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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culture 01/ 세계의 문명 발상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도시 베스트 10 -世界의 王들이 살고 있는 집 - 세계의 궁전 - 세계의 성

상림은내고향 2023. 1. 13. 20:16

●World culture 01/

■세계의 문명 발상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도시 베스트 10

1. 로마(Roma)
기원전 8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대제국의 수도.

 

2. 아테네(Athens)
기원전 5세기경 에게 해 도시국가의 리더로 자리 잡아 민주주의, 철학, 올림픽 등 인류 정신문명의 발전을 이끈 곳.

 

3.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Istanbul)
4
15세기 비잔틴제국의 수도로 서로마 멸망 이후 세계 최고 도시였다.

 

4. 바빌론(Babylon)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지금의 이라크에 위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기원전 6세기 전후)이 특히 유명하다.

 

5. 쿠스코(Cuzco/Cusco)
15, 16
세기 잉카제국의 수도로 페루 안데스 산맥의 계곡 안에 있다.

 

6.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15, 16
세기 아스테카왕국의 수도

 

7. 테베(Thebes)
이집트 나일 강 하류, 왕들의 계곡이 있는 도시.

 

8.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
짐바브웨에 있는 거대한 돌의 도시.

 

9. 시안(西安)
고대부터 당나라까지 1000여 년간 중국의 수도였던 곳.

 

10. 카호키아(Cahokia)
12
18세기 미국 미시시피 강의 인디언들이 생활했던 둔덕(높이 30m) 형태의 주거지역

 

◇잉카제국

http://www.youtube.com/watch?v=XdSLlcY2uIw&feature=player_embedded -  마츄픽추

 

■世界의 王들이 살고 있는 집

세계 각국의 왕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요?

동양과 서양 그리고 아프리카대륙의 문화가 비교되는 흥미로운 그들의 저택을 소개 합니다.

 

◆Hans-Adam II Prince of Liechtenstein

 

◆Bhumibol Adulyadej King of Thailand

 

 

◆Abdullah Bin Abdul Aziz Al Saud King of Saudi Arabia

 

 

◆Haji Hassanal Bolkiah Sultan of Brunei

 

 

◆Sheikh Hamad Bin Khalifa Al Thani Emir of Qatar

 

 

◆Mohammed VI King of Morroco

 

 

◆Albert II Prince of Monaco

 

 

◆Qaboos Bin Said Sultan of Oman 

 

 

■세계의 궁전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그라나다 한가운데 솟은 고원에 세워진 궁전은 나스르 왕조를 창시한 이븐 아마르와 후계자들이 집권한1238~1358년에 대부분 건설되었다.궁전의 화려한 내부장식들은 유수프 1(1354 죽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데, 1492 무어인들이 축출된 대부분의 내부장식이 없어졌으며 가구들은 파괴되거나 철거되었다.

 

 

 

 

 

 

 

 

 

 

 

 

 

 

 

 

 

 

 

 

 

 

 

 

 

 

 

◆중국

▲부다라궁- 시짱(서장 티베트)자치구 라싸시 마부르 산에 위치, 세계 최고의 해발에 위치한 성 궁 사찰이 한 곳에 있는 웅장한 고대 궁보 건축물

 

 

 

 

 

 

 

 

 

 

 

 

 

 

 

 

 

 

◆터키 

◇이스탄불 돌체 바흐체 궁전

돌체 바흐체 궁전은 제31대 술탄 "압뒬 메시드"가 아시아쪽에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 유럽풍의 석조 궁전을 짓도록 명령하였고 1843~1856에 궁전이 완료되자 톱카프 궁전에서 이곳으로 옮겨 옵니다.

 

그러나 궁전을 짓고 나서 60년 후 오스만 터키 제국은 몰락하고 1922년 터키공화국 시절에는 케말 파샤의 대통령궁 으로 사용하다가 1938년 케말파샤 서거후 박물관이 되었지요

 

 

 

 

 

 

 

 

 

 

 

 

 

 

 

 

◇이스탄불 톰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은 파티 술탄 메흐멧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이후에 지은 궁전이며 톱-은 대포, 카프는 문이라는 뜻으로, 여기에 설치되어 있던 두 문의 대포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후 19세기에 이르기까지 400년 동안 오스만제국의 술탄들이 여기에서 생활하였고,오스만제국의 400년을 함께한 이 궁전은 대제국의 궁전답게 골든혼, 마르마라해, 보스포러스 해협이 모두 보이는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톱카프 궁전은 4개의 정원과 3개의 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제1정원은 개방공간, 제2정원은 국가행사를 치르던 공간, 제3정원은 술탄의 알현실 제4정원은 술탄과 가족의 개인공간으로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위용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박하며 검소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

 

■세계의  城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알프스 雪景 속 마법의 城  Neuschwanstein in Bayern

▲독일 퓌센의 슈반가우 숲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성.

 

  독일 남동부에 있는 도시 퓌센에는 월트디즈니가 디즈니랜드성()을 지을 때 모델로 삼았다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있다. 퓌센 동쪽 끝자락, 슈반가우 숲속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성 주변에는 동양의 예술작품을 많이 보관한 호엔슈반가우성과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알프제 호수도 함께 자리 잡고 있다.
 
