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컬럼(조선일보) 2022/ 01.13 나라 구했다는 ‘3 프로 TV’, 현란하나 황당하다 - 12.29(목) 촛불 혁명? 5년만에 꺼져버린 불량 권력이었다
김창균 컬럼 조선일보 논설주간 2022

01.13 나라 구했다는 ‘3 프로 TV’, 현란하나 황당하다
이재명 달변 700만 조회
지지층 “방송이 나라 구해”
찬찬히 내용 뜯어 보면
경제 원리 안 맞고 모순
국채로 대대적 투자 다짐
‘문재인 시즌 2′ 갈 건가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앞서던 선거 판도가 뒤바뀐 원인으로 야당 내분과 윤 후보 아내 의혹을 주로 꼽지만, 지난 연말 두 후보가 각각 출연한 ‘3프로 TV’도 한몫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 후보 출연 조회는 12일 현재 670만회인데 윤 후보는 그 절반 수준인 350만회였다. 시장 반응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 후보 지지자들은 “3프로 방송이 나라를 구했다”고 흥분했다. 주식시장 전문가 세 명이 진행한다고 해서 ‘3프로’인데 이 후보 지지율은 3프로 늘고, 윤 후보 지지율은 3프로 줄었다는 패러디까지 등장했다.
도대체 이재명 후보가 얼마나 잘했는지 궁금해서 유튜브를 찾아 봤다. 100분 동안 이 후보의 달변이 막힘없이 이어졌다. 전문용어와 관련 통계도 쏟아 냈다. 그런데 막상 방송을 보고 나자 기억 나는 게 없었다. 그럴듯한 얘기를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이 후보 주장이 뭔지 불분명했다. 모씨의 정권 방어 궤변을 들을 때마다 개운치 않았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지난 주말 KDI 출신 경제통 윤희숙 전 의원이 ‘구국의 3프로 TV를 해체한다’는 전문가 좌담을 유튜브에 올렸다. ‘아수라에서 들려오는 구라’가 부제였다. 이 후보의 답변이 어떤 점에서 경제 원리에 어긋나고, 앞뒤가 안 맞는지 1시간 가까이 조목조목 따졌다. 좌담 참여자인 경영학과 교수는 “이 후보 말이 하도 현란해서 진짜 같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황당한 얘기”라고 했다. 전문가 분석을 참고 삼아 이 후보 답변을 되새김질해보니 찜찜했던 뒷맛의 정체가 분명해졌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공공 배달 앱을 만들어 시장점유율을 높인 것을 업적처럼 자랑했다. 심판을 봐야 할 지방정부가 민간끼리 겨뤄야 할 시장에 플레이어로 뛰어든 것이다. 이 후보는 돈과 신용이 없는 사람이 높은 이자를 무는 건 정의롭지 않다고 했다. 금융은 산업이고 이자는 대출이라는 상품의 가격인데, 거기에 도덕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정부가 땅을 수용해 공급한다는 이 후보의 기본 주택에 대해 진행자가 “서울에 그런 땅이 남아 있느냐”고 묻자 “수도권 신도시에 하면 된다”고 했다. 소비자 수요는 서울인데, 수도권 공급에 맞추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방송 내내 “나는 시장을 존중하는 현장주의, 실용주의”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산업 변화가 너무 빨라서 관료가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관료가 만드는 규제가 산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과감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미래 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려면 국가가 대대적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관료가 산업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면서, 국가가 선도적으로 미래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니 그 안목과 역량은 누구에게서 나온다는 뜻인가. 이 후보는 곤란한 질문에 답변이 궁색해지면 “정치가 해결할 문제” “복잡한 문제니 다음 기회로 미루자” “시장이 균형을 찾을 것”이라며 어물쩍 화제를 돌렸다.
이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코스피 지수 5000 달성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투명성을 높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면서 주가조작, 펀드 사기를 단속할 금감원 인원을 현재 20명에서 수백 명으로 늘리면 된다고 했다. 힘센 사람들의 범죄를 추적해서 번 돈 이상을 토해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에서 라임, 옵티머스 의혹이 터지자 검찰 금융 수사 조직을 해체해 버린 일은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증권 범죄 엄단을 강조하면서 이 후보 자신이 작전주 투자로 돈을 번 경험담을 낄낄대며 털어놓는 심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재명표 기본 시리즈 공약과 더불어 산업 구조 개편을 위한 대대적 투자까지 한다니 그 재원은 어디서 나올까. 이 후보는 “미래 자산 가치를 앞당겨 투자하면 된다”고 했다. 근사한 표현으로 얼버무렸지만 국채 발행으로 후손에게 빚을 떠넘긴다는 얘기다. 이 후보의 경제정책은 부동산은 다주택자, 주식은 대주주 같은 힘센 놈 때리기와 국가 부채로 돈 풀기 두 가지로 요약된다. 표 얻겠다고 “이재명은 문재인이 아니다”라고 차별화했지만, 정책은 ‘문재인 시즌 2′다.
윤 전 의원은 “이 후보는 늘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해 왔는데 이 방송 속에 그 모순이 집약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의 실체를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정말 나라를 구한 방송”이라고 했다.
01.27 ‘尹의 방심’에 따라 요동치는 대선
정권 교체 바라는 민심이
尹 우세 구도 만들어 줘
‘다 이긴 선거’ 자만하다
野 내분, 아내 문제로 역전
악재 봉합으로 지지율 복귀
‘편한 길’ 유혹이 막판 변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국회의원 및 원외당협위원장 필승결의대회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뉴스1
1월 첫째 주 시점에서 다음 대통령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유력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열 곳 내외 여론조사 기관이 쏟아낸 지지율 조사에서 이 후보가 모두 우세였다. 심지어 10%p 넘게 앞선 결과도 여럿 나왔다. 5년 전 대선 유권자 4200만명 기준으로 70% 투표율을 가정하면 300만표가량 이기고 있는 셈이었다. 불과 3주가 흐른 요 며칠 새 공개되는 여론조사는 정반대 흐름이다. 윤 후보가 대부분 앞서고 있고 그것도 5%p 내외 안정적인 리드다.
정치부에 몸담은 1997년 이후 여섯 번째 대선을 경험하고 있다. 여야 양당 후보가 결정되고 우열이 드러나면 간격은 좁혀지지만 좀처럼 순위는 바뀌는 법이 없었다.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로 선거 구도 자체가 뒤엎어진 2002년 대선이 유일한 예외였다. 그런데 작년 11월 초 여야 대진표가 짜인 뒤 윤 후보, 이 후보, 다시 윤 후보가 선두로 나서는 혼전 양상이다.
판세가 그토록 출렁이는데도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30%대 중반에서 위아래로 잰걸음만 한다. 50%가 넘는 정권 교체 여론에 대장동 의혹과 욕설 파문 등 이 후보 본인의 네거티브 요소가 겹치면서 40% 천장이 만들어졌다. 그걸 뚫어 보려고 이 후보는 몸부림치고 있다. 국고에서 퍼주겠다고 약속한 금액을 합하면 몇 년 치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하루 수십 조씩 베팅하는데 지지율은 눈꼽만큼 꼼지락 거린다. 역전, 재역전 때도 이 후보는 제자리였다. 윤 후보 혼자 천당, 지옥, 천당을 오간 것이다.
같은 야권인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의 동반 상승도 이변에 가깝다. 선거 초반 5% 내외 지지율에 묶여있던 안 후보는 윤 후보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우상향 곡선에 올라탔다. 정권 교체 깃발을 똑같이 내건 두 사람은 제로 섬 관계였다. 윤 후보의 악재가 봉합되고 재상승하자 당연히 안 후보의 하향세가 점쳐졌다. 그런데 안 후보는 두 자릿수 지지율을 지키면서 심지어 더 상승하는 결과도 나왔다.
세 후보가 뒤얽혀 돌아가는 모습이 요지경 속 천태만상처럼 복잡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판의 얼개는 사실 단순하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과반 유권자들은 윤석열 플랜 A와 안철수 플랜 B, 두 장의 카드를 저울질하고 있고, 정권 유지를 희망하는 30% 남짓은 이재명 후보 등 뒤에 똘똘 뭉쳐 있다.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위선에 분노한 민심이 정권에 맞섰던 윤석열을 선거판으로 불러냈고 그의 우세 구도까지 만들어 줬다. 윤 후보와 그 측근들은 선거에서 다 이긴 것처럼 착각했다. 각종 악재를 스스로 생산하며 10%p 이상 지지율을 까먹었다. 벼랑 끝에 몰렸던 윤 후보가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을 봉합한 것이 이번 선거의 중대 분수령이었다.
김건희씨 7시간 녹취록은 두 번째 고빗길이었다. 당시 안 후보 지지율은 20%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만약 녹취록이 소문대로 끔찍했다면 정권 교체 성화는 윤석열에게서 안철수로 넘어갔을지 모른다. 윤, 안 중 누구든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밀겠다는 것이 정권 교체 민심이었다. 김씨 발언에는 문제되는 대목이 있었지만 ‘제2의 최순실’ 수준은 아니었다. 김건희 리스크는 이미 윤 후보 지지율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반영돼 있었다. 김씨 육성을 듣고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낫더라는 분위기가 대세다.
선거 판세가 또 한번 급변하면서 이재명 캠프는 공황 상태다. 후보는 “잘못했다”며 울고, 당은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사과와 반성 카드를 흔들어 댄다. 연말 연초 윤석열 자멸 국면에서 떠올랐던 안철수 대안론은 제동이 걸렸다. 윤 캠프에서 천재지변급 악재가 터지지 않는 한 안 후보가 야권 대표 주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윤 캠프의 필승 전략이 뭔지는 초등학생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뻔하다. 정권 교체 민심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그런데 홍준표 끌어안기라는 첫걸음부터 꼬였다. 겉모습만 보면 측근 공천 요구 때문에 뻐그러진 것인데 진짜 걸림돌은 처가 비리 문제 아니냐는 뒷말이 나돈다. 지지율 추이에 들뜬 캠프 관계자 입에서 “단일화가 꼭 필요하냐”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윤 후보와 핵관들이 껄끄럽고 귀찮은 길은 마다하고 편한 길만 가려던 몇 달 전 모습이 재현되는 분위기다.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여전히 윤 캠프의 방심이다.
02.24 시대 뒤처진 ‘꼰대 진보’의 헛발질 선거전
엄지, 검지 펴면 신천지…
윤석열 엮으려 황당 의혹
어퍼컷, AI 비판하다 흉내
정치권 젊은 피였던 86세대
20년째 혁신 없이 기득권화
이준석 新보수와 대비돼

▲[이재명 후보 발차기와 윤석열 후보 어퍼컷] 2022년 2월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전주 전북대 유세에서 하이킥 세리머니와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의 2월 15일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 유세에서 어퍼컷 세리머니. /뉴스1·남강호 기자
추미애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다 ‘헉’ 소리와 함께 두 눈을 가린다. 못 볼 것을 봤다는 거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만희 신천지 교주의 사진이 나란히 클로즈업된다. 두 사람의 밀회 현장을 암시한다. 유튜브 채널 ‘재명이네 슈퍼’에 올라있는 62초 영상이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라는 배경 음악과 함께 ‘너무나 만희 사랑한 죄’라는 자막이 깔린다. 아재 개그 수준의 말장난이다. 그런데도 진영 내에선 “추미애에게 연기 대상을 줘야 한다”고 추켜올리며 감탄한다.
요즘 이재명 캠프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신천지 이만희씨를 한 몸으로 엮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민정 의원은 두 사람이 엄지와 검지를 펼쳐 알파벳 L자를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며 ‘유레카’(찾았다)를 외친다. 윤 후보와 이 교주 사이에 통하는 비밀 신호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검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드는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는 거다.
