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문화일보) 2022-05/ 05월 02일(월) 대통령 비서실장의 영욕 - 05월 31일(화) 김포공항의 진가
오후여담 2022-05/ 문화일보
05월 02일(월) 대통령 비서실장의 영욕

이도운 논설위원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오랜 측근 이기붕이었다. 당시 대통령 집무실이 경무대로 불렸기 때문에 경무대 비서실장으로 통했다.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경무대는 청와대로 바뀌었고, 윤보선 대통령의 비서였던 김준하가 첫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다. 곧 정부 체제를 정비하면서 청와대 비서실도 대통령 비서실로 명칭을 공식화했고, 관료 출신 이재항이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29명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명됐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 대통령 비서실이 대통령실로 개편됐다가 박근혜 대통령 시절 대통령 비서실로 환원됐다. 이름을 바꿔가며 총 47명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보좌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유 업무가 없었던 비서실을 체계화하면서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18년 재임 중 3명의 비서실장을 임명했는데, 이후락·김계원 2명이 군 후배였다. 재무 관료 출신 김정렴은 1969년부터 1978년까지 재임한 역대 최장수 실장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주로 학자·관료를 뽑았는데, 7번째인 마지막 실장은 노태우 정부와의 권력 이양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정치인 김윤환을 발탁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3명의 비서실장을 임명했는데, 두 번째인 노재봉을 국무총리로 승진시켜 차기 구도 등을 둘러싼 정치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 비서실장을 선호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초대와 3대 비서실장에 경북 출신 김중권·이상주를 발탁해 지역 균형을 맞추려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엔 5명의 비서실장이 임명됐는데, 탄핵 등의 여파로 2명이 구속됐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무총리,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권력의 ‘빅 3’로 불린다. 비서실장은 장관급이지만,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해 실질적 권력은 훨씬 큰 것으로 간주된다. 한편으로는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첫 비서실장으로 경제 관료 출신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발탁했다. 전두환 시절 강경식·김영삼 시절 한승수·김대중 시절 전윤철 비서실장도 경제 관료 출신이었다. 윤 당선인은 비서실에 그야말로 비서 역할만 맡기겠다고 한다. 김대기 비서실장(내정)은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05월 03일 ‘보복 여행’과 한일 관광

문희수 논설위원
확실히 코로나에 둔감해진 분위기다. 거리 두기가 거의 풀린 영향이다.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원회 반대에도 실외 마스크 착용을 사실상 해제한 것이 결정적이다. 여전히 경고가 나오지만 외부 활동이 활발해졌다. 일상 회복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준다.
단적인 현상이 해외여행 수요 폭발이다. 올 여름휴가는 물론 내년 예정인 해외여행 상품도 대부분 완판될 정도다. ‘보복 여행’이란 말 그대로다. 그동안 미뤄 왔던 신혼여행과 효도여행, 개인의 자유여행 모두 관심이 높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해외입국자 자가격리 의무가 면제된 직후인 3월 22일부터 한 달 동안 해외 항공권 매출은 1086%, 해외 현지 투어 매출은 1620% 급증했다는 보도다. 특히, 장거리 여행이 인기다. G마켓과 옥션이 집계한 해외 항공권 판매 순위를 보면 상위 10곳 중 6곳이 비행시간이 6시간을 넘는 장거리 여행지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엔 오사카·다낭·후쿠오카 등 가까운 곳이 인기였던 것과 대조된다.
한·일 관광이 재개될 것이란 관측도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에 일본 총리 특사 등이 참석해 꽉 막힌 한·일 관계가 정상화할 것이란 전망이 배경이다. 한·일 관광 활성화로 돌파구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두 나라를 오갔던 관광객은 2018년 1050만 명까지 늘었다가 양국 관계 경색과 코로나 여파로 2020년 92만 명으로 급감했고, 지난해엔 고작 3만4000명에 그쳤다. 올해도 한 달에 3000명 이하다. 최근 윤 당선인의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이 방일했던 것을 계기로 예전처럼 두 나라 국민의 무비자 관광 허용과 김포∼하네다 노선 운항 재개 등의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한국을 러시아 등 6개국과 함께 입국 때 3일 격리하는 국가로 지정하고 있다. 문 정부 동안 악화한 양국 관계의 단면을 드러낸다. 미국 유럽 등 장거리 해외여행도 좋지만, 시간이 훨씬 덜 드는 이웃 나라 여행이 그보다 못할 리 없다. 일본도 황금연휴(4월 29일∼5월 8일)를 맞아 국제선 예약이 370%나 증가했다고 한다. 더구나 중국은 코로나 확산에 상하이 등이 봉쇄돼 갈 수가 없다. 한·일 관광 재개가 빠르면 빠를수록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양국 관계까지 개선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05월 04일 어린이날과 청와대

