 늘었다. 과거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125개 한국 기업 소유의 공장 중 설비 가동이 가능한 곳을 추려 돈벌이 수단으로 불법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17일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북한이 개성공단 공장 내 설비를 불법적으로 가동하고 공단 폐쇄 당시 우리 기업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원자재까지 임의로 사용하는 정황을 확인했다. 군 관측 카메라를 비롯한 정보자산을 활용해 개성공업지구의 전반적 동향을 파악한 결과다. 북한의 이 같은 행태는 재산권 침해일 뿐 아니라 남북 투자보장 합의서 및 개성공업지구법 위반에 해당한다.
관련 사정에 밝은 정보 관계자는 “북한은 과거에도 암암리에 개성공단 우리 기업 소유의 공장과 설비를 외화벌이에 활용했는데 최근엔 아예 대놓고 공장을 본격 가동해 물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다”며 “심지어 북한이 개성공단 시설을 활용해 임가공한 물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브로커가 북·중 접경지역은 물론 국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北 최대치로 개성공단 불법 활용"
북한은 현재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개성공단 시설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정보 소식통은 “개성공업지구의 전력 사정과 버스 등 북한의 운송 차량 보유량을 감안할 때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최대치로 가동할 수 있는 공장이 30여곳이고, 현재 정확히 그 정도 규모의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중 쿠쿠전자·사마스전자·명진전자·제씨콤 등 한국 기업의 공장 20여곳에선 전기·전자 장비 등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큰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정보당국이 브로커의 활동 내역과 북·중 간 유통된 제품을 조사한 결과 이 중 일부는 평양백화점 등에서 자체적으로 판매하고, 나머지는 중국과 러시아 등을 거쳐 수출한 뒤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생산·판매하는 대표 상품은 밥솥이다. 과거 개성공단 폐쇄 당시 한국 쿠쿠전자는 완제품 1만여개와 완제품 42만여개를 생산할 수 있는 부품을 공장에 남겨둔 채 철수했는데, 북한은 이를 활용해 밥솥을 생산한 뒤 ‘압력밥가마’라는 상표로 평양백화점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불법 생산된 ‘짝퉁 쿠쿠’는 6인분 밥솥의 경우 50달러, 10인분 밥솥은 80달러에 판매된다고 한다.

▲섬유 임가공은 북중 교역이 이뤄지는 대표 분야다. 북한은 개성공단 공장 10여곳을 무단 사용해 섬유 및 의류 봉제 작업을 거친 뒤 중국 측과 불법 교역을 확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원·범양글러브·IS레포츠 등 또 다른 8~10곳의 공장에선 섬유·의류 봉제 등 임가공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2017년 9·12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2375·2397호)에 따라 섬유 제품과 전자 기기를 수출할 수 없다. 하지만 개성공단 공장에서 불법적으로 가공·생산한 제품을 중·러 등 우방국의 유통망을 활용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제재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자금으로 활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10년 만에 장관 성명 "강력 경고"
지난 6일 통일부가 “개성공업지구 내 우리 기업 공장을 무단 가동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북한에 발송한 배경엔 이 같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북한은 통지문 수령을 거부한 데 이어 이튿날인 지난 7일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및 군 당국 간 통신선을 일방적으로 차단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본인 명의 성명을 발표해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사용을 규탄했다. 뉴스1
한국의 문제 제기에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직접 나섰다. 권 장관은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무단 가동은) 결국 북한 스스로를 고립시켜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고 비판했다. 통일부 장관이 본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한 건 2013년 7월 이후 10년 만이다.
북한이 자존심을 버린 채 개성공단을 무단 사용하는 건 대북제재가 사방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안보리는 2006~2017년 총 13건의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했고, 북한은 외부와의 교역 및 경제 협력이 사실상 불가능한 외톨이 국가로 전락했다. 우선 핵심 광물이 풍부한 자원 부국으로 평가받지만 일체의 수출이 불가능하다. 해산물·식료품·농산물·섬유제품도 마찬가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또 북한 주민의 해외 노동은 전면 금지됐고, 북한을 드나드는 모든 화물은 검색 대상이다. 경제·산업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원유(400만 배럴)·정유(50만 배럴) 수입 역시 상한선이 설정돼 있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후 지난 30년간 북한 정권이 핵·미사일 고도화에 집착하며 야욕을 키우는 사이 북한 경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유다.
주민은 굶는데 핵·미사일에 돈 '펑펑'
하지만 북한은 아사(餓死)자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한 ‘핵 무력 노선’을 강화했다. 지난해 73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데 5억6000만 달러(약 7200억원·한국국방연구원 추산)를 쏟아 부었다. 1년 치 식량 부족분(2022년 기준 120만t)을 사고도 남는 돈이다.