  1869
년에 짓기 시작한 노이슈반슈타인성은 1886년에 성 건축을 주도하던 루트비히 2세가 죽으면서 공사를 중단, 지금까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겨울철의 슈반가우 숲은 마차와 도보로만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눈이 쌓인다. 알프스 산맥과 알프제 호()의 설경을 배경으로, 동화 속 성의 모습 그대로 서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성과 호엔슈반가우성을 만나보자.


▲노이슈반슈타인성의 부엌.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식당 겸 주방. 연기가 바닥으로 배출되는 특이한 구조라고 한다

 

▲노이슈반슈타인성 내부. 성을 지은 루트비히 2세는 음악과 건축에 심취했다고 한다. 지금도 1년에 한 차례 정도,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독일 남동부의 도시 퓌센에 위치한 호엔슈반가우성.

 

▲호엔슈반가우와 노이슈반슈타인, 두 성을 보러온 관광객들과 슈반가우 숲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호엔슈반가우와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있는 슈반가우 숲의 버스 정거장. 겨울에는 숲속에 많은 눈이 쌓여, 성이 있는 숲 안쪽까지는 버스가 운행되지 않는다.

 

▲호엔슈반가우성의 내부. 동양적인 내부 디자인이 특이하다.

 

▲벽화가 그려진 호엔슈반가우성의 노란색 외벽.

 

▲노이슈반슈타인성

 

바그너는 이렇게 말했다. “불후의 걸작이 태어났다! 산꼭대기에 있는 성이여.

 

디즈니영화사의 로고로 등장하는 성의 모델은 두 개라고 알려져 있다. 디즈니의 영화 〈백설공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에스파냐 세고비아의 알카사르(Alcazar)성과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새 백조바위)성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광기의 왕’, ‘공상의 왕’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루트비히 2(Ludwig , 1845~1886)가 독일의 전설에 등장하는 곳을 충실하게 옮겨놓은 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기만 해도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만든다. 노이슈반슈타인은 다른 유명한 성이나 궁전과는 달리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주 루트비히 2세와 소수 측근들의 개인적인 용도로 지어졌다.


루트비히는 왕세자 시절인 일곱 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집짓기 블록을 선물 받고 나서부터 집이나 성 · 교회를 만드는 데 취미를 붙였다. 평생 건축에 대해 가졌던 열정은 이렇게 하여 그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의 건축에 대한 열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1832년 아버지 막시밀리안 2(Maximilian II, 1811~1864)는 옛날부터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을 둘러싼 설화가 전해지는 폐허의 요새 호엔슈방가우성을 사들여 ‘도이치 방식’, 즉 중세 양식의 네오고딕으로 고치게 했다. 호엔슈방가우성은 탄호이저가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밤을 지냈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백조의 성’이라고 불렸는데 막시밀리안 2세는 성 내부에 그 전설들을 그리도록 했다.

 

▲루트비히가 성장했던 호엔슈방가우성

그는 이 성 맞은편 언덕에 자신이 꿈꾸던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건설한다

 

▲루트비히와 교류하며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줬던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

 

루트비히는 이 성에서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와 함께 피아노를 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의 피아노가 이 성에 아직도 전시되어 있다. 루트비히는 장성한 후에도 바그너와 죽이 잘 맞았다.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기초로 하여 오페라 〈로엔그린〉과 〈탄호이저〉 등을 만들었는데 그것이야말로 루트비히가 원하는 작품이었다. 루트비히는 바그너의 작품에 나오는 전설을 표현하는 건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금빛의 호엔슈방가우성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게르만인들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1960
년 루트비히는 바르트부르크성을 보고 큰 감명을 받고는 적어도 바르트부르크성과 같은 성을 지어야만 로엔그린 · 파르지팔 · 지크프리트 · 트리스탄 · 탄호이저 같은 독일 신화의 주인공들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성을 짓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다짐했다. 그의 다짐을 실현하는 순간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1862년 열여덟 살 루트비히가 바이에른의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

 

그는 정치가보다 예술가에 가까운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바그너의 음악과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 심취한 그는 그에 어울리는 전설의 무대를 직접 만들고자 했다.

 

먼저 뮌헨 왕궁의 자신의 거처로 가는 통로에다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등장하는 30장면을 벽화로 치장하게 했다. 이어서 자신의 거처를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미고 연회실 건물 지붕과 겨울 정원도 새로 꾸몄다. 또한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의 프티 트리아농을 닮은 작은 궁전을 오버아머가우에 세웠고 치엠호수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베르사유궁전과 같은 궁을 짓도록 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현관홀과 벽화

 

루트비히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짓기 전부터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 빠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등장하는 장면을 벽화에 담아 뮌헨의 왕궁을 장식했다.

