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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2022-11/ 11.01(화) '30년 좌파' 전향 선언 - 11월 30일 언론 빙자한 불법 · 선동은 사회악일 뿐

상림은내고향 2022. 12. 1. 13:48

바른소리 2022-11/

11.01(화) '30년 좌파' 전향 선언 "조국 발언에 경악, 그건 파시스트 언어"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편집실장,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기획실장,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최범(65) 디자인 평론가. 그가 지난 5월 페이스북에 '전환기의 인식'이란 글을 올리며 30년 좌파 활동을 공식 청산한다고 이념적 전향을 공개 선언했다.

 

"나는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 출마 지지 선언을 했다가 박근혜 정권 때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촛불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박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 정권을 세우는 데 앞장도 섰다. 하지만 지난 5년은 나의 그러한 행동이 처절하게 배신당하는 시간이었다. 정의와 공정을 내세운 문재인은 무능과 불의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한국 좌파의 총체적 파국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30년간 좌파운동에 참여해온 내게 과연 좌파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일단 나는 좌파에서 탈출했다."


이 글에 대해 일부 좌파들은 그를 배신자로 몰거나 '지레기'(지식인+쓰레기)라며 조리돌림했다. 전향을 선언한 최범이란 인물을 잘 아는 대중은 많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는 좌파 미술계와 디자인계는 물론 시민운동권에서는 상당한 지명도가 있다. 1988년 『월간 디자인』편집장을 시작으로 민미협과 민예총 실장, 공예가협회 사무국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등 그의 디자인 평론서들은 통렬한 한국 사회 비판서로 읽힌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가 공개 전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차례 만났다. 마침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발언해 논란이 된 시점이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 평론가는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군대에 다녀온 뒤 또래보다 몇 년 늦은 1981년에 입학해 꼬박 10년을 386과 같이 생활했다며 자신을 '빠른 386세대'라고 소개했다.

 

 ▲1981년 홍익대에 입학한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당시 유행하던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았다.장세정 기자  

 

-대학 시절은 어땠나.
"그 시대 많은 사람에게 그랬듯이 나도 5·18 이전과 이후가 인생이 달라졌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지적 헤게모니는 소위 좌파,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였다. 나도 그때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내가 경험한 삶과 세계에 대해 하나의 틀로 설명해주는 마르크스주의는 내가 영접한 첫 거대담론이었다. 이거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겠다 싶었고 중독될 정도로 톡 쏘는 청량감을 느꼈다. 옛 소련 붕괴 이후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한국사회를 강타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탈근대 사상이었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실존적 삶과는 연계를 찾을 수 없었고 한국사회를 설명해주지 못해 모더니즘(근대성)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어서 지난 40년 깊게 파고들었다. 전근대와 근대의 문명 모순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근대와 근대 사이에 있는 한국사회의 과제는 진정한 근대화라는 것이다."


-주사파와 생각이 달랐나.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사이고, 세계의 기본 모순은 계급모순이다. 그런데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주사파들은 웃기게도 계급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지 않고 민족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본다. 이걸 보더라도 주사파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안 맞는다. 한국사회에 민족 모순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계급모순이 본질적이다. 주사파는 계급 모순을 민족 모순으로 치환했다. 이게 나와 주사파의 가장 큰 차이다."

 

-졸업 후 어떤 사회활동을 했나.
"지난 30년간 크게 두 가지 삶을 살아왔다. 하나는 전공이 디자인이라 시각 예술 분야에서 평론가로 활동했다. 지난 30년간 디자인 평론집을 6권 냈다. 제품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디자인을 매개로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했다. 다른 하나는 1990년대 10년간 민중문화운동가 또는 시민문화운동가로 활동했다. 1999년 출범한 문화연대에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007년 박원순 변호사가 만든 희망제작소에서 문화 운동을 했다. 1987년에 형식적 민주화가 됐지만, 시민사회가 건강해져 실질적 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민운동은 선을 넘어 권력이 되면서 타락했고, 386세력은 명백히 기득권이 됐다."

 

-5월 말에야 전향을 선언한 이유는.
“5·18을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지난 30년간 좌파 지식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왔다. 촛불 집회에 10회나 참석하고 직접 찍은 문재인 정권을 겪으면서 정체성에 큰 혼란이 왔다. 구체적 사건으로는 '조국 사태'가 계기였다. 조국의 죽창가와 ‘애국이냐 이적이냐’ 발언을 보면서 경악했다. 그것은 파시스트의 언어다. 문 정권 주도 세력들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느꼈다. 전근대 중세 봉건세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좌파는 민족주의를 강조해왔는데.

"민족주의는 서양 근대 사상 중 하나이지만, 한국 좌파의 민족주의는 종족주의(Ethnicism)다. 피(혈통)에 기반을 둔 봉건 질서를 옹호하는 그냥 수구세력이다. 진정한 좌파도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근대를 부정하는 세력이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이념적인 지형은 겉으로는 좌우 대립 형태로 나타나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 아니고 본질은 여전히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 시대의 개화와 수구의 대립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이후 지금까지 150년간 한국 사회의 지적 구도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좌파 탈출을 선언했나.
"한국 좌파의 본질을 수구세력이라고 보기 때문에 나는 더는 좌파일 수 없고, 좌파를 버릴 수밖에 없는 거다. 마르크스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사회주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제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좌파는 손절하고 우파로 전향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오늘날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정치 세력을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당은 386의 볼모가 돼 기괴한 인질극이 벌어지는 것 같다. 지지하는 방향을 말한다면 주체적 근대화다. 한국 좌파가 그동안 싸운 대상은 식민지 근대화 세력으로 대표되는 한국 우파였다. 식민지 근대화는 자주적 근대화도 주체적 근대화도 아니었기에 많은 한계와 결함을 안고 있다. 한국 우파가 개과천선·환골탈태해서 진정한 주체적·심층적 근대화 세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앞에 펼쳐진 거대한 과제다. "

 

-민족과 국가를 뒤섞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대통령을 민족 대표로 여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는 결사체(이익사회·Gesellschaft )의 대표이지, 한민족이라는 공동체(공동사회·Gemeinschaft)의 대표가 아니다. 근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결사체다. 한국은 아직 게젤샤프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전근대적인 봉건 공동체다. 근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개인이 주체가 돼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민족이라는 집단이 주체다. 이것이 전근대사회란 명백한 지표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때다. 좌파는 대한민국을 종족 공동체로 보고, 우파는 정치 공동체로 본다."

 

-좌파는 북한이 도발해도 '친일 프레임'을 건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국가다.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민족과 국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서로 다른 국가 간에 국제 정치, 즉 외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민족 문제는 없는 거다. 엄연한 국가 간의 문제를 민족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야말로 의도인지 무지인지 모르지만, 국가를 파멸로 이끄는 길이다. 민족주의가 제일 큰 병폐다."

 

-한국사회의 과제는.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서 뒹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근대화가 됐는데, 정신적으로는 근대화가 안 됐다. 이런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세기에 개화파가 수구파에게 밀리면서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했다. 결국 식민지 근대화로 갔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충대충 울퉁불퉁하게 흘러왔다. 하지만 개항 이후 지난 150년간 한국 사회는 서양의 근대를 정면으로 직시한 정신적 운동이 없었다. 우리가 대면해야 할 정신적 과제다."

 

-사상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1979년 10월에 발간된『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지난 40여년간 한국 엘리트들의 의식을 지배했다. 민족과 외세의 대립을 한국 현대사의 주요 모순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제는 민족이 아니라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돼야 한다. 그동안 민족 모순에 주목하는 동안 간과했던 상위의 문명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2026년이 근대화의 출발점인 개항 150주년이다. 뜻있는 지식인들과 함께 2026년까지『개항 전후사의 인식(가칭)』을 저술해 한국 사회의 지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생각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주장한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민족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는 낡은 패러다임을 폐기하지 않으면 한국사에 미래가 없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김아영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11월 03일 참사도 수사 못하는 검찰… ‘위헌적 검수완박’ 폐기해야

국민과 외국인 156명이 이태원에서 한꺼번에 사망한 대형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검찰의 수사가 원천 차단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 초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만 해도 대형 참사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 분야와 함께 검찰 수사 범위에 포함돼 있었지만, 지난 3·9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돌연 ‘검수완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을 강행하면서 부패·경제 말고는 검찰이 아예 수사를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2일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서울소방재난본부, 서울교통공사 등 8곳을 압수수색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영장을 발부받았고, 추후 수사 경과에 따라 직무유기 혐의도 추가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태원파출소와 용산경찰서 정보과·치안상황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등 경찰의 부실 대응을 경찰 조직이 ‘셀프 수사’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이래서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라는 요구가 커진다.

그러나 검찰이 대형 참사를 수사할 수 없어 합수본 구성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검 측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없어 단독이든 합동이든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검찰은 보이스 피싱·마약 사범에 대해서는 경제 범죄로 간주해 합수본을 꾸린 적이 있지만, 참사는 경제나 부패로 간주하기 어렵다. 검수완박은 탄생 자체가 부조리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탄하고 문 정권의 비리 수사를 막으려는 의도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입법 절차와 내용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검토 중이다. 헌재는 하루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 그와 별개로 민주당이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 한다면, 검수완박법 폐기 절차를 당장 개시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11월 04일 KBS 정상화의 지름길

이신우 논설고문

공영방송 KBS의 이념적 편향
해결책은 수신료 시스템 개선
일본 NHK가 훌륭한 모범 제시

전기료 통합 징수 만료 계기로
방송사 - 시청자 긴장 관계 회복
견제 - 균형으로 기능 정상화를

필자는 KBS 개그맨 공채 23기 김영민 씨의 팬이다. 그냥 이름만 대면 ‘누구?’라고 할지 모르나, 지난 2011년부터 대략 2년간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감수성’에서 내시로 분장했던 개그맨이라면 새삼 기억에 떠오를 것이다. 그가 몇 년 전부터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최근에는 ‘내시십분’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정치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다른 유튜버들에 비해 매우 온건한 내용이지만 대단히 지적이고, 유머·풍자·비유에 탁월하다. 볼 때마다 매번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는데 최근 한 작품에서 무릎을 탁 쳤다. 용산 대통령실 안의 SKY 출신 ‘범생’들은 생각도 못 할 공영방송 난제 해결의 비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김영민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경기대학교에서 다중매체영상학을 전공했다.

 

좌파의 치어리더가 돼버린 KBS를 우파 정권이 개혁하려면 엄청난 대립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겠지만 그가 내놓은 방책은 의외로 온건하고 또한 정의롭기까지 하다. 어느 누구도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휘둘렀던 치사하고 위선적인 방법들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잖아도 전 정권은 집권 초부터 적폐 인사로 찍어놓은 강규형 전 KBS 이사를 쫓아내기 위해 온갖 악랄한 수법을 동원했다. 감사원을 동원해서 강 전 이사가 재임 동안 327만 원 상당 액수를 법인 카드로 부당 사용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재임 2년이면 한 달에 13만∼14만 원꼴이다. 심지어 김밥 한 줄 2500원의 카드 결제까지 트집 잡았다. 그런 문재인 청와대는 ○○워크숍이라며 자기네끼리 10만 원짜리 도시락을 시켜 황제 식사를 즐기지 않았나. 방송 장악의 일환으로 내부에서는 ‘진실과 미래 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반대파를 숙청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위원회’가 떠오를 정도였다.

김영민의 ‘조가치 경영하는 KBS’(KBS의 연 수입이 조 단위에 근접한다는 비유) 영상은 이런 행태들에 대해 일절 공개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2024년에 KBS와 한국전력이 맺고 있는 수신료 전기료 통합 징수 계약이 만료된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권한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웃 나라 일본 NHK의 수신료가 발휘하는 공익적 기능 때문이다. NHK도 KBS와 마찬가지로 국민으로부터 걷는 수신료로 운영된다. 하지만 NHK는 KBS가 향유하는 상업광고도 없고 중간광고도 없다. 강제 징수도 없다. 그저 징수원들이 가정을 방문해 수신료를 걷는데, 전체 가구 수 대비 징수율은 약 80%라고 한다. 이 징수 시스템이 핵심이다. 만에 하나 NHK가 KBS에서 보듯 편파 방송과 일방적 이념 주입 등의 만행을 저지를 경우 그에 반대하는 국민의 절반이 당장 수신료 거부운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수신료 거부 운동이라도 벌어지면 NHK는 즉각적으로 직원과 임금 감축, 방송 공정성 확보 등의 혁신안을 내놓으며 국민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일본 국민과 NHK 사이에는 이렇듯 건강한 긴장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김영민의 설명이다. 굳이 정부가 나서면서 언론 “탑압”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쓸 이유도 없는 것이다.

KBS는 좌파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가로, 특정 정파와 특정 유권자를 방패막이 삼아 자기네들끼리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향연을 즐기고 있다. 스스로의 자백만으로도 ‘억대 연봉을 받는 무보직’ 직원이 1500명에 이를 정도다. 그러면서도 KBS는 국민에게 수신료를 더 내라고 요구한다. 잔치는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명분이다. NHK는 지난달 11일 자진해서 수신료 10% 인하를 발표했다. 2012년과 지난해에도 수신료를 7%와 2.5%씩 낮췄다.

 

만약 NHK에 억대 연봉의 무보직 직원이 1500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좌우가 합심, 시청자 100%가 수신료 거부 운동에 나설 것이다. 이제 KBS가 믿는 구석을 거둬들일 때가 됐다. 김영민은 “수신료 납부자 절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돈을 내는 사람들한테 ‘보기 싫으면 보지 마’라는 경우는 세상에 없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세상에 없는 일을 해결할 대책까지 내놓았다. 이 정도면 진단과 처방이 동시에 이뤄진 것 아닌가.

문화일보

 

11월 04일 ‘이태원 수사’ 막는 위헌적 검수완박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태원에서 영면한 분들의 분향소에는 먹먹함과 미안함 그리고 짙은 슬픔이 교차한다. 하인리히법칙에 따르면 1개의 대형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작은 재난이 발생하고, 300번쯤의 부상을 수반한 사건이 빈발한다고 한다. 마스크 착용이 해제된 축제 시기, 특히 이태원 인근은 좁은 골목길의 언덕 위쪽에 인기 좋은 클럽이나 카페 등이 밀집한 이른바 ‘핫플’이 많다. 미리 강력히 경고하고, 항의를 무릅쓰고라도 적극 통제했더라면 젊은이들이 안전하게 부모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향후 수습과 관련한 몇 가지 제언을 해 본다.

 

첫째, 신속하게 수습하고 위로하는 게 급선무다. 일각에서는 책임자에 대한 인사 조치와 처벌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수습과 정중한 조의, 그리고 지원 등이 선행돼야 한다. 이미 내부감찰과 수사가 시작된 만큼 조만간 원인이 규명되면 인사 조치와 처벌도 병행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유가족들에 대한 진정한 위로가 먼저다.

조사 방식도, 수사권이 없어서 정치 공방의 장이 될 개연성이 짙은 국정조사보다는 먼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한 내부 감찰과 수사가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관련 기관들이 충분히 상황을 예견하고 조치했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다만, 지나치게 일선 경찰이나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내 탓이오’ 하는 심정으로 감찰과 수사에 응해야 한다.

둘째, 원인 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도 절실하다. 경찰청장에게 보고가 지체된 점, 112상황실과 현장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 등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석연찮은 점이 많다. 군이나 경찰 간부들은 비상시 일단 상황실 대기나 영내 대기가 기본이다. 혹시 영내를 잠시 벗어나더라도 ‘통신축선상 대기’ 즉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한 장소에 대기해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이 원칙은 유효할 텐데, 보고와 조치가 이렇게 지연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또, 경찰이나 행정안전부에서 평소에 현장을 지휘하는 책임자에게 전권을 주고 ‘조치는 현장 책임자가 신속하게 하라, 책임은 최고 책임자가 진다’는 원칙과 선례가 있었다면 희생자가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경찰 내부의 감찰과 조사 결과를 국민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경찰 이외의 외부 기관에 의한 감찰과 수사가 필수다. 속히 외부기관, 특히 검찰에 의한 수사가 필요하다. 다만, 검찰 수사권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이른바 ‘검수완박’법에 따르면 ‘대형 참사’의 경우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삭제돼 경찰만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이 문제는 헌법재판소에서 심판 중인데, 이번처럼 경찰의 대응이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된 경우에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부활하는 게 국민의 생명권 보장에 유리하다. 헌재의 현명하고 조속한 결정을 기대한다.

 

나아가, 헌재의 심판이 내려지기 전이라도 법무부는 다시 시행령을 개정하거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라도 외부적인 수사와 감찰을 통해 국민의 의문을 해소하고 슬픔을 달래줘야 한다.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이라는 국가의 근본적인 존립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11월 호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인가? 

김문수가 타부를 깼다! 답은 문재인의 네 꼭지 연설 속에 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10월 12일 국정감사장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고 발언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지난 10월 12일 오후,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국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타부를 깬 발언이었다. 김 위원장은 오전 국감에서도 “윤건영 의원은 종북(從北) 측면이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집단 반발하면서 국감이 두 차례 중단됐다. 결국 김 위원장은 ‘문재인 김일성주의자’ 발언으로 퇴장당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본인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라고 했다. 굉장히 문제가 많은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영복을 존중하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했다.

신영복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20년간 복역했다. 전향서를 쓴 뒤 1988년 출소해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다 2016년 1월 사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따르면 그는 ‘더불어민주당’이란 작명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문재인, 박지원 두 사람은 작년에 김일성주의자 신영복의 글씨체로 국가정보원 원훈석을 만들어 세울 때 같이 사진을 찍었다. 김일성은 1978년 뉴델리에서 비밀리에 열린 사이공 억류 한국 외교관 송환 협상 때 북한 대표를 시켜 ‘신영복을 북한에 보내주면 억류 외교관을 월남이 송환하도록 돕겠다’고 제안했으나 박정희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신영복 존경한다는 사람은 김일성주의자”

▲통혁당 사건으로 법정에 선 신영복 교수(맨 왼쪽). 신 교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인물이다. 사진=조선DB 

 

김문수 위원장의 발언은 스스로 한 게 아니다. 전용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김 위원장의 과거 ‘더불어남로당’ 발언을 언급하며, 지난해 4월 9일 사회관계망(SNS)에 쓴 글을 문제 삼아 질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김 위원장은 당시 ‘문재인 586 주사파 운동권들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종북 김일성주의자’라고 썼다. 전 의원은 이를 소개하며 “문 전 대통령도 종북 주사파냐”라고 묻자 김 위원장은 “김일성주의자”라고 답했다. 용어를 정확히 쓴 것이다. 주사파라고 하면 주체사상파, 즉 무슨 철학도인 것처럼 오해한다.

전 의원은 김 위원장의 답변에 “정정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신영복 선생은 저의 대학교 선배다. 그분의 주변에 있는 분과 같이 운동을 했기 때문에 (안다.)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는 사람은 김일성주의자”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이어 “문 전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때 (북한) 김영남, 김여정이 있는 가운데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대한민국 사상가라고 했다.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원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김일성 종북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국회에서 증인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다른 의원들도 “국회를 모독하는 것을 넘어 농락하는 것” “본색이 드러났다” “퇴장 명령을 내려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해철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김 위원장의 진술은 아주 부적절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김 위원장이) 퇴장하든 고발 조치하든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감사중지를 선언했다. 감사가 재개된 뒤 전 위원장은 “국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은 논란의 중심에 김 위원장이 있었다”며 “국감에 방해된다고 판단해 김 위원장에 대해 퇴장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국감장을 떠났다. 여당 의원들은 전 위원장의 조치에 고성으로 항의하다 국감장에서 나갔다.


신영복을 통하여 사상 고백한 문재인

문재인을 김일성주의자로 의심하도록 만든 이는 문재인 자신이다. 아래 네 개의 연설이 그런 의심을 자초했다.


먼저 2017년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이다.

〈나는 전쟁 중에 피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내전이면서 국제전이기도 했던 그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세계적 냉전 구조의 산물이었던 그 전쟁은 냉전이 해체된 이후에도,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64년이 지난 지금에도, 불안정한 정전체제와 동북아의 마지막 냉전 질서로 남아 있습니다.〉


남침으로 확정된 6·25를 “내전이면서 국제전”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주로 공산주의자들이다. “세계적 냉전 구조의 산물이었던 그 전쟁” 운운도 김일성을 비호하기 위해 좌익들이 만들어낸 말장난이다.


다음은 2018년 2월 9일 평창올림픽 리셉션 환영사의 신영복 존경 발언이다.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은, 겨울철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것을 정겹게 일컬어 ‘원시적 우정’이라 했습니다. 오늘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우리의 우정이 강원도의 추위 속에서 더욱 굳건해지리라 믿습니다.〉


고영주 변호사의 법정 진술

 ▲고영주 변호사. 사진=조선DB

 

2018년 7월 26일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 사건 피고인 고영주 변호사는 1심 최후진술에서 이 연설을 인용, 문재인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고소인은 취임 후 전대협이나 한총련 등 운동권 주사파 출신들을 청와대 비서실 내 요직에 집중 배치하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토지국유화 주장과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의 한미 동맹 파기·주한미군 철수 발언들에 대해 용인하는 태도, 노골적인 친중반미노선 추구,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등 대공수사 기능 무력화 시도, 현행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삭제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헌법개정 시도,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역시 ‘자유’ 용어를 삭제하려는 시도 등을 보고, 불행하게도 “적화는 시간문제”라는 제 말이 맞는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 그러던 중 급기야는 2018. 2. 9.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장에서 환영사를 통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김영남에게 신영복을 사상가로서 존경한다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영복의 사상은 공산주의 사상이고 주체사상이고 김일성주의 사상입니다. 신영복을 사상가로서 존경한다면, 자신도 공산주의자임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고소인은 양심상 아직까지도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거나, 북한의 주의·주장을 지지·추종하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소신대로 국정을 운영해도 대한민국이 적화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민·형사 소송에 회부돼 시달렸지만 다 승소(勝訴), 발언의 정당성을 입증받았다.
 

 

김문수의 질문

2018년 8월 2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문재인의 신영복 칭송 연설을 문제 삼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첫째, 아직도 ‘신영복의 사상’을 존경합니까? 신영복은 김일성의 지령과 공작금과 무기로 결성된 ‘통일혁명당’ 조직의 간부로 암약하다가, 징역 20년 이상을 복역한 간첩 아닙니까? 신영복의 사상은 김일성사상 아닙니까?

둘째, 임종석 비서실장은 아직도 “전대협 의장은 죽을 때, 제 묘비에 유일하게 새기고 싶은 가장 큰 영광의 이름”입니까?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3분의 1 이상이 운동권 출신 아닙니까?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한 청와대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셋째, 최근 문재인 정부의 친북 행보가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를 우리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위반하고 있습니다.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위장하여 한전 산하 남동화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하다가 적발되었습니다.

북한 핵위협의 최대 피해 당사국인 우리 정부가, 이런 모험적인 이적행위를 겁 없이 실행할 수 있는 까닭은,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 등 친북 주사파 운동권들의 사상적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국회와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과 전 세계의 불신을 풀 수 있도록,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엄중 수사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쪽 대통령 연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평양 시민들에게 자신을 ‘남쪽 대통령’이라고 소개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는 공산주의자(고영주), 김일성주의자(김문수),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블룸버그 통신), 김정은의 부하(조갑제) 등 여러 시각이 있는데 아마도 결정적인 증거물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5·1 경기장 연설문이 될 것이다.

〈평양 시민 여러분, 북녘의 동포 형제 여러분, 평양에서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이 김정은의 부하임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문장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남쪽 대통령 위에 국무위원장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어진 연설에서 그는 김정은을 사실상 민족의 지도자로 칭송했다. 김일성주의자니까 겁도 없이 이런 고백을 했을 것이란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연설 첫 문장에서 이미 헌법 위반 세 개가 나왔다. 북한 지역까지 영토로 규정한 헌법 제3조, 국가의 보위 및 헌법준수를 선서한 헌법 제69조, 국가의 독립과 영토의 보전 및 국가의 계속성 수호를 대통령의 책무로 규정한 헌법 제66조 위반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신을 ‘남쪽 대통령’으로 격하한 것은 대한민국을 국가로 보지 않고 지역으로 보는 북한노동당에 투항한 모습이다. 같은 문장에서 반(反)국가단체의 수괴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이라고 호칭한 것은 자신을 김정은의 부하로 자리매김한 반역적 언동이다. 이 문장은 앞으로 두고두고 문재인을 괴롭힐 것이다.

〈동포 여러분,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그해 4월 20일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앞으로는 핵보유국 자격으로 군축회담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결정하였었다. 4·27 선언도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핵보유국화를 뒷받침하는 내용뿐이었다. 그럼에도 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핵무장한 북한노동당 정권 앞에서 벌거벗긴 판문점 선언이 평화의 시대를 연 것이라고 강변했다. 2022년 10월 현재 비핵화 사기극으로 밝혀진 김정은-문재인 야합은 단죄를 기다리고 있다.
 

