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여행/ 국가별31/ 시리아 - 시에라리온 - 싱가포르
지구촌 여행/ 국가별31/ 시리아 - 시에라리온 - 싱가포르
■ 시리아
Syrian Arab Republic
▲국기
아시아 대륙 남서쪽 가장자리의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는 국가. 수도는 다마스쿠스이며, 화폐단위는 시리아 파운드(S.P)를 사용한다. 민족구성은 아립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이외에 쿠르드족, 아르메니아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는 수수니파 이슬람교(72%), 기타 이슬람교(13%), 그리스도교(10%)로 구성되어 있다.
1936년 시리아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194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후 정권의 교체가 반복되다가 1970년 하피즈 알 아사드가 정권을 장악한 후 2000년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가 권력을 승계했다.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2011년 내전으로 발전한 후 교전 양상과 혼란이 계속되었다.
시리아는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중동 여러 나라에 조직을 둔 아랍 바트('부흥'이라는 뜻) 사회당의 시리아 지역 지도자가 다스린다. 1973년에 채택된 헌법에 따르면 행정권은 7년 임기로 직접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내각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며 내각은 총리가 이끈다. 또한 대통령은 군총사령관, 시리아 바트당 총서기, 바트당과 다른 정당들을 포함하는 정치조직인 국민진보전선(National Progressive Front) 의장을 겸임한다.
입법권은 단원제인 인민회의에 있다. 인민회의는 바트당의 통치기구로서, 임기 4년에 직접 선출되는 195명의 의원으로 이루어진다. 사법제도는 부분적으로 프랑스에게서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대부분 이슬람 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고 사법권은 고등헌법재판소에 부여되어 있다.
사회복지제도의 범위와 수준은 생계유지에 한정된다. 법에 따라 노령·장애·산재·유족 연금을 주며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료 의료혜택이 주어진다. 위생상태는 점차 나아지고 있으나 대체로 나쁜 편이다.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의료 서비스, 하수처리시설, 음료수 등의 부족이 전염병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2011년 내전 이후 정상적인 사회복지제도는 거의 유지되고 있지 않다.
교육은 6년제 공립 초등학교에 대해서는 의무 무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초등학교와 6년제 중등학교 모두 재학생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다마스쿠스대학교(1923 설립)와 같은 기관들에게 직업교육·교원양성교육·대학교육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시리아는 정부에서 모든 통신매체를 엄격히 통제한다. 언론은 1956년 이래로 직접 검열을 받고 있다. 바트당 기관지 〈알 바트 Al Ba⁽th〉가 주요신문 가운데 하나이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은 국영 시리아 방송 텔레비전 회사에서 운영한다.
역사
최초의 시리아 거주민은 BC 10000년경의 수렵채집민인 나투피아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카드의 사르곤 1세 시대(BC 2334∼2279)에 아카드 문명이 나타났으나 BC 2000∼1800년경 아모리족이라는 사막 유목민족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다. BC 16∼15세기에는 이집트인들과 미탄니가 이끄는 후리안인들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싸웠다.
BC 14세기에 히타이트의 지배 아래 들어간 이곳은 그뒤를 이어 BC 12세기에도 여러 히타이트 신왕국들의 지배를 받다가 BC 8세기에 마침내 아시리아에 종속되었다. BC 7세기에 아시리아에 있는 바빌로니아 속국이 아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렸으나 곧이어 BC 538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이 신(新)바빌로니아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시리아와 페르시아 제국은 BC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손에 무너졌다.
이어 시리아는 BC 301년부터 셀레우코스 왕조 지배자들에게 통치를 받았으며 BC 164년부터는 파르티아인들과 나바테아인에게 분할 점령되었다. BC 64년 로마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해서 시리아를 하나의 주로 병합했으며 안티오크를 그 수도로 삼았다. 시리아는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주에 속했다가 AD 300년경 비잔티움으로 넘어갔다. 비잔티움 시대는 634년 이슬람교도들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시리아의 황금기였다. 877년 시리아는 이집트 툴룬 왕조에 병합되어 6세기 이상 그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13세기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게 점령되었다가 1516년 오스만 투르크에게로 넘어갔다. 오스만 투르크는 거의 300년 가까이 시리아를 지배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 투르크의 주요군사기지였던 시리아는 아랍군의 도움을 받은 영국군에게 점령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의 위임통치 지역이 되었다. 1925년 인민당이 결성되어 시리아의 독립과 민족의 단결을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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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의 눈물 - 퓰리처 보도사진 수상작
미국 퓰리처상 위원회는 201년 04월 15일(현지시간) 보도사진 부문에서 2012년 12월 시리아 정부군 공격에 희생된 아들 주검을 놓고 오열하는 한 아버지 모습을 담은 AP통신 사진과 창고 안에 몸을 숨긴 시리아 반군이 밖의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모습의 프리랜서 사진작가 자비에르 만자르의 작품이 각각 특종 및 특집 사진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만 달러와 함께 금메달도 수여된다. /AP뉴시스
◆일상
▲시리아 테러 - 16.5.23 IS테로로 148명이 사망
▲시리아의 눈물 16.8.17
▲시리아 알레포 도시의 위성수신 접시들
▲사는 게 고통 - 시리아 난민
▲시리아의 비극 - 12.12.31. 자유 시리아 군의 시신을 돌보는 동료
▲현재 전쟁중 13.1.16.
▲시리아의 현재 13.1.23
▲13.2.6.
▲새총 수류탄 투척기 13.2.12
▲난민 13.2.19.
▲폐허가된 유령의 도시 시리아 - 13. 2. 27
▲내전이 만든 조각품 - 13. 6. 5. 쿠사이르에서 폐호가된 건물이 아치 모양의 조각품 처럼
▲혼돈 13. 6. 11. 시민군
▲폐허
▲한 자유 시리아군 병사가 13. 6. 24. 알레포 시가지의 주택안에서 다이빙
▲쓰러지는 독재자의 동상 - 13. 3. 4. 시리아 리카주를 장악한 시민군들이 바샤르 대통령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동상릉 철거
▲독재자 동상
▲끝없는 난민들의 행열 - 시리아 다마스쿠스 야르무크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구호 식량을 받으려는 수 많은 난민들 14. 1.31.
