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문화일보) 2022-04/ 04월 01일(금) 최욱과 ‘사유의 방’ - 04월 29일(금) 현봉 스님의 ‘正見’
오후여담(문화일보) 2022-04/
04월 01일(금) 최욱과 ‘사유의 방’

김종호 논설고문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 국보인 금동반가사유상(金銅半跏思惟像) 2점을 상설 전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입구 벽에 걸린 글귀다. 진입로가 ‘어둠’을 통과하도록 그 방을 설계한 건축가 최욱(59)은 별명이 수도승(修道僧)이다. 그는 “완벽한 조각인 두 반가사유상이 글로벌 슈퍼스타가 되려면, 한국 젊은 세대부터 즐겨야 한다. 고루한 전통이 아니라, 그들의 감수성을 훅 파고들 수 있는 ‘쿨’한 전통이 뭘까를 고심했다”고 한다. “서양의 대표적 시각 체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적용된 일점투시(一點透視) 원근법이다. ‘사유의 방’에선 그걸 깨고 싶었다”고 했다. 두 불상(佛像)의 시선을 틀어지게 배치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게 했다. 경북 경주 불국사에 나란히 선 다보탑·석가탑의 감성도 옮겨 담았다.
그는 “한국 건축미는 건물·정원·담장이 각기 개성을 가진 채 섞여, 독창적 아름다움의 경쟁력을 지닌다. 계산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병치(竝置)의 아름다움이다”라고 한다. 소박한 한옥 마당의 크기로 구상한 ‘사유의 방’ 길이를 24m로 만든 이유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에 소극장 연극을 본 기억이 났다. 맨눈으로 관객이 배우를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거리이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머금고 있는 너그럽고 오묘한 천 년의 미소’를 띤 반가사유상을 보며 젖어드는 생각이나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우주에 나 홀로 있다는 메시지 같아 쓸쓸함과 허전함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최욱은 “그럴 수도 있다. 스스로 느끼고, 대화하는 공간이다. 그것이 종교에서 추구하는 본질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두 반가사유상도, 그 방도 모두 고요 속에서 생명의 힘과 예술의 살아 숨 쉬는 가치를 가슴 가득 더 깊고, 크게 느끼게 해준다.
‘거미는 자연의 건축가’라고 믿는 그는 거미줄에서 창작의 영감(靈感)을 얻는다고 한다. 그런 그가 “가장 좋은 공간은 눈을 감았을 때 기분 좋은 곳”이라고 하는 이유도, ‘사유의 방’에 가면 누구든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닥불도, 피운 장작의 각도에 따라 불꽃 모양이 달라진다.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만 달라지면, 인생의 빛깔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취지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04월 04일 박근혜 대통령과 언론

이신우 논설고문
1814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실각했다. 그는 퇴위당한 후 엘바 섬으로 유배됐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나폴레옹에게 온갖 독설과 조롱을 퍼부었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이 부활한 부르봉 왕조에 실망하는 데는 9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1815년 3월 1일 프랑스 본토에 상륙했고 곧바로 파리로 진격했다. 9일자 1면에 ‘식인귀, 소굴에서 탈출’이라고 제목을 달았던 언론은 11일 ‘호랑이’, 이틀 후에는 ‘나폴레옹 황제’로 이름을 바꾸었다. 22일자에는 마침내 ‘폐하께옵서 튀일리 궁전에 납시었다’고 묘사했다.
지난해 12월 25일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안보 위기의 근본 원인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인사 정책에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안보를 책임지는 주요 직책에 연예계 지인과 가족들을 임명했다면서 그들이 차지한 직책만 30개에 달한다고 했다. 심지어 라줌코우 전 하원의장의 말을 인용, “(젤렌스키 정권이 초래한 안보 위기를 겨냥) 우리는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 왔는데 결과적으로 공포 영화를 보게 됐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함께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젤렌스키였다. 그는 미국의 망명 정부 수립 제안을 거부하고 제1선에서 전쟁을 이끌며 우크라이나 국민을 하나로 결집하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의 90% 이상이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일부 언론의 악의적 보도였다. 근거는 없으면서 루머와 익명의 뒤에 숨은 소설 같은 주장이 춤을 췄다. ‘대통령이 무속에 빠졌다’ ‘청와대 마약류 논란’ ‘세월호 7시간, 굿판 벌임, 정윤회와 밀회’ ‘(청와대) 섹스 관련 동영상’ 등의 허위 보도가 쏟아졌다. 태블릿PC의 진실은 여전히 암매장당한 채다. 물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당사자 책임이 크다. 비선(秘線)을 만들고 감추는 바람에 문제를 키웠다. 그렇지만 언론도 당시 보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NYT는 최근 “젤렌스키의 노력이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신앙고백을 했다. 이런 와중에 박 전 대통령은 사저로 돌아갔다. 한국 언론도 반성할 부분은 반성해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04-05 “전염력 더 센 XE 변이”

