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문가들의 생각10/ 송원찬의 중국어와 문화1/ 2016년 ‘아이언맨→강철협’ ‘블랙위도 - 2017년 01월 02일 난방도 정부 통제 - 12.19 세계최대 전파망원경 가진 나라
중국 전문가들의 생각10/
◆송원찬의 중국어와 문화1
2016년 문화일보 한양대 교수
◇‘아이언맨→강철협’ ‘블랙위도→흑과부’… 알 것 같은데 모르겠는 외래어 표기
◇‘영국프리미어리그 → 英超’ 음·뜻 혼용 편리하게 번역
◇酒店이 호텔?… 중국어-영어 표현 딴판
◇유커 위한 간판, 한자보다 알파벳으로
언젠가부터 중국인 관광객을 유커(游客youke)라 부르고 있다. 중국어로 여행자란 표현을 한국 발음대로 옮긴 것이다. 한국에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그중 유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생겨난 말이다. 유커는 특히 씀씀이가 커 주목받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 쇼핑하러 온다는 유커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유커가 늘어나니 우리도 그들을 맞을 대비를 하고 있다. 그중에 유커를 위해 한자로 된 간판과 안내판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유커의 편의를 위한 조치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자 지하철에서 외국어 안내방송이 시작됐다. 문제는 일본어와 중국어에서 발생했다. 한자 지명이나 장소를 그 나라 발음대로 불러준 것이다. 예를 들어 경복궁은 한자로 景福宮인데 중국어로 읽어 징푸꿍(jingfugong) 뭐 이런 식으로 안내했다. 당연히 항의가 들어왔고, 지금은 우리 발음으로 바꿔서 안내한다. 일시적인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제법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불렸다.
그런데 그 근본 원인은 한자에 있다. 한자는 소리글자가 아니라 뜻글자다. 이는 발음에 상관없이 뜻이 전달된다는 의미다. 뒤집어 보면 뜻을 전달하기는 쉬워도 발음을 전달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간판을 한자로 적어주면 중국 사람은 중국어로, 일본 사람은 일본어로 읽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北京이란 한자는 중국어로 베이징이라 읽지만 우리는 북경이 더 편리하다. 외국인 입장에서 우리가 모든 한자의 중국어 발음을 알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이것은 한자의 특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중국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한자를 전혀 다르게 발음하기도 한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발음을 전달할 것인가, 뜻을 전달할 것인가! 뜻을 전달하려면 한자를 적어주면 되고, 발음을 전달하려면 한자를 없애고 알파벳 등으로 적어놔야 한다. 한국에 유학한 중국 학생조차 경복궁이 아니라 징푸꿍으로 발음한다. 한국어로 물어보면서도 징푸꿍이다. 그렇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한자가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커를 위해 한자 간판이나 안내판을 대폭 늘리고 있는데 과연 옳은 대책인지 묻고 싶다. 한자를 늘리면 늘릴수록 중국인은 중국어로, 일본인은 일본어로 읽고 익숙해진다. 한국어 발음으로 불리고 싶다면 오히려 한자를 없애고 알파벳으로만 적어야 한다. 물론 그 내용을 설명할 때는 중국어와 일본어로 자세히 해주면 된다.
그런데 한자가 원래 뜻글자임을 고려한다면 발음보다 뜻에 중점을 둬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중국어든 일본어든 우리는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된다. 또 그들은 그들의 발음으로 읽는 것이다. 우리는 북경, 모택동(毛澤東) 이렇게 통하면 된다. 그들이 베이징, 마오쩌둥이라 하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게 한자의 특징이다. 물론 그들도 경복궁이 아닌 징푸꿍, 피겨스타 김연아를 찐옌얼(jinyaner)이라고 읽겠지만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이런 이름을 둘러싼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중국, 이름에 대한 인식차이
우리나라는 한자 문화권에 속한다. 당연히 한자에 익숙하다. 순 한글 이름이 늘어났다고 해도 한자 이름이 아직은 많은 편이다. 한자 이름은 중국이나 일본에 가서도 그대로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는 경우가 있다. 한자가 소리글자가 아니라 뜻글자이다 보니 발음이 영 이상하게 변하기도 한다.
여기서 또 선택의 기로에 선다. 발음을 전달할 것인가 아니면 뜻을 전달할 것인가? 예를 들어 추신수(秋信守)의 경우 중국어로 읽으면 츄신셔우(qiuxinshou) 정도 된다. 발음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한자를 바꾸면 발음을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다. 추신수(chu xin shu)라는 발음에 맞는 한자를 쓰면 되는데, 그러면 성도 이름도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러니 결국 츄신셔우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어로 듣기 싫은 음이나 이상한 뜻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 표준어가 장단의 언어라면 중국어는 높낮이의 언어이다. 지금은 잘 구분하지 않지만 원래 어두운 밤은 짧게 발음하고, 먹는 밤은 길게 발음하는 것이 한국어 원칙이다. 한국의 경기, 충청, 전라는 이렇게 장단의 언어이고, 강원, 경상은 높낮이의 언어였다. 그런데 표준어가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장단의 언어가 된 것이다. 우스개 얘기로 경상도의 ‘가가가가’를 서울 사람들이 발음하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중국어의 높낮이는 규격화되어 있어 이를 성조라고 하는데, 성조의 조합이 듣기 좋은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작명을 할 때 이 또한 고려한다. 그런데 한국이름은 음양오행은 따져도 이러한 고려가 없다 보니 발음이 어렵고 듣기 싫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면 난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작명을 할 때는 중국어를 고려하지 않으며 고려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중국과의 거래가 늘어나면서 좋은 한국 이름이 중국어로 불렸을 때 이상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영어 이름을 만들듯이 중국어 이름을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는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교류가 많다면 한국어 이름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어 발음을 옮겨도 한국어 독음으로 옮겨도 이상하면 한국어 이름을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름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인식차이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름은 원래 부르라고 지은 것이지만 한국에서 이름은 조금은 성스러운 대상이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것이기에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실례가 된다. 그래서 옛날에는 호(號)나 자(字)를 지어 편하게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호나 자가 없으니 참 애매하게 되어 버렸다. 이에 반해 중국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에 관대한 편이다. 부인이 남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당연시한다.
만약 중국어로 이름을 만든다면 중국의 이러한 정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름은 쉽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것이 좋다. 너무 무겁거나 어려우면 이름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높낮이 언어인 중국어에 맞춰 의미와 더불어 리듬감도 중시할 필요가 있다. 한글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고려해야 할 부분이고, 한자 이름이 있다고 해도 중국 친구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한번 자문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문맹 많아서… 쉬운 간체자 만들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중국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한자를 사용한다. 이를 간체자라고 하는데 이름 그대로 획수를 간단히 만든 글자체를 말한다. 예를 들어 16획의 용(龍)자가 5획()으로, 10획의 서(書)자가 4획()으로 줄어들었다. 우리가 쓰는 한자보다 획수를 상당히 줄여 간략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간체자를 만든다고 할 때 전통학자를 중심으로 반발도 적지 않았다. 간체자가 한자 고유의 멋을 훼손한다든가, 간체자를 배우면 고대의 글자를 몰라 전통과 단절된다는 등 일면 타당한 다양한 이유가 등장했다. 특히 한자의 심미관은 매우 중요한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필체가 예술로 인정되는 서예가 존재할 정도이니 당연히 새로운 글자에 강하게 반발했다. 즉, 낯설고 어색한 간체자는 거부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간체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기존의 한자를 정체자라고 해 정통이라고 본다. 또 정체자인 복잡한 번체자를 알아야만 진정한 한자 실력자로 인정하기도 한다. 대만이나 홍콩의 시선이 그러하고, 한국 일부 학자도 마찬가지다.
물론 간체자도 만들 때 마구잡이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원칙에 따랐다. 필획이 간단한 옛글자를 이용한다거나, 초서(草書)를 이용한다거나, 필획이나 편방을 간소화하는 등 원칙이 있었다. 현재 발견된 최초의 한자인 갑골문(甲骨文)의 간단한 문체나 빨리 쓰기에 유리한 초서의 간결한 문체 등을 활용해 간체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중국 학자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한자의 전통과 변화를 담으려고 노력했다고는 하나 반발은 여전하다.
그런데 대륙에서 한국에 유학 온 중국 학생들을 보면 간체자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 독해 시험을 보면 종종 사전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거부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유학생이 시험에서 사전을 사용하려는 이유는 한글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막상 쓰려면 한자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에 익숙하게 사용하는 중국어도 한자로 잘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어 독해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익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다. 실제 답안지에 한자가 떠오르지 않아 발음기호로 쓰기도 한다. 이처럼 중국 사람도 어려워할 정도로 한자는 복잡하고 버겁다.
이처럼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자는 획수가 너무 많아 복잡하고, 또 수량이 6만여 자에 달해 절대다수의 국민은 배우기에 어렵다. 또 일정한 교육을 받아도 익히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지 1950년대 중국의 문맹률은 무려 80% 이상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뜻이 깊고, 의미가 심오하고, 멋이 있다고 해도 문맹률 80%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마오쩌둥(毛澤東)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정부는 대담하고 강력하게 한자의 간화를 강행한다.
유학시절이 생각난다. 중국어로 시험을 보고 나면 항상 간체자의 위대함이 저절로 느껴지곤 했다. 심지어 ‘마오쩌둥 만세’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한자를 가끔 쓰는 입장에서야 느낄 수 없는 그런 절실함이 있다. 만세(萬歲)가 만세(万)가 되니 만세 아니겠는가!
◇간체자 등장의 배경은 실용성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우리나라와 대만, 홍콩 등에서는 번체자(繁體字)를 쓰고, 일본은 자체적으로 만든 약체자(略體字)를 섞어 쓰며 중국 대륙은 간체자(簡體字)를 쓴다. 그래서 간체자의 등장은 또 다른 한자를 만드는 결과로 귀결되었다는 불만도 있다. 더 번잡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러한 한자 자체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변화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자는 기본적으로 실용성과 기념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실용성은 기본적인 정보 전달의 특성을 말하고, 기념성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성질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현판이나 간판 등은 정보 전달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을 중시하니 기념성이 더 중요한 사례이다. 두 가지 특성 중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글자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문자를 향유할 수 있고 고급스러운 문화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글자의 화려함이 중시된다. 귀족 문화에 화려한 장식이 빠질 수 없으니 아름다운 문자가 중시된다.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니 조금 더 복잡해도, 조금 더 어려워도 상관없다. 이러한 시기에 한자는 대체적으로 복잡해졌다. 그러나 실용성이 중요한 경우도 있다. 전쟁이 나면 말 위에서 글을 써야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 실용적인 행정을 할 때는 간단한 것이 최고다. 속기라도 해야 한다면 간결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자체를 간략하고 빠르게 쓴 초서이다.
결국 문자는 실용성과 기념성 중 시대의 요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에서 출발하였기에 더욱 심미적이고, 또 이를 향유할 귀족문화가 계속 이어져 왔기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한자체가 발달했다. 서예가 그 정점에 있다. 그러나 실용성도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강조되었다. 간체자를 만들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청나라가 간체자를 만들고자 한 것이 그 예다. 아무래도 한자에 익숙하지 않던 만주족은 좀 간단히 쓰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반발로 흐지부지되고 만다. 그래서 간체자 도입을 언어 발달사와 기존 한자 발전사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초기 갑골문에서부터 금문, 전서, 예서 등의 변화 과정이 바로 실용성과 기념성의 조화와 대립이라는 주장이다.
1956년 중국 정부는 ‘한자 간자화 방안(字化方案)’을 내놓으며 공식적으로 간체자를 맨 처음 규정했으며, 1965년 정규문자로 인정한 간체자를 모두 모아 ‘간화자총표(化字表)’를 발표한다. 이후 중국 대륙은 모든 교과서를 포함해 대부분의 책과 문서에 간체자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원래의 계획은 베트남처럼 한자 자체를 없애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결국 총 2235자를 간체자로 만들어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간체자는 번체자에 비해 획수가 줄어들어 외우기도 쉽고, 쓰기도 편하며 시간도 절약된다. 희(戱) → , 개(個) → , 위(爲) → , 락(樂) → , 무(無) → 无 등 많은 글자가 간략하게 바뀌었다. 또한 문맹률이 대폭 감소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았다. 여하튼 중국의 간체자 도입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의 문자 통일에 비견할 정도로 강력한 문화정책이다. 이런 정책이 바로 진정한 문화혁명(文化革命)일지 모른다.
◇한자 알아도 중국어 공부 도움 안돼
한자를 알면 중국어를 배울 때 유리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그런데 대답이 간단하지 않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꼭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말이다. 또 오히려 중국어를 익히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외국어를 글로 배우는 것에 익숙하다. 듣기와 말하기가 아니라 읽기와 쓰기를 중심으로 배운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과연 효율적인지 의문이 든다. 말은 듣기가 우선이다. 다음이 말하기다. 어린아이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엄마나 아빠 등 보호자가 수없이 ‘엄마’ ‘아빠’를 외친 다음, 그렇게 수천 번, 수만 번 같은 단어를 들은 다음에야 아이는 ‘마마’ ‘어마’ 등 겨우 비슷한 발음을 한다. 또 유치원 나이의 아이들을 보면 읽거나 쓰지는 못해도 말은 아주 잘한다.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외국어 교육은 언제나 듣기와 말하기 위주여야 한다. 외국어를 활용하는 데 일부 전문가를 빼고는 듣고 말하기로 처리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읽기와 쓰기 정도가 추가되면 외국인과 교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듣기와 말하기 교육의 단점은 가르치는 사람이 힘들고, 또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험이 중요하고, 성적이 중요한 교육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읽기와 쓰기 위주로 가기 쉽다. 평가의 편리성 때문이기도 하다.
한자를 알면 확실히 중국어 독해와 작문에 도움을 준다. 읽기와 쓰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듣기와 말하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我去北京’이란 문장이 있다고 할 때, 한자를 조금 알면 ‘아거북경’으로 읽고, ‘내가 북경에 간다’고 해석도 가능하다. 뜻이 통하니 번거롭게 발음을 찾거나 외우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워 취 베이징(wo qu Beijing)’이란 정확한 발음을 찾아보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특히 높낮이 성조가 중요한 중국어에서 이런 습관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한자를 아는 중년이 중국어를 배울 때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중국어를 더 잘 배우기도 한다. 이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서양인에게서 쉽게 증명된다.
중국에는 많은 서양인이 들어와 활동한다. 그런데 그들의 중국어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발음도 좋고, 표현도 뛰어나다. MC를 볼 정도로 뛰어난 중국어를 구사하는 서양인도 있다. 그들의 한자 실력은 어떠할까? 한번은 하버드대 중국학과 박사반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박사 졸업반인 그는 논문을 쓰기 위해 중국에 왔는데, 매일 한자 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로 보면 초보자용 한자를 어렵게 쓰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익혀야 하는 내용을 진지하게 쓰고 있는 그를 보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자에 초보였던 그의 중국어 실력은 매우 뛰어나고 정확했다. 한마디로 눈이 머니 귀가 밝아진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끼리 약속을 해도 우리처럼 ‘북경’이 아니라, 높낮이 성조까지 정확히 지켜 ‘베이징(Beijing)’이라고 해야 서로 통하는 정확한 중국어를 구사하게 되니 발음이 정확한 것이다.
한자를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중국어를 배우는 것에 유리하다. 그러나 언어의 기본은 듣기와 말하기라는 사실을 명심해서 발음과 성조를 익히는 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어려운 중국어… 말 배우기는 쉬워
중국어가 대세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중국어를 배우려고 한다. 그런데 중국어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니 중국어는 쉽다. 어쩌면 중국어는 세계에서 가장 쉬운 언어일지도 모른다.
중국어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면 한자를 꼽는 사람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한자는 어렵고 버겁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한자는 어려울지 몰라도 중국의 말은 쉬울 수 있다. 다시 말해 읽기와 쓰기는 어려워도 듣기와 말하기는 쉬울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이처럼 말과 글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좀 더 명확해진다.
한국어는 쉬울까 어려울까? 말과 글을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글인 한글은 정말 과학적이고 배우기 쉽지만, 한국의 말은 정말 어렵고 또 과학적이지도 않다. ‘진지 잡수세요, 밥 먹어, 식사하세요’ 이 모든 것이 중국어로는 ‘ 吃chifan’이다. ‘츠판’ 쉽지 아니한가? 물론 중국에도 옛날에는 다양한 표현이 있었으나 사회주의 등장 이후 많은 표현이 단순화되었고 평등화되었다. 또 우리말은 주어에 따라 동사가 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어에서 상대에 대한 호칭은 ‘ ni’ 하나면 거의 통하고, 가끔 극존칭인 ‘ nin’을 쓰면 된다. 우리처럼 ‘너, 당신’ 등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쉽지 아니한가? 그렇다고 해서 영어처럼 격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어에 맞추어 동사를 쓸 필요도 없다. 정말 쉽지 아니한가? 중국어는 글이 어려운 만큼 말이 쉽다. 그래서 문맹률이 80%일 때도 사회가 돌아간 것이고, 문맹률이 적지 않은 지금도 14억 인구가 서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중국어를 배울 때 정말 어려운 것은, 글자마다 높낮이를 표현하는 성조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어의 표준어도 장단의 언어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 영어를 배울 때는 발음도 중요하지만 악센트도 중요한데, 이것이 바로 높낮이의 문제이다. 중국어는 그것이 규격화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중국 표준어에는 높낮이가 4가지가 있다. 발음과 이 4가지 성조가 정확히 같이 쓰여야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 그러니 성조를 중시해야 하는데, 발음을 우선하다 보면 종종 잊어버리거나 실수하곤 한다. 특히 한국어를 섞어 쓰다 보면 더욱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고, 또 발음은 중시하는 데 반해 성조는 경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런데 중국어는 발음과 성조가 하나이다. 즉, 성조를 무시하면 중국어가 될 수 없다. 마(ma)라는 발음이 있을 때 그 성조에 따라 ‘엄마, 말(馬), 욕하다’ 등 다양한 뜻이 될 수 있는 것이 중국어이다. 음악을 연주할 때 정확한 리듬을 타듯이 중국어는 그 높낮이 변화를 주의해서 잘 활용해 주어야 한다. 마치 한국어에서 ‘가가가가’를 경상도 사투리로 높낮이를 맞춰 읽어야 ‘그 애가 그 애냐?’라는 정확한 뜻이 전달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중국어는 눈이 아니라 귀로 배워야 하는 언어라고 한다. 중국어는 올바른 접근법을 가지고 다가가면 정말 쉬운 언어다. 10년을 배워도 써먹지 못하는 영어와는 달리 중국어는 1년만 배워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오늘이라도 한번 가볍게 시작해 보길 권한다. 한자는 나중에 하고 듣기와 말하기만 배워보면 어떨까 한다.
◇중국어 노래할땐 聲調보다 음정 우선
언어를 배우다 보면 노래를 익히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어에는 성조가 있어 노래를 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중국어는 높낮이의 언어이고, 이를 성조라고 하는 것으로 규격화하고 있다. 또 성조가 달라지면 뜻이 달라지는데 그럼 노래는 어떻게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어로 노래할 때 성조는 고려하지 않는다. 성조가 높낮이인데, 음악의 음정도 높낮이인지라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땐 노래의 음정이 우선이다.
물론 성조가 없다 보니 뜻이 통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문맥으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시적인 표현, 반복적이거나 익숙한 표현이 많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 두고 중국에서 노래할 때 성조를 무시한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좀 다르다.
중국에서 노래를 평가할 때, 대체적으로 성조의 높낮이와 음악의 음정이 유사한 경우가 많은 것이 좋은 작품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음악의 음정이 성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 그 맛이 더 잘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조를 무시한다기보다는 살릴 수 있으면 살리려고 노력한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성조를 정확히 지키지는 않지만, 성조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중국어 작사는 음정과 성조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고, 유명한 시 등에 곡을 붙이려 해도 쉽지 않은 경우가 존재한다. 그리고 노래를 하려고 해도 성조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노래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물론 우리 같은 외국인은 성조를 무시하고 그냥 부르면 된다.
중국 노래 한두 곡을 알아두면 중국인과 교류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약간의 전략이 필요한데 그 노래가 너무 진부하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좋아 부르는 중국 노래는 ‘친구’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이란 3곡이 한 80% 정도는 된다. 노래가 유명하고 아름답기 때문이지만 중국인 입장에서는 정말 지겨울 수 있다. 특히 한국인을 자주 접하는 중국인이라면 정말 곤혹스럽기까지 하다고 한다.
‘친구’는 가수 안재욱이 중국노래 ‘朋友(peng you)’를 번안하여 불러 더욱 친숙한 곡으로, 중국인에게도 익숙한 노래이다. 또 ‘첨밀밀(甛蜜蜜 tianmimi)’이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yueliang daibiao wOde xin)’은 영화 주제곡으로 유행하였으며, 대만 불세출의 가수 등려군(鄧麗君)이 불러 더욱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곡이 모두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최소한 20, 30년 정도 된 노래인데다가 또 한국 사람마다 부른다면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약간의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과 상관없이 접대용으로 한두 곡 익혀두면 어떨까 한다.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 부를 수 있고 조금은 경쾌한 곡을 익혀두면 분위기를 살리는 데 좋을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중국의 군가를 부른다. 외국인이 군가를 부르니 당연히 의외라 중국인의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별도로 두세 곡만 잘 알아두어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국에서 축구는 ‘足球’라 불러
한국과 중국은 모두 한자를 사용하기에, 한자를 알면 중국에서 활동하기 유리하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근현대 과정에서 수많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스포츠 분야를 보면 한국과 중국이 얼마나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
축구蹴球는 세계적인 운동으로 중국에서도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축구를 족구足球zuqiu로 부른다. 한국에서는 찬다는 뜻에 중점을 두어 찰 축자를 사용했고, 중국은 발을 사용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발 족자를 사용하여 번역한 것이다. 같은 한자지만 우리나라 족구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 이름은 한국과 중국이 전혀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전래된 시기에 한·중교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농구籠球는 바구니에 넣는 경기라고 남구球lanqiu, 야구野球는 방망이를 사용하는 경기라고 해 봉구棒球bangqiu라고 한다.
한국에서 영어명을 쓰는 종목도 중국에서는 번역해 사용하는 것이 있는데, 테니스는 망을 쳐놓고 한다고 망구球wangqiu라고 하고, 핸드볼은 손을 쓰는 경기라고 수구手球shouqiu라고 하며, 배드민턴은 새털을 사용한다고 우모구羽毛球yumaoqiu라고 한다. 물론 영어의 발음을 차용한 종목도 있는데, 골프인 高이夫gao’erfu와 탁구인 球pingpangqiu 등이 있다. 한어병음의 발음이 영어와 비슷하다. 그중에 탁구의 작명이 절묘하다. 먼저 발음상 핑퐁(ping-pong)이란 영어의 발음과 비슷하게 ‘핑팡’이라 했다. 사용한 한자도 절묘해 병兵자의 변형자를 사용해 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 같은 한자를 쓰는 종목은 배구排球paiqiu와 수구水球shuiqiu 정도이다.
심지어 육상이나 수영도 다르다. 우리는 육상陸上이라고 쓰는데, 중국은 전경田tianjing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수영水泳이라고 쓰는데, 중국은 유영游泳youyong이라고 쓴다. 비록 같은 한자문화권이고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고 해도, 한·중의 스포츠 이름은 전혀 다르거나 차이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한국 스포츠 명칭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일본이 번역한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그에 반해 중국은 나름대로 해석을 붙여 새로운 한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자를 안다고 해 중국어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한국과 중국은 같은 한자를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현대 역사가 다르고 외래문물을 받아들이는 경로가 달라지면서 차이를 넘어 달라도 너무 달라진 측면이 있다. 특히, 한국이 일본의 힘에 의해 중국과 단절되면서 양국의 한자조어는 크게 달라졌다.
스포츠 분야는 한국 축구감독이 중국에서 스타가 될 정도로 한·중 교류가 아주 활발한 분야 중 하나이다. 그런데 스포츠 이름이 서로 다른 만큼 좋아하는 종목에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축구와 야구 그리고 골프 정도가 관심 대상이다. 이에 반해 중국이 가장 열광하는 종목은 축구이고 야구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다.
◇복잡한 漢字로 어떻게 채팅하나 ?
