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과학6-2022-1/ 01.05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테니스장 크기 ‘양산’ 펼쳤다 - 06.23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고통
우주과학6-2022-1
01.05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테니스장 크기 ‘양산’ 펼쳤다
망원경 영하 230도로 유지해 초기 우주 빛도 관측

▲지상에서 준비 중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5일 아랫부분의 차양막을 우주에서 펼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주말에는 위 부분의 주반사거울(노란색)까지 전개할 예정이다./NASA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테니스장 크기의 차양막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우주 공간에 망원경을 설치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를 넘어서 최종 성공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원격 조종으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에서 연 모양의 태양광 차단막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고 5일 밝혔다. 나사는 이번 주말까지 우주망원경의 반사거울을 완전히 펼칠 계획이다.
◇망원경 극저온 유지하는 핵심장치
나사는 한국 시각으로 5일 1시 58분에 차단막을 완전히 펼쳤다. 나사의 제임스 웹 프로그램 책임자인 그렉 로빈슨은 “태양광 차단막을 우주에서 펼친 것은 놀라운 성과이며 임무 성공에 결정적인 단계”라고 평가했다.
차양막은 가로세로가 14.2m, 21.2m로 테니스장 크기와 비슷하다. 플라스틱 재질의 막이 5겹으로 쌓인 형태이다. 각각 두께는 사람 머리카락 정도에 불과하다. 태양에너지와 지구, 달에서 반사되는 햇빛을 차단해 우주망원경을 섭씨 영하 230도 온도로 유지할 수 있다.

▲제임스 웹./조선DB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유럽의 아리안 로켓에 실려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발사됐다. 웹은 지난 31년 동안 가동된 허블 우주망원경과 마찬가지로 우주 연구가 목적이지만 최신 기술로 이전보다 더 먼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
제임스 웹은 빛의 영역 중 적외선을 포착한다. 가시광선을 주로 감지하는 허블 망원경보다 넓은 영역을 볼 수 있다. 가시광선은 별이 탄생되는 우주 먼지와 구름 지역을 통과하기 어렵지만, 파장이 긴 적외선은 이를 통과할 수 있다.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대폭발)으로 시작됐다. 나사는 제임스 웹이 135억년 전 초기 우주에서 탄생한 별에서 나온 빛을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말까지 주반사거울 완전 전개
제임스 웹 연구·개발에는 25년간 100억 달러(약 11조9000억원)이 투입됐다. 나사와 유럽우주국(ESA),캐나다가 공동 개발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핵심은 금빛 반사 거울 18개로 이뤄진 주반사거울이다. 금을 코팅한 베릴륨으로 만든 육각형 모양의 반사거울을 연결해 벌집 형태로 만들었다.
나사는 다음 단계로 반사거울 전개를 준비하고 있다. 반사거울도 차단막과 마찬가지로 로켓 맨 꼭대기에 접힌 채로 발사됐다. 이번 주 안으로 폭 74㎝인 보조거울이 주반사거울 앞으로 뻗은 8m 길이 지지대 끝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주반사거울은 가장자리 부분을 날개처럼 접어 로켓에 실렸다. 이 부분을 90도 회전시켜야 6.5m 폭의 표면이 완성된다. 이 과정은 주말쯤 이뤄질 전망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전개과정./NASA
제임스 웹은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먼 곳에 배치된다. 허블은 지구 상공 약 600㎞ 궤도를 돌며 우주를 관측하고 있지만 제임스 웹은 한 달 동안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곳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지구와 달 사이(38만5000㎞)보다 약 4배 먼 거리다.
이곳은 이른바 ‘라그랑주 L2′ 지점으로 태양·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중력)과 물체가 태양 주위를 돌면서 밖으로 벗어나려는 힘(원심력)이 서로 상쇄돼 중력이 미치지 않는다. 힘이 균형을 이뤄 빛의 왜곡이 없다. 특히 태양이 항상 지구 뒤에 가려져 햇빛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조선일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01.25 ‘인류의 눈’ 올 여름 첫 우주 관측… 제임스 웹 망원경, 최종 목적지 안착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상상도. 25일 지구에서 150만km 떨어진 최종 임무 위치에 도착했다./ESA
우주로 향한 인류의 새로운 눈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최종 목적지에 안착했다. 앞으로 우주 탄생 초기에 발생한 희미한 빛까지 포착해 우주 연구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24일 오후 2시(미국동부시간, 한국 시각 25일 오전 4시) 자체 추력기를 297초 동안 가동해 최종 목적지인 라그랑주 L2 지점에 안착했다”고 발표했다.
제임스 웹은 라그랑주 L2 지점에서 탑재 장비를 가동하고 5개월 동안 시험할 예정이다. 이르면 오는 6월쯤 첫 관측이 시작될 수 있다.
◇지구에서 150만㎞ 거리서 우주관측
추력기 가동으로 사람이 걷는 것과 비슷한 초속 1.6m의 속도만 추가됐지만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L2 지점을 중심으로 도는 궤도에 진입하는 데 충분했다고 나사는 밝혔다. 빌 넬슨 나사 국장은 이날 “웹, 집에 온 걸 환영한다”며 “이제 우주의 비밀을 푸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오는 여름 웹이 처음 관측할 우주 모습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유럽의 아리안 로켓에 실려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발사됐다. 제임스 웹 연구·개발에는 25년간 100억 달러(약 11조9000억원)가 투입됐다. 나사와 유럽우주국(ESA), 캐나다가 공동 개발했다.
우주망원경은 지난 5일 테니스장 크기의 차양막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 이어 8일 좌우 날개의 거울이 펼쳐지면서 웹의 주반사거울은 최종적으로 6.5m 폭의 표면을 완성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먼 곳에 배치됐다. 허블은 지구 상공 약 600㎞ 궤도를 돌며 우주를 관측하고 있지만 제임스 웹은 발사 후 한 달 동안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라그랑주 L2 지점까지 이동했다. 지구와 달 사이(38만5000㎞)보다 약 4배 먼 거리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여정. 오늘부터 라그랑주 L2 지점에서 탑재 장비를 가동하기 시작하면 이르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우주관측을 시작할 수 있다./ESA
◇중력과 햇빛 영향 받지 않는 지점
라그랑주 L2는 우주 관측에 최적인 지점이다. 이곳은 태양·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중력)과 물체가 태양 주위를 돌면서 밖으로 벗어나려는 힘(원심력)이 서로 상쇄돼 중력이 미치지 않는다. 힘이 균형을 이뤄 빛의 왜곡이 없다. 특히 태양이 항상 지구 뒤에 가려져 햇빛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지구는 태양까지 1억5000만㎞ 떨어져 있고, 웹까지 거리는 150만㎞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금빛 반사 거울 18개로 빛의 영역 중 적외선을 포착한다. 선배인 허블 우주망원경은 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을 감지한다. 가시광선은 별이 탄생되는 우주 먼지와 구름 지역을 통과하기 어렵지만, 파장이 긴 적외선은 이를 통과할 수 있다. 그만큼 제임스 웹은 초기 우주에서 탄생한 별에서 나온 빛을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임스 웹./조선DB
조선일보
02.14 우주 공간에 거대한 거울을 쏘아 올리는 이유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요즘 세상은 흉흉한 일만 있는 듯 하지만 그나마 좀 반가운 소식으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발사한 지 한 달 만에 목적지에 도달했으며 이제 곧 작동을 시작하게 된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망원경은 미국·유럽·캐나다가 합작하여 25년간 공을 들여 만들었으며, 인간을 달나라에 보내는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도하였던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 제임스 웹(James Webb)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잘 느끼지 못하셨을 것이다.
우주 망원경이라 함은 천체를 관측하는 망원경을 지구상에 설치하지 않고 우주공간에 쏘아 올린 것을 말한다. 그런데 말은 쉽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제임스 웹 망원경은 무게가 6톤이 넘으며, 그것을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거리에 배치하였다. 그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의 약 4배에 달한다. 이 망원경의 가장 중요한 부품은 직경이 6m도 넘는 거대한 굽어진 거울이다. 금으로 표면을 도포한 이 엄청난 거울에 반사된 광선을 모으면 아주 희미한 것도 감지할 수 있다. 그렇게 펑퍼짐한 것을 로켓에 실어 우주공간으로 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차곡차곡 잘 접어서 목적지까지 보낸 후에 펼쳐지도록 기가 막힌 디자인을 하였다. 이 복잡한 망원경을 설계·제작·발사하는 비용은 110억 달러나 들어갔다. 그런데 왜 그런 힘들고 이상한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지구상에서 천체를 관측하고자 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아무리 조명이 없는 어두운 지역으로 망원경을 가지고 간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지구를 둘러싼 대기층이다. 공기는 빛을 이리저리로 굴절시키므로 보이는 천체의 모양을 흐릿하게 한다.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공기가 빛을 흡수한다는 점인데, 특히 파장이 긴 적외선을 잘 통과시키지 않는다. (대기층에 있는 이산화탄소 등 특정 기체가 적외선을 잘 흡수하는 것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효과의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인 우주공간으로 망원경을 쏘아 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근년에 허블 우주망원경이 큰 역할을 해내었는데 이제 그 수명이 다하였고, 제임스 웹은 허블보다도 성능이 훨씬 뛰어나다.
우주의 여러 방향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관찰하는 것이 현재 천문학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온도가 아주 높지 않은 물체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빛, 즉 가시광선을 내지는 못하지만 적외선은 방출한다. 우주의 머나먼 여러 구석에서 도달하는 적외선을 잘 관측하면 다른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의 모습, 은하계가 형성되는 과정, 또 우주의 기원까지도 더 잘 탐구할 수 있을 것으로 천문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망원경을 쏘아 올리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우주의 신비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발현된 것이다. 인간들은 아주 옛날부터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빛나는 것들은 무엇이며 도대체 우주란 어떤 곳인지에 대해 궁금해하였다. 모든 고대 문명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였으며, 그것을 이해하고자 여러 가지 전설과 신화, 또 과학 이론들을 만들어 내었다. 머나먼 별나라의 일이나 우주 전체의 모습을 이해한다고 해서 별로 물질적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우주를 이해하려 들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어느 인간 사회를 보아도 천문학이나 우주론이 없는 문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감히 우주를 이해한다고 나설까? 크게 볼 때 지구는 정말 조그마한 돌덩이에 불과하다. 태양에 비하면 티끌같은 규모이다. 그런데 태양과 같은 별이 우리 은하계에 천억 개 이상이 있으며, 전 우주에는 은하계가 적어도 천억 개 이상이 있다. 정말 우주란 상상하기도 힘들게 광대하다. 그러니 이 미천한 티끌같은 지구의 표면에 붙어서 사는 우리 인간들이 우주의 본질이 어떻다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은가.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의 중요한 측면이다. 우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인간은 갈릴레이가 400년 전 변변치 않은 망원경을 하늘에 들이대 본 이후 온갖 관측 기기를 발명하고 개선해 왔다. 또 우주 탐험을 시도하여 달에도 가 보았고 무인 탐사선을 보내서 금성과 화성에 착륙시켰으며, 더 멀리 있는 다른 행성들 근처에도 탐사선을 지나가게 하여 사진이나마 찍어 보내도록 하였다. 이런 끈질긴 탐구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노력도 없이 세상의 깊은 이치를 논한다는 것은 개똥철학에 불과하다. 또 자기는 신의 계시를 받아서 천지창조에 대한 진리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믿는가. 과학적 탐구는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되 온갖 기발한 수단을 동원하여 그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능동적 노력이다.
세상사가 따분하고 짜증 날 때 광대하고 신비로운 우주에 대한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아주 쓸모없는 일은 아니리라.
중앙일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03.18
1 “지구 같은 행성 361개나 발견…물과 생명체 존재 가능성”
[김기훈의 天地人]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①/③ 조선일보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의 상상도. 허블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렸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인구 폭발, 공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우주의 새로운 정착지에 관한 인류의 관심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창업자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는 민간 우주로켓 사업에 뛰어들어 화성 탐사를 계획하고 있다. 한국도 오는 6월에 우리 기술로 만든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2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해 12월 25일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우주관측 장비인 ‘제임스 웹(James Webb) 우주망원경’이 대기권 밖으로 발사 됐고, 지난 3월 11일에 망원경 초점 정렬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우주의 구성과 탄생 과정에 관한 비밀을 풀게 해 줄 새로운 발견이 잇따라 나올 전망이다. 인류는 마침내 은하가 처음 탄생하던 순간부터 시작하여 그 진화 과정을 목격하고, 또한 생명체가 존재하는 외계 행성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우주 연구는 주로 로켓으로 탐사선을 발사하여 태양계를 연구하는 우주과학 분야와, 태양계 바깥의 광대한 우주와 천체를 연구하는 천문학 분야로 크게 나뉜다. 인류가 새로운 정착지를 발견하려면 아직은 직접 탐사선을 보내기는 무리이므로 천체망원경을 이용한 우주 구성원리에 대한 이론적 천문학 연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어떤 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을까? 이 관심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갖고, 대통령 선거 이틀 전인 지난 3월 7일 천체물리학자인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찾았다. 인터뷰는 이날 오후 2시 50분 대전시 유성구 대덕대로 776 한국천문연구원 내 이원철홀 1층 연구실과 2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안 연구원은 “현대 천문학에서는 외계 행성계의 존재, 우주의 비밀을 전해주는 새로운 관측 수단의 대두, 우주생태계의 종합적 이해 등 3가지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인류가 우주에서 발견한 외계 행성계는 약 5000개 정도이고 그 중 생명체가 발생할 조건을 만족하는 것이 361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행성계가 지구와 같이 산소가 풍부한 대기를 지녀서 생물체가 존재하는지는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알 수 없었고, 그런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웃 행성계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여행하는 일은 현재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32년간 천체물리학 연구
—천체물리학을 연구한지 32년이나 됐다. 천체물리학 분야 중에도 여러 세부 분야가 있을 텐데, 박사 학위는 무엇으로 받았나?
“우주에 수소가 가장 많은데, 수소에서 나오는 라이만알파선(Lyman-alpha line)의 복사(輻射) 전달에 관한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어려운 용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이슈가 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2월 25일 우주로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로켓에서 분리되기 직전의 모습. 배경에 지구가 보인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최근 우주로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1990년대 초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허블(Hubble) 우주망원경을 쏘아올렸다. 지구 상공 540km 궤도를 돌면서 우주에서 오는 빛을 감지해 천체의 사진을 찍는다. 망원경의 경우 구경이 그 성능을 좌우하는데, 허블 우주망원경과 같은 반사망원경은 주경(主鏡)이라고 부르는 큰 반사경의 직경이 구경이다. 허블의 반사경은 지름이 2.4m이다.”
—허블 망원경 외에 다른 우주 망원경도 있나?
“빛에는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X(엑스)선, 감마선 등 파장별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미국항공우주국은 1990년대에 각 파장별로 우주망원경을 하나씩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렸다. 이 위성망원경 중 주로 가시광선을 담당한 것이 허블 우주망원경이다. 적외선은 미국의 라이만 스핏처 교수 이름을 따서 스핏처 망원경, X선은 찬드라세카의 이름을 따서 찬드라 우주망원경, 감마선은 20세기초 물리학자였던 콤프턴의 이름을 따서 콤프턴 우주망원경이라고 명명했다.
허블 망원경은 원래 10년 정도 쓰려고 하다가 워낙 사랑을 받아 몇 차례 수리를 하면서 30년이나 쓰게 됐다. 이 허블을 대체하게 될 차세대 우주망원경이 2021년 12월에 우주로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다.”