▲팔미라
■ 시에라리온 Sierra Leone
시에라리온 공화국, Republic of Sierra Leone
▲국기
서부 아프리카의 공화국. 수도는 프리타운. 민족은 아프리카 원주민(90%), 크레올족(10%)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공용어는 영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이슬람교(60%), 토착종교(30%), 그리스도교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폐단위는 레오네 (SLL)이다.
시에라리온에는 약 18개의 종족이 있는데, 멘데족과 템네족이 그 대표적 종족이다. 동부와 남부를 차지하고 있는 멘데족은 최대의 집단으로, 혈족인 코노족·쿠란코족·수수족·얄룬카족과 함께 전체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수적으로 그뒤를 바짝 쫓는 것이 북부의 템네족으로, 그들은 림바족과 함께 전체인구의 약 2/5를 차지한다. 그밖의 소수종족들은 템네족과 문화적 특성이 비슷하다. 크리올인(전체인구의 2% 미만)은 19세기에 해안을 식민지화한 해방노예의 후손으로 정치·행정 분야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중동부이지만, 가장 높은 곳은 서부의 수도권 지역으로 그 이유는 프리타운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전체인구 중 2/5가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도시화 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출생률은 서아프리카에서는 평균수준이지만, 높은 사망률 때문에 인구성장률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낮다. 인구의 평균연령이 낮고 2/5 이상이 15세 미만이다. 2022년 기준 인구는 823만 1,514명, 인구밀도는 109명/㎢ 이다.
공용어는 영어이며, 영어와 다양한 아프리카 언어에서 파생된 크리오어는 크리올인들의 모국어이자 혼성국제어(lingua franca)이다. 이슬람교도가 전체 인구의 4/5에 가깝고, 그중 수니파가 압도적이다, 개신교도가 1/5에 가까운 분포를 나타내는 가운데, 토착 신앙이 소수를 이룬다.
최초의 정착민은 해안에 사는 불롬족이었으며, 15세기에 멘데족과 템네족이 시에라리온으로 이동해왔다.
원래 세네갈에서 살던 풀라니족은 이 지역의 북부로 이동해왔으며, 포르투갈인들은 해안지역에 들어와 1495년에는 지금의 프리타운 자리에 포르투갈 요새를 세웠다.
15세기말부터 유럽 상선이 해안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공산품과 노예·상아를 교역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영국이 분드 섬과 요르크 섬에 무역소를 세웠지만, 유럽 세력이 시에라리온에 통치권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1787년에 영국인 노예제 폐지론자 및 박애주의자들이 해방되었거나 도망친 노예들을 위해 개인출자로 프리타운을 건설했다.
1807년 영국 의회가 노예무역을 불법화하자, 정부는 노예상을 소탕하기 위한 해군 작전본부로 이곳을 넘겨받았다. 1808년에 해안지역이 영국 식민지가 되었으며 배후지역도 점차 점령당해 1896년에는 영국의 보호령으로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1961년에 시에라리온은 독립했지만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았다. 1967년 군부가 민간정부를 전복시켰으나, 1년 후 군정부가 추방되어 민간통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시에라리온은 1971년에 공화국이 되었으며 1978년에 일당제 공화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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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시에라리온 산사태 수백명 매몰 2017.08.14




의료시설이 매우 열약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끔찍한 내전을 겪은 나라로 알려져 있는 시에라리온은 여행을 가기 어려운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저도 불안한 곳은 가기 두렵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기에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이며 안전을 주의해하면서 다녀보고 싶은 곳입니다.
시에라리온 공화국으로 비공식적으로 셀론이라 불리며 서아프리카의 남서 해안에 있는 국가이자 남동쪽으로 라이베리아 북동쪽으로 기니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시에라 리온이 열대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과 사바나에 열대 우림을 가지고 있으며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프리타운이고 국가는 16개 지역으로 세분화된 5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면서 입헌 공화국의 단원제 의회와 그리고 최대 2개의 임기로 5년 임기로 직접 선출된 대통령이 있고 국가와 종교의 분리와 양심의 자유를 규정하는 헌법을 가진 세속 국가라고 합니다.
무슬림은 인구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지만 영향력 있는 소수의 기독교인이 있고 서아프리카 국가의 종교적 관용은 매우 높으며 일반적으로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이자 규범으로 간주되고 1961년 4월 27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영연방 영역이 되었고 같은 날에 국가 이름이 자치령으로 변경되었고 독립 이후 수십 년 동안 정치적 활동, 변화, 혼란, 인도주의적, 사회경제적 위기의 증가를 목격했으며 이 나라는 1961년 5월 27일에 독립 국가로서 첫 총선을 치렀고 여기에는 약 18개의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두 종족은 템네족과 멘데족이며 국가 인구의 약 2%가 크리 올인으로 해방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서인도인 노예의 후손이고 영어는 학교와 정부에서 사용되는 공식 언어이지만 Krio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로 국가 인구의 97%가 사용한다고 합니다. 천연자원, 특히 다이아몬드 , 금 , 보크사이트 및 알루미늄이 풍부하고 국가는 유엔의 회원국으로 아프리카 연합과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 마노 강 연합, 영연방, IMF, 세계은행, WTO, 아프리카 개발은행 및 이슬람 협력 기구 등에 속해있다고 합니다. 삼림이 4개가 있어서 여기에는 67종의 파충류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 싱가포르 Singapore
싱가포르 공화국, Republic of Singapore
▲국기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의 경제 강국으로 싱가포르 섬과 60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는 싱가포르이다.
국민의 3/4 정도가 중국계이고, 말레이계와 인도계가 나머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용어는 영어·중국어(만다린)·말레이어·타밀어이다. 국민들의 종교는 불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도교·힌두교로 다양하다. 화폐 단위는 싱가포르달러(Singapore dollar/S$)이다. 섬의 2/3 가까이가 해발 15m 미만의 낮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날씨는 덥고 습한 기후이다. 영토의 2%만이 경작 가능한 땅이지만, 경작지의 생산성은 매우 높다.