박민 논설위원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주도한 천도교소년회가 1922년 처음 선포한 어린이날은 5월 1일이었다. 이듬해 5월 1일 색동회가 중심이 돼 첫 행사를 천도교당에서 열었다. 당시 어린이 운동가들은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며 ‘어린이날의 약속’이란 전단 12만 장을 배포했다. 약속에는 ‘이발이나 목욕을 때맞춰 해달라’ ‘잠과 운동을 충분하게 해달라’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된 어린이날 행사가 부활한 것은 1946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인 5일이었고 이후 요일에 관계없이 5월 5일이 어린이날로 정해졌다. 1954년부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참석함에 따라 어린이날은 국가적 행사가 됐다. 그러나 1955년 5000여 명의 어린이가 대통령 앞에서 공연하기 위해 땡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며칠씩 수업을 빠져가며 초대형 매스게임을 준비해 비판 받았다. 이듬해에도 어린이 5000여 명이 합동 무용에 동원되자 새싹회 대표 윤석중은 “어린이날엔 어린이 재롱을 어른들이 구경할 게 아니라,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맞는 잔치를 베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어린이날은 1973년 3월 법정 기념일로, 1975년 1월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지만, 매스게임은 1980년대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처음 열린 건 1981년이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직접 뽑은 어린이들을 초청했다. 이후 정부의 어린이날 행사는 청와대에서 개최됐고 모의 국무회의, 대통령과의 오락 등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랜선 초청 행사로 열렸다. 가상공간에 초청된 어린이들은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따라 청와대 본관에 들어가 대통령 집무실 등을 구경하거나 게임을 즐겼다.
내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제100회 어린이날 행사에는 강원 도성초등학교, 경북 풍각초등학교 등 7개 학교 학생 100명이 참석한다. 전교생이 38명인 도성초등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랜선 초청 행사에 참석했다가 올해 대면 행사 초청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40여 년간 이어져 온 청와대 어린이날 행사는 올해로 막을 내리게 됐다.
05월 06일(금) 슈뢰더의 추락

이미숙 논설위원
게르하르트 슈뢰더(78)는 1990년대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을 ‘어젠다2010’ 개혁으로 구한 지도자로 추앙받는다. 1998년 현직 총리인 기민당의 헬무트 콜을 꺾고 사회민주당 시대를 연 뒤 2005년까지 총리로 재직하며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복지 혜택 축소, 재정 혁신 등의 야심 찬 개혁 정책을 주도했다.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자층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정책을 펼 경우, 총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국가를 위한 결단’이라며 관철시켰다. 2005년 총선 후 앙겔라 메르켈에게 총리직을 넘긴 슈뢰더는 2015년 제주포럼에 참석해서도 “지도자라면 정파적 이익보다 국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며 ‘국익(國益)은 당익(黨益)에 앞선다’는 주장을 폈다.
그런 슈뢰더가 우크라이나 전쟁 후 비판을 받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전직 지도자들이 러시아 회사의 이사회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슈뢰더는 여전히 러시아 기업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슈뢰더는 러시아 정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이사회 의장으로 60만 달러, 러시아·독일 연결 가스관 프로젝트인 노르트스트림 주주 위원장으로서 27만 달러 등 매년 87만 달러(약 11억 원)를 번다. 여기에 독일 정부로부터 매달 연금도 8000유로(약 1064만 원)씩 받는다. 급기야 지난 2일 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는 “러시아를 위해 일하며 거부가 된 슈뢰더는 독일을 러시아 에너지에 중독시켜 위험에 빠뜨렸다”면서 “그가 번 돈을 몽땅 압수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독자편지가 실렸다.
슈뢰더는 사민당이 1970년대 빌리 브란트 시대부터 주창해온 ‘교역을 통한 변화’ 정책을 견지하며 일관된 대러 관여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푸틴이 ‘탈나치화’ 망상에 젖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유치원과 병원을 폭격하고 ‘부차 대학살’을 저질렀는데도 과거의 친러 정책을 고수하며 푸틴 편에 선다면 국가 원로 자격이 없다. 슈뢰더는 환갑 때 전기 작가로부터 ‘정계 은퇴 후 뭘 하겠냐’는 질문을 받고 “돈을 벌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러시아 머니에 젖어 ‘전범’ 푸틴의 푸들이 된다면 하르츠 개혁 등으로 독일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킨 그의 위대한 정치 자산은 물거품이 될 것 같다.
05월 09일(월) 노무현과 이재명의 ‘다른 길’

이현종 논설위원
1997년 12월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1.5%포인트(39만557표) 차로 석패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8개월 뒤 당 총재로 선출되면서 일선에 복귀했다. 당시만 해도 아주 빠른 복귀라는 비판이 있었다. 특히, 1998년 7월에 이명박 의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하라는 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제15대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해 낙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54.4%의 지지를 얻어 여의도에 재입성했다. 3번의 선거 실패 이후 종로에서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은 재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6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 노 전 대통령은 2년 뒤인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에서 다시 부산에 출마한다. 부인과 자녀들, 보좌관 등이 모두 반대했지만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신념으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무모한 도전을 한다는 이유로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이 생겼다. 이런 진정성이 전해졌는지 2년 뒤 제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면, 종로 출마 권유를 뿌리쳤던 이회창 전 총재는 1999년 6월 3일 “당과 민주주의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송파갑 재선거에 출마한다. 손쉽게 당선되기는 했지만 편한 지역에 출마해 당선되고 2000년 5월 당 총재로 재선출돼 대선 재수의 발판 마련에 성공했지만, 2년 뒤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무모했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했던 노 전 대통령과 편안한 길만 찾았던 이 전 총재의 운명은 대선에서 갈렸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패배한 정동영 전 의원도 이듬해 무리하게 총선에 나서 패배했다.
지난 3·9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2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6월 1일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 역대 가장 빠른 대선 후보의 복귀전인데 자신의 거주지이자 정치적 연고지인 성남 분당갑이 아닌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 출마하는 데 대해 당 안팎의 비판 여론이 거세다. 범죄 방탄용 주장까지 쏟아진다. 0.73%포인트 차이의 패배의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제2의 이회창’ 길을 갈 우려가 크다. ‘축적의 시간’ 없이 다시 일선에 나서는 이 고문의 도전이 불안하게만 보인다.
05월 10일 방산(防産) 한류