모두가 알다시피 중국인은 문자로 한자를 사용한다. 한자는 어렵고 획수도 많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어려운 한자로 SNS를 실시간으로 사용할까? 아리송하다. 지금도 수많은 중국인이 실시간으로 활발히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중국인은 어떤 방법으로 한자를 입력하는지 또 실시간 대화는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력 속도가 우리보다 결코 늦지 않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한자를 문자로 쓰기 때문에 채팅 등을 하기에 어렵다고 느껴질지 모르나, 중국에서도 SNS는 매우 활발하게 작동되고 있다. 그러나 한자의 입력은 한글이나 알파벳과 달라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하다. 이러한 이유로 매우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여 편익을 돕고 있다. 한자를 입력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발음으로 입력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자형을 이용하는 방법이고, 세 번째는 직접 써서 입력하는 방법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발음기호를 찾아 입력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컴퓨터에 한자를 입력할 때 독음으로 한자를 찾듯이, 중국은 발음 기호인 한어병음으로 글자를 찾는다. 알파벳으로 된 한어병음을 입력하면 같은 음의 글자가 쭉 뜨고, 그중에 자신이 원하는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어렵고 복잡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속도가 제법 난다.
또한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자주 쓰는 글자가 저절로 위쪽에 위치하거나 문장 자동완성 기능 등이 활용되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익숙해지면 보통 분당 300타 정도의 속도로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자형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보통 전문가용으로 쓰인다. 속기나 책의 내용을 입력할 때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 먼저 자판이 보통 컴퓨터 자판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가 보통이며, 어떨 때는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이 마치 피아노 앞에서 건반을 치는 모습처럼 보일 때도 있다.
또한 자형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오필자형(五筆字型) 입력법이 많이 사용되는데, 한자의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조합하여 입력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한글을 입력하듯 자판을 외워 입력하는 방법인데, 한자의 자형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자판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자판을 보지 않고 치려면 최소한 1년 이상을 연습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전문가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이 방법은 숙련이 되고 나면 분당 500타 이상이 나와 한글 입력 속도보다 오히려 빠르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속기용 입력법은 따로 있다.
직접 써서 입력하는 방법은 한글처럼 단순한 문자에서는 별로 다가오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일찍 주목했던 방법이다. 한자는 획수가 많고 글자 수가 많으니 직접 써서 입력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은 2000년 이전부터 터치스크린 기술 등에 주목해 발전시키려 노력해왔다. 그 외에도 음성인식 기술 등 매우 다양한 아이디어와 방법이 등장하였다. 어쩌면 애플이 made in China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PC방도 신분증 요구… 정보 철저 통제
어느덧 이메일의 시대가 가고 SNS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더 이상 문자나 이메일로 소통하지 않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 교환이 이뤄진다. 그런데 중국인 친구와 교류하려면 우리가 많이 쓰는 카카오톡으로는 불가능하다. 중국인들의 반한감정 때문이 아니다.
트위터, 페이스북도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중국 정부에서 기본적으로 외국의 SNS를 전면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요즘 젊은 층이 애용하고 있는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로 차단돼 있다. 심지어 동영상 공유프로그램인 유튜브도 볼 수 없다. 중국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려면 편법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복잡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대부분 중국인은 중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QQ가 대표적이며 웨이신(微信·Wechat)도 많이 사용한다. 동영상 공유는 투도우(土豆·tudou), 유쿠(優酷·youku)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중국 정부의 정책은 표면적으로 자국의 통신 시장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보의 통제와 검열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한국과 거리상으로 가깝고, 일면 비슷한 점들이 있어 자주 잊고 있지만,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의 철저한 언론 통제 국가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밝힌 세계 언론 자유 순위에 따르면 중국은 176위이다. 조사대상이 180개국임을 고려하면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참고로 북한이 179위, 한국도 많이 떨어져 70위다. 중국인과 교류하고 중국에서 활동한다면 유념해야 할 지표이다. 정치·외교적으로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통제하고 감시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괜히 치기로 금기를 건드렸다가는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 경험했던 웃지 못할 일화가 떠오른다. 학술연구차 중국에 간 적이 있다. 일행 중 한 명이 PC방에 갈 일이 있다기에 PC방 위치를 알려주었고, 나머지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고 했지만 걱정이 돼 따라갔다. 그냥 돈 내고 PC를 사용하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카운터에서 신분증을 요구했다. 중국에서는 PC방에 가려면 신분증을 지참해야만 한다. 중국의 통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도라 하겠다. 지금도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 단어가 즉시 사용 중지되기도 하며, 또 실시간 검열도 이뤄진다. 중국의 인터넷 검열 및 차단 시스템을 만리장성에 빗대어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라 부르며, 미국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활발한 SNS 활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SNS를 통해 스타가 탄생하기도 한다.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친구를 사귀었다면 중국의 SNS를 통해 교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중국은 비슷하다고 해도 중국일 뿐 한국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는 민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손님의 입장에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하겠다.
◇중국어의 발음부호 ‘한어병음’
중국은 한자를 문자로 쓴다. 그런데 한자는 뜻글자라 발음은 별도로 외워야 한다. 그래서 고대부터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쓰인 방법은 반절(反切)이라 하여, 상대적으로 쉬운 두 글자를 조합해 원래 글자의 음을 표기하는 방식이다. 이는 글자로 글자의 발음을 표기하니 기초 지식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런 한자에 현대식 발음 표기를 가장 먼저 고안한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으로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발음 표기법을 만든 것이다. 영국인 웨이드는 익숙한 알파벳과 발음표기를 이용해 중국어 표기법을 만들었고 이를 나중에 자일스가 수정하였는데, 이를 웨이드 자일스 표기법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중국의 한어병음의 토대가 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인 스스로도 발음기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교육 목적으로 주음부호(注音符號)라는 발음기호를 만들었다. 일본의 히라가나와 비슷한 형태로 한자를 변형한 , , , 등과 같은 형태의 발음부호이다.
대륙의 중국 정부가 등장한 이후 한어병음( 音) 방안이 발표되는데, 중국어 한자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발음부호를 말한다. 1958년부터 전국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중국어에서는 줄여서 Pinyin이라 하고 한국어로는 병음이라고 한다. 여하튼 한어병음의 등장으로 알파벳을 안다면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비슷하게 중국어를 발음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순서를 외우기도 편해 사전 찾기도 편해졌다. 지금도 중국의 유치원생들은 한자를 익히기 전에 한어병음으로 먼저 중국어를 익힌다. 복잡한 한자를 먼저 익히면 어려워 포기할까 봐 순위를 조정한 것인데, 우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언어는 언제나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순서여야 한다.
한어병음의 등장으로 손쉽게 중국어를 익힐 수 있게 되었지만, 알파벳을 빌려 쓰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도 신문에서는 중국 돈의 단위를 위안화라고 표시하는데, 사실 이는 元의 표기로 ‘위엔’이란 발음에 더 가깝다. 그런데 처음에 영어식으로 읽다 보니 위안이라고 굳어져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중국어의 한어병음엔 나름대로의 발음 법칙이 있다. 예를 들어 ang, yang, yan 이런 발음이 있다고 할 때, 같은 a지만 발음이 약간씩 다르게 들린다. 굳이 우리말로 표기하자면 앙, 양, 엔 등으로 다르게 들린다.
정리하자면 한어병음은 알파벳을 빌려왔을 뿐, 중국어를 표기하는 발음부호이다. 이 말은 곧 비록 알파벳을 쓴다고 하나 영어식으로 읽으면 안 되고, 한어병음 나름대로의 법칙대로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어병음의 발음법칙은 약간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중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이 한어병음만 잘 익혀도 매우 유익할 것이라 판단된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인명이나 지명 등 고유명사를 외국어로 표기할 때 모두 이 한어병음으로 표기한다. 또 웬만한 표지판은 한자와 병음을 동시에 표기한다. 그러니 이 발음 규칙만 알아도 배낭여행을 하거나 길을 찾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강릉단오제가 바꿔 놓은 中國 휴일
1949년 중국 건국 이래 1주일씩 쉬는 3대 휴일이 있는데, 설날 격인 춘제(春節), 5월 1일 노동절, 10월 1일 국경절이다.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전통에 대한 혁명을 강조하기에 전통적인 명절은 중시하지 않았고, 국가나 공산당에 관련된 기념일을 중시했다. 그래서 심지어 추석도 공휴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중국 정부의 인식이 확 바뀌게 됐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 때문이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한국이 중국의 휴일을 바꿔 놓았다니 말이다. 중국 정부가 전통 명절을 중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건은 2005년 한국의 강릉단오제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발칵 뒤집어졌다. 한국이 중국의 단오절을 빼앗아갔다며 분노하는 분위기와 더불어 중국이 너무 전통을 홀대했다는 반성이 뒤따랐다. 이후 중국의 휴일이 바뀌었다. 1주일이던 노동절의 휴일을 3일로 줄이고, 청명절, 단오, 추석에 3일씩 쉬도록 했다. 이 정도면 한국이 중국의 휴일 문화를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단오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에 중국의 분노를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지만, 한국과 중국의 명절은 이름은 비슷해도 내용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서 단오나 청명절은 유명무실하다. 기껏해야 단오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정도나 알고 있고, 행사도 거의 없는 편이다.
반면 중국의 단오는 꽤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기원전 인물인 굴원의 죽음에서 유래됐는데, 굴원은 중국의 유명한 애국시인이자 전국시대 초나라의 충신으로 나중에 ‘멱라수’라는 강에 투신한다. 단오는 그의 죽음을 슬퍼한 백성이 그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물고기가 그의 시신을 먹지 못하게 하려고 강에 다른 먹을 것을 던진 데서 유래됐다.
사실 단오를 둘러싼 오해는 동명이인을 혼동한 것처럼, 전혀 성격이 다른 명절이 이름이 같아 빚어진 것이다. 그만큼 한국과 중국 관계가 깊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고 앙금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촉발된 지점은 바로 강릉단오제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였다. 한국 입장에서는 지나간 일이라고 지나치지 말고 중국 전문가와 국민 그리고 네티즌에게 그 차이점과 오해를 지금이라도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명절을 살피다 보니 명절 그 자체보다 중국의 긴 휴일이 부럽기만 하다. 춘제 1주일, 국경절 1주일 그리고 청명, 단오, 추석 3일씩, 여기에 신정 하루까지 정말 부러운 일이다. 1년에 휴일이 24일이니 너무 많이 쉬는 것 아닌가 하겠지만, 중국 정부는 휴일경제라고 부르며 휴일을 장려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주5일제 근무도 한국보다 먼저 실시했다. 우리나라에서 너무 많이 쉰다는 논쟁이 있을 때 중국 정부는 경제 발전을 위해 주5일제를 앞서 시행했다. 거시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 하겠다. 또한 근무시간도 정확해 보상이 없는 ‘묻지 마 야근’은 거의 없는 편이다. 혹시 우리도 휴일을 한번 점검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춘제, 귀신 쫓는다며 밤새 폭죽 터뜨려
중국의 최대 명절은 우리의 설날과 같은 춘제(春節·chunjie·음력 1월 1일)이다. 중국 정부에서는 국경절(10월 1일)에 큰 행사를 하지만 전통의 힘이 무섭다. 춘제의 공식적인 휴일은 1주일이지만 생산 현장에서는 최대 3주일까지 명절로 잡기도 한다. 14억 거대한 중국인 거의가 고향을 향해 움직이는 때로, 땅이 넓다 보니 며칠 걸려 고향을 방문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1주일이 결코 길다고만은 할 수 없다. 아마 우리처럼 3일 정도 쉰다면 중국인 대부분은 고향도 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설날과 중국의 춘제는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큰 명절이고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설 관련 물품 장만하기, 섣달 그믐날 밤새우기, 세배하기, 세뱃돈 받기 등 비슷한 풍습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세배하는 방법이 다르고 세뱃돈을 훙바오(紅包·hongbao)라는 붉은 봉투에 넣어준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하다. 중국은 또 춘롄(春聯)이라고 하여 좋은 문구를 써서 출입문에 붙이기도 한다. 보통 붉은 종이에 노란 글씨나 검은 글씨로 쓰는데, 우리나라에서 입춘 때 입춘대길 등을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로 써서 붙이는 것과 차이가 난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장례식에서만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를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 설날과 중국 춘제의 가장 큰 차이는 소란스러운 정도에 있다. 우리는 설날에 정성껏 장만한 음식들로 차례를 지내며 만나서 술을 마시거나 가벼운 놀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부 시끄럽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중국에 비할 것이 아니다. 중국의 춘제는 시끄럽기로 유명하다. 춘제를 전후한 밤이 가장 시끄럽다. 온갖 폭죽을 터뜨려 잠을 자기 힘들 정도다. 아니 자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골목에는 온통 화약 연기가 가득하고, 여기저기서 난리가 난다. 중국에서는 결혼식 등 기쁜 일이 있을 때 폭죽을 터뜨리는 전통이 있다. 그만큼 폭죽은 중국의 축제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다. 춘제에 가장 많은 폭죽이 가장 요란하게 터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차분히 쉴 생각이라면 춘제 기간에는 중국을 피하는 것이 좋다.
폭죽을 터뜨리는 이유는 귀신을 쫓기 위해서라고도 하고, 흥을 더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정말 귀신이 도망갈 정도로 폭죽 소리는 매우 요란하다. 화상을 입거나 화재가 나는 등 사건 사고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춘제 때면 다양한 폭죽이 요란하게 밤새 터진다. 중국 정부는 폭죽으로 인한 사고 때문에 이를 중지시키기도 했으나 전통의 힘은 완전히 막을 수 없어, 대도시 등에서는 특정 지역을 정해 허가하고 있다. 지인이 있다면 중국인들과 함께 폭죽을 터뜨려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화상이나 화재 등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보호경 착용 등 안전장비를 갖춰야 하고 또 불량품도 많으니 꼭 믿을 만한 제품을 써야 한다.
한국과 중국이 비슷한 고대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폭죽 문화와 용 문화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세계적으로도 명절 때 폭죽놀이를 많이 하고 또 아시아 전반으로 용과 관련된 놀이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보기 힘들다. 참 특이한 경우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은 비슷한 만큼 의외로 다른 점도 많으니 언제나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大入 시험일이 가장 조용한 날
중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날이 설날인 춘제(春節·chunjie)라면, 가장 조용한 날은 언제일까.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gaokao)가 있는 날이다. 우리나라 수능에 해당하는데 분위기는 옛날 학력고사 시절과 좀 더 비슷하다. 대학 입시에 수시는 없고 정시만 있던 학력고사 시절, 전 국민이 주목하던 그 분위기와 언론의 반응이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시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이고, 수석이 누구냐 하는 뉴스가 뒤따른다.
이 시험 하나로 대학이 결정되고,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에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곤 한다. 그 압박감으로 수험생들은 수능이 있는 6월을 ‘검은 유월’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학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이 부모의 마음(可憐天下父母心)’이라며 수험생 자녀에게 온갖 정성을 다한다.
심지어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정부는 소음이 발생하는 공사를 일시 중지시키고, 옆집과 윗집도 숨을 죽인다. 이렇게 중국 전역이 긴장하고 숨죽인다. 당연히 일 년 중 가장 조용한 날, 아니 가장 조용한 기간이라 할 만하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 따라서 가오카오는 이보다 앞선 6월에 치러지며, 시행일은 7, 8, 9일이다. 시행일수는 성·시(省·市)별로 약간 달라 이틀 내지 사흘에 걸쳐 치러진다. 또 이전에는 전국적으로 동일했던 문제가 2003년 이후 성·시에 따라 차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즈음 남부지역에 태풍이 발생해 난리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험은 폭풍우를 뚫고서라도 진행된다. 가오카오를 통한 명문대 입학을 신분 상승과 출세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부빈필부지(扶貧必扶智)’라는 말이 있다. 가난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지혜가 도와야 한다는 뜻으로 빈곤 퇴치에 있어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2014년 9월 10일 중국 교사절(스승의 날)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담화에서 인용할 정도로 유명한 말이다. 빈부 격차와 빈곤 퇴치에 골치를 썩이고 있는 중국 정부는 교육을 앞세워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농촌 등 낙후지역에 교육 투자를 강화하고, 교사를 확보하는 등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는 입장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험에서 객관식보다 주관식 비율이 더 높다는 점이다. 대규모 시험을 치를 때 객관식이 많은 이유는 채점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객관식 정답은 채점 자동화가 가능하여 시간과 인력을 크게 줄여줄 뿐만 아니라 공정성도 보장된다. 이 때문에 주관식을 줄이고 객관식을 늘리곤 한다. 결국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가오카오에는 심지어 800자 정도의 작문 시험이 있으며, 점수도 50점이나 차지하여 고득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프랑스 대입 논술인 바칼로레아 정도는 아닐지라도 대단한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이외에도 50% 이상의 다양한 주관식 문제가 출제된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대규모 채점관이 동원되곤 한다. 개별 대학의 논술시험조차 없애려는 우리가 주목해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석유大·지질大… 철저한 대학 특성화
일반인에게 중국 하면 떠오르는 대학은 베이징(北京)대나 칭화()대 정도일 것이다. 중국의 양대 명문 대학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보통 베이징대는 인문계를 대표하고, 칭화대는 이공계를 대표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중국의 대학도 서열을 따지지만, 그래도 특성화가 우선이며 서열도 자주 바뀌는 편이다.
아래에 예로 든 몇 개의 대학은 그 이름만 들어도 중국 대학의 특성을 그대로 알 수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자 독음이나 번역으로 거론한다. 농업대학(大), 임업대학(林大), 항공대학[航空航天大), 석유대학(石油大), 지질대학(地大), 영화대학[影 院], 방송대학[播大] 등이 있다. 이름이 조금은 촌스럽고 직설적이다. 하지만 이름이 각 대학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농업대는 당연히 농업이, 임업대는 당연히 임업이, 석유대는 당연히 석유분야가 특성화되어 있다. 항공, 지질, 영화, 방송 등 나머지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중국 대학은 특성화 분류가 매우 잘 돼 있다. 분야별로 최고 전문가도 대학별로 나뉘기 마련이다. 농업 관련 분야는 베이징대나 칭화대보다 농업대가 더 권위가 있고, 발언권이 있다. 나머지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대학 출신의 전문가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중국과의 교류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혹자는 우리나라에도 방송대가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성격의 대학이다. 한국의 방송대는 방법론적으로 방송이라는 수단을 통해 교육할 뿐, 일반 대학과 차이가 없다. 한편 중국의 방송대는 방송에 관련된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졸업하면 대부분 방송 관련 분야로 진출한다. 그래서 친구로 지내던 방송대 학생이 졸업 후 인턴으로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중국 대학은 애초 설립 목적 자체가 특정 분야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자연히 특성화 위주였으며, 당연히 종합대학이란 목표를 추구하지 않았다. 개혁개방 이후 외국과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종합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대학 간의 합병 등을 통해 종합대의 모양새를 갖추기도 하였다. 가장 비근한 예로 베이징대를 들 수 있다. 원래 이 대학에는 의대가 없었다. 물론 베이징 의대가 있었지만, 이 대학은 베이징대와 아무 상관이 없는 독립적인 대학이었다. 그러나 종합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종합대에 의대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자, 정부와 대학들이 나서 합병을 시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베이징대는 2004년 베이징 의대와 합병하면서 명실상부한 종합대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중국의 대학은 특성화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서열이 중시되지 않았고, 서열을 나누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국제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종합대학 열풍이 불며 점차 서열이 중시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학의 서열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중국 유명 대학들은 가오카오(高考)의 수석을 자기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를 통해 대학의 명성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 ‘이영애 소학교’를 아십니까
가끔 중국에 진짜 ‘이영애 학교’가 있느냐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중국에서 ‘대장금’으로 유명한 배우인 이영애를 얼마나 좋아하기에 그 이름까지 따서 학교를 지었느냐는 질문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중국에는 분명히 한국의 초등학교 격인 ‘이영애 소학교’가 있다. 그런데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조금 아련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이영애 소학교는 2006년 이영애가 폐교 직전의 학교에 5만 달러(약 5000만 원)를 기부하면서 생겼다. 학교 측은 그녀의 기부에 감사해 학교 이름도 ‘이영애 소학교’로 바꿨다. 좀 특이해 보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렇게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학교나 건물의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이영애 소학교는 중국 항저우(杭州) 인근 춘안(淳安)현 랑촨(浪川)향에 있다. 시골 마을에서 학교는 단순히 교육기관의 기능만 지니는 게 아니라 마을의 자존심이자 상징이기 때문에 원래 있던 학교가 너무 낡아 폐교가 결정됐을 때 그 상실감은 컸다. 또한 애꿎은 학생들이 10여㎞ 떨어진 현 소재의 학교에 다녀야 할 형편이었다. 마침 그때 이곳을 방문했던 이영애가 이 사실을 알게 돼 따뜻한 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중국의 경제 발전 속도는 자타 공인 세계 최고다. 그 성과도 놀라워 세계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의 외형적 경제 발전은 성공했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 발전의 열매가 일부에 집중돼 빈부·지역 격차가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경제 발전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교육 격차도 심하다.
2000년대 초반 중국 학생의 3분의 1이 겨우 초등학교를 이수했으며, 고등학교까지 나온 학생이 30%도 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런 현실은 중국 미래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운다. 중국 정부는 혼자 힘으로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직시하고 1989년부터 희망 프로젝트(希望工程·Project Hope)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중국청소년발전기금회에서 운영하는 사회공익사업으로, 민간 주도로 국내외에서 기금을 받아 운영된다. 이 사업은 주로 빈곤지역 아동에게 기초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빈곤지역 아동들의 학습환경을 개선해 주는 등 가난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잃어버린 아동들을 위한 기초교육사업이다. 결국 관영운동이지만 적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문맹률은 20% 내외로 알려져 있다. 비록 간체화됐다고는 하나 한자라는 어려운 문자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교육은 더욱 절실하다. 중국도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지금도 농촌 등 낙후지역의 교육환경은 여전히 참혹하다.
중국의 희망 프로젝트와 그 속에서 탄생한 이영애 소학교는 이처럼 어려운 중국의 현실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희망 프로젝트는 중국 정부의 대단한 결정임이 분명하다. 병은 알려야 낫는다는 속담처럼, 현실을 감추고 은폐하기보다는 공개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중국 정부의 결정에 눈길이 간다. 공연히 국가적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문제를 노출시켜 해결하려는 실사구시의 행위라 할 만하다.
◇중국인에게도 어려운 漢文
모두 알다시피 중국 사람들은 한자를 문자로 쓴다. 그래서 한문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중국인들도 한문이라 불리는 고대 문장을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 교육과정에서 배우고 독해하고 암기하지만, 대부분 중국인에게 한문은 여전히 어려운 존재다. 간체자를 배우기에 번체자가 어렵고, 해석 방법이 현대 백화문과 달라 또 어렵다.
말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비록 중국의 한자 문화가 200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내부적인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나라나 송나라 때 고문운동(古文運動)이 있었는데, 이때 고문은 춘추전국시기의 문장을 말한다. 그만큼 한문을 쓰는 방식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예전에 쓰던 문장을 고문이라 하고, 현대에 쓰는 문장을 백화(白話)라고 한다.
19세기 말까지 한반도의 공식 문자는 한글이 아니라 한자였고 그것도 고문이었다. 한글이 존재했으나 지배계층은 여전히 한자로 공식 문서를 작성했고, 그것으로 인재를 뽑았다. 1894년에 마지막 과거 합격자를 배출했다고 하니, 20세기 초에도 쉽게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도 백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20세기 초까지 중국의 공식 문장은 여전히 고문이었다. 한글이 그러하듯이 백화도 중국 지식인들과 수많은 투쟁과정을 겪으며 자리를 잡았다.
1919년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기치로 일어난 5·4운동은 천두슈(陳獨秀) 일파의 진보사상과 그들의 선전지 ‘신청년’ 주도로 이뤄졌다. 이 운동을 계기로 신청년의 문장 표현방법인 백화문이 전국에 파급되고 중국 문장 생활의 주류가 됐다. 그들은 고문은 반은 죽은 문자이고 백화는 살아 있는 생(生)문자이며, 고문으로 쓰인 문학은 ‘죽은 문학(死文學)’이고 백화로 쓰인 문학은 ‘살아 있는 문학(活文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힘을 얻자 당국은 1920년 봄 초등학교 교과서를 고문에서 백화문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고, 중·고교 교과서에도 백화문이 적용되면서 백화문은 중국의 공식 국문으로 인정받았다.
구어체 중국말인 백화의 시초는 상업이 비교적 발달했던 송나라 때 활발하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군사력은 약했지만 경제와 문화가 흥성했던 송나라 때 이미 구어와 고문의 차이가 확연해지고, 고문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백화가 발달하면서 그 결과 백화소설 등이 등장했다.
중국인의 고문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필자가 중국인들에게 중국 고전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다. 중국인들에게도 어려운 고문, 즉 한문을 전공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자를 문자로 쓰는 중국도 이런데 우리는 오죽하겠는가. 어려운 중·고교 한문 교과서를 보노라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한자도 모르는 학생에게 한문까지 가르쳐야 하는 한국은 더욱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문을 어떻게 가르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중국인도 어려워하는 한문과 한자를 가르치기 위해선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돈 벌다’ 발음 닮아… 숫자 ‘8’ 좋아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4를 죽을 사(死)와 같이 여기며 피하려 한다. 4의 나쁜 의미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건물의 4층 같은 경우 알파벳 F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등기된 동호수와 실재 동호수가 달라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서구의 영향으로 7이 행운의 숫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은 중국 나름의 꽤 독특한 숫자 관념이 존재한다. 알아두면 중국인과 교류하는 데 도움이 될 부분이다.
