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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2022-09/ 09월 01일 전방위 조작된 ‘4대강 보 해체 근거’ - 09.30 ‘文 적폐’ 제보가 많지 않다는데

상림은내고향 2022. 10. 1. 14:46

바른소리 2022-09/

09월 01일 전방위 조작된 ‘4대강 보 해체 근거’

 박석순 이화여대 명예교수·환경공학 한국자유환경총연맹 공동대표

최근 환경부가 문재인 전 정부의 금강·영산강 보(洑) 해체 및 상시 개방 결정에 대해 ‘비상식적·비과학적인 편향적 의사결정을 했다’는 의견을 감사원에 냈다고 한다. 특히, 4대강 사업을 적폐로 규정해 놓고 끼워 맞추기 식으로 몰아갔으며, 법적 근거도 없는 수질평가 기준을 적용했음이 드러났다.

문 정부는 2017년 보 개방 시작 단계에서 보를 해체하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 두고 있었다. 그래서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는 2019년 2월, 보 개방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해체 및 상시 개방을 결정했다. 특히, 보 해체를 결정한 금강 세종보와 공주보, 영산강 죽산보는 비용편익(B/C) 분석에서 각각 112억, 296억, 1019억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값을 수질 개선 편익으로 넣었다. 2020년 9월 금강 및 영산강·섬진강 유역물관리위원회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국가물관리위원회는 2021년 1월 이를 최종 확정했다.

보 개방 결과는 최종 확정 이후에 나왔다. 2021년 4월 환경부는 보 개방으로 수질이 나빠졌음을 공식 인정했다. 특히 금강 세종보·공주보, 영산강 죽산보에서는 수질이 최대 40%까지 악화했다고 밝혀 해체 결정에 치명적 결함이 있었음을 자인했다. 하지만 국가물관리위는 보 해체 결정을 뒤집지 않았다.

공식 인정한 보 개방 결과는 수질 관리 이론과 일치한다. 강에 맑은 수질을 유지하려면 생활하수나 산업폐수 등 오염원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대도시·산업단지·농경지 등이 유역에 있는 큰 강에서는 한계가 있다. 비가 올 때 지면에 쌓인 먼지·쓰레기·비료·농약·토사 등이 상당량 유입된다.

이런 강에는 보를 만들어 오염물질을 가라앉히고 쓰레기를 걷어낸다. 강바닥에 가라앉은 오염물질은 미생물과 실지렁이 같은 저서동물에 의해 분해되고, 이는 다시 물고기 먹이가 돼 물이 맑아진다. 보를 이용한 수질 개선은 선진 대도시를 지나는 대개의 큰 강에서 오래전부터 해오던 방법이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서울의 한강 잠실보와 신곡보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문 정부는 보의 수질 개선 효과를 부정했다. 대신 임기 내 적폐 청산이라는 조급함 때문에 무리수를 뒀다. 절차적 순서뿐만 아니라 B/C분석, 평가 기준 등에 비상식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특히, 숫자로 확인 가능한 수질은 항목 자체를 아예 조작했다. 법정 수질평가 항목으로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용존산소량(DO)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평가위원회는 이를 무시하고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을 사용했다. COD는 2011년 국립환경과학원이 평가지표 부적합성을 제기한 항목이다.

 

또, 수질평가에는 무의미한 ‘퇴적물 오염도’ ‘저층 빈(貧)산소 빈도’ 등과 같은 강바닥 지표를 넣어 보 해체에 유리하게 했다. 강에 보가 있으면 부유물질이 가라앉아 물은 맑아지고 강바닥 오염도는 증가한다. 이는 집을 청소하면 실내공기는 깨끗해지고 쓰레기통이 더러워지는 것과 같다. 평가위원회는 실내공기보다 쓰레기통을 중요시한 셈이다.

그 외 수생태계 개선, 친수 활동, 홍수조절 능력 등 거의 모든 항목이 편향적으로 평가됐다. 4대강 사업 관련 역대 5번째로 진행되는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 모든 것들이 철저히 밝혀지길 바란다.

문화일보

 

09.02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폴리스 라인은 경고 라인이면서 동시에 징벌 라인이다. “넘으면 안 돼.” “앗, 넘었군. 이번은 봐주지만 또 넘으면 안 돼.” “오늘은 눈감아주겠는데, 다음 집회 때는 어림없어.” 이쯤 되면 이미 금지선이 아니고 조롱선이다. 소음 피해도 마찬가지다. 사후 처벌 으름장은 말짱 꽝이다. 시민이 고통 받기 이전에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징벌 라인은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징벌이고, 공권력이다. 차별을 두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권력의 본질은 “무차별적”이다. 공권력, 그중에서 거리·광장·사업장 안전을 담당하는 공권력은 개입을 망설이는 경우가 극도로 제한적이어야 한다.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경찰봉으로 즉각 제압하고, 땅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케이블 타이로 두 손을 묶어둬야 하고, 호송차가 도착하면 태워서 현장 연행을 해야 한다. 그게 공권력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든 스타 연예인이든 집회 취지에 동조하러 시위 현장에 갔다가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그대로 땅바닥에 제압당하고 허리 뒤로 두 손목이 묶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장면이 언론에 자꾸 보도돼야 한다.

 

공장 점거, 사장실 점거, 출입구 봉쇄 같은 산업 시설 불법 점거는 즉각적으로 공권력이 작동되어야 한다. “사태 추이를 두고 보겠다” “노사 협상을 기다려 보겠다” 이런 식이면 이미 존재 이유가 상당 부분 와해된 공권력이다. 우리 사회를 작동시키는 기제는 물렁물렁하고 유연한 협상력이 우선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시멘트 벽처럼 딱딱한 엄격함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회사 경영진과 노조의 협상, 정부 차원의 노사정 협의회가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면, 공권력은 한없이 삼엄해야 한다. 나중에 정상을 참작하고 아량을 베푸는 곳은 재판정이어야 하지 경찰 공권력이 그걸 폼 잡으면 안 된다.

 

경찰은 “중립과 독립 보장”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에 걸맞게 그 누구의 눈치도 봐서는 안 된다. 경찰청장의 개인 휴대폰은 꺼져 있어야 한다. 그가 지닌 내부 통신 장비는 엄격한 계선에 따른 지휘와 보고를 위해서만 통화가 이뤄져야 한다. 여의도 정치인과 전화는 절대 안 된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의 전화도 받지 말아야 한다. 아니 “시스템적으로” 받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경찰청장의 휴대폰 통화 내역은 정규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이렇게 말했다. “사실 공권력을 언제 투입해야 할지 명문화된 기준이 없다. 그래서 불법 집회나 시설 점거 등 상황별로 어느 정도 단계가 되었을 때 공권력 개입이 필요하다는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공권력이 언제 개입할지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일부는 옳은 얘기다. 그러나 매뉴얼이 너무 정교하고 복잡하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된다. 무슨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처럼 수십 쪽이 넘어가면 안 된다. 애매모호해도 안 된다. 시위·집회 현장에서 경찰 병력을 지휘하는 수사·경비 과장과 일선 경찰서장이 헷갈리면 그건 맹탕 매뉴얼이다. 공권력 매뉴얼은 간단 명료해야 한다. 한 문장이면 족하다. “불법이면 개입한다.”

 

‘상황별로 어느 정도 단계가 되었을 때’라고 한 그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불법적 상황은 그것이 발생한 즉시 이미 심각한 것이다. 이미 피해가 커지고 있고, 공권력의 절대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간을 보는 쪽은 ‘불법 시위꾼’이어야 하지, 공권력이 ‘상황별로 단계를 판단’하려 하면 그것은 이미 눈감은 공권력이다. 공권력은 윤 청장이 말한 것처럼 사태를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불법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발동되는 ‘첫 번째 조치’이어야 한다. 그동안 폴리스 라인은 경찰만 지키고 시위꾼은 무시해왔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09.03  국정원 연구원서 文캠프 출신 간부가 밤에 여성 불렀다니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정치권 출신 고위 간부가 연구원 건물 일부를 개인 오피스텔로 쓰면서 외부 여성들을 수시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전략연구원은 북한 정보를 분석하고 대외·안보 전략을 다루는 기관으로 국정원이 운영 자금을 대는 사실상의 국책 안보 연구소다. 보안 시설이라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돼 왔다. 그런데 이 곳을 개인 집처럼 이용하면서 외부인을 수시로 드나들게 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 초부터 연구원 행정실장과 부원장을 맡은 A씨는 2020년 10월 서울 강남 도곡동의 연구원 건물 604호를 공금 수천만원을 들여 주거용으로 리모델링했다. 이후 A씨와 친분이 있는 여성들이 외부인 출입이 통제되는 심야 시간에 A씨 명의의 차량을 타거나 ‘A씨 손님’으로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집합 금지와 영업 제한 조치가 시행되던 시기에 업무 시설을 술자리 등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A씨는 올해 초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604호에 대한 임대료와 관리비를 연구원에 냈다. 그는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일하다 서훈 전 국정원장 때 연구원 간부로 특채됐다. 전략연구원과 업무 관련성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는 부원장 시절 직원들을 휴일에도 불러내 각종 일을 시키고 폭언을 하는 등 갑질을 한 의혹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제재나 징계를 받지 않았다.

 

전략연구원에는 자격이 안 되는데도 정권이나 국정원장과의 사적 관계로 낙하산 임명된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북한 정보 수집·분석에 필요한 고위 탈북자 출신 등은 배제되곤 했다. 2018년 태영호 전 북한 주영국 공사(현재 국민의힘 의원)는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책을 펴낸 후 북한이 맹비난하자 연구원 자문위원에서 물러나야 했다.

 

몇 달 전에는 연구원 내에서 칼부림 사건도 벌어졌다고 한다. 탈북자 출신 연구위원이 동료 여성 연구원과 말다툼을 하다 칼로 찌른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북한 정보와 안보 전략을 다루는 보안 기관에서 어떻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라 일어날 수 있나.

 

문재인 정부 때 안보 태세가 해이해지면서 국정원과 산하 기관의 기강도 함께 무너졌을 것이다. 국정원이 대북 감시를 하지 않고 남북 이벤트에 빠져 있었으니 산하 기관은 어땠겠나. 한미 연합훈련도 하지 않고, 북한 인권 재단도 껍데기로 만들더니 안보전략연구원도 이 지경이었다.

조선일보 사설

 

09.03  “집처럼 꾸며놓고” 여자와 술판... 국정원 전략硏 604호선 무슨 일이

서훈 원장때 연구원 간부로 특채… 1년간 전략연 604호 개인 사용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 인사가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 기관에 고위 간부로 특채된 이후 건물 일부를 사적 용도로 사용하면서 여성을 불러들여 술까지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2일 국정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내부 인사들에 따르면, 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A씨는 연구원 소유의 서울 강남 도곡동 소재 건물 일부 호실을 약 1년 동안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CCTV에 찍힌 여성 - 국정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관리하는 서울 강남 도곡동 빌딩 사무실에 한 여성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입하는 모습이 CCTV 화면에 잡혔다(왼쪽 사진).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인 전략연 간부가 사무실을 사적 용도로 사용하며 여성을 불러 술자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른쪽 사진은 다른 옷차림의 여성이 같은 사무실로 향하는 모습. /독자 제공

 

A씨는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일했으며 2017년 8월 서훈 전 국정원장 당시 전략연 고위 간부로 특채됐다. A씨는 행정실장 겸 행정부원장을 지내다 지난 6월 연구원을 떠났다. 행정실장은 그간 국정원 출신 인사가 주로 맡아 연구원 내부 살림을 챙기는 자리였다. 연구원 관계자는 “A씨는 노무현 재단과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 출신이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경력도 없었고 우리 연구원 업무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낙하산 인사였다”고 전했다.

 

연구원 인사들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약 1년간 전략연이 관리하는 건물 604호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연구원 관계자는 “604호에 수천만원이 들어간 인테리어 공사를 했고 이후 그곳에서 야간 술 파티가 수시로 열렸다”며 “낯선 여성이 늦은 시간대와 이른 새벽 수시로 연구원 건물에 출입하는 모습이 CCTV 화면에 잡히니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직원들이 많았다”고 했다. 이어 “경비원을 비롯한 연구원 직원들 몇몇은 604호 문제를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A씨가 외부 여성과 술자리를 가졌을 당시엔 코로나 방역 지침으로 3명 이상 모임이 금지됐을 때였다”며 “604호를 아예 가정집처럼 꾸려 놓고 외부 인사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A씨와 알고 지낸 인사는 “604호에 A씨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실제 거주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A씨는 604호를 출입한 여성과 관련해 “아는 후배”라고 주변에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는 A씨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A씨는 문제가 불거지자 다른 매체에 “코로나 상황에서 수익 사업을 더 잘하려고 사무실을 주거용으로 리모델링해 모델하우스처럼 꾸몄다”면서 “개인적으로 계약해서 사용했던 사적 공간이고 사용 기간에 해당하는 임대료와 관리비를 사비로 정산했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들에게 휴게 공간으로 쓰라고 했지만, 잘 쓰지 않아 내가 썼다”며 “손님이 승용차를 가져온 경우에는 (건물) 관리실에 ‘내 손님’이라고 확인해준 건 맞다”고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민간 사단법인이지만 국가정보원이 예산을 지원하고 국정원 요청 연구를 수행하는 사실상 국정원 산하 기관이다. 전략연 연구진은 일반 박사급 학자뿐 아니라 전직 국정원 인사들과 고위급 탈북자들로 구성돼 있다. 북한 외교관이나 북한군 고위급 출신 탈북민이 10여 명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연구진은 제한된 범위지만 국정원 내부 자료도 참고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경우 행정부원장까지 지냈지만 국정원 업무나 북한, 안보 관련 전문성은 조금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노무현 청와대 행정관과 노무현 재단 근무 경력이 있으며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행정 사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유럽연합(EU)에 특사를 파견할 당시 특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당시 문 캠프에 있던 인사는 “전문가들이 모이는 회의를 할 때 A씨가 주로 연락을 맡았다”며 “일 처리가 깔끔하고 태도가 싹싹해 캠프 전문가들이 좋은 평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연구원 일부 직원들은 A씨가 연구원 재직 당시 ‘갑질’ 행태를 보였다는 증언도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직급이 낮은 행정직원한테 거친 말을 하거나 기물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며 “휴일에도 직원들을 출근시켜 불만을 토로하는 직원들이 있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전략연의 비정상적 실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국정원 최고위급 간부는 자신의 비서와 지역 지인을 각각 연구원 책임연구위원과 수석연구위원으로 임명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연구원 관계자는 “경력직 연구원의 경우 국정원 또는 일반 국가공무원 경력자에 한해 임명하는 것이 원칙이었다”며 “개인 비서 출신이 경력직으로 채용된 건 처음 있는 사례로 안다”고 했다.

 

올해 초 연구원에선 남녀 연구원이 사무실에서 술 마시다 흉기를 들고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술을 마신 남성 연구원이 여성 연구원을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다툰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원 관계자는 “기강 해이가 갈 데까지 갔다는 내부 탄식이 나온다”며 “국책연구소 연구실에서 술을 마시고 칼부림하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는 “실력으로 정상 채용된 박사들이 연구원에서 벌어진 황당한 상황을 지켜보며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A씨가 연구원 일부를 사적으로 이용할 당시 전략연 원장은 친문재인 학자로 꼽히는 김기정 전 연세대 교수였다. 김 전 교수는 7월 원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김 전 원장은 본지에 “임기 중 벌어진 일이지만 604호 관련 얘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A씨가 문재인 정부 실세와 가깝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원장도 그에게 함부로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민서 기자  노석조 기자

 

09.05  기업 승계 막는 세계 최고 상속세, 누굴 위한 건가

상속세 감면 혜택을 받아 중소기업의 가업(家業)을 물려받는 사례가 연간 100건 남짓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고 50%에 달하는 한국의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다, 가업을 상속할 때 세금을 깎아주는 요건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는 상속 후 7년 이상 같은 업종·고용·지분을 유지해야 상속 재산 중 200억~500억원을 과세 대상에서 빼주고 이를 위반하면 최고 65%의 징벌성 세금을 물린다. 이런 조건 탓에 중소기업 오너 중엔 상속 재산이 늘지 않도록 사업 확장을 꺼리거나, 가업 승계 대신 기업 매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선 가업 승계가 어려운 이유로 중소기업의 80%가 ‘막대한 조세 부담’을 꼽았다.

 

정부는 가업 승계 감세 대상을 연 매출 1조원까지로, 최대 공제 한도는 1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승계 후 조건을 완화해주는 세제 개편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가업 상속 후 사업을 5~7년만 유지하면 상속세를 전액 유예해 주고, 업종 변경 제한도 두지 않는 선진국의 세제를 감안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세제 개편안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가업이 계속돼 경영의 일관성과 고용이 유지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떻게 부자를 위한 혜택인가. 중소기업계의 오랜 현안인 가업 승계 감세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여야가 손을 잡아야 한다.

 

아울러 시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상속 세제도 글로벌 표준에 맞춰 고쳐야 한다. 우리의 상속세제는 피상속인의 재산 총액에 최고 50%의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실제 받는 상속분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문제가 있다. 이를 대부분 선진국처럼 상속인이 각자 물려받은 재산만큼만 세금을 내는 ‘유산 취득세’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정부도 이런 방향으로 상속세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데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세금 폭탄’ 수준의 상속세를 개혁해야 기업인들이 사업 키우기를 꺼리는 기현상이 없어지고,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도 개선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05  편파 방송에 면죄부 남발, 내 편 감싸는 ‘불공정 방심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방심위 제공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위원들이 다수인 방송통신심의위가 김어준씨 등 친야 인사들의 왜곡·편파·허위 방송에 대해 ‘봐주기 심사’로 일관한 혐의로 고발된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방심위가 노골적인 야권 봐주기 심의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고 방송 심의 본연의 직무마저 포기했다”며 민주당이 추천한 방심위원과 방심위 사무처를 직무 유기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서울시 돈으로 운영되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문 정부 때 끊임없는 편파 방송으로 비판을 받았다. 김씨는 천안함 사건을 왜곡하고 ‘세월호 침몰설’을 주장했다. 조국 사태 땐 “검찰의 정경심씨 공소장은 허위 공문서”라고 했고, 서울시장 선거 때는 근거도 없이 ‘페라가모·생태탕’ 의혹을 제기했다.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선 윤지오 씨를 출연시켜 ‘후원금 사기극’을 벌이도록 했다.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살돼 불태워진 것을 “(북한이) 화장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심위는 ‘경고·주의·과징금’ 등 법정 제재를 거의 내리지 않았다. 다른 방송이었으면 당장 법정 제재를 받을 사안들이었다. 법적 불이익을 받지 않는 ‘행정 지도’만 작년 한 해 동안 17차례 내렸다. 김씨가 임대차 3법에 반대하는 서민들에 대해 “집도 없으면서”라고 비하했지만 방심위는 “문제없다”고 했다. 올해도 김씨에 대해 문제없다는 심의 결과가 5차례 나왔다.

 

MBC가 2020년 보도한 ‘최경환 전 부총리의 신라젠 65억원 투자’ 보도가 재판에서 오보로 결론 났지만 방심위는 아직도 심의를 보류하고 있다. KBS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 좌파 단체 패널이 80회 넘게 나간 반면 보수 단체는 한 차례도 출연하지 못했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 천안함 잠수함 충돌설을 편 방송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라며 면죄부를 줬다.