▲북한은 지난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핵무인수중공격정' 수중폭발 시험을 진행하는 등 핵 위협 강도를 높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엔 총 9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 중 3발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었다. ▶핵 어뢰 시험 발사 ▶모형 핵탄두 공중 폭발 시험 ▶전술 핵탄두 ‘화산-31’ 공개 등 최근 북한의 무력 도발 동향엔 핵무기 실전 배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온갖 제재에 포획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을 체득한 셈이다.
북한의 이 같은 제재 회피는 국경 봉쇄가 풀릴 경우 한층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모든 북·중 접경 지역이 불법 교역의 창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북·중 교역의 핵심 지역인 중국 단둥(丹東)을 중심으로 북한이 조만간 국경을 개방할 것이란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방역의 일환으로 2020년 국경을 전면 폐쇄했다. 하지만 탈코로나화 조짐을 보이며 국경 개방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사진은 북중 최대교역 거점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 세관. 연합뉴스
외교 소식통은 “단둥 등 북한 접경지역의 무역회사와 상인들은 이미 교역 재개를 위한 준비 작업까지 끝마쳐 놓은 상황”이라며 “지난해 하반기에 이미 철도 교역 확대를 위한 북·중 실무 협의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고, 2~3개월 안에 단둥을 통한 육로 교역도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봉쇄 해제시 제재 회피 급증할 듯
실제 북·중 무역 규모는 지난해부터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가 발표한 지난해 북·중 무역총액은 10억 2771만 달러(약 1조 3400억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었고, 특히 2021년(3억 1800만 달러)와 비교했을 때 3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은행이 추산한 2021년 북한의 무역 총액은 7억 1000만 달러인데, 북한 입장에선 중국과의 교역이 전체 교역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북한의 우방국인 러시아 역시 지난해 11월 연해주 하산역과 북한 두만강역을 잇는 북·러 철도 교역을 재개한 이후 교역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식량과 원유를 제공하고 광물을 지급받는 등의 불법 환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019년 위성사진에 포착된 북한 육퉁호의 불법 해상환적 현장. 연합뉴스
중·러는 공식 교역 통계에 잡히지 않는 대북 불법 해상 환적도 확대하고 있다. 북한이 식량과 원유·정유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광물 등 대북제재에 따라 수출이 금지된 품목을 받는 식이다. 중·러가 북한의 제재 회피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뒷배’ 역할에 나서며 사실상 핵·미사일 개발을 용인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보당국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제재의 빈틈을 뚫고 생존법을 체득하며 ‘제재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북제재가 없을 때와 비교하면 같은 노력 대비 북한이 얻는 수익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새로운 수입원을 차단하는 신규 제재를 강화하고 기존 제재망의 빈틈을 메워, 북한이 제재를 회피했을 때의 리스크와 기회 비용을 키우는 방식으로 압박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dino87@joongang.co.kr, chung.yeonggyo@joongang.co.kr
04-18 한국도 핵잠수함 보유 나설 때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전쟁 지정학에서 한국은 최악
러 태평양함대 포세이돈 배치
北은 핵어뢰와 화성-18 위협
동해가 미국의 사활 걸린 바다
美 불신 탓 실패했던 핵잠수함
尹대통령 방미 때 담판 필요성
미국 등의 대리참전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전 세계에 미치면서, 민주주의 선진국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란 정치학 가설이 무너졌다. 전쟁은 선진국이냐 민주주의냐가 아니라 오직 지정학적 위치에 좌우됨을 알게 됐다. ‘우리 옆에 누가 있는가’ 이게 전쟁을 결정짓는다. 우리 인접 북한·중국·러시아 모두 전쟁 불사 자세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는 세계 최악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4대 함대 중 핵무기를 주로 다루는 북방함대가 북극해에서 핵어뢰 ‘포세이돈’을 장착한 벨고로드 잠수함을 동원한 대규모 훈련에 들어갔다. 포세이돈은 수중에서 100Mt 위력의 핵탄두를 터트려 적 해안에 500m의 방사능 쓰나미를 일으키는 재앙적인 무기다. 현재 국방장관급 회담을 진행 중인 중·러는 지난 3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무제한 협력’의 세부 사항을 협의할 것이다. 이 시기에 맞춰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함대가 최고 수준의 전투준비태세를 발령하고 대대적인 군사훈련에 들어갔다.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견제하는 무력시위로 보이며, 미국 전쟁연구소는 이런 러시아의 군사훈련들을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매력 공세라고 평가했다.
북한도 포세이돈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핵무인잠수정 ‘해일’을 보여주며 미국 항모전단을 타격하겠다고 압박하더니 급기야 고체연료 장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8형’을 발사해 미국을 기습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완성 직전임을 과시했다.
동시다발로 도전받는 미국의 전력은 탈냉전 이후 크게 축소돼 전 세계를 동시에 커버하는 일이 힘겹다. 미국은 현재 총 50척의 공격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작전-정비-훈련의 3직제로 돌아가는 해군 함정의 특성상 미국이 현시점 동시에 작전 투입할 수 있는 잠수함은 17척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할 북해, 지중해, 남중국해, 동중국해, 미국 동·서 연안 구역 등에서 작전할 잠수함이 부족해, ‘오커스(AUKUS)’를 창설하고 호주에 핵잠수함을 보유케 하여 남중국해의 대중국 견제 작전의 일부를 맡기려 했다. 그러나 호주는 2022년 좌파가 집권했고, 핵잠수함으로 대중국 작전은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는 포세이돈을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함대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고, 북한은 핵어뢰 ‘해일’을 만들었다. 이제 남중국해가 아니라 동해가 미국의 사활이 걸린 바다가 된 것이다.
한·미·일은 대잠훈련을 정례화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대잠훈련의 타깃은 포세이돈과 해일을 보유한 동해의 러·북 해군, 서해와 동중국해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중국 해군이다. 이제 편이 분명해졌다. 이 부분에 대한 정쟁도 크게 없다. 국민도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의 위험성을 알고 한·미·일 군사 협력에 대한 이해가 됐다는 증거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더는 경제논리를 들며 주변 눈치를 봐선 안 된다.
정부는 한미동맹 70주년을 즈음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역사적 모멘텀으로 만들어내는 기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은 마하 17의 속도로 적진을 타격하는 사거리 2700㎞의 극초음속미사일 ‘다크이글’을 만들었다. 이를 태평양지역에 3군데 배치하겠다고 했는데, 가장 효과적인 곳은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주한미군기지다. 이 다크이글의 배치를 허용해 주는 대가로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해는 한국 해군 핵잠수함이 확실하게 전담하겠다고 제안한다면 미국으로서도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다. 호주의 예로 봤을 때 정권 교체에 따른 신뢰의 문제가 있겠지만, 제도적 보완 장치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에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핵잠수함 보유 공약을 윤석열 정부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모든 주변 정세가, 미국이 한국의 군사력을 크게 필요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후손들의 국사 교과서에 ‘동맹 70주년을 기념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잠수함 보유를 이끌어 내어 이미 경제 강국이 된 대한민국이 군사 강국으로도 인정받아 국제 외교 무대의 최상위에 우뚝 서게 됐다’고 기술된다면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겠는가.
문화일보
04-19 北 0.01초 만에 南 해킹…사이버戰 역량 획기적 강화해야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전쟁’은 이미 세계 도처에서 진행 중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이 18일 발표한 내용은 상징적이다. 북한 해커 조직 라자루스는 2년 전부터 인터넷 뱅킹 등 전자금융 서비스를 마비시킬 초대형 사이버 공격을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라자루스는 국내 1000만 대 이상 컴퓨터에 설치된 유명 금융보안 인증 소프트웨어 ‘이니세이프’를 1차 공격 수단으로 삼았다. 여기에 악성 코드를 심은 뒤 이것이 설치된 PC가, 방아쇠 역할을 하는 특정 언론사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해킹돼 좀비 PC가 되도록 하는 수법이다. 그런데 해킹 시간이 0.01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은 좀비 PC를 대량으로 만들어 디도스 공격을 하기 위해 61개 기관 PC 207대를 해킹했다.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10월 신고를 받고 차단에 나선 덕분에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칫 금융망이 마비돼 국가적 재난이 초래됐을 수도 있었다. 북한은 바로 이 순간에도 다른 방식으로 그런 사이버 공격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대대적인 사이버 공격부터 자행했다. 북한의 대남 해킹 행태를 보면 이를 모방하는 의구심도 든다. 라자루스를 비롯해 김수키 등 북한 해커 조직은 가상화폐 해킹 등으로 매년 수억 달러씩 핵·미사일 개발 비용을 조달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3월 발표한 ‘국가 사이버 안보전략’에서 “북한 해킹 조직이 핵 개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파괴하고 해체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공조 대책을 마련하고, 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 등을 통해 독자적 사이버전 역량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4.20 간첩 당원 진보당 대표가 건설 노조를 숙주 삼고 있었다니

▲2022년 10월 3일 스페인으로 출국하는 장지화(오른쪽) 진보당 공동대표. /장지화 페이스북
통진당을 이은 진보당 세력들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등을 숙주 삼아 어떻게 세력을 키우고 횡포를 부렸는지 알 수 있는 한 단면이 드러났다. 진보당 장지화 공동대표는 지난 11개월간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민노총 건설노조 소속 ‘현장 팀장’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노임 3700여 만원을 받아 갔다. 그가 해당 기간에 집회·시위에 나가거나 외국에 간 날에도 현장에 출근해 일을 한 것처럼 처리해 건설사에서 일당을 타 갔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통진당을 장악했던 경기동부연합이 건설노조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동부연합은 강성 주체사상파 운동권 그룹이다.
장 대표 외에도 통진당 출신 인사들이 민노총 건설노조를 통해 대거 건설 현장에 취직했는데, 상당수는 ‘정부 규탄 대회’ 같은 집회·시위에 참석하느라 일을 하지 않은 날에도 일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이름만 걸어 놓고 정치 활동을 하면서 일당을 꼬박꼬박 챙긴 것이다. 진보당은 이 보도에 대해 “단체협약에 따른 공식적인 노조 활동”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른바 통상적인 수준을 넘는 이런 활동을 노조 활동이라고 볼 사람은 없다.
진보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민중주권시대’ 등의 겉 명분을 걸고 있다. 그래 놓고 진짜 일하는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을 가로채온 것이다. 진보당을 만든 핵심 인사들은 통진당 멤버였다. 통진당은 애국가를 거부하고 유사시 국가 기간 시설 타격을 모의한 반국가단체였다. 대표 격인 이석기 전 의원은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9년을 받았다. 그 후에도 최근 드러난 간첩단 사건에 진보당 당원들이 연루돼 있다. 이런 세력이 건설, 택배, 마트, 비정규직 노조에 스며들어 돈을 챙겼다. 건설노조는 2020년 7월 ‘이석기 석방 시위’에 노조원을 최소 2000명 동원하기도 했다.
지난 5일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당선된 것 자체가 고장 나고 왜곡된 우리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당은 지금도 간첩 당원에 대한 입장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이들에 대한 경각심과 위기의식 대신 자신들의 얄팍한 정치적 이익 계산만 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20 [단독] 3년 전 이석기 석방 차량시위…실제는 ‘국정원 포위 작전’이었다
본지, 당시 시위 백서 입수

▲2020년 7월25일 서울 전역에서 이뤄진 ‘이석기 의원 석방 차량 시위’ 모습. 이 행사에 참여한 건설노조원은 "건설노조로부터 사실상 강제 차출 당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2열 세번째 차량은 민노총 건설노조 차량. /건설노조 제공
2020년 서울 시내 곳곳의 교통을 마비시켰던 ‘이석기 석방 차량 시위’의 숨은 의도는 차량 2000여 대를 동원해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을 둘러싸는 ‘국정원 포위’였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을 배출한 운동권 단체 ‘경기동부연합’이 기획한 일이었다.
19일 본지가 입수한 구명위의 당시 시위 백서 ‘하나의 호흡’에 따르면, 이날 있었던 차량 시위는 2단계로 구성됐다. 신촌과 동작, 청와대, 성신여대, 몽촌토성, 가락시장 등 서울 시내 6곳에 분산 집결, 차로를 부분 점거하고 저속으로 줄지어 주행하는 것이 ‘1차 행동’이었고, 이 차량들을 오후 7시까지 국정원 앞으로 총 집결시키는 것이 ‘2차 행동’이었다.