 

루트비히 2세는 당시 파산해 피신하고 있던 바그너를 뮌헨으로 불러 자신의 구상을 이야기했다. 바그너는 루트비히 2세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뮌헨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바그너 축제극장’을 건설하고 싶다고 루트비히 2세에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를 워낙 총애한 나머지 국고를 낭비하고 바그너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국민들과 궁정 관리들은 바그너를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루트비히 2세는 1865년 바그너에게 바이에른을 떠나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를 쫓아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비관하면서 자살과 퇴위를 생각하다가 호엔슈방가우 지역을 떠올리고는 생기를 되찾았다. 호엔슈방가우 맞은편에 바르트부르크성과 같은 성을 건설해 독일의 신화를 모두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인 노이슈반슈타인성이 탄생하게 되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접경지대인 바이에른주 남쪽 알프스의 산자락에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서쪽 발코니에 서면 바이에른의 산과 호수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호엔슈방가우 건너편에 바르트부르크성과 똑같은 성을 지으려던 그의 계획은 수정되어야 했다. 건축 예정지가 바르트부르크성과 똑같은 여건이 아니고 지형이 워낙 험했기 때문에 그곳에 똑같은 형태의 성을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노이슈반스타인의 원래 스케치는 1868년 뮌헨 궁정극장의 무대 디자이너 크리스티안 양크가 했다. 루트비히 2세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았던 건축가 에두아르트 리델은 이 스케치를 건축에 알맞은 환상적인 설계도로 그려 내놓았다. 루트비히 2세는 그가 보여준 설계도를 보고 몽상적으로 말했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고 싶지 않네. 그냥 그 광경만 보게 해주게.

1868
년 노이슈반슈타인성 건설공사 시작을 앞두고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 자신의 의도를 설명했다. “티롤 지역의 산들과 그 너머에 평원이 있는 훌륭한 전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지요. 아주 성스러워서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곳, 나의 고귀한 친구인 당신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원입니다.

환상적인 설계도는 완성되었지만 시공에 착수하려 하자 또 다른 문제점이 생겼다. 대지가 기존 도로보다 200미터 정도 높은 데다 물기 없는 토질이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샘 하나를 발견하여 성까지 파이프로 연결했는데 현재도 당시 그대로 샘을 사용하고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외관은 다양한 요소를 첨가하여 인상적이지만 육중한 석벽은 거의 아무런 장식이 없기 때문에 성 안의 풍부하고 복잡한 실내 장식을 보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다. 벽과 바닥에는 그림이나 장식이 없는 곳이 없고 루트비히 2세의 침실은 특히 호화롭다. 루트비히 2세는 노이슈바인슈타인성을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성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의 가구와 장식을 구입했다. 여기에 당대의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한 시설들도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 중앙난방시설, 음식을 나르는 선반 엘리베이터 등 전기를 이용한 각종 시설은 물론 전화까지 설치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에 있는 침실

 

성에는 당시로선 첨단의 시설이 되어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했다. 대신 중세풍의 분위기에 가구는 다소 어둡고 묵직한 느낌을 줬으며 벽에는 중세의 신화를 담았다.

 

그러나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의 역작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완공을 볼 수 없었다. 재정악화 때문이었다. 그는 해마다 여러 곳에 궁성 건축을 위해 약 150만 마르크를 사용했는데 그 정도로는 그의 계획을 이룰 수 없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루트비히 2세는 국가 예산마저 낭비하게 되고 결국 반대자들에 의해 1886 6 9일 금치산자로 선고를 받은 후 왕위에서 물러났다. 네 명의 정신과 의사는 루트비히 2세를 검사하지 않은 채 정신병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건설하려는 것 자체가 정신병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했다. 정신병자 판정을 받고서 강제로 퇴위당한 후 루트비히 2세는 슈타른베르거호수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공식 사인은 자살이었다.

 

 

루트비히 2세는 1868년 바그너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옛터에 고대 독일 기사들의 성을 참된 양식으로 세우고자 합니다. 신들께서 그 가파른 산꼭대기에 오셔서 천국의 시원한 미풍을 쐬며 우리와 함께 살 겁니다.” 그러나 그는 성이 완성되기 전 노이슈반슈타인성이 내려다보고 있는 슈타른베르거호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신들이 오기 전에 그가 먼저 신들에게 간 것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1892년 완성되었고 곧바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벽면은 그의 계획대로 모두 게르만족의 신화로 채워졌다.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통해서 알게 된 전설의 세계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전설 속 주인공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성 안에 있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인공동굴에 백조 모양의 조각품이나 도자기를 많이 배치해놓았다. 심지어는 문 손잡이에도 백조를 새겨넣기도 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백조의 기사가 살아야 할 성이었기 때문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환상적인 성이다. 특히 〈탄호이저〉를 모방해 만든 ‘가수의 방(Singers Hall)’은 가장 호화로운데 매년 이곳에서 바그너 콘서트가 열린다.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조금 올라가면 마리헨 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보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너무나 아름답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디즈니의 로고이고 이 성을 본떠 만든 디즈니랜드이다.

 

▲가수의 방

이 방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영감을 주 었다.

 

◇하이델베르크의 古城

옛날부터 교육의 도시로 알려진 곳으로 1386년에 세워진 하이델베르크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이 곳은 대학도시로서도 유명하며 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마음의 평온을 구하기 위하여 찾든 곳으로, 고성 속에는 최대의 포도주 저장 술통이 있어 많은 에피소드가 많다고 한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잘 알려진 괴테가 젊은 애인과 사랑에 빠진 곳으로 괴테의 동상이 있고 그 애인의 시비가 있는 낭만의 고성이다. 신성한 산이란 뜻을 지닌 하이델베르그 고성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며. 1386년에 짓기시작해서 1605년에 완성되었지만 1693년 오를레앙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다. 대대로 내려오면 서 증축되었던 관계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등 각시대의 건축 양식들을 볼수있다.