이신우 논설고문
1971년 11월 10일, 오원철 당시 상공부 광공차관보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했다. “병기는 분해하면 부품 상태가 됩니다. 설계도면대로 가공하면 이 부품들의 생산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병기의 정밀도가 100분의 1㎜ 정도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가공 수준은 10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민수 공장들을 선정해서 부품별로 분담 생산시키자는 것입니다… 그 후 한국국방과학연구소(ADD) 검사를 통과한 것만 선정해 조립하면 병기가 완성됩니다.”
박 대통령은 즉각 오 차관보의 보고를 실행에 옮기도록 지시한다. 한국 방위산업의 출발이었다. 방산 인프라의 기본인 주물선(鑄物銑)·특수강·중기계·조선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1973년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선언한다. 이렇게 해서 카빈소총과 기관총, 수류탄, 대인지뢰 등이 첫선을 보였고 105㎜ 곡사포와 한국형 전차, F5-E 국산전투기, 전투함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로부터 40여 년, 이제 한국의 방위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방산 한류’를 자랑할 정도다. K9 자주포는 글로벌 자주포 시장 점유율 69%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3000t급 국산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연속 발사 시험에 성공했다. 세계에서 8번째다. 자체 개발한 최첨단 능동위상배열(AESA·에이사) 레이더는 국산 전투기 KF21에 탑재된다.
미사일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아랍에미리트(UAE)는 한국의 탄도탄 요격미사일 체계인 ‘천궁-Ⅱ’로 자국의 영공을 방어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 국회를 상대로 한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의 탱크와 배,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여러 군사 장비가 한국에 있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 방위산업 시장 진출을 위해 방산FTA라 부르는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 체결을 추진할 계획이다. 협정이 체결되면 미군에 무기를 수출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미국 측에서도 긍정적 반응이라고 한다.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산 국가다. 그런 미국에 차세대 장갑차, 고등전술 훈련기 등을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고 박 대통령이 이 소식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05월 11일 야합(野合)

김세동 논설위원
야합(野合)은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들판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에서 유래했는데, 요즘은 러브호텔이나 여관이 많아서인 듯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여야의 뒷거래를 지적할 때 흔히 ‘정치적 야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최근 검수완박 관련 2개 법안의 국회 통과 과정에서 야합이라고 할 만한 여러 장면이 등장했다.
지난달 22일 느닷없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덜컥 합의하고, 의원총회에서 추인받았다. 어제까지 “위헌적 요소로 가득 찬 법”이라고 맹비난하던 제1야당의 갑작스러운 야합이었다.
대법원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하고, 대한변협 등 변호사단체와 대학교수·헌법학자 등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총력 투쟁 중이고 국민 여론도 반대가 압도적이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배신이었다. 국민의힘의 배신이 더 나쁘다는 여론 역풍이 일 조짐을 보이자 당 지도부는 서둘러 합의안을 번복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검수완박 반대 동력은 크게 꺾인 뒤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마저 여야의 중재안 수용을 “존중한다”고 하자 상당수 검사들은 “윤석열 당선인마저 우리를 버렸다”며 한탄을 터트렸다. 검찰 수사를 받기 싫다는 데 신구 권력이 야합했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2019년 12월 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을 맞바꾸면서 민주당 2중대라는 낙인이 찍혀 문재인 정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한 정의당은 이번 검수완박 국면 초기엔 속도 조절을 주문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회의장 중재안에 국민의힘이 동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정의당원인 진중권 전 교수는 지난달 30일 검찰청법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때 정의당 6명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지자 “애먼 사람들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 합당을 하라. 징그러운 인간들”이라고 쏴붙였다.
국민의힘과 합당한 국민의당 출신 권은희 의원도 검수완박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경찰 출신의 소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권 의원이 자신을 제명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한 점에 비춰 보면, 속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례대표는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지만, 제명당하면 직을 유지할 수 있다.
05월 12일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종호 논설고문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테크닉이 녹슬지 않게 최대한 힘쓰고 싶고, 기대감도 있다. 더 깊어지는 감정을 실제로 겪어본 느낌으로 나타낼 수 있을 거니까. 연주 속에 내 경험들이 잘 녹아서 좋은 음악으로 표현되면 좋겠다. 단순히 스타가 아니라, 진짜 예술가로서 오직 음악으로 내 마음을 전할 수 있고, 내 연주를 듣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동혁(38)이 서른 살을 넘기면서 했던 말이다. 그러고는 “언젠가 나이가 더 들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60’을 연주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가 국내 무대 데뷔 20주년 기념으로 지난 3월 발표한 제6집 앨범에 담은 곡이 바로 그 슈베르트 소나타 제21번인 ‘D960’과 제20번인 ‘D959’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가 31세 나이에 타계한 1828년 잇달아 작곡한 3개의 소나타 중에서 마지막 두 곡으로, 그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아름다운 선율에 짙게 배어 있다. 임동혁은 “나랑 가장 잘 맞는 음악가가 슈베르트다. 나는 피아노로 노래하는 게 좋다. 그게 내가 가진 재능이고 장점이다. 슈베르트야말로 노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곡가라고 생각한다” 하고, 6집 앨범 수록곡 선택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처음으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던 ‘원조(元祖) 아이돌 스타’로도 알려진 그는 두 살 위 형인 임동민에 뒤이어, 일곱 살에 피아노를 처음 배웠다. 2001년 프랑스 롱티보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한 이듬해에 국내 데뷔 연주회를 열고 첫 음반도 냈다.
그 뒤, 퀸 엘리자베스·쇼팽·차이콥스키 등의 이름을 붙인 3대 국제콩쿠르에서 모두 입상한 그는 “내가 남을 위해서만 연주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음악의 중독성이 워낙 강해 연주를 포기할 수 없다. 나를 위해서도 연주한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는 세계적인 공연을 많이 했지만, 지금도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공연 때마다 떨린다고 한다. 극복하는 비결은 “각별한 노력으로 하는 끊임없는 연습과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슈베르트를 위해’가 주제인 그의 전국 순회공연 서울 무대가 오는 24일 예술의전당에 마련된다. 6월 1일은 인천아트센터 공연이다.
05월 13일(금) 교육감 선거 명암

