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소리 2022-04/ 04.01 문 대통령과 가족들 돈 문제는 왜 이렇게 불투명한가 - 04.30 文대통령의 훼방, 도를 넘다
바른소리 2022-04/
04.01 문 대통령과 가족들 돈 문제는 왜 이렇게 불투명한가

▲문재인 대통령이 2008년 청와대를 나온 뒤 머물렀던 경남 양산시 매곡동 사저.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전 살았던 양산시 매곡동 사저를 매각해 17억4000여 만원의 차익을 거뒀다고 한다. 2009년 8억7000만원에 사서 13년 만에 3배인 26억1000여 만원에 팔았다. 부동산으로 돈 벌지 못하게 하겠다던 문 대통령이다. 사저는 마을에서 2㎞가량 떨어진 계곡에 있다. 그런데도 26억원이나 받았다. 시세보다 비싸게 팔린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사저 주차장과 도로 등을 뺀 주택(329㎡) 매각가는 20억6000만원이다. 이 집 공시가격은 작년 2억9400만원이었다. 주변의 다른 주택(290㎡) 실거래가는 2020년 4억6000만원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이번 거래는 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은 사인 간 직거래였다. 누군가 시세보다 높게 사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등기 이전도 되지 않은 상태여서 산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다. 청와대는 “정상 거래”라면서 누구에게 어떻게 팔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엔 서울 홍은동 사저를 팔았다. 집을 산 사람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다. 딸 다혜씨는 2018년 남편 소유이던 구기동 집을 자신이 증여받아 매각했다.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었고, 주변 시세보다 8000만원가량 높았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는 “불법은 없었다”고만 했다. 다혜씨가 2021년 서울 양평동에 대출 없이 매입한 집을 1억4000만원 차익을 얻고 팔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혜씨 가족은 2018년 태국으로 이주했고, 남편은 이스타항공이 지급 보증을 서준 회사에서 일했다. 자녀는 한 해 수천만원이 드는 국제학교에 다녔다. 왜 해외로 갔고 무슨 돈으로 생활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청와대는 “사생활”이라며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다혜씨 가족의 해외 이주를 도운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의원은 공공기관장을 거쳐 의원까지 됐고 수백억대 횡령 범죄에도 수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청와대는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개인 카드로 결제했다” “세금계산서도 발행했다”고 했다. 하지만 옷과 신발 판매 업체들은 “비서관이 5만원권 현금으로 지불했다” “영수증을 발행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문 대통령과 그 가족과 관련된 거래는 항상 의문투성이다.
조선일보 사설
04.01 “만우절 핑계로라도 사과하라”… 대학생 단체, 靑 앞에서 文 5년 규탄

▲1일 오전 신전대협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강우량 기자
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 “문재인 정부 대국민 반성. 문재인 정부 5년, 국민께 사과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펼쳐졌다. 대학생 단체 ‘신(新)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전대협)’가 만우절을 맞아 내건 것이다.
이들은 현수막 옆으로 “유능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팻말과 ‘대국민반성' 홈페이지로 접속이 가능한 QR코드를 함께 들었다. 정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국정백서 사이트를 풍자해 만든 홈페이지다.
이날 신전대협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5년간의 실정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김태일 신전대협 의장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만우절을 기회로 속마음을 고백하는 문화도 있는데, 대통령께서 그동안 너무 부끄러워서 사과를 못하셨다면 이번 만우절을 핑계로라도 국민들에게 대대적인 반성을 해달라”고 했다. 문 정부가 숱한 비판들은 외면한 채 ‘K-방역’ ‘소득주도성장’ 등에 대한 자화자찬을 이어가자 “대학생들이 사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수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앞서 지난 2019년 문 대통령은 신전대협 회원 한명을 모욕죄로 고소한 바 있다. 당시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고소를 취하하며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신전대협은 문 대통령의 모교인 경희대를 포함해 전국 100여개 대학에 ‘대통령 각하의 심기를 거슬러 죄송하다’는 내용의 풍자 반성문을 부착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강우량 기자
04.01 아무도 이해 못 할 대우조선 사장 임명, 누구 지시로 강행했나

▲문재인(가운데) 대통령이 2018년 1월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쇄빙 LNG 운반선 야말5호에 탑승해 박두선(맨 왼쪽) 사장(당시 상무)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박 사장은 이후 4년 만에 상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이 임기 3년 신임 사장에 문재인 대통령의 동생과 대학 동기인 박두선 부사장을 선임해 인수위와 청와대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부실기업으로 산업은행이 대주주다. 대우조선 사장 인사는 상식과 관행을 벗어났다. 1973년 대우조선 창사 이래 생산 관리 출신이 사장이 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생산 관리 출신도 사장을 할 수 있지만 현재 대우조선의 최대 현안은 생산이 아니라 회사 매각 등 다른 분야다. 박 사장은 문 정부 들어 벼락 출세한 인물이다. 문 대통령이 2018년 1월 새해 첫 산업 현장 방문으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를 찾았을 때 당시 상무급이었던 그가 브리핑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그는 두 달 뒤 전무로, 이듬해엔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고, 4년 만에 사장에 오른 것이다. 이것을 누가 정상이라고 하겠나.
정권 말 ‘알박기 인사’에 대한 비판이 많은 속에서 논란이 큰 인사가 강행된 배경도 의문이다. 인수위는 정권 말 공기업 인사에 대해 자제를 요청했고, 금융위는 인수위의 뜻에 따라 산업은행을 포함한 산하 금융기관, 금융 공기업에 새 인사를 자제하라는 요청을 전달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 지침을 무시한 채 대우조선 사장 인사를 묵인했다.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금융권의 대표적인 친문 코드 인물이다. 2020년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이 전 대표의 ‘20년 집권론’을 연상케 하는 “가자 20년” 건배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총 7조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은 수조 원대 적자를 감추려 분식 회계를 일삼고, 적자 와중에도 수천억 원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등의 도덕적 해이로 지탄을 받은 부실 기업이다. 적자를 내고 국민 부담으로 월급을 받는 것이 만성화된 곳이다. 작년에도 1조7000억원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회사에 문 대통령 쪽 사람을 기어이 사장으로 만들어야 했나. 사장 인선 과정과 산업은행의 방조 배경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사설
04.01 세금으로 만드는 공공일자리 사업부터 줄여라
건전재정포럼, 8가지 정책 제언
전직 경제 관료, 재정학자 등 120명이 회원인 건전재정포럼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난 5년간 악화된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한 8가지 정책 제언을 발표했다.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대표(전 건설교통부 장관)는 “연금 개혁 등 미뤄지고 있는 개혁을 서둘러야 하고 재정 건전성을 지킬 준칙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①숫자 채우기 급급한 공공 일자리 줄여라
문재인 정부는 거의 매년 ‘수퍼 예산안’을 짜서 재정을 확대했다. 특히 세금 일자리 사업 확대가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건전재정포럼은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일자리 숫자를 유지하는 데 급급해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고 했다.
②학령인구 주는데 초·중등교육 예산 과다
학생은 줄어드는데 계속 늘어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균철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중등교육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상회하지만, 고등 교육은 평균에 미달한다”며 “초·중등교육 과잉 지원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③부가가치세율 15%까지 올려야
고령화로 늘어나는 복지비 지출을 감당하려면 지출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세수 확충 방안도 찾아야 한다. 3대 세목(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중 소득세·법인세는 박근혜 정부 이후 지속적인 세율 인상이 이루어져 왔으나 부가가치세율은 1977년 도입 이후 10%로 고정됐다. 부가가치세를 운영하는 36개 OECD 회원국의 평균 세율(19.3%)의 절반 수준이다.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가가치세율을 15%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④국민연금, 소득대비 보험료 9%→17%로
건전재정포럼은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소득 대비 보험료의 비율을 현행 9%에서 17%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8세로 5년마다 한 살씩 상향 조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김용하 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2018년 정부안처럼 소득대체율을 45~50%로, 연금 보험료율은 12~13%로 높이는 수준의 땜질식 처방을 동원할 경우 적립 기금은 2063년경에 소진되고, 2065년에 보험료율은 35.6%로 높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⑤공약 비용 추계하는 기구 만들라
박노욱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선 등에서 주요 정당의 공약 비용을 추계할 전문기관을 만들어 공약 실현에 들어갈 재정 규모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발표해야 포퓰리즘 공약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네덜란드(CPB)·아일랜드(재무부)·호주(의회예산국)는 전문기관을 통해 주요 정당의 공약 비용 추계를 제도화하고 있다.
⑥공공기관의 민간시장 침범 막아야
포럼은 민간 역할까지 떠맡아 비대해진 공공기관의 부채 증가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의 민간시장 잠식은 주무 부처와 예산 당국의 방치하에 계속 확산 중인데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중 부채가 많은 39개 기관을 보면 2020년 521조6000억원이었던 부채가 2024년에 615조8000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⑦구속력 있는 재정준칙 제정하라
재정준칙이란 법률로 재정적자, 국가채무 등 재정총량에 대한 한도를 설정하는 것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국형 재정준칙’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핵심인 한도 설정을 시행령에 위임했는데 이를 법률로 규정하고 즉각 시행해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⑧기득권 반발 막을 정부 개혁 기구 설치
포럼은 “역대 정부가 재정지출 조정이나 공기업 개혁을 추진했음에도 성과는 별로 없었다”며 “기존 제도로 혜택을 받고 있는 기득권층의 반발이 컸기 때문인데 강력한 추진을 위해서는 한시적 정부 개혁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외환 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가 기획예산처에 ‘정부개혁실’을 설치하고 공기업, 정부 산하기관 개혁을 추진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조선일보 김태준 기자
04월 01일 구중궁궐은 어디에나 있다

민병기 정치부 차장
조국 사태쯤부터였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전해 듣는 데 시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일하는 춘추관에서 대통령이 일하는 여민관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으니 오가며 만나는 참모의 얘기를 귀동냥하고, 전화통화로 내부 기류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도 비슷했다. 메시지 관리에 능한 몇몇 참모의 휴대전화만 열어뒀다. 춘추관에서 여민관으로 가는 길이 막힌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라고 들었다. 청와대로 가는 길이 막힌 춘추관의 한계는 분명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정권만 잡으면 바로 문을 열겠다’고 했지만 기자 없는 근무 환경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는 배경에는 이처럼 출입기자마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가 깔려 있다. 뒤집어 보면 대통령과 참모들이 민심과 동떨어져 갇혀 있는 모양새기도 하다.
이쯤 되면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의지는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확히는 ‘구중궁궐’ 청와대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의지는 이미 모든 국민이 확인한 듯하다. 그리고 대통령 주변을 언론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민심을 적극적으로 받드는 구조로 꾸리겠다는 뜻도 확고하다. 직접 지휘봉을 들고 펼쳐진 용산 지도를 짚어 가며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질문이 더 이상 없을 때까지 질의에 응답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정치권과 언론계의 평이 많다. 당선된 순간부터 경호에 둘러싸여 ‘멀어진 당신’이 됐던 전직(前職)들에 비춰 통의동 천막 기자실을 찾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간 못 보던 새로운 당선인의 모습이다.
당선인의 충만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는 데 대한 여론이 좋지만은 않다. 무조건 대통령의 집무실이 청와대여야 한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석열이 하는 건 뭐든 싫다’는 부류도 다수는 아니다. 왜 청와대에 단 하루도 머물면 안 되는지, 왜 이리 급하게 밀어붙이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고,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인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데 따른 안보 공백은 없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수다. 헷갈리는 건 여기다. 어느 순간, 당선인 주변과 인수위에서는 옮겨간 용산의 청사진보다 빈 청와대를 어떻게 꾸밀 것인지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더 많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꽃핀 5월 청와대를 개방하면 여론은 한순간 바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전’보다 ‘개방’에 방점이 있다”고 말했다. ‘언제 청와대 개방해 달라고 했느냐’는 목소리가 보수 진영에서도 나오는 배경이다.
용산이 새로운 대통령의 공간으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아울러 소통과 화합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겨간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내가 들어야 할 말이 있을 때, 날카로운 질문이 쇄도할 때가 아니라 내가 할 말이 있을 때만 기자들을 찾는다면, 나를 원망하는 민심을 수용할 의지와 자세가 없으면, 용산도 ‘구중궁궐’이다. 소통에 대한 의지는 끝까지 갖고 가되, 집무실 이전은 차근차근 했으면 좋겠다. 구중궁궐은 어디에나 있다.
문화일보 사설
04.02 새 정부 정책 설계 ‘文 정부 통계 왜곡’ 시정부터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의 통계 왜곡 의혹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집값·일자리 등 주요 국가 지표의 통계 작성에 왜곡·분식이 있었는지, 그 과정에 정권의 개입이 있었는지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작년 2월 “통계 분식 의혹을 감사하라”는 야당 요청을 받고도 코로나 탓을 하며 미뤄오더니 정권이 바뀌자 이제야 감사하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신뢰받는 국정 수행을 위해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할 중대 사안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부작용을 만들어 놓고는 이를 통계 분식으로 가리려는 행태가 문 정부 5년간 반복됐다. ‘소득 주도 성장’의 실패로 소득 격차가 최악으로 벌어지자 청와대 지시를 받은 국책 연구소들이 가구(家口) 대신 개인별로 통계를 재가공해 ‘상위 10% 근로자만 소득이 줄었다’는 왜곡된 수치를 창조해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인용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불리한 통계가 잇따르자 청와대는 아예 통계청장을 교체해 버렸다. 새 통계청장은 표본 수, 응답 기간, 조사 기법 등을 바꿔 과거 정부의 소득 지표와 비교하기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일을 저질렀다.
고용 통계는 세금으로 분식했다. 주 1시간 이상만 일하면 ‘고용’으로 잡힌다는 것을 악용해 휴지 줍기, 새똥 닦기 등 일자리라고 할 수 없는 공공 알바 자리를 대거 양산했다. 그렇게 수치만 인위적으로 늘려놓고는 “고용이 회복됐다”고 주장했다. 임신·질병 등으로 시간제 근무를 하는 근로자를 비정규직 통계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쉬는 공공 근로 인력을 실업자가 아닌 취업자로 분류하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자 주택 통계에도 손을 댔다. 경실련과 KB은행 통계로는 서울 아파트 시세가 4년간 두 배 가까이 폭등했는데 국토부 장관은 “14% 올랐다”고 발표했다. ‘미친 집값’을 만든 정부가 엉터리 수치를 고집하자 KB가 17년간 해온 집값 통계 작성을 일시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월성 1호기 폐쇄를 위해 가공의 수치로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통계가 있어야 그 기반에서 옳은 정책을 펼 수 있다. 문 정부는 이념 편향 정책 목표를 먼저 정한 뒤 이를 합리화하려고 통계를 꿰맞춰 왔다. 그러니 정책 실패가 시정되지 않고 반복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새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려면 문 정부의 왜곡된 통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04 ‘전화 뒷조사’ 자백한 공수처, 처장이 진퇴 결심할 일 아닌가
공수처가 ‘통신 자료 조회’라는 명분으로 수사 대상도 아닌 민간인들의 전화까지 무차별적으로 뒷조사하는 탈법적 수사가 더 이상 없도록 하겠다는 개선안을 뒤늦게 발표했다. 이 개선안은 공수처가 그동안 조직 운영과 수사를 얼마나 황당한 방식으로 해왔는지를 자백하는 문서나 마찬가지다.
공수처는 ‘전화 뒷조사’를 부장검사의 결재도 없이 일선 검사들이 직접 결정했다고 밝혔다. 통신 조회 기준도 부서마다 제각각이었고 전체 조회 내역을 점검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한 사람이 공수처 내 여러 부서에서 ‘겹치기 조사’를 당하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구조였다. 실제로 TV조선 기자와 그 가족은 이런 식으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사생활 정보를 수차례 털렸다. 언론사 간부와 기자 수십 명이 제작 회의를 하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들여다보는 ‘무더기 염탐’도 별다른 통제 없이 벌어졌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 110명 중 80명 넘게 전화 뒷조사를 당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지금도 전화 뒷조사를 어떤 사건과 관련해 누구를 상대로, 몇 번이나 했는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사건 전체를 관리하는 전산 시스템, 통화 내역을 정밀 분석해 통신 조회 대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없었다는 핑계만 대고 있다. 직원 한 명이 장부 하나만 제대로 챙겼어도 ‘겹치기 조사’ ‘무더기 염탐’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공수처는 현직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살아있는 권력’의 불법을 파헤쳐 국민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수사기관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서 공수처는 정권 호위처, 야당 수사처같이 움직였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등 청와대가 관여한 의혹이 있는 불법이 줄줄이 터졌지만 공수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연관된 대장동 의혹은 못 본 체하면서 야당 대선 후보는 친정권 성향 시민 단체가 고발한 지 사흘 만에 입건했다. 지금까지 공수처가 범죄를 직접 포착해 수사, 기소한 실적은 1건도 없다. 공수처 차장은 자신이 관여한 영장이 잇달아 기각당하자 본인 입으로 “공수처는 아마추어”라고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공수처의 수사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미흡하다’는 응답이 70%에 가깝다. 국민들은 이런 공수처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꼭 필요한데도 국민들의 인식이 이런 수준이라면 조직 운영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진퇴를 결심해야 하지 않겠나.
조선일보 사설
04월 04일 제주 4·3 치유가 ‘남로당 폭동’ 본질 가려선 안 된다
보수 정당 소속의 대통령이나 당선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윤석열 당선인이 제주 4·3사건 희생자 공식 추모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윤 당선인은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4주년 제주 4·3 추념식 추념사를 통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이라고도 했다.
윤 당선인이 “무고한 희생자들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도 지적한 제주 4·3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비극 중 하나다. 치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본질을 가려선 안 된다. 그 본질은 남조선노동당이 일으킨 1948년 4월 3일 무장 폭동이다.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건국을 위한 5·10 총선의 저지·방해를 노렸다. 무장봉기 진압에 나선 군·경(軍警) 다수가 희생됐다. 그 과정에,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추모 대상이다.
당시 남로당 잔당은 북한군의 1950년 6·25 남침 때도 한라산에 60여 명이 은거하고 있었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출입 전면 개방을 사건의 공식 종결로 치지만, 마지막 무장대 체포는 1957년 4월 2일이었다. 그런 역사까지 잊어선 안 된다. 폭동을 주도한 남로당 간부 등은 명예회복이나 추모 대상일 수 없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문화일보 사설
04.05 “재정 건전성은 최후의 보루” 무너진 상식부터 재건해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엊그제 차기 윤석열 정부의 4가지 중요 과제의 하나로 재정 건전성을 꼽으면서 “국가 안정 정책의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재정 건전성이 없으면 국가의 대외적 신뢰와 안정을 기약할 수 없다” “정부가 큰 위기 의식을 느끼고 대응해야 하는 과제”라고도 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고, 국가 운영을 책임진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재정 원칙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식을 내팽개치고 국정을 운영했다.
문 정부는 5년 내내 초대형 적자 예산을 편성하고 세금을 뿌렸다.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일자리 등 온갖 정책 실패를 세금으로 틀어막았다. 2017년 400조원 규모의 본예산을 5년 만에 1.5배가 넘는 607조원으로 키웠다. 그것도 모자라 매년 빠짐없이, 총 10차례에 걸쳐 151조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5년간 공무원 수를 13만명 가까이 늘렸다. 공무원 증원이 박근혜 정부(4만1504명)의 3배, 이명박 정부(1만2116명)의 10배도 넘는다. 공무원 및 공공기관 인건비만 연간 100조원 넘게 나간다. 중앙정부 살림뿐 아니라 각종 기금, 공공기관도 부실을 초래했다. 5년간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은 18개 늘어 350개에 달하고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도 118개 신설됐다. 공공기관 임직원이 5년 새 35%(11만5091명)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면 썩는다”는 궤변으로 빚내서 돈 쓰는 것에 둔감한 도덕적 해이를 조장했다. 야당 시절 “국가채무비율 40%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이라며 전 정부를 비판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작 자신은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뭐냐”면서 재정 규율을 무너뜨렸다. 이전 정부의 SOC 사업을 ‘토건 정부’라고 비판하더니 자신들은 역대 최대 SOC 예산을 편성했다.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하는 ‘정치’ 사업을 마구 늘렸다. 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이 144건 106조원으로, 이명박(61조원)·박근혜(25조원) 정부 9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국가 부채는 5년간 400조원 넘게 늘어 올해 1076조원으로 예상된다. 국민 1인당 국가 채무는 51%(2017년 1284만원→2022년 1942만원) 늘었다. 36%였던 국가 부채 비율이 50%대로 높아졌다. 빠르게 늘고 있는 공기업 부채, 고령화로 인해 계속 증가하는 연금 충당 부채 등은 감안하지도 않은 순수 정부 부채만 그 정도다. IMF에 따르면 한국의 향후 5년간 국가 부채 증가 속도는 선진 35국 중 1위다. 이대로면 2031년에 국가 채무 비율은 81%로 높아진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코로나에 대응하느라 풀었던 돈줄을 조이는데 문 정부는 차기 정부에 긴축의 숙제를 떠넘겼다. 윤석열 정부는 무섭게 불어나는 국가 부채에 제동부터 걸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05 34년 된 낡은 최저임금제, 업종·지역별 차등화부터 검토를

