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4/ [121] 느리지만 먼 길을 가는 소 - [160] 노예근성의 어용(御用) 지식인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4 조선일보
2021.01.01
[121] 느리지만 먼 길을 가는 소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길을 나서 먼 곳에 이르는 행위를 가리키는 성어는 부중치원(負重致遠)이다. 이 말의 유래에 직접 등장하는 동물은 소다. 잽싼 짐승에 비해 퍽 느린 걸음, 우둔해 보이지만 결국 먼 길을 걷는 소의 이미지가 생생하다.
중국에서 소는 고초를 견디는 인고(忍苦)의 상징이다. 왕조의 전제적 통치하에 말없이 괴로움을 참아내던 숱한 중국의 농민들 심성에 소를 견주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욕됨을 참으며 제 할 일을 끝내는 인욕(忍辱)의 대명사로 쓰일 때도 있다.
그런 소의 심성으로 큰일을 이룬 인물들도 적잖다. 섶에 누워 쓸개를 핥았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월(越)나라 구천(句踐), 생식기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음에도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 동네 왈패의 다리 밑을 기었던 한(漢)의 명장 한신(韓信) 등이다.
덩치가 커서 둔중해 보이지만 큰 전략적 시야(視野)를 곧잘 자랑했던 중국 역대 왕조의 이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느슨한 기미(羈縻) 정책으로 동북아의 국제 정치적 질서를 이끌었던 배포도 어쩌면 소의 이미지를 닮았다.
개혁·개방 뒤의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포용적인 틀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요즘의 중국은 과거의 그런 이미지에서 많이 일탈했다는 느낌을 준다. 요즘 중국의 태도와 행위, 특히 대외 정책을 평할 때 등장하는 동물은 늑대다.
더구나 싸움을 일삼는 늑대라는 뜻의 전랑(戰狼)이다. 최근에는 이런 기질이 더 번져 자국에 비판적인 오스트레일리아를 물어뜯었다. 와인과 육류 수입을 금지하면서 싸움에 나섰으나 국제사회에서는 거센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소의 해에 생각해보는 중국의 이미지다. 소의 ‘인고’와 ‘인욕’은 결국 품격(品格)의 높음과 낮음을 가르는 척도다. 중국이 개혁·개방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꺼낸 소 이야기다.
[122] 권력자가 좋아한 개미허리
‘가는 허리’가 미인(美人)의 기준으로 떠오른 지는 퍽 오래다. 한자로 옮기면 세요(細腰)다. 그러나 초요(楚腰)라고 적을 때가 많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춘추시대의 초(楚)나라에서 비롯한 까닭이다.
당시 임금 영왕(靈王)은 허리가 잘록한 미인을 유독 선호했던 모양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따르면 임금의 기호로 인해 초나라의 많은 여인이 빈혈에 허덕였다고 한다. 임금의 눈에 들려고 심한 다이어트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듯하다. 임금의 눈총을 받기 싫어 절식(節食)을 거듭해 몸매를 가꾸는 데만 신경을 썼으니 말이다. 남을 다스리는 사람의 호오(好惡)가 자꾸 번져 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설명할 때 곧잘 쓰는 전고(典故)다.
위와 아래, 즉 상하(上下)의 구별이 뚜렷하고 엄격한 위계(位階) 관념까지 덧대지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위’의 동작이나 생각이 ‘아래’를 짓누를 때가 많아서다. 상행하효(上行下效)라는 성어는 그 점을 설명한다.
[123] 미국의 혼돈을 보는 중국의 시선
고려 인삼에 대항하는 해외의 대표적인 인삼은 화기삼(花旗蔘)이다. 미국을 위주로 하는 북미(北美) 지역에서 나온다. 인삼의 대표적 유통 지역인 홍콩에서는 고려 인삼에 비해 싼값으로 많이 팔린다.
대표적인 미국계 은행의 하나는 시티뱅크(Citibank)다. 중국인들이 지금 쓰는 그 한자 이름은 화기은행(花旗銀行)이다. 19세기 상하이(上海)에 이 은행이 처음 진출했을 때의 정식 현지 명칭은 만국보통은행(萬國寶通銀行)이었으나 결국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차이나 별곡 혼돈의 미국을 보는 중국의 시선 / 일러스트=김하경
1776년 건국 뒤 미국인들이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현지인들에게는 그들이 내걸었던 국기(國旗)가 퍽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울긋불긋한 색깔에 가로줄과 별이 가득한 문양이 마치 ‘꽃과 같은 깃발[花旗]’로 비쳤다고 한다. 그로써 얻은 미국의 첫 한자 명칭은 ‘화기국(花旗國)’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자란 인삼, 그곳으로부터 온 은행 이름에 모두 이 ‘화기’라는 단어가 붙었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어 호칭은 여러 차례에 걸쳐 변한다. ‘아메리칸’을 음차(音借)해 미리견(米利堅)으로 불렀다가, 그곳 오랑캐라는 뜻의 ‘미이(咪夷)’라고도 적었다. 일본에서도 쓰는 ‘미국(米國)’이라는 표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1800년대 중반 이후 국제적인 영향력이 점차 상승하면서 이 나라의 한자 이름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의 미국(美國)으로 본격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우리도 건국 뒤 이 명칭을 줄곧 사용하고 있다.
시위대가 의회에까지 난입하고 점거하는 현상을 보면서 요즘의 중국은 미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꽃이 만발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화기국’임에는 분명한데, 그 정도가 지나쳐 어지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혼란한 나라, 미국(迷國)으로 슬쩍 고쳐 적을지도 모르겠다. 내심으로는 공산당이 구축한 고도의 권력 집중 시스템을 자축하면서 말이다.
[124] 부자 잡는 ‘공산주의 관문’
▲제갈량이 북벌 때 넘나들었던 쓰촨성 북부의 검문관(劍門關).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제갈량이 북벌 때 넘나들었던 쓰촨성 북부의 검문관(劍門關).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진나라 때 밝은 달, 한나라 시절 관문(秦時明月漢時關)”이라는 시구가 있다. 당(唐)대 왕창령(王昌齡)이라는 시인의 작품이다. 단순한 서경(敍景)인 듯싶지만 사실은 변치 않고 늘 벌어졌던 전쟁을 암시한다.
여기서 ‘관문(關門)’으로 푼 관(關)은 본래 글자 풀이로 보면 ‘문에 지른 빗장’ 또는 ‘빗장 지른 문’이다. 좁아진 길에 세운 나들목이나 요새 등의 뜻도 그로부터 나왔다.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며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려 만든 군사 시설이다.
전쟁이 빗발치듯 닥쳤던 중국인들에게 이 길목은 매우 중요하다. ‘관’을 중심으로 그 안[關內]에 몸을 들이느냐, 아니면 밖[關外]으로 내쳐지느냐가 생사와 존망을 가르는 기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유명한 관문이 많다. 유비(劉備) 죽은 뒤 제갈량(諸葛亮)이 북벌을 위해 넘나들었던 검문관(劍門關), 험준한 산세(山勢)를 이용해 지은 안문관(雁門關), 서북 지역의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이 다 그렇다.
관우(關羽)가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벴다는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의 스토리도 비록 허구이기는 하지만 인구에 늘 회자한다. 그 관문을 지나는 일인 통관(通關)은 매우 어렵고 중요했다.
요즘도 지나기 까다로운 세관(稅關)이나 해관(海關)을 떠올리면 좋다. “한 사람이 지키면 1만의 병사도 지나기 어려운(一夫當關, 萬夫莫開)” 길목이라 그렇다. 영웅도 미색(美色)에 홀려 번번이 넘지 못했다는 ‘미인관(美人關)’도 있지만 요즘 그보다 더 험한 관문이 중국에 등장한 모양이다.
‘남과 재산을 공유해야 한다[共産]’는 공산주의 관문이다. 중국 최고 부자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을 비롯해 여럿의 대기업 부호들이 죄다 이 길목에 걸린 듯하다. 지금까지의 개혁·개방 분위기도 따라서 크게 비틀거리는 모습이다. 중국의 분위기가 많이 변하고 있다.
[125] 총과 주판의 대결
항우(項羽)를 꺾고 천하 권력을 손에 쥔 유방(劉邦)이 인물평을 했다. 그의 최고 참모였던 장량(張良)을 평가하는 데 이르러선 “장수의 막사에 앉아 전략을 만들어 천리 밖 싸움터의 승부를 가르는 대목에서는 내가 그만 못하다”고 언급한다.
약 2200년 전 유방이 말한 ‘전략 구성’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기록에 ‘운주(運籌)’라는 단어로 등장한다. 셈을 할 때 흔히 사용했던 나뭇가지를 주(籌), 그를 움직이는 행위는 운(運)이라고 표현했다. 싸움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의 구성 및 운용을 일컫는다.
왕조시대 최고위 정책을 다뤘던 조정(朝廷)에서 벌이는 그런 행위는 보통 묘산(廟算)이라고 적었다. 국가 운영의 꼭짓점에 있는 왕이나 신하들이 조정의 한복판인 묘당(廟堂)에서 벌이는 계산 행위, 즉 전략과 전술의 구성이다.
흔히는 타산(打算)으로 적는다. 따지고 재는 행위다. 속으로 줄곧 셈을 하면 암산(暗算), 정밀하게 따지고 또 따지면 정산(精算)이다. 기가 막힐 정도의 셈이면 묘산(妙算)이고, 잘못 헤아리면 오산(誤算)이다.
이리저리 재고 따져보는 셈의 전통은 앞서도 얘기했듯 중국이 참 유장하다. 셈 가지 이리저리 얽는 주산(籌算)의 습성은 결국 주판(籌板·珠板)의 발명에도 이르렀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에서 남을 이기기 위한 병법(兵法)의 화려한 전통으로 이어졌다.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포석(布石)과 형세(形勢) 등 눈에 바로 드러나지 않는 조건을 활용하는 복잡한 싸움법의 게임인 바둑이 중국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라는 점을 떠올려도 좋다. 그런 전통의 중국은 간접적이며 우회적인 싸움법에 능하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으나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은 강경함을 유지할 전망이다. 서부 건맨(gunman)식 우직한 미국의 싸움법과 집요한 셈이 전통인 중국의 전법이 또 충돌할 기미다. 세기의 싸움이자 갈등이다.
[126] 빛을 잃어가는 홍콩
제가 살던 곳을 떠나 새 삶의 터전을 찾고자 길을 나섰던 이민(移民)의 움직임은 중국의 역사 과정에서 참 많았다. 특히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천이(遷移)가 가장 빈번했다. 전란과 재난을 피해 살 곳을 찾아 나선 인구의 이동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어가 있다. 의관남도(衣冠南渡)다. 옷과 모자를 제대로 차려 걸친 사람들[衣冠]이 남쪽으로 건넜다[南渡]는 맥락이다. 앞의 ‘의관’은 그저 평범한 인구가 아니다. 옷과 모자를 제대로 입거나 쓴 사람, 즉 지식(知識)과 문물(文物) 등의 뜻을 담고 있다.
