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3-01/ 01.02(월) 김정은 “南은 명백한 敵” 핵 공갈, 넋 놓고 있으면 北核 포로 될 것 - 01-30 ‘핵에는 핵’ 여론 압도적…美 핵공유엔 “글쎄”, 中 역할론은 “못믿어”
自主國防 2023-01/
01.02(월) 김정은 “南은 명백한 敵” 핵 공갈, 넋 놓고 있으면 北核 포로 될 것
북한의 김정은은 “남조선은 명백한 적”이라며 “전술핵 무기를 다량 생산하고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했다. 또 “핵 무력의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며 선제공격 의사도 분명히 했다. 전날에 이어 새해 첫날에도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까지 탑재할 수 있다는 초대형 방사포를 연달아 쏘았다. 이 방사포는 실전 배치됐다고 한다.
김정은이 신년 벽두부터 직접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전술핵 대량 생산을 지시한 것은 우리를 핵으로 위협해 무릎 꿇리겠다는 뜻을 노골화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을 전술핵으로 공격할 신형 미사일과 회피 기동을 하는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개발하고 초대형 방사포까지 실전 배치하고 있다. 고체 연료를 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최단 기간에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극초음속 미사일과 다탄두 유도 기술, 핵 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개발 등 전략무기 5대 과업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올해나 내년 중 실제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 본토까지 핵 타격할 능력을 완전히 갖추게 되는 것이다.
북한은 이후 미국을 상대로 핵은 보유하면서 제재를 푸는 군축 회담을 시도할 것이다. 지금은 미국이 북핵 도발 시 핵으로 보복하는 핵우산을 약속하고 있지만 북의 ICBM 위협이 현실화돼도 이런 입장이 유지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한미는 작년 11월 핵 보복 절차 구체화와 보복 훈련 공동 실시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나토식 핵 공유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선언적 수준이었다.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 북으로 하여금 핵을 쓰면 핵 보복 공격을 받게 된다는 공포를 갖도록 해야 한다. 미국 전술핵 재반입이든 나토식 핵 공유든 독자적 수단이든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 조야에선 전술핵 옵션 등을 진지하게 검토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최소한 미국의 한반도 핵 의사 결정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바로 수용하지 않더라도 계속 요구하고 논의해야 한다. 넋 놓고 있다가는 북핵 포로가 되는 재앙적 상황을 맞게 된다.
조선일보 사설
01-02 김정은 “핵탄두 대량 생산”… 한·미 공동 核운용 서두를 때
북한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의심할 바 없는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며 “핵탄두 생산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지만, 김정은의 핵무기 개발과 대남 위협이 더욱 악화했음을 의미하는 만큼 이에 상응하는 대응도 더욱 절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의 핵전력 운용과 관련, 한·미의 ‘공동 기획·연습’ 방침을 밝힌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신속히 합의해 실질적 핵공유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무력의 제2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덧붙여 유사시 대남 선제 핵 공격 의지도 분명히 했다. 12월 31일과 1일 초대형 방사포 도발을 자행한 뒤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언제든 대남 핵 공격에 나설 수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북한은 그간 ‘핵은 대미용’이라는 논리로 남남갈등을 부추겼다. 친북 운동권과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선 ‘핵은 민족의 보검’이라며 장단을 맞췄다. 그러나 이제 본색을 드러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자체 핵 능력 추구는 물론 당면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의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2일 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미가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 기획, 공동 연습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미안보협의회의(SCM)의 “보다 강화된 확장억제” 후속 조치가 구체화하는 것이다. 한·미가 핵운용 훈련도 함께 해야 한다. 한국군이 핵무기 부대에 상주할 필요도 있다. 올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이다. 동맹의 압도적 무력이 남침을 물리친 것처럼, 한·미가 공동 핵 운용을 서둘러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1.02 우리를 ‘명백한 적’으로 규정한 북한, 단호하게 대비하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 "첨단무장장비인 초대형 방사포들이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 증정됐다"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600mm 초대형방사포의 증정식이 전날인 작년 12월31일 당 중앙위 본부청사 정원에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설에서 이 방사포들이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으며 핵탄두 탑재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이 새해 벽두부터 초대형 방사포를 쏘면서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겠다고 나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제와 그제 사거리가 400㎞인 방사포 네 발을 쏜 뒤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한 공격형 무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연말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보고에서 우리를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면서 “전술핵을 다량 생산하고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어제 밝혔다.
북한이 연초부터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핵무기를 전면에 강조한 것은 새해에 남북을 한층 대결적 구도로 몰고가려는 의미다. 올해엔 북한이 전술핵 본격 생산을 위한 7차 핵실험과 미국 견제용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도 예상된다. 한반도 긴장 국면은 가팔라질 전망이다.
북핵은 매우 위험하지만 역설적으론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자신들의 핵은 방어용이라던 북한은 지난해 4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통해 우리에 대한 사용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비쳤다. 지난해 9월에는 ‘핵무력 법제화’와 핵무기 사용을 위한 군사교리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미사일을 실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미는 핵우산이 포함된 강력한 확장억제력으로 북핵에 대비하고 있다. 북한이 남한에 대한 핵 사용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할 경우 자신들 역시 상상을 초월한 확증 파괴의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
김 위원장 얘기대로 북한이 핵무기를 다량 만들려면 운영·유지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갈 것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는 더욱 내구성이 약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의 주민소득은 2016년에 비해 지난해 40%나 감소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올해에도 나오지 않은 것도 내부 사정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벌써 4년째다. 김 위원장이 주민에게 내놓을 비전과 대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북한 경제는 대북제재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강조하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한 우리도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우선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더 실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유사시 북한 핵과 미사일 기지 등을 일거에 제거할 수 있는 능력도 조기에 확보하고 훈련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정상화하고,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를 실시간에 공유하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은 핵·미사일로는 미래가 없다는 점을 성찰하고 대화에 나오길 촉구한다.
중앙일보 사설
01-05 北 무인기 용산 침투… 몰랐어도 숨겼어도 큰일이다
북한 무인기가 서울 중구와 용산 일대의 서울비행금지구역(P-73)을 사실상 침투한 것으로 정밀분석 결과 드러났다고 한다.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가 5시간 동안 영공을 휘젓고 다녔을 때, 당시 군 당국은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까지 침투했을 가능성을 공식 부인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심지어 국가 주요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첨단 무인기 탐지 및 요격 장치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런 것들조차 무용지물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서는 군 당국이 당시 용산 침투 사실을 은폐했는지, 아니면 아예 알아차리지도 못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어느 경우든 보통 문제가 아니다. 북한 무인기는 용산 대통령실 주변 약 4㎞까지 접근해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군 당국은 5일 “북한 무인기 항적을 초 단위로 재분석한 결과 P-73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용산 상공 진입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실 등을 촬영할 수 있는 거리다.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행 궤적을 토대로 “북한 무인기가 용산으로부터 반경 3.7㎞ 비행금지구역을 통과했을 확률이 높다”고 했을 때, 국방부와 합참은 강력 부인했다. 이종섭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용산까지는 오지 않은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단계별로 감시 자산들에 의해 확인이 된다”고 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31일에도 “북한 무인기는 용산 상공의 비행금지구역을 진입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하고, 국회에서 위증한 것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감시·정찰 및 전자전을 위한 다목적 드론부대 창설, 연내 스텔스 무인기 생산을 지시했다. 드론 방공망도 촘촘히 구성하겠다고 했다. 국방부는 북한 무인기 탐지자산 확보에 5600억 원을 투입한다. 그러나 ‘일단 덮고 보자’는 군의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문재인 정부 당시의 군 실태를 보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군은 정직해야 한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무인기 침범 사건 책임을 지휘라인까지 혹독하게 묻고 읍참마속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문화일보 사설
01-05 북 도발로 사문화한 9·19 합의 ‘효력정지 선언’ 당위성
이른바 ‘9·19 군사합의’는 2018년 합의 당시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았고, 북한의 잇단 합의 위반으로 이미 사문화(死文化)했다. 최근 북한의 무인기 도발은 ‘무인기는 동부지역에서 15㎞, 서부지역에서 10㎞ 비행금지구역을 적용한다’는 제1조 3항에 대한 정면 파기인데, 북한은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합의는 파탄났다. 이런 상황에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효력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너무 당연한 조치다. 그나마 ‘추가 도발 시’라는 단서를 달아서 북한 김정은에게 시정 기회를 주기는 했지만,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없다.
2018년 9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체결한 평양선언과 부속 군사합의는 당시에도 심각한 비대칭성과 안보 위협이 뒤따를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4년3개월이 된 이제야 시정되게 됐다. 문 정부는 “실질적 불가침선언이자 종전선언” 운운했지만 육·해·공군의 방위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정찰활동이 무력화하고, 기습공격에 수도권 방위도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금방 현실이 됐다. 북한은 해안포 수시 개방과 사격, 감시 초소(GP) 총격 도발, 해상 완충구역으로 방사포 사격 등을 자행했다. 지금까지 17건의 합의 위반이 적발됐다. 북한은 또 개성공단 사무소 폭파, 핵무력 사용 법제화, 핵탄두의 기하급수적 증산에도 나섰다. 핵 폐기가 대전제인 평양 공동선언 자체가 사기극임이 거듭 확인됐다. 남북관계발전법 제23조는 안보상 필요에 의해 남북합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 평양선언과 군사합의 효력정지 선언은 당연하다. 그리고 대북 확성기와 전광판, 전단 살포 등 심리전 재개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1-05 시급한 한미 ‘核 공동 기획·연습’ 실행
권태오 前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예비역 육군 중장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 한 일간지와 회견 때 언급한 “핵전력 운용 공동기획과 공동연습” 표현을 두고 미국이 전혀 동의하지 않은 우리만의 주장이란 소동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이미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합의된 내용이다. 다행히 미 고위 당국자가 오해가 있었다고 신속히 발표함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한국을 위한 미국의 확장억제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를 통찰·추론해 볼 좋은 기회가 됐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한미동맹에 대한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북핵 억제를 위해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천명하면서 반드시 대북 우위를 점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동안 막연히 미국의 확장억제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이다. 이제 곧 한·미 정책 당국에서는 합의 내용에 기초해 정보 공유는 물론 핵전력 운용을 위한 공동 기획·연습 준비에 착수할 텐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통상 작전계획은 기획, 계획, 연습·훈련, 평가의 피드백 과정을 통해 구체화하고 보다 현실성 있게 다듬어진다. 우선, 기획 단계에서는 적(敵) 위협에 기초해 우리의 취약점을 분석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를 가정한 후 각각의 경우에 대한 작전 방향을 설정해 나간다. 이때는 가용 자산에 대한 개략적인 판단도 하고 지휘관의 의도와 지침도 명확하게 식별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한·미 군 통수권자들 간에 북한이 핵무기 사용 시 정권이 사라지게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고, 북한의 핵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아군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본 상태임을 고려할 때 기획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방향 설정은 끝난 것이다.
계획 단계에서는,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타격할 표적을 선정하고 그 표적의 성질을 면밀히 분석해 적합한 위력의 핵무기를 할당하며 이를 어떤 수단으로 투발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어 그 임무 수행에 적합한 부대를 지정하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이는 매우 정밀한 작업이다. 여러 차례의 워게임과 토의 과정을 거쳐 확정해 나간다.
북핵에 대응해 미국 본토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전장 확대 위험이 있으므로 한·미 연합군은 한반도 작전 전구(戰區) 내에 핵탄두를 전개시킨 뒤 이미 배치된 항공기나 잠수함을 이용해 공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선정되는 표적은 김정은의 지휘소를 포함해 핵무기 저장시설, 투발 기지, 주요 군 지휘소와 작전 기지가 망라될 것이다. 곳곳의 표적 성질에 따라 벙커버스터탄, 전자기파(EMP)탄, 수소폭탄 등의 다양한 핵무기가 운용될 것이다.
이렇게 수립된 계획은 각종 연습을 통해 검증되고 지속적인 보완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도가 높아진다. 아울러 직접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부대는 준비태세를 갖추고 주기적인 훈련을 통해 임무를 숙달시켜 나간다. 비록 나토(NATO) 지역처럼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직접 배치해 두지는 않더라도 이런 준비를 하는 것은 북한의 핵공격을 차단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무위에 그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동안 아예 시도도 해 보지 않은 과거를 반성하며 늦었지만 제대로 된 북핵 대응책이 마련되고 있음을 환영한다.
문화일보
01-05 “대통령 경호구역 안뚫려” 부인하던 軍, 北 무인기 P-73 북단 침범 결국 시인

▲합참 설명과 국회 제출 항적도 등을 종합해 작성한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 1대의 서울 지역 항적 추정도. 대통령 경호실이 2차 설정한 서울비행금지구역(P-73) 북단인 종로구를 거쳐 동대문구, 중랑구를 비행한 뒤 북으로 복귀한 것으로 추정된다.
北 무인기 3㎞ 상공, 4㎞ 북쪽서 대통령실·국방부 촬영했을 가능성
합참 “P-73(비행금지구역) 북단 일부 침범한듯”…일주일전 ‘강한유감’ 표명 무색
“레이더 감지돼도 무조건 격추하진 않아”…새 입장 요구에 “검토후 결정”
지난달 26일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중 1대가 대통령 경호를 위해 설정한 서울비행금지구역(P-73)을 일부 침범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5일 “전비태세검열실의 조사 결과 서울에 진입한 적 소형 무인기 1대로 추정되는 항적이 비행금지구역의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무인기가 지나간 구역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략 4㎞ 지점으로, 대통령 경호실이 추가로 지정한 P-73 북쪽 끝부분으로 서울 종로구 일대로 판단된다.
합참은 그러면서도 “용산 집무실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덧붙였다.
북한 무인기가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한 지점이나 침범한 거리 등의 정보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취재진의 질문에는 “P-73 구역을 스치고 지나간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P-73)은 대통령 집무실 부근의 특정 지점을 근거로 최초 3.7㎞ 반경으로 설정된 뒤 추가 지정돼 포물선 형태로 돼 있다. 용산뿐 아니라 중구· 종로구· 서초·동작·중구 일부를 포함한다.
하지만 당시 무인기가 서울 상공 약 3㎞ 안팎에서 비행한 것으로 추정돼 약 4㎞ 밖에서 남쪽에 있는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합참 청사도 충분히 촬영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군의 전비검열 결과 북한 무인기의 침범 당시에 레이더에 미확인 물체가 탐지됐으나 최초에는 무인기로 평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정보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한 물체에 즉시 대응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군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위협과 무관한 새 떼 등이 100여 차례 P-73 비행금지구역에서 식별됐다. 해당 무인기에 촬영장비 등이 장착됐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 무인기가 앞서 군의 발표와 달리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한 사실은 전날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주변까지 침투했다는 분석은 사태 초기부터 제기됐으나, 군은 무인기가 은평구 등 ‘서울 북부’ 지역에서만 비행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서울에 진입한 북한 무인기의 추정 항적을 근거로 비행금지구역에 침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의 주장에도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일주일도 안 돼 결론이 뒤집힌 데 대해 군 관계자는 “작전 요원들이 보고한 사실에 입각해서 (침범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고 이번에는 조사하다 보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합참은 “사실을 은폐하거나 속일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지난달 공개적으로 야당 의원의 주장을 부인하면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 군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새로운 대국민 입장 표명이나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언론의 지적에 합참 관계자는 “내부 검토를 거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1.06 北 무인기 대통령실 부근 지나갔는데 1주일 뒤 알았다는 軍
북한 무인기가 지난달 26일 우리 영공 침범 당시 대통령실 경호를 위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P-73) 외곽을 침범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북한 무인기 대응책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 P-73은 용산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하는 반경 3.7㎞ 구역이다. 마포·서대문·중구 일부가 포함된다. 북 무인기가 당초 군 발표보다 깊숙이 침투해 서울 심장부까지 휘젓고 간 것이다. 국정원은 5일 “대통령실 촬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북 무인기의 P-73 침투 가능성은 영공 침범 당일부터 여러 차례 제기됐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를 모두 부인하며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 “이적 행위” “근거 없는 이야기에 강한 유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비태세검열실에서 무인기 항적을 정밀 분석해보니 P-73을 침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와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심각한 군사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를 즉각 알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확인하는 데 무려 1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무능에 말문이 막힌다.
북 무인기는 크기와 비행음이 작고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탐지·추적이 까다롭다. 2014년과 2017년에도 우리 영공을 침범했지만, 한참 뒤 야산에 추락한 것을 운 좋게 발견하기 전까진 그 사실 자체를 몰랐을 정도다. 사실 이런 무인기는 미국도 탐지하기 어렵다. 이번에 우리 군의 탐지 자산으로 북 무인기를 간헐적으로라도 실시간 포착한 것은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북 무인기가 레이더에 탐지됐다 소실되기를 반복했다면 처음부터 대통령실 부근까지 침범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정상적인 군이다. 군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과 야당이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제대로 확인 않고 아니라고 우기기만 했다. 군인이 최선의 경우를 바라고 강변만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인 셈이 됐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뒤늦게 문제가 되자 “작전 요원들이 (점선 항적을) 북 무인기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실무자 탓을 했다.
국방부는 북한 무인기 대응 전력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5년간 56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첨단 드론 부대 창설은 시급하다. 그러나 북한은 싸구려 무인기를 보내 한국 사회를 휘젓고, 우리는 또 거기에 대비한다고 천문학적 국민 세금을 쓰는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효과도 크지 않다. 군은 북한이 다시 우리 영공을 침범할 경우 북 무인기와 똑같은 원시적 무인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평양으로 날려 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방공 능력이 없는 북한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대비 자체가 북이 도발을 단념하게 만들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1.06 北·좌익에 희생되고 “우리 군경이 학살” 거짓 신고 222건

▲<YONHAP PHOTO-2502> 진실화해위, 전남 함평·경북 청도 민간인 학살사건 규명 (서울=연합뉴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4일 제45차 회의에서 한국전쟁 당시 전남 함평과 경북 청도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 사건을 규명했다. 진실화해위는 두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사진은 전남 함평군 월야면에 위치한 함평 사건 민간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공원. 2022.11.24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2-11-24 11:36:03/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우리 군경(軍警)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건을 조사해보니 최소 222건이 북한 인민군이나 좌익 세력의 소행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전남 신안에서 일가족 7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 희생됐다고 주장한 신청인은 막상 조사가 시작되니 “나이 든 분들에게 알아보니 좌익 세력이 죽였다더라”고 말을 바꿨다. 전남 진도, 충남 서산·태안, 경남 함양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이어졌다.
군경 학살로 인정되면 국가가 배상을 해주지만 인민군이나 좌익에 의해 살해된 경우는 돈을 받지 못한다. 유족들이 일단 군경에 의한 학살이라고 신고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진실화해위는 이를 조장하기도 했다. 위원회 홈페이지에 ‘가해자 특정이 어려울 경우 국군·경찰로 써넣어라’라고 안내했다가 문제가 되자 ‘실수’라며 삭제했다.
진실화해위는 민주당 정부 시절 만들어졌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처음 만들었는데 이때 밝힐 만한 사실은 다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폐지된 이 위원회를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재출범시켰다.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다. 좌파 진영 사람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효과도 있었다. 지금도 그때 들어간 민변 출신 등이 상당수 남아있다. 1기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 후 5년간 국가 배상 청구 금액이 1조2500억원에 달했는데 민변 변호사들이 이 소송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위원회에서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사건의 변호를 자신이 맡아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챙긴 민변 변호사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들이 내린 조사 결과가 정확했는지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1.06 "文정부 5년, 軍에 '평화타령' 주입…북 무인기에 뚫렸다"

장세정 논설위원
수컷 꿀벌, 즉 수벌(雄蜂)에서 이름을 딴 드론(Drone·무인기)이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닌다. 지난 12월 26일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을 우리 군이 곧바로 포착했지만, 전투기도 헬기도 대공포로도 끝내 요격하지 못했다. 이번엔 단순 정찰 및 촬영만 하고 돌아갔다지만, 북한 무인기가 폭탄을 탑재하거나 심지어 생화학무기를 서울 상공에 뿌린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자폭 드론이 동원된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에서 보듯 바야흐로 '드론 전쟁 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북한의 드론 역량은 어디까지 왔고, 우리 군은 어디까지 대응이 가능할까. 국내 최고 무인기 전문가로 꼽히는 홍성표(66)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군사전략실장은 "북한의 킬러 드론 도발에 대비해 드론 대응 역량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28기 임관)한 뒤 수송기(L-2) 조종사로 활약하다 국방대 교수를 끝으로 대령으로 예편했고, 아주대 국방디지털융합학과 대우교수를 거쳤다.
우크라이나서 입증된 드론 전쟁
-'드론 전쟁 시대'가 도래했다.
"우크라이나전쟁 초기 미국은 무인기 '스위치 블레이드' 700기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급히 이란제 샤헤드-136 무인기 2400대를 주문해 투입했다. 전투 요원이 투입돼 인명이 희생되는 것에 비하면 효율적이다. 적은 비용으로 만든 자폭 드론인데도 상대가 방어하기 쉽지 않으니 가성비가 굉장히 높은 무기다."
-미국·중국의 경쟁도 치열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능해진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결합하면서 최첨단 무인기가 맹활약하고 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과 영국은 MQ-9 리퍼 무인기에 헬파이어 로켓 14발을 장착해 연합 무인기 작전으로 테러리스트 5000명 정도를 제거했다. 2015년 시리아에서 지하드 존(무함마드 엠와지)이, 2020 이라크에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 총사령관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즉사했다. 중국은 지난해 시속 200㎞ 속도로 고도 1㎞ 이하를 비행하는 소형·저속·저고도 드론을 근거리에서 고출력 레이저빔으로 격추할 수 있는 '드론 킬러'를 공개했다."

▲홍성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국방군사전략실장이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공군 T-41 훈련기(일련번호 T-054)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북한 무인기 도발과 우리 군의 대응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그는 "무인기 방어와 공세 역량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2월 21일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인기를 제공해 러시아에 큰 타격을 가했다. AFP=연합뉴스
-북한 무인기 수준은 어떤가.
"500대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상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정찰기가 주류다. MQM-107D, TU-143 등 자폭용 무인기도 100여대 정도 있을 거다. 중국 기술을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에 발견된 무인기는 엔진 배기량이 35㏄, 연료는 4.5ℓ 정도로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2017년에는 배기량 50㏄, 연료는 7.5ℓ로 약간 좋아졌으니 이번에는 조금 더 성능이 향상됐을 거다. 북한은 중국·러시아는 물론 이란의 공격용 무인기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무인기 500여대 보유한 듯
-북한의 이번 도발 의도는.
"정찰용이지 공격용은 아니었다. 국지도발은 엄청난 보복이 두려우니 몰래 무인기로 정찰한 것 같다. 격추되지 않고 촬영해 갔지만 침투하다 발각됐고 한국의 드론 전략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니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이번엔 사진 촬영용으로 운용했지만, 경로 비행을 하니 특정 표적을 겨냥해 작동하면 공격용으로 변할 수 있다. 무인기에 고성능 폭탄이나 생화학무기를 장착해 운용할 수도 있지만, 생화학무기를 살포하면 전쟁범죄다."
-무인기 침범은 군사합의 위반 아닌가.
"적대 행위를 금지한 정전협정과 9·19 군사합의 위반이다. 9·19 합의에 따르면 2019년 11월 1일부터 무인기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동부지역은 15㎞, 서부지역은 10㎞까지가 비행금지구역이다. 북한의 도발에 우리 군은 비례적 정당방위 차원에서 무인기 송골매를 북측 5㎞ 상공까지 진입시켜 정찰 비행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9·19 효력 정지를 검토한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지난 2017년 6월 강원도 인제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를 국방부가 브리핑룸에 전시한 모습. 연합뉴스

▲12월 28일 합동참모본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한 북한 무인기의 항적. 12월 26일 한국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의 식별 경로다.
-우리 군의 대응을 어떻게 봤나.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를 반드시 잡았어야 했는데 잡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조종사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격추 시도를 하는 게 맞다. 조종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격추해야지,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적기를 놓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피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국방이 제대로 굴러간다."
문 정부 시절 훈련도 한 번 못 해
-요격 체계가 있었지만 쓰지 못했다.
"2014년 북한 무인기가 청와대를 촬영한 이후 2015년 최대 20㎞ 밖에서 무인기를 탐지하고 3㎞ 내에서 격추할 수 있는 탐지·요격 자산인 '비호 복합 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한 번도 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8년 당시 문 대통령 지시로 4개 중대 규모로 '드론봇 전투단'을 지상작전사령부 산하에 편성했지만, 무기와 장비는 제대로 갖춰주지 않았다. 말로만 편성하고 후속 조치가 없었으니 국민을 속인 셈이다. 이번에 KA-1 경공격기가 출동하다 추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5년간 군의 대비태세가 완전히 문드러졌다."
-대비태세가 어쩌다 이 지경인가.
"그날 마침 경기도 남양주 갈매에 있었는데 비행기 소리를 듣고 하늘을 봤더니 우리 군 항공기 4대(KA-1 경공격기 2대와 전투기 2대)가 체공비행 중이었다. 서쪽에서 한강을 따라 서울(광진구 부근 상공)로 날아온 북한 무인기를 요격하려고 출동했을 텐데 끝내 발포하지 않았다. KA-1과 아파치 헬기까지 투입했지만 2m짜리 무인기를 잡는 데는 가성비가 낮은 작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작전 중에 민간의 피해를 우려해 요격을 안 했거나, 충분히 요격할 수 있는데도 다른 어떤 목적이 있어서 안 했을 수 있다."
군인은 정치인·외교관과 달라야
-그게 무슨 의미인가.
"문재인 정부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지난 5년 내내 장병들에게 매주 정신교육을 하면서 남북 대결 구도를 어떻게든 모면해야 한다, 우리가 조금 양보하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인 국방이라고 계속 주입했다. 전방 부대 대대장들이 이런 얘기를 입에 달고 다녔다. 군인은 적을 보면 박살 내겠다는 자세를 갖는 게 당연하다. 부대는 예봉을 유지하다가 결정타를 날려야 하는데, '평화 타령'으로 예봉이 꺾이면 멈칫거리게 되고 자꾸 눈치를 보다 보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 군인은 정치인·외교관과 달라야 한다."
-기술적 한계는 없었나.
"무인기를 요격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소프트 킬'은 방해 전파로 교란해 강제로 착륙하거나 목표를 잃어버리게 하는 방식인데, 스푸핑(Spoofing)이라고도 한다. 극히 드물지만 이란이 미국 드론을 스푸핑으로 강제착륙시킨 적이 있어 미국이 깜짝 놀란 일도 있었다. '하드 킬'은 레이저 무기나 대공포·미사일·항공기로 드론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2m 이하는 물론이고 5m짜리도 요격이 쉽지 않다. 공중에서 레이다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2m짜리 무인기를 요격한다는 것은 노련한 조종사라도 쉽지 않다. 작은 무인기를 잡을 적합한 '파리채'가 마땅하지 않다. 시속 180㎞인 KA-1 경공격기가 시속 120㎞인 북한 무인기를 격추하려면 비행 속도가 2배 이상은 돼야 한다. 따라서 100이면 100 모두 격추할 수는 없으니 조종사를 과도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비행금지구역도 일부 뚫렸는데.
"합참이 북한 무인기 항적을 정밀하게 분석했더니 대통령실 반경 2해리(3.7㎞)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의 북측 일부를 침범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무인기의 비행 고도가 1~3㎞인 데다 장착한 카메라의 정밀도가 낮아 이번에 북한은 군사 정보로 유의미한 정찰 사진을 확보하지는 못했을 거다."
무너진 군기 다시 바짝 조여야
-대통령실에 근접했는데 '재밍'이 작동했나.
"대통령 경호 차원에서 너무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재밍(Jamming, 전파 교란) 등을 가동할 경우 국민의 불편이 우려되다 보니 가급적 최적화해서 관리하는 것으로 안다. P-73은 원래 항공기나 미사일 도발을 전제로 하는 거라 2m도 안 되는 무인기에까지 적용할 상황은 아니었을 거다. 기술적으로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우리 방공체계에서 보완할 부분은.
"전면전에 대비한 한·미 동맹의 방공체계는 매우 우수하다. 다만 국지 방공과 지역 방공으로 나뉜 국가 방공체계를 이번 무인기 도발을 계기로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는 있다. 특히 비호복합 체계가 작동하지 못한 이유 등을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군의 자세와 전력을 다시 바짝 조여야 한다. 북한 무인기를 막는다고 예산을 퍼부어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방어 무기와 공격 무기의 적정선을 찾아 균형 있게 전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쪽지 예산 3000억원을 지역구로 빼갔는데 그 정도 예산이면 북한 무인기 대응 수단을 상당히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김은송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01.06 용산 코앞 휘저은 북한 무인기, 더 참담한 군의 말 뒤집기
“무인기 P-73 진입 안 했다”던 군, 9일 만에 번복
식별 실패인지, 알고도 거짓말했는지 진실 밝혀야
지난달 26일 서울 북부 영공을 다섯 시간이나 휘젓고 다닌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일대에 설정된 ‘P-73 비행금지구역’ 일부까지 침범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P-73 침범을 부인하던 국방부 합동참모본부는 사후 검열을 통해 뒤늦게 이를 확인, 사건 발생 아흐레 만인 지난 4일에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P-73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에 걸친 대한민국의 최고 보안 영공이다. 군은 북한 무인기가 P-73 북쪽 끝 일부를 ‘스치듯’ 비행한 뒤 물러갔다고 발표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국민의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무인기가 대통령실로부터 3~3.7㎞ 지점 상공까지 일사천리로 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서울 소공동과 남대문시장 일대, 장충동, 충무로 일부에 해당한다. 서울의 최고 중심가가 북한 무인기에 유린당한 것이다. 게다가 무인기의 고도는 3㎞에 불과해 카메라라도 장착했다면 대통령실과 관저 일대가 원격 촬영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침투한 당일 군은 무인기 1대가 서울 북부 지역을 한 시간가량 비행한 사실을 실시간으로 잡아냈다. 그런데 군이 보유한 방공 자산 중 가장 고성능 장비들이 배치된 P-73 구역에선 무인기 침투를 감지하지 못하고 9일 뒤에야 발견, 대통령에게 뒷북 보고를 했다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방부는 중앙SUNDAY가 지난달 31일 북한 무인기가 P-73 근처까지 진입했을 가능성을 처음 보도하자 “무인기가 P-73 구역에 진입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4성 장군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무인기가 P-73을 통과했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공개 반박하며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그랬던 국방부가 사건 발생 근 열흘 만에 북한 무인기의 P-73 진입을 인정하며 입장을 뒤집었으니 ‘거짓말쟁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과연 식별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사건 당일 진입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정치적 파장을 의식해 거짓말하다 뒤늦게 진실을 고백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군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5600억원을 투입해 무인기 대응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다목적 드론부대 창설과 연내 스텔스 무인기 생산을 지시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군의 정직과 투명성이다. “덮고 보자”는 고질적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아무리 첨단 무기를 가진 군이라도 국민의 믿음과 지지를 얻지 못하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무인기 침투 방지와 비행 궤적 식별에 실패한 군 관계자들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안보 구멍의 재발을 막을 결연한 조치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사설
01-06 “국민에게 신뢰, 적에겐 공포” 절실한 김관진의 강군論
북한 무인기 사태와 관련, 군 당국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주변의 비행금지구역(P-73) 침투 사실 등을 뒤늦게 시인했지만, 여전히 책임 회피 등 파문 진화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군 당국은 말을 바꾸면서도 “대통령실 안전엔 이상이 없다”고 주장했다. 군은 최악 경우에 대비해야 하는데 요행에 기대는 것 같다. “작전 요원들이 무인기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실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항적 파악에 8일이나 걸린 경위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국방부 장관과 군 최고 지휘부 등 사람만 바뀌었을 뿐, 군 체질은 그대로인 셈이다.
윤 대통령은 군 곳곳의 비정상적 요소를 바로잡겠다고 한다. 진급 문란으로 ‘똥별’ 오명까지 난무하는 등의 현실을 감안하면 올바른 인식이다. 군 정상화를 위한 정답은 이미 12년 전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 제시했다. 김 전 장관은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인 2010년 12월 4일 짧지만 강력한 취임사를 통해 5가지 군 개혁 방향을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예측할 수 없었던 무모한 기습 도발이었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또다시 군사적 도발을 해 온다면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으로 그들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함으로써 도발 대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김 전 장관은 첫째, 당장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형 부대’를 강조했다. 눈앞의 적도 대처하지 못하면서 미래 대비 운운은 사상누각이라고도 했다. 둘째는 무형전력 극대화다. 정신교육을 강화해 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보여주기식 작전 관행을 뿌리 뽑고 오직 전투 행동과 작전 결과로 평가 받는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다섯째는 전력 체계 선진화와 한미동맹 강화다. 김 전 장관은 “국민에게는 신뢰를, 적에게는 공포를 주는, 지금 당장 싸워 이기는 강군(强軍)을 만들자”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에 정면 역행했다. 이제라도 김 전 장관 취임사대로만 하면 된다.
문화일보 사설
01.07 北인권 지적이 ‘비대칭 전력’
“인간쓰레기 탈북자들이 날조한 허구 정보다. 북한에는 인권 문제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달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18년째 연례행사가 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기 전,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가 격앙된 목소리로 반박했다. 북한의 정치범 10만여 명 강제 수용, 조직적 납치와 고문, 송환된 탈북자 탄압 등 산처럼 쌓인 인권 유린의 증거를 두고도 인권결의안에 대해 “미국과 추종세력의 적대 정책” “서방국의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인권 얘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다시피 한다. 해가 갈수록 더하다.

