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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 [81] 유연함을 잃어가는 중국 외교 - [120] 댓글 공작 지침이 된 두보의 시

상림은내고향 2022. 10. 23. 11:25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2020

03.20

[81] 유연함을 잃어가는 중국 외교

합종연횡(合從連橫)은 매우 익숙한 성어다. 세로로, 가로로 연대해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에게 맞서는 전략의 하나다. 원교근공(遠交近攻)도 그렇다. 먼 곳과 유대를 맺어 가까운 적에게 대응하는 방식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따지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중국식 전통 외교 책략들이다. 유연한 시야로 멀리 내다보는 장점이 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며 주변과 느슨하게 교류하는 기미(羈縻)의 방식 또한 그 노력의 산물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독립자주(獨立自主)와 평화(平和)라는 원칙으로 외교의 틀을 구성했다. 얼마 전까지 중국이 유지해온 외교 전략의 근간은 전통적 개념으로 보면 도광양회(韜光養晦). 제가 지닌 장점의 예리한 빛을 감추고[韜光], 자신의 약점을 잘 보완하자[養晦]는 흐름이었다. 실용적이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내세웠던 큰 지침이었다. 그러나 강성해지기 시작한 요즘 중국이 외교의 틀을 확 바꿨다.

'떨쳐 일어나 뭔가 이루자'는 뜻의 '분발유위(奮發有爲)'를 내걸더니 이제는 사납기 짝이 없는 행위도 선보인다. 인권의 가치를 묻는 외국 기자에게 "중국에 가보기는 했느냐"면서 호통치는 외교부장, 연일 세계를 향해 독설을 쏟아내는 대변인까지 모두 그렇다. 우한(武漢)에서 번진 코로나19를 두고 "미국 군인이 중국에 퍼뜨렸을 수 있다"고 근거는 생략한 채 글을 올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요즘 화제다. 급기야 중국 주재 서방 기자 추방에까지 앞장서는 외교부를 아예 '전투부(戰鬪部), 대외관계파괴부(對外關係破壞部)로 부르자는 주장도 나온다.

"개가 사나우면 사람 발길 끊겨 술집의 술이 쉰다[狗猛酒酸]"고 했다. 세계인들이 중국의 이미지를 얻는 가장 큰 창구가 외교부다. 그럼에도 싸움에만 골몰하는 사나운 외교부 때문에 전통의 중국이 지닌 믿음직했던 이미지는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82] 중국의 최대 성씨(姓氏)

 

14억 인구의 중국에는 성씨(姓氏)가 참 많다. 앞머리를 차지하는 성으로는 이(), (), (), (), ()이다. 그다음은 양(), (), (), (), ()의 순이다. 이들 상위 10개의 성씨 전체 인구는 55000만명이다. 제법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중국인도 살아생전에는 좀체 마주치기 힘든 성씨가 여럿 있다. '없다'는 뜻의 무(), '죽다'는 새김의 사(), '짐승'의 축(), 사람의 성별인 남(), 수컷 생식기 고(), 머리카락 없는 '민머리' 독발(禿髮)씨 등이다.

최근 중국 인터넷 세계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성은 조(). 네티즌들은 흔히 '조씨 일가[趙家人]'로 적는다. 유래는 중국 현대 문호 루쉰(魯迅) 'Q정전(Q正傳)'이다. 이 소설에서 모자라고, 게으르며, 남과의 다툼에서 져도 '정신적 승리'만 내세우는 주인공 아Q를 누군가가 야단친다. 동네 명망가 조씨(趙氏) 집안 어른이다. 미천한 신분이면서도 제 집안 식구로 몸을 섞으려는 아Q에게 그는 "네가 감히 조씨 일가 행세를 해!"라며 몰아세운다. 2015년 한 칼럼 필자가 이를 인용하면서 '조가인(趙家人)'이라는 말이 유행을 탔다.

네티즌들은 우선 축재에 혈안인 공산당 원로 그룹의 후대 태자당(太子黨)과 고위 간부 자식들을 비꼬는 데 이 말을 쓴다. 공산당 후광을 업은 기업인, 연예인, 부자, 각급 기관 간부 등도 다 대상이다. 아예 중국을 조 국(趙國), 공산당은 조가(趙家)로 적기도 한다. 공산당원이 9000만명을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의미의 중국 최대 성은 단연 '조씨'. 이는 독선(獨善)과 탐욕(貪慾)으로 깊은 부패의 늪에 빠져든 중국 지도층에게 민심이 보내는 거센 야유다. 국호는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으로 걸었지만, 집권 공산당은 그를 등 뒤로 한 채 너무 멀리 걸어온 듯하다.

 

[83] 간부(幹部) 천국

우리 국어사전에도 '탄관(彈冠)'이라는 단어가 올라 있다. 중국 동한(東漢) 때 친구 덕으로 벼슬자리에 나갈 수 있었던 사람이 제 모자[]를 꺼내 먼지를 털며[] 기뻐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의관(衣冠)이라는 단어는 옷과 모자를 우선 가리키지만, 문화적 함의로는 문물(文物)과 지식(知識)이나 제도(制度)까지 포함한다. 옷과 모자를 제대로 차려입거나 쓰는 사람이 지닌 사회적 역량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옷과 함께 모자는 사람의 지위를 상징한다. 중국인은 특히 위정자가 쓰는 관모(官帽)를 매우 중시했다. '과거 급제 명단에 이름 올릴 때(金榜題名時)'를 인생 사대(四大) 기쁨 중 하나로 꼽았으니 말이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관모 명칭은 오사모(烏紗帽). 까만 깁으로 만든 모자다. 중국인들은 이를 행복과 부귀(富貴)를 모두 가져다주는 보물 정도로 중시했다. 모든 것의 핵심을 정부의 기능과 권한에 두는 관본(官本)의 뚜렷한 흐름이다. 현대 중국에도 간부(幹部)가 많다. 국가주석, 총리를 비롯한 최고위층에서 지방의 현(), ()까지 중국은 '간부 천국'이다. 일당전제(一黨專制)의 틀에서 간부는 견제받지 않는 권한으로 부귀와 영화를 죄다 누릴 수 있는 까닭이다.

 

2009년 공산당이 살짝 발표한 소수민족 출신 간부 비율로 역산해 보면 중국의 전체 간부는 4000만명 정도라고 한다. 간부급에 들지 않는 하위직, 정부 지원 을 받는 이·퇴직 주요 간부까지 포함하면 공무원은 9000만명 수준이란다.

'
간부'는 테나 틀을 일컫던 프랑스어 카드르(cadre)를 일본이 처음 한자로 옮긴 말이다. 조직의 줄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나 사람을 일컬으니 마땅한 번역이다. 그러나 이곳이 썩거나 곪으면 큰일이다. 지나치게 방대하며 부패와 비리 사고가 빈발하는 중국 간부 사회는 그래서 늘 큰 화제다.

 

[84] 커튼으로 가린 중국인 생각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커튼은 막()이다. 좌우로 여닫는 그것은 유(). 옛 중국의 구별이다. 담으로 집, 나아가 국가 경계까지 두르는 중국의 '담장 문화'에서 이런 커튼은 최종으로 자신을 가리는 장치다. 상하(上下), 좌우(左右)로 여닫는 구별 없이 중국 커튼의 대명사는 그래도 ''이 우선이다.

 

 

 막지빈(入幕之賓)이라는 성어가 있다. 커튼 안쪽으로 들이는 손님이라는 풀이다. 속뜻은 가장 내밀한 사람, 그래서 기밀(機密)까지 공유하는 인물을 일컫는다. 보통은 책사(策士)를 가리킨다. 생사존망(生死存亡)에 부귀영달(富貴榮達)을 함께 논의하는 사이라서 가장 깊숙이 쳐놓은 커튼 뒤로 들일 수 있는 존재다. 예로부터 중국은 그런 책사와 모사(謀士), 나아가 그들이 구성하고 집행하는 책략과 모략을 중시하는 전통이 강하다.

막료(幕僚)는 그의 별칭이다. 막우(幕友), 막빈(幕賓) 등도 같다. 입말로는 사야(師爺)를 많이 쓴다. 동쪽에 선 주인이 서쪽으로 맞이하는 귀한 손님이라는 뜻에서 '스승'의 새김도 지닌 서석(西席)으로도 칭한다. 이들의 기능을 총칭하는 말은 막도(幕道). 참모로서 지녀야 하는 실력과 품격 등을 적었다. 학문의 반열에 올리면 막학(幕學)이다. 막무(幕務), 막사(幕事)로도 부른다. 요즘 말로 옮기자면 비서학(祕書學)이자 참모학(參謀學)이다.

중국에서 번진 코로나19로 중국은 이제 안정세, 미국과 유럽은 거꾸로 확산세다. 이를 기화로 중국의 대외 선전이 부쩍 활발해졌다. 전염병 발생국에서 세계의 구원자로 이미지 탈바꿈 중이다. 모략의 깊은 전통이 그 동력일 듯하다. 그러나 커튼 안쪽의 공교(工巧)한 책략도 마음 바탕이 옳지 않으면 그냥 잔꾀에 불과하다. 전염병 발생과 은닉의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중국이 진정으로 남을 위해 이바지할 마음이 있는 것인지 병세가 꺾인 뒤의 세계인들은 심각하게 지켜볼 듯하다.


[85] 몸집만 큰 '아기'들의 나라

중국의 면적은 960만㎢다. 유럽연합에 시베리아를 뺀 러시아 일부를 합쳐야 가능한 크기다. 그러니 대국(大國)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크기의 중국을 형용하는 말은 앙앙(泱泱)이다. 아주 넓은 땅을 뜻한다. 그래서 자부심 또한 유명했다. '세상 중심에 내가 있다'는 나라 이름 중국(中國), 땅의 왕조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조(天朝)로 자칭한 경우가 다 그렇다. 다스리는 구역은 천하(天下)라고 했다.

 

 

그 땅 사람들도 크고 멋졌을까. 최근 2~3년 중국 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던 단어 하나는 거영(巨嬰)이다. 몸은 자랐으나 마음은 영글지 못한 아기를 일컫는다. 2017년 금서(禁書)에 오른 '거영국(巨嬰國)'은 중국인의 심리 상태를 "돌봐주는 이가 필요하며, 스스로 황제의 꿈에 사로잡혀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는다"고 했다. 아울러 심각한 조증(躁症), 안정에 관한 지독한 집착, 집체주의(集體主義)를 향한 광신(狂信)을 보이다 사회적 병증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결론은 "중국인의 집단 심리 연령은 1세 이하, 입으로만 만족감을 느끼는 구강기(口腔期) 단계에 머물러 있다"이다. 14억 중국 인구에게는 모욕에 가깝다. 책이 금서에 오른 이유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서양을 무조건 증오하며 외국 선교사와 가족들을 살해했던 청말(淸末) 의화단(義和團), 붉은 이념의 광기에 휩싸였던 문화대혁명의 홍위병(紅衛兵)이 우선 떠오른다. 또 경제적으로 커지자 배타적 애국심과 지나친 자국 중심주의에 기우는 요즘 중국인의 모습도 겹친다. 매우 억압적인 고금(古今)의 중국 정치체제가 키운 기형적 민간 심리다. 그래도 중국 공산당은 지금 상태를 자부한다. 서방의 정치가 선동가와 군중심리에 휘둘려 큰 함정에 빠져들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민주(民主)일 뿐 속내는 포퓰리즘으로 기우는 최근의 서방 정치체제를 '거영'의 나라가 비웃는 형국이다.

