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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2022-08/ 08.01(월) 논의도, 설득도 없이 느닷없이 내놓은 ‘만 5세 입학’ - 08월 30일 오석준 대법관 후보의 ‘김명수 법원 시스템’ 비판 옳다

상림은내고향 2022. 9. 1. 11:49

바른소리 2022-08/

08.01(월)  논의도, 설득도 없이 느닷없이 내놓은 ‘만 5세 입학’

 교육부 장관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걸 추진하겠다고 보고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적도, 국정 과제로 논의된 일도 없는 사안을 느닷없이 꺼내 든 것에 국민은 당혹스럽다. 교육 분야 경력이 전무한 신임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충분한 준비 끝에 내놨다고 믿기 힘들다.

 

입학 연령을 낮추는 이점은 있다. 중·고교와 대학 입학·졸업까지 연쇄적으로 1년씩 당겨지면서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출 시점도 1년 빨라진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군 입대 때문에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남자들에게 도움 될 수 있다. 정부의 보육 재정 지출과 가정의 양육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가정 형편, 지역 여건에 따라 유아 교육의 질적 격차가 작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평한 교육 기회 구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만 5세 어린이들은 집중력이 약해 집단 놀이 형태가 아닌 정규 학교 교육 대상으론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교육계 지적이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4년간 단계적으로 3개월씩 취학 연령을 낮출 경우 해당 학년 동급생 수 증가 폭을 25% 이내로 제한할 수 있어 교사·교실 조건은 넉넉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급생 수가 25% 증가하면 해당 연령대의 대학, 취직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진다. 학부모들이 제도 변경을 흔쾌히 수용할지 의문이다.

 

유아 교육계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취학 연령을 낮추면 유치원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만 5세 입학’을 추진했지만 1만곳 가까운 유치원 반대에 부딪혀 성사시키지 못했다. 제도 변경을 시도할 때 피해 집단을 설득할 치밀한 대책을 준비해가면서 추진하지 않으면 관철하기 어렵다. 여소야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부가 응집력 있는 반대 집단이 뚜렷한 이 사안에 대해 준비를 충분히 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논의 절차와 사전 설득 과정 없이 발표부터 해놓고 이제부터 태스크 포스를 꾸려 추진하겠다고 한다. 혼란만 초래해 정부 신뢰를 또 한번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든다.

조선일보  사설

 

08.01  만 5세 취학, 국민적 합의 필요한 사안

공약·인수위에도 없던 정책 불쑥 꺼내

학교 책임자인 교육감과도 논의 없어

교육부가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문제를 놓고 주말 내내 시끄러웠다. 교육부는 아동을 일찍 학교에 보내 사교육 격차를 줄이고, 사회 진출 연령을 앞당겨 국가 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2025년 시행 로드맵까지 내놨다.

 

그러나 상당수 교육전문가들과 학부모들은 우려를 표한다. 한국교총은 “아동의 발달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13개 교육·학부모단체는 오늘 ‘만 5세 초등학교 조기입학 반대 기자회견’을 연다.

 

물론 입학 시기를 1년 앞당기자는 게 꼭 틀린 주장만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영국·호주·아일랜드·뉴질랜드 4개국은 만 5세에 취학한다. 하지만 미국·프랑스를 비롯한 26개국은 우리와 같이 만 6세 입학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 이명박 정부의 미래기획위원회도 이 정책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취학 연령을 정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1949년 교육법 제정 당시 정해 놓은 것을 처음 바꾸는 일이라면 충분한 여론 수렴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다. 이처럼 중차대한 일을 교육부는 정작 초·중등 교육의 책임자인 교육감들과 논의하지 않았다. 어린이와 학부모는 물론 교사, 유치원, 어린이집 등 수많은 이해당사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이 사안을 진지하게 논의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의 졸속 정책 입안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 공약이나 인수위원회 안건으로 포함돼 공론화된 적도 없다. 과거 정권에서 번번이 실패했던 정책을 교육부 장관이 뜬금없이 첫 업무보고에서 밝히고, 대통령은 또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깜짝 쇼’ 하듯 정책을 불쑥 내놓는 행태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철학이 얼마나 빈약한지 보여준다. 교육부가 내세운 만 5세 취학의 근거가 교육격차 해소라면 오히려 지난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안한 ‘K-학년제’ 도입이 더욱 적합해 보인다.

 

아울러 20년 넘게 공전 중인 유보(유아교육·보육) 통합 문제의 선결도 필요하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돌봄 공백과 사교육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촘촘하게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데, 불쑥 로드맵부터 꺼내 놓으니 제대로 될 일도 되지 않는다.

 

정책 마련 과정에서 소통은 의무다. 다수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백년대계까지는 아니어도 사전에 충분히 교감한 상태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면 어땠을까. 차라리 장관이 대통령에게 불쑥 제안하지 말고 향후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자연스럽게 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08월 02일  국민제안 첫 이벤트부터 우왕좌왕…이게 대통령실 수준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실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시스템으로 도입한 ‘국민제안’ 제도가 시작부터 우왕좌왕한다. 국정 본질과는 무관한 기술적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전말을 보면 현 대통령실의 수준과 역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 악용 등의 문제점을 들어 문재인 청와대의 ‘국민청원’을 폐지하고 “윤 대통령의 소통 의지를 반영한 창구”라며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국민제안 창구를 만들었다. 윤석‘열(10)’과 잘 듣겠다는 ‘귀(耳)’를 합친 102 안내전화도 개통했다고 자랑했다.

대통령실은 1일 국민제안 톱10 정책투표에 대해 ‘어뷰징(중복·편법 전송)’우려에 따라 무효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우수 제안 3건을 실제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국민제안 제도 자체부터 졸속 기미가 있었고, 이번 소동도 웬만한 식견만 있으면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난달 18일 1만3000여 건에 이르는 국민제안이 쏟아졌고, 이 중 ‘대형 마트 의무 휴업 폐지’ 등 10건이 선정됐다. 하지만 실제 투표에서 비실명제로 진행되다 보니 중복 투표 등을 막지 못했고, 10개 모든 안건이 56만∼57만 표를 얻는 일도 벌어졌다. 한 사람이 모든 안건에 ‘좋아요’를 누른 것으로 보이는데, 애초부터 변별력을 갖기 어려운 디자인이었다. 특정 이해 집단이 참여해 몰표를 줄 경우 이를 막을 방법도 없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뒤늦게 “우회적으로 들어오는 부분이 그렇게 극렬할지 몰랐다”고 했지만, 면피성 변명일 뿐이다.

문재인 청와대 ‘국민청원’은 선동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의 문제점은 있었지만, 대체로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시스템을 내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 문제 역시 대통령실 참모와 직원의 자질 문제로 귀결된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02일  대통령 史草 파기는 법적·역사적 범죄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회의록 초안 파기’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논란 발생 10년 만에 확정됐다. 지난달 28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남북 정상회담 초안이 담긴 문서관리카드를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e지원)에서 삭제한 혐의(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기소된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대법원은 2020년 12월 10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판결(2015도 19296)을 통해서도 “문서관리카드에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기된 의견, 수정된 내용 및 지시사항, 의사결정 내용이 기록·관리될 수 있도록 한 구 사무관리규정,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첨부한 지시사항의 내용, 문서관리시스템을 통한 업무처리 절차 등에 비춰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1일 이 사건 회의록의 내용을 확인한 후 이 사건 문서관리카드에 서명을 생성함으로써 이 사건 회의록이 첨부된 이 사건 문서관리카드를 공문서로 성립시킨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이에 따라 이 사건 문서관리카드는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됐으며,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에도 해당한다”고 판시해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초안도 대통령의 결재가 이뤄짐으로써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된 것으로 판단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기록물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부터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기록이 소각되면서 대통령기록물을 포함한 국가기록물이 대거 소실되는 암흑기도 경험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대통령기록물을 포함한 공공기록의 공개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1999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사항을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대통령기록물법을 제정해 대통령기록관을 최초로 개관하고 설립을 의무화해 대통령기록물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리체계를 정립했다. 따라서 대통령기록물 무단 파기 사건이 노 정부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대통령기록물 무단 파기 사건이 법적으로만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온전히 보존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지향하기 위해 이 사건은 역사적 측면에서도 단죄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의 예에서 보듯이 조선의 기록 정신을 전승할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그 편찬의 완성만을 총재관이 임금에게 보고하고 춘추관에서 봉안 의식을 가진 다음 춘추관과 지방의 사고(史庫)에 보관했다. 국왕조차도 마음대로 열람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사관의 신분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역사적 사실의 왜곡을 피해 자료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임진왜란 후에는 실록을 보존하기 위해 산지만을 골라 사고를 설치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기록물을 무단 파기했고,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기록물로 분류하기 어려운 김정숙 여사의 의전비용까지 비공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정했다. 올바른 기록문화의 정신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적용돼야 한다.

문화일보

 

08월 03일  “경찰국, 지휘체계 공백 메우는 조치이자 장관 책임 복원한 것”

■ 파워인터뷰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지금까지 관련 조직 없어
법에 따른 역할 수행못해
과거 경찰인사 靑서 다해
유력자 추천받아야 승진
통제 비판은 잘못된 인식
법령 읽어보면 바로 알 것


인터뷰 = 유회경 전국부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 정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는 경찰국 설치와 관련해 “법적으로 논란이 1%라도 있으면 하지 않겠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경찰국 설치와 운영은 현행법에서 부여한 행안부 장관의 권한과 업무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호웅 기자

 

 “장관님,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 대해 쿠데타라고 발언한 것은 좀 심한 것 아니었나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현재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를 둘러싸고 경찰은 물론, 야권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탄핵 이야기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인터뷰 이전 이 장관 하면 쿠데타란 과격한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 ‘연관 검색어’라고 해야 하나. 총경회의 직후 정부서울청사 출근길에서 기자들에게 한 발언인데 윤석열 정부와 경찰 간 갈등의 크기와 깊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어였다.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나 거두절미하고 쿠데타부터 치고 들어갔다. 이 장관은 “저는 쿠데타라고 한 적이 없어요. 당시 정확한 워딩은 ‘쿠데타에 준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다. 국민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회도 그렇게 출발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쿠데타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진 않겠지만 이런 집단 행동에 대해 국민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입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경찰의 집단 반발은 문제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쿠데타 운운한 것에 대해 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가요. 제 설명 좀 들어보시죠.” 이 장관은 결코 과격하지 않은 특유의 조곤조곤한 어조로 설득력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총경회의를 평검사회의와 자꾸 비교하곤 하는데 둘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검사들은 강제력이나 무력과는 거리가 멀다. 경찰을 지휘할 수 있어 힘이 있다고 인식됐을 뿐이다. 그런데 경찰은 군 다음으로 많은 조직원을 갖고 있다. 14만 명이다. 이 사람들은 언제든지 강제력과 물리력을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 군은 외적을 대상으로 하지만 국가 안에서 분규나 소요가 났을 때 국민을 상대로 무력 사용이 가능한 유일한 집단이 바로 경찰이기도 하다. 실제로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가. 경찰서장은 이를 동원할 수 있는 최고 실무 책임자로 보면 된다. 군으로 치면 연대장이다. 물론 그 위에 사단장이나 참모총장에 준하는 경무관, 치안감, 치안정감, 치안총감 등이 있지만 이들은 말로 지시하는 거고 실제 인원을 동원하는 것은 서장들이다. 평검사와 다르다. 경위나 경정이 모인 것과도 다르다. 서장들이 모인 것이고 그중 한두 명은 제복까지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직전에 경찰청장 직무대행자가 명시적으로 금지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해산 명령도 내렸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모여 논의를 했는데 그 논의의 주된 내용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시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더욱이 총경회의를 주도한 이들의 출신이 하나라는 것이다.” 차분한 답이었는데 대단히 논리적이었다.