 

현재 방심위원장과 위원 9명 중 6명이 문 정부와 민주당이 임명한 인사들이다. 노무현 정부 때 KBS 사장을 지낸 정연주 방심위원장은 임기 내내 정권을 편들고 사실을 왜곡하는 방송으로 논란을 빚었다. 그는 “종편 재승인을 취소하도록 증거를 축적해야 하고 상시적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취임 후에도 종편에 대한 협박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러니 방심위 심의의 공정성을 믿을 수 있겠나. 방심위가 그동안 자기편은 노골적으로 봐주고 상대방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편파 심의를 했는지 제대로 밝혀야 한다. 그래야 방송 공정성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9.05  1280억 들인 세종보를 누가 망가뜨렸나

50년 된 팔당댐도 고쳐 쓰는데 4대강 보는 5년 만에 철거 시도
전 정부가 방치한 세종보, 혈세 100억 더 들여야 할 판

 ▲지난 8월 14일 수문을 열어 물을 방류하고 있는 경기 하남시 팔당댐./뉴스1

 

남한강과 북한강 합류 지점에 세운 팔당댐이 올해로 건설 50년을 맞았다. 평상시 댐에 가둔 물로 전기를 생산하고, 하루 500만t을 취수해 2600만 수도권 시민에게 수돗물과 공업용수를 공급한다. 반세기 동안 수도권을 먹여 살린 팔당댐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올여름 서울 폭우 사태 이후 ‘팔당댐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번 비는 댐 하류에 집중됐지만 이보다 큰비가 댐 상류에 쏟아지면 노후화한 팔당댐 수문이 홍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5년 전 감사원도 ‘방류 능력 부족’ ‘기록적인 홍수 시 수문 전도(顚倒)’ 가능성 등을 들며 정부와 댐 관리를 맡은 한수원에 대책 수립을 요구한 적이 있다.

 

팔당댐에 문제가 생기면 재앙적 사태가 벌어진다. 수도권에 용수 공급이 끊기고 막대한 침수 피해를 피할 수 없다. 한수원에 알아보니, 감사원 감사 이후 댐 안전성 확보를 위해 ‘수문 교체’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29m 높이 콘크리트 댐 본체에 가로 20m, 세로 17m 크기로 달린 15개 대형 수문이 일부 마모되거나 부식돼 ‘보강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내려졌다고 한다.

 

콘크리트, 강철 구조물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거센 수압과 상류에서 밀려온 부유물 등이 생채기를 내고, 그 틈에 스며든 물과 공기가 부식·균열을 일으킨다. 한수원은 50년 된 팔당댐뿐 아니라 60~70년 된 화천댐·춘천댐·의암댐·청평댐 등 북한강 수계의 댐 수문도 잔존수명 조사를 거쳐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수도권 주민의 안전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운 셈이다.

 

팔당댐과 4대강 16개 보는 여러모로 닮았다. 강물을 가둬 가뭄에 대비하거나 용수를 공급하며, 지하수를 함양하고, 팔당댐 수력 발전기(120㎿)보다는 작지만 4대강 보에 달린 소수력발전기(51㎿)로 청정 전력을 생산한다. 홍수 예방을 위해 4대강 사업 당시 하천을 준설했지만, 보 자체로는 팔당댐처럼 홍수 조절 능력이 없다는 점도 비슷하다.

 

북한강 수계 댐처럼 50~70년 묵어도 안전에 결정적인 문제가 없으면 보강 공사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해체 검토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4대강 보는 이와 정반대다. 전 정권 집권 5년 내내 사실상 보 철거가 시도됐다. 4조원 들여 지은 지 5년밖에 안 된 멀쩡한 보의 숨통을 끊으려는 작업이었다.

 

 ▲2018년 8월 14일 세종시 세종보 모습. 가뭄으로 보 수문을 열면서 수위가 낮아져 금강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다./신현종 기자

 

그 가운데 금강 세종보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세종보 수문은 90도로 세우면 물을 담고, 0도로 눕히면 수문이 강바닥에 밀착되면서 물이 방류되는 전도식 구조다. 폭 360m 금강에 이런 수문이 100여 개 달린 세종보를 짓는 데 1280억원 들었다. 그런데 전 정권 집권 직후부터 수문을 상시 개방하는 바람에 강바닥에 설치된 수문 가동장치(유압실린더)가 토사로 뒤덮여 작동 불가능한 상태다.

 

3년 전 세종보에 현장 취재를 갔을 때 여러 전문가들이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댐 관리를 맡은 수자원공사도 “수문을 닫아 정상 작동 여부를 알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부는 막무가내로 수문을 계속 열어뒀다. 1200억 넘게 들인 구조물이 망가지든 말든 개의치 않겠다는 식이었다. 세종보가 이렇게 무력화되면서 세종시에 공급할 용수가 부족해졌다. 그러자 보 상류에 2억원짜리 돌보를 만들었지만 여름철 큰비에 휩쓸려 해마다 복구-유실-복구를 되풀이한다. 지금은 강바닥을 5m 깊이로 판 곳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려 용수를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100억원 세금이 또 든다고 한다. 도대체 누구 지시로 이토록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조선일보 박은호 사회정책부장

 

09.06  “한국 반도체, 위기 아니다”라는 전문가 3.3% 뿐 

 ▲지난 8월 2일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장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2일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한상의가 국내 반도체 전문가 30명에게 현재의 반도체 상황에 대해 물어봤더니 77%가 “위기”, 20%는 “위기 직전”이라 응답했다. “위기가 아니다”는 답변은 3.3%에 불과했다. 미·중 공급망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기술 추격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97%는 내년에도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한국 경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위기는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8월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2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도체가 덜 팔리면서 7월 반도체 재고는 1년 전보다 80%나 늘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재고가 각각 52조원, 12조원어치로 역대 최대다. 한국의 주력 제품인 D램과 낸드 메모리의 국제 가격은 2~3개월째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반도체 호황이 끝나고 불황이 닥쳐온다는 신호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한국을 추격해오고 있다. 얼마 전 애플이 스마트폰 등에 들어갈 메모리 반도체의 신규 공급처로 중국 업체 YMTC를 지정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중국의 파운드리 1위 업체 SMIC가 7나노급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성과를 거두면서 낸드 플래시 분야의 경우 한국과의 기술 격차가 1~2년에 불과한 수준으로 좁혀졌다.

 

경쟁국들은 반도체 산업 지원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반도체 육성에 맞서 미국은 반도체 제조 등에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EU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높이겠다며 수십조원의 지원 계획을 내놨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제조) 분야의 세계 최강인 대만은 범국가 차원에서 지원책을 쏟아붓고 있다. 그 결과 경제 규모는 우리의 절반에 불과한 대만에서 매출액이 10억달러를 넘는 반도체 대기업이 28개나 출현해 한국(12개)의 2배도 넘는다.

 

윤석열 정부도 ‘반도체 경쟁력 강화 특위’까지 만들어 각종 지원책을 담은 법안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에 발목이 잡혀있다. 반도체 특별법은 지난주 열린 국회 산자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고 아직 9월 정기국회 심사 대상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미국 의회는 자국 제조업 지원을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2주일 만에 신속 처리했지만, 한국 국회는 정치 싸움에 휘말려 경제의 명줄을 쥔 반도체 지원 법안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다.

조선일보  사설

 

09.06  책임 안 지는 ‘보 해체’ 위원들

문재인 정부의 ‘4대강 보(洑) 해체’ 결정은 과정부터 결론까지 속속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만 핵심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보 해체 결정이 무효가 되더라도 이 결정을 주도한 민간위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공범’으로 몰린 환경부 공무원들만 피해를 볼 뿐이다.

 

감사원은 작년 12월 이 건에 대한 감사를 개시했다. ‘사전 조사’란 절차에 따라 실제로 본격 감사는 4월부터 이뤄졌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단 소속 직원들은 이때부터 고강도 감사를 받았다. 관련 서류부터 컴퓨터 하드디스크까지 압수됐다. 한 공무원은 감사원에 “보 해체는 민간위원이 주도해 결정한 것이다. 민간위원들을 감사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은 민간인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2018년 8월 대통령 훈령으로 “보 개방에 따른 효과·영향에 대한 조사·평가 및 보 처리 계획을 수립한다”는 목적에서 당시 4대강 조사·평가단을 꾸렸다. 평가단 조직은 4대강 16개 보를 관할하던 국토부가 아니라 환경부에 마련됐다. 환경부 실장급(1급) 공무원이 단장을 맡고, 본부 공무원을 비롯해 각 지방 유역청·환경청에서 파견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상 의사결정권은 ‘민관 합동’ 체제였던 평가단 내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가졌다. 기획위는 총원(15명) 중 공무원 7명, 민간위원 8명으로 민간이 더 많도록 구성했다. 민간위원 8명 중 7명은 반(反)4대강 활동 및 저술 활동을 해온 이다. 나머지 1명도 민간위원장 추천으로 합류한 교수였다. 애초부터 균형 잡힌 평가를 하기 어려운 구성이었다.

 

기획위 안에는 ‘전문위원회’라는 하부 조직을 두었다. 민간위원 8명은 물환경·수리수문·유역협력·사회경제 등 4개 분과에 2명씩 분과위원장·간사 직위로 참여해 보 해체 결정의 근거가 된 ‘경제성 분석’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문 정부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작년 1월 보 해체 결정을 내렸다. 외견상 환경부 주도로 보 해체 결정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사 결정은 민간위원들 손에서 이뤄진 것이다.

 

환경부 측이 감사원에 소명한 내용 중 핵심도 “공무원 조직인 평가단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감독·통제하는 민간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그들 입맛대로 의사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한 공무원은 “보 해체는 주민 반대가 심해 어차피 진행이 불가능했다. 기획위가 ‘다만 해체 결정은 주민 동의를 전제로 한다’는 문구를 왜 삽입했겠느냐”고 했다. 당시 민간위원 중 몇몇은 문 정부 시절 공기업 임원으로 임명돼 지금도 연간 수천만 원의 보수를 받고 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무책임한 결정을 하고선 세금 쓰는 자리를 차지해 여전히 사익을 누리고 있다.

조선일보  박상현 기자

 

09월 07일 ‘좌편향 교과서’ 전면 시정 급하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 분야에서는 문재인 정권 인사들에 의한 대한민국 허물기로 자유민주공화국을 정상 복원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 표명이 무색해지고 있다. 장관이 공석인 교육부는 교과별 교육과정 시안을 발표했다. 그중 역사·도덕·보건 등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사나 도덕은 좌편향 이념으로, 보건은 양성평등이 아닌 성평등이 문제다. 특히, 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은 개항 후 근현대사 150년에 84%를 할애해 5000년 유구한 역사를 압살했다고 비판받는다. 북한이 역사에서 봉건제 조선까지를 홀대하는 것과 흡사하다. 통상 1945년을 기점으로 나누던 근현대사를 1937년 중일전쟁(김일성의 보천보전투)을 기점으로 구분한 것도 의구심을 낳는다.

 

이런 해괴한 교육과정을 책임 집필한 이는 과거 유관순을 삭제한 전력이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3·1운동을 삭제했다. 그가 대표 저자인 초등 사회 교과서는 국민의 의무로 ‘공공복리에 적합한 재산권 행사의 의무’를 강조했다. 헌법의 사유재산을 부정하면 위헌이므로 이 전시본은 검정기준인 ‘헌법 정신의 일치’를 정면으로 위반했다.

필자는 2017년 9월 문 정부의 교육부로부터 당시 국정이었던 국어·사회·도덕 교과서의 검정 전환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응답한 초등교사 8942명 중 국어 91%, 사회 87%, 도덕은 72%로 검정 전환을 반대했는데도 문 정부는 사회를 검정으로 전환해 그 지지자들에게 ‘돈벌이’를 안겨줬다.

이 검정교과서들은 대한민국이 해방으로 회복한 영토와 국민, ‘총선을 거친 의회, 건국헌법 제정, 정부수립, 유엔 승인’ 등을 통해 국민·영토·정부·주권을 갖춘 완전한 국민국가로 건국했음에도 정부수립으로 격하한다. 으뜸 독립운동가인 이승만과 가난에서 나라를 구한 박정희를 독재자로만 기록할 뿐이다. 또, 동학-의병-무장독립투쟁-민주화운동의 민중저항사를 축으로 근현대사를 쓴다.

우리 역사는 세계사에 포개어 볼 때 진면목이 드러나는데도 교과서는 민족자결주의, 카이로선언, 포츠담회담, 유엔이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 등을 누락했다. 또한, 김일성의 연설과 스탈린의 지시를 빼놓고 이승만의 정읍 발언과 김구의 38선 발언을 단순 비교해 분단의 책임을 미국과 이승만에게 돌린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안보의 초석임에도 삭제했다. 탈북민이 자유를 찾아오는데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북한처럼 자유를 ‘방종(放縱)’으로 가르친다.

 

 초등교육은 주요 인물을 통해 아동의 꿈을 키워준다. 교과서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인물들을 지웠다. 전태일은 내세우지만, 피터 드러커가 세계 제일이라고 평한 대한민국의 기업가정신의 화신인 이병철, 정주영, 최종현, 박태준 등 학생들의 역할 모델인 수많은 ‘별’들을 교과서에서 지워 버렸다. 

 

사회·역사 교과서는 이념과 가치를 가르치므로 분명한 방향 지시와 주요 용어를 엄선해야 한다. 교육부는 문제투성이 사회 검정교과서를 회수해 본래 교육목표와 검정기준에 맞게 수정하게 해야 한다. 문제가 된 교육과정은 폐기하고 책임 있는 연구기관을 통해 다시 써야 한다. 차세대 국민의 기초지식과 상식이 잘못 형성되면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위기에 빠질 것이다.

문화일보

 
 

09.08  약자 외면하는 진보의 위선 ‘노란봉투법’

올가을 입법전쟁의 예상 격전지가 여럿이다. 그중 무엇으로도 합리화되지 않는 싸움이자,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고지가 바로 ‘노란봉투법’이다. 노란봉투법은 폭력·파괴만 아니면 불법 파업이라도 손실에 대한 책임을 면책시켜야 한다는, 즉 ‘입법으로 불법을 보호’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다.

 

요즘은 국가가 불법 파업 관련 형사처벌을 자제하는 추세이니 금번 대우조선 사태에서 봤듯,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강행할 때 마음에 걸리는 건 손배소로 신용불량자가 될 위험뿐이다. 그러니 이를 면해준다는 것은 파업의 무법지대 선언과 같다. 현재 국회의원 60여 명이 6개 발의안에 이름을 올렸고, 거대 야당은 역점 민생 법안으로 이를 지정해 놓았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법이 없다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참으로 특이하긴 하다.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이를 근로자와 경영계 간 갈등으로만 단순화하는 접근이다. 불법 파업의 비인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속성은 기업 재산권이나 생산 활동 유지를 훌쩍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내용을 정확히 알리고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입법 전쟁에서 핵심은 ‘약자를 위한 정의로운 입법’이라는 프레임이 얼마나 허위인지를 폭로하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파업 원칙은 ‘쟁의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의 근로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이다. 파업 근로자도 시장의 약자지만, 파업에 불참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근로자 역시 약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업을 하더라도 주요 생산 시설을 점거해 업무를 마비시키는 행위,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를 막거나 협박하는 행위가 용인돼서는 안 된다. 이런 행위가 모든 나라에서 불법으로 엄히 다스려지고 손배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모든 근로자가 다 귀하기 때문이며, 불법을 행하려거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 하청 근로자의 열악한 근로 조건은 무능한 경영이든, 다단계 하청이든, 구조적 요인을 살펴 개선할 일이다. 그러나 손실을 모두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은 불법을 부추겨 다른 근로자의 일할 권리를 탄압하겠다는 것이니, 이를 어찌 근로자를 위한 법이라 할까. 요즘 반미자주 투쟁을 당당히 내건 민노총의 행태를 보면, 약자를 위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 불법 정치파업을 일삼는 민노총에 백지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 이 법의 진의라는 게 뻔히 보인다.

 

파업의 합법성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아예 불법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방어논리 역시 결정적 순간에는 약자 편이 아니라 우리 편을 드는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고질적 병증일 뿐이다. 2014년 쌍용차 파업 근로자에게 성금을 모아 보낸 노란봉투 캠페인 때 당시 문재인 의원은 ‘손배와 가압류는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기에, 노란봉투법을 꼭 관철시키겠다’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었던 동안 거대 여당과 정부가 노란봉투법 통과를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합법성 요건이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다는 조항들을 ILO협약 비준으로 개정했을 때에도 파업 합법성 요건 완화는 언급조차 없었다. 설사 요건이 과하다 해도 불법을 없던 일로 칠 게 아니라 요건을 고쳐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은 상생의 노사관계를 향한 지난한 과정이었다. 건강한 관계의 기본은 노사 갈등이 있을 때 각자의 주장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며, 법을 지키는 것은 그 책임의 최소한이다. 그 최소한을 없애버리겠다는 입법자들이라면 30년간 쌓은 공든 탑을 부숴버리려는 철거 깡패와 무엇이 다를까.

조선일보 윤희숙 전 국회의원

 

09.09  7조 한국 투자 낚아챈 美장관, 우리에겐 이런 장관 있나

▲지나 러몬드 미 상무장관이 9월 6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 투자를 검토하던 대만 반도체 기업을 집요하게 설득해 미국으로 투자를 유치해간 사실이 외신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세계 3위 웨이퍼 제조업체인 대만 기업 글로벌 웨이퍼스는 올 2월 50억 달러(약 7조원) 규모의 독일 투자 계획이 무산되자 한국을 투자처로 검토했다고 한다. 미국 상무부가 투자 유치전에 나섰고 지난 6월 러몬도 장관이 글로벌 웨이퍼스 최고경영자와 직접 1시간 통화하면서 설득했다. 한국의 공장 건설 비용이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러몬도 장관은 “계산을 맞춰보자”며 획기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장관과 통화하고 2주 후, 글로벌 웨이퍼스는 텍사스주에 일자리 1500개를 창출하는 50억달러의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 보도를 보면서 우리에겐 이런 장관이 있느냐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각국 정부는 세제 및 인프라를 지원하면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고 대통령과 장관이 앞장서서 투자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라 경제를 키우기 위한 경쟁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미국, 프랑스 등이 특히 적극적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브렉시트로 영국을 떠나는 글로벌 금융사 유치에 발 빠르게 나서서 135개 글로벌 금융기관의 유럽 본부를 유치했다.

 

우리 경우 기업의 해외 투자가 증가하면서 외국 투자의 국내 유입보다 해외 유출이 더 많은 투자 역조 현상이 2014년부터 본격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투자 역조를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한국 기업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했다. 지난해 투자 역조 규모가 사상 최대치인 807억달러에 달한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5배 늘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액은 G20 국가 가운데 17위로, 우리보다 외국인 직접 투자가 적었던 나라는 튀르키예(터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3국뿐이었다. 올 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바뀌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에 유입된 외국인 직접 투자는 작년보다 15% 넘게 감소해 110억달러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올 1분기에 벌써 그 2배도 넘는 254억달러에 달한다.

 

한국을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으로 규제를 풀고 대통령과 장관이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올 기회조차 다른 나라에 눈 뜨고 빼앗기는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09  文 정권의 종편 재승인 점수 조작 정황, 전모 밝혀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6월 29일 경기도 과천 방통위청사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제31차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방송통신위원회가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공정성’ 점수를 낮게 조작한 정황을 감사원이 확보해 이를 검찰에 통보했다. 감사원은 “‘TV조선의 평가 점수가 전체적으로 높게 나왔다’고 해서 채점 때 공정성 점수를 낮춰 수정했다”는 심사위원 일부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이라면 방송의 중립성을 지켜줘야 할 방통위가 거꾸로 인·허가권을 이용해 정권 마음에 들지 않는 방송을 공격한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방송 장악을 위해 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란 의심이 든다.

 

문 정부는 정권을 잡자마자 당시 야당이 추천한 강규형 전 KBS 이사를 ‘김밥집 2500원’ 법인카드 사용까지 문제 삼아 해임했다. 방통위는 법인카드 사용액이 더 큰 다른 이사는 놔두고 강 전 이사 해임 건의안만 올렸고 문 전 대통령은 이튿날 바로 재가했다. 강 전 이사는 문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내 승소했지만 문 정권은 이미 끝났고, 소송 비용은 윤석열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물어야 한다.

