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 story - 감동 이야기1/ Korea - 남아공 - 보스니아
emotion story - 감동 이야기1
★Korea
2015.12.31 [법무보호복지공단 지원받아 취업·결혼… 사연 담은 연말 감사의 편지 보내]
냉장고에 두부 한 모 두고… 교도소 간 애인 7년 기다렸다
출소자 아들 둔 어머니, 예비신부 등 사연 쏟아져
2007년 봄, 김지영(가명·44)씨는 기차역에서 남자친구 이모(37)씨를 기다렸다. 둘은 사귄 지 2년, 김씨가 이씨의 프러포즈를 받은 지는 한 달이 채 안 됐다. 그런데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이씨는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김씨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씨가 유치장에 수감돼 있어서 대신 연락한다"는 경찰관의 전화였다. 이씨가 전날 밤 술에 취해 강도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에게 이씨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김씨 동생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 곁에서 어깨를 토닥여준 사람이 이씨였다. 김씨가 검사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사정하고 피해자와 합의도 했지만, 이씨는 결국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 면회에서 이씨는 '앞으로 면회 오지 말고, 나를 잊고 살라'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당신도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줬으니 나도 당신을 돕겠다"며 7년간 옥바라지를 했다.
2014년 봄 이씨가 교도소를 나오면서 둘은 함께 지내게 됐다. 이번엔 생계가 문제였다. 이씨가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씨는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문을 두드렸다. 공단의 주선으로 용접 자격증을 딴 이씨는 이제 어엿한 가장(家長)이다. 지난해 11월엔 다른 출소자들과 함께 합동결혼식도 올렸다.
최근 김씨는 눈물로 보낸 7년 세월을 돌이키며 공단에 편지를 보냈다.
"남편이 수감된 이후 우리 집 냉장고 구석엔 언제나 두부 한 모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받은 사랑을 항상 마음속 깊이 간직하면서 살겠습니다. 어떤 역경이 찾아와도 참고 인내하는 부부가 되겠습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이씨와 비슷한 처지의 출소자 8000여명이 공단의 직업훈련·취업지원을 받아 사회로 복귀했다. 연말이 되면서 공단에는 김씨와 같은 주부, 출소자 아들을 둔 어머니,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들이 보내온 편지가 쌓이고 있다.
폭력사건으로 1년 6개월 만에 출소한 아들을 둔 어머니는 "아들이 '전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 모든 것에 감사드리고 있다"고 썼다. 아들은 출소 3개월 전부터 소방 점검 기술을 배웠고, 지난 7월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씨는 "아들이 또다시 방황할까 걱정했는데 취직까지 했으니 마음 한구석에 있던 짐을 내려놓아도 될 듯하다"고 했다.
공단의 출소자 갱생·보호사업은 크게 생활지원, 취업지원, 가족지원, 상담지원 등 4가지로 나뉜다. 이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분야가 취업지원(직업훈련·창업지원·일자리지원)이라고 한다. 금전적 지원에는 한계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취업을 해야 생활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직 출소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라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지속적인 교육 및 지원으로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도울 예정"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최연진 기자
2016.10.15 "우린 부산 사람… 우리 동네 광안리 청소는 당연한 일"
[백사장 '태풍 쓰레기' 치운 외국인 세 모녀… 엄마는 부산국제외국인학교 교사]
산책 갔다가 쓰레기에 놀랐고 큰딸이 치우자고 해서 또 놀라
철물점서 청소용 갈퀴 4개 사서 해질녘까지 4시간 해변 정리
다른 주민들도 삼삼오오 모여 같이 줍고 치워 너무 기분 좋아
부산생활 7년… 스카이라인 멋져… 情이 뭔지 모르지만 삼겹살 즐겨
"우리도 부산 사람이고 이 동네 사람이에요. 청소하는 건 당연하죠."
▲14일 오후 부산국제외국인학교 농구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디애나 루퍼트(38)씨와 딸 피오나(11·왼쪽), 스텔라(5·오른쪽). 부산에서 7년간 살고 있는 세 모녀는 지난 태풍‘차바’로 광안리 해변이 쓰레기 더미로 쌓였을 때 4시간 동안 청소하며‘주인의식’이 무엇인지를 실천했다. /김종호 기자
얼마 전 태풍 '차바'가 할퀴고 간 부산 광안리 해변을 청소했던 외국인 세 모녀를 14일 부산 기장읍에 있는 부산국제외국인학교에서 만났다. 이 학교 교사인 디애나 루퍼트(38·미국)씨의 큰딸 피오나(11)는 '쓰레기 치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는 말에 "쓰레기가 바다로 떠내려가면 안 되잖아요" 하고 말했다.
세 모녀는 지난 5일 광안리 해변으로 나갔다가 백사장을 가득 메운 쓰레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피오나가 어머니에게 "함께 청소하자"고 제안했고, 작은딸 스텔라(5)도 "재밌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해변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수영구 민락동의 아파트로 돌아가 장화와 고무장갑을 챙겨 다시 나왔다. 집 근처 철물점에 들러 청소용 갈퀴 4개를 사서 해변으로 향했다. '셋이서 왜 4개를 샀느냐'고 묻자 루퍼트씨는 "해변에 나온 사람들과 같이 치울 생각이었다. 10개쯤 사고 싶었는데 돈이 모자랐다"며 웃었다.
폭설과 토네이도가 잦은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인 루퍼트씨는 재해 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집 주변을 청소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했다. 피오나도 "학교에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다"며 "인도네시아 발리에 갔을 때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을 봤는데, 여기서도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 봐 치우자고 했다"고 말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세 모녀는 오후 3시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루퍼트씨와 피오나는 갈퀴, 스텔라는 소꿉놀이용 삽과 바구니를 들고 쓰레기를 쓸어 담았다. 30분 남짓 지나자 한국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같이 청소했다. 피오나는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고 "정말 기뻤어요. 제가 우리 동네를 위해 무언가 한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하고 말했다.
▲지난 5일 루퍼트(왼쪽)씨와 딸 스텔라가 부산 광안리 해변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독자 김은경씨 제공
쓰레기 정리가 대강 끝난 오후 6시쯤 루퍼트씨는 딸들이 배고플까 봐 집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두 딸은 "10분만 더"를 외치며 계속 쓰레기를 치웠다. 해가 넘어갈 무렵 두 딸은 청소를 도우러 나온 한국인 아이들과 친해져 술래잡기도 하고 밀려드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놀았다고 한다. 결국 세 모녀는 해가 지고 오후 7시가 돼서야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루퍼트씨는 "아이들이 피곤했을 법도 한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더라"며 큰딸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퍼트씨와 두 딸은 자기들이 해변에서 청소하는 사진이 언론과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상에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를 이틀 뒤에나 들었다고 한다. 스텔라는 "홍수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같이 학교에 다니다 얼마 전 미국으로 간 친구가 '네가 청소하는 모습이 인터넷에 다 퍼졌다'고 알려주더라"고 말했다.