박민 논설위원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현금으로 지급되며 지출 후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검찰, 경찰, 국세청, 국회 등이 사용해 ‘묻지마 예산’ ‘권력자 쌈짓돈’으로도 불렸다.
국정원장 국고횡령 사건의 재판 기록 등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특활비는 연간 120억 원대로, 이 중 60억 원이 대통령에게 현금으로 전달됐다. 대통령은 한 달에 5억 원 정도인 특활비를 금일봉이나 전별금 등으로 사용했다. 나머지 60억 원은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비서진에게 격려금으로 지급됐다. 급여일에 비서관에게는 70만 원, 행정관과 직원에게는 직급에 따라 30만∼70만 원이 급여와 함께 계좌로 입금됐다.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에게는 1000만∼1200만 원, 수석비서관급에게는 500만 원이 현금으로 지급됐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달 31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 연평균 특활비가 96억5000만 원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비슷하게 사용했다면 문 대통령에게 지급된 현금은 연평균 36억 원, 월 3억 원 정도다. 비서실과 안보실의 특활비는 사실상 고정비로 60억 원이 그대로 지출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에게 지급된 현금의 사용 내역은 알려진 게 없다. 법원이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청와대는 ‘국가안보와 국익을 해할 수 있다’며 항소했다.
국회의 경우, 2015년 기준 83억여 원으로 국회의장과 부의장, 원내대표, 상임위원장, 사무총장 등 39명에게 매월 일정 금액이 지급됐다. 상임위원장과 특별위원장은 600만∼700만 원, 원내대표는 3000만∼4000만 원이 지급됐고 국회의장은 규모가 더 크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당 대표 경선 기탁금을 운영위원장 재직 시 모아둔 특활비로 충당했다고 주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출신의 전직 의원은 자녀 유학비로 사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활비를 쓰거나 챙기지 않으면 바보가 될 판이다. 이런 특활비는 모두 없애거나 양성화하고, 말 그대로 국익을 위한 공작 등 불가피한 ‘특별활동’으로 용처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할 때다.
04월 06일 뜨는 G7, 지는 G20

이미숙 논설위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1973년 오일 위기를 계기로 만들어진 선진산업국가 정상 모임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등 7개국이 매년 돌아가며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글로벌 현안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단합을 과시해 왔다. 러시아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초대로 1998년 정회원국이 됐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경제력은 미약했고, 민주주의도 혼란 상태였지만 냉전 시대 소련의 위상을 감안해 멤버로 받아들이면서 G7은 G8로 확대됐다. 덩달아 러시아의 위상은 올라갔다. 그러나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크름(크림)반도를 장악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러시아 축출을 주도, 다시 G7이 됐다.
G20 정상회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주도로 신설됐다. 앞서 G8 재무장관들은 주요 신흥시장국이 참여하는 G20 재무장관회의를 1999년부터 개최해 왔는데 미국이 금융위기 대응 차원에서 정상회의체로 격상한 것이다. G20 정상회의는 2008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 개최된 후 영국, 캐나다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0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려 주목을 받았다. G20 신설 후 G7은 빛을 잃는 기세가 역력했다. 2010년 일본을 넘어서 G2로 올라선 중국이 G20 정상회의 정식 멤버로 참여하면서 더 힘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후 G20은 빛을 잃는 형국이다. G7은 러시아 제재를 주도하며 자유 진영의 구심점이 됐지만, 독재국가들이 섞여 있는 G20은 분열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푸틴을 “전범” “학살자”로 비판하면서 G20에서 러시아를 퇴출하자고 주장했지만, 올해 개최국인 인도네시아는 러시아에 초청장을 보내겠다는 입장이다. 2014년 러시아를 쫓아냈던 G7의 단결력을 G20에선 찾기 힘든 것이다. 유엔은 러시아가 아닌 푸틴을 배제하자는 중재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이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을 보면 G7 등 자유 진영은 공산당 독재국과 ‘전범국’ 정상이 참여하는 G20에 열의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G20 정상회의는 사실상 붕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04월 07일 靑의 ‘프랑스 국적’ 한국인

이현종 논설위원
지난 2월 말 러시아 대표단과 협상을 벌인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데니스 키레예프가 간첩 혐의로 체포돼 총살됐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키레예프가 ‘특별임무’를 수행하던 중 숨졌다고 보도, 스파이였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키레예프는 2010∼2014년 우크라이나 국영 저축은행의 이사회 부의장을 지냈고, 2006∼2012년 국립수출입은행의 감독이사회 위원을 맡았다.
2017년에는 러시아 대통령의 집무실인 크렘린궁에 근무한 올레크 스몰렌코프가 미국이 심어놓은 중앙정보국(CIA) 스파이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스몰렌코프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등 서기관 직책으로 주미 러시아대사관에 일했던 인물로 근무 당시 CIA에 포섭됐다고 한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스몰렌코프는 실제로 대통령 행정실에서 일한 바 있다. 다만, 그는 몇 년 전 내부 명령에 따라 해고됐다”며 “그가 맡았던 직책 역시 고위급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스몰렌코프가 여행 중 실종된 것으로 가장해 미국으로 데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냉전 종식 이후 옛 공산권 문서로 스파이가 발각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비서 귄터 기욤이 동독 간첩이고, 동독이 서독 요인들의 여비서를 미남계로 포섭했으며, 최소 2만∼3만 명의 스파이가 활동했음이 밝혀졌다.
청와대는 김정숙 여사의 단골 디자이너 딸 A 씨가 지난 2017년부터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소속 6급 상당의 행정 요원으로 근무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 직원이 프랑스 국적자라고 한다. 유명 디자이너인 양해일 씨의 딸인 이 직원은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김 여사 해외순방 때도 프랑스 여권을 가지고 갔다. 국가공무원법 제26조 등에 따르면 외국 국적자나 복수 국적자는 국가의 존립과 헌법 기본 질서 유지를 위한 국가 안보 분야,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 이익을 해하게 되는 보안·기밀 분야 등에 임용이 제한될 수 있다.
청와대는 김 여사의 지인으로 채용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외국인이 권부 중의 권부인 청와대 관저에서 근무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각종 정보는 물론 대통령 부부의 사사로운 일상까지 다 알 수 있는 위치다. 청와대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누가 믿겠는가.
04월 08일(금) 중·러 종주국 다툼

