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여행/ 국가별70/ 쿠웨이트 - 크로아티아 - 키르기스스탄 - 키리바시
지구촌 여행/ 국가별70/ 쿠웨이트 - 크로아티아 - 키르기스스탄 - 키리바시
■ 쿠웨이트 Kuwait
쿠웨이트국, State of Kuwait
▲국기
페르시아(아라비아) 만 북서부 위쪽 모퉁이에 있는 국가. 수도는 쿠웨이트 시이다. 남북길이는 160km, 동서길이는 140km이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이라크, 남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페르시아 만에 면해 있다
쿠웨이트는 페르시아 만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근처의 앗샤카야에서 최고 높이 290m에 이르는 완만한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쿠웨이트 만은 페르시아 만에서 내륙으로 48km까지 만입해 있다.
쿠웨이트 만 북서쪽 해안을 따라 145m의 높이로 단층애 앗자우르가 솟아 있으며, 남쪽 해안으로는 천연항이자 쿠웨이트의 수도인 쿠웨이트 시가 자리잡고 있다. 쿠웨이트 만 서쪽 끝에 있는 알자라 오아시스, 남동쪽과 연안지역의 기름진 몇몇 작은 구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사막지역이다.
기후는 아열대성에 속한다. 여름(4~10월)과 겨울(11~3월)의 기후차가 매우 크며, 여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4~9월의 평균기온이 44℃이지만 때때로 54℃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연강수량은 25~180㎜에 이른다. 비는 거의 겨울에만 내리며, 북부·서부·중부의 사막 분지 또는 플라야의 유목민들에게 신선한 물을 공급한다. 겨울 평균기온은 가장 서늘한 달의 경우 약 16℃이다. 바람이 자주 불며 주로 6~7월에 거센 모래바람이 휘몰아친다. 농경지는 거의 없으며 유일한 자원으로 광활한 유전과 천연 가스전이 있다.
20세기말 석유매장량이 전세계 매장량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제3위의 매장량을 기록한다. 천연 가스 매장량은 세계 총매장량 가운데 거의 1%를 차지한다.
국민은 아랍인과 이슬람교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쿠웨이트에 사는 외국인은 남아시아인과 비쿠웨이트계 아랍인이 대부분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공용어인 아랍어를 쓰며 페르시아어와 영어도 사용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도시에 거주한다. 연간 인구성장률은 주로 이주민들 때문에 전통적으로 높은 편이다. 정부에서는 쿠웨이트 토착민과 1920년 이전부터 조상이 쿠웨이트인이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민권을 주고 있다. 2022년 추계인구는 436만 9,541명이며, 전체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15세 이하의 유소년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1%이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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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21일 부자 나라 쿠웨이트의 고민
신부남 駐쿠웨이트 대사
“불타는 사막, 욕망의 바람, 내 마음 안에 물이 말라 불을 태우며”로 시작되는 세라 브라이트먼의 노래 ‘하렘(Harem)’의 가사는 쿠웨이트의 작렬하는 태양과 뜨거운 열기를 떠올리게 한다. 걸프만 북쪽에 위치한 덕분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제일 시원한 겨울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지만 1년 중 반 정도는 뜨거운 여름을 가진, 유엔 공식기후 통계상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라고 하는 열사의 나라 쿠웨이트. 이곳도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쿠웨이트는 기원전 3~4세기경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역사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18~19세기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항으로 발전하였다. 1946년부터는 석유가 시추되면서 오늘날 국민소득 5만 달러의 부를 누리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에서 가장 개방된 중계무역항으로 지역 허브 역할을 하였으나 1980년대 이란·이라크전쟁, 1990년 이라크의 침공으로 침체되었다가 2006년 사담 후세인이 죽은 후에야 시내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최근 북쪽 부비얀섬과 주변을 개발하여 이란과 이라크를 연결하는 물류와 금융의 허브 역할을 할 실크시티의 건설로 다시 한 번 도약을 꿈꾸는 나라이다.
전 국토가 황량한 자갈사막으로 구성된 쿠웨이트는 우리나라 경북도 크기의 조그만 나라지만 100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그야말로 석유 위에 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으며 쿠웨이트 여성이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가 구두 발자국에 석유가 솟아 나올까 봐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황금알을 낳는 석유 덕분에 오늘날 쿠웨이트 사람들이 아주 잘살게 되었지만 잘사는 사람들의 병이라는 당뇨병에 쿠웨이트 국민의 25%가 고통받고 있으며 당뇨병 환자의 발병률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어려운 기후여건에 따른 운동 부족, 밤 10시 전후 늦은 시각의 저녁 식사와 곧바로 잠자리에 드는 생활습관, 대추야자 등 단 음식과 음료를 즐기는 식생활로 비만과 성인병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패스트푸드의 인기는 보건 당국의 또 다른 도전이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 건강 적신호를 간파한 사바 쿠웨이트 국왕은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국 부소장을 지낸 자국민 출신 베베하니 박사를 쿠웨이트 국립 다스만(Dasman) 당뇨병 연구소장으로 임명하고 당뇨병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쿠웨이트 보건 당국은 건강한 삶을 위한 대국민 건강 캠페인과 더불어 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시설 확대 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5000개 병상의 국립 병원 9개를 신축하고 있으며 한국 등 외국의 의료진을 초빙하여 자국의 의료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의료 환경이 낮은 상황에서 짧은 기간 내에 의료 수준 향상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쿠웨이트 사람 대부분이 의료수준이 높은 외국에서 치료받기를 희망하고 있어 국내 치료가 어려운 환자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환자 본인과 간병인의 체재비까지 지원하는 해외전지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전체 보건예산의 25%에 이르는 해외전지 치료는 치료지역도 기존의 유럽 국가에서 벗어나 다원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3월 우리 대통령의 쿠웨이트 국빈방문을 계기로 한국·쿠웨이트 양국의 협력관계가 의료·보건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국빈방문 시 양국 간 의료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었으며, 지난 4월 쿠웨이트 보건부 장관이 방한하여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을 방문하여 우리의 발전된 의료기술을 직접 체험했다. 한국의 대학병원과 환자송출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쿠웨이트의 한 에이전트사 직원은 우리의 의료 수준과 시설을 극찬하면서 한국은 해외전지 치료지로서 경쟁력이 매우 높은 국가라고 강조한 바 있다. 조만간 쿠웨이트∼서울 간 직항노선이 생기게 되면 성인병 환자들 외에도 K-팝과 드라마로 불어온 한류 열풍으로 아름다운 외모와 피부, 날씬한 체형의 우리나라 여성을 부러워하는 많은 쿠웨이트 여성이 쉽게 우리나라를 찾아올 것으로 기대된다.
