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조선일보) 2022-11/ 11.01(화) 기구한 이태원 - 11.30(수) 한국 NASA
만물상 2022-11/ 조선일보
11.01(화) 기구한 이태원
퇴근 때 종종 서울 시청 근처에서 출발해 남산을 넘어 뛰어간다. 하얏트 호텔에서 용산구청까지 이태원의 긴 내리막길을 거치는데 풍경이 다채롭다. 한국 최고 부잣집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내려갈수록 집이 작아지다가 원룸 서민 동네로 끝난다. 부자와 자취생,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과 이슬람인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 산책하는 반려견조차 각양각색이다.
▶이태원은 일제가 남산에 도로를 내고 일본인 거주지를 만들면서 주택가가 됐다. 지금 하얏트에서 회나무로로 이어지는 부촌 지역이다. 개발되지 않은 산기슭엔 해방 후 서민들이 몰려들었다. 경리단길 일대가 그곳이다.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조성된 외국인 유흥가가 이태원로 번화가의 시작이다. 이런 다양한 역사성이 이태원의 다양성을 만들었다. 유래가 밝건 어둡건 다양성은 한국의 어떤 동네도 흉내 낼 수 없는 이태원의 강점이다.

▶이태원은 젊은 자영업 도전자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나이지리아 토속음식점까지 잘만 만들면 손님이 모인다. 다양한 주민 때문이다. 국적 불명의 창작 요리도 여기선 통한다. 30㎝가 넘는 빅사이즈 신발, 댄스복 등 별별 가게가 다 있다. 게이바를 해도 이태원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사람이 전국에서 몰린다. 번화가의 입지 조건이 없는 경리단길이 일약 명소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태원엔 사람을 당기는 자력이 있다.
▶운이라고 해야 하나. 이태원의 시련은 한두번이 아니다. 1980년대 이태원은 오늘날 강남 비슷했다.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던 디스코텍, 한국에 피자 시대를 연 피자헛 1호점이 이태원에 있었다. 이 전성기가 ‘에이즈 파동’으로 순식간에 끝났다. 외국인 기피증이 번진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경리단길 붐은 부동산 폭등으로 몇 년 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처음 강타한 유흥가도 이곳이었다.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전염병 확산의 주범으로 몰린 것이다.
▶참사 다음 날 퇴근길에 이태원을 거쳤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분위기가 무거웠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무대로 유명한 언덕길에서 행인 4~5명을 봤을 뿐이다. 대부분 주점이 문을 닫았다. 뜯겨나간 핼러윈 장식물이 거리를 뒹굴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열기가 넘쳤을 날이다. 3년 만에 찾아온 부활의 기회가 또 사라졌다. 수많은 젊은 인명이 희생됐다. 에이즈, 코로나 파동을 넘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 다시 일어서겠지만, 이태원은 정말 기구한 거리다.
11.02 세월호 겪은 세대, 이태원 참사까지
코호트(cohort)는 300~600명 단위로 묶인 부대를 일컫는 고대 로마의 군사용어였다. 전우애로 뭉쳐 강한 결속감을 보였다고 한다. 오늘날엔 다양한 분야로 쓰임이 확대됐다. 1980년대 이후 출생해 컴퓨터와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Y세대’는 출생 코호트에 따른 분류인 셈이다. 코로나 감염자와 의료진을 병원 단위로 격리하는 것은 ‘코호트 격리’다. 재난을 함께 겪은 이들은 ‘재난 관련자 코호트’로 묶는다.

▶8년 전 세월호 희생 학생들은 1997년생이었다. 그 또래는 올해 25세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150여 명 희생자 중 그들 또래인 20대가 104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 청년은 소셜 미디어에 “세월호와 이태원을 모두 겪은 우리에게 공포는 일상”이라고 했다. ‘세월호-이태원 코호트’다. 아마도 20대 전체가 ‘세월호-이태원 코호트’ 세대일 수 있다. 이들의 부모 세대도 함께 재난 코호트일지 모른다.
▶학대나 폭력, 생명의 위협을 경험한 이들은 불면, 악몽, 자살충동 같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한다. 이들이 비슷한 사고를 겪으면 고통스러웠던 옛 기억을 떠올리는데, 이를 ‘트라우마 스위치’ 또는 ‘트라우마 트리거’라 한다.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기억을 누르고 살아온 20대에게 트라우마 스위치였다. 전문가들은 “친구와 또래가 불행을 당하는 모습을 연거푸 본 청년들이 집단적 피해의식이나 무력감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일부 교사들이 희생된 학생들이 남긴 ‘나 진짜 죽는 거야?’ 같은 문자를 제자들에게 읽게 하거나 ‘내가 그 배 안에 있었다면‘ 같은 주제로 발표를 강요해 사회 문제가 됐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물었더니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정신적 학대라고 했다. 비슷한 행태가 이태원 참사 이후 다시 벌어지고 있다. 온갖 악플과 조롱, 가짜 뉴스, 현장 영상과 사진 유포, 정치적 악용 등으로 괴롭힌다.
▶저명한 뇌과학자인 프랜시스 젠슨 미 하버드 의대 교수는 청년의 뇌를 ‘양날의 칼’이라 부른다. 인간 뇌에서 완성되는데 가장 시간이 걸리는 부위가 이성적 판단을 관장하는 전두엽이다. 아직 젊은 청년들은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른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대신 청년의 뇌는 어른보다 회복 탄력성이 좋다. 어른은 극복하지 못하는 상처라고 해도 치료만 잘 받으면 툭툭 털고 일어난다. 가장 필요한 처방은 위로와 공감이라고 한다. ‘세월호-이태원 코호트’ 세대가 상처를 딛고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11.03 ‘과밀’에 익숙한 사회
1970년대 서울에서 등굣길 만원 버스를 몰던 운전기사들에겐 특유의 기법이 있었다. 이른바 ‘욱여넣기 회전’이다. 버스 중간에만 출입구가 있고, 스무 살 남짓한 젊은 여성이 버스 차장을 할 때 얘기다. 버스 차장이 출입구 손잡이를 잡은 채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출발시키면 기사는 안쪽 차선으로 들어가 20~30m쯤 가다가 갑자기 핸들을 오른쪽으로 홱 돌려버린다. 그러면 출입구 쪽에 몰려 있던 승객들이 버스 안쪽으로 쑥 들어가게 되고, 공간을 확보한 버스 차장은 그제야 문을 닫는다. 아침 등굣길 일상이었다.

/일러스트=박상훈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지하철엔 ‘푸시맨’이 있었다. 만원 전철 문이 닫히도록 승객을 힘으로 밀어 넣는 아르바이트였다. 요즘 같으면 성추행 시비도 벌어졌을 법한데 그때만 해도 제법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였다. 10년 전 한 방송 퀴즈 프로그램 문제로도 나왔다. 안전사고 문제가 제기되면서 푸시맨은 사라지고 2008년엔 무리한 탑승 시도를 막는 ‘커트맨’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도 과밀에 따른 안전 문제는 여전하다. 혼잡한 서울 지하철 출퇴근길은 늘 아슬아슬하다.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은데도 일부 승객은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몸을 욱여넣는다. 지난해 혼잡도가 가장 높았던 9호선이 대표적이다. 전동차 한 칸 표준 탑승 인원은 160명인데, 지난해 출근길 9호선 일부 구간의 열차 한 칸엔 약 300명이 타고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광역 버스도 전쟁터를 방불케 할 때가 많다. 과밀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밀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1968년 동물 행동학자 존 캘훈은 과밀의 결말에 대한 실험을 했다. 가로세로 2.7m 공간에 쥐들이 잘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빠르게 번식하던 쥐들은 개체 수가 2200마리로 정점에 이르자 더 이상 새끼를 낳지 않았다. 과밀로 생긴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번식이 멈추면서 개체당 공간이 늘었지만 개체 수는 다시 늘지 않았다. 실험은 몇 년 뒤 마지막 남은 쥐가 죽으면서 끝났다.
▶이태원 참사 후 과밀 공포를 느낀다는 말들이 나온다. 인구 950만명인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으로 부산의 4배에 가깝다. 과밀이 일상이었는데 위험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어느 재난 전문가는 이태원 참사 원인으로 시민들이 과밀에 익숙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래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과밀의 위험을 너무 안일하게 넘긴 대가를 우리는 지금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11.04 ‘영끌’ 예금

