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2-09/ 09.01 또 남침·자유 빠진 시안, 상식적 교과서 갖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 09월 30일 日 참가한 대잠 훈련과 野의원 反안보
自主國防 2022-09/
09.01 또 남침·자유 빠진 시안, 상식적 교과서 갖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2025년부터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배울 ‘2022년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試案)에서 ‘남침’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6·25전쟁에서 ‘남침으로 시작된’이라는 설명을 빼 전쟁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가렸고, ‘대한민국 발전’ 단원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민주주의’라고 표현한 것이다.
교육부가 이런 시안을 발표한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구성한 정책 연구진이 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교육 알박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더라도 시안을 받은 새 정부의 교육부가 손을 놓고 있다가 문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공개한 것은 나태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교육부는 뒤늦게 “논란이 많은 부분은 국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수정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몸사리기식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남침’이나 ‘자유민주주의’는 논란거리일 수 없는 용어다. 남침은 너무나도 명백한 역사적 사실인데 굳이 그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학자들은 그 속마음이 뭔지 알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으면서 왜 ‘자유’라는 표현을 빼지 못해 안달인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자 문화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성취를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하지 않고 왜 깎아내리려고 애를 쓰나. 우편향 교과서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상식적인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알 수 없다. 교육부는 문제 부분을 대폭 수정하든지 아니면 이 교육과정 시안은 폐기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연구진이 새로 만들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 역사 교과서는 조선 후기까지에 23%만 할당하고, 나머지 150년밖에 안 되는 근현대사에 77%를 배정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남북 화해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북이 핵폭탄 미사일로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데 무슨 망발인가. 근현대사 분량을 줄이고 학계에서 정설로 굳어진 사실만 가르치는 것이 맞는다.
조선일보 사설
09.01 6·25 ‘남침’ 표현 뺀 좌편향 교육과정 바로잡아야

▲1994년 한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6.25 전쟁기록 복사본을 받고 있다. 이 기록엔 북한의 '남침' 사실이 명시돼 있다. [중앙포토]
교육부,‘자유민주주의’서 ‘자유’도 삭제
헌법과 객관적 사실 왜곡한 역사관 유감
교육부가 그제 공개한 ‘2022년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은 역사 왜곡과 편향된 시각으로 점철돼 있다.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고, 시·도 교육감이 교육 기준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어 우려스럽다.
내용을 보면 참담하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사실까지 무시하고, 헌법과도 충돌하는 편향된 시각이 넘쳐난다. 연구 책임자가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든 영웅”이란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사람이니 교육과정 개발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장 큰 오류는 6·25와 관련해 ‘남침(南侵)’ 표현을 삭제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침략 사실을 숨김으로써 왜곡을 낳는다. 특히 ‘이승만이 침략을 유도했다’ 같은 1980년대 운동권의 수정주의 역사관이 다시 나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남침’은 이미 논쟁이 끝난 사안이다.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70년 미국에서 출간한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1949년부터 스탈린을 찾아와 남침을 주장했고, 스탈린은 묵인했다”고 밝혔다. 1993년 러시아 문서보관소에선 ‘남침’을 입증하는 결정적 문서까지 발견됐다.
지금은 러시아 교과서들도 ‘남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교육과정 개정 때도 ‘남침’ 표현을 삭제하려 했다.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긴 했지만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한 것도 문제다. 2018년에도 ‘자유’를 빼려다 비판 여론 끝에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을 넣었다. 그러나 이번엔 이것마저 빼버렸다. ‘자유’ 삭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엔 자유주의가 내포돼 있어 필요없다’거나 ‘자유는 남북 대립을 강조하는 용어’라고 한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위해 쓴 말이 아니다. 자유주의가 빠진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의미가 크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의사결정 방식 특성상 다수의 횡포로 흐를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다수의 횡포를 막는”(『자유론』) 자유주의가 있어야만 ‘입법독주’나 ‘포퓰리즘’ 같은 반지성주의를 견제할 수 있다.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명시한 것도 같은 이유다. 자유주의를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 질서를 무시하는 내용의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연구라지만 출범 100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핑계는 안 통한다. 교육부에 단단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조차 왜곡하고, 편향된 역사관을 주입하는 교육과정 시안을 조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9-01 檢, ‘서해 공무원 피살’ 관련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은 이날 오전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된 대통령기록물을 확인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2020년 9월 해경과 군이 서해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에게 월북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한 배경에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개입이 있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이날 압수수색에 대해 박지원 전 국정원장 측 소동기 변호사는 “검찰이 오전에 갑자기 압수수색을 하겠다며 참관 의사를 물어왔다”며 “미리 통보하지 않아 참관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소 변호사 측에 긴급하게 압수수색이 필요한 경우 당사자에게 압수수색 시점과 장소를 미리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과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의혹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김태훈)도 지난달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과 압수물 분석을 끝내는 대로 핵심 피고발인 소환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09.05 김정은 한마디에 날아간 기업 재산 2조… 北의 ‘민족공조’는 허상
골프장 850억, 호텔 등 시설 7800억, 문화회관·온천장 1000억…
김정은 지시 후 20개월 만에 원위치, 관광객 피살은 사과도 없어
남북 경제협력은 ‘사상누각’… 향후 북에 투자할 기업 있겠나
금강산 아난티 골프장의 마지막 홀은 주말 골퍼들에게는 꿈의 홀이었다. 그린에 공을 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홀로 굴러 내려가는 깔대기 구조였다. 하지만 남측 골퍼들이 깔대기 홀에 공을 올려 마지막 버디를 기대하는 장면은 물 건너갔다. 북한이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인 아난티 골프장(18홀)과 리조트(96실) 단지를 모두 철거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위성사진을 근거로 최근 보도했다.
건설 당시 골퍼들에게 기대를 모았던 골프장과 리조트는 국내 리조트 기업 아난티가 850억원을 투자해서 건설했다. 2008년 오픈을 앞두고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돼 정식 개장하지 못했다. 2000년에 개장한 해금강호텔 등 7800억원이 투입된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도 좌초됐다. 한국관광공사가 1000억원을 들여 건설한 문화회관·온천장은 물론 대한적십자사가 남북협력기금 540억원을 투입해 건설한 12층 규모의 이산가족면회소 등 21개 시설물도 철거 및 개조되었다. 패밀리마트 등 49개 중소 업체도 1933억원을 투자했으나 손실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 소방서, 도로 개설, 사업권 대가 등 부대 비용은 계산도 어렵다. 1998년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간에 ‘합의서’가 체결되어 11월 해로 관광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우여곡절 끝에 완전 막을 내렸다. 당연히 2조원 상당의 적지 않은 투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공산주의 이념을 간과하고 민족을 앞세운 비즈니스에 대한 비싼 수업료였다.

▲/그래픽=이철원
2019년 10월 김정은 위원장은 갑자기 눈 덮인 백두산에 백마를 타고 나타나더니 금강산으로 내려가서 폭탄선언을 했다. 김정은의 백마 탄 사진이 노동신문에 게재되자 전례 때문에 전문가들은 긴장했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김정은이 백두산에 오를 때마다 새로운 ‘전략적 노선들’이 제시되고 ‘세상을 놀래 우는 사변’들이 일어났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주일 만에 드러난 백마의 결단은 금강산 시설 철거였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협 사업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이라고 선전해 왔다. 하지만 김정은은 남북 경협의 상징인 금강산 사업에 대해 “잘못된 정책”이라고 혹평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그는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선대의 정책을 대남 의존적이라고 정면 비판한 것은 북한에서 이례적이다. 김정일이 합의한 사업을 아들이 단번에 엎어버렸다.
김정은의 지시 이후 20개월 만에 금강산은 원위치 되었다. 금강산은 기암괴석과 계절별로 변화하는 풍광은 특이하지만 산중턱 바위에 붉은 글씨로 ‘김정일 장군 만세’ 같은 정치 구호가 새겨져 있는 바위산으로 되돌아갔다. 금강산 관광 당시 멀리서 바라본 온정리 북한 주민 마을은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나마 현대아산과 관광공사 등에서 숙박 편의시설 등을 건설하여 최소한의 관광지 모습을 갖추었으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에 대한 진상 규명도 북한의 사과도 없이 종료되었다.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이라던 관광사업도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이제 다시는 관광사업에 거액을 투자할 기업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20여 년 만에 막을 내린 금강산 시설 철거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 신뢰 구축은 물론 경제협력도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주었다. 아난티 측은 “금강산 사업이 종료돼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현재 보유 중인 전체 자산이 1조3000억원이 넘고, 운영 중이거나 새롭게 추진하는 플랫폼이 7개나 된다”며 “500억원 자산에 의해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손상되는 것보다는 깨끗하게 정리하고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대북 사업이 국내 및 해외 사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전격 정리한 것이다. 향후 어느 기업이 북한에 투자할 것인지 불투명하다. 어떤 정부라도 왜곡된 정보를 기반으로 북한에 투자하도록 무리하게 기업들의 등을 떠미는 데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장밋빛 전망으로 기업들을 사지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둘째, 남북한 당국 간의 합의서라도 평양의 변심으로 일순간에 휴지 조각으로 변한다. 2003년 발효된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상사분쟁조정 및 청산결제 등 4대 경협 합의서는 국제 규범을 모방했지만 무용지물이 되었다. 경제협력이 정치적 화해를 가져온다는 유럽통합 방식의 기능주의(functionalism) 접근은 한계에 도달했다. 통일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의도가 무엇이든 우리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방적인 조처는 안 된다며 북측에 설명을 요구했으나 무응답이다.
셋째, 향후 금강산에는 남측을 대신할 투자 기업은 물론 관광객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의 금강산 현지 지도 뒤인 2019년 11월 “온 세상 사람들이 와 보고 싶어 하는 세계 제일의 명산은 명백히 북과 남의 공유물이 아니며, 북남 화해 협력의 상징적 장소도 아니다”며 “금강산을 우리 식으로 훌륭하게 개발할 것이고, 거기에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 식 개발’을 주장하지만 북한 경제는 금강산을 개발할 자금 여력이 없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국제 기업은 더더욱 없다. 찾아올 관광객도 없다.
북한이 중국 관광객을 유치해서 금강산 관광을 활성화시키려는 전략은 착각이고 오판이다. 금강산은 한국인이 애호하는 명산일 뿐이다. 금강산에 무관심한 중국인들이 교통도 복잡한 지역까지 대규모 관광을 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강산의 고객은 남측 관광객 이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금강산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이산가족면회소도 있었는데 북한이 이들 시설을 일방적으로 철거함에 따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국제사회의 비난 대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밝히며 북한 비핵화에 당근을 제시하였다. 식량부터 금융까지 경제의 전 분야에 걸친 종합선물세트에 가까운 경제협력이다. 금강산 시설 철거는 북한의 비핵화 행동을 누가 담보하며 보장할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 민간기업과 약속한 관광사업조차 일방적인 철거로 계약을 파기하는 평양과 비핵화 논의를 추진하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과제다.
북측에 마지막 남은 우리 자산은 안동대마방직 등이 평양에 투자한 시설과 123개 기업이 개성공단에 건설한 공장들이다. 최근 개성공단 무단 가동과 자재 훼손 등이 위성사진을 통해 감지되고 있다. 남북 관계 최후의 보루인 개성공단 시설의 운명도 금강산 관광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투자한 기업인들은 노심초사한 모습이다. 2020년 300억원이 투자된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하루아침에 폭파되는 현실이니 걱정이 태산이다. 협상에서 입만 열면 큰소리치던 민족 공조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평양은 답을 해야 한다. 김여정이 나서서 윤 대통령에 대해 인간 자체가 싫다는 등 인신공격만 하지 말고.
09월 05일 대한민국 정체성 흔드는 초등 교과서도 빨리 시정해야
국정(國定) 체제에서 검정(檢定)으로 전환되는 2023학년도부터 3년 동안 초등학교 5∼6학년이 사용할 사회 교과서도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흔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달 31일 ‘검정 합격’을 발표한 11종 중 9종은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조차 언급하지 않은 사실 등을 조선일보가 5일 보도했다. 문재인 전 정부가 2018년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표현만 넣었으나, 2종의 검정 교과서 외에는 이마저 뺐다.
문 정부가 만든 검정 기준에 따른 것이지만, 그런 내용조차 걸러내지 않고 일선 학교의 채택 대상으로 내놓은 윤석열 정부도 무책임하다. ‘1948년 12월 유엔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는 엄연한 역사마저 통째로 삭제한 문 정부를 그대로 좇은 검정 교과서도 7종이다. 문 정부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한강의 기적’을 삭제하고, 문 정부가 떠받든 ‘촛불 집회’ 사진으로 대체한 역사 왜곡과 정치적 선동을 답습한 검정 교과서도 8종에 이른다.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북한군이 최초로 남쪽의 민간인 거주지역을 무력 공격한 연평도 포격 도발을 다룬 교과서는 단 1종이다.
이대로 방관하면 향후 변경될 교육과정에 따른 새 검정교과서는 2026학년도부터 사용하게 된다. 그럴 순 없다. 그 전에도 역사관·국가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반(反)대한민국 교과서로 배우게 해선 안 된다. 재검정을 통해서라도 빨리 시정(是正)해야 한다. 교육부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초등학교 ‘사회’와 고등학교 ‘한국사’의 교육과정 시안(試案)도 문 정부의 ‘반역사’ 인식에 따른 것인 만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윤 정부의 책무다.
문화일보 사설
09.08 유언이 된 故 한상국 상사 어머니의 말 “다시는 당하지 말라”

▲'제2연평해전' 전사자 고(故) 한상국 상사 모친 문화순 여사가 작년 6월29일 국립대전현충원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에서 아들의 묘비를 닦고 있다. 2021.6.29/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제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상사의 모친 문화순 여사가 지난 5일 76세로 별세했다. 제2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의 기습 도발로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 윤영하 정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한 전투다. 끝까지 조타실을 지키다 전사한 조타장 한 상사는 참수리호와 함께 수몰됐다가 41일 뒤 발견됐다. 20년 만에 아들 곁으로 떠난 것이다. 그의 20년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전사자와 유족을 국가가 어떻게 기념하고 처우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시간이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장병들이 전사한 다음 날 월드컵 결승전 관람을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북한의 계획적 도발이 명백함에도 정부는 “우발적 사고였다”고 했다. 한동안 전사자 추모식에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물론 국방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전투 직후 전사자 유족에게 위문 편지를 보낸 고위급 인사는 주한 미군 사령관이 유일했다. 전사자 유족에게 지급한 보상금도 군인 월급 36개월 치가 전부였다. 한 상사의 아내는 무심한 나라를 원망하면서 미국으로 떠났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북한 눈치 보기는 결국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더 수위가 높은 북한의 도발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전사자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10년 뒤, 유족들이 특별법을 통해 제대로 보상받게 된 것은 16년 뒤였다. 당연히 사망 직후 이뤄져야 했을 일들이다. 그나마 문씨를 비롯한 유족들의 끈질긴 호소와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도 늦었지만 한국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역할을 했다. 당시 영화를 본 문씨는 “고맙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상사를 비롯한 전사자 이름은 2015년 신형 미사일 고속함의 이름으로 명명됐다. 당시 한상국함에 승선한 어머니 문씨는 승조원들에게 “지금도 눈물을 참고 있다. 다시는 당하지 말라”고 말했다. 모든 유가족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전사자의 어머니가 한국 사회에 남긴 값진 유언이 됐다.