쿠웨이트 사람들이 치료를 위해 우리나라 병원을 찾는 문제를 단순하게 경제적인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질병은 무서운 악몽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쿠웨이트 환자가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 덕분에 건강을 되찾게 된다면 한국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을 사랑하는 팬이 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해외 전지 치료라고 생각한다. 쿠웨이트 환자를 국내에서 치료받게 하는 것은 양국 간 우호협력 강화와 양국 국민 간의 이해와 소통에 기여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신부남(57) △서울대 독문학과 졸 △제16회 외무고시 △미국 보스턴대 국제관계학 석사 △주유엔 차석대사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녹색성장대사 △녹색성장기획단 녹색성장대사 △기후변화대사 △현 주쿠웨이트 대사
문화일보
◆현대엔지니어링 등 '팀 코리아', 세계 최대 쿠웨이트 LNG 수입터미널 준공
현대엔지니어링·현대건설·한국가스공사로 구성된 팀코리아 협력 성과
세계 최대규모 LNG 터미널 '쿠웨이트 알주르(Al-Zour) LNG 수입 터미널 프로젝트'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 리더로서 초대형 EPC 프로젝트 수행 역량 입증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으며 지속 확대되는 LNG 플랜트 시장에서 추가 수주 기대

▲쿠웨이트 알주르 LNG 수입터미널 모습 / 현대엔지니어링 제공.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 한국가스공사로 구성된 팀 코리아 컨소시엄이 단일 공사 기준 세계최대 규모의 LNG 터미널 ‘쿠웨이트 알주르 LNG 수입 터미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17일 현대엔지니어링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21만㎥ 규모의 LNG를 실은 시초 LNG선이 해상 부두에 입항해 하역을 개시한 이후 가스 재기화시설과 LNG저장탱크의 시운전을 완벽하게 마무리함으로써 쿠웨이트의 육상 LNG터미널을 통한 LNG의 도입 및 공급 등 본격적인 상업 운전의 시작을 알리게 됐다. 이번 프로젝트 완공을 통해 쿠웨이트는 에너지 다변화 및 클린에너지 수요에 대응하고 자국내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 환경에서 가스망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됐다.
‘쿠웨이트 알주르 LNG 수입 터미널 프로젝트’는 지난 2016년 3월 현대엔지니어링(컨소시엄 리더), 현대건설, 한국가스공사가 코리아드림팀을 구성해 발주처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IPIC)로부터 공동으로 수주했다. 총 29억3200만 달러(원화 3조6000억원) 규모의 이번 프로젝트는 쿠웨이트 수도 쿠웨이트시티에서 남쪽으로 90km 떨어진 알주르(Al-Zour) 지역에 하루 13만㎥의 가스를 처리할 수 있는 재가스화 (Regasification) 시설과 22만5000㎥ 규모의 LNG 저장탱크 8기를 건설하는 공사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재가스화 플랜트 등 육상 공사와 해상 접안부두 상부 공사, LNG 송출설비 등 핵심 플랜트 설비 공사를 담당했고, 현대건설은 초대형 LNG 저장 탱크 8기와 매립, 접안시설 하부 공사를 수행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시운전과 LNG 터미널 운전 교육을 맡았다.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 리더로 프로젝트 수행 토탈 솔루션 제공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번 프로젝트 핵심 플랜트 설비의 설계, 구매, 시공 역무 외에 컨소시엄 리더로서 프로젝트 전체의 설계관리, 공정관리, 인허가를 포함한 총괄사업관리 및 발주처 대응을 책임졌다. 원활한 공사진행과 효과적인 발주처 대응을 통해 초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세계적인 수준의 플랜트 공사 사업수행 역량을 재차 입증했다.
