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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문화일보) 2022-06/ 06월 02일(목) 차기 지도자상(像) - 06월 30일(목) 박찬욱 감독과 탕웨이

상림은내고향 2022. 6. 30. 15:59

오후여담 2022-06  문화일보

06월 02일(목)  차기 지도자상(像)

 

 이신우 논설고문

 

 모든 사물과 현상은 변하게 마련이다. 그렇다 해도 너무 공교롭다. 오랫동안 글로벌 사회를 규정해왔던 많은 제도나 현상이 일제히 막을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종언(終焉)의 시대다. 2000년대 초기만 해도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경제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줄 알았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FRB) 이사회 의장은 이를 ‘뉴 이코노미(신경제)’라고 자랑스럽게 명명할 정도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천문학적 재정을 쏟아부었음에도 인플레는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물가가 미친 듯 치솟고 있다. 뉴 이코노미의 조종(弔鐘)이다. 엊그제만 해도 글로벌 자유무역의 규칙을 규정하던 세계무역기구(WTO)는 이제 어느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는다. 세계는 지금 배타적 블록화가 한창이다. WTO가 마침내 종언을 고한 것이다.

 

20세기 말 냉전 시대가 끝나면서 세계 각국은 일제히 군사비를 축소했다. 매스컴은 이를 ‘평화의 배당’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의 군사적 위협 증대 등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각국이 군사비 지출을 늘린다. 독일은 국방예산을 2배로 늘리기로 했다. 스웨덴 싱크탱크 국제평화연구소(SIPRI) 계산에 따르면 세계의 군사비 지출은 2021년에 2조1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는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 핀란드·스웨덴 등 중립국조차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문을 두드린다. 낙관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시대정신이 변하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의 조건도 변하게 마련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경제보다 안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대중이 원하는 지도자상도 점차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 강력한 국방·안보 정책을 이끌면서 보수당 차기 총리 후보 여론조사 1위에 오르고 있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대머리 아저씨”라며 “난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국방장관 임무에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똑똑하고 말 잘하고, 잘생겼다며 대중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세훈·한동훈 등 차기 지도자 후보들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06월 03일(금)  無信不立과 민주당

김세동 논설위원

대선 때 0.73%포인트 간발의 차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선 대패했다. 불과 2개월여 전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내세우고, 책임지고 물러난 당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등 대선 연장전으로 선거 국면을 만든 민주당의 자업자득이다. 민주당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반성과 쇄신의 아름다운 말을 쏟아낼 테지만, 문제는 과거에 했던 많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전력 때문에 민주당의 말을 믿기 어렵다는 점이다. 민심 이반의 원인은 내로남불, 자가당착, 적반하장, 오만과 독선,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 당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팬덤 정치 등 손으로 꼽기에 넘치지만,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신뢰성의 상실에 있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일 직전 자성한다며 ‘약속을 지키는 민주당, 폭력적 팬덤과 결별한 민주당, 미래를 준비하는 민주당’을 약속했다. 그나마 대국민 이미지가 괜찮은 박지현의 호소는 그러나 민주당의 ‘양치기 소년’ 전력 때문에 빛이 바랬다. ‘위기만 넘기면 또 말을 바꿀 것’이라는 국민의 학습효과에 따른 믿음 상실을 극복하지 않고선 백약이 무효다.

 

 민주당은 박원순·오거돈 시장의 성추행으로 발생한 보궐선거에 당헌을 고쳐 후보를 내보냈다. 조국 사태를 반성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조국 수사의 부당성을 또 주장했다. 지난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기겠다고 약속했다가 대선 패배로 야당이 됐으니 계속 갖겠다고 뒤집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통과시킬 때, 공수처장 추천 과정에서의 비토권을 야당에 주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그 조항을 없앴다. 검찰개혁은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일단락됐다고 했다가 대선에 패배하자 온갖 꼼수와 무리수를 동원해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의 말이다. 공자는 정치에 꼭 필요한 세 가지 중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식량, 군대가 아니라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民信)”이라고 대답했다.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06월 07일 시인 소월과 김춘수

 

김종호 논설고문

소월(素月) 김정식(1902∼1934)이 1922년 잡지 ‘개벽’에 발표한 시 ‘진달래꽃’을 담아 1925년에 낸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은 국가등록 문화재다. ‘풀꽃’의 시인 나태주가 “그 이름을 부르면 우선 마음이 울적해진다. 가슴의 저 밑바닥에서 주먹처럼 솟아오르는 그 어떤 감흥이 있다. 지극히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심정이다”라고도 한 소월의 생전에 나온 시집으론 유일하다. ‘먼 후일’ ‘산유화(山有花)’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등 127편이 실렸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하는 ‘초혼(招魂)’도 있다. ‘진달래꽃’은 한국인이 가장 애송하는 시다. 그의 오산학교 은사로, 소월의 재능을 알아보고 시인의 길로 이끈 시인 김억은 그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이렇게 흐느껴 우는 것은 그의 요절이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소월도 언젠가는 잊혀갈 것이 서럽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추도사를 하며 울었다.