루퍼트씨도 "페이스북에 오른 사진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월든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딴 루퍼트씨는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고 싶어 국제학교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졸업 후 일자리를 찾다가 예멘에서 국제학교 교사를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첫 직장을 잡았다. 하지만 테러 위험이 커지자 안전한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1년 반 만에 예멘을 떠나 2009년 8월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루퍼트씨는 "바다가 가깝고 스카이라인(빌딩이 어우러진 모습)이 멋진 부산이 매력적이었다"면서 "아직 한국의 '정(情)' 문화까진 이해하지 못했지만 회사 동료들, 아이들과 삼겹살을 자주 먹으러 간다"고 했다.
루퍼트씨는 "이번 태풍은 한국에 와서 겪은 태풍 중 가장 무서웠다"며 "집 근처까지 물이 밀려오는 걸 보니 정말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바닷가가 더러워지면 또 청소하러 나오겠느냐'고 물었더니 세 모녀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Sure)"고 말했다.
2016.10.22 5000만원 상금 사양한 '관광버스 義人'
["수업 빠질 수 없어…" 인터뷰도 거절한 관광버스 義人]
화재현장 목숨 건 善行 소현섭씨
"저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 의롭고 필요한 곳에 써주세요"
불길 속 울산관광버스 참변 때 부상자 4명 자기 車로 병원 옮겨
- 교장에게 오히려 고개 숙여…
"義人으로 포장돼 부끄럽고 학교에 누를 끼쳐 죄송"
- SNS에선…
"실천으로 윤리 가르친 윤리선생"
제자들 "자랑스러워요" 퍼날라
5000만원 상금과 쏟아지는 찬사를, '의인(義人)'은 "받을 자격이 없다"며 오히려 부담스러워했다.
지난 13일 밤 10명이 사망한 '울산 관광버스 참사' 현장에서 추가 폭발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자들을 구조한 뒤 자신의 차로 병원으로 옮긴 '관광버스 의인' 소현섭(30·사진)씨가 한 대기업 계열 공익재단의 '의인상(義人賞)'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수상을 정중히 고사(固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단은 표창과 함께 상금 5000만원을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소씨가 한사코 거절해 무산됐다.
이 재단은 소씨에게 상을 받으라고 거듭 설득했지만, 소씨는 그때마다 "상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의롭고 필요한 곳에 써달라" "오히려 상처를 입은 유가족에게 드려야 할 돈이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 재단 관계자는 21일 "그동안 희생정신을 기려야 할 의인 20여명에게 의인상을 시상했는데, 이런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소씨는 강원 동해시 묵호고등학교에서 윤리 과목을 가르치는 2년 차 교사다. 그는 지난 13일 휴가를 내고 부모님이 계시는 경남 창원으로 가다 경부고속도로 언양 IC 부근에서 화염(火焰)에 휩싸인 관광버스를 목격했다. 그는 승용차를 세우고 사고 현장으로 뛰어들어 부상자 4명을 구해내고, 이들을 자신의 차로 병원까지 옮겼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병원엔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13일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관광버스. /연합뉴스
소씨는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한 본지 취재에 "상금을 거절한 것은 맞지만 당연한 일을 두고 의인처럼 묘사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며 "이 일을 기사화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씨는 사고 다음 날 일부 언론 인터뷰에 응했지만, 이후에는 추가 취재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지는 소씨의 사연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기사화하기로 했다.
소씨가 구조 활동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부상자들을 치료한 병원도 그가 '교사'라는 사실밖에는 몰랐다. 마침 그에게 구조된 부상자의 가족이 그의 연락처를 갖고 있어 선행(善行)이 늦게나마 드러나게 됐다. 소씨에게 상을 주려 했던 공익재단도 대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선행을 높이 샀다고 한다.
소씨가 사고를 목격했을 당시 현장은 이미 불길과 기름 투성이였다. 언제 버스가 폭발할지 몰라 섣불리 승객 구조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씨는 망설임 없이 버스로 달려들었다. 그는 사고 다음 날 언론 인터뷰에서 "불길이 너무 세 무서웠지만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을 구조하겠다는 생각에 달려들었다"고 했다. 본인도 다칠 수 있고, 후송 과정에서 부상자의 상태가 악화될 경우 책임 추궁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런 소씨의 활동이 알려지며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선 작은 파장(波長)이 일었다. 많은 시민이 "실천으로 윤리를 가르친 참 스승"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소씨의 제자들은 "선생님이 자랑스럽다"는 댓글을 올리고 해당 뉴스를 퍼 날랐다. 그러나 정작 소씨는 의인이나 영웅이라는 찬사를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공익재단 관계자는 "선배 교사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고, 잦은 언론 노출로 교사로서 본분을 잊을까 우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씨는 21일 본지가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연락해도 받지 않다가 학교 대표전화로 전화를 걸었을 때 비로소 받았다. 그는 "아직 슬퍼하는 유가족이 있는데 내가 의인으로 축하받는 건 옳지 않고 그럴 일도 아니다"며 "상금 얘기를 듣긴 했지만 애초에 상을 받을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했다. 그러나 "기사를 쓰기 위한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며 추가 인터뷰를 거절했다.
소씨는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윤리 교사였던 고3 때 담임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윤리교육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행이 알려진 뒤에도 평소와 똑같은 학교생활을 했다고 동료 교사들은 전했다. 묵호고 홍은만 교장은 본지 통화에서 "지난 17일 교장실에서 소 선생을 만났는데 '의인으로 포장된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며 "칭찬하는데 오히려 '학교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천생 선생님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교장이 "자칫 위험한 행동일 수 있었다"고 하자 소씨는 "버스 안 승객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동료 교사들에 따르면, 소씨가 언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까닭은 학생들 교육 때문이었다. 그는 "인터뷰 때문에 아이들 수업을 빼먹거나 등한할 수 없다. 지금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학생 교육이 내 본연의 임무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지난해 1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큰불이 났을 때 밧줄로 주민 10명을 구한 '동아줄 의인' 이승선(52)씨가 한 공익법인의 상금 3000만원을 거절했다. 당시 이씨는 "이번 일로 칭찬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소중한 돈이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17.05.20 어느 초등생의 절절한 '엄마 생각'
암으로 엄마 잃은 이슬양 동시… 어버이날 무렵 공개돼 화제
지난 4일 전라북도교육청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 소녀가 흰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 적은 동시(童詩) 한 편이 올라왔다. 지난해 10월 당시 전북 부안군 우덕초 6학년 1반이었던 이슬양이 전북교육청이 개최한 '2016 하반기 너도나도 공모전'에 냈던 작품이었다. 제목은 '가장 받고 싶은 상'. 종이 여백엔 이양과 어머니가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을 곁에 둔 채 손을 꼭 잡고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양의 어머니는 딸에게 하루 세 번씩 밥상을 차려줬다. 하지만 지난해 이양은 어머니를 암(癌)으로 여의었다. 이젠 이양이 어머니를 기리는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
▲지난해 10월 전북 우덕초 6학년이었던 이슬양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 이양은 종이 여백에 자신과 생전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가 좋아하던 반찬으로 가득한 밥상을 그렸다. /전라북도교육청 페이스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이양이 쓴 시는 243편이 출품된 공모전 동시 부문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전북교육청은 어버이날을 나흘 앞둔 지난 4일 이양의 시를 공개했다. "엄마가 차려주셨던 밥상이 그립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것은 엄마의 얼굴"이라는 이양의 말도 전했다.
