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2022-04/ 04.01 文 임기중 생활비가 13억4500만원? - 04.30 야외 마스크 해제 문제까지 인수위 요청 거부한 정부, 옹졸하다
세상사 2022-04/
04.01 文 임기중 생활비가 13억4500만원? 靑 스핀의 마법

고정애 논설위원
문재인 청와대 스핀 닥터(홍보꾼)들은 역시 대단했다. 스핀(비틀기)이 엄청났다.
청와대는 그제 문 대통령의 임기 중 세후 총수입이 16억4700만원이고 ‘생활비 등’으로 13억4500만원이 사용돼 재산 순증가액은 3억200만원이라고 발표했다. 그러곤 “예산으로 지원되는 공적 비용 외에 관저에서의 식비 등 생활비 일체는 다 개인 비용으로 부담했다”고 말했다.
실상은 간단치 않다. 대통령 사비에서 2020년 양산 평산마을 사저 부지 매입비(10억6401억원)도 나가서다. 단순화해서 보면 13억4500만원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드는 의문이다. 부지 매입비는 생활비인가. 그저 ‘등(等)’일 뿐인가.
스핀의 마법은 놀라웠다. 청와대의 발표만 보면 문 대통령 부부가 연평균 2억원 정도를 생활비로 쓴 듯한 인상을 줬다. 일부 언론에서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도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할 정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상비도 7억 원대라지 않나. 하지만 부지 매입비를 빼면 생활비는 연평균 6000만원 안팎이다. 게다가 독립생계라고 고지 거부한 딸이 적어도 지난해엔 청와대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의상비는?
청와대의 ‘재산 순증가액 3억200만원’이란 주장도 지난해 말 기준의 신기루다. 사저 신축비용(14억9600만원)을 위해 2009년 8억7000만원에 산 매곡동 사저를 최근 26억1662만원에 팔아서다. “더 이상 부동산으로 돈 버는 일이 없게 하겠다”던 문 대통령 본인이 17억4662만원의 차익을 거둔 셈이 됐다. 이 과정에서 김 여사가 “이해관계가 없는 분”에게 11억원을 빌렸고, 매곡동 사저가 ‘직거래’로 팔렸다. 도대체 상대는 누군가. 정상적 거래인가. 당장 알 길이 없다.
청와대가 이렇게 해 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보를 독점한 채 자신들이 원할 때만 비틀고 때론 왜곡한 정보를 내놓고는 믿으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경험칙으론 선뜻 믿어선 안 됐다. 일례가 문 대통령 부부가 노르웨이 관광도시 베르겐에 간 걸 두고 청와대가 “제2의 지방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노르웨이 국빈 방문의 필수 프로그램이고 노르웨이 외교의 관례”(『김정숙 버킷리스트의 진실』)라고 강변한 일이다. 사실과 달랐다.
문 대통령 부부의 처신이 안타깝지만 그 얘기만 하려는 건 아니다. 이전 청와대에도 정도 차가 있을 뿐 비밀주의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오래전 한 대통령이 부인에게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만날 사람이 없는데 당신은 만날 사람이 많아서 좋겠다.” 어느 정도 동선이 노출되는 대통령보다 부인은 더한 견제·감시·검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결국 해법은 더 많은 공개다. “관련 정보가 완전하고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여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고 보기 때문이다. 김 여사의 의상비 논란도 2018년 2월 납세자연맹의 의상비 등 예산 공개 요구에 청와대가 응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지난달 1심 판결이 나올 정도로 재판을 질질 끌어서도 안 됐고, 청와대가 항소해 논란을 키울 일도 아니었다.
이제 어떤 식으로든 문 대통령 부부에 대한 검증이 있을 것이다. 못지않게 중요한 건 미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업가인 김건희 여사는 이전 대통령 부인들과 비교가 안 될 방대한 자체 네트워크를 가졌다.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여성계에 막대한 영향력이 있었던 이희호 여사는 오해라지만 “이희호의 지분이 40%”란 얘기를 듣곤 했고, 결국 논란을 불렀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말하며 “국가의 최고 의사 결정을 하는 정치인이 일하는 모습을 국민이 언제든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또 그렇게 노출돼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통령만이 아닌 대통령 주변도 노출되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정보 공개엔 응해야 한다. 이거야말로 윤 당선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
04.01 장례식장·화장장 대란, 왜 방치하고 있나
사망자 늘어 원정 장례와 6~7일장 다반사
유족 고통 가중 … 신구 권력이 대책 마련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관 품귀와 안치실 부족으로 장례식장·화장장 연쇄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성과는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사이, 민생 현장에선 참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K방역 자체가 거대한 관에 갇힌 형국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국내 오미크론 유행은 지난주 정점을 지났고, 확진자 수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확진자 급증의 여파로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31일 위중증 환자는 1315명으로 역대 최다치를 경신했다. 이날 사망자는 375명에 달했다. 전체 코로나 사망자 1만6230명의 절반에 가까운 8000여 명의 사망이 올 3월 한 달간 집중됐다. 의료진 부족 등 간접 피해로 세상을 떠나는 ‘초과 사망자’ 수도 급증했다. 방역 당국은 “위중증·사망 정점이 가까워지면서 하루 500~600명대 사망자 발생이 2~3주 지속되고, 하루 최대 1000명도 나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귀담아듣고 방역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례 현장은 참담하다. 관과 근조 화환 품귀현상이 나타났다. 장례식장을 구하지 못해 경기도에 사는 유족이 강원도로 가서 장례를 치르는 ‘원정 장례’도 성행하고 있다. 지방의 장례식장들 중엔 영안실의 안치 냉장고가 꽉 차자 정육용 냉동창고나 신선식품 배송용 냉동탑차를 빌려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유족들이 이를 알고도 “그래도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고 한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화장장도 만원이다. 빈소에서 발인하고도 화장 순서를 기다리느라 시신을 옮기지 못하거나, 화장로를 저녁 시간까지 가동하다 보니 발인을 밤 늦게 치르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연쇄 대란이 빚어지면서 보통 3일장이던 장례 기간은 6~7일장으로 두 배 이상 길어졌다. 이로 인해 국민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경제적 손해, 생활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가 전국 화장시설의 화장로 1기당 하루 운영 횟수를 5회에서 7회로 늘렸다고는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특히 화장장 대란 사태는 지난 1월 ‘코로나19 사망자 장례 지침’ 개정으로 매장이 가능해졌는데도 이를 2개월 동안 알리지 않은 정부의 책임도 크다.