북에서 닥치는 이민족의 침략 전쟁, 그에 맞물렸던 각종 재난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남쪽을 향해 움직이게 한 중국의 역사적 현상을 일컫는다. 대개는 장강(長江) 등 큰 하천을 경계로 삼는 까닭에 ‘남쪽으로 건넜다’는 표현이 붙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정서는 또한 여러 언어 흔적으로 남았다. 고향 마을 우물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뜻의 배정리향(背井離鄕)이 유명하다. 세연(細軟)이라는 단어는 우리 쓰임에는 없지만 중국어에서는 ‘귀중품’에 해당한다.
이 말은 ‘작고 부드러운 것’이 우선 새김이지만 나중에는 전란이나 재난을 피해 새로 살 곳을 찾아 나설 때 반드시 챙겨야 했던 금전이나 값진 물건을 가리켰다. 몸에 감아 두르는 물건이라고 해서 규전(糾纏)이라고도 적었다.
정착했다가 언젠가는 또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중국인의 고단한 이민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지난해 국가안전법 적용으로 중국의 통제가 강해지자 홍콩 사람들이 이민 대열에 부쩍 많이 합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의관남도’의 새 버전이다. 이제는 하천보다 훨씬 거대한 바다를 넘어야 하는 고단한 이민의 길이다. 지식과 문화적 역량, ‘의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의 홍콩은 예전의 빛을 다 잃을 듯하다.
[127] ‘봉쇄’에 골몰하는 공산당
진시황(秦始皇) 이전의 중국에서는 ‘봉건(封建)’이 행해졌다. 왕실 친족이나 귀족, 공신(功臣) 등에게 일정 지역의 권력을 위임하는 제도다. 이로써 왕실은 친위(親衛) 세력을 구축하는 한편 다른 권력의 집중을 견제했다.
자의(字意)로 보자면 ‘봉건’의 앞 글자는 본래 손으로 나무를 심는 모습이다. 한 지역의 경계를 긋는 행위다. 일정 지역의 권력을 위임하되 그 한계 또한 분명히 하는 뜻이다. 그로써 권력을 분산한다[分封]는 의미, 아울러 그 권력을 제한한다는 새김을 얻었다.
봉토(封土)는 그 위임받은 지역, 봉작(封爵)은 그렇게 해서 얻은 벼슬을 가리킨다. ‘권력 등을 한 곳에 가두다’라는 맥락의 조어도 퍽 많다. 봉쇄(封鎖)는 걸어 잠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봉합(封合)도 같은 맥락이다. 출입을 틀어막으면 봉금(封禁)이다.
지난해 중국의 시사 흐름에서는 이 글자가 자주 등장했다. 코로나19가 번지는 곳에 가차 없이 등장했던 공산당의 도시 봉쇄, 즉 ‘봉성(封城)’ 조치 때문이다. 요즘도 바이러스 발생 의심 지역으로 여겨지면 당국의 신속한 봉쇄가 펼쳐진다. 공산당 특유의 효율적 측면을 강조하는 대응이다.
인터넷 사정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에 비판적인 개인 온라인 계정들은 2018년 이후 대규모 봉쇄에 직면하고 있다. 계정 폐쇄에 해당하는 이른바 ‘봉호(封號)’다. 요즘 들어서는 시정(時政)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그 대상에 오른다.
봉건 체제에 관한 논의는 꽤 복잡하다. 동서양의 정의(定義)가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 개념으로는 억압과 수탈의 퇴행적인 틀을 지칭한다. 닫고, 가두며, 막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아직 이런 의미의 봉건 체제를 답습하는 모양새다. 과거 왕조의 구태를 혁파한다며 일어나 개혁·개방의 드라마틱한 전환까지 선보였던 공산당으로서는 퍽 민망한 일이겠다.
[128] 女色에 빠진 공산당 간부들
(妻) 하나에 첩(妾)은 여럿. 철저한 남성 위주의 중국 봉건적 사회에서 버젓이 이뤄졌던 풍경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사회 고위 계층의 남성들에게 흔했던 일이다. 이를테면 일처다첩(一妻多妾)의 틀이다.
정식으로 혼례를 치른 아내는 보통 처, 정처(正妻)라 칭했다. 남자가 여성을 ‘실(室)’로 호칭했던 옛 관례에 따르면 정실(正室)이다. 머리털을 한 올씩 뽑아 서로 묶으며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었다고 해서 결발(結髮), 발처(髮妻)로도 불렀다.
첩은 아내 외에 얻은 여인의 지칭이다. 정식 처가 아니라는 점에서 측실(側室)로 부르거나 소첩(小妾), 서처(庶妻) 등으로 적었다. ‘다른 아내’라는 뜻의 방처(傍妻), 별실(別室) 등도 관련 호칭이다.
아내 외에 둔 ‘둘째’라고 해서 뒤에 나온 말은 ‘이내(二奶)’다. 개혁·개방 뒤에도 정부 고위 관료나 돈 많은 남성들이 이런 축첩(蓄妾) 대열에 앞장서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여러 번이다. 그에 비해 ‘정부(情婦)’는 몰래 정을 통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요즘도 중국의 아내들은 시무룩하다. 특히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아내들이 그렇다고 한다. 남편들의 그칠 줄 모르는 ‘외도’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당의 감시 때문에 첩을 두지 못하는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몰래 바람을 피우는 ‘정부’가 대세라고 한다.
그래서 각급(各級)의 간부들이 함께 거주하는 관저 단지가 ‘과부촌(寡婦村)’이라고 불릴 정도라는 전언이다. 심지어는 같은 애인을 두는 ‘공부(共婦)’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공산주의의 ‘공유(共有)’ 개념이 엉뚱한 영역에서 펼쳐지는 모습이다.
마침 공산당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최근 “당신들은 술자리에서 죽지 않으면 침대에서 죽는다”고 간부들을 꾸짖은 모양이다. 간부들의 부패와 도덕적 해이로 당과 나라가 무너진다는 ‘망당망국(亡黨亡國)’의 위기감이다.
[129] 중국에 몰려오는 태평양風
/일러스트=김성규
“모든 것 다 갖췄으나 그저 동풍만 빠졌다(萬事俱備, 只欠東風).”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두고 화공(火攻)을 펼치려던 제갈량(諸葛亮)이 쓴 글이다. 그가 결국 동풍을 불러들여 조조(曹操)의 대군을 꺾는다는 설정은 소설의 허구지만 유명하다.
여기서 ‘동풍’의 뜻은 동쪽에서 부는 바람이다. 그러나 일차적 새김 외에 일이나 사업 등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가 덧붙는다. 그만큼 중국인에게 ‘바람’이라는 존재는 기압 차이로 생기는 기상(氣象) 외의 색다른 의미가 있다.
무엇인가 조만간에 닥칠 상황의 조짐이나 소식, 정보 등의 속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를 아예 기회(機會) 또는 위기(危機)로 읽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바람’ 앞의 중국인은 늘 신중해지려고 애를 쓴다.
중국어에는 ‘바람을 잡다’라는 뜻의 ‘파풍(把風)’과 그 반대 의미의 ‘방풍(放風)’이라는 단어가 있다. 바람을 쥐락펴락한다는 얘기다. 앞은 닥칠 상황의 조짐 등을 미리 파악해 대비한다는 의미다. 뒤의 ‘방풍’은 소식을 미리 퍼뜨려 제가 기대하는 목적을 이루는 행위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끈질기게 살피려는 습성은 망풍(望風), 관풍(觀風)이라는 말을 낳았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는 구풍(口風)이다. 함부로 속내를 흘리면 노풍(露風)이나 주풍(走風)이라고 적어 경계한다.
그런 바람을 보면서 배의 키를 다루는 일은 성어로 견풍사타(見風使舵)다. 조짐 등을 미리 읽고 따져 유리한 방향을 잡는 행위다. 자만 등에 빠져 외려 곤경을 부를 때는 ‘나무가 크면 바람 맞는다’는 뜻의 수대초풍(樹大招風)이다.
바람이 전하는 메시지에 민감한 중국의 공산당은 늘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미 한껏 키운 ‘나무’에는 요즘 센 바람이 몰려들고 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미국이 불어대는 견제의 폭풍이다. 둘 사이 긴장감이 퍽 높다.
[130] “회의 많이 하면 공산당”
▲마스크 안 쓴 시진핑 시진핑(맨 앞줄) 중국 국가주석이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국민당은 세금이 많고, 공산당은 회의가 많다(國民黨稅多, 共産黨會多)”는 말이 한때 중국에서 유행했다. 그래서 “회의하자”고 하면 “너, 공산당이지?” 하는 우스개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에서 회의는 이제 어엿한 ‘문화 현상’이다.
사람들 모여 사는 어느 사회를 불문하고 모여서 의견을 나누는 회의라는 형식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중국의 회의 풍경은 퍽 독특하다. 큰 모임인 정식 대회(大會)를 앞두고 열리는 소회(小會)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대개는 이 소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모두 내린다. 대회는 그저 거수기(擧手機)의 집합에 불과하다. 앞서 열린 소회에서 결의한 내용은 대회에 참석한 군중의 맥없는 추인(追認)만을 거친다.
소회는 따라서 ‘사전 회의’ ‘회전회(會前會)’ ‘지도자 구수(鳩首)회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여기서 미리 결정한 내용을 충분한 논의 없이 추인만 할 뿐이어서 공산당 각급의 정식 회의는 늘 형식주의를 비켜 갈 수 없다.
지도부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셈이어서 공산당 회의는 일종의 ‘세뇌(洗腦)’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공산당의 무수한 회의는 ‘학습(學習)’ ‘교육(敎育)’ ‘배양(培養)’ ‘사상강화(思想强化)’ 등의 다양한 명칭을 걸치지만 실제 내용은 ‘세뇌’다.
이로써 공산당은 고도의 집체주의(集體主義)를 이루지만 부작용이 심하다. 형식적 문서와 회의에만 의존해 실질적 업무 추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문서와 회의가 산과 바다를 이루다’라는 뜻의 문산회해(文山會海) 현상이다. 심각한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다.
국가 차원의 최고 회의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사진)가 폐막했다. 토의를 통한 절충보다는 지침 하달과 이행이 목적인 중국 회의의 전통이 매년 3월 열리는 이 모임에서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는 그래서 늘 화제다.
[131] 이혼 선진국
/일러스트=김하경
둘이서 하나를 이룬다는 표현은 사람의 혼사(婚事)에 자주 등장한다. 암수가 한 몸을 만들어 함께 날아오른다는 새 비익조(比翼鳥), 가지가 서로 이어져 일체(一體)를 형성한다는 나무 연리지(連理枝)다. 새로 결혼한 남녀의 앞날을 축복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떨어진 잎은 다시 나뭇가지에 오르기 어렵고, 깨진 거울은 거듭 붙일 수 없다(落花難上枝, 破鏡不重圓)”는 속언도 나온다. 여기서의 파경(破鏡)이라는 말은 지금 이혼(離婚)의 동의어로 쓰이지만 본래 뜻은 전혀 다르다.
