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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여행/ 국가별3/ 그린란드 -나미비아 - 남 북극대륙 - 남수단공화국 - 남아프리카공화국

상림은내고향 2022. 3. 27. 12:39

지구촌 여행/ 국가별3/ 그린란드 나미비아 남북극 남수단 남아공

■ 그린란드

그린란드는 유럽과 북미 대륙 사이에 위치한 면적 약 217만5600㎢ 규모의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덴마크의 자치령으로서 2009년 제한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국방이나 외교권은 덴마크에 있지만 사법 ・ 경찰권, 지하자원 개발권 등은 독립적으로 행사한다. 행정 중심지는 ‘누크’고 인구는 약 5만 명이며 국토의 85%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

 

에스키모인들은 BC 3000년경부터 그린란드로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사르카크 문화(BC 1400∼700경)와 도싯 문화(BC 700∼AD 1300경)라고 하는 서로 다른 2가지 문화가 전해지고 있다.

 

982년 살인을 저지르고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당한 노르웨이의 적면아 에리크가 그린란드에 정착했다. 986년 아이슬란드로 돌아온 에리크는 그린란드 탐험대를 결성하여 현재의 율리아너호브 부근의 이스트 정착지와 고드타프 부근의 웨스트 정착지를 개발했다. 이들 정착지에 최고 3,000명에 이르는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뒤늦게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노르웨이에서 갓 돌아온 레이브 에릭손을 통해 11세기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었으며, 1125년에는 그린란드에 대주교 관구가 세워졌다.

 

13세기부터 노르웨이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1100년경 그린란드 북부에 나타난 에스키모의 툴레 문화와 교류를 갖기 시작했다. 13세기에 노르웨이인들의 웨스트 정착지가 이따금 없어지기도 했으며, 약 150년 뒤에는 이스트 정착지가 없어졌다. 이러한 정착지들이 없어진 것은 일부 에스키모 툴레인들 때문이기도 했으나 대체로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16세기 후반부터 고래잡이와 북서항로 개발로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고래잡이 어부들이 들어와 인종간에 피가 섞이게 되어 지금의 독특한 그린란드인들이 생기게 되었다.

 

1261년부터 노르웨이(이후에는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국)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인들의 본래의 정착지들이 없어진 뒤, 식민지 개혁 시도가 전혀 없다가 1721년에 비로소 덴마크의 허락을 받고 한스 에게데가 지금의 고드타프 부근에 무역회관 겸 루터교 선교회를 세웠는데, 이때부터 실제로 그린란드의 식민시대가 시작되었다. 1776년 덴마크가 왕립 그린란드 무역부를 설치함으로써 교역을 완전히 독점하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그린란드 해안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다가 1950년에 비로소 다시 개방되었다.

 

1940∼45년 나치가 덴마크를 점령했을 때 그린란드는 미국의 보호하에 있었으나 1945년 다시 덴마크가 돌려받았다. 전쟁 후 덴마크는 그린란드인들이 제기한 혹독한 비난에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역경제와 운송체계 및 교육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사업을 실시했다. 1953년 그린란드는 완전히 덴마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979년에 비로소 완전한 지방자치가 이루어졌다

▲국기

 

 

□ 그 낯설고도 장쾌한 빙하의 세상 

2016.06.22  중앙일보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서니 가득히 설원이 펼쳐진다. 지난달 22일 그린란드 일루리사트(Ilulissat)에서 한시간 정도 걸어 도착한 아이스피요르드 빙하다. 새파란 하늘 아래 하얀 얼음의 대지가 눈부시게 빛난다. 바람 소리, 숨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가끔 우르릉하는 진동이 저 멀리서 낮게 깔린다. 가이드 레노는 "빙하가 우는 소리"라고 알려준다. 수십㎞ 떨어진 곳에서 빙하가 붕괴되는 것을 알려주는 징표다.

일루리사트 빙하를 취재중인 중앙일보 최정동 기자. 사진기자는 역시 장비가 많아서 고생이 많다.

 

6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아이스피요르드 빙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일루리사트 비행장에서 30분의 비행 끝에 60 떨어진 빙하가 벼랑 모양으로 빙원에서 떨어져 나가는 곳(분리 빙하, calving front)에 도착하자 기장은 고도를 150m까지 낮춘다. 평평한 얼음의 대지가 그랜드 캐년처럼 갈라진 절단면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이스피요르드 빙하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일루리사트 항구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나가면 아이스피요르드 빙하가 바다와 만나 무너지는 곳까지 갈 수 있다. 6, 두께 수백m인 빙하가 매일 40m씩 바다 속으로 떨어져 나가는 셈이다. 빙하 사이 사이로 시퍼런 바닷물이 드러난다. 쪼개진 얼음산은 피요르드를 따라 흘러내려 일루리사트 앞바다를 떠다닌다. 그린란드 전체 빙산의 10%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일루리사트 앞바다의 빙하