 

[86] 복잡한 싸움법의 한계

건괵()이라는 낯선 단어가 있다. 본래는 중국 선진(先秦) 때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모자 등 머리에 쓰는 수식(首飾)이었다. 그러나 한() 이후에는 여성이 머리에 두르는 모자와 장식을 지칭했다.

 

 

유비(劉備)가 죽자 제갈량(諸葛亮)은 여러 차례 북벌(北伐)에 나섰다. 그를 맞이하는 위()나라의 최고 지휘관은 사마의(司馬懿). 그러나 사마의는 후방 보급이 문제였던 제갈량의 도전을 아예 무시하며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 그를 싸움터에 끌어들이기 위해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보낸 물건이 '건괵'이다. 이 단어의 용례는 우리에게 흔치 않으나 중국에서는 퍽 많다. 특히 스포츠 등 특정 분야에서 큰 업적을 쌓은 '여장부'에게 곧잘 붙이는 단어다.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건괵을 보낸 이유는 자명하다. '도전을 피하지 말고 어서 나와 싸움 한번 붙어보자'는 뜻이다. 상대 장수를 싸움에 끌어들이는 방법, 이른바 격장(激將)이라는 모략(謀略)의 하나다. 상대를 말이나 행위로 자극해 싸움판에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이에 휘말리면 제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워 상대가 유도하는 대로 끌려 들어가 패전을 맞이하기 십상이다. 코로나19가 세계로 번진 뒤의 형국이 이와 유사하다.

중국이 발병의 책임을 미국에 미루자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흥분하며 '격장'의 책략에 말렸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만해협에 군사력을 전개하고, 값이 폭락한 석유를 매집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대거 사들인 마스크를 이제는 거꾸로 해외에 선물하며 세계의 구원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모략이라는 전통으로 복잡한 싸움법을 구사하는 중국의 특기다. 문제는 중국의 바이러스 발병과 확산의 책임에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남북 모두에 적을 만든 형국, '사면수적(四面樹敵)'의 덫은 향후 중국의 행보에 아주 큰 부담이다.

 

 [87] 우환의식(憂患意識)

계란 쌓기, 살얼음 딛기는 한자어로 누란(累卵)과 이빙(履氷)이다. 누란지위(累卵之危),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준말이다. 아주 위험한 경우를 일컫는 말들이다. 한자어에는 이처럼 위기와 대응에 관한 표현이 매우 풍성하다. 우선 유방(劉邦)에게 쫓긴 항우(項羽)가 막다른 지경에 몰린 경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한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퍽 친근하다.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터져버리는 상황은 일촉즉발(一觸卽發)이다.

 

 

옛 문인들이 문자놀이를 벌이다가 "가장 위험한 경우를 형용해보자"며 내기를 건 적이 있다고 한다. '백세 늙은이 나뭇가지 끝에 매달리기' '우물 위 도르래에 아기 놔두기' 등 희한한 표현이 나오다가 급기야 '장님이 야밤에 눈먼 말 타고 깊은 물 옆 거닐기' 1등을 차지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 성어는 '맹인할마(盲人瞎馬)'.

전쟁과 재난을 수도 없이 겪어야 했던 중국인들이 체득한 '위험 요소 미리 감지하기'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 왕조의 통치에 참여했던 중국 역대 문인과 관료들은 늘 걱정과 근심으로 지새우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인들 스스로는 이를 '우환의식(憂患意識)'으로 적는다. 가장 대표적 성어가 거안사위(居安思危). '평상시에도 위기를 생각하라'는 주문이다.

우한(武漢)에서 번진 코로나19로 많은 국가가 중국에 등을 돌린다. 바이러스로 세계화 흐름도 주춤해지면서 그에 편승해 호황을 누렸던 중국의 상황은 더 나빠질 듯하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은 최근 취업, 민생, 자국 기업 보호, 식량 및 자원, 산업 공급망 안전, 기층 조직의 원활한 운용 등 '여섯 가지 확보[六保]'를 새 틀로 제시했다. 경제 환경의 안정과 유지에만 주력했던 느슨한 흐름을 위기에 본격 대응키 위한 적극적 방어 전략으로 크게 전환했다는 느낌이다. '우환의식'의 전통에서 우러나는 중국식 위기 감지와 대응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88] '늑대'

글 읽는 사내가 어느 날 중산(中山)이라는 곳을 향했다. 사냥꾼에게 쫓기던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자루에 숨겨달라"고 애걸했다. 마음 약한 사내는 늑대를 살렸다. 사냥꾼이 지나간 다음 늑대는 돌변해 사내의 목숨을 노린다. 전통의 맥락에서 중국인들이 늑대를 보는 시각이다. 이른바 '중산랑(中山狼)'이라는 유명 우화다. 늑대를 지칭하는 중국 언어들도 결코 곱지 않다. 탐욕스러운 사람을 지칭하는 시랑(豺狼) 등이 대표적이다.

앞뒤 다리가 각기 짧은 늑대 종류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전설상의 짐승은 낭패(狼狽). 이 말 쓰임새도 역시 좋지 않다. 늑대가 몸을 틀었던 자리의 모습은 나뭇가지들이 엉켜 어지럽다. 그를 일컫는 말이 낭자(狼藉). "유혈(流血)이 낭자하다" 등으로 역시 용례가 개운치 않다.

 

 

따라서 '늑대 성품[狼性]'으로 적으면 욕심 많고, 사나운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선가 중국은 이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2004년 나온 소설 '늑대 토템(狼圖騰·Wolf Totem)'이 그 계기다. 농경문화에서 오래 쌓인 중국인의 '순한 양의 성품[羊性]' 문화를 늑대의 그것으로 개조해야 외국의 침략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로부터 중국의 '늑대 성품'은 그야말로 봇물을 이뤘다. 5G의 선두 주자로 세계 정상을 꿈꿨던 화웨이(華爲)가 기업 이념을 그로써 무장했다. 얼마 전에는 무협 활극에 가까워 '중국판 람보'라는 평을 받았던 극단적 애국 영화도 '싸움 늑대[戰狼]'라는 제목을 달고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세계를 앞서가는 늑대[頭狼]'이고자 했던 중국의 처지는 코로나19 등의 사태로 세계의 외면을 받는 '외로운 늑대[孤狼]'의 입장으로 전락할 상황이다. 함축적이고 유연해 장점이 많았던 중국의 전통을 굳이 왜 늑대라는 이미지로 연역했을까. 요즘 중국의 문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89] 삼계탕(蔘鷄湯)과 중국인

중국인들에게 한국 삼계탕(蔘鷄湯)은 명성이 자자하다. 고려 인삼에 닭을 함께 끓여 내놓는 요리라 유명하다는 게 일반의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닭고기를 넣고 끓인 탕, 즉 계탕(鷄湯)이 주는 의미를 먼저 짚어 볼 일이다.

음식으로 몸의 에너지를 보탠다는 '식보(食補)'의 개념은 세계에서 중국인이 가장 잘 따진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이 으뜸으로 꼽는 음식이 계탕이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양생(養生)과 면역(免疫) 기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몸이 허약해진 아이에게 엄마가 흔히 끓여주는 계탕은 중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게다가 한국의 삼계탕은 고기가 질기지 않은 연계(軟鷄)에 약효가 높은 인삼까지 더해 중국인에게는 최고 음식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이 삼계탕보다 중국인에게 더 유명한 계탕이 있다. '심령계탕(心靈鷄湯)'이다. 미국 작가의 'Chicken Soup for the Soul'의 중국어 번역본이다. 1993년부터 2016년의 시리즈 출판에 중국인들이 아주 열광한 책이다. 긍정적 에너지를 부추기는 내용 일색이다. 개혁·개방 이후 왕성해진 중국 경제 발전의 분위기가 그에 한몫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요즘의 중국 '계탕'은 의미가 싹 달라졌다. 인터넷상 의미는 '하나 마나 한 소리' '공자님 말씀' 정도다.

이제 중국 네티즌들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푸시킨의 시구조차도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내일 당신은 또 속을 테니까…"라고 바꿔버린다. 사회의 위선을 향한 조롱과 야유가 들어있다.

그래서 '계탕문(鷄湯文)'이라고 적으면 "쓸데없는 글", '계탕도(鷄湯圖)'라고 하면 "연출한 사진" 정도의 뜻이다. 집권 공산당의 선전도 이제는 인터넷에서 걸쭉한 닭 국물을 뒤집어쓸 때가 많다. 요즘 중국 사회 분위기의 한 단면이다.  

 

[90] 중국에 내리는 비 

비는 많이 와도 말썽이다. 재난이 자주 닥쳤던 중국에서는 그런 비를 바라보며 키운 사람들의 노심(勞心)과 초사(焦思)가 제법 깊다. 비를 소재로 명시(名詩)를 남긴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도 그중 하나다. 그는 참혹한 내전인 '안사지란(安史之亂)'을 피해 760년 지금의 쓰촨(四川) 청두(成都)로 쫓겨 가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초가집 한 채를 마련했다. 이듬해 두보는 '가을바람에 초가지붕이 뜯기다(茅屋爲秋風所破)'라는 시를 쓴다.

거세게 불어닥친 그해 가을 비바람에 지붕이 날아갔다. 동네 개구쟁이들은 일부를 주워 내뺐다. 지붕이 사라져 차가운 비를 맞으며 잠자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깊은 시름에 젖은 시인의 푸념이 가득하다. 그 상황의 하나를 두보는 "우각여마미단절(雨脚如麻未斷絶)"로 적었다. 질긴 삼줄처럼 끊이지 않고 내리는 비를 표현한 것이다. 이 시를 처음 우리말로 푼 '두시언해(杜詩諺解)' '우각(雨脚)' '빗발'로 옮겨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진다.

 

 

두보가 맞이했던 당시 상황을 일컫는 명대(明代) 버전이 있다. '지붕 새는데 하필 비는 밤새워 내린다(屋漏偏逢連夜雨)'이다. 여러 가지 우환이 겹쳐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는 경우다. 현대 중국인들도 잘 쓰는 말이다.