▲미국항공우주국 기술자들이 2017년 4월 미국 메릴린드주 그린벨트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에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반사경을 점검하고 있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지상에서 관찰하면 되지 않나? 왜 우주에서 봐야 하나?
“빛의 전 파장대에서 우주를 관찰해야 우주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구의 대기는 천체의 빛을 대부분 흡수하고 전파와 가시광선 정도만 통과시킨다. 그러므로 다른 파장대에서는 지상에서 우주의 모습을 온전하게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지구의 대기는 밀도가 불균일해서 아지랑이 효과를 일으키므로 별빛이 일렁거려서 상이 또렷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우주로 나가야 한다.”
허블 vs 제임스 웹
—허블 우주망원경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특징을 비교하면?
“허블 망원경은 적외선 관측도 가능했지만, 가시광선 위주로 관측했다. 허블 망원경의 구경은 2.4m인데, 제임스 웹 망원경의 구경은 6.5m 정도이다. 넓은 반사경으로 더 많은 빛을 모으기 때문에 훨씬 더 멀리 있는 희미한 천체를 볼 수 있다.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에 더 멀리 본다는 것은 더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 달려온 옛날 빛을 본다는 이야기이다. 우주의 더 오랜 옛모습을 본다는 뜻이다.
또 우리 우주 공간은 팽창하고 있으므로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우리로부터 더 빨리 달아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것을 허블의 법칙이라고 한다. 멀리 있는 천체에서 나온 빛은 우리 눈에 들어오기까지 파장이 점점 길어지게 된다. 아주 멀리 있는 천체에서 나온 가시광 빛이 우주 공간을 여행해 우리 눈에 들어올 때는 적외선 빛으로 보인다. 그래서 적외선용 망원경을 만들어야 멀리 있는 천체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번 제임스 웹 망원경은 적외선 망원경으로 특화했다.”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찍은 허블 우주망원경./위키피디아
안 연구원이 컴퓨터를 조작해 회의실 중간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두 장의 큰 사진을 띄웠다. 별과 별 사이에 가스와 먼지로 이뤄진 성운(星雲, nebula)을 허블 망원경이 가시광 빛으로 찍은 사진과 적외선으로 찍은 사진이었는데, 모습이 상당히 달랐다.
—같은 성운인데도 가시광으로 볼 때와 적외선으로 볼 때 꽤 다르다.
“(왼쪽 사진을 가리키며) 허블 망원경이 가시광선을 사용해 찍은 사진은, 성운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별들은 볼 수 없다. 그 천체에서 나오는 가시광이 성운 속에 들어 있는 먼지에 흡수되어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앞쪽에 있는 별의 모습만 보인다. (오른쪽 사진을 가리키며) 이에 반해 적외선은 먼지도 뚫고 나오므로 적외선 카메라를 쓰면 성운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여러 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은하의 한 성운을 가시광선 망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왼쪽)과 적외선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 적외선 망원경으로 찍을 경우 앞쪽 먼지에 가려져 있는 뒷쪽 별들의 모습도 나타난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카메라가 어떻게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구별해 내는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안 연구원이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부분을 짚어 보이며 “이 속에 있는 카메라 센서 칩(촬영소자)이 망원경의 초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에는 주로 CMOS 칩을 쓰지만 천문학에서는 CCD라는 방식의 칩을 주로 써왔다”며 “그러한 센서 칩을 적외선에 민감한 것으로 만들면 된다”고 했다. 다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향후 20년 정도 활동할 듯
—제임스 웹 망원경은 앞으로 얼마나 쓸 수 있나?
“당초 계획상으로는 10년 정도 쓸 수 있게 망원경을 설계했다. 그런데 망원경에서 가장 중요한 반사경의 직경이 6.5m나 되는데, 너무 커서 그 모양 그대로 로켓에 싣고 우주로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조각거울 18개로 분해해 다른 부품들과 함께 종이접기처럼 구겨 넣은 뒤 우주에서 다시 펼쳐 큰 반사경으로 복구했다.
이 복구 과정에서 태양 전지를 동력원으로 사용하고 망원경의 궤도 미세 조정 및 자세 제어에는 가스를 분사해서 동력을 얻는다. 다행히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전지와 가스 소모량이 적었다. 그 덕분에 예상 수명이 당초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났다. 일단 향후 5년 정도는 사전에 계획된 주요 과학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지난 3월 11일 초점 정렬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보내온 사진. 밝은 별에 초점을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카메라가 워낙 고성능이어서 뒷면에 은하계와 별들의 모습까지 나타났다고 미국항공우주국은 설명했다./미국항공우주국
—반사경 이야기가 흥미롭다. 반사경은 어떻게 만드나?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망원경에서는 반사경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지상에 건설되는 망원경의 반사경은 유리의 재료인 규석으로 만든다. 커다란 돌을 녹이고 연마해서 얇은 오목거울 형태로 만든다. 하나 만드는데 1년씩 걸린다. 그러나 제임스 웹 망원경의 반사경은 베릴륨이라는 금속으로 만들었고, 표면을 금으로 코팅했다. 금이 적외선 빛을 잘 반사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웹 망원경의 주경은 발사할 때 접어야 해서 각각 1.2m 크기의 육각형 조각 거울 18개로 만들어서 세 부분으로 접었다가 우주에서 펼쳤다. 그 후 각각의 조각 거울의 위치를 미세 조정해서 전체가 하나의 오목거울이 되도록 만들었다. 멀리서 온 빛이 주경으로 모인 다음, 반대편에 있는 볼록거울인 부경(副鏡)에서 반사되고, 그 다음에 3차 거울에 의해 보정되어 주경의 가운데 나 있는 구멍을 통해 우리의 눈 역할을 하는 각종 관측장치에서 상을 맺게 된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일단 향후 5년 정도는 사전에 계획된 주요 과학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에 대해 과학자들이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전세계 천문학자들이 흥분하고 있나?
“관측 결과를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허블 망원경의 경우 처음에 설정한 주요 과학 연구 과제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관측하여 허블 상수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허블 상수는 외부 은하의 후퇴 속도가 그것까지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례상수인데, 이 수치로 우주의 팽창 속도와 나이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주요 과제는 그 이후 허블 망원경이 발견한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허블 망원경은 우리가 처음 보거나 몰랐던 것들을 보여줬다. 정말 뜻밖의 성과였다. 우리가 모르던 자료를 너무 많이 얻게 됐다. 이번 제임스 웹 망원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자료들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올 것이라서 전세계 천문학자들이 흥분하고 있다. 아마 우리의 우주관을 혁신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천문학자들의 3대 관심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주망원경을 사용해 과학자들이 알고 싶고 연구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인터뷰의 원래 주제인 천문학자들의 관심 사항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다.
—현대 천문학자들은 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나?
“미국과학재단(NSF)은 천문학자들을 대상으로 매 10년마다 앞으로 10년 동안 어떤 연구를 할 예정인지 연구계획서를 수집하여 보고서를 낸다. 그리고 이 연구계획서를 바탕으로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제임스 웹 망원경도 20여년 전에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자금을 배정해 제작했다. 따라서 지난 2010년에서 2020년 사이에 제출된 연구계획서를 보면 천문학자들의 최근 연구 동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미국과학재단은 과학자들의 연구 관심 사항을 조사한 뒤 예산을 배정한다. 사진은 미국 버니지아주 알렉산드리아의 미국과학재단 청사./미국과학재단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크게 3가지 분야이다.
첫째, 외계 행성계 검출이다.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 같은 것이 우주에 또 있는지, 또 그 외계 행성계에 인류 외의 다른 생명체도 있는지 알아보는 작업이다.
둘째, 우주의 비밀을 알려줄 새로운 관측 수단이 개발되었고, 이를 확장해 우주를 연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력파나 중성미자를 검출해 우주를 들여다보려 한다.
셋째, 우주생태계(cosmic ecosystem)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를 구성하는 별과 성운의 화학 조성과 분포와 운동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면 이러한 정보를 마치 은하의 진화 역사를 담고 있는 화석처럼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기초로 거시적으로는 은하의 형성과 진화에 대한 통일적인 이론체계를 만들려고 하고, 미시적으로는 별의 형성과 진화 과정 전체를 유기적이고 일관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하고 있다.”
3개 분야 각각에 대해 하나씩 물어보기로 했다.
이슈 1 : 외계 행성계 발견
—태양계 외에 외계 행성계 존재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대체로 4가지 방법을 쓴다.
첫째, 별(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과 행성이 중력으로 묶여서 서로의 공통 질량 중심을 축으로 공전할 때, 별도 미세하게 앞 뒤로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을 이용하여 별의 미세한 움직임을 측정하여 행성의 존재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측정하려면 우주에서 초속 10m 정도의 속력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초정밀 관측을 구현한 학자들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두번째 방식은?
“식(蝕, eclipse) 현상이 일어나는지 본다. 예를 들어 금성이 공전하다가 해를 가리면 식 현상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태양빛이 아주 조금 어두워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멀리 있는 별을 계속 관찰하다가 그 별 둘레를 도는 행성이 별빛을 가려서 별빛이 아주 조금 어두워지는지 관찰해 본다. 그 어두워지는 양상과 주기를 측정하면 그 행성의 궤도, 크기, 질량 등을 구할 수 있다.
케플러 위성을 쏘아 올려 지금까지 53만개의 별을 이런 방식으로 관찰한 결과 2662개의 별이 주변 행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 후속 위성인 K2와 테스(TESS) 위성 뿐 아니라 지상 관측 사례까지 모두 합하면 지금까지 행성을 거느린 별이 약 5000개 정도 관측됐다.”