손가락 꼽는 방식으로 신천지를 감별한다는 발상이다. “발가락 모양을 보니 내 아들”이라는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떠오른다. 고민정 작가의 ‘손가락이 닮았다’는 윤석열 신천지 유착 고발극이다. 그러나 네티즌 수사대가 활약하면서 장르가 바뀐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이재명 후보, 급기야 고민정 의원 자신의 신천지표 L자 손가락 사진까지 나왔다. 완전히 코미디다. 엄지, 검지 L자 손가락으로 유럽 사람들은 숫자 2, 중국인들은 숫자 8을 표시한다. 유럽과 중국에 가면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신천지 신호를 주고받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당 사람들은 2020년 3월 코로나 1차 확산 때 윤석열 검찰총장이 무속인 건진 법사의 조언에 따라 신천지 압수수색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공권력을 피해 신천지 신자가 숨어 버리면 방역이 어려워진다”며 검찰의 압수수색에 반대했다. 인터넷만 두들겨 보면 1분 만에 검색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의혹으로 선거판을 뒤집어 보려는 사람들은 방해되는 팩트는 등 뒤에 감추고 국민을 속이려 한다. 1년 전 서울 보궐선거 때 오세훈 생태탕 의혹으로 분탕질 치던 모습 그대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곳이 선거판이다. 부러워서 따라 하면 낙제점이다. 윤석열 후보가 부산 젊음의 거리에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며 어퍼컷 퍼포먼스를 하자 민주당 사람들은 “폭력적” “정치 보복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꼭 나흘 만에 이재명 후보는 하이킥 퍼포먼스를 했고, 그다음 날엔 태권도복까지 입고 송판 격파 시범을 보였다. AI 윤석열이 1월 초 본격 가동되자 민주당은 “디지털 독재 예고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짧고 명쾌한 메시지가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으자 한 달 넘게 지나서 AI 이재명이 등장했다.
상대방 이슈를 쫓아다니는 것도 선거판 금기 사항이다. 손 따라 두면 진다는 바둑 격언과 같은 맥락이다. 윤석열 후보가 “6대 도시 중에 왜 광주에만 복합 쇼핑몰이 없냐”고 하자 진보 진영은 “극우 포퓰리즘” “광주에는 5일장이 3개나 있다”며 벌 떼같이 공격했다. 그러다 광주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쇼핑몰 유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상대방 운동장에 뛰어들어가 센터링만 날려준 격이 됐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보수, 진보는 10년 단위로 승패를 주고받으며 팽팽한 승률을 기록해 왔다. 다만 선거 기술만큼은 늘 진보가 압도해 왔다. 느리고 굼뜬 보수는 뒤따라가기 바빴다. 이번 대선은 정반대 양상이다. 양대 진영이 맞선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선거전은 보수가 주도하고 있다.
민주당의 주역은 60년대에 태어난 80년대 학번을 일컫는 ‘86세대’다. 2000년 총선을 전후해서 30대 젊은 피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그들을 선배로 모시는 90년대 학번, 지금의 40대를 이끌며 진보를 대표해 왔다. 한때 한국 정치판을 뒤엎은 혁신 세력이었지만 20년째 똑같은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파는 기득권 세력이 돼버렸다. 보수 정당에 이준석이라는 신(新)병기가 등장하자 이들의 시대에 뒤처진 꼰대 모습이 적나라하게 부각되고 있다.
386세대라는 용어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게 90년대 후반이다. 그전까지 386은 586 펜티업급보다 두 세대 철 지난 PC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민주당 86세대는 20년 전 구시대를 상징하는 낡은 정치 세력으로 비치고 있다.
03.24 문재인의 ‘아름다운 복수’, 그 2탄
대통령 집무실 이전 제동
‘조국사태’ 뒤 끝 의심들어
盧·MB 쇠고기 협상 갈등
14년만에 신구 권력 충돌
지방 선거까지 대선 연장전
국민 눈에 오버하면 진다
17대 대선 직후인 2007년 12월 28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이 만찬 회동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다섯 살 연상인 이 당선인을 “나보다 더 윗분”이라고 예우했다. 이 당선인은 “후임자가 전임자를 예우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겠다”고 했다. 한미 FTA 비준안의 국회 처리에 협력한다는 게 이날 만남의 핵심 의제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구 권력 충돌이란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안건은 한미 FTA였다. 미국이 FTA 비준의 전제 조건으로 쇠고기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이 당선인은 “노 정부가 임기 내에 마무리해달라”고 했고, 노 대통령은 “새 정부가 처리할 일”이라고 맞섰다. 축산 농가의 반발을 살 정치적 부담을 서로 떠민 것이다. 그 상태로 노무현 정부 임기가 끝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쇠고기 협상을 서둘렀다. 한미 FTA를 조속히 발효시켜 경제 대통령 브랜드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 조바심이 광우병 촛불 시위를 불렀다.
540만 표 차 대선 승리를 거둔 정권이 임기 첫해 기능 마비 상태에 빠졌다. MB는 그 배후에 노 전 대통령이 있다고 의심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로 귀결된 검찰 수사는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사람들은 주군(主君)을 지키지 못했다는 회한에 몸서리쳤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지갑에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품고 다녔다. 그 유서를 볼 때마다 복수를 다짐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진짜 복수”라고 했다. 참모는 문 대통령이 ‘아름다운 복수’를 다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 복수가 얼마나 남들과 달랐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7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 연말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건강 상태”를 이유로 사면하면서 열한 살 더 나이가 많은 80대의 이 전 대통령은 제외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에 가까웠을 무렵 조국 사태가 터졌다.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던 트라우마가 문 정권을 덮쳤다. 조국을 억울하게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로 떠받들었다. ‘우리 총장님’ 윤석열은 졸지에 MB 잔당이라는 악역을 떠맡게 됐다.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추미애 법무장관은 1년 내내 망나니 칼춤을 췄다. 윤 총장 목이 싹둑 잘려 나가는 섬뜩한 시사만화까지 등장했다. 문 정권 사람들의 집단적 정신착란이 윤석열을 정치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다음 날 전화 통화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가 공백 없이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고, 윤 당선인은 “많이 가르쳐달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 사이의 훈풍은 거기까지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과 공공기관 인사 문제로 첫 만남이 무산되더니, 대통령 집무실 문제로 정면충돌했다. 문 대통령은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에 제동을 걸면서 ‘안보 공백 우려’를 이유로 꼽았다. 스스로도 쑥스러웠을 것이다. 평소 공부 않던 학생이 독서실 자리 좀 써도 되냐고 했더니 갑자기 책 싸들고 와서 열공에 돌입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문재인의 아름다운 복수 제2탄을 관람 중이다.
대선 패자, 특히 정권을 빼앗긴 경우엔 국민 심판을 받았다는 자숙 기간을 갖는 게 정치권 매너다. 이번엔 다르다. 선거 다음 날 이재명 선대위 해단식에서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5년 짧다. 금방 지나간다”고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를 없는 세월로 치겠다는 거다. 정청래 의원은 소셜 미디어에 “모든 것이 윤석열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썼다. 임기 2년 남은 국회 172석으로 윤 정권의 다리를 잡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차기 대통령 이름을 호칭 없이 부른다. 5년 전 이맘때 야당 의원이 “문재인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문 정권 사람들은 5월 10일 출범할 새 정부를 MB 정권 시즌 2라고 부른다. 반드시 실패할 것이고, 실패해야만 하고, 실패하게 만들 것이라고 벼른다. 용산 집무실이 그 첫 전쟁터가 됐다. “제2의 광우병 투쟁을 준비하느냐”는 윤 당선인 측 의구심은 정곡을 찔렀다.
대선은 끝났는데 오고 가는 두 정권은 연장전을 벌이고 있다. 6월 지방선거, 그중에서도 경기지사 선거가 승부차기가 될 것이다. 이재명 후보의 재기 여부도 함께 걸려 있다. 국민 눈에 어느 쪽이 더 ‘오버’하는 것으로 보이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04.07 박근혜 겨눴던 화살, 6년 만에 김정숙에게 날아오다
朴 대통령 옷 가짓수 세고
5만원 현금 결제 따지더니
金 여사 같은 시비 휘말려
홀로 깨끗한 척 촛불 세력
남 손가락질했던 그대로
새 권력도 5년 후 경계해야

▲문재인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뉴스1
2016년 12월 2일 아침,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주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옷이었다.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 국회 상정이 오늘내일하던 무렵이었다.
앵커가 기자에게 “박 대통령이 취임 후 4년 동안 구입한 옷이 몇 벌쯤이냐”고 물었다. 기자는 370벌이라고 답했다. “취임 첫해인 2013년 산 옷이 122벌이라는 보도와 67벌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 평균인 94벌로 보면 된다”고 했다. 1년 94벌씩 4년을 곱하면 370벌이라는 거다.
앵커가 옷값 총액은 얼마 정도냐고 물었다. 기자는 “박 대통령이 옷을 산 강남 의상실 주변 여성 정장이 최저 45만에서 300만원이다. 한 벌 평균 200만원으로 잡고 370벌이면 4년 의상비가 7억4000만원”이라고 했다. 오차가 두 배나 나는 보도를 평균 내고 거기다 지레짐작으로 두 번 곱셈을 해서 7억4000만원이라는 구체적 수치를 뽑아냈다. 단순 무식한 계산법을 당당하게 들이대는 과감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방송이 끝난 지 몇 시간 만에 민주당 대변인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옷값 7억4000만원, 뇌물인지 예산인지 밝히라”는 논평을 내놨다. 이후 7억4000만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는 공인 수치로 자리 잡았다.
박 대통령 옷값 시비는 단골 의상실 CCTV 영상에서 비롯됐다.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 의상 대금을 5만원권으로 계산하는 장면이었다. 야당 사람들은 최소한 수십만 원을 현금으로 거래했다면 뇌물 아니냐고 따졌다.
그때와 비슷한 장면들이 요즘 평행 이론처럼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만 박근혜에서 김정숙으로 교체됐다. 네티즌 수사대는 김 여사가 공식 행사에서 새로 선보였던 의상 178벌을 찾아냈다. 박근혜 옷값 계산법을 빌리면 한 벌당 200만원씩 3억6000만원이다. 김 여사가 중요 무형문화재 장인에게 한복을 700만원어치 구입한 후 동행한 보좌관이 5만원권으로 지불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 보좌관은 6년 전 박 대통령의 옷값이 뇌물인지 예산인지 밝히라고 다그쳤던 민주당 부대변인 출신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옷값을 현금으로 낸 게 뭐가 문제냐. 장인에 대한 예우”라고 했다. 거액을 현금으로 받아서 좋은 점은 매출 규모 은폐밖에 없다. 대통령 부인의 검은돈 의혹을 덮으려고 국보급 장인을 탈세 용의자로 간주한 셈이다.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는 김정숙 여사 옷값 논란에 대해 “대통령 배우자의 공적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민망할 만큼의 저급한 정치”라고 했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 부인의 의복이 국격(國格)을 좌우한다는 뜻일 것이다. 김 여사의 활발한 외부 활동은 익히 알려져 있다. 김 여사는 2년째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해외 순방 28차례에 45국을 들렀다. 역대 대통령 부인 중 횟수로는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공동 1위, 방문국 숫자로는 단독 1위라고 한다. 김 여사는 좀처럼 시간 내서 가보기 힘든 해외 관광 명소를 대부분 섭렵했다.
청와대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방문국의 요청 때문”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실제 사정은 달랐다는 뒷말이 나온다. 김 여사가 대통령 없이 인도를 단독 방문해서 찍은 타지마할 기념사진도 공개됐다. 대통령 부인의 명승지 탐방이 국위 선양에 보탬이 됐다 한들, 대통령 본인의 외교 활동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 옷값을 시비하는 논평을 냈을 때 당 내부에서 “민망할 만큼 저급한 정치”라고 자제시켰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다.
6년 전 탄핵 촛불이 타오를 때 한편으론 섬뜩하면서도 우리 정치가 좀 더 맑아질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야당은 대통령의 패션과 헤어 스타일까지 난도질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들이 집권하면 5년 동안 이슬만 먹고 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도 자신들이 손가락질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자신들의 권력은 영원하리라고 착각했던 것인지, 검찰 개혁으로 자신들의 치부(恥部)는 은폐할 자신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게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인간관계 황금률이다. “남을 손가락질하면, 너도 똑같이 손가락질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 정권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쐈던 화살이 6년 만에 김정숙 여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또 5년 후에는 윤석열 차기 대통령의 배우자가 과녁이 될 것이다. 권력이 피고 질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돼온 법칙이다.
04.21 ‘한동훈 법무’에 與 격분, 할리우드 액션 또는 포비아
최고 칼잡이 수사에서 배제
권력 범죄 켕기는 民主 호재
일부러 화난 척 과잉 대응
“韓 오만하다”며 청문회 거부
군기 잡을 기회 스스로 포기
論戰 밀릴까 겁나는 건가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는 “검찰은 나쁜 놈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검사들은 정·재계 거물을 구속하는 것을 ‘골인’이라고 부른다. 한동훈 검사의 골 결정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동훈 후보자 지명 보도 자료도 “부정부패 수사에서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발군의 성과를 거뒀다”고 돼 있다. 그는 에이스 검사가 몰려 있는 특수통 중에서도 최고 칼잡이였다.