▲김성 주(駐)유엔 북한대사 /유튜브 화면 캡처.
그도 그럴 것이 유엔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점점 ‘핫’ 해지고 있다. 앞서 미국·유럽 등 31국은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인권선언 74주년을 맞아 인권을 부정하는 자들을 기억하자”면서 북한을 ‘최악 인권침해국’으로 꼽았다. 특히 탈북자의 72%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과 인신매매 실태가 알려지고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공개 거론되며 각국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올해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선정 때 역대 가장 많은 8명의 국제법 전문가가 경합하고, 처음 여성이 선정된 것은 북한의 인권, 특히 여성 이슈가 향후 어떤 폭발력을 가질지 보여준다.
사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든 인권 문제든 유엔 차원 논의가 진전을 멈춘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수년간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갈등이 심해지는 와중에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보증인을 자처하며 자유 진영의 단합에 균열을 가하며 심화된 현상이다. 그러나 무기와 인권은 문제 제기의 효율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유엔 관계자는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은 욕을 먹더라도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위업으로 내세운다. 반면 인권 침해는 일절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인권은 평판에 정말 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무력 과시는 정상 국가들로선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이지만, 아프리카·남미 등의 독재 정권들에는 호소력을 갖는 측면이 있다. 북한은 그런 나라들에 무기·마약 거래와 해킹, 가상 화폐 탈취, 체제 선전 노하우 등을 팔아 먹고산다. 그러나 북한을 편들던 나라들도 유엔에서 인권 문제가 여과 없이 거론될 때는 주춤한다고 한다.
북한은 ‘항일·항미 투쟁의 역사 속에 평등 낙원을 만들었다’는 거짓된 도덕 서사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들의 인권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에 세뇌된 세력들이 덮어준다고 덮을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북한의 무인기,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우리의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에 더해 인권이 중요한 병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보유한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라는 막강한 비대칭 전력을 소홀히 다뤄선 안 된다.
조선일보 뉴욕=정시행 특파원
01.09 北 무인기 맞대응이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野, 어느 나라 정당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병주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3.1.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민주당 대변인은 8일 북한 무인기 도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도 무인기를 북에 보내라고 지시한 데 대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했다. 그는 “안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대응을 지시했다”고도 했다. 북한이 먼저 군사분계선을 침범해 우리 영공으로 무인기를 보냈는데, 우리가 맞대응으로 무인기를 북쪽에 올려 보낸 일을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시비를 건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상대가 군사적으로 도발해 올 경우 똑같은 방식으로 강도를 높여 대응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교전 규칙이다. 상대의 추가 도발과 확전을 동시에 막을 수 있는 가장 합리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대응으로 침투시킨 무인기를 북은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북한군 서열 1위인 박정천이 문책 해임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레이더 탐지 능력이 극도로 열악한 북으로서는 자신들의 민감한 시설에 우리 무인기가 접근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맞대응 지시는 북한의 무인기 추가 도발을 막는 매우 효과적인 대응책이라고 봐야 한다.
더구나 북은 무인기 다섯 대를 서울 상공까지 날려 보냈지만 우리 군은 무인기 두 대를 휴전선 너머 5km까지 보냈을 뿐이다. 북보다 강도를 높이기는커녕 최소한으로 경고를 보낸 정도다. 정상적인 나라의 야당이라면 우리 군이 왜 북 무인기 침투에 대응 강도를 낮췄느냐고 질책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북의 무인기 침투에 맞대응한 것이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북한이 해야 할 억지 주장을 대신 들고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북 무인기가 서울을 넘어 경북 성주 사드 기지를 촬영하며 휘젓고 다녔어도 알지 못했다. 5년간 무인기 대책을 제대로 세우기는커녕 훈련도 하지 않았다. 윤 정부는 탐지라도 했지만 문 정부는 한 번도 못 했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이미 휴지 조각으로 안다. 1995년과 2013년 등 수차례 일방적으로 파기를 선언했다. 문 정부와 체결한 9·19 합의 위반도 수도 없다. 그런데 이제는 북한이 먼저 영토를 침범해 우리를 때려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으란 말인가. 민주당은 도대체 남북 어느 쪽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당인가.
조선일보 사설
01.09 [단독] “민노총·시민단체 앞세워 투쟁하라” 北지령 받은 제주 간첩단 적발
“진보정당 간부가 北지령 받아 활동”
국내 진보 정당의 간부 등이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대남 공작원을 만나 “제주도에 ‘ㅎㄱㅎ’이라는 지하 조직을 설립하라”는 지령을 받은 뒤 반(反)정부 및 이적 활동을 해온 혐의로 방첩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8일 확인됐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은 5년 이상 이 사건을 추적했으며 작년 말 두 차례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간첩단 혐의 사건이다.
본지가 입수한 압수수색 영장 등에 따르면, 진보 정당 간부 A씨는 2017년 7월 29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노동당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옛 225국) 소속 공작원을 접선했다. A씨는 캄보디아 은신처에서 사흘간 북 공작원으로부터 제주 지하 조직 ‘ㅎㄱㅎ’ 설립과 운영 방안, 암호 통신법 등을 교육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이후 제주 노동계 간부 B씨와 농민운동을 하던 C씨 등 2명을 포섭해 실제 ‘ㅎㄱㅎ’을 조직했다. ‘ㅎㄱㅎ’의 뜻은 수사 중이라고 한다. 이들은 작년 11월까지 북한으로부터 “민노총 산하 제주 4·3통일위원회 장악” “반미 투쟁 확대” “윤석열 규탄 배격” “한미 군사훈련 중단” “미 첨단 무기 도입 반대” “반(反)보수 투쟁” 등 구체적 지령을 받았다. 일부 지령은 실제 이행했다고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첩 당국은 영장에서 “압수수색 5일 전까지도 이들은 북한 문화교류국과 암호 프로그램과 클라우드를 이용해 통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ㅎㄱㅎ’이 제주도뿐 아니라 국내 다른 지역에도 결성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A씨는 제주도 출신으로 진보 정당의 지역 위원장을 지내며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진보 단체는 “정부가 공안 몰이를 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방첩 당국 측은 “북한 공작 기구와 내통한 것은 분명한 범죄 행위”라며 “A씨의 간첩 혐의와 관련한 증거가 구체적이기 때문에 법원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ㅎㄱㅎ’ 조직원들은 2017년 이후 5년 3개월간 북한 대남 공작기구인 문화교류국의 지령문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책인 A씨는 북 지령에 따라 지난 5년간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각종 반정부, 반보수, 반미 시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을 보면 ‘ㅎㄱㅎ’은 2021년 10월 19일 북한으로부터 ‘진보당 ㅈㅈ도당과 민주노총 ㅈㅈ본부 4·3 통일위원회, 전농 ㅈㅈ도연맹, ㅈㅈ지역 반전평화옹호단체들을 발동해 합동 군사 연습 중단, 한·미·일 군사 동맹 해체, 미국산 첨단 무기 도입 반대 등 구호를 들고 항의 집회, 항의 방문, 서명 운동 같은 대중 투쟁을 연속 전개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ㅈㅈ’는 제주를 의미한다.
‘ㅎㄱㅎ’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3월 29일 ‘한미 합동 군사 연습을 반대하는 대중 투쟁을 집중 전개해 취임을 앞둔 윤석열은 물론 미국에도 강력한 압박 공세를 들이대야 한다’는 내용의 지령을 받았다. 윤 대통령 취임에 앞서 반미 시위를 벌이라는 것이다. 같은 날 ‘민주노총 4·3통일위원회, 학교비정규직노조 제주지부, 건설노조 제주지부를 비롯한 노조들과 진보운동 단체들을 발동해 진보 정당 후보들을 밀어주기 위한 지지 운동을 벌이라’는 취지의 지령문도 받았다. 실제 민노총 제주본부는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3주쯤 앞둔 5월 17일 제주도청 앞에서 진보 진영 인사를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첩 당국은 ‘ㅎㄱㅎ’ 조직원이 민노총 제주본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윤 대통령 취임 한 달 전인 지난해 4월 19일에는 ‘미군기지 철폐, 북남선언 이행을 내걸고 지역에서 다양한 투쟁을 전개해 윤석열놈을 규탄 배격하는 사회적 기운이 고조되게 하는 데 힘을 넣어야 한다’는 지령문을 발송했다. 이어 6월 9일 자 지령문에는 특정 조직원 이름을 거론하며 그의 조직을 중심으로 ‘노조를 결속시켜 반미 투쟁에서 선봉적 역할을 해나가라’고 지시했다. 작년 10월 31일 자 지령문에선 ‘민주노총 4·3통일위원회, 민주일반노조연맹 등 진보운동 단체들을 내세워 반보수 단체들을 재정비하고 확대 개편하는 방법으로 촛불 단체들을 내오고(조직하고), 여기에 지역 중도층을 망라시켜 투쟁 동력을 확보하라’고도 했다.
북한이 노동 조직화를 강조한 배경과 관련, 압수수색 영장은 “(북한이) 단결력, 전투력이 강한 노동자들을 앞에 내세워야 다른 모든 계급의 선두에서 대중을 견인해 나갈 수 있다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방첩 당국은 A씨가 북한 지령에 따라 조직원들과 함께 지역 진보 정당과 노동, 농민 운동 단체에 대한 장악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실제 이들이 활동한 정당과 노동 단체 등은 작년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RIMPAC·림팩) 훈련 반대, 제주해군기지 폐쇄 기자회견 등에 개입했다. 또 북한은 진보 정당을 “지하조직 ‘ㅎㄱㅎ’의 합법적 활동 공간으로 이용하며 선거 때마다 ‘반보수 투쟁’을 진행하라”고도 지시했다.
‘ㅎㄱㅎ’은 친북 활동을 벌인 혐의도 받고 있다. 지난 2019년 2월 제주도에서 ‘북한 영화 상영식’을 열어 ‘우리집 이야기’를 상영했는데 주인공이 일기장에 ‘우리의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 우리 집은 당의 품’이라고 적는 장면 등이 나온다. 보안 부서 관계자는 “북한 지령문에는 주체 사상, 선군 정치, 김정은 위대성 선전 사업 추진 등도 주요 지시 사항으로 들어 있다”고 했다.
A씨를 포섭한 북한 문화교류국은 노동당 직속 대남 공작 조직이다.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대외연락부, 사회문화부, 225국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간첩 남파 등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1992년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1994년 구국전위,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2006년 일심회, 2011년 왕재산 등 각종 간첩 사건에 개입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1-09 “제주 간첩단, 북한 지령 받고 투쟁” 창원·전주 지하조직도 압수수색

국정원·경찰 ‘ㅎㄱㅎ’ 수사 확대
민노총 등 연계 반정부투쟁 혐의
‘중부지역당’이후 최대규모 주목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국내 진보 정당 간부 등이 북한 공작원을 해외에서 만나 제주에 지하조직을 만들고 ‘진보 촛불 세력과 연대해 반정부 투쟁을 전개하고 주체사상과 김정은 위대성을 선전하라’는 지령을 받아 활동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방첩 당국은 이번 지하조직 규모가 전국에 걸쳐 있어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 중이다.
방첩 당국은 제주에서 활동이 포착된 지하조직인 ‘ㅎㄱㅎ’과 관련해 지난해 11월 9일 제주는 물론, 경남 창원과 전북 전주 등에서 압수수색을 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수사 중이다. 제주 ‘ㅎㄱㅎ’에 대해서는 지난해 12월 19일 추가 압수수색을 실시해 A(53) 씨 등의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가입, 간첩·회합통신, 고무찬양 등의 혐의 등을 따져보고 있다.
문화일보 취재에 따르면 A 씨는 2017년 7월 29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간첩공작기구인 조선노동당 직속 문화교류국(옛 225국) 소속 공작원 김모 씨와 접선했다. A 씨는 사흘간 암호프로그램 사용법 등 간첩통신 교육을 받고 암호 장비를 수령한 뒤 귀국했다. 이어 북한 문화교류국과 수차례 대북통신 문건을 주고받아 지난해 9월 24일 진보정당 간부 B(48) 씨, 농민단체 간부 C(63) 씨와 함께 ‘ㅎㄱㅎ’ 산하 노동부문 지하조직 ‘한길회’를 결성했다.
A 씨 등은 ‘ㅎㄱㅎ’ 결성과 함께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북한으로부터 5차례에 걸쳐 △민주노총 산하 4·3통일위원회 장악·반미 자주화 투쟁 확대 △주체사상·선군정치·김정은 등 위대성 선전·교양 사업 추진 등 구체적 지령을 받고 일부 지령은 실제 이행했다고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 정혜규 진보당 대변인은 “지난달 수사당국의 압수수색이 있었고 그 뒤로 사실무근이라는 점을 꾸준히 밝혀왔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김성훈 기자
01-09 ‘ㅎㄱㅎ’ 조국통일 한길 수행 ‘한길회’ 의미…진보당은 “공안 부활” 반발
간첩단 사건 수사
북한, 정체 감추려고 음어 사용
조직원을 ‘대학원생’ 부르며
이메일 ‘사이버 드보크’ 교신
국가정보원이 북한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옛 225국) 지령을 받아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 중인 제주지역 지하조직 ‘ㅎㄱㅎ’의 실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일 정보당국 등에 따르면 ‘ㅎㄱㅎ’은 ‘조국통일의 한길을 수행하는 모임’에서 ‘한길을 수행’하는 글자 중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한길회’의 초성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총책격인 A 씨는 지난해 9월 24일 ‘ㅎㄱㅎ’ 산하에 결성된 노동분야 조직도 ‘한길회’로 명명했다.
정보당국은 조직명칭 등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 정체를 감추기 위해 교신 때 철저히 음어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정보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ㅎㄱㅎ’ 조직을 북한에서는 ‘대학원’으로, 조직원은 ‘대학원생’으로 호칭하는 등 철저히 음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ㅎㄱㅎ’을 비롯한 지역조직과 중앙조직의 상부조직인 조선노동당 산하 문화교류국은 ‘연구원’으로 불렸다. 해외여행을 빙자한 접선은 ‘해외쇼핑’으로 부른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음어 사용은 지도부와 지도구성원간 단선연계 조직관리가 특징인 전형적 간첩조직 운영의 원리인 ‘단선연계 복선포치(複線布置)’ 형태”라고 설명했다.
‘ㅎㄱㅎ’ 조직원들은 북한과 교신 시 사이버 드보크(Cyber Devoke)를 이용하고 암호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클라우드 등 사이버 수단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이버 드보크는 전자우편의 식별자(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지령을 교신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심회’ ‘왕재산’를 비롯,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자주통일충북동지회(충북동지회)도 북한과 소통할 때 이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정혜규 진보당 대변인은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의 공식 입장이 나온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권의 이태원 참사 국면전환용, 공안정국 조성용으로 보고 있다”며 “지난달 수사당국의 압수수색이 있었고 그 뒤로 사실무근이라는 점을 꾸준히 밝혀왔다”고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1-09 ‘정당·노조 침투’ 제주 간첩단 적발… 빙산의 일각일 것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의 교육을 받은 진보 정당 간부가 제주도에서 노동계 인사 등을 포섭해 지하조직을 결성, 반정부·반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제도권에 침투한 뒤 합법 공간을 활용하는 행태가 1년2개월여 전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과 유사하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방첩 당국이 지난해 말 실시한 압수수색 영장 등에 따르면, 진보 정당 간부 A 씨는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대남 공작 부서 문화교류국 공작원의 교육을 받고 귀국해 제주 노동계 간부와 농민운동가 등을 포섭해 ‘ㅎ ㄱ ㅎ’을 조직했다. 2021년 10월엔 북한으로부터 제주지역의 진보당 도당과 민노총 4·3 통일위원회 등을 움직여 합동 군사 연습 중단, 미국산 무기 도입 반대 등의 투쟁을 전개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둔 3월 29일에는 진보 단체들을 움직여 진보 정당 후보 지지 운동을 벌이라는 지령도 받았다. 민노총은 지방선거 3주 전 진보 진영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전후로 ‘반윤석열 투쟁’을 지시하고 촛불 단체 조직과 중도층 확보 지령도 내렸다. 2019년에는 제주도에서 북한 영화 상영식을 열기도 했다.
충북동지회 사건에서도 청주 지역 노동계 인사들이 2017년 캄보디아 등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과 접촉한 뒤 지하조직을 구성하고 북한의 지령에 따라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등 반미 운동을 폈다. 2020년 10월 당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었던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면담해 대북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 김여정이 지난해 11월 담화를 통해 “(남한) 국민은 윤석열 저 천치바보들이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가는 ‘정권’을 왜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모를 일”이라고 선동에 나선 것이 새삼 예사롭지 않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ㅎ ㄱ ㅎ’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방첩 당국이 발본색원해야 한다. 내년 1월 1일부터 경찰로 이관되도록 돼 있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에 대한 근원적 재검토도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1-09 김관진 强軍論과 文정부 9·19 원죄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2012년 늦은 봄으로 기억한다. 당시 필자는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이었기에 가끔 청와대나 국방부에 보고하러 갈 일이 있었다. 한 번은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러 갔는데 낯익은 북측 인사의 사진이 사무실에 걸려 있었다. 김정은과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의 사진이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현역 시절에도 북한 측 상대 지휘관 사진을 자신의 집무실에 걸어두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뻔히 알면서도 물어봤다. 대답은 간단했다. 이 시간에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였다. 그래야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관진은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에 장관에 임명됐다. 북한 도발 직후라는 점에서 그의 지휘철학이 기대됐다. 3가지가 핵심이었다. △군인은 오로지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는 침과대적(枕戈待敵)의 자세로 복무해야 한다 △만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도발 원점과 지원 세력, 그리고 지휘 세력까지 즉각 응징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런 태세를 유지하려면 창끝 전투력을 강화해 전투형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을 간소화하고 교육훈련에 전념하는 강군(强軍) 육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가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북한은 그의 사진을 타깃으로 만들어 군인들이 10m 앞에서 조준사격을 하도록 했다. 총탄 구멍으로 도배된 그의 얼굴이 노동신문에 실렸다. 그만큼 그는 북한군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무인기 도발의 정치적 목적을 일정 부분 달성한 셈이다. 잘잘못을 따져 일벌백계할 건 해야 한다. 그러나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18년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 그리고 9·19 군사합의가 이뤄지면서 국군의 훈련에 족쇄가 채워졌다. 한·미 연합훈련은 뿌리째 흔들렸고 훈련의 명칭마저 사라졌다.
9·19 합의로 휴전선과 북방한계선(NLL) 근방에서의 훈련도 제약을 받았다. 육군 각급 부대가 가지고 있는 전술용 드론도 제대로 가동할 수 없었다. 게다가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군은 훈련보다는 군내 코로나 확산 방지에 전력을 기울였다.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해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나 군은 ‘한반도의 봄’과 코로나를 핑계로 훈련보다는 관리를 택했다. 그러다 보니 강군 육성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군 고위직들을 문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바라는 바다. 그리고 북한은 지난해보다 올해 영토를 직접 침범하는 도발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때 판단해도 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군 고위직들은 강군 육성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강한 훈련을 통해 강군을 만들겠다며 국방혁신 4.0에 시동을 걸었다. 북한 도발 시 도발 원점과 지원 세력을 응징하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7월에 취임한 김승겸 합참의장도 침과대적의 자세로 복무할 것과 적 도발 시 가차 없이 응징하겠다고 했다. 행정화한 군대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김관진 장관의 키즈(kids)다. 취임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 책임 소재를 따져 책임을 묻되 고위직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문화일보 사설
01.10 어쩌다 전국에 北 간첩이 활개 치는 나라 됐나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12월19일 오전 제주시의 진보 정당 간부 자택에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뉴스1
진보 정당과 노동계 간부 등이 해외에서 접선한 북한 공작원의 지시를 받고 제주 등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반미 활동 등을 해 온 혐의로 공안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혐의가 포착된 지역은 제주·창원·진주·전주 등 4곳이지만, 공안 당국은 지하 조직이 전국에 걸쳐 구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다.
국정원·경찰의 제주 지하조직 압수 수색 영장에 따르면, 진보 정당 간부 A씨는 2017년 7월 캄보디아에서 북 대남 공작원을 만나 지하조직 설립 방안과 암호 통신법 등을 교육받았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노동계 간부 B씨, 농민운동가 C씨 등을 포섭해 제주에 ‘ㅎㄱㅎ’란 지하조직을 만들었다. 문 정부 시절엔 ‘한미 군사훈련 중단, 미제 무기 도입 반대 운동을 전개하라’는 지령이, 윤석열 정부 출범 즈음엔 ‘진보·촛불 세력과 연대하고 중도층을 규합해 반정부 투쟁에 나서라’는 지령들이 내려왔다. 일부 지령은 실제 이행했다고 북에 보고했다.
비슷한 일들이 창원·전주 등에서도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모두 해외 접선→지하조직 구축→반미·반정부 투쟁의 수순을 밟았다. 이번 사건은 2021년 8월 적발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사건에서도 청주 지역 노동계 인사들이 해외에서 북 공작원과 접촉한 뒤 지하조직을 만들었다. 대부분 문재인 정부 시절 벌어진 일이다. 북한과의 평화 쇼에 집착하던 문 정부는 국정원을 남북대화 창구로 전락시켜 사실상 대공 수사를 막았다. 군의 방첩 기능과 검찰의 대공 수사 기능도 대폭 축소했다. 대공 수사 기관을 무력화해 북한 간첩과 국내 종북 세력들에게 활동 공간을 열어줬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들 사건은 모두 국정원의 베테랑 대공수사 요원들이 10년 이상 추적해왔다. 국정원의 해외 방첩망이 가동되지 않았다면 해외 접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런데 수십 년간 쌓인 국정원의 대공수사 노하우가 1년 뒤 사장될 위기다. 문 정부 시절 강행 처리한 국정원법 개정안에 따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내년 1월 경찰로 이관되기 때문이다. 경험 없는 경찰에 국정원 수준의 대공수사 역량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10 北지하조직, 방산도시 창원에 중앙거점… 진주·전주서도 결성
간첩단 수사 전국 확대...조직원들 서울서 만난 정황도

▲그래픽=김하경
제주 간첩단 혐의 ‘ㅎㄱㅎ’ 사건을 수사 중인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북한 연계 지하조직이 경남 창원과 진주, 전북 전주 등 전국 각지에 결성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는 것으로 9일 알려졌다. 지역별 지하 조직을 총괄하는 상부 조직의 명칭은 ‘자주통일 민중전위(이하 자통위)’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이들 조직들이 각 지역 정치·사회 단체나 건설·화물 등 부문별 노조에 침투했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 사건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수사 당국 등에 따르면, 국정원과 경찰은 작년 말 제주에 이어 창원, 진주, 전주에서도 북한 지령을 받은 혐의 등으로 관련자들의 거주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ㅎㄱㅎ’과 마찬가지로 북한 노동당 직속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아 지하 조직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반정부 및 이적 활동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북한 대남 공작원과 외국 이메일 계정이나 클라우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교신하는 일명 ‘사이버 드보크(Cyber Dvoke)’ 같은 신종 수법으로 수년간 북측과 교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당국은 ‘자통위’가 전국 각지에 흩어진 북한 지하조직을 총괄하는 중앙 조직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지난 11월 창원에서 활동하는 진보·좌파 단체 관계자 최소 4명의 거주지 등을 압수수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압수수색 영장 등에 따르면, 이들은 2016년 무렵 창원에 ‘자통위’를 설립하고 수시로 북측 지령문을 받은 뒤 반미 집회, 반보수 투쟁 시위 등을 벌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자통위는 ‘ㅎㄱㅎ’ 등 제주·진주·전주 등 각지에 있는 지하조직과 연계해 민주노총 등 합법 단체를 장악하는 데 주력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실제 ㅎㄱㅎ에 발신한 지령문에서 “민노총 산하 제주 4·3통일위원회를 장악하라” “노조들과 진보운동 단체들을 발동해 진보 정당 후보들을 밀어주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북 지하조직들은 노조, 정당 등 합법적인 단체에 침투해 조직을 장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방첩 당국은 북한이 이번 지하조직의 중앙 거점을 서울이 아닌 창원에 설립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이라 노조 등에 침투가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창원은 한화디펜스, LIG넥스원, 현대 로템 등 주요 방산업체와 국방과학연구소 제5기술연구본부, 육군종합정비창 등 국방·방산 관련 기관이 모여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난 2021년 적발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 때도 북이 제도권 단체를 지하조직의 합법적 활동 공간으로 이용한 정황이 나왔다. 이번에는 전국 각지에서 북의 제도권 침투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충북동지회 사건에서 북측과 접촉했던 청주 지역 노동계 인사들은 2020년 10월 당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었던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면담해 대북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수사 당국은 창원 조직과 ㅎㄱㅎ, 전주 지부 등의 연계 활동 여부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첩 당국은 서울에도 북 지하조직이 설치됐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실제 수사 과정에서 지하조직원들이 서울에서 만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자통위와 ㅎㄱㅎ 등은 “정부가 실정(失政)을 덮기 위해 공안 몰이를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자통위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2018년 창원 세계사격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응원하고, 개성공단 재가동 촉구 집회, 친일·적폐청산 집회 등 시민단체의 고유 활동을 했을 뿐”이라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배후 조종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 당국 측은 “이들이 제3국에서 북한 대남 공작조와 접촉하고, 지속적으로 북한 지령문을 온라인을 통해 수령한 구체적 정황을 포착했다”면서 “이를 인정했기 때문에 법원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01.10 사진 속에 암호화 된 지령이… 제주 간첩단, 9·11 때 빈라덴 수법으로 교신
5년간 北과 어떻게 소통했나
클라우드 사이트 계정 공유하는
‘사이버 드보크’ 통해 교신하기

