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凍土)의 소식2023-1/ 01.04(수) 김정은, 건강엔 핵무기보다 ‘이밥에 고깃국’이 좋다 - 03.29 핵이 파괴한 김정은의 꿈
동토(凍土)의 소식2023-1/
01.04(수) 김정은, 건강엔 핵무기보다 ‘이밥에 고깃국’이 좋다
김일성 부자 死因은 심근경색
경제난 스트레스가 뇌관 역할
핵 완성한다고 경제 곤두박질
金,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할 때
심혈관 질환 고위험군에 스트레스 관리는 생사가 달린 문제다. 말년의 김일성은 총체적 경제난, 특히 전력난으로 골치를 앓았다. 1994년 7월 5일 경제 간부들을 묘향산에 모아놓고 “함흥·해주에 중유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며 터빈발전기 마련 방안을 다그쳤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실무자를 데려오라며 헬리콥터를 띄웠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헬리콥터가 떴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실무자가 언제 오는지를 캐물었다. 서기실 책임서기 전하철은 밤 9시까지 김일성 전화를 받았다.
회의 둘째 날 김일성은 전력, 비료, 비날론, 시멘트, 선박 등 부문별로 만기친람식 지시를 내리다 돌연 “돌파구를 열어야 할 일꾼들이 사무실에 앉아 허송세월하니 안타깝다”고 했다. 안색은 어두웠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김일성은 왼쪽 가슴을 두드리더니 담배를 찾았다. 한 개비 태운 김일성은 “피우지 않던 담배까지 피운다”며 잔소리를 쏟아냈다. ‘심려 어린 어조’였다고 전하철은 기록했다. 김일성은 7월 8일 새벽 2시 사망했다. 심근경색이었다.
김정일 집권 말기 최대 화두는 ‘강성대국’이었다. 모든 기관·단체들이 2007년부터 “수령님 탄생 100돌(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끼자”고 합창했다. 강성대국의 ‘기둥 사업’이라 선전했던 게 희천발전소다. 만성적 전력난을 일거에 해결해 줄 거라며 2009년 3월 첫 삽을 떴다. 뇌졸중 후유증에 시달리던 김정일은 부축을 받아가며 첩첩산중의 건설 현장을 8차례 찾았다. 10년 걸린다던 공사가 3년 만에 끝났다. 노동신문은 ‘희천 속도’란 신조어로 도배됐다.
무리한 공기 단축은 부실 공사로 이어졌다. 허위 보고에 속은 김정일만 몰랐다. 2011년 12월 중순이 돼서야 “누수가 심각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강성대국 원년이 코앞이었다. 대로(大怒)한 김정일은 12월 17일 이른 아침 현지 시찰을 서둘렀다. 평양이 영하 13도, 자강도 희천은 영하 30도가 넘었다. 이틀 뒤 아나운서 리춘히는 “김정일 동지가 초강도의 현지지도 강행군 길을 이어가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열차에서 순직했다”고 발표했다. 심근경색이었다.
가족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고도비만에 술·담배를 달고 산다. 조부·부친보다도 스트레스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김정은의 인생 최대 고비는 2019년 2월이었다. 하노이까지 4500㎞를 열차로 66시간 여행하는 여유를 부렸다. ‘빈손 귀환’은 상상도 못한 충격이었다. 평양행 열차 안에서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기차 여행을 또 해야 하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최근 김정은의 핵폭주는 하노이의 굴욕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다음번 대미 담판의 필승 카드를 쥐겠단 계산이다. 그런데 며칠 전 전원회의 발언이 의외였다. “2022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시간이었고 분명코 우리는 전진했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말투였다. 또 “패배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투쟁해왔음에도 낡은 사상이 경제 일꾼들 속에 고질병처럼 잠복해 있다”고 했다. 영(令)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김일성·김정일의 말년을 짓누른 건 경제난과 복지부동하는 관료들이었다. 공화국 외교의 금자탑이라는 NPT 탈퇴와 제네바 합의도, 미제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는 핵과 미사일도 부질없었다. 핵이 많아질수록 ‘이밥에 고깃국’은 멀어지고 면종복배(面從腹背)가 만연할 것이다. 담판이 다시 열린다 해도 미국이 선뜻 체제 보장과 경제 보상을 해줄지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도 이제 곧 마흔이다. 두 번째 노딜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핵만 쳐다보는 게 최선일지 고민할 때다. 장소로는 따뜻한 원산 특각을 추천한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01.04 호텔 금지령 안통했다… 김정일도 못말린 김정은 여성편력
마키노 前아사히 서울지국장
‘김정은과 김여정’ 출간
김정일의 고려호텔 출입 금지령에도
김정은, 무시한채 여성 데리고 다녀
김여정이 중재해 용서 이끌어내
북한 김정은·김정철 형제가 2000년대 중반 고려호텔에 여성들을 자주 데리고 출입하는 등 어려서부터 여성편력이 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정일의 고려호텔 금지령에도 김정은이 계속 여성을 데리고 호텔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마키노 요시히로 전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이 최근 펴낸 저서 ‘김정은과 김여정’(㈜글통)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저자인 마키노 기자는 2007년부터 5년 간 아사히신문 서울 특파원, 2015년부터 3년 6개월 간 서울지국장으로 근무하며 많은 한국정부 당국자와 연구자, 탈북자들을 취재해왔다. 2014년 워싱턴에서 미국 민주주의기금(NED) 객원연구원을 지내며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보좌관, 제임스 켈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등을 만나 미북 협상 및 북핵에 대한 취재를 하기도 했다. 북한은 2018년 6월 8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마키노 지국장이 북한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는 기사를 썼다며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저서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김정은·정철 형제가 고려호텔에 여성을 데리고 자주 나타났는데, 형제가 뜨면 고려호텔 입구가 봉쇄되고 투숙객도 자유롭게 이동할수 없게 됐다고 한다. 관련 보고를 받은 김정일이 정은·정철 형제에게 고려호텔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성격이 온순한 김정철은 지시를 따랐지만 김정은은 김정일의 말을 듣지 않고 이후에도 계속 여성을 데리고 호텔 출입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김정일이 격노해 부자지간 갈등이 심각해지자 김여정이 중재에 나서 김정일의 용서를 이끌어냈다고 저자는 밝혔다. 그는 “김여정은 김정은에게 만일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스페어로 소중하게 쓰일 특별한 존재”라고 분석했다.
김여정과 관련해 태어나서부터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에서 접촉한 북한 당국자들도 정보관계자들에게 “김여정이 눈에 띄고 싶어 해서 곤란하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저자는 김여정이 어릴 때부터 정치를 하고 싶어했지만 고모인 김경희가 반대해 김정일 사망 전까지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여정의 능력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면밀하게 검토한 뒤 행동에 옮긴다”고 평가했고, 이 때문에 기댈 수 있는 측근이 적은 김정은도 김여정에게 의지한다고 했다.
김정은이 김여정을 의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김정은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이 업무 복귀 후 동생 김경희가 현지지도에 동행한 이유가 김정일이 다시 쓰러질 때를 대비한 행동”이라며 김정은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 김여정이 자주 동행한다고 했다.
또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몰락시킨 나리타 공항 사건이 김정은의 모친 고용희의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정일 본처의 지위를 굳혀가며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고용희 세력이 김정남에게 마지막 철퇴를 가하기 위해 2001년 5월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일본을 방문한 사실을 싱가포르 정보기관에 알렸고, 관련 정보가 일본공안조사청에 접수되면서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저서는 김정남의 암살을 다룬 ‘북한 권력투쟁의 내막’, ‘김정은 정치의 실태’, ‘독제체제의 정체’, ‘핵과 미사일의 행방’ 등 북한 체제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월간조선 01월 호
김정은 딸 공개… 왜 둘째 딸인가?
⊙ 리설주 질투로 공개된 김정은 딸 김주애
⊙ 전문가 의견 갈려… “김정은 후계자 vs 이미지 정치”
⊙ 김정은, 왜 첫째도 아닌 둘째 딸을 공개했나
⊙ “북한 주민들 김주애를 김정은 후계자로 생각한다”