이신우 논설고문
얼마 전 국내에서도 출간된 ‘마오쩌둥 평전’(저자 알렉산더 판초프)은 옛 소련의 방대한 기밀문서를 토대로 마오의 리더십을 분석한 책이다. 이에 따르면 마오는 스탈린의 꼭두각시였을 뿐이다. 저자는 “마오의 6·25전쟁 참전 결정은 크렘린의 두목(스탈린)에게 중국 지도자가 헌신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계산”이었다고 설명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은 공산당 종주국인 옛 소련의 충성스러운 부하였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 서로의 입장은 크게 달라진다. 경제 정책에서 실패한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최근 러시아의 거의 10배에 달한다. 경제·기술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그럼 이 같은 정세 변화에 러시아 지도층, 특히 푸틴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중국의 우위를 인정하긴커녕 놀랍게도 러시아 생활권의 일부로 취급할 뿐이다. 푸틴의 정신적 스승 겸 국제정치 브레인인 알렉산드르 두긴은 저서 ‘지정학의 기초’에서 ‘유라시아 구상’을 위해 중국은 해체돼야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만주와 신장(新疆)위구르, 티베트, 몽골은 러시아 신제국의 보호령이 돼야 마땅하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크름(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의 병합을 서두른 것도 두긴이 “독립국가 우크라이나는 극도로 위험하고, 독일은 러시아 자원 의존도를 심화시켜야 한다”고 한 대목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푸틴과 두긴은 우크라이나에서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난다. 3∼4일이면 종료될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 점령 시도가 갈수록 진창에 빠져든 모양새다. 세계 2위라던 군사무기 체계도 핵을 빼면 완전히 ‘뻥’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나라 경제를 지탱해야 할 산업 시스템은 기술 부족과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로 공장 문까지 닫아야 할 처지다. 수입해야 할 첨단 반도체들이 끊기면서 탱크나 미사일 등의 추가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지경이라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나마 남아 있는 우방국인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러시아 지도부야말로 중국 해체의 욕심은커녕 ‘중국 생활권’으로 편입돼 가는 자국의 처지를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04월 11일(월) 경기지사史

이도운 논설위원
경기도를 관장하는 관료는 고려 때 처음 등장한다. 전국 5도를 각각 관할하는 안찰사. 조선 시대에는 전국 8도로 바뀌면서 경기도 등에 관찰사가 임명됐고, 이 제도가 대한제국까지 이어졌다. 경기도 지사라는 직함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등장했다. 일본 총독부는 1910년 10월 1일 오카야마현(縣) 지사였던 히가키 나오스케를 경기도 장관에 임명했다. 1919년 장관 직함이 지사로 바뀌었다. 이후 1945년까지 16명의 일본인 지사가 임명됐다. 1945년 8월 미 군정이 들어서면서 미국에 유학했던 구자옥이 한 달 남짓 경기도지사를 맡았지만, 이후 윌리엄 마이어스 등 미 육군 소령·중령이 그 자리를 승계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경기도지사도 임명됐는데, 초대 지사에는 구자옥이 다시 낙점됐다. 이후 1960년까지 7명의 관선 지사가 임명됐고, 1960년 제2공화국에서는 민선으로 바뀌어 신광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의 할아버지다. 제3공화국 이후 경기지사는 다시 관선으로 바뀌었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를 거치며 9대부터 28대까지 20명의 경기지사가 임명됐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경기지사 선거도 재개됐다. 경기지사 선거는 서울시장 선거에 버금가는 관심사였다. 경기도민은 서울시장 못지않은 ‘거물급’ 지사를 원한 듯, 고위공직자 출신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줄줄이 당선됐다. 1995년에는 ‘깜짝 놀랄 젊은 후보’로 지목됐던 민주자유당 이인제 의원이 당선됐고, 1997년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 임창열·손학규·김문수·남경필·이재명이 당선됐는데, 임창열 말고는 모두 대선에 도전했다. 2기 민선 지사 6명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의 임창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속에 선거를 치른 이재명을 제외하면 국민의힘 계열 후보가 당선됐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5%포인트 앞섰지만, 경기도가 진보 세력에 유리한 지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윤심(윤석열 마음)·이심(이재명 마음)에 박심(박근혜 마음)을 받았다는 후보들이 각축 중이다. 결국 경기도 민심을 얻는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04월 12일 듀엣 어니언스

김종호 논설고문
‘먼 곳에서 흘러온/ 초저녁별 하나가/ 느티나무 가지 위에/ 나를 보고 멈추면/ 오늘도 붓대 들어/ 쓰다가 덮고 나서/ 느티나무 가지 위에/ 지난 꿈을 새긴다’. 한국 포크 음악계의 대표적 남성 듀엣이던, ‘양파들’이라는 의미의 어니언스(Onions)가 1973년 발표한 정규 앨범 제1집 수록곡 ‘초저녁별’의 시작 부분이다. 이수영(71) 작사·작곡이다.
어니언스는 임창제가 이수영·윤혜영과 1972년 혼성 트리오로 결성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윤혜영이 나갔다. 황해도에서 1948년 태어난 임창제는 6·25전쟁 때 모친 등에 업혀 피란해 내려왔다. 초등학교 입학 후 전학을 다니던 과정에, 나이가 너무 많다며 받아주지 않아 ‘1951년 출생’으로 호적을 바꿨다. 어니언스는 활동 2년 만에 이수영의 사정으로 해체했지만, 서정적인 명곡들을 매혹적 화음으로 표현해 당시 청춘들의 가슴에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게 했다.
1974년 제2집의 임창제 작사·작곡인 ‘그리움 찾아’는 이렇게 시작한다. ‘황혼에 물들어 시들은 꽃잎 하나 물 위에 띄우고 눈물짓는다/ 나 멀리 떠나갈래 그리움 찾아서 갈래 저 멀리 떠나고파’. 그 앨범엔 김미선 작사, 임창제 작곡인 ‘돌에 핀 꽃’도 있다. ‘떨어지는 꽃잎을 아쉬워하는/ 우∼ 우∼ 나는 너를 위해 돌에 핀 꽃이런가/ 실바람 타고 올까, 꽃 구름 타고 올까/ 차가운 돌에 피는 외로운 꽃/ 이름 모를 꽃내음 쉬어가는 나비처럼’ 하는. 이수영 작사·작곡인 또 다른 명곡 ‘저 별과 달을’의 한 대목은 ‘어두운 밤 구름 위에 저 달이 뜨면/ 괜시리 날 찾아와 울리고 가네/그 누가 만들었나 저 별과 달을 / 고요한 밤이 되면 살며시 찾아와/ 님 그리워하는 맘 알아나 주는 듯이’ 한다.
지금도 찾아 듣거나 따라 부르며 가슴속에 감성의 물결을 일렁이게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어니언스 대표곡 중의 하나는 임창제가 만든 ‘편지’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 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멍 뚫린 네 가슴에 서러움이 흐르는’ 하는 노래로, 생명력이 여전하다. 어니언스 LP음반들이 요즘 중고품으로 인기 속에 거래되기도 하는 배경이다. 따뜻한 봄이 더 푸르러지면서, 맑은 음색의 임창제·이수영이 함께 꾸미는 공연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04월 13일 임대차3법 ‘2차 대란’

