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2-12/ 12.02 ‘월북 몰이’ 진상 규명하면 ‘안보 무력화’라는 문 전 대통령 - 12.30 대통령 질타에 무인기 대응훈련
自主國防 2022-12/
12.02 ‘월북 몰이’ 진상 규명하면 ‘안보 무력화’라는 문 전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이 1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정권이 바뀌자 대통령에게 보고된 부처의 판단이 번복됐다”며 “안보 정쟁화, 안보 체계 무력화”라고 했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사살되고 시신이 소각됐는데 정부가 도리어 ‘월북 몰이’를 했다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 ‘안보 무력화’가 되나. 검찰 수사가 자신의 주변으로 좁혀오자 법원에 영향을 미쳐보려는 주장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통령은 피살 3시간 전 공무원의 북한 해역 표류를 보고받았지만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남북 간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었다”고 했지만 국제상선통신망은 열려있었다. 그는 공무원 피살 후 대책 회의에도 불참했다. 당시 TV엔 사전 녹화된 그의 ‘한반도 종전 선언’ 유엔 연설이 방송되고 있었다. ‘국민이 사살·소각되는데 대통령은 뭘 했느냐’고 유족들이 물어도 답하지 않더니, 관련 자료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감사원이 서면 조사를 요구하자 “무례하다”고 거절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 ‘안보 무력화’라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오판해 북핵 고도화에 빌미를 준 문 전 대통령이 어떻게 ‘안보 무력화’라는 말을 하나.
문 전 대통령은 “안보 부처는 정보와 정황을 분석해 사실을 추정했고, 나는 특수정보까지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해경은 애초 공무원의 ‘해상 추락’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비서실장, 안보실장, 국정원장이 ‘월북 추정’으로 바꾼 것이다. 그 직후 군과 국정원은 관련 첩보 보고서 106건을 삭제했다. 떳떳하면 왜 삭제했나. 해경청장은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자 “난 안 본 거로 하겠다”고 했다. 증거 조작이다. 유족들은 이날 “문 정권이 무슨 짓을 했는지 검찰과 법원이 밝혀달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유족들의 물음에 답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2.03 ‘서해피살 은폐’ 혐의 서훈 구속... “증거 인멸 우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윗선으로 지목되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폐’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김정민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범죄의 중대성 및 피의자의 지위 및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추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서 전 실장의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서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9월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해수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 했다는 근거가 부족한데도, 해양경찰청에 이씨의 ‘월북 정황’을 발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또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 첩보와 국가정보원 첩보 가운데 이씨의 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내용을 삭제하라고 국방부와 국정원에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이날 영장 실질 심사에서 “서 전 실장은 안보실장으로서 해경과 국방부를 지휘해 이씨를 자진 월북으로 몰아간 책임이 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홍희 전 해경청장과 해경 관계자들은 “안보실 지시로 이씨의 자진 월북 정황을 발표했다”는 취지로, 국방부와 군 관계자들은 “첩보 삭제 지시는 안보실에서 내려온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각각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지난 10월 국회 기자 회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은 사건 관계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며 입을 맞추려 한 정황으로,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서 전 실장은 “이씨의 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첩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지난 1일 입장문에서 “당시 안보부처들은 획득 가능한 모든 정보와 정황을 분석해 사실을 추정했고, 대통령은 특수 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이날 서 전 실장의 영장 심사는 10시간 5분간 진행됐다. 이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 심사 시간(8시간 42분)을 넘어서며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한편, 검찰은 앞서 구속됐다가 구속 적부심을 통해 석방된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이날 구속된 서 전 실장을 추가 수사한 뒤 이들을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12.03 최악의 北核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北 핵무기 휴전선 넘는 5~10분 안 한국 대응할 수 있나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위기’ 어떻게 넘었나 돌아봐야
한 보름 김정은이 핵폭탄과 미사일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오랜만의 ‘핵(核) 휴가’도 김정은이 7차 핵실험 카드를 꺼내는 찰나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북한이 손에 쥔 ‘전술핵무기’는 탄생부터가 실전(實戰)에 써먹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다. 눈치 챘든 못 챘든 우리 생각과 행동이 북한 핵무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상대의 선제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했다.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 특사에게 ‘내 자식들을 핵무기 위협 아래 살게 하고 싶지 않다’ 했다. 이 메시지가 한국 대통령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되도록 해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시리즈를 이어갔다. 얼마 안 가 진실이 드러나고 한국은 거짓말 책임을 둘러썼다.
김정은은 올해 9월 ‘핵무력 정책법’을 발표하고 가면을 벗었다. 핵무력 정책법은 핵 선제(先制)공격의 이유로 북한 지도부에 대한 공격, 유사시 전쟁 주도권 장악 필요 등 5가지 상황을 열거했다. 미국 핵과학자협회(BAS)는 지난 9월 북한이 핵탄두 완제품 20~30개를 보유했으리라고 추정했다.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등 후발(後發) 핵보유국이 십 단위에서 핵 보유를 멈춘 전례(前例)가 없다. 소규모로 핵을 보유하는 것은 유사시 상대의 대규모 핵공격을 불러와 더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격 미사일이 많을수록 상대의 미사일 방어망(MD)도 쉽게 뚫을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북 핵무기는 늘어나고 있다.
1957년 소련이 ICBM을 개발하자 미국은 국가 비상(非常)이 걸렸다. 소련 발사 미사일이 미국에 닿는 데 걸리는 30분 안에 방어와 반격에 필요한 판단과 행동을 완료해야 했기 때문이다. 1000명이 넘는 민간과 군 과학자들이 총동원됐다. 북한 미사일이 휴전선을 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10분, 짧으면 5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이 찰나 같은 순간에 국방장관·군(軍) 수뇌와 판단을 끝낼 수 있을까. 한국군 3축(軸)체제는 북한 핵무기를 막아낼 수 있을까.
한국 핵 방어 전략은 미국이 워싱턴과 뉴욕이 북한의 과녁이 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을 지켜주도록 하는 ‘확장억지전략’이다. 확장억지전략은 냉전(冷戰)이 한창이던 시절 소련 공격으로부터 ‘함부르크와 뮌헨을 지키기 위해 시카고와 뉴욕을 걸 수도 있다’던 미국과 서독 간 언약(言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이 미국과 동반(同伴) 자살하는 사태를 두려워하며 합의가 지켜지리라는 쪽으로 기울었기에 일정 효과를 거뒀다. 북한이 최근 반복해서 미국을 과녁 삼은 ICBM과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미사일 섞어 쏘기를 하는 것은 한·미 간 틈새를 벌리려는 수법이다.
북한 재래식 무기는 형편없이 낡았다. 재래식 전력(戰力)이 떨어질수록 긴급 상황이 닥치면 핵무기 쪽으로 손을 뻗게 된다. 핵 시대가 막 열린 1950~1960년대 초반 핵 위기가 자주 벌어졌다. 핵무기를 보유했지만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핵 시위(示威)·핵 공갈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최악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1968년을 돌아봐야 한다. 1월 21일 북한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했다. 이틀 후 23일엔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군에 나포됐다. 미국은 사건 발생 즉시 베트남으로 향하던 핵 항공모함 진로를 변경해 현장으로 향하게 하고 닷새 후 두 척의 항공모함 전단을 증파(增派)했다. 그러나 미국 압박은 먹히지 않았다. 김일성이 미국이 미군 53만 명을 파병한 월남에서 몰리는 처지에 한국에 새 전선(戰線)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인 1월 31일 북(北)베트남군과 베트콩은 8만 병력으로 남(南)베트남 100개 도시를 공격했다. 3월 초 베트남 주둔 미군 사령관은 본국에 20만6000명을 증파(增派)해 달라고 긴급 전문(電文)을 보냈다. 미국에는 더 보낼 무장한 사단(師團)도 없었다.
김일성이 멀리 베트남 전세(戰勢)를 엿봤듯 김정은은 대만 방위를 둘러싼 미·중 대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만 위기가 발생하면 일본 주둔 미군은 물론이고 주한 미군도 그 소용돌이에 빨려들게 돼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4월 30일 야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미국이 북한에 굽히고 들어가 푸에블로호 송환을 위해 교섭을 벌이는 것을 강력 항의해 특별군사원조를 받아내 군사력을 보강하는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렇게 위기의 1968년은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54년 전 일이다. 지금 한국의 비상 대책은 무엇인가.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
12.05 ‘월북 몰이’ 서훈 구속, “내가 승인했다”는 文이 소명할 차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뉴시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북한군에 피살·소각된 공무원 이대준 씨를 월북자로 몰고 그와 배치되는 첩보를 삭제토록 한 혐의로 구속됐다. 서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안보 수장이었다. 정권 차원의 월북 몰이와 증거 은폐 범죄가 있었음을 법원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소명이나 사과 대신 “최고의 북한 전문가이자 (남북 간) 신뢰의 자산을 꺾어버렸다”며 현 정부와 검찰을 비판했다.
서 전 실장은 이씨가 월북했다는 근거가 부족한데도 자진 월북으로 단정한 뒤 해양경찰청에 조작·과장된 월북 정황을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와 국가정보원의 첩보 보고서 중 이씨의 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내용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청와대는 ‘자진 월북에 방점을 두고 수사하라’고 해경에 지시 내렸다. 사건 수사 전부터 이미 월북으로 결론 낸 것이다.
당시 해경청장과 해경 관계자들은 청와대 안보실 지시로 월북 수사를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해경청장은 월북과 배치되는 증거가 나오자 “난 안 본 걸로 하겠다”고까지 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도 청와대의 지침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군 관계자들은 서 전 장관 지시에 따라 첩보를 삭제했다고 했다. 청와대 지침에 따라 범정부 차원의 조직적 월북 몰이와 증거 은폐가 이뤄진 것이다.
이제 모든 의혹의 화살은 문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서 전 실장 영장심사 전날 “도를 넘지 말라”고 경고성 입장을 내더니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남북 간) 신뢰가 무너지면 힘이 든다”고 했다. 우리 국민이 끔찍한 죽음을 당하고 월북자로 몰려 명예 살인까지 당했는데 남북관계 신뢰를 얘기하는 게 말이 되는가.
문 전 대통령은 “내가 당시 국방부, 해경, 국정원의 보고를 직접 듣고 최종 승인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모든 보고를 받고 지침을 정한 것이라고 밝힌 셈이다. 그 지침에 따라 서 전 실장과 국정원, 국방부, 해경이 조직적으로 월북 몰이와 자료 삭제를 했다면 최종 책임은 문 전 대통령에게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씨가 북한군에 발견된 사실을 보고받고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씨가 피살된 뒤 열린 대책회의에도 불참했다. 유족들에게 “진실을 밝히도록 직접 챙기겠다”더니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법원 공개 판결에 불복했다. 관련 자료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봉인했다. 문 전 대통령은 왜 이씨를 구조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월북으로 몰고 갔는지, 모든 사실을 그토록 숨기려 했는지 스스로 밝혀야 한다. 안보실장과 국방장관, 해경청장 등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숨을 곳도 없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조선일보 사설
12월 05일 “월북 보고 승인” 文의 서해사건 책임 전모 조사해야
서해 피살 공무원을 월북자로 몰아간 혐의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됨에 따라 ‘보고를 승인했다’고 밝힌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검찰이 고 이대준 씨 피살을 전후해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건 다수도 삭제됐다고 주장해 은폐 의혹도 더 증폭됐다.
서 전 실장은 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피격·소각된 해수부 공무원 이 씨의 ‘자진 월북’ 근거가 부족한데도 해경 등이 ‘월북 정황’을 발표하도록 하고, 그와 배치되는 첩보를 삭제토록 군과 국가정보원에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다. 법원도 ‘범죄의 중대성’을 인정했지만, 검찰은 영장에 문 전 대통령의 연루 혐의를 적시하지 않는 등 신중한 입장이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실질심사 전날 입장문을 통해 “국방부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최종 승인한 것” “특수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사건의 최종 책임자임을 자백한 셈이다.
이뿐 아니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9월 22일 오전 6시 36분 북한군에 의해 이 씨가 발견됐다는 서면 보고를 받았지만, 이 씨가 피격·소각된 오전 9시 40분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1시에 열린 긴급관계장관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서 전 실장이 보안 유지와 첩보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회의다.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첩보 삭제에 대해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렸는지 등도 규명돼야 한다. 더구나 검찰은 당시 청와대 생산 문건 중 대통령 서면보고를 포함한 다수 문서가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건이 삭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남은 문건의 공개 요구도 거부했고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 15년간 봉인했다.
문 전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씨 아들에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는 편지도 보냈다. 이제라도 정치 보복 등의 주장을 접고 진상 규명에 협조해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길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12월 05일 ‘전투복 차림 北 경고’ 역대급 강성 강호필, 최전선 1군단장에
서북부 최전선을 지키는 제1군단 군단장에 최근 전투복 차림으로 대북 경고 ‘얼굴’로 나섰던 ‘역대급 강성’ 강호필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임명됐다.
육사 47기인 강 작전부장은 지난 10월 14일 전투복 차림으로 국방부 청사 브리핑실에서 강한 어조로 “북한의 완충 구역 포격 사격과 탄도미사일 발사는 9·19 합의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며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북 총참모부는 9·19군사 합의로 설정한 서해 완충 구역에 포 사격을 하고, 오히려 도발 책임을 남측에 돌리는 비난 성명을 냈다. 합참과 총참모부가 직접 말 펀치를 주고받는 것은 드문 일이다. 강 작전부장은 오는 7일 1군단장에 공식 취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철저한 대비태세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인사권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 신임 1군단장은 1층 집무실에서 시작된 ‘샤우팅’이 연병장까지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큰 것으로 유명하다. ‘역대급 강성’ 이미지로 통하지만 실제로는 잦은 격려와 재치있는 농담으로 부하들 사기를 잘 키워주며 먼저 따뜻한 인사도 건내는 인정많은 지휘관으로토 통한다. 2000년대 도라대대장 시절 혹독할 정도로 경계작전 중인 병사들을 훈련시켰고 예고없는 ‘소초 급습의 1인자’로 부하들에게 ‘악명’ 높았으나 약 400일 간의 GOP(일반전초) 경계작전을 단 한번의 사고 없이 무사히 넘긴 유능한 지휘관으로 통했다.
대북 첩보부대인 777사령부 사령관은 김현섭 지상작전사령부 정보참모부장(육사 47기·소장)으로 교체됐다. 김 정보참모부장은 2작전사령부 정보처장, 합참 정보융합부장 등을 지냈다. 777사령부는 대북 신호·감청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군 첩보부대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12.06 “뒷통수 치는 北 믿고 따르는 전직 대통령, 정치인들이 문제다”
30여년 ‘대통령學’ 전문가, 김충남 박사 인터뷰
“남북 협력을 최상위 목표 삼은 대통령들 한국 안보 약화시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가장 많이 기여하고도 저평가돼”
“지금 한국은 6.25 전쟁 이래 70여년 만에 최악의 안보 위기 상태인데도, 우리 사회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말(舊韓末)처럼 집안 싸움에 빠져있다. 우리의 뒷통수를 수 차례 친 북한의 선의(善意)만 믿고 따르는 전직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문제이다.”

▲우리나라 청와대 비서관 가운데 가장 오래 동안 3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김충남 박사는 영문저서 8권을 포함해 지금까지 30여권의 저서를 냈다./조선일보DB
청와대 비서관으로서 9년 6개월동안 세 명의 대통령을 보좌하고 30년 넘게 ‘대통령학(學)’을 연구하고 있는 김충남(金忠男·81) 박사가 한 말이다. 그는 올해 10월 <대통령의 안보리더십>이란 저서를 냈다. 이 책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안보 정책과 리더십을 평가·분석하고 교훈점을 도출해낸 역저(力著)로 평가된다.
◇청와대에서 9년 반 동안 대통령 3명 보좌
경북 영양군(英陽郡)에서 태어난 김 박사는 안동고와 육군사관학교(21기)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그는 1984년 초부터 1986년까지 사정(司正)비서관으로, 86년부터 1990년까지는 정무비서관으로 모두 청와대에서 일했다.

▲김충남 박사가 2022년 10월 출간한 저서 <대통령의 안보리더십>. 한 달 만에 2쇄를 찍었다.
미국 험프리연구소에서 대통령 제도를 연구해 1992년 낸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이 인연이 돼, 김 박사는 김영삼 정부 청와대 공보비서관으로 다시 발탁돼 96년까지 대통령 연설문 작성을 맡았다. 이후 미국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ast-West Center)에서 10여년간 대통령 리더십을 연구했고 세종연구소를 거쳐 지금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다. 기자는 이달 2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본사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 어떤 점에서 지금이 최악의 안보위기인가?
“북한은 올해 들어만 60여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 4월 ‘대남 핵공격’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김정은은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비핵화(非核化)를 위한 어떤 협상도,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 핵전쟁은 물론 비핵전쟁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법제화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2022년 10월 초 만든 '핵무력 법제화' 기념우표/연합뉴스
◇“美·北 조만간 핵탄두 감축 협상 벌일 가능성”
- ‘핵무력 법제화’ 선언은 얼마나 위협적인가?
“김정은의 말은 상대의 공격 징후는 물론 전쟁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작전상 필요시에도 언제든 핵을 사용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방어적 자위권 발동 차원을 완전히 뛰어넘는 폭탄 선언이다.”
- 혹시 대내외 선전용이나 ‘엄포’ 아닐까?
“그렇게 보다간 큰 일 난다.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은 북한 정권 수립일인 1948년 9월 9일 ‘국토 완정(國土完整)’을 선언했다. ‘국토 완정’이란 이승만 정부를 전복하거나 남침을 통해 한반도를 공산화하겠다는 뜻이다. 그의 말대로 1949년 여름 남한지역 8개 도(道) 중 5개도가 빨치산 출몰과 남로당 세력의 소요로 시달렸다. 1950년 신년사에서 국토완정을 강조한 김일성은 6월 25일 남침을 결행했다.”

▲6.25 전쟁 중에도 남한내 빨치산들은 대한민국 전복 활동을 벌였다. 1952년 1월 14일 토벌작전에서 생포된 빨치산들이 전라북도 전주형무소로 이송되고 있다./조선일보DB
-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핵 무기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을까?
“미국이 전략자산 등으로 수 십배 반격보복할 것이므로 북한이 당장 핵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조금만 균열되면, 북한은 핵무기로 한국을 위협하거나 공격해 1950년에 실패한 적화통일을 다시 시도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재래식 도발을 하며 핵무기로 겁박하는 경우, 한반도에서 전쟁 확대를 원치 않는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나서고 북한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 북한이 핵을 한미(韓美) 관계 이간질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특히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하고 보유한 핵 탄두가 100개가 넘으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이 경우 미국은 북한과 핵협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북한의 ICBM 역량 억지와 핵탄두 감축을 조건으로 대북(對北) 경제 제재를 풀고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 및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안보는 상상하기 힘든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뉴스1
◇“韓美관계 끊어지면 北의 노예국가 될 것”
기자가 북한의 ‘핵 실력’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북한은 이미 100기 가까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미국까지 날려 보낼 ICBM과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을 실험하고 있다. 세계의 군사 전문가들은 ‘한반도를 6.25전쟁 이래 가장 위험한 상황’으로 인식하며 세계의 화약고(火藥庫)라고 부른다. 30대 후반의 김정은은 예측불가능하고 모험적인 인물로서 언제 어떤 불장난을 벌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한층 위험하다.”
김 박사는 “우리가 핵을 가진 북한을 억지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의 핵 우산 뿐인데, 한미 관계가 끊어지거나 약화된다면, 한국은 북한의 인질(人質)이 되어 노예 국가가 되거나 북한이 원하는대로 돈을 대주고 북한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 김영삼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에 나섰는데 왜 이렇게 됐나?
“우리의 성공이 우리를 ‘안보 장님’으로 만들었다. 지난 30년간 경제적 성공에 도취된 우리가 북한을 오판하고 우습게 본 결과이다. 북한은 3대에 걸쳐 모든 것을 핵개발에 걸고 매달렸는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족 공조니 평화니 하며 갈팡질팡했다. 그동안 북한에는 핵무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 그런데도 제1야당 대표는 대북 억지를 위한 한·미·일 군사 훈련을 ‘친일(親日) 국방’이라고 비판한다. 왜 이런 ‘안보 불감증’이 만연해 있나?
“우리 사회에 북한을 적(敵)이 아니라 형제처럼 여기며 북한과의 협력을 우선시하며 북한의 주장을 따르는 종북(從北)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두 번째는 냉전이 끝났고 우리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완승했다고 착각하는 국민들이 많아서다. 하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이 됨으로써 우리의 북한에 대한 체제 우위는 무색해졌다.”
◇“北의 유일한 생존법은 한국을 복속시키는 것
- 북한이 지금도 한국을 침공하려 하나?
“북한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을 보면 남한은 여전히 ‘미국의 식민지’이며 북한의 최종 목적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적화통일)이라고 적시돼 있다. 북한의 가장 큰 적(敵)은 미국,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한국이 잘 살수록 북한의 설 자리와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북한의 유일한 생존법은 한국을 파멸 또는 복속시켜 북한의 조공국, 인질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어서 말했다.
“북한이 적대국인 일본에 미사일을 쏘더라도 동족(同族)인 우리 한테는 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엄청난 환상이자, 착각이다. 북한이 생각하는 전쟁터는 남쪽의 한국이다. 한국 국민들은 지금 최악의 ‘안보 우범(虞犯) 지대’에 살고 있다. 국가안보를 남의 일처럼 여기는 행태는 매우 위험천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사진 오른쪽)이 2022년 5월 2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접견실에서 열린 장성 진급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여식에서 군 장성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정상화 공군참모총장 , 전동진 육군지상작전사령관,안병석 연합사 부사령관, 신희현 육군 2작전사령관/대통령실사진기자단
◇“尹 대통령, ‘핵 대결 시대’ 진입 직시해야”
-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안보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나?
“많은 중요 현안이 있지만 윤 대통령은 모든 업무 가운데 50% 정도의 관심과 시간을 안보문제에 할애해야 한다. 국민과 국가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나? 국가안보와 핵 대응을 국정 최우선 순위로 삼고 전직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 군(軍) 원로들은 물론 국내외 전문가들 의견을 경청하고 대(對)국민 호소를 통해 국민여론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 구체적인 방법이라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래 16년이 지나면서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된 후에도 예전 그대로인 우리의 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한반도가 ‘핵 대결 시대’에 진입했음을 직시하고, 안보전략과 전쟁대비 태세, 군사훈련을 전면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김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고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북한 핵 균형을 달성하기 위한 ‘특단의 결단’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군은 그 필요성을 국민에게 적극 설득해야 한다. 만약의 핵 공격에 대비해 주요 시설의 지하화와 방폭(防爆) 시설, 공기정화시설, 전자기펄스(EMP) 방호시설도 구축해야 한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모습/조선일보DB
-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에 핵 미사일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나?
“용산에 핵폭탄이 떨어져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한만큼 면밀한 대책을 세우고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마다 ‘설마’ 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타협할 것도, 주저할 수도 없는 3무(無) 상황’임을 처절하게 인식해야 한다.”
주한미군을 의지해서인지, 한국에선 국가안보가 최우선 순위가 아닌 느낌이 든다.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 사례를 보라. 미국은 자국(自國)을 스스로 지키려는 강한 의지와 실천이 없는 나라를 가차없이 버리고 철수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내가 재선되면 한미 동맹을 끝낼 것’이라고 말했지 않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7월 8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 2년 후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이 한국 방위 공약을 약화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미국은 선거 결과와 여론 향방(向方)에 따라 정책을 바꾸는 나라이다. 전 세계에 관여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 방위 공약의 강도(强度)를 언제든 달리할 수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피즘을 계승하지 않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도, 북한과 핵무기 감축 협상을 벌일 가능성은 상존한다.”

▲2024년 11월 미국 대선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치고 여론조사 인기 1위인 론 드샌티스(사진 가운데) 플로리다 주지사.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주지사 재선에 성공했다./AP연합뉴스
◇“美는 언제든 떠나...우리도 핵 옵션 가져야”
-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대안이 있나?
“핵무기를 당장 개발·완성하지는 않더라도 핵무기 개발 준비를 상당부분 진척시켜 ‘핵 옵션(option)’을 가져야 한다. 핵무기를 언제든 가질 수 있는 상태로까지 발전해 있어야 유사시 대응은 물론 우리가 미국, 북한과의 협상시 카드이자 지렛대로 쓸 수 있다.”
김 박사는 이어지는 말이다.
“세계에서 지금 핵무기 개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나라는 북한 뿐이다. 미국이 결정적 순간에 핵우산 펴기를 주저한다면 어떤 상황이 올 것인가? 대통령의 안보정책은 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 국민을 일깨우는 언론과 지식인, 전문가 집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 안보 위기 상황에서 국민과 지식인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
“우리나라 안보는 우리가 책임진다는 생각이 절대 필수조건이다. 대한민국 안보는 우리의 책임이지, 미국의 책임이 아니다.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명(明)나라, 청(淸)나라에 안보를 의존하면서 문약(文弱)에 빠졌다가, 중국의 국력 약화로 더 이상 기댈 수 없게 되자 국권(國權)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한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등 우파 대통령의 안보 정책에서 배울 교훈이라면?
“김영삼 대통령은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뀌는 안보리더십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을 세워 대응하려 했으나 시진핑, 김정일과의 개인적 친분에 의존하다가 두 사람 모두에게 기만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서도 실용주의를 추구했는지 모르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났을 당시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박근혜(맨 왼쪽) 당시 대통령이 2015년 9월 3일 중국 북경 천안문 성루에서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당시 열병식에 참석했다./조선일보DB
- 안보 리더십과 관련해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점이라면?
“더이상 북한의 의도와 전략을 경시하거나 오판해서는 안 된다. 전임자들의 시행착오를 면밀하게 반성하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환상(幻想)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통일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확고한 자기인식을 가져야 한다.”
◇“한국, 北과 가깝다간 北처럼 자유·인권 소멸돼”
- 국내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북한과 잘 지내 북한처럼 되도 괜찮지 않나’는 시각이 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국민들도 전체주의 독재 사회에 살게 되는데 과연 좋은 건가? 세계 시민들은 마스크 쓰지 않고 자유롭게 월드컵 축구경기를 관전하는데, 철저하게 통제당하는 중국인들 같은 꼴이다. 민주화가 탄압봉쇄된 홍콩이나 인권 자체가 없는 신장위구르지역 같은 일이 한국에서 일상이 된다. 한국의 북한화는 곧 자유와 인권, 선택의 말살(抹殺)을 뜻한다.”
- 저서에서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국가 안보에 마이너스를 초래한 이로 평가했는데.
“두 분은 국가정체성이 불분명해 북한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것은 깽판 쳐도 남북관계만 잘 되면 된다’고 했고 문 대통령도 비슷했다. 또 북한 핵 개발이 심화하는데도 대북 정책의 수정 없이 햇볕정책을 계속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다’며 미·북회담 주선까지 했다. 두 사람 모두 남북간 협력을 최상위 목표에 둠으로써 한미 동맹과 양국 안보 공조(共助) 약화를 초래했다.”

▲2018년 4월 27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 식수를 마친 뒤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에 도착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News1-한국공동사진기자단
그는 “안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안보는 유사시(有事時) 국민총력전을 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대통령의 안보리더십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 최고지도자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어떤 안보리더십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안보가 좌우된다. 대통령의 안보리더십은 국민들의 안보의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통일과 평화를 외칠수록, 평화와 통일은 더 멀어졌다. 북한에 대응하는 근본 전략 없이 대통령이 5년 마다 정책을 바꾸고, 학자와 언론도 진영 논리로 현실을 왜곡했다.”