 

방통위원장은 방송에 대한 막강한 규제권을 갖고 있어 정치적 중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한상혁 위원장은 정치 중립과는 반대되는 행보를 해 온 사람이다. 문 정부는 방송 보도 내용의 편파·왜곡 등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자신들 편인 정연주 위원장을 앉혔다. 정 위원장은 KBS 사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14시간 생방송 기록을 세웠고 KBS 발전위로부터 “어느 정권보다 철저히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정연주 방심위는 정부 비판 매체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김어준씨 등 자기편 편파 왜곡 방송은 감싸기에 바빴다. 김씨가 “검찰의 정경심씨 공소장은 허위 공문서”라고 하고, 서울시장 선거 때 근거도 없이 ‘페라가모·생태탕’ 의혹을 제기해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문 정권 기간 동안 공영방송들은 정부 감시 비판이 아닌 응원단 역할을 했다. 그런 한 위원장과 정 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일부 방통위 심사위원은 “범죄가 있었다는 전제를 깔고 감사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여부는 검찰 수사로 드러날 것이다. 검찰은 점수 조작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누가 어떤 식으로 관여했는지, 방통위 공무원의 개입은 없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09  21세기 징비록

 윤석열 대통령은 태풍 ‘힌남노’ 대응에서 처음으로 ‘대통령답게’ 움직였다. 국민 고통에 공감했고 민첩했다. 포항 지역 아파트 지하 주차장 인명 피해 현장을 돌아보고 유족을 위로한 후 곧바로 포항과 경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8월 서울 폭우·침수 사태의 ‘무능과 둔감’ 딱지를 떼기 위한 윤 대통령의 절박한 ‘징비(懲毖)’다. 징비는 ‘지난 잘못을 스스로 꾸짖어 후에 환난이 없도록 삼간다’는 뜻이다. ‘징비록’은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의 지옥도(地獄圖)를 해부한 서애 유성룡(1542~1607)의 보고서다. 충무공 ‘난중일기’와 함께 구국의 리더십을 증명한 피와 눈물의 기록이다.

 

무한 당쟁에 매몰돼 세계 정세를 외면하다 국망(國亡)에 몰린 비극이 임진왜란이고 6·25 전쟁이다. 한국 좌·우파와 윤석열 정부도 당쟁 정치로 외치(外治)의 징비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치명적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미·중 그레이트 게임은 국제연합(UN)에 기초한 세계 거버넌스 체제를 우리 눈앞에서 붕괴시키고 있다. 상호 이익 관계가 얽힌 지구 경제가 전쟁을 막는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은 망상으로 판명됐다. 지역적 침략전이 준(準)세계 전쟁으로 비화하고 제한 핵전쟁과 자포리자 원전 재앙까지 운위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생생한 증거다.

 

우크라이나 전쟁 ‘나비 효과’인 에너지·원자재·식량난이 부른 수퍼 인플레이션 태풍은 세계 10대 수출 대국이면서도 소국(小國) 의식과 민족주의 감성에 매인 한국을 강타한다. 대만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예정된 전쟁’이 대만해협을 고리로 한반도를 습격하는 것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경제 전쟁·기술 전쟁·군비 경쟁으로 시작한 미·중 대결이 언제 어떻게 열전(熱戰)으로 폭발할지 일촉즉발이다. 인류의 집단 지성이 충돌을 막지 않는 한 대만전쟁은 아마겟돈의 시한폭탄이다.

 

시진핑 절대권력과 중국 공산당 영구 집권의 최종 정당화 근거는 대만 통일이다. 불침항모(不沈航母)이자 반도체 산업 강국인 대만을 잃는 것은 미국 패권의 종말이다. 제국 미국과 제국 중국 누구도 대만을 양보할 수 없다. 미·중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의 시효는 끝났다. 한반도엔 핵 강국 북한이 버티고 있다. 가난하지만 잔혹한 군사 강국이 혼(魂)을 잃은 경제 대국을 복속시키는 사례가 세계사엔 넘쳐난다. 사상적으로 21세기는 비(非)민주적 자유주의[신(新)자유주의]와 비(非)자유적 민주주의[신(新)권위주의]가 충돌하는 이념 전쟁터이다. 국민과 지도자의 징비가 국가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시대다.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하는 지옥문이 열렸다.

 

총체적 위기의 순간엔 징비야말로 국정(Statecraft) 리더십의 핵심이다. 하지만 윤 정부 출범 4개월을 징비로 살펴보면 힌남노 대처와는 판이하게 다른 무능과 무기력을 만난다. 언론과 시민단체를 장악한 좌파 사회권력이 용산 대통령실을 포위하고 연일 적대적 비난의 십자포화를 퍼붓는 건 윤 정부 무기력증에 대한 변명거리가 못 된다. 인사 정책과 이준석·윤핵관 사태로 헤게모니(국민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를 잃은 것은 용인술에 실패한 윤 대통령 책임이다. 문재인 정권이 망가트린 나라를 바로잡으라는 시대정신에도 윤 대통령은 아직 응답하지 못했다.

 

지지 기반을 최대한 넓혀 역사의 도전에 응전하는 최대 연합의 정치는 윤 정부의 준엄한 의무다. 대통령 리더십 위기가 한국 우파의 위기가 되고 한국 우파의 위기가 대한민국의 위기로 커지는 상황이다. 온몸으로 고난을 헤쳐 온 대한민국 국민은 특정 정권의 위기가 국가 실패로 전이될 위험성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패의 늪에 빠진 제도 정치가 국민 삶의 고통을 풀지 못할 땐 국민이 여야와 좌·우파 정치권 전체를 물갈이하는 결정적 순간이 올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했을 때 탄핵이 벼락처럼 왔다.

 

수퍼 태풍은 앞으로도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다. 세계사적 도전과 민생 문제는 국가 존망을 결정할 정치적 태풍이다. 우리는 폭풍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눈물로 폭풍에 대비해 생명과 나라를 살릴 순 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삶과 죽음의 이치를 입증한 징비의 현장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실사구시 리더십으로 국민 아픔을 덜어주었다. 이젠 대통령이 자신(自身)을 버리는 처절한 징비로써 ‘윤석열의 시간’을 증명할 때다. 국난(國難)을 함께 넘는 21세기 징비록의 길이 우릴 기다린다.

조선일보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월간조선 09월 호

그 많던 민주주의는 누가 다 망쳤을까?

⊙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주의’가 ‘주의(ism)’가 아니라 제도라는 점을 깨달아야
⊙ 후쿠자와 유키치가 ‘democracy’를 民主主義로 번역… 천황제하에서 ‘다소 위험한 외래의 사상’이라는 의미를 담은 ‘의도된 誤譯’
⊙ 민주정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면서, 제도와 장치보다 이념적 지향성을 강하게 담은 슬로건이 되어버려
⊙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말할 때, 자유주의가 승객이라면 민주정은 탈것(vehicle)
⊙ 냉전 이후 非자유주의적 민주정 대두… 민주제가 아니라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쇠퇴한 것이 문제
⊙ “민주제는 스스로를 쉬이 낭비하고, 고갈시키고, 결국 살해한다. 자살하지 않은 민주적 체제는 지금껏 없었다”(존 애덤스)

朴容民
1966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英케임브리지대 국제관계 석사 / 駐르완다대사, 駐센다이총영사 역임 / 저서 《맛으로 본 일본》 《뉴욕 영화 가이드북》 《회복된 세계》(역서), 《공기의 연구》(역서)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건은 선진 민주국가의 민주주의마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 민주주의가 많다니?

과세는 세금 매김, 건폐율은 대지·건물 비율, 하청은 아래도급 또는 밑도급 등으로 풀어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단어는 우리말 속 일본어 잔재의 아주 일부입니다.
- 연합뉴스 2020년 10월 9일 자 기사 중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왜 망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려면 우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제목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박완서의 오마주라는 설명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많거나 적을 수 없으므로 틀린 표현이다. 그러나 영어의 ‘democracy’는 ‘democracies’라고 가산(可算·countable)명사로 쓸 수 있는 단어다. 서구어를 번역하다 보면 ‘democracy’는 대부분 ‘민주적 통치체제’ ‘민주주의 국가’ 등으로 풀어써야 한다는 사실이 이내 드러난다. democracy를 ‘민주주의’로 번역한 것은 일본인이었다. 일본인들의 번역에 관해서는 저널리스트 고종석이 설명한 바 있다. 좀 길지만 인용한다.


일본인이 만든 번역어들

〈인류문화사의 관점에서, 늘상 나를 황홀경으로 몰고 가는 한 시기가 있다.… 내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일본 에도 중기 이래의 난가쿠(蘭學)와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이다. 에도 시대의 난가쿠와 메이지 시대의 번역 열풍이야말로 한문 문명권과 그리스·로마 문명권을 융화시키며 동서 문화 교섭의 가장 빛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난학의 요체는 번역이었다. 난학자들은 네덜란드어를 통해서 유럽의 개념들을 일본어로 옮기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고, 그것은 메이지 유신 뒤 유럽 문화의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훨씬 더 커다란 규모의 번역사업으로 확장됐다.… 그들이 중국을 매개로 삼기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유럽 문화 흡수는 일본인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들은 네덜란드어의 한 단어를 일본어로 번역하기 위해, 그 단어의 어원, 변천 과정, 당시의 쓰임새 등 전 역사를 조사한 뒤, 그에 상응한다고 판단된 한자들을 골라내 이를 조립해야 했다.… 그것은 극도의 열정과 재능이 필요한 일이었고, 통역사들과 난학자들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하 우리말 독음만 인용) 오늘날까지도 쓰이고 있는 형용사, 부사, 일요일, 청산가리, 산소, 수소, 화학, 중력, 구심력, 항성, 세포, 연설, 재판소 따위의 말들은 모두 에도의 난학자들과 나가사키의 통역사들이 네덜란드어를 번역해서 만들어낸 말이다. 

 

… 메이지 유신 이후… 네덜란드나 영국,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와 그 언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따랐고, 그 바탕 위에서 새 번역어들은 더 정교해졌다. 그 번역어들 중에는 이성, 논리, 의식, 의지, 구체, 낙관, 비관, 교환, 분배, 독점, 저축, 정치, 정부, 선거, 경찰, 법정, 판결, 보증, 등기, 세기(世紀), 간첩, 주의(主義), 청원, 교통, 박사, 윤리, 상상, 문명, 예술, 고전, 강의, 의학, 위생, 봉건, 작용, 전형, 사회… 철학, 추상, 객체, 관념, 명제, 공채, 공산, 금융, 정당, 자본, 의회, 사관(士官), 국제, 전보, 원리, 원칙, 과학, 유기, 무기, 원소, 분자, 원자, 광선, 액체, 고체, 기체, 섬유, 온도, 신경, 미술, 건축, 자치, 대리, 표결, 부결, 귀납, 좌익, 우익, 중공업, 경공업, 대통령, 기선, 기차, 철도, 회사, 비평, 대칭, 호외(號外), 종교, 학위, 학기, 민족, 반동, 직접, 간접, 정보, 현실, 결산, 진화, 물질, 의무, 전선, 전통, 집단, 요소, 자료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 에도 시대의 난학자들이 만들어낸 번역어들과 특히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어로 번역된 유럽의 어휘들은 그 대부분이 한자를 매개로 해 한국어 어휘에 흡수되었고, 또 그 상당량은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으로 역수출되었다.… 만약에 우리말에서 일본어의 잔재를 뽑는다는 것이 일부 순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일본어에서 수입된 한자어까지 배척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외마디 소리 말고는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어휘의 태반은 한자어이고, 그 한자어의 태반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들이기 때문이다.〉(고정석 저 《감염된 언어》 중에서)


‘民主’는 원래 ‘民’의 ‘主’, 君主를 의미

후쿠자와 유키치

 

많은 일본산 한자어의 연원이 그렇듯이, ‘민주(民主)’라는 단어 또한 《서경(書經)》 《좌전(左傳)》 등 중국의 고전(古典)이 바탕이다. 고대(古代)에 이 단어는 ‘민(民)의 주(主)’, 즉 군주(君主)를 의미했다. 이것이 중국에서 ‘민(民)이 주(主)’라는 맥락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신해혁명(辛亥革命) 무렵이었다. 여기에 주의(主義)를 덧붙여 ‘democracy’에 상응하는 단어로 만든 것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년)라고 알려져 있다. 금권제(金權制), 과두제(寡頭制)처럼 ‘democracy’도 정부(또는 통치)의 한 형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어째서 민주‘주의’가 된 것일까?

‘주의’란, ‘특정한 일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인식과 행동의 원칙, 외부 세계를 일정한 틀로 인식하거나 파악하여 그에 따르는 행동을 설정하는 임의의 관념 체계, 한 개인이나 집단이 평소에 지니고 생활하는 일정한 신념 체계, 또는 그와 유사한 타성(惰性)의 경향, 특정한 사회 체제에 경제·사회적 동인(動因)으로 작용하는 여러 사상 체계들, 또는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가리킨다.

그러나 ‘democracy’는 주장, 방침, 이론, 학설이 아니라 형식과 실체를 의미한다. 일본의 (어쩌면 의도적이었을지도 모를) 오역(誤譯) 덕분에 한자문화권에서는 민주제가 이념(ism)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사유(思惟)되어왔다.


‘democracy’가 ‘민주주의’가 된 이유

 에도 시대에서 다이쇼(大正)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는 여러 지사와 학자들이 ‘democracy’의 번역어를 제시했다. 민의정치[바바 다쓰이(馬場辰猪)], 평민주의[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 평민정치[미토미 이치타로(人見一太郞)], 중민(衆民)정치[오노쓰카 기헤이지(小野塚喜平次)], 민본주의[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민중정치[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민의주의 및 공주(共主)주의[사사키 소이치(佐々木惣一)], 민화(民和)주의[다바타 시노부(田畑忍)], 민정(民政)주의[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결국 민주주의로 결착되었다.

‘Democracy’가 사상(ism)이 아님에도 민주‘주의’라고 번역된 이유에 대해, 우노 시게키(宇野重規) 도쿄대 정치사상사 교수는 “당시의 일본은 덴노제(天皇制)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힘을 가지게 되면 덴노의 주권과 충돌한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라며, 다소 위험한 외래의 ‘사상’이라는 형태로 받아들여진 탓이라고 설명한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선택하기 전에 당초 제시했던 ‘democracy’의 번역어는 ‘하극상(下剋上)’이었다고 한다. 후쿠자와가 대미(對美)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1860년대는 덴노가 신격화(神格化)되기 이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번(幕藩)체제하의 계급사회에 살던 그로서는 민중이 통치한다는 관념이 정치적 상상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혁명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당시의 일본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정치체제를 덜 위협적인 의미로 수용하기 위해 “서구에서는 ~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더라”라는 완충적 뉘앙스를 담아 ‘주의’를 첨가했다고 볼 수 있다. ‘democracy’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데는 일본의 특유한 정치현실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 셈이다. 우리말에서 모든 ‘일본어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면, 민주주의만큼 원 개념의 본질을 크게 흐린, 다른 일본산 단어를 찾기는 어렵다.


2. 그럼 민주주의란 뭐란 말인가?

민주제가 늘 사회를 더 문명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민주제는 언제나 그것이 작동하는 사회의 건강 상태를 무자비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로버트 캐플런 《무정부 시대가 오는가》 중에서


‘Democracy’라는 단어에 추상성(抽象性)이나 이념적 지향성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 단어는 프랑스혁명 이래 목적의식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세계 온갖 정치 세력이 상이(相異)한 의미로, 때로는 상반된 의미로 사용하여 모호한 단어가 되어버린 면이 있다. 이제는 민주제를 자처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시피 한다. 온갖 현란한 수식어를 동반한 사이비(似而非) ‘민주주의’가 난무하고, 심지어 민족주의나 권위주의에 대한 동경을 ‘민주주의’로 포장하는 이들도 있다. 인민을 위하지도 않고, 민주정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닌 나라가 그 모든 수식어를 국호(國號)에 내걸기도 한다.

 

아테네의 민주주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어쨌든 민주제는 본질적으로 정부의 형태 또는 통치의 방식을 가리킨다. 민중(demos)이 지배(kratos)한다는 뜻이다. 주지하듯, 본디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여자와 미성년자와 노예와 외국인을 제외한” 모든(?) 시민이 광장에 모여 다수결로 행정수반과 최고재판장을 선발하는 직접민주제를 일컫는 말이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이 쇠퇴하던 시기의 아테네에서 살았다. 그는 소피스트들의 회의론(懷疑論)과 상대주의(相對主義)에 맞서 가르침을 설파하다가 ‘신성모독죄’와 ‘젊은 세대를 타락시킨 죄’로 사형을 당했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목소리를 후세에 전했다. 이들이 민주정을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부의 형태를, 바람직한 순서로, 귀족정(또는 철인정치, Aristocracy), 금권정(또는 명예정치, Timocracy), 과두정(Oligarchy), 민주정(Democracy), 참주정(Tyranny)의 다섯 가지를 꼽았고, 계급 관계가 타락함에 따라 정부 형태도 점차 (전자에서 후자 쪽으로) 타락해간다고 보았다.


暴政으로 타락한 민주주의

민주정이 폭정(暴政)으로 타락한다고? 예컨대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를 살았던 영국인이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1871~1914년)를 살았던 프랑스인이 그런 현상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위대한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식(1897년) 때 12세 소년이었다. 삼촌의 어깨에 걸터앉아 전 세계 방방곡곡의 대영제국 축하사절단의 행렬을 지켜보았던 토인비는 후일 그날의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그것은 ‘자, 이제 우리는 세상의 꼭대기에 있고, 여기 영영 머물 것이다’는 분위기였다.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것은 다른 국민들에게 벌어지는 불쾌한 무언가였다. 우리는 그런 것들의 바깥에서 평안하게 존재했다.”

역사가 종언(終焉)을 고한다는 느낌은 어쩌면 모든 제국의 최전성기에 그 나라 시민들이 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패한 민주정권에 스승을 잃은 플라톤에게는 민주정에서 폭정으로의 타락은 학문적 공상이 아니라 치를 떨며 몸소 체감한 화두(話頭)였을 것이다. 크롬웰 치하에서 의회제도의 실패를 경험한 홉스가 투키디데스의 저술을 번역해 출간한 목적은 아테네 몰락의 최대 요인이 바로 민주제였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제3제국으로 자리를 내주는 과정이라든지, 일본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가 군국주의(軍國主義)로 무너지는 과정과 그 결과를 경험한 세대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을 것이다. 스포일러를 양해하신다면, 이 글의 결론은 어쩌면 지금 생존한 세대도 플라톤을 공감하는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보다는 공화주의를 지향했다.

 

 오늘날의 세계가 민주제의 전형으로 이해했던 정부 형태는 아테네식 직접민주제가 아니다. 인류가 지난 200년 가까이 현실에서 민주정으로 받아들인 체제는 실은 보통선거를 통해 지배엘리트를 선발하는 간접민주제였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어의(語義)가 너무 헐거워져서 이제는 논란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교과서적 의미에서 현대 민주제의 전형은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입헌(立憲)군주제와 대통령제 두 갈래였다.

입헌주의는 왕실과 귀족 및 평민들 간의 투쟁 끝에 국왕의 권리를 의회가 제한하는 형태로 구현되었다. 여기서 핵심은 통치권력의 합법적 제약에 있다.

미국의 경우, 정부 형태를 설계한 국부(國父)들은 고전적 민주제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다수의 폭정과 분파주의에 취약한 직접민주제에 비관적이던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모든 아테네 시민이 소크라테스였더라도 아테네의 모든 집회는 폭도들의 모임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고,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도 “우리가 얻고자 투쟁한 정부는 선출된 독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국부들이 마련한 것은 ‘부조화의 정치’에 견제를 통해 균형을 부여하는 장치들이었다. 미국은 왕정(王政)에서 대통령을, 귀족정에서 상원을, 민주정에서 하원을 빌려왔다. 법의 지배가 기관들을 규율하는 원리였으므로, 사법부가 그들 모두를 견제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영국식 입헌주의든 미국식 대통령제든, 간접민주제는 엘리트들이 통치하는 정부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것은 아테네의 민주정보다는 오히려 원로원(元老院)이 이끌던 로마의 공화정(共和政)을 좀 더 닮은 체제다.

직접민주제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제임스 매디슨을 비롯한 미국의 국부들이 중점을 두었던 정부 형태는 공화정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를 지배하던 가치는 자유주의(Liberalism)였다.


민주주의는 그릇이다

그러나 민주정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면서, 한자문화권에서는 유교적 ‘민본주의(民本主義)’와의 혼동도 일어났고, 제도와 장치보다 오히려 이념적 지향성을 강하게 담은 슬로건이 되었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정은 제도이자 수단이고, 거기 담겨야 할 이념과 제도가 긍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들은 따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말할 때, 자유주의가 승객이라면 민주정은 탈것(vehicle)이다. 유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도(道)이자 이(理)라면, 민주제는 기(器)이자 기(氣)라고도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는 그릇이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재를 떨면 재떨이가 되는.