▲우주에서 별들을 관찰하면서 외계 행성계를 찾고 있는 케플러 위성 상상도./미국항공우주국(NASA)
—5000개의 외계 행성계 가운데 지구 같은 행성도 있나?
“500개 정도는 지구만 하거나 지구보다 작다. 다만 크기가 지구만하더라도 수성처럼 태양과 너무 가까우면 뜨거워서 생물체가 살기 어렵고, 화성처럼 너무 멀면 추워서 안된다. 지구처럼 생명이 살만한 행성은 360개 정도이다. 이 안에는 액체가 존재할 수 있다. 액체가 존재할 수 있으면 물이 있을 수 있고 생명체가 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구처럼 산소나 생물체가 존재하는 것 같은 흔적은 없다. 우주에 인류 이외의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류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대사건이 될 것이다.”
빛을 끌어 당기는 중력
—세번째 측정 방법은?
“마이크로렌징(microlensing, 미시중력렌즈) 방식이다. 중력렌즈란 질량을 가진 천체가 근처의 시공간을 휘게 하여 볼록렌즈처럼 빛을 굴절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별과 지구 사이를 중력을 가진 물체가 지나가면 그 별빛이 점차 밝아졌다가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 더 밝아지는 이유는 사이를 지나가는 그 물체의 중력이 별빛을 더 많이 끌어당겨서 지구에 있는 우리에게 더 많은 빛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질량을 가진 행성이 별 주위를 지나가면 행성의 중력이 주변의 빛을 끌어들여 볼록렌즈처럼 별빛을 굴절시킨다. 그 결과 관측자의 눈에 별이 더 밝게 보이는 미시중력렌즈 현상이 나타난다./유럽남방천문대
—그 중력을 가진 물체가 어두운 별이고 그 둘레를 행성이 공전하고 있다면?
“그 행성도 저 멀리 있는 다른 별빛에 미시중력렌즈 현상을 일으킨다. 다만 별빛은 더 짧은 시간 동안 밝아졌다가 어두워진다. 여러 별의 밝기를 계속 관측하다가 어떤 별에서 이러한 미시중력렌즈 현상이 발생했다면 행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네번째 관측 방식은?
“행성의 모습을 직접 사진으로 찍는 방법(imaging)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구 대기에 의해 별빛이 깜박거리는 것을 보정해야 한다. 천문학자들으 70km 상공에 나트륨 레이저를 쏘아 인공별을 만들고 그 별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면서 지구 대기의 굴절을 바로 잡아줌으로써 마치 대기 밖에서 천체를 관측하는 것과 같이 만들었다.
이 기술을 전문용어로 적응광학(adaptive optics)라고 한다. 그러면 별과 바짝 붙어 있어서 사진으로 찍기 어려운 행성을 분해해서 촬영할 수 있다. 현재 전세계 천문대 중에서 하와이의 마우나케와 산에 있는 켁(Keck) 천문대와 칠레의 VLT 천문대 정도만 이런 촬영이 가능하다.”

▲미국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에 있는 켁 천문대. 1993년과 1996년에 지상 4145m에 구경 10m짜리 망원경 2개로 설치될 당시에는 세계 최대 망원경이었다. 현재는 세계 3위와 4위./미국항공우주국(NASA)
빛 분석해 행성의 대기 성분 파악
—이러한 측정 방법이 이미 사용되고 있는데, 제임스 웹 망원경이 외계 행성계 발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한 단계 더 나아가려고 한다. 지구의 나이가 대략 46억년 정도 됐다. 지구의 대기에는 원래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많았다. 목성과 비슷했다고 본다. 그 후 지금으로부터 25억년쯤 전에 생명체가 탄생하면서 메탄과 이산화탄소는 줄어들고 산소와 오존이 많아졌다. 즉 생명체가 행성 대기의 성분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외계 행성의 대기를 관찰해 그 성분을 분석해 내면 그 안에 생명체가 있는지 여부를 추정할 수 있다. 메탄이 많은 행성은 생명체가 생기지 않은 것이고, 산소나 오존이 많이 있으면 생명체가 생겨난 행성으로 볼 수 있다.”