▲자료=최저임금위원회·경총
최저임금위원회가 오늘부터 내년도 법정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심의 절차를 시작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민 평균 소득이 10.2% 오른 반면 최저임금은 42% 올리는 바람에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 고용이 대거 줄어들면서 일자리 참사와 소득 격차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소득 주도 성장’ 같은 어떤 형식의 이념적 억지 논리에도 구속되지 말고 노동자와 사용자 양쪽 이익의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9160원)은 근로자 중위 임금의 61% 수준으로, 일본(44%)·미국(30%) 등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못 받고 일하는 근로자가 6명 중 1명꼴이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이런 법정 임금과 현실의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도 숙제다.
무엇보다 개선이 시급한 것이 일률적 최저임금이다. 고용주의 규모나 업종, 대도시냐 시골이냐에 따라 물가, 고용 여건과 지불 능력이 크게 다른데 전국 모든 작업장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주도록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을뿐더러 공정하지도 않다. 일본에선 업종·지역별로 따로 산정한 차등 최저임금제를 시행 중이고, 미국·영국·캐나다·네덜란드 등에선 청소년 아르바이트 근로자에겐 성인 최저임금의 30~75%(네덜란드 기준)를 적용하는 식으로 근로자 연령별로도 차등화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도 ‘업종·지역별 차등 적용’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노동자·사용자 대표와 정부 임명 공익 위원이 9명씩인 구성 체계도 문제가 많다. 노와 사측의 의견이 항상 양 극단으로 치닫고 결국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 위원들이 결정하면 양쪽 모두 불복을 선언하는 일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문 정부도 전문가들이 먼저 최저임금 상하한선을 정하면 그 범위 안에서 노·사·공익 위원이 최종 금액을 정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하려 했지만 노동계 반발로 무산됐다. 국회나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미국·프랑스 등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은 고용뿐 아니라 실업급여 지급액, 형사 피해자 보상금, 백신 부작용 보상금 등 16분야의 보상금 수준을 좌우하는 기준 역할을 한다. 1988년 첫 시행 후 34년이 지나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제도를 고칠 때가 됐다.
조선일보 사설
04월 05일 경기도 법카 사건 심각성과 수사 방향

배병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지난 4일 오전 경기도청 총무과, 조사담당관실, 의무실 등 관련 부서에 대해 압수수색했다.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인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의 배우자 김혜경 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처방전 불법 발급 의혹 등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강제수사다. 그러나 핵심 인물인 전 경기도청 총무과 소속 5급 비서관 배모 씨 등 개인이나 자택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와 배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를 사적(私的)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은 전 경기도 비서실 7급 공무원 A 씨의 공익신고로 지난 1월쯤에 제기됐다. 국민의힘과 장영하 변호사 등은 김 씨와 이 전 지사, 배 씨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강요죄, 국고등손실죄, 의료법위반죄 등으로 고발했고, 경찰은 지난달 14일 고발인 장 변호사를 조사했다. 경기도는 지난 2월 초 감사에 착수해 해당 의혹 부서로부터 법인카드 사용 내역 자료와 직원 진술을 받았으나, 퇴직한 배 씨가 감사에 협조하지 않아 지난달 25일 배 씨를 횡령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배 씨는 이재명 변호사의 사무실 직원이었는데, 이 변호사가 성남시장이 되자 성남시 공무원으로, 경기도지사가 되자 경기도청 총무과 5급 공무원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7급 공무원인 A 씨는 5급인 배 씨의 지시에 따라 자기 카드로 김 씨 집에 보낼 쇠고기와 초밥 등의 비용을 결제했다가, 결제 취소한 다음 업무상 사용한 것처럼 경기도 법인카드로 12만 원 넘지 않게 다시 결제하기를 11회나 하다가 공익제보한 것이다. 그 밖에도 A 씨는 배 씨의 지시에 따라 김 씨가 받을 약을 대리 처방받기도 했다.
배 씨가 5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본인을 공무원으로 채용한 도지사의 부인 김 씨의 사적인 일을 도와주는 것을 공무로 알았는가? 1300만 명이 사는 경기도에서 그러한 상식에 반하는 불법이 계속된 것은 정말 황당하다. 본인 약의 대리처방과 10회 이상 음식물 배달을 받은 김 씨는 그 이유와 그 음식물의 용도도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그리고 위 사건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인정한 이 전 지사의 법적 책임에 대해 경찰은 엄정한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도지사와의 사적인 인연으로 도청 총무과 5급 공무원으로 채용된 배 씨가 비서실 7급 공무원 A 씨에게 계속 불법행위를 명령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문제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직업공무원 제도의 취지에 따른 엄격한 공무원 채용과 교육 등에 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법규를 준수하며 성실히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지방공무원법을 계속 침해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기도 감사실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한, 개방직인 경기도 감사관도 이 전 지사의 측근이라는 보도도 있었던 만큼, 제도의 취지에 따른 인사가 되도록 개선해야 한다. 지방의회의 행정사무 감사·조사권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그로써 지방자치단체장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사를,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사 업무가 더욱더 투명하고 분명해지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문화일보
04월 05일 경찰 살수차 폐기, 직무유기 아닌가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형사정의 전공
경찰이 살수차 18대와 가스차 12대를 지난해에 모두 폐기했다는 보도가 지난 1일 있었다. 미세먼지를 줄이라는 환경부 지침과 차량 사용 연한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차량은 엄연히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 2항에 명시돼 있는 경찰장비인데도 향후 도입 계획도 없다니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살수차와 가스차는 각각 고압의 물줄기 또는 최루제를 분사해 과격 폭력시위대를 해산하는 경찰의 중요한 법 집행 수단이다. 하지만 이제 경찰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처럼 서울 도심이 무법천지로 유린돼도 방패나 몸으로 막아야 한다. 당시 경찰의 직사살수로 숨진 백남기 씨 유족이 청구했던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살수차 폐기와 관련된 내용은 판결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헌법재판소는 경찰의 살수차 운용을 기본적 전제로 하면서,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안전의 직접위험이 명백하고, 다른 방법으로는 위험을 제거할 수 없을 때 직사살수가 허용되는 것이라 했다. 즉, 위 요건에 반해서 백 씨를 향했던 당시 경찰의 과잉 살수는 위헌이지만, 살수차 자체를 원천적으로 없애 운용하지 말라는 취지는 아니었다.
살수차 운용과 관련된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가 또 있다. 위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기 이전인 2020년 1월에 경찰은 불법 집회시위 현장에서 살수차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대통령령 규정을 삭제했다. 소요사태에서만 사용하도록 바꾼 것이다. 그런데 방어용 이격 장비에 불과한 살수차로 한 지역의 평온과 안전을 침해할 만큼의 큰 위협에 대응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지 않다. 살수차는 결국 불법집회는 물론, 소요사태에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사실상 경찰이 알아서 무장 해제한 것과 다름없다.
‘군중’은 아무리 평화적 집회 시위 중이더라도 언제든 과격한 폭력성을 보일 수 있다. 흥분적 정서가 전염되면 이성과 절제보다는 집합 행동이 앞서는 폭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집회시위 과정이 물리력 중심의 경찰 지시통제에서 참가자의 자유가 보호·보장되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화 경찰’이라는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관이 시위대와 상호 소통하면서 평화 집회에 도움 주는 역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과격 폭력시위에도 경찰은 항시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경찰은 왜 장비를 폐기했을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근 1년간 있었던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집회 시위 현장에서 살수차 사용의 사실상 전면 금지뿐만 아니라, 시위 현장에서 발생한 경찰관의 신체 또는 장비 손상에 대해 문제 삼지 말고 민사소송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마치 경찰을 독재국가의 억압 기구로 간주하고, 경찰의 법 집행을 국가폭력으로 치부한 과거 운동권 세력의 시각과 유사한 발상이었다.
경찰은 조속히 경찰다운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윤석열 차기 정부의 신임 경찰청장 의지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경찰 장비의 복원과 대통령령의 재개정은 상당기간 녹록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 안건이 국가경찰위원회에 상정·의결돼야 하는데, 문 정부에서 임명된 경찰위원들의 임기가 평균 1년8개월 이상 남았기 때문이다. 국가경찰위원들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04월 05일 나랏빚 또 GDP 추월, 분배 악화…참담한 文 경제 성적표
발생주의 원칙에 따른 국가부채가 지난해 처음으로 2000조 원을 돌파하며 2년 연속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추월했다. 공공 부채와 민간 부채를 합친 국민 1인당 빚은 1억 원을 넘었다. 게다가 소득분배는 더 악화했고, 물가는 10년여 만에 최고치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국민 삶을 파탄으로 몰아간다. 짐을 떠안은 윤석열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가 더욱 힘겨운 과제가 됐다.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1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발생주의 원칙을 적용한 재무제표상 국가부채는 2196조4000억 원이었다. 두 차례 추경 등 방만한 재정 지출을 떠받친 적자국채 발행 증가, 공무원·국인연금 충당부채 확대 등에 따른 것이다. 이로써 국가부채는 2020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GDP보다 많았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가계·기업·정부의 부채총계는 지난해 5188조5000억 원으로 처음으로 5000조 원을 넘겼다. 1인당 1억27만 원으로 전년(9118만 원)보다 10% 가까이 급증했다. 아이가 1억 원의 빚을 안고 태어나는 불량국가다.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다. 신한은행의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와 하위 20% 간 소득 격차는 2018년 4.83배에서 2021년 5.23배로 확대됐다. 소득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더 빨라 살림이 점점 쪼들린다.
더구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5개월 연속 3%대 (전년 동월 대비)를 보이다, 급기야 3월에는 10년여 만에 최고치인 4.1%로 치솟았다. 생활물가는 5.0%, 외식물가는 6.6%로 더 급등했다. 소득은 찔끔 느는데 물가는 치솟아 처분가능소득은 오히려 줄고 부채는 빠르게 급증하고 있다. 가계 살림이 3중, 4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문 정부 5년의 경제 성적표가 참담하다. 대규모 빚까지 내며 돈을 펑펑 쓰더니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툭 하면 자화자찬했던 경제는 임기 막판인 지금 총제적 실패임을 보여준다. 윤 당선인이 매번 민생 안정과 경제 회복을 강조하고, 한덕수 총리 지명자가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것이 와 닿는다. 국민은 절박하다. 새 정부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일보
04월 05일 물가 4.1% 뛰고… 국가부채 2000조 넘었다
3월 물가 10년3개월만에 최고
석유류 31.2%·외식 6.6% ↑
유류세 인하 20%→30% 확대
국가부채 文정부서 763조 증가
올해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년여 만에 4%대로 치솟았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 과정에서 수요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5일 내놓은 ‘소비자물가 동향’(2022년 3월)을 보면,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가 4%대 상승률을 보인 것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물가 상승은 석유류 등 공업제품과 외식 등 개인 서비스가 견인했다. 석유류(31.2%) 물가 상승률은 휘발유(27.4%), 경유(37.9%), 자동차용 LPG(20.4%)가 일제히 상승하면서 전월(19.4%)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서비스 물가 상승은 외식이 견인했다. 외식은 생선회(10.0%) 등이 상승하면서 6.6% 올랐다.
정부는 이날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오는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유류세 인하 폭을 현행 20%에서 10%포인트를 추가해 30%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유류세 인하로 ℓ당 10㎞의 연비로 하루 40㎞를 주행하는 운전자는 휘발유 기준으로 월 3만 원의 유류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류세 20% 인하 때와 비교하면 유류비 부담이 1만 원 줄어드는 셈이다. 기준가격(ℓ당 1850원) 이상 상승분의 50%를 정부가 지원하는데, 최대 지원 한도는 ℓ당 183.21원으로 정해졌다. 서민생계 지원을 위해 택시·소상공인 등이 주로 이용하는 차량용 부탄(LPG)에 대한 판매 부과금 역시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30%(ℓ당 12원) 감면한다.
나라살림도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이날 ‘2021회계연도 국가 결산’을 통해 지난해 국가부채가 2196조4000억 원으로 2011회계연도 이후 처음으로 2000조 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현금주의 방식을 적용한 국가채무(D1)도 967조2000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화일보 조해동·박정민 기자
04.06 文 부인 단골 디자이너 딸, 靑 취직한 채 사업도 했다니