▲2020년 7월25일 이석기 석방 차량 시위를 기획한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 피해자 구명위원회’는 시위를 끝내고 백서 ‘하나의 호흡’을 발행했는데, 이 백서에는 차량 2000대를 동원한 국정원 포위 작전이 잘 나와 있다. /건설노조 제공
시위 차량들이 국정원으로 향하는 길목의 육교 5곳에는 서로 다른 상징물과 현수막을 걸었다. 첫번째 육교에는 이 전 의원이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린 가로 6m 초대형 입간판을 세웠다. “동지들 반갑습니다!”라는 현수막도 걸었다.
원래는 가로 3m짜리로 계획했다가 크기를 배(倍)로 키웠는데, 백서엔 그 이유가 이렇게 적혔다.
“육교 길이만 10m라 (이 전 의원이) 너무 왜소해 보였다.”

▲2020년 7월25일 이석기 석방 차량 시위의 최종 집결지인 서울 서초구 국정원 인근 한 대로 위 육교. 가로 6m 크기의 이석기 전 의원 입간판이 서 있다. 사람들은 이 전 의원의 팔 부분이 부러질까 봐 수십분에 걸쳐 이를 떠받들고 있었다고 한다. /건설노조 제공
집회 참가자들이 뒤이어 통과하게 되는 육교들에는 “자주의 시대, 평화의 시대를 만드는 청년들이 이석기 의원의 석방을 함께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이제는 답해주십시오” 등의 현수막이 걸렸다. 네번째 육교에는 바람개비 수십여 개가 난간에 달렸고, 그 위로 주최 측이 섭외한 12명이 “불어라 이석기 의원 석방 바람”이란 글자가 각각 한자씩 적힌 우산을 들고 섰다.

▲2020년 7월25일 이석기 석방 차량 시위 때 바람개비를 준비하고 있는 주최 측 /건설노조 제공
다섯번째 육교 근처에는 “우리의 힘으로 감옥문은 열립니다” 등의 현수막이 걸린 크레인이 설치됐는데, 이 크레인의 위치가 정확히 국정원 메인 출입구였다. 국정원의 위치는 기밀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서울 6개 지역에서 차량 2000대를 동시에 출발 시켜 한날한시에 국정원을 포위하는 이들의 계획은 수월하게 완수됐다.

▲2020년 7월25일 서울 서초구 국정원 입구 앞에 설치된 크레인. 이날 서울 전역에서 시위를 벌인 2000여대의 차량 시위대는 오후 7시에 국정원이 있는 서울 서초구 한 대로로 동시에 모였다. 이 시각 국정원 출입구에는 이석기 석방 현수막을 든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크레인 5~6대가 설치됐다. 국정원 위치는 기밀사항이다. /건설노조 제공
이날 시위의 배후는 경기동부라는 분석이 나온다. 백서에는 이날 시위에 동원된 차량 2000여대 중 최소 500대를 건설노조가 동원하는 과정이 상세히 나와 있는데, 그 지시자가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장 김창년씨였다. 김씨는 경기동부 출신이다.
익명을 원한 건설노조 간부는 “건설노조에서는 그날 시위를 ‘국정원 둘러싸기’로 부른다”며 “건설노조 안에서 이 시위가 경기동부 작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서를 보면 김창년 지부장에게 이번 시위 참여를 권유한 ‘익명의 인물’이 나온다”며 “건설노조 조직 체계상 김 지부장에게 이런 걸 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수도권남부지역본부장과 경기도건설지부장뿐인데, 이들도 모두 경기동부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 피해자 구명위원회’가 발행한 백서 ‘하나의 호흡’에 실린 사진. 시위 사진에 "가자 대전교도소로" "우리가 감옥문을 열자"는 문구가 써있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갇혀있던 곳이 대전교도소다. /건설노조 제공
경기동부는 1980~90년대 주사파 운동권 핵심 세력으로서 민노총 건설노조에 스며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통진당과 후신 격인 진보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조선일보 최훈민 기자
04.20 [단독] "개성공단에 中 끼면 일 커진다" 정부 초강력 경고 배경
정부가 최근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사용을 문제로 삼으며 강력한 ‘경고장’을 잇따라 보내는 배경은 향후 중국 자본의 개성공단 진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여권의 고위 인사가 19일 밝혔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중국 인력이나 시설이 개성공단에 유입될 경우, 이는 단순히 한국측 자산에 대한 관리 등 남북간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정치ㆍ외교ㆍ군사적 사안으로 비화할 소지가 있다.

▲지난 1월 25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적막하다.연합뉴스
여권 고위 인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에 중국을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운영하려 한다는 정황이 파악돼 분명한 경고와 강력한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만약 북한과 중국 당국이 정책적으로 개성공단 운영 움직임을 보일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다양한 정보자산을 통해 북한이 중국을 향해 사실상의 개성공단 투자 유치 사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미 개성공단 내 30여개 공장이 가동된다는 사실은 물론, 무역회사로 가장한 ‘송도무역총회사’ 등을 통해 북한 당국이 사실상 직접 개성공단을 중국에 홍보하는 정황과 접경지에서 개성공단 시설을 활용한 ‘위탁 임가공’ 브로커들이 활동하는 내역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가동 관련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러한 내용은 대통령실에도 보고돼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논의됐다고 한다.
정부는 대책 논의 직후인 지난 6일 통일부를 통해 ‘개성공단 자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대북통지문을 보내려고 했지만, 북한은 통지문 접수를 거부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날인 7일 남북통신연락선ㆍ군 통신선을 통한 교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북한의 무책임한 태도가 이어지자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장관 명의의 성명을 내고 “북한의 위법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법적 조치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며 국제사회와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장관 명의의 성명이 나온 것은 10년 만이다. 개성공단 관련 문제를 국제사회와 공조해 풀겠다는 것으로, 그만큼 이번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18일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에 따르면 북한이 개성공단 시설을 무단 사용하고 있다는 정황이 담긴 열적외선 위성사진이 공개됐다. 열적외선으로 온도를 감지하면 온도가 높은 곳은 '붉은색', 낮은 곳은 '푸른색'으로 나타나는데 열을 발산하는 붉은색 구역이 4곳 식별됐다. 연합뉴스
정부의 이 같은 초강경 대응은 해당 사안이 초래할 수 있는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익명을 원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만약 개성에 중국이 관여하게 되면 향후 개성공단 문제는 남북이 아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란 G2가 직접 관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 될 수 있다”며 “군사적 측면에서도 만약 휴전선 인근인 개성에 중국 자본이 들어갈 경우 이는 일종의 ‘인계철선’의 역할까지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중국 자본이 직접 들어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2017년 9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375호에는 “북한과의 모든 합작ㆍ합영사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를 무시할 경우, 이는 안보리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2017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유류 공급을 대폭 줄이는 내용 등을 포함한 ‘대북제재결의 2397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17년 유엔 안보리는 4건의 결의안을 채택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그러나 당시 안보리가 제재결의안 2375호를 의결했던 과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해당 제재안이 나오기 전 북한은 실제로 개성공단을 사실상 중국에 팔아넘기려고 시도하다 ‘꼬리’를 밟혔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10일 당시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하자, 북한은 바로 다음 날 남측 자산을 동결하고 한 달 뒤 개성공단 자산의 청산을 선언했다. 일방적인 자산 몰수 선언 이후 북한은 홍콩과 중국 자본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개성공단 유치전을 벌였다. 제재결의안은 이러한 정황이 파악된 이후에 의결됐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과거 북한의 중국 자본 유치전에 김양건 당시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정권의 고위층이 직접 개입했던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며 “개성공단 관련 건에 대해서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북한과 중국이 당국 차원에서 언제든 정책적으로 관여해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공교롭게 북한은 지난달 27일 코로나 국경 봉쇄 이후 처음으로 주북한 중국대사의 입국을 허용했다. 또 지난 18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친서엔 “북ㆍ중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의 고위 인사는 “설마 북한과 중국이 국제사회의 제재 등의 부담을 안고 개성과 관련해 그렇게까지 무모한 결정을 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안전성을 미리 확보해 둬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북한의 개성공단 불법 활용과 관련한 법적조치를 취할 뜻까지 밝힌 상태다. 다만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나 국내 사법 기관의 판단을 구하더라도 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정대진 원주한라대 교수는 “정부의 강경한 대응은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일종의 ‘내용 증명’ 보내며 법적 근거와 명분을 쌓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물론 실효성은 떨어지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북한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04-20 尹 ‘고위력 무기 개발과 나토보다 강한 핵공유’ 관철해야
오는 26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보도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세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첫째, 윤 대통령은 대북 감시, 정찰, 정보 분석 능력 강화와 함께 “초고성능 고위력 무기들을 개발 중”이라고 공개했다. 킬체인, 대량응징보복 능력 강화로 3축 체계를 튼튼히 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보다 강한 핵 공유로 북한 도발을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현재 실전 배치된 최상급 무기는 현무4다. 4∼5t의 탄두 1발로 북한 주석궁을 초토화시키는 위력을 지녀 괴물 미사일로 불린다. 이보다 고위력이라면 군이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때 영상 공개한 현무5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윤 대통령은 “핵 공격 대응 차원에서 나토 이상의 강력한 대응이 준비돼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재래 무기로 북한의 핵 공격에 맞서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핵무기에 맞선 나토의 기본 전략은 ‘핵 공유’여서, 한미 또는 한미일 3국 사이에 그보다 더 강력한 핵 공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미 국방부도 19일 “북한이 핵 공격을 하면 반드시 핵으로 보복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이 기획과 실행 등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술핵이 독일·벨기에 등에 배치된 것처럼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북한 도발 시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잠재적 핵 능력 확보를 위해 농축·재처리 문제도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려야 한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윤 대통령은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국제사회에서 묵과할 수 없는 민간인 학살,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태가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긴 어렵다”고 했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서 당연한 인식이다. 김일성의 침략에 맞서 유엔 지원으로 국가를 지킨 6·25전쟁 교훈을 돌아보면, 소극적으로 비칠 정도다.
문화일보 사설
04.21 ‘내란 선동’ 이석기 추종 세력이 국정원 포위 시위하는 나라

