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凍土)의 소식16-2022-2/ 07.01(금) 돌려 막고, 계급장 떼고 - 12-23 러 용병조직에 무기 밀매 확인된 북, 戰犯 간주해야 한다
동토(凍土)의 소식16-2022-2/
07.01(금) 돌려 막고, 계급장 떼고…군 지휘부 “나 지금 떨고 있니?”
김정은 시대 고위 간부 잔혹사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2008년 말 평양을 방문했을 때다. 숙소 1층 연회장에서 평양 주재 무관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가 끝난 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북한군 중장(별 둘)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자 호텔 직원들은 물론 북한 주민들이 썰물처럼 양쪽 벽으로 붙으며 길을 터줬다. 북한에서 군부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첫 해인 2012년 2월 23명을 시작으로, 지난 10년 동안 21차례에 걸쳐 645명의 장성을 진급시켰다. 2012년 4월엔 민간인이던 최용해에게 군복을 입혀 왕별(차수)을 달아주고, 총정치국장에 임명하는 등 2012년 한 해에만 네 차례의 진급 명령을 내렸다. 이후 북한은 2014년(3회)를 제외하고, 매년 1~2차례 ‘별’을 새로 또는 하나 더 달아주는 승진인사를 해 왔다. 특히 집권 초기 3년 동안 231명을 진급시키며 군심(軍心)잡기에 나섰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믿을 건 군대 뿐”이라며 선군(先軍) 정치를 폈던 관성도 작용했으리라.
김일성~김정일 63년간 국방상 8명
김정은 10년 동안 평균 임기 1년꼴
지난 10일 군 요직 3분의 2 교체
집권 직후 대대적 물갈이 여전
노동당과 내각도 인사 교체 잦아
간부 인사 통한 쥐어짜기로는 한계
국방상, 평균 재임은 1년 남짓

▲북한이 지난 4월 25일 진행한 열병식과 관련해 제작한 기록영화 속에 애플컴퓨터가 등장했다. 열병식 관계자들이 사무실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조선중앙TV촬영]
김 위원장이 군부를 휘어잡기 위해 별자리만 나눠준 건 아니다. 빈번한 군 지휘부 인사를 통해 자기 사람들을 심고 책임도 묻는 등 기강을 다잡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폐막한 노동당 전원회의(8기5차)에서 총참모장과 총정치국장·사회안전상·국가보위상을 교체했다.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은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국방상과 함께 3대 핵심 직책으로 꼽힌다. 이날 국방상(이영길)을 제외하곤 군부 요직을 모두 바꾼 셈이다. 이번 인사의 배경은 확인되지 않는다. 단, 4월말 북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발병 직후 김 위원장이 질책을 한 사실을 북한 매체가 공개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발생에 따른 문책성 인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군 지휘부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번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 주목거리다. 김 위원장은 집권 직후인 2012년 4월과 7월 두 차례의 인사를 하며 총정치국장과 인민무력부장(현 국방상)· 총참모장 등 소위 군부 3인방을 모두 갈아치웠다.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인민보안부장(현 사회안전상)도 교체 대상이었다. 부장 공석 상태에서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를 맡았던 우동측 제1부부장도 교체됐다. 우동측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김 위원장과 함께 운구차에 손을 얹고 걸은 ‘운구차 7인방’ 중 한 명으로 김정은 시대의 실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군 지휘부 전원교체 카드를 빗겨가지 못했다.
당시 군수뇌부를 전원교체한 건 김정은 체제 출범과 맞물린 세대교체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 집권 10년이 지나도록 북한 군 수뇌부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회성 인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군 수뇌부가 안정돼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012년 두 차례의 인민무력부장 인사를 단행했던 것에 비해 최근 교체 횟수가 줄어 들기는 했다. 그런데도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국방상과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은 각각 9차례 바뀌었다. 군부 1인자로 평가받고 있는 총정치국장 역시 6명이 맡았다. 군부 출신이 맡는 인민보안상(현 사회안전상)과 국가정보원장 격인 국가안전보위부장(현 국가보위상)도 각각 6명과 4명을 바꿨다.

▲현철해 국방성 총고문이 생전 사용하던 책상위에 애플컴퓨터가 놓여있다. [조선중앙TV 촬영]
이런 모습은 어쩌면 통상 1~2년마다 바뀌는 한국 등 서방 국가에선 자연스런 모습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현직을 유지토록 하며 수 십년간 업무를 맡겼던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다. 김일성 주석은 집권 46년 동안 5명의 인민무력부장을 기용했다. 최용건·김광협·김창봉·최현·오진우 등이다. 17년 동안 북한을 통치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엔 인민무력부장을 맡은 인물은 3명(최광·김일철·김영춘) 뿐이다. 수뇌부가 바뀌면 연이은 인사가 단행된다는 점에서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익숙한 북한 군부엔 공포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군 수뇌부를 공개 처형한 건 공포정치의 정점이다. 김 위원장은 총참모장을 거쳐 인민무력부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현영철을 2015년 4월 처형했다. 김 위원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졸거나 지시를 불이행했다는 불충이 이유다. 김 위원장 집권 초기 각각 총참모장과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맡았던 이영호와 변인선 역시 처형 또는 숙청됐다.
회전문, 그리고 ‘부활’ 인사
북한은 지난 10일 인사에서 정보와 반탐 등 체제보위 업무를 책임졌던 정경택을 총정치국장에 앉혔다.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이던 박수일에겐 사회안전상을 맡겼다. 지난해 6월 김 위원장의 질책을 받고 모든 자리를 박정천에게 넘기고 물러났던 이병철을 1년만에 노동당 비서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한 건 부활 인사의 전형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회전문 또는 부활인사는 당과 내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0일 인사에서 당의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국원 30명중 6명이 새로운 얼굴이다. 이들 중 박태성·최선희·한광상은 이전에도 정치국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특히 2020년 1월 외무상을 맡은 이선권은 당 통일전선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북 군사회담 대표를 지낸 그는 김정은 시대 들어 조국평화통일위원장으로 남북 대화에 나서더니 외무상을 거쳐 이번에 다시 당의 대남 부서인 통일전선부로 이동했다.
북한 노동당의 재정을 담당(재정경리부장)하던 한광상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이번에 경공업부장이 됐다. 지난해 1월 임명된 지 한 달만에 물러났던 박태성 당 비서 역시 이번에 다시 비서로, 박태성과 함께 자리를 내놨던 김두일 경제부장은 이번에 내각 정치국장에 기용됐다. 북한에는 고위 간부들이 업무상 ‘과오’를 범할 경우 지방이나 공장·기업소에서 노동을 하도록 하는 ‘혁명화’라는 처벌이 있다. 일종의 긴장조성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셀프봉쇄, 자연재해, 전염병 창궐 등 북한은 스스로 대동란이라고 여길 정도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올해 상반기 20회 가까이 미사일을 발사하던 북한은 지난달부터 정치국 회의와 당 전원회의, 비서국회의를 연이어 열며 내부 단속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아니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대적인 인사는 내부 자원 고갈로 인한 어려움을 간부들의 쥐어짜기 식으로 막아보려는 시도는 아닐까. 유일체제이자 종교적 성향이 강한 북한 체제의 속성상 김 위원장의 위상은 여전히 공고하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애민(愛民)과 단번도약을 통한 경제 발전은 마른 수건 짜기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간부들을 쥐어짜기가 아닌 대화와 비핵화, 이를 통한 외부자원 투입의 여건을 조성하는 게 최선이다.
김정은의 ‘애플’ 사랑
북한 조선중앙TV는 6월 한 달 동안 74분 25초짜리 기록영화(다큐멘터리) 한 편을 네 차례 방영했다. 지난달 19일 사망한 현철해 국방성 총고문의 충성심을 집중 조명한 ‘빛나는 삶의 품-태양의 가장 가까이에서’다. 기록영화는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3대째 북한 최고지도자 곁에서 충성을 다하는 현철해의 일생을 다뤘지만 핵심은 임종을 지킨 김정은 위원장을 향한 칭송이다.
기록영화 중간, 47분 47초쯤 눈길을 끄는 장면이 등장한다. 생전 현철해가 사용하던 사무실을 촬영한 영상이다. 책상 위엔 김 위원장과의 직통전화로 추정되는 것 등 전화기 세 대가 설치돼 있고, 바로 옆엔 모니터·본체 일체형의 컴퓨터가 놓여 있다. 모니터 뒷면에 새겨진 사과 그림이 또렷하다. 모조품이 아니라면, 실제 사용한 컴퓨터라면 현철해가 애플 컴퓨터를 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앞서 북한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열병식 기록영화에도 애플 컴퓨터가 등장한다. 인민군 복장을 한 행사 관계자들이 사무실에서 회의하는 장면에서다. 정확한 기종이나 생산연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외형상 현철해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발사 현장 등 공개 활동을 하며 애플의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모습이 종종 공개되곤 했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 데스크탑이나 비행기 안을 촬영한 사진 속에 등장하는 컴퓨터 역시 애플이다. 정영태 동양대 석좌교수는 “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 시절 애플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집권 이후에도 자기에게 익숙한 애플 제품을 간부들에게 일괄 지급해 쓰도록 하고, 동시에 경제제재를 해봐야 들여갈 건 들여간다는 일종의 시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07.06 인사 통해 대외 메시지 전하는 北, ‘막말 측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북 각료 인사는 기강 잡기가 주목적… 수시 물갈이로 내부 긴장 유도
“냉면 목구멍” 리선권 “아둔한 얼뜨기” 최선희 배치해 대남 압박 전망
한·미 장관회담서 대화 강조했지만 북 핵실험하면 추가 제재 불가피

▲최선희 북한 외무상, 리선권 통일전선부장/뉴스1
북한의 각료 인사는 남한과는 천양지차다. 청문회는 없고 최고 지도자가 결정해서 발표하면 끝이다. 관제 언론인 노동신문에 검증은 없고 각료 결정을 보도할 뿐이다. 10대 소년단 시절부터 인사 카드를 관리하는 북한의 국장급 이상 보직자는 2만여 명이다. 당국은 이들이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관리한다. 남한에서 장·차관을 발탁할 때 쓰는 경찰 및 정보기관의 기본 인물 자료와는 수준이 다르다.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통치 권력이 3대 세습된 만큼 여야 개념이 아예 없다. 당과 내각의 구분이 없는 것도 남한과 다른 점이다. 철저한 충성 경쟁 속에서 자질을 선보여서 김정은 위원장의 눈에 들어야만 각료로 발탁될 수 있다. 선군 정치라 군부 출신이 발탁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최근 김정은이 직접 국가 장의(葬儀) 위원장을 맡아 애도의 눈물을 흘린 군 출신 현철해는 일찌감치 백두 혈통의 적장자라며 김정은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옹립에 전력을 다한 사례다.
북한 내각 인사는 남한과 달리 내부 기강 잡기가 주목적이다. 수시로 물갈이 회전문 인사를 통해 긴장을 유도하고 성과 도출을 압박한다. 각료들이 면종복배(面從腹背·복종하는 체하면서 배반)하지 않도록 정보기관에서 철저하게 감시한다. 고위직에 올랐다고 허세를 부리거나 세를 과시할 경우 단두대 칼날이 기다린다. 남한 정치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2인자는 없으며 미래 권력은 더더욱 없다.
고위 관료들의 기강이 해이해져 충격이 필요하면 희생양을 조작한다. 공개 처형도 불사한다.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 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양봉음위(陽奉陰違)하는 행동을 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의 전격 처형과 2015년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숙청은 불경죄가 죄목이었다. 불경의 기준은 김정은이 결정한다.