조선일보 사설
09.09 北 ”지휘부 공격땐 자동 핵타격”...이산가족 제안한 다음날 핵위협
총 11개항…”핵무력 국무위원장이 유일적 지휘·모든 결정권”
조선중앙통신은 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정책이 법령으로 채택됐다고 전했다. 이 정책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심으로 한 지휘부가 유사시 타격을 받게 되면, 각 작전부대에 수립된 핵공격 작전계획이 자동으로 시행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 정책이 공세적임을 적시하는 조항을 대외적으로 발표함에 따라 파장이 예상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전날 “남북 당국 간 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할 것을 북한 당국에 공개적으로 제의한다”고 밝히자, 하루 만에 북한은 핵무력 기조를 공개적으로 꺼낸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한 당국자 회담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북한의 강경한 기조로 회담이 당장 성사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북한이 발표한 핵무력 정책은 1항부터 11항까지 번호를 붙여 차례로 핵무력의 사명, 핵무력의 구성,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 핵무기 사용 결정의 집행, 핵무기의 사용 원칙, 핵무기의 사용 조건, 핵무력의 경상적인 동원태세, 핵무기의 안전한 유지관리 및 보호, 핵무력의 질량적 강화와 갱신, 전파방지, 기타 등으로 구성됐다.
3항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에선 북한은 “핵무력은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며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절대적 권한을 명시했다. 이어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밝혀 김 위원장에 대한 공격 시 자동으로 핵 반격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법령은 ‘핵무기의 사용조건’으로 ▲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륙무기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 국가의 중요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꼽았다.
또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해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까지 총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우리의 핵 그 자체를 제거해버리자는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핵을 내려놓게 하고 자위권행사력까지 포기 또는 렬세하게 만들어 우리 정권을 어느 때든 붕괴시켜버리자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한국과 미국, 일본의 안보 수장은 1일(현지 시각) 미 하와이에서 만나 북핵 문제와 첨단 기술, 공급망 협력에 대한 삼각(三角)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미·일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강력한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선일보 주형식 기자
월간조선 09월 호
단독, 국정원 고위 간부의 충격 증언 |
문재인 국정원, 김정은 답방 대비 별장과 요트 구입
“김정은 위한 제주도의 연회장 및 숙소 비용 220억원 책정… 강원도 고성에도 50억 투입 준비”
⊙ “2019년 6월 즈음, 김정은 답방 시 일행이 머물 16억짜리 파주 별장 사들여”
⊙ “서훈 전 원장의 최측근이 ‘별장’ 지번까지 알려주며 구입 지시”
⊙ “별장 안에 비치한 탁자는 6000만원짜리”
⊙ “6억~7억원 상당의 요트도 구입… 인천 송도에 정박”
⊙ “제주도에 연회장 및 숙소 짓는 비용으로 220억원 책정하기도”
⊙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답방 성사 위해 사람 목숨을 제물로 바쳤으면서 발뺌하는 모습 보고 폭로 결심”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정은 답방(答訪)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는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의 증언이 나왔다.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 A씨는 기자와 만나 “2019년 6월 즈음 서훈 전 국정원장 최측근(국정원 간부)의 지시로 김정은이 답방할 경우에 대비, 그 실무자들이 사용할 별장을 16억원에 구입했다”며 “서 전 원장의 최측근은 건물 지번까지 알려주며 해당 건물을 구입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국정원이 별장을 구입한 시기(2019년 6월) 청와대 또한 김정은 답방에 대비,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2019년 5월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난번에 아주 구체적으로 (김정은이) 올 것 같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준비는 이미 많이 해놨다”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준비는 다 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탁 전 비서관은 “꼭 대대적으로 환영한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니라 남북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아주 구체적이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준비해놔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은 2018년 9월 평양에서 김정은의 서울 답방에 합의했었다. 김정은은 9월 19일 ‘가까운 시일 내’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문 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국정원이 구입한 별장은 파주에 있다. 건축물대장상 2층으로 등재됐지만 실제로는 3층 건물이라고 한다. 불법 개조 건물이란 이야기다. A씨는 “구입한 별장의 시가는 6억~8억원 내외였는데, 실제 16억원을 주고 샀다”며 “주인이 서 전 원장의 최측근과 관련이 있다는 의심이 국정원 내부에서 돌았다”고 했다.
사들인 별장의 정확한 주소를 묻는 말에 “국가 안보를 위한 작전에 사용될 수 있는 만큼 알고 있지만, 국익을 위해 밝힐 수는 없다”고 했다.
별장 구입 내막을 잘 아는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그들은 만약 주소를 파악하더라도, 국정원에서 절대 확인해주지 않거나 못 할 것이라고 했다. 지인의 별장을 웃돈을 주고 산 만큼 숨기려고 하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뒀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16억 별장과 6000만원짜리 탁자
A씨의 증언은 계속 이어졌다. 16억원을 주고 사들인 파주 별장 거실에 둘 탁자도 구입했는데, 금액이 무려 6000만원이었다는 것이다. 2017년 한 정당 원내대표 회의실에 여러 개 붙여놓은 대형 탁자가 1000만원가량이라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국정원이 김정은 일행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산 탁자는 비싸다고 비판받았던 국내 한 정당의 원내대표 회의실 탁자 가격보다도 6배나 비싼 셈이다.
“탁자 또한 서 전 원장의 최측근인 국정원 고위 간부가 직접 이 물건을 사라고 지시했습니다. ‘일반 직장인의 1년 치 연봉에 가까운 초고가 탁자를 꼭 사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진 (국정원) 직원들도 많았습니다.”
코로나19 시국에도 평양의 비밀 관저 단지와 휴양지에 있는 별장 근처 등에 새 초호화 수입 자재로 저택을 지으라고 명령한 ‘명품광’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2020년 11월 10일 김정은은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인민들에게 재난을 이겨내자는 말과 함께 울컥하며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이때 살짝 들린 그의 왼쪽 소매에선 금빛 곡선형의 시계 테가 번쩍였는데, 스위스 IWC사(社)의 ‘포르토피노 오토매틱’ 제품이었다. 이 시계는 1만1700스위스프랑(약 1450만원) 상당이다.
요트도 구입

▲문재인 국정원은 김정은의 답방에 대비해 6억~7억원 상당의 요트도 구입했다. A씨는 “김영철 등 일행을 태워 바다를 구경시켜주기 위해 중고 요트를 구입했다”고 했다. 사진의 요트는 국정원이 산 요트와 전혀 상관없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이다. 사진=조선DB
대북 소식통은 “경제난·태풍피해·코로나19 등 삼중고로 인민을 걱정한다며 울먹이던 김정은의 손목에서 인민의 생활과는 한참 동떨어진 금빛 시계가 번쩍였다”고 비꼬았다. 이런 김정은을 위해 문재인 국정원은 세금으로 6000만원짜리 탁자를 산 것이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국내 가구업체 현대리바트는 최근 최고급 프리미엄 식탁을 선보였다고 광고했는데, 이 식탁 가격은 5000만원이었다.
문재인 국정원은 김정은의 답방에 대비해 6억~7억원 상당의 요트도 구입했다. A씨는 “김영철 등 일행을 태워 바다를 구경시켜주기 위해 중고 요트를 샀다”고 했다. 이 요트는 인천 송도에 정박돼 있다. ‘직원 훈련용’으로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연간 4000만~5000만원의 관리비가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잘 알려졌다시피 김정은의 요트 사랑은 유별나다. 김정은은 최소 4척의 호화 요트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2022년 2월 김정은의 별장이 있는 강원 원산 앞바다에 등장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는 2월 15일(현지 시각)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랩스가 촬영한 사진에서 지난 8일과 9일 원산 앞바다에서 김정은의 호화 요트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길이 80m의 이 요트에는 이중으로 된 나선형 워터슬라이드와 올림픽 경기장 규격의 수영장도 있다. 또 다른 김정은 소유의 호화 요트는 갑판을 파란색 차양이 덮은 특징이 있다. 50m 길이의 요트다. 2021년 12월 초부터 김정은의 원산 전용 해변부두에 정박돼 있다.
김정은은 ‘프린세스 요트’사의 95MY 모델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격은 약 80억원가량이다. 북한은 유엔의 사치품 수입 금지 조치 때문에 2006년부터 무기 등과 함께 요트, 보석, 고급 자동차 등 고가의 외제 품목 수입에도 제한을 받아왔다. 김정은이 정상적으로 해당 요트를 구매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제주도와 김정은의 인연

▲2014년 1월 26일 제주시 봉개동의 ‘탐라 고씨 신성악파 흥상공계(興祥公系) 가족 묘지’에 북한 김정은의 외조부 고경택과 외증조부 고영옥 및 친족들의 묘 14기가 조성돼 있었다. 평장(平葬) 묘 13기와 봉분이 있는 묘 1기로 구성돼 있는데, 북한에서 사망한 고경택의 묘는 시신이 없는 허총(虛塚)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사진=조선일보 이종현
문재인 국정원은 김정은이 방한하면 파주, 고성(강원도), 제주도를 둘러보게 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방한 중 제주도에서 회담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었다”며 “제주도에 연회장 및 숙소를 짓는 비용으로 220억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김정은 방한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흐지부지됐다”고 했다. 그는 “고성에도 50억 정도를 들여 김정은 일행이 머물 수 있는 곳을 새로 짓거나, 사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제주도는 김정은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회담 장소로 제주도를 유력 검토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2014년 1월 《조선일보》는 김정은의 외조부 고경택(高京澤)의 허총(虛塚·시신이 묻히지 않은 묘)과 외증조부 고영옥(高永玉)의 묘지가 제주도 제주시 봉개동에 조성돼 있다고 특종 보도했다. 고경택 묘 비석에는 ‘1913년 태어나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9년 귀천하시어 봉아름(봉개동의 제주사투리)에 영면하시다. 사정에 따라 허총을 만들다’고 적혀 있었으며, 아버지 고영옥과 아들 여섯 명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고경택이 1913년 출생 후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은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였다. 제주도 출신인 고경택은 1929년 일본으로 갔다. 그의 딸인 고용희는 1953년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1961년 아버지 고경택이 인신매매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가 추방되자 아버지를 따라 북한으로 이주했다. 일본의 대북 인권단체 ‘아시아인권’의 가토 켄 대표에 따르면 고경택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화학공장에서 일했으며 고용희는 만수대 예술단의 무용수로 있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 그러고 정철·정은 형제와 딸 김여정을 낳았다. 그러나 생전 김일성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왜 최북단 고성을 방문지 중 하나로 택했을까?
정부의 한 소식통은 “김정일에게는 성혜림, 김영숙, 고용희, 김옥 등 4명의 부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버지 김일성의 인정을 받은 부인은 김영숙”이라며 “고용희는 세 번째 부인으로 김일성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생일을 공개적으로 축하하는 행사를 하지 않고 있는데 재일동포로 출신 성분이 낮은 어머니를 우상화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조선일보》 보도 후 고경택의 허총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언론 노출에 부담을 느낀 친족 고모씨가 묘를 옮긴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고경택의 친형 고경찬의 손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업소(제주시 구좌읍)로 옮겼다고 한다. 이 손자는 고경택의 친형 고경찬(高京贊)의 넷째 아들 고승훈(承勳)의 아들로, 김정은과는 6촌 관계다.
강원도 고성은 최북단이다. 이곳의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지역 위장마을 입석리가 보인다. 최북단인 만큼 고성을 통해 월북한 사람이 많다. 만약 김정은의 방한이 이루어져 방문지 중 하나인 고성을 찾았다면 탈북자들에게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최근 10년 새 북한 군인과 주민들이 비무장지대(DMZ)와 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순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김정은이 주요 탈북 루트로 떠오른 고성을 방문한다면 ‘탈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메시지가 됐을 것이란 이야기다.
전직 정보 당국 관계자는 “군사 요충지에 김정은을 초대하려고 한 발상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계획이 사실이라면) 이곳에서 ‘평화’를 외치면 좀 더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고 했다.
폭로를 결심한 이유
국민의힘은 전·현직 국가정보원 직원이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국정원직원법 개정에 나선 상태다. 개정안을 보면 전·현직 국정원 직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언론 등을 통해 직무상 습득한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비밀 누설’의 범위를 구체화했다. 또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할 경우 벌금액을 징역 1년당 1000만원의 비율로 개정한다고 했다. 이 법안은 소위 ‘박지원 방지법’으로 불린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퇴임 이후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른바 ‘국정원 X파일’ 등을 언급해 논란이 됐는데, 이 같은 사례를 막겠다는 의도로 법안 개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 여부를 떠나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국정원직원법(제17조)에 따라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음에도 A씨는 문재인 국정원이 감춰두려 했던 비밀의 문을 열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A씨의 답은 간단했다.
“2019년 11월 일어난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해 일종의 ‘성의 표시’ 차원에서 귀순 어민을 강제 북송한 것에 분노, 폭로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흉악범이라고 해도 사람 목숨을 제물(祭物)처럼 다룰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국정원 직원
“(강제 북송은) 문제라고 생각”
실제 당시 대북 부서에서 활동한 전직 국정원 직원 B씨는 “당시 (강제 북송은) 문제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대북 부서에서 근무하던 B씨는 강제 북송 이듬해 사표를 내고 국정원을 떠났다. B씨는 당시 강제 북송에 관한 ‘윗선’ 지시에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그(국정원) 안에 있는 많은 직원은 국가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이런 일만 국민에게 알려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 앞으로는 정보기관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낸 건 2019년 11월 5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정부는 동해로 넘어온 탈북 어민 2명을 추방하겠다고 북한에 서면으로 통보했다. ‘김정은 초청장’에 ‘어민 북송문’을 동봉한 셈이다. 북이 6일 “보내라”고 하자 7일 곧바로 북송했다. 북 어민들은 우리 측에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포승줄에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판문점으로 이송됐다. 이들은 북한군 병사를 보는 순간 털썩 주저앉았다.