프로젝트는 연안 바다를 매립해 공사부지를 확보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공정이 동시에 복잡하게 얽혀 진행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프로젝트의 총괄 지휘자로서 컨소시엄 회사간 시공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 초기에 시공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간섭요소들을 사전에 분석하고 컨소시엄 각 사의 마일스톤(Milestone)을 고려한 통합 공정 을 수립, 관리함으로써 원활한 공사 진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발주처 요구사항에 적극 대응하고 신속하게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등 발주처와 원만한 의견조율을 이끌어냄으로써 신속한 프로젝트 진행의 기반을 마련했다. 풍부한 해외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련한 대응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이 사업은 현대엔지니어링의 플랜트 사업관리 역량 및 설계ㆍ시공 기술력과 현대건설의 해상매립공사, 8기의 LNG 탱크를 동시에 건설 할 수 있는 기술과 수행 실적이 결합돼 시너지를 발휘했다. 또 가스공사의 LNG터미널 운영 능력이 더해져 민간기업과 공기업 간의 우수 협력 사례로 평가받는다.
모듈러 공법 도입으로 공사기간 대폭 단축
현대엔지니어링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첨단 공법을 적극 도입했다. 이 사업에서는 총 1.2km의 해상 접안시설의 상부 구조물 공사를 적기에 마치는 것이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통상 해상 공사는 날씨로 인한 변수가 공사 일정에 크게 작용한다.
이에 현대엔지니어링은 해상 공사의 변수를 극복하기 위해 해상 접안시설 상부 구조물 및 배관공사에 모듈러 공법을 적용했다. 그동안 축적해온 플랜트 모듈의 운송과 설치를 고려한 모듈러 설계 기술 역량이 총동원됐다. 모듈러 공법은 해상 상부 구축물을 12개의 모듈로 구성해 육상에서 미리 제작한 후 현장으로 운송하고 해상 크레인을 이용해 설치·연결하게 된다. 이를 통해 총 6개월 이상의 공기를 단축하는 획기적인 결과를 기록했다.
한편, 작년부터 이어져 온 코로나 여파로 인한 쿠웨이트 입국제한, 통행시간 제한, 락다운 등 어려움 속에서도 3개사가 합심해 전세기 동원, 코로나 진단키트 도입 등을 통해 코로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쿠웨이트 정부의 협조로 직원들에 대한 현지 백신접종을 실시하며 예상치 못한 난관 속에서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우수한 사업수행 능력과 효과적인 위기대응으로 발주처 KIPIC 신뢰 얻어
발주처 KIPIC 관계자는 "이 사업은 디젤 소비를 줄이고 천연 가스를 사용해 전력생산을 하기 위한 쿠웨이트 장기 전략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라며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5년의 사업 수행기간동안 엔지니어링 기술의 우수성과 프로젝트 수행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와 가스공사 컨소시엄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프로젝트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 최선을 다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행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LNG 플랜트 수행능력과 기술 역량을 입증했다"면서 "LNG가 최근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아 LNG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이를 교두보로 향후 발주 예정인 LNG 사업에 참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풍경
▲야경
■ 크로아티아 Croatia
크로아티아 공화국, Republic of Croatia, 흐르바츠카, Hrvats
▲국기
발칸 반도 중서부에 있는 국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던 공화국이었으나, 1980년대말 개혁의 흐름 속에 1991년 6월 25일 독립을 선언했다. 수도는 자그레브, 화폐는 쿠나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크로아티아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모했다.
역사
크로아티아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은 7세기였다.
북부 달마치야에서 판노니아까지 진출했던 크로아티아의 부족들은 느슨한 동맹을 이루고 있다가 803년에 샤를마뉴의 종주권을 인정했으며, 곧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후 크로아티아인들의 로마 가톨릭교에 대한 충성심은 정교회를 믿는 이웃 세르비아와의 관계에 계속 영향을 끼쳐왔다. 10세기에 크로아티아 왕국이 수립되었고 1091년에 헝가리의 라슬로 1세가 왕국의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크로아티아는 8세기 동안 헝가리에 합병되어 있었다.
헝가리와의 합병 기간 동안에도 크로아티아는 자체의 의회인 사보르를 유지했으며, 법률상으로는 독립 왕국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1526년 헝가리가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 패배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대부분 지역이 투르크로 넘어가 1699년까지 그들의 통치를 받았다.
나머지 지역은 뚜렷한 통치자 없이 남겨져 있다가 1527년 사보르 의회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를 왕으로 선출했다. 오스트리아는 크로아티아와 슬라보니아 지역들을 군사적인 국경지대로 삼았으며, 터키와의 전쟁 때 국경 주민으로 징발돼간 세르비아인들을 식민지화했다. 1809∼13년에 일리리아 지방의 일부로서 나폴레옹의 통치를 받았다.
1867년 이중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워진 후, 달마치야와 이스트라는 비엔나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는 1849년에 오스트리아의 한 주가 되었다가 1868년에는 헝가리의 자치주이자 이름뿐인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으로 전환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한 후 크로아티아는 다른 남슬라브족 영토와 함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1929년에 유고슬라비아로 개칭)을 이루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군주들 간의 관계는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중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국들에게 점령·분할당하자 1941년 4월 10일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가 독립국가임을 선포했고, 4일 후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승인을 받았다.
이 신생국은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달마치야의 일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포함하고 있었다. 새 국가는 파시스트 테러 조직인 우스타샤의 우두머리 안테 파벨리치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는 극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독재정치를 펼쳤다.