검찰 선배는 한동훈 후보자를 “AI(인공지능)처럼 수사한다”고 평했다. 알파고는 바둑판 위 모든 변화를 훑어 가며 이기는 길을 찾는다. 한동훈 검사는 피의자의 먼지를 탈탈 털어 감옥에 보낸다. 첫 혐의가 무죄 나면 형량이 더 높은 별건(別件)으로 구속한다. 한동훈에게 걸리면 혐의를 인정하고 짧게 감방 가는 편이 낫다고 한다. 그는 검사 하면 떠오르는 폭탄주를 입에도 안 댄다. 대신 ‘나쁜 놈’ 잡는 일로 스트레스를 푼다. 민원도 안 통한다. 주변 통해 선처를 부탁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 무자비하고 철저한 수사 방식에 동료들은 혀를 내두르고, 당하는 사람들은 진절머리를 친다.
한동훈 검사는 승진 고속도로를 내달리다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조국 수사 때문에 정권 눈 밖에 났기 때문이다. 검찰의 꽃인 대검 반부패부장에서 고검 차장, 연수원 연구위원, 연수원 분원 파견, 연수원 부원장 등 네 차례 좌천 인사를 당했다. 정권이 조작한 검·언 유착으로 감옥 갈 위기도 겪었다. 이런 수모를 겪은 것은 단 하나, 윤석열의 최측근으로 찍혔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에서 한동훈의 부활은 예정된 코스였다.
한동훈 법무장관 인선을 민주당은 ‘인사 테러’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각 구성이 대통령 권한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이 후배 검사에 대한 특혜로 검찰 공화국을 만들려 한다는 거다. 이 인사가 그토록 상궤를 벗어난 걸까. 역대 법무장관 상당수도 검찰 출신이었다. 대통령의 측근 법무장관이 잘못이라면 문 대통령의 조국 임명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
한동훈 법무장관 발탁이 선배 기수 20여 명을 추월한 파격인 건 맞는다. 그의 경력과 서열에 맞는 선택은 서울 중앙지검장이었을 것이다. 윤 당선인이 박근혜, 이명박 두 정권의 적폐를 사냥했던 보직이다. 한 후보자가 그 자리에 갔다면 문 정권과 이재명 전 대선 후보의 의혹을 파헤치는 사령탑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반면 법무장관은 형식상 검찰 조직의 정점에 있지만 현장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 수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지휘권이 있다지만 이래라 저래라 구체적 지시를 내리지 못한다. 비상 브레이크만 있고 핸들과 액셀은 없는 운전 교관 비슷한 처지다.
그래서 한동훈 후보자는 “나로선 검찰에서 전역하는 셈”이라고 했다. 당선인이 “아끼는 후배에게 칼 대신 펜을 쥐여준 것”이라고 장제원 의원은 설명했다. 더 이상 손에 피를 안 묻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정치 보복 프레임을 염려한 당선인의 원모심려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영전 모양새를 빌려 통제 안 되는 한동훈을 수사 라인에서 배제했다는 얘기다.
윤 당선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한동훈 검사가 수사 라인을 벗어나 법무장관으로 승진한 것은 민주당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포르투갈 골잡이 호날두가 월드컵에 선수 대신 감독으로 출전한다면 같은 조에 속한 한국 팀은 반겨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당이 한동훈 법무장관 인선을 정치 보복 예고편이라고 비난하는 건 할리우드 액션이다. 민주당은 격분한 것이 아니라, 격분한 척 연기하는 것이다. 검찰 수사권 박탈을 추진할 핑곗거리 삼으려고 상대방이 파울한 것처럼 눈속임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 후보자가 “오만방자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사청문회에서 혼쭐 내면 된다. 하루짜리 청문회 차수를 변경해 다음 날 새벽까지 군기를 잡겠다고 별러야 정상이다. 그런데 반대로 청문회를 보이콧하겠다고 한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에서 한 후보자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러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거다. 조국 사태 때 민주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국회에 불러 호통 치다 역공을 당했다.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같은 사이다 발언들은 유튜브 조회 수가 300만을 넘겼다. 윤석열이 화끈한 펀치라면 한동훈은 날카로운 송곳이다. 방어 논리가 궁색한 검찰 수사권 박탈을 주제로 한동훈과 설전을 벌이는 것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한동훈에 대한 민주당의 과잉 대응은 ‘포비아’(공포증)로 비쳐진다. 윤 당선인이 신의 한 수를 뽑아 든 것인가.
05.05 文이 체통과 맞바꾼 갑옷, 그래서 좀 안심되시나
집권당이 “대통령 지킨다”
졸속 통과시킨 검수완박
국무회의 때 국회 열지 말라
자기 말 뒤집으며 法 공포
대통령 말 발단 된 범죄 혐의
아랫사람들이 대신 곤욕
문재인 정부 2년 차였던 2018년 8월, 청와대 대변인은 “매주 국무회의가 열리는 화요일엔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가 안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 부처 장관들이 국회에 불려 나가 국무회의가 몇 차례 파행을 겪은 뒤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요청을 정무수석을 통해 국회에 전달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제, 5월 3일은 문재인 정부 임기 중 마지막 화요일이었다. 정례 국무회의가 마지막으로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소집했다. “국무회의 날 국회를 열지 말아 달라”는 대통령 요청을 묵살한 것이다. 국회의 결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무회의 시간을 오전에서 오후로 미뤄 달라고 한술 더 떴다. 문 대통령의 고집과 심통을 자극할 수 있는 도발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한마디 불평 없이 국회 뜻을 따랐다. 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검수완박 법안을 공포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 수사에서 검사들이 손을 떼도록 하는 내용이다.
국민 절대 다수가 검수완박법 처리에 반대했다. 대통령과 정권 사람들이 검찰 수사를 피하려는 ‘셀프 방탄’으로 봤기 때문이다. 정권 비판 세력이 꾸며낸 프레임이 아니다. 당초 정권은 검수완박법과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을 동시에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검수완박법은 윤 총장이 사퇴하자 실종됐다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자 부활했다. 윤석열 영향권 검찰을 겨냥했다는 뜻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정권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법안 공포까지 마치려고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법 통과가 안 되면 “문재인 정권 사람 스무 명이 감옥에 갈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혐의는 드러난 것만도 세 가지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은 “가동 중단은 언제 되느냐”는 대통령 채근에서 비롯됐다. 앞서 구속됐던 산자부 국장과 서기관을 포함, 당시 장관, 청와대 비서관, 한수원 사장 등이 기소된 상태다. 울산 선거 공작 역시 “30년 지기가 당선되는 걸 보고 싶다”는 대통령 소원이 발단이었다. 그 꿈을 이뤄 드리려 청와대 조직 8곳이 뛰어들었고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15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회삿돈 수백억원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상직 의원 사건은 대통령 딸 가족의 수상한 행적과 얽혀 있다. 대통령은 이 사건들에 대해 남의 일인 양 모르는 척으로 일관했다. 대신 깃털 수십 명이 수사받고 법정 가고 감옥에 들락거린다.
영화 ‘친구’는 부산 조폭 이야기다. 살인 교사 혐의로 복역 중인 조폭 두목 준석을 친구 상택이 면회 오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상택은 “니 법정에서 와 그랬노”라고 묻는다. 조폭 부하가 두 사람의 친구 동수를 살해한 범죄를 왜 준석 자신이 지시했다고 시인했냐는 질문이었다. 준석은 “쪽팔리잖아”라고 답한다. “건달은 쪽팔리면 안 된다”면서 그래서 부하에게 책임을 미룰 수 없었다고 한다. 준석은 쪽팔리지 않는 대가로 중형 선고를 받아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평가는 진영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다만 국가 최고 지도자를 지낸 사람의 무책임을 비판하는 쪽에서도 인정하는 대목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측근들을 사법 처리 위기에서 구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나면서 참모 수십 명을 겨냥했던 검찰 수사가 중단됐다. 노 전 대통령 유서 속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대목은 이런 사정을 담고 있다. 낯이 안 서는 일로 구질구질해진 처지를 못 견디는 부산 사나이의 기질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집권당 의원들이 ‘대통령 보호용’이라고 떠들썩하게 광고하며 밀어붙이는 법안에 서명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새 정권 임기가 시작된 이후에 발효될 법을, 새 대통령이 반대하는데도 공포하는 것은 명분도 서지 않는다. 더구나 그 법을 공포하기 위해 5년 내내 아침에 열었던 국무회의를 오후로 미뤄야 했다.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쪽팔리고’ ‘구질구질해서’ ‘내 체통과 염치는 뭐가 되냐’며 못 하겠다고 뿌리쳤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를 엿새 남기고 문재인 방탄법에 서명, 공포하는 선택을 했다. “책임 있게 검찰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라고 궁색한 변명까지 남겼다. 헌정사에 지워지지 않을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대가로 얻은 갑옷은 과연 문 대통령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05.19 문빠의 ‘묻지 마 지지’가 민주당 망가뜨렸다
몇 년째 성범죄 끊이지 않고
청문회서 황당한 실수 연발
4연속 전국 선거 승리한 뒤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자만
중도층 이반에 둔감해지고
극렬 지지층 장단 맞춘 탓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의 강경파 초선 의원들이 실수를 남발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이수진(왼쪽) 의원은 질의하면서 여러 차례 고성을 질러 친민주당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까지 “술 취한 줄 알았다”는 질타를 받았다. 김남국(가운데) 의원은 ‘이모(某) 교수’를 한 후보자 딸의 이모로 착각하고 질의했다. 최강욱 의원은 ‘한국쓰리엠’의 익명 표기(한**)를 한 후보자의 딸 이름으로 잘못 유추하고 공격했다. /TV조선·국회사진기자단
정치권에서 성추문이 불거지면 으레 보수 정당 쪽이려니 했었다. 딸보다 어린 골프장 캐디에게 지분거린 전직 당대표, 제수에게 몹쓸 짓을 한 패륜 의원 등 각종 추행이 1년에 한두 건씩 터졌다. 2015년 8월 새누리당 의원 성범죄가 또 불거졌을 때 과거 19차례 보수 정당 성추행 일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성누리당’이라고 불렸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성추문 바통도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2018년 3월 안희정 충남지사를 시작으로, 2020년 4월 오거돈 부산시장, 2020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범죄가 차례로 공개됐다. 세 사람 모두 여비서를 대상으로 한 권력형이었다. 성범죄 중에서도 죄질이 최악이다. 이번 달엔 당 3역 중 하나인 정책위의장 출신이 보좌관 성추행으로 당에서 제명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요즘 ‘더듬어만지당’이라고 불린다.
사실과 다르거나 맥락이 안 맞는 발언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예전엔 대부분 보수 정당 사람이었다. 그래서 보수는 무신경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난과 핀잔을 자초했다.
요즘은 말실수 주인공도 민주당이 주로 배출한다. 한동훈 법무장관 인사청문회는 빵빵 터지는 폭소 대잔치였다. ‘한국 3M’ 업체 명의를 한 후보자 딸 이름으로, ‘이 모 교수’를 한 후보 딸 이모로 착각한 것은 TV 개그 프로에 그대로 가져다 써도 될 정도로 웃겼다. 더구나 민주당을 대표한다는 싸움닭들이 한동훈 후보자의 목을 베겠다고 창과 칼을 휘두르다 자기 팔다리를 찌르면서 반전의 코미디 효과를 극대화했다. 판사 출신 여성 의원은 술주정에 가까운 행패로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전날 밤 단체로 마신 폭탄주가 덜 깬 상태에서 음주 코미디를 공연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민주당 보좌관들은 “어쩌다가 우리 당이 이렇게 됐나” 하고 탄식했다. 제3자 입장에서도 민주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궁금해진다.
과거 민주당 사람들의 도덕성과 지적 능력이 남달랐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민주당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생존하고 경쟁하느라 아등바등 노력한 것만은 분명했다. 민주당 지역 기반인 호남은 인구가 영남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텃밭이 척박하다 보니 저울추를 맞추려면 수도권에서 압도해야 했고, 그러려면 중도 부동층의 마음을 잡는 길밖에 없었다.