▲우주에서 본 지구. 지구의 대기는 25억년 전에 생명체가 생겨나면서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줄고 산소와 오존이 증가하는 형태로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그래프 왼쪽을 보면 지구의 대기는 생명체가 없어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가득하던 시생대(50억년전~25억년전), 초기 생명체가 등장하면서 산소가 급증한 원생대(25억년전~5억년전), 유기체들이 등장하면서 산소가 더 늘어난 현대로 변해왔다. 행성 대기를 통과하는 빛을 분석하면 행성의 대기 성분과 생물체의 존재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미국항공우주국(NASA)
—너무 멀어 가 볼 수도 없는 행성의 대기 성분을 어떻게 분석하나?
“행성은 자기가 공전하는 모(母)항성의 빛을 자신의 표면에 반사해 빛을 낸다. 그 행성에 대기가 있다면 표면에서 반사되는 과정에서 별빛이 대기를 통과해 나오게 된다. 따라서 그 빛을 분석해 보면 대기의 성분과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대기를 통과해 나오는 빛을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 좀 더 물어 보려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는 듯 해 중단했다. 안상현 선임연구원과의 대화는 천문학자들의 두번째 관심사, 즉 우주에서 보내오는 새로운 메신저 찾기로 이어졌다.
2 우주에서 보내오는 새 메신저를 찾아라
[김기훈의 天地人]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②/③
▲1921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강의하고 있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페르디난트 슈무처(위키피디아)
☞ ①/③편에서 계속
천문학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기 위해 우주에서 보내오는 새로운 메신저를 열심히 연구한다. 안상현 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천문학자들의 두번째 관심사인 새로운 우주메신저 두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슈 2 : 새로운 우주 메신저
—천문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두번째 분야는 어떤 것인가?
“빛이 아닌 다른 신호로 천체를 관측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새로운 신호로는 중력파(gravitational wave)와 중성미자(neutrino)가 대표적이다.”
새 메신저 ① 중력파
—중력파가 어떻게 천체 연구에 도움이 되나?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시공간의 일그러짐이 파도처럼 광속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중력파(重力波)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1916년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그 존재를 예측했다.
예를 들어 블랙홀이 2개가 있다고 하자.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각 블랙홀이 천천히 회전하면서 중력파를 방출한다. 중력파는 두 블랙홀의 공전 각(角)운동량을 빼앗아가므로 두 블랙혹은 서로 가까워진다. 서로 가까워지면 점점 더 빠르게 공전하고 더 많은 중력파가 나오게 되므로 두 블랙홀은 점차 빠르게 다가가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두 블랙홀이 서로 합쳐진다.”
▲전세계 천문학자들이 2017년 4월 11일 6개 대륙 지상의 8개 전파망원경을 동원해 찍은 우리 은하계 밖 외부 은하 '메시에 87'에 존재하는 블랙홀의 모습. 사건의 지평 망원경(EHT) 프로젝트로 불린 이 작업에서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검게 보이고, 주변을 지나던 빛이 블랙홀 쪽으로 휘어지면서 블랙홀을 휘감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 밝은 빛을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한다./유럽남방천문대
안 연구원이 말을 이어갔다.
“천문학자들은 예전에 전통적인 광학망원경을 통해 이런 블랙홀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블랙홀은 기껏해야 태양 질량의 5~10배 정도 크기였다. 2015년에 처음으로 중력파를 검출함으로써 두 블랙홀이 병합하는 현상이 알려졌다. 그런데 그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20~160배에 이르는 엄청나게 무거운 것들이었다. 우주에서는 이러한 무거운 블랙홀 병합 현상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중력파 망원경이 이러한 현상을 알아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블랙홀의 크기는 얼마나 되나?
“태양 질량에 해당하는 블랙홀이 있다면 그 반경은 3km 정도이다. 블랙홀의 반경은 질량에 비례한다. 중성자별(neutron star)은 그 질량이 대개 태양 질량의 1.5~2배 정도이고, 그 반경은 10km 남짓해 서울시보다 약간 작다. 또 별의 진화 마지막 단계인 백색왜성(white dwarf)은 지구만하다고 보면 된다. 우주에서 블랙홀, 중성자별, 백색왜성 등의 병합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는 과학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미스테리이다.”
—그런 연구를 통해 천문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것은?
“은하가 탄생하던 무렵 언제 처음으로 블랙홀이 만들어졌는지, 그 초기 질량은 얼마나 되었는지, 또한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는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블랙홀이 만들어지며 또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블랙홀의 형성과 진화는 그 모(母)은하의 형성과 진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중력파 망원경
잠시 블랙홀 이야기로 빠졌던 화제를 다시 중력파 망원경으로 돌렸다.
—현재의 중력파 망원경으로 어느 수준까지 관측이 가능한가?
“우리가 지금까지 검출한 중력파는 블랙홀 병합이 대부분이고 중성자별의 병합, 중성자별과 블랙홀의 병합은 매우 드물게 검출됐다. 그러나 백색왜성이 개입된 쌍성(雙星)에서 발생하는 중력파나, 은하 중심부에 존재하는 거대 블랙홀이 개입된 경우에 나오는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해서는 신개념의 중력파 검출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몇몇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상의 중력파 망원경은 지진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거대중력파 검출 프로젝트인 리사(LISA) 망원경을 우주로 보내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리사 망원경으로 보면 중성자별끼리의 병합도 보다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에 있는 라이고(LIGO) 중력파 천문대(위)와 지표면에 90도 각도 두 방향으로 길게 설치되어 있는 망원경 내부 모습(아래). 우주에서 전해오는 중력파를 관측해 블랙홀 등의 움직임을 연구한다./LIGO천문대
—중성자별은 어떻게 관측하나?
“중성자별은 중성자로 이루어진 밀도가 매우 높은 천체이다. 태양 질량의 1.5~2배 정도로 무거운데, 반경은 10여km에 불과하니 그 밀도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강한 자기장을 띠고 있는데, 여기에서 전파를 방출한다.
중성자별은 일반적으로 자전하고 있다. 자전하면서 방출되는 전파는 마치 등댓불처럼 깜빡거리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천체를 펄사(pulsar)라고 한다. 1967년 첫 발견 이래 지금까지 2000개 정도의 펄사가 발견됐다. 대부분은 그 박동 주기가 1초 정도인 느린 펄사들이지만 200개 이상의 펄사는 1초에 수백번 이상 깜빡거리는 밀리초 펄사이다. 이렇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에서는 중력파가 나오며, 천문학자들은 이를 검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가로·세로 1km 크기의 망원경
—중력파 이외에 중성자별을 더 효과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SKA(Square Kilometer Array) 망원경을 들 수 있다. 제곱 킬로미터 전파망원경 배열이라는 뜻인데, 호주의 서부와 남아공에 작은 전파망원경 집단을 배치해 여러 전파 파장에서 우주를 관측하게 된다. 그 전파망원경의 반사경 접시의 면적을 모두 합하면 면적이 가로 세로 1km에 달하므로 이름이 제곱 킬로미터 배열이 됐다.”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
“천문학자들은 1967년부터 지금까지 펄사를 약 2000개 정도 발견했다. 그런데 이 SKA 망원경을 쓰면 3일만에 이만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 가로 세로 각각 100m 정도 되는 시험용 망원경 배열을 만들어 가동중인데, 이미 새로운 현상들이 발견되고 있다. 가로 세로 1km인 본 전파망원경이 완성되면 면적이 100배나 커지니, 얼마나 신기하고 새로운 우주의 모습을 보게 될지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접시들을 모두 모으면 직경 5km가 되는 초대형 SKA(제곱 킬로미터 배열) 전파망원경의 상상도./위키피디아
—망원경이 커지면 그만큼 많은 전파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지 않나?
“수퍼컴퓨터가 돌아가야 한다. 예전에는 컴퓨터 용량이 작아 그만한 정보를 처리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컴퓨터 성능이 좋아져서 가능해졌다. 다만 수퍼컴퓨터를 돌리는데 필요한 막대한 전기를 어떻게 공급할지가 과제이다.”
안 연구원은 이 대목에서 한국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을 언급했다.
“전파망원경이 이렇게 거대해져도 이 하나의 전파망원경 제작을 위해 별도의 공장을 설립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세계 각국의 기업들에 부품을 발주해 조립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소규모 망원경 제작과 컴퓨터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새 메신저 ② 중성미자
—우주의 비밀을 알려주는 새로운 메신저로 중력파 외에 중성미자를 꼽았다. 무슨 뜻인가?
“일본 과학자들이 연구를 해서 2차례에 걸쳐 노벨상을 받았고, 우리 과학자들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분야다. 중성미자(neutrino)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이다.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질량이 매우 가벼우며 물질과 거의 반응을 하지 않는다. 거의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중성미자가 드물게 물질과 반응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 때 중성미자가 원자핵과 반응을 하면 전자나 뮤온이나 타우온 같은 경입자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오면서 체렌코프(Cherenkov) 효과에 의해 깔대기 모양으로 빛을 방출한다.
전자가 튀어나오는 반응을 일으키는 중성미자를 전자중성미자, 뮤온이 튀어나오는 반응을 일으키는 중성미자를 뮤온중성미자, 타우온이 튀어나오는 반응을 일으키는 중성미자를 타우온중성미자라고 한다. 이들 세 가지 중성미자에 의해 발생하는 경입자가 방출하는 빛의 형태는 각기 다르다. 이를 이용해 어떤 종류의 중성미자가 어느 방향에서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측정하나?
“지하 1000m에 원통형 방을 만든 뒤, 그 원통형 방의 벽에 광전자증배관(photo multiplying tube, PM 튜브)을 부착해 미세한 빛을 검출해 낼 수 있게 만든다. 그 다음에 원통형 방에 물을 채워서 중성미자가 물을 구성하는 핵자(양성자와 중성자)와 반응해 체렌코프 빛을 내는지 오래오래 관찰한다. 우주에서 지구로 끝없이 내려오는 에너지 입자들을 우주선(cosmic ray)이라고 하는데, 우주선 입자가 지구 대기와 반응할 때 중성미자가 발생하며, 지하의 중성미자 검출기가 이러한 중성미자를 검출해 낸다.”

▲일본 기후현 카미오카 광산의 지하 1000m에 위치한 중성미자 관측설비 수퍼카미오칸데 내부 모습. 벽에 중성미자에서 방출하는 체렌코프 빛을 감지하는 PM튜브가 가득하다. 가운데는 물로 채워진다./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
—관찰 결과는?
“검출기 상공에서 입사한 중성미자의 종류와, 지구 반대쪽의 대기 상공에서 발생해 지구를 관통해서 검출기에 입사한 중성미자를 조사해 봤더니, 세 종류의 중성미자의 개수 비율이 다름이 발견됐다.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질 경우 지구라는 물질을 통과하면서 중성미자의 종류가 바뀐다는 중성미자 진동이론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이 현상을 발견한 일본 도쿄대의 가지타 다카아키(梶田 隆章) 교수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중성미자가 아주 작지만 질량을 갖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중성미자는 우주 암흑물질 후보
—이 발견이 천체물리학에서 갖는 의미는?
“우주에는 엄청난 개수의 중성미자가 있으므로 만일 중성미자가 충분히 큰 질량을 갖고 있다면 우주 암흑물질(dark matter) 구성 요소의 한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성미자를 우주 관측에 어떻게 활용하나?
“중성미자는 태양에서도 나온다. 태양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이를 관찰하면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항성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스스로 폭발하면서 매우 밝게 빛나는 것을 초신성(supernova)이라고 하는데, 이 때에도 중성미자를 많이 방출한다. 또는 중성자별이나 백색왜성이 충돌할 때에도 중성미자가 나온다. 그러므로 중성미자 관측을 통해 행성간 충돌이나 병합 같은 이벤트가 우주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중성미자를 측정하기 위해 지하 1000m에 원통형 방을 만들려면 비용이 많을 들 것 같은데, 더 저렴한 방법은 없나?
“남극에 깊이가 2~3km에 이르는 얼음층이 있다. 그 속을 뚫어서 광전자증배관을 설치해 중성미자의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을 아이스큐브(icecube) 프로젝트라고 한다.”

▲남극의 지하 2000m 아래에 관측 튜브를 넣어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아이스큐브 프로젝트 개념도./위키피디아.

▲남극에 있는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의 지상 건물./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주가 보내주고 있는 2가지 새로운 메신저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 대화는 우주 전체의 생성과 진화를 다루는 우주생태계 연구와 인류의 화성 이주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3 인류의 화성이주 꿈, 실현 가능할까?
[김기훈의 天地人]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③/③

▲우주 사업을 벌이고 있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왼쪽)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위키피디아
☞ ②/③편에서 계속
우주의 비밀을 알려주는 새로운 메신저에 대한 질문이 끝났다.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에게 우주 전체의 생성과 진화를 다루는 우주생태계 연구와 인류의 화성 이주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다.
이슈 3 : 우주생태계 연구
—우주생태계(cosmic ecosystem)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다.
“138억년전 우주가 처음 생긴 직후에는 우주의 물질들이 거의 균질하게 퍼져 있었다. 거의 균질하다는 말은 아주 미세한 불균질성이 존재했었다는 말이다. 그 불균질한 물질의 분포가 이후 중력에 의해 모여들어 뭉치면서 지금과 같이 은하나 암흑물질이 마치 거미줄처럼 분포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또한 우리가 속한 은하수와 같은 개별 은하도 이러한 물질 불균일성이 중력 진화를 통해 점점 커가면서 다양한 모양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처럼 우주가 처음 생긴 뒤에 초기 물질들이 모여 별이 되고 은하를 이루면서 현재의 우주 형태로 발전된 과정을 일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우주생태계 연구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나? 사례를 들면?
“최근에는 가이아(Gaia) 위성이 별간의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해 내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우리가 속한 우리 은하 내에서 원소의 조성, 예컨대 니켈의 분포가 비슷한 별들을 추려내 그 별들의 공간 분포와 운동 상태로부터, 예전에 함께 생겨나 같은 집단에 속했던 별들을 가려낼 수 있다.
그 별들은 우리 은하에 잡아먹힌 위성은하를 구성했던 별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지금은 잡아먹힌 위성은하의 화석을 찾는 셈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 은하가 다른 위성은하를 병합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병합되기 이전 위성운하의 위치와 모양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지구에서 3억광년 떨어진 머리털자리 성좌에서 두 은하가 병합을 하고 있다. 2004년 촬영된 이 사진에서 두 은하는 긴 꼬리 때문에 '쥐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사례를 하나 더 들면?
“우리 은하의 중심에 태양 질량의 400만배가 되는 초거대 블랙홀이 있다. 망원경 1개당 건설비용이 1500억원에 달하는 하와이의 켁(Keck) 천문대에서 초거대 블랙홀 주변을 공전하고 있는 별들을 여럿 찾아냈다. 이 별들의 궤도를 가지고 그 초거대 블랙홀의 존재와 질량을 측정했다. 또 일반적으로 대형 은하들은 중심부에 이러한 초거대 블랙홀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블랙홀은 빛을 빨아들여서 볼 수가 없는데 존재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최근 세계 천문학자들이 공동작업으로 ‘사건의 지평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을 직접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또 그 블랙홀이 자전함도 확인했다. 천문학자들은 왜 큰 은하에는 이러한 초거대 블랙홀이 존재하는지, 그런 초거대 블랙홀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은하 전체 질량의 1000분의 1 밖에 안되는 이 초거대 블랙홀이 은하 전체의 형성과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
우주의 구성
—앞에서도 블랙홀 이야기가 간혹 나왔는데, 블랙홀이란 대체 무엇인가?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에 대해 3가지 정보 밖에 없다고 했다. 질량, 스핀(회전운동량), 전하량이다. 돌지 않는 블랙홀은 질량 정보만 있다. 도는 블랙홀은 질량과 스핀이 있다. 전하를 갖고 있는 블랙홀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그는 블랙홀에 대해 질량, 스핀(회전운동량), 전하 등 3가지 정보 밖에 없다고 말했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생태계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알아낸 성과는?
“원-에이(Ia)형 초신성이라고 부르는 특정 종류의 초신성은 최대 밝기가 모두 같다. 이 초신성들의 간격이 서로 멀어지는 것을 관측함으로써 천문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은하의 3차원 분포와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종합한 결과 우리 우주에 우리가 아는 보통물질은 5% 뿐이고, 암흑물질(dark matter)이 27%, 암흑에너지(dark energy)가 68%를 차지함을 알게 됐다.”