지난주 한 저축은행에서 연 6.5% 금리를 주는 정기 예금 특판 상품을 내놓자 문 열기 전부터 북새통을 이루는 ‘오픈 런’이 벌어졌다. 영업 시작과 동시에 입장했는데 10시간 기다려 특판 예금에 가입한 사람도 있었다. ‘샤테크(샤넬+재테크)’하려고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에 밤새 기다리는 ‘오픈 런’이 있었는데 금리 상승기가 되니 ‘예테크(예금+재테크)’하려고 금융기관 앞에서 오픈 런이 벌어진다.
▶젊은 네티즌이 ‘영끌 예금’으로 예대 마진을 챙긴 사연을 적어 놨다. 자신이 가진 연 금리 1.8%짜리 주택청약저축을 담보로 연 금리 2.79%에 은행 대출을 받아서 연 금리 4.55%의 정기 예금에 돈을 넣었다고 자랑했다. 자신이 가입한 예금을 담보로 대출받으면 대출 금리가 예금 금리의 1%포인트 정도만 높기 때문이다. 원래 예금담보 대출은 자금이 급할 때 만기가 얼마 안 남은 예금을 해지할 필요없이 돈을 융통하는 방법인데 금리 상승기에 ‘영끌 예금’으로 각광받고 있다. 시중은행의 예금담보 대출이 평소보다 2배 늘었다.
▶”금리가 쪼까 떨어져 가꼬 뭐, 한 15%밖에 안 하지만…. 아~ 그래도 따박따박 이자 나오고 은행만 한 곳이 없제!”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한일은행 행원으로 등장한 주인공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는 대사다. 월급 받아 아껴 쓰고 남은 돈을 은행에 저금하면 돈이 절로 불어나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가 한 자릿수 금리 시대가 된 것은 IMF 외환 위기 이후다. 그때만 해도 5% 금리는 저금리로 느껴졌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0%에 가까운 초저금리 시대를 10여 년 겪고 나니 전 국민이 연 5~6% 은행 예금 금리가 얼마나 안전한 ‘고금리’인지를 절감하게 됐다.
▶시중은행의 정기 예금이 한 달 새 50조원 가까이 늘었다. 사실 상당한 자산가가 아니면 금리 1~2%포인트 상승으로 챙길 수 있는 이자 수입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은퇴 세대도, 젊은 세대도 적은 목돈을 들고도 금리를 조금이라도 더 주는 예금 상품에 가입하려고 오픈 런 수고까지 한다. ‘금리 노마드(유목민)’의 등장이다. 매일 바뀌는 예·적금 금리를 실시간 비교한 금리 비교표를 두고 ‘뱅보드 차트(뱅크+빌보드차트)’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미친 집값’에 놀라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집을 사는 ‘영끌 투자’가 성행했는데, 이제는 있는 돈을 박박 긁어 은행에 ‘영끌 예금’하겠다는 젊은 세대도 늘고 있다. 금리가 한순간에 바꿔 놓은 풍속도다.
11.05(토) 복귀하는 권력자들

/일러스트=박상훈
사상 최고의 대(對)테러 작전으로 엔테베 작전이 꼽힌다. 1976년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자국민이 타고 있던 여객기가 테러범에게 납치되자 4000여㎞를 날아가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억류된 인질 103명을 구조했다. 1분 45초 만에 테러범 7명과 우간다군 30명을 사살했다. 이스라엘에선 현장 지휘관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만 숨졌다. 그는 영웅이 됐지만 가족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에서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다니던 동생 베냐민 네타냐후는 학업을 중단했다.
▶20년 후 베냐민은 엔테베 작전 당시 국방장관이던 시몬 페레스를 꺾고 이스라엘 총리가 됐다. 3년 뒤 총선 패배로 물러났지만 2009년 다시 총리에 올라 12년을 집권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 모사드를 침투시켜 가져온 핵 관련 문서 5만여 장, CD 183장을 소개하는 그의 모습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부패 혐의로 퇴진하면서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했지만 지난 1일 총선을 통해 1년 6개월 만에 총리로 복귀했다.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도 내년 1월부터 4년 임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가 재임한 2003~2010년 경제 호황에 대한 국민들의 그리움이 재집권 배경이 됐다고 한다. 그도 퇴임 후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구속돼 1년 반 복역했지만 지난해 연방대법원이 그간의 재판을 무효로 선언해 족쇄가 풀렸다. 룰라보다 스무 살 많은 97세의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전 총리도 오는 19일 치르는 총선 재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1981~2003년, 2018~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도합 25년을 집권했다. 3차 집권에 성공하면 본인이 세운 93세 최고령 총리 당선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도전 중이다. 미 헌법은 연임(連任)은 2번으로 제한하지만 간격을 두고 대통령을 두 번 하는 중임(重任)은 허용한다. 중임에 성공한 사람은 130여 년 전 22·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헌법에 중임 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한번 물러난 대통령은 다시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다.
▶과거의 권력자가 돌아오는 사정은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대부분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지도자라는 공통점은 있다. 국민으로선 검증된 사람이 낫다는 심리가 있을 수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재집권이 좋은 성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보다 과거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그만큼 많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11.07(월) 커피믹스
1990년대 동구권에서 사업하던 한인 교포가 카자흐스탄의 거래처를 방문했다. 정성 들여 준비한 선물을 내놨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에 올 때는 커피믹스를 부탁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라는 거였다. 커피를 자본주의 퇴폐 문화의 상징으로 배격하는 북한도 뒤로는 커피를 즐긴다. 특히 커피믹스는 외교관이나 외화벌이 일꾼 귀국 가방에 들어가는 필수품이다. 고위층에 바치는 선물 목록에도 들어 있다.

/일러스트=박상훈
▶커피믹스의 원조 격인 인스턴트 커피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술 대신 지급하기 시작한 보급품에서 비롯됐다. 처음엔 액상 커피에 연유를 섞어 응고시켰다. 1차 대전 이후 열건조 커피와 냉동동결 제품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러나 막대형 봉지에 커피·크림·설탕을 넣을 생각은 못했다. 그 아이디어를 낸 주인공이 한국의 동서식품이었다. 1976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1980년 첫선을 보였다. 1993년엔 기호에 따라 설탕 분량을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2007년 통계청 조사에서 ‘한국을 빛낸 발명품 10선’ 중 5위에 올랐다. 커피믹스의 성공을 본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도 모방 제품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히트상품의 특징 중 하나가 생산자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한때 수험생들 사이에 ‘붕붕 드링크’라는 카페인 음료 제조법이 성행했다. 박카스·원비디·레모나를 섞어 마시면 온몸이 날아갈 것 같은 활력을 느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래도 잠이 쏟아지면 커피믹스를 추가했다. ‘붕붕드링크 하이퍼 포션’이라 한다. 몸에 좋을 수는 없지만 워낙 널리 소비되다 보니 나타난 활용법이다.
▶또 다른 효용 가치가 추가됐다. 경북 봉화의 광산 매몰 사고에서 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이들이 “커피믹스를 밥처럼 먹으며 버텼다”고 했다. 커피믹스 대표상품인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1개 열량이 50㎉다. 탄수화물 9g 중 당류 6g, 포화지방 1.6g 등이 들어 있다. 다른 회사들 제품도 비슷하다. 성인 남성의 하루 칼로리 섭취량 2000㎉엔 크게 못 미치지만 위급 상황에서 목숨을 지켜준 훌륭한 비상식량이었다.
▶재난 전문가들은 비상식량의 조건으로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고’ ‘포만감 없어도 높은 열량을 지녀야 하며’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휴대가 편리하도록 부피가 작고 가벼워야 한다’는 점을 꼽는다. 건빵이나 미군 전투식량인 MRE가 해당한다. 여기에 한국인이 만든 커피믹스도 포함돼야 할 것 같다.
11.08 돈 없다고 키우던 개 쫓아내는 前 대통령