이도운 논설위원
교육감은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에서 교육 업무를 집행하는 기관이다. 원래는 기관 자체를 의미하지만, 편의상 시·도 교육청의 대표로 인식해 왔다. 교육감은 의전상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광역단체장 및 의회 의장과 동급이다. 교육감이 처음 선임된 것은 1952년이다. 1990년대까지는 정부에서 임명했다. 이후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교육자치 필요성도 제기됐고, 교육감 선거제가 도입됐다. 처음에는 교육위원들과 학부모 대표들이 뽑는 간접선거였다. 그러나 소수만 참여해 민주적 정통성이 부족한 데다 밀실 합의·금품 거래 등 비리도 드러났다. 결국 2006년 관련법 개정으로, 2007년 부산광역시교육감 선거부터 주민직선제로 바뀌어 2010년 전면 시행됐다.
교육감 출마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최근 1년 동안 당적이 없고, 교육 또는 교육행정 경력 3년 이상이면 된다. ‘학식과 덕망이 높고’라는 조건도 있지만, 의례적이다. 임기 4년으로 3번까지 할 수 있다. 교육감은 대규모 예산(경기도 경우 올해 19조 원)을 편성하고, 교원 인사권을 행사한다. 학교 설치 및 폐지, 교육과정 운영 등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학원 정책을 좌우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은 다른 선거보다 떨어진다. 2009년 경기도에서는 12.3%의 투표율이 나오기도 했다. 청소년 자녀가 없는 경우 관심 가질 동인이 없으며, 교육의 주요 당사자인 학생에게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학원 관계자가 몰표로 선거 결과를 좌우했고, 무엇보다 진보·좌파 진영의 핵심으로 조직력이 강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갈수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2010년 선거에서 전교조 출신 당선자는 2명이었는데 2014년엔 8명, 2018년엔 친전교조 교육감 4명을 합쳐 14명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 전체 교원의 10% 안팎인 전교조가 교장공모제 교장의 65%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문재인 정부의 획일·평준화 지향 교육정책은 바뀌겠지만, 교육 현장이 바뀌지 않으면 실행이 어렵다. 6·1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보수 진영에서 서울시교육감 등의 후보 단일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 결과가 향후 4년의 교육도 좌우할 것이다.
05월 16일(월) 레드오션 된 OTT 시장

문희수 논설위원
세계적으로 코로나 방역이 대거 풀린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이 초비상이다. 유료 이용자들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청 시간이 줄어든 것이 큰 요인으로 꼽힌다. 간판 업체인 넷플릭스의 ‘어닝 쇼크’가 상징적이다. 가입자가 지난 1분기에 20만 명 줄었다. 서비스 개시 11년 만의 첫 감소다. 미국과 캐나다, 남미, 유럽 등이 모두 30만 명 넘게 빠졌다. 아시아에서 109만 명 증가한 것이 감소 폭을 줄였다. 더욱이 2분기는 감소 폭이 300만 명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이로 인해 급락한 주가는 한 달이 다 된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은 거의 포화 상태인데, 디즈니플러스·훌루·아마존프라임비디오·애플TV플러스 등이 서로의 시장을 뺏는 쟁탈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국내 시장 상황도 비슷하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1위지만 지난해 9월부터 1200만 명대를 유지하던 월간 이용자가 올 4월엔 1153만 명으로 줄었다는 조사 결과다. 2위인 토종업체 웨이브 역시 감소했다. ‘플러스섬 게임’에서 ‘제로섬 게임’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대전이 진행 중이다.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설스튜디오 등과 함께 할리우드 5대 메이저인 파라마운트가 한국 진출을 발표했다. ‘인터스텔라’ 등 유명 영화와 ‘스타 트랙’ ‘트랜스포머’ 등 시리즈물을 보유한 강자다. 또 슈퍼맨·배트맨 등 영화와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등 유명 시리즈물을 가진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와 아마존프라임도 곧 들어온다는 관측도 있다.
글로벌 OTT 업체들이 고전하는 것은 ‘킬러 콘텐츠’와 현지에 최적화된 콘텐츠 부족 탓도 크다. 실제 국내 이용자들은 ‘오징어게임’ 이후엔 “볼 만한 게 없다”며 불만이 크다. 이런 와중에 넷플릭스가 4명까지 허용하고 있는 계정 공유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반발을 사고 있다. 토종업체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공전의 히트작인 ‘오징어게임’을 만든 역량을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토종업체들의 해외 진출 추진은 긍정적이다. 마침 윤석열 정부도 적극 지원을 밝히고 있다. ‘블루오션’도 ‘레드오션’도 영원한 것은 없다.
05월 17일 시정연설史

박민 논설위원
시정연설(施政演說)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국정을 베푸는 것에 대한 연설’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대통령제 원조인 미국에서는 ‘The Budget Speech of the President’(예산안에 대한 대통령 연설)라고 표현한다. 이런 차이는 제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산 편성권은 행정부가, 심의·확정권은 국회가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예산안에 대해 독자적인 편성권과 제한 없는 수정권을 갖고 있다. 정부 예산안을 참고 사항으로 간주한다.
시정연설은 예산안을 제출하는 10월과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하는 6월에 이뤄진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연설한 것은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때까지 취임 첫해에만 대통령이 직접 했고 이후에는 국무총리가 대독했다. 재임 내내 본예산 시정연설을 직접 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당시에도 추경 시정연설은 총리가 대독했다. 추경 시정연설을 직접 한 것은 2017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2018년 5월 추경 시정연설의 경우, 이낙연 총리가 대통령 연설문을 대독하지 않고 처음으로 직접 작성해 연설했다. 문 전 대통령도 5년 연속 직접 본예산 시정연설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취임 6일 만에 직접 추경 시정연설을 했다. “직면한 위기와 도전의 엄중함이 진영이나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협력을 어느 때보다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시정연설의 배경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단상으로 가는 길에 여야 의원 모두와 악수했고, 의원들은 기립으로 환영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의회가 국정의 중심’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 당 대표의 파트너십을 예로 들자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그러나 협치의 싹으로 평가하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 당장 지방선거를 둘러싼 여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상황도 다르다. 당시 처칠은 애틀리를 부총리에 임명하는 등 거국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예산 편성권이 내각에 있고 의회의 수정권은 인정되지 않는 등 내각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권력도 나눴다.
05월 18일 우크라 자유교향악단 투어