▲2017년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패션 외교가 눈길을 끌었다. 6월 29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 간 상견례 및 만찬에서 김 여사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있다. 28일 장진호 전투 참전비를 찾은 김정숙 여사의 정장 모습과 앤드루공항에 도착한 김정숙 여사의 '푸른색 그림' 재킷을 입은 모습(왼쪽부터).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오랜 단골 관계인 디자이너의 딸이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아버지의 패션 브랜드에서도 일을 계속해왔던 정황이 드러났다. 문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2017년부터 현재까지 청와대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 딸이 2018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아버지 브랜드의 패션쇼를 함께 준비하고 있는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단골 디자이너의 딸이라고 청와대에 채용된 것도 문제인데, 청와대 공무원 신분으로 아버지와 함께 2012년 설립해 운영해왔던 패션 브랜드 일까지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취업 사이트 ‘링크트인’에는 아예 2013년부터 현재까지 해당 브랜드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한민국 상위 1% VVIP 전속 개인 스타일리스트”라며 “전 세계 50국 이상의 공식적 순방에 동행하며 스타일링을 한다”고 썼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한다’며 원칙적으로 겸직을 금지하고 있다. 문제의 딸이 파리에서 아버지와 패션쇼를 개최한 것 자체가 위법 소지가 있다. 청와대가 직원의 이런 겸업을 몰랐을 리 없다.
‘VVIP’ ‘공식 순방’ 등의 단어를 사용해 청와대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자신과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려 했다는 점도 문제다. 청와대는 논란이 불거지자 “여러 경력을 갖고 있는데도 급여도 매우 적게 받으며 일해왔다”고 했었다. 급여의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 근무를 사업에 이용하려 했던 것 아닌가. 김 여사 아니었다면 주어지지 않았을 특혜다. 김 여사가 첫 해외 순방인 한미 정상회담부터 각종 국내외 행사에서 20여 차례 해당 브랜드의 옷, 스카프 등을 착용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5년간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선일보 사설
04.06 자칭 민주정권의 ‘좀스럽고 민망한’ 권위주의 5년
국민이 대통령 조롱해도 내버려두는 게 진짜 ‘권위’
시민을 모욕죄로 고소한 文은 비민주적 ‘권위주의’
소위 ‘깨시민’ 덩달아 위세… 尹은 진정한 권위 누리길
현지 시각 지난 3월 27일,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의 짧은 머리를 두고 농담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웃던 윌 스미스, 아내의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무대 위로 올라가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 자리에 돌아와서도 계속 목청을 높였다. “다시는 내 아내의 이름을 꺼내지 마!”
미국은 ‘조크’에 관대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나라다. 여기서 말하는 조크란 모두가 적당히 기분 좋게 웃고 넘어가는 무해한 농담이 아니다. 조롱거리가 되는 사람이 감추고자 하는, 혹은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치부를 드러내고 까발리며 조롱하는 것이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처럼 권위 있는 자리일수록 그렇다. 당사자가 불쾌해할 뿐 아니라 때로는 듣는 이도 웃어넘기기 어려울 만큼 독한 조크가 난무한다. 연예인들만 조크의 과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백악관 공식 행사에 코미디언을 사회자로 부르면 대통령과 영부인을 놀림감으로 삼는다. 미국식 조크에는 성역도 없고 금기도 없다.
▲2017년 8월 18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청와대 오픈하우스 행사에 참석한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왜일까?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지만 동시에 권위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더 나아가 미국 사회가 권위를 지키는 방식이다. 중세 시대의 왕이나 권력자들이 광대를 옆에 두고 남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농담하도록 내버려둔 것과 같은 원리다. 스타들의 치부를 대놓고 언급하면서, 대통령이나 유명 인사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권위주의’의 긴장감을 털어버리고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권위주의와 권위는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떠올려볼 수 있다. 권위주의와 자존심은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굽실거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반면 권위와 자존감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얻는다.
생각해보면 미국만 그런 건 아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보통 사람’이라 부르며 방송과 출판 등에서 대통령을 풍자하는 걸 기꺼이 허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농담인 ‘YS 시리즈’까지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비춘 적이 없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그 뒤를 이은 대통령들 역시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것, 국민들이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렇게 권위를 확인하는 것과 같았다.
이 공식이 달라진 건 문재인 대통령 이후다. 문재인 정권의 여러 잘못 중, 문화적 영역에서 남긴 가장 큰 해악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권위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1983년에 태어나 모든 대통령 선거와 그 후의 분위기를 경험했던 필자로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렇게까지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적은 없었다.
문재인 본인부터가 문제다. “북조선의 개 한국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가 담긴 전단지를 만들고 뿌렸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일개 시민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현직 대통령이 시민을 고소하는 것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그 어떤 민주국가에서도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안을 두고 문재인 본인이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 후로도 잊을 만하면 ‘격노’를 일삼더니, 퇴임을 앞두고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라는 제목의 책까지 냈다.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권위주의를 의인화하면 바로 이런 캐릭터가 될 듯하다.
대통령 스스로가 이렇다보니 지지자들의 행태는 한층 더 저열해졌다. 자칭 ‘깨어있는 시민’들이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대감댁 행랑채의 왈짜들처럼 떠세를 부려댔다. 정권을 향한 비판, 풍자, 농담에 대고 “대통령님이 네 친구냐?”며 시비를 걸고 다녔다. 크리스 록의 조크를 듣고 웃다가 제이다 핑킷의 눈치를 보더니 무대에 올라가 뺨을 때린 윌 스미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커녕, ‘아무도 웃을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중이다. 새 대통령 윤석열은 자칭 민주정권의 비민주적인 권위주의를 확실히 털어내주기를, 국민 속에서 진정한 권위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04월 06일 김정숙 ‘샤넬 옷’ 미스터리, 靑이 진실 덮으려 조작했나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10월 프랑스 방문 때 입었던 ‘샤넬 재킷’의 행방이 묘연하다. 퇴임을 한 달 앞두고 이런 문제를 따져봐야 하는 현실이 구차하고 안타깝지만, 대통령 부부의 정직성에서 조직적 은폐나 특별활동비 의혹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명백히 규명돼야 한다. 청와대가 앞장서야 할 일이다. 그런데 “입은 뒤 반납해 최종적으로 국내 박물관에 기증·전시됐다”는 청와대 발표가 미스터리를 더 키웠다. 인천국제공항에 전시된 것은 김 여사가 입었던 옷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김 여사가 입었던 재킷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커펠트가 한글을 수놓은 원단을 이용해 직접 제작한 옷으로, 당시 프랑스 영부인이 관심을 표명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한정품인 만큼 가격도 추산하기 어렵다. 신혜현 청와대 부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샤넬에서 여사님께 의복을 대여해 줬다. 대여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납했고 그 후에 샤넬 측에서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해 전시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시된 옷은 김 여사가 입었던 옷이 아님이 금방 드러났고, 이에 샤넬 측은 “나중에 한국 요청이 와서 다시 제작한 옷”이라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난해 5월 청와대 인사가 샤넬 측 연락처를 건네며 ‘박물관과 연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샤넬 진실’을 조작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 시점도 그런 의문을 키운다. 프랑스 방문 37개월 이후인데, 한국납세자연맹의 ‘김 여사 의전 비용과 관련된 예산 및 지출 실적’ 정보공개 소송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임박해 가던 때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사비(私費) 카드 결제’를 강조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달랐다. 김 여사 단골 디자이너 딸의 신분·급여 논란에 더해 청와대 근무를 개인 사업에 활용한 정황까지 나오는 등 점입가경이다. 청와대는 특활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반복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당장 행방불명인 샤넬 옷이 어디 있는지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06일 징벌稅 바로잡는 것도 국민 통합
문희수 논설위원
文 5년 촘촘한 규제 손질 힘들어
보유세 동결·양도세 유예 땜질
부동산稅 정상화로 분열 끝내야
질서있는 ‘규제 출구전략’ 필요
1주택부터 단계적으로 풀어야
부동산 개혁해 국정 정상화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가 얼마 전 부동산 규제 완화 1호를 발표했다. 주택을 2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해 4월부터 1년간 양도소득세 중과(최고 75%)가 아닌 기본세율(6∼45%)을 부과토록 결정하고 이를 문재인 정부에 요청했다.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일(6월 1일) 전에 세금 부담을 줄여 주택 매각을 유도하려는 취지다. 중과세 완전 폐지는 국회 의석이 압도적인 더불어민주당의 동의를 거쳐 소득세법을 개정해야 해 당장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한 1년 유예 우회로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문 정부의 수용 여부가 불투명해 시행 시기가 4월일지, 아니면 새 정부가 출범하는 5월 10일 이후가 될지 미지수다.
이번 조치는 윤 당선인의 새 정부엔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를 예정하고 있지만, 임기 전은 물론 임기 시작 이후에도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사실 문 정부가 인수위의 요청을 수용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양도세만도 아니다. 지난해부터 세금폭탄 불만이 터져 나왔던 종부세 등 보유세는 1주택자까지 피해가 확산하는데도 문 정부는 전면 감세나 폐지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올 대선 연속 패배가 부동산 실패 때문이라는 점을 자인하면서도 요지부동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 정부 5년간 주택 수요를 차단해 집값을 잡겠다며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강화해 입구와 출구를 모두 막고, 28차례의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를 촘촘하게 늘린 탓에 손질하려고 들면 손대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올해 1주택자 보유세 동결·고령층 종부세 납부 유예 같은 꼼수 땜질로 세금폭탄에 물타기 정도나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년 공시가와 세금폭탄 문제는 새 정부에 짐을 떠넘겼으니 그뿐이다.
징벌적 부동산 세제의 폐해가 끝이 없다. 편법·땜질·꼼수가 남발되면서 세제는 사실상 누더기다. 양도세는 공제·예외조항 등이 하도 많아 전문가인 세무사도 모르는 세금이 됐다. 종부세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징벌세이자,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는 ‘나쁜 세금’이다. 1 대 99로 국민을 갈라치는 세금이 지금은 10 대 90을 넘어 20 대 80으로 번져 억울한 피해자를 쏟아낸다. 세금을 내는 집주인도 피해자이고, 세금이 무서워 매매용과 전·월세용 매물이 끊기는 바람에 ‘영끌’ 대출 급증·전월세 대란을 겪는 청년과 서민도 피해자다. 집값을 폭등시킨 것은 문 정부인데 피해는 국민이 당한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징벌세를 바로잡는 게 바로 국민 통합이다. 종부세를 재산세와 통폐합한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 이행이 절실한 이유다.
부동산 정상화를 위한 규제 완화를 하려면 질서있는 ‘규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규제들이 얽히고설켜 하나를 풀려면 두서너 개 이슈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탓이다. 인수위가 국정과제를 추리고 있지만, 부동산 공약도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양도세 감면도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 1주택자와 일시적 2주택자를 시작으로 2주택 이상 다주택자로 확대해야 불필요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다주택자 양도세는 민간 임대사업 활성화와 함께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익 과세라는 조세 원칙은 다주택자 양도세도 예외일 수 없다. 전·월세 대란을 더 키우는 임대차 3법 개정도 시급하다. 반면, 서울 강남권과 여의도 등의 재건축 활성화는 민감한 이슈인 만큼 후순위로 미루는 등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은 기대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규제 완화는 설익은 기대를 부추기기 마련이다.
부동산 문제는 세제·금융·교육·교통 등까지 망라한 종합대책으로 풀어야 한다. 예를 들면, 주로 강북에 밀집한 자사고·외고 등 특목고 확대는 강남으로의 이사 수요를 분산시켜 강남 집값 안정에 기여한다. 새 정부는 문 정부가 실패한 부동산 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공공이 아닌 민간 주도의 주택 공급 확대, 부동산세금 정상화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망가진 시장 시스템이 복원되면 주택 매매·전월세 수급 사정도 개선될 것이다. 부동산은 새 정부 국정과제에서 중요한 앞순위에 오를 것이다. 그런 만큼 저항과 잡음이 불가피할 것이란 점도 각오해야 한다. 부동산 정상화는 곧 국민 통합이며, 국정 바로 세우기의 초석이다.
문화일보
04월 06일 GDP 넘는 국가부채 떠넘긴 文 무책임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A 씨는 B 씨와 비슷한 연봉을 받지만 여유로운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비교적 넉넉하게 살고 있다. 얼마 전에 집을 장만해 대출이 많지만, 맞벌이도 하고 부모님은 연금소득이 충분해 대출이 집안의 전체 연소득 대비 70∼80% 정도로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B 씨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좋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열심히 노력해 현재의 위치까지 올랐지만, 물려받을 재산은 거의 없고 부모님의 노후 준비도 제대로 돼 있지 못하다. 아이들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어 상당 기간 교육비 지출도 예상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지출이 늘어 빚이 크게 늘었다. 다만, 대출 규모는 집안 전체 연소득 대비 50∼60% 정도다.
어느 쪽의 사정이 나은가. B 씨의 경우 그럭저럭 가계를 꾸리고는 있지만, 경제위기라도 닥쳐 실직이라도 당하면 집안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연소득 대비 대출의 비율은 낮아도 쌓아 놓은 재산도 부족하고, 가족들의 소득도 적으며, 부모님과 아이들에 대한 부양의무 때문에 경제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를 국가 경제로 바꿔 보면, A 씨는 높은 수준의 생산력으로 오랜 기간 경제적 부를 쌓아온 선진국들이다. 그리고 B 씨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악착같이 일해서 이제야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을 달성했지만, 경제적 부는 적고 급속한 고령화와 미래세대를 위해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대한민국이다.
여기에서, 국가의 채무를 추계하는 방식은 빌린 돈을 상환해야 하는 D1, 여기에 국가 간의 비교를 위해 정부의 범위를 통일해 추계한 D2가 있다. 위의 사례에서, 두 집안의 전체 소득 대비 대출액의 비율이다. 이것만 보면 B 씨 집이 A 씨 집에 비해서 나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B 씨는 그동안 쌓아온 재산이 적을 뿐 아니라, 한참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지출해야 하고, 부모의 노후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게 사실상 빚이다. 그간 대출 받아 집을 산 것도 아니고 그냥 써 버렸기 때문에 대응 자산도 없다. 상환해야 할 대출과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경제적 의무이자 사실상의 빚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태다. 이렇게 진정한 의미에서 경제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정부의 빚을 추계하는 것이 발생주의에 기반한 국가부채다. 5일 발표된 규모는 2196조 원이고, 이는 현재 우리나라 1년 전체 소득인 GDP 1631조 원의 1.3배에 달할 뿐 아니라, 매년 150조 원 이상 급속히 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국가채무 수준을 가지고 양호하다고 자화자찬하던 중에 경제적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부 재정 여력은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무조건 쓰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재정 운용을 한 현 정부의 책임이 매우 크다. 포퓰리스트적인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했을 뿐 아니라, 연금 개혁 등 재정 프로그램 개혁은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낭비적인 선심성 예산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공공부문 비대화의 결과만 낳았다.
차기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재정제도와 재정정책의 대대적인 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 발생주의에 기반한 국가부채를 목표 지표로 설정하고 재정준칙을 적용해 보는 방안도 제시해 본다.
문화일보
04.07 文 정부가 떠넘긴 청구서가 한꺼번에 날아들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빚, 공무원·군인연금 충당 부채까지 합친 넓은 의미의 국가 부채가 지난해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었다. 2016년 1433조원에서 문재인 정부 5년간 53%(763조원)가 늘어 작년 2196조원이 됐다. 선심성 퍼주기 지출을 크게 늘린 데다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빚이 급증했다. 여기에다 공무원 수를 5년간 13만명 늘리는 바람에 향후 공무원·군인에게 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빚이 385조원 늘어 1140조원에 육박하게 됐다. 전체 국가 부채의 절반 이상이 공공 연금 충당 부채다. 세금으로 일자리 만들겠다는 재정 중독증이 나랏빚으로 돌아왔다.
가계 부채는 5년간 470조원 늘어 작년 말 1862조원이 됐다. ‘미친 집값’에 절망한 2030 청년층과 무주택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고 주식 투자며 가상 화폐 투자에 뛰어든 결과다. 코로나 거리 두기로 피해 입은 자영업자들도 빚을 내 버텼다. 기업 부채는 작년 말 2361조원으로 불었다. 미래의 빚인 연금 충당 부채를 제외하고 가계·기업·정부의 3대 경제 주체가 당장 짊어진 총부채만 지난해 처음으로 5000조원을 넘어섰다. 국민 1인당 1억27만원꼴이다. 방만한 재정 지출, 부동산 정책 실패와 반기업 국정이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물가가 급등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국채 금리가 연일 상승하고 있다. 3년짜리 국채 금리는 8년여 만에 장중 연 3%를 돌파했다. 국채 금리 급등은 시중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기업의 대출 이자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새 정부의 재정 운용에도 제약이 크다. 윤석열 당선인 공약대로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50조원 규모 추경을 편성하려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한데, 이로 인해 금리 상승세를 더욱 부추길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빚더미 경제를 물려받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 정부 5년간 전국의 전셋값 상승률이 41%에 달했다. 정부·여당이 무리하게 강행한 임대차 3법이 2020년 8월부터 시행되면서 그 이후에만 27% 올랐다. 재계약 때 전·월세 값을 5% 이상 못 올리게 금지한 임대차법 규정을 피해 집 주인들이 신규 계약의 전·월세비를 대폭 인상했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 시행 2년이 되는 오는 8월부터는 2차 전·월세 대란이 우려된다. 계약 갱신 청구권을 행사한 기존 세입자들도 2년의 유예 기간이 끝나면서 치솟은 전·월세 값을 한꺼번에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문 정부 5년간 누적된 정책 실패의 청구서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07 전교조만 살찌운 좌파 교육감들

기초학력 손놓고 전교조 민원해결·보은인사
교육 망치는 교육감 직선제 이젠 폐지하자
6월 1일 지방선거일에는 교육 권력 교체도 결정한다. 투표용지 7장에는 17개 시도교육감을 뽑는 용지가 들어 있다. 교육감 직선제가 전면 도입된 2010년 전교조 출신 당선자는 2명이었는데 2014년엔 8명, 2018년엔 10명으로 늘어났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처럼 ‘친전교조’ 인사까지 합치면 2014년 13명, 2018년 14명이다. 교육감 선거 두 번 만에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교육 권력이 좌파로 넘어간 셈이다.
좌파 교육감 시대 8년을 돌아보면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국어 수학 영어 전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자가 속출했다. ‘시험은 비교육적 줄 세우기’라는 도그마에 빠져 시험을 하나둘 없앤 탓이다. 초등 1학년의 받아쓰기와 일기 쓰기를 금지한 교육감도 있다. 교사들은 편해졌지만 자녀의 학력을 가늠할 길 없는 부모들은 역대급 사교육비를 쏟아부어 계층 간 학력 차만 커졌다. 좌파 교육감들은 혁신학교 살리기와 자사고·특목고 죽이기에 매달렸다. 하지만 혁신학교는 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학부모들이 외면하고 있고, 서울시교육청 싱크탱크도 ‘체험은 했지만 배움은 없는’ 교육이 될 수 있다며 예산 삭감과 확대 정책 폐기를 주문한 상태다. 자사고 폐지에 관한 10건의 소송은 좌파 교육감들의 완패로 끝났다.
학생들 학력엔 손놓은 교육감들이 전교조 민원은 철저히 챙기고 있다. 전교조는 교육감 선거 개입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해직 교사 등 9명을 탈퇴시키지 않아 박근혜 정부에서 법외노조 처분을 받고 상당한 혜택을 잃었다. 교육감협의회는 “정부의 전향적 조치”를 촉구했고 현 정부의 ‘기울어진’ 대법원은 법도, 헌법재판소 결정도 무시하고 법외노조 족쇄를 풀어줬다. 전교조는 해직 기간 경력과 호봉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에서 2012년 패소했는데 교육감협의회는 특별 결의문을 내고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국회에는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특별법이 계류 중이다. 원안대로 통과되면 전교조 출신 교육감 9명을 포함해 총 1764명이 약 8억 원씩 받게 된다.
전교조 지지를 업고 당선된 교육감들의 ‘보은 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조희연 교육감은 전교조 해직 교사 5명을 불법 특채한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부산시교육청도 ‘해직자 특채’를 통해 전교조 해직자들을 합격시켜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 교장 자격이 없는 평교사 대상의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대표적 보은 인사 수단이다. 전교조 조합원은 전체 교원의 10% 남짓밖에 안 되는데 교장공모제로 임용된 교장의 65%가 전교조 출신이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이는 교장공모제 시험 문제를 빼돌려 전교조 출신에게 준 게 드러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교육부는 전교조임을 내세워 임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임용 과정에서 특정 단체를 언급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투표로 심판하기는 어렵다. 유권자들은 인물이나 교육 공약엔 관심 없고 보수냐 진보냐만 따진다. 정당이 개입할 수 없는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단일 후보가 아니면 선거 노하우를 꿰고 있는 전교조가 조직적으로 미는 후보를 당해낼 수가 없다. 보수 후보가 낫다는 보장도 없다. 자사고 100개를 만들자거나 국정교과서 도입을 들고나올 수 있다. 좌우 극단으로 기울지 않는 반듯한 인재는 교육감 되기 힘든 구조다. 이런 선거에 4년마다 2000억 원을 쓰고 있다. 교육 망치는 괴물 같은 교육감 선거를 폐지하고 그 돈은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04월 07일 한동훈 무혐의…‘검·언 유착’ 조작 책임 끝까지 물어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일 때, 조국 등 문재인 정권 인사들을 수사했던 한동훈 검사장이 6일 ‘검·언 유착’ 사건과 관련해 마침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현 검찰 지휘부는 지난 2년 동안 수사를 질질 끈 것도 모자라 11번에 걸친 수사팀의 무혐의 처분 보고를 한사코 뭉개왔다. 범여권 정치인의 선동, 친여 매체의 잘못된 보도, 법무부 장관과 검찰의 공권력 남용을 통해 조작됐다는 법률적 결론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혐의를 수용한 것은 검·언 유착 프레임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나아가 법치 농단 실상이 어떤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검·언 유착 사건은 사기·횡령 전과 5범인 지현진 씨의 제보를 MBC가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한 검사장과 결탁해 수감 중인 신라젠 대주주 이철 씨를 상대로 ‘여권 인사 비위 자료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이 전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했고,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윤 당시 총장에 대한 공격에 활용했다. 총장 지휘권을 박탈하고 직무를 정지한 데 이어 징계까지 청구했다. 정진웅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한 검사장 휴대폰 압수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여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황희석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유튜브 등을 통해 관련 의혹을 사실처럼 주장했고, 김어준 씨는 TBS 방송을 통해 10여 차례 보도하는 등 확성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녹취록에 검·언 유착 발언이 담겨있다’고 보도하며 뒤늦게 가세한 KBS는 다음날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 기자는 지난해 7월 무죄 판결을 받았고, 추 전 장관 조치는 법원에 의해 효력이 정지됐다. 정 전 부장은 1심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최 의원과 황 전 최고위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거나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 무혐의 처분을 저지하기 위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려다 위법이라는 법무부의 만류로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보다 실체적 진실 규명에 앞장서야 할 법무부 장관과 검찰, 국회의원과 언론이 공권력과 매체, SNS를 무차별적으로 동원해 조작에 나선 것은 중대 범죄다. 진상을 규명해 책임자 전원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07일 법흥사터 초석에 앉은 文 부부…불교박물관장 “참담하다”