경제는 주로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에 바탕을 둔 시장 경제가 중심을 이룬다. 100개가 넘는 상업 은행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외국계 은행이다. 아시아 달러 시장의 본사들이 여기에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 가운데 하나이면서, 세계의 주요 정유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조업이 GDP의 1/4 이상을 차지하며 전자장비가 주요 생산품이다.
싱가포르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공화국이다. 국가원수는 대통령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오랫동안 어부들과 해적들이 살았으며, 14세기까지 수마트라인들의 슈리비자야 제국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다.
14세기에 자바의 마자파히트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뒤이어 시암의 아유타야 제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15세기에는 말라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을 통치했고, 뒤이어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1819년 영국의 동인도회사로 넘겨져 해협식민지(말레이 반도의 남부 말라카 해협에 면한 피낭·말라카·싱가포르와 부속 섬들로 이루어진 구영국령 식민지)의 일부가 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영국 식민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인들이 섬을 점령(1942~45)하여 지배했다. 1946년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1959년 내부적으로 완전한 자치권을 얻었고, 1963년 말레이시아의 일부가 되었다가 1965년 주권국가로 독립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ASEAN)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독립 이후 30년 동안 싱가포르를 이끌었던 인물은 초대 총리인 리콴유(李光耀)였다. 그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내 경제 강국이 되었다.
1990년 11월 고촉동(Goh Chok Tong)이 리콴유에 이어 제2대 총리가 되어 싱가포르를 이끌었으며, 2004년 8월에는 리콴유의 장남 리셴룽(Lee Hsien Loong)이 제3대 총리가 된 이래, 2006년, 2011년, 2015년 총선에서 연승을 거두면서 연속하여 내각을 이끌고 있다. 2017년 9월, 전 국회의장이었던 할리마 야콥(Halimah Yacob)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한편 2018년 6월, 미국 백악관은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6월 12일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한때 투마시크(또는 테마세크) 섬으로 알려졌던 싱가포르는 오랫동안 어부와 해적들이 살았으며, 수마트라를 지배하던 슈리비자야 제국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다. 14세기까지 슈리비자야의 속국으로 있다가 14세기에 자바의 마자파히트 제국 지배 아래 들어갔으며, 뒤이어 시암의 아유타야 제국의 손에 떨어졌다. 15세기초에는 말라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인들에게, 뒤이어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지배를 받았다.
1819년 영국령 동인도회사의 행정관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 조호르 군주와의 조약에 따라 싱가포르 항 식민지를 세웠는데, 이 식민지는 영국 동남아시아 식민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832년 싱가포르·피낭·말라카(지금의 멜라카)·라부안으로 이루어진 영국령 말라카 해협 식민지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1867년에는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꾸준히 발전하던 싱가포르 항은 영국이 1842년 홍콩을 획득한 후 인도차이나의 사이공(지금의 호치민 시)과 하이퐁이 발전하고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지금의 인도네시아)에 항구들이 생김에 따라 발전 속도가 늦추어졌으나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증기선이 나타나면서 다시 크게 번영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의 주석과 고무에 대한 수요증가와 함께 말레이 반도의 천연항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이 싱가포르에 큰 해군기지를 세웠는데 이것은 동남아시아 내 영국 세력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1942년 1월 일본이 말레이 반도를 침략해 싱가포르와 영국 주둔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그리고 1945년까지 일본의 점령하에 있다가 1945년 다시 영국으로 넘어갔다. 1946년 해협 식민지가 없어진 후 싱가포르는 따로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1959년 내부적으로 완전한 자치권을 얻었고 1963년 말레이시아의 일부가 되었다가 1965년 주권국가로 독립했다.
그때부터 20세기 후반까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해 1인당 국민소득이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아졌다. 영국은 1971년 싱가포르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싱가포르는 ASEAN 문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독립 이후 30년 동안 국내 및 국제 정치무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였다.
리콴유는 1990년 총리직을 사임한 뒤에도 고촉통 내각에서 선임 장관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며, 그의 장남인 리셴룽이 2004년 제3대 총리가 되면서 싱가포르 정치에 대한 그의 영향력도 지속되었다. 싱가포르의 대통령은 내각수반인 총리에 비해 상징적인 명예직에 머물렀으나, 1991년 헌법이 개정되어 직선제로 바뀌면서 대통령이 주요 공직자와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에는 제8대 대통령으로 첫 여성 대통령인 할리마 야콥이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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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8 독립 50주년 싱가포르의 질주, “국민소득 10만달러도 가능하다”
▲photo 위키피디아
싱가포르 도심에서 남부 해안고속도로를 40분가량 달려 도착한 주롱(裕廊)섬. 주롱섬에 있는 주롱산업단지로 들어가는 길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양손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채취한 후 사진을 촬영하고 임시출입증을 받았다. 자동소총을 어깨에 멘 군인들은 재차 지문과 사진을 대조했다. 또 탑승한 자동차의 트렁크까지 열어 폭발물 유무를 검사했다.
군인들의 까다로운 검사는 주롱섬이 동남아 최대 정유산업단지인 까닭이다.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 말라카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은 대개 주롱섬을 경유한다. 주롱섬에 들어서니 거대한 석유 저장탱크들과 육중한 석유 파이프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옆 주롱항에는 초대형 유조선과 석유시추선들이 즐비하게 도열해 있었다. 주롱섬에 사고라도 터지면 세계 석유 시장이 마비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석유 탱크와 파이프라인들을 지나 주롱섬의 현대건설 현장사무소에 도착했다. 컨테이너 가건물인 현장사무소 입구에는 자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기자와 동행한 현대건설 싱가포르지사의 한 관계자는 “바다 아래 지하갱도에서 다이너마이트로 암반을 깨서 건져올린 자갈더미들”이라며 “저것들이 모두 돈”이라고 했다.
현장사무소에서 파란색 방화복으로 갈아입고 긴 고무장화를 신었다. 안전모를 착용하고 보안경까지 끼고 보니 영락없이 막장 노동자였다. “정전기로 스파크가 튀어 몸에 불이 붙어도 방화복을 입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는 현대건설 현장사무소 관계자의 설명에 약간 움찔했다.