 

그해에 태어난 시인 중에서 걸출한 인물이 ‘꽃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춘수(1922∼2004)다. 그는 ‘꽃을 위한 서시’에서 이렇게 읊는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꽃’의 후반부는 이렇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소월의 ‘진달래꽃’ 발표와 김춘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지난 4월 25일부터 시작한 ‘그대, 내게 꽃이 되어’ 주제의 ‘꽃 시’ 전시회가 오는 7월 3일까지 열린다. 한국시인협회에서 선정한 시 14편을 가슴으로 음미하며, 귀한 관련 자료도 접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이 소월에 대해 ‘한국 문학사의 기적이자 축복’이라며 ‘평생을 읽어도 다는 모르겠는 시’라고 한 이유도 새삼 되새기게 한다.
 

 

06월 08일  ‘수박’ 예찬과 모욕

 박민 논설위원

“세상 모든 사치품의 으뜸이며, 한번 맛을 보면 천사들이 무엇을 먹고사는지 알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의 수박 예찬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수박은 가격이 저렴해 치킨과 함께 빈민층의 애환이 담긴 음식으로 꼽힌다. 수박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물가 상승으로 5∼6㎏짜리 수박 가격이 3만 원을 넘어섰다. 수박은 가운데로 갈수록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 부분을 누가 먹느냐에 따라 그 집단의 역학 관계를 알 수 있다. 집안에서는 웃어른, 수험생, 어린아이가 차지하고 직장에서는 상사의 몫이 된다.

요즘은 가구당 가족 수가 급감하면서 배송 업체들은 수박을 2∼4등분으로 나눠 판매하기도 한다. 90년대까지 노점이나 장에서는 삼각뿔 형태로 수박을 따서 제대로 익었는지를 확인하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별문제가 없었지만, 가끔 삼각뿔이 애매한 붉은색을 띠면 ‘덜 익어서 못 사겠다’는 손님과 ‘익을 만큼 익었는데 따보고 안 사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는 상인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농산물에 대해 생산 및 품질관리체계가 도입됐고 환불도 잘 이뤄져 따보고 사는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겉과 속이 보색인 특징 때문에 수박은 사과와 함께 80년대까지 반공 수구세력에 의해 ‘레드 콤플렉스’ 자극용으로 이용됐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은 겉은 붉지만 속은 자본주의에 물든 사과와 같고,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은 겉은 푸르지만 속은 사회주의 이념이 침투해 붉게 물든 수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진보를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수박은 가장 미움받는 존재가 됐다. 6·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은 “수박 전원 퇴출(out)” 주장으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이들이 말하는 수박은 ‘민주당 안에 있는 보수 인사’란 뜻이다. 민주당 상징색이 파란색이고, 국민의힘 상징색이 붉은색이어서 나온 주장이다.

수박의 꽃말은 크기에 걸맞게 ‘큰마음’이다. 수박의 가장 큰 효능은 체내 노폐물 제거다. 팬덤에 빠져 3차례 주요 선거에서 연패한 민주당에 꼭 필요한 덕목과 기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수박 out’ 대신 ‘welcome 수박’을 외칠 수 있어야 미래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기류를 볼 때 올여름까지 수박이 민주당에서 환영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06월 09일  승용차 개별소비세 폐지론

 

 문희수 논설위원

얼마 전 윤석열 정부가 고물가 대책의 하나로 승용차 개별소비세 30% 감면(100만 원 한도)을 올해 말까지 6개월 연장했다. 가계 생활비를 절감해 주려는 취지다. 개별소비세는 옛 특별소비세다. 45년 전인 1977년 사치품 소비를 막으려고 도입했다. 보석 등 귀금속, 명품 가방·의류 등과 함께 자동차를 구매할 때도 부가가치세(10%)와 별도로 개소세(5%)를 부과한다. 교육세(개소세의 30%)도 낸다.

이 개소세는 낡은 세금으로 진작부터 폐지론이 제기돼왔다. 특히 자동차 개소세가 문제다. 이중과세인 데다, 세금 감면이 반복되면서 형평성 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승용차는 이제 일반 가정의 필수품이 됐다며 기획재정부에 개소세 면제를 건의했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승용차 개소세를 배기량에 관계 없이 5% 단일세율로 변경했는데, 최소한 배기량 2000㏄ 이하 중소형 차만이라도 세금을 없애 차등 과세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승용차·승합차 등 전체 차량 등록 대수는 2507만 대다. 전체 가구 수가 2148만 가구이니, 한 집당 1대가 넘는다. 특히 승용차 등록대수는 2055만 대로, 국민 2.5명당 1대꼴이다. 1가구당 2대는 흔하고, 3대 이상인 집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자동차 개소세 경감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소비 확대용 단골 메뉴가 됐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문 정부는 2018년 7월부터 2019년 말까지 승용차 개소세를 3.5%로 30% 내렸고,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상반기엔 1.5%로 더 낮췄다. 2020년 하반기부터는 30% 감면으로 되돌렸지만, 이후 6개월마다 계속 연장해 4년째 감면 중이다. 이러다 보니 세금을 정상적으로 100% 낸 소비자는 불공정 문제를 제기하고, 신차 구매 때 감면 혜택 여부를 저울질하는 눈치 보기와 혼선이 빚어지는 정도다.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 지금 승용차는 대형 고급차가 아닌 한, 필수품 내지 일부 생업 수단이 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유럽·일본 등 자동차 보급률이 높은 선진국들은 개소세가 없다. 윤 정부는 대대적인 세제 개편을 준비 중이다. 소비를 살린다며 재정을 헐어 쿠폰을 뿌리자는 발상을 거듭할 바에는 시대착오적인 개소세를 폐지하는 게 훨씬 낫다.