파벨리치는 소위 '인종정화'를 내세워 수십 만의 세르비아인, 유대인, 집시, 반파시스트 크로아티아인들을 학살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공산세력이 이끄는 파르티잔(유격대원)들이 통치권을 확보한 지역에 지역위원회를 조직했고 그밖의 지역에서는 민족해방평의회를 결성했다. 1945년 파르티잔들이 자그레브를 점령한 후 이 평의회는 인민정부로 전환되었고, 크로아티아는 인민공화국으로서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크로아티아는 처음에는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했지만 연방 내에서 자치권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선거를 통해 비공산주의계 정부가 탄생했으며 1991년 6월 25일 독립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자극을 받은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인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며, 세르비아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군의 도움으로 크로아티아 내의 여러 지역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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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크로아티아 달마 시안 해변
▲크로아티아 국립공원내 플티비체호수의 폭포
▲17 계단의 스크라딘스키 부크 폭포 - 크르카 국립공원
▲요정이 산다는 크로아티아 호수
▲ 크로아티아 프라트비제 호수 - 동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
■키르기스스탄 Kyrgyzstan
키르기스 공화국, Kyrgyz Republic
▲국기
중앙 아시아에 있는 국가. 옛 이름은 키르기지야(Kirgiziya),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Kirgiz Soviet Socialist Republic) 등이다. 수도는 비슈케크이며 화폐는 솔이다. 산지가 많은 고산기후이며 한때는 완전한 농업국가였으나, 20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안티몬 및 수은 광석과 같은 비철금속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 남서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남쪽으로는 타지키스탄과 접해 있다. 남동쪽으로 톈샨 산맥[天山山脈]의 일부를 이루는 콕샬타우 산맥이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수도는 비슈케크(옛 이름은 피슈페크[∼1926], 프룬제[1926∼92])이다.
키르기스스탄은 산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중국과의 국경지역에 있는 빅토리 봉과 카자흐스탄과의 국경 부근에 있는 한텡그리 봉 등은 방대한 톈산 산계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들에 속하며, 산맥 정상부는 만년빙과 만년설로 덮여 있다.
많은 작은 강들이 급류를 이루며 산맥으로부터 폭포처럼 떨어져 흐른다. 남서부의 페르가나 계곡과 북부의 추 강 계곡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인구가 집중되어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인접한 평원들과 고도차가 현저하다는 지리적 여건들이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교적 지대가 낮은 곳에는 뜨거운 사막풍이 불며, 고지대에는 한랭한 사막이 있다. 이 두 지대 사이에는 경사진 점이지대가 있으며, 그중 서쪽 및 북쪽 경사면은 비교적 습하다. 아주 높은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고산성 및 아(亞)고산성 초원이 발달했다.
저지대의 계곡들과 북쪽으로 향한 산기슭에는 삼림이 울창하며, 유럽산 및 아시아산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의 야생동물로는 갈색곰·멧돼지·스라소니·삼림이리·어민족제비류·산양류·사슴·흰표범 등이 있다.
1993년 채택된 헌법에 따르면 키르기스스탄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단일연방공화국으로 수많은 정당들이 존재한다. 국가의 수반은 대통령으로 광범위한 권력을 행사하며 총리를 임명한다. 의회는 양원제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3개 고등법원의 판사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다. 무상으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의료수준은 낮은 편이며, 생활·교육·경제 수준이 옛 소비에트 공화국들 가운데 최하위에 속한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9년간의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비슈케크의 키르기스국립대학교(1951)와 10여 개의 연구기관을 거느리고 있는 키르기스 과학 아카데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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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4 '부정선거 몸살' 키르기스스탄, 한국 IT로 투표혁명
지난 5월 17일 지방의회 보궐선거를 치른 중앙아시아 국가 키르기스스탄. 이날 저녁 수도 비슈케크가 있는 추이주(州) 개표소 참관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5만2487표를 개표하는 작업이 10분 만에 끝났기 때문이다. 금세 개표와 집계를 끝낸 비결은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원한 광학 판독 개표기에 있었다. 광선을 이용해 어떤 후보를 찍었는지 전자식으로 투표용지를 판독하는 기계다.
순식간에 끝난 개표 결과는 즉각 무선으로 전송돼 결과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예전에는 수작업으로 개표했기 때문에 5만여 표를 확인하려면 꼬박 사흘은 걸렸다. 키르기스스탄 중앙선관위는 이튿날 양 한 마리를 잡아 비슈케크에 있는 한국 중앙선관위 사무실에 갖고 와 고마움을 표시했다.
키르기스스탄이 5월 지방의회 보궐선거에서 시범적으로 한국의 광학 판독 개표기를 가동해 본 데 이어, 오는 10월 총선부터 모든 전국 단위 공직 선거를 자동화된 한국식 선거 관리 시스템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국 중앙선관위는 광학 판독 개표기를 키르기스스탄 전역 투표소 2300곳에 보급한다. 투표에서 개표에 이르는 관리 시스템도 구축해준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제3국에 '선거 원조'를 하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총선 때마다 개표에만 일주일이 걸렸지만 올해 총선부터는 하루 만에 개표를 끝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한국 중앙선관위는 한국 중소기업 20여 곳의 노력이 집약된 개표 관련 모든 기술을 전수한다. 선거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1100만달러 중 600만달러도 지원한다. 키르기스스탄의 선거 관리 시스템을 한국이 지원하게 된 것은 2013년 방한한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사리예프 테미르 총리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선거 경험과 기술력을 신뢰하기 때문에 한국 시스템을 들여오게 됐다"고 말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선거韓流 - 지난 5월 키르기스스탄 지방의원 보궐선거에서 한국식 선거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추이주 카라발타 투표소에서 전통모자 칼팍을 쓴 노인이 투표하고 있다. 이날 개표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는 10월 총선에도 같은 방식의 한국산 투·개표 시스템이 적용된다. 선거 한류(韓流)인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키르기스스탄에서는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20년 넘게 투·개표가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투표소(2300개), 지역 선거관리위원회(55개)를 거쳐 중앙선관위에 개표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하위 기관 직원들이 정치인들의 사주를 받아 결과를 조작한다는 의혹이 줄기차게 제기됐다.
