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소리 2023-02/ 02.01(수) ‘세금 알바는 지속 불가능’ - 02-28 보훈부 승격…자유민주주의 강화할 新보훈 출발점 돼야
바른소리 2023-02/
02.01(수) ‘세금 알바는 지속 불가능’ 문 정부 5년의 교훈
고용노동부가 세금으로 만드는 직접 일자리 사업을 줄이고 민간의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업 급여 등 현금 지원을 줄이고 대신 직업 훈련을 비롯해 구직자의 근로 능력을 높이는 사업을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주력했던 이른바 ‘세금 알바’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민간 주도의 고용 창출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문 정부는 “정부가 최대 고용주가 돼야 한다”며 공공 일자리 수를 5년 사이 40만개 이상 늘렸다. 일자리 예산도 5년 새 2배로 늘려 2021년엔 3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같은 기간 500대 민간 기업의 일자리는 8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이 10%를 넘어섰다. 문제는 이렇게 급증한 공공 일자리의 질이 낮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이었다.
빈 강의실 불 끄기, 담배꽁초 줍기, 놀이터 지킴이 등 일자리 같지도 않은 초단기 세금 알바를 양산하면서 고용 숫자를 늘리는 데만 주력했다. 그 결과 2017년 96만명이던 주 15시간 미만 단기 취업자 수가 2021년 150만 명을 넘었다. 2013~2017년에 늘어난 취업자 중 주 15시간 미만 비중은 연평균 9.9%였지만 2018~2022년엔 45%로 뛰어올랐다. 새 정부가 2021년 재정 지원 일자리 사업을 점검한 결과, 169개 사업 가운데 중복, 낮은 취업률 등의 이유로 ‘개선·감액’이 필요하다고 판정 내린 사업이 70개(41%)에 달할 정도였다.
문 정부의 세금 일자리 정책은 고용이 아니라 노인 복지 사업이었다. 60대 이상 노년층에게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게 하고 용돈 수준 현금을 쥐여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정책이 지속 가능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만이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문 정부 5년이 보여주었다.
조선일보 사설
02.02 ‘탈정치’ 교사노조의 급성장, 시대착오 전교조에 대한 심판

▲교사노조 연령대별 가입자 비율
교육계에서 젊은 교사들이 주축인 ‘교사노조연맹’이 출범 5년 만에 전교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동안 전교조가 낡은 정치·이념 투쟁에 치우쳐온 것을 감안하면 교육계에 새로운 대체 세력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출범한 교사노조는 전교조와 달리 정치 이념을 갖지 않고 실용적 입장에서 현장의 젊은 교사들 요구에 맞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복지와 교권 보호에 관심이 많은 현장 교사들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활동이 20~40대 젊은 교사들의 호응을 받는다고 한다. 아직 최종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국가교육위 위원 추천권을 놓고 전교조와 서로 회원수가 많다고 맞서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전교조는 그동안 낡은 이념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은 데다 나이스(NEIS) 거부, 교원 평가 도입 반대 등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투쟁을 일삼았다. 요즘도 전교조 사이트를 보면 ‘민주노총 압수수색은 공안 정치 신호탄’, ‘서울시교육감 1심 판결은 진보교육감 죽이기’ 등과 같은 정치적인 구호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조직이 실용적인 젊은 교사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전교조의 퇴조와 교사노조의 급성장은 국민과 현장 구성원의 지지를 잃은 조직은 존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약자 행세를 하며 불법과 탈법, 폭력과 집단 괴롭힘까지 서슴지 않는 민노총도 환골탈태하지 않는다면 전교조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요즘 민간 기업 노조에서도 파업과 투쟁 노선에 반감을 표시하며 합리적 요구에 중점을 두는 젊은 조합원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2-02 포퓰리즘 억제 위해 ‘文정부 방만 재정’ 철저 감사해야
감사원이 올해 감사 최우선 순위에 ‘건전 재정’을 둔 것은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며 1068조 원으로 불어난 국가채무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대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게다가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의식해 벌써 퍼주기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선심 정책은 대놓고 반대하기 어렵다. 적지 않은 국민도 국고 의존증에 걸렸다. 따라서 감사를 통해 엄정히 책임을 물음으로써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도록 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는 그나마 실효성이 있는 포퓰리즘 억제책이다.
감사원 감사는 3∼5년 전 사안을 주로 다룬다. 따라서 문 정부의 각종 연기금 운용·관리가 주요 대상이다. 문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2017년 말 10조 원 넘었던 고용보험기금은 5년 만에 고갈됐고 적자 규모가 5조 원이다. 공무원연금 투입 재정만 한 해 4조 원이 넘는다. 30조 원대 안팎의 국가 R&D 사업도 마찬가지다. 문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육성한다며 R&D 예산을 크게 늘렸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는 지원 대상 선정이 불투명하고 성과도 평가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20∼2025년 국비와 지방비 18조 원이 투입되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하반기 조사 대상이다. 감사 대상인 15개 기초자치단체와 7개 광역시도에는 성남시와 경기도도 포함돼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도(道) 재정으로 귀속할 수익을 지역화폐 운용 대행업체에 몰아줬다는 의혹에 대해선 기초조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 불거진 경기도의 대북 사업 의혹도 당연히 감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민주당은 물론 여당의 조경태 의원이 각각 30조 원과 6조4000억 원의 긴급 추경을 주장하고 나섰다. 재정 편성권은 정부에 있다. 철저한 감사로 퍼주기 선심 예산에 간접적 제동이라도 걸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2-03 공공요금 탓 한국만 물가 폭탄…文정부 反시장 책임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일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데 그쳤다. 1년 만의 베이비스텝이다. 제롬 파월 의장은 회견에서 “물가 둔화 과정이 시작됐다”고 밝히고 물가 둔화(disinflation) 표현을 15차례나 반복했다. 세계 금융시장은 사실상 미국 금리 정점 선언이라고 반겼다. 나스닥은 이틀 연속 폭등해 5% 넘게 올랐고, 미 채권 수익률은 4.1%까지 내려가는 등 물가·금리가 안정을 되찾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엔 1월 소비자물가가 5.2% 상승했다. 글로벌 인플레가 둔화하는 가운데 한국만 고공 행진을 하는 것이다. 주범은 전년 동기 대비 28.3% 급등한 전기·가스·수도 물가지수다. 통계청은 “거의 전기·가스요금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억눌렀던 공공요금이 윤석열 정부에서 ‘물가 폭탄’으로 터지는 것이다. 문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은 대선 전에 활용하고, 공공요금 인상은 대선 뒤로 떠넘기는 꼼수를 동원했다. 가격이라는 시장 조절 기능을 장기간 인위적으로 망가뜨려 수요 조절에 실패해 부담을 키우고, 더구나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닥치게 만든 무책임은 가위 범죄 수준이다.
게다가 당분간 5%대의 인플레가 불가피해 보인다. 향후 전철·버스요금과 가스요금 추가 인상 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0.4% 성장에 이어 올해 1.7% 저성장이 예고돼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졌다. 경기 흐름만 보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물가 상승과 한·미 금리 차로 인해 계속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이다. 지난 정부의 잘못된 유산이 금리정책과 서민들의 생계까지 압박한다.
문화일보 사설
02-09 수사 방해할 大法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 철회해야
대법원이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문제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 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다. 압수수색 남발로 인한 권리 침해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수사 기밀 유출 등 부작용이 훨씬 더 심각할 졸속 방안으로 보인다.
지난 3일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압수수색 영장 발부에 앞서 기일을 정해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58조의2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심문 대상에는 당연히 피의자도 포함된다. 수사의 성패는 압수수색에 달려 있고 압수수색은 전격성과 밀행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압수수색을 피의자에게 사전에 알려준다는 것은 증거인멸과 도주를 권유하는 것과 다름없다.