초년병 정치부 기자 때 정대철, 김상현 같은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 방을 자주 들렀다. 여야 대치로 정국이 꽉 막혀 있을 때 그들 머릿속엔 늘 해법이 있었다. 정치에서 오버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진리를 깨치고 있었고, 그래서 늘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타협점을 찾으려 했다.
그 같은 지혜와 절제를 요즘 민주당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DJ의 입김이 서려 있던 20년 전 민주당이었다면 시·도지사 3명의 성범죄가 터졌는데도 감싸고 돌다가 후속 사건까지 불러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생중계 청문회장에서 준비 부족으로 망신당한 국회의원들은 다음 총선 공천이 물 건너갔다고 봐도 틀림없었다.
민주당은 도대체 왜 망가졌을까. 민주당은 2016년 총선을 시작으로 전국 단위 선거에서 초유의 4연승을 했다. 더구나 2020년 총선에선 전체 의석 중 60%를 쓸어 담는 사상 최대 압승을 했다. 더구나 조국의 위선과 내로남불을 감싸는 정치 자해극 속에서 거둔 승리였다. 그래서 제멋대로 처신해도 괜찮다는 자만과 방심에 빠져들었다. 민주당 20년 집권론에 이어 “대통령을 10명 계속 당선시키자”는 50년 집권론까지 등장했다.
민주당은 문빠라는 극단 지지층 장단에 맞추는 쉽고 편한 길만 찾기 시작했다. 쓴소리, 바른말은 자취를 감췄다. 표밭이 비옥해서 노력 안 해도 결실이 풍성하면 농부는 신경 안 쓰고 게을러진다. 민심에 둔감해지는 ‘풍요의 저주’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발전 못 하는 ‘자원의 저주’ 비슷하다.
문재인 정권이 5년 동안 남긴 유산이라곤 아파트 값 폭등밖에 없다. 도덕성이 생명인 진보 진영이 내세운 여당 대선 후보 주변에선 범죄와 추문의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승부는 0.7%p 차 박빙으로 갈렸다. 그래서 5년 단임제를 도입한 1987년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도 민주당은 반성하지 않는다.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대선에서 국민이 선택한 정권의 첫 총리부터 발목을 잡는다. 대선은 운이 조금 나빴을 뿐이라고, 운동장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기울어 있다고 믿는 눈치다. 정말 그런지는 두 주 후 치를 지방선거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06.16 尹의 ‘회식 리더십’, 통크고 시원하나 만능은 아니다
검찰 지휘하던 맏형 통솔력
사람 좋아하고 솔직한 접근
정치권서 낯선 감동 주기도
이해관계 꼬여 있는 國政
뭐든 풀 수 있다는 건 착각
내 스타일 고집하면 탈 나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함께 입장하며 기업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문재인 정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가 극성을 부리던 재작년 연말, 대검찰청 익명 게시판에 총장의 ‘맏형 리더십’을 칭송한 글이 올라왔다. 검찰 수사관으로 추정되는 필자가 경험한 윤석열 에피소드들이 소개됐다. “수사관들끼리 술 먹다가 불러도 밤에 나와서 술값 내준다. 한번은 밤 10시에 전화했더니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더니 다음 날 미안하다고 돈 보내 주더라”는 식이다. “너희는 정의를 지켜라. 나는 너희들을 지켜주겠다고 하니 죽어라 일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검찰 구성원 대다수가 똘똘 뭉쳐 윤석열을 지키려 했던 배경이 짐작된다. 윤 대통령은 변호사가 됐다가 검찰청 야근자들이 시켜 먹는 짜장면 냄새가 그리워서 검사로 복귀했다.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한직을 돌면서도 국회에서 “검찰 조직에 충성한다”고 했었다.
이렇게 수십 년 살아온 스타일이 대통령이 됐다고 하루아침에 변하겠는가.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선배에게 “앞으로 폭탄주 못 먹게 됐으니 어쩌나”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폭탄주 끊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대선이 끝난 후 윤 대통령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들을 몇 명 만났다. 느지막한 저녁 무렵 전화벨이 울려서 누군가 봤더니 ‘윤석열’ 전화번호였다. 깜짝 놀라 받았는데 특별한 용건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안부 묻고 덕담을 주고받았다는 거다. 윤 대통령이 저녁 자리에서 화제에 오른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어 그냥 전화한 모양이다.
낯 가리고 접촉을 꺼리는 두 대통령을 거치고 나니 사람 좋아하고 어울리는 대통령 모습이 살갑게 느껴진다. 대통령 행사에 참석했던 경제계 인사는 어떻게든 다가서고 소통하려는 윤 대통령의 적극성이 전임들과 비교되더라고 했다. 이런저런 말실수가 나오고 있지만 출근길에 마주친 기자들 질문에 솔직한 답을 내놓는 대통령 모습도 국민 속 터지게 하는 불통(不通)보다는 백번 낫다는 생각이다.
작년 12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소셜 미디어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을 남기면서 돌입한 당무 거부는 윤석열 후보와의 울산 회동으로 나흘 만에 마무리됐다. 식당에서 마주 앉을 때만 해도 가시 돋친 말이 오가더니 저녁을 마치고는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이견이 없다”는 입장 발표가 나왔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은 사진이 다음날 신문 1면에 실렸다. 윤석열식 소통이 정치에서도 먹혀든다 싶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2인 3각은 이 대표의 두 번째 가출로 18일 만에 제동이 걸렸다.
대선 막판 최대 변수였던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물밑 협상이 계속 겉돌면서 난항을 겪었다. 윤 후보 쪽은 두 당사자가 결말 짓는 일만 남았다는데 안 후보 쪽은 진정성 있는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전혀 다른 소리를 했다. 안 측 관계자는 “둘이서 폭탄주 러브샷하고 잘해보자고 하면 된다고 믿는 모양인데, 검찰에서 하던 회식 정치로 안철수는 설득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가 성사된 자리에서 안철수는 “어떻게 신뢰를 보여줄 것인가”라고 물었고 윤석열은 “종이 쪼가리가 무슨 소용이냐. 그냥 나를 믿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시각차를 보여주는 문답이다.
대통령은 천차만별 인간 군상이 뒤섞인 국정 전반을 아울러야 한다. 불법 심판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동일체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검찰 통솔력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야당 사람들은 어떻게든 윤 정부를 흠집 내야 자신들의 활로가 열린다는 제로섬 게임을 믿는다. 대통령이 국회 시정 연설하고 야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고 해서 갑자기 머릿속이 협치 모델로 갈아 끼워지는 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이후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최우선 순위인 당내 주자들의 계산법도 대통령 입장과 반드시 일치하란 법이 없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옷을 벗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의 행태에 분노를 터뜨렸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대통령은 자신이 살아온 대로 속내를 터놓고 진심으로 대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윤석열식 리더십은 통 크고 시원하다. 기존 정치권의 작동 방식보다 국민을 감동시킬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만능 열쇠가 될 수는 없다. 정치는 때로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입장 차를 놔둔 채 불편한 대로 공존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현실을 인정 않고 모든 걸 내 방식대로 풀겠다고 고집하면 뒤탈이 날 수도 있다.
06.30 文과 차별화, “우리는 거짓말하지 않겠다”부터
文 정권은 靑부터 거짓말
同盟 반박 듣는 망신까지
정권이 신뢰 자본 탕진
나라 경쟁력 갉아먹어
‘尹 정권 말은 팩트’만 돼도
정권 교체 표 값 하는 셈

▲검언 유착 허위 글 SNS 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7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탈(脫)원전은 바보 짓” “평화는 굴복이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 “제복 영웅이 존경받는 나라” “연금 개혁 미룰 수 없다”…. 취임 후 한 달 남짓 윤석열 대통령이 한 발언들을 꿰뚫는 공통분모는 문 정권과의 차별화다. 당연한 일이다. 지난 대선을 가른 표심이 지난 5년간 궤도를 이탈한 나라를 제자리로 돌려 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개별 정책의 방향 전환보다 선행돼야 할 차별화가 있다. 절대 거짓말을 않겠다는 다짐이다.
문재인 정권 사람들의 거짓말을 지적한 조선일보 사설만 수십 건이었다. 청와대부터 거짓말에 앞장섰다. 국민 속이는 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동맹국까지 대상으로 삼았다가 반박을 듣는 망신을 당했다. 2019년 한일 군사정보 보호 협정(지소미아) 파기 후 청와대는 “미국의 이해를 구했고 미국도 이해했다”고 했는데 미국 정부는 곧장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이 일본, 인도, 호주와 결성한 쿼드(Quad)에 한국 참여를 요청했느냐에 대해 우리 정부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했는데, 미국 관계자는 “사실과 다른 얘기”라고 했다. 지난달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때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전 청와대 관계자가 주장했다. 백악관 반응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국가 간의 관계, 특히 동맹 간에는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하는 말을 웬만해선 피하는 법이다. 문 정권이 없는 말을 계속 지어내니 부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청와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코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 정권은 거짓말을 하고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불감증이 심각한 단계로 발전한 계기는 조국 사태였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했던 의혹들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조국 부부의 거짓말 때문에 우울증,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1000명이 넘는 시민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조국 수사를 총괄했던 한동훈 법무장관은 “조 전 장관 거짓말 때문에 수사가 확대됐다”고 했다. “검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니 그걸 깨기 위해 추가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권은 거짓말하는 조국을 감싸고, 수사하는 검찰을 탄압했다. 그런데도 총선에서 180석을 쓸어 담는 압승을 했다. 그걸 문 정권은 거짓말 면죄부로 받아들였다.
제대로 민주주의 하는 나라에서 책임 있는 당국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사에 들어와 선배들에게 들은 조언 중 하나가 “당국자에게 최종 확인을 받으라”는 거였다. 그들이 맞는다고 하면 기사를 쓰고, 부인하면 팩트를 다시 점검해야 했다. 당국자가 거짓말을 안 하는 이유는 그랬다가 탄로 나면 당장 공직에서 추방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선 정반대였다. 거짓말을 하고 버티면 지지층이 환호하고 대통령은 감쌌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배신자 취급을 당했다.
최강욱 의원의 ‘짤짤이 거짓말’이 좋은 예다. 온라인 화상회의 때 동료가 화면을 끄고 있자 최 의원이 성희롱 발언을 하는 것을 여럿이 들었다. 최 의원은 “짤짤이 하고 있냐”고 물었는데 사람들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두 달째 우기고 있다. 짤짤이는 동전 소리가 크게 들린다. 애당초 화면을 끄고 몰래 할 수 있는 행동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강성 지지층은 최 의원 말이 맞는다고 변호하고, 최 의원 징계를 주장한 당대표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사람 사이의 거짓말은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만, 정권의 거짓말은 나라를 갉아먹는다. 문 정권 초기만 해도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하는 말이면 사실관계는 당연히 맞겠거니 했다. 그러나 몇 차례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저 말도 사실일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일이 따져 봐야 했다. 대응이 늦어지고 순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권이 신뢰 자본을 탕진해서 국가 경쟁력을 좀먹은 셈이다. 윤석열 정권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줬으면 좋겠다. 윤 대통령은 직선적이고 속마음을 감추지 못해서 거짓말은 안 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정권 핵심 관계자들에게도 거짓말은 용납 않겠다고 다짐을 받아야 한다. 정권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정권이 밝힌 팩트만은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소통과 통합도 시작된다. 윤 정권이 그것 하나만 분명히 지켜줘도 정권을 바꾼 유권자 1639만명은 표 값을 돌려 받았다고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07.14 自害로 무너진 이준석, 그를 짓밟는 보수의 自害
1년 전 보수의 희망이던 李
대선 때 이적 행위로 미운털
창창했던 장래 스스로 망쳐
대표에 대한 私感으로 징계
도로 구태 당 이미지 회귀
2030 내치는 자충수 되나
작년 이맘때 이준석은 한국 보수의 빛나는 보석이었다. 낡고 퀴퀴했던 보수 정당에 청량한 바람을 몰고 온 풍운아였다. 성격 급한 사람들은 그를 차기 주자로 꼽았다. 다음 대선 피선거권이 있는지 나이를 헤아려 보기도 했다.
1년 새 이준석은 보수의 미운털이 됐다. 전통 지지층은 그를 대놓고 혐오한다. “민주당보다 이준석이 더 밉상”이라고 한다. 대선 때 이준석의 이적 행위 때문이다. 두 차례 당무 보이콧에다 아군을 겨냥한 내부 총질을 했다. 윤석열 후보 지지율이 널뛸 때면 늘 이준석 변수가 화근이었다. 정권 교체에 몸 달았던 보수 지지층은 이준석에게 이를 갈았다.