중국의 숫자 관념은 숫자 본연의 모습보다 발음의 연상 작용인 해음( 音)현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숫자 4의 발음이 쓰(si)인데 죽을 사(死)의 발음도 si이다. 이처럼 동음이의어나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를 연상시켜 호불호가 결정된다. 중국에서는 4자뿐만 아니라 3자와 7자도 기피한다. 3은 발음이 흩어질 산(散)의 발음인 싼(san)과 같아 헤어지다, 이혼하다와 같은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고, 7은 발음이 쓸쓸할 처(凄)의 발음인 치(qi)와 같아 처량함을 나타낸다고 본다. 물론 서양의 영향으로 7을 행운의 숫자로 보기도 해서, 7자의 관념은 조금 유동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잘 알려진 것처럼 8자이다. 또 6자와 9자도 좋아한다. 8자는 ba로 발음되는데, 돈을 벌다(·facai)라는 말에서 발(發)의 발음인 fa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6자는 liu로 발음이 되는데,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는 류(流)자와 발음이 같다. 9자의 발음은 jiu로 영원하다(永久·yOngjiu)는 뜻의 구(久)자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6, 8, 9를 좋아하고, 3, 4, 7을 싫어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중국의 숫자 사랑은 이미 민간을 뛰어넘어 정부 공식행사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오죽하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2008년 8월 8일 8시에 거행됐겠는가. 원래는 8분 8초까지 맞추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너무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어 8시 정각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중국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는 행사 시간을 정하는 데 영향을 줄 정도로 유별난 중국의 숫자 사랑에는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한 숫자의 호불호를 넘어 숫자가 조합을 이루면 더욱 독특한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514는 그 발음을 따라가 보면 ‘吾要死’가 연상되는데, ‘나 죽겠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의미를 지닌 514호에 들어가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다른 번호의 조합도 마찬가지다. 518은 ‘나는 돈 번다’는 의미가, 516는 ‘나는 잘 풀린다’로 519는 ‘나는 오래간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은 의미가 건물 호수 등과 만나면 의미는 더욱 증폭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 입원했다고 치자. 그러면 514호는 ‘나 죽는다’고 반복하는 셈이고, 519는 ‘나 장수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미신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해도 선호도가 나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아니겠는가? 사무실이라면 518호는 돈 잘 버는 사무실이 되고, 516은 일이 잘 풀리는 사무실, 519는 오래가는 사무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517은 ‘나 처량하다’니 누가 입주를 하겠는가.
◇ 6, 8, 9에 열광… 15억 원 전화번호도
지난주 중국의 간단한 숫자에 대한 호불호를 알아보았다. 일반적으로 6, 8, 9를 좋아하고, 3, 4, 7을 꺼린다는 점과 이러한 숫자를 조합하면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도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숫자에 대한 관념은 단순한 개별적 호불호를 넘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국제적 화젯거리가 되기도 한다.
중국인의 개별 숫자에 대한 호불호는 모든 숫자가 들어간 대상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건물 동호수, 전화번호, 자동차 번호 등이 있다. 이런 대상의 숫자는 단순한 호불호를 넘어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6, 8, 9가 많이 들어가면 좋은 번호고, 3, 4, 7이 많이 들어가면 나쁜 번호가 된다. 예를 들어 374는 흩어져 쓸쓸히 죽는 의미가 되고, 689는 순조롭게 부자가 되고 장수한다가 된다.
중국의 숫자 사랑은 휴대전화를 개통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한국과는 조금 다른 형태여서 재미있기도 하다. 우선 휴대전화를 먼저 사고 개통하는 것은 우리와 같다. 그런데 휴대전화 번호를 받아야 하는데, 번호 값을 따로 내야 한다. 다시 말해 번호가 임의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숫자의 조합에 따라 일정한 가격을 주고 번호를 구입하는 구조다.
정확히 말하면 휴대전화 가게에서 미리 구입해 놓은 번호를 다시 소비자가 구매하는 형식이다. 이런 구조는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지만 일반적으로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쁜 번호나 의미 없는 번호는 우리 돈으로 몇만 원이면 살 수 있지만 비싼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팔리기도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어떤 휴대전화 번호의 가격이 15억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한다. 분명 해외토픽에 나올 만한 화젯거리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상 필요로 외우기 쉬운 번호나 특정 업종을 연상시키는 번호들이 암암리에 거래되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처럼 의미상 좋은 숫자가 몇억 원은 물론 몇십억 원에 거래되기도 하니 놀랍기만 하다. 자동차 번호 또한 마찬가지여서 몇억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인 친구나 사업 파트너가 있다면 그의 휴대전화 번호나 자동차 번호를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숫자로 여기는 6, 8, 9가 많다면 돈이 많은 경우이고 3, 4, 7이 많다면 실용적인 스타일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전화번호가 그냥 전화번호가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인이 이렇게 숫자를 중시하는 이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다. 그런데 아무래도 중국어의 발음이 단조로운 것이 한몫하는 것 같다. 중국어는 발음이 같아도 음의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변한다. 이를 성조라고 하며 4가지가 있다. 그래서 단순히 비교하면 우리는 발음이 4분의 1만 있어도 된다. 그러니 발음의 유사성인 해음 현상이 우리보다 훨씬 많아지는 것이다. 여하튼 중국에서 숫자는 단순한 기호를 넘어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으니 외국인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품 가격이나 넘버를 만들 때 유의할 필요가 있다.
◇‘괘종시계- 마칠 종’발음 같아… 선물 금기
중국과 한국은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차이가 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차이점 중 하나가 금기 사항이다. 숫자가 그렇고, 선물에도 금기가 있다. 중국에서는 선물하지 말아야 할 목록이 제법 있는데,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시계, 우산, 부채, 배, 칼, 손수건 등이 그렇다. 그 이유는 이것도 숫자와 같이 발음에 따른 연상 작용에 의한 언어적 이유 때문이다. 숫자와 마찬가지로 동음이의어에 해당하는 해음 현상에 기인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시계는 엄밀히 말해 괘종시계를 뜻한다. 괘종시계를 钟(zhong)이라 읽는데, 그 음이 마칠 종(终·zhong)과 같다. 그래서 결국 관계가 끝났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이제 끝내죠’라는 의미이니 좋아할 리 없다는 것이다. 다른 선물도 이와 비슷하다. 우산은 伞(san)이라 발음하는데, 이것이 헤어지다라는 흩어질 산(散·san)의 음과 같아서 조심하고, 배는 중국어로 梨(li)인데 역시 이별의 리(li)와 음이 같아 조심한다. 이런 선물들은 관계를 끝내자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칼, 부채, 손수건 등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모두가 부정적인 의미가 되니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거북이나 자라도 선물하지 않는다. 이름이 귀신을 연상시키며, 또한 중국의 심한 욕이 거북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꽃 선물도 그리 좋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듯이 꽃은 오래가지 않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선물 포장지의 색상도 흰색이나 검은색을 피하는 것이 좋다. 중국에서 흰색이나 검은색은 일반적으로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으니 선물이 아니라 저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 습관처럼 결혼식 축의금을 흰 봉투에 넣어 준다면 그건 큰 실례다. 빨간 봉투나 노란 봉투를 쓰는 것이 좋다.
현재 중국은 전통과 현재가 혼재돼 있어 빠르게 변화하는 면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금기 사항은 문화의 일부로 일단 관습화되면 쉽게 바뀌지 않으니 유의해야 한다. 특히 회사 사은품으로 이런 것을 잘못 준다면 좋은 평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욕을 먹을 수 있다. 물론 나름대로 의미를 잘 부여하고 풀이를 잘해 줄 자신이 있다면 어떠한 선물도 좋을 수 있다. 중국 문화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뜻풀이를 높이 평가해 주는 측면이 있기에, 작은 선물에도 문화적 소양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중국인이 좋아하는 선물도 있다. 일반적으로 술인 주(酒·jiu)의 발음과 9의 발음이 지우(久·jiu)로 같아 ‘오래가다’는 의미가 된다고 하고, 사과는 핑궈(苹果·pingguo)로 핑안(平安·ping’an)과 같아 평안하라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애플이 중국에서 인기가 있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러나 선물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영역이라 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금기도 개인별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의 선물 문화는 일종의 체면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좋은 선물은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다. 사실 전통사회의 뇌물도 이런 체면문화의 연장선에서 생겨난 것이다.
◇ 차이나 소프트파워 된 ‘컴퓨터 漢字’
20세기 말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은 한자 때문에 커다란 문제에 직면했다. 한자는 여러 이유로 컴퓨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자이기 때문이다. 일단 획수가 많고, 개수도 5만 자가 넘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소리글자인 한글이나 알파벳처럼 쉽게 자판을 만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한자는 컴퓨터를 만나 도태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한자는 이런 난관을 하나둘 헤쳐나가며 컴퓨터와 조합을 이루어냈다.
중국 속담에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중국의 공학자들은 한자의 어려움을 풀어나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하나둘 해결책을 만들어냈고, 지금은 컴퓨터란 날개를 달고 디지털 시대 한자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중국어 입력법에는 발음 입력법, 자체 입력법 등 다양한 방법이 등장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도 컴퓨터를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한자의 글자체인 새로운 폰트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한글이나 알파벳도 폰트를 새로 만드는 데 많은 비용과 인력이 동원되지만 ‘ㄱ, ㄴ’ 등 기본 글자를 만들고, 초성과 종성을 따로 만들면 된다. 그러면 조합해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는 조합해서 활용할 수 없어 한 글자 한 글자를 모두 만들어야 하니 다른 문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한자의 새로운 폰트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로는 획수가 많다는 것이다. 획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독성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또 그만큼 폰트를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심지어 과학적인 한글도 알파벳보다 획수가 많아 출판 등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데, 한자는 오죽하겠는가. 현재 중국 대륙이 간체자를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번체자를 없앤 것도 아니다. 한자의 총 획수가 1획, 2획 같은 글자도 있으나 20획이 넘어 64획이 되는 것도 있으니 좁은 틀에 글자를 만들기도 쉽지 않고, 글자별로 균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또한 한자는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한자는 적어도 3000∼4000자는 만들어야 폰트로서의 가치가 있으므로 엄청난 인원과 비용이 동원되어야 한다. 당연히 그 사업 규모도 엄청나기 마련이다. 여기에 출판 등에 활용되는 전문가용은 5만 자 정도까지 만들어야 하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규모 프로젝트가 된다. 더군다나 만든다고 해서 확실한 금전적 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자연히 민간에서 하기 힘든 일이 된다. 중국 정부는 국가사업으로 이에 집중 투자를 해 많은 폰트를 개발하기도 했다.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한자를 사용하니 한자 폰트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폰트를 개발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든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중국에서 한자 폰트를 수입하기도 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자체 개발하는 것보다는 저렴하니 어쩔 수 없다. 폰트의 특성을 개발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한번 개발하면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중국의 한자 폰트는 또 하나의 차이나 소프트파워가 되어가고 있다.
◇520-사랑해’ ‘250-바보’…숫자 유행어
◇옛 神話에서 따온 우주개발 명칭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뛰어넘어 세계의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 경제 대국으로서 중국은 낙후된 나라가 아니라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변화하는 중이다. 이미 각종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최첨단 기술이라는 드론이나 태양전지 분야 등에서는 세계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그중 우주항공 분야가 빠질 수 없다.
사실 중국의 우주개발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중국의 최초 위성은 마오쩌둥 시기인 1970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東方dongfanghong’이란 이름의 위성으로, 당시 소련과의 대립으로 고립됐던 중국이 대외 과시용으로 쏘아 올린 것이었다. 최근에는 단순 대외 과시용이 아닌, 주변 강대국들을 위협할 만한 우주개발을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개발을 통해 미국, 러시아 따라잡기를 넘어 독자적 위치에 올라서고자 하는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중국의 우주굴기는 1999년부터 시작되었다. ‘神舟shenzhou’라는 이름으로 우주탐사를 시작하였고, 2003년부터는 유인우주선을 우주로 발사하였다. 선저우는 ‘신의 배’라는 뜻으로 ‘하늘의 배’를 지칭한다. 그런데 같은 발음의 神州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 중원이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의 우주개발계획은 우주 유영, 우주선 도킹 등을 거치며 그 기술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양자통신 실험위성을 발사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우주정거장 건설, 달 탐사 등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2021년 화성 탐사의 야심 찬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명칭이 재미있다. 달 탐사 계획은 ‘창어(항아嫦娥change)’로 이름 지었는데, 이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그녀와 관련된 신화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하나만 살펴보자. 그녀는 예의 부인이었다. 어느 날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뜨니 세상에 난리가 난다. 천제의 아들이 장난을 친 것으로 천제는 예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그는 세상으로 내려와 고지식하게 9개의 태양을 활로 쏴 죽여 버린다. 분노한 천제는 그를 땅에 살게 한다. 그는 서왕모를 찾아가 천도복숭아 2개를 얻는다. 하나를 먹으면 불로장생하고, 두 개를 먹으면 하늘로 다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부인과 하나씩 나누어 먹고 지상에서 살기로 한다. 그런데 부인 항아가 밤에 몰래 2개를 먹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도중에 달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천제가 이를 보고는 벌을 내려 두꺼비로 변하게 된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달에 두꺼비가 산다고 믿는다.
이처럼 중국의 우주개발에는 전통적인 이름이 붙은 경우가 많다. 탐색위성의 이름을 손오공의 ‘우쿵(오공悟空wukong)’으로 부르고, 양자 통신위성을 고대 사상가 묵자의 이름을 따 ‘무쯔墨子muzi’로 불렀다.
또 화성 탐사는 고대 신화에서 태양을 쫓다 죽은 거인인 과보父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호불호를 떠나 중화사상으로 무장한 중국의 무서운 성장은 주시해야 할 부분임이 분명해 보인다.
◇수질 나쁜 中… ‘茶의 나라’로
한국인은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에 반해 중국인은 차를 좋아한다. 가까운 이웃이지만 서로 다른 측면이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어를 배울 때 초급 단계쯤에서 음료수 명칭을 알게 된다. 중국인들이 마시는 대표 음료인 차茶는 한국 발음과 비슷한 cha고, 커피는 kafei다. ‘카페이’라는 발음이 ‘커피’와 너무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는 그렇게 쓴다. 그런데 혹시 ‘가비’를 아는지?
우리나라 고종황제가 커피광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때는 커피를 가비加比, 茄菲 혹은 가배가배라고 불렀다. 발음이 비슷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불린 것은 아무래도 중국어의 영향이었던 듯하다. 가배가배는 중국어의 가배와 상당히 유사하다. 중국에서도 처음에는 발음에 맞춰 다양한 한자를 쓰다가 하나로 정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니,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화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일본인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외국 문물을 지칭하는 한자어를 일본식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중국식 한자어와 멀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는 고대 문물은 중국, 근대 문물은 일본, 현대 문물은 미국을 통해 받아들여왔다. 그 흔적이 언어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산업 현장에 일본어가 유난히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중국은 차의 나라다. 차는 중국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녹차를 비롯해 매우 다양한 차가 시장에 유통되며, 또 값비싼 차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어떤 차는 심지어 1㎏에 2500만 원 하는 차가 있다고 한다. 가히 황금보다 비싸다고 할 수 있다. 차를 마시는 방법도 지역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일반적으로 남방은 작은 찻잔을 쓰고, 북쪽은 큰 찻잔을 쓴다. 또 우유 등 다양한 첨가물과 함께 마시는 차도 발전해 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커피를 좋아하고 중국은 차를 좋아할까? 그 원인 중에 하나는 수질에 있다. 한국은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1970년대까지 한강 물을 직접 퍼서 먹었을 정도로 전국 어디나 수질이 좋은 편이다. 물론 지금은 수질오염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과거에는 아무 개울물이나 마셔도 큰 문제가 없었다. 물이 좋으니 그냥 마셔도 되고, 또 커피 등을 타 마셔도 문제가 없었다. 물론 미국 문화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다르다. 수질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오염문제가 아니라도 물에 황토가 많고, 또 석회가 녹아 있다. 석회는 눈으로 볼 때 식별할 수 없지만, 물을 끓이고 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래 하얗게 가루 형태로 가라앉는다. 수돗물을 가열식 가습기에 넣고 작동시키면 다음날 방바닥에 하얀 석회가루가 뿌려져 있을 정도다. 이는 필자가 실제로 겪은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뜨거운 물에 차를 넣으면 찻잎에 석회가 붙어 이를 걸러주는 작용을 한다. 커피에는 이런 기능이 없으니 차를 마시는 이유 하나가 더 보태진 셈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 사람들은 끓이지 않은 찬물을 마시기 꺼려하고, 반드시 끓인 물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는 주변의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는 것임을 커피와 차에서도 알 수 있다 하겠다.
◇2017년 01월 02일 난방도 정부 통제… 11월 15일부터 일제히
중국에서 가장 추운 달은 11월 초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자연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1월이 온도가 가장 낮고 또 가장 춥다. 그런데 왜 11월 초일까? 베이징(北京)에서 살아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11월 15일이 되어야만 난방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부 특별한 지역을 제외하고 정부에서 정한 난방공급 일자가 11월 15일이다. 따라서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11월 초가 가장 춥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온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지만, 그래도 11월 초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사실이다. 북방지역의 90% 이상이 중앙난방 방식이라고 하니, 북방지역 전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라 하겠다.
중국의 국토면적이 워낙 방대하고, 기후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난방공급 기준과 시기가 달리 운영되기도 한다. 남방지역에는 아예 난방시설이 없는 곳도 있다. 겨울에도 보통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싹이 날 정도로 따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습기 때문에 으슬으슬 춥다. 실내에서는 개별 전기난방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중국에서 여름에는 남방으로 겨울에는 북방으로 여행가라는 말이 있다. 남방은 여름에 가고, 북방은 겨울에 가야만 제대로 된 그 지역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과 달리 중국의 난방시스템은 온돌이 아니고, 서양과 비슷한 스팀방식이다. 물론 최근 온돌방식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스팀방식이 우세하다. 중국은 침대문화에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지내기 때문에 꼭 온돌일 이유가 없다. 또 우리나라처럼 바닥 생활을 하지 않으면 스팀방식의 열효율이 더 좋다고도 한다. 날씨도 건조한데 스팀이 나오면 실내는 정말 건조하다. 빨래를 널어놔도 소용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중국 북방지역에서 겨울철 가습기는 필수품이다.
게다가 중국의 겨울은 미세먼지의 계절이기도 하다. 중국은 원래 공기질 조사에서 세계 최하위권에 속하는 나라다. 그중에서도 겨울은 더욱 심각하다. 그 면적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어서, 겨울이면 베이징에서 산둥(山東)반도에 이르는 한반도보다 넓은 거대 지역이 극심한 스모그와 같은 공기 오염으로 곤욕을 치른다. 겨울이 되면 난방을 위해 석탄 사용량이 급격히 높아지니 미세먼지 농도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이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는 석탄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대도시 주변의 농촌에서 연탄 등을 사용하고 있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대도시의 자동차 배기가스와 주변 농촌의 석탄 연기가 만나 환상의 스모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세먼지로 인한 스모그가 심할 때는 가시거리가 채 50m도 안 될 정도여서, 심지어 이로 인한 교통체증까지 유발된다. 이 때문에 국제행사라도 있게 되면 자동차 운행을 이부제로 제한하고, 공장 운행을 멈추게 하고, 난방을 자제시켜 인위적으로 맑은 날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더 지독한 스모그가 찾아오곤 한다.
우리도 이제는 미세먼지 청정지역이 아니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도 적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양도 적지 않다. 언젠가부터 오로지 효율성과 경제성만을 앞세워 환경보호를 게을리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있지만 숨쉬기조차 어려운 중국의 극심한 공기 오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맑은 공기를 되찾을 혜안이 필요한 시기라 하겠다.
◇01월 09일 새해 절하는 횟수, 지역·시대별로 달라
중국의 새해 인사는 매우 다양하다. 보통 ‘신년쾌락新年快’ ‘만사여의万事如意’ ‘공희발재恭喜 ’ 등이 많이 쓰인다. ‘신니엔콰이러新年快[xin nian kuai le]’는 ‘행복한 새해’라는 뜻으로 영어 ‘Happy New Year’의 의미와 같다. ‘완스루이万事如意[wan shi ru yi]’는 ‘모든 일이 뜻대로 돼라’는 뜻으로, 만사는 모든 일을 나타낸다. ‘꽁시파차이恭喜 [gong xi fa cai]’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돈 버는 것을 축하한다’인데, 우리말의 ‘부자 되세요’나 ‘대박 나세요’와 비슷하다. 이 세 가지 표현은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도 자주 쓰고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중 수교가 다시 열린 1990년대에는 반응이 달랐다. 특히 돈이 들어가는 ‘꽁시파차이(恭喜 )’에 대한 양국의 반응이 달랐다. 당시 한국은 아직 ‘재테크’란 단어가 생소했던 시기였고, 또 돈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꺼리던 시기였다. 그래서 어떻게 새해 인사로 노골적으로 돈을 얘기하느냐며 중국에 대해 흉을 보기도 했었다. 그 당시 중국 하면 ‘더럽다’ ‘돈을 밝힌다’는 등 부정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던 시기로, ‘꽁시파차이’는 중국인들이 돈을 밝힌다는 증거로 인용되기도 했었다. 그랬던 한국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이 급격히 변하면서 ‘재테크’라는 단어가 부각되고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서서히 회자되더니, 최근에는 ‘대박 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하고 있다. 이렇게 새해 인사말 하나로도 한국 사회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합가환락合家 ’은 가족의 행복을, ‘신체건강身 健康’은 건강을, ‘일체순심一切 心’은 모든 일이 순조롭기를 바라는 인사이며, 이외에도 더 많은 표현이 있다. 또한 연하장 같은 곳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인사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새해 인사는 언제 해야 할까? 이 상황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양력을 쓰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새해는 1월 1일이다. 하지만 중국도 우리의 설날에 해당하는 춘절이 가장 큰 명절로 이때를 진정한 새해의 시작으로 여긴다. 양력만 쓰는 일본과 달리 한국과 중국의 새해는 두 번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새해 인사는 이래저래 두 달 정도 쓰이기 마련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국은 설날을 왜 ‘춘절春[chunjie]’이라고 하는지 짚고 넘어가 보자. 춘절이라면 봄 축제인데, 엄동설한에 봄 축제라니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절기인 입춘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아니다. 입춘은 양력 2월 4일경인데 설날과 비슷한 시기다. 옛날에는 이때를 봄의 시작으로 보았고, 또 다른 새해의 시작으로 보았던 것 같다.
새해에 친척이나 이웃에게 두루 인사하는 것을 중국어로 ‘배년拜年[bainian]’이라고 한다. ‘빠이니엔’은 고대에는 큰절을 했지만, 지금은 큰절이 사라지고 가볍게 인사를 하는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큰절을 할 때 살아 있는 사람에겐 한 번, 죽었으면 두 번 하는 것이 법도지만, 중국은 지역별·시대별로 전혀 다른 횟수로 절을 한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여러 번 절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양국 문화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해서 이해하기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01월 16일 빨간 봉투에 세뱃돈 ‘압세전’ 주고받아
◇01월 23일 중국산 = 저질’이라는 편견
언젠가부터 ‘대륙의 실수’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중국 휴대전화 기업인 ‘샤오미(小米)’의 제품은 가격에 비해 품질이 뛰어나다, 즉 가성비가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쓰인 단어로 보인다.
‘대륙의 실수’라고 하면 제품의 품질이 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좋으니 하는 말이다. 중국 제품에 대한 우리의 평가절하가 담긴 단어로, 우리의 중국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중국은 가짜 천국이다.’ 이런 보도를 많이 본다. 또 ‘회충 김치’로 각인되어 있듯 중국 먹거리나 제품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중국 장난감을 써보면 정말 금세 망가진다. 그런데 이는 뭔가 문제 있는 인식이다. 먼저 주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을 살펴보면, 뒷면에 분명 ‘made in China’라고 쓰여 있다.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도 만들 수 있는 곳이 중국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저질의 중국 제품만을 기억하는 것일까?
‘회충 김치’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김치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다. 중국에 김치 제조법을 가르쳐 준 것도 우리고, 그 김치를 수입한 사람도 우리고, 검역한 사람도 우리고, 판매한 사람도 우리다. 물론 소비도 우리가 한다.