 

민족반역자와의 ‘민족공조’

〈또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남북 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민족반역자인 김정은과 이른바 ‘민족공조’를 한다는 선언이다. 민족반역자와의 공조는 자동적으로 자신을 민족반역자로 만드는 것임을 몰랐을까. ‘자주통일’은 북한에서 반미(反美)통일을 의미하고 대한민국 헌법 제4조가 명령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공정한 선거로 뽑힌 사람이 아니므로 이런 자와 통일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통일 정책의 원칙으로 천명한 헌법 4조 위반이 되는 것이다. 서독의 콜 수상은 동독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동독을 통일 협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평양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구체적 합의란 것은 한국군의 무장 해제였다. 전쟁에서 지지도 않았는데 자국(自國)의 수도권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내어놓은 국군통수권자는 이를 평화의 터전 만들기라고 거짓말하고 있다. 더구나 수도권에 사드 배치도 하지 않고 핵민방위 훈련도 하지 않아 북한이 핵미사일을 쏠 때 최대한의 인명(人命)피해가 생기도록 여건을 조성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을 신속히 취하기로 했습니다.〉

그 뒤 아무 진전이 없었다. 이산가족은 만나서 같이 살아야지 동물원식 상봉은 고문이다. 편지 왕래도 안 되는데 무슨 근원적 해소란 말인가. 불법으로 억류된 약 6만 명의 국군포로 문제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맨 정신으로 읽을 수 없는 연설문

〈나는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히틀러, 스탈린 수준의 살인마를 향한 낯간지러운 칭송이었다. 유엔총회가 반인도범죄자로 규정한 김정은을 치켜세웠으니 유엔헌장 위반이고 이 표현 자체는 반인도범죄행위나 다름없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사람 같다. 유럽에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면 감옥에 간다.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

이 대목은 맨 정신으로 읽을 수가 없다. 북한 측이 써준 원고가 아닐까 의심하는 탈북자들도 있었다. 북한이 어려운 시절을 보낸 것은 대남(對南) 도발과 핵무기 개발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탓이다. 문 전 대통령은 그러한 도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한국의 대통령인데, 김정은의 그런 행위를 민족의 자존심 수호 행위라고 미화한다.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죄에 해당하고, 대한민국 헌법이 딛고 있는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 훼손이며 정의감이 실종된 반교육적 표현이다.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새로운 조국을 민족반역자와 함께 만들겠다고 하는데 어떤 조국인가? 연설에서 ‘자유’를 철저하게 기피하는 그의 가치관으로 볼 때 새로운 조국은 자유가 말살된 나라일 것이다. 반국가단체와 손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려면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와 한미 동맹을 해체하고 개인의 자유를 탄압해야 한다. 이게 레닌주의자 출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준 사명이었을지 모른다.

〈오늘 많은 평양 시민, 청년, 학생, 어린이들이 대집단체조로 나와 우리 대표단을 뜨겁게 환영해주신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대집단체조를 준비한 어린이들이 겪은 고통을 안다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조국게이트가 터진 와중에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으로부터 선물 받은 풍산개가 낳은 새끼 여섯 마리의 분양을 앞두고 작별의 산책을 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인천시는 김정은의 개새끼를 얻어서 환영식까지 했는데 어린이들을 동원하였다. 한 마리는 하필 연평도로 보냈다.


남로당 무장폭동이 평화통일의 꿈!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4·3 추도사에서 “4·3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꿈”이라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2021년 4월 3일 제주 연설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로당 무장폭동을 평화통일의 꿈으로 미화하였다.

〈4·3은 제주의 깊은 슬픔입니다. 제주만의 슬픔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아픔입니다. 제주는 해방을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꿨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오직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으며 되찾은 나라를 온전히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평화와 통일을 꿈꾸고, 화해하고 통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제주의 슬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기 위한 남로당의 무장폭동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꿈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김일성주의자로 의심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일 것이다.

그는 이어서 〈우리가 지금도 평화와 통일을 꿈꾸고, 화해하고 통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제주의 슬픔에 동참해야 합니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지금 꿈꾸는 통일은 자유통일이지 연방제나 공산화가 아니다. 문맥상 1948년 남로당의 ‘통일의 꿈’을 이어받자는 주장으로 읽힌다.

이 연설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제주의 비극이 남로당의 무장폭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숨긴 정도를 넘어서 무장폭동을, 통일을 위한 숭고한 봉기, 즉 못 이룬 꿈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좌파 정부 때의 진상보고서조차 무시한 역사 조작이다. 이렇게 간절히 남로당의 반란과 악행을 덮어주는 것은 문재인이 가진 이념적 확신과 이렇게 나가도 국민들은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이런 연설을 한 것 평생 후회하게 될 것’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간한 진상보고서도 공산무장반란 세력의 폭동과 학살을 명시하였다. 관계 대목을 소개한다.

 

〈■ 발발 원인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을 계기로 제주 사회에 긴장 상황이 있었고, 그 이후 외지 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서청에 의한 검거선풍, 테러, 고문치사 사건 등이 있었다. 이런 긴장 상황을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과정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군경을 비롯하여 선거관리요원과 경찰 가족 등 민간인을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이다. 그리고 김달삼 등 무장대 지도부가 1948년 8월 해주대회에 참석, 인민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지지함으로써 유혈사태를 가속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판단된다.

■ 무장대는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 산하 조직으로서, 정예부대인 유격대와 이를 보조하는 자위대, 특공대 등으로 편성되었다. 4월 3일 동원된 인원은 350명으로 추정된다. 4·3사건 전 기간에 걸쳐 무장 세력은 500명 선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무기는 4월 3일 소총 30정으로부터 시작해 지서 습격과 경비대원 입산 사건 등을 통해 보강되었다.〉

나는 이 연설을 듣고 〈그는 이런 연설을 한 것을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고 썼었다. 김문수 위원장의 발언은 진실의 저수지의 물을 막고 있던 댐을 무너뜨린 것과 같다. 문재인이 김일성주의자라면 대한민국의 지난 5년은 김정은이 문재인을 부하, 즉 남쪽 관리자로 부리면서 간접 통치했고, 우리는 공산화의 문턱을 넘었다가 지난 3월 9일의 결단으로 겨우 생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살아 돌아오긴 했는데 누가 우리를 사지(死地)로 몰고 갔는지를 알아야 다시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월간조선 11월 호

특별인터뷰 이문열 작가

“윤석열, 잘못된 일의 뿌리를 뽑는다는 심정으로 결단해야”

⊙ “지난 5년간 不知不識간에 전체주의로 상당히 진행”
⊙ “말이 이렇게 망하면 나라도 성하지 못한다”
⊙ “DJ는 대통령으로 中上…, YS는 민간인으로서 좋은 사람”
⊙ “대한민국이 원상으로 돌아가는 것, 10년 안에는 불가능할 것”
⊙ “우익에선 자기 신념을 지키다가 감옥에 가도 상관없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윤석열, 하찮게 보이는 일도 누적되면 타격이 온다”

▲사진=조준우

 

시대(時代)와의 불화(不和)를 무릅쓰고, 신발 끈을 고쳐 매며 필마단기(匹馬單騎)로 격랑(激浪)에 맞섰던 인물이 있다. 소설가 이문열(李文烈·74)이다. 그는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모(某) 평론가가 대하소설 《변경》을 두고 “이제 이문열은 대가(大家)의 이름으로 훨훨 돌아다녀도 무방하리라”라고 썼을 만큼 독보적인 문학적 성취를 일궜지만, 반대 진영에서 그는 공격 대상 1순위 작가이기도 했다. 누적 판매 부수만 몇천만 권이니,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그의 문장으로부터 자유로운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좌우(左右) 모두 인정하는 그의 영향력은 불멸(不滅)이다. 몇 년째 작품 발표를 멈춘 작가는 작금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을 찾아 지혜를 빌리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노(老)작가의 심신은 지쳐 보였다. 실화(失火)와 실족(失足)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6월 30일, 경북 영양 광산문학연구소가 화재(火災)로 전소(全燒)되었다. 다섯 살 때 고향을 떠나 40년을 떠돌다 귀향(歸鄕)하며 지은 커다란 한옥이다. 뜻밖의 화재로 ‘작가 이문열’의 이름으로 얻은 수입 대부분을 들인 건물, 그리고 동리(東里) 선생의 진적 죽필(竹筆), 김지하(金芝河) 시인의 난초화, 외팔 화가로 유명한 박대성(朴大成) 화백의 작품 등 개인적으로 애지중지(愛之重之)하던 물건들을 모두 잃었다. 화재 2시간 전부터 드나든 사람이 없었으니, 화인(火因)은 아마도 실화일 터이다. 물건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고향의 돌아갈 곳’이 영영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작지 않다. 실족은 9월이다. 순간적으로 손발이 마비된 느낌이 들었고, 갑자기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


“상황에 딱 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괴롭다”

▲지난 6월 30일 경북 영양의 광산문학연구소가 불에 타 전소된 후 이문열 작가는 큰 상실감에 빠졌다. 사진=조선DB 

 

― 이제는 괜찮아지셨는지요.
“아뇨. 기억력도 자꾸 나빠지고, 상황에 딱 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괴롭습니다. 그래서 글을 통 못 쓰고 있어요. 아직 입술이랑 얼굴에 난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서 인터뷰 사진 찍기도 좀 무엇합니다.”

실화와 실족 화제(話題)는 자연스레 실언(失言)으로 넘어갔다.

“바로 오늘 아침에 그 문제로 60년 지기(知己)와 다투었습니다. 나는 우익(右翼)이지만, 그 친구는 반대 진영에서 장관도 하고 그랬죠. 그래도 그동안은 말이 통했는데, 이번 윤석열(尹錫悅) 대통령 발언 건은 의견이 아주 달랐어요.”

― 어떻게 달랐습니까.
“제 친구는 윤 대통령이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는 겁니다. 외교적 문제를 만들어 국익(國益)을 해쳤다는 거죠. 그 말을 할 당시 주변이 산만했었고, 그 발언이 공식적으로 한 말도 아니고 혼잣말 비슷한 것이 마이크에 잡힌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걸 잡아서 보도한 방송사부터 문제 삼아야죠. 더구나 MBC는 대통령의 정확한 발언도 확인하지 않았잖아요? 부주의했던 건 반성해야죠. 옆에 마이크가 있는 줄 몰랐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한 말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말하다가 방송에 잡힌 걸 어떻게 공적으로 사과합니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그걸 듣고 퍼트리는 쪽이 더 문제 아닌가요?”

대가의 말은 여기서부터 고백 투로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싸웠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 말을 들으니 야당에서 하는 이야기랑 다를 바 없고, 제 말도 우파 신문 주장과 차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충격을 받았죠. ‘얘 봐라’ 싶으면서도, ‘이제 우리 말이 옛날 같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이 왜 이렇게 타락했나”

노작가는 요즘 세상이 정치적 견해를 두고 너무 격하게 갈라져 있다고 했다. 개선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예전에는 같은 진영 사이에서 정치적 견해 차이로 갈라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은 달라요. 진보도 여러 갈래의 진보가 있지 않습니까? 우익도 마찬가지고요. 정치적 거리 이동이 심해서 같은 진영 사이에서도 정파(政派)가 갈라지고, 정파 사이의 견해 차이도 크죠. 반목(反目)하고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다른 진영뿐만 아니라 같은 진영 내에, 그것도 복수(複數)로 존재하는 겁니다.”

노작가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는 ‘문제의 그 친구’와 서로의 사상·견해를 피차간에 객관화하고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곤 했다. 그런데 말의 길이 끊어진 것이다. 세상의 그런 조짐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피부로 체험한 건 또 다른 문제다. ‘굉장히 이상한 경험’이 일상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말에 관심이 많은데,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이 왜 이렇게 타락(墮落)했나 싶어요. 말이 이렇게 망하면 나라도 성하지 못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말이 망한 건 요즈음이 아니고 한 1~2년 됐습니다.”

― ‘말이 망했다’는 건 무엇을 보고 판단하신 결과입니까.
“정치인들이 쓰는 말을 보세요. 운동권이나 쓰던 격렬한 표현, 정치적 은어(隱語) 같은 것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오잖아요? 금기(禁忌)와 정도(正度)가 사라진 겁니다. 과거에는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쓰지 않던 표현입니다. 의회주의(議會主義)를 추구하는 정상적인 정당과 체제에 적대적인 지하(地下) 운동권 세력이 섞여버린 느낌이랄까요? 말하자면, 운동권 용어가 여야 가리지 않고 정쟁에 녹아들었어요. 그래서 요즘 정치인들 발언을 듣고 있으면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국회의원들의 싸움이 아닙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참담(慘憺)해요.”


“말이 잔인해지면 행동도 잔인하게 변한다”

 ― 정치인들 말은 그렇다 치고, 아직 일상 언어는 괜찮은 것 아닙니까.
“아니죠. 정치인들의 거칠고 험한 말이 받아들여지니까요. 그건 우리 국민이 그전에 없던 표현을 지어낸 사람들의 어떤 사고(思考)에 익숙해졌거나 혹은 동조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좌파가 우파를 공격하는 말이 자극적이고 원색적이잖아요. 그래서 우파의 반격하는 언어도 자연히 거칠어졌습니다. 피차 공격적인 말에 익숙해진 거죠. 정치권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례한 말을 쓰는 사람이 대접받고 그런 표현이 공식화되고…. 말을 쓰는 방식이 아주 나빠요.

모 50대 국회의원이 ‘낄끼빠빠’라는 말을 기자회견 때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찾아보니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라는 말이랍니다. 이건 국회의원이 쓸 말이 아니죠. 자기의 위치와 본분을 망각한 겁니다.

말이 잔인하고 집단적으로 쓰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볼셰비키 때처럼, 독재(獨裁) 냄새나는 정치적 구호가 예사로 쓰이잖아요? 일상 언어가 구호에 상당 부분 점령당한 거죠. 그래서 우리의 국민적인 집단 사고는 많은 부분에서 상당히 마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말이 망한 나라는 오래가기 어려워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이문열 선생은 혼탁(混濁)해진 말이 대중의 일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진단했다.

“험한 말이 나돌기 시작하면 말은 바람보다 더 매섭게 됩니다. 오가는 대화(對話)가 사라지고, 일방적인 공격만 남죠. 요즘 들어 범죄가 전례 없이 잔인해지는 것도 예사롭지 않아요. 말이 잔인해지면 행동도 잔인하게 변합니다. 옛날엔 살인 사건이 나더라도, 시신을 난자(亂刺)한다든지, 이런 건 없었잖습니까? 대중의 심성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대화가 사라진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심성이 황폐해지는 건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요.
“몸과 마음이 많이 상(傷)해야죠. 달리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보이네요. 말 잘못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치면 말이 부드러워질 겁니다.”
  

 

全體主義化

▲이문열 작가는 경기도 이천에 부악문원을 열어 글 제자들을 길러내는 실험을 했다. 사진=조선DB 

 

― 값을 치러야만 재생이 가능한 겁니까.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언어가 상한 것 말고도 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지난 5년 동안 이루어진 전체주의화(全體主義化)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전체주의로 상당히 진행했어요. 사람들이 지금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심각하죠.”

― 어떤 겁니까.
“제가 이천에서 37년 동안 살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비교적 집단화가 덜된 동네인데도 동원이 많아요. 예를 들어, 동네 방송이 나옵니다. ‘부녀회에서 숙주나물 길렀으니 받아가라’ ‘기금을 받아서 쌀 타 왔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와서 받아가라’, 돈 안 내고 가져가라는 겁니다. 근데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아요. 다 정부 돈으로 하는 일이겠지만, 누가 어떻게 길러서 왜 나눠주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여름에는 노인회관 방은 무조건 시원하게, 아마 온도도 어떤 기준보다 2~3도 낮추라는 규정이 있을 겁니다. 노인들이 와서 쉬고 협력하는 방들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죠. 좋은 일인데, 하여튼 공동 식사가 많아지고 공동 행사도 늘어났습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뭐 끓여놨으니 와서 드시라’고 하고, 효도 관광도 안내하고. 공동 식사가 무서운 겁니다. 주민자치법인가, 아무튼 그런 법이 있잖아요. 관(官)으로부터 자유로운 민간 부문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 배급제(配給制)의 시범적 실시일까요.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제일 미칠 것 같은 건 또 있습니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동의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동의한 것으로 관이나 민이나 이해하고 일상생활이 그냥 집단주의로 흘러가는 거죠. 중앙에서만 느끼지 못할 뿐이지 지방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선 동원하는 측 사람과 다른 의견은 말하기가 곤란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반동(反動)’이란 말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문열 가족을 살린 이승만의 포고령

― 그 정도로 우리 사회가 좌경화(左傾化)되었다는 말씀이시네요.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평평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던 대한민국은 어디에도 없고, 이미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사람들이 저보고 우파라고 그러지만, 사실상 제가 우파가 되기에는 좀 나쁜 조건이잖아요? 아무래도 태생이란 것이 있으니까요. 제 아버지는 공산당이 좋다고 어린 5남매와 30세의 마누라를 불구덩이 속에다 던져버렸죠. 당신 혼자 목숨 부지하겠다고 북한으로 도망가야 했을 정도로 다급했던 좌파란 말이에요. 그리고 어머니도 좌익 활동으로 해방 공간에서 징역(懲役)을 사셨어요. 제 본명이 이열(李烈)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가지셨을 때 아버지의 지령에 따라 부른 배에다 삐라를 감추고 효창공원 행사장에 가서 뿌렸다가 검거되셨어요. 5개월 살고 나오셨는데, 아버지가 ‘너는 엄마 배 속에서부터 옥살이하며 싸웠으니까 나중에 커서 열렬한 투사로 자라라’라며 지어준 이름입니다. 이런 저도 으스스할 정도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문열은 어쩌면 북에서 삶을 보냈을 수도 있다. 1950년 겨울, 할머니와 만삭의 어머니, 그리고 3세 이문열이 북행(北行)길에 올랐다. 퇴각하는 괴뢰군을 따라 움직이던 민간인 집단에 합류한 것이다. 북에 연고가 있거나, 가족 중 좌익 활동가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학교 2년생 큰형과 초등학교 고학년 둘째 형은 영천 외가로 내려가 있어 동행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동행(未同行)이 식구들의 목숨을 살렸는지도 모른다. 경기도 연천(漣川)까지 갔는데, 마을 사람들의 신고로 산중에서 붙잡혔다. 연천초등학교 창고로 끌려갔는데 이미 ‘부역자(附逆者) 가족’이 100명 넘게 잡혀 있었다.

‘살아남을 길’을 마련해준 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임시포고령이다. ‘월북 기도자(越北企圖者)라도 노약자와 임신부는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수용소에서 태어난 여동생의 생일은 1950년 12월 29일. 이 기구한 출산에 대해서는 대하소설 《영웅시대(英雄時代)》에 자세히 묘사했다. 어머니의 증언을 글로 옮긴 결과다.

이문열의 가족은 며칠 후 풀려나 서울 친척집으로 이동했고, 친척들이 피란할 때 함께 무개차(無蓋車) 열차로 고향까지 남하(南下)했다. 어른들이 기차를 타고 가며 핏덩이 신생아를 두고 “아직 초칠일(初七日)도 지나지 않았네”라고 하시던 말씀을 기억한다. 수용소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생사(生死)는 모른다. 60대 중반의 노파, 막 출산한 여인과 세 살, 신생아 가족은 어느 모로도 위협적이지 않으니 풀려난 것이다. 형님들이 같이 있었다면 가족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이유다.
 

 

“싸우려면 제대로 싸워야”

― 현 상황이 그 정도로 위기 상황입니까.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대한민국이 제도적으로 망하는 것은 간신히 막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원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10년 안에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내가 늙고 근력도 떨어져서 하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대한민국이 박정희(朴正熙)·김일성(金日成) 시대 정도의 균형점이라도 회복할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일 것 같습니다.”

― 문화적·사상적으로 밀리고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자유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개념적으로 우익적이고 자유나 문화를 즐기는 사람은 아직도 다수(多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거나 무슨 조직을 만들고 지원받는 일을 할 때는 우익은 좌익에 어림도 없이 밀려요.”

― 문화예술계 사정도 그렇습니까.
“그럼요.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가까운 시일 안에 어쩌면 북한식 작가동맹(作家同盟) 비슷한 구조가 태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글 못 쓰고 작품 활동 못 하게 만드는 거죠. 입회 자격, 가입 조건은 단체를 장악한 사람들이 결정하고요. 정부 지원은 전부 단체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하고 지원 대상도 단체에서 정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제가 듣기로는 아프리카 하이에나의 전투력은 사자의 7분의 1 정도랍니다. 그런데 온갖 수단 다 쓰고 집단으로 움직여서 결국 살아남잖아요? 좌익의 전투력(戰鬪力)과 야성(野性)은 보기보다 강합니다. 주사파(主思派)로 수십 년 쫓겨다니면서 감옥에서부터 익힌 야성과 전투력이니까요. 우익에선 자기 신념을 지키다가 감옥에 가도 상관없다,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그게 좀 답답합니다. 싸우려면 제대로 싸워야죠.”

이야기할수록 아득하고 처연(凄然)했다. 지금 이 상황이, 그리고 우리 미래가 이토록 비관적이란 말인가? 절망감이 필자를 삼키기 전에 주제를 돌리고 싶었다. 과거지사(過去之事)로 말머리를 튼 이유다.


‘역사의 구경꾼’

― 예전에는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반대파와 대화했다고 하셨는데, 역대 대통령과도 교분이 있었죠.
“전두환(全斗煥) 대통령부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때까지는 교분이 있었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때부터는 대통령을 공식적인 자리 외에서 만난 일은 없습니다.”

― 대통령들이 왜 선생님을 만나자고 했을까요.
“그분들이 저를 뭐랄까, ‘역사의 구경꾼’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정책이나 사건을 저에게 설명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김영삼(金泳三), 김대중 등 대통령 여러분이 회고록을 써달라고 청했죠. JP 등 여러 인사도 부탁했고요. 다 거절했습니다.”

― 김대중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진영이 다른데, 어떻게 만났습니까.
“1987년 대선 전에, 《신동아》에서 원고 청탁이 왔어요. 동교동 가서 하루 자고, 상도동 가서 하루 자면서 DJ랑 YS 관찰해서 70매씩 써달라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 동교동을 먼저 갔나요?
“네. 언제 가면 좋겠냐니까 김옥두 비서가 ‘이왕 오시는 것 일찍 오세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아침 7시에 도착했습니다. 직경이 2미터가 넘는 큰 원탁에서 아침을 먹는데, 국회의원도 5~6명 오고 외신 기자도 소개하고,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을 왜 이렇게 불러 모았나 싶었죠. DJ가 ‘요놈이 오늘 네 시간 전까지 목포 앞바다에서 헤엄치던 놈이요’라면서 회도 권하고, 현안 이야기하다가 외신 기자와는 영어로 대화하고, ‘망명 정객’이 귀향한 느낌이 나서 조금 감동했습니다. 동교동 측에서 《신동아》 인터뷰에 맞춰서 철저하게 준비한 겁니다.”


“DJ와 동병상련”

― 네 시간 전까지 목포 앞바다에서 헤엄치던 횟감이라니, 보낸 사람 정성이 대단하군요.
“목포에서 서울 수산시장으로 올라오면서 동교동에 매일 새벽 해산물을 배달하고 가는 겁니다. 호남에서 DJ는 거의 신(神)적인 존재였으니까요. 호남인들의 염원이 모인 상징이었죠. 한번은 DJ 강연을 취재하는데, 웬 사람이 한겨울인데도 외투가 없어요. 추위를 견디느라고 소주를 마시는데 저한테도 ‘이문열 작가님 아니냐?’라며 한 잔 주더라고요. 제가 ‘안 추워요?’ 하니까 ‘우리 선생님 오시는데 춥지 않아야 얘기 잘 들을 것 아니오. 그래서 한잔하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옷도 홑겹에 벌벌 떨면서도 DJ를 기다리는 겁니다.”

― DJ하고는 뭐 이런저런 논쟁이나 토론은 안 했습니까.
“안 했어요. 왜냐하면 DJ가 책을 많이 읽어서 화제가 풍부합니다. 정치 얘기 말고도 서로 할 말이 많고, 또 서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있습니다. 자기나 나나 뭐 배운 거 없이, 책 읽은 것으로 살아온 거니까요. 《신동아》 인터뷰 전에 여성지 《여원(女苑)》 같은 잡지의 의뢰로 80매 내외의 인터뷰를 두 차례 한 적이 있는데, 동교동 지하 서재에서 단둘이 만났죠. 그때 서로 통한 점이 있습니다.”

― 역사적 인물로서의 DJ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고생 많이 한 분인데, 인품이라든가 인격 뭐 이런 식으로 성인군자 자격을 따진다면 다른 말이 나올 수 있지만, 대통령으로는 그래도 중상(中上)은 안 될까요? 실제 한 것도 그랬고, 큰 실수는 안 했다고 봅니다. 좀 엉뚱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데 엉뚱한 짓이야 어느 대통령이나 다 하지 않았나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저는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엉뚱한 짓’이란 햇볕 정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햇볕 정책이 북핵(北核) 개발로 이어졌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건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찬성하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측면도 있죠. 박정희·김일성 시대처럼 격하게 경화(硬化)된 게 아니라, 햇볕을 비추든 뭘 자꾸 집어넣어서 저쪽을 늦춘 건 분단된 국가에서의 책략으로서는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 오히려 햇볕 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한류(韓流)가 북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보는 건가요.
“그렇죠. 햇볕 때문에 아마 북한이 내부적으로 불리해진 것도 많을 겁니다. 사실 북한 청소년들이 옛날에는 다 ‘김일성 백성’이었다면, 지금은 한류 때문에 사정이 확 달라졌다고 봅니다. 북 당국이 보기에는 ‘아이들 다 버려놓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삼국지》와 ‘노벨상’

DJ와는 ‘날 선’ 농담을 주고받은 일도 있다. 《삼국지》와 ‘노벨상’ 논쟁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문인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저보고 ‘《삼국지》 몇백만 권 팔려서 요새 살 만하죠?’라고 해요. 기분 상했죠. 사실 작가한테는, 특히 소위 순수문학 한다는 저 같은 사람한테는 통속 소설이 많이 팔린다는 건 좀 창피한 얘기거든요. ‘나관중 《삼국지》’의 원래 제목이 ‘통속 삼국지연의(通俗三國志演義)’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얘기를 문인 여럿 있는 데서 하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저도 뻣뻣하게 받았습니다. ‘아이고, 저도 축하합니다. 제가 스웨덴 갔더니만, 그 나라에서 아직까지 한국 책은 단 한 권도 번역 출판된 적이 없었는데, 《김대중 옥중서신(金大中 獄中書信)》 스웨덴어 판이 막 나와서 서점 매대에 쫙 깔려 있더군요’라고 했죠.”