/일러스트=박상훈
2만년 전 들소 사냥에서 낙오한 원시 소년이 상처입은 늑대와 만난다. 소년은 늑대를 치료해 주고 먹을 것도 나눠준다. 늑대는 그런 소년을 믿고 따른다. 둘은 함께 사냥하고 추위 속에 체온을 나눈다. 맹수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일심동체가 된다. 이렇게 인간과 개의 관계가 시작된다. 영화 ‘알파: 위대한 여정’의 스토리다.
▶서구에서 개는 권력자의 벗이자 상징이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는 개 기르는 것을 전통으로 여겼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도 개 수십 마리를 길렀다. 왕족의 초상화에 애완견을 넣는 일도 유행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자기 개의 초상화를 그렸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사냥개와 함께 선 초상화를 그린 화가에게 귀족 작위를 내렸다. 신라의 왕족들도 동경이라고 불린 경주 개를 길렀다고 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자신이 기르던 개를 데리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이른바 ‘퍼스트 도그(first dog)’다. 퍼스트 도그는 대통령 행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100년간 퍼스트 도그를 두지 않은 대통령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우리 대통령들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하곤 모두 개를 키웠다. 이유가 있다. 개와 함께 하면 딱딱하고 차가운 모습이 아니라 부드럽고 친근한 얼굴로 비친다. 대통령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개와 함께 있을 때 혈압이 낮아지고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실험 결과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갈 때 ‘토리’라는 유기견을 입양했다. 세계 최초의 유기견 퍼스트 도그라면서 “동물도 편견과 차별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했다. 2018년엔 북한 김정은에게서 풍산개 두 마리를 선물받았다. 남북 관계의 상징처럼 여겼다. 그래서 풍산개와 노는 모습을 수시로 공개하고 새끼에게 직접 우유를 먹이는 사진도 올렸다.
▶퇴임 후엔 풍산개 3마리를 양산 사저로 데려갔다. 그런데 6개월 만에 갑자기 더 이상 못 키우겠다며 정부에 반납하겠다고 했다. 개 사료 값과 관리비 월 250만원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개 키우는 돈을 왜 국민 세금에서 달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도 전무후무할 일일 것 같다. 그 돈을 안 준다고 키우던 개를 내보내는 것은 냉혹하다. 그 개들은 SNS에서 쇼하는 도구였나. 키우던 개를 버리는 사람은 많지만 전직 대통령이 돈 때문에 이럴 수도 있나. 이 일에 ‘문 전 대통령의 본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1.09 112, 119의 수난

/일러스트=박상훈
“아빠, 나 짜장면 먹고 싶어서 전화했어.” 작년 4월 112로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두 번째 통화까진 별말 않던 여성은 세 번째엔 “모텔”이라고 하더니 네 번째 통화 때 이 말을 했다. 경찰은 신고자 아빠인 척 대화를 이어가 위치를 확인한 뒤 모텔에서 성폭행범을 체포했다. 얼마 전엔 119로 걸려온 “으으으” 하는 신음소리만 들은 소방관이 전화번호 하나만 갖고 주변 동사무소 등에 주민 검색을 요청해 신고자를 살렸다. 신고자는 쇼크 증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112와 119는 절체절명 순간에 사람 살리는 생명줄이다. 이런 세 자리 응급전화를 1930년대에 만든 영국은 999를 쓴다. 이를 본떠 미국과 캐나다에선 911을 만들었다. 화재·범죄·응급 신고를 같이 받는다. 일본은 112로 정했다가 오접(誤接)이 잦자 119로 바꿨다. 우리도 1935년 119를 시작했다. 범죄 신고를 따로 하는 112를 만든 건 1957년이다. 비상통화기 6대로 시작했는데 ‘일일이(112)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황당한 신고나 허위 신고도 많다. “다리 아프니 집까지 태워 달라” “기분 우울하니 소방관 보내 피리 불어달라” “배우 안성기씨 바꿔달라”는 것도 있었다. 8년 전 인천소방본부는 ‘119 신고 황당 베스트 10′을 선정하기도 했다. 112엔 허위 신고가 많다. 한 해 1만건 넘은 적도 많다. 10년 전엔 “괴한에게 납치됐다”고 거짓 신고해 50명의 경찰과 순찰차를 출동하게 한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792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한 적도 있다. 허위 신고에 대한 첫 손해배상 판결이었다.
▶미숙한 대응도 있었다. 10년 전 수원에서 오원춘에게 끌려간 여성이 112로 전화를 걸어 7분 36초나 연결됐는데도 경찰이 헤매는 바람에 살해되고 말았다. 피해 여성이 장소를 어느 정도 특정했는데도 “거기가 어딥니까”만 되풀이해 물었다. 이 사건 후 경찰은 112 신고 총력 대응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로 112와 119가 동시에 비판받고 있다. 참사 4시간 전부터 112로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도 경찰은 별 대응을 하지 않았다. 참사 직후 119엔 구조 요청이 빗발쳤는데 첫 신고 접수 후 30분가량 지나서야 소방대응 1단계가 발령됐다고 한다. 소방청은 올해 소방의 날(11월 9일) 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 국민 정서를 고려했을 것이다. 시스템 문제는 고쳐야겠지만 일선에서 애쓰는 소방관과 경찰관 사기까지 꺾이지 않았으면 한다.
11.10 청담동 첼로 연주자의 ‘핸드싱크’
지난 5월 서울의 한 대학가 축제에 초청받은 아이돌그룹에 비난이 쏟아졌다. 무대에서 노래한 4곡 모두 ‘립싱크’였기 때문이다. 다른 가수들은 라이브로 노래 부르는 성의를 보였는데, 비싼 출연료 받고 와서는 립싱크 무대만 선보이고 다른 학교 축제로 횅하니 가버려 비난받았다.

/일러스트=박상훈
▶미리 녹음한 노래를 틀면서 무대 위에서는 노래 부르는 것처럼 입 모양만 맞추는 것을 ‘립(lip)싱크’라 한다. 마찬가지로 미리 녹음한 연주에 맞춰 무대 위에서 악기 연주하는 시늉을 내는 것을 ‘핸드(hand)싱크’라 한다. 한 록밴드는 지방 공연을 갔는데 드럼을 안 챙겨갔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급하게 야간 업소에서 드럼 빌려다 놓고 녹음된 반주를 틀면서 드럼 치는 시늉을 내는 핸드싱크로 공연했다고 한다. TV 음악 방송에서도 악기와 장비를 차릴 시간이 부족해 핸드싱크를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무대 사정이나 연주자 사정상 립싱크나 핸드싱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노래나 연주를 녹음해 뒀다가 트는 것이다. 립싱크나 핸드싱크를 악용한 ‘가짜’ ‘사기’ 소동도 적지 않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노래 부른 9세 소녀가 실은 다른 어린이가 부른 노래에 맞춰 립싱크만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샀다. 1990년 그래미 신인상을 탄 유럽의 흑인 듀오 ‘밀리 바닐리’는 알고 보니 무대 위에서 춤추며 입만 벙긋거렸던 ‘붕어 가수’임이 들통나 그래미상을 반납했다. 독일의 유명 음악 제작자가 노래 잘하는데 외모가 떨어지는 가수들을 숨겨둔 채 외양과 춤 실력이 빼어난 두 흑인 남성을 앞세워 립싱크를 악용해서 스타로 만든 희대의 팝 사기극이었다.
▶대중음악계에서 주로 이야기하던 핸드싱크가 어제 온라인에서 갑자기 화제가 됐다. 한 여성 첼리스트가 첼로를 연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여럿 띄워놓았는데, 실은 다른 실력 있는 첼리스트들의 연주를 틀어놓고는 마치 자기가 연주하는 것처럼 시늉만 한 ‘첼로 핸드싱크’라는 폭로가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야당 대변인이 국감장에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심야에 청담동 술집에서 이 여성의 첼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장본인이다.
▶'첼로 핸드싱크’ 폭로가 나오자 이 여성은 문제 영상을 모두 삭제하고 유튜브 계정에서 자기 이름도 지워버렸다. 첼로 연주 영상만 가짜였는지, 이 여성의 발언도 거짓이었는지, 밝혀져야 할 것은 아직 더 남았다.
11.11 ‘내게 고마워하라’는 文
사람들은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진심일 때도 있고 의례적이거나 정치적 수사로 쓸 때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고맙다’라는 말을 특이하게 쓴다. 그는 과거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안철수 의원과 후보 단일화 회동을 한 이후 “OOO라는 식당 이름이 얼마나 예쁘냐. 그 이름을 써서 참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마운지 설명은 없었지만 회동 이후 본인이 단일 후보가 된 것이 좋다는 뜻처럼 들렸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팽목항의 세월호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000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썼다. 미안함은 알겠지만 참사 희생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세월호 참사 덕분에 탄핵 사태가 나고 본인이 대선에 이길 수 있게 됐다는 말로 들렸다. 문 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참사 희생자들에게 ‘고맙다’고 했으면 정치 생명이 끊어졌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출간한 에세이집 ‘문재인의 위로’에서 ‘나를 필요로 해줘서 고맙다. 덕분에 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나를 의심해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더 정직할 수 있었다. 나를 이해해 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더 소신껏 일할 수 있었다. 나를 미워해 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썼다. 정말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했다는 자화자찬이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라’는 말도 잘 한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3월 대선 때 “정권 심판이라는 구호는 부당하다”면서 “마지막까지 애쓰는 대통령에게 수고한다, 고맙다고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인터뷰에서 ‘미친 집값’과 ‘영끌족 양산’을 만든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고마워하라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풍산개를 키우다 돈 문제로 정부에 반납한 것에 대해 “지난 6개월간 무상으로 양육하고 사랑을 쏟아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본인이 키우던 개를 정부가 월 250만원씩 지원해 주지 않는다고 내쫓은 사람이 도리어 ‘내게 고마워하라’고 한 것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개에게 정이 들어 내보내지 못한다고 한다. 애견인인 듯 비쳤던 문 전 대통령에게 그런 ‘정’은 없는 것 같다. 대신 ‘모두가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독특한 정서를 가진 듯하다.
11.12(토) 11월 11일 11시
1951년 4월 24일 영연방군에 배속된 캐나다 부대는 경기도 가평 계곡에서 중공군과 1박 2일간 백병전을 벌였다. 450명이 서울로 진격하는 중공군 5000명의 남하를 저지했다. 여기서 중공군을 막아내며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줬다. 캐나다 하원이 참전을 결정하자 전국에서 자원 입대자가 밀려들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청년들이 2주 넘게 기차를 타고 미국 시애틀에 온 뒤 다시 2주 가까이 미군 수송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총 2만6791명이 참전했다. 당시 캐나다 전체 병력의 절반이었다.