이준석에겐 큰 정치적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편이 갈린 한국 정치판에서 성공하는 길은 한 가지다. 보수 또는 진보 정당에 몸담아 고정표를 확보하고 개인기로 ‘플러스 알파’를 보태는 것이다. 이준석의 ‘플러스 알파’는 20·30대 남성 지지다. 한국 보수의 취약 지대를 맞춤형으로 보완해 준다. 정치 고속도로를 내달릴 수 있는 스펙이다. 이준석은 이 쉽고 단순한 성공 방정식을 스스로 걷어찼다. 줄잡아 30%가 넘는 보수 고정 지지층을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대남 표를 끌어모아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1년 전 이준석은 호남을 제외한 전국 어디서도 당선될 수 있는 초우량주였다. 지금 이준석은 당선을 자신할 지역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 자해극의 결과다. 과학고에 하버드대 나온 비상한 머리로 왜 더하기 빼기 산수를 그르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납득이 안 되기는 이준석 징계 파동도 마찬가지다. 사법적 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같은 집안 식구들이 먼저 징계에 나선 것부터 괴이하다. 미워서 찍어내려는 사감(私感)이 느껴진다. 그래서 징계 자체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데도, 징계를 추진한 국민의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시점에서 이준석 징계는 별 실효성도 없다. 대선, 지방선거가 끝난 마당에 당대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이준석이라면 지지층이 넌더리를 치는데, 내년 전당대회에 다시 출마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준석은 내년 6월 대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서서히 무대 뒤로 사라져가는 일만 남아 있다. 그러니 당원권 정지는 외국 나갈 계획 없는 사람을 출국 정지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징계 효과를 굳이 따지자면 이준석에게 굴욕감, 이준석이 못마땅한 사람들에게 쾌감을 안겨준다는 점 정도다.
이런 감정적 보복을 소비하기 위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은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난 한 주 20대 유권자의 윤석열 정권 지지 하락 폭이 두 자릿수로 가장 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민의힘에 몰려들었던 이대남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짐작하려면 당초 그들이 오게 된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이준석 개인의 팬인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국민의힘이 금배지를 달아 본 적도 없는 30대 당대표를 뽑는 것을 보면서, “나 같은 젋은 사람도 저 당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고 희망을 걸었다. 얼마 전 국민의힘 20대 대변인은 “민주당처럼 하지 말라고 윤석열 대통령을 뽑아준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인사 실패에 대해 “전 정권과 비교해 보라”고 변명한 윤석열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예전 보수 정당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준석 체제에서 달라진 당 체질의 한 단면이다.
그랬던 국민의힘이 이준석을 징계하고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모습에서 도로 구태 당의 회귀를 예감한다. 이 대표가 비운 자리를 윤핵관 직무대행이 메웠다.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각하께 받들어 총” 충성 구호가 들려올 것이다.
이준석이 판단 착오로 당에 피해를 주고 스스로도 상처를 입었지만 그가 주장한 세대 포위론은 보수 회생의 처방전이었다. 수십 년 한국 정치를 규정해온 지역 구도는 조금씩 이완되고 있는 반면, 세대 대결은 갈수록 강고해지고 있다. 보수 진보가 팽팽하게 맞서는 세대 균형점은 당초 40대였는데, 어느덧 50대 중반까지 치고 올라갔다. 보수가 이런 흐름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20·30대 신(新)보수를 끌어들여 상하로 둘러싸야 한다. 지난해 이준석이 일으킨 2030 돌풍이 세대 포위를 현실로 만들었다. 그래서 보수 르네상스를 꿈꾸게 했다. 그런데도 보수는 이준석이 못마땅하다고 이준석 현상까지 내칠 셈인가. 이준석 욕하면서 이준석의 어리석은 자해까지 따라 하려는 건가.
07.28 ‘한동훈 함정’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대는 野
“법무 人事는 테러”라더니
결격 사유도 대지 못하고
국회서 만나면 지리멸렬
지켜본 국민들 조롱만 사
반대를 위한 반대였거나
질문 능력도 못 갖춘 탓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2.7.25/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민주당은 지난달 말 법치 농단 저지 대책단을 신설했다. 요란하고 거창한 명칭이지만 임무는 단순하다. 한동훈 법무장관을 저격하는 것이다.
단장은 박범계 의원이 맡았다. 3선에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현장에 나서는 게 쑥스러웠는지 “몇 번이나 고사했는데 자꾸 권해서 어쩔 수 없었다”면서 “여기서 쉬겠다고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내키지 않지만 궂은일을 떠맡았다는 뜻이다. 한 장관을 상대할 만한 경륜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자신밖에 더 있느냐는 말이 생략됐을 듯싶다.
박 의원은 25일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그날 오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에게 윤 정부의 법치 농단에 대해 따지겠다”고 예고했다. “애정을 갖고 따끔하게 물어볼 것”이라고 했는데 애송이 장관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분위기였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뜨거운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을 베고 돌아오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실전은 박 의원의 포부와는 다른 모양새로 흘러갔다. 박 의원이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한 장관은 여유 있게 피해 나갔다. 박 의원이 “틀렸다, 거짓말”이라고 호통치고 한 장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또박또박 반박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두 사람의 공방을 담은 17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 수가 200만회를 훌쩍 넘어섰다. 인기 드라마가 부럽지 않은 흥행이다. 댓글은 무려 2만9000여 개가 달렸는데 박 의원에 대한 비판과 한 장관에 대한 응원이 대부분이다. ‘좋아요’ 많이 받은 인기 순으로 앞에 배치된 댓글 몇 개를 소개하면 “준비된 자료로 질문하는 사람은 소리 지르고, 즉석 답변하는 사람은 차분하고” “전(前) 현(現) 두 법무장관의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 “엄청 권위적이긴 한데, 진짜 고구마 질문” 같은 내용이다.
이날 두 사람의 대결은 민주당 강성 의원 모임인 처럼회 멤버들이 한동훈 인사청문회에서 집단 망신 당했던 일에 대한 복수 혈전으로 예고됐었다. 그 청문회에서 최강욱 의원은 ‘한국 3M’ 업체 명의를 한 장관 딸 이름으로, 김남국 의원은 ‘이모 교수’를 한 후보 딸 이모로 착각하는 함량 미달 질문으로 폭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한 장관 베겠다고 휘두른 칼에 제 팔, 제 다리를 찔린 격이었다. 그 수모를 대신 갚아주겠다고 박 의원이 나섰지만 한 장관 갑옷에 스치지도 못하고 허공만 갈랐다.
한동훈 법무장관 내정 발표가 났을 때 민주당은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펄펄 뛰었다. ‘인사(人事) 테러’ ‘망국(亡國) 인사’라는 격한 표현을 총동원해서 비난했다. 윤석열 정부 내각의 낙마 대상 중 첫손가락으로 한동훈을 꼽았다. 한덕수 총리 국회 인준을 볼모로 잡고 한동훈 장관 지명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 결사 반대를 뚫고 윤 대통령은 한 법무 임명을 밀어붙였다. 이런 경우 야당은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벼르는 법이다. 문제의 장관을 시도 때도 없이 국회로 불러내 십자포화를 퍼붓는다. 웬만한 신경줄의 장관은 녹다운되거나 몸을 가누기 힘든 그로기 상태가 된다. 장관이 질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을 하는 장면이 연출되면 국민은 “감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 대통령 인사가 잘못이었구나”라고 고개를 내젓게 된다. 그렇게 조리돌림을 당한 장관은 국회 출석 요구만 받아도 식은땀을 흘리고, 국회에 가는 것이 도살장 끌려가는 것 마냥 무섭고 진저리치게 된다.
지금 야당과 한동훈 장관 사이에선 정반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의 내로라하는 싸움닭들이 한 장관을 혼쭐내겠다고 덤볐다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됐다. 한동훈 저격이라는 특별 임무를 배당받고 나섰던 대표 검객마저 스타일만 구기고 상대 몸값만 올려줬다. 이제 야당 의원들은 한동훈 장관을 손보겠다고 달려들기는커녕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맞붙었다가 남는 장사는커녕 본전도 챙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당 당초 주장대로 법무장관 한동훈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인선이었다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에서 입증해 보여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만 만나면 버벅대기만 하고 있다. 애초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것이거나, 한 장관의 결격 사유를 드러낼 질문 능력조차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역량도 가늠해 보지 않고 한동훈 죽이기에 뛰어들었다가 스스로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08.11 尹에게 야박한 民心, 농부가 밭을 탓하랴
대선 득표 반토막난 24%
대통령 잘못 있었지만
취임 초반 가파른 하강세
5년내 40%선 문통과 대비
뺄셈 정치 오판도 한몫
분한 심정 접고 새 출발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수직 낙하하던 몇 주일 동안 여러 갈래 반응을 접했다. “지지율 수치를 못 믿겠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윤 대통령에게 잘못한 점이 있다 해도 지지율이 10%p, 20%p씩 추락할 일은 아니었다는 반론이었다.
지난주 갤럽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4%였다. 대선 득표율 48.65%의 꼭 절반 수준이다. 윤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1639만명 중 820만명가량이 마음을 접었다는 뜻이다. 5년 전 이맘때 갤럽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77%였다. 대선 득표율 41.1%의 두배 가까운 수치다. 다른 대통령들도 취임 100일 이내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을 크게 웃돌곤 했다. 그 짧은 기간에 특별히 일을 잘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도 첫 출발을 하는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어 보는 기간이 허니문이다.
윤 대통령은 무슨 큰 죄를 지어 민심을 화나게 했을까.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이 인사(人事)다. 검사 후배, 초등학교 동문, 술 친구에 이르기까지 사적 인연으로 사람을 고른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그런 비판에 “그래도 전 정권보다는 낫다”고 뻣대며 맞선 것이 화를 키웠다.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의혹이 수십 가지씩 쏟아져 나온 조국 법무장관을 감싸며 밀어붙인 전임 대통령의 오기 인사에 비길 바는 아니다. 조국 사태로 문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점을 찍은 것은 2019년 10월 갤럽 조사에서 39%였다.
정책 혼선도 윤 대통령 지지율을 깎아 먹은 주범으로 지목됐다. 장관이 발표한 주 52시간 방침을 대통령은 보고받지 못했다고 하고, 만 5세 입학, 외고 폐지를 불쑥 꺼냈다가 거둬들이기도 했다. 이런 시행착오들을 모두 합쳐 놔도 월급으로 서울 소형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기간을 21년에서 36년으로 늘려 놓은 부동산 참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동산 민심이 비등했던 2021년 5월 문 대통령 지지율은 29%로 바닥을 쳤다. 이런 초대형 악재들이 터졌을 때를 제외하고 문 대통령 지지율은 5년 내내 40%선을 웃돌았다. 그래서 대깨문이 국민 열 중에 넷이란 말이냐, 믿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곤 했다. 필자도 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하는 40%가 누구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반면 윤 정부는 취임 백일 상도 받기 전에 지지율 30% 선이 무너져 내리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의 불공정과 비상식에 맞섰다가 떠밀리듯 정치판에 나서게 됐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 때 정상 궤도를 이탈한 나라를 제자리로 돌려 놓는 책임을 윤석열에게 맡겼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보다는 잘하겠다고 결심했을 것이고, 자신도 있었을 것이다. 문 정권 5년 동안 나라에 보탬 되는 일을 한 것이 단 한 가지라도 있었나. 역대 대통령들이 다지고 다져 놓은 나라 곳간을 털고, 미래 세대 몫을 눈속임으로 당겨다가 당장의 씀씀이에 보태며 생색을 낸 것이 전부다. 원칙만 지키면 문 대통령보다야 못하랴 싶었을 것이다. 전 정권 타령이 말버릇이 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에게 임기 내내 관대했던 민심이 자신에겐 초장부터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처럼 보인다. 억울하고 야속한 심정이 들 만도 하다.