▲류성룡의 징비록 원본 일부/조선일보DB
◇“사비 들여 책 출간...정부 관련 부처 등에 보내”
김 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쓰던 심정을 상상하며 국가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올해 초부터 거의 매일 군사문제연구원에 출근해 책을 썼다. 사비(私費)를 들여 출간·구입한 책을 육사, 국방대학원, 정부 관련 부처 등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 어떻게 ‘대통령학 전문가’가 됐나?
“1984년 청와대 비서관이 됐을 당시 오리엔테이션도, 직무교육도, 참고할 만한 문건도 없었다. 그런데 이후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등 내가 현장에서 경험한 세 분의 대통령과 학자로서 품은 대통령 리더십 인식과의 간격이 너무 컸다. ‘대통령의 성공이 곧 국민과 국가의 성공’이라는 믿음으로 대통령 리더십을 공부했다.”
◇“신통한 지도자 있다는 北, 인민들은 굶어죽어”
그는 “대통령을 한 분만 모신 사람은 보통 그 사람만 영웅으로 생각하지만 서로 미워하는 세 명의 대통령을 모시면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와 국가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 1998년부터 하와이의 동서문화센터에서 10년간 대통령 리더십 연구를 했는데.
“김일성·북한 연구의 대가(大家)인 서대숙 하와대 교수와의 대화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내가 ‘한국 대통령 연구를 한다’고 하니까, 그는 ‘한국에는 신통한 지도자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그의 말에 북한에는 신통한 지도자가 있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한국 대통령들을 제대로 연구해야겠다는 강한 의욕이 솟아났다. 신통한 지도자가 있다는 북한은 자유가 없고 인민은 굶어죽는데,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다는 한국에는 왜 자유와 풍요가 넘치는가? 그 해답을 찾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 김 박사의 대통령 리더십 연구는 무엇이 다른가?
“많은 연구자들은 선진국 잣대와 프레임을 그대로 적용해 한국 지도자들은 비민주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 리더십은 당시 여건과 상황에 적합했던가 아닌가의 관점에서 평가해야지 선진국이나 오늘의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연구는 한국 현대사를 재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017년 11월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 나란히 걸려 있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사진/조선일보DB
◇“후임 대통령들은 이승만·박정희 토대 위에 벽돌만 놔”
-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저평가됐지만 가장 큰 공헌을 한 대통령은 누구인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다. 두 분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어려운 위대한 국가건설 지도자였다. ‘압축적 국가 건설’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부’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필요했다. 두 분이 민주주의 원칙에만 충실했다면 오늘의 한국이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 박사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으로 안보에 올인한 이승만 대통령을 비민주적이었다고 비난하고, 튼튼한 경제를 건설해 국방력을 강화하고 민주주의 터전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것을 잘못된 평가이다. 이승만은 한미 동맹으로 국가안보를 보장해 대외 전략의 기본 축을 만들었고, 박정희의 강력하고 체계적인 리더십 덕분에 한국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났다. 이후 8명의 대통령은 두 분이 이룩한 토대 위에 작은 벽돌을 올려 놓았을 뿐이다.”
조선일보 송의달 에디터
12월 06일 국정원 인적 쇄신, 무너진 대공 역량 복원으로 이어져야
지난 5월 27일 취임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6개월 만에 겨우 간부 인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정원이 ‘대북 사업 지원부’로 불릴 정도로 정체성 붕괴가 심각했음을 고려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9월 1급 간부 20여 명이 퇴직했고, 최근 단행된 2·3급 간부 인사에서는 100여 명이 보직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조정실장이 돌연 면직되는 등 곡절도 있었지만, 일단 인적 쇄신이 이뤄진 만큼 이젠 국정원 고유의 업무와 역량을 복원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이번 인사는 내부 감찰과 직무평가를 통해 전 정권에서 대북 관계 지원 업무에 투입된 직원을 배제하고,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인사를 발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불가피한 일이다. 문 정권의 국정원은 대공·방첩 업무를 하는 정보기관이 아니라, 북한과 막후 협상이 주된 업무인 조직처럼 변질됐다. 간첩 수사와 대북 공작을 담당했던 수백 명의 직원을 ‘적폐’ 취급하며 퇴직시키거나 ‘재교육’ 대상으로 삼아 괴롭혔다고 한다. 비밀취급 인가도 받지 않은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민간인들이 컴퓨터 메인 서버 자료 제출을 요구해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기관으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지난 5년 대북 정보 수집과 방첩 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등 너무 많이 망가져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최근 몇몇 간첩 사건이 적발되긴 했지만, 각 분야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문 정권은 2024년 1월 1일부터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경찰로 이관하도록 ‘대못’도 박아 놨다. 이것도 철회토록 해야 한다.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안보수사청 등 대안 마련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12월 06일 檢의 文 수사 당위성 더 커진 서해 사건
김기윤 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 변호사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1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 입장문에서 문 전 대통령은 국방부와 해양경찰청 및 국가정보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최종 승인’했다고 했다.
그런 만큼 검찰은 문 대통령이 최종 승인하기까지의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국방부·해경·국정원으로부터 보고받았던 문서를 대통령기록관 및 각 기관에서 확보해야 한다. 또한, 어떤 구두 보고를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 김홍희 해경청장, 박지원 국정원장의 조사도 병행해야 한다. 물론 스스로 보고를 받았다고 자인한 문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누가 어떤 내용으로 보고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문 전 대통령은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자살인지, 월북인지, 사고인지를 명확하게 단정할 수 없고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사실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2020년 10월 8일 문 전 대통령은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지금 ‘해경’과 ‘군’이 여러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며 ‘해경’의 조사와 수색 결과를 기다리자고 했다. 그로부터 14일이 지난 10월 22일 해경은 이대준 씨가 월북했다고 단정해서 발표했다.
그렇다면 해경이 월북으로 단정한 발표와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이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을 인식했는데도 최종 승인한 경위에 대해 검찰의 조사가 필요하다.
그동안 고 이대준 씨의 유족은 해양경찰의 월북 발표를 믿을 수가 없다면서 청와대가 가진 정보를 공개해 달라고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승소했지만, 청와대는 항소했다. 그리고 올해 5월 9일 문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이 정보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누구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2020년 9월 23일 국방부와 국정원이 가진 106건의 첩보 문건이 삭제된 사실이 감사원의 감사(監査)에 의해 밝혀졌다.
문 전 대통령은 감사원의 감사가 무례한 짓이었고, 검찰의 수사 또한 도를 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법원은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범죄의 중대성 및 증거인멸을 우려해 발부했다.
이렇게 구속되자 문 전 대통령은 서 전 실장이 대북 최고 전문가, 최고 협상가, 최고 전략가라고 칭송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국민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총살당하고 불태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아무런 구조도 하지 않고 기다린 것이 최고 전문가, 최고 협상가, 최고 전략가의 기획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17년 4월 13일 당시 대선 후보이던 문재인은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라며 그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2020년 10월 8일 이대준 씨의 아들에게 ‘아드님과 어린 동생이 고통을 겪지 않고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항상 함께하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유족은 문 전 대통령 때문에 눈물지으며 지난 3년 동안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았다. 울분에 차 있는 유족이 고소하기 전에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문 전 대통령은 스스로 검찰에 찾아가 모든 사실을 밝히기 바란다.
문화일보
12월 06일 文, 안보 말할 자격 없다
김석 정치부 부장
범죄자와 혈연 등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는 연좌제가 헌법으로 공식 금지된 것은 1980년 제8차 헌법 개정을 통해서였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에서 연좌제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북한과 연루된 이들의 가족들이었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정부는 민주화 운동 인사들을 합법을 가장해 탄압하려 간첩 조작 사건을 일으키곤 했다. 정권 안위를 위해 국가 안보를 악용한 것이다. 민주화 운동가 가족들이 연좌제에 얽매여 수십 년간 고통을 받는 일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인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북한과 연루될 때 피해자는 물론 그 가족들이 받을 고통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20년 9월 서해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자진 월북하려다 북한군에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월북으로 단정한 데 뚜렷한 증거도 없었다. 해양경찰청이 발표한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이 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관심법 같은 결론이 증거였다. 이 씨 가족은 하루아침에 월북자 가족으로 낙인 찍혔고, 이 씨 아들은 육군사관학교를 가려던 꿈을 포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사건 한 달 뒤 억울함을 호소한 이 씨 아들의 편지에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는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이후 이 씨 가족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 씨 가족의 문 전 대통령 면담 요청 이메일에 답장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족에게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관련 자료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비밀로 묻어두려 했다. 이처럼 꼭꼭 숨기려 했던 문재인 정부의 월북몰이 상황은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와 검찰 수사, 그리고 법원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로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또, 정부의 월북몰이가 이 씨 피살 사건 다음 날 유엔총회에 방영될 종전선언 연설에 방해가 되는 걸 막으려던 때문 아니었냐는 의혹을 확신으로 바꾸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서 전 실장 등 자신의 정부 고위층으로 확대되자 “안보체계를 무력화하는 분별없는 처사”라며 안보를 전면에 내세웠다. 또, 서 전 실장이 구속되자 “(서 전 실장은) 최고의 북한 전문가, 전략가, 협상가”라며 “평화올림픽과 미·북 정상회담까지 이끌어내면서 평화의 대전환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위기에 처하자 과거 자신들이 싸웠던 군부독재가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던 국가 안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미·북 정상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시간을 벌어준 것에 불과했다. 북한의 거짓 비핵화 의지의 나팔수가 되면서 중·러가 국제사회 제재 움직임에 어깃장을 놓는 단초도 마련해줬다. 한·미 군사동맹을 형해화해 북 핵·미사일에 대한 억제력도 약화시켰다. 이런 문 전 대통령에게 국가 안보를 말할 자격은 없다. 이 씨 피살 사건 월북몰이와 관련 정보 은폐에 대한 검찰 수사에 응할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문화일보
12월 06일 문 “도 넘지 말라”는 對정권 선전포고… 검 ‘문재인 수사’로 기류 변화
文의 전쟁’ , 수사 리스크 회피 · 친문 결집 촉구… 윤 대통령과의 특수 인연 내세운 ‘사법거래’ 포석도
검, 서해공무원 사건 관련 ‘문 직접 수사’로 선회… 월북몰이에 文 지시 · 관여 · 승인 여부가 관건
‘문의 전쟁’이 시작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윤석열 정부의 검찰 수사에 대해 “도를 넘지 말라”고 한 게 신호탄이다. 윤석열 정부에는 ‘나를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공개 경고한 것이고, 열렬 지지층에는 ‘나를 지켜 달라’고 총결집 신호를 보낸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맺어진 특수 인연을 내세운 ‘사법거래’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문재인 직접 수사’ 쪽 기류가 강해지는 형국이다.
◇文 선전포고
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와 관련해 두 번 입장을 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자 1일 “부디 도를 넘지 않길 바란다”고 첫 반응을 보였다. 서 전 실장이 4일 구속되자 “연륜과 경험을 가진 (대북) 신뢰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뒤의 발언은 안보 분야에서 수족처럼 일했던 서 전 실장에 대한 ‘립 서비스’로 보인다. 그간 사건 수사의 칼날을 막아줄 방어벽이나 완충지대 역할을 해온 ‘버퍼 존’이 무너지는 데서 나타난 위기감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의미심장한 건 그 앞의 “도를 넘지 말라”는 발언이다. 한마디로 ‘수사를 서훈 선에서 끝내고 나에게까지 오지 말라’는 경고다. ‘나를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이며 대정권 선전포고다.
문 전 대통령이 노리는 바는 세 가지다. 첫째 사법 리스크 회피, 둘째 친문 대동단결 선동, 셋째 기득권 유지. 그의 입장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현 국회의원),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현 국회의원),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등이 줄줄이 나서 윤 정권과 검찰에 대한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문 정권 당시 실권의 대리자, 스피커, 이미지 연출자들이 총동원돼 정권 성토에 나선 셈이다.
여당도 일제히 대응했다. “월북으로 몰아간 최종 책임자는 문재인”(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자신과 관련됐던 일은 모두 성역으로 남겨 달라는 얘기”(주호영 원내대표), “그의 언어에 비겁함과 두려움이 흘러나온다”(권성동 의원) 등이다. 박정하 수석 대변인은 “김정은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해 국민이 월북했다고 단정 짓고 명예살인까지 저질렀다”고 규탄했고, 하태경 의원은 “전 대통령이 사법부 판단에 개입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檢 기류 변화
여권 내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 초기만 해도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대통령실도 한때 이런 시각을 공유했다. 직접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보복으로 비칠 수 있고, ‘야당 대표(이재명)+전직 대통령(문재인) 수사’가 겹치면 정국 대응하기에 힘이 부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 간의 특수 인연도 이런 관측을 낳았다.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 의해 검찰총장에 발탁된 뒤 보수정권 적폐청산을 지휘했던 인연을 말한다. 김종인 전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언행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윤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워 ‘사법거래’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에도 이런 기류가 꽤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팀 관계자 A 씨는 “지금까지는 서훈 기소에 심혈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영 간 전면전 양상으로 흐를 경우 서 전 실장에 대한 사법 처리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와 관련한 두 차례의 공개 반응, 그리고 서 전 실장 구속으로 검찰 기류도 바뀌고 있다. ‘증거가 없으면 수사하기 어렵다’는 기존의 소극적 입장에서 ‘증거가 있으면 수사한다’는 적극적 논리로 선회 중이다.
B 검사장은 최근 사석에서 “문제는 증거 여부다. 문 전 대통령이 개입한 증거가 나오면 수사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전·현직 대통령 사이의 특수 인연 때문에 직접 수사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중 관측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잡으면 권력도 말릴 수 없는 게 검찰 수사의 속성”이라고 했다. 검찰은 바야흐로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문 정부 당시 발표가 대북 관계를 고려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진 왜곡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문재인의 운명
검찰 등 법조계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경우 다음 4가지가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①공무원 이 씨에 대한 북한군 피격 사실 은폐에 관여 혹은 승인했는가 ②이 씨 피살이 언론에 보도된 후 관계 부처에 관련 첩보의 삭제를 지시 혹은 승인했는가 ③이 씨의 자진 월북 사건으로 몰아가도록 개입 혹은 승인했는가 ④국가안보실·국가정보원·국방부·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의 보고서·보도자료에 허위 내용을 쓰도록 관여 혹은 승인했는가.
결국 관건은 공무원 이 씨에 대한 월북 몰이나 자료 삭제 등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보고를 받았거나 지시·관여·승인 등을 했는지다. 문 전 대통령은 이미 자신이 사실상의 최종 승인자이자 결정자임을 ‘고백’했다. 비록 그가 ‘판단했다’라는 표현 대신 ‘판단을 수용했다’는 ‘비겁한’(권성동 의원 표현) 용어를 동원했지만, 특수 정보를 포함한 모든 보고를 받고 내려진 결정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검찰은 친문 의원들이 문 정부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대응을 ‘정책 판단’이라고 주장하는 점도 눈여겨보고 있다. 박범계·전해철·김의겸·윤건영 의원 등은 “정부의 정책 판단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C 변호사는 “김정은 정권을 의식해 북한의 야만적 살인을 덮어버렸다면, 또 국민의 억울한 죽음을 월북자의 말로(末路)로 포장했다면, 이는 정책 행위가 아니라 불법 행위인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친문 핵심 황교익 씨는 4일 페이스북에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됐다”며 “이제 문재인 차례일 것이다. 참담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합리적 의심
문 정권이 김정은 정권을 의식해 국민 희생을 외면했거나 침묵했거나 거짓 사실을 꾸며댔다면 그건 ‘인신 공양’과 다를 게 없다. 이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건드리면 다 죽는다’는 문 전 대통령의 공개 협박은 오히려 자신을 직접 겨냥하는 수사의 ‘트리거’가 되고 있다. 검찰의 칼끝이 문 전 대통령을 향하는 것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용어설명
‘명예살인’은 가문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것. 여기서는 문재인 정권이 국민의 억울한 죽음을 국가 명예를 훼손한 자진 월북의 결과로 몰아갔다는 뜻으로 사용됨.
‘사법거래’는 수사 대상자가 특별한 정보 등을 내세워 사법 절차의 왜곡을 가져오는 거래 행위라는 의미로 쓰임. 문재인 정부 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거래를 했다며 사법 처리된 것이 일례.
■ 세줄요약
文 선전포고 : 文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 관련 “도를 넘지 말라”고 한 것은 ‘나를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이며 對정권 선전포고. 문의 의도는 사법 리스크 회피, 친문 대결집, 기득권 유지 등임.
檢 기류 변화 : 수사 초기엔 ‘문재인 직접 수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음. 文이 尹과의 특수 관계를 이용해 ‘사법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하지만 검찰은 ‘증거가 있으면 수사한다’는 적극 논리로 선회 중.
문재인의 운명 : 文 수사 초점은 월북 몰이나 자료 삭제 등에 지시·관여·승인을 했는지 여부. 문 정권이 김정은 정권을 의식해 국민 희생을 외면했거나 거짓 사실을 꾸며댔다면 그건 ‘인신 공양’과 다를 게 없음.
문화일보 허민의 정치카페
월간조선 12월 호
文 정부, 北이 해킹으로 탈취한 가상화폐 세탁해줬나?
북한이 수조원의 가상화폐를 해킹했다. 남쪽 정부가 세탁해주기로 했는데, 준다던 돈 가운데 일부를 떼먹었다. 그래서 본때를 보여주려고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측이 깜짝 놀라서, 송금 전문가를 요직에 앉히겠다고 했다. 이후 거의 모든 남측 은행이 세탁에 동원됐다. 걸리는 금융기관은 다 제재 대상으로 국제전산망 퇴출… 이번 여름(2022년 6월 말~7월 초) 남쪽 장관(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미국에 갔다. 미국 측과 이 문제를 협의하려고 하는 것 같다. -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경제 일꾼들 사이에 도는 소문
⊙ “한국에서는 그런 제재(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 같다”(가상화폐 이더리움 개발자 버질 그리피스)
⊙ 北이 불법 해킹으로 탈취한 돈 2조7000억원에 달해
⊙ “북한이 탈취한 금액의 3분의 1 이상을 미사일 프로그램 지원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美 CNAS 앤 뉴버거)
⊙ 다시 소환되는 2017년 12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UAE 방문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쌍방울이 직원 수십 명을 동원해 2019년 1월과 11월 수십억의 달러를 밀반출했다. 검찰은 이 돈이 북한으로 유입된 것은 아닌가 조사 중이라고 한다. 쌍방울이 외화를 밀반출한 시점을 전후해 북한과 각종 협약을 맺은 사실이 수사의 출발점이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진=조선DB
달러 밀반출이 이뤄진 시기, 쌍방울은 경기도와 대북(對北)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쌍방울 실소유주인 김성태 전 회장은 2019년 1월과 5월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였던 이화영 전 의원과 중국 선양을 방문했다. 북한에서 대남(對南) 민간 부문 경제협력을 전담하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 관계자를 같이 만났다. 북한의 희토류 등 광물 개발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쌍방울 관계사 나노스 주가가 급등했다. 실제 사업 추진 계획이 있었는지, 아니면 주가 띄우기 작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쌍방울 임직원 수십여 명이 책과 화장품 케이스 등에 수천만~수억원 상당의 달러화를 숨긴 뒤 중국 선양의 타오셴 국제공항으로 출국했고, 돈을 전달한 뒤 곧바로 귀국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쓴다. 북한과의 돈거래와 관련해 최근 들어 외국에 나와 있는 북한 경제 일꾼들 사이에서 묘한 소문이 돌고 있다. 북한 사회에서의 소문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지난 10월호에서 소개한 바 있다. 오늘 소개하려는 소문은 다음과 같다.
〈북한이 수조원의 가상화폐를 해킹했다. 남쪽 정부가 세탁해주기로 했는데, 준다던 돈 가운데 일부를 떼먹었다. 그래서 본때를 보여주려고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측이 깜짝 놀라서, 송금 전문가를 요직에 앉히겠다고 했다. 이후 거의 모든 남측 은행이 세탁에 동원됐다. 걸리는 금융기관은 다 제재 대상으로 국제전산망 퇴출이니, 아예 물귀신 작전으로 나간 것이다. 제재를 걸면 남쪽 경제가 다 망할 테니, 남조선 당국이나 미국이 그럴 배짱 있겠냐, 배 째라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름(2022년 6월 말~7월 초) 남쪽 장관(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미국에 갔다. 미국 측과 이 문제를 협의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한동훈, 왜 미국에 갔을까?
한동훈 장관의 미국 출장에 대해서는 최재성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송금 의혹 수사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9월 1일 tbs 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에 출연해서다. 최 전 수석은 “(여권이)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고, 그 뒤에는 문재인 정부가 있다는 공상을 인수위 시절부터 했다고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10월 10일에는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난 7월 한 장관이 미국 뉴욕남부연방검찰청을 방문한 것은 이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이 등장하는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김의겸 의원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한 장관이 뉴욕남부연방검찰을 방문해 가상화폐 이더리움 개발자 버질 그리피스를 수사했던 부장검사를 만난 점, 나욱진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장을 대동한 점 등이다.
버질 그리피스는 2019년 4월 평양을 방문했다. 미 국무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블록체인 암호화폐 콘퍼런스 참가가 방북 이유다. 그는 북한에 ‘대북제재를 피해 암호화폐를 해외로 송금하는 기술’을 소개했다. 그리피스는 2018년부터 북한에 ‘이더리움 노드(암호화폐 거래 서버)’를 만들어주려고 했으며, 북한 당국자들을 위해 암호화폐 강의도 한 사실이 있다.
‘뉴 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그리피스는 강의에서 “암호화폐는 유엔과 미국의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 측에 “암호화폐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은 은행 업무와 거래의 독립을 허용한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며 “미국과 유엔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금전 거래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제재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고, 미 정부에 반성문을 제출했으며, 징역 63개월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그리피스의 텔레그램 대화

▲버질 그리피스의 북한 방문 비자. 사진=트위터
뉴욕남부연방검찰이 버질 그리피스를 수사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증거 가운데는 그가 ‘한국 내 사업 연락책’과 주고받은 이메일도 있다. 김의겸 의원은 “이메일 안에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등장한다. 정치적 반대자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과의 연결 고리를 잡아내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 그리고 이재명 시장을 속된 말로 일망타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 한 장관이 미국 출장을 간 이유는 이걸 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단 사실부터 확인해보자. 2018년 8월 17일 텔레그램 대화에서 그리피스는 “서울시장(박원순)이 이전에 ‘북한에 (이더리움) 노드를 도달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라고 썼다. 같은 날짜 다른 메시지에는 좀 더 충격적인 내용이 나온다. “한국이 스스로 북한에 (이더리움)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원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일이다. 만약 그들이 이와 관련해 우리에게 물어본다면 긍정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다. 같은 달 24일자 대화에서는 “한국에서는 그런 제재(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위 메시지가 그리피스 개인의 생각인지, 실제로 회의를 진행한 기록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리피스가 이러한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다.
위 사안과 관련해 논란이 커지자 한동훈 장관은 입장문을 냈다. “김의겸 대변인 말처럼 대한민국 정치인이 북한 가상화폐 범죄와 연계됐다면 범죄의 영역”이라고 했다. 한 장관은 “김 대변인은 지금 범죄 신고나 내부고발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저런 범죄가 드러나도 수사하지 말라고 미리 복선을 깔아 두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받아쳤다.
북한이 제재 회피 수단으로 사이버 공격을 하고 가상자산을 탈취한다는 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명백한 사실이다. 북한은 라자루스와 같은 해킹그룹을 직간접적으로 운영한다. 2016년 2월 북한 해커그룹 ‘라자루스(Lazarus)’가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미국 뉴욕의 연방은행에 보관하던 9억5100만 달러(약 1조812억원)를 해킹했다. 해킹 공격 과정에서 북 해커가 송금 대상자의 스펠링을 잘못 적는 실수를 범했다. 그래서 실제 피해액은 6500만 달러(약 740억원)로 줄었다.
이렇게 실제 은행도 해킹하지만, 북한은 현금에 대한 공격보다는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 공격을 더 선호한다. 탈취 및 돈세탁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북 해커들과 협조자들은 탈취한 자금을 서로 다른 암호화폐로 변환하고, 추가 거래를 통해 추적을 피한다. 이러한 일련의 복잡한 거래는 익명성을 강화하는 작업으로, 전문 용어로는 ‘믹서’라고 한다. 금년 8월, 미 정부는 북한 해킹 암호화폐의 세탁을 도운 ‘믹서’ 기업을 제재했다.
자유아시아방송 그리고 일찍이 2012년 《사이버 공간과 국가안보》라는 책을 써 북 해커들의 공격을 경고했던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에 따르면, 북 해커 부대는 김정은 직속의 별동대로 정찰총국 소속이다.
‘세계 최대의 은행강도’
2018년 2월 18일, 미 법무부는 북 정찰총국 소속 해커 3명을 1조4000억원을 해킹한 혐의로 기소하고 사진까지 공개하며 국제 수배했다. 박진혁, 전창혁, 김일이 그들이다. 이 중 박진혁이 가장 악질이다. 김정은 암살 소재 코미디 〈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사 해킹, 전 세계 수십만 대의 PC와 서버를 공격한 랜섬웨어 워너크라이를 제작 배포한 주범이다.
존 디어스 당시 미 법무부 차관보는 “북한 공작원들은 총 대신 키보드를 이용해 현금 다발 대신 가상화폐를 훔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최대의 은행강도”라고 했다. 여담이지만, 이들이 남긴 악성코드를 분석하다 국내의 한 보안 전문가가 ‘tpkkddlsjangkspdy’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북한과 우리는 한글 자판 배열이 다르다. 우리식 자판으로 위 글자를 치면 ‘세상이너무하네요’라는 글자가 뜬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북한은 가상화폐 자산을 탈취하고 세탁한 뒤 핵무기 개발에 이 돈을 쓴다. 금년 2월에 나온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기업 체이널리시스의 〈2022 가상자산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17~2021년 사이 49차례 해킹을 통해 탈취한 자산 가운데 1억7000만 달러의 가상화폐를 아직 세탁하지 못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공개한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2019년부터 2020년 11월까지 3억1640만 달러(약 3575억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훔쳤다”고 적시(摘示)했다. 금년 2월 23일 연합뉴스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 자금을 모으려 암호화폐 탈취 기술을 고도화”했다면서 불법 해킹으로 탈취한 돈이 무려 2조70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미국 신미국안보센터(CNAS·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가 개최한 공개 세미나에서 사이버·신기술안보 부보좌관인 앤 뉴버거(Anne Neuberger)는 “북한이 탈취한 금액의 3분의 1 이상을 미사일 프로그램 지원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발언했다.
‘북한 석탄 공포’
미국은 공세적으로 대응하며 북한 해커들의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암호화폐를 추적하고, 북한의 해킹과 자금 활용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대통령 행정명령 13694(2015),
13757(2016) 등을 통해 악의적 사이버 활동을 국가비상사태로 지정해 처벌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행정명령 13722(2016)는 아예 콕 집어 “북한 정부 등의 재산, 거래를 포괄적 금지하며 제재한다”고 명시했다. 적대세력대항법(CAATSA·Countering America’s Adversaries Through Sanctions Act)은 재산몰수 등을 포함한 기소, 형사사법공조, 자산동결, 관련자 미국 입국 금지, 관련 기업 수출입 제한, 관련국 안보 지원 중단 및 무기 수출 금지 등을 명기하고 있다. 금융 거래 금지 및 국제 금융전산망 퇴출이라는 최후의 한방도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2018년 8월 ‘북한 석탄 공포’가 확산되었던 사실을 기억하시는지.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원산지를 위장해 한국의 누군가가 수입했고, 포항제철에 납품하려고 시도했던 사건이다. 알면서 했느냐, 속아서 했느냐가 쟁점이었던 가운데 미 금융 당국에서 석탄 수입사와 거래한 은행 두 곳(지방은행 한 곳과 지방은행이 거래한 중앙은행 한 곳)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말투는 정중하며 공손했지만, 마치 저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는 것이 직접 통화했던 당사자의 전언이다. 미국이 ‘알고도 했다’라고 판단하면, 한국의 은행 두 곳이 국제전산망으로부터 퇴출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다시 소환되는 임종석 UAE 방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은 2018년 1월 8~9일 한국을 방문,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만났다. 사진=뉴시스
서두에서 말한 ‘북한 외화벌이 일꾼들 사이의 소문’에는 UAE도 등장한다. UAE가 가상화폐 거래의 중심지이며, 여기서 남북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이다. 2017년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UAE와 레바논으로 급파되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특사로, 그것도 파병 장병 격려를 목적으로 단독 출장을 간 것은,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부 언론과 야당이 임종석 비서실장의 ‘비밀 임무설’을 제기한 배경이다. 청와대가 ‘양국 교류 협력 증진 차원’으로 임종석 실장을 특사로 파견했다고 발표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원전 게이트, 파병밀약설 등의 소문이 도는 가운데, 12월 12일 TV 조선은 임종석 실장의 북한 접촉설을 보도했다. ‘핵 포기 대가(代價)로 북한이 80조원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UAE는 가상화폐의 세계적인 허브다. 2018년 2월 두바이가 가상화폐 사업을 허가한 이래 가상화폐 생태계를 구축했다. 2019년 10월 22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를 주목해보자. 기사 제목이 “일 인권운동가, ‘UAE, 북 돈세탁 의혹 관계자 추방해야’”다. 일본의 인권단체 ‘아시아인권’의 가토 켄 대표가 아랍에미리트 내 북한 은행 관계자 4명의 추방을 촉구하는 전자우편을 전 세계 100여 개 아랍에미리트대사관에 보냈다는 내용이다.
2019년 9월에 나온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 공개보고서에는 ‘UAE 내 북한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한 자금을 렴희봉, 리선철(리성철), 곽정철, 로일광 등 네 명이 돈세탁을 한 뒤 평양으로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보고서는 이들 ‘해외 거주 북한은행 업무 대행자’들이 불법 환적 활동이나 제3국 중개업자 및 다른 금융제재 회피 기술을 이용한 제재 위반 행위를 활발히 중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2018년 1월 8일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1박 2일 일정으로 급히 방한(訪韓)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UAE가 모든 자료를 미국에 넘긴 것 같다는 소문이 맞는 걸까?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만, 워낙 ‘중대한 소문’이어서 들은 바를 정리해 글로 옮겼다. 규모도 상당하고, 국제 문제에 고위직 이야기가 줄줄이 나오는 활극(活劇)을 방불케 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소문. 북한이 해킹으로 갈취한 돈을 한국의 누군가가 나서서 돈세탁을 해줬고, 그 돈이 핵 개발에 쓰였다는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 사실이 아니리라 굳게 믿는다. 누군가가 지어내고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제발 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다.⊙
월간조선 12월 호
현대사 증언
6·25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경찰·공무원 가족
軍警에 죽으면 배상, 인민군·좌익에 죽으면 보상 없어
⊙ 군경에 의해 사망한 경우 1억5000만원 전후 보상… 총 8000억원 지급
⊙ 적대 세력에 의해 일가족 35명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
⊙ 아이들 가마니에 넣어가자 장난인 줄 알고 웃어
⊙ 무고한 민간인 바다에 수장시키고 헤엄쳐 나오자 총으로 쏴 죽여
⊙ 경찰·공무원 가족이라는 이유로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