―경찰대 출신을 의미하는 건가.
“내가 파악하는 바로는 총경회의에 직접 참석한 56명 가운데 90% 가까이 경찰대 출신이다. 56명이 소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은 숫자도 아니다. 이게 일반 공무원 모임과 같나. 차원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자극적이지만 세게 표현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스타 장관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최초의 스타 장관이 되기 위해 과격한 발언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돈다.
“지금도 제복 입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문제가 크다고 본다. 일반 공무원들은 모여서 그럴 수 있다.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정부 시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군인이나 경찰은 그러면 안 된다고 본다. 설마 설마 하지만 모두 설마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제복 입은 사람들이, 특히 출신이 같은 사람들이 하나가 돼 정부 시책에 반대하게 되면 정부는 붕괴된다. 무너지는 거다. 그래서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 말한 것이다.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순 있겠지만 쿠데타에 준하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경찰국 신설이 경찰 장악 의도를 구체화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현행 경찰법, 경찰공무원법 등에선 행안부 장관의 역할과 업무에 대해 경찰 고위직 인사제청권, 국가경찰위원회 안건 부의 및 재의 요구권, 경찰 관련 법령의 국무회의 상정권, 자치경찰에 대한 지원업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안부 안에는 관련 조직이 없어 장관이 법에 따른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대신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 또는 치안비서관실에 파견된 경찰공무원 등이 행안부 장관을 건너뛰고 경찰과 소위 직거래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민정수석실이나 치안비서관실이 폐지되지 않았는가. 경찰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진 셈이다. 따라서 경찰국 설치는 이 정부 들어 발생한 경찰에 대한 지휘체계 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치인 동시에 법에서 규정한 경찰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역할과 책임을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찰법 등에선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 관련 업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행안부 장관들은 자신의 역할과 업무를 해오지 않았다는 말인가.
“맞다. 행안부 장관은 경찰 인사 관련 업무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 아니 물리적으로 인사에 관여하는 게 불가능했다. 자, 보자. 현재 치안감이 30여 명, 경무관이 80여 명이다. 그 아래 총경이 600여 명 된다. 경정은 3000여 명이다. 행안부 장관의 고유 권한인 인사제청권한이 총경부터지만 총경을 밑에서 끌어올리기 위해선 경정들을 봐야 할 것 아니냐. 그럼 인사파일이 3000여 개다. 물론 한꺼번에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총경 600여 명 중에 50여 명을 승진시킨다고 하면 50여 명의 최소 4배수를 확인해야 한다. 그럼 200여 명을 추려내야 한다. 그걸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나. 이번에 신설되는 경찰국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경찰 통제와 무관한 조직이다. 경찰직 12명은 경찰 인사업무 및 경찰청과의 유기적인 협력 분야 업무를 수행하고 일반직 4명은 총괄기획, 법·제도, 지방행정과의 연계 분야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인사지원과의 경우, 경찰청 상황을 잘 알고 경찰청과 유기적인 협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전원 경찰직으로 배정했다. 경찰국 조직 어디에서 경찰 통제를 도모한단 말인가.”

 

“특정대학 졸업했다고 바로 7급 말이 되나… 순경 출신에겐 불공정”

9급 시험 본 뒤 순경부터 시작
경위 되는 데 최소 15년 걸려
경찰대는 무시험으로 간부직행
젊은층선 민감하게 여길 수도

총경회의 직접 참석 56명 중
90% 가까이는 ‘경찰대’ 출신
‘경찰대 해체’는 과거부터 나와
과거 민주당서도 폐지법 발의


'―그럼 이전에 경찰 인사는 어떻게 이뤄졌나.
“과거 행안부 장관은 경찰이 해온 추천안을 보고 그중에서 자신이 꼭 심어놓고 싶은 사람, 청탁받은 사람 한두 명 심어놓는 데 그쳤을 것이다. 대신 모든 것은 청와대에서 알아서 했다. 민정수석실이나 치안비서관실에 많을 때는 100여 명, 적게는 30여 명 경찰이 파견 나갔는데 이들을 매개로 해 경찰 인사가 이뤄졌다고 보면 된다. 이전에 보면 청와대 일개 행정관이 해경 전 인사를 주물렀다고 해서 ‘해경왕’이라고 불렸다고 하지 않은가. 일개 행정관이 군 참모총장에게 인사 파일 갖고 오라며 카페로 불러냈다고 하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하면 늘 그런 식의 인사가 된다. 특히 경찰 인사는 압정 구조라고 한다. 승진이 극히 어렵다. 엄청난 인사 청탁이 들어간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유력자 추천을 받지 않으면 인사 벽을 뚫고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경찰국이 생기면 인사 시스템이 보다 투명하고 엄정해질 수 있는가. 여기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청탁이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안부 안에 정식 인사할 수 있는 기구가 만들어지면 과거에 비해선 훨씬 투명해질 것이다. 공식적인 조직인 데다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또 인사가 잘못되면 국무위원인 내가 국회 가서 답변하고 책임져야 한다. 아무래도 애먼 짓은 덜하지 않겠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할 때보다 훨씬 제도적으로 진일보한 것이다.”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에서 제안한 경찰국보단 조직이나 권한이 많이 약화된 듯한데.
“경찰제도개선자문위에선 전반적인 경찰 지휘를 위한 경찰국을 만들라고 제안을 했다. 이는 정부조직법 34조에 근거한 것이다. 과거에는 행안부 장관 업무 1항에 치안이 있었다. 당시 행안부 장관은 직접 치안업무를 했다. 국장들을 데리고 수사도 하고 치안도 맡으며 경비도 직접 했다. 경찰청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청이 분리되면서 1항에서 치안이 빠졌다. 대신 5항에 치안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 이렇게 돼 있다. 그러니까 행안부 장관이 치안 업무를 직접 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치안 업무를 지휘·감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행안부 장관에게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주류 학자나 실무자들은 정부조직법 34조 5항을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을 지휘·통제할 수 있는 근거 조항으로 본다.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데 경찰 통제네 뭐네 자꾸 시비를 걸어오니까 이번에 경찰국을 만들면서 이건 아예 제쳐 뒀다. 대신 경찰법, 경찰공무원법에 근거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행안부 장관 권한에 따른 업무만 모아 경찰국을 만든 것이다.”

―일각에선 법령 개정 절차를 거쳐 경찰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경찰국 신설을 편법으로 보기도 한다.
“국가경찰위원회,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경찰국 신설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이 보는 경찰국은 경찰제도개선자문위가 제안한 경찰국이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국을 통해 치안 업무를 지휘·감독하고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그 부분에 대해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이번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아예 빼버렸다. 그런데 빼버린 그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비판하고 시비를 거는 것 같다. 7월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정령안을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알고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법령을 한 번만 읽어보면 논란이 나올 수가 없다. 논란이 1%라도 있다면 안 하겠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다. 법제처에서도 7월 27일 공식 의견을 냈다. 경찰국 신설은 법령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더 나아가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치안 업무 지휘·감독·통제 업무도 행안부 장관 권한이라고 해석해줬다.”

―경찰국 설립이 경찰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말이 있다.
“행안부 장관 지휘를 안 받는 것이 경찰 독립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경찰이 정부와 떨어지겠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장관도 경찰을 책임질 수 없게 되면 정말 큰 일이 벌어진다. 가령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공권력 투입 이슈가 있다고 치자. 경찰청장이 이를 결정할 수 있겠나. 투입하는 순간 사고가 나는데. 경찰청장은 가만히 있고 책임 안 지는 게 최고다. 그런데 정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나. 결국 공권력 투입은 정부가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경찰 장악 의혹은 끊이질 않는다.
“경찰 장악을 하려고 했다면 대통령실에서 직접 하지 왜 행안부 장관을 통해 하겠는가. 그건 완전 말이 안 된다. 대통령 입장에서 자기 직할부대이자 책임지지 않는 비서조직을 통해 경찰을 잡는 게 쉬운가 아니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노’할 수 있는 국무위원을 거쳐 하는 게 쉬운가. 국무위원은 대통령이 시킨다고 무조건 할 수가 없다. 반면 비서조직은 대통령과 한몸이기 때문에 ‘노’라고 할 수가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민정수석실을 왜 없애 분란을 만드냐는 지적도 있다.
“제가 보기엔 민정수석실의 순기능도 적지 않았다. 순기능이 많지만 대통령이 없앤 가장 큰 이유는 민정수석실에 너무 많은 권력이 쏠렸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에서 검찰, 경찰, 감사원, 국가정보원 등 힘 있는 기관은 모두 관할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인사를 다 틀어쥐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해도 대통령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국무위원인 각 부 장관이 인사권을 갖게 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국회가 있고 언론이 있기에 문서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예전처럼 하는 게 편할 것이다. 자기 권한을 포기한 것이고 굉장히 큰 결심을 한 것이다. 본인이 민정수석실 폐단으로 가장 큰 피해를 봤기 때문에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이것은 정말 있어선 안 되는 조직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화장실 갈 때 하고 나올 때하고 다르다고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약을 했기 때문에 그대로 지킨 것이다. 이런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전처럼 대통령이 직접 경찰에 대해 권한을 행사할 때 서장들이 모여서 대통령이 만들겠다는 조직에 반대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내려놓으니까 속된 말로 대든다고 할까 그런 게 가능해진 것 같다.”

―장관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할 수 있겠다.
“굉장히 불편하고 억울하다. 모 야당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조직 두지 말고 그냥 하라고. 사실 이 제도(경찰국 설치 및 운영) 자체가 굉장히 불편한 제도다. 사실 감정적으로 보면 그냥 그만 둘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행안부 장관 하는 동안 경찰 인사 몇 번 있다고 어렵사리 순경 출신 20% 넣고 전체 인사 파일 보고 고르고 하는 이런 작업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민정수석실 없앤 것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맡겨진 소명이니 묵묵히 참고 하는 수밖에 없다.”