이양의 시는 10여 일이 흐른 지난 17일부터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널리 공유됐고, 네티즌들 사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김경필 기자
하동진(hadj****)
2017.05.2010:36:36신고 | 삭제
나이 칠십에도 깨닫지 못했던 어머니의 밥상, 나는 이 글을 읽고 한없이 울었다.
2017년 11월 23일 이국종 교수의 숭고한 醫師정신
귀순하며 심한 총상을 입은 북한군 병사의 주치의인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이 ‘숭고한 의사(醫師) 정신’을 행동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이 교수는 22일 “북한군 환자의 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고 서약한 그대로 실천해왔는데도, 모함에 급급한 일각의 행태에 대한 섭섭함과 분노를 담은 ‘격정 토로’가 이어졌다.
북한군 병사의 장 속에 기생충이 대거 발견돼 합병증이 우려된다는 이 교수의 합동참모본부 협의를 거친 지난 15일 브리핑에 대해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북한 병사의 인권에 테러” 운운하며 의료법 위반이라고 강변해온 것이 대표적 예다. ‘국민의 알 권리’를 고려한 공개였다는 이 교수 해명과 여론 비판에 김 의원은 뒤늦게 ‘오해’라고 둘러댔지만, 정작 자신이 북한 정권의 인권 테러엔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모른다. 심지어 어느 지방병원 원장은 이 교수가 2011년 생명이 위태로웠던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사력을 다해 살려낸 일을 두고 ‘멋진 쇼를 했다’는 e메일을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에게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그런 행태야말로 인간에 대한 죄악이다. 민·관 모두 이 교수가 힘을 더 내도록 마음으로, 제도 개선으로 응원해야 한다. 밀려드는 응급 중증환자 치료 진력에 건강까지 상했다는 이 교수는 “귀순 병사가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간신히 도착한 나라가 이 꼴이라면 얼마나 허무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문화일보 사설
●어머니의 편지 림태주(영상)
https://youtu.be/yGZGm94YOE8 - 그토록 붉은 사랑
○감동 이미지
▲15.9.17 자갈치 바닷가에서 자식을 잃고 자살하려는 한 남성을 끌어안고 위로하는 차민설 순경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
▲엄마의 기도 - 수능 한국병
▲포옹 - 설날 만남
★남아공
동물과 인간의 교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여성 레슬리 로챗은 '상어 여전사'로 불린다. 그녀는 비키니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상어와 함께 헤엄을 친다. 심지어 레슬리 로챗은 사람들을 해치는 것으로 알려진 백상아리의 지느러미를 움켜쥐고 유영을 즐긴다
▲살려준 은인과 포옹하는 암사자 - 남아프리카 보츠나와
★러시아
▲흰돌고래와 수영을 즐기는 애브신코 36세
★리트비아
●역경을 이겨낸 감동 이야기
http://www.youtube.com/watch?v=jA8inmHhx8c&feature=player_embedded
라트비아 출신 가수이자 모델인 빅토리아 모데스타(Viktoria Modesta)가 첫 뮤직 비디오를 선보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다리. 그녀는 한 쪽 다리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엉덩이와 다리가 탈구되었고 15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런던으로 오면서 더 나은 치료법을 바랬지만 더욱 실망스러운 결과 뿐이었다. 결국 한 쪽 다리를 절단하기로 결심하고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미국
● 다정하고 재치있는 부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대학 졸업식장에서 연사로 강단에 섰다고 합니다.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지요.
“졸업을 축하합니다. 특히 평균 C학점으로 졸업하는 분들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냅니다. 마침내 당신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췄습니다.”
자신의 대학시절 성적이 좋지 않았음을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자기도 공부를 잘하지 못했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자신의 치부라고 말할 수도 있는 성적을 공개함으로 인해 그의 지지율은 껑충 뛰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한 보좌관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고도 임기 내 아무런 스캔들 없이 국정을 잘 이끌었던 부시 대통령!
장병을 사랑했던 대통령
장병과 허물없이 장난치던 대통령이 이라크전에서 양발을 잃은 부상 병사와 조깅하는 모습에선 뭔가 찐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공항 활주로를 걸으면서 크로스 컨츄리 스키 흉내를 내고
▲풋볼 경기를 시작하기 전, 공을 차는 조지 부시 대통령!
▲베이징 올림픽에서 가족과 함께 수영 경기를 관람 중 세계적인 갑부 빌 게이츠를 만난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어이. 빌 게이츠 양반 아닌가? 그런데 돈 안 벌고 여기까지 웬일인가?"
▲"대통령 각하!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돈 벌어서 뭐하겠습니까? 금메달 따면 왕창 풀겠습니다."
▲"좋았어! 금메달을 향해서 화이팅! 빌 게이츠의 돈 보따리 한 번 풀어보자고"
▲"전 종목 금메달 왕창 싹쓸이해서 갑부 빌 게이츠 거지 한 번 만들어 보자고!"
▲그런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국기를 잘못 들고 응원하는 대통령!
그러나 딸 바버라 부시의 얘기를 듣고는 바르게 들고 흥겹게 응원을 하는 부시 대통령!
▲수영 대회를 관람한 부시 대통령 일행은 이번에는 비치 발리볼 경기장을 찾아갔었는데 마침 경기장에는 여자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려 하자. 갑자기 부시 대통령이 앞을 가로막고는 "잠깐! 휴식은 잠시 후에 하고 대통령인 내가 한 수 가르쳐주지!"
▲"공이 요렇게 올 때는?" "요렇게 받는 거야."
▲"알았지?"
▲"꼭 이겨 알았지?"
▲헤어지는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얹고 사진을 찍는 선수들!
미국의 대통령 이야기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어떤 행사에서 연설을 끝낸 후 연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넘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게 웃었지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는 분명히 커다란 망신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면서 말했다고 하지요.