▶국제사회에서 6·25 전쟁은 한동안 ‘잊힌 전쟁’이었다. 미국의 6·25 영웅 웨버 대령은 6·25를 ‘다섯 문단 전쟁’이라 불렀다. 미 고교 교과서에 이 전쟁을 다룬 대목이 다섯 문단이었다. 생존한 참전 장병에게 한국은 한동안 죽음, 공포의 땅이었다. 생존 장병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유엔기념공원이 있다. 세계 유일 유엔군 묘지다. 1951년 유엔사가 전사자 안장을 위해 조성했고, 1959년 한국 정부가 유엔 측에 기부했다. 캐나다 참전 군인 381명을 비롯해 11국 2315명이 잠들어 있다. 관리도 11국이 함께 맡는다. 영국의 경우 전사자가 1078명인데 80%가 넘는 889명이 이곳에 묻혀 있다.
▶11월 11일인 어제 오전 11시 정각.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사이렌이 울리자 700여 명이 묵념했다. 같은 시각 미국 4개 도시와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용사들을 기리는 ‘턴 투워드 부산’ 행사였다. 캐나다 참전 용사 빈센트 커트니의 제안으로 2007년 시작됐다. 2008년부턴 한국 정부 기념식이 됐고, 점차 참여국이 늘어 지금은 파병국 대부분이 함께한다. 11월 11일은 원래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자 영연방 국가들의 현충일이다. 1918년 연합군은 전쟁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기억하기 쉽도록 11이 세 번 겹치는 ‘11월 11일 11시’를 종전 시점으로 정했다.
▶부산에 잠든 2315명 가운데 14명은 2015년 이후에 안장됐다. 2010년부터 본격화한 보훈처의 초청 사업으로 한국을 다녀간 뒤 “죽으면 부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사람들이다. 방한 일정 마지막이 유엔기념공원 방문이다. 한국의 발전상과 묻혀있는 전우들을 보고 나면 대부분 자신도 부산에 묻히겠다고 결심한다고 한다. 이들이 죽어서도 대한민국을 지켜주고 있다.
11.14(월) 세븐 사인
미국의 10월 물가 상승률이 7.7%라는 발표가 지난주 나왔다. 금융시장에서 ‘세븐 사인’이라고 부르며 환호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주가가 급등했다. 뉴욕 증시가 연이틀 상승하고 11일 우리나라 주가도 급등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하루 만에 60원 가까이 뚝 떨어졌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AP 연합뉴스
▶‘세븐 사인’(The Seventh Sign)은 데미 무어 주연의 1988년작 영화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을 토대로, 인류가 멸망하는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서 7가지 불길한 전조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는 상황을 그렸다. 만삭의 임산부로 등장한 데미 무어가 영혼 없는 아기가 태어난다는 일곱번째 예언의 실현을 막으려고 아기를 살리고 대신 죽는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40년 만에 가장 높다. 지난 6월에는 9.1%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팬데믹에 풀린 돈 때문에 세계 각국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Fed) 의장은 작정하고 ‘제2의 폴 볼커’가 되겠다고 했다. 어떤 고통이 따르더라도 풀린 돈을 거둬들여 물가를 최우선으로 잡겠다고 선언했다. 올 3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려 6월부터는 네 차례 연속으로 0.75%포인트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감행했다.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에도 물가가 급등했다. 1979년 폴 볼커가 연준 의장으로 취임할 당시 물가상승률은 11%가 넘었다. 취임 두 달 만에 볼커는 토요일 저녁에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기준금리를 한 번에 4%포인트 올렸다.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할 정도로 과격한 금리 인상이었다. 2m 넘는 키에 무뚝뚝한 표정의 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는 11.5%이던 기준금리를 2년 만에 21.5%까지 올리며 돈줄을 조이고 또 조였다. 원성이 쏟아졌지만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15%까지 치솟은 물가 상승률이 1982년 3%대, 1983년에는 2%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인플레이션을 잡고서 미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됐다.
▶몇 년 전 같으면 물가 상승률 7%대는 인플레 경고등이 들어올 수치다. 그런데도 ‘세븐 사인’에 증시가 환호하는 건 8%대를 정점으로 인플레가 잡히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연준이 금리를 전보다는 살살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7%대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높다. 금리를 지금보다 높여서 물가를 7%대보다 낮추는 통화 정책은 상당 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11.15 대법원장다웠던 대법원장 윤관
전남 해남은 한반도의 남서쪽 끝에 자리한다. 6·25 발발 직후 국군이 남동쪽 낙동강 전선으로 밀려갈 때 지킬 사람이 없던 해남군에서 남은 주민들이 뭉쳐 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을 향해 총을 들었다. 중무장한 적군을 당해낼 수는 없었지만 의미 있는 호국 역사를 만들었다. 이때 주민을 이끌었다가 북한군에 끌려가 희생된 현산면장의 장남이 훗날 대한민국 대법원장이 됐다. 어제 작고한 12대 대법원장 윤관이다.

▶그의 어머니는 미역을 팔아 6남매를 홀로 키웠다. 두 아들은 모두 판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명예 이상의 풍요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이렇게 회고했다. “설마 나라에서 판사를 굶어 죽게 하겠느냐. 판사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거기에 약간의 여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공직자는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네가 판사로서 귀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할 뿐 부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2001년 월간조선 인터뷰)
▶광주법원 판사 때 누군가 쇠고기 몇 근을 신문지에 싸서 집에 놓고 갔다. 그것을 보자마자 그는 집 앞 빈터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외부 접촉을 피해 평판사 때부터 점심은 항상 구내식당에서 끝냈다. 취미도 돈 안 드는 등산이었다. 북한산만 수백 번 올랐다고 한다. 70세 이후엔 명예직까지 버리고 주로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병원에도 택시를 타고 홀로 다녔다. 병원 앞에서 1시간 동안 택시를 잡은 일도 있었다. 숨 거두기 전 그는 “어머니”를 반복해 불렀다고 한다.
▶1993년 대법원장이 됐을 때 한국 사회의 모든 권위가 무너지고 있었다. 법조계 역시 비리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공직자 재산 공개로 부동산 투기 의심을 받는 법관이 쏟아졌다. 그때 윤관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법원이 위기를 넘겼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대법원장 때도 그는 구내식당 음식을 집무실에 가져와 점심을 해결했고, 판공비를 아낀 돈으로 법원 직원들에게 명절 선물을 전했다.
▶그는 치우치지 않았다. 그래서 영장실질심사 제도처럼 검찰과 정치권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법 개혁을 무리 없이 성공시킬 수 있었다. 행정법원, 특허법원 설립도 그가 대법원장 때 결정됐다. 부드러움이 날카로움보다 강했다. 윤 전 대법원장은 청렴 일화가 오히려 업적을 가린다고 할 정도로 한국 사법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진실로 대법원장다웠던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대법원장답지 않은 어느 대법원장을 떠올리게 됐다. 그 자체가 윤 전 대법원장에 대한 무례로 느껴져 황송했다.
선우정 논설위원
11.16 빈 살만의 방한