 

만년설이 쌓이고 다져져 만들어진 그린란드의 빙원(ice cap)은 두께가 평균 1500m, 최대 3000m에 달한다. 빙원의 일부가 자체의 무게 때문에 시간당 40m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얼음의 강, 빙하(glacier). 바다에 닿은 빙하는 아래부터 녹아내리다 무너져 빙산(iceberg)이 된다. 유네스코 아이스피오르드 사무실의 프레드릭 레너트 매니저는 "지구온난화로 빙원이 빨리 녹으면서 2008년에 비해 빙하가 흐르는 속도가 두배로 빨라지고 무너져내리는 곳이 15㎞ 이상 후퇴했다"고 말했다.

그린란드는 북극 바로 아래 북위 59~83도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의 섬이다. 대한민국 면적의 약 20배로 호주 대륙의 4분의 1 정도 크기다. 대부분의 영토가 북극권(북위 66.33도 이북)에 자리하고 있어 전체 81%가 얼음으로 덮혀 있다. 내륙 대부분이 얼음이라 해안을 중심으로 소규모 도시가 발전해 있다. 인구는 56000,이중 17000명이 남서쪽에 위치한 수도 누크에 살고 있다

 

▲일루리사트 호텔 창 밖에 펼쳐진 백야. 새벽 2시에 태양이 수평선에 닿은 뒤 다시 떠오른다.

 

그린란드에 첫발을 내딛은 건 캐나다에서 건너온 원주민 이누이트(Innuit)였다. 기원전 2400년 경 얼어붙은 바다를 통해 그린란드로 넘어온 이들은 사과크(Saqqaq)·도셋(Dorset)·툴레(Thule) 등의 전통 문명을 이뤘고, 임시 겨울 사냥 거처인 이글루를 만들었다. 카약과 작살을 이용한 사냥으로 생존해왔다.현재 그린란드 인구의 88%가량은 여전히 원주민 이누이트(다수는 유럽계와 혼혈)다. 

 

985년 이곳을 탐험한 바이킹 '에릭 더 레드'가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른 사람들이 오는 것을 피하려 아이슬란드라고 부른 것과는 반대다. 얼음에 덮인 그린란드와 초원이 깔린 아이슬란드는 '세계사의 가장 큰 농담'이라고 일컬어진다. 

 

한국에서 그린란드의 일루리사트를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인천공항에서 제트기로 핀란드 헬싱키까지 9시간, 다시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까지 3시간을 간 다음 프로펠러기로 3시간을 더 날아야 그린란드 남쪽에 자리잡은 행정 중심지 누크에 도착한다. 여기서 중간에 한 번 섰다 가는 '완행 비행기'를 한 번 더 타야 일루리사트 공항에 내린다.

▲누크 공항에서 눈보라를 뚫고 비행기에 오르는 취재진들. 휘날리는 눈발에 눈을 못 뜰 지경이었는데 사진은 너무 평온해 보인다.

 

아이스피요르드 빙하를 찾기 이틀 전인 지난달 20일 오전 누크(Nuuk) 공항에는 초속 40m의 눈보라가 불었다. 1000㎞ 북쪽으로 우리를 태우고 갈 캐나다 봄바디어제 37인승 쌍발 프로펠러기 대쉬8은 활주로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다. 붉은 도장이 인상적인 에어그린란드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이마카 에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말로는 '아마도 항공' 정도다. 이날도 승무원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마도 뜰 수 있을 것(we may fly)"이란 말을 반복했다. 승객들도 그려려니 하는 표정이다.

▲캉거루수아크 공항에 설치된 이정표. 북극점까지 3시간15분이라. 도쿄는 나오는데 서울은 없어서 조금 아쉽.


두 시간 이상 대기한 끝에 바람이 살짝 잦아든 틈을 타 활주로를 박차오른 비행기는 45분 후 캉거루수아크(Kangerlussuaq)에 잠시 내렸다. 그린란드의 항공 교통 중심지다. 여기는 바람 한 점 없고 가끔 햇살도 비친다. 다시 누크로 향하는 45분간의 비행을 시작했다. 보통 백야 현상이 나타나는 북위 66 33분선 이북을 북극 지방으로 본다. 일루리사트에 도착해서야 진정으로 북극 지방에 발을 디뎠다고 할 수 있다.