▲/그래픽=백형선
북한은 인사를 통해 대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지난달 평양 권부의 대남 및 외교 책임자가 교체되었다. 김정은은 리선권 외무상을 대남 문제를 총괄하는 당 통일전선부장에 임명했다. 전임 통전부장이었던 김영철과 함께 대남 강경파로 분류된 인물이다. 리선권은 남측을 향한 거친 언사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8년 옥류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방북한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말했고, 회의장에 3분 늦게 도착한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이 “고장 난 시계 때문”이라고 하자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고 했다. 방북한 김태년 민주당 의원을 소개받은 자리에선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 맡기면 안 된다”고 했다. 이처럼 막말 퍼레이드의 주인공인 리선권은 김정은 시대 들어 20 차례 이상 대남 접촉에 얼굴을 내민 인물이다.
이제 리선권의 대화 상대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다. 권 장관은 “리선권 통전부장과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원래 통일부 장관의 북측 카운터 파트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지만, 북측은 지난해 대남 대화 기구인 조평통이 필요 없다고 밝혔다. 현재 대남 관계에서 북한 통전부는 암중모색 중이다. 당 전원 회의와 중앙군사위에서 대남 군사 전략 과시가 우선이라 통전부는 일단 잠수 중이다. 윤석열 정부를 향한 거친 말 폭탄은 통전부 몫이다. 북한 코로나 확산을 대북 전단 탓으로 선전하는 것도 통전부 작품이다.
한편 북한 외무상에는 최선희 제1부상(차관)이 승진 임명됐다. 정권 최초의 여성 외무상이다. 가부장제 남성 위주 사회에서 58세의 최선희 발탁은 김정은의 절대적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한 인사다. 지난 20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김정은과 푸틴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전용차에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가 동승했다. 김정은 전용차인 검은색 벤츠 리무진에서 리용호가 앞자리, 최선희가 김정은의 옆자리에서 내렸다. 최고 실세만이 가능한 차량 의전이라 언젠가는 외무상 승진을 예상했지만 그 시기가 앞당겨진 깜짝 인사다. 북한 내각 총리를 지낸 최영림의 수양딸로 몰타, 오스트리아 등에서 조기 유학한 최선희는 영어가 유창한 금수저다. 김정은 입장에서 외국 사정에 어두운 군, 관료 출신들과 최선희는 급이 다른 인물이다. 최선희가 최측근인 이유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성 김 미국 대사와 최선희는 판문점에서 7번에 걸쳐 예비 회담을 가졌다. 최선희가 평양의 훈령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아 성 김 대사는 애를 먹었다. 그녀는 싱가포르 회담을 앞둔 5월에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주장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해 회담이 결렬 위기를 맞기도 했다. 김정은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한 것이다. 또한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날강도 같은 요구를 했다고 비난했다.
리선권과 최선희의 등장이 대남 대외 정책에 주는 메시지는 협상보다는 강경론이다. 북한 외교에서 특정 인사의 등장이 정책 변화와 반드시 연계되지는 않지만 강대강 대결 구도를 지원하는 인사다. 김정은은 인사를 확정한 전체 회의에서 “노동당의 강대강, 정면 승부의 투쟁 원칙”을 강조하고 국권 수호를 위한 핵 무력 강화 의지를 시사했다. 대남 및 대미 외교의 경험이 축적된 두 인물이 전면에 나서 대북 제재 해제의 물꼬를 트기 위해 강온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7차 핵실험 없이 협상을 시도한다면 다양한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달 워싱턴 회담 기자회견에서 모두 23차례에 걸쳐 대화·외교를 언급했다. 핵실험 직전까지 간 북한을 돌려세우려는 노력인 동시에 북한이 만일 도발할 경우 최대 압박 모드로 전환하기 위한 ‘명분 쌓기’다. 김정은이 핵실험 단추를 누른다면 북한 이슈는 제재와 압박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영어가 유창한 최선희 외무상과 박진 장관이 어디서든 만나서 우리말로 한반도 비핵화 대화를 개시하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월간조선 07월 호
◆‘1호 사진’ 수난사
長身의 노르웨이 정치인, 김일성 키에 맞추려 사진에서 다리 잘라
⊙ 김정은, 愛民정신 과시하려 열병식 때 ‘바닥대열’에 동원됐던 청년들과 기념 촬영했다가 코로나19 확산
⊙ 노동당 내 사진 조작 전담팀 존재
⊙ 황장엽 탈북, 장성택 숙청 등 문제 생기면 ‘1호 사진’ 회수해 수정한 후 돌려줘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2011년 12월 28일 김정일 영결식에서 운구차를 따라가는 김정은(앞)과 장성택(뒤). 장성택 숙청 후 관련 사진들은 수정되었다. 사진=교도통신/뉴시스
2022년 6월, 조선중앙TV는 “유열자(발열자) 수가 뚜렷한 감소치를 보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완쾌자 수가 계속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밝힌 신규 발열자 수는 7만9000여 명. 총 발열자 수는 399만6690여 명이지만, 총 사망자는 71명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변이 비루스의 유전자 배열 1만6000여 건을 분석해 악성 전염병 진단에서 정확성을 보장하는 과학적 담보를 마련”했기에 방역이 가능했다는 선전이다.
주민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2022년 6월 4일, 에드윈 살바도르 WHO 평양사무소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출연, “WHO는 북한 보건성의 코로나19 변이와 특성에 대한 질의에 답변했다”며 “북한 당국 요청에 따라 코로나19 진단 및 온라인 교육 자료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도와달라’고 했다는 얘기다. 북한 당국이 북·중 접경지대 무역 일꾼은 물론, 일반 노동자에게도 의약품 모집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도 있다.
코로나19 관련, 북한의 상황이 심각한가?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맞다. 통계를 믿을 수 있나?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검사 역량이 없다. 진단키트도 절대 부족하고, 관련 의약품을 냉장 냉동 운송 보관할 능력 자체가 없다. 피검사자, 확진자, 완치자 통계를 작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확진자’가 아니라 ‘유열자(有熱者)’라고 표현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기념사진 찍은 김정은의 愛民정신(?)

▲5월 1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에 동원되었던 청년들과 사진을 찍은 김정은. 그 바람에 코로나19가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북한은 전염병 취약 지대다.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하고, 위생 개념이 희박하며, 만성적 영양부족으로 인해 주민들의 면역력도 약화일로(弱化一路)다. 매년 발생하는 각종 전염병에 코로나19까지 겹쳐 환자가 급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인지 아닌지 병명을 모르니 뭉뚱그려 ‘유열자’라고 하는 것이다.
5월 17일에는 김정은이 정치국 상무회의에서 간부들을 질타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국가의 위기대응능력의 미숙성, 국가 지도간부들의 비적극적인 태도와 해이성, 비활동성은 우리 사업의 허점과 공간을 그대로 노출시켰다”고 간부들을 질책했다.
전형적인 김씨 족속의 수법이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살아남는다. 그래서 김정은의 이 발언을 두고 전전긍긍하는 간부들이 많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기에게 불똥이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일과 관련, 김정은이 아랫사람에게 특별히 책임을 전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자기가 직접 지시했던 대규모 ‘1호 사진 촬영행사’ 때문이다. 《로동신문》 2022년 5월 6일에 실린 기사를 보자. “무려 20번이나 자리를 옮겨가시며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는데 여기에도 우리 청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이의 뜨거운 정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 문장이 있다.
김정은은 1000여 명의 청년들과 20번에 걸쳐 기념사진을 찍었다. 무려 2만 명이 넘는 인원이다. 4월 25일 소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기념 열병식’ 때 ‘바닥대열’에 동원됐던 청년들이라고 한다. 광장 바닥에 서서, 꽃이나 글자 등으로 카드 섹션을 한 사람들이다. 경기장 행사 때 ‘배경대’ 동원자와 마찬가지로, 카드 섹션에 필요한 도구는 자기 부담이다. 실컷 부려먹고, 나 몰라라 해오던 사람들이다. 바닥대열이나 배경대가 김씨 족속과 사진을 찍은 건 사상 처음이다. 북한 당국이 김정은에게도 ‘애민(愛民)정신’이 있다는 걸 선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歸鄕했던 청년들 소환해 사진 찍어
문제는, 사진 찍기 행사가 급조되었고, 그래서 여러 가지 무리수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열병식에 동원된 청년 중엔 주로 대학생이 많았는데, 이들은 행사 후 전국 각지의 고향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김정은이 ‘내일 청년들과 사진을 찍겠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데려오라’고 4월 30일 느닷없이 당 간부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북한이 어떤 곳인가?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새벽 2시부터 대형버스 수십 대가 동원됐고 병원에 입원했던 학생들까지 소환했다. 모두 《로동신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정은은 ‘바닥대열’에 앞서 군 수뇌부와 장병, 방송 종사자 등과도 기념사진을 박았다. 이번 단체 사진 촬영은, 찍는 데만 나흘이 걸린 대규모 조직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 직후에 코로나19가 갑자기 북한 전역에 널리 퍼졌다면? ‘발열자’가 늘어나면서 소문도 퍼졌다. 그래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희생양이 필요할 터이다. 희생양의 직급과 규모는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보며 김정은이 정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그래서 김정은의 ‘분노 표출’을 피바람 전야(前夜)의 ‘밑밥 깔기’로 보고 있다.
다리 잘린 노르웨이 정치인
말이 난 김에 이야기하자면, 김씨 족속과 찍은 이른바 ‘1호 사진’ 중에는 온전한 사진이 없다. ‘사후(事後) 수정’ 때문이다. 사진을 조작하면 없던 사실도 만들 수 있고, 있는 사실도 감출 수 있다고 믿는 곳이 북한이다.
구도 조작은 애교다. 1974년 6월 방북(方北)한 노르웨이 사회인민당 의장은 190cm가 넘는 장신이었다. 김일성도 키가 큰 편이었지만, 똑같이 서면 김일성이 노르웨이 야당 대표의 턱 밑이었다. 《로동신문》은 노르웨이 정치인의 ‘다리를 잘라’ 김일성과 키를 맞췄다. 당사자가 불쾌한 마음으로 귀국한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김씨 족속의 신격화(神格化)를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곳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진 조작에 관해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누군가 숙청당하면, 그 인물이 나온 사진은 다 검열 대상이다. ‘1호 사진’을 찍으면, 사진 고유 일련번호, 발송번호, 수령자의 신상을 별도의 대장(臺帳)에 꼼꼼하게 적는다. 그러고 신성(?)한 봉투에 1호 사진을 넣어 찍은 사람의 직장, 당 위원회를 통해 내려보낸다.
사진 중에 탈북자나 문제적 인물이 나오면, 누구에게 발송했는지 기록을 보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을 회수한다. 숙청된 사람을 지우고 다시 갖다 주기 위해서다. 처음엔 숙청된 사람의 얼굴을 먹으로 지웠다. 사진 군데군데 먹으로 지운 자리가 ‘너무 표 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다른 사람의 머리를 떠 넣는’ 원시적 아날로그 포토샵을 했다. 머리 크기가 유난히 차이지는 인물이 ‘없어진 자리’에 ‘남의 몸통을 빌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누군가 숙청되면 사진을 또 일일이 걷어가고, 누군가를 지워서 돌려준다. 걷고, 지우고, 돌려주고, 또 걷어가고의 끝없는 반복이다.
‘사진 조작’ 전문팀
그래서 간부들 집에 주르르 붙어 있는 ‘1호 사진’은 그 자체가 여러 번 수난을 겪었다. 수천 장, 수만 장 사진을 회수하고 수정하는 일은 그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상징 조작에 목숨을 거는 북한에선 정치적 중대사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중앙당에 독립 부서로서 ‘사진 조작’만을 전문으로 하는 팀이 있을 정도겠는가. 정해진 기간 내에 일을 마쳐야 하고 작업량은 어마어마한 데다 전문성(?)까지 갖춰야 하니, 여기는 누구도 못 건드리는 조직이다. 지운 자리에 ‘누구 머리를 넣으라’는 지시는 김씨 족속만 할 수 있으니, 사진 조작팀의 위상은 상상 이상이다.
어디 가서 말은 못 하지만, ‘1호 사진’을 돌려받은 사람은 어디 어디가 조작을 한 건지 다 안다. 몇백 명씩 찍은 단체 사진은 어느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디가 조작인지는 알지만, 누가 없어졌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인원이 백 단위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다르다. 열 명 단위라면, 누가 누구인지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라고 봐야 한다.
주석단 김일성 족속이 가운데 앉고, 양쪽에 간부 20명이 앉아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하자. 만약 그 가운데 서너 명만 살아 있다면, 그 사진을 매일 봐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1호 사진은 집 가장 좋은 곳에 식구나 드나드는 사람 모두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모셔놓아야’ 한다. 동료 누군가가 과오를 범하면, 누군가 사진을 가지러 온다. 돌려받은 사진엔 동료의 얼굴이 사라지고 없다. 간부들의 마음속에선, ‘다음번엔 없어지는 인물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자란다. 그래도 사진을 매일 볼 수밖에 없다.
황장엽 탈북, 고난의 행군 대량 아사(餓死)의 책임을 지고 사형당한 농업상 서관히, 국가 전복의 혐의로 비참하게 죽은 장성택의 숙청 직후에는 1호 사진도 여러 번 당 중앙에 불려가는 수난을 겪었다. 당 중앙위원회 행정 담당 비서로 일했던 장성택은 김씨 족속과 찍은 사진이 많아 실무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 중앙에 다녀오면 다녀올수록 1호 사진은 걸레짝이 된다. 사진을 보는 간부들의 마음도 걸레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걸레짝 1호 사진은 숙청으로 얼룩진 김씨 족속의 만행을 증명하는 기념물이다. 그 자체가 역사다. 통일 이후에는, 다른 의미에서 박물관 전시품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간부들은 조금만 더 참아주기 바란다.⊙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07.25 韓美 참수훈련에… 北 “최고존엄, 우리 목숨 다 합친 것보다 귀중”

▲미국이 한국과 연합으로 벌인 특수부대 훈련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해 대북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3일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와 군에 따르면 미국 주도의 세계 최대 규모 다국적 연합해상 훈련인 환태평양훈련(림팩·RIMPAC)에 참여 중인 한국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과 미국 특수부대가 VBSS 훈련을 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홈페이지
한국군과 미군에서 유사시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들이 최근 미국에서 진행한 연합 훈련에 대해 북한 당국이 “북침 도발 책동”이라며 비난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 방송 ‘통일의 메아리’는 25일 웹사이트에 ‘노농적위군 지휘관 박철성’ 명의로 게재한 ‘분노에 치를 떤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괴뢰 군부 호전광들은 미국 본토에서 미군과 함께 조선반도 유사시를 가장한 연합 특수 훈련을 진행했다”고 썼다.
북한 매체가 지목한 훈련은 한·미 양국 특수전사령부 장병들이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9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있는 훈련장 포트어윈 국립훈련센터(NTC)에서 진행한 훈련으로, 국군은 “유사시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 작전’을 수행하는 한·미 특수전부대 대원들이 미 현지에서 함께 훈련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북한 매체는 “이번 훈련에서는 적 후방 침투 및 핵심 기지 타격, 도시 지역 전투, 공중 화력 유도 등 각종 게릴라전과 시가전 연습이 광란적으로 벌어졌다”며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미국과 괴뢰 호전광들이 이번 연합 특수 훈련의 기본 목적이 유사시 북에 먼저 침투하여 ‘지도부 제거’를 노린 ‘참수 작전’ 숙달에 있다고 공공연히 줴쳐댄(지껄여댄) 것”이라고 했다.
북한 매체는 “윤석열 역도(역적 무리)의 집권 이후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서 미국과 야합하여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겨냥한 ‘참수 훈련’을 공개적으로 벌인 사실은 괴뢰 패당의 동족 대결 광기가 어느 지경에 이르고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 매체는 한국 정부에 대해 “미국을 등에 업고 설쳐대며 세계적인 핵 보유국을 상대로 ‘선제 타격’ 나발을 불어댈 때는 정신병자로 여겼지만, ‘참수 작전’을 운운하며 양키 땅에 기어가 ‘참수’ 훈련을 받는 몰골을 보니 인간이기를 그만둔 금수의 무리가 분명하다”고도 했다.
북한 매체는 이어서 “우리의 생명이고 운명이며 미래인 최고존엄을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린다면 그 어디에 숨어 있든 기어이 찾아내 죽탕쳐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 인민과 군대의 기질”이라며 “우리 모두의 목숨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귀중한 우리의 최고존엄을 겨냥한 ‘참수 작전’을 운운한 이상, 윤석열 역적 패당의 괴멸은 시간 문제”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08.11 “원쑤” “너절한 것들” “불변의 주적” 北 김여정의 거친 입, 왜?