▲오사마 빈 라덴. /조선일보DB
제주도에 지하 조직 ‘ㅎㄱㅎ’을 설립한 국내 진보 정당 간부는 2017년 7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11월까지 대남 공작 부서와 수시로 교신했다. 5년 넘게 국가정보원 등의 눈에 띄지 않고 대북 보고와 지령을 주고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신종 연락 수단인 ‘스테가노그래피(Staganography)’와 ‘사이버 드보크(Cyber Dvoke)’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테가노그래피는 전달하려는 기밀 정보를 이미지(jpg)·오디오(mp3)·비디오(mp4)·텍스트(txt) 등 이른바 ‘커버’라 부르는 다른 미디어에 숨겨서 전송하는 암호화 기법이다. 메시지 자체를 숨기는 것은 물론 메시지 전송 여부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평범해 보이는 사진, 언론 기사 속에 암호화한 지령을 숨긴 뒤 특정 소프트웨어를 활용해야 지령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2001년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를 준비하면서 사용한 스테가노그래피가 대표적이다. 당시 빈 라덴은 ‘모나리자의 미소’ 사진 속에 비행기 도면을 숨겨 알카에다 조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2021년 3명이 간첩 활동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에서도 조직원들이 스테가노그래피를 활용해 북측과 지령, 보고문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사건에서도 이 기법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제주도 조직이 사용한 사이버 드보크는 문자 그대로 ‘사이버 무인 매설함’이란 뜻이다. 과거 간첩들은 접선 과정에서 적발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한 사람이 제3 장소(무인 포스트)에 지령문 등을 놓고 가면 그다음 사람이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나 챙겨가는 식으로 교신했다. 사이버 드보크는 이런 교신 방식을 사이버 공간으로 옮긴 것이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북한이 사이버상 도처에 드보크를 설치해 간첩 간 연락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의심이 가는 인사를 특정해 장기간 추적·감시를 해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구글 등 국내 방첩 당국이 들여다보기 힘든 클라우드 사이트에 계정을 개설해 아이디·패스워드를 공유하고, 여기에 서로 암호화한 지령문을 올려 교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에도 북한 공작 부서가 외국계 이메일 계정으로 가입한 클라우드에 암호화한 문서를 업로드하면 ‘ㅎㄱㅎ’ 조직원들이 내려받는 식으로 소통이 이뤄졌다고 한다. 2010년 적발된 간첩 사건에서도 사이버 드보크 방식이 동원됐다. 이 밖에 북한과 ‘ㅎㄱㅎ’은 조직원은 ‘대학생’, 해외여행은 ‘쇼핑’으로 부르는 등 등 교신 때 다양한 음어를 써가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01-10 간첩 발호와 대공수사권 환원 당위성
김태훈 변호사, 한변 명예회장
국내 진보 정당의 간부 등이 2017년 7월 캄보디아에서 북한 대남 공작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제주도에 ‘ㅎㄱㅎ’이라는 지하조직을 설립한 후 민노총 등을 앞세워 반정부 및 이적 활동을 해온 혐의로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은 5년 이상 이 사건을 추적했으며, 지난 연말 2차례 압수수색을 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간첩단 혐의 사건이다.
지금까지 혐의가 포착된 지역은 제주·창원·진주·전주 등 4곳이지만, 당국은 지하조직이 전국에 걸쳐 구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간첩 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2011∼2016년 총 48명의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검거해 군과 검찰에 송치했지만, 문 정부 시기인 2017∼2020년에는 단 한 건도 송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 12월 13일 문 정부는 국가정보원법 일부 개정을 통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2024년 1월 1일부터 완전히 경찰로 이관되도록 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면 국가 대공수사 능력이 대폭 약해지고, 북한 간첩 공작 부서의 숙원 과제를 풀어 주는 결과가 된다. 북한 간첩의 90%가 이번 사건처럼 캄보디아 등 제3국을 통해 침투하는데, 경찰은 해외 정보망도 없고 외국에서의 정보·수사 활동은 주권 침해가 된다. 간첩 증거 확보를 위해서는 정보와 수사 활동이 긴밀한 연계 속에 추진돼야 하지만, 대공수사를 경찰이 맡으면 신속한 협조가 어렵고 국정원 정보는 극비 출처 정보가 많아 경찰에 제공하기가 어렵다. 북한 간첩 색출을 위해서는 북한 정보와 국내 정보, 인간정보(HUMINT)와 기술정보(TECHINT),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력 등 다양한 정보 출처를 활용해야 하나, 경찰은 이런 정보 출처 확보가 불가능하다.
간첩 수사에는 적의 공작망을 유인하는 역용(逆用)공작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공개 조직인 경찰은 이런 수사 공작에는 부적합하다. 세계 82개국 중 미국·프랑스·이스라엘 등 52개국이 정보기관에 수사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경찰은 공개 조직이어서 외부 압력에 취약할 뿐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안보수사심의회’가 국가보안법 관련 수사업무를 검토하도록 돼 있어 대공수사에는 부적합하다.
안보사범에 대한 정보수집은 ‘북한과 연계돼 있거나 연계가 의심되는 경우’에만 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조국 전 법무장관이 개입됐던 1990년 사노맹 사건처럼 북한과의 연계가 확인되지 않은 안보사범이나 자생적 반국가행위 사범에 대해서는 정보 수집과 채증이 전혀 불가능해진다. 검찰 공안부도 공공수사부로 개편되면서 조직 축소와 베테랑 요원 전출로 대폭 약화됐다. 국군기무사령부 역시 2018년 9월 해체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4200명 요원이 3000명으로 축소됐다. 여기에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까지 더해지면 북한 간첩과 종북·좌파 세력의 발호로 국가안보는 극도로 불안해진다.
이제 건전한 여론 환기가 특히 필요한 때다. 비록 야당이 과거 여당 시절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했지만, 당리당약을 떠나 국가안보를 위한 여야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야당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앞장서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환원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문화일보
01.10 부활하는 美 영웅, 잊히는 韓 영웅
수류탄 품고 散華 20세 상병
美 정부는 최고 예우로 보답
영웅의 생명력은 기억에 비례
殺身成仁 우리 영웅도 소환을

▲육사 화랑연병장에 있는 강재구 소령 동상은 매년 육사 졸업식때 단골 기념촬영 장소다(왼쪽). 서울 노들섬에 있는 이원등 상사 동상./오종찬기자·한국관광공사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는 미국 정부가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무공훈장이다. 1863년 첫 수훈자가 나왔고 지금까지 3500여 명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수훈자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파격적이다. 백악관으로 초청해 대통령이 직접 훈장을 수여한다. 사병 출신이라도 수훈자를 향해 계급에 상관없이 먼저 거수경례해야 한다. 대통령은 물론 현역 장성도 예외가 없다. 연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주고, 특별 제작한 자동차 번호판도 달아준다. 국가 공식 행사에 귀빈으로 초청하고, 공공장소나 기관은 그의 방문 사실을 알린다. 시민들은 수훈자에게 박수를 치고 고개를 숙이며 군인으로서의 용맹함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정신에 존경과 감사의 뜻을 아낌없이 전한다.
2014년 9월 15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거행된 훈장 수여식은 그중 특별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0년 1월 17일 적군의 부비트랩에서 굴러온 수류탄을 몸을 던져 막아낸 기관총 사수 돈 슬로트(Sloat) 상병을 기리는 자리였다. 동료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한 그는 당시 스무 살이었다. 형을 빼닮은 초로의 동생이 액자에 담긴 훈장을 말없이 받았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전장의 안개와 시간의 흐름 속에 전공(戰功)이 잊힐 수 있다”며 뒤늦은 훈장 수여에 대한 유감을 전한 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용사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에게도 동료의 목숨을 구하고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을 실천한 영웅이 여러 명 있다. 1965년 10월 4일 베트남전 파병을 앞두고 중대원과 훈련 중 한 병사가 안전핀을 뽑은 채 놓친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순직한 강재구 소령이 대표적이다. 1966년 8월 11일 해병 청룡부대 정보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동굴 수색 작전을 벌이다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을 가슴에 안고 전사한 이인호 소령, 1966년 2월 4일 공수특전단 고공 침투 낙하 조장으로 한강 백사장 4500피트 상공에서 강하 훈련 중 기능 고장을 일으킨 병사의 낙하산을 펴주고 언 땅 위에 추락해 순직한 이원등 상사도 있다. 미국과 차이가 있다면 영웅들의 뜨거운 의기(義氣)가 후대에 충실히 전해지지 못하고 잊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강 소령의 일화는 1970년대 ‘아! 중대장님!’이란 제목으로 6학년 바른생활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지금도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입교를 앞둔 생도들이 고된 기초 훈련을 마무리하며 촛불을 밝히고 강 소령의 희생정신을 계승하는 ‘재구 의식’을 거행한다. 입학한 뒤에는 매주 금요일 ‘내 나라 내 겨레 위해서라면, 재구처럼 이 목숨 아끼지 않으리’라는 ‘재구가’를 부르며 교정을 행진한다. 하지만 요즘 보통 젊은이 가운데 강재구 이름 석 자를 들어본 이가 얼마나 될까. 한강대교 노들섬에는 ‘낙하 준비 완료’를 알리며 엄지손가락을 힘차게 치켜든 이원등 상사의 동상이 있다. ‘바람 찬 창공을 끊어, 죽음의 부하를 구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 ‘영웅’이 최근 개봉 1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해 8월 나온 김훈의 소설 ‘하얼빈’은 지금까지 30만부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자신의 안전을 뒤로하고 초개처럼 목숨을 바친 영웅의 생명력은 훗날 그의 뜻을 기리며 함께 펴나가는 사람들에 비례한다. 미국은 44년 만의 최고 훈장으로 ‘기억의 힘’을 보여줬다. 전사(戰史)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영웅들이 품었던 정신을 오늘에 새로이 되살릴 때 우리가 진정 먼저 떠난 이들을 제대로 대접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선일보 채성진 기자
01.10 “서훈, 文 유엔연설에 지장 준다며 서해 피살 진상 은폐 지시”
검찰 공소장에 드러난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은폐’ 사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9월 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 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폐’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 총격을 받고 숨진 해수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를 ‘자진 월북’으로 몰아간 핵심 동기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이씨 피살 3시간 만에 유엔총회에서 ‘남북화해 및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화상 연설을 하는 데에 대한 비판 여론을 피하려는 의도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9일 전해졌다.
검찰은 또 서훈 전 실장이 당시 국정원으로부터 ‘이대준씨 피살과 시신 소각 사실을 공개할 경우 (2008년 7월 북한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박왕자씨 사건처럼 남북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이씨를 북한 해역에 불법 침입한 월북자로 조작하면서 합법적 관광을 하다가 북한군에 피살된 박씨 사건과 차별화하려고 했다고 봤다.
법무부는 이날 이런 내용이 포함된 서훈 전 실장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공소장은 A4 용지 117쪽 분량이다.
검찰에 따르면, 서 전 실장은 이대준씨가 2020년 9월 22일 밤 북한군에 피살되고 난 뒤 정부의 부실 대응 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국방부와 해경 등에 관련 사실 은폐를 지시했다. 그러나 다음 날 이씨가 피살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서 전 실장은 하루 뒤인 9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씨가 월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정하고 김 전 해경청장에게 자진 월북 취지로 수사 결과를 발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훈 전 실장이 ‘(이씨의) 주변 인물 진술, 통화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월북 의도는 발견되지 않음’ 등 이씨의 자진 월북과 배치되는 증거를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해경에 자진 월북 관련 지시를 내렸다고 봤다. 특히 서 전 실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일부 언론 등에서 금번 사건을 ‘제2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라는 기조로 보도하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은 우리 국민이 합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금번 사건의 경우 합법적 절차 진행 간 발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 즉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이는 점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됐다.
검찰은 또 서 전 실장이 2020년 9월 23일 오후 해경으로부터 ‘이대준씨 실종 및 수색 계속 중’이란 취지의 보도자료 초안을 보고받은 후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여기에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이 발견’ ‘목포에서 가족 간 문제로 혼자 생활 중’ 등의 내용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직접 가필한 것으로 파악했다.
서 전 실장은 이런 허위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라고 김홍희 전 해경청장에게 지시했고, 김 전 청장도 이를 해경 실무자에게 전달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하지만 서 전 실장은 이미 전날 밤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살됐고 시신이 소각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김 전 청장에게 이씨가 이미 사망했는데도 실종 상태로 수색 중인 것처럼 발표하게 하면서 마치 이씨가 자진 월북한 듯한 인식을 주는 내용이 포함되도록 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고 봤다.
검찰은 서 전 실장에게 2020년 9월 24일 ‘이대준씨는 스스로 북한 해역에 불법 침입한 월북자’라는 허위 내용의 자료를 외교부를 통해 모든 재외 공관에 신속하게 배포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했다.
이 사건으로 서 전 실장은 지난달 9일 구속 기소됐고, 김 전 해경청장은 같은 날 불구속 기소됐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 서욱 전 국방부장관도 지난달 29일 불구속 기소됐다.
01.11 文 유엔 연설 지장 줄까 국민 생명 외면하고 월북 몰이 했다니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총격을 받고 숨진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를 자진 월북으로 몰아간 것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 지장을 주고 남북 이벤트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검찰이 공소장에서 밝힌 내용이다. 국가안보실장이 국민 생명이 아니라 남북 이벤트만 신경 썼다는 것이다.
서 전 실장은 사건 직후 열린 각종 회의에서 “남북 관계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보안 유지와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고 한다. “자진 월북으로 보이는 점이 있다”고도 했다. 근거도 없는 월북 몰이를 통해 정부가 아무런 구조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을 피하려 한 것이다. 서 전 실장은 국정원이나 해경 등에서 ‘월북 의도는 발견되지 않음’ ‘실족 가능성’이란 보고를 받고도 자진 월북으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군과 국정원에도 자료 삭제 지시를 내려 첩보가 총 5600건 삭제됐다. 해경 보도 자료 초안에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발견’ ‘가족 간 문제로 혼자 생활’이라고 써넣은 사람도 서 전 실장이라고 한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 신발은 발견되지도 않았다. 외교부에는 ‘이대준씨는 스스로 북한 해역에 불법 침입한 월북자’라는 자료를 모든 재외공관에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과 남북 평화 쇼를 되살려 보려 혈안이 돼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은 피격 사건 직후 공개된 유엔 화상 연설에서 “종전 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살해당해 시신까지 불태워지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국가 안보 사령탑이 대통령 연설이나 남북 이벤트가 잘못될까 봐 사건 은폐·조작에 나섰다니 할 말을 잊게 한다. 오죽했으면 당시 청와대 비서관들이 “이게 덮을 일이냐. 국민이 알면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하나. 미쳤어”라고 말했겠나. 더 보탤 말이 없다.
조선일보 사설
월간조선 01월 호
1967년 납북된 ‘풍복호’ 선원 납북자 카드 입수
“‘풍복호’ 미리 잠복한 간첩이 北으로 유인한 듯”
⊙ “北 군인들 이미 아버지 이름 알고 있어”
⊙ 납북자 중 1명 1970년대 한국서 간첩활동하다 체포
⊙ 납북자 최원모, 6·25전쟁 당시 켈로부대원으로 활동

▲1967년 6월 북한군에 납북된 ‘풍복호’ 선주 최원모씨(원 안)다. KLO8240 유격백마부대 활동 당시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최성룡 이사장
북한은 6·25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남한 주민을 납치해 북한에 억류해왔다. 납북 사건은 특히 남북한 대결이 치열했던 시기인 196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통일부에 의하면 북한이 지금까지 납치한 남한 국민은 총 3835명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현재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 수를 516명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납북자의 대부분은 어부들인데, 이들은 대부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2008년 최초 작성된 ‘납북 사건 관리 카드’

▲2008년 국정원이 작성한 풍복호 최원모 선주의 ‘납북 사건 관리 카드’다. 사진=납북자가족모임
최근 기자는 납북자 관련 취재를 하던 중 국가정보원이 2008년 작성한 ‘납북 사건 관리 카드’를 입수했다. 납북 사건 관리 카드에는 1967년 6월 4일 오후 6시경 연평도 근해에서 어로 작업 중이던 ‘풍복호’가 다음 날인 6월 5일 오전 8시경 북한 무장선 10여 척에 포위당해 총격을 받고 납북됐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당시 ‘풍복호’에는 최원모 선주와 7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풍복호’가 납북되고 3개월 뒤인 1967년 9월 25일 인천항으로 5명의 선원이 귀환했다. 하지만 최원모 선주를 포함해 2명의 선원은 그대로 북한에 억류됐다.
귀환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에서 정치교양, 경제학 등을 통해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교육을 받았으며, 군산 지역의 주요 시설물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또한 남한으로 돌아온 후에는 북한 찬양선전, 지하당 조직, 북한 찬양 삐라 살포 등의 활동을 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최원모 선주를 비롯한 나머지 2명의 선원은 왜 귀환하지 못한 것일까. ‘납북 사건 관리 카드’에는 ‘6·25전쟁 당시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이었던 최원모 선주는 남하하면서 원적지에서 좌익분자를 살해한 것이 발각되어 억류됐다’고 적혀 있다.
최원모 선주는 6·25전쟁 당시 미군과 함께 대북(對北) 첩보 활동을 벌였던 켈로부대 대원이었다. 북한은 최 선장이 켈로부대 소속 ‘북진호’의 함장이었으며 북한군을 사살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인민재판에 넘기고 풍복호 선원 일부를 억류했다.
최원모 선주의 아들인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과거 아버지가 고향에서 치안대장을 하면서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다”면서 “그 사실을 북한에서 알고 아버지를 억류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선장과 함께 억류된 A씨는 당시 16세였다. 당시 최원모 선주는 어린 A씨를 배에 태우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학비를 벌겠다”며 사정하는 A씨를 외면하지 못했다. 그렇게 ‘풍복호’에 올라 조업을 하다가 납북된 A씨는 최 선장과 함께 북한에 억류됐다. A씨와 함께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한 어부가 A씨의 어머니를 찾아와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닻을 올리고 배가 북한을 떠나려는데 A가 숨을 헐떡대며 부둣가로 뛰어나왔어요. 뒤늦게 배가 떠나는 걸 알았나 봐요. 우리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치는데 북한군의 제지를 받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울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미안합니다. 배를 돌리지는 못했어요.”
“선원 B씨가 ‘풍복호’를 北으로 유인한 것 같아”

▲최원모 선주가 67년 납북 당시 타고 있던 ‘풍복호’다. 사진=최성룡 이사장
최성룡 이사장은 최원모 선주와 함께 억류됐던 또 다른 선원 B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B씨의 고향은 경상도인데 전라북도 군산에서 ‘풍복호’ 선원으로 일했다”면서 “당시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까지 와서 배를 타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마도 B씨가 ‘풍복호’를 북한으로 유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에 억류됐다 돌아온 ‘풍복호’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군인들은 최 선장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B씨만 따로 분리해 다른 곳으로 데려갔고, 이후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최성룡 이사장에 의하면 북한에 억류됐다가 돌아온 ‘풍복호’ 선원 5명은 그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북한에 억류되기 직전 선장은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도민증을 바다에 버렸어요. 그런데 북한군이 배에 올라와 선장에게 ‘최원모 선생 어서 오시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눈치챘어요. 누군가 우리 배를 일부러 이곳까지 유인했다는 것을요.”
북한에 납치되어 끌려가고 나서 B씨의 행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풍복호’가 납치되고 3년 뒤 1970년 B씨는 남한에서 간첩활동을 하다 검거됐다. 이후 B씨는 재판을 통해 징역을 살게 됐다.
B씨는 복역 후 최성룡 이사장의 어머니를 찾아와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1910년생인 최원모 선주는 평북 정주 출신이다. 최 선장은 6·25전쟁 당시 KLO(Korean Liaison Office) 8240 유격백마부대 선박대장으로 ‘북진호’라는 배를 몰고 군수물자 보급과 중공군·인민군 포로 수송, 부대원과 민간인 대피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유격백마부대원들은 2600여 명이었다. 이들은 최원모 선주처럼 군번도 없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주로 오산학교 출신들로 부대원 대부분의 고향은 평북 정주였다. 유격백마부대는 KLO의 20개 유격부대 중 평북 출신들로 구성된 유일한 부대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황해도 출신들로 구성된 부대였다고 한다.
이런 공로가 인정돼 최원모 선주는 2013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현재 최 선장의 위패는 국립현충원에 봉안되어 있다. 최 이사장의 어머니 김애란씨도 6·25전쟁 당시 KLO8240 유격백마부대 대원으로 활동했다. 김씨도 이런 공을 인정받아 2017년 국가유공자가 됐다.
최 이사장은 아버지 최원모 선주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십 년간 정부와 유엔을 통해 북한에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최 이사장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아버지는 1970년에 인민재판소에서 조선 인민들을 학살했다는 죄명으로 정주군 갈산면 번저리에서 사형되셨다”면서 “시신은 시간이 오래 지나 찾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최성룡 이사장은 2000년부터 납북자들과 국군포로들을 구출하거나 사망한 국군포로의 유해를 송환하는 일을 해왔다. 2004년에는 북한 내 협조자를 통해 얻은 정보로 일본인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씨의 남편이 한국에서 납북된 학생 김영남씨라는 것을 밝혀냈다.
“정부, 북한에 개인 재산 반환 요구한 적 없어”

