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조선일보) 2022-12/ 12.01(목) 러시아의 겨울 전쟁 - 12.31(토) 언제나 뜨거웠던 펠레처럼
만물상(조선일보) 2022-12/
12.01(목) 러시아의 겨울 전쟁
나폴레옹의 1812년 러시아 원정과 히틀러의 1941년 소련 침공은 모두 6월에 시작됐고 속전속결을 노렸다. 나폴레옹은 50일 치 군량을 준비하라 했고, 히틀러는 4개월 안에 전쟁을 끝내라 했다. 두 사람은 러시아의 겨울을 두려워했다. 러시아가 버티자 나폴레옹은 12월 영하 39도 강추위 속에서 퇴각했다. 먹을 게 떨어진 나폴레옹군은 야포를 끄는 말까지 잡아먹다가 쫓아온 러시아군에 궤멸당했다. 나폴레옹은 “겨울이 우리를 파멸시켰다”고 했다.

▶러시아가 ‘대(大)조국전쟁’이라 부르는 2차 세계대전 때도 추위는 그들의 우군이었다. 우크라이나 평야가 10월에 보름간 내린 비로 진창이 되자 나치 전차가 진군을 멈췄다. 멈춰 선 전차 위로 때 이른 맹추위가 덮쳤다. 전차 부동액이 얼고, 여름 군복 차림이었던 독일군은 얼어 죽었다. 870여 일간 이어진 독일군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를 끝낸 것도 영하 40도 강추위였다. 이 도시와 붙어 있는 호수가 얼어붙자 소련 군용 트럭이 그 위로 보급품을 실어 날랐고 독일군은 퇴각했다.
▶6·25 때 장진호 전투는 추위와 성공적으로 싸운 전투였다. 미 해병 1사단이 8배나 많은 12만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퇴각할 수 있었던 비결로 든든한 겨울 병참이 꼽힌다. 미 해병은 장진호 인근에 수송기 이·착륙장을 짓고 전투 내내 솜옷과 탄약을 공급했다. 보급을 받지 못한 중공군은 추위에 정신착란자가 속출했다.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추위와 싸운 경험은 이후 미군의 극한지 전투 교리 완성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
▶겨울 전쟁은 역사의 물길도 바꿨다.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은 1차 대전에 지친 러시아 군대가 한겨울에 반기를 들면서 시작됐다. 러시아는 모든 항구가 겨울에 얼어붙자 부동항을 확보하려고 했고 이를 막으려는 영국과 싸운 게 크림전쟁이다.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 무대는 2차 대전 독·소 전쟁 당시 피바다가 됐던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다. 영화를 찍은 곳이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탈환한 헤르손이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침략자 되어 우크라이나 겨울을 전쟁에 이용하려 한다. 우크라이나 전역의 전력 시설에 미사일을 쏴 난방과 수도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을 추위에 몰아넣으면 전쟁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겨울이 늘 러시아 편이었던 것은 아니다. 핀란드를 침략해 벌인 ‘겨울 전쟁’에선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러시아의 겨울 전쟁 전략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12.02 상하이방의 종언
상하이가 서양 역사에 처음 등장한 건 1842년이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고 개항한 5개 항구 가운데 하나였다. 수천년간 작은 어촌이던 곳이 하루아침에 유럽 열강의 조계지 건설 각축장이 됐다. 1921년 7월 23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 내 한 건물에서 중국공산당 제1차 당대회가 열렸다. 상하이에서 13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당이 28년 뒤 베이징 톈안먼에서 오성홍기를 내걸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96세의 나이로 30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0월 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9차 공산당 대회 폐회식 도중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팔을 두드리는 모습이다. 장 전 주석은 시진핑 주석의 정적 그룹인 상하이방(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대부로 꼽힌다. 시진핑 집권 이후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명목 아래 장 전 주석 측근 인물들이 대거 제거되기도 했다./AP 연합뉴스
▶중국 전역을 광기와 혼란에 빠뜨린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기획하고 부인 장칭(江靑)과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등 4인방이 주도한 것이다. 장칭은 상하이에서 배우였고 나머지도 상하이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이들을 상하이방(上海幇)이라고도 불렀다. 이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뒤에도 문혁을 이어가려 했다. 이들이 숙청되지 않았다면 덩샤오핑의 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덩샤오핑은 1989년 톈안먼 시위를 진압하기로 결심한 뒤 상하이 당서기였던 장쩌민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장쩌민은 당 총서기에 올랐지만 베이징 정가에선 촌뜨기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자신이 정치 기반을 다진 상하이 인맥을 대거 발탁해 당·정·군 곳곳에 심었다. ‘문혁 상하이방’이 아닌 정반대 상하이방의 등장이다. 이 상하이방이 본격 득세하기 시작한 건 1997년 덩샤오핑 사망 이후다. 이들은 고도성장의 과실을 독식하며 권력과 부를 함께 누리는 세력으로 뿌리내렸다.