▲김여정.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남측을 겨냥해서 “귀축” “불변의 주적” “혐오스러운 것들”이라며 거칠게 비난했다. 대남업무를 총괄하는 김 부부장은 북한의 코로나 사태의 원인을 ‘대북전단’으로 지목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김 부부장은 전날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 토론자로 나서 “이번 국난(國難)은 세계적인 보건 위기를 기화로 우리 국가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반(反)공화국 대결광증이 초래한 것”이라며 “전선 가까운 지역이 초기 발생지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남조선 것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고 했다. ‘대북전단’이 북한 코로나 창궐의 원인이라는 인식이다.
실제 김 부부장은 “효과적인 방역조치들을 강구하는 시기에 남조선 것들이 삐라와 화폐, 너절한 소책자, 물건짝들을 우리 지역에 들이미는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우리가 색다른 물건짝들을 악성비루스 유입의 매개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원인을 남측으로 돌리면서 민심을 관리하려는 의도로 풀이하고 있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방역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코로나 사태로 동요하는 민심을 결속하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북 전단 살포 빌미로 대남 도발을 가하려는 명분 쌓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 부부장은 “이 나라 수백만 부모들에게 끝끝내 고통을 들씌운 주범이 바로 남쪽에 사는 귀축같은 너절한 것들”이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자식·혈육을 잃을까 봐 가슴 조이며 불안 속에 몸부림 쳤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인민들은 원쑤(원수)들에 대한 솟구치는 분노로 치를 떨고 있으며 복수의 주먹을 억세게 틀어쥐고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저 남쪽의 혐오스러운 것들이 동족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가진다면 그보다 더 무서운 자멸행위는 없다”며 “남조선 괴뢰들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주적”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
월간조선 08월 호
◆꽃제비들이 동냥할 때 부르는 남한 노래는?
⊙ 김정일이야말로 韓流 퍼뜨린 元祖… 남한 악보 구해다가 파티 등에서 연주하게 해
⊙ 최고의 인기곡은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는 통일 노래로 둔갑
⊙ 꽃제비들은 ‘최진사댁 셋째 딸’ ‘갑돌이와 갑순이’로 흥 돋운 후 홍수철의 ‘돈 때문에’ 부르며 동냥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2018년 4월 3일 이선희와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김옥주가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 리허설에서 함께 노래하고 있다. 사진=합동취재단
‘파리보다 파리채가 더 많다.’
북한의 한류(韓流) 이야기다. 주민들은 본다. 어떻게든 본다. 당국은 막는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막는다. 한류가 퍼지는 속도만큼 단속반도 늘어난다. 처벌 수위도 나날이 높아진다. 그래서 주민들은 109상무, 727상무, 114상무 등의 단속반을 이렇게 비꼰다.
왜 북한 당국이 필사적인가? 한류가 김씨 왕조의 절대 권력을 허물기 때문이다. 사소한 곳에서 물이 새기 시작한다. 선물은 ‘수령님’만 하사(下賜)할 수 있다. 그런데 남쪽 영상물을 본 젊은것들이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신성모독(神聖冒瀆)이다. 남쪽 말투가 퍼지고, ‘자기야’ 등의 비사회주의(非社會主義) 용어가 돌아다니는 것도 신경 쓰인다.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9월 청년교양보장법으로 칼을 뽑았지만 한류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한류 유포 최대 사형, 한국 영상물 시청 최대 징역 15년’이라며 겁을 주고, 실제로 운동장에서 여러 명을 공개 처형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알려드린다. 북한 당국이 처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1970~80년대에 북한 전역에 한국 문화를 퍼뜨린 원흉(元兇)이 있다. 그이가 없었더라면 한류도 없었다. K-POP, K-드라마 이전에 원조 한류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의 한류 열기는 그이가 깔아놓은 바탕 위에서 디지털 시대를 맞아 콘텐츠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고 유통량이 급증했을 뿐이다.
‘노래의 형상화’

▲북한 영화 발전’을 위해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씨를 납치했던 김정일은 북한에 한류 열풍을 조장한 장본인이다.
김정일은 문화 선전전(宣傳戰)의 위력을 간파했다. 대남(對南) 적화(赤化) 공작 사업의 수단으로 문화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우리의 총포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한 편의 시, 한 곡의 노래가 적들의 폐부를 찌르고 인민들을 혁명의 길로 끌어낼 수 있다. 빨치산 때부터 실천적으로 검증된 것이다”라고 했다. 북한 예술인들이 기억하는 김정일의 명대사다.
김정일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노래로 적들의 심장을 찌르고, 인민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해 남조선에서 대중화된 노래들을 긁어 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들도 목록에 넣었다. 조선중앙통신사 등 관련 부서들에 ‘남조선에 이러이러한 노래들이 있다는데 악보 가져오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특급 기밀자료인 악보는, ‘절대 보안’을 유지하며 악단으로 내려간다. 김정일 본인이 먼저 흥얼흥얼 부르지는 않았다. 자기 생일날이나 술 파티 때 연주를 시켰다. 이것을 ‘노래의 형상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남조선 노래들이 어떻게 밖으로 새어 나오는가? 그때 연주하면서 녹음했던 테이프가 간부들의 손을 거쳐 평양 시민 사이로 흘러나왔다. 카세트테이프 복사본의 음질은 형편없었지만, 문화에 굶주린 인민들에게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통일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북한에서 유행하는 한국 노래로 ‘그때 그 사람’ ‘사랑의 미로’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가 나온다. 1970~80년대를 통틀어, 북한 주민 모두가 즐겨 부른 최고의 남조선 노래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다. 가히 ‘민족 가요’ 수준의 애창곡이다. 영화 〈민족과 운명〉 시리즈 중 1992년 제작본 배경 음악으로 나와 널리 퍼졌다고 알려졌지만,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평양의 대학생들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으니까. 물론 공공장소가 아니라 집에서 불렀다. 영화 개봉 후 북한 전역에 선율이 널리 퍼지면서, 사실상 ‘불멸의 히트곡’이 되었다.
‘통일 가요’로 둔갑한 ‘사랑의 미로’
충성, 총칼, 수령 등의 가사 없이도 노래를 만들 수 있고, 개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북한 주민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나가자’ ‘투쟁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악을 써가며 그런 노래만 불러야 했던 북 주민들에게, 남쪽 노래는 스트레스를 풀고 흥을 돋우는 치료제였다.
최진희의 히트곡 ‘사랑의 미로’는 김정일의 애창곡이다. 칠보산 전자악단에서 이 노래를 편곡해 대남(對南) 공작방송(工作放送)할 때마다 불렀을 정도다. 칠보산 전자악단은 김정일의 개인 밴드로, 김정일 기쁨조의 시초다. 1970년대 노동당 선전부 직속으로 꾸렸다. 기악조 5명, 성악조 6명(남성 1명, 여성 5명) 등 총 11명이 구성원이다. 김정일은 이 노래의 가사를 바꿨다. 원래 가사는 김정일만 부를 수 있었다. 김정일 이외의 모두는 1984년 설립,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윤이상연구소에서 발간한 《통일노래집》에 나온 가사대로 불러야 했다. 다른 사람이 원곡대로 부르면 바로 끌려갔다. 다음은 김정일이 원작자의 허락 없이 개작(改作)한 가사다.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은 알 수 없어요/ 자주(自主) 위해 평화를 위해/ 목숨 바친 그댈 못 잊어/ 그대 작은 가슴에/ 빛을 준 사랑이여/ 언제나 변함없이,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사랑의 미로여~〉
마무리가 ‘아득한 혁명의 미로여~’로 끝나는 판본도 있다는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도 1970년대부터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던 노래다. 노래를 하면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어 집에서 아는 사람끼리 문을 딱 닫아놓고 합창을 했다. 밀정(密偵)이 안 들어오는 이상, 참석자들은 비밀을 잘 지켰다. 다음 노래 모임에 또 초대받기 위해서다.
목숨을 걸고 불렀던 노래도 있다. ‘당신은 모르실거야’의 작곡가 길옥윤이 만든 ‘서울의 찬가’다. 평양에서 울려 퍼진, 평안북도 영변 출신 작곡가가 만든 ‘서울의 찬가’!
꽃제비들의 애창곡
1990년대엔 ‘생계형 노래’도 유행했다. 꽃제비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역전에서 남조선 노래를 부르며 동냥을 빌었다. 흥겨우면서도 친숙한 민요풍의 노래 두 곡이 베스트 레퍼토리였다. ‘건넛마을에 최진사댁에 딸이 셋 있는데~’로 시작하는 ‘최진사댁 셋째 딸’과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로 시작하는 ‘갑돌이와 갑순이’다. 꽃제비들은 어깨춤을 추고, 가사 내용에 맞춰 촌극(寸劇) 비슷하게 공연도 하면서 구걸을 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1939년에 나온 신민요 ‘온돌야화’(김부해 편곡/이병한, 함석초 노래)를 개사, 편곡해서 만든 노래다. 올드팬들은 1965년 본 민요 전문 가수인 김세레나의 버전을 기억할 터이다. 수많은 가수가 부른 것으로도 유명한데, 필자는 나훈아·하춘화 듀엣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1972년에는 노래 가사대로 이야기를 꾸민 영화도 나왔고, 아직도 유치원 재롱잔치나 초등학교 운동회, 장터 등지에서 꾸준히 들리는 명곡이다. 북한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노래가 퍼지다 보니, 최 진사가 최 영감이 되기도 하고, 셋째 딸이 둘째 딸이 되기도 하고, ‘갑순이와 갑룡이’가 되기도 했다.
‘돈 때문에’
이 두 곡을 부르고 나서 꽃제비들은 강렬한 마무리 노래를 불렀다. 박인호 작사/작곡,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홍수환의 동생인 홍수철이 부른 ‘돈 때문에’(1983)다.
〈돈 때문에 속상하고 짠! 돈 때문에 기분 좋고 짠!
돈이란 짠! 무엇이길래 짠! 사람들 울리나 짠!짠!
돈 때문에 출세하고 짠! 돈 때문에 고생하고 짠!
돈이란 짠! 무엇이길래 짠! 사람을 유혹하나 짠!짠!〉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은 중세(中世)로 돌아간 것처럼 사정이 어려웠다. 먹을 것을 찾아 밤낮으로 산길을 걸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조선 시대 소금 장수와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을 헤맸다. 받을 길 없다는 걸 알면서도 꿔준 사람을 찾아 나섰고, 보리쌀 한 홉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 장사 밑천을 동업자가 가지고 튄다. 내가 자는 사이에, 혹은 변소를 다녀오는 사이에 저지른 짓이다. 소문에, 그 ×이 돈을 갖고 혜산으로 튀었다는 말이 들린다. 그 ×을 잡아야 돈이 나오니 추적을 멈출 수 없다. 단천에서 양강도로 넘어간 후 갑산을 지나 혜산으로 들어가며 7일 동안을 걷는다. 산길을 무작정 걸어가며 부른 가사가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울리나’다. 처음엔 연변 노래인 줄 알고 불렀지만, 나중엔 다들 남조선 노래라는 걸 알았다. 울분에 가득 차 주린 배를 움켜쥐고 불렀다. 어쩌면 이렇게 내 심정을 잘 알아주나, 하는 심정으로 목 놓아 불렀다. 원곡은 행진곡풍도 약간 느껴질 만큼 흥겨운데, 북한에서는 처절하게 불렀다고 한다.
‘5분 시청 후 15년 옥살이’
전 세계 언론에 의하면,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역사상 최악의 독재를 하고 있다. 끔찍하고 잔인한 처벌을 동반한 문화 탄압도 그 가운데 일부다. 세계적으로 유행한 〈오징어 게임〉 시청에 따른 처벌, ‘5분 시청 후 15년 옥살이’ 이야기는 언젠가 이 칼럼에서 다룬 바 있다. 북한 당국이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리즈를 시청한 20대 4명을 2021년 6월 3일 평안남도 평성시 경기장에서 공개 처형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남조선 드라마 속 대사나 행동을 따라 하면 엄중 처벌 대상이라고 겁을 줘도 북한 주민은 ‘용감하고 씩씩한 방송’을 보지 않는다. ‘용감하고 씩씩한 방송’은 조선중앙방송을 풍자하는 북한 주민들의 표현이다.
사정이 이 지경이 된 건 다 누구 탓이냐. 한류를 북 전역에 퍼뜨린 작자다. 김정은은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그 작자를 원망해야 한다. 하기야 북 전역에서 한류를 금한다면, 예능까지 다 챙겨 본다는 김정은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다. 한류에 푹 빠진 건 부전자전(父傳子傳)이다. 그래서 충고한다. 혼자만 몰래 보며 즐기지 말고, 북한 전역에 한류를 허(許)하라!⊙
09.23 김정은 올해 공개연설 8번 역대 최다…미·중 의식한 ‘말 시위’
김정은의 말말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이 많아졌다. 공개 연설 횟수는 물론 한국과 미국을 향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며 위협 수위도 높이고 있다. 통상 최고지도자의 언급은 ‘마지막 카드’로 통한다. 정책이 바뀌거나 상황의 반전, 협상 결과를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빠져나갈 구멍, 즉 에러텀이다. 북한 역시 김여정이나 외무상·통일전선부장·대변인 등을 내세우곤 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은 이 마지막 카드를 수시로 꺼내 들고 있다. 제자리걸음인 북·미 협상과 윤석열 정부를 향한 압박 차원인지,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분명한 건 최근 그가 말을 내뱉을 때마다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 앞에 다시 서는 김정은
김 위원장의 첫 대중연설은 그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이었던 2012년 4월 15일 열병식 때다. 당시 그는 “더는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을 포함해 김 위원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 한 해 동안 모두 5차례 마이크 앞에 섰다. 이후 김 위원장의 공개연설은 7차 당 대회와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에 박차를 가하던 2016년(5회)을 제외하곤 1년에 3차례(회의 기간 중 복수의 연설을 1회로 간주) 안팎 수준으로 말을 아꼈다.
집권 후 평균 연 세차례 공개연설
최근 연설 핵심은 선제 핵 타격
중국 체면 세워주며 미국 압박 의도
“담대한” “불가역적” 표현 차용도
하지만 그는 지난해 7차례 공개 연설에 나선 데 이어 올해엔 22일까지 8번 등판했다. 이미 역대 최다를 넘어섰다. 북한이 전승절이라 부르는 정전협정체결일(7월 27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8월 10일), 인민군 군의(軍醫)부문 전투원 접견(8월 18일), 최고인민회의(9월 8일) 등 최근 두 달 동안에는 무더기 연설에 나섰다. 다음 달 10일 당 창건기념일 등의 행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개 연설 횟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동시에 김 위원장은 2019년 이후 축소했던 공개활동도 대거 늘려 ‘하노이의 충격’에서 벗어난 듯한 모양새다. 그는 집권 첫해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동안(1월 1일~9월 22일 기준) 매년 평균 109.8회 공개활동에 나섰다. 지도자에 오른 뒤 현장방문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주민들과 접촉면을 늘려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통일부는 2016년부터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까지 3년 동안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 숫자를 96→72→81회(1월 1일~9월 22일)로 파악했다.
하지만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2019년엔 이전 평균보다 50회 가까이 줄어든 60회에 그쳤다. 2020년엔 같은 기간 40회로 더 줄었다. 하노이 충격에 코로나19가 겹친 탓이다. 공개연설이 늘어난 지난해엔 68회로 보폭을 넓혔고, 올해는 2017년(72회)을 상회하는 73회다. 숫자만으로는 하노이 충격으로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리다 정상수준으로 회복한 셈이다.
조급함인가, 미국에 대한 미련인가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무기 완성을 선언했던 2017년에도 핵위협 강도가 셌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평창 겨울 올림픽에 참가하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나섰다. 올해 초부터 핵실험 움직임을 보여온 북한은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14기 7차) 법령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를 채택했다. 서문과 핵무력의 사명, 구성, 사용 결정의 집행, 사용원칙, 사용조건, 동원태세, 유지 관리 등을 담은 11개조의 법령이다. 위협을 느끼면 핵으로 선제타격하겠다는 점도 명기했다. 2013년 최고인민회의 결정(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에선 핵으로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만 보복하겠다고 했던 북한이다. 핵을 이용한 보복공격이 선제타격으로, 공격 대상은 ‘핵보유국’(2013년)에서 ‘핵보유국과 야합하는 비핵국가’로 넓혔다. 적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선제타격’ 개념이나 김 위원장이 지난 8일 시정연설에서 법령 채택을 두고 “담대한 정치적 결단”, “불가역적인 국가의 지위 확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담대한 구상)과 국제사회가 북한을 향해 던졌던 선제타격(작전계획 5015)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의 비핵화 원칙(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을 모방한 어깃장일 수 있다.
북한은 왜 이 시점에 핵 무력 법제화를 들고 나왔을까. 중국은 다음 달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하는 당 대회를 예정하고 있다. 중국은 대형 정치행사를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으로 재를 뿌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북한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북한은 핵 무력의 법제화 카드, 즉 무력시위가 아닌 말(言) 시위를 통해 중국의 체면을 세우면서도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북한이 핵 무력 관련 법령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이 아닌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채택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최고인민회의는 첫날(7일) 회의에서 사회주의농촌발전법과 원림녹화법을 채택했는데 두 가지 모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이다. 이에 비해 핵 무력 법령이 다소 무게가 떨어진다. 나아가 북한이 법령의 전문(全文)을 즉각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극도로 보안을 유지하는 전략무기와 관련한 내용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22일 북한 국방성은 “불법무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라는 것을 애초에 인정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우리는 지난 시기 러시아에 무기나 탄약을 수출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는 담화를 냈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했고, 이는 대북제재 위반이라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 국방부의 언급에 대한 반박이다. 북한이 여전히 미국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 러시아 화물 열차 운행 움직임도
북한이 이르면 다음 주 중국과, 그리고 머지않은 시점에 러시아와 열차 운행을 재개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대북제재와 국경봉쇄로 경제난이 심하다는 방증이다. 과거의 북한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침묵으로 일관했다. 스위스 유학파인 김 위원장은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여기면서도 미국과 관계 개선이 근본 문제 해결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을 거다. 미국에 선을 그으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배수의 진을 치며 자주 등판하는 이유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무서운 법이다. 일부에서 북한의 비핵화 노력과 동시에 한국의 핵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미는 북한의 움직임에 맞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적극 활용하려는 논의가 한창이다. 남과 북, 미국 모두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는 꼴이다. 반면 북한이 흔들고 있는 핵 위협 카드가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은 이전보다 줄어든 분위기다. 김 위원장의 말 시위가 실제 핵실험으로, 전술핵 무기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핵 강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모습에서 핵이 만능의 보검이 될 수 없음을 북한이 깨달아야 한다.
레고 머리의 가수, R&B도…달라진 북한 공연