▲2002년 4월 29일 금강산여관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행사장에서 김애란 할머니가 1967년 납북된 남편 최원모 선주와 풍복호 사진을 내보이며 남편의 기일이라도 알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최성룡 이사장은 최근 1967년 당시 아버지가 타고 나갔다가 북한에 빼앗긴 ‘풍복호’를 돌려받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아버지가 타고 간 ‘풍복호’는 엄밀히 말해 개인 재산”이라면서 “북한이 남한 주민의 개인 재산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 이사장은 먼저 해양수산부와 통일부에 지금까지 정부가 북한이 강제로 빼앗아간 남한 주민들의 재산 반환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답변을 요청했다. 다음은 최 이사장이 해수부와 통일부에 답변을 요청한 내용의 일부다.
〈2000년 김대중 정부를 시작으로 노무현, 문재인 정부로 세 번의 정상회담에서 비전향장기수 63명을 보내고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귀환을 요구했는지, 그리고 가족의 재산인 어선(선박)의 귀환을 요구했는지 답변을 요구드립니다. 단 한 번이라도 선박에 대해 북한에 요구했는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해수부와 통일부는 질문에 대한 답을 회피했다. 해수부 답변의 일부다.
〈납북 피해자에 대한 보상 성격의 지원과 관련하여서는 관련 법률인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 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이루어지는 사항으로 선박, 어업 손실에 대한 피해 보존 등 추가적인 보상에 대한 것은 해수부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사료되오니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통일부의 답변이다.
〈정부는 그간 남북 간 회담 등 계기 시 납북자 문제의 해결 필요성을 북측에 지속 제기하였으나 북측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 이사장은 “지금까지 정부는 북한에 개인 재산 반환을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북한에 책임을 물어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선박 송환과 관련해 해수부에 문의했다. 해수부는 “6·25전쟁 이후 우리 선박이 북한에 납북된 것에 대해선 확인하고 있지만, 선박에 대한 반환 요구는 해수부가 아닌 외교부나 통일부가 담당하는 업무”라고 답변했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01-11 국회까지 손뻗은 ‘북한 지령 간첩단’… 전직 의원 보좌관이 난수표 보고
국정원 ‘북한 인사 접촉 장면’확인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정보당국이 북한 지령에 따라 움직인 경남 창원의 반정부단체 ‘자주통일 민중전위’(약칭 ‘자통’) 수사에 이어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이었던 정치권 인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의혹을 내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시민단체에 이어 국회에까지 북한의 손길이 뻗쳐 있는 것으로 보여 충격을 주고 있다.
11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은 전직 보좌관 A 씨가 2016년쯤 베트남에서 북한 인사를 접촉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21대 국회가 출범했던 2021년 5월 말부터 한 의원의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지난해 봄까지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의원실에서 근무 중인 지인은 “A 씨는 지난해 봄 일신상의 이유를 통보한 뒤 의원실을 나왔다”며 “A 씨의 북한 인사 접촉 내용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A 씨의 행보를 추적하던 중 A 씨가 서울 시내에서 인터넷을 사용해 북한에 난수표(암호문) 보고를 한 사실을 파악했다.
대북보고를 보낸 시점에 A 씨는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했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주로 캄보디아와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북한 측과 접촉이 이뤄졌으나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인터넷을 통한 난수표 보고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국정원은 A 씨가 2016년 북한 인사와 접촉한 만큼 북한의 지령을 받고 이후에도 각종 정보를 북측에 제공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은 제주간첩단 ‘ㅎㄱㅎ’ 단체의 상부조직인 반정부 단체 ‘자통’의 수사도 확대하고 있다. 수사 결과 ‘자통’의 핵심 요원이 거점을 창원에서 서울로 주소지를 옮기는 등 활동범위의 전국 확대를 기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간첩단 규모가 서울 인천 부산 등 광역도시에도 지하 전위조직이 퍼져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수사 초기 6명이던 혐의자가 10명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1-12 현직 대통령 첫 “자체 핵 보유” 언급 의미 크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오래전에 효력을 잃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은 1975년 비준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해왔다. 19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철군과 공산화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나서긴 했지만 미국 설득과 압력으로 포기한 적은 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북한 핵무기)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경우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여러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자적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어서 여러 측면에서 그 의미가 상당하다.
윤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것처럼 당장 핵무기 개발에 나서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북핵이 임계점을 넘어설 경우를 대비한 최후의 선택지를 제시한 것으로, 대내적으로는 대남 핵공격을 위협하는 김정은 정권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당장 미국이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더욱 강화해 확장억제력을 제고시키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미국의 핵 자산 운용에서 공동 기획·실행하는 협력”을 강조한 만큼,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력이 부족해 핵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근거를 제공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올해 실시되는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과 첫 핵우산 훈련이 주목받는 이유다.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으로 북한을 두둔한다면, 한국은 자위권 차원에서 어떤 형태로든 핵무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 폭주를 멈추진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를 위한 7차 핵실험 준비를 마쳤고, 전술핵 전방배치까지 언급하고 있다.
안보는 최악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동맹과 함께 다양한 포석을 물밑에서 진행해야 한다. 중간 단계로서 핵 잠재력 보유를 검토할 필요도 있다. 플루토늄 재처리에는 제약이 있으나 우라늄 농축은 해볼 만하다. 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으로 미국산 우라늄 20% 저농축 길도 열린 상태다.
문화일보 사설
01.13 한국 대통령의 사상 첫 ‘자체 핵 보유’ 언급이 갖는 의미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도 외교부-국방부 업무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이 더 심각해질 경우’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한국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을 공개 언급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북이 대남 핵 선제 공격을 언급한 데 이어 대남용 전술핵 실전 배치가 임박한 상황에서 안보를 지키기 위해 성역 없이 모든 방안을 다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핵우산은 한국 안보의 기초가 돼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미국 핵우산에만 우리 운명 전체를 맡기고 있기에는 북핵 위협이 너무나 심각한 것 또한 사실이다. 북한은 지금 미국 대도시 2~3곳을 동시에 핵 타격할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러면 미국은 자국 국민 수백만 명이 희생될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그런 결심을 할 미국 대통령이 있겠느냐는 것은 합리적인 의문이다. 북한이 미국을 핵 공격할 ICBM에 이토록 매달리는 것도 바로 이 효과를 노린 것이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도 미국 핵우산 아래에 있지만 오래전부터 자체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과의 핵 공유 체제를 마련해 뒀다. 나토 국가들은 핵 사용 결정에 참여하고 핵 투하도 자국 전투기로 한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에게는 핵을 성역으로 만들고 어떤 접근도 하지 못하게 한다.
한미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평가되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북이 대규모 도발을 벌이면서 핵 공격 협박을 함께 한다면 그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만 지게 된다. 미국은 휴전 이후 북의 도발에 우리와 함께 싸운 적이 없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등의 북핵 대응 콘퍼런스에서도 ‘미국의 핵우산이 펴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한국도 핵 잠재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곧바로 핵 개발 계획에 착수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핵 자산 운영 과정에 우리가 참여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발언은 미국에 보다 확실한 북핵 억지 수단을 찾을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 무기를 공동으로 기획·실행하는 방안부터 논의해야 한다. 시뮬레이션과 도상 연습, 전투기에 핵무기를 실어 투하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앞으로 나토식 핵 공유 등의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우리가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하는 상황은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북핵 위협만 없다면 우리가 핵을 가져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북핵 위협이 노골화하고 중국은 이를 방조하는데 미국마저 미온적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5100만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립이 걸린 문제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단기간에 핵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점검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중국에도 뚜렷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10.16 중무장한 테러범을 선량한 나그네로 오인한 文정부
“북한 선의(善意)에 의존하는 대북 정책은 실패했고 일방적 유화 정책은 우리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 지난 11일 외교부가 낸 공식 입장이다. 쌀로 밥을 짓고, 물로 차를 달인다는 말만큼 옳은 소리다. 이토록 당연한 외교의 기본 원칙을 천명하기가 왜 그토록 힘들었는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신의를 얻으려면 장시간, 꾸준히, 투명하고 성실하게 보편 가치를 선양하고, 국제 규약을 존중하고, 쌍방의 협약을 엄수해야 한다. 북한은 대놓고 보편 가치를 짓밟고, 예사로 국제 규약을 조롱하고, 멋대로 쌍방의 협약을 무시하는 불량 국가다. 지난 70여 년 경험으로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북한 정권이 자행해온 만행과 범죄 사례는 무수하다. 인권유린, 정치 학살, 군사 테러, 마약 밀매, 사이버 테러 등 여러 항목으로 분류해야 할 지경이다. 오늘날 북한은 스탈린식 공포 통치, 히틀러식 인종주의, 마오쩌둥식 인격 숭배를 합쳐 놓은 전체주의 세습 전제정이다.
그런 북한 정권의 선의를 누가 믿을 수 있나? 그 누가 북한 정권에 소액이라도 선뜻 투자하겠는가? 김대중 정권은 대체 무엇을 믿고 북한 정권에 4억5000만달러를 몰래 건네주고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은 핵 개발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장담했는가?
돌아보면 ‘햇볕 정책’을 따 온 우화 속에 답이 있다. 해와 바람이 길 가는 나그네의 망토 벗기기 내기를 했는데, 강풍에는 망토를 안 놓치던 나그네가 햇빛을 받자 그늘에 앉아서 스스로 외투를 벗더라는 이야기다. 상식에 맞는 지혜의 말씀이지만, 햇볕 정책의 패착은 북한 정권이 길 가는 평범한 나그네가 아니라는 데 있다. 북한 정권은 망토를 벗으면 살상 무기와 험한 흉터가 드러날까 두려워 강한 햇볕 아래서도 망토를 못 벗는 중무장한 테러범과 같다.
중무장한 테러범을 선량한 나그네라 오인했기에 햇볕 정책을 신봉한 지난 정권은 북한의 선의만 믿고 김정은에게 끌려다니다 약점 잡힌 듯 “삶은 소 대가리”란 욕설까지 들어야만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떻게 테러범과 나그네를 구별조차 할 수 없었나?
지난 정권이 “우리 민족끼리”의 환상에 빠져 있었던 까닭이다. 남·북한 정권이 공동으로 발표한 6·15 공동선언(2000년), 10·4 선언(2007년)에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식 표현이 등장한다. 판문점 선언(2018년)도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 원칙”을 운운한다. 김정은의 표현대로 서로 “갈라서 살 수 없는 한 혈육이며, 그 어느 이웃에도 비길 수 없는 동족”이라 여겼나? 그랬다면 진정 이념, 체제, 사상, 가치가 전혀 다른데도 고작 피부색과 언어가 같다는 이유로 북한의 선의를 믿었다는 얘기다.
이 시대에 “우리 게르만 민족끼리” “우리 유대 민족끼리” “우리 앵글로색슨 민족끼리” “우리 라틴 민족끼리” 같은 구호가 나온다면, 국제사회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 민족끼리”는 그만큼 촌스럽고 퉁명스러운 구시대적 종족주의의 발상이다. 세계사적 견지에서 민족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 지 이미 오래다. 참혹한 세계대전을 두 번 겪고 대륙적 통합으로 나아가는 유럽연합의 출현은 일례에 불과하다. 숱한 문제가 터지지만 21세기 현재 글로벌 세계 체제는 여전히 견고하다.
인류 사회는 배타적 민족의 굴레를 버리고 다인종,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 다원론의 초국가적 통합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 지구적 확산과 교류, 접변과 혼융이야말로 이 시대 인류의 가치다. 이미 대한민국은 전 세계 195국 중 191국을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열린 나라가 아닌가? 전 세계 모든 나라와 선린 관계를 이뤘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 문화적 창달, 외교적 자주가 실현되었다.
작금 상황은 핵무장한 김씨 왕조가 남북한 8000만을 볼모로 잡은 한 판 인질극이다. 인질범이 외치는 “우리 민족끼리”는 민족 자멸의 구호일 뿐이다. 남북문제는 민족문제가 아니라 핵무장한 불량 정권을 다루는 인류 공동의 문제다. “우리 민족끼리”의 환상을 버려야만 망토를 벗지 않는 테러범의 실체가 보인다. 범인류적 시각에서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상호주의 원칙대로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대북 정책의 기본 강령은 간명하다. 북한의 선의를 믿지 말고, 테러 정권의 실체를 직시하라.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01.16 김영환 “北 지하조직, 브라질 대선 불복처럼 봉기할 결정적 순간 기다려”
[노석조가 만난 사람]
김일성 지령받고 90년대 ‘민혁당’ 조직한 ‘주사파 대부’ 김영환
“주사파 출신들 ‘배신자’ 낙인 두려워 북한 공개 비판 안해”
▲김영환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북한은 적화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지하조직은 이를 위한 주요 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물론 최근 브라질에서도 '대선 불복' 폭동이 일어나 의회·대통령궁·대법원이 점거되는 일이 뉴스로 타전됐다"면서 "절대 벌어져선 안되겠지만,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최근 제주·창원 등지에서 ‘ㅎㄱㅎ’ ‘자통’ 같은 이름의 간첩 혐의 조직이 수사망에 걸렸다. 국가정보원은 북한 지하조직이 경남 진주·전북 전주 등 전국 각지에 결성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는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1980년대 ‘주사파 대부’로 북한 연계 지하 정당인 ‘민혁당’을 조직했던 김영환(60)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은 적화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지하조직은 이를 위한 주요 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한국 내 지하조직을 만드는 것은 남·남 갈등 유발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하조직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결정적인 순간’에 들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물론 최근 브라질에서도 ‘대선 불복’ 폭동이 일어나 의회·대통령궁·대법원이 점거되는 일이 뉴스로 타전됐다”면서 “절대 벌어져선 안 되겠지만,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지하조직으로 70년간 꾸준히 대남 공작
-아직도 북 추종자·지하조직이 있는데.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인류가 달에 착륙한 사실을 아직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수없이 많은 증거를 보여줘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이유와 논리를 대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려 한다. 자기들이 쳐놓은 세상 안에 갇혀 좀처럼 헤어나오지 않으려 한다. 교주가 못된 짓을 해 감옥에 가거나 죽더라도 계속 추앙한다. 여기에 정치·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고 인간관계도 얽히면 더 맹렬히 활동하게 된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이들이 있듯이 이들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북한은 왜 지하조직을 계속 만들고 간첩을 보내나.
“북한식으로 통일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 그럴 역량은 없지만, 지하조직을 두고 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언제 어떻게 요긴하게 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 대남 공작 부서의 역량을 계속 유지한다는 데서도 의미가 있다. 대공 수사권이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우리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2016년 공개 행사장에서 중국 조선족이라면서 내게 악수를 청한 사람이 손에 독극물을 바르는 수법으로 나를 암살하려 한 적이 있었다. 국정원과 미 중앙정보국(CIA)이 나중에 그 조선족이 남파된 북한 암살단이라고 알려줬다. 지하조직이 직접 암살 작전을 하진 않더라도 이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역할은 했을 것이다.”
-최근 적발된 간첩 혐의 조직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려 한 정황도 나왔다.
“지하조직은 각종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남·남 갈등을 유발한다. 여론을 왜곡하고 한국의 정치·사회적 토양을 북한에 유리하게 바꾸려 한다. 홍콩이나 대만의 여론이 지금처럼 중국 쪽으로 많이 넘어갈 줄 누가 알았겠나. 중국이 오랫동안 동조 세력을 만들어나갔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에 불복해 폭동을 일으키거나 의회를 점거하는 일이 미국, 브라질 등에서 벌어졌다는 해외 뉴스도 전해지고 있다. 간과해선 안 된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되지만, 한국에서도 안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
◇남남갈등 유발·여론 왜곡, 선거에도 개입
-북한은 어떤 지령을 내릴까.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나를 ‘김 동지’라고 부르면서 ‘남조선 혁명과 해방에 혁혁한 공을 세워라. 기대하겠다’고 했다. 그게 지령이었다. 그러면서 공작금으로 40만달러를 줬다. 당시 환율로 3억원이 훌쩍 넘었다. 5급 공무원 월급이 40만원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지금으로 치면 30억~40억원 정도일 것이다. 이걸로 민혁당 이끌고 선거 자금에도 썼다.”
-지하조직원들이 선거에 나갔다는 건가.
“그렇다. 당시 북에서 받은 자금으로 1990년대 이상규(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 7~10명 정도 지원했다. 북한이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조직원을 후보로 입후보시키고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90년대 모 지역에 출마한 이른바 ‘인권 변호사’ A씨에게도 직접은 아니지만, 그의 선거 캠프 운동원에게 자금을 준 적이 있다.”
◇통진당 일부 김일성 공작금으로 선거 치러
-얼마씩 지원했나.
“북한이 준 공작금과 조직 자체 수입을 가지고 수백만원씩 줬다. 이에 대해선 2014년 통진당 해산 헌법재판소에서 ‘(통진당 의원인) 이상규·김미희 등에게 1995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500만원씩 하모씨를 통해 지원했다’고 증언도 했다. 이 발언이 허위라며 소송도 당했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통진당 의원과 최고위원 등 일부 당직자들이 민혁당의 당원이거나 하부 조직의 조직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민혁당의 리더였고, 모든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지하조직은 유독 반미 운동에 집중한다.
“한국 체제 전복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70년간 일관되게 한국과 미국 사이를 이간질하려 해왔다. 사실 한국 여론을 움직이려면 반중 정서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거기엔 관심이 없다. 반중 정서는 한국 체제와 별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 측면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미국이 있으면 북한이 한국에 마음대로 못 한다. 앞으로도 미국과 한국을 떼어놓으려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주사파 출신 중 과거를 공개 반성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그들 일부도 이제는 북한 체제가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주사파였던 것을 반성하거나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등 돌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주사파들 사이에 금기시되는 게 있다. 후회한다든가 반성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걸 공개적으로 하면 ‘나쁜 놈’ ‘배신자’라고 (저희끼리) 낙인을 찍고 욕한다. 북한 선전 매체가 대놓고 살벌하게 비방한다. 진영 논리에 빠져서 북한 비판하면 반대 진영 돕는 꼴 된다고 ‘북이 싫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도 경기도 안산에서 한 청년 단체가 ‘친북’ 논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이석기(통진당 사건 주범) 그룹’ ‘경기동부연합’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 안산, 성남 등 경기 동부·남부 지역이다. 이들 세력은 이석기가 나온 대학의 용인 캠퍼스를 중심으로 안산 등으로 퍼졌다. 부모 중에 자녀에게 주사파 사상을 교육해 대물림해주는 경우가 상당하다. 실제로 문제가 된 일부 친북 활동 청년들의 부모가 누군지 봤더니 관련 전력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알기로 경기동부연합의 힘이 가장 센 곳이 성남 지역이라고 한다.”
-제주·창원 등에서 지하조직이 포착돼 수사 중이다.
“수사 진행 사항에 대해 아는 바는 없다. 현재 북 지하조직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번 수사로 어느 정도 밝혀지지 않을까.”
◇남매 간첩 연루 프락치, 北 수용소 끌려가
-주사파 대부에서 북 민주화 투사가 됐는데.
“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주사파에서 벗어났다. 수천 명은 되지 않을까. 원체 당시 주사파가 많았다.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조국(전 법무부 장관)은 솔직히 활동을 제대로 한 게 아니라 운동권이라 보기도 애매하다. 같은 세대였지만 윤미향 의원은 전혀 알고 지내지 않아 그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학교가 달라서일 수도 있겠다. 다만 그의 남편인 김삼석씨가 ‘남매 간첩’ 사건으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선 알고 있다. 남매 사건과 관련해 자신이 안기부 프락치였다고 밝혔던 영화 제작업자 백흥용씨가 돌연 입북한 것은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하지만 그가 이후 수용소로 끌려간 사실은 모를 것이다. 그는 독일에서 1996년쯤 자진해 북한에 들어갔다. 그런데 북 체제가 예상과 달라 적응을 못 했는지 해선 안 될 말을 몇 차례 해 결국 수용소에 보내졌다고 한다.”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힘든 점은.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 정권에 따라 북 인권 정책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도 눈치를 본다. 북 인권 활동에 참여했다가 피해를 볼까 우려해 아예 발을 담그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생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특히 한 동포라면 북한 인권에 대해선 좌우, 진보·보수, 진영 논리를 떠나 모두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영환
196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 마포고를 나와 1982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사회주의 혁명 사상에 빠진 뒤 김일성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글 ‘강철 서신’을 썼다. ‘주사파 대부’로 불렸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년 수감된 뒤 풀려났다. 1989년 남파 간첩에 포섭됐다. 그의 암호명은 ‘관악산 1호’였다. 1991년 북한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2차례 만나 “남조선의 혁명·해방에 공을 세우라”는 지령을 받았다. 그러나 북 정권의 실체에 눈뜨면서 자기 손으로 만든 민혁당을 1997년 해체했다. 이후 북한 인권과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1.16 창원·제주조직, 北김명성이 지령…“들키면 USB 부숴 삼켜라” 결의도
간첩단 혐의 지하조직 사건을 수사하는 방첩 당국이 경남 창원·진주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제주의 ‘ㅎㄱㅎ’이 모두 북한 대남공작 조직인 노동당 산하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에게 지령을 받았다는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15일 전해졌다. 방첩 당국은 북한이 공작원 한 명을 통해 서로 다른 지역에 두 지하조직을 차례로 구축하고 연계 활동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 수사를 확대 중이라고 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방산 업체가 밀집한 창원·진주에 거점을 두고 있는 ‘자주통일 민중전위’는 2016년부터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 김명성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옛 통합진보당 계열인 진보당의 제주도당 위원장 출신 강모씨가 주축이 된 ‘ㅎㄱㅎ’도 2017년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김명성과 접촉했다고 한다. 이후 두 지하조직이 김명성으로부터 ‘반미 투쟁’ ‘민노총 등 침투·장악 및 세력 확대’ ‘윤석열 규탄’ 등의 지령을 받으면서 활동했다는 단서를 방첩 당국이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공작원 김명성이 소속한 노동당 산하 문화교류국은 북한 정권 초기부터 대외연락부, 사회문화부, 225국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간첩 남파 등 대남 공작 임무를 수행해 왔다. 202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도 2017년부터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조모씨와 이모씨로부터 지령을 받으며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방첩 당국은 북한 문화교류국이 장기간 계획에 따라 ‘자주통일 민중전위’ ‘ㅎㄱㅎ’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등 지하조직을 전국 각지에서 운영했다고 의심하면서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2개 이상의 간첩 조직을 가동할 때 조직 간에 서로 알지 못하게 하면서 상부에서 각각 지휘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방첩 당국은 북한 지령을 받고 활동했다는 혐의가 있는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 등을 수년간 추적 수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자주통일 민중전위’ 조직원들이 적발을 피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 단서가 확보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직원들이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 조직)가 적발된 건 보안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키면 USB(휴대용 정보 저장 장치)를 부수고 삼켜라” 등의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언급한 ‘RO’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주축이 돼 지하 혁명 조직을 꾸린 뒤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활동을 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이 전 의원은 2015년 1월 징역 9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2월 형기 만료 1년 5개월을 앞두고 가석방됐다. 다만 방첩 당국은 ‘자주통일 민중전위’가 주사파 계열의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주축이 된 이석기 전 의원 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자주통일 민중전위’는 주로 창원·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한 것으로 방첩 당국은 보고 있다. 민노총·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에 침투해 사람을 포섭하고, 젊은 세대 교육도 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이행했다고 한다. ‘자주통일 민중전위’가 서울 등 수도권으로 세력을 넓히려 한 정황도 방첩 당국이 추적 중이다. 제주의 ‘ㅎㄱㅎ’ 역시 북한으로부터 민노총 산하 제주 4·3통일위원회 장악 등의 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방첩 당국은 ‘자주통일 민중전위’ 활동을 한 경남진보연합 소속 A씨, 통일촌 회원들 등 5명을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혐의 등으로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ㅎㄱㅎ’에서 활동한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출신 강모씨 등 3명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고 한다. 방첩 당국은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이 모두 북측에서 지령과 함께 돈을 받았다는 정황도 잡고 이를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 대상자들은 연령대가 주로 50~60대이며, 지금까지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방첩 당국은 ‘북한 지령문’ 등 혐의를 입증할 만한 물증 등을 다수 확보했다고 한다.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이 수사망을 피하려고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사이버 드보크(Cyber Dvoke)’ 등을 활용해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고, 이행 사항을 북한에 보고한 단서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의 활동과 수사 대응 방식은 202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와 공통점이 많다. 충북동지회도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으면서 스테가노그래피를 사용했고, 방첩 당국의 수사 과정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방첩 당국은 ‘자주통일 민중전위’ ‘ㅎㄱㅎ’ 관련자들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인 뒤 구속 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자주통일 민중전위’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ㅎㄱㅎ’ 사건은 제주지검이 각각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수사 상황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이 두 사건을 통합 지휘할 가능성도 있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01.17 전국에 뿌리내린 간첩단, 국정원 대공 수사권 복원해야 한다
창원·진주와 제주 등지에 지하조직을 건설해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진보 정당과 노동계 인사들이 모두 북한 공작원 한 명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문화교류국 소속의 김명성이란 공작원이 2016년 창원 총책을, 2017년엔 제주 총책을 각각 동남아로 불러들여 지하조직 건설을 지시했다. 그 뒤 ‘윤석열 규탄’ ‘민노총 침투·장악’ 같은 지침을 지속적으로 내려보냈다. 공안 당국은 김명성의 지시를 받은 지하조직이 남부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에 만들어진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김명성은 북한 문화교류국 동남아 거점장으로 알려졌다. 문화교류국도 북의 여러 대남 공작 기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총본산인 정찰총국, 국정원 격인 국가보위성과 인민군 보위국 등이 저마다 대남 공작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 대공 수사권의 필요성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국정원 요원들이 창원·제주 지하조직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증거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 총책들이 해외에서 북 공작원을 접촉한다는 단서를 잡았고, 접선 현장에서 사진과 녹음 파일 등 물증을 확보했다. 현실적으로 국정원의 대공 수사 시스템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간첩 사건은 특성상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3년 적발된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은 내사만 3년 넘게 했다. 운동권 출신들이 북한 지령에 따라 간첩 활동을 한 ‘왕재산 사건’도 국정원 요원들이 중국 등을 오가며 장기간 추적한 결과였다. 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조직이 국정원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간첩 수사나 대북 정보 활동이 아닌 남북 대화 창구로 만들었다. 국정원의 간첩 수사를 방해했다는 증언이 많다. 창원·제주 사건도 문 정부 시절엔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수사팀이 압수 수색이나 체포 필요성을 말해도 수뇌부가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11~2017년 26건이던 간첩 적발 건수가 문 정부 때 3건으로 급감했다. 간첩이 없는 게 아니라 잡을 생각이 없었다.
문 정부는 아예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키로 하고 2020년 민주당 단독으로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법에 따라 1년 뒤엔 경찰이 대공 수사권을 독점한다. 경찰엔 간첩 수사 경험도 해외 방첩망도 없다. 이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정원엔 간첩 수사 노하우가 수십 년 쌓여 있다. 그래서 북한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국정원이다. 국정원이 간첩 수사를 못 하게 하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나.
창원·제주 간첩단이 드러난 뒤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관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도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국정원이 간첩 혐의를 조작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그런 일은 통할 수 없다. 아무리 국내에서 정쟁을 벌이더라도 누군가 나라는 지켜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17 촛불연대, 발간한 책에서 ‘김일성 단체’ 계승 자처
서울시가 보조금 전용을 적발했던 촛불중고생시민연대(촛불연대)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지난 3일 경찰에 수사 의뢰한 것으로 16일 전해졌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을 지원하던 민간단체를 그와 같은 혐의로 수사 의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앞서 서울시가 촛불연대의 보조금 집행 내역을 감사하면서, 이 단체가 보조금을 전용해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중고생운동사’라는 책을 만들어 판매한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책에는 촛불연대가 북한 김일성이 1926년에 만든 ‘타도제국주의 새날소년동맹’을 계승했다는 취지의 도표도 등장한다.

서울시 감사위원회 감사 결과에 따르면, 촛불연대는 2021년 당초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보조금 490만원을 수령했으나 사업 계획을 바꿔 ‘중고생운동사’라는 책을 발간했다. ‘중고생운동사’에는 김일성이 14세 때 대표를 맡았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타도제국주의 새날소년동맹(1926~1945)’을 소개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일성이 ‘동맹’ 대표로 추대된 직후 했다는 연설도 실었다. 이 단체의 후신이라는 북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을 소개하는 내용도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촛불연대를 ‘타도제국주의 새날소년동맹’을 잇는 단체로 표시한 ‘한국 중고등학생 운동단체 계보도’가 포함됐다. 이 계보도는 조국통일 남북학생회담 추진위원회(1960~1961), 전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중고생연대 등의 남한 단체도 들어가 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감사 보고서에서 “책 내용을 볼 때 국가보안법상 북한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는 이적표현물로 인정될 소지가 있다”며 “책을 만든 동기 및 경위, 이적행위의 목적성 여부 등에 대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또 촛불연대가 2021년 3월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할 당시 서울시에 허위의 회원 명부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회원 명부에 적힌 100명 중 50명에게 전화를 해 확인한 결과 ‘촛불연대 회원이 아니며 가입한 사실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10명으로 나타났다”며 “불특정 다수의 개인 정보를 도용한 것으로 판단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했다.
또 작년 11월 기준으로 회원 100명 중 40~50대가 60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20~30대 19명, 60대 이상 18명, 10대 3명이었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름처럼 중고생이 주축인 단체가 아니라 성인들로 구성된 사실상 정치이념 단체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 단체는 작년 11월 ‘윤석열 퇴진 중고생 촛불집회’를 주최하고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친북 성향 강연을 해 논란을 빚었다. 서울시는 지난달 촛불연대의 등록을 직권 말소하고 시가 지급한 보조금 9100만원 중 1600만원에 대해 환수 조치한 바 있다.
조선일보 최종석 기자
01.17 '조용한 침공' 간첩 활개치는데 막을 '방패'는 곳곳 구멍
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핵·미사일 등 북한의 전략무기뿐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닌 북한의 무인기는 눈에 보이는 비대칭 군사 위협이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국가안보를 야금야금 좀 먹는 세력도 있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릴 것 없이 활개 치는 간첩들이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가정보원은 1961년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 창설 당시 김종필 부장이 만든 원훈(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을 다시 쓰기로 결정했다.[중앙포토]
은밀한 간첩 활동은 몰라보게 진화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요즘 간첩은 더욱 은근하게 약점을 파고든다. 호주 찰스 스터트대학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가 2021년 6월 한국에 번역 출간한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이란 책 제목이 단적으로 표현한 대로다.
윤 정부 들어 다시 불거진 간첩 사건
존재를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첩의 '창'은 예리해졌지만, 이를 방어할 '방패'는 무디고 구멍이 많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댓글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사이버안보는 거의 범죄시 됐고, 간첩 잡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지난 5년간 간첩 수사는 '충북동지회 사건'이 거의 유일할 정도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원의 간첩 수사가 다시 부분적으로 재개되면서 여기저기서 암약하던 간첩들의 꼬리가 속속 잡히고 있다. 제주 한길회, 창원 민중자주통일전위, 전주 전북민중행동의 이름이 나오더니 급기야 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미향 국회의원의 보좌관까지 등장했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정권의 간첩 조작"이라고 반박하거나 묵비권을 행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15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이 확정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지지세력은 그를 양심수라며 석방을 촉구했다.[연합뉴스]

▲2021년 12월 24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복역 중이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보수 진영의 반대에도 가석방해 논란이 됐다.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하며 환호하는 이 전 의원.[뉴시스]
북한의 남파 간첩이나 자생적인 종북 주사파의 간첩 행위만 문제가 아니다. 최근엔 외국인 간첩의 '조용한 침공'과 '영향력 공작'이 국가안보와 국익을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예컨대 스페인에 본부를 둔 비영리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의 지난해 12월 폭로 내용이 충격적이다. 이 단체는 “중국이 ‘해외 110 복무 중심’이라는 이름의 비밀 경찰서를 한국과 일본 등 최소 53개국에 102곳 이상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잠실의 중국 음식점 동방명주(東方明珠) 등에 대해 공안 당국이 빈 협약과 실정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고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 되면서 산업 스파이도 기승을 부린다. BTS와 ‘오징어 게임’ 등 한류 열풍으로 한국이 매력 국가로 주목받자 각국의 주한 대사관에도 한국 근무를 희망하는 인재가 몰려들고 있다. 이는 동시에 한국을 노리는 글로벌 스파이들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첨단 기술과 각종 정보를 노릴 뿐 아니라, 한국의 여론을 자기 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심지어 왜곡하려는 동기와 의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손쉽고 좋은 먹잇감이 된 한국의 국익을 지켜내기 위한 수단들, 즉 방패는 얼마나 튼튼할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방첩(防諜) 대책은 튼실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시대 변화 못 따라가는 ‘형법 98조’
가장 큰 문제는 1953년 제정 이후 70년간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형법 98조'다. 98조1항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 같은 명시적 '적국'으로 제한하다 보니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일본 등 외국 또는 외국 단체를 위한 스파이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 실제로 2015년 중국에 기밀을 유출한 해군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했다.

▲스페인 인권단체가 폭로한 중국 정부의 '해외 비밀 경찰서'란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의 중식당 동방명주 왕하이쥔 대표가 지난 12월 29일 반박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공안 당국이 수사중이다.[뉴스1]
반면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은 반간첩법에 '외국기구·조직'을 명시했고, 러시아 형법에도 '외국과 외국 단체 및 그 단체 대표자'로 규정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경우 연방법에 '적국'이 아니라 '외국정부나 다른 외국의 적'으로, 프랑스 형법엔 외국 정부·단체·요원 등으로, 독일 형법에는 '타국'으로 간첩죄 대상을 명시했다.
석재왕 건국대 안보재난관리학과 교수(국가정보포럼 대표)는 "중국은 물론 미국 등 우방들도 한국 기업의 반도체·인공지능(AI)·배터리 등 첨단기술을 노린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방첩 법제화 수준이 낮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에서 26년간 활동한 석 교수는 "진보 정부가 북한을 화해의 대상으로 간주하면 '적국'이 아니므로 간첩들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녀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간첩과 협력한 내국인만 처벌받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적국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국가나 외국인·외국단체에 의한 간첩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상 간첩죄 구성 요건을 '적국' 대신 '외국'으로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인이 국익에 어긋나게 외국을 돕는 정보 활동을 하더라도 현행법에는 처벌 근거가 미비한 것도 문제다. 홍종현 경상국립대 법학과 교수는 "우호적인 국가라도 한국에서 자국에 유리하도록 한국 여론을 왜곡하거나 심지어 선거에서 유리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여론을 조작하는 '영향력 공작' 활동을 하더라도 현행법에는 처벌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미국·호주·싱가포르처럼 한국도 '외국 대리인 등록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호주·영국 등의 적극적 대처
예컨대 미국의 경우 1938년 영국이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고, 독일이 미국의 중립을 유도하기 위해 선전 활동을 전개하자 대응 방안으로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을 제정했다. 외국 정부와 단체를 위해 활동하는 대리인의 사전 신고와 활동 사항 보고를 의무화했다. 이 법은 1946년 연방의회 의안 통과나 부결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의원들과 접촉하는 행위에 관한 '연방 로비활동 규제법'(FRLA)보다 먼저 생겼다.