▲국정원 입구 앞에서 크레인 시위 - 2020년 7월 25일 ‘이석기 석방 차량 시위’ 주최 측이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입구에 설치한 크레인들. 크레인 5~6기에 각각 사람이 올라타고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흔들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2020년 7월 서울 시내 6곳에서 차량 시위를 벌인 뒤 국가정보원 앞에 집결했던 ‘이석기 석방 시위’의 주도 세력은 민노총 건설 노조였다고 한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은 유사시 국가 기간 시설 타격 등 내란 선동 혐의로 수감된 상태였다. 건설 노조를 장악한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의 지시로 노조원 최소 2000명과 차량 500대가 이 시위에 동원됐다. 경기동부연합은 강성 주체사상파 운동권 그룹이다. 시위대는 국정원 길목에 이씨 사진 대형 입간판을 세웠고 국정원 입구 앞에는 ‘우리의 힘으로 감옥 문은 열린다’ 등의 현수막이 걸린 크레인도 여러 대 설치했다. 친북 세력이 노조에 침투한 뒤 국가를 지키는 핵심 안보 기관을 포위하려 했다. 북한 추종 세력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이용해 바로 그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2006년에도 통진당의 전신이었던 민노당 간부가 북한 간첩 활동을 하다 붙잡히자 민노당원들이 국정원 앞에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그 시위대 중 한 사람이 다음 날 간첩 혐의로 체포됐고,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간첩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청주간첩단’ 사건은 현재 1심 재판만 1년 7개월째 진행 중이다. 재판부 기피 신청 등 지연 전술 탓이다. 그사이 구속됐던 일당 3명은 모두 풀려났다. 자유 민주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핵심 안보기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재판 제도를 농락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21 韓美 육군 최고 戰士 ‘블루 배지’ 지옥테스트에 한국군 96명 ‘최대 규모’ 도전장

▲한미 육군 최고의 전사를 가리는 E3B 자격시험에 도전장을 내민 한국군 장병이 20일 경기도 포천시 로드리게스 훈련장에서 시험에 대비해 전투상황을 가정한 부상자 응급처치 과정을 숙달하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한·미 육군, 24∼28일 E3B 자격시험에 한국군 역대 최대 규모 출사표
화기 숙련·응급처치·독도법·급속행군 등 지옥테스트로 불려
전문성 중점 평가,작년 합격률 13~32%…로드리게스훈련장서 실시
한·미 육군이 최고 전사(Best Warrior)를 가리기 위해 오는 24일부터 경기도 포천시 로드리게스 훈련장에서 치르는 올해 E3B 자격시험에 한국군이 역대 최대 규모인 96명이나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E3B란 미국 여단급 부대가 시행하는 자격인증평가로 우수보병휘장(EIB)·우수야전의무휘장(EFMB)·우수군인휘장(ESB)을 통틀어 가리키는 명칭으로 미군들 사이에서 ‘지옥테스트’로 불린다.
우리 육군이 2015년부터 선발하고 있는 ‘최정예 300 전투원’의 모체가 된 시험이기도 하다. ‘블루 배지’로 불리는 E3B 휘장은 미 육군은 물론 전 세계 군인들에게 최고의 영예로 평가받는다. 올해는 한미연합사단·미2사단(연합사단)의 주관 아래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E3B 자격시험이 치러진다.
E3B 자격시험에는 장병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평가 대상으로, 5일 간 시험 기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미군 기준에 맞춘 체력 측정을 통과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M240·M2 기관총, AT-4 대전차화기 등 한국군에게는 생소한 미군 화기를 다루는 숙련도 평가 항목도 포함돼 있어 더욱 까다롭다. 육중한 대전차화기(재블린)도 일일이 조립해 발사해야 한다.
E3B는 전장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화기 숙련도와 전투상황 하 부상자 응급처치, 전투정찰 및 경계능력, 지도를 활용한 주·야간 방향 탐지 및 목표지점 도달 능력 등을 평가한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16㎏의 군장을 메고 19.2㎞ 급속행군을 한다. 시험은 지난해 기준 합격률이 EIB 32%, ESB 13%, EFMB 17%에 불과해 미군 내에서도 ‘지옥 테스트’로 불린다.
우리 군은 2016년부터 E3B 자격시험에 참가했으며,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인 96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장병을 포함해 각 군단에서 희망자 중 5~9명을 선발했다. 미군 장병은 1000여 명이 시험에 도전한다. 연합사단은 언어 장벽 등 여러 제한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미군용 E3B 교본의 번역본을 발간했다.
1군단 박준호 원사는 "언어 장벽과 피로 누적으로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다"면서도 "다음 주면 체력측정, 주·야간 독도법, 과제평가, 군장 뜀걸음 등 평가가 시작되는데 꼭 합격해서 대한민국 군인의 우수성을 알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4.21 북한의 선제 핵 공격, 얼마나 가능할까