3. 쿠오 바디스, 데모크라티아?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같은 새끼들이 나쁜 거지.
- 영화 〈넘버3〉에서 마동팔 검사(최민식 분) 대사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수만에서 수억에 이르는 무리를 이루어 삶을 영위하는 동물로 진화했다. 궁극적으로 그 무리는 국가를 이루었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폴리스적 존재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언명은 인간이 국가에 거주함으로써 정체성(正體性)을 부여받는(state-dwelling) 동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국가를 벗어나 살 수 있는 존재는 인간 이하이거나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

인간의 무리에는 필연적으로 질서가 필요했기 때문에 다양한 통치제도가 고안되고 시도되고 강요되었다. 인간은 자유를 희구하는 강력한 본능도 가지고 있는 반면, 무질서의 투쟁 상태를 막기 위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하는 본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종 인간은 ‘예속의 길’을 자발적으로 걷는다. 슬프지만, 전제정치(autocracy)도 실은 인간 본성의 한 면 위에 서 있는 제도인 셈이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키케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수많은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뛰어난 지도자(또는 지도자 집단)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는 방식과 지도자들까지 구속하는 객관적이고 절차적인(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이상적이지 못할 수도 있는) 기준을 만드는 방식이다.


자유주의는 인간에게 자연적인(양도 불가하고 생래적인) 권리가 있다고 믿으므로 지도자의 권능(權能)을 불신(不信)한다. 자유주의는 인민에게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원심력을 제공한다. 하이에크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누리는 자유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모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자면 한 가지 자유는 부득이 제한해야 했는데, 그것은 ‘남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였다. 그것을 제한하는 수단이 법의 지배(rule of law)이다.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오늘날 민주제라는 그릇과 자주 혼동되고 있는 알맹이에는 공화주의(共和主義·Republicanism)도 있다. 공화주의의 원류(源流)는 고대 로마 공화정의 스토아 학파다.

공화정은 ‘공공(公共)의 것’을 의미하는 ‘res publica’가 결합한 단어로서, 어느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공의 정치체를 뜻한다. 공화주의는 사적(私的) 이익의 추구보다 공적(公的) 이익을 중시하고 인민의 복리 증진을 추구한다. 인민이 자주적 주체로서 공민적(公民的) 덕(civic virtue)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키케로에 따르면, “공화국은 법에 대한 합의(iuris consensu)와 이익의 공유(共有)에 의해 결속된 대중의 연합”이다. 그러므로 공화주의를 지키는 수단도 법의 지배로 귀결된다. 핵심은 ‘합의와 공유’에 있다. 법에 합의하지 않고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 집단은 공화국을 이룰 수 없다. 협량(狹量)한 민족주의의 한계를 넘어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자발적 구심력은 공화주의로만 성취할 수 있다.


非자유주의적 민주정의 대두

민주제는 그릇이므로, 엉뚱한 내용물이 담길 수도 있다. 냉전(冷戰) 종식 직후 비자유주의적(非自由主義的) 민주정(illiberal democracy)의 대두에 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로버트 캐플런(Robert Kaplan)은 미국이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 권하고 있는 민주제는 신종 권위주의를 향한 변화를 필연적으로 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민주적 선거제도를 우선적으로 이식함으로써 자유주의적 민주정을 만들 수 있다는 관념이 서구의 착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곳곳에 이식된 선거제도가 정치적 불안과 내전(內戰)과 심지어 대량 학살을 낳고 있었다.

 

 지난 10년간에도 많은 저명한 학자와 연구소가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 2021년 프리덤 하우스는 15년 연속으로 세계의 민주제가 쇠퇴했다고 발표했다. 허약한 법의 지배, 권력의 남용, 정치적·경제적 양극화(兩極化), 포퓰리즘, 다원주의(多元主義)에 대한 공격 등이 원인으로 제시되었다. 캐플런은 중산층과 문민(文民)제도가 민주제의 성공에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자카리아는 견제와 균형을 갖춘 건전한 제도와 자유시장이 선거제도보다 우선임을 강조했다.

민주제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허무한 동어(同語) 반복에 귀착된다. 민주제는 그것을 성공시킬 만큼 풍요롭고 평화로운 나라에서만 성공한다는 의미가 되어 어떠한 실천적 지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캐플런은 “우리가 민주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적 논증으로(많은 경우 오로지 도덕적 논증만으로) 후퇴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의 많은 지역에 민주제를 뒷받침하는 역사적·사회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릇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으니까.

여기서 우리는 분별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주제가 쇠퇴했다기보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쇠퇴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민주제를 탓하는 것은 칼을 휘두른 사람 대신 칼을 탓하는 것과도 흡사하다.


공화주의·자유주의의 쇠퇴가 문제

민주제가 쇠퇴와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보통선거를 통한 대의(代議)민주제라는 그릇이 잘못된 장소에 놓이거나 거기에 잘못된 내용물이 담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가 작고 중산층(中産層)이 얇고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손쉬운 선택지인 나라에서 민주제도는 모래땅에 이식된 묘목처럼 이내 시들어, 오히려 국민이 누리는 자유의 총량을 줄이는 도구나 통로로 전락한다. 식민지 독립 직후나 냉전 종식 직후 외부로부터 민주제를 이식받은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런 운명에 처했다. 문화적·물적 토대가 취약한 나라에서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주의, 공동체의 보전을 위해 사적 이익을 양보해야 한다는 공화주의가 빈 그릇을 채우기 전에 질서에 대한 현실적 필요가 그릇을 채워버리는 탓이다. 나쁜 질서조차 무질서보다는 낫다. 근년에 중동(中東) 지역에서 벌어진 ‘아랍의 봄’이 이를 실증했다. ‘민주주의’가 그릇이라는 점을 잊으면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건 반복될 수 있다. 새롭게 생겨난 현상도 아니다. 새로운 걱정거리는 다른 곳에 있다.


4. 열린 사회가 그 적들

민주제가 영속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민주제는 스스로를 쉬이 낭비하고, 고갈시키고, 결국 살해한다. 자살하지 않은 민주적 체제는 지금껏 없었다.
- 존 애덤스

인기에 영합하고,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경시하고, 절제와 시민적 덕목이 무시되고, 법질서를 침해할 위험이 있고, 선동가들이 지도적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단점을 안고 있음에도 민주제가 실현가능한 최선의 제도임은 분명하다(처칠의 냉소적 유머를 빌린다면, 민주정은 최악의 정부 형태다. 종종 실험되었던 다른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한다면).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는 합의와 합리가 작동하는 한은 그렇다. 합의와 합리라는 지지대가 완전히 망가진다면 민주정치는 중우(衆愚)정치(ochlocracy)로 전락하고, 독재적 민중이 법질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민주제가 ‘쇠퇴’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무엇이 이런 지지대를 약화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칼 포퍼. 사진=도리안 케이반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경험한 후, 철학자 칼 포퍼는 플라톤 후기 철학과 헤겔주의, 마르크시즘을 ‘열린 사회의 적(敵)들’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이성(理性)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서구 계몽주의가 그 모든 변용을 실험해본 뒤에 다다른 절망의 목소리였다.

배반당한 믿음은 회의(懷疑)를 부른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탈근대(脫近代)’라는 그 이름이 암시하듯, 근대적 이성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운동을 가리킨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이 전체주의(全體主義)로 귀결되는 것을 경험한 세대가 해체와 탈중심적 다원적(多元的) 사고(思考)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그리고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근대에 대한 부정이었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그것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무엇이 아닌지’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진실은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해체’되었다.

기술의 진보와 정보의 민주화는 철학적·도덕적 상대주의를 일상으로 불러들였다. 영화 〈매트릭스(Matrix)〉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 내포된 심오한 회의주의를 21세기 대중문화에 소환했다. 현실과 삶이 시뮬라크르(Simulacres)와 시뮬라시옹(Simulation)에 불과할 수 있다고 자조(自嘲)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곳곳에서 흔들리는 민주주의

세계화(世界化)는 유례없는 성장과 번영을 견인했지만, 그 대가로 정치적·경제적 양극화와 적대감의 확대를 낳았다.

인터넷은 실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망(web)으로 연결된, 지도로는 표현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는 복잡한 세상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은 정보의 한계비용을 거의 0에 가깝게 만들었고, 그럼으로써 주류(主流) 언론과 전문가들의 권위를 허물었다. 소셜미디어는 아무리 허무맹랑한 신념을 가진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를 찾을 수 있는 가상의 아고라(agora)가 되어 사람들의 집단 확증 편향을 강화했다. 댓글 문화는 정치 참여의 비용을 낮추었고, 심지어 외부 세력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뒷문도 열어주었다.

한때나마 역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고 여겼던 권위주의 체제가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세계 도처의 민주국가에서는 사실관계를 비틀고, 증오를 부추기고, 선동에 편승하는 포퓰리스트형 정치가들이 집권하거나 당선권역에 다가서고 있다.

인류는 과거 어느 시점보다 직접민주제에 근접한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 많은 학자와 연구기관이 ‘민주주의의 쇠퇴’를 우려하는 것은 ‘이식된 민주정치’의 실패 사례들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것만이 아니라, 민주정의 전범(典範)이라고 여겨졌던 체제들에서도 민주제에 내재된 문제점들이 제어장치를 뚫고 뛰쳐나오고 있다는 데도 있다.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무력(武力)으로 점거하고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플라톤이 살아 있었다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을 것 같다.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소.”

‘열린 사회의 敵’이 되어버린 열린 사회

열린 사회가 열린 사회의 적이 되었다. 우리의 과잉이 우리의 절제를 삼키고, 우리의 방종이 우리의 자유를 제약한다. 이미 실패를 경험했으므로, 다음 세대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지켜내려면 합리에 관해 과거보다 더 강한 신념을 가지고 과거보다 더 강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유혈(流血)이 낭자한 대규모 전란(戰亂)을 경험하지 않고, 다음 세대가 ‘법의 지배를 통해 구성원의 자유의 총량이 최대화되는 공동체’를 일구고 지켜낼 수 있을까? 평화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사치스러운 가정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속 시원한 선동가 대신 말재주나 매력이 없더라도 공동체에 필요한 쓴 약을 처방해줄 현명한 지도자를 옹립할 수 있을까? 학교와 가정이 공민적 덕(德)을 함양하는 교육의 장(場)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모두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면서 ‘갑질’을 할 기회를 엿보는 만인(萬人) 대 만인의 투쟁 상태를 막을 수 있을까? 질서라는 공공재에 무임(無賃)승차하는 얌체 짓을 현명함으로 포장하는 도덕적 해이(解弛)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절제와 중용(中庸)에서 이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보편적인 가치에 관한 믿음과 합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러기가 쉽지 않겠다는 비관(悲觀)을 자극한다. 총체적 무질서를 막기 위한 첫걸음이, ‘민주주의’가 ‘주의(ism)’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담기에 민주제보다 더 적절한, 다른 그릇은 없다. 그러나 제도가 우리를 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제도를 구해야 한다. 그릇이 아니라 내용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09.13  [단독] “기무사 해체하려 계엄령 문건 왜곡”…與, 송영무·이석구·임태훈 고발

국민의힘이 14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관련 2급 기밀 문건을 유출하고 이 문건 내용을 실제와 다르게 의도적으로 왜곡해 증언한 혐의 등으로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현 아랍에미리트 대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3명을 대검찰청에 고발할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현 아랍에미리트 대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왼쪽부터) /조선일보 DB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14일 대검찰청에 송영무·이석구·임태훈 등 3명을 직권남용죄, 군사기밀보호법위반(군사기밀누설) 혐의 등으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과 군 당국 등에 따르면, 국민의힘 TF는 고발장에서 ‘문재인 정부가 2017년 2월 생성된 박근혜 정부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이 단순 검토 보고서였음을 알았는데도 내란 음모 프레임을 씌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송영무 국방장관이 이석구 기무사령관의 보고와 최재형 감사원장의 법률 자문 등을 통해 기무사 계엄령 문건에 불법성이 없다는 것을 인지했는데도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주장이다.

 

TF 관계자는 “계엄령 문건은 지난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말그대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계엄령 절차를 검토하라는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마련된 것”이라며 “절차에 따른 검토 보고서일 뿐 작전부대에 보내는 실행계획은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2018년 3월16일 송 전 장관에게 계엄령 문건을 보고하자 송 전 장관이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법률 자문을 받았다”면서 “7월9일 송 전 장관이 주재한 국방부 참모간담회에서도 법조계 문의 결과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계획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 나왔고, 장관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고 언급했다”고 했다. 특히 2018년 8월 문 전 대통령 지시로 출범한 민군 합동수사단에서 3개월간 참고인 287명을 조사하고, 90여곳을 압수수색했으나 쿠데타 모의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TF는 전했다. 또 육군본부가 기무사 과장 2명에게 징계를 내렸지만, 올해 6월30일 국방부 징계항고심의위원회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TF 측은 2급 군사 기밀인 기무사 문건이 외부에 돌연 유출된 과정이 의심스럽다며 이 점도 수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민간사찰 관련 수사 및 공판 절차상의 문제점도 제기됐다. TF 측은 “대검찰청에서 세월호 특별수사단을 편성해 수사한 결과 유가족 불법 사찰은 없는 것으로 나왔다”면서 “그런데 군사법원은 최초 공소장과 다른 세 번의 변경된 공소장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이는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계엄령 문건 및 세월호 사찰 논란은 일부 사실을 부풀리고 왜곡해 결국 보안·방첩 최일선의 안보조직인 기무사를 부당한 방식으로 해체시킨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어 법적 조치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대검은 14일 고발장이 접수되는대로 고발인 조차를 거쳐 송영무 전 장관, 이석구 대사, 임태훈 소장 등 피고발인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UAE 대사인 이 대사도 조만간 귀국 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9월 14일  기무사 문건 유출해 ‘쿠데타 음모’ 몬 전모 철저히 밝혀야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까지 가담해 만들어냈던 ‘쿠데타 음모 사건’의 죄상(罪狀)이 갈수록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사와 재판을 통해 일부 진상은 밝혀졌지만,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TF가 내놓은 정황을 보면 정권이 총체적으로 관여한 정치공작까지 의심케 한다. 문제의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획책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TF는 14일 문 정부 당시인 2018년 7월 쿠데타 몰이의 근거가 됐던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문건을 유출한 혐의 등으로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2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 ‘2017년 2월 생성된 기무사 계엄령 문건이 단순한 검토 보고서로 불법성이 없다는 것을 문 정부 청와대가 알면서도 내란음모 프레임을 씌워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것이다.

계엄령 문건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가결되고 헌법재판소 결정(2017년 3월 10일)을 앞둔 상황에서 시위대의 폭동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절차 검토 보고서일 뿐 실행계획은 아니어서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는 내용이다. 이런데도 당시 여권은 엄청난 쿠데타 음모를 적발한 것처럼 사태를 몰아갔고, 문 대통령은 인도 국빈방문 중에 민·군 합동수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하지만 군과 검찰이 3개월간 참고인 287명을 조사했으나 한 명도 기소하지 못했다. 문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무사 전 참모장 등 3명을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 기소했으나 항소심까지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이와 반대로, 2급 기밀로 분류된 이 문건이 당시 국방부를 통해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 군인권센터에 전달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는 의혹과 함께, 마녀사냥 같은 몰이가 시작돼 안보 관련 군 고위층이 줄줄이 옷을 벗고 기무사가 ‘해편(解編)’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이런 과정은 물론 당시 수사의 문제점까지 그 전모를 철저히 재수사해 진상을 명명백백히 국민 앞에 밝혀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15일  기무사 문건 공작과 文·송영무 죄책

서정욱 변호사, 前 영남대 로스쿨 교수

진실을 영원히 은폐하고 가둘 수는 없다. 4년여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문재인 정권의 ‘기무사 문건 공작’의 진실도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수사와 재판을 통해 이 사건의 일부 진상은 밝혀졌지만,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TF가 지난 14일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3명을 직권남용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대검에 고발하면서 내놓은 정황을 보면 정권이 총체적으로 관여한 정치공작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공개된 위 문건은 박근혜 대통령 헌재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시위대의 폭동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절차 검토 보고서일 뿐 실행계획이 아니어서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문건의 핵심은, 탄핵 찬반 시위가 극심한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나오든 불복하는 측이 국헌 질서를 문란케 하고 경찰력이 이를 막을 수 없게 된 극단적 상황에 대한 대처 검토로, 군이 당연히 해야 할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이다. 2017년 2월에 생성된 위 문건은 2018년 3월 송 전 장관에게 보고됐고, 송 전 장관은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의 법률 자문 등을 거쳐 문건이 단순 검토 보고서였을 뿐 불법성은 없다는 점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시 문 정권은 ‘2급 기밀’로 분류된 위 문건을 국방부를 통해 더불어민주당과 군인권센터에 불법으로 유출하고, 정권의 나팔수들이 총출동해 위 문건을 ‘내란음모’ ‘제2의 12·12사태’ ‘친위 쿠데타’ 등으로 규정하며 기무사를 적폐의 온상으로 몰아갔다. 이후 무자비한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이 시작돼 군 고위층이 줄줄이 옷을 벗고 국군기무사령부가 ‘해편(解編·해체 후 재편성)’되는 안보 자해극이 벌어졌다.

 

특히, 문 대통령은 마치 당시 쿠데타군이 한강대교를 건너고 있는 것처럼 “국가 안위” 운운하며 인도 국빈방문 중에 민·군 합동수사단 구성을 지시했고, 이후 검사 7명과 군 특별수사단 소속 군 검사 8명 등 총 37명으로 합수단이 꾸려져 104일 동안 대통령기록관과 기무사, 육군본부 등 90곳을 압수수색했고, 204명을 조사했다. 위 문건이 과연 외국 순방 중에 급박하게 특별수사를 지시할 만큼 ‘명백하고 현존하는’ 쿠데타의 위험인가? 무엇보다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불법’이라고 공개 발언한 것은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며, 대통령이 수사단을 구성할 법적 근거도 전혀 없지 않은가.

검찰은 지금이라도 문건 유출은 물론 이후 수사의 전 과정까지 그 전모를 철저히 재수사해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먼저, 송 전 장관은 장관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혐의 없음’을 알고 있던 계엄문건 사건과 세월호 사찰 의혹 등을 이용, 기무사를 해체하는 역할을 중추적으로 담당했다는 점에서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신성한 병역 의무를 회피한 헌법 파괴자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 행세하면서 정권과 유착해 음모와 공작을 자행한 것도 엄벌해야 한다. 국민의힘 고발에 민주당은 “기무사가 모의한 친위 쿠데타를 정당화하려는 것” “기무사의 부활을 획책하는 신호탄”이라며 취하를 요구하나, 이야말로 구시대적 작태다. 떳떳하면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문화일보

 

09.15  ‘주인 없는 기업’ 닮아가는 서울대, 이러려고 법인화했나

▲서울대 정문 전경 /뉴스1

 

지난해 9~10월 실시한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서울대 교원들이 연구비로 개인 노트북을 구입하거나 인건비를 부당하게 쓰는 등 다수의 비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대규모 징계 처분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교원들을 대상으로 경고 272건, 주의 453건, 경징계 4건, 중징계 1건이, 학교를 대상으로는 기관경고 18건, 기관주의 2건의 처분이 내려졌다. 국내 최고 지성들이 모여있다는 대학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교육부 감사는 지난 2011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것이다. 교육부는 연구책임자가 학생연구원 인건비를 부당하게 쓰거나 개인용 노트북을 연구비로 구매한 사례, 건설업 면허가 없는 업체와 계약하고 공사를 시행한 두 사례에 대해 경찰 고발 조치했다. 또 도록을 허위로 간행한 사례, 발간 도서 배포와 재고 수량 파악을 불량하게 한 경우 등은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연구년을 갖거나 해외 파견 후 활동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늦게 제출한 교원 131명은 경고를, 284명은 주의 처분을 받았다. 교육부 대학 감사에서 단일 건으로 400명 이상이 한꺼번에 조치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비위의 종합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울대는 이러려고 법인화를 한 것인가.