“여러분이 즐거우시다면 한 번 더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 2014.06.24 아빠 사진과의 세계여행
미국 뉴욕시에 사는 지나 양(Jinna Yang·25)씨는 한국인 1.5세다. 세탁소 집 딸, 양씨는 사랑했던 '남자'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다. 2년 전 위암으로 돌아가신(die of stomach cancer) 아빠, 그의 실제 크기 사진 판지(a life-size cardboard cutout of her dad)와 함께다.
아빠 양재권(52)씨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출전 자격을 따냈지만 생계를 꾸리기 위해(in a bid to earn a livelihood) 세탁소를 차렸고(open a laundry), 세계여행 해보는(travel around the world) 게 꿈이라더니 플로리다도 가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pass away). 딸은 그런 사연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내 이름은 지나입니다. 겉에서 보기에(from the outside looking in)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have it all) 듯합니다. 좋은 직장, 고급 아파트(a luxury apartment), 셀 수 없이 많은 구두로 넘쳐나는 벽장(an overflowing closet with countless shoes), 일주일에 최소한 닷새 저녁은 외식을 할 수 있는 넉넉한 가처분소득(enough disposable income to eat out at least 5 nights per week)…. 게다가 내 또래나 나이가 더 많은 사람 대부분보다 더 많은 돈을 법니다(make more money than most people my age or older than me).
그런데 우리 가족의 바위처럼 든든했던 그분(the rock of my family)이 곁을 떠나고 나니 삶의 의지를 잃게(lose the will to live) 되더군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절망감만 느껴졌습니다(wake up in the morning only to feel hopeless). 탈모증이 생겨(develop alopecia) 급속도로 머리가 빠졌습니다(lose my hair at an alarming rate). 하지만 끔찍한 직장 환경(horrible work environment)은 아빠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sacrifice his entire life for his family) 내 아빠인데도 말입니다.
어느 날 아침, 내 인생의 고삐를 되찾아야겠다는(take back control of my life)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무 대안 없이 사표를 냈습니다(hand in my resignation with no plan B). 그리고 아빠가 가보고 싶어했던 곳 중 하나인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프랑스 에펠탑에도,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에도 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명소들 앞에서(in front of some of the world's most iconic tourist attractions) 아빠의 실제 크기 사진을 옆에 세우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승의 몸으로 거기 계신(be there in the flesh) 건 아니었지만, 아빠의 마음을 꼭 껴안고 찍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유명한 사람이냐"고 묻더군요. "내 아빠"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놀라고, 나중엔 웃더군요. 그런데 그 미소들이 참 따뜻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나는 성공만 좇아 행복을 희생했는데(chase success and sacrifice happiness), 성공은 행복이 있는 곳에 살고 있더라는(success lives where happiness lies) 것입니다."
조선일보 윤희영 | 디지털뉴스부 차장
아빠 사진과 세계 여행한 딸
▲ 미국 뉴욕시의 한 여성이 ‘아빠’와 함께 세계 여행을 다녀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호주 시드니 모닝 헤럴드를 비롯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가로 일하는 지나 양이 부친을 잃은 것은 2년 전이다. 51세의 아버지는 암으로 사망했다. 17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에 이민 온 아빠는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 특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헌신을 했다고 한다. 허드렛일을 포함해 하루에 12시간, 일주일에 6일 일했는데 이런 생활이 20년 넘게 지속되었다.
PGA 골프 선수 자격을 획득한 아버지의 꿈은 미국 투어를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일해야 했기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해외는 물론 미국 국내 여행도 다니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은 딸은 일을 그만 두고 아빠가 다니고 싶었던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아빠의 실물 사진과 함께 세계 각지에서 사진을 촬영했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려 큰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미국이 위대한 이유 - '전직 대통령 4명의 배웅 받으며'… 바버라 부시 장례식 거행
▲21일(현지시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가 참석한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에서 미국의 전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이 거행됬다. 사진은 이날 장례식에 참석한 조지 H W 부시(가운데), 왼쪽 부터 로라 부시, 조지 부시, 힐러리 클린턴,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미셸 오바마, 멜라니아 트럼프.
2018.04.23 13:27
미국 41대 대통령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모친인 바버라 부시(1925~2018) 여사의 장례식이 21일(현지시간) 텍사스 주 휴스턴의 세인트 마틴스 성공회 교회에서 치러졌다.
1천500명의 추모객이 모인 장례식에는 부시 전 대통령 일가를 비롯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도 자리를 지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호 문제' 등으로 불참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부시 여사를 비롯 힐러리 클린턴·미셸 오바마,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등 전·현직 퍼스트레이디 4명도 장례식장을 지켰다.
▲조지 H W 부시 전 미 대통령(아버지 부시)과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아들 부시)이 21일(현지시간) 미국의 전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텍사스주 휴스턴의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에 도착했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지난 17일 향년 92세 일기로 별세했다
▲21일(현지시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가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에서 미국의 전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 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에서 미국의 전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 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에서 미국의 전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에 참석 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의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에서 미국의 전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이 열린 가운데, 가족들이 발인을 하고 있다.
▲조지 H W 부시 전 미 대통령(아버지 부시)과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아들 부시)이 2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의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에서 미국의 전 바버라 부시 여사의 발인을 지켜보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의 세인트마틴 성공회 교회에서 미국의 전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헴스티드에서 주민들이 바버라의 영구차 행렬을 지켜보는 모습.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018.12.05 미국인 가슴 적신 '밥 돌' 전 의원…휠체어서 일어나 부시에 거수경례
4일(현지 시각) ‘아버지 부시’ 조지 허버트 워커(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추모식에서 펼쳐진 한 감동적인 광경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적셨다.
부시 전 대통령의 라이벌이자 오랜 친구였던 밥 돌(95)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불구의 몸을 일으켜 부시 전 대통령이 안치된 관 앞에서 거수 경례를 한 것이다.
▲밥 돌 전 미국 상원의원이 2018년 12월 4일 워싱턴 DC 미국 의사당 중앙홀에 안치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시신이 담긴 관 앞에서 불편한 몸을 일으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C-SPAN
이날 돌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별세한 부시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워싱턴 DC 미국 의사당을 찾았다. 거동이 불편한 돌 전 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부시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관 앞으로 다가갔다.
수많은 조문객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돌 전 의원은 수행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킨 뒤 떨리는 팔을 끌어올려 가까스로 거수 경례를 했다. 돌 전 의원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포탄을 맞아 어깨가 부서졌고, 두 손은 지금도 거의 마비 상태다.
돌 전 의원은 1988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부시 전 대통령과 경합을 벌인 인연이 있다. 그는 경선에서 졌지만 이후 부시 대통령과 오랜 친구로 우정을 쌓아왔다. 돌 전 의원은 지난 1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의회의 4분의 3이 참전 용사들이었다"며 "부시 대통령은 초당적인 대통령이었고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고 회상했다.