윤 대통령이 잘못 짚은 부분도 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은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가 나선 5파전에서 당선됐다. 탄핵으로 정권 교체가 확실시되면서 유권자들은 자기 선호대로 표를 던졌다. 문 대통령이 얻은 41.1%는 말 그대로 문재인 표였다. 이들은 문재인 지지를 5년 내내 거두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얻은 48.65%도 자신에 대한 지지라고 여겼다. 전임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고 믿었을 것이다. 양자구도였던 지난 대선은 원하는 후보를 고르는 게 아니라, 혐오하는 후보를 떨어뜨리는 선거였다. 이재명 당선만은 막으려는 국민들에게 선택지는 윤석열밖에 없었다. 그들 중 절반가량이 대통령의 언행을 보고 실망해서 등을 돌린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지지를 과대 평가한 윤 대통령은 선거 기간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들에 대한 뺄셈 정치까지 했다. 반토막 지지율엔 이런 착각과 오판도 한몫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5년 차 레임덕 대통령에게 어울릴 부스러기 지지율을 자본 삼아 새 출발에 나선다. 내가 전임보다 잘못한 게 뭐냐는 분한 마음은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썼던 표현을 빌리자면 농부는 밭을 탓할 수 없는 법이다.
09.08 ‘이재명 의혹’은 尹 정부가 쏘아 올린 게 아니다
民主 경선 때부터 불거져
경쟁 후보와 내부자가 폭로
尹 정권 들어선 한 건도 없어
쫓겨났던 검사들 이제야 수사
“털어도 없었다”는 李 대표 말
수사 종결 압박하는 防彈 화법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먼지 털어도 안 나오니 꼬투리 잡는다”고 했다. 자신을 잡으려고 온갖 혐의를 뒤졌지만 허탕을 쳤다는 뜻이다. 수사 대상에 오른 이재명 의혹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다. 윤석열 정부가 이 대표를 어떻게든 엮어 보려고 몸부림친 결과물일까.
이재명 의혹은 작년 여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불거졌다. 8월 29일 이낙연 캠프 일요 기자 간담회가 신호탄이었다. 캠프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의 형 강제 입원, 아내 김혜경씨의 ‘혜경궁 김씨’ 법정 다툼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 30여 명의 수임료가 수십억일 텐데 이 대표 재산은 변동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 대신 내준 게 아니냐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년형을 선고받은 핵심 혐의가 변호사비 대납이었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돈으로 변호사비 3억원을 부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친문(親文) 시민 단체는 이 대표가 검찰 출신 변호사 한 명에게 준 것만도 현금과 주식 20억원이 넘는다고 폭로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이 곧장 뒤를 이었다. 경기도 지역 신문은 8월 31일 자에 “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과거 민주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다스는 누구 것이냐”고 추궁했던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대장동 사업으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화천대유가 이 후보 당신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칼럼 필자는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경쟁했던 핵심 후보 진영에서 제보해온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에 대한 대법원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낸 권순일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된 사실은 9월 16일 보도됐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판결 전후로 권 대법관 사무실을 8차례 방문한 사실도 확인됐다. 화천대유 고액 연봉을 사후 뇌물로 재판 거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9월 30일엔 ‘대장동 말고 백현동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장동과 마찬가지로 이재명 성남시장 때 백현동 사업으로 3000억원대 특혜 수익이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성남시장 선거 때 선대본부장 지낸 사람이 개발 업체로 영입되자 성남시가 부지 용도를 변경해 준 덕분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구단주였던 성남FC 축구 팀이 성남시 소재 기업 여섯 곳에서 후원금 160억원을 받고, 성남시는 해당 기업에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변경 등의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있다. 이 의혹은 당초 2018년 장영하 변호사가 이재명 시장을 특가법 뇌물죄 혐의로 성남지청에 고발했던 것인데 대선 국면에서 다시 쟁점이 됐다. 민주당 출신인 장 변호사는 한때 이재명 변호사와 동지 관계였으나, 2010년 성남시장 선거를 계기로 원수 사이로 바뀌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이 대표를 저격한 ‘굿바이, 이재명’을 발간했다.
이재명 대표의 경기도 지사 시절 아내 김혜경씨의 수행비서 배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김씨의 개인 경비 2000만원어치를 지출했다는 의혹은 배씨 지시를 받았던 7급 공무원이 폭로했다. 경기도 예산으로 월급을 받은 7급 공무원이 이재명 지사 댁의 냉장고와 속옷, 양말, 셔츠 정리 같은 일을 한 정황도 텔레그램 문자에 남아 있다.
이재명 대표가 살던 분당 아파트 2401호의 옆집 2402호를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2020년 8월부터 전세 계약을 맺고 직원 합숙소로 썼던 사실은 지난 2월 언론에 보도됐다. “이재명 후보 공약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GH 직원 익명 게시판 글도 함께 공개됐다. 이 집이 대선 기간 이재명 후보의 비밀 캠프로 이용됐다는 의혹이다. 네티즌들은 “경기도 법카로 김혜경씨에게 배달된 초밥 30인분을 누가 먹었는지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수군거렸다.
모두 문재인 정부 임기에 터져 나온 의혹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한 건도 없었다. 의혹을 제기한 주체도 윤 정부 쪽 사람들이 아니다. 민주당 경쟁 후보 진영 또는 이 대표와 일했던 사람들이 직접 폭로했거나 언론에 제보했다. 문 정부 사람들은 차기 주자 이 대표를 보호하려고 의혹을 덮고 진상 규명을 막았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열쇠를 쥔 쌍방울그룹 관계자가 검찰 귀띔을 받고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검찰 라인은 문 정부 때 한직으로 쫓겨났다가 복귀해 막 수사를 시작하는 참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오랫동안 먼지 털듯 수사했는데도 아무 진척이 없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간다. 수사를 종결하라는 압박이다.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며 제 집 쓰레기를 남의 집 앞마당에 던졌던 이재명식 방탄(防彈) 화법의 변주곡이다.
09.22 이재명이 깔봤던 ‘초보’ 젤렌스키, 세계를 놀래다
동북부 대반격 영토 탈환… 전쟁판도 우크라 쪽 기울어
러 낙승 전망 뒤집은 건 젤렌스키 용기와 리더십
남의 불행 정쟁 삼았던 前정권 부끄러워해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으로부터 탈환한 하르키우주 이지움을 방문해 병사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차대전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면서 핵 협박까지 들고 나왔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의 동북부 대반격으로 영토를 탈환하면서 전쟁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이번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 머리기사는 ‘푸틴의 전쟁은 실패하고 있다. 더 빨리 실패하도록 도와야 한다’였다.
당초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나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 아닌 ‘군사 작전’이라고 불렀다. 내부 소요 사태를 진압한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에 잠깐 산책하러 다녀오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푸틴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다. 전문가들도 일주일 안에 수도 키이우가 함락될 것으로 봤다. 러시아는 영토가 우크라이나의 28배고, 인구는 3.5배며 군사력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미국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당신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롭다”며 도피를 권했을 때 이를 받아들였다면 실제 전쟁은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내가 필요한 것은 차량이 아니라 탄약”이라며 거부했다. 그 지점에서 세계사는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그는 개전 다음 날 어두컴컴한 정부청사를 배경으로 동영상을 촬영했다. “대통령, 총리, 대통령 고문, 군 수뇌부가 모두 여기 있다. 우리는 국가와 독립을 지켜 낼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쟁 초기 자리를 버리고 달아났던 관리들도 대통령의 항전 의지를 확인하고 속속 복귀했다.
이번 동북부 반격도 젤렌스키의 아이디어였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절실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타협을 종용했다. 결국은 러시아가 이길 전쟁인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게 전쟁만 장기화시킨다는 피로감도 쌓여 갔다. 젤렌스키는 반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군 최고 장성들에게 전세계가 깜짝 놀랄 반격 드라마를 주문했고 성공했다. 젤렌스키는 “미군의 지원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지만, 미군 수뇌부는 “젤렌스키의 전략적 판단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군의 충격적 패퇴를 목격한 뒤 “승산은 우크라이나 쪽에 있다” “무기 공급이 제값을 한다”는 두 가지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가 노렸던 그대로다.
승전에 맞춰 젤렌스키는 소셜 미디어에 연설문을 올렸다. “러시아, 너희가 가스, 빛, 물, 음식으로 협박하면 그것 없이 살겠다. 추위, 어두움, 갈증, 배고픔이 너희에게 굴종하는 것보다는 견딜 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끝내 가스, 빛, 물, 음식도 되찾을 것이다. 그것도 너희의 도움 없이.” 이 연설문을 영국의 더 타임스는 “우리 시대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라고 극찬했다. “시적(詩的)이면서도 단호한 정서가 담겨 수십년간 읽힐 명문”이라고 했다. 개전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각국별 맞춤 연설로 협력을 이끌어냈다. 미국엔 “우리는 매일 9·11과 진주만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고, 영국엔 “숲에서, 들판에서, 거리에서 계속 싸울 것”이라며 처칠의 2차 대전 연설을 패러디했다.
젤렌스키의 용기와 통찰력, 그리고 공감 능력에 전 세계가 감탄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피 끓게 만들었고, 서방 국가들이 돕지 않을 수 없도록 유도했다. 조약돌을 쥔 소년 젤렌스키가 도끼를 휘두르는 거인 푸틴을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7개월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무단 침공했을 때 민주주의 하는 나라들은 푸틴의 만행에 놀라고 분노했다. 젤렌스키를 비난하고 조롱한 것은 대한민국 집권 세력이 유일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토론에서 “초보 정치인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했다”고 했다. 유세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걱정하는 분이 많은데 지도자가 무지하지 않으면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은 “대통령을 잘못 뽑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다” “준비 안 된 대통령 때문에 국민이 희생된다” “아마추어 대통령을 뽑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장단을 맞췄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윤석열 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해 남의 나라의 불행마저 정쟁 거리로 소비한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은 “젤렌스키에게 투표한 72% 우크라이나 국민이 바보인 줄 아느냐”고 분노했다. 북한의 비핵화 사기극을 대변하다가 동맹과 우방들로부터 핀잔을 들은 정권이 세계를 놀라게 한 영웅을 깔보며 ‘훈계질’을 한 것이다. 그들이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북녘 김씨 남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일 아닌가.
10.20 이재명의 ‘親日 국방’ 선동, 安保 이치 모른다는 고백
유사시 증원군 신속배치
후방기지 日 없인 불가능
일본과 군사협력 거부는
동맹 부담 안 진다는 뜻
80년대 피해망상 역사관
나라 안위 위태롭게 해

▲자료=여론조사공정(주)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미국과 같은 편이 되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절감하게 된다. 러시아의 한 주먹 감도 안 돼 보였던 우크라이나가 예상 밖으로 잘 싸우고 있는 건 미국의 장비와 정보 덕분이다. 우리 처지는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든든하다. 미군이 2만8000명이나 주둔하며 지켜주는 동맹국이다. 일본 5만2000명, 독일 3만6000명에 이어 셋째로 많은 인원이다. 더구나 2만8000명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가 침략을 당하면 그 몇 배 증원군이 한반도로 달려오게 돼 있다. 그 실효성을 담보해주는 게 일본이라는 후방 기지다.
6·25 때 미군이 부산에 도착한 것은 남침 엿새 만인 7월 1일이었다. 1만km 떨어진 미국 서부에서 출발했다면 어림없었다. 일본에 주둔 중인 미 24사단 중에서 가장 빨리 소집된 21보병연대 1대대를 투입했다. 대대장 이름을 따라 스미스 부대라 불린 1대대는 장비도 훈련도 엉망이어서 고전했다. 그러나 미군이 한반도에 등장하자 북한은 긴장했고 전열을 재정비했다. 맥아더 사령관은 “스미스 부대 조기 투입으로 열흘이라는 시간을 벌었다”고 분석했다.
유엔 결의안 84조에 따라 유엔군 사령부가 일본 도쿄에 창설됐고 전쟁 내내 한반도 방어를 지휘했다. 1957년 유엔사가 서울로 이전하면서 도쿄에 유엔군 후방사령부(UNC REAR)가 새로 만들어졌다. 현재도 극소수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서울 유엔사가 주일(駐日) 미군을 동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남긴 것이다.
2002년 일본 오키나와를 방문한 외교부 관계자는 나하 공항 인근에 2000만㎡가 넘는 땅이 녹슨 철조망에 둘러싸여 방치돼 있는 걸 보고 의아했다. “왜 이 땅을 놀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에 전쟁이 나면 미국에서 공수돼 올 증원군의 1차 집결지로 사용될 땅”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얼마 전 바다에서 실시한 한·미·일 연합 훈련에 대해 ‘극단적인 친일 국방’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욱일기, 자위대, 독도 같은 휘발성 높은 단어들을 동원했다. 머잖아 대한민국 영토에서 일본 군화 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올 것처럼 겁을 줬다.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우리와 달리 군사 협력을 반기고 적극성을 보여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2014년 7월 일본 아베 총리는 의회에서 “미국 해병대가 일본에서 나가려면 미·일 간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양해하지 않으면 한국을 구하기 위해 달려갈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한미 동맹 후방 기지 역할을 거부한 이 아베 발언은 우리 정부에 큰 충격을 줬다. 몇 달 후 미 국무부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정부와 협의 없이 주일 미군을 자동 파견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파문이 가라앉았다.