권력이나 재력이 있는 피의자는 더 유리하다. 법 체계상 문제도 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의 경우엔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근거를 만들었다. 하위법인 규칙 개정만으로 심문 출석을 강제해선 안 된다. 대법원은 주로 수사관이나 제보자가 심사 대상이 될 것이고, 복잡한 일부 사안에 제한적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검은 신속하고 엄정한 범죄 대응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라며 반박했는데, 수사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면 타당한 주장이다.
지금도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이 범죄 혐의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면 기각하거나 보완을 명할 수 있다. 그 대상도 엄격하게 제한할 수 있다. 이미 폐해를 방지할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사가 판사 출신 변호사의 사건 수임 범위를 수사 초기인 압수수색 단계로 확대하는 영업 전략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의 실현도, 실효성도 기대할 수 없으면서 유전무죄와 전관예우 의혹만 키우는 제도는 당장 철회하는 것이 옳다.
문화일보 사설
02.09 [속보] 감방 갈까봐 도망갔던 김봉현 최후…징역 30년 선고

▲YONHAP PHOTO-2934〉 '라임몸통' 김봉현, 재판 앞두고 전자발찌 끊고 도주 (서울=연합뉴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11일 오후 재판을 앞두고 전자장치를 끊은 채 도주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0분께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부근에서 김 전 회장의 전자발찌가 끊어졌고 연락이 두절됐다. 사진은 지난 9월 20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열린 사기?유사수신행위법 위반 관련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참석하는 김 전 회장. 2022.11.11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2022-11-11 15:01:54/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라임 사태'의 주범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이상주 부장판사)는 9일 오후 2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769억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의 경제범죄로 발생한 피해액이 1258억 원에 이르고, 관련인의 피해가 심각한 데도 도주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 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범행 횟수와 피해 규모 등에 비춰 죄책이 무겁고 공범들의 형사처벌 정도를 볼 때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수원여객 계좌에서 유령 법인 계좌로 총 26회에 걸쳐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렸다.
2020년 1월 라임이 투자한 스타모빌리티 전환사채(CB) 인수대금 400억원 중 192억원을 향군 상조회 인수자금에, 나머지 208억7540만원을 개인채무 변제금 등에 쓴 혐의도 받는다.
이밖에 인수한 향군 상조회의 자금과 부동산 등 합계 377억4119만원, 스탠다드자산운용 자금 15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11일 결심 공판 당일 도주했다가 48일 만에 검거됐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결심 공판에서 "김 전 회장은 피해 회복은 안중에도 없이 형사 책임 회피에만 골몰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징역 40년과 추징금 774억354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예슬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02-10 사법신뢰 해친 ‘김명수 6년’
김충남 사회부 부장
김명수 제16대 대법원장이 오는 9월 6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김 대법원장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겠다며 좋은 재판과 사법개혁 등을 내세웠다. 그는 지난달 2일 시무식에서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해 ‘좋은 법원’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투명하고 수평적인 민주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사법개혁을 추진했다고 했다. 실제 법원 안팎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수직적인 관료주의와 폐쇄성을 개혁하고 법원 내 여권을 신장했다는 긍정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좋은 재판을 통해 사법부가 국민의 존중과 신뢰를 회복했는지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좋은 재판’의 전제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권익 보호에 있다.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이형근 특허법원 고법 판사는 최근 법률신문 기고에서 김 대법원장 시절 미제 사건 처리 등에서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했다고 분석했다. 1심 민사 합의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17년 294일에서 2021년 369일로 크게 늘었고, 1심 형사 합의 불구속 사건도 같은 기간 168일에서 217일로 늘었다. 2년 이상 선고가 나지 않은 미제 사건은 2016년 2355건에서 2021년 5113건으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 재판을 미루고 쉬운 것만 하는 일이 일상이 된 것이다.
재판 배당 오류도 2020년부터 3년간 1만5851건(민사 1만4287건, 형사 1564건)으로 하루 14건꼴에 달했다. 법원의 배당 잘못으로 재판을 다시 받는 국민 피해가 속출했다. 고질화한 재판 지연 문제 등은 면밀한 대책 없이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판사들이 직접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는 제도를 강행해 판사의 업무 동기와 의욕을 꺾은 것과 무관치 않다. 전국 법관 3000명 중 10%를 넘는 381명이 지난 5년 새 법복을 벗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원 내 진보 성향 단체를 중심으로 코드 인사와 내부 세력 교체 시도에 매달린 것도 갈등을 키웠다.
무엇보다 김 대법원장 자신으로 인해 사법 불신이 악화됐다는 점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김 대법원장 아들 부부가 1년 4개월 동안 공관에서 거주해 ‘공관 재테크’ 의혹을 낳았고, 한진그룹 법무팀 사내 변호사였던 며느리의 공관 만찬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누가 봐도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국회에서 탄핵이 추진됐던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 사표 수리 거부와 국회 거짓 해명 논란은 결정적이었다. 2020년 5월 22일 김 대법원장은 “탄핵하자고 (국회에서)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탄핵’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의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김 대법원장이 2020년 측근 판사를 대법관에 기용하기 위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심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폭로까지 나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차기 대법원장은 김 대법원장을 반면교사로 삼아 훼손된 사법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우선 해야 한다.
문화일보
02.11 시한폭탄 된 국민연금 고갈, 수술 미룰 거면 응급조치라도 하라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올 4월 연금개혁안을 발표하겠다고 한 입장을 번복했다.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문제는 다양한 견해가 있고 연금특위나 민간자문위에서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며 “정부가 10월에 국민연금 종합 운영 계획을 내면 국회가 받아서 최종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보험료율(소득 대비 보험료 비율) 조정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는데, 국회가 개혁을 하는 척 시늉을 내더니 돌연 정부에 떠넘겨버린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는 지난달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전 추계보다 2년 앞당겨진 2055년, 기금 지출이 수입을 웃도는 적자 발생 시점도 1년 더 당겨지는 2041년으로 예측했다. 이런 진단을 받고도 보험료율 조정을 서두르기는커녕 오히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데 할 말을 잊는다.
우리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소득의 9%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1998년 9%로 올린 이후 25년째 그대로다. 그 결과 국민연금은 응급조치와 함께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한 중병 환자와 같다. 적자 발생 시점(2041년)이 먼 미래의 일 같지만 불과 18년밖에 남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보험료율 조정은 뒤로 미루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공적연금 전반에 대한 구조 개혁부터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은 연금 개혁에서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병원에서도 중병 환자가 들어오면 우선 응급조치를 한 다음 구체적인 진단과 치료를 하는 것이 순서다. 국회는 우선 빠른 시일 내에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소폭이나마 올리는 응급조치를 한 다음 구조 개혁 같은 논의를 하는 것이 순리다.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이를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한다. 예를 들어 당장 올해부터 4년 동안 매년 보험료율을 0.5%씩 인상해 현 정부 임기 내에 11%로 올리는 것이다. 보험료율을 2%만 올려도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2055년에서 2060년으로 5년 늦출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진단이다. 어차피 국민연금 보험요율을 올리는 것은 불가피하고 12%까지 올리든, 15%까지 올리든 단계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응급조치마저도 하지 않으면 애초부터 연금개혁을 할 생각도 없으면서 국민을 속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2.14 통계, 우파는 약으로 쓰고 좌파는 독으로 쓴다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지금까지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및 왜곡 의혹만으로도 꽤 충격적이다.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부동산 정책 등에 관련된 정부 통계를 조직적으로 ‘재가공’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외부 유출이 금지된 비공개 통계 자료를 예외 규정 급조를 통해 청와대가 열람하기도 했고, 표본 선정의 졸속 변경이나 조사 숫자 임의 기입을 통해 이전과 아예 비교할 수 없게 하는 ‘통계 단절’을 시도하기도 했다.
