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 [41] 중국의 持久戰 전략 - [80] 중국인의 門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 조선일보
2019.06.07
[41] 중국의 持久戰 전략
중국은 6·25전쟁을 대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지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뒤에 구호 하나가 더 붙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적다. 보가위국(保家衛國)이다. 집과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다. 당시 전쟁에 뛰어든 중공군 병력은 240만명 이상이다. 이들의 명칭은 중국 군대의 공식 이름인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이 아니라 인민지원군(人民志願軍)이다. 미국의 한반도 '침략'에 맞서려 인민들이 자원해 참전했음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물론 군대 건제(建制)는 해방군 그대로였고, 전력 추진과 보급 및 운송 등은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대외적으로 명분을 그럴싸하게 내세우고자 이름을 거짓으로 포장했던 것이다. 그 수많은 참전 중공군에게 '왜 우리가 싸우느냐'를 일깨우기 위해 만들었던 구호가 바로 '보가위국'이다. 국민을 전쟁에 대거 동원(動員)하기 위해서는 제 집과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이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毛澤東)은 1938년 '지구전을 논함(論持久戰)'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일본의 침략, 소련의 야욕, 세계대전의 전운(戰雲) 앞에서 중국의 전략적 선택 등을 거론한 유명 글이다. 그러나 핵심은 역시 국민 동원에 있었다. 단기간에 승패가 갈리는 싸움을 마다하고 저변을 일반 국민 모두로 넓혀 전쟁을 오래 끌어서 승리하겠다는 의도였다. 마오쩌둥의 이 글은 지난해 말부터 중국인들 사이에서 새삼 인기를 끌고 있다.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의 독려 덕분이다. 국민 다수의 희생을 무릅쓰면서 싸움에 나서려는 인구 대국 중국 특유의 전략이다. 집과 나라를 지키자는 구호 '보가위국'으로 중국이 새삼 무장하는 분위기다. 그로써 미·중 사이의 싸움이 오래갈 전망이다. 우리로서는 안으로만 감겨드는 시선을 밖으로 확 돌려야 할 때다.
[42] 長江의 앞 물결과 뒷물결
우리는 곧잘 조국의 영토를 강산(江山)이라는 말로 쓰기도 한다. '삼천리금수강산(三千里錦繡江山)'이 좋은 예다. 이 말은 국토 전체를 지배하는 권력을 가리킬 때도 있다.
중국에서는 타강산(打江山)이라고 적으면 '국가 권력을 손에 넣다'는 뜻이다. 현대 중국에 견줘 보면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등의 역할이다.
붉은 공산주의 이념으로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1세대다. 따라서 보통은 '홍일(紅一)'로 줄여 적는다. 이들과 혈연으로 이어져 다음 세대를 형성한 사람들은 '홍이(紅二)'로 부른다.
혁명 세대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習近平), 그에 앞서 권력 정상에 올랐던 장쩌민(江澤民) 등이 다 그렇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모진 싸움에 나섰던 앞 세대에 비해 누릴 게 많다.
그런 경우를 일컫는 말이 좌강산(坐江山)이다. 창업(創業) 1세대의 권력을 이어받아 다시 통치 권력을 즐기는[坐] 세대라는 뜻에서다. 이들에게는 보통 권귀(權貴)라는 표현도 따른다. 권력과 함께 높은 지위를 누려서다.
사회주의 중국 건국에 이어 개혁·개방의 대전환까지 이끌어낸 1세대에 비해 현재 중국을 지배하는 '홍이(紅二) 세대' 권력은 뭔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력과 지위에 이어 거대한 부(富)까지 장악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아울러 지나친 자신감에 휩싸여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의 경계감을 자극했다. 그 결과는 가파른 대립 국면이 부른 큰 위기 상 황이다. 잘나가던 경제는 비틀거리며 하강하는 추세고, 만연한 부패의 틀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는 중국 속언이 있다. 세대의 교체를 지칭한다. 그러나 장강에서 밀려 내려온 뒷물결이 앞 물결보다 맑아 보이지 않는다. 공산당 지도부의 의사 결정과 위기 대처 능력을 의구심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43] 바람 피하는 항구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하는 우리 예전 가요가 있다. 1954년 나온 '홍콩(香港) 아가씨'다.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홍콩을 그렸다. 홍콩의 역사·문화적 지칭은 '바람 피하는 항구'다. 중국인들은 피풍당(避風塘)으로 적는다.
그곳은 본래 중국 대륙에서 빠져나온 이민자들의 도피처였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중국 건국 뒤의 문화대혁명 등 극심한 혼란기에 대륙을 탈출한 사람들이 모여든 사회였다. 따라서 중국 현대사에 번졌던 여러 얼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초기 이민자들의 삶은 보통 바다를 떠나기 힘들었다. 형편이 여의치가 않아 방파제 안의 선상(船上)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배들이 모여 이룬 독특한 정경(情景)을 '피풍당'으로 적었다. 지금도 홍콩을 상징하는 요리에는 이 이름이 붙는다.
'바람 피하는 항구'의 이미지로 홍콩은 지금까지 독특한 위상을 이어왔다. 150여년에 걸친 영국 식민지로서의 설움도 간직했지만, 개방적 분위기와 자유로운 환경이 돋보였다. 공산당이 드리운 '죽(竹)의 장막' 너머로 신선한 자유의 공기를 불어넣는 곳이기도 했다. 1997년 주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뒤에도 홍콩의 자유는 이어졌다. 이전까지의 제도를 50년 동안 보장한다는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전향적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범죄인을 중국에 넘겨야 한다는 법 조항 때문에 크게 출렁였다. 대륙에 불리한 발언조차 못하게 하는 내용이라서 홍콩인들의 반발이 심하다.
공산당이 우선은 한 걸음 물러섰다. 법안 심의를 무기한 연기했다. 그러나 대륙에서 불어대는 바람은 홍콩에 남아 있는 자유의 숨결을 마냥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듯하다. '피풍당'에 몰려들었던 배들은 더 튼튼한 제방을 쌓아 거센 바람에 맞설까, 아니면 그곳을 떠날까. 홍콩이 이래저래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44] 진화 vs 天演
'evolution'이라는 영어를 진화(進化)라고 옮기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에서 이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그런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던 까닭이다.
메이지(明治) 때 일본은 이를 '진화'로 옮겼지만, 청말(淸末)의 중국은 '천연(天演)'이라고 적었다.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라는 책에 자신의 관점을 곁들여 '천연론(天演論)'으로 번역한 엄복(嚴復·1854~1921)이 주인공이다. 그는 생명체들의 경쟁을 물경(物競), 자연의 선택을 천택(天擇)으로 적었다. 그리고 다툼 끝에 살아남는 일을 최적자존(最適者存)으로 적었다. 생존경쟁(生存競爭), 자연도태(自然淘汰), 적자생존(適者生存) 등 일본이 옮겨 지금 우리가 쓰는 말들의 초기 중국어 번역이다.
서구의 문명을 보는 경이와 충격, 이어 우리도 각성하자는 차원의 사고가 배어 있는 역어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진화'에 비해 중국의 '천연'은 위기의식을 조금 더 짙게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진화'는 능동적인 사고를 담았다. 경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관념이며 전반적 서구화(西歐化)를 지향한다. 그에 비해 '천연'은 자연의 선택을 중시한다. 좀 더 수동적이며, 중국과 서양의 문명적 성과를 융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엄복은 '천연론'에서 경쟁과 다툼을 통한 진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국민의 윤리의식을 일깨 워 단합을 이룬다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천연론'은 현대 중국 지식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개혁·개방을 추진했지만 민주와 자유 등 서구의 가치체계에는 아주 냉담한 현재 공산당의 지향도 공교롭게 그 틀이다. 그러나 evolution의 번역에서 '진화'가 '천연'을 도태시킨 지 오래다. 이 점은 지금의 중국에 어떤 의미일까.
[45] 자금성 붉은 담 위의 난초꽃
베이징(北京)의 큰 상징은 자금성(紫禁城)이다. 명(明)과 청(淸) 두 왕조의 황제(皇帝)가 머물렀던 황궁(皇宮)이다. 1925년 이후 고궁(故宮)으로 불렀지만 원래 명칭은 그렇다. 자금(紫禁) 두 글자는 따로 떼서 이해해야 좋다. 앞 글자는 중국 천문(天文)에서 가장 높은 별자리, 자미성(紫微星)을 가리킨다. 뭇 별을 거느리는 최고 별이다. 중국의 전통 천문은 땅 위의 권력을 그대로 투영했다. 지상(地上) 최고 권력자인 황제(皇帝)와 그 주변에 있는 대신(大臣)의 역할 등을 하늘의 별자리로 옮겨 설명한다. 그 복판이자 가장 높은 곳의 별 자미성은 곧 황제의 상징이다.
둘째 글자 금(禁)은 새김 그대로다. 사람의 통행을 제한하는 행위다. 문의 출입을 막았던 문금(門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금'은 황제의 거처에서 일반인 통행을 아예 막는다는 뜻이다. 앞 글자 자(紫)는 색조로 볼 때 자줏빛이다. 보라색이 비치는 붉은색 정도로 볼 수 있다. 자금성 외부의 모든 담을 붉은색으로 칠한 이유다. 그로써 자금성이 지니는 이미지는 삼엄(森嚴)함이다.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느끼게 한다.
요즘 홍콩의 시위가 빈번해졌다. 이곳 상징은 자형화(紫荊花)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양자형(洋紫荊)이라고 적어야 옳다. 홍콩에서만 자생했던 일종의 난화(蘭花)다. 천연 자줏빛을 자랑하는 예쁜 꽃이다. 홍콩에서만 자랐던 이 꽃 이름 앞에 붙었던 '양(洋)'을 없애고 본래 달리 있었던 중국 토종 '자형화' 이름을 매긴 때가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귀속한 1997년이다. 이후 이 '자형화'는 홍콩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 전역의 지배력을 상징하는 공산당과 자유·민주를 고수하려는 홍콩의 지향이 충돌하는 요즘이다. 삼엄한 자금성 담 위로 자줏빛 자형화가 자꾸 고개를 쳐드는 형국이다. 꽃의 생명력이 견고한 담을 넘을까 어떨까.
[46] 현대 중국인의 民生苦 셋
2000년대 들어 도시의 중국인에게 유행했던 '세 마리 뱀' 이야기가 있다. 검은 뱀인 흑사(黑蛇), 하얀 뱀 백사(白蛇), 안경을 걸친 듯한 안경사(眼鏡蛇)다. 도시의 중국인을 괴롭히는 세 존재다. 검은 뱀은 제복을 입은 공무원이다. 경찰을 비롯해 철거 및 단속을 집행하는 도시 관리 공무원이다. 거리에서 상업 행위 등을 하는 일반인에게 가장 무섭다. 돈을 상납받는 관행이 있어서 '뱀'으로 꼽혔다. 하얀 뱀은 흰 가운을 걸친 의사나 간호사다. 입원, 진료, 수술 등을 할 때 '촌지'를 밝혔던 의료 종사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안경사'는 실제 코브라의 지칭인데 눈 주위의 무늬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중국 민간이 가리켰던 대상은 학교 선생님이다. 역시 촌지를 탐해서 뱀 취급 받았다.