 

▲일루리사트 호텔 창밖 풍경. 아무리 멀고 고생스런 출장길이라고 해도 눈 뜨고 커트을 걷었을 때 이런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만사를 잊게 된다. 평생 한 번은 해볼만한 경험이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가 있다면 해가 뜨지 않는 흑주(黑晝)도 있다. 누크에서는 11월에 진 태양은 이듬해 1월 말에야 다시 뜬다. 이날은 그린란드에서 가장 큰 축제가 벌어진다. 점점 해가 길어져 백야가 시작되는 5월은 가장 방문하기 좋은 시기다. 아직 날씨는 0도에서 10도 사이로 쌀쌀하지만 덕분에 모기의 습격을 피할 수 있다. 지난달 17일부터 누크에서는 북극써클(Arctic Circle) 포럼이 열렸다. 이번이 4번째인 북극써클포럼에는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을 비롯한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극권의 개발 및 경제, 기후변화 및 환경, 북극항로 이용방안 등을 논의했다.

▲일루리사트 빙하 풍경.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북극은 남극 대륙과는 달리 바다다. 하지만 얼음으로 뒤덮인 해저와 주변국 영토에는 지구상 화석연료의 25%와 30조달러 규모의 지하자원, 2조달러 규모의 수산자원이 존재한다. 지리적으로는 아니겠지만 심정적으로는 하나의 대륙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멀고 추운 미지의 세계인 북극은 생각보다 한국과 밀접한 곳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 항로가 열리고 있다. 부산에서 베링 해협을 거쳐 러시아 연안을 따라 유럽으로 이어지는 북극 항로는 1만5000㎞로 믈라카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항로에 비해 거리로는 30%(7000㎞), 항해시간은 10일 단축된다. 지금까지는 매년 7월부터 4개월 정도만 운항이 가능하다. 하지만 2030년쯤이면 연중 항해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김창우 기자

 

○ 풍경

 

 

▲오로라와 하얀 눈, 낮은 산들 캠핑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동부 그린란드

 

▲ 외로운 달

 

▲빙산

 

▲빙산 위의 텐트

 

▲압도적인 규모의 거대한 빙산

 

 

▲소콘젠 섬

 

■ 나미비아

아프리카 남서부에 유럽인들이 몰려오기 전에는 코이코이족(호텐토트족)과 산족, 반투어를 쓰는 헤레로족이 살았다. 1480년대 말 포르투갈 해양탐험가들이 케이프크로스·월비스베이·디아스포인트의 해안지대를 탐험했다. 17, 18세기와 19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인과 영국인들이 해안지대 및 내륙지대 일부를 탐험했다. 이후 세계 각국의 어선들이 풍부한 바다표범 및 고래어장에 끌려 서남아프리카 근해로 몰려들었다.

 

독일은 1840년대에 라인 강 선교회 파견을 계기로 이 지역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후 1860년대 들어 부족간에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이 자국의 선교사와 이주자들을 보호한다는 조건으로 이 지역에 대한 영국의 통치권을 인정하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영국은 이 제안을 번번이 거부했다. 그러다 케이프 식민지가 1876년 부족장들과 맺은 조약에 따라 영국은 이곳을 식민통치하게 되었다. 영국 정부는 월비스베이와 일부 인근 지역만을 합병한다는 데 동의했다. 1884년 독일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서남아프리카에 대한 독일의 완전한 보호통치안을 내놓았고 결국 완전합병하게 되었다.

 

독일 농민들이 처음으로 서남아프리카에 정착한 것은 1892년이었다. 이듬해 독일인과 코이코이족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코이코이족의 봉기(1903)와 헤레로족의 봉기(1904)로 이어졌다. 독일은 이에 강경대응으로 맞서 봉기 당시 8만 명에 이르던 헤레로족이 진압 후에 1만 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1908년에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후 유럽인 인구가 1913년에 이르러 1만 5,000명으로 증가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 남아프리카 연방(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군대를 파견, 독일군을 격퇴하고 서남아프리카를 점령했다. 전후 국제연맹은 서남아프리카에 대한 통치권을 남아프리카 연방에 위임했다. 처음에 이곳은 남아프리카 연방 식민지로 통치되다가 1926년 제한적이나마 국내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의회가 세워졌다.

 

국제연맹이 해체되자 남아프리카 연방은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받은 서남아프리카에 대한 통치권을 새로 구성된 UN에 양도하는 것을 거부했다. 1946년 남아프리카 연방은 서남아프리카의 합병을 골자로 하는 안의 정식승인을 UN에 요청했다. 남아프리카 연방은 서남아프리카인들이 합병을 원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믿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UN은 결국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4년 UN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위임통치 종료를 의결하고 4년 후인 1968년에는 투표를 통해 "이제부터 서남아프리카의 국명을 나미비아로 한다"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통치권 포기는 물론 나미비아 흑인 대다수의 경제적 권리를 박탈한 기존 정책의 완화마저 거부했다. 이에 UN 안전보장이사회(1969)와 국제사법재판소(1970)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의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했다. 1970년대 중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나미비아의 분할을 제안했으나 1960년대 이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통치에 대항해 게릴라 전을 벌여온 나미비아의 흑인 조직 남서아프리카국민기구(South Africa People's Organization/SWAPO)는 이를 거부했다. 1988년 오랜 갈등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나미비아의 독립을 승인했다.