이미숙 논설위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국내에서 연주 활동을 하던 우크라이나 출신 음악인들이 대러 항전에 힘을 보태기 위해 귀국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지난 3월 초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주자 지우즈킨 드미트로와 비올리스트 레우 켈레르, 트럼펫 주자 마트비옌코 콘스탄틴이 바로 그들인데, 특히 드미트로는 군복 차림으로 참호에서 총을 든 사진을 SNS에 올렸다. 악기를 내려놓고 총을 든 그의 표정에선 나라의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결연함이 느껴진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총을 들었던 우크라이나 연주자들이 음악으로 자유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세계 순회공연에 나선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남아 싸웠던 이들과 주변국으로 피란을 떠났던 연주자 75명은 ‘우크라이나자유(freedom)오케스트라’를 결성, 7∼8월 유럽·미국 연주여행을 갖는다. 이 교향악단 창단은 우크라이나계 캐나다 여성지휘자인 케리 린 윌슨이 주도했다. “자유 진영이 우크라이나인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남편 피터 겔프(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총감독)의 지원에 힘입어 교향악단을 만든 뒤 세계 투어를 준비 중이다. 스웨덴으로 피란을 떠났다가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 마르코 코몬코는 “음악인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연주”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자유오케스트라는 7월 28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첫 공연을 가진 후 런던, 뮌헨, 베를린, 에든버러, 함부르크, 암스테르담을 거쳐 뉴욕·워싱턴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연주곡은 우크라이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우의 교향곡 7번과 폴란드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2번 등이다. 전쟁 중에 결성된 오케스트라가 어떤 음악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오케스트라의 순회 연주국에 아시아는 빠졌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세계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한 만큼, 이 오케스트라의 서울·부산 공연을 추진하면 어떨까?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에 연대감을 표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이 자유 진영의 일원임을 드러내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05월 19일 대통령의 쇼핑

이현종 논설위원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시내 백화점에서 신발을 산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친야 인사들의 심기가 몹시 불편한 모양이다. 김민기 민주당 의원은 17일 국회 국방위에서 “전투화 예산을 깎아 놓고 본인(윤 대통령)은 백화점에 구두 사러 다니면 말이 되겠나”라고 목청을 높였다. 추경 확보를 위해 국방 예산 일부를 쓴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한 발 더 나갔다. 이날 TBS ‘뉴스공장’에서 “친근한 대통령 이미지 만들기 프로젝트를 누가 이렇게 공적인 프로세스 바깥에서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러다가 ‘개 사과 시즌2’가 나오는 거다. 이건 아니죠”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쇼핑이 대통령실이 아닌 외곽 조직에서 기획된 의도적인 행보였다는 것이다. ‘음모론의 대가’인 김 씨다운 ‘뇌피셜’이다. 3년 신은 신발이 낡아 집과 가까워 평소 다니던 백화점에서 20만 원짜리 중소기업이 만든 편한 신발을 산 것도 의도된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일은 하지 않고 주말에 한가하게 쇼핑이나 다닌다는 비난도 있다.
‘쇼’를 좋아하는 사람 눈에는 모든 것이 쇼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1월 미리 계획해서 한 번 폐업했다 다시 문을 연 성수동의 수제화 점을 찾아가 구두를 맞췄는데, 왜 윤 대통령은 일반인처럼 아무 곳이나 가서 구두를 사냐고 시비를 거는 모양새다. 백화점을 찾은 일반 시민들의 불편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워낙 ‘탁현민식 쇼’를 많이 하다 보니 백화점 가서 구두 하나 사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조차 그들에겐 불편하다.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재임 시 퇴근할 때 관저 앞에 있는 슈퍼를 찾아 장을 보는 장면이 화제였다. 한 일간지 특파원이 현지에 가서 장을 보는 메르켈 전 총리를 목격했는데 슈퍼에 있는 점원이나 고객 누구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28년 동안 똑같은 일을 했으니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쇼처럼 보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전해진다. 이날도 비서실에 알리지 않고 경호원 10여 명만 대동하고 쇼핑을 갔다고 한다. 대통령이면 준비된 ‘쇼’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에겐 어색하지만, 국민은 함께 쇼핑하는 대통령이 자연스럽다.
05월 20일(금) ‘3일 천하’ 셰일혁명

