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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機의 韓半島 2022-10/ 10.01 진짜 외교 참사는 지난 5년간 다 벌어졌다 - 10.31 ‘한·중 공동체’는 어디로 갔나

상림은내고향 2022. 11. 2. 17:04

危機의 韓半島 2022-10/

10.01 진짜 외교 참사는 지난 5년간 다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외교참사·거짓말 대책위원회' 발족식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외교 참사’로 규정해 외교장관 해임 건의안을 일방 처리한 더불어민주당이 30일 윤 대통령을 겨냥해 “해임 건의안을 묵살하면 국민 분노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순방에 아쉬운 점이 있다. 특히 대통령 사담(私談)이 방송 카메라에 찍혀 논란을 빚었다. 방한 중이던 미국 부통령은 이 논란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외교적 수사였다 해도 진짜 외교 참사라면 이렇게 말하겠나. 영국 여왕 조문 논란도 장례식에 참석하면 예를 다한 것이다. 관 앞에서 헌화하지 못한 나라가 많지만 이를 정치 쟁점화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난 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한국을 예외로 두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실제 국익과 관련한 성과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문제는 국익과 관련된 실질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는 가십성 얘기들이다.

 

민주당의 ‘외교 참사’ 주장은 내로남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외교 참사는 지난 5년간 벌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3박 4일 방중 당시 10끼 중 8끼를 혼자 먹었다. 있을 수 없는 국가 수치다. 한국 대통령을 불러 망신 주고 길들이려는 중국 의도에 그대로 따라갔다. 2018년 유럽 순방 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에게 “대북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가 “비핵화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정반대 면박을 들었다. 우방국을 상대하는 정상 외교에선 상상도 못 할 대형 사고다. 이듬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는 제재 위반 사례를 소개한 연례 보고서에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과 벤츠 리무진에 나란히 탄 사진을 실었다. 유엔 회원국 대통령이 제재 위반 현행범으로 지목된 것도 초유의 일이다. 2019년 일본과의 맺은 정보 교환 협정 파기 결정 후 “미국도 이해했다”고 했는데 미국 정부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한미 사이에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2018년 12월 비행 일정까지 바꿔가며 체코에 갔는데 정작 그 나라 정상은 해외 순방 중이었다. 문 전 대통령이 받기로 돼 있다던 카자흐스탄 정부 훈장 수여가 돌연 취소되고, 국빈 방문한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하고, 브뤼셀 아셈 회의장에서 단체 사진 촬영을 놓친 것 등은 작은 일에 속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욕설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대표가 욕설에 대해 말할 수 있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조선일보  사설

 

10.04 동맹 외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동맹의 수준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측정할 수 있다. 하드웨어는 양자 간 폭넓은 정책 협의 기구로서 대개 군사 부문을 말하지만 최근엔 통상·투자·글로벌 보건·개발 원조·공급망 등의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하드웨어만큼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인간적이고 개인적 측면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좋을 때로 정책 목표가 일치하고 정상 간 친분이 강력할 때다. 하드웨어가 좋지 않을 때도 정상 간 친분은 정책 이견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 소프트웨어가 나쁠 때는 동맹 관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나쁜 소통의 사례로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 만남을 들 수 있다. 워싱턴에 온 김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이 왜 햇볕정책을 지지해야 하는지 장시간 설명했다. 부시는 공손히 들었지만, 유쾌해하지 않았고 이 상황은 두 사람의 사이를 곤란하게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손조로운 첫발을 뗀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한·미·일 삼각 협력, 공급망 안보, 글로벌 보건, 청정 5G 네트워크, 반도체 칩4 동맹, 개발 원조 등 여러 이슈에서 광범위한 협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하드웨어가 좋았다. 더 중요한 소프트웨어에서 두 정상은 좋은 친분 관계를 쌓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당신을 깊이 신뢰한다”고 하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이후 양측의 사소한 실수가 이어지면서 약간 차질을 빚은 것 같다.

 

우선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7월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제막 행사에 윤석열 정부는 국방장관, 보훈처장, 그리고 기념비 건립을 후원한 여러 대기업 최고경영자를 보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부통령 배우자를 보냈는데, 이 의전상의 부조화를 대다수 한국인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2주도 지나지 않아 미 국가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논란의 대만 방문을 마친 뒤 방한했지만, 윤 정부의 어느 누구도 공항에 나오지 않아 펠로시를 난감하게 했다.

 

이 낭패가 있고 열흘 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미·일 협력을 위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연설했다. 한국 내부적으로 예민한 주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연설은 워싱턴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대신 연설 다음 날 바이든 행정부는 북미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전기차 구매자에게 7500달러의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이 들어간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에 서명했다. SK·삼성·현대가 지난 5월 조지아·테네시·텍사스에 수십억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도 한국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가 취해진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 조치는 한·미 FTA 취지와도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어 뉴욕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미 의회를 폄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켜진 마이크 설화’에 휘말렸다. 윤 대통령은 미국 언급 발언을 부인했지만, 이 사안은 한국 언론과 야당 사이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일이 정상 간 친분을 훼손시켜 동맹 관계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을까? ‘켜진 마이크 건’이 미국과 관계를 해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커다란 정치적 이슈가 됐지만, 미국 언론들은 거의 다루지 않았고 당국자들도 언급하지 않았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방한 기간 이 이슈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 게 가장 눈에 띄는 언급이다.

 

IRA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는 건 더 어려울 것이지만 한미 정상 간 소프트웨어가 이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IRA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겨냥한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이는 백악관 국가안보팀의 업무 범위에 있지 않은 국내 입법의 일환이다. 그리고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IRA법안이 한국에 궁극적으로 상당한 이득을 준다고 계산했을 것이라고 본다. 가령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에 대한 세제 혜택은 SK·LG·삼성이 향후 미국과 출범시킬 합작 벤처에 상당한 이득이 될 것이다.

 

IRA와 관련, 가능한 해결책은 미국의 FTA 대상국에서 생산한 전기차까지 보조금 혜택을 주도록 입법안을 수정하는 것이다. 다른 해결 방안은 보조금 혜택을 2025년까지 연기하도록 하는 부칙을 삽입해 한국 업체들에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세 번째 대안은 현대차가 공장 건설을 가속화해 2025년 이전에 차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주 차원 입법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안들이 쉬울 것이라는 환상은 금물이다. 미국은 한국의 근심거리를 해결하려 할 테지만, 사실 이 문제는 단기적 사안이다. IRA로 한국이 얻는 실질적 이득은 상당하며 몇 년만 지나면 결실을 맺을 것이다.

조선일보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10.06 北 물밑접촉 맡았던 후커 "尹 외교, 北에 휘둘리지 않는 최상의 방책"

트럼프 행정부 당시 대북 물밑 접촉을 담당했던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부보좌관이 북한의 지난 4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 등 최근 도발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한ㆍ미 동맹 강화 노력과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을 방해하려는 시도"라며 "북한에게 휘둘리지 않는 외교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12월 방한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ㆍ미 북핵수석대표협의에 참석했던 앨리슨 후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연합뉴스.

"北에 휘둘리지 말아야"

후커 전 보좌관은 5일 세종연구소의 한반도 이슈 관련 웹진 '코리아 온 포인트' 기고에서 "북한이 전날(4일) 한ㆍ미ㆍ일 대잠 훈련에 반발해 5년만에 처음으로 일본 상공을 넘어가는 IRBM을 쐈다"며 "북한은 향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 관련)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면서도 국제 사회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대외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며 "그것이 북한이 한국 외교를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후커 보좌관은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대화 국면을 열었던 지난 2018년 NSC 한반도 보좌관으로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실무 회담, 물밑 접촉을 도맡았다. 대북 관여 정책의 핵심 인사였던 그가 윤석열 정부를 향해 "북한 이슈에만 매몰될 필요 없이 지금처럼 국제사회로 시야를 넓히는 외교를 펼치라"고 주문한 셈이라 주목된다.