 

이번 감사 결과를 보면 서울대가 국가로부터 독립해 법인형 조직으로 전환한 이후 주인 없는 기업처럼 제멋대로 운영됐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는 해마다 국내 인재들을 싹쓸이해가고 정부 출연금도 올해만 5379억원을 받았다. 일반 지방거점국립대의 3배가량이다. 그런데도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서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는 세계대학평가에서 30위 안팎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산은 예산대로 받으면서 법인화로 자율권까지 받았는데 성과를 내기는커녕 크고 작은 비위와 부끄러운 수준의 방만 운영으로 답한 것이다. 총장 선거 등 파벌 싸움 하느라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던 것은 아닌가. 서울대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자성과 자정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서울대 지배구조 개선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15  놀라운 한국, 엔지니어 군단에 바치는 감사

피부로 느껴지는
달라진 한국 위상
그중에서도 놀라운
한국 무기의 유럽 진출
최고는 아니지만
수준급인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최근 달라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피부로 느꼈다는 얘기들을 자주 듣는다. 세계 3대 아트페어의 하나인 영국 프리즈가 서울에서 열려 젊은 고객들이 줄을 이어 전시회를 찾았다. 서울 행사에서 뉴욕보다 더 높은 매출액을 기록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가의 제품들이 워낙 빨리 팔려 직원들이 할 일이 줄었다고도 한다. 서울은 세계 미술계에서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시장이 되고 있다.

 

 ▲9월 6일부터 9일까지 폴란드 키엘체에서 열렸던 MSPO 국제 방산전시회에 참가한 K9자주포. /한화디펜스

 

얼마 전 한 분이 이탈리아 알프스에 갔다가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과 만났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여러 명이 엄지를 치켜세웠다고 한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고 한다. 나라 이름만 듣고 호감을 표시한 것이다.

미국 한 대도시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노래가 나오자 길을 걷던 사람들 상당수가 ‘동작 그만’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CJ제일제당은 유럽 판매 제품 일부에 한글 상표 병기를 검토한다. 포장지에 한글이 있어야 제품 이미지가 더 높아진다고 현지에서 요구했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한글은 더 이상 처음 보는 이상한 문자가 아니다. 세계 최고 권위지인 뉴욕타임스가 홍콩 사무소 일부를 서울로 옮겼다. 워싱턴포스트의 서울 허브 센터는 워싱턴, 런던과 함께 국제 뉴스 속보를 지휘한다.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이미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가 아카데미 작품상과 여우조연상 등을 받으며 영화 한류 바람을 일으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다투는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한국 비장의 카드 중 하나가 BTS라고 한다. 사우디엔 이런 문화가 없다. BTS가 한국의 위상에 미친 영향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

 

국내에선 많은 부정적 현상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국제 사회에서의 비중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중에서도 놀라운 것이 우리가 유럽에 수십조원의 무기를 판매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유럽은 세계 전쟁 역사의 중심지였고 군비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현장이다.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앞선 군사 기술을 가진 지역이다. 그런 곳에 총 한 자루 못 만들던 한국이 첨단 무기를 수백억 달러어치나 팔게 됐다. 무기는 TV와 같은 상품이 아니다. 자국의 명운이 달린 제품인데 한국제를 쓰기로 한 것이다. 기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한국보다 앞선 군사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기술을 경제성 있는 대량 생산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 세계 최고라는 독일 탱크는 한국 K2 전차보다 성능은 높지 않으면서 가격은 몇 배 비싸다. 그나마 생산 속도는 비교도 안 되게 느리다. 프랑스 자주포는 한국 K9 자주포보다 비싸면서 성능과 생산 속도에서 모두 뒤처진다. 한국 FA-50 전투기는 유럽 최첨단 전투기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구입비와 유지비가 훨씬 싸고, 더 실용적이며, 무엇보다 ‘언제까지 몇 대 만들어달라’는 주문에 맞출 수 있는 서방 세계 유일의 전투기다. 지금 이 시기에는 미국 전투기 업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구매국 입장에서 당연히 한국 무기를 선택해야 하지만 그동안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약점이었다. 그런데 국가 브랜드가 올라가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정이 급해지니 주저 없이 한국 무기를 선택하고 있다. 서방에서 한국처럼 양질의 무기를 합리적 가격으로 신속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단기간에 출현할 가능성도 없다. 유럽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호주, 중남미로 한국 방산제품 시장이 넓어질 것이다.

 

1976년 ‘기계창’이란 가짜 이름을 내건 무기 연구소에서 밤낮을 잊고 일했던 엔지니어들과 이들을 뒷받침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오늘의 이 모습을 보면 도저히 믿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이 있게 만드는 데 정치인, 기업인, 문화예술인 등 많은 분야의 인재들이 공헌했지만 필자는 이 엔지니어들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수공업 수준의 초창기 공업에서 중화학 공업을 거쳐 오늘의 첨단 산업으로 오기까지 수십만명의 엔지니어가 청춘을 바쳐 일했다. 한국 이공계 연구원은 아직 질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규모는 최상위권이다. 산업 현장에선 석사급 엔지니어의 숫자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지금도 매년 2만명 안팎의 이공계 석사가 배출된다. 이들은 적어도 ‘만들어 내는 일’에서만큼은 세계 최고다. 똑 같은 정유공장인데 이상하게 한국에서 더 잘 돌아간다고 하는 것도 엔지니어의 힘이다. 유럽 국가에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엔지니어 군단이 없다.

 

한국 엔지니어 군단이 반도체 신화를 만들고, 세계 최고의 한국형 원자로를 설계하고, 세계 가전제품 시장을 석권하고, 전기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제 강대국의 전유물인 무기 시장까지 파죽지세로 진출하고 있다. 엔지니어 군단이 뿜어내는 이 하드 파워가 BTS류의 소프트 파워와 합쳐져 새로운 한국 역사를 계속 써 나갈 것으로 믿는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9월 15일 ‘김명수 거짓말’ 뒤늦은 수사 재개…檢 신속히 결론 내야

수없이 제기된 김명수 대법원장의 부적격성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짓말 의혹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3개월 남짓 만에 대법원장으로 지명될 때부터 취임 5년을 앞둔 지금까지 자질·도덕성은 물론 코드 인사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국민을 참담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1년 2개월 만에 재개됐다.

 

해당 사건은, 김 대법원장이 문 정부 시절 민주당의 탄핵 추진을 이유로 당시 임성근 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되면서 시작됐다. 고발장에는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도 포함됐다. 김 대법원장이 국회에 ‘그런 일이 없다’는 취지의 문서를 보냈다가 임 전 부장판사의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독립과 신뢰가 존립 근거인 사법부 수장으로서 거취 표명을 할 만한데 김 대법원장은 자리를 지키다 고발당했다. 검찰은 2021년 6월 김인겸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조사한 이후 사건을 뭉갰고 지난달 7일에야 서울중앙지검이 임 전 부장판사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김 대법원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임 전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김 대법원장의 육성이 담겨 있다. 검찰은 현직 대법원장 신분을 감안해 서면조사 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는 26일로 취임 5년이 되는 김 대법원장이 그간 보여준 언행은 예우 필요성에 의구심이 들게 한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 소속 등 특정 성향의 판사를 요직에 집중 배치했다. 그 결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15개월간 심리가 지연됐다. 거액을 들여 대법원장 공관을 리모델링한 뒤 청약 당첨된 아들 가족이 들어와 살도록 해 ‘공관 재테크’ 논란도 빚었다. 한진그룹 일가의 각종 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한진 법무팀 사내변호사인 며느리가 회사 동료를 공관에 초청해 만찬을 하기도 했다.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검찰은 신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16  거짓말로 수사받으며 부끄러움도 모르는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민주당이 임성근 판사를 탄핵할 수 있도록 그의 사표를 일부러 수리하지 않았다. 대법원장이 정치를 한 것이다. 그는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됐다. 검찰이 최근 이 수사를 재개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대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이 들통났다. 그는 부인하는 취지의 문서를 국회에 보내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도 고발됐다. 검찰은 문재인 정권 시절엔 이 수사를 뭉갰다. 검찰도 뒤늦은 수사를 부끄러워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대법원장이 거짓말로 수사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치욕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외에도 공관 리모델링 과정에서 4억7000만원을 다른 예산에서 무단으로 끌어다 쓴 게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돼 업무상 횡령 혐의로도 고발돼 있다. 또 기업 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그 기업 변호사인 김 대법원장 며느리가 회사 동료를 대법원장 공관에 초청해 만찬을 했다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고발돼 있다. 이 중 어느 한 사건이라도 기소된다면 현직 대법원장이 재판을 받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해외 토픽에 나올 일이다.

 

보통 이 지경이 되면 일반 판사도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 거짓말을 가려내는 판사가 거짓말을 했다고 재판을 받게 되면 그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하고도 버티고 있다. 그는 거짓말이 드러난 뒤 짤막한 사과만 했을 뿐 거취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임 판사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됐을 때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사법부에 새로운 제도와 문화가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고 견고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재임 5년간 우리법·인권법 등 특정 성향 판사들이 법원 요직을 차지했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 문재인 정권의 범법 재판은 줄줄이 연기됐다. 대장동 사건에선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까지 제기됐다. 대법원과 법원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법원이 발전했다고 자화자찬한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19  ‘건국·자유민주주의·남침’ 빠진 교과서, 이대로 놔둘 건가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의 문화 지체가 심각하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의 최근 지적대로 그들은 아직도 낡은 수정주의에 집착하고 있다. 자칭 ‘진보 세력’의 시대착오와 현실 왜곡은 뿌리가 깊다. 일례로 1980년대 후반 한국 지식계를 휩쓸었던 사회 구성체 논쟁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이 논쟁은 대한민국 체제 전복과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소위 ‘민중·민주 세력’이 이끌었다. ‘반미 구국’ 투쟁이 급선무라 여겼던 민족 해방(NL) 세력은 당시 대한민국이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라 외쳐댔고, 인민 해방을 표방했던 민중 민주(PD) 세력은 “신식민지 국가 독점 자본주의”라 우겨댔다.

 ▲한국사 교과서 자료 사진. /연합뉴스

 

돌이켜 보면 그 논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을 끼워 맞춰서 한국 현실을 왜곡한 좌파 지식인들의 관념 유희였다. 현실을 분석하는 사회과학이 아니라 가상 현실의 이념적 판타지였다. 그들 주장과는 정반대로 당시 대한민국은 전 세계로 웅비하며 과학기술 혁신에 주력하던 민간 주도의 견실한 자본주의 독립국가였다.

 

구소련 붕괴 이후 그 허망한 논쟁은 일단 막을 내렸는데, 지성과 양심이 방심하는 사이 ‘어제의 용사들’이 한국의 역사학계를 점령한 듯하다. 아니라면 어떻게 한국사 교과서에서 건국, 자유민주주의, 남침을 언급조차 안 하는가? 이 세 용어는 한국 현대사의 키워드다. 영어권 대학의 거의 모든 교과서는 바로 그 세 용어를 강조해서 한국 현대사를 서술한다. 반면 한국의 교과서 편찬자들은 그 중요한 핵심어 사용을 극구 꺼린다. 학계의 좌편향이 빚어낸 개념적 혼란이다.

 

첫째,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성립이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일 뿐이라 강변한다. 일부는 대한민국이 1919년 상해에서 이미 건국되었다는 비역사적 궤변을 펼친다. 상해임시정부는 국민·영토·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이국 소재의 망명정부였으며, 총선거로 다수 국민의 승인을 얻는 합법적 절차도 거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그러한 망명정부 수립은 그 자체로 건국이 아니라 건국 주비(籌備)의 제1보에 불과하다.

 

오늘날 중국에서 건국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사건을 이른다. 1981년 중국 공산당은 ‘건국 이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발표했는데, 이때 건국 기점은 1949년 10월 1일이다. 바로 그날 국가의 3요소를 갖춘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중국 학자들은 모두 1949년 10월 1일을 건국의 국경일로 인정하는데, 한국 학자들은 왜 1948년 8월 15일 건국 사실을 부정하는가? 대한민국의 건국사가 수치스러운가?

 

둘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다. 자유주의는 보편적 인권, 국민의 기본권, 시장경제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적 의사의 수렴 과정과 권력 창출의 민주적 절차를 밝힌 제도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소수를 억압하는 다수 독재, 개인을 말살하는 전체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그 때문에 1948년 제헌 국회는 근대 입헌주의 전통에 따라 보편 인권과 국민의 기본권을 헌법에 명기했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은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다. 양자의 차이를 강조하지 않고선 한국의 건국 과정을 정확하게 서술할 수 없다.

 

셋째, 6·25전쟁은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의 밀약에 따른 공산 전체주의 세력의 남침, 곧 대남 침략 전쟁이었다. 해방 공간으로 그 기원을 소급하는 수정주의 음모설은 구소련 비밀 문서 공개로 벌써 무너졌다. 제대로 된 교과서는 최신 논의까지 반영해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해야만 한다. 6·25전쟁의 역사에서 침략 주체를 명백히 밝혀 남침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부작위에 따른 허위 선전이 되고 만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은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하며 진화해왔지만,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수구의 진지전을 펼치고 있다. 정보 혁명의 시대,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꼰대들의 교과서는 대체 누구를 위한 변명인가? 그들의 진부한 역사관은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사상투쟁 없인 쉬이 못 넘을 꽤 높은 장애물이다. 이제 열린 사상의 시장에서 깨어 있는 시민들이 진취적으로 기록 투쟁에 나설 때다. 역사는 역사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편향된 역사가는 편향된 역사밖에 쓸 수 없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공산 전체주의와 벌이는 대결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새롭게 써야 한다. 모름지기 현대사는 우리 모두의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

 

09월 19일  사참委 ‘혈세 낭비 요지경’ 감사원이 전모 밝혀내야

 2014년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2016년 4·16 세월호 침몰 참사의 발생 요인, 수습 과정, 후속 조치 등을 3년 9개월에 걸쳐 조사하고 지난 10일 활동을 종료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18일 공개한 국회예산정책처 자료 ‘사참위(委) 예산사용 내용 분석’에 따르면, 국민 혈세를 낭비한 행태가 요지경이다.

 

 2018년 12월 조사 개시 후 활동 종료까지 예산이 549억 원이다. 10차례의 해외 출장에도 1억1800만 원을 썼다. 세월호 조사와 관련한 낭비 행태만 해도 수두룩하다. 2020년 2월 러시아·폴란드 출장 보고서는 70자 분량의 단 5줄이었다. 2019년 3월 연구원이 436만 원을 쓰며 영국 런던에 12일간 체류한 ‘포렌식 용역 중간 점검회의’ 출장 보고서도 달랑 1장이었다. “세월호 참사 뉴스에 붙은 댓글의 비정상적 패턴 실태를 조사·분석하겠다”는 엉뚱한 명분으로 지출한 예산도 1900만 원이다. ‘세월호 백서’ 작성을 위한 영상 채증(採證)에도 2억6200만 원을 쏟아부었다. 백서 발간·보존비만 해도 11억1500만 원이었다. 그러고도 백서에는 ‘외력(外力)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외력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여, 앞뒤조차 맞지 않게 서술했다.

사참위 예산의 37.4%인 204억7300만 원이 기본경비, 33.7%인 184억3400만 원이 인건비여서, 예산 70% 이상을 조직 자체의 유지를 위해 사용한 셈이기도 하다. 감사원이 감사로 혈세 낭비의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 위법이 드러난다면 수사기관에 고발도 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문화일보  사설

 

09.20  ‘세월호 등 진상규명위’ 출장비 1600만원에 보고서는 단 70자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4년간 세금 547억7100만원을 쓰고도 사실상 아무 결과 없이 최근 해산했다. 무슨 결과가 있을 것도 없었다. 사건 원인은 오래전에 다 규명됐다. 있지도 않은 다른 원인을 찾겠다며 혈세만 낭비했다. 아무리 한풀이가 필요하다 해도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어야 한다.

 

사참위는 2018~2022년 총 10차례 해외 출장에 1억1800만원을 썼다. 세월호 관련 출장 5건 가운데 2020년 2월 6박 8일간 1658만원을 지출한 러시아·폴란드 출장의 결과 보고서는 한글 70자 분량이었다. 2019년 3월 포렌식 용역 점검 회의 목적으로 다녀온 런던 출장도 마찬가지였다. 436만원을 쓴 출장 보고서가 딱 1장이었다. 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출장비를 낭비하고 엉터리 보고서를 제출했다간 바로 징계받고 퇴사해야 할 것이다. 가습기 사건과 관련, 사참위는 2019년 11월 인도·영국 출장에 2189만원을 썼지만 조사 대상자가 면담을 거부했다고 한다. 세금을 날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1950년대 발생해 70년 가까이 지난 미나마타병 대응에서 교훈을 얻겠다며 5박 6일 일본 출장에 745만원을 쓰기도 했다. 방만한 행태가 도를 넘었다.

 

사참위는 기본 경비로 204억7300만원, 인건비로 184억3400만원을 썼다. 전체 예산의 71%가 조직 유지에 들어간 것이다. 진상 규명을 명분으로 혈세를 받아 자기편 밥그릇을 챙긴 것이다. ‘세월호 참사 뉴스에 붙은 댓글의 비정상적 패턴을 조사·분석하겠다’며 1900만원, 세월호 백서 작성을 위한 영상 채증에 2억6200만원을 썼다. 국민 세금을 눈먼 돈처럼 마구 뿌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지난 8년간 검경·특검·감사원·국정조사·특조위·사참위까지 9번이나 수사·조사를 벌였다. 모든 의혹이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선일보  사설

 

09월 21일  ‘검사 줄사퇴’ 공수처 존치 이유 없다

 한석훈 변호사, 前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름 그대로 고위공직자의 부패범죄만 수사하기 위한 특별수사기관이다. 그런데 설립된 지 불과 1년 반 만인 최근 핵심 인력인 수사처의 검사 5명과 수사관 8명가량이 사의(辭意)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는 3개 수사 부서 중 1개 부서에 상당하는 인원이며, 더구나 사직 바람은 이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이란 미명으로 여야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설립한 공수처는 점점 존재감을 상실하더니 이제는 내부로부터 와해되기 시작한 듯하다.

공수처가 존속되려면 그 설립 논거인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되고 특별수사기관으로서의 수사 역량이 검증돼야 하는데, 양쪽 모두의 결여가 명백히 드러났다. 그동안 공수처가 수사해 온 사건은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이나 좌편향 단체 측의 의혹 제기 수준 고발이었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수처가 직접 인지해서 수사한 사건은 보이지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수사했는데, 지난해 말까지 입건한 공수처 전체 사건 12건 중 무려 4건이 윤 후보 관련이었다. 반면에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배우자가 경기도청 법인카드를 유용한 혐의 사건은 당시 검찰이 늑장 수사 중이었음에도 이첩 권한을 활용하지 않고 방치했다.

결국, 대선 후 윤 후보 사건은 3건을 무혐의 처분하는 등 한 건도 기소함이 없이 끝난 반면, 위 법인카드 유용 건은 최근 검찰이 공범인 배모 씨를 공직선거법 위반죄 등으로 기소하는 등 검찰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공수처는 출범 이래 이러한 정치 편향적 행보로 인해 ‘윤수처’로 불리기까지 했고,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도 문 정권 고위 인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공수처의 수사 역량 부족은, 공수처가 근 7개월간 총력을 기울인 ‘고발사주’ 의혹사건 수사 당시 손준성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나 2차례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사례를 들 것도 없이, 처장이나 차장 스스로 공수처는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자인하면서 실력을 기를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호소할 정도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범죄만 수사하는 공수처의 수사는 한 건 한 건이 국가 통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별수사이고, 수사권 행사가 그 대상자 개개인의 인생에 얼마나 엄청난 일임을 인식한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면서 계속 수사지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공수처장이나 차장은 자신부터 수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공수처 설립 시부터 유능한 검사와 수사관으로 공수처를 구성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므로 당장 사임함이 마땅하다.

나아가 이러한 공수처의 정치 편향성은 공수처 존재 자체의 문제이므로 궁극적으로는 공수처를 폐지함이 바람직하다. 우선, 공수처장의 선임 절차부터 중립적 인사가 선임될 수 없는 구조다. 또한, 고위공직자의 부패범죄만 수사하는 수사기관은 필연적으로 정치화할 수밖에 없으므로 법치주의가 확립된 나라에서는 그 유례가 없다. 중국의 국가감찰위원회 정도가 유사 수사기관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조차 그 권한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가 이런 후진적 제도를 따를 이유가 없다.