문희수 논설위원
우려했던 대로다. 전세 기간을 한 차례 2년 연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제, 인상률을 5% 이내로 묶는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 임대차 3법 얘기다. 세입자 보호를 표방했지만 전셋값을 오히려 더 올려 서민 고통을 키운 재앙이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의 최근 조사 결과가 이를 확인해 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올 3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40.6% 올랐다. 그런데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시행됐던 2020년 7월 이후 1년 7개월간의 상승률이 27.33%다. 법 시행 전 3년 2개월간 상승률 10.45%의 두 배를 넘는다. 임대차 3법이 전·월세 대란을 불렀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오는 8월 이후 2차 대란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올 8월부터는 2년의 계약갱신청구권 시한이 속속 끝나기 때문에 5% 상한이 적용되지 않는 신규 계약이 가능해져 그동안 눌려 있던 전셋값이 한 번에 4년 치나 오를 수 있어서다. 더구나 매매가 대비 전세 보증금 비율인 전세가율이 크게 낮은 상태다. 전셋값이 급등했지만 집값 상승 폭보다는 작아 벌어진 현상이다.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49.59%다. 2017년 5월 67.80%에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강북 지역은 60% 수준에 근접해 있는 반면, 집값이 치솟은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지역과 용산구 등은 45∼46% 정도로 낮아 그만큼 전셋값이 급등할 여지가 더 크다.
임대차 3법의 역습이 벌어질 판이다. 가뜩이나 전·월세를 구하기도 힘든데 가격이 또 급등하면 이중 가격, 전세의 월세화, 수도권 외곽 대이동 같은 2차 대란이 재연될지 모른다. 문 정권이 시장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가격을 왜곡시킨 결과다. 윤석열 새 정부는 임대차 3법을 폐지 또는 축소할 예정이지만, 국회 의석수가 압도적인 더불어민주당 동의 없이는 법을 못 고쳐 적용 대상 축소, 임대료 5% 이내 인상 때 인센티브 부여 등 우회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임대차 3법 대못을 박았던 민주당은 아직도 신규 계약까지 규제를 확대하자는 소리나 하면서 하반기 동향을 지켜보겠다고 한다. 2차 대란이 벌어져도 올 8월 이후니 새 정부에 책임을 전가할 모양이다. 이래저래 서민만 고달프게 생겼다.
04월 14일 한덕수와 국민정서법

박민 논설위원
인간의 욕망은 진화한다. 꼭 10년 전인 2012년 4월 24일 같은 주제로 칼럼을 썼다. 언론인을 거쳐 이명박 정부 최고 실세로 부상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검찰 출두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장 원초적인 욕망은 금전욕이다. 1등 당첨 확률이 800만 분의 1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집 근처 로또 명당에는 매일 100m 이상 줄이 이어진다. 중소기업으로 탄탄한 부를 일군 사람 중에는 권력에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 부처 실무자급 공무원을 만나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다 보면 ‘더러워서 금배지라도 달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선거에 나가 당선되면 한동안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기분이지만 곧 허전함이 밀려온다. 임기가 끝나가는데 언론에 이름 한 번 나온 적이 없으면 재선을 위해서라도 명예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욕망이 이처럼 금전욕-권력욕-명예욕 순으로 진화하면 문제가 없다. 선거에서 당선돼 권력을 쥐거나 이름을 날려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지역사회나 국가에 기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욕망이 역순으로 퇴화할 때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과 같이 권력을 쥔 사람이 돈을 탐하면 뇌물죄로 처벌받는다. 학자, 언론인, 종교인과 같이 명예를 선택한 사람이 권력이나 돈에 욕심을 부리면 변호사법 위반이나 알선수재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현직에서 물러나 권력이나 돈을 추구하면 전관예우나 폴리페서 등의 논란은 있겠지만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문제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같이 공직에서 퇴임해 돈을 벌다 다시 공직을 맡게 되는 경우다. 금전욕을 충족시킬 당시는 민간인 신분이어서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다시 공직을 맡게 된 만큼 돈을 버는 과정에서 불법·탈법이 없었는지, 향후 공무 수행 과정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없는지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합법적으로 돈을 벌었다면 액수가 크다는 것만으로 문제 제기를 해선 안 된다. 그러나 3가지 욕망 중 한 가지도 충족하지 못한 시민들이 돈과 권력과 명예를 모두 움켜쥔 공직자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형법보다 무서운 것이 ‘국민 정서’법이다.
04월 15일 일본 경제 ‘태양은 저무나’

