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들의 한국 이야기2/ 벗드갈(몽골) - 너무 중요한 韓 존칭어, 배우긴 어려웠다/ 팀 알퍼(영국) - 이름 농담, 이제 그만 - 한국 선거는 재미있다
이주민들의 한국 이야기2/
■ 벗드갈 - 몽골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 동아일보
벗드갈 몽골 출신
2016-10-25 너무 중요한 韓 존칭어, 배우긴 어려웠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7년 전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으며 나 홀로 꿈을 찾아 나섰다. 인천공항에 오전 4시에 내렸는데 설레는 기분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던 기억이 아직 새록새록 떠오른다.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로웠으며 적응하기 힘들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생활하기 시작하며 모든 것을 알아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뿌듯했다. 왠지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역시 집 나가면 고생이란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몽골에서 가져온 적은 돈을 한 달도 안 돼 다 써 버렸다. 그때서야 엄마와 아빠랑 함께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한국에는 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들이 많았다. 온갖 일을 하며 다음 달 용돈 받는 날까지 버텼다. 식당에서 설거지 일부터 각종 전단지를 이리저리 붙이면서 다니는 일 등 육체적으로 힘든 일들을 하다 보니 역시 한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 동시에 돈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 그렇게 유학 생활이 시작됐다.
유학 생활 중 한국인 친구들과 수업을 하게 되며 재밌는 기억이 많이 생겼다. 대부분 한국어를 잘 못해 생긴 일들이다. 학교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분필을 떨어뜨렸을 때 나 혼자 “어이구, 어이구” 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을 때 쓰는 표현인 줄 알고 자신 있게 말하다가 분위기상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 총장님과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가 “아저씨 5층에 눌러주세요” 하고 부탁한 적도 있다. 한국에서는 호칭이 참 중요한데 구분하기 힘들뿐더러 애초 잘 쓰는 표현이 “누구누구님”보다 “아저씨”와 “아주머님”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몽골인과 한국인의 생김새가 비슷해 혼란스러운 적도 많았다.
한국 대학의 방학은 몽골보다 훨씬 길다. 한국에서는 1년 중 반이 방학이지만 몽골에서는 1년 중 두 달 정도가 방학이다. 방학이 시작되면 기숙사뿐 아니라 학교 전체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텅 비어 왠지 우울한 느낌이 들곤 했다. 특히 겨울엔 더 그랬다. 몽골에서는 다른 계절보다 겨울이 길고 춥지만 사람들이 제일 행복해 보이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는 몽골인들이 독립기념일과 12월 31일 또는 새해를 기다리며 들떠 있다. 또 몽골의 겨울은 눈이 많아 스키와 보드를 무료로 원하는 대로 타지만 한국에선 힘들다. 이 때문에 매년 겨울 방학 때 나는 몽골의 연말 분위기가 제일 그리웠다.
마치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때 국민 전체, 도시 전체가 그것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듯 몽골에서도 연말은 의미가 깊은 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해를 맞으며 소원을 빌면서 지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런 느낌을 받기는커녕 기숙사 지킴이로 남는 기분이 묘하게 들었다. 창밖으로 짐을 싸서 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언제 그들처럼 어디론가 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좋은 추억이 더 많았다. 같이 공부하는 유학생들과는 공통점이 많아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를 잘 배려하면서 지냈다. 어디를 가나 유학생들은 장벽 없이 서로 소통하며 재미있었다. 친구보다 더 가까운 가족 같은 기분으로 항상 서로를 도왔다. 덕분에 많은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며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 학생들은 놀 때 잘 놀고 열심히 공부할 때는 너무나 열심히 밤을 새워 가며 한다는 점이었다. 학교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에 자리 맡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으며 자리를 맡으려면 오전 6시부터 줄을 서야만 했다. 그때 제일 부러워했던 대상이 연구실이 있는, 즉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흔한 대학원생들이었다. 나도 하루빨리 대학원생이 돼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이젠 대학원생이 되어 도서관 자리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가끔은 공부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그런 날이 올 때마다 과거를 생각한다.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면서 좋은 일인지.
2016-11-29 케이팝의 매력은 치열한 생존 경쟁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우와, 대박! 코리안 팝송(Korean Pop Song) 너무 좋아요.”