통계는 근대국가의 필수 요소다. 국가(state)와 통계(statistics)는 어원을 공유할 정도다. 근대국가는 ‘지식 국가’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 과정에서 통계는 ‘공공 지식’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늘날 통계는 주로 계량적 정보를 의미하나 원래는 ‘국가에 관한 국가의 지식’ 전체였다. 19세기 말 개념의 수입·번역 과정에서 일본에서는 ‘정표’(政表)가 통계와 경합을 벌였는데, ‘국가에 관한 내용을 표로 만든 것’이라는 뜻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통계 장난’에서는 데자뷔(deja vu)가 느껴진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 통계의 품질 향상과 신뢰도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통계법을 개정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 평준화와 징벌적 부동산 정책, 재정 지출 확대 등에 정권 나름의 색깔을 담던 ‘참여 정부’는 ‘통계 품질 진단 제도’를 도입하여 통계에 대한 정부 검열을 합법화하였다. 중요한 통계를 만드는 민간 기관을 정부가 통계 작성 지정 기관으로 선정할 뿐 아니라 해당 업무 개선을 핑계로 승인 취소가 가능하도록 법제화했다. 이를테면 정부의 통계 독점 의지였다.
이번에도 사고를 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소득 주도 성장, 관 주도 일자리 창출, 그리고 반(反)시장 부동산 정책이었다. 그 나름대로는 소신과 회심의 정책이었지만 현실은 기대를 크게 배신했다. 이에 정책 실세들은 ‘통계 재가공’으로 대응했다. 속담에 ‘넘어지면 막대 타령’이라 했듯, 잘못은 정책이 아니라 통계에 있다고 에두른 것이다. 지금도 그들은 스스로 한 일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통계 왜곡이나 조작이 아니라 통계의 선택과 체계 개선이 있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정책 설계와 통계 교정을 동시에 하지 않았을까?
노무현·문재인 두 정부에서 벌어진 이런 식의 ‘통계 정치’는 정권 차원의 우연한 해프닝이 아니다. 대신 경제를 이념에 예속시키는 경우에 생겨나는 일반적 현상일 수 있다. 말하자면 좌파식 국가 통계 사용법이다. 지난 정부의 경제정책 입안자 대다수는 서강학파, 조순학파와 더불어 한국 경제학계 3대 학파 중 하나라는 진보 성향의 ‘학현학파’ 쪽이었다. 특히 소득 주도 성장 이론가들이 그랬다. 정권 말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펴낸 책은 소득 주도 성장 이론의 뿌리가 자유방임 대신 정부 개입을 주장한 케인스이며 기틀은 그의 직계 조앤 로빈슨(Joan Robinson)이 만들었다고 명시했다.
케인스는 죽기 직전 시장경제론자로 돌아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영국의 전후 경제를 구원하리라 기대하며 말이다. 그러나 로빈슨은 끝까지 열렬한 케인스주의자로 남아 미국식 시장경제를 저주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찬양했다. ‘코리아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좌파 계열 저명 학술지에 싣기도 했다. 당연히 그녀의 코리아는 남한이 아닌 북한이었다. 오늘날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이자 최악의 통계 불량 국가 말이다. 명색이 경제학자가 선전용 통계 자료에 넘어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좋은 통계’가 ‘나쁜 정책’을 덮는 일이 사회주의 경제나 포퓰리즘 국가에서는 예사로운 관행이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통계는 없다. 궁극적으로 모든 통계는 정치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시장을 중시하는 자유 우파 진영에서는 가급적 통계를 약으로 쓰려고 한다. 당장 정치적으로 불편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국익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부단한 통계 선진화 노력과 함께 말이다. 이에 반해 좌파 규제 애호가들은 정치적 목적 달성이나 이념적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통계를 곧잘 독으로 사용한다. 상습적으로 과장, 왜곡, 변형, 조작한 통계가 결국 경제 자체를 병들게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번 감사원 감사는 단순한 통계 범죄 의심을 넘어 체제의 우열 및 선택 문제까지 포함하는 제법 심각한 사안이다.
조선일보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02.16 사회 통념 뒤집은 윤미향·곽상도 판결, 재수사로 바로잡아야
곽상도 전 의원이 사회적 통념과 달리 1심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에 대한 분노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누군가의 자식에게 어떤 거액을 줘도 그 가족이 따로 살 경우엔 무죄라고 한다면 정의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한 판결에는 공소 사실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검찰도 큰 책임이 있다. 검찰은 대장동 비리 사건의 핵심인 화천대유 관계자들이 하나은행의 대장동 컨소시엄 이탈을 막기 위해 곽 전 의원에게 뇌물을 줬다고 했으나 이를 증거로 명백히 밝히지 못했다. 또 곽 전 의원이 대장동 일당에게 거액을 요구했다는 녹취록 내용의 신빙성도 입증하지 못했다.
곽 전 의원 사건을 포함한 대장동 비리 수사는 문재인 정권 당시 친문 검사로 알려진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과 김태훈 4차장 주도로 진행됐다.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재수사와 보강 수사가 이루어졌으나 곽 전 의원 사건은 정권 교체 이전에 수사와 기소가 끝난 상태였다. 그 재판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을 받은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후원금 횡령 의혹 수사 역시 문 정권 검찰이 진행했다. 윤 의원은 당시 거대 여당인 민주당 소속이었다. 정권의 압력 아래에서도 서울 서부지검이 수사에 노력했으나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4달 동안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고 결국 검찰이 최소한의 혐의만 기소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마저 1심 법원의 소극적인 법리 적용으로 윤 의원의 횡령 혐의액 1억여 원 중 17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혐의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의 판결이 언제나 사회 통념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상식이나 통념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면 법원의 판결은 물론 검찰 수사에도 잘못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대장동 일당이 전문성 없는 31세 국회의원 아들을 채용하고 6년 근무 대가로 퇴직금과 성과금 50억원을 준 것이 무죄가 된다면 누가 납득하겠나.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치매 상태의 피해자가 받은 상금을 기부금으로 받아 챙긴 행위에 대부분 무죄를 선고한 것도 사회 통념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두 사건에 대해 “새로운 검찰이 끝까지 제대로 수사해서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두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로 증거를 보강해 국민의 상식적 의문을 풀어줘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16 “목적 정당하면 불법도 무죄” 세상에 이런 판사가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본부장, 이규원 검사에 대해 1심 법원이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법원은 출금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김 전 차관이 수사 대상자인 만큼 출국 시도를 긴급하게 막은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돼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전 차관 출국을 저지한 것은 무고한 일반인의 출국을 금지한 것과는 달리 봐야 한다”고도 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단죄하는 과정에 적법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법의 대원칙이다. 피의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게 법치주의이고 판사는 이 대원칙을 수호하라고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판사가 그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목적만 정당하면 어떤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는 뜻인데 이러면 법이 무슨 필요가 있나. 어떻게 판사가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김씨에 대한 불법 출국 금지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 검사는 가짜 사건 번호를 만들었고 당시 이광철 비서관이 이 검사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에게 연결해줬다. 대통령 수족이라는 이성윤 검사장은 이 불법 출금을 조사하려는 후배 검사들에게 압력을 가해 수사를 뭉갠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법원은 불법 출금의 긴급성과 목적의 정당성이 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6년 경찰이 묵비권 등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쇄 성폭행범 어니스트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적법 절차를 강조한 대표적 판결이고 그 원칙은 우리나라 법에도 살아 있다. 법원이 그 원칙을 스스로 깨고 있다. 법원이 이성윤 검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검사들이 압력을 받았다고 하는 데도 압력 행사를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대장동 업자 김만배씨에게 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의원 재판과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후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의원 재판에서도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나와 국민을 놀라게 했다. 여기에 ‘목적이 정당하면 불법행위도 무죄’라는 폭력적 판결까지 더해졌다. 법원 스스로 국민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2-16 ‘목적과 필요성 있으면 불법도 무죄’ 판사 자격 없다
민주적 형사사법체계에서 절차적 적법성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묵비권 고지라는 사소한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연쇄 성폭행범에게 무죄를 선고한 ‘미란다 원칙’이 상징적이다. 그런데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 금지 사건 1심 판결은 이를 전면 부정했다. 재판부는 15일 긴급 출금을 위법으로 판단하면서도 3가지 이유로 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한결같이 정상적 법리를 파괴한다.