결국 우리 수입업자가 문제며, 우리 검역체계가 문제며, 우리 판매업자가 문제인 셈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농산물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일본으로 수출하고, 중간 것은 중국에서 먹고, 최하품이 한국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수입업자는 오직 가격만을 따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격이 비싼 ‘아이폰 수준의 제품’을 수입할 수도 있고, 가격이 싼 저질의 제품을 수입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여하튼 대륙의 실수는 계속되고 있다. ‘샤오미’의 뜻은 우리말로 ‘좁쌀’이다. 그렇다고 그 기업마저 좁쌀같이 하찮게 본다면 정말 큰 실수다. 물론 이 샤오미 하나만 실수(?)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세계 드론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DJI도 유명하다. 이미 취미용 부분의 드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중국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에 업그레이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도 않고 막연한 거부감이나 기대감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놀랍게 바뀌고 있다. 마치 외환위기 때 벤처 열풍이 불어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처럼,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스타트업 회사에 주목하고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다. 지금 그 열매가 하나둘 열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의 분발이 요구되고 있다.
어쩌면 중국은 놀랍게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에 문제도 많고, 또 가짜나 짝퉁도 많다. 앞서 거론한 중국의 유명한 스타트업 회사들도 세계 유명 기업을 모방하기에 바빴다. 물론 최근에는 자체적인 제품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도 따라 하기에 가깝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기술이 놀랍도록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대륙의 실수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쩌면 중국 바로 보기는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02월 06일 ‘메이드 위드 차이나’ 외치는 中
중국에서는 장사하는 사람이 자주 쓰는 ‘선주붕우, 후주생의(先做朋友, 後做生意)’라는 성어가 있다. 먼저 친구가 되고 나중에 장사를 하라는 뜻이다. ‘관시(關係)’가 중요하다는 중국시장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성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를 넘어서야 진정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Made in China’를 버리고 ‘Made with China’로 표현하고자 한다. Made in China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을 상징하는데,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Made for China도 있는데 이는 세계의 시장인 중국을 상징하고, 중국의 각종 세계적 명품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Made with China를 외치고 있다. 이는 세계의 공장과 시장을 넘어 다음 시대를 대비한다는 의미도 있다.
2016년 삼성 갤럭시 노트7 회수 사건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삼성의 야심작이었으나 발화 문제가 발생하면서 결국 전량 회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발화사건 초기에 중국 배터리보다 한국 배터리를 먼저 회수하였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기술의 자존심인 삼성 배터리가 중국산에 밀렸다는 점이다. 이미 기술면에서 한·중의 차이가 거의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지피지기라고 했던가. 아직도 ‘대륙의 실수’라는 편견으로 중국을 본다면 큰일이다.
어느덧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통해 기술을 획득했고, 세계의 시장을 통해 경제 부피를 키웠다. 이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도 있고 자본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품의 품질과 같은 유형의 수준에는 도달했지만, 제품에 대한 신뢰도나 지명도와 같은 무형의 수준 도달은 아직도 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이 내민 구호가 ‘중국과 함께’이다. 장사를 하려면 친구가 되자고 하는 것처럼, 중국은 같이 투자하고 같이 생산하고 같이 판매하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Made with China는 새로운 경제협력 방식에 대한 중국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순히 구호를 구호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이제 중국정부는 더 이상 Made in China나 Made for China를 목표로 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이젠 중국과 함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나라와 기업이 서로 보완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더 큰 시너지를 만들자는 의미이다.
이처럼 지금 중국정부는 중국을 단순히 공장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나 거대한 시장만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넘어서 중국과의 협력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상생하자는 말이다. 우리의 한류도, 우리의 기업도 이런 중국 정부의 기조를 잘 읽고 대비해야 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서 중국정부의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전문가들도 노력해야겠지만, 특히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도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중국의 엽기적인 보도가 넘쳐난다. 사람 많고, 땅이 넓다 보니 악의적인 의도나 편집이 아니더라도 이런 뉴스는 무척 많다. 그래서 더욱 언론의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편견이 단시일에 바뀌지는 않더라도 중국을 제대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지피지기해야 다음에 뭐라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02월 13일 문화 공간이었던 중국판 인사동 ‘유리창’
베이징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가 유리창(琉璃廠)이다. 골동품이나 책방이 많은 거리로 한국의 인사동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베이징 관광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은 도장이나 작은 기념품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 유리창은 또 다른 의미를 알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유리창을 한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유리공장이란 뜻이다. 아마 다양한 유리 제품을 만들던 곳이었나 보다. 골동품을 파는 문화의 거리라는 의미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름임이 분명해 보인다. 유리창은 예전에 황실이나 귀족대관 등 사회 고위층에게 유리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던 장소였다. 그런데 여기서 유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리와 조금 다르다. 한자는 같지만 다른 의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리 창문’의 유리와 다른 뜻을 지닌다. 중국에서는 이런 유리를 뽀리(璃boli)라고 구분하여 쓴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이 다른 길을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유리는 또 무슨 뜻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중국에서 유리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지 않지만, 유리와(琉璃瓦)라는 단어가 있는데 청기와를 뜻한다. 또 유리전(琉璃)이라는 단어는 오지벽돌을 말한다. 둘 다 표면이 매우 매끄럽다는 공통점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코팅된 제품을 가리키는데, 매끈한 코팅을 유리라고 불렀다. 결국 유리는 대량 생산 이전의 수공 유리를 말한다. 유리창문을 꿈꿀 수도 없었던 시절, 유리가 보물이던 시절의 유리를 의미한다.
지금도 중국의 황실 건물 같은 고대 건물의 기와 등을 보면 코팅이 되어 있어 매끈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결국 유리창이란 수공 유리제품이나 유리로 코팅된 물건을 만들던 장소였던 셈이다.
이처럼 상류층의 거래가 많았던 곳이다 보니, 상류층을 위한 다른 물건도 팔기 마련이었다. 상류층만을 위한 다른 고급 제품인 골동품, 그림, 서적 등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유리창은 일종의 상류층 문화거리가 된다. 그러다 보니 당시 외국 사신들이 꼭 들러야 할 장소이기도 했다.
유리창은 우리 선조의 기록인 ‘연행록’에도 많이 나타난다. 연행록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기록한 보고서 또는 기행문을 통칭한다. ‘연경’은 북경의 옛 명칭으로, 지금 시점에서 따지면 베이징 방문기를 모아놓은 기록인 셈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중국을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보았다. 따라서 유리창은 지금의 뉴욕 브로드웨이나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처럼 최고의 문화 공간이었던 셈이다. 또한 유리창이란 최신 도서나 현지 지식인을 만날 수 있는 꿈의 공간이기도 했다. 오로지 이 하나의 이유로 중국까지 멀고 고된 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다.
시대는 변하여 유리창은 베이징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책도 있고, 골동품도 있지만, 옛 선조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유리창은 없다. 사실 선조들이 느꼈을 유리창은 어느 외국에나 있다. 지식을 갈구하는 이들이 모이는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이 그곳이다. 그래서 외국을 방문한다면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을 방문해본다면, 옛 선조들의 시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때로 추억은 사진이 아니라 가슴으로 새겨야 한다면 말이다.
◇02월 20일 질투 많은 양(羊)… 가장 싫어하는 띠
한·중 양국의 문화는 비슷한 점이 많은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띠 문화가 있다. 또한 띠를 둘러싼 이런저런 논란도 있다. 중국어로 띠는 ‘속상属相[shuxiang]’인데, 줄여 ‘속属[shu]’자만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띠를 물어볼 때 그 기준이 양력인가 음력인가 하는 논란이 있다. 중국도 이런 경향이 있지만 중국에서 띠는 어디까지나 음력을 기준으로 보고 있다.
띠는 모두 12가지로 동아시아 전반에 퍼져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12가지 띠 중에 좋은 띠와 나쁜 띠가 있기도 하다. 한국도 예전에는 범띠 여성이나 말띠 여성이 드세다고 꺼리기도 했다. 중국에도 이런저런 속설이 있는데, 양띠가 유난히 눈에 띈다. 온순하고 착한 양이 꺼리는 띠로 등장하니 좀 의외라고 하겠다. 꺼리는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오죽하면 TV를 통해 양띠가 나쁘지 않다고 특집 방송을 하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같은 양띠 출신의 위인을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출산율이 10% 이상 차이가 날 정도라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다.
필자가 양띠인지라 그 이유가 더욱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양이 토끼띠나 돼지띠 등과 함께 온순하고 착한 띠라 여겨졌는데, 중국에서도 양은 전통적으로 제사에 제물로 쓰이던 성스러운 동물이었다. ‘아름다울 미(美)’자가 ‘양 양(羊)’과 ‘큰 대(大)’자가 합쳐져 만들어질 정도이니 말이다. 양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더라도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될 정도니 흥미로웠다.
중국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겨우 유목민을 꺼렸던 과거의 기억이 아닐까 하는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유목민의 침입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주장이었다. 중국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만큼 양고기를 많이 먹을 정도로 유목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은 엉뚱한 곳에서 해답이 나온 듯했다. 양의 속성에서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었다.
양은 재미있게도 겨울에는 서로 떨어져 자고, 여름에는 같이 붙어서 잔다고 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정말 그렇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두고 남이 추우라고 떨어져 자고, 남이 더우라고 붙어서 잔다고 해석한다. 결국 양은 시기와 질투가 많은 동물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과거 일부다처제 시절 여성에게 가장 금기시되었던 것은 바로 시기와 질투였다. 한국에서 칠거지악 중 으뜸이었는데,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양띠 여성을 기피했을 것이고, 출산 전까지는 남녀를 구별할 수 없으니 아예 임신 자체를 기피한 것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 못한 반전이 있다. 양이 겨울에 떨어져 자고, 여름에 붙어서 자는 이유는 털 때문이다. 양은 떨어져 자야 따뜻하고, 붙어 자야 시원하다고 한다. 털에 공기층이 두꺼워서 떨어지면 따뜻하고, 붙어 있으면 공기층이 사라져 시원하다고 한다.
중국에서 그믐날 밤에는 전통적으로 잠을 자지 않는다. 이를 ‘수세守[shou sui]’라고 한다. 귀신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이 있으니 비슷한 전통이라 하겠다.
02월 27일 ‘객기 부리지 마세요’는 편하게 하란 뜻
한국과 중국은 한자문화권으로 같은 한자를 쓴다. 중국은 간체자를 쓰지만 기본 바탕은 같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그중 재미있는 것이 ‘객기(客氣)’라는 단어다.
중국에서는 ‘부야오커치不要客[buyaokeqi]’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사양하지 마세요, 예의 차리지 마세요’라는 뜻이다. 손님에게 편하게 지내라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그런데 이 말을 한자 그대로 번역하면 ‘객기 부리지 마라’는 뜻이 된다. 그러면 의미는 확 달라진다. 같은 한자어가 나라에 따라 이렇게 뒤바뀌기도 힘든데 말이다.
여하튼 한국어에서 객기는 ‘공연히 부리는 호기’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능력도 안 되면서 자존심을 세우는 행위 같은 무모한 행동을 뜻하니 함부로 거론하면 안 되는 단어다. 반면 중국에서 ‘커치’는 ‘정중하다. 겸손하다. 사양하다’ 등 모두 예의를 차리는 좋은 의미다. 한자를 분석해도 ‘손님의 기운’이니 원래 의미는 중국의 해석에 가까웠을 듯하다.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르게 쓰이는 또 하나의 예로 ‘애인(愛人)’을 들 수 있다. 애인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상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결혼 전 연애하는 대상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결혼한 배우자를 의미한다. 미묘하지만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기혼자에게 ‘애인 있느냐’고 물으면 실례가 되고, 중국에서는 미혼자에게 ‘애인 있느냐’고 물으면 실례가 되는 셈이다. 어찌 보면 배우자는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배우자가 애인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 둘을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그런데 대만 등에서는 애인이 우리와 같은 범위로 쓰이기도 한다. 중국이 넓다 보니 같은 단어도 지역적으로 차이가 나는데, 일반적으로 남북의 차이가 크다. 또 중국에서 기차(汽車)는 자동차를, 화차(火車)는 기차를 나타낸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의 단어 쓰임이 다른데, 아마도 전래 시기가 다르거나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끔 외국어를 통해 한국을 볼 때가 있다. 특히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할 때 ‘우리’라는 단어를 조합해 ‘우리 엄마, 우리 집’ 같은 말을 많이 하는데, 이를 외국어로 번역하면 ‘우리’가 ‘나’로 바뀐다. 영어가 그렇고, 중국어도 그렇다. ‘우리 엄마’는 ‘my mother’나 ‘我’로 번역돼 ‘내 엄마’가 된다. ‘우리 집’도 ‘내 집’이 된다. 별것 아닌 거 같지만 의식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외국어를 공부하려면 언어를 넘어 관념을 이해해야 한다. 언어는 사유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어를 하다 보면 중국이 한국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누가 더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다름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만이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
한·중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대충 비슷하다고 예단한다면, 그것이 바로 객기를 부리는 꼴이 되니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03월 06일 감사표시 할땐 ‘쎄쎄’아닌 ‘시에시에’로
최근 한국과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이래저래 삐끗하고 있지만 양국의 교류는 활발한 편이다. 굳이 중국을 가지 않아도 수많은 중국 유학생과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볼 수 있다. 길거리에서나 상점에서 중국인과 만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아닐 정도로 일반화되고 있다. 물론 중국인과 만나서 중국어를 하면 좋겠지만, 외국어는 아무래도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국어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중국인을 대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중국어 몇 마디를 알아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말은 ‘칭[qing]’이다. 이 말만 적절히 사용해도 중국인과 잘 지내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칭은 한자의 청할 청(請)자로, ‘상대방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거나 권할 때 쓰는 경어’이다. 한국어에는 이렇게 사용하는 경어가 정확하지 않고 ‘~하십시오’처럼 술어의 표현으로 대체된다. 오히려 영어에서 정중하게 요청하는 의미의 ‘please’와 가깝다고 보면 된다. 물론 중국어로 하려면 칭과 술어를 합친 형태로 말해야 한다. 그런데 앉다, 먹다 같은 중국어 술어를 몰라도 칭만 말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만남에서는 상황을 서로 공유하기에 가능하며 약간의 몸동작만 더해 주면 된다. 짧은 단어 한마디로 정중한 표현이 가능해진다. 식사를 할 때 앉는 것도, 들어오라고 하는 것도 ‘칭’ 한마디면 된다. 간단해서 기억하기도 쉽고 유용한 단어라고 하겠다.
다음은 ‘뿌하오이쓰不好意思[buhaoyisi]’다. 이 단어는 ‘부끄럽다, 쑥스럽다, 난처하다’는 뜻이다. 보통 ‘유감스럽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미안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중국어로 미안하다는 ‘뚜이부치不起[duibuqi]’를 쓰는데, 어떤 경우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이 단어는 영어의 ‘sorry’처럼 책임을 통감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 때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고를 책임진다는 의미가 돼 엉뚱한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뿌하오이쓰는 책임을 동반하지 않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일단 이런 상황 자체가 발생해 유감이란 의미니 정치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고맙다는 표현에는 ‘시에시에[xiexie]’가 있다. 한국어로는 쎄쎄로 표현하는데,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심지어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중국어를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정확히 흉내 내기는 어렵더라도, ‘시에’를 빨리 두 번 발음하는 것이 좋다. 중국인은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 편이다. 작은 일에도 상대의 호의에 감사를 표현한다. 고객이나 손님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차를 따라주거나 음식을 건네줄 때 이를 표현하는 것이 좋다.
만약 말하기 힘들다면 검지와 중지를 모아 탁자를 탁탁 두 번 쳐주면 된다. 이 행동도 고맙다는 표현이다. 남쪽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지만, 전반적으로 알려진 방법이다. 식당, 카페 등에서 대화를 끊지 않으면서도 감사를 표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일반적으로 건륭 황제가 민간 시찰을 할 때 생겨났다고 한다. 황제가 신분을 숨기고 사복을 입고 다니니 따르던 신하들이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무릎을 꿇는 대신 손가락 두 개를 구부려 그 예를 표현했다고 한다. 전해지는 말이지만 그럴싸하다.
◇03월 13일 대만의 2·28 사건
최근 대만 2·28 사건에 피해를 본 한국인이 배상 판결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1947년 대만에 거주하던 한국인이 시위 참여자로 오해받아 사망했던 사건이다. 당시 선원이었던 그는 아들 생일에 쓸 생선을 사러 가는 길에 끌려가 실종됐다. 중국어가 서툴렀던 그가 반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의 광복을 맞아 귀국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만의 2·28 사건은 우리에겐 낯선 사건이지만 대만을 이해하려면 꼭 알아둬야 한다. 비록 70년 전인 1947년에 벌어진 과거의 사건이지만 지금의 대만 정세를 이해하는 밑바탕이 된다. 일반적으로 대만을 중국과 비슷한 곳이라고 치부하기 쉽지만 대만은 그들만의 독특한 역사와 정서를 지니고 있다. 대만은 역사적으로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 등 다양한 식민세력의 지배를 당했다. 대만 원주민 입장에서는 다양한 외부세력이 들락날락한 셈이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대만은 국민당의 중화민국에 속하게 됐다. 그러나 국민당은 공산당과 내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군사점령지역처럼 대만을 관리했다. 최고위직 등 지배계층은 대륙에서 넘어온 이들이 차지하고, 대만 현지인은 임금이나 대우에서 차별을 받았다. 이처럼 관리 수준은 일제의 통치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악화하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대륙에서 온 외성인(外省人)과 대만 토착민인 본성인(本省人) 간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그 후에도 본성인의 요구는 대부분 무시되거나 탄압의 빌미가 됐다. 당연히 불만은 쌓이고 반발의 정도도 커졌다.
그러던 와중 1947년 2월 28일 단속원의 총에 학생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가 벌어지자 대만 경비총사령관은 본성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계엄을 선포했고, 이에 시위대는 더욱 격화되고 전국화됐다.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국민당 정부는 시위대와 타협하는 듯 제스처를 취하다가 대륙에서 지원군이 도착하자 바로 유혈진압을 실시했다. 유혈진압은 3월 21일에 이르러서야 진정됐는데, 이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이 3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1989년 만들어진 대만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는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후 2·28 사건은 철저한 금기가 됐다. 거론하는 것 자체가 반역이었다. 공산당에 패해 1949년 대만으로 정부를 옮긴 국민당은 계엄을 선포하고 철권통치를 했다. 당연히 현지인의 불만은 컸으나 반공의 기치 아래 사건의 진실은 은폐되고 탄압받았다. 계엄은 1987년에야 끝나게 되는데, 이후에 다시 이 사건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1997년에 이르러서야 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228평화공원을 만들었는데, 참으로 오래 묵힌 사과라 하겠다.
현재 대만 정치세력은 크게 국민당과 민진당으로 나뉜다. 국민당은 외성인인 본토 출신이나 그 후손이 지지하는 경우가 많고, 민진당은 본성인인 토착민이나 젊은층의 지지를 받는다. 2·28 사건은 이 두 세력의 간극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인 셈이다. 지금도 대만의 선거는 본성인과 외성인의 정서 차이를 바탕으로 한다. 대만의 주요 정치 이슈인 독립문제도 이러한 정서의 차이에 따라 강도를 달리한다.
◇03월 20일 아리송한 중국의 여성 지위
지난 8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다. 중국에서는 3·8부녀절(婦女節)이라고 하여 성대한 행사를 한다. 이처럼 중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세계적으로 높은 편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은 남녀평등 지수가 굉장히 높은 국가이기도 해서, 중국 여자들의 특징을 말할 때 기가 세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 중국은 여성 자살률이 남성의 경우보다 높은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중국 여성의 지위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왕조시대 중국은 전족이라는 관습만 보더라도 여성을 차별하던 나라였다. 전족은 여성의 발을 인위적으로 작게 만들기 위해 헝겊으로 감싸 매던 야만적인 풍습이다. 억지로 얽어매다 보니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었고, 성인 여성이 되어서는 인간적인 일상조차 누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억압적인 악습이었다. 이 관습은 10세기 초에 시작되어 20세기까지 거의 1000년 동안 지속됐던 대표적인 악습이다. 이처럼 중국은 전통적으로 여성 탄압 국가였던 셈이다.
이러한 차별이 없어진 것은 중국 혁명의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반변천(半天)’ 선언 이후이다. 반변천은 ‘여성이 하늘의 절반(女人半天)’이라는 남녀 평등사상으로 전통적인 남녀 차별을 뒤엎는 발언이었다. 중국 건립 이후 1950년 중국은 혼인법을 제정해 남녀의 권리 평등을 법으로 규정했다. 이후 법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한 존재가 되었고, 심지어 자식이 부모의 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권리도 주어졌다.
반변천이 주창된 지 반세기가 넘어서면서 중국의 여성 지위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성비 불균형이 최악이라는 기사를 접하곤 한다.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으로 여자 100명당 남자 113.5명으로, 세계적으로 통상 103명에서 107명인 성비와 비교해볼 때 걱정스러울 정도다. 또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정한 국가별 남녀평등 순위에서 보면, 중국은 87위,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권인 117위로 나타났다. 한국이 낮지만 중국도 그리 높다고 말할 수 없는 수치다. 이처럼 모순된 기사를 볼 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국 여성의 지위는 매우 특이하고, 또 지역적인 차이도 심하다. 대도시는 남녀평등적인 관념이 강한 반면, 농촌은 여전히 남존여비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성비 불균형은 주로 농촌에서 발생한다. 특히 중국에서 오랜 기간 실시됐던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노동력이 필요한 농촌에서는 남아를 선호하고 여아를 기피하는 경향이 더욱 강했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성비 불균형이 여아 출생신고를 기피하는 관행 때문에 과장됐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도시의 여성은 비교적 남녀평등적인 지위를 누리고 살지만 사실상 고달프다. 중국 남성이 한국 남성에 비해 가정생활을 많이 도와주는 편이기는 하나, 여성들은 직장 근무·가사노동·육아 등 삼중고를 겪기 마련이다. 가정 살림은 물론 자녀의 교육과 직장 업무를 모두 신경 써야 하니 결코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 그녀들의 고달픈 상황은 세계 최고의 여성 자살률로 증명된다 하겠다.
중국의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남녀평등은 과거의 구습 하나를 없앤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03월 27일 미묘하고 민감한 이슈 ‘하나의 중국’
2016년 1월 갑자기 쯔위(子瑜)라는 단어가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쯔위는 걸그룹 트와이스의 외국인 맴버다. 이때 쯔위가 주목받은 것은 노래나 미모 때문이 아니라 대만 독립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말 모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쯔위가 청천백일기라는 대만의 국기를 흔든 것에서 출발했다. 정식 방송이 아닌 인터넷 방송으로 나온, 별것 아닌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문제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면서 중국 대륙과 대만에서 쯔위는 잠시나마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게 됐다.
사건이 커진 계기는 친중파 대만인 가수 황안(黃安)이 쯔위를 ‘분리 독립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였다. 대륙에서 ‘분리 독립주의자’란 매우 무서운 낙인으로, 마치 우리나라의 ‘빨갱이’나 ‘종북’과 비슷한 의미다. 당연히 대륙에서는 비난 여론이 형성됐고, 이에 대만은 반발했다. 마치 대륙에서는 비난을, 대만에서는 응원을 하는 모양새가 됐다. 대륙과 대만에서 모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10대 소녀 쯔위는 크게 당황했다. 마침 총통 선거가 있던 대만에서는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되고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후 대륙에서는 지나친 부풀리기라는 비난 여론이 일었고, 쯔위의 사과를 거치며 이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처럼 국기 하나 흔든 것으로 양안 모두를 뒤흔든 것처럼 대륙과 대만의 관계는 매우 미묘하다. 중국은 대만을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의 첫 번째 외교정책은 바로 ‘하나의 중국(一個中國)’이다. 중국과 수교하려면 이 원칙을 지켜야 하고, 대만과는 외교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의미다. 미국, 일본 등 대부분 나라가 이를 인정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만은 올림픽에 참가할 때도 자체적인 국기가 아닌 올림픽기를 들고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국제사회가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에서는 독립문제가 언제나 민감한 화두로 등장한다. 대륙과 대만은 영토, 군사, 인구 등 국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뿐 아니라 대만 경제는 대륙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대륙과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대만 사람들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더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독립은 선거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화두다. 이처럼 대만에서는 대륙 출신인 외성인은 통일을 강조하고, 토착민인 본성인은 독립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국민당은 통일을, 민진당은 독립을 강조한다. 또 젊은층이 독립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독립은 하고 싶지만 중국 없이 살 수도 없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 대만의 선거는 치러진다. 그런데 대륙에서 활동하려면 중국 정부의 정책에 충실해야 한다. 그들을 보통 친중파라고 부른다. 참으로 어중간하고 힘겨운 여건이다.
최근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대만 총통과 전화통화를 해서 중국이 발끈하기도 했는데, 이 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알고도 중국을 떠보려고 한 행동으로 보인다. 이처럼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도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대만, 홍콩 등과 교류할 때 조심해야 한다.