북한의 핵 교리는 지난해 더 공격적이고 핵무기 선제 사용 권리를 주장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지난 13일 북한이 발사한 화성-18호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기술적 역량이 크게 개선됐음을 보여줬고, 이는 한반도 안보에 더 큰 위협을 의미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북한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들면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북한에 대한 공격을 억제·격퇴하는 데 목적을 두겠다던 2013년의 핵 무력 법제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지난해 9월 발표한 핵 무력 법제화 개정 6항에는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을 명시했다.
김정은, 공세적 사용 준비 독려
뚜렷한 명분 없는 공격 우려돼
핵 역량 한계로 실현성은 낮아
그 이후 상황은 더 악화했다. 지난달 27일 김 위원장은 “우리가 언제든 어디에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하라”며 ‘공세적 태세’로 핵무기 사용을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13일 고체연료 ICBM 발사 때는 “치명적이며 공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격에 대한 단순한 대응이 아닌 핵무기 선제공격 가능성을 강조하는 추세다.
북한이 스스로 부여한 핵무기 선제공격권을 언제 쓸 것이냐는 여전히 모호하다. 북한은 자신이 정한 헐거운 기준에 따라 공격받지 않더라도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지닌다고 우기고 있다. 늘 우려스럽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렇다. 코로나19 장기 봉쇄에 따른 타격, 극심한 식량난 등으로 인해 북한이 불안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지지해왔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어려움에 부닥친다고 중·러가 선뜻 나설 수 있느냐는 확실하지 않다. 북한이 주권을 지키겠다는 명분에 따라 자칫 오판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주권 모독이나 내부 붕괴에 대한 자포자기의 대응으로 한국이나 미국에 대한 명분 없는 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해야 하는가. 적어도 김 위원장의 언사를 보면 북한은 그러한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첫째,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에 따르면 북한의 실질적 핵 역량은 질적 측면에서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미사일 기수가 양적으로 부족하다. 북한은 아직 전술 핵탄두 실험을 한 적이 없다. 거친 허세 이면에는 핵전쟁을 치를 역량이 없다는 자각이 존재한다.
둘째, 최근 북한의 핵 교리는 일관성이 없다. 김 위원장의 한층 격앙된 언사에도 지난해 9월 발표한 핵 교리 5항(‘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보유국과 야합해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이 나라들을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은 그대로 남아있다. 대북 공격에 가담하지 않는다면 한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핵보유국인 미국은 논외다.
셋째, 우크라이나전쟁은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효과를 입증했다. 아마도 북한의 군사 전략가들은 공중에서 요격되는 러시아군 미사일을 지켜보며 불편했을 것 같다. 미국과 한국은 고도화된 미사일 방어체계를 확보하고 있지만, 북한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넷째, 강력한 억지력이다. 북한이 한·미를 공격하면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일각에서 미국이 과연 서울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과연 북한이 김 위원장의 궁궐 같은 저택과 요트, 평양의 노동당 청사를 희생할 준비가 됐냐는 질문도 똑같이 할 수 있다.
이런 네 가지 이유로 우리가 안도할 수는 있지만, 북한이 선제 핵 공격을 감행하느냐 아니냐는 김 위원장 손에 달렸다. 김 위원장이 이런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북한 간부들이 김 위원장의 자존심을 거스르며 핵무기 사용이 가져올 문제와 결과를 솔직하게 직언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러한 요인들이 북한의 섣부른 행동 가능성을 낮출 수는 있어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ICBM 고체연료 발사의 환희가 사라지고 나면 김 위원장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적을 섬멸하는 것보다 주민의 먹거리에 집중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핵전쟁이 발발하면 어린 딸 김주애에게 어떤 일어날지도 가끔은 생각해보길 바란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월간조선 04월 호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저희가 지켜주던 국민이 저희에게 또 다른 어뢰를 쏜다는 느낌”
⊙ “천안함을 기억해주시고, 또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대한민국 국민”
⊙ 천안함 탑승자들이 기록한 1차 史料 정리 중… 326호국보훈연구소 만들어
⊙ 수병 출신 아버지,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의 이름을 따서 아들 이름 지어
⊙ “일지 등 점검하고 있는데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기울어”
⊙ “일부가 주장하는 한반도 평화는, 북에 순응해서라도 전쟁을 막자는 것 아닐까”
⊙ 58명 생존자 중 23명은 아직 군복을 입고 있고 35명은 전역
⊙ “천안함 장병들은 특정 지역, 특정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던 군인들”

한 국가의 품격(品格)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그 나라가 어떤 인물을, 어떤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가를 통해서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2km 부근에서 포항급 초계함 PCC-772 천안함이 북한 해군 잠수정 어뢰에 피격, 침몰했다. 46명의 장병이 전사(戰死)했다. 58명은 현장에서 구조됐다. 그런데 그날 이후, 우리 사회에서 천안함을 기억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우리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영웅들을 지금 현재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갑갑하고 죄송한 심정으로 2월 말 최원일(崔元一·54) 전 천안함 함장(艦長)을 만났다.
“처음 3~4년은 술·담배에 의지”
― 곧 3월 26일이 다가옵니다. 어떤 심정이십니까.
“올해가 13주기인데, 매년 제가 느끼는 심정은 똑같습니다. 먼저 간 전우(戰友)들이 보고 싶고, 고통받는 생존 전우들이 많이 생각나고 그렇습니다.”
필자는 2021년 6월 천안함 생존 장병 함은혁 예비역 하사와 정현구 장병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매년 ‘그날’이 다가올 때마다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 짓눌린다고 했다. 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하다고 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공포(恐怖)와 더불어, ‘우리만 살았다’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 생존 장병 모두가 그날이 오면 전우들 묘소에 찾아가서 묘비(墓碑)를 붙들고 울기도 하고, 도무지 생활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함장님도 스트레스나 외상 후 증후군을 겪으십니까.
“네, 있습니다. 항상 2월이 오면, 그러니까 3월이 가까워지면 몸과 마음이 반응합니다. 몸은, 당시에 추웠던 걸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날 부상(負傷)한 부위에 통증을 느끼죠. 실제로 아픈 건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아픈 건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심정적으로는, 좀 심한 고통을 겪는 날이 많습니다. 그 순간이 생각나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룰 정도죠.”
―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고백하자면, 처음 3~4년 정도는 술과 담배에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게 살다가는 그날의 기억을 영영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고, 명상(冥想) 등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또 전우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최원일 함장은 두툼한 자료를 들고 왔다. ‘그날의 기록’이다. “한 권이 아니고 여러 권입니다. 저는 ‘국방부나 해군이 당연히 천안함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진 자료 말고는 아무 곳에도 상세한 기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 공식 기록이 없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공식 기록은 있죠. 《피격사건 백서(被擊事件 白書)》라든가 조사단 조사결과보고서는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 자료는 상부(上部)의 시각으로 작성한 문서입니다. 천안함 탑승자들이 기록한 1차 사료(史料)는 제가 기록하고 모으지 않으면 다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년부터 자료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 공식 기록과 직접 작성한 자료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까.
“예를 들면, 처음엔 승조원이 104명이라고 했죠. 정확하게는 108명입니다. 시험을 본다든가 집안 사정으로 4명이 못 탔어요. 정식으로 보고하고 승함(乘艦)하지 않은 인원입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출동한 인원이 104명, 그중 생존자가 58명, 전사자가 46명입니다.”
‘상부의 시각’