2차 세계대전에 함께 참전한 전우이자 정계 동료로서 부시 전 대통령에게 예우를 갖춘 돌 전 의원의 모습에 미국 국민들은 한 목소리로 경의를 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트위터에 돌 전 의원의 조문 현장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서 돌 전 의원의 조문 현장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며 "이 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27년간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돌 전 의원은 1996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것을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조선일보 이경민 기자
●2015-07-11 중학교 동창
▲판사와 도둑으로 만난 중학교 동창. 유튜브 동영상 캡처
시간은 오후 10시, 장소는 뉴욕. 습기 머금은 차가운 바람 속에 사람들의 발길은 끊기고, 상점들은 서둘러 문을 닫아 거리는 황량하다. 순찰 중인 경찰관이 철물점 앞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경관을 안심시키려는 듯 황급하게 자신이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한다. 20년 전 열여덟 나이에 서부로 떠나던 밤, 뉴욕에 남게 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아무리 먼 곳에 살더라도, 신분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정확히 20년 후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고. 담뱃불을 붙일 때 남자의 창백한 얼굴과 각진 턱,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오른쪽 눈썹 옆의 하얀 칼자국이 불빛에 선명히 드러난다. 경찰관이 된 친구는 20년 만에 만난 친구가 시카고 경찰에서 협조 의뢰해 온 지명 수배자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 ‘20년 후’의 이야기다.
현실이 허구를 닮는 것일까. 6월 30일 마이애미 법정에서 판사와 도둑으로 만난 두 중학 동창생의 기막힌 사연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판사는 여성 백인이고, 피고는 남성 흑인이다. 두 사람의 나이는 49세, 그러니까 66년생이다. 심리를 마친 후 잠시 머뭇하다가 판사는 “혹시 노틸러스 중학교에 다녔나요?”라고 묻는다. 얼굴을 든 피고인이 “아 이런!” 하고 놀라며 오랜 친구를 만난 반가움에 천진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곧 자신의 기막힌 처지를 깨닫고는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린다. 해맑은 얼굴의 판사는 어조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계속해 말한다. “난 언제나 네 소식이 궁금했어.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참 마음 아프네.” 그러고는 방청석을 향해 3인칭 화법으로 “중학교 때 이 친구 참 성격 좋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어요. 늘 나하고 축구도 같이 했죠(This was the nicest kid in middle school, he was the best kid in middle school. I used to play football with him)”라고 말했다.
레토릭의 배제가 가장 효과적인 레토릭이라고 말한 롱기누스의 수사학 교본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일체의 감상이 배제된 너무나 평범한 몇 마디 말 속에 그 어떤 과장된 표현보다 더 진한 향수(鄕愁)가 묻어난다. 늘 함께 축구를 하곤 했다는 한 문장 안에는 열다섯 살짜리 소년 소녀들의 풋풋한 한 시대가 압축해 들어 있다. 웃음소리 가득 찬 운동장에서 그들은 모두 미래에 대한 꿈과 야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35년이 지난 후 여학생은 판사가 되었고 남학생은 도둑이 되어 다시 만났다. 한 사람은 백인이고 한 사람은 흑인이라는 사실이 요즘에 고조되는 흑백 갈등과 관련하여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유튜브 동영상에도 미국의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려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동영상이 흑백 화합을 향한 힘들고도 긴 여정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엔 인간의 무한한 선의(善意)와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존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디 글레이저 판사는 피고인이며 동창인 아서 부스를 향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니. 슬프게도 우린 벌써 이렇게 늙었어(What‘s sad is how old we’ve become). 잘됐음 해. 이번 일 잘 끝내고, 앞으론 모범적으로 살기 바랄게.”
늙어감의 슬픔을 무심하게 언급하는 그녀는 놀랍게도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철학적 통찰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지성적인 여성이 나는 정말 존경스럽고 아름다웠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전사한 미국 병사와 함께 밤을 샌 한 여인의 이야기
눈물짓게 만드는 한장의 사진...
무심코 신문기사를 읽다 그만 목이 메이고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가 했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라크戰에서 戰死한 남편의 장례식 전날 밤, 남편의 시신이 담긴 관 옆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기를 원한 아내가 남편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컴퓨터로 틀어놓은 채 관과 나란히 누워 엎드려 잠이든 모습을 찍은 사진인데 이 사진이 올해의 퓰리처 수상작이다.
관 옆에는 해병대 예복차림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해병대원이 관을 지키며 서 있는데 배경을 보니 가정집의 거실로 보아 아마도 전사한 군인의 자택이 아닌가 싶다.
비록 시신일망정 땅속에 묻히기 전날의 마지막 밤을 평상시처럼 같이 보내고 싶어 메트리스와 이불을 펴고 그 위에 두개의 베게를 나란히 놓고 누워있다.
엎드려 잠이든 젊은 아내의 애틋한 사랑이 메마르고 무미건조한 내 가슴을 흔들어 놓고 말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해병 정장차림의 군인을 부동자세로 관 옆에 지키게 하며 弔意를 표하는 미국정부의 극진한 예우와 최후의 밤을 같이 보내고 싶어하는 젊은 아내의 마음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戰死한 젊은이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는 미국 정부와 그 옆에서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내는 젊은 아내의 사진이 눈물짓게 만든다. 단 하루를 살아도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어진다.
- 이라크로 떠날 때 제임스 캐시 소위가 임신중인 아내에게 남긴 편지 -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 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어.
당신이 그리울 거야
당신에게 한가지 약속할 수 있어
나는 고향에 돌아올거야
나에게는 당신이있고, 돌봐줘야할 아기도 있으니까.
당신과 아기가 나의 전부야"
●2015.07.29. 양팔없는 3살 소녀, 양팔없는 '멘토'와 뜨거운 포옹
[서울신문 나우뉴스]
귀엽게 생긴 3살 소녀가 '멘토'로 여기는 한 언니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뜨겁게 안았지만 놀랍게도 둘은 모두 양팔이 없다.
뜨거운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 사진 한장이 최근 미국 ABC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이 사진 속 주인공은 미네소타 출신의 3살 소녀 루스 에블린 'RE' 프랑케와 제시카 콕스(32).
두 사람은 모두 양팔없이 태어난 장애인으로 지난 24일(현지시간) 처음으로 만나 남들과 다르지만 더 큰 감동을 주는 자세로 포옹을 나눴다.
이날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에블린의 엄마가 딸에게 힘이 되는 '멘토' 를 만들어 주기위해 마련한 것이다.