▲북한 김정은이 2022년 11월 27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공로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둘째 딸 김주애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사진=뉴스1
북한 김정은의 딸이 두 차례 공개됐다. 사상 처음이다. 2022년 11월 18일 발사한 신형 ICBM ‘화성-17형’의 성과를 보도하며 처음 공개했다. 그로부터 9일 뒤 ICBM 시험발사 성공 축하 행사에도 김정은은 딸을 대동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의 딸에게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극존칭까지 썼다.
국가정보원(국정원)에 따르면 두 차례 공개된 김정은의 딸은 둘째고 이름은 김주애다. 정확한 나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10~12세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정보위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11월 22일 정보위 전체회의 후 기자들에게 “국정원에서도 이번에 ICBM 발사할 때 같이 온 딸은 둘째 김주애로 판단하고 있다, 이렇게 확인을 해줬다”면서 “보통 열 살 정도의 여아로서는 좀 (체격이) 커서 다소 의혹이 있었지만, 기존에 키도 크고 덩치가 있다는 국정원의 정보와 일치해 국정원에서도 김주애라고 판단한다고 확인해줬다”고 설명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김정은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 2009년 결혼한 김정은과 리설주는 2010년, 2013년, 2017년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와 막내는 아들이고, 둘째가 이번에 공개된 김주애다. 다른 설도 있다. 첫째와 둘째가 딸이고 막내가 아들이라는 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자(前者)에 무게를 두고 있다.
北, 리설주 닮은 둘째 딸 김주애 공개 이유는?
북한이 김정은의 둘째 딸 김주애를 공개하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 2022년 11월 28일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2022년 11월 19일부터 28일까지 북한과 관련한 전 세계 검색어 1위는 ‘김정은 딸(kim jong un daughter)’이었다. 2위도 ‘북한 김정은 딸(north korea kim jong un daughter)’이 차지했다.
국내 언론들과 외신들은 집중적으로 북한 김정은의 딸에게 관심을 보였다. AP·AFP·로이터통신 등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김주애가 차기 후계자가 될지를 조명했다. 하지만 아직 마흔도 안 된 김정은이 후계자를 조기 등판시킬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김주애는 단지 북한 로열패밀리인 ‘백두혈통’의 일원이자 미래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서 딸이 후계자가 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일각에서는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주애가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로동신문》이 2022년 11월 19일 김주애 사진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데 이어 11월 27일 다시 김정은과 김주애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공개하고,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특별한 존칭을 썼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성장 센터장은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징후가 네 가지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로는 북한 같은 사회에서 신형 ICBM ‘화성-17형’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의미 있는 날에 아무런 계산도 없이 김주애를 공개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김주애를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정 센터장은 “《로동신문》 등 북한 자료를 찾아보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외 그 누구에게도 ‘존귀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면서 “리설주에게도 동지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 ‘존귀한’ 같은 존칭은 파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은 지난 11월 19일까지만 해도 김주애에 대해 ‘사랑하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며 “이는 김주애가 앞으로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보다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센터장은 마지막 이유로 “북한 국방과학원 미사일 부문 관계자들의 ‘충성의 결의 편지’에서 백두혈통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이는 신형 ICBM ‘화성-17형’ 발사장에 함께 등장한 김주애에 대한 충성맹세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후계자라는 표현을 안썼다고 해서 김주애가 후계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도 정성장 센터장과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김정은이 이미 김주애를 후계자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김정은이 현재 나이는 어리지만,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빨리 후계자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김정은에게 자식이 세 명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그중에 김정은의 마음에 든 건 이번에 공개한 둘째다. 첫째는 뭔가 부족하고, 막내는 아직 나이가 어려 후계자를 논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北, 후계자 이외 다른 사람 언급 자체가 반동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사진=조선DB
북한은 지금까지 김일성을 시작으로 김정일,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정일과 김정은은 성인이 돼서야 후계자로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됐다. 북한 주민들은 공식적으로 김씨 집안의 가계도에 대해 잘 모른다. 물론 뒷이야기로 전해지는 김평일(김정일 이복동생), 김정남(김정은 이복형) 등의 이야기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못한다. 이유는 후계자 이외엔 어떤 인물도 존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그의 동생인 김여정이 공식 석상에 등장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김정일, 김정은의 형제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말인즉슨 북한의 후계자만이 공식 석상에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등장하면서 후계자설이 나오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김주애가 김정은의 후계자이기에 공식 석상에 ‘존귀하신 자제분’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과거에도 김일성의 가계에 대해선 오직 당에서 소개한 사람만 믿고 있다”면서 “후계자 이외 김평일이나 김정철, 김정남 등 다른 사람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반동 행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북한 주민들이 볼 때엔 김정은의 자제분은 김주애 하나다. 북한 사람들은 김주애를 보면서 과거 김정일이 김정은을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했던 모습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최근 정보 수집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과 통화를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모두가 김주애를 김정은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이는 한 사람 입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김주애를 후계자로 칭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주애 공개, 후계자 아닌 이미지 정치
이와 반대로 현시점에서는 김정은의 딸의 데뷔를 후계 구도와 연결하기보다는 신형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김종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김정은의 딸 공개는 후계 구도와 상관이 없어 보인다”면서 “쇼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이냐는 차원에서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핵무기를 뒤에 두고 다정한 부녀지간을 보여주면서 다정한 아버지의 이미지와 든든한 국방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최근 내외신 언론들이 김주애를 주목하고 있고, 사람들이 김주애에 대해 많이 검색하는 것만 보고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이유는 관심과 비난의 분산을 노린 것 같다고 김 부연구위원은 분석했다. 그는 “화성 17호 발사로 인해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로 북한을 더 압박해야 하는데 갑자기 딸을 등장시키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딸에게로 쏠리게 하면서 관심과 비난이 분산됐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일부 관계자도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서 딸을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며 “김정은의 후계자로 지목했기에 공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 첫째가 아닌 둘째 딸을 공개했나?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후계자든 아니든 왜 첫째가 아닌 둘째 김주애를 공개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김정은이 생각했을 때 첫째가 문제가 있어 보여 둘째를 선택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른 이유로는 김정은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 유학 중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도 어린 나이에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몰래 공부를 한 바 있다. 그렇기에 첫째는 현재 다른 나라에서 몰래 유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성장 센터장은 “첫째는 공개하기가 부적절했을 것”이라며 “그래서 딸임에도 김주애를 선택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센터장은 “과거 김정일이 장남이나 차남을 제치고 자신의 성격을 가장 빼닮은 삼남 김정은을 매우 이른 시기에 후계자로 선택한 것처럼 김정은도 자신을 가장 빼닮은 딸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김정은이 봤을 때 첫째는 전 세계에 공개하기 부끄러운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김정철처럼 여성성이 강한 문제가 있든가 아니면 다른 곳에 이상이 생겨 김주애를 데리고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김종원 부연구위원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나약한 부분이 있거나 오히려 첫째를 후계자로 점찍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 입장에서 봤을 때 후계자이거나 나약하다고 하면 더욱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숨기는 것이 북한에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남아선호사상 중시하는 北, 여성 후계자 가능할까?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사진=조선DB
북한은 남아선호사상을 중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다. 그런데 만약 김주애를 김정은의 후계자로 지명했을 때 과연 북한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의문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는 북한 김정은이 후계를 정하는 데 있어 여자인 것은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민 대표는 “북한이 가부장적인 사회인 것은 맞다. 하지만 최근에 김여정이 하는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며 “아무리 가부장적인 사회라 해도 북한은 ‘백두혈통’이면 설사 그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그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후계자는 김정은이 정하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 당시에는 항일빨치산 세대들과 의논도 하고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지금은 김정은 마음대로 정하기 때문에 후계자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김정은이 결정하면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김주애가 여자이기 때문에 북한에선 후계자로 지명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김종원 부연구위원은 “북한은 지독한 가부장적인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김주애가 후계자로 지명되어 북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인다”고 했다.
김정은이 딸 김주애를 공개한 것이 후계자도 이미지 정치도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유는 2022년 9월 8일 진행된 9·9절 경축행사 공연에 참가한 한 소녀 때문이다. 당시 외신들은 행사 공연에 김정은의 딸로 추정되는 소녀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녀는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머리를 풀고 흰 양말을 신은 채 무대에 섰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9월 원본 영상이 처음 나왔을 때 중국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 소녀가 김정은의 둘째 딸 ‘김주애’라고 추정했다.
이후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소녀는 김정은의 딸이 아닌 북한 현송월의 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외신들이 해당 소녀를 김정은의 딸이라고 해 알아본 결과 김정은이 아닌 현송월의 딸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해당 소녀가 김정은의 딸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자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화가 나 자신의 딸인 진짜 김주애를 공개했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현송월의 딸이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신의 딸로 소개되는 것이 리설주 입장에선 화가 났을 것”이라며 “리설주는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김주애를 공개하면서 진짜 김정은의 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국회의원. 사진=조선DB
반면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후계자와 상관없이 김정일의 혼외 자식이었던 김정은이 한을 풀기 위해 어린 딸을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태 의원은 “김일성 때 김정일이 미성년자로서 현지 지도에 동행한 적은 많았으나, 미성년자인 김정일에게 ‘존귀한 자제’라는 식의 표현은 붙은 적이 없었다”면서 “또 김정일은 공식 후계자로 선정되기 전에는 본인이 허리를 굽혀 아버지뻘 간부들에게 인사했지 이번처럼 간부들이 허리 굽혀 인사한 전례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반면 김정은은 김정일의 혼외자식으로 합법 후계자로 임명되기 전까지 북한 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후계자가 될거라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김씨 가문의 대를 이었지만, 손자로서 할아버지 김일성과 같이한 사진도 없다”면서 “어릴 때 세자로서 북한 주민들은 물론 가문 내에서도 알리지 못했고 김정은의 생모도 집안 며느리로서 공식 대접을 받지 못했으니 한이 단단히 맺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태 의원은 “지금 김정은은 자기 자식들에게만은 본인이 당한 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딸 공개는 김정은이 아이 때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지 못했던 설움이 반영된 결과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태 의원은 후계자와 관련해서는 “지금 단계에서 이번에 공개된 딸이 김정은의 후계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군 간부들로부터 ‘백두의 혈통만을 따르고 끝까지 충성할 것’이라며 충성맹세를 받은 것을 보면 북한의 세습 통치가 3대에 이어 4대로, 계속 이어가겠다는 점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01.16 딸에게 권력 과시하는 김정은의 초조함
북한은 지난해 40여 회에 걸쳐 65발 이상의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무인기를 한국 영공으로 날려 보냈다. 이런 도발을 벌이는 가운데, 지난해 11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딸 김주애를 화성-17형 장거리 미사일 관련 행사에 대동했다. 새해 첫날에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KN-23으로 추정되는 장비를 둘러보는 모습을 공개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를 “후계 문제와 관련된 정치적 함의가 큰 움직임”이라고 평가하거나, “어버이 수령으로서 권력의 안정과 인민의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려는 상징정치”라고 풀이했다.
필자는 이러한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서 몇 해 전 넷플릭스에서 봤던 영화 ‘어느 독재자’가 떠올랐다. 독재국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은 어린 손자와 함께 불 켜진 도시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전화 한 통으로 도시의 모든 불을 일제히 껐다가 다시 켜는 행위로 자신이 지닌 권력의 힘을 손자에게 보여준다. 손자는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하면서 전화로 불을 끄라고 명령하자 대통령궁의 불까지 꺼졌고, 다시 켜라는 명령에도 불은 켜지지 않았다. 대신 총성과 폭발음이 울려 퍼진다.
핵이 외부 위협 막을 수 있겠지만
헐벗은 주민 마음은 달래지 못해
독재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어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독재자는 다음날 가족들을 해외로 망명시키고 후계자인 손자와 남아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으나,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국민과 도적 때로 변한 군인들로 가득 찬 나라는 혁명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독재자는 간신히 바닷가에 도착하지만 배는 보이지 않고 추격대가 다가오자 하수도관 속에 숨어 있다 체포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반군에 의해 처형당한 예멘의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하수구에 숨어 있다가 시민군에 생포되어 처형당한 리비아의 철권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연상케 한다.
쿠데타 등으로 권력을 잡은 후 독재정치를 펴다 저항에 부딪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독재자는 그 외에도 상당수 있다. 1965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콩고의 모부투 세세 세코는 32년간 독재와 축재를 일삼다가 97년 반군에게 축출당하여 모로코에서 죽었다. 68년 쿠데타에 참가하여 79년 이라크의 대통령이 된 사담 후세인은 독재권력을 휘두르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침공한 미·영 연합군에 의해 체포되어 2006년 처형되었다. 7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우간다의 이디 아민은 79년까지 집권하면서 5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을 학살하였다. 그는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탄자니아를 침공하였지만 되려 탄자니아에 패퇴하여 권좌에서 쫓겨난 후 리비아·이라크 등을 떠돌다가 200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죽었다.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에서 인종청소를 저질러 2000년 권좌에서 물러난 후 전범재판을 받던 중 2006년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는 비록 그가 정통성을 지닌 지도자라 할지라도 국민 신임을 잃게 되고,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는 황태자 알렉산드르 3세의 적장자로 태어나 황태손에 책봉되었고, 황태자를 거쳐 1896년 황제에 즉위한 정통성을 지닌 군주였다. 그러나 그는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무시하면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피의 일요일’ 사건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졌고 권좌에서 쫓겨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은 모두 1918년에 혁명군에 의해 사살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예로부터 백성은 물이고 통치자는 배에 비유된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성난 물은 배를 가라앉히기도 한다. 한반도 북쪽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이 언제까지나 백두혈통의 독재에 순종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핵무기로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헐벗고 굶주린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한다. 어린 딸에게 그가 지닌 권력을 과시해야만 하는 김정은의 행동에서 북한 체제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읽을 수 있다.
중앙일보 김형철 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예비역 공군 중장·리셋 코리아 국방분과 위원
01.19 北 태성기계공장의 ‘만딸라’

▲2023년 1월 1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딸 김주애의 미사일 조립공장 방문 모습./조선중앙TV 뉴스1
북한 조선중앙TV가 새해 첫날 김정은이 둘째 딸 김주애를 데리고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을 둘러보는 장면을 공개했다. 김정은이 찾은 곳은 남포에 있는 태성기계공장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2016년 3월 핵무기 연구부문의 과학자·기술자들을 격려하고 ‘핵탄두’로 추정되는 물체를 공개했던 곳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처음 핵탄두를 세상에 공개한 장소에 딸을 데리고 시찰을 나간 것이다.
태성기계공장은 북한의 대표적인 미사일 조립공장이다. 필자가 1990년대 북한 함흥컴퓨터기술대학에 다닐 때 태성기계공장에서 온 위탁교육생 A가 있었다. A는 별명이 ‘만딸라’였다. 그의 아버지는 미사일 엔진 기술자였는데 “아버지가 수리아(시리아)에 한 번 갔다 오면 ‘만딸라(1만달러)’씩 보내준다”고 자랑해 붙은 별명이다. A의 아버지는 시리아에 미사일 수출과 기술 이전을 위해 자주 출장을 다녔다고 한다. 시리아에 한 번 다녀오면 달러를 많이 가지고 와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거금을 줬다는 것이다. 1990년대 최악의 경제난을 겪던 북한에서 A는 대학 제1의 부호 행세를 하고 다녔다.
태성기계공장은 당 간부라고 해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훗날 남포에 출장 간 대학의 간부가 A를 만나러 태성기계공장을 방문했지만 공장 안까지 들어가진 못하고 내부에 마련된 면회실에서 만나야 했다. 이 간부가 창문을 통해 공장 쪽을 보니 거대한 산 아래 수많은 동굴이 있었고, 햇볕을 쬐러 나온 미사일 수백 기가 장관이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 주민들이 숱하게 굶어 죽고, 군수 공장마저 가동을 멈췄을 때에도 태성기계공장만은 풀가동했다고 한다. 수출용 미사일 생산을 중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남 실전 배치를 위한 것도 있지만 시리아처럼 오랜 독재와 내전으로 정정(政情)이 불안한 국가에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목적도 크다. 1990년대 북한 경제가 파탄 지경이어도 미사일 산업은 호황을 누렸고 김정일의 ‘돈줄’ 역할을 했다. 평양~남포 고속도로도 미사일 운반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미사일을 운반하던 트럭이 좁은 길에서 전복되는 사고가 나자 김정일 지시로 전국 청년들을 동원해 공사했다. 미사일을 생산하는 태성기계공장은 김씨 일가의 안전을 지키는 무기고인 동시에 외화를 벌어주는 ‘달러 박스’인 셈이다.
북한 제재가 성공하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 미사일 해외 수출의 고리를 잘라야 한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북한이 중동에 무기를 수출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인다”고 증언했다. 한 고위급 탈북민은 “미사일과 핵은 김씨 가문을 지키는 보험이자 돈 덩어리”라며 “북한은 미사일 기술과 핵기술을 불량 국가들에 전수해 외화를 벌어들이려고 더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01.23 평양 한복판에 '똥 트럭' 줄섰다…자칭 핵보유국의 '퇴비 전투'
북한이 17~18일 이틀간 열린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격)에서 농업 관련 예산을 지난해보다 14.7% 늘리며 연초부터 식량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당국은 퇴비 증산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며 대남 위협을 일삼던 북한 경제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해 첫 '금요노동'이 진행된 지난 13일 각 중앙기관에서 모은 퇴비를 실은 트럭들이 김일성 광장에서 평양 인근의 동농장·양묘장·산림경영소로 보내기 위해 이동중이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매체들은 지난 13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 늘어선 트럭의 행렬을 공개했다. 내각에 소속된 기관명이 걸려있는 트럭에는 농촌으로 보내기 위해 각 기관에서 모은 퇴비가 실려 있었다. 북한에선 각 지역의 국가기관, 공장·기업소 등의 사무원들이 매주 금요일 노동 현장에 나가 일손을 돕는 '금요노동'을 진행하는데, 그 일환으로 소위 '퇴비보내기' 운동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북한에선 매년 1월 이른바 '퇴비전투'를 진행한다. 퇴비전투를 벌이는 건 화학비료의 부족분을 퇴비로 메우기 위해서다. 퇴비는 인분과 가축 분뇨, 잿가루와 흙을 버무려 만드는데, 당국은 국가기관과 공장·기업소와 같은 모든 사업단위와 각 지역 인민반에 모아야 하는 퇴비의 양을 할당한다.