이어 지하 159m 아래 갱도로 내려갔다. 이때 탄 엘리베이터는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강력한 엘리베이터였다. 20t, 320명을 동시에 실을 수 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지하 159m 깊이의 어두컴컴한 갱도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길이 340m, 너비 20m, 높이 27m. 대략 아파트 9층 높이의 지하막장은 두려움을 넘어 경외감까지 자아냈다. 지하갱도 안에서는 방화복을 착용한 방글라데시와 인도 출신의 인부들이 땀을 흘리며 용접 작업을 하고 있었다.
향후 이 지하갱도는 전 세계 유조선들이 싣고 온 시커먼 원유들로 가득 채워진다. 주롱섬 아래 바다에는 이런 터널만 무려 9개가 있다. 현대건설의 이규재 현장사무소장은 “9개 터널에 들어가는 원유량은 모두 147만㎥로, 10만t 규모의 유조선 15대 분량을 동시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양”이라며 “싱가포르의 전체 비축 석유의 대략 10%가량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이 지난 9월 1차 완공한 주롱섬 해저석유비축기지는 동남아 최대 규모의 해저석유비축기지다. 주롱섬 상부 원유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싱가포르 정부는 해저에 지하터널을 파서 원유를 보관키로 결정했다. 현대건설 싱가포르지사 관계자는 “일정 규모 이상이면 지상보다 지하에 보관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사암(沙岩)으로 구성된 퍼석퍼석한 지질에 지하갱도를 뚫고 갱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장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매일 아침 7시5분 막장 앞에 집결한 700~800명의 인부들은 초대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막장으로 내려간다. 이후 주야간 24시간 200개가량 다이너마이트를 암반에 끼운 뒤 터뜨리고 쏟아져나온 자갈들을 끌어내는 작업을 반복한다고 했다. 사암의 갈라진 틈새로 솟구쳐 나오는 해저지하수를 틀어막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해저석유비축기지가 있는 주롱섬을 가진 싱가포르는 정유산업에서만큼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도시국가지만 싱가포르는 미국 휴스턴, 유럽 로테르담의 뒤를 잇는 세계 3위 정유 생산지다. 또 싱가포르는 뉴욕, 런던 등과 함께 세계 3대 원유거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로 들어오는 유조선이 반드시 거쳐가는 동아시아 최대 오일허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건설이 건설한 주롱섬 해저석유비축기지. photo 현대건설
오일머니는 올해로 독립 50주년을 맞는 싱가포르의 경제를 돌리는 주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덕분에 지난 12월 23일 ‘적도 인근의 최대 번화가’라는 싱가포르 오차드로드는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 전체를 성탄절 조명으로 밝힌 채 세계 각국 쇼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중국계와 동남아계 매춘 여성들도 오차드로드의 대형 호텔 앞에서 화려하게 치장하고 남성 여행객들을 공공연히 유혹하고 있었다. ‘도덕국가’ ‘경찰국가’란 옛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독립했을 때만 해도 이같은 경제적 번영을 내다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재 싱가포르는 인구 550만명에 불과하지만 1인당 GDP만 5만4776달러에 달하는 동아시아 제일의 부국(富國)이다. 1인당 소득 5만달러가 넘는데도 지난해 성장률 4.1%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1.9%에 불과하다.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 노동 시장은 완전 고용에 가깝다”고 자랑한다. 지난 11월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는 2015년에도 싱가포르 임금은 5% 정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싱가포르는 북으로는 조호르해협 위의 말레이시아와 남으로는 싱가포르해협 아래의 인도네시아와 같은 지역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샌드위치 신세였다. 1971년 싱가포르의 극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가 싱가포르 주둔 영국군 철수를 강행했을 때는 공포감이 극에 달했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이때 입안된 정책이 싱가포르의 허브화 정책이다. 영국군의 공군기지였던 창이공항을 동남아 최대 허브공항으로 키우고 주롱섬을 동남아 최대 오일허브로 키우는 정책을 입안하고 착착 실천에 옮겨왔다. 싱가포르를 전 세계 중개유통의 메카로 만들어 국가 생존을 도모한 불가피한 생존전략이었다. 게다가 중개유통업은 ‘화상(華商)’들의 주특기였다.
실제 싱가포르가 오일허브로 급부상한 것도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다.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전쟁) 직후 석유값이 급등하자 다른 나라들은 자국 내 원유 수출입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는 석유값이 앙등하는 위기상황에서도 영미계 메이저 정유회사가 싱가포르에 저장해 둔 비축유에 대한 어떠한 추가적 부담도 요구하지 않았다.
리콴유 총리의 이 같은 결정은 일반 시민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대신 싱가포르의 국가신인도는 대폭 상승했다. 이는 석유파동 후 메이저 정유회사들이 싱가포르에 대한 정유정제 부문 투자를 대폭 늘리는 계기가 됐다. 이와 비슷한 결정은 싱가포르의 독립 초기에도 있었다. 싱가포르강이 마리나베이와 합류하는 지점에 서 있는 스탬퍼드 래플스 경(卿)의 동상을 둘러싼 역사적 결정이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래플스 경은 1819년 궁벽한 어촌에 불과하던 말레이반도 최남단 싱가포르의 가능성을 최초로 주목한 서양인이다. 래플스 경은 인도와 중국,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위치에 주목했고 싱가포르를 자유무역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국식민지로부터 벗어나고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독립까지 하자 래플스 경 석상의 철거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리콴유 총리는 이 역시 일축했다. 래플스 경의 동상은 물론 영국식민지 시절 명명됐던 싱가포르의 영어식 도로명과 주소들까지도 고스란히 유지시켰다. 해외투자자들을 겨냥한 리콴유 총리의 이런 결정은 신생독립국 싱가포르를 비관적으로 봤던 서방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투자를 촉진시켰다.
현재 주롱섬에는 엑슨모빌을 비롯해 로열더치셸, BP 등 세계 석유 메이저회사들의 정유공장들이 즐비하다. 국내 최대 정유회사인 SK와 삼성도 주룽섬에서 정유 관련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오일허브화된 싱가포르는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금융업에서도 수위를 달리고 있다. 오일머니를 비롯한 산업자본이 몰려들다 보니 이를 노린 금융기관들까지 한데 몰려들어 온 것. 게다가 싱가포르는 스위스 취리히, 영국 런던, 미국 뉴욕으로 이어지는 세계 금융 시장을 24시간 이어줄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 실제 래플스 경의 석상이 서 있는 싱가포르강 너머로는 전 세계 금융회사의 아시아 지역본부들이 죽 늘어서 있다.