전란을 피해 떨어져야 했던 부부가 훗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쪼개서 나눠 가졌던 거울의 중합(重合)이다. 따라서 원래의 맥락은 ‘헤어졌던 부부의 재결합’이다. 그럼에도 한번 끊겼던 부부의 관계는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중국인들이 이미 깨진 혼인을 일컫는 말은 여럿이다. 관계의 끊임을 단정적으로 표현한다. 우선 ‘엎질러진 물’이다. 복수난수(覆水難收)라고 적는다. 그릇이 뒤집혀 땅에 이미 뿌려진 물은 다시 거두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지러진 꽃과 달에 그를 견주기도 한다. 화잔월결(花殘月缺)이다. 이미 상할 대로 상한 부부의 감정 관계를 지칭할 때 자주 쓴다. 멀쩡한 나무가 사람의 손길을 거쳐 이미 물길 건너는 배로 변한 상황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목이성주(木已成舟)다. 돌이킬 수 없는 파혼(破婚) 상황을 지칭할 때 곧잘 쓴다.
중국이 세계 최고 이혼율을 기록하는 모양이다. 지난해 결혼은 813만 쌍이었으나 이혼은 433만 쌍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10년에 갑절로 늘어나는 추세를 기록 중이란다. ‘비익조’와 ‘연리지’의 전설을 품은 땅 중국에서 혼인은 이제 쉬이 ‘떨어진 꽃잎’에 ‘엎질러진 물’ 신세로 전락한다. 민생의 고달픔 때문일까, 아니면 도덕 수준의 하락 때문일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 지켜보는 대목이다.
[132] 지금 중국에 필요한 건 ‘시력’
눈길을 한자어로 적으면 시선(視線)이다. 그 눈길이 어떤 시점(視點)을 이루는가는 때로 중요하다. 눈길이 이어져 시점으로 맺힐 때 높고 낮음의 차별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자(漢字) 세계로 보는 중국은 그런 눈길의 변환에 능숙하다.
▲일러스트=박상훈
우선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면 정시(正視)다. 우리 쓰임은 없지만 중국은 평시(平視)라는 말도 잘 쓴다. 당당하게 상대와 마주 보는 동작이다. 비굴하거나 오만하지 않은 눈길이다. 그에 비해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눈길은 앙시(仰視)다.
보는 이의 굴종(屈從)이 먼저 느껴진다. 그 반대는 부시(俯視)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이다. 몸을 젖히거나 구부리는 앙부(仰俯)의 개념이 시선에 붙었다. 거만하게 대상을 얕보면 경시(輕視)와 오시(傲視)다. 심해지면 멸시(蔑視), 천시(賤視)에 이른다.
얼마 전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세계를 당당한 눈길로 바라보자(平視世界)”는 발언을 했다. 이후 미국과의 갈등 국면에 이 말이 거듭 등장하면서 ‘이제는 미국과 대결하는 중국’이라는 맥락으로 정치적 상승 곡선을 타고 말았다.
‘잘나가는 중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담은 발언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중국인의 눈길은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강한 사람에게는 ‘앙시’, 약한 대상에게는 ‘부시’의 눈길을 보낼 수 있다. 중화(中華)의 자부심으로 주변을 ‘멸시’와 ‘천시’의 시선으로 살폈던 과거의 착오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있다.
눈길보다는 시력(視力)이 중국에 더 필요하다. 높낮이는 임의로 바꿀 수 있어도 상(像)을 옳게 파악하려면 근시(近視), 원시(遠視), 난시(亂視)를 먼저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을 따지는 전통적이며 어두운 세계관으로부터 중국이 이제는 더 자유로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133] 짝퉁과 ‘내로남불’
/일러스트=양진경
부패와 비리 척결로 ‘철혈(鐵血) 재상’의 이미지를 지녔던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2001년 상하이(上海) 회계(會計)대학을 방문해 이 학교 교훈(校訓)을 적었다. “가짜 회계장부 적지 말자(不做假帳).”
세계적인 가짜 제품, ‘짝퉁’으로 유명한 중국에 큰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에서는 가짜가 여전히 넘친다. 요즘은 알몸으로 절인 배추를 포클레인에 담는 장면, 물감을 입힌 귤 등의 소식이 나오면서 남이 먹는 식품에 가해지는 중국인의 야박하고 무자비함이 새삼 또 화제다.
역대 중국 문인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짝퉁 얘기도 숱하다. 뼈에 흙과 종이를 발라 만든 가짜 구운 오리, 질긴 종이로 만든 가짜 가죽 신발, 진흙 겉면에 양(羊) 기름 발라 만든 가짜 초[燭], 홰나무나 버드나무 새잎으로 만든 가짜 차(茶), 심지어는 가짜 부부(夫婦)….
이 점에서는 고금(古今)의 중국이 서로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진짜와는 격이 전혀 다른 가짜,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거짓,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속은 어둡기 짝이 없는 위선(僞善)의 맥락이다.
그렇듯 중국은 겉의 모양과 속의 내용이 다를 때가 많다. 따르는 척하지만 실제는 어깃장을 놓는 양봉음위(陽奉陰違)의 사고와 행위가 발달했다. 말은 달콤하지만 배 속에는 칼을 품은 구밀복검(口蜜腹劍)도 같은 맥락이다. 겉은 유가(儒家)의 인술(仁術)로 포장했지만 속은 법가(法家)의 가혹한 통치술로 일관했던 역대 왕조도 마찬가지다.
주룽지에 앞서 그런 중국의 인문 풍토를 크게 개탄한 이가 있다. 청말(淸末)의 사상가 엄복(嚴復·1854~1921)이다. 그는 수천 년 중국 문화의 병폐를 “거짓에서 시작해 부끄러움 없음으로 끝난다(始于作僞, 終于無恥)”고 요약했다. 그러나 중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내로남불’의 거짓과 위선이 이어지는 우리 사회에도 큰 경고다.
[134] 좁고 어두운 전쟁 세계관
중국에서 사람을 가리킬 때 곧잘 쓰는 말 하나가 인마(人馬)다. 본래는 ‘사람과 말’이라는 뜻으로서 전쟁을 수행하는 ‘병력(兵力)’의 지칭이다. 따라서 인물을 대상으로 이 말을 쓸 경우에는 “어느 편이냐?”를 묻는 뜻이 담긴다.
그악한 다툼, 더 나아가 죽느냐 사느냐를 가르는 전쟁에서 적과 나[敵我], 저쪽과 이쪽[彼我]의 구분은 피할 수 없다. 중국어 ‘인마’에는 그런 전쟁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병법(兵法)의 대가인 손자(孫子)도 일찌감치 그 점을 다뤘다. 상대와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기에 들지 않는다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논리다. 전쟁 전문가답게 ‘피아’의 식별이 뚜렷하다.
더불어 생각해볼 수 있는 중국 단어는 ‘이기(異己)’다. 나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나 집단이다. 싸움 끝에 피를 부를 수도 있는 상대다. 그래서 뜻과 이해(利害)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다른 이를 죽이거나 없애는 뜻의 당동벌이(黨同伐異)의 살벌한 문화 풍토가 중국에는 면면히 이어졌다.
다툼과 전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흐름은 당나라 문인 유종원(柳宗元)이 ‘적계(敵戒)’라는 문장으로 잘 정리했다. 그 메시지는 ‘적이 있어야 긴장감을 키우고, 그로써 내 안전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다. 천적(天敵)이 진화(進化)에 더 도움을 준다는 자연과학 이론과 같은 맥락이다.
‘피아’ 구별의 강박적 시선을 아직 거두지 못하는 중국에 요즘 미국은 딱 알맞은 ‘적’이다. 그 때문인지 미국과의 대립과 갈등 수위가 높아진다. 이를 통해 중국은 내부 결속의 효과를 거뒀는지 모르지만 큰 실수를 범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도 “당신들 진짜 적은 바로 나, 중국이야”라고 공언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중국의 고립감이 깊어진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낫다면 나은 면이 있다. ‘적’을 ‘적’이라 제대로 분별치 못하는 우리 사정을 감안하면….
[135] 당나라 벤치마킹
방위를 가리키는 동서남북(東西南北)에는 문화적 함의가 제법 크게 담긴다. 중국의 전통적 예법(禮法) 문맥으로는 특히 그렇다.
우선 ‘남북’은 종적(縱的) 질서를 지칭할 때 자주 등장한다. 제왕이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앉는 좌북면남(坐北面南) 설정이다.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는 이는 높은 사람, 그 반대는 신분이 낮은 존재라는 그림이다. 지위(地位)의 높고 낮음을 가르는 존비(尊卑) 개념이 뚜렷하다.
그에 비해 횡적(橫的) 배열의 동서(東西)는 ‘주인과 손님’ 구도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이 집채의 동쪽에 서도록 규정한 이전 예법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따라서 ‘동서’는 주객(主客) 배열이다.
‘남북’의 함의는 봉건적 왕조에나 겨우 어울릴 법한 관념이라 잘 쓰기 어렵다. 요즘 세상에 누가 제왕이고, 누가 신하냐를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현대 중국인들은 ‘동서’ 개념을 잘 활용한다.
정치적으로 이 물꼬를 먼저 튼 이는 마오쩌둥(毛澤東)이다. 그는 1957년에 중국을 동풍(東風), 서구를 서풍(西風)으로 지칭했다. 이어 “이제는 동풍이 서풍을 눌렀다”고 호언장담했다.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서방을 이겼다는 자랑이었다.
요즘은 동쪽이 상승하고 서방은 가라앉는다는 주장을 편다. 이른바 동승서강(東升西降)이다.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이 발언한 뒤로 관영 매체들이 크게 다루고 있다. 그냥 부상(浮上)을 넘어 세계 제패(制霸)까지 말하는 수준이다.
유명 소설 ‘서유기(西遊記)’는 서쪽으로 가서 진리의 말씀인 불경(佛經)을 받들어 온다는 ‘서천취경(西天取經)’의 스토리다. 국력이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 때 실화가 배경이다. 남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겸손과 포용의 자세다. 고루한 옛 ‘동서남북’의 시선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려는 요즘 중국이 곰곰이 되새기면 좋을 대목이다.
[136] 곧 닥칠 風雲
▲일러스트=김성규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큰 바람의 노래’다. 원제는 ‘대풍가(大風歌)’. 작자는 한(漢)나라를 창업한 고조(高祖) 유방(劉邦)이다. 왕조를 창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태어난 고향을 방문했을 때 술에 취해 기분 좋게 불렀다는 노래의 가사가 전해진다.