요즘 중국 민생을 괴롭히는 세 주제가 있다. 이를 보통은 '세 개의 큰 산(三座大山)'이라고 부른다. 본래는 사회주의 건국 직후 청산 대상이었던 '제국주의(帝國主義)' '봉건주의(封建主義)' '관료자본주의(官僚資本主義)' 등 셋을 가리켰다. 그러나 지금은 의료(醫療)와 주택(住宅), 교육(敎育) 등 서민의 세 가지 어려움을 지칭한다. 너무 높은 의료 비용, 언감생심인 도시 주택 구입, 2세 교육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 등을 가리킨다. 이 셋을 '산'에 견주는 것은 중국의 언어 습성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길을 가는 행위, 행로(行路)의 과정을 인생과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평지(平地)를 가다가 어려움에 봉착하는 때를 험한 산길로 설명한다.
가기 힘든 산길 기구(崎嶇), 좁고 좁아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길 애로(隘路)가 있다. 방향을 놓치기 쉬운 길은 기로(岐路), 앞과 뒤가 막힌 곤경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그런 험한 길에 뱀까지 들끓으면 큰일이다. 중국만의 얘기는 아닐 테다. 그러나 이런 지경에 빠지는 서민이 적을수록 바람직한 사회다.
[47] 싼샤댐과 人定勝天
자연에 감응하는 사람, 그래서 하늘과 인간이 하나를 이룬다는 뜻의 성어가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이 녹아 있다.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자연을 어떻게 보느냐를 말할 때 흔히 등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말도 전해진다.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있다는 인정승천(人定勝天)이다. 여기서 '인정(人定)'은 사람의 사고나 행위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환경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의 '천인합일'은 주로 관념적인 흐름이다. 유가(儒家)와 불가(佛家), 도가(道家) 등 종교철학 영역에서 각자 깊은 해석을 시도했다. 촘촘한 사유의 체계를 지녀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중국인의 자연관을 대표했다고 보기 힘들다.
여성의 발을 칭칭 묶어 끔찍한 변형을 이끌어내는 전족(纏足), 남성의 생식기를 제거해 권력의 도구로 부렸던 내시(內侍), 비늘 등을 뜯어 괴상한 모습으로 만들었던 기형 금붕어 전통과 습속 등을 보면 중국의 '천인합일'은 어디까지나 추상과 관념의 차원이다.
중국인의 더 현실적인 자연관은 '인정승천'이다. 중국 대지를 오갔던 수많은 재난, 그를 이기고 땅 위에 서 있으려는 중국인의 사고와 감정이 진하게 배어 있는 말이다. 끝없이 도전해 산을 옮기겠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화가 그렇다. '인정승천'식 사고의 현대판 결정(結晶)은 싼샤(三峽)댐이다. 높이 185m, 길이 약 2.3㎞의 댐으로 장강(長江)의 흐름 을 막은 유사 이래 최대 토목 건설 공사다. 아울러 중국을 지배하는 공산당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거대 공사였던 만큼 뒷말도 무성하다.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도 자주 나온다. 최근에는 댐의 일부가 비뚤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와 대단한 화제다. 치수(治水)에 이은 치국(治國)의 상징으로 이를 내세우는 공산당으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48] 중국의 黑社會
건달이나 깡패 등을 일컫는 중국 단어는 유맹(流氓)이다. 본래는 전란이나 재난 등에 쫓겨 정처 없이 떠도는[流] 백성[氓]을 가리켰다. 따라서 유민(流民)이라 적어도 무방하다.
조직을 갖춘 폭력배는 흑사회(黑社會)로 적는다. 현대에 들어와 생긴 조어(造語)다. 전통적 개념은 방회(幫會)다. 먼 거리를 이동하며 스스로 무장해 각종 위험에 대응해야 했던 상인 그룹, 즉 상방(商幫)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청(淸)대에 대운하에서 조운(漕運)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조직했던 청방(靑幫)이라는 집단이 아주 유명하다. 지금도 대만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한때 중국을 다스렸던 장제스(蔣介石)도 이들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고 알려졌다.
홍방(紅幫)이라고도 적는 홍문(洪門)도 그렇다. 백련교(白蓮敎), 대도회(大刀會), 가로회(哥老會) 등으로 확산하면서 중국 민간 사회를 주름잡았다. 화교들이 세웠던 치공당(致公黨)은 이들의 한 세력이 정치화한 결과다.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주역인 쑨원(孫文)도 홍문의 일원이었다.
흑사회의 조직은 간단치 않다. 범죄를 저지르고, 행패를 부리는 면모는 극히 일부다. 유명한 정치인과 기업인 등 명망가들이 깊숙이 몸담았던 사례도 적지 않다. 중국이라는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두 요소를 다 지녀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흑(黑)과 백(白)을 동가(同價) 개념으로 병렬하는 중국식 흑백양도(黑白兩道) 사고의 한 단면이다.
홍콩은 홍문의 한 갈래인 삼합회(三合會)로 유명하다. 폭력을 주조(主調)로 하는 홍콩 누아르 영화의 큰 토대다. 반중(反中) 시위에 나선 홍콩인들을 그곳 폭력 조직이 무차별 구타해 또 화제다.
마침 중국에서는 조직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캠페인이 한창이다. 위기감을 느낀 홍콩 폭력 조직들이 중국 당국에 충성을 다짐하려 그랬던 것일까. 어쨌거나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라 홍콩 사태는 더 꼬였다.
[49] 중국인, 華人 그리고 唐人
중국인을 지칭하는 말은 여럿이다. 우선은 한인(漢人)이다. 초기에 중국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한(漢) 왕조의 신하와 백성을 가리켰다. 현대 중국의 주류를 이룬 '한족(漢族)'이라는 호칭의 토대다.
화인(華人)이라는 이름도 있다. 주변의 여러 민족과 견줘 스스로를 더 우아하게 부르는 말이다. 자신을 세계의 중심, 주위 사람을 오랑캐로 치부하는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설정이다.
더 고풍스러운 표현은 '화하(華夏)민족'이다. 옛 중국 정통성의 한 갈래인 하(夏)를 덧붙였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의 통칭은 화교(華僑)다. 화민(華民)으로도 적는다.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는 화상(華商)이다. 출신 지역에 따르는 경우도 있다. 광둥(廣東) 출신은 월인(粤人), 푸젠(福建) 출신 일부는 민인(閩人)이다.
요즘은 쓰임새가 적지만 외국에 잘 알려진 중국인 호칭은 사실 당인(唐人)이다. 우리식으로 풀면 '당나라 사람'이다. 해외에 오래 거주해 고향을 찾을 기회가 적었던 중국인들의 정체성은 실제 이 '당나라'가 우선이다.
해외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인 차이나타운을 보통은 당인가(唐人街)라고 적었다. 이 화교들이 추억을 떠올리며 고향을 부르던 이름은 당산(唐山)이다. 중국 전통 복장은 당장(唐裝)으로 적기도 한다.
해외에 나가 있는 중국인들은 개방성의 한 표상이다. 땅에 얽매이지 않고 바다로 나가 일찌 감치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가장 개방적이었던 당나라 국호를 제 정체성의 상징으로 간직하고 있다.
중국이 떠오르면서 지구촌 여러 국가와 마찰을 빚고 있다. '중화'라는 명칭에 갇혀 자부심만을 내세울 때 나오는 현상이라고 봐야 좋을 듯하다. 그에 비해 '당인'은 어감이 낫다. 호칭에 담긴 개방성과 포용성 때문이다.
[50] 중국인이 사랑하는 꽃
중국에는 나라를 상징하는 꽃, 국화(國花)가 아직 없다. 이제야 나라꽃을 선정하느라 분주하다. 올해 초 중국 화훼협회가 앞장섰다. 일반인 33만20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했다. 우선은 모란꽃이 가장 유력하다. 한자로는 목단(牧丹)이다. 부귀(富貴)의 상징이어서 현세적 가치를 중시하는 중국인 기호에 딱 맞는다. 크고 듬직하며 색깔도 화려해 '꽃의 왕[花中王]'이라고도 부른다. 화훼협회 여론조사에서 거의 80%에 이르는 지지율을 보였다.
그다음으로 꼽힌 꽃은 매화(梅花)다. 겨울의 모진 추위를 이겨낸 뒤 먼저 망울을 터뜨리는 꽃이다. 삶의 고달픔을 이겨내는 의지의 상징이다. 모란 못지않게 중국인 심성에 어울리지만 매화는 이미 대만 국화라서 12%를 조금 웃도는 지지에 그쳤다. 난초꽃은 3위에 꼽혔다. 부드럽고 우아한 자태를 지녔다.
그다음은 연꽃이다. 중국인은 보통 이 꽃을 하화(荷花)로 적는다. 가을에 소담하게 꽃을 피우는 국화(菊花)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은 곧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全人大)에 상정해 나라꽃을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불청객' 하나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부추꽃, 즉 구채화(韭菜花)다. 모란이나 매화, 국화 등과 견주면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이 부추를 꼽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이 '부추'는 곡절이 남다르다. 사람들은 위에 자라난 부분을 베어 먹지만 부추는 금세 또 자란다. 그런 속 성 때문에 중국 증시에서는 부추를 '개미 투자자'에 비유한다.
당하고 털리면서도 계속 증시에 뛰어드는 소액의 개인 투자자다.
'부추를 베다[割韭菜]'라는 말도 자리를 잡았다. 유력한 계층이 힘없는 사람의 재산 등을 부추 베어 먹듯 가로챈다는 뜻이다. 나라꽃 선정에서 이 부추가 줄곧 주목받았다니 개혁·개방 41년의 현대 중국 민생(民生)도 아주 고달픈가 보다.
[51] 중국의 '착하게 살자'
서방 언론들이 '디지털 레닌주의'로 표현한 중국의 사회 공공 신용 체계(社會公共信用體系)가 신속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으로 면밀한 감시망을 구성해 사회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했다. 주요 도시별로 현지 상징물을 앞세운 새 '도덕 지표'도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쑤저우(蘇州)는 '계수나무 꽃 점수(桂花分)', 항저우(杭州)는 '첸장 점수(錢江分)', 푸저우(福州)는 '백로 점수(白鷺分)' 등이다. 개인의 준법성을 점수로 따지는 시스템이다. 교통과 쓰레기 분리 배출 등의 준법 여부, 개인의 채무 불이행, 정부 방침에 저항하는 행위 등을 점검한다. 당국이 권장하는 항목을 실천에 옮기면 좋은 점수를 얻어 혜택을 누린다. 최근 통계로는 중국인 9억9000만명, 기업 2591만곳이 모두 감시 범위에 들었다. 지난해에는 이로 인해 550만명이 기차표를 끊지 못하는 '벌'을 받았고, 각종 세금을 포탈한 128명은 아예 중국에서 쫓겨났다.