"北, 국내 여론 악화 목적도"

후커 보좌관은 이어 "글로벌 중추 국가(Global Pivotal State)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과 계속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며 "북한의 목적은 한국과 일본 내부에 안보 불안을 유발해서 윤 대통령뿐 아니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국내 여론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방해 시도에 굴하지 않고 기존의 대외 정책을 유지하며 한ㆍ미ㆍ일을 비롯해 다른 우방과 함께 북한 관련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교 중심축 세계로 옮긴 것"

한편 윤 대통령이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제77차 유엔 총회 기조 연설에서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역대 처음으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선 "윤 대통령이 전임자들처럼 북한의 협상 복귀를 촉구하는 기회로 유엔 총회를 활용하지 않은 데 대해 많은 이들이 놀랐다"며 "윤 대통령은 외교의 중심축을 한반도에서 전 세계로 옮기려는 것으로 보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한국이북핵 문제나 북한의 도발 상황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국제 사회의 주요 일원으로서 향후 더 많은 바를 기여해야 한다는 윤석열 정부 외교 정책의 연장선"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11분동안의 연설에서 자유를 21번, 연대를 8번 외치며 "자유진영 국가 간 연대"와 "보편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선 "윤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추상적 구호와 자유 철학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던 데 대해서도 윤 대통령의 연설 바로 다음날인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사용 엄포와 함께 군 동원령을 내린 것과 맞물리며 아쉬운 대목으로 꼽는 시각도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월간조선 10월 호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

“21세기 冷戰의 핵심은 理念과 체제”

⊙ “자유민주 국가로서 正體性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
⊙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끌고 나가면서 반대 세력을 포위(encircle)하고 설득해서 돌아서게 만드는 것이 리더십”
⊙ “외교는 국가 正體性 지키기 위한 수단… 외교 위해 正體性 포기하는 것은 主客전도”
⊙ “우크라이나, 한반도처럼 長期 休戰 체제로 갈 수도”
⊙ “인민공화국 만들겠다는 사람과 자유민주공화국 지키겠다는 사람 사이에 어떻게 타협이 가능한가?”

▲사진=조선DB

 

국제정치적으로 역사의 분기점(分岐點)으로 기억되는 해가 있다. 1648년(베스트팔렌조약 체결과 근대 주권국가의 등장), 1914년(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1918년(윌슨의 민족자결주의), 1945년(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1991년(냉전 종식), 2002년(9·11사태와 ‘테러와의 전쟁’)….

아마 후세의 역사가들은 2022년 역시 그런 해로 기억할 것이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은 1945년 유엔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강대국이 무력(武力)으로 주권국가를 침공해 영토 변경을 꾀한 사건이었다. 또 8월 3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회담을 가짐으로써 경제·기술·군사적인 측면에서 내연(內燃)되어오던 미중(美中) 갈등을 정치적 영역으로 비화(飛火)되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윤석열(尹錫悅) 정권이 출범했다. 윤석열 정권은 중국·북한과는 거리 두기를 하면서 반도체를 매개로 문재인(文在寅) 정권 시절 약화되었던 한미(韓美) 동맹을 복원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국가 정체성(正體性)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나아갈 바를 생각해보기 위해 이상우(李相禹·84)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이상우 이사장은 박정희(朴正熙) 정권 시절부터 역대 보수(保守) 정권의 외교·안보·국방 정책의 자문(諮問)에 응해온 국제정치학계의 원로다. 서강대 교수, 한림대 총장 등을 지냈고, 특히 2010년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이후에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국방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가안보체제 개혁을 추진했다. 1993년 싱크탱크인 신아세아질서연구회(2006년 신아시아연구소로 법인명 개칭)를 설립, 소장 및 이사장으로 일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져서는 안 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후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규탄시위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표현들이 등장했다. 사진=AP/뉴시스

 

— 우크라이나 사태는 1991년 탈냉전(脫冷戰)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 세계 질서, 어쩌면 1945년 이후 세계 체제의 틀을 깨는, 세계사적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아닐까요.
“맞습니다. 1918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을 때, 이는 힘으로 다른 나라를 어떻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새로 만든 것이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은 바로 그 규범을 지키기 위해 미국 등이 추축국(樞軸國, 독일·일본·이탈리아)과 싸워 이긴 것이었어요. 6·25 때 유엔 16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을 파병(派兵)한 것도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그 이후 베트남 전쟁 등은 영토 변경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념(理念)과 체제를 놓고 싸운 것이었어요. 이런 의미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勃發) 소식을 접하고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6·25전쟁 생각이 났어요. 스탈린 대신 푸틴이 아직도 무력에 의한 영토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미국 등 나토(NATO) 여러 나라가 그걸 막으려고 들고있어났잖아요. 직접 참전하지는 못하고 무기를 제공해주는 식으로 대응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세계는 그 이전의 세계와 어떻게 달라질까요.
“냉전 종식 이후에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거의 자리 잡혀가고 있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에 대한 도전이에요.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미중 경쟁이 새로운 냉전 시대로 들어갈 수도 있겠죠. 지금이 시금석(試金石)이에요. 미국도 그동안에는 대통령이 바뀌면서 여러 번 국익(國益) 중심으로 가느냐 이념 중심으로 가느냐를 두고 왔다 갔다 했었어요. 이번에 미국이 자유세계를 얼마나 잘 규합하느냐에 따라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더 번창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되겠지요. 때문에 여기서 져서는 안 됩니다.”

— 스승인 R.J 럼멜 교수의 자유주의 평화이론을 강조해왔는데, 그런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평화란 ‘서로 격(格)이 똑같다고 인정해주는 당사자 간의 공존(共存)에 대한 자발적 합의’입니다. 한자(漢字)로도 ‘평화(平和)’의 평(平)이란 ‘같은 격’이고 ‘화(和)’는 ‘서로 다르지만 공존하는 것’이잖아요? 덮어놓고 ‘전쟁 없는 상태가 평화’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지요. 중요한 건 평화 질서가 확립됐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에 대한 커미트먼트(commitment·약속)가 꾸준히 강화되어 21세기에 이르렀는데, 지금 푸틴이 시대착오적으로 거기에 도전을 한 거예요.”


“이념이 동맹의 기준”

▲지난 5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오산공군기지를 방문했다. 사진=대통령실

 

—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미중 패권(覇權) 경쟁에도 큰 영향을 미칠 텐데요.
“미중 패권 경쟁은 냉전의 21세기 버전이죠. 시진핑(習近平)이 내세우는 중국몽(中國夢)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지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중국의 지위를 되찾겠다는 것입니다.”

— 그게 뜻대로 될까요.
“중국이 과거 세계 질서를 지배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힘으로 한 게 아니었어요. 문화적·체제적으로, 가치(價値) 면에서 중국이 이웃 나라들보다 우위(優位)에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면에서 중국을 존경하는 나라가 없어요.”

— 그렇죠.
“21세기 냉전의 핵심은 군사력보다 이념과 체제예요. ‘인권(人權)이 보장된, 자유를 최고 가치로 하는 자유민주공화정을 보편 가치로 굳히려고 하는 세력’인지 여부, 즉 좁은 의미에서의 국익이 아니라, 이념이 동맹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 그렇게 이념을 달리하는 갈등에 더해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세계화(世界化)의 시대가 가고 나라 간에 다시 ‘벽’이 쳐지는 시대가 오지는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19는 특수한 사정입니다. 세계는 이미 ‘하나의 세계’, 지구촌(地球村)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거예요.”