일본도 한국과 안보 문제로 엮이는 걸 탐탁해하지 않는다. 북한의 군사적 표적이 될 위험 때문이다. 우리가 주한 미군의 대만 사태 개입으로 중국을 자극까 우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 북한이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는 것은 유사시 한반도에 투입될 주일 미군 기지를 염두에 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혼자 힘으로 아시아 지역 방어를 책임지는 데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협력 체제와 부담을 나눠 지고 싶어 한다. 일본은 한국과의 협력을 미일 동맹의 의무로 받아들인다. 우리에게도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은 하나로 묶인 패키지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한미 동맹이라는 혜택만 취하고 한미 동맹에 따르는 부담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공통분모는 대미(對美) 동맹만이 아니다. 북핵 탑재 미사일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과 일본 둘뿐이다. 미국이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ICBM을 동결하는 대가로 핵 보유를 용인하는 ‘이기적 선택’을 할 경우 강력하게 항의해서 저지해야 하는 나라도 한국과 일본이다. 같은 위협에 처한 나라와 힘을 합치는 것은 안보의 기본 원칙이다. 일본이 좋아서, 일본과 친해지고 싶어서 협력하는 게 아니다.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는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이 대표의 역사관은 1980년대 대학 신입생의 의식화 커리큘럼 그대로다. 대한민국 모든 패악의 원인을 친일(親日)에 돌린다. 이런 자폐적 피해망상 사관이야말로 나라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이 대표가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대한민국 안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본 원리부터 깨쳐야 한다.
11.03 이태원 참사 왜 못 막았냐고 비판할 자신은 없다
11차례 112 신고 묵살 비판
“20명이 최선 다했다” 반박
통제·일방통행 안해 아쉽지만
하기 어려운 사정 있을 수도
예방 가능했다는 人災 주장
사고 터진 후 할 수 있는 말

▲안양시가 마련한 이태원 참사 관련 안양역 분향소. 시는 사망자 분향소 명칭을 희생자 분향소로 변경했다.
이태원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우려하는 112 신고가 11차례나 접수됐던 사실이 밝혀졌다. 어제 아침 자 조간신문 머리기사들은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신고를 수차례 받고도 경찰이 “방치”하고 “묵살”하고 “뭉갰다”고 비판했다. 당일 오후 6시 34분의 첫 112 신고 내용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였다. 네 시간 뒤에 벌어질 사고를 마치 앞당겨 보기라도 한 듯한 경고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람들이 교행이 잘 안 되고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서 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거죠?”라고 응대했다. 신고자가 걱정하며 전달하려고 한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분노하게 된다.
현장 치안을 담당했던 경찰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태원 파출소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직원은 “직원 20명이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현장 주변 폭력, 성추행을 포함해 79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그것들을 처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는 주장이다. 파출소장은 한 달 전부터 현장 약도를 그려가며 핼러윈에 대비했다고 했다. 인원 부족을 우려해 서울경찰청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태원 투입 경찰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고 사고 직후부터 같은 지적이 있었다.
사고 당일 서울 중심가에선 보수, 진보 양 진영의 시위가 있었다. 핼러윈 축제는 이태원뿐 아니라 홍대와 강남에서도 있었다. 왜 이태원에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은 그곳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사후에 나오는 것이다. 경찰 지휘부 입장에서 사전 신고된 도심 시위와 자발적으로 모일 축제 현장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인력을 배치하겠는가.
그렇게 신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경찰은 왜 진입해서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사고가 터지고 구급차가 112센터에서 현장까지 235m 가는 데 40분이 걸렸다. 경찰 복장을 핼러윈 코스프레로 오해해서 비켜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왜 자율적인 축제에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하느냐는 비난을 들을까 주저했을 수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 공권력이 수시로 겪는 일이다.
이번 참사에 대해 가장 아픈 지적은 문제의 골목길을 일방통행으로 지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랬으면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됐을 듯싶다. 그러나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선 경찰이 통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한다. 또 들뜬 기분에 몰려드는 인파가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가라는 경찰 통제에 잘 따랐을지 의문이 든다. 필자도 시위 현장을 우회하라는 경찰 지시에 짜증을 내곤 했던 경험이 있다.
큰 사고가 터지고 나면 ‘예정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늘 나온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치안, 구조 담당자들의 무책임과 무능 때문에 난 사고라는 것이다. 대비할 수 있었다는 비판은 사후에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이런 이런 일만 했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사전에 모든 재난 가능성에 대한 예방 조치를 빈틈 없이 갖추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수한 재난을 겪고 보도해 왔지만 이번 참사처럼 어처구니없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화재·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누군가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뒤엉키면서 15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대형 압사 사고 뉴스를 간헐적으로 접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걱정해 본 적이 없다. 이태원 파출소 소속 경찰들이 성추행, 폭력 신고를 처리하느라고 압사 위험 신고를 가볍게 여겼다면 필자처럼 안이한 판단을 한 탓도 있을 것이다.
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 남을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써왔다. 초년병 시절 선배들에게 “당신도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달리 행동했을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 보라”는 충고를 듣곤 했다. 이태원 참사는 당시 현장 상황이 여전히 안갯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대응에서 몇몇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결국 누군가는 옷을 벗게 되고 사법 처리 대상이 나올 수도 있다. 그들을 역성들며 감쌀 생각은 없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만일 내가 그때 현장 치안을 맡은 책임자였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자신은 서지 않는다. 그래서 섣불리 누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11.17 환풍구 사고 때 ‘이재명 변명’, 이태원과 판박이였다
주최 아니라 책임 없어
위험하다고 판단 못했다
희생자 귀책인 양 몰고
의원 질문하는데 웃음
8년 전 이재명처럼 답하면
이태원 어떻게 질책할 건가

▲환풍구 지지대 하중 실험… 4분 만에 무너져 - 21일 오후 경기 성남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과 경찰이 크레인 1대를 동원해 환풍구 철망 지지대 하중 실험을 하고 있다.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는 받침대 1개를 도르래를 이용해 아래쪽으로 잡아당겨 어느 정도의 무게를 견디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2014년 10월 17일 저녁 오후 5시53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유스페이스 앞 야외 공연장에서 관람객 약27명이 지하 주차장 환풍구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유명 걸그룹 공연 중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외부 환풍구 덮개가 위에서 관람하던 팬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지하 4층 아래로 꺼지면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관람객 16명이 숨지고 11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사진은 사고발생 직전 모습. /독자 제공
2014년 10월 17일 오후 5시53분, 판교 테크노벨리 콘서트 관람객 27명이 환풍구 위에서 18m 아래 주차장으로 추락해 16명이 사망했다. 1000명 가까운 관객이 몰렸는데 통제 인력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 6개월 만에 되풀이된 안전 불감증이었다. 목격자는 “걸 그룹이 등장하자 환풍구 위 사람들이 방방 뛰었다”면서 “음악 소리가 워낙 커 처음엔 사고가 난 줄도 몰랐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현장 모습과 많이 닮았다. 희생자 규모가 10분의 1 정도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고 닷새 후인 10월 22일 국회 안전행정위 국정감사는 환풍구 사고를 추궁하는 자리였다. 사고 현장을 관할하는 남경필 경기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표적이었다. 남 지사는 “경기도에서 일어난 사고인 만큼 책임을 지겠다”고 한 반면, 이 시장은 성남시에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했다. 행사 포스터에 성남시가 공동 주최로 적혀 있는 데다 성남시 직원이 공문을 주고받았고, 성남시가 광고비 조로 1100만원 지원을 약속했으며, 이재명 성남시장이 축사를 하려고 현장에 참석했다는 관련성이 불거졌다. 이 시장은 “성남시 이름을 도용당했다” “내용을 모르는 직원들의 실수” “광고비 지원은 행사 관련이 아니었다”고 피해 나갔다. 이태원 참사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핼러윈은 주최자가 없어서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었다”고 말한 용산구청장을 떠올리게 한다.
이재명 시장은 “환풍구는 사람이 출입하도록 설계된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개인 소유 건물 환풍구에 예측할 수 없었던 50명 가까운 사람이 올라가 붕괴된 것”이라고 했다. 올라 가면 안 될 곳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는 바람에 예측 불가능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이태원 참사 직후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경찰 인력을 배치해서 막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며 불가항력을 호소했다.
이태원 참사 전 위험을 우려하는 112 신고가 11차례나 있었다. 환풍구 사고 때도 경보음이 울렸다. 행사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고 “환풍구에서 내려와 달라”고 다섯 차례나 주문했다. 그 자리에는 이재명 시장도 있었다. 축사를 하려고 현장에 5시40분에 도착했는데 13분 후에 사고가 일어났다. 이재명 시장은 경찰 탓을 했다. “경찰이 한 명만 있었어도, 그래서 ‘환풍구에서 내려올 때까지 공연 못 한다’고 했으면 사고가 안 났을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게 경찰 통제권이 있는 자치경찰제였으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에 “100% 그렇게 확신한다”고 했다. 자신이 경찰에 지시해서 사고를 막았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변명은 매를 벌었다. “경찰 대신 성남시 직원이 통제해도 되지 않느냐. 왜 시장이 직원에게 지시하지 않았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이재명 시장은 “나중에 지나고 보니...그런 점도 가슴 아프다”고 했다. 112 신고 때 설마 했던 경찰과 마찬가지로 방심했던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길을 일방통행으로 운영했어야 한다는 사후 비판이 나온다. 환풍구 국정감사에선 접근 차단 시설이나 경고문이 없었던 점이 지적됐다. 이재명 시장은 “환풍구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면 그랬을 텐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환풍구를 좀 더 높게 만들도록 행정지도를 했으면 사람이 못 올라 갔을 것이라는 질책도 나왔다. 이재명 시장은 “행정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사후에 사고가 났다고 비난하면 안 된다”고 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를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규정하는 태도와는 상반된다.
참사 원인을 따지는 국정감사 도중 이재명 시장이 웃었다. 의원들은 “유가족들도 계시고 온 국민이 방송을 보는데 성남시장이 실실 웃고 있느냐”고 했다. 이재명 시장은 “기가 막혀서 웃었다”고 했다. 의원들이 답변 기회를 주지 않아서라고 이유를 댔다. 한덕수 총리는 이태원 참사를 설명하는 외신 기자 회견에서 농담을 했다가 혼쭐이 났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및 특검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퇴진도 요구 중이다. 환풍구 국정감사 속기록에 남아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답변은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의 변명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이태원 국정조사에서 책임자들이 8년 전 이재명 시장이 했던 변명을 그대로 늘어놓는다면 민주당 의원들은 어떻게 추궁할 셈인가.
12.01 “尹·韓이 죽어도 싫다”에 올인한 ‘괴담 김의겸’
신빙성 희박한 청담동 의혹
언론인이면 기사 안 썼을 것
민주 지지층은 사실 안 따져
대통령·측근 공격하면 열광
총선서 이들 지지 업으려고
무책임한 폭로 남발하는가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것은 10월 24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였다. 국회의원들은 누구나 앞 순서 발언을 원한다. 그래서 야당 지도부는 첫 질의 순서를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한 주 공격수에게 배당한다. 김 의원은 그날의 1번 타자였다. 신문으로 치면 1면 톱 필자다.
기사 줄거리는 이랬다. 지난 7월 19일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첼로를 연주하는 청담동 바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이 김앤장 변호사 30명과 어울렸고, 윤석열 대통령이 합류했으며, 그 술자리가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흥행성은 만점짜리였지만, 신빙성은 빵점에 가까웠다. 한 장관은 술을 한 모금도 안 한다. 그래서 검찰 회식 자리에도 불참했다. 김앤장 변호사 30명이 한자리에 불려 나오는 것도 일류 로펌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경호원들까지 득실거렸을 현장 소문이 석 달 동안 잠잠했을 리가 없다.