 

이 도시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무대로 유명해진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으로  언덕위에 우뚝 솟아있는 이 고성은 수백년을 거친 거리의 집들과 함께 하이델베르크를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으로 중세유럽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2007 5월 촬영)

 

▲하이들베르크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강 주위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본 네카강 주위 

 

▲고성에서  내려다   옛다리의  모양이 가지런한데  저 다리를 건너면 일명 철학자의 길이란다. 일반도로

  별반 다르지는 않다. 가이더의 재미난 해석을 빌리자면 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생리작용을 해결해야

하는데 공중화장실이 없어 절로 고 뇌에  빠진다고  해서........ (? 길 이름이 철학자의 길인지 알것다)

 

 

 

 

 

 

▲하이델베르크 고성 

 

 

 

 

 

▲포도주 저장(오크)용량 약22만 리틀

 

▲각양 각색의 포도주 

 

 

 

 

 

◆영국

◇에든버러성, 스코트족 저항의 상징

▲해발고도 140m 바위산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에든버러성.

 

  런던에서 북쪽으로 629km 떨어진 에든버러(Edinburgh)는 스코틀랜드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다. 과거에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로, ‘근대의 아테네’라 불렸다. 영국 북쪽 지방을 지배한 스코트족이 세운 스코틀랜드는 본섬인 브리튼섬의 앵글로색슨족과 13세기 말까지 피 튀기는 전쟁을 벌였다.
 
  
멜 깁슨이 윌리엄 윌레스(William Wallace)로 출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1995)도 잉글랜드에 저항해 독립을 쟁취하는 줄거리다. 지금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잉글랜드 지역에 대해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다
.

800여 년 역사의 에든버러성을 관람하는 관광객들. 성 내부에는 상당한 규모의 마을이 있었고, 투구와 무기 등 당시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과 조형물이 있다.

  8월이면 에든버러는 도시 전체가 축제에 빠져든다. 8월의 여름 3주 동안 열리는 ‘에든버러 국제예술제(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of Art)’ 때문이다. 축제는 에든버러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7세기 에드윈왕 때 처음 건설 된 에든버러성은 한 번도 외지인에게 정복당한 적이 없다는 천혜의 요새다. 에든버러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탁 트인 조망, 수많은 전설 때문인지 성은 에든버러의 상징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내 존스턴 테라스 길에서 바라본 에든버러성의 그레이트홀과 전쟁기념관.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이 에든버러성의 이 모습을 보고 영국 유일의 마법학교 호그와트(Hogwarts)’를 연상했다고 한다.

 

▲에든버러성 내부의 포대들. 성벽 위에 수많은 대포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전쟁을 상기시킨다.

 

▲에든버러성 주변 시내 전경.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2세기에 건축된 세인트 마거릿 예배당이다. 성 안에는 스코틀랜드 왕가의 보물을 전시한 박물관과 크라운룸, 예배당 등이 있다.

 

▲에든버러 성문을 나서면 캐슬 에스플러네이드(Castle Esplanade)라는 널찍한 공간이 나타난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중에서도 가장 볼거리는 에든버러 타투 페스티벌(Edinburgh Military Tattoo Festival)이다. 이 공연은 각 나라의 군악대들이 모여 공연을 하는 것으로, 한국의 군악대도 참가한다. 작년 캐슬 에스플러네이드에서 열린 세계 군악축제 장면이다(사진·위키메디아, 6-1).

 

▲에든버러성에 들어가려면 캐슬힐(Castle Hill)의 랜드마크 건물 허브(The Hub)를 거쳐야 한다. 허브는 원래 1842년 스코틀랜드 교회(The Church of Scotland) 건물이었다. 당시 이름은 빅토리아홀(Victoria Hall)이었다. 현재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티켓 판매소와 이벤트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에든버러성 정문에서 일자로 길게 뻗은 1.6km 거리의 도로를 로열 마일(The Royal Mile)이라고 부른다. 이 길은 스코틀랜드 왕궁인 홀리루드 궁전(Palace of Holyroodhouse)까지 이어진다. 평민들은 다닐 수 없는 길이었다고 한다.

 

▲로열 마일 한가운데인 하이스트리트로 들어서면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St. Giles Cathedral)이 나타난다. 종교개혁의 선구자 존 녹스(John Knox·1514~1572)가 사제로 있었다고 한다. 한때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으로도 사용하는 바람에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은 하트 표시가 된 바닥에 침을 뱉고 지나가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 원작을 쓴 니콜슨스트리트에 위치한 엘리펀트 카페(The Elephant House). 조앤은 이곳에서 《해리포터》 초고를 작은 냅킨에 적었다고 한다. 《해리포터》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67개 언어로 번역돼 45000만 부 이상 팔려나갔고, 영화로도 8편이나 제작돼 74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홀리루드 파크(Holyrood Park)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가면, 호숫가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로열 마일 초입에 있는 스카치 위스키 홍보관(The Scotch Whisky Experience)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청년들. 이곳에서 위스키를 시음하거나 구입이 가능하다.