싱가포르의 최대 은행은 화교은행(OCBC)을 비롯해 싱가포르개발은행(DBS), 대화은행(UOB) 등 화교계 은행들과 중국공상은행, 중국은행, 동아은행 등 중국·홍콩계 은행, 홍콩상하이은행(HSBC),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로열스코틀랜드은행(RBS) 등 영국계 은행들의 지역 본부들이 즐비하다. 싱가포르국립대의 신장섭 교수(경제학)는 “금융과 관광 등으로만 일반에 알려진 싱가포르의 제조업 비중은 23%로 전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며 “제조업이 뒷받침되지 않는금융 중심은 허상이라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이러한 매력 때문에 한국의 유명 기업들도 싱가포르에 거의 다 진출해 있다. 주(駐)싱가포르 한국대사관 김완중 총영사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약 200여곳, 상장사만 무려 60곳이다. 외환위기 때 철수했던 국민은행과 기업은행을 제외한 신한·우리·하나·외환·산업은행이 모두 싱가포르에 진출해 있다. 또 국내 기업 주재원들을 위시한 한국 교민만 2만5000여명에 달한다.
특히 국내 대형 건설사는 싱가포르의 공공건설 시장을 싹쓸이할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대건설은 단일 기업으로 싱가포르 최대의 건설 수주 기업이다. 1981년 싱가포르의 인근 바다 매립공사를 시작으로 창이공항 제2터미널, 선텍시티, 마리나스퀘어, 마리나원 등 대형 복합개발사업을 벌여왔다. 현대건설 싱가포르지사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 국토의 6%는 우리가 매립한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싱가포르의 전·현(前·現) 랜드마크인 래플스시티와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을 지어 올린 쌍용건설을 비롯해 삼성물산, 대우건설, SK건설의 입간판도 싱가포르 시내 곳곳에서 보였다.
▲근대 싱가포르 건설자인 래플스 경 동상. photo 이동훈
국내 건설사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싱가포르의 안정된 치안 덕분이기도 하다. 현대건설 싱가포르지사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싱가포르에는 공사현장에 얼씬거리기 마련인 조폭들도 없다고 했다. 이는 싱가포르의 최대 경쟁도시인 홍콩과도 전혀 다른 점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홍콩의 건설현장에는 삼합회(三合會) 등 현지 조폭들이 개입해 공사를 중단시키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외국 기업의 경우 현지 기업 없이 공사를 수행하는 데는 여러 애로점이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치안이 확고한 덕에 공사현장에 조폭들이 얼씬거리는 일이 없어 마음놓고 공사에 전념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강력한 법집행’은 싱가포르 현지 주재원들이 한결같이 칭찬하는 싱가포르의 경쟁력이다. 싱가포르는 마약밀수 등은 사형에 처하고, 특수강도와 강간 등 흉악범죄는 태형을 실시한다. 싱가포르 주재 한국 기업의 한 관계자는 “태형의 경우 기계로 엉덩이를 때리는데 한 번 맞으면 혼절한다”며 “살점이 떨어진 곳에 약을 바르고 새 살이 자라면 다시 치는데 맞는 것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공포”라고 했다. 일부 기업 관계자는 “태형을 한국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 노조가 없는 것도 외국계 기업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싱가포르한인회의 정건진 회장은 “싱가포르에서는 시위하는 것조차 좀처럼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NTUC’라는 노조가 있는데, 중국의 ‘중화총공회’와 같은 사실상 어용노조다. 싱가포르 정부에서 매년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까닭에, 외국계 기업 입장에서도 근로자들과 임금협상 등을 벌일 때 훨씬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또 싱가포르의 낮은 법인세 등 친(親)기업 정책이 외국계 기업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싱가포르에 동남아 총괄 지역본부를 설치하고 동남아 각국은 물론 오세아니아(호주·뉴질랜드)까지 관할시키고 있다. 싱가포르 시내 외곽 파시르판장가의 ‘메이플트리 비즈니스시티’에서 만난 삼성전자 동남아 총괄법인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법인세가 17%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법인세의 경우 호주·태국·필리핀은 30%, 뉴질랜드는 28%, 인도네시아는 25%, 말레이시아는 24%에 달한다. 또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에서는 동남아 및 오세아니아 각국을 매일 연결하는 항공편을 갖고 있어서 싱가포르는 동남아 총괄법인을 꾸리기에 최적지”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싱가포르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인근 국가의 고급 인재를 구하는 것도 쉽다”고 얘기했다.
정정이 불안한 대만·홍콩과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 등 아시아의 나머지 작은 용(龍)들과 달리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도 싱가포르의 장점이다. 현재 싱가포르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리콴유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李顯龍) 총리다. 리콴유 전 총리는 ‘절친’이었던 장징궈(蔣經國) 전 대만 총통이 부친 장제스(蔣介石)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것과 거의 흡사하게 고촉통(吳作棟) 전 총리 등 과도 지도자를 두는 식으로 자신의 장남에게 정권을 넘겼다.
특히 리셴룽 총리가 2010년 세간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입한 카지노 복합리조트는 싱가포르의 새 성장동력이 됐다. 12월 23일 늦은 밤 마리나베이의 매립지에 세운 카지노 복합리조트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은 하늘로 조명을 쏘아대면서 전 세계 도박꾼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박장은 밤 늦은 시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의 김완중 총영사는 “카지노 복합리조트 도입 전인 2009년 890만에 불과했던 외국인 관광객이 올해 1600만명까지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인구 550만명에 불과한 싱가포르가 인구 5000만 한국보다 외국인 관광객을 더 많이 끌어들인 셈.