▲/일러스트=박상훈
‘세계 1위 부자’ 일론 머스크보다도 개인 재산이 몇 곱절 많다는 ‘비공식 최고 부자’ 사우디 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7일 한국을 방문한다. 발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곧바로 한국행이다. 2019년 6월 이후 3년 만의 방한이다.
▶빈 살만의 위상은 3년 전보다 더 높아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는 돈방석에 앉았다. 부총리였던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9월 27일로 총리가 됐다. 외국 정상이 방문하면 우리 정부가 경호 인력을 제공하는데도 ‘철통 경호’를 위해 국내 사설 경호업체들과 별도 계약을 맺었다. 국내 경호업체들이 때아닌 ‘빈 살만 특수’를 누리고 있다. 경호업체 계약을 대행한 국내 로펌이 사실상 빈 살만의 사설 경호를 진두지휘한다.
▶왕세자가 투숙하는 서울 롯데호텔 로얄스위트 객실은 모디 인도 총리, 룰라 브라질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같은 세계적 인사들이 묵었던 곳이다. 이번 빈 살만의 투숙과 경호는 그중에서도 ‘역대급’으로 꼽힌다. 2주간 객실 400개를 예약하고 고급 차량 200대가 동원된다. 방한 일주일 전부터 사우디 수행원들이 먼저 도착해 왕세자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빈 살만은 소음에 민감한 성격이라 비행기 이착륙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고 한다. 17일 이른 새벽에 도착해 체류 시간은 만 24시간이 되지 않는다. 단 하루 묵는데 거의 이삿짐 수준의 개인 물품이 항공편으로 배송돼 롯데호텔 주차장에 도착한 모습이 네티즌들 사진에 포착됐다. 개인 물품에는 부피가 꽤 나가는 헬스 기구도 있었다.
▶3년 전 방한 때 빈 살만은 10조원 투자를 결정했다.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 SK 최태원, LG 구광모, 롯데 신동빈 회장과 티타임도 가졌다. 이번에도 숙소인 롯데호텔에서 재계 총수들과 티타임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일정은 전부 대외비다. 왕세자 측에 일정을 물어보는 것조차 금기시된다고 한다. 한 기업인은 “빈 살만 왕세자를 보는 것은 거의 ‘알현’ 수준”이라고 했다.
▶'개혁 군주’를 자처한 37세 지도자 빈 살만은 고유가로 벌어들인 달러로 ‘석유 이후의 사우디’를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700조원을 투자하는 ‘네옴시티’가 대표 사업이다. 그의 방한 소식에 네옴시티 관련 기업의 주가도 오르고 있다. 이번 방한 때 통 큰 거래가 성사돼 우리 기업들에 ‘제2의 중동 붐’이 오고 온통 어두운 지표뿐인 경제에 숨통이 트이기를 기대한다.
11.17 ‘파란 눈의 聖者’ 위트컴 장군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 앞 대화재로 주택 수천 채가 불탔고 이재민 3만명이 거리에 나앉았다. 휴전 직전 유엔군 제2군수사령관으로 부산에 도착한 리처드 위트컴(1894~1982) 장군이 그 참상을 보고 이재민을 불러 모아 음식을 나눴다. 군수물자 전용 죄목으로 워싱턴 청문회에 소환되자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리처드 위트컴(Richard S. Whitcomb) 장군/위트컴희망재단
▶이후 한국에서 그의 삶은 인류애의 실현 과정이었다. 전쟁으로 환자가 넘쳐나자 AFAK(미군대한원조) 기금을 지원받아 160병상을 갖춘 3층짜리 건물을 지어 준 것이 지금의 메리놀 병원이다. 건축비가 모자라자 휘하 장병에게 ‘한국사랑기금’이란 이름으로 월급의 1%를 기부하자고 호소했다. 부산의 유엔평화기념관엔 “가장행렬을 해서라도 기금을 모으겠다”며 군복 대신 갓과 도포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던 그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람들은 위트컴 장군을 ‘파란 눈의 성자(聖者)’라 불렀다. 부산대 발전의 초석도 그가 다졌다. 1953년 종합대로 승격한 부산대가 캠퍼스를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자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50만평을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건의해 확보한 터가 지금의 부산대 캠퍼스다. 대학 건물 지으라며 25만 달러 원조금도 마련해 줬다. 대학 정문까지 이어지는 1.6㎞ 진입로도 그가 닦았다.

▶전역 후엔 한국에 남아 한미재단을 설립하고 전쟁고아 돌봄 사업을 시작했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가 고아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 천안의 한 보육원을 방문했다가 그곳 원장을 만나 결혼한 이가 한묘숙(1927~2017) 여사다. 별세하며 아내에게 유언 두 개를 남겼다. 하나는 “나를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찾아 고향에 보내라”는 것이었다. 한 여사는 ‘위트컴 희망재단’을 만들어 재산과 연금까지 쏟아부으며 유해 봉환에 애쓰다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남편 곁에 묻혔다.
▶위트컴 장군에게 지난 11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한국 정부는 별세 40주년이 돼서야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의 한국 사랑을 기리는 조형물 건립 추진 시민위원회도 지난주 발족해 모금 운동에 나섰다. 내년 11월 11일 부산 평화공원에서 제막식을 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이 전쟁 폐허를 딛고 번영을 이루기까지 우리의 피땀만 흘린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낯선 땅에 찾아와 인류애를 실천한 위트컴 장군 같은 이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 숭고한 사랑과 희생의 이야기를 찾아내 기려야 한다.
11.18 “돈 없어 결혼 못해”

“아침에는 편의점 빵을 먹고 점심은 주먹밥과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밤에도 가게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내 몸 대부분이 편의점 식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가게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일본 여류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18년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36세 독신 여성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 ‘편의점 인간’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다.
▶밀양의 오래된 아파트에 홀로 사는 47세 유튜버 ‘독거 노총각’은 짠한 일상의 동영상으로 구독자 17만명인 유명 인사다. 프랑스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촬영까지 나왔다. 새벽에 혼자 라면 끓여 먹으며 “삶은 라면입니다. 삶이 다 이런 거죠”라고 책 읽듯 읊조리고 “김밥 3줄에 4500원을 소비하였다. 월급날이라 과소비했나. 한 줄 4500원짜리 고급 돈가스 김밥 먹으면서 장가 못 갔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가는 거죠”라고 목 늘어진 누런 러닝셔츠를 입고 독백한다. 그의 동영상에는 독신남들의 응원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린다. “대한민국 독거 노총각들의 희망이자 등불” “우리 함께 노총각으로 100세까지 가봅시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결혼해야 한다는 사람이 2년 전보다 더 줄어 50.0%에 그쳤다. 미혼 남자는 37%, 미혼 여자는 22%만 결혼을 한다고 했다. 연애도, 동거도, 출산도 자유로운 서구형 비혼족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결혼 안 하는 건 돈 없고(28.7%) 일자리 불안정해서(14.6%) 못 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혼인율까지 바닥은 아니다. 2020년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4.2로, OECD 15국 중 여섯 번째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우리 절반도 안 된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우리보다 높다. 신생아 10명 중 4명가량이 결혼 안 한 동거 커플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우리와 일본의 혼외 출산 비율은 2.1%, 2.3%에 불과하다. 우리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야만 아기도 낳는 사회다.
▶경기 침체로 돈 없고 일자리 없어 젊은이들이 결혼 못하고 그 결과 출산율이 뚝 떨어지는 현실을 먼저 경험한 일본은 나라가 앞장서서 젊은이들 결혼을 장려했다. 2000년대 중반 ‘혼활(婚活·결혼활동)’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우리도 ‘혼활’ 장려가 필요한 수준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결혼 및 출산 대책은 ‘미쳤다’는 말까지 듣는 집값을 떨어뜨리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11.19(토) 카타르의 두 번째 ‘네이션 빌딩’