이 시스템은 첨단 디지털 기술로 사회의 신용 체계를 강화하는 점에서는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정치적 통제가 앞설 경우 정부의 모든 정책에 순응만 하는 백성, 즉 순민(順民)을 양산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아울러 정부가 권장하는 헌혈(獻血) 등을 통해 높은 도덕 점수를 얻으려는 '구매 심리'가 끼어들어 진정한 도덕성을 키울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목숨 걸 고 진실과 믿음을 지키고자 했던 '성신(誠信)'의 전통적 도덕률과도 상관이 없다는 지적이다. 마침 지난 6월 미국 유명 잡지 '사이언스(Science)'가 은행, 극장 등에 연락처가 적혀 있는 돈지갑을 떨어뜨려 두고 벌인 정직성 실험에서 중국은 조사 대상 40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현대 중국이 가고자 하는 길이 다른 나라와는 여러 가지로 차이를 드러낸다.
[52] 광둥과 홍콩의 人文
우링(五嶺)이라는 험준한 산지(山地)를 남쪽으로 넘으면 중국의 끝자락 광둥(廣東)이다. 다른 말로는 영남(嶺南)이라고 적는다. 이 지역 인문(人文)이 지니는 특색의 키워드는 일탈과 자유, 그리고 변혁이다. 중국 당국이 개혁·개방을 펼치면서 가장 주목받던 곳도 광둥이다.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고심에 고심을 거쳐 내놓은 중앙정부의 '정책(政策)'은 늘 이곳 '대책(對策)'의 맞바람에 흔들렸다. "위에서 정책을 내놓으면 아래에서는 대책을 마련한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가장 유행했던 곳이 광둥이다. 정부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제 편의대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만큼 광둥은 '중앙'에서 거리상으로 멀고,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지방'이다.
일탈을 꿈꾸는 인물도 많았다. 우선 중국 3000년 왕조 역사를 뒤엎은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주역 쑨원(孫文)이 이곳 출신이다. 장구했던 왕조의 명맥을 단숨에 끊어버린 혁명의 풍운아다. 청(淸)나라 말기 대규모 전쟁의 피바람을 일으킨 민란,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의 시발점도 광둥이다. 홍수전(洪秀全) 등 태평천국 운동 지도부 인물 대부분은 광둥에서 태어났거나 자랐다. 1898년에 청나라가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개혁은 보통 '변법유신(變法維新)'으로 부른다. 입헌군주(立憲君主) 제도 등을 도입하고자 했던 막바지 혁신의 몸부림이었다. 이를 주도했던 강유위(康有爲)와 양계초(梁 啓超)도 모두 광둥이 고향이다.
요즘 중국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홍콩은 광둥 지역의 이런 인문을 물려받아 더 발전시킨 곳이다. 오랜 영국 식민지 생활을 거치며 체득한 자유와 법치의 틀도 있어 중국과 갈등은 깊어져만 간다. 중앙이 내놓은 '정책'에 '대책'을 펼치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그를 거부하는 수준이다. 홍콩 사태가 더 오래갈 전망이다.
[53] 주원장이 明을 세운 힘
명(明)을 세운 주원장(朱元璋)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 경솔함을 눌러 채비를 더욱 견고하게 갖추도록 이끈 주승(朱升)이다. 주원장이 주변의 군벌들과 거친 전쟁을 치르며 왕조 창업을 위해 다가가던 무렵이었다. 초야에 숨어 있던 주승을 찾아간 주원장은 먼저 천하 통일을 위한 방책을 물었다. 주승은 짤막한 권유를 건넨다. "성을 높이 쌓고, 식량을 널리 모으며, 왕을 서둘러 칭하지 말라(高築墻, 廣積糧, 緩稱王)." 왕조 건업에 혈안이었으나 영리했던 주원장은 재빨리 이 말의 요체를 알아들었다. 그에 따라 자신의 근기(根基)를 튼튼히 다지고, 전쟁 수행을 위한 경제력 확보에 나서면서 창업 시점을 앞당기고자 서두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명 왕조의 건국자로 우뚝 선다. 현대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毛澤東)도 이를 패러디했다. 옛 소련과의 대립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72년이었다. 그는 이런 지시를 내린다. "방공호를 깊이 파고, 식량을 잘 모으며, 패권을 추구하지 말라(深挖洞, 廣積糧, 不稱覇)."
주승의 말은 '주원장의 개국삼책(開國三策)', 또는 '아홉 글자 방침(九字方針)'으로 지금까지 전해온다. 국가를 이끄는 사람, 큰일을 이루려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되새기게끔 하는 말로도 유명하다. '성을 높이 쌓는 일'은 제 안전의 토대를 무너뜨리지 말라는 충고다. '식량을 널리 모으는 일'은 제 동력(動力)을 잃지 말라는 권고다. '성공을 서둘지 않는 일'은 명분보다 실리(實利)에 주목하라는 뜻이다. 주원장의 후대인 현재의 중국인은 이 가르침을 절반 정도는 이뤘다. 요즘 많은 문제에 봉착했지만, 근간을 잘 유지해 개혁·개방으로 국부(國富)를 쌓았다. 이 권유가 정말 필요한 곳은 어쩌면 요즘의 우리다. 안보의 근간이 흔들리고 경제는 어려운데, 명분을 다투느라 실리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으니 꼭 그렇다.
[54] 돼지고기와 중국인
집에 돼지를 키운다? '집'의 한자 가(家)의 풀이다. 주거용으로 지은 건물[宀·면]에 돼지[豕·시]가 들어앉은 꼴이다. 처음부터 그 동물이 '돼지'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중국인들은 돼지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집'으로 적었다. 중국인들의 돼지 사랑은 아주 유명하다. 4대 기서(奇書)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 하나는 저팔계(豬八戒)다. 돼지 형상으로 맹활약을 하는 캐릭터다. 아울러 한자 가(家)의 예에서 보듯이 돼지를 일찌감치 재산으로 다룬 흔적이 있다.
중국에서 돼지는 또 왕성한 생명력,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상(吉祥), 그리고 복(福)을 상징한다. 오랜 농경(農耕)의 습속 때문에 돼지를 가장 잘 키울 수 있던 요인이 한몫했다. 따라서 돼지는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육류다. 풍성한 중국 음식 중에서도 돼지고기는 특별하다. 북송(北宋)의 유명 문인이자 정치가 소동파(蘇東坡)는 지방에서 벼슬할 때 자신이 특별히 제조한 돼지고기 요리를 선보였다. 이른바 '동파육(東坡肉)'이다. 큼직하게 덩어리로 자른 돼지고기를 비계와 살 그대로 넣고 간장 등으로 조린 음식이다. 중국 최고 요리의 하나로 꼽힌다. 그 밖에도 각 지역 대표 음식 중에서도 돼지고기 요리는 사람들의 눈길을 먼저 끈다.
그런 전통과 취향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돼지고기를 소비하는 곳이 중국이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인 중국 인구가 소비하는 돼지고기 양은 지구촌 소비량의 절반이 다. 2015년 기준 5489만t이다. 올해는 기해(己亥)년으로 마침 돼지의 해다. 돼지를 가장 좋아하는 중국의 돼지해에 돼지 파동이 심상찮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수많은 돼지가 죽어 넘어지고, 미·중 무역 갈등과 경기 하강 여파로 돼지고기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민심마저 불안하다. 게다가 홍콩 사태까지 겹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중국의 가을도 퍽 소란하다.
[55] 중국 '큰 형님'들의 쓸쓸한 퇴장
부형(父兄)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단어다. 아버지와 형을 동렬에 놓았다는 점이 특색이다. 혈연을 바탕으로 적장자(嫡長子) 중심의 가족 관계망을 형성하는 중국의 오랜 전통, 종법(宗法)과 관련이 있다. 종법의 체계에서 가부장(家父長)인 아버지의 역할은 퍽 크다. 집단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사라졌을 때 자리를 물려받는 존재가 형이다. 따라서 중국은 '형님'을 믿고 따르는 문화가 꽤 발달했다.
문헌에서는 형장(兄長)이라는 말을 잘 쓴다. 그러나 입말에서는 '다거(大哥)'가 훨씬 일반적이다. 우리식으로 옮기자면 '큰 형님'이다.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자주 나와 친숙한 말이다. 대형(大兄)이라는 표현도 있다. '다거'와 같은 맥락이다. 노형(老兄)은 그를 더 높인 호칭이다. 동년배의 친구를 높여 부르는 말은 인형(仁兄)이다. 같은 연배거나 연령이 다소 낮아도 높여 부르면 세형(世兄)이다.
대형(大亨)과 대관(大款)이라는 표현도 있다. 앞은 19세기 상하이(上海)에서 나왔다. 마부 좌석이 맨 뒤에 있는 이륜(二輪) 호화마차가 처음 영국에서 들어왔을 때 마차의 이름 핸섬(Hansom)을 헝성(亨生)으로 번역했고, 그 소유자를 대형(大亨)으로 줄여 불렀다. 이를테면 '돈 많은 큰 형님'이다. 대관(大款)도 재물[款]이 많은 남성의 존칭이다.
중국의 '돈 많은 큰 형님'들 퇴조세가 뚜렷하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馬雲) 등 민간 거대기업 창업자 들이 현직에서 물러났거나 곧 퇴진할 모양이다. 홍콩의 최대 부호 리카싱(李嘉誠)은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발을 빼는 중이다. 중국 공산당이 국유 및 국영기업을 육성하고 민간기업의 영역을 축소하려 추진하는 이른바 국진민퇴(國進民退), 민간기업을 사실상 국유화하려는 공사합영(公私合營)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지난 40년의 중국 개혁·개방 기조가 크게 꺾이고 있다.