상황이 이런데도 곧 물러날 문재인 정부는 K방역 자화자찬에 매달리고 있고, 인수위는 ‘자정까지 10인 모임’ 허용 등 방역 완화에 골몰하고 있다. 신구 권력 어느 쪽도 K방역의 사각지대를 그냥 방치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양측 모두 장례 대란을 해결할 방안을 고민하기 바란다. 위중증자 치료뿐 아니라 사망자와 유족의 마지막 이별 의식을 존엄하게 치르게 돕는 것도 정부의 책무다.
중앙일보 사설
04.01 靑 “金옷값, 명인·디자이너 예우 차원서 현금 계산”… 5만원권 결제에 또 다른 해명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김정숙 여사가 옷과 구두값 등을 한번에 수십~수백만원씩 5만원권으로 결제한 것에 대해 “명인과 디자이너 같은 분들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현금과 카드 지급 방식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했다.
하지만 애초 이번 논란이 지난달 30일 탁현민 청와대 의전 비서관이 김 여사 옷값에 대해 “사비로, 카드로 결제했다”고 말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이후에도 ‘현금을 썼지만,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는 취지로 말을 바꾼 것이 또 다시 하루만에 거래 당사자 반대 증언에 의해 반박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주장을 꺼내든 것이다.
박 수석은 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정숙 여사님의 옷값이 특활비로 사용된 것 아니냐’라고 해서 ‘그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며 “모두 사비라고 했더니 이제는 사비 옷값 규모와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고 했다.
진행자가 ‘누비장에서 한복을 구입하고 수제화 공급자에게 구두를 샀다는 대목에서 보도와 주장이 엇갈린다’고 하자 박 수석은 “사비로 다 지출한다. 명인과 디자이너 같은 분들에 대해서 예우 차원에서 현금 계산을 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카드로 계산하더라도, 현금과 카드 지급 방식이 (왜) 문제가 되느냐”며 “전체 사비이고 특활비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본질을 호도하는 물타기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혼란이 어떠시겠냐”고 했다.
‘디자이너에 대한 예우 차원’이 무슨 뜻이냐고 진행자가 묻자, 박 수석은 “현금과 카드 지급이라고 하는 결제 방식이 적절하게 혼용이 필요한 곳에서는 현금이 될 수도 있고, 대중적 매장 같은데 가서 (구입)한다면 카드로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현금이든 카드든 절대 특수활동비가 아니다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린다”고 했다. 박 수석은 “사비 규모와 내역까지도 저희가 공개해야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고, 아무리 대통령 부인이시지만 사적인 영역이 있고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수년간 김 여사가 입은 의상을 제작했던 유명 디자이너의 딸이 청와대에서 근무한다는 보도와 관련해 박 수석은 “청와대는 계약직 행정요원급 직원들이 많이 있다”며 “전문성을 요하는 계약직 같은 경우는 당연히 공모와 준하는 절차에 따라서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계약직 채용은 추천 등에 의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 수석은 이날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도 “사비를 지출함에 있어 카드를 결제할 수도 있고 현금을 낼 경우도 있지 않느냐”며 “명인 디자이너 작품이 필요하다면 예우 차원에서 현금으로 계산할 때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지급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다 사비라는 게 중요한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민의 알 권리 다 존중하고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만 정말 해도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호소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 오경묵 기자
04.01 靑, 김정숙 단골 디자이너 딸 채용에 “모르는 사람과 일할 수 있냐”
청와대는 1일 문재인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단골 디자이너 딸이 청와대에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져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되자 “해당 업무에 전문성을 갖추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받아 절차를 거쳐 계약했다”고 밝혔다.
신혜현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내외가 있는 관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겠느냐”며 “근거 없는 억측은 지양해달라”고 말헀다.