신분증 검사도 소홀했고 대리투표·다중투표도 흔했다.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며 투표소를 찾아온 유권자들을 돌려보내는 일도 잦았다. 그 결과 선거 불신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총선 투표율은 30%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10월 4일 총선에서 한국 선거 자동화 시스템 도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다. 개표 결과를 투표구위원회·지역선관위를 거치지 않고 무선으로 중앙선관위에 바로 전송하므로 개표 결과를 조작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 국민은 한국 덕분에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게 됐다며 기대가 크다. 시민 단체인 '깨끗한 선거'의 바마타쿨로바 아이지자(33)씨는 "올해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선거관리위원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로비가 과거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광학 판독 투표기를 사용해본 세르카지에바 부루라인(37)씨는 "비가 오는 날 젖은 손으로 만져 흐물흐물해진 투표용지를 광학 판독 개표기가 문제없이 인식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용희(58) 사무총장은 "이 나라가 외교 관계가 긴밀한 러시아·터키·일본 대신 한국의 선거관리 시스템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우리의 선거 시스템이 앞서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키르기스스탄, 어떤 나라?]
중국(동쪽), 우즈베키스탄(서쪽), 카자흐스탄(북쪽)에 둘러싸인 인구 590만명의 중앙아시아 국가로 국민의 75%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선·총선 때마다 부정선거가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심각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280달러로 제조업 기반이 약해 많은 젊은이가 해외에 나가 일자리를 찾는다. 아름다운 산이 많아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지만, 관광산업은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정치인들은 "현재 우리는 1960년대 한국과 비슷하다"며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을 이상적인 발전 모델로 꼽는다.
조선일보 이벌찬 사회부 기자
◆ 2015년 11월 18일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우리문화 사랑
▲ 키르기스공화국 고려인협회 주최로 지난해 8월 24일 비슈켁시 필하모니아극장에서 열린 ‘러시아 한인 이주 150주년 기념 행사’에서 고려인 공연단 ‘만남’이 장구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정병후 / 駐키르기스스탄 대사
2015년 9월, 추석 한가위 행사가 개최된 키르기스스탄 국립극장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과 대부분 우리 동포로 보이는 많은 이들로 만원을 이뤘다. 곧이어 시작된 공연엔 부채춤, 사물놀이, 강강술래, 북춤, 한국민요 및 가요 등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마치 한국에서 온 대규모 공연단이 한국의 종합예술을 선보이는 듯했다. 사실은 모두가 현지 고려인들로 구성된 공연단 ‘만남’의 공연이었다.
1998년에 창단된 만남은 한국교육원에서 개설한 사물놀이, 부채춤과 같은 전통 문화 프로그램의 교육생들이 계속 합류하면서 키르기스스탄뿐만 아니라 독립국가연합(CIS)지역 전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품 공연단이 되었다. 전통예술 전문가가 부족한 키르기스스탄에서 교육원은 한국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교육생 및 공연단원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하고, 만남은 수시로 한국에 가서 우리 전통예술을 직접 익혀 와서 현지에서 적용하였으며, 또한 한국에서 방문한 대학생 봉사단의 공연활동도 공연단 만남에는 또 하나의 학습의 장이었다.
요즘 중앙아시아 지역의 많은 고려인이 한국, 러시아 등으로 이민을 가면서 공연단원들이 점차 줄어들고는 있지만, 만남은 한국의 여느 공연단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우수한 예술성을 보유하고 있다.
독립 이전의 CIS 지역 고려인들은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북한의 언어, 노래, 무용 등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아직까지도 고려인 사회에 남아 있으나, 독립 후에는 우리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2001년 한국교육원이 설립되면서 한국어 및 문화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근근이 이어오던 한국문화 계승 노력을 실천에 옮긴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공연단 만남이다.
1937년 스탈린의 이민족 이주정책에 따라 연해주에 거주하고 있던 우리 한민족의 대다수가 이곳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사막지대에 정착되었다가, 그 후 일부는 다시 키르기스스탄과 러시아 일부 지역으로 분산 이동되었다. 그 후손들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약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약 2만 명의 고려인이 현재 고려인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1989년에 키르기스스탄 고려인협회가 처음으로 창립된 후, 그동안 잃어버렸던 우리 문화에 대한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고려인 무용단과 어린이 뮤직스튜디오를 창설하여 고려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전수하는 역할을 했으며. 1997년부터는 설날은 물론 추석 행사를 개최하여 고려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노래와 춤, 공연으로 우리 문화를 즐기는 행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1998년에 키르기스스탄 고려인협회가 재정비되면서, 이때 공연단 만남이 창설되어 고려인의 거의 모든 행사에 이들이 주된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 고려인들의 아픈 역사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우리 고려인들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 이곳 중앙아시아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고 있다. 비록 CIS 국가들이 독립 후 민족 주체성을 찾아 자국어를 공식어로 채택하여, 러시아어가 주 언어인 우리 고려인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중앙아시아 100여 민족 가운데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따라 고려인들의 자부심도 높아가고 있으며, 우리 문화를 계승하려는 열의도 보다 강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중앙아시아 지역 거주 우리 동포들에 대한 한국어 및 문화교육에 대해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하는 필요성이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가 아닐까?