이신우 논설고문
‘일본 경제 태양은 저무나’. 최근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1980년대만 해도 이런 표현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당시 일본 경제는 세계를 진동케 했다. 일본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지켜보던 미국 하버드대의 에즈라 보걸 교수는 ‘재팬 애즈 넘버원’이라는 책을 저술,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일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경제전문가들이 일본 퇴조의 증표로 삼는 것은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던 일본 엔화의 가치 절하와 경상수지 적자 추이다. 특히, 경상 적자는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일본은 수십 년간 경상 흑자를 발판으로 엔화 가치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다. 우리나라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한동안 시장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구조적 무역적자를 겪어야 했지만, 최근에는 무역흑자 구조를 정착시키고 있다. 반면, 일본은 오래전부터 무역 적자국이었다. 엔고(高)로 인해 일본의 공장들이 대부분 해외로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일본으로 환류하면서 상품수지에 서비스수지·소득수지 등이 포함된 경상수지는 늘 흑자였다. 전형적인 선진국 경제 시스템이다. 국제수지 발전단계 모델에 따르면 성숙한 채권국은 무역수지는 적자이나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미국형으로 옮겨 간다. 무역·서비스와 경상수지 모두 적자다.
그럼 미국 경제는 어떻게 세계 제1의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우선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갖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 채권을 갖고자 해 해외로부터의 자본 유입이 그치질 않는다. 두 번째는 산업구조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중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0년 기준 무려 22.3%다. 전문서비스업은 12.8%에 달한다. 군수산업도 무시할 수 없는 부문이다. 문제는 일본의 산업구조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제1 비중은 여전히 제조업으로 20.5%나 된다(한국은 27.1%). 일본 경제가 미국 모델로 옮겨 가기 위해서는 금융과 전문서비스업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인구 고령화에 못지않게 일본의 미래를 우려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04월 18일(월) 王참모

이현종 논설위원
왕(王)실장, 왕차관, 왕수석….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붙여주는 별명이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만큼 주목도는 높지만, 그 끝이 썩 좋지 못하다. 권력은 너무 가까이하면 타 죽고, 너무 멀리하면 얼어 죽는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왕실장’은 장세동 전 경호실장이다. 전 전 대통령의 육사 후배인 그는 여러 차례 수감 생활을 했다. 교도소를 나와서는 가장 먼저 전 전 대통령을 찾아가 “어르신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의리의 상징처럼 된 그는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장례식 내내 식장을 지키며 마지막 길까지 충성을 다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최측근은 단연 처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의원. ‘6공의 황태자’로 불린 그는 ‘월계수회’를 조직해 노 전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대통령 비서실 소속 정책보좌관으로 북방정책을 도맡아 추진했다. 그러나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면서 권력의 쓴맛을 봤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는 김동영 전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YS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9대, 10대 국회의원이 됐지만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고문까지 당했다. ‘좌동영 우형우(최형우 전 의원)’라 불리며 상도동계의 핵심이었으나 지병으로 YS의 대통령 당선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YS는 “이 문디 자슥아, 저시상에 무신 맛있는 떡이 있다꼬 와 이리 빨리 가노!!”라며 통곡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의원이 핵심이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두루 지내며 ‘왕실장’ 역할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문재인 비서실장,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박영준 전 국무조정실 차관이 ‘왕차관’으로 불렸다. 문 대통령 참모 중 ‘왕’자를 붙일 수 있는 인물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다.
공교롭게도 ‘왕’자가 붙은 참모들은 대부분 옥고를 경험했다. 윤석열 당선인의 ‘왕장관’은 아마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될 듯하다. 이번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역대 정부에서처럼 불행한 왕참모가 되지 않으려면 대통령을 바른길로 가도록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04월 19일 파친코와 미스터 션샤인

이미숙 논설위원
한국을 이해하려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책은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돈 오버도퍼(1931∼2015)가 쓴 ‘2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다. 미국 외교관 크리스토퍼 힐이 주한 미 대사로 부임할 때 손에 쥐고 왔던 책이자, 2015년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커터칼 테러를 당한 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열독했던 책도 바로 ‘2개의 한국’이다. 리퍼트는 퇴원 후 한국 현대사와 북핵 문제를 미국 저널리스트 관점에서 조망한 오버도퍼의 공을 기려 ‘돈 오버도퍼 언론상’을 제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97년 초판이 나왔고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이 북핵 협상사를 보완한 공저 형식의 개정판은 2013년 출간됐다.
오버도퍼의 책이 지난 20여 년간 학자와 외교관들 사이에서 한국 이해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면, ‘미스터 션샤인’(2018)과 애플 TV 플러스에서 방영 중인 ‘파친코’는 드라마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은 구한말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을 의병의 시각에서 다룬 작품으로, 주한 미군들에겐 반드시 봐야 할 드라마로 권장되고 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로버트 에이브럼스는 2018년 11월 주한 미군사령관에 부임할 때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한·일 갈등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미스터 션샤인’은 주한 미군들이 반드시 봐야 할 드라마로 자리 잡았다. 주한 미8군 사령부 작전부사령관은 “귀하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 ‘미스터 션샤인’을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 넷플릭스에 있다”는 트위트를 올려 화제가 됐다.
‘파친코’는 3월 말 방영을 시작했는데 한류 배우 이민호와 윤여정이 주연을 맡아 인기를 끌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갖은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부산 영도 출신 선자와 제주 출신 야쿠자 고한수의 사랑을 중심축으로 파친코 사업에 뛰어든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재미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8부작으로 만든 작품인데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멸시와 차별이 한·일 갈등의 뿌리라는 묵직한 메시지가 전편에 흐른다. ‘미스터 션샤인’에 이어 전 세계인에게 굴곡 많은 한·일 현대사를 이해하게 만들 문제작이다.
04월 20일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김종호 논설고문
“어떤 노래든지 그가 혼을 담아 부르면 심금을 울리는 재즈 명곡이 된다.” 본명은 김은영인 재즈보컬리스트 웅산(雄山·49)이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지난 1월 내놓은 음반 ‘사랑 그 그리움 2’ 수록곡들을 들으면, 누구나 공감할 말이다. 포크 그룹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 발라드 가수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록 밴드 산울림의 ‘회상’ 등을 그가 재즈로 바꿔 담았다. 이 밖에도 솔(soul)풍인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등 그가 불러, 새로운 감동을 준 노래는 많다. ‘어떤 장르든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내는 독보적 보컬리스트’ ‘호소력 큰 중저음의 매혹적 음색과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는 가수’ 등의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이유다.
정통 재즈부터 라틴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해온 그는 발표한 노래의 절반쯤을 직접 작사·작곡한 싱어송라이터다. 그중 ‘파란 새벽’은 ‘바람 한 줄기 비에 젖은 파란 새벽/ 좁은 창틈 사이로 음 밀려드는 그리움/ 하늘거리며 스쳐 가는 추억 넘어/ 새벽이 노래하듯 내게 속삭인다/ 빗물에 고여 더해만 가는 외로움/ 비워야 하나 봐 한낮과 밤처럼 익숙할 때까지’ 하고 시작한다.
그는 17세이던 해의 스산한 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날,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기 위해 충북 단양의 천태종 구인사(救仁寺)로 출가했었다. 당시 비구니 법명이 현재 예명이다. 하지만 염불보다 노래에 더 마음이 쏠린 그는 3년 만에 환속했다. 강렬하게 폭발하는 헤비메탈에 심취해 록 밴드 보컬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미국의 전설적인 재즈보컬리스트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빌리 홀리데이의 명곡 ‘I am a fool to want you’를 듣고 감명받아 재즈에 눈을 떴다. 1996년 데뷔했고, 2003년 제1집 앨범 ‘Love Letters’를 발표했다. 2018년 제9집 ‘I’m Alright’에 이은 제10집은 오는 9월 나올 예정이다.
“음악도 수행(修行)”이라는 그는 이제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오는 30일이 ‘세계 재즈의 날’이다.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오는 26일부터 5월 1일까지 열리는 기념공연을 한국재즈협회 회장인 그가 총지휘한다. 더 많은 사람이, 더 가깝고 깊게 그의 재즈와 교감하기를 기대한다.
04월 21일 대구의 人情과 票心