첫 구절이 이렇다. “큰 바람 불어오는구나, 구름이 날아오른다(大風起兮雲飛揚).” 천하대란(天下大亂)이 벌어진 뒤 그를 평정한 자부심을 슬쩍 암시한 단락이다. 세상이 온통 혼란으로 얼룩진 상황을 여기서는 바람과 구름, ‘풍운(風雲)’으로 묘사했다.
이 맥락 때문인지 단어는 난세(亂世)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영웅의 서사(敍事)에 곧잘 등장한다. ‘풍운을 호령하다’의 질타풍운(叱咤風雲)이 대표적이다. 우리도 즐겨 쓰는 ‘풍운아(風雲兒)’ 역시 같은 흐름이다.
▲/유광종 제공 한나라 고조 유방이 태어난 패현이라는 곳에 조성한 유방의 석상.
그러나 ‘풍운’이라는 단어에 담긴 가장 대표적 뜻은 ‘변화(變化)’다. 짐작하기도 어렵고, 감내하기도 쉽지 않은 국면(局面)의 아주 큰 전환(轉換)이다. 그로부터 이 말은 한나라 고조 유방이 읊조린 대로 결국 ‘천하대란’의 의미까지 획득한다.
그래서 ‘풍운’은 ‘불측(不測)’의 동의어다.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울러 헛것처럼 자꾸 변한다고 해서 ‘변환(變幻)’, 큰물에 휩쓸리듯 안정을 찾을 수 없다 해서 ‘동탕(動蕩)’이란 말과도 자주 동렬(同列)에 선다.
풍운의 뒤를 따르는 것은 거센 물결이다. 성난 물결 노도(怒濤), 높이 솟는 격랑(激浪), 무섭게 불어나는 흉용(洶湧), 바다가 넘치는 해일(海溢) 등이다. 미국과 중국이 본격 충돌 국면에 들면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는 이런 물결들이 일고 있다. 그 성난 파도는 한국의 해역(海域)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활(死活)의 이해가 걸린 대목이라 정신 제대로 차리고 대응해야 할 부분이다.
[137] 민간기업의 ‘거세’ 공포
남성의 생식기를 없애는 거세(去勢)의 역사와 전통으로 따질 때 중국은 단연 세계 으뜸이다. 환관(宦官)이나 내시(內侍)로 불린 숱한 사내들 때문이다. 이들은 군주(君主)의 사생활을 바로 옆에서 보필했던 사람들이다.
중국에서는 태감(太監)이라는 직함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환관’이 더 일찍 등장한 명칭이다. 임금의 곁에 머무는 일반 남성의 관직이었으나 청(淸)대에 와서 ‘태감’과 뜻이 같아졌다고 한다. 우리는 보통 ‘내시’를 더 많이 쓴다.
▲일러스트=백형선
궁궐 내부의 작은 길[巷]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항백(巷伯)이라는 명칭도 보인다. 궁중의 내밀한 일을 다뤄 중관(中官), 내관(內官)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내부의 일을 전담해 처리하는 직무여서 중신(中臣), 내신(內臣)으로도 부른다.
이는 관직에 등장하는 호칭들이다. 그와 상관없이 중국인들이 많이 쓰는 일반적 ‘거세’의 의미는 엄(閹)이라는 글자가 대표한다. 엄인(閹人)이 우선 그렇다. 거세한 남성에게 궁궐 출입문을 관장토록 했던 데서 비롯했다.
엄할(閹割)은 남성의 성을 제거하는 행위다. 사백(私白)도 같은 뜻이다. 가장 은밀한 부분[私]을 없앴다는[白] 의미다. 형벌로 그를 행하는 경우는 궁형(宮刑)이다. 몸을 깨끗하게 한다고 해서 정신(淨身)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요즘 해외 중국어 매체들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 대상은 중국 최고 기업인이었다가 크게 궁지에 몰리고 있는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馬雲)이다. 공산당 최고 지도부로부터 ‘괘씸죄’에 걸려 엄청난 벌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을 그 단어로 일컫는다.
통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는 공산당의 이른바 ‘집권(集權)’이 가속화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로써 기업가는 자칫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을 운명이다. 그 ‘거세’의 공포가 도지면서 혁신의 첨병이었던 민간 기업의 위축은 불가피해진 분위기다.
[138] 중국에만 있는 애인 호칭
작은 양배추, 아기 코끼리, 오이, 막대 사탕, 여린 호박…. 이 모두는 세계 여러 나라 남성이 아내나 애인을 호칭할 때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정서를 작고 귀여우며, 어린 동식물이나 먹을 것에 견줘 부른 단어들이다.
옛 중국에서 자신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은 비교적 소박하고 엄숙했던 모양이다. 비싼 가래나무에 비유해 재동(梓童)이라고 불렀던 기록이 있다. 보통은 제왕(帝王)이 자신의 아내를 일컬을 때 썼다고 한다. 졸형(拙荊)이라는 단어도 있다. 남에게 자신의 여인을 낮춰 부르는 일종의 겸칭(謙稱)이었다는 설명이다. 가난한 여성이 비녀로 사용했던 가시나무[荊]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달리 산형(山荊), 형실(荊室)이라고도 했다. 또는 아예 형처(荊妻)라고도 적는다.
내인(內人), 처자(妻子) 등의 호칭도 있지만 요즘은 노파(老婆)가 일반적이다. 아내를 포함해 정식 부부관계가 아닌 연인까지 지칭하는 중국어가 흥미를 끈다. 앞서 열거한 세계 각국 문화권의 호칭과 큰 차이는 없다. 달콤하다는 뜻의 첨(甛)이 자주 등장한다.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를 동원해 심간(心肝)이라고도 한다. 조금 징그럽기는 해도 ‘매우 소중하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보배(寶貝)’라는 명칭에서는 문득 눈길이 멈춘다. 보물과 돈을 지칭하는 두 글자가 들어 있어서다.
중국인의 현실적 가치 지향은 다른 문화권에 비해서 매우 강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퍽 극성스럽다고 여겨지는 ‘황금’을 향한 열정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보물과 돈, ‘보배’로 부르는 것일까.
요즘 중국 지방의 한 관원이 단체 채팅방에서 몰래 사귀고 있던 부하 여성을 ‘보배’로 불렀다가 바로 조사를 당해 망신이다. 굵직한 뉴스에 자주 밀리지만, ‘보물과 돈’을 향한 중국 관료의 부패와 비리는 늘 끊이지 않는다.
[139] 서글픈 중국 지식인의 초상
▲서글픈 중국 지식인의 초상 / 일러스트=김하경
차가운 날이 오면 소리를 줄이는 동물이 있다. 한자 세계에서는 쓰르라미가 우선 등장한다. 몸집이 여느 매미보다 조금 작은 쓰르라미는 보통 한선(寒蟬)으로 적는다. 이 단어는 결국 ‘가을 매미’의 뜻도 얻었다.
날씨 탓에 매미가 소리 멈추는 현상을 성어로는 금약한선(噤若寒蟬)이라고 표현한다. 날개로 소리 내는 매미가 입을 닫아[噤] 울음 끊는다는 설정은 사리에 어긋나지만, 소리 자체가 아예 뚝 끊겨 없어지는 현상을 그렇게 적었다.
아주 시끄럽게 우는 새는 까마귀나 까치다. 자신에게 위협적인 존재나 상황이 닥칠 때 이들도 소리를 문득 멈춘다. 매우 시끄러운 새들이라 울음이 한꺼번에 없어지면 퍽 인상적이다. 그 성어는 아작무성(鴉鵲無聲)이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곧잘 흉내 낸다. 완벽하지는 않으나 퍽 비슷하게 발음한다. 그 모습을 성어로는 앵무학설(鸚鵡學舌)이라고 한다. 그런 앵무새에게 죄가 있을 리 없지만, 주견(主見) 없이 남에게 그저 복종만 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이 말을 쓴다.
그보다 더한 수준을 일컬을 때는 아예 응성충(應聲蟲)이라는 가상의 동물이 등장한다. 목구멍에 사는 벌레로, 사람 소리를 그대로 따라 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남의 지시와 명령에 온몸을 던져 따르는 아첨과 비굴의 인물을 가리킨다.
전통의 중국에서 지식인은 황제의 권력을 지탱하는 소모품, 어용(御用)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매미와 까마귀, 까치, 더 나아가 앵무새와 목구멍 속 벌레는 중국 전통 지식인들의 운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사례가 많다.
심지어는 더 극성으로 앞에 나서야 해서 급선봉(急先鋒), 궂은일을 마다할 수 없어 말 앞으로 내뛰는 마전졸(馬前卒)이라 불리기도 한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그나마 소리를 꽤 높였던 중국 지식사회가 요즘엔 부쩍 활기를 잃는 듯하다. 중국 지식사회에 겨울이 또 닥치는 것일까.
[140] 中共과 越共
공산주의(共産主義)로 체제를 끌어가는 나라는 이제 몇 안 남았다. 그러나 세계 최대 인구 14억 명을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힘은 여전히 대단하다. 그 중국 공산당을 한자로 줄여서 적으면 중공(中共)이다.
중국의 이웃으로 함께 공산주의 체제를 구성한 나라 중 하나는 베트남이다. 한자로는 월남(越南)으로 적는다. 얼마 전까지 우리도 흔히 사용했던 나라 이름이다. 그 베트남의 공산당을 한자로 약칭하면 월공(越共)이다.
이 ‘월공’은 사실 두 대상을 가리켰다. ‘베트남 공산당’ 외에 남북 분단 시절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게릴라전을 벌였던 ‘베트콩’도 같은 한자로 적는다. ‘베트남 민족주의 해방 전선(NLF)’ 소속 ‘베트남 공산주의자’의 지칭이다.
베트콩은 이미 사라졌다. 따라서 이제는 ‘월공’이라고 적으면 곧 베트남 공산당을 의미한다. ‘중공’과 ‘월공’은 모두 공산주의를 신봉해서 사이가 좋을 듯하지만, 역사적 갈등과 영해(領海) 분쟁 등으로 아주 관계가 나쁘다.
‘중공’이 먼저 1978년 개혁·개방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에 뒤질세라 ‘월공’ 또한 1986년 ‘도이모이’라고 하는 쇄신책을 내걸고 개혁·개방에 나선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둘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러나 ‘중공’은 덩치가 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제 영역 외의 정치 분야 개혁에서는 진도가 지지부진이다. 오히려 요즘에는 1인 권력 체제를 강화하며 정치 개혁과는 점차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그에 비해 권력 분점 등을 잘 유지하며 ‘월공’은 민주화 등 정치 개혁 청사진까지 그리고 있다.
이름값 때문인지 ‘중공’은 중심(中心)으로 권력을 몰아가는 데 강하게 집착한다. ‘월공’은 그와 달리 공산주의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추세다. 마침 그 한자 이름을 뜻으로만 읽으면 ‘공산주의[共]를 뛰어넘다[越]’이니 참 묘하다.