―총경 회의의 주동세력으로 지목된 경찰대를 개혁할 것이란 말도 있는데 맞는가.
“경찰대 해체 주장은 예전부터 나온 것이다. 심지어 전에 더불어민주당 의원 몇 명이 경찰대 폐지법을 발의한 적도 있었다. 경찰제도개선자문위에서 경찰대 개혁 이야기가 나왔고 총리 산하 경찰제도발전위원회 장기 과제로 올라 있다. 젊은 사람들이 공정에 굉장히 민감하지 않은가. 경찰 입직 경로를 보면 다소 불공정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경찰대 졸업하면 자동으로 경위가 된다. 그런데 순경으로 들어간 사람은 경위 되는 데 최소 15년, 20년 걸린다. 올라가 봐야 경위, 경감, 아주 잘해야 총경 여기서 경력이 끝난다. 세상에. 어떤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7급 되는 게 말이 되나.”

―사관학교와는 다른가.
“군은 장교와 부사관 조직으로 이원화돼 있다. 법조계도 마찬가지다. 법원의 경우, 사시 합격한 사람은 3급부터, 일반직 시험 보면 9·7·5급으로 시작한다. 이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어려운 시험을 봐서 판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조금 쉬운 시험을 선택해 일반직으로 갈 것인지 말이다. 만일 경찰이 이원화돼 있다고 하면 문제 될 것은 없다. 경찰 간부를 배출하는 경찰대학 한 곳만 있다면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전국에는 경찰대 이외에도 약 160개의 경찰학과가 있다. 경찰학과 출신들은 9급 시험 본 뒤 순경부터 시작하는 거다. 160개 경찰학과 출신들 입장에선 9급에서 출발하고 경찰대 졸업자는 시험도 치르지 않은 채 7급에서 시작하는 건 상당히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곧 경찰 이야기만 했다. 하도 핫한 주제이다 보니 인터뷰 시간을 대부분 소비해버렸다. 화제를 돌렸다.

 

 ―정치에 뜻이 있나.
“정치에는 뜻이 하나도 없다. 앞으로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지금 하는 게 정치 아닌가.
“그건 인정하겠는데 내가 이 역할을 마친 이후에 정치에 관여하거나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제 성향과 맞지 않는 것 같다. 괜히 말 세게 한다고 혼나기나 하고 감도 떨어지고(웃음).”

―한 장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 장관과 10년 정도 차이 나는 것 같은데 개인적인 인연은 전혀 없다. 인수위 때 처음 봤는데 영리하고 거침없고 다재다능하며 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정무감각이 뛰어나고 멋쟁이에다가 젊고 의욕적이며 말도 잘하더라. 사람이니까 단점은 다 있겠지만 별로 없을 것 같다. 저와 한 장관 간 공통점은 거의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정부가 잘 되었으면 바라고 성공시켜야 한다는 진정성만큼은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장관의 현장행정

울산 태화종합시장부터 남대문 쪽방촌까지… 휴가 대신 안전위해 방방곡곡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취임 초기부터 현장 행정을 강조하고 있다. 보고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기보다는 휴가도 반납하고 민생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서 상황을 둘러보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지난 5월 13일 취임한 이 장관은 취임 바로 이틀 뒤 첫 대외 일정으로 역대 두 번째로 피해가 컸던 경북 울진과 강원 동해 산불 피해 지역을 찾았다. 당시 코로나19 소강 국면에서 산불 피해 지역은 재난 안전 문제를 총괄하는 행안부 장관의 시찰지로 우선순위에 꼽혀왔다. 이 장관은 이날 해당 지역을 방문해 피해 지역 시찰은 물론, 피해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 허리를 숙이고 이야기를 들으며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이 장관은 지난달 30일에는 울산 태화종합시장과 소방관서를 방문, 생활 물가를 점검하고 소방관들을 격려했다. 이 장관은 태화종합시장에서 여름철 가뭄과 작황 부진으로 가파르게 오른 채소류 가격을 점검하고 물가 인상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소상공인의 고충을 들었다. 또 최근 물가안정을 위해 도시가스 공급 비용을 동결한 경동도시가스 본사도 방문해 민생경제 안정에 기여한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장관은 이어 지난 1일 서울 남대문 쪽방촌을 방문해 실내 및 야외 무더위 쉼터 시설과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쪽방촌 내 에어컨 등 냉방시설 가동 상황과 거주민의 무더위 나기 고충을 청취했다.

이 장관은 당초 이번 주(1∼5일) 여름 휴가를 계획했지만 폭염 대응 상황 점검 등을 위해 휴가를 취소하고 현장 확인에 나선 것이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주민들에게 “취약계층이 좀 더 나은 생활환경에서 무더위를 날 수 있도록 냉방복지의 관점에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장관은 경찰국 설치를 둘러싼 논란과 오해를 설명하기 위해 일선 경찰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일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직접 경찰들을 만나 대화에 나선 것이다. 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사태 때에도 경남 거제를 찾아 일촉즉발의 사태에 대비한 현장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이 장관과 함께 법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이 장관은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면서 “현장 행정은 이 장관이 상황을 직접 살피고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도출해내려는 실용적 합리주의자로서의 모습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이정민 기자


■이 장관은

치킨 사들고 직원 찾을 만큼 소탈… ‘지연된 정의는 정의 아니다’가 좌우명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근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발해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12·12쿠데타’에 빗대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과격한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발언들이었지만 정작 대해 보니 부드러운 목소리에 차분한 어투, 온화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3일 한 행안부 직원도 “얼마 전 야근 중이었는데 장관님이 치킨을 들고 부서에 나타났다”며 “언론에 비친 장관님의 이미지가 강한 모습이라 긴장했는데 격의 없이 다정다감한 말투로 격려해줘 거리감이 확 좁혀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충암고, 서울대 법대 라인을 잇는 윤석열 대통령의 4년 후배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고교 동문회 자리에서 (윤 대통령을) 형님으로 불렀다”고 언급할 만큼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다. 이 장관은 “대학 2학년 때 서울대가 집에서 워낙 멀어서 집에서 가까운 연세대에서 공부했다. 그때 윤 대통령도 연세대에서 공부해 알게 됐다. 이후 충암고 출신 법조인 모임인 ‘충법회’에서 자주 뵀다”며 윤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1965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1986년 사법시험 28회에 합격했다. 공군 법무관을 거쳐 1992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해 서울고법 판사, 춘천지법 원주지원장,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2007년 대법원 연구관을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은 뒤에는 법무법인 율촌과 법무법인 김장리에서 근무했다.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으며 17대 대통령선거 때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5년 1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차관급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번 대선에서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사회위원장을 맡았고, 인수위원회 대외협력특보로 활약했다. 이 장관은 법조인 출신답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계 대선배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이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08.05  교육 관련 고위직 전원이 비전문가, ‘5세 취학’ 논란 우연 아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장상윤 차관이 7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행정학자 출신으로 교육 정책 경험이 없고, 장상윤 차관은 국무조정실 출신, 이상원 차관보는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여기에다 대통령실 교육 정책을 맡고 있는 안상훈 사회수석도 복지 전문가로 교육 정책을 다뤄본 경험이 없다. 최근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정책을 불쑥 꺼내 혼란을 초래한 배경에는 이렇게 교육 라인이 모두 비(非)전문가인 것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 정책은 이해관계자가 많아 복잡하고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민감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큰 방향은 물론 용어·토씨 하나가 오랜 갈등과 조정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충분한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런 교육 문제를 역사와 맥락을 모르는 비전문가가 섣불리 바꾸겠다고 나서면 사회적인 파장에 이어 정권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관, 차관, 차관보는 물론 대통령실 수석까지 모두 교육행정 무(無)경험자로 이뤄진 경우는 과거엔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라면 안이한 인사이고 의도적으로 이런 조합을 만들었다면 무책임하다. 비전문가들인 만큼 교육부 관료들의 의견을 들어 정책을 신중하게 추진해야 했지만, 장관이 불쑥 정책을 내밀고 차관·차관보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 이번 혼란의 원인이다. 초등 입학 연령만 아니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함께 내놓은 외고 폐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밝히지 않고 특목고 가운데 ‘외고’만 골라 폐지하겠다고 하자 외고 쪽에서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 담당자들이 외고 폐지의 이유와 근거를 설명하지 못해 제2의 ‘5세 취학’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 교육부 앞에는 대입 제도 개편, 대학 구조 조정, 유보 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 같은 중요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모두가 민감하고 폭발력이 강한 현안이다. 지금 같은 ‘아마추어’ 교육부 수뇌부로 가면 유사한 정책 사고가 빈발할 것이 분명하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빨리 교육 정책 라인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05일  '대우조선 적폐’ 전모 규명할 때다

 이신우 논설고문

1997년 기아車 내부 모순 최악
결국 파산해서 현대차에 매각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 기록

대우조선 ‘민폐 기업’ 길 선택
낙하산 경영과 불법 파업 반복
정부가 쏟아부은 혈세만 12兆

 

대우조선해양이 끝 모를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 어찌 그리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기아차 사태’와 똑 닮았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하지만 두 기업은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 갈림길은 무엇이었을까.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국가 경제를 협박하던 기아차는 당시 우리 사회가 감추고 있던 내부 모순을 가장 집약적으로 노출하던 사태요, 사건이었다. 1997년 한여름 한보 부도 사태에 질린 금융계는 다음 차례로 기아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미 6월 말부터 부도 조짐이 청와대에 보고되기 시작했다. 7월에는 “밑 빠진 독”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다녔다. 한국 경제 전체가 기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6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아살리기 범국민운동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기아 편들기에 나섰다. 기아는 다른 재벌들과 달리 ‘국민기업’이라는 이유였다. 정부를 압박하는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면서 기아 주식 사주기 운동까지 벌어졌다.

하긴 다른 오너 경영체와 달리 기아는 소유-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 체제, 종업원 지주제도 등의 외양을 갖추고 있으니 선진적 기업 형태라 할 만했다. 하지만 그 속은 썩을 대로 썩고 있었다. 무분별 차입에 의한 계열기업 확장에 더해, 기아는 다른 재벌보다 더 골치 아픈 요인까지 겹쳐 있었다. 강성 노조였다. 대주주가 없다 보니 우리사주 조합과 경영발전위원회가 사실상 회사의 주인이 되면서 노사 간의 견제장치가 사라졌다. 전문경영인 김선홍 회장으로서는 노조의 지지가 경영권을 지탱하는 중요한 권력 기반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여론은 기아 편이었다.

당시 어느 진보·좌파 경제학자는 “기아를 국영 또는 공영기업의 형태에서 국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다 민주적 대안이 아닐까 한다”며 “소유관계의 사회화, 경영통제의 민주화 등 사회화의 형태 속에서 독점적 대기업의 문제를 해결”(‘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하자고 호소했다. 불행히도 기아차는 그의 주장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시장에서의 파산 과정을 거쳐 다른 기업에 흡수돼버린 것이다. 그럼 그 기아차는 어떻게 됐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2022년 기아는 2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면서 매출액 21조8760억 원, 영업이익 2조2341억 원 등,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다행히도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라는 책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것은 대우조선해양이었다. 지금 대우조선의 최대 주주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지분 55.7%)이니 국영은 아니더라도 공영기업인 셈이다. 경영 통제도 민주화(?)돼 있다. 경영진은 낙하산이 전통이고, 사외이사진도 거의 절반이 정치권에서 임시 출장 나온 사람들이다. 더 이상 어떤 해법을 바라겠는가.