 

06월 10일(금) 국민·인민·시민의 집

 이도운 논설위원

용산 대통령 집무실의 새로운 명칭이 곧 발표된다. 대통령실새이름위원회는 지난 3일 다섯 개의 후보를 발표했다. 국민의집, 국민청사, 민음청사, 바른누리, 이태원로22. 국민의집이 가장 유력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People’s House’를 언급했기 때문. ‘임시’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는 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국민의집은 좋은 이름이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을 위한 집을 만든다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다만 영문명을 People’s House로 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People은 국민보다는 인민에 가까운 개념이다.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사회주의 지향적 뉘앙스가 있다는 것. 역사적으로 People’s House는 러시아제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20세기 초에 노동자들이 모여 휴식하며 유흥을 즐기는 장소였는데, 황제와 귀족들이 서민을 다스리는 혹은 통제하는 수단의 개념이 내포돼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백악관의 별칭이 People’s House라는 것. 오랫동안 잊어졌지만,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 온·오프라인 백악관 투어를 확대하면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도 그걸 알기에 국민의집을 제시했고,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들도 백악관을 연상하면서 무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학술적으로 따지면, 국민이라는 개념은 people보다는 nation에 더 가깝다. 그러나 nation조차도 파시즘, 국가사회주의 등으로 오염됐기 때문에 최선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정치학자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개념이 시민(citizen). 상대적으로 의식이 있는, 중산층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래서 국민의집을 그대로 쓰되 영어 표현은 Citizen House로 쓰자고 제안한다. 아예 House까지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백악관은 규모가 작은 3층 집이니 House지만, 용산 집무실은 10층짜리 빌딩이다. 따라서 House보다는 Hall이라는 개념이 더 적합하다는 것.

그렇게 되면, 국민의집이라고 쓰고 Citizen Hall이라고 읽게 된다. 그것을 역번역하면 시민의전당이 될 수도 있다. 서울시민청이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복잡하다. 그러나 대통령실 이름을 붙이는 작업은 더 복잡하고 치열해야 한다.
 

 

06월 13일(월)  ‘경영의 신’ 잭 웰치 부관참시

 

 이미숙 논설위원

제너럴일렉트릭(GE) CEO 잭 웰치(1935∼2020)는 GE를 혁신하고 미국 기업을 변화시킨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GE 평사원으로 입사해 45세가 되던 1981년 CEO가 된 그는 20년간 GE를 이끌며 1000여 개 기업을 흡수합병·매각하며 자산가치를 키웠다. 그의 공격적 경영 덕분에 GE는 시가총액이 120억 달러에서 4100억 달러로 팽창하며 미국 대표기업이 됐고, 웰치는 CEO의 모델로 부상하며 경영계의 명사가 됐다. 2001년 GE에서 은퇴할 때에는 “GE와 미국 기업의 기풍을 변화시킨 화이트칼라 혁명가”라는 상찬까지 받았다. 누구도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쇄신 열풍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혁명가’로 불린 것이다.

 

최근 웰치의 유산을 정반대로 평가하는 서적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미 공영라디오 NPR에 따르면 데이비드 겔스 뉴욕타임스 기자는 저서 ‘자본주의를 망가뜨린 남자(The Man Who Broke Capitalism)’에서 “무한 경쟁을 부추기며 단기적 이익을 추구한 웰치의 경영 방식은 노동자에게 해악을 끼쳤고, GE와 미국 기업, 미국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비용 삭감을 위해 GE가 시작한 오프 쇼어링은 수많은 미국 기업의 해외 이전 열풍을 불렀고, 아웃 소싱으로 대규모 정리 해고가 이뤄지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미 기업들이 웰치식 경영을 모방, 경비 삭감과 단기 이익에 집착하면서 미국 자본주의가 피폐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웰치에 대한 재평가는 미·중 신냉전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탈(脫)세계화’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미국에서 과도한 세계화 반성론이 나오는 기류와 무관치 않다. 1980∼1990년대 미국 기업의 세계적 확장이 이뤄지던 때 웰치는 세계화를 선도한 CEO로 추앙됐지만, 세계화 종말기를 맞아 미국 자본주의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짚어보는 성찰의 시간이 시작되면서 웰치식 경영에 대한 비판이 나온 것이다. 아무리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하지만, 요즘의 논리로 웰치의 유산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한 것은 과하다. 험한 꼴 보기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06월 14일  도어 스테핑과 노변정담

 

 이현종 논설위원

청와대 시절 대통령들은 기자들과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직업상 기자는 대통령에게 불편한 질문도 해야 하니 심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보수석실 등에서는 대통령이 볼 신문 스크랩을 할 때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 등을 빼고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심기 경호’다. 그래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회견 등 이래저래 150차례 기자들과 만났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1년에 한 번 신년기자회견 빼고는 기자들을 만나지 않았다. 기자들이 있는 춘추관이 대통령 비서실과는 담으로 차단돼 있기 때문에 허락 없이 들어갈 수도 없고, 공식회의에 풀 취재를 가는 기자도 질문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소통하는 대통령을 표방하며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는 것에 더해 대통령실 1층에 기자실을 배치해 대통령이 기자들을 피하고는 출근할 수 없도록 했다.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출근길에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를 만들어버리면 어떤 대통령이든 ‘도어 스테핑(약식회견)’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의 백악관이나 일본의 총리 관저가 이런 구조다. 지난달 11일 첫 출근 이후 14일 현재 한 달이 넘었지만, 윤 대통령은 이 관행을 깨지 않고 있다. 며칠 하다가 말겠지라는 관측은 일단 빗나갔다. 13일 출근길에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진하는 ‘시행령 수정 국회법 개정’에 대해 “위헌 소지가 많다”고 밝혔다.