첫째, 재수사가 기정사실인 상태에서 출국을 저지해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것. 당시 수사팀 내부에서 재수사 여부에 논란이 있었던 것은 차치하고 ‘목적의 정당성’을 근거로 적법 절차 훼손을 합리화할 수 없다.
대통령 지시는 말할 것도 없고 전 국민이 재수사에 찬성해도 적법 절차를 어겼다면 판사는 단죄해야 한다. 둘째, 출국을 허용하면 재수사가 난항에 빠져 국민적 의혹 해소가 불가능해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용의자가 자택 앞 쓰레기 통에 범행 도구를 버렸더라도 압수수색 영장 없이 확보하면 ‘독수독과’ 원칙에 따라 증거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하물며 재수사 여부도, 재수사 결과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한 것은 형사사법 원칙에 어긋난다. 셋째,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인데 법 앞의 평등은 상식이고 김 전 차관은 입건도 안 된 상태였다.
검사가 가짜 사건 번호를 만들고 청와대 비서관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이 공모한 이 사건은 고위공직자가 법치주의를 훼손한 중대 범죄다. 판사는 법치주의 핵심인 적법 절차를 수호해야 할 보루다. 해당 판사는 법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 그리고 판결은 상급심에서 바로잡혀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2-16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制 부당하다
김종민 변호사, 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헌법은 법률 의거한 심문 허용
법적 근거 없는 大法 내규 위헌
선택적 심문과 수사 방해 우려
검색어까지 기재토록 한 것은
소추와 심판 분리 원칙도 위배
부적절한 정치 유착 돌아볼 때
사법권의 본질은 재판권이다. 헌법이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함이고, 헌법 제108조에서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대법원의 규칙 제정권을 규정한 이유도 법원과 법관의 독립,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대법원 규칙의 제·개정은 이러한 헌법의 취지를 고려하고 실질적인 입법권 침해가 되지 않도록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법원행정처가 입법예고한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 신설을 위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크고 ‘소추와 심판의 분리’ 원칙에 위배돼 문제가 있다.
헌법 제12조 1항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심문’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형사소송법의 근거 없이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를 신설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영장실질심사로 불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 제도가 형사소송법에 근거 규정을 두고 있는 것도 위 헌법 규정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법원 규칙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한 헌법 규정을 고려하면 먼저 형사소송법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에 관한 규정을 두고 세부적인 심문 절차에 관해 대법원 규칙으로 규정하는 것이 헌법 체계에 맞는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판사의 편의에 따른 ‘선택적 심문’이다. 대형 로펌이 변호인으로 선임된 기업범죄나 권력형 부패 사건 등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법원 출신 전관예우 문제, ‘유전무죄’ ‘유권무죄’ 논란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공정성과 형평성이 가장 중요한 형사사법 절차가, 돈 있고 힘 있는 이들에게 특혜를 주는 불공정한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짙고 이는 사법의 신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수사 기밀 누출 문제도 심각하다. 법원행정처는 수사기관 관계자와 제보자에 대한 심문이 주로 이뤄지고 피의자의 변호인도 그 대상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심문 통지를 받는 순간 증거인멸, 제보자 회유 등으로 인해 수사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개정안에서는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 시 전자정보가 저장된 정보 저장 매체, 분석에 사용할 검색어, 검색 대상 기간 등 집행 계획을 기재토록 하고 있다. 이는 사법적 통제를 넘어 법원이 초기부터 수사의 개시와 진행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미다. 사법경찰을 지휘하는 프랑스의 수사판사처럼 검찰 수사를 지휘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검사가 사법경찰이 아닐 뿐 아니라 ‘소추와 심판’을 엄격히 분리하는 우리 제도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 압수수색의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으면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샤를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재판권이 입법권과 결합되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사법정책’과 ‘사법행정’의 이름으로 대법원이 행정부 몫인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의원입법이나 대법원 규칙을 통해 실질적인 입법권을 행사해 온 관행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2015년 국회 법사위 위원이던 서영교 의원의 재판 청탁 사건도 당시 대법원의 최대 현안이던 상고법원 설치 문제와 무관치 않았다. 입법과 예산 문제로 국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대법원과 정치권 민원 해결이 필요한 국회의원들과의 부적절한 구조는 이렇게 생겨난다.
국회 파견 판사가 국회 동향을 파악해 대법원에 보고하는 정보관 역할을 하고 정치권의 청탁 통로가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8년 9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법부 외부의 각종 기관에 법관 파견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2월 국회 파견 자문관을 부장판사로 격상시켰고 이번 정기인사에서도 부장판사를 파견했다.
대법원의 규칙 제정권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도록 신중히 행사돼야 한다. 재판권이 본질인 사법부의 존재 이유도 고려해야 한다. 압수수색은 인신구속과 강제수사의 핵심적인 절차와 수단으로서 헌법상 기본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이 꼭 필요하다면 관계 기관과 학계·법조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추진함이 바람직하다.
문화일보
02.17 김명수 대법원의 초라한 레거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17년 9월 이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다섯 번 했는데 매번 김명수 대법원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2020년 7월엔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부 수장으로서 부끄러운 줄 아시오. 사법사에 어떤 대법원장으로 기록될 것인지 두렵지도 않습니까”라고 했다. 며칠 전에도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는 독립성을 잃고 행정부의 시녀가 되고 정치판이 됐다”고 성토했다. 이어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사법부의 파벌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능력과 관계없이 요직에 발탁했다”며 “여러 차례 거짓말과 부적절한 행동으로 사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다.
판사 출신이라 내부 사정을 안다 해도 사법부 수장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이례적이다. 과도한가. 아니다. 지금껏 논란의 판결과 의문의 행태가 빈번하게 반복돼 온 걸 보면 말이다.
최근에도 있었다. 곽상도 전 의원 관련 50억원 사건이야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고 치자. 윤미향 의원 사건을 두고 1심 재판부가 공익법인의 활동비를 개인 계좌에 넣어두고 증빙 없이 쓴 것까지 용인한 건 너무했다. 앞으론 시민단체가 아무 데나 돈을 넣어뒀다가 쓰고, 그럴듯한 용처만 적어두면 된다는 신호 아닌가.
김학의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에 대한 판단도 괴이했다. 수사가 이뤄질 게 확실하기 때문에(아니었다), 적법하지 않은 수사를 해도 된다는 법리였다. 검사가 ‘나쁜 놈’이라고 믿으면 불법적으로 수사해도 된다는 말인가.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해당 판사가 무죄라고 믿고 법리를 세운 것 같다”고 개탄했다.
이런 판결을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게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의 진정한 문제는 이런 돌출적 재판 아래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재판의 실패’다.
“김 대법원장이 대단히 화가 났는데, 틀린 말이 없어서 반박할 수도 없어서”(법원 관계자)란 평가를 받은 특허법원 소속 이형근 고법 판사의 이달 초 기고문에 잘 담겨 있다. 민·형사 사건의 재판 통계를 분석하니 재판의 양과 질 모두 떨어졌고, 특히 오래되고 어려운 사건이 더 쌓였다는 내용이다. 이 판사는 “2018년 이후 상황이 나빠졌을 때 대처했더라면 달라졌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며 “최종 사법행정권자가 특별히 재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건 재판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었다고 본 건가”라고 물었다.
김 대법원장이 재판 아닌 딴 일에 신경쓴 게 아니냐는 질문일까. 만일 그랬다면 무엇이었을까. 주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파벌의 수장 역할이었을까. 실제 법원 안팎에선 김 대법원장이 내세우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일선 판사들이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가 ‘김명수 코드 인사’의 통로였고, 이로 인해 법원 내 사기가 떨어졌으며 일 좀 한다는 판사들이 떠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시 이 판사의 말이다. “대법원장은 임기 초부터 ‘좋은 재판’을 주장했다.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해마다 사건 처리를 덜 하며 미제를 남기고, 처리 기간이 길어지며 오래되고 복잡한 사건은 미래의 사법부에 미루고, 쉬운 사건 위주로 처리하는 재판은 아닐 것이다. 사법부는 좋은 재판에 실패했고, 법관통합재판지원시스템에서 말하는 정의(쉬운 사건 위주 처리의 방지)도 구현하지 못했으며, 그 실패의 정도는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다.”