결국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최초 발설자인 첼리스트가 “그날 밤 알리바이를 추궁하는 남자 친구에게 둘러대느라 지어낸 이야기”라고 실토했다. 법무장관만 오고 대통령은 안 왔다든지,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들이 참석했다는 식의 부분적 오류가 아니었다. 그런 모임이 아예 없었다는 거다.
김 의원은 1990년 한겨레신문에 입사, 2017년 퇴사했다. 거의 30년 경력이다. 팩트 체크가 가장 철저해야 하는 사회부장을 지냈다. 2019년 1월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야당이 문재인 대통령 딸 의혹을 제기하자 “국회의원 지위를 이용해 아무 근거 없는 음해성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데 개탄한다”고 했다.
그랬던 사람이 대통령, 법무장관을 겨냥해 국회에서 한 발언이 허무맹랑한 괴담이었다.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 법한데 김 의원 태도는 당당하기만 했다. “그날로 돌아가도 똑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했다. 1면 톱 오보 내놓고 그래도 기사 쓴 게 옳았다는 식이다. 국민이 궁금한 것을 국민을 대신해서 질문했다고 했다. 김 의원이 “제보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었다면 그런 변명이 통할지 모른다. 김 의원은 그렇게 묻지 않았다.
청담동 술자리의 무대 배치와 등장인물 및 지속 시간,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각각 부른 노래 제목까지 상세하게 제시해 가며 한동훈 장관에게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여섯 차례나 ‘기억’이라는 단어를 들먹였고 “석 달 전 술자리인데 기억도 못 하느냐”고 다그쳤다. 술자리 존재는 기정사실이고 한 장관 인정 여부가 쟁점인 것처럼 몰아붙였다.
김 의원이 신문사에 있었다면 청담동 술자리 기사를 다뤘을까. 후배가 기사를 쓰겠다고 했으면 사실 확인을 지시했을 것이고 하루 이틀 만에 원고가 쓰레기통을 향했을 것이다. 언론인 김의겸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 할 수 없는 일을 정치인 김의겸이 버젓이 저지른 이유는 뭘까.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헌법 45조의 면책특권도 김 의원의 일탈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딴 데 있다.
김 의원과 청담동 술자리 괴담을 협업했다는 인터넷 언론 ‘더 탐사’는 채용 공고를 내면서 “윤·한이 때려죽어(여)도 싫은 분”을 뽑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을 무조건 증오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겠다는 뜻이다. 이 조건은 민주당 극렬 지지층 정서와 일치한다. 그들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을 비난할 수 있는 소재면 무조건 열광한다.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김 의원과 ‘더탐사’가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집착한 것도 윤·한이 동시에 표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국정은 제쳐놓고 새벽까지 술독에 빠진 윤 대통령, 로펌 변호사들과 부적절하게 어울리는 한 법무장관을 돌멩이 하나로 때릴 수 있다. 김 의원이 이 의혹을 꺼내자 일반 국민들은 갸우뚱했지만 ‘윤·한이 때려죽여도 싫은’ 사람들은 손뼉 치고 환호했다. 다음 총선 때 김 의원을 밀어줄 사람들도 바로 이 맹목적 지지층이다.
김 의원은 청담동 술자리 말고도 한 장관 관련 의혹을 스토킹하듯 쏟아냈지만 대부분 헛방이었다. 민주당에서 괴담 장사를 하는 다른 의원들도 “윤·한이 때려죽여도 싫다”는 정서에 올라타기 위해서다. 보통 사람들 눈엔 제정신이 아니지만, 지금의 민주당 생태계에서 살아남고 이름을 날리려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언론계 출신을 배경 삼아 정치권에 진출한 김의겸 의원이 상식과 사실을 저버린 괴담 좇기 선두에 나선 것은 씁쓸한 일이다. 김 의원 자신은 취재 현장에서 회사 후배와 마주칠 때 불편하지 않은지도 궁금하다.
12.15 ‘어게인 세월호·광우병’, 亡國 좌파의 夢想이었다
청춘 떼죽음 이태원 참사
청와대 이전 탓, 정쟁 활용
윤석열 정부 마비 노리고
민노총 총파업 지원
독려 국가적 비극, 혼란까지
자기 배속 채우는 수단 삼나
대선에서 패배한 쪽은 빈말이라도 승자에게 “성공을 빈다”는 덕담을 건네는 게 정치 도의다. 정권이 순항해야 나라도 잘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대선 날 밤 승패가 갈리는 순간 민주당 의원은 “5년 금방 간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5년을 없는 셈 치고 버티겠다는 뜻이다. 정권 출범 두 달을 넘기자 민주당 의원 입에서 ‘탄핵’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법을 민주당이 발의한 것은 취임 100일을 갓 넘긴 시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잦은 설화(舌禍)로 지지율이 20%대까지 급락했다. 민주당 사람들 머릿속에서 촛불이 켜지면서, 광우병 파동의 추억을 소환했다. 그때 이명박 정부처럼, 윤석열 정부를 출범 첫해에 뇌사 상태에 몰아넣는다는 청사진이 그려졌다. 2008년 봄 촛불의 주역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덩치와 힘을 키운 민노총은 거리의 결사대로 나설 채비를 갖췄다. 가짜 뉴스로 ‘뇌송송 구멍탁’ 공포에 스파크를 일으켰던 MBC는 윤석열 대통령의 판독 불가 잡담에 자막을 멋대로 달면서 몸을 풀었다. 이명박 정부 때와 달리 국회 의석 구조도 야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촛불 쿠데타에 대한 민주당 기대가 부풀어갈 무렵 이태원 참사가 터졌다. 기막히고 말문이 막혔다. 그저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탄식할 뿐이었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성정이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라는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심야의 비극 다음 날 오전 “이태원 참사는 청와대 이전 때문에 벌어진 인재(人災)”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용산 대통령실로 집중된 경호 인력 탓”이라고 했다. 청춘의 떼죽음을 윤석열 정부를 공격할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민주당 싱크탱크의 두뇌 회로는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민주당 의원은 참사 원인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지목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치안 에너지를 마약 퇴치 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질서 유지가 소홀해졌다는 주장이다. 야권에 미운털이 박힌 한동훈을 엮으려고 기상천외 억지 논리까지 등장했다.
민주당에선 이태원 참사가 “세월호에 비견될 파장” “최소한 2년 갈 이슈”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태원 희생자들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민주당 희망 사항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태원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는 민주당 주장은 반대 여론에 부딛쳐 무산됐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을 본뜬 이태원 추모 공간을 윤석열 정부를 겨누는 비수로 삼으려던 구상이 헝클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장동 수사를 받던 부하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조문은커녕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발인 날에 산타 복장으로 춤까지 추면서 유족의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이태원 애도를 어느 국민이 공감하겠나.
윤석열 정부를 길들이려던 정치파업도 계획과 동떨어진 모양새로 전개됐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가투를 시작으로 화물연대, 지하철 노조, 철도 노조, 건설 노조가 릴레이 파업에 시동을 걸 때만 해도 이번에도 역시 노조 승리, 정부 굴복으로 결론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선봉에 섰던 화물연대가 보름여 만에 백기투항식으로 파업을 접었다. 윤석열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기도 했지만 국민 여론이 워낙 차가웠다. 자기 철밥통을 끌어안은 민노총 기득권 때문에 바늘 구멍 취업문 앞에서 신음하는 젊은 세대들부터 등을 돌렸다. 파업 손실 책임을 노조에 물을 수 없는 ‘노란봉투법’으로 안전망을 깔아주겠다는 야당에 대한 시선도 싸늘했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위기를 대통령과 함께 걱정하며 철도 파업 봉쇄 입법에 동참한 미국 야당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민주주의 체제의 정당은 자신들의 비전에 따라 나라 번영을 이끄는 것이 목표다. 그 꿈을 이루려고 치열한 수권 경쟁을 벌인다. 진보 깃발을 흔드는 우리나라 야당은 오로지 정권 잡는 게 목표이다. 온 국민을 트라우마에 빠뜨린 세월호 비극, 광우병 시위 같은 국가적 혼란까지도 수단으로 삼는다. 국가 장래를 팔아서라도 제 배 속을 채우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정당이 아니라 망국 세력이라고 불러야 한다. 국민도 이제 그들의 정체를 눈치챘다. 민주당의 ‘어게인 세월호, 광우병’ 몸부림은 망국 좌파의 몽상(夢想)으로 끝나가고 있다.
12.29(목) 촛불 혁명? 5년만에 꺼져버린 불량 권력이었다
대통령 축출 주도한 文정권
몸조심커녕 마구잡이 犯法
탄핵 강도 높게 요구했던 李
알고 보니 무수한 의혹 당사자
권력 영원할 것 같은 착각
자기 경계 소홀해 몰락 자초
5년 전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촛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임기 도중에 끌어내리고 감옥에까지 보냈다. 국가적 불행이지만 한국 정치의 체질 개선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믿었다. 뒤를 이을 정권에 강력한 경고를 주면서 준법성과 도덕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제왕적 권력자도 탄핵당하는 선례를 봤으니 문재인 정권은 극도로 몸조심을 하지 않겠나, 그렇게 짐작했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안보실장은 서해 피격 공무원을 월북 몰이한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국정원장과 국방장관도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문 정권의 산업부 장관은 부하 과장을 “너 죽을래”라고 겁박해 월성 1호기를 대통령 요구대로 조기 폐쇄하게 만들었다. 역시 직권남용 혐의다. 직권남용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무더기로 기소된 혐의다. 전 정권을 적폐몰이 하던 바로 그 올가미에 자신들이 걸려 넘어졌다.
박근혜 정권의 대표적 죄과로 낙인찍었던 ‘블랙리스트’도 문재인 정권에서 판박이처럼 되풀이됐다. 환경부 장관은 징역 2년형이 확정됐고 산업부와 다른 부처에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가 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 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2년형을 받았다. 선거개입 혐의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친박(親朴)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점을 유죄 근거로 삼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시장에 30년 지기인 송철호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고 주변에 알렸다. 이에 따라 청와대의 7개 조직이 송 후보 경쟁자들을 배제시키거나 낙선시키는 공작을 폈다. 선거 개입 정도가 박 전 대통령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사이다 발언으로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단숨에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그는 “10원 한 장 부패도 용납 못한다”고 큰소리쳤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청정수 정치인이 등장했나 싶었다. 알고 보니 열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는 의혹의 당사자였다. 대부분 탄핵 국면 이전에 저지른 일들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켕기는 구석이 있으면 다른 사람 잘못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는 법이다. 그런 사람이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큰 목소리로 박 전 대통령의 죄를 따져 물었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문 정권 사람들은 무슨 배짱으로 자신들이 단죄한 범법 행위를 아무 거림낌없이 저질렀을까. 온몸에 x칠한 이재명 시장은 도대체 뭘 믿고 겨 묻은 전 정권을 향해 삿대질을 했을까.
2008년 초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직후 “10년 전 대통령 취임식 사진”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 대통령 주변을 둘러쌌던 핵심 실세들이 5년 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때는 ‘노사모’로부터 역적 취급을 받거나 철창 신세를 졌고, 노무현 정권 실세들 역시 5년 후에는 비슷한 신세였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5년마다 되풀이돼온 권력의 법칙이다. 그런데도 새로 출범하는 정권들은 자신들만은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문 정권 사람들은 착각의 정도가 특히 심했다. 민주당 대표는 정권 2년 차를 맞으며 20년 집권론을 내놓더니, 몇 달 뒤엔 “5년 임기 대통령을 열 명 계속해서 배출해야 한다”는 50년 집권론을 주장했고, 해가 바뀌자 “한반도 평화 100년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10년 단위로 정권이 진영 사이를 오간 사이클을 깨고 영구 집권 체제를 갖추겠다는 선언이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정권이 상대편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그걸 믿고 대통령과 주변은 대놓고 범죄를 저질렀고, 도저히 덮을 수 없는 의혹을 주렁주렁 단 사람이 대통령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 정권은 스스로를 촛불 혁명의 산물이라고 불렀다. 역대 정권의 뒤를 이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따로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손댈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인 양 감시와 견제를 거부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정권의 비위를 들추지 못하도록 윽박질렀다. 그 결과 20년, 50년, 100년은 고사하고 5년 만에 정권을 상대방에 넘겨줬다. 1987년 체제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정권 입장에선 치욕이다. 촛불은 혁명이 아니라 5년 만에 꺼져버린 불량 권력에 불과했다. 오만에 빠진 권력은 반드시 탈이 나고, 국민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그 평범한 이치를 깨우쳐주고 2022년은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