대항해 시대를 연 포르투갈은 16~17세기 페르시아만(灣) 일대를 150여 년 지배했다. 그런데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땅”이라며 정복을 포기한 곳이 있다. 지금의 카타르다. 카타르는 여름 기온이 최고 50℃까지 오른다. 습도도 문제다. 다른 사막은 낮은 습도 덕에 밤엔 견딜 만하지만, 경기도만 한 땅 거의 전체가 바다에 둘러싸인 카타르는 밤낮없이 한증막이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이 솟는다.
▶카타르는 아랍어로 ‘국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1971년 영국에서 독립할 때까지 국가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땅이었다. 산업도 없고 농사도 못 지었다. 오래도록 진주조개잡이가 생계 수단이었다. 그마저 20세기 초 인공 진주가 등장하며 파국을 맞았다. 2만명 채 안 되는 인구가 먹고살 길을 찾아 주변 국가로 흩어졌다. 항구도시였던 수도 도하는 해적 소굴로 악명 높았다.
▶카타르 왕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면서 개혁을 시작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적극 개발을 시작했다. 1인당 월 500만원이 넘는 기본 소득과 의료·수도·전기를 무료로 제공하는 복지 천국도 그 덕에 가능했다. 카타르 국가 재정 수입 90%가 천연자원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밖에 없다. 경제성장률도 0%대로 정체돼 있다. ‘석유 이후’를 고민하는 이유다. 영국에서 함께 독립한 아랍에미리트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경쟁하고 있다. 월드컵 유치도 그 일환이다.
▶뜨겁고 습한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지로 최악이다. 이를 극복하려고 지난 10년간 돈을 쏟아부었다. 그 상징이 냉풍구 1500여개를 갖춘 에어컨 경기장이다. 카타르 프로팀에서 뛰었던 한국 선수는 “가만히 있을 땐 겉옷을 걸쳐야 한다”고 했다. 나라 전체는 거대한 미술관으로 꾸몄다. 제프 쿤스가 선보인 ‘듀공’, 덴마크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사막 한가운데 세운 조형물 등 100점 넘는 미술품이 들어섰다. 여기에만 지난 10년간 해마다 1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문화를 앞세워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카타르 월드컵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간의 유치 과정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FIFA 언커버드’는 이번 월드컵이 카타르인에게 ‘국가적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원동력’ ‘국가 건설 과제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자원 부국 이후를 대비하는 두 번째 ‘네이션 빌딩’이라는 의미다. 축구 경기가 실력 겨루기를 넘어 한 나라의 미래를 새로 여는 총력전 도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것도 이번 월드컵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11.21(월) 슬리퍼 신은 기자
대학 시절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다. 대입 관문을 뚫었다는 만족감에다 집을 벗어난 해방감이 더해 나태와 방종이 일상이 된 학생이 많았다. 늦잠 자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 신고 헐레벌떡 강의실에 뛰어가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교수는 못 본 체했지만 깐깐한 교수들은 “신성한 강의실을 모독하는 차림”이라며 내쫓았다.

▲/일러스트=박상훈
▶직장에서도 슬리퍼는 요주의 대상이다. 기업 컨설턴트들은 외부 손님이 가장 안 좋은 첫인상을 갖게 되는 경우를 ‘직원들이 슬리퍼 신고 로비나 엘리베이터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볼 때’라고 한다. 자기 자리에서 슬리퍼 신고 업무를 보더라도 상사에게 보고하거나 다른 부서에 갈 때는 정장 신발로 갈아 신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박기종의 ‘직장인 레서피’에서)
▶2017년 여름 미국 의회에서 몇몇 여기자들이 민소매 원피스 차림으로 취재하러 들어가다가 ‘드레스 코드’ 불량을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했다. 무더위 때문에 그랬다는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취재원을 만나려면 예의에 맞게 입고 오라는 거였다. 2005년 미국 여자 하키 우승팀이 백악관 초대를 받아 부시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했는데 몇몇이 비치 샌들을 신은 것이 논란이 됐다. CNN이 이를 보도하면서 앵커가 “대통령도 종종 청바지를 입는다”고 두둔하자, 백악관 출입 기자는 정색을 하며 “백악관에 걸맞지 않은 차림새”라고 반박했다.
▶수습 기자 시절, 선배들은 취재원을 만날 때 가급적 양복 재킷을 입고, 나이 어린 전경들한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쓰라고 당부했다. 당시 방송사 기자들은 양복, 넥타이를 기자실 한쪽 편에 두고 있다가 리포트할 일이 생기면 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가곤 했다. 엊그제 대통령 출근길 문답에서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나와 팔짱을 낀 채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 일이 논란을 빚고 있다. 여당이 “무례하다”고 지적한 반면 야당은 ‘좁쌀 대응’이라고 반박했다.
▶기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질문 내용이 공격적이고 무례하더라도 국민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면 용인이 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장례식장에서 어떤 기자가 ‘당 차원의 향후 계획’을 묻자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이런 자리에서 예의가 아니지 않나. XX자식 같으니라고”라고 화를 냈지만, 기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진 않았다. 대통령실 담당 기자에겐 매일 아침 대통령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출근길 문답 시간이 가장 중요한 일과일 것이다. 이런 중요한 취재 업무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초년병 시절 선배들로부터 꾸중 들어가며 배운 ‘기자의 예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김홍수 논설위원
11.22 어느 核가족의 경사
2009년 4월 27일 북한 TV를 보던 정보 당국자들이 눈을 의심했다. 김정일의 원산농업대학 시찰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서 ‘놀라운’ 사진이 방송을 탔다. 나머지 32장엔 김정일이 등장했는데 이 사진에만 그가 없었다. 대신 젊은 남녀 3명과 노인이 서 있었다. 김정일의 세 자녀 정철·정은·여정이 김기남 선전비서와 찍은 사진이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 김정은이 공식 등장했다.

▶”조선인민군에게 영광 있으라.” 1992년 4월 25일 김정일의 열병식 연설로 외부에 공개된 유일한 육성이다. 김정일의 비밀주의·신비주의는 강박에 가까웠다. 후계자로 내정된 게 1974년인데 1980년 공식 등장 때까지 ‘당중앙’이란 별칭으로만 불렸다. 가족사 노출도 극도로 꺼렸다. 출생지, 출생연도, 이름까지 조작해 쌓아올린 우상화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했다. 처조카 이한영이 탈북해 김씨 왕조 치부를 자꾸 드러내자 암살조를 남파해 살해했다.
▶김정은은 다른 스타일이다. 육성 신년사를 비롯해 공개 연설을 자주 한다. 농구광인 김정은은 전직 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5차례나 초청했다. 로드먼은 평양을 다녀올 때마다 보고들은 것을 외부에 떠벌렸지만 김정은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김정은이 유일하게 공개하지 못한 게 모친 고용희다. 북에서 3등 시민 취급받는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인 탓이다. 김정은 집권 10년이 지나도록 생일도 공개하지 못하는 속사정이다.
▶김정은은 지난 18일 신형 ICBM 발사 현장에 딸을 데려갔다. 로드먼이 2013년 방북 때 안아봤다는 둘째 주애일 가능성이 크다. 10세 전후일 어린 딸과 아버지가 놀이공원이 아니라 기립한 미사일 앞에서 손잡고 걸어가는 장면은 기괴했다. 유학 중이라는 2010년생 장남, 2020년생 막내 딸도 공개할지 모른다. 금수저가 아니라 ‘핵수저’ 자녀들이다. 미사일 발사가 성공하자 리설주는 손뼉을 쳤고, 김여정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평소와 달리 군 수뇌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김씨 일가 보위를 책임지는 조직비서, 우상화 총책인 선전비서가 만세를 불렀다. ICBM 성공이 김정은의 집안 경사란 얘기다. 4대 세습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할아버지·할머니 없이 부모와 자녀만으로 구성된 가족을 핵(核)가족이라고 불렀다. 대가족의 반대였다. 그런데 한자도 똑같은 ‘핵가족’이 평양에 등장했다. 북한 주민은 헐벗고 굶주렸다. 그런데 김씨 핵가족은 핵미사일로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지킨다고 한다.
11.23 천덕꾸러기 된 종이책