2021.05 28
[141] 휩쓸리기 쉬운 중국인 심성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보는 무대 예술이 있다. 이른바 국극(國劇)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전통 오페라다. 베이징(北京) 일대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까닭에 보통 경극(京劇), 경희(京戲)라고도 한다.
요란한 기악(器樂)과 함께 독특한 동작이 곁들여진다. 의상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화장 또한 아주 화려하다. 그 분장은 현란하다 싶을 정도로 색조가 다양하다. 그렇지만 다양함 속에 뚜렷한 흐름도 있다.
주조(主調)는 홍(紅), 흑(黑), 백(白), 황(黃)이다. 붉은색은 뜨거운 피를 지닌 사람이다. 덕목으로 말하면 충의(忠義)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충성과 의리로 유명한 관우(關羽)가 대표적인 얼굴이다.
까만 얼굴은 진실을 가리킨다. 엄정한 판결로 이름을 떨친 판관 포청천(包靑天)이 대표 인물이다. 하얀색은 그 반대다. 간사하며 나쁜 꾀를 내는 사람이다. ‘삼국연의’의 조조(曹操)가 그 대표다. 누런 얼굴은 능력이 뛰어나지만 어두운 욕망을 품은 사람이다.
중국 전통 연극 무대 위 얼굴 분장의 주조인 홍, 흑, 백, 황 등의 이미지는 단순하다. 충신과 간신을 가르는 충간(忠奸)이 우선이다. 그 뒤에 다시 착함과 악함을 따지는 선악(善惡)이 붙는다. 중국인 심성(心性)의 토대다.
그래서 중국 대중은 ‘충간’과 ‘선악’에 쏠려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쉽다. 대표적인 사례가 둘 있다. 120여년 전 왕조에 충성하며 외세를 무조건 배격한 의화단(義和團), 1960년대 문화대혁명 때 중국을 극좌(極左)의 광기(狂氣)로 몰아간 홍위병(紅衛兵)이다.
체제에 광적인 충성을 바쳤던 점이 이들의 특징이다. 요즘 문화대혁명에 관한 긍정적 평가가 슬슬 나온다. 어쩌면 ‘충간’과 ‘선악’의 무대가 또 펼쳐질지 모른다. 과격한 민족주의로 무장한 ‘의화단’과 ‘홍위병’이 그 무대에 다시 오르고 있는지 큰 관심거리다.
[142] ‘지배와 복종’의 광장 문화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베이징(北京)의 천안문(天安門) 광장에는 독특한 율조(律調)가 흐른다. 견고한 통치(統治), 숨죽인 듯한 복종(服從)의 선율이다. 옛 황제(皇帝)의 터전이었던 궁성(宮城)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천안문 누각 정면에 건국의 주역인 마오쩌둥(毛澤東)의 거대 초상화가 남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어 국기 게양대, 건국 과정에서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는 인민영웅기념탑, 마오쩌둥 시신을 전시한 광장 남단의 기념관이 다 한 줄에 들어서 있다.
이는 다시 옛 황제가 머물고 거닐었던 북쪽의 황도(皇道)와 일렬로 맞물린다. 왕조시대의 엄격한 통치 축선과 현대 중국의 ‘정치적 광장’이 어김없이 이어진 모습이다. 양옆에는 인민대회당, 국가박물관 등 상징적인 건물이 늘어섰다.
중국의 큰 도시 주요 광장들 또한 대부분 이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우선 복판에 공산당의 통치를 상징하는 마오쩌둥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어 중국을 이끄는 주역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광장 구석은 ‘중국 아줌마[大媽]’들의 차지다. 소란한 음악을 틀어 놓고 전통적인 농무(農舞)를 변형한 춤을 춘다. 마오쩌둥의 거대 동상으로는 공산당의 견고한 중국 지배, ‘아줌마’들의 춤으로는 그에 복종하는 순민(順民)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견고한 통치를 통해 공산당은 안정과 번영을 추구한다. ‘순민’이 숙명인 중국인들은 그에 군말 없이 잘 따른다. 너른 곳에 나와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로마의 포럼(forum) 등 맥락의 ‘진짜 광장’은 중국에 없다.
광장에 자유의 토론이 반짝 벌어졌던 1989년 6월 4일의 ‘천안문 사태’는 유혈로 맺어졌다. 요즘 들어 중국의 모든 광장은 더 무거운 통치와 복종의 선율에 휩싸인다. 그 ‘광장’이 싫은 중국인은 ‘밀실(密室)’에 몸을 더 묻는다. 중국의 행일까, 불행일까.
[143] 중국에 날아오는 화살들
활쏘기는 엄연한 고대 예법(禮法)의 하나였다. 이른바 사례(射禮)다. 유서가 오랜 만큼 관련 글자와 어휘가 풍부하다. 제후(諸侯)라는 단어의 후(侯) 역시 ‘헝겊으로 만든 과녁’이 본뜻이다. ‘과녁’이라는 말도 화살을 날려 가죽을 뚫는다는 관혁(貫革)이 본딧말이다.
그런 과녁의 가운데를 일컫는 한자가 적(的)이나 곡(鵠)이다. 앞 글자는 목적(目的), 표적(標的) 등의 단어로 친숙하다. 뒤의 ‘곡’은 사물이나 현상의 핵심을 찌른다는 맥락에서 사용하는 정곡(正鵠)이라는 단어를 낳았다.
‘목적’이라는 단어에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따른다. 당(唐)을 세운 고조(高祖) 이연(李淵) 이야기다. 나중에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을 낳은 두씨(竇氏)의 부친이 병풍 속 공작(孔雀) 그림의 눈[目]을 화살로 맞히는 사람에게 딸을 시집 보낸다고 공언했는데, 이연이 그에 성공했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했다.
곡적(鵠的)이라는 단어는 사물의 핵심을 가리킨다. 파적(破的)이라고 적으면 과녁 한복판을 꿰뚫는 일이다. 누군가를 분명히 겨누고 쏘는 화살[有的放矢]도 있고, 과녁도 없이 마구 쏴대는 화살[無的放矢]도 있다.
그나마 화살 쏘는 사람의 입장이다. 가장 불길할 때가 남이 쏘는 화살에 내 몸이 놓이는 경우다. 그것도 여러 화살이 겨누는 과녁[衆矢之的]으로 처지가 전락하면 더 그렇다. 중국인이 잘 쓰는 속언대로 “지나가는 쥐를 보고 모든 사람이 ‘죽여라’ 하고 고함치는” 상황이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급히 기울어진다.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이 거세지면서 유럽연합(EU)과 주요국이 동참하고 있다. 지나친 대외 확장이 역공을 부른 국면이다. 적벽(赤壁)에서 짚더미 채운 배 띄워 상대의 화살을 모아 왔다는 제갈량(諸葛亮)의 ‘초선차전(草船借箭)’식 꾀라도 필요할까. 하지만 그런 허구를 읊조리기에는 중국 상황이 꽤 만만찮다.
[144] ‘문명 충돌’의 서막
중국에서 한(漢)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꽤나 무겁다.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서 중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중국의 문명적 토대에 해당하는 글자라고 할 수도 있다
▲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문명 충돌'의 서막 / 일러스트=김하경
우선 이 땅에서 만들어진 글자는 한자(漢字), 문장은 한문(漢文), 말은 한어(漢語)다. 14억 중국 인구 가운데 92% 이상은 제 정체성을 한족(漢族)이라고 적는다. 일반적 중국인을 지칭할 때 한인(漢人)이라는 단어도 곧잘 쓴다. 전통적 중국 복장은 한복(漢服)이다.
이는 중국의 유장한 왕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한조(漢朝)와 관련이 깊다. 한수(漢水)의 상류인 산시(陝西) 한중(漢中)에서 발흥한 왕조다. 창업주는 유방(劉邦)이고, 기원전 202년에서 기원후 220년까지 서한(西漢)과 동한(東漢)의 전·후반기로 나뉘어 존재했다.
한강(漢江)으로도 불리는 한수의 물줄기는 동남으로 계속 흘러 중국 최대 하천인 장강(長江)에 진입한다. 발원지에서 장강 합류 지점까지는 약 1570㎞로 유역 면적은 15.9만㎢다. 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까닭에 장강, 회하(淮河), 황하(黃河)와 함께 병렬해 ‘강회하한(江淮河漢)’으로 적는 성어에도 등장한다.
장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도시가 우한(武漢)이다. 본래의 우창(武昌), 한커우(漢口), 한양(漢陽) 세 지역을 합쳐 부른 이름이다. 인구 1230만명인 이 거대 도시의 약칭이 공교롭게도 바로 ‘한(漢)’이다. 그 명칭으로만 보면 중국의 문명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도시다.
마침 2019년 이곳에서 확산한 코로나19의 발원 여부, 인위적 조작이 가해졌는지 여부 등이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 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을 부를 수 있는 ‘사건’이다. 누군가 말한 ‘문명 충돌’의 서막일까. 비상한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145] 배반과 망명
‘전력투구(全力投球)’라는 말이 언제 성어 반열에 올랐는지는 분명치 않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인기를 얻으면서 마운드에서 공 던지는 피처의 중요성과 함께 만들어진 말인 듯싶다. ‘모든 힘을 다하다’ 정도의 뜻이다.
투(投)라는 글자는 공 등을 ‘던지다’라는 새김에만 그치지 않는다. 내가 지닌 모든 요소를 한곳에 몰아넣는 경우도 설명한다. 때론 ‘스스로 목숨을 끊다’의 뜻과 바로 이어지는 투신(投身)이 대표적이다.
본래 어느 한곳에 제 역량을 집중하는 일이다. 좋은 기회가 닥쳤다고 생각해 제 금전 등을 걸 때는 투기(投機)다. 훌륭한 스승 만나 가르침을 청하면 투사(投師)다. 일찍이 불문(佛門)에서 썼던 말이다.
전쟁이 벌어지고 진영(陣營)이 나뉘어 제가 머무는 곳을 뒤바꿀 때도 이 글자는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 단어가 투항(投降)이다. 적에게 항복하는 일이다. 요즘 중국 관련 뉴스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는 투성(投誠)이다.
우리 용례는 없지만 중국에서는 흔하다. 제가 지닌 신념[誠] 등을 바꾸는 행위다. ‘투항’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취하는 굴종이지만 ‘투성’은 먼저 나서서 적진으로 가 몸을 의탁하는 일이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직접 달려간다고 해서 투분(投奔)이라고 한다.
일종의 망명(亡命)이다. 원래 살던 곳의 호적[命] 등을 없앤다[亡]고 해서 나온 단어다. 도망(逃亡)이라는 단어 쓰임도 흔하다. 중국에서는 ‘배반’과 ‘도망’을 합쳐 반도(叛逃)라고도 부른다. 제 뜻을 굽혔다고 해서 적는 변절(變節)이라는 단어도 같다.