 

 지금 대우조선은 기업이 아니다. 그냥 부실 덩어리다. 이 회사는 분식회계를 하지 않는 순간마다 실체를 드러낸다. 정부가 혈세를 12조 원이나 퍼부었음에도 재무구조는 악화일로다. 지난해 1조7546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4701억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가 쌓이면서 3월 말 현재 부채 비율이 523.16%다. 지난해 말 이후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144.12%포인트 치솟았다. 툭하면 불법 점거 파업이고, 정치투쟁이나 벌이는 강성 노조, 5조 원대의 분식회계, 직원 한 명이 8년에 걸쳐 저지른 180억 원 횡령, 그런 와중에 수천억 원대의 직원 성과급 잔치…. 노동자의 고통을 키우지 말고 대우조선을 살려내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한 이 회사의 경영 정상화는 연목구어다.

세금으로 연명하는 대우조선은 국제시장에 나가 적자 수주를 주도하고 이것이 국내 조선업들의 출혈경쟁을 유발, 산업의 부실을 자초했다. 2억5000만∼2억6000만 달러에 달하던 LNG 선박 발주를 1억9000만 달러까지 떨어뜨린 주인공이 누구인가. 언제까지 이런 회사를 위해 국민이 대신 희생해야 하나. 로빈 후드 가면을 쓴 채 감언이설 선동하던 정치인들이나, 이들을 등에 업고 낙하산으로 내려온 경영자·사외이사들, 그들과 결탁해 꿀 빨던 노조의 과거 행적을 파헤쳐 국민 앞에 전시할 때가 왔다.

문화일보  

 

08.08  국군·경찰에 희생됐다 해야 배상하는 나라

침략 맞선 희생자 국가 보상 안돼

인민군 피해자도 군·경 희생 신고

진실 규명 아닌 왜곡, 역사 모독

김수정 논설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정근식)가 한국전쟁 시기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을 한창 조사 중이다. 한 개면 희생자만 133명. 인민군과 좌익 세력에 의해서다. 18명, 17명, 11명, 9명 등 가족 단위로, 교회 신자 35명도 몰살됐다. 위원회에 접수된 전남지역 민간인 피해 사건 5368개 중 하나다.

 

해방과 전쟁, 좌·우익은 점령과 후퇴를 반복하며 서로 살상했다. 끔찍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일제 이후 권위주의 시기까지 왜곡·은폐된 사건 진실을 밝혀 과거와 화해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만든 기구다. 진상 규명을 통해 명예회복과 피해구제에 나서는 역할을 한다. 노무현 정부 때 1기(2005~2010년), 문재인 정부 때 2기 위원회가 지난해 1월 출범했다. 여러 사안 중 전쟁 전후 국군·경찰에 의한 불법적 민간인 희생,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하는 세력, 즉 북한 인민군과 빨치산 등에 의한 폭력ㆍ학살도 진상 규명한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일들이 10여년 이어져 왔다. 1기 위원회에서 진상이 규명된 유족 중 5624명이 개별 민사 소송으로 배상받았다. 희생자 1인당 평균 약 1억5000만 원, 총 7000억원(위원회 추산)이다. 한데 모두 군·경에 의한 피해자다. 정작 군·경을 도와 침략자에 맞서거나 공무원 가족, 기독교인 등 ‘반동분자’로 찍혀 인민군과 빨치산, 지방 좌익 등에 학살된 피해자는 국가 책임이 아니란 이유로 한 건도 배상받지 못했다.

 

우리 주변엔 좌익 활동을 했거나 월북한 친인척을 둔 집들이 많다. 굴곡진 현대사의 '민족적 비극'이다. 하지만 누가 전쟁을 일으켜 서울 거리에 ‘스탈린 대원수 만세’ 벽보를 붙이고 서울대 병원의 부상 군인과 의사 200명 등 수 백명을 학살(1950년 6월 28일)하며 붉은 통일기를 올렸는지, 누가 이에 맞서 싸워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냈는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국가의 기본이다.

 

침략 전쟁을 막으러 온 미군과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에 사회적 관심이 쏠린 것도 사실이다. 미군의 ‘노근리’ 오인 사격 사건, 보도연맹 사건 등은 각종 교과서에 실리고 보상과 함께 관련 재단까지 만들어졌지만, 인민군·빨치산에 맞서다 학살된 민간인은 조명조차 되지 않았다. 전남 신안군 임자면에서만 992명이 살해되는 등 세계사에 유례없는 학살이 즐비한데도 말이다.

 

이처럼 명예회복은커녕 배상도 못 받으니 진실 ‘규명’이 진실 ‘왜곡’ 통로가 되고 있다. 충남 예산의 사례다. 두 가족이 각각 2기 위원회에 규명 신청서를 냈다. A씨. 인민군을 도와 양민 학살에 관여했고 인민군 퇴각 후 치안복구대에 의해 총살됐다. 유족은 이 사실을 적어 “부역 혐의로 희생됐다”고 신청했다. B씨. 결사대를 만들어 인민군의 약탈을 막다 A씨에 의해 두 아들과 함께 학살됐다. 유족은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으로 진상 규명을 요청했다. 판례로만 보면 A씨는 배상받고 B씨 세 부자는 배상받지 못한다. 위원회는 ‘부역 활동’을 이유로 배상이 거부된 사례는 현재까진 찾지 못했다. 교전 중 사망한 빨치산 유족이 '무고한 희생'으로 진상규명을 요청한 사례도 상당수다

 

2기 위원회에 “부친이 경찰에 살해됐다”고 신청서를 낸 후손이 있다. 조사하니 명백히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이었다. 또 1기 위원회에 ‘적대세력에 의한 학살’로 규명됐는데 2기 위원회에 군·경에 의한 희생으로 재신청한 사례도 적지 않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군복 입은 사람이 그랬다"고 부연했단다. 이대로라면 침략 세력의 대량학살은 덮어지고 군·경에 의한 학살 전쟁으로 역사가 기록될 수도 있겠다

 

최근 충남 홍성의 19명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로 규명됐다. 결사대 태극단을 만들어 인민군을 쫓아냈는데 인민군이 재점령하면서 학살된 48명 중 일부다. 배상 가능성은 없다. “마을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레지스탕스이고 국가 유공자 아닙니까. 침략 전범에 의한 희생은 외면하고 항전 과정에서 초래한 희생만 배상하는 건 세계사에 없는 일이죠. 대한민국 역사 정의에 반하는 일입니다." 김광동 위원회 상임위원의 말이다. 국회가 '배보상심의위원회'법을 만들어 전문 기구를 통해 제대로 배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70년 전 가해·피해자가 얽히고설켜 후손들이 아직도 불편한 마음으로 사는 마을도 많다. 잔혹한 전쟁이 남긴 상처다. 침략 세력에 맞서다가, 또는 종교적 이유로, 공권력의 불법 행위로 희생된 이들을 진실하고 균형 있게 평가하고 기리는 것, 역사가 은폐·왜곡되는 것을 막는 것. 치유와 국민통합의 출발점 아닐까.

중앙일보  김수정 논설위원

 
 

08.10  더 큰 손실의 단초 막아라…尹, ‘칠면조 도둑’ 찾아야할 이유

 한 베두인족 노인이 칠면조를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칠면조가 사라졌다. 그는 아들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큰 위기에 처했다. 어떤 놈이 내 칠면조를 훔쳐 갔다.” 노인은 “내가 칠면조를 먹어야 하는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라며, 당장 칠면조를 되찾아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깟 칠면조 한 마리가 뭐라고 이 난리란 말인가. 아들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조금 지나자 낙타가 사라졌다. 당황한 아들들에게 노인은 똑같은 말을 했다. “어서 칠면조를 찾아라.” 몇 주 후에는 도둑들이 말을 훔쳐가더니, 급기야는 노인의 딸, 아들들의 누이가 강간을 당했다. 길길이 분노하고 날뛰는 아들들을 향해 노인은 일갈했다. “이 모든 것이 칠면조 때문이다. 놈들이 칠면조를 빼앗아가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8.9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중동 특파원으로 명성을 날리던 무렵 쓴 책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에 등장하는 일화다. 누군가 내게 의도적으로 손해를 끼쳤다면 하찮은 것이어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베두인족을 비롯한 여러 아랍 민족이 지니고 있는 호전적 태도 및 복수 중심 윤리관을 미국인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보편적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핵심적 가치를 잃거나 원칙이 흔들린다면 장기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칠면조 한 마리에 불과하다 해도 도둑맞았다면 되찾아와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한번 호구로 낙인찍히면 점점 더 회복하기 어렵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사소한 것부터 되찾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위기다. 취임 후 100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지지율이 3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매우 못함’이라 평가하는 적극적 반대층은 30%를 넘어섰다. 보수와 중도로 이루어진 선거 연합이 허물어지는 동안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부활했다는 뜻이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여의도 정치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이준석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 얼굴에 먹칠을 한 탓이라고 말이다. 반대로 이 대표를 옹호하는 이들은 ‘윤핵관의 무리한 이준석 찍어내기가 화를 불렀다’고 답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는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자꾸 눈에 띄면서 국민의 반감을 불러일으킨 탓이라 할 사람들도 있겠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 지구적 물가 폭등 영향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모두 그 나름대로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칠면조는 어디 있는가? 얼핏 보면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그 작은 교두보를 빼앗긴 채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새 정부의 장기적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는 단 한 문제, 그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특별감찰관 임명이 바로 그 칠면조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의 위기에 몰린 것은 취임 후 여태까지 특별감찰관이 공석이기 때문이다. 특별감찰관이라는 제도 자체에 엄청난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했다’며 그 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야권에는 윤 대통령이 부인, 더 나아가 어떤 역술인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인 양 비방하는 이가 많다. 그러한 음해와 중상은 윤 대통령의 ‘정의로운 강골 검사’ 이미지를 좀먹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총장이었던 그가 2019년 국정감사에서 잘 지적했다시피 특별감찰관은 권한·인력 면에서 한계가 뚜렷하지만, 그 자리를 비워둔 채 시간을 끄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대통령 친인척 감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한 ‘법과 원칙’ 같은 말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이런 상황은 야당에 꽃놀이패다. 지금은 몇몇 야당 의원이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막상 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더불어민주당은 후보자 추천을 미루거나 난감한 인물을 들이밀 수도 있다. 끝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던 문재인 정권과 대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자들이 바로 칠면조 도둑이다. 더 늦기 전에,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입기 전에, 윤 대통령은 칠면조를 찾아야 한다.