DJ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DJ가 문학적인 야심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의 경우, 회고록 등 정치 관련 저술은 매대에 잘 안 올린다고 했다. 책을 홍보하기 위해 누군가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DJ가 농을 던졌고, 이문열도 농과 날을 섞어 응수한 것이다.

“DJ가 만족해하며 웃는데, 자기는 제가 정말로 칭찬한 줄 알았을 겁니다. 알아들은 사람도 있고, 못 알아들은 사람도 있었겠죠.”


어머니와 아버지

▲이문열 작가는 1999년 1월 《조선일보》의 지면을 빌려 ‘북에 계신 아버님께’ 편지를 보냈다. 사진=조선DB 

 

― 김영삼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악의 없고, 계략 모르고 순수한 분이죠. 민간인으로서 좋은 사람인데 정치가로서는 그렇게 능력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기억할 만한 YS와의 인연이 있나요.
“있습니다. 1994년 7월에 김영삼 대통령이 평양 가서 김일성이랑 회담하기로 했잖아요? 그 자리에 배석해 현장 분위기며 대화 내용 등등을 기록하기로 했었습니다. 《조선일보》에서 특별기자 비슷하게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했고, 청와대에서도 오케이 했는데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기회가 사라졌어요.

평양에 못 가서 어머니가 많이 아쉬워하셨죠. ‘가면 네 아버지 만나라’ ‘만날지 못 만날지 모르지만 한번 애를 써보죠’ ‘원망 안 한다 카더라, 캐라’, 그때가 어머니 돌아가시기 두 달 전입니다. ‘가면 혹시 아버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셨던 겁니다.”

― 아버지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그때는 아니고, 나중에 편지도 교환했습니다. 중국에서 만나 뵙기로 날짜까지 잡았는데 돌아가셨습니다.”

― 소설 《아우와의 만남》 이야기가 사실이었군요.
“소설처럼 남동생은 아니고, 여동생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도쿄대 농대를 나오셨는데, 그런 분이 회령 농장에서 평농장원으로 18년을 보냈다고 해요. 평농장원이란 말은, 아오지 탄광 광원하고 똑같다 생각하면 됩니다. 숙청당하신 거죠. 그러니 어떤 꼴을 당하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전두환과 《둔주곡》

▲이문열 작가는 2021년 11월 24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사진=조선DB

 
 

― 전두환 대통령은 어떤 인물입니까.
“친화력 대단하고 유능한 처세가죠. 군인으로선 같은 정보라도 핵심을 체크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들었습니다. 땅굴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전두환 대통령 아닌가요? 땅에서 연기가 풀썩 피어오르는 걸 보고 감이 와서 파기 시작했다는 거죠.”

― 역사적으로는 어떤 인물로 평가하십니까.
“저는 나쁘게만은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원인이겠지요. ‘10·26만 조사하고 원대 복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 2017년부터 《신동아》에 연재하던 자전적 대하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는 2018년에 1980년 5월 직전까지 다루고 연재가 끊겼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 겁니까?
“외압(外壓)은 전혀 없었고, 제 건강 때문입니다.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지고 기력도 떨어져서 집필이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글을 못 쓰고 있습니다. 건강 회복하는 대로 다시 쓰고 싶은데,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 1980년 광주(光州)라면 어떤 기억이 있으십니까.
“그때 제가 대구 《매일신문》 편집국 기자였는데, 공무국 직원 아들이 전남대 학생이었어요. 운동부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분이 활자 뽑는 문선공(文選工)이니까 저랑 자주 마주치는데, 한동안 얼굴이 어둡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괜찮아졌어요. 며칠 동안 아예 연락이 끊겼다가, 아들이 그날 새벽 집에 왔다는 겁니다. 아들이랑 친구 몇몇이 밤새 무등산을 넘어 겨우 광주에서 벗어났다고 했어요. 5월 18일? 19일? 그즈음이었어요. 그래서 ‘야, 이거 큰일이 벌어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전두환과 3金 중 선택하라면…”

―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는 국가 원수들과 교류가 없으신 거죠?
“네, 교류가 없어요. 공적인 행사장 말고는 만난 일이 없죠. 노무현 대통령은 제 또래인데, 저보다 한 살 많습니다. 젊어서는 소설도 썼다고 해요.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도 있고요. 그 작품을 누가 보여줘서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 본인을 우익이라고 하셨는데, 우익은 어떤 사람입니까.
“공과(功過)를 다 인정하고,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이 우익이죠. 제가 보기엔, 문명(文明)은 축적의 산물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가 뚝 떨어지는 일은 없어요. 우리 현대사엔 박정희에서 신군부로 이어지는 30년이 자리합니다. 그들을 절대악(絶對惡)으로 취급하잖아요? 하지만 그 시대를 거쳐 도착한 곳이 오늘이고, 그 시대를 살아간 분들의 공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필요악(必要惡)이었어요. 제가 언젠가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다시 전두환과 3김(金) 중에서 선택하라면 누굴 골라야 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누가 최선일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을 다 겪고도 이렇게 판단이 어려운데, 과거의 사람들을 지금 우리 시각으로 단죄(斷罪)하는 건 곤란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알고, 당대 사람들은 그걸 몰랐잖아요.”

― 역대 대통령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질문하겠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 충고랄까 조언해주신다면.
“답답하기는 해도, 저는 윤 대통령이 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별로 불만이 없습니다. 큰 원칙을 정할 때는 과단성도 있고 결연함도 보이는데, 과단성도 시기를 놓치면 소용이 없습니다. 답답한 이유는 과단성이 발휘되는 시기가 좀 늦기 때문입니다. 시차(時差)가 있어요.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걱정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잔 매에 넘어간다’라고 하잖아요? 하찮게 보이는 일도 누적되면 타격이 와요. 이 상태에서 바로잡아 보려고 고함을 칠 때 저쪽에서 그만두면 도움이 되는데, 이쪽에서는 소리 지르는데 상대가 도망가면서도 계속 돌아보고 맞대응하면 그냥 싸움같이 보이거든요. 하여튼 테크닉은 영 마음에 안 듭니다. 어떤 계기가 왔을 때, 잘못된 일의 뿌리를 뽑는다는 심정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거짓 선동에는 타협하면 안 됩니다.”


“주사파는 사이비 종교”

―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한 말씀 해주십시오.
“우리 젊은이들이 영혼(靈魂)을 찾았으면 싶습니다. 우리한테는 영혼이란 것이 있어요. 짐승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 말고, 사람으로서의 어떤 특징을 짓는 것을 말하죠. 사려(思慮), 판단력(判斷力) 같은 부분입니다. 그냥 들개처럼 우 하고 몰려가는 게 아니라, 시류(時流)나 역사(歷史)에 휩쓸려서 몰려가더라도 몰려갈 때 내가 왜 몰려가는지 생각해본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더라고요.

요새 보면, 누군가 ‘저 사람이 목표다’라고 지시하면 반대 진영 군중이 마치 하이에나 떼처럼 다 달려들고 깨무는 것 같습디다. 그래서 제가 젊은 사람들을 보면 속상해요. 영혼은 여러 가지 이유로 없어집니다. 러시아혁명 이전 농노(農奴)들은 무지(無知)와 가난 때문에 영혼이 닳았죠. 역사적, 사회적 환경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이상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 국민들, 젊은이들의 영혼이라는 건 러시아 농노들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학력도 높고, 기본적인 사유력(思惟力)도 있으니까요. 주사파는 마르크스주의도 아닙니다. 좌익(左翼)도 아니고 사이비 종교죠. 그런 종교가 우리 사회에 퍼지는 건 정말 겁나고 싫고 그렇습니다. 근데 지금 보니까, 젊은이들이 거의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걱정이 많습니다.”

노작가의 예언은 비관론(悲觀論)이었다. 한때 공산주의(共産主義)라는 유령이 유럽을 떠돌았듯이, 지금 주체사상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에 떠도는 것은 혹시 아닐까. 유령이 득세한 곳에선 인간이 설 자리가 없을 터이다. 인간성(人間性)이 절멸하고 이상론(理想論)의 허울 아래 수많은 생명이 허망하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11월 07일 집값보다 높아진 공시가, 文정부 ‘稅制 파탄’의 상징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이 조세의 근거가 되는 황당한 일이 현실화했다. 조세의 정당성 자체를 허무는 ‘약탈’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 세제(稅制) 파탄의 일단을 보여준다. 최근 집값 하락으로 실거래 가격보다 공시가격이 높은 경우가 속출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A단지는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지난달 19억5000만 원에 팔려 이 단지의 같은 평형 아파트 공시가(19억6500만 원)보다 1500만 원 낮았다. 인근 B단지 전용 84㎡도 지난달 실거래가(17억9100만 원)보다 공시가(18억2600만 원)가 높다. 인천·수원 등 수도권과 대구 등 지방에서도 역전이 잇따른다. 서울 노원구 등 강북지역에선 실거래가와 공시가가 비슷해졌다.

예고된 세금 참사다. 문 정부는 지난 2020년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에서 시세의 70% 수준인 아파트 공시가를 2030년까지 90%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15억 원 이상 고가 아파트는 2025년에 90%로 만들겠다며 올해 81.2%로 올렸다. 공시가는 매년 1월 1일 시세를 기준으로 산정해 공개한 뒤 4월 30일 확정하게 된다. 따라서 공시가를 집값의 90%에 근접할 만큼 올려놓으면 시세 상승기엔 세금폭탄, 지금 같은 하락기엔 징벌 수단이 된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잘못된 접근이 재앙을 불렀다.

국토부는 내년 공시가를 올해 수준(평균 71.5%)으로 유지할 모양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4일 제안했던 1년 유예 방안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이러면 조세 저항에 대해선 미봉책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올 12월 납부할 종합부동산세부터 시장가보다 높은 공시가를 적용받는 근원적 모순은 그대로다. 그나마 빙산의 일각이다. 윤석열 정부의 1주택자 종부세 특별공제(3억 원)조차 야당의 부자 감세 공격에 사실상 무산됐다. 법인세 문제도 있다. 문 정부 이전으로 돌아가 세제 전반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08 일대 쇄신이 답이다

지금 세계의 자유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자국(自國) 이기주의를 앞세우는 권위주의형 지도자들이 속속 당선되거나 호출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솔리니 파시스트 독재를 승계한다는 이탈리아 극우 정치의 복원이다. 지난날의 정치 체제로 되돌아가는 복고형(復古型) 권력 행태도 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가 있고 브라질의 룰라가 그 대표적 케이스다.

 

인도의 모디는 급격히 성장하는 힌두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소수 무슬림을 탄압하는 강권 정치를 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은 스스로 ‘황제’의 격(格)에 올랐다. 필리핀은 어제의 독재자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돼 복고의 정치를 휘두르고 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93세의 전 총리가 재출마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독재’의 표본은 헝가리다. 12년 전 총리에 ‘당선’된 빅토르 오르반은 민주 억압, 언론 탄압, 사법부 무력화,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국민이 뽑은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부드러운 독재’(soft autocracy)의 전형이다. 중미의 엘살바도르에서도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의회 무력 진압 등 독재국가 뺨치는 강권 정치가 자행되고 있다.

 

미국 또한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오늘 치러지는 중간선거는 미국의 전범(典範) 격인 자유민주주의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로 대표되는 미국 국가주의의 복원을 의미하며 공화당 극우화의 실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로부터 비(非)자유민주 또는 ‘자유 없는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쿠데타나 혁명이 아닌 적법한 민주 절차를 거쳐 정권을 장악한 뒤 지지층 결집으로 유권자를 분열시키고 편파적 공약과 퍼주기로 한쪽의 세력을 극대화해서 반대자를 약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스웨덴에 있는 브이-뎀(V-Dem)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최고조에 달했던 전 세계의 42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10년 만인 2022년에 34개 국가로 감소했다. 이를 인구 숫자로 보면 자유민주주의 치하에서 살았던 인구가 18%에서 13%로 크게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세계의 자유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고 독재 내지 권위주의는 날로 득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뉴욕대학의 리처드 필데스 교수는 9월 30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공약을 이행하지 못할 때 그것은 국민들로부터 유리되고 불신과 신뢰 철회를 초래하게 되며, 이런 사태는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불러들이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지어 “이런 상황이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한 단순한 회의를 넘어 반(反)민주 성향으로까지 가게끔 만든다”고 했다. 필데스 교수의 설명은 우리에게도 울림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그에게 닥친 여러 비우호적인 사건들이 그를 왜소하게 만들면 국민은 그로부터 이완되고, 지지층 결집의 구호 아래 국민을 극단적인 대립으로 이끄는 권위주의적인 포퓰리스트에게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나라는 불행히도 ‘선출에 의한 독재’로 떨어질 수 있다.

 

지금 윤 대통령을 보면 번번이 사건 뒤처리에 매달려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 터지면 그리 달려가고 저기 막히면 그리 몰려간다. 매일 빈소만 쫓아다니는 모습이다.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있다고 해야 검사 출신 몇 사람이 사고만 치고 있다. 이 사람 얘기 들으면 그것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보면 그쪽이 길인 것 같다. 야당 쪽 아는 사람 없고 자기편의 ‘제갈공명’도 없다. 그런 그에게 하나 끈질긴 것이 있다. 고집인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다. 그는 민주주의 앞에 반드시 ‘자유’를 붙였다. 불행히도 세계는 지금 그 ‘자유’를 버리거나 유보하고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 가는 위험한 추세에 있다. 심지어 정책이나 이념이 아닌 ‘사람’을 ‘구관이 명관’이라며 되살려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 공세, 야당과 주사-좌파의 집요한 퇴진 압박, 그리고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한 민심의 불안감 등 초보 대통령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들에 봉착해 있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왜 대한민국 국민은 이런 시기에 그를 대통령으로 불러들였을까? 무엇이, 어떤 섭리가 그를 대통령이라는 리더의 자리에 밀어 올렸을까? 초심으로 돌아가 그 답을 구해야 한다. 일대 쇄신만이 그 답일 것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11월 09일 이번엔 가짜뉴스 옹호 우려도 자초한 ‘전현희 권익위’

 전현희 위원장 체제의 국민권익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이 또 발생했다. 권익위는 8일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사람에 대한 공익신고자 요건을 검토 중이며 자료 보완을 요구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이 남성은 지난 7월 19일 밤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30여 명과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는 ‘제보’를 했다. 대통령실과 한 장관은 물론 김앤장 측도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제9조는 신고 내용 보완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번 조치가 단순한 실무 절차인지, 공익신고 인정을 위한 포석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술자리를 목격한 것도 아니고, 전 여자친구와의 통화 내용이라고 한다. 정작 그 여성은 통화 내용 유출 및 보도 등에 반발한다. 상황을 종합하면 우선, 공익신고자 자격부터 의문이고, 내용과 과정을 보더라도 ‘카더라’식 주장에 가깝다. 이런데도 ‘검토’ 보도자료까지 낸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짜뉴스도 옹호한다는 우려를 자초한다.

그러잖아도 ‘전현희 권익위’는 편파 시비에 휘말렸다. 문재인 정권 시절 정치인이던 전 위원장이 기용된 데 따른 태생적 논란도 있다. 2020년 추미애 장관 아들 휴가 미복귀 사건 수사 당시 서울동부지검 수사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제보한 병장을 공익신고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등 객관성·공정성을 의심받았다. 같은 법 제6조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음에도 신고한 경우 공익신고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익신고에 대해선 폭넓게 인정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자료를 토대로 진실 여부를 판단할 1차 책임도 권익위에 있다. (제9조 2항) 권익위 존재 이유가 또 도마에 올랐다.

문화일보 사설 

 

11.10 421조원 빚내 물 쓰듯 한 사람의 개 키우는 비용

나라에 천문학적 빚 안기며
선심용으로 물 쓰듯 해놓고
개 키울 돈이 아까운가
한전 빚 눈사태로 만들어
지금 ‘돈맥경화’에도 일조
文 재산이면 이렇게 했겠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처음엔 조금 촌스럽고 어리숙해 보였다. 말수도 적었고 거짓말할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상했다. 취임 1년 뒤에 돌아보니 ‘국민 통합’ ‘공정’ ‘정의’ 등 취임사 전체가 지킬 생각 없는 멋진 연극 대사 같은 것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파양한 송강이와 곰이가 9일 경북대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에서 산책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대구=최훈민 기자

 

 인권 변호사를 자처했는데 인권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자 거침없이 무시했다. 원양어선에서 우리 국민 등 11명을 죽인 조선족 범인들을 변호하며 “동포로서 품어야 한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되고서 살인 혐의를 받는 탈북자들은 어떤 인권 고려도 없이 강제로 북송해 버렸다. 중대한 약속도 쉽게 어겼다. ‘호남에서 못 이기면 정계 은퇴한다’고 충격적 총선 공약을 하고선 호남에서 완패했는데도 모르는 척했다. ‘당 소속 공직자의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있게 되면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당헌을 만들었는데 박원순 사건 등 바로 그런 경우가 생기자 당헌을 바꾸고 후보를 냈다.

 

보여주기 쇼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인데 의외로 이를 좋아하고 연기도 잘한다. 무대 연출가를 핵심 요직으로 기용했을 정도다. 6·25 전사자 유해 봉환식, 서해 교전 희생자 추모식까지 쇼로 만들고 주인공으로 참석했다. 남북 회담도 모두 무대처럼 만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쇼를 한 김명수 대법원장,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닌 김상조 전 정책실장 등 문 전 대통령 주위에 모인 사람들도 비슷했다. “퇴임하면 잊히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더니 SNS에 사진 올리느라 바쁘다. 자신이 잠자는 사진도 올렸다.

 

문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 것은 그의 개 파양 문제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첫 회의에서 “부부 식대와 개 고양이 사료비는 내가 부담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퇴임 직전에도 청와대 비서관이 “개 사료비도 문 대통령이 직접 부담한다”고 했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퇴임 6개월 만에 키우던 개를 내보냈는데 그 이유가 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김정은이 준 개인데 국민 세금 지원을 못 받았다는 것 같다. 문제가 되자 돈이 아니라 법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일의 진행 과정을 보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개 세 마리 키우는 데 돈이 월 250만원 든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분이 이렇게 돈을 따지는 사람이었는가 하고 놀라게 된다. 문 전 대통령은 연금을 월 1390만원 받는다. 국민연금 100만원 받는 사람들도 세금을 내는데 대통령 연금은 세금도 없다. 이 밖에 예우 보조금이라고 매년 4억원 가까이 별도로 지원받을 수 있다. 이런 분이 개 키울 돈을 따진다고 하니 ‘400만원 월급 받으며 개 키우는 나는 뭔가요’ 하는 개탄이 쏟아진다.

 

개 키우는 돈을 따지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5년간 빚을 421조원 안겼다. 나라 장래를 위해 투자한 것이 아니라 정치 선심용으로 뿌렸다. 중국이 독자 GPS 위성망을 완성하는 데 20조원이 들었다고 한다. 421조원을 제대로 투자했으면 나라가 달라졌을 것이다. 정부 수립 후 70년 동안 나라가 진 빚이 660조원인데 문 전 대통령 혼자서 그 3분의 2가 넘는 빚을 더 내서 뿌렸다. 국민 세금은 남의 돈이라고 물 쓰듯 하고 자기 개 키우는 돈은 철저하게 따진다.

 

한전은 경영 상태가 괜찮은 공기업이었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세계 유가가 오르는데도 전기료를 인상하지 못하게 했다. 탈원전 부작용이라고 비판받을까 봐 그랬다. 원가가 싼 원전은 탄압하면서 전기료는 못 올리게 하니 한전 적자는 눈사태처럼 불어났다. 5년간 적자가 무려 12조원이다. 문 전 대통령에겐 이 엄청난 빚 역시 남의 빚이었을 뿐이다. 문 전 대통령 재산에 이렇게 빚이 쌓이면 어떻게 했겠나. 지금 한전은 이 빚을 갚으려고 6% 가까운 이자를 주는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시중 돈이 여기로 빨려 들어가 다른 기업들 채권 발행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421조, 12조 등 나랏돈엔 무감각했던 사람이 자기 돈엔 개 키우는 비용을 따질 정도로 민감하다.

 

천문학적 빚을 내 뿌리며 선심 쓴 사람은 문 전 대통령이지만 갚는 사람은 문 전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빚을 갚아야 할 사람은 세금 내는 국민, 특히 젊은 세대다. 5년 내내 빚내서 돈을 뿌리더니 임기 말에 갑자기 ‘내년부터 긴축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다음 정부는 빚내서 돈 뿌리지 말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부끄러워서라도 이렇게 못 한다. 이분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끝내 모를 것 같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11.12 ‘풍산개 파문’이 드러낸 헌법의 허점

현금 부자 文 전 대통령
세금으로 거액 비과세 연금
세계 최고 수준 ‘전임’ 혜택에
개 양육비까지 더 필요한가
군사 독재 시절 헌법에 넣은
전 대통령 예우, 줄일 때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관리 비용 250만원을 주지 않는다며 함께 살던 풍산개 두 마리를 내보냈다. 키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음에도 돈을 핑계로 떠나보냈다니 비상식적이다. 세계의 ‘전직 대통령’ 중 문 전 대통령만큼 세금으로 막대한 지원을 받는 사람이 드물기에 더 그렇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법으로 전직 대통령 지원을 보장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어떤 면에서 조건이 미국보다 좋다. 미국은 장관 연봉 수준, 한국은 현직 대통령 연봉의 95%를 준다. 한국 장관 연봉이 대통령의 약 60%에 불과하니 미국에 비해 괜찮게 쳐주는 셈이다. 이 기준에 따라 문 전 대통령은 한 달에 1390만원을 연금으로 받는다. 이 정도를 받으려면 연금보험료를 얼마씩 내야 하는지 한 금융사에 계산을 의뢰했다. 이런 답이 왔다. ‘30년 동안 매월 1100만원 정도를 적립하면 됩니다.’

 

미국은 대통령 연금에 세금을 부과한다. 한국의 여느 연금 소득자도 세금을 낸다. 다만 전직 대통령은 안 낸다. 약 50년 전 소득세법 개정 때 추가된 면세 조항이 방치됐다. 왜 특혜를 주는지 영문을 아는 이가 없다. 다른 나라 대통령 부인들이 부러워할 초특급 추가 혜택도 있다. 평생 지급하는 유족(배우자) 연금으로, 대통령이 사망하면 대통령 급여의 70% 수준을 준다. 지금 기준으로 월 1000만원 넘게 받을 수 있다. 순직한 소방 공무원 유족에게 지급하는 연금이 생전에 받던 급여의 55~65%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큰 돈이다. 미국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뜨는 순간 배우자 연금을 연 2만달러(약 2700만원)로 줄인다. 사적 연금이 낫다며 대부분 사양한다 한다.

 

한국은 헌법(85조)에 전직 대통령 예우를 명시한 드문 나라이기도 하다. 군사 독재 시절인 1987년 추가됐다. 관련 문제를 꾸준하게 지적해온 이경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칠레 외엔 헌법으로 정한 사례를 못 찾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통화에서 “목숨을 희생한 공직자나 의인보다, 뽑아 달래서 일한 전 대통령이 더 큰 예우를 받는 것이 타당한가”라고 물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2항은 ‘사회적 특수 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왕정을 버린 한국이 죽을 때까지 세금으로 우대하는 전직 대통령이란 특수 계급을 헌법으로 보장하다니요. 권위주의 정권의 흔적이 방치돼 남은 오점입니다.” 국회의원 연금은 이런 문제로 10년 전 이미 폐지됐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대통령 연금 도입의 취지를 ‘최소한의 품위 유지’라고 설명한다. 1953년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너무 가난하게 살았던 해리 트루먼이 계기가 됐다고 적혀 있다. 트루먼은 돈이 없으면서도 “대통령 경험을 팔아먹을 순 없다”며 기업이 제안하는 자리는 거절하고 강연과 방송 출연도 피했다. 소득이라곤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나오는 군인 연금 월 113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150만원)가 고작이었다 한다. 그의 곤궁한 생활이 국가 망신이라는 지적이 일자 미 의회가 1958년 대통령 연금 등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었다.