▲북한이 정부수립 74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평양 만수대 언덕의 야외 특설무대에서 대규모 공연을 했다. 이날 정홍란(큰사진, 왼쪽 작은 사진)은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의 레고머리 모양으로 무대에 섰다. 그는 또 북한 가수들이 좀처럼 입지 않았던 바지정장 차림으로 공연했다. [뉴스1]
북한은 정부 수립 74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평양의 만수대 언덕에서 대규모 경축공연을 했다. 2시간 15분여 진행한 공연은 지금까지 북한에서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 여럿 나왔다. 우선 국회의사당격인 만수대의사당 건물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대규모 배경 화면에, 지난 7월 27일에 이은 야외공연이었다. 최근 평양음대를 졸업하고 공연단에 합류한 김유경은 1948년 만들어진 ‘인민공화국 선포의 노래’를 R&B 스타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무대에 등장한 가수들의 외모다. 지난 7월부터 선보인 정홍란은 이날도 일명 레고머리로 불리는 바가지(풀뱅)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파격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탈리아계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가 유행시켰던 머리모양이다. 바지 정장 차림의 그는 역시 바지 정장 차림의 백댄서와 무대를 함께 하기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직후 가수와 악단 모두 여성들로만 구성한 모란봉 악단을 창단해 미키마우스와 팝송을 연주토록 했다. 이들은 미니스커트와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를 입어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때 방한 공연을 위해 구성된 삼지연 관현악단 가수들이 숏 팬츠를 입기도 했지만 이후 북한 가수들의 패션은 복고풍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다시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에서 여성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복이나 치마 정장을 입도록 강요한다”며 “이번 공연은 한국이나 외국 문화를 접한 젊은이들을 의식한 변화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9년을 기해 한국과 서방 문화 접근을 법적으로 막고 있는데 북한 연예인들의 화려함을 통해 북한 젊은이들의 문화적 굶주림을 해소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10.07 북한 군복무 1년만 줄여도 주민 삶 좋아져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식량난에도 미사일 최대치 도발
백신 지원 수용 등 변화 나서야
12월 인도 안보리 좌장 때 기회
지난달 세계식량기구(WFP)는 올겨울 북한의 농작물 수확이 가뭄 등으로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 정권이 코로나 확진자 수 보고를 중단해 실제 상황은 드러나지 않지만, 상황이 악화일로임은 불문가지다.
▲2020년 9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 모습. 북한내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이다. [교도=연합뉴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은 제재에 더해 국제금융시스템과도 단절돼 있다. 신용도가 깎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과 거래하려는 국제 은행은 없다. 그런데도 북한은 올해 들어 역대 가장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이 주권을 지킨다고 주장하지만, 미사일로 주민을 먹여 살릴 수도, 코로나를 멈출 수도, 우방을 만들 수도 없다.
문제 해결 방안으론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기본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주민에게 다양한 매체를 접할 자유를 주고, 강제수용소를 해체하고, 한국의 형제들과 통일 논의를 시작하는 게 최선이지만, 이는 현실과는 먼 얘기다. 북한은 통일을 정권의 자살행위라 여긴다. 김정은 정권 외 대안이 있다고 생각할 자유를 주민에게 줄 리도 없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용기를 내서 다음 네 가지 방안을 받아들이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도 상황을 완화할 수는 있다. 이 중 하나만 실행해도 정권 입지가 강해지고 주민 삶도 개선될 것이다.
먼저 중국 등 외부의 코로나 백신 지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분량은 부족해도 북한 정권에 매우 중요한 평양 엘리트 집단의 면역은 가능하다. 대대적으로 선전한 '코로나 종식'을 뒤집지 않고도 재확산 방지 차원이라고 하면 된다. 최근 한 지인은 북한 관리로부터 백신 지원을 받는 걸 고려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는데, 그러길 기대한다.
둘째, 식량·연료 등 수입 결제에 필요한 외화 확보를 위해 교역을 재개해야 한다. 코로나 유입 문제는 차량 점검 등 방역으로 해결할 수 있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래 지속한 유엔안보리 제재 전부는 아니어도 최근 적용된, 경제의 숨통을 죄는 일부 제재라도 해제해야 가능하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와 전체 제재를 바꾸자고 주장해 파국을 맞았다. 미국 외교관들은 필자에게 당시 미국이 일부 제재 해제 방안을 준비했었다고 밝혔다. 사실 대북 제재는 미국의 독자 제재보다 안보리 제재가 중심이다. 안보리 의장국과 직접 협상할 수도 있다. 오는 12월 유엔 안보리 의장국은 인도로 바뀌고, 내년 4월엔 러시아가 맡는다. 북한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나라들이다.
제재가 부분 해제되면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투자 유치도 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 대북 투자에 나선 기업들은 투자금을 뺏기고 파산했다. 북한 당국은 중국 자금엔 감히 손을 못 댔다. 중국 섬유기업은 수익을 냈다. 강력한 투자 보호책을 담은 법을 만들고 북한이 안전한 투자처라는 확신을 준다면 과거 운영했던 경제특구도 북한 발전의 주력으로 부활할 것이다.
셋째는 청년들의 군 복무 기한 단축이다. 1993년 이후 공식적인 군 복무 기간은 10년이다. 1년만 줄여도 효과는 엄청나다. 젊은 노동력을 민간 부문으로 돌리면 북한 사회 전체가 환영하고 군으로 갈 곡물 양이 줄면 농민들은 남은 작물을 팔 수 있다. 이게 동기 부여가 돼 작황은 더 좋아진다. 북한 정권이 민심을 얻는 길이다.
넷째, 형사법 체계 일부 개혁이다. 주민에 대한 공포정치는 정권 유지에 필수여서 정치범 수용소 폐쇄까진 못하겠지만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수감자를 줄일 수는 있다. 가족까지 가두는 관행을 없애면 된다. 한 탈북자는 필자에게 가족까지 수감하는 게 비용만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이를 바꿔야 한다는 내부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강제노동을 통한 수용소 수입이 정치범 가족들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할 때 내는 경제성과 비교가 되겠는가. 더욱이 북한 정권이 국내와 국제사회로부터 박수받을 일이다.
대책 없이 낙관적인 제안일까. 김여정의 최근 섬뜩한 발언을 볼 때 북한 지도부가 이런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2017~2018년, 대치에서 대화로 급변한 과거를 보면 위 제안보다 더 급진적 변화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희망의 샘은 마르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10.15 北, 150대 출격 선전했지만… 고철 전투기 띄우다 추락도
軍안팎 “구형 미그기·훈련기 모아
실제 동원된 전투기 40여대 불과
연료 부족·노후화로 엔진 결함”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전선장거리포병구분대들과 공군 비행대들의 화력 타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좌측 상단의 사진에서 일부 북한 전투기의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북한이 최근 전투기 150대를 동원해 훈련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는 40여 대에 불과하고 일부는 연료 부족 등으로 정상 비행을 하지 못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추락한 전투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안보 소식통은 이날 “북한의 ‘150대 훈련’ 보도에는 과장이 많다”며 “구형 미그기와 무장이 없는 훈련기까지 긁어모아 40~50대 정도를 띄웠으며 4대는 연료 부족으로 정상 비행을 못했고 추락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실전 훈련을 자주 하지 못한 탓에 편대 비행 등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북은 지난 8일 ‘대규모 항공 종합 훈련’을 했다고 보도했지만 내부 선전을 위한 과장이 많고 곳곳에서 허점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 노동신문이 공개한 전투기들의 훈련 사진을 보면 공중에 뜬 20여 대의 전투기 중 일부가 엔진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군 전문가는 “북한 공군 전력이 엉망인 상황에서 훈련기까지 긁어모아 보여주기식 훈련을 하다 보니 노후화한 기체의 엔진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북한 공군은 800여 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체 노후화가 상당한 상태에서 국제 제재 때문에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어 실제 운용 비율은 10% 정도일 것이란 분석이 많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지난해 위성 사진 분석을 통해 북한은 75대 정도의 ‘현대식’ 공격기를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 공군 출신 탈북민은 “북한 공군은 항공유 부족에 따른 조종사 훈련 부족 등으로 정상 운용이 어렵다”며 “이런 문제 때문에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더 열을 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11.04 ‘후사’ 언급한 김정은, 4대 세습 시동 거나
당 중앙간부학교서 처음 말해
최근 ‘핏줄기’ 강조는 세습 의미
金 장남 이름 ‘주은’이란 설도
전술핵 물려주려 폭주하나
북한 김정은이 지난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에서 ‘후사’라는 말을 썼다. 핵 강국 건설을 자랑하면서 “50년, 100년, 몇 백 년의 후사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유능한 당 일꾼을 키워내라”고 했다. 후사(後嗣)란 대를 잇는 자식이란 뜻이다. 김씨 정권의 인재 기반인 중앙간부학교에서 ‘후사’를 거론한 것이다. 당 간부 출신 탈북자는 “최근 김정은이 ‘혈통’ ‘후사’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4대 세습의 시동을 걸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달 75년을 맞은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해서도 “만경대(김일성 출생지)의 혈통을 억세게 이어나가자” “주체의 핏줄기”를 강조했다. 만경대학원은 김일성을 돕다가 사망한 동료들의 자녀가 입학하는 교육 기관이다. 김정일도 여기 출신이다.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뤄질 때 반대 의견을 앞장서 잠재운 것도 만경대 출신들이라고 한다. 김정은은 핵·미사일 폭주를 하면서 ‘세습’의 그림자를 내비치는 모습이다.
정보 당국 등에 따르면 김정은은 1남 2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전에 첫 아이를 얻었는데 아들이라고 한다. 지금 12~13세쯤으로 추정된다. 정보 소식통은 “이후 두 딸을 낳았는데 막내딸은 작년쯤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두 딸 중 큰딸의 이름이 ‘주애’로 알려져 있다. 2013년 미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은 김정은 초청으로 방북하고 나서 “나는 그들의 딸 주애(Ju-ae)를 안았다”고 했다.
김정은 장남의 이름은 알려진 게 없다. 북한군 간부 출신 탈북민은 “해외에서 북한 최고위층 자제를 호위한 적이 있다”며 “그가 말하길 두 자녀의 이름은 ‘주은과 주애’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딸이 주애라면 주은은 아들이 된다. ‘주은’이라는 이름은 부인 리설주의 ‘주’와 김정은의 ‘은’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했다. ‘주애’는 리설주를 사랑한다는 뜻이 담겼다고도 전했다. 우리 정보 당국자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아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딸은 평양에 있는 것이 확인되는데 아들은 흔적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평양에 있다면 작은 소문이라도 들릴 텐데 ‘아들이 있다’는 얘기 외에는 들리는 게 없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했던 것처럼 아들도 외국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14살 무렵 스위스에서 ‘박운’ 등의 가명을 쓰며 유학했다. 친구와 선생님은 김정은이 ‘북한’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유학생인 줄 알았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을 돌봐준 것이 리수용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였다. 리수용은 김정은 집권 후 외무상에 발탁된다.
김정은 아들도 해외 유학 중일 가능성이 있다. 어디일까. 이와 관련해 지재룡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가 의심스럽다는 얘기가 들린다. 2010년 주중 대사로 부임한 지재룡은 2013년 말 숙청된 ‘친중파’ 장성택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환돼 숙청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새 주중 대사로 리용남이 부임했는데도 지재룡이 귀국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코로나 봉쇄 때문이라고 하지만 여러모로 이상하다.
김정은은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갑작스레 후계자로 내정됐다. 급한 세습 과정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김씨 일가는 북한 땅을 자기들의 ‘사유지’로 여긴다. 북 주민들은 농노나 다름없다. 누군가가 후사의 ‘사유지’를 넘보는 것을 막으려면 핵무장을 서둘러야 했을 것이다. 핵을 가진 ‘4대 세습자’까지 봐야 하나.
조선일보 안용현 정치부 차장
11.10 北 최고위층도 은퇴 후 빈곤층 전락...김여정이 준 식자재로 구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4일 리재일 전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사망했다고 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대북제재와 ‘코로나 19′ 장기화로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퇴직한 북한 고위층도 물자를 공급 받지 못해 빈곤층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혁명선배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지만 일단 간부자리에서 은퇴하고 나면 ‘성(城) 쌓고 남은 돌’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북한의 괴벨스로 불리던 리재일 전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도 은퇴 후 빈곤에 시달리다 김여정 부부장이 옛 상관을 배려해 물자를 공급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리재일은 2018년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서 물러난 직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선전부 고문의 직함을 가졌지만 중앙당 재정경리부에서 공급하는 물자공급 대상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정·군 고위간부들에게 식량과 식자재, 생필품 등을 정기적으로 공급하는데 은퇴한 간부들은 여기서 제외된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리재일은 평양시 보통강구역 전승동에 위치한 선물아파트에 살았지만 퇴직금도 없고, 재직 기간 챙긴 뇌물도 없어 빈곤한 생활을 했다”며 “리재일의 딱한 사정을 보고 받은 김여정이 한때 상관이던 리재일에게 물자 공급을 해주라고 지시해 지난해 사망 때까지 특별공급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여정은 2014년 11월 당 핵심기구인 선전부 부부장에 기용돼 당시 제1부부장이던 리재일과 호흡을 맞췄다. 김여정이 선전부를 맡으면서 리재일을 포함해 선전부의 고위간부들이 줄줄이 혁명화 처벌을 받기도 했다.
북한 간부들은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 노후 준비와 자녀들의 장래 문제 해결을 위해 뇌물을 받아왔지만 김정은이 최근 부정·부패 청산의 칼을 휘두르면서 뇌물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안보부서 관계자는 “김정은이 주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간부들의 뇌물이나 부정청탁 등 부정부패 청산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간부들이 예전처럼 뇌물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은퇴하면 퇴직금도 없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탈북민 A씨는 “당 조직지도부 간부과나 당원등록과 등 인사를 담당한 실세부서의 간부들은 앉아서도 뇌물이 들어오지만 타 부서 간부들은 뇌물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고위급 탈북민 B씨는 “김정일·김정은의 측근으로 활동하던 간부도 은퇴하는 날부터 찬밥 신세”라며 “고위층에 있다가 은퇴한 친척의 집에 갔더니 한겨울에 냉방에서 전기도 없이 사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11.18 38세 때 김일성은 전쟁, 김정일은 후계자 등극, 김정은은?
북 최고지도자 3대의 길
인민복을 입은 김일성 주석(1994년 사망)이 한반도 지도가 걸린 방에서 “친애하는 동포들”로 시작하는 육성연설을 1분 동안 이어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 직후 상황이다. 당시 내각 수상이던 김일성은 연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조성된 정세를 토의하고 우리 인민군대에 결정적 반공격전으로 싸워 적의 무장력을 소탕하라고 명령을 내리였다”고 연설을 끝냈다. 한국군이 북침했는데, 북한군이 이를 격퇴하고 반격에 나섰다는 주장이 이날 연설의 골자다.
한·미에 대한 북한의 반응 달라져
‘말대 말’ ‘행동대 행동’ 위기 고조
김정은 “핵물질 쟁여놓으라” 첩보
이달 초 미사일 장면 4월 것 재탕
미국 “북한 핵사용하면 정권 종말”
전쟁 위협보다 평화의 길 걸어야
김 주석이 6·25전쟁을 일으킨 1950년, 그의 나이 38살이었다.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나이와 같다. 할아버지(김일성)-아들(김정일)-손자(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구축한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38세가 되는 해에 한반도엔 ‘격변’이 벌어진 건 공교로운 일이다.
북한이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라는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켰고,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은 38살에 공식 후계자로 등극했다. 1970년대 초 이미 후계자에 내정된 김정일이 38살 된 80년에 ‘후대 수령’으로 공식 발표됐다. 이후 김정일은 미사일과 핵개발을 주도하고 직접 챙겼다고 한다. 북한에선 김정일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위기 속에서 ‘사회주의 조선’을 지켜냈다고 칭송을 받는다.
빨치산 전술에서 맞짱 전술로