▶장쩌민은 집권 시절 김정일을 두 차례 초청했다. 김정일은 2000년 5월 베이징 중관춘 과학단지를 둘러본 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옳았다”고 했다. 2001년 1월 상하이를 시찰한 뒤엔 “세계가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해는 천지개벽됐다”고 했다. 실제 장쩌민 시절 상하이는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이룩했다. 김정일도 느낀 게 있었던지 이듬해 장마당을 묵인하는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를 내놓았다.
▶장쩌민은 은퇴한 뒤에도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진타오 후계를 놓고 리커창과 경쟁하던 시진핑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장쩌민이었다. 하지만 시진핑은 2012년 집권 후 돌변했다. 군, 금융, 조선 등 상하이방이 장악한 분야에 대대적 사정 작업을 벌였다. 10년에 걸친 반부패 운동으로 상하이방은 궤멸됐다. 이번 20차 당대회에서 꾸려진 차기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전원 시진핑 측근으로만 채워졌다. 그제 장쩌민이 사망했다. 상하이방의 종언이다.
12.03(토) 최틀러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직후 임명된 최병렬 서울시장이 간부들을 불렀다. 그는 “비난에 위축되지 말라. 잘못되면 감옥은 내가 대신 간다”고 했다. 이어 “접시를 닦다 깨는 것은 괜찮지만 접시 깰까 봐 아예 닦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다. 7개월 간 서울시 체제를 뒤바꾸고 ‘안전 시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불같은 성격이었다. 기자 때 후배가 낙종하거나 기사를 잘 쓰지 못하면 불호령을 내렸다. 독선에 가까울 정도로 혹독했다. 간부 회의 때 선배와 책임 논쟁이 벌어지자 “어디 떠넘기느냐”며 책상을 뛰어넘어 공중 부양했다. 편집국장 시절 권력기관에서 기사 빼라는 요구가 오면 “난 못 하니 당신들이 와서 신문 만들어”라며 수화기를 던졌다. 공보처·문공부·노동부 장관 땐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몰아붙였다. “목숨을 걸고 하라”고 했다. KBS 노조가 파업하자 곧바로 공권력을 투입했고, 노동계의 반발에도 총액임금제를 밀어붙였다. 버스전용차선제도 시행했다. 1985년 총선에선 처음으로 여론조사 기법을 도입했다. 당대표 땐 이익 단체의 항의 집회에 직접 나가 “책임지고 대책을 만들겠다”고 설득했다. 그 추진력 때문에 ‘최틀러’(최병렬+히틀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밖에선 독재자 같았지만 집에선 자상한 가장이었다. 처가의 반대 때문에 7년 만에 결혼한 아내를 끔찍이 아꼈다. 공처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온순한 양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아내에게 하루 3~4번은 전화했다. 자녀들에게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공부하라”는 말보다 “놀려면 재미있게, 운동 많이 하라”고 했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그에게 잘보이려고 돈 1억원을 보냈다. 그는 즉시 돈을 돌려보냈다. 정 회장은 “내 평생 돈 돌려받기는 처음”이라면서 최틀러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의원 시절 정치자금 수백만 원을 지갑에 넣고 있다 아내에게 들켰다. 아내가 “무슨 돈인데 혼자 숨겨 놓고 쓰느냐”고 했지만 “선거 자금이라 사사로이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장관 땐 명절·연말에 선물로 들어온 술·넥타이·음식 등을 집무실 테이블에 올려놓고 직원들을 불러 가져가게 했다.
▶그는 2003년 대선 자금 특검을 관철하려고 단식에 들어갔다. 의사들이 “당분·영양 음료를 마셔야 몸이 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원칙을 지킨다며 물과 소금만 먹었다. 열흘간 독한 단식 끝에 특검을 받아냈지만 건강이 크게 상했다. 수년 전부터는 거동도 힘들어졌다. 그는 2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주변에선 건강했는데 단식 후유증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안타까워 한다.
12.05(월) ‘한국인의 끈질긴 에너지’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른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해 쓴 외신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90분을 쉬지 않고 뛰는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 정신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한국 대표팀은 세계의 강호들에 기술로 밀렸지만 그 대신 끈질긴 열정으로 맞섰다. 몸값 비싼 선수들이 다칠까 봐 몸을 사릴 때, 우리 선수들은 이마가 찢어지면 붕대를 했고 코뼈가 부러지면 안면 보호대를 쓰고서 그라운드에 섰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한국 팀은 유효 슛을 하나도 날리지 못했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았다. 많은 축구팬이 오히려 “손에 땀을 쥐고 몰입했다”고 했다. 한국 팀은 기술 우위인 우루과이를 쉼 없이 압박했다. 가나전에선 비록 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어 두 골을 넣었다. 그 두 골 덕에 조별 리그 최종 순위에서 우루과이를 제칠 수 있었다.
▶포르투갈과의 3차전 때는 한국이 속한 H조 실시간 순위 그래프가 TV에 떴다. 전반 5분 한 골을 내주자 한국 팀 순위가 주저앉았다. 후반 45분 끝날 때까지 꼴찌였다. ‘역전의 1분’ 드라마가 후반 추가 시간에 펼쳐졌다. 손흥민은 마스크를 쓰고 70m를 질주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임을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한 축구팬은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너무 극적이라고 욕먹었을 것”이란 댓글을 달았다.
▶한국이 포르투갈에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에 진출했다. 로이터는 “손흥민은 한국이 준결승에 올랐던 2002년 월드컵 정신을 소환했다”며 “한국인 특유의 끈질긴 에너지로 유감 없는 경기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영국 BBC도 “한국 팀이 나쁜 스타트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았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 근대사도 그랬다. 식민 지배와 전쟁이라는 나쁜 스타트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향해 끈질기게 달려온 불굴의 역사였다.
▶프로게이머 데프트(김혁규)가 지난달 전 세계 2억7000만명이 지켜보는 롤 게임 세계 대항전에서 우승했다. 7전 8기 끝에 정상에 올라 언더도그(약자) 승리의 상징이 됐다. 데프트는 본지 인터뷰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그 비결로 꼽았다. “외부에서 무슨 말을 하든 우리끼리만 안 무너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수천년 패배 의식에 빠져 있던 우리가 이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고 성취하는 민족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 축구 팀도 첫 두 경기의 좌절을 딛고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화요일 새벽,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우리의 끈질긴 에너지를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12.06 폭격기의 역사
하늘에서 적진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은 군인들의 ‘열망’이었다. 1849년 오스트리아군은 소형 열기구 안에 폭탄을 실어 적진으로 날려 보냈다. 공중 폭격의 시초라 할 만했다. 1차 대전 초반 독일 비행선이 런던에 폭탄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라이트 형제가 만든 첫 비행기가 공중을 날자마자 군인들은 이를 ‘무기’로 보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처음엔 정찰용이었다. 한때는 적기를 만나도 인사까지 했다. 결국 조종사들이 서로 총을 쏘았다. 1차 대전부터 조종사들은 조종석에 조그만 폭탄을 싣고 가 손으로 적진에 떨어뜨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은 효과가 있었다. 근대적 폭격기의 시초일 것이다. 1차 대전 중 각국은 경쟁적으로 폭격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공 장거리 비행을 위한 산소통 개발 등 발전이 시작됐다.
▶2차 대전이 터지자 폭격기는 전쟁의 주역이 됐다. 적의 군사 시설만이 아니라 후방 대도시를 파괴했다. 적국과 그 국민의 전쟁 의지를 아예 꺾기 위한 이른바 ‘전략 폭격’이다. 가장 악명 높았던 건 1945년 2월 연합군의 독일 드레스덴 폭격이다. 미·영 폭격기 1100대가 동원됐다. 폭탄 하나가 거리 한 블록씩을 날려버렸다고 해서 ‘블록버스터’(blockbuster)란 말이 생겨났다. 당시 기록엔 ‘화염 폭풍이 사람들을 집어삼켜 재만 남았다’고 적혀 있다. 수만 명이 죽었다. 소련군의 진격을 돕는다고 했지만 소련에 연합군의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연합국 폭격대의 주역이 미군 B(Bomber)-17 폭격기였다.
▶폭격기는 미국의 힘을 상징하게 됐다. 2차 대전 말 개발한 B-29는 도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도 B-29가 했다. 6·25 때 한국을 구한 비행기도 B-29다. 1950년대엔 폭탄 27t을 싣고 6500km를 날아가 폭격하는 B-52가 등장해 베트남전과 걸프전에서 맹위를 떨쳤다. 1983년엔 최초의 스텔스 폭격기인 F-117 나이트호크가, 6년 후엔 최정예 스텔스 폭격기 B-2가 나왔다.
▶미국은 최근 신형 스텔스 폭격기 B-21 레이더(침입자)를 공개했다. 납작한 가오리형에 공기 흡입구가 작고 최첨단 도료로 처리해 폭 45m인 동체가 레이더에 골프공 크기로 잡힌다고 한다. 사실상 투명 망토를 두른 것이다. 비행기라기보다는 컴퓨터라고도 한다. 중·러뿐 아니라 김정은에게 경고가 될 것이다. 세계에서 폭격기를 운용하는 나라는 미, 중, 러뿐이지만 중, 러는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미국의 힘은 볼수록 거대하다.
12.07 베트남, 적국에서 ‘기회의 땅’으로

13세기 초, 베트남 리(李) 왕조의 왕자가 왕조 교체기를 피해 중국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망명했다. 그가 대몽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자 고려 고종은 황해도 금천군 화산 땅을 하사하며 그를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했다. 화산 이씨의 시조다.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를 리 왕조 후손으로 인정해 세금, 사업권, 출입국 면에서 베트남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거대 제국 중국과 이웃한 탓에 한국과 베트남은 비슷한 역사적 시련을 겪었다. 한나라가 북베트남엔 한구군을, 고조선 땅엔 한사군을 설치했다. 당나라 땐 베트남에 안남도호부를, 고구려 땅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며 지배력을 행사했다. 식민지를 거쳐 분단, 전쟁을 경험한 과정도 비슷하다. 세계 최강 미국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두 전쟁터가 한국과 베트남이었다. 6·25 전쟁은 미군이 처음으로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고, 베트남에선 치욕적 패배를 당했다. 한국이 미국 편에 서서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두 나라는 적국이 됐다.
▶냉전 종식으로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다시 수교를 맺을 당시, 한국 외교팀은 베트남이 전쟁 배상 책임을 요구할 것을 대비해 대응 논리를 준비했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수교 도장을 찍은 뒤 베트남 외교관에게 이유를 묻자 “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베트남 측 협상 실무자였던 팜 띠엔번은 남북한 대사를 25년간 역임한 한국통이다. 세 아들 중 첫째는 한국 대기업 직원, 둘째는 주북한 대사, 셋째는 주한 베트남 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하며 대를 이어 한·베트남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수교 30년(12월 22일) 만에 양국은 경제 공동체가 됐다. 올해 베트남은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에 올랐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4000여 개, 고용 인원은 100만명에 달한다. 베트남 수출에서 한국 기업 비중이 35%를 차지할 정도다. 한국 기업 보수가 베트남 기업의 2~3배에 달하다 보니 한국어 배우기 붐이 일고 있다. 한국어가 영어를 제치고 베트남의 제1 외국어가 됐다고 한다.
▶한국과 베트남은 양국 청년에게도 서로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한 한국 청년은 베트남에서 중고 오토바이 거래 플랫폼(OKXE)을 창업해 매달 10만대 이상 거래를 중개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대로 베트남 엘리트 청년들이 유학 후 한국에 정착해 교수, 경찰관, 공무원,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으로 자리 잡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때 총부리를 겨눴던 적국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공생 관계로 거듭났다.
12.08 독일의 합리적 애완견 세금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들개가 된 유기견들이 공포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야생 노루를 잡아먹거나 인근 농가나 목장에서 키우는 닭, 염소 같은 가축을 잡아먹는다. 지난해 제주대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실태 조사를 했더니 산림지와 초지가 접한 해발 300~600m 중산간에 들개가 2000마리가량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섬이나 다른 시골 마을도 들개 떼가 있다. 이사 가면서 키우던 개를 버리고 가거나, 휴가 때 섬이나 해변에 개를 버리고 가면 그 유기견들이 동네를 떠돌다 산속으로 들어가 들개로 야생화되고 번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반려견·반려묘는 800만마리쯤 된다. 100마리당 1.5마리꼴로 주인에게 버림받거나 주인을 잃어버려 연간 유기동물 숫자가 12만마리나 된다고 한다. 보호소에서 새로 입양되기도 하지만 절반가량은 안락사나 병사한다.
▶애견인들 사이에 ‘개들의 지상 낙원’으로 꼽히는 나라가 독일이다. 반려견 관리가 철저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무조건 국가에 등록하고 등록번호를 발급받아야 한다. 독일 개는 엄연한 ‘납세견’이다. 주인과 산책 나갈 때 훈데스토이어(개 세금) 인식표를 달고 나간다. 개 세금은 지자체별로 걷는데 견종, 무게 따라 다르다. 마리당 1년에 최소 100유로(약 14만원)쯤 된다. 맹견은 중과세된다. 안내견, 구조견 등으로 사회에 이바지한 개는 세금을 감면받는다. 개만 세금을 내고, 주로 집에만 있는 고양이는 세금을 안 낸다. 개는 심지어 버스도 요금 내고 탄다. 한 마리까지는 무료 탑승, 두 마리부터 요금 낸다. 단 캐리어나 가방에 담겨 있으면 무료다.
▶개 세금은 유럽에서 광견병 피해가 커지자 1796년 영국에서 도입했는데 영국에선 없어졌고, 독일, 네덜란드 등에는 남아있다. 개를 안 키우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개가 여러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만큼, 개 주인에게 세금을 매기는 것은 합리적이다. 세금 걷어 독일은 ‘티어하임’이라는 공공 동물 보호소를 운영한다. 시설이 쾌적하다. 유기견 안락사도 안 시킨다. 동물을 사고파는 펫숍이 없는 독일에선 전문 브리더에게 분양받으려면 거액을 들여야 한다. 반면 티어하임에서 개를 입양하면 훨씬 싸고 예방 접종과 국가 등록도 마친 상태여서 입양률이 높다.
▶농식품부가 반려동물 전담 조직을 만들고 관리해서 연간 12만마리의 유기동물 숫자를 2027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2100건의 개물림 사고도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한다. 개를 물건 만들듯 마구 생산하고, 너무 쉽게 사고팔고 버리는 문화는 다 바뀌어야 한다.
12.09 ‘살찐 손가락’ 실수
2005년 일본 미즈호 증권에서 한 직원이 63만엔짜리 주식 1주를 파는 주문을 내다가 실수로 1엔에 63만주를 파는 주문으로 잘못 입력했다. 90초 만에 실수를 알아채고 주문을 취소했지만 그새 수만건의 주문이 체결됐다. 증권사는 주문을 책임지느라 4000억원대 손실을 봤다. 금융가에선 이런 실수를 팻 핑거(fat finger)라고 한다. 살찐 손가락으로 자판을 누르다 실수하는 것을 말한다.