이 정도였다면 김 대법원장은 스스로 돌아봐야 했다. 제도도 점검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손쉬운, 동시에 염치없는 방식을 택했다. 세금에 의탁한 것이다. 향후 5년간 법관 정원을 370명으로 늘려 달라고 했다. 6년간 대법관 4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입법 의견도 냈다. 그러고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국회에서 “사건 처리 건수 늘리고 사기 진작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9월로 끝난다. 그의 레거시는 어떻게 기록될까. 두려울 것이다.
중앙일보 고정애 chief에디터
02.20 종편 점수 조작 줄줄이 구속, 방통위원장이 몰랐을 수 있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해 7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뉴스1
문재인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종편 재승인 심사를 총괄한 심사위원장(현 광주대 교수)이 TV조선의 심사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방통위 주무 국장과 과장에 이어 심사위원장까지 줄줄이 구속된 것이다. 방통위 핵심 라인이 정권 마음에 들지 않는 종편 방송을 손보기 위해 조직적으로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는 뜻이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 조직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2020년 심사에서 TV조선은 재승인 기준 점수를 넘었다. 그런데 이를 안 방통위 담당 국장과 과장이 심사위원장에게 평가 점수를 알려주며 점수표 수정을 요청했고, 심사위원장은 이들과 함께 심사위원들에게 점수를 수정하게 했다. 일부 심사위원들이 ‘공적 책임과 공정성’ 점수를 깎아서 다시 제출토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TV조선은 점수 미달로 ‘조건부 재승인’ 처분을 받았다. 재승인 기간도 법정 4년이 아닌 3년으로 줄었다. 방송의 중립성을 지켜줘야 할 방통위가 인허가권을 이용해 불법까지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실무 공무원과 외부 출신 심사위원장이 이런 불법 조작을 자기 맘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검찰은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직권을 남용해 부당한 지시를 내린 정황이 있다며 피의자로 입건하고 집과 사무실, 휴대전화를 압수 수색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지금껏 납득할 만한 해명 한마디 없이 혐의를 부인하고만 있다.
방통위원장은 방송에 대한 막강한 규제권을 갖고 있어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다. 한 위원장은 문 정부 내내 정권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사퇴를 거부하며 자리를 지키더니 방통위의 조직적 불법 조작이 드러났는데도 책임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종편 재승인은 방통위 업무 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 중 하나다. 여기서 이런 조작 범죄가 벌어졌는데 위원장이 몰랐을 수 있나. 공무원과 외부 심사위원장이 방통위원장의 지침 없이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이런 일을 저지르긴 힘들다. 한 위원장은 점수 조작이 어떻게 일어났고 누구의 지시로 이뤄졌는지 직접 밝혀야 한다. 어차피 검찰 수사에서 전모가 밝혀질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2-21 사법부 오욕 키우는 황당한 판결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치판이 아무리 험악해도 중심을 잡는 기관은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법원은 그 최후의 보루다. 이미 대법원의 권위는 무너졌다. 사법농단과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핑계를 대며 정치적 행보를 합리화시켜 온 게 대법원이다. 급기야 2020년 4·15 총선 부정선거 소송에 대한 심리도 제때 진행하지 않고 증거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렸다. 이젠 하급심도 정치적 사건에 편향성을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고 있다.
최근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받은 50억 원이 곽 의원의 대장동 관련한 알선행위의 대가나 뇌물이 아니란 판결이 내려졌다. 독립된 경제생활을 하는 아들이 받은 돈을 아버지의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이런 판결을 이해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전직 대법관·검찰총장·특검 등이 연루됐다는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로 비화하는 걸 방지하려고 한 판결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의원에게는 1500만 원의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이 선고됐다. 단체의 자금과 개인 자금을 마구 혼용해 지출해 온 책임자가 설명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데도, 지출 내역이 막연히 단체 활동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개연성을 근거로 대부분 무죄 판결한 결과다. 남들로부터 기부받은 공금을 마구 쓴 사람이 소명하지 못하는데 그게 횡령이 아니란 말인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서를 당시 검찰이 가짜로 만들어 제출한 것에 대해 법원은 담당 검사만 선고유예 판결했다. 국가기관 중 법 집행의 엄중성을 가장 철저히 지켜야 할 검찰이 직접 공문서를 위조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선 검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한 것이다. 애초에 김 전 차관을 부당하게 봐 준 검찰은 물론, 그 후 재수사 과정에서 문서위조까지 해 가며 기소한 검찰 모두 국법 질서를 우롱한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정치검사가 문서위조를 하게 된 배경 세력에 불똥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판결을 했다.
개혁의 얼굴로 포장된 또 다른 정치 보복이, 가장 비정치적이어야 할 사법부의 공기마저 오염시키는 불행이 선진국 문턱에 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을 견제하긴커녕 정치권력에 편승해 정치적 사건에 부당한 판결로 보답하도록 정치권과 법조계가 모종의 생태계를 구성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은 바뀌었어도 법원은 이전 정권의 영향력 아래 있기에 새 정권은 법원 지휘부를 언제나 새롭게 개편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듯하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적극적인 사법부 독립을 추구했다. 그 결과 제왕적 권력을 추구하던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는 종종 대립했다. 이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발췌개헌이 위헌이란 판결을 대통령이 직접 비난하자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시오”라고 받아쳤다. 민주주의는 원칙과 절차를 수립하는 과정이다.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외쳐대는 집단은 민주주의의 적일 뿐이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는 그 어떤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민주주의의 자존심을 세우면서 대한민국은 출범했다. 70년 전 모든 정치적 여건이 어렵던 시절에도 수립한 이러한 훌륭한 전통마저 후퇴시킨 배은망덕한 후배들이 언제까지 사법부를 지배할 참인가.
문화일보
02.23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저출산국 된 한국, 국정 전체 재설계해야

▲서울시내 한 산부인과 병원의 텅 빈 신생아실./뉴스1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재작년보다 0.03명 줄어 0.78명을 기록했다. 2020년 출산율 0.8명대 국가가 된 지 불과 2년 만에 0.7명대로 내려가며 불명예 세계 기록을 또 경신했다. OECD 38국 중 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은 한국뿐이다. 2020년 기준 OECD 평균 합계 출산율 1.59명의 절반도 안 된다. 더 심각한 것은 하락 속도다. 2000년 한국 출산율은 1.48명으로 일본보다 높았는데 2018년(0.98명) 1명대가 무너진 뒤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대표 국가인 일본조차 2021년 합계 출산율이 1.30명 수준으로 우리보다 월등히 높다.
전 세계 최악의 인구 쇼크가 덮쳤지만 속수무책이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한 뒤 실시한 모든 대책이 소용없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으로, 10년 만에 절반이 됐다. 서울 한복판 초등학교까지 문을 닫고, 지방 대학은 폐교 위기에 내몰리고, 소아과가 속속 폐업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나라를 ‘수축 사회’로 만든다. 생산 인구 감소로 세입은 줄고 노인 복지, 의료비 등 정부 지출은 급격히 늘어난다. 국가가 총체적으로 지속 불가능하게 된다. 사실상 망한다는 뜻이다. 젊은이들 취업이 힘들고, 터무니없는 집값에 내 집 마련이 힘들며, 자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저출산국을 만들었다.
이대로면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교육 개혁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 연금 개혁안은 2025년부터 출산율이 반등해 2046~2070년 1.21명대 출산율을 유지하는 낙관론을 전제로 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부터 저출산에 총력 대응한 결과 2005년 1.26명까지 떨어졌던 출산율을 2015년 1.45명으로 높였고 코로나 와중에도 1.30명대를 유지했다.
우리도 저출산 대책이 곧 성장과 경제 정책이라는 생각으로 범국가적 총력전을 펴야 한다. 일자리·주거·육아·교육·이민 등 모든 국가 정책을 출산·양육 친화적인 관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 지금 나라에 미래가 없다.