— 스티븐 M. 월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나 존 J.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 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두 등을 보면서, ‘지난 30년간의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실패했다, 이제는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느라 힘을 빼기보다는 다시 강대국 간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중국, 이제 어려움에 봉착할 것”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국제 사정의 변화도 있지만, 미국 자체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그동안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가장 표준적인 민주국가였기 때문입니다. 민주국가는 중산층(中産層)이 중심이 된 사회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다스리는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공화정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되려면, 최소한 생활이 중류(中流)는 되어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가 민주국가를 내세웠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미국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완전히 중산층 중심의 사회였어요. 그런데 그 뒤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가 되고, 중산층이 허물어졌어요. 그래서 ‘이러다가 다 망하겠다’며 들고일어난 게 트럼프죠. 그런데 나는 트럼프 개인보다는 트럼피즘(Trumpism)에 더 관심이 있어요. 즉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문제죠. 그것이 국제화되면 아까 배 기자가 우려했던 것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 이런 상황이 오래갈까요.
“일시적일 거라고 봅니다. 결국은 전 세계가 다 잘살게 될 거예요. 이걸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 그 흐름에 중국도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이제 어려움에 봉착할 거예요. 지금은 힘으로 누르고 있지만, 중국이 강국(强國)이 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시민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자면 전제(專制) 정치를 포기해야 해요. 과거 제1차 산업혁명 시기, 즉 노동이 생산의 중심이던 때에는 전제국가들도 노동을 동원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소련도 후진 농업국가에서 반세기 만에 어쨌든 강대국을 만들었잖아요? 하지만 뒤에 가서는 그게 거꾸로 족쇄가 됐지요.

노동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이 생산의 중심이 되는 시대에는 자유경쟁을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앞설 수밖에 없어요.”


“유신은 시한부 전제 정치”

이상우 교수는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유신(維新)을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지만, 유신 자체가 그의 목적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강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너무 가난했던 것이지요. 가난하면 공산당의 선전이 먹혀들어가기 마련이죠. 그래서 ‘10년만 참자’면서 내세운 것이 10-100-1000이었어요. 10년 동안에 100억 달러 수출,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하자, 그렇게 되면 그 후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간다는 것이었죠. 유신은 개인을 위한 독재가 아니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한부 전제 정치였어요. 결국 그렇게 됐잖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평가하고 있는 것이죠.”

앞에서 말한 ‘중산층과 민주주의’ 얘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얘기였다.

—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을 교육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면 결국 그것이 자기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감수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보았어요. 그들은 자기의 개인 이익이나 집단 이익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앞세운 분들이었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점도 그가 이룩한 성취 자체보다, 그 뜻을 나라에 두고, 자기를 희생하더라도 나라를 살리자는 쪽에 두었다는 데 있습니다.”

“시진핑과 이재명 세력 비슷”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했다. 사진=신화/뉴시스

 

 — 1971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北京) 방문 이후 미국도 ‘중국이 경제발전을 하면 결국 자유민주국가로 갈 것’이라는 전제 아래 대중(對中) 정책을 펴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그게 아니었다’고 후회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오늘날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도광양회(韜光養晦)하면서 일부러 미국을 속인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덩샤오핑은 공산주의를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 없어서 틀은 놔두면서 실질적으로 개혁·개방을 했는데, 시진핑이 그걸 뒤집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 역사를 보면 권력자가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사회 발전이 중단되는 것도 감수하는 경우가 많이 있더군요.
“나는 덩샤오핑은 마오쩌둥(毛澤東)이나 시진핑과는 달리 권력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진정으로 10억 인구의 중국을 발전시키는 데 뜻을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천안문 사태 후 중국에 가보았는데, 나는 덩샤오핑의 노선이 계속되었다면 중국은 결국 자유민주화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 시진핑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고,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江澤民) -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치면서 자리 잡았던 3연임(連任) 금지 등을 무력화(無力化)하면서 독재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그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자기 집단의 이익보다 중국 자체를 먼저 생각하는 세력은 기본적으로 오픈된 집단이에요. 반면에 시진핑의 태자당(太子黨)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 집단이었고요. 비유하자면 이재명(李在明) 세력하고 비슷해요. 그 반대 세력은 조직이 안 되어 있는데, 이재명 세력은 자기들끼리 조직화가 되어 있잖아요? 물불 안 가리는 조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나머지 점잖은 사람들이 당해낼 수 있겠어요?”

— 중국 지도부를 접해본 적이 있습니까.
“후진타오와 리커창(李克强)은 만나본 적이 있어요. 시진핑은 못 만나봤어요. 덩샤오핑을 비롯해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중국 지도부는 정말 스마트했다고 생각해요.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기 전인데도 과감하게 사람들을 뽑아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어요. 당시 ‘그렇게 나간 사람들이 잘사는 미국을 경험하면 중국으로 돌아오겠느냐’고 하자, 덩샤오핑은 ‘그래도 내보내자. 1000명 내보내면 그중 2~3명은 돌아오지 않겠느냐? 그래도 우리에게는 도움이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2049년 中國夢 달성 어려울 것”

— 시진핑 체제가 오래갈까요.
“오래갈 수도 있어요. 북한 같은 경우도 70년 가잖아요.”

— 문제군요.
“나는 오히려 그 때문에 덜 걱정해요. 덩샤오핑 이후 해놓은 것들이 쌓여서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중국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어요. 지금부터 저렇게 조이면 자멸(自滅)할 거예요. 그래서 나는 길게 보면 2049년 중국몽 달성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보듯 똘똘 뭉친 소수(少數)의 극단 세력이 정치를 좌우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다 보면 열린사회(open society)에서는 정치라는 직업이 인기가 떨어지게 돼요. 정치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자기 발전하면서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지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게 돼요. 나라 전체의 발전 같은 데는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는 거죠. 이게 어느 사회나 풍요로워지면 나타나는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오게 된 거죠. 요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부인이 어떤 옷을 입었느냐 하는 걸 갖고 여야(與野)가 싸우는 걸 보면 기가 막혀요.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판에….”

“우크라이나, 한반도처럼 될 수도”

— 다시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선에서 미봉(彌封)하는 식으로 전쟁이 마무리되지는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러시아도 예상 밖의 피해 때문에 무지무지하게 고통스럽지만 체면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그 체면을 살려주면서,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도네츠크·루한스크를 러시아에 넘겨주지는 않더라도 휴전을 하는 식으로 갈 수 있겠지요. 그러면 휴전으로 전쟁을 마무리 짓고 그것이 장기 휴전 체제로 이어져 온 한반도와 비슷한 상황이 되는 거죠.”