▶2018년 한국에서도 팻 핑거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직원들에게 배당을 지급하다 ‘주당 1000원’을 ‘1000주’로 잘못 입력했다. 삼성증권 유령 주식 28억주, 110조원어치가 추가 발행된 꼴이었다. 직원 21명이 재빨리 손가락을 놀려 500만주를 팔아치웠다. 문제가 심각해졌다. 미국 증권사들은 거래 내용이 이상하면 자동으로 걸러내는 ‘리스크 서버’가 있는데 당시 한국 증권사들은 그런 안전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
▶스마트폰 모바일 뱅킹이 활성화되면서 일반인도 팻 핑거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컴퓨터 자판 간격은 2㎝가량 되지만 휴대폰의 자판 간격은 0.5㎝도 안 된다. 축의금 10만원을 보낸다는 게 0을 하나 더 찍어 100만원을 보냈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예금보험공사에서 ‘착오 송금 반환 지원 제도’를 운영할 정도다. 지금까지 2300여 건, 29억원 반환을 도와줬다고 한다. 팻 핑거 위험은 사생활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몇 년 전 한 대학생 커플이 학과 단톡방에 성관계 동영상을 올리는 실수를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은 팻 핑거 주체를 동물로까지 확장했다. 문 전 대통령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사이코 패스’라고 비방한 인터넷 글에 ‘좋아요’를 눌러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문 전 대통령이 고양이 사진과 함께 “좋아요를 누르는 범인, 드디어 색출”이라는 글을 올렸다. 자신이 아니라 고양이가 눌렀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정말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 전 대통령 일로 웃어 보기는 오랜만이었다.
▶경남 남해의 한 축협이 금리 10% 적금 10억원어치를 창구를 통해 판매하려다 직원이 실수로 몇 시간 동안 온라인 적금 가입을 들어오는 대로 받았다. 순식간에 1000억원 이상 자금이 몰렸다. 축협 측은 “직원 실수로 감당 못 할 예수금이 들어왔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해지해달라”고 읍소하는 메시지를 전 고객에게 보냈다. 지금까지 고객 40%가 해지에 응했다고 한다. 팻 핑거 위험엔 누구나 노출될 수 있다. 난감하지만 솔직한 설명과 사과가 후유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2.10(토) ‘영원한 왕조’ 꿈꾼다는 金씨들
2016년 10월 13일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숨지자 북한은 김정은 명의의 조전(弔電)을 보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북은 덩샤오핑·카스트로 등 사회주의 지도자나 김대중·노무현·정몽헌 등 입맛에 맞는 한국 인사들의 부고에만 선택적으로 최고지도자 조전을 발송해 왔다. 태국은 북과 수교하긴 했지만 매년 미국과 연합훈련을 하는 미국의 우방이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올브라이트의 회고록에 이 의외의 조전에 대한 단서가 있다.

▶올브라이트는 2000년 10월 방북 당시 김정일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다. 올브라이트가 경제 개방 의사를 묻자 김정일은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다”며 “왕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경제도 발전시킨 태국 모델에 깊은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관심을 끈 게 태국의 경제인지 강력한 왕권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북한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세습 왕조 국가다. 김정일은 그래도 삼촌 김영주와 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김정은은 김정일 와병 탓에 왕세자로 급조됐다. 동서고금 모든 왕조의 최대 관심사는 왕실의 영속이다. 가장 오래된 왕조는 일본 왕실이다. 기원전 711년 태어난 진무(神武)로부터 126대 현 나루히토 일왕까지 이어진다는 게 일본 주장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2700년에 가깝다. 하지만 실권이 없는 일본 왕실은 김씨 왕조의 모델이 아닐 것이다.
▶푸미폰 국왕은 재위 기간이 70년 126일로 역대 3위다. 1위는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72년 110일), 2위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70년 214일)이다. 46년 집권한 김일성은 82세, 17년 집권한 김정일은 69세에 모두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가족력이 이런데도 38세로 11년째 집권 중인 김정은은 고도비만에다 술·담배를 달고 산다. 북 만수무강연구소가 아무리 애를 써도 장수를 장담하기 어렵다.
▶총리 명의이긴 했지만 북은 2015년 3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사망했을 때도 조전을 보냈다. 리콴유가 31년 통치한 뒤 ‘대타’ 고촉통을 거쳐 아들 리셴룽이 3대 총리를 맡고 있는 싱가포르 모델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정해진 데에도 이런 호감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제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를 결산하며 ‘노동당의 800년, 8000년 집권’을 언급했다. 김씨 왕조는 올해로 77년이다. 21세기에 국민을 굶겨 죽이는 왕조가 100년을 넘긴다면 세상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
12.12(월) “평생 안고 갈” PK 실축

월드컵 경기에서 숨 가쁜 패스로 적진을 휘저으면 귀를 찢는 관중 함성이 파도를 치고 골이 터지든 빗나가든 정신이 먹먹하다. 아차 하면 순간을 놓친다. 중계 캐스터와 해설자도 하이 데시벨로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페널티 킥(PK)은 다르다. 주심 휘슬이 울리면 이쪽도 저쪽도 일순 고요하게 숨을 멈춘다. 한 점 차로 승패가 갈릴 땐 더욱 그렇다. 8강, 4강으로 좁혀가는 경기라면 세계 축구 팬들이 마른 침을 삼킨다.
▶어제 새벽 4강 티켓을 놓고 숙적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붙었다. 결승전에 버금가는 빅 매치였다. 새벽 시간 TV 앞을 지킨 국내 팬도 많았을 것이다. 프랑스가 한 점을 먼저 넣은 뒤 동점이 됐고, 다시 프랑스가 2대1로 앞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잉글랜드에 또다시 PK 찬스가 찾아왔다. 키커는 손흥민의 ‘토트넘 절친’ 해리 케인이었다. 결과는 공이 골대 위 하늘로 날아가는 어이없는 실축이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말이 실감났다. 케인은 같은 경기에서 첫 번째 PK를 성공시켜 환호에 휩싸였다가 두 번째 찬스에 ‘홈런볼’을 차버린 뒤 고개를 떨궈야 했다. 그때 케인 표정이 너무 참담했다. 평생 처음 당하는 대(大)실패를 겪은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고 무릎이 꺾였다. 패배한 경기 뒤 케인은 “책임을 통감한다”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세계 PK 실축 톱10′ 명단을 보면 몸값 비싼 선수들과 비슷하다. 한 사이트는 네이마르 7개, 호날두 18개, 메시 22개로 집계했다. 한 경기에서 PK를 세 번 실축한 아르헨 선수도 있었다. 골대 맞히고, 하늘로 날리고, 골키퍼에게 찼다. 그탓에 10년 동안 대표팀에 얼씬도 못했다. 2002년 우리가 이탈리아와 붙었을 때 실축했던 선수는 마지막에 ‘극장골’로 만회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나 선수가 실축하자 일곱 살 딸이 실신했다고 한다.
▶이론상 PK는 들어가야 한다. 공과 골키퍼 거리가 11m, 공이 골라인을 넘는 데 0.4초, 반면 골키퍼가 몸을 날리는 시간은 0.6초쯤 된다. 보통 득점률은 80%쯤인데, 승패가 걸리면 44%에 불과하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멘털이다. 중압감이 살인적이다. 그러나 실수가 있기에 인간이고, 실수도 경기의 일부다. 주홍 글씨가 아니다. 선배 웨인 루니는 케인에게 “고개를 들어라, 자랑스럽다”고 했다는데, 루니도 실축이 12개다. 이제 케인은 후배 선수들에게 실축을 이겨내는 용기를 보여야 하는, 축구보다 중요한 임무가 생겼다.
12.13 위기의 ‘페트로 달러’ 협약
1945년 2월 얄타 회담을 마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의 미 군함 퀸시로 향했다. 함상엔 13년 전 무력으로 아라비아를 통일한 이븐사우드 사우디 초대 국왕이 있었다. 1938년 미국 자본 아람코가 사우디 다란에서 유전을 발견한 후 양측의 첫 석유 회담이었다. 미국은 사우디의 석유가 절실했고, 사우디는 왕실과 국가의 안보가 필요했다. 양국 간 80년 동맹의 시작이었다.