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08.11  재난만 나면 정쟁에 이용, 치졸한 행태 그만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침수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2022.8.9/뉴스1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10일 수도권 집중호우와 관련해 “아비규환 와중에 대통령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며 “전화로 위기 상황에 대응했다는데 대통령이 무슨 스텔스기라도 된단 말인가”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폭우가 처음 내린 8일 용산 대통령실이나 사고 현장에 나가지 않고 서초동 자택에서 상황에 대처한 것을 비난한 것이다. 윤건영 의원은 “침수 때문에 못 갔다는 것은 경호실장 경질 사유”라고 했고, 고민정 의원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관저와 위기관리센터가 가까이 있는 청와대에서 다 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했다.

 

민주당 주장처럼 재난 현장에 매번 대통령이 다 가고 관련자를 경질한다면 세계 어느 정부도 1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공무원들이 사고 수습보다 대통령 보고와 의전에 더 신경 쓰기 때문이다. 막상 윤 대통령이 다음 날 신림동 일가족 참변 현장을 찾아가자,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데, 다음에 가는 게 맞는다”며 “이미지 연출이 최저 수준”이라고 했다. 목적 자체가 재난 대처를 위한 고언이 아니라 흠집 내기이다.

 

민주당이 재난을 정쟁에 이용한 것은 세월호 사고 때부터다. 그 사고가 마치 대통령과 정부 때문인 것처럼 몰아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세월호 방명록에 ‘미안하고 고맙다’고 썼다. 세월호 덕분에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다른 당 사람이 ‘고맙다’고 했으면 민주당은 어떻게 했겠는가.

 

낚싯배 전복 사고가 일어나자 문 정부는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단체 묵념을 하고 국가적 안보 위기 때 동원하는 국가위기관리센터까지 가동하는 코미디를 벌였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북한이 해수부 공무원을 사살해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위기관리센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차기 민주당 대표가 유력한 이재명 의원은 이천 물류센터 화재 당시 경남 창원에서 ‘떡볶이 먹방’을 찍었다. 그는 “화재 현장에 반드시 도지사가 있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고 억측”이라고 했다. 지금 입장은 뭔가.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야당이던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일어나자 “문재인 정부가 정치 보복을 한다고, 북한 현송월 뒤치다꺼리한다고 국민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며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은 총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사고 수습에 지원은 못 할망정 왜 이렇게 딴지를 거느냐”고 했다.

 

재난이 닥치면 사태를 수습하고 원인을 규명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어떻게 하면 이를 상대방 비난과 공격에 이용할지에만 몰두한다. 그 방식과 논리도 치졸하기 이를 데 없다. 부끄러운 줄 알고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11일  검수완박 5대 부당성과 憲裁의 책무

 양준모 연세대 교수, 바른사회 공동대표

위헌 법률이란 비난을 받아온 개정 검찰청법과 개정 형사소송법이 오는 9월 10일부터 시행돼 대한민국을 지켜 온 형사사법 체계가 무너질 위기다. 이 두 법은 검사의 직접수사권 완전 박탈을 꿈꾸는 이른바 ‘검수완박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무엇이 두려웠는지 시간에 쫓기듯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이 법 공포안을 심의, 의결했다. 부패가 만연할 것을 우려한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 장관과 검사들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고, 헌법재판소는 지금 검수완박법이 무효인지를 심사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검수완박법의 입법 과정과 영향이 철저히 검토돼야 한다.

첫째, 입법 과정에서 국민은 철저히 무시됐다. 공청회나 청문회는 없었고, 소수당의 권리인 무제한 토론도 무력화됐다. 국회 권력은 국민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당에서 탈당한 의원을 사보임시켜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했다. 탈당한 의원은 이후 탈당한 당의 행사에 참여하고 복당 의사를 밝히는 등 탈당의 숨겨진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국민의 대표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고, 국민을 무시한 행동이다.

둘째,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견제 장치를 제거했다. 검사 제도는 인권 침해의 소지가 많은 수사 분야에서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검사가 사법경찰의 수사를 점검하고 감독함으로써 부실 수사와 과잉 수사의 위험을 줄인다. 검수완박법으로 인해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견제와 균형의 체제가 무너졌다.

셋째, 국민을 조리돌림 하는 법이다. 자신이 무슨 종류의 범죄에 해당하는지 모르면 자신의 사건이 검찰로 갈지 경찰로 갈지 알 수가 없다. 때에 따라서는 경찰과 검찰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경찰·검찰을 오가는 사이에 사건 처리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헌법 제27조 3항에 명시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사문화되고, 국민은 피해를 봤지만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넷째, 국민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응할 권리를 박탈했다. 고소와 고발은 국민이 자신을 위해서나 공익을 위해서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권력의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다. 검수완박법은 고발인이 경찰의 조치에 대해 검사의 판단을 받아볼 권리를 박탈해 경찰에 최종적인 결정권을 부여했다.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구제를 호소할 최후의 권리도 박탈했다.

 

다섯째, 국가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좀먹는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등 주요 범죄에 대한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박탈함으로써 부패를 옹호하고 국민의 피해를 야기한다. 주요 범죄에 대한 수사는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위다. 필요한 수사를 법률 전문가가 나서서 제대로 할 수 없도록 함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는 ‘누군가의 불편’과 비교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은 ‘부패공화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검수완박법은 자유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무시함으로써 경찰만의 국정 운영이 가능하게 했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통제돼야 국민의 인권과 자유가 보호된다. 검수완박법은 단순히 경찰과 검찰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문제다. 헌법재판소의 합리적 판단으로 검수완박법이 무효화되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08.13  공익신고자 김태우 유죄, 이러면 누가 권력 비리 고발하나

 법원이 문재인 정권 때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서울 강서구청장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1심과 마찬가지로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를 인정했다. 이 판결을 대법원이 확정하면 김 구청장은 직을 잃는다.

 

김 구청장은 정권 초 청와대 특감반원 당시 수집한 권력형 비위 의혹 30여 건을 세상에 알렸다. 최종 유죄판결을 받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이 포함돼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비리는 영원히 은폐됐을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폭로 내용 중 30여 건 중 4건에 대해 유죄로 판결하면서 “(그의 고발이) 인사와 감찰이라는 국가 기능에 위협을 초래할 위험을 야기했다”고 했다. 국가 기능에 위협을 초래한 것은 정권의 블랙리스트와 감찰 무마 아닌가.

 

법원은 또 “수사기관 고발이나 감사원 제보 등 제도적 절차를 통해 얼마든지 관련 의혹을 제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권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언론에 폭로한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간다면 국가가 공익 신고자 보호 제도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권력형 비리는 99% 내부 고발로 세상에 알려지지만 고발자는 당장 권력 내부의 보복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발자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언론을 통해서도 비리를 세상에 알린다. 국가가 공익 신고 제도를 통해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구청장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문 정부 당시 국민권익위원회조차 그를 공익 신고자로 인정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 신고와 관련해 신고자의 범죄 행위가 있을 경우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김 구청장이 고발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행위는 법 규정상 공익 침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의 폭로가 공익 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국민권익위와 반대로 본 것이다. 법을 협소하게 적용해 법의 궁극적 목적인 사회 정의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법원은 김 구청장 개인의 비위 혐의를 거론하면서 “범행 동기도 좋지 않다”고 판결했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가장 상투적인 공격이 그의 도덕성을 흠집 내는 것이다. 윤영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했고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희대의 농간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개울물을 흐리고 농간을 부린 것은 문재인 청와대로 밝혀졌다. 법원은 이번 판결로 한국 사회에 정착돼온 공익 신고 제도에 흠집을 냈을 뿐 아니라 잠재적 공익 신고자의 용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조선일보  사설

 

08.17 尹 대통령의 지난 100일, 그리고 남은 1700일

 오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윤 정부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실망감과 정권 교체 열망으로 탄생했다. 상식과 정도를 벗어난 전 정부의 내로남불 국정 운영을 바로잡아 달라는 국민의 기대가 그만큼 높았다. 그러나 지난 100일 동안 윤 대통령과 여권은 이런 기대에 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의 절반까지 떨어졌다. 여론조사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정권 초에 이처럼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대선 때 상대 후보를 찍었거나 기권했던 국민들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했던 국민들마저 실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광우병 시위같이 정권을 흠집 내고 흔들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통령과 여권이 자초한 위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오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에게 실망한 국민들 마음을 돌려 놓기 위해 어떤 각오를 밝힐 것인지를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이 그동안 무엇을 잘못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지적이 있었다. 대통령은 지난 휴가 중에도 국정 쇄신 방향에 대해 주변에 많은 조언을 청해서 들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대통령이 수긍할 수 있는 점도 있을 것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사방팔방에서 제각각 들려오는 주문에 모두 장단을 맞출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대통령은 지금까지 나랏일을 처리하고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부족함이 있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쳐나가겠다는 점만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실망한 것은 몇 가지 구체적인 잘못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대통령의 태도와 자세가 국민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어느 시점부터 국민 신망을 잃게 된 것도 대부분 민심에 맞서는 오만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이 위기를 헤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오늘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1800일 남짓한 임기 중 이제 겨우 100일을 마쳤다. 오늘 대통령이 국민 앞에 어떤 결심을 밝히고, 그 결심이 국민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있느냐에 나머지 1700일의 운명이 달려 있다. 윤석열 정부 자신은 물론이고, 윤 정부에 5년간 운명을 맡겨야 하는 나라와 국민 전체의 안위가 걸린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8.18  거액 적자 한전 돈 쏟아붓는 한전공대, 교수 연봉이 2억이라니

▲2일 오전 전남 나주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에서 입학식 및 비전 선포식이 열리고 있다. 이날 첫 신입생을 맞이한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은 세계 최초의 에너지 특화 연구·창업 중심 대학으로 학부 400명(학년당 100명), 대학원생 600명 규모의 소수 정예대학으로 운영된다. 2022.3.2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전남 나주에 설립된 한전공대가 정교수에게 평균 2억원의 연봉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4년제 대학 정교수의 평균 연봉(2021년 기준 1억2013만원)의 1.7배다. 일반 정교수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석학급 정교수 10명의 연봉은 4억원에 달한다. 일반 정교수와 석학급 정교수를 합하면 한전공대 정교수의 평균 연봉은 2억8000만원으로, 국내 대학 최고 수준이다. 1억원대 초중반을 주는 카이스트 등 4대 과학기술원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한전공대의 부교수와 조교수 연봉도 각각 1억5000만원, 1억2000만원이었다.

