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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2022-10/ 10월04일(화) 진짜 ‘친북’ 외교참사들 - 10월 31일(월) 핼러윈 악몽

상림은내고향 2022. 10. 31. 17:49

후여담 2022-10/ 문화일보

10월04일(화)  진짜 ‘친북’ 외교참사들

이도운 논설위원

 

외교에서는 늘 크고 작은 실수가 발생하지만, 정상 외교의 실패는 ‘참사’가 될 수 있다. 한국 외교 최악의 참사 가운데 하나는 2001년 3월 8일 워싱턴에서 일어났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 불러버린 것.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라며 협상을 요청했는데, 부시 대통령은 인민을 굶기고 잔혹하게 탄압하는 사람이라고 받아쳤던 것. 이때부터 미 조야에서는 한국 정부의 낭만적 대북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2004년 11월 13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북한의 핵 보유가 자위적 수단이라는 데 일리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유가 반드시 누구를 공격하거나 테러를 지원하려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한국 외교부는 난리가 났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급히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진화에 나섰는데, 오히려 파월은 담담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미 노 대통령의 생각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 북한은 2년 뒤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미·중·일·러·남한 등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군사대국 5개국이 약소국 북한의 핵 포기를 압박했던 6자회담이 실패한 이유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났다.

이듬해 11월 27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노 대통령조차 놀라는 참사가 일어났다. 양국 대통령은 북한 달러 위조를 놓고 충돌했는데, 부시 대통령은 슈퍼 노트(정밀 100달러 위조지폐)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물었고, 부시 대통령은 “있지 않으냐”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증거가 어디 있냐”고 되물었고, 부시는 “당신들이 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당황해서 참모들을 돌아봤다. 미국에도 준 정보를, 친북 참모들이 노 대통령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던 것.

 

외교 참사는 대통령의 정책이 현실을 외면할 때 발생해 왔다. 그래서 북한을 옹호하는 진보 정권에서 잦았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외교 참사는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순방의 실무적 실수를 참사로 모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이다.

 

10월05일  엔저와 일본 여행 재개

 문희수 논설위원

오는 11일부터 무비자 일본 여행이 재개되자 여행·항공업계가 활기를 띤다. 하루 입국자 상한제 철폐에다, 개인 자유여행까지 허용되자 마침 엔저를 이용해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제주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도쿄·오사카·후쿠오카 등 인기가 높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직항편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이 항공기 증편을 요청해 취항 도시도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긋지긋했던 코로나 사태가 끝나간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그동안 일본은 단연 해외여행 1순위였다. 코로나 전인 지난 2018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53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이듬해엔 문재인 정부의 퇴행적인 불매운동 여파 속에서도 558만 명이나 일본을 방문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 사태 확산으로 일본 정부가 외국인 입국을 철저히 막으면서 사실상 여행이 단절됐다. 특히, 한국엔 냉기류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한·일 관계 정상화 요구가 거세진 가운데 양국 관광부터 재개해 물꼬를 트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걸림돌이던 위안부 보상 문제도 다행히 타개책을 찾기 시작했다. 일본이 이번에 한국을 포함한 외국인 입국 제한을 푼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사실 이번 조치는 엔저 방어용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일본은 엔저를 막으려고 24년여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그러나 마이너스 정책 금리에다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도 미국 국채를 빼면 얼마 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다. 일본으로선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엔저·경상수지를 방어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한국은 해외의 인기가 높다. 한류 관심이 음식 공연 등 K-컬처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일본은 물론 미국·유럽 등 각지의 외국인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일본처럼 관광객을 늘릴 여지가 큰 만큼 여행수지 적자를 만회할 수도 있다. 한·일 모두 서로 찾아가길 원하는데도 최악의 관계로 갔던 것은 정치의 책임이 크다. 관광·문화 등 민간 교류 활성화로 성과를 내기에도 빠듯한 판에 정부 간 관계가 틀어진다고 민간 교류까지 막는 것은 스스로 출구를 차단하고 국민에게 고통만 줄 뿐이다. 문 전 정부의 역주행을 겪으며 얻은 뼈아픈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10월 06일  소수서원과 정치인 자질