▲6·25전쟁 당시 기독교인들이 북한 공산군으로부터 박해를 당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사진=전남 염산교회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는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사무실 앞에서 우리는 마르지 않은 눈물, 아우성을 만날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 6·25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6·25 당시 가족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지금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바로 김광동 상임위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김 상임위원 탓에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거부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왜 김 위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일까. 기자는 직접 이들의 주장과 김 위원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김광동 위원은 “최근 들어 유가족들이 ‘진실화해위’ 건물 앞에서 나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곤 한다”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적대 세력인 인민군과 좌익에 동조해 싸운 이들에게 보상을 해주면 이게 무슨 나라냐”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 사퇴를 요구하는 유족 대부분이 6·25 당시 자의든 타의든 인민군과 좌익 세력 편에 서서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을 상태로 전투를 벌이다 희생된 이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복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장은 “인민군이나 군경 어느쪽에 의해 돌아가셨든 보상을 해주는 것이 맞지 않으냐”면서 “이제 유족들이 대부분 90세가 넘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국가가 결론을 내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아버지는 6·25 당시 보도연맹에서 활동하다 군경에게 죽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일부 유족의 사퇴 시위에 대해 “그분(김광동)이 진상조사를 꼼꼼히 하다 보니 갈등이 빚어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적대 세력 동조해도 보상받는 대한민국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회원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6·25 당시 북한 인민군과 빨치산 등 좌익 세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에 대한 국가 보상은 지난 70여 년간 한 건도 없었다.
반면 인민군이나 빨치산 등에 동조·가담한 민간인들이 ‘국군·경찰에 희생됐다’며 국가 배상금을 신청한 사례는 1년 8개월동안 3700건에 달한다.
현행법상 ‘진실규명’ 결정을 받더라도 자동적으로 배상 혹은 보상을 받을 수는 없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도 소멸시효가 지나 피해 구제를 받지 못했거나 국가가 배·보상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례가 전체 희생자의 72% 정도로 추정된다. 직접 소송을 제기해야 배·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광동 상임위원은 “개별 사건마다 배·보상의 불균형이 매우 심해 국민 통합에 저해되고, 화해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며 “과거사 사건 전반에 대해 배·보상 문제를 심의하는 법이나 기구가 만들어져서 일관되고 형평에 맞는 배·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1기 진실화해위(2005~2010년)도 활동 종료 후 정부에 6·25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대 국회와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배·보상은 국가를 상대로 한 개개인의 소송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지난 1월, 6·25 당시 북한 인민군 등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민간인 유족에 대해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 법안의 경우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유족은 가해 주체가 북한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했다. 가해자가 북한이기 때문에 북한에다 보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북한 인민군, 적대 세력과 그의 동조자 등에 의해 희생된 대한민국 국민을 ‘전쟁 희생자’라는 개념으로 정의·명시하고 이들에 대한 배·보상 근거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 논의 중인데 언제 국회 문턱을 넘을지 알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의 유가족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 80~90대 연세다.
역설적이게도 6·25전쟁 전후 군경에 의해 사망한 이들의 유족들은 1인당 약 1억5000만원 전후로 보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지급된 금액만 약 8000억원 이상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들 중 상당수는 사실상 적대 세력에 동조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군경에 맞서 싸우다 죽은 이들이다”면서 “하지만 유족에게는 자신들의 선대(先代)가 적대 세력에 동조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군경에 의해 희생됐고, 이를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렇다
6·25 당시 인민군이 후퇴하고 빨치산에서 활동한 김용명(가명)씨가 있다. 군경은 인민군 후퇴 이후 남아 있는 적대 세력의 잔당(殘黨)을 소탕하기 위해 토벌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빨치산 근거지에서 군경을 상대로 전투하다 군경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또 다른 사례로 빨치산 소굴로 알려진 곳에 있던 최순덕(가명)씨는 군경의 토벌을 피해 도망치다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배·보상 신청자 중에는 이런 사연을 가진 유가족이 대부분이다.
이들처럼 적대 세력에 동조해 군경과 맞서 싸웠다고 피아(彼我)를 솔직히 공개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세한 내용 없이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고만 적는다.
일가족 36명 몰살… 아이들 가마니에 넣어 바다에 던져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학살된 민간인들의 모습. 사진=미국립문서기록보관청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진실화해위를 찾은 김동재씨는 6·25 당시 가족을 포함해 일가 36명을 잃었다. 36명 중 김씨의 형(김수현)은 전남 장흥군 대덕읍 신리에서 옹암리로 가는 길에 희생됐고, 나머지 가족 35명은 옹암리 바다로 끌려가 수장(水葬)됐다. 시신은 넓게 펼쳐진 옹암리 앞바다 갯벌에서 발견되거나 파도에 떠밀려 왔다고 한다. 김씨 일가족의 떼죽임은 당시 장흥군 일대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김씨 가족 중 그의 삼촌 도순씨와 칠순씨만이 살아남았다. 김도순씨는 다른 지역에 피신해 있다가 화(禍)를 면했고, 김칠순씨는 당시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다. 김도순씨의 경우 출타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을 주민이 “자네 식구들 다 죽이고 있으니 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피신했다. 부유한 데다 일찍 신문명의 세례를 받아 식자층이 많은 것이 김씨 일가를 집중적으로 살해한 이유라는 게 당시 사건을 증언한 마을 주민들의 주장이다.
안타까운 희생 당시 신월리 축내마을에 거주하던 참고인 곽명도(가명·당시 17세)씨는 “대덕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김도순 일가족이 몰살당한 이야기를 들었고, 희생자 가족 중 두 사람(도순, 칠순)만 살아남았다”고 진술했다.
같은 마을에 살던 곽명식(당시 21세)씨는 “대덕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김도순씨 일가족이 모두 희생당했는데 가족들을 바다에 가서 빠뜨렸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은 큰 가마니에 넣었는데 영문을 모르던 아이들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 당시 다른 마을에 거주했던 이경만(가명·당시 10세)씨는 “옹암리는 전부 좌익들이어서 좌익에 의한 희생이 많았다. 김도순씨가 전남도 교육감 등을 지냈는데 그 집안 가족 모두가 옹암리 바다에 빠져 죽었다. 그 집안이 잘살고 똑똑하니까 좌익들이 그 가족들을 다 죽였다”고 증언했다.
좌익들, 얼굴에 고춧가루 뿌리고 몽둥이로 구타
옹암리에 거주했던 참고인 김덕순(가명·당시 17세)씨는 “마을 인근 산에서 보초를 서다가 좌익들이 배 두 척에 사람들을 나눠 태우고 나가 빠뜨리는 것을 봤다. 익사한 시신이 바닷가로 밀려왔고,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해 마을회관 앞에 늘어놓았다. 김도순씨가 뒤늦게 찾아와 다른 시신은 젖혀두고 ‘형님 김기순(김동재씨 부친) 시신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 뒤 시신을 확인하고 오열했다”고 말했다.
김동재씨의 형인 수현씨는 당시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이었다. 전쟁 발발 후 고향으로 오던 길에 같은 마을 출신 좌익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시신은 김도순씨가 수습했다.
참고인 박남정(가명·71)씨는 “김수현씨와 함께 있다 살아남은 아버지(박종완)로부터 당시 사건에 대해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렇다.
옹암리 출신으로 서울대 동문이던 김수현과 박종완이 마을에서 만났을 때 김수현이 “옹암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옹암리로 가보자”라고 했고, 두 사람은 가던 길에 좌익들을 만났다. 같은 마을 출신으로 아는 사람이어서 김수현은 “다 아는 사람들인데 설마 우리를 죽이겠어”라고 했지만, 좌익들은 주머니에서 고춧가루를 꺼내 두 사람 눈에 뿌렸다.
박종완은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둬둔 논으로 뛰어가 눈을 씻고 갯벌로 도망쳤다. 박종완은 뒤에서 김수현이 구타당하는 소리, 고함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대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는 이후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환청에 시달렸다고 한다.
신청인 김동재씨는 “당시 같은 마을 출신 박재인(가명)이 빨간 완장을 차고서 손가락질만 하면 다 죽던 시절이어서 마을 사람들도 김씨 일가족이 죽는 것을 목격하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한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2002년 《월간조선》은 1952년 3월 31일 당시 이승만 정부의 공보처 통계국에서 작성한 《6·25사변 피살자 명부》를 국립중앙도서관과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발견해 책으로 출간했다. 이 명부에 김씨 부친과 삼촌 김기백·기성 등이 1950년 10월 1일 대덕면 옹암리에서 희생되었다고 등재되어 있다.
제적등본과 《6·25사변 피살자 명부》에 실린 이름, 수장 현장을 목격한 참고인의 진술 등을 종합하여 김씨 일가족 36명이 1950년 10월 초 좌익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진실화해위는 판단했다.
이렇게 적대 세력에게 억울하게 희생됐지만 현재 이들 후손들은 국가로부터 배상이나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배·보상 책임이 북한에 있기 때문이다.
김광동 상임위원은 “우리나라 역사상 36명의 일가족이 몰살당한 사례는 없을 것”이라며 “이런 사건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친척이 경찰이란 이유로 16명 일가족 죽창에 찔려 희생
진실규명 신청인 강성식씨는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1950년 10월 2일 일가족 16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강씨 집은 많은 전답에다 집 안에 목욕탕이 있을 만큼 살 만했다고 한다. 조부 강주삼은 일꾼을 데리고 농사를 지었으며,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에 소유 산이 있을 만큼 부유했다. 부친 강상국은 일제강점기 ‘농민결사’ 관련 활동을 한 독립유공자다.
형 강인홍은 당시 장흥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석 달 후에 대한민국이 복구될 것’이라고 하는 내용의 전단을 돌리다가 붙잡혀 감금되었다가 추석 전에 풀려났다고 한다. 그러고 얼마 후 가족들과 함께 희생됐다. 경찰관이던 강씨의 삼촌 강상민은 여순사건 당시 전사했다.
관련 증언을 종합하면, 강씨 일가족 16명은 좌익들에 의해 마을회관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대덕초등학교 뒤 야산으로 끌려가 몽둥이로 맞고 죽창에 찔려 희생됐다. 강씨는 가족들이 끌려가던 날 밤, 다른 방에서 자고 있어 끌려가지 않았다. 강씨의 누이인 강연옥(가명)은 그날 밤 삼촌 강상근의 집에서 잤기 때문에 희생을 면할 수 있었다. 강연옥은 이튿날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어 가족들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러다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잡혀 학교로 끌려갔다. 강씨를 끌고 간 동창들은 좌익의 자식들이었다. 당시 학교에는 면장과 경찰관 자녀들이 끌려와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친구이고 이념의 때가 덜 묻어서인지 “살려주자”고 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참고인 강영락(가명)씨의 진술에 따르면 같은 날 강(성식)씨 숙모의 오빠인 김철강(가명)도 경찰관이었는데 그의 가족 4명도 끌려가 희생됐다. 마을 좌익들은 강씨의 가족 16명과 숙모 오빠의 가족 4명까지 모두 20명을 한 구덩이에 몰아넣고 생매장했다.
가족 중에 경찰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민군과 좌익 세력에 무고하게 희생된 희생자는 4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대로 된 명예회복이나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찰청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자는 이와 관련해 경찰청에 6·25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경찰관들과 그의 가족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보상이 이뤄지고 있는지 문의를 했다. 경찰청 역사기록계 관계자는 “6·25전쟁 당시 피해 경찰관이나 그 가족들에 대해선 역사기록계에서는 담당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른 부서에서 하고 있는지 파악한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구덩이서 빠져나오려 하자 좌익들 죽창으로 찔러
신청인 김기홍씨는 1950년 10월 1일 잘산다는 이유로 일가족 12명을 모두 잃었다. 김씨의 큰할아버지 김병식은 광주농고 1회 졸업생으로 고향에 내려와 해태조합(현 수산업협동조합)에 근무한 적이 있고, 기와공장을 운영했다. 김씨 조부 김준식도 광주농고 졸업 후 금융조합과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일가족이 희생된 그날, 마을 좌익들은 김씨 조부의 집으로 쳐들어와 어린 아기와 일꾼, 연로한 증조부와 증조모만 남겨놓고 모두 끌고 갔다. 국군이 마을을 수복한 후 가해자들을 심문, 이들에게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참고인 김처선(가명)씨는 “시신은 수복 후인 음력 10월 11일 수습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 누가 수습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으나 총을 든 경찰이 있었다. 또 구덩이에서 시신을 꺼냈는데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 관정 옆 냇가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다 시신을 씻고 큰 집 밭에 매장했다”고 진술했다.
김씨 사촌 김영심(가명)씨는 당시 사건을 목격한 마을 주민들로부터 다음과 같이 전해 들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김준식)가 좌익을 피해 산으로 피신해 있었는데 할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하루에 한 번씩 밤늦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할머니는 누가 따라올까 봐 몰래 다녔는데, 매일 좌익들이 감시하고 집에도 찾아오니까 며칠 동안 음식을 가져갈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구하려고 나왔고, 누군가 할아버지를 목격하고 좌익들에게 일러 할아버지는 끌려가 총살됐다. 총살되던 날 밤, 좌익들이 집으로 와서 가족들을 끌고 가 구덩이에 산 채로 밀어넣었다. 큰아버지 김진환·창환이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라고 하면서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 하자 좌익들은 죽창으로 찌르며 다시 밀어넣었다고 한다. 당시 할머니가 만삭이었는데 다른 임신부 두 명은 살려주었지만 할아버지가 좌익들에게 눈엣가시여서였는지 할머니는 살려주지 않았다.”
김씨 가족의 희생 사실 또한 《6·25 사변 피살자 명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민군, 좌익 앞세워 무고한 주민 36명 학살
6·25 당시 피살된 5만9964명 가운데 전남 지역 사망자가 72.6%(4만3511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영광군 지역에서 숨진 희생자가 2만1225명에 달했다.
1950년 7월 23일. 전라남도 영광 지역이 인민군에게 점령됐다. 영광을 점령한 부대는 인민군 제6사단(사단장 방호산 소장)이었다. 영광에 들어온 인민군은 해방 이후 남로당과 빨치산 활동을 해온 이들을 중심으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통치했다.
노동당 영광군위원회(위원장 정태송)는 영광면 도동리에 자리 잡았다. 인민위원회는 군청에, 내무서는 경찰서 자리에 들어섰다. 이들은 점령 직후 인민재판을 열고 군수, 읍장, 은행장 등 우익 인사들을 잇따라 처형했다. 좌익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군경이 수복 작전을 시작하고 더욱 극심해졌다. 영광 지역은 수복이 늦어지면서 후퇴했던 좌익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군경 가족이나 우익 가족, 빨치산에 비협조적인 주민들을 모두 살해했다.
좌익들, 공무원·경찰가족 모조리 처형
진실화해위는 1950년 8월부터 11월 사이 영광 지역 주민 350명이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밝혔다.
적대 세력에 희생된 이들 중에 당시 가족 19명을 억울하게 잃은 이가 있다. 바로 진실규명 신청인 김종기(가명)씨다. 김씨의 가족은 공무원이면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지역 좌익들에게 희생당했다.
김씨의 조부 김원진(가명)씨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이었고 당시 마을 교회 장로였다. 자연히 김씨의 집안은 교회 신자가 많았다. 가족 중 한 명은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인민군은 완장을 찬 마을 좌익들을 앞세워 주민들을 모두 저수지 인근 정자나무 밑으로 모이게 했다. 이들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씨 일가 19명, 박정도(가명) 가족 7명, 임택길(가명) 가족 10명을 죽창으로 무참히 찔러 죽였다.
참고인 김덕상(가명·김종기씨 이웃)씨는 “6·25 당시 좌익들은 김씨 일가의 세 살, 다섯 살 어린아이들까지 죽창으로 살해했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빨치산과 인민군들이 후퇴하면서 살해한 것”으로 기억했다. 좌익들은 김씨 가족뿐만 아니라 지주, 공무원과 그의 가족들까지 죽창으로 끔찍하게 살해했다.
진실규명 신청인 지현서(가명)씨의 가족은 부친이 면장을 하고 큰오빠가 은행원이란 이유로 좌익들에게 학살당했다. 좌익들은 먼저 면장 출신인 지씨 부친을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 그러고 좌익 세력을 피해 숨어 있다가 집 담을 넘어 도망치던 큰오빠를 살해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집에 남아 있는 가족 7명을 모두 끌고 가 죽였다. 희생자 중에는 10세미만 등 어린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좌익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부유하거나 공무원과 경찰 가족이면 모조리 잡아다 처형했다는 것이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증언이다.
복길마을 희생 사건, 한 마을에서 86명 희생
1950년 7월 인민군 6사단 제13연대는 목포로 가는 길목인 무안군 청계면을 점령하고 1개 분대를 복길마을로 보냈다. 이들은 후퇴할 때까지 복길교회에 상주하며 이 지역을 점령했다. 복길마을 주민들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인민군에게 이불과 식량을 제공했다. 인민군들은 마을에서 매일 교육과 회의를 하면서 주민들을 세뇌시켰다. 당시 인민군들은 교육이나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주민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구타하는 등 강압적으로 통치했다고 한다.
복길마을은 1927년 설립된 복길교회로 인해 마을 주민의 80%가 신자들이었다. 인민군과 좌익들은 이 마을을 우익 기독교 마을로 인식했고, 퇴각 시 이들을 바다에 수장하거나 마을 뒷산에 생매장해 죽였다.
인민군 주둔 이후부터 퇴각할 때까지 희생된 주민이 86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군과 마을 좌익들은 주민들을 배에 나눠 타게 한 뒤 바다로 나가 그대로 수장시켰다. 바다에 빠진 마을 주민 중에는 헤엄쳐 해변으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겨우 헤엄쳐 나왔지만, 해변에는 인민군과 좌익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해변으로 나온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거나 죽창으로 찔러 그 자리에서 죽였다. 증언자들에 따르면 당시 앞바다에서 오전에 시작된 총소리가 오후까지 들렸다고 한다.
일부 주민은 산으로 끌고 가 구덩이를 파게 한 다음 그곳에 밀어넣고 생매장했다.
진실규명 신청인 정삼성(가명)씨의 부친은 당시 면사무소에 다녔고 적대 세력이었던 같은 마을 주민의 상가에서 “대한민국이 되돌아온다. 좌익 세상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좌익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씨 부친은 이후에도 좌익들과 싸움이 잦았다고 한다. 좌익들은 눈엣가시였던 정씨 부친을 몽둥이로 때려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한 다음 그대로 산에 묻어버렸다.
김정태(가명)씨 부친은 마을 구장(區長)이었다. 부친은 일본 유학도 다녀온 지식인이었다. 구장으로 일하면서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하던 좌익들을 훈계한 일이 있었다. 전쟁이 나자 이들은 우익 성향 구장이라고 밀고했다. 이후 김씨 가족들은 유치장에 감금된 부친에게 밥을 날랐다. 그러던 중 하루는 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희생된 것이었다. 좌익들이 김씨 부친과 당시 경찰, 구장, 면사무소 직원 등 우익 인사 19명을 뒷산으로 끌고 가 처참하게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 경찰, 공무원,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적대 세력에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사례가 계속해서 진실화해위에 접수되고 있다.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진실규명 신청서에는 저마다의 눈물겨운 사연이 빼곡히 명시되어 있다. 물론 신청인들의 기억 이외 주변 사람들의 증언, 진실화해위의 조사내용도 포함돼 있다.
인민군 점령 때 부친 인민위원장까지 했지만 무고 주장
반면 앞서 언급했지만, 군경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신청서에는 구체적인 증언이나 기록 등이 빈약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일부 진실화해위 측이 군경에 의해 희생된 이들에 대해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은 것”도 사실로 보인다. 또한 “과거의 행적을 숨기고 단순히 경찰이 와서 이유 없이 잡아갔다”는 내용만 적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청 사례를 살펴보면 이랬다.
이원식(가명)씨의 아버지는 경북 동해안 지역에서 농사를 지었다. 인민군 점령기에 동네에서 높은 직책에 있었던 김덕만(가명)씨는 이씨 아버지에게 어떤 활동을 권했지만, 아버지는 사양했는데 이름이 올라갔다 한다. 김씨는 수복 시 피신해 생존했고, 후에 초대 면의원을 지냈다고 한다. 1950년 9월 27일 밤 선발대 군인이 인민군에게 협력했던 사람들 명단을 가지고 사람들을 잡아갈 때 이씨 아버지도 데려갔다고 한다.
국군은 부역한 주민들을 총살하면서 이씨 아버지도 불러냈다. 이씨 아버지는 현장에서 도주하였다가 붙잡혀 총살됐다. 진실화해위 1기는 이씨 아버지에 대해 ‘희생’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경찰서 ‘부역자 명부’에는 이씨 아버지가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씨 증언대로 김덕만의 잘못으로 인해 이름만 올라간 것치곤 인민위원장 자리는 상당히 ‘무게’가 있는 자리다.
또한 이동문(가명)씨 가족은 전쟁이 터지자 동네 골짜기로 피란을 갔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있는데 경찰이 와서 이씨 아버지를 데려갔다. 이씨 아버지는 싸우거나 저항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 아버지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하루 이틀 있다가 올 거니까 기다려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고 얼마 지나 총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신을 확인하지 못해 지금까지 사망신고도,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도 진실화해위에서 ‘희생 추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해당 지역 경찰서 ‘신원기록현황’에는 이씨 아버지가 인민군 점령 당시 ‘내무서 서원’으로 활동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내무서 서원이면 현재 북한의 보위부 지도원(국정원 격) 직책이다.
이 밖에도 기자가 검토한 결과, 대부분의 진실규명 신청 내용이 ‘길을 가다가 군경이 쏜 총에 맞아 희생됐다’는 주장이었다. 적대 세력에 가담했음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희생자 진실규명 신청 却下하기도
진실화해위 한 관계자는 “접수된 내용이 너무 미약해 조사하다 보면 희생자가 인민군 잔존 세력과 좌익 빨치산에 동조해서 싸우다 군경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어떤 이들은 실제 희생된 것이 아니라 월북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들 가운데 빨치산 근거지에서 군경에 맞서 전투를 벌이다 죽은 이들도 있는데, 자신들은 무고하게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고 주장하면서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고 군경을 상대로 싸우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무고할 수 있느냐”고 했다.
최근 진실화해위는 적대 세력에 맞서 싸우다 죽은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조사 개시도 하지 않고 각하(却下)시키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진실화해위가 각하시킨 사건을 살펴보자.
하종훈(가명)씨의 부친은 미군에게 차출되어 군수 물자를 나르는 일을 하게 됐다. 그는 미군들을 따라 전장을 오가며 물자를 운송했다. 그러던 중 미군과 인민군의 전투가 벌어지게 됐고, 하씨 부친은 그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다. 당시 입었던 부상으로 인해 끝내 사망했다. 그런데 진실화해위는 해당 사건이 진실규명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시켰다. 이유는 교전 상황에서 입은 부상은 진실규명 범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적대 세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됐지만 이들 유족은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면서 “이 밖에 인민군이나 적대 세력을 돕다 죽은 이들에 한해 배상과 보상을 받지 못하게 하는 법도 함께 나와야 한다. 나라를 부정해 국군과 경찰을 죽이는 전투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국가가 왜 배상을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6·25 당시 북한 인민군 등 적대 세력에 희생된 민간인 유족에 대해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 의원들도 개정안에 동의하고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적대 세력에 무고하게 희생된 유가족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간조선 11월 호
‘6·25전쟁사 필수 과목 폐지’ 당시 陸士에선 무슨 일 있었나
⊙ 文 대통령의 첫 국방부 지시 사항, “신흥무관학교, 陸士 교과에 반영하라”
⊙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이명박·박근혜 휘호석을 생도들 얼차려 받던 야산으로 옮겨
⊙ 송영길 육사 강연 일주일 후 ‘백선엽 웹툰’ 삭제…
⊙ 당시 육참총장 “(교과과정 개편에 대해) 보고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다”
⊙ 당시 육사교장·교수부장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 통합돼 〈전쟁의 역사〉로 과목이 개편됐을 뿐 6·25전쟁사 없어진 것 아니다”
⊙ 6·25전쟁사 논란되자 최근 육사에선 임관 앞둔 생도에게 보충 교육
⊙ 〈헌법과 군사법〉 폐지 후 〈헌법과 민주시민〉 과목 신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학문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전쟁사’라고 답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전쟁사는 국가의 운명을 놓고 총력전(總力戰)을 벌인 이들이 피로 써 내려간 흥망성쇠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육군사관학교(육사)는 사관생도들이 6·25전쟁사(한국전쟁사)와 주적인 북한의 실체를 다룬 북한학, 군사전략을 배우지 않고도 장교로 임관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10월 국회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신원식(예비역 육군 중장, 육사 37기) 국민의힘 의원이 “육사에서 ▲6·25전쟁사 ▲북한학 ▲군사전략 등 국가관·안보관·대적관 형성에 필요한 과목을 2019년부터 ‘필수 과목’에서 ‘선택 과목’으로 변경했다”고 공개하며 드러났다.

▲육군사관생도들. 사진=뉴시스
신 의원은 “6·25전쟁사가 필수 과목에서 제외된 것은 충격적인 문제”라며 “교과과정 개편으로 국군의 정신적 뿌리를 훼손시킨 행위의 몸통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육사 교과과정 개편을 두고 일부 육사 출신 예비역들은 “문재인 정부의 육사 흔들기에 일부 군인이 동조했다”고 했다. 육사 내부 사정에 밝은 이들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김용우(육사 39기) 예비역 대장과 육사 교수부장을 지낸 박석봉(육사 41기) 예비역 준장이 육사 교과 개편을 주동했다”고 말했다.
사관생도들은 졸업 시 일반학(문학·이학·공학) 학사와 군사학 학사를 함께 취득한 뒤 소위로 임관한다.
2019년 개편된 교과과정에 따라 육사에는 ▲국방전략 ▲지휘관리 ▲군사과학 ▲군사공학 등 4개의 군사학 전공이 있다. 이에 2019년(육사 79기, 현재 약 280명)에 입학한 전체 생도 중 국방전략을 전공하는 생도들(약 25%)만 한국전쟁사(6·25전쟁)와 북한학, 군사전략을 필수로 듣는다. 국방전략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생도(약 75%)는 6·25전쟁사, 북한학, 군사전략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된다.
문재인, 육사 교육과정 개편 지시

▲야산에 방치된 박근혜 대통령 휘호석.
2010년 5월 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육사 개교 64주년을 기념해 육사에 휘호(揮毫)를 했다.
‘화랑(花郞)의 기상 조국의 희망’
2016년 5월 1일 박근혜 대통령도 육사 개교 70주년을 맞아 기념 휘호를 했다.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의 전당’
육사는 휘호석을 만들어 교정에 설치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당시 육사 교장(53대, 2015년 11월~2017년 9월)이었던 최병로(육사 38기) 중장은 같은 해 9월 2일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휘호석을 야산으로 옮겼다. 육사 출신들은 이곳이 과거 얼차려 받을 때 이용된 인적이 드문 장소(92고지)라고 했다.
2017년 8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후 처음 주재한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국방부에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역사를 우리 군의 역사 속에 편입시키는 것을 검토하라”며 육사 교육과정 개편을 지시한다.
담당 부서는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기본정책과였다. 대통령 지시사항은 지시 이행 담당자가 지정돼 추진 시한·계획을 보고한 뒤 매월 실적을 보고해야 한다.
《한국일보》(2017년 8월 30일 자)는 “국방부 업무보고 당시 문 대통령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을 육사에서 우리 군의 역사적인 출발점으로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육사 교과과정 변경 외에도 ‘국군의날(10월 1일)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변경하는 안’을 검토하라고도 지시했다. 《한국일보》는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1940년 창설된 광복군을 우리 군의 시초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자 문 대통령이 ‘정통성이 없는 10월 1일이 과연 국군의날로 적합한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태영호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당시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방 정책인 ▲‘국방개혁 2.0’의 강력한 추진(한국군 주도의 공세적인 한반도 전쟁수행개념 안 정립 등) ▲방위사업 비리 척결 및 국방획득체계 개선만을 보고했다. 사관학교 교과과정 개정과 관련된 내용은 보고하지 않았다.
이는 육사 교과과정 개편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親日人名사전》 만든 학자 불러 학술대회 개최
2017년 12월 11일 육사는 ‘육군 역사 재조명을 위한 학술대회-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을 지낸 윤경로(전 한성대 총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신흥무관학교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좌장을 맡았다.
《친일인명사전》은 육사를 졸업한 박정희 대통령과 고(故) 백선엽 장군, 특무부대장(현 국군방첩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고 김창룡 장군 등을 친일 인사로 규정했다.
학술대회에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인 민주당 이종걸 당시 의원, 이 의원의 사촌 형인 이종찬(육사 16기) 전 국정원장도 참석했다. 당시 이종걸 의원실이 작성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의원은 이날 “국군의 역사를 군사 분야로 한정시키지 말고 정치사, 헌정사의 일부로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12월 28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 4개월 만에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발간했다. 정부 차원의 공식 간행물인 이 책은 5000부가 인쇄된 후 일선 대대급 부대와 각 군 교육기관, 언론, 대학·지자체 등에 배포됐다.
이 책을 두고 당시 《국방일보》는 “《국군50년사》(1998) 등에서 국군의 뿌리를 1946년 1월 15일 창설된 조선경비대로 봤던 것을 수정해 새롭게 재조명한 것”이라며 “국방부 공식 간행물로는 처음으로 독립군과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해 국군의 정통성을 되살린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보도했다.
2018년 1월 16일 국방부는 연두(年頭) 업무보고에서 ‘2017년 성과와 평가’를 이렇게 서술했다.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운동사 발굴 및 활용-국군의 역사적 뿌리 재정립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정통성 확립
▲군사편찬연구소 연구 결과, 독립군과 광복군은 우리 군의 기원
▲각 군 사관학교 및 장병교육과정에 반영, 교육(2018년 3월)
송영길, ‘國軍의 뿌리 재조명’ 강연
2018년 2월 7일 육사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의원(당시 의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초청해 3학년 생도와 교수를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주제는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재조명과 문재인 대통령의 북방정책’이었다.
육사 출신 예비역들은 “육사에서 정치인을 초청해 강연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했다. 송영길 전 의원은 어떻게 육사에서 강연하게 됐을까.
앞서 언급한 ‘육군 역사 재조명을 위한 학술대회(2017년 12월 11일)’를 마치고 이종걸 전 의원은 육사에 “생도들과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에 육사는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이 전 의원이 식사에 앞서 간단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를 두고 “이종걸 의원이 육사에서 생도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후 송영길 전 의원 측이 “육사에서 강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육사에 전했다고 한다. 당시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육사를 방문해 강연한 송영길 전 의원은 자기 홈페이지에 “나라다운 나라가 되어간다. 육사생도들의 진지한 수강 태도와 반응이 좋았다”고 썼다.
민주당 당대표를 지낸 송영길 전 의원은 지난 6월 1일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송 전 대표의 지역구(인천 계양을)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출마해 당선됐다.
송영길 전 의원의 특강이 이뤄질 당시 육사 교수부장은 박석봉 예비역 준장이었다. 전남 영광 출신으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와 동향에 송영길 전 의원과 광주 대동고(6회) 동기다. 고3 때는 같은 반(2반)이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강기정(7회) 광주시장, 김오수 검찰총장(8회)도 대동고 출신이다.
‘백선엽 웹툰’ 삭제
송영길 전 의원 방문 후 열흘 뒤 육사 홈페이지에선 ‘백선엽 웹툰’이 삭제됐다(2018년 2월 19일).
‘백선엽 웹툰(6·25 전쟁영웅의 투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은 2014년 6월 육사가 고 백선엽 장군의 6·25전쟁 활약상을 알릴 목적으로 만든 웹툰이다. 백 장군의 회고록인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2010)를 바탕으로 30회 분량이 제작됐다.
웹툰 제작 당시 육사는 “백 장군의 웹툰을 계기로 묻혀 있는 우리 현대사와 6·25전쟁 영웅들이 되살아나고 원형이 복원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공개된 지 3년 8개월이 지난 웹툰이 삭제된 것을 두고 당시 육군은 “백 장군 웹툰 삭제와 국군 역사 재조명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1일 백선엽 웹툰 제작을 총괄한 오경두(육사 39기, 당시 육사 학술정보원장) 전 육사 교수에게 ‘왜 웹툰이 삭제됐느냐’고 물었다. 오 전 교수는 “당시 학교에서 무슨 이유로 삭제했는지는 내게 말해준 적이 없다. 나는 당시 의사결정권자가 아니었다. 그 내용은 당시 의사결정권자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감완태 전 육사 교장은 “당시 대통령이 참석하는 졸업식 행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웹툰 삭제를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교장 시절 벌어진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다.
백선엽 웹툰 삭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당시 박석봉 교수부장이 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그러면서 “생도와 군 장병들에게 6·25전쟁을 알리고자 백선엽 장군을 직접 찾아봬가며 많은 노력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웹툰이 내려간 걸 보고 굉장히, 매우 가슴 아팠다”고 했다.
백선엽 웹툰이 삭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2018년 2월 20일경) 육사 건물 외벽에는 페인트가 덧칠됐다. 초록색 바탕에 흰색 동그라미, 그 안에 세로로 ‘육사’라고 적은 ‘육사 마크’가 사라졌다. 육사 관계자들이 사는 육사 아파트 외벽에서도 이 마크가 사라졌다.
‘육사 마크 실종 사건’
이를 두고 당시 《조선일보》는 “2017년 탄핵 정국 당시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일부 육사 출신 예비역들이 ‘육사’ 부대 마크가 새겨진 응원 깃발을 들고 시위에 가담함으로써 학교 이미지가 심각하게 왜곡·훼손되었다고 판단, 학교 이미지 실추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학교 외부에서 식별되는 일부 시설물에 설치된 부대 마크를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2018년 삼일절에는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육사에 설치됐다. 흉상은 탄피 300kg(5.56mm 보통탄 5만 발 분량)을 녹여서 만들었다.
이어 3월 6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는 10년 만에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육사는 광복군·독립군 출신에게 명예 육사 졸업장을 수여했다.
2018년 4월 30일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제13회 공사 심포지엄(독립군과 광복군의 리더십)’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육·해·공·3사 사관생도 800명이 참석했는데 기존까지 진행됐던 심포지엄과는 달리 사관생도가 주축이 돼 주제 발표가 이뤄졌다.
2018년 6월 4일 육사 교장이 바뀌었다. 김완태(54대, 육사 39기, 예비역 중장) 교장의 후임으로 정진경(55대, 육사 42기, 예비역 중장) 중장이 취임했다.
곧이어 6월 8일에는 육사에서 ‘신흥무관학교 107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가 축사를 했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는 2011년 ‘100주년 기념식을 육사에서 열게 해달라’고 육사에 요청했으나 당시 육사는 이를 거절한 바 있다. 107주년 기념식은 전임 김완태 교장 재임 시절 계획된 행사였다.
김완태 전 육사 교장은 지난 11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인민군이 1932년 김일성의 항일유격대를 바탕으로 창설됐다고 주장한다. ‘북괴군(북한군)’과 우리 국군이 정통성 논쟁을 벌일 때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독립군, 혹은 대한제국까지 계승해 정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광복군·독립군에 대해 알리려는 노력을 해왔다. 이는 개인적인 소신”이라고 밝혔다.
김완태 전 육사 교장은 일부 육사 출신 예비역들에게서 ‘교장 재임 시절 문재인 정부에 코드(code)를 맞췄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 전 교장에 관한 여러 소문이 돌았다. 이를 두고 육사총동창회가 나서 2018년 5월경 김완태 교장에 대한 자체 감사까지 벌였다. 당시 육사총동창회는 “김완태 교장에 대해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독립군·광복군 띄우기에 앞장선 김 전 교장은 정작 육사 교장을 8개월 10일밖에 하지 못했다. 김 전 교장은 기자에게 “교장 시절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회피할 생각은 없다”면서 “기회가 되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일부 육사 출신 예비역들은 “김완태 장군이 좌파 정부에 잘 보여 영전을 할 목적으로 광복군·독립군을 띄웠다고 오해하는 시각이 있다”며 “김 장군의 행보 중 상당 부분은 육사 지방 이전을 저지하기 위해 마련된 대응책”이라고 변호했다.
육사 교수 출신 A는 “김완태 장군이 육사 교장으로 부임할 무렵 육사 지방 이전이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김 장군 부임 후 육사 지방 이전 논의가 수그러든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사’에서 ‘한반도의 전쟁’으로 둔갑
육사 교과과정은 통상 4년 주기로 개편된다. 2019년 육사 교과과정 개편(2018년 9월 진행, 2019년 2월 확정)은 정진경 교장 재임 시절 이뤄졌다.
이에 앞서 육사는 최병로 교장 재임 시절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육사 교과과정 개편에 대한 연구를 의뢰(2016년 12월)했다. KIDA 보고서는 현행 육사 교육과정에서 필수 과목 배정이 과도해 생도들의 수업 선택 자율권을 제한한다고 봤다.
2018년 8월 육사는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에게 교과과정 개편(도약적 변혁 추진계획-‘육군의 미래 문제를 스스로 찾아 해결책을 제시하는 인재’)을 보고했다.
이 시기 육군은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를 제작 발표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육군 창작 뮤지컬’이라는 소개가 붙었다. 육군은 연예인 출신 병사까지 파견하며 뮤지컬을 만들었다.
사관학교 교과과정 개정은 사관학교설치법과 고등교육법에 따라 5~6단계를 거친다.
①육사 교과과정 (개정) 연구위원회(→교학위원회)→②육사 교육운영위원회(위원장 교수부장)→③육사 교장 승인→④육군참모총장→⑤국방부 장관(↔교육부 장관과 협의) 순이다.
교과과정 개편의 실무를 맡는 교과과정 (개정) 연구위원은 주로 육사 교수들로 구성되며 교수부장이 추천하고 교장이 임명한다. 2019년 교과과정 개편 당시 교수부장은 박석봉 장군, 교장은 정진경 장군, 육군참모총장은 김용우 장군, 국방장관은 정경두 예비역 공군 대장이었다.
2019년 이전에 입학한 생도들에게는 〈한국전쟁사〉(6·25전쟁, 3학점)와 〈세계전쟁사〉(2학점)가 필수 과목이었다. 하지만 교과과정 개편으로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 과목을 폐지한 후 〈전쟁의 역사〉(3학점)를 개설했다. 교과과정 개편으로 〈한국전쟁사〉는 〈한반도의 전쟁〉(선택 과목)으로 과목명도 바뀌었다.
육사에서 전쟁사는 군사사학과가 담당한다. 교과과정 개정 당시 군사사학과에서는 ‘〈한국전쟁사〉를 선택 과목으로 전환하면 안 된다’며 당시 박석봉 교수부장에게 수차례 건의했으나 박 교수부장은 이를 묵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1년 육군3사관학교(3사)에서는 필수 과목으로 전쟁사가 사라지고 〈전쟁과 전쟁법〉(2학점)이 개설됐다. 여기서 6·25전쟁사를 일부 가르치고 있다.
교수부장, 이례적으로 임기 연장돼
교과과정 개편의 실무가 마무리될 즈음 육사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2018년 11월 박석봉 교수부장의 임기가 1년 연장된 것이다. 2016년 11월 취임한 박 교수부장은 2018년 11월 전역을 해야 했다. 육사 교수 중 최선임자인 교수부장(준장)은 임기가 2년이다.
육사 출신 C는 “육사에는 군인 신분인 교수가 70명가량 있다. 이들은 2년에 한 명 나오는 교수부장을 꿈꾸며 생도들을 가르친다. 박 교수부장은 3년을 했다. 대단히 이례적이다. 육사 개교 이래 유이(有二)하다”고 했다. 1987년 이후 ‘3년 임기’ 교수부장을 지낸 이는 박석봉 준장뿐이다. 이는 40년 만에 처음이다.
육사 교과과정 개편은 2018년 12월 24일 서주석 국방차관에게도 보고된다. 이어 2019년 2월 15일 육군참모총장(김용우) 보고, 2월 21일 국방장관(정경두, 초안 2019년 1월 보고) 승인을 거쳐 확정돼 그해 3월 1학기부터 적용됐다.
교과과정 개편 직후 《국방일보》는 2019년 3월 12일 자 보도에서 이를 소개한 뒤 ‘육사 교과과정 개정 주도 박석봉 교수부장’이라는 부제를 달고 박 교수부장을 인터뷰했다.
육사 교과과정 개편에 책임이 있는 이들은 크게 박석봉 당시 교수부장, 정진경 당시 육사 교장, 김용우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다.
기자는 지난 11월 9일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 측에 6·25전쟁사 필수 과목 폐지가 당시 총장의 지시였는지를 물었다. 이에 김 전 총장은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내용을 보고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다. 당시 육사 교장이나 교수부장에게 확인해보시라. 육군총장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갖고 학교의 특정 교과 과목을 조정하는 것이 온당하고 가능한 일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근거도 없는 말로 사실을 왜곡하고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헌법과 민주시민〉 개설