[56] 호리병박과 중국 국경일
중국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식물 중 하나는 호로(葫蘆)다. 우리는 보통 호리병박이라고 부른다. 줄기가 여럿 감기며 올라가는 덩굴성이며 씨앗도 많다. 중국인이 이 열매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호로와 중국어 발음이 비슷한 단어가 복록(福祿)이다. 행복, 출세해서 얻는 높은 샐러리의 뜻이 담겨있다. 게다가 호로가 지닌 복잡한 덩굴과 풍부한 씨앗은 번영(繁榮)에 다산(多産)까지 의미한다. 색깔까지 황금색이다. 커다란 박을 몇 개 엮으면 물에서도 뜬다. 부(富)를 상징하고, 홍수에서도 사람 목숨 건지는 구명(救命)의 용도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그런 호리병박에 장수(長壽)의 기원까지 곁들이면 최고다. 그래서 진짜 호리병박을 말려 그 위에 장수를 축원하는 글귀를 새겨 선물하는 습속이 발달했다. 행복과 출세, 거기다가 장수를 축원하는 뜻이다. 아울러 다산과 번영도 상징하니 중국인의 선물로서는 '센스 만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에서 맞이하는 기쁨, 즉 경사(慶事)를 향한 중국인들의 집착은 대단하다. 전란과 재난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닥쳤던 역사적 환경에서 중국인들이 키운 현세적 가치관이 큰 토대다. 기쁨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글자 하나는 경(慶)이다. 옛날에는 매우 귀했던 사슴 가죽[鹿], 사람의 마음[心], 어떤 행위[攵]를 표현하는 글자다. 따라서 값비싼 사슴 가죽을 선물로 주는 동작, 또는 그 마음을 뜻한다.
이 글자로 만들어진 단어는 무수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 집안에 닥친 기쁜 일은 가경(家慶), 과거 급제의 기쁨은 과경(科慶), 후대가 선대의 덕으로 받는 복은 여경(餘慶)이다. 기쁜 일 그 자체는 희경(喜慶)이다.
내달 1일은 중국의 건국 70주년 국경(國慶)이다. 그러나 하강하는 경제, 미국과의 분쟁에 대외 환경까지 다 험악하다. 대규모 열병식 등 이벤트로 중국이 이 분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57] 더 굳어지는 중국의 얼굴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은 늘 무겁다. 도시의 얼굴인 천안문(天安門) 광장이 특히 그렇다. 옛 황궁(皇宮)인 자금성(紫禁城)의 붉은 담이 우선 일반인의 접근을 가로막고, 광장 복판으로는 과거 최고 권력자만이 거닐던 황도(皇道)의 축선이 지난다.
현대 중국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의 최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을 비롯해 건국 영웅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화와 그 시신이 놓인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불만을 지닌 사람이 시위를 할라치면 편복(便服) 경찰이 순식간에 나타나 즉각 제압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공산당 최고 권력의 선율(旋律), 옛 황제 권력의 기운이 그대로 살아 흐르는 곳이다. 그래서 베이징은 예부터 '천자의 발밑[天子脚下]'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백성은 권력에 짓눌려 말 잘 듣는 백성, 순민(順民)의 숙명을 피할 수 없었다.
베이징의 다른 이름은 많다. 춘추시대 연(燕)나라가 있었다고 해서 연경(燕京)으로 적었고, 북쪽의 깊고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유주(幽州)로도 불렀다. 수도가 들어서 있는 곳이라 경성(京城), 권력의 교체 등으로 수도 지위를 잃었을 때는 북평(北平), 행정구역 명칭을 따를 경우엔 탁군(涿郡), 몽골의 원(元)나라가 지배할 때는 대도(大都)였다.
그러나 베이징의 대표적 명칭 중 으뜸은 계(薊)다. 가시가 돋은 식물 엉겅퀴의 한자다. 이 식물이 베이징 일대에서 잘 자랐던 모양이다. 약 3000년 전 이곳을 지칭했던 이름으로 문헌에 일찍 등장한다.
서양에서 유래한 꽃말로 보면 엉겅퀴는 '엄격' '근엄'이다. 손을 찌르는 가시가 많아서 그렇다. 사람을 억누르는 베이징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 건국 70주년 대규모 열병식 이후로 집권 공산당은 내부 통제를 더욱 강화할 분위기다. 개혁·개방으로 조금 풀리는가 싶었던 중국의 얼굴이 더 굳어지며 딱딱해질 듯하다.
[58] 고자질 문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리는 화살이 있다. 무방비 상대에게 치명적 타격을 주는 암기(暗器)다. 그런 행위를 암전상인(暗箭傷人)이라고 적는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칼을 품어 상대를 해친다. 소리장도(笑裏藏刀)다. 중국에서는 이런 성어가 참 많이도 발달했다. 정상적 방법이나 절차를 무시하고 목적을 이루려는 행위를 가리킨다. 대개는 남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로를 따른다. 비겁함, 졸렬함, 부당함의 요소가 다 들어 있다. 그렇게 남을 해치는 행위 하나가 '고자질'이다.
현대 중국에서는 고밀(告密)이라고 적는다. 대상의 약점을 캐서 다른 이에게 알리는 행위다. 은밀하게 벌이는 '남 뒤통수 때리기'다. 소보고(小報告)로도 적는다. 정식으로 정해진 체계가 아니라 몰래, 비정상적 계통을 따르는 보고다. 역시 남의 잘못을 슬쩍 상부에 알리는 일은 소회보(小匯報)다. 달리 고발(告發), 고알(告訐), 밀고(密告)라고도 적는다. 우리는 같은 맥락의 행위를 적을 때 투서(投書)라는 말을 더 잘 쓴다. 4~6세 아동의 발달 심리에는 이런 '일러바치기'가 등장한다. 규칙을 어긴 사람을 견제코자 보이는 심리라고 한다. 그러나 사회화(社會化) 과정이 더 펼쳐질수록 이런 고자질 행위와 심리는 줄어든다.
그런 고자질 심리가 사회적으로 흐름을 형성하면 문제다. 극심한 좌파적 실험이었던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불거졌던 사람 사이의 '반목'과 '불신'은 중국에서 어느덧 고자질 문화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특히 학생이 선생을 고자질하는 사례가 아직 빈발한다. 최근에는 중앙민족대학에서 티베트 불교를 전공했던 교수가 SNS에서 학생에게 "불교를 전공했으면서 쓸데없는 정치 얘기를 왜 하냐"는 고자질성 훈계를 듣고 말문이 막혔단다. 분열과 대립 요소만 키워 퇴행하는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닮을 수도 있을 '유아기 발달 심리'일지 모른다.
[59] 담 안에 또 담
중국 옛 왕조의 바깥을 두르는 크고 긴 담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이었을 테다. 그 담을 넘어 다시 중국 수도에 들어서려면 베이징성(城)의 견고한 벽을 통과해야 한다. 거기서 또 중국의 권력 중심에 진입하려면 자금성(紫禁城)의 높은 담과 마주친다. 개인 집을 방문해도 마찬가지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사방 집채가 모두 안쪽 뜰을 향해 있는 대표적 전통 주택 사합원(四合院) 역시 완연한 성채의 모습이다. 그 문에 들어서면 안팎을 가르는 조그만 벽이 또 발길을 가로막는다. 소장(蕭墻)이라고도 적고, 또 조벽(照壁)으로도 부르는 '담 안의 담'이다. 그래서 중국과 제대로 교류하려면 국가의 울타리, 왕궁의 벽, 개인의 담을 다 넘어서야 우선 가능하다. 또 중국인의 울타리 안에 확실하게 몸을 들이려면 '소장'이나 '조벽'과 같은 크고 작은 무수한 담 행렬을 넘어야 한다.
담은 나와 남을 가르고,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가리는 장치다. 그래서 전통의 중국은 어딘가 감춰져서 짙은 그늘에 가려 있는 모습을 종종 연출한다. 은밀(隱密)함의 속성이 돋보이고 폐쇄(閉鎖)적이며 배타(排他)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현대 중국의 집권 공산당 최고 권력이 머물고 있는 곳은 중난하이(中南海)다. 자금성 서쪽에 있는 건축군(群)이다. 옛 왕조의 권력을 상징했던 붉은 담이 우뚝하고, 삼엄한 경계를 펴 함부로 다가설 수 없다. 옛 황제 권력이 머물던 곳을 지칭했던 구중심처(九重深處)라 는 성어가 먼저 떠오른다. 정문인 신화문(新華門) 안을 엿보려고 해도 아주 높고 견고한 '담 안의 담'에 가려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강(下降)하는 경제, 미국과 전면적 마찰, 홍콩의 시위 사태에 당면한 공산당이 지난 41년의 개혁·개방 기조를 크게 틀고 있다. 무슨 생각에서일까. 들여다보려고 해도 좀체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중국 공산당의 생각이다.
[60] 중국 부자들의 운명
재물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경우가 있을까. 꿈같은 이야기다. 현실성은 없으나 사람들이 늘 바라면서 기다리는 일이다. 중국에서는 재물이 저절로 가득 차는 그릇 이야기가 전해진다. 취보분(聚寶盆)이다. 우리의 '화수분' 또는 '보물단지' 격이다. 중국인들이 이 신비한 그릇의 소유자였으리라 추정하는 역사 속 인물이 심만삼(沈萬三)이다. 명(明)나라 초반 지금의 동남부 장쑤(江蘇)에 실재했던 사람이다.
그는 중국 역대 부자 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높다. 명나라를 세웠던 주원장(朱元璋)이 도읍을 건설할 때 돈이 없어 그에게 난징(南京) 성곽의 절반을 짓도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렇듯 대단한 부자였지만 비운(悲運)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재산 때문에 최고 권력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도의 성곽 절반을 짓는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산을 뺏긴 뒤 오지로 쫓겨난다.
그의 고향으로부터 아주 먼 베이징(北京)에서도 일화가 전해진다. 주원장의 아들 주체(朱棣)가 황제에 오른 뒤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또 그를 불렀다. 마구 패면 재물 있는 곳을 알려준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실신하도록 열 차례를 얻어맞고 결국 돈이 묻혀 있는 장소를 알려줬다는 내용이다. 뒤는 꾸며진 이야기일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만삼은 중국에서 거대한 부를 쌓은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알려준다. 나라 재정 수준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을 때 중국에서는 부가적국(富可敵國)이라고 적는다. '재산이 나라에 맞먹을 정도'라는 표현이다.
그런 요즘의 중국 부자들이 일선에서 느닷없이 물러나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에 이어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 레노버의 류촨즈(柳傳志) 등이 그렇다. 그에 앞서 중국 최대 보험그룹, 금융계 거물 등이 줄줄이 낙마했다. 부를 이루기도 어렵지만, 지키는 일은 더 어려운 모양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말이다.
2019.11.01
[61] 2000년 이어지는 經學의 시대
본래는 옷감 짜는 베틀의 세로와 가로 선을 일컫는 말이 경위(經緯)다. 그로부터 이 글자들은 더 나아가 남북(南北)을 잇는 길, 동서(東西)로 난 도로를 각각 지칭했다. 이는 나중에 지구의 좌표(座標)를 표현하는 서양 단어의 번역에도 등장한다.
longitude는 동서로 떨어진 거리를 가리키는 단위다. 동양은 이를 경도(經度)로 옮겼다. 남북을 잇는 선이 일정한 사이로 떨어져 있음을 표현한다. 이른바 종축(縱軸)이다. 옆으로 이어지면서 남북으로 떨어진 간격을 표현하면 위도(緯度)다. 횡축(橫軸), latitude의 번역어다.