/일러스트=박상훈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장서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를 수 없는 소유욕이 있어야 진짜 장서가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생전에 살던 집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이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냐?”고 물으면 “다 읽은 책을 뭣 하려고 집에 두나? 여기 있는 책은 지금부터 읽을 것들”이란 말로 기를 죽였다. 소설가 김영하는 “책이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사 놓은 것 중에 읽는 것”이란 말로 장서가들의 책 욕심을 표현했다.
▶종이가 없던 시절, 양피지로 300쪽짜리 책 한 권 만들려면 양 100마리가 필요했다. 필경사의 작업도 더뎌서 1년에 2권 정도 필사했다. 15세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서가 겨우 122권이었다. 중세 직업 중엔 필사할 책을 찾아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는 책 사냥꾼도 있었다.
▶구텐베르크 이전엔 책값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독일 바이에른에선 포도밭을 팔아야 책 한 권 샀다는 기록이 있다. 책 한 권이 품은 가치도 오늘날과 비할 수 없었다. 동로마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15세기 오스만튀르크에 함락당하자 그곳 학자들이 애지중지하던 장서를 들고 서유럽으로 피신했다. 그중엔 1000년간 잊혔던 플라톤과 소포클레스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 때 넘어간 책은 고작 230여 권이었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일조했다.
▶평생 책을 읽고 수집한 이들이 책을 기증하려 해도 받아주는 도서관이 없어 애태운다는 기사가 본지에 실렸다. 실제 그런가 싶어 인근 도서관에 기증 절차를 물었더니 ‘우리 도서관 취지에 맞는 전문 도서로 최근 5년 이내 출판된 것’ 같은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책을 기증받으면 감사장을 주던 도서관들이 이처럼 태도를 바꾼 것은 책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만 해마다 약 8000만권이 쏟아져 나온다. 가정에서도 책장을 차지하는 종이책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영화 ‘매트릭스’에선 주인공이 부피도 무게도 없는 전자책으로 가득한 가상 서가에 접속해 지식을 얻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전자책은 단점도 뚜렷하다. 자체 발광 디스플레이가 끊임없이 뇌를 교란해 독서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전자책을 읽을 때 뇌는 대강 훑어보거나 핵심만 추린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에서 전자책의 경쟁 대상은 가벼운 읽을 거리를 담은 문고본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간의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전자책의 한계도 곧 극복할 것이다. 도서관 장서가 어떻게 바뀌든 지식 축적의 보고라는 본연의 기능만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
11.24 유엔 안보리
북한 외교관들은 불법이 일상이다. 대사관 운영비와 충성 자금 상납액을 위해 마약·위조지폐 유통을 한다. 아프리카에선 코끼리뿔, 상아를 외교 행낭으로 운반하다 적발되는 일이 다반사다. 이 스트레스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북한 공관이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이다. 평양에서 생활비를 어느 정도 챙겨준다. 차마 미국 땅에서 불법을 저지르라고는 못 하는 것이다.

▲지난 8월 11일(현지 시각)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45년 유엔 창설 당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화민국(대만)이었다. 중화민국은 공산당과 전쟁에 져 1949년 대만으로 쫓겨간 뒤에도 이 지위를 유지했다. 소련은 이게 불만이었다. 1950년 1월 중화민국 축출 결의안이 부결되자 안보리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5개월 뒤 북한이 남침했다. 안보리는 유엔군 한국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소련의 안보리 불참이 없었다면, 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유엔 회원국도 아니면서 1970년대까지 유엔 창설일을 국경일로 지켰다. 북한은 1991년 한국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줄기차게 가입 신청서를 낸 한국과 달리 북한은 한동안 ‘고려연방공화국’이란 국호로 가입하겠다고 버텼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로 소련·중국이 한국과 수교하자 위기감을 느낀 북은 마지못해 동시 가입을 택했다.

▲/일러스트=양진경
▶6·25 전쟁 이후 유엔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미·소의 극한 대치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소련 붕괴 이후 평화 유지 활동의 길이 열렸지만 미숙한 대처로 소말리아, 보스니아, 르완다에서 대량 학살을 막지 못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보호책임 원칙’(R2P)을 도입했다. 특정국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면 주권을 무시하고 국제사회가 개입한다는 원칙이다. 2005년 유엔 정상회의에서 채택돼 2007년 케냐 인종 학살, 2011년 리비아 내전 등에 유엔이 개입하는 명분이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리 무용론이 거세다. 평화 수호 의무를 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침략자로 돌변해 안보리의 개입을 봉쇄했다. 유엔은 2차 대전 참상에 대한 반성이 낳은 결과물이다. ‘더 이상 힘으로 국경선을 바꿔선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정신이다. 그런데 상임이사국이 힘으로 국경선을 바꾸려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 그런 러시아와 중국은 자신들이 찬성한 안보리 결의를 북한이 올해에만 63차례나 위반했는데도 북을 감싸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안보리의 권능을 스스로 짓밟는다. 유엔 역사가 80년이 다 돼간다. 100년을 맞을 수 있을까.
11.25 비닐봉투여 안녕!

▲푸른색 비닐봉지에 온몸이 갇혀버린 황새(왼쪽). 코에 12㎝ 길이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신음하는 바다거북(오른쪽).
국내 최초 테이크아웃 커피 매장은 1998년 서울 강남역 지하에 문을 연 할리스커피였다. 그 이듬해 스타벅스가 첫 점포를 열었고, 서울 이화여대 앞이었다(홍수열,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을 고른 것은 젊은 여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일회용 컵에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그 후 일회용 컵 커피 문화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2015년 8월 미국 해양생물학 연구팀이 코스타리카 앞바다에서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힌 바다거북을 구조했다. 연구팀이 집게로 빨대를 빼내는 동안 바다거북은 입을 벌리면서 괴로워했다. 코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동영상은 지금까지 1억회 시청됐다. 시애틀시(市)는 2018년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시켰고, 이어 스타벅스가 플라스틱 빨대 퇴출 방침을 발표했다. 매년 바다거북 10만마리, 바닷새 100만마리가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는다고 한다.
▶어제부터 편의점, 제과점 등에서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됐다. 카페 내에서 1회용 빨대, 종이컵도 쓸 수 없다. 비닐봉투는 1965년 스웨덴에서 처음 개발됐다. 종이봉투를 만들려면 나무를 베야 하기 때문에 숲 보호 취지에서 종이봉투를 대신할 비닐봉투를 만든 것이다. 비닐봉투도 애초엔 환경보호 목적이었다. 그런데 2018년 기준 국내에서만 비닐봉투가 255억개, 일회용컵은 294억개 사용됐다. 환경이 견딜 수가 없다.

▶의외로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비닐봉투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방글라데시는 2002년 비닐봉투를 금지시켰다. 버려진 비닐봉투가 하수구를 막아 홍수를 악화시키는 일이 빈번하자 취한 조치였다. 인도에선 소가 버려진 비닐봉투를 먹고 죽자 2016년 규제에 나섰다. 아프리카도 25국 이상이 비닐봉투를 금지하고 있다. 비닐봉투가 물 흐름을 막아 웅덩이가 생기는 바람에 말라리아 모기가 극성을 부렸다. 케냐에선 세 번 적발되면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찬희, 플라스틱 시대)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시행 후 아파트 층마다 있던 쓰레기 투입구를 막아버렸다. 그 뒤 쓰레기를 버리러 1층으로 내려가야 하게 됐다. 시민들이 그 불편을 잘 견뎌준 덕분에 종량제가 세계적 성공 사례로 정착했다.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다음이 플라스틱 시대라고도 한다. 플라스틱은 너무나 편리하지만 환경적 부담도 크다. 과학기술에 의한 해결책이 나오기 전엔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비닐봉투여 안녕!
11.26(토) 일본인의 청소 본능
미국 야구가 일본과 다른 점은? 일본의 야구 영웅 이치로가 답했다. 야구 기술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과 달리 미국 더그아웃은 너무 더럽다.” 이치로는 야구 실력만큼 청소광으로 유명하다. 신발 밑창 흙을 쇠솔로 긁어내고 유니폼 잔털을 소형 가위로 제거한 다음 필드에 나갔다. “깨끗한 글러브로 훈련해야 몸에 새겨진다. 더러우면 남지 않는다.” 이러니 선수들이 침과 해바라기 씨를 쉴 새 없이 뱉는 미국 더그아웃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러스트=박상훈
▶일본에 도착하면 많은 외국인이 깨끗하다는 첫인상을 받는다. 먼저 도로가 깨끗하다.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도 깨끗하다. 화물차, 공사 트럭까지 깨끗하다. 심지어 청소차인데 광택이 난다. 과장이 아니다. 황사, 미세 먼지가 한국보다 덜하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일본인은 청소를 자주 한다. 인부가 공사장 울타리 흙먼지를 작은 솔로 털어내는 풍경은 일본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 “금방 또 쌓일 먼지를 왜 털어낼까. 삽질이나 더 하지.” 이렇게 말하는 외국인도 많다.
▶기업가 마쓰시타가 일본 정치에 새 피를 공급하겠다며 정경숙을 만들었다. 각계 최고 인재를 모아 자유롭게 공부하도록 했는데 청소만 의무였다. 모든 학생이 아침 6시부터 30분 동안 정경숙 전체를 청소했다. 일본은 초등학교 때부터 의무적으로 청소를 시킨다. “청소는 모든 것의 출발이다.” 이런 청소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이 박태준이다. 포항제철 건설 때 그가 내세운 첫 철칙이 공사장 청소와 정돈, 그리고 목욕이었다. 효과가 컸다고 한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 응원단의 청소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마지막까지 남아 경기장을 청소했다. 선수들도 사용한 라커룸을 말끔히 청소하고 ‘감사하다’는 메모와 함께 접은 종이학까지 남겨놓고 떠났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반복되는 일인데도 늘 화제를 모은다. 다른 나라 사람에겐 별난 일이기 때문이다.
▶더럽다는 뜻의 ‘게가레(穢れ)’는 일본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한다. 건국 신화에서 ‘불결’은 죽음과 악을 상징한다. 시조신(始祖神)부터 ‘게가레’를 씻어내는 목욕 의식을 거쳐 탄생한다. 일본 사람들이 청소할 때 여기까지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일본의 청소 습관은 이런 신화가 토속 종교를 통해 일상생활에 뿌리를 내린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남에게 폐 끼치는 행위를 극도로 경계하는 공동체 문화, 항상 남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이는 일본인의 의식 구조도 영향이 크다고 한다. 가히 일본인의 ‘청소 본능’이라고 할 만하다.
11.28(월) ‘존귀하신 자제분’