요즘 중국 상황이 그렇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어진 개혁·개방의 기운이 꺾이며 미국과 겪는 심각한 마찰, 코로나19 등으로 중국의 국내외 환경이 급변했다. 악재가 거듭 닥치는 화불단행(禍不 單行), 눈에 서리까지 겹치는 설상가상(雪上加霜) 상황이다.

경제의 구조적 하강과 바이러스 확산 및 은닉 책임 때문에 중국은 '지붕'을 잃었다. 공격적으로만 일관했던 대외 정책 탓에 적잖은 국가가 이제는 등을 돌려 중국에 ''를 퍼붓고 있다. 지붕 새는 집에 내리는 폭우…. 코로나19로 뒤늦게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어떤 의견이 모일지 궁금하다.

 

 [91] 성벽(城壁)과 교량(橋梁)

외부 위협으로부터 제 안전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담을 쌓는다. 성벽(城壁)은 그래서 '전쟁 의식'의 소산이다. 담을 올리는 작업은 축성(築城)이다. 중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에 집착하는 특징을 보인다.

 

/일러스트=양진경

신석기 시대 이후 청() 이전까지 중국은 길고 굳센 담을 쌓고 또 쌓았다. 인류가 쌓은 세계에서 가장 긴 담, 중국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서 그 점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언어의 흔적에서도 이 점은 두드러진다. 위기가 올 때마다 예나 지금의 중국은 늘 "여럿의 뜻으로 성을 쌓자(衆志成城)"는 구호를 외친다. 아주 튼튼한 장벽을 세우려는 갈망은 '구리와 쇠로 만든 담(銅牆鐵壁)'이라는 성어도 낳았다.

견고한 성벽 앞에 펄펄 끓는 물이 흐르는 해자(垓子)까지 있으면 더 좋다. 금성탕지(金城湯池). 높아서 기어오르기 힘든 성벽에 깊어서 건너기 힘든 해자까지 갖추면 고성심지(高城深池). 그런 담[]을 쌓아야 탈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일까. 옛 한자 단어 '안도(安堵)'라는 말도 그 맥락이다. 단어의 요즘 뜻은 "마음을 놓다". 그러나 본래는 '담 안에서 편하게 살다'의 의미다. 2000여 년 전의 '사기(史記)'에 등장한다. 일찌감치 숙성한 담을 향한 열망이다. 어디서든 담을 쌓지 않으면 불안한 중국인들의 의식 갈래를 살필 수 있다. 그런 담쌓기는 물론 중국의 전유가 아니다. 늘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인류 보편의 행위다.

이제 지구촌의 담이 곳곳에 또 들어선다. 미·중 마찰, 코로나19로 인해 엉클어진 세계화의 행보 때문이다. 이제는 "지혜로운 이는 다리[橋梁]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담을 쌓는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생각해 볼 때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두고 중국이 많이 인용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전통적 '축성의 사고'로 갈등을 양산한 중국이 먼저 되새길 내용이다.

 

 [92] 통치와 복종

충신(忠臣)이나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붉은 문이 있다. 우리는 보통 정문(旌門)으로 적지만 홍살문, 정려문, 홍문으로도 부른다. 왕조가 지향하는 가치에 가장 충실한 이를 표창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 배우도록 하는 기능이다.

그 원류는 역시 중국이다. ()나라 때는 궐()이라는 명칭이었다가 유교의 통치 이념이 최고조로 발달했던 명()과 청()에 들어서는 패방(牌坊) 또는 패루(牌樓)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둘은 거의 같지만 지붕 양식이 없으면 패방, 있으면 패루다.

 

 

명과 청나라 왕조의 수도였던 베이징(北京)에는 그런 패방과 패루가 즐비하다. 왕조의 통치 이념에 가장 충실했던 황도(皇都)였기에 그렇다. 나중에는 유명 사찰이나 사적지 등을 기념하는 표지물 기능도 더해졌다. 그러나 민간에 세워진 패방과 패루가 골간이다.

대개는 과거 급제자, 충신이나 효자 또는 열녀의 행적이 있을 경우 그 가문이나 지역 유지 등이 과시용으로 앞다퉈 화려한 패방과 패루를 지었다. 왕조가 내세우는 통치 이념에 "우리가 가장 충실한 사람"이라고 호응하는 꼴이다.

특히 중국 남부 지역으로 이동해 정착한 명문(名門) 가족, 과거 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 또는 지역에 숱하게 들어섰다. 그 안에 담긴 가치 지향은 충()과 효(), 정절(貞節) 등이다. 왕조는 이로써 '통치'를 벌이고 민간은 그로써 '복종'을 다짐하는 모습이다.

현대 중국을 이끌고 있는 공산당은 그로부터 계속 멀어져야 정상이다. 봉건적 왕조의 질서와 가치체계를 부정하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홍콩 사태를 보면 그 반대다. 어느덧 인권과 민주의 가치에 익숙해진 홍콩에 보안법이라는 새 '패방' '패루'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조의 전통인 '통치' '복종' 구도로 회귀하려는 중국의 행보에 홍콩 및 국제사회의 저항이 만만찮다.  

 

[93]

남송(南宋)의 유명 시인 육유(陸游)가 길을 묘사한 시구는 퍽 유명하다. 산과 물이 계속 겹쳐지는 경우를 그렸다. "산중수복의무로(山重水複疑無路)". 산과 물[山水]이 줄곧 이어져[重複] 더 이상 길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앞부분은 달리 '산궁수진(山窮水盡)'으로 적기도 한다. 산길이나 물길이 다 막힌 상황이다. 모두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든 상태, 궁지에 몰린 경우다. 다니기 힘든 길인 험로(險路)에 갇힌 사람의 형편이다.

 

 

길에 관한 중국인의 심사는 복잡하다. 우선 다니기 쉬운 길에 집착한다. 평평(平平), 평로(平路), 평탄(平坦), 평전(平展), 탄탄(坦坦), 대도(大道), 대로(大路) 같은 단어가 그 맥락이다. 좋은 길에 관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어려운 길을 피하려는 심리도 강하다. 주로 산길이 그 대상이다. 바위 등이 많아 다니기 힘든 길은 기구(崎嶇). 험준(險峻)도 마찬가지다. 험산준령(險山峻嶺)도 발길을 막는다. 낭떠러지인 현애(懸崖)에서는 한숨부터 나온다. 절벽(絶壁) 앞에 서도 그렇다.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좁고 위험한 길은 애로(隘路). 군사(軍事)에서는 가장 피하는 길이다. 깊은 골짜기에 들어서면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다. 진퇴유곡(進退維谷), 진퇴양난(進退兩難)이 그 성어다.

중국이 안팎으로 시련이다.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이라는 과정을 두고 벌어질지 모를 책임 문제에 활력을 잃은 경제 사정, 미국과 전면적 마찰, 홍콩 사태 등 악재의 연속이다. 몸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인데 어느덧 서산에 해가 지는 형국인지 모른다. 산과 물에 발길이 막힌 시인 육유의 눈에 문득 들어온 정경이 있다. "버드나무 그늘 아래 핀 꽃, 그리고 마을 하나(柳暗花明又一村)." 궁색한 지경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출로(出路)를 의미한다. 어려운 상황에 빠진 중국이 어떻게 새 길을 찾을지 주목거리다.  

 

[94] '()'이 부른 외로움

텔레비전 사극 등에서 왕조의 최고 권력자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이다. 이 글자의 유래를 찾다 보면 조짐(兆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본래는 어떤 '틈새' 등을 가리키는 글자였기 때문에 '조짐'이라는 말로 발전했을 듯하다. 처음 쓰임은 그랬지만 이 글자는 옛 중국에서 대개 1인칭 대명사, '우리'라는 뜻의 호칭으로 잘 쓰이다가 중국 판도를 최초 통일로 이끈 진시황(秦始皇) 때 이르러 제왕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고대 동양의 군왕을 모시는 일은 아주 두려웠다. 반군여호(伴君如虎)라는 성어가 나온 이유다. 임금 모시기가 호랑이 대하듯 어렵다는 얘기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왕은 구중궁궐(九重宮闕)의 깊은 곳에 몸을 사리고 있어 외롭기 마련이다. 그래서 군왕 스스로는 자신을 고가(孤家)라고도 부른다. '외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임금은 자신을 '()'라고도 했다. 다 마찬가지 맥락이다. 진시황 이전의 춘추전국(春秋戰國) 때에 일찌감치 유행한 호칭이다.

과인(寡人)이라는 말도 있다. 과덕지인(寡德之人)의 준말이다. 스스로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겸칭이다. '고가' '과인'을 이어 쓰는 경우도 많다. 달리는 여일인(予一人)을 쓰기도 한다. '나 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다른 이가 황제를 부르는 호칭은 즐비하다. 천자(天子), 황상(皇上), 성상(聖上), 폐하(陛下), 일존(一尊) 등이다. 영원한 삶을 누리라는 뜻에서 만세(萬歲)로도 부른다. 전각 위에 올라선 이 발아래에 모두가 조아리는 광경이 느껴진다.

세계 최강을 꿈꾸면서 중국이 스스로를 ''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공격적 대외 확장 정책을 선보인 지 오래다. 그러나 마주친 현실은 국제사회의 외면과 견제다. 무엇이 그 원인인지 중국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가 온 듯싶다.  

 

 [95] 대륙의 홍수

중국에서 '옛날'을 지칭하는 한자 석()의 본래 글꼴이 흥미롭다. 이 글자의 초기 모습에는 해와 물이 등장한다. 물에 잠긴 해, 또는 해가 떠있는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물의 모습이다. 나중 이 글자의 새김은 '옛날' '이전' 등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
옛날'을 지칭하며 중국인들이 잠재의식 속에 떠올렸던 이 해와 물은 뭘까. 해석이 조금 갈리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큰물, 즉 대규모 홍수(洪水)에 관한 기억이리라는 추정이다. 이 풀이가 맞는다면, 중국인의 '옛날'은 큰물로 인한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

 

 

실제 중국이라는 땅에는 아주 많은 재난이 닥쳤다. 그중에서 홍수는 가뭄에 못지않게 매우 빈번했던 자연재해다. 유력한 통계에 따르면, 홍수 피해는 기원전 1766년부터 기원후 1937년까지 3703년 동안 모두 1058회에 이른다. 3년 반에 한 번꼴이다. 홍수는 달리 수재(水災), 홍로(), 대수(大水), 수환(水患) 등으로도 적는다.

또한 남쪽에 홍수가 많이 드는 대신 북쪽에는 가뭄이 자주 온다고 해서 중국인들은 대표적 재난의 형태를 남로북한(北旱)이라는 성어로도 표기한다. 특히 중국의 가장 큰 하천인 장강(長江) 일대의 수계(水系)에서 홍수가 빈번하다.