▶1951년 상호방위협정을 맺은 사우디는 미국의 보호 덕분에 아랍 군사 정변과 급진 이슬람 세력의 위협에도 평온했다. 대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중동 침투를 막아달라”고 했다. 1974년 석유 파동이 터지자 양국은 ‘페트로 달러’ 협약을 맺는다. 미국이 사우디의 안전을 담보하는 대신 원유 결제는 오직 달러로만 한다는 약속이었다. 국제 결제 수단으로써 달러의 유일 패권적 지위가 공고해졌다.
▶순탄하던 관계는 미국에서 셰일 가스가 나오면서 금 가기 시작했다. 사우디 원유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사우디에선 2017년 빈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았다. 그는 이전 통치자와 달랐다. 미국 눈치를 보며 고분고분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 카슈끄지를 끔찍하게 살해해 미국을 경악하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못 본 척 넘어가자 빈살만은 미국 무기 1100억달러 구매로 화답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을 “왕따시키겠다”고 했다. 격분한 빈살만은 바이든의 ‘석유 증산’ 요청을 면전에서 거부했다.
▶이슬람 수니파로 왕정 국가인 사우디는 시아파 신정(神政) 국가인 이란과 불구대천의 앙숙이다. 그런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과 핵 협상을 하고, 바이든이 이를 재개했다. 사우디는 배신감과 위기감을 느꼈다. 사우디는 작년 러시아와 군사협정을 맺은 데 이어 7일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맞아 상식을 넘는 환대를 했다. 수도 리야드에 아랍 21국 정상들을 불러모아 시 주석과 연쇄 회담을 갖게 했다. 수백억달러 계약도 체결했다. 미국 보라는 것이다. 시 주석은 “위안화로 원유 결제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핵심 이익인 ‘페트로 달러’ 협약까지 깨질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은 이것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미국과 사우디 동맹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양측은 경제·안보적으로 깊이 엮여 있다. 앞으로 수십년을 통치할 빈살만이 임기 중반을 넘긴 바이든 이후를 보며 위력 시위를 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약점도 많은 나라다. 여기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12.14 꿈틀대는 ‘달 식민지’ 경쟁

‘미국 아폴로 11호보다 먼저 소련이 달 착륙에 성공한다. 미국과 소련은 각각 달에 제임스타운과 즈베즈다 기지를 건설한다. 달 식민지다. 미국은 선점한 리튬 광산을 소련에 빼앗기자 달에 해병대를 파견한다.’ ‘포 올 맨카인드(모든 인류를 위해)’라는 애플TV 드라마다. 드라마 제목은 실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사다리에 새겨진 글귀에서 따왔다. 하지만 드라마에 인류애는 없다. 달은 땅과 자원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가득한 또 다른 지구일 뿐이다.
▶서부 개척 시대에는 말을 달려 깃발을 꽂으면 자신의 땅으로 인정받았다. 우주는 다를까. 1967년 유엔 우주협정은 지구 밖 어떤 천체도 특정 국가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했다. 우주에 대량 살상 무기 배치를 금지했고, 모든 나라가 자유롭게 우주를 탐사할 수 있다는 조항도 담겼다. 하지만 아폴로 11호가 달에 가기도 전에 만들어진 이 조항이 계속 지켜질 거라 믿는 나라가 있다면 바보이거나 우주 꿈도 꿀 수 없는 후진국일 것이다.
▶1980년 미국 세일즈맨 데니스 호프는 우주 조약의 허점을 파고들어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조약이 ‘국가 소유’만 금지했다며 회사를 세운 뒤 달과 우주를 마구 팔아치웠다. 약 1200평당 2만6000원씩 받아 그가 번 돈은 160억원에 이른다. 3억원만 있으면 명왕성을 통째로 살 수 있다. 우주판 봉이 김선달인 셈이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잠잠하던 달 탐사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미국이 유인 우주선을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계획 1단계에 성공했고, 중국과 인도도 잇따라 달 탐사선을 쏘아 올렸다. 한국 첫 달 탐사선 다누리는 17일 달 궤도 진입을 시도한다. 일본 우주 기업 아이스페이스도 11일 달 착륙선을 발사했다. 이 회사는 달에서 흙을 채취해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성공하면 세계 최초의 달 자원 거래가 된다.
▶원시 지구에 행성 테이아가 부딪히면서 만들어진 달은 자원의 보고다. 1t에 6조원 가치인 헬륨3가 110만t 묻혀 있고 스마트폰·전기차 제조의 핵심인 희토류, 실리콘·티타늄·마그네슘도 풍부하다. 미국은 2020년 일본·영국 등과 아르테미스 협정을 체결하고 우주 자원 채굴과 사용이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능력만 되면 달에서 자원을 캐도 좋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달에서 채취한 암석과 흙은 383kg으로 모두 연구용으로 쓰였다. 하지만 이제 우주 선진국들에 달은 38만km 떨어져 있는 거대한 광산이다. 지구 식민지 경쟁이 끝난 지 100년도 되지 않아 달 식민지 경쟁이 꿈틀대고 있다.
박건형 논설위원
12.15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의 일치된 생각

▲14일 기공식을 가진 경북 울진군 신한울 1호기. 탈원전 등 요인으로 당초 예정보다 완공이 5년 지체됐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1971년 3월 19일 국내 첫 원전 고리 1호기 기공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읽은 치사는 동네 아저씨 어투였다. “인류는 원자력이라는 괴상한 물질을 개발했습니다”로 시작해 원자력이 뭔지를 또박또박 설명해갔다. 전쟁 무기 원자폭탄, 암 치료용 방사선 등을 거론하고는 전기 생산도 가능하다는 점을 말했다. 공해가 없고, 원료 고갈 우려 없고, 발전 단가도 싸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미국 원자력잠수함에 올랐던 경험을 말하면서 “궤짝만 한 연료를 싣고… 1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는 (농촌 전기 보급률이) 27%밖에 안 되지만… (원전을 지은 다음엔) 70%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가정의 부엌, 온돌까지 전기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1인당 GDP는 250달러가 채 안 됐다. 고리 1호 건설비는 1971년 정부 예산(5200억원)의 10%가 넘는 543억원으로 잡았다. 79%는 차관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 시절 탈원전 입장이었다. 평민당 의원 가운데 조희철(작고) 의원이 가장 행동파 반원전주의자였다. 그런데 조 의원은 미국 원자력 기업 실태를 방문 조사해보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일본의 원전 서적을 구입해 와 번역할 정도였다. 김 총재는 조 의원 설득을 듣고 더 알아본 후 1989년 11월 목포 기자 간담회에서 ‘원자력 에너지 개발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원자력계에선 이걸 ‘목포 선언’이라고 한다.(이종훈 전 한전 사장 증언)
▶김대중 정부 시절 2기, 노무현 정부 때 4기의 원전 건설 허가가 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월성 원자력환경관리센터 착공식에서 “한국 원전은 세계 최고 안전성을 갖고 있다” “원자력은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만 달랐다. 그가 고리 1호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 사망’이란 말은 가짜 뉴스 수준이었다. 문 정부 때 고리 1호·월성 1호는 폐쇄, 신한울 3·4호기는 건설 중단됐다.
▶문 정부의 탈원전 때문에 건설이 5년 지체됐던 신한울 1호기의 완공식이 어제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세계적인 원전 강국의 위상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권 임기는 5년이지만 정권의 결정은 파급 효과가 10년, 20년 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대통령은 멀리 내다보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에너지처럼 국가 명운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탈원전 자해극을 모든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12.16 AI의 자의식