이도운 논설위원
대구가 행정구역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통일신라 시대다. 경덕왕 16년(서기 757년) 달구화현이 대구현으로 개칭됐다. 조선 시대 들어 농업의 주요 생산지가 되고 인구도 증가하면서 세종 1년(1419년) 대구군으로 승격됐다. 선조 때에는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돼 영남 지역의 행정·군사·교통을 통할하는 명실상부한 중심이 됐다. 일제강점기에 대구부로 바뀌었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대구시로 개칭됐다. 정부는 이후 경상북도 대구시장을 임명했는데, 1981년 7월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됐다.
직할시 승격 이후 10명의 대구광역시장이 임명됐다. 주로 내무부 출신 관료였다. 이 가운데 6대 이해봉 시장은 정치에 투신, 4선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대구에서도 시장 직선이 시작됐다. 초대 민선 시장은 경제 관료, 재선 의원을 지낸 문희갑이었다. 그는 당시 PK 출신 김영삼 정권이 TK 지역을 홀대한다는 지역 분위기 속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1998년에는 한나라당 후보로 재선됐다. 이후 조해녕·김범일·권영진 등이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낙승했다. 대구는 보수 세력의 중심이라는 말을 뒷받침하듯 이변 없이 보수 정당 후보들을 선택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장 선거에 여러 변수가 등장했다. 수성을 지역구 의원인 홍준표 의원이 줄곧 앞서 왔지만, 윤석열 당선인과 가깝다는 김재원 전 의원,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이라는 유영하 변호사가 잇달아 등장한 것.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유 변호사 후원회장을 맡고, 명시적 지지를 표명하면서 대구 민심도 술렁이고 있다. 김·유 두 사람은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이 치열해지면서 지난 8일 열린 공천 신청자 면접장도 후끈 달아올랐다고 한다. “당신이 당선되면 박 전 대통령에게 무슨 도움이 되냐” “너무 양지만 찾아다니는 것 아니냐” “지방선거 뒤 아들을 국회의원에 출마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 박 전 대통령을 향한 대구시민의 마음이 인간적 연민인지, 정치적 지지인지 경선 결과에서 드러날 것이다.
04월 22일(금) 일본 엔화의 굴욕

문희수 논설위원
세계 경기 침체 속에서 일본 엔화 가치 하락(엔저)이 눈길을 끈다. 일본 경제엔 큰 쇼크다. 주력 기업의 생산 시설이 대거 해외로 이전한 까닭에 예전과는 달리 수출 가격 인하 효과보다 원재료 등 수입 물가 급등 피해가 훨씬 더 크다. 일본철강연맹 회장이 “일본 제조업 역사상 처음으로 엔저 리스크가 발생했다”고 토로할 정도다. ‘나쁜 엔저’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같은 엔저는 이례적이다. 미국 달러화는 물론 똑같이 통화 가치 하락을 겪는 원화에도 약세다. 지난 20일 엔·달러 환율은 20년 만의 최고치인 달러당 129엔대까지 급등했다. 최후의 저지선이라던 이른바 구로다 방어선(달러당 125엔)마저 무너졌다. 원·엔 환율도 오랜 기준인 1 대 10 비율이 깨져 100엔당 960원 선으로 내렸다. 국내에선 엔화를 사두자는 분위기다.
엔저는 구조적인 문제여서 장기화할 전망이다. 고질적인 국가부채 속에 일본중앙은행은 미국 금리 인상과는 어긋나게 초저금리를 유지하며 돈을 계속 풀고 있다. 일본중앙은행은 일본 국채의 44%를 산다. 금리를 올리면 국채 이자가 급증해 국가부채 비율이 더 올라가고, 그렇다고 계속 돈을 풀면 엔저가 더 심각해진다. 게다가 장기 디플레이션을 겪었던 일본 역시 물가가 상승 추세다. 기업 물가 상승률은 10개월 연속 5%를 넘었고, 소비자물가도 오름세다. 버팀목이던 경상수지까지 올해 42년 만에 적자가 예상된다. 사면초가다.
엔화는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엔고를 조건으로 달러화·유로화에 이어 3대 통화가 됐다. 일본의 막대한 무역흑자가 배경이었다. 미국은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유지하려면 해외에 달러를 충분히 공급해야 하는데, 이러면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 바로 ‘트리핀의 역설’이다. 일본은 미 국채를 대량 사는 큰손이었고,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과 부동산 매입으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미국으로 환류시켰다. 이렇게 해서 엔화는 달러화를 대체하는 ‘안전자산’까지 왔다. 최근의 엔저는 이런 엔화에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대선 때 황당한 기축통화 논란이 있었지만, 기축통화든 특별인출권(SDR) 통화든 돈을 마냥 풀면 가치는 떨어지고, 국가부채 등의 문제만 키울 뿐이다. 한국은 일본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튼튼한 경제, 건전한 경제가 최우선이다.
04월 25일(월) 스미스, 여의도 안 간다