이들 중 하나는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판문점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문재인 정권의 경찰특공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당황해 “야야야” “잡아”라고 소리치며 어민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결국 이 어민은 호송 인력에 둘러싸여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가듯이 앞으로 끌려가 군사분계선(MDL) 너머 북한군에게 인계됐다. 북한으로 끌려간 이들은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反인권적 행태
탈북 어민 2명의 강제 북송과 관련, 국제 인권단체들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인 한국의 반(反)인권적인 행태에 대해 비판하는 상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 관계자들은 “이들은 동료를 살해한 흉악범”이기 때문에 강제 북송이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상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헌법 3조에 따라 북한은 대한민국의 미수복 영토이고 우리 주권이 미치는 영역이라는 게 헌재와 대법원, 헌법학계의 주류적 해석이다. ‘북한 주민’도 국민인 이상 국가는 헌법에 따라 ‘남한 주민’과 같은 대우를 해야 한다. 16명 살해 혐의도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확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그들을 ‘살인마’로 처리할 권한은 없다. 26년 전 ‘페스카마 15호’에서 한국인을 포함해 선원 11명을 살해했던 조선족 6명은 한국 국적이 아닌데도 국내 법정에 섰었다. “딱하지 않으냐”며 2심 변호를 맡았던 이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이용준 전(前) 외교부 북핵대사의 지적이다.
“부끄러운 사건의 은폐된 실체가 많은 증언과 증거로 밝혀지고 유엔, 외국 정부, 국제 인권단체 등의 비판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사건 관계자와 후견 세력 중 속죄하거나 반성하는 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탈북 어민 2명, 김정은 비판 격문 쓰고 탈출한 인물이란 소문도
게다가 일각에서는 그들이 과연 16명을 살해한 살인자가 맞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살해 흔적이 그들이 타고 온 배 안에 남아 있지 않아서다.
북한 인권운동가로 관련 정보가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 도희윤 (사)행복한통일로,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강제 북송된 후 처형된 2명의 청년이 원산·갈마지구 돌격대 소속 노동자였다는 소문도 돈다”고 했다.
도 대표는 “김정은은 자신의 숙원사업인 강원도 원산·갈마 해안 관광지구 완공을 위해 돌격대를 구성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북송한 청년 2명은 돌격대 소속으로 무자비한 노동에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김정은을 비판하는 격문을 내걸었는데 발각돼 탈북한 것”이라고 했다.
돌격대는 북한의 주요 핵심사업 추진을 위해 전국에서 차출된 젊은 인력을 뜻한다.
도 대표의 주장을 종합하면 이 두 청년은 강원도 원산·갈마 해안 관광지구 공사에 강제로 투입됐는데,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위협을 느꼈다. 참다못해 두 청년은 김정은을 비판하는 격문을 썼는데 발각됐다. 북한에서 김정은을 비판하는 것은 공화국 전복죄에 해당, 걸리면 대부분 처형된다. 죽음의 위기에 두 청년은 어선을 이용, 탈북을 시도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살인자’라며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북 어민 강제 북송,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 등을 보면 결국 김정은 답방을 얻기 위해 평양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무조건 금기로 여겨 벌어진 일로 볼 수 있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김정은 답방’이 명시된 이후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답방’에 총력을 기울이던 상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부산 초청이 무산되고 나서도 “김정은 위원장 답방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지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하자”(2020년 1월 신년사)고 하는 등 김정은 답방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원 “보안상 확인해줄 수 없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지난 정부가 온갖 무리수를 두며 평양 지도자의 답방을 성사시키려고 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대북 불신을 해소하는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가 약속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서울 답방’만 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민족 공조라는 키워드를 우리 국민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서울과 부산 혹은 ‘평화의 섬’ 제주 등지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깜짝 등장하는 것이 절실했다. 긍정적인 여론몰이의 최적 소재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6·15 공동선언 제2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는 묘한 말장난이다. 이렇게 알 듯 말 듯한 조항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답방이 필수적이었다. 공허한 통일 논의를 촉발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던 셈이다.
셋째, 비무장지대(DMZ)의 대북 방어 태세를 이완시키려는 전략이었다. 남북 최고지도자의 초법적 행태로 DMZ를 무력화(無力化)하면, 평화가 온다는 망상이었다. 9·19 군사합의로 경계 태세가 흐지부지된 상태에서 답방이 이뤄지면, 종전(終戰)선언으로 유엔사를 해체할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귀순 어민을 제물로 바쳤지만,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까지 염원했던 ‘김정은 답방’은 결국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을 북한 주민들에게는 못 믿을 나라, 국제적으로는 반인권 국가란 평가를 받게 한 셈이다. 국정원은 전직 직원 A씨의 폭로와 관련 “보안상 확인해줄 수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09월 호
일본 초계기 사건의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
왜 백골에 가까운 아사 직전 북한인들을 단 하루만에 北으로 돌려보냈나?
⊙ 1함대 기함인 광개토대왕함이 왜 북한 어선을 구조하겠다고 수백km 이상을 달려 일본 코앞에까지 갔을까?
⊙ 일본 초계기와 갈등까지 빚으면서 북한 어선 1척 구조해 북에 송환했다?… 말도 안 되는 사건
⊙ 日 언론, 당시 북한 선박은 단순 어선이 아니라 공작선 가능성 제기
⊙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판박이
도희윤
1967년생.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리베르타스 대표, 행복한통일로 대표, 한국자유회의 사무총장, 뉴라이트전국연합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이후, 국가권력에 의해 조장된 반일(反日)감정이 극한에 달했던 즈음의 일이다. 필자는 음료수를 사기 위해 동네 근처의 GS25 편의점을 찾았다. 참으로 놀라웠던 것은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 앞에 ‘저희는 일본 제품을 팔지 않습니다’라는 자그마한 문구가 붙여져 있었다. 지금까지 한일 관계의 롤러코스터를 수없이 겪었던 터이지만, ‘이건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원래 기업이라는 곳은 남극에서도 냉장고를 팔아야 하고, 국경과 이념, 인종을 떠나 어디든 교류와 상생이 기본가치여야 하는데, 하찮은(?) 하류 선동정치에 이렇게까지 휘둘리는 것을 보자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화기 관제 레이더 공방에 묻힌 북한 어선
이성이 마비된 야만의 현장에서 더는 지성은 설 곳이 없었던 2018년 12월 20일, 한일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을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을 겪게 된다.
동해의 대화퇴어장 부근에서 일본 초계기가 한국 군함으로부터 공격용 레이더를 조사(照射)당했다는 일본발(發) 뉴스가 터졌다. 보도된 내용으로 봐서는 무력(武力) 충돌까지 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으로 인식되었다. 일본 측의 격앙된 반응 속에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의외로 담담히 대응하는가 싶더니 곧장 반일(反日)감정에 불을 댕기는 공세를 시작했다. 양국 간의 치열한 진실 공방 속에 공격용 레이더 조사의 핵심 연유나, 대화퇴어장에 한국 군함과 해경 구조함이 동시에 출동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급기야 일본 측이 당시의 초계기 촬영 영상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한국 군함인 ‘광개토대왕함’과 해경 구조함 ‘삼봉호’가 가운데 작은 어선을 두고 방어막을 치듯 마주 보고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 당국이 주장한 바와 같이 조난당한 어선을 구조하는 모습이기보다는, 해상 범죄현장을 에워쌌고 해당 선박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앞뒤 퇴로를 차단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것을 발견한 일본 초계기가 근접 비행을 시도하면서 영상 촬영에 들어갔고 한국 군함에 무전을 보낸다.
“여기는 일본 해상자위대, 공격용 레이더를 작동한 목적이 무엇이냐?”
핵심적인 주요 통신 내용이 삭제되긴 했지만, 그 어디에도 한국 군함이 회신하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한국 군함인 ‘광개토대왕함’은 애써 답변을 피하고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광개토대왕함’은 왜 교신에 응답하지 않았을까.
나중에 나온 국방부 내부의 전언은 다음과 같다.
“무선 상태가 양호하지 못했고 기상이 좋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아닌 해경 삼봉호에 보내는 무전이라 생각하고 응답하지 않았다.”
두 가지 가설

▲국방부가 일본의 레이더 조준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올린 영상. 해경이 촬영한 이 영상에는 2018년 12월 20일 동해 인근에서 북한 어선 구조 활동을 벌이던 광개토대왕함 상공에 저고도로 비행 중인 일본 초계기의 모습(원)이 찍혔다. 사진=국방부 제공 영상 캡처
당시 화면에 나타난 바다 전경은 너무나 고요하고 파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그리고 국제 주파수를 바꿔가며 보내는 일본 초계기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회피이지 다른 탓을 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란 지적이다.
이제 그 이유를 하나하나 찾아가 보자. 영상을 보면 앞서 설명했다시피 해군과 해경 함정이 가운데 작은 어선을 가로막고 있고, 해경 ‘삼봉호’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구명정이 뭔가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건이 있고 관련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 일본과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두 가지의 가설(假說)을 두고 논의했다. 하나는 북한 김정은의 답방에 목을 매고 있던 터에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모종의 남북 간 불법거래가 공해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을 탈출한 북한 선박을 한국 군함과 해경이 나포하여 북한에 인계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불법적인 거래 혹은 나포가 아니라 일상적인 구조 작업이었다면, 굳이 일본 초계기의 무선통신에 응답을 안 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구조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당히 요청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만 하루 뒤 북한 선박과 승조원을 북송했다고 밝힌 당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발표문에서도 확인되었다시피, ‘광개토대왕함’과 ‘삼봉호’ 사이에 있던 북한 선박에는 4명이 타고 있었고 그중 1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모두 남성이었다.
일부에서는 일본 측에서 먼저 이들의 배를 발견하고 구조에 나서려고 했으나, 해경 ‘삼봉호’ 외 최신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까지 출동함으로써 이들은 모두 한국 측에 인계된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 부분은 여기에서 더는 다루지 않겠지만, 북한 선박에 승선해 있던 북한인들은 거의 초주검의 상태에 있었다. 그 후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었는지 바로 다음 날 한국 통일부 명의의 간략한 북송 발표만 있었다. 일각에서는 나포, 합동조사, 송환 등의 방식이 아닌 해상에서 곧바로 북한 측에 인계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호위사령부에 불어닥친 피의 숙청
당시 북한의 내부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해상 탈출을 감행할 정도였다면 북한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북한의 해안가는 거의 전부가 군사기지화되어 있고, 권력기관들이 각기 운용하는 외화벌이용 수산기지 외 개인 소유의 선박이 전무한 상태에서 탈출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고 이들은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17년을 시작으로 북한에서는 내부 혁명 세력들에 의해 목숨을 건 저항이 본격화되었다. 하지만 때아닌 대한민국 탄핵 정국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혼돈의 상황은, 북한 반체제 세력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면서 피의 숙청이 몰아치게 된다.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보위부, 안전성 등에 이어 최고수뇌부의 최정예 호위부대인 호위사령부 소속 간부 90여 명이 일거에 총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호위사령관 윤정린, 정치국장 김성덕 등 최고위 지도부들이 모조리 처형되었다.
원래 호위사령부는 김정은의 신변안전과 경호를 담당하고 ‘혁명의 수도’라 칭하는 평양을 경비하는 친위대이다. 과거에는 호위총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무위원회 직속으로 김정은의 직접 지시를 받는 핵심 조직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이처럼 자신의 안위를 책임지는 조직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 것에 충격을 받고, 경호 부대 3개를 신설해 호위사령부의 권한·기능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구조적인 특성상 권력기관이 자신들의 기관 운영과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산하에 각종 기업소를 배치, 운용하고 있다. 특히 호위사령부는 자신들의 산하에 동해안 수산기지를 외화벌이용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 배가 내부에서 불어닥친 숙청의 피바람을 피해 자신들의 수산기지를 통해 탈출한 호위사령부 고위 간부들의 도피용 선박으로 추정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루 만에 북한으로 송환
2018년 12월 22일, 당시 한국 통일부의 조명균 장관이 “동해에서 발견한 북한 선원 3명과 시신 1구를 수습해 북측으로 송환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일부 언론은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어선 구조에 나선 우리 함정에서 ‘화기 관제 레이더’가 작동한 데 대해 일본 측이 이틀 연속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며 오히려 반일선동을 했다.
그에 반해 일본의 주장은 완전히 달랐다. 우선 조난당했다는 북한 선박은 단순 어선이 아니라 공작선일 가능성도 있다며, 조난 구조 신호 자체를 보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북한 어선은 조난당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일본 초계기에서 바라본 것을 토대로 분석한 내용 중에, 한국 구조선이 다가가면 오히려 북한 선박이 도망가는 형국이 몇 차례 목격되었다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조난 신호 자체가 없었던 배의 위치와 정체를 한국 측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에 대해 일본은 지금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의 한 시민단체는, 조난당한 어선이라면서 일반 해양경찰선도 아니고 최대 규모의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까지 출동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표시하면서 해군과 해경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당시 한국의 청와대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해당 사안을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했으며, 미국 측에 해상 초계기가 가진 모든 정보를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문재인 정부가 한·미·일 군사협력체제를 유지하는 삼각동맹의 전통적 가치를 훼손하고, 적국인 북한 측의 요청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 정부는 초계기 사건을 인도적인 구조가 아닌 군사적 문제라는 시각으로 바라봤다. 이는 2016년 박근혜 정부와 맺은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이, 문재인 정부에 의해 2019년 8월 22일 협정 종료 결정이라는 위기를 맞는 계기가 되었다. 지소미아 협정은 정상 간 협의를 통해 잠정 연장이라는 애매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전과 같은 원활한 운용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탈북 어민 북송과 흡사

▲일본 해안가에 도착한 북한 목선과 경찰에 인계되고 있는 탑승자. 사진=조사회 제공
이 문제에 있어 핵심은, 당시 조난 어선이라면서 나포한 선박과 승선해 있던 북한인 3인과 시체 1구를 단 하루 만에 북한으로 송환해버렸다는 사실이다. 발견 당시 좁은 공간 안에서 사망한 사람까지 나왔고 그나마 생존해 있던 사람들도 거의 아사 직전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무런 구호 조치 없이 곧바로 북한에 인계한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최근 판문점을 통해 흉악범으로 낙인찍힌 북한인 2명을 안대와 수갑을 채워 북한으로 단 며칠 만에 송환해버린 사건과 너무나 흡사한 부분이 많은 것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당시 문재인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조치들에 의문을 품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수많은 북한 어선이 일본 해역으로 떠내려와 수습한 시신들만 수십 구에 달하는 현상을 기이하게 생각하고 있다.
실제 2018년 한 해 일본 해안가에서 표류하다 발견된 북한 선박 추정 목선은 89척에 달했고, 그 안에 타고 있던 북한 주민들이 대부분 사망해 북한 어부 추정 시신 29구를 북한으로 송환한 사례도 있었다. 참혹한 시신 중에는 유독 여성이 많아 이들이 평범한 어부들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누가 이들의 원혼을 달랠 수 있을까. 백골에 가까운 지경으로 아사 직전의 북한인들을 단 하루 만에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는 어떤 인권적 가치에서 비롯된 발상이었을까.
해군·해경의 양심선언 있어야
더불어민주당의 집권 시절, 동해안에서 판문점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이제는 국민 앞에 소상히 고백할 때가 되었다.
백골이 된 시신들, 여성용 속옷들만 고스란히 남긴 채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며 죽음을 맞이했을 좁은 배 안의 북한 여성들….