지난 10월 24일 육군본부는 신원식 의원실의 질의(육사 교과과정 개편 관련 육군참모총장의 업무 지시 방법 및 내용)에 대해 “육사 교과과정 개편과 관련하여 지시 공문은 없었으며 구두로 지시한 사항에 대해서는 확인이 제한된다”고 밝혔다.
서주석 당시 국방부 차관에서 ‘2019 육사 교과과정 개편’ 당시 육사는 군사학 과목에서 〈헌법과 군사법〉을 폐지하고 〈헌법과 민주시민〉을 신설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서주석 국방차관은 자신이 ‘○○여대에서 3년간 민주주의 과목을 강의한 경험이 있다’며 “전반적으로 잘 연구됐다”고 했다.
정진경 전 육사 교장은 기자에게 “당시 육사 교장으로서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며 “역사 교육 강화는 즉각 보완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육사와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퍼져 안타깝다. 진상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했다.
정진경 전 교장은 “한국전쟁사 필수 과목 제외를 두고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 교수들에게 그와 같은 지시를 내린 사실도 없다. 교과과정 개편 보고 당시에도 그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고 논의된 적도 없었다. 장관 보고 때도 6·25에 대해 언급된 적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정 전 교장은 “교과과정 개편 위원들에 따르면 ‘개편 당시 기존의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를 합쳐 〈전쟁의 역사〉라는 과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사 과목이 없어진 게 아니다. 〈전쟁의 역사〉에서 6·25전쟁에 대한 비중이 줄어들자 이를 보완하고자 선택 과목으로 〈한반도의 전쟁〉을 심화 과목으로 (추가) 개설했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교과과정 개편으로 과마다 해당 과가 담당하는 수업 시수를 ‘균등하게’ 줄이는 과정에서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를 합쳐 〈전쟁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육사 출신들은 “아무리 과별로 학점을 줄인다고 해도 한국전쟁사를 빼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교과과정 개편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개편에서 한국전쟁사를 필수 과목에서 폐지한 점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했다.
“보고만 받았을 뿐”(교수부장)
박석봉 전 교수부장은 “육사에서 6·25전쟁사가 필수 과목에서 폐지됐다는 이야기는 뉴스를 듣고 알게됐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과과정 개편은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합의해 결정한 사안”이라며 “교과과정위원장에게 진행 상황만 보고 받았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11월 11일 기자는 박 전 교수부장과 통화했다.
— 〈한국전쟁사〉가 선택 과목으로 될 때 ‘김용우 육군총장과 박 교수부장이 적극 나섰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그런 적이 없습니다. 교과과정 개정위원들이 최종 의견 합의를 봐 결정한 사안입니다.”
박 전 교수부장은 기존의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가 통합돼 2021년부터 〈전쟁의 역사〉로 과목이 개편됐을 뿐 6·25전쟁사(한국전쟁사)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교과과정 개정위원장(당시 중령, 현 대령 정○○)이 제게 ‘전쟁사 두(한국·세계) 과목을 한 과목(전쟁의 역사)으로 한다’고 하기에 ‘군사사학과 교수들이 동의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개정 위원장이 ‘토의를 해 최종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했죠. 교과과정 개편으로 필수 과목을 줄이다 보니 해당 학과별로 맡는 필수 과목을 줄였어야 했죠. 그게 다입니다.”
—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가 통합되기에 6·25전쟁에 대한 교육 비중이 줄어든다고 윗선에 보고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그런 이야기는 너무 상식적이어서 (윗선에) 보고를 안 했죠. 저는 개정 위원장인 정○○에게 보고만 받았을 뿐입니다. 또 상식적으로 사관학교에서 6·25전쟁사를 빼는 것은 말이 안 되죠.”
박 전 교수부장은 〈한국전쟁사〉를 필수 과목으로 둘지 선택 과목으로 둘지를 결정하는 것은 군사사학과의 소관이라고 했다.
— 군사사학과에서는 교수부장에게 ‘6·25전쟁사를 필수 과목에서 폐지하면 안 된다’고 수차례 건의했다고 합니다.
“전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전혀 기억이 없고요, 저는 교과과정위원장을 통해서만 보고받았고 당시 위원장이 제게 그런 내용을 보고한 적은 없습니다.”
“송영길 특강은 학교 차원 결정”
박 전 교수부장은 “육사의 교육과정은 좌우 정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당초 교수부장 임기는 2년인데 1년이 추가돼 3년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후배가 할 줄 알았는데 국방부에서 명령이 났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그건 제가 답할 수가 없죠. 국방부에서 발표했기 때문에.”
— 연장 희망은 했습니까.
“(더 하겠냐고) 물은 적도 없어요.”
— 이동희 교수부장(1979~1982년 재임)을 제외하곤 이례적이잖아요.
“예, 그렇죠.”
— 당시 김용우 총장과 가까워서 1년 연장된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가깝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 2018년 2월에 송영길 전 의원에게 육사 특강을 맡긴 것을 두고 비판이 있습니다.
“누가 그럽니까. 저는 동창이라고 해서,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그 양반한테 찾아가 뭔 이야기해본 적 없습니다.”
— 누가 특강을 부탁한 겁니까.
“학교 차원에서 결정한 겁니다. 교수부장 권한일 수도 없고요. 학교장님이 최종 결정을 하셨겠죠. 송영길 의원 보좌관하고 학교장님이 동창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완태 전 육사 교장은 이에 대해 웃으면서 “그 보좌관은 특강을 계기로 알게 된 고향(충북) 사람”이라고 했다.
육사 교수 출신 D는 이렇게 밝혔다.
“대부분의 교과과정 개편은 교수부장이 주도합니다. 육사 교장은 야전에 있다가 와 교과과정 개편에 대해 잘 모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리고 학과의 과목이 없어지는데 좋아할 교수는 아무도 없어요. 군사사학과 교수들이 항의하지 않았다? 항의 많이 했습니다. 개편 이전만 해도 군사사학과는 필수 과목 3개(한국전쟁사, 세계전쟁사, 군사전략)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필수 과목을 하나로 줄이라는 지시 때문에 지금의 〈전쟁의 역사〉가 개설됐죠.”
― 박석봉 교수부장은 〈전쟁의 역사〉에서 6·25전쟁을 가르쳐 문제 될 게 없다고 합니다.
“과목 자체가 틀려요. 〈전쟁의 역사〉는 세계전쟁사입니다. 한국전쟁사는 우리 땅에서 일어난 전쟁을 굉장히 세부적으로 전술적인 부분까지 다 가르쳐요. 완전히 다른 이야깁니다.”
〈전쟁의 역사〉가 세계전쟁사로 구성된 이유는 당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등 과거와는 다른 전쟁 양상(하이브리드전)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대신 교과과정연구위원회는 군사사학과에 ‘다른 전공 생도들도 한국전쟁사(한반도의 전쟁)를 수강할 수 있도록 선택 과목으로 지정해주겠다’며 설득했다. 이후 육사생도 중 약 30%만이 〈한민족의 전쟁(한국전쟁사)〉을 수강했다.
―사실상 한국전쟁사(6·25전쟁사)가 필수 과목에서 폐지된 것입니까.
“예.”
D씨의 주장대로 〈전쟁의 역사〉는 세계전쟁사를 다뤘다. 해당 과목 교과서는 존 키건이 쓴 《세계전쟁사》(2018, 까치)였다.
육사, 졸업예정자 대상으로 6·25전쟁사 집중 교육 중
현재 육사에서는 2023년 3월 임관할 4학년 생도를 대상으로 16회 분량의 6·25전쟁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육사 전쟁사 필수 과목 폐지와 관련해 국방부는 감사를 벌였다. 육사 내부 사정에 밝은 이는 “현재 육사에서 내년 3월에 임관할 79기 생도들을 대상으로 6·25전쟁사를 16회에 걸쳐 집중 교육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용우 전 총장은 현재 대만 대사(주 타이베이대표부 대표)로 내정됐으나 지난 11월 16일 기자에게 “내정 철회됐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용우 예비역 대장은 예편 후 윤석열 캠프에 참여했다. 정권 교체 후 KAI(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 사장으로 간다는 말이 돌았으나 무산됐다.
김용우 전 총장은 기자가 ‘대만 대사에 지원한 것인지, 권유받은 것인지’를 묻자 “정부의 외교 정책과 관련한 사안이므로 확인해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을 양해 바란다”고 했다.
육사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에 책임 있는 인물들이 책임을 회피하고자 희생양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그 중 한 명이 현재 육사 교수부장인 김순수(육사 44기) 준장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11월 교수부장 임명과 함께 장군으로 진급했고 국비 유학으로 중국 인민대(석사)와 북한대학원(박사)에서 공부했다. 진급 시점과 학력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6·25전쟁사를 육사 교과과정에서 제외한 주동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기자가 접촉한 육사 관계자들은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기자는 김순수 교수부장 등 육사 교수들의 입장을 묻고자 연락했으나 이들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백선엽 웹툰’은 누가 만들었나

▲2014년 7월 14일 자 KTV에 출연한 오경두 전 육사 교수. 오 전 교수는 “백선엽 웹툰이 내려간 걸 보고 굉장히, 매우 가슴아팠다”고 했다. 사진=KTV 캡쳐
지난 11월 16일 박석봉 교수부장은 백선엽 웹툰이 자신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국방일보 등에 실리게 된 것도 자신의 건의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백선엽 웹툰 삭제 경위를 묻는 말에는 “정훈 쪽에서 했을 것”이라고 했다.
육사 관계자는 백선엽 웹툰 삭제와 관련해 “당시 공보정훈부에서 웹툰을 삭제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백선엽 웹툰 제작을 총괄했던 오경두 전 육사 교수는 지난 11월 17일 “생도들과 장병들에게 6·25 전쟁의 실상과 군인정신을 알리기 위해 백선엽 장군님을 직접 찾아봬 고증해가며 웹툰을 제작했다. 육사에서 전군에 웹툰을 개방해서 80만 뷰(view, 조회수) 이상 큰 호응을 얻었다”며 “이에 내가 양종수 학교장에게 건의해 국방일보에 일주일에 두 번씩 30화까지 연재했던 것”이라고 했다. 오 전 교수는 자신이 백선엽 장군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웹툰 제작은 웹툰병이 꼭 있어야 합니다. 애니메이션학과 출신의 전방 부대 병사가 파견돼 제작에 참여했죠. 부대에 속한 병사를 파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서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양종수 장군이 백선엽 장군 웹툰 제작의 의의를 사단장들에게 알려 웹툰병 2명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백선엽 웹툰 제작 당시 학교장이었던 양종수(육사 37기) 예비역 중장에게 지난 11월 18일 ‘박석봉 장군이 백선엽 웹툰 제작을 자신이 총괄했다고 주장한다. 웹툰 제작은 누가 맡았나’를 물었다. 양 전 육사 교장은 “오경두 교수가 했다”고 밝혔다.
양종수 장군의 입장을 바탕으로 지난 11월 18일 박석봉 교수부장에게 ‘백선엽 웹툰’에 대해 재차 묻자 ‘오경두 교수가 하다가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박석봉 교수부장은 대통령 휘호석 이전과 관련해 “당시 학교장이 없애려던 것을 자신의 건의로 보존하게 됐다”고도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최병로(육사 38기) 예비역 중장은 지난 11월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휘호석 이전과 관련해 (누구에게) 건의받은 적 없다. 내가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최 장군은 “탄핵과 휘호석 이전은 상관이 없다”며 “육사에 대통령 휘호석(이명박, 박근혜)이 자꾸 들어서면 육사가 휘호석 동산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 휘호석도 당초 휘호만 받으려 했으나 당시 청와대 안보실 지시로 휘호석을 만들게 됐다. 휘호석이 당장은 보기 좋지만 육사가 정치 바람을 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최병로 장군은 “만약 내가 (대장으로) 진급이 (결정)된 후 휘호석을 옮겼더라면 문재인 정권에 편승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겠지만 이미 육사 37~38기가 군에서 물러나는 시점이라 자유롭게 결정했다. 앞으로도 대통령 휘호석이 만들어지면 한데 모아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고 했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 “왜 내게 책임 넘기나”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은 “나를 향해 ‘어떤 의도를 갖고 6·25전쟁사를 없앴다’고 하는데, 나는 평생 군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6·25전쟁사를 없앴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내 입장에선 황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네들(육사 교수, 군사사학과)이 없앴으면서 왜 나한테 책임을 넘기는 것이냐”고 했다.
‘최종 결재(승인)를 한 것은 육군참모총장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김 전 총장은 “세부 사항을 보고 받지 못 했다”며 “교과 과정의 세부 내용까지는 관심 사안이 아니다. 세부 내용을 어떻게 정할지는 해당 학과장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어 “총장이 육사에 어떤 지침을 주지 않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인지도 못 했다”며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데 (개편안에) 사인(결재)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할 순 있다”고 했다.
김 전 총장은 “내가 마치 육사 교장이나 교수부장에게 무언의 압박을 줘 육사 군사사학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사를 필수 과목에서 폐지하게 한 것처럼 비친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월 16일 밤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과 기자의 통화 내용 중 일부이다.
― 그럼 당시 정진경 육사 교장도 박석봉 교수부장에게 교과과정 개편에 대한 보고를 못 받았다는 겁니까.
“정진경 교장은 당시 교수부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받지 못 한 거로 알고 있어요. 육사 교장도 보고받지 못 한 걸 총장이 어떻게 압니까.”
― 교수부장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교수부장은 당시 교과과정 개정위원장(TF장)으로부터 보고받았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다면 왜 교수부장은 학교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않은 겁니까.
“교수부장 입장에서는 ‘당시 교과과정 개정위원회에서 학과장들이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를 통합해 교육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인지를 한 수준이죠.”
― 취재한 바에 따르면, 육사 군사사학과에서는 박석봉 교수부장에게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를 통폐합하면 안 된다’고 수 차례 밝혔다고 합니다.
“그건 내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군사사학과 교수들이 ‘교수부장에게 이야기했다’는 주장은 그들의 주장인데, 교수부장이 교장한테 이야기하질 않고 또 교장이 나(총장)한테 이야기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럼 누구의 잘못입니까.
“교수부장이 교장한테 의사소통을 하지 않아서 나한테까지 인지가 안 된 거죠. 나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내가 박석봉 전 교수부장에게 물어보니 박 전 교수부장은 ‘(육사 군사사학과에서 항의한 일이) 한 번도 없다, 구체적으로 증거를 대라’고 이야기합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교장이나 그 누구로부터 그(6·25전쟁사 필수 과목 폐지) 사실을 보고받은 적도, 인지한 적도 없다’라는 겁니다.”
박석봉 전 교수부장, “몹시 수치스럽다”
박석봉 교수부장은 지난 11월 18일 기자에게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육사인으로서 이렇게 육사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기사화되는 모습이 몹시 수치스럽습니다.
〈전쟁의 역사〉가 처음 개설돼 시행된 연도는 (교과과정) 개정(2019년) 후 2년이 지난 2021년 3월입니다. 교과과정위원회와 (육사) 지휘부는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를 〈전쟁의 역사〉로 통합하고 (군사사학과가) 적절히 안배해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2021년 〈전쟁의 역사〉 과목에서 한국전쟁사 부분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역사〉에서 6·25전쟁사(한국전쟁사) 내용이 빠졌다면 2021년 1학기 육사 ‘교육 준비 검열(매 학기 실시)’ 때 알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과목에 어떠한 내용을 담아 가르칠 것인지는 해당 학과 교수들이 책임지고 구성합니다.
6·25전쟁사가 빠졌다면 그것은 2019년 교과개정 개편 당시 벌어진 일이 아니라 2021년 ‘2019 개정안’을 적용해 〈전쟁의 역사〉를 처음 개설할 때 벌어진 일입니다.”
박석봉 전 교수부장의 주장은 ▲2019년 교과과정 개편 당시 학과 교수들 간 자유로운 토의를 거쳐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를 통합해 〈전쟁의 역사〉라는 과목이 만들어졌고 ▲과목 〈전쟁의 역사〉에서 어떤 내용을 가르칠 것인지는 강의를 담당하는 육사 군사사학과의 소관 사항이며 ▲2021년 〈전쟁의 역사〉가 처음 개설돼 생도들에게 교육할 때 6·25전쟁사와 관련한 내용이 강의에서 빠졌다면 이는 당시 교수부장, 교학처장, 군사사학과 교수의 책임이라는 취지이다.
이에 대해 육사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이는 아래와 같이 반박했다.
“교과과정 개편은 2019년 1월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받았고 이를 근거로 같은 해 2월 ‘세부시행지침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정진경 당시 육사 교장이 세부시행지침서에 결재했습니다. 장관 결재가 법령이라면, 육사 교장의 결재는 시행령에 해당합니다.
2021년 당시 교수부장 E와 교학처장 L은 2019년 2월 박석봉 교수부장과 정진경 육사 교장이 만들어 놓은 세부시행지침서를 이행한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E와 L이 2019년 만든 세부시행지침서와 다른 내용을 가르치거나 이를 보완한다면 오히려 법적인 문제(직권남용)를 부를 수 있습니다. 2021년 당시 교수부장과 교학처장, 군사사학과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박석봉 전 교수부장은 또 군사사학과가 ‘교과서’ 없이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교수부장은 “육사 역사상 여태까지 교과서 없이 전쟁사 수업을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육사 군사사학과에서 지금 교과서도 없이 생도들에게 〈전쟁의 역사〉를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석봉 전 교수부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육사 군사사학과는 존 키건이 쓴 《세계전쟁사》(2018, 까치)를 비롯해 세계전쟁사를 다룬 책을 바탕으로 〈전쟁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해 육사 교수 출신 H는 “교과서 없이 수업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박석봉 교수부장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고 궤변을 늘어 놓고 있다”고 했다.
박 전 교수부장은 “누군가 나를 음해할 목적으로 사실과는 다른 내용을 제보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간 육사 6·25전쟁사 폐지와 관련해 관심을 뒀던 육사 출신 예비역 장군 P씨는 “그렇다면 당시 육사 교수부장, 육사 교장, 육군참모총장은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육사, 사관생도 가치관 확립 위해 교육과정 개편 준비 중
육사 관계자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국방부 감사 결과가 나오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육사는 사관생도 가치관 확립을 위한 필수 과목 확대를 방향으로 교육과정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육사는 “2019년 교과과정 개정으로 과거 전통적인 필수 과목(전쟁사, 북한학 등)을 미수강하는 생도가 발생했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치관(국가관, 안보관, 역사관, 대적관) 확립에 필요한 과목(전쟁사, 북한학, 군사전략 등) 이수를 의무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12.07 국정원은 남북 대화 창구 아닌 대북 정보기관이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6월 원훈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하고 이 글귀가 적힌 원훈석을 다시 세웠다.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의 간부 인사가 마무리됐다. 1급 간부 교체에 3개월, 2·3급 간부 교체에 다시 3개월이 걸렸다. 이번 인사는 대북 감시·정보·방첩 역량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남북 비밀 접촉 등 대북 협상 쪽으로 조직의 역량과 기능이 과도하게 편중됐던 비정상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중용됐던 2·3급 간부 100여 명이 보직을 받지 못한 만큼 내부 저항도 있을 수 있다.
문 정부 시절 국정원은 대북 정보기관이 아니라 남북 대화 기관이었다. 당시 원장은 후보자로 내정되자마자 “평양에 갈 수 있다”고 했고,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현장에선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문 정부 국정원은 북이 핵 개발을 계속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회에 나와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했고, 북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했다. 김정은 비위를 맞추는 언행이 난무하는 배경에 국정원이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문 정부 시절 국정원의 대북 정보 역량은 추락했다. 2018년 3월 북한 특별열차가 중국에 들어간 뒤에도 김정은 방중을 확인하지 못할 정도였다.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할 일이다. 국정원이 남북회담 당사자로 나서다 보니 조직 전체가 그 방향으로 변질되며 대북 정보 능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 정부 국정원 수뇌부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첩보 보고서를 무단 삭제한 혐의,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어민들의 북송을 서두르기 위해 합동조사를 조기에 종료시킨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국가기관, 그것도 정보기관이 남북 대화 걸림돌 치우기에만 급급했다. 간첩 혐의로 복역한 사람의 글씨로 국정원 원훈을 새기기도 했다. 국정원 자체에 대한 능멸이었다.
문 정부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폐지해 경찰로 넘겼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 수사권 자체를 없앨 수 있나. 대공 수사는 이 기관에서 저 기관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십년 경험이 필수적이다. 지금 사실상 대공 수사는 공백 상태나 마찬가지다. 군 방첩 기능도 약화됐고 검찰의 대공수사 기능도 줄어들었다. 3대 대공·방첩 기관이 다 약화된 것이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이다. 어느 나라나 정보기관은 안보의 최전선에 있다. 안보를 위협하는 적의 동향을 탐지해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본 임무다. 남북 대화는 통일부의 업무다. 하지만 북한은 통일부를 배제하고 국정원만 상대하려 한다. 거기에 한국 정권들이 호응했다. 국정원이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바라는 바다. 국정원 내부에도 남북대화 세력이 뿌리를 내렸다. 국정원을 남북 대화 창구가 아니라 대북 정보기관으로 정상화하고 어떤 정권이 오든 이 원칙만은 허물지 말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2.07 새 국방백서의 ‘북한 정권은 적’ 규정, 만시지탄이다
문 정부 이후 6년 만에 적 개념 수정 예정
무너진 안보 의식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윤석열 정부 들어 다음 달 처음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2016년 이후 6년 만에 다시 들어갈 것이란 소식이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하는 와중에도 평화 지상주의가 판치며 우리 국민의 안보 의식을 혼란스럽게 했던 사실을 돌아보면 지극히 당연한 조치다.
정부 소식통은 어제 “새 정부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대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명시하는 표현이 국방백서 초안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국방백서 등에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명시했다.
2년마다 발간되는 국방백서는 그동안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었다. 국가 안보 전략의 핵심인 주적 또는 적 개념은 분명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마땅하지만, 정권의 색깔에 따라 주적 개념은 오락가락했다. 주적 개념은 1994년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폭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명기됐고, 2000년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김대중 정부 들어 남북 화해 국면이 조성되자 2004년 국방백서는 ‘직접적 군사위협’이란 표현으로 대체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발간된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란 표현이 다시 등장했고, 2016년 박근혜 정부까지 유지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2018년과 2020년 국방백서에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표현을 삭제했다. ‘주권·국토·국민·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문구로 대체했다. 이 때문에 적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5년 가까이 우리 군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안보 의식이 통째로 흔들리는 혼란기를 경험했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마친 북한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위장 평화 공세에 나섰다. 문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맹신하고 남북 정상 및 북·미 정상회담에 치중했었다.
거짓 평화에 몰두하는 와중에 안보 의식은 실종되고 말았다. 문 정부가 평화 지상주의에 취한 나머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응 역량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필수 과목에서 ‘6·25전쟁사’를 빼기도 했다.
급기야 민주노총은 공공연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정치 투쟁을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다. 안보 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적의 개념을 분명히 한 국방백서 발간을 계기로 윤 정부는 안보 전략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정상화하고, 안보 경각심을 되살리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12.07 [단독]'文 보고문건' 꺼낸 서훈…법원 "공문서가 왜 밖에 있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희생자를 월북으로 몰아가고, 관련 군사기밀 등 첩보 자료 삭제를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및 허위공문서 작성 등)를 받는 서훈(68·구속)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사건 발생 직후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문건을 증거로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문 전 대통령이 사건 전후로 어떤 보고를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안보라인 최고책임자였던 서 전 실장이 문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내용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지난 9월 시작된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검찰은 이 문건을 발견하지 못했고 서 전 실장은 소환 조사 과정에서도 문건의 존재를 함구해 왔다. 법조계에선 이 문건의 출처와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살 관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서 전 실장은 '진실 은폐 및 월북몰이'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연합뉴스.
서훈 측이 제시한 '1장짜리 보고 문건'
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 전 실장 측은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사건 직후 대통령께 보고한 문서'라며 A4분량의 종이 1장을 꺼내들었다고 한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이던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다음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8시 30분, 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이 이 사건과 관련해 최초로 대면보고를 받았다고 한 시점이다.
보고 문건에는 ‘이씨가 9월 22일 서해상에서 실종돼 표류하다 북한군에 의해 발견됐고, 북측이 이씨를 구조할 거라 판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서 전 실장 측은 이를 토대로 “우리 정부가 취득한 첩보를 종합해 당시 최선의 판단을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감청 등을 통해 북측 상황을 파악한 결과 구조 가능성을 예상했지만, 북측은 이씨에게 총격을 가했고 결국 살해·소각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법조계에선 서 전 실장의 갑작스런 문건 제출은 '서해 사건' 혐의와 관련해 문 전 대통령과 연관성을 부인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간 검찰은 서 전 실장을 상대로 문 전 대통령이 '진실 은폐 및 월북 조작' 의혹에 관여했는지 캐물어왔다. 서 전 실장 측은 “상황 발생 때부터 수 차례 대통령 보고가 있었다고 진술했고, (문건 제출은) 자료를 통해 보고 내용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문건 제출이 서 전 실장에겐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증거인멸 정황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김정민 영장 전담 부장판사도 문건의 출처에 대해 자세한 답변을 요구했다고 한다. 민간인 신분의 서 전 실장이 대통령기록관에도 없는 대외비 공문서를 갖고 있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서 전 실장 측은 “문건이 외부에 나온 경위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며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서 전 실장 측이 공문서를 사후 위조했거나 당시 청와대에서 반출됐을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에는 “대통령기록물을 손상ㆍ은닉ㆍ멸실 또는 유출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해놨다. 이에 대해 서 전 실장 측은 “결재가 필요하거나 의사결정 관련된 문건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서 전 실장 측은 구속적부심 신청을 검토 중이다. 다만, 구속 상태를 지속할 필요성을 따지는 구속적부심에서도 증거인멸 가능성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관측이다. 중앙일보 보도가 나간 뒤, 서 전 실장 측은 입장문을 내고 "해당 문건은 내부 보고 과정에서 입수한 사본으로 위법성이 있는 문건은 아니다"면서 "(이씨가 바다에 표류하던) 2020년 9월 22일 오후 문재인 전 대통령에 서면 보고된 문건으로 고인 피격 전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김철웅 기자 kim.chulwoong@joongang.co.kr,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12.08 서해 피살 ‘7시간 감청원본’… 서욱, 삭제지시 했었다
일선부대서 삭제 거부
검찰·감사원, 다수 진술 확보
자진월북으로 조작 힘실려
서해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2020년 9월 북한군에게 피살된 직후, 청와대 회의에 다녀온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이 관련 북한군 교신 내용이 담긴 우리 군의 ‘감청 원본’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은 이 감청 원본이 남아 있다는 것을 내세워 당시 국방부와 국정원이 이씨의 자진 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첩보들을 무더기 삭제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해왔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 2022.11.8/뉴스1
서욱 전 장관은 이씨 피살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1시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 직후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에 올라온 이씨 관련 기밀 첩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다. 이후 국방부는 자고 있던 실무자를 불러내 이씨 자진 월북 정황과 맞지 않는 첩보 60개를 삭제했다. 본지 취재 결과, 검찰과 감사원은 서 전 장관이 이 첩보 삭제를 지시할 때 이 첩보의 원본 격인 우리 군의 ‘7시간 감청 원본’도 함께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다수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해당 부대 등에서 “원본 삭제는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반발하자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은 지난 10월 기자회견을 열어 “첩보의 원본이 현재 존재한다”며 “(진상) 은폐를 위한 첩보 삭제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첩보를 삭제한 것은 불필요한 정보 확산을 막기 위한 ‘보안 유지 노력’이라고 했었다. 감청 원본이 존재한다는 것을 서해 피살 사건에서 은폐·조작 시도가 없었다는 핵심 근거로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감청 원본의 삭제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다면 전 정권이 이 사건을 이씨의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려 했다는 은폐·조작 의혹에 더 힘이 실리게 된다.
서 전 장관은 검찰·감사원 조사에서 “당시 청와대의 보안 유지 지침을 밑에 전달한 것일 뿐 삭제 지시를 한 적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 장관 변호인 측은 본지 해명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조백건 기자
12.08 외신 “K방산, 세계 4강 가고 있다”… 폴란드 대박수출 막전막후
K2 전차·K9 자주포 1차 물량 도착
폴란드 대통령, 부두까지 달려가
우크라 전쟁 후 위기감과 기대감 반영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이 6일(현지 시각) 폴란드 북부 그디니아 해군 기지에서 열린 한국산 K2 전차와 K9 자주포 초도 물량 인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두다 대통령은“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한국 무기의 신속한 인도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AFP 연합뉴스
우리나라가 폴란드에 수출하는 K2 전차와 K9 자주포의 초도분(1차 수출 물량)이 현지에 도착한 직후 열린 인수 행사에 폴란드 대통령과 부총리 등 정부 및 군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전력화 행사가 아닌 해외 무기 초도분 도입 행사에 군 통수권자까지 참석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가 느끼는 위기감과 한국산 무기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폴란드 국영방송 TVP 등 폴란드 언론에 따르면 6일(현지 시각)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폴란드 북부 그디니아에 있는 해군 기지에서 열린 초도 물량 인수 행사에 참석해 한국산 무기 도착을 환영했다. 이날 인도된 초도 물량은 K2 전차 10대와 K9 자주포 24문이다. 그디니아는 수도 바르샤바에서 차량으로 4시간 떨어진 곳이다. 한국 측에선 엄동환 방위사업청장과 현대로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 등이 참석했다.
두다 대통령은 “현대식 장비를 갖춘 군(軍)만이 러시아 제국의 야망과 잔인함을 막을 수 있다”면서 “침공과 적을 막기 위해 군이 이 같은 장비를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했다. 두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과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한국 무기의 신속한 인도는 매우 중요하다”고도 했다. 한국산 무기의 현지 도착은 지난 7월 말 1차 계약을 체결한 지 4개월여 만이다.