요즘 들어서 외국인들이 한국 노래를 많이 듣는 것 같다. 전 세계 많은 곳에 동양인의 얼굴이 등장하며 대부분의 동양인은 한국인이다. 언제부터 케이팝(K-pop)을 좋아하기 시작했을까, 그 계기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니 한국 드라마 OST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노래를 들으면 드라마가 생각나며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생각에 빠져 잠들기도 하고, 드라마가 끝나도 노래는 쉽게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도 한국어를 드라마의 노래 때문에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다른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에 유학 온 계기를 물어보면 반 이상이 케이팝 때문이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케이팝을 잘 몰랐던 나는 한국 아이돌과 가수들 중 고작 SG워너비와 H.O.T., 원더걸스만 알고 있었다. 그 당시 가수들은 격한 춤 동작을 하면서 노래를 하나도 어렵지 않게 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한국 노래 영상들은 한 편의 영화만큼 스토리가 있으며 깊이가 깊었다. 한국 가수들을 보기 전까지 가수는 무대 한가운데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서양 가수들은 오래전부터 섹시하면서 강렬한 춤 동작을 했다. 한국 가수들도 그들 못지않게 섹시해졌지만 가끔은 보기 민망할 때도 있다.
그러나 케이팝 영상을 본 팬들은 새로운 옷 스타일과 화장법까지 배우곤 한다. 한 시대의 유행에 케이팝의 영향이 크다. 이 때문에 케이팝을 듣는 전 세계 누구든 한국식으로 옷 입고 화장하기 바쁘다. 또한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춤들이 대부분이기에 일반 팬들도 즐겁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케이팝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지구상 많은 사람들이 케이팝의 묘한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보여준 노래는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노래가 시작되면 마음이 들썩거리며 나도 모르게 말춤을 출 준비를 하는 사람은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아는 단어가 하나도 없는 한국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면서 한국어를 아는 외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때로 나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노래가 좋은데 도대체 무슨 내용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노래 덕분에 인연을 더 깊게 만들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소중한 인연이 이어진 적도 많다. 외국인들은 케이팝을 듣고서 멜로디에 빠져들고 가사의 단어를 찾아보다가 한국어의 매력을 우연히 발견해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놀랍게도 노래를 대체로 잘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노래방 시설이 흔하며 누구나 이용한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한국 가수들은 다른 나라 가수들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가수 생활을 시작한다. 노래를 어렸을 때부터 쉽게 접하고 자신도 모르게 가수를 꿈꾸게 된 사람들이 많으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진짜 실력자를 뽑기 위한 대회를 한국에서 연다.
이러한 대회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을 보면 대부분 스무 살 미만이다. 대회에서 실력자로 인정받더라도, 또 힘들게 데뷔를 하더라도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지속성의 문제가 생기곤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들은 힘들게 이겨내면서 가수의 자리를 지킨다. 몽골에서는 노래 실력만 있으면 가수가 통통하거나 춤을 못 추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 것 같다. 물론 예쁘면서 춤까지 잘 추면 좋긴 하나 대체로 노래 실력만 좋다면 대중은 그들을 실력으로 인정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가수나 연예인이 되려면 기본 실력 더하기 외모 관리가 필수로 인식된다.
오늘날 케이팝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주는 음악이 되었다. 한국어를 모르지만 “케이팝이 좋아요” 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마음이 가사 하나하나로 묻어나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16-12-27 한국에서 결혼이민자로 산다는 것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2000년대 초반부터 외국인과 혼인하는 한국인이 늘며 ‘다문화’란 말이 등장했다. 각국에서 많은 여성이 한국에 시집오기 시작했고 국제결혼중개업체 역시 많아졌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당시엔 국제결혼이라고 하면 농촌의 늙은 총각들이 결혼하지 못해 외국의 젊은 여성을 데리고 와 함께 산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후 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문화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각들은 곳곳에 남아있다. 난 은행이나 동사무소처럼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곳에 가기를 늘 두려워했다. 내 신분증이 결혼이민자 신분증에서 영주권 신분증으로 바뀌기 전까지 말이다. 은행이나 동사무소에서 “네, 다음 고객 오셔서 신분증 보여 주세요”라는 말에 신분증을 내밀 때, 직원들은 날 안쓰러워하거나 타향에서 고생하는 사람 대하듯 했다. 몇몇 사람은 내 손을 꼭 잡고는 “힘드시겠다. 남편과 나이 차이가 어떻게 돼요?”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기관에 갈 때마다 이마에 ‘우리 남편은 나이가 안 많다. 그리고 난 나름대로 잘살고 있으니 질문하지 마시라’고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는 한국에서 결혼이민자로 살며 겪는 작은 불편에 불과하다. 더 큰 불편은 정부의 일자리 지원과 교육에 있다. 2000년 이후에 들어온 결혼이민자들 대부분은 더 이상 한국 문화나 한국어 교육이 없어도 언어에 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이민자에 대한 교육은 언어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한국 정부가 신경 써야 할 중요한 과제는 결혼이민자를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와 자녀 지원 문제이다.