최근에는 홍콩의 은행들에 예치돼 있던 중국계 자금마저 대거 싱가포르 은행들로 건너오는 중이라고 한다. 홍콩의 ‘우산혁명’ 등으로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일어난 결과다. 이로 인해 과거 홍콩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싱가포르의 금융업 실력은 최근 홍콩과 대등한 수준으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동남아 경제 가치 사슬의 정점에 있는 싱가포르의 번영은 당분간 더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코트라 싱가포르무역관 노인호 관장의 설명이다. 실제 외국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짓거나 인수합병(M&A)을 해도 모두 싱가포르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돈 좀 있다는 동남아의 부호들도 정정이 불안한 자국 대신에 싱가포르에 고급 아파트 한두 채 정도 보유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는 싱가포르의 살인적인 주택 가격을 떠받치는 주된 동력이다.
물론 최근 싱가포르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부익부빈익빈 현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경계할 대목이다. 최근 싱가포르의 한 야당(野黨) 인사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싱가포르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꼬집는 글을 기고하자 이에 반박하는 싱가포르 정부 측 인사가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인 스트레이츠타임스에 반박 기고를 실어 지상(紙上) 공방을 벌인 일도 있었다. 노인호 관장은 “배가 고픈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배가 아픈 것이 문제”라며 “싱가포르 정부가 소득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문제만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싱가포르는 1인당 GDP 10만달러 달성도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출처 | 주간조선 2338호 글 |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 2015.10.24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어떻게 초일류 국가로 만들었나?
▲2006년 5월 18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한국씨티은행 VIP 고객 600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는 리콴유 前싱가포르 총리. 2015년 3월 23일 향년 91세로 타계했다. /조선DB
리콴유, 인재 확보에 전력투구하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은 1983년 8월 14일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대졸 남성들이여, 자신만큼 우수한 아이를 원한다면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아내를 고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 연설은 ‘대결혼논쟁’을 불러 일으켜 이듬 해 선거에서 리콴유가 이끄는 인민행동당의 인기가 12%나 떨어졌다. 그렇게 말한 이유를, 리콴유는 자신의 두 번째 자서전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주1)에서 손수 밝혔다. 그 이유란, ‘싱가포르 대학 졸업자의 50%가 여성인데 이들 중 3분의 2가 결혼을 하지 않고, 다음 세대에 후손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서 내용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리콴유는 또 ‘똑똑한 학생들의 부모는 좋은 교육을 받은 부모’라는 생각에서 “세 명의 자녀를 둔 대졸 여성에게는 세 아이 모두 부모들이 높게 평가하는 가장 좋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고 썼다. 이뿐만이 아니다. 리콴유는 외국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결혼과 국적취득제도를 개선했고, 대졸 남녀 간의 교제활동을 도와주는 ‘사교개발기구’도 설립했다고 썼다. 이처럼 리콴유는 인재 확보에 전력투구했다.
싱가포르는 리콴유가 만든 나라
싱가포르는 리콴유(1923∼2015)가 만든 나라다.주2) 1959년에 초대 수상이 된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싱가포르를 독립 국가로 만들고, 인재를 양성하고,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하고, 경제를 완전 개방하여 해외자본 유치에 국운을 걸었다. 이 글은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춰 리콴유가 도입한 '교육 능력주의'를 이야기한다.
리콴유, ‘교육 능력주의’를 도입하다
리콴유가 실시한 정책 가운데 ‘교육 능력주의’는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일관되게 ‘교육 평등주의’를 실시해왔기 때문이다. ‘교육 능력주의’를 철저하게 실시해온 싱가포르의 교육제도를 보자.
*조기교육
조기교육은 생후 6개월부터 시작되어 5세까지 진행된다. 4세는 유치원 1년생, 5세는 유치원 2년생이다.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교육
초등학교부터는 철저하게 능력 중심이다. 초등학교는 기본 과정 4년과 적응 과정 2년으로 구분된다. 초등학생들은 4학년 말에 모두 국가시험을 치른다. 수학뿐만 아니라 영어, 제2외국어 등 이중 언어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특히 영어와 자신의 출신 종족어를 모국어 수준 이상으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시험 결과에 따라 초등학생들을 모두 3등급으로 구분해 우열반 학급을 편성한다. 우선 상위 60%는 우수 학급으로 이동한다. 이들은 2년 뒤 졸업시험(PSLE)을 칠 수 있다. 여기에 합격해야 중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중위 성적 20%의 학생들은 영어와 자신의 출신 종족어 구사 능력이 조금 부족한 그룹이다. 일단 이들도 2년 더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졸업시험 합격자에게는 중등학교 진학권을 주지만 떨어지면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직업훈련원으로 배치된다. 최하위권 20%에 들어가면 예외 없이 4년 더 초등학교에서 공부한 뒤 바로 직업훈련원으로 가게 된다.
*중등교육
중등교육 기간은 4년인데 초등학교 졸업시험 성적에 따라 상위 성적 6%의 특별이중언어과정(SBC), 중위권 성적 60%의 신속이중언어과정(EBC), 나머지 하위 성적의 보통이중언어과정(NBC)으로 나뉘어 있다. 물론 학기마다 평가를 해서 성적이 올라가면 올라가는 대로, 내려가면 내려가는 대로 움직인다.
중위권 성적 60% 이상 학생들은 졸업하면 중등학교 졸업자격시험을 보지만 하위권인 NBC 학생들은 중등학교 수료시험을 본다. 이 때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은 중등학교 5학년으로 진급하고 이를 수료하면 다시 보통 이상의 학생들이 이미 1년 전에 본 중등학교 졸업자격시험을 거쳐 상급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얻는다. 일종의 패자부활전이다. 그러나 이 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다시 직업훈련원으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
*고등교육
고등교육도 같은 형태다. 중등학교 졸업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2년제 주니어 칼리지로 가는데, 이는 일종의 대학 예비학교의 성격을 갖는다. 성적이 중간에 있는 학생은 3년제 전문 기술교육기관인 폴리텍으로 간다.
고등교육 수료자는 졸업할 때 졸업자격시험을 보는데, 성적이 우수하면 3년 내지 5년 과정(의과대학의 경우)의 대학에 진학한다. 싱가포르에는 국립싱가포르대(SNU), 난양공대(NTU), 싱가포르 경영대(SMU), 그리고 국립교육원(NIE) 4개 대학이 있다. 이들 대학은 모두 수준이 세계적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2014∼15년 세계 100대 대학에 국립싱가포르대가 25위, 난양공대가 61위. 한국은 서울대가 50위, KAIST가 52위.