선천적으로 두 팔 없이 태어난 에블린은 당연히 남들과 다른 몸 때문에 큰 고민과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엄마 칼린은 "두 팔이 없는 장애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면서 "제시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너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시카는 에블린처럼 두 팔없이 태어났지만 자신의 장애를 모두 극복했다. 미국 태권도협회가 공인한 양팔없는 첫번째 유단자인 그녀는 발을 사용해 일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물론 피아노도 훌륭하게 연주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비행기 운전면허까지 취득해 지난 2008년에는 발로 조종사 자격을 딴 최초의 비행사로 기네스북에 등재까지 됐다는 사실. 또한 2년 전에는 우리나라에도 찾아와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자신과 같은 에블린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제시카는 "처음에 어떻게 아이를 안아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 웃었다. 이어 "사진에도 드러나지만 누군가를 포옹하는데 있어 두 팔이 모두 필요하지는 않다" 면서 "우리 두 사람 모두 팔이 없지만 우리만의 포옹으로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언니를 만난 에블린은 큰 용기를 얻었다. 엄마 칼린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 아이가 '언니도 나와 똑같아. 언니도 팔이 없어' 라고 말했다" 면서 "아이에게 큰 영감과 용기를 불러 일으켜줘 너무나 고마웠다" 며 제시카가 남긴 한장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RE.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사랑해. 너의 오른발잡이 친구가.'(RE, you can do anything! Love, your Right Footed Friend.)
박종익 기자
●2015.08.13 우리 국민은 경험 못한, 특별한 프러포즈
[두 다리 잃은 참전용사 위해… 두 전직 대통령이 만들어준 감동 이벤트]
아프간서 두 다리 잃은 군인, 부시 父子가 저택으로 초청
"여친 생겼어요" 말했더니 부시 "여기서 청혼해요" 제안
여자친구 불러와 눈물의 청혼 "前대통령의 군인 사랑 느껴…"
'무쇠 다리'를 가진 청년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와 결혼해주겠어?"
금발의 여자 친구가 답했다.
"좋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미국 상이용사가 역대 미 대통령 두 명의 도움을 받아 청혼에 성공했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용사 타일러 제프리스(26)가 부시가(家)의 여름 저택에서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부시 전 대통령 내외와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였다.
사진 속의 제프리스는 이날 양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미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에 위치한 저택을 방문했다. 이날 아버지 부시는 작년 자신이 서문을 쓴 책 "부러지지 않는 유대(Unbreakable Bonds): 부상 장병과 강인한 어머니들"에 등장한 상이용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제프리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2012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 중 폭탄 공격을 받고 두 다리를 모두 잃은 그는 "한쪽 다리는 무릎 조금 위까지, 다른 쪽 다리는 무릎 조금 아래까지 남았다"고 했다.
▲무쇠다리 청년의 프러포즈, 증인은 전직 대통령 두명 - 미국 상이용사 타일러 제프리스가 10일(현지 시각) 미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에 위치한 부시가(家) 저택에서 여자 친구 로런 릴리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하고 있다. 이날 청혼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의 깜짝 제안으로 이뤄졌다. 휠체어를 탄 아버지 부시와 휠체어를 잡고 있는 바버라 여사, 녹색 셔츠를 입은 아들 부시 등이 제프리스와 릴리를 바라보고 있다. /조지 H W 부시 트위터
아버지 부시는 아내 바버라 여사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참전 군인들을 맞았다. 91세 고령의 그는 지난 달 집에서 넘어지면서 목뼈 골절상을 입어 목에 깁스를 한 채였다. 편안한 셔츠 차림의 아들 부시 전 대통령과 로라 부시 여사도 함께했다.
이날 제프리스의 청혼은 부시 부자(父子)의 '돌발 제안'으로 이뤄졌다. 제프리스는 아버지 부시와 대화를 나누던 중 "만난 지 3개월 된 여자 친구가 있는데 만나자마자 '나를 위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며 "곧 청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 부시는 그 자리에서 "지금 여자 친구를 불러 이곳에서 청혼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제프리스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말을 듣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런 기회는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흥분됐던 심경을 전했다.
제프리스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여자 친구 로런 릴리(24)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저택으로 와줘." 얼마 후 릴리가 도착하자 아버지 부시는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여성이군요"라며 그녀를 환대했다. 아버지 부시 내외와 아들 부시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프리스는 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릴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가지고 다니던 반지를 내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와 결혼해줄래?"라고 말하자 릴리는 주저 없이 "예스!"를 외쳤다. 이후 두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부시는 이날 트위터에 "제프리스와 릴리의 약혼을 축하하며, 평생 함께하는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이라는 글을 올려 그들을 축복했다. 제프리스는 "군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감동했다"며 "역대 대통령을 둘이나 증인으로 뒀다니!"라며 기뻐했다.
조선일보 김민정 기자
●2015-09-30 최강 미군 뒤엔… ‘MIU’에 禮 갖춘 오바마
시진핑과 국빈만찬 4시간 앞두고도… 뎀프시 합참의장 전역식 참석 “국가헌신에 경의”
25일(현지 시간) 오후 3시경.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과 기자회견을 마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점심을 먹고 전용차량에 올랐다. 이날 오후 7시 백악관에서 열릴 국빈만찬을 불과 4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그가 향한 곳은 백악관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버지니아 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 미군 내 최고위직인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의 전역식과 조지프 던퍼드 신임 의장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전역식 시작을 알리는 장내 방송이 나오자 뎀프시 의장의 장남인 크리스 뎀프시 육군 대위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목이 멘 채 3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아버지의 전역명령서를 읽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이 연단에 섰다. 옆엔 뎀프시 의장과 부인 디니 여사를 비롯해 아들딸과 9명의 손자 손녀까지 있었다. 뎀프시 여사는 갓 돌이 지난 손자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뎀프시 의장을 애칭 ‘마티’로 부르며 감성적이면서도 진중한 목소리로 그가 군에 입문한 과정부터 소개했다.
“1970년, 당시 뉴욕에 살던 고교생 마티(뎀프시 의장의 애칭) 집에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로부터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하지만 마티는 웨스트포인트에 갈지 마음을 못 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어머니 세라 여사는 그런 마티에게 ‘한번 도전해보렴’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미군이 탄생할 수 있게 도와준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
엄숙했던 행사장에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말을 이었다. “마티가 조국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 고교 시절 애인이자 지금의 부인인 디니는 격려와 배려로 군인 배우자의 표상이 됐다. 크리스, 메이건 등 아들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됐다. 미국인들을 대표해 뎀프시 가족이 보여준 국가에 대한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뎀프시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말에 웃다가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합참의장으로서 그의 업적과 열정을 회고했다.
그는 “내가 마티를 2011년 9월 합참의장에 임명한 것은 그가 보여준 군의 비전, 신뢰 때문이었다”고 말한 뒤 “마티, 당신은 나에게 언제나 에두르지 않고 정직하게 조언했다. 당신 덕에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마치고,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떠나는 합참의장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까지 공개하며 ‘멘 인 유니폼(제복 입은 사람들)’의 가치를 새삼 일깨웠다.