러시아는 자기들과 우크라이나가 키이우(키예프) 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고, 지난 수백 년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같은 역사를 공유해왔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결사(決死) 항전하는 것으로 그런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민족(nation)’의 본질이 혈연·문화·역사 공동체인지, 같은 민족공동체에 기꺼이 소속되려는 의지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이상우 이사장이 먼저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만든 나라이고, 우크라이나는 자기네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 쪽에서 보면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해 말하는 걸 보면 꼭 개성(開城)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아요. 다른 지방에서는 ‘서울 올라간다’고 하지만, 고려의 수도(首都)였던 개성 사람들은 ‘서울(한양) 내려간다’고 해요. 우크라이나인들도 (키이우 루스가 있었던) 자기들이 중심이고 모스크바(러시아)는 촌놈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이렇게 때리는 데는 열등감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국영농장 보고 ‘소련 망한다’ 결론”

그러면서 이 이사장은 197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정치학자대회 참석차 소련을 방문했을 때, 우크라이나를 찾았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내가 우크라이나에 꼭 가보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서였죠. 소련에서 제일 크다는 국영농장에 가보고 내린 결론이 ‘소련은 망하겠구나. 공산주의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 무엇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요.
“국영농장이 서울보다 더 컸는데, 그 넓은 땅이 모두 황무지였어요. 그런데 중간중간 집이 대여섯 채씩 모여 있는 곳이 있는데, 그 앞은 다 푸르더군요. 농장장에게 왜 이러냐고 물어봤더니 정색을 하면서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농장은 전체의 것이지만, 집 앞 텃밭은 자기가 경영하고 자기가 소비하거나 팔 수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트랙터 기사는 8시간 근무시간이 끝나면 비가 오고 있어도 밭 가운데에 트랙터를 놔두고 그냥 걸어서 퇴근한대요. 트랙터도 자기 것이 아니니, 비를 맞아 망가지든 말든 상관없다는 것이죠. 나중에 통계를 보니 소련에서 생산되는 달걀의 80%가 텃밭에서 생산됐다고 하더군요. 그런 현실을 보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책을 읽은 사람들은 공산주의자가 되지만, 공산주의 체제에서 하루라도 살아본 사람은 다 반공주의자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이건 여담이고,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죠.”


“중국의 목표는 한국의 핀란드화”

 ▲8월 9일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고압적인 ‘응당 5개조’를 내놓았다. 사진=외교부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일부를 점령한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형태로 사태가 미봉되고, 강대국들이 세계를 각자의 세력권으로 나누어 지배하는 체제로 변하면, 한국의 입장은 더 어렵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똑같은 케이스죠. 중국몽에서 중국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한국은 놔둘 수 없는 나라예요. 중국이 보기에 한국은 자기들의 조공(朝貢)국가인데,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우리가 미국 쪽에 가까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죠. 지금 중국의 최대 목표는 한국의 핀란드화(Finlandization)예요. 한국을 형식상 주권국가로 남겨두되, 반중(反中) 행위는 못 하도록 묶어놓자는 것이죠.”

— 왕이(王懿)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8월 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응당 5개 조’라는 고압적인 요구를 내놓았습니다.
“전에 학술 교류를 위해 중국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한번은 중국의 (직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책상 위에 놓인 서류가 눈에 들어오는데 제목이 ‘3반도(半島) 발전계획’이더군요. ‘중국에는 반도가 산둥(山東)반도와 랴오둥(遼東)반도 둘밖에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나머지 하나는 ‘조선반도’였어요. 자기들의 발전계획을 짜면서 한반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죠.

그 사람 사무실 벽에 걸린 지도에는 ‘수복해야 할 중국 땅’들이 표시되어 있었어요. ‘연해주(沿海州), 1858년 아이훈조약으로 러시아에 빼앗김’ ‘조선반도, 1894년 일본에 빼앗김’ 하는 식으로 적혀 있더군요. 그들의 머릿속에 한반도는 조선성(朝鮮省)이고, 지금은 잠깐 빼앗겼지만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땅인 거죠. 그래서 시진핑이 미국에 갔을 때,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던 거 아니겠어요?”


“양다리 걸치기는 자살행위”

— 우크라이나 사태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장기 휴전으로 귀결되면, 미중 패권 경쟁이나 동북아 정세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지금도 중국이 대만에 계속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도 압력이 더욱 세지겠지요. 한국 혼자서는 이걸 못 막아요. 천상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야지요. 문재인 정부처럼 오락가락하면서 한 발 빼는 식으로는 안 돼요.”

— 그렇죠.
“동맹이라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한국도 미국이 필요로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나라에는 중국 눈치 보고 양다리 걸치기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자살행위예요. 아까도 말한 것처럼, 앞으로 다가오는 신냉전에서는 군사력보다 더 중요한 게 이념과 체제예요.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에요.”

— 그 경우 중국과의 관계는 어려워질 텐데요.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관계, 즉 서로가 필요할 때 필요한 부분만 협력하는 관계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 편’이라고 선을 딱 긋고 가야 합니다.

외교는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외교를 위해 국가 정체성을 포기한다면 이는 주객전도(主客顚倒)예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것이 우리의 국가 목표이고 헌법적 가치 아닙니까? 이를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걸 조정해야지요. 외교에서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우리가 분명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방문을 마치고 방한(訪韓)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윤석열 대통령이 만나지 않아 ‘펠로시 패싱’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나도 깜짝 놀랐어요. 중국을 의식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런다고 중국에 점수를 딸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중국의 반대를 각오하고서라도 당연히 펠로시를 만나서 한국의 노선을 중국에 분명히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대만해협 문제

— 펠로시가 대만 방문을 마치고 떠난 후 중국은 대만을 사실상 봉쇄하는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장차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행사할 경우, 미국이 자신들의 출혈(出血)을 감수하면서 대만을 방위하려 할까요.
“미국은 중국이 대만해협을 독점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힘을 과시할 것이고, 중국도 그 선을 넘기는 힘들 거예요. 대만해협과 같은 슬로크(SLOC·Sea Lines of Communication) 문제는 중동(中東)에서 석유를 들여오고, 각국으로 수출을 하는 우리나라에도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상우 이사장은 “1970년대 말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한국은 왜 슬로크 문제에 관심이 없느냐?’는 말을 듣고 ‘슬로크 한국’ 모임을 만들어 미국·일본·대만의 슬로크 연구모임과 함께 이 문제를 연구해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중동에서 한국에 이르는 석유 수송로가 차단될 경우 우리나라 각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어요. KDI에서 내게 이 경우 국방에 미칠 영향에 대해 써 달라고 해 리포트를 써 주었죠.”

—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요.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의 《유단(油斷)!》이라는 소설이 있었어요. 아덴만에서 유조선이 침몰해서 석유 수송로가 막힌 후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로 인해 발전(發電)이 중단되고 전기 공급이 끊어지면서 아파트에서는 숯을 피워 밥을 짓다가 화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끔찍한 일들이 이어진다는 얘기예요. 박정희 대통령이 이 소설을 읽어보니, 한국의 경우는 이보다 더하겠거든. 그래서 KDI에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었어요.”


“韓美 관계 튼튼히 하려면 韓日 관계 해결해야”

 ▲이상우 이사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으로 3축 체제 구축 등을 추진했다. 사진=조선DB 

 

— 미중 갈등 와중에 한국이 미국의 편에 확고하게 서려 할 경우, 중국의 경제보복을 우려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까요.
“1983년 대만에 갔을 때, 내가 놀란 게 하나 있어요. 대만 내부 훈령을 보니 어떤 회사든지 자기네 상품의 40% 이상을 중국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했더군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중국이 그걸 카드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것이죠. ‘생각이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와서 여러 곳에서 ‘한 나라, 특히 적성(敵性)국가에 대해 의존성이 너무 높으면 큰일 난다’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별로 귀담아듣지를 않더군요. 늦기는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합니다.”

— 문재인 정부 때 망가진 일본과의 관계도 복원해야 할 텐데요.
“대일(對日) 관계는 대미(對美) 관계하고 연관되어 있어요. 한미 관계를 튼튼하게 하려면 한일 관계를 해결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한미 관계에 한계가 오게 됩니다.”