 

▲대통령 퇴임 후인 1956년 미주리주 고향 마을에서 결혼을 앞둔 딸 마거릿 트루먼(조수석)과 가족들을 태우고 직접 운전하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돈이 궁했던 트루먼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져 품위 유지가 필요하다는 논란이 일어 미 의회는 1958년 전직 대통령 예우법을 만들었다. /해리 트루먼 도서관

 

전직 대통령 대부분이 트루먼처럼 꼬장꼬장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요즘 미국에선 물러난 대통령이 받는 혜택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연 등으로 버는 소득이 특정 수준을 넘어가면 연금을 깎자거나 경호 비용을 삭감하자는 법안이 때때로 상정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그 조건으로 대통령 연금(한 달에 약 800만원) 전액 삭감을 내걸었다. 한국은 반대로 전직 대통령 혜택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문 전 대통령의 재산은 25억6000만원이다. 예금만 12억원 있다. 고액 자산가인 그의 통장엔 매월 거액의 비과세 대통령 연금이 꽂힌다. 법에 따라 병원비, 여행비, 경호비, 교통비, 통신비 등등 막대한 혜택을 덤으로 받는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이 세상을 뜨거나 자격을 박탈당한 탓에 이 혜택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은 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런 그가 약속한 양육비를 왜 안 주냐며 정들었을 개를 유기견 신세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엔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양육에 소요된 인건비와 치료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퇴임 대통령이 부담해온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말을 좀 바꿔 돌려드리고 싶다. ‘전직 대통령 부부의 안락한 여생에 소요될 연금과 인건비와 치료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국민이 부담하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김신영 기자  조선일보 경제부 김신영 기자입니다

 
 

11.12 ‘MB 글씨’ 새긴 광화문 바윗돌, 文정부가 쓰레기장에 내버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표석 유기(遺棄) 사건의 전말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광화문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두 건물이 나란히 자리잡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건물 중 오른쪽에 있는 것이 철통 같은 보안으로 지나갈 때마다 적잖은 위화감을 주는 주한 미국대사관입니다. 그럼 그 왼쪽 건물은 무엇일까요. 리모델링을 거치긴 했지만, 자세히 보면 원래 똑같이 지어진 쌍둥이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2009년 서울 광화문광장 동쪽의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왼쪽)와 미국 대사관 건물(오른쪽)은 성격이 다른 건물인데도 색깔만 다를 뿐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다. 이 두 건물과 그 자리는 우리 현대사의 온갖 사연들이 농축돼 있는 곳이다.

 

왼쪽 건물 자리는 조선시대에 육조 중 하나인 이조(吏曹) 건물이 있었던 곳이고, 오른쪽 건물 터에는 서울시청 격인 한성부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 이 건물들은 모두 헐렸고, 1915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분실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1921년에는 경찰관 강습소로 바뀌었죠. 이 건물은 6·25 때 파괴됐고, 그 자리는 공터가 됐습니다.

 

당시 이 공터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참석했던 연날리기 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흙바닥 위에 가마니를 깔고 행사를 치렀다고 하니,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한 저개발국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 새 건물 두 채를 짓게 된 것은 1959년의 일이었습니다. 옛 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은 전쟁으로 내부가 불타고 부서져 당장 활용하기 어려웠고, 1954년부터 새 정부청사 신축 계획이 마련됐는데 바로 이 공터가 그 자리로 지목됐습니다.

 

 ▲1956년 제1회 연날리기대회.

 

공사비는 대외원조자금으로 충당됐고, 설계와 시공은 미국의 태평양건축 엔지니어(PA&E)와 빈넬(Vinnel)사가 맡았습니다. 왼쪽 건물은 정부청사, 오른쪽 건물은 주한 미국 경제협조처(USOM) 건물로 지어졌습니다(1968년 미 대사관이 됐습니다). 두 건물이 똑 같은 모습인 것은, 미국 측이 자기들 건물을 설계하는 김에 옆 건물까지 동일하게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하 없는 지상 8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루이 말 감독의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에도 주요 무대로 나오는 1950년대 세계 건축계의 지배적 양식이었습니다. 당시 빈넬사 주임기사로 이 두 건물의 건축을 주도한 사람은 한국인 건축가 이용재씨였다고 합니다.

 

건물 공사 중에 5·16이 일어났고, 그해 건물이 완공되자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왼쪽 건물에 먼저 들어섰습니다. 1963년 경제기획원이 입주한 뒤에는 경제개발 5개년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주요 경제 정책이 수립된 현장이었습니다. 1986년 문화공보부가 들어선 이래 최근까지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이었습니다. 10여년 전쯤 이곳 기자실에 가끔 들르면(그때나 지금이나 문체부 기자실에 아무리 있어 봐야 좀처럼 기삿거리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지나가다 들른 유인촌 장관이 어깨를 툭 치며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라고 한마디 던지고 가곤 했죠.

그런데 이 건물은 바로 이 대통령 시기에 결정적 전기(轉機)를 맞게 됩니다.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재임 2008~2013)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이틀 앞둔 2009년 2월 23일 청와대에서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을 접견하던 중 웃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왜 굳이 ‘제17대’와 재임기간을 썼느냐면, 기이하게도 역대 전직 대통령을 떠올릴 때 그다지 금세 생각나지는 않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MB는 재임기간 중 최소한 서울 광화문 일대에 큰 족적 하나는 남겼습니다.

 

바로 ‘미 대사관 왼쪽 건물’에 자리잡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입니다. 2009년 8·15 경축사에서 MB는 이런 말을 합니다.

 

“6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근대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기적의 역사를 후손들이 배우고 민족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009년 4월 16일 청와대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소설가 황석영(왼쪽)씨와 국립대한민국관(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 초청 간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그곳에 건립됩니다. 2010년 11월 착공해 2012년 12월 26일 개관했습니다. 당시 취재를 맡았던 곽아람 기자는 신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박물관이 아닌 정권 치적 홍보관” “졸속 개관” 등 일부에서 제기한 시각 편향 논란을 의식해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1961~1987년)을 다룬 제3전시실이 대표적. 새마을 운동 코너 옆에 유신 반대운동 자료 등을 모아 ‘시민 사회의 성장과 민주주의’를 다룬 진열장을 마련하고, 바닥엔 조명으로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등 민주화 구호를 쏘았다. 김왕식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균형적 역사시각으로 경제발전, 민주화 등을 기록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옛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을 리모델링해 건립한 박물관 건물은 지상 8층 규모. 4개의 상설전시실, 2개의 기획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MS 허브존에서 바라본 미국 대사관과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정면으로 보이는 녹색 건물).

 

 

이미 박물관 개관 일주일 전인 12월 19일 있었던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지만 여전히 MB의 임기 중이었습니다. 첫 국립 현대사 박물관을 서울 한복판에 건립했다는 적잖은 의미가 있는 박물관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야말로 그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애정도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박물관의 표석(標石)에 직접 글씨를 썼습니다. 사실 전국에 그 필적이 꽤 많이 남아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달리 MB의 서예 작품이 공공시설에 남아있는 것은 드문 편입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는 아홉 글자를 훈민정음을 연상케 하는 고졸한 글씨체로 쓰기 위해, 그는 청와대에서 무척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필을 새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표석. 2019년 2월 철거됐었다. /연합뉴스

 

그리고 그의 글씨를 새긴 표석이 박물관 앞에 세워졌습니다. 아래엔 역시 MB의 글씨로 ‘이천십이년십이월이십육일 대통령 이명박’이라고 새겨졌습니다. 그렇게 크거나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고, 폭 90㎝, 높이 50㎝의 아담한 사이즈였습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기는 하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쯤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이 글은 MB나 MB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숱한 정치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MB가 첫 국립 현대사 박물관을 지었다’는 사실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며, 그 사실은 흔적으로 남겨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이 사실마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서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박근혜 정부 때는 별탈없이 운영됐습니다. 하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그해 7월 김용직 관장이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사직서를 냈습니다. 외압이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그리고 새 관장에 취임한 인물은, 주진오 상명대 교수였습니다.

 

 ▲주진오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재임 2017~2021).

 

“아! 정말 이렇게 나오겠다는 건가.”

탄식을 내뱉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좌파 역사학자 중에서도 ‘강성’으로 꼽히는 인물이고, 과거 좌편향 역사서라는 논란을 빚었던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의 필자였습니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가, 조금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948년 12월의 유엔 총회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는 사실에 유의한다”는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무시하고 ‘38도선 이남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서술.

 

-’대한민국과 북한 정부의 수립’이란 제목 아래 남·북한을 동격으로 서술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를 약화시킴.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해 서술하면서 농민에게 실질적으로 토지를 준 것이 아니라 경작권만 준 사실을 설명하지 않음.

 

-주체사상 등에 대해 북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서술한 부분이 있음.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누락했다는 지적을 받음.

 ▲천재교육 교과서 등 검정을 통과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의 좌편향 서술 문제점을 분석한 조선일보 2013년 9월 23일 조선일보 기사.

 

이 인물을 ‘굳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관장으로 임명했다는 것에서 문재인 정권의 의도는 명확해 보였습니다. 사실 이 박물관이 처음 생길 때부터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한국현대사의 서술과 교육을 놓고 좌·우의 치열한 이념 갈등과 역사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파 정부가 현대사박물관을 세운 다음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훼손하는 좌편향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될 게 아니겠습니까? 주진오 관장의 임명으로 이 우려는 현실화됐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만약 정부가 주진오 관장에게 그런 ‘박물관 좌편향’의 임무를 맡긴 것이 사실이라면, 그 임무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는 2021년 5월까지 관장직을 수행했는데, 초기에는 2018년 4·3 특별전에서 ‘남로당 포고문’을 크게 내거는 등의 전시로 물의를 빚었고, 상설전시관을 개편하면서 ‘한강의 기적’은 대폭 축소하고 ‘여순사건’ ‘촛불집회’를 추가하겠다는 용역 보고서를 제출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개편된 상설전시관은 끝내 ‘대한민국의 성공한 역사를 전시한다’는 박물관의 기본 틀을 뒤엎지는 못했습니다. 박물관 기존 인력이 관장의 지시 사항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한 결과라고 합니다.

 

 ▲남로당이 4·3무장반란을 일으키면서 배포한 ‘반미구국 투쟁에 호응 궐기하자’는 호소문. 2018년 4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특별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위치에 크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주진오 전 관장은 누가 봐도 ‘정치적 편향’으로 읽힐 수 있는 유별난 행보를 몇 차례 했던 것이 최근 밝혀졌습니다. 2018년 친여 성향 매체인 ‘미디어 몽구’의 영상 전편(全篇)을 소장품의 하나로서 구입하라고 지시해서 직원들을 곤혹스럽게 한 일이 그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취재해 지난 3월 인터넷 기사로 단독 보도했습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2/03/22/VULQHOPW6VGRTH3XMGWGE4GIXE/

 

미디어 몽구는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시위,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시위 등을 촬영해 올린 매체입니다. 결국 ‘규정상 유물 구입은 경매나 공고 등을 통한 공개 구입 밖에 할 수 없어 소장자로부터 직접 매입할 방법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유물 구입은 무산됐습니다.

 

 ▲현재 '미디어 몽구'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

 

그리고 또 하나의 행보가 이것이었습니다.

 

‘MB 표석’ 철거.

2019년 2월 20일, 박물관 앞에 그때까지 멀쩡하게 있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표석을 갑자기 치웠던 것입니다.

 

도대체 왜? “과거사 청산의 일환이 아니냐”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 기념물인 표석을 왜 치우느냐”는 지적이 일자 박물관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전으로 관람객이 갑자기 늘어 민원이 생기자 안전상의 문제로 표석을 수장고로 옮겼다.”

 

그 후로 표석의 존재는 잊혔습니다. 이것은 MB가 사실상 ‘잊힌 전직 대통령’이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0년 1월 8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하지만 몇 달 전, 저는 박물관 내외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관람객이 많아 옮겼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민원 자체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는데다, 그 정도 크기의 표석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럼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주진오 관장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표석을 치우라’는 지시를 내렸던 거예요.”

제가 반문했습니다. “아니 그럼… 표석을 수장고에 보관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수장고는 무슨, 그것도 다 거짓말이었어요.”

 

원래 자리에서 뽑아낸 표석을 지게차에 실어 박물관 건물 뒤편 하역장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버려진 것이었습니다. 한 관계자는 “표석 밑바닥이 흙으로 오염된 채 한 달 넘게 천에 싸인 채 쓰레기와 함께 하역장에 방치돼 있었다”고 제게 털어놨습니다. 아무런 표시도 없으니, 청소차가 잘 모른 채 표석을 싣고 갈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는 얘기였습니다.

 

표석이 하역장에 있었던 기간은 한 달이 넘었습니다. 3월 27일, 마침 근처에 있던 언론사 기자 한 명이 산책 도중 우연히 ‘표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박물관 측은 어처구니없게도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아, 그 표석... 말씀이세요? 그거 지금 수장고에 있어요.”

 

다음날인 28일에 관련 보도가 나오자 주 관장은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하역장에 있던 표석을 부랴부랴 6층 수장고로 옮겼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나기 전까지 청와대나 문체부의 그 누구도 ‘왜 그걸 계속 수장고에 두고 있느냐’고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근거 없는 방치였습니다. 박물관에서 수장고(收藏庫)란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인데 그 표석은 전시를 위한 유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표석은 2년 넘게 지난 2021년 4월에야 MB의 원래 글씨가 담긴 액자와 함께 공공기록물법상 행정박물(行政博物)로 등록했다고 합니다.

 

▲수장고로 옮긴 'MB 표지석'을 '행정박물'로 처리하려 했던 2021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내부 문서. /유석재 기자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이라면 들어볼 일도 거의 없을 ‘행정박물’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공공기관이 업무 수행과 관련해 생산하고 접수·취득한 형상기록물 중 가치가 높아 관리 대상으로 선정한 기록물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아예 국가기록원으로 넘길 수 있는 길을 열어 둔 셈입니다. 보기 싫은 표석을 영영 치워버리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임기 2년의 주진오 관장은 한 번 연임한 뒤 표석의 행정박물 등록 다음달인 2021년 5월 관장직을 그만두게 됩니다. 뜻밖에도 박물관 내부 승진 격으로 후임 관장이 된 남희숙 현 관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인물입니다. 저는 이 시점을 ‘문재인 정부가 현대사 박물관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뜻을 완전히 포기한 때’로 해석합니다.

 

제가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은,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이 박물관은 ‘박물관의 역사를 대변하는 이 표석을 원위치에 돌려놓는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독 기사를 쓴 것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특별전 ‘다시, 연결’의 개막과 함께 표석을 제자리에 놓은 9월 7일 아침 신문 문화면이었습니다.

 

그때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신문에 기사가 나면, 박물관은 곧바로 표석을 원위치시켰음을 공표하는 보도자료를 낼 것이다. 그러나 MB가 정말로 인기 없는 전직 대통령이 맞다면, 사람들은 이 기사에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다른 언론들은 보도자료에 의존한 기사만 쓸 뿐 그것이 지난 3년 반 동안 왜 철거됐었는지 더 이상 취재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2022년 9월 7일 아침, 원위치에 복귀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MB 표석'. /유석재 기자

 

기사가 나간 뒤 사람들이 제게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그거 정말 MB 글씨 맞아요?”

 

전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맞아요. MB 글씨... 확인하고 쓴 거예요, 틀림없어요.”

 

그리곤 간혹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역사란 건 말이죠...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게 아닙니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11.14 밀항 준비설 돌던 김봉현...‘대포폰 추적’까지 막은 법원

통신영장 기각도 드러나… 구속영장 2번 이어 기각만 3차례

‘라임 펀드 사태’의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11일 보석(保釋) 상태에서 전자 팔찌를 끊고 도망치기 전에 법원은 김씨에 대한 2건의 구속영장은 물론 “밀항할 염려가 있다”며 청구했던 통신영장 1건도 기각했던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법원은 지난달 26일 검찰에서 김씨 보석 취소 신청을 받고도 결정을 내리지 않다가, 김씨 도주 직후에야 보석을 취소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피해액이 1조6000억원대로 추산되는 사건의 핵심인 김씨는 수사 기관이 체포하기 전에도 장기 도피하고 밀항을 시도했는데 법원이 잇따라 보석, 영장 기각, 보석 ‘뒷북’ 취소를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11일 김씨를 지명수배했지만 이날까지 체포하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도주에 앞서 휴대전화 유심(USIM·가입자 식별 장치)을 조카 것으로 바꿔 넣는 등 추적을 어렵게 해뒀다”면서 “중국 등 제3국 밀입국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중”이라고 했다. 검찰은 지난 12일 김씨의 도피를 도운 것으로 의심되는 조카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김씨는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스타모빌리티 자금 등 10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있다. 그는 2019년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5개월간 도피했다.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 휴대전화)을 수십 대 사용하고, 이동할 때마다 택시를 여러 번 갈아탔다. 체포 직전 부산에서 밀항도 시도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배가 출항하지 않아 실패했다. 도주 중에 현금 60억원을 여행 가방 세 개에 나눠 담아 가지고 다녔는데, 경찰에 체포된 뒤 “가방이 무거워 허리를 다쳤다”고 하기도 했다. 현금 60억원은 5만원권 12만장으로 무게가 120kg에 이른다.

 

검찰은 2020년 5월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이 작년 7월 김씨를 보석으로 풀어줬다. 재판부는 “피고인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김씨에게 보증금 3억원, 전자 팔찌 착용, 주거 제한 등 보석 조건을 걸었다.

 

검찰은 김씨가 중형을 예상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지난 9월 김씨에 대해 다른 사건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2017~2018년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면 원금과 수익률을 보장해준다고 속여 350여 명에게 90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한 달 뒤 검찰은 김씨에게 35억원대 횡령 혐의를 추가하며 구속영장을 또 청구했지만, 법원은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이후 검찰은 지난달 21일 김씨가 중국 밀항을 추진하고 있다며 밀항 준비에 사용한 의혹이 있는 ‘대포폰’에 대한 통신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소명이 부족하다”며 역시 기각했다고 한다. 김씨가 밀항을 시도하고 있다는 관계자 진술을 검찰이 제시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검찰은 지난달 26일 김씨의 보석을 취소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법원이 지난달 28일 보석 관련 심문을 했지만 결정을 미뤘고, 결국 김씨는 지난 11일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인근에서 전자 팔찌를 끊고 달아났다. 법원은 김씨의 도주 사실을 검찰에서 통보받고 나서야 보석을 취소했다.

 

한편 김씨에 대한 1차 구속영장과 통신영장을 기각한 서울남부지법 A 부장판사와 김씨의 변호인 B 변호사(전 남부지법 부장판사)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2012~2013년 서울중앙지법에서 함께 근무한 적도 있다.

 

한 법조인은 “도주 전력이 있고 밀항 관련 증언도 있는데 법원이 영장을 세 차례나 기각한 것을 납득할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김씨 변호인과 영장 기각 판사가 학연, 근무 인연 등이 있으니 ‘봐주기’ 의혹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B 변호사는 본지의 전화와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유종헌 기자

 

11월 14일 한사코 김봉현 구속 막은 판사와 해소 안 된 라임 배후설

 1조6000억 원대의 투자자 피해를 낳은 ‘라임 펀드 사태’의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11일 보석 상태에서 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더 황당한 일은, 밀항설까지 제기돼 검찰이 대응에 나섰는데도 법원이 사실상 가로막았다는 점이다. 서울남부지법에서 결심공판 1시간 30분 전에 사라져 행방이 묘연하다.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스타모빌리티 자금 등 100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2019년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5개월간 도피하며 부산에서 밀항까지 시도한 전력에 비춰 이미 국내를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2020년 5월 김 씨를 구속 기소했는데, 법원이 지난해 7월 김 씨를 재판 도중 보석으로 석방했다. 검찰은 중형이 예상되는 김 씨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김 씨의 다른 혐의에 대한 2건의 구속영장과 밀항 준비에 쓰인 것으로 판단되는 대포폰 통신 영장 1건도 청구했는데, 법원은 한사코 모두 기각했다. 또 지난달 26일에는 검찰의 김 씨 보석 취소 신청을 받고 법원이 이틀 뒤 심문을 했지만, 결정을 내리지 않다가 도주 직후에야 보석을 취소해 김 씨 도주를 사실상 방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천 명에게 천문학적 피해를 입힌 라임 사태 초기부터 정치권 비호 등 배후설이 돌았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들과 청와대 인사들이 뒷배로 거론됐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을 해체하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등 수사 방해로 볼 만한 행태도 보였다. 이번에 김 씨에 대한 1차 구속영장과 통신 영장을 기각한 판사와 김 씨 변호인이 고교 선후배이고, 서울중앙지법에서 함께 근무한 전력도 있다고 한다. 판사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에서 구여권 비호설에 이르기까지, 검찰은 다시 수사해 한 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15 라임 주범 김봉현 도주 못 막은 법원, 어떻게 책임질 건가

〈YONHAP PHOTO-2934〉 '라임몸통' 김봉현, 재판 앞두고 전자발찌 끊고 도주 (서울=연합뉴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11일 오후 재판을 앞두고 전자장치를 끊은 채 도주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0분께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부근에서 김 전 회장의 전자발찌가 끊어졌고 연락이 두절됐다. 사진은 지난 9월 20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열린 사기?유사수신행위법 위반 관련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참석하는 김 전 회장. 2022.11.11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2022-11-11 15:01:54/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검찰, 김봉현 밀항 첩보 입수 구속영장 청구

법원이 번번이 기각…전자팔찌 끊고 잠적해

 

법원의 보석 허가로 풀려났던 ‘라임 펀드 사태’의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위치추적장치를 끊고 달아났다. 지난 11일 서울남부지법 결심 공판을 앞두고 벌인 일이다. 수많은 투자자에게 1조6000억원대 피해를 준 장본인의 도주를 눈 뜨고 놓친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특히 김 전 회장의 잠적을 우려한 검찰이 구속영장과 통신영장을 연거푸 청구했으나 법원이 번번이 기각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은 2020년 체포될 당시에도 5개월간 도피 행각을 벌인 인물이다. 이런 김 전 회장을 서울남부지법은 2020년 7월 보석으로 석방했다. “신청된 증인이 수십 명에 이르러 심리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고,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을 허가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었다. 김 전 회장과 함께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은 줄줄이 구속됐는데, 정작 주범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전 회장의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판 과정에서 당시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폭로를 이어갔다. 2019년 검사들을 접대한 사실도 공개했다. 검사 세 명 중 한 명은 재판에까지 넘겨졌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는 라임 사태 관련자 가운데 정·관계 로비와 기업 사냥, 횡령 등 가장 많은 의혹에 연루된 인물이다. 앞으로 어떤 비리를 새롭게 폭로할지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이런 김 전 회장에 대해 검찰이 최근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중국 밀항을 준비했다는 진술까지 확보해 재차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또다시 법원에 막혔다. 법원은 이에 대해 뭐라고 해명할 셈인가.

 

검찰의 우려대로 김 전 회장은 전자팔찌를 끊고 달아났다. 최근까지도 검찰은 김 전 회장의 보석 취소를 요청했으나 법원은 결정을 미루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취소 결정을 내렸다. 황당한 뒷북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이 판사와 고등학교 동문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회장이 잠적하자 경찰은 공용물건손상죄 수사에 나섰고, 강력팀 형사들을 투입했다. 해양경찰청은 항만에서 밀항을 막기 위한 긴급 조치를 시작했다. 김 전 회장은 과거 체포될 당시 현금만 55억원을 갖고 있던 인물이다. 그의 해외도피를 막지 못하면 그가 연루된 정·관계 비리도 영영 묻힐 우려가 크다. 검찰과 경찰은 반드시 그를 잡아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의 잘못된 판단이 국가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가져온 사실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와 재발 방지 방안을 내놓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11.15 진보가 변해야 나라가 산다

집권 땐 내로남불
정권 잃고선 반성 없이
참사 이용해 증오 마케팅
암수·꼼수만 쓰지 말고
건설적 대안·비전 제시하길
진보의 타락은 국가적 불행

 지난 74년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달성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인류사에서 한국처럼 급속히 발전한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 어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발전을 칭송하지만, 이제 1인당 GDP 1만2000달러의 중국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일당독재의 개발도상국일 뿐이다. 중국 현대사와 비교해보면 한국 현대사의 위업은 더욱 빛나고 돋보인다.

 

한국 현대사는 쉽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빈곤을 퇴치하고 산업화를 이룬 ‘경제혁명의 시대’(1979년까지), 인권을 신장하고 민주적 제도를 닦은 ‘자유화·민주화의 시대’(1980~1990년대), 첨단산업을 고도화하고, 사회복지를 확충하고, 문화·예술을 창달한 ‘선진화의 시대’(2000년대 이후)이다. 한국이 단기간 고도성장을 성취할 수 있었던 근본 동력은 무엇인가? 어떤 이는 유구한 역사 전통과 한민족의 우수한 DNA를 들지만, 북한을 보면 민족주의적 설명의 허구성이 자명해진다.

 

한국 현대사의 발전은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쳐 자유민주주의 이념 아래 개방주의 시장경제에 따라 수출주도형 성장 전략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 범인류적 공생 번영에 이바지해온 결과다. 권위주의 개발독재는 자유민주주의와 모순되었기에 시민사회는 도도한 저항과 격렬한 투쟁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이끌었다. 그 70여 년의 격변을 돌아보면, 위정자, 기업인, 근로대중, 전문 관료, 과학자, 기술자, 민주투사, 공무원, 교육자, 문화예술인까지 모두 맡은 바 자리에서 큰 역할을 했다. 정치인들은 반대편을 헐뜯고 악마로 만들지만, 단언하건대 한국 현대사에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역사적 ‘빌런(villain·악당)’은 없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국의 굴기가 아무리 눈부시다고 해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실기하고 표류하면 급전직하 퇴락의 길로 갈 수도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은 핵 공갈과 군사 테러에 시달리는 나라다. 경쟁국의 도전으로 한국 기업의 기술적 비교우위도 사라지는 추세다. 상황이 위급함에도 한국 정치는 절망적이다. 무엇보다 소위 ‘진보 정치’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반독재 투쟁을 이끌었던 바로 그 민주화 세력이 지금 방황하고 있다.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은 엉터리 정책과 내로남불의 추태를 남발하다 국민의 심판을 받고 권력을 잃었음에도 내부에서 반성과 자책의 목소리가 없다. 대신 그들은 가장 쉽게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태원의 비극을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극화해서 정권을 파괴하겠다는 운동권 특유의 증오 마케팅이 또 시작됐다.