▲중국 공자학원은 2004년 한국 서울에 처음 문을 열었다. 2007년 4월 ‘공자학원 총부’를 설립해 전 세계 공자학원을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공자학원이 중국의 문화 침투 거점이라며 경계하고 있다.[중국 바이두 캡처]
호주는 2018년 호주 내정에 간섭할 경우 처벌이 가능한 '외국 영향 투명화법'을, 싱가포르는 2021년 '외국 개입 방지법'을 제정해 중국이 해외에 설치한 공자(孔子)학원 운영 지침까지 마련했다. '외국 대리인 등록법'을 제정하면 한국에 모종의 영향력을 끼치려는 공작 행위를 사전에 모니터링할 수 있고, 사후에 적발되면 처벌할 수 있다. 내정 간섭을 차단해 국가 주권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인 셈이다.
외국 스파이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은밀한 정보 활동을 하면서 기밀 자료를 유출해도 차단할 방법이 지금은 마땅하지 않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합법적인 휴대전화 감청이 가능하지만, 전기통신사업자들의 휴대전화 감청 설비 구비를 의무화한 법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 미국은 1994년 만든 통신감청지원법에 따라 정부 또는 통신사가 감청 설비 비용을 부담하고 영국·독일·호주도 유사하다. 한국 정부가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전쟁 상황이 아니라도 국익을 잠식하는 간첩 범죄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첨단 ICT 시대에 간첩 활동은 국내외 구분이 없고,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국익을 지켜낼 튼튼한 방첩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는 간첩 안 잡겠다는 뜻...재검토해야"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대공수사는 국가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체제를 다루는 중대한 사안이다. 대공수사권을 밥그릇 싸움이나 조직 이기주의로 봐선 안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20년 11월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무기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단독 강행 처리해 2024년 1월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겼다.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 주도로 쐐기 박듯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경찰의 대공수사 역량 강화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인력을 줄였고 활동비를 삭감했다. 비전문가들이 지휘부를 장악했고 진짜 전문가들은 대공 분야를 떠났다. 경찰에 대공수사를 전담시킨 것은 문 정부가 대공수사를 아예 못하게 하려는 의도란 해석이 나올 정도였다.
우리 국민이 잘 알듯이 북한 간첩 수사는 국정원이 가장 잘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5년간의 바보짓’이라 했는데,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야말로 ‘국가안보의 탈원전’ 같은 중대 실책이다.
국가안보 관련 업무는 단일기관에서 단독으로 수행하는 것보다 독립된 여러 기관이 촘촘하게 중첩해 수행하는 것이 좋다. 반복‧중첩 장치가 없으면 오류 발생 우려가 크다. 그동안 국정원‧검찰‧경찰이 중첩적으로 해오던 대공수사를 내년부터 경찰이 혼자 맡는다.
경찰은 2021년 충북동지회 사건 수사를 국정원과 함께했다. 제주 간첩단 사건과 윤미향 의원의 전 보좌관 간첩 사건도 국정원과 함께하고 있다. 합동수사라고는 해도 누가 주도하고 누가 따라가는지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경찰은 내년부터 과연 단독으로 대공수사를 할 자신이 있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01.18 민노총 “국정원 개××들” “우리가 만만하냐”… 압수수색 1시간 막고 욕설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중구의 민주노총 총연맹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민노총 관계자들은 “개××” “×랄하고 자빠졌네”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항의했다.
국정원과 경찰 국가수사본부 수사관 등은 이날 오전 9시쯤 압수수색을 위해 서울 중구 경향신문 건물 13층의 민주노총 사무실 입구에 도착했지만, 입구를 막아선 민노총 관계자들로 인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민노총 관계자들은 수사관들에게 이름을 밝힐 것을 요구하면서 “양아치야? 여기 왜 왔어”라고 했고, 수사관들이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 진입하겠다”고 하자 “얼척이 없네”라고 응수했다. “뭐하는거야 ××들아” “국정원 개××들”이라는 욕설도 반복했다.

▲국정원과 경찰 국가수사본부 수사관 등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총연맹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려 하자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입구를 막고 압수색을 저지하면서 양쪽이 대치 하고 있다./2023.1.18 고운호기자
수사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혐의를 밝히자 민노총 관계자들은 “×랄하고 자빠졌네”라며 “언제적 국가보안법이야. 미친 거 아냐?”라고 했다.
조롱성 발언도 이어졌다. 민노총 관계자들은 “니들이 개냐? 윤석열 (대통령) 개야?”라거나 ‘반말을 하지 말라’는 수사관들 요구에 “사람이 와야 반말하지. 개들이 와서 그래”라고 했다. “인간 새×야? 다 못생겨가지고” “민노총이 이렇게 만만하구나 국정원이” “세금 받아 처먹고 좋은 일 하시네” “윤석열 정권의 하수인으로서 개노릇을 충실히하고 있다”고도 했다.

▲국정원과 경찰 국가수사본부 수사관 등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총연맹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려 하자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입구를 막고 압수색을 저지하면서 양쪽이 대치 하고 있다./2023.1.18 고운호기자
사무실 입구가 수사관들로 가득찼다는 이유로 이태원 참사에 빗대기도 했다. 민노총 관계자는 “왜 자꾸 쳐 들어와. 좁아 터지는데 왜 이렇게 들어오는거야. 이태원 참사 사고난거 기억 안 나?”라며 고함쳤다.
국정원과 경찰 수사관들은 50분 간의 대치 끝에 이날 오전 9시 50분 민노총 사무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전 11시 40분 현재에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이고, 입구 앞에서 민노총과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은 수사관들의 대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01.19 민노총 내부에 북한 지하조직이 들어앉은 게 사실인가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18일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북한 지시에 따라 각종 반국가·이적 활동을 벌인 혐의로 서울의 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전남 담양의 자택, 세월호 제주 기억관 평화 쉼터 등 1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국정원은 민노총 핵심 간부가 2017년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뒤 보건의료노조 간부와 금속노조 간부 출신 2명 등과 함께 지하조직을 운영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창원과 제주 지하조직 적발 이후 증거인멸 정황이 포착돼 급히 강제수사로 전환했다고 한다. 법원은 혐의자 4명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모두 발부해 줬다. 혐의가 소명된다는 뜻이다. 민노총 핵심부에 북한 지하조직이 침투한 것이 추정을 넘어 사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조는 조합원의 권리 신장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민노총은 정치·반미 투쟁에 주력해 왔다. ‘주한미군 철수’ ‘사드 배치 철회’가 민노총 집회와 각종 성명·논평에 자주 등장한다. 작년 6월 집회는 이름도 ‘반미자주노동자대회’였다. 8·15 자주평화통일대회에선 “한미 동맹 끝장내자”며 북한 조선직업총동맹이 보내온 ‘련대사’를 낭독하고 전문을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이처럼 노조와 무관한 정치투쟁은 우연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민노총은 이날 압수 수색 수사관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정권의 폭거에 맞서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란 성명을 냈다. 과거 간첩 사건 관련자들도 처음에는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국정원 정문으로 몰려가 시위를 한 적도 있다. 이번 압수 수색은 국정원과 경찰이 북한 공작원 해외 접선 등 수년간 축적한 물증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다. 민노총 내부 북한 지하조직이 적발된 것인지, 공안 탄압인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19 “文정권, 민노총 간부 국보법 위반 알고도... 北 화낼까봐 수사 뭉개”
[민노총 간부들 北과 접선] 증거 확보하고도 뒤늦게 수사 착수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북한 공작원 접촉을 확인한 시점은 2017년이었다. 그러나 압수수색 등 본격적 수사가 이뤄진 것은 6년이 흐른 2023년이다. 이와 관련, 방첩 당국 관계자는 18일 “당시 문재인 국정원의 윗선에서 남북 관계 등을 이유로 사실상 수사를 뭉개고 미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는 남북, 미·북 정상회담 등 대북 이벤트에 몰두하고 있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싱가포르 미·북 회담, 평양 정상회담 등이 이어졌다. 노조·시민단체 간부 등이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는 증거를 확보하고도 북한이 화를 낼까 봐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본격화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노이 노딜’ 이후인 2019년엔 미·북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까지 냉각됐다. 전직 안보 당국자는 “간첩 혐의 증거가 쌓이고 있는 만큼 수사 폭을 넓혀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당시 윗선에선 ‘증거를 더 모아야 하지 않느냐’ ‘남북 관계를 지켜보고 제대로 하자’는 식으로 말하며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식어가는 남북 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다른 전직 당국자는 “압수수색 등으로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만들면 고위직 간부들이 휴가를 내고 안 나오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명백한 데 수사 결재를 안 하면 직무 유기 혐의가 되고 ‘수사를 하지 말라’고 직접 지시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되기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이 전직은 “상명하복이 분명한 조직에서 윗선이 사실상 수사 전개를 막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2018~2019년 방첩 당국은 이날 압수수색을 한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의 국보법 위반 혐의 외에도 최근 창원·제주 등에서 불거진 간첩 혐의 사건들의 증거를 상당수 확보하고 있었다. 수사를 확대해야 정상이었지만 윗선에서 사실상 막았다는 것이다. 그사이 국보법 위반 혐의자들은 캄보디아 프놈펜과 앙코르와트, 베트남 하노이 등지를 오가며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거나 그 지령을 받아 반정부, 반미 시위 등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 부서 관계자는 “민노총 간부들이 접촉한 북한 공작원과 창원·제주 간첩 혐의자들이 만난 북한 공작원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방첩 당국의 수사가 느슨해지자 동남아를 거점으로 활개 치던 북한 공작원들이 더 쉽게 우리 내부에 손을 뻗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정원 등은 2021년 ‘청주 간첩단 사건’을 수사해 검찰 기소를 통해 공개했다. 방첩 기관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에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는 간부가 있었다”며 “그런 분들이 원장 등 국정원 윗선에 강하게 수사를 요구해 간첩단 수사가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당시 ‘청주 간첩단 사건’이 알려졌을 때 국정원 내부 게시판에는 일부 직원들이 “드디어 국정원이 할 일을 한다”는 응원글을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지금 수사 중인 간첩단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며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1.19 “민노총 조직국장 포함 간부들 北공작원과 수차례 동남아서 접선”
국정원·경찰, 민노총 본부 등 전국 10여곳 동시 압수수색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민노총 전·현직 간부 등 4명이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혐의를 포착해 18일 민노총 본부 등 10여 곳을 동시에 압수 수색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민노총 본부가 압수 수색을 당한 것은 처음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민노총 조직국장 A씨는 2017년 캄보디아 프놈펜,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 노동당 산하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 공작원을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전(前) 부위원장 B씨는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C씨와 금속노조 출신으로 알려진 제주평화쉼터 대표 D씨는 2017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각각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혐의가 있다고 한다. A씨 등 4명이 접촉한 북한 공작원은 모두 2~3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A씨 등은 외국 이메일 계정이나 클라우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교신하는 ‘사이버 드보크’ 등을 통해 북측과 수년간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혐의로 수사해온 방첩 당국은 증거 인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날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과 경찰은 이날 서울 중구 민노총 사무실과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제주평화쉼터, A씨 주거지 등 1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압수 수색이 이뤄진 지역은 서울, 경기, 강원, 전남, 제주 등 전국적이었다. 방첩 당국은 확보된 자료를 분석해 민노총이 최근 벌이는 반미(反美) 활동과의 관련성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은 앞서 방첩 당국이 간첩단 혐의 지하조직 사건으로 수사 중인 경남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 제주의 ‘ㅎㄱㅎ’과는 별개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은 북한 문화교류국 동남아 거점을 담당하는 공작원 김명성을 캄보디아 등에서 만나 ‘반미 투쟁’ ‘윤석열 규탄’ 등 지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민노총 간부 A씨 등은 김명성이 아닌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은 2개 이상의 간첩 조직을 가동할 때 조직 간에 서로 알지 못하게 하면서 상부에서 각각 지휘하는데 그 방식이 적용된 것”이라고 했다.
민노총은 이날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이념, 색깔 덧씌우기 공작, 이를 통한 공안 통치의 부활”이라며 “민주노총을 음해하고 고립시키려는 윤석열 정권의 폭거에 맞서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01.19 “민노총 핵심 간부, 北공작원 만난뒤 산하단체에 지하조직 만들어”
[민노총 간부들 北과 접선] 국보법 위반 혐의 4명… 그간 어떤 활동 벌였나
국가정보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민노총 전·현직 간부 등이 2017~2019년 동남아 일대에서 북측 공작원들과 접촉한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18일 전해졌다. 이들은 클라우드나 외국 이메일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버 드보크’ 등을 활용해 북측과 수년간 교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방첩 당국에 따르면, 민노총 조직국장 A씨는 2017년 9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2019년 8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 노동당 직속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 인사와 각각 접촉한 혐의가 있다. 전(前) 금속노조 부위원장 B씨의 경우 2019년 8월 A씨와 하노이에 함께 갔고, 이때는 B씨가 혼자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고 한다.
방첩 당국은 또 A씨가 2016년 8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의 수상한 정황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북한 공작원이 A씨가 중국에 입국할 때 들었던 ‘보스턴 백(여행 가방)’과 비슷한 가방을 갖고 북한으로 되돌아간 정황을 국정원이 파악했다는 것이다. 또 같은 해 9월 A씨가 베트남에서 북한 공작원 측으로부터 ‘검은색 물건’을 받아 귀국한 뒤 국내 환전소에서 1만달러를 환전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양측 간에 ‘공작금’ 등이 오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국정원은 보강 수사를 거친 뒤 이 부분을 A씨 등의 혐의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C씨와 금속노조 출신으로 알려진 제주평화쉼터 대표 D씨는 2017년 9월 캄보디아 프놈펜에 가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방첩 당국은 당시 A씨도 프놈펜에 있었다는 단서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와 C씨, D씨가 하루 이틀 간격으로 같은 호텔에서 북한 공작원을 따로따로 만났다는 것이다.
방첩 당국은 북한이 민노총과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에 지하조직을 만들려고 했고 A씨가 그 과정을 주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A씨는 상급 조직인 민노총 간부이고, B씨와 C씨는 각각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D씨는 금속노조 출신으로 알려졌다. A씨 등은 북한 공작원 2~3명을 만났는데, 창원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제주 ‘ㅎㄱㅎ’가 접촉한 북한 문화교류국의 동남아 거점 담당인 김명성과는 다른 공작원들이라고 한다.
방첩 당국은 작년 8월 민노총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한미 동맹 해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서울 도심에서 ‘8·15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당시 민노총은 북한 노동자 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이 보낸 ‘미국과 남조선의 보수 집권 세력이 침략 전쟁 연습을 광란적으로 벌여놓고 있다’ ‘반통일 세력의 대결 망동을 짓뭉개 버려야 한다’ ‘조선 반도에서 핵전쟁 위험이 갈수록 짙어가고 있다’는 연대사를 그대로 낭독했다. 방첩 당국은 A씨 등의 활동이 이 집회와 무관하지 않다고 의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자주통일 민중전위’ ‘ㅎㄱㅎ’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등 간첩단 혐의 지하조직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법조인은 “민노총 본부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까지 법원이 발부해준 것은 이례적”이라며 “국정원이 A씨 등의 혐의를 상당 부분 입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씨 등 4명은 폭력, 공무 집행 방해 등 전과(前科)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2000년대 ‘제1기 반미·반전 민족공조 경기지역 통일선봉대’에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 미군 철수 등을 주장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뒤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석방 운동 등에도 참여했다. 작년 10월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공공 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투쟁 선포 대회’의 사회를 맡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이른바 ‘윤석열차’로 불리는 조형물이 동원되기도 했다.
B씨는 기업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쇠사슬 투쟁’을 벌였다. C씨는 코로나 국면에서 주로 활동했고, D씨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국가보안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는 등 고통받고 있는 데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다” 고 했다.
남주홍 전 국정원 차장은 “북한이 과거 경기동부연합 등을 통해 제도권 정당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민노총에 전격적으로 들어오진 않았었다”며 “우리 사회의 노동자·농민 계층을 본격적으로 파고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01.19 北문화교류국, 女간첩 이선실·민혁당때도 배후로 지목된 공작조직
[민노총 간부들 北과 접선] 北노동당 산하 문화교류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은 북한 노동당 산하 대남 공작 조직인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들과 해외에서 접촉한 것으로 18일 전해졌다. 앞서 간첩단 혐의 지하조직 사건으로 수사받고 있는 경남 창원·진주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제주의 ‘ㅎㄱㅎ’도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에게 지령을 받았다고 방첩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가 17일부터 18일까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참석하지 않았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문화교류국은 한국 시민·노동 단체 인사들을 포섭해 지하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한 기밀 수집, 북한 체제 선전 등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간첩을 남파시켜 유사시에 무장봉기를 유도하거나, 반(反)김정은 인사에 대한 테러와 암살 등 임무도 맡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문화교류국은 북한의 대남 공작 기관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조직이라고 한다. 북한 정권 초기인 1946년 북조선노동당 산하 ‘서울공작위원회’가 모태가 됐으며 이후 문화연락부, 사회문화부, 대외연락부, 225국 등으로 이름을 바꾸다가 2015년 4월 문화교류국이 됐다.
문화교류국 산하에는 공작원을 양성하는 ‘봉화정치학원’, 공작에 필요한 장비 등을 개발하는 ‘314 연락소’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거리나 시설과 비슷한 환경을 구현해 놓은 ‘남조선 환경관’, 외화벌이와 공작금 조달을 위한 ‘무역상사’ 등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선생’이라는 호칭을 듣는 문화교류국 공작원들은 뼛속까지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돼 있는 공작원 중에서 선발되며 한국의 정치·경제·문화에 해박하다고 전해진다.
문화교류국은 1992년 여간첩 이선실 사건(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2006년 일심회 간첩단 사건,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 등 대형 간첩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다. 202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청주간첩단 사건)’도 2017년부터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조모씨와 이모씨로부터 지령을 받으며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첩 당국 관계자는 “문화교류국은 직접 한국 내 주사파 등 종북 세력과 반정부 인사들을 포섭해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한국 사회의 교란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01.19 구글 위성에 찍힌 고화질 김정은 집무실... 1호 청사·관저까지 훤히 포착
미 VOA 보도
“北 위성 통해 서울 사진 공개하더니, 정찰위성 없어도 ‘북 민감 시설’ 한 눈에”
민간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 평양의 곳곳의 주요 시설과 함께 김정은의 집무실과 관저까지 선명하게 포착된다고 VOA(미국의소리)가 1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서울과 인천 일대 도심 사진을 공개하면서 정찰 위성 개발을 위한 주요 시험을 했다고 했었지만 당시 흑백 사진은 구글 위성사진보다 질이 떨어졌었다. VOA는 “굳이 정찰위성을 띄우지 않아도 북한 지도자가 오가는 민감한 동선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북한과의 무력 충돌 시 성능이 훨씬 우수한 정찰 자산을 지닌 미국과 한국은 그동안 정밀하게 확인되고 분석된 북한 지도부의 동선을 즉시 겨냥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집무실로 알려진 노동당 1호 청사를 촬영한 위성사진. /구글어스 캡쳐
‘구글 어스’ 위성 사진에 김정은의 집무실로 알려진 ‘노동당 1호 청사’ 좌표를 검색했더니 사각형 모양의 건물 3개가 연결된 청사 형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VOA는 “경비가 삼엄해 약 600m 떨어진 곳에서부터 최소 3개의 경비 초소를 지나야 1호 청사에 다다르게 되는 ‘접근 경로’도 쉽게 그려볼 수 있다”며 “또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촬영한 이 일대 사진 수십 장까지 공개돼 지난 23년간 이곳의 변화도 세세히 관측할 수 있다”고 했다. 구글 어스가 제공하는 사진의 선명도는 부지 내 가로등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VOA는 “북한은 지난해 말 ‘정찰위성 시험품’에서 촬영했다며 한국 대통령 집무실 주변을 비롯해 서울 도심과 인천항의 사진을 공개했지만 정작 북한 지도자의 집무실은 굳이 정찰위성을 따로 띄우지 않아도 이처럼 상업용 위성을 통해 상세히 내려다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구글 어스 사진들에 따르면 노동당 1호 청사는 2017년까지만 해도 청사 주건물은 가운데가 비어 있는 형태였지만, 이듬해 중심 부위에 지붕이 덮이면서 하나의 온전한 건물이 됐다. 주 건물과 서쪽에 붙어있는 건물도 기존엔 양옆 통로만이 연결돼 있었지만 지금은 통로 부분에 지붕이 씌워진 모습이 됐다.

▲김정은의 주거 시설로 알려진 15호 관저. 큰 건물이 관저고 오른쪽으로 관저로 연결되는 입구가 아래로 이어져 있다. /구글어스 캡쳐
특히 터널 입구 바로 윗부분엔 정원이 조성돼 있는데, 정원을 따라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는 김정은의 거주지로 알려진 ‘15호 관저’까지 선명히 포착됐다고 VOA는 전했다.
이외에도 VOA는 “현재 평양에선 대형 주택과 그 옆으로 난 터널 입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김정은이나 다른 고위 관리의 관저로 추정되는 곳들”이라고 했다.
위성사진 분석가인 닉 한센 미 스탠포드대 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은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개발 중인 ‘정찰위성’은 미국의 민간 위성 기술 수준을 뛰어넘기도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1-19 방첩 역량 허물고 간첩 수사 훼방한 文정부 5년
21세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방첩’의 중요성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기밀을 빼내 적국에 넘기는 전통적 간첩 행위에서 산업 스파이, 테러,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 반정부 선동 등으로 영역이 확대되고, 인터넷과 첨단 장비를 활용하는 등 수법도 훨씬 교묘해졌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의 도발이 더욱 격화하는 양상까지 고려하면 방첩 역량의 강화·개편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에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국내 최고의 방첩기관인 국가정보원을 남북대화 지원기구로 전락시켰고, 2024년부터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자체를 없애도록 했다. 계엄령 문건 등을 빌미로 국군기무사 해편(해체 뒤 개편)을 지시했다. 경찰의 대공 수사 인력도 줄였다. 권력기관 개편 미명으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도 밀어붙였다. 방첩 기능을 와해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적대 세력을 거든 반역적 행위다.
국정원과 경찰이 수사 중인 민노총 간부의 북한 공작원 접촉, 창원의 ‘자주통일민중전위’ 사건, 제주 ‘ㅎㄱㅎ’ 사건 등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정원은 2017∼2018년 단서를 확보했지만, 문 정부 국정원 윗선의 수사 회피나 훼방이 심각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이 수사 확대 필요성을 보고하면 “남북관계 찬물” 등의 이유로 뭉갰다고 한다.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등을 피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급기야 서해 피살 사건과 귀순어민 강제 북송에서는 북한을 의식해 반인권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반국가적 행태를 낱낱이 밝혀내고,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1-19 문 정부때 수감됐던 전 방첩국장 “불순분자에 대한 국가대응 무력화 일보 직전”
■ 김석규 전 국정원 국장 글 ‘주목’
“종북주사파 정권이 정보전쟁 전사들을 무장해제시켜… 원상회복해야”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재인 정부가 이적단체 간부 동향 내사 등 국정원 고유 임무를 민간인 사찰로 몰아 해직·기소했다”는 김석규(사진) 전 국정원 방첩국장의 글이 주목받고 있다. 7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던 김 전 국장은 지난해 12·27 사면·복권 조치로 복권된 후 그간의 심경을 담은 글을 작성해 국정원 동료들에게 보냈다.
김 전 국장은 문 정부 출범 직후 만들어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의 ‘적폐청산’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돼 해직된 후 2022년 2월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검찰 공소 내용은 ‘이적단체 간부 동향 내사’ 등 ‘민간인 사찰’이었는데 “국정원의 정당한 고유 임무”라는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전 국장은 글에서 “문재인 좌파 일당이 정권을 잡은 뒤 국정원 내에 기획 적폐몰이 태스크포스(TF)가 조직됐고 국정원 해체 작업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원장인 서훈과 함께 정해구 일당은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메인 서버를 열어 사안들을 선별적으로 끌어내 일체 방어권 허용도 없이 국정원 직원 400여 명을 조사하고 40여 명을 사법 처리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이적단체 간부 동향 내사 등이 국정원 고유 임무임에도, 이를 민간인 사찰로 엮어 모두 감옥에 처넣고 말았다”고 심경을 토로한 뒤 “민간인 사찰은 전혀 법률적 용어가 아닌 감성적 선동용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국장은 2017년 12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았고, 다음 해 8월 17일 법정구속 됐다. 2019년 3월 출소할 때까지 7개월 동안 수감됐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특히 김 전 국장은 “독일 통일 후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의 수석보좌관 귄터 기욤이 동독 간첩으로 밝혀졌다”면서 “우리는 훨씬 더한 상황으로, 불순분자들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무력화되기 일보 직전”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적화통일 야욕을 한시도 거두지 않는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침투 간첩을 상대하는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역할을 약화시킨 것은 자승자박의 어리석은 일”이라면서 “종북주사파 정권이 정보전쟁의 전사들을 무장 해제시켜놓은 것을 원상 회복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오는 2024년 1월부터 경찰로 이관된다. 보수진영에서는 문 정부에서 북한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들이 노동계, 시민단체, 정당과 국회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정부가 대북 저자세로 일관하면서 대공·대간첩 수사를 막은 만큼 대공수사권 이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전 국장은 “분단 대치 중 간첩을 상대하는 정보수사 기능을 국정원에서 박탈해 비전문적인 경찰에 넘긴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언급했다.
허민 전임기자 minski@munhwa.com
01.20 [단독] “민노총 간부들과 접선한 北 공작원은 모두 5명”
배성룡·김일진·전지선·리광진과 40대 1명
당국 “민노총 보건의료노조 실장
2019년 다롄서 공작원 만나
이후 공작원 2명은 베이징 이동
주중 북한 대사관으로 들어가”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인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이 2019년 8월 중국 다롄에서도 북한 대남 공작원들을 만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이 간부는 2017년 9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북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은 이 간부와 민노총 조직국장,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 제주평화쉼터 대표 등 국보법 위반 수사 대상인 4명이 접촉한 북한 공작원 5명의 신원도 모두 확보했다고 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북한 5명의 공작명은 배성룡·김일진·전지선·리광진 그리고 ‘40대 공작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은 2019년 8월 초 주위에 “2박 3일간 관광을 다녀오겠다”며 다롄으로 출국했다. 그는 이 기간 다롄 모처에서 북 공작원 김일진, 배성룡을 만난 것으로 국정원은 보고 있다. 김일진과 배성룡은 조직실장과 접촉한 직후 다롄에서 밤 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이동해 주중 북한 대사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두 공작원은 며칠 뒤 베트남 하노이로 건너가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을 8시간 이상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른 날 민노총 조직국장을 접선하려 했다. 이들은 하노이 중심지의 동상 근처에서 조직국장을 만나려 했으나, 돌발 상황이 벌어져 접선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민노총 조직국장은 동료인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이 북한 공작원과 만나는 장소까지 안내한 혐의도 받고 있다.
방첩 당국은 민노총 조직국장이 이번 사건의 총책으로 수하에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과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제주평화쉼터 대표 등을 관리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소식통은 “민노총 조직국장과 나머지 3명이 다롄, 하노이, 프놈펜 등 국외에서 북한 공작조를 조직적으로 만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민노총 조직국장이 총책인 이번 조직은 조직원들끼리 서로 모르는 단선(單線)이 아니라 조직국장 바로 아래의 조직원 3명끼리는 서로 아는 ‘2단 구조’라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통상 북한 공작원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지령을 줄 때 우리 측 인사를 개별적으로 만나 전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조직원을 해외에서 같이 만난 것이다. 소식통은 “과거보다 대담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양경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19일 기자회견에서 민노총 전·현직 간부를 대상으로 한 국가정보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수사를 규탄하고 있다. 양 위원장은 “5월 1일 총궐기를 진행하고, 7월 총파업 투쟁으로 윤석열 정권과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뉴시스
특히 수사 대상인 민노총 전·현직 간부 4명과 접촉한 북 공작원 5명 중에는 1990년대 국내에 침투한 전력이 있는 리광진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진은 2021년 적발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간첩단에도 개입한 ‘베테랑’이다. 그는 현재 60대 중반으로 추정되며, 1990년대 부부 공작조 등으로 위장해 수차례 국내에 침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자료 등에 따르면, 리광진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노동당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에서 부부장 직급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첩 당국은 리광진을 포함해 배성룡·김일진·전지선과 40대 미상 공작원 등 총 5명이 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을 집중 관리하며 ‘민노총 장악과 조종’ 시도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총책인 민노총 조직국장이 지난해 대규모 집회에서 “한·미·일 전쟁 동맹 노동자가 끝장내자”라는 구호를 외친 것이 북한 공작원의 지령에 따른 행동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방첩 당국은 이들이 외국계 이메일 등을 활용해 북측과 교신한 증거물 등을 확보하고 분석 중이라고 한다.
특히 안보 당국은 북한 공작원과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2019년에도 자주 접촉한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보안 부서 관계자는 “북한이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과 10월 스웨덴 스톡홀름 협상 등으로 한미와 이른바 ‘비핵화 협상’을 하는 동안에도 뒤로는 끊임없이 대남 공작을 벌인 셈”이라며 “한국 여론을 움직여 반미 시위 등을 벌이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어야 할 법”이라며 “수십년 쌓아온 민주주의가 대통령 한 명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했다”고 했다. 양 위원장은 오는 노동절(5월 1일) 총궐기와 7월 총파업 투쟁을 예고하며 “물가와 금리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1-20 방첩망 복원 절박성과 獨 슈타지 교훈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 前 국정원 1차장
1990년 10월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하기 전에는 동독의 해외공작총국(슈타지)이 서독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광범위하고도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 서독은 자세히 몰랐다. 동독이 해체되고 슈타지 기밀문서를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전모를 파악하고 경악했다. 무려 3만여 명의 슈타지 요원 및 협조자가 노조와 시민단체, 학계 및 문화·종교계에 침투해 암약했고, 심지어 연방의회 의원들 상당수까지 포섭된 상태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대규모 북한 간첩단이 잇달아 적발되고 있어 독일의 경험을 타산지석 삼을 필요가 있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된 후 지난 30년간 북한의 대남공작은 남측의 평화 지상주의를 오히려 역이용해 갈수록 공세적으로 지능화해 왔다. △여간첩 이선실 사건 △민족민주혁명당 간첩단 사건 △일심회 간첩단 사건 △왕재산 간첩단 사건 △청주 간첩단 사건과 △제주 거점 ‘ㅎㄱ ㅎ’ 사건 및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의 북한 공작지령 접수(혐의) 등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노골적인 핵무기 사용 협박과 함께 동독식 간접침략 형태인 ‘밑으로부터 혁명’과 ‘위로부터 혁명’의 통일전선전략 공작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것이다.
북한 김일성 주석은 평소, 꺾어지는 해인 1995년까지 남조선 제도권에 ‘혁명적 교두보’를 완성하라고 공작지휘부를 다그쳤다고 생전에 황장엽 씨는 회고했다. 김정일도 수시로 남한의 열린 소통 공간인 인터넷을 ‘해방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통일전선 공작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위력적인 사이버 공격 전사 5000명 양성은 그래서 본격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현대전은 하이브리드 전쟁, 즉 고도의 전략심리전이고 정보 신경전이다. 그만큼 민·군 영역 없이 선전선동 공작과 사기교란 정보작전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물론 국가정보원도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첨단 기법과 고도로 훈련된 요원들이 ‘그림자 전쟁’을 국익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수행해 왔다.
그러나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지나치게 북한을 의식해 국가보안법을 사실상 사문화시켜 대규모 간첩단 사건 수사가 이제야 제대로 시작됐다. 참으로 만시지탄이다. 우리가 본받으려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국가안보를 위해 공세적인 대외공작을 예방전쟁 차원에서 과감히 수행해 왔다. 그리고 더러 오류와 실패가 있더라도 이스라엘 국민은 모사드를 신뢰한다. 정보가 곧 안보의 창이고 방패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내년부터 경찰에 이관시킨다는 것은 이 같은 정보 특성의 세계화 시대에 분명히 역행하는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대규모 간첩망에서 보듯, 간첩 활동의 국내외 공작 연계는 각국 정보기관과의 실시간 공조 협업 없이는 수사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는 오직 국정원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기존의 대외정보 네트워크만이 할 수 있다. 우리 경찰력이 과연 이를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대가를 치를 것인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시간은 결단코 우리 편이 아니다. 안보 정보에는 성역이 없고 타협도 없으며 평화는 돈 주고 살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일보
01-20 ‘군대다운 군대’ 만드는 일 급하다
정찬권 숭실대 대학원 겸임교수, 前 국가위기관리학회장
지난해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에 맞대응한 미사일 오발과 북한 무인기 대응 실패로 군은 체면을 구겼고, 국민에게 우려와 실망을 안겼다. 여전히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자위적 국방력 강화 목표를 내세웠다. 핵무력 법제화, 전술핵 다량화, 핵탄두 늘리기가 대표적이다. 불길한 징조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반도체 등 산업 보호와 자원의 무기화를 불러왔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쿼드(Quad), 칩4, 인·태 경제프레임네트워크 등 소다자(Mini-lateral) 협의체 결성 주도와 주일미군에 육해공 통합지휘권을 주어 자위대 통합사령부와 연계한 대중·대북 견제를 도모하는 중이다. 일본 또한 미·일 군사 일체화로 북한 위협 대응과 중국의 군사력 견제를 위해 유사시 반격 능력 보유, 국방비 증액과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력이 쇠퇴해도 물리력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즉, 대만 무력 침공, 남중국해 영토 불법 점유, 관련국 경제 제재를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치열한 국익 추구 각축전 속에 경제난, 외교적 고립, 내부 모순에 처한 북한이 돌파구로 7차 핵실험과 대칭·비대칭 국지 도발이 예상된다. 철저한 대비태세 유지 측면에서 의견을 제시한다.
첫째, 빈틈없는 군사 대비태세 유지다. 북한의 핵·대량파괴무기(WMD) 위협 대비 3축 체계 조기 구축, 사이버 안보 역량 강화, 국지도발 대비태세 유지가 시급하다. 질적 우위의 압도적 군사역량 확보와 견고한 연합 방위체제 아래 미 핵전력 공동 기획·연습이 필요한 까닭이다. 향후 북한이 도발하면 비례성 원칙에 따라 응징 보복하고, 9·19 남북 군사합의서 이행 중지, 대북 방송과 전단 살포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둘째, 비군사 안보 대응태세 확립이다. 전시대비·민방위·통합방위는 북한 도발 억지와 전시 군사작전 지원, 정부 기능 유지, 국민 생활 안정을 통한 국가 총력전의 중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국가 동원 미흡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국가·지자체의 관련 조직·인력, 동원계획, 자원비축관리, 민방위 대피시설 등의 확인이 필요한 이유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혼란과 사후약방문 반복은 곤란하다.
셋째, 예비군 전력 활성화다. 부족한 병력자원과 병 복무기간 단축을 메워줄 예비군이 국군조직법에 신분 규정조차 없다. 군사대비태세 유지와 유사시 전투에 민간인이 참가하는 부조리이자 무늬만 예비군 전력 정예화의 진원지다. 국방예산 0.5% 정도의 예산으로 노후 장비·물자 현대화, 전천후 다목적(multi-flex) 과학화 훈련장, 상근 예비역 제도 확대는 언감생심이다. 국방개혁 4.0의 필수 과제화가 필요하다.
넷째, 엄정한 군 기강 확립과 신상필벌이다. 이번 북한 미사일·무인기 대응에서 드러난 군의 오발 사격과 추적 실패, 경계·작전 부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군 기강 해이와 훈련 부족 외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대화로 나라 지킨다며 훈련 축소·폐지를 주도한 문재인 정권의 폐단이지만, 군 수뇌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군대는 피와 땀 그리고 읍참마속에서 나오는 법이다.
역사학자 에리히 카는 역사는 사실을 알려줄 뿐 교훈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군은 오직 북의 연평도 포격 도발, 천안함 폭침, 무인기 대응 시행착오를 냉철하게 성찰하고 군대다운 군대 육성에 올인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01-20 ‘영웅’ 칭호받은 리광진 등 북한 요원 5명과 접촉 정황