동양에서는 그 앞뒤를 따진다. 경위(經緯)라고 적어 남북 종축을 먼저 세우고, 동서의 횡축을 뒤에 붙인다. 남북의 종축은 존비(尊卑) 개념이 강하다. 누가 먼저라거나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비해 동서의 횡축은 평등과 자유의 의미가 짙다.
그래서 가장 높은 가르침을 적은 책을 경(經)이라고 부른다.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유를 담은 책에 일반적으로 따르는 명칭이었으나 어느 때부턴가 유교(儒敎)의 경전만을 그 안에 뒀다. 한(漢)나라가 중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때는 다른 제자백가의 사고를 다 뭉개고 유교만을 최고 가르침으로 받들었다. 이른바 독존유술(獨尊儒術)이다. 이로부터 '경학(經學)의 시대'가 열렸다. 중심 사상을 떠받쳐 인위적 질서를 세우고자 했던 노력이다. 이 개념은 중국 사상사의 흐름을 적은 펑유란(馮友蘭)이라는 학자가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로부터 2000여 년. 중국은 아직 '경학의 시대'다. '중심'을 세워 '주변'을 이끄는 구조다. 비록 공자의 유교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바뀌었지만 중심과 핵심을 강조하는 본질은 같다. 공산당 대회가 열리는 요즘 다시 지켜보는 대목이다. 자유와 평등보다는 중심과 질서를 강조하는 중국의 '역(逆)방향 질주'는 늘 현재 진행형이다.
[62] 중국의 幕後
공자(孔子)가 제자 자로(子路)를 평가한 말이 유명하다. "당(堂)에는 올랐지만 실(室)에는 들어서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높은 경지에 오르다'는 뜻의 승당입실(升堂入室)이라는 성어가 탄생한 유래다.
중국의 고대 주요 건축은 대개 '당실(堂室) 구조'다. 앞의 '당'은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장소다. 제사와 외빈 접견 등 공개적인 의례(儀禮)가 열린다. 그에 비해 '실'은 내밀(內密)하면서 개인적인 공간이다. 집채의 주인이 여기서 생활한다. 내실(內室) 또는 침실(寢室)이라 적어도 좋다. 외부에 공개하는 '당'과 주인이 개인적인 일상을 보내는 '실'은 따라서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둘 다 중요한 건축이지만 바깥과 안쪽이 갈리는 경계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악기를 잘 다뤘다. 강렬한 음조를 잘 냈다고 한다. 그러나 공자는 자로의 음악적 재능이 아직 원숙한 지경에 오르지 못했다고 여겼다. 이를 두고 건축의 '당'에까지는 이르렀으나 '실'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설명한 것이다.
궁궐(宮闕)도 마찬가지다. 황제가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 조(朝)다. 그에 비해 잠을 자고, 쉬면서 삶을 잇는 곳은 정(廷)이다. 둘을 합쳐 조정(朝廷)이라고 부른다. 요즘 권력의 핵심이 들어선 장소를 가리키는 단어의 속뜻이다. 연극에서도 무대와 커튼 뒤의 의미가 크게 갈린다. 이른바 대전막후(臺前幕後)다. 우리 식으로 치면 막전막후(幕前幕後)다. 남에게 보여주는 무대 전면과 장막으로 가려진 뒷면의 차이를 유난히 강조한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로 속내와 겉 꾸밈을 가르는 일본인의 습속은 사실 이런 중국식 '당실' 구조의 한 연역(演繹)으로 볼 수 있다. 그 원산지인 중국, 특히 집권 공산당의 막후는 훨씬 더 은밀해서 늘 눈길이 간다. 그나저나 우리는 중국의 어디를 살피고 있을까. '당'에도 올라서지 못했을 수 있다. 문(門)에나 들어섰으면 다행이랄까.
[63] '水滸傳' 양산박과 홍콩
문화적 함의로 칠 때 중국인들이 함부로 오를 수 없는 산(山)이 있다. 양산(梁山)이라는 곳이다. 지금의 산둥(山東) 서남쪽에 어엿한 행정구역 명칭으로 남아 있다. 소설 '수호전(水滸傳)'의 무대인 양산박(梁山泊)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졌다.
소설 내용처럼 이곳에 오른 두령 108명은 관(官)에 쫓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도와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질렀지만 대개는 행정적 수탈과 압박을 피해 살던 곳을 뜬 이들이다. 이들의 사정을 전하는 성어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양산에 올랐다[逼上梁山]'는 말이다. 이는 때로 백성이 일으키는 민란(民亂)을 가리킨다. 권력을 앞세워 가혹하게 나오는 관, 그에 처절하게 맞서는 민(民)의 구도다. 왕조 교체가 아주 빈번했던 중국에서는 자주 번졌던 풍경이다. 권력에 쫓긴 이들을 표현하는 말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숲속의 좋은 사내들[綠林好漢]'이라거나 '부자를 털어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殺富濟貧]'이라는 식이다. 어느 정도의 긍정과 공감이 들어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황제의 권력이 절대적인 중국에서 반기(反旗)를 드는 일은 쉽지 않다. 왕조 권력 또한 이들을 궁지에 몰다가 결국은 끌어안는 자세를 취한다. 이른바 초안(招安)이다. 안무(按撫)라고도 적고, 귀순(歸順) 또는 귀의(歸依)와 귀부(歸附)로도 부른다. 소설 '수호전'의 대미(大尾)도 그렇다. 두령 108명이 이끄는 양산박 성원이 북송(北宋) 황제의 발밑으로 들어가 말 잘 듣는 순민(順民)으로 자리를 되찾는다는 식의 해피엔딩이다.
홍콩이 줄기차게 공산당의 황제 권력에 맞서고 있다. 중국 당국도 양보 기미가 전혀 없다. 해피엔딩은 아주 어려워 보인다. 임금에게 충성하라는 과거 충군(忠君)의 가치를 닮은 공산당의 통제와 복종이라는 틀, 자유와 민주를 지키려는 홍콩인의 주향(走向)은 결코 좁혀지지 않는 두 가닥 평행선이기 때문이다.
[64] 돌림병이 걱정인 땅
소설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 손오공(孫悟空)은 말썽 많은 원숭이였다.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는 천궁(天宮)에서 큰 소란을 벌이기도 했으나 결국 자리 하나를 얻었다. 필마온(弼馬溫)이라는 직함이었다. 그 유래를 푸는 설명이 흥미롭다. 옛 중국에서 귀중했던 말에게 돌림병이 돌면 치명적이다. 그를 방지하려고 마구간에 원숭이를 함께 길렀다. 원숭이 오줌이 말의 돌림병 예방에 효력이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이 점으로 보면 손오공이 천궁의 마구간에서 자리를 얻었다는 소설의 설정은 자연스럽다. 그 직함은 따라서 '말 돌림병을 피하다[避馬瘟]'라는 표현을 같은 음, 다른 뜻으로 적은 형태라는 설명이다. 대체로 수긍을 얻는 해설이다.
과거 돌림병은 광범위한 인명과 물적 피해를 낳았다. 우리말에도 '염병(染病)'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를 저주할 때 자주 쓴다. 흔히 역병(疫病)이나 역질(疫疾)이라고도 적는다. 병원체가 인체에 침입해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해지는 병이다. 중국에서는 온역(瘟疫)이라는 표기가 일반적이다.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뒤 위생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창궐(猖獗)했던 기록이 퍽 많다. 시역(時疫), 여역(癘疫)으로도 부르고 대개 열을 수반해서 온역(溫疫)이라고도 적었다.
중국은 가뭄과 홍수 등 재난이 많았던 땅이다. 그 뒤에 몰아닥치는 돌림병도 흔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위세를 떨친 적이 있 었고, 최근에는 돼지에게만 옮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豬瘟)이 서민의 식탁을 위협한다. 이제는 쥐가 옮겨 대단한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는 서역(鼠疫)이 말썽을 빚을 듯하다. 14세기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던 일명 '페스트'다. 베이징(北京)에서 몇 차례 발병 사례가 알려져 홍콩 사태와 경기 하강 등으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중국 분위기가 더 뒤숭숭하다.
[65] 중국의 구름 기상도
드넓은 중국 땅을 지나가는 구름은 다양하다. 흰 구름 백운(白雲), 높은 하늘의 구름 청운(靑雲), 색색의 구름 채운(彩雲)은 어감이 좋다. 낭만적 감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사람이 빚어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때 중국인이 입에 올렸던 구름도 많다.
우선 풍운(風雲)이다. 바람과 함께 닥치는 구름이다. 보통은 먹구름이 제격이다. 거센 바람과 함께 험악하게 모여드는 구름이다. 그 시커먼 구름은 흑운(黑雲)이라고 적거나 까마귀 색과 같다고 해서 오운(烏雲)으로도 부른다. 그래서 '풍운'이라는 단어는 거대한 기운, 아니면 그로써 생겨날지 모를 대단한 변화를 예고한다. 중국에서는 풍기운용(風起雲湧)이라고 성어식으로 적는다. 바람이 일고 구름이 솟아오르는 기상(氣象)이다. 험악한 상황의 도래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래서 구름이 모여들면 뭔가 어수선하다. 운집(雲集)은 그를 형용하는 단어다. 좀 더 분위기가 나빠지면 전쟁으로도 이어진다. 그래서 전쟁을 구름과 함께 병렬해 전운(戰雲)으로도 적는다. 운무(雲霧)는 단순한 기상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뭔가에 가려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국면을 말할 수도 있다. 상황이 아주 모호하다가 나쁘게 번질 수 있는 때다. 우리도 잘 쓰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경우다.
홍콩을 덮었던 검은 구름과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 반중(反中)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이어 중국과 해협을 사이에 둔 대만의 분위기도 범상치 않다. 호주에 망명을 신청한 자칭(自 稱) '중국 스파이'가 중국의 대(對)대만 정보 공작을 폭로해서다. 대만 당국은 '스파이'가 지목한 중국인 상사(上司)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마침 그는 타이베이(臺北)에 체류 중이었다. 대만 언론들은 이런 때의 구름을 의운(疑雲)으로 적었다. '큰 의혹 덩어리'란 뜻이다. 홍콩에 이어 대만해협에 격랑과 거센 풍파를 몰고 올지 모를 예사롭지 않은 구름이다.