질문자는 다른 방에 있는 인간, 컴퓨터와 각각 대화한다.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컴퓨터가 지능을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1950년 제안한 인공지능(AI) 시험법이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라고 한다. 튜링은 지능이나 마음, 인간다움은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봤다. 답이 없는 철학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시험 통과를 목표로 AI를 개발하면 된다고 했다.
▶2014년 영국에서 만든 AI 유진 구스트만이 처음으로 이 시험을 통과했다. 구스트만은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이라고 심사위원들을 속였다. 하지만 어리다는 핑계로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시험 통과만을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우크라이나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없다”고 답할 정도로 허술했다.
▶이달 초 공개된 AI 연구소 오픈AI의 채팅 로봇 ‘챗GPT’가 화제다. 자연스럽게 인간과 대화하고, 도덕적 문제에 대한 의견도 거침없이 내놓는다. 상황과 분위기만 알려주면 소설이나 시, 편지도 몇 초면 완성한다. 챗GPT는 사람의 뇌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 구조로 돼 있다. 신경세포의 연결인 시냅스에 해당하는 매개 변수가 1750억개에 이른다. 이걸 수식으로 만들면 1750억차 연립방정식이 된다. 사람은 풀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문제다.
▶챗GPT가 자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 구글·네이버 같은 포털에서 찾으면 검색어가 포함된 수많은 웹사이트를 나열해 보여준다. 반면 챗GPT는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검색으로 얻은 정보를 최적화해 오류가 없는 문장으로 만든 뒤 결과를 단 하나만 보여주는 식이다. 사실은 고도화된 검색 엔진인 셈이다. 세상에 없던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창조가 아니라 참조한 데이터와 같지 않게 문장을 생성하도록 입력돼 있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고도화된 AI는 공상과학의 단골 소재다. 하지만 어떤 영화나 소설도 AI가 자의식을 갖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그럴듯한 시나리오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6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직전 과학자들조차 ‘바둑은 성역(聖域)’이라고 주장했음을 생각하면 자의식을 가진 AI의 등장도 먼 미래 얘기는 아닐 것 같다. 3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개발한 주판이 컴퓨터의 등장으로 사라지는 데는 50년도 걸리지 않았다. 언제 인간도 주판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른다.
박건형 논설위원
12.17(토) 그림 그리는 LPGA 챔피언

화가 고갱은 두뇌가 명석하고 이재(理財)에 밝았다. 성인이 된 뒤 증권회사에서 일했다. 그런데 그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틈틈이 그림을 사 모았고 아마추어 모임에 들어가 직접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파리 증권시장이 붕괴하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당시로선 늦은 35세에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위대한 화가 중엔 고갱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 붓을 쥔 사례가 꽤 있다. 아버지가 개신교 목사였던 고흐는 신학교 입시에 낙방하자 진로를 바꿔 화가가 됐다. 화가가 되기 전 전도사, 서점 직원 등을 거쳤다.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는 앙리 루소는 세관원이었고, 야수파 화가 마티스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법률 사무소 서기였다. 제프 쿤스도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다.
▶모두 붓의 자력에 끌려 들어간 사람들이다. 고갱은 퇴직 후 캔버스 공장에서 박봉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가난해졌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았다. 현대인의 우울을 표현한 걸작 ‘황색의 그리스도’는 그 시절 외로움과 가난 속에서 탄생했다. 마티스는 충수염에 걸려 입원했다가 어머니가 “무료함이나 달래라”며 건넨 물감 덕에 몰랐던 세상과 만났다. 퇴원 후 복직했지만 공증서에 꽃과 얼굴을 그렸다. 결국 직업을 바꿨다. 서머싯 몸의 장편 ‘달과 6펜스’는 고갱에게서 모티브를 따 왔지만 현실(6펜스)을 벗어나 이상(달)을 좇는 모든 예술가 이야기이기도 하다.
▶LPGA에서 뛰는 프로 골퍼 전인지가 붓을 들었다.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달 전시회도 연다. 지난 6월, 4년 가까운 슬럼프를 이겨내고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는 “온종일 골프만 생각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골프 이외의 취미와 화제를 갖고 세상을 더 크게 보게 됐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그림의 또 다른 효능을 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인지처럼 자신의 세계에서 더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해 그림의 도움을 받는 사람도 많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3년 뒤인 2012년부터 그림을 그렸다. 재임 중 만난 각국 지도자 초상화를 그려 전시회를 열고 화집도 낸 그는 “그림을 만나고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국내에선 가수 조영남·솔비, 배우 하정우·구혜선 등이 두 세계를 병행한다. 저마다 붓을 드는 이유는 다르지만, 그림 덕에 삶이 충만해진 것은 분명해보인다.
12.19(월) 중국 코로나 ‘지금부터 시작’

▲중국 베이징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고 있는 모습. / AP 연합뉴스
미국 미네소타대 감염병연구및정책센터(CIDRAP) 책임자 마이클 오스터홀름 교수는 코로나가 막 불붙기 시작하던 2020년 4월 “2022년까지 감염 피크가 다섯 번은 더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9이닝 야구 경기로 치면 이제 겨우 1이닝에 와 있을 뿐이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 설명에 앞길이 막막했는데, 벌써 2년 8개월이나 지났다.
▶오스터홀름 교수는 금년 1월 한 기고문에선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움직이는 타깃을 맞히려는 시도”라면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국은 결국 철통 봉쇄를 철회했고, 그러자 병원마다 코로나 환자로 넘쳐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의 열쇠는 죄었다 풀었다 하면서 병원 붕괴가 일어나지 않게 감염자 규모를 관리하는 것이다. 중국은 그게 아니라 제로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 180도 돌아버렸다.

/일러스트=김성규
▶중국은 감염 또는 접종으로 획득한 면역력도 미약한 상황이다. 중국 백신은 효과가 떨어지고, 시골은 의료 시스템이 부실하다. 베이징에서도 어린이 해열진통제가 무려 2000위안(약 38만원)에 팔린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최악의 경우 3개월 내 중국인 96%가 감염되고 사망자는 15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자칫 14억 인구의 중국이 변이 바이러스 공장이 돼 세계를 다시 코로나 비상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20년 9월 유엔 화상연설에서 “코로나가 각국 관리 능력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했다. 서구의 코로나 통제 실패를 꼬집은 것이다. 그랬던 중국이 지금 와선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코로나는 이제 감기 수준”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민일보는 “제로 코로나는 코로나 독성이 약화되고 효과적 백신·치료약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벌려는 정책이었다”고 합리화했다. 방송에는 “3년간 국가가 우리를 돌봐줬으니 이젠 각자 집에서 견디면서 의료 시설은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양보하자”는 작위적인 시민 코멘트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 걸리면 큰일 난다더니 이제 와 ‘감기 수준’이라는 정부 말을 누가 믿겠는가. 중국인들은 월드컵 경기에서 다른 나라 관중들이 마스크 없이 응원하는 걸 보고 분노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 없이는 효율적 코로나 대응도 불가능하다. 오스터홀름 교수는 16일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코로나는 향후 6~12주 사이 폭발할 것”이라며 5피트 짜리가 아닌 ‘1000피트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에 비유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세계에 유포시킨 중국이 코로나의 마지막 피크까지 장식할 모양이다.
12.20 아르헨티나와 축구
지난 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농업 대국이자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었다. 한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비옥한 곡창 팜파스에서 대두와 옥수수를 재배해 수출했다. 소가 사람보다 많아 가난해도 소고기만큼은 배불리 먹었다.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아르헨티나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떠나는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나왔다. 남미의 스위스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일러스트=박상훈
▶나라 이름에도 풍요가 깃들어 있다. 아르헨티나는 라틴어 은(銀)을 뜻하는 아르겐툼(argentum)에서 비롯됐다. 풍부한 광물 자원 덕에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스페인어 ‘라 플라타(La Plata·은)’라 부르다가 독립 후 지금 이름을 택했다. 이젠 옛날얘기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40년간 국가 부도를 9번 겪었고 올해 10번째 국가 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 IMF에서 받은 구제금융만 20번이 넘는다. 경제학자들은 이 나라를 초(超)인플레이션과 외환 위기가 반복되는 파탄 국가로 규정한다. 자원에 기대어 복지를 남발하고 미래 산업을 키우지 않은 탓이 컸다.
▶올해 물가 상승률이 90%를 넘은 이 나라에서 가장 무의미한 것이 내일을 위한 저축이고, 돈을 가장 잘 쓰는 방법은 오늘 다 써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정치 불신도 극에 달해 대통령 지지율이 7.9%에 불과하다. 다만, ‘축구에 진심’이다. 내일이 없는 국민은 축구장에서 오늘을 즐긴다. 최고 인기 클럽인 CA 보카 주니어스와 CA 라 플라타 간 경기가 열리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 흥분하면 공포탄까지 쏘아 댄다. 축구 선수는 이 나라의 세계 수출 1위 품목이다. 피파(FIFA) 랭킹 1위 브라질보다도 많이 내보낸다.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조성한 오벨리스크 광장엔 수십 만 인파가 쏟아져 나와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행복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다. 월드컵에서 처음 우승한 1978년에도 아르헨티나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그해 물가가 170% 넘게 뛰었다.
▶메시는 대회에 나가면서 “지금 아르헨티나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다. 국민이 축구라도 보면서 위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끝내 이 약속을 지켜냈다. 월드컵 결승전을 지켜본 세계도 아르헨티나 축구의 높은 경지와 그들의 헌신에 감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공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36년 만의 월드컵 우승으로 들이켠 좋은 공기가 나라 곳곳으로 번져나가길 빈다.
12.21 소아과 진료 대란
서울 성북구의 한 소아병원은 저녁 시간이 되면 북새통을 이룬다. 야간 진료 시작 30분이면 접수 마감이다. 최근 5년간 소아과 700곳이 사라진 데다, 늦게까지 문 연 소아과가 찾아보기 힘들 만큼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응급실마다 “야간 소아 진료 없다”는 안내문만 무성하다. 부모들이 경련을 일으키는 아기를 들쳐 업고 소아과 의사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맨다.