 

1989년 SWAPO는 새로 구성된 제헌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그 이듬해인 1990년 나미비아는 SWAPO가 지배하는 정부하에 마침내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다음백과

 

 

 

 

□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땅 에토샤국립공원

해질 녘 에토샤 국립공원의 할랄리 캠프에 있는 워터홀()의 풍경. 아기까지 동반한 코끼리 가족이 찾아와 물을 마시고 있다. 면적이 남한의 20%인 에토샤 국립공원에는 사자 표범 치타 코끼리 코뿔소 등 400종이 넘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살고 있다

 

지구상의 생명은 언제 시작됐나. 75000만 년 전이다.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 있는 에토샤 팬(Etosha Pan)의 화석이 알려주는 사실이다. 13mm 크기에 스펀지 형체였던 이 단세포 생물은 바닷속에서 탄생했고 자기복제가 가능했다. 물 밖은 온통 유해가스로 가득 차 육상 생물은 존재할 수 없었다.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단세포에서 진화한 고등생물이 영장류로 발전했기 때문. 11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이자 현생 인류의 조상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그래서 에토샤 팬을 찾는 길은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역추적하는 시간여행이다. 이 여행만큼은 야영 장비를 탑재한 트럭으로 캠핑을 하는, 즉 오버랜드 트러킹(Overland Trucking)이 제격이다.


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 남아프리카의 관문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두 시간 만에 안착했다. 캐빈을 나서 트랩 카에 오르는 순간. 투명한 파란 하늘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라는 찬사, 조금도 틀리지 않다. 이 하늘을 촬영한 사진이 그걸 증명한다. 색감이 그리도 청징할 수가 없다. 조금 과장하면 나미비아에선 하늘만 보고 가도 좋다.


빈트후크는 인천공항을 떠나 근 하루 만에 도착했다. 고단한 장거리비행인 만큼 첫날은 느긋하게 쉰다. 그 밤의 저녁식사 장소는 시내명소 ‘조스 비어하우스’. 맥주와 게임미트(Game Meat)를 즐긴다. 이 야외식당은 유럽인이 아프리카를 탐험하던 19세기 시절의 분위기로 꾸몄다. 빈트후크는 같은 이름의 맥주로도 유명하다.

지난 세기 초 독일이 식민지를 개척할 당시에 세운 양조 회사의 제품이 ‘빈트후크(Windhoek)’여서다. 500년 전 바이에른의 한 왕이 제정한 ‘독일 맥주 순수법’에 따라 물과 보리, 홉으로만 만드는 정통 독일맥주다. 게임미트란 야생동물(Game)고기를 말한다. 쿠두와 오릭스, 얼룩말, 악어 등 농장주가 허가를 받고 잡은 동물 고기를 꼬치에 꽂아 구워 낸다.


과일천국의 나미비아

이튿날 아침. 오버랜드 트럭(20인승)은 북쪽 에토샤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이날 이동거리는 420km. 점심식사와 휴식을 위해 세 차례 정차하는데 트럭 스태프는 마을 슈퍼마켓에서 승객에게 만들어줄 음식 재료를 산다. 승객들은 자기가 마실 맥주와 음료수, 와인 등은 자기 돈으로 산다.


오버랜드 트러킹 여행자는 두 가지에 놀란다.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마을에 우리나라와 별 차이 없는 마트가 어디에나 있다는 것과 과일 고기 야채 등 먹을거리가 너무도 싸다는 사실에. 오렌지와 감귤, 사과는 20, 30개들이 한 자루에 2000원 내외, 돼지고기는 1kg 5000원 정도. 와인도 3000, 4000원짜리면 괜찮다. 트럭 실내엔 아이스박스와 냉장고가 있어 먹거리는 언제나 신선하다.


푸른 하늘 은하수, 그리고 브라이

에토샤 국립공원에서의 첫밤. 공원 밖 사설 캠프장에서 캠핑했다. 일부 승객은 시설 좋은 로지에서 숙박했고. 오버랜드 트러킹은 전 일정에 식사를 제공한다. 식사는 동행한 요리사가 가이드를 겸한 운전기사와 함께 준비한다. 설거지는 승객 몫이다.


캠핑 첫날 저녁식사는 환상적이었다. 브라이(Braai)라는 아프리카식 쇠고기 바비큐도 좋았지만 밤하늘을 뒤덮은 뽀얀 은하수와 별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걸 보면서 맥주와 와인을 곁들인 야외 바비큐 파티라니…. 그 자체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별에 취하다 보니 벌써 오후 아홉 시. 아프리카에서 이 시간은 도시의 자정이나 마찬가지다. 텐트 안의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아프리카 대지에 닿은 등을 타고 대륙의 원시적 박동이 전해오는 듯해서.