이신우 논설고문
석유·천연가스가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해야 마땅했다. 지금의 석유가(價) 폭등은 애초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석유 문명은 완벽하게 되살아났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석유가는 배럴당 50∼60달러 선에 불과했으나 올 2월에 90달러를 넘어섰고, 3월 이후 지금까지 100달러 선에서 고공행진 중이다.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가로 치솟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유럽의 제재에 대한 반격으로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석유와 천연가스 폭등세는 꺾일 줄 모른다.
애초 석유에 조종(弔鐘)을 울린 것은 미국의 셰일 혁명이었다. 201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미국의 셰일가스로 미국은 2014년 마침내 세계 제1의 석유와 가스 생산국으로 부상했다고 서방 언론은 일제히 팡파르를 울렸다. 미국 도처에 부존된 셰일가스 혹은 셰일오일의 에너지 규모는 너무 방대해 그 양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분석 보도가 하루가 멀다고 줄을 이었다. 심지어 미국 그린 리버 분지에만 미국이 300년간 쓸 수 있는 분량이 매장돼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산유국들은 몰락의 구렁텅이라는 형용사를 뒤집어써야 했다. 세계적 지정학자인 피터 자이한은 자신의 책에서 “셰일 혁명으로 인해 미국은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에 신경 끄고도 살 수 있는 강대국이 됐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무한한 생산 능력을 자랑하던 셰일 생산이 어느 순간부터 종적을 감추고, 세상은 중동과 러시아의 감산과 고유가에 휘청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동 석유의 종언을 이야기하더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시금 중동 산유국들에 증산을 구걸하는 중이다. 심지어 적국인 베네수엘라에까지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 실정이라고 한다. 미 백악관의 생산량 확대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작 셰일 업계는 증산에 소극적이다. 수익성 있는 셰일 원유 유정의 고갈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나? 이로써 ‘셰일’ 바겐세일에 취해 있던 글로벌 사회는 몇 년 만에 다시 기존의 오일 왕국들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셰일 혁명은 나쁘게 말해 ‘뻥’이었고, 좋게 말하면 ‘삼일천하’였다.
05월 23일(월) 대법관 임기와 삼권분립

김세동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동안 대법원장과 대법관 14명 중 13명을 임명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교체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대법원장과 마찬가지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통과해야 해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통령 뜻대로 관철되기 어렵다. 하지만 최고 법원 내 진보 색채를 상당 부분 덜어낼 것으로 전망된다. 2년 뒤에는 국회의원 선거도 있다.
윤 대통령은 내년 9월 임기를 마치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 올 9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재형 대법관, 내년 7월 물러나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후임을 지명하게 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복수의 후보자 중 1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코드에 맞는 대법원장을 앉힐 수 있으면 대법관 구성을 입맛대로 할 수 있다. 2023년 9월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대법원장은 민유숙·안철상(2024년 1월 퇴임), 노정희·이동원·김선수(〃 7월 퇴임), 김상환(〃 12월 퇴임), 노태악(2026년 3월 퇴임), 이흥구(〃 9월 퇴임), 천대엽(2027년 5월 7일 퇴임) 대법관 후임을 임명 제청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 김명수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을 임명했고, 유남석 헌재소장을 포함해 8명의 헌법재판관이 그의 임기 중에 교체됐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고 대법관·헌법재판관 임기가 6년이라서 원래는 한 명의 대통령이 거의 전원을 임명하지 못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를 1년 정도 남겨 놓고 탄핵당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사법권력도 장악하게 됐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대부분을 한 명의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면 중요한 판결이 왜곡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삼권분립이 위협받게 된다. 미국은 대법관이 종신제여서 이런 위험성이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독일의 대법관은 임기 제한 없이 정년(65세)까지 근무하고, 헌법재판관 임기는 12년이다. 프랑스와 일본도 대법관은 임기 제한 없이 정년(각 65세, 70세)까지 근무한다. 다음 개헌 때 최고 법관의 임기를 10년 정도로 늘렸으면 한다. 단, 실력 없는 엉터리 코드 대법관을 걸러낼 장치는 필요하다.
05월 24일 장기호의 ‘빛과 소금’

김종호 논설고문
‘나 어린 시절엔 조그만 TV 앞에/ 가까이 다가가 영화를 보곤 했지/ 그레고리 펙, 험프리 보가트, 제임스 딘도 생각나/ 이제는 모두 추억 속의 스타/ 가버린, 오래된 영화의 주인공/ 난 오늘도 그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아’. 걸출한 싱어송라이터 장기호(60)가 예명 키오(Kio)로 낸 2007년 솔로 앨범 ‘Chagall Out Of Town’ 속의 발라드곡 ‘Old Movies’ 시작 부분이다. 그 앨범에는 그가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의 몽환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작사·작곡·노래한 14곡이 담겼다. ‘나 홀로 있는 이 밤 조용히 비가 내리네/ 조금씩 나의 마음 외롭고 허전해져/ 저 비는 멈추려 하지 않고/ 내 깊은 곳에 있는 슬픈 기억 속에 나를 다가가게 해’ 하는 ‘비 오는 날엔’도 있다. 가사 없는 연주곡으로, 앨범 제목으로도 삼은 타이틀 곡은 “샤갈의 부재로 인한 고독과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예술대 응용미술학과 재학 중에 해군 홍보단 베이스기타 연주자로 입대하면서 음악의 길로 전향했다. 1990년엔 박성식·한경훈과 함께, 3인조 그룹 ‘빛과 소금’을 결성했다. ‘빛과 소금’ 데뷔 음반 수록곡 중 대표적인 것이 ‘샴푸의 요정’이다. ‘네모난 화면 헤치며/ 살며시 다가와 은빛의 환상 심어준/ 그녀는 나만의 요정/ 이른 아침 안개처럼 내게로 다가와/ 너울거리는 긴 머리 부드러운 미소로 속삭이네’ 하는 노래로, 1988년 방영된 동명의 TV 연속극 OST다. 1993년 한경훈이 빠지고 2인조가 된 빛과 소금은 1995∼1999년 미국 버클리 음대에 유학한 장기호 사정으로 활동을 중단한 기간도 길었지만,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오래된 친구’ 등 명곡이 많다.
“내게 음악은 판타지 영화 같은 것”이라며 장기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보는 동안에 현실을 망각하고 상상의 세계를 다녀온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처럼, 듣는 동안에 현실을 잊고 상상에 젖어들게 하는 음악들이 나를 움직였다.” 빛과 소금의 제6집이 조만간 나온다고 한다. 장기호의 솔로 앨범 ‘Chagall Out Of Town’도 LP와 CD로 다시 나올 예정이다. “음악은 자기만의 완성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음악 열정이 요즘 더 불타오르는 것 같다”는 그가 후속 앨범 구상도 이미 시작했다고 하고.
05월 25일 married up