▲2010년 4월 24일 천안함 함수가 인양되었다. 폭침으로 동강 난 선체가 그날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진=조선DB
최원일 함장이 말한 ‘상부의 시각’이란 무슨 의미일까. MBC는 2021년 6월 〈PD수첩 1292회-천안함 생존자의 증언〉을 방송했다. “전역하고 MBC와 인터뷰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천안함 피폭 사건 당시에는 다들 경황이 없었죠. 그래서 당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여러 대응이 다 미흡했던 사실이 나중에 다 판명됐습니다. 저희 함정은 피격 후 전기가 나갔습니다. 통신 장비도 없어졌어요. 그래서 통신이 가능한 수단이라고는 폴더폰이 유일했습니다. 침몰 과정에서 제 전화기는 없어지고 대원들 기기로 통화했습니다. 당시는 통화 녹음 기능이 없었으니까 다 수기(手記)로 적었죠. 그래서 저희 쪽 기록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나중에 기록을 열람하니 제가 일일이 보고했던 기록들이 조금씩 변형이 되고, 왜곡된 부분이 많았다는 겁니다.”
― 어떤 부분입니까.
“예를 들면, 피격 판단 보고 같은 것이 누락되었습니다.”
― 사전에 ‘북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고하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북한은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 이후에 ‘보복하겠다’라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조선중앙방송이라든가 각종 매체를 통해 ‘보복 성전을 하겠다’라고 했죠.”
대청해전(大靑海戰)은 2009년 11월 10일 11시27분, 대한민국 해군과 북한 해군 사이에 일어났던 소규모 전투다. 북한 해군 경비정이 대청도 동쪽 NLL을 1.2해리 넘어왔고, 우리 측 대응으로 월선(越船)한 북 경비정이 반파(半破)되었다. 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북한 경비정은 다른 함선에 예인(曳引)되어 북상하였다. 대한민국 해군이 입은 피해는 함선 외부 격벽의 파손이 전부였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군 수뇌부가 교전수칙(交戰守則)대로 대응해 얻은 승전(勝戰)이다.
“당시 우리 경계 태세는 평상 상태”
― 북이 복수를 공언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었는데, 왜 천안함은 위험 지역인 백령도(白翎島) 가까이 갔던 겁니까? 이런 사정 때문에, 함장이 임의로 그곳에 가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도 있었죠.
“네. 있었죠. 그런데 제가 임의로 그곳까지 갔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제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북의 보복 위협에 대비한 상부 작전 지침에 따라 출동한 것이니까요. 백령도는 적(敵)의 해안포 유도탄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면서도 레이더 탐지가 되지 않는 비교적 안전한 구역입니다.”
― 그런데 뭐가 문제였습니까.
“천안함은 그 구역에서 경비를 하고 있었죠. 대북(對北) 경계가 심화된 상태였는데, 갑자기 1월에 경계 태세가 해제되면서 평상 상태로 전환되었습니다. 전환되었지만, 위협 요소는 계속 상존하고 있었죠. 대(對)잠수함 경계 태세라든가 다른 대북 경계 태세는 상향된 것이 없었고 ‘북한이 공격에 나설 것이다’라는 정보도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함대에서도 저희 배를 백령도 인근에 놔두지 않고, 당연히 더 안전한 아래쪽으로 이동하라고 했겠죠. 그때 당시 우리 경계 태세는 평상 상태였어요. 그러니까 제가 임의로 그곳까지 함정을 몰고 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최원일 함장을 괴롭힌 건 숱한 음모론과 근거 없는 비난이다. 그 기가 막힌 사연은 글 뒷부분에서 따로 다루기로 하자. 천안함에 대한 많은 기록이 있지만, 인간(人間) 최원일, 군인(軍人) 최원일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피격 폭침 전후 그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천안함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웅(英雄)의 일대기(一代記)를 기록하는 마음으로 그의 생애(生涯)를 물었다.
수병 출신 아버지, 유언처럼 海士 입교 권유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
―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꿈이었나요? 해군에 입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최원일 함장님의 이름이 손원일(孫元一·1909~1980년) 제독(提督)의 성함을 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해사(海士) 입교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문과생으로 인문학(人文學)을 동경했어요. 특히 언론 쪽에 관심이 많아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3 여름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많이 편찮으셨습니다. 위독한 상태였죠. 그런데 병상(病牀)에서 아버지가 이러시더군요. ‘네 이름엔 사연이 있다’라고요.”
아버지의 성함은 최순(崔洵·1934~ 2013년). 해군 수병(水兵) 출신으로, 전역 후에는 버스 운송업에 종사했다.
“아버지도, 형님도 외자 이름인데, 제 이름만 ‘원일’이어서 어려서부터 궁금했었죠. ‘해군 시절 동경(憧憬)했던 참모총장님 성함을 따서 네 이름을 지었다. 그러니 해군사관학교에 가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유언(遺言)일 수도 있으니까 일단 제 꿈을 접고 해사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1986년의 일이다. 최원일은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손원일 제독의 전기(傳記)를 10번 정도 읽었다. 그러고 1987년 초 해사에 들어갔다.
어머니 김옥점(金玉點·85)씨는 자신의 꿈을 접은 아들이 안타까웠다. 진해(鎭海)로 면회 와 “지금이라도 퇴교(退校)해 일반 대학으로 가라”고 권유했다. 문과 체질이라 처음에는 생도 생활이 힘들었는데, 어찌어찌 적응해서 무사히 졸업하고 임관했다.
― 해사 시절 최원일 생도는 어떤 생도였습니까.
“제가 함장 할 때는 체중이 80kg 정도였습니다. 몸이 좋았죠. 생도 입교할 때는 60kg 정도로, 아주 왜소하고 마른 체구였어요. 사관학교 들어가면 맨 처음에 가입교(假入校) 훈련을 5주 동안 받습니다. 그 몸으로 훈련 과정을 소화할 수 있겠나 주변에서 다들 걱정하셨어요. 어떻게든 버텨서 입학했습니다.”
― 입교 뒤에는 상황이 나아졌습니까.
“생도 생활하다 보니까, 몸이 적응하는 겁니다. 체력도 올라오고 구보도 잘했고요. 1학년 때는 힘들었지만 ‘2학년 되면 좀 낫겠지’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2학년 때는 ‘3학년 올라가면 좀 낫겠지’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졸업할 때가 되어 있더군요.”
동복 입고 출동, 하복 입고 입항
▲대위 시절 최원일. 한창 연애를 하던 무렵이다.
― 임관 후 첫 임지가 어디였습니까.
“첫 임지가 PC, 초계함(哨戒艦)이었습니다. 저는 초계함을 계급마다 다 탔어요. 네 번을 탔습니다. 초계함 탑승은 출동도 많고 임무도 복잡한 데다 출동 일수도 길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과(兵科)로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중위(中尉)가 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텼다.
“중위 때도 힘들었고 대위 때도 힘들었죠. 군 생활이 항상 힘들었어요. 하지만 힘든 가운데서도 보람이 컸습니다. 대원들과 부대끼면서 뭔가 임무를 성취하고, 저희가 대한민국과 바다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복무했습니다.”
― 초급 장교 시절에 또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정신없이 출동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번 출동하면 거의 한 달을 바다 위에서 보냈어요. 때로는 해상(海上)에서 여러 달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해군은 검은색 동(冬) 근무복, 카키색 하(夏) 근무복을 입습니다. 동 근무복을 입고 출동한 후 반팔 옷을 입고 입항(入港)할 때도 있었죠.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계함을 탈 때 아이들이 한 살, 세 살이었거든요. 해군 퇴근 버스를 보면 아빠 온다고 매일 뛰어나갔답니다. 몇 달을 그렇게 아빠 마중 나갔다가 허탕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더군요. 지금도 청해부대 등 몇몇 함정은 6개월씩 해상 작전을 합니다.”
― 결혼 얘기를 하셨는데 어떻게 만났습니까.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났죠. 졸업 직전에 만나 4년 연애하고 대위 때 결혼했습니다.”
박경수 중사
▲박경수 중사
최원일은 동기 중 늘 선두로 진급했다. 중령 진급 예정일에 동기생들은 상륙함, 정보함으로 발령받았고 최원일은 전투함인 초계함 함장으로 발령받았다. 동기 중 가장 먼저 함장이 된 것이다. 그 배가 바로 천안함이었다. 필자는 2021년 6월 천안함 생존 장병 국방부 앞 데모를 취재한 적이 있다. 최원일 함장과 생존 장병, 그리고 전사자 유족(遺族)과의 사이에 전우애를 넘어서는, 가족애 같은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천안함뿐만이 아니고, 해군 함정을 타는 대원들은 전우라기보다는 가족 같은 전우입니다. 같은 배 타고 의식주 같이하고 가족들보다 더 자주 보기 때문이죠. 특히 천안함 같은 경우는 생사(生死)를 같이했으니까 더 끈끈합니다. 모든 걸 다 봤고, 그때 당시 서로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를 다 아니까요.”
― 생사(生死)를 같이했다고 하셨는데, 전사한 장병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누구 하나를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조금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 그립지만 제가 가장 안타까운 건 뭐냐 하면…. 그날 파도가 많이 쳤습니다. 3월 25일, 피격 전날이죠. 풍랑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파고(波高)가 높았어요. 멀미 때문에 밥을 못 먹을 정도였죠. 피격 직전이 야식 시간이었는데, 어느 정도 파도에 강하고 배에 적응한 친구들이 함미(艦尾)에서 야식을 먹는다든가 휴식 운동하다가 많이 전사했습니다. 제가 2년간 함장을 했는데, 저랑 오래 근무한 친구들이 많이 전사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 그날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군요.
“그럼요. 21시 조금 넘어서 저는 함미에서 함수(艦首)로 넘어왔습니다. 그때 중간 부분에서 마주쳤던, 함미로 야식을 먹으러, 또는 휴식하러 가던 대원들의 얼굴과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 기록을 보다가 제가 또 좀 울컥했던 부분이 있는데, 박경수 중사인가요? 연평해전 참전용사인데 천안함 때 전사했고 안타깝게도 아직도 시신을 못 찾은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박경수 전우 같은 경우는 두 차례 다 참전하고 마지막에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호국영웅(護國英雄)입니다.”
폭침 순간
▲최원일 함장은 중령 진급과 동시에 천안함 함장으로 발령받았다.
― 지금 이 질문은 여쭙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마는, 피격 폭침 순간은 어떻게 기억합니까.
“함미 순찰 후 함수로 이동했고, 피격 15분 전쯤 함교(艦橋)에 가서 당직자들에게 지침을 내렸습니다. 그 후 접촉물이 있는지 살피고, 날씨 상태를 보고 함장실로 돌아왔죠. 각종 일지, 모니터 등을 점검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제 몸도 붕 뜨면서 물이 차올라 제 목 밑에까지 다 잠겼어요. 저는 머리 오른쪽 뒤쪽을 어떤 물체가 강타해 잠시 정신을 잃었었죠. 그때 위쪽에서 ‘함장님 계십니까?’라며 울면서 저를 계속 부르는 겁니다.”
― 배가 뒤집힌 거네요.
“배가 90도로 기울면서 문이 위쪽으로 올라간 겁니다. 저는 거의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조 요청하고 상황 보고하라는 지시를 하고 이제 집기류들을 몸에서 걷어내는 순간 우리 전우들이 소화기로 문을 부수고 저를 구했습니다. 소화전 호스를 내려줘서 그걸로 제 몸을 묶고 올라갔던 것이 폭침 순간의 기억입니다.”
최원일 함장을 구한 장병들의 공통된 증언이 있다. 최원일 함장은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구하겠다며 끝까지 퇴선(退船)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천안함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서, 부하 장병들이 억지로 끌어내다시피 구조선에 태웠다고 한다.
“당연히 104라는 번호가 나와야 하는데, 점호를 하니 58에서 계속 끊어지는 겁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요. 그럼 46명이 없어진 것 아닙니까? 혹시라도 배 안에 남은 사람은 없나, 바다에 빠져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대원이 있진 않을까? 이런 생각에 배에서 이탈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기보다는, 구조하지 못한 우리 전우들에 대한 책임 이런 것들이 더 많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음모론자들