그들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만약 지난 정권에서 우방과 인권의 가치를 내팽개치고 주적(主敵)인 북한과의 내통이 있었다면, 국내법을 넘어 국제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결단코 처벌케 해야 한다. 이는 야만(野蠻)을 종식하려는 문명(文明)의 준엄한 명령이다.
당시 정경두 국방장관과 ‘광개토대왕함’ 함장, 해양경찰청 소속 ‘삼봉호 5001’ 함장과 승조원들은 당시의 사실을 하루속히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또한 국민을 속인 죄와 이웃 국가와의 안보 마찰로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위태롭게 한 죄로 사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해군 장병과 해양경찰들의 양심선언을 기대해본다.⊙
월간조선 09월 호
육사 출신 前 정보사 대령 간첩 조작 사건
‘문재인 국정원’은 對北 핵심 공작관을 간첩으로 몰려고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실제로 정 대령이 근무했던 대북공작부대, 정보사, 국방정보본부, 무관부 등 군 내 모든 휴민트 관련 조직이 초토화됐다. 철저히 베일에 싸인 정보사의 내파(內波)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無力化, 기무사령부 해체에 이은 마지막 단계의 대북 공작 붕괴 작업이다.”(전직 국정원 간부)
⊙ 복수의 정보 당국 관계자 “정 대령 사건 이후 대북 공작 업무 완전 붕괴”
⊙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이후 대북 ‘핫라인’ 구축 위해 급파된 ‘에이스’
⊙ 약 40년간 국가에 충성했는데…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형
⊙ 21명의 직원이 22시간 동안 압수수색… 국정원 직원 “상부에서 시킨 일”
⊙ 허술한 수색영장과 이상한 수사 절차… 국정원의 ‘청탁 기소’ 의혹
⊙ 전직 국정원 간부 A씨 “박 원장, 진짜 간첩은 숨기고 ‘대공실적’ 허위 보고”
⊙ 25년 군법무관 복무한 이명현 변호사 “본 중에 가장 억지스러운 사건”

▲사진=조선DB
▲2015년 정규필 전 대령의 모습.
서훈·박지원 원장 시절 국정원이 장기간 대북(對北) 핵심 공작관으로 활동한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출신 대령을 간첩으로 몰았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나왔다. 복수의 정보 당국 관계자들은 “대북 공작 업무에 있어 상징적인 인물이 간첩 혐의를 쓰면서 현재 모든 대북 공작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고 했다. 취재 결과 사건의 성격상 군(軍)사법부 관할임에도 국정원에서 무리하게 해당 공작관의 가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색영장 내용은 허술했으며, 범죄의 근거가 된 참고인 진술서 또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조사 결과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이 떨어지자, 국정원이 별건 기소를 위해 검찰에 ‘기소 청탁’을 했다는 법조계 증언도 뒤따랐다. 그는 결국 별건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에 처해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수사관이 작성한 수사보고서는 당시 국정원장에게 일일이 보고되고 있었다고 한다. 국정원 전직 간부들은 ‘문 정권의 간첩 조작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설적인 대북 공작원이 간첩으로
지난 7월 주요 언론에 “‘군사기밀’ 빼돌린 전 북파공작원 징역형 집유… 외장하드로 반출혐의”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오명(汚名) 뒤 가려진 진짜 이름은 정규필(丁奎必·58·예비역 대령)이다. 전직 국정원 간부의 말이다.
“그는 전설이었다. 대북 공작과 관련해 현대사에 갖가지 주요한 사건, 그 길목마다 그의 이름이 있었다. 모든 게 극비로 이뤄져 공(功)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통치권 내부 주요 밀명(密命)은 모두 그가 받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육군사관학교 42기인 정 대령은 주로 북중(北中) 접경지에서 공작관 활동을 했다. 이 지역은 한국 정보기관은 물론, 북한, 중국, 미국과 일본 사이 물밑 정보전이 가장 치열한 현장이다. 때문에 요원 중에서도 ‘핵심’ 인력이 배치된다. 정 대령은 이곳에서 신분을 숨긴 흑색공작(블랙요원)을 비롯, 주중 대사관 무관 및 영사 신분으로 백색공작을 펼치는 등 총 37년 군 봉직 기간 중 대북 공작 업무에만 33년을 보냈다.
중국으로 가기 전에는 ‘멋있게 싸우고 값있게 죽자’는 슬로건으로 알려진 HID(특수임무수행부대), 속칭 ‘돼지부대’에서 특수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대북 군사정보 등을 수집·분석하는 국군정보사령부 공작 장교(팀장), 정보사 해외과장, 국방부 정보본부 정보기획과장 등을 거쳐 지난 2019년 3월 31일 대령으로 예편했다.
안기부 시절 입사, 지난 2011년까지 국정원에 몸담았던 A씨는 “정 대령은 정보사 창설 이래 중국어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했고, 중국에 가장 오래 머문 무관이었다”면서 “국정원과 정보사는 북한 군사정보와 관련해 긴밀히 협조하며, 암묵적으로 경쟁하기도 하는데 정 대령은 국정원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공작관이었다”고 했다. 그는 정 대령이 몸담았던 군 조직들에 대해 “‘가는 계획’만 있지, 오는 계획은 없는 가미카제·자살테러 역할 수행도 감수하도록 훈련받는 곳”이라면서 “철저히 베일에 싸인 정보사의 경우 애초 ‘있어서는 안 될 조직’의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제네바협약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그야말로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건 임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대북공작부대의 핵심에 정 대령이 있었다. 그만큼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약 40년간 국가에 충성한 말로(末路)가 간첩으로 몰리는 것이라면, 정보기관 내부 그의 동료와 후배, 그 누가 충실하게 공작 활동을 하겠나. 정 대령을 향한 공격은 곧 정보사를 흔드는 것이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북 특수공작 역량을 와해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정 대령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22시간 압수수색
▲지난 33년간 대북 핵심 공작관으로 근무했던 정규필 대령. 국정원의 압수수색 이후 20kg이 빠졌다고 한다. 사진=월간조선
삐쩍 마른 몸과 다소 수척한 인상. 극한 훈련으로 다져진 특수부대 출신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은 이래 체중이 20kg 줄었다”면서 “몰골이 예전 같지 않지만, 떳떳하기 때문에 이름 석 자와 얼굴을 숨길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윽고 그는 차분한 어조로 지난 3년간 겪은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3월 31일은 약 40년간 ‘국가의 몸’이었던 그가 비로소 다시 ‘아버지’라는 옷을 입은 날이다. 임무상 ‘처자식을 떼어놓고’ 살던 정 대령은 간만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타국에 살고 있는 딸을 만나고 귀국한 다음 날인 2019년 5월 14일이었어요. 시차 적응도 채 안 됐는데, 갑작스레 국정원 직원 21명이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영장을 내밀었는데, 경황이 없으니 읽어볼 새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답니다. 공작관에게 군사기밀 누설은 곧 간첩죄라는 뜻이에요.”
오전 7시50분에 시작한 수색은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이어졌다. 22시간. 20평 남짓한 아파트는 그야말로 ‘도륙’을 당했다. 전직 국정원 간부 A씨는 “이 정도의 인원과 시간을 동원했다면 거물 간첩으로 취급한 것”이라고 했다.
“베란다의 먼지 한 톨까지 들여다보는 국정원 직원들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저보다 한참 어린 직원들이 와서 뭐를 찾는지는 모르겠는데, 잠도 못 자고 그러고 있으니까요. 밥도 시켜주고, 날이 밝을 즈음에는 ‘필요한 것 다 줄 테니 싸들고 가서 찬찬히 보라’고 했어요. 메일 주소, 비밀번호도 다 알려줬고요. 압수수색 목록이 100점 이상 됐습니다.”
전역 1개월 후, 게다가 해외에서 귀국한 바로 다음 날 아침 들이닥친 것을 보고 정 대령은 “‘(국정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직감이 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실 압수수색을 받으며 고생한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면서 “중요한 건 ‘무엇 때문에’인데, 무슨 근거로 이렇게 조사를 하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었다”고 했다. 당시 정 대령이 받았다는 압수수색 영장을 살펴봤다. 요지는 ‘대남 정보원 등에게 국가기밀을 넘겨준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영장의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내사(內査)를 통해 확인한 결과 피의자는 국방정보본부,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 무관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업무상 취급하거나 지득(知得)한 군사기밀들을 중국인(영장에는 실명 기재), 재중(在中) 북한대사관 소속 2인(각각 실명 기재) 등에 누설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불법거래하는 등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범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그 범죄 사실 또한 상당히 중대하다.”
그런데 이 같은 ‘의심’에 이르게 된 근거는 미약해 보였다. 대부분이 ‘예상’ ‘추정’ 혹은 자체적인 ‘판단’이라 기술돼 있었다. 일부를 발췌하면 이런 식이다.
“정 대령은 북측으로부터 지침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업무 특성상 군사기밀 불법거래가 용이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고, 불법거래 역시 순식간에 이뤄졌을 것으로 ‘예상’되며, 치밀하게 이를 은닉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국가 안보를 심히 저해할 중대한 사안인데, 내사만으로 핵심 범증(범죄의 증거) 수집이 어려운 실정이므로 강제수사가 필요하다.”
두 개의 진술서와 유령인물
▲의문의 인물이 작성한 진술서. 자신을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런 이름을 가진 자는 없었다고 한다. 사진=정규필 제공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0년 2월 18일. 이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정 대령은 “불기소 처분이 떨어지고 나서야 무엇을 근거 삼아 조사에 착수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간첩 혐의는 모두 ‘증언’에 기반했다. 두 개의 진술서가 결정적 근거였다. 각각 2019년 3월과 4월 자필로 작성됐으며, 분량은 A4 기준 각각 2페이지와 3페이지다.
“국정원에서는 총 두 명에게 받은 진술서를 근거로 수사에 착수한 것이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31년간 기무사에 근무하다, 2019년 2월 전역한 기무사 전 원사인데, 수년간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던 인물입니다. 해외 무관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기무사에 일일이 접촉 보고를 올리게 돼 있어요. 진술서에 적힌 내용을 보니, 모두 제가 과거에 보고했던 일정들이었습니다.”
기무사 전 원사가 쓴 3페이지짜리 진술서를 요약하면 “2010~2013년 정 대령이 북한·중국 고위층을 비공식 루트를 통해 접촉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현재까지 발설하지 않고 있었으나, 지금(2019년 3월 19일·진술서를 쓴 시점) 생각해보니 정 대령이 전역을 앞두고 있는 만큼 그들에게 군사기밀을 유출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는 내용이다. 어딘가 허술했다.
정 대령은 “진술서대로라면 평생 간첩 잡는 조직에 몸담고 있던 인물(기무사 원사)이 현직에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제대 직후 8년 전의 일을 ‘사실은 수상했다’며 밀고한 것”이라면서 “더군다나 그때 접촉한 북한·중국 고위층은 실무자인 기무사 원사뿐만 아니라 기무사령관, 정보사령관, 정보본부장, 국가안보실장(당시 김장수)에까지 다 보고가 된 사항”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스스로를 ‘2014년 주중 대사관에 근무했던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이영권(가명)이라는 인물이다. 이씨가 쓴 2페이지짜리 진술서 또한 2014년에 목격한 일을 5년이 지난 2019년에 기술한 형태다. “2014년 당시 누군가로부터 정 대령이 부유한 중국 사업가에게 물질적 지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내용이다.
정 대령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씨라는 인물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국정원 출신 여러 인사에게 수소문해봤지만 당시 중국대사관에 그런 직원은 없었다고 하더라”면서 “다만 이씨라는 유령인물의 진술서에는 과거 함께 근무했던 동료 정보원 B와 나, 단 둘만 아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어쩐 일인지 정보원 B는 이씨의 진술서가 작성된 2019년 4월 직후 영전(榮轉)했다”고 했다.
이어진 별건 수사와 별건 기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지만, 끝이 아니었다. 정 대령은 불기소 처분과 동시에 정확히 같은 날, ‘별건’으로 기소됐다. 앞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누설)’에 대해서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는데, ‘군사기밀보호법 위반(비인가자의 군사기밀 점유, 탐지·수집)’으로 ‘기소’된 거다. 쉽게 말해, “남에게 유출한 죄는 없지만, 가지고 있었던 것 자체가 죄”라는 뜻이다. 검찰은 ‘국정원에서 압수한 물품 중 외장하드를 포렌식해보니, 기밀문서가 들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대령의 말이다.
“여기서 ‘기밀문서’는 ‘중국 전시 무관활동 계획’ 등으로 대부분 제가 중국 무관 시절 직접 작성한 것입니다. 모두 2013년 생성, 1년 뒤에 기밀해제가 된 거예요. 통상 해외에서 근무하는 공관원들이 가족사항이라든가 아주 사소한 사적 내용을 작성 시에는 본인이 본부로 타전함과 동시에 그 내용은 비밀로 분류, 자동 생성됩니다. 사적인 것이 아닌 경우에도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몇 시간 일찍 국방부 정보본부에 보고할 때 일단은 전문으로 송신하기 때문에 적국의 암호 해독을 방지하기 위해 비밀로 분류되지만 내용은 평문인 것이죠.”
정 대령의 법률대리인인 이명현 법무법인 닥터홈 대표 변호사는 이에 대해 “간첩으로 몰아가다 여의치 않자 별건으로 기소한, 말도 안 되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검·경·군 병무비리 합동수사본부 팀장, 방위사업청 법무실장을 역임한 이 변호사는 25년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군사법 전문가다. 군 내 군사기밀보호법 해설과 보안수칙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으며 수많은 후배 법무관에게 이를 직접 지도했다.
“25년간 수없이 많은 군사기밀보호법 관련 사건을 다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우선 애초에 국정원에서 개입할 사건이 아니에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은 군사법 관할로, 피의자가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사법경찰은 기무사령부가, 수사지휘는 군검찰이 취급해야 합니다. 더욱이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한 당시인 2019년 2월경은 정 대령이 현역이었기 때문에 만일 국정원에 첩보가 들어갔더라도 무조건 기무사에 넘겨야 할 사안이었어요.”
이상한 수사체계… ‘청탁 수사’의 흔적
실제로 이 사건의 수사체계는 중구난방이다. 최초 수사 착수는 국정원이, 압수수색 영장 발부는 군사법원에서, 수사지휘는 군검찰이 했다. 앞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누설)의 무혐의 결정 또한 군검찰에서 내렸다. 이 변호사는 “군검찰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누설)에 대해 모두 ‘무혐의’ 결정을 내렸는데, 그사이 정 대령이 전역해 민간인이 됐고, (군검찰은 민간인에 대한 수사종결권이 없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서울중앙지검에 이송한 것”이라면서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군 부장 검사는 ‘무혐의로 이송했으니 무혐의로 종결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송 직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비인가자의 군사기밀 점유, 탐지·수집)’으로 기소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사건이 ‘별건 수사, 별건 기소’라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거죠. 당시 사건을 지휘했던 국방부 검찰단의 부장 군 검사 또한 ‘무혐의 처리해서 이송했는데 군사기밀 점유, 수집·탐지 혐의로 기소한 것은 의문’이라고 하더군요.”