중국 남부 지역에 요즘 또 큰물이 들었다. 광시(廣西), 광둥(廣東), 후난(湖南), 충칭(重慶) 등 남부 지역 전반에서 홍수 피해가 심각하다. 이 때문에 중국 집권 공 산당이 남부 지역 홍수를 근절하겠다고 지은 세계 최대 싼샤(三峽)댐의 효용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른다.

자연재해에는 사람의 요소도 한몫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 둘을 병렬한다. 이른바 '천재인화(天災人禍)'라는 성어다. 남부 지역 대홍수로 싼샤댐에 중국인들 시선이 몰리는 이유다. 완공 때 위풍당당했던 댐의 오늘과 옛날, 금석(今昔)의 감()이 사뭇 다르다.

 

[96] 동류

 

북송(北宋·960~1127) 때의 문인 소식(蘇軾)이 삼국(三國·220~280) 시절의 적벽(赤壁)을 회고한 문구가 있다. 시작이 이렇다. "큰 강이 동쪽으로 흘러, 물결이 천고의 영웅을 다 휩쓸고 지나갔다(大江東去, 浪淘盡, 千古風流人物)."

중국의 대부분 하천은 동쪽으로 흐른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지세(地勢) 때문이다. 이른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이다. 가장 서쪽에는 매우 높은 고원, 다음 단계는 산지(山地)가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진입하면서 드넓은 평원(平原)을 보인다.

 

세 단계의 사다리꼴 지형이 중국 땅의 특성이다. 따라서 물은 동류(東流)하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남쪽의 장강(長江)과 북쪽의 황하(黃河)를 비롯해 대개의 하천 흐름이 그렇다. 따라서 '동류'라는 단어에는 중국인의 각별한 심사(心思)가 맺힌다.

"
동쪽 물 흐름에 떠나보내다"라는 의미의 '부동류(付東流)' '부저동류(付諸東流)'라는 성어가 대표적이다. 시간과 세월, 덧없는 인생, 성공과 좌절, 영광과 오욕(汚辱) 등이 어쩔 수 없는 큰 흐름에 실려 사라짐을 체념하며 받아들인다. 잃어 없어지는 망실(亡失), 잊어 없애는 망실(忘失)의 정서다.

무수한 전쟁과 셀 수 없이 많았던 재난(災難) 등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중국인의 마음 한구석 풍경이다. 나라 잃은 임금 남당(南唐) 이욱(李煜) "얼마나 슬픈지 아느냐"고 자문한 뒤 "마치 온 강의 봄물이 동으로 흘러 지나는 듯(恰似一江春水向東流)"이라 적은 글귀는 강물 흐름의 표현 중에는 압권(壓卷)에 해당한다.

중국 하천 흐름이 요즘 문제다. 너무 많이 내린 비 때문에 강물이 넘쳐 남부 중국 곳곳이 어지럽게 횡류(橫流)하는 물로 난리다. 동쪽으로 계속 흘러 바다로 빠져나가야 할 물이 사람 사는 곳을 삼키니 평범한 중국인들의 눈물과 한숨, 고단함만 나날이 깊어진다.  

 

[97] 관문(關門)

"그대에게 권하노니 술 한 잔 더 드시게, 서쪽으로 양관을 나가면 아는 이 없으리니(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라는 명구가 있다. 당나라 문인 왕유(王維·701~761)의 작품이다. 먼 곳으로 떠나는 지인에게 술 한 잔 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구 가운데에서는 절창(絶唱)으로 꼽힌다.

여기 나오는 양관(陽關)은 지금 중국 둔황(敦煌)에 있던 당나라의 서남쪽 경계다. 그 북쪽에 있던 옥문관(玉門關)과 함께 서역(西域)을 향해 나갔던 마지막 국경 관문(關門)이라 아주 유명하다. 이별의 정서를 다루는 문학작품에 곧잘 등장한다.

 

 

중국에는 관문이 참 많다. 유비(劉備)가 죽은 뒤 북벌에 나서는 제갈량(諸葛亮)이 자주 넘었던 검문관(劍門關), 북방 유목민의 침입 루트에 있던 안문관(雁門關), 만리장성의 동서쪽 끝인 산해관(山海關)과 가욕관() 등이 잘 알려진 관문이다.

'
()'은 중요한 경계에 들어서는 요새(要塞). 보통은 전략적인 요충이나 변경(邊境) 길목에 짓는다. 사람과 물자의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다. 본래 글자꼴은 문에 건 빗장을 줄로 잔뜩 옭아맨 모습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글자의 본래 뜻은 '닫다' '잠그다'. 이어 중요한 곳에 들어서는 요새 등 맥락에서 사물의 가장 긴요한 부분인 관건(關鍵)이나 관절(關節), 그로부터 다시 뭔가 이어진다는 관계(關係), '마음에 담아두다'라는 관심(關心) 등 단어도 파생했다.

중국이 혹독한 통제와 체벌 위주 보안법을 제정하고 실행하면서 '홍콩'이라는 큰 관문 하나를 닫았다. 이어 경제의 '내적(內的) 순환(循環)'까지 강조하고 나서면서 지금까지의 개혁·개방 기조를 크게 바꾸고 있다. 문호를 아예 닫는 폐관(閉關)과 쇄국(鎖國)까지는 아니라 해도 외부와 중국을 잇는 길목들이 사람과 물자 모두 지나가기 어려운 난관(難關)으로 변하는 분위기는 아주 역력하다.


 
[98] 매우(梅雨)

매실 익는 계절에 내리는 비를 중국인들은 매우(梅雨)라고 적는다. 보통은 장강(長江) 중하류 지역에 6~7월경 내린다. 오랜 기간 짙은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려 일종의 장마로 간주한다. 줄곧 내리는 비 때문에 곰팡이가 핀다. 그래서 '곰팡이 비', 즉 매우( )로 칭할 때도 있다.

옛 중국인들이 적었던 비의 종류는 제법 풍부하다. 달콤한 이슬, 감로(甘露)에 비를 비유한 경우가 우선 눈에 띈다. 보배로운 이슬, 보로(寶露)도 그렇다. 그러나 마냥 좋지만은 않다. 벌판을 거세게 달리는 말처럼 땅을 뒤흔들 듯 내리는 소낙비는 취우(驟雨).

 

 

분우(盆雨)라고 적는 비도 있다. 물동이를 쏟아붓듯 내린다는 '경분대우(傾盆大雨)'의 준말이다. 방타(滂沱)는 비가 마구 쏟아지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다. 역시 아주 큰비, 대우(大雨)를 일컬을 때 흔히 등장한다. 땅이 잠긴다는 뜻에서 적는 수료(水潦)라는 단어도 큰비의 하나다. 음우(霪雨)와 음우(陰雨)는 과하게 오래 내리는 비다.

땅을 충분히 적실 정도로 내리는 비는 투우(透雨). 땅을 헤집고 들어가는 빗물, 투지우(透地雨)의 준말이다. 사흘 이상 이어지면 임우(霖雨).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천루(天漏)라고 했다. 손님 발길을 막는다고 해서 적었던 유객우(留客雨)도 있다. 비는 때에 맞춰 내려야 좋다. 그런 비는 급시우(及時雨). '수호전(水滸傳)' 양산박(梁山泊) 108두령의 첫째인 송강(宋江)의 별명이다.

시절 감안하면 요즘 중국에 내리는 비는 '매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매실 자라는 데 도움은커녕 사람 사는 집과 땅을 거대하게 삼켰다. 근심을 부르는 장맛비, 수림(愁霖)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재민은 어느덧 40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대륙의 민심(民心)이 비에 젖고, 슬픔에 젖고, 또 눈물에 젖어가는 모양이다.  

 

[99] 광란(狂瀾)

 

"발 바깥에서는 비가 추적추적(簾外雨潺潺)"으로 시작하는 사()가 있다. 남당(南唐)의 마지막 군주 이욱(李煜·937~978)의 작품이다. 쳐놓은 발 밖으로 들리는 빗소리를 적었다. 우리말 '잔잔하다'의 어원을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잔잔(潺潺)'은 물결이 조용한 모습, 비가 조용하게 내리는 소리 등의 새김이다. 순 우리말이라고 여겨지는 '천천히'도 한자 세계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천천(川川)'이다. 양웅(揚雄·BC53~AD18)의 문장에 등장한다.

"
큰 수레가 천천히 나아가네(大車川川)"라는 글귀다. 큰 하천이 유유히 흘러가는 데서 착안한 조어(造語)로 보인다. 이를 주석한 글은 '천천' "크고 둔중한 것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양"이라고 풀었다. 따라서 '잔잔' '천천'은 모두 물 흐름과 관련이 있다.

골골(汨汨)이라는 단어 또한 물이 흐를 때 나는 소리를 가리킨다. 순 우리말 '졸졸'이 그에 호응한다. 의태(擬態)도 즐비하다. 큰물이 기운차게 흐르는 모습은 도도(滔滔). 호탕(浩蕩)이나 호호탕탕(浩浩蕩蕩)도 그렇다.

그 물의 흐름으로 반드시 생겨나는 것이 물결이다. 파랑(波浪), 파란(波瀾), 파도(波濤), 낭도(浪濤) 등으로 적는다. 걷잡을 수 없이 센 물결은 노도(怒濤), 모든 것을 휩쓸어 갈 정도의 물결은 광란(狂瀾)이다.

물이 급기야 흐르던 곳을 넘어 더 너른 땅을 삼킨 모습도 있다. 앙앙(泱泱)은 본래 수면(水面)이 광대하게 퍼 져 있는 상태를 가리켰다. 왕양(汪洋) 또한 아주 너른 땅이 물에 잠긴 모습이다. 팽배(澎湃)는 거센 물결이 서로 부딪치는 경우다. 언어는 경험의 축적이기도 하다. 잔잔하던 물이 광란으로 변해 모든 것을 휩쓴 큰물 공포가 중국에는 흔해 이렇듯 풍부한 단어가 나온 듯하다. 도시와 전답이 물에 가득 잠긴 요즘 중국 땅 홍수의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100] 요령(要領)과 장궤(掌櫃) 

요령(要領)과 협박(脅迫), 겸제(箝制)와 관건(關鍵), 요충(要衝)과 추기(樞機).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뭘까. 우선 '요령'은 어원을 따지자면 허리[]와 목[]이다. 사람을 공격할 때 치명적 결과를 빚는 이른바 급소(急所).

'
협박'은 겨드랑이나 갈빗대를 윽박지르는 행동이다. 역시 급소를 겨눈다. '겸제'는 입에 재갈 등을 물려 상대를 제어하는 행위다. '관건'은 문의 빗장에 해당하는 장치다. '요충'은 돌아가기 어려운 중요한 길목, '추기'는 문을 여닫는 데 꼭 필요한 문지도리다.

따라서 위 단어들에는 사물의 핵심이라는 뜻, 나아가 그로써 대상을 컨트롤하려는 의도까지 담겨 있다. 매우 전투적인 시선이다. 그렇듯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어에는 '싸움의 기술'이라는 맥락이 만만찮게 살아 숨 쉰다.