 

“검찰 인사 필요하면 계속할 것”이라는 등 논란의 발언도 있었지만 매일 매일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장기적으로 긍정적 요소가 더 많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앞으로 두고 보라. 반드시 윤 대통령이 큰 실수를 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이젠 피할 수 없는 관행이 됐다. 최근에는 참모들이 아침 일찍 기자들에게 무슨 현안이 있는지를 물어봐 예상 질문을 만들어 출근 전에 윤 대통령에게 전달한다고 알려졌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대공황 시기 30여 차례 라디오를 통해 ‘노변정담’이라는 연설을 했고, 감성적인 이 연설은 국민 통합에 크게 기여했다. 윤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도 딱딱하고 사무적인 입장 전달을 넘어 국민의 마음을 달래는 소통의 장이 되면 어떨까.

 

06월 15일  교육 선택권

 

이신우 논설고문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자신의 저서 ‘선택의 자유’ 중 제6장 ‘학교교육’ 편을 이렇게 시작한다. ‘교육은 항상 미국의 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미국 사회 역시 교육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중요한 디딤돌임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프리드먼의 이런 희망적 정의(定義)와 달리 미국에서는 교육 전반의 질 저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교육이 국가 자원의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예로 든 1971∼1972년에서 1976∼1977년도에 이르는 5년간 미국 모든 공립학교의 학생 수는 4% 감소했다. 반면 교직원 총수는 8% 늘어났고, 학생 1인당 비용은 실질 기준 11% 증가했다.

 

불행한 일이나 한국에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초·중·고 교육예산은 81조3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학생 수는 계속 감소해 학생 1인당 예산은 2018년 920만 원에서 2022년 1528만 원으로 4년 새 66.1%나 늘었다. 그렇게 쏟아붓는데도 기초학력 미달 또한 역대 최대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프리드먼은 이러한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처방전으로 ‘수업료 쿠폰제’를 제안한다. 학부모와 학생은 이 쿠폰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고, 공립학교들은 학생 모집과 학교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서로 간에 학력평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게 된다.

물론 한국적 상황에서 쿠폰제는 간단히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의 교육감 선거에서 비교-검증-선택의 개념이 작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보수와 진보 성향 후보가 각각 8명과 9명 당선된 것이다. 과거 3명에 불과하던 보수 교육감이 2배 이상으로 늘면서 앞으로 양쪽 진영 간 교육의 질과 성과를 놓고 본격 경쟁을 벌일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성과의 차이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결국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의 선택 폭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 진보 교육의 독과점 아래 진행됐던 ‘전면 학업성취도평가’ 폐지, 혁신학교 확대, 민주시민이라는 미명 아래 좌파 이념 교육 등은 수월성의 잣대 앞에서 빛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야말로 ‘선택의 자유’와 ‘경쟁의 효용’을 증명할 기회라 할 수 있다.
 

 

06월 16일  검찰총장 ‘패싱’

 

 김세동 논설위원

정치철학이나 성격 등 많은 부분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초기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 공석 상태’에서 임명한 공통점이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9일 뒤인 2017년 5월 19일 윤석열(사법연수원 23기) 당시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검사장도 아닌 ‘일개’ 차장검사를 고참 고검장이 가는, 검찰총장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에 파격적으로 승진 발탁한 것이다. 전임 이영렬 중앙지검장보다 다섯 기수나 아래인 전례 없는 ‘기수 파괴’ 인사였다. 이 지검장은 직전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나중에 대법원에서까지 무죄가 난 ‘돈 봉투 만찬’ 사건에 책임을 지고 전날 사표를 던진 상태였다.

김수남 직전 검찰총장은 같은 달 15일 이미 퇴임했고, 총장 대행을 맡던 김주현 대검 차장검사가 19일 사의를 표명한 상태였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윤 중앙지검장 임명이 검찰청법 위반이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검찰청법 제34조에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돼 있어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공교롭게 윤 대통령도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차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고위급 요직에 대한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핵심 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하루만으로, 조국·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등 전 정권 관련 수사로 좌천됐던 ‘윤석열 사단’의 화려한 복귀였다. 문제는 대검 공공수사부장, 법무부 기조실장, 서울동부·남부·서부지검장, 수원지검장 등을 포함한 고검장·지검장과 중간간부 37명에 대한 인사가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김오수 검찰총장은 검수완박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 취임 나흘 전인 지난달 6일 물러났다.

후보추천위원회의 천거, 대통령의 지명,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데 50여 일이 소요된다고 해서 ‘총장 패싱’ 인사를 습관화하면 법이 구색용으로 전락하고 검찰을 지휘하는 최고 사령관이 허수아비가 되며 정권과 검찰 수뇌부 간 직거래가 이뤄질 위험성이 크다.