[66] 만다린과 푸퉁화
만다린(mandarin)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단어다. 복잡하며 다양한 중국 언어 체계 속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표준어'를 말한다. 청(淸)나라 귀족을 뜻하는 '만주 대인[滿大人]'에서 나왔다고 먼저 알려졌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에서 관료를 비롯한 지배 계층을 가리켰던 mantri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이제 더 유력하다. 그럼에도 중국과 처음 접촉했던 포르투갈 등 유럽 상인들이 중국의 공식 언어[官話], 그를 사용하는 관료 계층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만다린은 이제 중국을 상징하는 무엇인가에 따라붙는 단어로 변했다. 고급 호텔, 상품, 항공사, 복장 등에 이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특히 베이징(北京)을 중심으로 발달한 현재 중국 표준어의 공식 영문(英文) 호칭은 '만다린'이다.
요즘의 중국은 그 표준어를 '푸퉁화(普通話)'라고 부른다. '널리[普] 통용[通]하는 말[話]'이라는 뜻이다. 본래는 '국어(國語)'로 적었다가 자국 내 소수민족을 배려한다는 취지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꿨다.
중국은 전 세계 중국어 독자들을 상대로 2008년부터 야심 찬 선전 및 홍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른바 '대외선(大外宣)'이다. '중국 대외(對外) 선전(宣傳) 대(大)포국(布局)'의 준말이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이념 및 정책을 널리 퍼뜨리려는 계획이다.
그에 맞서 미국도 야심 찬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다. 미국의소리(VOA),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미국 매체들이 자국 행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중국어 방송에 나설 예정이다. 자유와 민주·인권을 강조하며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미국제(製) '만다린'이 중국산(産) '푸퉁화'를 추격하며 압박할 모양이다. 세계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 그를 봉쇄하려는 미국의 힘이 무역과 금융을 넘어 이제 언어를 매개로 한 가치와 이념의 영역에서도 크게 부딪치고 있다.
[67] 먼지 많은 세상
티끌과 먼지를 가리키는 한자는 진(塵)이다. 사슴[鹿]과 흙[土]의 합성이니, 뜻은 자명해진다. 사슴이 땅을 밟고 다닐 때 생기는 흙먼지다. 바람과 함께 먼지가 일어나기 쉬워 풍진(風塵)이라고 곧잘 쓴다.
세상은 각종 이해(利害)에 따른 다툼이 모질게 일어난다. 그를 먼지에 빗대 일컫는 말은 홍진(紅塵)이다. 사람의 잡다한 욕구가 소란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의 별칭이다. 한편으로는 번화한 도시 등을 일컫는다. 달리 진세(塵世), 진환(塵寰)으로도 적는다. 먼지 가득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번잡한 이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불가(佛家)의 지칭이다. 그래서 출진(出塵)으로 적으면 세간의 잡다한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중국은 먼지가 많은 땅이라 이렇듯 관련 단어가 적잖게 만들어졌다. 서북에 발달한 사막과 건조 지대, 토사(土沙) 함유량이 많은 황하(黃河)의 퇴적작용이 빚어낸 중국 북부 지역의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진애(塵埃), 사진(沙塵)이라는 말을 잘 썼다가 이제는 무매(霧霾)라는 단어가 흔해졌다.
공기 중 습도가 높은 안개 형태의 물 분자[霧], 본래는 '흙먼지'를 가리켰으나 요즘은 스모그의 지칭인 오염 성분[霾]을 합친 시사용어다. 우리가 최근 들어 자주 겪는 '미세 먼지'의 중국식 표현이다.
중국은 오래전에 이런 먼지를 의식한 문화적 토대가 있다. 먼 곳을 다녀온 가족이나 친구에게 "고생 많았다"며 베푸는 식사를 세진(洗塵)으로 적는다. '먼 지 씻어주기' 정도로 이해하면 좋은 말이다. 나름대로 먼지라는 환경 요소에 적응한 문화적 습속이다.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중국발(發) 미세 먼지에 휘감겨야 하는 우리가 정작 문제다. 중국과 강력한 교섭에 스스로의 먼지 저감(低減) 조치도 궁리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와 행정은 그를 늘 받쳐주지 못한다. 한국이 중국보다 먼지가 더 가득한 사회로 변할까 걱정이다.
[68] 덩샤오핑과 시진핑 이름의 平
우리 쓰임새도 적지 않은 강구연월(康衢煙月)이라는 성어는 평화롭고 넉넉한 세상을 가리킨다. 앞의 '강구'라는 단어는 넓고 평탄한 길이다. '연월'은 아지랑이처럼 공중에 은은하게 낀 내와 그 위의 달이다.
넓게 펼쳐진 거리에 뭔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안정(安定)의 형용이다. 다른 한자 단어로 표현한다면 평온(平穩)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사평팔온(四平八穩)이라는 성어를 곧잘 쓴다. 퍽 안정적이어서 오류나 혼란 등이 없는 경우다.
중국인의 의식 속에 이 '평온'을 향한 갈구는 아주 집요하다. 우선 글자 '평(平)'의 조어(造語) 행렬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어의 peace는 중국어로 화평(和平)으로 적는다. 모두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안정적 환경이다.
승평(昇平)과 태평(太平)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이 정말 꿈꾸는 세상이다. 전란과 재난이 없어 살기 좋은 세월이다. 평안(平安)은 걱정이나 탈 없이 잘 지내는 상태다. 일이 순조롭게 펼쳐질 때인 평탄(平坦), 평순(平順)도 어감이 좋다.
험한 산길을 가리키는 기구(崎嶇), 험준(險峻)은 그래서 기피 대상이다. 물이 흘러넘쳐 안정적 상황을 해치는 동탕(動蕩), 더 나아가 걷잡을 수 없는 동란(動亂)은 중국인이 가장 경계하는 장면이다.
집권 공산당 또한 다른 무엇보다 유온(維穩)을 특히 강조한다. 안정[穩]을 유지[維]한다는 뜻이다. 그런 바람 때문에 이름에 '평'을 쓰는 사례가 많다. 현대 중국의 두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 과 시진핑(習近平)이 그렇다.
개혁·개방으로 조금 이뤘던 덩샤오핑의 성취[小平]를 시진핑이 더 큰 치세(治世)로 이끈다[近平]고 풀이할까. 그러나 상황이 예전만 못하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의 표현대로 미·중 마찰을 비롯한 국내외 위협적인 요소가 마치 '전쟁을 알리는 봉홧불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봉연사기(烽烟四起)' 분위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69] 2020년 중국
화양(華陽)이라는 지명은 한국에도 흔하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여러 곳에 있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얻고자 하는 바람이 들어 있는 말이다. 본래는 중국 산시(陝西)의 화산(華山) 남녘을 일컫는다. 중국에서는 볕이 잘 드는 산의 남쪽을 양(陽)으로 적는다.
유래는 이렇다. 약 3000년 전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적국 상(商)을 물리쳤다. 그는 전쟁을 끝내려는 뜻이 강했다. 그에 따라 전쟁에 동원했던 말을 화산 남녘에 방목하고 물자 운반에 썼던 소를 도림(桃林) 벌판에 풀었다. 그중 전쟁에 가장 긴요했던 말을 풀어놓은 일이 퍽 유명해졌다. 이른바 마방남산(馬放南山)이다. 그 '남산'은 곧 화산의 남녘이다. 그래서 '화양'이라고 적어도 전쟁을 끝내고 맞이하는 평화를 의미한다.
전쟁이 자주 닥쳤던 중국의 인문(人文)은 싸움에 대비하고자 하는 위기의식 못지않게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도 함께 키웠다. 위의 단어들이 좋은 예다. 다른 성어로는 산마휴우(散馬休牛) 등으로도 적는다. 비슷한 표현은 여럿이다. 대개는 '싸움을 멈추다'의 새김이 강하다. 침병(寢兵)이라는 표현이 재미난다. '병력을 쉬게 하다' 정도의 뜻이다.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강화(講和)가 그렇다. 상대와 화의(和議)를 모색한다는 의미다. 구화(媾和)라고도 적는다. 군대가 휴식하도록 하는 식병(息兵), 병력을 물린다는 미병(弭兵)도 같은 맥락의 단어다. 그러나 요즘은 전쟁의 화력을 멈춘다는 맥락 에서 정화(停火)로 적거나 아예 휴전(休戰)으로 표기한다.
중국의 2019년도 풍파가 거셌다. 하강하는 경제에 홍콩 사태가 겹쳤다. 미국과는 무역 분쟁에 이어 내년 한 해 내내 더 많은 영역의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대외 관계에서 확장세를 멈추지 않은 중국에 미국의 경계감이 높아지며 벌어지는 일이다. 내년에도 중국은 화산 남녘에 말 풀어놓기가 어려울 듯하다.
[70] 요즘 중국인의 金銀銅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1~3위 선수들은 차례대로 금, 은, 동으로 만든 메달을 받는다. 가장 높게 치는 황금(黃金), 그다음의 백은(白銀), 마지막의 청동(靑銅)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랄 수 있다.
중국인도 금과 은을 향한 집착이 아주 강하다. "난세에는 황금을 사둔다(亂世買黃金)"는 말이 불문율처럼 지켜진다. 공부의 지향도 결국 잘사는 데 있다는 점을 "책에 황금의 집이 있다(書中自有黃金屋)"는 권학문(勸學文)으로 내려 앉힌 전통도 있다.
이런 금과 은, 동을 활용해 만든 요즘 중국의 유행어가 있다. 금교(金橋), 은로(銀路), 동루(銅樓)다. 다리를 놓으면 금, 길을 내면 은, 집을 지으면 동이라는 뜻이다. 돈을 벌어들이는 가장 좋은 수단의 순서다.
아울러 건설업자와 지방 관료들이 다리를 놓으면서 얻는 정당치 못한 수입을 금, 길을 깔아 챙기는 소득을 은, 집을 마구 지어 분양해 얻는 이익을 동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압권은 다이아몬드다.
귀금속 중에서도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급의 수입은 어디서 나올까. 중국인들은 그를 댐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찬석패(鑽石壩)다. 앞의 찬석(鑽石)은 다이아몬드, 뒤의 패(壩)는 방죽이나 요즘의 댐을 일컫는 글자다.
그 때문일까. 현대 중국에는 다리가 많이 생겼고, 길도 퍽 많이 났다. 아파트는 지나치게 지어 타운 전체가 빈 아파트만 난립한 이른바 '유령 도시[鬼城]'도 적잖다. 돈이 가장 많이 생기는 댐은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건설량의 절반이 중국에서 지어졌다.
'황금의 꿈'을 향한 중국인의 짙은 욕망이 부정(不正)한 수입을 노리고 번져 현대의 난개발로 이어진 현상이다. 최근 하강하는 추세를 멈추지 못하는 중국 경제 부진의 토대일지 모른다. 아울러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취임 이래 8년에 이르건만 아직 반(反)부패의 사정 칼날을 거두지 못하는 진짜 이유일 수 있다.