 

특이하게도 한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정권 퇴진 운동이 시작된다. 자칫 선거 불복이라 비판받을 수 있기에 반정권 세력은 일단 숨죽이고 기회를 엿본다. 새 정권이 실수를 범하거나 불의의 재해가 터질 때면,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정권 퇴진을 부르짖는다. 과거를 돌아보면, ‘진보’ 정권이 물러나고 ‘보수’ 정권이 들어설 때 정권 퇴진 운동은 더욱 극렬하게 일어났다. 국민이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거나 큰 슬픔에 사로잡힐 때, 들불처럼 거세게 “정권 타도”의 운동이 일어나 정국을 덮치는 쓰나미가 됐다.

 

불의의 사고가 터지면 정부는 혼란을 수습하고 위기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 정권이 퇴진해야 한다면, 외교·안보·정치·경제의 막중한 책무는 누가 진단 말인가. 결국 대중적 분노를 자극해서 권력을 되찾겠다는 얄팍한 정치 선동일 뿐이다. 판에 박힌 그 수법은 이미 공식화된 ‘진보 집권 플랜’이 된 듯하다. 미래의 비전이나 건설적 대안이 없기에 그들은 권력 투쟁의 암수와 정권 탈환의 꼼수만 모색한다. 진보 세력은 정권을 다시 잡아서 무엇을 하려는가? 탈원전 재개하고, 4대강 보 해체하고, 사드 배치 철회하고, 재벌 총수 잡아넣고, 태양광 이권 나눠 먹고, ‘흑석동’ 건물 사고, ‘친일파’ 사냥하고, 한미동맹 약화하고, 운동권 생태계 복원하고, 중국 눈치 살피면서 북한에 뒷돈 챙겨 줄 계획인가?

 

진보 세력은 구태의연한 증오 마케팅 대신 타당한 발전전략과 합리적 정책 비전으로 공명정대하게 제대로 된 ‘진보 집권 플랜’을 세워보라. 진보 세력의 타락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불행이다. 한국 현대사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위기를 뚫고 제도를 개선해 간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11월 15일 자유민주주의 ‘명시’는 옵션 아니다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교육 당국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문재인 정부에서 중등학교 교과서 속에 ‘자유’를 빼고 표현한 ‘민주주의’ 대신에 ‘자유민주주의’를 명기하기로 했다. 이 교육과정은 오는 29일까지 행정 예고되고 2024학년도부터 현장에 적용되지만, 이 내용이 온전하게 중등학교 학생에게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은 2025학년도부터다. 그간 내년부터 사용할 초등학교 검인정 사회교과서 11종 중에서 2종만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담아서 최근까지도 심각한 우려를 자아냈다.

이 조치를 보면서 정상회복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여전히 떨칠 수 없는 우려가 병존한다. ‘자유민주주의’ 표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의적으로 선택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존속과 국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헌법상 핵심 가치이므로 어느 정권에서건 존중해야 한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천명하고, 제4조에서는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통일의 방향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자유민주’라는 표현이 두 번에 그치지만, 헌법의 틀과 내용이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헌법 제10조에서 제37조에 이르는 모든 기본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내용이다. 또, 그것은 번영의 핵심인 자유시장경제로 이어진다. 제23조의 사유재산권을 비롯해 제119조 ①항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고 일부 좌파 성향의 학자들에 의해 자유민주주의가 왜곡되고 폄훼(貶毁)돼 왔다. 특히, 과거 일부 ‘민주화’ 세력은 ‘민주주의’를 하나의 이상으로 그릇되게 설정해 자유민주주의의 절차적 원리를 훼괴(毁壞)시켜 버렸다. 마치 ‘민주’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능사인 양 주장한다. 게다가 ‘자유’를 뺀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민주주의라고 호도하고 있다.

적지 않은 학생이 ‘민주주의’라면 다 좋은 줄 알고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인민민주주의 국가와 일부 사회주의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박탈한다는 사실과 일당제 체제에서 대의기구 구성원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해당 지역 공산당 핵심 당원이 ‘지명’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몇 해 전 조선족 교수가 특강을 하러 방문한 적이 있어, 중국에서 대학교수가 되려면 반드시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은 공산당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학생들 앞에서 확인시킨 바 있다.

 

현재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개인과 사회의 번영을 위한 유일한 체제라는 사실마저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심각한 교육 현실을 보고 있다. 우리의 책무는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만이 우리가 지향하고 사수해야 할 보편적 가치라는 점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특히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인민민주주의에 ‘인민’이 없으며, 사회민주주의에 ‘공정한 사회’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다른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는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므로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수호해야 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혹세무민하는 것이며 우리를 공도동망하는 ‘노예의 길’로 몰아갈 뿐이다.

문화일보

 

11.16 북한의 인권 침해, 두고만 볼 것인가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에 대해 줄곧 제기된 의구심이 있다. 문 정부는 왜 북한 주민의 인권 참상을 외면하나, 탈북민 한성옥 모자는 왜 2019년 7월 대한민국 땅에서 아사했나, 북한 정권 앞에서는 왜 저자세로 쩔쩔매나. 이런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좌파 정권이 북한 인권에 대해 보여온 태도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에 수백만 명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북민이 급증했다. 그 무렵 탈북민이 급증하자 그들의 한국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시설인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짓는 일이 급선무였다. 관련 예산안에 대해 당시 김대중 총재의 국민회의가 강하게 반대했다. “북한 정권이 싫어하기 때문”이란 황당한 이유였다.

 

2004년과 2006년 미국과 일본이 ‘북한 인권법’을 연이어 제정했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북한 인권법안을 발의했지만 11년간 민주당 계열 좌파 정당들이 방해했고 겨우 2016년 3월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법 제정 이후 6년이 지났지만, 핵심 기구인 북한인권재단은 민주당이 이사 추천을 거부해 출범조차 못 하고 있다.

국내외 “문 정부, 북한 인권 외면”
유엔 인권이사회 첫 낙선 초래해
윤 정부, 국격 맞게 인권 옹호해야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현 인권이사회)는 북한을 인권침해가 심각한 국가로 지목해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2004년부터 비팃 문타폰, 마르주키 다루스만, 토마스 킨타나 보고관이 각각 6년씩 특별보고관을 맡아 탈북민의 증언을 토대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를 토대로 유엔 인권이사회와 총회는 매년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해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페루의 엘리자베스 살몬 교수가 네 번째 특별보고관에 임명됐다.

 

유엔은 2013년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를 구성했다.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 주도로 1년간의 작업 끝에 ‘북한 인권침해 종합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북한에서 자행되는 광범위하고도 조직적이며 심각한 인권침해는 인도주의에 반한 범죄에 해당하고, 그 책임자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무기로 안보리에서 기소 결정을 막고 있다. 유엔 차원의 북한 인권결의안은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발의돼 매년 투표 없이 합의제로 채택되고 있다. 한국의 우파 정부는 줄곧 동참해왔다. 그러나 좌파 정부는 늘 부정적이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청와대에서 시민사회수석과 비서실장이던 시절에 이 결의안에 기권 또는 투표 불참을 주도했다. 특히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시절에는 북한 당국의 의견을 들어보고 기권해 국내외에 웃음거리가 됐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4년 연속 유럽연합 중심의 공동제안국에 불참해 국제사회의 빈축을 샀다.

 

2006년 유엔 인권이사회 발족 이래 한국은 이사국으로 5회 연속 선출됐으나, 지난 10월 유엔총회 투표에서 베트남·몰디브에 밀려 낙선했다. 지난 5년간 문 정부가 보여준 반인권적 행태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격이 추락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본래 인권 문제는 좌파의 어젠다였다. 그런데 한국의 좌파들은 민주화 운동 시절에는 인권을 내세웠으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딴사람처럼 침묵해왔다. 필자는 문 정부 청와대를 장악했던 86세대 종북 주사파 운동권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들은 심지어 탈북민을 북한 정권의 배신자로 낙인찍었을 정도로 북한 인권을 철저히 외면했다.

 

주사파가 권력을 휘두른 문 정부에서 탈북 지식인은 각종 지원과 강연에서 배제됐고, 탈북민이나 관련 단체를 후원하면 세무조사 당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북한 인권 관련 시민운동도 최악의 빙하기였다. 2019년 11월 탈북 청년 어민 2명 비밀 강제 북송 사건이나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고 이대준씨) 서해 피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김여정 하명법’이란 위헌적 대북전단금지법도 문 정부에서 강행했다.

 

자유와 인권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는 ‘세계 인권의 날’(12월 10일)을 앞두고 북한 인권 정책을 시급히 정상화해야 한다. 북한 정권의 심기가 아니라 북한 동포의 인권 옹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글로벌 중추 국가에 걸맞게 국격을 높여야 한다.

중앙일보 김석우 전 통일원차관·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11월 16일 ‘시대착오 TBS’ 개선해도 공영으로 존속할 이유 없다

매년 국민 세금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TBS는 이미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정도로 존립 가치를 상실했다. 애초 설립 취지인 서울권 교통 안내는 차량이나 휴대전화에 탑재된 내비게이션 기능에 자리를 내줬다. 게다가 시사방송을 하면서 심각한 편파 시비에도 휘말렸다. 당장 문을 닫는 게 국민과 서울시민을 위한 도리다. 더 원론적으로 한국에는 ‘관변 언론’이 지나치게 많다. TBS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영향력 아래의 다른 언론도 대거 줄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의회가 15일 TBS에 대한 서울시의 재정 지원을 2024년 1월부터 중단하도록 하는 조례를 통과시킨 것은 바람직하다. 매년 TBS 운영비의 70%가량인 320억∼370억 원의 시 지원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TBS 노조 등은 ‘언론 탄압’이라고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서울시민의 혈세 수백억 원을 받으면서 민주당 편향 정치방송과 수준 낮은 음모론을 노골화해온 TBS 행태만 봐도 ‘언론’ 운운부터 민망한 주장이다.

그런데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이번에 통과된 조례안은 재정 지원 중단 시점을 애초보다 6개월 뒤로 연기했는데, TBS가 변신해 서울시 산하기관 방송으로 존속하는 방안이 일각에서 거론된다고 한다. 교육방송 등으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래선 안 된다. 서울시에서 별도로 교육방송을 운영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EBS 폐지론까지 나온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TBS를 꼼수로 존속시키려는 발상을 완전히 접기 바란다.

 

11.17 文 정부의 ‘운동권 史觀 알박기’… 촛불·광우병 시위, ‘판문점 회담’ 부각

기로에 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 광화문 광장 옆 국립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핵심은 5층 역사관이다. 189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여정을 보여주는 주(主)전시실이다. 관람 코스를 따라 돌다보면 2018년 문재인·김정은 판문점 회담 사진이 눈에 띄게 들어온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손을 맞잡은 장면이다. ‘평화와 갈등’이란 주제 아래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사진에 이어 결론처럼 마지막에 배치됐다.

▲지난 2020년 6월 개관 이래 첫 상설전시관 개편과 함께 재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5층 역사관. 전시 피날레는 '참여하는 시민들'을 주제로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추모 집회와 광우병 집회,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 사진 등으로 채웠다. 박근혜 탄핵 반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사진도 있지만, 아래쪽에 배치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박상훈 기자

 

 판문점 회담 사진은 2020년 6월 박물관이 40억원을 들여 역사관을 개편하면서 포함됐다. 당시 정부가 대표 치적으로 내세우는 정치 이벤트를 박물관이 앞장서 홍보해서야 되겠느냐며 박물관의 정치화(政治化)를 우려하는 지적이 나왔다. 2020년 6월이면,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도발 수위를 높일 때다. 문 대통령을 향해서도 이미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 ‘삶은 소대가리’ 같은 막말을 쏟아낸 터였다. 정상회담을 통한 북핵(北核) 폐기나 평화 분위기는 물 건너간 뒤였다.

 

◇북은 핵 선제공격 발표, 미사일 쏘아대는데…쇼 같은 ‘판문점 회담’ 전시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퇴진 이후에도 역사관의 판문점 회담 코너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로 대한민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전술핵 미사일 발사 훈련을 이끄는 중에도 그랬다. 북(北)은 이달 초 국가 애도 기간에도 동·서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 중 한 발은 6·25 이후 처음으로 동해 NLL(북방한계선) 남쪽 26㎞ 공해상에 떨어졌다. 연(年) 최대 100만명이 찾는 이 박물관 관객들은 쇼로 끝난 남북 정상회담 전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 알박기’다.

 

 ◇김원봉은 있지만 이승만은 없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일제시대 내내 독립 외교 활동을 펼친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설명하는 변변한 전시물 하나 없는 것도 기이하다. 영문 저서 한 권을 전시한 게 거의 전부다. 임시정부 요인 사진에서도 이승만은 찾을 수 없다. 광복 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김원봉까지 실으면서 이승만은 외면한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역대 대통령 코너. 2019년 3월까지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 10명의 초상화를 전시했다. 박근혜 대통령 초상화는 퇴임 2년이 넘도록 걸리지 않았다. /고운호 기자

 

해외 독립운동 코너에선 조선민족혁명당 미주 총지부의 1943년 반일 시위와 조선의용군의 선전활동 사진을 대표 격으로 실었다. 조선민족혁명당은 김원봉이 지도권을 장악한 단체로, 미주 총지부 간부 중엔 광복 이후 북한으로 넘어간 이들도 있다. 조선의용군은 북한 인민군 창설에 참여한 무장 단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회를 이끌고 1940년대 주미외교위원장으로 활약한 이승만은 보이지 않는다.

 

◇'백년전쟁’ 영상 출연자가 박물관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이승만 홀대는 문재인 정부의 반(反)이승만 코드에 발맞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 정부 수립 70주년을 겸한 8·15 경축사에서 이승만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2019년 임시정부 100년을 기린다면서 광화문 정부 청사에 내건 독립운동가 10명 초상화에 이승만은 빠졌다. 문재인 정부의 첫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을 지낸 주진오 전 상명대 교수는 이승만을 ‘친일파’ ‘하와이 깡패’로 조롱한 동영상 ‘백년전쟁’에 출연, 이승만을 거짓말쟁이처럼 비난한 인물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역사관을 본격적으로 개편한 게 주진오 관장 재임(2017년 11월~2020년 10월) 때였다.

 

▲다음 달 개관 1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위). 문재인 정부 때 주 전시장을 대폭 바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판문점 정상회담을 비중 있게 전시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촛불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운동권 사관(史觀)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곳곳에 남아있다. 5층 역사관 피날레 주제는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대형 패널에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여중생 추모 집회(2002년)와 광우병 시위(2008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2016년) 사진을 커다랗게 전시했다. 탄핵 반대 집회와 납북자 가족 모임 기자회견도 끼워넣었지만 밑바닥에 배치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박물관이 내건 역사관 취지는 ‘민(民)이 주인임을 자각하고 근대적인 국가 만들기를 모색한 시기에서 출발’한다고 했는데,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시작해 ‘촛불 집회’로 마무리된다. 반(反)정부 시위나 거리 집회로 대한민국의 성취를 설명한다는 게, 터무니없는 ‘운동권 사관(史觀)’이다.

 

◇국군 포로 외면한 ‘전쟁 포로’ 특별전

주진오 관장 재임 당시 열린 특별전도 논란거리였다. 2018년 6·25 정전 65주년 ‘전쟁 포로’ 특별전은 주로 유엔군 포로수용소 실태를 다루면서 국군 포로, 특히 전후 돌아오지 못한 수만 명의 국군 포로를 빠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탈북 국군 포로 유영복씨는 “국가가 세운 박물관이 어떻게 국군 포로를 망각할 수있나”라며 허탈해하기도 했다. 1994년 이후 귀환한 탈북 국군 포로 80명도 다루지 않았다.

 

같은 해 열린 ‘4·3사건 70주년 특별전’도 논란이 됐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반미 구국투쟁에 호응 궐기하라’는 남로당 선전 문구를 그대로 내걸어 반감을 샀다. 지서를 습격하고 경찰과 공무원은 물론 어린아이들까지 잔혹하게 살해한 남로당의 무장 폭동을 ‘봉기’ ‘항쟁’으로 치켜세우고 미화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대사 박물관, 정치 오염에서 벗어나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정치적 독립성은 개관 때부터 논란이 됐다. 현대사를 다루는 박물관이면서 정부(문화체육관광부) 직속 기관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이전엔 “전시가 지루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균형을 맞추느라 고심했는데, ‘촛불’ 적자(嫡子)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춘 인사가 관장을 맡으면서 박물관의 정치적 오염은 갈수록 심해졌다.

 

작년 5월 부임한 남희숙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주진오 전 관장이 주도한 역사관 개편에 반대하다가 좌천된 박물관 내부 인사다. 주 관장 퇴임 후 공모를 거쳐 선임됐다. 남 관장은 “연내에 광복 직후 시기를 다룬 전시를 손볼 예정”이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도 균형감을 유지하도록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근대사 연구자 허동현 경희대 교수는 “국립 현대사 박물관이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야가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5년에 한 번 정권 교체 때마다 전시를 다 바꿀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근혜 초상화는 안 걸고, 이명박 표지석은 철거

文 정부의 옹졸한 ‘박물관 정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주진오 관장 재임 기간 내내 정치적 편향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박물관 개관 당시부터 있던 역대 대통령 코너에 퇴임한 박근혜 전(前) 대통령 초상화를 걸지 않고 2년여 버티다 코너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역대 대통령 코너는 청와대가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 아래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 초상화 10점을 전시하던 방이다. 관람객들이 대통령 휘장과 함께 청와대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곳으로 인기가 높았다.

 

박물관은 퇴임 2년이 넘은 2019년 3월 말까지 박 대통령 초상을 걸지 않았다. “박 대통령 사진은 왜 없느냐”는 관람객 항의도 있었지만, 박물관 측은 “박 대통령 초상화를 언제 걸지는 물론 역대 대통령 코너를 계속 운영할 것인지 정해진 게 없다”고만 했다. 박물관은 2020년 6월 역사관을 개편하면서 역대 대통령 코너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 자리엔 관람객 휴게실을 설치했다. 박물관 내부에선 “주 관장이 박근혜 대통령 초상화를 거는 게 마뜩잖아 미루다가 역사관 개편을 핑계 삼아 아예 코너를 없애버렸다”는 말이 나돌았다.

 

박물관 입구에 있던 이명박 전(前)대통령의 친필 표지석을 2019년 2월 철거한 것도 주진오 관장이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했고, 박물관이 개관한 2012년 12월 26일 당시 재임 중이었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최근 “주진오 당시 관장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표석을 치우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철거된 표지석은 박물관 하역장에 방치됐다가 수장고 보관을 거쳐 3년여 만인 지난 9월 원위치에 되돌아왔다.

조선일보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11.20 “尹 대통령, 2~3년 내 종북 세력 정리하면 역사적 인물될 것”

3당 합당 주역인 황병태 前 주중대사 인터뷰
①박정희 대통령의 진면목 ②중국 정세 ③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 [코리아 프리즘]

 황병태(黃秉泰·87) 전 주중대사는 관계와 학계, 정계, 외교계 등에서 두루 성공한 ‘4모작(耗作) 인생’의 주인공이다. 21세로 서울대 상대 2학년 재학 중이던 1956년 고등고시 7회(외교과)에 합격한 그는 경제개발기에 박정희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935년 생으로 경제기획원 차관보, 대학 총장, 국회의원 등으로 활약한 황병태 전 주중대사. 기자는 2022년 11월 7일 서울 삼성동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황 전 대사는 <경제주의의 종언>(1980), <자본주의와 민주정치>(1981), <유학과 현대화>(2001), <박정희 패러다임>(2011), <침몰하는 자본주의-회생의 길은 있는가>(2013) 등의 단독 저서를 냈다./송의달 기자

 

 그는 29세이던 1964년 초 박 대통령 주재 월간 경제동향회의 브리핑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 브리핑은 원래 국장급 몫이었으나 명쾌한 언변과 판단으로 박 대통령을 매료시킨 황병태 경제기획원 공공차관과장이 도맡았다. 그는 국책 외국 차관 도입과 새마을운동, 방위산업 육성 등 주요 고비 때마다 박 대통령의 특명(特命)을 수행했다.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로 1974년 공직을 마감한 그는 도미(渡美)유학해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를 거쳐 버클리대에서 2년 6개월 만에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외대 교수와 총장, 대구한의대 총장을 지냈다. 중간에 제2대 주중(駐中) 한국대사와 13·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22년 11월 7일 서울 삼성동 황병태 전 주중대사 개인사무실 책상 위에 있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잡지들. 그는 "매주, 매월 3개국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있다"고 말했다./송의달 기자

 

◇매일 출근...매주 英·日·中 잡지 읽어

황 전 대사는 경북 예천에서 초등학교 졸업후 대구 농림중, 대구영남고 야간과정을 졸업한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기자가 그에게 맡은 분야마다 발군(拔群)의 성과를 낸 비결을 묻자, 황 전 대사는 “특별한 배경이나 인맥은 전혀 없었다. 반(半) 발짝 앞선다는 마음으로 늘 책을 가까이 하며 공부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달 7일 낮 서울 삼성동에 있는 황 전 대사 개인사무실에서 2시간 가까이 그를 인터뷰했다. 그의 책상에는 정기구독하고 있는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잡지들이 놓여 있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이곳 사무실로 차를 몰고 나온다. 매주, 매월 빼놓지 않고 영국 이코노미스트(Economist)와 홍콩 아주주간(亞洲週刊), 일본 시사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 미국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를 읽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중국 인민일보도 봤다. 3개 국어로 된 잡지와 책을 읽는 게 나의 자산이고, 행복이다.”

 

▲황병태 전 주중대사의 서울 삼성동 개인사무실 책상 위에 있는 영어, 중국어 잡지들/송의달 기자

 

- 중국어도 가능한가?

“<유학(儒學)과 현대화: 韓中日 유학 비교연구>를 주제로 미국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중국에 본격 관심을 가졌고 주중 대사 시절에 중국어를 계속 공부했다. 지금도 중국어 독해 등에 문제가 없다. 세계가 어디로 가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추적하기 위해서다.”

 

- 역대 주중 한국대사 가운데 가장 돋보였는데.

“1993년 6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2년 반 주중대사로 일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개발에 큰 관심을 가진 중국공산당 고위 관계자 및 정관계 인사와 활발하게 교류했다. 덕분에 나는 마음만 먹으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을 만날 수 있었다. 장 주석과는 친필 시문(詩文)을 선물 받을 정도로 가까웠다. 국무원(우리나라의 행정부 격) 장관을 하루에 3명 만난 적도 있다. 특히 덩샤오핑의 장남으로 중국 전국장애인연합회장이던 덩푸팡(鄧朴方)과는 정기적으로 만나 여러 대화를 나눴다.”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1944~ ) 중국 장애인연합회 명예주석/조선일보DB

 

◇장쩌민 주석·덩푸팡과 각별한 교류

- 대사직을 마치고 귀임할 때 중국측이 성대한 송별회를 열었다는데.

“장쩌민 주석의 석별(惜別)을 시작으로 중앙정부의 장·차관과 지방정부의 성장 및 시장 등 20명에 가까운 인사들이 나에게 귀국 송별회를 베풀어줬다. 장쩌민은 리바이(李白)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라는 시(詩)를 1시간 걸려 직접 정자(正字)로 써주며 나를 ‘영원한 대사’라고 불렀다.”

 

- 요즘 상상하기 힘든 파격 대우가 어떻게 가능했나?

“중국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계획의 주역으로 외자(外資) 유치 실무 책임자였던 나에게 각종 노하우와 경험을 얻으려고 여러 가지를 문의하고 만나려 했다. 중국의 덩샤오핑 모델은 1960~70년대 한국 경제개발 기간의 전략 및 방법과 유형이 상당히 비슷했다. 중국이 나를 각별히 대우한 것은 박정희 주도의 한국 경제개발을 배우려 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3개국의 근대화를 이룩한 3명의 국가 지도자. 왼쪽부터 박정희 대통령, 덩샤오핑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주석,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뉴스1

 

◇29세 경제기획원 과장으로 대통령 월간 경제 브리핑 도맡아

- 가까이서 체험한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나?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년)이나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1923~2015년) 보다 앞서서 경제발전의 흐름과 요체(要諦)를 인식하고 실행했던 지도자였다. 실용과 실질을 중시하면서 한국 경제가 자유시장 체제로 가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경제 철학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않느냐’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 이상이었다.”

 

그는 2011년 펴낸 자신의 회고록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이렇게 밝혔다.

 

“박 대통령은 성격이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편이었지만, 일단 결심이 서면 불같이 달려드는 분이었다. 그에게 있어 경제개발 사업은 관료적 명령 계통이 필요 없었고, 정치적으로 복잡한 계산도 염두에 없었다. 필요한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나섰고, 다른 사람들은 심부름을 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기업을 직접 일으킨 창업자 출신의 최고경영자나 다름 없었다.”

 

▲황병태 전 주중대사가 2011년 간행한 자신의 자서전. '경제기획원 과장이 본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조선뉴스프레스 제공

 

◇“朴 대통령은 창업자 출신 최고경영자 같았다”

- 직접 겪은 일화가 있다면?