▲북한 내각 경공업성 관계자들의 평양 인근의 협통농장에 자신들이 모은 퇴비를 하역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1일 "각지 농업부문 일군(간부)들과 근로자들이 올해 알곡 증산의 담보를 위한 자급비료 생산에서부터 성과를 이룩하기 위해 분발해 나섰다"며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남도를 비롯해 평양시, 남포시, 평안남도, 함경남도, 개성시 등 사실상 북한 전역에서 퇴비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 결과 보고에서 "12개 중요고지 기본 과녁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당국은 최근 각종 행사와 교육을 통해 전원회의가 제시한 중요고지의 첫 번째가 알곡임을 주민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이 연일 '비료 자급'과 '거름 증산'을 강조하는 것도 김 위원장이 제시한 과업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도 퇴비는 농업 생산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자원이다. 비료 배급을 충분히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더해 주어진 퇴비 할당량의 달성 여부는 개인과 소속된 단체의 정치적 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겨울철 퇴비의 주원료인 인분 확보를 위해 말 그대로 전쟁을 벌인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인분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 다른 기관의 퇴비창고를 습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탈북자 출신 북한학 박사인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은 "북한 주민들은 할당량 채우기 위해 겨울이 시작하는 12월 퇴비준비를 시작한다"며 "농번기가 아닌 연초부터 퇴비전투를 벌이는 것은 주민들의 과업 관철 의식을 고취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02-01 “北시장에서 달러 사용 어려워…제재로 ‘달러위주 경제’ 와해”

▲기사와 관계없는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북한 김정은 정권의 달러 중심 경제가 대북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심각하게 와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KDI가 1일 발간한 북한경제리뷰 1월호에서 "달러라이제이션으로 상징되던 김정은 시대 북한의 기본적 경제 시스템이 와해되고, 그 결과 기존의 시스템이 달성했던 시장의 활력과 거시경제의 안정성 모두가 일거에 역전"됐다고 평가했다.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은 달러가 자국 내 통화의 기능을 완전하게 대체했거나 국내 통화와 달러가 병행해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2016년 본격화한 대북 제재 이후 2017∼2019년 무역과 생산, 소득 등에서 충격이 가시화했고, 2019년 들어서는 소득 하락이 실질적인 통화량 감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탈달러라이제이션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고 봤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진행되던 2020년 9∼10월을 탈달러라이제이션 현상이 관찰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았다.
그는 "2019년 이후 북한의 시장에서는 달러화 등 외화를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어도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북한의 경제활동에서 외화의 사용을 줄이고 그만큼 북한의 원화를 더욱 많이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화일보 조재연 기자
월간조선 02월 호 북한요지경
변화하는 北 MZ 세대의 결혼관
“우리, 동거해볼래요?”
⊙ 배급제 와해, 복잡한 이혼 절차, 한국 드라마의 영향 등으로 결혼관 변화
⊙ 1등 신랑감, 과거에는 평양시민·보위원 등이었으나, 최근에는 ‘탈북자 가족 있는 남성’
⊙ 독거노인이 사는 집, 여관 등에서 동거… 돈 번 여자가 집을 사기도
⊙ 생계나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 때문에 非婚 택하는 여성 늘어

▲연인으로 보이는 북한 남녀가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북한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나이 들수록 금값이지만, 여자는 어릴수록 금값이다.’ 과거 북한 남성들은 군(軍) 복무 이후 좋은 곳으로 직장을 배치(配置)받고 제대하면 누구나 원하는 일등신랑감이었다. 여기에 대학을 추천받거나 졸업해서 오면 더할 나위 없는 특등 남편감이었다. 이런 이유로 남자는 ‘나이 들수록 금값’이라는 얘기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결혼 적령기가 여자 20~25세, 남자 27~30세 정도였다.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25세만 되면 부모와 주변 지인들에게 ‘언제 결혼하느냐’는 질문 세례를 받는다. 북한 사회 통념상 25세가 지나면 여자들은 ‘노처녀’로 분류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결혼 적령기가 높아지고 있다. 또 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탈북민은 북한의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에는 경제문제와 외부에서 들어오는 영상물 등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배급제 와해도 혼전 동거 증가 원인
북한의 경제난, 일명 ‘고난의 행군’은 먹고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남녀의 연애, 결혼에 대한 생각도 바꾸어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결혼하지 않고 일정 기간 동거를 하거나 결혼식을 한 후에도 자녀를 낳기 전까지 법적으로 결혼 등록을 하지 않고 사는 동거 연인이 증가했다. 굳이 결혼 등록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배급제가 와해되면서 여성이 결혼해서 남편의 부양가족으로 등록된다고 해도 실질적인 혜택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동거할 경우에는 같이 살다가 헤어지더라도 복잡한 이혼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법적으로는 이혼이 허용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의 의사가 충분히 존중받기 어렵고 절차도 복잡하다. 이 때문에 젊은 여성 중에서 살아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동거를 택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2019년에 탈북한 A씨는 “북한 젊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고, 결혼 전 동거를 하는 연인들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동거 자체가 사회에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혼전(婚前) 동거를 하는 이유에 대해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성들의 생각”이라면서 “어머니 세대와 달리 가족에 대한 희생보다 자신의 삶과 미래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북한에서 동거 경험이 있는 B씨는 “과거에는 연애만 해도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많이 달라졌다”면서 “평생을 함께 살 사람인데 결혼 전 나와 맞는지도 봐야 알 것 아니냐”고 말했다.
특히 혼전 동거는 결혼 적령기인 20대 후반 연인들 사이에서 주로 나타났는데 최근에는 이보다 훨씬 어린 20대 초반으로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동거를 선택하는 이유로는 일단 점차 개방되어가는 ‘성(性) 문화’가 이유다.
20대 초반 연인들의 경우 단속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자 동거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동거하는 모습은 아직 북한 사회에서 용납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20대 초반 연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모들과 지인들 눈을 피해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동거한다고 한다.
‘탈북자 가족 있는 남성’ 선호

▲결혼하는 북한 남녀가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코로나19 이후 북한 여성들이 신랑감으로 원하는 남성상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북한 여성이 가장 원하는 남편감은 평양에 거주하는 남성이었다. 그 뒤로 보위원이나 안전기관 일꾼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최근에는 해외에 친인척이 있는 남성, 즉 한국에 가족이 있는 남성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 북한 주민들 가운데 탈북한 가족이 있는 주민들은 그나마 생활이 나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주는 부모나 형제가 있는 남성이 일등 신랑감이다. 한국으로 탈북한 부모 형제들은 자신의 자식이나 형제를 북한에 남겨두고 온 것에 대한 미안함을 돈으로라도 대신해주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들은 최대한 수수료를 적게 내기 위해 한 번에 100만원에서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보내준다. 물론 이들도 풍족해서 보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쓸 돈을 아꼈다가 보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내준 돈이면 북한에서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굶지는 않는다.
한국 드라마 등 보며 ‘낭만적 사랑’ 배워

▲2019년 12월에 방영한 〈사랑의 불시착〉 스틸컷. 사진=tvn
결혼에 대한 북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은 데에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북한 여성들에게 ‘낭만적 사랑’을 전한 것은 바로 외부로부터 유입된 영화, 드라마, K 팝 등의 문화 콘텐츠들이다.
특히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북한 매체에서는 보기 드문 남녀 간의 사랑과 낭만적 연인 관계를 북한 여성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들은 영화와 드라마에 나타나는 한국 사람들의 행동 방식, 예를 들어 남자에게 맞서는 여성의 모습, 여성을 배려하는 남성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이를 북한 남성들의 행동양식과 비교하게 되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했지만, 젊은 여성들은 통제를 피해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믿을 만한 친구와 얘기를 나눈다. 그렇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정서는 젊은 북한 여성들의 정서에 반영됐다. 영화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남녀 간의 의사소통과 인간관계의 방식은 기성세대와 다른 생각과 행동양식을 만들어냈다.
외부 사회에서 흘러들어 온 신선한 문화는 연애 관계에서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변화로도 연결됐다. 2010년 이후 접경 지역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2030 세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남녀 간의 자유로운 연애와 스킨십, 피임과 낙태, 혼전 동거 등 섹슈얼리티 측면의 새로운 실천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같은 대도시나 중국과 인접한 접경 지역에서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런 행위를 하면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구설에 오르게 된다.
북한에서 동거하는 연인들은 주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세 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다.
첫째, 집을 빌리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과거에는 한국과 달리 월세(月貰)나 전세(傳貰)의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동거하는 연인들이 증가하며 월세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거하는 젊은 연인들은 주로 홀로 사는 노인의 집에 돈을 주고 그들과 함께 산다. 이들이 집주인에게 지불하는 월세는 매월 북한 화폐 3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2023년 1월 9일 기준 1달러당 북한 화폐는 8400원이다. 달러로 계산하면 약 3.4달러 정도이다. 원화로 하면 3744원이다.
그럼 이들이 왜 이 방법을 택할까. 무엇보다도 수시로 행해지는 숙박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숙박 검열에 걸리게 되면 노인들의 손녀나 친척이라고 둘러대면 비교적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검열에 걸리는 경우도 대개는 뇌물을 주면 해결이 가능하다.
둘째, 여관을 빌려 생활하는 경우다. 북한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 여관이 한두 개씩은 존재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왔다가 잘 곳이 없을 경우나 기차를 놓쳐 갈 곳이 없이 하룻밤 묵어야 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대부분의 여관은 기차역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숙박료 때문에 여관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장사꾼과 이동객들은 기차를 놓치면 역전에서 잠을 자거나 개인 집을 빌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지역의 여관들은 비어 있는 상태다. 여관을 관리하는 곳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에게 한 달씩 임대를 해준다. 물론 불법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질서가 무너지면서 불법도 합법이 된 지 오래다. 여관을 한 달 빌리는 비용은 북한 화폐로 2만원 정도라고 한다.
빈집에서 사랑 나누는 경우 늘어
셋째, 집을 매입하는 것이다. 북한 장마당이 본격 활성화되면서 과거와 달리 미혼의 젊은 여성들도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완이 좋을 경우 많은 부(富)를 축적하게 된다. 돈을 번 여성들은 자기 스스로 남자를 선택해 동거를 한다. 이 경우 집을 구입하는 것은 여자 쪽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값이 비싸다 보니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젊은 연인들은 주로 어디서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나눌까.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다. 평양의 경우 그나마 젊은 남녀가 데이트할 장소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이들은 놀이공원이나 유희오락장 등을 옮겨 다니며 데이트를 할 수 있다.
평양 이외 지역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주로 밤에 데이트를 많이 한다. 일과가 모두 끝난 저녁에 함께 나와 공원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잔디밭에 앉아 데이트를 즐긴다. 이렇게 밤에 으슥한 곳에서 데이트하다 아무도 몰래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도 있다.
근래에는 북한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많이 바뀌었다. 가장 선호하는 장소는 집이다. 물론 본인들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경우도 있지만, 낮 시간을 이용해 비어 있는 친구나 지인의 집을 이용한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낮에는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다니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여기에 부모가 함께 다른 지역으로 며칠 또는 몇 달씩 장사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해서 빈집은 갈 곳 없는 연인들에게 최적의 장소다. 물론 형제나 자매가 집에 있을 경우 모른 척 눈감아 주는 대가로 얼마간의 돈을 주기도 한다.
‘비혼’ 선택하는 남성보다 여성 비율 더 높아
최근 들어 북한에서도 한국처럼 ‘비혼(非婚)’을 택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북한 남성들은 여전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여성들은 출세에 대한 관심이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비혼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다른 이유로는 결혼 후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노동 부담을 더 이상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결혼 후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시장 활동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아직 가사노동도 여성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데, 그런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02.09 WP “중앙에 앉은 김정은 딸 주애, 후계자라는 분명한 신호”
“김정은 일가 정통성에 軍 중요성 강조”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8일(현지 시각)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김정은 부부 사이 정중앙에 자리 잡은 사진을 공개한 것을 두고 “(김정은의) 딸을 후계자로 내세우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보도했다.