디자이너 A씨의 딸이 청와대에서 6급 상당의 행정요원으로 일하며 김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부부의 의상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김아진 기자
04.01 이준석 대표가 쏘아올린 장애인 이동권 문제
장애인 지하철 시위 비판하자 오히려 사회적 관심 높아져
사회적 약자 배려 정책 놓고 다같이 더 고민하는 계기 삼길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결과적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도와준 셈이 됐다. 그가 얼마 전부터 수도권 전철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장연 출퇴근 시간대 탑승 시위에 대해 “시민을 볼모로 하는 불법 투쟁”이라며 공격하자, 소셜미디어에서 찬반 논란이 폭발했다. 자기 당 국회의원이 사과를 하러 가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까지 나섰다. 그가 이번 주 페이스북에 올린 관련 글만 19개다. 전장연이 바란 게 이런 사회적 관심이었을 텐데 이 대표 ‘덕분에’ 부각됐다.
논의는 활발해졌지만 부정적 반응도 적지 않다. 여러 번 현장 취재를 나간 동료 말에 따르면 “이해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불편을 끼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평소 소수자 인권 문제에 우호적이던 한 변호사 지인도 “그리 현명한 걸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시민들 지지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절박함을 알리려다 오히려 반감을 산다”고 지적할 정도다. 시위를 주도하는 전장연도 이런 분위기를 모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조용하게 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난리를 쳐야 주목하고 책임자들이 움직인다”고 하소연한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이런 지하철 시위는 가까이는 지난해 12월, 멀게는 20여 년 전부터 있었다. 이 대표 소속당 청년 보좌역이 “(서울)시장과 정권이 바뀌자마자 시작된 시위”라고 공격했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장애인들이 그 지난한 세월 속에 겪었을 불편과 설움을 비장애인이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들도 비장애인처럼 어디든 맘대로 가고 싶지만 현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서울시 장애인 규모는 40만명. 전체 인구 4%를 넘는다. 장애인용 저상버스는 전체 버스 4대 중 1대, 장애인 콜택시는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잡을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장애인들은 한번 이동하려면 너무 힘들어 집 밖으로 잘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거리에선 저 비율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나마 그동안 지하철역 엘리베이터가 대폭 늘고, 휠체어가 편히 갈 수 있게 문턱을 없애고 장애인용 경사로를 만드는 무장애(Barrier Free) 시설이 많아진 데는 이런 과격한 시위가 기여한 바가 분명 있다.
처지가 다른 이들 고통을 자기 일처럼 공감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솔직히 쉬운 덕목이 아니다. 자기 지하철이 늦으면 못 참고 화를 내면서 평생 가고 싶은 곳에 갈 엄두도 못 내는 장애인들이 떼 좀 쓴다고 “왜 불편을 끼치냐”고 역정을 내는 장면을 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이번 시위 도중 가사 도우미 일을 하는 여성이 “당신들 때문에 늦어서 잘리면 책임질 거냐”면서 거칠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는데 비슷한 사회적 약자(弱者)들끼리 옥신각신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진 건 씁쓸하다.
이 문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비장애인들 인내와 덕성에 의존할 일이 아니다. 공은 정책 당국 몫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집권 정부를 꾸릴 정당의 대표가 이번 시위를 인질극에 비교하며 여론몰이를 하는 건 사태를 꼬이게 할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력 정치인이 특정 집단을 공격했을 때 그 동조(同調) 효과가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흐르고 사회를 혼돈으로 몰아가는지 여러 외국 사례를 통해 많이 봐왔다. 이 대표가 전장연을 비판하자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정치 진영 논리와 얽혀 난장판으로 변질되고 있는 부분은 그래서 아쉽다. 이런 식으로라면 양패구상(兩敗俱傷), 양쪽이 다 함께 패하고 상처를 입을 뿐이다. 인수위가 이걸 해결(解決)하겠다고 나선 점은 고무적이다. 결(決)은 물꼬를 튼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누가 장애인이 되더라도 다른 구성원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 여야(與野)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조선일보 이위재 기자
04.02 국격을 옷으로 높이나
최근 맨해튼에서 열린 한 외교단체 만찬에 갔다. 드레스 코드가 ‘블랙 타이 양복’이어서 5년 전 아이 돌잔치 때 입었던 20만원짜리 검정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가보니 서로의 옷차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성 호스트와 진행자들은 드레스를 입었지만 머리를 질끈 묶거나 안경을 썼고, 외교관과 기업인들도 재킷만 갖춰 입은 채 서로 정보를 나눴다. 세계 패션 수도 뉴욕에서도 패션쇼 모델이나 메트 갈라의 셀럽들 말곤 완벽하게 빼입은 사람을 보기 쉽지 않다.

▲메르켈 독일 전 총리와 김정숙 여사.