“박 대통령은 1965년 존슨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1억6000만달러의 AID(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 차관(借款) 자금 집행이 계속 늦어지자, 그해 10월 나에게 워싱턴 DC로 출장을 전격 지시했다. ‘매일 아침저녁 국무부 청사 현관 앞에 가서 사무실에 출근하는 AID 실무 책임자와 얼굴을 마주쳐 차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100일 넘게 현지에서 그대로 했고 차관 집행을 이듬해 초로 앞당기는 목표를 달성하고 귀국했다.”

 

▲1965년 5월 18일 미국 백악관에서 존슨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설립 지원 등 12가지 의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조선일보DB

 

황 전 대사는 “박 대통령이 그때 구사한 심리 전술은 개발도상국 경제개발 역사에 빛나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며 “당시에 ‘외국 차관은 기획원의 황 아무개가 모두 좌지우지한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나는 박 대통령의 연출대로 하는 배우(俳優)에 불과했다”고 했다.

 

- 다른 사례가 있다면?

“박 대통령은 여러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차관을 해 준 세계은행의 레이몬드 굿맨(Raymond Goodman) 아시아지역 담당 국장에게 나선남(羅善男)이라는 한글 이름을 직접 붙여 줬다. 1972년 새마을운동에 대해 미국 정부가 오해하며 시비(是非)를 거는 걸 해결하라는 특별지시를 받고 내가 미국 출장 가서 해결하자, 박 대통령은 정부 예산에서 특별격려금 1억원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관료사회에선 상상 못할 금액이었다. 박 대통령에겐 기업인 마인드가 넘쳤다.”

 

 ▲연두순시 첫날 오전 경제기획원에서 태완선 부총리로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올해 경제기본시책을 보고받고 있다. 오른쪽이 김종필 국무총리, 왼쪽은 백남억 공화당의장.

 

▲1970년대 초반 박정희 대통령이 방위산업체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조선일보DB

 

◇“격려금 1억원 지급...디테일에 강해 아주 깊이 토론해”

- 방위산업도 박 대통령이 챙겼나?

“조선(造船), 자동차, 주물(鑄物), 총포 등 ‘4대 핵심공장 사업’ 태스크포스가 구성됐지만 막힐 때마다 박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했다. 한 예로 경기도 부평에서 가정용 구리제품을 만들던 소규모 회사인 풍산(豊山)의 류찬우(柳纘佑) 회장이 총포 사업 진출을 망설이자, 박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불러 정부 지원을 약속하고 직접 설득해 총알과 포탄 제조 등을 맡겼다.”

 

황 전 대사는 이어서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말을 하고 지시했다. 디테일(detail·세부 사항)에 매우 강해 대화나 토론할 때 아주 깊이 파고 들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개인을 초월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에서 박 대통령은 단연 으뜸 가는 분이다. 덩샤오핑이 가장 관심있게 보는 사람이 박정희였다고 등푸팡이 수시로 나에게 귀띔했다. 박 대통령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현실감을 갖고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이끈 지도자였다.”

 

◇“덩샤오핑의 길과 반대로 가는 中, 걱정스럽다”

- 지난달 제20차 공산당 당 대회를 연 중국은 어떻게 보는가?

“‘패권(覇權)을 추구하지 말고, 미국·일본 등과 잘 지내고, 소련을 조심하라’는 덩샤오핑의 3가지 유언과 당 총서기의 10년 집권 후 퇴임·집단지도체제 같은 개혁·개방 이후 정립된 시스템이 무너지고 역사가 후진하는 게 안타깝다. ‘늑대 외교[戰狼外交]’와 같은 공격적인 외교 공세로 중국은 개방다원화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 시내에 붙어 있는 포스터. “당의 기본 노선을 견지하고 100년 동안 동요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1992년 덩샤오핑은 '남순 강화'를 통해 흔들림없는 개혁·개방을 독려했다./조선일보DB

 

- 중국이 ‘덩샤오핑의 길’을 가야한다는 말인가?

“나는 덩샤오핑의 세계관과 방향이 지금도 옳다고 믿는다. 덩샤오핑의 길을 가면, 충분한 중국이 더 번영하고 기막힌 나라가 될 것인데 시진핑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10년 집권 규칙을 깨고, 1인 독재를 하고, 러시아를 가까이 하고 있다. 이러면 국제 사회에서 친구가 없어진다. 중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요즘 중국을 보면 마음이 걱정스럽다.”

 

- 개인적으로 덩샤오핑을 존경하는가?

“한국에선 박정희 대통령, 중국에선 덩샤오핑이다. 이들은 공히 권위주의적 독재 권력을 개선하려했다. 평생 공산당원 생활을 한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중국 전체를 바꾸었다. 그는 세계 역사에서 희귀하게 스스로 권좌에 내려왔다. 시체를 화장(火葬)해 바다에 버리라고 유언해 그의 무덤조차 없다. 덩샤오핑은 88세에 광둥성 선전(深圳), 상하이 등을 돌며 개혁·개방을 다시 독려할 만큼 애국심이 대단했다.”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한 직후인 2022년 10월 27일, 신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과 함께 중국 공산혁명의 성지인 산시성 옌안의 혁명기념관을 찾은 시진핑 중공 총서기(가운데). (왼쪽부터) 리시, 차이치, 자오러지, 시진핑, 리창, 왕후닝, 딩쉐샹/뉴시스

 

◇“지금 시스템 고수하면 中 내리막길 가능성”

- 중국의 앞날을 전망한다면?

“중국이 지금 시스템을 고수한다면 내리막길을 걷지 않을까 걱정된다. 심하게 말하면 10년 이상 견딜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시진핑 3연임 직후 홍콩에 있던 자금이 대거 빠져나간 것부터 위험신호라고 본다. 대만이 자체 국방을 강화하고, 서방국들이 대만 방어를 위해 뭉쳐 중국의 대만 통일도 쉽지 않다. 지금 갈림길에 서 있는 중국은 잘 선택해야 한다.” 그는 이어 말했다.

 

“전 세계가 요동쳐도 역사의 큰 흐름은 자유와 개방사회이다. 러시아의 패퇴 가능성이 높아지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뭉치고, 이란·터키 등이 약화하고 있다. 공산국가, 신권(神權)국가, 독재국가 등은 예외 없이 흔들리고 있다. 역사의 궁극적인 방향이 자유시장경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참고했으면 한다.”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직전인 2022년 10월 13일 낮, 대학들이 모여있는 베이징시 하이뎬구 쓰통차오 육교에 시진핑 비판 현수막이 내걸렸다. “봉쇄와 통제가 아닌 자유”, “시진핑은 매국노이자 독재자”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중국 주요 도시 공중화장실에서도 시진핑 비판 낙서가 잇따랐다./Google 캡처

 

◇“심지 굳은 尹 대통령, 점점 더 좋은 평가받을 것”

1988년 13대 국회의원(서울 강남 갑)으로 정계에 입문한 황 전 대사는 ‘꾀돌이’로 불렸다. ‘좌(左)병태 우(右)병태’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총애했다. 기존의 민정당, 공화당, 민주당이 1990년 1월 민주자유당으로 3당(黨) 통합할 당시, 황 전 대사는 민정계의 박철언, 공화계의 김용환 의원과 함께 막후협상을 벌인 주역이었다.

 

- 요즘 한국 정치를 평가한다면?

“20~30년 전보다 정치인들의 의식과 수준, 실력이 더 나빠졌다. 정치 선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아무리 정치를 욕해도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3당 합당 후인 1990년 3월 하순 소련을 방문하고 귀국한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이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해 손을 들고 있다. 맨 왼쪽이 황병태 국회의원, 맨 오른쪽은 박철언 정무1장관./조선일보DB

 

- 취임 6개월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은?

“반년 넘게 윤 대통령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내 감(感)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좋은 대통령이 될 것 같다. 세 가지 근거에서다. 윤 대통령은 의외로 사욕(私慾)이 없는 순수한 사람이며, 한 입으로 두 말[一口二言]할 사람이 아니고, 심지(心志)가 굳은 사람이다. 끈기있게, 끈덕지게 일을 처리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 어떤 이유에서인가?

“지난달 발생한 서울 용산 이태원 참사 사망자 추모를 위해 윤 대통령은 7일 연속 찾아가 조문했다. 매우 바쁜 일정의 대통령으로선 쉽지 않은 결행이다. 9수(修)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해서인지 뚝심이 있다. 윤 대통령은 잔재주가 없고 둔(鈍)한 편이지만, 그 둔함이 도움될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옳고그름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 2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0월 19일 서울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취임 후 첫 '원외 당협위원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反)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연합뉴스

 

◇“잔재주 없고 둔한 尹 대통령...둔함이 도움될 것”

- 윤 대통령은 앞으로 무엇에 주력해야 할까?

“북한의 주체사상을 믿고 북한 정권에 동조하는 주사파(主思派) 종북(從北) 세력 정리가 급하다. 윤 대통령은 이 일을 누구보다 제대로 처리할 사람이다. 잘 하면 2~3년 내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점점 더 좋아져 그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 올해 5월초까지 집권한 문재인 정권 5년은 어떤가?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고 본다. 문 전 대통령은 북한과 중국, 국내 주사파들 눈치를 보고 그들의 비위에 맞추느라 20세기에 통용되던 대립과 분열의 세계관을 못 벗어났다. 국민들 보기에 이상한 일들을 많이 했고, 너무 좁은 세계관에 갇혀 있었다.”

 

▲황병태 전 주중대사가 1979년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받은 정치학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쓴 저서. 왼쪽은 2001년 나온 한글 책이고, 오른쪽은 1995년 중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이다./송의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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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규제 개혁, 각개격파가 답이다

터무니없는 규제인데
이익 보는 일부 국민도 있어
그들을 설득해야 개혁 가능
정부가 단번에 일률적으로
최선의 정책 내리겠다는 태도
버리는 게 개혁의 출발점

역대 정부가 모두 규제 개혁을 하겠다고 했지만 다 실패했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은커녕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까지 해외투자가 늘어나 해외투자가 외국인투자의 3배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실패의 증거다. 규제 혁신의 최종 목표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임을 명심하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9일 인천 선광 신컨테이너터미널에서 관계부처 장관과 경제단체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민간 전문가 등이 참석해 열린 제2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연합뉴스

 

아무리 터무니없는 규제도 적어도 일부 국민은 원하는 것이다. 전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표로 연결되기 어렵지만, 이익집단은 표 결집력이 강해서 정치인들로 하여금 규제를 만들게 할 수 있다. 규제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규제 개혁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는 한다”고 할 정도의 설득은 하고 필요하면 적절한 보상도 해야 규제개혁이 가능하다. FTA를 추진할 때 농민의 손해를 보전해 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이 거론되고 있지만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서 가시적 성과를 하루빨리 올려야 하는데 법을 고칠 능력이 없는 현 정부로서는 먼저 가격 규제와 토지 이용 규제를 겨냥하는 것이 상책이다.

 

가격 규제는 법에 권한이 있어도 대개 “할 수 있다”지 “하여야 한다”가 아니므로 정부가 그만두기만 하면 된다. 역대 정부가 “서민 생계비 부담 경감”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해 온 가격 규제는 실제 가격을 잡지는 못하고 관련 산업을 망가뜨렸다. 특히 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구상에 따라 의료, 보육, 주거, 교육, 통신, 교통비 등 전방위적으로 가격 통제를 했는데 이들 산업과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망가뜨리기만 했다. 14년 등록금 동결은 대학을 초토화시켰고, 전기료 억제는 뉴욕 증시 상장법인인 한전의 주가를 반 토막 이하로 떨어뜨렸다.

 

그다음으로 덜 어렵고 효과가 큰 것은 토지 이용 규제를 최소화하고 권한을 지자체로 넘겨 지자체가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토지를 공급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 땅이 규제에서 풀려난 국민은 뛸 듯이 기뻐할 것이고, 공급이 늘어 지가가 안정되면 온 국민이 혜택을 볼 것이다. 공급이 늘 부족한 토지를 가지고 독점적 이윤을 누려온 일부 땅부자는 반대하겠지만. 전 정부는 공급을 늘리지 않고 세금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하다가 실패했다.

 

핵심은 투자에 가장 큰 걸림돌인 노동규제 개혁이다. 노동법이 만들어 놓은 철밥통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사실 10% 남짓한 “노조를 가진 노동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호봉제를 지키고 싶은 노동자도 있겠지만 연봉제를 원하는 노동자도 있다. 남이 연봉 1억원을 받는 일을 연봉 4000만원에 할 테니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 노동자도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지켜야 할 기득권이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취약 계층 노동자나 미취업자, 실업자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막지만 말아달라고 노조를 설득할 수는 없을까? 당신들의 호봉제는 퇴직 때까지 유지할 터이니 연봉제로라도 취직을 원하는 사람을 막지는 말아 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기존 노동법규에 그 어떤 변화도 거부하는 것은 과잉방어요 지나친 횡포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들어 주지 않아도 좋으니 다른 노동자, 특히 실업자가 원하는 변화라도 싹을 틔워 보자는 것이다.

 

교육개혁은 대학, 교육지자체와 학교에 최대한의 선택의 자유를 주면 된다. 교육부 이외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고 교육의 공급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교육부에 맡겨 놓으면 교육개혁은 당연히 실패한다. 전문성이라는 탈을 쓴 교육 공급자를 배제하고 수요자가 지배하는 추진체계를 만들어야 교육개혁이 된다. 국민이 원하는 교육은 하나가 아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원하는 국민이 있고 학력 평가, 경쟁을 혐오하는 국민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공존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개혁이고 가급적 작은 단위의, 궁극적으로 학교 단위의 자치를 강화하는 것이 그 길이다.

 

연금개혁은 중대하고 시급하기는 하지만 이익 보는 사람은 없고 국민 모두가 조금씩 양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전 국민이 상황을 이해하고 개혁에 협조하게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황 파악만 되면 금 모으기도 해 주는 국민이다.

 

나라 단위로 하나의 최선의 선택을 정부가 해 주겠다는 사명감을 포기하는 것이 규제 개혁의 시발점이다. 작은 문제를 모아서 큰 문제로 만들지 말고 문제를 쪼개서 작은 문제로 만들 생각을 하는 게 좋을 성싶다.

조선일보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11.22 이승만과 김구… ‘대한민국 國父’는 두 명이면 안되나

민주주의 국가 세운 이승만
통일 노력 멈추지 않은 김구
모두 ‘未完의 지도자’였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1946년 미군정 자문기관인 민주회의 창덕궁 회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이승만과 김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진현 전 과기처 장관이 최근 출간한 회고록에서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청와대에서 국수를 먹으며 독대했는데,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 현대사 논쟁을 바로잡으려면 백범 김구를 확실히 한국의 정통성으로 안아야 하고, 이승만과 김구의 후손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것이다.

 

그래야 백범의 행적에 대한 해석이 반(反)대한민국 좌파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YS는 곧바로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에이~ 이승만 독재자래이, 독재자.” 김구에 대해선 별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이 땅 이념 갈등의 뿌리엔 단순히 친북 대 반공이라는 도식을 넘어 주류 내의 자기 정체성 상실에도 큰 원류가 있다.”

 

이승만과 김구가 언급되는 현대사 관련 기사를 쓰면 댓글은 양분되기 일쑤다. 한쪽에선 이승만을 “미국의 앞잡이로 분단을 고착화한 자”로 몰고 다른 쪽에선 김구를 “대한민국 수립을 끝까지 반대한 친북 협력자”로 폄훼한다. 놀랍게도 이것은 1948~1949년 일어났던 두 사람에 대한 비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시각은 과연 온당한가?

 

이승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를 ‘분단의 원흉’으로 보고, 그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언급한 1946년 6월의 정읍 발언이 남북 분단의 계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946년 2월 38선 이북에 이미 세워진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사실상 한반도의 첫 단독 정부였으며 김일성 독재의 길을 열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한반도 전역에 걸친 총선을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고, 적화통일이 아니면 일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한다는 두 가지 선택지밖엔 없었다. 공산주의의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의문이 남는 선택일 수도 있었으나, 지난 70여 년에 이르는 남북한의 역사는 이승만의 길이 옳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미국의 앞잡이’라는 주장은 미 군정이 시종 이승만을 골칫거리로 여기고 중도파를 지원했던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김구는 대한민국 수립과 관련없는 인물’이라는 다른 쪽의 주장 역시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그가 1945년 11월 미군 수송기 편으로 귀국한 이후 그의 존재 자체가 이승만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세력의 구심점이 됐다. 반탁(反託)운동을 비롯한 숱한 정치적 행보에서 이승만과 손을 잡고 민중을 단합했다. 단정(單政) 수립을 눈앞에 두고 이승만과 의견을 달리해 가망 없던 남북협상에 뛰어들었으나 ‘통일 민주주의 국가 수립’이라는 꿈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백년전쟁’류의 왜곡된 시각이 보여주는 것처럼, 김구의 임정 세력은 대한민국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았다. 부통령 이시영, 국회의장 신익희, 총리 겸 국방장관 이범석 등 여러 임정 인사들이 갓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의 요직을 맡았고, 김구가 서거한 뒤 조소앙 같은 임정 계통 인사는 1950년 5·30 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했다. 6·25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의 초기 정치 지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통일 민주주의 국가 수립이라는 그들의 꿈이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승만과 김구는 모두 ‘미완(未完)의 국부(國父)’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두 사람은 각각 현실과 이상, 정부 수립과 통일,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권력과 재야를 대변하며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였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부가 반드시 한 명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11월 22일 후진적 구속제도 전면 개혁 시급하다

 김종민 변호사, 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법원 영장 기각 뒤 김봉현 도주
이상직 재판 지연과 보석 석방
전주환은 영장 기각 이후 살인

검찰 구속기간은 최대 20일
구속사유 판단은 판사 맘대로
범죄의 경중 따른 차등화 필요

 

1조6700억 원의 피해를 남긴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1심 결심공판 당일 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한 사건은 우리 구속제도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미 2019년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도주해 5개월간 도피생활을 하다 검거된 전력이 있고, 지난해 7월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은 법원에서 김봉현이 도주를 권유하고 자금과 차량 지원도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도주 직전 조카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제거하고 밀항을 시도한 움직임이 있어 검찰이 위치추적 통신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징역 30년 선고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별건 사기 혐의로 2차례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선고를 앞두고 변호인단 전원이 사임했고, 검찰은 최후 수단으로 보석취소청구를 했다. 도주 이후에야 법원이 보석취소를 했지만 김봉현의 행방은 묘연하다.

 

우리의 구속제도는 낡고 허술해 변화한 범죄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지 오래다. 범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구속 기간이 똑같이 규정돼 있어 장시간이 걸리는 중대범죄의 수사와 재판에 어려움이 많다. 1심 법원 구속 기간은 6개월인데, 이스타항공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이상직은 이를 이용해 7차례 변호인단을 교체하며 재판을 미뤘고 법원은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보석으로 석방했다. 대규모 기업범죄나 6개월∼1년씩 걸리는 국제형사사법 공조가 필요한 사건도 검찰 구속 기간은 최대 20일에 불과하다. 구속 사유도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 사유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경우’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일정한 주거가 없는 경우’다. 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의 위험성은 독자적인 구속 사유가 아니라 필요적 고려 사항에 불과하다.

구속 사유에 대한 판단은 판사의 재량이다. 피의자가 자백하는 사건에서는 ‘자백하므로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영장을 기각하고, 부인하는 사건에서는 ‘부인하므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각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구속 여부에 대한 영장전담판사의 결정에 불복할 방법도 없다. 실무상 영장 재청구를 하지만, 고등법원에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같은 심급의 지방법원에서 판단하므로 한계가 있다. 그 결과 상급심을 통한 구속영장 발부 기준이 확립돼 있지 않고, 영장 발부 여부에 대한 예측 가능성도 떨어진다. 그에 따른 사법 불신은 심해질 수밖에 없고, 잘못된 판단을 한 영장전담판사에 대해 책임을 묻는 장치도 없다.

프랑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형사사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불구속 피의자에 대한 다양한 제한 조치와 구속 제도를 갖추고 있다. 불구속 피의자는 공범이나 피해자 접촉 금지, 특정 직업 취업 금지 등 17개의 의무를 부과하는 사법통제명령의 대상이다. 구속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4개월부터 최대 4년까지 가능하고 2009년에는 불구속과 구속의 중간에 ‘전자발찌 부착 가택구금 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1심 석방구금판사의 구속 및 석방 결정에 대해서는 항고가 가능하고, 고등법원 예심수사부가 1심 석방구금판사의 피의자 신병에 대한 모든 결정을 통제한다. 미국과 독일도 구속 기간의 제한은 없다.

 

2021년 불구속으로 재판받다가 실형이 확정됐으나 도주한 자유형 미집행자는 5345명이다. 2019년 4413명, 2020년 4548명에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 시행된 지 오래지만,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신당역 살인사건의 범인 전주환도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후 범행을 했다. 법원의 오판이고 명백한 사법의 실패다. 사법의 실패가 반복되면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호화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은 김봉현, 이상직의 경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구속제도의 근본적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조건부 석방제’가 의원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내용도 허술하다. 그리고 이는 땜질식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포괄적인 구속제도 개혁 방안이 논의돼야 하고 범죄의 경중에 따른 구속 기간의 차등화, 충분한 수사와 재판이 가능한 구속 기간의 확대, 영장항고제 도입은 최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문화일보 

 

11.24 가업·고용 막는 세계 최악 상속세 고치는 게 왜 ‘부자 감세’인가

▲[그래픽] 상속·증여세율 최고세율 55%…GDP 대비 비중 0.54%

 

중소기업중앙회 등 13개 경제단체가 기업 상속 때 상속세 감면 혜택을 확대하는 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상속세 감면 대상을 넓히고 공제 세액도 늘리는 법안에 대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부자 감세’라며 가로막자 여론에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5%보다 3배 이상 높다. 스웨덴·노르웨이처럼 상속세가 아예 없는 OECD 회원국도 15국에 이른다. 게다가 우리는 최대 주주에 대해 세금을 20% 할증까지 하고 있어 실질 부담 세율은 최대 60%까지 올라간다. 상속세를 세 번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외국 언론이 “한국의 고율 상속세가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한국에도 자식이 가업을 승계할 경우 상속세를 깎아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가업 상속 후 7년 이상 업종·고용·자산·지분을 유지해야 상속 재산 중 200억~500억원을 과세 대상에서 빼주는 정도의 세제 혜택을 주는 게 전부다. 요건이 너무 까다롭고 혜택도 적어 이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인이 연간 100명 남짓에 불과하다.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팔아 치우거나 꼼수·편법의 우회로를 찾다 기업과 개인을 망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독일·일본 등은 후세 기업인이 상속 후 사업을 5~7년만 유지하면 상속세를 전액 면제·유예해주고, 업종 변경 제한도 두지 않아 활발한 가업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독일에선 연간 2만8000여 개, 일본에선 2900여 개 기업이 상속 공제 제도를 활용할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일본은 1947~49년 출생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가업 단절을 막기 위해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상속세 100% 납부 유예, 공제 한도 폐지 등 파격적 지원책을 가동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속세 부담을 낮춰달라는 기업계 호소를 수용해 가업 승계 공제 적용 대상을 연 매출 4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 미만 기업으로 확대하고, 최대 공제 한도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리는 상속세법 개편안을 마련했다. 업종 변경 금지와 고용·임금 유지 요건도 완화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고쳐도 경쟁국보다 한참 불리한데 민주당은 이것마저 안 된다며 국회 통과를 거부하고 있다.

 

기업 상속세 완화는 부자 특혜가 아니라 글로벌 표준에 가깝게 조정해 기업 단절을 막자는 것이다. 50년 이상 장수 기업은 매출·이익·고용 창출 등 경영 성과 지표가 비(非)장수 기업보다 30배 이상 우량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일본은 100년 이상 장수 기업을 3만3000개, 독일은 4900개 이상 갖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7개뿐이다. ‘폭탄’ 수준의 상속세를 개혁해야 장수 기업이 늘어나고, 세대 간 기술·자본 이전을 촉진해 경제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래야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늘릴 수 있다. 이 기업과 근로자가 내는 세금이 상속세의 몇 배에 이를 것이다. 세계 최악 기업 상속세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조선일보 사설

 

11.24 경제 한파에 줄파업 민노총, ‘남은 어찌 되든 나만 살자’는 것

▲2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총파업을 시작한 가운데 강원 원주 혁신도시 내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정규직 전환, 고용승계 투쟁, 생활임금 쟁취 등을 외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노조는 이날 혁신도시 일대를 돌며 길거리 투쟁도 단행했다. /뉴시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포하고 릴레이 파업을 시작했다. 22일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에서 노조원 수만 명이 대로를 가로막고 집회를 가진 데 이어 23일 서울대병원 등 공공운수노조가 파업을 시작했다. 24일엔 화물연대, 25일 학교비정규직노조, 30일 서울시교통공사노조, 다음 달 2일부터는 전국철도노조가 파업한다. 이들이 실제 파업을 시작할 경우 시민 불편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물류 운송에 문제가 생길 경우 기업들 위기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건설노조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연장과 적용 확대,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 등으로 각자 사정이 다르고 요구 사항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날짜를 맞추어 대규모 연쇄 파업을 벌이는 것은 이번 파업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계획된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 총파업 요구 사항에 근로시간과 임금 체계 개편 등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 개혁과 공공 부문 효율화에 반대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정부가 22일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화물연대의 핵심 요구 사항을 수용한 셈인데 파업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려는 ‘노란봉투법’도 법 체계를 뒤흔드는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본인들도 잘 알 것이다. 현재 형법의 업무상 과실·중과실 치사 규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있는데 별도로 건설안전특별법까지 만들자는 건설노조 주장도 지나치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무역 적자가 7개월 연속 이어지고 지난달 수출마저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연대가 운송 거부에 돌입하면 철강·조선·건설 등 핵심 산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화물연대는 이를 무기로 삼아 파업을 일삼고 있다. 지난 6월에도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로 주요 국가 기간산업이 1주일 넘게 마비됐다. 기업과 경제, 다른 근로자들이 어떻게 되든 ‘나만 살자’는 것이다.