— 일본과의 문제에서는 항상 과거사 문제가 걸림돌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미래입니다. 과거에만 매어서 어떻게 하겠어요? 물론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그건 학자에게 맡기면 돼요. 보상할 것이 있으면 민간 차원에서 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국가 간에 협력할 것은 하면서 앞으로 나가야죠.”

— 문재인 정권 때는 그와는 반대로 갔죠.
“그 시절 일본 측 인사들을 만나면 ‘너희도 나라냐?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비롯해 그동안 합의한 것들을 뒤집으면 어떻게 믿고 같이 가겠느냐’고 하는데, 정말 할 말이 없더군요.”


“김정은에게 核 쓰면 죽는다는 것 알게 해야”

 ▲순항미사일인 현무-3는 사거리 500~1500km 떨어진 곳의 30㎝ 크기의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 사진=뉴스1

 

— 북한이 핵실험하는 수준을 넘어서 ICBM(대륙 간 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등을 개발, 실전(實戰) 배치하고 있습니다. 북핵에 대한 대응이 과거와는 달라져야 할 때가 된 것 아닙니까.
“과거에 우리는 북한의 우세한 전력(戰力)을 감안, 휴전선 지근거리에 있는 서울 방위를 1차 목표로 상정하고 적극 방어(positive defence) 전략을 채택했어요. 개전(開戰) 즉시 휴전선을 넘어 휴전선과 사리원선 사이의 공간을 주전장(主戰場)으로 삼기로 한 거죠. 기동전력 위주의 제3야전군을 창설한 것도 이를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장, 장사정포, 지대지미사일로 무장하게 되면서 우리의 전략도 능동적 적극억제(proactive deterrence)로 바뀌게 되었어요. 북한이 공격을 시작하려 할 때에 발사 직전에 이를 무력화(無力化)시키는 선제(先制)타격을 하기로 하고 이에 맞추어 전력을 구성하기로 한 것이죠. 그래서 나온 게 3-K전략이었습니다.”

3축(軸)체제라고도 하는 3-K전략이란 킬 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그리고 대량보복능력(KMPR·Korea Massive Punishment and Retaliation)을 말한다. 킬 체인은 선제타격 능력, KAMD는 사전공격이 실패했을 경우 날아오는 적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KMPR은 적이 공격했을 경우 우리가 대량보복을 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어 적이 공격할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 시절 정립한 3축체제는 한국군의 존재 의의를 분명히 밝힌 ‘한국군의 혼(魂)’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입니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박살이 난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네 가지가 필요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실행할 의지가 있어야 하고, 우리가 그런 준비를 해놓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에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에 신뢰성이 있어야 합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쓰면 자기도 죽는 자살행위라는 걸 알게 해야죠. 그러면 김정은도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다시 생각하지 않겠어요?”


“타협은 자살행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자유민주주의 공화정(共和政)을 복구하자고 하는 국민들의 열망 덕분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그가 예뻐서가 아니라 이재명이 되면 안 된다고 걱정하는 국민이 많아서 당선된 것이잖아요.”

— 윤석열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은 잘 잡은 것 같은데, 국내 정치 기반이 취약해서 제대로 정책을 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대통령 취임 몇 달 만에 지지율이 이렇게 떨어진 것은, 자유민주 공화정 복구와 관련된 일은 안 하고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실망을 해서 그런 거죠. 또 ‘중도(中道) 확산’이라는 말을 자꾸 하는데, 그것도 잘못된 얘기예요. 통합 가능한 게 있고, 가능하지 않은 게 있어요.”

— 그렇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헌법 질서 안에서 나라가 어떻게 나가야 하느냐를 놓고 여야가 의견을 달리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타협이 가능해요. 하지만 인민공화국 만들겠다는 사람과 자유민주공화국을 지키겠다는 사람 사이에 어떻게 타협이 가능하겠어요? 최근에 헨리 키신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세계적인 지도자 여섯 명에 대해서 쓴 《리더십》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 그 여섯 명은 누구누구입니까.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대처 전 영국 총리,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예요.”

— 흥미롭네요.
“이 여섯 사람의 얘기에서 공통점이 뭔가 하면, ‘중도 확장을 한다면서 타협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거예요. 많든 적든 자기를 지지하고 자기와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끌고 나가면서 반대 세력을 포위(encircle)하고 설득해서 돌아서게 만드는 것이 리더십이지, 타협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이지요.”

— 저도 늘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당당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윤 대통령 스스로 법치(法治)·공정·정의(正義)를 강조했잖아요. 그 말처럼 과감하게 잡아넣을 사람 잡아넣고, 수사할 사람 수사하고,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좌파를 포위해야 해요. 그걸 안 하니까 지지율이 떨어지는 거예요.”


‘뜻을 세우고 헌신했던 사람들’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온 분들》

 

이상우 이사장은 지난 8월에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온 분들》(기파랑 펴냄)이라는 책을 냈다. ‘뜻을 세워 길을 열다’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이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낡은 전제군주제의 착취 대상으로 지배받던 조선왕조의 백성들을 일찍이 눈뜬 깨인 지식인들이 가르쳐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진 국민으로 만들었다. 이들의 뒷받침으로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다. 가난한 백성은 공산전체주의의 선전에 쉽게 굴복한다. ‘인권이 보장된 자유’보다 먹고사는 것이 급하기 때문이다. 국제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공산화하려는 조선공산당의 백 년에 걸친 집요한 정치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안목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입국’에 뜻을 두고 헌신해온 ‘깨인 기업인’들이 빈한한 후진국 한국을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선진국으로 만들어놓은 덕분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21세기의 새 환경을 미리 내다보면서 새 시대를 이끌 전문 인력을 길러내려는 ‘교육입국’에 뜻을 두고 헌신하고 있는 ‘거인’들이 있어 우리 후손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한 자유민주공화국 국민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사람이 역사를 만든다. 뜻을 가진 오늘의 지도자들이 내일의 한국을 만든다.>

이상우 이사장은 ‘역사를 만든 사람들’로 박규수·김옥균·유길준부터 시작해서 이승만과 김구, 박정희, 백선엽,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김재익 등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의 인물로는 김정주 넥슨 회장, 김관진 전 국방장관,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등도 언급한다.

— 책을 읽었더니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입장에서 후대(後代)에 간절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는 험난했던 한국 근현대사를 이끌어온 사람들 중에서 나라 사랑의 뜻을 세우고 그 뜻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을 소개했어요. 그중에는 성공한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뜻을 세워 헌신했다는 것은 보람 있는 일 아니에요?

민주주의란 ‘깬 시민들의 정치’입니다. 시민이란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회 구성원’을 말해요. 무지(無知)한 백성들을 시민으로 깨어나게 한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온 분들이에요. ‘인생은 짧다. 이리저리 눈치 보지 말고 뜻을 세우고 뜻을 펴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돼라.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라’ 하는 것이 저의 메시지입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10.10  한·미·일 안보협력은 필연적이다

요즘 우크라이나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푸틴 대통령이 진짜로 핵 버튼을 누른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러시아 핵 부대의 동향을 정밀 감시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핵 공격의 대상으로 떠오른 국가는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다. 지난달 북한이 핵무기 사용 조건을 법제화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적의 핵 공격이 없어도 곧 공격당할 것이란 판단이 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고, 나아가 전쟁 장기화를 막고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우에도 핵무기를 쓸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공격을 당했을 때 최후의 반격 수단이 아니라 선제공격용으로도 얼마든지 핵 미사일을 쏘겠다는 거다.