경륜 많은 엘리트일수록 브랜드가 드러나는 값비싼 명품이나 지나치게 신경 쓴 듯한 차림새는 지양한다. 독일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16년간 색깔만 다른 똑같은 디자인의 재킷을 돌려 입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기성복 위에 보석이라고 하기도 뭣한 각종 저렴한 브로치로 외교 메시지를 전했다. 세계 최대의 부를 일구는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카키색 반팔 티셔츠에 플리스 재킷 한 장 걸치고도 해외 군사·경제 원조를 받아낸다.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영부인의 옷차림도 외교이고 국격”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소위 ‘패션 외교’는 여성이 외모로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요즘은 미국 퍼스트레이디나 부통령도 취임식에서 어떤 디자이너를 선택했느냐가 잠깐 화제 될 뿐, 그 이후엔 부적절한 의상만 아니라면 무엇을 왜 입었는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은 3년째 코로나 팬데믹에 유럽의 전쟁까지 겹쳐 세계가 원자재와 식량 부족으로 신음하는 때다. 한국 대통령 부인이 한글 박은 샤넬을 입었건, 인도의 호랑이 사랑을 배려한 까르띠에 브로치 비슷한 것을 달았건 유력 외신들이 보도하는 것을 본 적 없다. 그런 건 청와대 보도자료에나 시시콜콜 나오는 미담이다. 우리 정부가 국격을 높이는 길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반도체·전기차 배터리 기업을 지원하고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나오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번 논란으로 이른바 진보 진영이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 얼마나 퇴행적이고 위선적인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취임 직후 문 대통령과 참모들은 와이셔츠 차림에 커피를 들고 국정을 논하고, 대통령 부인은 청와대 뒤뜰서 딴 감으로 곶감 만드는 모습을 홍보했다. 독신인 전임 대통령에 비해 이런 게 ‘정상적 가정’이며 ‘바람직한 여성상’이라고 설교하는 듯했다. 이어진 것이 대통령 부인의 현란한 해외 패션쇼였다. 여성의 본분은 일하는 남편의 곁을 꽃처럼 장식하는 것인가. 남편의 지위로 얻은 재물로 치장하는 게 무슨 본보기라도 되나. 열심히 일하고 살림하며 진정한 성평등을 이루려는 여성들로선 불쾌한 일이다.
조선일보 뉴욕=정시행 특파원
04.02 대통령 부인 단골 디자이너 딸의 청와대 근무, 정상인가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오랜 단골 관계로 취임식 옷 등을 제작했던 의상 디자이너의 딸이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2년부터 이 의상 디자이너와 패션 브랜드를 운영해왔던 딸이 문 정권 들어서 청와대에 취직해 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에서 일해왔다는 것이다. 청와대 측은 “김 여사와 관련한 행사와 의전·실무 등을 담당하는 계약직 행정요원”이라고 했다. “전문성을 요하는 계약직은 공모 절차를 거치지만 그렇지 않은 자리는 추천 등을 통해 채용하고 있으며 역대 청와대에서 다 그렇게 해왔다”고 했다.
대통령 부인의 옷을 담당하는 직원이 별도로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채용이 필요하다고 해도 투명한 절차를 거쳐 뽑는 게 상식적이고 공정한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청와대 근무 공무원이다. 청와대 근무는 모든 공무원이 선망한다. 공직 생활과 사회 생활에 큰 경력이 된다. 청와대 근무자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발돼야 한다. 게다가 이 디자이너의 딸은 프랑스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 국적자의 청와대 근무에 적용해야 할 엄격한 보안 절차를 거쳤는지도 의문이다.
김 여사는 첫 해외 순방이던 한미 정상회담, G20 정상회의, 3·1절 100주년 기념식 전야제 등 중요 행사마다 이 디자이너의 옷, 가방, 스카프 등을 20차례 이상 착용했다고 한다. 사적 인연으로 맺어진 인사의 딸을 세금으로 월급까지 주면서 청와대에서 일할 기회를 준 데다 이를 통해 디자이너의 브랜드 가치까지 올라갔다면 특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대가가 대통령 부인의 옷값에 반영되지 않았겠느냐는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식비를 비롯해 치약, 칫솔 등 개인 비품 구매비 전액을 월급에서 차감하겠다”고 했었다. 청와대는 대통령 부인의 의상 비용은 전액 사비로 지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과는 다른 정황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면서 국민들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02 김정숙 여사 단골 디자이너 딸, 프랑스 국적으로 靑 근무 논란
공무원법상 외국·복수국적자는 대통령 수행 분야에 임용 제한
해외순방때도 프랑스 여권 사용… 靑 “여러 기관서 문제없다 결론”
청와대는 1일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단골 디자이너 딸 A씨가 청와대에서 근무 중인 데 대해 “해당 업무에 전문성을 갖추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받아 절차를 거쳐 계약했다”고 했다. 하지만 추천인이 누구였는지 등 구체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6급 행정 요원급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A씨는 프랑스 국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채용의 적절성 논란도 제기됐다.