리콴유, ‘교육 능력주의’로 싱가포르를 초일류 국가로 만들다
이처럼 싱가포르 교육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철저하게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고, 자체적으로 그런 역량이 없다면 세계 끝까지라도 가서 인재를 데려오겠다는 리콴유의 통치철학이 가져온 결과다. 이러한 인재정책의 결과 싱가포르는 현재 성별과 국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라가 되어 있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싱가포르의 대학에서 교수가 될 수 있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미국의 MIT, 존스홉킨스, 와튼 스쿨, 독일의 뮌헨 공대 등 10여 개의 세계 명문 대학이 분교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크기의 1.1배에 지나지 않은 이 작은 나라에 외국 명문대 분교가 10여 개나 있다니! 우리나라는 인천 송도에 외국인 학교를 유치하려 했을 때 국수주의자들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던가!
리콴유의 비전은 이루어졌다. 싱가포르는 연평균 성장률이 1971∼2013년간 7.2%로, 같은 기간 9.1%의 중국 다음으로 높다(한국은 7.1%). 싱가포르는 고도성장의 결과 1인당 국민소득이 1989년에 1만 달러, 1994년에 2만 달러, 2006년에 3만 달러, 2010년에 4만 달러, 2011년에 5만 달러(2013년 현재 53,363달러)에 이른 선진국이다.
싱가포르는 IMD가 평가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2014년에 60개국 가운데 미국, 스위스에 이어 3위다. 대부분의 연도에서 싱가포르는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왔다. 싱가포르는 프레이저 인스티튜트가 평가한 경제자유지수(이는 시장경제 활성화 수준을 나타냄) 순위에서 2013년에 157개국 가운데 홍콩에 이어 2위인데, 홍콩은 국가가 아니므로 사실상 1위다. 대부분의 연도에서 싱가포르는 2∼3위 내에 든다. 서울 크기의 1.1배 정도에 지나지 않은 작은 나라 싱가포르는 오늘날 세계 초일류 국가다. ‘교육 능력주의’가 가져온 결과다. 싱가포르는 50여 년 동안 '교육 평등주의'에 매달려온 한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나라다.
각주
주1) 리콴유(2000), From the Third World to First. (류지호 역(2001), 『내가 걸어온 일류 국가의 길』, 문학사상사.)
주 2) 김성진(2007), 『리콴유 작지만 강한 싱가포르 건설을 위해』, 살림. 박동운(2007), 『희망한국 이야기 더 좋은 대한민국 가꾸기』, FKI미디어. 박동운(2008), 『CEO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 三英社.
주3) 싱가포르의 교육제도는 다음 저서에 의존한 것임을 밝힌다. 김성진(2007), 『리콴유 작지만 강한 싱가포르 건설을 위해』, 살림.
주간조선 글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2015년 12월 16일 싱가포르, 리콴유 시대를 넘어
▲ 지난 8월 9일 열린 싱가포르 건국 50주년 국경일 행사 모습.
서정하 / 駐싱가포르 대사
2015년 청양의 해도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는 싱가포르 국민에게 매우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국부 리콴유 전 총리가 서거했으며, 건국 5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당초 내년으로 예상되었던 13대 총선도 앞당겨 치러졌다. 리 전 총리 없이 치른 첫 총선이었다.
리셴룽 총리가 애도 성명문에서 언급했듯이 싱가포르 국민에게 리콴유 전 총리는 싱가포르 그 자체였다.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할 당시만 해도 싱가포르는 국가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리콴유 전 총리의 뛰어난 리더십은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비즈니스 허브로 성장시켰고, 싱가포르는 반세기 만에 1인당 국민소득 5만3000달러의 선진국이 되었다. 리 전 총리가 이룬 업적은 싱가포르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존경을 받았다. 많은 싱가포르인이 리 전 총리와 함께 건국 50주년을 기념하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폐렴으로 3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싱가포르 전역이 깊은 슬픔에 빠졌고, 전 세계가 위대한 지도자의 서거를 애도했다.
국부(國父) 서거에 대한 추모 분위기는 5월까지 이어졌지만, 싱가포르인들은 곧 슬픔을 뒤로하고 다양한 행사로 건국 50주년을 자축했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8월 9일 열린 국경일 행사였다. 올해 국경일 행사는 예년과 다르게 1966년 첫 국경일 행사를 가졌던 파당(Padang)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비록 리콴유 전 총리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와 함께 싱가포르의 발전을 이끈 선대 장관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성대한 에어쇼, 열병식, 축하 퍼포먼스, 불꽃놀이가 축제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흐린 날씨 탓에 1년 넘게 공들여 준비한 축제가 방해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필자 옆에 앉아있던 한 싱가포르인은 날씨마저 싱가포르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이라 말하며 기뻐했다.
정부와 국민은 건국 50주년을 맞아 국가 번영을 위해 힘쓴 건국세대들의 희생과 노고를 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연중 싱가포르 곳곳에는 건국세대에게 감사를 표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외에도 ‘하나의 공동체(One People)’라는 모토 아래 싱가포르인들의 결속을 다지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렸다. 이러한 행사들은 싱가포르의 지난 50년 성과를 재조명하고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리콴유 전 총리 없이 맞이한 건국 50주년은 싱가포르가 이제 리콴유 시대를 넘어 새로운 발전 국면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올해는 싱가포르의 과거 5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50년을 구상하는 중요한 해였다.