▲김일성 주석이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후 한반도 지도가 걸린 방안에서 육성연설을 통해 전쟁 발발 소식을 알리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28살이던 2012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김정은 위원장은 사회주의의 완성과 인민 복지를 내세웠다. 할아버지가 ‘세우고’, 아버지가 ‘지킨’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완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애민사상을 내세우며 북한 주민들의 의식주 문제 해결에 매진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올해 38살이 된 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을 향해 ‘할아버지가 일으킨 전쟁’을 연상시킬 만큼 위험한 행보를 하고 있다.
2017년 아버지(김정일)가 시작한 핵개발을 완성했다고 선언하고 이듬해 핵 실험장을 폭파했던 그가 올 들어 핵 실험장을 복구했다. 지난 9월 선제 핵공격을 강조하는 법을 만들고 최근엔 전술핵무기 장착 가능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지난 2일엔 분단 뒤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 해역에 미사일을 떨궜다. 한국군, 한·미연합군 훈련 때마다 매번 미사일과 포격으로 맞서며 위협 수위를 높이기도 한다. 미국이 확장억제력을 강조하자 최선희 외무상이 “군사 대응은 더욱 맹렬해질 것”이라며 위협했다. 북한이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행동대 행동’ 과 ‘말대 말’ 방식으로 맞짱 전략을 구사하는 양상이다. 과거 상대방의 방심을 틈타 공세에 나섰던 빨치산 전술의 변화다.
북한이 엄포만 놓는 게 아닐 수도 있다. 7차 핵실험 가능성은 올 초부터 계속 주목을 끌어 왔다. 이번 핵실험은 소형 전술핵무기 실험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7차 핵실험으로 전술핵을 완성하면 전략핵무기만 있을 때보다 더 세밀해진 위협을 감당해야 한다.
북한은 아직 레드라인을 넘지 않고 있다. 어쩌면 핵 실험장을 복구하고 영변의 핵시설 가동을 멈추지 않는 등 ‘시늉’을 하면서 주변국이 긴장하는 걸 즐기는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이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물질 보유량을 늘리라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는 첩보도 있다고 한다. 첩보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당분간 핵물질을 ‘낭비’하는 핵실험보다 시늉에 집중하며 간 보기를 할 가능성도 있다.
핵실험 강행으로 한층 강해질 제재에 견디려면 ‘창고’가 차 있어야 하지만 이미 쪼그라든 경제 때문에 쉽지 않다는 점도 핵실험을 안 하는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한동안 사라졌다가 복귀하면서 대형 ‘사고’를 쳤던 일들이 몇 차례 있었다. 공개활동을 중단한 채 새 전략을 가다듬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준비하는 식이었다. 김 위원장이 지난 9월 9일 정부수립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두문불출하다가 한 달이 지난 지난달 10일 나타나 전술핵 운용부대 군사훈련을 지도했다고 밝힌 것이 가장 최근의 사례다. 당시 한국을 위협하는 미사일과 공군기 훈련 등 군사 행동 9가지를 공개했다. 지난달 17일 모교인 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했던 김 위원장이 다시 한 달 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내년 초 시정연설이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발표할 새로운 ‘충격적’ 전략을 준비하는 건 아닌지….
중국이 북한을 자제토록 해달라는 한국의 요구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거나 실제로 ‘내 갈길’을 선택한 북한을 제어할 능력도 없어 보이는 점도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 주석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계획을 지지할 수 있다고 했지만 “북한이 응한다면”이라고 조건을 붙였다.
공개석상에서 또 사라진 김정은
북한의 도발 강도가 세질 때마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해 경고하는 한·미의 대응 방식은 이미 효력이 떨어진 듯하다. 북한의 위협은 잰걸음인데 대응은 예전 그대로다. 한국 미사일이 뒤로 발사되거나 어디에 떨어졌는지 파악조차 못 한 일도 화근이다. 전투기에서 발사한 첨단 미사일이 불발한 일도 있었다. 김 위원장도 낱낱이 파악할 것이 분명한 사안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북한이 아직은 엉성하다는 점이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괴물 미사일’ 화성-17형은 최근까지 발사에 성공하지 못했다. 증거로 제시한 미사일 발사 장면 사진이 옛날 것이거나 포토샵으로 ‘아름답게’ 포장한 일도 많았다. 한·미 연합훈련인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한다며 이달 초 쐈다고 공개한 사진(노동신문 7일 2면)이 4월 17일자 KN-23발사 장면과 티끌까지 겹친다. 한·미 정보당국이 파악한 발사 원점과 차이가 있거나 발사 종류가 다른 경우도 있다. 기만책일 수도 있지만 공개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지난주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세 나라가 공동으로 북한 위협에 대응키로 합의했다. 김 위원장이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6·25를 일으킨 김일성은 미국이 한국을 극동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이 발표된 것을 호기로 삼았다. 그러나 올해 미 국방부는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정권의 종말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2 핵태세 보고서) 한국군의 무장 수준이나 조국 수호 결의도 그때와는 천양지차다.
김정일 시대 북한은 자폭정신, 총폭탄 정신을 강조하곤 했다. 자폭(自爆)은 내가 희생함으로써 국가를 살리는 정신이다. 북한이 핵을 가졌다고 선언한 뒤로는 자폭정신을 강조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지금 시대에 핵무기 사용은 ‘자신을 터트리는’ 자폭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가 38살 때 일으킨 전쟁을 코스프레하기보다 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공동선언, 2018년 판문점 선언을 되새겼으면 한다.
북한에 어머니날은 있고, 어버이날은 없는 이유
11월 16일은 북한의 ‘어머니날’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첫 해인 2012년 어머니날을 제정했고, 2020년부터는 공휴일로 정해 대대적인 축하행사와 함께 어머니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머니날은 한국의 어버이날에 해당하는데, 김일성 주석이 생전인 1961년 1차 전국어머니대회를 주관한 날이 기원이라는 게 북한의 설명이다.
북한이 별도로 어버이날 또는 아버지날을 두지 않은 건 정책적으로 여성을 우대하는 사회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차원이다. 북한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법을 제정했는데, 봉건적인 억압에서 여성을 해방한다는 논리였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북한에서 여성을 우대한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차원일 수 있다.
북한 사회에서 ‘어버이’라는 말이 수령을 뜻하는 정치적 용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은 어버이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울러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사전은 동시에 “‘인민대중에게 가장 고귀한 정치적 생명을 안겨주시고 친부모도 미치지 못할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분’을 끝없이 흠모하는 마음으로 친근하게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적고 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에선 어머니당, 아버지 장군님, 어버이 수령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며 “육체적 생명은 유한하지만 정치적 생명은 무한하다는 논리(사회정치적 생명체론)를 펴고 있는데 정치적 생명을 더욱 중요시하는 북한이 어버이날이라고 할 경우 이런 논리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11.19 김정은, '똑닮은 딸' 손 잡고 ICBM 쐈다…"핵엔 핵으로 답할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 자녀를 처음으로 공식 공개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이 19일 전날 있었던 '화성-17형' 발사 소식을 전하면서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와 함께 몸소 나오시어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고 밝히면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딸과 손을 잡고 '화성-17형' 앞을 걷는 모습. 북한은 19일 관영매체를 통해 김 위원장의 딸을 처음 공개했다. 뉴스1
매체들은 이름 등 자세한 신상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의 딸이 김 위원장과 함께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사진에는 흰색 패딩과 빨간 신발을 신은 여자아이가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미사일 옆을 걷거나 발사 장면을 함께 지켜보는 장면이 담겼다. 이날 시험발사에는 김 위원장의 배우자인 이설주를 비롯해 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도 동행했다. ICBM 도발 현장에 김 위원장 가족들이 총출동한 모습이다.