오버랜드 트러킹, 그 자체가 사파리

▲오버랜드 트러킹 캠프에서 점심식사.

 

이튿날 아침. 짐을 꾸려 두 번째 숙박지 할랄리 캠프로 향했다. 할랄리는 에토샤 국립공원 안에 있는 6개의 캠프 중 하나. 앤더슨게이트로 들어선 트럭은 캠핑장소로 향하는 길에서 두 시간가량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그 자체가 트럭 사파리 투어여서다. 에토샤 국립공원은 이름만 공원이다. 실제는 야생이다. 면적(22270km²)이 남한 땅(10210km²) 5분의 1이나 되니 아무리 울타리를 친다 한들 사람과 동물이 갇혔다고 느낄 리가 없다. 그러니 사파리 투어도 박진감이 넘칠 수밖에. 곳곳의 비포장도로는 차량과 야생동물이 함께 이용한다.


셋째 날 오전, 그 길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도했다. 머리와 가슴부분만 남은 얼룩말 사체. 간밤에 사자나 하이에나에게 당한 것이다. 야생 공원은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오버랜드 트럭을 이용한 사파리 역시 자연의 일부가 된다. 트럭과 사람은 그 어떤 것도 해치지 않기에. 자연에선 사람만 딱 한 가지 규제를 받는다. 절대 차량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사자와 표범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인데 자연생태계에선 인간이 가장 약한 존재여서다.


빅 파이브를 찾아라

일단 사파리가 시작되면 의자에 앉을 틈이 없다. 창문 밖에 수시로 야생동물이 출현해서다. 처음엔 기린 한 마리에도 환호한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새로운 동물을 기다린다. 긴 뿔의 오릭스와 쿠두는 덩치가 커 멀리서도 잘 보인다. 스프링복이나 임팔라 같은 작은 사슴은 무리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가장 흔한 것은 여우 크기의 자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기만점 캐릭터 ‘품바’의 모델인 멧돼지는 가족단위로 다닌다.


사파리에선 모두가 ‘빅 파이브(Big Five)’를 기대한다. 아프리카 초원의 맹수 5종인 사자 코끼리 표범 버펄로 코뿔소를 말한다. 이번 취재에선 표범만 빼고 다 만났다. 사자는 어미와 새끼 두 마리를 길가 갈대밭 속에서, 코뿔소와 코끼리는 할랄리 캠프의 워터홀에서, 버펄로는 트럭으로 이동 중 초원에서 봤다. 같은 사자지만 에버랜드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그거야말로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즐기는 오버랜드 트러킹과 사파리의 매력이자 마력이 아닐지.


360
도 지평선 세상, 에토샤 팬

▲서울 면적의 여덟 배나 되는 에토샤 팬. 어딜 둘러봐도 지평선뿐이다.

 

드디어 에토샤 국립공원의 랜드마크인 에토샤 팬에 들어섰다. 팬은 쑥 꺼진 지형인데 이곳은 1억 년쯤 전에 형성된 호수. 아주 오래전에 물길이 끊기고 있던 물조차 모두 증발해 지금은 사막 형상이다. 곤드와나(55000만 년 전 지구를 구성한 초대륙 중 하나)에서 떨어져 나온 아프리카대륙이 남극점을 지나 적도 아래의 현 위치로 이동하는 동안 빙하가 녹으며 생긴 호수가 에토샤 팬이라는 것이다.

 

5월은 우기가 끝난 직후. 5cm쯤 고였던 빗물은 모두 증발해버리고 팬은 다시 황무지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 팬에선 사방팔방으로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시인 이생진이 생각났다. 그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성산포 바다의 수평선에 눈을 베였다고 했다. 만약 그가 여기에 선다면 이번에는 지평선 때문에 베인 눈을 다시 베였다고 읊을지도 모르겠다. 에토샤 팬의 진흙바닥은 하얗다. 그 실체는 수백만 년 동안 켜켜이 쌓인 소금기. 그 하얀 바닥의 지평선 저 너머에서는 바다가 어른거린다. 그러나 바다가 아니다. 신기루다. 에토샤 팬은 이렇듯 사람을 멋지게 홀린다.
 
쿠네네(나미비아)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 남극대륙 Antarctica , 南極大陸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대륙. 북극과 달리 대륙에 위치하여 남극을 남극대륙으로 부를 경우에 지구자전축의 남쪽 꼭지점은 남극점이라 해야 한다. 오세아니아나 유럽 대륙보다 넓다. 대체로 타원 모양을 이룬다. 서해안을 따라 트랜선탁틱 산맥 이 남극대륙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다. 동남극은 대륙빙상으로 덮인 고원이며, 서남극은 남극반도와 그 주변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얼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남극은 전체 세계와 환경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를 탐구하는 과학기지가 되고 있다.