 

06월 17일(금)  ‘석양의 화가’ 윤중식

 

 김종호 논설고문

‘화폭을 대하고 앉으면, 눈에 떠오르는 것은 하루해가 어둠에 끊기기 직전 새들의 동작이다. 어둡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야 한다는 새들의 강박관념, 그 작고 따스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는 몸짓에서 황혼녘의 인생이 현신(現身)된다. 창공을 향해 힘껏 나는 새의 모습에서, 황혼이 꺼지기 전 새로운 삶의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희망과 몸부림을 읽어낸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자세로 나는 그림을 그린다.’ 해가 질 무렵의 풍경을 즐겨서 그린 ‘석양(夕陽)의 화가’ 윤중식(1913∼2012) 화백이 남긴 글의 한 대목이다. 그의 글 중엔 이런 내용도 있다. ‘붉은 태양이 서쪽 산으로 기울어질 때면, 석양은 찬란한 빛과 신비의 세계로 물들고, 다양한 변화에 가슴마저 울렁거리게 된다. 너무나 순간적인 빛과 색을 바라보는 찰나, 강한 빛과 색은 사라지고, 안식과 침묵의 고요한 적막(寂寞)으로 변해 버린다.’

 

평양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어린 시절에 보고 느낀 풍경·정서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가을 석양에 붉게 물드는 벌판에 수시로 찾아가서 몇 시간씩 보냈다. 벼 낟가리 위에 누워 풀벌레 소리 들으며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불타는 노을과 함께 해가 진다. 석양 속에서는 모든 게 신비롭다. 그것이 내 감수성과 그리움의 원천이다”라고 했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계기로, 그는 연극배우·연출가·지휘자 등의 꿈을 화가의 길로 바꿔 일본 유학을 갔다.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야수파 스승에게 공부한 그는 1942년 선전에 작품 ‘석양’으로도 입선했다. 귀국 후, 평북 선천의 보성여학교 미술 교사 재직 중에 6·25전쟁을 만나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1·4 후퇴 때 1남 2녀를 데리고 피란하던 도중에 부인도, 여섯 살이던 큰딸도 생이별을 했다. 작은딸은 굶어 죽었다.

그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1963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50년 동안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 500여 점을 유족이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한 배경이다. 그 미술관에서, 그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회향(懷鄕)’ 주제의 추모전이 지난 3월 30일 시작됐다. 오는 7월 3일까지 계속된다. 그의 작품들을 두고 ‘그림으로 표현한 장엄한 서사시(敍事詩)’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자리다.

 

06월 20일(월)  백악관 영부인실

 

 이도운 논설위원

미국 백악관에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영부인실(Office of the First Lady)이 처음 설치된 것은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이다. 그 이전에도 대통령 부인은 각자의 개성이나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역할을 해왔다. 공식적으로 대통령 부인을 위한 직원을 채용한 것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때인 1901년 10월이다. 영부인 에디스는 백악관 행사를 도와주는 비서를 채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국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엘레노어는 개인 담당 비서를 추가하는 등 영부인 역할을 확대했으며,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은 처음으로 공보 비서관을 뒀다.

카터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은 영부인실에도 비서실장을 두고 업무를 4개 영역으로 나눴다. 행사, 공보 및 리서치, 일정, 공식 및 개인 업무 등이었다. 영부인 집무실을 처음 백악관에 마련한 것도 로절린이다. 그때부터 대통령이 일하는 서쪽 영역이 웨스트 윙, 영부인 집무실이 있는 동쪽 영역이 이스트 윙으로 본격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현직인 질 바이든의 영부인실에는 비서실장을 포함해 11명의 직원이 일한다. 공보와 홍보 비서가 따로 있고, 백악관 행사 담당은 물론 요리사와 꽃 장식 담당도 영부인실에 포함돼 있다. 역대 영부인들은 대통령의 정책과 선거를 돕는 한편,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영부인실과 영부인 역할은 미 헌법에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적 필요가 관례로 되면서 공식화됐다.

 

우리나라에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이 처음 설치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2년이다. 미국보다 역사가 길다. 그 전까지는 대통령 부속실에서 배우자 업무도 맡았다. 미혼인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소외 계층을 위한 민원 창구로 제2부속실을 유지했지만,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 비선 논란 와중에 해체됐다가 문재인 청와대에서 다시 설치됐다.

우리 헌법 역시 배우자의 역할을 규정하지 않는다. 경호법상에 경호 대상으로 규정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크건 작건 대통령 부인의 역할이 중단된 적이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 제2부속실을 없앴지만, 부속실에서라도 배우자를 올바로 보좌하는 기능은 존속돼야 한다.

 

06월 21일 씁쓸한 ‘소득 1위’ 세종시

 

 문희수 논설위원

근로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는 세종시다. 국세청의 ‘2020년 기준 광역자치단체별 근로소득 신고 현황’에 따르면 ‘공무원 도시’인 세종은 근로자 1인당 평균 소득이 4520만 원으로 서울(4380만 원)과 울산(4340만 원)을 제치고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공무원은 신분이 안정된 일자리의 대명사인데 연봉도 상당하다는 얘기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크게 위축됐던 이례적인 시기였다고 하지만 그리 달갑게 들리지 않는다.

세종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엔 울산 다음으로 2위였다. 그러다가 이후 4년간 평균 근로소득이 15.31%나 늘어 서울(15.27%), 울산(5.34%)을 웃돌았다. 이렇게 된 데엔 문 정부가 공무원을 대거 늘렸던 삐뚤어진 고용 정책이 큰 몫을 했다. 공무원 연봉도 통계상으론 ‘근로소득’이지만, 본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조세소득’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제조업 도시’인 울산이 2018년 전국 1위에서 이젠 3위로 처진 것과 대비된다. 이는 한국 제조업의 쇠락과 경쟁력 저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자신만 챙기는 소수 강성 노조의 폐해 또한 빠질 수 없다.