 

▲에든버러 성문 앞 타탄 양모 공장(Tartan Weaving Mill & Exhibition)은 스코틀랜드 남성의 전통 의상인 킬트(Kilt)에 사용하는 타탄체크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기념품점 내부를 돌아보니 타탄 양모를 제작하는 장인은 없고, 양모 완제품이나 기념품만 잔뜩 보였다.

 

▲에든버러 - 800년의 역사

 

▲에든버러성 - 런던에서 북쪽으로 629km 옛 스코틀랜드의 수도

 

▲아일랜드의 볼트성

 

◇아서王의 전설 숨쉬는 모험의 땅… 영웅의 자취 녹아든 古城

▲영국 웨일스 북서부 대도시 뱅고어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나번 성.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고성 중 하나로 14세기경 왕궁으로 지어졌다. 1969년 이곳에서 찰스 왕세자 서임식이 진행됐고, 이 행사가 생중계돼 더더욱 유명해졌다. 카나번=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런던을 출발해 기차로 두 시간을 달려 잉글랜드 서쪽 마지막 도시인 체스터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웨일스 지역 전문가이면서 여행 가이드인 존 하드윈 씨를 만났다. 시계를 빠져 나가자마자 웨일스 영역에 왔다고 알려준다. 두 가지가 확연히 차이난다. 하나는 저 멀리 서쪽으로 높은 산들이 솟아있다. 구릉과 평야가 대부분인 잉글랜드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풍경. 두 번째는 교통과 관광안내 표지판이다. 암호같은 알파벳과 영어표기가 항상 붙어있다. 웨일스어다. 영국 땅이지만 다른 역사 문화를 가진 웨일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웨일스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어릴 적 음악시간에 배운 웨일스 민요가 간혹 있었고 프로축구 선수 라이언 긱스가 이곳 출신이란 것 외에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우리나라에선 전무하다시피한 낯선 지역이다. 국내 대형서점조차도 웨일스를 단일 주제로 한 책이 거의 없었다 

 

 

웨일스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와 더불어 오늘날 영국의 한 축이다. 이 지역은 일찌기 북해에서 진출한 켈트인의 땅이었다. 15세기 로마에 지배당했고 그 후 작은 왕국들로 나뉘다가 1282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정복한다. 이때부터 장남을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라 칭했는데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1536년엔 헨리 8세에 의해 완전히 합병된다. 한마디로 북방 켈트인들이 살던 곳이 앵글로색슨이 주류인 잉글랜드에 정복된 나라다 

 

오늘날 인구는 3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총 면적은 2779km²로 딱 전라도 크기다. 주민들도 인정이 많다. 진화론의 선구자 러셀 월리스, 인도와 히말라야 전역을 답사해 지도로 만든 에베레스트 경, 영화배우 앤서니 홉킨스와 캐서린 제타존스의 고향이 이곳이다. 양의 수가 사람 수보다 4배 많은 1200만 마리다 

기자를 태운 차는 초록빛 풀밭과 양들이 수 십 번씩 반복되는 언덕을 오르내린다. 윈도 컴퓨터 초기화면에서 익숙하게 본 지형이다. 산자락 중턱에 차가 멈춘다. 가이드 하드윈 씨가 “저만의 비밀 전망대입니다” 하며 나무 사이를 가리킨다.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이다. 언덕 아래 펼쳐진 풍경은 중세 마을 모습 그대로다. 멀리 바닷가 바짝 붙어 콘위 성이 거인처럼 서있고 언덕 아래 마을을 빙 둘러 성벽이 병풍처럼 바깥 세계를 향해 굳게 막아서 있다. 그야말로 철옹성이다. 바다 위엔 수백 척의 요트들이 한가로이 떠있다. 웨일스에는 콘위 성 외에 카나번 성 등 고성들이 641개나 된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콘위 성을 찾았다. 완공하는 데 만 4(12831287)밖에 안 걸린 초고속 성채다. 그런데도 견고하게 지어져 보존 상태가 좋아 중세 고성 연구에 중요한 성이다. 불행히도 이 성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를 침략해 쌓은 잉글랜드 성이다. 고성 해설사 윌리엄스 씨는 “친구들이 내게 왜 하필 잉글랜드가 정복해 만든 성에서 일하느냐”며 핀잔을 준다고 한다. 이어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한다. “그때마다 저는 말하죠. 역사는 역사고 오래전 이야기다. 지금 이 성 꼭대기에 있는 깃발을 보세요. 바로 웨일스 깃발 아닙니까? 뭐가 문제죠?” 일행은 웃음과 함께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수백 년 고성 망루에서 서쪽으로 펼쳐진 스노든 산맥을 바라본다. 성 안의 잉글랜드인들과 성문 밖 웨일스인들을 떠올려 본다. 산 주변 마을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웨일스인들에게 이곳은 동화 속 꿈같은 도시였으리라. 

 

▲스노든 산 호수에서 관광객들이 카약과 패들링을 즐기고 있다. 산악 지형이 많은 북웨일스는 산악자전거와 래프팅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인기 지역이다.