 박민 논설위원

대선 후보 토론회로 널리 알려진 중견 언론인 단체 관훈클럽은 지난주 문화유적 답사 차 경북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다녀왔다. 국내 최고(最古) 목조 건물인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펼쳐진 천년 고찰의 풍광은 압도적이었지만, 조선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인 소수서원의 매력도 만만치 않았다. 서원을 휘감은 죽계천이 빠져나가는 지점 양편에 세워진 경렴정과 취한대, 정문 앞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소나무 숲, 그 위에 떠있는 흰 구름은 ‘백운동 서원’이라는 첫 작명의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의 최근 행태 때문인지 소수서원의 현판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조선은 고려 말 정치 불안, 불교의 부패, 몽골 침략 등으로 위기가 고조되자 신흥 무인세력과 신진 사림이 유교를 기반으로 건국한 나라다. 그러나 초기 개혁 정신이 쇠퇴하고 외척이 정국을 주도하자 사림은 훈구세력을 흡수하면서 다시 세력을 키워나갔고, 그 전초기지가 서원이었다. 명종이 퇴계 이황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의 ‘소수’란 현판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서원은 제향(祭享)과 강학(講學)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강학 영역의 건물은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의미하는 하학상달(下學上達) 원칙에 따라 배치된다. 대학 강의실 격인 강학당 뒤편 오른쪽부터 지락재(至樂齋), 학구재(學求齋), 일신재(日新齋), 직방재(直方齋)가 차례로 서 있다. 1804년 원장이던 성언근은 저서 ‘일신재기’에서 “학자의 공부는 독서를 우선하기 때문에 지락재가 맨 아래에 있고, 성현같이 되기를 구하는 학문을 하기 때문에 학구재가 그 왼쪽에 있다. 날마다 덕을 새롭게 하기 때문에 일신재가 그 왼쪽에 있다. 덕을 새롭게 하고 경(敬)으로 내면을, 의(義)로 외면을 바르게 하기 때문에 직방재가 그 왼쪽에 있다.…‘직방’에 이르면 천하에 교화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그 앞에 명륜당(明倫堂)으로 불리는 강학당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원은 조선 말 당쟁의 진원지로 지목돼 철폐되지만, 조선이 500년 왕조를 유지하는 정신적 바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에 실패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 지도자 재교육에 최선의 장소인 것 같다.

 

10월 07일(금)  ‘악의 축’ vs ‘왕따의 축’

 이미숙 논설위원

‘악의 축(Axis of evil)’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2년 새해 국정연설 때 사용해 유명해진 개념이다. 부시는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들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언급했고 순식간에 세 나라는 3대 악의 축 국가가 됐다. 세 나라가 핵을 개발해 테러조직에 팔 경우 세계가 위험해진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악의 축 개념을 꺼낸 이듬해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문제의 대량파괴무기(WMD)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이라크전 정당성 논란과 함께 악의 축 개념은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이란·북한이 핵 개발에 골몰하자 미국은 유엔 제재를 통한 핵 개발 저지 전략을 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두 나라는 왕따(pariah) 국가로 불렸다. 파리아는 인도의 최하층 불가촉천민을 총칭하는 용어로, ‘경제 제재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된 독재국’ 의미로 통용된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2014년 4월 방한 때 “북한과 맞닿은 한국은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라면서 북한을 ‘왕따 국가’로 지칭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도 “김정은이 핵을 고수한다면 북한은 왕따 국가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이란은 2015년 핵 합의 후 “중동의 왕따 국가에서 지역 맹주로 부상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핵 개발을 재개하며 다시 왕따의 길로 들어섰다.

‘악의 축’이 20년 만에 ‘왕따의 축’으로 악성 진화하는 형국이다. 미 ABC 방송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를 왕따 국가로 전락시켰다”고 했고,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웹사이트에는 “러시아가 이란과 왕따 동맹을 형성 중”이라는 글이 게재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밀리자 러시아는 아시아·중동의 왕따 국가에 손을 벌리고 있다. 푸틴은 지난 7월 테헤란을 방문했고,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북한 방문설도 나온 바 있다. 영·미 정보 당국이 ‘북한·이란 무기가 러시아로 갔을 것’이라고 하자 두 나라는 펄쩍 뛰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이란과 같은 왕따 국가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두 나라에 무기를 구걸하는 지경이 됐다. 좌파 인사들이 사회주의 종주국으로 추앙하던 러시아는 지도자를 잘못 만난 탓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10월 11일(화)  아마겟돈 전범(戰犯)

 이현종 논설위원

요한 계시록(묵시록) 16장 16절에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라는 구절이 있다. 히브리어로 ‘하르메깃돈’이라고도 번역되는 아마겟돈은 고대 이스라엘 지역의 ‘므깃도 산’을 의미한다.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벌어지는 최후의 대전쟁 또는 인류 멸망의 위기를 언급할 때 인용된다.

 

아마겟돈은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1998년 개봉한 영화 ‘아마겟돈’은 미국 텍사스 크기의 소행성이 시속 3만5400㎞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 충돌까지 고작 18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나사(미 항공우주국)가 소행성의 구멍을 뚫어 핵탄두를 묻은 뒤 폭발시켜 둘로 쪼개 경로를 변경시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실제 나사가 최근 지구에서 1100만㎞ 떨어진 소행성에 무인 우주선을 고의로 충돌시켜 궤도를 바꾸는 시험에 성공했다. 이런 것을 볼 때 성경의 아마겟돈은 마냥 허황한 얘기는 아니다. 6600만 년 전 백악기 말기에 일어난, 지구 역사상 세 번째 대멸종 사건은 당시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과 함께 전 지구 생명체의 75%를 멸종시킨 것으로 알려진다. 소행성의 충돌로 인해 지구 생명이 절멸한 것으로,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뉴욕에서 열린 민주당 한 행사에서 “핵무기 사용은 결국 아마겟돈으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로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전세가 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결국 핵 사용으로 위기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게 관측되자 바이든 대통령이 ‘아마겟돈’을 언급하며 경고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이 황급히 뒷수습하기는 했지만, 핵 재앙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다. 5900여 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러시아는 1500기는 당장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이 5428기, 중국이 350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가 핵 단추를 누르면 현실에서 아마겟돈이 실현될 수 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15kt 핵무기로 14만 명이 사망했는데 지금은 1000kt 핵무기도 있다. 우주의 섭리에 따른 아마겟돈은 어쩔 수 없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마겟돈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10월 12일  감성정치(Emocracy)