올해 우리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한민족 대축제, 한국영화제, K-팝 대회, 한글주간행사 등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려인 공연단 만남의 어린 고사리손 사물놀이와 부채춤 공연, 그리고 고려인 추석 행사에서의 다양한 공연과 함께 고려인 ‘노인합창단’의 고향의 봄 합창은 나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이러한 고려인들의 노력은 우리 한민족 본래의 끈질기고 강인한 민족성에서 유래하며 성실함과 간절함이 덧붙여져 앞으로 더욱 발전하리라 본다. 키르기스스탄 고려인들로 구성된 공연단 만남과 같이 우리 문화를 계승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대사관의 노력도 더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정병후(56) △제24회 외무고시 △재외동포정책과장 △아세안협력과장 △주인도네시아 공사참사관 △남아시아태평양국 심의관 △주키르기스스탄 대사
문화일보
◆ 풍경
▲ 해발 4446m의 푸틴봉 -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
■ 키리바시 Kiribati
키리바시공화국, Republic of Kiribati
▲국기
영국 연방에 속한 독립공화국으로 수도는 타라와이며 옛 이름은 길버트 제도(Gilbert Islands)이다. 태평양 중앙에 있는 길버트·피닉스·라인 제도로 이루어졌다. 국민의 대다수가 미크로네시아인(99%)이며 화폐는 호주 달러이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높은 편이고 정부에서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태평양 중앙에 있는 길버트·피닉스·라인 제도로 이루어졌다. 라인 제도에서 미국 영토에 속하는 노던라인 제도의 3개 섬은 제외된다.
길버트 제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바나바(옛 이름은 오션 섬)도 키리바시의 일부이다. 키리바시의 수도는 북부 길버트 제도의 타라와 환초에 있는 작은 섬인 바이리키이다.
원래 영국의 식민지였던 길버트엘리스 제도가 1975년에 2부분으로 나누어진 뒤, 1979년 길버트 제도는 키리바시 독립국이 되었다(엘리스 제도는 1978년 독립국이 되면서 투발루로 개칭됨)
정치와 사회
1979년에 공포된 헌법에 의해 국가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보통선거로 선출되고, 단원제 국회는 4년마다 선출되는 39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다. 바나바 섬의 인산염 광산업을 확장하기 위해 라비 섬(피지에 있음)에 정착한 바나바인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1명 추가된다.
그러나 이들 바나바인은 고국으로 돌아갈 권리가 보장된다. 사법부는 영국의 제도를 본떠 각 거주 섬에 있는 하급법원을 포함하여 대법원과 항소법원으로 구성된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섬에 있는 지방의회에서 지방행정을 수행한다.
의료 서비스는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되는데, 타라와에 2개의 병원이 있고, 각 환초에는 간호장교나 의료 보조인력이 관리하는 진료소가 있다. 결핵, 어린이 설사, 세균성이질 등이 많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평균수명은 약 53세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섬에는 적어도 1개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가운데 몇몇은 교회에서 운영한다.
키리바시에는 몇 개의 중등학교와 교사·기술자·해군 등을 양성하는 학교가 있고, 피지의 수바에는 남태평양대학교의 분교가 있다. 타라와 라디오 방송은 길버트어와 영어로 방송된다. 키리바시에서는 전화 서비스도 실시된다.
▲키리바시 로드 표지판
◆ 2015-09-16 “한국 기술로 수몰 위기 키리바시 구해주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겠죠.”
아노테 통(Anote Tong·63) 키리바시 대통령에게 “키리바시가 2050년이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예측이 맞느냐”고 묻자 “맞다”고 확인해줬다. 단 그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뭔가를 결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은 얼굴에 짧게 깎은 흰머리를 한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자 그가 왜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평가받는지 짐작이 갔다. 기후변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먼 훗날의 한가한 얘기로 들리지만 그에게는 당장 10만명의 국민과 811㎢의 국토가 걸린 생존의 문제다.
지난 8월 29일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호텔에서 만난 아노테 통 대통령은 제1회 선학평화상 수상자다. 통일교가 제정한 상금 100만달러의 이 상을 그는 인도의 모다두구 굽타 박사와 공동 수상했다. 어업 과학자인 굽타 박사는 어종 개량을 통한 식량증대로, 아노테 통 대통령은 기후변화와 싸워온 글로벌리더로서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8월 28일 열린 수상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한국을 떠나기 하루 전 주간조선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키리바시는 남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다. 33개의 산호섬으로 이뤄진 이 나라는 파푸아뉴기니와 피지 북동쪽, 날짜 변경선과 바로 인접해 있어 지구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다. 하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 섬나라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중이다. 평균 해발고도가 2m밖에 안 돼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자 조금씩 바다에 영토를 내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국민들이 이웃나라로 이주하고 있다.