 

 

우리는 흔히 중국인을 '짱깨'라고 비칭한다. 이는 한자어 장궤(掌櫃)의 변형으로 보인다. '장궤'는 카운터[]를 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 업소의 돈줄을 쥐고 있으니 이를테면 '주인'이다. 역시 한 집단의 핵심에 해당한다.

무술(武術)이 발달한 중국에는 그 문파(門派)도 아주 많다. 전통으로 내려오는 비전(祕傳)의 무예를 이어받아 한 문파를 이끄는 사람은 장문(掌門)이라고 한다. 장악(掌握), 장관(掌管), 주장(主掌) 등의 단어가 같은 흐름이다. 요체와 핵심을 잡아 상황을 지배하려는 욕 망이다.

홍콩은 '동방의 보석[東方之珠]' 소리를 들었으나, 중국 집권 공산당의 '손 위 보석[掌上之珠]'으로 변했다. 동서양의 문화적 기반으로 이룬 자유와 번영이 중국의 '보안법' 실행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유럽 등 많은 나라가 반발하며 중국의 고립이 깊어졌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쥐려고 욕심을 낸 중국이 깊은 곤경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2020.08.07

[101] 미국과 중국의 전운(戰雲)

"먹구름이 짓눌러 성은 곧 무너질 듯하고, 갑옷은 해가 나오자 번쩍거린다(黑雲壓城城欲摧, 甲光向日金鱗開)"는 시구가 있다. ()의 유명 시인 이하(李賀)의 작품이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전쟁터 분위기가 아주 생생하다.


전쟁터는 한자어로 보통 전장(戰場)이라 잘 적는다. 때로는 흙이 널리 깔린 개활지라는 뜻에서 사장(沙場)으로도 곧잘 표기한다. 변방에서 싸움이 자주 벌어져 강장(疆場)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현대 중국에서는 전지(戰地)라는 표현이 흔하다.

 

 

전쟁터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가장 그악한 싸움의 내용, 그 안에 담긴 다양한 곡절 때문에 숱한 회고(回顧)가 따른다. 중국의 옛 전쟁터는 아주 많다. 참담한 전쟁이 빗발 닥치듯 벌어졌기 때문이다. '홍구(鴻溝)'라는 단어도 그 하나다.


중국에서 유래한 장기판 가운데 줄은 깊은 구덩이를 상정하고 있다. 바로 이 '홍구'. ()이 망하고 천하의 패권을 다퉜던 항우(項羽)의 초(), 유방(劉邦)의 한()이 대치했던 싸움터 경계다. 본래는 황하(黃河)와 회수(淮水)를 잇는 운하였다고 한다.


항우와 유방이 다투면서 서로 이곳을 경계로 삼기로 약속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항우의 초, 서쪽이 유방의 한이었다. 지금 장기는 그 싸움을 소재로 만든 게임이다.


'홍구'는 깊고 넓어 건너기 힘든 곳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함부로 넘을 수 없는 선()'이라는 속뜻도 있 다. 지독한 다툼을 부르는 전선(戰線)이자 변계(邊界). 천연 험지(險地)일 경우에는 천참(天塹)으로도 부른다. 진역(畛域)도 그 맥락이다.


요즘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립이 거세다. 싸움을 예고하는 구름, '전운(戰雲)'이라는 말까지 떠올리게 하는 국면이다. 예사롭지 않은 둘 사이의 다툼이 간단치 않은 풍파를 일으킬지 몰라 우리의 깊은 주의가 필요한 때다 

 

[102] 동맹(同盟)

사랑도 그렇고, 충성도 마찬가지다. 대개 굳은 맹세가 따른다. '맹세'는 맹서(盟誓)라는 한자 단어가 본딧말이다. 앞의 글자 맹()이 흥미를 끈다. 본래 글자꼴은 그릇[]에 피가 담겨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이는 고대 제의(祭儀)와 관련이 있다. 옛 인류는 무엇인가를 숭배하거나 그로부터 계시를 얻기 위해 제사를 올렸다. 보통은 희생(犧牲)을 필요로 했다. 제물(祭物)로 올리는 소나 양, 돼지 등이다. ''은 그 희생의 피가 그릇에 담긴 형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집단과 집단 사이의 약속에도 이런 이벤트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가장 일반적이었던 경우가 회맹(會盟)이다. 중국 춘추(春秋)시대 이후 여러 나라가 좀 더 크거나 강한 나라의 진영으로 합치고자 벌였던 모임이다.

보통은 삽혈(歃血)을 했다고 한다. 제물로 잡은 희생의 피를 마시거나 입 주위에 바르는 일이다. 이로써 함께 맹약(盟約)을 하고 한 대열에 선다. 우리는 요즘 그런 행위를 동맹(同盟)이라 적거나 결맹(結盟)으로도 부른다.

여러 집단이 한 묶음에 들면 연맹(聯盟), 그에 몸을 담으면 가맹(加盟)이다. 함께 약속한 틀에 있는 나라를 맹방(盟邦), 같이 전쟁을 치른 국가는 혈맹(血盟)이라 칭한다. 중국은 그런 '회맹'의 전통이 매우 깊다. 그렇게 맹약을 하고서도 제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은 자주 했다. 그럼에도 피를 나눠 마신 옛 동양 사회 회맹의 정 신 바탕은 '성신(誠信)'이라는 가치 체계였다. 요즘 말로 풀자면 정성과 신뢰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비롯한 중국의 현대판 대외 회맹 정책은 거셌다. 그러나 제 국익만을 앞세우다 타국의 경계심을 잔뜩 자극해 고립세만 부쩍 키웠다. 정성과 신뢰의 진실성을 결여했기 때문일 테다. 2500년 전 춘추시대 사람들의 배포가 지금의 중국 집정자들보다 더 컸던 듯싶다.  

 

[103] 飮食男女 

"먹고 마시는 일, 그리고 남녀 관계는 사람의 큰 욕망이 머무는 곳(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이라는 말은 유가의 경전 '예기(禮記)'에 일찌감치 나온다. 이를 모티브로 만든 홍콩 영화 '음식남녀(飮食男女)'도 사람의 식욕(食慾)을 진지하게 다뤘다.


청동기 시대 중국에서는 도철(饕餮)이라는 문양이 크게 유행했다. 발이 세 개 달린 솥 정() 등에 고루 등장하는 이 문양의 괴물은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 이 괴물 이름은 식탐(食貪)의 대명사로 굳어진다. 

요즘의 '총리'에 해당하는 옛 관직 명칭인 재상(宰相)의 유래도 제사 때 잡는 소와 양 등 제물(祭物)을 다루는 직책[]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먹는 음식에 관한 옛 중국의 관심과 주목은 매우 크고 깊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시(關係)'를 매우 중시하는 인문적 토양은 밥자리에서 모든 사안을 해결하는 문화도 낳았다. 그래서 중국인의 식탁은 늘 풍성함을 지향하는지 모른다. 산해진미(山海珍味)와 함께 용의 간, 봉황새의 골수를 가리키는 용간봉수(龍肝鳳髓) 등의 요란한 수사(修辭)가 탄생한 이유다.

실제 야미(野味)라고 적는 중국의 야생동물 요리는 문제가 심하다. 박쥐와 천산갑(穿山甲), 사향고양이, 고슴도치, 들쥐 등 야생동물을 보신(補身) 차원에서 식단에 올리는 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식문화는 '구강(口腔)에 멈춘 욕망'이라는 야멸찬 비판도 받는다. 그럼에도 중국 음식은 세계적 요리 반열에 꼭 들어간다.

최근 중국 최고 지도자가 꾸지람 한마디를 던졌다. "음식 낭비를 줄이라"는 지시였다. 그 때문에 '도철' 등에서 비롯한 전통적 식탐 문화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듯하다. 오히려 최근의 수재(水災)와 경제 사정 악화에 따른 식량 위기가 그 발언의 진짜 토대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불거진다. 

 

[104] 중국의 요즘 꿈자리

꿈에서 나비로 날아오른 장자(莊子)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보통 호접몽(胡蝶夢)으로 적는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자로 변한 꿈을 꿨는지 헛갈리는 상황을 적었다. 사물과 나의 구별이 없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계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꿈과 현실을 잘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이기도 하다. 그런 꿈자리의 일은 흔히 몽경(夢境)이라고 적는다. 꿈을 꾸는 잠자리는 몽매(夢寐). 깊이 잠들어 단꿈을 꾸면 감몽(酣夢)이다. 좋은 조짐을 주는 길몽(吉夢)도 있다.

 

 

그 반대는 악몽(惡夢)이다. 불길한 꿈이다. 흉몽(凶夢)이라고도 한다. 이에 보통 따르는 것이 잠꼬대다. 한자로는 몽예(夢囈)라고 적기도 한다. 가위눌림도 벌어진다. 우리 용례는 흔치 않지만 몽염(夢魘)이라고 적는다.


꿈의 내용을 풀어보려는 노력은 해몽(解夢)이다. 꿈에서 곰을 보면 귀한 자식을 얻는다는 몽웅(夢熊)이 대표적이다. 몽일(夢日)이나 몽월(夢月)은 꿈에서 해나 달을 보는 경우다. 역시 귀한 자식 얻는 꿈이다. 그러나 대개는 꿈같은 생각인 몽상(夢想)이다.


춘몽(春夢) '봄에 꾸는 꿈'이 직역이지만 속뜻은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가리킨다. 부귀(富貴)와 영화(榮華)를 그렸던 남가일몽(南柯一夢), 한단몽(邯鄲夢), 황량몽(黃粱夢)이 대개 다 봄에 꾸는 한바탕의 꿈인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중국 꿈(中國夢)'은 공산당 지도부가 8년 전 천명한 강대국의 꿈이다. 그러나 본래 의도한 대로 일은 풀리지 않는 모양새다. 미국의 깊어진 경계감에 따른 압박과 제재가 집요해지고 있을 뿐이다.


"밤은 길어지고 꿈은 많아지다(夜長夢多)"라는 중국 속언이 있다. 해결이 자꾸 미뤄져 뭔가 불리해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같은 꿈을 거듭 꾸고 있을지는 몰라도, 중국이 이번에 맞닥뜨린 ''은 더 깊고 어두워지는 듯하다. 

 

[105] 投身하는 고위층

▲고위층의 투신

 

하늘이 준 목숨대로 살다가 마지막에 있어야 할 제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을 중국인들은 수종정침(壽終正寢)이라고 적는다. 풍파 가득한 세상에서 오욕(汚辱)에 몸 들이지 않고 수명을 다 누리다 제 집채에서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는 경우다.