 이신우 논설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하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했다는 발언과 관련해 글을 썼더니 전혀 상반된 댓글이 달렸다. 필자가 식별 불가라고 한 데 대해 야당을 지지하는 독자들의 분노가 대단했다. ‘귓구녕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신기하지 않은가. 이념적 정향에 따라 감각기관이 어떻게 이렇게 달리 반응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이미 심각한 단계라고 한다. 정치학자 니얼 퍼거슨은 이를 두고 우리는 이제 민주정치(Democracy)가 아니라 감성정치(Emocracy)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감성정치는 정치 신조가 다르면 경제관까지 변화시킨다. ‘라이프 스타일 폴리틱스(정치적 생활양식)’나 ‘소비 행동주의’ 등이 그것이다. 정치 성향이 다른 기업이라고 규정하면 기존의 소비조차 보이콧(boycott)해 버린다. 그 반대는 적극 구매를 뜻하는 ‘바이콧(buycott)’이다. 예를 들어 같은 진을 입어도 민주당 지지자들은 리바이스를, 공화당 지지자들은 랭글러를 선호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요한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기업에서 보다 많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고 싶다”는 여론조사 응답이 무려 60%를 넘는다. 2022년 미국 브랜드 평가에서 종합순위 12위를 기록한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경우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는 4위인 반면, 민주당 쪽에서는 47위다.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기업규제·부유세 등을 이유로 공화당 지지 의향을 밝힌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현대 정치판에서는 팩트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느낌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합리적 공론장은 설 자리가 없다. 불행히 정치학자들도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995년도 영화 ‘워터월드’는 물에 잠겨버린 지구에서 최후의 육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가 바닷속을 장시간 유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카메라는 그의 귀 옆에 아가미가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속에서도 호흡할 수 있도록 신체가 빠른 속도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도 얼마 후에는 오른쪽 귀가 큰 인류와 왼쪽 귀가 크게 진화한 인류가 거리를 걸어 다닐지 모른다. 물론 양쪽 귀의 크기가 같으면 장애인으로 분류될 것이다.
 

 

10월 13일  지록위마 정치

 김세동 논설위원

여야 정치권에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유행하고 있다. 진시황 사후 환관 조고가 실권을 잡아 허수아비로 옹립한 황제 호해 앞에 사슴을 끌어다 놓고 “폐하를 위해 좋은 말을 한 필 구해 바친다”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오늘날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 2000년도 더 전인 중국 전국(戰國)시대 수준보다 낫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실언을 공격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처음에 “이××라고는 했지만, ‘바이든’이라고는 하지 않고 ‘날리면’이라고 했다”고 해명했다가 나중엔 아예 “이××라고도 하지 않았다”고 원천 부인하자 “황당한 지록위마”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양두구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역공을 당하자 “지록위마 상황”이라고 했다.

최고 관직인 승상(丞相)에 오른 조고가 황제 면전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우긴 건, 호해를 농락하기 위한 목적보다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 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따라 하지 않은 양심 있는 신하들을 찾아내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무리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 우격다짐이나 이율배반, 자가당착 개념으로 지적해야 할 상황에서 지록위마라고 하는 건, 따라서 정확한 인용은 아닌 셈이다.

 

외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소속 국회의원 169명 전원의 이름으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김건희 특검법’ 등을 발의하는 상황을 지록위마라고 비판하기에 적절하다. 대통령의 실언을 장관에게 물어 해임건의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고, 결혼 전 일이 대다수인 대통령 부인의 사소한 의혹에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준의 거대 특검씩이나 도입하자는 데 소속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린다는 건 심한 ‘오버’고, 대단히 정략적인 행태다.

대선 패배의 최고 책임자임에도 곧바로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된 자격지심에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자신의 권력을 시험해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2024년 국회의원 선거 때 공천 학살을 우려했을 의원들이 단 한 명의 이탈도 없이 ‘말이 맞다’고 복창한 건 영악하다고 해야 하나, 가련하다고 해야 하나?

 

10월 14일(금)  ‘파이프 화가’ 이승조

김종호 논설고문

한국에서 기하학적 추상화를 구축하는 작업에 평생을 바친 이승조(1941∼1990) 화백은 1982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차 여행 중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얼핏 뭔가 망막 속을 스쳐 가는 게 있었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마치 첫인상이 강렬한 사람에 대한 ‘못 잊음’과도 같은, 미묘한 감동에 휩싸여 집에 돌아온 즉시부터 이틀 밤을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로 오늘의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 원기둥 형상의 파이프들을 배열한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파이프 화가’로도 불린 그는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 비행사들이 1969년 7월 21일 인류 최초로 달의 땅을 밟은 일을 두고, 이런 말도 했다. “아폴로 발사로, 우주 공간 의식에 눈뜨고 시작한 이 작업이 내가 사는 시대의 표현에 가장 적합한 것 같다.”