▲북한은 9월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국가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한 것은 국가방위수단으로서 전쟁 억제력을 법적으로 가지게 되었음을 내외에 선포한 특기할 사변″이라고 말했다. [뉴스1]  

 

이건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자위용”이라고 비호하던 국내 친북 세력조차 당황케 할 내용이다. 2016년 핵무기 선제공격은 없다고 공언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을 180도 뒤집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최고인민위원회 연설에서 “절대로 먼저 핵 포기,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과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애초부터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손톱만큼도 없었고, 대화 국면을 조성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어 핵무기 고도화에 전념해 왔던 게 명확해졌다.

 

▲한미일 대잠전 훈련 참가전력들이 9월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아래부터 위쪽으로 미국 이지스 구축함 벤폴드함(DDG), 한국 구축함 문무대왕함(DDH-II), 미국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일본 구축함 아사히함(DD), 미국 순양함 첸슬러스빌함(CG). 대열 제일 앞쪽은 미국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SSN). [해군 제공 

 

북한이 핵을 쓴다면 대상은 당연히 한국이 1순위고 일본이 2순위다. 김정은이 아무리 무모해도 워싱턴을 향해 핵 미사일을 날리는 순간 자신이 물리적으로 증발하리란 것쯤은 잘 안다.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핵 위협을 받기 시작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궁극적으론 독자적 핵무장이 해법일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다. 현실적으론 한국·미국·일본이 군사협력을 강화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낮추는 게 그나마 효과적인 대비책이다. 이는 북한의 후원자인 중국에 대한 압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 얘기만 나오면 무작정 발끈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미·일 3국이 동해에서 실시한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일본을 끌어들여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하면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극단적 친일 행위로 대일 굴욕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했다. 이게 친일 국방이라고? 야당이 되면 여당 시절 기억은 자동 삭제되는 모양이다.

 

2017년 7월 4일 북한이 ICBM을 발사하자 3일 뒤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와 만나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 때보다 3국 협력 수위를 격상시킨 내용이다. 그리고 세 달 뒤 동해에서 한·미·일 이지스함 4척이 미사일 경보 훈련을 벌였다. 그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에선 한·미·일 3국 훈련이 몇 차례 더 비공개로 실시됐다. 이번 동해 훈련도 민주당 집권 시절인 2017년 10월 3국 국방장관(방위대신)이 합의한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논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도 극단적 친일 국방을 한 셈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9월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해상자위대 전투함이 인천항에 입항해 한국 해군과 친선 행사를 연 적도 있다.

2017년 7월 6일(현지시간) 한미일 3국 정상들이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부터)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한·미·일 군사훈련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빌미가 될 것이란 주장은 국제정세에 대한 심각한 무지이거나 정치적 목적의 선동에 불과하다. 마치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2차대전의 전범이라는 이유로 독일의 지원은 거부하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건 북한의 핵 미사일이지 일본 자위대가 아니다. 김정은의 핵 협박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은 필연적이며 앞으로 더욱 확대돼야 한다.

중앙일보  김정하 정치디렉터

 
 

10.12  임박한 4대 지정학 리스크

 대한민국은 네 가지 중대한 지정학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첫째,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리스크다. 좁혀 말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다. 푸틴도 자신과 러시아를 파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 사용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서방을 향한 핵 위협이 먹히지 않고 에너지 위기가 유럽의 러시아 대항 의지를 꺾지 못할 때 그는 핵 사용 외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저위력 핵무기를 사용한다 해도 이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질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대(對)러 군사 작전을 펼 것이고 그 결과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될 수도 있다.

 

둘째, 중국 주석 시진핑 리스크다. 세 번째 연임 후 그의 대만 정책은 어떻게 변할까. 개인적으로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으니 이전보다 온건한 대외정책을 펴려 할까. 아니면 중국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루겠다며 홍콩처럼 대만도 장악하려 할 것인가. 그의 이념과 성격을 고려할 때 대만을 더 강하게 압박할 개연성이 크다.

대만을 지리적으로 봉쇄하거나 침공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중국인의 의식도 변했다. 2004~2010년 실행된 중국 학교의 커리큘럼 개편을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자국 정부와 제도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최대의 지정학 리스크로 중국의 대만 침공을 꼽고 있다. 중국 대 미·일 사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셋째, 북한 김정은 리스크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자체의 여파는 앞의 두 사건이 벌어질 때보다 작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도발의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의 등에 올라탈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핵을 사용하여 세계를 경악시킨 직후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면 충격파가 클 수 있다. 또 중국의 대만 공격 계획과 보조를 맞추어 한·미·일을 무력으로 겁박할 수도 있다.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러시아나 중국 편을 듦으로써 이들로부터 경제·외교·군사적 지원을 받겠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도 북한을 이용하여 만일의 사태 때 미국 전선을 흩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은 복합 충돌의 지정학 위기
푸틴·시진핑·김정은 리스크에다
미국 내부 갈등으로 불확실 커져
분절된 정부, 칸막이 연구 바꿔야

북한 체제 불안정도 리스크다. 북한은 국내총생산이 1989년 대비 70% 수준이었던 1995년 긴급히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했다. 지금의 국내총생산은 2015년 대비 70~80%로 추측되지만 김정은은 여전히 자력갱생한다며 원조를 거부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기에는 대기근 때문에 식량 지원을 받아야만 했으나 지금의 경제위기는 외환보유고와 산업에 집중해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버티기 쉬울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북·중 무역을 재개하고, 극동 러시아뿐 아니라 러시아가 병합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근로자를 파견하여 외화를 벌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 주민과 권력층은 경제난을 얼마나 더 견디려 할까. 김정은은 경제 실상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나.

 

마지막은 미국 정치 리스크다. 만약 지금 같은 지정학 위기에서 ‘미국만 괜찮으면 된다’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마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를 차지했을 것이고 이에 자신감을 얻어 중국은 대만에 대해 더 공격적으로 나왔을 법하다. 주한미군 철수도 거론될 수 있다. 이런 미국 대통령을 오래전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국의 소득불평등도 세계 대공황이나 2차 세계대전 직전 시기와 비슷할 정도로 높아진 지금은 아니다. 가치와 시스템, 그리고 세계 최고의 교육과 연구 역량에 기반한 미국의 회복탄력성은 대단하다. 그러나 금융과 서비스업 기반인 미국경제가 반도체와 배터리라는 대량생산 제조업을 얼마나 잘 발전시킬 수 있을까. 자유와 창의를 중시하는 미국 교육제도는 반복과 집중이 필요한 숙련 인력을 과연 잘 길러낼 수 있을까. 위험할 정도로 높아진 불평등을 완화할 묘책은 무엇인가.

 

우리는 매우 위험한 세상을 살고 있다. 푸틴 리스크가 현실이 될 확률을 10%, 시진핑과 김정은 리스크의 발생 확률을 각각 5%로 잡으면 합계는 20%다. 즉 우리는 5분의 1 확률로 일어날 대형 재난 앞에 서 있다. 만약 미국이 내부 갈등으로 이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그 충격은 몇 배 증폭된다. 이 지정학적 문제는 우리 안보와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푸틴의 핵 사용은 에너지 가격과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 테고 중국의 대만 침공은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다. 여기다 북한 문제까지 떠안고 있는 한국은 세계에서 지정학 리스크에 가장 취약한 나라다.