 

그러나 느닷없이 다가온 죽음을 맞이할 때도 잦다. 특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아주 참혹할 뿐이다. 보통은 자살(自殺)이라고 한다. 남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타살(他殺)의 정반대 사례다.

 

대단히 끔찍한 일이어서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에둘러 적는 단어가 많다. 자진(自盡)이 우선 그렇다. 역시 스스로 마지막을 앞당기는 일이다. 자결(自決)도 ‘스스로 해결하다’라는 새김과 함께 의분(義憤) 등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뜻이 있다. 자재(自裁)도 있다. 옷감을 마름질[]하듯 제 목숨을 마감하는 경우다.

 

경생(輕生)은 현대 중국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삶의 무게를 가볍게 다룬다는 뜻이다. 자인(自引)이라고 적을 때도 있다. 스스로 매듭을 짓는다는 맥락에서 만든 말일 테다. 투신(投身)이라는 말도 그 하나다.

 

어느 분야에 몸을 들여놓다’라는 뜻도 있지만 본래는 제 몸을 어딘가에 던져 생을 마감하는 일이다. 중국은 건물에서 투신하는 경우를 ‘도루(跳樓)’라 적는다. 요즘의 중국 뉴스 영역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현 공산당 지도부가 반()부패 작업을 벌인 뒤 8년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위직 인사가 약 26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방식으로는 ‘도루’가 으뜸이다. 제 죽음을 극적으로 알려 더 이상의 조사가 이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뛰어내리면 자식 세대를 보호하고, 안 뛰어내리면 삼대가 조사 받는다(跳了保下一代, 不跳査三代)”는 반응도 나돈다. 개혁·개방 뒤 중국에 쌓인 부정과 부패의 규모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106] 中原과 바다 

일렁이는 물결의 망망한 발해(渤海)를 앞에 둔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겁을 잔뜩 먹었다. 그러나 큰 배에 설치한 장막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 술잔을 기울이다 어느덧 고구려 침공을 위한 바닷길 중간에 서고 만다.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첫 계책인 만천과해(瞞天過海)의 스토리다. ‘하늘 같은 황제[]를 속여[] 바다를 건너다’라는 얽음이다. 그렇듯 중국인에게 바다라는 존재는 어려운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우선 중국의 전통적 지칭인 중원(中原)이 그렇다.

 

 

이 단어는 ‘가운데 들판’이란 뜻이다. 육지 한복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중국은 그렇듯 땅에 묶여 땅만을 끼고 살아온 문명이다. 땅보다 훨씬 크고 넓은 바다는 두렵기 짝이 없다. 물길이 무서워 가장 큰 강인 장강(長江)을 ‘천연의 장애’란 뜻의 천참(天塹)으로 곧잘 적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큰물을 두려워하는 심리는 잔잔한 물결을 향한 열망으로 번진다. 그를 지칭하는 성어 풍평랑정(風平浪靜)은 인생길에 선 중국인들의 큰 희구(希求). 가까운 이가 먼 길 떠날 때 건네는 인사인 ‘일범풍순(一帆風順)’ ‘일로순풍(一路順風)’ 또한 멀고 험한 물길에서 순풍에 돛 단 듯 잘 헤쳐가라는 바람을 담았다.

 

요즘 중국인은 깊은 물 구간인 심수구(深水區)라는 말을 곧잘 쓴다. 위기 영역에 들어설 때 사용하는 단어다. 큰물 앞에서 공포를 드러냈던 중원 사람들의 전통적 심리가 깃든 현대 중국의 표현이다.

 

중국의 바닷길이 최근 더 험해졌다. 굴기(崛起)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해양 군사력이 중국 주변 해역을 모두 포위하고 있어서 그렇다. 일본과 동중국해, 아세안과 남중국해, 대만과 대만해협 등에서 부딪치는 게 그런 분위기다. 덧붙이자면, 꾀를 내 넘었던 바다 건너편에서 당나라는 고구려에 패했다. 육지에서 바다로 나서는 일은 꾀 이상의 단단한 마음 자세가 더 필요한 모양이다. 

 

[107] 胡越 

“북녘 말은 북풍을 그리워하고, 남쪽 새는 남녘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는 말이 있다. 우선은 제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넓은 중국 땅에 남북으로 크게 존재했던 별종의 인문(人文)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는 대륙의 복판인 중원(中原)의 정서로 볼 때 북녘에 있던 이민족의 총칭이다. ()은 남쪽의 너른 지역에 숱하게 분포했던 사람들을 통칭한다. 혈통은 물론이고, 언어와 습속이 중원과는 사뭇 달랐던 이들이다.

 

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모두 ‘오랑캐’로 치부했던 전통적인 중국의 국토와 인문 관념의 큰 배경이다. 참고로, 중국은 북쪽의 유목을 북적(北狄), 동쪽의 인문을 동이(東夷), 남녘 사람을 남만(南蠻), 서쪽의 미개함을 서융(西戎)으로 구분했다.

 

넓은 의미에서 ‘호’는 북적과 동이, 서융을 모두 포함한다. 그에 비해 ‘월’은 춘추전국시대까지 명맥을 유지했던 초()나라가 상징했던 남쪽 문화의 대표적 개념이다. 중국의 역사 전개는 ‘호’의 끊임없는 침략에 밀려 중원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월’로 밀려 내려가 서로 뒤섞이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 남북의 경계는 서북쪽에서 흘러내리는 진령(秦嶺)이라는 큰 산맥과 “귤이 물을 건너면 탱자로 변한다”는 동남부 회수(淮水). 이를 중심으로 남북이 드러내는 문화적 차이를 베이징(北京) 중심의 ‘경파(京派), 상하이(上海) 위주의 ‘해파(海派)’로 분류한 적도 있다.

 

중국에는 그런 다양한 인문, 혈통적 갈래가 존재한다. 얼마 전 몽골어를 기본 교육과정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에 북쪽의 내몽골 사람들이 크게 반발했다. 그 전에는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남쪽의 홍콩인들이 공산당 중앙과 격렬하게 맞섰다. 현대판 ‘호’와 ‘월’의 분규다. 지역의 다양성 존중보다는 중앙의 통제가 부쩍 강해지는 요즘 중국의 분위기가 엿보인다. 

 

[108] 가사와 바리때 

석가모니(釋迦牟尼)의 가르침이 중국 땅에 전해져 화려한 선종(禪宗)의 불교로 발전한 사실은 엄연하다. 중국 선종불교의 그 법맥(法脈)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중국만의 독특한 문화현상 중 하나는 ‘의발(衣鉢)’이라는 단어에서 영근다.

 

이 의발은 불법(佛法)을 닦는 고행자나 수도승들의 ‘의복’인 가사(袈裟), ‘밥그릇’이라고 풀어도 좋을 발우(鉢盂)를 가리킨다. 그냥 보면 ‘가사와 바리때’의 새김이지만 단어가 지닌 함의는 결코 범상치 않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하러 동쪽으로 온 이는 달마(達磨). 중국 불교의 가장 특별한 흐름인 선종의 1대 조사(祖師). 그를 이은 2대 조사는 혜가(慧可). 의지를 시험코자 했던 달마 앞에서 제 팔을 자른 기개의 소유자였다.

 

테스트에 합격한 혜가는 달마에게서 그가 입고 사용하던 가사와 바리때를 물려받는다. 거기에서 생겨난 흐름이 바로 이 의발로써 도통(道統)과 법통(法統)을 계승했다고 내세우는 현상이다. 중국에서는 보통 의발상전(衣鉢相傳)이라고 적어 ‘가르침이 스승과 제자를 통해 이어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풀이다. ‘의발’은 사람이나 집단, 큰 사회의 정당성 문제를 묻는 심각함이 서려 있는 단어다. 혈연으로 따지면 핏줄을 제대로 이은 적통(嫡統)에 닿고, 정치로 따지면 합법적 지위를 헤아리는 정통(正統)의 시비에도 이른다.

 

중국에는 그런 정통성을 따지는 문화가 아주 역연하다. 현재의 중국을 통치하는 공산당 또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민감하다. 그런 중국의 최고 통치자 직함을 미국이 교묘히 건드리고 있다. 미 국무부는 최근 시진핑(習近平)을 국가주석[President]으로 부르는 대신 공산당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려는 의도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109] 2世 위기

군왕(君王)이 죽으면 능()에 묻히지만, 최고 권력자였던 까닭에 사후(死後)에도 힘을 뽐낸다. 유력한 가문(家門)들을 그 주변에 끌어와 살게 해서다. 따라서 제왕(帝王)의 능 인근에는 고급 타운인 능읍(陵邑)이 들어섰다.

 

오릉소년(五陵少年)이라는 성어가 만들어진 토대다. ()나라 때 조성한 황제의 다섯 능인 오릉(五陵)에 서성거렸던 소년들이다. 임금의 능묘 주변에 몰려들어 살았던 ‘잘나가는 집안의 청년’들이다.

 

 

이들은 제 가문의 권세를 믿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던 청소년들이다. 요즘도 이 말은 집안 배경은 좋으나 비뚤어진 생활을 영위하는 젊은이의 지칭으로 쓴다. 환고자제(紈袴子弟)도 비슷하다. 흰 비단[] 바지[]를 입은 부잣집 자식들이다. 역시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가는 부유한 집안 후대(後代).

 

부모 세대의 영화를 이어받아 승승장구하는 2세를 요즘 중국에선 이대(二代)라고 적는다. 중국을 통치하는 공산당의 원로 자제는 홍이대(紅二代), 높은 지위에 올랐던 관료의 자식은 관이대(官二代), 재력을 이은 경우는 부이대(富二代)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110] 龍頭蛇尾 

성어(成語) 중에는 알고 보면 제법 심각한 내용이 많다. 사느냐, 죽느냐를 다투는 전쟁터에서 길러진 말이기 때문이다. 글 쓰는 법을 익히는 이에게 선생 등이 자주 일깨우는 수미상응(首尾相應)이 우선 그렇다.

 

이 성어는 글을 쓸 때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잘 호응해야[相應]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군대가 전투를 수행할 때 대열 전체를 유기적으로 잘 이끌어 싸워야 한다는 싸움터 경험에서 유래했다.

 

 

적과 싸워 이기려면 겉만 잘나서도 곤란하다. 말단의 세밀한 부분까지 잘 거둬야 한다. 앞만 번지르르하고 뒤는 흐지부지한 일은 그래서 경계 대상이다. 우리는 보통 이런 현상을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적는다.

 

그래서 일의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맺음 또한 깔끔해야 한다는 충고(忠告)가 퍽 많다. 유시유종(有始有終)이 대표적이다. 머리를 드는 ‘기두(起頭)’와 함께 꼬리를 거두는 ‘수미(收尾)’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지 못하면 시작은 있되 마감이 없는 유시무종(有始無終)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라는 철두철미(徹頭徹尾) 또한 같은 맥락이다. 시종여일(始終如一)이라는 성어도 그렇고, 마지막까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라는 메시지의 철저(徹底)라는 단어도 그렇다.