이 변호사에 따르면 정 대령의 외장하드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법률적으로도 ‘기밀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의 말이다.
“군사기밀보호법상 군사기밀은 형식을 갖춰야 합니다. 우선 몇 급에 해당하는지 급수가 있어야 하죠. 또한 영원히 기밀인 것은 없기 때문에 언제 해제되는지, 보호기간도 있어야 해요. 외형만 갖춰서는 안 되고 내용 또한 기밀에 해당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정 대령의 외장하드를 포렌식해서 찾은 문서는 그 어떤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아요. 심지어 복구한 파일의 마지막 열람일은 2013년 11월 24일이었습니다. 무려 10년 전이었다고요. 그런데 검찰은 이 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더군요.”
이 변호사는 “버젓이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기밀이 아닌 문서를, 게다가 작성자 본인이 10년 전에 삭제한 것을, 굳이 포렌식으로 살려낸 뒤 기밀 수집으로 건 것”이라면서 “심지어 포렌식으로도 복구가 되지 않자, 정 대령이 생전 알지도 못했던 ‘vem’ 확장자 파일로 열람한 뒤, 이를 출력한 형태의 문서로 이는 디지털 증거의 무결성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너무 터무니없이 기소를 했기에 담당 검사에게 ‘현직 검사 2500명 전체보다 내가 더 많은 군사기밀보호법 사건을 다뤘다고 자부하는데,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면서 “그랬더니 그 검사가 ‘국정원에서 너무 부탁을 해서, 국정원 체면도 있고 해서, 죄송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이는 명백한 기소 청탁, 수사 청탁이다. 누군가가 국정원에 수사 청탁을 했고, 이후 국정원이 검찰에 기소 청탁을 한 것”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해당 기소와 관련 검찰 측의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허위 보고’
▲정 대령이 압수수색을 당하던 당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국정원장이었다. 사진=조선DB
정 대령이 압수수색을 당할 무렵 국정원장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었다. 확인 결과 당시 정 대령과 관련해 국정원 수사관이 작성한 수사보고서는 모두 ‘국정원장’ 앞으로 송부되고 있었다. 이와 관련 전직 국정원 간부의 말이다.
“북파공작부대 팀장부터 정보사 공작팀장, 북·중 접경 지역 블랙, 중국영사관 무관까지. 정 대령의 이력으로 봤을 때 그가 만일 간첩이라면, 분단 70년 이래 대한민국 간첩사(史)에서도 거물간첩으로 길이 남을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압수수색하는데 국정원장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말이 안 된다. 모든 사항을 보고받았다고 봐야 한다.”
정 대령이 무혐의 처분 및 별건으로 기소된 5개월 뒤인 2020년 7월에는 박지원 원장이 취임했다. 박 원장은 취임 3개월 후인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의 ‘최근 5년간 방산·군사 기밀유출 및 대응현황’ 자료를 국회정보위에 보고했는데, 이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 5년간 ▲미 태평양사 신전략계획 등 20여 건의 비밀(대외비) ▲북한 잠수함 건조 추진 동향 등 50여 건의 군사기밀(Ⅱ·Ⅲ급) ▲주중 한국대사관 무관부의 전시활동계획 등 50여 건의 군사기밀(Ⅱ·Ⅲ급) 등 세 건의 군사기밀누설 사건을 적발했다. 한데 여기서 마지막 항목에 적힌 ‘주중 한국대사관’ 건은 정 대령 사건을 말한다. 기밀 ‘누설’에 대해 무혐의를 받은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인데 이를 그대로 국회에 올린 것이다.
정 대령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왜곡된 정보를 국회에 올린다는 것은, 사안에 따라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우려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이미 무혐의로 처리된 50여 건을 대공수사 실적이라며 국회정보위에 허위 보고한 것은 (정 대령을 필두로 한 정보사 조직을) 적폐 청산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정보사 ‘에이스’ 숙청 작업은 의도적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정 대령이 무혐의를 받은 건에 대해 대공 실적이라며 국회정보위에 보고했다. 사진=조선DB
실제로 문재인 정부 5년간 대북 공작 관련 파트가 붕괴됐다는 지적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대북 공작 업무를 오래 해온 국정원 전직 간부는 “서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 적폐 청산 TF를 동원한 인사 전횡으로 대북공작국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다”면서 “소위 ‘에이스’ 직원들이 경기도에 있는 내부 교육기관으로 좌천됐고 빈자리를 친문파(親文波)가 채웠다”고 했다. 정보 당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공작관들에게는 첩보를 활용한 북핵 관련 보고서도 쓰지 못하게 했다”면서 “지난 5년 동안 대북 공작의 씨를 완전히 말린 것”이라고 했다. 2021년 초에는 국정원에서 작성하는 대북보고서에 ‘공작’이라는 표현도 쓰지 못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공수사도 마찬가지다. 국내 보안 정보를 뺀 데 더해 2024년 1월 이후에는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간다. ‘간첩 수사 기능 마비’를 우려하는 시각을 경계해서인지 2021년 6월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간첩을 잡는 게 국정원의 일”이라고 했다. 전직 국정원 간부 A씨는 “자세히 밝히기는 힘들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진짜 간첩’을 조용히 잡아들인 적이 있다”면서 “진짜 간첩은 쉬쉬하고 ‘우리도 간첩을 잡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엉뚱한 사람(정 대령)으로 대공 실적을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이어 “이 사건으로 인해 실제로 정 대령이 근무했던 대북공작부대, 정보사, 국방정보본부, 무관부 등 군 내 모든 휴민트(humint·인적정보) 관련 조직이 초토화됐다”면서 “철저히 베일에 싸인 정보사의 내파(內波)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무력화(無力化), 기무사령부 해체에 이은 마지막 단계의 대북 공작 붕괴 작업이며, 이에 따라 대한민국 대북 공작 기능은 현재 완전히 마비됐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정 대령 사건은 정보사, 정보본부, 주중 무관부 등 군 내 대북 공작 관련 부서에는 모두 알려졌다. 그곳의 몇몇 후배에게 ‘요즘 어떠냐’고 안부를 물으면 ‘다들 바짝 엎드려 있다’고 한다. 거슬리면 숙청당하니까. 군 내에서 대북 휴민트의 핵심에 있던 인물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은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공작 담당 동기와 후배들이 예컨대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 탈북 어민 강제 북송과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나.”
北 도발 여러 차례 봉합 역할
“내가 충성할 곳은 국가와 국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무 기간 동안 정권이 여러 번(전두환~문재인) 바뀌었는데, 어떤 정부든 충성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명이 곧 국가의 명이고, 이를 따르는 것이 곧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 대령의 말이다. 실제로 그를 오랫동안 봐온 정보 당국 관계자들은 “정 대령은 국가 안보에도 지대한 공을 올렸다”고 입을 모았다. 전직 국정원 직원 A씨는 “남북 관계가 급속히 경색됐을 때 정 대령이 나서 수차례 봉합 역할을 한 일이 있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직후에는 남북 관계가 급속히 경색됐다. 그해는 특히 북과의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다. 그때 남북 핫라인 구축을 위해 급파된 것도 정 대령이다. 오랜 기간 작업을 해온 정찰국,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측 실무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를 봉합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 대령이 아니었으면 자칫 더 큰 도발이 있을 수도 있었다.”
A씨에 따르면 정 대령은 당시 북한 실무자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유감 표명’ 차원의 성명문을 내기로 협의까지 했다고 한다.
“특정 단어를 두고, 정 대령은 ‘이 문구를 꼭 넣으라’고 했고, 북한은 ‘이걸 넣으면 우리가 너무 나약해 보인다’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성명문을 완성했으나, 북한 상부에서 결재를 해주지 않아 입장 표명은 결국 결렬됐다. 북한 상부는 남한에다가는 ‘천안함’의 ‘ㅊ’도 꺼내지 말라며 노발대발했다.”
황장엽 망명 후 적기가 부르는 기지 발휘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의 망명에 대해 북한이 수습의 가닥을 잡은 데에도 정 대령의 기여가 있었다고 했다. 중국에서 정 대령과 함께 정보원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인사는 “아무에게도 풀어놓지 않았지만, 다 지난 일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며 운을 뗐다.
“정 대령이 HID에 팀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HID 부대원들이 훈련을 나갈 때 인민복을 위장 착용하고, 매일같이 적기가(赤旗歌·북한의 혁명 찬양가)를 불렀다. 이후 중국 선양에 블랙 요원으로 가 있을 때 황장엽이 망명했다. 그때 정 대령은 사업가 명함을 가지고 북한 고위층과 연결돼 있는 중국인(조선족) 사업가와 친분을 유지했는데 어느 날 그 중국인 사업가가 ‘북에서 황장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상당하다. 골치 아프다’고 한 것이다. 정 대령은 그 사업가가 실은 위장 정보원임을 알았는지, 기지를 발휘해 그 자리에서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라는 가사가 있는 적기가를 불렀다고 한다. 만일 황장엽이 암살당하거나 하면, 남북 관계가 경색될 것이니, 티 나지 않게 ‘비겁한 자이니, 그냥 보내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북한은 황장엽의 망명을 인정하는 성명서를 냈고, 성명서에는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는 구절이 쓰여 있었다.
“우리끼리 이런 말을 한다. 까마귀(블랙)가 백로(화이트)가 될 수 있느냐. 한 번 신분을 숨기고 공작 활동을 하던 자는 끝까지 ‘블랙’으로 남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정 대령은 예외였다. 그만큼 발군의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를 오랫동안 봐온 전직 국정원 간부 A씨에 따르면 정 대령은 문재인 정권 초기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만나 직접 본인이 유지해온 대북 라인을 연결해줬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 대령에게 “기존에 가지고 있는 6개 라인이 있는데,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며 애를 태웠다. 정 대령은 이 핵심 관계자를 중국에서 만나 ‘새로운 라인’을 제시해줬다고 한다. A씨는 “일각에서는 문 정부 들어서고 남북 관계가 급물살을 탈 거라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발을 동동 굴렀고, 북한에서는 경계태세를 유지하는 모양새였다”면서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의 신년인사가 있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 모두 그 공을 가져갔지만 정 대령이 꾸준히 물밑작업을 한 결과였다”고도 했다.
마지막 한 방울
정 대령은 1심 선고 후 항소한 상태다. ‘국정원의 기소 청탁’ 의혹을 받는 검찰도 즉각 항소했다. ‘6개월의 양형은 너무 짧다’면서다. 3년형을 구형하는 항소장에 검찰은 “공판 과정에서 줄곧 범행을 부인하며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2019년 5월 14일 압수수색 이후 사흘 후. 서너 명의 국정원 직원이 압수품 일부를 되돌려주기 위해 정 대령의 집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정 대령은 그들에게 차를 한 잔씩 내주면서 “나는 떳떳하다. 부끄러움이 없다. 만일 국가와 민족에게 반할 짓을 했다면, 광화문 거리에서 할복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국정원 직원들은 “상부에서 시킨 일이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정 대령은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특히 과거 수행한 업무 얘기는 좀체 안 했다. 그는 “나는 직접 본 것만 말하는데, 내가 본 것은 말할 수가 없는 것들”이라고 했다. 집요하게 물으면 그저 이런 식으로 응수했다.
“중국에서 블랙으로 있을 때는 3년간 장돌뱅이 신분으로 가장해 살았죠. 허허. 그때 한국에 남은 아이들이 네 살, 다섯 살…. 처자식 떼어놓고 각개전투하는 독립군처럼 살았는데, 한국 정부에서는 일이 터지지 않으면 몇 달 동안 아무런 연락을 안 하거든요. 아내는 남편의 생사도 모르지, 그때는 ‘끈 떨어진 연(鳶)’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말을 이었다. 지난 세월을 빠르게 훑는 듯했다.
“제가 생각하는 공작은 이렇습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물.’ 컵에 아무리 물이 가득 차 있더라도, 결국 넘치는 데에는 한 방울의 물이 필요하잖아요. 이 세상 중대한 의사 결정은 모두 그 한 방울로 이뤄지고요. 그 역할을 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먼저 훔쳐야 하는 법이죠.”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던 그는 “‘적(敵)의 마음을 훔쳐 내 편으로 만드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정작 아군의 마음은 훔치지 못했다. 평생 몸과 마음을 바쳤던 조국이 총격을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국정원 측 “사정이 있었을 것”
이와 관련 지난 8월 8일 국정원 대변인실에 질의서를 보내 공식 입장을 물어봤다.
질의서에는 ▲군사법 관할 사건을 왜 국정원에서 담당한 건지 ▲정 대령에게 해당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데에 두 명의 ‘진술’ 외에 또 다른 근거가 있었는지 ▲만일 없었다면, ‘진술’만을 바탕으로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하는지 ▲만일 한다면, 당시 두 진술의 신빙성 판단을 위해 어떠한 절차를 거쳤는지 ▲이번 사안이 국정원의 어느 라인까지 보고가 된 것인지 ▲검찰에 수사·기소 청탁 취지의 발언을 한 일이 있는지, 없다면 ‘청탁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2020년 10월,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정보위에 제출한 ‘최근 5년간 방산·군사 기밀유출 및 대응현황’이라는 자료에서 이미 무혐의 결정이 난 내용을 포함한 배경은 무엇인지 ▲또한 당시 ‘최근 5년간 방산·군사 기밀유출 및 대응현황’ 자료의 수집과 국회 보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됐는지 ▲‘허위 보고’ 지적에 대한 공식 입장은 무엇인지 ▲복수의 전직 국정원 관계자들이 이번 사안을 ‘문재인 국정원의 대북 공작 기능 마비·와해를 위한 작업’이라고 하는 데 대한 국정원의 입장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에 8월 12일 오전 국정원 대변인실은 “2심 재판 중인 사안이라 답변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관련 없는 ‘무혐의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한 당초 압수수색의 배경’과 ‘박지원 원장의 허위 보고의 건’에 대해서 재차 물어보자 대변인실 관계자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현재로서는 이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09.13 北 ‘핵 선제 타격’ 법에 명문화, ‘가짜 비핵화 쇼’의 참담한 결말
북한이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란 법을 만장일치 채택했다. 김정은 등 수뇌부가 공격받을 경우 자동으로 핵 공격을 가하도록 법조문에 명문화한 것이 골자다. 법은 ‘핵무기의 사용 조건’으로 5가지를 적시했다. 북한에 대한 핵무기·대량살상무기 공격이나 지도부에 대한 핵·비핵 공격이 감행·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이다. 공격이 의심만 돼도 핵 타격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가 아무 이유 없이 북을 먼저 공격할 리도 없지만, 정찰위성 하나 없는 북한이 무슨 수로 공격 임박 징후를 알아낸단 말인가. 김정은의 불안이나 피해망상만으로도 핵을 쓸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김정은은 핵 무력 법제화에 대해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 놓은 데 중대한 의의가 있다”며 “핵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이 됐다”고 했다. “백날, 천날, 십 년, 백 년 제재를 가해보라.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며 “비핵화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 “핵을 대부(貸付)로 개선된 경제 생활 환경을 추구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1만9000여 자에 달하는 연설문의 약 40%가 비핵화를 안 하겠단 얘기였다. ‘비핵화 절대 불가법’을 만든 것이다.