■ 국보법 위반 혐의 수사
국정원, 북한 공작조 신원 파악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방첩당국은 민주노총 조직국장 A 씨 등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이 중국 베이징(北京), 캄보디아 프놈펜,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접선한 리광진 공작조 요원 5명의 신원을 파악했다.
20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리광진 공작조는 부부장(차관보)급인 리광진과 배성룡, 김일진, 전지선, 그리고 40대 공작원 등 5명으로 구성됐다. 리광진은 여권에 ‘김동진’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등 대남 간첩활동으로 잔뼈가 굵었다. 1990년대 모자(母子)·부부(夫婦)공작조 등으로 위장해 수차례 국내에 침투한 전력이 있으며 그 공로로 ‘영웅 칭호’를 받았고 부부장급으로 고속승진했다. 실제 리광진은 2021년 적발된 자주통일충북동지회(일명 청주간첩단) 사건 등을 지휘했다. 특히 자기 휘하 공작원 조일운, 부부공작원 김세은·리소영 등을 통해 청주간첩단 사건 관련자들과 접선하기도 했다.
방첩당국에 따르면 공작원 김일진과 배성룡은 보건의료노조 간부 B 씨와 2019년 8월 중국 다롄(大連) 모처에서 만났다. 이들은 이후 다롄에서 밤 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이동해 주중 북한 대사관에 들어갔다. 이들은 며칠 뒤 하노이로 건너가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 C 씨를 8시간 이상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공작원 전지선은 2016년 9월 하노이에서 A 씨와 접촉하고 공작금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물건을 건넸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1.22 쌍방울 김성태 대북 송금 의혹, 사형 처할 ‘여적죄’일까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을 수사 중인 검찰은 구속영장에 김 전 회장의 대북 송금 혐의를 적시했습니다. 이를 두고 여당에서는 “이재명의 경기도와 김성태 쌍방울이 천안함 폭침 테러 주범 김영철에게 뇌물을 갖다 바친 사건”이라며 “현행법상 여적죄에 해당한다”고 했는데요. 여적죄란 무엇이고, 대북 송금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김성태 전 회장의 대북 송금 의혹, 여러 혐의 중 가장 심각한 범죄로 보신다고요?
그렇습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2019년 1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 한 식당에서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송명철 부실장에게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현금으로 전달한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또 쌍방울 직원을 동원해 쪼개기 송금을 했다는 혐의도 받는데요.
김 전 회장이 북측에 돈을 보냈다는 2018~2019년 북한은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한 대북제재를 받고 있던 시점입니다. 즉, 대북 제재 결의 위반에 따른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2018년 조선아태위원장은 천안함 폭침 사건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이었습니다. 돈이 흘러간 곳이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선전부 대남정책집행기구인 조선아태위라는 점, 그 돈의 수령인 중 한 사람이 김영철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문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혐의라고 생각합니다. 천안함 순직 병사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대북 송금에 대한 전모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현행법상 여적죄에 해당한다”고 하던데요, 여적죄는 무엇인가요?
여적죄는 형법 제93조에 나오는데요,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른 형벌의 종류 없이 오로지 ‘사형’만 규정된 범죄입니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현재 휴전 상태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적국’에는 당연히 북한이 포함되고, 북한의 단체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항적’이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적대행위를 말합니다. 본 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북한과 관계를 맺은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북한과 관계를 맺고 대한민국에 적대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건국 이래 아직 여적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김 전 회장 역시 북한과 손을 잡고 대한민국에 적대행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바로 여적죄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내란선동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있습니다. 바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입니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은 혁명조직(RO)의 총책으로 북한의 대남 혁명론에 동조하면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행위를 모의한 혐의 등으로 2013년 구속기소 됐습니다. 2심에서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가 됐고, 내란 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유죄판결을 받아 2015년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01.22 “윤석열놈 배격 기운 고조되게…” 제주간첩단에 보낸 北지령 보니
김정은을 총회장님 지칭하고
“흠모심으로 대중투쟁력 높여라”
“反보수 투쟁에 촛불단체들 내와라”
“노조들 참가시켜 전투력 높여야”
전국 규모의 북한 간첩단이 적발됐다. 당초에는 제주의 ‘진보 정당’ 간부 등이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문화교류국의 대남 공작원 김명성을 만나 “제주도 내 ‘ㅎㄱㅎ’이라는 지하 조직을 설립하라”는 지령을 받은 뒤 반(反)정부 및 이적(利敵)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안 당국이 수사를 확대하면서 제주뿐 아니라 경남권(창원·진주), 호남권(전주), 수도권(서울) 등에 포치된 전국 규모 간첩단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공안탄압’이라며 반발하는 한편, 국정원장 등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고발하고 나섰다.
《월간조선》은 ‘ㅎㄱㅎ’이 북으로부터 받은 지령문 일부를 입수했다. 북한은 ㅎㄱㅎ를 ‘대학원’으로, 조직원은 ‘대학원생’으로, 제주는 ‘ㅈㅈ’으로, ㅎㄱㅎ 총책인 강모씨는 ‘원장님’으로, ㅎㄱㅎ 조직원 이름은 초성을 반대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표기했다. 만일 ‘김철수’라면 ‘ㅅㅊㄱ’이 되는 식이다. 북한문화교류국은 ‘연구원’이고 김정은은 ‘총회장님’이다.
[2021년 10월 19일 자(字) 지령문]
대학원(제주 지하조직-편집자 주)에서는 진보당 ㅈㅈ(제주-편집자 주)도당과 민주노총 ㅈㅈ본부 4.3 통일위원회, 전농 ㅈㅈ도연맹을 비롯한 영향 하에 있는 단체들, ㅈㅈ 지역 안의 반전평화옹호단체들을 발동해 바이든 행정부가 떠드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 조건 없는 대화>의 기만성을 낱낱이 폭로단죄하면서 <합동군사 연습중단> <한미일군사동맹해체> <미국산첨단무기도입반대> 등의 구호를 들고 항의 집회, 농성시위와 같은 반미투쟁들과 <5.24 조치> 해제 등 남북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결의대회, 항의방문과 같은 대중투쟁을 연속 전개해 압박의 도수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2022년 3월 29일 자 지령문]
이를 위해 우수한 핵심들과 군중적 지반이 좋은 진보 운동가들로 선거운동본부를 구성하며 대학원에서 장악하였거나 영향 하에 있는 <민주노총 4.3 통일위원회>와 <민주일반노조연맹 제주본부> <학교비정규직 노조 제주 지부> <건설노조 제주지부>를 비롯한 노조단체들과 <전농 제주도연맹> <전녀농제주도연합> <서귀포시민연대>와 같은 각계 층 진보운동 단체들을 발동해 진보당 후보들을 밀어주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지지선언운동을 벌여나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중략) 민주노총 4.3 통일위원회와 6.15 ㅈㅈ(제주)본부와 같은 통일운동단체들을 총동원해 한미합동군사연습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집중 전개하여 취임을 앞둔 윤석열은 물론 미국과 군부에도 강력한 압박공세를 들이대야 합니다.
[2022년 4월 19일 자 지령문]
대학원에서는 영향 하에 있는 민주노총 ㅈㅈ본부 4.3 통일위원회와 6.15ㅈㅈ본부와 같은 통일운동단체들을 발동해 보수집권 세력의 사대매국적이며 반통일정책을 반대하는 다양한 실천투쟁들을 광범위하게 조직 전개하는 것과 함께 북침전쟁 연습의 철회와 미군기지 철폐, 북남선언이행을 내들고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중투쟁들을 전개해 윤석열놈을 규탄 배격하는 사회적 기운이 지속적으로 고조되게 하는데 힘을 넣어야 합니다.
[2022년 6월 9일 자 지령문]
노조단체들을 4.3과 8.15를 비롯한 여러 계기들에 반미 자주화를 위한 대중투쟁에 적극 참가시켜 조직력과 전투력을 부단히 높여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ㅇㅎㅂ(ㅎㄱㅎ 조직원 박모씨의 초성을 반대로 쓴 것-편집자 주)가 지도하고 있는 민주노총 ㅈㅈ본부 4.3 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국민주 일반노조 제주본부와 전국건설노조 제주지부를 비롯한 영향 하에 있는 노조단체들을 결속시켜 노동자통일선봉대를 조직하고 반미자주화를 위한 대중투쟁에서 선봉적 역할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중략)
진보운동권에서 조직력과 단결력, 전투력과 완강성이 강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여 대중운동의 앞장에 내세워야 다른 모든 계급계층의 선두에서 지역대중을 통일운동에로 견인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원장님(총책 강모-편집자 주)이 ㅇㅎㅂ(박씨)에게 먼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옳게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2022년 8월 19일 자 지령문]
연구원(북한 문화교류국)에서는 첫 상봉(2017년 7월 29일)시 우리 위업의 승리를 위해 굴함 없이 투쟁할 의지를 가다듬던 그날의 활기에 넘친 원장님(총책 강씨)의 모습을 항상 그려보며 반드시 건강이 회복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2022년 10월 31일 자 지령문]
ㅈㅈ후원회와 민주노총 4.3 통일위원회, 민주일반노조연맹 ㅈㅈ본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ㅈㅈ지부, 전국건설노조 ㅈㅈ지부를 비롯한 노조단체들과 전농 ㅈㅈ, 전여농 ㅈㅈ도연합, 서귀포시민연대 등 진보운동 단체들을 내세워 지역 안의 반보수투쟁 단체들을 재정비하고 확대 개편하는 방법으로 초불(촛불의 북한식 표기-편집자 주)투쟁 단체들을 내오고 여기에 지역 내 중도 층을 가능한껏 망라시켜 투쟁동력을 부단히 확보해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총책 강씨, 2017년 北에 ‘충성맹세’
지령문을 보낸 북한 문화교류국은 노동당 직속 대남 공작 조직이다.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대외연락부, 사회문화부, 225국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간첩 남파 등의 임무를 수행해왔다. 1992년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1994년 구국전위,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2006년 일심회, 2011년 왕재산 등 각종 간첩 사건에 개입했다.
시작은 2017년 7월 29일이다. 제주 출생으로, 제주 진보정당 핵심 간부인 ㅎㄱㅎ 총책 강모씨는 이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대남공작원 김명성을 접선했다. 이들은 시엠레아프 소재 아파트형 숙소에서 이틀간 회합(會合)했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조국통일 위업의 승리를 위해 굴함 없이 투쟁하겠다”고 ‘충성맹세’(2022년 8월 19일 자 지령문 참조)를 하고 암호 프로그램 사용법에 대한 간첩통신 교육도 받았다.
암호장비를 수수한 후 귀국한 강씨는 2017년 8월부터 문화교류국에서 요구한 전송 방법에 따라 수차례 대북 통신 문건을 주고받았다. 방첩 당국에 따르면 압수수색이 시작된 지난 2022년 11월 9일 직전인 2022년 11월 4일까지도 북측과 연락했다.
◇제주간첩단 규모, 최소 17명
강씨는 2017년 7월 접선 이후 북한의 지령에 따라 고모씨, 박모씨와 함께 ㅎㄱㅎ를 구성했다. ㅎㄱㅎ는 노동부문(한길회), 농업부문, 진보정당 및 여성부문으로 편재된다. 노동부문은 박모씨, 농업부문은 고모씨, 진보정당과 여성부문은 총책 강씨가 책임지도를 맡았다.
각 부문 아래에는 책임지도 아래 각각 2명(노동), 3명(농업), 7명(진보), 2명(여성)의 지도성원을 뒀다. 이에 따라 제주간첩단은 확인된 것만 17명 규모다. 이들 지도성원들이 다시 포섭한 하위 조직원들이 있다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방첩 당국에 따르면 문화교류국이 ㅎㄱㅎ에게 내린 지침은 이렇다.
“‘총회장님(김정은)에 대한 흠모심과 한국사회 변혁의 필요성을 정확히 인식하는 학습체계’로 대중투쟁 지도 능력을 높이라. 간결한 조직과 지휘통솔 체계를 갖고 지도부와 지도성원 간 단선(單線) 연계로 조직 활동 비밀을 목숨으로 지키라. 비합법의 활동을 반합법과 합법으로 잘 위장하라.”
‘ㅎㄱㅎ’의 정확한 의미는 현재까지 파악 중이다. ‘한길회’의 초성이라 추정할 수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ㅎㄱㅎ 하부 박씨가 이끄는 노동부문의 이름이 이미 한길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조국통일의 한 길을 가겠다’는 의미다.
◇‘ㅎㄱㅎ’의 8가지 활동
방첩 당국은 ㅎㄱㅎ가 북한의 지침에 따라 총 8가지 활동을 추진했다고 보고 있다. 우선 ▲ 민노총 제주본부 4·3 통일위원회 장악을 통해 반미(反美) 자주화 투쟁을 확대했다. 2022년 6월 9일 자 지령문에서 보듯 북한은 ㅎㄱㅎ에 민노총 제주본부 4.3 통일위원회 등 노동 분야에 대한 조직화를 계속적으로 요구했으며, 방첩 당국은 이들이 ‘노동자통일학교’ 및 ‘노동자통일선봉대’를 결성해 소위 ‘반미자주화 대중투쟁’을 확대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진보당 제주도당 장악과 제주 지역 진보운동 세력의 통합도 추진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실제로 강씨 등은 진보당 제주도당 요직에서 활동했고, 주요 당직(當職)에 이번 사건과 연계 혐의가 있는 인물들을 배치했다.
최근 북 지하조직들은 노조, 정당 등 합법적인 단체에 침투해 조직을 장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ㅎㄱㅎ는 전국회의 제주지부, 민주노총 제주본부, 진보당 제주도당,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제주본부 등을 대상으로 삼았다. 북한은 이를 통해 ‘지역 진보 운동의 정치적 구심체’로의 역할을 강조하고 선거 시기 ‘반(反)보수 투쟁’을 할 것을 지령했다. 2022년 6·1 선거를 앞둔 2022년 3월 29일 자 지령문에서 보듯 북한은 “각계 층 진보운동 단체들을 발동해 진보당 후보들을 밀어주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지지선언 운동을 벌여 나갈 것”을 지령하기도 했다. 실제로 2022년 5월 17일 민노총 제주본부는 제주도청 앞에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자 중 진보 진영 후보들을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12일 제주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공안탄압이라며 반박했다. /사진=뉴시스
◇反윤·反보수·反정부·反미 투쟁 추진
▲ 반윤·반보수·반정부·반미 투쟁을 결부시켜 지속적으로 불법 집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씨가 활동 중인 민노총 제주본부는 ‘4·3 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반미투쟁, 통일전선투쟁, 한미군사훈련 반대 투쟁을 했다. 박씨는 또한 제주촛불문화제(2022.11.5), 윤석열 퇴진 제1차 제주촛불행동(11.12), 윤석열 퇴진 제2차 제주촛불행동(11.19), 윤석열 퇴진 제3차 제주촛불행동(11.26) 등의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22년 8월 22일 진보당 제주도당은 ‘민생에도 평화에도 도움 되지 않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 제하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강씨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을 주제로 언론 기고도 했다.
이 밖에도 이들은 ▲ 국가기밀 탐지·수집·전달 등 지령 수수 및 대북 보고를 위해 진보당의 핵심당원, 분회결성 사항, 후원회 명단을 수집해 보고했다. ▲ 주체사상·선군정치·김정은 등 위대성 선전·교양 사업도 추진했다. 2022년 6월 9일에는 핵심수련생 4명에 대한 사상교육 진행 상황, 2022년 9월 9일에는 핵심수련생의 개별교양 진행 및 학습 소모임 상황 등을 보고했다. 방첩 당국은 박씨, 고씨, 강씨가 쓰는 아지트 압수수색을 통해 ‘애국시대’ ‘녹슬은 해방구’ 등 이적표현물도 압수한 상태다. ▲ 노동·농민 생존권 및 지역현안 문제로 진보 세력 연대 추진과 ▲ 특정인물 포섭 및 정치·군중 공작도 진행했다. 그러면서 ▲ 지하조직 활동의 비밀성을 유지했다.
◇창원 거점 ‘자통’과 한 몸처럼
ㅎㄱㅎ 사건을 수사 중인 국정원과 경찰은 이들 지하조직이 경남 창원과 진주, 전북 전주 등 전국 각지에 결성된 정황도 포착했다. 이들은 ㅎㄱㅎ과 마찬가지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아 지하조직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반정부 및 이적 활동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창원에 지역별 지하조직을 총괄하는 ‘자주통일 민중전위(前衛·이하 자통)’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수사 당국은 이와 관련, 지난 11월 창원에서 활동하는 진보·좌파 단체 관계자 최소 4명의 거주지 등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16년 무렵 창원에 ‘자통’을 설립하고 수시로 북측 지령문을 받은 뒤 반미 집회, 반보수 투쟁 시위 등을 벌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당국은 자통의 거점이 방산업체가 몰려 있는 창원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수사 당국은 ㅎㄱㅎ와 자통의 조직원들이 상당수 겹치는 점과 북한으로부터 같은 지령을 받고 움직인 점 등을 미루어 개별 조직이 아니라,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인 조직으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 단체가 긴밀히 연결된 가운데, 다른 지하조직이 더 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한편 자통과 ㅎㄱㅎ 등은 “윤 정부가 실정(失政)을 덮기 위해 공안몰이를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자통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2018년 창원 세계사격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응원하고, 개성공단 재가동 촉구 집회, 친일·적폐청산 집회 등 시민단체의 고유 활동을 했을 뿐”이라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배후 조종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주 지역 진보 진영 인사들도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ㅎㄱㅎ의 활동과 관련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는 지난 1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북측과 접촉한 사실이 없으며, 자통과도 특별한 인연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언론 보도대로라면 제주해군기지, 윤 정부 규탄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행위 등이 모두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한 것이 된다”며 “기자회견 주최 등 단체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북한과 연계시키려는 시도에 황당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그러나 수사 당국 측은 “이들이 제3국에서 북한 대남공작조와 접촉하고, 지속적으로 북한 지령문을 수령한 구체적 정황을 포착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박지현 기자 talktome@chosun.com월간조선
01.24 빈 라덴 잡은 4000만원 투시경 달았다, 특전사 참수부대 훈련 이례적 공개
◇ 유사시 김정은 등 북 수뇌부 제거 ‘참수작전 부대’ 동계 훈련 실시
북한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아 ‘참수작전 부대’로 불리는 육군 특전사 제13특수임무여단(특임여단)의 동계 특수전 훈련 영상이 최근 공개됐다. 검은 표범을 의미하는 ‘흑표(黑豹)부대’로 불리는 특전사 특임여단은 임무 특성상 훈련 및 장비 모습 등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고 훈련 영상이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미사일 발사, 소형 무인기 침투 등 북한 도발이 이어지자 김정은과 북한이 가장 민감해 하는 참수작전 부대 훈련 영상을 공개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육군이 이달초 공개한 1분40여초 분량의 흑표 부대 훈련 영상은 강원도 인제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KCTC)에서 지난해말 부터 이달 초까지 실시된 훈련 모습을 담고 있다. 레이저를 활용한 마일즈 장비를 장착한 소총과 최신 전투장구류 등으로 무장한 흑표부대원들은 다양한 구조의 콘크리트 건물들로 구성된 시가지 전투 훈련장에서 실전적 훈련을 했다. 철조망을 절단하고 건물 출입구를 폭파한 뒤 내부에 진입하거나, 부서진 승용차 뒤에서 교전을 벌이는 모습도 공개됐다.