A씨는 프랑스 국적을 가진 재외 동포로 알려졌다. 국가공무원법 제26조 등에 따르면 외국 국적자나 복수 국적자는 국가의 존립과 헌법 기본 질서 유지를 위한 국가 안보 분야,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 이익을 해하게 되는 보안·기밀 분야 등에 임용이 제한될 수 있다. 대통령 등 국가 중요 인사의 국정 수행 보좌 및 경호에 관한 분야도 제한 분야다. 대통령 부인 의상 및 의전 담당이 외국 국적자 취업 제한 분야인지 논란이 제기되자 외교부가 A씨 문제로 회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씨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초부터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A씨는 대통령 해외 순방에도 동행하며 프랑스 여권을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여러 기관을 통해 이미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결론을 받았다”며 “A씨가 담당하는 디자이너 업무 등은 국가 기밀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대통령 부부 동선은 국가 기밀로, 지근 거리에서 일하는 A씨가 외국 국적을 가졌다면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청와대는 A씨가 경력 등을 감안했을 때 매우 적은 급여를 받고 일해왔다는 점도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서실장 등 청와대 직원 대부분이 별정직”이라며 “채용 특혜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청와대 신혜현 부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A씨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대통령 내외가 있는 관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며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근거 없는 억측은 지양해달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아진 기자
04.05 라디오 DJ 하루키 對 유튜브의 창비 백 선생
일일 DJ 맡은 소설가 하루키… 음악 11곡 들려주며 ‘No War’
한국에선 이재명 聖君 외치며 20세기로 퇴행하는 문인들
예술의 소명은 산소호흡기… 좌나 우의 나팔수 넘어 새로운 꿈 꿀 수 있어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걸 모았답니다.” 60년째 수집하고 있는 자신의 LP판 이야기다. 윽박지르거나 가르치지 않고 수줍게 취향을 고백하는 73세의 소설가. 최근에는 도쿄FM의 일일 DJ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주제는 No War. 직접 선곡한 11곡을 들려주며 하루키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한다. 이런 식이다. 늙은이들이 멋대로 시작한 전쟁에서 젊은이들이 죽고 있다고 비판하며 제임스 테일러의 ‘네버 다이 영’(Never Die Young)을 틀어주는 것. 그가 말했다. “음악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유튜브에서 창비의 전 편집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보게 됐다. 사실은 모르고 지나칠 뉴스였는데, 대선에서 윤석열도 이재명도 찍지 않았다는 한 30대 소설가의 한탄 때문에 알게 된 영상이다. 젊은 작가는 탄식했다. 선배들의 한국 문학은 왜 이리 촌스러운가. 화면에는 85세 원로 문학평론가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재명은 최고의 정치 지도자’라는 자막과 함께 그는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이만한 지도자는 없었습니다.” 진행자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있지 않으냐고 되묻자, 이런 취지로 말했다. 노 대통령은 훌륭한 분이고 문 대통령은 선량한 분이지만, 대통령감으로는 잘 모르겠다고.
소설가나 문학평론가도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특정인에 대한 호오(好惡)가 있을 수 있다. 검사 사칭, 음주 운전 등 전과 4범에 대장동 스캔들과 욕설 파문 등 민주당 역대 최악의 후보라는 비판이 엄존하지만, 창비 백 선생이 그를 성군(聖君)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역시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문화부장으로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백 선생의 현실 인식 능력과 정세 파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예의 젊은 소설가가 언급한 선배 문인들의 촌스러움, 그리고 문학과 예술이 현실에 개입하는 태도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 직전, 일군의 문인이 성명을 발표했다. 제목은 ‘문학인 1110명 이재명 후보 지지 성명서’.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주도한 이 성명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를 인용하며 비분강개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숫자와 열기가 무색하게, 메아리는 거의 없었다. 참여한 작가 대부분이 독자들은 잘 모르는 이름이었던 데다, 내용과 형식의 시대착오 때문인지 신문·방송의 주요 매체 대부분이 외면했으니까.
식민지 치하와 권위주의 정권 시절, 문학이 담당했던 소명을 기억한다. 1970년대 문인들의 시국 성명은 많은 국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았고, 창비도 단순히 일개 출판사를 넘어 그와 이념적 지향을 같이하는 후배들에게 ‘종교’나 ‘정부’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재에 맞섰다는 이유로 고문받던 엄혹한 시절이 아니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를 고민하는 2022년의 대한민국. 지난해 열린 UN무역개발회의에서 한국의 지위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공식 변경됐다. 밖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이미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는 이야기다. 언제까지 20세기를 붙들고 살 건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이번 공약만 놓고 보면 그 차이를 찾기 힘든 보수 정당이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해야 할 대한민국 국민에게, 독재와 기득권의 부활을 막기 위해 민주당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문학은 얼마나 왜소한가.
예술가는 사회의 산소호흡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좌나 우라는 진영의 나팔수가 아니라, 떼면 죽는 산소호흡기. 현실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꿈과 상상력을 품게 하는 것.
하루키의 말처럼 음악이 전쟁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시나 소설도 그 자체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음악은, 그리고 좋은 문학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어서 유용하다고. 무용하다에 찍힌 방점이 아니라, 무용하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에 찍혀 있는 방점이다. 당장 유용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현실을 억압하는 모든 굴레에서 해방하는 문학. 한국 문학의 젊은 활력을 기대한다.
조선일보 어수웅 문화부장
04.06 K방역 자랑하다 나몰라라…국민 죽이는 '역주행' 정치 방역
어쩌다 보니 코로나 백신을 다섯 번이나 맞았다. 아스트라제네카(AZ)로 2회 접종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긴급 사용승인을 하지 않은 백신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체류하던 기간에 화이자 백신으로 2회 추가 접종을 받았다. 지난해 연말에는 국내에서 화이자로 부스터 접종까지 마쳤다. 하지만 슈퍼(?) 백서인 나도 오미크론 변이 돌파감염을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증상은 경미했다.