애초부터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을 리 없었다. 2018년 초 돌연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며 평화 공세를 편 것도 고강도 제재로 조여드는 숨통을 틔우고 핵무력을 고도화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며 전 세계를 속이고 트럼프에겐 보증까지 섰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이 미사일을 다시 쏘는데도 “모라토리엄은 지키지 않느냐”며 미국에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그러다 임기 말인 지난 3월 더 강력해진 ICBM이 솟아오르는 걸 지켜봐야 했다.
김정은의 쇼에 놀아난 민주당은 ‘핵 선제 타격’ 법제화 소식이 전해진 지 사흘이 지나도록 공식 논평 하나 내지 않고 있다. 어떻게 제1 야당이라고 할 수 있나. 이재명 대표가 뒤늦게 “제재·압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대북 포용과 대화·협력 주문하며 ‘강한 유감’을 표한 게 전부였다. ‘가짜 평화 쇼’로 핵·미사일 고도화의 시간을 벌어준 것도 모자라 아직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 건가. 이게 문 정권과 민주당이 5년 내내 강행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결과인가.
조선일보 사설
09월 13일 김정은 핵공격 법제화…尹 ‘담대한 核 역량’ 천명할 때다
북한 김정은이 핵무기 개발 및 핵 공격 협박을 날로 고도화하는 와중에, 급기야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까지 만들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지난 8일 채택했다는 이 법령은 핵무기 사용 5대 요건을 담았지만, 요건 자체가 모호해 김정은에게 마음대로 핵무기를 동원할 권한을 준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북한은 김정은 유일 체제여서 특별히 새로운 실질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한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또 하나의 사악한 행태다.
북한 지도부 및 전략적 대상 등에 대한 공격이 감행 또는 임박했다고 판단될 경우, 또 국가 존립 위기 사태나 유사시 전쟁 주도권 장악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했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 4월 열병식 연설에서 “국가 근본이익을 침탈하면 핵무력 사명을 결행한다”고 했다. 이번에 채택된 정책은 대북 제재는 물론 한·미 연합훈련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번 법제화를 계기로 한·미 안보태세에 대해 사사건건 ‘법에 입각한 핵공격’ 위협을 강화할 것이다.
북한의 이번 움직임은 문재인 정권 5년 동안의 대북 환상과 안보 파탄을 새삼 말해준다. 윤석열 정부가 과감히 바로잡아야 한다. 평화도 중요하지만, 북한을 달래는 식의 접근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 단순한 ‘비핵화 프레임’에서 탈피해 실효적 북핵 억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오는 20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단호하고 담대한 결의를 천명해야 한다. 북한 핵개발을 저지할 방법은 간단하다. 북한 체제가 흔들릴 정도의 제재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 핵 대응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과 핵확산금지조약(NPT) 무력화를 통해 북한 핵개발을 사실상 거드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의 결기를 인정하도록 하는 조치도 중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9.14 대북 헛똑똑이들
3·1운동 폄훼하는 北에
“함께 기념하자” 제안하며
“北 안다” 자랑한 운동권 정권
헛똑똑이들이 ‘북핵 완성’ 도와
추석 연휴 첫날 공개된 북한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육성 시정연설은 50분 45초 동안 이어졌다. 연단에 선 김정은은 “백 날, 천 날, 십 년, 백 년 제재를 가해 보라.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 “비핵화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했다. 1만9000자 분량인 연설문의 약 40%가 이런 내용이었다. 김정은 발언 가운데 가장 노골적인 ‘비핵화 불가’ 선언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내 주장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어디로 간 걸까.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말하기 시작한 건 2018년 3월 특사단 방북 이후다. 김정은이 말했다는 “비핵화는 선대(先代)의 유훈”이란 발언이 근거였다. 선대란 김일성을 뜻한다. 그 시절 북의 핵 개발은 초보 단계였다. 당연히 비핵화는 북핵이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전술핵을 겨냥했다. 이걸 1970년대엔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라고 하다가 ‘조선반도 비핵화’로 바꿨고, 김일성 사후 ‘유훈’으로 포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걸 알면서도 세상을 속인 걸까. 지난 5년을 복기해 보면 오히려 북한에 무지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3·1운동 100주년을 북과 공동 기념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북에 공동 학술회의, 전시회, 음악회, 남북 대학생 평화 대장정 등을 제안했다가 전부 거부당했다. 북이 3·1운동을 ‘탁월한 수령의 지도를 받지 못해 실패한 부르주아 민족운동’으로 폄훼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공동 기념 제안에 응할 리 없었다. 북은 100주년 전날에도 “3·1 인민 봉기는 외세 의존에 물젖은 상층 인물들의 잘못된 지도로 실패했다”며 악담을 퍼부었다.
김정은을 2019년 부산 한·아세안 정상 회의에 초청하려 한 것도 무지의 소산이다. 수령 중심 세계관을 가진 북의 체제 특성상 김정은의 다자 회의 참석은 수령의 권위에 어긋난다. 그런데도 문 정부의 러브콜이 이어지자 북은 한·아세안 정상 회의를 “우리와 인연이 없는 복잡한 국제회의 마당에서 악수나 하고 사진이나 찍는 것”으로 비하하며 공개 망신을 줬다. 논란이 된 귀순 어부 강제 북송도 김정은 초청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김정은 초청 소식을 뒤늦게 접한 일부 아세안 국가가 불쾌감을 표시하는 등 외교적 잡음도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남북정상회담 둘째날인 2018년 9월 19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장에 입장한 뒤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안타까운 건 2018년 9월 문 대통령의 능라도 5·1 경기장 연설과 백두산 방문이었다. 북은 한국 대통령의 방북을 “수령님의 고매한 풍모를 흠모한 결과”로 선전한다. 평양은 단순히 수도가 아니라 김씨 왕조를 떠받치는 당·정·군 엘리트 집단만 거주하는 특수지역이고, 우리가 ‘민족의 영산’이라 부르는 백두산도 북에선 김일성·김정일 얼이 서린 ‘혁명의 성산(聖山)’이다. 한국 대통령의 등장 자체가 김정은 우상화의 소품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5·1 경기장에 운집한 15만명의 박수 갈채도 문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을 향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최근에도 당시를 “남북 관계 최고의 장면”으로 회고했다. 김정은이 연출한 북 체제 선전 쇼의 배우였단 걸 모른다.
문 정부엔 대통령 말고도 비서실장과 통일장관을 비롯해 북을 안다고 자부한 운동권 출신들이 수두룩했다. 실상은 낭만적 대북관에 젖어 북한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리는 “책과 선전 매체로 북을 접한 운동권의 대북 인식이 8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헛똑똑이들이 ‘평화 쇼’에 골몰하는 사이 북은 핵을 완성하고 대남 핵 선제 타격 계획을 법제화했다. 일부러 그러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북이 마음 편히 핵을 개발하도록 도운 꼴이 됐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09.14 한국에 핵 선제 타격한다는 北에도 침묵하는 민주당

▲문재인-김정은, '판문점 선언 포옹'
북한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고 비핵화를 위한 어떤 협상도 없을 것”이라며 ‘비핵화 절대 불가법’을 만들었다. 핵 개발 30여 년만에 법적으로 ‘선제 핵 타격’을 명문화한 것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북한 김씨 정권이 핵을 만든 것 자체가 정권 보위를 위한 것이고 당연히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상식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역대 정권은 마치 북이 핵을 포기할 것처럼 국민을 오도해왔다. 노태우 정부는 1992년 김일성과 남북 비핵화 선언에 합의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핵 공포가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꿈에 큰 진전을 이뤘다”고 했다. 국내 미 전술핵은 철수했는데 북은 몰래 핵 개발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속은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한 뒤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능력도 없다. 내가 책임진다”고 했다. 당시 핵심 안보 참모들도 “북은 핵 개발 의지가 없다”고 했다. 북에 속은 것인지, 우리 국민을 속인 것인지 알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북은 반드시 핵을 포기할 것”이라며 “핵실험의 아무런 징후가 없다”고 했다. 당시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은 북핵이란 무모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직후에 북한은 첫 핵실험을 했다. 이렇게 당하면 정상적인 사람들은 반성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북이 핵으로 폭주하자 ‘미국 탓’으로 몰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4번 핵실험을 하고 ICBM까지 발사한 김정은을 노골적으로 감쌌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면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증까지 섰다. 작년 김정은이 핵을 38차례 강조하며 전술핵 개발까지 공언했지만 “아직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우겼다.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민주당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 개선’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북핵 포기’라는 허상을 만들고 오히려 북핵의 현실적 위협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이제 김정은이 핵 선제 타격을 자신들 법에 명시하는 사태 앞에서도 침묵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9월 14일 北 핵사용 법령화와 野의 위험한 인식
유호열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명예교수
북한이 지난 8일 정권 수립 기념일에 앞서 개최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국가 핵무력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했다. 또, 김정은은 시정연설을 통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비핵화 협상을 통해 흥정하지 않을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핵능력을 계속 고도화해 나갈 것이며 이를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선제적이고 임의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와 방침을 법적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그 도발 수위가 한층 심각해졌다. 이로써 북한 당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을 정면으로 거부한 셈이다.
그런데도 국내 일각에서, 특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무력정책 법령화가 매우 이례적이란 점에서 더 큰 흥정을 기대하는 협상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그 내용 자체도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 등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비판과 함께 경제난에 처한 북한 내부의 사기 진작용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이른바 불가역적 핵무력정책은 우리와 국제사회에 대한 심각한 정치적·군사적 도발이며 실재하는 안보 위협이다. 총 11개 세부 조항으로 상세하게 법령화를 천명하고 김정은의 연설 또한 노동신문 1∼4면에 걸쳐 장황하게 보도한 것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북한은 조만간 7차 핵실험과 소형화된 전술핵과 수소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추가 핵실험도 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성능이 향상된 극초음속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또는 이를 발사할 신형 잠수함을 실전 배치할 가능성도 있다.
그 점에서, 5년 내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철석같이 믿고 이를 미국 등 국제사회에 앞장서서 보증했던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견제받지 않고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오늘처럼 대담한 핵무력정책을 천명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제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윤 정부는 북한의 노골적인 핵 위협과 대담한 정치적·군사적 공세에 대응해 선제적이고 실질적인 대응 능력을 갖추면서 이를 국내외에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 공표에 대해 국방부가 한·미의 압도적 대응으로 제압할 것임을 경고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통일부 역시 북한의 비핵화가 확고한 대북정책의 근간임을 재확인한 것은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자신감 있는 대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문제는, 이러한 기조와 방향을 범정부·범국민 차원에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시급히 구현하는 것이다. 오는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될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비롯해 군과 정부 관련 부처의 북핵 대응 체계를 현실에 맞게 대폭 개정·강화하고, 민간 차원에서도 필요한 조치들을 유비무환의 자세로 강구해 나가야 한다. 다음 주로 예정된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실재하는 북한 핵무력의 위험성에 대해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환기하고 지속적인 대북 제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 당사자로서 좀 더 호소력 있을 것이다. 복잡한 정치 일정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국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와의 긴밀한 협치를 통해 더는 북핵 문제가 정파나 이념에 좌우되지 않게 초당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09.15 볼수록 기막힌 文 정권의 ‘기무사 농단’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TF 단장인 한기호(가운데) 의원이 14일 오전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과 군사기밀누설 등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오른쪽부터 신원식, 한기호 의원, 임천영 변호사. /뉴스1
국민의힘은 14일 문재인 정부 시절 이른바 ‘기무사 계엄 문건’을 유출하고 이를 왜곡해 공표한 혐의 등으로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계엄 문건은 탄핵 정국이던 2017년 3월 기무사가 시위대의 폭동 등에 대비해 비상계획과 법 절차를 검토한 것이다. 단순 검토일 뿐 실행 계획이 아니라 법적 문제가 없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내란 음모’ ‘쿠데타 모의’ 프레임을 씌워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게 고발 취지다.
계엄 문건 논란은 2018년 3월 여당 의원과 군인권센터가 관련 내용을 폭로하며 시작됐다. 넉 달 뒤엔 2급 비문(秘文)인 문건을 통째로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 국빈 방문 중에 돌연 “국가 안위와 관련됐다”며 민·군 합동수사단을 꾸리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귀국 후엔 계엄 문건을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지시하고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 것이다. 합수단은 검사 37명을 투입해 104일 동안 200여 명을 조사하고 9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하지만 내란 음모나 쿠데타 모의의 증거는 찾지 못했다. 부수적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로 기소한 기무사 간부들은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애당초 무리한 수사였다. 계엄 문건은 탄핵 찬성 세력뿐 아니라 반대 세력의 폭동에 모두 대비한 검토 보고서였다. 나라가 무너질 상황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군은 불필요한 존재다.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은 보고받은 뒤 ‘종결’을 지시했고, 문건은 훈련 참고용으로 남겨뒀다. 내란 음모 증거를 보관하는 경우도 있나. 또 청와대가 계엄 문건을 보고받은 건 문 대통령의 수사 지시 석 달 전이었다. 내란 음모였다면 왜 석 달씩 묵혔나. 검찰은 이런 의혹을 모두 밝혀야 한다.
계엄 문건과 별개로 송영무 전 장관은 “기무사가 세월호 유가족을 불법 사찰했다”는 주장도 했다. 국민의힘은 “송 전 장관이 기무사를 해체하려는 의도로 허위 사실을 폭로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투신했고, 기무사는 해체에 가까운 탈바꿈 과정을 거쳐 안보지원사령부가 됐다. 그 과정에서 군의 방첩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 문 정부가 집요하게 기무사를 범죄 집단으로 몰아간 것도 이걸 노렸던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이날 국민의힘 고발에 민주당은 “기무사가 모의한 친위 쿠데타를 정당화하려는 것” “기무사의 부활을 획책하는 신호탄”이라며 취하를 요구했다. 떳떳하다면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조선일보 사설
09.19 북이 핵 선제타격 한다는데 ‘남북 쇼’ 자찬한 文
문재인 전 대통령이 9·19 남북 군사합의 4주년을 맞아 “군사적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실천적 조치였다”며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적 현안에 대해 낸 이 첫 메시지는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2018년 9·19 합의 서명 이후 수도 없이 합의를 파기했다. 김정은이 직접 깼다. 이듬해 11월 김정은은 연평도 도발 9주년을 맞아 서해 NLL에서 북쪽으로 불과 18㎞떨어진 창린도 해안포 부대를 방문해 “한번 사격해보라”고 직접 지시했다. 해안포에 덮개를 씌우거나 포문을 닫아야 한다는 약속은 처음부터 지키지 않았다. 이어 2020년 5월 남측 GP를 향해 총격을 가했고, 한 달 후에는 개성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그러는 사이 국군의 대북 방어 능력은 크게 약화됐다. 확대된 비행 금지 구역 때문에 최전방 군단에 배치된 우리 무인기의 대북 표적 식별 능력이 44% 떨어졌다. 북한은 해안포를 마구 쏴도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우리 K-9자주포 부대는 포를 배에 싣고 육지로 나와 원정 사격 훈련을 했다. 여기 들어간 비용만 100억원이다.