▲軍수뇌부 병풍 세우고… ‘중앙’ 차지한 김정은 딸 - 북한 김정은(오른쪽)이 8일 북한 ‘건군절’ 75주년 기념식에서 부인 리설주(왼쪽), 딸 김주애(가운데)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 뒤로 북한군 수뇌부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WP는 ‘김정은은 딸이 후계자라는 가장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주애가 군 고위층이 가득 찬 연회장에서 중앙 무대에 선 사진이 공개된 이후 분석가들이 이같이 말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일(한국 시각) 김정은 부부가 김주애와 함께 군 장성 숙소를 찾았다고 보도하면서 김주애가 헤드테이블에서 김정은 부부 사이에 앉고 그 뒤로 군 장성들이 서 있는 사진 등을 공개했었다.
WP는 “10∼11세로 추정되는 주애가 통상 리더를 위한 자리인 사진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보여준다”며 “테이블에서 최고위 장성들이 이 가족 뒤에 서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고 했다. 또 “소녀(김주애)의 머리는 스타일리시한 어머니인 리설주를 연상하게 한다”며 “검은 스커트 의복과 실용적인 구두를 신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들이 연회장에 들어서자 메달로 장식된 재킷을 입은 군 지도자들이 서서 박수를 친다”며 “사진들은 김씨 일가의 정통성 주장을 유지하는 데 있어 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했다. “이날 만찬은 평양을 흐르는 강가의 섬에 있는 양각도 호텔에서 열렸다”며 “이 호텔은 미국인 학생 오토 웜비어가 구금되어 뇌사상태에 빠지기 전에 머물렀던 호텔과 같은 곳”이라고도 했다.
WP는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이 소녀의 이름과 나이를 알리지 않았고, 그를 단지 김정은의 ‘존경받는’ 딸이라고만 했다”며 “이 형용사가 사용된 것은 이전의 ‘사랑하는’에서 분명히 업그레이드된 것”이라고 했다.
WP는 북한의 이런 보도는 김주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것으로, 그가 후계자로 선택됐는지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의 분석을 소개했다. 정 실장은 “김씨 일가가 자랑스러운 혈통이며 그 가문이 통치하는 것만이 옳다는 얘길 태어나면서부터 들어온 북한 주민들이 4대째 통치를 수용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가부장 체제가 여성 통치자를 받아들일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WP는 지난해 11월 18일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소식을 전할 당시 김주애가 동행한 것과 관련, 태영호 국민의힘을 인용해 “이는(딸의 공개는) 북한 정권의 생존 전략의 핵심인 무기 프로그램이 유지될 것이라는 신호”라고 했다. 태 의원은 “김정은은 딸을 ICBM 옆에서 보여줌으로써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혈통을 이어갈 것임을 세계와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2-09 北열병식에 신형 ‘고체 ICBM’ 등장…9열 TEL에 탑재

▲북한이 지난 8일 건군절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무기가 행진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8일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에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무기가 등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ICBM인 ‘화성-17형’과 함께 고체연료 ICBM으로 보이는 신형 미사일이 등장한 사진을 9일 공개했다. 이 미사일은 2017년 4월 김일성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 열병식에서 원통형 발사관을 탑재한 채 공개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탑재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공개된 TEL은 한쪽에 8개씩 16개의 바퀴를 달았으나, 이번에 공개된 TEL은 한쪽에 9개씩 18개의 바퀴를 달고 나왔다. TEL은 북한 자체 제작으로 보인다.
식전행사는 이날 오후 8시 30분쯤 시작했으며, 본 행사는 9시 30분쯤 시작해 10시 30분 정도에 행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분석됐다.
문화일보 조재연 기자
02-09 3만 병력·신형 ICBM 행렬… 김정은, 딸 주애 손잡고 군기 사열

▲열병식 입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일 75주년 기념 야간 열병식에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군기 사열을 하며 입장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 뒤로 부인 리설주와 군 지휘관들이 따라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북한 ‘건군절’ 야간 열병식
김일성 옷차림 흉내낸 김정은
군대의 절대적인 충성 요구
딸과 주석단에도 함께 자리
한미확장억제 속 핵무력 과시
연설은 하지 않고‘숨고르기’

▲전투기 불꽃 8일 열린 북한 조선인민군 창건일 75주년 기념 야간 열병식에 전투기들이 불꽃을 날리며 비행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인력을 동원하고, 전술핵 부대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등을 대거 동원한 야간 열병식을 개최했다.
식량난 등 경제난에 빠진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석 하에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한 것은 한·미의 확장억제력 강화 움직임에 핵 무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열병식에서 연설은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미국 전략자산 전개와 3월 한·미 연합훈련 등을 앞두고 있는 만큼 대남·대미 메시지를 내지 않고 숨 고르기를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9일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열병식이 군 장비 진군의 모터사이클, 반정차포 종대, 평사포 종대, 탱크 종대 등 기계화 상징 종대들의 행진으로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포병부대가 뒤를 이었다. 통신은 전술미사일 종대와 장거리순항미사일 종대에 이어 “강위력한 전쟁억제력, 반격 능력을 과시하는 전술핵 운용부대 종대들의 진군”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또 주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공화국 국방력의 변혁적인 발전상과 우리 국가의 최대 핵 공격 능력을 과시하며 ICBM 종대들이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미국 민간 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도 트위터를 통해 열병식이 열린 8일 오후 10시 5분쯤 위성으로 촬영된 화성-17형을 비롯해 신형 고체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동원된 장면을 공개했다.
통신은 또 김 위원장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75년 행사에 참석한 사진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검은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열병식에 참여한 군 병력과 장비들을 사열했다.
검은 중절모와 코트는 할아버지인 김일성 전 주석의 대표적인 옷차림이라는 점에서 김 전 주석을 흉내 냄으로써 군의 절대적 충성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특히 이날 열병식에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군기 사열을 하며 입장했으며, 주석단 귀빈석에도 함께 자리를 잡고 손을 흔들었다.
부인 리설주는 김 위원장과 딸 뒤에 서서 입장했으며 귀빈석에서도 처음부터 뒤에 자리 잡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화성-17형 시험발사 등 주요 군 행사에 김주애를 동행하고 있다. 건군절을 하루 앞둔 7일에도 김주애와 함께 장성 숙소를 방문해 기념연회에 참석했다.
한편 이날 북한 라디오매체인 조선중앙방송은 8일 각지에서 김일성·김정일 동상 참배와 군부대 방문, 경축공연 등 건군절 기념행사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조재연 기자
02.10 核 앞세워 “존경하는 자제분” 띄우는 北, 4대 세습까지 봐야 하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설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김정은이 인민군 창설 75주년을 맞아 열린 주요 행사에 딸 김주애를 연일 대동하고 있다. 북 선전 매체들은 부인 리설주, 여동생 김여정에 대한 언급 없이 김주애를 ‘존경하는 자제분’이라 부르는가 하면, 김주애를 중앙에 배치한 사진들을 무더기로 공개했다. 8일 밤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도 김주애는 김정은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다. 김정은과 나란히 레드카펫을 밟았고 귀빈석의 상석을 차지했다. 김정은과 나란히 서서 열병 부대들을 사열하고 주요 지휘관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손뼉 치는 김주애 독사진도 공개됐다. 노골적인 우상화 시도다. 일부 전문가와 외신들은 “김주애가 후계자라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김정은은 슬하에 1남 2녀 또는 2남 1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인 김주애는 열살 정도라고 한다. 극도로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은 북한의 사회 분기위상 김주애가 남자 형제를 제치고 마흔도 안 된 수령의 후계자로 확정됐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김정은이 작년 가을부터 4대 세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이 노동당 간부학교를 찾아 “몇 백년의 후사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유능한 당 일꾼을 키워내라”며 공개적으로 후사(後嗣) 문제를 거론한 게 작년 10월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ICBM 발사 현장을 시작으로 총 다섯 차례 김주애를 대동했다. 모두 인민군 관련 행사였고, 핵미사일과 함께 등장한 게 4차례였다. 김정은이 그토록 핵에 집착하는 까닭이 짐작된다.
최근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이달 말 소집한다고 밝히며 “농사 대책을 강구하는 게 절박한 초미의 과제”라고 했다. 전원회의는 1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여는 대규모 정치 행사다. 북은 이미 작년 12월 말에 전원회의를 열었다. 두 달 만에 전원회의를 또 열면서 의제를 농사 문제로 국한한 것은 식량난이 극심함을 시사한다.
김정은 부녀가 사열한 이번 열병식엔 북한이 최근 개발한 신무기들이 총출동했다.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17형 ICBM이 평소의 2배 이상 등장했고, 고체 연료를 채택해 기습 발사 능력을 갖춘 신형 ICBM도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같은 대남 타격용 전술핵 무기들도 선보였다. 주민들이 굶어 죽든 말든 왕조의 영속을 위해 핵 폭주를 계속하겠단 얘기다. 한반도의 분단 비극이 4대 세습까지 이어질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 온다.
조선일보 사설
02-11 떠들썩했던 ‘건군절’의 그늘…주민에 물자, 공장에 軍위문 강요해 “인권 유린” 비판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을 쌍안경으로 보고 있다. 왼쪽은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오른쪽은 김덕훈 내각총리. 연합뉴스·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올해 인민군 창건일 ‘정주년’ 맞아
주민·기업소에 軍지원 지시한 당국
지원금 낼 돈도 없는 공장 직원들은
공장이 먼저 내고 내달 월급서 공제
엠네스티 “주민 40% 영양실조인데”
지난 8일 인민군 창건일(건군절)을 맞아 북한에서는 각종 기념연회와 열병식 등 떠들썩한 행사가 이어졌다. 특히 올해는 북이 중요시 하는 ‘정주년(열이나 다섯을 단위로 의미 있게 맞이하는 해)’에 해당하는 75주년이었기 때문에 북한 내부적으로는 더욱 법석이 일었다는 내부 증언이 나온다. 이에 국제인권단체들은 북한 당국의 인권 유린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9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지난 8일 “오늘 어랑군내 각 공장 기업소들이 자매 관계를 맺고 있는 인민군 군부대를 방문했다”며 “공장 간부들과 핵심 당원, 혁신자로 인민대표단을 무어(꾸려) 군부대를 방문할 데 대한 중앙(북한 당국)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달 초 중앙으로부터 인민군 창건 75주년을 맞아 기관, 공장, 기업소들이 자매 관계를 맺고 있거나 자기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를 방문해 군인들을 고무 격려할 데에 대한 지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 공장에서는 군인들에게 줄 위문품 준비를 위해 종업원들이 비누, 치약, 수건, 노트, 수첩, 원주필(볼펜) 등 세면도구와 필기도구 중에서 한두 가지씩 바치도록 했다”며 “(종업원들이 바친)그것을 모아 3개 지함(종이박스)분의 지원품을 만들었고 군인들에게 먹일 떡 10kg, 빵 5kg, 두부 20모를 공장 측이 따로 준비했다”고 전했다.
RFA는 북한의 각 기관, 공장, 기업소, 학교들이 군부대와 자매 관계를 맺고 군을 지원하고 있다며 이같은 자매 관계는 ‘우리 공장 우리 초소’ ‘우리 학교 우리 초소’ ‘우리마을 우리 초소’ 등의 명칭으로 불린다고 소개했다. 과거에는 군 창립일에 각 공장, 기업소, 지역에서 인민대표단을 꾸려 군부대를 방문하고, 반대로 군부대도 군사대표단을 조직해 해당 기관이나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난이 가중된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인민대표단만 군부대를 방문해 지원물자를 전달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양강도의 주민 소식통도 “군 창립일을 맞아 오늘(8일) 우리 기업소도 지원물자를 준비해 군부대를 방문했다”며 “군대 창립 75돌을 맞아 군에서 각 기관, 공장, 기업소들이 방문해 도와야 할 군부대를 정해줬다. 각종 지원물자와 함께 명절 음식을 꼭 해갈 데 대한 지시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물자 준비를 위해 우리 기업소에서는 모든 종업원이 (북한 돈) 2000원(약 0.24달러)씩 바쳤다”며 “그 돈으로 세면도구와 필기도구 같은 지원물자와 떡, 두부 등 명절 음식을 준비했는데 낼 돈이 없는 사람들은 다음 달 월급에서 공제하기로 하고 기업소가 먼저 돈을 댔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군 지휘부에 대한 비판도 제기했다. 그는 “신문, 방송에서는 인민군대가 김정은의 영도를 받는 ‘백두산 강군’이라고 자화자찬 하지만 군인들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힘들게 군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능력이 되는 주민들은 어떻게 하든 자기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공장이나 기업소 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은 일반 주민들에게도 물자 강요를 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평안남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지난 5일 RFA에 “인민군 창건절을 맞으며 안주시에서는 인민반 세대별로 내화 5000원(약 0.6달러)을 인민군대 지원금으로 거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지난해에도 군 창건절을 맞으며 주민들에게 군대 지원금으로 내화 2000원이 부과됐다”며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 군대 지원금의 두 배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인민군 창건 정주년을 맞는 해여서 군대 지원사업을 통 크게 벌리라는 중앙의 지시가 하달되면서 주민 세 부담이 가중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함경남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이달 초부터 중앙에서는 주민대상으로 인민군 창건 75주년을 맞으며 인민군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자는 사상교양사업을 전 군중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며 “이에 함흥시 당국은 여유가 있는 주민들은 쌀이든 돈이든, 돼지든 충성심을 가지고 군대지원물자로 바치라고 연일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거주지역에서도 5000원씩의 군 지원금 납부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이 소식통은 “주민들은 장사가 안 되어 가족이 먹을 쌀도 해결하기 힘든데, 장마당에서 쌀 1kg을 살 수 있는 5000원이 어디에 있냐며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올해 건군절의 피날레 격인 야간 열병식이 펼쳐 뒤,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는 RFA에 이메일로 북한에 대한 비판 입장을 밝혔다. 엠네스티는 “북한이 과시적인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의 40% 이상이 광범위한 식량 불안 속에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며 “북한에서의 인권 유린 행위의 규모와 심각성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 당국은 그들의 학대를 감추기 위해 정보와 통신을 막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며 “북한 당국은 유엔과 협력해야 하며 독립적인 인권 감시단의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이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야간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연합뉴스
다른 인권단체에서도 열병식에 대한 대북 비판이 쏟아졌다. 세계기독교연대(CSW)도 이날 RFA에 “김정은이 주민들의 안위보다 통제를 선호하고 세계를 위협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열병식은 김정은이 고조되고 있는 북한의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보단 군사비 지출을 선택한 또 다른 예”라고 지적했다. 휴먼라이츠재단(HRF)도 “대규모 열병식은 북한 독재정권의 잔혹성을 확인시켜준다”며 “인구의 40% 이상이 만성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는 나라에서, 영하의 기온 속에서 장시간 많은 군중들이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워싱턴의 북한인권위원회(HRNK)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도 “열병식은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안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잘 보여준다”며 “30년 동안 북한은 주민들의 인권을 희생하면서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해왔다. 쓸모없는 열병식을 위해 계속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식량, 보건을 희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박준희 기자
02-25 아사자 속출, 집단탈옥… 위기상황 치닫는 ‘北 식량난’