/일러스트=박상훈
▶요즘 아기 데리고 소아과 갈 때 동전을 챙기는 보호자들이 많다. 산모 고령화로 저체중 출생 아기는 날로 늘어나는데, 이런 경우 외래 진료비는 환자 측 부담률이 5%다. 통상 애 진료비가 1만2000원 정도이기에 보호자들은 500원 동전으로 진료비를 낸다. 차라리 무상으로 하지, 소아과 의사들은 자괴감이 든다고 말한다. 의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소아과 간판 접고, 애들 데리고 오던 엄마나 할머니한테 보톡스 놓고 필러 넣으며 먹고산다는 소아과 전문의의 자조가 많다.
▶소아과 여의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의료계서 회자된다. 요지는 이렇다. “출산율 낮아서 소아과 안 하는 거 아닙니다. 요즘 아기들 한 번 올 거 열 번 소아과 옵니다. 트림 두 번 했다고 오고, 모기 물린 자국 사흘 간다고 옵니다. 진료량은 예전과 같아요. 부모들의 폭언과 온라인 갑질은 상상 이상입니다. 내던진 약봉지에 함 맞아보세요. 우리를 가해자 취급합니다. 요새 중환자 살려 보겠다고 애쓰는 의사 없어요. 그랬다가 구속될까 걱정하지요.”
▶소아과 의사라면 누구나 보는 교과서, 넬슨 소아과학 첫 장은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로 시작한다. 몸무게 3㎏ 신생아는 1년 만에 10㎏가 된다. 성장기에는 생체 징후가 요동치고, 증세가 수시로 바뀐다. 아기들은 말이 없기에 더 많은 진찰을 해야 한다. 투여 약물도 체중 1㎏당 몇 ㎎ 식으로 계산한다. 아기 혈관 굵기는 ㎜ 단위여서, 수액 주사 놓기가 모래사장서 바늘 찾기다. 많은 경험과 쌓인 지식이 소아 진료에 필수다.
▶최근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이 소아과 전공의가 없다며 입원실을 닫았다. 피교육생인 전공의가 없으면, 입원 진료를 못 하는 게 한국 병원이다.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필수 진료에 써온 탓이다. 올해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16%라고 해서 문제가 됐는데, 전문의가 진료 현장을 떠났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소아 의료수가를 대폭 올리고, 입원과 응급 진료를 위해 여러 명의 소아과 전문의들이 모여 근무하는 모자(母子)보건센터를 지역별로 세우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미 소아 진료 대란이 시작됐다.
12.22 온 천지에 카메라

/일러스트=박상훈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감시 괴물 아르고스는 눈이 100개 달렸다. 잘 때는 눈 두 개씩 번갈아 감고 나머지 98개로 불침번을 선다. 여신 유노는 그런 아르고스를 시켜 남편 유피테르가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감시했다. 1980년대 팝송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 제목은 손님의 부정행위를 적발하려고 천장에 매단 도박장 카메라에서 따 왔다. 그 능력을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하늘의 눈이야/ 널 보고 있지/ 네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나는 규칙을 만들고/ 바보들을 갖고 놀아.’
▶넷플릭스 영화 ‘마이 네임 이즈 벤데타’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 뒤 숨어 살지만 딸이 아빠 얼굴을 휴대전화로 찍어 SNS에 올리는 바람에 은신처가 들통난다. 평생 숨어 살려고 세밀하게 짠 계획을 스마트폰 카메라가 망쳤다. 스마트폰만이 아니다. 거리의 CCTV부터 노트북과 테블릿, 자동차 블랙박스, 스마트 TV 등에 달린 카메라 렌즈가 사람의 말과 행동을 다 기록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와 화상회의 등이 보편화되며 카메라는 일상 깊이 들어왔다. 그 때문에 전에 없던 갈등도 벌어진다. 미국 대학에선 온라인으로 시험 볼 때 PC 카메라와 연계해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프록터(proctor)라는 프로그램이 사생활 침해 논란을 빚고 있다. 한 대학은 부정행위를 방지한다며 방 내부를 PC 카메라로 보여달라고 요구했다가 학생에게 소송을 당했다.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엔 출입문 개폐와 난방, 환기 등을 전자식으로 관리하는 월 패드가 설치돼 있다. 카메라도 장착해 방문자를 확인하거나 이웃과 영상 통화할 때 쓴다. 월 패드를 해킹해 집 안을 엿보고 영상을 녹화한 사람이 검거됐다. 무려 40만 가구를 들여다봤다. 내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TV를 보거나 목욕하려고 옷을 벗을 때도 누가 나를 보는 건 아닌지 불안한 세상이 됐다. 그렇게 유출된 사생활이 다크웹을 통해 까발려진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르고스의 눈 100개 감시망을 깬 이는 유피테르의 아들 메르쿠리우스다. 피리 연주로 아르고스를 잠들게 한 뒤 목숨을 빼앗았다. 그러나 오늘날 아르고스의 눈을 파괴할 메르쿠리우스 피리는 없다. 보안 전문가들은 웹 캠 프로그램을 자주 업데이트하고,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설정하거나 렌즈에 테이프를 붙이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옛 선비들은 방에 혼자 있을 때도 남이 나를 보듯 몸가짐을 삼갔다. 신독(愼獨)이라 한다. 카메라 때문에 망신당할까 봐 신독하게 생겼다.
12.23 퇴조하는 크리스마스

/일러스트=박상훈
한 세대 전, 가수 이연실이 부른 ‘조용한 여자’에서 젊은 여성은 외로움을 토로하며 ‘그 흔한 크리스마스 파티 한번 구경 못 했지요’라고 한다.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즐기던 시절의 분위기를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당시 서울 명동은 크리스마스 축제 1번지였다. 기자의 현장 스케치엔 ‘발 디딜 틈 없다’는 문장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둔 22일 오후 찾아간 명동은 한산했다. 명동 입구에서 명동예술극장까지 걷는 동안 눈에 들어온 크리스마스 장식도 ‘메리 크리스마스’라 적힌 플래카드 두 개와 트리 하나 정도였다.
▶파티와 인파만 사라진 게 아니다. 겨울이면 12월 내내 전국 거리에 울리던 캐럴도 좀처럼 듣기 어렵다. 엄격해진 저작권 영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 관련 당국이 2019년부터 무료로 틀 수 있는 캐럴을 공급하는데도 캐럴 붐이 일지 않는다. 이미자·남진·나훈아·조용필 등 인기 가수가 캐럴을 부르고, 심형래·최양락 등 개그맨까지 가세했던 시절은 옛날이 됐다. 캐럴 퇴조가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 소매상을 대상으로 겨울에 가장 듣기 싫은 노래가 뭐냐고 물었더니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머라이어 케리의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를 꼽았다. 신곡은 안 나오고, 1980~90년대 곡만 트니 지겹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퇴조 현상은 사회의 구조적 변화라는 분석도 있다. 저출산으로 산타클로스 할 일이 크게 줄었고, 젊은이는 핼러윈을 선호한다. 서양에선 특정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지말라는 PC(정치적 올바름) 운동도 있다.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나 석탄일이 아니라 제헌절, 국군의날, 어버이날이 휴일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명동 노점상들이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전체 휴업에 들어간다. 31일에도 단축 운영한다.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태원 참사와 코로나도 고려했다고 한다. 올해 크리스마스가 일요일인 것을 두고도 설이나 추석처럼 대체 휴일 대상에 포함하자는 의견과 이제 특정 종교 축일은 휴일에서 빼자는 주장이 맞선다.
▶크리스마스 열기가 전만 못하다 해서 예수 탄생의 의미까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말 구유에서 탄생한 예수는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하며 구원을 설파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비탄에 우는 이들에게도, 오랜 불황의 터널에 갇혀 시름에 겨운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에 담긴 예수의 사랑이 온전히 전해지길 기원한다.
12.24(토) ‘제2의 임영웅’을 꿈꾸며