아노테 통 대통령은 “키리바시가 기후변화의 최선선에 있지만 투발루, 마샬군도 등 해발고도가 낮은 섬나라들은 모두 비슷한 운명이다. 통가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통가는 고도가 높은 땅이 있어 옮겨갈 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아노테 통 대통령에 따르면 키리바시가 해수면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은 10년이 넘었다. 바닷물이 차오르는 마을마다 제방을 쌓았지만 제방은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제방을 쌓고 무너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결국 제방이 바닷물을 막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달았고,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수몰된 지역 국민들을 뉴질랜드로 이민 보내기로 했지만 처음에는 누구도 가지 않으려 했죠. 매년 75명의 이민 쿼터를 갖고 있는데, 처음에는 그 쿼터를 다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심각성을 알리며 ‘존엄한 이주’ 프로그램을 시행했고 지금은 75명의 쿼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매년 점점 더 많은 국민이 뉴질랜드와 호주 등으로 이민을 가고 있습니다.”
그가 이번에 상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존엄한 이주(Migration with Dignity)’ 프로그램 때문이다. 자국 국민들을 ‘존엄하게’ 이주시킨다는 의미인데, 왜 ‘존엄하게’라는 수식어를 붙였는지를 물었다.
“저는 몇 가지 이유로 기후난민(climate refugees)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난민이라는 말에는 2등급 시민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고 그건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처할 시간이 있습니다. 향후 10년이나 20년간 키리바시 국민들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주하게 만들 겁니다. 이주 후에도 좋은 직업을 갖고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기술을 배우게 하는 등 이주를 차근차근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대다수가 어업에 종사하는 키리바시 국민들은 ‘존엄한 이주 프로그램’에 따라 간호사, 선원, 원예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 직업훈련과 어학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키리바시 정부는 인근 국가인 피지에 24㎢의 땅을 사놓기도 했다. 아노테 통 대통령은 “우리가 피지에 사놓은 땅은 투자”라며 “언론들은 키리바시가 통째로 피지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며 흥분하는데 10만명의 사람들이 옮겨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는 “키리바시는 국토가 상실되고 있을 뿐 아니라 농작물도 바닷물 때문에 망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자국민들에게 권하는 ‘존엄한 이주’는 사실 마지막 선택일 수 있다. 그는 가능한 국토를 지키고 싶어하며 자국민들을 떠나보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그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기술과 시멘트다. 그는 “우리는 국토가 바닷물에 잠기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왔지만 현실은 10만명의 인구가 다 머물 국토가 이제는 없다는 것”이라며 “나라 전체를 둘러쌀 제방을 쌓을 자원이 우리에게는 없다”고 했다.
그에게 “기술과 자원이 있으면 키리바시가 수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기술적인 해결책을 얘기하는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내가 한국 정부에 가능한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도울 기술이 없는지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의 콘셉트도 있지 않습니까. 키리바시라는 나라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해야만 합니다. 자원이 충분하다면 우리는 다음 세기 수몰 위기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키리바시를 새로 세울 수 있습니다.”
아노테 통 대통령에 따르면, 한국 정부에 원조를 요청한 이후 현재 키리바시에는 한국의 기술진이 파견돼 바닷물을 막을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자신은 최종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그는 환경보전을 위해 자국의 희생을 감수하는 통 큰 결단도 내린 바 있다. 2006년 세계보존협회(CI)가 지구상에서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키리바시의 산호 구역인 피닉스제도를 보호구역으로 정하자 아노테 통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2008년 40만㎢에 달하는 피닉스제도 전체를 어획 및 채굴을 금지하는 ‘해양보호공원’으로 선언했다.
이는 2010년 유네스코에 세계 최대 규모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원양어선의 입어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키리바시로서는 풍부한 어종을 자랑하는 피닉스제도에서 어획을 금지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와 국민의 주 수입원을 끊는 결단이었다.
아노테 통 대통령은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지구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법적 틀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누군가 쓰레기를 태우면 이웃사람들을 괴롭히게 되고 거기에 대해 법적 제재를 받습니다. 하지만 지구적 차원에서는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노테 통 대통령은 이번에 받게 될 5억원에 이르는 상금도 키리바시를 지키는 데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 지역구 마을에서는 해수면 상승에 맞서기 위해 지금껏 가장 높은 고지(高地)를 조성 중에 있습니다. 나도 그 프로젝트에 기여하고 있고요. 바닷물이 들이닥쳐도 우리가 조성한 땅이 안전하다면 그게 키리바시 다른 지역에도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키리바시 라인제도 패닝섬에서 태어난 아노테 통 대통령은 영국 런던정경대학 경제학 석사 출신으로, 1970년대부터 재무부 교육부 차관보를 지내는 등 키리바시의 고위 관료로 일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국회의원을 지내다 2003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07년 재선에 성공했다.
글 | 정장렬 주간조선 부장대우
◆ 최후의 파라다이스..슬픈 '물의 나라' 키리바시
지구상 마지막 파라다이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Once in a lifetime…. 다소 진부한 수식이지만 남태평양은 더 이상의 표현을 찾기 어려운 ‘궁극의 여행지’ 다. 전 세계의 부호와 유명 인사, 신혼여행객에게 가장 사랑 받는 지역이다.