 

대학이 뛰어난 교수들을 영입하려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한전공대는 호남 표를 얻기 위한 선거 전략으로 추진돼 문재인 정부 임기 끝나기 직전 졸속 개교한 대학이다. 문 정부는 학생 수가 급감해 기존 대학도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이뤄져야 할 판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한전공대를 정치적 이유로 밀어붙였다. 제대로 대학을 설립하려면 최소 6년은 걸린다는데 4층짜리 건물 한 동만 달랑 지은 채 올 3월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개교했다. 기숙사도 없어 인근 골프텔을 임시 기숙사로 사용한다. 이런 상태에서 교수진을 확보해야 하니 높은 연봉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천문학적 적자를 내고 있는 한전이 한전공대의 뒷감당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전공대 설립·운영비로 2031년까지 1조6000억원이 든다는데, 문 정부는 그 절반인 8000억원을 한전이 부담하도록 법에 명문화했다. 한전은 작년에 창사 이래 최악인 5조8600여 억원 손실을 냈고, 올 상반기엔 무려 14조원이 넘는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는 전기료 인상 등을 통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부실 공기업이 고액 연봉 교수진의 대학에 매년 800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박아 놓은 ‘대못’ 때문에 국민 돈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18일 ‘검수완박’ 가처분 판단 화급한 이유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5월에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검수완박법’이 오는 9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검사의 직접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취지의 법이다. 소추권자로서 검사의 권한이 제한되기에 검사와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그런데 권한쟁의심판은 한두 달에 끝나는 게 아니어서 당연히 시행일을 넘길 것이다. 그래서 검찰 측에서는 결론이 날 때까지 시행을 미뤄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도 냈다.

검수완박법은 검찰개혁 입법의 제2탄이다. 제1탄은 이미 2020년에 통과돼 현재 시행 중이다. 검찰 수사권 부분 박탈법이다. 그 전에는 검사도 모든 범죄에 대해 수사할 수 있었는데, 이 법 이후 6대 범죄로 줄었다. 그런데 2020년 법에 따라 그것만 바뀐 게 아니다. 실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검사의 수사권만 줄어든 게 아니다. 수사지휘도 없어졌고, 수사 절차 전체에 큰 변화가 있었다.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바뀐 게 아니라,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고소해서 재판을 받기까지 5단계만 거치면 됐다. 그런데 지금은 15단계를 거쳐야 한다. 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고소인 앞에 놓인 경우의수가 74가지나 된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한마디로 수사 절차가 복잡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효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무고 범죄를 잡아내는 비율이 3분의 1로 줄었고, 금융증권범죄에 대한 수사는 아예 손을 놨었다. 범죄자만 좋은 결과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자꾸 쌓인다. 헌법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사법제도가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제2탄이 국회를 통과했다. 2020년 법과 방향이 같다. 검찰을 수사에서 손 떼게 하는 법이다. 그 방향이 맞지도 않고, 설령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렇게 일사천리로 갈 것은 아니다. 일단 지난 2년간의 변화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간다고 해서 나쁠 일이 없다. 공소시효도 짧은 선거범죄와 공직자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 참사를 검사가 몇 달 더 수사하게 한다고 누구에게 큰 피해가 갈 것 같지 않다.

 

반대로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당장 9월 10일 이후의 고발인들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검찰의 직접수사가 가능하지 않은 범죄에서, 고발인들이 해 오던 ‘감시’ 기능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 검찰과 경찰이 그동안 발생한 고소 사건의 반려, 사건 처리 기간의 지연 등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법률부터 시행하게 되면 국민의 불편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수십 년 존속해 온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 법을 안건조정 절차도 제대로 안 거치고, 깊은 토론도 없이, 단 며칠 만에 통과시킨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가는 것과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물론 학자들에게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9월 10일 전에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가처분 판단을 내놔야 한다. 검수완박법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헌재가 바로 잡을 수밖에 없다. 신중하고 신속한 판단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일보

 

08.19  가장 시급한 노동 개혁은 불법·폭력에 대한 엄정 대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산업구조하에서는 노동법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2000년대 초 독일 사민당 정권의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을 언급하면서 노동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직적인 고용 시스템,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불균형, 연공서열 임금 구조 등 시대에 맞지 않는 노동 법 제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고 산업 경쟁력을 깎아 먹는 불합리한 노동 시스템을 개혁하는 일은 윤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대부분 역대 정권이 노동 개혁을 약속했지만 무위로 끝났거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산업·고용 현장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데다 거대 노조의 반발로 추진 동력을 잃곤 했다. 노동 개혁은 정부가 하겠다고 쉽게 이뤄질 개혁이 아니다. 더욱이 노동시장 유연화에 소극적인 야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은 쉽지 않다. 윤 정부는 이해 당사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야당을 설득해가면서 개혁 플랜을 구체화해 가야 한다.

 

국회 손을 빌리지 않고 행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노동 개혁도 있다. 불법·폭력에 대한 엄정한 대응이 그것이다. 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하이트진로의 서울 본사 건물에 들어가 옥상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다. 위험 인화 물질인 시너 통까지 들고 들어가 협박하고 있다. 민노총 화물연대는 총파업을 통해 안전운임제 등의 전리품을 챙겼다. 그래 놓고 개별 사업장에서 파업이 벌어지면 시위의 장기화, 과격화를 부채질한다. 민노총 소속 현대제철 조합원들은 특별 격려금 400만원을 달라며 석 달 넘게 사장실과 공장장실을 점거 중이다. 정당한 노동권 행사를 넘어 조폭 수준의 과격 폭력 시위가 횡행한다. 이토록 막무가내식 불법·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은 세계에서 한국뿐일 것이다.

 

민노총을 싸고돌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체감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불상사를 우려해 공권력 투입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막고 물류를 멈춰 세우는 불법을 방치하면서 무슨 노동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가. 산업 현장에 만연한 강성 노조의 과격 불법 투쟁에 대해 공권력이 원칙대로 작동하기만 해도 노동 개혁의 절반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  사설

 

08.19  보훈처 “김원웅 전 광복회장 비리 8억대 또 드러나...추가 고발” 

자체 감사결과 발표...사업비 5억원 과다견적 등…관련자 등 5명 고발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국가보훈처의 광복회 특정감사에서 새로운 의혹이 드러나 추가 고발됐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29일까지 시행한 광복회 특정감사 결과를 19일 발표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 photo 뉴시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판사업 인쇄비 5억원 과다 견적, 카페 공사비 9800만원 과다계상, 대가성 기부금 1억원 수수, 기부금 1억3000만원 목적 외 사용, 법인카드 2200만원 유용 등 여러 비리가 적발됐다.

관련 액수를 합하면 8억원이 넘고, 이는 지난 2월 감사가 이뤄진 국회 카페 수익 개인 사용 관련 내용과는 별도의 사안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광복회는 2020년 6월 만화 출판 사업 추진을 위해 성남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출판 사업’을 추진했다.

 

인쇄업체 선정 과정에서 광복회는 성남시 산하 성남문화재단 전 웹툰기획단장이 추천한 인쇄업체 H사와 2020년 7월 수의계약을 맺었는데, 광복회 측 담당자는 2020년 8월쯤 기존 광복회 납품업체와의 비교견적을 통해 H사의 계약금액이 시장가 대비 90% 이상 부풀려진 사실을 포착했다.

 

그러나 최종 결재권자인 김 전 회장은 추가 협상 등 납품가를 낮추려는 조치 없이 그대로 계약을 진행했고 그 결과 총사업비 10억6000만원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광복회에 5억원 상당 손해를 입혔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광복회는 또 2020년 8월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에 ‘수목원 카페’ 수익사업을 추진하면서 인테리어 업체에 대금 1억1000만원을 지급했는데 이와 관련한 공사견적서나 검수보고서마저 제시하지 못했다.

 

보훈처는 동종 업체 문의 결과 카페와 건물의 도장 및 개·보수 흔적을 찾기 어렵고, 적정 공사비용은 1200만원이라는 자문을 얻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또 광복회 운영비 확충 방안을 찾아보라고 전 사업관리팀장에게 지시했고, 해당 팀장은 자본금 5천만원의 영세업체와 접촉해 홍보 및 사업 소개를 제시했으며 이후 이 업체는 2020년 11월 광복회 계좌로 1억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이 업체는 팀장으로부터 소개받은 기관들과 사업 계약을 맺지 못하자 광복회에 항의했다고 한다. 보훈처는 해당 업체가 자본금 5000만원의 영세업체인 점을 고려하면 1억원은 대가성이 있는 위법한 기부금이라고 판단했다.

 

김 전 회장 시기 광복회는 또 모 금융사가 목적을 특정해 기부한 8억원 가운데 1억3000만원을 기부 목적과 달리 운영비로 집행함으로써 기부금품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카드 유용 문제도 있었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6월∼2021년 12월 법인카드로 1795건, 총 7900여만원을 사용했는데 이 가운데 410건, 2200만원가량이 업무와 무관하게 사용된 걸로 보인다고 보훈처는 밝혔다.

 

본인이 운영하는 약초학교 직원·인부 식대, 개인용 반찬, 자택 인근 김밥집·편의점·빵집 사용, 약값·병원비, 목욕비, 가발미용비 등으로 법인카드가 사용됐다.

 

김 전 회장은 불공정 채용 의혹도 받는다. 재임 시기 채용된 15명 중 7명은 공고·면접 등 어떤 절차도 없이 채용됐다. 다만 이 부분은 형사법적 위법성을 단정하기 어려워 일단 고발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보훈처는 “개별 사안이 엄중하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형법상 비위 혐의자 5명을 고발하고 감사 자료를 이첩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국가유공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며 국회 경내에 운영하던 카페 수익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의혹 등으로 지난 2월 물러났으며, 이 사안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8.20  목욕·가발에 법카, 공금으로 가족 우상화, 김원웅의 파렴치

▲김원웅 전 광복회장. /뉴스1

 

독립 유공자 자녀들 장학금으로 쓸 돈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 2월 사퇴한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수억원대 새로운 비리 의혹이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이 재임 2년간 결제한 법인 카드 사용액 7900여만원 가운데 2200여만원이 업무와 무관했다. 빵·김밥·떡볶이 등 간식과 반찬 구입, 편의점·수퍼마켓 사용분이 대부분이었다. 김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약초 학교(인제)와 자택(분당) 반경 1㎞ 내에서 주말에 쓴 것만 추린 게 이 정도다. 김 전 회장은 ‘광복회 법카’를 목욕비, 가발 미용비, 약값·병원비로도 썼다.

 

또 김원웅 광복회는 2020년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출판 사업’을 하며 인쇄 업체 H사와 10억6000만원의 수의계약을 맺었다. 시장가보다 90% 이상 부풀린 액수로 광복회에 5억원대 손해를 입혔다는 게 보훈처 판단이다. 이렇게 출간된 만화책 가운데는 김 전 회장 모친인 전월선 편도 있다. 430쪽으로 백범 김구 편(290쪽)보다 비중 있게 제작됐다. 김 전 회장 출생 장면도 2페이지(7컷)에 걸쳐 소개됐다. 가족 우상화에까지 공금을 쓴 것이다.

 

앞서 김 전 회장은 독립 유공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며 운영하던 국회 카페 수익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퇴했다. 광복회 건물에 가족 회사를 차리고 공문에 광복회장 직인을 찍어 공공 기관을 상대로 영업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공사 구분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이런 김 전 회장이 2년 8개월 광복회장 재임 기간 정의·애국의 사도인 양 반일(反日) 선동에 앞장섰다. “대한민국 역대 정부는 반민족 친일”이라고 매도하고, 이승만·안익태·백선엽 등을 겨냥해 ‘친일파’ ‘민족 반역자’라고 막말을 했다. 불명예 퇴진을 하면서도 “친일 미청산이 민족 공동체의 모순”이라고 했다.