 

그의 작품 제목은 대부분이 ‘핵(核)’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면서 본질,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중심,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의 원천 등을 의미한다. 논문 ‘이승조의 ‘핵’ 연작 : 기하학적 추상의 다면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정주 한국융합예술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이승조가 원하는 ‘핵’은 붓질의 무심한 반복으로 인한 순수한 질료적 결과물, 상징성이나 지시성(指示性)이 담기지 않은 예술 본령으로서의 추상회화, 재현성과 허구성을 뛰어넘는 ‘보는 것 너머’ 회화 본연의 가치에 대한 문제 등으로 귀착되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의 ‘핵’ 연작은 작가 자신이면서, 예술의 본질 그 자체였기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눈’이 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침묵과 고요와 텅 빈 것을 위한 원시의 공간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장소이며, 궁극에는 존재의 본질과 절대적 회화의 종착지 모색’이라는 분석도 따른다. 그의 주요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9월 1일 개막해,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그는 긋는다는 의식과 덧칠하는 행위 사이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끼고, 해방을 맛보았을 것”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표현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선원(禪院)에 온 것 같다는 느낌’도 공유할 거고. 

 

10월 17일(월)  로봇 진화의 두 얼굴

 문희수 논설위원

테슬라의 인공지능(AI) 로봇(옵티머스)이 모습을 드러내 과학기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 지난달 30일 공개한 이 로봇은 뛰지도 공중돌기도 못 하지만 기존 로봇과는 달리 스스로 생각하는 두뇌를 가져 주목받는다. 더구나 테슬라는 부품 공용화로 제작비를 2만 달러(2800만 원대) 이하로 낮춰 3∼5년 내 대량생산까지 예고했다. 머스크는 “로봇으로 무한생산이 가능해지면 1인당 생산성의 한계가 없어져 풍요의 시대가 열리고 문명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미래를 낙관했다.

 

그러나 ‘범용 AI’의 무한한 진화 가능성을 들어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 기능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학습해 인간 수준 이상의 인공지성으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술도 10년 이상 축적하고 있다. 공상과학영화처럼 로봇이 인류에 대항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으스스한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AI 분야 과학자 36%가 이번 21세기 안에 AI가 핵전쟁 같은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는 보도도 있다. AI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해 사람처럼 말하고 듣게 하는 기술인 자연어 처리 전문가들의 경고여서 더욱 주목된다. 앞서 지난 2015년 머스크와 영국의 고 스티븐 호킹 박사 등 과학계 인사 1000여 명이 킬러 로봇 개발 금지 성명을 냈던 일을 상기시킨다. 이미 실전에 투입된 전투용 드론에 첨단 AI가 가세하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지금 세계 어느 곳에서는 은밀하게 전투 로봇을 개발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로봇의 진화는 물론 인류의 큰 진전이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모든 과학자·기업·국가를 ‘정상’으로 전제해 놓고 그들의 양식과 평화적 기술 통제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과제다. 원자력도 각종 국제 통제장치를 뒀지만, 일부 불량국가들이 핵무기 위협을 일삼는다. 로봇 개발이 군사·범죄용으로 빗나가면 파탄을 피할 수 없다. 유럽은 2018년부터 소비자 피해 보상 등 AI 규제 규정을 만들고, 미국에선 얼마 전 안전·차별 방지 등 5가지 원칙을 담은 AI 윤리 지침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런 정도로는 어림없다. 인류가 AI 로봇 안전장치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10월 18일  북핵史는 제재 실패史 

 이도운 논설위원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첫 핵실험을 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TNT 0.8kt 규모의 플루토늄 핵탄두를 터뜨렸다. 북한은 중국에 4kt의 설계 출력을 통보했는데, 플루토늄 일부만 폭발하면서 위력이 줄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제재 결의안 제1718호를 통과시켰다.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했다. 출력은 TNT 3∼4kt 규모. 1차에 비해 폭발력이 5배로 증가했다. 한국국방연구원은 기폭장치가 안정적으로 작동해 핵무기 제조능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유엔 안보리는 6월 13일 대북 결의안 제1874호를 채택했다. 국내에서는 핵실험이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시기여서 상중 모욕이라는 말도 나왔다.

 

3차 핵실험은 2013년 2월 12일 있었다. 출력은 TNT 6∼7kt 규모. 처음으로 고농축우라늄탄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이란 과학자들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참관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유엔 안보리는 결의안 제2094호를 채택했다. 4차 핵실험은 2016년 1월 6일 있었다. 출력은 TNT 약 6kt 규모였는데, 1.5세대 원자력 무기인 증폭핵분열탄 실험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에서도 자체 핵 무장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사드 설치를 결정했는데, 중국에 대한 보복 성격도 있었다. 5차 핵실험은 2016년 9월 9일이었다. 출력은 TNT 약 10kt으로 추정돼 역대 최고치였다. 10kt급 핵폭탄이 서울에서 터지면 최소 24만 명이 사망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유엔 등 국제사회는 북한을 비난했지만, 말뿐이었으며 실효적인 행동은 거의 없었다. 중국·러시아의 북한 옹호가 계속되면 제재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 드러났다.