조선일보 사설
02.23 심각한 헌법 침해 현상, 방치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유와 평등 및 대의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의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는 반(反)헌법적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부정부패 범죄 혐의자를 당대표로 뽑은 민주당은 완전히 사당화해 정당과 무관한 개인 범죄를 정치화하며 방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대표는 검찰 조사를 농락하며 사법 질서를 무시하고 있다. 형사 피의자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특권적 황제 조사를 받고 있다. 헌법이 금지한 사회적 특수 계급으로 행세하며 검찰 출석을 자기 멋대로 정한다. 헌법이 명하는 법 앞의 평등을 무시하는 처사다. 불체포 특권도 그런 부패 범죄 혐의자를 위한 특권이 아니다.
이 당은 거대 의석을 무기로 일방적 입법 폭주를 일삼는다. 타협과 절충을 필수적인 전제로 하는 다수결 원리의 헌법 가치를 마구잡이로 짓밟고 있다. 정권 획득이 아무리 정당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해도 표 계산만을 정책 기준으로 삼는 정당은 헌법이 정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정당으로 볼 수 없다. 양곡관리법과 노란봉투법 등 입법 폭주를 일삼는 민주당의 행태가 바로 그렇다.
미래 세대에게 짐이 될 각종 기금 고갈과 재정 파탄을 촉진하는 퍼주기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기를 얻으려는 정당은 정상배 집단에 불과하다. 신임과 책임을 본질로 하는 대의 민주정치의 헌법 가치와는 조화하기 어렵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팩트에 어긋나는 거짓을 연속적으로 쏟아내는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을 누릴 자격이 없다.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다음 총선 공천에만 신경 쓰며 줄서기에만 바쁘다. 국가 이익을 위한 대의의 책임을 외면한다.
소수의 극단적 무정부주의자는 토요일마다 국민이 선택한 임기 1년도 안 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온갖 저질적인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그 굿판에 나가 격려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야당 의원도 있다. 국민 대표를 자처하는 헌법기관이 헌법 파괴 세력에 동조하는 이 한심한 일은 반헌법적 현상의 극치다. 우리 헌법은 언론 자유를 보장하지만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는 헌법적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이 헌법적 한계 안에서만 보장된다. 근로 조건의 향상과는 무관한 반미와 반시장경제 등 정치 투쟁을 목표로 삼는 노조는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노조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 정의 실현의 최후 보루여야 하는 독립적인 사법부가 정치화하는 현상도 삼권분립의 헌법 가치에 어긋난다. 목적이 좋으면 위법도 정당화된다는 법원의 어처구니없는 판결은 전형적 정치 논리이고, 헌법 가치인 법치주의와 적법 절차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은 사법권 독립의 헌법 가치를 뿌리째 흔든다. 최강욱, 조국, 윤미향, 송철호 등 선거 범죄를 비롯한 권력형 부정부패 범죄 사건의 재판이 몇 년씩 지연되는 것도 신속한 공개 재판을 명한 헌법 가치에 배치된다. 검수완박 사건 등 정치적인 헌법 재판 사건이 헌법재판소에서 잠자고 있는 것도 적시의 헌법 재판을 통한 헌법 가치 확립이라는 헌법 재판의 본질적 기능을 망각하는 것이다.
헌법 가치가 이처럼 짓밟히고 무시당하는 우리의 헌정 질서는 하루빨리 정상화되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자각이 가장 급선무다. 참신한 새 인물로 정치인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내년 총선거는 반드시 그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헌정 질서는 헌법 가치를 되찾아서 진정한 헌법 국가로 바로 설 것이다.
조선일보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02.24 文 정권의 라임 펀드 사기 수사 방해 규명해야 한다
검찰이 라임 펀드 사건의 주범인 김봉현씨에게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민주당 의원 2명 등 민주당 정치인 4명을 기소했다. 정치자금법 공소 시효 7년이 코 앞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하고 곧바로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혐의가 알려진 것은 2020년 말인데 2년 이상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다가 시효 직전에야 기소가 이뤄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라임 펀드 사기 사건 수사 방해는 노골적이었다. ‘윤석열 검찰의 회유 때문에 청와대 등에 대한 로비를 진술했다’는 김봉현씨의 옥중 편지가 공개되자 당시 추미애 법무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 총장을 수사에서 배제하고 감찰했다. 라임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남부지검장에는 친문 검사를 앉혔다. 민주당 정권에 대한 로비 수사는 곧바로 중단됐다. 김봉현 녹취록, 업무수첩 등 수사 초기부터 증거가 나온 민주당 정권 로비 수사는 없어지고 도리어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이 수사 대상이 됐다.
그런데 문제의 편지를 쓴 김봉현씨는 최근 이 편지를 민주당 의원과 가까운 민변 변호사 조언으로 거짓 작성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실제 친문 검사들의 지휘 아래 라임 수사팀이 금품 수수와 술 접대 혐의로 기소한 윤갑근 전 고검장과 검사 2명은 항소심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애초에 억지 수사였다는 뜻이다. 법무장관과 친문 정치 검사, 정치인이 국민에게 1조원대의 피해를 입힌 사기 범죄자와 손을 잡고 사건을 정반대 방향으로 뒤집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씨는 펀드 사기로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편파 수사 정도가 아니라 조작 수사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라임 사건과 함께 문 정권 시기 최대 경제 사기 사건으로 꼽히는 옵티머스 펀드 사건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지검장이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은 청와대와 민주당 인사 20여 명의 실명이 나오는 자료와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민주당 대표의 핵심 참모가 사건과 관련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수사를 뭉갰다. 이때도 추 장관은 윤석열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이에 앞서 추 장관은 라임과 옵티머스 수사를 담당하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해체했다.
이들이 사건의 본질과 수사의 흐름을 뒤집은 덕에 범죄 혐의자들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검찰은 문 정권이 뭉갠 범죄 수사를 마무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수사를 왜곡해 정의를 지연시킨 사람들에게도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24 라임·옵티머스 ‘文정권 수사 조작’ 의혹 철저 규명해야
라임 사건을 재수사해온 검찰이 현직 국회의원 2명을 포함해 정치인 4명을 1억∼5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3일 기소했다. 처음 수사했던 문재인 정부 검찰이 정치권 로비 의혹을 무혐의 처리하면서 축소·은폐 의혹이 제기됐는데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유사하게 처리된 옵티머스 등 다른 펀드 사건도 재수사 중이다.
라임 주범 김봉현은 2020년 4월 체포되자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녹취록도 나왔지만 그해 10월 김봉현이 ‘윤석열 검찰로부터 회유를 당해 청와대와 여당(당시 민주당)에 대한 로비 혐의를 진술했다’는 내용의 옥중 편지를 공개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곧바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 총장을 수사에서 배제하고 수사 지휘부에 친문 검사를 임명했다. 앞서 추 장관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도 해체했다. 정치권 로비 수사는 중단됐고 김봉현이 접대했다는 검사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기소된 윤갑근 전 고검장과 2명의 검사는 2심과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반면 최근 재수사에서 김봉현의 변호인이 옥중 편지를 사주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변호사는 민변 출신으로 김건희 여사 허위 경력 의혹,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 논문 의혹 사건 고발대리인으로 활동했고 부인은 윤석열 검찰 개혁을 주장하던 민주당 의원 보좌관으로 채용됐다.
옵티머스 사건도 마찬가지다. ‘펀드 하자 치유 문건’과 진술을 통해 청와대와 민주당 측 인사 20여 명이 거론됐고 당시 당 대표 참모가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1년2개월간 수사를 질질 끌다 대부분 무혐의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추 장관은 윤 총장을 감찰한 데 이어 징계까지 했다. 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김상조가 함께 투자했던 디스커버리 펀드 사건의 경우 장하성 동생이 만든 펀드로 논란이 일었지만 장하성은 피해자로 결론 났다.