 

반면 기업을 유치한 지자체들의 부상은 신선하다. 2016년 7위에서 올해 5위가 된 충남과 전남(7위), 광주(8위), 충북(9위) 등이 그런 사례다. 각각 아산시 탕정 삼성디스플레이, 여수 국가산업단지 확충, ‘광주형 일자리’를 만든 광주글로벌모터스, 쿠팡 등이 들어온 음성 기업복합도시 등의 공이 크다. 아산시는 탕정면 인구만 3만 명이 넘는 등 활력이 넘친다. 기업 유치의 선순환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지방정부가 한국 등 해외기업까지 유치하려고 부지 무상 제공·법인세 감면 등을 제시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유다.

지난 6·1 지방선거로 새 지자체장과 의원들이 대거 탄생했다. 다음 달 1일부터 4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다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한다. 중앙 정부의 지원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자력으로 돌파구를 만들 각오를 해야 한다. 마침 기업들이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무려 1000조 원이 넘는 투자 계획을 밝힌 터다. 더 없이 좋은 기회다. 경제 살리기를 실현할 수 있는 정도(正道)는 가까이 있다.

 

06월 22일  강제 북송의 범죄성

 

박민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이가 좋아 국군에 잡히면 북송되는 줄 알고 군부대를 피해 다녔다”. 헤엄 귀순한 북한 주민 A 씨가 2021년 6월 하나원에서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한 얘기다. 지 의원은 탈북자들의 이 같은 불안이 ‘2019년 11월 목선 귀순 어부 2명의 강제 북송 이후 생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들이 선장 등 동료 16명을 죽인 흉악범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고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어 북한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먼저 북송 사실을 공개한 것은 아니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장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보낸 문자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돼 북송 사실이 알려지면서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귀순의향서에 직접 서명했지만 북으로 추방됐다. 이들의 호송은 경찰특공대가 맡았고 포승줄에 안대까지 쓰게 했다. 이들은 북송 사실을 몰랐는지 북한군이 보이자 털썩 주저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탈북자는 물론 모든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공통 견해다. 귀순 의사를 밝히면 정부는 난민이나 귀화자가 아니라 원래 한국 국민으로 간주한다. 이들에게 새로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적을 확인하는 조치만 취한다. 그런데 문 정부는 이들이 흉악범이므로 국민은 물론 ‘국제법상 난민’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들어 테러나 살인 등 범죄자는 법의 보호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보호·정착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지 국민의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탈북자는 국민으로서 거주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고 우리 법에 따라 수사·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강제 북송은 유엔에서 합의된 국제법이나 국제협약 위반이라는 비판도 있다. 세계 인권선언은 ‘사람은 누구든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고, 불법하게 국적을 박탈당하지 않아야 하며 국적 변경의 권리가 거부돼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흉악범이라도 고문·처형 등의 비인도적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것은 고문방지협약 취지에도 어긋난다.
 

 

06월 23일 워터게이트 50년

 

이미숙 논설위원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은 워터게이트 스캔들 전모를 담은 책으로 탐사보도의 고전으로 꼽힌다. 로버트 레드퍼드와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을 맡아 1976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레드퍼드는 워터게이트 특종을 통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으로 내몬 우드워드, 호프먼은 그의 동료 번스타인으로 열연, 부패한 정치인들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스트의 전형을 보여줬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1972년 6월 중순 워싱턴DC 시내 워터게이트 호텔의 민주당전국위원회(DNC) 본부 침입 사건 취재로 시작된다. 처음엔 단순한 불법 침입 사건 정도로 간주됐으나 이내 권력형 도청 사건으로 비화됐고, 1974년 8월 닉슨의 사임으로 귀결됐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DNC 본부 침입 사건을 취재하며 ‘딥 스로트(Deep Throat)’로 불린 익명의 제보자의 도움을 받아 특종을 했다. 우드워드는 이후 워터게이트 스캔들 상원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딥 스로트에 대해선 침묵했다. 그 후 2005년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 출신 마크 펠트(1913∼2008)가 자신이 딥 스로트였다고 공개했다. 그의 결단을 다룬 영화 ‘백악관을 무너뜨린 사나이’(2017)도 리엄 니슨 주연으로 만들어졌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50주년을 맞아 워싱턴 국립초상화갤러리에서는 특별전 ‘워터게이트:사진들과 궁금증’이 개막돼 관련 사진과 카툰, 회화 등이 전시 중이다. 팔순을 앞둔 우드워드는 NPR 인터뷰에서 “청문회에 출석했을 때 민주당 의원들은 정보 출처에 대해 의아해했고 신문사 편집국장과 발행인도 딥 스로트가 누군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닉슨 사임 한 달 후 사면을 단행해 당시엔 정치적 부패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생각하니 정치적 자살에 가까운 결단이었고, 그의 용기 덕분에 미국은 전진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언론이 백악관의 권력 부패를 파헤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한 사건인데, 포드는 재선 포기를 결심하고 닉슨을 사면하는 ‘정치적 순교 행위’를 통해 미국을 앞으로 나가게 했다. 워터게이트 50년을 맞아 미국은 우드워드의 집념과 포드의 용기를 기리는 분위기다. 