 

민노총의 폭주는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민노총의 세 과시와 압박에 굴복하면 우리 사회와 경제는 이들에게 계속 끌려다니게 된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 완화, 주 52시간제 유연화, 직무 성과급제로 임금 체계 변화 등 노동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월 24일 종부세와 재산세 통합해야 할 당위성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정부가 지난 21일부터 발송한 올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자는 약 120만 명이라고 한다. 근로소득 신고 인구가 약 2000만 명이지만 면세율이 50%에 달해 실제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은 1000만 명인데, 종부세를 내는 가구의 인구가 500만 명쯤 되니 그야말로 이제는 종부세가 보편적인 세금이 됐다.

 

 종부세는 부동산 보유의 불평등 해소와 가격 폭등의 방지를 명분으로 사회의 일부 특권층 고소득 자산가들에게 과세하는 법제로 도입됐다. 종부세가 원래의 목적과 취지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지만 납세액과 납세 대상자가 함께 크게 늘어나고 있는 세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종부세는 재산소유자에게 누진세를 적용하는 제도로,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뿐 아니라 바람직한 조세 체계에 대한 여러 가지 기준에서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재산 보유에 대해 누진세를 부과하는 종부세는 조세의 기본원칙인 응익(應益)부담의 원칙에 비춰 정당화되기 어렵다. 부동산 자산에 대한 사용에서 얻는 효용이 크다고 해도 그 규모가 누진적으로 급격하게 커진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익의 규모는 점차 줄어든다는 한계효용의 원리에 따르면 이익은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재산세에 따른 과세액을 넘어 월등히 많은 과세를 하는 것은 응익부담의 원칙에 비춰 매우 무리한 것이다.

둘째, 조세 체제에 대해 또 다른 원칙인 응능(應能)부담 원칙을 봐도 종부세를 정당화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조세를 사회부조로 보는 관점은 납세 행위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계층이 사회 전체를 위해 먼저 부조한다는 사회계약의 일환이다. 이때 조세제도가 사회 전체의 합의와 납세 계층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부담에 대해 어느 정도 균형이 있어야 한다. 특정 집단에 경제적 부담이 집중될 경우 조세는 사회부조가 아니라 약탈이 돼 버리는 것이다. 현재 종부세의 누진세율은 0.6%에서 2주택 12억 원 이상의 경우 3.6%로 세율이 6배나 된다. 이 정도의 불균형과 세율 규모는 20∼30년이면 재산 전체를 국가가 강탈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현대 문명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셋째, 그러면 이러한 무리한 세율 구조를 가진 종부세가 과연 원래 목표를 달성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종부세를 주장하는 이들은 조세가 부과되면 그 부과액만큼 원가가 올라가고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부담액의 대부분이 매입자에게 이전된다는 점은 경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택 소유자가 높은 수준의 거래세 때문에 주택을 매각하기 어려워 경제적으로 리스에 해당하는 전세를 택하게 되는데, 이때 상당 부분의 조세 부담분이 이전된다. 조세라는 것은 결국 국가에 의한 경제적 강탈이다. 그런데 이게 전세가를 올리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만, 주택 공급에는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현행 종부세는 고가 1주택자에 대한 혜택과 불공평성 등 더 다양하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만으로도 종부세는 정당화하기 어려운 국가의 강탈에 가깝다. 향후 종부세는 재산세로 통합해 보유세를 일원화하는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문화일보  

 

11.24 지금 왜 ‘경찰 개혁’ 해야 하나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최고 지휘부가 사실상 붕괴했고 일선 경찰도 기능이 거의 마비됐던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경찰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범죄 예방과 진압,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경찰 시스템 붕괴 실상은 치안 질서 확립을 담당하는 국가의 중심축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에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됐고, 윤석열 정부 들어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과정에서 경찰 중하위직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며 소위 ‘경찰 독립’을 외쳤다. 하지만 과연 경찰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많은 국민은 이번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됐다. 경찰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로 이어지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전가된다.

이태원 참사 때 경찰 대응 실패
경찰대 출신 기득권 폐해 커져
강화된 권한 감독할 제도 필요

경찰 조직 난맥상의 가장 큰 원인은 오랜 기간 경찰대 출신을 중심으로 ‘수사권 독립’에 과도하게 조직 역량을 집중해온 데서 찾을 수 있다. 사법경찰의 범죄 수사는 본질적으로 사법권의 영역이다. 수사를 담당하는 사법경찰이 전체 경찰의 10~20%밖에 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을 담당하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이 최고 요직이 됐고, 그동안 경찰 조직은 수사·기소권 분리 등의 논리를 앞세워 집요하게 정치적 목소리를 내왔다. 경찰의 의도를 간파한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을 내세워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 역량을 훼손했고, 대공 수사 및 정보 권한을 경찰에 몰아줘 국가정보원까지 무력화했다. 중국식 공안 통치로 간다는 비판을 받는 중에도 좌파 정권과 경찰의 이해가 일치하며 밀월 관계가 깊어졌다.

 

경찰대 1기 출신 황운하 민주당 의원으로 상징되는 경찰 엘리트의 정치화는 우려할 수준이다. 문재인 청와대의 정무수석과 민정비서관 등 13명이 무더기로 기소된 울산시장 관련 하명수사 및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보면 당시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은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 경찰’의 모델이 됐다.

 

지난 7월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던 류삼영 총경도 경찰대 출신이다. 당시 회의에 참여한 총경급 56명 중 40명이 경찰대 출신이었다. 외국에는 유례가 없는 사관학교 방식의 4년 합숙 교육을 받은 경찰대 출신들의 일체감은 남다르다. 대통령의 지시에도 조직적으로 공개 반발하며 정치적으로 집단행동을 강행한 사태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제 로스쿨로 가는 관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경찰대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경찰대 출신의 기득권만 강화하고 비경찰대 출신은 차별받는 구조는 비정상이다. 실제로 전체 경찰 13만여 명 중 경찰대 출신은 약 2.5%에 불과한데도 지난 6월 기준 총경의 60.3%(381명), 경무관의 73.8%(59명), 치안감의 73.5%(25명)를 경찰대 출신이 독식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했다. 집중된 경찰 권한에 비해 이를 통제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이 부재해 정작 국민이 필요할 때 경찰이 제역할을 못하는 문제도 지적해야 한다. 국가경찰위원회는 1991년 설립 이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 인사·예산권과 감찰권을 갖고 검찰을 지휘할 수 있지만, 경찰국 신설 이후에도 행안부 장관은 인사 제청권 외에 경찰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할 수단이 없다.

 

경찰 독립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경찰관은 총기와 장구를 사용할 수 있고 불심 검문과 보호 조치 등을 수행하기에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수반하기 때문에 경찰에 대한 실효적 통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내무부 장관의 지휘·감독과 감찰을 통한 행정적 통제, 검사의 수사 지휘와 고등법원에 의한 사법적 통제, 헌법 기구인 인권감독관에 의한 통제 등 3중의 경찰 통제 장치를 갖추고 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완전한 착각과 실패였음이 입증됐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경찰이 국민의 경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원점에서 이제는 경찰개혁을 추진할 때다.

중앙일보 김종민 변호사·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

 

11.24 종부세 몽니로 제 발등 찍는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은 3·9 대선과 6·1 지방선거 당시 종부세 부담 완화를 공약했다. 하지만 야당이 된 지금은 입을 싹 씻었다. 덕분에 그제 ‘역대급’ 종부세 고지서가 130만 명 넘는 국민 앞에 날아들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지난 5년간 종부세 부담액이 가장 많이 는 지역은 어디일까. 광주광역시다. 2017년 25억원에서 올해 1069억원으로 4176% 늘었다. 납부자도 2807명에서 1만2845명으로 357.6% 늘었다. 서울 부자를 겨냥했던 종부세가 민주당의 텃밭 중 텃밭에서 중상위층 세금이 된 것이다. 광주 집값은 올해 폭락 추세임을 고려하면 종부세의 비정상적 면모는 뚜렷하다.

 

올해 종부세 고지 인원은 130만7000명으로 납부액은 7조5000억원에 달한다. 집 가진 사람 100명 중 8명이 종부세를 낸다. 특히 서울은 주택분 종부세 대상자가 58만4000명으로, 집 가진 사람의 22.4%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 때 상위 1%의 고액 자산가를 겨냥해 도입한 게 종부세다. 이제는 서울에서 네 집 중 한 집이 낸다니 이래도 부자 세금인가.

집값 폭락했는데 종부세는 급등
민주당 밀어붙여 납세자들 눈물
광주가 부담증가 1위…역풍 솔솔

종부세를 내는 1주택자 10명 중 6명이 연 소득 5000만원 이하다. 대개 은퇴자나 고령층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지적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국민의힘 기재위 간사 류성걸(재선·대구 동갑)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한 채뿐인 은퇴자들 집값 올라간 게 죄냐’고 추궁하면 ‘그분들은 종부세를 낼 능력이 되는 분들인데 왜 깎아주느냐’고 한다. 도무지 얘기가 안 된다”고 했다.

 

종부세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몬스터’로 변했다. 납세자는 33만 명에서 122만 명으로 3.7배, 세액은 3878억원에서 4조1000억원으로 급증했다. 5년간 집값은 37% 상승했는데 세액은 1000% 뛴 것이다. 특히 올해 들어 집값은 바닥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데, 세액은 급증했으니 국민 입장에선 피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조세 불복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올 1월~9월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종부세 불복 심판 청구는 3843건으로 1년 전(284건)의 13배가 넘는다. 체납액도 5628억원(지난해)으로 전년(2800억원)의 2배를 넘어섰다. 거의 모든 설문조사에서 ‘종부세 완화 찬성’이 50%가 넘는다.

 

윤석열 정부는 종부세 공제 한도(11억원)를 3억원 늘려 1주택자 부담을 덜어주려 했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10만 명의 종부세 감면이 물거품이 됐다. 국민의힘은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60%로 낮추는 등 시행령으로나마 감면 효과를 내려 했다. 민주당은 이마저 ‘시행령 독재’라며 종부세법 개정 반대의 명분으로 쓰고 있다. 기재위원인 국민의힘 주호영(5선·대구 수성갑) 원내대표의 전언이다.

 

“기재위 민주당 의원들에게 종부세 완화 얘기를 꺼내면 ‘부자 감세’란 말만 축음기처럼 반복하더라. ‘당신들 대선 공약 아니었나’고 추궁하면 ‘그때는 그때고’라며 얼버무린다. ‘집값 떨어졌는데 세금은 더 때리자는 거냐’고 하면 대답을 하지 않는다. 논리도 없이 169석을 무기로 밀어붙이겠다는 거다. 민주당 하자는 대로 종부세나 기타 세금을 걷으면 올해 세수가 100조원 가까이 늘게 된다. 국민을 너무 과하게 뜯는 거지.”

 

국민의힘 성일종(재선·서산 태안) 정책위의장의 말이다. “민주당이 종부세 완화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표다. 부자와 빈자를 갈라치면 9대1로 유리해진다는 ‘이념’에 인질이 돼 있다. 내 카운터파트인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굉장히 온건한 사람이다. 표정을 보면 종부세 완화 필요성을 이해하는데, 동의는 못 하더라. 종부세는 그들에게 이념이라서다.”

 

성 의장은 “하지만 종부세 납부자가 집 가진 국민의 8%로 늘어난 데다 서울 바깥 야당 표밭에서도 종부세 납부자가 급증하면서 민주당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종은 5년 만에 1154명에서 1만1147명으로 866.8% 늘어 인원수 증가율로는 1위를 기록했고, 대전은 4333명에서 2만4491명으로 465.2% 늘었다. 경기와 인천도 종부세액이 각각 1400% 이상 올랐다. 전부 민주당이 지역구를 장악한 노른자위 표밭들이다. 요즘 ‘종부세’ 얘기가 나오면 민주당 의원들이 하나같이 입을 닫는 이유가 있다.

 

모든 혁명은 국민의 피를 빠는 부조리한 세금에서 촉발됐다. “재산세가 있는데 종부세도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다. 현재 집이 안 팔려 (일시적) 1가구 2주택자가 된 상황인데 이런 이유로 종부세를 내게 된 게 억울하다. 금액도 적지 않다. 돈 벌어 세금 내다 끝나게 생겼다.” 광주광역시 아파트 주민이 써 내려 간 ‘절규’다. 민주당이 내후년 총선 승리를 원한다면, 흘려듣지 말기 바란다.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11.25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권이 퇴진해야 한다면

이태원 참사 뒤 신속히 조직된 정권 퇴진집회
대통령 탄핵 물꼬 튼 ‘세월호’ 기억 때문일 것
野의원 단상 오르고, 진보 원로 “퇴진 권고” 주장
진짜 애도한다면 이 같은 신속·일사불란함 없을 것
정권 퇴진론은 민주사회 선거의 룰 파괴하는 행위

아마 ‘세월호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신속하게, 이렇게 대규모로 정권퇴진 집회가 결성되어 주말 도심을 메우는 것이. 짐작건대 지난 대선 결과에 불만이 있던 사람들은 촛불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되었던, 그 숨가쁘고 가슴 벅찬 기억을 소환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정권 퇴진의 길을 처음으로 터 준 것은 세월호 사건 아닌가. 오죽했으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죽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까지 했을까. 그래서 이태원에서 사고가 터지자,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모든 이벤트(?)가 그렇듯, 처음에는 조직과 실행에 시간이 걸리지만, 두 번째는 훨씬 수월하다.

 ▲/일러스트=이철원

 

사고 하루도 안 지나 MBC PD수첩은 “이태원 사고, 당국 문제점 제보를 기다린다”는 놀라운 취재정신을 발휘했고, 신생 인터넷 매체는 어디서 찾았는지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수능 전후 주말에 교복차림의 중고등학생이 ‘전국중고등학생대표자학생회협의회’라는 거창한 조직의 일원으로 정권퇴진 집회에 참여했다. 대학교에는 11월 4일자로 ‘윤석열퇴진대학생운동본부 서울지역본부’명의의 작성된 대자보가 붙었다. “우리 청년 대학생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비상시국임을 선포”한다는 대자보는 “국민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윤석열은 퇴진하라!”고 거듭 외치고 있었다. 그 긴 문장을, 사고 닷새 만에 써서 전국에 배포하는, 대단한 기동력이다. 좌파성향의 인터넷 방송은 사고 관련 각종 행사를 중계하며 모금도 하고 연대감을 확인한다. 언론과, 학교와, 시민단체와, 인터넷 매체와, 노동자단체가 대목을 맞은 장터처럼 생기로 가득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회에 지난 주 민주당 의원 6명이 단상에 올라 대놓고 윤석열 정권 퇴진을 외치자, 여당에서는 ‘레드라인을 넘은, 헌정질서를 흔드는, 대선불복행위’라는 내용의 비난성명을 냈다. 그러나 사실 이태원 참사가 있건 없건, 정권퇴진은 야당의 단골 테마였다. 백낙청 교수는 한달여 전 오마이TV에 출연해 “(무능한) 윤석열에 대해서는 탄핵 요구보다 퇴진 권고가 합리적”이라는 발언을 했다. 대선 불복 정도가 아니라, 투표로 당선된 지도자를 향한 악담에 가깝다.

 

때마침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그들의 ‘정권퇴진론’에 본격 시동이 걸렸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태원은 세월호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부가 책임 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피해자 보상과 안전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등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정권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너무 간단한 논리를 이번 이태원 참사를 정권퇴진론의 재료로 마술처럼 바꾸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진짜 슬픔에 잠기면 그런 문장이나 행동력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슬프고 안타까운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로 자연스럽지 않다. 대학생의 대자보에는 또래 학생들이 겪은 사고에 대한 인간적인 아픔 대신 현 정권에 대한 증오만 가득하다. 대자보는 “윤석열은 참사가 발생한 골목을 찾아가 ‘이곳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다는 거지?’라는 막말을 내뱉었다”고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애도 기간을 틈타 전쟁 훈련을 일삼으며 전쟁을 국민의 목전까지 들이미는 윤석열” “기어코 욱일기를 내건 일본의 항공모함을 독도 인근으로 끌어들였다”는 대목에서는 이게 북한에서 쓴 성명서인가 의심이 될 정도이다. 수능 전후의 중고생들이 광화문 거리 시위에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앳된 얼굴의 그들이 후원계좌가 적힌 배너 옆에서 시민의 모금을 기다리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연스럽지 않으니 감동도 없다, 핼러윈 사고를 안보이슈와 엮은 건 속 보이는 패착이다.

 

어떤 주장을 할 때에는 그 주장이 문제의 해결을 가져올 때 설득력을 지닌다. 정권을 바꾼다고 모든 안전사고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사고를 정치화 해서는 시스팀의 개선점을 찾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개선에 쓰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세월호는 가르쳐주었다.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 보다 정권이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 허점을 메우는데 행정력을 기울이도록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

 

정권퇴진론의 또 다른 문제는 민주사회 선거라는 룰을 무시하는 행위라는데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룰이 있다. ‘줄을 서라’ ‘쓰레기는 휴지통에’ 같은 간단한 것에서부터, 투표로 당선된 사람을 지도자로 인정하는 민주주의 룰까지 다양하다. 신호등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길거리가 무법천지가 되는 것처럼, 민주사회 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무정부상태가 될 것이다.

 

‘룰 브레이커’들은 대체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규칙을 깨는 특징이 있다. 법을 어겨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이 많은 특징이 있다. 또 자기는 룰을 깨면서도 남이 깨면 엄청 분노한다. 보통사람이라면 규칙을 위반하는 데 수반되는 인지적 불편함을 이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데, 룰을 깨본 경험이 최근일수록 어렵지 않게 룰을 무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아마 세월호와 탄핵의 기억이 생생한 상태여서 갓 출범한 정권에게 ‘퇴진하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외치나보다.

 

투표로 당선된 후보가 맘에 들지 않아도 결과를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권이 물러나야 한다면 지구상에 온전한 정부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멀다.

조선일보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11.25 엉터리 공시가격에 허리 휘는 납세자

 엄청난 과속으로 달리던 차량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다. 잠시 후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한다. 그동안 운전자가 달라졌다. 두 번째 운전자는 “첫 번째 운전자의 과속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첫 번째 운전자는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맞선다. 도로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동산 세금을 두고 전 정부와 현 정부가 왔다 갔다 모습이 이런 운전자들과 많이 닮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3일 ‘공시가격 현실화 수정 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내놨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사실상 폐기했다. 원 장관은 “폐기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현 정부가 전 정부의 정책을 거꾸로 뒤집은 건 분명하다.

집값은 내렸는데 세금은 뜀박질
공시가격 제도 근본적 한계 노출
시차 문제 등 극복할 대안 찾아야

이번 발표에 따라 내년 부동산 공시가격은 많이 내린다. 일부 지역에선 공시가격 인하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종류에 따라 구체적인 발표 시기는 다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내년 3월에 나온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 상황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그래도 부동산 세금에 대해선 기본 원칙이 있었다.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였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는 낮은 편이다. 그러니 보유세는 다소 올릴 필요가 있다. 대신 거래세는 낮춰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자.’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할 때도 이런 논리를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는 달랐다.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의 원칙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집을 살 때도, 팔 때도, 보유할 때도 한결같이 무거운 세금을 매겼다. 다주택자에겐 “징벌적 세금을 물릴 테니 빨리 집을 팔라”고 엄포를 놨다. 이게 효과가 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결국 집값도 못 잡고 인심만 잃었다.

 

정부가 세금을 올리려면 국회에서 법을 바꿔야 한다. 조세법률주의의 기본이다. 그런데 전 정부는 국회를 거치지 않고 세금을 올릴 편법을 찾았다. 공시가격의 대폭 인상이다. 세율은 제자리라도 공시가격을 올리면 납세자 부담은 커진다. 공시가격이 조세법률주의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변질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은 전년보다 19.9% 올렸다. 2007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인상했다. 올해 서울 공시가격 인상률은 14.2%였다. 전 정부 임기 5년간 한 해도 예외 없이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다. 세종시 아파트 공시가격은 지난해 70% 넘게 올렸다가 올해는 4.6% 내렸다. 지난해 인상률 70%는 아무리 봐도 비정상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공시가격을 매년 꾸준히 올리는 계획을 내놨다. 2030년에는 아파트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명목은 공시가격 ‘현실화’였지만 실상은 인상이었다. 원 장관은 “(전 정부의) 90%라는 현실화율 목표치는 시장 자체에 대한 무지 또는 무시”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의 작동 원리를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다.

 

현재 부동산 공시가격은 두 가지의 근본적 한계가 있다. 첫째는 시차의 문제다. 공시가격 기준일은 매년 1월 1일이다. 그런데 재산세는 7월과 9월, 종부세는 12월에 낸다. 특히 종부세에 대해선 1년 가까운 시차가 있다. 그동안 집값이 크게 올랐다면 납세자 반발이 덜할 수도 있다. 올해처럼 집값이 내렸을 때는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이미 일부 지역에선 시세가 공시가격 아래로 내려가는 역전 현상까지 발생했다.

 

둘째는 시세의 부정확성이다. 공시가격이 납세자 신뢰를 얻으려면 부동산 시세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공시가격을 시세의 60%로 하느냐, 70%로 하느냐는 그다음 문제다. 대단지 아파트라면 실거래 사례를 찾는 데 어려움이 덜할 것이다. 반면 소규모 단지나 빌라 등은 그렇지 않다. 주변 거래 사례를 참고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부정확한 시세로 공시가격을 정하고 그걸 근거로 세금을 매기니 납세자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공시가격 제도의 대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집값은 내려갔는데 세금까지 비싸게 물리는 걸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일정 수준 이상 집값이 내리면 중간에 공시가격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차 발생으로 인한 불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시세의 정확성을 높이려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치밀한 사전 준비도 필수적이다. 내년에도 공시가격으로 진통을 겪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11월 28일 유튜브 매체의 취재 참칭한 ‘위법’ 엄단해 반복 막아야

 인터넷의 유튜브 매체인 더탐사가 ‘위법(違法)’ 행태를 더 이어가고 있다. 더탐사 관계자 5명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가족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27일 침입해, 문 앞에서 잠금장치 해제까지 시도하면서 현장 생중계도 했다. “정상적인 취재 목적으로 방문했고, 사전 예고했기 때문에 스토킹이나 다른 걸로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그 행태는 ‘취재를 참칭한 불법’ 혐의가 확연하다.

퇴근길을 1개월 가까이 스토킹한 혐의로 한 장관에게 고소당한 이들은,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한 검찰의 집행을 거부하면서 한 장관 아파트를 찾아갔다. “(우리가) 강제수사권은 없지만, 일요일에 경찰 수사관들이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한 기자들 마음이 어떤 건지를 한 장관도 공감해 보라는 차원에서 취재해 볼까 한다”고 했다. ‘침입’ 의도는 ‘보복’ 취지라는 자인과 다름없다.

이들은 부재중이던 한 장관을 부르며 “취재하러 왔다”고 했으나, 그것도 면죄부일 수 없다. 거주자 허락 없이 아파트 엘리베이터·복도 등에 무단 진입하는 것도 주거침입 범죄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한 장관은 “어떤 형태로도 자택 방문 연락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도 참석했다던 ‘청담동 술자리’가 거짓말이었다는 당사자 진술이 나왔지만, 이들은 여전히 잘못이 없다는 식이기도 하다. 한 장관이 공동주거침입과 보복범죄 혐의로도 이들을 경찰에 고소한 만큼, 수사로 위법이 확인되는 대로 엄단해 더는 반복하지 못하게 막아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사설

 

11.28 北서 건너온 후진국병 말라리아 …'에르메스 말안장'에 격분한 이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수사 도중 해외로 도피한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이 문재인 정권 때인 지난 2019년 대북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북한에 프랑스 최고급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의 말 안장과 150만 달러를 건넨 정황이 포착됐다는 언론 보도를 최근 접했다. 또 당시 집권당이었던 몇몇 야당 인사가 관련됐다는 정황 역시 나와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 사건은 과거의 여러 남북 협력 사업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일단 내세운 대의명분은 이번에도 똑같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주로 진보 정권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남북 경협은 늘 민족의 평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앞세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업을 빌미로 우리가 찔러주는 뒷돈이 핵심이었다. 그 결과 실질적인 남북 평화는 물론 북한 주민의 생활고와 같은 난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북한 최고위 집권층의 배만 불려준 실패로 귀결됐다. 쌍방울이 북한에 제공했다는 뇌물도 아마 비슷한 결말을 맞을 것이다.

 

여기서 과거와 달리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김 전 회장이 소속 임직원을 동원해 직접 북한 측에 전달했다는 에르메스 말 안장이다. 사실이라면 우선 대북 사치품 반출을 금지한 유엔의 대북 결의 1718호 위반이다. 게다가 즉각적으로 그 돈의 쓰임새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외화와 달리 최대 수억원에 달한다는 이 말 안장은 북한 주민과 무관한 집권층의 사치 성향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거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종종 타는 백마 위에 얹기 위한 것이든, 혹은 그가 다른 고위층에게 주려 한 선물이든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의 삶과는 너무나 큰 격차를 보여주는 탓이다.