 

위용 있는 산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그만큼 거칠고 야외 스포츠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가장 높은 산은 북쪽에 자리한 스노든 산(1085m).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도 이곳에서 등반 훈련을 했다. 강원도 설악, 금강을 품은 태백산맥의 위용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지만 이곳엔 유명한 전설이 숨어있다. 바로 아서왕의 이야기! 가이드 하드윈 씨가 스노든 산을 가리키며 아서왕의 전설을 설명한다. 원탁의 기사 랜슬럿 경과 왕비 기네비아, 마법사 멀린과 보검 엑스칼리버 전설의 주인공인 아서왕이 바로 저 산에서 활동했다는 것. 하지만 실제 아서왕의 존재는 확인된 바 없다. 오늘날 잉글랜드 주류인 색슨인들을 물리쳤다는 영웅담이 윤색돼 웨일스의 영웅으로 변신한 거다. 1000m가 겨우 넘는 산들에 그런 영웅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살짝 미소가 나온다 


영국관광청과 웨일스관광청이 올해를 ‘모험의 해(Year of Adventure)’로 정하고 내국인들과 외국 관광객들을 향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즐기라고 손짓을 보내고 있다. 콘위 성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숲길로 이동했다. 스노도니아의 산을 만끽하는 데는 산악자전거와 카약 타기가 최고다. 수천 년 원시림 사이로 봄꽃들을 감상하며 봄바람과 맞부딪쳐 본다


호수 위엔 봄을 즐기려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이미 여기저기 발걸음을 하고 있다


카약 조교로부터 스트레칭과 노젓기 학습을 마치고 카약에 올랐다. 저 멀리 스노든 산 정상이 대장처럼 우뚝 서있다. 호수 가장자리엔 나무들이 물 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다. 나무 숲 사이를 가로질러 여기저기 움직여 본다 


탐험가가 따로 있으랴. 노젓기에 집중하고 자연에 취하다 보니 잠시 현실감을 잊을 정도다. 그렇다! 여기는 웨일스의 자연 한가운데다 

웨일스=이훈구 기자 ufo@dong.com 

 

◆이탈리아

◇천공(天空)의 성(城) 치비타(CIVITA)

▲다리 입구에서 바라본 치비타 디 바뇨레조

한때 젊은이들의 이탈과 지반 침하로 인해 ‘죽어가는 마을’이었지만, 요즘은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마을이 됐다.

 

  치비타 디 바뇨레조(치비타)는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 있는 작은 중세 마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브가 된 마을로 알려지면서 한국·일본·중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치비타의 메인 스트리트. 이 길을 따라 좌우에 늘어선 집들이 마을의 전부다

치비타로 가려면 로마 테미르니역에서 열차로 1시간10분 정도 떨어진 오르비에토로 간 후, 거기서 바뇨레조행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야 한다. 버스는 통학버스로 운행되는 것이어서 운행 횟수가 그리 많지 않다. 바뇨레조에서 오르비에토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525분이면 끊긴다. 공휴일이나 축제일에는 아예 버스가 없다

 

  바뇨레조에서 내려 ‘치비타’라고 적힌 안내판을 따라 한적한 마을길을 20여 분 정도 걸으면 경사진 긴 다리 위로 돌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표소가 있는 다리 입구에서 성문까지 다시 20분 정도 걸린다. 입장료는 1.5유로다

 

오르비에토의 골목길. 오르비에토는 ‘슬로 시티(slow city)’ 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성문에서 마을 끝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밖에 안 된다.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좌우로 늘어선 아기자기한 돌집들이 눈을 잡아끈다. 느릿느릿 걸으면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다가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마셔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르비에토의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서 2번째로 큰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로마에서 치비타로 가는 길에 있는 오르비에토도 바위산 위에 있는 마을이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군에게 로마가 함락된 후 교황 클레멘트 7세가 피란을 왔던 곳이다. 교황은 당나귀를 타고 올라갔다지만 오늘날에는 후니쿨라라는 작은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간다. 이곳에 있는 두오모는 밀라노 두오모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2번째로 큰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성당을 보면 ‘이런 작은 마을에 이렇게 큰 성당이 있다는 게 말이 돼?’라는 생각이 든다. 치비타보다 크고 볼 게 많다

▲바위산 위에 건설된 작은 마을 오르비에토

하루에 두 곳을 모두 보려면 아침 6~7시쯤 로마를 출발해 치비타를 먼저 본 후 오후에 오르비에토를 보는 편이 낫다.

글·사진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印度의  

암베르 (Amber)

 印 度  자이뿌르(Jaipur)

암베르는 1037년부터 1726년까지 카츠츠와하 왕조의 수도였다. 암베르 성은 무굴 황제 악바르와 혼인동맹을 맺어 왕국을 반석 위에 올려논 마하라자  만싱(Man singh)이 건설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종주국인 무굴의 황제 제항기르의  방문을 앞두고 본 모습을 감추기 위해 디와니 암을 덧칠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자이뿌르 북쪽 11Km떨어진 구릉지대에 위치해 있다.