9·19 평양공동선언의 핵심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뤄나간다”는 부분이다. 하지만 북한은 핵 위협을 공세적으로 키워왔다. ‘하노이 노딜’ 이후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신형 전술핵무기를 개발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열병식에서 핵무기 사용 범위를 ‘전쟁’에만 한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7차 핵실험 준비를 마치고 핵 선제 공격 가능성을 명시한 법까지 만들었다. 김정은은 그 법을 통과시키며 “절대로 비핵화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도,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선언했다.
문 전 대통령도 이 같은 일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북한이 내팽개친 합의문을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 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문 전 대통령에 대해 “교실에서 특정한 친구(북한)한테만 좀 집착하는 학생 같아 보였다”고 했다. 크게 틀린 말 같지 않다.
조선일보 사설
09.19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과의 약속 지키라는 문 전 대통령
문 “9·19 군사합의, 이행해야 할 약속”
북, 핵 사용 법제화 이어 핵실험 임박
문재인 전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 등 그간 남북 합의에 대해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밝혔다. 2018년 9월 19일 열린 3차 남북 정상회담 4주년을 하루 앞두고 내놓은 발언이다.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그가 자신의 재임 시절 업적을 현 정부가 지키라고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9·19 군사합의 4주년 기념 토론회’에 대한 서면 축사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전임 대통령으로서 현 정부에 어깃장을 놓는 듯한 도를 넘은 행동이다.
문 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현재 한반도 안보 상황은 4년 전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게 엄중하다. 북한은 7차 핵실험 준비를 완료한 상태고, 정치·안보적으로 위기 상황이 생기면 우리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고 지난주 발표했다.
북한은 문 전 대통령과 9·19 군사합의를 체결한 이후 탄도미사일을 끊임없이 발사해 왔다.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우리 기업이 건설한 금강산 관광시설도 북한 소유로 바꾸거나 해체하고 있다. 북한은 합의를 거의 지키지 않았다. 모두 문 전 대통령 재임 때 발생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 비핵화를 위한 ‘담대한 구상’으로 북한에 대화를 요청했지만 북측은 대화는커녕 비판으로 일관했다. 북한은 오히려 ‘핵=국체(國體)’라며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핵무기가 곧 북한 그 자체라는 것이다. 담대한 북한 비핵화 구상에는 북한이 요구하던 ‘행동 대 행동’ 원칙이 포함돼 있지만 북한은 속임수라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이 “대화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모든 대화의 출발점은 신뢰”라고 했는데, 실제론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를 점점 위험하게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싼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발언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평화가 가장 중요하지만 신뢰 없이 돈으로 사는 굴종적인 평화는 상대방의 새로운 도발로 이어졌다.
그 사례로 북한은 2020년 9월 22일 서해에서 표류하던 우리 공무원을 무차별 사격하고 시신을 불태운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문 전 정부는 북한에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탈북민 2명을 눈을 가린 채 판문점을 통해 강제 북송시키며 인권을 유린했다. 이게 국민을 위한 신뢰 있는 평화였나.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며 핵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는 현재로선 북핵 억제가 우선이다. 그래야 국민의 불안감이 해소되고 평화도 유지된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차관의 제3차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합의는 시의적절했다. 차제에 확장억제력의 신뢰성을 더욱 높이는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9월 19일 9·19 합의 이미 파기한 北의 核협박에 총력 대응할 때다
북한 김정은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핵 공격’ 법령까지 만든 행태만 봐도 4년 전 ‘9·19 평양 공동선언’과 남북 군사합의가 사기극임을 알 수 있다.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선언을 보면, 한반도 비핵화 및 북한 핵시설 폐기가 천명됐지만, 그 순간에도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음이 오래전에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시 김정은이 밝혔던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등 비핵화 의지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북한 측 주장으로도 확인된다.
군사합의는 더 문제가 많다. 제1항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 중지’이지만, 북한은 육·해·공 도발을 자행했다. 2019년 서해 창린도 해안포 사격, 2020년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및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사건 등이 이어졌다. 지난 3월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파기 선언 후엔 대륙간탄도미사일 도발도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시정 책임이 무겁다. 영국과 미국 순방 및 유엔총회 연설에 나선 윤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회견에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것에서 해답을 찾을 것”이라면서 “유사시 미 핵무기 사용 등 모든 패키지가 총체적으로 포함된다”고 밝힌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3국 안보 협력도 피할 이유가 없다”면서 일본과의 안보 공조를 거론한 것도 마찬가지다. 사드에 대해서도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권 사항으로 (중국과의) 타협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북한 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윤 대통령은 이제 총체적 대응을 말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문 정부 5년 동안에 북핵 위협은 더욱 심각해졌다. 문 전 대통령은 18일 ‘9·19 토론회’ 서면 축사에서 “남북합의는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했다. 9·19 합의는 태생부터 대북 환상에 기초하고 있었고, 북한 도발로 이미 실질적으로 폐기됐음을 고려하면, 여전히 안보 자해와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셈이다. 새 정부가 더 결연하게 안보 강화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9.21 중국군의 ‘금의환향’
지난 16일 인천공항에서 6·25전쟁 당시 숨진 중국군 유해 반환 행사가 열렸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철원, 연천, 포천, 파주, 횡성, 홍천에서 발굴한 유해 88구가 중국 측에 전달됐다. 한국 측에서는 외교부 2차관이 공항에 나가 행사에 참석했다.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내에서 발굴된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중국군 전사자 유해 88구에 대한 인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2022.9.16/국방일보
중국군 유해 반환 사업은 2013년 한중 양국 정부가 합의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향후 미군, 북한군 유해 송환 사업과 연계해, 전쟁의 상처를 화해와 평화의 새살로 바꾸자는 구상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 코로나 와중에도 2014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총 913구가 중국에 인도됐다. 한국은 “국제법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9년째 약속을 지켰다.
총을 겨눈 사이에서도 인도주의와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아픈 역사까지 묻어둔 채 중국군 유해를 인도해 주는 동안 6·25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우리와 더 멀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중국군 6·25 참전 70주년 기념 대회 연설에서 6·25 참전에 대해 “제국주의 침략 확대를 억제하고 중국의 안전을 수호한 것”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까지 의례적으로나마 추가됐던 “참혹한 전쟁” “사람들에게 아픔을 남겼다”는 표현은 더 이상 중국 측 연설이나 문건에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올해 유해 송환식을 보도하며 “민족의 기대를 짊어진 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반대하는 깃발을 들고 전쟁에 참전했던 영웅들의 귀환”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은 최신 스텔스 전투기인 젠-20까지 띄워 유해 수송기를 예우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에 대한 감사나 전쟁의 비극에 대한 언급은 찾기 어려웠다.
우리 정부도 양국 간 6·25에 대한 인식 차가 큰 상황에서 중국이 유해 송환 사업을 애국주의 소재로 이용하자 문제 제기를 했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 측은 “내부용일 뿐”이라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건 변명일 뿐 선전의 효과는 외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2020년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한미 우호 관련 행사에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자 “왜 중국군의 희생은 무시하느냐”며 중국 네티즌이 화를 내는 황당한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16일 유해 인도식에 참석해 자국 기자에게 “72년 전 평화를 수호하고 가정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240만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이 전선으로 나아가 20만여 명의 영웅 열사가 생명을 희생했다”며 “조국과 인민은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군 유해 발굴에는 우리 장병들의 땀과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그 예산 가운데는 6·25 때 조국을 지키려 중국군과 싸운 군인, 전쟁 희생자의 후손이 낸 세금도 포함돼 있다. 참전 용사를 비롯한 국민이 이해할 성과를 내고 있는지 정부는 중국군 유해 반환 사업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조선일보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09월 21일 ‘死文化 9·19 합의’에 발 묶이지 말라
전성훈 前 통일연구원장, 경민대 겸임교수
지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된 9·19 군사합의는 남남갈등의 상징이 되다시피 할 정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 이듬해 일단의 예비역 장성들이 군사합의가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며 당시 전·현직 국방부 장관 2명을 이적행위로 고발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북한에 합의 이행을 촉구하되 북한의 변화가 없으면 우리도 계속 지키기 어렵다며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역대 남북합의는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들”이라면서 평양공동선언과 9·19 군사합의의 지속적인 이행을 강조했다.
9·19 군사합의의 가장 큰 문제는, 적대세력 간에 체결하는 군비통제조약의 기본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상대에 대한 오해·오판의 가능성을 낮춰 전쟁 위험을 줄이는 것이 군비통제의 목적이므로 많은 정보를 공개해서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는 군비통제 역사에 유례없이 정찰 활동을 금지했다. 정찰 능력이 우수한 한국에 불리할 뿐 아니라, 상대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안보 불안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30년 전 남북한이 불가침 협상에서 타결하지 못한 네 가지 사항 가운데서 북한의 요구 사항(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무력 증강 금지, 상대방에 대한 정찰 금지, 상대방의 영해·영공 봉쇄 금지)만 반영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에 한국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수도권 안전보장 문제는 수용되지 않았다. 당시 협상에 참가했던 군 선배들이 통탄할 일이며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다.
군비통제조약의 위반이나 탈퇴는 늘 있는 일이다. 러시아는 유럽 재래식무기감축조약(CFC)의 이행을 중단했고, 미국은 중거리핵미사일조약과 영공개방조약에서 탈퇴했다. 국익이 훼손됐다고 판단되면 조약에서 탈퇴하는 게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주권국가의 권리다. 핵확산금지조약(NPT)도 제10조에서 이런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윤 정부는 전임 문 정부에서 체결한 9·19 군사합의가 국가안보에 해롭다고 판단하면 탈퇴하고, 새 환경에 적합한 군비통제 방안을 북한에 제의할 수 있다.
조약은 국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안보를 해치는 잘못된 합의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1991년 노태우 정부에서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탈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은 이 선언에서 핵무기는 물론 재처리·농축시설까지 포기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이 비핵화 외교를 한다면서 이 선언에 발이 묶여 있는 사이에 북한은 선언을 철저하게 위반했고, 급기야 한반도에서 핵(核)을 독점하게 됐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허술한 합의다. 예를 들어, 재처리시설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북한은 처음부터 방사화학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재처리시설을 가동했다. 노태우 정부가 북한의 명백한 위반 사항을 묵인한 셈이다. 결국,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문화(死文化)한 문건이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북한이 핵보유 완성을 선언하고 핵선제공격까지 위협하는 마당에 이 선언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다. 차제에 9·19 군사합의와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동시 탈퇴해야 한다.
문화일보
09월 22일 북핵 대응 ‘최종 목표’ 결단할 때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확장억제 확약에도 한계 뚜렷
미국은 기존 태세로 충분 입장
제한전 형태 북 공격엔 모호성
비례 대응이냐 압도 대응이냐
군사분계선 넘어 통일 나설지
한국 결단해 미국에 전달해야
한·미 양국이 지난 16일 5년 만에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를 개최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이 지난 8월까지 총 19차례 미사일 도발을 강행하고, 전례 없이 공격적인 핵전략을 담은 법령을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하는 등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 위협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열린 중요한 회의였다. 그러나 지난 5년간 발생한 안보 공백을 메우면서 고도화한 북핵을 대비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확장억제란 미국이 동맹국에 제공하는 방어 공약이다. 한·미가 매년 개최하는 안보협의회의(SCM)와 지난 5월 21일 양국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은 ‘핵과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 능력을 운용하여’ 안전보장을 약속했다. 부연하면, 북한이 핵 또는 대량파괴무기(WMD)를 사용해 한국을 공격할 경우 미국은 핵을 포함한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한국을 방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확장억제가 계속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선, 북한이 판을 바꾸고 있다. 그간 북한이 중점 개발해 온 핵능력은 미국 본토 공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2017년 11월 화성-15형 발사 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2019년 5월부터 북한은 한국을 겨냥해 소형 핵 탑재 미사일인 KN-23, 24, 25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를 통해 일본과 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을 타격할 수 있는 더욱 다양한 핵미사일 개발도 선포했다. 올해 북한은 실전 배치는 물론, 이번 핵 법령을 통해 거의 모든 상황에서 핵 사용과 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었다. 특히, 재래식 무기와 차이를 없애서 핵무기 사용 문턱을 대폭 낮췄다.
북한의 시도는 한국의 고민을 깊게 한다. 북한의 고도화한 위협에 대응해 한국, 특히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진전된 확장억제 공약을 군사적·정치적으로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미국은 변화한 북한의 위협에도 기존 확장억제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전직 미군 고위 당국자와 전문가는, 한국에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매년 SCM을 통해 확장억제를 공약하며, 한·미 양국이 연합훈련을 하는데 왜 한국이 미국을 신뢰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문제는, 북한이 대규모 전면전이 아닌 제한전 형태로 핵을 사용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핵 문턱을 넘었으므로 피해 규모와 상관없이 미국이 대규모 응징보복에 나설지, 아니면 동종 동량의 원칙에 따라 사용한 북핵에 준하는 수준에서 반격할지가 확실치 않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후자의 핵전략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북한 핵은 사실상 재래식 무기와 다름없게 되고 핵 사용 억제는 요원해진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결정해야 할 몫이 커진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경우 비례적 또는 압도적 대응 중 양자택일이 필요하다. 후자는 부수적 피해를 포함한 대규모 살상 가능성이 커지지만, 전자를 선택한다면 북한의 핵 사용 가능성이 커진다. 연계된 질문은, 북한의 핵 사용을 현 작전계획에 따른 2단계, 즉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반격의 조건으로 삼을 것인지다.
확장억제는 북한 핵 사용 시 한국이 수립한 한반도 전장의 최종 목표에 따라 추진돼야 할 것이다. 북한이 어떤 종류의 핵을 사용하더라도 한·미는 최대치의 확장억제를 동원해 응징하고 북한 표현대로 ‘영토 완정’을 성취할지 결정해야 한다. 확장억제를 실제 논의하는 자리에서 미국은 한국에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어느 수준에서 할지를 물어온다고 한다. 한국은 목표를 정하고, 시나리오별 또는 단계별로 구체적 확장억제를 구상해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한·미가 북한의 핵 사용에 대해 강력한 대응 의지와 이를 제도화하는 실제 조치를 결합하지 않는다면 억제 효과는 현저히 낮아진다. 이번 확장억제전략협의체에서 발표한 ‘한·미는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으로 대응할 것이란 경고가 미 고위 당국자에 의해 계속 공명하고 전쟁의 최종 목표를 포함한 구체 계획으로 발전시켜야 북핵을 억제하는 실제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한반도 운명의 당사자인 한국이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문화일보
09월23일 北에 피살 공무원 2년 만의 장례…유족 절규에 文 답하라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의 영결식이 2년 만인 22일에야 전남 목포에서 해양수산부장(葬)으로 치러졌다. ‘시신도 없는’ 장례는, 대한민국 국민이 문재인 정부에 의해 보호 받지 못한 무참한 현실을 상징한다. 해경은 실종 8일 만에 자진 월북했다고 발표했고, 해수부도 같은 해 12월 공무원 신분을 박탈하는 직권면직 처리했다. 윤석열 정부의 재조사 결과 월북자 누명을 벗으면서 열린 영결식에서 형 이래진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지난 정부의 비극을 경험했다”고 절규했다.