6차 실험은 2017년 9월 3일이었다. 출력은 TNT 무려 100∼300kt 규모였는데, 북한이 세계에서 6번째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관측됐다. 유엔 안보리는 9일 뒤 결의안 제2375호를 채택했다. 6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달라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무시하던 시진핑 중국 주석은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과 첫 미·북 정상회담을 했다. 옳든 그르든 그것이 핵의 위력이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10월 19일  부산엑스포 유치 비결

박민 논설위원

증기기관, 전화기, 전구, 자동차, 비행기, TV, 녹음기, 플라스틱, 나일론, 무선전화기 등의 공통점은 뭘까. 인류 문명을 선도한 이 위대한 발명품들은 모두 엑스포를 통해 최초로 소개됐다. 그뿐 아니다. 케첩, 브라우니, 아이스크림콘도 엑스포를 통해 데뷔했다. 중세 유럽의 길드 체제가 무너지고 국가별 산업 발전 차이가 확대되면서 다양한 기술과 발명품을 모아 비교하는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 1756년 ‘영국산업박람회’였고 이에 뒤질세라 프랑스 정부도 1798년 최초의 국영 산업전시회인 ‘제1회 산업박람회’를 개최했다. 1849년까지 국영 박람회를 11차례 개최한 프랑스는 여세를 몰아 대규모 박람회를 준비했으나 영국이 선수를 쳐서 1851년 유리 궁전으로 상징되는 런던 엑스포를 개최했다. 세계박람회의 시초로 꼽히는 박람회다. 이처럼 당시 선진국들은 자국의 과학 문명을 과시하기 위해 엑스포 개최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1900년 파리 엑스포에 무려 2000만 명의 관람객(당시 세계인구 20억 명)이 방문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개최 난립으로 재정 과다 지출, 질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1928년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설립돼 공인 엑스포 개최지 선정 등을 관리하게 됐다.

 

2030년 등록엑스포 유치 경쟁은 이탈리아 로마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부산의 3파전으로 진행 중이다. 이슬람권의 전폭적 지지와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가 170개 회원국 중 70개국 이상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객관적 조건에서도 부산이 밀린다. 리야드 인구는 770만으로 부산·울산·경남 인구와 맞먹고 행사장도 넓다. 반면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설 특수 등의 기대를 모았던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한국 방문이 무산됐다. 엑스포 유치 경쟁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공동유치위원장을 맡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이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제적 어젠다를 선도할 엑스포를 개최해야 하며 이를 위해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와 같은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신뢰받는 정부와 기업이다. 

 

10월 20일  페르메이르의 비밀

이미숙 논설위원

미국 배우 스칼릿 조핸슨이 주연으로 출연한 피터 웨버 감독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1660년대 네덜란드 델프트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화가 얀 페르메이르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 소녀 그리트가 그림의 모델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조핸슨은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빼닮아 화제가 됐다. 영화에서 그리트는 16세로 그려지는데 촬영 당시 19세이던 조핸슨은 청순한 면모로 네덜란드 소녀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원작자 슈발리에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에 매료돼 화가로서 그의 삶을 그린 소설을 1999년 펴냈는데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됐다.

 

페르메이르는 17세기 바로크 시대 델프트에서 활동한 화가인데 그의 작품이 널리 알려진 것은 19세기 이후다. 43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탓인지 오늘날 전해지는 작품은 35점 정도다. 초기에는 역사화와 풍경화를 그렸지만 ‘우유를 따르는 여인’ ‘편지를 쓰고 있는 여인’ ‘물 주전자를 든 여인’ ‘저울을 든 여인’ 등 집안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그린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림 전체를 감싸는 부드러운 빛과 뛰어난 색조, 정밀하게 묘사된 인물과 실내 정경은 페르메이르 작품의 트레이드마크다. 남긴 작품이 워낙 적다 보니, 세계 유명 미술관들의 소장 경쟁이 치열하고 한두 점만 순회 전시를 해도 늘 화제가 된다.

최근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는 페르메이르의 ‘플루트를 든 소녀’가 문하생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따르면 내셔널 갤러리의 큐레이터 알렉산드리 리비는 “화성 탐사 로봇을 위해 개발된 하이테크 영상기기로 그림을 판독한 결과 ‘플루트를 든 소녀’의 밑그림이 페르메이르의 다른 작품에 비해 엉성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갤러리가 폐쇄된 이후 페르메이르 작품을 연구한 덕분에 이 같은 발견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리비의 설명이다. 더 정밀한 기기가 나오면 페르메이르 작품이 더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셔널 갤러리는 이것을 일반에 공개하기 위해 지난 8일부터 ‘페르메이르의 비밀’이란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플루트를 든 소녀’와 소장 중인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10월 21일(금)  유동규와 플리바게닝

이현종 논설위원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이란 피의자가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이를 자백하는 대가로 형사처벌 수위를 낮추기로 협상하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형사 사건의 90%가 플리바게닝을 통해 해결된다는 통계가 있고,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도 일부 범죄에 적용하고 있다. 부패·조직범죄의 경우 증언을 받아내기가 어려운 상황에 더 큰 범인을 잡기 위해 ‘악마의 거래’를 하는 것이다. 법치의 원칙에는 맞지 않지만 수사 현실에선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많다.