문화일보 

 

09.21  “교과서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계속되는 역사전쟁

2022 교육과정 한국사 시안 들여다보니

예영준 논설위원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2022년 교육과정 개정 시안을 발표했다. 2025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적용되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큰 줄기를 제시한 것이다. 아직은 시안의 단계지만 소정의 절차를 거쳐 교과서 집필의 기준이 되고 실제 교육 현장에서의 수업 지침이 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국사 과목의 시안을 놓고 논란이 어어졌다. ▶2018년 교육과정에는 들어있던 ‘6·25 남침’에 대한 기술이 사라지고 ▶‘자유민주주의’란 용어가 ‘자유’를 뺀 ‘민주주의’로 대체된 점을 지적하는 신문 사설도 줄을 이었다.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나 정체성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어서 교육부도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얼마나 그런 의견들이 반영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교육부 시안의 문제는 그 두 가지가 전부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교실에 한국사 통사는 없다

2019년 11월에 교육부 검정을 통과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경우 전체 5개 단원 가운데 4개 단원이 개항기 이후의 근·현대사에 할애되어 있다. 페이지 분량으로는 75% 정도다. 아직 역사라 하기엔 너무 가까운 시기인 2018년의 판문점 선언까지 사진과 함께 등장한다. 검정 교과서 9종이 대동소이하다. 반면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는 ‘전근대 한국사의 이해’라는 1개 단원으로 축약되어 있다. 이런 추세는 2022년 교과 개정으로 더 강화될 전망이다. 신유아 인천대 교수는 “이번 개정으로 근현대사의 분량은 84%로 늘어나게 될 전망”이라며 “150년의 역사에 84%를 할애하고 고조선에서 조선 후기까지의 수천 년은 16% 분량에 몰아넣고서 한국사 교과서라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중·고교 역사 교사로 10여년간 재직한 경력이 있다.

근현대사 분량 84%…“고대사 안 가르치고 동북공정 대항하라니”
6·25 남침뿐 아니라 3·1 운동과 임시정부도 시안에서 사라져
“대한민국 성취에 눈감고 현대사를 투쟁사·운동사로 그린 게 문제”

 ▲교육부,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시안 관련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국민의 주요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2022.9.19 kims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났나.

“예전에는 근현대사가 선택과목으로 따로 독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통과목인 한국사의 분량 배분은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2012년 근현대사 선택과목이 폐지되면서 한국사의 근현대사 분량을 대폭 늘린 결과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선택과목이던 근현대사를 필수과목으로 바꾼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행 교과서 집필진은 전근대 부분은 중학교에서 다 배우니까 고교에서는 현대사에 집중해서 배우게 한다는 논리인데.

 

“중학생과 고교생의 지적 발달 수준이 다른데 같은 조선시대를 배워도 고교생에겐 더 심화된 것을 가르쳐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조선, 고려, 삼국시대 역사와 문화는 중학교때 배운 게 끝이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나.

“고교생이 ‘태정태세문단세…’를 안 외운다. 대신 일제시대 역대 총독의 이름과 그 총독이 했던 말과 정책은 줄줄이 암기한다. 수능시험도 교과서 분량에 비례해 근현대사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근대사가 축소된 결과 팔만대장경이나 금속활자(직지), 심지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조차 9종 교과서 가운데 3∼4종에만 나온다. 기본 사실이야 중학교에서 배웠다 해도 고교에서는 보다 더 심층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전체 9종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수록된 내용이 아니면 수능시험에도 낼 수 없다. 그러다보니 한국사 시험 문제 수준이 아주 이상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서양 국가들의 교과서도 근대 이후가 분량이 많다는 반론이 있다는 걸 안다. 유럽 근대국가는 19세기에 탄생했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등을 빼면 근대 이후를 많이 가르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로부터의 연속성이 있어 다르지 않나. 교실에서 고대사를 안 가르치는데 어떻게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란 말인가. 우리의 뿌리를 가르치지 않는 건 아주 교묘한 형태의 민족사 말살이다. 고대사나 왕조시대의 역사를 홀대하는 건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는 일이다. 현대사를 강조하면 특정한 정치적 성향에 편중된 내용을 가르치기 용이해진다. 선거권 연령이 낮아져 현재 고3의 태반이 투표권을 갖는다.”

 

임시정부도, 3·1 운동도 사라졌다

현대사를 가르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전근대사 교육의 수준이 현저히 침해받을 만큼 현대사 분량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게 문제란 얘기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 기술이 한쪽으로 편중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역사교과서의 좌(左)편향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번 시안이 그대로 확정되면 2025년 이후엔 더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앞서 언급한 대로 6·25 전쟁 부분에서 남침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2018년 교육과정에선 “남침으로 시작된 6·25”란 표현이 있었다. 물론 시안에서 빠졌지만 교과서 집필 과정에선 남침을 명기할 수도 있다. 교실에서 북침설에 동조하는 경우는 더더구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 지침에 남침이 명기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

 

이번 시안에서 사라진 건 남침뿐만이 아니다. 임시정부와 3·1 운동도 사라졌다. 작은 글자로 A4 용지 12쪽 분량을 채운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의 어디에도 없다. 대신 “국내외에서 전개된 민족 운동의 노선과 활동을 탐구한다”는 성취기준 항목을 마련해 놓고 “민족 운동이 다양한 이념과 노선에 따라 분화되는 동시에 협동 전선 운동의 흐름도 나타났음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해설해 놓았다. 3·1 운동과 임시정부가 교육과정 시안에서 사라진 것이 단순 실수일까. 이번 시안은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에 의해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든 영웅”이란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시안을 분석한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는 “과거 교육과정에는 3·1 운동과 임시정부를 서술해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빠졌다”며 “3·1 운동이 임시정부로 이어지고 이를 계승한 게 대한민국인데 이렇게 되면 3·1 운동은 다양한 민족운동의 하나로 되고 결국 사회주의나 좌익 계열의 독립운동을 3·1 운동과 임시정부와 같은 반열에 놓고 역사 교과서에 포함시키려는 의미”라고 발표했다.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 또한 독립운동사의 한쪽을 장식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합당한 비중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현행 교과서에도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마땅히 가르쳐야 할 내용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 시안에서 빠졌다고 교육 현장에서 3·1 운동을 건너뛰진 않겠지만 일련의 최근 추세나 경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교육부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3·1 운동을 중시하지 않고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역사기술과 상통한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북한 당국에 임시정부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공개 제안한 적이 있다.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활동에 정통성을 두는 북한이 절대 응하지 않을 제안이었다.

 

취재에 응한 학자·전문가들은 특정 사안에 대한 기술이나 용어 사용 등 세부적 내용도 문제지만 교과서를 관통하는 역사관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는 “동학, 의병, 무장독립투쟁, 민주화 운동, 시민운동 등 민중 저항사를 축으로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집위원을 지낸 이민원 원광대 교수는 “약소국에서 식민지를 거쳐 짧은 시간 안에 비약적인 성취를 이룬 우리 역사를 너무 어둡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운동사 중심의 민중사관이 한국 교과서의 주류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한제국사가 전공인 내가 보기에도 교과서의 근현대사 분량은 과잉”이라고 말했다.

 

검정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본격화된 역사 교과서 기술을 둘러싼 진영간 대립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교과서 문제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 진영 대립에서 한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결과물이다.

 

역사 인식엔 정답이 있을 수 없고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미래 세대가 공부하는 교과서라면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담아 기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를 놓고 치르는 소모전을 멈출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께는 잠시 자녀의 책꽂이 속에서 역사 교과서를 꺼내 살펴보길 권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남긴 말이다. 오웰이 2022년의 한국에 환생한다면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교과서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09.22  대통령기록물 감추고 없애는 건 반역사적 ‘증거 인멸’

5년 마다 반복되는 국정 기록물 논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조선왕조의 창업이 이뤄진 뒤 어느 날 시중(侍中) 조준은 창업에 대한 세평이 궁금해 사관에게 사초(史草)를 가져오도록 했다. 사관이 거절했으나 당 태종도 사초를 읽은 전례가 있음을 거론하며 열람을 강요했다. 사관이 할 수 없어 보여주자 읽어보니 태조 이성계가 고려 공민왕·우왕·창왕을 겁박해 왕위를 빼앗은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를 본 이성계가 사관을 국문하는 옥사(獄事)가 벌어졌다. (태조 2년 정월 12일) 그 뒤 태조는 왕을 비방한 사초가 또 있을까 걱정스러워 사초를 보려고 했더니 대관(臺官)이 거절해 무안하게 돌아갔다.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숨기고 싶은 일이 많았을 것이고 치부를 기록한 사초를 없애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 대명천지 현대사에서 열두 명의 대통령이 거쳐 가면서 그들의 문서가 흩어졌다는 것은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어이없는 것은 단순한 관리 소홀 때문이 아니라, 망명한 이승만 대통령과 급서한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공식 기록물을 고의로 은닉했다는 사실이다.

사유재산 아닌 공적자산인데 대통령 기록물을 라면박스에 방치도
과도하게 까다로운 대통령 기록물 공개 요건, 비리·실정 은폐에 이용
미국은 학자 연구용으로 신청한 기밀 문서 거의 대부분 열람 허용해
사료와 기록의 존재 사실 알리고, 자료 접근 불편과 금기 제거해줘야

사초는 공물(公物)이다. 우리는 평소에 역사의 국유화를 늘 걱정했지만, 이제는 역사의 사유화를 걱정할 때다. 대통령 기록물의 산실(散失)은 역사의 함몰을 가져오기 때문에 위험하다. 대부분의 대통령이 떳떳하게 퇴임해 대통령기념관 하나 번듯하게 세우지 못하고 재임 중 기록물이 라면 박스에 담겨 지하실 어디에 쌓여 있다면 이는 참으로 공의롭지 못하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지금껏 퇴임한 대통령 열두 명 모두가 적법하고 명예롭게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든 처자식이 저지른 죄 탓이든 치욕스러운 퇴진이 많았기에 사료가 잘 보존되지 못했지만, 이를 막지 못한 것은 본질적으로 제도 문제다. 국가 기록이나, 좁게는 대통령 기록이 잘 보존되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열람조차 할 수 없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 국가 기록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인습 때문이다. 대통령의 기록을 그의 소유물로 여겨 퇴임과 함께 집으로 가져갔다는 데에서부터 반(反)역사적이다. 그 기록은 직무상 얻은 재산이며 기록이기 때문에 사유 재산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아무런 법적 제지나 양심의 가책도 없이 퇴임과 함께 반출해 왔다. 대통령의 기록은 공물이자 국가 재산이다. 미국의 경우라면 대통령이 퇴임하며 백악관을 나올 때 자신의 사물(私物)만 갖고 나올 수 있다. 대통령이 받은 모든 선물은 연방재산관리청에 반납해야 한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국가기록물을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는 혐의로 지난 9월 연방수사국(FBI)이 자택을 압수 수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사자와 지지자들은 차기 대선을 위한 음모라고 강변했지만, 미국의 국법으로 보면 수사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은 대통령뿐 아니라 고위공직자가 재직 중에 취득한 것도 퇴직과 함께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행정부에서 장장 9년간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딘 러스크는 1969년 퇴임하면서 친지의 주소록과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 하나와 세금 관련 서류만 들고나왔다. 퇴임한 다음에는 고향에 내려가 옆집 아주머니들과 25센트짜리 동전을 들고 공중 세탁소에 줄을 섰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는 주한 미군정청 시절 문서는 물론이고 존 리드 하지 미점령군사령관의 문서와 낙서를 포함해 담뱃갑과 성냥까지 보관하고 있다. 그의 문서는 국방부 전사편찬실(OCMH)과 미육군군사연구소에 보존돼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서거하자 버지니아주 노퍽 시 정부는 청사 건물을 기증해 맥아더기념관을 설립했다. 이곳에서 자료 열람과 추모를 겸하고 있다.

 

둘째, 국가 기록 관리에 나타나는 허점은 제도적인 문제다. 그동안 국가기록물의 사사로운 반출을 관례적으로 묵인해 왔다. 신생 국가 건설 과정에서 법령 미비와 6·25전쟁과 4·19혁명, 5·16군사정변 같은 격동의 시대에 그런 문제를 다룰 겨를이 없었다. 초법적인 국가 기관의 그러한 반출을 제어할 장치도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출범 이후 70여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나쁜 관행이 방치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물론 1969년 박정희 정부가 만든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가 2004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NAK)으로 확대 개편됐고, 2007년 7월에 제정·시행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어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기록을 관리하도록 이 법 7조에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기록 수장도 부실하거니와 공개는 사후(事後) 30년으로 규정하고 있고(16조), 이를 공개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나 고등법원장의 판결을 필요(17조)로 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공개가 봉쇄된 것과 다름없다.

 

무슨 정보 공개가 헌법 개정만큼의 국회 정족수를 요구하는가. 전직 대통령은 회고록 등의 저술에 필요한 자기의 기록만을 볼 수 있다.(18조-2) 이상의 규정을 어기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30조) 어지간한 살인죄보다 무겁다. 여기에 2020년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의 족쇄까지 채우면 대통령 기록물은 사실상 사후에나 볼 수 있다. 역대 대통령의 비리와 실정을 은폐하기로 작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토록 폐쇄적으로 운영하나 싶다.

 

퇴임 대통령이 살아 있는 동안에 공개할 수 없는 자료라면 미국의 정보자유법(FOIA)처럼 ‘미공개(classified)’로 분류했다가 사후 35년에 ‘공개(declassified)’로 분류하면 된다. 설령 공개가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학술적으로 필요할 경우에는 신청자의 신분과 용도를 기준으로 기밀문서심사위원회를 거쳐 열람증(clearance)을 발급해 공개하면 된다. 미국의 경우 학자가 연구용으로 신청한 기밀 문서의 열람을 거부하는 사례는 전체의 5%를 넘지 않는다.

 

물론 미국에서도 끝까지 공개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공익과 관계없는 개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문서, 소송 당사자가 아니면서 소송 안건에 이익을 추구하려고 신청하는 문서, 고시(考試) 문서, 유정(油井)을 포함하여 지구물리학이나 천연 자원에 관한 탐사 문서 등이 영구 비밀로 취급된다. 정보자유법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정보기관 사이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원폭·핵 문제와 세균전, 첩보원·간첩에 관한 문제는 기한이나 요청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공개하지 않는다.

 

셋째, 한국 대통령기록관은 내용물이 아주 빈약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물로 처리해 퇴임과 함께 반출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초래된 현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자료를 회수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문서든 옷이든 개인 용품이든 선물이든 재임 중에 받은 물건을 집으로 가져가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그가 정말로 아끼는 기호품이라면 개인적으로 매입하거나 대통령 기념도서관 또는 박물관을 만들어 기증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한국의 경우 북한에서 받은 풍산개도 동물원에 보내거나 합당한 값을 치르고 가져갔어야 맞다.

 

이럴 경우 공간이 문제될 수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약 30억 건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그 정도 규모는 아닐 것이다. 공간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기록관이 꼭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 지방 특색을 살려 테마 기록관을 만들면 된다. 조건이 있다면 이용자의 접근성이 편리하도록 교통의 중심지인 대도시여야 한다.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말처럼 역사가는 도서관이 훌륭한 대도시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록 문화가 정착되고 분업화가 이뤄져 기록관이나 문서관이 제 모습을 갖추려면 아울러 함께 진행해야 할 과제가 있다. 사료나 기록의 존재에 대한 고지와 홍보, 자료에 대한 접근의 불편과 금기의 제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류, 전문 사서(archivist)의 확보, 보존 처리 등에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한국현대사 자료는 대부분 산성지(酸性紙)이기 때문에 열람이 어렵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현판에 쓰여 있듯이 ‘과거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서막(What Is Past Is Prologue)’이기에 역사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

중앙일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09.22  "침대도 들어갔다"…친문 부원장 술판, 전략연 604호실 비밀

강찬호 논설위원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18층 빌딩. 강남 노른자위 땅에 세워진 이 빌딩은 국가정보원의 지원을 받는 국책연구소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 건물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0월~지난해 말 이곳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문재인 캠프 출신 부원장이 이 빌딩 604호 사무실을 사적 공간으로 쓰고, 여성들이 참석한 술판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국책연구소 건물이 룸살롱처럼 쓰였던 이 1년 2개월의 기간은 코로나로 집합금지 명령이 발동된 기간과 그대로 겹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략연 예산 수천만 원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바 시설과 침대까지 들어갔다”고 했다. 이 방이 생긴 뒤 등 파진 상의에 짙은 화장을 한 젊은 여성들이 심야에 전략연 건물을 들락거렸다. 이 사실은 문재인 정부 내내 감춰져 있다가 정권교체 뒤 전략원 관계자의 제보를 중앙일보가 보도하며 알려졌다. 제보자가 정부에 제출한 종이 자료 두께가 손 한뼘에 달했다고 한다.

친문 부원장, 비밀방에서 술판
대선 때까지 운영된 배경도 의문
문 정부의 기강 해이, 진상 밝혀야

전략연은 보안이 엄격하다. 업무차 방문한 일반인이 승강기를 타면, 그 승강기의 버튼은 만날 사람이 근무하는 층에만 작동할 정도다. 이런 건물에 술집 여성 차림새의 20대 여성들이 밤 12시~1시에 차를 몰고 들어왔다 새벽 4~5시에 나가곤 했다는 것이다. 관리 직원들은 황당했지만, 여성들의 차가 부원장 이름으로 등록돼있어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부원장 본인은 차가 없었다고 하니, 여성들 차를 본인의 차로 둔갑시켜 여성들이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게 했을 공산이 크다. 여성들이 한밤중에 여러 번 나타나니 관리 직원들이 “어디 가시나”고 물었고, 여성들은 “604호실”이라고 답해 꼬리가 밟혔다. “어쩌다 전략연이 이렇게까지 됐나”는 자괴감 속에 부원장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여긴 관리 직원들은 여성들의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을 사진으로 뽑아뒀다. 건물 내 CCTV는 촬영 14일 뒤면 삭제되는 것을 고려해서였다. 이는 604호의 비밀을 밝히는 결정적 물증이 됐다. 문재인 정권의 안보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방을 만든 부원장이란 사람은 외교 안보나 정보 계통 근무 경력이 전무하다. 노무현 재단과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친문 인사다. 전형적인 낙하산이다. 씀씀이가 커 친문 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선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전략연 행정실장에 발탁됐고 2년 반 만에 기획부원장에 올라 원장 다음가는 2인자로 떴다. 그의 위상은 대단했다. 서훈 국정원장이 전략연에 들러 원장을 만날 때면 이 사람도 옆에 앉곤 했다고 한다. ‘전략연의 황태자’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집권 뒤 604호에 얽힌 의혹을 부인하며 자리를 지키려 하다 정부 측이 입수한 물증을 제시하자 실토하고 지난 6월 물러났다. 국정원은 기획조정실과 감사팀에서 10명을 투입해 이달 말까지 조사를 한 뒤,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 유상범 정보위 간사도 10월 국정감사에서 A씨와 김기정 당시 전략연 원장을 증인 신청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대로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기가 차다.

 

전략연은 건물 1층~10층엔 임대를 주고 11층~18층을 업무 공간으로 쓴다. 임대 수익은 빌딩 건립 기금을 낸 국정원 전직 직원들의 모임인 양지회의 운영비에 쓰인다. 양지회가 임대 수입을 올려야 하는 604호를 부원장이 마음대로 쓴 것이다. 당시 원장이었던 김기정 전 연세대 교수는 이 방의 존재에 대해 “몰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모를 수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전직 전략연 원장은 “전략원 원장은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다. 건물 모든 방의 현황을 직원들로부터 보고받는다. 부원장이 604호를 쓰는 사실도 당연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연히 부원장을 불러 이유를 추궁하고, 방을 빼라고 지시하는 것이 정상일텐데 현실은 1년 넘게 부원장이 그 방을 마음대로 쓴 걸로 드러났다. 몰랐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의 방이 술판용으로만 쓰였는지도 의문이다. 이 방이 운영된 기간은 문재인 정권 말기에서 대선 정국으로 이어지는 시기다. 전직 전략연 원장은 “민주당 계열 인사들이 그 방에 모여 선거 전략을 논의하고, 술자리를 갖는 공간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방이 도대체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 어떤 인물들이 드나들었는지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문 정부 시절 자행된 국책 안보연구소의 기강 해이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09월 22일  ‘자유경쟁’ 삭제한 경제 교육지침도 당장 바로잡으라

 교육부가 2024년부터 초등학교, 2025년부터 중·고교에 적용할 예정으로 국민 의견을 수렴 중인 ‘교육과정 개정 시안(試案)’이 한국사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재정부는 21일 “초·중·고 학생들이 경제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기르기 위해선 기존 교육과정에 포함된 ‘자유경쟁’ 내용의 유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교육부에 냈다”고 밝혔다.