 

▲프랑스 명품 회사 에르메스가 만든 말 안장.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고가 제품은 가격이 수억원이다. 중앙포토

 

의사인 내가 북한에 뇌물로 바친 에르메스 말 안장 보도를 보고 격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말라리아다. 대표적인 후진국 병으로 알려진 말라리아 얘기를 왜 갑자기 꺼내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말라리아 발생률 1위다. 군의관 시절 군내 감염병을 전담할 당시 이 사실을 처음 알고 많이 놀랐다.

 

말라리아는 원래 한반도에 창궐해 있었다. 하지만 역대 우리 정부가 성공적인 방역 정책을 시행한 덕분에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말라리아 완전 퇴치국가로 인정받았다. 북한은 달랐다. 말라리아 창궐을 막지 못했다. 휴전선 부근의 모기떼가 북한 감염자의 피를 빨고 우리나라로 날아와 접경지역의 주민과 군인을 물었다. 한국에 다시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이유다. 경기 북부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말라리아 환자는 1990년대 이후 연 4000명까지 증가했고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한국 정부는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기준치 이상의 환자가 발생한 파주·연천·철원·강화 등 북한 접경 지역 주민의 헌혈을 제한했다. 또 군부대 환자 발생을 줄이기 위해 전방 부대 장병들에게는 말라리아 집중 발생 기간인 5~10월 사이 관련 약을 복용시켰다. 비유하자면 예방약으로 몸속을 무장한 우리 군이 휴전선을 따라 '인계철선'을 구축한 다음 북에서 쳐들어오는 말라리아 모기 부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환자 발생을 꾸준히 줄여 2014년에는 4000명에서 뚝 떨어진 400명을 기록했다.

 

▲자료: 질병관리청

 

그러나 내가 군에 입대한 2016년 무렵 다시 600명으로 증가했다. 한국의 말라리아 환자는 주로 전방 군 부대 장병과 인근 지역 주민 사이에서 발행하는데, 군내 환자가 늘어난 탓이었다. 말라리아는 예방약을 한번 먹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기존 치료약을 매년 5~10월 내내 장기간 복용하는 방식이다 보니 구토·설사·피부발진 등 부작용이 빈발했다. 심지어 성 기능 장애가 생긴다는 잘못된 소문이 돌아 약을 몰래 버리는 장병까지 늘었다.

 

군대 내 환자 발생이 늘어난 이유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이 군내 감염병 예방 업무 담당자들을 불러 환자 발생을 줄이라고 닦달했다. 나를 포함해 당시 담당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조처를 취했다. 반드시 간부와 병사가 함께 모여 약을 복용하게 하고 약 삼키는 것까지 확인하도록 강제했다. 또 불시에 지도 방문을 나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버려진 약 봉투가 보이면 해당 부대 지휘관을 징계하겠다고 협박했다.

 

부작용에 시달리는 장병들의 빗발치는 민원에 시달려가면서까지 강제적으로 약 복용률을 높인 덕분에 환자 발생을 300명까지 줄였지만 여기서 더는 줄지 않았다. OECD 말라리아 발생률 1위라는 오명도 그대로였다. 휴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모기를 막을 수 없으니 북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를 퇴치하지 않는 이상 백약이 무효했던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반도는 열대지역보다 모기가 많지 않다. 유충이 서식하는 물웅덩이만 제대로 방역하고 북한과 인접한 지역 주민에게 예방약을 보급하고 환자 치료만 제때 해도 말라리아 정도는 쉽게 퇴치할 수 있다. 북한은 워낙 보건의료 인프라가 열악하지만 여러 국제기구가 진단키트와 치료제, 방충망 등을 지원해 2001년 30만명에 이르렀던 환자 수를 2017년 1800명까지 줄인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북한은 잇따른 군사 도발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강화되자 보건의료물품처럼 제재 대상이 아닌 인도적 지원까지도 거절했다. 게다가 지난 2020년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하자 국경을 완전 봉쇄해 의료지원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말라리아 완전 퇴치가 요원해진 상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시 말라리아 환자가 30만 명을 넘고 우리나라에까지 환자가 급증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말라리아는 환자 치료에 비용이 크게 들지도 않는다. 약값 7000원이면 치료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이런 말라리아 환자는 방치한 채 400억원짜리 연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대고 있다. 한번 쏠 때마다 말라리아 환자 570만 명을 치료할 수 있는 돈을 허공에 날려버리는 것이다. 굳이 ICBM 얘기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에르메스 말 안장 하나 살 값이면 북한의 모든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하고도 남는다. 제대로 남북 경협을 하려는 사업가라면 에르메스 말 안장이 아니라 말라리아 치료제를 선물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니 김정은을 계몽 군주라 칭하는 추종하는 세력이 아니고서야 뒷돈 주고 얻어낸 거짓 평화를 지지하는 국민은 없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10월 유니세프(UNICEF)와 WHO의 코로나 백신 및 마스크 지원과 말라리아 퇴치 사업, 일반 예방접종 사업 등의 인도적 대북 지원에 제재 면제를 승인했다. 북한만 동의한다면 뒷돈 없이도 충분히 말라리아 퇴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에서는 말라리아 남북 공동방역 사업처럼 호혜적인 사업의 투명한 진행을 통해 당장 눈앞에 놓인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중앙일보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의사

 

11.28 환자도 의사도 디아스포라

 정치적 의도는 딱히 없다. 그럼에도 수년에 걸친 논쟁을 꺼내든 것은 ‘불편한 정의’를 감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진행된 이른바 ‘문재인 케어’는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목표로 한 의료정책이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여 국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를 어느 누가 탓하겠는가. 그러나 정부의 선한 의지와 달리 근원적 의문은 애초부터 가시질 않았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 부담일 터인데 보장률을 높여 의료비를 경감하겠다는 발상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으로 보장률은 부담률을 수반할 터이니 말이다.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문재인 케어’ 이후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급격하게 악화하였다. 건보 적용 범위 확대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건보 수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병원 이용이 현격히 줄었던 지난 2년을 제외하고는 2018년 이후 내리 적자였다. 그 폭도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건강보험 곳간이 거덜 나고 있다는 뜻이다.

병원비 걱정 없다던 문재인 케어
건보재정 거덜 낸 ‘불편한 정의’
동네병원 썰렁, 대형병원 북적
의료전달체계 전환점 마련해야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여 환자 부담이 줄면 의료 소비량은 당연히 늘어나기 마련이다. 동네 의원과 비용 차이가 크지 않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도 확장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했다. 고향을 찾아 지역에서 개원한 후배들은 중증 환자는 물론이려니와 가벼운 시술 환자까지 서울 대형병원으로의 이동이 확산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이러다간 지역 의료는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2028년까지 수도권 신규 분원 계획을 발표한 대형병원은 날로 늘어간다.

 

보장성 강화에 따른 민영보험 반사 이익을 실손보험료 인하로 연결해 보험료 부담도 낮춘다는 당초 계획도 좌초되었다. ‘문재인 케어’ 시행 후 4년간 실손보험료 인상률은 건강보험료 인상률의 3.5배 이르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국민의 의료비와 보험료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가고 있었다. 대략난감이다.

 

작금의 상황은 ‘문재인 케어’가 추구한 의료정책의 결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듯 정책은 선해도 결과는 혹독한 현실에 직면하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최저임금도 그랬고 주 52시간도 그랬다. 경험치가 부재한 채 확신에 찬 어조로 정책을 주창했지만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의 이면에는 이렇듯 늘 축축한 습기가 있다. 고스란히 국민이 누울 자리이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핵심적 역할인 의료 서비스는 선언적인 정치 논리에 포획 당하면 그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국민 누구나가 최상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나 의료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권리로서 작동돼서는 안 된다. 의료 서비스의 현장에 동네 의원이 있다. 지역 병원이 있다.

 

의사였던 아치볼드 A J 크로닌의 소설 『성채』는 군의관들이 전쟁터에서 배낭에 넣고 다녔던 성경 같은 작품이다. 『성채』를 한 번쯤 읽지 않은 의대생이 있을까 싶다. 소설 속 영국의 의료체계는 열악하다. 저임금 근로자는 보험에 가입되었으나 가족에겐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아픈 자녀를 두고도 의사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개원 의사는 환자 1인당 연간 인두세를 받았지만, 의사는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환자보다 비용을 지급하는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기울인다는 비난이 폭주했다. 관료의 탁상에서 비롯된 의료전달체계는 인술을 지향하던 크로닌에게 성채처럼 견고한 획일성의 요새였을 것이다.

 

“나는 의사로서 불의, 감추어진 비과학적 고집, 속임수에 대해 내가 느낀 모든 것을 썼다. 개인적으로 목격한 이야기 속엔 공포와 불평등이 세밀하게 적혀있다. 이것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대한 공격이다.” 이 소설은 1945년 영국 총선과 1948년 노동당 정부의 의료정책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린 의료정책의 결과에 대해 너무도 관대하다.

 

그리스어인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이다. 의사로서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생존과 히포크라테스 선서 사이 한국 의료체계의 오류가 있다. 근거 중심의 학문에 익숙한 의사들은 가뭇한 정의에 기대어 선 ‘문재인 케어’의 과학적 통계의 암울한 현실 앞에 의료체계 전달의 전환을 소망한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환자들의 신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생존을 유지할 길을 찾는 디아스포라 일 수밖에 없다. 집을 떠나 서울의 큰 병원으로 떠나는 환자도 디아스포라의 길을 걷고 있다.

중앙일보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11.28 北서 건너온 후진국병 말라리아 …'에르메스 말안장'에 격분한 이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수사 도중 해외로 도피한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이 문재인 정권 때인 지난 2019년 대북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북한에 프랑스 최고급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의 말 안장과 150만 달러를 건넨 정황이 포착됐다는 언론 보도를 최근 접했다. 또 당시 집권당이었던 몇몇 야당 인사가 관련됐다는 정황 역시 나와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 사건은 과거의 여러 남북 협력 사업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일단 내세운 대의명분은 이번에도 똑같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주로 진보 정권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남북 경협은 늘 민족의 평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앞세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업을 빌미로 우리가 찔러주는 뒷돈이 핵심이었다. 그 결과 실질적인 남북 평화는 물론 북한 주민의 생활고와 같은 난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북한 최고위 집권층의 배만 불려준 실패로 귀결됐다. 쌍방울이 북한에 제공했다는 뇌물도 아마 비슷한 결말을 맞을 것이다.

 

여기서 과거와 달리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김 전 회장이 소속 임직원을 동원해 직접 북한 측에 전달했다는 에르메스 말 안장이다. 사실이라면 우선 대북 사치품 반출을 금지한 유엔의 대북 결의 1718호 위반이다. 게다가 즉각적으로 그 돈의 쓰임새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외화와 달리 최대 수억원에 달한다는 이 말 안장은 북한 주민과 무관한 집권층의 사치 성향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거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종종 타는 백마 위에 얹기 위한 것이든, 혹은 그가 다른 고위층에게 주려 한 선물이든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의 삶과는 너무나 큰 격차를 보여주는 탓이다.

 

▲프랑스 명품 회사 에르메스가 만든 말 안장.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고가 제품은 가격이 수억원이다. 중앙포토

 

의사인 내가 북한에 뇌물로 바친 에르메스 말 안장 보도를 보고 격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말라리아다. 대표적인 후진국 병으로 알려진 말라리아 얘기를 왜 갑자기 꺼내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말라리아 발생률 1위다. 군의관 시절 군내 감염병을 전담할 당시 이 사실을 처음 알고 많이 놀랐다.

 

말라리아는 원래 한반도에 창궐해 있었다. 하지만 역대 우리 정부가 성공적인 방역 정책을 시행한 덕분에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말라리아 완전 퇴치국가로 인정받았다. 북한은 달랐다. 말라리아 창궐을 막지 못했다. 휴전선 부근의 모기떼가 북한 감염자의 피를 빨고 우리나라로 날아와 접경지역의 주민과 군인을 물었다. 한국에 다시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이유다. 경기 북부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말라리아 환자는 1990년대 이후 연 4000명까지 증가했고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한국 정부는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기준치 이상의 환자가 발생한 파주·연천·철원·강화 등 북한 접경 지역 주민의 헌혈을 제한했다. 또 군부대 환자 발생을 줄이기 위해 전방 부대 장병들에게는 말라리아 집중 발생 기간인 5~10월 사이 관련 약을 복용시켰다. 비유하자면 예방약으로 몸속을 무장한 우리 군이 휴전선을 따라 '인계철선'을 구축한 다음 북에서 쳐들어오는 말라리아 모기 부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환자 발생을 꾸준히 줄여 2014년에는 4000명에서 뚝 떨어진 400명을 기록했다.

 

▲자료: 질병관리청

 

그러나 내가 군에 입대한 2016년 무렵 다시 600명으로 증가했다. 한국의 말라리아 환자는 주로 전방 군 부대 장병과 인근 지역 주민 사이에서 발행하는데, 군내 환자가 늘어난 탓이었다. 말라리아는 예방약을 한번 먹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기존 치료약을 매년 5~10월 내내 장기간 복용하는 방식이다 보니 구토·설사·피부발진 등 부작용이 빈발했다. 심지어 성 기능 장애가 생긴다는 잘못된 소문이 돌아 약을 몰래 버리는 장병까지 늘었다.

 

군대 내 환자 발생이 늘어난 이유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이 군내 감염병 예방 업무 담당자들을 불러 환자 발생을 줄이라고 닦달했다. 나를 포함해 당시 담당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조처를 취했다. 반드시 간부와 병사가 함께 모여 약을 복용하게 하고 약 삼키는 것까지 확인하도록 강제했다. 또 불시에 지도 방문을 나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버려진 약 봉투가 보이면 해당 부대 지휘관을 징계하겠다고 협박했다.

 

부작용에 시달리는 장병들의 빗발치는 민원에 시달려가면서까지 강제적으로 약 복용률을 높인 덕분에 환자 발생을 300명까지 줄였지만 여기서 더는 줄지 않았다. OECD 말라리아 발생률 1위라는 오명도 그대로였다. 휴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모기를 막을 수 없으니 북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를 퇴치하지 않는 이상 백약이 무효했던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반도는 열대지역보다 모기가 많지 않다. 유충이 서식하는 물웅덩이만 제대로 방역하고 북한과 인접한 지역 주민에게 예방약을 보급하고 환자 치료만 제때 해도 말라리아 정도는 쉽게 퇴치할 수 있다. 북한은 워낙 보건의료 인프라가 열악하지만 여러 국제기구가 진단키트와 치료제, 방충망 등을 지원해 2001년 30만명에 이르렀던 환자 수를 2017년 1800명까지 줄인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북한은 잇따른 군사 도발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강화되자 보건의료물품처럼 제재 대상이 아닌 인도적 지원까지도 거절했다. 게다가 지난 2020년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하자 국경을 완전 봉쇄해 의료지원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말라리아 완전 퇴치가 요원해진 상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시 말라리아 환자가 30만 명을 넘고 우리나라에까지 환자가 급증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말라리아는 환자 치료에 비용이 크게 들지도 않는다. 약값 7000원이면 치료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이런 말라리아 환자는 방치한 채 400억원짜리 연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대고 있다. 한번 쏠 때마다 말라리아 환자 570만 명을 치료할 수 있는 돈을 허공에 날려버리는 것이다. 굳이 ICBM 얘기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에르메스 말 안장 하나 살 값이면 북한의 모든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하고도 남는다. 제대로 남북 경협을 하려는 사업가라면 에르메스 말 안장이 아니라 말라리아 치료제를 선물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니 김정은을 계몽 군주라 칭하는 추종하는 세력이 아니고서야 뒷돈 주고 얻어낸 거짓 평화를 지지하는 국민은 없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10월 유니세프(UNICEF)와 WHO의 코로나 백신 및 마스크 지원과 말라리아 퇴치 사업, 일반 예방접종 사업 등의 인도적 대북 지원에 제재 면제를 승인했다. 북한만 동의한다면 뒷돈 없이도 충분히 말라리아 퇴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에서는 말라리아 남북 공동방역 사업처럼 호혜적인 사업의 투명한 진행을 통해 당장 눈앞에 놓인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중앙일보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의사 

 

11.29 취재 빙자해 선동, 돈벌이 노리는 ‘더탐사’류 유튜브

이태원 희생자 명단 공개 후 떡볶이 ‘먹방’도

유사 언론·정치권의 협잡으로 가짜뉴스 키워

유튜브 채널인 ‘더탐사’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스토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더탐사’는 그제 한 장관의 집을 무단으로 찾아가 생중계했다. 문을 두드리고 앞에 놓인 택배를 뒤지며 도어록까지 건드렸다. 아파트 실명과 호수 또한 방송에 노출했다. 채팅창에선 한 장관이 대기업에서 고가 주택을 제공받았다는 가짜뉴스가 오갔다.

 

이후 ‘더탐사’는 경찰서로 이동해 자신들의 수사를 중단하라며 항의하는 장면을 생방송했다. 몇몇 지지자와 함께 즉석 집회를 벌이며 세 시간 동안 경찰을 괴롭혔다. 일부 경찰은 실명과 얼굴이 그대로 공개됐다. 시위가 격해질 때마다 시청자들의 후원금인 ‘슈퍼챗’은 쌓여 갔다. 자칭 “시민의 편에서 진실만을 향해 나아가는 시민언론”의 민낯이다.

 

‘더탐사’의 속내는 이들이 내뱉은 말 속에 있다. 한 장관의 집을 방문하기 직전 “기습적으로 압수수색된 기자들의 마음이 어떤지 한 장관도 공감해 보라”고 털어놨다. 지난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당시에는 떡볶이 ‘먹방’을 진행하면서 “광고가 중요하다. 엄청난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했다.

 

사실 이들은 취재를 빙자해 보복을, 뉴스를 가장해 돈벌이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경찰의 합법 수사와 자신들의 불법 침입을 동일시하고, 온갖 음해와 가짜뉴스로 주목을 끈 뒤 지지자들의 분노를 부추겨 금전적 이득을 취한다. 제보자인 첼리스트 A씨의 자백으로 거짓이 판명난 청담동 술집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 같은 반지성을 가려내야 할 정치권조차 유사 언론과 적극 손잡는다는 데에 있다. 기자 출신인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더탐사’를 정쟁에 적극 이용했다. 누구보다 팩트 확인에 민감했어야 할 김 의원은 가짜뉴스로 정부 여당을 코너에 몰고 음모론을 키워 진실까지 대체하려고 했다. 이들의 행태는 시정 모리배들의 협잡과 무엇이 다른가.

 

언론의 본령은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취재의 핵심은 단편적인 팩트의 조각을 모아 진실이라는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더탐사’와 야당은 원하는 결론을 정해놓고 그럴듯한 가짜뉴스를 유포한다. 가뜩이나 SNS의 알고리즘으로 확증편향이 커진 틈새를 노려 유사 언론은 돈 되는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까지 종교가 과학을 지배했던 적이 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평생 감금되거나 화형당했다. 가짜뉴스와 음모론도 마찬가지다. 믿고 싶은 것만 진실로 받아들이고, 듣기 거북한 사실은 외면한다. 이성과 합리가 마비된 맹목적 신념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

중앙일보 사설

 

11.30 선을 넘는 대통령 흠집 내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인신공격이 선을 넘고 있다. “바지를 거꾸로 입었다.” “김앤장 변호사 30명과 청담동에서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동백아가씨 노래를 불렀다.” 우리 국민을 얼마나 대표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내용의 유튜브 방송이 넘쳐난다. 댓글만 보면 상당수가 이런 얘기를 기정사실로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지를 거꾸로 입는다는 건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바지를 거꾸로 입은 채 과연 벨트를 채울 수 있을까. 더구나 한두 걸음이라도 앞으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터넷에선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서 있는 윤 대통령이 바지를 거꾸로 입었다고 주장하는 글과 사진이 떠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일각에선 그런 주장이 기정사실로 여겨지면서 수많은 동조 댓글이 달려 있다.

 

김앤장 변호사 30명이 모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김앤장 변호사는 2000명에 이른다. 매우 많기 때문에 30명쯤 모이는 게 쉬워 보일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요즘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는 간 큰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코로나 여파까지 겹쳐 음주문화가 더욱 바뀐 데다 새벽까지 마시고 귀가하면 집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곧바로 출근해 제대로 일하는 게 가능할까.

정치 공세 넘치며 가짜뉴스 판쳐
그대로 믿는 사람 적지 않아 문제
근거 없는 정보·뉴스 잘 가려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론 머스크 미국 테슬라 CEO와 화상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가발을 쓴다면서 아예 머리카락이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 SNS에 뿌리기도 한다. 한 장관에 대한 공격은 곧 윤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다. 한 장관을 잘 아는 법조인에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라 해도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가짜 이미지를 자꾸 만든다는 게 문제다. 바지 스타일과 머리카락까지 문제 삼는 건 증오를 확대 재생산한다. 부정적 낙인을 찍어 증오하게 만드니까 문제다.

 

가짜뉴스가 넘치는 건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일명 병풍(兵風)으로 알려진 두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 제기는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거짓이라도 주장하면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헛소문을 그레이프바인(grapevine)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만 봐도 알 수 있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최전방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자들은 전보를 쳤다. 나무 전봇대에는 구리 전선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는데 마치 포도나무 덩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너무 엉성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헛소문이 퍼질 때가 많았다.

 

지금은 이 역할을 인터넷 기반의 각종 SNS가 한다. 구리 전선보다 전파력이 강력하고 무차별적이다. 아니면 말고는 기본이다. 발신자에게 확인 의무는 없다. 의혹이 제기되면 도마 위에 오른 사람이 해명해야 한다. 바지를 거꾸로 입거나 새벽 3시에 노래를 불렀다는 풍문이 돌아도, 대통령이 그걸 정색하고 해명하는 건 우스꽝스럽다.

 

그렇다 보니 악의적 이미지는 무한 생산, 무한 복제된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사회적 스토킹은 집요한 수준을 넘어 악마화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아픈 아이를 위로한 사진은 ‘빈곤 포르노’라는 악의적 프레임이 붙여지고 조명을 켰다는 것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는 포도 넝쿨 퍼져 나가듯 악의적 프레임을 즐기고 소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오·탈자도 철저히 확인하는 신문에선 있을 수 없는 얘기들이 SNS에선 어지럽게 뒤엉킨 포도 넝쿨처럼 퍼져 나간다. 그 가짜 정보는 손안의 스마트폰에 24시간 전달된다. 댓글에는 실명을 쓰지 않으니 말은 더 거칠어지고 확증편향은 깊어진다.

 

물론 가짜뉴스의 위력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친 지 오래됐고, 김의겸 국회의원 같은 상습적 가짜뉴스 전달자들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다. 눈 크게 뜨고 귀를 열어 진짜와 가짜를 식별해야 한다. 가짜뉴스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런 위험에서 늘 벗어나야 한다.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에디터 

 

11월 30일 언론 빙자한 불법 · 선동은 사회악일 뿐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허위로 드러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던 유튜브 채널 더탐사 관계자 5명이 지난 2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자택을 찾아가 도어록을 열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 장관의 집 문 앞에 놓인 택배물을 살피다가 집 안에 인기척이 없자 1분30초 후 현장을 떠나는 과정의 영상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하기까지 했다. 이에 한 장관은 공동주거침입 및 보복범죄 혐의로 더탐사 관계자 5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confirmatory bias)이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를 그렇지 않은 정보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향동화(biased assimilation) 현상을 보인다. 더탐사 같은 매체를 통상적 언론으로 봐야 할지 논란이 있고, 1인 미디어까지 활발한 현실에서 언론의 범주를 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더탐사는 언론을 자처하며 언론 탄압을 외치는 만큼 언론의 기본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에 따르면, 취재기자는 확증편향과 편향동화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제2조(공정보도)는 ‘우리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제4조(정당한 정보수집)는 ‘우리는 취재 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또한, 제6조(사생활 보호)에서는 ‘우리는 개인의 명예를 해치는 사실무근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으며, 보도 대상의 사생활을 보호한다’고 밝혀 놓고 있다. 그리고 한국기자협회 실천요강 제3조(품위 유지) 제2항은 ‘회원은 취재 과정에서 취재원으로부터 비난받을 여지가 있는 저급한 언행을 삼간다’고 규정하고, 제5항은 ‘회원은 취재 보도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MBC는 지난 9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발언을 확실하게 검증하지도 않은 채 같은 날 오전 10시 7분 식별이 어려운 부분의 자막을 왜곡·변조한 해당 영상을 최초 공개했다. 이는 기자협회 윤리강령의 공정보도에 반하는 것이다. MBC 기자회는 22일 “우호적인 기사와 받아쓰기로 권력의 들러리가 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맞다, 기자들은 권력의 들러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취재원을 대함에 있어 기자는 기자협회 실천요강에 명시된 품위는 지켜야 한다. 지난 18일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직후 홍보기획비서관과 설전을 벌인 바 있는 MBC 기자는 ‘말의 품격’이라는 책도 집필했다고 하니 더 딱하다.
 

 

‘선을 넘다’란 표현은 허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했을 때 사용된다. 더탐사의 무단침입 취재는 취재윤리(정당한 정보수집 및 사생활 보호)뿐만 아니라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선을 넘은 것이다. 사적 보복행위, 법치주의를 무력화하는 선동적 행위의 측면도 있다. 장관의 자택을 찾아가는 동선을 밝힘으로써 한 장관을 잠재적 테러의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적법한 압수수색과 사적 보복을 동일시해 법치국가 체제를 무너뜨리는 선동을 막아야 할 때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