▲ [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삼청안내소 출입구를 통과해 법흥사터에 도착, 김현모 문화재청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2022.04.05.
성공 스님 “문화재청장 가만히 있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어”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뒤편 서울 북악산 남측 탐방로 개방을 기념한 산행을 하면서 법흥사터 연화문 초석을 깔고 앉은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장에 있던 문화재청장은 문 대통령 부부와 함께 산행을 했으나,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불교계 언론인 법보신문은 6일 ‘대웅전 초석 깔고 앉은 문 대통령 부부···“청와대 문화유산 인식 수준 참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뒤편 서울 북악산 남측 탐방로를 산행하면서 법흥사터 연화문 초석을 깔고 앉은 채 문화재청장의 설명을 들어 논란이 일고 있다. 더구나 해당 사진은 청와대가 직접 배포한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의 불교 문화유산 인식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부부는 지난 5일 산행에서 법흥사로 추정되는 절터에 도착해 연화문 초석에 앉아 동행한 김현모 문화재청장과 법흥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과거 오랜 터가 남아있는 것을 해방 후 다시 세워보려고 준비하다가, 김신조 사건으로 개방됐던 곳이 다 폐쇄됐고, 그 부자재가 남은 거죠”라고 말했다. 이에 김 청장은 “구전으로는 이게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저희가 전문발굴 조사를 하면 그런 증거들이 나올 것으로 저희는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 부부가 법흥사터 연화문 초석을 깔고 앉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교계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불교중앙박물관장 탄탄 스님은 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진을 보고 참담했다”며 “성보를 대하는 마음이 어떤지 이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성공 스님은 김 청장 태도를 지적했다. 스님은 “만약 문 대통령 부부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문화재청장이 그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뉴시스>
04월 08일 문화재 깔고 앉은 文 부부와 방관한 문화재청장 몰상식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문화재를 깔고 앉은, 기막힌 사실이 드러났다. 문 대통령 부부는 지난 5일 청와대 뒤 북악산 산행 중에 신라 고찰 법흥사로 추정되는 절터의 연화문(蓮花紋) 초석에 걸터앉아 쉬었다. 동행한 김현모 문화재청장에게 문 대통령은 “해방 후 다시 세워보려고 준비하다가 그 부자재가 남은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사진과 함께 6일 보도됐다. 문 대통령 부부도, 이들의 일탈을 방관한 김 청장도 몰상식의 전형을 보였다.
불교중앙박물관장 탄탄 스님이 불교계 매체인 법보신문을 통해 “사진을 보고 참담했다. 대통령이 전통문화를 가벼이 대하는 일이 일반인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은 왜 생각하지 못하느냐”고 개탄한 이유다. 그러잖아도 문 대통령은 임기 만료를 한 달 남짓 남긴 지난 6일부터의 북악산 전면 개방을 하루 전에 발표하고 기념 산행을 해, 저의에 대한 의심을 자초했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공약을 지킨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5월 10일 임기 시작과 동시에 청와대와 북악산 전면 개방’ 의미 희석을 노린 것으로도 비쳤다.
국민과의 소통 단절을 비판받아온 청와대가 “이로써, 청와대 인근 지역 공간들이 국민 품으로 온전히 돌아가게 됐다.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 곁에 있는 ‘열린 청와대’라는 상징적 변화를 이뤄냈다”며 낯 뜨거울 자화자찬을 한 배경도 달리 찾기 어렵다. 문 대통령부터 문화재 ‘무(無)개념’에 대해, 이제라도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 도리다.
문화일보 사설
04.08 한동훈 2년 만에 무혐의, ‘검언유착’ 날조극 진상 밝혀야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자료사진). 2022.1.27/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중앙지검이 이른바 ‘채널A 사건’ 피의자로 수사해온 한동훈 검사장에게 2년 만에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법과 원칙대로 했다면 이렇게 오래 끌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범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게 뻔한 사건이었다. 수사팀도 12차례나 ‘혐의가 없다’고 보고했다. 그런데도 친정권인 서울중앙지검장들이 무혐의 결정을 뭉갰다. 박범계 법무장관도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무혐의 결정을 막으려 했다. 무죄 추정, 증거에 의한 수사 등 형사법 원칙은 대놓고 무시했다.
채널A 사건의 시작은 2020년 총선 직전 MBC 보도다. 채널A 기자가 한 검사장과 손잡고 구속된 전 신라젠 대표에게 ‘유시민씨 비리를 진술하라’고 압박했다는 것이다. 여권은 ‘검찰이 총선에 영향을 주려고 언론과 공모해 거짓 보도를 꾸민다’며 ‘검언 유착’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한 검사장과 채널A 기자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이런 정권의 음모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검사장이 채널A 기자에게 “유시민에게 관심 없다”고 하는 등 전혀 유씨의 비리를 캘 의도가 없었던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결국 공소장에 두 사람이 공모했다는 내용을 넣지 못했다. 한 검사장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던 검·언 유착 공작이 무산된 것이다.
채널A 사건에는 정권이 뒤에 있지 않으면 설명될 수 없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MBC 제보자는 사기 전과자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터무니없는 이유로 비난해왔다. 제보자는 특종 정보가 있는 듯 하며 채널A 기자를 유인했고 MBC는 두 사람 만남을 ‘몰래 카메라’로 찍었다. 조국 법무부 인권국장 출신인 열린민주당 황희석 최고위원은 MBC 보도 9일 전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같은 당 최강욱 대표와 사진을 찍고 ‘둘이서 작전 들어간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은 권력 수사로 눈 밖에 난 윤 검찰총장과 한 검사장을 공격하기 위해 채널A 사건을 이용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대통령 수족인 이성윤 검사장에게 수사를 맡겼다. 한 검사장은 압수 수색 나온 후배 검사에게 폭행까지 당했다. 한 검사장은 수차례 좌천을 당했는데 그를 폭행한 검사는 독직 폭행으로 기소당하고도 승진했다. 채널A 사건의 진상 규명은 지금부터다. 정권과 사기꾼, 친정권 방송 등이 공모한 날조극 의혹을 밝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월 08일 한동훈 모함 세력 척결과 법치 정상화

김성천 중앙대 교수·법학
한동훈 검사장을 옭아매려던 ‘검언유착’ 사건이 드디어 서울중앙지검의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됐다. 이 사건은 사기·횡령 등 혐의로 복역한 전과가 있는 지현진 씨의 제보로 시작됐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교도소에 있는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에게 편지를 써서 한 여권 인사의 비리에 대해 입을 열도록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 검사장이 공모를 했다는 것인데, 사실 녹취 내용을 보면 도저히 그렇게 판단할 수가 없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리 보기 어려운 내용인데도 MBC가 보도했고, 당시의 추미애 법무장관은 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그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를 하지 못하게 했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황희석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면에 나서서 혐의가 마치 사실인 듯 확대 재생산했다. 거기에 김어준 씨까지 가세해 국민의 눈과 귀를 호도했다.
하지만 한 검사장과 채널A 기자가 나눴다는 대화 내용을 보고 협박을 공모했다고 결론 내릴 법관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구속기소됐던 이 기자는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사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기자의 행위가 무죄라면, 하물며 그런 유인 언동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검사장에 대한 혐의는 성립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이성윤 검사의 진두지휘 아래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한다며 독직폭행까지 했다. 정 부장은 그 때문에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문화일보
04.09 조국의 강, 이재명의 강
조국의 강도 다 못 건넜는데 이재명의 강이 눈앞에대장동·법인카드·성남FC 등 의혹 빨리 터는 게 순리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대선 후보 시절 한 방송에 나가 “‘조국의 강’을 건너 보려 하는데 강폭이 넓어 못 건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2019년 터진 조국의 강을 우리 사회가 건너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부산대 의전원과 고려대는 최근에야 조민씨에 대해 입학 취소 처분을 내렸고, 조 전 장관 본인에 대한 재판은 여태껏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씨 측이 고려대와 부산대를 상대로 제기한 입학 취소 처분 무효청구소송은 이제 막 시작이다. 앞으로도 최소 몇 년은 더 이 사건에 대한 뉴스를 보고 들어야 한다.
국민들 마음속에 남은 조국의 강은 사법 절차보다도 강폭이 넓다. 2019년 ‘조국 퇴진’을 외치며 광화문에 모였던 사람들은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정의가 이토록 더디게 실현됐음에 경악한다. 정권 눈치를 보느라 이제야 입학 취소 결정을 내린 대학들의 행태를 보면서, 정권이 교체되지 않았다면 어떤 해괴한 일이 벌어졌을지 몸서리쳐진다고도 한다. 반면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외쳤던 사람들은 여전히 “검찰의 가혹한 탄압으로 희생된 조민이 불쌍하다”며 울분을 토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의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조국의 강을 이토록 넓고 깊게 만든 장본인은 문재인 대통령과 조 전 장관 본인이다. 조민씨의 제1 저자 의학 논문이 공개됐을 때 국민 앞에 사과하고 장관직을 포기했다면, 조국의 강은 아마도 실개천 수준에서 끝났을 것이다. 신평 변호사 말처럼 조 전 장관은 21대 총선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고, 조씨는 의사 자격증을 갖고 환자를 진료하는 평행 우주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조국의 강을 더 키운 건 조국 일가를 무지성으로 옹호한 김어준, 유시민, 추미애, 김남국, 김용민, 최민희, 최강욱 같은 사람들이다. 조국 일가를 순교자로 만드는 데 앞장선 덕분에 이들은 영향력과 지위를 얻었지만, 조국 일가는 퇴로를 끊긴 채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여러 법조인은 “조국 일가가 뒤늦게라도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했다면 재판부가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을 감안해 정경심 교수에게 4년 중형까지 선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검찰 개혁’의 상징이 된 조국 일가에게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밖에는 남은 길이 없었다.
조국의 강도 다 건너지 못했는데, 벌써 강 하나가 또 아른거린다. ‘이재명의 강’이다. 대장동 개발 비리, 백현동 용도 변경,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의혹, 법인 카드 유용, 혜경궁 김씨 사건 등 진상을 규명해야 할 사건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당당하게 결백함을 주장했던 이 전 지사와 민주당이 이 강을 건너지 않으려고 버틴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이 전 지사가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리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불체포 특권을 얻으려 한다거나, 민주당이 윤석열 당선인 취임 전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이유가 이재명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등의 소문이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경찰이 법인 카드 유용 의혹 수사에 착수하자 “노골적 정치 보복이 의심된다”고 했다. 대장동 수사가 본격화하면 얼마나 더 심한 비난을 퍼부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버틴다고 한들 이 강은 건너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미 국민들의 관심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이 강을 무사히 건너야 다음번 대권에 도전할 길이 열림을 이 전 지사 본인도 잘 알 것이다. 이재명의 강이 부디 조국의 강만큼 깊고 넓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조선일보 최규민 기자
04.11 실패 정책 쏙 빼고, 마지막까지 계속되는 靑 자화자찬 쇼
청와대가 문재인 정부 5년 국정을 평가받겠다며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문 정부 정책’을 묻는 온라인 투표를 시작했다. 경제 산업·노동 복지·병영 문화·육아 등 9개 분야 48개 항목을 예시하고 응답자가 이 중에서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집값을 역대 최악으로 급등시키며 온 국민을 ‘주거 지옥’에 몰아넣은 부동산 관련 항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청년 취업난을 가중한 고용 정책, 소득 양극화를 심화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 ‘김정은 눈치 보기’로 일관한 저자세 대북 정책, 세계 최강의 원전 생태계를 궤멸시킨 탈원전 관련 항목도 없었다. 국민 민생, 국가 대계와 관련된 정책 분야를 통째로 제외한 채 곁가지 항목들을 올려놓고 국민에게 제한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자기 잘못을 가리는 반쪽짜리 여론조사로 실상을 호도하는 것이다.
‘쇼통 정부’로 불린 문 정권의 자화자찬 쇼는 임기 끝까지 계속되고 있다. 5년 내내 북한·중국에 모욕당하고 휘둘렸으면서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란 제목의 문 대통령 연설집을 출간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세계 1위 수준인데 ‘K방역에 세계가 감탄했다’는 내용을 앞세운 백서도 냈다. 주변 참모들은 연일 ‘용비어천가’를 쏟아내고 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문 정부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이뤄지리라 믿는다”고 썼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은 문 대통령과 등산했던 사진을 올리며 “문득 높고 길고 힘들었던 여정이 떠올랐다”고 했다.
한 정권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면 공(功)과 과(過)를 균형 있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문 정권의 자기 평가에선 국민 삶을 힘들게 한 정책 실패나 온 국민을 분노케 한 내로남불 불공정 등에 대한 반성의 말은 단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유리한 것만 뽑아 내세우는 선택적 자화자찬뿐이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을 기만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정권은 역대 어느 때도 없었다.
조선일보 사설
04월 11일 전국법관회의도 공식 비판한 코드人事와 김명수 거취
법조계 안팎에서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신망을 이미 상실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 전국법관대표회의까지 코드 인사(人事)의 심각성을 공식 비판하고 나섰다. 김 대법원장 재임 5년 내내 잘못된 인사로 재판 공정성까지 훼손했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사법부 신뢰의 근간이 붕괴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말해준다.
법관회의는 최근 법원행정처에 코드 인사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특정 성향 판사들의 경우에 법원장 2년 관행을 무시하고 3년간 재임했고, 법원장을 거쳤음에도 최선호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으로 발령났으며, 추천제 약속을 어기고 인천지법원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했다는 것 등 3가지 내용이라는 것이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3년 재임하는 동안 조국 사건을 맡은 김미리 부장판사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맡은 윤종섭 부장판사가 각각 4년과 6년간 같은 법원에 잔류하는 전례 없는 인사도 이뤄졌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코드 인사로 일관했다. 인사총괄심의관에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 김영훈 판사를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요직은 거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에게 맡겼다. 또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여당이 탄핵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 거짓말한 사실까지 들통났다. 항공기 회항 사건으로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진 직후, 며느리가 근무하는 한진 법무팀이 대법원장 공관에서 만찬을 한 적도 있다. 김 대법원장은 더 이상 국민과 사법부에 죄를 짓지 말고 사퇴 등 거취를 결정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4.12 전국법관회의, 김명수 대법원장에 초유의 문제 제기

▲<YONHAP PHOTO-3525> 발언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고양=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2022.4.11 kimb01@yna.co.kr/2022-04-11 11:10:26/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법원의 직급별 판사 모임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11일 정기회의를 열고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에 대해 공식 해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대법원장이 인사 원칙과 관행을 위배했다며 일선 판사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 이후 진보 성향 판사 모임으로 ‘법원 내 하나회’라고 불리는 우리법연구회, 인권법연구회 출신을 줄줄이 요직에 앉혔다. 같은 법원에 법원장은 2년, 부장판사는 3년만 근무할 수 있다는 인사 기준은 그냥 무시했다.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불법 사건들의 재판이 몰려 있는 서울중앙지법에는 김 대법원장과 같은 우리법 출신인 핵심 측근 민중기 법원장이 이례적으로 3년간 재직했다. 역시 우리법 출신인 김미리 부장판사도 서울중앙지법에 4년간 붙박이로 있었다.
판사 코드 인사는 ‘정권 봐주기 재판’을 위한 포석이라고 봐야 한다. 김 판사는 문 정권 최대 불법의 하나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재판에서 유무죄를 따지는 공판을 1년3개월간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다른 판사들이 공판 날짜를 정하자 김 판사는 돌연 휴직을 신청했고 김 대법원장이 허가했다. 판사가 새로 와도 기록을 처음부터 봐야 하니 재판이 또 지연될 수밖에 없다. 울산 사건은 검찰이 기소한 지 2년3개월이 다 됐지만 1심 판결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유례가 없는 재판 뭉개기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했지만, 저 스스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 심지어 문 정권이 조국 사건, 드루킹 사건 등에 유죄를 선고한 일선 판사들을 겁주려고 ‘억지 탄핵’을 강행하자 후배 판사를 희생양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거짓말한 것이 탄로 났다. 법치국가에서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그래도 대법원장 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다.
지금 김명수 대법원은 통째로 수사 대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장동 브로커가 여당 대선 후보를 위해 대법관과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현직 대법관이 자신은 대장동 녹취록 ‘그분’이 아니라고 직접 해명하는 일까지 있었다. 진상을 밝히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김 대법원장인데 그는 아무 말이 없다.
조선일보 사설
04월 13일 윤석열과 ‘개혁군주’ 이방원의 길
유병권 사회부장
선거는 패자가 승복해야 끝나
尹, 집권세력 저항에 부딪혀
‘닥치고 개혁’ 대통령의 숙명
조선 태종 폭군 아닌 창업 군주
기강 세우고 민생 걱정 덜어줘
패가망신 결기로 개혁에 부응
선거는 다득표자가 이겨서 끝나는 게 아니라 패자가 승복해야 끝난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임기 말 인사, 탈원전과 부동산 정책 등 정권 인수인계를 놓고 구집권세력의 강한 저항과 반발에 맞서야 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대선은 현재형이다. 구세력을 대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40% 중반대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국정 운영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고, 든든한 팬덤층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윤 당선인은 0.73%포인트(24만7077표)라는 역대 최소 득표율 차이로 이긴 데다 ‘국정을 잘 운영할 것’이라는 기대치도 50%대에 불과하다.
윤 당선인이 172석의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탈락자 없이 무사 통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역·연령·젠더에 대한 고려 없이 실력만 보고 뽑았다는 8명의 1차 내각 인선을 보면 불안감이 더 커진다.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내부 분열을 막고, 국정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청문회에 매달릴 것이 뻔하다.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분열과 갈등을 증폭하는 ‘지옥문’이 될 수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이후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4명의 대통령이 진보와 보수 진영을 바꿔가며 집권했지만, 대한민국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기업 덕분에 경제적 삶은 향상됐지만, 양극화와 포퓰리즘, 세대·젠더 갈등, 교육·연금·노동 개혁 지연 등 나라 곳곳이 곪아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는 되레 퇴화했다. 3월 대선에서 국회의장, 국무총리, 당 대표 출신 등 기성 정치인이 아니라 중앙 정치 경험이 없는 신인끼리 맞붙은 것은 기존 정치로는 시대 과제를 풀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의 증거다.
할 일은 태산인데 윤 당선인을 둘러싼 환경은 첩첩산중이다. 그렇다고 국가 적폐를 내버려 둘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등 대전환기에 ‘국민이 불러내서, 키워 주고 대통령까지 만들어 준’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윤 당선인에게 개혁 대통령은 소명이고 운명이다.
조선 500년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사람은 3대 왕 태종이다. 태종은 ‘왕씨’에서 ‘이씨’로 왕조가 바뀌는 역성혁명을 한 게 아니다. 고려라는 낡은 나라를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로 창업한 리더다. 태종은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영, 정몽주, 이색 등 도덕·정치적으로 존경받던 고려 충신들을 척살했고, 왕권 강화를 위해 개국공신 정도전도 쳐냈다. 이복동생도, 처남인 민무구·민무질 형제에게도 인정사정이 없었다. 그래도 역사는 폭군이 아니라 성공한 개혁 군주로 기록한다. ‘전쟁 걱정 없이 백성은 평화로웠고 물산이 풍부해 전국의 창고가 가득 찼다’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과 태종은 비슷한 면이 많다. 두 사람은 나라 기강이 무너져 내릴 때 권력을 잡았다. 문 정부 5년간 공정과 상식이라는 규범이 파괴되고 내로남불이 판을 치면서 ‘이건 나라냐’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태종도 권문세족의 수탈과 왜구 침탈, 풍기 문란 등 구체제 악습이 청산되지 않은 혼란의 시기에 왕위에 올랐다.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태종 즉위 때는 국제질서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재편되는 변혁의 시기였다. 태종이 개경에서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기득권 세력을 혁파했듯이 윤 당선인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듯이, 태종도 아버지 태조 앞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 정도로 눈물이 많았다.
윤 당선인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청년들이 마음껏 뛰는 역동적인 나라,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혁신의 나라, 약자가 기죽지 않는 따뜻한 나라, 국제사회와 가치를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전쟁 걱정이 없어야 한다. 그런 나라는 ‘닥치고’ 개혁이어야 가능하다. 윤 당선인은 가뜩이나 약한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정치 입문을 고민하면서 “패가망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결기가 없다면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 윤 당선인이 성군인 세종이 아니라 태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04월 13일 ‘위대한 국가’ 장애물 쏟아낸 文 5년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한국은 반세기 만에 선진국 문턱에 발을 디딘 입지전적인 국가다. 그 덕에 베이비붐 세대는 선진국들이 몇 세대에 걸쳐 경험할 생활상을 당대에 경험했다. 하지만 성공한 나라에서 위대한 국가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추락할 수 있다. 짐 콜린스의 명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는 위대한 국가로 가기 위해 참고할 만하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으로 시작하는 소제목은 한국에도 맞는 글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업자에 해당하는 혁명적 국가지도자는 경제성장 공헌 덕에 다소 거만하고 독선적이어도 인정을 받는다. 반면에 성공의 반열에 올라선 국가를 물려받은 리더는 겸손하고 신중해야 국민에게 받아들여진다. 성공에 도취한 리더의 오만함은 위기와 위험을 부정해 파멸로 이어진다. 거창한 비전과 포부로 치장하기보다 냉혹한 현실을 인지해 위기의식을 갖고 실리적으로 접근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다.
다음 달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국가가 처한 경제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는 듯하다. 소득주도성장으로 포장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획일적인 주52시간제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상공인은 피폐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내 국정 최우선 순위로 꼽은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친노동·반기업 정책에 따른 민간일자리 축소를 질 낮은 공공일자리로 메꾸는 데 급급했다.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국민을 편 가르며 단기적 수요 억제책만 양산한 부동산 정책은 집값 폭등과 전세 대란을 초래했다.
생산성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 대기업의 강성노조는 건재하다. 해외로 나간 우량기업이 돌아오게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경영자를 범죄시하는 징벌적 조치는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고 있다. 무모한 탈원전과 원전을 뺀 탄소 제로 정책은 공기업 부실화와 물가상승 압박, 관련 산업의 붕괴를 초래했다.
위대한 국가로 가는 길에서는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의 불투명한 경영, 불공정한 거래 등 위법적인 행태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하나 기업을 총체적으로 범죄시하는 풍토는 개선해야 한다. 유연하고 친화적인 노동정책으로 생산성에 적절한 임금을 받게 하고, 채용과 인력 조정을 쉽게 하는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기업 중심 경제정책은 혁신과 투자를 촉진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며 늘어난 소득은 소비와 생산을 촉진한다. 기술이 축적되고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 국가역량 결집으로 탁월하고 위대한 국가로 변신할 수 있다.
경제성장의 짐을 기업에 넘긴 여력으로 정부는 전략적 미래산업 육성, 취약계층 지원과 민생 업무에 전념해야 한다. 에너지나 부동산 등 공공의 문제는 시장원리로 풀고,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개혁하기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 등 공공부문 개혁 엔진을 재가동해야 한다. 주요 산업정책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수립하고, 과도한 부채를 막기 위한 재정준칙을 세워 국가재정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팀이 문 정부 5년간 엉켜버린 실타래를 푸는 일은 쉽지 않겠으나 신중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가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보전하고 국가 발전을 자극하길 바란다.
문화일보
04월 14일 ‘한동훈 장관’ 깜짝 지명과 法務 행정 정상화 시급성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지명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격적 발탁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인 것도 사실이고, 문재인 정권의 부당한 탄압을 받은 피해자인 것도 사실이어서 더욱 그렇다. 통상적 서열을 뛰어넘은 40대여서 검찰 내부도 술렁인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이 어수선할수록 본질을 봐야 한다. 조국·추미애·박범계 장관을 거치며 문 정권 5년 동안 무너진 법무(法務) 행정을 바로잡을 적임자인가 아닌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하면, 부적격으로 볼 만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법무장관의 전횡이 어떤 폐해를 초래하는지 가장 잘 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최적임자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지명된 뒤 일성으로 “박범계·추미애 장관 시절 수사지휘권 남용 사례가 얼마나 국민에게 해악이 큰지 실감하고 있다”면서 “취임하더라도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인사에 대해서도 “정의감과 공정의식이 투철하고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일 잘하는 사람 위주로 써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취지대로만 권한을 행사하면 정권의 하수인처럼 전락한 법무부와 검찰을 시급히 정상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윤 당선인도 한 지명자의 이런 역량을 평가하고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 정권에 대한 피해 의식 때문에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지명자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박근혜·이명박 수사,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이끌 때만 해도 문 정권으로부터 박수를 받았지만,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험난한 길을 걸었다. 추 전 장관과 박 장관은 한 지명자를 4차례 좌천시키며 마지막에는 연수원생 하나 없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임명했다. 무혐의로 결론 난 채널A 사건으로 2년이나 수사를 받고, 심지어 후배 검사에게 독직 폭행까지 당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12번째 무혐의 결론을 내리려 하자 박 장관은 지휘권을 발동해 이것도 막으려 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문제들이 냉철하게 다뤄지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15일 ‘양날의 칼’ 한동훈