박민 논설위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때 TV를 통해 본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에서다. 잭슨시 상원의원이 숨지자 또 다른 상원의원 조셉 페인과 후원자 짐 테일러는 이권이 걸린 댐 건설에 반대하지 않을 인물을 찾다 순수한 시골 청년 제퍼슨 스미스를 지목한다. 워싱턴으로 간 스미스는 고향에 보이스카우트 캠프를 만들기 위한 법안을 마련한다. 그런데 캠프 위치가 댐 공사 현장이었고 페인과 테일러는 스미스를 회유하지만 실패한다. 페인은 스미스가 댐 공사 현장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거짓 발표를 하고 스미스는 제명 위기에 처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던 스미스는 비서 손더스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댐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 장장 24시간에 걸친 발언 끝에 스미스는 쓰러지고, 이를 본 페인은 양심선언을 한다.
미국의 경우 필리버스터를 위한 장시간 연설에서 성경이나 전화번호부 등을 읽는 등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을 할 수 있고,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의제와 관련된 발언만 허용되고 중간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 필리버스터를 처음 한 정치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964년 김준연 자유민주당 의원의 구속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5시간 19분 동안 발언해 결국 안건 처리를 무산시켰다. 1973년 의원 발언 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하면서 폐지됐던 필리버스터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으로 부활했다. 2016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 국민의당과 연계해 테러방지법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38명이 참석해 192시간 25분간 이어진 필리버스터에서 마지막 주자 이종걸 원내대표는 12시간 31분을 발언, 기록을 경신했다.
의회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되 소수 의견을 존중함으로써 건강성을 유지한다. 필리버스터는 소수 의견의 마지막 분출구다. 이를 막으면 불복과 갈등의 증폭으로 이어진다. 민주당이 본회의 회기 쪼개기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려 하자 국민의힘은 정치인에 대한 검찰수사 배제 등을 전제로 검수완박법에 합의해버렸다. 이런 여의도라면 스미스 씨도 존재감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04월 26일 ‘586 괴물’ 論

이미숙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20대 때 구글을 창업하며 했던 다짐이다. 이들은 2004년 구글 주식 공개 때 주식 1%를 구글 산하 비영리기구(google.org)에 기부한 뒤 매년 수익의 1%를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 페이지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기부가 세계의 거대 문제들을 해결하고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썼다. 구글의 기부가 글로벌 빈곤 해결 등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뜻이다. 이후 구글의 자선 플랜은 흐지부지됐고, 괴물이 되지 말자는 창업주의 다짐을 기억하는 이들도 거의 없다. 초심 유지는 그만큼 힘든 법이다.
범여권인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586 정치인들을 ‘괴물’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21일 “586 이후 세대로서, 민주화를 이룬 선배들을 우상처럼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 우상들이 괴물이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 강행 처리를 위해 민형배 의원을 꼼수 탈당시킨 것에 대해서도 “반독재를 위해 싸우던 586 운동권 선배들이 이제 입법독재를 하고 있다”면서 “정치는 없고 뭔가 부숴야겠다는 망치만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대의제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 파괴를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민주당의 5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전두환 독재 체제와 싸우며 민주화 성취에 역할을 했지만 “독재와 싸우다 초심을 잃고 독재자처럼 타락한 세대”라는 비판을 받는다. 대학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빠져 자유민주주의를 배우지 못했고, 북한의 주체사상에 빠져 스스로 전체주의자가 됐다. 재앙으로 판명된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을 떠받들며 문재인 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자임해온 집단이기도 하다.
5·18민주화운동 때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과거엔 ‘새날’이 민주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해 5월이 올 때마다 그 가사를 읊조렸는데 그들의 막가파식 행태를 보니 새날의 속뜻은 ‘부패완판의 586독재’인 것 같다. 검수완박 사태가 괴물 집단의 본색을 또 한번 드러내 줬다.
04월 27일 대통령의 마지막 밤