 

현대 중국의 뉴스를 자주 장식하는 유행어 하나는 난미(爛尾). 꼬리 부분이 썩어 문드러진 상태를 일컫는 단어다. 가리키는 대상은 짓다가 만 아파트, 세우다가 멈춘 ‘귀신 도시(鬼城)’ 등이다. 상업적 투기(投機)와 개발 차익을 노린 지방 관료의 부패가 그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이 말은 또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문화적 현상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많은 충고가 쏟아졌음에도 ‘시작과 끝’의 유기적 호응이 아직도 잘 이뤄지지 않으니 이 또한 중국의 특별한 현상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111] 길을 묻다 

정치적으로 뜻을 펴기 힘들어 여러 곳을 주유(周遊)하던 시절의 공자가 남녘의 초()나라를 지날 때였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은 모양이다. 제자 자로(子路)로 하여금 밭을 일구던 은자(隱者) 둘에게 길을 묻게 했다.

 

 

그러나 한 은자는 공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스스로 잘 알 텐데 뭘 다시 묻느냐”며 제대로 대꾸하지 않는다. 돌아와 사정을 알리는 제자의 말을 들은 뒤 공자는 탄식 속에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물었던 것은 물길 건너는 나루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일화는 ‘나루를 묻다’라는 뜻의 문진(問津)이라는 유명 전고(典故)로 전해진다. 여기서 ‘나루’는 사실 ‘길’이다. 아울러 지향(志向)이자 방향(方向), 더 나아가 마땅히 걸어야 할 ‘도()’까지도 지칭한다.

 

개인주의적 취향으로 유명했던 사상가 양주(楊朱)도 그런 적이 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섰던 이웃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그 이유를 묻는다. 이웃들은 “갈림길이 많아 놓쳤다”고 대답한다. 굳은 얼굴로 양주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라는 뜻의 기로망양(岐路亡羊)이라는 성어가 유래한 장면이다. 우리는 보통 ‘양 잃고 외양간 고치다’는 뜻의 성어 망양보뢰(亡羊補牢)를 먼저 떠올리지만, 길에 관한 양주의 깊은 사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는 그렇듯 ‘길’에 관한 모색이 깊다. 사는 길은 활로(活路), 그 반대는 사로(死路). 길을 묻는 일은 문로(問路), 길을 가리키면 지로(指路). 나아가는 진로(進路)도 살피지만, 물러서는 퇴로(退路)도 중시한다.

 

내수(內需)에 의존하자는 ‘내순환(內循環)’에 “내 힘으로 살아가자”는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구호가 나오는 요즘 중국이다. 이제껏 견고했던 개혁·개방이 꺾이는 분위기다. 방향을 잃을 수 있는 미로(迷路)일지 모른다. 우리도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112] 계란 볶음밥

일본 요리에서 흔히 ‘계란찜’으로 번역하는 자완무시(茶碗蒸し)는 일본 가정의 아주 일상적인 음식이다. 그러나 보기보다는 제대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주방에 들어선 사람의 요리 솜씨를 가늠하는 음식으로 손꼽힌다.

 

중국에서 그에 견줄 만한 음식은 ‘계란 볶음밥’으로 번역하는 단초반(蛋炒飯)이다. 역시 쉬워 보여도 제대로 갖춰진 맛과 풍격을 살리는 일은 어렵다. 밥알 하나하나를 씹을 때 느끼는 풍미까지 곧잘 따지기 때문이다. 주방(廚房) 선배가 신입 요리사의 실력을 테스트할 때 이 음식을 만들어 보라고 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일러스트=양진경

 

중국인들이 어린 시절을 회고할 때 곧잘 등장하는 음식도 이 계란 볶음밥이다. 모친이 하루 정도 지난 찬밥에 계란 두 알 정도를 사용해 기름을 적당량 쳐가며 만들던 ‘엄마표 계란 볶음밥’에 중국인들의 어린 시절 회고가 적잖게 깃들기도 한다.

 

중국을 한때 호령했던 국민당의 권력자 장제스(蔣介石)도 근엄했던 면모와는 달리 시간이 나면 손수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아내 쑹메이링(宋美齡)과 가족을 즐겁게 해줬다고 한다. 그의 생전 일기(日記)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625전쟁 때 참전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은 압록강을 넘은 뒤 곧 전사했다. 평안북도의 중공군 총지휘부가 있던 광산 동굴 앞에서 계란 볶음밥을 만들려고 불을 피웠다가 미 공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 중국 집권 공산당은 625전쟁을 제 입맛대로만 해석하고 있다. 미국에 대항한 의로웠던 참전으로 왜곡해 선전 중이다. 얼마 전 중국 유명 요리사가 볶음밥 잘 만드는 법을 올렸다가 누리꾼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날이 생일이었던 마오안잉의 죽음을 희롱했다는 것이 이유다. 음식은 괜찮은데, 모든 일을 입맛대로 지지고 볶다 또 튀겨대는 중국 문화가 참 문제다. 

 

[113] 가을바람의 소리 

“… 쟁그랑쟁그랑,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듯. 또한 적진을 향해 다가서는 병사들처럼 재갈을 입에 물고 빠르게 달리는데, 호령은 들리지 않고 그저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뿐(鏦鏦錚錚, 金鐵皆鳴. 又如赴敵之兵,銜枚疾走,不聞號令,但聞人馬之行聲).

 

가을밤에 책을 읽다가 문득 뜰로 나선 북송(北宋) 문인 구양수(歐陽修)의 귀에 들어온 소리 묘사다. ‘추성부(秋聲賦)’라는 제목의 이 글 속에서 그에게 가을은 우선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로 다가온다. 아울러 조용하며 빠르게 행군하는 군사들로써 드러내는 숙살(肅殺)의 분위기다.

 

 

가을은 그렇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북반구에 가을이 오면 식생(植生)은 차츰 말라가다가 잎을 떨군다. 겨울을 견디기 위한 식물 나름의 생존 대응이다. 그런 식물의 조락(凋落)을 부추기는 가을바람은 ‘쓸쓸’하다.

 

큰 거문고 슬()은 “쓰윽~ 쓱” 소리를 낸다. 그 둘을 합친 ‘슬슬’이 우리말 ‘쓸쓸’로 변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가을바람의 형용에 잘 등장한다. 소슬바람의 ‘소슬(蕭瑟)’도 같은 맥락이다. 메마른 잎과 가지를 스치는 으스스한 가을바람의 의성(擬聲)이다. 

 

 [114] 비즈니스와 末業 

전통적인 동양 사회의 직업 관념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학문이나 관료, 농업, 공업을 앞세운 뒤 영리(營利)가 큰 바탕인 상업을 마지막에 둔다. 그런 흐름에 따라 중국에서는 항상 상업을 말업(末業) 또는 말생(末生)으로 적었다. 농업에 치중하는 중농(重農) 사상이 골간을 이룬 사회경제 구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화(財貨)의 유통에 빠질 수 없는 상업은 명맥을 줄곧 유지했다. 상고(商賈)는 그런 상인들의 대표적인 지칭이다.

 

▲비즈니스와 말업 / 일러스트=김하경 

 

두 글자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움직이며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은 상()이다. 반대로 한곳에 자리를 잡고 물건을 팔면 고(). 따라서 좌고행상(坐賈行商)의 성어로 적으면 모든 비즈니스 종사자, 즉 상인을 가리킨다. 차별 속에서도 꾸준하게 업을 이뤄 돈을 쌓은 부자는 많았다. 부상(富商)이라거나 부고(富賈)라는 명칭으로 등장했던 사람들이다. 축적한 부로 호기롭게 돈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호민(豪民)이라고도 불렀다.

 

홍정상인(紅頂商人)이라고 적는 그룹이 있다. 상업경제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등장한 중국 청()나라 때의 상인들이다. ‘붉은 산호를 관모(官帽) 맨 위에 올린[紅頂] 상인’이라는 뜻이다. 달리 이르자면 관상(官商)이다. 재부를 바탕으로 높은 관직을 얻거나, 적어도 관변(官邊)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던 상인들이다. 왕조의 권력이 늘 완고한 관본(官本)의 위계 구조를 이뤄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상인 집단이다.

 

요즘 중국 사회도 예전과 다르지 않다. 최대 온라인 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총수였던 마윈(馬雲)의 핀테크 기업 앤트그룹 상장이 좌절했다. 시장을 강하게 통제하려는 중국 당국의 ‘불투명성’에 걸린 듯 보인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지만, 중국은 여전히 관본의 경직성이 비즈니스를 ‘말업’에 묶어두는 곳이다. 

 

[115] 움츠러드는 개혁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는 말은 중국에서 유명하다. 사라지는 것과 새로 등장하는 것의 대조다. 우리의 몸도 그와 같아서 새 양분을 들이면 이전의 그것은 자리를 비켜야 한다.

 

이른바 ‘신진대사(新陳代謝)’다. 새것[]과 옛것[]이 차례대로[] 사라짐[]을 가리킨다. 시간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하면 지나가는 해 보내면서 다가오는 해를 맞는 일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懷古)의 정서도 얼핏 읽히지만 사실은 다가오는 새것을 향한 주목(注目)이 더 강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성어가 그렇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아가자는 취지지만 ‘온고(溫故)’의 실제 목적은 ‘지신(知新)’이다.

 

 

조금 더 동태적인 움직임도 있다.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개선하는 일이다. 유가(儒家)는 그를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라고 했다. 나날이 새로워지며, 또 새로워져야 한다는 권유다. 성찰을 통해 이전보다 더 나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련 조어도 풍성하다. 혁신(革新)은 동물의 표피에 무두질을 해서 전혀 새로운 가죽으로 만드는 일이다. 쇄신(刷新)은 옛것을 긁어 없애 아주 새롭게 탈바꿈토록 하는 행위다. 갱신(更新)은 아예 새로 바꾸는 일이다.

 

요즘 중국의 관련 유행어는 창신(創新)이다. 기업이 새로운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자 벌이는 ‘창조적 혁신’을 일컫는다. 인터넷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 등 중국 기업인이 즐겨 쓰는 말이다.

 

중국 금융 체계의 개혁을 촉구했던 그의 최근 발언이 당국의 ‘괘씸죄’에 걸린 모양이다. 그가 이끄는 핀테크 앤트그룹의 상장이 줄곧 막히고 있다. 지금까지 통제와 규제가 공산당에는 더 중요한 듯하다. 장강 하구에 댐이라도 생긴 것일까, 앞뒤 물결의 흐름이 엉겨 큰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116] 큰 별과 작은 별 

중국의 국기(國旗)에는 다섯 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큰 별 하나가 왼쪽을 차지하고, 그 오른쪽을 작은 별 네 개가 둘러싼 모습이다. 큰 별은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 작은 별 넷은 각각 공인(工人), 농민(農民), ()자산계급과 민족 자산계급을 대변한다.