◇04월 03일 神으로 추앙받는 관우…信義 중시 전통
서울에 있는 동묘의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다. 흥인지문 밖 숭인동에 있으며 중국 후한 시기 촉나라의 장수인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시기 파괴됐으나 명나라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해 재건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동묘는 좀 묘하다. 한국인에게는 관우를 추모하는 사당이지만 중국인에게는 그를 신앙하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도 관우의 혼이 나타나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는 기록이 있듯이, 중국인에게 관우는 위대한 인물을 넘어 관공(關公)이라 불리며 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래서 동묘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방문한다. 중국에서 온 지인이 있다면 함께 가볼 만하다.
한국에서 관우는 보통 ‘삼국지’로 불리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역사적인 인물이라 역사서에도 등장하지만 소설로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런데 유비, 제갈공명 등 쟁쟁한 인물들을 뒤로하고 관우만이 거의 유일하게 중국에서 신으로 추앙되니 아이러니하다. 관우가 위대한 장수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오랜 중국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났던 장수라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은 돈을 가져다준다는 재물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신이 됐을까.
그것은 그의 신의(信義) 때문이다. 그는 한때 유비와 헤어져 조조에게 의탁한 적이 있다. 조조는 관우를 매우 좋아해 그의 환심을 사려고 벼슬, 재물, 저택, 의복 등 온갖 선물을 줬다. 그럼에도 관우는 자신이 모시는 유비가 있는 곳을 알면 언제든지 떠난다는 조조와의 약조만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나중에 유비의 거처를 알게 되자 유비에게 빨리 갈 수 있는 적토마만을 타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이런 관우의 신의, 즉 인간의 욕심을 넘어선 신의가 그를 신으로 만든 것이다.
관우의 행동을 현대 상황에 비춰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조조를 대기업이라고 한다면 유비는 벤처기업이다. 조조는 관우에게 대기업 이사직을 제시하면서 높은 연봉은 물론 다양한 혜택을 줬다. 하지만 관우는 이 조건들을 버리고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아니 제대로 시작도 못 한 벤처기업을 선택한 셈이다. 혜택은커녕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벤처기업을 선택했다니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고 하겠지만, 유비와 맺은 신의만으로 이를 선택한 것이다.
관우가 신으로 추앙된 것을 보면 중국에서 신의가 얼마나 중시되는지 알 수 있다. 관우가 죽은 후 처음에는 일부 민간에서 추앙을 받았고, 그의 이야기는 전설로 이어져 더욱 신격화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설은 ‘삼국지연의’로 더 강한 전파성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전쟁의 신이었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점차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신이 됐고 지금은 재물신으로 유명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관우가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기본으로 한다. 또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 과거의 전통을 파괴하는 다양한 운동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힘이 막강해 지역에 따라 마조 등 다양한 민간 신앙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애국주의가 강조되면서 이러한 전통의 복원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그래서 중국인과 대화할 때 관우에 대해서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믿지 않더라도 상대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04월 10일 매국노 대명사… 억울한 ‘오삼계’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매국노 중 한 명으로 오삼계(吳三桂)란 인물이 있다. 그는 민족의 반역자로 명나라를 배신하고 산해관(山海關)의 문을 열어 청나라(후금)를 대륙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진원원(陳圓圓)이라는 여자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해서 더 비난받는다. 그래서 많은 소설과 드라마 속에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속내를 살펴보면 조금 억울한 측면도 있다.
오삼계는 명나라 말 유명한 장수였다. 그는 호시탐탐 명나라를 노리는 청나라를 방비하기 위해 최전선인 산해관을 지키고 있었다. 청나라는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수차례 공격했으나 오삼계에게 막혔고, 오히려 많은 피해만 당했다. 그렇게 용맹하게 청나라를 막았던 오삼계는 왜 순순히 문을 열어줘서 배신자가 됐을까.
명나라 말, 안으로는 정국이 혼란해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고 외부로는 청나라가 호시탐탐 대륙을 노리고 있었다. 당시 명나라는 최고의 적을 청나라로 보고 산해관에 정예병을 보내 지키도록 했다. 그런데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농민반란군이 세를 얻으면서 중앙정부를 위협했다. 명나라는 진압군대를 보냈으나 예상외로 참패한다.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군은 이 기세를 틈타, 순식간에 주요 도시를 점거하고 심지어 수도인 베이징(北京)마저 점령해 명나라를 멸망시킨다. 찬란했던 왕조는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명나라가 멸망했을 때도 오삼계는 대군을 거느리고 산해관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지원을 가기도 전에 순식간에 수도가 함락되고 만 것이다. 오삼계에게 이자성의 농민반란군은 자신의 주군을 무너뜨린 원수나 마찬가지였다. 이자성과 청나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삼계는 고민에 빠진다. 또한 당시 그의 가족은 베이징에 있었는데, 이자성은 오삼계의 가족을 인질로 삼았고 이자성의 휘하 장수였던 유종민은 오삼계의 애첩 진원원을 취한다. 진원원은 천하의 미녀로 기녀 출신이었다. 오삼계가 그녀를 특히 아꼈기에 당연히 화가 치미는 상황이었다. 이때 이자성은 대군을 이끌고 산해관을 공격해 온다. 이렇게 되자 오삼계는 청나라에 도움을 청했고, 청나라는 투항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결국 오삼계는 청에 투항한다.
엄밀히 말해 오삼계는 명나라를 배신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매국노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이후 오삼계는 청나라를 도와 이자성의 반란군을 토벌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평서왕에 오르고 지금의 윈난(雲南) 지방을 다스리게 된다. 거의 독립적인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강희제가 그의 작위를 폐하려고 하자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를 삼번의 난(三藩之亂)이라고 한다. 결국 오삼계는 전투 중에 병사하고 그의 세력은 청나라에 패하고 만다.
오삼계가 이처럼 악명을 얻게 된 것은 어쩌면 청나라의 주도면밀한 공작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들의 지배 대상이었던 한족이 증오할 만한 상징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한다. 청나라는 베이징에 입성할 때, 이자성에 의해 멸망한 명나라 왕조를 애도한다는 의미로 장례복을 입을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이렇게 오삼계는 지금도 모든 오명을 뒤집어쓰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04월 17일 경제성장의 그림자 ‘달팽이집’
중국에서 2009년 무렵 ‘워쥐(蜗居woju)’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와거’인데, 달팽이 ‘와’자와 거주할 ‘거’자로 달팽이가 사는 집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초라한 서민의 집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계가 놀라워하는 중국 경제발전의 이면을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부동산 투기 열풍과 집값 폭등으로 집 장만을 포기하고 달팽이 집만 한 워쥐로 주거를 해결하는 서민의 단면을 보여주는 단어기도 하다.
중국은 분명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사회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경제적 평등이 국가 모토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세계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분명 경제는 발전하고 소득은 높아지고 있다지만 워쥐에 사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없다. 그러니 차라리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이 좋았다는 자조 섞인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마오쩌둥 열풍이 불기도 한다.
현재 중국의 대도시인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의 집값은 서울 강남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또한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고가 주택이 넘쳐나고 있다. 당연히 평범한 직장인의 입장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은 이룰 수 없는 환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소시민의 입장을 반영해 탄생한 단어가 바로 워쥐다.
이 단어는 동명의 소설에서 유래되었다. 2007년에 출간된 소설로, 2009년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이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그해의 유행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 중국의 단면을 이해해보고 싶다면 볼만한 드라마다.
워쥐라는 도시 서민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중국 정부가 조기 종영의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방송이 금지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만큼 중국에서 주거문제와 빈부격차는 민감하고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이 원룸과 고시방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민달팽이’라 부르니, 중국의 ‘워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도 빈부격차로 인해 푸얼다이(富二代 fuerdai)가 아니면 집 장만은 꿈꾸기 힘들다. 푸얼다이는 ‘부자 2대’라는 뜻으로, 중국판 ‘금수저’를 의미한다.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한국과 다름없는 중국의 모습이다.
중국의 부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많은 억만장자가 생겨나고 있다. 빠른 경제 발전으로 엄청난 부가 넘치다 보니, 하루 유흥비로 몇 억 원을 쓰고 고급 외제차를 몰며 문제를 일으키는 푸얼다이의 소식이 종종 전해지곤 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이에 반해 수많은 서민은 달팽이집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다. 중국의 대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화려해지고 고급차가 넘쳐나고 있다. 세계 사치품 시장의 절반을 중국이 차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높은 건물에 가려진 뒤편 골목길에 숨어 있는 워쥐는 중국 서민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04월 24일 부패 관리의 상징 ‘淸나라 화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을 진행 중이다. 대대적인 사정을 하고 이례적으로 반부패 드라마를 방영하는 등 부패관리를 솎아 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빈부격차로 인한 인민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지방 공안국장(경찰국장)의 부패 규모가 1조4000억 원이라고 한다. 중국에 이런 부패 관리의 상징이 있는데 청나라 때 화신(和)이란 인물이다. 중국 역사상으로 가장 거대한 부정 축재를 했던 간신으로 유명하다. 화신은 청나라 전성기인 건륭(乾隆)제 때 총애를 받던 신하이다. 건륭제 당시 중국 경제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정도로 부국이었다. 강희(康熙)제와 옹정(雍正)제의 치세로 재정도 든든했고 주변 국가도 안정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화신의 부패 규모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최고 전성기의 최고 부패 관리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화신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학문에도 뛰어났다. 또한 이재에 밝고 눈치도 빨라 일찍부터 출셋길에 올랐으며 건륭제의 눈에 띄게 되었다. 건륭제는 아들을 화신의 딸과 결혼시킬 정도로 그를 총애했고 황제와 사돈 관계가 되고 나서는 주위에서 더욱 그의 권력을 두려워했다. 화신은 건륭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매관매직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부를 축적했다. 또한 실질적으로 행정부를 장악한 화신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소를 막는 등 철저히 건륭제의 눈과 귀를 막았다. 건륭제는 죽는 날까지도 그의 실체를 몰랐다고 하는데 황제의 속마음을 잘 알아 능숙하게 일처리를 했기 때문에 부패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정도 눈감아 준 것 같다.
여하튼 화신의 권력은 날로 커져서 궁궐에서 말을 타고 다닐 정도였다. 그리고 황제 진상품에 손을 댈 정도로 대담했고 민간 상권에도 관여했다. 온갖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취한 그가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세월의 흐름이었다. 바로 자신을 아껴주는 건륭제가 늙어가는 것이었다. 결국 건륭제가 나이 들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고 가경(嘉慶)제가 황위에 오르자 화신은 그의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온갖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경제는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 인내하다가 3년 상이 끝나자마자 화신을 체포하고 모든 재산을 압수했다. 온갖 보물이 넘쳐났는데 몰수 규모는 9억 냥에 이르렀다고 한다. 청나라의 10년치 국가 예산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혹자는 건륭제가 아들에게 남겨준 통치자금이라고 농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화신은 50세에 자결함으로써 생을 마치게 된다. 황제보다 더 좋은 차를 마실 정도로 호가호위하던 그는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그에게서 몰수한 재산으로 청나라는 태평성대를 더 오래 유지할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그 돈은 국가 예산이 아닌 황제 개인 재산으로 둔갑해 가경제의 호화스러운 생활에 탕진된다. 결국 민초의 입장에서는 화신이란 거대한 간신이 처단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탐욕의 주체가 화신에서 황제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부패는 언제 어디서든 어느 제도에서든 존재한다. 다만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또 엄격하게 처리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중국에서 추앙받는 황제 중 한 명인 건륭제는 믿는 신하에게 배신을 당한 셈이다. 언제나 배신은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법인가 보다. 하긴 우리나라도 그랬으니 말이다.
◇05월 02일 지난해 유행했던 단어 ‘小目標’
중국에서 2016년 유행했던 단어 중에 ‘샤오무뱌오(小目標xiaomubiao)’가 있다. 올해의 단어로 선정될 정도로 자주 거론되었던 단어이기도 하다. 이 ‘샤오무뱌오’는 ‘작은 목표, 소박한 목표’라는 뜻으로 실현 가능한 1차 목표를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유행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중국의 씁쓸한 현실을 만날 수 있다. 발단은 중국의 한 대기업 회장의 발언에서 시작된다.
그는 중화권 최대 갑부로 알려진 왕젠린(王健林) 다롄완다(大連萬達)그룹 회장으로, 한 TV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와 부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먼저 실현가능한 작은 목표를 잡아야 한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참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다음 예로 든 사례가 황당해 화제를 몰고 왔다.
그는 “예를 들면, 가볍게 1억 위안 벌기”라고 말하면서, “5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목표 달성을 한 뒤, 그 다음 목표인 10억 위안, 100억 위안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뜻 보기에 별 문제 없는 발언으로 보이지만, 1억 위안이면 한국 돈 160억 원 상당의 거금이다. 그걸 가리켜 작은 목표라고 했던 것이다. 이를 이루고 나면 1600억 원, 1조6000억 원 이상을 목표로 하라는 말이 된다.
이 정도 액수라면 한국이나 중국의 일반 월급쟁이들에게는 작은 목표가 아니라, 거대 혹은 최종 목표로 삼기에도 버거운 액수임에 분명하다. 로또 일등에 당첨된다는 소시민의 꿈은 작은 목표도 될 수 없을 정도가 되니 지나친 비유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그는 ‘가볍게’라는 수식어까지 붙이면서 진지하게 설명했으니, 정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왕 회장의 현실감각 없는 금수저 발언은 일반 대중 사이에서 자조 섞인 의미로 회자되며 유행어가 되었다.
현실성 없는 목표를 말하거나 어려운 목표를 쉬운 것처럼 말하는 다양한 패러디도 뒤따랐다. 물론 반발의 정도는 한국보다는 덜했지만 말이다.
왕 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는 중국 최고의 부자로 30조 원(2000억 위안) 이상의 재산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1억 위안이 소액이거나 소목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발언임에 분명하다. 시골에서 올라와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 달팽이 집에 거주하는 농민공(農民工)에겐 염장 지르는 발언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한국 정서와는 다른 부분이 있어 흥미롭다. 왕 회장의 외아들인 왕쓰총(王思聰)은 활발한 SNS 활동으로 알려진 유명인사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발언을 해서 주목받은 적이 있다. 그는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것이 그다지 재미없을 것 같다고 한다. 왕 회장도 아들의 태도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전문 경영인에 대해 말할 정도다. 물론 나중에 변할 수도 있겠지만, 발상 자체만으로도 신선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알다가도 모를 나라가 중국이다.
◇05월 08일 성대한 中 노동절 ‘농민공의 그늘’
중국의 정식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인민(人民)의 나라인 것이다. 중국은 마르크스 이념을 따르는 사회주의 체제로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이다. 당연히 중국에서 공산당은 절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공산당이 없었다면 신중국도 없다’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다. 1949년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는데, 그 이전은 봉건적인 옛 중국이고 그 이후부터를 새로운 중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답게 노동자와 농민이 국가의 중심이다. 작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분명히 이러한 명분 속에 건국되었기 때문에 노동자와 농민을 중시한다. 5월 1일은 바로 그 노동자의 날이다. 1918년 중국의 혁명적 지식인들이, 1890년 5월 1일에 있었던 메이데이(MayDay) 행사를 계승하여 기념한 이래로 매년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노동절(勞動節·라오둥제)이라 칭하며 매년 다양한 행사를 치르고 있다.
원래 중국에서는 노동절에 1주일을 쉬었다. 내수 진작 차원에서 1999년 ‘황금연휴제’를 실시했다. 이렇게 중국의 노동절은 건국절인 10월 1일과 함께 양대 기념일이었다. 그런데 2008년부터 추석, 단오 등의 전통적인 명절을 법정공휴일로 추가하면서 3일로 축소되었다.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짧다고 볼 수 없다.
이렇게 중국의 노동절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중국은 한마디로 농민과 노동자의 나라인 셈이다. 노동절은 법정공휴일이지만 전국 각지 농촌에서 올라온 노동자인 농민공들은 노동절에도 여전히 출근해 일을 한다. 노동절이라 노동자를 기념하는 화려한 행사가 열리지만, 정작 축제의 또 다른 주체인 농민공은 여전히 홀대받고 있는 셈이다. 현재 정식 노동자가 아닌 농민공들은 중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쌓고 있다. 저임금 노동력으로 중국을 떠받들고 있다. 심지어 중국 대도시 음식점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90%가 농민공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 달에 한국 돈으로 20만∼30만 원의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물론 중국정부도 사회 빈부격차를 인식하고 최저임금 상승 등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데, 최저임금 인상률이 평균 1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2017년 중국 상하이(上海)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20위안으로 한국 돈 약 3400원 내외다. 참고로 한국에서 2017년 최저임금은 6470원이니 절반 정도 되는 셈이다. 중국 대부분 대도시의 최저임금이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도시 공기업 임금 상승폭도 10%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최저임금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보다 높다. 이러한 정책에서 중국정부의 친노동자 정책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에서 농민공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노동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도 하다. 도농의 빈부격차로 농촌의 많은 부모들이 일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자 버려지다시피 방치된 농민공 자녀들이 최근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루하루가 고된 그들에게는 화려한 기념일보다 가족과 함께하며 먹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소원이 아닐까 싶다.
◇05월 16일 國旗는 ‘오성홍기’, 國歌는 ‘의용군 행진곡’
중국의 국기는 빨간 바탕에 노란별이 5개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한국의 국기를 태극기라고 하듯이, 중국의 국기는 오성홍기(五星旗)라고 부른다. 이 빨간 국기는 중국 헌법 136조에 의거하여 지정돼 있다. 국기야 언제나 국가의 상징으로 중요한 존재임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중국에서는 특히 1990년대 후반 중국정부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교육을 강화하면서 더욱 중시되고 있다. 지금도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는 매일 국기 게양식이 행해지고, 많은 중국인이 이를 보기 위해 새벽 일찍 모여든다.
이 국기에는 다양한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바탕인 빨간색은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인 동시에 공산당을 상징하고, 노란별은 황인종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별 다섯 개 중 가장 큰 별은 중국공산당을 상징하고, 나머지 4개의 작은 별은 4개의 계급인 노동자, 농민, 소자산계급과 민족자산계급을 나타낸다고 한다. 오성홍기는 1949년 제정되었는데, 재미있게도 공모를 통해 정해졌다고 한다. 국기의 형태가 단순하여 그리기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의 각도를 맞춰야 하는 등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한다.
중국의 국가는 의용군 행진곡이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군가의 변용이다. 가사는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여!”로 시작해서 “적군의 포화를 무릅쓰고 전진! 전진! 전진!”으로 끝난다. 상당히 호전적인 가사임을 알 수 있다. 이 곡이 만들어질 당시 중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된다. 이처럼 중국 국가는 항일투쟁을 고무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적 사실을 담은 노래이다. 중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톈한(田)이 가사를 붙였으며, 녜얼(耳)이 작곡한 곡으로 영화 풍운아녀(云女)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은 1949년 국가로 제정되었다. 또한 이 노래는 중국 대륙을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휘말리기도 했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毛澤東) 시절 혁명운동으로 10년간 이어졌다. 문제는 이 노래를 작사한 톈한이 문화대혁명 때 우파로 몰려 숙청당하면서 시작된다. 톈한이 숙청당하자 그가 작사한 이 노래도 금지된다. 임시로 다른 곡을 국가로 대신했으며,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이 곡을 다시 국가로 불렀는데, 가사가 문제가 돼 마오쩌둥과 공산당 찬양의 가사로 새로 만들어 불렀다. 그러나 항일 전통과 역사가 담긴 노래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1982년에 원래의 곡과 가사로 되돌렸다. 최근 헌법 개정 과정에서도 의용군 행진곡은 여전히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에서도 물론 이 국가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국화는 무궁화이다. 중국의 국화는 무엇일까? 보통 모란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매화라는 설도 있다. 먼저 매화는 백화(百花)의 왕이라 하여 1929년 중화민국이 지정했던 국화다. 지금도 타이완에서는 매화를 국가의 상징으로 여긴다. 이에 반해 모란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전통적으로 ‘꽃 중의 꽃, 꽃의 왕’으로 불린다. 이러한 이유로 모란이 중국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중국정부는 별도로 국화를 지정하고 있지 않다. 미국과 일본도 국화를 지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법적으로 국화를 지정하지는 않았다. 무궁화는 관습적인 국화인 셈이다.
◇05월 22일 영화 ‘쿵푸팬더’에 화난 中
판다는 중국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중국에만 존재하는 동물로 귀염성 있는 생김새 덕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인기 때문에 판다를 유치하려는 국가도 많다. 그런데 개체 수가 적다 보니 중국 정부의 엄격한 관리와 보호를 받고 있어서 해외로 보내진 모든 판다는 기본적으로 임대 형식이다.
다시 말하면 전 세계 모든 판다는 중국 소유이며, 심지어 새끼를 낳으면 그것까지 중국 소유이다. 가끔 외교적 행위로 판다를 임대하기도 하는데, 이도 물론 공짜가 아니다. 적지 않은 임차료를 내야 한다. 한국도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판다 관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중국으로 돌려보냈던 아픈 기억도 있다. 여하튼 판다는 중국의 자존심인 셈이다.
그런데 중국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이 판다 때문에 중국이 크게 자존심 상한 적이 있었다. 바로 ‘쿵푸팬더’ 때문이다.
‘쿵푸팬더’(2008년)는 유명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로 세계적으로 큰 환영을 받았다. 미국의 드림웍스가 제작한 영화로, 주인공이 판다임은 물론이고 영화 스토리 또한 중국의 전형적인 무협 장르와 소재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제작사만 빼면 모든 것이 중국인 셈이다.
중국을 소재로 미국이 만든 영화가 어떻게 보면 중국을 소개해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소재를 남의 나라에 빼앗긴 기분이 든 것은 사실이다. 마치 일본이나 중국이 한국의 김치로 대박을 낸 꼴이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 이 영화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상영을 금지해야 한다느니 관람을 하지 말자는 등 다양한 반발 여론이 일기도 했다. 중국의 상징인 판다와 쿵후를 왜 허락 없이 사용했냐는 여론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공식적으로 상영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자존심이 단단히 상했던 사건임에 분명했다. 이후 ‘쿵푸팬더’ 시리즈는 계속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할리우드에서 외국의 문화원형을 활용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중국 소재는 이전에도 있었는데 ‘뮬란’(1988년)이 대표적이다.
중국 고대의 화목란(花木蘭)이란 여자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다. 중국 고대 민간 서사시 ‘목란사(木蘭辭)’에 기초한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가 발전했다고 자신하던 2008년에 와서 부정적 반응이 나타났다.
‘쿵푸팬더’ 이후 중국에서는 자국의 문화 원형을 되살리는 수많은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쿵푸팬더’의 인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중국을 소재로 한 미국 영화에 대한 반발은 결국 중국 정부와 문화계로 그 화살이 향하게 된다. 그 이후에 중국에서는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자체적 노력을 넘어 할리우드 영화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은 심지어 할리우드조차 중국 투자자의 눈치를 보는 실정이라고 한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 다양한 문화 원형을 소유한 동시에, 세계적으로 차이나 머니도 최강의 파워를 나타내고 있다. ‘쿵푸팬더’와 같은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 같다.
◇05월 29일 ‘中의 박찬호’ 농구스타 야오밍
중국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다. 올림픽을 통해 많은 스포츠 스타를 배출했고, 그 분야도 탁구, 체조, 수영, 육상, 다이빙 등으로 다양하게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올림픽을 치를 때마다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했는데, 육상 110m 허들의 류샹(劉翔)이나, 박태환의 라이벌인 수영의 쑨양(孫楊) 등이 있다. 그 밖에도 매우 다양한 스타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스포츠 스타와 격을 달리하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미국에 진출했던 농구 선수 야오밍이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적은 없지만 중국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 박찬호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중국인과 교류할 때 그의 존재를 통해 상대의 기분을 조금 띄워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중국인에게 야오밍은 특수하다.
야오밍은 한자로 요명(姚明)이라 쓰는데, 지금은 은퇴한 농구 선수다. 220㎝ 큰 키를 앞세워 미국 NBA에 진출했고, 눈에 띄는 좋은 성과를 거둬 중국에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NBA에서 가장 키가 큰 선수였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NBA에 진출해 구색을 갖추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NBA 올스타전에 서부 콘퍼런스 소속으로 8번 참가했으며, 올-NBA팀에 총 5번 선정됐다.