우리나라는 플리바게닝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검찰이 각종 피의자 인권보호 장치로 자백을 받아 낼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진 상황에 기소나 적용 법률의 재량권을 이용해 유효한 수사 기법으로 사용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 특검이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에 대해 다른 피고인과 달리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 협조를 구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법원이 이를 무시하고 징역 2년 6개월에 법정구속하면서 깨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분신이자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9일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던 날 공교롭게 ‘대장동 일당’의 주범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구속 기한 만기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유 씨는 1심 구속 기간 6개월이 경과해 한 차례 추가 기소로 연장됐지만, 이번엔 법원이 위례 신도시 개발 의혹 사건을 기존 대장동 사건과 병합하지 않기로 해 석방된 것이다. 그러나 구속 기한이 넘어도 다른 사건을 찾아내 연장하던 그동안의 검찰 관례에 비춰 매우 이례적이다. 결론적으로 ‘김용은 들어오고, 유동규는 나가는’ 묘한 모습이 연출됐다.

유 씨는 만약 이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침묵하고 갈 수 있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버티면 20∼30년은 징역을 살아야 하는 것이 큰 압박이 됐다고 한다. 특히,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표가 유 씨를 자신의 측근이 아니라고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고 김문기 전 개발1처장을 ‘모른다’고 한 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유 씨와 고 김 씨는 오랜 지인이다. 이런 심리적 변화를 검찰이 파고들어 유 씨를 설득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전언이다. 유 씨는 최근 민주당 출신 자신의 변호사 접견도 거부했다고 한다.
 

 

10월 24일(월) 여론조사 빙자한 정치

 이신우 논설고문

국민의힘의 유승민 전 의원이 당권 도전을 시사했다. 차기 당 대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1위로 나오자 이 내용을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뜬금없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여론조사인지를 살펴봤다. KBS? 하다가 아차, 잘못 본 것이었다. 정확히는 KBC광주방송이 의뢰한 것으로 여론조사 회사의 이름은 넥스트위크리서치였다. 넥스트위크리서치에 따르면 7월부터 매주 발표하는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정기 조사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주까지 8주 연속 선호도 1위에 오르고 있었다.

 

넥스트위크리서치를 좀 더 알아보기 위해 과거 기사들을 검색했더니 유 전 의원 말고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 대표에 관한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이 역시 KBC광주방송과 국내 UPI뉴스(미국 UPI통신과 별개)가 의뢰한 조사다. 지난 7월 12∼13일 실시한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이준석 대표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한국갤럽이 지난 9월 첫째 주의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준석 전 대표는 호감 24%, 비호감 65%로, 호감은 가장 낮고, 비호감은 가장 높은 정치인으로 나왔다. 이 정도라면 두 여론조사 업체 중 하나는 진실을 호도하거나, 한쪽의 설문 내용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현재 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 업체는 무려 93개에 이른다. 심지어 넥스트위크리서치는 이 안에 들어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언론사들은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만 나오면 무조건 기사를 베껴 싣는 경향이 있다. 이런 판이니 “148개 언론이 그렇게 듣고, 그렇게 썼는데…”(권태선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라는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정치권의 누군가는, 그리고 그에 봉사하는 여론조사 업체들은 이런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21년 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윈지코리아, 리얼미터,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등 여론조사 업체 간부들이 잇달아 이재명 캠프로 달려간 것은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0월 25일 타락한 ‘고교생 정치 동원’

이도운 논설위원

고등학생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전환하는 시기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만 18세를 넘은 고 3은 투표권을 갖는다. 그러나 게임·영화산업 진흥법 등은 만 18세가 넘더라도 고등학생이면 청소년으로 본다. 적어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사회에 나가는 것을 준비하는 시기로 보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체로 확립된 인식이다.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시기에는 고등학생도 정치에 참여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광주에서 고교생들이 주축이 돼 항일운동을 시작했다. 통학 열차에서 일본인 학생이 광주 여고생을 희롱한 것이 발단이 됐는데, 광주뿐만 아니라 서울·대구 등지로 확산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에도 고교생들이 시위에 나갔는데, 마산상고 재학생 김주열 열사가 시신으로 발견된 영향이 컸다. 4·19 희생자는 186명. 이 가운데 대학생은 22명인데 고등학생이 36명이나 됐다. 중학생·초등학생도 19명이 희생됐다. 당시 자유당 정권이 학생들을 관제 시위에 동원했던 것이 정치 시위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당시만 해도 대학생 숫자는 적었고, 고등학생만 돼도 배운 사람으로 인정받던 시기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고교생의 희생도 있었고, 이에 따라 고교생들이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1987년 6월 항쟁 당시부터는 고교생 참여가 거의 없었다. 이후 청소년들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합의처럼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청소년을 노골적으로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시도들이 나타난다. 해체된 통합진보당 인사가 이끄는 단체가 중·고생들을 모아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내부 강령. 청소년들을 유혹하기 위해 화장·두발 자유, 휴대전화 수거 금지 등을 내세운다고 한다. 또 놀 권리·쉴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한다면서 PC방과 노래방의 중·고생 출입시간 제한 폐지를 요구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명분으로 숙박시설과 자취 생활 등에 관한 자유도 요구한다는 것.