▲2021년 5월 25일 북한 농민들이 평양 락랑구역 남사협동농장에 벼를 심는 모습. AP 뉴시스
굶주리던 수감자 집단탈출… 수백 명 아사·병사
시장 쌀 가격 급등, 軍에 애국미 헌납 강요도
북한이 잇단 미사일 발사로 무력 도발을 재개했지만, 반대로 극심한 식량 부족 상황이 임계점에 근접하고 있다는 신호도 포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대량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난 관련 위험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지방의 교화소(교도소)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던 수감자들이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집단 탈옥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평안도와 황해도 등 지방 교화소에서 수십 명의 수감자가 집단으로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식량난으로 교화소 배식이 열악해진 데다, 그나마도 관계자들이 착복하는 통에 발생한 현상이다. 최근 2년간 평안남도 개천교화소를 비롯해 북한 내 지방 교화소 3곳에서 700여 명의 수감자가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었다는 전언이다.
북한 당국은 집단 탈옥이 일어난 교화소 주변에서 야간통행 금지, 불심검문, 숙박검열 등을 실시하며 단속과 검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도 북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21일 “북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비 식량 생산량 자체가 감소한 데다, 식량 공급·유통 정책 변화로 분배에도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북한 시장 물가 조사 결과 지난해 11월 추수기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북한 쌀 가격이 최근 갑자기 크게 올랐다고 보도했다. 군대의 식량 상황마저 악화하면서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애국미를 헌납하도록 강요해 곡물가가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 당국도 식량 문제를 해결할 타개책을 찾느라 분주하다. 노동신문은 23일 “지금 각지 농촌에서 적기가 되는 족족 밀, 보리씨뿌리기를 진행하고 있다”며 밀, 보리 생산을 장려했다. 이 매체는 22일에도 “자립경제가 미래를 위한 경제라면 예속경제는 하루살이식 경제”라고 강조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2.27 북한의 도발 위험성 키우는 식량난