중국이 부인했지만, 역사상 최고위층 간부가 미국으로 ‘투성’했다는 관련 소식이 줄곧 이어진다. 덩달아 ‘반도’ ‘망명’ ‘변절’이란 낱말도 함께 오른다. 진위는 분명치 않으나, 미·중 대립과 갈등이 더 깊어지는 분위기를 설명하는 단어 흐름이다
2021.07.02
[146] ‘나 홀로’ 중국
우리의 경상도, 경주라는 지명에 들어가는 한자가 ‘경(慶)’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글자에는 ‘사슴’을 가리키는 록(鹿)이 들어 있다. 사슴 가죽을 선물로 주고받는 의미가 담긴 글자다.
요즘 중국은 당경(黨慶)이 커다란 화제다. 올해 7월 1일이 공산당 창립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대대적 기념행사와 함께 공산당 역사를 새로 포장해 선전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일당전제(一黨專制)의 틀은 이로써 훨씬 강고해질 전망이다.
경사는 함께 누려야 그 기쁨이 커진다. 온 세상 사람들이 같이 기뻐하는 일을 흔히 ‘보천동경(普天同慶)’이라는 성어로 적는다. 여기서 보천(普天)은 보천(溥天), 보세(普世)와 같다. ‘하늘 아래 모든 곳’의 뜻이다. 중국 전통의 천하(天下) 관념이 배어있는 말들이다.
그런 포용적 세계관이 중국에는 더 이상 없다.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세계사 흐름에도 중국은 이제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중국의 집권 공산당 100주년을 진정으로 기뻐해줄 나라도 거의 없다. 그렇게 세계와 중국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는 중이다.
[147] 위험한 물놀이
맹자(孟子)’에 나오는 명구는 퍽 많다. 그 중에서 물놀이를 말한 대목이 꽤 유명하다. ‘유련(流連)’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본래는 물의 흐름을 두고 벌이는 행위 둘을 지적하는 말이다.
앞의 글자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타고 내려가며 즐기는 일이다. 뒤는 그 반대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경치를 감상하는 행위다. 둘을 합치면 놀이에 푹 빠져 돌아갈 때를 잊어 일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사전에선 이 의미를 제대로 다루지 않지만, ‘맹자’라는 유교 경전(經典)에 등장함으로써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단어다. 우리가 가끔 쓰는 유련(留連)이라는 말도 이로부터 파생했을 수 있다. 어느 한 곳에 머물며 떠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제가 태어난 하천을 향해 집요하게 물길을 거슬러 회귀하는 생선 연어(鰱魚)의 한자 이름도 위 개념의 하나를 활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자꾸 이끌려 애착을 끊지 못한다는 뜻의 연연(戀戀)이나 권련(眷戀)이란 단어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40여 년은 자연스러운 세계사의 흐름에 올라탔다는 점에서 ‘류(流)’의 과정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관료 부패, 심각한 빈부격차 등의 유폐(流弊)도 낳았다. 이제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련(連)’의 여정에 시동을 걸었다.
중국은 이달 초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공산주의 이념성과 보수적 민족주의 색채를 더욱 강화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공산당 통제력을 높이고 민간의 활력을 옥좼던 마오쩌둥(毛澤東) 때로의 복귀가 점쳐진다.
지구촌 흐름과는 뚜렷이 다른 ‘련’의 움직임들이다.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내년에 노린다는 ‘연임(連任)’ 앞 글자도 혹시 ‘역(逆)방향 물놀이’를 암시하는 것일까. 아래위로 오르내리다가 설 자리 잊으면 위험해진다는 맹자의 다음 지적을 중국은 어떻게 여기고 있을지 궁금하다.
[148] 디디추싱 ‘외출 금지’
길 떠나는 아들을 앞에 두고 어머니는 문득 아들의 옷에 바느질을 한다. “헤어질 때 촘촘히 옷을 꿰매는 뜻은, 늦게 돌아올까 걱정스러움이라(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당(唐)나라 때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이다.
실과 바늘이 드러내는 가없는 모정(母情)이 본래 주제지만, 누군가 문밖을 나서 먼 길을 가야 하는 ‘출행(出行)’을 말할 때도 자주 등장하는 명시다. 아주 너른 땅이 펼쳐진 중국이라 집을 나서 멀리 나도는 일이 꽤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형용은 제법 풍부하다. 우리도 사용하는 발섭(跋涉)이라는 단어가 있다. 본래는 산을 넘고[跋], 물을 건너는[涉] 여정을 가리킨다. 성어로는 곧장 발산섭수(跋山涉水)라고 적는다. 천산만수(千山萬水)도 같은 맥락이다.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을 가장 흔하게는 외출(外出), 출외(出外), 출문(出門)이라고 한다. 여행(旅行)의 앞 글자는 ‘깃발’ ‘군대’의 뜻이었다가 병력처럼 이동한다고 해서 새김을 더 얻었다. 여정(旅程), 여로(旅路) 등이 그래서 나왔다.
군대가 벌이는 정벌(征伐)의 앞 글자도 본래는 먼 길을 이동하는 행위다. 긴 거리를 강조할 때는 장정(長征), 원정(遠征)이다. 그 길 자체를 가리킬 때는 정도(征途), 정로(征路)라고 적는다. 정객(征客)은 곧 나그네다.
‘중국판 우버’라는 디디추싱(滴滴出行)이 요즘 곤경이다.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해 멀리 ‘출행’했다가 통제력 상실을 우려한 공산당의 강한 규제에 걸렸다. 알리바바를 비롯한 중국의 혁신적 민간 기업들이 잇따라 이런 상황에 처하고 있다.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나다니는 일이 소요(逍遙)다. 어쩌면 창조와 혁신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민간 기업들이 나설 수 있는 곳은 문밖 조금 앞 정도인 듯하다. ‘장정’은 언급하기 민망하고, ‘소요’는 아예 꿈조차 꿀 수 없는 모양이다.
[149] 고향 동네의 성벽
중국 우한(武漢)에 있는 황학루(黃鶴樓)를 두고서는 적지 않은 문인들이 시를 남겼다. 그중 압권(壓卷)에 해당하는 작품의 주인공은 당나라 최호(崔顥)다. 시 말미에는 멀리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정서가 등장한다.
“해는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인가(日暮鄕關何處是)”라는 대목이다. 중국인이 즐겨 암송하는 구절이다. ‘고향’을 ‘향관(鄕關)’으로 적었다는 점이 퍽 이채롭다. 중국 사전은 이를 그저 ‘고향’으로 풀거나 그 길목에 있는 관문(關門) 정도의 뜻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 ‘관문’은 전쟁을 위해 쌓거나 짓는 ‘성(城)’의 동의어다. 흙이나 벽돌로 겉을 두른 성벽이 있은 다음에야 관문이 생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관’의 일차적 의미는 ‘고향 동네에 쌓은 성’이다.
가향(家鄕), 고리(故里), 노가(老家)와 함께 집 주위에 심던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합쳐 부른 상재(桑梓) 등 중국인이 고향을 지칭하는 단어는 풍부하다. 그러나 군사(軍事)의 필요로 인해 지어진 ‘성’에 고향의 뜻을 겹쳐 표현하는 이 경우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듯하다.
이는 늘 가혹하게 번졌던 싸움 속에서 중국인들이 키운 전쟁 의식과 관련이 있다. 잔혹한 다툼의 와중에서 중국인들은 견고하게 쌓은 고향의 성에 몸을 들여야 평온하며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미국 등 서방세계가 자국을 욕보이려 한다며 “우리의 피와 살로 쌓은 철벽 장성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頭破血流)”이라고 경고했다. ‘향관’에 기대 외부의 공격을 막겠다는 방자(防者)의 논리다.
그러나 미국이 제공한 자유무역 질서에 편승했던 중국은 오히려 다음 패권을 늘 노려왔다. ‘쟁패(爭霸)’라는 그 어두운 전쟁 의식이 사실 요즘 미·중 충돌 국면의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중국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어울리지 않는다.
[150] 호랑이한테 가죽 뺏기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일컫는 성어는 퍽 풍부하다. 말라 죽은 나무에 꽃이 핀다는 고목생화(枯木生花), 허공에 떠 있는 집채의 공중누각(空中樓閣), 거북이 등에 털이 나며 토끼 머리에 뿔이 난다는 귀모토각(龜毛兎角) 등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말이다. 중국인들이 자주 쓰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성어가 있다. 여호모피(與虎謀皮)다. 호랑이에게 “네 가죽 좀 벗어다오”라고 하는 경우다. 사나운 호랑이 가죽을 생으로 벗긴다는 얘기니 역시 사정의 불가능함을 알리는 말이다.
본래 이 성어의 주인공은 호랑이가 아니라 여우였다. 정확하게 적자면, 여호모피(與狐謀皮)다. ‘태평어람(太平御覽)’이라는 책에 “여우에게 가죽 벗어 달라 했더니 멀리 산속으로 달아났다”는 내용으로 나와 있다.
어떤 곡절로 ‘여우’가 ‘호랑이’로 둔갑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사정의 불가능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그랬을 법하다. 이 말을 자주 썼던 유명 정치인은 옛 중국 국민당(國民黨)의 최고 권력자 장제스(蔣介石)와 그의 아들 장징궈(蔣經國)다.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옮겨온 뒤 두 사람은 자주 이 성어를 인용했다. 공산당과 평화적인 협상으로 성과를 거두려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공산당의 평화 협상 전술에 속아 끝내 대륙마저 잃은 뒤의 깊은 깨달음이었으리라 보인다.
장제스, 장징궈 두 부자(父子) 권력자의 경고가 옳은지는 더 따져볼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상대하는 공산당의 중국이 그저 ‘여우’가 아닌, ‘거대한 호랑이’로 커버렸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달라지겠지…’라는 단순한 기대감을 여지없이 비웃으면서 말이다.
강대해진 중국을 상대하느라 미국이 진땀을 빼는 요즘이다. 미국이 뒤늦게 여러 조치를 강구하지만 중국은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에 쩔쩔매는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험에서 나온 말은 마구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151] 길거리에서 욕하기
매리(罵詈)는 남을 사납게 욕하는 행위다. 우리는 보통 ‘욕설(辱說)’ 정도로 적지만 한자의 그 표현은 매우 풍부하다. 대개는 비난(非難)과 배척(排斥)의 뜻을 다 품고 있다. 책비(責備)와 질책(叱責), 비방(誹謗), 미사(微辭) 등으로도 적는다.
/일러스트=박상훈
그래도 남을 헐뜯는 욕설의 대표 한자는 매(罵)다. 심하게 남을 비난하면 보통 매도(罵倒)라고 한다. 아주 강도 높은 경우에는 통매(痛罵)다. 비웃거나 조롱하며 욕설을 이어가는 행위도 있다. 소매(笑罵)와 조매(嘲罵)다.