▲노동신문은 19일 김 총비서가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지휘했다고 보도하며 그가 딸과 함께 발사 현장을 찾은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뉴스1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의 자녀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일지도체계를 가진 북한의 특성상 '후계자' 후보군이 될 수 있는 최고지도자의 자녀 수나 성별·나이 등 구체적 정보는 대부분 베일에 싸여있다. 북한 당국이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나 정보당국의 분석 등에 따르면 2009년에 결혼한 김 위원장과 이설주는 2010년과 2013년, 2017년 자녀를 출산해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의 시험발사를 지휘했다고 19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북한은 김 총비서의 딸이 현장에 동행해 발사를 참관한 사실도 공개했다. 뉴스1
지난 2013년 북한을 방문한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인 데니스 로드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은의 딸 주애를 만났다"며 김주애가 김 위원장 부부의 둘째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이날 매체들을 통해 공개된 여자 아이가 김 위원장의 몇 번째 딸인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위원장이 ICBM 시험발사 현장에 가족까지 대동한 것을 두고 미사일 능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족들과 함께 화성-17형 발사 현장을 찾은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오른쪽 하단 사진의 하얀 점퍼를 입은 인물이 김 총비서의 딸이다. 뉴스1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화성-17형 발사 성공에 대한 자신감 과시한 것으로 실패가 예견되었다면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족들의 시험발사 현장 참여가 ICBM 개발 및 운용에 참여하는 국방과학자, 전투원들에 대한 사기 진작, 격려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이 미사일 발사 현장에 김 위원장이 가족을 대동한 것은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위원장이 지난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북한군 전술핵운용부대의 훈련을 지휘했던 당시에도 배우자 이설주가 무력시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지난 9월 29일부터 보름간 진행된 전술핵운용부대 군사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2012년 김 위원장 집권과 동시에 그의 생모 고용희의 영상과 육성이 담긴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을 공개한 바 있다. 매체들이 지난달 공개한 이설주의 미사일 발사 참관 모습은 고용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모습이 담긴 이 기록영화의 장면과 묘하게 매칭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지난달 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해 "50년, 100년, 몇 백 년의 후사(後嗣)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유능한 당 일꾼을 키워내라"고 언급했던 대목을 주목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김정은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50년 100년 뒤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으로 추정된다"며 "아직 30대이지만 후계까지 염두에 두고 백두혈통인 자신들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우상화 작업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의 생전 육성이 포함된 기록영화의 모습.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 현지 시찰에 동행한 고영희의 모습을 주로 담고 있는 이 영상은 우상화를 위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KBS 캡쳐, 뉴시스
한편 김 위원장은 전날 미사일 시험발사를 현지 지도하면서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날 북한 관영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험발사 성공을 확인한 뒤 "우리의 핵무력이 그 어떤 핵위협도 억제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또 다른 최강의 능력을 확보한 데 대하여 재차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해들려는 적들의 침략 전쟁연습 광기에 우리 당과 정부의 초강경 보복의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며 "미제국주의자들이 동맹국들에 대한 '확장억제력제공강화'와 전쟁연습에 집념하면서 조선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군사적 허세를 부리면 부릴수록 우리의 군사적대응은 더욱 공세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의 시험발사 장면. 뉴스1'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점을 과시하면서 체제결속은 물론 한·미·일의 확장억제 강화에 대한 강한 반발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매체들은 이번 ICBM이 평양국제비행장(순안공항)에서 발사됐으며 최대 정점 고도는 6040.9㎞, 비행거리는 999.2㎞, 비행시간은 4135s(1시간 8분 55초)를 기록했으며 "동해 공해상의 예정 수역에 정확히 탄착됐다"라고 전했다. 이는 전날 군 당국이 비행 거리 약 1000㎞, 최고 고도 약 6100㎞로 각각 탐지한 것과 유사한 수치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11.22 北 병사들, 어머니날 편지 썼다가…
북한에서 ‘어머니날’은 11월 16일이다. 한국은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의 날’로 제정했다가 1973년에 ‘어버이날(Parents’ Day)’로 바꿨다. ‘어머니의 날’은 5월 둘째 일요일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기념되는데(be most commonly celebrated around the world), 다른 날짜에 오도록(fall on other dates) 한 나라들도 있다.

▲/일러스트=최정진
북한의 어머니날은 김정은 정권 첫해인 2012년 처음 도입됐고, 2015년에 공휴일이 됐다(become a public holiday). 11월 16일은 김일성이 1961년 ‘자녀교양에서 어머니들의 임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한 날짜를 기념해 정해졌다(be chosen in remembrance of the speech). 그런데 북한에는 어머니날은 있지만, 어버이날은 없다. 어버이나 아버지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가문을 지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은 지난 16일 어머니날을 앞두고(ahead of the Mother’s Day) 모든 병사에게 편지를 쓰라고 명령해 놓고는 절반 이상을 폐기 처분했다(destroy more than half of the letters). 그리고 그런 편지를 쓴 병사들에게 사상적 이유로 처벌을 내렸다(punish them for ideological reasons). 내용을 검열해 문제 병사들을 가려내는 수단으로 삼은(use the contents to identify problematic soldiers) 것이다.
편지는 두 단계의 검열을 거치도록(pass through two rounds of censorship) 했다. 먼저 중대 단위 보위군관들에 의해 개봉돼 검열을 받는다(be opened and censored by the company security officers). 그리고 연대 본부에 집결시켜 보위사령부 요원들이 다시 검열한다. 여기에서 따로 분류된 편지들(the letters sorted out)을 통해 사상적 의지가 약한 병사들 명단을 작성한다(make a list of soldiers with weak ideological wills).
다시 말하자면(in other words) 편지 내용 중에 굶주림이나 피로함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complain about hunger or fatigue) 병사들은 곧바로 사상 재교육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군대 생활이 고달프다며(be arduous) 어머니가 그립다는 따위 말을 하는 자도 반동분자(reactionary element)로 분류된다. 설상가상으로(to make matters worse) 편지에 불평불만 한마디 적지 않았는데 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어머니에게 잘 지내시느냐고 묻는 ‘실수’를 했다가(make the ‘mistake’ of asking about their mothers’ wellbeing) 걸려들기도 한다.
RFA 취재원에 따르면, 한 병사는 “집이 최근 홍수에 무너지지는(collapse in the recent flood) 않았는지요? 농사는 잘됐나요?”라고 물었다가 편지는 폐기 처분되고 사상 재교육 시설에 수용됐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이끄시는 당을 믿지 못하고, 당이 모든 주민의 삶을 보살펴준다는(take care of the lives of all citizens) 사실을 신뢰하지 못하는 반동적 소리를 나불댔다”는 이유였다.
조선일보 윤희영 에디터
11.29 北 “소라·가희 같은 한국식 이름, 반사회주의적… 혁명적으로 바꿔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6일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정”이라며 “사회주의 미덕”을 강조했다. 사진은 90세 생일을 맞은 인민군 노병 김초심(가운데)씨를 축하해주는 제자들의 모습이라며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 /북한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주민들에게 올 연말까지 한국식·외국식 이름을 ‘혁명적’인 이름으로 고치라고 지시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8일 보도했다.
RFA에 따르면, 함경북도의 한 북한 주민은 “요즘 당국이 주민들에게 ‘사상성’이 없는 주민들의 이름을 사법기관에 찾아가 바꾸라고 지시했다”며 “개인의 이름을 국가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게 바꾸라고 강제하는 것이어서 주민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지난달부터 인민반별 주민회의에서 ‘받침이 없는 이름을 전부 고치라’는 통보가 연속적으로 내려지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 받침이 없이 지은 이름들은 다 정치적 내용을 담아서 ‘혁명적’으로 바꿀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과거에는 북한에서 ‘충성’과 ‘일심단결’에서 따온 ‘일심’ ‘충심’, ‘충성’과 ‘총폭탄’ ‘결사옹위’에서 따온 ‘총일’ ‘폭일’ ‘탄일’ 등을 이름으로 많이 썼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주민들의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아리’ ‘소라’ ‘수미’ ‘가희’ 등을 이름으로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받침 없이 단순하게 지은”이름에 대해 북한 당국이 “반사회주의적이며 사대주의적”이라며 이름을 고칠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자식들 이름조차 마음대로 짓지 못하게 하는 당국의 지시에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주민들이 ‘시대의 요구대로 이름을 지으라고 강요하는데, 그러면 굶주리고 억압받는 현 시대를 반영해 아이들의 이름을 지으라는 것이냐’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RFA는 전했다.
RFA에 따르면, 양강도의 다른 주민도 “당국이 정치적 고려 없이 지은 이름에 벌금을 물리겠다며 당장 고치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고 전했다. 이 주민은 “반사회주의식 이름을 즉시 바꾸라는 지시는 지난 10월부터 매번 주민회의 때마다 강조되고 있다”며 “퇴폐적인 서양 문화, 양키 문화의 복사판인 괴뢰(한국)식 말투를 쓰지 말라는 지시와 함께 멀쩡한 이름을 변경하라는 지시가 계속해서 하달되고 있다”고 했다.
이 주민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름 하나라도 집단주의에 기초한 우리식 사회주의의 본성적 요구와 정치적 고려 없이 짓는 것은 당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반당적 행위”라고 강조하고, 이름을 ‘한국식’ 또는 ‘외국식’으로 짓는 것에 대해 “사대주의 사상을 우리 내부에 퍼뜨리는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이기에 처벌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주민은 “이름을 끝내 바꾸지 않을 경우 실제로 벌금을 물릴지, 벌금이 얼마가 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며 “하지만 주민들은 ‘인간이 기계 부품도, 가축도 아닌 다음에야 어찌 제 이름 하나 마음대로 지을 수 없게 하느냐’며 당국의 횡포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12.01 "무장군인도 속수무책 당했다"…'금괴 200㎏' 강탈 당한 北 발칵