공포정치의 주역 중에 ‘딸 바보’가 적지 않다. 나치 독일의 헤르만 괴링은 자기 딸 모습이 담긴 우편엽서를 전국 문방구에서 팔도록 했다. SS친위대 대장 힘러는 유태인을 처형하던 강제수용소 인근 허브 밭에 딸을 데려가 다정한 아버지 모습을 연출했다. 1000만명 넘는 국민을 학살한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외동딸 스베틀라나를 ‘작은 참새’라 부르며 아꼈다. 북한 김정일도 생전에 김여정을 ‘여정 공주’라고 불렀다.
▶2018년 4월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했다. 김정은은 ‘핵 포기 의지가 있는냐’고 묻는 폼페이오 장관에게 “나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내 아이들이 평생 핵무기를 짊어지고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답했다. 미국은 이 발언을 근거로 북미 회담을 장밋빛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당시 다섯 살이던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요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모두 ICBM 관련 행사다. 18일 ‘화성17형’ 발사에 이어 27일에는 당시 공을 세운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딸을 데려갔다. 지난번엔 앞머리를 내리고 흰색 점퍼를 입어 어린이다운 복장이었지만, 이번에는 검은 코트를 입고 헤어스타일도 어머니 리설주처럼 꾸몄다. 관영 매체는 ‘사랑하는 자제분’에서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호칭을 높였다. 군복 입은 지휘관이 10세 전후의 소녀에게 상체를 숙이며 공손히 손을 내밀었다. 얼굴을 공개한 이상 김주애는 해외 유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얘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은 이날 ICBM 이동식 발사 차량(TEL)에 ‘공화국 영웅’ 칭호를 내리고 메달, 훈장을 수여했다. 트럭에 영웅 칭호를 준 것은 어린 딸을 대량 살상 무기 행사에 데려간 것만큼이나 일반인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버지 김정일도 공장의 15톤 망치, 20미터 선반 기계에 영웅 칭호를 내린 적이 있다.
▶김씨 일가의 이런 행동은 상식을 뛰어넘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정은은 고모부를 고사총으로 쏴 죽이고 이복형을 독살하는 광기로 권력을 공고하게 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ICBM 행사에 딸을 ‘미래 세대의 상징’으로 동원했다고 본다. ‘핵만이 북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백두 혈통에 끝까지 충성하라’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한국을 겨냥한 ‘핵 선제타격법’까지 만들었다. 김정은이 연출하는 온갖 기괴한 행태는 핵보유국으로서 바깥세상을 향한 공포 마케팅도 겸하고 있을 것이다.
황대진 논설위원
11.29 다른 행성 같은 中 코로나 봉쇄
중국에선 방역요원을 다바이(大白)라 부른다. 상하의 일체형의 흰색 방호복을 입기 때문인데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봉쇄 정책에 대한 거부감과 조롱을 담은 신조어다. 얼마 전 중국 네티즌이 웨이보에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 중계 화면과 함께 “카타르의 코로나 상황이 비관적인가 봐요. 관중석이 온통 ‘다바이’네요”란 글을 적었다. 화면에 잡힌 관중석엔 방역요원이 아니라 중동 전통 복장인 흰색 토브 차림의 남성들이 앉아 있었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지친 중국인들이 노마스크 월드컵을 지켜보며 느낀 박탈감을 각종 풍자 게시물에 담아내고 있다. 관중 수만명이 노마스크로 목청껏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스크 쓰세요” “PCR검사 하세요”라는 중국어 안내 음성을 내보내는 식이다. “월드컵 관중과 중국인이 같은 행성에 사는 게 맞느냐”는 자조 섞인 글도 올라온다.
▶중국 당국은 제로 코로나에 대해 “과학적이고 정밀한 방역”이라고 한다. 높은 인구밀도와 열악한 의료 체계를 감안할 때 서방식의 ‘위드 코로나’는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경제에 독(毒)이다. 인구 2500만명의 상하이를 65일간 봉쇄하자 1분기 4.8%였던 경제 성장률이 2분기 0.4%로 주저앉았다. 올해 목표치인 5.5% 성장은 어려울 것이다.
▶당초 전문가들은 시진핑의 3연임을 확정 짓는 당대회만 끝나면 제로 코로나 정책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망은 빗나가는 것 같다. 상하이 봉쇄 총책인 리창 당서기가 서열 2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영전했다. 당 대회 직후 방역 당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발표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 24일 우루무치에서 아파트 화재로 10명이 죽고 9명이 다쳤다. 봉쇄 조치 때문에 대응이 지연되며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이 확산됐다. 카타르 월드컵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전국 도처에서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백색 종이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특정 주장을 담았다간 잡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바이’로 상징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았다고도 한다. 베이징대 학생들도 가세하고 있다. 베이징대 학생들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주역이다. 이번 시위 역시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국민들은 공산당식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무모하고 출구 없는 코로나 봉쇄가 계속되면 ‘백색 혁명’의 작은 불씨는 조금씩 커질 것이다.
11.30(수) 한국 NASA
2차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자 미국과 소련은 독일 과학자 포섭 경쟁을 벌였다. 700명이 넘는 독일 과학자가 미국 시민이 됐다. 그중 미국에 가장 먼저 도착한 127명은 베르너 폰 브라운이 이끄는 연구팀이었다. 로켓의 아버지라고 하는 폰 브라운은 스무 살 때 세계 최고 성능을 가진 A2 로켓을 만들었고, 독일군 로켓연구소에서 군사 로켓 개발을 총괄했다. 미국은 폰 브라운의 나치 독일 부역 기록까지 없던 일로 만들 만큼 공을 들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서초구 JW매리어트호텔에서 열린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뉴스1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는 미국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미국은 이듬해 항공우주국(NASA)을 만들었다. 폰 브라운은 자신이 구상하던 초대형 로켓을 개발하는 조건으로 NASA 로켓 책임자가 됐다. 3년 뒤 그는 백악관에 편지를 보내 “소련을 이기려면 인류를 달에 보내야 한다”고 해 케네디 대통령을 움직였다. 아폴로 우주인들을 달에 보낸 ‘새턴V’가 바로 폰 브라운이 구상한 로켓이었다.
▶’모두에게 이익을’이라는 모토를 가진 NASA 직원은 2만명에 육박하고 올해 예산은 32조원이다. 우리나라 전체 1년 연구·개발 예산이 30조원이다. 이런 자원으로 NASA는 공상과학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태양계 밖을 항해하는 보이저, ‘우주를 보는 인류의 눈’ 허블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NASA 작품이다. 지난 10월에는 탐사선 충돌로 소행성 궤도를 바꾸는 ‘다트’ 미션도 성공했다.

▶NASA는 공헌한 사람들을 잊지 않기로 유명하다. NASA의 첫 연구소에는 세계 첫 액체 연료 로켓을 만든 로버트 고다드의 이름이 붙었고, 우주센터 두 곳은 아폴로 계획을 이끈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에게 헌정됐다. 가장 최근에 만든 워싱턴 본부 건물은 메리 잭슨 빌딩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 등장했던 흑인 여성 공학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주항공청’ 설립을 공식화하고 2045년 화성에 착륙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대선 공약이었던 ‘한국 NASA’가 현실화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아쉬워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차관급 기관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못 하고, 안 하는 기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우주 시장의 후발 주자일 뿐이다. NASA와 기술력·인력 격차가 너무 커 비교하는 의미가 없다. NASA는 위대한 과학자와 정치가, 전폭적 믿음을 보낸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한국에 그런 과학자, 정치가, 국민이 있느냐에 달린 문제다.◎
박건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