 

21세기 전반은 복합 충돌의 시대다. 패권 경쟁과 지정학, 안보와 경제, 정치와 기술이 씨줄 날줄로 얽혀 부딪히고 있다. 지금처럼 분절된 한국의 정부 조직, 분야로 칸막이 쳐진 정책 연구로는 이 위기를 헤쳐갈 수 없다. 융합 분석력을 갖춘 전문가, 종합 통찰력을 가진 정책결정자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10.19  유엔서 北면전에 “미사일, 개탄스럽다” 쏘아붙인 韓 외교관

김성훈 참사관, 北서기관과 설전
”전쟁 일으켜 한국 침략하고, 속이고 협정 깬다”
한·미·일, 한 목소리로 北 규탄

 ▲김성훈 주유엔대표부 참사관이 18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제1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유엔 웹TV 캡처

 

“북한이 전술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면서 여러 종류의 탄도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는 건 개탄스러운(deplorable) 일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침략하고, 협정을 속이고 깨며, 적대적 의도를 행동과 말로 내보이는 나라가 있다면 집단적 대응이 불가피합니다.”

 

18일(현지 시각)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1위원회에서 김성훈 주유엔대표부 참사관이 이같이 말했다. 북한이 지난달부터 연쇄 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북측 외교관을 향해 약속 불이행을 문제 삼으며 설전(舌戰)을 벌인 것이다. 제1위원회는 군축과 군비통제 문제를 주로 다루는데 다음달 초 까지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문제 등에 관한 결의안 초안을 작성해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김 참사관은 “핵 협박과 미사일 도발에 더해 북한은 이제 7번째가 될 또 다른 핵실험을 할 준비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야망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이에 따른 균열은 느리지만 분명히 확대돼 다른 나라들을 핵 구덩이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윤석열 정부의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이른바 ‘담대한 구상’ 관련 “한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달성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김 참사관 뿐만 아니라 브루스 터너 미 군축대사, 오가사와라 일본 군축대사도 이날 북측의 핵·미사일 도발을 문제 삼으며 중국, 러시아 등 유엔 회원국의 안보리 결의 이행을 촉구했다. 그러자 김인철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서기관은 최근 진행된 한미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며 “북한에 대한 적대감의 분명한 표현이자 한반도와 역내의 평화·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고 반박했다. 북한의 최근 도발은 한미 연합훈련에서 비롯됐고, 한미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란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김 참사관은 이에 대해 재반박에 나섰다. 북한이 도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자국 자위권을 주장하며 유엔 헌장을 근거로 들자 그는 “‘모든 유엔 회원국이 유엔 결의를 지켜야 한다’는 유엔헌장 25조를 강조하고 싶다”며 북의 이중 잣대를 지적했다. 김 참사관은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가 1990년대부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거듭된 북한의 약속 불이행과 갑작스러운 도발 등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며 “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침략하고, 협정을 속이고 깨며, 적대적인 의도를 행동과 말로 내보이는 나라가 있다면 집단적 방식의 방어적이고 신중한 대응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가 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같은 우리 주장에 북한 김인철 서기관은 2차 반박권을 요청해 “터무니없는 한국의 논리를 전적으로 거부한다”며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 비핵화 과정은 미국의 적대 정책과 핵 위협, 협박으로 완전히 파괴됐다”고 했다. 남북 외교관이 국제 사회에서 공개 설전을 주고 받는 일이 지난 정부에서는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면서 한·미·일이 한 목소리로 북한을 코너에 모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달 4일에도 황준국 주유엔대사가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를 놓고 김인철 서기관과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황 대사는 “북한이 전례없는 편집증적 호전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10.22  “韓드라마 봤다고 사형” “강제송환 끔찍”… 유엔대사, 하루 2번 北인권 발언

황준국 대사, 유엔 제3위원회와 안보리서 발언

“북 주민 굶는데 미사일 쏴, 국제사회가 자원 남용 주시해야”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도 공론화
미-EU “한국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복귀 환영”

▲황준국 주유엔 한국 대사가 20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여성, 평화 그리고 안보' 회의에서 강제 송환과 고문, 인신매매 등을 당하는 탈북여성 인권을 우려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유엔 유튜브

 

한국이 유엔(UN)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4년 만에 복귀하기로 한 가운데, 공식 석상에서 북한의 인권유린 문제를 정면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간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북 인권 문제를 유엔에서 수차례 지적해왔지만 한국이 공개 동참한 것은 처음이다. 국제사회에서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로 대북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20일(현지 시각) 하루에 두 차례 북한 인권 상황 악화에 대한 발언에 나섰다. 황 대사는 먼저 오전 유엔총회의 인권 담당 제3위원회 일반 토의에 참석해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조치와 함께 북한 주민이 가혹한 처벌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 문화배격법’을 거론, “한국 드라마 같은 미디어 콘텐츠를 소지하거나 배포하는 이는 누구든 징역, 심지어 사형에도 처해진다고 알려져 있다”고 했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출신으로 ‘북핵통’인 황 대사는 ‘북한 주민이 보건 시설 접근 미비, 식량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유엔 보고서를 거론하며 “그럼에도 북한은 부족한 자원을 올해에만 40발 넘는 탄도미사일 발사에 쓰고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자원 남용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20년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사살된 해수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 사건을 “개탄한다”면서, “북한이 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향후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보장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12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이 선포되는 모습.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 남북 대화 추진을 이유로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서 3년 연속 빠져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2018년 이후 4년 만에 북 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 복귀할 방침이다. /유엔

 

황 대사는 오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토의에선 탈북 여성 인권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다. ‘여성, 평화, 그리고 안보’를 주제로 한 이날 안보리 회의 연설에서 황 대사는 “1990년대부터 한국에 도착한 탈북자 3만4000여 명의 72%가 여성이란 점을 상기시키면서 “그들 중 다수가 수년간 구금, 인신매매, 송환, 고문과 잔혹한 처벌을 포함한 후속 보복 조치 등의 위험을 견뎌냈다는 것은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제 송환 금지(농 르풀망·non-refoulement) 원칙이 탈북자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을 회원국들이 되새기기 바란다”고 말해, 중국의 강제 송환 조치 등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오는 12월 유엔 본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위해 초안을 작성 중인 유럽연합(EU)은 “국제사회의 단합이 북한에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촉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한다”며 한국의 공동제안국 복귀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가 21일 보도했다. 미국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 협의에 동참하고 복귀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신호”(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한국의 동참은 북한 주민들의 보호와 복지에 필요한 개혁을 지지한다는 긍정적 메시지로, 유엔총회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이란 반응이 나왔다.

조선일보  뉴욕=정시행 특파원

 

10.24  ‘시진핑 독재’ 완성, 한반도에 닥쳐올 중국발 안보·경제 위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석해 상무위원들을 소개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주말 막을 내린 중국공산당 당대회와 일중전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예상대로 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 주석에 다시 오르며 3연임을 넘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최고 권력기구인 정치국 상무위는 시진핑 사단 일색으로 채워졌다.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독재 권력이 탄생했다.

 

지난 10년 시진핑 집권기는 덩샤오핑이 개조한 중국을 마오쩌둥 시대로 되돌리는 과정이었다. 최고 지도자의 3연임 제한, 당 고위층의 칠상팔하(67세 잔류, 68세 은퇴) 등 1인 독재 방지를 위해 확립된 정치 관례와 원칙들이 모두 깨졌다. 덩샤오핑이 전파한 개혁·개방의 실용주의가 퇴조하고 낡은 공산주의 교리가 판을 쳤다.

 

대외 정책에선 중국판 식민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강압적인 전랑(戰狼) 외교로 자유민주 진영과 도처에서 충돌했다. 중국의 국제질서 편입을 응원하던 미국은 이제 중국을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퇴출시키려 각종 제재를 쏟아낸다. 미·중 충돌의 유탄이 벌써부터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 날아들고 있다.