‘교육과정’은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을 담은 교육지침이면서, 교과서 집필기준의 바탕이다. ‘2022 교육과정 시안’은 그 저의부터 의심스럽다. 초등 사회과(6학년)의 경우 ‘자유경쟁과 경제정의의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특징을 설명한다’에서 ‘자유경쟁’을 삭제했다.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헌법 가치의 양대 축인 ‘자유시장경제’의 핵심 개념을 뺀 것으로, 학생들에게 대한민국 체제 부정 교육을 하려는 것인지도 묻게 한다.

현행 중학교 사회과 교육과정(3학년)의 ‘자유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이해하고’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아예 없앤 것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교양과목 ‘인간과 경제활동’의 교육과정에 ‘소득 분배의 다양한 원리를 탐구해 실생활 사례에 적용한다’고 신설한 배경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구성된 연구진이 만든 시안이라곤 해도, 오는 12월 국가교육위원회 의결·확정 단계 전에 교육부가 당장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는 것은 교육부 책무이고,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23일  13년 만 환율 1400원대, 한국 경제 닥쳐온 ‘복합 위기’ 신호탄

22일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15.5원 오른 1409.7원에 마감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뉴시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미 기준금리는 14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연 3.00~3.25%로 올라갔다. 여기에다 연준이 공개한 위원들의 향후 금리 예측이 시장 예측치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어서 앞으로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임을 예고했다. 금융가에선 미국이 내년 초까지 1.5%포인트가량 추가 인상해 연 4%대 후반까지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은 미국발 충격에 요동쳤다. 코스피 지수가 장중 한때 2300선 근처까지 내려가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위험 선으로 여겨지던 1400원 선을 뚫었다. ‘1400원대 환율’은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년여 만이다. 원화 약세가 계속되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 금융 불안을 가속하고 수입 물가를 올려 민생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미국에 0.75%포인트 역전당했다. “한번에 0.25%포인트씩 올릴 것”이라 공언해오던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제 조건이 많이 바뀌었다”며 0.5%포인트 이상의 대폭 인상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은도 내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연 4%대로 올릴 가능성이 높다. 고물가에 이어 고금리 충격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금리 상승은 경기 침체를 부른다. 돈값이 비싸지면서 투자와 소비가 줄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소득 감소와 실업 증가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0.7%로,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주요 35국 중 20위에 머물렀다. 수출이 부진하고 원자재 수입액이 늘어나면서 무역수지까지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금융 불안과 실물 경제 위축이 동시 진행되는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 고물가에 따른 민생 압박 속에서 고금리와 경기 침체, 고환율과 국제 환경 악화 같은 대내외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옥죄어 오고 있다.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상황 앞에서 경제 팀은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인플레이션과 금융 불안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경제가 침체되지 않도록 활성화해야 하는 고난도 과제를 안게 됐다.

조선일보  사설

 

09월 23일 [단독]“은수미, 수사기밀 받으려고 죄없는 공무원 좌천”...1심 판결문 분석

 

 ■ 법정구속된 은 前 성남시장 85쪽 분량 판결문 보니…

4년전 선거법 등 수사받을 당시
기밀제공 경찰 내연녀 승진위해
비위 확인 안된 공무원 전보조치

4억원 가로등 교체사업 청탁도
재판부 ‘뇌물공여에 해당’ 판단

은수미(사진) 전 성남시장이 자신의 수사와 관련된 기밀을 받는 대가로 인사 청탁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아무 잘못이 없는 공무원에게 좌천성 인사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23일 문화일보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85쪽 분량의 은 전 시장 판결문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및 선거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은 전 시장은 2018년 10월 성남 중원경찰서 소속 경찰관이었던 김모 경위에게 수사 기밀을 제공받을 목적으로 비위 사실이 없는 현직 공무원에게 부당하게 좌천성 전보 조치를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판결문엔 “비위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내부종결’ 결론을 냈음에도 문책성 인사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특정 공무원을 전보했다”고 적시됐다.

은 전 시장은 자신의 수사 기밀 제공 및 불기소 의견 송치 등 수사상 편의를 받는 대가로 김 경위의 내연녀이자 성남시 6급 보건 공무원 A 씨를 팀장급 보직에 임명하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벌였다.

김 경위는 당시 S구 보건소장으로 재직 중인 보건 직렬 공무원 B 씨가 간호 직렬인 A 씨와 친분이 없는 데다 보건 직렬을 우대한다고 판단해 은 전 시장 측에 B 씨를 모함하는 익명의 투서를 보냈고 이를 바탕으로 B 씨를 전보 조치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은 전 시장은 감사팀에 B 씨에 대한 비위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감사팀은 B 씨의 비위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내부종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은 전 시장은 문책성 인사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2019년 1월 정기인사에서 B 씨를 다른 보건소로 좌천성 전보 조치했다. 이후 A 씨는 보건 직렬에 부여됐던 방문보건팀장 자리를 부여받았다.

법원은 은 전 시장의 이 같은 혐의에 대해 공무원 사회에 실망감을 초래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법원은 “은 전 시장은 시정을 총괄하고 소속 공무원들을 지휘·감독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범행에 가담했다”고 꼬집었다.

앞서 뇌물 공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은 전 시장은 지난 16일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467만 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은 전 시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로, 국제마피아파 출신 이모 씨가 대표로 있는 코마트레이드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밖에 재판부는 은 전 시장 측이 김 경위로부터 4억5000만 원 상당의 터널 가로등 교체사업을 특정 업체가 맡게 해달라고 청탁받은 점 또한 뇌물 공여에 해당한다고 봤다. 한편, 은 전 시장 측에 인사 청탁을 한 김 경위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김무연 기자 nosmoke@munhwa.com

 

09.26  “소주성 실패… 이재명의 기본소득, 현금박치기 진보로 희화화될 것”

[김아진이 만난 사람]
‘좋은 불평등’ 출간해 文정부 비판한
최병천 전 민주당 싱크탱크 부원장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책 ‘좋은 불평등’ 저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 최 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비판하며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포퓰리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좋은 불평등’이라는 제목의 책이 화제다. 민주당 진영 안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실패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한 최초의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민주당 등 진보 정당에서 오래 활동해왔다. 그는 “소주성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실패한 이유는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짜 하층은 노조가 아니라 노인인데, 문재인 정부 정책팀이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진보 세력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생긴 실수라고 봤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인상’ ‘SOC 예산 감축’ 등은 고용 쇼크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불평등이 확대됐다”고도 했다. 지난 23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소장은 ‘기초연금 40만원 인상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 대해서도 “이 정책이 ‘현금 박치기’ ‘증세 폭탄’이란 걸 알면 2030세대도 금세 민주당을 떠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이제 민주당도 이런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경제 정책으로는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이 아니라 친기업 진보주의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저임금 1만원, 불평등 더 커졌다

-책을 낸 이유는 뭔가.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은 하층 소득을 끌어올려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기획하에 만들어진 정책이다. 그런데 2018년 통계를 보면 고용은 급감하고 불평등은 오히려 커졌다. 문 정부도 이를 알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소주성 언급을 피했다고 본다. 그러나 왜, 무엇이 틀렸는가에 대한 분석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대해 ‘진보 사회운동 단체, 노조가 주장하는 걸 흉내 내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간단히 무시됐다. 노조는 사실상 상층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통계 등에 기반한 연구를 했고 탄탄한 논리로 책을 냈다.”

 

 

-소주성은 왜 실패했나.

“진보 진영은 한국 경제 불평등이 재벌, 신자유주의 정책, 비정규직 등의 내부 원인으로 생겨났다고 믿고 있다. 이를 3대 적폐라고 본다. 하지만 한국의 불평등은 1992년 한중 수교 체결 등에 따른 개혁·개방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 증가로 대기업 수출이 대박이 나고 그에 따라 불평등이 커졌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이 커졌다. 책에서 이는 ‘좋은 불평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내부 원인에 따른 불평등 진단은 틀린 것이다. 이런 잘못된 분석 속에서 소주성, 최저임금 인상 등이 채택됐기 때문에 성공할 리가 없다. 특히 소주성은 노동 담론에 과몰입한 결과, 노인 등 비노동자를 외면했다. 또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을 통해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2018년 일자리는 4분의 1로 급감

-최저임금 1만원도 진보 세력의 요구였다.

“그렇다. 유럽의 노동운동 세력은 국가 정책에 관여하는 경험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구호성 정책을 내세우는 거다. 실행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구호인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왜 최저임금을 올리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걸 아는 것이다. 민주당 정책 입안자들, 국회의원들 등은 정책의 적합성을 고려할 능력도 딸리고 그냥 넙죽넙죽 받는다. 그걸 진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국정 운영 자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는데.

“대충 경기가 어렵더라도 우리나라는 연간 30~40만명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2018년 일자리는 9.7만명이었다. 4분의 1수준으로 확 줄어든 것이다. 최저임금은 과도하게 인상하면서 반대로 SOC 예산은 과도하게 감축하면서 고용 쇼크가 온 것이다. 최저임금은 진보의 상징, SOC예산은 적폐로 단정해 이런 정책이 나온 것이다. 문제를 알아챈 정부가 2019년부터는 SOC 예산을 다시 늘렸다.”

 

노무현은 한미 FTA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는 왜 이 같은 진보 세력의 정책만을 수용했을까.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했다. 통치 세력이 되니까 나라를 위한 게 무엇인지 고민을 했던 거다. 하지만 이게 지지층의 생각과 달랐고 정치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적으로 아주 잘하고도 진보와 다른쪽으로 가서 정무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이를 지켜본 문재인 정부는 완전히 반대로 갔다. 진보 정책을 다 수용해 진보와 잘 지내보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정책적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둘 다 정답은 아니다.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 생태계가 오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소주성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전 손석희씨와 한 인터뷰에서 소주성에 대해 ‘성과적인 측면이 많은데 부작용만 지나치게 부각됐다’고 입장을 보인 걸 보면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대선이 끝나고 당의 강령에서 소주성을 삭제했다.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어떤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40만원(현 30만원) 지급을 추진하고 있다.

“이 역시도 단기적으로 유리한 이슈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마이너스 이슈가 될 거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노인 부양비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현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돈이다. 증세 논쟁으로 가면 진다. ‘어떻게 20조, 30조 만들 거냐’고 하면, 해명에 허덕이다가 망한다. 국민의힘도 답답하다. 이럴 때 비용 추계를 쫙 해서 ‘증세 폭탄’ 프레임으로 가면, 젊은 세대가 ‘이재명의 민주당’을 지지하겠나.”

 

 

-노인 정책이 중요하다면서 기초연금 이슈는 왜 문제인가.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는 안 된다. 2021년에 민주당에서 발의했다가 통과가 안 된 ‘불효자 방지법’ 같은 정책을 내와야 한다. 노인들이 자녀에게 살아있을 때 증여를 많이 하는데, 그러고 나면 자녀들이 싸가지가 없어진다. 그걸 막는 법안이다. 언제든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당시 이 법안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이제 미래를 준비하는 405060에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야당도 이재명도 사회주의 찌꺼기 버려야

-이재명 대표는 대선 때 잠시 보류했던 기본소득을 최근 다시 들고 나올 기세다.

“민주당이 조사한 대선 기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30의 65%가 기본소득을 반대했다. 진보 내에서는 어필할 수 있으나 전체 유권자에게는, 최소한 중도층에는 먹히지 않는다. 현금 박치기 진보라는 이름으로 희화화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수시로 바뀐다. 어떤 때는 모두에게 준다고 했다가, 또 청년에게만 준다고 한다. 이유가 뭐겠나. 엄청난 재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거의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책에서 정의당도 세게 비판했더라. 20대 국회 때 심상정 의원이 낸 일명 ‘살찐 고양이법(최고 임금 법안)’은 나쁜 정책이라고 했다.

“이 법안은 실제 되면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 본인도 통과되지 못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별로 고민도 안 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도 사실은 정의당이 밀어붙이고 민주당이 받은 정책이다. 누구는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라고 하는데, 틀리는 얘기다. ‘민주당이 정의당의 1중대’라고 해야 맞는다. 문재인 정부는 정의당이 주장해온 노동, 복지 정책을 싹 다 가져와서 정책화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중도를 국민의힘에 내줬고, 이번 대선에서 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도, 정의당도 다 어려워졌다.”

 

-민주당이 갈 길은.

“마르크스주의는 로빈후드적 세계관과 맞닿아있다. 자본가, 부자는 나쁘고, 노동자, 서민은 좋은 집단이라고 한다. 사회주의는 망했다. 그런데 아직도 민주당의 운동권은 여기에 멈춰있다. 현대화 작업을 해야 한다. 왼쪽 병을 탈피해야 한다. 이 사회의 주류가 되려는 자세를 갖고, 여당다운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기업이 많다. 한국은 어떤가. 대기업에 사랑받는 민주당이 되면 왜 안 되나. 노동자를 배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균형을 찾자는 것이다. 민주당이 사회주의 노선을 폐기한 것이 맞는다면 그 이념적 찌꺼기들도 다 같이 버려야 한다.”

 

☞최병천

1973년생. 강원 정선에서 태어났다. 노동운동을 하다 “사회주의는 망했고, 이제 유럽식 복지국가가 진보의 대안”이라고 생각해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뒤, 2002년 대선 때 권영길 캠프에서 일했다. 2010년 무상급식 논란 당시 “민주당도 복지국가 노선으로 바뀌고 있다”는 판단으로 2012년 민주당에 입당했다. 민병두 의원 보좌관을 거쳐 2018년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 특위에서 일했다. 2020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정책보좌관을 지냈고, 2021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복지국가를 부탁해’ ‘2020 한국의 논점’ ‘2022 한국의 논점’ 등이 있다.

조선일보  김아진 기자

 

09월 26일  재판 행정까지 노조 흥정 대상 만든 김명수 포퓰리즘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은 사법부 존재 이유이자 국민에 대한 의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코드 인사로 편향성 지적을,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 등으로 재판 지연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엔 재판 행정과 관련해 법원노조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해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더 저해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도 넘은 사법 포퓰리즘 아닌가.

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단체협약서와 합의안에 따르면, 법원장은 법원 직원 정기 인사 전후 각 1주간 재판 기일을 잡지 않도록 법관에게 안내토록 했다. 서울남부지법 합의문에는 분리 선고를 자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분리 선고란 일부 피고인이 재판에 불출석하거나, 일부 혐의에 대한 심리가 끝나면 먼저 선고해 피해 구제를 조속히 하는 것인데 직원의 업무가 늘어나니 피하라는 것이다.

광주지법 합의문에는 경매 사건 매각 기일 주기를 원칙적으로 6주로 한다는 내용도 있다. 한결같이 신속한 재판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법원 설치를 위한 공동 노력이나 법원 내 노조 홍보 공간 확대 등은 자칫 법원의 이념적 중립성에 의구심을 갖게 할 수 있다. 이런 협약과 합의들은 모두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인 2019년과 2021년에 이뤄졌다. 법원 내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노조를 우군으로 삼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들어줬고 그 결과 판사들이 노조 눈치를 본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5년간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 형사소송은 2배로 증가했다. 민사 1심 재판은 5개월 안에 마치도록 규정돼 있다. 재판 지연에 따른 국민의 물적·정신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거짓말과 가족 특혜로 이미 신뢰를 상실한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망가뜨리는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나.

문화일보  사설

 

09월 27일 대우조선, 한화에 팔려도 ‘노조 리스크’ 못 넘으면 헛일

23년째 ‘민폐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이 우여곡절 끝에 한화그룹에 매각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 입장에서 여전히 찜찜한 구석이 많다. 대우조선은 역대 정권을 거치며 낙하산 경영진과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의 무책임, 노동조합의 폐해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세금 먹는 괴물’이 됐다. 그런데 이에 대한 통렬한 책임 추궁이 제대로 이뤄질 지 의문이다. 특히 부실기업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인력 구조조정이 필수적인데, 과거 매각 시도 때와 마찬가지로 벌써 노조는 고용 승계를 내걸고 발목 잡을 태세다.

산업은행은 26일 한화그룹이 2조 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49.3%와 경영권을 확보하는 내용의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잠수함 등 방산 부문과 상선 부문을 함께 파는 ‘통매각’이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다. 산은은 연내 인수업체를 정해 내년 상반기까지 계약을 마무리할 방침이지만, 당장 노조는 “모든 물리력을 동원해 전면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노조는 2008년 한화그룹, 2019년 현대중공업이 각각 인수에 나섰던 때도 실사단의 옥포조선소 출입을 막았다. 올 1월에도 인수에 반대해 유럽연합(EU)에 현대중공업과의 합병 불허를 요청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대우조선은, 올 상반기 기준 총부채가 10조 원을 넘고 부채비율이 676%나 된다. 지난해 1조7547억 원의 영업 손실에 이어 올 상반기도 5696억 원 적자다. 이런 와중에 올해 협력업체까지 파업해 7000억 원 넘는 피해를 냈다. 헐값 논란도 있다. 국책은행들이 지원한 공적 자금만 7조 원이 넘는데 2조 원에 파는 것이니 그렇다. 산은 등은 매각 후에도 금융 지원을 5년간 계속한다. 따라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수다. 잠수함 부문만 분리 매각해도 정상화가 쉽지 않은데, 통매각으로 고용 승계 책임까지 커졌다. 노조 리스크를 못 넘으면 제2의 쌍용자동차가 될지 모른다.

문화일보 사설 

 

09.27 한화 대우조선 인수 추진, 이번에도 정상화 안 되면 파산해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을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 금액은 2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7월 23일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의 불법 점거로 진수가 중단된 지 5주 만에 30만톤급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이 성공적으로 진수되고 있는 모습. /뉴스1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한화그룹을 대우조선의 인수 우선 협상자로 선정했다. 2001년 산업은행 관리에 들어간 지 21년 만에 다시 새 주인을 맞는 것이다. 한화그룹은 2008년에도 대우조선을 인수하려 했으나 글로벌 금융 위기 탓에 자금 조달에 실패해 위약금을 물고 인수를 중도 포기했었다. 한화그룹은 방위산업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어 대우조선의 잠수함 등 특수선(군용) 사업과의 시너지를 노리고 인수에 재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은 한화의 인수를 계기로 정상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산업은행의 22년 관리 기간 동안, 대우조선엔 국민 세금이 약 12조원 투입됐지만 부채비율이 676%에 달할 만큼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누적 순손실이 7조7000억원에 이르고 작년에도 1조7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말만 기업이지 실제로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었고 직원들은 준공무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당연히 대우조선은 노사 모두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정권 낙하산 경영진은 수조원대 부실을 감추려 분식 회계를 일삼았고, 노조는 EU본부에 찾아가 현대중공업과의 합병 불허를 요청하는 등 매각 작업을 방해해 왔다. 국민 세금 받아 편히 살겠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이 무책임하게 저가 수주 공세에 나서면서 한국 조선 업체 간 출혈 경쟁이 벌어져 모두가 손해를 봤다. 7월 7000억원대 영업 손실을 야기한 하청 노조의 불법 파업도 저가 수주 후 다단계 하청 구조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최근 조선업 장기 불황이 끝나고 선박 신규 수주가 늘어나는 등 훈풍이 불고 있지만, 대우조선은 과거 저가 수주 탓에 올 상반기에도 5000여 억원 적자를 내는 등 경영 정상화가 요원하다. 새 주인을 맞은 뒤 뼈를 깎는 구조 조정과 경쟁력 제고 노력이 있어야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 대우조선이 국민 세금 먹는 하마가 되는 것은 더는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벌써 대우조선 노조는 “전면 투쟁”을 말하며 반발을 시작하고 있다. 만약 이번에도 노조 문제 등으로 대우조선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파산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27  ‘밑 빠진 독’ 대우조선 매각… 혈세 낭비 ‘흑역사’ 책임은 밝혀야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 어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그룹을 선정했다. 한화그룹은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규 자금 2조 원을 투입하고 신주를 받는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이 2001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지 21년 만에 민영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은 수차례 민영화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2008년 한화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금융위기로 무산됐고 2009년, 2012년, 2014년에도 매각이 추진됐지만 무위에 그쳤다. 2019년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지만 올 초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시장 과점 우려를 들어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이번 매각대금 2조 원은 2008년 한화가 제시한 6조3000억 원의 3분의 1 수준이고, 2019년 현대중공업이 투입하려 했던 2조5000억 원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과 자본 확충 형태로 들어간 10조 원이 넘는 혈세를 회수하기에 2조 원은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어제 강석훈 산은 회장은 헐값 매각 논란에 대해 “기업가치가 속절없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국민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밑 빠진 독’이 되는 걸 막으려면 민영화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매각대금이 급격히 쪼그라든 이유가 기업가치 하락이라면 대주주인 산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장기 표류한 것은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9년 대우조선해양을 자회사로 편입한 지 9년이 지나서야 매물로 내놓았고 매각 실패 이후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정부, 채권단, 노조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부실을 키우고 산업구조를 재편할 적기를 놓쳤다.