문단에 시인과 소설가 명함을 팔 수 있는 등용문은 많다. 하지만 고수가 될 재목이 두드리는 문은 따로 있다.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은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당선하자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겨우 시인 등록이 된 셈인가 보오.’ ‘겨우’라는 겸손한 단어로 이후 펼쳐지게 될 신동엽 시대를 예고했다. 가수 임영웅에게 등용문은 TV조선의 서바이벌 트롯 오디션 ‘미스터트롯’이었다. 장민호·김호중·이찬원 등도 그 문을 지나 세상에 나갔다. 이후 재야의 노래 고수들은 ‘제2의 임영웅’을 꿈꿨다.
▶TV조선이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뒤 모방품이 여럿 뒤따랐다. “트로트 공해다” “또 트로트냐”는 일부 비판이 있었다.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이 22일 밤 10시 첫 전파를 탔다. 이번엔 “역시 원조는 다르다”고들 했다. 대학부 박지현의 노래를 들으며 ‘물건’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아내는 “한밤중인데 괜찮을까”라면서도 TV 볼륨을 키웠다. 1분도 안 돼 올하트가 터진 순간, 조규성의 월드컵 가나전 헤딩슛 때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박수가 터졌다.
▶화제의 영화 ‘아바타’는 상영 시간이 3시간으로 길다. “아바타 보느라 엉덩이 아팠다”는 우스개 감상평이 돈다. 미스터트롯 방송 시간도 3시간 가까웠고, 심야에 시작해 자정을 넘겼다. 하지만 노래와 볼거리, 곡진한 사연에 몰입하느라 잠들 수 없었다. 화려한 불 쇼, 온몸 관절을 꺾으며 노래하는 신기한 퍼포먼스도 시선을 붙들었다. 대학부가 단숨에 시청률을 18% 넘게 끌어올렸고 이후 20%를 넘어섰다.
▶노래만 잘해선 시청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명품이 되려면 사연이 있어야 한다. ‘장구의 신’으로 이미 성공한 박서진을 무대에서 봤을 때 의아했다.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을지문덕 장군이 보낸 시가 떠올랐다. ‘이미 많은 공을 세웠으니 그만 만족하라.’ 박서진은 만족하지 않았다. “다른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숙여졌다.
▶심사위원들이 앉은 마스터석(席)은 배경이 아니라 또 다른 무대였다. 마스터 김연자가 그렇게 말 잘하고 표정도 풍성한 줄 미처 몰랐다. “무조건 노래 잘해야 한다”던 그가, 모델 출신 윤준협의 골반 댄스를 보고는 “내가 노래만 보는 게 아니었어”라는 말로 좌중의 경탄을 대신 표현했다. “오디션은 앙코르 안 되나요”라는 현영의 심사평도 재치 만점이었다. 카타르 월드컵이 끝난 뒤 “이제 뭘 보나” 싶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12.26(월) 짜장면집이 비밀 아지트?

/일러스트=김성규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사이공을 비롯한 남베트남 도시들을 기습했다. 미국 대사관을 일시 점령하고 일부 도시를 함락시켰지만 이내 미군에 진압됐다. 작전은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미국 대사관에 베트콩 깃발이 휘날리는 장면이 생중계되며 미국 내 반전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북베트남 지휘부가 이 작전을 앞두고 비밀회의장 겸 무기고로 활용한 장소가 사이공 시내 쌀국수집이었다. 1988년 베트남 정부는 이 식당을 역사유적지로 지정했다.
▶지금은 위축됐지만 한때 북한은 해외에 120여 개의 식당을 운영했다. 옥류관, 류경식당 등의 간판을 단 이 식당들은 가무에 능한 여종업원을 내세워 공연과 북한 음식을 제공하며 막대한 ‘충성 자금’을 북한에 보냈다. 외화 벌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파이 거점 역할이었다. 현지인 외에 한국 관광객과 상사 주재원들도 자주 찾았는데 이들이 먹고 마시며 내뱉은 말들이 고스란히 북 보위부의 첩보로 가공됐다.
▶중국 공안 당국이 반체제 인사 탄압을 위해 최소 53국에서 102곳 이상의 비밀경찰서를 운영한다고 스페인의 인권단체가 폭로했다. 우리 정부도 실태 파악에 착수했고,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이 지목됐다. 중국 대사관은 “이른바 ‘해외경찰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불거진 직후 해당 식당은 돌연 폐업을 선언했다.
▶문제의 식당 이용객들이 과거에 남긴 후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음식이 너무 성의 없다’ ‘절대로 다시 가지 않겠다’ ‘조리했다기보단 전자레인지에 돌린 듯’ 등 맛이 없다는 후기나, ‘직원들이 서로 키득거리며 중국어로 대화함’ ‘(종업원들이) 손님 있는데 퇴근 준비함’ ‘직원들이 간단한 한국어도 못 알아들음’처럼 종업원 태도에 실망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압권은 ‘(별) 한 개도 아깝습니다. 여긴 분명 식당을 하기 위해 연 곳이 아닐 거라 생각된다’는 3년 전 후기였다.
▶방첩 당국은 이 중식당을 비교적 수월하게 중국의 비밀 경찰서로 지목했다고 한다. 혹평 속에 큰 손실을 보는데도 6년 이상 영업한다는 게 의심을 샀다는 것이다. 역대 2위인 1600만명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영화 ‘극한직업’은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해 수사하는 상황을 그렸다. 너무 진지하게 장사에 임해 잠시 경찰이란 본분을 잊을 지경이 된다. 쇄도하는 주문을 받느라 용의자 미행을 위해 지원을 요청한 동료 형사를 돕지 못하는 식이다. 문제의 중식당을 영화 속 치킨집처럼 운영했다면 발각이 어려웠을 것이다. 차라리 다행이다.
12.27 난쏘공

/일러스트=박상훈
소설가 조세희가 1978년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펴냈을 때 ‘난쏘공 신화‘의 탄생을 내다본 이는 거의 없었다. 당대의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 8000부쯤 나가겠네”라 했고, 작가 자신도 “쓰느라 3년 고생했으니 더 나가야 하는데”라며 걱정했다. 그때만 해도 문학에 도시 빈민의 삶을 담는 것은 흔치 않았다.
▶처음엔 운동권 학생들의 ‘의식화’ 도서로 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약자를 돌보는 내용이 19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올해까지 320쇄 148만부를 찍으며 문학 작품으론 유례를 찾기 드문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소설의 애칭인 ‘난쏘공’은 비단 이 소설만 지칭하지 않고 일상에서 다양하게 변용된다. 리오넬 메시가 몇 해 전 남미 축구대회인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페널티 킥을 실축하자 신문에 ‘메쏘공’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최근에도 ‘다누리가 쏘아 올린 우주 강국 꿈’ ‘글로벌 OTT가 쏘아 올린 광고 요금제’ 같은 기사 제목으로 활용된다.
▶정작 조세희는 작품의 성공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1996년 100쇄를 돌파하고 2005년 200쇄에 이르자 “아직도 팔리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출간 30주년 때는 “청년이 이 책 내용에 공감한다는 게 괴롭다”고도 했다. 그는 “30년 전 내가 우리 사회에 품었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한 한국은 성장하기를 멈춘 나라”라고 비판했다.
▶'난쏘공’은 그에게 자부심이자 또 다른 고지에 오르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린저는 명작 하나로 끝났다. 조세희도 ‘난쏘공’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길 갈망했지만 쉽지 않았다. 1983년 소설집 ‘시간여행’을 끝으로 결국 소설 쓰기에서 멀어졌다. 여러 해 전 해외여행 때 그의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난쏘공을 넘어서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을 늘 느낀다”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봤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병마가 조세희를 덮쳤다. 그는 “집중을 하지 못한다. 젊었던 내게 뛰어와서 써달라고 하던 단어들이 사라진다”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소외된 이들의 삶에 대한 관심만은 놓지 않았다. 펜 대신 카메라를 들고 탄광촌에 들어가 그곳의 삶을 사진집으로 묶기도 했다. 조세희가 우리 사회 음지를 비추는 밝은 조명탄을 쏘고 크리스마스 날 저녁 영면에 들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엔 발전에 따른 그림자도 드리워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그림자를 돌아보게 한 작가였다.
12.28 ‘봉이 김선달’
지난해 문화재청 국정감사 때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특정 사찰을 지목해 “매표소에서 거리가 3.5㎞”라며 “그 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3.5㎞ 밖의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통행세를 낸다.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요”라고 했다.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고 징수하는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빗댔다. 부적절한 발언이었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았다.

▲국립공원 내 사찰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두고 '봉이 김선달'에 비유 논란을 일으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논란 발언에 사과를 하고 있다./뉴스1
▶국립공원 내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논란은 해묵은 것이다. 2007년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없애며 갈등이 더욱 증폭됐다. 일부 등산객은 “왜 구경하지도 않는 사찰 관람료를 내느냐”고 한다. 반면 불교계는 애초에 정부가 사유지인 사찰까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공개를 강제했으며, 국립공원법·전통사찰보존법·산림법 등 규제로 묶어두고 문화유산 관리 부담까지 지게 했다고 항변한다. 문화재 관람료는 이에 따른 관리비 명목으로 법에 따라 징수하므로 단순 관람료가 아니고 국립공원 입장료와도 별개라는 것이다. “관람료라는 명칭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며 자체적으로 ‘문화재 구역 입장료’란 명칭을 쓴다.
▶정 의원 발언으로 ‘봉이 김선달’이 된 불교계는 분노했다. 처음엔 “잘못한 것 없다”고 버티던 정 의원은 사태가 커지자 결국 사과했다. 사찰이 문화재 관람료를 감면하면 부족분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내용의 문화재 보호법 개정안도 발의해 지난 4월 통과시켰다. 내년도 예산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며 관련 예산 421억원도 확보했다.