그는 NBA 휴스턴 로키츠팀에서 뛰었는데, 진출할 때 중국 농구협회는 국가 대표팀 경기를 위해서는 귀국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기도 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에서도 그는 1차 지명으로 NBA에 진출했다. 이는 미국 대학팀 출신이 아닌 선수로서 첫 번째 사례라고 할 정도로 특수한 경우였다. 물론 NBA에서도 중국시장을 염두에 두고 그의 마케팅에 신경을 쓴 면도 없지 않지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NBA에 진출한 후에 리바운드를 앞세워 활약을 펼쳤으며 결국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 NBA 올스타 투표에서는 250만 표를 얻어 기존 마이클 조던의 기록을 깨기도 했다. 그 정도로 야오밍은 최고의 스타였다. 물론 올스타 투표에 중국어가 제공됐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마 수많은 화교와 중국인이 참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에서 인정받았다는 점과 농구라는 종목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올린 성과는 중국인의 긍지를 높여주고 자존심을 지켜준 측면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겪었을 때 미국에서 활약했던 박세리와 박찬호에게서 큰 힘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공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힘이 지금보다 많이 약해 미국과 함께 양강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할 때였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가장 미운 상대지만 동시에 가장 인정받고 싶은 상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국에서 인정받는 중국인은 중국에서도 주목받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은 야구에 관심이 없어 박찬호나 류현진을 거의 모른다.
그런데 중국인이 박찬호나 류현진을 한국의 자랑이라고 말한다면 정말 반가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야오밍을 향해 ‘엄지 척’ 해주시라! 중국인의 입꼬리가 올라갈 테니.
◇06월 05일 中 가서 나와 같은 姓을 만나면…
중국에서 이름을 물어보는 표현으로 ‘닌 구이 싱(nin gui xing)?’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당신의 성은 무엇입니까?’라는 표현이다. 이름을 묻는 표현인데, 성을 물어보고 있는 셈이다. 즉 혈통인 성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화적 표현이라 하겠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혈통을 나타내는 성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중국에 ‘장삼이사(張三李四)’란 표현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사자성어인데, 직역을 해보면 장 씨 집안 셋째 아들과 이 씨 집안 넷째 아들이란 말이다. 중국에 흔한 성인 장 씨와 이 씨 집안의 특별할 것 없는 셋째와 넷째니 평범하고 흔한 사람이란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장 씨와 이 씨가 거론되는 것은 그만큼 이들 성씨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의 통념에 따르면 가장 많은 성이 왕(王·wang), 이(李·li), 장(張·zhang), 유(劉·liu), 진(陳·chen)의 순서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 통계에 따르면 이 씨가 왕 씨보다 많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고 3위인 장 씨 이상은 모두 9000만 명을 넘는 등 상당히 많다. 이 세 성씨의 합이 2억7000만 명으로 중국 전체인구의 25%를 넘는다고 한다. 4위인 유 씨는 황제혈통이 많아 유명하고, 5위인 진 씨도 한국의 인구보다 많은 57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물론 이외에도 적지 않은 인구수를 지닌 성씨가 존재한다.
한국의 성씨는 총 286개 정도라고 한다. 그럼 중국은 몇 개나 될까? 기록에 따라 차이가 큰데, 6000여 개에서 1만2000여 개의 성이 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인구가 거대하고 소수민족까지 있으니 성의 개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참고로 다양한 성은 일본이 최고인데 그 수가 자그마치 약 30만 개라고 한다. 비슷한 지역의 세 나라지만 성씨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그만큼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인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성(姓)이란 글자에 ‘여(女)’ 자가 붙는다는 점이다. 분명히 성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는데, 왜 ‘여자 여’ 자가 붙었을까? 고대에는 원래 성을 어머니에게 물려받았고, 아버지에게는 씨(氏)를 물려받았다. 그렇게 합쳐진 글자가 성씨가 됐다. 그래서 예전에는 성과 씨를 구분하기도 했다. 모계에서 받는 성과 부계에서 받는 씨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가 점차 부계 중심으로 변하고, 모계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성씨를 합쳐서 성이란 한 글자로 표현하게 됐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성이란 글자에서 모계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성이 많다. 어쩌면 한국에 있는 모든 성이 중국에 있다고 할 정도다. 상대적으로 박(朴) 씨와 김(金) 씨가 중국에 적기는 하지만 이 또한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중국인과 교류할 때 같은 성씨를 만나면 약간 애매모호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너무 국가적 자존심을 앞세우거나 성씨의 인연을 앞세우면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냥 가벼운 인연으로 평가하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06월 13일 커제 - 알파고 바둑 중계 금지 ‘中의 복수’
얼마 전 현재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커제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이 있었다.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완승한 알파고의 실력이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사실 대결 전부터 알파고의 승리는 예견되었다. 알파고가 대국 이전에 온라인 바둑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세계 유수의 고수들과 겨루어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결과는 역시 알파고의 3:0 완승이었다. 그래서 이세돌 9단만이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알파고가 홀연히 은퇴를 선언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흥미로운 대결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관점 이외에도 또 다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의 놀라운 선전을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다. TV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중국 선수와의 대결이었고, 대결 장소 또한 중국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시청이 불가능했다. 오로지 대국이 진행되는 현장에서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다양한 불만이 쏟아졌지만 그대로 진행되었다. 구글 측에서는 TV는 물론 유튜브로 이를 중계하여 최대한 많은 사람이 시청하길 원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TV 중계는 물론 유튜브 중계도 차단했다. 게다가 중국 고유의 동영상 사이트인 유큐나 QQ 등의 2차 중계도 금지했다. 이로 인해 중국 최고수의 빅 이벤트를 중국에서만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 이유는 중국 정부와 구글의 오래된 구원(舊怨) 때문이었다.
사실 이 대결 자체가 성사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있을 정도로 중국 정부와 구글은 정치적 마찰을 겪어왔다. 구글이 중국 정부가 차단해 놓은 벽을 넘기 위해 중국인이 좋아하는 바둑을 선택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만 중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원래 구글은 ‘google.cn’으로 중국에 진출했다가 2010년 중국시장에서 철수하였다. 중국 정부의 검열정책과 마찰을 일으킨 것이 표면적 이유였고, 구글과 흡사한 중국의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가 중국 정부의 후원으로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것이 내면적 이유였다. 이때의 악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는 말이 있다. 중국 정부의 구글에 대한 강력한 제재도 이런 상황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특별한 이벤트였고, 또 중국 선수가 출전한 세기의 대결로 살짝 눈감아 줄 수 있었지만, 일회성 방송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중국 정부의 대처는 냉엄했다. 이에 대한 긍·부정의 평가야 다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엄연한 지금 중국의 모습이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최근 한·중 간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인해 여러 마찰이 빚어졌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 문제의 해법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커제와 알파고의 대결을 타산지석 삼아 볼 때, 중국 정부의 태도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드와 관련된 기업은 바짝 긴장해야 한다. 조금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음을 구글의 예가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중국 사업 진출 포기까지 고려해야 할 엄중한 상황이다.
◇06웧 19일 14개국과 국경… 문화 다양하고 외교 능숙
중국은 땅이 넓다 보니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에다 북쪽에는 북한이 존재하여 다른 나라와 육지 국경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에 반해 중국은 육지에만 14개국과 마주하는 국경이 존재한다. 많은 나라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보니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영토문제 같은 예민한 문제도 안고 있다.
가장 긴 국경은 중국과 몽골 사이의 4710㎞이고, 다음은 러시아로 4354㎞이다. 예전에는 소련과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었으나, 소련의 붕괴와 독립으로 몽골과 가장 긴 국경선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미얀마, 카자흐스탄, 인도, 네팔, 베트남, 북한, 키르기스스탄, 부탄, 파키스탄, 라오스,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의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분명 14개 국가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많다고 봐야 한다. 한국, 일본, 필리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6개국과 바다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국경을 맞댄 국가의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상대국들은 서로 다른 매우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또 국민 정서도 서로 다른 나라들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종교만 봐도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세상의 주요 종교 모두를 맞대고 있는 정도다. 따라서 중국의 국경문제는 매우 복잡해지기 마련이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은 외교를 매우 중시한다.
중국은 여러 이웃 나라와 접하고 있다 보니 다양한 마찰과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어서, 그들과 지속적이고 원활한 교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가장 예민한 문제는 영토분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때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베트남, 소련, 인도 등과 무력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의 국경선 확정 과정도 하나의 난제였다. 중국은 1949년 국가를 성립했지만 힘이 약하고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어 한동안 ‘평화공존 5원칙’을 내세워 거론하지 않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몽골, 북한, 파키스탄 등 우호적인 국가들과 우선 국경선을 확정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러시아, 라오스, 베트남 등과 국경조약을 체결하였다. 2006년 말까지 12개 국가와 국경조약 및 협정을 맺어 90% 정도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은 다양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보니 국경도시마다 독특한 문화가 성립되기도 한다. 북쪽의 러시아에서 남쪽의 베트남까지 나라별로 교류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중국의 문화와 어우러져 국경도시의 문화를 형성한다. 이러한 국경도시에서는 인적·물적 교류도 활발하여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중국은 외교에 매우 능숙한 국가이다. 역사적인 축적 과정이 그러하며, 14개국과 국경을 맞댄 현실이 그러하다. 때론 논리를, 때론 명분을, 때론 현실론을, 때론 힘을 내세우며 변화무쌍한 외교술을 펼친다. 그래서 우리 외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를 사이에 둔 대중외교에서 힘 대 힘이란 단순 논리를 벗어나 유연하고도 다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06월 26일 국력 강해진 中, 국경 마찰 대응 강경
중국과 인도는 지금도 국경선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지금은 비록 1962년처럼 군사력을 직접 동원한 마찰은 없다고 하지만, 국경선 확정을 둘러싼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국경선 문제는 곧 영토 문제이다. 두 나라 모두 국경선을 두고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 갈등 중인 영토의 넓이가 한반도보다 넓다고 하니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중국과 인도의 국경 문제는 점차 군사적 마찰을 뒤로하고 외교적 해결로 향하고 있다. 특히 2005년 양국은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면서 평화적으로 국경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미사일 부대 배치 등 군사적 행동과 더불어 외교적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잠복한 갈등이지만 현재진행형 상태이다. 분명한 것은 양국의 국경 문제는 언제라도 군사적 문제로까지 다시 타오를 수 있는 불씨임이 분명하다.
어찌 보면 중국과 인도는 국경 분쟁이 일어날 수 없는 나라일 수도 있다. 그들 사이에 세계의 지붕인 에베레스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황폐한 땅덩어리가 많고, 또 과거에는 그 가운데 완충 지역인 티베트가 존재했었다. 지금도 중국과 인도의 국경 중간에는 네팔과 부탄 등 다른 국가가 끼어 있어 완충지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1949년 중국이 건국되어 티베트가 중국 일부로 흡수되면서, 중국과 인도는 직접 국경을 맞댄 국가가 되었다. 이후 체제, 이념,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한 마찰은 지속되고 있다.
과거 중국은 여러 나라와 국경 문제로 무력충돌을 빚어왔다. 그만큼 중국은 국경선 문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14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최근 중국의 국력이 충분히 강력해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국경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같은 이치로 중국과 인도의 국경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인도의 국경선 문제는 어쩌면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중국의 대외정책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어 중국과 직접적인 영토문제가 없는 우리지만, 이어도 문제 등 잠복한 문제가 적지 않다. 또한 통일 이후를 대비한다면 더욱 이 문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된 고구려사 문제도 우리는 역사문제로 한정하고 있지만, 중국은 영토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말하지만 그들은 현재를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재의 영토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 강화를 통해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의미이다. 지금 한창 벌어지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도 중국 정부의 방향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영토 문제도 언제나 민감한 화두로 등장할 수 있다. 비록 현재 바다를 둘러싸고 어업권 등 간접적인 마찰로 한정되어 있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매우 민감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휘발성이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면밀한 검토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통일을 대비한 문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07월 05일 中 전통무술 태극권은 사기?
최근 중국의 태극권 고수와 격투기 선수의 대결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태극권 하면 중국의 전통무술로 유명하다. 영화 ‘황비홍’을 통해 한국인에게도 익숙해진 무술로, 태극권 고수가 수많은 적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무술과 현대 격투기가 대결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이 대결은 중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 대결의 시작은 격투기 강사인 쉬샤오둥 씨가 태극권은 사기라는 자극적인 발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태극권 강사인 웨이레이가 반발하며 태극권은 절대무술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SNS에서 둘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고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누리꾼들은 말만 하지 말고 직접 싸워보라고 독려했고, 결국 양측 모두 동의하여 대결이 벌어졌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20초 만에 격투기 선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태극권은 폼만 잡다가 돌격하는 격투기 선수에게 반격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웨이 씨는 쓰러질 때까지 한 방도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명백한 패배였다. 결국 태극권이 사기로 증명된 셈이었다. 승자인 쉬샤오둥은 태극권이 시대에 뒤떨어진 무술로 실전 가치가 없다며 언제든 도전하면 받아주겠다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무협영화 속 쿵푸 고수들의 화려한 동작과 파워를 떠올린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임에 분명했다.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선수 한 명이 패한 것이 아니라, 중국 전통이라 자랑해온 무술의 패배였다. 그건 중국 전통무술의 몰락과 마찬가지였고,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다. 많은 네티즌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 대결이 주목을 받고 그 결과에 대한 갑을박론이 일자, 한 갑부는 중국 전통무술과 쉬샤오둥의 대결에 1000만 위안(약 17억 원)을 상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는 SNS에 쉬샤오둥을 KO시켜 중국 무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라 하겠다.
상금이 걸리자 중국 전통무술인 태극권, 매화권, 영춘권 등 다양한 무림의 고수들이 도전장을 던졌다고 한다. 누리꾼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실제 대전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중국 무술협회에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 대결이 무덕(武德)에 위배되어 위법요소가 있다며 사사로운 개인 간의 대결을 금지한다는 성명이었다. 무술이 단순한 싸움을 위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지만, 네티즌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협회 차원에서 실력이 노출될까 봐 지레 겁먹은 것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빨리 대결을 성사시키라는 요구가 빗발친다고 한다. 그러나 협회 입장에서는 만약 이번에 또 패한다면 치명타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현존하는 수많은 전통무술 도장과 학교는 물론, 중국의 수많은 무협소설이나 영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만약 대결이 성사되지 못한다면 ‘전통무술은 사기’라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참으로 난처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순간이 무협소설의 주인공이 홀연히 나타날 때가 아닌가 한다. 어딘가에 은둔 고수가 있다면 말이다. 가끔은 그런 꿈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낭만을 위하여….
◇07월 10일 동서남북?… 중국은 ‘동남서북’
한자어나 한자성어는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다. 특히 두 나라는 전통시대 교류가 매우 활발했기 때문에, 고전을 바탕으로 공유하는 문화가 적지 않다. 그래서 한자를 알면 중국과 교류하기 쉽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두 나라 사이에는 같으면서도 약간 다른 형태의 한자 어휘가 존재하여 무척 흥미롭다.
방위를 나타내는 ‘동서남북’이란 말이 있다. 중국에서도 방위를 나타낼 때 이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때때로 ‘동남서북’이라고도 말한다. 실제로는 ‘동서남북’보다 ‘동남서북’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중국인들도 왜 두 가지 표현이 다 쓰이는지, 그 차이가 뭔지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동서남북’은 ‘동’과 ‘서’가 대칭이고, ‘남’과 ‘북’이 대칭이라서 음양의 법칙에 맞는 조금은 전통의 냄새가 나는 단어이다. 동남서북은 동쪽을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부르는 방법으로, 간혹 ‘가운데 중(中)’을 넣어서 ‘동남서북중(東南西北中)’이라 쓰기도 한다. 오행을 따른 표현으로 ‘가운데’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두 단어의 차이를 굳이 말하자면, 음양과 오행의 차이로 ‘동서남북’은 방위를 나타낼 때 쓰고 ‘동남서북’은 범위나 구역을 나타낼 때 쓴다고 한다. 그래서 동남서북은 방위를 나타낼 때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는데, 실생활에서는 별 차이 없이 쓰이는 느낌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변방에 사는 노인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말로,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새옹지마’보다 ‘새옹실(失)마’를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새옹이 잃어버린 말’이란 뜻인데, 유래된 일화가 말을 잃어버리는 것에서 시작하니 틀린 말도 아니다. 아무튼 두 사자성어의 출처가 다르고 한자도 약간 다르지만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는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이다. 중국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사전에도 이렇게 등록되어 있지만, 현장에서는 ‘성동격북(聲東擊北)’이라고도 한다. 서쪽이 북쪽으로 바뀌어 다소 다르지만, 뜻이 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이런 한·중 간 한자어휘의 차이는 아마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자가 수입한 것이다 보니 원전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중국은 한자를 실생활에서 활용하고 있으니 뜻이 통하는 것이 우선이고, 현장의 반응이 먼저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인은 삼겹살을 좋아하는데, 상추, 깻잎, 마늘 등과 함께 쌈을 싸먹는다. 그런데 만약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삼겹살 먹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먼저 상추를 손바닥 위에 펼쳐놓은 다음, 그 위에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기름장에 찍어 올리고, 다시 그 위에 마늘을 쌈장에 찍어 올리는 등등의 순서를 외우게 되지 않을까? 이래야만 한국의 전통적인 방법을 지키는 것이 되니까 말이다. 알고 보면 엄격히 정해진 방법은 없는데 말이다.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혹시 우리도 이렇게 외형적으로만 외국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삼겹살 먹는 법’처럼 말이다. 엄격한 형식을 강조하기 전에 그 안에 담긴 본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한다. 그 문화가 나타내는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07월 17일 검열 피하려… 풍자·저항의 ‘5월35일’
중국에서 ‘6월 4일’은 인터넷으로 검색이 되지 않는다. 검색창에 입력하면 에러 메시지가 뜬다. 중국 당국이 금기시하려는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날임을 알 수 있다. 6월 4일은 중국에서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난 날이다. 1989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당국은 무력으로 강제 진압한 후 이 사건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톈안먼 사태’가 금지어가 되었고 그 대신 등장한 단어가 ‘6월 4일’이었는데, 이 또한 막혀버린 것이다. 중국 당국의 자동검열시스템의 금지어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엄격하게 항시 작동되고 있다.
정부는 철저하게 막고 나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또 움직였다. 그렇게 등장한 단어가 바로 5월 35일이다. 당연히 달력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날짜이다. 5월은 31일밖에 없고, 어느 달에서도 35일은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날짜 수대로 헤아려보면 35일은 6월 4일을 가리킨다. 바로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날이다. 중국 당국의 엄격한 단속 가운데서도 소극적이나마 저항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소설가 위화(余華)는 외국신문에 ‘5월 35일 정신(The Spirit of May 35th)’이라는 글을 투고했을 정도다.
위화는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에서는)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수사학을 총동원한다. 빗대서 말하기, 은유, 풍자, 과장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감춘 조롱과 교묘한 에두름으로 빈정댐과 경멸을 전한다. 중국어가 오늘날처럼 풍부하고 활력이 넘친 적이 없다.” 만리장성과 같은 굳건한 중국 정부의 통제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우회적인 경로로 그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중국에서는 문자옥(文字獄)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이 단어는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말로, 보통 청(淸)나라 때 발생한 필화사건을 말한다. 청나라 시기에 어떠한 표현이나 문구를 핑계로 사람들을 처벌하는 일이 많았는데, 문자 때문에 생긴 옥살이라고 하여 문자옥이라 했다. 실제로는 명(明)나라 때가 더 심했다고 한다. 이처럼 중국의 문자에 대한 탄압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시작으로 매우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역사상 모든 정권은 언론과 언로를 통제하고 싶어 했다. 또 글을 통제함으로써 지식인을 통제하려고 했다. 따라서 많은 책이 금서로 정해졌고, 그 책을 집필한 사람들이 하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언제나 엄격한 금지의 그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풍자를 시도한다.
결국 문자옥은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인터넷이나 SNS상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때때로 아주 단순한 단어조차 입력이 안 되기도 한다. 그 예로 ‘중공(中共)’이란 단어가 있다. 문장을 쓰다가 우연히 이 단어가 만들어져도 사용할 수가 없다. 무조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지만 대부분은 다투기보다 순종하는 듯 보인다. 그래도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중국 인민은 나름대로의 방법과 풍자를 찾고 있다. 당국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힘은 없다고는 하지만, 나름의 재치 있는 표현으로 이에 대한 풍자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07월 24일 적당주의 꼬집는 ‘차부뚜어 선생’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차부뚜어(差不多)’란 말이 있다. ‘차이가 크지 않다’는 말 그대로 해석처럼, ‘큰 차이가 없다’ ‘대충 (그럭저럭) 되다’라는 표현이다. 중국에서는 이 단어 뒤에 ‘선생’이란 단어를 붙여 반어적으로 중국의 적당주의를 비판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안전불감증과 같은 적당주의가 문제 되고 있지만,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차부뚜어’에 ‘선생’을 처음 붙인 사람은 베이징(北京)대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후스(胡适)이다. 학자이자 문학가였던 그는 계몽주의적 입장에서 중국의 현실을 냉철하게 비판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인민을 계몽하기 위해 ‘차부뚜어선생전(差不多先生傳)’이란 작품을 내놓는다. 이 작품은 차부뚜어란 이름을 가진 인물의 일생을 통해 중국인들의 대충 대충하는 습관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중국인 스스로 중국을 비판하는 작품을 집필한 셈이니 깨어 있는 지식인이었다고 할 만하다.
한자 독음 그대로 호적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자유주의적 입장의 정치가로 미국 유학파다. 1922년 현재 중국의 구어체 문장을 정착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고, 봉건 중국을 서구식으로 개혁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다. 당시 유교적 구습과 문맹률 90%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강렬한 비판을 담아 작품을 창작했는데, 차부뚜어 선생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후에 주미 대사 등을 지내다가 중국 정부가 수립되자 뉴욕으로 이주하여 대만으로 국적을 바꾸기도 했다.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개혁적이었지만, 공산당과는 거리가 있는 진정한 보수라고 할 수 있다.
후스가 작품 속에서 십(十)과 천(千)이 획수 하나 차이로 비슷하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적당주의는 중국의 큰 문제점이다. 적당주의가 곧 차부뚜어 선생인 것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사고들이 이 적당주의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실공사나 불량제품이 대표적이다. 오죽하면 ‘비지(두부) 공정’이라는 단어까지 유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지공정’은 ‘더우푸짜(豆腐渣·비지) 공정(工程)’으로 부실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애초 유래는 둑 공사에서 비롯되었다. 대형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중국에서는 역대로 둑 공사가 중요했다. 튼튼한 제방을 쌓으려면 가운데 흙을 넣고 양쪽을 돌로 쌓아야 한다. 그런데 겉만 그럴싸하게 만들고 가운데는 흙 대신 구하기 쉬운 진흙 등을 집어넣는 부실공사가 자주 있었다. 여기에 사용된 진흙이 비지와 같다 하여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둑은 조금만 비가 와도 구멍이 생기고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러면 복구 명목으로 정부에 돈을 또 요구하면 그만이었다. 과거 왕조시대부터 있었던 부정부패의 악습이었다.
중국의 비지 공정에 대한 비판은 대형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곤 한다. 중국 지진 피해의 대부분은 건물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비지 공정으로 이루어진 부실공사가 피해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도시에서 쓰이는 철근의 40% 정도가 불량품이란 말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새로 지은 아파트의 방화문이 종이로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삼풍백화점의 아픔이 있는 우리가 걱정할 입장은 아니긴 하지만, 적당주의는 중국이 꼭 넘어야 할 과제인 듯싶다.
◇07월 31일 이상한 사자 석상… 사실은 ‘상상 속 동물’
중국 전통가옥이나 큰 건물에 가면 문 앞 양쪽에 사자 석상 두 마리가 놓인 경우가 있다. 전통적으로 사자 석상은 권력과 위엄의 상징으로 귀신과 요괴를 몰아내며 액운을 막아준다고 한다. 결국 부귀의 상징인 것이다. 언뜻 보면 두 마리 사자 석상은 똑같아 보이지만 암수 구별이 있다고 한다. 얼굴이나 몸은 거의 똑같으니 암수를 구별하려면 발을 봐야 한다. 오른쪽 앞발로 둥근 구슬을 잡고 있는 것이 수컷으로 오른쪽에 위치하고, 왼쪽 앞발로 새끼 사자를 잡고 있는 것이 암컷으로 왼쪽에 위치한다. 이 사자 석상은 어느덧 중국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사자 석상의 모양이 이상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커다란 입을 하고 있는 석상은 아무리 봐도 보통 알고 있는 사자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각 기술이 달리는 것인지 아니면 실물을 제대로 보지 않고 만들어서 그런 것인지 이상해 보이긴 한다. 그런데 이 사자는 그 사자가 아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 중에, 사자는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벼랑 끝에서 던져서 살아 돌아온 새끼만 키운다는 말이 있다.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는 듣기엔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사자는 초원에 사는 동물이고, 초원은 벼랑이 없는 평야다. 그런데 어디서 새끼를 떨어뜨리겠는가. 또 실제로도 사자는 새끼를 그렇게 키우지 않는다.