 

“많은 왕궁을 다녀봤지만 이보다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왕궁을 본 적이 없다.1825년 인도 자이푸르의 암베르성을 방문한 독일 신부 헤베르의 기록이다. 델리를 중심으로 서남쪽 자이푸르, 동남쪽 아그라 지역을 잇는 인도 서북부 ‘황금의 삼각지’ 중에서도 라자스탄주의 수도 자이푸르는 아직 낯설지만 멋진 고대 건축물이 많아 가볼 만한 곳이다.

 

델리에서 라자스탄주 자이푸르까지는 261.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라자스탄 고유의 스타일과 무굴제국의 양식이 혼합돼 건축왕국 인도에서도 이국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왕궁 아래 인공호수를 만들고 정원에 꽃나무를 주로 심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왕궁 전체에 향수를 뿌린 듯 꽃향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아그라 城

징기즈칸의 후예가 이룩했다는 무갈제국의 수도 아그라. 델리 남동쪽 203km 떨어진 곳으로 쟈무나강 오른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16세기 중반 무굴제국 제3대 황제 악바르가 제국의 수도로 건설하였다.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성'이라고도 부른다.17세기에 제6대 황제 아우랑제브가 바깥 성채를 건설하고 이중으로 된 성벽 사이에 물길을 설치하였다. 아그라는 무갈인들의 자존심인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게 된 도시이기도 하다.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日本

◇國寶  姬路城

世界文化遺産 1993年指定

姬路城은 1333년경 창건된후 히데요시,이에야스시대를 거치면서 여러차례 개축후 1609년에 완성되었다

백로가 양날개를 펼친 모양을 연상시켜 白露城이라고도 한다. 일본 國寶인 姬路城은 많은 일본 城중 유일하게

1983년에 世界文化遺産에 드록되었다

 

◇國寶  彦根城

滋賀縣 彦根市

江戶時代에 井伊氏의 거점으로 사용된 彦根城은 平山城으로 일명 金龜城이라고도 한다. 城의 北쪽에는 玄宮園, 樂樂園등의 名園이 있으며 이들은 國家名勝地로 指定되어있다. 彦根城은 國寶로 지정되어 四 國寶城으로 보존되고있다

 

◇國寶  松本城

長野縣 松本市

1594넌에 세워진 松本城은 현존하는 5중6단으로된 목조 천수각(일본에12개)으로는  일본에서 가장오래된

天守閣으로 國寶로 지정되어있다. 日本 國寶四城 중 유일하게 펑지에세워진 平城이머 시민들은   烏城이라고도 부른다

 

◇國寶 犬山城

愛 知 縣

名古屋市 외곽에 위치한 犬山城 은 1537년에 織田信長의 숙부 織田信康가 세웠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天守閣이 보존되어 있어 國寶 (四大國寶城)로  지정되어 있다. 기소가와(木曾川) 남쪽 강변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성으로 하쿠테이조(白帝城)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大阪城

大阪城은 16세기 후반 천하를 통일한 豊臣秀吉이 1585년에 완성한 城으로서 거대하고 호와롭게 축성하였다

天守閣은1665년에 소실되었다가 1931년에 복구되었다. 천수각의 내부는 1층에서 7층까지가 당시의 무기와 갑옷, 민속자료를 전시한 역사자료관이며, 8 층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구내에는 약 6만 평방미터의 잔디공원이 있으며, 주변에는 "오사카"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오사카 시립 박물관"과 최대 1만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오사카 성 홀" 등이 있다. 히데요시는 이 오사카 지방을 거점으로 하여, 1세기 이상 이어져 온 전국시대를 종결시키고, 일본 국내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秀吉 사후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德川家康가 1615년에는 오사카성을 점령하였다 (오사카 여름 전투)  

 

◇名古屋城

愛知縣 名古屋市

1600년 천하를 통일한 德川家康는 아홉 번째 아들 德川吉長의 居城으로 1609년  名古屋城  축성을 결정한다.

1610년 성을 짓기 시작하여 1612년 대천수가 완성되었다. 석벽은 여러 大名가 분담해서 쌓았으며 그 중에서 가장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천수의 석벽은 加藤淸正가 구축했다고 한다. 천수각은 1959년에 재건되어, 복원된 긴샤치와 함께 나고야 시의 상징이 되었으며  日本 三大名城으로 보존되고 있다.

 

◆中國  

◇北京  紫禁城 - 자금성

世界文化遺産 1987年 指定

“쯔진청(紫禁城 - 자금성)” 은 옛 명칭으로, 현재는 일반적으로 “꾸꿍(故宮 - 고궁)” 이라고 부르며 1406(明나라 永樂4)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420년에 완공을 하게 되며, 明나라와 淸나라에 걸쳐 24명의 황제(皇帝)가 기거했던 황궁(皇宮)이다. 남쪽에 있는 문이 天安문이며 국가적 대행사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이 사용되었다.

1949년의 중국정권 수립식도 여기서 행하여졌다.

 

높이 11m, 사방 4㎞ 길이의 담으로 둘러싸인 이 성은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옛 건축물로,동서길이 760m, 남북너비 960m, 면적 0.72㎢이며, 크고 작은 궁실 9,000여 칸이 있다. 기능에 따라 전조(前朝:궁정의 바깥채)와 내정(內廷)으로 나뉜다.