이도운 논설위원
2004년 2월 23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공화당 출신 주지사들을 위한 만찬 리셉션을 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인사말 도중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목하며 농담을 했다. “아널드와 나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영어가 서툴고, 이두박근이 두꺼우며, 결혼을 잘했다.” 이날 리셉션에는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도 참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거물 정치인을 아버지로 뒀지만, 젊은 시절 방황하다가 고향 텍사스의 한 도서관 사서였던 로라를 만난 뒤 술을 끊고 사업과 정치에 집중해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로라는 전형적인 미국 남부 중산층 가정의 조용하면서도 지적인 주부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라크 전쟁 등 부시의 정책을 반대한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조차 로라는 좋아했다. 당시 부시가 결혼을 잘했다고 표현한 영어는 ‘married well’이었다.
영어로 결혼을 잘했다는 표현은 marry well 말고도 marry up이 있다. 부시가 marry well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슈워제네거는 marry up에 해당한다. 자신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의 사람과 결혼했다는 뜻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슈워제네거는 주변에 “최고의 가문이 어디냐”고 물었다고 한다. 케네디가(家)라는 답변을 듣자, 결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했다고 한다. 당시 슈워제네거도 이미 보디빌더, 영화배우로서 유명했지만, 슈라이버와 결혼하며 정치적 입지가 더 강해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married up이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만찬 직전 김건희 여사와 인사를 한 뒤 윤석열 대통령에게 “우리 둘 다 장가를 잘 갔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29세에 상원의원이 된 바이든은 교통사고로 부인과 사별한 뒤 35세에 선거운동을 도왔던 질 트레이시 제이컵스와 재혼했다. 영문학 박사인 질은 미국에서도 드물게 직업을 가진 대통령 배우자다. 영문학 강의는 물론 국내외에서 남편을 지원하는 1인 2역을 해내고 있다. 김 여사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에 웃으며 “정말요(really)?”라고 응답했다. 김 여사는 이제 막 공적 역할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 가운데 누가 marry up인지, marry well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05월 26일 한국의 달 도전