이현종 논설위원
미국 대통령 문화 중 부러운 것이 현직 대통령이 퇴임하는 날 후임 대통령에게 손편지를 남기는 전통이다. 신임 대통령이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들어오면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 위에 놓인 전임 대통령이 남긴 편지를 읽는 것을 시작으로 업무에 들어간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모르지만, 전·현직 대통령은 소속 정당이나 정파를 떠나 위기나 단합의 순간에 함께한다.
1989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자신의 부통령이던 후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게 쓴 편지가 시작이었다. 부시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다. 레이건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부시에게 짤막한 편지를 남겼다. 레이건은 ‘칠면조들이 너를 쓰러뜨리게 가만두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편지지를 사용했다. 편지지 하단에는 쓰러져 있는 코끼리 위로 칠면조들이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공화당의 상징인 ‘코끼리’ 그림을 이용해 ‘비판자들에게 굴복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건넨 것이다.
대선 기간 중 빌 클린턴은 부시를 향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비난했고, 부시는 ‘두 멍청이’라며 클린턴과 앨 고어 부통령 후보를 비난하는 등 난타전을 펼쳤다. 부시가 재선에 실패해 클린턴에게 정권을 이양한 상황에서도 편지 남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클린턴이 공개한 편지에서 부시는 ‘이제 당신의 성공이 우리나라의 성공입니다. 진심을 다해 당신을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라며 따뜻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록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는 가지 않았지만, 손편지는 남겼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마지막 밤을 후임자에게 줄 편지를 쓰며 여러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는 5월 10일 하루 전인 9일 오후 6시 청와대를 ‘퇴근’한다. 우여곡절 끝에 윤 당선인과 한 차례 만났지만, 청와대 이전에 따른 앙금이 여전하다. 취임식 날 보고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듯하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언론 대담에서도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한 ‘조국 수사’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언급했다. 이젠 청와대도 없어진다. 전임 대통령의 편지 한 장도 없을 듯하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의 마지막 밤을 무슨 생각을 하며 보낼까.
04월 28일 “아빠 찬스 OUT”

이신우 논설고문
세상은 돌고 돈다. 조국 사태가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윤석열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정호영 전 경북대 병원장이 그 배턴을 이어받는 분위기다. 자신이 고위 간부로 재직 중이던 병원에 자녀를 인턴 채용하거나 논문 저자로 등재시키는가 하면, 동료 교수들이 주는 ‘기프트 점수’에 힘입어 두 자녀 모두 의대 편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는 절차가 공정했다면서 조국의 예처럼 부정은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점쟁이가 점쟁이를 보면 고개 숙인 채 미소 짓는다지 않는가. 어떤 시험 면접관이 병원장 자녀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더구나 대구시 정도에서 사회 지도층끼리의 네트워크는 이심전심으로 충분하다.
흔히 ‘아빠 찬스’라면 힘 있는 자들이 권력과 네트워크를 이용해 자기 자녀에게 실력 이상의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남보다 쉽게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에 성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일 때였다. 시위대는 ‘아빠 찬스 OUT. 민주노총’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 이런 내용만 보면 아빠 찬스는 시위대가 공격하는 부자·권력자·상류계급의 전유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신분이나 계급을 떠나 조직과 권력에 비빌 구석만 있으면 누구든 참여를 꺼리지 않는다. 민주노총 역시 내로남불의 당사자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회사 측이 5년 만에 생산직 신규 채용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듣자 단체협상의 ‘우선 및 특별 채용’ 조항을 들고 나섰다. 신규 채용에서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에 대해 우선 채용을 원칙으로 규정한 단협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기아만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시정 명령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노조들은 대부분 이런 단협 내용을 갖고 있다. 심지어, 조국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 덕을 본 윤석열 당선인조차 민주노총을 닮아가고 있지 않은가. ‘노동조합 자녀 채용 우대 금지법’은 윤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40년 지기’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입시 의혹에 확실한 부정의 팩트가 없지 않으냐며 옹호, 여론의 분노를 부채질한다. ‘아빠 찬스’가 우리 사회 전체를 희비극의 무대로 만들고 있다.
04월 29일(금) 현봉 스님의 ‘正見’
김종호 논설고문
‘등림목우정(登臨牧牛亭) 사고무애병(四顧無碍屛) 허공위승두(虛空爲繩頭) 대천실비갱(大千悉鼻坑) 야심월유백(夜深月逾白) 설소몽야청(雪巢夢也淸) 계토장광설(溪吐長廣舌) 지풍공화명(枝風共和鳴)’. 전남 순천시 조계산 자락 송광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方丈) 현봉(73) 스님이 지은 한시(漢詩)다. 현봉 스님은 송광사 주지 시절에, 스승의 스승인 효봉 스님이 ‘마음의 소를 길들이는 정자’로 건립했으나 폐허로 남은 목우정을 복원했다. 그러곤 어느 겨울밤에 혼자 찾은 심경을 읊었다. 이렇게 풀이된다. ‘마음의 소를 길들이는 목우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막힘이 없다/ 허공으로 노끈을 꽈서 고삐 삼으니/ 대천세계가 다 하나의 콧구멍이다/ 밤이 깊으니 달빛은 더 밝아지고/ 눈 덮인 둥지 속의 꿈도 맑아진다/ 흐르는 시냇물이 장광설을 토하니/ 가지 끝에 부는 바람이 울면서 화답한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겁고, 손발은 부지런해야 한다”는 현봉 스님은 해박하고, 맑고, 따뜻하다. ‘선(禪)에서 본 반야심경’ ‘너는 또 다른 나’ ‘솔바람 차 향기’ ‘일흔집(逸痕集)’ 등 스테디셀러 명저도 많다. 1974년 출가한 그는 일하지 않은 날은 먹지 않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정신도 몸에 뱄다. “송광사는 16명의 고려 국사(國師)를 배출해 ‘승보(僧寶)사찰’로 일컫지만, 이젠 스님 한 분 한 분이 다 보물이 돼야 한다. 수행도, 봉사도 간절하고 철저히 해야 한다. 법문도 대충 해선 안 된다”는 그는 유머 감각도 돋보인다. 방장 추대 때, “감축(感祝)드린다”는 인사에 “축하를 감(減)할 게 아니라, 증축(增祝)해야 하지 않나” 하는 농담으로 웃음꽃이 피게 한 일도 있다.
오는 5월 8일이 부처님오신날이다. 종교의 차이를 떠나, 현봉 스님이 강조하는 ‘정견(正見)’의 의미를 새겨볼 만하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세상에 오로지 나뿐이므로, 결국 나와 남이 따로 없는 것이니 모두가 스스로 서야 한다’는 뜻이다. 그 출발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정견이다. 등(燈)을 밝히는 취지도 마찬가지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다. 먼저 자신의 등을 밝혀야 진리의 등이 켜진다. 밖이 아무리 밝아도,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