재수사를 통해 문 정부가 덮으려 했던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기본이다. 의도적인 수사 방해, 축소·은폐 지시, 수사 결과 조작 등의 혐의가 드러나면, 형사사법 체계를 훼손한 중대 범죄로 보고 엄중히 처벌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사설
02.25 혁신 벤처 다 죽이는 나라 된 한국, 희망의 싹 법무부가 보여줘야
공정거래위원회가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 이용을 금지한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시정을 명령하고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했다. 20억원은 사업자단체 금지 행위에 부과할 수 있는 최대 과징금이다. 변협은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내겠다고 했지만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 변협의 기득권 행태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법률 플랫폼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광고료를 낸 변호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겐 법률 서비스 이용을 쉽게 하고 비용을 낮춘다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으로 법률 시장 전체의 질을 떨어뜨리는 역기능도 있을 수 있다. “상인이 변호사를 좌지우지할 것”이란 법조인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아예 새로운 혁신 벤처의 싹을 잘라서는 안 된다. 그런데 변협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한다고 변호사들의 ‘로톡’ 이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고 이를 어긴 변호사들을 징계했다.
법률 플랫폼에 대한 법적 판단은 나올 만큼 나왔다. 2015년 이후 변호사단체의 고발로 검찰과 경찰이 3차례에 걸쳐 로톡 서비스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수사했지만 모두 “혐의 없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변호사의 법률 플랫폼 가입을 금지한 변협 규정의 핵심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나라에서 당연한 결정이다.
그럼에도 변협은 법률 플랫폼 이용 변호사 47명을 징계했다. 징계를 받은 변호사는 국선 변호사, 공공기관 자문 변호사 지원이 어렵고 공직에 나갈 수 있는 길도 사실상 막힌다. 어떤 욕을 먹더라도 변호사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 헌재 결정조차 무시한다. 가장 법을 잘 알고 법을 존중해야 할 변호사 단체가 이래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담당 정부 기관인 법무부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 변협의 부당한 징계를 받은 변호사들은 법무부에 이의 신청을 냈다. 법무부가 징계위원회를 열어 그들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변협의 징계 효력은 사라진다. 이미 법무부는 2021년 “로톡의 운영 방식이 변호사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바 있다. 그런데 법무부는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석 달이 되도록 징계위를 열지 않고 있다. 변협과 이해관계가 같은 법무부가 변호사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위원회 결정도 로톡의 공정거래법 위반 신고 이후 무려 1년 8개월 만에 나왔다. 그 사이 로톡에 변호사 가입이 급감하면서 법률 플랫폼 기업은 경영상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한국은 혁신 벤처가 나오는 족족 기득권들에 의해 죽는 나라가 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일을 막겠다고 한 정부다. 법무부는 조속히 징계위를 열어 법률 플랫폼 출범 후 8년 동안 계속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27 대통령만 뛰면 뭐 하나
"대통령만 열심히 뛰고 관료는 움직이지 않는다."
10여 일 전 저녁 식사를 함께한 여권 고위 인사가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 말을 툭 던졌다. 그는 '대통령실과 정부 내에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얘기'라며 관료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최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대략 이런 스토리였다. "6개월 전쯤 지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경제 대책회의가 열렸다. 수출 경쟁력 강화가 주요 테마 중 하나였다. 지역 내 주요 기업 관계자들도 참석해 수출과 경영 환경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중 금속 제품을 만드는 수출 기업 대표가 재료 원산지와 수출국 표기와 관련한 애로를 토로했다. 장관 고시 정도만 고치면 되는 문제라 관련 부처에서 시정을 약속했는데 지금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 부처 실무선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시간을 6개월이나 질질 끌었다고 한다."
▲지난해 8월 31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 참석에 앞서 항만물류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해당 부처도 뭔가 이유는 있겠지만, 어쨌든 대통령과 장관이 참석한 회의에서 이뤄진 약속인데 6개월이나 이행이 안 됐다면 말 다한 것 아니냐"며 "규제 개혁은 대통령이나 장관보다 결국 관료들이 움직이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대통령 면전서 약속한 규제 개혁
6개월 지나도 부처선 시정 안 돼
관료 사회 쇄신 없이 개혁 어렵다
당시 브리핑 등에 따르면 대통령이 주재한 해당 회의의 테마는 '수출 경쟁력 강화'와 '해외 인프라 수주 활성화 전략'이었다. 수출 문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수출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소관 부처들은 현장에서 우리 수출 기업의 어려움을 꼼꼼히 살펴 개선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의욕을 보였다. 대통령이 열정을 드러낸 수출 경쟁력 회의, 여기서 분출된 기업의 민원까지 공무원의 서랍 속에서 6개월 동안 잠을 잤다면 다른 수출 기업이나 지방정부가 직면한 답답한 현실은 '안 봐도 비디오' 아닐까.
최근 만난 여당 소속 광역단체장은 "수도권이나 대기업들도 어려움은 있겠지만, 지자체와 기업의 손발을 묶는 각종 규제로 지방 경제는 정말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지난 1월엔 김영환 충북지사가 '대통령님 저 정말 미치겠습니다'란 호소문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김 지사는 "규제 폭탄의 물벼락을 맞고 있는데 그냥 있을 수 없다. 머리띠를 두르고 오송과 청주비행장 활주로에 드러누울 생각을 하고 있다. 감방 갈 각오를 하고 있다”고 썼다.
요즘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완만하지만 견고한 상승세를 보였다. 저질 담론과 윤핵관 논란 등 역대급 수준 미달 경쟁이 한창인 여당의 전당대회 상황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흐름이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파탄 직전 야당의 도움도 물론 없지는 않겠다. 하지만 "추진 방식엔 찬반이 있을지 몰라도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국정 개혁의 방향 자체는 옳다"는 평가가 지지율 상승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윤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건 굵직한 이슈 중 규제 혁파 문제는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과 새 도약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사활적 과제다. 그리고 이 과제는 노동·교육·연금에 더해 윤 대통령이 '4대 개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부 개혁, 관료 사회의 총체적 쇄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공직자들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며 민첩하고 유연한 정부로 거듭날 것을 주문했다. 또 민간 수준의 유연한 인사 시스템과 파격적인 성과주의 도입을 다짐했다. 누가 뭐라 해도 관료 사회 개혁은 일 안 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일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통령이 혼자 뛰어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료들의 서랍에서 6개월 동안 잠자지 않으려면, 도지사가 공항 활주로에 드러눕지 않으려면 고래를 춤추게 하듯 관료들을 움직여야 한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자 최고경영자인 윤 대통령의 어깨가 그래서 더 무겁다.
서승욱 논설위원 sswook@joongang.co.kr
02.27 ‘연금 폭탄’ 째깍거리는데 부채 규모는 왜 숨기나
산으로 가는 연금개혁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행정부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국회와 행정부의 위원회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나, 상황은 악화일로다. 지난 5년을 허송세월해 동일한 수준의 재정 안정을 달성하려면 보험료를 2%포인트 더 올려야 함에도 연금을 더 지급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평균수명 증가로 인해 악화하는 연금제도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된 연금개혁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연금 보험료 올려야 하는데도 “지급 늘려야” 목소리 나와
4대연금 미적립 부채 2800조원 넘는 현실이 보이지 않나
“노인만을 위한 나라인가” 미래부담 질 청년들 불만 폭발
공무원·군인연금 재정추계도 미공개…개혁할 뜻 없는 듯
지난 1월 말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 결과가 발표된 후 청년층 반응을 들어봤다. 청년층에서 거론되는 말들을 충남대 황세웅 학생과 미국 UC샌디에이고 김강진 학생이 보내왔다. “노인만을 위한 나라” “국민연금은 국영 루나코인” “젊은 세대에게 부담 떠넘기지 말고, 인구가 제일 많고 돈도 제일 많은 현 연금 수령자들에게도 공평하게 부담시켜라” “연금 받는 사람도 고통을 분담해야 개혁이지, 자기들 더 받으려고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 등등, 듣기조차 민망한 말들이다. 세대 간 전쟁이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
5차 재정계산에서는 2023년 출산율을 0.73으로 채택했으나, 2050년 이후 출산율을 1.21로 가정한 데 대해 젊은층이 비판적이라고 한다. 너무 낙관적인 수치라는 것이다. 기대수명 가정은 2060년 이후 90세가 넘어간다. 한 해 25만 명도 태어나지 못한 세대가 한 해 70만∼100만 명 태어난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데도, 자신들 연금 더 받겠다고 연금 지급률을 높이겠다고 하니 청년층이 폭발하는 거다.