▲모 고교 교사의 천안함 관련 망언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사진=조선DB
― 천안함 폭침 이후 음모론자들이 온갖 유언비어(流言蜚語)를 유포했습니다. 어떤 심정이셨습니까.
“살아 돌아와 보니까, 저희가 지켜주던 국민이 저희에게 또 다른 어뢰를 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음모론은 13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천안함 좌초설 등,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책들도 20여 종이나 된다. 그런 책의 저자들이 지금도 강연을 다니고, 인세를 받는다. 천안함 피격 폭침을 생계에 이용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법적으로 대응하려고 해도, 표현의 자유 때문에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가 ‘사실’이라고 믿었기에 그런 주장을 한 것이라면, 달리 처벌할 방도가 없다고 하네요.”
심지어 모 유명 사립 고등학교 교사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섞어서 공개적으로 최원일 함장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 교사의 경우, 고소 등 법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나갈 명문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어떻게 온갖 욕설을 섞어 저에 대한 모욕을 하는지, 그건 순전히 자기주장일 뿐이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더라고요. 그 교사가 반성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런 분들이 안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 언론으로 보도된 뒤, 그 교사가 함장님께 직접 연락했습니까.
“아닙니다. 페이스북 메시지라든가 뭐 각종 매체로 연락을 했던 기억은 납니다.”
“지금은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일부 가톨릭 사제도 음모론을 업고 최원일 함장을 비난했다.
“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해사 시절에도 성당에 열심히 다녔고, 가톨릭생도회 총무였죠. 그런데 일부 사제가 하는 얘기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성당에 나가지 않습니다.”
― 일부 몰지각한 사제들이 어떤 이야기를 한 겁니까.
“제가 2010년 11월까지 수사받았는데, 당시는 충남 계룡시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열차를 타고 서울로 계속 출두하면서 수사를 받았는데, 어느 날 대전역에 내렸는데 어떤 사제단이 플래카드를 걸어놨더군요. ‘함장 구속! 책임져라!’ 이런 식으로 적어놓고요.”
일부 몰지각한 사제들은 아직까지도 사과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분들은 제주 해군기지도 반대하고, 정치 활동을 많이 하는 분들이더군요.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기들 주장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성직자들이, 그것도 공개적으로 했다는 사실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저는 신자가 아닙니까.”
“軍 생활 절반을 중령으로 보낸 셈”
― 왜 형사 입건이 된 겁니까.
“제가 3월부터 11월까지 조사받고 수사받았습니다. 또 징계위원회가 따로 열려서 11월 17일에 마쳤습니다. ‘22사단 철책선 노크귀순 때는 사단장부터 소대장까지 다 징계받았는데, 어떻게 당사자인 함장이 죄가 없느냐’라는 논리로 형사 입건하더군요. 기소유예를 받았습니다. 징계위원회 결정도 징계유예였습니다.”
― 저는 천안함장이 형사 입건되어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도저히 납득이 안 됩니다.
“혐의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가 대잠(對潛) 정보가 있는데, 왜 경비 구역을 이탈하겠다고 함대에 건의하지 않았는가. 두 번째, 왜 속력을 빠르게 올려서 다니지 않았는가.
아니,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다는 사전 정보가 어디 있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함장이 정상 경비를 하다가 이탈하겠다고 함대에 건의할 수가 있습니까? 그건 근무지 이탈이죠. 그리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구역이라며 함대에서 정해준 매복 구역이었고, 3~4m로 파도가 치는데 어떻게 빨리 달립니까?”
군인(軍人) 최원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항상 선두 진급하던 최원일 함장은 천안함 피격 폭침 이후 꽤 오랜동안 한직(閑職)을 전전했다. 그렇게 10년을 중령으로 지내다 전역(轉役) 하루 전 대령으로 승진했다.
― 어떻게 된 겁니까.
“명예 진급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전역하는 당일 진급하는 거죠. 연금이라든가 각종 혜택은 없습니다. 오직 명예뿐이죠. 본인이 신청해서 적부심을 받습니다. 통과되면 명예 진급을 하는 겁니다. 저는 2008년 중령으로 진급했습니다. 2021년에 전역했으니까, 군 생활 절반을 중령으로 보낸 셈이죠.”
―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진급이 안 된 겁니까.
“저를 진급시키면 혹시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까 봐 부담스러웠겠죠. 천안함을 언급하면 한반도 평화가 깨진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고….”
생존 병사들에게 환자복 입힌 국방부