병법(兵法) 수준까지 오른 욕설이 있다. “뽕나무 가리키면서 회화나무 나무라다”라는 뜻의 성어 지상매괴(指桑罵槐)다. 엉뚱한 대상을 끌어들여 실제 욕하려는 대상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한 바퀴 돌려서 목적을 달성하는 우회적 전술의 하나다.
욕으로 빚어진 중국 민간 전통이 하나 있다. 거리에 나가 뚜렷하지 않은 대상을 향해 마구 욕설을 뱉어내는 ‘매가(罵街)’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분노를 풀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다.
성어로 자리 잡기도 했다. ‘사나운 아낙이 거리에 나서 마구 욕을 퍼붓다’라는 뜻의 발부매가(潑婦罵街)다. 꽤 긴 시간 동안 귀에 담기 힘들 정도의 상소리를 내뱉는 것으로 유명해 성어 반열까지 올랐다.
이 전통 때문인가.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에서 드러낸 중국 선수의 행위가 화제다. 경기 중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줄곧 외쳤다. 국기(國旗)를 가슴에 단 국가 대표 선수가 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당국은 침묵하고, 네티즌들은 “가장 아름다운 중국어”라며 옹호한다.
이 정도면 중국은 도덕과 양식(良識)의 ‘집단적 마비 상태’ 아닐지 모르겠다. 제 전통 속 폐습을 돌아보며 고치는 일도 그 나라가 지닌 문화적 역량의 하나다. 중국은 그런 성찰(省察)과 개선(改善)의 힘을 회복해야 옳다.
[152] 살찐 오리 만들기
무릎 사이로 오리의 머리를 끼운다. 대나무 막대 등으로 입을 벌린 뒤 식도를 연다. 다시 그 안으로 곡물을 비롯한 여러 사료를 밀어 넣는다. 좁은 우리에 오리를 가둬 기르며 몇 차례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중국 요리의 별미 중 하나로 꼽는 ‘베이징 덕(北京烤鴨)’을 만들기 위해 벌이는 사전 작업이다. 핵심 재료인 오리의 육미(肉味)를 더 기름지게 하는 일이다. 오리 몸통에 사료 등을 채운다는 뜻에서 ‘전압(塡鴨)’이라 적는다.
많은 오리들은 빽빽하게 우리에 갇혀 이 과정을 거친다. 생후 30일이 지나면 식욕을 잃는다는 오리도 어느덧 넓어진 식도로 음식물을 계속 먹다가 기름진 고기를 남긴다. ‘베이징 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오리들의 눈물겨운 희생이다.
베이징의 오리구이 노포(老鋪) 전취덕(全聚德)이 이름을 크게 떨친 비결이다. 사료를 줄곧 먹게 만들어 기름진 육질을 얻는 그 ‘전압’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강반(强飯)의 과정이다. 달리 말하면 주입(注入)이자 관수(灌輸)다.
무조건 적고 외우게 하는 교육 방식을 우리는 보통 ‘주입식’이라고 부른다. 분위기에 젖어 따라 배우게 하는 훈도(薰陶), 어느덧 몸으로 익히도록 하는 체득(體得), 일깨우며 북돋는 계발(啓發) 등에 비해서는 수준이 낮은 교육법이다.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習近平) 사상’의 연구센터가 곳곳에 세워지고 초·중·고 및 대학 등에서 필수 과목으로 정해진다. 모두 오리의 살을 불려 기름지게 하는 방식이다.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이뤄지는 의식화 교육의 과정으로 비친다.
중국인들이 그저 ‘오리’가 아닌 바에야 그런 방식을 견디고만 있을까. 그러나 전례는 있다. 1960년대 급진적 이념에 취해 중국을 재난의 구렁에 빠지게 한 문화대혁명의 홍위병(紅衛兵)이다. 설마 그 자리로 돌아가지는 않겠지…. 요즘 들어 더 조심스레 바라보는 중국이다.
[153] ‘완장’ 늘어나는 사회
권력에도 크고 작음의 대소(大小) 차이가 있다. 그러나 큰 권력이 반드시 작은 권력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작고 미세한 부분에 도사린 작은 권력이 일을 그르치게끔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크고 대단해 보이는 권력자도 실제로는 사람들의 생활 깊은 곳곳에 자리를 튼 토착(土着)의 끈끈한 권력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다. 중국인들은 이 사례를 “센 용이 땅 뱀을 누르지 못한다(强龍不壓地頭蛇)”는 속언으로 곧잘 표현한다.
“염라대왕(閻羅大王)은 만나주려 해도 그 앞을 지켜 선 잡귀(雜鬼)들 상대하기가 어렵다(閻王好見 小鬼難纏)”는 유명 중국 속언도 있다. 역시 큰 권력 앞에 선 일선 권력자들의 갖은 농간을 지적하는 말이다.
권력의 바닥을 이루는 이 ‘땅 뱀’과 ‘잡귀’들은 보통 팔에 ‘완장(腕章)’을 두르는 경우가 많다. 이 완장의 사회적 의미는 1980년대에 나온 윤흥길의 동명 한국 소설에서 잘 그렸다. 완장은 곧 사회 기층(基層)의 권력을 암시한다.
공산당이 이끄는 현대 중국에서는 이를 보통 홍수장(紅袖章)이라고 적는다. 공산주의 상징인 빨간색을 바탕으로 대개는 노랑과 까망 글자를 굵게 수놓아 만든다. 이를 찬 사람들은 길거리 낯선 사람 감시, 불법행위 단속 등에 앞장서는 공산당 전위대(前衛隊) 집단이다.
중국은 최근 ‘행정처벌법(行政處罰法) 수정안’을 만들어 최하위 지방 정부까지 민간 규제와 감시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완장’을 더 양산해 민간을 바닥부터 세밀하게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취지다. 이는 개혁·개방 이전으로 돌아가는 역행(逆行)의 뚜렷한 흐름이다.
미국과 맺은 관계 등 악화하는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내부 단속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땅 뱀’에게 물리고 ‘잡귀’에게 뜯기는 민간에서는 호곡(號哭) 소리가 멈추지 않을 듯하다. 중국은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154] 부자 때리기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많은 이들은 갑부(甲富) 꿈을 꾼다. 중국인들은 이를 ‘부유함이 세상의 으뜸[富甲天下]’이라는 성어로 표현한다. 수부(首富), 일부(一富), 거부(巨富), 대부(大富) 등이 다 비슷한 맥락의 단어다.
사람이 쌓는 부(富)를 두고 중국에서 오래 전 벌어진 논쟁거리가 하나 있다. 선악(善惡)을 그에 연결한 구절이다. “부를 쌓는 이는 어질지 못하고(爲富不仁), 착한 이는 부를 쌓지 못한다(爲仁不富)”는 내용이다.
논쟁은 유교 경전의 하나인 ‘맹자(孟子)’에서 비롯했다. 책에서 맹자는 이 말을 인용하며 부유함보다는 도덕적 덕목인 어질고 착함[仁]에 방점을 뒀다. 그러나 본래의 구절은 부유함과 선량함이 함께 설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의 갑부들은 많았다. 그러나 종말은 대개 참담했다. 부유함의 정당성을 묻는 권력의 질문에 바로 설 수 없는 경우가 많았던 까닭이다. 부자를 원수처럼 대하는 ‘구부(仇富)’의 심리는 현대 중국에서도 여전하다.
공산당은 1949년 새 중국을 세운 뒤 수많은 지주(地主)들을 정리했다. 당시 “토호를 때려잡고, 농지를 나누자(打土豪, 分田地)”는 정치구호가 유행했다. 그에 앞서 “부자를 털어 가난한 이를 돕다(劫富濟貧)”는 말도 성어로 이미 자리를 틀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중국 공산당 재경(財經)위원회 회의에서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은 ‘공동부유(共同富裕)’를 국정의 새 방향으로 확정하며 ‘3차 분배’를 방법으로 제시했다. 그 마지막 방도가 부자들의 자진 헌납(獻納)이다. 이에 따라 ‘부자 때리기’가 또 벌어질 전망이다.
사람은 부유하면서 착할 수 있다. 절차의 정당성을 이루는 법치(法治)가 전제다. 그 노력이 중국에 더 필요하지 않을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 고치려다 일 그르친다는 성어 교왕과정(矯枉過正)도 그 흐름이다.
[155] 다시 도지는 큰 바다 울렁증
넓이와 깊이에 따라 바다에도 차이가 진다. 땅 주변의 상대적으로 얕고 좁은 바다는 한자로 해(海)라고 적는다. 우리 동해(東海)와 서해(西海) 등의 명칭을 떠올리면 좋다. 그보다 훨씬 깊고 넓은 바다는 양(洋)이다. 오대양(五大洋)이라고 일컫는 바다다. 태평양(太平洋), 대서양(大西洋), 인도양(印度洋), 남빙양(南氷洋), 북빙양(北氷洋)이다. 영어로 따지면 앞의 바다는 sea, 뒤는 ocean이다. 큰 바다는 작은 바다에 없는 독자적 조류(潮流)와 조석(潮汐)의 체계를 지닌다.
큰 바다, 대양(大洋)을 넘어온 사람들과 문물(文物)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감은 동양 사회에서 뚜렷했다. 특히 중국인들의 언어 습속에서 그 점은 퍽 두드러진다. 우선 배에 실려 바다 건너온 물건을 박래품(舶來品)이라고 했다. 서구 열강(列强)의 문물을 보며 중국인들이 품었던 복잡한 감성이 담겼다. 그곳에서 온 사람들은 양인(洋人)이라고 적었다. 물건만 지칭할 때는 양품(洋品)이나 양화(洋貨)다. 그런 서구의 물품을 파는 곳은 양행(洋行)이다.
굴욕감이 거꾸로 멸칭도 낳았다. 양귀자(洋鬼子)는 ‘서양 x’이란 뜻이다. 체모(體毛)가 많은 서방 사람들을 ‘털북숭이’라는 뜻의 양모자(洋毛子)라고 부르기도 했다. 백인의 모습을 양상(洋相)이라고 적은 뒤 ‘꼴불견’의 뜻으로 이해하는 사례도 그렇다.
‘십리양장(十里洋場)’은 서구 문물이 일찍 정착해 그 분위기가 도시 가득 흘러넘쳤던 상하이(上海)의 별칭이다. 이제 그곳 초·중등 학교의 영어 교육을 전면 줄인다는 소식이다. 이어 중국 전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다 느닷없이 강해지는 중국의 외세 배격 흐름이다. 바닷길을 막았던 과거 왕조시대 해금(海禁) 조치를 떠올리게 한다. 1978년 이후의 개방 풍조는 따라서 크게 꺾이고 있다. 중국에 아주 심상찮은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156] 북한 닮아가는 중국
“옷의 허리띠 정도 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一衣帶水)”는 표현은 아주 가까운 나라를 지칭하는 말이다. 중국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두고 건너편의 북한을 지칭할 때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옛 고사(故事)에 착안해 북한과의 관계를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다(脣亡齒寒)”는 말로도 곧잘 표현한다. 더 친근감을 강조하려 “산과 물이 서로 이어졌다(山水相連)”는 정감 어린 말로도 가끔 적는다.