기초연금 고령자의 30%, 가난하지 않아
2020년 43.7세인 중위연령이 2070년이면 62.2세가 된다. 반면 유럽연합(EU)의 2070년 중위연령은 48.8세로, 2019년보다 5.1년 늘어나는 데 그친다. 이동학 전 민주당 청년최고위원은 “개혁의 시점은 이미 한참 지났다.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서 계속 미루기만 하니 세대 간 형평도,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도 기대 난망이다”고 말했다.
연금 지급률을 더 올리자는 사람들은 노인 빈곤율과 짧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고려하면 재정 안정보다 노후 소득 강화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9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적립금이 상황 판단을 어렵게 한다.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아도 2040년에 1755조원이나 보유할 텐데, 왜 재정 안정만 강조하느냐는 거다.
이런 혼란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는 노인 빈곤율은 ‘평균의 함정’에 기인한다. 노인 빈곤 문제의 핵심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집단 내 극심한 소득 불평등에 있다. 부자 노인과 극도로 가난한 노인이 양극단에 있어 평균하면 전체 노인의 빈곤율이 높게 나타날 뿐이다.
부동산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0% 초반으로 대폭 하락한다. 빈곤에 처한 노인 인구 20%가 전체 인구 중 가장 빈곤한 집단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도 노인 70%에게 똑같은 기초연금액을 지급한다. OECD 상대 빈곤율 개념을 적용할지라도 기초연금 수급자의 3분의 1(약 200만 명)은 빈곤 노인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모든 노인이 빈곤한 것처럼 호도한다.
2041년 국민연금 재정수지 적자 발생
국민연금 예상 가입 기간이 27년에 불과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경우, 가입자 대다수가 50년 후에도 빈곤에 노출될 것이라는 주장은 어떠한가. 1970년 출생자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 데이터베이스(DB)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가입자의 예상 가입 기간은 19.4년에 불과하다. 반면 소득이 가장 높은 10분위 가입자의 예상 가입 기간은 34년에 달한다. 만 59세로 묶여있는 의무납입연령을 점진적으로 64세까지 상향하면 가입 기간 40년을 채울 수 있다. 미래 지향적인 접근 대신 50년 뒤에도 평균 가입 기간이 27년이라는 주장으로, 모든 국민연금 가입자가 빈곤에 노출될 것처럼 호도한다.
독일은 여유자금이 2~3달 치에 불과한데도 연금을 잘 운영하는데, 적립금 900조원을 가진 나라에서 웬 호들갑이냐, 기금 소진을 앞세운 공포 마케팅하느냐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그러나 2041년 재정수지 적자 발생 이후 14년 만에 적립금 1755조원과 적자액 47조원을 합한 1802조원이 연금 지출로 사라진다. 그 기간 보험료 수입과 기금 투자 수익을 제외했음에도, 매년 130조원이 넘는 금액이 빠져나간다. 이를 제대로 보려면 미적립 부채(Unfunded accrued liability) 개념이 필요하다. 기금 소진 시점을 몇 년 연장한 데 불과하면서도 재정안정 방안을 마련했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밝힐 수 있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성공 원인은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미적립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라며 국민에게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공적연금의 미적립 부채 개념을 활용하라는 세계은행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우리 사회에서 미적립 부채 사용이 금기시되었다. 그동안의 복잡한 정치 상황 탓이다.
연금 미적립 부채 GDP의 135% 달해
1138조원의 공무원·군인연금 충당 부채 외에, 정부가 발표하지 않는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가 최소 1500조원, 사학연금은 16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소 규모로 추정해도 4대 공적연금 미적립 부채가 2800조원을 넘어 2021년 명목 GDP(2072조원)의 135%에 달한다. 모든 공적연금이 낸 것보다 더 많이 받는 제도로 운영되며 매년 미적립 부채가 더 늘어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미적립 부채 현황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당연히 공개하던 공무원·군인연금의 재정추계보고서가 어느 시점부터 비공개되고 있다. 관련 위원회 논의 내용도 비밀이다. 제도 운용 비용을 부담하는 국민과 전문가·국회·언론이 내막을 모르게 운영하는 공무원·군인연금의 대수술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운영하다 보니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연금 수익비에서 15%나 손해 본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온다.
2021년 재직자 126만 명 대상의 공무원연금 운영원가가 26조9000억원이다. 공무원과 국가가 부담한 총액이 14조원(운영원가의 48%) 수준이다. 2021년 한 해에만 해도 운영원가의 상당 부분이 결국 미래 세금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바로 그 대목이다. 2021년 기준으로 1138조원에 달하는 공무원·군인연금 연금 충당부채가 생겨난 배경이다. 매년 막대한 충당부채가 전가됨에도 우리만 억울하다는 것이 공무원 사회 분위기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보장급여에 대해서는 연금 충당부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회보장급여의 충당부채는 우발 채무이기에 정부 대차대조표의 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발 채무이기에 정부 대차대조표의 주석사항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를 공표해야 하는 이유다.
연금 충당부채는 결국 세금으로 부담
옥동석 재정정책학회장(인천대 교수)은 “우리나라의 일반정부부채(D2) 비율은 42.1%(2019년 기준)로 OECD 평균 109.5%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가 GDP 대비 49.3%이기에, 이를 합치면 일반정부부채비율은 91.4%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연금 충당부채는 국가가 반드시 갚아야 하는 확정된 빚과 다르며, 국가 간 부채 규모 비교 시에도 연금 충당부채는 제외하고 있다”며 “연금 충당부채를 전액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21년 한 해에만 공무원연금 운영원가의 상당 부분이 국민 세금으로 전가될 것임에도 “전액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교묘한 표현으로 본질을 흐린다. “공무원·군인연금은 정부가 사용자로서 지급해야 할 확정 부채이기 때문에 대차대조표 부채란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옥 교수의 논문과 다르다.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연금개혁을 제대로 안 하면 모든 연금의 충당부채 공개를 위한 국민 1000만 명 서명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일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02-28 보훈부 승격…자유민주주의 강화할 新보훈 출발점 돼야
국가 수호를 위해 헌신·희생한 분들을 기리고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1961년 군사원호청 창설 이후 62년 만에 독립부서로서 ‘국가보훈부’가 탄생하게 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무총리 소속의 국가보훈처를 보훈부로 격상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3·1절 104주년 직전이어서 더욱 뜻깊다. 정부 내 실무 절차를 거쳐 오는 6월 초 공식 출범하게 되면 보훈부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부령 제정 등 권한과 기능도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훈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직결돼 있다. 무엇을 지켰으며, 앞으론 무엇을 지킬 것인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적진에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정신을 견지한 덕분이다. 미국 퇴역 군인 복지 등을 전담하는 보훈부는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은 유족까지 국가가 지켜준다는 믿음을 주는 부서로 국방부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대한민국 보훈부도 식민지 해방, 건국, 6·25를 거쳐온 만큼 미국 못지 않게 할 일이 많다. 독립유공자, 전몰군경 등 국가유공자, 6·25 및 베트남 참전 유공자, 5·18 민주 유공자와 제대군인 등을 포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1세기의 보훈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대한민국 반대 세력까지 추앙하는 식으로 변질된 적이 있어 더욱 그렇다.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는 식의 궤변은 물론 여수·순천 반란을 미화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그러니 천안함 폭침 때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대통령을 붙잡고 “천안함이 누구 소행인가” 묻고, 제2연평해전 희생 장병 유족이 국가 냉대에 실망해 이민을 떠나기까지 했다. 이제 보훈의 가치를 독립과 호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로 넓혀야 한다. 제복 입은 애국자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믿음을 주는 ‘강화된 보훈’이 중요하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