과거 고교생의 정치적 행동에는 독립·민주화 등 국가·사회적 명분이 있었다. 최근 좌파들의 고교생 동원 전략에는 최소한의 양심조차 찾기 어렵다.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10월 26일 ‘마로니에 가수’ 박건

김종호 논설고문

칠엽수(七葉樹)는 프랑스어로 마로니에(marronnier)다. 세계 4대 가로수 중의 하나로, 프랑스 파리의 센강 주변에도 줄지어 있다. 그 마로니에는 유럽이 원산지인 가시칠엽수다. 한국에 처음 식재된 가시칠엽수는 1912년 주한 네덜란드 공사가 묘목을 고종 황제 회갑 선물로 준 것으로, 두 그루가 덕수궁 석조전 옆 마당의 거목으로 자랐다. 서울대 캠퍼스가 1975년 관악산 기슭으로 옮겨가기까지 대학본부·문리대·법대·예술대미술부 등이 자리 잡았던, 현재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 우람하게 서 있는 마로니에 원산지는 일본이다. 1927년 일본인 교수가 심었다. 학생들은 그 캠퍼스 앞으로 흐르던 대학천을 ‘세느강’, 그 위에 걸린 다리는 ‘미라보다리’로 불렀다. 이제 대학천은 복개(覆蓋)됐고, 마로니에 고목 아래 ‘서울대학교 유지(遺址) 기념비’는 ‘캠퍼스의 아름다운 낭만과 역사가 잔잔히 흘렀다’고 증언한다. 1975년 1월 17일 오전 9시 문리대 과학관 409호실에서 진행된 동숭동캠퍼스의 마지막 수업을 ‘다 낡아 삐걱거리는 강의실이었지만, 그 소리는 어쩌면 그렇게도 맑았던지!’ 하고 추억한다.

그 ‘미라보다리’를 건너다니며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한 신명순이 작사한 노래가 김희갑 작곡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하는. 휘파람 전주(前奏)부터 가슴을 흔든다. 1971년 동명의 동아방송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로, 박건(82)은 그 노래를 불러 ‘마로니에 가수’ 별명도 얻었다. 본명이 홍몽희인 그는 1966년 손목인 작사·작곡 ‘그리워 우는 파랑새’로 데뷔할 때 예명이 홍우성이었다. ‘사랑은 계절 따라’ 등 많은 히트 곡을 발표한 그는 홍박건·홍진우·홍몽룡 등 예명으로 작사·작곡도 적잖게 했다.

 

박건은 ‘마로니에공원의 젊음과 낭만을 추억하게 해서 대학로 이미지에 이바지한 공’으로, 2011년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감사패도 받았다. 그 노래 속 마로니에의 단풍이 올해도 매력 있게 들었다. 드높아진 하늘 아래에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바라보면, 눈이 시리고 가슴이 저려 오는 느낌을 갖게 된다.

 

10월 27일  ‘개딸’과 홍위병

김세동 논설위원

이재명 대표 최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반(反)민주적 속성도 강화하고 있다. 대표 개인 비리 혐의가 당의 문제로 되면서 의원들이 대거 동원돼 국정감사를 파행시키고, 법원에 의해 발부된 정당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불법적으로 막아 ‘방탄의원단’이란 조롱을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집단주의적 광기를 비판한 당 소속 정치인에게 이 대표 극렬 지지자인 개딸이 나서 ‘인터넷 린치’를 가하고 있다. 가히 마오쩌둥 치하의 홍위병 같은 모습이다.

‘민주당의 단일대오가 특정인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김해영 전 의원의 지난 24일 페이스북 글엔 ‘민주당에 쓸모없는 종자’ ‘관심 종자’ ‘주접’ ‘똥파리’ ‘까는 소리’ 등의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앞서 22일 그가 올린 ‘이재명 대표님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십시오’라는 글엔 입에 담기 힘든 저주와 욕설이 대부분인 댓글 1만7000여 개가 달렸다.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직후 2억3100만 원의 방산주 투자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 전재수 의원이 17일 “이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뉴스도 못 보고 널브러져 있는데 혼자 정신 차리고 주식 거래를 한다? 지지자들에게 실망스러운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바른말을 했다가 안민석 의원으로부터 동료를 잡아먹는 ‘갈치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물론 개딸도 전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유하며 ‘문자 융단폭격’에 나섰다.