 

06월 24일(금)  대법관 선관위원장’ 위헌성

 김세동 논설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노태악 대법관이 지난달 17일 취임했다. 역시 대법관인 전임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2020년 11월 취임해 총선·재보선 때 슬로건 허용 등 더불어민주당 편향 선관위 운영 비판을 받다 올해 대선 사전투표 때 ‘소쿠리 투표함’으로 대표되는 관리 부실 문제로 물러났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으로 창설된 1963년부터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아 왔다. 아무런 관련 규정이 없지만 59년 동안 관례로 이어져 왔는데, 헌법기관이 다른 헌법기관의 장(長)을 맡는 건 권력분립 위반으로 위헌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헌법 제114조 제2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고 돼 있다. 처음부터 대법원장은 자신이 지명하는 3명의 고위법관 중에 1명은 반드시 대법관을 포함했고 그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선관위원장을 맡았다. 9명의 선관위원이 호선(互選)하는데, 대법관만이 선관위원장을 맡게 된 법률적 근거는 없다. 다만,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에 따라 발생한 4·19 혁명으로 1960년 구성된 제2공화국 헌법에 ‘중앙선거위원회는 대법관 중에서 호선한 3인과 정당에서 추천한 6인의 위원으로 조직하고 위원장은 대법관인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고 규정한 게 연원이 됐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최고법관이, 행정기관의 성격이 있는 부서의 장을 겸직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더구나 17개 시·도의 선관위원장도 지방법원장이 맡고 있고, 시·군·구 선관위원장도 관할 지방법원의 부장판사가 맡고 있다. 선관위가 불법·부정선거를 적발해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이를 법원에 기소하면, 고발자가 재판까지 겸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 근대 법치주의 이전 봉건 왕정 시대의 ‘원님 재판’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있다.

대법원장 지명 대법관이 대통령이나 국회 몫 선관위원보다 더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할 것이란 믿음이 그런 관행을 뒷받침했겠지만, 문재인 정부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통령 입맛에 맞는 대법원장이 ‘코드 대법관’을 보내면 중립적 선거 관리는 물 건너간다.

 

06월 27일(월)  중국의 ‘레그 킥’ 전략

 

 이신우 논설고문

종합격투기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는 한때 UFC를 화려하게 장식한 슈퍼스타였다. 포브스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수입이 4800만 달러(약 530억 원)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최된 257 대회 라이트급 메인 이벤트에서 미국의 더스틴 포리에이에게 처참하게 무릎을 꿇었다. 2008년 데뷔 이래 26전의 기록 중 첫 KO패였다. 패배의 결정적 요인은 포리에이의 집요한 ‘레그 킥’이었다. 2라운드 중반까지 무려 18차례나 다리에 공격을 당해 벌겋게 충혈됐다. 충격이 누적되면서 오른발을 제대로 딛지 못했고, 움직이질 못하니 그다음엔 상체 공격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이 미국을 향해 레그 킥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타격 지점은 남태평양의 솔로몬 제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군으로부터 탈환에 성공, 태평양전쟁의 향방을 바꾼 것이 바로 이 솔로몬 제도다. 서쪽으로는 괌·필리핀·대만, 동쪽으로는 하와이·멕시코 그리고 미국 본토를 직접 겨냥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미국에는 남태평양이 허벅지와 종아리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중국이 얼마 전 솔로몬 제도와 안보협정 체결을 공식 발표했으니 미국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 외교 당국은 솔로몬 제도 외에도 근방의 남태평양 도서국을 순방하면서 중국세를 한껏 과시했다.

물론, 중국의 레그 킥 전략이 위협적이기는 하나 늘 성공하리라는 보증은 없다. 중국의 야심작 일대일로(一帶一路)도 처음에는 성공적 외교 전략이라는 말이 많았으나 벌써 이곳저곳 피로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패 가능성도 많이 거론된다. 대표적 예가 스리랑카다. 한때는 중국이 인도양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는 통로로 평가받았지만 그 대가로 스리랑카는 국가부도 사태를 겪는 등 대중(對中) 반감도 점차 커지는 중이다. UFC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다. UFC 261 미들급 경기 도중 크리스 와이드먼이 상대인 유라이어 홀의 다리에 강력한 레그 킥을 가했다가 되레 자신의 오른쪽 다리뼈가 뚝 하며 부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써 시합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동전은 항상 양쪽 면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레그 킥 전략도 예외가 아니다.
 

 

6월 28일 朴의 7시간, 文의 6시간

 이현종 논설위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관련 지시를 내렸다는 오전 10시 15분부터 중앙재난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 15분까지 7시간의 불분명한 행적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세월호 7시간’ 프레임은 탄핵 정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이고, 당시 야당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게 나라냐’는 구호로 공격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관저에 머물면서 서면보고를 주로 받았고, 유선으로 지시를 내렸다. 집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김장수 안보실장이 대면보고를 하지 않았고, ‘문고리 비서관’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중요한 사건이 터졌는데도 청와대 핵심 참모진이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는 한심한 모습이 이후 수사와 재판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은 중대본에 와서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고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한 질문도 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국회에 나와 “대통령 위치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변해 빈축을 샀다.