문희수 논설위원
한국은 올해 역사적인 도전을 한다. 오는 8월 3일 사상 처음으로 달을 탐사하는 궤도선 ‘다누리’를 발사할 계획이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사 팰컨 9에 실려 발사될 이 무인 탐사선은 달 100㎞ 고도를 비행하며 달을 관측한다. 2031년엔 자체 기술로 만든 달 착륙선을 보낼 계획도 있다. 달 착륙선을 보내려면 2단 발사체지만 추진력을 더 높인 차세대 발사체가 필요하다고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차세대 발사체 독자 개발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이런 꿈같은 계획의 선행 단계로 내달 15일 누리호 2차 발사가 예정돼 있다. 지난해 10월 누리호 1차 실패를 딛고 이뤄지는 발사다. 누리호 1차는 발사는 성공했지만, 궤도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2차 발사가 성공하면 2027년까지 누리호 4기를 추가 발사하는 일정이 진행된다. 한국으로선 뜻깊은 도전이다. 미국·러시아·중국 등 우주를 향해 앞서가는 나라들을 부러워하며 바라보기만 해왔다가 이제 독자 기술로 우주로 나갈 준비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달은 주요 국가들의 치열한 각축장이다. 희토류 등 희귀한 자원의 보고라는 점이 재조명받고 있다.
순수 국내 기술로 로켓을 만들어 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앞서 나로호 발사도 3번 시도 끝에 지난 2013년 1월 성공했다. 이후 실패가 거듭됐지만 무리한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탓할 일이 아니다. 실패가 쌓여야 성공한다. 국민의 기대가 크다.
그렇지만 과기정통부 등 일각에서 헛된 바람을 넣거나 정치적 이벤트로 꾸미려 들면 안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누리호 1차 발사 현장까지 가서, 발사 후 궤도에 안착하지 못할 것이란 보고에도 “비행시험 완료가 자랑스럽다”는 성명 발표 행사를 열어 뒷말을 낳았다. 후속 업무 챙기기에 바빴을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굳이 행사장으로 불러내 병풍처럼 뒤에 세운 채 강행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주목받아야 할 주역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인데 말이다. 해외에선 지도자들이 현장을 찾지 않고 메시지만 발표한다. 윤석열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마침 한·미 정상회담으로 양국 기술교류·협력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한다. 오버 하지 말고 국민과 함께 성공을 기원하고 축하하는 성숙한 모습이면 충분하다.
05월 27일(금)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박민 논설위원
미국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전임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후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 가려 평범한 대통령이란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46명의 미국 대통령 인기 순위나 업적 평가에서는 10위권 내에 드는 우수한 대통령이다. 사실 트루먼은 자질이나 지도력을 검증받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대통령이 됐다. 4선에 오른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 3개월 만에 뇌출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하원 의원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가 급한 일이 있다는 호출에 투덜거리며 백악관으로 들어갔다. 트루먼을 맞은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는 “대통령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당황해 한참을 침묵하던 트루먼이 “제가 부인을 위해 무엇을 해드려야 할까요?”라고 묻자 엘리너는 “아니요. 제가 당신께 무엇을 해드려야 할까요? 앞으로 골치 아플 일이 많으실 테니까요”라고 반문했다.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취임 직전 “달, 별, 그리고 모든 행성이 내게 떨어지는 기분이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부담감 때문인지 트루먼은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를 새긴 명패를 두고 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을 해나갔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지시해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었다. 종전 후에는 ‘트루먼 독트린’으로 사회주의 확산 저지에 나섰고 마셜 플랜을 세워 서유럽 경제 부흥을 지원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국민은 트루먼의 결단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셜 플랜은 ‘퍼주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재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트루먼 자신도 선거날 자신의 패배를 예상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2번째 임기를 시작한 그는 6·25전쟁 참전을 결정했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발족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트루먼의 좌우명을 새긴 패를 선물했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 각종 실정의 책임을 세계 경제와 코로나 등으로 돌린 바 있어 더욱 관심을 모았다. “국정을 맡은 리더의 명예는 자기 행위의 책임을 혼자 지는 것에서 나온다”는 막스 베버의 말처럼 대통령의 명예는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05월 30일(월) 동맹파의 귀환
이미숙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의 인사 특징으로 ‘서·육·남(서울대·60대·남성)’ 등의 약어가 유행하고 있지만, 안보라인 인사의 핵심은 주류 동맹파의 귀환이다. 문재인 정부는 운동권 출신 자주파 인사와 진보 성향 시민단체 인사를 중용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일했던 관료나 주류 학자들을 배제했다. 2021년 8월 국립외교원장 인사 때 외교부에서는 임기 말인 점을 고려해 베테랑 외교관을 복수로 추천했지만 “우리 편이 아니지 않으냐”면서 내쳤고, ‘동맹 중독론’을 펴던 이의 후임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반대하는 인사를 임명했다.
주류 동맹파 귀환의 상징은 조현동 외교부 1차관과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다. 조 1차관은 문 정부 초기 기조실장을 끝으로 외교부를 떠나 유엔산업개발기구 한국투자진흥사무소 대표로 활동하다 복귀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부를 뒤흔든 이른바 ‘자주파·동맹파 파동’의 핵심 당사자다. 당시 북미3과장이던 그는 사석에서 청와대 운동권 인사들의 대미 인식을 비판했다는 투서로 보직 해임을 당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로 ‘영전’됐다 문 정부에서 ‘퇴출’됐다. 외교부 파동 때 자주파 일원이던 남관표 전 스웨덴대사가 문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발탁된 데 이어 주일대사까지 지낸 것과 대비된다. 김 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외교부와 국가안보실 요직을 거쳤지만, 문 정부에선 검찰 수사를 받으며 사실상 은둔 생활을 했다.
국무조정실장에 내정됐던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여기서 물러나는 게 순리인 것 같다”며 자진 사퇴했다. 총리 지명 47일 만에 인준이 통과된 한덕수 총리가 추천한 1호 인사인데 국민의힘이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출신’이라며 반발하자 물러난 것이다. 윤 행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라는 점에서 주류이고, 국제통화기금(IMF) 선임자문관 등을 거쳤다는 점에서 동맹파다. 하지만 소주성·탈원전 등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정권 교체의 동력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를 중용하는 것은 민의 배신이다. 내정에 앞서 그가 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려 어떤 노력을 했는지라도 밝혔어야 했다. 그런 절차 없이 주류 동맹파의 귀환에 무임승차하려 했다면 정의롭지 못하다.
05월 31일(화) 김포공항의 진가
이현종 논설위원
1970년 3월 30일 일본 적군파 9명이 도쿄발 후쿠오카행 일본항공(JAL)의 요도호를 공중 납치했다. 승무원 7명과 승객 등 129명이 타고 있었는데, 평양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기장은 국내선으로 연료가 부족하다고 납치범을 설득해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협상 끝에 어린이 등 일부 인질을 내려준 뒤 평양으로 향했다. 요도호는 실제 38도선을 넘었고, 기장은 북한 영공이라고 생각해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아직 휴전선 남쪽 대한민국 영공이었고, 김포공항 관제사가 기지를 발휘해 “여기는 평양 진입 관제”라고 응답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던 납치범들은 비행기가 인천 앞바다를 거쳐 김포공항에 비상 착륙한 것을 북한에 도착한 것으로 한동안 착각했다. 공항 측은 착륙 직전 30분 동안 북한 인민군 복장을 하고 태극기도 내리고 인공기를 올렸다. 직원들에게 치마저고리를 입혀 평양처럼 연출했다. 그러나 납치범은 공항에 미국 민항기가 있고 흑인 병사를 보자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한다. 납치범은 협상 끝에 일반 승객들은 모두 풀어주고 대신 승무원과 일본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삼아 북한으로 다시 날아갔다. 지난 28일 적군파 최고 간부인 시게노부 후사코(76)가 징역 20년형을 마치고 출소, 이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우여곡절을 간직하고 있는 김포공항은 1939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육군 항공대의 비행 훈련장으로 개장됐다. 6·25전쟁과 1·4후퇴 때 아군과 북한군에 번갈아 넘어갔고, 산업화 시대엔 관문 역할을 했다. 2001년 영종도에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축소됐지만 ‘비즈니스 공항’으로 지금도 연간 3000만 명 이상 이용하고, 제주도 승객만 연간 1000만 명이 넘는다.
김포공항과 접한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서울시장에 출마한 송영길 후보가 선거 막판에 뜬금없이 김포공항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포공항 부지를 주택 단지 등으로 개발하자는 취지인데, 당장 제주도 민주당 후보들이 제주 경제를 망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항공기도 수직 이착륙해 공항이 필요 없고, 제주에 해저터널을 뚫으면 된다는 황당한 논거를 대다 보니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허경영 전 대선 후보도 울고 갈 일이라는 탄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