그래도 고위험군(50대 후반의 기저질환자)이라 혹시 모르니 팍스로비드를 쓰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재택치료 담당의는 약물상호작용에 따른 부작용을 염려해 처방을 꺼렸다. 할 수 없이 내가 임상약리학과 전문의임을 밝히고, 여러 근거를 들어 현재 복용 중인 다른 약이 팍스로비드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안심시켜야 했다.
결국 처방은 받았지만 약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정 약국에 재고가 없었다. 병원에서 여러 다른 약국에 전화를 돌린 후에야 간신히 팍스로비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약을 받아 든 순간 반가운 마음에 눈물까지 났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한편 재택치료팀의 간호사는 매일 아침 저녁,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상태를 점검했다. 고마웠다.
팍스로비드 찾아 삼만리

▲화이자의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 [연합뉴스]
그래도 단 몇 주 차이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였다. 3월 25일부터는 신속항원검사로 코로나가 확진된 60대 이상과 면역저하자, 즉 고위험군도 ‘일반’ 관리군으로 분류한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고위험자라고 해도 더이상 ‘집중’ 관리군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의료기관에 직접 전화해서 비대면 치료와 처방을 받아야만 한다. 재택치료팀이 하루에 2회 전화 상담을 통해 모니터링과 처방을 해 주던 서비스도 함께 사라졌다. 그게 다가 아니다. 약국에 약이 남아 있는지 환자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이름하여 ‘팍스로비드 찾아 삼만리!’
이 정도면 정부가 코로나 확진자의 15%에 달하는 고위험군 관리를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 사망률이 월등히 높은 고위험군을 이렇게 내버려두고 도대체 무슨 방역을 한다는 말인지 모를 일이다. 하긴 뭐 코로나 대응은 이미 각자도생으로 넘어갔는데 여기에 아주 정부가 쐐기를 박을 심산인지도 모른다.
정부는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기관에서 검사·진단·처방·모니터링까지 원스탑 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현장과는 거리가 있는 궁색한 변명이다. 내 사례에서 보듯 많은 의사가 약물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염려해 팍스로비드 처방에 부담을 느낀다. 실제로 국내에 들어 온 팍스로비드 중 3월 중순 기준으로 3분의 1정도만 처방됐다는 통계가 일선에서 의료진이 겪는 처방 결정의 어려움을 뒷받침한다.
정부가 의료기관에 책임 떠넘겨
어디 그뿐인가. 팍스로비드는 증상이 나타난 후 수일 내에 투약을 시작하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 주장대로 팍스로비드가 충분하더라도 일각을 다투는 고위험군 환자가 어디에 얼만큼 약이 남아 있는지 직접 알아보고 약을 구하라는 게 도무지 말이 안된다. 결국 환자가 제때 약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전담병원이 아닌 곳에서 바쁜 진료 시간을 쪼개 의사가 고위험군 환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모니터링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정부가 고위험군을 일반관리군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한 순간, 일선 의료기관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시스템과 절차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고약한 심보다.
고위험군이 아니라도 상황은 나을 게 없다. 확진자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병원마다 비대면 진료 기준이 달라 환자가 겪는 불편과 아우성은 한계를 넘은 지 오래다. 고열과 호흡곤란 때문에 죽음의 공포와 마주했던 내 학생은 달랑 격리 통보 문자를 한 통 받은 게 다였다. 전화번호도 안 알려 줘 인터넷을 뒤져 보건소에 연락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죽을 정도가 아니면 약 먹고 버티라"는 식의 말뿐이었다.
전문가 배척하고 현장 무시한 K-방역
문재인 정부가 2년 넘게 자랑스레 외치던 K-방역이 다 이런 식이었다. 현장은 무시됐고, K-방역에 비판적인 전문가는 배척됐다. 과학과 합리적 사고는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그 공백을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이 차지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창문 열고 모기 잡는 격”이라고 정부의 지지부진한 국경 봉쇄를 비판하자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겨울이라서 아마 모기는 없는 것 같다”며 흰소리를 늘어 놓았다. 백신 확보가 하루라도 시급한 마당에 “화이자나 모더나를 쓸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초를 치던 기모란 교수는 신설 청와대 방역기획관으로 영전했다. 근거도 없이 어정쩡한 상태로 질질 끌기만 하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결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8·15 집회 참석자를 ‘살인자’라고 매도하던 현 정권의 핵심 세력은 민주노총 집회에는 입도 뻥긋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사투로 혼절 일보 직전이던 의료진의 마지막 남은 힘마저 갈라치기로 빼버린 이는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역주행’은 허구의 K-방역을 잘 묘사하는 단어다.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자유를 속박하는 데 거리낌없던 정부가 뜬금 없이 작년 말 성급하게 일상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섣부른 역주행 방역의 결과는 참담했다.