“마티는 의장 취임 후 국방부에 있는 집무실 책상에 빈 시가 상자를 하나 두었다. 그 안엔 마티가 (2003년) 기갑부대 사단장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했을 당시 그 휘하에서 전사한 132명의 미군 이름과 사진, 미처 이루지 못한 그들의 삶이 하나하나 적힌 카드가 있다. 그 상자 겉면에는 ‘(전사자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자(make it matter)’라는 문구가 있다. 마티는 각종 회의 때도 132장의 카드 중 3장을 꺼내 항상 품에 지니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신을 내 임기 중 상당 시간 곁에 둘 수 있어 감사했고, 이제 전역하는 마티 당신을 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어 자랑스럽다”며 “당신이 보여준 헌신에 국가는 최고의 감사를 표한다”고 맺었다.
가족 앞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은 뎀프시 의장은 “백악관 회의 때 종종 군인으로서 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허용해 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그는 IS 격퇴전을 치르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에도 지상군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개진해왔다.
뎀프시 의장은 “조국의 제복(cloth of our nation)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생애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말한 뒤 “부디 조국을 위해 먼저 간 전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다시 한번 군에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답사를 마치고 오바마 대통령,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등과 악수한 뒤 울먹이며 환호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행사장엔 그의 전역을 아쉬워하는 군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날 전역식에 참석했던 군 관계자는 기자에게 “미군이 여전히 세계 최강인 것은 첨단 무기뿐만 아니라 이렇게 ‘제복 입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헌신과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2015.12.12 요양원을 찾아가던 할머니와 택시기사의 마지막 대화
미국 작가 켄트 너번은 20여년 전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을 했었다. 어느 날 밤 콜을 받고 승객을 태우러 갔다. 쥐죽은 듯 고요한 사위 속에 희미한 불빛 하나가 보였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주 봐 왔다. 위험한 기색이 있는 상황이 아니면 나는 늘 문 앞까지 가곤 했다. 그 사람이 어쩌면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잠깐만요." 힘없고 나이 든 목소리가 대답했다. 뭔가 바닥에 끌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80대 나이로 보이는 작은 할머니가 문을 열었다. 곁에는 작은 나일론 여행 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안은 휑했다. 가구는 모두 천으로 덮여 있었다. 벽에는 시계도 없었다. 한쪽 구석 판지 상자에는 사진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그냥 남들이 내 어머니께 해줬으면 하는 대로 해드리고 싶었다. 할머니가 주소 쪽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시내를 거쳐 가줄 수 있어요? 나 그리 서두를 필요 없어요. 호스피스(시한부 말기 환자 병동) 가는 길이에요."
남은 가족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요금 미터기를 껐다. 잠깐만 세워달라고 했다. 엘리베이터 안내원으로 일했던 건물이라고 했다. 신혼 시절 남편과 살았던 동네라고 했다.
가구 창고 건물 앞에 멈춰달라더니 아무 말 없이 어둠 속을 바라다보았다. 소녀 시절 춤추러 다녔던 무도회장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이제 그만 가요."
호스피스 앞에는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할머니가 지갑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얼마 주면 되나요?" 안 주셔도 된다고 했다. "젊은이도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데 무슨…."
거의 무의식적으로 할머니를 껴안았다. 나한테 꽉 매달렸다. "이 늙은이에게 이런 마지막 기쁜 순간을…."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고마웠소."
손을 꼭 쥐어 드리고 돌아섰다. 등 뒤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 인생이 닫히는 소리였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겨 정처 없이 차를 몰았다. 그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일을 했던 것 같다.>
조선일보 윤희영
●2015.12.15 다섯 살짜리 손녀의 엉뚱하고 맹랑한 질문과 대답
미국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한 할아버지의 글이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다섯 살짜리 어린 손녀와 해변가 작은 집 옆 그물침대에 나란히 누워 나눈 대화 내용이다.
"잠들었나 했다. 녀석이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할아버지 몇 살이야?' '예순여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많아?'
마음은 19살이라고, 좀 아쉬워하는 뭔가를 덧붙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 그 속에서 나를 되쏘아보고 있는 노인이 누구인가 놀라곤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입을 닫았다. 그리고 가만히 몸을 숙여 손녀의 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 자식들, 그 자식들의 자식들을 키우며 앞뒤 돌아볼 겨를 없이 비틀거리며 살아온 43년, 그 숱한 이야기를, 덧셈 뺄셈도 아직 배우지 않은 어린 손녀에게 들려줘 봐야 뭐하겠나 싶었다.
어깨에 바짝 다가붙은 손녀에게 할아버지 같은 질문을 했다. '너 이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입에 넣었던 엄지손가락을 빼면서 웅얼거렸다. '체조 선수랑 발레 댄서….'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지나가던 바람이 녀석의 머리카락을 내 얼굴에 불어놓고 갈 때 불쑥 말했다. '할아버지, 나 삼십 살 되고 싶어.' '삼십 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는다. '왜 삼십 살이 되고 싶어?' 내 곁에 안기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죽을 때 나 어린 거 싫어.'
아득히 저 멀리 부서지는 파도가 보였다.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냥 헛기침을 했던 것 같다. 자기가 얼마나 어린 건지, 내가 더 이상 주변에 없으면 얼마나 슬프게 될지 알고 하는 말일까. '삼십 살'이라는 나이를 대기 위해 계산을 한 근거는 뭘까. 내가 죽을 때 어린 게 싫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설명해보라고 하지 않았다. 손을 잡고 걸어 주방으로 갔다. 토마토 치즈 샌드위치 두 개를 만들었다. 동맥경화를 일으킨다는 마요네즈를 듬뿍 발랐다. 녀석이 돕겠다며 의자 위에 올라섰다.
집게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뱅뱅 말아 돌리는 게 제 어미가 어릴 때 그랬던 것과 영락없이 똑같다."
윤희영 조선Pub 부장대우
● 2016.09.23 오바마 울린 여섯살 꼬마 "알레포 소년 데려와 주세요"
▲폭격 직후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앰뷸런스에 앉아 있는 알레포 소년. [뉴시스]
▲뉴욕 스카데일에 사는 6세 소년 알렉스는 알레포 소년을 데려와 달라는 편지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냈다. [유튜브 캡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초점 없는 눈과 피로 얼룩진 얼굴로 병원 응급차에 홀로 앉아있던 다섯 살의 ‘알레포 소년’ 옴란 다크니시.
시리아 폭격 현장에서 막 구조된 옴란의 사진은 전 세계에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알렸다.