 

전조의 주요건물은 太和殿  中和殿  保和殿으로 황제가 큰 제전을 거행하거나 정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3대전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太和殿을 꼽을 수 있는데 이는 한백옥(漢白玉)에 조각하여 만든 높이 8m의 석대 위에 세워져 있다.

 

너비 64m, 길이 37m, 높이 27m로, 중국에 현존하는 것 중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다. 간칭먼[乾淸門] 북쪽은 황제·황후·비빈(妃嬪)들이 살던 내정으로, 신해혁명으로 중국 최후의 제정(帝政)이 막을 내리게 되면서, 1914년 앞부분의 건물들이 옛 물건들의 진열장으로 쓰이다가 1925년 구궁 박물관으로 바뀌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구궁 박물관은 중국에서 가장 귀중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현재 국가중요보호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萬 里 長 城

世界文化遺産  1987年指定

 총 연장 6352km. 중국 감숙성 자위관에서 발해만 산해 관까지이다. 중국단위로 12550리. 현재는 많이 무너지고 2500km 정도가 남아있다. 중국역대 완조가 북쪽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위해 만들었는데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몽염장군에게 시켜 과거의 일부 방어공사들을 완정한 방어시설로 연결시켜 보강하였다. 지금은 역사적인 유물이 되었지만 만리장성은 중국이 북방민족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山西省 平遙 古城

世界文化遺産 1997年 指定

평요고성은  산서성(山西省) 평요현(平遙縣)에 위치하며, 마을의 경계가 성벽으로 이루어진 성곽도시이다. 평요고성은 서주 때부터 건립되기 시작하였으며, 명·청시기에 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陝西省   西安城

明나라 때(1374~1379) 건설된 서안성(西安城)은 높이 12m, 폭 15m 그리고 총 길이가 14 km되는 규모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서안시 중심을 둘러 쌓고 있는 성을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전동차를 타고 일주하기도한다. 성벽은 동서남북 4개문이 모두 남아 있고 둘레에는 길이 13.7㎞의 깊은 해자(垓字)가 설치되어있다.

 

◇雲南省  여강 고성(麗江古城)

世界文化遺産 1997年 指定

  麗江古城은  따옌쩐(大硏鎭)이라고도 불리우며 宋나라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이미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체 면적은 7,43 ㎢ 로 인구는  대략 30만명이며  이 가운데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이 전체인구의 58%를 차지하고 있다. 여강 고성에는 별다른 외부의 성곽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동서남북 어디로나 통해있는 작은 길을 통해 고성을 둘러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풍차와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알리는  붉은색 기념건축물이 있는 곳에서부터 여강고성의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여강고성의 면적은 3,8㎢로 현재 3만 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1997 년12월 4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고성의 북쪽에 위치한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 흑룡담(黑龍潭)이란 작은  연못을 지나 고성의 수로를 따라 흐르면서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고 맑은 물에는 고기들이 한가로이 움직이는 풍경들은 주위의 낡은 목조 건축물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체코

◇프라하 성

 

◆파키스탄

◇발티트성( 옛 훈자왕국의 왕이 살던 곳)

 

▲부근에 있는 발티트 (훈자왕이 살던 곳)

 

 

 

 

 

◆프랑스

◇샹보르城  (Chambord)

루아르에 있는 성 중에 가장 크고 화려한 성이다. 1519년 프랑수아 1세에 의해 원래 사냥터에 있던 저택을

화려한 성으로 개조한 것이다. 성의 내부에는 440개의 방과 365개의 벽난로가 있다.

 

◇몽생미셸 (Mont Saint Michel )

바다 위로 솟아 있는 몽생미셸은 섬 위에 지어진 수도원이자 거대한 철옹城 이라고 한다. 세계 8大 불가사의로 불리는 몽생미셸은 708년 아브랑슈의 주교였던  생 토베르가 꿈속에서 성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 지었다고 하는데, 둘레 900m, 높이 78.6m나 되는 몽생미셸의 웅장함은 찾는 이로 하여금 경이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처음 이곳은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시작했지만, 천혜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프랑스의 위정자들에 의해 종종 군사적으로 이용됐다고 하는데, 14세기 「백년전쟁」 때에는 프랑스가 영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  높은 방어용 벽과 탑을 쌓아 해군 전략기지로 요새화했고, 나폴레옹 시대에는 정치범을 수감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었고,

지금은 옛 모습을 다시 찾아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사들이 평온하고 조용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바다 한가운데 놓여 있는 화강암 위에 세워진 몽생미셸은 밀물이 가득 찰 때는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다고 한다.

 

▲몽생미셸

 

◇발랑드리성 (Villandry)

루아르현에 있는 발랑드리성은 1906년에 성을 인수한 조아킴 카르발로 박사가 노벨상 수상자인 리슈와 함께 정원 가꾸었다

 

◇퐁텐블로성   (Fontainebleau)

파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퐁텐블로 성은 원래는 파리의 왕족들이  이곳에서 사냥을 즐길 때 묵었던 작은 집들이 있던 곳이었는데, 프랑수아 1세부터 루이 16세에 이르는 왕들이 차차 건물을 보태지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이곳은 사냥을 위한 장소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냥을 상징하는 장식물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중세 성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