▶국민의 문화·여가 활동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다. 지금껏 불교계가 졌던 부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지원도 필요하다. 등산객과 불교계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푸는 것이 정부 역할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회의원이 섣부른 발언으로 만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정 의원은 “봉이 김선달”이라는 막말로 갈등에 불을 지르더니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자신의 막말을 덮었다. 국민 중에는 절에 가지 않는 사람도 많다. 국회의원이 국민 세금을 제 지역구에 뿌려 생색내는 일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제 입이 빚은 사고를 덮는 데 쓰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중국 5대(代) 시기의 시인 풍도(馮道)는 ‘설시(舌詩)’라는 작품에서 ‘입은 재앙의 대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이라고 했다. 중국에선 입을 가볍게 놀리는 이를 ‘다쭈이(大嘴·큰 주둥이)’라 한다. 불교계를 ‘봉이 김선달’이라고 하더니, 그 입으로 부른 화를 남의 돈으로 때운 정 의원이야말로 ‘봉이 김선달’ 아닌가.
12.29 또 ‘중국당할’ 판
▲중국이 해외발 입국자 시설격리를 다음 달 8일부터 폐지하기로 한 가운데 2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코로나19 센터 앞으로 탑승객들이 지나고 있다. 이에 따라 1월 8일부터 해외발 중국 입국자는 5일 시설격리 및 3일 자가 격리를 하지 않고 일정 기간 재택 격리 또는 건강 모니터링만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중국스럽다’는 말은 처음 들어도 감이 온다. 좋게는 대국의 규모를 보여줄 때, 나쁘게는 무례하거나 욕먹을 행위에 어울리는 말이다. 요즘 일부 젊은이들은 ‘중국당했다’는 말도 쓴다고 한다.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을 때 쓰는 말이다. 중국의 경제 보복과 몰상식한 무례를 지겹게 보아온 젊은 층이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한다.
▶우리가 ‘중국당하는’ 일이 많아서인지 한국인의 반중(反中) 정서가 세계 56국 중 가장 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외교 전문 매체 디플로맷 보도를 보면 한국인은 81%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2위 스위스(72%)나 3위 일본(69%)과 격차가 컸다. 7년 전 비슷한 조사에서는 우리 국민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비율이 37%에 그쳤다. 그사이 우리 국민이 엄청나게 ‘중국당한’ 것이다. 얼마 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중국(23.9점)에 대한 호감도는 북한(29.4점)이나 일본(29.0점)보다 낮았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풀면서 주변국들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코로나 방역 강도는 다른 나라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옳다. 그런데 중국은 무모하게도 3년이나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다가 한꺼번에 봇물 터뜨리듯 풀고 있다. 수업 시간에는 졸다가 쉬는 시간에 공부하자고 떠드는 꼴이다. 하필이면 코로나 확산에 유리한 한겨울에 봉쇄를 풀었다. 요즘 중국 코로나 감염은 매일 수천만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중국인들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면 코로나가 확산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들이 해열제 등 의약품을 해외에서 대량 구매해 중국으로 보내면서 각 국에서 해열제 부족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이 의약품 품절 사태를 겪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경기도 하남에서 중국인이 해열제와 감기약 600만원어치를 싹쓸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이 26일 밤 해외 여행 정상화를 발표하자 30분도 채 되지 않아 한국 등 인기 여행지 검색은 전년 대비 10배 증가했다고 한다. 14억 인구가 ‘보복 관광’을 시작하면 그 여파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곧바로 30일부터 중국에서 오는 입국자 전원을 대상으로 코로나 검사를 실시하는 입국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우리 방역 당국도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강화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만 늦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분간 거대한 이웃이 시한폭탄을 안고 뒤뚱거리는 것을 지켜보는 스트레스가 작지 않을 것 같다.
12.30 ‘OO王’들의 세계
미국 월가에서 ‘채권왕’으로 불린 빌 그로스는 명실공히 미국 채권시장의 개척자였다. 그가 만든 ‘토털 리턴 펀드’는 20년 넘게 연평균 7.8% 수익률을 올리며 300조원 넘는 규모의 세계 최대 채권 펀드로 등극했다. 이 ‘채권왕’도 말년 실적은 부진했다. 2014년 새로 펀드를 만들었는데 4년간 평균 수익률이 1%도 안 됐다. 결국 채권 운용 47년 만에 불명예 은퇴했다.

/일러스트=박상훈
▶우리 주변에 ‘OO왕’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채권왕’ ‘주식왕’ ‘판매왕’ ‘보험왕’ ‘저축왕’ 등 자신의 노력으로 최고의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 찬사로 붙여주는 별칭이다. ‘자동차 판매왕’으로 손꼽히는 기아 박광주 영업이사는 1994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작년에 누적 자동차 판매 대수가 1만3507대로, ‘전설의 세일즈맨’으로 불리는 미국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의 누적 판매(1만3001대)도 넘어섰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부지런함으로 무장한 그는 올해도 질주를 계속해 28일 현재까지 누적 판매 대수가 1만4263대다. 작년에 630대 팔았고, 올해는 더 많은 756대를 팔았다. 하루 2대씩 자동차를 파는 놀라운 ‘판매왕’이다.
▶신분이 세습되는 왕과 달리, 이런 ‘OO왕’은 오르기도 힘들고 지키기도 어렵다. 각고의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야 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도 받아야 한다. 진짜가 아닌 ‘사기 왕’도 허다하다. 몇 년 전 한 보험사 에이스로 꼽히던 ‘보험왕’이 줄고소를 당했다. 보험왕 타이틀을 유지할 욕심으로 “3년 안에 원금을 2배로 돌려주겠다”고 무리하게 주위에서 돈을 빌려 보험 실적을 유지하다 들통났다.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대학생 신분으로 최초 가입한 20대 청년 박모씨는 ‘400억 주식왕’으로 불렸다. “중학교 때 주식투자를 시작해 400억원대 자산가가 됐다”면서 실제 18억원가량 기부도 해 유명해졌다. 알고 보니 선행을 베푸는 주식왕으로 자신을 미화한 뒤, 돈 불려 주겠다고 수십억원을 투자받아서 일부는 기부하고 나머지는 가로챘다.
▶지난 10월 ‘40대 빌라왕’의 사망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전국 빌라왕들의 전세 사기 행각은 짝퉁 ‘보험왕’ ‘주식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조직적 사기 행각이다. ‘깡통 전세’를 수백채, 수천채씩 굴린 것도 황당한 데다, 빌라 사기에 연루된 사망자만 벌써 3명째다. 전세 사기를 낱낱이 수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사기를 가능케 하는 법적·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12.31(토) 언제나 뜨거웠던 펠레처럼
펠레의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다. 발명왕 에디슨처럼 되라며 아버지가 지어줬다. 펠레는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다. 펠레라는 애칭도 아버지 아닌 남이 지어주었다는 이유로 처음엔 싫어했다. 1950년 월드컵이 브라질에서 열렸다.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우루과이에 충격패 하자 라디오 중계를 듣던 아버지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눈물을 그때 처음 봤다고 했다. 열 살 소년은 아버지를 위로했다. “울지 마세요. 제가 월드컵에서 우승할게요.”

/일러스트=박상훈
▶펠레의 기술은 지금 다시 봐도 놀랍다. 펠레는 온몸으로 드리블한다. 백힐 패스, 노룩 패스, 수비수 머리 위로 공을 차올려 넘긴 뒤 낙하 지점을 먼저 차지해 슛을 쏘는 ‘사포’를 그때 이미 선보였다. 173㎝ 작은 키로 1m 넘게 점프해 헤딩슛도 꽂았다. 상대 수비수는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과 맞선 느낌”이라고 했다. 혼자서 7명을 잇달아 제치고 골을 넣은 적도 있다. 펠레가 출전하는 경기장은 늘 열광한 관중이 쏜 공포탄 화약 연기로 자욱했다.
▶펠레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세계 최고 미드필더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접니다”라고 했다. “그럼 최고 윙어는 누구냐?” 물으면 “그것도 접니다”라고 했다. 축구 잘하는 비결을 물으면 “상대보다 딱 0.5초 빠르면 된다”고 했다. 그런 그가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한 것이 맨발이었다. 단 한 번 맨발을 공개한 적이 있다. 발바닥은 물론이고 발가락 마디까지 굳은살이 박인 상처투성이 발이었다. 발톱은 거의 다 닳았다. 혹독한 연습의 흔적이었다.
▶펠레가 경기장에서 맞선 상대는 선수만이 아니었다. 그는 국민의 기대와도 싸워 이겨야 했다.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그는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했다. 한 사람의 3회 우승은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대회 전 기자가 “우리가 우승하나요?”라 물으면 “신이 허락한다면요”라고 대답했다. 극성 팬들은 “우승한다고 해라. 우승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펠레는 “우승으로 내가 얻는 최고의 상은 트로피가 아니라 안심”이라고 했다.
▶펠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축구 선수는 뜨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펠레가 별세했다. 그는 고관절 수술과 대장암으로 두어 해 전부터 휠체어 신세를 졌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펠레’ 편엔 옛 동료들을 만난 펠레가 “손기술을 보여준다”며 휠체어를 조종하는 장면이 나온다. 휠체어에서도 그는 가슴이 뜨거워 보였다. 새해 우리의 눈앞에 떠오르는 태양도 이렇게 뜨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