1990년대 북한의 대기근 여파를 직접 목격한 건 지난 2007년 함흥에 갔을 때다. 평양을 처음으로 벗어나 함흥 거리에서 본 사람들은 평양 시민보다 훨씬 작고 깡마른 체형에 수척하고 누렇게 뜬 얼굴이었다.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는 쇠꼬챙이처럼 가늘었다. 1990년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에 대기근을 겪고 살아남았지만 영양실조와 발육 부진을 겪은 이들은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근은 이처럼 참혹하다. 전문가들은 또다시 대기근의 그림자가 북한에 어른거린다고 경고한다. 북한 정권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2021년 4월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세포비서 대회를 통해 또 다른 고난의 행군을 경고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제3차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식량 위기를, 그해 12월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도 상황은 악화했다. 대한민국 농촌진흥청의 2022년 12월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2022년 식량 작물 생산량이 전년보다 18만t 줄었다.
기본적인 수요조차 충족 못 시켜
김정은 또 다른 고난의 행군 경고
민심 동요하면 도발 나설 위험성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상황은 올해 들어 기본적인 수요조차 충족하지 못할 만큼 악화한 것 같다. 식량 부족으로 북한의 기본 식품의 가격이 달러화 기준 남한보다 훨씬 비싸졌다. 남북한 기본 소득 격차를 볼 때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식량 배급 자체가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북한 내 지역에 따른 식량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지금 상태가 이어진다면 최악의 기아 사태로 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식량난이 심각한 것은 정치적인 여파가 크기 때문이다. 90년대 대기근으로 북한 주민의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민심이 동요해 탈북자가 줄을 이었고,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만약 기아가 북한을 다시 덮친다면 정권에 대한 주민의 믿음이 두 번째로 붕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첫 연설에서 다시는 고난의 행군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다시 기아가 발생한다면 이는 김 위원장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던 이들의 믿음을 짓밟게 될 것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책임도 김 위원장이 지게 될 것이다.
북한이 세계식량계획에 식량 원조를 요청했지만, 북한 내부 모니터링이 허용되지 않으면 원조에 응할 리가 없다. 중국도 코로나 이후 국경 재개방으로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원이 불확실하다. 북한 정권이 손 쓰기엔 이미 너무 늦은 재난이 코앞에 닥쳤을 수도 있다.
기아가 다시 닥친다면 정권에 대한 강한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1992년 불만에 찬 군 장교들이 열병식에서 탱크 포탄을 쏴 지도부 전체를 사살하려 했던 시도가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란 법이 없다. 집단농장에서 식량 빼돌리기가 성행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비공식적인 무역활동을 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이는 곧 이미 맥박이 희미해진 북한 당 조직의 기능이 멈출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고위급 당 지도부의 일부 지역 방문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기아만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위기가 여전한 가운데 북한이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도발했지만, 한·미 군사훈련을 저지하지 못한 데 따른 불안감이 팽배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김 위원장은 또 다른 호위대를 창설했고, 한국 문화의 잠식을 막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안 그래도 다루기 힘든 상대인 북한은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다. 지금처럼 정권이 위협을 받으면 본능적으로 안으로 숨어들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김여정 부부장은 그 어떤 대화도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북한 정권의 행동도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어린 딸을 전면에 내 세우고 얼굴을 넣은 우표를 만든 행동은 기이하다. 김 위원장이 김정일 기일(12월 17일)과 생일(2월 16일)에 금수산 태양궁전에 가지 않는 것도 매우 이상하다. 규칙·전통·예측가능성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북한 정치 체제에서 이러한 행동은 정권 유지에 필수적인 군 간부의 충성심을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안한 시기야말로 북한 정권이 무언가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는 위기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02-28 ‘내 자식은 깡말랐는데, 달덩이 같은 얼굴’…“北주민들, 김주애 보며 분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야간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주석단에서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북한 식량 부족 극심한 상황에서
공개 행보로 김주애 노출 빈도 늘어나
일반아동들과 비교되는 모습에 불만↑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공개석상 등장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의 모습을 접한 북한 주민들이 식량 위기로 말라가는 다른 자녀들의 모습과 너무 다른 김주애에 대해 분노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자제분(김주애)의 모습을 눈 여겨 본 주민들은 ‘(김주애가)얼마나 잘 먹었는지 얼굴이 뽀얗고 달덩이 같다’는 말을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지금 주민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얼굴에 광대뼈만 남고 말이 아니다”며 “그런데 (김주애의) 잘 먹고 잘 사는 귀족의 얼굴에다 화려한 옷차림이 텔레비죤(TV)으로 자주 방영되니 밸이(화가) 나서 참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도 “어제(25일) 사랑하는 자제분(김주애)이 또 다시 평양 서포지구 새 거리 건설 착공식에 등장해 최고존엄과 첫 삽을 뜨는 모습이 텔레비죤으로 방영됐다”며 “주민들은 곱지 않은 눈길로 이를 바라보았다”고 전했다. 그는 “주민들은 선전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자제분의 하얗고 포동포동한 얼굴을 보면서 식량이 부족해 하루 세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서민 자식의 깡마른 얼굴과 너무 판이하게 다르다며 화가 치민다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언급했다.
주민 자녀들과 다른 김주애의 영양 상태 뿐만 아니라 그의 옷차림에도 주민들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소식통은 “지난 열병식(8일)에는 어린 자제분이 긴 머리에 서양식 검은 모자를 쓰고 나오더니 평양 서포지구 새 거리 건설 착공식에는 고급외투에 가죽장갑을 끼고 등장한 모습이 보도되면서 주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국은 자본주의 문화를 척결한다며 10대 여학생들이 머리를 길러 어깨 아래로 늘어뜨리거나 이색적인 옷차림을 하는 것을 통제하더니 저 (김주애의)옷차림은 뭐냐”며 “일반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과 너무도 판이한 모습에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현장에 첫 등장한 이후 지난 25일 평양 서포지구 새 거리 착공식까지 총 7차례 정도 공개석상에 등장한 바 있다. 김주애는 등장할 때마다 튼실한 외모에 김 위원장과의 친근한 모습 뿐만 아니라 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반면 북한은 최근 개성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해 김 위원장이 두 차례 간부를 파견하고 지방 교화소(남한의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이 생존을 위해 집단 탈출하기도 하는 등 극심한 식량 부족 사태를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북한은 지난 27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2일 차 회의를 열고 농업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올해 알곡생산 목표를 성과적으로 점령하며 가까운 몇해 안에 농업생산에서 근본적 변혁을 일으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농업발전 토대를 축성하는데서 나서는 당면 과업들과 과학적인 전망 목표들, 실현 가능성이 철저히 담보된 방도들을 찾는 것이 이번 확대회의의 기본목적”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문화일보 박준희 기자
03.01 이상한 김정은의 무모한 정책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정은의 정책이 달라졌다. 비교적 실용적으로 사회주의를 운용하던 그가 실상과 동떨어진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집권 후 상당 기간 경제발전을 위해 시장을 묵인하고 물질적 인센티브를 활용했지만 이젠 시장을 통제하고 국가가 상업과 무역을 독점하려 한다. 특히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양곡 대부분을 정부가 수매해 국영 판매소에서 팔게 함으로써 식량의 시장거래를 줄이거나 없애려 한다. 이 정책의 피해자는 북한 주민이다. 끼니 수를 줄이고 쌀 대신 옥수수를 먹는 주민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아사 소식까지 들리고 있다. 쌀의 공급 감소가 한 원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김정은의 엉터리 정책이 시장 생태계와 조정력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정책을 펼까. 시장의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흔히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북한 정부가 시장을 통제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 정책은 코로나 시작 전인 2019년 말에 선언되었다. 김정은은 전원회의 결정문을 통해 “국가상업체계, 사회주의 상업을 시급히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수십만 명이 아사하던 1990년대에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시장거래를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시장경제가 배급에 기초한 사회주의보다 훨씬 나은 체제임을 절감했다. 하지만 독재자에게 시장은 잠재적 적이다. 시장은 경제엔 도움 되지만 장기적으로 주민 의식을 변화시키고 금력의 힘을 키워 권력을 잠식한다. 코로나 사태가 시장을 조용히 타격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주민 반발이 극심할 수도 있었다.
시장 통제와 양곡 판매 국가 독점
주민들을 국지적 기아로 모는 중
이 국면에 딸을 등장시킨 김정은
스스로 권력 기반 해체하고 있어
김정은의 정책은 식량이 있어도 살 돈이 없게 만들었다. 이전엔 시장에서 돈을 버는 생태계가 존재했었다. 농민은 정부 수매를 제외한 식량을 시장에 내다 판다. 상인이나 무역업자는 식량이 쌀 때 사거나 수입해 가격이 오를 때 팔아 이윤을 챙긴다. 여기에 돈을 대거나 직접 사업을 벌이는 ‘돈주’도 있다.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중앙계획 시절보다 모두 훨씬 열심히 일한다. 장마당 환율로 환산한 월급이 1달러도 되지 않는 관료들은 뇌물을 받고 심지어 배급 식량까지 빼돌린다. 그런데 2020년부터 북한 정권은 주민의 생계 원천인 시장과 무역 활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재로 인해 줄어들었던 주민 소득은 더욱 감소했다. 소득원이 다 막히니 돈이 없어 식량을 사지 못하는 가계가 급증한 것이다. 만약 사회주의로 돌아가려 했다면 계획을 통해 주민 소득과 지출을 일치시켜야 했었는데 이 기본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정부의 식량 판매는 국지적 기아 상태를 일으켰다. 정부의 손은 배분의 효율성 면에서 시장을 따라갈 수 없다. 이전엔 밀수가 시장 가격 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지역 간에도 식량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시장이 조정했다. 한 지역에서의 식량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면 다른 지역보다 가격이 높아진다. 상인들은 휴대전화로 실시간 가격 정보를 확인해 가격이 싼 곳에서 더 비싼 지역으로 신속히 운송한다. 그러나 양곡판매소를 통한 배분은 식량을 적시에 지역 간 골고루 공급하기 어렵다. 행정 절차에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관료주의와 부패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 활동이 통제되면서 지역 간 식량 가격이 큰 차이로 벌어졌다. 이처럼 최근 북한의 식량난은 잘못된 정책에 의한 인재(人災)에 가깝다.
김정은의 행동도 이상해졌다. 그는 집권 직후에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신년사에서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했다. 2020년만 해도 열병식 연설에서 눈물을 보이며 인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랬던 그는 어디로 갔나. 경제는 후퇴하여 고난의 행군 초기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아사자까지 발생한다. 자식을 먹일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참담할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갑자기, 그리고 버젓이 김주애를 등장시켰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또 점점 더 그 존재를 부각하고 있다.
김정은은 스스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허물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에게 핵은 보험 같은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생존이다. 밥 먹기도 어려운데 보험이 팔리겠나. 핵 보험을 광고하기 위해 딸까지 동원했지만 효과는 없을 것이다. 정말 세습을 의도한 행동이라면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으로 하나도 이룬 것 없이 기아마저 초래한 그가 잘 먹고 잘 입은 듯한 딸을 데리고 나온 모습을 북한 주민은 어떻게 볼까. 오히려 주민 가슴에 불을 지르는 행동이 아닐까. 이 무모함은 10년 이상 통치한 자신감의 발로인가. 아니면 권력 유지에 유불리를 따지지 못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떤 절박함이 이런 이상한 행동으로 몰고 가는 것인가.
이상한 김정은의 무모한 정책은 체제가 받는 스트레스의 징후다. 향후 북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성이 상당하다. 북한을 치밀히 분석해 시나리오별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할 역량을 갖추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03.04 "오죽하면 자식을 거기 버리겠냐" 아사 위기 北엄마들 최후 선택
최근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해 아사 위기에 직면한 북한 주민들이 어린 자녀를 고아원에 버리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평안남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지난 1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요즘 고아원에서는 일주일이 멀다 하게 고아원 문 앞에서 어린 아기가 발견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라며 "내가 사는 (순천시) 연포동엔 2012년부터 기업소정양소(노동자 요양소) 건물이 1세~6세 아이들이 있는 고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며칠 전에도 고아원 앞에서 쓰러져 울고 있는 3살짜리 아이(남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 황해남도 신원의 한 유치원. AP
또 다른 소식통도 "그제(2월 27일) 아침 북창군 소재지에 자리하고 있는 고아원 문 앞에서 두 살 정도의 아기(여자)가 쓰러져 있는 것을 고아원 직원이 출근하다가 발견했다"며 "주민들은 '오죽하면 자기 자식을 고아원에 버리겠냐'며 당국을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창군고아원에는 부모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어 무의무탁 대상으로 선정된 아이들(1~16세) 110명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사 위기에 직면한 여성들이 자신의 어린 자식까지 굶어 죽을까 두려워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고아원에 놓고 떠난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북한 고아원에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우윳가루와 식용유, 약품 등이 화물열차를 통해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대북 식량 지원을 위해 1300만 달러가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북한에선 극심한 식량난이 관측된다. 100만여명 아사자가 발생한 1990년도 고난의 행군 수준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고위 간부의 호화 생활·코로나19 국경폐쇄 때문"
북한의 식량난과 아사 위기를 두고 전문가들은 고위층의 호화생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국경 폐쇄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이날 RFA에 "북한이 군이나 고위 당 간부의 생활을 우선시하면서 농업에 대한 충분한 투자를 안 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19 이후 강화된 국경 폐쇄를 언급하며 "2019년 이후 북·중 국경지대가 봉쇄돼 양국 간 밀무역도 많이 줄었다. 코로나로 인한 물류 제한 때문에 시골 지역에서 아사자가 나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중국과의 밀무역은 북한 주민들의 주요 돈벌이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딸 주애와 함께 평양 서포지구 새거리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사진 조선중앙TV 화면
국경 폐쇄 장기화로 인해 식량 부족 상황이 지속하자 북한이 장마당(시장)에서의 양곡 판매를 금지하고, 당국이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에서만 식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조치가 식량난을 악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왔다. 식량의 사적 유통을 통제하고 국가 장악력을 높인 게 화근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런 상황 속에도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제안에 응답하지 않은 상태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지난달 22일 "제국주의자들은 원조를 미끼로 다른 나라들의 경제 명맥과 이권을 틀어쥐고 경제 발전을 억제하며 예속시키고 있다"며 사실상 식량난 해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히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에서 "강력한 영도체계가 서있고 전체 인민의 단결된 힘이 있는한 못해낼 일이 없다"며 수년에 걸친 장기 농업생산의 구조적 변화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03-04 “제거프로그램 설치하라, 쓰다 걸리면 사형”…北이 박멸령 내린 ‘괴뢰말투’란?

▲온라인상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북한 가수 정홍란. 강동완 동아대 교수 유튜브 채널 캡처
K-컬처, 한류 등 한국 문화 유행하자
北, 지난달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
한국식 문화나 언어 ‘괴뢰말투’ 정의
“가르쳐주거나 유포하는 자는 사형”
북한에서 최근 한국의 K-컬쳐, 한류 등이 주민들 사이에 퍼져나가자 한국의 문화나 언어 이른바 ‘괴뢰말투’를 박멸하기 위한 각종 조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는 한 선교회로부터 입수한 북한 문건 등을 바탕으로 북한 내에 이른바 ‘한류’가 심각하게 확산한 상황이며 이를 차단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전자기기에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프로그램 설치를 의무화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달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했으며 이 법안의 해설서 성격을 띠고 있는 ‘새로 채택된 평양문화어보호법의 요구를 잘 알고 철저히 지켜나갈데 대하여’라는 문건을 배포하기도 했다.
평양문화어는 북한의 표준어를 의미한다. 또 문건은 ‘괴뢰말’에 대해 “어휘, 문법, 억양 등이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되여 조선어의 근본을 완전히 상실한 잡탕말로서 세상에 없는 너절하고 역스러운 쓰레기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문건에 인용된 평양문화어보호법 7조에는 북한 내 법 기관과 기관, 기업소, 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컴퓨터와 손 전화기를 비롯한 전자매체들에 대한 수시 검열을 진행하고 군중 신고 체계를 강화할 것을 규제하고 있다. 또 해당 법 18조에 대해 문건은 “국가적으로 지정된 괴뢰말투제거용프로그람(프로그램)을 손전화기, 콤퓨터, 봉사기에 의무적으로 설치할데 대하여 규제하였다”고 설명했다. 문건은 “괴뢰록화물(녹화물)과 괴뢰방송을 몰래 시청하는 현상들을 모조리 추적, 적발할 데 대한 문제들에 대해 규제했다”고 평가했다.
‘괴뢰말투’를 사용하다 적발된 이들에 대한 처벌 조항도 이번 법에 담긴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형량도 엄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 62조는 “콤퓨터망리용(컴퓨터망이용)에 대한 장악 통제를 바로 하지 않아 리용자(이용자)들 속에 망오락 같은 것을 하면서 괴뢰말투로 된 가명(ID)을 쓰는 행위가 나타나게 하였을 경우 책임있는 자에게 3개월 이상의 무보수로동처벌을 준다”고 명시했다. RFA는 “이 같은 내용은 광명망과 같은 북한 인트라넷 게임 이용자들이 자신의 ID, 즉 계정명 등을 한류의 영향을 받은 개성 있고 독특한 이름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의 부모들에게 자녀 단속을 경고하는 내용도 반영됐다. 문건에 따르면 평양문화어보호법은 “자녀 교양을 바로 하지 않은 부모들에 대한 자료를 통보하고 비판사업을 진행할데 대한 문제”를 규제했으며 이 같은 조항에 저촉된 부모는 벌금을 내야 한다.
심지어 ‘괴뢰말투’를 잘못 사용하다가는 최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 이 법의 58조에는 “괴뢰말투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괴뢰말투로 통보문, 전자우편을 주고받거나 괴뢰말 또는 괴뢰서체로 표기된 인쇄물, 록화물, 편집물, 그림, 사진, 족자 같은 것을 만든 자는 6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또 59조는 “괴뢰말투를 다른 사람에게 배워주었거나(가르쳐줬거나) 괴뢰말 또는 괴뢰서체로 표기된 인쇄물, 록화물, 편집물, 그림, 사진, 족자 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류포한 자는 10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하며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무기로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RFA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광범위한 사상과 문화를 다루고 있다면 평양문화보호법은 특히 언어 사용과 관련해, 그 다음 한국식 말투를 막는 데 핵심 목표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한국식 말투, 즉 한류의 영향이 북한에 깊숙이 확산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박준희 기자
03-08 “뜯어먹을 풀도 없어 결국…” 40대 北 여성 아사에 세 자녀는 보육원으로