리셴룽 총리는 지난 6월 싱가포르경영대에서 가진 강연에서 싱가포르의 향후 10년 과제로 저성장을, 25년 과제로 인구 문제를, 50년 과제로 국민 정체성 유지를 꼽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논했다. 싱가포르가 직면할 중장기적 문제를 냉철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향을 미리 모색하는 점에서 싱가포르 지도자들의 유비무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최근 몇 년간 저성장 극복을 위해 생산성 향상 제고에 주력해 왔으며, 저출산·고령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또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로 스마트 네이션(Smart Nation) 구축을 국가 비전으로 선포하고 스마트 네이션 플랫폼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싱가포르는 여러모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이다. 싱가포르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금융·원유거래·마이스(MICE) 산업은 현재 우리가 육성하고자 하는 주력 산업이며, 싱가포르의 지식기반경제는 우리의 창조경제 정책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가 고민하고 있는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한국이 당면한 도전과제이기도 하다. 올해 한·싱 수교 40주년을 계기로 양국이 번영의 미래를 함께 열어갈 동반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서정하(61) △서울대 정치학과 졸 △제13회 외무고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부장 △주헝가리 대사 △서울시 국제관계대사 △주싱가포르 대사
문화일보
◆ 2017년 07월 07일 리콴유 ‘3남매의 亂’ 점입가경… 권력투쟁 넘어 國格 훼손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3남매가 권력 갈등을 일으킨 불씨가 된 옥슬리가 38번지 소재 리 전 총리의 생전 자택. 자료사진
‘자택처리 갈등’ 일파만파
부(富)와 질서의 상징인 싱가포르에서 리콴유(李光耀·2015년 별세) 전 총리의 세 자녀가 ‘형제의 난’을 벌이고 있다. 리 전 총리의 낡은 집을 놓고 시작된 3남매의 전쟁(戰爭)이, 권력투쟁 성격의 정쟁(政爭)으로 번지면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 전 총리와 싱가포르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는 대내외적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페이스북 정쟁
사건은 지난달 14일 발생했다. 리 전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李顯龍·65) 현 총리를 비판하는 성명을 여동생인 리웨이링(李瑋玲·62) 싱가포르 국립 뇌신경의학원 원장과 남동생 리셴양(李顯陽·60) 싱가포르 민간항공국 이사회 의장이 페이스북에 올리면서다.
이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리 총리가 집을 헐어버리라는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이 집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리 총리가 ‘사후에 자택을 허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자신의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려는 ‘왕조 정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부친 별세 이후 우리는 리 총리가 동원한 정부기관에 의해 위협을 받아왔다”며 “싱가포르를 떠나고 싶을 정도”라고 밝혔다.
해외 휴가 중이던 리 총리는 15일 4000자에 육박하는 장문의 성명을 내고 두 동생이 부친의 유훈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두 동생의 성명으로 나라가 시끄러워지자 페이스북을 통해 “2013년 12월 이 같은 유언을 남길 당시 부친은 조언을 받기 힘든 상황에서 제수(弟嫂) 측 변호사들 앞에서 15분 만에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항변했다. 남동생 리셴양의 아내이자 유명 로펌 대표인 리수엣펀(59)이 리 전 총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유언장에 이 같은 내용을 넣었다는 것이다.
# 리콴유의 낡은 집
문제의 핵심에 있는 리 전 총리의 가옥은 싱가포르 옥슬리 거리 38번지에 있는 낡은 집이다. 그는 이곳에서 1945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70년을 살았다. 양측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리 전 총리가 “집이 너무 오래돼 벽이 갈라지는 판이니, 없어져도 자식들이 서운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생전에 집을 허물어 버리라고 했다는 유언이다.
그러나 리 총리가 아버지의 유훈을 거슬러 집을 유적지로 만들고, 이를 우상화하는 방식으로 ‘리콴유 왕조’를 만들려 한다고 리셴양과 리웨이링은 주장한다. 나아가 리 총리의 아들인 리훙이(李鴻毅·30)에게 권좌를 넘겨주려 한다는 것이다.
2004년 총리에 취임한 이후 지난 10여 년간 국정을 무난하게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은 리셴룽은 지난 3일부터 이틀간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 형식의 토론회에서 형제들이 제기한 각종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이틀에 걸친 토론회가 끝난 뒤 리 총리는 “의혹이 대체로 해소됐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동생들은 또다시 페이스북 성명을 통해 리 총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 본질은 ‘권력투쟁’
리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지난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싱가포르의 2대 총리와 여당인 인민행동당 총서기를 지낸 고촉통(吳作棟·76) 전 총리는 4일 의회에 나와 이번 싸움의 본질이 유산이나 돈이 아닌 ‘권력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싸움의 전면에 등장한 ‘리콴유 자택 처리 문제’가 회화작품에서 나체의 국부를 가리는 데 쓰이는 ‘무화과 잎’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리셴양·리웨이링 남매를 겨냥해 “그들은 정부와 국민이 감내해야 할 엄청난 손실을 무시한 채 리 총리를 낙마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리 씨 형제들이 아버지의 명성과 유산을 낭비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가족의 문제지만, 자기파괴 과정에서 국가가 무너진다면 이는 공공의 문제”라며 “국민은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고 경고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집 처분을 둘러싼 갈등은 장남인 리 총리의 권력 독점과 세습 우려에 대한 형제들의 반발이 본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리웨이링은 “리 총리 부부가 아들 리훙이를 데리고 리콴유의 후광이 깃들어 있는 집에 들어가 살면서 3대 세습을 꾀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리 총리는 “아들을 위한 정치적 야망이라는 주장은 낭설”이라고 반박하면서도 법적 조치를 취하진 않고 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
◇첫 여성 대통령
▲싱가포르 첫 여성 대통령 할리마 야곱 17.09.13
◆볼거리
▼뮤지엄
▲레드닷 다자인 뮤지엄
▼마리나베이
▲싱가포르 포뮬러1 그랑프리가 열릴 마리나베이 거리의 야경 1500 여개의 조명등이 설치,야간경기로 열린다
▲가든수 바이다 베이 - 하늘에서 바라본 동그란 돔 모양의 건축물
▲마리나베이가 짙은 연무로 뒤덮여 있다. 1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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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공항
▲창이공항에 1216개의 물방울 형태 구리로 만든 초대형 설치 예술품 '움직이는 비' 12.7.4.
◆일상
▲준법 국가 싱가포르 44년 만에 폭동 - 13. 12. 8. 인도인 노동자가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아시아계 노동자 400여명이 폭동
▲공중정원 산책길
▲금융지구에 설치된 20 -50미터의 슈퍼트리와 연결 사람들이 다니도록 만든 스카이웨이
▲사자상
▲신년소원 풍선 - 12.12.17.
▲암흑 - 인네의 산불 여파
▲크레인 댄스
▲허공 풀장- 스카이 해비태트의 세일즈포인트. 38층 높이의 건물 옥상에 풀장 설치
▲홍비오강 축제에서 용춤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