미국 뉴욕주 스카데일에 사는 6세 소년 알렉스에게도 그 사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알렉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앞으로 “시리아에서 앰뷸런스에 타고 있던 그 아이를 기억하시나요? 그 아이를 저희 집으로 데려와 주실 수 있나요? 그 아이에게 가족을 만들어 줄 거에요. 그는 우리의 형제가 될 거에요”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또 학교에 시리아에서 온 친구 오마르가 있는데 그 아이에게 오마르를 소개해주고 같이 놀거라며, 그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 아이로부터 외국 글자를 배우고 싶다고도 썼다.
“내 여동생 캐서린은 그 아이에게 나비랑 개똥벌레를 잡아줄 거에요”라고 했다.
비뚤비뚤한 손글씨로 쓴 편지였다.
그 편지는 오바마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오바마는 유엔 난민 정상회의에서 그 편지를 큰 소리로 낭독했으며, 알렉스가 자신이 쓴 편지를 읽는 동영상을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2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그 동영상은 15만 회가 공유됐고, 약 800만 명이 시청했다.
열 살 난 옴란의 형 알리는 공습으로 숨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2011년 이후 약 50만 명이 숨졌으며 그중 20%는 어린이들도 추산된다. 430만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 가운데 절반가량이 어린이다.
오바마는 알렉스의 동영상에 대해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 어린 아이는 인간애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국적이나 외모나 종교를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냉소적이거나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park.hyemin@joongang.co.kr
●2016.11.10 군인을 외롭게 만들지 않는 나라
‘강철손 영웅’ 미국은 영웅을 외롭게 하지않았다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동료의 목숨을 구한 르로이 페트리(32) 상사에게 미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던 미군 가운데 생존자로 이 훈장을 받는 것은 지난해 11월 살바토르 준터(26) 하사에 이어 2번째. 페트리 상사는 베트남전 이후 명예훈장을 받는 2번째 생존군인으로도 기록됐다.
지난 2008년 5월 26일, 페트리 상사는 동료 부대원들과 함께 아프간 파크티아 지역에서
탈레반 기지에 대한 급습 작전에 참가했다. 동료 부대원 두명 옆으로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이를 본 페트리 상사는 바로 달려들어 수류탄을 낚아챘다. 이미 양다리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수류탄을 던지려는 순간, 쾅! 굉음이 났다. 손에서 수류탄이 폭발한 것. 결국 페트리 상사는 오른손을 잃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페트리 상사의 부인 및 4명의 아이들, 부모 형제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수여식에서 20여 분간 페트리 상사의 공적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용맹한 행동을 기념하게 모였다. 이런 영웅들 덕분에 전쟁이 끝날 수 있었다.진정한 영웅은 아직도 존재하고 그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며 페트리 상사의 금속 의수를 움켜쥐었다.
금속물질로 만들어진 페트리 상사의 의수에는 숨진 전우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조선일보
●감동의 순간들
▲효도여행 - 한국계 재미 교포 지나 양이 암으로 사망한 아버지의 실물 크가 사진을 들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촬영한 사진
▲3살 아기가 갓난 동생을 품 속에 꼭 껴안고 있다 - 테네시 15.12.28
▲ 애리조나에 사는 랜디 앱킨스는 아내가 출산을 하기 위해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도중 밖으로 나오기 직전의 아기가 자궁안에서 의사의 손가락을 살포시 쥐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성공
▲내 아이 잘 부탁해
▲뇌성마비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아빠 - 유타주의 60살 제임스 가이어, 뇌성마비 때문에 몸이 불편한 18세의 아들과 미국 전역을 여행 2012년에 촬영한 사진
▲모정 - 미국 배우 올리비아 와일드 30세가 3개월된 아들에게 수유
▲미국인 안젤라 니콜는 일 년 반 동안 5회에 걸쳐 인공 수정과 체외 수정 과정을 거쳐 예쁜 딸 수피아가 태어났다. 그간 사용된 주사기와 유리약병을 모아 하트를 만들어 찍은 사진
▲바이오닉(생체공학)다리로 103층 윌리스타워 정상에 오른 잭 바우터
▲부녀 상봉
▲상봉의 감격
▲선천적으로 양팔 없이 태어난 제시카 콕스양 30세, 각고의 노력끝에 세계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 획득.
▲안녕 - 아프칸의 미군과 아이들
▲오랜만의 귀가
▲오빠의 아기 사랑
▲위기를 사랑으로 극복하자 - 13. 5. 21. 오클라호마
▲위기의 순간에도 모성에 발휘 - 13. 5. 21. 오클라호마 피해현장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여인
▲인생의 마지막 춤 - 14.9.5 캘리포니아에 사는 61세의 매리는 유방암과 투병중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 3분 동안 아들과 춤을 추고 3일 후 숨졌다
▲전우여 잘가라 - 15.12.23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자폭 테러로 숨진 6명의 전우 영결식에서 눈물을 삼키는 여군병사
▲흑인 소년과 백인 소방관의 아름다운 포옹 14.11.30
★미얀마
▲ 쓰레기장의 오누이
★베트남
야생 코끼리와 6살 소녀의 '기적적 우정'
베트남 중부 밀림 지역의 어느 한적한 강가, 대략 3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야생 아시아 코끼리와 작은 몸집의 소녀가 나란히 서있다. 아직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아 폭력성이 남아 있는 만큼 어린 소녀의 안전이 걱정되지만 어쩐 일인지 이 둘은 오랜 시간 서로를 알아온 친구처럼 평온하다.
뒤이어 소녀가 공손히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자세를 취하자 코끼리 또한 소녀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힌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으며 끈끈한 신뢰의 감정만 남아있다. 어릴 때부터 봐온 것도 아니고 이미 다 자란 코끼리가 인간 소녀에게 순순히 마음을 여는 일은 '기적'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흔치 않은 일이다.
이 놀라운 기적의 주인공인 킴 루안은 베트남 중앙 지역에 거주하는 토착소수민족인 므농(Mnong)족 소녀로 올해 6살이다. 전통적으로 므농족은 야생 아시아 코끼리를 길들여 물품 수송, 주택 건설 등에 활용해오고 있기에 해당 지역에서 코끼리와 인간의 공존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므농족은 언제 흉포한 야성이 되돌아와 사람을 해칠지도 모르는 야생 코끼리들을 조련하는 방법을 자연적으로 터득했다. 따라서 이들이 집 앞 마당에 마치 반려동물처럼 코끼리들을 기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루안처럼 아직 한참 어린 소녀가 다 큰 거대 야생 코끼리를 능수능란하게 조련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다.
이 신비로운 광경은 이달 초, 프랑스 사진작가 레한(35)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7년간 베트남에 거주하며 45000장에 달하는 다양한 광경을 촬영해온 그 조차, 루안과 야생 코끼리의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레한은 "언뜻 보면 소녀가 위험해보일 수 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곳 코끼리들은 인간이 먼저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계속 친절함을 유지한다"며 "므농족 사람들은 야생 코끼리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