 

문 전 대통령이 세월호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썼을 정도로 ‘세월호 7시간’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을 자초한 일이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겠다며 집권한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북한 영해에서 북한군에 발견되고 3시간 뒤에야 서면보고를 받았다. 이후 숨진 3시간 뒤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씨의 유족은 ‘문재인의 6시간’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이번 사건의 대응은 세월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후 6시 30분이면 문 전 대통령이 집무실이나 관저에 있을 때인데 공무원이 북한으로 넘어간 사건을 대면이 아닌 서면보고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 북한군에 사살돼 소각까지 됐는데 문 전 대통령은 24일 NSC에도 참석하지 않고 아카펠라 공연을 보고 있었다. 김정은이 ‘미안하다’는 통지문을 보내오고 나서야 회의에 나와 이례적 사과라고 옹호했다. 문 대통령이 퇴임했음에도 ‘그것도 나라였느냐’는 개탄이 이어진다.

  

06월 29일  최저임금 미만율 높은 이유

 

 문희수 논설위원

최저임금 심의가 올해 역시 난항이다. 경영계는 동결에서 1%대 인상으로 수정안을 냈지만 노동계는 시간당 1만 원 이상을 계속 요구한다. 최저임금 1만 원은 문재인 전 정부도 못했다. 양측의 간극이 너무 커 법정 시한(29일)에 타결될지 미지수다.

잘 알려진 대로 최저임금은 문 전 정부 임기 동안 급등했다. 시간당 최저임금은 문 정부에서 처음으로 결정했던 2018년에 16.4%나 껑충 뛴 이후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계속 올랐다. 2018∼2022년 5년간 상승률이 41.6%나 된다.

주목할 점은 전체 임금 근로자 가운데 법적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율인 최저임금 미만율도 급등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율은 2010∼2015년엔 11%대를 유지하다가 최저임금이 8.1% 올랐던 2016년 13.5%로 증가했고, 특히 2018년엔 15.5%로 급등했다. 이후 2021년(15.3%)까지 줄지 않고 있다. 경영난이 심각한 음식·숙박업의 경우 이 비율이 40%를 넘는다.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근로자 수는 2001년 57만여 명이었던 것이 2018년(311만여 명) 이후로는 2021년(321만여 명)까지 300만 명을 계속 웃돌고 있다. 최저임금이 고용주인 기업의 지불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다.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들이 동결을 호소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지난 27일에도 19개 업종별 중기 대표들은 현 수준으로도 건설기계정비업은 20%가 폐업 위기며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오르면 절반 이상은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중기중앙회의 설문조사 결과 내년 최저임금이 오르면 중기의 46.6%가 고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할 정도로 절박하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도 급증했고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 상황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최저임금의 역설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부 근로자는 혜택을 보지만 취업 준비자와 저숙련 근로자는 피해를 본다. 고물가로 임금 인상 요인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고물가 외에 성장·투자·고용도 심각하고, 무역·재정 적자도 위태롭다. 모두가 고통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없어지게 되면 임금을 올려봐야 허사다. 황금알을 미리 꺼내려고 거위의 배를 가르는 건 말이 안 된다.

 

06월 30일(목)  박찬욱 감독과 탕웨이

 

 김종호 논설고문

“영화 ‘헤어질 결심’의 첫 상영회가 끝나고, 박찬욱 감독께 ‘내 인생의 일부분을 완성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박 감독과 함께 일하는 내 마음을 잘 설명한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박찬욱(59) 감독이 지난 5월 28일 제75회 프랑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한국 최초의 감독상 수상자로 발표되기 4일 전에, 그 영화의 여주인공을 연기한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탕웨이(43)가 한 말이다. 신비스럽고, 욕망에 충실한 배역을 연기한 그는 “여러 면에서 굉장한 박 감독을 너무 사랑한다”며 “다른 별에서 온 생명체가 아닌가 생각했다”고도 했다.

 

탕웨이의 걸출한 연기력은 김태용 감독이 그와 결혼하기 전에 그를 위해 2011년 리메이크한 영화 ‘만추(晩秋)’에서도 감동적이었다. 냉정과 열정을 절묘하게 섞어서 드러내는 그의 연기를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달리는 버스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도, 만나기로 한 장소에 상대방이 끝내 나타나지 못한 이유를 얼핏 알아채고 경악과 절망이 교차하는 표정과 몸짓을 보이는 장면도 그중의 하나다. 한국 영화의 전설로 남은 고(故) 이만희 감독이 두 주인공의 불꽃 같은 사랑을 그린 문정숙·신성일 주연의 1966년 ‘만추’ 필름은 멸실되고, 스틸 사진 일부만 남아 있다. 그중의 한 장은 낙엽 흩날리는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쓸쓸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교감하는 장면이다. 박 감독도 ‘헤어질 결심’을 구상하면서부터 탕웨이 연기를 의식했다. 그런 캐릭터의 탕웨이 연기 극대화에 초점을 두고, 각색·연출했다고 한다. 수상 직후 “내가 원했던 상은 남녀 연기상이었는데, 엉뚱하게 내가 받았다. 배우들이 상을 받으면, ‘저 감독하고 일하면 좋은 상을 받게 해주는구나’ 하는 인식이 생긴다. 다음 작품 캐스팅할 때 도움이 돼서 좋은데, 좀 아쉽다”고 한 이유도 달리 없을 것이다.

‘헤어질 결심’이 29일 국내 개봉됐다. 박 감독은 “나는 대중을 위한 상업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 재미있어서 칸영화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영화는, 탕웨이가 박 감독 영화를 두고 “예전엔 진한 김치 맛이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자란 중국 지역의 청량하고 담백한 분위기”라고 한 말에도 공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