 

영어 Antarctica(남극대륙)·Antarctic(남극의)은 Arctic(북극의)과 반대를 뜻하는 접두어 anti(ant)에서 유래했다.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대륙이며, 오세아니아나 유럽 대륙보다 넓다.

 

남아메리카 쪽으로 돌출한 남극반도와 그 양쪽에 자리한 2개의 만(로스 해 웨들 해)을 제외하면, 대체로 타원 모양을 이룬다. 로스 해의 동해안과 웨들 해의 서해안을 따라 트랜선탁틱 산맥이 남극대륙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다.

 

이 산맥은 남극대륙을 불균등한 크기의 두 지역으로 나누는데, 보다 넓은 면적의 동쪽 부분을 동남극이라고 부르며 서쪽 부분을 서남극이라고 부른다(트랜선탁틱 산맥). 이러한 명칭은 동남극과 서남극 대부분의 지역 경도가 각각 동경과 서경에 속하기 때문이다.

 

동남극은 대륙빙상으로 덮인 고원이며, 서남극은 남극반도와 그 주변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얼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대륙빙상의 평균두께는 2,000m이며, 이는 전세계 얼음량의 90%를 차지한다.

 

로스 해와 웨들 해의 만입부는 빙상이 바다를 덮고 있는 빙붕으로 채워져 있는데, 대표적인 빙붕으로는 로스 빙붕, 론 빙붕, 필히너 빙붕 등이다. 남극대륙 연안의 빙붕은 대륙 전체 얼음면적의 10%를 차지한다. 대륙 해안에는 빙상·빙하·빙붕에서 분리된 얼음이 빙산이 되어 떠 있다.

 

남극대륙의 동·식물은 넓게 분포된 얼음 때문에 한랭기후에 적응된 고유종만이 서식하고 있다. 대륙 주변의 바다는 불모의 육지에 비하면 상당히 비옥한 편으로 많은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과거 남극대륙의 유일한 경제기반이 되었던 고래·물범 잡이는 최근 들어 상당히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며, 현재의 남극은 전체 세계와 환경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를 탐구하는 과학기지가 되고 있다.

 

남극대륙에 대한 초기의 탐험은 국가별로 경쟁적으로 이루어져 영유권 분쟁을 일으켰다. 과학적 조사는 1957~58년의 국제지구물리관측년(IGY)으로 국제적 규모에서 상호협력 아래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1959년 12개국이 서명한 남극조약에 따라 국제적 후원 아래 진행되고 있다.

 

이미 문명화된 대륙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대륙빙상 등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남극대륙과 그 주변의 바다는 여러 분야의 과학적 탐사로 많은 지식이 축적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도로도 완성되었다. 대륙빙상에 매몰되어 있는 기반지형도 물리탐사와 항공측량 등의 기술발달에 의해 지표지형처럼 지도화되었다.

 

남극대륙 주변의 바다에는 편서풍이 불고 있는데 이의 영향으로 해류는 한류인 서풍피류가 흐른다. 1820년 물범을 찾아 남극해역에 온 항해자들은 이 해류를 타고 남극대륙을 발견하게 되었다.

 

현재는 쇄빙선과 비행기에 의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해져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관광은 여름철(북반구의 겨울철에 해당하며, 12월과 1월에는 최고기온이 영상인 곳이 많음)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현재로는 광물과 생물자원에 비해서 더 큰 경제적인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남극지역은 남극 수렴선 이남의 대륙·섬·바다를 가리키나, 남극조약에서는 그 경계를 남위 60°로 삼았다.

 

일반 지도에서의 남극대륙은 대륙 자체와 그 위를 덮고 있는 대륙빙상까지를 나타내는데 대륙빙상은 기후변동에 따라 그 한계가 변한다. 따라서 론 빙붕과 필히너 빙붕이 덮고 있는 로스 해가 대륙빙상에 연결되어 대륙의 일부라는 오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본대륙과 주변 바다의 빙상과 빙붕이 모두 없어지게 되면, 그 면적은 동남극이 오스트레일리아와 서남극이 인도네시아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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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크루즈 여행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7aDAnJGbLc4

 

○남극의 진풍경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SkY03n0_sD8

 

○ 풍경

▲ 고요한 남극의 아침 : 잔잔한 남극해의 빙산위로 남극갈매기가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사진기자 이동희

 

▲ 먹이 사냥 나선 아델리펭귄

 

▲ 웨델해표 한 마리가 해빙 위 눈밭을 뒹굴며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다

 

▲ 남극 테라노바 만의 남서쪽 100km 지점 상공에서 내려다본 데이비드 빙하의 장엄한 모습. 수많은 크레바스가 마치 메마른 논바닥이 갈라지듯 생겨났다. 폭이 좁은 건 눈에 덮여 입구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최대 깊이 100m가 넘는 크레바스도 있다.