박민 논설위원
‘실력이 공정’ 인사 원칙 하에
비리수사 능력 입증된 특수통
형사사법체계 복원 적임 판단
검사 아닌 국정 운영 책임자로
겸손·포용의 미덕 발휘가 중요
조국·우병우 몰락은 타산지석
전설적인 특수통 검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후배는 정치적 사건이나 권력형 비리 사건 수사를 스스로 ‘마사지’하는 검사다. 지시가 없었는데도 수사 수위를 알아서 조정하는 검사는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형 사고를 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검사였고 권력의 노골적 탄압을 받았다. 그런 윤 당선인이 가장 아끼는 후배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한 후보자는 윤 당선인과 함께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신뢰를 얻었다. 윤 당선인의 의중을 잘 파악해서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검사 시절 “한동훈은 내 말도 안 듣는다”고 말하곤 했다.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 후보자는 2차 내각 인선 발표 현장에서 “윤 당선인에게 맹종하는 관계가 아니다”고 답변했다. 윤 당선인의 ‘측근’이지만 ‘복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지역 배려나 여성 할당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륜과 실력을 갖춘 사람을 모시겠다’는 인사 원칙을 수차례 밝혔다. 윤 당선인은 실력이 곧 공정이고 정의라고 믿는다. 자기 분야의 최고 실력자들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함량 미달인 사람이 충성심이나 진영 논리에 따라 주요 보직에 임명되면 법과 원칙은 물론 국익까지도 외면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성 발언 한마디에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가 에너지 수급의 근간이 되는 원전의 경제성 조작을 부하 직원에게 지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 주류 교체 방침에 부응하기 위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를 자청해 사법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국회에서 탄핵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후배 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고, 그 사실을 부인했다가 거짓말이 탄로 났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인 추미애·박범계와 친정부 검사들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벌인 불법·탈법 행위와 권한 남용은 법조인의 행태로 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한 후보자의 발탁에는 이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 되며, 무너진 형사사법체계의 복원을 위해 한 후보자가 적임자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치적 관점에서 윤 당선인의 선택에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당장 검수완박 입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역공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미 ‘핵심 측근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해 대놓고 정치보복을 자행하고 검찰 공화국을 만들려 한다’는 공세가 시작됐다. 민생 현안에 집중해 폭넓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구상도 차질을 빚게 됐다. 더구나 첫 내각 인선은 5년간의 국정 운영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그런데 내각 후보자 19명의 평균 나이는 60세이고 서울대 법대 출신이 5명인 반면, 광주·전남 출신은 아예 없고 여성도 3명에 불과하다. 실력보다 과거 회귀와 친소 관계의 이미지가 강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협치와 국민통합을 위한 발탁과 파격의 노력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한 후보자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미지가 오버랩 된다는 것이다. 벌써 ‘소통령’ ‘왕장관’ 등의 지적이 나온다. 한 후보자 못지않은 엘리트 검사 우병우는 오만한 태도와 검찰 인사 개입 등으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한계 상황까지 우병우를 보호했고, 결국 정권 자체가 치명상을 입었다. 황태자로 불렸던 조국 역시 자녀 입시부정 등 가족의 각종 비리 의혹이 드러났지만 문 대통령과 친문 진영은 한사코 조국 수호를 외쳤다. 결국 민심이 돌아서면서 정권 재창출 실패로 이어졌다. 그러나 초기에 두 대통령과 당사자는 물론 국민조차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윤 당선인의 신망이 두터운 한 후보자도 윤석열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한 후보자는 이제 검사도 아니고 탄압받는 피해자도 아니다. 법과 원칙의 준수 못지않게 국정 운영 책임자로 포용과 겸손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후보자는 상대를 벨 수 있지만, 윤 당선인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된다.
문화일보
04.20 노정희 체제 선관위 참사, 정권 방패용 선관위 더는 안 돼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대선 확진자 사전 투표 관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노 위원장은 중앙선관위 전체회의에서 “국민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도 했다. 논란이 불거진 지 44일 만이다.
대선 사전 투표는 투표 용지를 소쿠리나 라면 박스에 담아 옮기고 이미 기표한 용지를 다시 유권자에게 나눠 주는 등 총체적 혼돈 속에 진행되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직접·비밀투표 원칙이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되는 상황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면서 ‘충격적인 선거 참사’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게다가 선거 관리의 최종 책임자인 노 위원장은 사전 투표 대란이 벌어진 날 휴일이라는 이유로 출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비난과 사퇴 요구에 직면했다.
그런데 노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도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선관위 사무총장이 사퇴하고 선관위 상임위원단도 거취 표명을 요구했지만 뒤늦게 사과 담화를 발표한 뒤 “더 잘하겠다”고만 했다. 검찰에 직무 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되고 야당은 탄핵 소추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사퇴 요구는 선관위 업무를 마비시키는 처사”라며 이런 노 위원장을 감쌌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자기들 편인 노 위원장이 선관위를 지키고 있어야 유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 위원장이 지금껏 자리를 지키려 했던 것도 민주당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 위원장은 대법원 주심으로 맡은 재판에서 법조문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판결했다가 하급심에서 결과가 뒤집어지는 망신을 당한 적이 있고,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책에 관한 60여 개 질문에 다른 선관위원 후보자가 제출한 답변을 그대로 베껴 제출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자격 미달이다. 친문 성향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아니라면 애당초 대법관이 될 수 없었다. ‘노정희 선관위’는 이런 정권에 보은하듯 민주당 선거의 ‘응원단’으로 전락했다. 21세기 대한민국 선거를 관리하는 헌법기관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4월 20일 文 부동산·최저임금·재정 비판한 이창용 인식 옳다
국회가 19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한 데 이어 청문 보고서까지 채택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사이에서 신경전도 벌어졌지만, 이 후보자의 능력과 인식에 초당적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 후보자는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소득 양극화, 고령화 같은 구조적 문제가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며 장기 저성장을 우려했다.
특히 이례적으로 문 정부의 경제정책을 기탄 없이 비판했다. 그는 “부동산정책의 목표는 서민 주택 가격 안정과 공급”이라며 “강남 지역의 안정화를 목표로 삼으면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최저임금 역시 “처음에 너무 많이 올라 자영업자에게 큰 부담을 줬다”며 “점진적으로 올라갔다면 오히려 더 올라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방만 재정으로 국가채무가 급증하고 있다며 증세(부가가치세 인상)까지 언급했다.
그는 앞서 서면 답변에서 코로나 사태로 재정 확대는 불가피했지만, 지원은 타깃을 정해 일시적으로 했어야 한다며 전국민 지원금을 비판했다. 사실상 문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음에도, 문 정부가 5년 내내 자화자찬했던 경제가 총체적 실패였다고 질책한 셈이다. 이 후보자가 가계부채 부담 확대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없더라도 선제적인 금리 인상 신호를 줘 물가를 잡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의 이런 현실 인식과 접근 방향은 전반적으로 정확하고 옳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올해 한국 성장률을 종전 3.0%에서 2.5%로 낮추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에서 4.0%로 올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 12일 성장률 3.1%, 물가 2.2% 목표치 달성이 어렵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제대로 수정하지 않고 윤 정부로 떠넘긴다. 저성장과 고물가가 러시아 탓에 벌어지는 세계적 현상이긴 하지만, 문 정부 경제정책 실패가 더욱 악화시켰다.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임에도 막판까지 공(功)은 내 몫이고 과(過)는 남 탓으로 미루는 행태가 개탄스럽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20일 TBS에 세금 퍼부을 이유 없다

유회경 전국부장
TBS 교통방송은 왜 교통방송인가. 주로 서울 시민을 상대로 서울과 주변 도로 교통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래 취지대로만 한다면 현재 TBS의 설 자리는 거의 없다. 교통정보 제공이라면 티맵, 카카오내비 등 내비게이션 앱이 시중에 즐비하기 때문이다. 사고 등으로 인해 특정 지역에 교통이 정체되니 우회하라는 교통 안내 정도는 여전히 TBS 고유의 몫일 수 있지만, 그 활용도는 심히 낮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TBS의 교통정보 제공 기능은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할 수 있다. 이는 기술 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러다 보니 TBS는 시사 뉴스 등 다른 일에 열심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변질되기 쉽고 실제로 TBS의 정치적 편향은 심각한 수준이다. TBS 진행자 면면을 보라. 정치적 색깔이 그보다 진할 수 없다. 그 정점에는 김어준 씨가 있다. 그가 진행하는 ‘뉴스공장’이 좌파 여론 조성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 씨는 2020년 12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법원의 징계 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에 대해 ‘법조 쿠데타’ 등의 표현을 사용해 지난해 10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인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 올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성 발언으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TBS는 이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TBS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의회는 우군인 민주당 차지이기 때문이다. 쿨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좌 편향된 TBS 논조에 대해 동조하면 예배드리듯이 듣는 거고 동의하지 않으면 신경 끄고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TBS를 지탱하는 게 내 돈이라고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난삽하고 귀에 거슬려 쳐다보기도 싫은 방송을 위해 왜 내 귀한 세금이 쓰여야 한단 말인가.
올해 TBS에 서울시 출연금 320억 원이 들어간다. 총예산 465억 원 가운데 68.6%다. 그나마 전년에 비해 55억 원 깎인 게 그 정도다. 좌파 여론 조성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상관할 바 아니나 그 과정에서 내 돈은 사용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욱이 돈은 돈대로 대면서 요리할 방법을 찾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는 서울시와 허울 좋게 언론 독립을 앞세우면서 노골적으로 민주당을 두둔하는 TBS 간 지루한 공방전을 지켜보는 것도 이젠 물린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참에 TBS를 없애버리는 것은 어떤가. TBS가 지금은 좌 편향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부지불식간에 우 편향 방송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이 역시 문제다. 동일하게 세금을 낸 ‘뉴스공장’ 골수 팬도 유사한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중립을 포함한 강력한 규약을 만들어 제어하는 것은 어떤가. 하지만 현재의 TBS 꼴을 만든 박원순 전 시장과 같은 사람이 시장이 된다면 이러한 장치는 바로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오세훈 시장은 TBS를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 같다. 그나마 좋은 방법이다. 다만, 최대한 빨리 돈을 끊어라. 교통정보 없는 TBS처럼 이상한 곳에 내 세금이 조금이라도 쓰이는 게 많이 불쾌하다.
문화일보
04월 21일 민주주의 훼손 앞장서 놓고 “되살렸다”는 文 후안무치
문재인 대통령이 낯뜨거울 자화자찬을 임기 막판까지 반복하고 있다. 문 정부의 전(前) 국무총리·장관 등 50여 명을 초청한 20일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나서 평화적인 촛불집회, 국회의 탄핵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통해 합법적인 정권교체를 이루고 민주주의를 되살렸다는 면에서 극찬을 받았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응, 경제·외교 등의 참담한 실정(失政)을 ‘성과’로 둔갑시키며, 민주주의 훼손에 앞장서 놓고도 “되살렸다”고 한 것은 후안무치의 전형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法治)에 대한 테러에 해당하는 위헌적 검수완박 입법을 헌정 사상 유례가 없었던 꼼수까지 동원해 강행 중인데도, 문 대통령은 사실상 방조한다는 지적까지 자초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3권 분립’의 근본 취지마저 허물고, 직전 국회의장을 총리직으로 옮기게 한 일탈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주의 구현의 핵심 절차 중 한 부분인 울산시장선거에 대한 청와대의 조직적 불법 개입 출발점도 문 대통령 한마디였다. ‘코드 대법원장’을 통해 사법부의 정치화도 조장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어도, 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을 밀어붙인 인사만 34명에 이른다. 노무현 3명, 이명박 17명, 박근혜 10명 등 전임 세 정부를 다 합친 숫자보다 많다. 의회민주주의 경시(輕視)도 심각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예다. 그러고도 “퇴임 후 잊힌 삶을 살겠다”고 하는 건 전해 듣기조차 민망하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21일 정부 ‘위원회’ 과감한 축소 급하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에서 발표한 이른바 ‘식물위원회’ 정리 방안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사안으로, 적극 환영한다. 우리 행정의 특이한 현상 중 하나는, 수없이 많은 위원회를 구성해 정책 과정에 활용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공무원들만으로 정책을 만들고 수행할 경우의 한계를 보완하고 현실을 고루 반영할 수 있어 장점도 많다. 그러나 역대 정부에서는 위원회를 만들기만 했을 뿐, 폐지하지 않거나 위원회를 구성해 놓고도 활용하지 않아 장점보다 폐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인수위의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중앙정부의 위원회는 558개에서 628개로 70개가 늘었다. 그중 지난 1년간 회의가 없었던 위원회가 51개였고, 최근 3년간 연평균 2회 미만 회의를 연 것도 106개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는 더 심각하다. 2020년 말 기준, 지자체에는 2만8071개의 위원회가 설치돼 있고, 연평균 1000개의 위원회가 새로 만들어진다. ‘위원회공화국’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문제는, 그중 7198개(25.6%)는 지난 1년간 단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수위는 “불필요하거나 회의 실적이 저조한 중앙정부와 지자체 소속 위원회를 과감하게 줄이겠다”고 했는데, 그 결과 중앙정부 113개, 지방정부 7311개를 ‘식물위원회’로 규정해 우선 통폐합 대상으로 지정하겠다고 한다. 이름만 올려 놓고 스펙으로 삼는 무늬만 위원이나, 위원회 구성·운영을 예상해서 책정한 예산의 불용액을 고려할 때, 이 정도를 ‘과감’하다고 할 순 없다. 차제에 수십 년간 쌓인 위원회공화국의 오명을 씻어낼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구성만 해 놓고 개최하지 않는 위원회는 통폐합이 아니라 폐지가 답이다. 정부 각 부처에는 자체 평가위원회가 있는데, 부처 내의 위원회 활동과 그에 따른 성과를 자체 평가의 성과지표로 포함해 매년 각 부처가 스스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위원회를 새로 구성할 때에는 위원회의 목적에 따라 존속 기간을 함께 제시해 일몰 규정으로 활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존속 기간이 도래한 위원회는 원칙적으로 해산하되, 필요성을 재점검해 위원회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의 위원회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돼야 한다. 별도의 직업을 가진 전문가가 정부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최대 개수를 3∼5개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위원의 임기(예, 3년)를 정하고 1회 또는 2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도록 하고, 전체 위원 중 3분의 1씩 매년 교체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경우라도 오랫동안 특정 분야의 위원으로 활동하는 경우, 사적 관계가 형성돼 공정하고 투명한 의사결정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위원회에 대해서도 행정안전부가 이에 준하는 관리 규정을 제정해 불필요한 예산과 시간이 낭비되는 상황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모든 노력은 위원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이나 예상되는 부작용은 최소화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가장 정직하고 투명한 행정 서비스와 정책 과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다음 정권교체기에는 ‘식물위원회’라는 말이 결코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04.22 “괴물이 된 운동권” “민주주의를 테러” “이제 두렵다”