▲특전사 제13특수임무여단(일명 흑표부대) 장병들이 최근 강원도 인제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장에서 동계 특수전 훈련을 하고 있다. 13특수임무여단은 유사시 적 수뇌부를 제거하는 일명 '참수작전' 임무를 맡고 있다. /특전사 특임여단 훈련 영상 캡처
◇ 4000만원 짜리 4안 야간투시경 커버에 덮인 채 등장
육군 관계자는 “흑표부대원들은 KCTC에서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을 뚫고 전시 전투수행 방법을 숙달했다”며 “다양한 우발상황을 조성하고 과제 단위 훈련과 야외기동훈련(FTX)을 통해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전투기술을 연마했다”고 밝혔다.
영상에 등장한 흑표부대원 장비 중 방탄헬멧 윗부분에 커버(천)에 덮인 채 튀어나온 직사각형 장비가 눈길을 끌었다. 이 장비는 빛을 증폭해 보여주는 ‘광(光)증폭관’이 4개나 달린 4안(眼) 야간투시경 ‘GPNVG-18′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 군의 주력으로 사용되고 있는 야간투시경 ‘PVS-04K’은 광증폭관이 1개만 달려 있다. 미 L3 테크놀로지가 만든 GPNVG-18은 광증폭관이 4개가 달려 있어 이를 양눈으로 보며 약 100도의 수평 각도에서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 특임여단, 대량응징보복 핵심전력으로 2017년12월 창설
하지만 개당 가격이 4000여만원에 달해 PVS-04K보다 10배나 비싼 가격이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군 당국은 400여억원의 예산으로 1000개의 GPNVG-18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빈 라덴을 사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에 참가한 미 최정예 특수부대 데브그루 요원들이 GPNVG-18을 착용하고 야간작전을 벌여 유명해졌다. 우리 경찰특공대도 이 장비를 도입했다.
특전사 특임여단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데 대응해 한국형 3축 체계의 하나인 KMPR(대량 응징보복 전략) 핵심 전력으로 2017년12월 창설됐다. 13공수여단을 모체로 만들어졌으며 규모는 1000여명 수준이다. 특임여단은 임무 특성상 각종 첨단 장비를 많이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체 인식기, 벽 투시 레이더, 차음 헤드폰, 경량 방탄복과 신형 방탄헬멧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미 특수부대와 특전사 특임여단 등이 사용중인 4안 야간 투시경 GPNVG-18. 대당 가격이 4000여만원에 달한다. /special-ops.org
◇ 북 수뇌부 사살한 뒤 현장서 확인해주는 생체인식기 등 보유
생체인식기는 적 핵심 인물을 사살한 뒤 신원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정은 등 북한의 주요 제거대상 인물의 지문과 혈관, 홍채, 얼굴 등 생체정보를 확보해 제거 작전 후 현장에서 임무 완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미 최정예 특수부대가 빈 라덴을 사살한 뒤 신원을 확인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벽을 투과해 내부를 볼 수 있는 벽 투시 레이더는 대테러 및 특수타격 작전 중 적 위치 식별과 인원에 대한 정보획득으로 작전 성공률을 높여준다. 차음 헤드폰은 총성과 폭음 등 전장 소음 속에서도 무전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비다. 작전 진행 동안 실시간으로 본부의 상급 지휘관들과 상황 정보를 공유하게 해주는 영상 전송장비, 적에게 일시적인 잔상 효과를 줘 적의 조준사격을 방해하고 아군의 생존성을 향상시키는 전술 플래시 등도 갖췄다고 한다. 수류탄과 같은 위력을 갖는 유탄 6발을 연속으로 발사할 수 있는 6연발 유탄발사기도 도입했다.
◇ 이스라엘제 자폭드론 등 각종 드론 도입 추진
특임여단은 우크라이나전 등에서 드론의 위력이 확인됨에 따라 자폭(自爆)드론, 정찰드론 등 각종 드론 도입도 적극 추진중이다. 지난해부터 도입해 단계적으로 전력화중인 이스라엘제 자폭드론 ‘로템(Rotem)-L’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 IAI사 제품인 로템-L은 프로펠러가 4개 달린 쿼드콥터 형태다.
작고 가벼워 병사가 백팩 형태의 배낭에 담아 메고 다니다 어디서든 단시간에 조립해 사용할 수 있다. 중량은 5.8㎏, 작전거리는 10km, 비행시간은 최대 45분으로 탄두(무게 1.2㎏)는 수류탄 2발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위력이 크지는 않지만 요인이나 테러리스트를 암살하기엔 충분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 신형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도입은 지연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서 특임여단 장병들은 총기의 경우 K-1A 기관단총, K-2C1 소총, K7 소음기관단총 등 기존 총들을 갖고 훈련을 실시했다. 개량형 개머리판과 피카티니 레일, 조준경 등을 갖춰 구형보다 개량된 모습을 보였지만 임무의 중요성과 난이도에 비해 소총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군 당국은 지난 2020년 특임여단 등 특전사 대원들이 사용할 차기 기관단총으로 다산기공의 DSAR-15PC를 선정했다. 1981년 첫 국산 기관단총인 K-1이 특전사에 도입된 이래 43년만에 주력화기가 바뀐 것이었다.
DSAR-15PC는 3년간의 추가개발 기간과 1년여간의 사업 타당성 평가를 거쳐 2024년 후반기부터 1만6000여정이 실전배치될 예정이었지만 해당 업체의 군기밀 유출 사건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 특수전용 기동헬기 및 공격헬기 도입도 추진
군 당국은 특임여단이 유사시 야간이나 악천후에도 평양 등지에 침투할 수 있는 MH-47G급(級) 특수작전 기동헬기와 특수전용 공격헬기 도입도 추진중이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해 당분간은 미군 MH-47G 등 미 특수전 헬기들의 지원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1.24 北전차에 놀란 박정희가 만들었다…K2흑표 할아버지의 퇴장
반세기 가까이 현역 생활을 이어온 노장이 전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초 국산 조립 전차로 불리는 M48A3K와 M48A5K 얘기다. 2023년 1월 현재 M48A3K는 작전에서 모조리 빠진 뒤 퇴역을 앞둔 상태다. M48A5K는 아직 굴러다니고 있지만, 곧 형님인 M48A3K의 길을 따라갈 예정이다.
이들 전차는 심각한 노후화로 인해 잔존가치가 없다는 등 지금은 ‘뒷방 노인’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현재 국군 기갑전력의 토대를 마련한 공로만큼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미국의 M48 패튼을 개량한 한국형 전차 M48A3K. 디펜스타임즈
6·25 북한 기갑전력에 트라우마…전차 개발의 꿈으로
1978년 4월 대한뉴스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찰 장면과 함께 M48A3K와 M48A3K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고성능 국산 전차가 대량 생산단계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는 자유진영에서 9번째로 전차 생산국이 됐다.”
국산이라고 했지만, 국내 기술로 생산됐다기보다 국내 기술이 일부 담긴 ‘개조’ 또는 ‘개량’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엄밀히 말하면 최초 국산 조립 전차인 셈이다.
한국이 전차 산업에 뛰어들었다는 의미로 여기엔 절박함이 작용했다. 결정적 계기는 1970년대 박 대통령이 미 정부로부터 입수한 북한의 전차 공장 위성사진이었다고 한다. 전차처럼 보이는 수많은 점은 설로 무성하던 북한 기갑전력의 우수성을 확인해줬다. 소련의 2세대 전차 T-62를 약 500대 들여온 북한은 이즈음 T-62를 토대로 ‘천마호’를 개발하고 있었다. 6·25 전쟁 때 북한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서울을 사흘 만에 내준 뼈아픈 기억이 되살아났을 법도 했다.
정부는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M60 같은 2세대 전차를 국내에서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미국이 난색을 보이는 사이 정부는 서독의 레오파르트1에 눈길을 돌렸다. 예상치 못한 행보에 미국은 한국에 있는 M48 패튼 전차를 개량하자는 내용과 함께 3세대 전차 개발에 기술 지원도 제안했다.
베트남전 계기, 미국으로부터 받은 전차로 ‘한국형’ 개조
1950년대 생산된 1세대 전차 M48 패튼은 베트남전 병력 파병을 대가로 1966년부터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군은 1970년대 중·후반 약 900대의 M48을 보유했다. 이를 일단 2세대 전차 수준으로 개조하면서 급한 불부터 꺼보자는 데 한·미는 뜻을 같이했다.

▲미국의 M48 패튼을 개량한 한국형 전차 M48A3K. 디펜스타임즈
그렇게 기존 갖고 있던 M48 차체에 미국이 보낸 엔진, 포 등 부품을 새로 장착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M48의 개량형인 M48A3·A5처럼 가솔린 엔진은 디젤 엔진으로 교체돼 항속거리를 200~300㎞ 늘렸다.
주포의 경우 M48A3K는 90㎜를 유지했지만, M48A5K는 105㎜로 몸집을 키웠다. 화력 증강이라는 개량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90㎜ 포탄 재고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궤도를 보호하는 사이드스커트가 달리거나 측풍 감지기 등 사격통제장치의 성능 개선이 이뤄진 건 당시 한국형 M48 개량형의 특징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 전차의 이름 끝엔 ‘K’가 붙었다.
일부는 창고로, 일부는 예비전력과 함께…조용한 은퇴 앞둬
이들 전차가 국군의 주력 전차이던 시기엔 850대 이상이 운용됐다. 그러다 3세대 전차가 등장하면서 전성기도 막을 내리게 됐다. 1987년과 2014년 각각 실전 배치된 K1 ‘88전차’와 K2 ‘흑표’ 전차가 M48A3K와 M48A5K의 자리를 대신했다.

▲M68 105㎜ 주포를 장착한 M48A5K 패튼. 퇴역할 시점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국군의 주요 전력으로 활약 중이다. 국방부
M48A3K는 1990년대 후반 육군에서 해병대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해 모두 실전에서 물러났다. 현재 해병대 2사단에 약 40대가 보관돼 있다고 하는데, 지난해 10월 창고로 들어갔고 올 상반기 퇴역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은 안보전시관 전시용 등 향후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M48A5K는 여전히 현역이다. 비록 대부분 예비군이 주축인 동원사단으로 물러나 있는 모양새이지만 여전히 400여 대가 운용되고 있다. K1과 K2가 대전차전을 담당한다고 보면 보병을 지원하는 임무에선 아직 쓸 만하다는 게 군 안팎의 평가다. 유사시 고정포탑으로 북한 기갑 전력을 소모하는 역할로도 유용하다. 1~2년 내 K2가 추가 양산돼 배치되면 온전한 퇴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최초’ 기록 K1·K2의 조상
물론 1978년 개량된 이들 전차 중 일부는 1950년대 생산된 차체를 지니고 있으니 노후화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2011년엔 전차를 유지할 때 얻는 이익보다 연평균 정비 비용이 많이 들어, 잔존가치가 없다는 평가도 받았다.

▲지난해 9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육군이 대규모 기동화력 시범을 선보였다. K2 흑표전차가 기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럼에도 K1와 K2가 얻은 ‘최초’ 기록을 떠올려보면 이들 노장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미국에서 개발된 K1은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 첫 번째 전차이고, K2는 한국 기술로 개발과 생산이 모두 이뤄진 최초 전차다. K1의 아버지뻘, K2의 할아버지뻘 정도로 볼 수 있다. 안승범 디펜스타임즈 편집장은 “‘맨땅’과도 같던 우리나라 전차 개발 분야에서 M48 조립은 분기점이 됐다”며 “K1 생산 라인을 깔 수 있는 기반이 됐고, K2 개발로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01.25 재판 지연으로 풀려나 활보하는 간첩 용의자들
민노총과 산하 단체에 북한 연계 지하조직을 만들어 반국가·이적 활동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민노총 간부가 작년 6월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던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 조직원과 교신했다고 한다. 민노총 지하조직과 청주간첩단은 모두 북 문화교류국 공작원 리광진이 지휘해 온 조직이다. 수사 당국은 이들이 수사·재판 상황을 공유하며 증거 인멸을 시도하고 북에 보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속 상태였던 청주간첩단 조직원이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벌어진 일이다. 결과적으로 재판부가 간첩 혐의자들의 증거 인멸과 추가 범행을 방조한 셈이 됐다.
간첩 등 국보법 사건 재판은 집중심리 등을 통해 구속 기한인 6개월 안에 1심 재판을 마치는 게 상식이다. 그래야 간첩이 재판 도중 풀려나 국가 안보를 해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청주간첩단 사건은 기소 1년 4개월이 넘도록 1심 판결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 청주간첩단 일당 4명은 모두 자유의 몸이 됐다. 1명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처음부터 불구속 상태였고, 구속 기소된 3명도 구속 기간 만료와 보석으로 석방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피고인 측이 법관 기피 신청, 국보법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신청 등을 하며 재판 지연 전술을 벌인 결과다. 하지만 수사팀은 판사들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사건을 안이하게 처리한다며 재판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보석을 너무 쉽게 허가하는 등 간첩 혐의자들의 지연 전술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이 재판 도중 다른 일정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도 재판부가 제지하지 않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청주간첩단 조직원과 교신한 민노총 간부는 국보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던 목사와도 작년 말 9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해당 목사가 기소된 것은 2020년 11월인데 이 사건 역시 2년이 넘도록 1심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재판 지연은 ‘김명수 대법원’ 이후 일상이 됐지만, 간첩·국보법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한가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 지연으로 간첩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되풀이 되면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겠나.
조선일보 사설
01-25 캄보디아서 북한 접선 민노총 간부들, 암호문 수령 · 공작원 교육 받았다