 

김 전 회장은 군사정권 시절 공화당·민정당 당료로 일한 전력에 대해 “생계 때문이었다”고 변명했다.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팔아 제 잇속을 차리고 광복회를 사조직화한 것도 생계 때문이었나. 순국선열이 비분강개할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8.22  국민연금 개혁, 몸을 던질 사람이 있는가

국민연금 개혁하겠다는 대통령
“초당적 국민 합의 도출 바란다”
누가, 언제, 어떻게 설명은 없어…
일하는 사람도, 절박감도 안 보여

 ▲2022년 7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8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구성의 건이 가결되고 있다./뉴스1

 

국민연금을 만든 건 전두환 정권이었다. 정작 대통령은 뜻이 없었다.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시절 국민연금 안(案)을 대통령한테 보고했다가 ‘나라 망하게 하려느냐’는 질책만 듣고 물러섰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국민 모두에 이익이 된다 해도, 돈 받을 날은 요원한데 당장 자기 주머니에서 납부금을 떼가는 연금 제도가 정치적으로는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관료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건강보험이 본궤도에 오른 상황에서 복지국가로 가는 또 다른 한 축인 국민연금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10여 년 전 국민연금 제도를 기안했다가 석유 파동 때문에 접어야 했던 김만제 당시 경제부총리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1986년 유럽 순방 후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에게 국민연금 안을 또 다시 내민 것이다. 취임 후 6년이 지나고서야 유럽 주요국을 순방하며 정통성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전 대통령은 “참 질긴 사람들”이라고 웃으며 결재했다.

 

적립금 910조원이 넘는 세계 유수의 연금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 ‘세금 더 받아내려는 수작’ ‘결국 파산할 것’이라던 부정적 인식은 이제 ‘이 좋은 제도를 왜 반대했을까’로 바뀌었다. 정부 관료의 전문성과 치밀한 준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집념, 리더의 결단이 바탕에 있었다.

 

지금은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을 구해내야 한다. 처음 입안 때 소득 대비 15%까지 올려야 한다고 봤던 보험료는 1998년 9%까지 오른 후 24년째 손도 못 대고 있다. 이대로 34년이 가면 기금이 소진되고, 70년이 지나면 누적 적자가 2경2650조원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어떤 정치인, 관료도 인기 없는 일에 총대를 메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교육·노동·연금을 3대 개혁 과제로 꺼내들었다. 그러나 교육 개혁은 아무 준비 없이 ‘만 5세 입학’을 던졌다가 사달이 났고, 노동 개혁은 전 정권이 망쳐놓은 원칙을 바로잡겠다는 당위 외에 별로 보이는 게 없다. 휴가를 다녀온 후 오직 국민만 보고 일하겠다며 심기일전을 다짐한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 연금 개혁 보고를 받은 후 어떤 말을 할지 주목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초당적·초정파적 국민 합의를 도출하기 바란다”고 했다. 국민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연금 문제에서 누가, 어떻게 합의하고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게 됐다. 권력투쟁으로 분란에 빠져 있는 여당이? 윤핵관이? 몸 던져 일할 것 같지 않은 장관들이?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식물 같은 대통령의 스태프들이? 국민연금 개혁안을 4가지나 만들어 국회에 던져버린 후 돌아보지도 않았던 문재인 정부 때와 뭐가 다를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나온다. 절박감, 의지, 방법론이 대통령의 말에서도, 각료들의 말에서도 읽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권에서는 여소야대에, 지지율 30%도 안 되는 정권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푸념도 나온다. 그러나 지지율이 낮아서 일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일을 못해 지지율이 낮은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 특위에 상정된 후, 정부가 어떤 근거를 제시해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고, 여당이 어떤 정치력을 보여주는지에서 이 정권 실력이 드러날 것이다. 국민만 보고 일하겠다고 한 대통령이 ‘정말 나를 바라보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주고, ‘정치적 안배 없이 일 잘하는 사람을 쓰겠다’며 기용한 사람들이 정말 몸 던져 일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갈망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덕한 사회정책부장

 

08월 24일  대우조선 하청노조 불법파업 470억 손배訴 의미 크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6∼7월 파업과 생산시설 무단 점거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하청노조를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키로 했다. 지극히 당연하고 꼭 필요한 조치다. 51일간 진행된 이번 파업은 명백한 불법인 동시에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 피해만 줬다

 

 하청노조는 파업 대상이 하청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생산시설을 점거했다. 핵심 시설인 독(dock) 점거는 전례 없는 일이다. 올해 조선업 호황이 기대되는 상황에 파업으로 8000억 원대의 손실이 발생했다. 하청노조는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매출이 통상 매출의 절반으로 떨어졌는데도 30%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요구를 수용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 조선 3사의 입장이다. 하청업체 노사도 결국 4.5% 인상에 합의했다. 불법파업 없이 타협할 수준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업으로 2만 명의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은 두 달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지역 경제는 고사 직전이다.

대우조선해양은 IMF 외환위기로 2000년 공적자금이 투입돼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체제에 편입됐다. 조선업 침체로 2015년과 2017년에 다시 7조1000억 원대의 국고가 투입됐지만, 22년째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불법파업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배임 행위다. 하이트진로도 최근 주류 출고를 방해한 화물운송 위탁업체 노조원을 상대로 28억 원의 소송을 냈다. 노조와 노조원을 궁지로 몰아넣자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이념적 목적에 치우친 파업,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 피해를 주는 불법파업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불법파업에 대한 원칙적 대응 입장을 분명히 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노조 대상 손배소를 제한하는 일명 ‘노란봉투법’을 추진하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소송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문화일보  사설

 

08.25  대우조선의 470억 손배訴 ‘노조는 불법해도 된다’ 인식 끊어야

 대우조선해양이 불법 점거 파업으로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힌 민노총 금속노조 소속 하청노조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노조가 지난 6월부터 51일간 선박 제조 작업장을 불법 점거하면서 8000억원의 손해를 봤지만 소송에서 이겨도 피해액을 다 받아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청구 금액을 낮췄다고 한다. 여러 차례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은 22년간 국민 세금에 기대 존속한 부실 회사다. 이런 회사가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눈감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이다.

 

이 당연한 결정에 대해 노조와 일부 시민단체는 “노동운동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합법적인 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는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는 작업장을 불법 점거해 위험 물질인 시너까지 반입했다. 불법에 책임을 묻는 것은 탄압이 아니다. 그동안 회사 측은 불법 파업이 벌어져도 파업이 끝나면 노조를 달래느라 손배 청구를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비정상 때문에 불법 파업이 이어졌던 것이다. 이제는 ‘노조는 불법을 저질러도 유야무야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

 

지금 민노총 소속 노조는 공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이 손해배상이다. 실제 대우조선 파업 때 하청노조가 모든 것을 양보하면서도 끝까지 매달린 것이 ‘손배 면제’ 요구였다. 하이트진로 주류 출고를 방해하던 민노총 소속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최근 본사를 기습 점거하면서 요구한 것도 회사가 제기한 28억원의 손배 소송 철회였다. 사측이 여기서 또 흐지부지하면 불법 폭력을 끊을 수 없다.

 

선진국 중 불법 파업에 책임을 묻지 않는 나라는 없다. 뉴욕시는 2005년 12월 대중교통 노조가 불법 파업에 들어가자 바로 파업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노조에 대해 파업 하루당 100만달러, 파업 노조원에겐 파업 일수 하루당 이틀치 임금을 벌금으로 내라고 명령했다. 결국 노조는 3일 만에 파업을 끝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미국에선 불법 파업이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지금 민주당과 정의당은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다. 무책임한 법안 추진을 멈춰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25일  노조 불법 ‘손배訴’ 법치주의 시금석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조가 임금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원청사인 대우조선해양의 원유운반선(VLCC)을 점거해 80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발생시켰다고 한다. 민법 제750조에서 규정하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대우조선해양 측에서는 법적 대응을 해야 하고, 실제로 47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입장문을 통해 ‘대우조선의 손배소 청구소송 제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기본권·생존권 말살책’이라며 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그러나 이번 손배소는 법에서 정한 불법행위에 대한 구제 수단의 행사라는 점에서 노동기본권 침해와는 전혀 별개의 사건이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 측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옥포조선소를 방문하는 등 불법행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문제는, 야당 측의 이러한 행위가 자칫하면 노조가 어떤 불법행위를 하든 정당하다는 정서를 사회에 널리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우려는 최근 발생한 화물연대의 파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화물연대는 개인사업자들로 구성된 단체라는 점에서 노조법상 보호를 받는 노조가 아니다. 그런데도 2002년 민주노총에 가입해 운임 인상을 위해 파업 명목으로 심심찮게 도로를 점거, 물류대란을 초래해 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화물연대가 교섭 대상자인 수양물류가 아닌 모회사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협상을 요구하면서 공장을 점거했다. 이 또한 노조법상 교섭 당사자가 아닌데도 사업장을 점거당한 것으로,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본 사건이다.

불법 농성점거자를 상대로, 하이트진로가 손해액 가운데 28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지 않으면 하이트진로 이사들은 주주들로부터 대표소송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 회사는 2000년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며, 2015년과 2017년에는 주채권자인 산업은행이 추가로 7조1000억 원대의 국민 혈세를 투입했는데도 여전히 적자 구조인 사업장이다. 이런 사업장을 하청업체 노조가 불법으로 점거해 80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추가로 발생시켰으니, 경영진으로서는 손배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은 물론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결국, 노조를 상대로 한 이번 손배소 사건은 노동기본권 말살이라는 시각이 아니라, 법치주의 수호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다. 그리고 법치주의의 핵심은 권한과 책임을 법률로 명확히 정하고 이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대우조선해양과 진로하이트의 손배소 사건은 대한민국이 법치주의 국가임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시금석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노조 상대 손배소를 제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일명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은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파업과 점거농성을 벌인 이유는 분명히 있겠지만, 타인에게 손해를 보이는 모든 행위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행사돼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든 법치주의 훼손이 상습화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전체주의 또는 독재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08.26 자유라는 나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취임사 35회, 광복절땐 33회 ‘자유’ 언급했지만
윤 대통령, 확고한 자유의 로드맵 제시엔 미흡
북에 경제적 지원 같은 실용적인 제안에 앞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자유·인권 문제 언급했어야
위기였던 자유 살리라고 국민이 정권교체한 것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에 진심인 것 같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5회 언급한 데 이어, 제77회 광복절 축사에서도 33번 말했다. 연설문 내 최다 빈도다. 대통령은 또 독립운동은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이었다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자유를 찾고, 지키고, 확대하는 과정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행사 슬로건에도 ‘되찾은 자유’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렇게 소중한 보편적 가치를 일깨우고 강조하는 대통령이 당선 후 100일도 되지 않아 지지율이 반 토막이 난 건 미스터리다. 교육부 장관 인사가 문제라고 하지만 전 정부 교육부총리는 위장 전입(교육에 민감한 이슈인!)에도 불구하고 임명되었고, 어설픈 정책 탓이라고 하지만 성과를 논하기엔 너무 이르다.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이나 대통령실의 소통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으나 그건 껍질이지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의 김여정처럼 우리나라에도 “그냥 윤석열 인간 자체가 싫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낮은 지지율이다. 대체 왜?