사자 석상이나 벼랑의 사자, 여기에 오해가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자는 동물원의 사자가 아니라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을 말한다.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용, 봉황, 주작과 비슷한 상상 속의 동물인 것이다. 사실 기린도 마찬가지다. 공자孔子의 어머니가 기린 꿈을 꾸고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때 벌써 아프리카와 교류가 있었나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기린은 동물원의 기린이 아니다. 역시 상상 속의 동물이다.
기린은 한자로 기린麒麟이라고 쓰는데, 중국에는 ‘장경록長頸鹿(changjinglu)’이란 단어도 있다. 기린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나타내고, 목이 긴 사슴이란 뜻의 장경록은 동물원의 기린을 나타낸다. 영어사전에도 기린에 두 가지 단어가 나오는데, 동물원의 기린은 giraffe로, 상상의 동물은 kylin으로 표시한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한자나 단어를 많이 쓰기는 하지만, 근대화 과정이 서로 달라 새로운 언어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차이가 나타나게 됐다. 기린이란 단어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원래 기린은 공자의 태몽에 나오는 목이 긴 상상 속 동물이지만, 지금은 동물원에서 보는 기린으로 거의 대체된 상황이다.
이처럼 고대 서적에 나오는 기린이나 사자는 지금 동물원에서 보는 기린이나 사자가 아닌 신화나 전설 속 상상의 동물임을 알아야 한다. 급격히 진행된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과 단절되면서 생긴 혼동이라 하겠다.
사자나 기린의 예처럼 고사나 고서적에 나오는 단어는 지금의 단어와 의미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한·중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중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과 교류하려면 이런 문화적 지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08월 07일 한국인 뺨치는 중국인의 ‘매운음식’사랑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서 그런지 한국 음식은 맵다는 통념이 있다. 최근에 매운 음식이 유행하면서 매운맛의 강도가 많이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 음식이 그리 매운 편은 아니다. 김치를 비롯해 붉은색 계통의 음식이 많다 보니 그렇게 비칠 뿐이다.
중국은 땅이 넓어 지역별로 다양한 음식이 존재한다. 자연환경이 다르다보니 지역에 따라 특산물이 다르고 음식도 다르다. 또한 레시피도 달라 같은 음식이라도 지역에 따라 맛이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 매운맛을 나타낼 때 자주 쓰는 말들이 있는데, 이는 지역에 따라 매운 것을 대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보통 쓰촨(四川) 사람은 ‘부파라(不파辣)’라고 하고, 후난(湖南) 사람은 ‘파부라(파不辣)’라고 하며, 윈난(雲南)이나 구이저우(貴州) 사람은 ‘라부파(辣不파)’라고 한다. 같은 한자지만 조합 순서에 따라 서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중국어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파(파)’는 ‘무섭다’는 뜻이고, ‘라(辣)’는 ‘맵다’는 뜻이다. 당연히 ‘부(不)’는 부정의 의미이다. 이 세 가지 한자를 각각 다르게 조합해 각 지역의 매운맛을 나타낸 것이다. 부파라(不파辣)는 ‘매운 것이 두렵지 않다’는 뜻으로, 그래서 그런지 쓰촨 요리는 좀 매콤한 편이다. 쓰촨 고추는 한국 고추에 비해 매우 작지만 훨씬 맵기 때문에 이곳 음식이 한국 음식보다 더 맵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매운맛은 좀 달곰한 매운맛이라고 한다면, 쓰촨 요리의 매운맛은 공격적인 매운맛이다. 적응이 안 된 사람이 먹는다면 혀의 감각이 마비될 정도다. 쓰촨 지방은 음식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쓰촨 음식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몇몇 음식은 정말 매워 도전정신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데 쓰촨 음식이 울고 갈 지역이 있으니 바로 후난이다. 중국에서 가장 매운 음식이 있다는 후난 지방의 매운맛에 대한 표현은 파부라(파不辣)이다. 그들은 무서워한다. 맵지 않을까봐. 매워야 제맛이란 뜻이니 무섭기까지 하다. 아마도 넓은 평야에 특산물이 별로 없다보니 매운 것으로 맛을 내는 전통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외에 윈난에서는 라부파(辣不파)라고 하는데 ‘매워도 무섭지 않다’라는 뜻이다. 즉 일부러 먹지는 않지만 매워도 먹을 수는 있다는 조금은 소극적인 입장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광저우(廣州)나 윈난 지역의 음식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음식의 가짓수도 풍부하고 다양한 재료가 쓰이며 모양도 예쁜 편이다. 전체적으로 조금 달짝지근하고 풍부한 맛이 난다. 다만 향신료를 많이 사용해 비위가 안 맞을 수도 있다. 김치가 자꾸 생각나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매운맛이란 것은 없다. 짠맛, 단맛, 신맛, 감칠맛 등과 달리 ‘맵다’는 것은 통각이다. 맛이 아니라 일종의 통증이란 뜻이다. 즉 자극인 셈이다. 결국 매운맛의 유행은 자극의 필요성에 대한 대안이 아닌가 싶다. 혀가 아프고, 위가 아픈 것을 즐기는 셈이다. 그래도 가끔은 중국의 매운맛에 용감하게 도전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것이 외국여행의 진정한 맛이기에….
◇08월 14일 ‘민주화운동 상징’ 류샤오보
지난 7월 13일 중국의 류샤오보( 波)가 사망했다. 5월부터 그의 병세가 악화되자, 세계의 관심이 그에게 쏠렸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의 지대한 관심 속에, 류샤오보가 중국이 아닌 외국에서 치료받도록 해달라는 여론이 중국에 가해졌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154명도 그와 그의 아내 류샤(霞)를 외국에서 치료받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그의 부인을 철저히 감시했다. 여기서 그의 삶을 잠시 되돌아보자.
그는 1955년생으로 지린의 창춘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지린대학 중문과를 거쳐 1980년대 초중반에는 중문학으로 유명한 북경사범대학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거쳤다. 그는 그저 서구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청년문학가이자 학자였다. 투사라기보다 온순하고 온건한 지식인이었다. 박사학위 취득 후 강의를 시작했고,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과 미국 하와이대학 등에서 중국의 문학과 사상 등을 강의했다. 그런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은 1989년 천안문사태였다. 천안문사태는 한국의 1987년 6·10항쟁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비슷한 시기의 민주화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천안문의 비극은 광주 민주화운동과 더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군인에 의한 무자비한 유혈 진압이 가해졌고, 사건 발생 이후에는 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지됐다. 이처럼 천안문사태는 철저히 잊히고 왜곡된 기억으로 남게 된다.
타국에 있던 류샤오보는 눈 한번 질끈 감고 외면했다면,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조국을 외면하지 않았다. 바로 귀국해 지식인 대표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협상파로서 폭력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력자 덩샤오핑을 비판하고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20개월 동안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그의 투쟁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과격하지 않았으나 끈질겼고, 분노하였으나 차분했다. 그는 천안문의 명예 회복을 위해, 또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분투했다.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살아 있는 지식인의 양심을 지켜나갔다. 이후 반복되는 항의와 투옥은 그의 일상이 된다.
역사는 언제나 말한다. 권력자의 편에 서서 비위를 맞추면 편히 살고, 그들 반대편에서 척지면 살기 힘들다고 말이다. 이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간신이 되고 그들의 앞잡이로 변한다. 또한 그게 옳은 길이라고 자기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류샤오보는 편하게 던져진 먹이를 거부하고 자신은 사람임을 외쳤다. 삼엄한 감시체제하에서 한 치의 반정부적 행위도 용납하지 않았던 한국의 유신체제와 비슷한 중국에서, 그의 활동 공간은 몹시 좁았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의 탄압은 가혹했다. 그러던 와중에 2010년 류샤오보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중국 정부는 서방의 이간책이라고 반발했고, 수감 상태였던 그는 수상식 참석을 희망했지만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그 후 그는 중국의 인권,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그러던 그가 끝내 숨을 거둔 것이다.
그의 최후 진술을 떠올려 본다. “나는 내가 중국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문자옥의 최후의 희생자이기를 희망합니다. 또 이후 다시는 말로 인해 벌을 받는 이가 없기를 바랍니다.”
류샤오보, 이루핑안一路平安.
◇08월 21일 개혁 위해 권력까지 내려놓은 덩샤오핑
중국 관련 뉴스에서 외신이 언제나 뜨겁게 관심을 갖는 것은 후계구도와 관련된 부분이다. 최근에도 중국 후계구도와 맞물려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시진핑(習近平)의 장기집권과 주요 정치인의 실각이 맞물려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에서 ‘장기집권’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지 않다.
현 중국 권력구도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최고 권력자의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띈다. 한마디로 일인독재와 장기집권을 동시에 막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최고 권력은 정부와 더불어 공산당이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과 정부를 동시에 장악해야만 한다. 정부를 이끄는 국가주석과 공산당의 총서기에 동시에 올라야만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두 직책 모두 10년 연임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중국 권력이동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명문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후계자를 현재 권력이 아닌 전임권력이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격세지명(隔代指名)이라고 하는데 권력의 집중화를 막기 위한 일종의 불문율이다. 격세지명은 나름대로의 견제장치로 정권 교체 효과를 노리는 묘수와도 같다. 그런데도 최근 시진핑의 장기집권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관례가 깨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이 이렇게 조금은 복잡하면서도 특이한 권력구조를 가지게 된 것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부터였다. 작은 거인이라고 불리는 덩샤오핑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1978년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그런데 그의 행보는 매우 놀랍게도 권력을 향유하기보다는 내려놓은 과정을 보여주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철저한 역사적 반성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자 했다.
권력자는 보통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를 위해 전임자를 비판하여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 한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는 1983년 표면적으로 권력에서 물러난다.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하면서 실권은 쥐고 있었지만 정부와 당의 최고위직을 후임자에게 물려준다. 차분히 권력을 양도하면서 집단지도체제와 최고 권력의 임기 제한 등을 도입하여 권력의 분산을 도모하고 일인독재를 방지하고자 했다. 또한 격세지명의 불문율도 만들어 냈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신격화된 절대적 지도자이다. 절대 권력을 누렸으며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 권력은 여전했다. 비록 마오쩌둥이 중국의 상징이라고는 하지만 문화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역사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왜 마우쩌둥은 그런 과오를 저질렀을까. 이 문제를 덩샤오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보았다.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도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고 노쇠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집단지도체제라는 시스템으로 개인의 잘못된 결정을 막고 임기 제한을 도입함으로써 권력자의 지나친 노령화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개혁을 위해 권력을 내려놓은 덩샤오핑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지금 그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헌신의 변화일지, 욕심의 변화일지 이에 따라 중국의 앞날이 결정되지 않을까 한다. 덩샤오핑은 어떤 심정일까 궁금하다.
◇08월 29일 “기러기 떨어뜨릴 미녀”… 과장도 大國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중국 역사 속의 4대 미녀로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 양귀비(楊貴妃)를 꼽는다. 사진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의 시각으로 그녀들을 평가할 방법은 없다. 그저 수많은 기록을 통해 이들을 중국의 대표 미녀로 꼽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원나라 이후 정착된 듯하다. 오히려 사진 같은 객관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더 신비롭고 아련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표현은 갈수록 풍부해졌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문학적 표현과 상상력이 그녀들을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에 대한 표현을 보다 보면 중국 특유의 과장법을 찾아볼 수 있다. 4대 미녀 중 최고로 꼽히는 ‘서시’는 보통 ‘침어(沈魚)’라 불린다. 가라앉은 물고기란 표현으로, 서시가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물고기도 그녀를 보면 헤엄치는 것조차 잊고 가라앉는다는 뜻이다. 심장이 멎는 짜릿함을 물고기도 느낀다니, 그 미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다음으로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 불린다. 왕소군에 대한 표현에는 물고기 대신 기러기가 등장한다. 기러기도 그녀를 보게 되면 미모에 반해 날갯짓조차 잊고 떨어진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미모다. 왕소군은 볼모로 외국에 끌려갔던 불운한 운명이라 외로운 기러기로 대신한 듯하다. 중국 특유의 과장이 느껴진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초선’은 ‘폐월(閉月)’이라 칭하는데, 달이 그녀를 보면 창피해 구름 뒤로 숨는다는 표현이다. 참 대담한 표현이다. 게다가 초선은 실존인물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을 보면, 역시 4대 미녀라고 하는 것은 후세 문인들의 상상력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어찌됐든 달조차 숨게 만드는 초선의 미모는 삼국지연의의 주요 사건의 모티브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양귀비’는 ‘수화(羞花)’라 표현하는데, 그녀의 미모에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처럼, 양귀비는 꽃보다 아름다웠나 보다. 아니 꽃이 그녀의 미모에 자책한다니 대단한 미모가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과장도 보통 과장이 아니다. 좀 더 심한 표현은 종종 4대 미녀와 함께 거론되는 ‘조비연(趙飛燕)’의 묘사에서 볼 수 있다. 그녀는 너무 가벼워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작장중무(作掌中舞)’라 한다. 휴대전화도 오래 들고 있으면 무거운데, 해도 너무한 표현 아닌가 하겠지만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부분이다.
그런데 ‘침어’나 ‘낙안’은 장자의 제물론에서 유래한다. 원래는 정반대의 뜻이다. 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도 물고기나 새는 괴물로 보고 도망간다는 말이다. 장자가 말하는 상대주의적 세상보기다. 우리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인간의 시선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시각으로는 매우 흉물스러울 수 있다. 중국 4대 미녀의 삶은 모두 불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후세 문인들이 더욱 그녀들을 기린 것인지도 모른다. 장자는 ‘쓸모없는 나무’가 오래 산다고 했다. 지금 세상은 모두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려 한다. 그래서 혹시 과한 아름다움이 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장자의 말을 떠올려 본다.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의 중간에 처하겠다.(周將處夫材與不材之間)"
◇09월 04일 양귀비가 암내 나는 ‘뚱녀’ 였다고?
중국의 4대 미녀로 불리는 양귀비(楊貴妃)는 사실 그 외모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그중 두 가지 논란은 지금도 끊이질 않는다. 하나는 뚱뚱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암내가 매우 심했다는 것이다. 둘 다 역사책에 기록돼 있을 정도니 근거 없는 말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지금 같으면 매우 큰 콤플렉스였을 단점들이다.
양귀비가 뚱뚱했다면 어느 정도였을까? 그냥 조금 통통한 정도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를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하려는 이도 있는데, 그녀의 키와 몸무게가 164㎝에 69㎏이라는 주장과, 155㎝에 60㎏이었다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이 수치들은 사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추측한 것이다. 정말 그랬다면 양귀비를 날씬한 미녀로 표현하는 수많은 현대적 묘사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일종의 충격적인 내용일 수도 있다. 현종도 그녀를 ‘살찐 종년(肥婢)’이라고 욕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양귀비가 풍만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또 하나 그녀의 치명적인 단점은 암내가 매우 심했다는 점이다. 양귀비 스스로 이를 콤플렉스로 여겨 집착하다시피 자주 온천을 했으며, 또 시중드는 시녀가 인상을 찌푸리면 곤장을 때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현종은 왜 그녀를 총애했을까? 사서에는 현종이 축농증이 심해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해설하고 있다. 어찌 보면 천생연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생각은, 이러한 해석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하는 것이다.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발달한 지금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아름다움도, 맛도, 향기로움도 하나로 획일화되어 간다. 단순한 선택을 넘어 모두가 공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요하는 지경에 이른다. 일종의 폭력이다.
그런데 우리가 좋다고 기억되는 것은 일련의 학습과정으로 얻어진다. 어떤 이는 청국장 냄새가 싫고, 어떤 이는 그 냄새에 침이 고인다. 홍어도 마찬가지로, 어떤 이에게는 고통인 데 반해, 어떤 이에게는 침샘을 자극하는 미식거리이다. 김치만 해도 우린 좋아하나 어떤 외국인은 인상을 찌푸린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그렇다. 개인적 취향이 있기 마련이지만, 대중화는 이를 무시하고 거부하며 질타하고 있다.
현대적인 미적 감각으로 일본의 가부키 화장이나 중국의 전족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괴하거나 징그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이 따라했고 또 수많은 남성이 동경했던 과거 아름다움의 형태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개인뿐만 아니라 시대의 아름다움도 때로는 매우 기괴한 형태로 나타난다. 정말 삐쩍 마른 것이 아름다움일까?
어쩌면 현종에게 양귀비의 암내는 누구도 내지 못하는 그녀만의 향기였을지 모른다. 또 그녀의 풍만함은 사랑의 원천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규격화된 아름다움과 제품화된 향수에 익숙해진 현대를 살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애써 인간의 고유한 체취를 지우고, 각종 인공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각종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맛에 길들어 가는 우리의 입맛처럼 말이다.
◇09월 11일 꿈의 시속 1000㎞’… 中 고속鐵의 도전
최근 중국에서 오는 20일부터 평균 운행속도 350㎞의 고속철도가 운행될 예정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운행 구간은 베이징(北京)에서 상하이(上海)까지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철이 된다. 중국의 소망을 담은 ‘푸싱(復興)’이란 이름의 이 열차는 중국 고속철도의 기술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이미 고속열차 하면 떠오르는 일본, 독일, 프랑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중국 고속철도 사업을 살펴보면,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한 기술 도입과 발전의 전형을 보여준다. 넓은 땅덩어리로 인해 고속철도 건설과 운영이 절실하고, 많은 인구 때문에 그 수익성도 담보할 수 있다. 한국이야 서울에서 부산이라고 해봐야 500㎞도 안 되지만, 중국은 2000㎞가 넘는 구간이 허다하다.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만 해도 1000㎞가 넘으니 고속철도에 적합한 먼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주요 도시만 연결한다고 해도 많은 노선이 필요하고, 상대적으로 평야 지대가 많아 건설에도 유리한 측면도 있다. 인구야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고속철도 건설에 우호적인 환경이니 과감한 투자와 집중 개발이 자연스럽다. 2008년 뒤늦게 시작했지만 이름답게 고속으로 발전해왔다. 중국 고속철도 노선을 보면 마치 서울 지하철 노선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매우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영업 거리도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 서로 다른 다양한 기술을 적용한 고속철도 노선이 등장하고 있다. 현재 시속 200㎞를 초과하는 고속열차는 2332개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기술에 대한 불신, 부실공사 등의 문제가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2011년 발생했던 40명 사망사고는 큰 충격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 내부와 해외의 엄청난 비난과 조롱이 따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고속철도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현재 중국의 고속철도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2011년 터키 고속철도 수출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중국 고속철도의 발전을 보고 있자면,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미래는 더욱 창대할 것만 같다. 최근에는 차세대 고속비행열차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꿈의 속도인 시속 1000㎞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다음 단계는 소리보다 빠른 시속 2000㎞, 최종적으로는 시속 4000㎞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마치 과학소설이나 SF영화에서 보았던 모습이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고속비행열차는 중국 우주항공기술의 집약체가 될 예정이다. 이론적 원리는 무척 단순해서, 터널을 뚫고 그 속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달리면 저항이 없어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경험이 때론 새로운 발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중국의 1990년대 기차는 같은 중국 땅을 달리더라도 멀리 가면 2박 3일 정도를 타고 가야 했다. 속도도 느렸지만 기차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한국인의 시각으로 볼 때 신기하기만 했다. 이처럼 아직도 중국에 대한 과거의 잔상이 남아, 중국 하면 낙후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현재 중국은 KTX보다 빠른 고속열차는 물론 차세대 열차를 개발하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중국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관련 정보를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다.
◇09월 19일 중국인과 山… 그 재미있는 분류법
중국은 땅이 넓다 보니 산도 많다. 다양한 형태의 산이 존재하며 높은 산도 많다. 높은 산이라고 하면 중국 국경에 있는 에베레스트 산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많은 산이 중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산에 대한 여러 가지 분류법이 있는데, 기준에 따라 다양한 산이 등장한다.
먼저 과거부터 오악(五岳)이라고 불리던 5개의 산이 유명하다. 5는 당연히 음양오행의 오행과 맞춘 숫자이다. 음양오행설은 고대 사회를 움직이는 사상이었다. 방위에도 5행이 있어 동서남북과 중앙이 있었다. 오악은 이에 맞춰져 있다. 약간은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악은 동쪽의 태산(泰山), 서쪽의 화산(華山), 남쪽의 형산(衡山), 북쪽의 항산(恒山), 중앙의 숭산(嵩山)을 지칭한다. 동악(東岳), 서악(西岳)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악의 위치는 지금의 중국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오른쪽에 치우쳐 있어 현대적 관념에는 맞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 가장 높은 산은 화산으로 해발 2154m이고, 제일 낮은 산은 항산으로 해발 1300m다.
이들 산의 높이에 대한 정보는 국내 사이트마다 제각각이라 중국 유명 사이트의 백과사전을 기준으로 했다. 그런데 그 높이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현대적 기준으로 높다고 할 수 있는 산은 중국 서쪽에 많이 위치해 있는데, 예전에 서쪽이 오랑캐의 땅이었기 때문에 이쪽의 산은 거론되지 않은 것 같다.
오악 이 외에 4대 명산이 따로 있다. ‘명산’이니 경관이 멋있는 산을 지칭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여산(廬山), 용호산(龍虎山), 황산(山), 구화산(九華山) 등이 꼽히는데, 원래 중국에는 4대 명산이란 분류는 없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4대 불교 명산과 4대 도교 명산이 있었는데, 나중에 4대 명산이 슬그머니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중국에서는 4대 명산이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4대 불교 명산은 산시(山西)성의 오대산(五臺山), 저장(浙江)성의 보타산(普陀山), 쓰촨(四川)성의 아미산(峨眉山), 안후이(安徽)성의 구화산(九華山)을 일컫는다. 이 중 오대산이 가장 유명한데, 세계 5대 불교 성지로 꼽히기도 한다. 5개의 봉우리가 있어 오대산인데, 문수보살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아미산도 중국 무협지에 자주 등장해 익숙한 지명이다.
또한 중국에는 4대 도교 명산도 있는데, 후베이(湖北)성의 무당산(武當山), 쓰촨성의 청성산(城山), 장시(江西)성의 용호산(龍虎山), 안후이성의 제운산(齊云山)이 그것이다. 이 중 용호산은 중국 도교의 발상지로 유명해 수많은 도교신도들이 참배하러 온다고 한다. 조금 이상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매우 도교적인 산이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산 모양은 마치 도교가 이런 분위기라고 설명하는 듯하다. 제운산은 해발 560m라니 서울 남산의 두 배 정도 되는 아담한 산이다. 신선사상, 불로장생 등의 개념이 등장하는 도교는 중국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살펴봐야 할 내용이다. 여하튼 이런 산들은 조금은 낯선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국은 70%가 산지인 나라다. 그래서인지 산에 대한 정서는 특별하다. 특히 ‘뒷동산’이라는 표현처럼, 산은 언제라도 뛰어오를 수 있는 우리 생활 속의 일부이다. 중국에도 산이 많지만, 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비슷하지만 다른 한·중의 정서를 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산은 언제나 좋다. 어디에 있든 말이다.
◇09월 25일 높음의 상징 泰山은 상상 속의 산
조선 시대에는 태산을 중국을 대표하는 산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양사언(楊士彦)의 시조만 봐도 그렇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쉬우면서도 정말 잘 짜인 평시조로, 자꾸 입에서 맴도는 익숙한 시조다. 양사언을 왜 조선 시대 4대 명필 중 한 명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그는 16세기 조선 중기 문인으로 그 시절 중국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 시조를 두고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라고 비난하고, 또 어떤 이는 오를 수 있다고 했으니 극복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을 넘어 이 시조에서 태산은 분명 하나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높음’의 상징이다. 마치 오르기를 포기할 정도로 높은 산을 태산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태산의 높이는 실제로 해발 1500m 정도에 불과하다. 오르지 못할 정도로 높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산둥(山東)성에 위치해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태산은 관광지로도 유명한데, 정상까지 걸어서 겨우(?) 6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한다. 물론 잘 놓인 6000여 개의 계단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지금 아무리 등산로가 잘 마련돼 있어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의 어려움을 불가능의 상징으로 시조에 표현하다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지리산이나 설악산보다도 낮은 산을 양사언은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양사언이 거론한 태산은 어쩌면 상상 속의 산이었는지도 모른다. 태산은 공자(孔子)와 관련이 있는 산으로, 조선 시대에 추종하던 유교를 상징해 그 자체의 물리적 높이보다 상징적 높이가 더 높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아니면 태산을 직접 다녀온 주변의 누군가가 부풀려 이야기했거나 과장해서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양사언이 생각했던 태산은 가장 높은 산이었고, 그것은 물리적인 산이 아니라 상상 속의 산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중국을 사대했다. 중국을 추종하고 그들의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이는 역사적 팩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조선 시대는 중국을 잘 몰랐던 시대다. 명(明)나라는 조선인이 중국을 여행하거나 자국의 책을 수입하는 것도 막았다. 심지어 조선의 사신이 중국을 방문해도 수도조차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청(淸)나라는 명나라에 비해 유화적인 조치를 취했으나, 그 시기 조선 문인들은 소중화(小中華)에 빠져 청나라를 무시했다. 심지어 명나라의 재건을 떠들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중국을 직시하지 못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사대라는 관념에 빠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것이다. 어쩌면 양사언의 태산은 이런 현상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혹시 또 다른 형태의 ‘태산’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점차 노골화되고 있는 것 같다. 객관적인 정보가 아닌 중국에 대한 호불호로 중국을 평가하고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중국의 나쁜 점만 부각하는 것은 좋은 점만 강조했던 조선 시대의 또 다른 형태의 답습이다.''