▲폭발하면서 강한 빛을 내고 있는 원-에이(Ia) 초신성. 과학자들은 백색왜성이 주변 물질과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하나가 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아직 연구중인 사항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우주의 95%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분포했는지 잘 모르는 상태다. 물질의 양과 물리적 성질, 또 우주 시공간의 특성에 따라 물질 진화의 양상도 달라진다. 그래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 전체의 진화 과정을 알아내려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암흑물질이 블랙홀이 된 것인지, 별이 블랙홀이 되고 그 블랙홀이 병합되어 거대 블랙홀이 된 것인지 등등 아직도 답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부지기수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밀하게 측정해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해야 한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SKA, 직경 30m급 차세대 망원경, 베라 루빈 망원경 등이 완공되면 더 많은 정보를 줄 것으로 고대하고 있다.”
135억년 전 우주, 어떻게 측정?
—이번에 쏘아 올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우주론 연구에 어느 정도까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우주 창생 후 3억년까지 본다. 우주가 138억년 전에 생성됐으니 지금보다 135억년 전의 현상을 본다는 것이다. 현재에서 점점 멀리 있는 우주의 빛을 보게 된다는 것은 점점 과거의 빛을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초기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망원경으로 별이나 블랙홀이 처음 태어난 시점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도달한 빛이 1년 전에 생긴 빛인지, 135억년 전에 생긴 빛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적색이동(red shift) 현상으로 알 수 있다. 우주 공간이 팽창하므로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만일 아주 멀리 있는 어떤 천체가 가시광을 방출했다면 팽창하는 우주 공간을 통과해 오면서 점점 그 빛의 파장이 길어지게 되어, 최종적으로 우리가 그 천체의 빛을 볼 때에는 파장이 긴 빛으로 보이게 된다. 이를 적색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빛은 그 진행속도가 유한하므로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우리 눈에 보이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즉,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더 오래전의 우주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어떤 천체의 적색이동을 측정하면 그 천체가 우리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보는 그 천체의 모습은 그 거리를 빛이 날아오는데 걸리는 시간만큼 과거의 모습이 된다.”

▲천체가 관측자에게서 멀어지면 그 천체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면서 점점 붉어진다(적색이동). 반대로 천체가 가까워지면 점점 푸른색을 띠게 된다(청색이동). 이를 도플러 효과라고 한다./위키피디아
안 연구원이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였던 수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현재 우리 사무실에서 수소가 내는 라이만알파선 광자(photon)의 파장을 재면 121.567 nm(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이다. 그런데 적색이동이 되어서 그 파장이 10배인 1215.67 nm가 되면 적색이동이 9가 됐다고 말한다.
생성 초기에 뜨거웠던 우주가 3000℃ 정도로 식었을 때 양성자와 중성자가 합해지면서 중성수소가 생기고 빛이 발생했다. 이 때 나와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마이크로파로 관측되는 그 빛을 우리는 우주배경복사라고 한다. 그 빛의 적색이동은 1000쯤 된다.”
—우주론 연구를 하려면 분석해야 하는 데이터 용량이 보통 많지 않을텐데.
“망원경이 커지고 검출장치의 성능이 좋아지고, 또한 넓은 영역에서 여러 천체를 동시에 관측하는 등 관측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방대한 데이터가 생산되게 됐다. 데이터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일일이 사람이 분석하려면 한계가 있다. 그래서 AI(인공지능)가 필요하다. AI의 기계학습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화성에서 살 수 있을까?
천문학자들이 우주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들었다. 복잡하고 고단하고 외로운 이 연구의 일차적 목적은 우주의 이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인류가 다른 행성에 삶의 터전을 잡을 수 있을지, 다른 행성의 외계인과 교류를 하게 될지 여부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의 이론적 연구가 먼저 이뤄져야 그 바탕 위에서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창업자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로켓을 발사하며 우주 탐사에 나설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 연구원에게 인류의 새로운 정착지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우주에 지구와 같은 행성이 또 있을 것이라고 보나?
“우주과학자들이 태양계 안에서 우리가 살만한 대체 행성을 찾고 있는데, 아직 지구만한 행성은 없다. 현재까지의 발견으로 보면 태양계 밖에서는 행성을 거느린 별이 일반적이고, 그 외계 행성 중에는 지구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것이 있다. 또 그 중에는 생명체가 발생할 몇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것도 있음을 확인했다. 거기에 진짜로 생명체가 있는지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등으로 확인하려 하고 있다.”

▲인류가 화성에서 살려면 대기가 지구와 달라서 우주복을 입고 생활해야 한다. 사진은 영화 '마션'의 한 장면./20세기 폭스
—화성은 어떤가? 인류의 새로운 정착지가 될 만한가?
“가까운 미래에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기의 양이 지구보다 훨씬 적다. 화성에 산다면 항상 머리에 산소호흡기 헬멧을 쓰고 우주복을 입고 살아야 하는데 쉬울까? 땅 속에 들어가서 지하도시를 건설하는 방법은 통할지도 모르겠다.”
프록시마 센타우리
—화성 외의 다른 정착지는?
“사실 적극적으로 우주 개척에 나서는 사람은 외계 행성으로의 이동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센타우르스 별자리에 있는 프록시마 센타우리 별은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는 약 4.3광년이다. 거기에 아주 작은 탐사선을 보내 지구 같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도 있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외계 행성계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행성 프록시마 센타우리 b의 상상도. 지구보다 좀 크다. 표면이 말라 있지만 물이 완전히 없지 않아 인류가 이주할 수도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유럽남방천문대
—4.3광년이면 빛의 속도로 4.3년을 가야 하는데 그 먼 거리를 탐사선이 어떻게 가나?
안 연구원이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요만한 우주선에 빛을 반사하는 가벼운 돛을 달고 그 돛에 강력한 레이저 빛을 쏘아 가속을 하면 빛의 10분의 1 속도까지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43년이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43년간 그 먼거리를 이동하면서 사진 등을 보내려면 통신을 유지해야 하는데 가능한가?
“그것도 풀어야 할 기술적 과제이다.”
갈 길 먼 한국 천문학
안 연구원과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시간이 광속(光速)으로 지나갔다. 인터뷰 시작한지 3시간이 넘어 시계가 벌써 6시 10분을 지났는데도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회의실 내 대형 프로젝터에 다양한 사진과 그래픽을 띄우고 몸짓으로 행성들의 움직임을 3차원적으로 그려가면서 우주 원리를 흥미진진하게 설명해나갔다.
열정이 넘치는 그의 말을 더 듣고 싶어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꺼내 오후 6시 55분에 예정되어 있던 KTX 귀경 열차 예매를 취소했다. 재미있는 우주 이야기를 좀 더 듣고 나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인간은 하루가 24시간 밖에 안되는 물리 법칙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한국 천문학 연구의 현실과 개선점을 골랐다.
—천문학 연구를 한지 30년이 넘었다. 한국의 천문학 연구 상황은 어떤가?
“한국은 G10(주요 10개국)이라고 평가 받는다. 이런 국제적인 지위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천문학 연구 수준은 매우 부진한 편이다. 외국의 데이터를 보고 분석하는 것은 하고 있지만, 우리가 직접 우주 데이터를 얻는 수준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 워싱턴주와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해 있는 라이고(LIGO) 중력파 관측소 프로젝트에는 전세계 과학자 1000명이 참여하는데 한국인은 10~20명 정도이다. SKA 전파망원경 프로젝트와 하이퍼 카미오칸데 중성미자 측정 프로젝트에도 그 정도의 비율로 참여하려는 수준이다.
우리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1%도 안되니 어디 가서든 1% 정도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G10 국가에서 과연 이 정도 참여로 만족할만한지 의문스럽다. 1% 지분으로는 노벨상을 못받는다. 우주론도 그렇고, 다른 자연과학 분야도 그렇다.”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천문연구원 본원./한국천문연구원
—외국과 비교하면?
“세계 각국의 GDP(국내총생산)와 인구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천문학 연구 수준을 비교해 본 적이 있다.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 5000달러 수준이니 우리와 비슷한 나라로 이탈리아를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탈리아를 과학강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버고(Virgo)라는 중력파 망원경 프로젝트를 주도할 정도의 과학 강국이다. 근대 과학의 창시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나라이다.
이탈리아는 천문학 박사 학위자 수가 1000명 정도 된다. 한국의 경우 350명 정도이니 우리 나라의 3배에 이른다. 스페인도 천문학자수가 우리의 2배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와 비교하면 우리 사정은 더 열악하다. 일본도 유럽 강국과 같은 반열이다. 천문학 뿐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 같은 기초과학이 모두 그렇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지만 기초과학은 아직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탈리아 따라가려면
—우리나라가 이탈리아 수준이 되려면 인력이 얼마나 늘어야 하나?
“박사 학위 소지자가 현재 350명에서 1000명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향후 20년간 1년에 35명씩은 배출이 되어야 한다. 그 동안 정년이 지난 사람이 은퇴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향후 20년간 매년 50명 이상의 박사 학위자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유학생까지 포함해도 한해 10명 정도 밖에 배출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천문학이 발전하겠는가? 생산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 현상을 고려하면 천문학 연구가 선진국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1636년에 그려진 초상화이다. 한국은 이탈리아와 경제 규모가 비슷하지만 천문학 분야 인력과 연구 수준은 한참 못미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위키피디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산을 더 늘려야 하나?
“문재인 정부 들어 기초과학 연구비는 크게 늘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부족한데 연구비만 대폭 늘리면 과학자들에게 과로하라는 말이 될 뿐이다. 더군다나 천문학 연구는 점점 대형화 되어가고 있고, 우리가 이러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주도하려면 사람이 부족하면 곤란하다.”
안 연구원이 잠시 숨을 멈추더니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투자해서 기초과학 연구소를 추가로 설립하고 연구원을 고용하면 젊은 학생들이 미래를 보고 기초과학을 전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학의 학생 정원과 교수 채용도 늘어나게 된다. 박사 1명 양성하는데 10년 걸리므로 이런 일을 지금 시작해도 정상 궤도에 오르려면 10년이 걸린다.”
기초과학연구소 추가로 세워야
—이미 다양한 정부 연구소가 많아서 예산 문제 때문에 추가로 연구소를 세우기가 쉽지 않을텐데.
“물론 정부 출연 연구소를 하나 세우는 일은 정말 힘든 것이 현실이다. 국회 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오찬을 하다가 기초과학 연구소를 세워 달라는 요청 또는 민원을 제기했더니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은 대덕 과학 연구 단지에 있는 정부 출연 연구소들이 다 기초과학 연구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연구소들은 정부 정책 실행의 기반이 되는 과학 기술 지식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공학 또는 응용과학 위주의 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전시 대덕 연구단지는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소들의 집합지이다. 사진은 대덕 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원./한국과학기술원
—한국에 기초과학 연구소가 몇 개나 되나?
“극히 최근까지도 기초과학 연구소는 사실상 천문연구원이나 고등과학원 등 몇 개에 불과했다. 천문학자들은 그나마 역사적인 이유로 국립천문대에서 시작된 한국천문연구원이 존재하는 덕택에 기초과학을 연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다른 분야 학자들이 부러워한다. 그 이후 기초과학원(IBS)이 생겨서 어느 정도 희망의 싹은 틔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연구 프로젝트를 9년간만 시행하는 9년 일몰형으로 운영된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초과학원에도 대들보 노릇을 하는 물리연구소, 화학연구소, 생물학연구소, 천문학연구소, 수학연구소 등을 설치하여 장기간에 걸쳐 운영을 보장하게 하고, 특정 유망 분야는 지금처럼 9년 일몰형으로 운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체제를 개편하여 안정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국내에서 순수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는 매우 드물다. 사진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한국고등과학원 홈페이지.
—기초과학 연구 인력수를 외국과 비교하면?
“미국의 웬만한 주립대학과 비교해도 한국의 대학들은 물리학, 수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 학생 수와 교수 수가 턱없이 적다. 가령, 미국의 오하오주립대 물리학과에는 학부생 500명과 대학원생 200명이 재학중인데, 서울대는 그 절반에 불과하다. 대학의 연구 인프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안 연구원이 일본 교토대의 유카와 이론물리학연구소 이야기를 꺼냈다. 유카와 연구소는 원자핵 가운데 중간자의 존재를 입증하고 그 질량을 측정해 2차 대전 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유카와 히데키(湯川 秀樹) 교토대 교수를 기념해 설립한 연구소이다.
“유카와 연구소의 천체물리 연구실은 1년 운영비가 30억원인데, 그 지하실에 있는 수퍼컴퓨터는 몇 년 전까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보유하여 전국의 과학자들이 사용료를 지불하고 쓰던 수퍼컴퓨터와 비슷한 성능이었다. 그런 연구 장비를 중성자별 충돌 및 중력파 생성 시뮬레이션을 하는 연구실에서 거의 단독으로 사용하여 계산 코드를 만들고 실제 최종 계산은 세계 제일의 교(京)라는, 그들이 K-컴퓨터라고 부르는 고성능 수퍼컴퓨터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일본 유카와 연구소
—유카와 연구소는 어떻게 설립됐나?
“2차대전 패망 직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여 일본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준 유카와 히데키 박사를 위해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차려준 연구소이다. 정부의 지원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성금을 모은 것으로 안다.
최근 중력파 연구를 하는 국내 천체물리학자들이 서울대에 설립한 중력파 우주연구단이 정부의 과학 난제 도전 융합사업으로 선정되어 첫발을 내딛었다. 이러한 연구소의 연구가 일본의 교토대학 유카와 연구소의 중력파 연구실 수준으로 정상궤도에 오르자면 앞으로 인력과 인프라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도 물론 필요하지만, 뜻을 가진 개인이 이러한 사업에 기부한다면 피땀 흘려 쌓은 국부를 나라의 미래와 유능한 인력에 투자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 교수를 기념해 만든 일본 교토대의 유카와 이론물리학연구소. 풍부한 시설과 자금으로 이론 물리학 연구에서 앞서가고 있다./유카와 연구소
안 연구원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일본 이야기가 계속 됐다.
“대학의 기초과학 연구 체제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원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해야 할 뉴스가 있다. 장기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이, 더군다나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처지인데도, 2022년부터 대학 기금이란 명목으로 총 1000억달러(약 120조원) 정도의 기금을 조성해 연 3~4%의 운용 수익금으로 대학의 과학연구, 인프라 확충, 박사 학생 지원에 사용한다고 한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과학논문 평가에서 세계 4위에서 11위로 추락했다. 이 때문에 이렇게 거대한 과학 기금을 조성하게 됐다고 일본 문부성이 설명했다. 일본 국민들이 창출해낸 국부의 일부가 미래를 위해 사람에 투자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국민이 피땀 흘려 창출한 우리의 국부도 미래 인력에 투자되는 제도적 장치가 확고하게 마련된다면 한국이 더 강건한 과학기술 국가가 되지 않겠나?”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천지사방에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무량무변(無量無邊)한 우주를 연구하는 한국천문연구원 건물이 다른 국책연구소에 비해 매우 소박하게 느껴졌다.
조선일보
04.14 50배 큰 핵 가졌다... 태양계 최대 크기 혜성 발견
폭 120㎞로 일반 혜성의 50배 크기