 

23일 폐막한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영구집권으로 가는 길을 열었는데, 시 주석을 위시한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10대 때 문화혁명과 홍위병을 겪어 ‘뼛속까지 공산당원’이라는 우려가 크다. 문혁은 마오쩌둥이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만든 대약진운동으로 실각한 후 권좌 복귀를 위해 어린 청소년·학생들을 동원, 1966년부터 10년간 당 중앙 등 지도체제를 무너뜨린 대재앙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상적 은사라고 했던 고 리영희 교수가 ‘새로운 사회주의적 인간을 만드는 인간 개조 실험’이라고 극찬한 이래 중국인들이 치를 떠는 문혁이 우리나라 주체사상파 운동권에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10월 28일(금)  한국은행 총재의 화법

문희수 논설위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가 제롬 파월 의장의 입을 주목하는 것을 보면 실감 난다. 지난 2018년부터 17대 의장을 맡은 그는 물가와 전쟁을 치르며 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으로 세계 경기 침체 논란까지 부른다.

역대 Fed 의장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앨런 그린스펀(13대·1987∼2006)일 게다. 4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임기가 역대 두 번째로 길었던 그는 언어의 연금술사 등 별명도 많고 일화도 많았다. 1990년대 인터넷 열풍이 거센 때 ‘비이성적 과열’이란 말로 증시 이상 과열을 경고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금리 정책에 대해 난해한 화술을 구사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그도 오랜 저금리로 유동성 과잉을 초래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렇지만 금융위기를 헤쳐 나갔던 그의 후임 벤 버냉키 14대 의장과 15대 의장 재닛 옐런(현재 미 재무장관), 그리고 파월 현의장 모두 그의 카리스마엔 못 미친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방향을 예고하는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예고 지침)’를 중단할 뜻을 밝혀 관심이다. 이 총재가 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올린다고 했던 것이 한·미 금리 격차가 커질 것이란 기대치를 키웠다는 비판에 밀린 모양이다. 본심을 몰라줘 섭섭해 하는 기색도 보인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은 총재로선 아주 이례적인 화법이었다. 게다가 미국이 계속 금리를 대폭 올리고 있는 때다. 베이비 스텝 필요성을 강조하는 게 더 생뚱맞다.

이 총재는 취임 전후에도 소신이라며 성장에 역점을 둬 주위를 긴장시켰다. 한은의 목적은 물가 안정과 금융시장 안정이다. Fed와 달리 성장이 한국에선 정부 몫이다. 문재인 전 정부는 국채 매입에 한은의 발권력을 끌어들이려 부단히 시도했다. 전임 이주열 총재는 이런 ‘정부 부채의 화폐화’를 극력 저지했다. 한은의 정치 중립은 끊임없이 시련을 겪는다. 총재의 말 한마디가 자칫 화(禍)를 부를 수 있다. 물론 시장과 소통이 중요하지만, 한은 총재가 민감한 금리의 방향과 폭을 예단하는 언급을 자제하는 게 문제가 될 리 없다. 오히려 이 총재가 이제 안착했다는 안도감을 갖게 된다. 

 

10월 31일(월)  핼러윈 악몽

이현종 논설위원

20여 년 전 미국 연수 중에 접한 핼러윈은 괴기스러웠지만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문화 충격이었다. 귀신, 해골, 캐릭터 옷(코스튬)을 입고 다른 집에 가서 ‘간식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trick or treat)’를 외치면 사탕을 받아오는 재미에 푹 빠졌다. 국내 돌아와 보니 영어 학원 등에서 핼러윈이 우리 명절보다 더 인기 있는 날이 됐다. 업체들의 상업적인 마케팅과 겹치면서 설이나 추석, 크리스마스보다 더 들뜬 ‘명절’이 되고 말았다.

10월 31일인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했다. 켈트족은 이날에는 사후 세계와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악마나 망령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다. 사자(死者)의 혼을 달래고자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내놨으며 망령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을 했다고 한다. 이후 8세기 유럽에서 가톨릭 교회가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지정하자 그 전날인 10월 31일에 사윈 축제를 이어갔고 ‘신성한(hallow) 전날 밤(eve)’이라는 의미로 이후 핼러윈으로 불리게 됐다.

올해 미국에서 팔린 핼러윈 사탕, 장식, 의상만 106억 달러(약 15조 원)에 이를 정도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지난 3년간 행사가 열리지 못한 데 대한 보복 소비도 가세해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유치원부터 클럽에 이르기까지 핼러윈 마케팅으로 몸살을 앓았다. 코스튬과 사탕을 준비하는 데 보통 1인당 10만 원가량 들어가고, 해외에서 직구 하다 보니 부담도 만만치 않다. 미국 명절 때문에 한국 부모들은 ‘핼러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핼러윈 참사는 세계적으로 기록될 대형 사고다. 지난 1일 인도네시아 축구장에서 132명의 관중이 압사한 사고보다 피해가 더 컸다. 좁은 골목길에 많은 인파가 몰렸고, 앞에서 사고가 났는데도 핼러윈 복장을 하고 있어 사고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바람에 피해가 더 컸다고 한다. 압사 사고로는 지난 1990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에서 성지순례를 하다 1426명이 사망한 사고가 가장 크다. 핼러윈 본연의 의미는 사라지고 ‘클럽 이벤트’로 변질해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흐른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