◇10월 16일 韓 양고기 유행은 中교류 영향
최근 한국의 먹거리에 약간의 변화가 일고 있다. 양고기의 등장이 그것이다. 한국인은 주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는다. 말고기, 타조고기, 토끼고기 등 세계 각지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고기가 소비되고 있다. 이런 고기들이 한국에 소개돼 소비되기도 했지만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양고기의 등장과 인기는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많은 TV 프로그램에서 양고기가 뜨고 있다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전문점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약간 과장일 수도 있지만, 양고기 식당이 전에 비해 6배 늘어났다고 하고, 양고기 수입량도 크게 증가했다고 하니,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에 거주하거나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수도 늘어 양고기 소비 증가에 한몫하기도 했을 것이다.
원래 양고기는 냄새가 심하고 질기다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실제로 1990년대 중국을 방문했던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양고기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곤 했다. 그 정도로 양고기는 우리의 입맛과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양고기는 매우 사랑받는 육류다. 특히 대표적인 할랄푸드로 중동지역에서 환영을 받고, 넓은 초원이 있는 중국이나 몽골 지역 등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름다울 미(美)’자를 분석해 보면 ‘양 양(羊)’과 ‘큰 대(大)’의 결합이다. 큰 양이 아름답다는 뜻이 되는데, 바로 희생양으로 사용됐을 때를 지칭하는 것이다. 양고기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던 대표적인 동물이었다. 그만큼 소중한 고기였다. 그런데 한국은 지리적으로 양을 키우기 힘들다 보니 식생활에서 양고기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양고기의 유행은 아무래도 중국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중국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양고기를 접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수많은 양꼬치집에서 한국인은 값싸고 쉽게 양고기를 접할 수 있었다. 중국어로 양뤄우추알(羊肉串) 정도로 발음되는 양꼬치는 중국에 정말 많고, 또 많은 한국인이 좋아했다. 양고기에 거부감이 있던 이들도 양고기인 줄 모르고 꼬치를 먹고는 좋아했다. 먹고 나서 또다시 찾고 하다가 점차 양고기에 익숙해졌다. 필자만 해도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앉은자리에서 꼬치를 100개 이상 먹은 적이 있을 정도로 양꼬치 애호가가 됐다.
이처럼 양고기가 흔하다고는 해도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육류는 돼지고기다.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외에도 많은 육류를 먹지만 돼지고기가 단연 최고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발전해 왔다. 한마디로 돼지고기는 중국 요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을 대표하는 돼지고기 요리를 먹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있다. 바로 회족(回族)이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회족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돼지고기 대신 양고기를 선택했다. 또 신장(新疆)위구르 지방도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양고기 요리가 다양하게 발전했다.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은 초원이 많은 북쪽과 서쪽 지역으로 양을 기르기 용이했다. 결국 구하기 쉽고 믿음에도 어긋나지 않는 양고기를 먹다 보니 당연히 양고기 요리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도 양고기 하면 이들을 떠올린다.
◇10월 30일 중국産 없이 살아보겠다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9월에 한 방송에서 중국 제품 없이 살아보기란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한국, 미국, 일본 등 3개국 가정을 선별해 한 달 동안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보는 내용이었다. 가정들은 우선 집에서 쓰던 기존의 중국 제품을 없애고, 새로 구매하는 물건은 중국 제품이 아닌 것으로 제한해서 살아가야 했다. 10년 전이니 당시만 해도 중국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았던 터라, 참가자나 시청자 모두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은 실험으로 보였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 결과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존에 사용하던 집 안 물건을 정리하면서 벌써 결과가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 가정은 우선 우산부터 버려야 했다. 비 오는 날 비닐을 쓰고 외출해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컴퓨터 관련 제품도, 전등도 문제였다. 더 심한 곳은 일본 가정이었다. 집 안 물건 중 70%가 중국 제품이었는데, 이것을 확인하는 데만 꼬박 1박 2일이 걸렸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전자제품 왕국인 일본에서 사용되는 전자제품의 80%가 ‘made in China’였다고 한다. 생활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였다. 미국 가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집 안의 전자제품 80%가 ‘made in China’였다. TV, 커피머신, 휴대전화, DVD플레이어까지 사용이 불가했다. ‘멘붕’에 빠진 가족들은 대체 제품을 구매하려 했으나 마트 제품도 온통 ‘made in China’였다. 결국 중국 제품 없이 생활을 해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실험은 그렇게 끝났다. 사실 실험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2005년 당시 이미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중국 제품의 품목은 958개였다. 중저가 생필품의 대부분과 저가 정보기술(IT) 제품이 이에 해당했다. 이미 주변에 중국 제품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중국 제품의 질은 형편없고, 가짜도 많다고 말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 최고 제품 중 하나로 꼽히는 아이폰도 ‘made in China’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질에는 문제가 없다. 결국 누가 관리 감독을 하고 어떤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품질은 천차만별이 된다. 질 낮은 싸구려 제품도, 최고급 품질의 제품도 모두 생산 가능한 곳이 중국이다.
최근 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중국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주장까지 등장한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과연 가능할까? 10년 전에도 실패했던 실험이 지금 가능할지 의문이다. 우리는 인심 쓰듯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 소비자마다 가격과 품질 그리고 이미지에 따라 나름대로 합리적인 소비를 할 뿐이다.
우리는 이미 좋든 싫든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한 국가만의 제품이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설계부터 제조까지 글로벌한 능력과 부품이 동원되어 하나의 제품으로 탄생하는 시대다. 과거의 ‘made in 국가’란 개념은 이미 철 지난 소리이다. 특히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입장에서 볼 때, 불매운동이란 감정싸움에서 손해 보는 것은 결국 한국이다. 뜨거운 마음만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시기다.
◇11월 06일 세계경제서 中시장의 위치는…
한국과 중국 양국 관계에 다시 온풍이 불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갈등을 겪어왔다. 마치 마주 보고 달려오는 열차처럼 팽팽한 긴장 관계가 느껴질 정도였다.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고 그저 시간만 흘러가는 사이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도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황금알을 낳는 보증수표 같았던 면세점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마치 한국이 중국시장 없이 살아보기로 결정한 듯하다.
지난 2015년의 일이다. 중국의 국가주석인 시진핑(習近平)은 영국을 나흘 동안 국빈 방문했다. 영국 언론은 그의 방문에 대해 다양한 소식을 쏟아냈다. 심지어 영국 여왕마저 그를 맞이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지나친 환대라는 비판도, 또 중국의 인권 문제 등에 대한 항의 여론도 있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영국의 관심은 오로지 시진핑이 가져온 경제 보따리에 있었다.
당시 영국에 중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원전, 자동차, 테마파크, 고속철 등의 분야에 중국의 막대한 투자를 끌어내야만 했다. 극진한 환대와 각종 미디어의 보도로 그런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그 결과 영국과 중국은 400억 파운드에 달하는 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했다고 한다.
2016년의 일이다.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17년 만에 유럽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방문지는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란의 문화와 감성을 존중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이란이 이슬람 문화이기 때문에, 공식 만찬에 당연히 등장하는 와인마저 제외했다. 심지어 이란 대통령이 이탈리아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고전 누드 조각상을 흰 나무판자로 가리는 성의까지 보였다.
이러한 이탈리아 정부의 저자세는 야당을 포함한 이탈리아 정치인들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란이 던져준 22조 원이라는 대박 선물은 이 모든 것을 상쇄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이란 대통령은 프랑스도 방문했는데 와인이 문제가 되었다. 이란은 와인을 빼줄 것을 요구했지만, 프랑스는 자국의 전통인 포도주를 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오찬은 열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란은 항공기 구매 등 30조 원의 선물을 프랑스에 안겼다. 이란에는 오랜 제재로 새로운 항공기 등이 필요한 속사정이 있었다. 그런데 항공기는 미국 아니면 프랑스밖에 조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배짱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그런 배짱을 부릴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경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존심마저 버리고 달려들고 있다.
현재 한국경제는 사드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세계의 시장이라는 중국과 정면으로 충돌한 형국이다. 반면 우리는 이를 직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혹독한 고난도 직면하겠다는 결심이라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별것 아닌 듯 심각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현재 우리는 중국시장을 포기하고 있는 중이다. 현대, 롯데와 같은 대기업이 흔들릴 정도라면 중소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양국 관계가 호전됐지만 회복하는 데 적지 않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금 더 지체하면 회복할 수 없는 내상을 입게 될 것이다. 아무리 불편한 현실이라 하더라도 직시할 때가 되었다.
◇11월 13일 대기오염 걱정에… 태양광 ‘굴기’
한국은 언젠가부터 미세먼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전에는 높고 파란 하늘이 당연했으나 지금은 희뿌연 하늘과 시야에 익숙해지고 있다. 산책이나 운동마저도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미세먼지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이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 미세먼지 원인의 많은 부분을 중국이 차지한다고 믿고 있다. 아직 정확한 연구결과가 부족하여 중국발 미세먼지가 차지하는 양이 80~20%까지라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일찍이 2000년 초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예를 들어 베이징(北京) 시내에서 석탄(연탄) 사용금지 등의 제도를 실시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원인이 있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으로 에너지 생산량을 확대해야 했기 때문에 발전소를 지속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석탄을 사용하는 발전이었다. 급격히 증가한 자동차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의 환경 단속에도 불구하고 총배출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건설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중국 정부는 대기오염과 같은 환경오염을 해결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수력 등 다양한 에너지 정책을 세우고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또 인공태양 분야에도 한국, 유럽 등과 함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태양광이다. 세계 태양광 업체의 대부분이 중국 기업이며 세계 최대 태양광 발전소도 중국에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태양광 하면 독일, 미국, 일본 차지였다. 중국은 2000년대 뒤늦게 태양광 분야에 뛰어들었다. 중국의 태양광은 정부 주도산업으로 육성됐는데, 대규모 공급 설비에 투자하고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 정부는 태양광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미국 정부는 태양광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오히려 후퇴했다. 그 결과 중국 태양광 업체는 크게 성장했고, 미국 태양광 업체는 파산하거나 규모가 축소됐다. 최근 세계 태양광 기업 순위를 살펴보면 10위권에 중국 기업이 7∼8개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 독일, 미국 등이 겨우 체면치레를 하고 있는 정도다.
청정에너지 분야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태양광 발전 분야에만 100만 명이 넘게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세계 태양광 발전 패널의 3분의 2를 생산하고 있으며, 풍력 터빈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 태양광 기술도 많이 발전하여 현재는 가격대비 에너지 발생에 있어 석탄과 유사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술이 좀 더 발전한다면 태양광은 무공해 황금 에너지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에너지를 놓고 벌이는 세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세계 5위권인 한국 기업도 힘을 내라고 응원을 보낸다. 아직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지만 중국은 현재 여의도 3배 크기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미래를 대비하며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1월 21일 복제 넘어 감탄으로… 급변하는 中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이란 중국 TV 프로그램이 있다. 중국의 다양한 음식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그 작품성이 단연 돋보인다. 중국 중앙 방송인 CCTV가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마치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원제목은 ‘혀 위의 중국(舌尖上的中)’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이란 제목으로 소개됐다.
중국 전문가도 접하기 힘든 다양한 음식 메뉴의 조리 과정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중국 전역을 돌며 보여주는 방대한 스케일을 바탕으로 한 깔끔한 편집과 절제된 구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평을 자아내게 한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처럼 지역별 특산품을 재료로 독특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음식이 아닌 중국 문화 전반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방영됐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중국 프로그램은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뛰어넘지 못한 듯하다. 중국 하면 무협이나 역사극이 대표적이라 식상하고 비슷비슷한 구성이나 느린 전개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좋은 작품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어찌할 수 없지만,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에서는 중국의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고 있지만, 중국 프로그램 특유의 ‘중국 만세’ 하는 분위기로 만들지는 않았다. 물론 ‘지혜’니 ‘전통’이니 하는 중국만의 자부심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강도는 약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음식 하면 떠오르는 베이징 카오야나 궁중요리 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번화한 대도시나 유명 음식점을 보여주기 식으로 자랑하려는 의도가 아닌, 촌로의 식생활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당연히 과장된 시식평이나 현란한 조리과정은 배제되고 각 음식이 지닌 고유의 특성을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은 모르고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다. 음식을 통해 중국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물론 방송 전문가가 참고해도 좋을 만한 잘 만들어진 새로운 유형의 음식 다큐멘터리다. 한국 방송에서도 그 작품성을 알아봤는지 중국에서 발표한 해인 2012년과 이후 2014년 MBC에서 특별 편성했다. 1, 2부로 구성돼 모두 7편이 방영됐다. 방송 당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중국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다시 방영되고 MBC에서 재방영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는 그 나라 방송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가 그 좋은 예다. 그들은 전 세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고품격으로 만들어낸다.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은 중국 방송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할 만하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 공들인 모습이 보인다.
사계절은 물론 중국 전 지역의 모습을 담고 있어 제작자의 노력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한류의 성취에 취해, 아니면 이유 없는 반감으로 변화하는 중국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한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11월 27일 韓流와 中 웹드라마의 역습
중국 배우의 한국 방문으로 공항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에 있었던 홍콩 배우들의 내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직도 건재한 청룽(成龍)이나 저우룬파(周潤發)가 한국에 왔다는 것도 아니다. 중국 대륙의 20대 배우이자 가수인 쉬웨이저우(許魏洲)가 얼마 전 방한했을 때 일이다. 기성세대에는 낯선 인물로 소위 말하는 ‘듣보잡’이겠지만, 젊은 층에서 인기는 예상외로 대단하다. 중국식 발음으로 쉬웨이저우라고 불리는 그는 잘 생긴 외모와 185㎝의 훤칠한 키를 가진, 연기와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인기 스타다. 현재 중국은 물론 한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쉬웨이저우가 표지 모델로 등장한 잡지가 있었는데, YES24 잡지 부분 판매 부수 1위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로 일찍 매진돼 팬들의 원망을 샀다고 한다. 또한 그가 2016년 한국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때, 티켓이 오픈 3분 만에 매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한편의 웹 드라마 때문이었다.
‘상은(上은)’이라는 중국 웹 드라마가 있다. 우리말로 ‘중독되다’ 정도의 뜻인 이 드라마는 중국을 넘어 한국, 동남아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청춘드라마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남학생 간의 사랑을 담은 다소 자극적인 스토리다.
여기에다 두 사람은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 사이가 된다는 자극 요소가 더해진다. 이런 스토리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 때문에 중국 정부의 검열에 걸려 조기 종영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웹 드라마의 인기는 막을 수가 없었다.
웹 드라마는 기성세대에 좀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술(IT) 발전과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젊은이들에게 가깝게 인식된 지는 한참 되었다. 기존 매체의 콘텐츠보다 저렴한 제작환경 등의 이점을 가지고 있어 실험적인 작품들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젊은 세대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뛰어넘어 많은 작품이 공유되고 있다.
중국 드라마라니 좀 낯설겠지만, 초기에는 한국어 자막이 없어서 소리는 중국어로 듣고 자막은 영어를 보면서 드라마를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물론 지금은 빠른 시일 안에 한국 자막도 등장하는 상황이다. 마치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을 보는 듯하다.
중국의 웹 드라마는 100억 뷰를 넘기도 한다. 역시 시장이 크니 제작비도 부담이 없다. 한국의 웹 드라마가 1000만 뷰를 넘기기 힘든 현실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시장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 중국의 콘텐츠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한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자랑스럽고 자랑할 만한 현상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성취에 취해 머물러 있으면 언젠가 퇴보하기 마련이다. 1990년대 한국을 휩쓸던 홍콩 누아르의 인기는 어느 순간 소리 없이 사라졌다. 한류도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한국은 지금 자랑이 아닌 자중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한다. 여러모로 말이다. 은인자중!
◇12월 04일 ‘母’의 두 점… 무엇을 상상하시나요
한자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문자다. 한자는 모양을 본떠 만든 문자라고 하여 상형문자(象形文字)라고 한다.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기원전 10세기 무렵인 은나라의 갑골문에서 볼 수 있듯이 무척 오래된 문자이기도 하다. 한자를 풀이하려면 기원이 하도 오래되고 기록도 별로 없어 상상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론 엉뚱한 상상력이 작동하기도 한다.
날 일(日)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한자다. 갑골문을 보면 사각형 안에 점 하나가 찍힌 형태인데, 그 점이 늘어나 지금의 모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라고 한다. 태양을 표현할 때는 대체로 원 모양 주위로 햇빛이 빛나는 모양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치원생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햇빛이 사라지고 가운데에 점 하나를 찍은 모양이다. 태양을 보고 그렸다고 하기엔 조금 이상한 면이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달 월(月)에서도 나타난다. 달 월의 갑골문 형태를 살펴보면 초승달 모양을 그리고 가운데에 점 하나를 찍은 모양이다. 여기에도 점이 등장한다. 그냥 초승달 모양만 그려도 되는데 많은 기록에서 굳이 점을 찍고 있으니 의아하다.
태양 안의 점과 달 안의 점이 하나의 상징이란 해석이 있다. 태양 안의 점은 삼족오를 나타내며, 달 안의 점은 두꺼비를 나타낸다고 한다. 삼족오는 다리가 세 개 있는 까마귀로 태양에 산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과거 신화를 나타내는 벽화에 자주 등장한다. 삼족오는 태양신을 모시는 토템을 나타내는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을 태양까지 실어다 주는 존재다. 다시 말하면 태양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신성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삼족오는 새가 시신을 파먹게 해 장례를 치르는 조장(鳥葬)의 풍습과 연결된다. 지금도 티베트 일부 지방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하늘에 보이는 수많은 둥근 것 중에 삼족오가 살아야 태양인 것이다. 그래서 점을 찍었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달에는 옥토끼가 살지만, 중국 신화 속의 달에는 두꺼비가 산다. 물론 중국에서도 토끼 전설이 있지만 두꺼비가 좀 더 일반적이라 하겠다. 중국의 고전 ‘회남자’를 살펴보면 ‘항아’라는 여신이 남편을 배신한 벌로 두꺼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달에는 두꺼비가 사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 벽화를 보아도 붉은 태양에는 삼족오가 그려져 있고, 하얀 초승달에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반면 어미 모(母)의 점은 상대적으로 노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 여(女)자에 점 두 개를 찍은 것이 모(母)자인데, 지금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형태가 많이 변형돼 女자와 母자는 서로 많이 달라 보인다. 그러나 갑골문에는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이로써 女자와 母자가 같은 형태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기혼 여성의 가슴을 점으로 표현하여 아이에게 젖을 줄 수 있는 여자가 바로 어미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한자는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문자다. 이 때문에 골동품처럼 고루한 문자로 인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획수와 자수도 많아 부정적인 인식이 적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 보면 무척 흥미로운 문자이기도 하다. 학계야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상상에는 한계가 없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한자를 풀이해 보시라. 한자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12월 11일 ‘자동차 굴起’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현대자동차가 곤란에 처해 있다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현대자동차 정도면 이 정도 어려움쯤이야 곧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는 분위기도 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매우 중요한 시기에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중 자동차 산업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생산, 판매 시장이다. 전 세계 자동차 연간 생산량의 30% 정도인 9400만 대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3000만 대에 가까운 자동차가 판매되고 있다. 이런 중국은 자동차 산업 발전과 환경보호를 위해 화석연료 자동차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조만간 화석연료 자동차의 판매를 중단하고 전기차로 이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전기자동차에 집중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눈에 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전기차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다. 중국은 자동차 산업에서는 후발주자이지만 전기차 산업에서는 선발주자에 해당된다. 이미 영국의 전기 버스는 중국산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기차는 아직 미래 기술 같지만 성큼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산업발전 과정에서 이와 같은 도약식 발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 중국에는 아직 비디오가 보급되지 않았다. 비디오가 보급되려면 한참 멀었으니 CD나 DVD 같은 신기술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중국은 비디오를 뛰어넘어 바로 CD와 DVD 시장으로 진출해 세계 시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비디오는 보급조차 안 됐지만 그다음 단계인 DVD는 세계 선두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전자회사가 일본 회사를 뛰어넘은 것도 비슷하다. 1990년대까진 일본 전자회사는 세계 최고였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2000년대 초 디지털이란 신기술에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우리나라 기업은 일본을 추월하게 됐다.
자동차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진 않을까? 심하게 말해 화석연료 내연기관을 기준으로 선진국과 100년 정도 차이가 나지만 전기차 분야는 전혀 다르다. 전기자동차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은 세계와 중국의 차이가 크지 않고, 앞선 부분도 있다. 이 때문에 적기에 투자하고 중국 거대시장의 장점을 살린다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볼 만하다.
물론 중국은 미래만 보고 현재를 무시하지 않는다. 중국 자동차회사의 기술적인 향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외국과의 합작이나 외국 자동차회사 인수 등으로 실질적인 기술을 향상시키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중국 지리(吉利)자동차는 유명 자동차 브랜드인 스웨덴 볼보자동차를 인수해 기술력과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국내 언론에서 현대가 지리를 배워야 한다는 칼럼이 등장할 정도다.
중국의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比亞迪·BYD)는 2030년이면 전기차로 완전 대체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직은 현실성보다 포부를 담고 있는 발언이지만,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업체의 말이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중국 전기차 발전 추세에 맞춰 중국 정부는 화석연료 자동차를 퇴출시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의 신에너지차(NEV) 정책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12.19 세계최대 전파망원경 가진 나라
전파망원경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시각으로 보는 일반망원경이 아니라 우주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탐지하는 레이더다. 우주의 신호에서 정보를 얻는다. 전파망원경은 실생활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보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실용과학은 결국 이러한 기초과학의 열매인 것이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만 수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한다. 미래를 위해.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이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구이저우(貴州)성 핑탕(平塘)현 산림지대에 있는 톈옌(天眼) 전파망원경은 이름 그대로 ‘하늘의 눈’인 셈이다. 구경 500m로 20∼30년 사이에는 세계 최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평가다. 이 전파망원경의 크기가 축구장 30개 넓이라고 하니 거대 그 자체라고 하겠다. 미국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구경 300m로 규모 면에서 차이가 크고 성능 면에서도 2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톈옌은 가동 1년 만에 중력파를 감지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제작비로 2240억 원이 들었으며 2016년 9월 25일부터 가동됐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중력파가 뭔지 알기도 힘들고, 또 실생활에 무슨 도움을 주는지 의문이 들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기초과학의 성과가 하나하나 쌓여 라디오, TV가 되고, GPS, 내비게이션이 된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쉬운 실용과학은 기업에서 알아서 투자하기 마련이다. 돈이 되는 것에는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달려든다. 하지만 기업과 달리 정부는 멀리 보고 투자해야 한다. 기초과학은 당장의 성과를 따지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투자도 마찬가지다. 최근 융합이란 화두가 유행하면서 기초과학자에게 실용과학을 가르치고, 인문학에 코딩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일고 있다. 이는 기초과학이나 인문학 육성이 아닌, 그렇다고 융합도 아닌, 모두를 망치는 작업이다. 기초과학이나 인문학은 나름대로 뛰어놀도록 해줘야 한다. 그에 따른 성과는 자연스럽게 실용학문으로 옮아가기 마련이다. 인문학이란 토대에 기초과학의 설계로 응용과학이 건물을 만드는 것인데, 건물에만 집중하는 꼴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엉뚱하다. 기초과학은 지나치게 엄밀하다. 이런 엉뚱함과 꼼꼼함이 응용과학의 자산이 된다. 20세기 초에 나왔던 ‘달나라 여행’이라는 엉뚱한 과학소설이 얼마나 많은 과학자를 양산했던가. 또 아인슈타인의 공허해 보이는 상대성이론이 GPS 등 얼마나 많은 현실을 바꿔놓고 있는가. 중국을 평가할 때, 또 중국의 미래를 내다볼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이 바로 중국 정부의 기초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투자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인문학과 기초과학에 꾸준히 투자해왔다. 그 결과 우주항공, 고속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투자가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중국에서는 투자가 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이나 인문학에 대한 투자는 기초공사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쓸데없이 돈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울어지지 않는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다. 중국의 유인우주선을 부러워 말고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에 주목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