▲키리바시 타비튜에 섬 해초 농장. copyright@geosteinmetz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말론브란도’ 섬에 체류하며 자서전을 집필했고, 레드불 회장은 하루 2,000만원을 호가하는 피지의 ‘라우쌀라’ 섬을 통째로 사서 거의 매달 전용기를 타고 날아든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니콜 키드먼, 휴 그랜트, 한국의 삼성 이재용 부회장, JYP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스타와 부호들이 허니문이나 휴가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최근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2040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신혼여행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4명이 남태평양(41.2%) 지역을 꼽았다. 10년 넘게 아성을 지켜오던 몰디브와 동남아시아를 밀어내고 남태평양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도 음과 양이 있다. 타히티, 뉴칼레도니아, 피지, 사모아 등 ‘럭셔리 허니문’ 지역으로 꾸준히 사랑 받으며 세계적 호텔 체인이 입성을 다투는 섬들이 있는가 하면, 반세기 안에 섬 전체가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 나라도 있다.
▲키리바시 아이들.
▲키리바시 타라와 섬의 야자수 그네. copyright@geosteinmetz
▲키리바시 수도인 타라와 섬
유엔의 기후변화협의회(IPCC) 보고서에 따르면 해수면 상승으로 남태평양의 일부 섬 나라는 50년 내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기다. 특히 키리바시(Kiribati의 ‘ti’를 현지에서는 ’s'로 발음하기 때문에 ‘키리바스’가 더 정확하지만, 국내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키리바시’로 표기를 통일했다)는 가장 높은 곳이 해발 81m에 불과해 가장 위태로운 곳 중 하나다. 이미 1999년에 2개의 섬이 사라지기도 했다. 2014년부터 1,600km이나 떨어진 피지에 745만평에 이르는 땅을 사서 수도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남태평양 국가의 대다수가 산호섬이라는 특성상 식수를 빗물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키리바시는 가뭄과 식수부족이 국가 수몰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인근 팔라우, 마셜제도, 미크로네시아연방공화국 등은 식수부족으로 이미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언론에서 곧 ‘사라질 나라', '기후 난민'과 같은 절망적인 이미지로만 키리바시를 주목하는 현실은 이들을 더욱 힘겹게 한다. 키리바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면 기후변화나 수몰 위기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되려 그들만이 가진 특별한 자연환경과 고유한 문화를 자랑하며, 꼭 ‘키리바시에 놀러 오라’고 밝은 웃음을 보인다. (정말 50년 안에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곳에서는 얼마나 큰 물고기가 잡히는지, 산호초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인근 섬 나라들과 경쟁하듯 자랑한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라는 자랑을 늘어놓을 때는 얼굴에 희망과 미소가 가득하다.
▲키리바시에 잡힌 참다랑어.
▲키리바시에서 잡힌 황다랑어
▲키리바시 타비튜에 섬의 석양. copyright@geosteinmetz
▲키리바시 아바이앙 섬의 아이들.
키리바시는 3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는데 21개가 무인도이고 인구는 고작 12만명이다. 하지만 섬들이 남북으로 1,600km, 동서로 3,200km 이상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다. 육지 면적만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지만, 2시간이나 시차가 발생하는 기이한 나라이기도 하다. 가장 동쪽의 키리티마티는 그리니치 천문대보다 14시간 앞서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이기도 하다.
인구의 90%가 길버트섬에 살며, 그 중 대부분이 수도인 타라와(Tarawa)에 거주한다. 타라와는 키리바시의 수도지만, 역시 독립된 섬이다. 길버트섬은 1788년 키리바시를 발견한 영국 탐험가 토마스 길버트(Thomas Gilbert)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국가 이름인 키리바시 역시 길버츠(Gilberts)를 현지어로 발음한 것이다.
키리바시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혹은 키리티마티)’ 섬은 642㎢로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섬이다. 하지만 2015년 인구는 고작 6,447명 밖에 되지 않는다. ‘물의 나라’ 라는 슬픈 별명처럼 곧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지만, 훌륭한 해양자원과 거대한 물고기가 잡히는 바다 낚시로도 유명하다. 섬 전체가 참치, 돛새치, 청새치, 꼬치삼치, 창꼬치 등 80㎏이 넘는 육중한 바닷물고기가 잡히는 낚시 명당이다. 희귀조류와 200종이 넘은 산호초, 언제 가라 앉을지 모르는 ‘한정판 여행지'라는 수식어 때문에 크리스마스 섬으로 가는 비행기는 늘 만석이다.
수도 타라와는 하와이와 호주 딱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피지, 하와이, 호주를 경유하는 방법이 있다. 키리바시에는 타라와, 크리스마스, 캔톤(Kanton) 섬에 공항이 있고, 피지에어웨이즈와 나우루항공이 운항한다. 피지에서 타라와까지는 3시간이 소요되는데 매주 월ㆍ목요일 2편이 운항한다. 콴타스, 케세이패시픽과 공동운항하기 때문에 호주, 뉴질랜드, 미국, 홍콩을 경유하는 방법도 있다(www.fijiairways.com 참고). 호주 브리즈번에서 출발할 때는 나우루항공(Nauru Airline)이 편리하다. 월요일 오전에 타라와에 도착하고, 수요일 정오에 브리즈번으로 출발하는 일정이라 급하지 않게 여행일정을 짤 수 있다(www.ourairline.com.au 참고).
한국일보 박재아 여행큐레이터 DaisyParkKorea@gmail.comㆍ사진제공 키리바시 관광개발국(www.kiribatitourism.gov.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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