처참한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정부는 다시 방역의 줄을 단단히 잡아 당겼다. 그러더니 대선을 앞두고 방역 기조를 슬금슬금 완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하루 코로나 감염자가 10만 명에 달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두지 이해할 수 없는 역주행 조치였다. 강력한 방역 기조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완화로 돌아선다면 당연히 어떤 근거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그런 일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확진자 세계 1등, 방역 실패는 '아몰랑'

▲그래픽=차준홍 기자
아니나 다를까. 3월 14일부터 일주일 동안에 전 세계에서 확진을 받은 코로나 환자의 23%가 한국에서 나왔다. 당연히 확진자 숫자로는 단연 1등이고, 사망자도 전 세계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부의 책임 있는 인사 누구도 역주행 방역 조치의 실패를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부겸 총리는 “사회 일각에서 최근 급증한 확진자 수만으로 우리 공동체 전체의 방역 노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며 볼멘 소리만 늘어놨다. 아니 그럼 확진자 숫자가 급증했으니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말인가.
설령 ‘걸릴 만큼 걸려야 코로나 팬데믹을 벗어 난다’고 판단해 정부가 방역 기조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더라도 위중증 환자가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 그리고 순차적으로 사망자가 증가할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를 했어야 한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완화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양상을 보면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새 정부는 달라져야 한다. 정부 귀에 순한 말만 하는 가짜 전문가를 내쳐야 한다. 과학적 근거가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조변석개 정책에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역주행 K-방역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응급실 의사들은 절대로 ‘오늘은 환자가 없네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말이 씨가 돼 곧 환자가 물밀듯 몰려 오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초 기자회견에서 “방역은 너무 잘 하니까 질문이 별로 없으신가요?”라고 황당한 말을 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역주행 K-방역, 정말이지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중앙일보 이형기 서울대병원 교수
04.08 3월 한 달에 9000명 가까이 사망했는데 엔데믹 타령하나

▲7일 세계 보건의 날을 맞아 코로나에 지친 의료진들을 응원하는 의미로 서울시 어린이병원에 찾아가는 밤도깨비야시장 푸드트럭이 등장해 의료진들에게 음료수를 무료로 전달하고 있다. 2022.4.7 이태경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코로나를 풍토병(엔데믹) 수준으로 낮추는 선도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최근 들어 정부 관계자들이 엔데믹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마치 정부가 대처를 잘해서 머지않아 코로나 사태가 끝날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엔데믹은 ‘어쩔 수 없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마치 코로나 종식인 듯 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20만명대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중증 환자가 1100명대를 이어가고 사망자도 연일 350명 안팎 나오고 있다. 델타 변이가 대유행한 지난해 말 하루 사망자가 100명이 넘으면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3배 이상 사망자가 연일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확진자 수와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 수는 세계 1~2위 수준이다. 코로나 사망자 수가 정상 분포 곡선을 그린다면 당분간 사망자가 적지 않게 나오리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일부 외신에서 어떻게 보도했든, 이런 나라에서 코로나 팬데믹 종식을 의미하는 엔데믹을 거론하는 것부터가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 의료 체계를 고려하면 아직 코로나를 풍토병처럼 관리할 여건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금 정부가 관심을 갖고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무엇보다 좀처럼 줄지 않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관심과 역량을 모으는 일이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8759명이다. 지난 2월까지 2년여에 걸친 코로나 누적 사망자보다 3월 한 달 동안 생긴 코로나 사망자가 더 많았다. 정부가 급격하게 방역 조치를 풀면서 생긴 여파임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의료진이 부족한 요양 병원과 요양원에서 전체 사망자의 3분의 1 이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곳에서 집단 발병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백신 3차 접종을 받은 지 6개월이 넘어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미국은 50세 이상 연령층에게 백신 3차 접종 후 최소 4개월이 지났으면, 유럽연합도 80세 이상 고령층이면 4차 접종을 받으라고 권고했다. 우리는 요양 병원·시설 입소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감염을 걱정하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언제 어떻게 4차 접종을 할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엔데믹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하루 평균 사망자가 350명 안팎 나오는 상황에서 반복해 거론할 일은 아니다. 임기 내에 코로나 사태를 매듭지었다는 식의 정권 홍보 욕심에 서두를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15 18일부터 거리두기 전면 해제…“마스크는 2주 더 보고 결정”
2020년 3월 도입 후 2년 1개월 만에
▲14일 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음식점이 저녁 식사를 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15일 사적모임 인원과 영업시간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안을 발표했다. 2020년 3월 도입된 지 2년 1개월 만이다.
이날 김부겸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18일부터 사적모임 인원 10명 제한과 식당·카페·유흥시설·노래방 등의 영업을 자정까지만 허용했던 방침을 전면 해제한다고 밝혔다.
299명까지 허용되던 행사와 집회, 수용가능 인원의 70%까지만 허용되던 종교시설 인원 제한도 동시에 없어진다.
영화관과 실내체육시설, 종교시설 등 실내 다중이용시설에서의 음식물 섭취 제한은 오는 25일부터 해제한다.
다만 실내‧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는 현행과 같이 유지한다. 김 총리는 “실내 마스크 착용은 상당기간 유지가 불가피하다”며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은 실외마스크 착용에 대해서는 2주 후에 방역상황을 평가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04.22 무리한 ‘확진자 격리 폐지’ 발표, ‘文 방역 완결’ 포장 위한 건가
대통령직인수위가 20일 “정부가 5월 말에 코로나 확진자 격리 의무를 완전 해제한다고 한 것은 상당히 성급한 접근”이라며 “차기 정부가 충분히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15일 코로나 감염병 등급을 오는 25일 2등급으로 낮추고 4주간 이행기를 갖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23일부터 확진자도 격리 의무가 해제되고 권고로 바뀌게 된다. 코로나에 걸려도 출근하거나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확진자 수가 4주 연속 감소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평일 하루 확진자 수는 10만명 안팎에 달한다. 그런데 확진자 격리까지 없앤다니 의아하다.