▲지난 1월 3일 허블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C/2014 UN271 혜성(베르나르디넬리-베른스타인 혜성). 왼쪽은 허블 촬영 영상이고 가운데는 이 영상의 빛을 조정해 핵을 둘러싼 대기인 코마까지 나타낸 것이다. 오른쪽은 핵이다./NASA
태양계에서 가장 큰 혜성(彗星)이 발견됐다. 혜성의 핵 크기가 일반적인 혜성의 50배에 이른다.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은 “허블 우주망원경이 중심 핵의 폭이 120㎞에 이르는 혜성 ‘C/2014 UN271′을 발견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혜성은 발견자인 페드로 베르나르디넬리와 게리 베른스타인의 이름을 따 ‘베르나르디넬리-베른스타인 혜성’으로 명명됐다.
◇일반 혜성 50배 크기 핵을 가져
혜성은 2010년 칠레의 세로 톨롤로 범미 천문대에서 처음 관측됐다. 당시 혜성은 태양에서 약 48억km 떨어져 있었다. 태양계 맨끝에 있는 해왕성까지 거리에 해당한다. 이후 과학자들은 지상의 천문대와 우주망원경으로 혜성을 집중 연구했다. 혜성의 핵은 2014년 관측됐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이번에 혜성의 존재를 최종 확증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데이비드 자윗 교수는 “혜성이 그토록 먼 곳에서도 밝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했다”며 “이제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확증했다”고 말했다. 자윗 교수와 후만토 마카오과기대 교수 연구진은 12일 국제 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에 이 혜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혜성은 소행성(小行星)과 마찬가지로 태양 주변을 긴 타원 궤도를 따라 도는 작은 천체지만, 꼬리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혜성은 유기물질과 얼음으로 구성됐는데 태양에 가까이 가면 열을 받아 이들이 휘발하면서 핵 주위로 코마라는 대기를 형성한다. 태양에 다가갈수록 대기 성분이 뒤로 밀려나면서 긴 꼬리를 만든다.
이번 혜성 전에는2002년에 발견된 ‘C/2002 VQ94′이 약 100㎞로 가장 큰 혜성이었다. 이번 혜성은 그보다 훨씬 크지만 맨눈으로 볼 수 없다. 핵이 11㎞보다 조금 컸던 핼리 혜성은 맨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이번 혜성은 워낙 멀리 있어 보기 어렵다. 혜성은 현재 지구로부터 약 30억㎞ 거리에 있다. 2031년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지만 그 거리도 16억㎞ 거리로 태양에서 토성 사이와 비슷하다.

▲C/2014 UN271 혜성과 다른 혜성 크기 비교. 이 혜성은 폭 120㎞로, 핼리 혜성의 10배, 헤일-밥 혜성의 두 배에 이른다./NASA
◇빛 3%만 반사해 석탄보다 어두워
자윗 교수 연구진은 허블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영상과 다른 연구진이 근적외선 파장대에서 포착한 영상을 결합해 혜성의 크기를 쟀다. 분석 결과 혜성의 핵은 자신에게 온 빛을 3%만 반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낙 커서 우주망원경에 밝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혜성은 석탄보다 더 어둡다”고 자윗 교수는 말했다.
베르나르디넬리-베른스타인 혜성은 태양을 300만년 주기의 타원궤도로 돈다. 가장 먼 지점에 있을 때는 태양에서 0.5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거리가 된다. 이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별까지 거리의 8분의 1에 해당된다.
나사는 혜성이 태양계가 형성되던 초기에 남은 얼음 ‘레고 블록’이라고 설명했다. 나사는 “혜성들은 거대한 외계 행성들 사이의 중력 핀볼 게임에서 돌연 내쫓겼다”며 “축출된 혜성들은 태양계를 둘러싼 혜성들이 몰려 있는 오르트 구름대에 있다”고 밝혔다.
오르트 구름은 약 1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혜성들이 태양계를 껍질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추정되는 가상의 천체이다. 1950년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얀 오르트가 혜성의 근원지라고 가설로 제시했다.
조선일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04.25 美 우주선 개발, 국가 경쟁서 러에 밀렸지만… 민간 기업이 나서 역전
지난 10일, 민간인들만 탑승한 미국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이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착했다. 이들이 부담한 비용은 1인당 5500만달러(한화 약 676억원)로 비싸다. 그러나 아폴로 우주선에 비하면 훨씬 저렴해진 것이다. 아폴로 우주선 당시 1인당 비용은 3억9000만달러(약 4800억원)로 이번 스페이스X 비용의 7배에 달한다.
이는 개발된 우주선으로 우주를 왕복하는 비용이고, 우주선 연구개발비는 이보다 훨씬 많다. 예컨대 미국 정부가 아폴로 계획에 사용한 예산은 258억달러에 이른다. 아폴로가 달에 착륙한 1969년 당시 금 시세(그램당 1.32달러)로 환산하면, 무려 1만9500톤의 금을 쏟아부은 셈이다. 3.75그램에 30만원 정도인 요즘 금값으로 생각하면 1560조원에 달한다.