 

▲ 테라노바 베이 상공에서 바라본 지역 내 캠벨(Campbell) 빙하의 크레바스 구간. 오른쪽 뒤로 보이는 산은 멜버른 산으로 2732m 높이의 화산이다. 사진기자 박지호

 

▲ 빙하의 끝자락 : 동남극 테라노바 베이에서 바라본 캠벨(Campbell) 빙하의 끝자락. 사진기자 박지호

 

▲ 얼음이 녹아 생긴 둥근 호수 위에 갈매기가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척박하고 거칠지만 얼음 옷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 툰드라 지대에는 생명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린란드 남부 캉가루수아크에서 트렉커들이 대자연의 변화를 만끽하며 길을 걷고 있다

 

▲ 그린란드 국제공항이 있는 캉가루수아크에서 헬기로 타고 30Km쯤 이동하며 하늘에서 바라본 작은 호수들 위로 눈이 거의 녹아 마치 팬더의 눈처럼 보인다. 만년설을 상상했지만 하늘에서 바라본 그린란드는 계절적 변화와 지구온난화 등 다양한 원인으로 맨땅을 드러낸 곳이 많다.

 

▲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마을일까? 건물 몇 개에 가지런히 주차된 차들이 인상적이다

 

 

 

 

 

 

 

 

 

 

 

 

 

 

▲드루즈비 호수

 

▲영국 남극 연구소

 

■ 북극 Arctic , 北極

남극대륙을 중심으로 바다로 둘러싸인 남극에 비해, 북극은 북극해를 중심으로 그린란드 등의 섬과 북아메리카·유라시아가 둘러싸고 있다. 북극지역의 경계는 냉대침엽수림(타이가)의 북한계와 일치한다.

 

그린란드, 스피츠베르겐(스발바르) 제도 등의 섬들과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아이슬란드 북부,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 등이 이 지대에 속한다. 자연환경의 특징은 여름·겨울의 큰 기온차, 고지의 만년설, 저지의 툰드라 초원·관목림, 땅속의 영구동토와 여름에는 녹는 표토층 등이다. 20세기 중반 이래 북극은 대권항공로, 석유 등의 지하자원, 삼림자원, 기후학·기상학의 연구기지, 무선통신의 중계기지 등으로 국제적 관심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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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눈물

http://v.youku.com/v_show/id_XMTUxOTU2ODMy.html?firsttime=0

 

○북극해 탐방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dMgDOSTTXJs

 

○신비스러운 북극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6v2L2UGZJAM

 

○빙하가 만들어낸 쓰나미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V6a4nKWFoA

 

그린란드의 유명 빙하지역 일룰리사트 얼음 피오르에서 빙하 꼭대기가 무너지면서 바다로 떨어져 엄청난 규모의 파도가 발생하는 장면이 관광객의 카메라에 포착, 공개된 것이다.


쓰나미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하게 생성된 파도는 순식간에 관광객이 타고 있던 보트를 향해 밀려왔다. 빙하가 떨어진 순간 위험을 감지한 모터보트 운전자가 이를 피하기 위해 전속력을 다해 보트를 달렸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역부족. 순식간에 파도에게 붙잡힌 보트는 크게 기울었고 선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천우의 기회로 자연이 만들어낸 놀라운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던 동시에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 했던 관광객들은 파도가 지나간 후 크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 풍경

▲북극의 눈물 - 프린스 위리암 해협 멀리 보이는 컬럼비아 대빙하에서 떨어져 나옴

 

 

 

 

 

 

▲빙하 사이에서 발견된 작은 호수

 

▲북극해

 

▲베트맨 빙산

 

▲그린란드 = 빙하의 끝

 

▲그린란드의 검은 얼음

 

▲빙하속 풍경 -알래스카 멘덴홀 빙하에 수직으로 뚫린 구멍속으로 용감한 사람들이 밧줄을 타고 55m지점에서 촬영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그레이 빙하

 

 

 

■ 남수단공화국

남수단 공화국의 독립

수단의 남북 간 갈등은 영국의 식민 통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국가였던 수단은 북부와 남부 지역 간 지리적·종교적·인종적 차이가 컸다. 사막 지대인 북부 지역에는 이슬람교를 믿고 아랍 어를 사용하는 아랍계가 많이 거주하였고, 초원과 밀림을 이루는 남부 지역에는 영어를 사용하고 크리스트교와 토속 신앙을 믿는 아프리카 본토흑인이 많이 거주하였다. 이 같은 차이를 무시한 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단을 식민 통치하게 된 영국은 두 지역을 하나로 묶어 통치하였고, 1956년에는 두 지역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 독립을 인정하였다.