[71] 民生과 도탄(塗炭)
집안 형편이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리는 경우를 가난이라고 한다. 한자 단어 간난(艱難)이 순우리말로 변한 결과다. 본래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많은 경우의 심한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보통 곤란(困難)이라는 말을 잘 쓴다. 삶의 환경이 가혹한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를 물과 불로 설명할 때도 있다. 깊어진 물, 너무 뜨거운 불을 가리키는 성어 수심화열(水深火熱)이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이다. 물과 불만을 강조해 아예 수화지중(水火之中)으로도 적는다.
우리에게 친숙한 '도탄(塗炭)'도 그 맥락이다. 앞의 도(塗)는 물이 거세게 휩쓸고 지나간 뒤의 진창, 뒤의 탄(炭)은 불길이 남긴 숯 바닥이다. 그래서 민생이 어려워졌을 때 "도탄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보통 사람에게 시련을 주는 험악한 환경이다. 반대는 안거낙업(安居樂業)이다. 편안하게 제 집에 머물면서 자신의 생업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나라가 평화롭고 백성의 삶이 안온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이다. 모두 태평(太平)을 향한 중국인의 간절한 희구(希求)가 담겨 있는 성어다.
중국에서 '나날'이라고 풀 수 있는 단어가 일자(日子)다. 그래서 그 앞에 '좋을 호(好)'를 붙이면 살아가기 좋은 시절을 지칭한다. 고생이 이어지는 때는 '고(苦)'를 적는다. 요즘 중국에서는 허리띠 졸라매는 경우를 상정해 그에 '긴(緊)'을 덧댄다.
최근 중국 재정부장과 상무부장이 잇따라 '허리띠 졸라매야 하는 나날[緊日子] '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에 따라 무역, 해외투자, 국내 소비 등이 모두 줄어들며 경기가 길고 어두운 하강세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국은 이처럼 경각심이라도 있다. 그와 어느덧 동조화(同調化)한 한국의 경제가 문제다. 우선 청와대의 경계심이 전혀 보이질 않아 걱정이다. 도탄에서 민생이 신음할 가능성은 우리가 중국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72] 분열과 통일
실의 여러 갈래를 잘 묶으려면 뚜렷한 가닥이 필요하다. 이른바 두서(頭緖)다. 그를 중심으로 다른 여러 가닥을 묶어야 든든한 밧줄도 만든다. 이를 대표적으로 말해주는 한자는 統(통)이다. 통합(統合), 통일(統一), 통치(統治), 정통(正統) 등의 조어가 즐비하다. 중국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관련 단어는 일통(一統)이다. 새김은 '통일'과 비슷하지만, 중심축(軸)을 설정해 다른 것을 지배한다는 정치적 의미에서는 유래가 훨씬 오래다. 중국의 역대 위정자에게는 그래서 '정통'을 차지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중심축 가장 바른 자리에 올라서 남을 '통치'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그 정통을 중심(中心), 핵심(核心) 등으로도 적는다. 현대 중국 집권 공산당이 자주 쓴다.
중국 역사는 '삼국연의(三國演義)' 첫머리가 잘 말해준다. "오래 흩어져 있으면 반드시 합쳐지고, 뭉쳐 있다가는 꼭 쪼개진다(分久必合, 合久必分)"는 말이다. 왕조의 빈번한 분열, 혼란과 안정이 자주 자리를 바꿨던 중국 역사의 압축적 표현이다. 그래서 권력을 쥔 뒤 중국을 이끄는 사람들은 분붕리석(分崩離析)이라는 성어를 끔찍이도 싫어한다. 나뉘고[分], 무너지고[崩], 헤어지고[離], 쪼개지는[析] 상황이다. '논어(論語)'에 일찌감치 등장한 말이다. 본래 출발점이 아주 다양하며 이질적이었던 역대 중국의 권력자들로서는 '1호 기피(忌避)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공산당 또한 정치적 통일성과 국토 완정(完整)을 국정 최고 과제로 여기고 있다.
지난 11일 치른 대만의 선거로 공산당이 긴장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정체성 부정에 독립 성향까지 보이는 민진당(民進黨)이 압승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힘이 보태져 갈등 요소는 훨씬 커질 수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통'을 자처하며 중국을 이끌었던 공산당에는 또 다른 도전이다.
[73] 질질 끌다가 흐지부지
늘 패배하지만 "계속 싸워 계속 진다"와 "줄곧 져도 줄곧 싸운다"는 어감이 하늘과 땅 차이다. 한자 표현에서는 글자만 살짝 바꿔도 이런 효과가 난다. 누전누패(屢戰屢敗)와 누패누전(屢敗屢戰)이다. 우리 식으로는 연전연패(連戰連敗)와 연패연전(連敗連戰)이다.
민란 진압에 나선 청 말 대신 증국번(曾國藩)의 부하가 잇따라 패하자 "줄곧 지고 있다"는 보고를 내려다가 막료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패해도 계속 싸운다"로 고쳐 올려 면책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일화에서 비롯했다.
닥친 위기를 우선 모면하고 보자는 이런 꾀는 "큰일은 작은 일로, 작은 일은 없던 일로 한다[大事化小, 小事化了]"는 문화가 그 토대다. 본래 웬만한 일에는 놀라서 허둥대지 말라는 권고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사안을 눙치다가 대충 끝낸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이렇듯 중국에는 '질질 끌다가 흐지부지하는 비결'이 있다. 이른바 '타자결(拖字訣)'이다. 중국인 특유의 지연(遲延)과 미봉(彌縫)의 맥락이다. 보통은 관료들이 적당하게 시간을 끌면서 사안의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는 태도를 꼬집는 데 잘 등장한다.
상황의 유불리(有不利)를 헤아리고 또 헤아리다가 이로운 쪽으로 슬쩍 자리를 옮기려는 사람의 사고가 숨어 있다. 제 의중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국면을 저울질하는 이해타산(利害打算)의 모략적 사유다.
지난 한 해는 중국 당국의 이 같은 사고와 행위가 돋보였다. 미국과의 무역 분쟁,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적절한 판단을 못 내려 화를 키웠다. 대만에는 구태의연하게 대응하다가 독립 성향의 민진당(民進黨)이 선거에서 압승하는 결과를 불렀다.
이제는 지난 연말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폐렴이 중국 정부의 은닉과 비공개로 인해 전 세계로 확산할 위험에까지 놓였다. '선택과 집중'으로 화려한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참 낯설고 이례적인 모습들이다.
[74] 노비의 얼굴과 무릎
나를 낮춰 남을 높이는 과거 호칭이 제법 많다. 이른바 인비달존(因卑達尊)의 격식이다. 예치(禮治)를 근간으로 삼았던 이전 동양 사회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정치 체제에서는 그 정도가 심했다. 황제를 폐하(陛下), 제후를 전하(殿下)라고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계단[陛] 밑[下]의 내가 그 위의 황제를 치켜세우며 '폐하'라고 불렀다. '전하'는 전각(殿閣) 아래의 내가 그 위의 제후를 받드는 호칭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유행했던 각하(閣下)도 마찬가지다. 관공서를 지칭하는 각(閣)의 아래 사람이 윗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자리 밑의 제자는 스승을 좌하(座下), 좌전(座前)이라고 했다. 귀하(貴下)는 남을 높이는 흔한 존칭이다. 가장 먼저 등장했던 관련 호칭은 족하(足下)다. 남의 발아래 자신을 두면서 상대를 높이는 말이다. 예전 편지글에 자주 등장했다. 절하(節下)와 휘하(麾下)는 자신을 통수하는 군 지휘관을 부르는 말이다.
예치의 틀인 서열과 계급에서의 존비(尊卑) 개념이 매우 두드러진다. 형식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다 문제가 생긴다. 저를 낮추다가 스스로 땅바닥과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귀결은 노안비슬(奴顔婢膝)이다. 노비의 얼굴과 무릎이다. 윗사람 앞에서 종놈처럼 헤프게 웃거나 바닥을 기며 아첨하는 행위다. 중국의 역대 조정(朝廷)에서 늘 벌어졌던 풍경이다. 현대에는 권 력이 크게 쏠렸던 마오쩌둥(毛澤東) 때 심했다.
'최고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定于一尊]'는 말을 내세우는 요즘도 비슷해 보인다. 우선 대형 재난으로 번지는 우한(武漢) 폐렴 사태가 심상찮다. '안정 유지[維穩]'를 국정 지상의 목표로 강조하는 공산당 중앙권력의 눈치만 살피며 은닉과 얼버무림으로 일관했던 중국 관료의 어두운 근성이 사태를 키운 것 아닐까.
[75] 중국의 '일언당' 문화
중국의 전통 건축에 당(堂)이라는 영역이 있다. 일반 주택을 지을 때도 꽤 주목을 받았다. 외부에 공개가 가능하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치르는 열린 장소다. 그래서 아주 번듯하고 멋지게 짓는다. 의젓하고 품위 있는 사람에게 '당당(堂堂)하다'라고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집채의 그런 생김새 때문이다. 나중에는 상거래를 하는 점포의 이름, 개인적인 거주 공간의 호칭에도 많이 등장한다. 요즘도 '일언당(一言堂)'이라는 말을 잘 쓴다. 본래는 '가격 정찰제'를 하는 점포에서 유래했다. 물건의 값을 흥정하지 않고, 한번 정한[一言] 가격에 그대로 판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 바탕은 이 이름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나중에는 '윗사람이 한마디 하면 그대로 끝'이라는 뜻으로 전의(轉義)해서 많이 사용했다. '당에 오른 하나가 부르짖으니, 섬돌 아래 모두가 조아리다[堂上一呼, 階下百諾]'라는 흐름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종족(宗族) 중심의 사회다. 혈연(血緣)을 바탕으로 부계(父系) 적장자(嫡長子) 중심의 가족 집단을 구성한다. 사회 및 정치체제 또한 같은 맥락의 '정통(正統)'에 입각한 질서를 우선시한다. 중국의 집권 공산당도 그런 전통의 가부장(家父長) 문화를 계승한 집단이다. 아울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정통으로 삼았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이끄는 '공산당 중앙(中央)'이 그 가부장적 질서와 정통의 정점(頂點)이 다.
총서기 1인 권력을 크게 강화한 요즘은 그런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 최고 권력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언당 문화'가 더 농후해진 셈이다. 이제 세계 전역에 퍼진 우한(武漢) 폐렴은 그 소산이지 싶다. '사회 안정'만을 강조하는 경직된 지도부와 은폐에만 급급했던 관료 사회의 합작품…. 세계가 경탄했던 중국의 발전 모델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76] 재난과 굶주림의 땅
벌겋게 색을 드러낸 땅이 천 리…. 적지천리(赤地千里)다. 본래 지독한 가뭄을 가리킨다. 큰물의 사나움은 홍수맹수(洪水猛獸)라고 했다. 수해(水害)의 지칭이다.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면 산붕지열(山崩地裂)이다. 지진(地震)의 다른 표현이다. 중국에서 발달한 어휘들이다. 가뭄, 홍수, 지진 등 재난(災難)의 상처 때문이다. 천연재해는 중국 땅을 수놓았던 큰 주제다. 그 빈도와 피해의 규모가 몹시 잦으며 컸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재난 뒤에 닥치는 기아(飢餓)도 심각했다. 서구 학계는 그래서 중국을 아예 'The land of famine'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번역은 '기황지국(饑荒之國)'이고, 우리 식으로 옮기면 '굶주림의 땅'이다.