4~11시간 북한 접촉 충성서약도
국정원, 국보법위반 수사 확대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방첩 당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인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이 북한 대남 공작원들과 해외에서 접선 당시 최대 11시간에 걸쳐 공작원 교육을 받은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방첩 당국은 이들이 북한 공작원과의 회합에서 화선 입당식(후보 당원 기간 없이 바로 조선노동당에 입당)과 충성 서약, 공작원 실무교육 등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25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방첩 당국은 민주노총 조직국장 A 씨, 보건의료노조 실장 B 씨, 제주지역 시민단체 대표 C 씨 등 3명이 2017년 9월 11∼13일 매일 번갈아 가며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 F 호텔에서 북한 리광진 공작조와 각각 11시간, 8시간, 4시간 만남을 가진 사실을 파악했다. 또 전 금속노조 간부 D 씨는 2019년 8월 9일 베트남 하노이 B 호텔에서 리광진 공작조 소속원들과 8시간 이상 만났다. 방첩 당국은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리광진 공작조와의 만남에서 화선 입당식, 충성서약, 암호문 수령, 공작원 실무교육 등을 수료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공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은 국내 포섭 간첩들을 해외로 불러내 약식 교육훈련을 시킨다”며 “만남이 4∼11시간이나 진행된 것으로 보아 간첩활동에 필요한 핵심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방첩 당국은 민주노총 조직국장 A 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E 목사와 지난해 10∼11월 9차례에 걸쳐 통화 또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또 A 씨가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 관련자인 F 씨와도 지난해 6월 7일, 12월 9일에 이어 최근까지 통화한 사실도 확인했다. 방첩 당국은 북한 고위 대남공작원인 리광진이 자신이 만든 남측 지하조직이 잇달아 적발되며 연락이 끊기자 A 씨를 통해 재판 진행 상황 및 조직와해 정도, 하부망 보존 상황 등을 파악하고 조직재건 등 추가 지령을 내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1-25 ‘남측 지하조직 관리’ 북한 리광진… ‘전국 네트워크’ 구축 의혹
국보법 위반 인사들과 접촉
북한 고위 대남 공작원 리광진이 남측 내부에 만든 지하조직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서로 접촉하며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해나간 정황이 포착돼 방첩당국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25일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방첩당국은 리광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조직국장 A 씨를 고리로 다른 지하조직원들과 접촉한 사실을 파악했다. A 씨는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E 목사와 지난해 9차례 접촉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 조직원과도 교신했다. E 목사는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어 지난해 말 A 씨와 수차례 접촉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접촉한 청주간첩단도 리광진이 지휘해온 조직이다. 방첩당국은 이들이 수사 및 재판 상황을 공유하며 지하조직 재건 등을 시도하고 관련 내용을 북한에 보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 정보당국은 민주노총과 별도로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조직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내사 중인 것으로도 전해졌다.
문화일보 김유진 기자, 정충신 선임기자
01-25 북한 공작조, 민노총 간부 1명씩 불러 ‘노동당 화선 입당·충성 서약식’ 정황
■ 캄보디아·베트남서 접촉해 교육·의식
2017·2019년 4차례 걸쳐
전현직간부 4명과 회합 의혹
청주간첩단은 ‘혈서’ 쓰기도
전문가 “직파·고정간첩에서
원격조종 ‘글로벌 간첩’ 진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과 북한 리광진 공작조와의 만남이 4~11시간에 걸쳐 이뤄진 것은 조선노동당 입당과 충성서약, 비밀암호명, 암호·음어 사용법, 비상도피선 파악 등 공작원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방첩 당국은 보고 있다. 특히 2017년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과 리광진 공작조가 사흘간 매일 번갈아 가며 회동할 때 만남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 것은 교육 방식에 서로 익숙해지면서 시간이 단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25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리광진 공작조는 2017년 9월 11~13일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 F호텔에서 민주노총 조직국장 A 씨, 보건의료노조 실장 B 씨, 제주지역 시민단체 대표 C 씨 등 3명을 매일 번갈아 가며 만났다. 만남 시간은 첫날엔 11시간이었으나 그다음 날은 8시간, 사흘째 되는 날은 4시간이었다. 대공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이들의 만남이 장시간 소요된 것과 관련해 “북한은 국내 포섭 간첩단을 북한이나 해외로 불러내 약식교육하는데 리광진 공작조도 이러한 교육시간을 가진 것”이라며 “북한 간첩망이 과거처럼 ‘직파·고정 간첩’보다는 중국·동남아 등 해외서 국내 지하조직을 원격 조종하는 ‘글로벌 간첩’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작원이 될 경우 가장 중요하게 치러지는 의식이 노동당 입당인 ‘화선(火線) 입당식’이다. 유 원장은 “‘화선’은 ‘불처럼 타오르는 전선’을 뜻하는 것으로 예비 당원 기간 없이 바로 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이라며 “북한도 정식 당원이 되려면 2년간 후보위원 기간과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엄격한 조건 때문에 당원은 북한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당식이 끝나면서 ‘흑금성’ 등 비밀암호명이 부여된다.
이어 공작금 수령과 공작 평가, 충성 맹세문 작성 의식이 진행된다. 충성 맹세문은 자필로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노동당 앞으로 2장을 쓴다.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의 경우 충성 맹세문을 워드로 치고 손가락을 찢어 쓴 ‘조국 통일 혈서’를 영상 사진으로 보내기도 했다.
충성 맹세문 작성이 끝나면 당원 기본교육, 주체사상, 김일성 혁명 역사 등 공작원이 알아야 할 기본교육과 해외접선 방법 등 실무교육이 이어진다. A7 메모리식 무전기·스테가노그래픽·클라우드 활용법, 지령문 해독 등이다. 마지막으로 조직망 와해를 대비한 비상도피선 교육이 진행된다. 해외 대사관 등과 연계된 특정 전화번호를 알려줘 긴급 도주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식통은 “4∼5명이 호텔에서 밥까지 먹으며 약식 교육을 받다 보면 8∼11시간 걸리는 게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1.26 [단독] "민노총 포섭 위해…北, 차관보급 베테랑 간첩 투입"
북한이 121만명에 달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지도부를 포섭하기 위해 투입한 대남 요원 이광진은 “차관보급의 독보적 베테랑 간첩”이라고 대북 소식통이 25일 전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물이 든 상자를 들고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안보수사 당국이 민노총 간첩 조직의 총책 혐의로 조사 중인 조직국장 A씨가 주로 만난 북한 공작원은 2021년 청주간첩단 사건의 배후로 밝혀졌던 북한 노동당 산하 대남 공작기구 문화교류국 소속 이광진(여권명 김동진)이다. 당국은 대남 공작의 실질적 지휘자로 이광진을 지목하고, 수년에 걸쳐 그의 동선을 추적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이광진은 한국의 차관보급에 해당하는 베테랑 공작원으로 휘하에 다수의 공작원을 거느린 인물"이라며 "북한에서 해외 공작이 가능한 요원이 많지 않은데 이광진이 단연 독보적"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이광진이 배성룡·김일진·전지선 등 북한 공작원을 지휘한 것으로 파악했다.
“간첩을 지휘하는 간첩”
외교 소식통도 "북한이 한국 내 진보세력 중 가장 큰 조직 중 하나인 민노총을 핵심 공작 대상으로 보고, 민노총 포섭에 ‘실세 고위직’을 오랫동안 카운터파트로 배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당국에 따르면 A씨는 2016년 8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최소 6차례 이씨를 비롯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제3국에서 만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고 있다. 당국은 A씨가 2018년 9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광진에게 공작금 1만 달러를 받아 남대문 사설 환전소 등에서 환전하는 모습을 촬영했다고 한다.
이광진이 본명인지도 불투명
당국은 북한 이광진의 나이를 60대 초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대남사업 요원 및 전투원(무장공비)을 양성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1979년 입학했던 인물이라는 첩보가 있다. 고위 탈북자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 학생들은 입학 때부터 가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4년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기들조차 본명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광진은 당초 문화교류국에서 중국을 주로 담당해오다 중국 공안의 감시가 삼엄해지자 상대적으로 감시 수준이 낮은 동남아시아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는 1990년대 부부 공작조 등으로 위장해 여러 차례 국내에 직접 침투한 경력이 있다.
이광진은 2017년부터 북한의 지령에 따라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운동 등을 벌인 이른바 '청주간첩단' 사건의 배후로도 지목돼 있다. 국정원은 2018년 해당 사건의 구체적 증거를 확보했고, 관련자 4명 중 3명은 현재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적발 이후 북한의 지령에 따라 관련 증거를 상당 부분 파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당국이 수사 중인 제주지역 간첩 사건에서 드러난 북한 문화교류국과 'ㅎㄱㅎ' 간의 교신·지령 내용은 주로 지난해 주고받은 것이다. 진보정당 간부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뒤 제주지역 노동운동 간부와 농민운동 간부를 포섭해 'ㅎㄱㅎ'을 결성한 시점이 2017년 7월이란 점을 감안하면 초기 교신 및 지령의 상당수가 인멸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공 수사가 속도를 내는 배경으로 지난해 이뤄진 정부 교체와 코로나 확산을 꼽는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이광진이 연루된 공작 사건 조사를 본격화했던 시기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무렵이다. 당시 지휘부에서 간첩 수사에 난감해 하면서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익명을 원한 안보수사 당국 관계자는 "2018년 최근 드러난 간첩 사건의 관련자를 처벌하려고 했지만, 당시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 등을 이유로 수사가 보류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문재인 정부 당시 경찰은 안보수사 인력을 공공안보라는 명칭 아래 탈북민, 마약, 전략물자 반출, 정보통신망법 위반자 수사에만 집중하도록 했다"며 본격 수사에 한계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이러한 정황은 구체적 수치로도 나타난다. 자유민주연구원에 따르면 2011~2016년 26건이었던 간첩 적발 건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2020년에는 3건으로 확 줄어들었다.
여기에 코로나 확산으로 대공 수사망이 집중된 것도 수사 속도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간첩을 직접 내려보내는 이른바 '직파' 비중을 줄이는 대신 중국·동남아 등 제3국에서 공작원의 신분을 세탁해 한국에 입국시켜 한국 내 조직을 포섭하고 복귀하는 수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입국 제한에 국내 잠입 타격”
특히 국내 유입 탈북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탈북자를 활용한 대남공작도 본격화했다. 실제 2000년대 초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조선 도피 주민(탈북자) 속에 우리의 공작 인원을 침투시켜 그들이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다"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코로나 본격화로 각국의 입국 제한이 강화하면서 북한 공작원의 제3국 접촉이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당국의 수사망도 좁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급감한 것은 물론 해외여행까지 제한되면서 북측과 간첩단 간 지령 하달과 보고 확인 과정에서 정체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간첩수사는 통상 내사에만 6~7년이 걸리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며 "전문적인 수사 기법을 통해 협의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장기간 척박한 환경에서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관련 수사 인력들에 대한 지원과 정책 등이 정권 교체 등 정치적 배경과 무관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01.26 적화통일 노리지 않았다, 일심회·왕재산과 다른 'ㅎㄱㅎ' 목표
최근 국가정보원 등 안보 당국이 수사 중인 '제주·창원 북한 간첩단 사건'이 '2006년 일심회 사건'과 '2011년 왕재산 사건'에 맞먹는 대표적 간첩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정부 때 본격화된 대화 국면에서 이뤄졌는데, 이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화해·협력 분위기가 마련된 뒤에도 북한이 남측 진보 인사들을 포섭하는 방식의 대남 공작을 비밀리에 벌여온 것과 유사한 패턴이란 지적이 나온다.
"6·15 이후 최대 간첩"
'일심회' 사건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6년 10월 알려졌다. 당시 검찰은 간첩단을 검거한 뒤 "6·15 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 조직"이라고 칭했다. 당시 북한은 국내 정치권의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와 운동권을 노렸는데, 진보 정당과 노동계 관계자들을 포섭해 국내에 지하 조직을 결성하도록 지시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2021년 기소된 '충북동지회' 사건은 물론, 현재 수사 중인 제주 'ㅎㄱㅎ(한길회)' 사건, 창원 '자주통일 민중전위' 사건과 유사하다.
일심회는 '하나 된 마음으로 한반도 전체의 주체사상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뜻이다. 2002년 1월 북한의 대남 공작 부서인 대외연락부(현 문화교류국)의 지령으로 조직됐는데, 주범인 재미교포 사업가 장모 씨를 주축으로 민주노동당의 최모 씨, 이모 씨 등이 포섭됐다.
검찰에 따르면 일심회 조직원들은 중국 등 제3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기밀을 보고하고 지령과 공작금을 받았다. 당시 일심회가 넘긴 자료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각 정당의 내부 동향 및 정책 방향, 주요 정치인 신상 정보, 대선·총선·지방선거 예측 자료 등이 포함됐다.
법원은 일심회 관련자 5명에게 징역 4년에서 9년까지 중형을 선고했다. 다만 일심회 자체에 대해선 국가보안법상 조직적 결합체에 이르지는 못했다며 '이적 단체'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2021년 8월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한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의 인사 4명이 구속영장심사를 위해 법정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회사 세워 자금 마련도
2011년 7월 적발된 '왕재산 사건'은 총책 김모 씨 등 5명이 1990년대 초반 북한에 포섭돼 20년 가까이 간첩 활동을 한 사건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1993년 8월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직접 만나 지령를 받고 2001년 '왕재산'이란 단체를 결성했다. '왕재산'은 북한이 김 주석의 항일유적지로 선전하고 있는 함경북도 온성의 산(山) 이름이다.
2013년 대법원은 주범인 김씨 등 관련자의 이적 행위에 대해 징역 2년부터 9년을 선고했지만, 왕재산이라는 단체 결성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왕재산 이전의 간첩단이 북한에 재정적으로 의존한 것과 달리, 왕재산은 합법 기업을 직접 설립해 활동자금을 마련했다. 2001년 11월 출판 전문 벤처기업 '코리아콘텐츠랩'을 만들어 '선전 거점책'으로 삼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2002년 6월 IT기업 '지원(志遠)넷'을 세웠다. 총책 김모 씨를 대표로 내세운 지원넷은 북한 225국(현 문화교류국)으로부터 핵심 기술을 지원 받아 ‘주차장용 차량번호 인식시스템’ 등을 개발ㆍ판매해 2009년 기준 약 22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또 수사 결과 이들은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기법을 사용해 북측의 지령을 받고 국내 정세와 군사 정보를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테가노그래피는 비밀 메시지를 그림이나 음악 파일로 위장해 암호화하는 방식이다. 당시 북한 간첩 수사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는데 이후 2013년 민족춤패 '출' 대표 사건, 2021년 충북동지회 사건, 최근 제주·창원 간첩단 사건 등에서 주요 대북 교신 수단으로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간첩단은 국내 여론 분열을 최우선 목적으로 한 사실상 '사이버 조직'으로 진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대북 소식통은 "남측 인사를 포섭해 지하 조직을 결성한다는 기본 수법은 과거와 유사하지만, 과거 대면 접촉 중심 공작에서 최근에는 사이버 드보크(온라인 비밀 무인함), 스태가노그래피 등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간첩 행위의 양상도 과거 적화통일 추진에서 최근에는 남한 내 혼란을 부추기는 활동 중심으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01.26 1년 남은 국정원 대공수사권…간첩수사로 존폐 공방 불붙었다
국가정보원 수사권 폐지를 1년 앞두고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가 활기를 띠면서 내년 1월 1일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전담하게 되는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인사들이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 침투해 북측으로부터 암호문 형태로 받은 지령을 수행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를 포함,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의 사무실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경남 창원, 전북 전주, 제주 등에서는 진보성향 정당의 지역조직에 침투했단 의심을 받는 지하조직 ‘자주통일 민중전위’ ‘ㅎㄱㅎ’에 대한 수사가 한창이다. 국정원은 이들 역시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나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이적 활동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들 사건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 시절 또는 그 이전부터 상당 기간에 걸쳐 정보 수집과 내사가 이뤄졌다. 이에 국민의힘에선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 국정원이 이들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했다는 주장과 함께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재고돼야 마땅하다”(지난 19일,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한해 국정원의 수사권을 복원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던 2020년 12월 국회에서 국정원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2013년), 보위부 직파 간첩 사건(2014년) 등 국정원 주도의 대공 사건들이 줄줄이 법정에서 증거 조작이나 자백 강요에 의한 조작으로 판명난 데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공작이 드러나면서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을 틈탄 ‘개혁’ 드라이브의 결과였다. 다만, 법 개정 당시 안보수사 공백 우려를 고려해 법 시행을 3년 유예하도록 했다. 그 기간 국정원과 경찰은 국장급·실무급 안보수사협의체를 구성해 정기 협의를 이어왔다. 국정원이 진행하던 대공사건도 원칙적으로 경찰과 합동수사를 벌여왔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전국 56개 경찰서에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안보수사팀을 신설해 수사관 131명을 증원했고, 안보수사 전문인력 121명을 추가 채용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공수사는 경찰도 1945년부터 해 오던 분야”라며 “다만, 국정원이 하던 수사를 경찰이 맡게 되는 상황을 대비해 전문교육센터를 열어 고강도로 교육하고, 안보수사에 전문화된 인력을 만들기 위한 인사관리도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이 그동안 축적해 온 대공수사 역량을 경찰이 3년 만에 흡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부쩍 확산됐다. “경찰은 해외 방첩망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과연 제대로 된 대공 수사가 하루아침에 가능할지 의문”(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지적이다. 주요 대공사건은 해외 첩보망과 연계가 필수인데, 경찰이 전담할 경우 이 같은 연계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다. 야당은 “개정 국정원법상 국정원은 수사권만 사라졌지 내사 단계에서 필요한 정보 수집이나 조사 권한은 보유하고 있다. 경찰과 정보 공유만 잘 이뤄지면 문제 될 게 없다”(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김병기 민주당 의원)고 반박한다. 다만, 야당 일각엔 3년이 충분치 않다면 시행 유예기간을 늘리는 방안은 논의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국정원은 지난해 1월 안보범죄 관련 정보공유 체계 구축 구상을 밝힌 뒤, 국정원이 대공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면 경찰이 수사 결과를 국정원에 통보하도록 하는 안보범죄정보공유센터(가칭) 입법안을 제안했다가 최근 보완을 이유로 철회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공수사는 수사의 단서가 고소·고발이 아닌 정보라는 측면에서 국정원의 정보역량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경찰의 수사역량과 연결고리만 만들어진다면 세간의 염려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의 의견도 분분하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과거 국정원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바꾼 법인데, 이를 되돌릴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필요한 범위 내에서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경찰에 제공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검 차장 출신의 임정혁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이사장은 “그간의 폐해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라며 “각 기관의 전문성을 따져 각자 잘하는 수사를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간첩 수사는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아도 10여년 가까이 지켜보기만 하는 끈기가 필요한 분야”라며 “승진 경쟁이 치열해 단기성과에 민감한 경찰이 이런 초장기 수사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준호·이찬규 기자 ha.junho1@joongang.co.kr
01-26 軍 3대 통신망이 먹통이었다니… 지휘 책임 엄히 물어야
지난해 12월 26일 북한 무인기 침투 당시에도 군(軍)의 한심한 대응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그 뒤 진행된 검열 조사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특히 군의 3대 정보전달 시스템이 먹통이었고, 이 때문에 최첨단 장비 대신 유선전화로 뒤늦게 상황을 전파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전방과 지휘부, 각급 부대를 연결하는 통신망이 망가지면 통합 작전 자체가 불가능하며, 전시엔 자멸을 부른다. 이런 참담한 상황은, 실전 같은 훈련은 물론 장비 점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지휘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하는 이유다.
합동참모본부가 실시해 최근 상부에 보고된 검열 결과에 따르면, 전·후방 부대 정보 전파용 긴급 통신망인 방공부대의 고속지령대, 대응 작전 실행을 위한 고속상황전파체계, 실시간으로 북한 도발 정보를 분석·대응하는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가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육군 1군단 예하 방공부대가 지난달 26일 오전 10시19분 군사분계선(MDL)을 향하는 항적을 포착해 6분 후 북한 무인기로 식별했음에도, 지상작전사령관에게는 유선전화로 오전 11시께 전달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이러다 보니 무인기 대응 작전인 ‘두루미’ 발령은 낮 12시쯤 이뤄졌다. 게다가 수도방위사령부는 오전 10시50분 전후 자체 레이더로 비행금지구역(P-73)을 지나가는 무인기를 포착해 대응에 나섰다. 수방사의 방공망 미연결 사실도 이번에 확인되어 이달 초 연결됐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안보 자해 탓이 크지만, 더 이상 그런 핑계를 대선 안 된다. 야당 의원이 용산 일대 비행금지구역 침범 가능성을 제기했을 때, 이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등의 행태를 보인 현 지휘부도 미덥지 않다. 군 당국은 지금도 지휘 책임을 어디까지 어떻게 물을지 고심 중이라고 한다. 군 기강을 바로 세우고 강한 전투형 군대로 개조하려면 충격적 처방이 불가피하다. 읍참마속 없이 부하에게만 실질적 책임을 떠넘기는 군대에 미래가 있겠는가.
문화일보 사설
01-26 간첩 더 활개 치게 놔두는 사법부 일각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새해 벽두부터 이른바 제주간첩단에 이어 민노총에 침투한 북한 간첩망에 대한 수사로 나라가 뒤숭숭하다. 안보수사 당국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제주간첩단이 경남권(창원·진주), 호남권(전주), 수도권(서울) 등에 포치(布置)된 전국 규모 간첩단의 지역조직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또한, 124만 명의 노동자가 가입한 민노총까지 장악하려는 북한의 음모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현역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현직 당시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 회합했다는 전직 국가정보원 고위 관계자의 증언까지 보도돼 북한과 연계된 간첩망 수사가 정치권 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적발된 이른바 목사 간첩 사건, 2016년 일명 PC방 간첩 사건, 2021년 청주간첩단(자주통일 충북동지회)과 최근의 제주간첩단(ㅎㄱㅎ) 및 민노총 침투 북한 지하망 사건 등은 하나같이 북한에 포섭된 자들이 수차례 해외에 나가 북한 공작원을 만나고 돌아와 조직을 구축하여 암약해 왔음이 드러났다. 이들은 겉으로는 양심적인 민주화운동 세력인 듯 행세했지만, 뒤로는 북한 지령에 따라 반정부·반보수·반미투쟁과 김정은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등 북한 대남혁명 전위대 노릇을 해 왔다. 이들은 자유 대한민국의 악성 암세포이자 반국가 이적(利敵) 활동자들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간첩 혐의자들이 얼마나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며 조롱하는지 확인시켜 준다. 2017년 명백한 간첩 혐의를 포착하고도 북한을 의식한 권력 때문에 2021년에야 사법처리에 나선 청주간첩단이 대표적인 사례다. 2차례에 걸친 영장기각 사태까지 극복하고 관련자들을 구속 기소했으나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1심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1심 판결이 언제 끝날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이 와중에 구속기간 만료와 보석(保釋)으로 모두 풀려나 청주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 4명이 모두 지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심지어 간첩 사건 피고인들은 국정원장, 경찰청장, 청주지법원장, 청주지검장을 비롯해 영장을 신청한 검사와 발부한 판사 및 안보수사관 35명을 공수처에 직권남용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또한, 간첩 사건 관련자들은 집회 등을 통해 ‘공안몰이’ ‘정권위기 탈출용 간첩단사건 조작’ 운운하며 저항한다. 간첩 혐의자가 설치는 이 상황이 대공 전선의 현주소다.
지금 안보수사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안보수사관들은 간첩 혐의자들의 상투적인 저항과 ‘권력의 벽’ 및 ‘정치권의 저항’을 넘어 이젠 ‘재판의 벽’을 넘어야 하는 지경이다. 어찌 보면 간첩과의 전쟁은 실제 재판과의 싸움이라 할 정도로 대한민국 형사법 체계의 허점을 역이용하며 피고 측의 교묘한 재판 지연 전술 등으로 사법처리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간첩들이 활동하기 좋은 토양을 우리 내부에서 제공하는 셈이다.
일련의 간첩단 사건은 ‘아직도 간첩이 있느냐’는 사회 일각의 질문에 명백한 답을 줬다. 김씨 정권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대남혁명의 전위 특공대 격인 간첩 공작을 더욱 정교히 강화할 것이다. 이젠 간첩들이 활개 치기 좋은 사법 체계를 전면 정비해야 한다. 대공 억지력인 경찰의 안보수사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유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일보
01.27 [단독] 北, 창원 자통에 암호지령 “민노총 플랜트위원장 접촉하라”
방첩당국, 암호 해독중
간첩단 혐의를 받고 있는 경남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가 북한으로부터 ‘전국플랜트건설 노조위원장 A씨를 접촉하라’는 지령을 받은 단서가 방첩 당국에 포착된 것으로 26일 전해졌다. 방첩 당국은 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회합·통신)를 받는 민노총 조직국장 B씨가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이후, 민노총 산하 전국민주일반노조연맹 실장 C씨를 접촉한 정황도 확보해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가운데 A씨는 현재 노조 간부직을 그만둔 상태다. 이번 수사는 최근 압수 수색을 한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간부뿐 아니라 민노총 산하 다른 조직의 주요 간부들로 확대되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자통 활동을 한 4명은 북측 공작금 7000달러를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2016~2019년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북한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과 신원을 알 수 없는 북한 공작원 2~3명을 접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자통은 ‘전국플랜트건설 노조위원장 A씨를 접촉하라’는 지령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령문에는 암호화된 접촉 대상자가 여러 명 있었는데 그중 실명(實名)은 A씨가 유일했다고 한다. 당국은 이 암호를 해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노총 산하 플랜트건설 노조는 2007년 울산에서 출범했으며, A씨는 2012년 불법 집회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와 별개로 방첩 당국은 2016~2020년 문화교류국 소속 리광진 등 북한 공작원을 캄보디아·베트남·중국 등에서 접촉한 민노총 조직국장 B씨 등의 행적을 추적 중이다. 방첩 당국은 주도적 역할을 해 온 B씨가 당시 민노총 산하 민주일반연맹 실장 C씨와 북한 지령과 관련된 연락을 주고받은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일반연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근로자를 대변하는 노조로 알려져 있다.
C씨는 2020년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C씨는 북한 문화교류국장을 지낸 북한 공작원 윤동철과 리광진 등에게 지령을 받는 등의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징역 3년형이 확정된 김모 목사와 함께 친북 활동을 했다고 한다.
한편, 방첩 당국은 최근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집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인사는 지난 18일 방첩 당국이 민노총 본부 등 전국 10여 곳을 압수 수색할 당시 압수 수색을 피해 잠적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01-27 간첩망으로 南 분열 노리는 北 전략
신상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장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이 해외에서 북한 대남 공작원들로부터 충성서약과 간첩교육을 받고 이적 행위를 했다는 문화일보의 최근 보도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또 다른 지하간첩단은 경남 창원·진주와 제주 등지에서 정치권과 노동계에 침투해 사회 갈등 조장과 민심 분열, 대정부 투쟁 획책 등 조직적인 간첩 활동이 드러나 당국이 수사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정황으로 볼 때 드러난 것 말고도 ‘간첩들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인사들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공작금을 뿌리며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을 것이란 개연성과 우려’가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이런 뉴스를 접하는 대다수 국민은 무덤덤해 보인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 조직들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질서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데도 마치 ‘먼 나라, 다른 나라의 일’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념이나 체제, 정치발전이나 경제성장, 국가 기반시설 등 전반에 걸쳐 북한은 우리에게 경쟁 대상이 되지 못한 지 오래다. 또, 우리는 법과 제도가 잘 정비돼 있고 국민 대다수의 총체적인 수준과 성숙도도 매우 높다. 그래서 지하간첩망 뉴스에 놀라지 않고 무덤덤하게 일상생활에 충실해도 별문제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는 달라야 한다. 조금의 안일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각종 중장거리 미사일로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위협한다. 그뿐만 아니라, 핵무력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불바다로 몰아넣겠다고 협박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 곳곳에 사상적으로 침투해 온갖 혼란과 사회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데 지하 간첩 조직을 적발해 일망타진해야 하는 국가정보원의 조직과 체계는 지난 몇 년 동안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해체되다시피 했다. 나아가 내년부터는 간첩 수사를 국정원이 아닌 경찰이 하도록 법을 개정해 놔서 대공수사에 심각한 공백마저 우려된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또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K-컬처라는 세계적인 문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에서 70여 년 전 해방 당시의 좌우 분열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나 있을 법한 불순한 선전선동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중고생촛불연대’라는 조직은 지자체 지원금을 받아 엉뚱하게도 젊은이들에게 북한 정권을 미화하는 교육과 반정부 투쟁을 선동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단 조직이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암약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들은 공공연히 △민주노총에 침투하여 세력 장악 및 영향력 확대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및 교란 △반미 투쟁 선동 등에 앞장서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이번 지하간첩단 조직 적발을 계기로 더는 북한의 이중성과 입에 발린 말들을 ‘우리민족끼리’ 같은 선의로 해석하는 어리석은 행태를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전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화통일 야욕은 3대 세습에도 더 강해지고 있다. 앞에서는 핵·미사일로 위협하고, 뒤에서는 간첩망을 전국적으로 구축해 사회 혼란과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다. 전 국민적인 ‘북한 바로 알기’가 절실하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신적 각오와 공산주의에 대한 물리적 대비태세도 다시 갖춰야 한다. 간첩들이 발붙일 숙주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문화일보
01.27 북한 무인기에 당한 군의 안이함과 무책임의 끝은 어딘가
합참, 3대 정보 전파·공유 시스템 ‘먹통’ 확인
장성도 예외 없이 엄정 문책해 군 기강 세워야
북한 무인기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수도 서울의 상공을 휘젓고 다닌 과정에서 우리 군이 보여준 안이함과 무책임한 행태가 양파 껍질 벗기듯 끝없이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이렇게 군 기강이 해이해지고 대응 역량이 부실한 군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불안하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12월 26일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침투해 그중 1대가 서울 상공을 정찰하고 유유히 돌아간 사건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당시 우리 군은 무인기를 제대로 요격도, 격추도 하지 못했고 KA-1 경공격기가 비상 출동 와중에 추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합동참모본부 전비검열실이 최근까지 무인기 대응 실태를 총체적으로 점검했으나 그 결과가 더욱 충격적이다. 어제 국회 국방위에 보고된 내용을 보면 무인기 대응을 위한 우리 군의 3대 정보 전파·공유 시스템이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북한의 도발 상황을 전후방 각급 부대 지휘관들에게 즉각 전파하는 긴급통신망인 방공부대의 고속지령대, 대응 작전 실행을 위한 상황 전파망인 고속상황전파체계, 북한 도발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대응하는 통합정보처리체계(MIMS)까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북한 무인기에 철저하게 농락당한 것이 이상일 게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그동안 북한군 노크 귀순(2012년), 삼척항 북한 목선 입항 사건(2019년) 등 북한의 도발이나 침투에 번번이 구멍뚫릴 때마다 국방부와 군은 디지털 역량 강화를 외쳤고, 그때마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무인기 도발 상황에서 드러난 것처럼 첨단 디지털 장비나 시스템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뒤늦게 사람이 유선전화로 상황을 전파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멀쩡한 고속도로를 놔두고 시골길을 달렸다는 황당한 변명과 다르지 않다.
전비 검열 이후 국방부와 군 일각에서 “지휘관 징계는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논리로 장성급 문책을 미적거린다니 이 와중에도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닌가. 초기 상황 판단 잘못과 늑장 보고 및 전파 부실 책임을 영관급 장교 등 실무자 몇 명을 문책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최전방 1군단장, 수도방위사령관, 공군작전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은 물론 김승겸 합참의장까지 이번 사태에 대한 총괄적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문재인 정부 5년간 제대로 된 훈련이 부족했고, ‘평화 타령’만 하는 와중에 군의 기강과 사기가 저하된 정치적 요인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덮어서는 안 된다. 신상필벌의 원칙을 다시 세워 국민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해 줄 군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1.27 [단독]민노총 간부 출신이 ‘간첩목사’ 공범…“제주 장악하려 했다”
국가정보원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내 간첩 조직의 총책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조직국장 A씨가 연락을 주고받아온 또 다른 민노총 간부 출신 B씨가 과거 ‘간첩 목사’ 사건의 공범이었던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국정원은 2015년 간첩 목사 사건과 현재 수사중인 민노총 간부 간첩 사건, 제주 'ㅎㄱㅎ' 간첩 사건 등이 모두 인적으로 연결돼 있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8일 민노총 본부를 포함해 전·직 간부의 사무실 10여 곳을 압수수색하면서 A씨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공작금을 받은 전력이 있는 B씨와 지난해 10~11월 9차례에 걸쳐 통화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압수수색영장에 적시했다. B씨는 2010년대 초반부터 민노총 민주일반연맹 정책실장·사무처장, 전국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 등을 지낸 민노총 간부 출신이다. B씨는 2015년 4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한 노동당 산하 대남 공작기구 225국(문화교류국 전신)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전달받고 활동비 명목으로 1만8900달러를 받은 혐의로 2021년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B씨에 대한 공소장에 따르면, B씨는 ‘목사 간첩’ 사건의 주범 김모씨의 지시로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 김씨는 2011년 4월 중국 다롄, 2012년 5월 베트남 호치민에서문화교류국 소속 이광진 등 공작원을 만나 북한의 지령을 받고 정세보고를 하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15년 12월 기소돼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B씨는 2015년 3월 서울 송파구와 서울 종로구의 모처에서 김씨를 만나 접선 일정, 주요 질문 내용과 답변 요령, 공항 세관 예상 답변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B씨는 귀국 길에 활동비로 받은 달러가 세관 단속에 걸리자 “카지노에서 돈을 땄다”라며 김씨와 미리 준비한대로 답했다. 검찰과 국정원은 2015년 목사 간첩 사건을 수사하면서 B씨의 공범 여부도 파악했지만, 추가 증거 확보를 거친 후 2021년에야 기소했다.
국정원은 A씨의 거주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에서 “(북한이)A씨 등 장기간에 걸쳐 민노총에서 주요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을 포섭해 장기간 활용한 사실이 확인됐다”라고 적시했다. 목사 간첩 사건서부터 이어진 민노총 간부의 대공 용의점에 대해 추적을 해온 것이다. A씨와 B씨는 민노총 주관 워크숍과 토론회 등에 함께 참석하고 이주노동자희망센터 활동 등을 함께 하면서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왔다.
▲당국이 의심하는 북한 문화교류국과 ‘ㅎㄱㅎ’ 간 교신·지령 내용 그래픽 이미지.
A씨는 B씨 뿐만 아니라 민노총 금속노조 간부 출신으로 제주 평화쉼터 대표를 지낸 C씨와도 교류를 이어왔다고 국정원은 의심하고 있다. C씨는 2017년 9월 말레이시아 프놈펜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며 교신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국정원은 지난 18일 C씨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 했다.
국정원은 C씨가 진보정당 소속으로 ‘ㅎㄱㅎ’로 알려진 제주의 지하조직 조성 의혹을 받는 D씨와 연락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에 있다. 국정원은 북한이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D씨를 포함한 ’ㅎㄱㅎ’ 일당이 민노총 제주본부를 거점 삼아 진보진영 인사들의 지방의회 진출을 모색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C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A씨를 알고 지내며 연락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C씨는 “지난해 12월 이주노동센터를 통해 방글라데시에 송금할 일이 있어서 A씨와 메신저로 연락했다. 송금 관련 대화한 내용이 다 기록에 남아있다”라며 “국정원에서 휴대전화 가져갔는데, 특이점이 없다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C씨는 또 D씨와의 관계에 대해 “쉼터 숙소 이용으로 연락을 한 적이 있지만, 일반적인 예약 문의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자 기록이 남아있다”라고 반박했다.
이창훈·허정원·오효정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01-28 국정원·경찰, 창원 간첩단 4명 체포영장 집행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창원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연루자 4명을 체포했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28일 “자주통일 민중전위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인원들에 대해 체포영장이 오전에 집행됐다”고 밝혔다.
이날 수사당국에 체포된 인원은 김모 전 경남진보연합 조직위원장, 성모 경남진보연합 정책위원장, 정모 경남진보연합 교육국장, 황모 통일촌 회원 등 총 4명으로 알려졌다.
자주통일 민중전위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2016년경부터 창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반정부단체다.
경남 지역 진보단체에서 활동해 온 이들은 캄보디아 베트남 등 복수의 동남아 국가에서 북한 관련 인사들을 접촉하고 지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과 경찰은 해당 단체가 전국 단위로 활동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
01.30 “폼 잡는 게 장군이 아니다”라는 합참의장의 경고

▲김승겸 합동의장이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김승겸 합참의장이 지난 27일 전군 작전지휘관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기 조직을 훈련시키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없다는 것”이라며 “동기부여가 안 보인다”고 했다. 이어 “높으신 분들 앉아 가지고 팔짱 끼고, 가장 많은 일들을 해야 할 분들이 거룩하신 말씀만 하면…”이라며 “폼 잡는 게 장군이 아니다. 폼 잡고 싶으면 (훈련) 다 해놓고 잡으라”고 했다. 합참의장이 작심하고 쓴소리를 쏟아낸 것은 문재인 정부 5년간 만성이 된 우리 군의 훈련 부족과 대비태세 약화가 최근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사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이 공개한 검열 결과를 보면, 그동안 우리 군은 북 무인기 위협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합참이 통제하는 육군·공군의 실질적 합동훈련이 전무했다. 가끔씩 실시하는 훈련은 육군 따로, 공군 따로였다. 그나마도 북 무인기보다 몇 배 큰 헬리콥터를 가상 적기로 동원했고, 심지어 헬기의 항적을 사전에 공지해줬다고 한다. 답안을 미리 알려주고 시험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 무인기의 영공 침범이 처음 위협으로 대두한 게 2014년이다. 실전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엉터리 훈련을 8년간 되풀이하면서 아무도 고칠 생각을 안 한 것이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유사시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며 북한 입맛에 따라 각종 훈련을 대폭 축소해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었다. 훈련은 뒷전이고 정권 코드에 맞춰 대화·평화를 강조하는 군인들이 출세했고, 야전이 아니라 남북 회담을 열심히 한 간부가 사단장 경험도 없이 군단장으로 진급했다. 전·후방을 막론하고 야전 지휘관들 사이에선 “훈련보다는 안전”이란 의식이 뿌리내렸다. 이번 무인기 사태는 우리 군의 훈련 부족 실상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실질적 훈련을 통해 해이해진 군 기강을 세우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1.30 국가 방첩기능 정상화, 어떻게 할 것인가
북 감시해야할 국정원이
협상창구까지 겸하니
방첩 임무 작동하기 어려워
미·영·이스라엘처럼
해외 정보와 국내 방첩
별도 기관으로 독립해야
스파이 활동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긴데, 그 절정기는 20세기 냉전시대였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서독 정부가 동독 정보기관 내부 자료를 통해 파악한 동독 고정간첩은 약 3만명이었는데, 서독 정보기관 수뇌부까지 침투해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남베트남에 침투한 공산 간첩이 3만~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으나, 1975년 공산화 이후 드러난 간첩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대통령의 최측근 특보와 지지율 2위의 야당 대통령 후보도 고정간첩으로 밝혀졌다. 황장엽씨 등 고위급 탈북 망명자들이 말하는 한국 내 북한 고정간첩 규모도 분단 시대의 독일, 베트남과 유사한 수만명 수준이다.
이 스파이들 중 가장 치명적인 건 권력 핵심부와 정보기관에 침투한 스파이다. 냉전 시대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파이 사건이 두 건 있었다. 첫째 사건은 1970년대 동서독 교류의 문을 연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측근 비서관 귄터 기욤 사건이다. 그는 1956년 동독 첩보 기관 슈타지 요원으로 서독 정계에 잠입해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다 1973년 브란트 총리의 비서관이 되었는데, 그가 18년 전 동독 정보국과 교신한 암호 통신 3건을 추적하던 서독 방첩기관에 1974년 체포되었고 그 여파로 브란트 총리가 사임했다.
둘째 사건은 영국 정보부의 ‘케임브리지 5인방’ 사건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영국 청년 5명이 1933년 그들의 이념적 조국이던 소련에 자발적 충성 서약을 하고 1951년과 1963년 발각될 때까지 소련 KGB를 위해 일한 사건이다. 귀족 사회 출신인 그들은 KGB 권유로 영국 해외정보국 MI6, 방첩 기관 MI5, 외교부 등에 취업해 방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중 대표 주자였던 킴 필비는 MI6의 소련‧동유럽 담당 총책임자로서 MI6 수장 후보에도 오른 인물이었는데, 하마터면 북한 간첩이 국정원장에 취임하는 것 같은 재앙이 일어날 뻔했다. 다행히 KGB의 영국 정보기관 내 침투 공작을 추적하던 미국 CIA에 포착돼 최악 상황은 면했지만, 이 사건으로 영국 정보기관의 신뢰도는 폭락했다.
이런 사례는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며, 방첩기능이 정상 작동한다면 언젠가 한국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수만에 이른다는 이 땅의 북한 스파이들을 잊은 듯 장기간 침묵하던 국정원 대공 수사 라인이 연초부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5년 전에 단서를 잡았다는 수사가 왜 이제야 이루어지는 건지, 왜 새 정부가 출범하고도 8개월이나 시간이 필요했는지 궁금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지휘부가 남북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구실로 추가 수사를 막았다는데, 그 역시 그간 다들 상상해 온 바와 다르지 않다.
그러한 국정원 방첩기능 약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근본적 조치가 없는 한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다. 지난 20여 년간 국정원은 대북 감시‧견제라는 본연의 임무와 상충되는 대북 협상 창구 역할을 겸임해 왔다. 대북 방첩기관의 수장이 정권적 이해가 걸린 남북 회담 주선에 매달리고 북한 지도자 앞에 황망히 허리 굽혀 절하고 대북 특사단으로 나가 북한 수뇌부의 환심을 사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휘하 방첩조직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북한의 환심을 사야 하는 임무와 북한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임무를 같은 조직에서 같은 수장이 통제하는 체제에선 두 임무 중 하나가 희생될 수밖에 없기에, 방첩임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근본적 해결책은 둘 중 하나다. 첫째는 국정원이 대북 정보와 방첩에만 전념하고 모든 대북 교신과 협상에서 손을 떼는 방안이다. 둘째는 차제에 방첩 및 대간첩 수사 기능을 선진국들처럼 별도 기관으로 분리 독립시키는 방안이다. 긴 세월 정보 전쟁을 겪은 정보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해외 정보와 국내 방첩을 별개 정보기관에서 관할한다. 영국 MI6와 MI5, 미국 CIA와 FBI, 이스라엘 모사드와 신베트, 러시아 SVR과 FSB가 대표적이며, 독일, 프랑스, 호주도 마찬가지다. 그런 양두 체제로 전문성과 상호 보완성을 추구하면서 조직 내 스파이 침투에 대한 상호 감시도 구현하고 있다. 이참에 한국 내 여러 방첩조직을 총망라하는 강력한 독립 방첩기관을 창설한다면, 대공 수사권을 둘러싼 논란의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대사
01-30 “적극적 대북 심리전 펼 때” DJ정부 통일장관의 충언
김대중(DJ)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강인덕(91) 전 장관이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북한 세습체제의 본질을 규탄해 주민의 저항의식을 배양해줘야 한다”며 “적극적인 대북 심리전을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북 방송 및 전단 등이 우리의 강력한 비대칭 전략자산이라고도 했다.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던 주장이지만, 회고록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에 담긴 내용은 일평생 북한 분석에 헌신해온 전문가이자 노(老)애국자의 마지막 충언이라 무게감이 다르다.
평양에서 태어난 강 전 장관은 중앙정보부 창설에 참가해 해외정보국장·북한정보국장·심리전국장을 지낸 전문가다. DJ는 북한의 실체에 밝은 보수주의자인 그가 햇볕정책 추진의 적임자라고 판단해 발탁했다. 그는 KBS의 대북 방송 프로그램을 18년간 진행한 대북 심리전 최고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웅평 씨가 그의 방송을 듣고 미그-19 전투기를 몰고 귀순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북한은 지난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한국 영화나 책 유포를 불법화한 데 이어 문재인 정부엔 대북 전단금지법 제정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북한의 퇴행적 행태는 자유로운 정보 유통이 체제를 위협하는 비수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통일부 업무보고 때 북한 주민에 실상을 알릴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도발로 휴지 조각이 된 ‘판문점선언’에 구애되지 말고 대북 확성기 방송, 전단 살포 등을 재개해야 한다. 강 전 장관의 제언대로 북과 싸움엔 힘으로 대응해 나가면서 대북 심리전을 전면 확대하는 것이 평화로운 통일의 길이다.
문화일보 사설
01-30 ‘핵에는 핵’ 여론 압도적…美 핵공유엔 “글쎄”, 中 역할론은 “못믿어”

▲한-나토 안보연대 러시아와 북한 간 이른바 ‘북·러 연대’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29일 오후 박진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을 방문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북한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갤럽 ‘북핵안보 인식’ 조사
北핵무력 법제화 등 위협 확대속
‘공포의 균형 필요’ 주장 힘실려
‘美, 유사시 핵사용’ 절반만 신뢰
中의 北압박 가능성에도 회의적
‘사드배치’ 찬 51% - 반 18.9%

한국 국민 대다수가 북핵 대응을 위해 자체 핵 보유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여론조사가 잇달아 나오는 것은 북한의 남측 핵 선제공격 공언 등으로 핵 위협 체감이 높아지면서 ‘공포의 균형’을 통해 북핵을 억제해야 한다는 판단이 높아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북한이 미 본토 핵 공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화 단계에 들어간 상황에 미국이 서울을 위해 워싱턴DC와 뉴욕을 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한국과 미국이 구체적인 확장억제 전략 공유를 위한 협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최종현학술원(원장 박인국)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대1 면접조사(2022년 11월 28일∼12월 16일) 결과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의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국의 독자적 핵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6.6%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에 독자적인 핵 능력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2.4%가 ‘그렇다’고 답했다. 북한이 지난해 9월 핵무력 법제화 선언에 이어 대남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공언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공포의 균형’ 필요성을 점차 인식해 나가는 흐름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 중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핵 자체 무장론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자체 핵무장론에는 미국 확장억제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이번 조사에서 ‘미국이 자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을 무릅쓰고 한반도 유사시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51.3%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 48.7%와 거의 비슷했다. 한·미 간에 구체적인 확장억제 공유 방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론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민 상당수가 중국이 북한 비핵화는 물론 한반도 통일에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 평가했다.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55.1%가 ‘방해가 될 것’이라고 해 ‘도움이 될 것’(10.2%)이라는 응답을 웃돌았다. 이는 중국이 북한 핵·미사일 도발을 싸고돌고, 대북 제재에 구멍을 내오면서 불신이 높아진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 중국이 경제 보복 빌미로 삼았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찬성’(51.0%)이 ‘반대’(18.9%)를 크게 웃돌았다.
김유진·조재연 기자 klu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