▲국방부는 2010년 4월 7일 열린 기자회견에 최원일 함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병들은 환자복을 입고 나가도록 했다. 사진=조선DB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군은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수호하는 보루가 돼야 한다. 군이 정치에 휩쓸리는 순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누구를 진급시키고 탈락시킨다면, 그 자체가 이미 군 본연의 자세와는 많이 멀어진 것일 터이다.
“국군의 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겁니다. 그런데 전역 후 사회에 나오니, 저는 일부 국민으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 처지더군요. 국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 우리를 보호하는 순간 시끄러워지니까요. 일부가 주장하는 한반도 평화는, 북에 순응해서라도 전쟁을 막자는 것 아닐까요? 천안함을 언급하는 순간 북한이 동요하고 시끄러워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국방부는 다른 방식으로 최원일 함장과 생존 장병을 모욕하기도 했다. 필자 개인의 생각이다. 2010년 4월 7일, 누군가가 생존 장병들에게 환자복을 입히고 기자회견을 했다. 패잔병이라는 이미지가 여기서부터 나왔다. 군인들은 명예가 생명인데,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까 제가 옷을 다섯 번까지 갈아입었더군요. 환자복 입었다가 전투복 입었다가…. 대원들도 사실 전투복을 다 입히려고 했는데, 전투복이 다 유실돼서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구해서 입히자는 말도 있었는데, 갑자기 기자회견 한 10분 전에 저만 전투복을 입으라고 하더군요. 장병들에게 환자복을 입히고, 저는 또 전투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했으니, 대부분의 국민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환자복 입은 장병들은 다 패잔병이고 함장 저놈이 수괴로구나, 책임자로구나, 이렇게 느끼지 않겠습니까? 저는 기자회견 트라우마가 아직도 좀 심해요.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왜 패잔병입니까?”
― 지금 말씀을 들어보면 천안함 사건 당일의 트라우마도 트라우마지만 이후 정치권과 일부 국민이 보인 행태로 인해 울화병이 더 쌓였을 거 같습니다. 그건 어떻게 극복하나요.
“현재 진행형이죠. 제가 언론에 노출되거나 기사에 한 줄이라도 제 이름이 나오면 바로 댓글이 달립니다. 그중에서 악플이 거의 70% 정도예요. 제가 법적 대응을 많이 하니까 요즘은 비율이 좀 줄었습니다만, 아주 심한 내용도 있습니다. ‘왜 그때 죽지 않았느냐’ ‘할복 자결했어야 할 인간이 안보팔이를 하고 있다’…. 어떤 인터넷 신문에 나왔던 내용이에요. 패잔병이란 말은 그냥 통상적인 용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왜 패잔병입니까?”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목소리를 높일 권리가 있다.
“그다음에, 왜 함장 너는 왜 안 죽었느냐. 따라 죽었어야지. 가장 심한 건 ‘시체팔이 그만하라’라는 글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46명 영웅화를 중단하라’는 소리도 합니다. 46명이 호국영웅이 아닙니까? 댓글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걸 안 보자니 대응을 못 하고, 보면 정말 울화통이 치밀고 머리가 아픕니다. 처음 몇 년은 댓글을 안 봤는데, 제가 대응을 안 하니까 점점 이게 심화되는 거예요.”
지금은 전우들과 팀을 짜서 일일이 댓글을 읽고, 심한 글을 단 사람들을 하나하나 고발한다. 악플러들의 한마디가 천안함 생존 장병들에겐 2차, 3차 가해이자 살인 행위다. 최 함장은 “자기 형이나 아버지가 천안함 대원이었더라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응원해주신 분들 덕에 살아”

▲2021년 6월 16일 오전 천안함46용사유족회와 천안함생존자전우회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40일째 천안함 명예회복 시위를 이어가며 천안함 망언 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조선DB
―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가족들 반응은 어땠을까.
“제가 한 몇 년 동안은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집사람이 그때마다 기다려줬죠. 특히 검찰에 형사 입건됐을 때는 제가 삶을 놓지 않도록 많이 격려해주면서 저를 계속 믿고 따라줬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아버님은 2013년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살아계시죠. 아버님은 어쩌면 제 일로 화병이 나 가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정신을 차리고 본가에 가보니까, 어머니가 갖고 계시던 금반지, 금목걸이 등 금붙이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왜 없냐고 여쭈니까 ‘팔아서 어디 썼다’라고 하세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2010년 5월인가 6월에 모 사찰에 가서 천안함 전사 장병들을 위한 천도재(薦度祭)를 지냈더라고요. 감사하기도 했지만, 아들로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 2021년 6월 초 국방부 앞에서 시위할 때 인상 깊은 일이 있었습니다. 몇몇 현역 장병이 거수경례하고, 커피 같은 음료수도 사다 주고 응원하던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현역은 언론 노출이라든가 의사표현을 공개적으로 하기 어렵죠. 현재도 현역 중에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행동을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그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드립니다.”
― 몇몇 분이 함장님께 거수경례하며 지나갈 때 거수경례로 답하시던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그럼요. 그분들 덕분에 제가 살고 있는 거죠. 제가 한창 수사받던 2010년 5월, 6월엔 편지도 많이 받았습니다. 아들이 군에 가 있다는 어머니, 교도소 재소자까지 편지를 보내왔어요. ‘현충원에 왔다가 함장님 눈물 흘리는 거 보고 가슴 아파서 편지 보냅니다’라는 여학생의 편지도 기억합니다. 받은 편지는 지금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는 편지로 했지만, 지금은 제가 소셜미디어를 시작해 페이스북 메시지라든가 인스타그램 DM 메시지를 통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분들 격려 덕분에 지금 또 힘내서 이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326호국보훈연구소

▲326호국보훈연구소 홈페이지(https://remember772.com).
― 어떤 활동입니까? 단체를 하나 만들었죠?
“네. 작년 3월에 국가보훈처로부터 사단법인 인가가 났습니다. ‘사단법인 326호국보훈연구소’라는 비영리 법인입니다. 연말에 지정기부금 단체 승인도 받아서 올해부터 서울 모처에 사무실을 내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입니까.
“이름 그대로 326호국보훈연구소입니다. 3월 26일을 기억하고, 그날 백령도 바다에 있었던 군인들을 기억하자는 겁니다. 강연, 세미나 등을 통해 잘못 알려진 얘기들을 바로잡고 국민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합니다.”
― 아까 편지 얘기 중에 ‘함장님 눈물’ 이야기가 있었죠? 천안함 관련 보도를 검색하는데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3월 26일에 현충원에 가서 생존 장병들과 함께 추도 행사하며 함장 이하 모두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생존 장병들은 자주 만나시나요.
“각자 현업이 있으니까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우리 전우들은 13년간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어요. 58명 생존자 중에 23명은 아직 군복을 입고 있고 35명은 전역했습니다. 제가 현역 때 진급이 잘 안 됐다고 그랬잖습니까? 생존 현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건 또 왜 그런가요.
“트라우마 때문에 배를 못 타니까요. 해군은 진급 점수가 있는데, 배를 못 타니까 점수가 모자라는 거죠. 또 승진 누락으로 전역하면 국가유공자가 돼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습니다. 진료 기록이 없으니까요. 왜냐하면, 현역 때 부서장이나 함장한테 가서 ‘정신과 다녀오겠다’라는 말을 못 한 겁니다. 우리나라 보훈 정책은 ‘개인 입증주의’입니다. 기록이 없으니 신청 자체를 못 하는 거죠. 주말에 일반 병원에서 진료받은 친구들은 누적 기록이 있으니까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에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 뭡니까.
“나이가 젊으니까 직업을 구해야 하지 않습니까? 취업 지원하면 서류 심사는 통과인데, 마지막에 항상 불합격합니다. 정신과 치료 이력 때문이죠. 기업 하는 분 입장에서 생각하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국가가 유공자라는 걸 입증해줘야”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직후인 2021년 7월 6일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46용사 묘역을 참배했다. 사진=조선DB
― 한숨이 납니다. 해결책은 뭘까요.
“뭔가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현역 군인들에겐 승진 시 평균 점수라도 준다든가, 전역한 친구들은 국가가 유공자라는 걸 입증해줘야죠. 천안함 피격 폭침 사건은 국가적인 사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국가보훈부에서 전원 국가유공자로 지정하고, 특별 채용의 길도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미국은 전사 장병의 유해를 끝까지 발굴한다. 시간, 비용이 얼마든지 들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직도 6·25 당시 전사한 장병의 시신을 수습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끝까지 챙기는 건 나라다운 나라의 참모습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조치는 많이 미흡해 보인다.
― 국민 여러분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은.
“천안함을 기억해주시고, 또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분들이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사실에 현혹되어 진실이 무엇인지 잘못 아시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관련 자료와 정부 공식 발표를 잘 보아주십시오. 천안함은 대한민국 NLL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 전국 팔도 출신 군인들이 모여 국방의 의무를 다하던 함정입니다. 이들은 영남, 호남처럼 특정 지역을 지킨 군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 특정인을, 당시 정권과 정부를 지키던 군인들이 아닙니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던 군인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의 희생,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길이길이 기억해주시고, 더 이상 이분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전역 후 직업 가져본 적 없어
필자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최원일 함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과 장병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천안함 장병들을 구조하기 위해 순국하신 한주호 준위도 잊지 않겠습니다. 금양호 선원 아홉 분의 명복도 함께 빕니다.”
그런데 답답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몇몇 생존 장병뿐만 아니라, 최원일 함장도 현재 무직(無職)이다. 전역 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를 채용하는 일이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했던 결과는 혹시 아닐까? 새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약간의 연금과 보육교사로 일하는 아내의 수입이 생계 수단의 전부다.
우리는 우리의 영웅을 지금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미래 세대에게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자’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해마다 3월 26일이면, 6월 25일이면 묻고 싶은 질문이다.⊙
글 : 장원재 (주)戰後 70 ‘생생 현대사 TV’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