▲한국이 수출한 K2 전차와 K9 자주포가 6일(현지 시각) 폴란드 북부의 그디니아 항구에 도착했다. 1차 수출 물량이 현지에 도착한 직후 열린 인수 행사인데도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등 정부와 군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AFP 연합뉴스
폴란드는 올 들어 한국 방산 업체들과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 FA-50 경공격기 48대, 천무 다연장로켓 288문 등에 대한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 무기 수출은 2030년대 초중반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폴란드와의 1차 계약은 120억달러(약 15조6000억원) 수준이다. 정부 소식통은 “탄약과 후속 군수 지원 등 전체 물량을 포함하면 총규모는 400억 달러(약 52조여 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폴란드가 대통령까지 나서 한국산 무기 1차 물량 환영 행사를 연 것은 폴란드군의 전력 공백을 메울 필요성이 그만큼 시급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폴란드군은 자국(自國) 전차와 자주포, 장갑차 등을 대거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했다. 이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한 ‘갭 필러’(Gap-Filler) 무기 도입을 추진했지만 미국·독일 등은 몇 년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됐고, 한국만큼 폴란드가 원하는 시기에 빨리 무기를 공급할 나라는 없었다. 군 소식통은 “신속한 공급과 뛰어난 가성비가 한국 무기를 선택한 이유”라고 전했다. 실제로 계약 체결 후 4개월여 만에 전차·자주포 등을 제공한 것은 국제 무기 거래 관행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차 물량 도입 행사와 관련, 우리 측에선 한국 내에서 훈련받은 폴란드군 장병들이 K2 전차 등을 직접 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개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폴란드 측은 그럴 경우 행사 시기가 이달 말로 늦어진다며 항구 도착 시기에 맞춰 하자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 이날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K2 전차의 경우 폴란드군 30명이 현대로템 등에서 6주간 교육을 받고 이달 귀국하며 K9 자주포는 폴란드 현지서 교육이 이뤄질 예정이다. 브와슈차크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내년에도 추가 물량이 차례로 도착할 예정이라며 “폴란드 장병들이 이미 한국에서 장비 운영 숙달을 위한 훈련을 진행 중이고 폴란드 육군을 강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폴 양국은 대규모 무기 거래를 계기로,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한국산 무기의 제3국 진출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브와슈차크 장관은 지난달 29일 한-폴란드 방산 협력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폴 방산 협력을 통해 양국 방산 업계는 공동으로 제3국 시장 진출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최대 국영 방산 업체인 PGZ 흐바웩 회장도 “신뢰에 기반한 한-폴 방산 협력은 양국 방산 업계가 더욱 발전할 좋은 기회”라며 “이를 활용해 공동으로 제3국 시장 진출을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방산 수출은 ‘폴란드 대박’에 힘입어 지난달 말 170억달러를 돌파했으며 이달 말까지 200억달러 돌파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세계 방산 4위 진입 목표를 공언하기도 했다. 미국·유럽 등 세계 유력 언론들도 한국 방산의 놀라운 성장세에 주목하며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미 CNN은 “한국은 2012∼2016년 1%이던 점유율을 최근 5년간 2.8%로 늘리며 상위 25개국 중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며 “4강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잘 걷고 있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7∼2021년 세계 방산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8%로 8위였고 4위 중국 4.6%, 5위 독일 4.5%, 6위 이탈리아 3.1%, 7위 영국 2.9%로 격차가 촘촘하다. 2012∼2016년과 2017∼2021년의 점유율을 비교한 5년간 성장세는 한국이 177%로 2017∼2021년 점유율 상위 25국 가운데 독보적 1위였다.
한편 폴란드의 이 같은 태도는 문재인 정부 시절 공군 F-35 스텔스기 1호기 출고식에 방위사업청장과 공군참모총장이 불참하는 등 북한 눈치를 보며 ‘쉬쉬’했던 태도와 대비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12월 08일 북한군 = 적 부활과 ‘중꺾마’ 정신전력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 前 국회의원
직전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이후 삭제된 ‘북한=적(敵)’ 개념을 윤석열 정부가 국방백서에 되살려 표기하기로 했다. 필요하고 바람직한 조치다. 북한은 적이라는 개념 표기가 군의 정신전력을 한 단계 끌어올려 안보 태세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혹시 적 개념 표기 부활이 남북관계를 긴장시킬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국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 개념을 국방백서에 표기하지 않은 지난 4년 동안 진행된 남북 군사 관계는 오히려 더 나빠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를 기만한 채 핵능력을 강화했다. 나아가 핵무기를 언제라도 선제 사용할 수 있도록 법까지 제정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안보를 겁박하고 있다.
국방백서에 적 개념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윤 정부만의 판단이 아니다. 문 정부가 적 개념 삭제를 검토할 당시 국방부 용역을 받은 한국정치학회가 ‘북한에 대한 적 개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2017년 국방부는 ‘정신전력교육 기본 교재’ 제작을 위한 연구서를 한국정치학회에 발주하면서 ‘중립성 있게’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치학회 연구팀은 ‘우리에게 핵심적이고 직접적인 적은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며, 북한의 대남 적화 기도를 지원·동조하는 세력도 적’으로 규정돼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정치학회의 이 보고서 결론을 무시하고, ‘북한은 적’이라는 개념을 삭제했다. 결국, 5년 전 문 정부가 받은 정치학회 학자들의 용역 결과를 늦게나마 윤 정부가 반영한 측면이 있다.
지난 2월 24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강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善戰)하고 있다. 선전의 가장 큰 동력은 정신전력이고, 그 핵심은 분명한 대적관(對敵觀)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토머스 햄스는 저서 ‘4세대 전쟁’을 통해 근대에서 현대에 이른 전쟁의 결정적 승패 요소 변화를 변수로 하여 4세대 전쟁의 차이를 간명하게 식별했다. 1세대는 상비 병력의 규모, 2세대는 화력 위력, 3세대는 기동력, 4세대는 지도자와 장병의 정신력(정치 의지)이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병력 5만 명인 탈레반이 서방의 도움을 받는 3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정규군을 이긴 것은 정신전력이 전쟁 승패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생생히 말해 준다.
북한을 적으로 표기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우리 군의 정신전력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각급 군 교육기관에 대적관 교육 실태를 체계적으로 점검,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차제에 군은 정신전력 교육체계를 전면적으로 진단하는 TF를 구성, 운영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뜻하는 월드컵 공간의 신조어 ‘중꺾마’가 팬데믹을 일으키고 있다. 이 정신을 대적관에 대입하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적에 대한 ‘장병의 필승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적 개념 부활이 장병의 중꺾마 정신을 고양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가짜 평화 프로세스가 아닌 실질적인 평화 체제가 만들어질 때까지 ‘적’ 표기 문제가 다시 정쟁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 적 표기가 오만해진 북한의 군과 정권에 두려움을 주는 계기가 되게 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이 부활시킨 적 개념은 정쟁 대상이 아니다. 그리 되면 핵을 가진 북한군이 웃는다.
문화일보
12.09 아슬아슬한 대한민국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새말새몸짓 이사장
국가 정체성 문제에서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의 원인은 우리가 우리 피를 흘려 우리 힘으로 해방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다른 나라가 아니고 왜 반드시 대한민국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신념을 갖기 어려웠다.
대한민국은 둘째치고, 왜 국가여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도 이루지 못한 것이 더욱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다 보니, 매우 유력한 정치 세력 가운데 하나가 국가보다는 민족을 앞세우는 미성숙 상태를 큰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아직도 국가를 이익공동체로 보지 못하고, 민족 공동체로 받아들인다. 해방 한참 전부터 전 세계 국가는 대부분 국민국가 체제로 됐지만, 국민국가 체제 속에 살면서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불일치를 채택하다 보니, 대한민국의 이익보다는 민족의 이익에 몰두하였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민족의 정통성을 북한에 두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을 정의로운 일로 포장하고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민족’ 관념을 국민의 접착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촉매로 사용하는 정치 세력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비판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북한을 정당화하고, 북한을 향하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비판이었다. 북한이 얼마나 강경한 독재체제인지, 얼마나 처참하게 인권이 억압받는 체제인지, 얼마나 가난한 체제인지, 대한민국에 얼마나 강한 적대성을 보이는 체제인지는 아무 상관 없다. 그러다 보니, 박정희 비판하다가 김일성 품에 바로 안기고, 이명박 비판하다가 김정일에게 바로 넘어가 버린다. 급기야는 세월호 피해 지원비를 받아 북한 김정은 신년사 학습을 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세금으로 행해진다. 이것이 정의와 평화로 포장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포용성이 아니라 분명히 취약성을 드러낸다.
‘국가는 민족공동체’ 미성숙 시각
대한민국 정체성 부정으로 연결
안일하고 게을렀던 주류 세력은
정체성 파괴 위협에 느슨한 대응
대한민국이 형성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이었는데, 이것이 다소 느슨하게 이뤄지면서 내내 대한민국 취약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당시 공산주의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심지어 히틀러마저도 ‘공산주의 박멸’을 1928년 총선에서부터 계속 내세움으로써 처음에는 2.6%라는 낮은 득표율을 얻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독일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그 정도로 공산주의는 국제정치의 큰 문제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북한에 민족 정통성을 두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위협하는 정치 세력은 아직도 당시 좌파 계열이나 좌우 합작을 주장하던 계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곧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당시 분위기에서 좌우합작은 중국의 국공합작처럼 바로 공산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국부(國父)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합리적이거나 정의로운 결정을 합의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 문제에서 대한민국의 취약성을 보여줄 뿐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자신들을 정의로운 전사로 스스로 정하고 일관되고도 집요하게 투쟁해왔던 것에 비해 대한민국의 주류는 상대적으로 안일하고 게을렀다. 해방을 우리 힘으로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6·25 전쟁을 우리 힘으로 이겨내지 못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관건이 되는 사건들에서 모두 주역이 되지 못하다 보니, 그 사건들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적 적극성을 내지도 못했다.
‘6·25 전쟁’이라는 용어는 그 안에 어떤 의미도 들어있지 않고, 제3자적으로 냉담하게 붙인 창백한 간판일 뿐이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이라고 개념화했으며, 북한을 도와 참전했던 중국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이라고 개념화했다. 사건에 대한 개념화 작업은 그 사건이 자신에게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다. 이런 확인 작업은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나는 공산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출발한 대한민국이 6·25 전쟁을 계기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고 본다. 개념화를 하지 않다 보니 ‘6·25’ 전쟁을 놓고도 지금 대한민국 내부는 ‘조국해방전쟁’이라는 개념을 추종하는 세력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상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약하고, 또 그 확신을 지키려는 용기도 없이 안일하고 게으른 쪽은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분명한 쪽의 무모함과 과격함을 당해내기 어려운 법이다. 취약한 대한민국은 사실상 정체성 문제에서는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아직 현실적으로 무릎만 꿇지 않았을 뿐이다.
어느 정도로 위험했는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정신을 새긴 원훈석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하려던 반국가사범의 필체로 바꿨다. 그것도 대한민국 정체성이 담긴 헌법의 수호를 의무로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 일이었다.
중앙일보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새말새몸짓 이사장
12.10 “서훈, 서해 피살 공무원 ‘자진월북’으로 허위발표 지시”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 기소
前해경청장은 실행 혐의로 기소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폐’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가 9일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 최고 책임자였던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도 지난달 11일 구속 적부심으로 석방됐다가 이날 불구속 기소됐다.
서훈 전 실장은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뒤 시신이 소각된 사실을 알면서도 군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과 김 전 해경청장에게 이씨의 피살과 시신 소각을 숨기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해경에 이씨가 실종된 상태에서 수색 중인 것처럼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배포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서 전 실장은 또 2020년 9~10월 ‘월북 조작’을 위해 국방부와 해경에 허위 보고서와 발표 자료를 작성·배부하도록 지시한 혐의가 있다. 그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에도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내용을 담은 허위 자료를 작성해 재외 공관과 관련 부처에 배부하게 한 혐의도 있다.
김홍희 전 해경청장은 서 전 실장의 지시를 받아 2020년 9월 23일 이씨가 실종돼 수색 중이라는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같은 해 9~10월 이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담은 허위 발표 자료를 작성·배부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2020년 11월 이씨 유족이 사건 당시 ‘조류 예측 분석서’에 대해 정보 공개 청구를 하자, ‘자료가 없다’는 허위 내용의 통지서를 유족 측에 준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날 서훈 전 실장이 군과 국가정보원에 이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과 배치되는 첩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에 대해선 기소하지 않았다. 서 전 실장의 지시를 받고 군에 첩보 삭제를 지시한 혐의가 있는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역시 기소되지 않았다. 검찰은 국정원에 첩보 삭제를 지시한 혐의가 있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소환 조사한 뒤, 세 사람을 함께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서훈 전 실장의 변호인은 이날 “검찰의 전격 기소는 서 전 실장의 구속 적부심 석방을 우려한 당당하지 못한 처사로 매우 유감”이라며 “이 사건의 공범인 서욱 전 장관은 기소에서 제외됐고, 박지원 전 원장은 조사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결정이 이루어진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12.12 “김정은 비핵화 의지?… 北서 일주일만 살아보라, 그런말 못한다”
[김명성이 만난 사람]김씨 일가 ‘금고지기’ 전 노동당 39호실장 사위인 류현우 전 북한 대사대리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씨 일가 금고지기였던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실장의 사위인 그는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서 김정은의 딸은 후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2019년 탈북한 류현우(49)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김씨 일가 금고지기’였던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실장의 사위다. 전일춘은 2019년 2월까지 39호실장을 지냈다. 류 전 대사 부친도 김씨 일가 호위부대 간부였다고 한다. 김씨 일가와 북한 최고위층의 내밀한 얘기를 알 수 있는 탈북민이다. 류 전 대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최근 공개된 김정은의 딸 주애는 “후계자가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북한은 가부장적 분위기가 여전히 강하고, 주애가 결혼하면 그 자녀의 이른바 ‘백두 혈통(김씨 혈족)’ 정통성을 놓고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 왕조에 왜 여왕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류 전 대사는 “북에 있을 때 김주애의 존재는 알았지만 그 위로 아들이 있다는 말은 한국에 와서 처음 들었다”고 했다. 아들은 그만큼 베일에 싸여 있다는 뜻이다. 그는 “장관급이던 장인(전일춘 전 39호실장)이 은퇴 후 식량 부족을 겪을 정도로 평양도 경제 사정이 나쁘다”며 “대북 제재가 북한 최고위층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겪었던 문재인 정부 3년에 대해 “김정은 눈치 보느라 북한에서 온 고위층을 남북 관계의 걸림돌로 취급하면서 죽는지 사는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남북, 미북 관계 전망은.
“김정은은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고 핵 탑재가 가능한 ICBM이 완성 단계에 들어가면 오히려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다. 미국은 본토 타격용 핵 ICBM이 실전 배치되기 전에 북한과 회담에 나설 것이고, 비핵화가 아닌 ICBM 개발 중단 등 군축 회담으로 갈 수 있다. 그러면 북은 핵을 보유하면서 제재도 풀 수 있다. 미국은 북핵 위험에서 한 발 떨어질 수 있지만 한국은 북핵 인질이 된다. 김정은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제재 해제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만 공략한다는 작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7차 핵실험 가능성은.
“김정은은 핵 무력 완성도를 높여야 미국이 제재 해제를 위한 협상에 나올 것이라고 타산한다. 유사시 북한을 위협하는 핵 공격은 미국 본토가 아닌 괌과 일본에 있는 미 군사기지들에서 이뤄진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 같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전술 핵무기를 완성해야 한다. 그러자면 7차 핵실험을 통해 전술핵 개발을 위한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를 실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한 ‘김정은 비핵화 의지’는 어떻게 보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변하는 걸 보고 기가 찼다. 누구든 북한에서 단 일주일만 살아도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 중에 북한에 가서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북은 2018년부터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데 평양 엘리트들의 생활은 어떤가.
“2019년 여름에 아내가 평양에 들어가 장인(전일춘 전 39호실장)을 만났다. 은퇴 후 중앙당 공급이 끊기고 일반 공급 대상이 됐다고 한다. 아내가 장인을 대신해 배급소에 갔더니 6개월 치 배급이라며 1인당 감자 2㎏을 주더라고 하더라. 주변 도움을 받지 못하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아내가 충격을 받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평생을 김씨 일가 금고지기로 충성을 다했는데 은퇴하자 버려진 것이다. 요즘 북한 고위층은 현직에 있을 땐 중앙당 공급으로 먹고살지만 은퇴하면 변두리 아파트로 내몰리고 간부 공급도 중단된다. 찬밥 신세가 되는 거다. ‘북한 괴벨스’로 불리던 리재일 전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도 물러난 뒤 쌀이 떨어지자 (함께 근무했던) 김여정을 찾아가 식량 공급을 요청했다고 한다.”

▲류현우 전 대사대리의 장인인 전일춘(점선 표시)북한 노동당 39호실장이 2016년 3월 평양의 한 백화점을 방문한 김정은과 동행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장인이 ‘장관급 금고지기’를 지냈는데도 은퇴 후 궁핍했나.
“김씨 일가의 돈을 한 푼이라도 빼돌렸다면 장인은 일찌감치 숙청당했을 것이다. 장인이 현직(장관급)에 있을 때 손에 쥔 월급이 북한돈 4500원이었다. 시장에 나가면 쌀 1㎏도 못 사는 돈이다. 현직일 때는 배급으로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북한 경제는 퇴직자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 (제재 본격화 이전인) 2017년까지는 고위층에 매달 계란 10알씩 공급됐는데 2018년 이후엔 그마저 없어졌다.”
-외교관 시절 대북 제재로 인한 어려움은.
“금융 제재로 공관 운영비도 주재국 은행으로 송금받지 못했다. 외교관들이 직접 베이징으로 가서 외교 행낭에 현금을 담아와야 했다.”
-중동 근무 때 무슨 업무를 했나.
“북한은 제재 본격화 전에는 중동에 재래식 무기를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 중동을 통해 아프리카에 무기를 수출하기도 했다. (북한과 가까운) 시리아에는 당 군수공업부 산하 창광무역회사, 국방성 기술장비국 등 무기 수출 관련 인력이 70여명 있었다. 북한이 시리아 방사포 공장의 운영을 전담했고, 시리아의 방공 시스템도 만들어줬다. 해킹도 했는데 2017년까지 카타르에 7명, 아랍에미리트에 19명의 정찰총국 소속 해커들이 있었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해커들은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한다.”
-해외서 한국 드라마를 봤나.
“해외에 나온 북한 사람들은 모두 열렬한 한류팬이다. 대사대리로 있던 2018년 인근 국가로 파견 나온 북한 근로자들 작업 현장에 시찰 갔었다. 저녁 점검을 마친 노동자 합숙소 문을 갑자기 열었는데 불을 끈 방에서 모두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다가 황급히 감추더라. 북 외교관이나 노동자나 한국 드라마를 보고 싶은 마음은 같구나 생각하고 모른 체 넘어갔다.”
-김정은의 외교 실패였던 ‘하노이 회담’ 북한 협상팀은 어떻게 됐나?
“모두 처벌받았지만 대부분 복귀했다. 김성혜 조평통 실장은 당 통일전선부 산하 출판사에, 김혁철 대미특별대표는 당 국제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에, 통역이던 신혜영은 인민대학습당 사서로 근무 중이다. 하노이 이후 대미 협상 주도권이 당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 옮겨갔다.”
-김정은이 딸을 공개한 의도는.
“김정은은 ‘딸 바보’라고 할 만큼 주애를 이뻐한다. 주애가 아기 때 고위층 행사 등에 김정은이 직접 안거나 업고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 (미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2013년) 평양에 왔을 때도 주애를 안고 나가지 않았나. 지난 9.9절(북한 건국일) 공연 때 나온 여자아이에 대해 외신이 ‘김정은 딸’이라는 추측 보도를 했다. 김정은 입장에선 다른 아이가 자기 딸로 알려지는 것을 ‘진짜 딸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을 수 있다. 주애가 공개된 직후 북한 매체가 김정은 딸로 추정된 아이의 공연 장면을 서둘러 삭제했다. 김정은은 인터넷으로 한국, 미국 뉴스를 다 본다.”