▲20일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모습. 왼쪽부터, 박지현, 윤호중 공동 비상대책위원장,박홍근 원내대표. 윤 위원장과 박 원내대표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주도하는 지도부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정권 범죄 비호를 위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박탈(검수완박)하는 법을 밀어붙이는 민주당 폭주가 선을 넘어 법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소속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가짜 무소속’을 만드는 일까지 저지르자 여권 내에서도 “경악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의원 당적까지 조작하는 건 단순한 ‘꼼수’가 아니라 국정 문란이고 입법 농단이다. 한국 정당의 숱한 흑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런 짓을 하고도 민주당 지도부는 “국회법 준수”라고 강변한다. 후안무치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이 법사위에서 검수완박을 강행 처리하려면 국회법상 무소속 의원의 협조가 필요하다. 애초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의 협조를 믿고 상임위를 법사위로 바꿔놓았지만 해당 의원이 ‘양심상 반대한다’고 하자 법사위에 있던 민주당 의원을 위장 탈당시켰다. 75세 의원을 법사위에 투입하기도 했다. 최연장자가 법사위 소위를 진행한다는 국회법을 악용하는 것이다. 본회의 통과를 막으려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시도는 회기 쪼개기로 무력화할 것이라고 했다. 모든 꼼수와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법사위원장을 지낸 이상민 의원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했고, 당 비대위원은 “스스로 민주 정당이길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응천 의원은 “국민 시선이 두렵다”, 김병욱 의원은 “민주주의 가치를 능멸할 뿐”이라고도 했다. 한때 우군이던 정의당 대변인까지 “민주주의 테러”라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22일 검수완박 강행을 위한 본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자신들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고 이성과 양식을 모두 팽개쳤다.
민주당 위성 비례당으로 당선된 조정훈 의원은 “586 운동권 선배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입법 독재를 넘어 민주 독재”라고도 했다. 지금 검수완박 폭주는 586 운동권인 박홍근 원내대표와 윤호중 비대위원장 등이 주도하고 있다. 여권 586은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당·정·청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독선적 국정 운영을 해왔다. 이념 편향과 내로남불로 일관하다 국민의 심판을 받았는데도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 친여 성향 참여연대 출신 변호사가 “국회가 우스웠는데 이제 두렵다”고 했다. 도둑이 포졸을 없앤다는 입법 시도에 처음엔 웃었는데 이제는 두렵게 느끼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
04월 23일 ‘성남 백현동 개발 특혜의혹’…감사원, 검찰 수사요청
지난해 시민단체 공익감사 청구…범죄 혐의 수사 필요성 드러나듯
용도 변경 등을 놓고 특혜의혹이 제기된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과 관련해 대검찰청에 수사요청을 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23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감사원은 그간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 특혜의혹과 관련해 성남시의 법령위반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공익감사를 청구한 성남미래정책포럼은 “성남시가 자연녹지를 준주거지로 용도를 변경해줬고, (아파트 단지를) 임대주택으로 추진하다가 갑자기 일반분양으로 전환했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감자원은 올 1월 실지감사까지 진행한 결과 해당 아파트 단지 조성 사업과 관련해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법은 감사 결과에 따라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요청을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 단지는 지난 2015년 2월 부동산개발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한 한국식품연구원으로부터 부지를 매입한 뒤 자연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됐다. 또 이 단지는 전체 가구가 민간임대로 계획됐다가 민간임대 비율은 10%로 줄었고, 나머지 90%는 분양주택으로 계획돼 특혜 논란이 일었다. 성남시 측은 이에 “성남시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협조 요청으로 용도 변경이 이뤄진 것이며 공공시설 기여를 고려해 민간임대에서 분양주택으로 전환된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04.25 검·경·공수처 이어 중수청, 한 나라에 수사기관이 몇 개인가

▲검수완박'은 '국민독박'이라던 국민의힘./국회사진기단
여야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합의하면서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기로 했다. 검찰이 하고 있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 수사를 이곳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1년 6개월 뒤 중수청이 발족되면 자치경찰과 국가경찰(국가수사본부), 기소를 전담하는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각각 별도의 수사기관으로 난립하게 된다.
수사기관이 많다고 법적 정의가 실현된다면 백 개라도 만들어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공수처가 수사를 시작한 것이 작년 1월이지만 그동안 어떤 범죄를 척결했는지 내세울 게 없다. 공직자 비리를 잡아내겠다고 만든 공수처가 친정권 검찰 간부 피의자를 관용차로 모셔 ‘황제 조사’하고 이 사실을 보도한 언론인을 마구잡이 통신 사찰을 해가며 수사한 것만 떠오른다. 옥상옥의 수사기관을 만들었을 때 실제로 일어날 일을 공수처가 증명했다. 능력과 사명감 없는 수사기관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국민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5년 전 문재인 정권이 ‘수사권의 민주적 통제’를 이유로 들고나온 검찰 개혁은 결국 ‘수사권의 비민주적 난립’으로 귀결되고 있다. 중수청이 가동될 때까지 1년 6개월 동안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4대 범죄 수사권이 경찰로 완전히 넘어간다. 그러면서 검찰엔 수사 지휘권조차 남기지 않았다. 경찰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다. 울산 선거 개입,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산업부 블랙리스트 등 현 정권 수사가 경찰에 넘어가면 정치적 야합에 의해 사라질 수 있다. 공수처는 독립 기관이란 점을 내세워 지금처럼 입맛에 맞는 수사만 선별적으로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6대 범죄 수사를 가져갈 중수청의 권한과 견제 장치 역시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
수사의 정의를 실현하려면 수사기관을 권력에서 독립시키는 것 이상의 묘수가 있을 수 없다. 지금처럼 친정권 인사를 검찰 간부로 기용하고 이해득실에 따라 수사기관을 조각 내는 권력의 폭주만 막아도 제도적 정의는 거의 실현할 수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기관만 계속 늘리면 국가 수사 체계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 난립·중첩·비대화에 따른 불이익은 모두 국민에게 돌아간다.
조선일보 사설
04.26 문 대통령이 퇴임 전 해야 할 일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중도 하차로 대통령을 거저 줍다시피 했다. 촛불집회의 여세를 몰아 80% 넘는 압도적 지지로 출발했다. 마음만 먹으면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었다. 존경받는 지도자로 역사에 남을 절호의 기회였다. 탄핵으로 상처 받은 국민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같은 화해의 리더십을 기대했다.
만델라는 600년간 흑인을 가혹하게 탄압한 백인 정권을 용서했다. 자신에게 종신형을 구형한 검사를 대통령 관저에 초대해 극진히 대접했다. 27년 옥살이와 모진 고문을 당한 그였다. 만델라는 “사람들이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덕분에 남아공은 신생 독립국이나 민주화 국가에서 벌어진 피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전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된다.
집권 중 가장 큰 잘못은 편 가르기
증오 부추기며 정치적 내전 초래
40%지지 취해 물러나면 불행해져
사과하고, 국민 응어리 풀어줘야
문 대통령은 만델라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취임사에선 “진정한 국민 통합의 시작”이라고 했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의 정치 보복에 매달렸다. 칼자루를 쥐었으니 거칠게 없었다. 온 국민의 지도자가 아니라 ‘진영의 보스’ 같았다. 모든 게 이념화, 정치화됐다. 경제·사회·외교정책마저 정치 슬로건으로 변질됐다.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탈원전, 정규직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일관계, 사법개혁 등 주요 정책이 줄줄이 실패했다. 문제가 있어도 중도에 고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가 고통 받고, 일자리가 줄어들자 “소득주도 성장을 더 강화하겠다”고 답했다. “늘 자주한다”는 혼밥으로 다져진 자신만의 세계, 특유의 아집을 꺽지 않았다. “반대 의견이 나오면 더 밀어붙이는 게 문 대통령 스타일”이라는 한 친문 인사의 말 그대로였다.
정책 실패야 그렇다 치고, 문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것은 편 가르기다. 노무현 정부의 유산인데, 더 심해졌다. 유시민·김어준 류가 저속한 추임새와 궤변으로 갈등을 부추겼다. 원로 진보학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편을 갈라 지지세력을 동원하는 게 현 정부의 기본전략”이라고 걱정할 정도였다. 2019년 가을 조국 사태는 나라를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두 동강 냈다. 국민 마음 속에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심었다. 문 대통령은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몇 달 후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했다. 조국에 분노한 절반의 국민은 안중에 없는 듯한 발언이었다.
코로나 사태도 편 가르기에 이용했다. 민주노총 집회에는 엄격한 방역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파업 중인 의사를 공격하려고 의사와 간호사를 갈랐다. 그는 “의료진이 쓰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라는 사실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고 페북에 썼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골적인 편 가르기였다. 간호사들조차 “글을 읽고 난감했다”는 반응이었다.
부동산 실정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부자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세입자와 집주인을 선악의 프레임으로 갈랐다. 한일 무역분쟁 때는 토착 왜구 같은 프레임을 동원해 외교 실패를 덮었다. 폭력시위를 주도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같은 진영 사람들을 대거 사면했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기업인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올 3·1절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첫 민주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직선제로 선출한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민주 정부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대선을 앞둔 갈라치기였다.
편 가르기에는 남 탓과 내로남불을 동원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직전 발간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박근혜 대통령 옷에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박 대통령의 가방, 많은 옷들, 이런데 쓰는 돈이 다 국가예산으로 나가는 것이다. 대통령 앞으로 굉장히 많은 특수활동비가 책정돼 있는데, 대통령 맘대로 쓰라는 돈이 아니다.” 내로남불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2주 남았다. 막판까지 40% 지지율을 유지했다. 편 가르기로 자기세력을 결집한 덕분이었다. 국민은 정치적 내전(內戰) 한복판에 놓여 있다. 3월 대선 직후 문 대통령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갈등을 씻어내고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당부했다. 집권 내내 분열을 조장한 그가 할 말은 아닌 듯 하다. 강인한 멘탈을 갖고 있거나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문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책도 내고, 언론도 만나면서 성과를 알리는데 열심이다. 지지율에 고무돼 자화자찬이나 자기 합리화에 몰두하다 물러나면 불행해진다. 25일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도 편 가르기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시는 없었다. 퇴임 후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했지만, 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퇴임 전에 나라가 분열된 것을 진솔하게 사과하고, 국민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줬으면 한다. 이게 통합에 도움이 되고, 본인에게도 약이 될 것이다. 대통합 사면도 검토할만 하다.
양산 사저에 아래 말을 붙여 놓으면 좋을 것 같다.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김수환 추기경). “우리를 갈라놓은 균열 위에 다리를 놓아야할 때입니다”(만델라).
중앙일보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04.26 김명수(대법원장) 거짓 문건 사건, 작년 6월 임성근(전 고법 부장판사) 서면 조사 후 수사 중단
문재인 정부 검찰 수사의 기조는 2019년 8월 조국 일가 비리 사건 수사를 경계로 '적폐 수사'와 '산 권력 수사'로 나뉜다. 전반부 수사는 죽은 권력에 대한 단죄였고 사법부까지 거침없이 치고 들어갔다. 후반부는 돌아온 '항명' 윤석열 검사가 검을 거꾸로 잡고 밀어붙인 수사였다. 검찰권력과 정치권력이 정면충돌한 충격파는 컸다. 대통령이 정점에 자리잡은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수사 중단과 축소 현상이 대법원장 허위공문서 사건까지 덮치더니 최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정의가 지연된, 멈춰진 수사들의 실상을 짚어봤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2월초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와 '여당의 탄핵' 발언 및 사표 수리 거부 등을 두고 진실 공방을 벌였다. 당시 대화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자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들이 대법원 앞 인도에 진열됐다. 김성룡 기자
김명수,직권남용·허위공문서 작성등 혐의
지난 19일 창원지검 인권보호관 변필건 부장검사에게 연락했다. 그가 누구냐고? 2020년 9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근무할 때 채널A 강요미수('검언유착')사건 주임검사(수사팀장)였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9차례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무혐의 의견을 보고했지만 모조리 묵살됐다. 한 검사장이 지난 6일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며 이를 '검수완박' 입법의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변 부장검사는 "채널A 사건은 정치권의 수사 개입 배제 방안을 논의하는 소재로 다뤄져야 한다"며 공개 반박했다. 그에게 연락한 건 채널A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건이 궁금해서였다. 그가 지휘했던 이른바 '김명수(63·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피고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부터 보자. 2020년 5월 22일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임성근(58·17기)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내려고 하자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지금 (여당이)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2월 초 민주당 판사 출신 의원들이 임기 만료를 앞둔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가결(8개월 뒤 헌재서 각하)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공개됐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 발언을 한 적이 없고 임 전 부장판사가 사표를 낸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의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몇몇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아픈 판사의 사직서를 장기간 수리하지 않았고 국회의 해명 요청에 거짓 서면을 대법원 명의로 작성해 제출했다"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주임검사인 형사1부 부부장은 지난해 6월 두 차례에 걸쳐 임 전 부장판사와 사표 수리 과정에 등장하는 김인겸(59·18기)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현 서울가정법원장)을 서면조사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임 전 부장판사가 형사 재판을 받는 중이라 서면 조사를 원했다"며 "질문지를 10장 보냈더니 답이 10장 왔다"고 전했다. 그는 "둘은 대학 친구인데 사표 제출과 반려 과정에 대한 진술이 달라 두 번 조사했던 것"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상당부분 파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3년 만에 정식으로 열린 제59회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본지 취재 결과, 서면진술서에서 주장이 엇갈리는 건 두 부분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재작년 5월 22일 대법원장 면담 직후 사표를 김 전 차장에게 맡기고 왔다고 진술했다. "사표를 내밀었더니 '이걸 왜 나한테 내느냐'고 하더라. '11층(대법원장실) 올라가서 사표를 어떻게 내느냐'고 했더니 '하기야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사표 낼 때 차장한테 내고 간다.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은 처음엔 사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다가 이후 "사표를 받은 건 맞지만 법원장을 통하지 않아 정식 사표는 아니다"라고 말을 돌렸다. 임 전 부장판사는 사표를 낼 때 스마트폰으로 찍어둔 사진을 찾아 증거자료로 첨부해 검찰에 냈다고 한다.
부장·부부장검사 지방 좌천,수사 중단
다른 하나는 임 전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을 면담하고 나와 김 전 차장 방에서 차를 마시며 '대법원장이 탄핵 운운하며 사표를 못 받겠다고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반면 김 전 차장은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없다"고 부인한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임 전 부장판사의 녹취록에 그대로 들어있다고 한다. 그는 김 대법원장을 만나기 직전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조 처장이 "가급적 사표가 수리되도록 노력하겠다. 다만 향후 시비 소지를 없애기 위해 치료경과 등에 관한 진단서 등을 보완해 달라"고 했다. 이에 김 대법원장 면담 직후 치료확인서, 수술증명서, 진단서 등과 함께 치료경과서를 작성해 법원행정처에 보냈다고 한다.
검찰 수사팀은 김 대법원장이 국회에 거짓 문서를 낸 것은 맞는데 고의 여부를 규명하는 게 관건이라고 봤다고 한다. 장기간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행위는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문제는 부장검사와 부부장검사가 지난해 8월 지방으로 좌천되면서 수사가 중단됐다는 점이다. 그 이후 사건이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임 전 부장판사측 관계자는 "검찰청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지요"라고 답했다. 후임 수사팀이 기소 여부 결정은커녕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 시기와 방법도 결정하지 않고 있는 건 지연된 정의의 대표적 사례다. 경찰은 더하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불거진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 예산 4억7000만원 전용' 의혹으로 2019년 고발됐다. 이후 2년 5개월째 서울 서초서는 사건을 깔고 앉아있다.
작년 12월 시한부 기소 중지된 이상직 사건
수사 방해와 좌천 인사는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줄을 이었다. 문 대통령과 가족 관련만 세 가지다. 2020년 1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팀은 송철호 울산시장, 황운하 민주당 의원 등 15명을 기소했다. 수사 결과 청와대는 8개 부서를 동원해 송 시장의 공약 수립까지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게 2014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내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의 당선"이라고 했던 대통령과의 친분에서 시작됐지만 수사는 멈췄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수사팀부터 해체했다. 해당 재판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의 노골적 뭉개기로 15개월 동안 공전했다. 2020년 11월 대전지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시로 '월성 원전 평가성 조작 의혹 사건' 수사에 착수하자 추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에 대해 직무배제 결정을 내렸다. 이듬해 6월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을 기소하기 직전,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인천지검장으로 발령났다.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59·수감 중) 의원이 태국의 저비용 항공사 타이이스타젯을 통해 문 대통령의 사위 서 모 씨 가족에게 특혜를 줬다는 권력형 비리 의혹은 전주지검이 수사중이다. 사위의 특혜 취업이 문 대통령에게 건네진 뇌물인지 여부가 핵심인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석연찮은 이유로 시한부 기소중지됐다. 이재명 전 후보가 연루된 성남FC 후원금 사건은 수사를 막는 성남지청장에 반발해 차장검사가 사직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대장동 특혜 비리 사건도 멈춰서 있다.
그나마 서울동부지검에서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 인사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고발장 접수 이후 3년 2개월 만에 의욕적으로 재수사에 나섰으나 검수완박 입법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께 산자부 박모국장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임기가 남은 산하 8개 공공기관장들을 광화문의 호텔로 불러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는 게 핵심 혐의다. 동부지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김은경 전 장관 기소로 마무리하고 한찬식 동부지검장 등 지휘부가 2019년 8월 좌천성 인사를 당해 검찰을 떠난 뒤 올스톱됐다. 민주당은 이 사건도 검수완박 추진 근거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정치 보복 수사가 시작됐다"면서다.
만약 이번 국회에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시행된다면 오는 9월부터 검찰은 여야 국회의원과 정권 고위층 비리의 핵심인 공직자 범죄(직권남용)·선거 범죄를 손대지 못한다. 고작 4개월의 시한부 수사만 남은 셈이다.
"역으로 보면 아직 검찰에 4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 아닌가. 정의의 지연은 이제 범죄다." 어느 검사의 역설적 비유가 처연하다.