가뭄과 홍수가 우선 대표적이다. 가뭄 뒤에 찾아오는 메뚜기 떼의 습격도 대단했다. 한재(旱災)와 수재(水災)에 메뚜기로 인한 황재(蝗災)까지 가세하면 중국의 '재난 삼부곡(三部曲)'이다. 지진과 해일, 태풍, 우박, 산사태, 병충해 등 재해의 종류는 아주 많았다. 중국 역대 재난의 빈도와 피해 상황 등에 처음 주목한 덩퉈(鄧拓·1912~1966)의 집계는 그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기원전 1766년부터 기원후 1937년까지 3703년에 이르는 동안 가뭄은 1074차례다. 3년 4개월에 한 번꼴이다. 홍수는 모두 1058차례다. 역시 3년 5개월에 한 번이다. 비슷한 기간 각종 재해가 들었던 햇수는 5079차례로 나온다.
가혹한 재난의 역사 때문인지 중국 공산당은 '헐벗음과 굶주림 해결[溫飽]'을 개혁·개방의 초기 목표로 삼았다. 이어 그를 바탕으로 부유함까지 갖추자는 '전면적 소강(小康)사회'의 꿈도 그렸다. 그러나 천재(天災)인지 인재(人災)인지 모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 발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중국 꿈[中國夢]'의 길은 멀고 험해 보인다.
[77] 담을 넘는 중국인
담을 넘는 행위가 '담치기'다. 개도 궁지에 몰리면 그렇게 한다. 중국인이 잘 쓰는 성어 구급도장(狗急跳墻)의 경우다. 참선(參禪)에 빠져 있다가 입맛을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를 참다못해 담을 넘었던 사람도 있다. 중국 탕(湯) 요리의 정수, 불도장(佛跳墻)의 유래를 설명하는 얘기다. 우리 식도락가들에게도 꽤 유명한 음식이다. 여기서 '도장(跳墻)'이 담을 넘는 행위다. 일반적 한자 표현으로는 월장(越墻)이다. 유장(逾墻)으로 쓸 때도 적잖다.
중국 문학사에 담을 애처롭게 넘나든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작품이다. 그가 전란의 와중인 어느 날 저녁 무렵 석호(石壕)라는 마을에 들렀을 때다. 두보는 한밤중 호통과 소란에 놀란다. 전쟁터에 보낼 사람을 잡으러 온 관리의 사나운 외침, 그를 피해 담을 넘어 달아나는 늙은이[老翁逾墻走]. 이어 늙은이의 할멈이 나와 "세 아들 다 끌려가 둘 죽고 하나 남았다"며 애절하게 울부짖는다. 두보는 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남편 대신 전쟁터에 가서 아침밥 짓겠다"는 할멈의 호소와 밤새 이어진 흐느낌도 들었다. 할멈은 관리를 따라 전쟁터에 갔다. 두보는 이튿날 집에 돌아온 늙은이와 헤어져 길을 나선다. 이야기는 그로써 일단락을 맺지만 중국인들은 그렇게 담을 넘어야 할 때가 많았다.
요즘 중국인의 담치기는 '번장(翻墻)'으로 적는다. 집 권 공산당이 공을 들여 구축한 인터넷 감시와 통제의 담, Great Firewall(萬里防火墻·만리방화장) 넘어서기다. 중국에 불리한 외부 소식과 내부 정보가 드나드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한 담이다. 코로나 19가 번지면서 이 담을 넘어서려는 사람도 부쩍 많아진 듯하다. 담을 쌓고 살다가도 때로는 그 담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 중국 땅 사람들의 숙명인가 보다.
[78] 楚나라 땅의 苦楚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지 우한(武漢)과 주변 후베이(湖北)는 본래 전통의 중국과는 사뭇 달랐던 초(楚)나라 땅이었다. 그래서 춘추시대 중원 사람들은 이곳 사람을 남녘의 오랑캐, 남만(南蠻)으로 치부했다. 이 지역의 다른 지칭은 형초(荊楚)다. 전략적 요충지여서 '삼국지(三國志)'의 큰 무대이기도 했던 형주(荊州)를 강조한 이름이다. 그러나 글자의 새김으로 따지면 이 '형초'라는 이름은 썩 좋지 않다. 두 글자 모두 사람을 때리는 형구(刑具)인 '가시나무'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우리말 고초(苦楚), 통초(痛楚), 간초(艱楚) 등도 다 이 글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픔' '고생' '시련'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도 대개는 멸시에 시달렸다. 요즘도 '초수(楚囚)'라고 적으면 '죄인'의 뜻이다. 북방 사람들이 남쪽에서 잡혀온 포로를 일컫다가 생겨났다. '남관(南冠)'으로 적으면 '이상한 모자를 쓴 초나라 사람'인데, 의미는 역시 같다.
'초(楚)'와 관련된 단어에는 좋은 표현도 있다. 초초(楚楚·차림새나 모양이 말쑥하고 깨끗함)하다, 청초(淸楚·맑고 깨끗함)하다 등이다. 가시나무의 맑은 모양새에서 비롯한 형용사다. 아울러 중국의 초기 남방 문학을 대표했던 굴원(屈原)의 '초사(楚辭)'는 지역의 큰 자랑거리다. 호수와 늪이 발달해 '구름과 꿈의 습지'라는 뜻의 운몽택(雲夢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도 전해진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어두운 구름이 다시 이곳을 덮었다. 당 국이 도시와 성(省) 자체를 모두 봉쇄해 많은 사람이 죽어가며 지역 전체가 아직도 공포의 도가니다. 이들이 겪는 '고초'가 아주 크다. 마침 이곳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 적잖다. 강릉(江陵)이 있고, 한강(漢江)이 있으며 한양(漢陽)도 있다. 지명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곳 바이러스가 이제는 한국에 퍼졌다. 옛 초나라 땅의 고초도 함께 따라올까 걱정이다.
[79] 뒤로 슬쩍 물러서기
내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일이 전가(轉嫁)다. 화근을 남에게 슬쩍 돌려 자신은 그로부터 물러나는 행위는 가화(嫁禍)다. 드러나지 않게 남을 해친다는 점에서 모두 음해(陰害)다. 요즘 중국의 인터넷에서 이런 행위를 지칭하는 유행어가 있다. 엉뚱하게 중국 음식점에서 쓰는 큰 팬이 등장한다. 흔히 '웍(wok)'이라고 불리는 조리 도구다. 광둥(廣東)에서 이를 지칭하는 '가마', 즉 확(鑊)의 현지 발음이다. 이 팬은 일반 중국어에선 과(鍋)라고 적는다.
이 글자는 '잘못'을 뜻하는 과(過)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팬을 등에 지다'는 뜻의 배과(背鍋)라고 적으면 '잘못을 뒤집어쓰다'와 같아진다. 특히 '아주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잘못'을 지칭할 때는 흑과(黑鍋)라고 쓴다. 그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일은 '던지다'라는 새김의 글자를 더해 '솔과(甩鍋)'라고 적는다. 본래 냄비를 흔들면서 음식을 고루 익게 하는 중국 요리의 기법(技法)을 말하는데 이제는 중국 네티즌들이 '책임 떠넘기기'의 의미로 적는다.
중국의 전통적 사유세계는 '나아감과 물러섬', 진퇴(進退)를 함께 잘 다룬다. 특히 물러날 때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내려가는 계단, '하대계(下臺階)'를 찾아내는 작업도 그중 하나다. 불리한 상황에서 적절한 핑계를 찾아 뒤로 빠지는 일이다. '금선탈각(金蟬脫殼)'이라는 성어도 전통 싸움의 방법이다. 원래 매미가 허물을 벗고 성충(成蟲)으로 변하는 과정을 얘기한다. 속뜻은 위기로 부터 조용히 벗어나 싸움을 혼전(混戰)으로 이끄는 방도다. '삼십육계(三十六計)'의 계책 중 하나다.
중국이 요즘 등에 걸머질 뻔했던 팬을 던지고 있다.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 있다"는 발언을 이어간다. 아직 근거는 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논란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무거운 책임에서 뒤로 빠지려는 중국의 전략이 묘한 혼전 양상을 부를 태세다.
[80] 중국인의 門
816년 가을. 정쟁에 밀려 장시(江西)의 외딴 지역으로 좌천당한 문인 백거이(白居易)는 '비파행(琵琶行)'이라는 유명한 시를 쓴다. 퇴기(退妓)로 쓸쓸한 삶을 살던 여인을 만나 비파 연주를 들으면서다. 616자(字)의 작품에는 멋진 시구가 넘친다. 나이 든 기생이 제 신세를 한탄하며 "사람 찾지 않아 문 앞이 쓸쓸해졌다(門前冷落車馬稀)"고 한 표현도 그 하나다. 그때부터 문전냉락(門前冷落)은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성어로 발전했다.
중국인의 '문'은 조금 특별하다. 권세(權勢) 유무(有無), 출세(出世) 여부(與否)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곧잘 쓰인다. 우선 성어 문전성시(門前成市)가 그렇다. 찾는 사람이 아주 많아 문 앞이 장터처럼 소란하다는 뜻이다. 거수마룡(車水馬龍)도 익숙하다. 사람들의 수레와 말이 문 앞에 물처럼 이어지고, 용처럼 길게 늘어선다는 얘기다. 시쳇말로 '잘나가는 사람'의 집 앞 풍경이다. 그 반대 경우가 백거이 시로써 생겨난 성어다. 문정냉락(門庭冷落)으로도 쓴다. 오는 사람이 전혀 없어 문 앞에 그물을 펼쳐 참새를 잡을 수 있다는 과장 섞인 표현도 등장한다. 문가라작(門可羅雀)이다.
잘나가는 사람에게 몰리는 뜨거운 시선, 그러지 못하는 사람에게 꽂히는 냉담한 눈길이 문을 두고 고스란히 펼쳐진다. 이른바 염량세태(炎凉世態)가 빚어내는 모습이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와 변치 않는 세 상 흐름이기도 하다. 그 맥락에서 이를 '인정세고(人情世故)'라고 적는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번진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어 지구촌이 난리다. 앞으로 중국 문전은 매우 쓸쓸해질 듯하다. 병을 키워 번지도록 만든 사실에 사과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중국 당국의 태도 때문이다. 그런 성품과 마음을 지닌 주인의 집은 손님 발길이 자연스레 줄거나 아예 끊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