▲김정은이 지난 11월 19일 ICBM 발사장에 딸 김주애를 데리고 나온 모습./노동신문 뉴스1
-하필이면 ICBM 발사장에 데리고 나왔을까.
“내가 1990년대 북한 공군 1사단 35연대에서 근무할 때 김정일이 고용희(김정은 생모)와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모두 데리고 나와 전투기 훈련을 참관한 적이 있었다. 김일성도, 김정일도 자녀들을 무기 발사장이나 군부대 훈련장에 동행하곤 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신형 무기(ICBM)를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주애가 후계자가 될까.
“딸은 후계자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은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여전히 강하다. 주애가 결혼을 하면 그 자녀는 김씨가 아닌 이씨나 박씨가 될 것인데 이는 ‘백두 혈통(김씨 혈족)’ 관점에서 보면 다른 혈통이 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내려오는 김씨 혈통의 변이가 되고, 북한 주민들은 정통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김씨 왕조 혈통’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후계를 말하기에 자녀들이 너무 어리고 김정은이 아직 젊다.”
-김정은 아들에 대한 정보는.
“39호실장이던 장인 주변 사람 말을 들어보면 김정은은 일족의 옷이나 생필품을 해외에서 공수한다. 그런데 여자아이 옷과 장난감을 수입했다는 얘기만 들어봤다. 2010년 태어난 아들이 있다는 얘기는 한국 와서 처음 들었다. 아들이 있다면 일찍 외국에 보냈거나 외부 공개를 극도로 조심하는 게 아닐까.”
-아들이 후계자일까.
“4대 세습을 한다면 아들을 세울 것이다. 해외에 있다면 (스위스에 유학했던 김정은처럼) 유럽 쪽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은 (아들의) 생체 정보를 확보하고 이용하려 할 수 있다고 우려할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 의존하지만 불신도 크다. 김정철(김정은 형)은 확실히 아들과 딸이 있다. 김정철 아들은 분명한 ‘김씨 혈통’이다.”
-2019년 탈북해서 어떻게 지냈나.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눈치를 보느라 한국에 온 고위 탈북민들을 남북 관계 걸림돌로 취급했다. 친북 세력은 우리를 변절자로 몰았다.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웠다.”
-탈북 이유와 앞으로 계획은.
“정치적 이유로 탈북을 결심했고, 유튜브를 보고 망명 관련 정보를 얻었다. 내 목표는 김정은 독재 정권을 없애고 북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찾아주는 것이다.”
☞류현우
류현우 전 대사대리는 1973년 평양에서 태어나 1995년 평양외국어대 아랍어과를 졸업했다. 북한 공군 1사단 35연대 복무를 거쳐 외무성 중동국에 들어가 2010년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2016년 쿠웨이트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2017년 주 쿠웨이트 대사대리를 맡았다가 2019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12.13 “북에서 일주일만 살아도 안다”는 김정은의 비핵화 거짓말
탈북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본지 인터뷰에서 “누구든 북한에서 단 일주일만 살아도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류 전 대사는 엘리트 외교관일 뿐 아니라 ‘김씨 일가 금고지기’를 지낸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실장의 사위다. 어떤 전문가보다 평양 내부 사정에 정통하다. 그런 그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변하는 걸 보고 기가 찼다”고 했다.
애당초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란 것이 있을 리 없다. 북은 6·25 직후부터 핵개발에 착수했고, 70년 가까이 체제의 모든 자원과 역량을 핵무장에 쏟아부었다. 핵이야말로 김씨 일가 평생의 숙원이고, 이제 가진 건 핵밖에 남지 않았다. 핵으로 김씨 왕조 영속을 꿈꾼다고 한다. 그런 핵을 김정은이 포기할 ‘의지’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이 2018년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며 평화 무드로 전환했을 때 많은 전문가는 북이 핵을 보유하되 일부 양보하고 대신 제재 완화를 노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문 정권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면서 트럼프에게 보증까지 섰다. 북이 그러면서도 핵탄두를 계속 늘리고 있었고 ‘하노이 노딜’ 후 다시 미사일을 쏘는데도 도리어 미국에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임기 말 더 강력한 북 ICBM 발사를 지켜보고도 정의용 당시 외교장관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아직 있다”고 했다.
북은 올해에만 ICBM 8발을 포함해 탄도미사일 60여 발을 난사하는 등 핵 폭주를 노골화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9월 ‘핵 선제 타격’을 아예 법제화했다. 세계 핵보유국 중에 이런 나라는 없다.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류 전 대사는 “북은 핵을 보유하면서 제재도 풀 수 있다”며 “한국은 북핵의 인질이 된다”고 했다. 김정은은 핵을 계속 갖고 있다가는 자신이 죽을 수 있다고 판단할 때만 핵을 포기한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이 조건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그 반대로 했다. 그러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고도 사과나 유감의 말 한마디가 없다.
조선일보 사설
12.14 한국 무기 장착한 폴란드, 유사시 우리의 군수 보급기지 될 수 있다
1944년 8월 1일 독일군 점령하에 있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저항군(국내군)이 일제히 봉기했다. 소련군이 독일군을 격파하면서 바르샤바에 접근하자 자력(自力)으로 독일군을 몰아내고 소련군 진주 전에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였다. 2차 대전 당시 최대 규모의 봉기로 불리는 ‘바르샤바 봉기’였다. 하지만 파죽지세로 독일군을 격파하며 진격하던 소련군은 바르샤바로 진입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폴란드 동부 지역에 머물렀다. 반공(反共) 성향이었던 폴란드 저항군이 궤멸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소련군의 방조 아래 독일군은 60여 일 동안 바르샤바를 말 그대로 초토화했다. 바르샤바 독일군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는 “바르샤바를 완전히 뭉개버려라. 도시에 건물이 하나라도 남아있어선 안 된다”고 명령했다. 독일군은 건물의 벽돌 한 장까지 부쉈다고 한다. 바르샤바의 85%가 완전히 파괴됐고 저항군 1만6000여 명, 민간인 20여 만명이 사망했다. 앞서 폴란드는 18세기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 등 주변 강대국에 의해 영토가 분할되는 아픔을 겪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 체결된 독·소 불가침 조약에 따라 영토가 양분된 것이었다. 그해 10월 폴란드를 양분한 독일과 소련은 유대인을 비롯한 폴란드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민족성 말살 정책을 폈다. 독일은 점령 초기 3개월 동안 6만1000여 명에 이르는 폴란드 정치인, 장교, 지식인, 성직자 등을 처형했다. 335만명에 이르던 유대계 폴란드인들은 90% 가까이 학살당했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폴란드에 있었다. 소련도 1940년 장교, 지식인 등 2만2000여 명을 처형한 카틴 학살 사건 등을 저질렀다. 이처럼 폴란드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주변 강대국의 침입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영토가 분할됐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가 폴란드에 수출한 K2 전차, K9 자주포 초도(1차) 물량이 도착했을 때 대통령이 바르샤바에서 차량으로 4시간 거리에 있는 항구 부두에까지 직접 나가 환영식(인도식)을 해 화제다. 이번에 도착한 한국산 무기는 K2 전차 10대, K9 자주포 24문이다. 우리가 수출하는 전체 물량(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에 비하면 극히 작은 규모다.
보통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무기체계가 본격적으로 전력화됐을 때 행사에 참석해왔다는 점에서 이런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며칠 뒤 열린 K2 전차의 폴란드 일선 부대(20기계화보병여단) 인도식엔 폴란드 총리와 부총리가 모두 참석했다. 얼핏 보면 다소 과도해 보이는 듯한 이런 모습은 폴란드의 아픈 역사를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폴란드인들은 무엇보다 2차 대전 때의 악몽을 떠올렸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강 건너 불이 아니라고 판단한 폴란드는 자국군이 운용 중이던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을 대거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이에 따른 주력 무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무기 도입을 서둘렀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수개월 안에 1차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며 나선 한국이었다.
지난달 말 한·폴란드 방산협력 콘퍼런스 취재를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국방부 및 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만이 폴란드군이 원하는 시기에 신속하게 무기를 공급할 수 있어 선택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한국 무기 환영 행사에서 “러시아의 침공과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한국 무기의 신속한 인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한 데서 잘 나타나 있다. 폴란드 군 관계자들은 끊임없이 외침(外侵)에 시달렸던 한국의 역사를 거론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역사적 공통점을 갖고 있는 한국과 폴란드는 초유의 대규모 무기 거래를 통해 운명 공동체가 돼가고 있다. 그러면 폴란드 무기 수출은 이제 안심해도 될 만큼 안정 궤도에 접어든 것일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어 결코 방심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폴란드가 우리 무기를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기술 이전, 현지 공장 설립 등에 호의적이라는 점인데 서로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들이 있어 양국 업체들이 협상 중이다. 여기서 타협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폴란드를 거점으로 동유럽 등 유럽 시장에 우리 무기들이 대거 진출할 수 있느냐의 성패가 달려 있다. 31개 업체를 거느린 폴란드 최대 방산 업체 PGZ 회장이 한국형 전투기 KF-21 사업 참여 의향을 밝힌 것도 우리에겐 고무적인 소식이어서 더욱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폴란드 관계자들도 한국 무기가 폴란드와 함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EU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며 양국이 상생하는 ‘윈-윈(Win-Win)’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전략가들은 더 나아가 양국이 유사시 무기는 물론 탄약 등도 상대방에 공급하는 군수 보급 기지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남북 간 전면전 발생 시 창원 등에 있는 우리 방산 업체들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 등으로 조기에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폴란드가 우리와 같은 전차, 자주포 등 무기와 탄약을 갖게 되는 만큼 비록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의 유력한 보급 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수보급의 중요성은 우크라이나전을 통해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폴란드는 냉전 시절 나토에 대응하는 구소련 군사동맹의 명칭이 ‘바르샤바조약기구’였을 정도로 동구권의 중추국이었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공산 측 대표 2국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폴란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 성공 사례인 우리와 새로운 차원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 폴란드 방산 수출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12월14일 靑 비서관도 “미쳤다”고 한 서훈 ‘월북몰이 기획’ 의혹
구속 수감 중인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월북몰이’를 위해 조직적으로 은폐·조작을 기획한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표류 중인 국민을 북한이 의도적으로 피격·소각한 것이 아니라, 북한 해역을 불법 침범해 발생한 우발적 사고로 꾸미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 기획의 동기가 북한 정권 눈치 보기라는 의혹도 더 뚜렷해졌다.
서 전 실장은 2020년 9월 23일 오전 8시 30분쯤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들이 참석한 비서관 회의에서 ‘사건 발표를 신중히 검토하겠다’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는 등의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공무원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소각된 것을 인지하고 무려 11시간여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비서관들이 “이게 덮을 일이냐” “실장들이고 뭐고 다 미쳤어”라고 반발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 실장은 앞서 오전 1시 열린 1차 관계장관회의에서 피살 사실 외부 유출 방지를 지시했다. 오전 10시 열린 2차 장관회의에서도 피살 사실은 제외하고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내용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뿐 아니다. 다음날인 24일 낮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은 합법절차 과정에서 발생한 반면 서해사건은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말했고, 이를 반영한 듯 해경은 이날 오후 ‘자진 월북’ 내용을 담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3일 뒤엔 김홍희 당시 해경청장에게 ‘자진 월북’으로 정리된 입장을 브리핑하도록 요구했다. 또 해경 2차 수사 결과 발표에 ‘실종자가 연평도 주변 해역을 잘 알고 있었다’ ‘인위적 노력 없이 실제 발견된 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이 어렵다’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했다고 한다.
서 전 실장은 그간 ‘혼란 방지를 위해 보안 유지를 지시했고 당시 파악 가능한 정보에 근거해 월북으로 판단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사건 공개 시 예상되는 국민의 대북 반감 확산과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 등을 우려해 월북몰이를 기획한 정황이 짙다. 서 전 실장은 왜곡된 대북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게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2-14 [단독]“서훈 지시받은 박지원, 서해피살 첩보삭제 지시 정황”
검찰, 朴 전 국정원장 불러 조사…朴 “지시 안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검찰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노은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국정원 내 통신첩보 관련자료 일체를 삭제하도록 할 것”이라고 직접 지시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박 전 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무엇도 삭제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1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경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에서 1차 관계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해 박 전 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에게 관련 첩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앞서 2020년 9월 22일 오후 10시 44분 이 씨 피살 통신 첩보를 입수한 군부대는 군 내부 정보유통망에 첩보를 최초 게시했다. 직후 국정원이 계통에 따라 첩보를 수집하고, 첩보 수집담당자가 통합첩보시스템에 첩보를 등재했다. 이어 오후 11시 20분 북한첩보 분석 담당자가 박 전 원장에게 보고하자, 박 전 원장은 관련 상황을 서 전 실장과 공유했다.
서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박 전 원장은 23일 오전 3시 노은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통해 “표류 아국인(우리 국민) 사살 관련 내용은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이니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되, 국정원 내 통신첩보 관련자료 일체를 삭제하도록 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같은날 오전 11시 37분까지 국정원의 첩보보고서 46건 등 관련 자료 일체가 삭제됐다고 한다. 또한 첩보 및 관련 보고서를 열람한 국정원 관계자들에게 피살 및 소각 발생 사실에 대한 철저한 보안교육도 실시됐다.
국가안보실이 직접 국정원 관계자들을 ‘입단속’했다는 진술도 검찰이 확보했다.
서 전 실장으로부터 은폐 지시를 받은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 A 씨는 23일 오전 안보실 행정관 B 씨를 통해 사건을 인지하고 있는 국정원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 담당 과장 C 씨에게 연락해 “안보실 결정사항이다. 서해에서 우리 국민이 사살되고 소각된 사건은 대외 보안으로 절대 비밀이니 보안에 유의하라”, “외부에 이 얘기가 나가면 절대 안된다”라고 안보실의 은폐 결정을 전달했다.
이에 C 씨가 이 사건에 대한 국정원 보고서를 열람했던 소속 부서장과 1차장 수석보좌관, 국정원장 정보비서관실에 위와 같은 안보실의 은폐 결정을 전파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여기에 관여한 안보실 비서관과 국정원 관계자들을 조사해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4일 박 전 원장을 불러 조사 중이다. 박 전 원장은 오전 10시경 검찰에 출석하며 “(서훈 전) 실장으로부터 첩보 삭제 지시가 없었고, 저도 국정원에 지시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서 전 실장으로부터 어떠한 삭제 지시도 받지 않았고, 또 제가 원장으로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무엇도 삭제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은 9일 서 전 실장을 사건 은폐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첩보 삭제 지시 혐의는 제외했다. 박 전 원장 조사 등을 마무리하는 대로 서 전 실장과 서 전 장관 등 3명을 첩보 삭제 지시 혐의로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12.14 “은폐‧조작 최고 책임자” 서해 피살 유족 文 전 대통령 고소

▲서해 피살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오른쪽)와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지난 10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은폐 의혹을 받는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 달라는 청원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유족이 1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앞서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폐’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구속된 바 있다.
전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고(故)이대준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이날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입장문을 통해 “너무도 참담했던 사건이었다”며 “은폐와 조작의 최고 책임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고발장을 오늘 제출한다. 대통령은 안보와 안전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 누구의 대통령이었는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이래진씨는 “(문 전 대통령은) 해경의 수사를 지켜보라 했지만 조작으로 얼룩진 선택적인 내용을 공개했고, 약속한 처벌은커녕 비웃듯이 (관련자들을) 승진까지 해주었다”며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감춰진 내용들이 자기들의 과오를 덮어버리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참담한 범죄가 아니겠나?”라고 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사람이 먼저다’를 언급하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말인가. 통치와 정책적 판단을 말장난으로 여기시면 안 된다”라고 했다.
이래진씨는 “대한민국에 되풀이되는 안전 불감증과 권력에 의한 조작은 (사고가 발생한) 2020년 그날로 이제 끝내야 한다”며 “(문 전 대통령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함께 감히 호남을 팔아 제 동생을 죽였다. 철저하게 조사해 대한민국의 헌법을 바로 세워 주시라”고 했다.
이씨 측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해 고소하기로 한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이대준씨가 북한에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즉시 북한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 월북 발표와 관련해 이대준씨가 월북한 것으로 단정해 발표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죄 등), 국방부가 “북한군은 비무장 상태의 고 이대준씨를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당초 발표 내용을 “시신 소각 추정”으로 변경한 것과 관련한 혐의(직권남용 등)다.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씨는 2020년 9월 22일 서해상 표류 중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졌다.
당시 군 당국과 해경은 이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하다 변을 당했다고 발표했으나 지난 6월 국방부와 해양경찰은 ‘자진 월북 근거가 없다’라고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조선일보 김명일 기자
12월 15일 2023 한반도 정세와 김정은 일장춘몽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냉전 먼저 시작되고 늦게 해빙
한반도 지정학 2022년 되풀이
우크라 침공은 北에 양날의 칼
북·중·러 맞서 자유진영 결속
북핵 대응에도 극적 계기 가능
김정은 혹독한 시련 직면할 것
2022년도 2주 남짓 남았다. 역사가 올 한 해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기록할지는 2023년에 달렸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가 연합해서,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흔드는 도전에 내년에도 단일 대오를 형성한다면 올해는 북한이 시도한 무모한 도발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지정학적 구조상 세계 정치와 직접 연계된다. 냉전 때 미국·소련·중국의 이해가 교차하면서 6·25전쟁과 1970년대 데탕트를 통해 가장 먼저 냉각되고 가장 나중에 해빙되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충분히 경험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역만리 유럽 대륙에서 벌어지는 러시아의 제국주의 전쟁이 한반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도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 중 한반도에서 극명하게 편이 갈린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호재를 만났다. 전쟁 개시 이틀 만에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로씨야(러시아)의 합법적인 안전상 요구를 무시하고 세계 패권과 군사적 우위만을 추구한” 미국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유엔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5개국 중 하나로 동참하고, 러시아가 불법 점령한 돈바스 지역을 가장 먼저 공식 인정했다. 러시아의 행태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데 최대 걸림돌이 돼 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무기력화한다. 실제로 2022년 북한의 도발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기능을 상실했고, 러시아의 무책임한 핵 위협은 북한 핵 보유의 필요성과 NPT 체제의 공허함을 증폭시켰다.
미·중 갈등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극명한 차이를 노출했다. 2018년 4월 북한 스스로 약속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 유예를 지난 3월 24일 이른바 화성-17형 발사로 깨뜨렸지만, 중국은 철저히 북한 편을 들고 있다. 2017년 중국도 찬성해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2397호는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깨면 추가 제재를 자동으로 부과하게 돼 있다. 그러나 지난 5월에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제2397호 이행을 거부하면서 “미국이 북한의 정당한 안보적 우려를 무시하고 한반도 문제 대응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장기 알로 쓰려고 한다”면서 미국 책임론을 되뇌었다. 한발 더 나아가 “만약 누군가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동북아시아부터 한반도까지 전쟁의 불길을 퍼뜨리려 한다면 중국 또한 단호한 결단을 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로 부르는 6·25전쟁을 언급했다. 2018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미·중 경쟁이 70년 전 벌어진 열전을 소환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므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더라도 중국이 제재를 가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올해 북한이 세계 정치 측면에서 우호적이라고 체감하는 현상은 북한에 불리한 양상도 동반한다. 우선, 한·미·일이 뭉쳤다. 지난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발표된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성명’은 북한 위협을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북핵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구체적 행동에 합의했다. 역사적 앙금으로 안보 협력이 제한되던 한·일 관계가 북한의 위협으로 장애물을 넘고 있다. 북한이 목을 매는 제재 해제도 더 어려워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무모한 전쟁과 핵 사용 위협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대러 제재와 대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러시아에 완전히 동조하는 북한에 대해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자유주의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이 시도하는 군사전략인 통합억제가 북한 위협으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하나의 전구(戰區)로 삼고 대서양과 인·태 동맹국을 연맹(federation)하는 미국의 시도는 우크라이나, 대만해협과 함께 북한에 대한 억제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올해 현상적으로 나타난 국제사회 질서의 훼손과 이에 편승한 북한의 무모한 도발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국가가 보여준 협력이 내년에도 계속된다면 극적 반전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김정은이 학수고대하는 핵보유국 인정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혹독한 시련만 기다릴 것이다.
문화일보
12월 16일 안보 바로 세울 ‘尹 독트린’ 필요하다
이미숙 논설위원
북핵 위협 전면화한 원년 2022
더 이상의 비핵화 협상 무의미
尹정부 출범으로 시정할 기회
한미동맹 복원·확장으론 부족
추가 사드, MD, 한·미·일 협력
‘逆 3불’ 검토로 中 압박해야
올해는 북한의 핵 위협이 전면화한 원년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 해 내내 중·단거리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벌였고 전술핵 부대 운용까지 공개하며 핵이 대남 공격용임을 노골화했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돼도, 미 전략 폭격기가 떠도 미사일을 쏠 정도로 대담해졌다.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으로 도발을 반복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만성적 위협 속에 놓인 이스라엘이 된 느낌이다. 7차 핵실험은 안보위기가 임계점을 넘는 신호가 될 것이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김대중(DJ)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22주년 기념 학술회의 기조강연에서 “북한의 핵 보유라는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이 핵 없는 한반도에서 평화 공존하며 통일을 찾아가자는 꿈은 북한이 9번째 핵 국가가 된 상황에서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제 나라의 자존을 유지하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새로운 길을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의 외교 안보 좌장이 DJ의 유산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DJ식 대북접근법의 파산’을 선언한 셈이다. 더 이상 비핵화를 우선하며 남북대화에 연연하지 말고 DJ·노무현식 대북 포용 정책의 실패를 시인한 뒤 전향적으로 북핵 대응에 나서라는 주문이다.
DJ와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을 간과한 채 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당시는 북핵 위협이 전면화하기 전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 핵·ICBM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다’면서 대북제재 해제를 촉구해 책임이 무겁다. 문 전 대통령이 평화 환상에 젖어 베짱이처럼 김정은에게 대화를 구걸하는 사이 북한은 핵·미사일 질주를 지속해 송 전 장관 지적대로 이제 북핵은 제어하기 어려운 단계로 진입했고 우리나라는 막다른 상황으로 내몰렸다.
반면, 일본은 개미처럼 치밀하게 준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미국의 아태 정책을 인도·태평양으로 전환시키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미·일·호주·인도 4개국 쿼드 체제를 구축했다. 한국이 북·중·러 편이 될 것에 대비해 안보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또, 평화헌법을 ‘해석 개헌’하는 형식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했다. 그를 계승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유사시 적 기지 공격 등을 명시한 국가안보전략·방위계획대강·중기방위력정비계획 등 안보 3문서 개정을 진행해 16일 각의에서 의결한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이 같은 대응을 군사 대국화로 비난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국제 전문가들은 3·9 대선이 동아시아의 지정학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올해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얘기한 바 있다. 문재인식 친북·친중 정책 지속이냐 탈피냐의 갈림길에서 한국의 민심은 후자를 택했고, 대한민국의 천운은 끝나지 않았다는 게 재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일 만에 개최된 서울 한·미정상회담에서 동맹 업그레이드가 천명됐고, 핵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국을 지킨다는 확장억제 정책도 강화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지난 7개월은 문재인 정권 때의 안보 퇴행을 바로잡는 시간이었다. 주적에서 배제됐던 북한을 적으로 복원한 것, 표류하던 한미동맹을 안보·경제 동맹으로 격상시킨 것, 파국 위기에 몰린 한·일 관계 정상화 모멘텀을 잡은 것이 대표적이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도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 복귀하겠다는 신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중국에 관한 한 윤 정부도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발리 회담 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를 얘기했을 때 윤 대통령은 반박하지 않았다. 사드 3불에 대해서도 “전 정부의 입장”이라는 식으로 소극적 회피 태도를 보인다. 중국이 북한을 두둔하는 한 한·중 공조는 망상이다. 왜곡된 대중(對中) 관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보 정상화가 어렵다. 중국이 북핵을 용인한다면, ‘역(逆) 사드 3불’ 즉, 추가 사드 배치, 미사일방어(MD) 참여,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윤 대통령도 문 전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중국에 줄 것이고, 나라의 자존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화일보
12.19 北의 ‘5대 전략무기’가 모두 실현되는 날

▲북한은 지난 15일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사용할 고출력 고체 연료 엔진 시험에 성공했다고 16일 밝혔다. 미 백악관은 이날 "미스터 김(김정은)과 전제 조건 없이 마주 앉겠다는 우리 제안을 다시 밝힌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어제 평북 동창리에서 동해상으로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 2발을 고각 발사했다. MRBM은 사거리가 2000㎞ 이상으로, 정상 발사 시 주일 미군 주력 부대가 있는 오키나와를 비롯해 일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군 당국은 이 미사일이 고체 연료를 쓰는 신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이 지난 15일 신형 ICBM용 고체 연료 엔진 시험을 실시한 곳도 동창리였다.
고체 연료 미사일은 연료 주입이 불필요해 기습 발사에 유리하다. 사전 탐지가 어려워 방어·요격이 매우 어렵다. 지금까지 북은 KN-23·24 같은 단거리 미사일에만 고체 연료를 썼다. 어제 발사는 고체 연료 MRBM의 완성을 과시한 것이고, 지난 15일 시험은 고체 연료 ICBM의 출현까지 예고한 것이다. 북이 모든 미사일에 고체 연료 엔진을 탑재할 날이 멀지 않았다. 사전 탐지에서 시작되는 한미의 북 미사일 방어 계획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ICBM용 고체 연료 엔진 시험을 지도하며 “전략무기 5대 과업 실현을 위한 중대 문제를 훌륭히 해결했다”고 했다. 5대 과업이란 김정은이 작년 1월 노동당 대회에서 공개 지시한 것이다. 극초음속 미사일, 다탄두 유도 기술, 고체 연료 ICBM, 핵 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개발을 가리킨다. 이 지시 8개월 만에 북은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을 쏘아올렸다. 올해 들어선 7차례 시도 끝에 지난달 다탄두 장착이 가능한 화성-17형 발사에 성공했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ICBM용 고체 연료 엔진을 만들었다. 5대 과업 중 3개를 완성했거나 완성 직전까지 갔다.
5대 과업은 북이 제시한 국방 발전 5개년 계획의 일부다. 다음 당 대회(2026년) 전까지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당장 내년 또는 내후년 ‘조기 달성’ 발표가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 발표와 함께 북은 평화 공세로 돌아설 것이다. 핵을 보유한 채로 제재를 해제하려는 핵군축 시도다.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하노이 회동이 열린 지난 2018~2019년에 본 장면이다. 이번에도 미국이 거절할 수 있을까.
북의 고체 엔진 시험 성공 소식이 전해진 날, 미 백악관은 “김정은과 전제 조건 없이 마주 앉겠다는 우리 제안을 다시 밝힌다”고 했다.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불길하다. 5대 전략무기의 완성은 미 본토를 핵 타격할 능력을 북이 완비한다는 뜻이다. 차기 미 대선이 다가올수록 협상은 북에 유리해진다. 북은 미국민에게 안전을 주는 대신 한국을 핵으로 깔고 앉겠다는 숙원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다. 대한민국이 존망을 걱정하는 상황에 곧 처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나.
조선일보 사설
12.20 '박종철 사건' 은폐보다 더하지 않나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致死) 사건의 은폐성을 상징하는 발언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죽었다)"였다. 그해 1월 16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언론 보도 하루 만에 경찰 수뇌부가 허겁지겁 연 기자회견이었지만, 이 발언으로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결국 사흘 뒤 경찰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의 고문 사실을 인정하면서 관련 경찰관 2명을 구속했다. 그러다 그해 5월 고문 가담 경관이 3명 더 있는 등 경찰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조작·은폐하려 했다는 점이 드러나자 국민적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6월 항쟁의 시발점이었다.
새삼스레 35년 전 일을 꺼내는 건 최근 감사원 조사와 검찰 수사 등으로 사건의 면모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서해 피격 사건' 때문이다. 두 사건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주체만 다를 뿐 개인의 생명을 국가 권력이 잔인하게 짓밟았다는 점에선 유사하다. 오히려 죽음 이후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과정에선 '서해 피격'이 더 치밀하고 비열했다.
①국가기관 총동원=1987년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집요했다. 고문사가 아닌 쇼크사로 위장하기 위해 병원행을 고집했고, 담당 의사와 부검의 등을 감시하거나 위협했다. 고문 경관 2명을 경찰서로 이송할 때는 똑같은 점퍼를 입은 경찰관 10명을 호송차에 태워 얼굴을 가려주는 동료애(?)도 과시했다. 관계장관 대책회의 등으로 안기부가 배후에 있었지만, 은폐의 핵심은 경찰 조직이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8월 16일 오전 박지원 전 국장원장,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자택을 동시 압수수색했다. 중앙포토
반면에 '서해 피격 사건'에서 은폐를 주도한 건 권력의 최상부 청와대였다.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사살돼 시신이 소각된 건 2020년 9월 22일 밤 9시 40분쯤. 부랴부랴 3시간 뒤 새벽 1시 청와대에서 서훈 안보실장이 주재하는 대책회의가 열렸고, 회의 직후 국방부와 국정원은 관련 첩보 106건을 삭제했다. 해경은 이씨를 실종 상태로 위장하기 위해 수색작업을 이어갔다. 국방부가 북한군에 의한 시신 소각을 발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 단정적"(27일)이라고 질타했고, 이후 정부 입장은 180도 달라졌다.
②사자(死者) 명예훼손=87년 당시 경찰은 박종철군의 시신을 검사 지휘 없이 이송했고, 부검 뒤 서둘러 화장했다. 명백한 증거 인멸이었다. 박종철 사건 이후 전두환 정권은 국민적 저항이 커질 때마다 "용공 세력에 의한 국가 전복 우려"를 강조했다.
'서해 피격 사건'에서 언론에 먼저 노출된 건 이씨의 시신 소각보다 "스스로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황 보도였다. 월북은 곧 반역을 의미한다. '월북했다면 죽어도 어쩔 수 없잖아'라는 정서를 부추기려는 계산된 플레이였다. 이후 국방부는 ▶구명조끼 착용 ▶사각 지역서 슬리퍼 발견 ▶발견 당시 소형 부유물 의지 ▶월북 의사 표명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가정불화" "도박 빚 시달려" "정신적 공황 상태" 등 확인되지 않은 이씨 사생활도 유포됐다. 모두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③권력의 뻔뻔함=박종철 사건 다음달, 전두환 정권은 내무부 장관과 치안본부장을 경질하며 문책 시늉을 했다. 하지만 12·12 사태를 도모한 정호용씨를 내무부 장관에 앉히며 강공 모드를 굽히지 않았다.
'서해 피격'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건 사건 발생 닷새 만이었다. "특별히 김정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한 것을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가해자의 사과를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게 상식이다. 시신도 찾지 못했고, 유족의 양해도 구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것인가.

▲서해 피격 사건 이틀 뒤인 2020년 9월 24일,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세번째)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서훈 안보실장에게 맡기고 경기 김포시에서 열린 디지털뉴딜문화콘텐츠산업 전략보고회에 참석해 실감 콘텐츠 공연을 관람했다. 연합뉴스
문 전 대통령은 감사원 서면 조사 요구에 "무례하다"고 했다. 서훈 전 실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는 "도를 넘지 말라"고 했다. 은폐 혐의가 속속 드러나도 사과할 뜻은 없어 보인다. 6월 항쟁의 후예라던 문재인 정부의 자기 부정에 기가 찰 뿐이다.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부장
월간조선 12월 호
문재인 국정원의 대북심리전단 와해 전말
“댓글 사건, 좌파 세력의 국정원 심리전 역량 無力化 사건”(前 국정원 심리전단 파트장)
⊙ “광우병 사태 당시 비방선전활동 상당수 논객, 해외 IP로 활동하는 북한 심리전 요원들”
⊙ “택배와 대리운전 하다, 종일 근무 할 수 있는 마을버스 일 알아보려 해”
⊙ “조직적 ‘선거 개입’ 결코 없어, 검찰의 짜 맞추기식 수사·민주당 일당의 합작품”
⊙ 국론 분열 일으키는 對南 심리전 대응 방책 없어… 심리전단 재개 필요
⊙ “文 정권의 심리전단 와해, 국민 자긍심 발현 기반 되는 국가 구심축 해체한 것”

▲댓글 사건 이후 국정원 내 대북심리전단이 완전히 와해됐다. 사진은 국정원 전경. 사진=조선DB
국가정보원(원장 김규현)이 고강도 조직 개혁을 진행 중이다. 인적 쇄신을 시작으로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9월 30일 1급 부서장 27명 전원을 면직 조치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후 지난 10월 28일에는 신임 기획조정실장에 김남우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를 임명했다. 조상준 전 기조실장이 돌연 사직한 지 사흘 만이다. 국정원 한 소식통은 “개혁에 미온적이었던 조 전 기조실장이 사임하며 정상화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감찰심의관을 신설, 내부 감찰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 당시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 성사 과정, 정부 초기 국정원에 설치된 ‘적폐 청산 TF’를 통해 이뤄진 인적 청산 과정에서의 위법·불법성을 따지는 데 초점을 뒀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로부터 ‘적폐’로 낙인찍힌 인사들의 명예회복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에 몸담았던 원장 4명과 간부 40여 명이 실형을 살았거나 살고 있다. 이 중 10명 이상이 이른바 ‘댓글 사건’으로 알려진 대북(對北) 사이버 심리전과 관계된 인물들이다. 국정원 한 소식통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및 탈북 어민 북송 사건으로 고발된 서훈·박지원 전 원장들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심리전 요원들에 대한 재검토도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그간 국정원 안팎에서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복수의 국정원 소식통들과 이 건으로 실형을 살았던 심리전 요원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의 내막을 들어봤다. 이들은 “댓글 사건은 국정원의 심리전단 기능을 무력화(無力化)시키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국정원의 대북심리전단
대북심리전(對北心理戰). 북한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전술이다. 국정원에는 이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었다. 1965년 10월 중앙정보부가 창설한 ‘심리전국(局)’을 전신(前身)으로 한 ‘심리정보국’이다. 1급 직위 부서였던 이곳은 김대중 정부 들어 2급인 ‘단(團)’급으로 격하해 ‘대북심리전단’이 됐다. 국정원 간부 출신 인사는 “김대중 정부는 북한을 직접 가격하는 대북공작국과 심리정보국을 축소시키고 대신 교류·협력 업무 중심의 대북전략국을 세운 뒤, 그 산하에 심리정보국을 ‘단’으로 집어넣었다”면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이를 다시 별도의 부서로 빼냈고, 독립된 2급 부서가 됐다”고 했다.
심리전단의 업무내용은 그간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부서 간 정보 차단의 원칙’으로 내부 직원도 잘 몰랐다. ‘댓글 사건’으로 일부 수면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국정원 한 소식통의 말이다.
“사조(思潮) 유입 차원의 대북전단, 대북방송 전파 등 직접적인 대북심리전과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는 차원의 해외 세미나, 전시 등의 사업이 포함됐다. 특히 대북전단과 인권 문제는 무력 없이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릴 수 있는 고효율 전술이었다. 세부내용은 기밀이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단 기술을 가진 곳이 국정원이었다. 지난 2020년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시행 이후 이와 관련한 기술력, 장비, 인력이 모두 사장(死藏)된 상태다. 금액으로는 환산 불가다.”
한편 대내(對內)심리전도 수행했다. 북한 등 적국이 가하는 심리전을 막는 방어심리전이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이 영웅영화를 만드는 것도 대내심리전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국민들이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길 바란다. 그게 국가를 떠받치는 힘, 국력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국론 분열과 갈등은 그 반대 세력이 일으킨다. 이 세력을 막는 것이 방어심리전이다. 심리전단 해체 이전에는 국정원에서도 대내심리전·방어심리전을 수행했다.”
국론 분열의 대표적인 사례, 바로 광우병 사태다.
“총칼을 휘두르는 것만이 전쟁 아니다”