조강수 논설위원 중앙일보
04월 26일 ‘현재’ 탕진하고 ‘미래’ 착취한 文 5년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출범과 함께 경제 정책 역주행
비정규직 제로와 법인세 인상
소득주도성장 呪術로 더 악화
국가채무 670兆→1068兆 급증
민간 창의와 시장 활력도 저해
부담과 책임은 미래로 떠넘겨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와의 대화’로 정의했다. 과거의 사실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이는 해석이 역사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5년이 끝나가고 있다. 공과(功過)가 있게 마련이지만, 경제로 좁히면 실패로 단정해도 가혹한 평가는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시각을 견지하면, 역사 해석은 실패를 ‘실패학(failure science)’으로 승화시키는 기제다.
문 정부의 실패는 이미 취임사에서 예견됐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임사 대목에서는 탄식이 나온다.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권교체를 건국으로 착각한 것이다.
문 정권은 구두선(口頭禪)에 취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제적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결과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 정부가 말하는 정의는 ‘결과적 평등’이다. 소득 순환 과정에서 평등·공정·정의는 공존할 수 없다. 공존한다면 시스템적으로 과다식별(over identification)된 것이다. 독수리 날개, 치타 허리, 코끼리 다리를 붙일 수 없다. ‘결과적 평등을 정의’로 인식하면 국가 개입주의는 당연 선(善)이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 ‘국가가 최고의 고용주’여야 한다는 정책 사고는 국가 개입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낡은 구호로 대한민국은 후퇴했다. 국민의 국가 의존만 타성화했다.
문 정부는 출범 당시 2017년 한국 경제 상황을 천착할 준비도 지력(知力)도 없었다. 그들은 사전에 입력된 대로 사고했고, 행동했다. 문 대통령의 첫 행선지는 인천국제공항공사였으며, 제일성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모두 없애겠다는 인기 발언이었다. 문 정부의 숙원사업 1번과 2번은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출범한 그해 12월 증세를 단행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이 22%에서 25%로 인상됐다. 2007년 이후 OECD 35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법인세를 낮췄지만, 한국은 역주행했다. 같은 시기에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 이후 31년 만에 감세를 단행했다.
문 정부는 최저임금을 너무 급격하게 올렸다. 2018년부터 시행된 최저임금을 전년에 비해 16.4% 증가한 7530원으로 올렸다. 이로써 문 정부는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최대의 숙원을 2017년에 모두 풀었다. 창과 칼을 양손에 들었으니 날개를 단 셈이다. 그렇다면 모든 게 술술 풀렸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2018년 한국의 경제성장률(2.66%)은 미국(2.89%)보다 오히려 낮았다. 한·미 간의 성장률 역전은 충격적이다.
문 대통령은 2019년 8월에 2020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2020년 예산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 강한 나라로 가는 발판”이라고 했다. 미증유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 513조 원에 이르는 초팽창 예산을 편성한 게 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나라로 가는 발판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문 정부의 ‘정신승리법’이 도진 것이다.
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주술(呪術)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소득주도성장은 ‘소득(임금 상승)이 소득을 성장시킨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주어와 목적어가 일체화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그런데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그때마다 ‘부분적으로 보완하고 필요하면 속도를 내겠다’는 엉뚱한 처방만 되뇌었다.
문 정부 경제정책이 실패한 근본적인 요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를 경원시(敬遠視)한 것이다. 국가 주도 경제 운영과 국가 간섭주의로 민간의 창의와 시장의 활력을 탕진했다.
문 정부 출범 첫해의 국가채무 670조 원은 임기가 끝난 2022년 말에는 1068조 원으로 크게 증가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말대로 국가채무를 미래로 이월했다. 그러면 누군가 갚아야 한다. 미래세대의 몫이다. 현세대가 미래세대의 자원을 앞당겨 지출하고 그 책임을 뒤로 미룬 것이다. 문 정부는 ‘현재를 탕진하고 미래를 착취’한 반면교사의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문화일보
04.27 무슨 뜻인지 알기도 힘든 文 대통령 마지막 궤변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기자 간담회와 TV 대담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며 “우리 상승 폭이 가장 작은 폭에 속한다”고 했다. KB국민은행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4년간 90% 이상 폭등했다. 20대 직장인은 “2017년 3억 하던 아파트가 8억이 됐다”고 절규했다. 전 세계 주요국 중 최악일 것이다. 지방 부동산 가격까지 포함한 전국 평균치를 이용해 부동산 정책 참사를 왜곡한 것이다. 문 정권 내내 이런 식의 통계 분식과 왜곡을 일삼아 왔다.
문 대통령은 “재판 중인 사건도 직권남용 수준”이라며 문 정권 범죄 혐의들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울산 선거 공작은 자신의 친구를 당선시키려고 청와대 비서실 내 8개 조직이 나서서 야당 후보를 억지 수사하고 다른 후보를 매수한 선거 농단 사건이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은 문 대통령의 한마디로 시작돼 장관이 “너 죽을래”라고 부하들을 겁박해 자료를 조작·은폐·삭제했다.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손실액만 5652억원이다. 문 대통령 딸 가족의 해외 거주를 도운 이상직 의원은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 수사를 피하며 의원까지 됐다. 직권 남용이 아니라 국기 문란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당선인에 대해 “검찰총장으로서 임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는데 중도에 그만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중도에 그만두게 한 사람이 바로 문 대통령 자신이다. 정권이 ‘검수완박’으로 검찰을 없애겠다는 협박에 윤 총장이 사표를 내자 문 대통령은 바로 수리했다. 지금의 윤 당선인을 만든 건 문 대통령인데도 “야당 후보로 당선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에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한 것이 진심이었느냐는 질문에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 정권은 울산 사건, 월성 조작, 이상직 수사, 대장동 수사를 모두 막고 질질 끌었다. 재판까지 뭉갰다. 문 정권 범죄 혐의 수사를 막는 ‘검수완박’ 중재안에 대해선 “잘됐다”고 했다.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유체이탈과 내로남불, 궤변뿐이다. 그래서 국민 비판을 받고 정권을 잃었는데도 ‘다 잘했다’는 식이다.
조선일보 사설
04-28 文 정부 5년 다큐, 낯 뜨거운 ‘셀프 칭찬’
자화자찬 ‘文비어천가’ 가득한 영상백서
그리 유능한 정부라면서 왜 정권 내줬나

이진영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출연하는 토크쇼 ‘유퀴즈’가 방송될 즈음 청와대 유튜브 채널에는 4부작 다큐멘터리 ‘문재인 정부 5년의 기록,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올라왔다. 청와대와 KTV 공동 기획으로 문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돌아보는 영상백서다. 굵직한 사건들을 다양한 시선에서 재조명했다고 해서 봤더니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선전물이다.
1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 오판에서 시작해 핵공격 위협으로 끝난 대북정책 편. 2018년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와 전 세계 언론에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이 말을 믿고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그런데 도저히 믿기 어려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준 정 실장의 발표 장면을 다큐는 “북-미 외교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라고 기록한다.
2부는 경제 편인데 집값 폭등이나 소득주도성장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 그 대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를 길게 소개하는데 서사 구조는 이렇다.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에 보복하려고, 진주만 공습하듯 기습적으로 수출규제를 했으나, 대통령이 흔들림 없이 난국을 돌파해 ‘소부장 독립’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뭉개고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게을리한 한국도 책임이 없지 않고, 대법원 판결에서 일본의 보복 조치까지 8개월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정부는 안일하게 대응했으며, 큰 피해는 없었지만 소부장 독립을 선언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게 사실에 가깝다.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극복한 정부도 이런 자화자찬용 다큐를 찍지 않았다. 수출규제에 대응한 게 “경제 장관들이 매일 아침 7시에 회의” “일본이 완전 꼬리 내렸다”며 흥분하고 생색낼 일인가.
3부 코로나 편은 더하다. 마스크와 백신 대란도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자성은 없고 해결사로 활약했던 무용담만 가득하다. 마스크 대란에 “홍해의 기적처럼 마스크 공급의 기적을 만들자”며 ‘홍해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백신 부족은 대통령이 “민간 제약사와의 화상통화는 보안규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참모의 만류에도 직접 나서서 해결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K방역’의 자랑인 진단키트 지원 약속에 “생큐를 연발했다”는 것이다.
4부도 성공의 기억들로 채웠는데 주인공은 대통령이다.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마음 내려놓고 북-미 정상이 주인공이 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일본 수출규제 위기가 오히려 승부처라는 놀라운 역발상”을 하며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99점도 용납하지 않았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낸 종합행정의 지휘자”였으며 “국민께 예의를 다한 대통령”이었다. 이런 성군의 치세였는데 왜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건가.
정부의 백서라면 정책 추진 과정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제언을 담아 후임 정부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함에 목적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참모와 각료들이 나서서 ‘마스크 생산 지원하느라 직원들이 옷도 못 빨아 입었다’ ‘우한 교민 이송 위해 스파이 작전하듯 요소요소 막힌 길 뚫고’ 하며 성공을 ‘호소’하는 영상에 무슨 공익적 가치가 있나. 건실했던 나라를 빚더미에 위태롭게 올려놓고 내놓은 다큐 제목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다. 그들만의 ‘대안적 세계’에 살았던 이들이 5년간 나라를 이끌었다니 아찔하다. 다큐가 아니라 코믹 호러물이다.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
04.29 ‘사법 적폐 몰이’ 6번째 무죄 확정, ‘김명수 사법 농단’ 진상 밝혀야
이른바 ‘사법 적폐’ 사건으로 기소된 임성근 전 판사가 28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임 전 판사가 지난 정권 때 다른 재판에 간섭했다는 기소 내용은 아예 범죄가 되지 않는 일을 무리하게 엮은 것이라는 사실이 1심, 2심에 이어 최종 확인된 것이다. ‘사법 적폐’라며 전 대법원장, 대법관 등 판사 14명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임 전 판사 등 6명이 줄줄이 무죄가 확정되고 있다.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잇따라 나오자 김 대법원장은 자신에게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말한 윤종섭 판사에게 재판을 맡겼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 원칙을 위배하며 윤 판사를 같은 법원에 6년째 붙박이로 뒀고, 결국 윤 판사가 첫 유죄판결을 내렸다. 사법 농단이다.
김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권이 조국 사건, 김경수 전 경남지사 대선 여론 조작 사건 등에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겁주려고 ‘억지 탄핵’을 강행하자 임성근 전 판사를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임 전 판사가 건강 악화로 사직하겠다고 했는데도 “사표 수리하면 민주당이 탄핵 못 한다”며 막았다. 심지어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잡아뗐다가 녹취록이 나오면서 거짓말이 탄로 나기도 했다. 지금 한국은 대법원장이 거짓말하는 나라다.
김명수 대법원에서는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잇따라 터졌다. 특히 대장동 브로커가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와 은수미 성남시장의 정치 생명을 살려주기 위해 대법관을 상대로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문 정권에서 벌어진 사법 농단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다면 국민이 법원 재판을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29 ‘거짓의 수도꼭지’ 잠그기만 해도 살 만한 사회
러시아 관영 매체는 ‘가짜 뉴스’ 퍼뜨리는 선전기관
딥페이크 영상·댓글 조작하며 다른 나라 여론 왜곡
文정권 임기 말 공영방송 지배구조 바꾸는 입법 진행중
거짓·편파 정보가 수도꼭지 틀면 나오는 구조 만들려해
언론이 거짓말만 걸러내도 살 만한 사회 될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내세운 명분은 돈바스 지역 러시아인을 보호하고 우크라이나를 네오나치로부터 구한다는 것이었다. 무차별 폭격과 학살로 점철된 전쟁 양태를 보면 애초에 누군가를 ‘보호하고 구한다’는 건 당치 않은 거짓이었다. 시작부터 거짓말이었던 러시아는 그 후에도 거짓말로 일관했다. 피투성이가 된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포도 주스’를 이용한 배우들의 연기라고 역선전하거나, 소위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항복하라는 연설을 하는 영상을 조작해 유포하는 식이다.
러시아 정부가 쏟아내는 거짓 정보(misinformation)의 양과 종류가 워낙 방대해 매일 모니터링하기도 벅찰 지경이다. 이런 러시아의 프로파간다 모델을 미국의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는 ‘거짓의 소방 호스’라고 불렀다. 엄청난 양의 거짓 정보를 수많은 채널을 통해 재빨리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쏟아낸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관영 매체는 언론이라기보다 거대한 선전 기관이다. 이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수천 개의 가짜 계정을 관리하고, 우리 식의 ‘알바’에 해당하는 댓글족을 2교대로 24시간 가동시킨다고 한다. 이들의 할당량은 매일 200자 이상의 댓글 135개 이상을 다는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이들이 만들어내는 내러티브는 대략 서구 사회가 전쟁을 촉발했다고 비판하며 러시아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국내 인종 및 계층 갈등을 조장하고 반미 국가들의 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내용이다. 이는 서방 세계가 지지하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용감한 지도자’ 내러티브에 밀리는 느낌이지만, 정보가 막힌 러시아나 중국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러시아나 중국은 언론자유국의 자유를 역으로 이용해 자신들의 입장을 ‘숨겨진 진실’이나 ‘다른 견해’로 둔갑시켜 전 세계에 전파하기도 한다.
요즘 전쟁은 총알과 미사일로만 하지 않는다. 비정규전과 사이버 전쟁, 여기에 우주 전쟁까지 가세한 혼성 전쟁(hybrid war)의 양상으로 진화한 지 오래다. 평화 시에도 ‘가짜 뉴스’를 무기 삼아 남의 나라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선거에도 관여한다. 어딘가 낯익은 장면 같지 않은가?
정말 상상하기 싫지만, 누군가가 우리나라에 ‘거짓의 소방 호스’로 가짜 뉴스를 대량 살포한다면, 또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영상으로 사람들의 판단력을 교란시키거나, 가짜 인터넷 계정을 만들어 댓글로 작정을 하고 여론 조작에 나선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온전하게 작동할 수 있을까? 전쟁에 준하는 혼란기나 심지어 평화 시에도 우리의 말길은 참말과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는 정화 능력이 있는가?
혼탁하고 기울어진 공론장을 살얼음 걷듯 살아온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위의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아직 아니오’다. 사실 확인의 의무가 있는 언론이 ‘아니면 말고’식의 추론과 미검증 보도를 쏟아내고, 그런 보도가 정치권의 이해와 맞물려 확대 재생산되며, 그렇게 왜곡된 정보를 시민사회가 튕겨내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는 거짓과 기만의 악순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말길 위에서 무슨 민주주의를 하며, 무슨 공정이 가능하며 무슨 상식이 통할 것인가.
소셜미디어와 아마추어 저널리즘이 총 동원되는 러시아의 ‘거짓말 소방 호스’는 사람들이 첫 정보를 믿는 경향이 있다는 ‘진실의 환각 효과’에 근거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반복적으로 쏟아낸다. 사실 확인 절차가 필요 없으니 시간과 노력도 들지 않는다. 이런 거짓 정보의 소나기에 대항하려면 일단 비옷을 입고(옷이 젖지 않도록)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보고서는 조언한다. 영국의 방송심의기관인 오프콤(Ofcom)이 왜곡 보도를 이유로 러시아의 다국어 매체(RT)를 규제한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밖에서 오는 거짓 정보는 막으면 되지만, 우리 사회 안에서 솟아 나오는 허위정보는 어디를 어떻게 막아야 하나.
‘검수완박’의 굉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지만 지금 국회에서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입법안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통과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공영방송을 정상화하고 싶었으면 진즉에 임기 초부터 할 일이지 왜 이제야 속도를 내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해 ‘가짜 뉴스’를 처벌하겠다는 ‘언론중재법개정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발의해 통과시키려고 하더니, 이제는 공영방송에 25인의 운영위원회를 두자는 복잡한 안을 들고 나왔다.
가짜 뉴스 처벌도 좋고 지배구조 개선도 좋지만, 문제는 ‘누가’ 가짜 뉴스를 판별하며, ‘누가’ 운영위원을 추천하느냐이다. 방송의 공영성을 의회가 논의한다는 건 모양상 그럴싸해 보이지만, 불행히도 우리 의회는 그만한 신망도, 실력도 없다. 어떤 운영위원회가 나와도 정치적 동기가 숨어있는 한 방송의 공영성은 산으로 갈 것이다. 교통방송도 마치 독립된 것 같은 지배구조를 표방하고 있지만 김어준의 편파 방송 하나 시정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은 그래서 언론과 방송이 의도적인 허위 보도를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느냐, 그래서 세상의 말길이 조금 맑아질 수 있느냐이다.
오래전부터 정치권의 단골 메뉴인 언론 개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거짓 편파 왜곡 정보가 수도꼭지 틀면 나오듯 하는 하부 구조를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에 아무리 정직한 사람들이 있고 좋은 정책이 있어도, 그걸 전달하는 말길이 왜곡되어 있다면 소용이 없다. 언론은 거짓말을 걸러내고 참말을 전달하기만 해도 된다. 거짓말이 없는 세상이면 좋겠지만, 적어도 걸러지기만 해도 그럭저럭 살 만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조선일보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04.29 부동산 공시가격 그대로 둘 것인가

주정완 논설위원
불합리한 부동산 공시가격이 안타까운 비극으로 이어졌다. 최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지 한 달여 만에 발견된 사건이다. 이들은 지은 지 80년이 넘어 허물어져 가는 한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 탈락했다. 현행 복지 제도에선 실제로는 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집이 있으면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때 기준으로 삼는 집값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산정하는 공시가격이다. 정부는 아무리 어렵게 사는 사람이라도 주택 공시가격이 기준을 초과하면 생계비나 의료비 등을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정수연 한국감정평가학회장(제주대 경제학 교수)은 "(창신동 모자의) 기초생활보장 탈락은 공시가격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이 살던 집의 공시가격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26.6% 올랐다. 33㎡(약 10평) 남짓한 좁은 집에서 근근이 버텨왔지만 공시가격 인상으로 '가난의 조건'을 맞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시가격이 엉터리로 산정됐다는 점이다. 지난 27일 한국감정평가학회 세미나에 따르면 이들의 집에서 땅값과 건물값을 더한 공시가격은 지난해 1억7000만원이었다. 그런데 땅값만 따로 떼어낸 공시지가(1억9647만원)는 오히려 더 비쌌다. 만일 오래된 건물의 가치를 0원으로 평가하더라도 도저히 불가능한 계산법이다. 정 교수는 다른 지역의 공시가격에서도 황당한 오류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권한과 책임이 이원화된 구조"를 공시가격 오류의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이런 구조에선 누구도 공시가격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는 유인이 없다. 오히려 공시가격 오류의 은폐에 가담할 유인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부동산 공시가격은 국민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보유세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행정 분야는 67개나 된다. 그중에는 기초연금 수급 자격 심사와 지역 건강보험료 책정,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선정 등도 있다. 투기 목적과는 무관하게 같은 집에서 오래 살았더라도 공시가격이 오르면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대 정부는 이런 공시가격을 잘못 건드리면 폭발력이 크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공시가격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게 조절하거나 완충장치(공정시장가액비율)를 뒀던 이유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달랐다. 각종 규제를 남발하며 부동산 시장을 들쑤시더니 공시가격까지 집값을 잡는 수단으로 동원했다. 김현미 장관 시절인 2020년 11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다. 여기서 현실화는 인상이란 뜻이다. 아파트·단독주택을 가리지 않고 모든 유형의 주택에서 시세의 90%가 될 때까지 공시가격을 단계적으로 올려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주택의 시세가 전혀 오르지 않더라도 공시가격은 매년 꾸준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시가격과 시세의 괴리가 크다는 걸 공시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 현장에 나가보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주택 시세를 제대로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난해한 작업이다. 대단지 아파트만 생각한다면 그나마 실거래 사례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소규모 단지나 빌라·연립주택에선 1년 내내 거래가 한 건도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독주택 중에선 수십년간 집을 팔지 않고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공시가격 인상이란 정책 목표를 세웠다면 우선 납세자가 납득할 만한 시세 산정 작업부터 해야 했다. 결코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검토, 치밀한 사전 준비, 조사 요원들의 전문성과 책임감 확보가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시가격을 발표하고 산정 근거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는 건 옳지 않다.
공시가격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1주택자에겐 올해가 아닌 지난해 공시가격으로 보유세를 매기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병 주고 약 주는 셈인데 대형마트 등에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흔히 쓰는 수법이 떠오른다. 같은 상품에 두 개의 가격표를 붙여 놓고 비싼 가격표에는 X표를 쳐서 가격을 내린 것처럼 보이는 식이다. 유통업체들은 마케팅 기법이라고 하겠지만 정부가 세금을 갖고 이런 식으로 납세자를 기만하면 안 된다. 새 정부에서 공시가격 제도의 대수술이 시급한 이유다.
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04-29 민주주의 시계 거꾸로 돌린 文정권… 국민이 나설 때다
文의 자화자찬과 尹 비판은 좌파 핵심세력과 지지자들 향한 메시지
尹, 비켜 있지 말고 검수완박 막는 게 지지해준 국민 뜻 받드는 길