▲평양 인근 고속도로 모습. RFA 홈페이지 캡처
북한의 신의주-평양간 1호 국도에서 중앙으로 올라가던 금괴가 강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북한 전역에 초비상이 걸렸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평안북도에는 북한의 주요 금 생산기지인 정주제련소와 운전제련소 등이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금은 대부분 당 자금을 관리하는 당 39호실로 보내지며 일부는 조선중앙은행에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RFA에 따르면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은 “요즘 신의주 일대는 국가보위성과 안전성의 조사조(조사반)가 내려와 발칵 뒤집혔다”며 “이달 중순 신의주-평양간 1호 국도에서 금 운반차량이 강도의 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운반차에는 당 중앙에 올라가던 황금(금괴) 200Kg가 있었다”면서 “얼굴을 가린 3명의 강도가 금괴를 실은 차가 정차했을 때(신의주-평양 사이 도로에서 정차) 불시에 습격해 금이 들어있던 상자를 탈취해 도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 운반차량에는 두 명의 무장군인이 타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신속하게 무장군인을 제압한 강도들의 행동으로 보아 범인들이 군대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무장군인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에 국가보위성과 안전성에서는 평안북도에서 경보부대(특수부대) 출신 제대군인들을 용의선상에 올리고 사건 당일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통도 “요즘 혜산시 국경일대는 국가보위성과 안전성, 국경사령부의 조사요원들이 깔려있으며 초비상 상태”라면서 “신의주-평양 1호국도에서 강도의 습격으로 강탈당한 200Kg의 금이 범인들에 의해 국경을 통해 중국으로 밀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의 금 생산기지는 황해남도와 평안북도, 양강도 등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금 생산량은 한해 2~4t 정도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각 시, 군 마다에 있는 당 39호실 산하 5호관리소가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에게 충성의 과제로 거두어들이는 금도 한 해에 약 2t 정도에 달한다고 소식통들은 주장했다.
한편 1일 기준 금 1Kg은 국내서 약 74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12.03 南드라마 유포한 죄… “北, 고등학생 3명 처형”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지가 2015년 9월 4일(현지 시각) 공개한 북한의 인민재판 장면/텔레그래프 캡처
북한이 지난 10월 초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대량 유포한 혐의로 고등학생 3명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2020년 12월 한국 영상물을 유입·유포하는 경우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반동사상문화법을 제정한 바 있다. 법 제정 이후에도 한류(韓流)가 만연하자 경고 차원에서 미성년자 처형까지 동원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0월 초 북·중 국경인 양강도 혜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 3명이 모여 한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를 여러 편 시청하고, 이를 주변 친구들에게 돌리다 적발됐다고 한다. 소식통은 “반동사상문화법이 제정된 만큼 시범으로 처형해 경종을 울리라는 중앙의 지시에 따라 고등학생임에도 처형됐다”고 했다. 북한도 미성년자의 경우 중범죄를 저질러도 성인이 될 때까지 법 집행을 유예해왔는데 이번엔 달랐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9월 사법·검찰·보위·안전 분야 담당자 대회를 평양에서 열고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의 엄격한 집행을 논의했다. 법이 시행 중인데 단속돼도 벌금형, 노동단련대 등 가벼운 처벌이 주를 이루자 엄격한 집행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한국 콘텐츠들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법인 통일미디어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2022 북한 주민의 외부 정보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당국의 통제에도 ‘오징어 게임’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와 해외 제작 콘텐츠를 소비했다는 응답자는 96%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12.05 北 식량 상황은 최악인데 미사일 발사는 최다… 백두혈통만 살려는가
美 농무부 “북한 식량 121만t 부족”… 1990년대 이후 최악 상황
북 농민 인구 37%, 한국은 4%… 생산성은 한국의 4분의 1에 불과
올해 미사일 63번 발사에 1조원, 해킹으로 탈취한 돈 군사비에 써
남한은 의식주라고 하지만 북한에선 식의주라고 표현한다. 옷이나 집보다 먹는 것이 우선이라는 인식은 북한의 척박한 지형에서 비롯됐다. 김일성은 일찍이 ‘쌀은 사회주의다’라고 강조했다. 순안공항에 내려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쌀은 공산주의다’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시뻘건 글씨의 7개 간판에 한 글자씩 표기되어 있는 모습은 북한이 사회주의 농업생산 체제라는 사실을 절감케 한다. 공산주의 협동농장을 통해서 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공산주의를 해야만 먹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지 그 정확한 뜻은 알 수 없다.

/그래픽=이철원
쌀이 사회주의라는 구호대로 정권 수립 후 75년 동안 3대에 걸쳐 최고 지도자들이 ‘먹는 문제’ 에 나섰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올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상반기 가뭄과 여름철 홍수 등 기상악화와 비료 수급 불안으로 100만t 이상의 식량이 감소했다. 사료용과 종자용은 물론 식용 수요도 부족하다. 신의주·혜산 등 일부 지역의 쌀 가격은 급등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생산 목표량의 30%가 줄어들었고 미국 농무부는 올해 121만t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전망했다. FAO는 지난 9월 말 공개한 ‘2022년 3분기 작물 전망과 식량 상황’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45개국에 포함했다. 북한 해외 공관들은 가을 들어 태국, 베트남, 인도 등 쌀 수출국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데 총력전이다. 최근 위성사진에는 남포항에 야적된 외국산 식량 포대들이 연이어 포착되고 있다.
“볏단 운반과 낟알 털기를 제때 마쳐야 한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 지시는 10월 이후 노동신문의 단골 보도 사항이다. “다 지어놓은 낟알을 한 알도 허실함이 없이 제때 거두어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라는 최고 지도자의 발언은 가을걷이 전투의 금과옥조다. 전 세계적으로 6개국만이 성공했다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핵심 기술인 콜드 론치(cold launch)를 성공시킨 영도자가 낟알 털기를 제때 마쳐야 한다는 지시를 남발하는 것은 북한 농업이 당면한 딜레마다. 핵과 미사일 개발 노력의 100분의 1만 투입해도 해결할 수 있는 볏단 운반을 강조하는 것은 불가사의다. 지구 재진입(re-entry) 기술로 괴물 ICBM을 1만㎞ 이상 떨어진 미국 LA에 투하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평양이 들판의 노적가리를 적기에 창고로 이동시키지 못하는 것은 극단적인 정책 실패다.
북한의 가을걷이 전투처럼 노동력을 집중 투입하는 추수 행태는 남한에선 1990년대 이전에 마감했다. 남한은 1991년 충남 당진과 경북 의성에서 RPC(Rice processing complex)라는 미곡종합처리장을 건립하여 10년 만에 전국적으로 탈곡의 기계화를 완료했다. 벼의 수집·건조·저장·가공·포장·판매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함으로써 최소의 인력으로 미곡의 품질 향상과 유통 구조를 개선했다. 북한은 일관 처리 시설과 트랙터 등이 없어 가을만 되면 학생·군인 및 노동자를 대거 동원해 수작업으로 벼 수확에 나선다. 추수한 벼를 건조하기 위해 들판에 늘어놓으면 쥐 같은 들짐승이 먹는 등 손실분이 전체 생산량의 3%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벼는 쌀 미(米) 글자에서 보는 것처럼 88번의 손길이 필요하다. 농민들의 효율적인 영농의욕이 중요하다. 북한 농업은 1946년 토지개혁과 1958년 농업협동화를 통해서 공동생산 공동분배제로 바뀌었다. 중국 역시 1950년 토지개혁으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실현했다. 하지만 1958년부터 불어닥친 집단영농의 인민공사는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꺾었다. 중국은 1960년대 10년 동안 식량 생산량 부족으로 3000만명이 아사했다. 중국 여배우 공리가 주연한 1995년 영화 ‘인생(To Live)’은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인민들의 피폐한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1976년 사망하고 덩샤오핑(鄧小平)이 개인 영농제로 전환하면서 대규모 증산이 이뤄졌다.
최고 지도자의 호언에도 불구하고 식량을 자급자족 못 하는 이유는 생산성 부진 탓이다. 논 200평 기준으로 남한은 평균 80㎏ 기준 4~5가마 분량의 쌀이 생산되나 북한은 2∼3가마가 생산된다. 북한은 인구의 37%가 농업에 종사하나 남한은 4%의 농민이 쌀을 생산한다. 미국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북한의 토지 생산성이 2020년 1㏊에 1450달러로 남한의 25%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연간 농민 1인당 노동생산성의 경우 1961년 남북한 모두 500달러 수준으로 비슷했지만, 2020년 들어 북한은 남한(9063달러)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한 1233달러를 기록했다. 북한 농업은 비농업적 요인인 일반경제와 연관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원유·원자재 생산 및 도입이 증가해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의 정상 공급이 가능해야 한다. 좁은 논에 많은 모를 심는 밀식 재배 등 비과학적인 주체 농법을 폐기해야 한다. 농산물 가격 체계를 바꿔 농민들의 생산 인센티브를 보장해야 한다. 중국식 개인 책임 영농제라도 답습해야 한다.
김일성의 허울 좋은 식량정치(food politics)는 실패했다. 쌀밥과 고깃국에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 인민들을 살게 해주겠다는 김일성의 선전·선동은 역설적으로 남한에서 실현됐다. 쌀 등 주곡을 증산하고 밀과 콩, 옥수수 등 부족한 곡물은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수출해서 획득한 외화로 수입하여 먹는 문제 해결에 성공했다. 미국, 러시아, 베트남 등 일부 자급 국가를 제외하고는 비교우위 원리에 의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곡물을 수입한다. 남한의 경우 쌀 재고량이 적정 수준을 넘어 보관 비용만 연간 300억원임을 감안할 때 김일성의 ‘쌀은 공산주의’란 담론은 허구였으며 쌀은 자본주의이며 민주주의란 명제가 타당하다.
올들어 북한은 63번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는 돈 잔치다. 지난달 발사한 세계 최장 ICBM인 화성-17호는 거의 100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전체 미사일 발사 소요 금액은 1조원을 상회한다. 사이버 해킹으로 탈취한 돈을 쏟아부어 군사비에 충당하고 있으니 원가 계산이 무의미하다. 인민들의 식의주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자금으로 식량을 조달하지 않고 기상천외한 군사도발을 이어가는 신(新)물망초 전략은 김씨 백두혈통만의 생존전략이다.
둘째 딸을 데리고 나와 핵과 미사일을 참관하면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며 미래세대에도 핵을 보유하면 2500만 인민들의 먹거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김씨 일가와 권력층은 1호 물자라는 미명하에 유럽에서 각종 사치품을 수입하니 식의주 문제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앙상한 얼굴의 소녀가 논밭에 떨어진 쭉정이라도 건지기 위해 들판을 헤매던 90년대 중반, 황장엽 노동당 전 비서는 당시 북한 정권이 무너질 지경이었지만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모면했다고 필자에게 회고했다. 150만 명의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한 비극이 재연될지 우려되는 동지섣달 추운 겨울이다. 예고된 연말 전원회의에서는 핵과 미사일보다는 계묘년 새해 먹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논의하길 기대한다.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는 김정은의 상투적인 지적보다는 덩샤오핑식의 과감한 농업개혁 없이는 미래세대는 존재할 수 없다. 군사안보보다 중요한 게 식량안보다. 미래세대에 필요한 것은 핵이 아니라 쌀이기 때문이다.
12.07 화성 17호, 김주애 그리고 중국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지난 11월 18일 북한은 화성 17호라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 자리에 김정은은 김주애로 추정되는 그의 딸을 동행해 주목을 받았다. 2018년 김정은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CIA 국장에게 “내 자녀들이 평생 핵무기를 이고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여느 부모처럼 그도 자녀들이 전쟁의 고통 없이 평화롭게 살기 바랄 것이다. 그런 그가 4년 후엔 9세 정도의 어린 딸을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에 데리고 온 것이다. 자신의 이전 말을 뒤집고 부모의 성정마저 거부한 김정은의 절박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는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까.
미사일 발사 때 딸 대동한 김정은
자녀들을 위해 경제난 견디란 뜻
핵은 북한 미래를 파괴할 뿐인데
핵실험 땐 셋 다 데리고 올 셈인가
독재 권력을 지탱하는 힘도 주민의 지지다. “정치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주장이 단기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을 총으로만 다스릴 수 없다. 결국 독재자도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특히 경제난으로 주민 지지가 하락할 때는 더욱 그렇다. 현재 북한 주민의 소득은 2016년 대비 4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주 소득원이었던 시장 활동과 외화벌이, 밀수 등이 제재와 코로나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4인 가족의 월 중위소득이 40달러였지만 현재는 30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쌀과 옥수수의 가격은 2016년 초와 비교해 각각 20%, 50% 올랐다. 이렇게 생계유지가 힘들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불만을 품는 주민이 늘어난다. 핵 개발 때문에 제재를 받아 경제난이 초래됐다는 인식과 함께 핵 대신 경제에 돈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주민 사이 누룩처럼 퍼지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 불만을 가라앉혀야 했다.
미래세대를 상징하는 딸을 미사일 발사장의 주연으로 출연시킨 최대 목적은 주민 설득에 있다. 핵과 미사일 개발은 미래세대를 지키기 위한 것이니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지금의 경제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이다. 이는 자녀를 외침(外侵)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핵이 얼마나 중요한 무기인지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고도의 정치 연극이다. 또 화성 17호 발사를 딸에게 보여주는 자신만큼이나 주민도 큰 자부심을 느끼라는 독려다. 그리고 은연중 자신도 자녀가 있는 보통의 아버지임을 각인시킴으로써 핵 개발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가 있는 모든 북한 주민을 위한 결정임을 내비치려 한다.
김주애를 등장시킨 또 다른 의도는 핵 포기 불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9월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와 같은 맥락이다. 법제화가 핵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공식 표명이라면, 김주애의 출현은 가족을 위해서 핵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김정은의 사적인 선언이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핵 보유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국제사회에 알리려 한다. 어린 딸까지 데리고 와서 핵 보유 의지를 밝힌 만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미국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내심으론 비핵화에 대한 합의 없이 핵 군축만 논하는 협상을 미국이 제안하기를 바라고 있을 듯하다.
김주애의 깜짝 등장은 김정은이 다급하다는 암시다. 정치적 쇼에 딸을 끌어들여 핵의 가치를 선전해야 할 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고백이다. 무엇보다 경제위기를 반전시킬 방도가 없다. 밀수 금지를 풀고 시장 활동을 장려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로 인한 사회적 해이가 염려된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항해 자력갱생을 주창한 만큼 남한의 인도적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경제가 숨이라도 쉬려면 북·중 경제 관계가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중국의 방역 정책으로 그 시점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 가운데 경제가 얼마나 버텨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불만을 사상통제로 억누르고 있지만 언제 뚜껑이 열리게 될지 초조할 것이다.
시진핑 체제의 불안정도 김정은의 걱정거리다. 중국의 경직적 경제운용과 제로 코로나 정책은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있다. 사회주의 현대화의 핵심인 공동부유(共同富裕)가 성공한다면 노벨상을 받을 만큼의 업적이 되겠지만 그 확률은 영에 가깝다. 더욱이 미·중 갈등은 중국 경제에 중요한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여건 때문에 중국 사회는 안정보다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내부 문제가 심각해진다면 중국은 북한을 챙길 여유를 갖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코너에 몰린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을 거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중국에 전적으로 기대야 하는 북한의 취약성이 김주애를 발사장에 불러들인 근인(根因)이다.
핵은 북한의 미래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의 미래를 파괴할 뿐이다. 북한 청년들이 국제사회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기회를 박탈하는 잔인한 무기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주민들에게 계속 참으라고 요구하기 위해 김정은은 한 자녀를 정치 선전의 도구로 삼았다. 그럼 다음 핵실험 때는 세 아이 모두를 데리고 나와 지켜보게 할 작정인가. 그다음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12.16 NLL 이남으로 미사일 쏘고, 김정은 어린 딸 공개하고
2022 북한 10대 뉴스
최근 북한 매체들은 2022년 한 해를 되돌아보는 기사를 매일 싣고 있다. “역경을 이겨낸 승리의 해”라고 강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식량난, 자연재해 등 3중고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외부의 평가와는 거리가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에도 각종 미사일을 쏘아 대며 핵무력을 완성한 점을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내년에도 강경책을 지속할 것을 시사한다. 본사 통일문화연구소는 올해 북한에서 벌어진 10가지의 주요 사건을 정리했다.
코로나19 공개 90일 만에 “끝났다”
실패 연발 ‘괴물미사일’ 11월 성공
추수 전 군수공장서 탈곡기 생산
김여정·최선희, 대남·대미 총책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8일 평양 순안 공항 활주로에서 딸 주애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다. 북한은 이날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7형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1 NLL 남쪽에 첫 미사일 발사
북한이 올해 미사일을 발사한 건 39회다. 역대 최다 규모다. 특히 지난달 2일 오전 8시 51분 강원 원산에서 발사한 미사일 3발 중 1발이 북방한계선(NLL) 이남 26㎞, 속초 동방 57㎞에 떨어졌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 다연장로켓(방사포) 등으로 포격했고 휴전선 일대의 총격은 비교적 자주 있었지만 미사일을 남북 경계선 남쪽으로 쏜 건 분단 이후 처음이다. 군 당국이 바다에서 건져낸 미사일은 러시아제 구형 지대공 미사일(SA-5)인 것으로 나타났다.
2 ‘괴물미사일’로 위협
북한은 지난달 18일 오전 10시 15분 평양 순안 공항 활주로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다. 북한은 1시간 8분 55초 동안 최고고도 6040.9㎞, 거리 999.2㎞를 비행했다고 주장했다. 발사 각도를 높이고, 사거리를 줄이는 고각(高角) 발사였다. 전문가들은 정상 각도로 북한이 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1만5000㎞가량 날아갈 것으로 판단한다. 평양에서 미국 본토 가장 먼 곳인 플로리다(약 1만2500㎞)를 훌쩍 넘어가는 거리다. 미국 본토 전역을 사거리로 하는 핵미사일 보유를 과시해 위협 수위를 한층 높였다.
3 김정은, 딸 최초 공개
북한은 지난달 18일 화성-17형 미사일 발사 현장에 김 위원장이 딸 손을 잡고 등장한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 매체는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가 공식 직책을 받지 않은 최고지도자 자녀의 모습을 공개한 건 처음이다. 국가정보원은 딸 김주애인 것으로 파악했다. 후계자로 내정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일부 있으나 그보다는 핵으로 대대로 안보를 지킬 수 있게 됐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선전술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서방의 관심을 증폭하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있다.
4 코로나19 창궐
북한은 지난 5월 12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소식을 전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소식을 알렸다. 2년 넘게 국경을 닫는 셀프 봉쇄에 나서며 코로나 제로를 주장했던 북한의 방역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김 위원장은 마스크 두 장을 겹쳐 쓰고 나타났고, 주민들의 이동이 엄격히 통제됐다. 북한은 90일 뒤인 8월 10일 방역총화회의에서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다. 이 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이 “고열 속에 심히 앓으시면서도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인민들 생각으로 한순간도 자리에 누우실 수 없었던 원수님”이라고 밝혀, 김 위원장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적이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90일 동안 74명이 사망하고 477만2813명의 유열자(발열자)가 발생했다.
5 오락가락한 김정은 집권 기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하면서 권력을 물려받았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지난해 4월 17일자 기사(‘위민헌신의 성스러운 10년’)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10년 전 12월”이라고 표현해 김 위원장이 2011년 말 권력을 승계했음을 밝혔다. 다른 북한 매체들 모두 지난해 내내 특집 기사에서 김 위원장의 10년 ‘업적’을 부각했다.
그런데 지난 4월 10일 고위 간부들이 평양 4·25문화회관에 모여 김 위원장 집권 10년 중앙보고대회(경축식)를 진행했다. 북한 매체와 당국이 김 위원장의 집권 시점을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사망 때와 김 위원장이 공식 직책에 오른 2012년 4월로 달리 보고 있음이 드러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6 군수공장에서 농기계 생산
북한은 추수를 앞둔 지난 9월 25일 황남 해주에서 농기구 5500대 전달식을 진행했다. 이동식 벼종합탈곡기 1500대, 소형벼수확기 2500대, 옥수수탈곡기 500대, 종합토양관리기계 1000대 등이다. 북한은 이날 전달한 농기계를 일렬로 세우면 20㎞라고 선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지시로 군수공장(군수공업부문)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발등의 불이 된 식량난 해결을 위해 군수공장을 동원해야 했다는 해석, 핵과 미사일로 안보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재래식 무기공장을 농기계 생산으로 돌릴 수 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7 대규모 심야 열병식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무력을 과시하기 위해 열병식을 자주 열었다. 정권수립기념일(9월 9일), 당창건기념일(10월 10일), 당대회 등이 계기가 된다. 올해는 지난 4월 25일 조선인민군창군 90주년을 맞아 대규모 심야 열병식을 했다. 4월 25일에 열병식을 한 건 김정은 집권 이후 처음이다. 북한은 이날 50개 도보 종대와 22개의 기계화 종대를 참여시키고, 극초음속 미사일 등을 선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우리 군사적 강세는 보다 확실한 것으로 되어야 한다. 후손만대의 장래가 이에 달려 있다”고 강조해 핵무기 등 국방력 강화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8 윤 대통령에 “인간 자체가 싫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맞춰 대규모 대북 지원을 계획하고 있는 ‘담대한 구상’을 밝혔다. 사흘 뒤인 18일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남조선(남한)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며 극단적인 반응을 내놨다. 당분간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9 고위 간부 교체, 현재진행형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매년 노동당과 내각의 고위 인사를 해 왔다. 올해도 지난 6월 개최한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성원 31명 중 9명을 교체했다. 총참모장과 총정치국장, 국가보위상, 사회안전상 등 군지도부와 사회 통제를 담당하는 책임자도 바꿨다. 노동당 부장 22명 중 6명이 교체됐다.
10 첫 여성 외무상 탄생
북한 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최선희가 지난 6월 외무상이 됐다. 2000년대 중반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통역으로 외부에 얼굴을 알린 최선희는 외무성 국장과 부상(차관) 등을 거쳐 북한 외교수장에 올랐다. 2019년 트럼프-김정은 하노이 회담을 전후해 북한의 대미정책 결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 왔다.
한국은 사라진 북한의 월드컵 중계
지난 15일 프랑스의 승리로 마무리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준결승전 경기는 북한 조선중앙TV에서도 전파를 탔다. 북한은 이날 오후 9시 10분 녹화중계로 약 70분간에 걸쳐 편집한 경기 내용을 내보냈다.