▲2008년 6월 8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집회. 사진=조선DB
주로 오프라인에서 이뤄졌던 대북심리전은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온라인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파트장(4급)이었던 A씨는 “대내 선동 방어 차원에서 필수적인 대응이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광우병 선동을 주도하는 친북 좌파 세력들은 주로 사이버상에서 활동했다. 다음 아고라, 한토마 등의 토론 마당을 주로 이용했는데, 여기에는 광우병 사태를 비롯한 정부 주요 정책들에 대한 무분별한 비방과 대정부 선전·선동이 난무했다. TV에 전문가가 나와 ‘안전하다’고 해도 대중은 안 믿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미 가짜뉴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서다. 혹자는 국정원이 왜 이런 대응을 하느냐고 하는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총칼을 휘두르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다. 이러한 선동·선전이 정치, 경제에서 나아가 국가 전체를 흔든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북한 세력 개입’의 실체를 의심한다. A씨는 “당시 국정원에서는 비방선전 활동을 주도하는 상당수의 논객이 중국 등 해외 IP를 가지고 활동하는 북한 심리전 요원들로 확인했다”고 했다.
“국제 정치역학상 어디든 적성국가 또는 경쟁국가의 국내 분열 및 혼란을 조장한다. 어느 국가든 와해, 모략, 선동 전략을 써 상대 국가역량 저하를 유도하고 종국적으로 안보를 흔드는 작업을 한다는 거다. 북한은 오죽하겠나. 지금 와서 보면, 광우병이 존재했나? 이 같은 선동이 일어났을 때 이를 방어하는 것이 국가정보기관의 당연한 임무다.”
국정원 출신 한 인사 또한 “사이버상에서 대남(對南)심리전을 수행하는 북한과 종북(從北) 세력에 대한 대응은 국가조직상 국정원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국정원의 사이버 대북심리전 추진 배경
이명박 정부 수뇌부에서는 국정원의 대응 활동 전개를 강력 지시했다. 이에 따라 심리전단 요원들은 처음에는 합당한 논리를 들어 일일이 반박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역부족이었다. 과학적 근거를 들어 광우병을 설명해도 묻히기 일쑤였다. A씨는 아고라 글 중에 “자발적 보수 성향 논객의 글이 3~5% 미만일 정도로 열세인 현상이 지속됐다”고 했다.
사이버 팀을 2개 팀으로 확대하게 된 배경이다. 확대한 2개 팀은 약 50명의 직원으로 구성됐다. 이 인원은 타 부서 직원을 순환 파견받는 식으로 충당했다. 2011년경에는 지원자를 더 받아 안보 3팀으로 추가 확대 개편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국정원 간부 출신 인사의 말이다.
“사이버 팀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여러 부서에 인원 차출 지시가 내려왔다. 당시 우리 부서도 몇 명이 넘어갔다. 만일 정치 개입을 하려 했다면, 누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팀을 꾸리겠나. 더군다나 그때 조직 개편이 일어나면서 이명박 정권 초기 지방으로 좌천됐던 좌파 성향 인사들도 서울 복귀를 하겠다며 해당 부서에 지원한 상태였다. 선거 개입이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였다.”
이후 사이버 심리전 분야가 아고라 등 포털에서 소셜미디어로 확대됨에 따라 2012년 초 소셜미디어 중 특히 트위터 관련 업무를 전담할 안보 5팀을 다시 추가 신설 운영했다. 소셜미디어상 글은 퍼져나가는 속도가 더 빨랐고, 전담 조직 신설만으로 이에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무리였다고 한다. A씨는 “그래서 ‘외부 협조자(민간인)’를 운용하기로 했다”면서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우호적인 글을 작성·확산할 수 있는 외곽 팀을 구성해 이슈별, 시간대별 대응 활동을 전개토록 조치했다”고 했다. 이때 외곽 팀 운용 관련 예산을 직접 관리한 그는 “어느 국가 정보기관이든 외부 협조자를 활용,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관행적인 것으로 정보교범에도 협조자 활용을 적극 권장하는 내용이 수록돼 있다”고 했다.
국정원 출신 김씨의 사건 제보

▲지난 2013년 8월 서울광장에 차려진 민주당 천막회의장. 국정원 댓글 사건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검은 합작’이라고 써놨다. 사진=조선DB
강화한 사이버 팀은 차츰 성과를 냈다. 온라인상에서 왜곡된 진실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 같은 기조로 쓴 글의 점유율이 50% 가까이로 증가했다. 제동이 걸린 건 그 무렵이었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정원 간부 출신 인사의 말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정권 탈환을 위한 국면 전환용 소재를 발굴 중이었는데, 마침 국정원 내 사이버 팀이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한 거다. 외부에서 이 소식을 들은 국정원 퇴직자 김모씨가 이를 민주당에 제보하면서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다.”
김씨는 지난 2009년 3급으로 국정원을 퇴직한 인물이다. 한 국정원 소식통은 “김씨는 앞서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에도 내부 감찰(직원들 인적정보) 문건을 유출해 개국공신 대우를 받았던 자”라면서 “이후 노무현 정부 때 영전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퇴직해 민주당 문을 두드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또 다른 소식통 또한 “민주당 내 입지 확보를 위해 절치부심하던 김씨가 마침 국정원 내 사이버팀 운용 첩보를 입수했다”면서 “이후 동향 후배였던 국정원 방첩국 소속 현직 정모씨에게 향후 혜택 등을 약속하고 민주당에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을 제보해 이슈를 만들 수 있는 물적 증거 확보를 사주했다”고 했다.
대북심리전단 파트장 A씨의 설명이다.
“이후 정씨는 외근업무 수행을 핑계로 원내에서 심리전단 사이버팀 소속 활동 직원 수 명을 미행 감시하면서 거주지 및 동향 등을 파악했고, 민주당 측에 관련 내용을 제보함으로써 소위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경찰이 불법적으로 압수한 여직원의 업무용 휴대폰을 통해 검찰은 사이버팀 직원들의 연락처를 확보했다.”
2013년 10월경 검찰은 확보된 전화번호의 다음 측 관련 계정의 메일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메일을 보관해둔 직원 등 직원 4명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직원 3명을 현장에서 연행하고, 여타 안보팀 직원들도 소환 조사했다.
국정원 간부 출신 한 인사는 “국정원법상 국정원 직원을 체포할 경우 사전에 국정원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서 “당시 이를 무시하고 압수수색 및 체포한 거다. 국정원에서 강력 항의하자, 검찰은 국정원 직원인 것을 체포 후 알았다고 변명했으나 검찰이 한 국정원 직원 자택에 흘리고 간 ‘국정원 직원 체포 계획’ 제하 문건을 직원이 제시하자 사과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MB 국정원이 박근혜 위해 선거 개입?

▲2013년 8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국정조사특위에 출두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조선DB
한편 제보자 김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까지 하며 ‘공익 제보자’로 활약했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하며 심리전단의 업무 내용을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2016년 12월 대법원으로부터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2017년 7월에는 민변, 참여연대 등이 주최하고 박주민·진선미·표창원 의원이 참석한 ‘국정원 댓글 사건, 판도라를 열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김씨는 지난 2015년 한 약사로부터 사건 무마 청탁과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 기소된 이력도 있다. 이에 국정원 한 소식통은 “정권 교체기 국정원 직원 중에는 김씨처럼 내부 문건으로 정치권 줄 대기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면서 “정치권에서도 김씨의 이 같은 행실을 알고 결국 공천을 주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핵심은, 이명박 국정원의 수뇌부가 차기 대선에서 새누리당 재집권(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에 참여했다는 내용이다. 2013년 6월 15일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런 결론을 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야당, 시민단체, 노조 등까지 종북 세력과 동일시했으며, 이들의 제도권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선거 기간에는 종북 세력 대응 활동이 야당에 불리한 여론 조성 활동으로 귀결돼 선거운동이 될 수 있었다.”
요컨대 원 전 원장이 종북의 개념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해 사이버 대북 심리전을 벌이던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북한 비판을 넘어 대선 기간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게시글까지 인터넷에 달았다는 해석이다. A씨의 말이다.
“검찰이 1차 수사 당시 원세훈 재판 등에 증거로 제시한 아고라 토론 글 및 각종 게시글 등은 심리전단 사이버팀이 수행한 전체 대북방어심리전 활동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100여만 건 정도였다. 그중에는 정치개입과 무관한 글도 많았다. 재판부도 검찰이 정치관여 증거라고 제출한 그 많은 글들을 일일이 다 살펴볼 수 없어 국정원에 증거 인정 여부를 확인했다. 당시 심리전단 사이버팀 직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한 건씩 일일이 다 살펴 정치 관여가 아닌 것들을 골라내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결국 재판에서 정치 개입으로 인정된 증거물은 검찰 제출량 중 0.5~0.6%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국정원 간부 출신 한 인사는 “무엇보다 정치 개입이 말도 안 되는 이유는, 당시 이명박이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은 야당이 아니라 박근혜였다. 박근혜 대권 출마 선언 이후 국정원 내부 박근혜 지지 세력이 자리를 정리할 정도였다”면서 “이명박 국정원의 박근혜 당선을 위한 선거 개입이 그만큼 허무맹랑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검찰은 1차 조사에서 ‘선거 개입’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관련 수사팀은 지방으로 좌천되는 등 일단락되는 분위기였다.
文 정부, 검찰에 서버 통째로 넘겨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일명 ‘적폐 청산’ 광풍이 불었다. 2017년 6월 서훈 원장이 부임했고, 같은 달 국정원에는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외부에는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좌파 성향 민간인들이 대거 참석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개혁위)가 출범했다. ‘댓글 사건’은 4년 만에 재수사에 들어갔다. 1차 조사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검찰 조사를 받은 A씨는 “검찰 수사의 1차, 2차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검찰 1차 수사 때는 국정원에서 출석 직원들에 대해 변호사를 지원해주는 등 보호를 해줬다. 검찰의 추가 소환 시 원장이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국정원 지휘부는 외부 협조자(민간인)를 활용한 외곽 팀 운용이 불법적인 내용도 없고, 정보교범에도 있는 정당한 사안이긴 하나 검찰 수사를 통해 언론이나 정치권에 노출될 경우 야당의 정치공세 등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해 적극 함구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검찰 소환 조사에서 외곽 팀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부인하고, 추후 원세훈 재판에 증인 소환 출석을 해서도 국정원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외곽 팀 운용 사실에 대해서는 적극 함구했다.”
A씨는 이어 “4년 만에 치른 2차 조사 때는 광범위하게 실시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검찰 소환 조사를 두고 국정원 수뇌부가 별다른 지침이나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무조건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2차 조사에 출석한 이들은 1차 조사 때의 입장을 유지했다. 이때 개혁위는 이미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을 확인한다며 국정원 서버에 있는 2급 비밀 보고서들을 검토 후 검찰에 제출하도록 조치한 상태였다. 조사를 받던 직원들은 국정원에서 검찰에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넘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국정원은 군(軍) 조직보다 더한 상명하복(上命下服)체제다. 이명박 정권 당시 윗선에서 ‘끝까지 함구하라’ 했기 때문에 검사의 질문에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검찰이 방대한 자료를 꺼내더니 관련 질문 증거를 조목조목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국정)원에서는 한 번도 어떤 자료가 검찰에 제출됐는지 언질해주지 않았다. 방어권에 심각한 제한을 받은 거다. 결국 이전에는 보안상 말할 수 없었던 사이버 활동 사실 여부 및 외곽 팀 운용 등에 대해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는 위증죄까지 추가됐다.
한편 당시 개혁위 민간위원들이 2급 비밀 취급 인가 없이 내부 기밀자료를 열람한 게 논란이 되자 국정원은 이들에게 추후 비밀 취급 인가를 내주기도 했다. 비밀 취급 인가 없이 활동하다 문제가 될 것을 고려해 뒤늦게 인가를 내준 것이다. 국정원 간부 출신 한 인사는 “이는 증거 취득에 불법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렇게 취득한 증거는 독수독과(毒樹毒果)”라고 했다. 이 인사는 “무엇보다 이 사건으로 국정원이라는 기관 자체가 회복 불가 수준으로 훼손돼 국가의 총체적 역량 약화를 초래했다”면서 “국가최고정보기관이 민간에 서버를 털어준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졌는데 앞으로 어느 외국 정보기관들이 공조하려 하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살생부

▲2008년 5월 6일 밤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가한 어린 학생들. 사진=조선DB
당시 국정원 일각에서는 “살생부(殺生簿)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검찰 조사 사정을 잘 아는 국정원 출신 한 인사는 “같은 업무를 했는데, 조사받은 사람이 있고 안 받은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이 수사 대상자를 선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사이버팀 팀장들이나 과장들을 일괄 소환하는 식의 직급 기준, 혹은 관련 업무 관여도가 높은 직원들 위주로 소환하는 식의 업무 기준도 아니었다. 당시 사이버2팀장을 지낸 H 처장 등은 사이버 업무에 상당히 관여해 큰 책임이 있음에도, 과거 좌파 정부에서 민주당 측 인사들과 줄이 닿은 사람들은 수사에서 아예 배제됐다. 추후 당시 국정원 감찰실에 TF팀이 차려져 검찰에 제출할 직원 명단을 선별 작성했던 것도 확인했다.”
‘댓글 사건’과 관련한 피고인은 국정원 관계자, 민간인 협조자 등 10여 명인데 이 중에는 양지회 관계자도 있었다. 양지회는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이다. A씨는 “당시 검찰은 사이버 활동 비중이 극히 적은 양지회를 굳이 연관시켜 재판에 회부하기도 했다”면서 “이는 국정원 전·현직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려 했다는 시나리오를 짜 맞추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광우병 사태로 혼란이 지속되자, 양지회 소속 인사들이 국가를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자발적으로 도움 의사를 내비쳤다. 공직 은퇴 후 70세 가까이 되는 분들이다. 상식적으로 이들이 인터넷을 얼마만큼 잘 다루겠으며, 만일 정치 관여를 꾀했다면 보안상 민간인인 이들을 참여시켰을 리도 만무하다. 실제로 이들이 수행한 업무 비중도 극히 미미했다. 심리전단에서는 노고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일부 예산을 지원한 것이다. 한데 검찰에서는 이를 엮어 ‘전·현직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양지회 관계자들은 이후 모두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이 중 재판을 받다가 뇌출혈이 와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된 이도 있다고 한다.
“그 불편한 몸으로 재판에 참석해, 발음이 되지 않음에도 끝까지 ‘정치 개입이 아닌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었다’며 결백을 피력하려 했다. 이를 보다 못한 판사가 ‘앉으시라’고 한 일도 있다.”
‘천안함은 폭침이다’가 정치 개입
조사를 받은 이들은 2차 조사 때에도 검찰에 “조직적·기획적 정치 개입 활동은 아니었음”을 적극 밝혔다. 그런데 검찰은 이미 국정원의 정치공작이라는 전제하에 수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A씨의 말이다.
“2차 수사 당시에도 검찰이 트위터글 등을 빅데이터에서 가져와서 첨부했는데 이 또한 사이버팀의 소셜미디어 전체 활동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며 정치 관여와 무관한 글도 상당수 포함됐다. 그중에는 ‘천안함은 폭침이 맞다’는 댓글도 포함됐다.”
국정원 간부 출신 한 인사는 “이때 종북정당 통진당이 2012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평화적 위성 발사인 것처럼 선동한 것을 국정원 직원이 비판한 글도 포함됐다”면서 “심리전 부서 직원이 이 같은 선동을 보고도 대응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직무유기”라고 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과 일부 정치인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반박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정치 관여 글로 인정됐다. 결국 내용 중에 민주당이나 관련 정치인 이름만 들어가도 정치 개입이라는 식으로 결론 냈다. 국내 여론분열 및 혼란을 조장하려는 북한 등의 대남선전선동 등에 대응하는 방어심리전 활동이 극히 일부의 게시글로 인해 통째로 무시된 것이다.”
A씨는 또 “물론 근거 없이 당시 야당인 민주당을 비방하거나 특정 정치인에게 한 욕설, 혹은 여당 정치인들의 동정 등을 알리는 글들이 자동 트윗되거나 일부 리트윗되는 등 사실이 있었던 것은 인정한다”면서 “하지만 그런 글들은 지극히 극소수이고 고의적·기획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의도치 않은 것으로 심리전단 사이버팀에서는 결코 정치에 개입하여 특정 정당을 유불리하게 하려는 지시나 계획은 없었고 오히려 직원들끼리 서로서로 조심하자고까지 했었다”고 했다. A씨는 이어 “2차 조사 때 검사가 ‘1차 때 사실대로 얘기만 했으면 구속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종의 괘씸죄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도 했다.
실제로 그의 법정 기록을 살펴보면 재판의 시작은 ‘정치 개입 혐의’인데, 대법원 판결문에는 이에 대한 내용보다 ‘외곽 팀 운영 자체가 잘못’이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적폐로 몰린 이후
A씨는 국가정보원법위반, 공직선거법위반,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에 위증죄까지 총 5가지 혐의로 1심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7년 9월 26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구속된 A씨는 10개월 수감 생활을 하던 중 ‘10월형’이라는 2심 판결을 받으면서 석방됐다. 당시 1심에서 1년 2개월형을 선고받아 함께 수감 생활을 하던 또 다른 파트장급 직원은 2심에서 7개월형을 받았는데 A씨는 “이미 10개월을 산 뒤, 7월형이 떨어지는 등 형량의 기준도 상식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공무원은 비리 혐의를 입으면, 사법 절차와는 별개로 징계를 받는다. 일반 공무원은 외부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만 국정원은 자체 징계를 한다. 그는 구속 상태에서 국정원의 연락을 받고 수갑을 찬 상태로 징계위원회에 참석도 했다.
파면·해임에 해당하는 중징계가 올라와 있었다. 약 1시간 동안 소명한 끝에 보류 결정이 났고, 한 달 뒤 2차 징계위에서 경징계에 해당하는 감봉 1개월을 받았다. 구속된 A씨가 감봉 1개월을 받는 동안, 같은 건으로 구속되지 않은 직원이 감봉 6개월 징계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또한 형평성이 없었다. 그는 “형(刑)을 살더라도, 조직과 국가를 위해서였다면 괜찮다”면서 “평생 몸 바친 조직에 버림을 받은 기분이 드니, 사람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알겠더라”고 했다.
아이비리그 석사 출신인 A씨는 1991년 국정원에 입사해 국내 수집 활동, 공작부서 등을 거쳐 2009년 심리전단으로 보직 이동했다. 검도 고단자(高段者)기도 한 그는 2019년 국정원을 떠날 때까지 28년간 근무했다. 문재인 정권 이전에는 국정원장 표창장도 두 차례 받았다. 국정원 내부에서 ‘심리전 분야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았다. A씨 스스로도 “몸 바쳐 일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했다.
“출소 후 ‘당연퇴직’ 처리 상태였던 2020년 초 국정원에서 또 한 번 연락을 해온 적이 있다. 서훈 원장 특별 지시라며, 재취업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원 산하 모(某) 기업에서 상근하면 월 200만원을 준다기에 출근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2020년 2월부터 다니고 있는데,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이 이를 문제 삼았고, 다음 날 바로 전화가 와서 ‘이제 나오지 마라’고 했다. 회사에서 두 번 잘린 셈이다.”
그는 “일반 대민 업무를 했던 공무원이라면 뭘 해도 한다. 음지에서 일하던 우리는 나오면 할 일이 마땅치 않다. 행정사 자격증이 있지만, 일반 행정과는 달라 활용도가 없다”면서 “얼마 전에는 1종 대형면허를 땄다. 야간에 잠깐씩 택배와 대리운전을 했는데, 종일 근무를 할 수 있는 마을버스 일을 알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댓글 사건’ 명칭 자체가 용어혼란 전술
국정원 소식통은 “국내 친북 좌파 세력들과 일부 정치 세력이 야합해 일으킨 ‘댓글 사건’으로 엘리트 심리전 요인들만 피해를 봤다”고 했다.
“지난 2013년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도 심리전단은 대북전략국 산하 세 번째 단으로 들어가 그 기능은 남아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아예 인력과 팀, 관련 예산을 다 잘라버려 대북방어심리전을 비롯해 국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 심리전 역량이 완전히 붕괴됐다. 한편 북한은 지금도 ‘저비용 고효율’의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국정원의 존재 이유는 국가의 안전 보장과 국가의 이익 확보다. 대공수사권 이전에 더해 창립 60주년인 지난 2020년 신영복 서체로 쓴 원훈석을 세우는 치욕을 당하고도, 누구도 반발 한마디 못 하는 조직으로 변모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것은 잡아야 한다. 대승적 차원에서 국가 심리전 역량은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A씨는 우선 ‘댓글 사건’이라는 용어부터 정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용어 하나로 국정원이 마치 인터넷 댓글이나 다는 조직으로 폄훼됐다. 이는 국내 친북 좌파 세력들이 북한의 용어혼란 전술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국가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국정원의 정당한 대북 사이버 심리전 업무가 단순 댓글 활동, 여론 조작 및 정치 개입 의혹 등으로 왜곡·선동됐다. 이 사건 이후 국정원 업무가 한때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결국 현재까지도 심리전 분야, 특히 사이버상에서 대북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때문에 ‘댓글 사건’은 ‘좌파 세력의 국정원 대북 심리전 역량 무력화 사건’으로 정정돼야 한다.”
A씨는 이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언어 또는 용어(用語)에 큰 영향을 받는다”면서 “선동·선전에 용어혼란전술을 쓰는 이유”라고 말했다.
“북한과 종북 세력이 이에 특히 특화돼 있다. 전교조가 학생들에게 한 ‘6·25 남침, 북침’ 용어 혼란도 그중 하나다. ‘뇌 송송 구멍 탁’도 한 번 듣고 각인이 되지 않았나. 지금은 ‘댓글 사건’이라 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모두 심리전의 영역이다. 무기 하나 없이 사상을 지배하고 제압하는 건데, 친북 좌파들은 자발적 모임과 상호 간 연대를 잘한다. 사이버상에서도 잘 뭉친다. 지금, 이들 선동에 대응할 방책이 있는지 생각해볼 때다.”
국정원 간부 출신 한 인사는 “문재인 정권의 심리전단 와해는 국민의 자긍심 발현의 기반이 되는 국가 구심축(求心軸)을 해체한 것과 같다”면서 “이것이 국론 분열과 갈등, 혼란이 계속되는 이유”라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12.21 ‘이대준 피살 사건’ 진실을 알고 싶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북한의 총격에 살해된 해양수산부 산하 어업지도선 공무원 고 이대준씨 사건을 은폐할 목적으로 ‘보안 유지’를 지시하고, ‘자진 월북’으로 모는 등 허위 공문서 작성 및 배포 지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그가 입단속을 지시하자 청와대 일부 비서관들이 “미친 짓”이라며 반발했다니 충격적이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잘못이 많지만 두 가지는 반드시 법적으로 심판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이대준씨 피살 방조 사건이고, 둘째는 탈북 청년 어부의 비밀 강제 북송 사건이다. 두 사건 관련자들은 헌법 제7조 1항(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헌법 제10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준수와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헌법 69조의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기소 충격
정부, 생존 시점에 무슨 조치했나
문 전 대통령 구체적 지시 밝혀야
서 전 원장의 기소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정치적 이해를 우선했던 문 정권의 황당한 행태를 바로잡는 사필귀정 성격이 강하다. 2020년 9월 22일 밤 이대준씨가 처참하게 살해됐는데 그 다음 날 새벽 1시 26분부터 문 대통령이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유엔 총회 화상 연설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서 전 실장 기소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은폐와 왜곡은 이씨가 이미 사망한 이후에 벌인 문 정부의 행각일 뿐이다. 사건의 핵심은 이씨가 살아있을 때 문 대통령과 정부가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가다. 특히 국가안보실이 그해 9월 22일 오후 6시 30분쯤 당시 문 대통령에게 첫 서면 보고한 뒤 오후 9~10시 국정원 등이 이씨 피살 및 시신 소각 사실을 인지하기까지가 문제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미궁에 빠져있는 한 문 정부의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범죄 행태의 전모가 밝혀질 수 없다. 첫 서면 보고에서 어떤 내용이 당시 문 전 대통령과 서 전 실장 간에 오갔는지, 이후 두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 전 실장에 의한 사건 은폐와 왜곡이 대통령의 재가 또는 최소한 묵시적 동의 없이 서 전 실장 독단으로 행한 것이라 믿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법적 판단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1966년 8월 29일 서베를린 주민 하인츠 슈미트가 술에 취해 동서 베를린을 관통해 흐르는 강에 뛰어들었고 동베를린 관할구역에 들어가자 동독 경비대원에 의해 조준 사살됐다. 1983년 4월 10일 동독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서독 여행객 루돌프 부르케르트가 동독 국경검문소에서 검문받던 중 사망했다. 동독은 심근경색이라 주장했으나, 동독 세관원들에게 구타당해 숨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1966년 총격 피살 사건은 첨예한 동서 냉전기에 일어났기에 서독이 달리 취할 방법이 없었으나, 1983년 검문소 구타 사망 사건은 동서독 대화가 이뤄지던 시기여서 서독 정부가 강력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있었다. 그랬다면 이후 약 350명이 희생된 유사 사망 사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서독 방문을 추진하던 서독 정부는 강력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서독 정부의 당시 행태에 대해 역사적 심판을 내려야 하고 우리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근본적 차이가 있다. 서독의 경우 사건을 인지했을 때 서베를린 시민과 서독 주민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 고 이대준씨의 경우 문 정부가 인지한 시점에 살아있었다. 문 전 대통령과 당시 정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살 수도 있었던 셈이다. 청와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화할 핫라인도 남아 있었다.
서 전 실장 기소는 의혹을 풀 서막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는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정부·공무원을 다시 제대로 세우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새 정부가 해야 할 법적 의무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12-22 북 ‘막말 심리전’의 배경과 대처법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200㎞가 조금 안 된다. 전북 익산까지 거리와 비슷하니 물리적으로 아주 멀지는 않다. 고구려의 수도이기도 하니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추론을 한 방에 일소시키는 것은 평양발 막말과 비속어다. 그것도 최고지도자 남매 명의로 발표되니 기겁할 노릇이다. 분단이 75년을 넘어서니 평양에는 한민족 정서보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김씨 왕조의 유일 수령 체제가 자리 잡았다. 언어와 정서와 감성은 저급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북의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최종 단계의 중요한 시험에 대해 ‘조악한 수준’이라는 등 남측 지적에 대해 “개나발들 작작하라”며 발끈했다. 그는 “악청을 타고 오는 주둥이” “개 짖는 소리” 같은 시정잡배의 표현을 쓰며 반발했다.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우선, 초조함의 발로다. 올해 73발의 각종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득보다는 실이 많은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자해 닥치고 미사일 발사를 했지만, 유엔 대북 제재 해제는 언감생심이고 미국과의 협상은 가닥도 잡히지 않고 있다. 특히, 그들이 야심 차게 촬영한 서울 도심과 인천 항구에 대한 정찰위성 사진이 수준 미달이라고 평가절하한 데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정찰위성은 상업용이건 군사용 사진이건 지상에서 독자가 어떤 신문을 보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몇십 미터 크기로 식별하는 북한의 위성사진은 20년 전 수준이며 구글 위성사진에도 못 미친다.
다음은, 첨단 군사 기술을 과시해 한·미·일 3국을 압박하려는 전략에 차질이 생긴 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화성-17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성공에 대한 여세를 몰아 새해 강력한 군사 도발을 예고했으나, 둘째딸 김주애 공개를 제외하곤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찰위성 시험발사로는 2023년 군사 도발 위협이 여의치 않다고 보고 강력한 말폭탄부터 퍼부었다.
끝으로, 남측에 대한 대남심리전의 일환이다. 북한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강경 여론을 흔들려는 프로파간다(properganda·선동) 전술이다. 과거 평양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삶은 소 대가리’라는 비속어 표현을 사용했지만, 청와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묻지 마 구애를 했다. 평양 대남심리전 부서는 거친 욕설로 상대를 질리게 하는 ‘조폭전술’을 구사해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으로 실속을 챙겼던 망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여정의 비속어 사용 전술은 역설적으로 평양이 서울의 반응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맞대응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김여정의 주장대로 ‘폄훼할’ 이유도 없다. 다만, 그의 히스테릭한 반응과는 별개로 북한의 군사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사실은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가 ICBM의 고각 발사가 아닌 정상 각도 발사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위협은 점차 한반도를 거쳐 태평양으로 확대될 것이다. 김정은도 고체연료 엔진 시험을 계기로 신형 전략무기 출현을 기대한다고 한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새해에도 북한의 군사 도발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스토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12.23 왜 이스타機가 방북했나...청산해야 할 ‘2018 남북 쇼’
도보 다리 대화, USB 내용, 35㎞ 더 내준 서해 수역…
예술단 평양 방문때 왜 이스타機 타고 갔나
의혹투성이인데 전부 깜깜이
2018년 12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그해 남북, 미북 관계에 대해 “역사적” “엄청난”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란 표현을 썼다. “내가 생각해도 자화자찬 같지만 사실”이라고도 했다. 남북, 미북 쇼가 쏟아진 2018년은 문재인 정부가 생각만 해도 흐뭇한 한 해였을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수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 문재인(가운데)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맨 왼쪽) 국무위원장이 19일 밤 평양 능라도 ‘5월1일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손을 맞잡고 관중석의 평양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평양시민 15만명이 참석한 이날 공연 끝 무렵 문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위원장 소개로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 군중을 상대로 한 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처음이다.
그해 4월 남북 판문점 선언에는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북한식 표현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내용도 ‘확성기 방송과 전단 금지’처럼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것으로 채워졌다. 북에 길들고 그들 사고방식대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북이 내민 문서에 그냥 서명한 것은 아닌가.
판문점 도보 다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은 배석자 없이 44분간 대화했다. 정상 회담이라고 하지만 정상끼리만 만나는 경우는 없다. 해서는 안 될 말과 약속이 있고 상대 기만술에 넘어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 공항에서 김정일 차를 타고 20여 분 둘만 이동한 적이 있으나 ‘돌발 상황’에 가까웠다. 우리를 70년 공격해온 집단의 정상과 기록 한 줄 없이 무슨 말을 나눈 건가.
당시 문 전 대통령 입 모양을 보면 김정은에게 “발전소 문제...”라고 말한 것으로 포착됐다. 청와대는 “신(新)경제 구상을 USB에 담아 직접 김정은에게 건네줬다”고 했다. 그런데 판문점 회담 직후 산업부는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문건을 다수 만들었다. 이 문건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직전 불법 삭제한 파일 530건 가운데 들어 있었다. 핀란드어로 ‘북쪽’이란 뜻인 ‘pohjois’(포흐요이스), 북한 원전 추진 방안의 약어인 ‘북원추’ 등이 파일명으로 사용됐다. 뭔가 감추려 한 흔적이다.
그때 문 정부는 원전이 위험하다며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로는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원전 기술은 핵과 전력 확보에 매달리는 김정은에게 절실한 것이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우리 원전은 무너뜨리면서 북 원전은 지원하려는 이 정신 분열적 행태의 진상은 무엇인가.
그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 군사 합의를 체결했다. 당시 문 정부는 “군사훈련을 하지 못하는 서해 완충 수역 길이가 남북 각각 40㎞로 똑같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수역을 실측해보니 남측 85㎞, 북측 50㎞로 우리가 35㎞를 더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 발표를 한 것이다. 북은 변변한 정찰 자산이 없지만 우리는 무인기 등으로 수도권을 겨눈 북 장사정포 340여 문을 감시해왔다. 그런데 군사 합의는 우리 강점인 정찰 능력에만 족쇄를 채웠다. ‘같은 거리, 같은 전력(戰力)’ 협상이란 군축의 기본조차 무시한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도보 다리 대화도, USB 내용도, 군사 합의 과정도 이전 정부가 알려준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해 3월 우리 예술단이 평양에 갔다. 당시 문 정부가 북으로 처음 띄운 전세기가 이스타 항공이었다. 이스타 창업주인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은 2018년 7월 문 전 대통령 딸 가족의 태국 이주와 취업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정부는 ‘가격’과 ‘방북 경험’으로 이스타 항공을 선정했다고 했지만 정말 그뿐인가.
2018년 이후 북은 문 정부에 무슨 빚이라도 받아내려는 것처럼 큰소리쳤고, 문 정부는 ‘삶은 소대가리’ 같은 막말을 듣고도 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김정은 비핵화 의지’ ‘김여정 팬클럽’을 띄웠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2018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조선일보 안용현 정치부 차장
12.27 민가까지 날아든 北 무인기 시위, 이런 계획 도발 계속할 것