현재 한국 조선업은 과당경쟁, 인력 부족, 원자재 가격 급등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빠져 있다. 뒤늦은 대우조선해양 매각으로 혈세를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다. 조선업 체질 개선을 위한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혈세 낭비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9.27 “외환 위기 경고” 나온 역환율 전쟁, 범정부 비상체제 가동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지난 주 달러당 1400원의 마지노선을 깬 데 이어 26일엔 22원 이상 오르며 1430원을 넘어섰다. 1400원대 환율은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년여 만의 일이다.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코스피는 3%, 코스닥은 5%씩 폭락하며 금융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국제 금융가에선 ‘아시아 외환 위기’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월가 전문가들을 인용해 “일본 엔과 중국 위안화 폭락으로 아시아에서 외국 자금이 대거 이탈하는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며 1997년 사태의 재발 가능성을 지적했다.

 

 시장에선 달러 환율이 올 연말엔 1500원 선을 넘어 1550원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1997년 외환 위기는 환율 1600원대에서 도화선이 당겨졌다. 환율이 환란 직전 수준까지 갈 위험성이 있다는 뜻이다. 추경호 경제 부총리는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했다. 1997년 당시에 비해 기업 재무 구조가 개선됐고, 외환 보유액이 4300억달러로 불었으며, 경제 신인도도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1년 미만 단기 외채가 10년 만에 외환 보유액의 40%를 넘겨 불안감을 주고 있다. 환율 방어에 달러 실탄을 쏟아부으면서 외환 보유액이 300억달러 이상 줄었고,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다.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 이후 세계는 ‘역(逆)환율 전쟁’에 들어갔다. 자국 통화를 절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절상시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총력전이다. 지난주 미국이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 다음 날 하루 동안 영국·스위스·대만·인도네시아 등 13국이 금리 인상에 나섰다. 환투기 세력은 ‘약한 고리’를 노린다. 1997년 한국이 외환 위기에 빠진 것도 취약한 외채 구조에다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면서 먹잇감이 됐기 때문이다.

 

심리적 불안감이 가장 문제다. 세계 대부분 통화가 약세이나 원화의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이미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 비율은 30%로 내려갔는데 원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커질수록 외국인 자금의 이탈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관리 능력이 의심받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시장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야 한다.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던져야 한다.

 

현재 정부는 다양한 달러 공급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한·미 통화 스와프가 근본 대책이다. 서둘러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청와대 벙커 회의’처럼 대통령이 직접 지휘봉을 쥐는 범정부 차원의 상시 대응 체제도 필요하다. 적어도 미국발 충격이 계속될 내년 초까지는 환율과 금융시장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비상 체제에 들어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월 27일  다가오는 검수완박 재앙과 헌재 책임

 석동현 변호사, 前 서울동부지검장

사라지는 공무원들 근무 열정
세종시 이전 뒤 보신주의 팽배
어른거리는 불 꺼진 검찰청사

지능범들 교활한 범행 춤추고
국민의 검사 대면 기회도 없앨
잘못된 정치적 결정 시정해야

잘못된 정치적 결정으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제도를 흔들면, 되돌리기도 어렵고 결국 그 폐단은 국가적 재앙이 되고 만다. 졸견으로는 세종시를 만들어 정부청사가 광화문·과천·세종·대전 네 군데로 분산되게 만든 것을 그 대표적 사례로 본다. 필자는 검사 시절, 법무부에서 3번 근무한 적이 있다. 세종시가 생기기 전으로, 장관의 국회 출석이나 법안 및 예결산 심사, 조직 확충, 관계기관 회의 참석 등으로 국회, 광화문 청사, 과천 청사의 여러 부처와 기관을 수시로 들락거렸고, 늦은 밤까지 야근은 다반사였다. 어쩌다 밤에 전화를 걸어도 다른 부처의 관료들 역시 태연히 전화를 받았다. 그 시간까지 다 일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러 중앙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뒤부터 관료들의 근무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고위직들은 서울을 오르내리기 바쁘고 중·하급직원들의 칼퇴근에 6시가 지나면 관가의 불은 대부분 꺼진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관료 사회의 열정은 식고 현상 유지, 보신주의만 남았다. 정부청사 분산으로 인한 부작용과 경쟁력 퇴보 사례는 언젠가 연구 분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최근, 그런 연구 분석 대상이 될 사례가 추가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내내 개혁 미명 아래 형사사법의 한 축인 검찰의 기능을 축소·형해화한 일이 그것이다.

특히 민주당이 지난 3월 대선 패배 후, 검수완박법으로 지칭되는 검찰청법을 다급하게 통과시키고 전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 공포하자, 많은 사람은 마치 그 법으로 검찰 수사권이 비로소 박탈된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검찰 수사권이 대폭 축소된 것은 이미 지난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때부터다. 검사들은 6대 범죄 외에 그 나머지 유형과 고소·고발 사건 등을 수사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일반 국민은 검사실에 갈 일이 거의 없어졌다. 다시 말해, 어떤 범죄 피해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경찰이 조사할 뿐 검사에게 호소하거나 검사를 대면할 기회는 소멸된 상태이며, 검수완박법은 상황을 더 가중시킨 것뿐이다.

그런 검수완박법이 지난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위헌적 소지가 너무나 많은 이 법의 시행을 막기 위해 법무부는 일찌감치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도 제기하고, 아울러 시행일 전에 결론이 안 날 경우에 대비해 법 시행을 잠정 보류하는 처분을 해 달라는 청구도 제기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들은 이 법으로 초래될 사법체계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이면서도 지난 서너 달 동안 위헌 여부 결론은 고사하고 법 시행의 보류 결정조차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검수완박법은 내용 면에서 검찰 수사권을 대폭 제한(박탈)해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우리 형사사법 체계의 한 축이 돼 온 검찰의 역할을 뿌리째 흔드는 법이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법 통과 과정에서, 여야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기 위해 도입된 법사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소속 의원 1명을 ‘위장 탈당’시키는 절차상의 불법까지 자행했다.

 

 결과적으로 검수완박법에 따라 검찰의 손발이 묶이면 정치인들은 겁낼 곳이 없어 좋겠지만, 그 피해는 주로 형사사법적 구제가 필요한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큰 일반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검사들은 더는 비리의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는 힘든 일에 매달릴 생각을 않게 되고, 그에 따라 직무 의지나 역량도 차츰 줄게 된다. 사건 관계인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평면적 진술이 담긴 경찰 조사 서류만으로 판단하다 보면 현장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검사들 머리 위에서 지능범들의 교활한 범행과 비웃음은 춤을 출 것이다. 마치 퇴근 시간만 되면 불이 꺼지는 세종시 정부청사와 유사한 전국 각 검찰청사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런 검수완박법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는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이 지난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오늘(27일) 다시 열린다. 이번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출석해 청구인 측 입장을 설명한다고 한다. 검수완박법의 타당성과 합헌성 여부는 어차피 헌법재판관들의 직권적 판단 사안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코드에 관계없이 형사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정말 신속히, 또 정확히 결론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09.28  “얼마나 죽어야 구속시킬래?” 법원 향한 여성들 외침

 40대 남성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10대 여학생을 흉기로 위협해 납치하려 한 사건이 지난 7일 일어났다. 이 사람은 결국 경찰에 체포됐지만 이틀 후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났다. 미성년 성범죄 용의자가 피해자와 같은 아파트에 계속 살 수 있도록 법원이 허락한 것이다. 가해자와 마주칠 수 있게 된 피해자와 가족이 느꼈을 당혹과 공포가 어땠겠나. 한국여성변호사회도 기각 결정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논란이 되자 경찰이 불법 촬영 혐의를 더해 용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그제 다시 신청했다고 한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할 때 “도주와 재범,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가 없다”고 했다. 용의자는 미리 준비한 흉기를 들고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함께 승강기에 올랐다.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계획된 범죄였기 때문에 재범의 위험성을 누구도 배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용의자는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 피해자가 다시 범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상식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영장이 기각됐을 때 피해자의 아버지는 “사지가 떨렸다”고 했다. 판사는 무엇을 근거로 재범 걱정이 없다고 했는지 의문이다. 판사의 딸이 피해자였어도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겠나. 이 비판을 과하다고 할 수 없다.

 

법원은 사흘 전에도 여성을 스토킹하다가 접근금지 조치를 받고도 넉 달 만에 다시 스토킹한 남성에 대해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남성은 담장을 넘어 여성이 사는 집으로 침입하려다가 주민의 신고로 체포됐는데도 구속을 면했다. 여성이 신체적 위해를 당해야만 한국 판사들은 영장을 발부하는가. 신당역 살인 사건 역시 법원이 스토킹 단계에서 영장을 기각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작년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 올해 8월 말까지 스토킹 행위로 입건된 7152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254명에 불과했다. 법원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피해자와 가족, 이웃 주민이 겪는 공포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구속시키라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정은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미성년자, 여성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선 가해자의 인권이 아니라 피해자의 처지를 우선해야 마땅하다. 신당역 살인 사건 이후 법원 앞에 세워진 항의 팻말 가운데 “얼마나 죽어야 구속시킬래?”란 문구가 있었다. 모든 피해자와 가족들의 외침이란 것을 법원이 알았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28  실패한 제도가 치적이라는 대법원장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말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재판 지연’에 대한 진단이었다. 그는 그 원인으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꼽았다. 승진제 폐지 이후 “(판사들이 재판 지연) 통계에 신경을 안 쓰게 되니까 폐단이나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고, “법원장을 투표로 뽑는 것 자체로 곤란한 측면이 있고, 장차 재판 지연 요인으로 확실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두 가지 모두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진한 것이다. 대법관 후보자가 자신을 임명 제청한 대법원장의 핵심 정책을 공개 비판한 건 드문 일이다. 그만큼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이는 상당수 판사들도 인정하는 문제다. 차관급 예우가 주어지는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가 사라지니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유인이 사라졌고, 인기투표로 추천된 법원장들이 판사들을 평정(評定)하는 시어머니 역할을 하지 않아 법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김 대법원장 취임 후 5년간 민사소송은 3배, 형사소송은 2배로 늘어난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정책에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법관 관료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았던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는 나름의 명분은 있다. 하지만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대체 왜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이 제도는 각급 법원 판사들이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3명 이내로 선정하면 그중 한 명을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것이다. 민주적 사법 행정을 위해 대법원장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 반대의 부작용만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법원이 선거판처럼 변질되고 있다. 후보군인 판사가 다른 판사들에게 돌아가면서 밥을 사거나 ‘(나를) 꾸욱 눌러달라’는 내용의 소견문을 전달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면 실력 있는 판사보다 밥 잘 사고 정치 잘하는 판사가 법원장이 될 수 있고, 실제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적인 것도 아니다. 올 초 김 대법원장은 추천 투표에서 최다 득표자도 아니었던 판사를 법원장에 임명했다. 김 대법원장과 같은 모임 출신으로 문재인 정권에서 친정권 성향 판결을 했다는 지적을 받은 판사였다. 추천도 안 된 인물을 법원장에 임명한 경우도 있었다.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이 아니라 인사 재량만 넓혀준 역설적인 결과다. 과거 법원에선 누가 봐도 될 만한 사람이 법원장이 됐고 그것이 법원 인사의 큰 장점이었는데 이젠 그런 예측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더 큰 문제는 판사들의 인사 평정권자인 법원장들이 판사들 눈치 보느라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건이 밀려도 신경 쓰지 않고 워라밸에만 관심 두는 판사들이 늘어나고,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판사들은 “그런 문제 법관을 걸러내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 힘이 빠진다”고 한다. 이런 악순환의 피해를 국민들이 입고 있다.

 

그렇다고 고법부장 승진제를 되살리긴 어렵다. 이 제도가 갖는 부정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법원을 정상화하려면 적어도 그 제도에 담긴 신상필벌의 원칙은 세워야 한다. 그 점에서 이에 방해가 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폐지하는 게 맞는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은 얼마 전 ‘법원의 날’ 행사에서 이 제도를 치적인 듯 말했다. 현재 전국 21개 지방법원 중 13곳에서 시행 중인 이 제도를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판에 귀를 닫고 아집에 빠진 듯하다.

조선일보  최원규 논설위원

 

09월 29일  수력발전까지 망친 文정부의 보 해체

 김계현 前 한국대댐회 수석부회장, 인하대 명예교수

문재인 정권의 4대강 적폐가 드러나고 있다. 문 정부 시절 그 전 정부의 적폐청산에 그토록 공을 들이면서 4대강을 비난했지만, 실제로 드러난 사실은 거짓과 위선의 ‘내로남불’이다.

4대강 반대론자들은, 보(洑)는 홍수와 가뭄 등 치수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돼 있어 수질이 악화한다는 점을 증명해 보를 해체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환경법상 수질평가에 포함되지 않는 화학적산소요구량(COD)만 사용해 수질평가를 했다. 결과적으로 경제성 분석(B/C)에서 세종보와 죽산보, 공주보의 해체 결론을 이끌었다. 보 해체를 위한 명분을 만들려고 거짓으로 합법적 절차와 방법을 피해 간 것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2∼3년 전부터 4대강 보 개방에 따른 지하수위 저하와 지하수량의 감소, 오염 증가 등으로 상당수 민원이 발생했다. 이에 환경부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의 결정에 따라 총 16억 원이 넘는 보상금을 보 인근 주민들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보상액이 적은 데다 보상 기준이 없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피해보상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고 실제로 취수·양수장 이전(移轉)까지 고려하면 1조 원이 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이,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시대에 보를 개방하면서 보가 가진 수력발전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한 점이다. 4대강 16개 보의 개방 이후 물살에 밀려온 흙과 모래가 쌓이면서 수력발전의 핵심인 수위와 낙차가 줄면서 발전량이 줄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발전량은 박근혜 정부 때 비해 26% 줄고 매출액은 534억 원 줄었다.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는 전력 생산이 기존 대비 3%에 불과해 전력매출액이 1억 원도 안 된다. 완전 개방 결정이 내려진 공주보와 세종보, 백제보는 전력 생산이 전혀 불가한 ‘회생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이러한 발전 감소로 수력발전이 주로 기여하는 온실가스 저감 효과 역시 기존 대비 60% 수준으로 추락했다. 보 개방 이전에는 연간 11만4000t의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냈으나, 개방 이후엔 7만t으로 떨어져 지난 정부 5년간 총 18만t의 탄소 감축 효과를 포기한 셈이다. 잡음 많은 태양광 사업을 대규모로 펼치면서 ‘탈원전’ ‘탄소중립’을 외치던 문 정부의 대단한 위선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댐 건설을 적대시하고 보 해체를 추진해 온 문 정부가 10년 계획으로 4조3000억 원의 예산으로 3개의 양수발전소를 건설한다는 댐 건설 계획을 2017년에 세웠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간의 기술 발전과 환경 파괴, 매년 1800억 원에 이르는 양수발전 적자 등을 고려하면 신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대비한 백업 설비로 양수발전소 건설은 섣부르다고 지적한다. 기존 4대강 16개 보의 수력발전만 잘 가동해도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수력발전 시설은 제대로 가동하지도 않으면서 또다시 조(兆) 단위의 돈을 들여 새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대표적인 내로남불이다.

 

이제는 국민이 의식 수준을 높여 ‘반대를 위한 반대’란 악순환의 덫을 걷어치우고 내로남불 식 선택적 정의를 버려야 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에서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시대에 4대강 보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문화일보

 

09.30 ‘文 적폐’ 제보가 많지 않다는데

사드 3불, 태양광 전모 아직 베일
前 정권 인사들, 상관·요직 있어
‘적폐 제보 꺼려진다’는 공무원들
인사 속도, 인선 내용 재점검해야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사드 3불’로 중국에 군사 주권을 내줄 때 반대하다 불이익을 당한 외교관이 있다. 정권이 바뀌고 “이제 흑막을 제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예상 외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인사를 보라. 장관급만 바뀌었지 문 정권의 외교 적폐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잘나가고 있는데 무슨 제보를 하느냐”고 했다. 이름까지 말하며 “문 대통령 방중을 앞두고 중국 측 요구를 받아쓰다시피 한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좋은 자리를 얻지 않았느냐”고 했다. 섣불리 나섰다가 또 좌천당하기는 싫다는 것이다.

 

2018년 남북 군사 합의 당시 청와대와 국방부는 “군사훈련을 하지 못하는 서해 완충 수역 길이가 남북 각각 40㎞로 똑같다”고 했다. 북한에 양보한 게 없는 것처럼 자랑하듯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수역을 실제 측정해보니 남측 85㎞, 북측 50㎞로 우리가 35㎞를 더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문 정권은 왜 거짓말을 했는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고 여당 의원실이 국방부에 ‘35㎞ 진실’에 대해 수차례 설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지금껏 분명한 보고가 없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그 상황에 대한 국방부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국방부 인사는 “문 정권 군인들이 곳곳에 있는데 자신이 추궁당할 수 있는 문제를 사실대로 보고하겠느냐”고 했다. 그런 상관이 있으면 하급자는 제보하기도 어렵다.

 

검찰 관계자는 “문 정권 적폐에 대한 제보가 예상보다 많지 않다”고 했다. 통상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부의 내부 비리나 문제 등을 고발하거나 제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음해성도 있지만 더는 참을 수 없어 용기를 내는 제보자도 적지 않다. 자기 죄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 문 정권 적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강행하면서 “이 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친구를 당선시키려 한 울산시장 선거 공작,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전국적 태양광 비리,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 20여 차례 실패한 부동산 정책, 매표에 가까운 세금 뿌리기, ‘가짜 일자리’ 사업 등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적폐는 나열하기도 숨이 차다. 그런데도 제보가 원활하지 않은 이유는 윤 정부의 인사 문제와 관련 있을 것이다. 인사가 늦어져 이전 상관이 그대로 있거나 전 정권의 황당 정책을 밀어붙였던 인사가 다시 발탁된다면 제보할 용기가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때 공기업 낙하산 인사나 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편 ‘알박기’ 인사에 몰두했다. 차기 정권을 배려해 임기직 인사를 자제하던 관행은 무시했다. 문 정부 첫 환경장관이 구속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공공 부문 인사를 임기 전에 강제로 내보내선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을 역이용하기까지 했다. “문 정부가 나랏빚뿐 아니라 알박기 인사까지 떠넘겼다”는 여당 중진 말이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전 정부 탓만 할 수도 없다. 교육부 장관은 공백 50여 일 만에 다시 내정됐다. 교육부 물갈이 인사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 장·차관 인사가 늦어진 부서일수록 ‘적폐 제보’도 드물다고 한다. 공무원 편 가르기, 줄 세우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 국민이 왜 정권 교체를 선택했나. 공직 내부가 침묵하면 적폐는 드러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인사 속도와 인선 내용을 다시 점검하길 바란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