▲남북 주요 축구용어 비교
북한은 이번 월드컵 경기 예선전과 16강전, 8강전, 준결승 경기를 1~3일의 시차를 두고 녹화 편집 방송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방송에서 한국은 사라졌다. 북한은 지난달 22일 오전 4시(한국시간) 열린 미국 대표팀의 첫 경기를 제외하고 참가국 23개(한국팀 제외)의 예선전 모든 경기를 보여줬다. 지난달 23일 열린 일본과 독일의 경기 방송이 늦어지며 미국에 이어 일본 대표팀의 경기를 감추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 대표팀의 경기를 사흘 뒤 방송했고, 이후 열린 미국팀의 예선전 2경기와 16강전도 내보냈다. 그러나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맞붙어 1승 1무 1패를 기록한 한국의 예선전 경기는 북한 방송에서 볼 수 없었다.
다만, 북한은 한국이 브라질에 3골 차로 패한 16강전을 경기 다음 날인 지난 7일 시청률이 가장 높은 오후 9시 10분 편성해 72분간 내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6강전 대진표에선 여전히 한국을 지웠다. 본선 참가국 23개 나라명을 일일이 열거하며 한국은 “어느 한 나라”라고만 표현했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최근 거리를 두려고 하는 한국과 미국, 일본과 관련한 내용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이들 세 나라의 경기를 방송에서 생략할 경우 주민들의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과 일본 경기는 방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북한은 대회 초반 한국의 현대차와 기아차 광고를 모자이크하며 철저히 한국 지우기에 나서기도 했다.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12.22 “미사일에 돈 허비한 北, 혹한에 아사·동사 주민 속출”
최근 만성적인 식량난에 한파까지 겹친 북한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주민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1일 보도했다.

▲북한 황해북도 승호군 안전부가 배포한 행방불명자 수배전단의 일부. /RFA
보도에 따르면, 함경북도의 한 주민소식통은 “요즘 하루 한 끼 먹을 식량이 없어 한지로 떠도는 꽃제비(노숙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주로 역전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빌어먹거나 훔쳐 먹으며 버티던 꽃제비들이 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해당 지역 안전부에서는 주민들에게 ‘사회주의 영상을 흐리는 꽃제비들을 제때 신고해 구호소에 보낼 것’을 주문했다”면서 “이에 주민들은 꽃제비를 없애려면 그들을 먹일 식량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하고 있다”고 했다.
황해북도의 한 사법기관 간부 소식통은 RFA에 “요즘 겨울 추위가 닥치고 식량사정이 악화하면서 행방불명된 주민들이 늘고 있다”면서 “이에 사법당국에서는 행방불명된 주민을 찾는다며 그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전단지를 각 지역 안전부와 인민반에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이 간부 소식통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한 노동자가 지난 7월 가출해 소식이 두절됐다가 적발됐는데, 11월 다시 행방불명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면서 “사법당국에서는 모든 행불자를 국경을 넘어 탈출하려는 범법자로 지목하고 수배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는 북한이 올해 전 주민이 46일 간 먹을 수 있는 쌀을 구매할 수 있는 비용을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허비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지난해 최악의 식량난을 겪은 후 증산에 주력했으나 기상 악화와 비료 부족으로 올해 수확량(451만t)은 전년 대비 18만t이 감소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김명진 기자
12-23 러 용병조직에 무기 밀매 확인된 북, 戰犯 간주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00일을 넘긴 가운데, 미국이 북한의 대(對)러시아 무기 밀매 사실을 발표한 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조정관은 22일 “북한이 지난달 와그너 그룹에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을 전달했다”고 확인했다. 1차분이라고 밝혀 추가 거래 가능성도 예고했다. 와그너 그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 설립한 용병 회사로, 세계 곳곳에서 비밀 작전과 가짜 정보 유포 등을 자행하고, 민간인 학살이나 암살도 서슴지 않아 ‘푸틴의 살인 병기’로 불린다.
북한이 이런 조직에 무기를 공급한 것은, 반인도 범죄국임을 자백한 것과 같다. 정부 간 거래도 아닌 잔혹한 용병조직에 제공한 것은 더욱 악질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을 “전쟁범죄자”로 규정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부차 민간인 학살 후 러시아의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 중이다.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자체가 국제법 위반인 데다, 심각한 반인도 범죄가 만연한 만큼 유엔에서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 같은 특별법정을 세워 푸틴을 회부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김정은은 그런 ‘전범(戰犯) 푸틴’과 공범이 됐다.
이뿐 아니다. 북한의 무기 수출은 그 자체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제1718호 위반이다. 또, 미국 및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성명에서 “와그너의 북한 무기 구매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개발에 사용할 자금을 대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안보에도 직격탄이 된다는 점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 북한은 6·25 남침을 자행한 전범이다. 이번 무기 밀매 행위는 전범 정권의 본색을 재확인시켜 준다. 유엔 결의를 위반하면서, 전범국을 지지하며 무기까지 파는 북한을 유엔에서 퇴출시키고 단죄하는 데 한국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