▲2017년 6월 21일 국방부가 공개한 북한 무인기.국방부는 “조사 결과 이 무인기는 지난 5월 2일 북한 강원 금강군에서 이륙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강원 인제에서 발견된 이 무인기는 성주 사드 기지 등 사진 555장을 찍었다./남강호 기자
북한 군용 무인기(드론) 여러 대가 26일 김포를 비롯한 경기도 일대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오전 10시 25분 무렵 시작된 침공은 우리 군이 경고 방송과 대응 사격을 한 뒤에도 6시간 넘게 계속됐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은 물론이고 민가 위까지 날아다녔고 심지어 서울 상공에도 침범했다고 한다. 우발적 도발이 아니라 긴장을 고조하려는 계획된 작전이라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4년을 시작으로 북한군 무인기가 우리 영토에 추락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여러 차례다. 그러나 이번처럼 북한이 무인기 여러 대를 보란 듯이 띄워 놓고 우리 군이 대응에 나설 때까지 물러나지 않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항공 당국은 이날 오후 1시 이후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의 항공기 이륙을 1시간 내외 중단시켰다. 양쪽 공항에서 30대가량 항공기 이륙이 늦춰졌다. 북한 도발이 국민 일상 생활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올 들어 북은 우리 영토와 영공, 영해를 넘나들며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 25발을 우리 동·서해상으로 난사했다. 이렇게 많은 미사일을 하루에 쏜 것은 처음 있는 일인 데다, 이 중 한 발은 울릉도 방향으로 발사돼 동해 NLL(북방 한계선) 남쪽 26km 공해상에 떨어졌다. 이로 인해 1953년 휴전 이후 처음으로 울릉군 전역에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북은 이날 울산 앞바다에 순항미사일을 쐈다고 뒤늦게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 군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북이 우리 영해 남쪽까지 군사적 도발을 했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북은 지난 18일엔 정찰위성 개발용 발사체, 23일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7차 핵실험 준비를 갖춰 놓고 있다는 예측도 잇따르고 있다.
북은 앞으로도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한 장소와 시기, 그리고 과거와 다른 방식을 통해서 도발을 지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군의 대응 태세와 방식을 떠보는 동시에 우리 국민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주시할 것이다. 북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거기에 말려들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도발 수위에 맞춘 대응을 철저히 해나가는 동시에, 침착하고 냉정한 자세도 잃지 말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2.27 北무인기, 은평구까지 침투… 軍, 8년 대비하고 1대도 못잡았다
5대 중 1대는 서울 침투… 인천·김포공항 1시간 운항 중단

▲북한 군용 무인기가 26일 경기 김포시 영공을 침범했다. 맨 위 사진은 이날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와 유사한 기종으로 2017년 6월 강원도 인제군 야산에서 발견됐었다. 이날 북한 무인기 대응 작전 지원을 위해 강원 원주 기지에서 이륙한 공군 KA-1 경공격기 1대는 횡성군에 추락했다. 우리 군은 헬기 등을 출동시켜 100여 발의 사격을 했지만 북 드론을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연합뉴스
북한 군용 무인기 5대가 26일 서울 북부와 경기도 김포·파주, 인천 강화도 일대 등 우리 영공(領空)을 5시간 동안 침범했다. 우리 군은 전투기와 공격형 헬기를 출격시켜 경고 방송·사격에 이어 격추 작전을 하는 등 대응 조치에 나섰지만 북 무인기를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북한 정찰 무인기의 침범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여러 대가 동시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우리 영공을 휘젓고 다닌 것은 처음이다.
이로 인해 인천·김포공항에서 1시간 가까이 항공기 이륙이 중단돼 항공기 총 30여 편이 지연 출발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전례가 없다. 군은 이날 북 무인기 격추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작전에 동원된 공군 KA-1 경공격기 1대가 이륙 중에 강원도 횡성 농경지에 추락하는 등 대비 태세에 허점을 보였다. 군 당국은 2014년 북 무인기가 청와대 상공을 비행하며 사진을 찍는 사건이 발생한 뒤 강력한 드론 대응 체계를 공언해 왔지만 8년이 지나서도 북 무인기 기습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합참에 따르면, 길이 2m 이하 북한 소형 무인기 5대가 이날 오전 10시 25분쯤 경기 김포 일대 MDL을 넘어 영공을 침범했다. 이 중 1대는 서울 은평구 등 서울 북부 상공까지 침투했으며, 나머지 4대는 인천 강화도, 경기 파주·김포 일대를 오후 3시 30분까지 휘저으며 비행했다. 우리 군은 영공을 침범한 북 무인기에 대해 전투기, 경공격기 등으로 대응에 나섰다. 공격형 헬기의 20㎜ 기관포로 100여 발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 무인기 격추에는 실패했다. 군 관계자는 “민가 피해를 우려해 격추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대신 군은 이날 우리 무인기 2대를 MDL 이북 상공에 침투시켜 북한군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했다. 북한의 이번 도발은 9·19 남북군사합의를 무력화한 또 하나의 사례다. 서울 상공까지 침투한 북 무인기 1대는 MDL 이북으로 넘어갔으며, 나머지 4대의 항적은 강화도 일대에서 사라졌다.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은 27일 현장 작전부대들을 방문해 작전 전반에 대한 조치와 경과를 확인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승오 합참 작전부장은 “북한의 영공 침범은 명백한 도발 행위로, 우리 군은 자위권 차원에서 즉각 대응한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앞으로도 철저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12.27 北에 무인기 1000대... 자폭드론은 시속 925㎞로 南전역 타격

▲2015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미사일을 장착한 북 무인 타격기가 행진하고 있다./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한은 대공사격 표적기에서 정찰감시, 타격용(자폭용) 무인기에 이르기까지 1000여 대의 다양한 무인기를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많은 무인기는 방현-Ⅰ·Ⅱ로 중국에서 대공사격 표적용으로 도입한 D-4를 개량한 모델이다. 300여 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만이나 훈련 표적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길이는 3.23m, 작전반경은 50㎞ 정도이고 고도는 약 3㎞ 이상, 운용 시간은 2시간 정도다. 이 중 일부 무인기는 20∼30㎏의 폭탄을 장착하고 시속 160여㎞로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어 전방부대에 배치, 운용 중인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은 미국제 무인표적기인 MQM-107D ‘스트리커’를 시리아로부터 밀수입, 소형 폭탄을 장착한 자폭 무인기로 개조해 운용하고 있다. 시속 925㎞로 최대 600~800㎞ 떨어진 목표물에 자폭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또 러시아에서 단거리 무인정찰기 프라체-1T와 VR-3도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이들의 작전반경은 60∼90㎞로 2시간 이상 정찰임무 비행을 할 수 있다. 이 밖에 지난 2014년 청와대와 경기도 파주, 백령도 일대, 2017년 성주 사드 기지 등을 촬영한 소형 무인기도 북한의 대표적인 무인기다.
통일연구원 정구연 부연구위원은 지난 2017년 보고서에서 “북한의 공군 전력은 한국 대비 상당한 열세이고 군사용 위성 부재로 대남 정보, 감시 및 정찰 임무 수행이 어렵다”며 “이를 상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인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12.27 맞대응한 軍 “北에 우리 무인기 보내 군사 시설 촬영”

▲공군 글로벌호크 장거리 고고도 무인정찰기.
합동참모본부는 26일 북한 무인기가 우리 상공을 침범한 것과 관련해 “무인기를 격추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리 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는 총 5대로, 1대는 서울 북부, 나머지 4대는 강화도 일대를 수시간 비행한 뒤 최소 1대(서울 북부 침범)는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군은 이날 무인기를 겨냥해 총 100여발의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지만, 격추엔 실패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무인기 상응 조치로 “유·무인 정찰자산을 군사분계선 근접 지역과 이북 지역으로 투입하여 북한 무인기의 침범거리에 상응하여 운용하면서 적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하는 등 정찰 및 작전활동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또 “우리 군은 최초 미상 항적을 김포 전방 군사분계선 이북에서부터 포착한 후 절차에 따라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실시하였고 항적 추적 및 격추자산을 운용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응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주형식 기자
12-27 北 무인기에 농락당한 軍…尹대통령 나서 전면 점검해야
육안으로도 식별된 북한 무인기를 전혀 격추하지 못한 것은 충격적이다. 26일 대낮에 5대가 5시간가량 영공을 휘젓고 다니는 데도 그랬다. 공격용 무인기에 의한 실제 상황이었다면 참담한 재앙으로 귀결됐을 것이다. 무인기를 표적으로 한 대공 사격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구심도 든다. 이러니 미국의 저명한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 측이 드론 도발에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고, 공군 준장 출신인 데이비드 스틸웰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북한 무인기는 격추되어야 했다”면서 대공포와 교신 방해 장치인 재머(Jammer) 등의 정당 방위 수단을 거론했다.
우선, 초기 대응이 제대로 신속히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무인기는 오전 10시 25분 탐지됐다. 9·19 군사합의 및 정전협정을 명백히 위반한 도발임에도 북한 무인기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을 때 즉각 발포하지 않았다. 새떼 등을 무인기로 오인하지 않기 위한 첨단 장비도 도입돼 있다. 즉각 대응을 하지 않은 경위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둘째, 멀뚱멀뚱 바라보면서도 격추시키지 못했다. 무인기가 강화 교동도 서쪽 해안에서 포착되자 헬기 기관포 사격 등을 했지만 모두 무위에 그쳤다. 그래놓고 “국민 피해를 고려해서 사격하지 않았다”고 둘러댄다.
셋째, 수도권에 배치된 드론 테러 방어용 레이더(SSR) 등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넷째, 무인기 대응을 위해 이륙하던 공군 KA-1 경공격기는 추락하는 망신을 당했다. 얼마 전에는 현무 미사일 낙탄 사고도 있었다. 다섯째, 뒷북 대응도 한심하다. 무인기가 MDL 이북으로 간 뒤 군은 오후 4시쯤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고, 정찰기를 MDL이북으로 보냈다. 이래놓고 응징이라도 한 것처럼 주장한다. 북한군이 비웃을 것이다.
북한 무인기의 청와대 정찰 사건이 발생한 게 2014년이다. 당시 군은 격추 작전 수립 등 호들갑을 떨었는데 8년이 지났는데도 이 수준이다. 대통령실이 국가안보회의(NSC)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심각성을 모른다는 의미다. 이러니 9·19 합의 위반에 따른 항의와 응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4성 장군 출신의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통합방위체계와 경보체계 등 대비태세에 의문을 제기했다. 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전면 점검을 지시하고, 안보 허점을 없애는 데 직접 나서야 할 상황이다.
문화일보 사설
12.28 드론 전쟁 시대 된 지 언제인데 항상 뒷북 한국 안보

▲2014년 4월 11일 김종성 UAD 체계개발단장이 오전 대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북 추정 무인기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며 무인기에 탑재된 부품과 카메라 제원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북한 무인기(드론)는 크기가 2m도 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탐지·요격이 어렵다. 이번에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을 넘기 전부터 탐지해 추적한 것은 전에 비해 상당히 진전된 대응이다. 군이 무인기를 격추하기 위해 화력을 쏟아부었을 경우 낙탄이 민가에 떨어져 큰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었다. 실제 1970년대에 그런 일이 있었다. 격추하지 못했다고 무작정 군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신형 차륜형 대공포가 작년에 배치됐지만 이번엔 가동조차 되지 않았다. 북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은 직후엔 가동할 수 있었다.
북 무인기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까지 왔다는 항적 기록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부근에서 대통령실 청사 사진을 찍었을 수 있다. 그랬다면 조만간 그 사진을 공개하면서 우리를 또 조롱할 것이다. 언제든 대통령실을 무인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협박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언제나 북은 앞서가고 우리 군은 허겁지겁 뒤쫓아가는 현상이 이번에도 재연됐다는 사실이다. 북 무인기가 발견된 것이 2014년으로 8년이 지났다. 정찰위성과 고성능 정찰 드론이 없는 북은 비록 원시적이지만 이런 식의 소형 드론으로 우리 주요 시설을 촬영하리란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파로 무인기를 교란해 추락시키는 재머(Jammer) 무기 개발은 큰 진전이 없다. 국방 연구 재원을 여기에 집중했어도 이렇게 지지부진하겠나. 이런 식이면 낙탄 피해가 없는 레이저 대공 무기 개발은 요원할 것이다.
현대전은 드론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런 변화를 매일 보여주고 있다. 이미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드론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 이런 변화를 뻔히 보고서도 우리 군은 총력을 다해 드론 전쟁 시대를 대비하지 않고 있다. 타성에 젖어 ‘설마’ 하면서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하고 있다.
북은 전투기, 탱크, 자주포 등 재래식 전력은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창의적이고 선제적으로 새로운 전술과 전략을 개발하는 데 전력하고 있다. 앞으로 드론 연구에 매진할 가능성이 높다. 멀지 않은 시기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본격 드론을 개발할 것이다. 적은 창의적인데 우리는 뒤만 쫓아가면 그 결과가 무엇이겠나. 정치권도 다를 것이 없다. 새해 예산안에서 무인기 개발과 드론 도입 예산 260억원을 삭감했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는 현실적으로 북 소형 드론을 막기 힘든 만큼, 우리도 드론을 평양 상공으로 보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은 드론을 탐지할 능력이 부족하다. 김정은 집무실 고해상도 사진을 찍어 공개하면 감히 다시 도발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2.28 2달에 1대꼴 추락, 미사일 절반 실패, 훈련 안 한 軍의 실상

▲지난 26일 오전 강원 횡성군 횡성읍 반곡리 섬강 옆 논으로 공군 KA-1 경공격기가 추락해 군 당국이 수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에 대응 출격한 공군 KA-1 경공격기 1대가 추락했다. 기지에서 이륙 직후 인근 밭에 떨어졌다. 올 들어서만 6대째 공군기 추락이다. 지난달 KF-16 전투기 1대가 엔진 이상으로 경기도 양평 산악 지역에 떨어졌다. KF-16은 공군의 주축 전투기다. 8월에는 경기 화성 인근 해상에 노후한 공군 F-4E 전투기가 추락했다. 4월에는 경남 사천에서 훈련용 전투기 KT-1 2대가 공중 충돌 후 야산에 떨어져 조종사 4명이 모두 순직했다. 1월에도 공군 F-5E가 엔진 화재로 경기 화성의 야산에 추락해 조종사 심정민 소령이 순직했다. 두 달에 1대꼴로 추락 사고가 났다.
우리 군의 핵심 전력인 미사일도 불량이었다. 지난달 북한이 동해 NLL 남쪽으로 탄도 미사일을 쏘자 우리 군이 KF-16, F-15K 전투기를 출격시켜 북쪽으로 미사일 대응 사격을 했는데, 2발이 오류로 발사되지 못했다. 미사일 장착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상에서 쏜 미사일도 마찬가지다. 10월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발사에 우리 군이 응징용으로 쏜 ‘현무-2′ 미사일은 발사 방향과 반대로 날아가 강릉 군부대에 떨어졌다. 함께 쏜 ‘에이태큼스’ 미사일도 두 발 중 한 발이 실종됐다. 훈련용으로 쏜 ‘천궁-1′은 발사 후 자폭하는 등 최근 공개된 미사일 발사 11발 중 5발만 성공하고 6발은 실패했다. 실전 상황이었다면 어땠겠나.
전투기 추락이나 미사일 발사 실패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사고 빈도는 너무 높다. 평소에 장비 관리를 잘하고 훈련을 열심히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북한과 ‘비핵화 쇼’를 벌이는 동안 군의 대비 태세 약화, 훈련 부족 상태가 만성이 됐다. 심지어 당시 군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평화를 지킨다’고 기막힌 선언까지 했다.
9·19 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군사분계선 인근 공중 정찰은 아예 못하게 됐다. 한미가 매년 실시하던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도 중단됐다. 대대급 이하 소규모 훈련으로 대신하려다 북한이 반발하자 이마저도 없던 일로 했다. 5년간 제대로 안 움직이다가 다시 움직이려니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지는 것 아닌가. 군은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고 무기 운용 체계 전반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2.28 軍, 확전 각오하고 北에 무인기 2대 보내... “北은 탐지 못한 듯“
[北무인기 쇼크] 자체 개발한 송골매 2기 투입
우리 군은 26일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에 대응해 군단급 무인 정찰기인 ‘송골매(RQ-101)’ 2대를 군사분계선(MDL) 이북까지 올려 보낸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원점 타격까지 준비하는 등 군 내부적으로는 확전(擴戰) 위험까지 각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은 송골매를 MDL 북쪽으로 올려 보내면서 북한 도발 원점에 대한 대응 포격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우리 무인기를 향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대공포를 쏘면 포탄이 DMZ 내부나 민간인출입통제선 지역에 낙탄할 수도 있다”며 “우리 군이 확전을 각오하고 나름 강하게 대응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우리 무인기로는 처음으로 MDL을 넘어간 송골매는 2000년 우리가 자체 개발한 무인 정찰기다. 2005년 전력화됐는데 최대 6시간 동안 반경 80~110km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지상에 있는 조종사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를 보며 조종하는 방식이다.

▲北에 침투시킨 무인기 송골매 - 북한의 무인기 침범에 대응해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 이북에 투입한 무인 정찰기‘송골매’의 모습. /뉴스1
송골매는 길이 4.7m, 폭 6.4m로 26일 서울과 경기, 인천 일대를 비행한 북한 무인기(크기 2m 이하)보다 식별이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북한은 송골매 2대가 북쪽 상공에서 군사 시설에 대한 사진 촬영 등 정찰 활동을 하는 동안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군 관계자는 “아예 탐지하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12-28 무인기 남침, 방산 오류 시정할 계기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까지 침입하고도 ‘무사히’ 돌아간 상황을 알게 된 국민의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전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간접경험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 특징은 무인기의 맹활약이다. 전쟁 초기부터 튀르키예제 소형 무인 공격기가 세계적인 화제가 됐고, 전쟁 내내 불과 수십만 원짜리 상용 드론이 정찰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가을 이후로는 소형 자폭 무인기가 상대방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요 대도시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를 자폭 드론으로 집중 공격해 우크라이나 전역이 정전(停電)되면서 국민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의 자폭 드론은 대당 2만 달러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또한 소형 자폭 무인기로 러시아의 핵폭격기 기지를 12월 들어서만 두 차례 공격해 여러 대의 전략폭격기를 파괴했다. 21세기는 무인기 전성시대임을 보여준다.
북한은 지난 2014년, 조악한 기술로 만든 무인기도 한국의 방공망을 손쉽게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무인기 관련 투자를 크게 늘려 왔다. 그러던 중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무인기의 효용성에 확신을 가지고, 2014년 이후 업그레이드됐다는 우리의 방공망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수도권 상공을 유린한 북한 무인기나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이란제 무인기는 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레저용 리모컨(RC) 항공기나 소형 오토바이에 사용되는 엔진에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동비행 제어장치와 위성항법 장치를 연결하고,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외피만 만들어 조립하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소형 상용 엔진을 넣더라도 날개만 2∼3m 정도로 넉넉하게 만들어 주면 2∼3㎏ 정도의 탄두는 충분히 싣고 날아오를 만한 양력이 생기기 때문에 공격 무기로 만들기도 쉽다. 구조가 매우 단순하고 제작 비용이 적게 들며 단기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므로 북한이 작심하고 자폭 드론 대량 생산을 시작한다면 수천 대를 찍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이번에 드러났듯이 이런 조잡한 무인기도 현재 우리 군의 무기나 전술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군은 무인기가 너무 작아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기 때문에 대응이 어려웠다고 하지만, 이는 8년 전 무인기 침투 때에도 나왔던 주장이다. 당시에도 세계 시장에는 소형 무인기에 대응할 수 있는 레이더와 요격 무기들이 나와 있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장비들을 구입해 효과적인 소형 무인기 대응 전력을 갖출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외국산 레이더·요격무기의 즉시 도입은 국산 무기 개발 주장에 막혔고, 그렇게 개발된 한국형 저고도 방공 시스템은 이번 도발을 통해 북한 무인기에 무력하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어떤 외부 요인에 의해 방향이 잘못 잡힌 것이다.
무기 국산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안보에 국내 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같은 경제적 변수를 과도하게 끼워 넣어선 안 된다. 군에 필요한 무기를 공급해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방산(防産) 업체이지, 방산 업체가 이윤을 많이 취할 수 있고 생산이 쉬운 무기를 소비해 주는 곳이 군대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일보
12.29 3㎞내 무인기 격추 가능한 ‘비호 복합’… 文정부 5년간 놀렸다
레이더로 20㎞밖 포착 무기인데…
5년간 격추훈련 한번도 안한 탓에
北무인기가 휘젓는동안 사용못해
尹 “그간 뭐했나” 국방장관 질타

/국방부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다음 날인 지난 27일 우리 군의 대응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고 격노했던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특히 지난 5년간 대공 무기체계인 ‘비호(飛虎) 복합’ 운용력이 저하되고 무인기 격추 훈련을 군이 제대로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고를 듣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그동안 도대체 뭘 한 것이냐”며 질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이 장관 등은 이날 대통령실 지하벙커에서 전날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관련 상황을 점검하고 후속 대책을 논의하다 대통령에게 중간보고를 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훈련도 제대로 안 하고, 그러면 아무것도 안 했다는 얘기냐”면서 이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격추 작전 실패와 관련해 “어떻게 북한 무인기 공격에 대비하는 데가 없을 수 있느냐. 과거에 이미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지금까지 뭘 한 거냐”고 이 장관에게 따져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받은 보고에는 비호 복합 운용 실태 문제도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본지 통화에서 “비호 복합은 2014년 북한 소형 무인기 사건 이후 무인기 요격 능력을 포함해 2015년 이후 배치한 것인데,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운용 시스템 구축 및 훈련이 안 돼 있었던 것으로 군이 파악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이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군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격노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호복합은 레이더로 최대 20㎞ 밖에서 무인기를 잡고 3㎞ 내 무인기는 격추할 수 있는 대공 무기체계다. 하지만 이런 첨단 장비를 배치해놓고도 지난 5년간 제대로 운용 훈련을 하지 않아 북한 무인기가 서울까지 내려오고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5시간 내내 사용을 못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 우리 군에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군이) 그 신뢰에 바탕을 둔 기대 수준을 충족하지 못한 데 대해 강하게 질책하고 주문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12-29 무인기 킬러 ‘비호 복합’ 버려둔 軍…훈련 안 해 첨단무기도 무용지물
“그동안 군(軍)이 뭘 한 것이냐”는 윤석열 대통령의 개탄까지 자초한 북한 무인기 사태의 실상과 원인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첨단 탐지·요격 자산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훈련 부족 및 군기 이완 등의 이유 때문에 전혀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군대에는 아무리 좋은 첨단무기도 고철 덩어리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기도 하다.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무인기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을 때 곧바로 탐지했다. 그러나 즉각 대응은 없었다. 지상 타격 자산과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 탓이다.
군에는 북한 무인기 파괴용 첨단 무기체계인 ‘비호 복합’이 배치돼 있다. 2014년 북한 무인기의 청와대 촬영사건 후 2015년부터 배치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북한 무인기 파괴용이다. 비호 복합은 30㎜ 자주 대공포 K-30 비호에 지대공 유도무기 신궁을 최대 4발 결합해 교전 능력을 강화한 무기 체계다. 레이더로 최대 20㎞ 밖에서 무인기를 잡고 3㎞ 내 무인기를 격추할 수 있다. 국방TV 유튜브 채널이 ‘드론, 무인항공기 다 막는 비호 복합’ 홍보 영상을 올릴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러시아 방공무기 도입국인 인도가 눈독을 들였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전이 본격화하자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첨단 무기를 갖고도 작전에 실패했다. 무인기를 한 대도 격추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더 문제다. 훈련에 흘린 땀만큼 실전에선 피를 덜 흘린다.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참패한다. 비호 복합은 한 발도 발사하지 못했다. 아예 운용할 생각도 못 했을 수도 있다. 벌컨포나 단거리 대공 유도무기 등도 무용지물이었다고 한다. 군 당국은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 원인까지 추적해 문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29일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감시·정찰 및 요격 시스템 개발 현황을 살폈다. 군은 합동 방공훈련도 한다. 그러나 일선에서 실행되지 않으면 공허하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에 군이 망가진 것은 사실이다. 소를 잃은 뒤에라도 외양간을 고친다는 자세로 전투 강군으로 개조해야 한다.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진두지휘가 중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12-29 화급한 무인기 요격 무기들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북한 무인기(드론) 5대의 서울 등 수도권 영공 침범 사태로 대공방어망에 구멍이 뚫렸다. 군은 전투기 등 20여 대를 출격시켜 헬기 100여 발 기총사격을 했지만 1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육군·해병대 대공방어부대의 비호·벌컨·천마 등은 침묵했다. ‘대포로 파리 맞히는 격’이라 변명하지만, 대공방어무기의 저조한 명중률 때문에 현재로선 요격할 대응책이 마땅찮다.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2018년 발행한 연구보고서의 부록 ‘북한의 무인기 능력 평가’에 따르면 북한 소형 무인기에 탄저균 100g 정도만 실어 침투에 성공하면 대통령실·국방부·합참이 있는 용산이나 계룡대 등은 치명적 피해를 볼 수 있다. 2대 정도 무인기가 침투해 삼각지 일대에 탄저균 수십 g을 살포하는 것만으로 우리 전쟁 수행 능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보고서는 ‘북한은 생물학무기를 무인기와 결합해 운용함으로써 개발 중인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북한은 핵 공격으로 방사능에 오염돼 동식물이 오랫동안 거주하기 힘든 지역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온전하게 사람만 죽이고 나서 지역을 확보할 수단과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생물무기용 병원체 13종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단순히 정찰 목적으로 무인기를 사용하지 않고 생물무기 등 WMD를 탑재해 테러나 군사공격용으로 사용할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반면, 우리는 화학무기금지협약(CWC)과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을 충실히 이행하므로 무인기에 WMD를 탑재할 수 없어 북한의 생물무기·무인기는 핵·미사일처럼 비대칭 위협이 될 수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레이저 대공무기 등 3종류의 첨단 무인기 탐지수단과 더불어 탐지수단인 ‘AI(인공지능)광자레이더 탐지’ 체계 조기 개발에 국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방부대에서 국지방공레이더·AI광자레이더 등으로 탐지하고 2·3단계에서 전방과 국가기간시설에 배치하게 될 전파 교란(Jamming)·레이저 대공무기·고출력 전자기파 3종류 첨단 요격무기로 저고도 무인기를 격추하는 방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그물망식 무인기 대응 첨단방공망이다.
군 당국은 탄저균을 탑재한 군집드론으로 동시 공격할 경우 등에 대비해 지난해 3월 북한 군집드론 대응을 위한 고출력전자기파(EMP) 대공무기 소요 결정을 합참에 요구한 바 있다. 방위사업청은 소프트킬 방식의 전파방해 장비인 ‘한국형 재머’를 개발하는 소형무인기대응체계(블록-Ⅰ) 개발 사업을 지난달부터 시작해 2026년 1월까지 완료하겠다고 했다. ADD도 ‘전자파 교란기술’ ‘고출력 전자기파 기술’ ‘레이저 대공무기’ 등 북 무인기를 요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무인기 도발에 대한 내년도 대응 전력 예산이 국회에서 50%나 삭감됐다. 북한 무인기가 비대칭무기로 돌변할 경우 핵·미사일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북 무인기 탐지·요격무기 조기 개발을 위해 민간 기술까지 활용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전략을 짜야 한다.
문화일보
12.30 대통령 질타에 무인기 대응훈련, 쇼 말고 실전 훈련 해야

▲합동참모본부가 29일 경기도 양평군 가납리 일대에서 지상작전사령부와 각 군단, 공군작전사령부, 육군항공사령부 등이 참가한 가운데 북 무인기 대응 및 격멸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은 20㎜ 벌컨포를 운용하는 장병들. /합참
합참은 29일 북한 무인기 도발을 상정해 육군·공군의 합동방공훈련을 실시했다. 영공을 침범한 북 무인기를 방공레이더로 탐지한 뒤 벌컨포와 지대공미사일 등 지상에 배치된 대공무기와 공격용 헬리콥터, 전술통제기 등 항공자산을 투입해 요격·격추하는 연습이었다. 지난 26일 북 무인기의 영공 침범 당시 격추에 실패한 군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군의 대비 태세와 훈련이 대단히 부족하다”고 질타하자 예정에 없던 훈련을 급히 실시한 것이다.
현재 북 무인기 대응에서 육군과 공군의 손발이 맞지 않는 등 개선해야 할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훈련으로 문제를 찾아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번 훈련은 무인기 탐지·추적에서 요격·격추에 이르는 모든 절차를 숙달해 실전 능력을 갖추는 훈련이라기보다는 대통령과 여론의 비판을 당장 모면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쇼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실전적 훈련은 최소한 몇 주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의 소형 무인기는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데 어떻게 사격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짜고 치는 식의 훈련은 큰 의미가 없다.
충격적인 것은 이런 보여주기식 훈련조차 지난 5년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 무인기 도발 당시 대응 출격하던 KA-1 경공격기가 이륙 직후 추락하고, 무인기 파괴용 무기라는 ‘비호 복합’을 배치만 해놓고 활용하지 못한 것도 만성이 된 훈련 부족의 영향일 수 있다.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면 더 이상 전 정부 탓을 할 수도 없다. 해이해진 군 기강을 세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국방부는 북한 무인기 대응 전력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5년간 56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국지 방공레이더 전력을 강화하고 레이저 대공무기 개발과 첨단 드론 부대 창설에서 속도를 낸다는 것이다. 북 무인기 위협이 처음 부각된 게 2014년인데 8년 동안 무엇을 하다 이제야 드론 부대를 창설한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군은 크고 작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근본적이고 창의적인 해법을 찾기보다는 수천억의 국민 세금으로 비싼 외국 무기를 사는 기회로 삼아왔다. 그러다 북한에 또 당하면 또 수천억원 무기를 사달라고 한다. 그 무기들의 유지 보수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제대로 작동도 하지 않는다. 습관적 구태가 또 반복되는 것만 같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