이기홍 대기자
필자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을 꼽는다.
이 관점에서 열흘 뒤 막을 내리는 문재인 정권을 평가한다면 1987년 민주화 이래 민주주의로부터 가장 멀어졌다는 게 필자의 주관적 결론이다.
내 편 심기를 통한 사법부 장악, 인사권을 이용한 감사원·검찰·선관위 장악 시도가 5공 이래 가장 노골적이었으며, 입법폭주도 지난 35년간 목도하지 못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국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이처럼 실종된 시절은 없었다.
그 대미를 검수완박이 장식하고 있고 문 대통령은 자화자찬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진행 상황은 서로 호응하는 봉화(烽火) 관계다.
문 대통령이 퇴임 인터뷰를 자화자찬과 자기합리화로 도배한 것이 자신을 객관화시켜 보는 능력이 결핍된 결과인지, 아니면 실제론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옳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낯 두꺼움의 산물인지 애써 구분할 필요는 없다.
“역대 정부 중 가장 소통을 잘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폭이 가장 작은 편” 등 삼척동자도 아는 객관적 사실의 정반대 주장을 펴는 것을 보면 간신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가장 자랑으로 내세우는 게 전쟁 위기를 해소하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켰다는 논리다.
물론 2017년 하반기 한반도 위기론이 고조되다 2018년 대화 국면으로 급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변화의 동력은 미국의 최고 수위 압박의 결과 탈출구가 필요해진 김정은의 급선회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겨울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를 명백히 밝혔다. 누가 대통령이었어도 그 변화 모드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고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을 것이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당선인의 안보 관련 발언을 놓고 “적절치 않다”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국민이 보기에 정말 위험하고 부적절한 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신 보증해주다 핵·미사일 고도화 시간만 벌어준, 팩트와 객관적 조건에 희망사항을 뒤섞어 반죽하는 주관적 판단, 연락사무소 폭파 같은 도발과 중국의 안하무인 패권주의에 한마디 못하는 굴종외교다.
필자는 문 대통령이 국내외 정책에 도입했다가 참담한 실패로 끝난 좌파적 접근 방법들을 성공한 것인 양 계속 자화자찬하고, 대통령 당선인을 비판하는 바탕에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즉 좌파 핵심과 지지층에 “나는 끝까지 우리 진영을 배신하지 않는다. 당신들도 나를 끝까지 보호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추진했다가 지지층 내 핵심 그룹에게 외면당한 노무현 학습효과로 내 편에 외면당하면 퇴임 후 안전보장이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 편을 만족시킬 수 있는 언행만 골라 하는 것이다.
민주당 강경파도 검수완박으로 호응하고 있다. 현재의 검수완박은 수사-기소권 분리에 대한 찬반을 떠나 추진 주체들의 의도 시기 절차 등 모든 면에서 상식과 민주주의 원칙의 관점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선 어떤 수단도 정당화시키는 뇌구조를 갖고 있는 강경파들은 180석을 신탁(神託) 보검처럼 휘두르는데 이는 여권의 절대다수 의석이 평상적인 선거의 결과물이 아님을 망각한 행태다.
총선이 치러진 2020년 4월은 전시를 방불케 했던 코로나 위기 상황이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확진·사망자가 무더기로 쏟아진다는 뉴스들을 접하며 국민은 ‘우리는 저 거대한 태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위기감속에서 선장(여당)에게 힘을 몰아줬다. 6·25전쟁 중에 치러진 1952년 지방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이 압승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책·이념 지향점에 국민들이 압도적 지지를 보내준 건 아님을 알면서도 그에 맞게 절제하는 상식과 염치는 잊은 것이다.
해결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먼저 윤 당선인이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 국민은 문 정권의 패악을 심판하고 정의를 되찾을 적임자라고 여겨 정권을 맡겼다.
광화문과 서초동에 군중이 모이는 그런 극한 대립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문 정권이 이를 자초하고 있고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가 될 것이다.
검수완박 사태가 없었다면 새 정부가 전임 정권 문제를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의구현을 바라는 국민들 마음속엔 통합·화해를 통해 미래로 가야한다는 상충된 바람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차 민주당의 분열 움직임이 커질 수 있는데 사정 국면이 전개되면 야권을 단결시켜 분열을 막아주는 효과도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민주당 스스로 전임 정권 문제를 국민적 어젠다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국민들은 자기들의 보신을 위해 멀쩡한 교량을 부수고 치외법권의 소도(蘇塗)를 만든 심보가 괘씸해서라도 문 정권 패악의 규명을 요구할 것이다.
5년 내내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더니 임기 마지막까지 자기들끼리의 벌거숭이 임금님 놀이에 취해, 나라를 다시 거대한 대립의 골짜기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04월 29일 文, 역사의 평가 두려워하라

민병기 정치부 차장
한 정치인은 대통령의 ‘말’에서 레임덕의 징후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자신만만했던 대통령이 여당에서 들이받고, 지지율이 급락하는 ‘증상’을 겪으며 어느 순간부터 ‘국민’을 소환한다. 국민은 내 뜻을 알아줄 것이고, 국민만 믿고 가겠다고 한다. 그러다 지지율이 도저히 회복할 가능성이 사라지면, 그때는 역사를 찾는다. 내 진정성은 지금은 아무도 안 알아주지만 훗날 역사는 알아줄 것이라 자위한다. 무슨 얘기를 해도 환호하던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역사와의 고독한 대화를 시작한다. 역사까지 소환하면, 이미 레임덕이고 퇴임할 때다. 바꿔 얘기하면 임기 말이 돼서야 권력이나 지지율이 아닌 역사의 냉정한 평가가 눈에 들어온다.
40%가 넘는 지지율로 퇴임하게 될 것이 유력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10일 남았다. 그리고 그런 문 대통령 앞에 만만치 않은 두 가지 숙제가 던져졌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과 대통령의 특별사면이다. ‘국회의 시간’이라며 분명한 입장 표명을 미뤘던 문 대통령은 이제야 ‘대통령의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말에라도 기어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뜻대로 된다면 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정치권의 눈이 쏠리게 된다. 일단 문 대통령은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여야가 합의했던 상황을 ‘동아줄’로 여기는 듯하다. 여야 합의로 입법 절차의 정당성이 담보됐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이라고 민주당이 굳이 급하게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뭔지 모를 리 없다. 그 과정에서 온갖 꼼수와 막무가내로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를 형해화시킨 상황을 못 봤을 리 없다. 그런데도 침묵하거나 은근슬쩍 법안 통과에 힘을 보태는 이유는, 이 법이 통과되면 지난 5년간 그랬듯 앞으로도 내 주변을 향한 수사의 칼날을 무디게 하리라 기대하고 있거나, 이 법안을 금과옥조처럼 떠안고 있는 강경 지지층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가. 여당이 내놓은 법안에 열흘 뒤 집에 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이 법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방법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치적 이해득실과 마주할 게 아니라 ‘역사’와 마주 앉아야 할 때다.
사면 역시 마찬가지다. 퇴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할 것이라는 설(說)이 계속되더니 김경수 전 경남지사뿐 아니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사면 요청까지 나온다. 굳이 국민통합을 명분 삼지 않아도 문 대통령 임기 내 풀어줘야 할 이들이 있다. 밥상에 숟가락 얹듯 내 편, 내 사람을 끼워 넣는 게 적절치 않다는 건 문 대통령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이 역시 역사가 문 대통령의 마지막 결단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따져보면 답이 나올 일이다.
언젠가부터 문 대통령과 참모진이 지난 5년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건 40% 지지율로도 사라지지 않은 불안감 때문으로 여겨진다. 후대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역사와 대화를 시작한 셈이다. 검수완박 법안, 사면이야말로 당장 이해득실보다 역사적 평가가 중요한 사안이다. 문 대통령의 결단을 역사가 지켜보고 있다.
문화일보
04월 29일 大法서 확정된 임성근 무죄, 김명수 사퇴 당위 더 커졌다
문재인 정권의 이른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 사건, 공식적으로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중요한 한 줄기에 대해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는 28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는 양 대법원장 시절이던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사건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1·2심은 “재판 관여 행위는 형사수석부장으로서 직무 권한 내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이번에 확정된 것이다. 바로 이 혐의 때문에 임 판사는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심판 대상이 되는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지난해 2월 민주당이 국회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 각하했다. 임 판사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문 정권과 김명수 현 대법원장의 적폐 청산 칼날에 희생된 것과 마찬가지다.
임 판사 무죄 확정의 각별한 의미는, 김 대법원장이 탄핵 추진의 ‘종범(從犯)’ 같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부당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김 대법원장은 임 판사가 1심 무죄 선고 3개월 뒤인 2020년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제출한 사표의 수리를 거부하면서 “수리해 버리면 (국회에서)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고 발언했다. 이 자체도 문제인데, 그런 적 없다고 새빨간 거짓말까지 했다가 들통이 났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이전은 물론 재임 중에도 온갖 부적절 행태로 자격을 의심받아왔다. 이번 일로 김 대법원장의 사퇴 당위성이 더욱 커졌다.
문화일보 사설
04.30 경제 지표 줄줄이 추락 중, 새 정부로 넘어가는 경제 난제들
6개월 뒤 경제 흐름을 예측하는 경기(景氣) 선행 지수가 9개월 연속 하락하고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 동행 지수도 6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 국내 소비는 한 달 전보다 0.5% 감소하고, 기계류 등 설비투자도 2.9% 줄었다. 물가가 6개월 연속 3% 이상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소비·투자가 위축되는 ‘고(高)물가 속 경기 침체’ 조짐이 뚜렷해졌다.
경기 하강 때 정부 당국이 쓸 수 있는 수단이 금융 완화로 돈줄을 풀거나 확장 재정을 펼쳐 수요를 진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금융·재정 카드 모두 구사하기 힘들다. 금리 인하는커녕 미국 등 글로벌 금융 긴축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적극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은행권 가계 대출 평균 금리가 연 4%에 근접하며 7년여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고물가와 무거운 이자 부담은 서민과 취약 계층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 물가 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한 ‘경제 고통 지수’는 약 7%로, 11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과거 경제 위기 때 방파제 역할을 했던 정부 재정도 한계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세금 씀씀이로 나랏빚이 5년 새 400조원이나 늘어나 1000조원을 넘어섰다. 적자 국채를 대량 찍어내는 바람에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이것이 시중 금리 상승세를 부추겨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50%를 넘었는데 새 정부가 또 다시 빚을 내 경기 부양을 하기란 쉽지 않다. 금융·재정 카드가 바닥난 채로 경기를 살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셈이다.
거시 경제뿐 아니라 가계·개인의 민생 경제도 위험 수위다. 5년 새 500조원 늘어난 가계 부채는 GDP의 100%를 웃돌아 세계 주요 40국 중 1위다. 고용의 질도 악화돼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풀타임 일자리가 5년간 200만개 사라졌다. 서울·수도권과 대도시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서민과 청년들이 ‘미친 집값’ 앞에서 절망하고 있다. 여기에 물가가 뛰고 금리마저 오르면 서민 경제는 크게 어려워질 것이다. 이 모든 난제가 고스란히 새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조선일보 사설
04.30 문재인의 초상화
“늘, 항상, 저쪽이 문제”라는 대통령, ‘선거중립 룰’ 부정까지
‘정의의 독점’ 누구도 못해… 평정심으로 ‘나의 초상’ 보시길
노무현의 큰 정부’를 줄이는 게 이명박 당선인의 목표였다. 2008년 1월 28일, 퇴임을 28일 앞둔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나는 5년 동안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논리도 없는 반대 때문에 힘들었다. 당선된 정부니 눈감고 무조건 밀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서명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것….”
▲노무현대통령이 2004년 3월 12일 오전, 경남 창원시 (주)로뎀에서 철차공장을 둘러본뒤 국회에서 통과된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선DB
‘아름다운 퇴장’ 같은 건 없다. 원수에게 보물을 내주는 심정일 것이다. 마지막 한 방울 권력까지 짜내 후임자를 골탕 먹이는 경우도 있다. ‘전·현직 대통령 미담 제조국’ 미국에서도 조잡한 일이 많았다. 수십 년 전, 퇴임 직전 대통령이 백악관 화장실을 고쳤다고 한다. 서서 일 보는 소변기를 다 좌변기로 바꿨다. 보행 장애가 있는 후임이 소변 볼 때마다 고생하라는 심보였다.
대통령을 둘러싸고 ‘주사파 운동권의 꼭두각시’라는 말이 나올 때였다. 대통령 지근거리 인사가 했다는 말은 이랬다. “모르는 소리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말로 이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민정수석, 비서실장 경험을 만만히 보면 안 된다. 교육 문제를 들고 가면 부동산, 세금 문제로 반박하는데 일개 장관이 어떻게 생각을 뒤집나.” 반신반의했다.
25, 26일 방송된 3시간 분량의 문재인 대통령 대담을 보는 데는 인내가 필요했다. 그래도 의미 있었다. 일문일답형 기자회견에서 볼 수 없던 표정, 몸짓 등 여러 시그널이 등장했다. 5년의 궁금함이 많이 풀렸다.
▲퇴임 12일을 앞두고 방송된 '대담-문재인의 5년' 방송 화면. 대통령의 선거 불개입 원칙을 두고 설전이 오갔다. /jtbc 화면 캡처
지지율 40%대의 문 대통령은 대선 패배 원인이 ‘정권 심판’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저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손석희 진행자가 한 번 더 “현직 대통령이 링 위에 오를 수 없는 건 룰”이라고 말하자, 대통령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별로 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의 선거 중립’은 규정이 애매하고, 지키기도 어렵다. 그래도 우리 헌법은 그러라고 한다. 대통령 직무가 63일간 정지됐던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도 총선 개입 발언이 화근이었다. 2월 13일 청와대를 관두고 네팔로 여행 갔던 문재인 전 민정수석은 바로 귀국해 법률대응단을 이끌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몸소 겪었다. 그러고도 ‘룰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무현은 틀리지 않았다’는 고집일 게다.
가장 인상적인 말은 따로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특정 사람들이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늘 항상 저쪽이 문젠데, 이쪽이 훨씬 작은데….” ‘정의는 내 거야, 너희는 더러워’ 기자는 이렇게 듣고 말았다.
집권 세력은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마저 독점했다. ‘이쪽’ 정의에 어긋나면, ‘저쪽’은 바로 적폐가 됐다. 정책도, 인사도, 수사도, 방역도 그렇게 했다. 잘못됐다고 지적하면 “너희들은 더했다”고 했다.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계속 떠오른다. 아도니스의 미모를 가진 도리언은 자기 초상화 앞에서 몸 대신 그림이 늙기를 바랐다. 소원대로 ‘영원한 스무 살’ 청년으로 살며 많은 죄를 지었다. 사람 대신 그림이 늙고 추악해졌다. 초상화를 마주한 그는 분노해 그림을 칼로 찢지만, 그의 몸에서 진짜 피가 흘렀다.
젊음, 미모라는 단어 대신 ‘정의’를 넣어본다. 집권 세력은 인생에서 가장 괜찮았을 한 순간을 박제해 초상화로 모셔두고, 현실에서는 다른 삶을 살았다. 추하다고 비판하면, 내 초상화 못 봤냐고 화냈다.
권력을 놓는다는 건, 추해진 자기 초상화를 대면하는 일일 것이다. 어떤 팬덤, 아부꾼, 지지율도 그걸 대신 해주지 못한다. 지금은 대통령 감정이 가장 격한 시간일 것이다. ‘잊히고 싶다’ 같은 과잉의 언어도 필요 없다. 퇴임 후 평상심을 찾은 대통령이 자기 초상을 담담히 대면하시길 바란다.
조선일보 박은주 에디터 겸 에버그린콘텐츠부장
04.30 文대통령의 훼방, 도를 넘다
잊힌 사람 되고 싶다더니… “대통령 집무실 꼭 이전해야 하겠나”
尹당선인에 연이어 이례적 비판… 인수위 “국민께 예의 지켜야”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퇴임을 열흘 앞두고 또다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반대 국민청원에 직접 답변하면서 “많은 비용을 들여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꼭 이전해야 하는 것이냐”고 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손석희씨와 대담에서도 집무실 이전에 대해 “별로 마땅하지 않다. 정말 위험하다”고 했었다. 퇴임 직전의 대통령이 후임자를 직접적, 반복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인수위는 문 대통령의 비판에 “독재와 권위주의 권력의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 동안 국민께 예의를 지켜달라”고 대응했다.
문 대통령은 “이전한다 해도 국방부 청사가 가장 적절한 곳인지, 안보가 엄중해지는 시기에 국방부와 합참, 외교부 장관 공관 등을 연쇄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며 “국가의 백년대계를 토론 없이 밀어붙이면서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무척 모순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안보 공백’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다, 윤 당선인과 직접 만난 뒤 뒤늦게 예산을 처리해줬다.
인수위 청와대 이전 TF는 문 대통령의 ‘광화문 시대’ 공약 불이행을 지적하며 “문 대통령은 본인이 파기한 청와대 개방 약속을 실천하는 윤석열 당선인의 노력을 돕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마지막 도리”라며 “편 가르기를 위한 반대로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후임 대통령 비판을 두고 “지방선거를 위한 지지층 결집용” “퇴임 이후 활동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끝나면 그냥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35만명이 동의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반대 청원에 대해선 “청원인과 같은 의견을 가진 국민이 많다. 반면에 국민 화합과 통합을 위해 사면에 찬성하는 의견도 많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사면 여부에 즉답하지 않았지만, 청와대에서는 이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뿐 아니라 조국 전 법무장관 아내 정경심씨,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