오미크론 변이는 증상 발현 후 최장 8일까지 바이러스가 배출된다. 정부 발표가 그렇다. 그래서 코로나에 감염되면 7일 동안 자가 격리하고, 3일은 수동 감시하는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격리 의무를 해제하면 자칫 감염 확산의 위험성이 있다. 미국과 영국 등 확진자를 강제 격리하지 않는 나라도 있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등은 5일, 일본·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들이 7일 격리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올 들어 뭔가에 쫓기듯 방역을 대폭 완화해 왔다. 그러더니 확진자 격리 의무까지 해제하기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거리 두기를 해제한 뒤 “마침내 국민께서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임기 내에 코로나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이다. ‘확진자 격리 해제’ 발표는 ‘위기 극복’ 주장의 완결판인 셈이다. 다음 달 23일 집행 정책은 차기 정부 출범 이후이기 때문에 월권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무리한 방침을 굳이 발표부터 하는 것은 ‘문 정부 내에서 다 끝났다’고 포장하려는 것 아닌가.
확진자 격리 완화가 필요하면 일단 기간을 5일 정도로 줄인 다음 그 여파를 살펴보고 다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방역이 풀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 악화를 바라는 국민도 없다. 정치 방역은 해가 될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4월 22일 ‘시민 출근 볼모’ 전장연 시위 당장 멈추고 대안 찾아야
장애인 단체 일각이 시민 출근을 볼모로 삼은 시위를 반복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과 3호선 경복궁역에서 27번째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벌였다. 정차한 열차에 오른 뒤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서 하차하는 식이다. 열차 운행이 최대 1시간 이상 지연되면서 빚어진 학생·직장인의 출근 대란을 요구 관철 수단화한 것으로, 발상부터 빗나갔다.
물론 미흡한 장애인 복지를 더 확충해 나가야 한다. 전장연처럼 장애인 탈(脫)시설 자립 지원 시범 예산 807억 원 편성, 활동 지원 예산 1조2000억 원 증액, 평생교육시설 예산 134억 원 편성과 관련법 제정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불편을 감내해온 시민의 피해를 더는 키우지 말아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장연 출근길 시위가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12월 3일이다.
지난달 2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요구를 전한 다음 날부터 중단했던 시위를 재개한 전장연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5월 2일 국회 인사청문회 때 장애인 예산 입장 발표를 약속한다면 시위를 중단하겠다”고 했으나, 당장 멈춰야 한다. 주장하더라도, 다른 방식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한국교통장애인협회도 “비상식적 시위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고 있다”고 개탄한 이유부터 전장연은 되새겨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4.30 야외 마스크 해제 문제까지 인수위 요청 거부한 정부, 옹졸하다
정부가 5월 2일부터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김부겸 총리는 “일부에서 우려도 있었지만, 혼자만의 산책이나 가족 나들이에서조차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국민들의 답답함과 불편함을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동안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는 논란이 많았다. 과학적으로는 쓸 필요가 없지만 방역 긴장감 유지를 위해 실외 마스크 착용을 유지해온 측면이 컸다. 다른 나라들도 야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곳이 많다.
하지만 그토록 야외 마스크를 고집하던 정부가 정권 교체를 불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이를 굳이 발표해야 했던 사정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는 아직 매일 확진자가 수만 명 발생하는 상황에서 야외 마스크 해제는 곧 들어설 새 정부가 판단하겠다고 요청해왔다. 상식에 맞는 요청이다. 한두 주일 더 야외 마스크를 쓴다고 크게 불편해할 국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수위가 이런 요청을 하자마자 정부가 야외 마스크 해제를 발표해버렸다. 어깃장을 놓는다는 말이 과하지 않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오미크론 유행으로 확진자가 폭증하는데 정부는 뭔가에 쫓기듯 거리 두기를 잇따라 해제했다. 유행이 정점을 향해 올라갈 때 방역을 푼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올 들어서만 1600여 만명이 코로나에 걸려 누적 확진자 수 세계 8위를 기록한 것이다. 일본의 2배, 대만의 250배쯤이다. 우리나라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도 일본의 2배, 대만의 12배다.
그래도 정부는 임기 내에 코로나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28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K방역은 우리의 자부심” “국가적 성취이고 결코 폄훼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성과”라고 했다. 인수위가 요청하는데 야외 마스크를 해제한 것은 ‘임기 내 극복’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권은 코로나 발생 초기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았다. 시진핑 방한을 위한 것이었다. 국내 치료제 개발을 치적으로 삼으려다 백신 도입 시기를 놓쳤다. 자영업자 표를 의식해 섣불리 방역 빗장을 풀었다가 델타 변이 유행을 초래했다. 재난지원금도 실제 피해를 본 계층이 아닌 전 국민에게 뿌렸다. 선거 때문이었다. 정치 방역으로 시작해 정치 방역으로 끝났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겠나.◎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