윤 정부 들어 해수부·해경, 국방부 등은 전반적 상황을 다시 조사했고, 문 정부가 근거도 없이 ‘월북 몰이’를 한 단서들을 발견했다. 이와 관련된 수사도 진행 중이다. 당시 북한군의 통신 감청정보를 분석한 결과 이 씨가 북측 해역에서 표류한 지 2시간 지난 시점에 북한군이 상부에 보고하면서 ‘월북했다고 합니다’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정말로 월북하려던 것인지,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얘기를 한 것인지, 심지어 실제로 그런 얘기를 한 것인지조차 불명확한 상황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월북으로 규정짓고 해경과 군에 압박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문 당시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다. 실종 보고를 받고도 구조 지시를 하지 않은 것은 국민 생명 보호라는 가장 중요한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신속히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목숨을 구하거나, 시신이라도 찾거나 돌려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군사통신선이 막혀 대처가 어려웠다는 발언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의 정보 공개 결정에도 관련 자료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 볼 수 없게 만든 행태도 이해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유족 절규에 정직하게 답하고, 수사 당국은 성역 없이 법적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26 김정은 “文 필요 없다” 편지 쓸 때 “남쪽 대통령” 연설했던 文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 문재인(가운데)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맨 왼쪽) 국무위원장이 19일 밤 평양 능라도 ‘5월1일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손을 맞잡고 관중석의 평양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평양시민 15만명이 참석한 이날 공연 끝 무렵 문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위원장 소개로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 군중을 상대로 한 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처음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던 2018년 9월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가 공개됐다. 그는 “향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한다”며 “지금 문 대통령이 우리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친서를 보낸 시점은 김정은이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과 ‘9·19 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이틀 뒤다. 당시 두 사람은 선언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기자회견에서 “완전한 비핵화의 완성”을 말했고, 북한 군중 앞에서 “남쪽 대통령”이라고 연설했다. 다음 날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에 올라가 손 잡고 사진도 찍었다. 김정은은 뒤로 문 대통령을 협상에서 배제해 달라는 친서를 썼는데,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본심도 모르고 북이 연출한 평화 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문 정부에 대한 북한의 이중적 태도는 퇴임 후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작년 4월 알려졌던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미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변죽만 울렸다”고 비판하자, 트럼프는 선언문을 내고 “내가 알게 됐던 (그리고 좋아했던) 김정은은 단 한 번도 문재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협상가로서 약했다”고도 했다.
북한이 내팽개친 9·19 선언과 ‘비핵화 쇼’에 대한 미련을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9·19 공동선언 4주년 때 문 전 대통령은 “4년 전 오늘, 나와 김정은 위원장은 반목과 대립, 적대의 역사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쟁 없는 한반도의 시작’을 만방에 알렸다”고 했다. 9·19 군사합의에 대해선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핵 선제 공격 가능성을 명시한 법을 만들면서 “절대로 비핵화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도,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선언한 직후였다. 그렇게 속았으면서도 계속 농락당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26 부산 입항 美 항모까지 거리 계산해 쏜 北 미사일 도발

▲북한이 지난 1월 열차에서 발사한 KN-23 탄도미사일이 화염을 내뿜으며 솟아오르고 있다. 북한은 25일 오전 평북 태천에서 KN-23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25일 오전 평북 태천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지난 6월 단거리 미사일 8발을 난사한 뒤 112일 만이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항모전단이 5년 만의 한미 연합 훈련을 위해 부산에 정박 중인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추정되는 미사일은 600여㎞를 날아갔다. 발사 지점으로 추정되는 태천비행장에서 레이건 항모전단이 정박 중인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두까지의 거리 620㎞와 거의 일치한다. 발사 방향만 틀면 미 항모 정박지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부산이 유사시 미국의 증원 전력이 집결하는 핵심 요충지란 점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북의 미사일 발사 목적은 복합적이라 어느 한 가지 때문으로 단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도발 시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새해 벽두부터 1~2주에 한 번꼴로 도발하던 북은 최근 눈에 띄게 잠잠한 모습이었다. 임박설이 무성하던 7차 핵실험 버튼은 아직 누르지 않았고, 지난달 4년여 만에 정상화된 한미 연합 훈련 때도 별다른 특이 동향을 보이지 않았다. 시진핑의 3연임을 확정하는 20차 당대회를 앞둔 중국이 북에 도발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란 것이 정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건함이 핵 추진 잠수함, 순양함, 구축함 등을 이끌고 5년 만에 부산에 들어오자 4개월 만에 다시 도발에 나섰다.
북의 KN-23은 변칙 기동으로 요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술핵도 장착할 수 있다. 북한판 에이태킴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과 섞어 쏘면 한미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다. 그동안 평북 철산·구성·의주 등에서 쏘던 것과 달리 처음으로 태천에서 발사했다. 태천에서 부산을 일직선으로 그으면 성주 사드 기지 부근을 지난다는 것도 계산했을 것이다.
군 당국은 신포 앞바다에서 신형 SLBM 발사 준비 동향을 포착하는 등 북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북의 도발 의지를 꺾으려면 압도적 응징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26일 시작하는 레이건 항모전단과의 연합 훈련을 차질 없이 진행하는 등 한미 연합 방위 태세 유지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월 28일 뒷북 대책, 중구난방…尹정부 경제위기 대응 불안하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복합적이고 대부분 외부 요인 탓이어서 윤석열 정부가 독자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책 수단도 마땅치 않고, 파격적 대책을 내놔도 효과는 제한적이다. 전임 정부의 재정 탕진과 ‘대못 박기’, 온갖 선심 정책에 따른 부작용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윤 정부의 대응은 불안하기만 하다. 적기를 놓친 뒷북 대책, 대통령실과 경제팀의 중구난방식 이견 노출과 혼선, 근거 없는 낙관론 등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온갖 ‘비상’ 회의와 현장 이벤트가 이어지지만 절박성도 실효성도 안 보이는 이유다.
천장을 뚫은 원·달러 환율 급등에 대한 대응은 전형적인 뒷북이다. 환율이 치솟아도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거리를 두더니 1400원을 넘자 조선사 선물환 매도 지원, 기업의 해외보유자금과 민간의 해외자산 국내 유치 등을 허겁지겁 쏟아냈다.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은 과연 논의나 되고 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대통령실은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통화 스와프도 포함된다”고 밝혔지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다음날 “이론적으로는 필요 없는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최상목 경제수석비서관의 낙관적 예고도 결국 빈말이 됐다.
금리 인상 발언도 혼란스럽다. 이 총재는 지난 23일 미국의 3연속 자이언트스텝 발표 직후 “전제조건에서 벗어났다”며 빅스텝을 시사했다. 그런데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미국 금리 인상을 쫓아가자니 국내 경기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경제 관료 출신이기도 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무역수지가 계속 적자인 상황에서 “경상수지가 흑자이니 염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지만, 한은은 8월부터는 경상수지마저 적자일 가능성을 경고했다.
물론 정부가 호들갑을 떨어 국민을 더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뢰를 잃어선 안 된다. 통화스와프가 일정 부분 환율 안정에 기여할 게 분명한데도 “조건에 안 맞는다” “필요 없다”며 남의 일처럼 여긴다. 경제 컨트롤타워는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반 국민 사이에서 에너지 절약이나 금 모으기 같은 캠페인이라도 벌이자는 절박한 호소가 나온다. 대통령실이 아무리 정치 현안에 잘 대응하더라도 경제 성적표가 나쁘면 헛일임을 알아야 한다.
문화일보
09.30 北 SLBM 막을 한·미·일 해상 훈련, ‘친일 몰이’ 이용 안 돼

▲한미 연합 해상훈련에 참가한 한미 해군 함정들이 29일 동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30일부터는 한미일 연합 대잠수함 훈련이 열린다. /해군 제공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 자위대는 30일부터 동해 독도 인근 공해상에서 연합 대잠수함 훈련을 한다. 박근혜 정부 말인 2017년 4월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대잠 훈련을 한 지 5년여 만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독도에서 불과 150km 떨어진 곳에서 일본 자위대와 기꺼이 연합 훈련을 하는 윤석열 정부의 안보관이 무엇이냐”며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150km면 영해(22km)를 벗어난 곳으로 세계 모든 군함이 지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군함도 지나는 해역이다. 한미일 연합 해상 훈련은 처음이 아닌데 이를 두고 민주당이 ‘유사시 일본의 한반도 개입’을 말한 것도 없던 일이다. 세계 각 지역에서 연합 훈련이 열리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트집을 잡는 것은 민주당이 유일할 것이다. 유사시 일본의 주일 미군 기지는 주한 미군 지원의 핵심 역할을 한다. 그래서 북한은 주일 미군 기지를 우선적으로 공격한다. 이를 막기 위한 한미일 훈련은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된다.
북한은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쏠 신형 잠수함 진수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7차 핵실험 준비도 마쳤다. 미·중 갈등 격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확전, 중국의 대만 공세 등으로 안보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모두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이다. 이러한 때 북 잠수함 탐색·추적 능력을 높이고 해상 안보 공조 체제를 강화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일본은 한국이 16대만 보유한 대(對)잠수함 초계기를 100대 이상 갖고 있다. 그런 일본과 협력을 피할 이유가 없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파행을 겪은 한미일 연합 훈련이 이제 겨우 정상화의 첫 발을 떼는데 이조차 흔들려 한다.
지금 한국의 국력과 군사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유럽에 전투기와 전차 자주포를 대량 판매하는 나라다. 육군 전력은 일본의 10배도 넘을 것이다. 그런 한국이 일본에 침략당한다는 것은 정상적 우려와 전망이 아니다. 정쟁에 이용하려는 유치한 친일 몰이일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9월 30일 한.미.일 동해 연합훈련, 3각 안보 공조 출발점 돼야
일본과의 군사 협력 문제는 언제나 민감한 이슈다. 그러나 군국주의 일본은 77년 전에 패망한 데다, 최근 러시아-중국-북한 ‘독재 3축’의 도발과 경제·첨단기술 등 전방위 신냉전이 촉발되면서 한국-미국-일본의 3각 안보 협력 강화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이런 점에서 한·미 양국군이 26∼29일 해상 연합훈련에 이어 30일 일본까지 가세해 동해 공해상에서 대잠수함 연합훈련을 갖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 한·미·일은 박근혜 정부 말기이던 2017년 4월 제주 남방 한·일 중간수역에서 첫 대잠 훈련을 실시했으나, 북한과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고, 탄핵 정국이어서 별다른 관심도 끌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이 한·미·일 3국의 실질적 첫 연합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에 이어 신형 잠수함 개발에 나선 데 이어 7차 핵실험까지 준비 중이다. 중·러는 동해에서 합동 군사훈련까지 벌인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P-3C 해상초계기를 보유한 나라로 대잠작전 능력이 세계 정상급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한·미·일 안보 협력에 대해 “북핵 위협에 대응해 동북아 평화를 지키기 위한 방어 체계”라면서 “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번 훈련을 계기로 한·미·일 군사 협력을 더 확대하고, 이를 위한 훈련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한편, 당초 3국은 연합훈련 실시에 맞춰 동시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리 SNS에 공개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인 안 의원은 “독도에서 150여㎞ 떨어진 곳에서 훈련한다”며 장소까지 좌표 찍듯 공개했다. 이것만으로도 군사기밀 공개와 같은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일인데, 안 의원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개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윤 정부 안보관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국가 안보를 우선하기보다 죽창가식 반일 선동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30일 日 참가한 대잠 훈련과 野의원 反안보
최원일 前 천안함 함장
군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30일부터 동해 공해상에서 미국·일본 전력과 함께 대(對)잠수함전 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29일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번 훈련은 2017년에도 실시한 바 있는 한·미·일 3자 간 훈련으로서,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SLBM의 능력 고도화 등 점증하는 북한의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는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군이 공식 발표 시기를 검토하던 사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8일 훈련 일정을 전격 공개해 버렸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30일 한·미·일 3국 해군이 동해상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한다’며 ‘26∼29일 진행하는 한·미 연합해상훈련이 끝난 뒤 양국 해군은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대잠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힌 것이다.
안 의원은 ‘독도에서 불과 150여㎞ 떨어진 곳’이라고 훈련 지점을 공개하면서, ‘참담하다’고 덧붙였다. 정권을 견제하는 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서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국방에 관한 국회의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국방위원으로서의 처신은 실망을 금할 길 없다. 더구나 안 의원은 천안함 좌초설 등을 주장하며 유족과 생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사람을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천거한 적이 있으며,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다. 이러한 군과 국회의 엇박자를 보면서 전 천안함 함장이자 전역 직전 연합사 보안과장을 지낸 필자로서는 ‘참담함’이 더 느껴졌다.
여야를 떠나 그 누구보다 군을 신뢰하고 지원해야 할 국방위원의 보안 의식 수준이나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대잠전훈련 일정을 자의든 타의든 누설한 군의 수준 또한 질타받아 마땅할 것이다.
현 정권의 국방정책에 반대하고 반일 감정에 편승해 무조건적인 일본과의 교류나 훈련을 반대하는 논리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물속에서 음파는 굴절하며 음속은 수온·수압·염도에 따라 바뀐다. 게다가 복반사음, 각종 수중 소음, 수괴(물덩어리) 등으로 인해 대잠수함작전은 거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북한이 70여 척의 잠수함을 운용하고, 최근 SLBM 탑재 잠수함을 개발하는 것도 그 은밀성을 이용한 저비용 고효율 작전을 전개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1996·1998년 동해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의 기억과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후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에 북한 잠수함 50여 척이 기지를 이탈해 미식별된 경험을 명심해야 한다. 여전히 열악한 우리의 대잠 전력과 정보 능력(P-3C/CK 16대)으로는 북한과 제3국의 잠수함을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다.
반면, 일본은 100여 대의 대잠헬기와 120대 안팎의 대잠초계기(P-3C와 P-1)를 보유하고 24시간 바다를 공백 없이 탐색한다. 또, 전시와 유사시 한반도 전개 전력인 미 제7함대사령부도 일본에 있다. 동해 공해상에서 미식별 잠수함 발견 시 미·일의 작전을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한미동맹은 해상훈련 때 연합 해군전술 신호서를 사용한다. 일본과도 이런 통신 절차를 숙달하고 유사시 북한 도발에 대비한 정보 교류와 작전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국방과 국익은 감정보다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