우주여행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국가 간의 자존심을 건 경쟁이 있다.
인간이 우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말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Konstantin Tsiolkovsky)에서 시작되었다. 볼셰비키 혁명을 거친 소련에서 그의 후계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중 가장 독보적인 인물이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르게이 코롤료프(Sergei Korolev). 미국의 우주개발을 이끈 폰 브라운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소 냉전 시대에 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와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탄생시킨 전설적인 인물이다. 1930년대 이미 로켓 제작을 시도했던 코롤료프는 스탈린의 대숙청에 휘말려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우주 개발 같은 쓸데없는 연구로 인민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이유였다.
그가 주목받은 것은 치올콥스키의 구상을 실현한 독일의 V2 로켓 때문이다. 전후 미국과 대결이 불가피한 소련은 강력한 미사일이 필요했다. 비행기로 핵무기를 투하한 미국과 달리 항공 기술이 뒤처진 소련은 탄도미사일이 절실했기에 코롤료프를 복귀시켰다. 미국 역시 V2 개발자 폰 브라운을 데려가 로켓 개발을 하고 있었지만 진도는 느렸다. 코롤료프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1950년대에 이르러 V2를 능가하는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한다. 그는 이를 이용해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당국을 설득한다. 이렇게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탄생했다.
1957년 소련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렸다. 달에 이어 두 번째 위성을 지구에 선물한 셈이다. 이때만 해도 소련 당국은 인공위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스푸트니크의 성공 소식은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구석에 조그맣게 실렸다. 하지만 스푸트니크가 보내는 신호를 포착한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코롤료프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역사는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부른다. 코롤료프는 멈추지 않았다. 더 대담한 계획을 추진한다.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하며 미국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미국이 아폴로 계획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것은 소련에 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하지만 폰 브라운조차 몰랐을 정도로 코롤료프는 존재 자체가 극비였다. 스푸트니크와 유리 가가린이 던진 엄청난 충격에 경의를 표한 노벨상 위원회는 이 프로젝트를 이끈 과학자가 누군지 문의했지만, 소련 정부는 끝까지 함구했다. 이 무렵, 코롤료프의 건강이 나빠진다. 강제수용소 생활로 얻은 지병이 문제였다. 결국 그는 수술대 위에서 사망한다. 1966년의 일이다. 그제야 소련 당국은 코롤료프라는 이름을 공개했다. 그의 사망으로 리더십을 상실한 소련의 우주개발은 급격히 위축되고, 1969년 미국이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며 추월한다.
코롤료프의 천재성은 최적으로 단순화한 설계와 저비용의 우주 개발에 있다. 또한 거대한 엔진 대신 작은 엔진들을 묶는 클러스터링(clustering)을 개발해 초기에 소련이 앞설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고, 그사이 폰 브라운이 거대한 엔진을 클러스터링하며 인간을 달에 보냈다. 그러나 NASA의 고비용 구조는 결국 미국의 발목을 잡는다. 천문학적 비용의 아폴로 계획이 종료되자 인간을 달에 보낸 거대한 엔진을 더 이상 만들지 못했다. 대신 우주왕복선으로 비용을 절감하려고 했다. 하지만 1인당 비용은 여전히 1억7000만달러(약 2091억원)에 달했다. 게다가 몇 번의 사고를 거치며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2011년 폐기되고 만다.
반면 코롤료프가 설계한 유인 우주선 소유스는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게다가 1인당 비용은 8000만불(약 984억원)로 우주왕복선의 반도 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자존심을 접고 러시아의 소유스 우주선을 빌려 사용하게 된다. 고비용 엔진에 고심하던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러시아 로켓 엔진을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그만큼 코롤료프의 우주선과 엔진은 여전히 강력했고, 훨씬 싸고 안전했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일론 머스크였다. 그는 스페이스X를 설립하며 코롤료프의 저비용 방식에 주목했다. 여기에 독자적인 재사용 기술을 더해 비용을 더욱 줄이며 러시아를 따라잡기 시작한다.
2020년 5월, 마침내 일론 머스크는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다. 최고의 가성비로 군림하던 러시아의 소유스를 민간 기업이 더 낮은 가격으로 대체한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미국 정부는 2021년 더 이상 러시아 엔진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과 같은 실리콘밸리의 거대 자본들이 앞다투어 우주 투자에 나선 결과였다. 한때 우주 개발은 국가만이 할 수 있는 과학이었지만, 국가 경쟁이 촉발한 비용 절감이 민간의 우주여행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한편, 일론 머스크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코롤료프를 꼽았고, 2020년 7월 코롤료프의 후손들을 스페이스X에 초청했다.
조선일보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 공학박사
06.20 보이저호, 65년간 태양계 탐사… 민주주의 저력 보여준 NASA 프로젝트
1961년 2월,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에 미항공우주국(NASA)의 국장으로 제임스 웹(James Webb)을 임명한다. 재무부 예산국장을 거쳐 국무 차관까지 지낸 그는 전형적 관료였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았던 그가 발탁된 것은 우주개발에 행정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며 우주 경쟁이 벌어졌지만, 미국은 여전히 소련에 뒤지고 있었다. 얼마 뒤,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그래픽=백형선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다. 집권 초 케네디 민주당 정부는 다급해졌다. 앞서 스푸트니크 쇼크 당시 우주개발에 손을 놓고 있다고 공화당을 공격했는데, 민주당 집권 후에 소련이 더 큰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유리 가가린 우주 비행 이틀 후인 4월 14일 미 백악관은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이때 제임스 웹은 소련을 단번에 추월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인간을 달에 보내자는 것. 하지만 필요 예산이 380억달러에 이른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시 미국 정부의 금 보유량을 모두 합해도 178억달러어치였다. NASA 연구원들조차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웹은 가능하다고, 아니 가능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는 기술이나 예산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핵심이라고 보았다. 어렵고 복잡한 과제일수록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교체되기 마련이고, 같은 정권이라도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이 달라진다. 과학자들이 회의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제임스 웹은 달랐다. 민주 국가에서 이것이 가능해야만 독재 체제나 통제 국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이라 믿었다. 이에 깊이 공감한 케네디는 회의적 여론에도 제임스 웹의 손을 들어주었다.
1961년 5월 25일 케네디는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한다. 인류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얽힌 부처들을 설득하고,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느슨하고 분산된 NASA 조직의 재정비도 필요했다. 이 모든 과정에 제임스 웹이 있었다. 그는 여론도 꼼꼼히 살폈다. 1962년 2월 20일 존 글렌이 미국인 최초의 우주 비행에 성공하며 스타가 되자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존 글렌을 미디어에 드러내며 소련에 뒤지지 않는 NASA 이미지를 구축한다. 우호적 여론에 예산을 호소하자, 의회는 만장일치로 화답했다.
모두가 달에 갈 생각에만 빠져 있을 때, 그는 엄청난 국민 세금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폴로 계획으로 빠듯한 예산에도 다른 행성 탐사를 병행했다. 어렵게 얻은 성과가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금성과 화성 탐사를 위해 마리너(Mariner) 계획을 지원하고, 중단된 파이오니어(Pioneer) 계획을 되살려 목성과 토성을 탐사했다. 파이오니어 계획으로 확보된 목성과 토성 자료는 마리너 계획과 결합하여 보이저(Voyager) 계획으로 발전한다.
모든 일이 순조롭진 않았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에도 아폴로 우주선 발사는 지연되다가 1967년에야 처음 시도되었다. 그런데 이 첫 번째 발사, 즉 아폴로 1호는 출발도 못 한 채 지상에서 불타 세 우주인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여론이 급변했다. 당시 미국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국론은 분열되고, 재정은 파탄 나고 있었다. 게다가 인종 간 계층 간 갈등으로 쌓인 불만은 아폴로 사고에 대한 비난으로 쏟아졌다. 달 탐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찬성의 2배에 달했다.
제임스 웹이 전면에 나섰다. 그는 즉각 조사에 착수해, 온갖 청문회에 불려 다니며 사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가감 없이 증언했다. 이 과정이 언론에 노출되자 수많은 공격이 그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이는 그가 의도한 것이다. 여론의 화살이 제임스 웹으로 쏠리게 만들어 NASA에 대한 신뢰는 훼손되지 않게 했다. 그 결과 곧 달 탐사가 재개된다. 사고가 수습되고 아폴로 계획이 제 궤도에 오르자 1968년 10월 그는 사임한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불과 아홉 달 전이었다.
그가 되살린 파이오니어 계획은 1958년부터 1978년까지 탐사선을 발사했다. 1972년 발사된 파이오니어 10호는 2003년 임무가 종료되었으니 파이오니어 계획은 무려 45년간 계속된 것이다. 1960년 시작된 마리너 계획은 1962년 마리너 1호를 시작으로 마리너 11, 12호가 1977년 보이저 1, 2호로 이름을 바꾸어 발사되어 아직 활동 중이다. 2025년 보이저호의 임무가 종료되면 65년간 이어진 프로젝트가 된다. 아폴로 계획의 후속으로 1972년 시작된 우주왕복선 계획은 2011년 종료되었다. 39년짜리 프로젝트였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그를 기리는 ‘제임스 웹’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망원경이 우주로 발사되었다. 허블 망원경을 대체하는 이 프로젝트는 1989년 예산 5억달러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중간에 설계가 변경되고 보완되며 32년 동안 97억달러가 투입되었다. 수십 년간 ‘돈 먹는 하마’라는 평가를 받던 이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던 저력은 제임스 웹에게서 비롯되었다. 여러 논란에도 NASA라는 기술적 자산이 여전히 탄탄한 바탕에는 이처럼 뛰어난 행정가가 있었다. 무엇보다 제임스 웹의 가장 큰 업적은, 한 국가가 거대한 위협을 마주했을 때, 설령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민주주의가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을 과학으로 보여준 것이다.
조선일보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06.22 마침내 우주로 첫발 내디딘 대한민국
한국의 첫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전남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돼 위성의 궤도 안착에 성공했다. 지난해 10월 1차 발사의 실패 원인을 보완해 발사와 단 분리, 성능 검증 위성의 궤도 진입까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러시아·유럽·일본·중국·인도에 이어 중량 1t 이상 위성을 자력 발사할 능력을 갖춘 일곱 번째 우주 자립국이 됐다.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및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실제 기능이 없는 모사체(더미) 위성만 실렸던 1차 발사와 달리 이번 2차 발사 누리호에는 성능검증위성과 4기의 큐브위성이 탑재됐다. /2022.06.21 사진공동취재단
누리호에는 12년간 예산이 약 2조원 투입됐고, 300여 국내 기업이 참여했다. 발사체 기술은 미사일로 전용이 가능한 대표적 이중 용도로, 어느 나라도 전수해주지 않는다. 1950년대에 개발한 발사체의 설계도조차 극비에 부칠 정도다. 국내 연구진은 다른 나라 박물관에 전시된 발사체를 찾아다니고, 나로호 발사 당시 방한한 러시아 과학자들이 버린 서류까지 뒤지며 기술을 확보했다. 이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누리호 성공으로 이어졌다.
선진국들은 우주를 미래 산업으로 보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우주정거장, 우주 호텔, 달 기지 등을 짓는 계획이 쏟아져 나오고, 5억원이 넘는 우주여행 티켓도 수백 장이 팔려나갔다. 100만명이 거주하는 도시를 화성에 건설하겠다는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기업 가치는 160조원으로 세계 최대 방산업체인 록히트마틴을 훌쩍 뛰어넘는다. 15~16세기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유럽 국가들이 수백 년간 전 세계를 지배한 것처럼 앞으로 패권은 우주를 선점하는 나라가 거머쥐게 될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27년까지 네 차례 누리호를 더 발사해 신뢰성을 확보한 뒤 기술을 민간에 이전할 계획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수십 년 축적한 기술이 스페이스X 탄생으로 이어진 것처럼 우리도 누리호를 통해 우주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올해 8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가 미국에서 발사되고 2030년에는 우리 발사체로 달 착륙에 도전한다.
한국은 인공위성, 우주 센터, 우주 발사체라는 우주산업의 3대 핵심 경쟁력을 모두 확보했지만 아직 우주 선진국과 경쟁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발사체 회수와 재활용 기술, 더 무거운 인공위성과 탐사선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발사체 기술 등 넘어야 할 거대한 장벽이 수두룩하다. 우주 강국 도약은 수십 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한국판 NASA’ 설립을 서두르고, 예산 확대와 인력 양성 계획도 공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국에는 이미 이노스페이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컨텍 같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창업자들의 우주 스타트업이 싹트고 있다. 이 스타트업들이 우주 시장을 누비는 한국 대표 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사설
06.22 “너희가?” 러 멸시에도 토탈사커처럼 뛰었다, 누리호 성공시킨 그들
[누리호 발사 성공] 누리호 개발·발사 이끈 항공우주연구원 사람들
‘궤도 안착’ 성공하자 껴안고 눈물