▲지난 2011년 북한 개성의 모습. AP 뉴시스
RFA 소식통 인용…"식량가격 통제에 장마당 상인도 줄어"
북한 산간오지에서 심각한 식량난으로 아사자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함경북도 오지에 사는 한 주민소식통은 "이달 초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40대 주민이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사망했다"면서 "사망한 여성은 2년 전에 남편을 잃고 자식 3명을 혼자서 부양하면서 살던 마을에서 제일 어려운 가정 중의 한집이었다. 남겨진 자식들은 고아원으로 가게 되면서 주위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2월에도 마을에 살던 60대 주민이 제대로 먹지 못해 사망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여성이 사망하면서 한 마을에서만 벌써 두 명이 숨졌다"면서 "지병이 없는 건강한 주민들로서 농장일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는데 식량난이 지속되면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끼니를 거르면서 기력이 빠져 종당(결국)에는 사망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토로했다.
소식통은 "아사자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 오지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유는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생활시설도 낙후하고 봄철이 되면서 식량이 바닥난 절량 세대들이 많다"면서 "주위에 대용식량으로 뜯어먹을 수 있는 풀도 아직 나오지 않아 앞으로 굶어 죽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평안북도의 한 주민소식통은 "식량난이 지속되면서 시장에서 낱알(알곡)을 판매하는 식량 장사꾼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면서 "당국이 쌀과 옥수수 등 식량가격을 더 이상 올리지 못하게 통제하는 바람에 장마당에서 식량판매 상인들이 알곡 판매를 포기하고 장사를 접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주민들은 ‘인민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데 지도자를 비롯해 특권계층들은 살이 너무 쪄서 터질 정도’라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지난달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야간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주석단에서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양곡 정책과 유통과정의 문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등이 겹치며 식량난이 가중돼 여러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가정보원은 전날 국회 보고에서 "체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고 발생 규모를 정확하게 산정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또 연간 기준 80만t 정도의 쌀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박세영 기자
03.09 남매정치 대이은 김정은, 이번엔 10세 딸 내세운 가족정치
수령과 딸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의 여동생 사랑은 남달랐다. 김정일 위원장은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라며 이복동생들의 견제를 받았다. 빨치산 출신들의 도움으로 ‘평양 치맛바람’으로 불렸던 김일성 주석의 둘째 부인 김성애의 ‘바람’을 막아낸 그에게 여동생 김경희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친혈육이다. 장성택(2013년 처형)과 연애를 반대했던 아버지(김일성 주석)를 설득해 결혼을 성사시킨 것도 김정일 위원장이었다. 장성택이 ‘한 눈’을 팔면 ‘혁명화’를 보냈다.
1971년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집행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김경희는 오빠의 후광 아래 노동당 핵심으로 한 걸음씩 성장했다.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거쳐 당 경제정책검열부장, 경공업부장을 맡았다. 북한의 최고정책결정 기구인 당 정치국 위원도 역임했다. 김정일 시대 북한의 남매 정치는 그렇게 진행됐다.
계모 바람 차단한 김정일
집권 후 여동생과 남매정치
김주애 등장은 세습 암시
풍족함 경험시키는 게 먼저
김정일, “마누라는 촌뜨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7일 딸 주애와 체육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김여정 당 부부장 뒷 줄 맨왼쪽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권좌가 3대로 이어지는 동안 퍼스트레이디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1949년 사망한 김 주석의 첫 부인 김정숙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머니’로 추앙받을 뿐이다. 언제나 조명은 최고지도자와 후계자, 공주 등 김씨 일가의 혈통이다. 최고지도자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정일 위원장은 후계자 시절을 포함해 부인을 공식 석상에 등장시킨 적이 없다. 홍일천, 성혜림, 김영숙, 고용희 등 ‘여인’이 여럿인 데다, 부인의 외부활동을 마뜩잖아했다는 후문이다.
78년 납북돼 김정일 위원장을 사적인 공간에서 여러 차례 만났던 영화인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김정일은 부인을 ‘촌뜨기’라고 불렀다”며 “‘마누라는 그저 집안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게 제일’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신상옥, 최은희 『조국은 저 하늘 저 멀리』)
김정일 위원장의 본처로 알려진 김영숙과 딸 설송의 얼굴을 본 외부인은 미국 국적의 친북 인사인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이 유일하다.
김정일 시대엔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관심 자체가 금기였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말년을 옆에서 챙긴 김옥 역시 기술서기(비서) 역할로, 북한 주민들에게 퍼스트레이디로 인식되진 않았다. 이 때문에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이설주)을 노동신문에 등장시키고 각종 행사에 부부 동반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북한 주민들에겐 몹시 낯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김정은 시대에도 이복형제들을 제거하고 친여동생 김여정을 자신의 아바타로 등장시킨 남매 정치가 이어졌다. 차이라면 김여정 부부장의 외형적인 보폭이 고모 김경희보다 훨씬 넓고,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다. 김경희는 정책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 챙기기에 집중했다. 특히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직후 더욱 그랬다.
아버지와 달라진 김정은의 남매 정치
김여정은 당 부부장이라는 직위에 걸맞지 않게 전면에 등장한다. 오빠의 의중을 외부에 전하는 ‘입’ 역할도 한다. 한국과 미국 등 대미 정책을 총괄한다는 게 북한 당국의 설명이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인사들 사이에선 “모든 길은 김여정으로 통한다”는 말이 돌았다. 김여정이 “내 생각에는”이라는 표현을 담아 발표하는 담화는 이제껏 북한의 공식 문건에서 볼 수 없었다. 김여정의 역할과 위상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딸을 공개석상에 함께하는 횟수가 늘어나며 남매 정치에서 가족정치로 바뀌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딸은
노동신문은 지난해 11월 18일 장거리미사일 발사현장을 전하며 김 위원장이 딸의 손을 잡고 미사일 앞을 걷는 사진을 실었다. 이후엔 걸핏하면 정장을 입은 딸을 등장시키고, 지난달 25일 진행한 평양 서포지구 신시가지 착공식에선 삽을 들려 시삽하는 장면까지 내보냈다. 북한 매체는 “존귀하신”이라거나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자제분”이라고 칭한다. 김경희가 58년 북한을 떠나는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환송행사에 화동(花童)으로, 고모인 김여정은 2011년 김정일 위원장의 빈소에서 상복을 입고 주민들에게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다가갔던 모습과는 크게 다른 분위기다.
북한이 열 살 안팎의 ‘수령 딸’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여럿일 수 있다. 분명한 건 북한 체제를 이끄는 중심세력들이 기획한 일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8일 열병식장에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장면이 포착됐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 참가한 부대의 깃발을 사열하고, 열병식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이설주가 왼손으로 딸의 등을 떠미는 듯한 모습이다. 사전에 짜놓은 각본에 맞춰 공주를 등장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 아이를 김정일 위원장의 둘째로 추정하고 있다. 2013년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이 평양을 찾았을 때 이설주가 출산 소식을 알렸던 그 아이, 김주애일 수 있다. 북한의 로열패밀리 소식은 극비로 취급된다. 이 때문에 국정원조차 어려움을 겪는다. 국정원은 지난 7일 “김 위원장의 첫째가 아들이라는 첩보가 있어 계속 확인 중에 있다”고 보고한 게 단적인 예다. 10년이 넘도록 성별조차 ‘최종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와중에 미사일 앞에 수령의 딸을 등장시킨 점은 서방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북한 주민들에겐 4대까지 세습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효과를 노린 기획일 수 있다. 39살의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4대 세습을 염두에 두고 10세 안팎 ‘수령의 딸’에게 남매 정치를 맡기려는 것일까.
다음 주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북한은 김여정의 입을 통해 군사적 대응을 예고했다. 계모의 핍박과 견제를 이겨내고 권력을 잡은 김정일 위원장은 청와대 기습과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등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스위스로 보내 서방의 풍족함을 가르쳤다. 김주애의 최근 행보가 남매 정치의 시작이라면 전쟁 위기보다는 김정은 위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해외의 풍족함을 먼저 경험토록 하는 게 순서다. 그래야 주민들의 풍족함을 기획할 수 있으니까.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03.10 ‘富村 개성’마저 아사자 속출… “김주애는 신수 훤해” 수군수군
북한의 식량 사정 어떻길래
북한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난달 18일 대통령실이 내놓은 대북 메시지는 평소와 달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심각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주민의 인권과 민생을 도외시하며 대규모 열병식과 핵·미사일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식량난 자체는 만성적 현상이라 뉴스가 아니지만 아사자 속출은 근래 듣기 어려운 얘기였다. 정부가 공식 문서에 북한의 아사자 속출을 명시한 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처음이었다.
아사자 속출에 김여정까지 급파
정부가 북한 식량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구체적 징후를 포착한 시점은 작년 늦가을이다. 외교 소식통은 “해외 북한 공관들에서 주재국 정부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동향들이 다수 확인됐다”고 전했다. 강추위가 몰아친 연말부터는 함경도와 황해도를 시작으로 북한 각지에서 식량 부족으로 전전긍긍하는 내용의 SI(특수 정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농장원들이 “쌀 한 톨 못 쥐었다”며 양곡 수매 검열관에게 항의하거나 중간 간부들이 “고난의 행군기보다 어렵다”며 자조하는 내용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8일 인민군 창설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을 딸 김주애와 함께 지켜보고 있다. 이번 열병식은 북한 각지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열렸다. 김정은 부녀가 사열한 이번 열병식엔 북한이 최근 개발한 신무기들이 총출동했다. 맨 왼쪽은 리병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맨 오른쪽은 김덕훈 내각 총리.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국회 정보위 관계자에 따르면, 부촌으로 꼽히는 개성에선 새해 벽두부터 하루 수십명이 굶어죽는 상황이 1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특별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실태 파악을 위해 김덕훈 내각 총리에 이어 여동생 김여정까지 내려보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당초 ‘국정 가격 절반으로 식량을 공급하라’고 했다가 민심이 악화하자 며칠 만에 ‘무상 공급’으로 지시를 뒤집는 등 정책 혼선을 빚었고, 다른 지역에서 “개성 사람만 인민이냐”며 반발하는 동향도 포착됐다. 북한 당국은 연초부터 ‘애국미 헌납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이것이 개성 식량난 때문이란 소문이 돌면서 타지역 주민들이 동요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은 지난달 5일 정치국 회의를 갖고 “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며 “농사에 필요한 해당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절박한 초미의 과제”라고 했다. 전원회의는 1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여는 대규모 정치 행사다. 북은 이미 연말에 전원회의를 열었다. 두 달 만에 전원회의를 다시 열면서 의제를 농사 대책으로 국한한 것은 극심한 식량난과 이에 따른 동요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김여정의 ‘선별적 침묵’도 예사롭지 않다. 앞서 김여정은 대통령실의 대북 규탄 다음 날(2월 19일) 담화를 내고 “적의 행동 건건사사를 주시할 것”이라며 “우리에 대한 적대적인 것에 매사 대응하고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을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실이 거론한 ‘아사자 속출’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음 날 나온 담화도 마찬가지였다. 화성-15형에 대한 한국 언론의 지적은 일일이 반박하면서 식량난 문제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대통령실이 ‘아사자 속출’을 거론한 지 3주가 지나도록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식량 생산 급감에 유통 왜곡 겹쳐
과거 북에서 풍수해로 인한 흉작으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한 경우는 간혹 있지만 지금처럼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작황이 다소 부진하더라도 곡물 수입이나 외부 지원으로 부족분을 일부 메우고, 주민들도 장마당 거래 등을 통해 최소한의 식량을 확보하는 식으로 만성적 식량난에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식량난은 전통적 내핍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극단적인 코로나 봉쇄 조치로 곡물 생산이 3년 연속 차질을 빚은 것이 1차적 원인이다. 기존 고강도 제재에 봉쇄까지 더해지며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가 정상 공급되지 못했다. 특히 비료의 경우 원유 금수 조치 등의 영향으로 자체 생산이 여의치 않았고, 대중국 수입도 2019년 4315만달러였던 것이 2020년 545만달러로 8분의 1토막 났다. 쌀 생산량이 급감한 이유다. 2019년 182만t에서 2020년 140만t으로 꺾인 뒤 회복을 못 하고 있다. 옥수수, 콩 생산은 타격을 덜 받았지만 외부 식량 확보가 여의치 않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식량 지원에 인색하다”며 “북중 관계가 서먹하다”고 했다.
미 농무부 전망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2019년 69만6000t이던 것이 2020년 95만6000t, 2022년 121만t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최소 수십만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은 3~4년 연속 자연재해로 흉작이 누적된 결과”라며 “지금은 코로나 봉쇄 3년이 자연재해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 북한의 양곡 정책 변화다. 북한은 작년 12월 농장법을 개정해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양곡을 당국이 수매해 국영판매소에서만 팔게 했다. 이 조치 전까지 농민은 정부 수매분을 뺀 나머지를 시장에 팔았는데 이것이 금지됐다. 당국이 곡물의 생산·유통을 장악해 시장의 영향력을 줄이겠단 의도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식량 배분은 시장의 효율성을 따라갈 수 없다. 더구나 3년 누적된 작황 부진으로 식량 배분의 지역 불균형이 극심해졌다. 곡창이라는 황해도에서도 아사자가 속출하는 이유다.
핵 폭주와 김주애 등장에 주민들은 ‘부글’
당장 식량 증산이 어렵다면 식량난을 가중시킨 잘못된 정책이라도 손봐야 하지만 북은 그럴 생각이 없다. 지난달 말 농사 대책을 강구한다며 소집한 전원회의의 결론도 ‘기존 정책 관철’이었다. 전원회의가 끝나자 주철규 내각 부총리, 리철만 당 농업부장 등 간부들은 “죄책감에 머리를 들 수 없다”는 반성문을 노동신문에 경쟁적으로 기고했다. 김정은의 정책은 완전무결한데 자신들이 집행을 못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이런 선전에 속지 않는다고 한다. 조직적 저항까진 아니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북한 사회안전성(경찰청 격)은 지난달 22일을 기해 ‘사회주의 제도의 안전과 인민의 생명 재산을 침해하는 자들을 엄격히 처벌할 데 대하여’란 포고문을 전국의 주요 거리와 장마당 입구 등에 게시하고 ‘범죄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포고문은 살인, 강도, 유괴, 강간·윤간 같은 흉악 범죄 외에도 당 정책 시비·중상, 혁명가요 가사 왜곡, 유언비어 유포, 간부 가족에 대한 폭력, 낙서 등 반정부·반체제 행위들을 단속 대상으로 거론했다. 현재 북한 내부의 혼란상과 흉흉한 민심을 짐작할 수 있다.
굶주리는 북 주민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핵·미사일 폭주다. 북한은 작년 ICBM 8발을 비롯해 탄도미사일 70발을 발사했다. 올해도 대남 타격용 초대형 방사포 도발로 새해 첫날을 열었고, 2월엔 ICBM 기습 발사 능력을 과시했다. 3월엔 5년 만에 정상화되는 한미연합훈련을 고강도 연쇄 도발의 핑계로 삼을 것이다. 군 당국은 지난 1년간 미사일 발사에 최소 3억8000만달러, 최대 6억달러를 쓴 것으로 추산한다. 2600만 전 주민에게 3~5개월 치 쌀을 공급할 수 있는 돈이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ICBM 발사와 열병식 등 군 관련 행사장마다 딸 김주애를 대동하는 것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고 전했다. 주민들끼리 사석에서 “씹어먹을 수도 없는 미사일만 잔뜩 만든다” “주민들은 배를 곯는데 (김정은) 딸은 신수가 훤하더라”는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김정은은 김주애로 상징되는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 쌀 대신 핵을 택했다는 메시지를 내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허리띠 조이지 않게 한다더니… 말바꾼 김정은]
”허리띠 더 조이고 배곯아야…승리 위한 불가피한 선택”
북한의 식량난은 당초 김정은의 다짐과는 거리가 멀다. 김정은은 김일성 100회 생일날이던 2012년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 앞에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확고한 결심”이라고 했다. 집권 후 첫 대중 연설이었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의 행보는 연설과는 딴판이었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표방하며 인민경제 발전보단 핵무력 강화에 체제의 역량과 자원을 집중했다. 미 본토까지 날아가는 ICBM을 개발했지만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얻어맞았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제재 해제를 시도했으나 2019년 하노이 노딜로 실패했다. 결국 그해 말 열린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했다.
김정은이 세 번째로 허리띠를 언급한 건 지난달이다. 인민군 창건 열병식(2월 8일)에서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했다”며 “보다 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직접 발언이 아니라 노동신문이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신문은 “총알보다 쌀을 먼저 생각하면 인민의 존엄이 유린당하기에 힘들어도 가셔야 했고, 세상이 몰라준다 해도 가셔야 할 길이었다”며 김정은의 핵폭주를 두둔했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03-21 ‘세계 최장 11년’ 군복무에 北청년들 불만…男은 “군부대 8년 후 농촌 배치 3년까지”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일 “전국적으로 인민군대입대, 복대를 열렬히 탄원한 청년들의 수는 19일 현재 140만여 명에 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복무면제 위한 뇌물액수도 2배로 늘어"
주민들 "청년들 군에서 청춘 다 보낼 판"
최근 북한이 징집병의 군복무 기간을 개편한 뒤 사실상 더 늘어난 복무 기간에 대해 북한 청년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의 최근 군복무 기간이 여성의 경우 5년, 남성의 경우 8년인 데 더해 3년간의 농촌 배치를 추가해 각각 8년 및 11년으로 연장됐다고 전했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RFA에 "초모(군입대) 대상자들과 주민들은 크게 늘어난 군사복무 기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며 "군대에 입대하여 제대할 때까지 군사훈련에다 건설장에서의 노역과 고된 농사일까지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여기(북한)서는 17살에 고급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를 졸업하면 우선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며 "졸업생 중에 입대 대상자는 전염병 외에 웬만한 심장병이 있어도 입대해야 하고 키가 남자 155cm, 여자 150cm, 몸 무게 50kg 이상이면 누구나 입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군복무 기간 연장으로 입대 기피가 심해지며 병역을 면제 받기 위한 뇌물액수도 2배로 늘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군복무 기간이 3년이 더 늘어나 남성은 11년, 여성은 8년이 됐다"며 "군입대 면제를 받으려면 뇌물액수도 기존의 중국돈 3000원에서 6000원(약 870달러)으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뇌물을 고여서(들여서) 군입대 면제를 받는다 해도 또 돌격대라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며 "군입대에서 제외된 대상은 돌격대로 선발돼 농장과 광산, 건설장에 동원되기 때문에 힘없고 돈이 없으면 입대 대상에서 제외된다 해도 별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평안북도의 한 주민소식통도 "새로 변경된 군사복무제로 인해 대부분의 청년들이 군대에서 청춘을 다 보내야 할 판"이라면서 "올해부터 남녀군인들은 3년 더 농장에서 일해야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남녀 군사복무기한이 3년 더 늘어나자 남성은 11년, 여성은 8년 군복무를 해야 한다"면서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돈 많은 주민은 뇌물을 써가며 보다 편한 부대에 자녀를 입대 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의 군복무에 대한 불만도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요즘에는 여성도 의무복무제를 시행하면서 딸자식을 가진 주민들의 원성이 높다"며 "올해부터 여자도 17세에 입대하여 25살까지로 늘어난 군복무 기한을 다 마쳐야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당국을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은 청년들의 군복무 기한을 늘여(늘려) 부족한 군 병력도 채우고 모자란 건설, 농사인력도 해결하려고 한다"며 "하지만 군 인력부족의 근본원인이 식량난으로 하여 주민들이 자녀를 낳지 않거나 1명씩 낳기 때문인데 군복무기간을 늘여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일보 박준희 기자
03.29 핵이 파괴한 김정은의 꿈