 

시진핑은 당대회에서 “(대만에)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은 절대 안 한다”고 했다. 단순한 수사(修辭)로 넘겨버릴 수 없다. 시진핑에게 대만 통일은 마오의 신중국 건설, 덩의 개혁·개방에 비견되는 치적이다. 대만 유사시 우리에겐 주한미군 차출뿐 아니라 대만을 위한 군사 지원 같은 고난도 문제가 돌출할 수 있다.

 

미·중 갈등 심화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북한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북한은 올해에만 안보리 제재를 40여 차례 위반했지만 안보리는 중국 반대로 비판 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북은 이제 미 중간선거(11월 7일)를 앞두고 7차 핵실험을 강행하려 한다. 중국이 묵인해줄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권력 강화가 미·중 갈등을 증폭시키고 이것이 북핵 문제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하는 악순환을 일으킬 것이다.

 

시진핑은 신중국 건국 100주년(2049년)에 미국을 제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시진핑이 ‘중국몽’을 위해 질주하는 과정에서 외교·안보·경제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지정학적 위기들이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수교 30년이 지난 한중 관계를 완전히 다시 생각할 때다.

조선일보 사설

 

10월 26일  北 닮아가는 중국과 향후 ‘결정적 5년’

이미숙 논설위원

시진핑 마오쩌둥 시대로 퇴행
집단지도제 장점 스스로 파괴
박정희식 개발 모델서 역주행

미·중 투키디데스 함정 본격화
우크라 오늘은 동아시아 내일
대만 침공 가정한 대책도 필요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은 제20차 중국공산당대회 개막 연설에서 “패권주의 반대”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웠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을 “결정적인 위협”으로 규정한 데 대한 응수다. 시 주석의 중국몽 연설은 그 자체로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 선언이자 전면 경쟁 선포다. NSS 보고서는 향후 10년을 “결정적 시기”로 규정해 이 시기가 불꽃 튀는 미·중 패권 경쟁기가 될 것을 예고했다.

시 주석은 당대회에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고 경쟁 그룹도 배제했다. 1인 체제로 전권을 쥐고 대미 항전을 하겠다는 뜻이다. 시 주석이 장기집권 명분으로 대만과의 통일을 내세우고 이를 밀어붙임으로써 마오쩌둥(毛澤東) 지위에 오르려 한다면 3기 임기 중 자행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위험한 시기는 바로 앞으로 5년인 것이다. 시 주석은 당대회 개막 연설에서 대만과의 ‘무력 통일 불사’ 방침을 피력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대만 유사시 개입하겠느냐’는 질문에 “예스”라고 답한 바 있다.

시 주석이 미국과의 경쟁을 핑계로 마오 시대로 회귀하는 것은 퇴행이다. 중국은 그간 포퓰리스트에 휘둘리는 서구 민주주의보다 반대파의 견제 속에 균형이 이뤄지는 자신들의 집단지도체제가 더 우월하다고 선전했는데 이번엔 그런 전통마저 깨졌다. 시 주석은 정치국 상무위원을 전원 측근들로 채우며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과거 마오처럼 ‘함께 잘살자’(공동부유론)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정치에 이어 경제도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운영할 뜻을 내비쳤다.

북한식 수령 숭배 체제 징후도 뚜렷해졌다. 당장에 시진핑 사상을 명문화해 지도자 숭배를 공식화했고 당대회에서는 ‘집중 통일 영도’가 강조됐다. 시 주석은 김정은에게 보낸 서신에서 ‘새로운 정세에서 중·북 단결과 협력’을 강조했다. 미·중 패권 경쟁 와중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핵·미사일 개발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뜻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중국 지도부는 박정희 모델을 벤치마킹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고 주룽지(朱鎔基)·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한국의 경제개발 과정을 복기하며 국부를 늘리는 데 힘썼다. 그런 중국이 1인당 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이르러 돌연 북한식 주민 통제까지 도입하며 실패국가 북한을 따라가는 것은 기막힌 일이다.

중국이 러시아, 북한 같은 독재국으로 후퇴하는 기류가 뚜렷해진 만큼 대중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결정적 위협으로 규정한 뒤 유럽연합(EU)도 중국에 대한 전략을 바꿀 움직임이다. EU 정상회의에 제출된 전략보고서는 ‘협력 파트너이자 경제적 경쟁자였던 중국을 전면적 경쟁자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6월 나토는 12년 만에 전략개념문서를 개정해 중국을 ‘안보적 도전’으로 규정했다. 일본도 지난 5월 경제안보법 제정에 이어 대중 전략 조정을 위한 ‘국가안전보장전략’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만 중국에 절절매며 눈치를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친중 입장을 고수하고, 윤석열 정부도 무엇이 두려운지 대중 전략 조정에 소극적이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가 관훈토론회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은 북핵 해결을 위해 한 일이 거의 없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해도 시 주석은 김정은 편을 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중국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상이다.

 

윤 정부는 중국의 본색을 직시하고 중국 리스크 해소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미·일·EU처럼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은 위협인가, 아닌가’ 관점 정리부터 해야 한다. 둘째, 일본처럼 경제안보법을 제정해 미·중 패권 경쟁시대 공급망 확보, 첨단 테크놀로지 기업 육성 등 산업정책을 외교안보적 시각으로 통합 접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해 동맹·자유 진영과 공동 대응 방안을 짜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오늘은 동아시아의 내일이 될 수 있다”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언급처럼 대만 사태는 언제든 한반도 사태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10.31  ‘한·중 공동체’는 어디로 갔나

‘한중 운명공동체론’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2017년 10월 당시 노영민 주중 대사는 “한중 양국은 운명 공동체이며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해 12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공산당 초청 행사에서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인류 운명 공동체의 미래와 행복을 만들어가자”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 앞에서 “한중은 운명적 동반자 또는 운명 공동체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은 30년 전 대만으로부터 “옛 친구를 발로 차 버렸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중국과 수교했다. 떠오르던 대국(大國)이 경제뿐만 아니라 북한의 개혁·개방과 통일, 북핵 문제 해결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과의 외교를 말할 때면 우리가 잘하면 중국도 잘해줄 것이란 ‘희망적 사고’가 주를 이뤘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서방 지도자들이 보이콧한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해 시 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섰던 것이 절정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수교 30년 동안 중국은 자기 이익 앞에서 한없이 차갑고 치밀했던 반면 우리 이익은 철저히 무시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는 나라가 대북 제재의 뒷구멍이 돼 북한의 핵 폭주를 사실상 방조했다. 올해 들어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조차도 거부권을 행사하더니 급기야 침공자 러시아와 편먹고 유엔 안보리를 식물화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역사·경제 문제와 관련해 자국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예상될 때는 완력을 과시하며 우리의 인내를 시험했다. 이달 초 우리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신장 위구르족 인권침해’ 특별 토론회 개최에 찬성하기 직전 대통령실과 외교부 전화에는 불이 났다고 한다.

 

미국·유럽(EU) 같은 자유·민주 진영 국가들은 최근 전략 개념을 정비해 ‘중국의 위협’을 명시했다. ‘대국 굴기’에 따른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늑대 전사 외교’를 표방하는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 수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인도,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거의 모든 이웃 나라와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일각에서는 여전히 “언론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문재인 전 대통령) “등거리 외교가 우리의 운명”(이해찬 전 대표)이라는 낭만주의가 팽배하다.

 

시 주석이 바라는 ‘운명 공동체’는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자 새로운 조공 질서의 구축이라는 것이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만 통일’에 대해 “무력 행사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과도 ‘끝까지 간다’고 시사해 미·중 경쟁이 한중 간 마찰로 전환될 개연성도 커졌다. 이래도 ‘운명 공동체’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그 진의(眞意)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