독립 이후 이슬람계가 지배하는 북부 중앙 정부는 크리스트교를 믿는 남부 지역 주민을 차별하고 개발에서 철저히 소외시켰다. 심지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슬람식 이름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등 남부 지역 주민에 대한 극단적인 이슬람화를 추진하였다. 이에 남부 지역 주민은 격렬히 대항하였고, 북부와 남부지역 간에 발생한 두 차례의 분쟁으로 남수단에서만 25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500만 명에 이르는 난민이 발생하였다.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수십 년간 내전을 치르던 수단은 2011년 7월 남수단의 분리 독립을 결정하였다. 남수단의 분리 독립을 묻는 국민 투표에서 99%가 찬성한 것이다. 이에 남수단은 아프리카의 54번째 주권 국가이자 193번째 유엔 가입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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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공화국 레이크스주 룸벡 당카족의 특이한 화장

 

 

 

 

 

 

 

■ 남아프리카 공화국

Republic of South AfricaRepublic of South Africa, Republiek van Suidafrika, Union of South Africa, 남아공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 행정수도는 프리토리아, 입법수도는 케이프타운, 사법수도는 블룸폰테인이며 화폐단위는 랜드다. 20세기 내내 인종분리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펼쳐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넬슨 만델라의 지도 아래 흑인 다수당이 승리하면서 1994년 이후 정책 폐지에 이르렀다. 현재에도 높은 범죄율, 인종 간 긴장, 주택과 교육 기회에서의 커다란 격차, 유행성 전염병 등 풀기 어려운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면적 1,220,813㎢, 인구 60,800,000(2022 추계).

 

▲국기 = 다음백과

 

●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95세 일기로 타계

세계인권운동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 오후 8 50분쯤(현지시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긴급 성명을 통해 "그가 평화 속에 잠들었다" "남아공의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이어 주마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가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숨졌다"고 덧붙였다.
 
넬슨 만델라는 지난 6월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약 3개월 후인 9월 퇴원했고, 이후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의료진의 집중치료를 받아왔다. 지난 1988년 폐결핵으로 쓰러진 이후 오랜기간 폐 질환을 앓아온 넬슨 만델라는, 고령으로 몸 상태가 쇠약해진 지난 2011년 이래 지금까지 수차례 입·퇴원을 반복했다.
 
1918
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넬슨 만델라는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현 집권당)를 이끌며 투쟁하다 투옥돼 무려 2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국내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더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남아공 백인정권은 1990년 만델라를 석방하고 ANC도 합법조직으로 인정했다. 넬슨 만델라는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지난 19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듬해인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를 통해 첫 흑인 대통령이 됐고,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이른바 '무지개 국가'를 건설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퇴임 이후에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가 마지막이었다

2013-12-06 

 

▲만델라여 일어나시라 13. 6. 27. 남아공 7.18. 95번째 생링을 앞두고 흰색 풍선 95개를 날리고있다

 

▲만델라 처럼 13. 7. 14.

 

 

 

 

 

▲만델라 유해를 참관하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 13. 12. 12.

 

 

 

▲만델라 고향 쿠누에서 잠들다

 

▲기도하는 성직자

 

○만델라의 생애

▲1957년 만델라의 두번째 부인 결혼식

 

▲1961

 

▲1990 7.4. 런던 다우닝가 마거릿 당시 총리와

 

▲1990. 2.11. 케이프타운 인근 교도소를 나오는 모습

 

▲1991. 7.7. 아프리카민족회의 의장으로 선출

 

▲1993. 12.10.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평화상

 

▲1994. 4. 27. 남아공 더반에서 첫 민주적 총선

 

▲1995. 9. 16. 남아공 프리토리아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8. 2. 18. 남아공 케이프타운 자택에서 영국 모델 나오미 캠벨과

 

▲1999. 9.5. 남아공 선시티에서 마이클잭슨과

 

○남아공 신임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2018.2.15 케이프타운 의회에서 취임선서

 

 

 

 

○남아공 진풍경 - 14.5.7 흑인 집단거주지역 소웨토  총선 유권자들

 

 

 

 

 

 

 

○남아공 케이프타운 - 거대폭풍 2017.06.07

 

 

 

 

 

 

 

 

 

★볼거리

▲나마콰 국립공원 - 야생화 만발

 

▲추상화 같은  마푼구베 국립공원의 석양

 

▲만발한 코스모스와 붉은 석양

 

▲반짝거리는 바다 어두운 섬의 실루엣 먼 수평선

 

▲커스텐보쉬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있는 식물원

 

 

 

▲안개낀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바라본 시내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