김정은은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고 싶었다. 불량국가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반듯한 국가의 수장이 되길 원했다. 그 일환으로 김정일의 군(軍) 우선 정책을 폐기하고 당과 내각이라는 ‘정상적’인 제도를 통해 나라를 통치하려 했다. 자신의 직함도 김정일이 쓰던 국방위원장이 아니라 국무위원장이라 불렀다. 비정상으로 보일 만한 선전과 관행도 바꾸었다. 북한 교과서엔 김일성이 축지법을 썼다고 기록되었으나 2020년 5월 노동신문은 축지법은 없다며 이를 부정했다. 또 여느 국가수반처럼 각종 행사에 리설주를 동행했다. 2021년에는 유엔에 지속가능발전 보고서를 제출했고, 2020년 당대회 보고서는 여성 대표자 비중이 10%라고 뜬금없이 밝히기도 했다
핵이 있는 한 정상국가 될 수 없고
권력의 4대 세습도 불가능해져
북핵은 김정은의 꿈을 파괴할 뿐
결단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어
직함을 고치고 아내를 대동하고 여성 대표의 비율을 언급한다고 정상국가가 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정상국가는 세계와 교류하고 협력한다. 그러나 핵은 북한을 세계로부터 단절시켰다. 유럽의 한 대학은 2016년 4차 핵실험 전 북한 학생을 장학생으로 입학시켰다. 그러나 유엔안보리 제재가 실행되자 제재와 무관한 분야인데도 이 학생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이 청년이 자신의 장학금 일부를 북한에 보낸 것이 문제였다. 학교는 이를 북한에 외화가 유입되지 못하게 막으려는 제재 목적에 위반된다고 보았다. 김정은의 핵은 북한 청년들의 꿈을 앗아갔다. 핵 개발이 없었고 그래서 제재도 없다면 북한 청년들이 외국에서 새롭고 유익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와 관료들이 해외에 나와 경험을 쌓고 북한의 미래를 개척할 역량을 키웠을 것이다. 핵으로 인해 무역이 단절되면 지금 당장 고통을 겪겠지만 인재를 키우지 못하면 북한의 미래까지 황폐해진다.
외부 지원 없이도 국민 생존이 가능해야 정상국가다. 그러나 김정은의 핵 개발은 주민의 삶을 무너뜨렸다. 경제제재를 받기 전엔 아사하는 주민이 거의 없었다. 충분치는 않지만 끼니는 때울 수 있었다. 식량 생산이 증가하고 시장 유통이 원활했기 때문에 원조도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사자까지 나온다. 더욱이 국제사회가 식량 원조를 제안해도 자력갱생하겠다며 받지 않는다. 거의 모든 주민이 코로나 백신을 맞지 못했는데도 백신 지원 제안마저 거절한다. 식량이든 백신이든 남한이나 서방의 원조를 받으면 자력갱생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고 그러면 핵 국가로서 인정받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상국가는 다른 국가를 위협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줄곧 신년사에서 ‘남녘 겨레에게 새해 인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했다. 특히 2022년 하반기에는 핵의 선제 사용을 법제화하고 연말에는 북한의 초대형방사포가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하다”며 위협했다. 심지어 자국 주민도 겁박한다. 핵이 아니라 밥을 원하는 주민의 불만이 증가하자 ‘인간개조 사업’을 내세우며 언어와 행동을 통제하고 외부 문물의 유입을 막고 있다. 2022년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르면 적대국의 사상문화를 유포할 경우 사형에도 처할 수 있게 했다. 핵 개발이 몰고 온 비(非)정상의 광풍이 아닐 수 없다.
핵은 김정은의 개인적 꿈인 권력 세습도 파괴했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다. 권력과 핵을 지키고자 공포정치란 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공포정치는 당대의 권력 유지엔 도움 되지만 세습에는 치명적인 해가 된다. 소련에서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 처음에는 치안기관 수장 출신 베리야가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경험했던 권력 엘리트들은 합심하여 잔혹한 베리야를 몰아내고 온건파인 흐루쇼프를 서기장으로 앉혔다. 베리야 치하에서 다시 공포정치라는 악몽을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얼마나 무서웠던가를 시사하는 기록이 있다. 스탈린의 경호원은 그가 침실 바닥에 쓰러진 채 약간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스탈린을 두려워해 그의 상태를 직접 살피는 대신 정치국원에게 보고했다. 4명의 핵심 정치국원이 모여 회의한 끝에 침실에 들어갈 두 명을 뽑았다. 권력 서열 2, 3위의 말렌코프와 베리야였다. 이들이 침실로 걸어갈 때 말렌코프의 새 구두가 나무 바닥에 닿아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스탈린이 깨어 화낼 것을 두려워한 말렌코프는 구두를 벗어 겨드랑이에 끼고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스탈린은 회생 불능 상태가 되었다. 과연 북한 권력층은 김정은이 지목하는 후계자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핵을 쥔 채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 수는 없다. 권력도 물려줄 수 없다. 10년 이상 경제난을 버틸 수도 없다. 그럼 김정은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가. 결단의 시간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