6·25전쟁에서 북한을 도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는 “끓는 물과 시뻘건 불길에 뛰어들었다(赴湯蹈火)”는 자랑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피로써 맺어져 깨질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혈맹(血盟)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일러스트=양진경
그러나 가끔 북한이 국제적인 도발을 벌여 처지가 난감해지면 일반 중국인들은 “술이나 고기 먹으면서 놀아주는 친구(酒肉朋友)”라고 그 관계를 비하한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곤경에 빠질 때는 “은혜와 의리를 저버렸다(忘恩負義)”고 야단친다.
요즘 중국은 공식 석상 등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비바람 속에 같은 배에 올랐다(風雨同舟)”고 표현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가치 체계가 자신을 압박하는 상황이 심해지면서 공산주의 이념으로 북한과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개혁·개방 뒤 중국은 사실 싱가포르의 발전 모델에 관심이 많았다. 싱가포르가 고도의 사회 통제를 펼치면서도 적극적인 대외 개방으로 높은 경제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북한 모델에 가까워지는 기색이 역력하다.
실제 지난 40여 년의 개방 분위기가 크게 꺾이면서 “중국이 북한 닮아간다[中國的朝鮮化]”는 말이 중국인들 사이에 나돈다.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요, 가제는 게 편”이라고 했다. 같은 공산주의 이념적 토대에 견고한 전제(專制)를 앞세우는 점에서 중국과 북한은 결코 깨지지 않을 동맹으로 봐야 옳을 듯하다.
[157] 천안문 광장의 검은 고니
▲최근 천안문 광장에 내려앉은 검은 고니. /트위터 캡처·런던뉴스타임스닷컴
그림과 기호(記號)에 이어 글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인류 문명의 초기 발자취다. 현재의 ‘중국’을 이루는 그런 맥락이 있다면 아마 ‘하도낙서(河圖洛書)’일 것이다. 황하(黃河)의 그림[圖]과 낙수(洛水)의 글[書]이라는 뜻이다.
전설 시대에 나온 이야기다. 황하의 그림과 낙수의 글은 각기 세상의 이치[易], 통치의 방법을 말한다. 좋은 정치가 펼쳐질 때 하늘이 내려주는 계시라는 주장도 나중에 등장했다. 지금은 ‘예언’ 등의 의미다.
전설 시대 스토리답게 황하에서는 용마(龍馬), 낙수에서는 신귀(神龜)라는 동물이 그림과 글을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아무튼 ‘하도낙서’라는 말을 줄여 지금의 일반적 책을 일컫는 ‘도서(圖書)’라는 단어도 나왔다.
이로써 발전한 영역이 ‘도참(圖讖)’이다. 어떤 형상, 부호(符號) 등을 두고 미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헤아리는 일이다. ‘예언’을 가리키는 참(讖)의 파생 단어도 있다. 참언(讖言), 참위(讖緯), 참문(讖文), 부참(符讖) 등이다.
/일러스트=양진경
그런 전통의 중국이라서 나중에도 도참의 상징들이 줄을 이었다. 기린(麒麟), 봉황(鳳凰) 등 전설상의 동물이 대표적이다. 낟알이 많이 달린 벼 가화(嘉禾), 흰 늑대 백랑(白狼), 붉은 토끼 적토(赤免) 등도 있다. ‘상서(祥瑞)로움’의 상징이다.
일식(日蝕)과 월식(月蝕), 혜성(彗星)의 출현은 그 반대다. 불길한 조짐, 즉 흉조(凶兆)다. 땅과 산이 흔들리는 현상, 땅이 깊이 꺼지는 일, 요즘의 블루문(blue moon)인 붉은 달[血月]도 다 그 맥락이다.
포장과는 달리 그 안에는 대개 정치적 의도와 조작이 숨어 있다. 최근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경제적으로 ‘예상치 못한 충격’을 뜻하는 검은 고니(black swan)가 출현했다. 현 공산당 지도부를 공격하려는 도참의 자락이다. 중국 정치마저 흔들리는 ‘조짐’일까 싶어 큰 화제였다.
[158] 뒤숭숭한 중국 부동산
당나라 때 천재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일화다. 16세 청년 백거이는 수도 장안(長安)으로 가 당시 저명했던 문인 고황(顧況)에게 자신의 시작(詩作)에 대한 품평을 부탁했다. 어린 백거이를 우습게 봤던 고황은 그의 이름을 두고 이런 농담을 했다.
“요즘 쌀값이 비싸 살기조차 쉽지 않을 것(米價方貴, 居亦弗易).” 백거이의 이름 풀이인 ‘편히 살다(居易)’를 살짝 비틀며 그를 낮춰 본 셈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어본 고황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겠다”며 곧 자세를 고쳤다고 한다.
중국인이 품는 소망의 으뜸은 성장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경제적 토대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른바 성가입업(成家立業)이다. 조상이 물려준 혈통을 이어야 하는 점[成家]이 생업 확보에 앞서 있다.
그 가정을 이루기 위한 선결(先決) 조건은 살아가야 할 곳을 구비하는 일이다. 따라서 ‘안거(安居)’의 심리가 퍽 발달했다. 집 마련에 집착하는 정서다. 가옥(家屋), 방옥(房屋), 가택(家宅)을 향한 욕망이다. 요즘 중국에서는 흔히 방자(房子)라고 한다.
위의 백거이 일화는 성어를 하나 낳았다. “머물기 결코 쉽지 않다(居大不易)”는 말이다. 환경 좋은 곳에서 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거주하기 좋은 공간에 대한 수요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요즘 중국인들은 더 허덕인다. 집의 노예라는 뜻의 ‘방노(房奴)’라는 유행어가 나온 지도 꽤 오래다. 마구 치솟는 집값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모은 돈에 은행 대출을 얹어 큰 도시 아파트를 구매한 서민이 부지기수다.
그런 중국인의 심리에 올라타 호황만을 누리던 중국 부동산 업계에 위기가 닥쳤다. 대형 기업들의 파산 경고음이 불거졌다. 잔뜩 낀 거품은 빼야 좋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경기마저 더욱 가라앉히는 부작용 또한 크다. 중국의 이번 가을도 퍽 뒤숭숭하다.
[159] 정전(停電)이 몰고 온 어둠
파천황(破天荒)이라는 말이 있다. 줄곧 과거에 응시했으나 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하던 한 지역에서 결국 첫 급제자를 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도저히 허물지 못하던 천연의 장애[天荒]를 마침내 깨다[破]는 뜻이다.
그렇듯 황(荒)이라는 글자가 품는 의미는 어둡다. ‘거칠다’ ‘재난’ ‘흉년’ 등을 함의한다. 아직 개간하지 않은 황무지(荒蕪地), 흉년으로 굶주리는 기황(饑荒), 잡초 무성한 황야(荒野), 그런 곳에 사람 자취 끊기는 황량(荒涼)과 황폐(荒廢)의 단어가 우선 눈에 띈다.
중국 동북 지역의 거대한 황무지를 개간하는 운동은 1958년 이후 펼쳐졌다. 그곳을 가리켰던 본래 단어는 북대황(北大荒)이다. 꾸준한 개발 덕분에 이제는 기름진 곡창으로 변하며 북대창(北大倉)이라는 새 이름도 얻었다.
전쟁과 재난이 지독하다 싶을 만큼 벌어졌던 중국에는 그 ‘황’의 언어가 발달했다. 병황마란(兵荒馬亂)은 전쟁으로 인한 혼란을 직접 일컫는 성어다. 흉년 들어 사람들이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나는 일은 도황(逃荒)이다.
홍황(鴻荒)이나 홍황(洪荒)은 옛 시절의 크고 넓었던 무지몽매(無知蒙昧)를 가리킨다. 우리도 자주 쓰는 황당(荒唐)은 터무니없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발언이나 현상이다. 황당무계(荒唐無稽)라는 성어로도 잘 쓴다. 황탄(荒誕)도 같은 뜻이다.
염황(鹽荒)은 소금이 부족해 벌어지는 ‘난리’다. 화폐 부족 등이 원인이면 전황(錢荒)이다. 요즘 말로 금융 위기다. 세계의 ‘제조 공장’이라 뽐내던 중국의 요즘 소동은 전황(電荒)이다. 대규모 정전(停電)으로 빚어진 야단법석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갈등으로 빚어진 석탄 공급의 불안정,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과도한 규제 등이 큰 원인으로 보인다. 대규모 정전이 중국을 어둠으로 뒤덮었다. 그 어둠이 개혁·개방 이전의 캄캄함을 부르지 않을까 또한 걱정인 모양이다.
[160] 노예근성의 어용(御用) 지식인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소양(素養)이 필요하다. 급히 만들어지는 재능이 아니라 천천히 갈고 닦아 쌓는 교양이다. 그 점에서 중국의 유가(儒家)는 일찍이 육예(六藝)를 내세웠다. 예절[禮], 음악[樂], 활쏘기[射], 말타기[御], 글씨[書], 셈[數]이다.
그 나름대로 균형을 중시한 구성이다. 이 가운데 ‘어(御)’는 말이나 수레를 모는 능력이다. 요즘말로 치면 운전면허증이라고 해도 좋을까. 아무튼 이 글자의 처음 꼴은 사람이 채찍을 든 채 어딘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거기서 발전한 뜻은 말타기, 또는 수레 몰기다. 그러나 언제부턴가는 남을 지배하거나 거느린다는 뜻이 점차 뚜렷해진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억조창생(億兆蒼生)의 머리에 올라앉은 최고 권력자 ‘임금’의 뜻도 얻는다.
따라서 어용(御用)이라고 하면 임금이 만들거나 사용하는 그 무엇, 또는 그런 상태다. 임금이 직접 만들었다는 뜻의 어제(御製)라고 적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군왕이 적은 글 어필(御筆), 그가 내린 명령 어명(御命), 임금의 초상화 어진(御眞) 등이 그렇다.
궁궐 최고 권력자가 사용하는 물건이나 인재 등이라서 ‘어용’은 때로 최고 수준의 그 무엇인가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의 명령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사람 처지라면 ‘노예’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오면 이 말 쓰임새는 퍽 밝지 않다.
요즘 내로라하는 중국·홍콩 영화감독들을 보면 황제의 발밑을 기는 ‘어용 지식인’ 모습이 떠오른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금성 대전투’ ‘장진호’ 등 사실관계를 아예 도외시한 체제 찬양 영화 제작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 근성의 어용 지식만이 횡행하니 문명의 뒷걸음질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마음 밝은 중국인이 있어 새 버전 ‘육예’를 만든다면, ‘홀로서기’ 항목을 꼭 넣어야 좋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