▲21일 오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종합관제실에서 한 연구원이“누리호에 실린 위성과 남극세종기지 간의 교신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21일 오후 3시 59분 49초.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 정적을 뚫고 여성 연구원의 카운트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0, 9, 8, 7… 엔진 점화, 이륙, 누리호가 발사되었습니다.”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과 장영순 발사체책임개발부장 등 연구원 30여 명은 긴장된 표정으로 누리호 이륙을 확인했다.
1단 로켓과 페어링(위성 보호 덮개)에 이어 2단 로켓이 순조롭게 분리될 때마다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연구원들은 이내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발사 875초 만인 오후 4시 14분 36초. “와!” 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리호 3단에서 발사된 성능 검증 위성이 지구 700㎞ 궤도에 안착한 것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지난 12년 3개월 동안 오직 이날만을 위해 달려온 항우연 개발진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 “1차 발사 이후 두 달간 밤샜다”
2010년 시작된 누리호 개발은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웠다.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우주 분야에서 오직 우리만의 힘으로 답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4년 만에 실시한 첫 엔진 연소 테스트의 불꽃은 채 10초도 가지 않았다. 누리호 개발에는 ‘반세기 전 미국은 달까지 갔다 왔는데 이제와 무슨 우주 개발이냐’라는 냉소적인 여론도 늘 뒤따랐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2015년부터 누리호 개발을 진두지휘해온 고정환 본부장은 “이렇게 잘 마무리돼 다행”이라며 “누리호는 이제 첫 발걸음을 뗐다. 우리나라가 우주로 나갈 길이 열렸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미 텍사스A&M대에서 위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0년 항우연에 합류, 러시아와 협업한 나로호 발사 등 7차례의 국내 발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고 본부장은 “러시아와 나로호를 개발할 때 러시아가 ‘너희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우리를 무시했다”면서 “누리호는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 조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움 없이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누리호의 국산화율은 94.1%에 달한다. 로켓 부품 37만개 중 압력·온도 센서 등 기성품과 일부 소형 부품을 빼면 전부 국산이다.
지난해 10월 1차 누리호 발사 실패 때 고 본부장은 연구원들과 두 달간 밤을 새우면서 실패 원인을 찾았다. 비행 정보를 담은 데이터 2600건을 역추적했다. 그 결과 3단 산화제 탱크 안에 있던 헬륨 탱크 고정부가 로켓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풀리면서 산화제 탱크 내부에 균열을 낸 것을 확인했다. 고 본부장은 “이후 2차 발사를 준비하면서 빠뜨린 게 없는지 늘 생각했고 매일 조각잠만 자느라 꿈조차 꾼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발사체를 언제 만들지 모르는 깜깜한 시절이 있었다”며 “이제부터는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 “누리호의 모든 것이 새로운 기술 성취”
누리호의 핵심 동력인 75t 엔진 개발 과정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상 연소 시험 도중 설비가 폭발해 고장 났고, 엔진은 연소 불안정으로 여러 차례 터졌다. 20차례 넘게 로켓 엔진 설계를 새로 바꾸고, 184회 1만8290초의 연소 시험을 거쳐 엔진을 완성시켰다. 결국 2018년 세계 일곱 번째로 75t 엔진 시험용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그 과정을 이끈 이가 김진한 항우연 전 발사체엔진개발단장이다.
누리호에 처음 도입한 클러스터링(clustering) 기술 개발은 조기주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이 주도했다. 클러스터링은 1단 로켓에 엔진 여러 기를 한 다발로 묶는 기술이다. 조 팀장은 “엔진 4개를 동시에 작동시켜 똑같은 추력으로 작동하는 기술이 중요했다”라며 “누리호의 모든 것은 우리가 새롭게 성취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로켓 발사대도 새로 개발했다. 강선일 발사대팀장은 “발사체가 최대 추력인 300t에 도달할 때까지 고정했다가 풀어주는 ‘지상 고정 장치’ 개발은 민간 기업 엔지니어를 포함해 60여 명의 개발진이 이룬 성과”라면서 “발사대 개발에 참여한 협력 업체가 갑자기 도산해 개발하던 장비를 밤새워 옮기는 일도 있었다”라고 했다. 강 팀장은 “한국의 우주 연구 1세대가 발사체 사업의 기틀을 닦았으니 후배들은 ‘스페이스X’ 같은 선진 우주 기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누리호 사업에는 300여 국내 기업의 엔지니어 500여 명도 참여했다. 누리호 부품 총조립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맡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로켓 액체엔진 개발에 참여했다. 발사대는 현대중공업이 주축이 돼 구축했다. 총사업비의 약 80%인 약 1조5000억원이 국내 산업계에 집행됐다. 국내 기업들이 우주 산업 분야에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06.22 누리호 발사 성공, 우주로 가는 길 열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고흥=사진공동취재단]
위성 목표 궤도 안착, 세계 7대 우주강국 합류
2031년 달 착륙 목표…산업 생태계 육성 시급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어제 오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 2차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지구 상공 700㎞ 궤도에 성능검증위성을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이로써 한국 땅에서 한국형 발사체로 우주로 가는 길이 열렸다. 1~2단 로켓의 점화와 분리, 3단 로켓에서 위성의 분리까지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누리호에서 분리된 위성은 남극 세종기지와의 교신에도 성공했다. 설계에서 제작·시험·발사까지 독자 기술로 이뤄낸 첫 우주발사체의 성과다. 지난해 10월 1차 발사 때 최종 단계에서 위성을 목표 지점에 올려놓지 못했던 아쉬움을 털어냈다.
한국은 자력으로 실용 위성을 실어 우주로 올린 세계 일곱 번째 나라가 됐다. 우주 강국이 되려면 ▶발사체를 자력으로 개발해 ▶상시 발사할 능력을 보유하고 ▶위성이 보내온 정보를 활용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우주 강국의 핵심 요소인 우주발사체를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 2013년에는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술인 1단 로켓 엔진은 러시아에 의존해야 했다. 이번 누리호의 성공이 우주 강국을 향한 여정에서 중대한 이정표가 되는 이유다.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길을 왔지만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당면 과제는 ▶한국형 발사체의 성능을 향상하고 ▶반복적인 발사 성공으로 국내 우주산업의 역량을 높이는 일이다. 과기정통부는 2027년까지 네 차례의 추가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약 2조원이 들어가는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도 진행 중이다. 2031년에는 차세대 발사체를 이용해 달 착륙선을 보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21세기 우주 개발에선 산업적 측면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강대국이 정치·군사적 목적으로 우주 개발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민간 중심의 우주 개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모습이다. 우주 개발은 방송·통신 산업과 함께 자율주행 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 전반에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미친다. 세계 각국이 우주 개발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투자를 강화하는 이유다. 글로벌 우주산업의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약 530조원으로 이미 반도체 시장을 능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누리호의 성공으로 국내에서도 우주산업 생태계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다. 이번 누리호 개발에는 300곳이 넘는 국내 기업이 참여했다. 발사체 기술의 민간 이전과 공동연구를 통해 우주 개발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육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미 미국에선 스페이스X 등 민간기업의 우주 개발 경쟁이 빨라지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의 성공 사례처럼 우주 개발에서도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기술과 기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사설
06.23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고통
가난하고 낙후했지만
그래도 갈 길 갔던 中
핵과 우주 강국 도약
우리 로켓, 전투기
경제성 기술력 낙후
하지만 가야 할 길
1년여 전 한국형 우주발사체 1단 로켓 연소시험이 성공하고 한국형전투기(KF-21) 시제기가 공개됐을 때 이 두 거대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준 역대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글을 썼다. 확인해보니 1999년 과학기술부조차 별 관심이 없던 우주 개발 사업의 타당성 조사 예산 10억원을 김형오 전 국회의장(당시 의원)이 반영했다고 한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한 번의 실패를 거쳐 그제 마침내 우리 우주발사체가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우주 선진국보다 50년 이상 뒤처지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도 우주를 향한 첫 발걸음을 떼었다. 이는 역사적 이정표다.
KF-21 전투기 시제기도 모습을 드러낸 지 1년여 만인 7월 말 드디어 활주로 활주부터 시작해 첫 시험비행에 나선다. 수 많은 지상 시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비행기는 바퀴가 실제로 모두 공중에 뜰 때까지는 비행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시험비행이 중요한 고비다.
두 사업 모두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엄청난 돈이 드는데 성공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다. 아직도 난관이 많다. 우주로켓은 추진력을 훨씬 더 키워야 한다. 일본 로켓은 우리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물체를 우주로 보낼 수 있다. 미국의 규정도 장애 요인이다. 미국은 자국 부품이 들어간 위성을 다른 나라 로켓으로 쏘아 올리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유럽 일본 등 극소수 국가만 예외인데 우주 개발이 늦은 우리는 거기에 끼지 못했다. 현재 우리 기술만으로는 위성을 만들 수 없다.
어렵다, 안 된다, 못 한다는 이유를 찾으면 몇백개가 넘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0′이 아니면 시도해보는 모험을 해온 것이 우리 역사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얼마 전 고체연료 로켓의 연소 시험에 성공했다. 이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지만 우주로켓에 붙이면 추진력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선진국들도 대형 우주로켓은 이렇게 발사한다.
중국을 겨냥해 경제와 기술, 공급망 동맹을 확대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우리가 우주로켓 발사에 성공한 이상 미국도 합리적이지 않은 위성 제한 규정을 마냥 고집하지는 않을 수 있다.
KF-21 전투기가 공군에 전력화되는 2020년대 후반엔 선진국의 인공지능 6세대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다닐 가능성이 높다. 4.5세대인 KF-21은 나오자마자 구식 전투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못지않게 구세대 전투기들도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폴란드 국방장관 일행이 우리 FA-50 전투공격기 48대 구매 의사를 밝힌 것도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안보 위협을 크게 느끼고 있는 폴란드 측은 우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빨리 만들 수 없으면 한국 공군이 쓰고 있는 FA-50이라도 먼저 좀 줄 수 없느냐’고 타진했다고 한다. FA-50에 대해서도 조그만 전투기 만들어 뭐하느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결국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전투기만이 아니다. K2 전차, K9 자주포도 유럽에서 대박 조짐까지 있다고 한다. 6·25 침략을 당했을 때 총 한 자루 못 만들던 우리가 다른 나라도 아닌 유럽에 전투기, 탱크, 자주포를 팔게 됐다. 안 된다고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기적이다.
중국의 달 탐사 계획 총책임자는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고통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중국은 소련이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자마자 핵 개발에 나섰고,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직후 우주개발에 착수했다. 그때 중국은 가난하고 후진적인 나라였지만 가야 할 길을 갔다. 그 결과 핵 보유국이 됐고, 이제 우주 경쟁에선 미국도 못 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하는 등 미국을 추월할 것 같다는 평가마저 받고 있다. 중국의 우주 인력은 30만명으로 미국의 15배가 넘는다고 한다.
갈 길은 너무나 멀다. 우리 우주로켓은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 등 선진국 로켓에 비해 경제성과 기술력이 크게 떨어져 비교조차 힘들 정도다. 전투기도 선진국들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영원히 가지 못한다. 그로 인한 낙후와 고통은 미래 세대가 져야 한다. 다른 얘기이지만 창의성 교육으로의 개혁, 경직적인 노동 제도에 대한 개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연금 개혁, 방만한 공공 개혁도 마찬가지다.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후세에 죄를 짓는다. 우주발사체 개발에 성공한 연구 개발진에게 감사를 보낸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