 

대통령을 향해 각종 조언과 쓴소리를 한 근래의 언론 칼럼들을 메타분석하고, 주변의 인사들에게 인터뷰를 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분석들이 도출되었다. 우선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자유 추구의 일부로 본 것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이 있었다. 자연히 그들은 일본과의 미래 지향적 관계 개선에도 부정적이다. 독립과 자유는 사실상 동의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독립 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체제를 갈망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한민국 체제를 인정하는 잠재적 지지층들은 대략 두 가지가 불만이었다. 취임 후 지금까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과, 앞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대통령이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그동안 한미 동맹 관계를 복원하고, 소주성이나 탈원전 정책을 되돌리는 등 굵직한 일들을 많이 했으나, 용산에 새로이 터를 잡고, 아내 리스크를 관리하느라 적지 않은 에너지의 누수가 생긴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빚은 탕감해주면서 공정을 이야기하는 모순을 드러내기도 하고, 소위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정부 인사는 함께하면서 정작 당 내부는 서로 총질로 시끄러운 상황도 혼란스럽다. 불만의 핵심은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새 세상이 온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새 정부가 추진하는 변화의 속도, 강도, 방향이 모두 불만이었다.

 

이제 새 정부가 했으면 좋았을 일을 역으로 상상해보면 지금의 낮은 지지율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대통령의 인식대로 지금도 독립운동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면, 좀 더 절실하고 확고하게 자유의 로드맵을 세우고 강하게 제시했어야 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가치 공동체로서의 내각을 구성하고, ‘되찾은 자유’를 각종 정책에 스며들게 한 정책 청사진을 발표하며, 총체적인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했다. 마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듯이 말이다. 그 연장에서 북한에도 비핵화와 경제 발전을 교환하는 실용적인 제안이 아니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자유나 인권을 조금은 들먹여야 했다. 그래야 소위 ‘담대한 제안’이다.

 

역사를 조금만 훑어봐도 자유로 가는 길엔 언제나 피가 흥건했다. 토머스 제퍼슨의 표현대로, 자유라는 나무는 독재자의 피와 애국자의 피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유를 구현하는 길에 인류가 갖다 바친 목숨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무거운 사명을 어깨에 짊어진 지도자는 더 고뇌하고 진지해야 한다. 양피지에 새겨진 법조문을 읊조리거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립투사들은 대개 아내를 외롭게 한 사람들이다. 영화관에서 아내랑 팝콘을 먹는 투사는 상상되지 않는다.

 

더 한심한 건 여당이다. 그들이야말로 새 정부의 집권당으로서 사명이 천금같이 무거운데, 당대표의 성 상납 의혹 같은 저급한 이슈에 발목이 잡혀 ‘자유’의 ‘ㅈ’에도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진위나 잘잘못의 경중을 떠나, 서로를 향한 쓴소리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릴 용의가 있을지 의문이다. 국가적인 대의를 위해 피를 흘리기는커녕 제 편끼리 상처 주며 피와 눈물을 쏟기 바쁘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국회의원의 ‘갑옷’을 위해 염치고 도덕이고 법이고 모두 무시하고 선거에 나가고, 또 당선되고, 그런 사람을 또 당대표로 선출하는 야당의 모습이다. 남들이 피 흘리며 지키려 하는 고귀한 자유를 고스란히 반납하고 개인을 숭배하는 이상한 무리가 ‘그 인간이 무조건 좋다’를 외치는 섬뜩함 위로 ‘윤석열 인간 자체가 싫다’는 김여정이 오버랩된다. 단 한 사람의 ‘자유인’을 위한 일사불란한 매스게임을 보는 것 같다. 그게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에 뒷골이 서늘할 따름이다.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에서 ‘자유’를 지우고 역사를 되돌리려 했던 사람들 아닌가.

 

사태가 이러한데, 자유를 수십 번 외친 윤석열 정부는, 자유를 마치 손톱 밑 가시 뽑는 기업 규제 완화쯤으로 한가하게 접근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자유는 쓸려나갈 위기에 있었고, 그걸 두려워한 국민이 나서서 정권 교체를 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대한민국’으로 되돌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되찾은 자유’를 대한민국 안에서 확장시켜야 할 역사적 사명을 안고 탄생한 정부다. 실용적으로, 적당히 타협하며, 경제 정도 살피는 정치를 하라고 애먼 검사 출신을 불러내서 대통령으로 만든 게 아니다.

조선일보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08월 26일  재확인된 ‘비정규직 0’ 폐해와 좌파경제학 총체적 실패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 제로(0), 탈원전, 문재인케어, 4대강 재자연화 등 편협한 이념이나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문 정부의 잘못된 정책 폐해가 나날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의 고백은 한국 좌파 경제학계에 뼈아픈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최 소장은 저서 ‘좋은 불평등’에서 “한국 진보세력의 주장은 애초에 사회과학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운동의 논리에 가깝다”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생겨난 진보 진영의 불평등 개념이 대부분 틀렸다”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남용은 적폐이며 여기서 불평등이 비롯됐다는 믿음은 잘못”이라고 했다. 대통령 직속 소주성특위 위원도 맡았던 그는 소주성 정책에 대해 “한국 진보의 집단 오류, 25년 진보 경제학의 총체적 실패”라며 자기반성을 하고, “결국 대규모 고용 충격이 발생했다” “문 정부가 진보 진영 주장을 너무 받아들여 곤란을 겪었다”고도 했다.

마침 2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도 고용형태 공시 결과’도 최 소장 주장을 뒷받침한다. 직원 수 300명 이상 기업의 올해 3월 말 기준 ‘소속 외 근로자’ 비율이 17.9%로 작년 조사에 비해 0.5%포인트(7만1000여 명) 늘었다. 2014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인데, 결국 나쁜 일자리만 늘었다는 반증이다. 문 전 대통령의 1호 지시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부작용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됐다. 불필요한 분야까지 정규직 전환이 강요되면서 공공부문 경영은 방만해지고 효율성은 떨어졌다.

민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코로나와 경기 영향으로 기업이 힘든데도 정리하기 어려운 정규직은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만 정리하다 보니 고용 시장의 불안정만 더 커졌다. 노동 양극화는 더 심각해졌다. 원청과 하청의 갈등이 첨예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사태도 그 연장선이다.

문화일보  사설

 

08.30  월성 1호 폐쇄 이어 4대강 보 해체 결정도 조작, 이뿐인가

▲문재인 정부 시절 해체·개방이 결정된 4대강 보 현황.

 

감사원이 ‘금강·영산강 5개 보(洑) 가운데 3개 해체’라는 문재인 정부 결정이 절차적, 실체적으로 옳았는지 가리기 위해 작년 말부터 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 환경부가 해체 결정 과정에 대해 감사원에 낸 의견에서 문 정부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의 2019년 2월 보 해체 결정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식으로 몰아갔다는 점을 조목조목 밝혔다.

 

영산강 죽산보는 1년 반 동안 수문을 열어놓자 COD로 따져도 수질이 되레 뚜렷하게 악화되고 있었다. 보를 완전히 해체하면 수질이 나빠질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그러자 위원회는 모니터링 실측 자료는 아예 없던 걸로 치고 ‘보를 없애면 수질이 좋았던 보 설치 전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1000억원이 넘는 ‘보 해체에 따른 수질 개선 이익’이 생긴다고 자의적으로 결론 냈다. 조작이나 다름없는 평가 결과였다.

 

작년 2월 따로 공개된 환경부의 3년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더라도 수문 개방 후 금강·영산강의 수질 측정값 30가지 중 28가지가 악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물관리위원회는 작년 1월 보 3개의 해체를 최종 의결했다. 4대강 사업 이후 본류 유역의 가뭄과 홍수 피해가 거의 사라지는 등의 이익은 아예 무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물관리위원회가 작년 1월 해체키로 의결한 전남 나주시 영산강의 죽산보 전경. /김영근 기자

 

환경부에 따르면, 일본 아라세댐은 지은 지 47년으로 노후화되자 2002년부터 철거 여부를 검토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10년의 논의 후 2012년에야 철거에 들어갔다. 미국·스페인·프랑스 등도 댐과 보를 보통 70~80년은 활용한 후 6~18년의 논의를 거쳐 철거가 꼭 필요하다고 결론 나는 경우만 해체하고 있다. 우리처럼 지은 지 5년여 만에 전 정권 적폐 청산 차원에서 위원회 검토 1~2년 만에 철거 결론을 내는 경우는 없었다. 또 환경부가 지적했듯, 그때그때 강의 상황에 따라 수위를 조절해가며 탄력적으로 보를 운영할 수도 있는데도 문 정부의 위원회들은 이런 경우는 상정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해체 쪽으로 결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에서 실질 결정권을 쥔 기획위원회는 4대강 반대론자로만 7명을 채워 넣어 보 해체 결론을 유도했다는 것이 환경부 의견이다. 공무원 조사평가단을 감독·통제하는 전문위원회의 간사 4명도 모두 환경 단체 출신이었다. 문 정권의 조작은 월성 1호기와 보의 해체 결정만이 아닐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30일  오석준 대법관 후보의 ‘김명수 법원 시스템’ 비판 옳다

 다음 달 26일로 재임 5년을 맞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끈 사법부는 끊임없이 코드 재판과 편향 인사 지적에 시달리고, 이로 인해 국민 신뢰도 잃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된 오석준 판사가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한 내용은 법조계는 물론 모든 국민이 경청할 만하다.

 

오 후보자는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와 관련, “사건 처리가 늦어지게 되고 통계에 신경을 안 쓰게 되니까 폐단이나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장 추천제에 대해선 “법원장을 투표로 뽑는 것 자체로 곤란한 측면이 있다”면서 “재판 지연 요인으로 확실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두 가지 모두 김 대법원장이 시행한 제도다. 1심 판결까지 2년 넘게 걸리는 장기 미제 사건을 보면, 지난 5년 사이에 민·형사 소송에서 각각 3배와 2배 쯤 급증했다. 지연된 정의(delayed justice)는 정의가 아니다(denied justice)라는 원론을 떠나, 재판 지연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어렵다. 오 후보자는 신뢰 상실도 우려하면서 “사법부 구성원 모두 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 대법원장은 이념 편향이 뚜렷한 특정 모임 소속 판사들을 요직에 집중 배치했고, 공정성을 의심받는 판결과 재판 진행 사례도 잇따랐다. 이재명·은수미 봐주기 판결 논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1심 심리 15개월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사법부의 정의 실현은 공정한 재판과 신속한 재판으로 구현되는데 둘 다 훼손한 것이다.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앞두고 있지만, 청문회를 보면 오 후보의 생각은 옳고, 역량에도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신망 받는 대법관들로 채워지길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