 

그러니까 공산당을 중심으로 각 계급의 사람들이 함께 뭉쳐 단결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공산당이 이끌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복종하는 그림이다. 이렇듯 중국에는 ‘중심(中心)’을 설정하려는 관념이 늘 돋보인다.

 

 

이 깃발의 설계도 사실은 매우 전통적인 흐름을 타고 있다.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에서 일찌감치 강조한 ‘북극성(北極星)과 뭇별’의 구조다. “임금이 덕정(德政)을 펼치면 뭇별들이 북극성을 싸고돌듯 높은 위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 내용이다.

 

이 공자의 발언은 ‘중성공북(衆星拱北)’이라는 성어로 남아 현대 공산당 집권의 중국 국기의 설계로 이어졌다. 나라 이름이 중국(中國), 문화적 자부심은 중화(中華), 지리적 관념은 중원(中原), 일상의 큰 덕목은 중용(中庸)이라고 적듯 ‘가운데[]’를 향한 콤플렉스에 가까운 집착이 엿보인다.

 

북극성과 뭇별의 그림은 나중에 달과 별의 구도로 진화한다. ‘중성공월(衆星拱月)’이다. 큰 달 주변을 두른 작은 별들이다. 지구의 위성에 불과한 달이 항성인 별을 압도할 수는 없지만, 땅에 발을 붙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문학적으로는 조조(曹操)가 이를 잘 활용했다. 월명성희(月明星稀)라는 시어(詩語)로 말이다. “달이 밝아지자 별빛이 희미해지다”라는 뜻이다. 제 위상을 한껏 높인 문학적 표현이다. 공산당 권력이 더 집중을 거치면서 뭇별들이 더 가물거린다. 공산당 후원의 국영기업이 활기를 얻고, 민영기업이 움츠러드는 국진민퇴(國進民退)의 요즘 현상이 꼭 그렇다. 

 

[117] 가난과 궁색 

“제 얼굴 때려 붓게 만들어 뚱뚱이처럼 보이다”라는 중국 속언이 있다. 뚱뚱함이 곧 부유함을 상징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냉수 마시고 이빨 쑤시다”라는 우리 그것과 조응하는 중국어다. 부자를 향한 동경, 가난에 대한 혐오가 드러난다.

 

가난과 부유함, 빈부(貧富)는 사람 삶이 그리는 희비(喜悲)의 쌍곡선이다. 부유함에 귀함이 따르면 부귀(富貴), 가난함에 지위의 보잘것없음이 붙으면 빈천(貧賤)이다. 사람의 호오(好惡)가 크게 갈리는 영역이다.

 

 

그러나 세속의 부귀와 빈천에 무릎 꿇지 않고 꿋꿋한 지향(志向)을 지녀야 한다는 독려도 뒤따른다. “부귀도 현혹할 수 없고, 빈천도 뜻을 꺾을 수 없다(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는 말이다. 맹자(孟子)가 ‘대장부(大丈夫)’의 조건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그런 성현(聖賢)의 격려에도 가난은 아무래도 달갑지 않다. 특히 거대한 사회 집단에서 빈부의 격차가 심해질 때는 문제가 복잡하다. 가난한 이를 도우려는 구빈(救貧)이나 활빈(活貧)의 움직임이 꼭 등장하게 마련이다.

 

중국은 요즘 탈빈(脫貧)을 외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가난을 모두 없애겠다”고 다짐한 시한이 올해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부빈(扶貧)에서 크게 상향한 국정 최대 목표다. 그러나 지난 5월 말 총리가 발표한 대로 중국 6억 인구의 한 달 수입은 1000위안( 16만원) 미만이다. 따라서 완전한 빈곤 탈출은 아직 구호에 불과하다.

 

중국이 또 걱정해야 할 대목은 ‘궁()’이다. 보통은 빈궁(貧窮)으로 병렬해 ‘가난’의 동의어로 쓰지만 본뜻은 다르다. 막다른 길에 몰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경우다. 코로나19, 가치 체계의 충돌, 공격적인 대외 정책으로 지구촌 반중(反中) 흐름이 아주 견고해졌다. 물리적 가난과는 다른 궁색(窮塞) 또한 중국이 풀어야 할 큰 과제다. 

 

 [118] 슬픈 원숭이 

원숭이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선은 곱지 않다. 원숭이가 주인공 캐릭터로 등장하는 ‘서유기(西遊記)’가 그렇다. 소설에서 원숭이 행자(行者)로 나오는 손오공(孫悟空)의 별칭 하나는 발후(潑猴).

 

 

원숭이를 가리키는 후() 앞에 붙은 발()은 물을 ‘끼얹다’ 또는 ‘튀기다’가 본래 새김이다. 그런 뜻으로 ‘생기가 물씬 돋다’는 활발(活潑), 물 튀기는 소리[]를 덧대 ‘생동감이 넘치다’라는 의미의 발랄(潑剌)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러나 나중에는 ‘짓궂다’ ‘못되다’ ‘괘씸하다’ 등의 뜻도 얻는다. 따라서 ‘발후’라고 적으면 성격이 포악하고 못된 원숭이라는 뜻이다. 그 손오공의 다른 별칭 하나는 심원(心猿)이다. 원숭이처럼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원숭이는 경계 대상이기도 하다. ‘서유기’의 현장 법사처럼 손오공의 이마를 짓누르는 긴고(緊箍)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닭의 목을 잘라 마구 까불어대는 원숭이에게 겁을 주자는 살계경후(殺鷄儆猴)라는 성어도 나왔다.

 

그런 원숭이의 울음은 아주 높은 옥타브를 뽐내지만 대개는 애처롭다. ‘단장(斷腸)’의 고사가 그렇다. 협곡에서 사람에게 잡힌 새끼 원숭이와 그를 쫓아오며 울부짖다 죽은 어미 원숭이 이야기다. 죽은 어미 원숭이 배를 갈랐더니 창자가 다 끊겨 있었다는 내용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발후’는 못되고 괘씸할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활발’과 ‘발랄’의 대명사다. 어쩌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를 창조적으로 이끈 민간 기업 이미지를 빼닮았다.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을 비롯한 중국 민간 기업의 쇠퇴가 뚜렷하다. 굵직한 대기업 총수들이 당국의 견제로 줄줄이 퇴진 중이다. “바람 거세고 하늘 높은데 잔나비 울음소리 슬프다(風急天高猿嘯哀)”는 두보(杜甫)의 시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119] 미인계 

가을에는 물도 시린 빛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맑은 햇빛과 공기 때문에 곱다는 느낌도 준다. 그 가을의 물을 뜻하는 한자 ‘추수(秋水)’는 여성의 눈매와 관련이 깊다. 특히 눈물이 비치는 여성의 고운 눈을 형용할 때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추파(秋波)는 남성에게 쓸 수 없는 단어다. 본래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을 가리켰다가 끝내는 여성의 눈가에 고인 맑은 물기, 또는 그런 고운 눈빛을 지칭했다. ‘추파를 던지다’라는 말은 처음의 뜻이 세속으로 내려앉은 결과에 불과하다.

 

▲미인계

 

미인의 형용은 아주 풍부하다.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가 대표적이다. 물고기와 기러기를 숨거나 내려앉게 만들며, 달이 얼굴을 가리고 꽃은 부끄럽게 한다는 뜻이다. 대단한 미모에 아름다운 경물들이 한발 물러나 비켜 앉는 경우를 표현했다.

 

미인이 한 번 뒤를 돌아보면 성이 무너지고, 두 번 고개를 돌리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경성(傾城)과 경국(傾國)의 미색(美色) 이야기도 있다.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을 가리키는 요조숙녀(窈窕淑女)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녀의 형용이다. 빨래터에서 옷 빨던 미인을 스카우트한 뒤 적국(敵國)의 군주에게 보내 환락에 젖게 해 그를 무력화한 스토리도 있다. 2500년 전 춘추시대 월()나라의 계략(計略)이었고, 등장하는 여인은 중국 4대 미녀의 으뜸으로 꼽히는 서시(西施). 이른바 ‘미인계(美人計)’의 대표적 사례다.

 

몇 년 전 중국 여성이 유망하고 젊은 미국 정치인들을 포섭했다가 사라진 스캔들로 미국 정계가 소란하다. 미국은 요즘 군사, 정보, 산업, 첨단 기술 부문 등 모든 영역에서 중국의 ‘침투’를 색출하려 부쩍 분주해졌다. 노련하며 집요한 중국의 모략(謀略) 전통에 허를 찔린 미국이 새삼스레 경각심을 높이는 형국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이다. 

 

[120] 댓글 공작 지침이 된 두보의 시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주역 마오쩌둥(毛澤東)이 자기 이름을 스스로 푼 적이 있다. “세상을 빛나게 하고(光澤大海), 동방을 널리 비추다(普照東方)”라는 내용이다. 이름 첫 글자 택()의 쓰임새가 먼저 돋보인다.

 

 

이 글자는 ‘못’ ‘늪’이라는 새김이었다가 물로 대상을 적시는 행위로 발전한다. 결국은 ‘남에게 베푸는 은혜’라는 뜻도 얻어 덕택(德澤)과 혜택(惠澤)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그래서 세상을 다스리는 자에게는 꽤 적합한 이름 글자다.

 

1989년 공산당 최고 권력자로 등장한 장쩌민(江澤民) 이름도 그렇다. 글자대로 풀면 ‘백성에게[] 공덕을 끼치다[]’다. ‘임금을 받들어 사람들에게 덕을 쌓다’는 존주택민(尊主澤民)의 유가(儒家)적 심성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현대 중국 최고 권력자 둘 모두 이 글자를 이름으로 썼으니 예사롭지는 않다. 이런 흐름으로 등장하는 문학적 표현 중 으뜸이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구다. 그는 가뭄 뒤 내리는 봄밤의 비를 “촉촉하게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다(潤物細無聲)”라고 표현했다.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春夜喜雨)’라는 시다. 대지의 뭇 생명 움을 틔우는 봄비의 고마움을 간절한 마음으로 그렸다. 함께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과 나를 동렬에 넣고 문제를 바라보는 휴머니즘의 시선이 큰 울림을 준다.

 

최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발생 뒤 소식 전파를 통제하면서 어용(御用) 댓글 부대에 두보의 이 시구를 지침으로 내렸다고 한다. ‘감쪽같이, 쥐도 새도 모르게 댓글 공작을 벌이라’는 주문이었다.

 

중국은 과거의 당당함과 현재의 초라함이 뚜렷이 대조를 이룰 때가 많다. 시인 두보의 명구가 ‘공작’의 음울한 터전으로 가라앉은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백성의 아픔에 함께 흘렸던 두보의 눈물은 아직 멈출 때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