결혼이민자는 힘들게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에 떨거나 한국인들과 다른 업무조건에 노출된다. 결혼이민자를 위한 정부의 병원코디네이터나 통역가 양성교육이 많지만 수백 명의 수료자 중 실제로 취업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1년에 대규모로 똑같은 교육이 몇 번씩이나 진행된다. 가끔씩 정부에서 시행 중인 프로그램들이 결혼이민자들의 시간과 희망을 훔쳐가는 안타까운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시를 비롯해 몇 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결혼이민자를 위한 취업박람회를 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얻는 효과는 박람회를 여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해 적을 것이다. 박람회에 참여하는 기업이나 지자체는 참석했다는 자체에 의의를 두고 보도자료 배포 및 홍보가 목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고용노동부에는 ‘여성취업성공패키지’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이민여성들이 차별 없이 정부 지원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는 조건으로 실행된다. 안타깝게도 이 역시 결혼이민자들에겐 불리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한국에 오래 있고 오래 살았다고 해도 한국어로 한국인들과 똑같이 직업훈련 받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결혼이민자들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도대체 해결책이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실질적인 연구 및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결혼이민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관심 있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문화가족 구성원에게 질문을 던져 보면 해답은 아니더라도 해답에 가까운 답이 나오지 않을까. 2000년대 초반부터 급속도로 증가해 온 결혼이민자 수는 최근 들어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다. 이는 정책 실패와 함께 사회적으로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앞으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 및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우리 다문화가족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응원하지는 않더라도 불편하게 보지 않는 인식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제 한국에서 평생 살아갈 사람들이다. 더 이상 잠깐 살다 갈 외국인처럼 여기지 말고 한국인과 똑같이 한국에 꼭 필요한 인재 또는 미래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다문화사회다.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2017-01-24 결혼이주여성은 왜 귀화하려는 걸까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이주여성들의 제일 큰 두려움은 아마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과 한국어 소통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에 시집와서 한국 사회에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고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물론 이 문제는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당연한 문제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질 수도 있다.
결혼 이주여성이 한국 사회를 잘 알지 못한 채 아이를 갖게 되면 고생이 두 배가 된다. 한국 여성들도 결혼한 후에는 출산, 시댁과의 갈등 등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우리 같은 경우는 아이를 돌보면서 한국 문화에 적응해야 하고, 또 한국어도 배우느라 바쁘다 보니 한동안 심한 산후 우울증과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을 받으면서 살게 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사실 나도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마치고 어느 정도는 한국 문화와 정서를 안다고 생각해 결혼까지 했지만 내가 알던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결혼해서 많이 느꼈다. 나보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에 시집오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나는 다문화 음악방송을 진행하면서 틈틈이 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시집살이, 문화 차이 등을 최대한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이주여성 커뮤니티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글이 있다. 영주권을 받고 한국에서 사는 게 좋은지, 아니면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를 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결혼 이주여성들은 귀화를 추천했는데, 이유는 자녀의 미래 때문이었다. 자녀의 미래를 응원하고 싶어서, 엄마 때문에 아이가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을까 봐 등등…. 엄마가 외국인이란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나는 오히려 엄마가 당당해야 아이도 당당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동의하지 못한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07년 결혼 이주여성 8만7000여 명 중 7만5000여 명이 귀화했다. 이는 2015년 14만7000여 명 중 12만5000여 명으로 늘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귀화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귀화를 하는 이유가 오로지 자녀 때문이라고 하면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만약 많은 결혼 이주여성들이 자녀 때문에 귀화를 선택하고 있다면 정부는 다문화 정책을 다시 돌아보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무엇인가 잘못돼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다문화 정책 예산은 이명박 정부 때보다 박근혜 정부에서 확연히 줄었다. 또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 줄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다문화 정책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가끔씩 국제이주기구 이민정책연구원에서 난민 이야기를 하거나 중국동포 이야기를 하면 놀랄 때가 많다. 아직까지 정책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제대로 잘한 뒤에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물론 이것은 나의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다문화가정의 46.8%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거주한다. 경기도의 경우 다문화가정 자녀 5만여 명 중 6세 이하가 약 60%를 차지했을 정도로 어린 연령층이 많다. 이 아이들은 아직 다문화가족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이다. 따라서 이 아이들을 위한 좋은 정책이 실행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한국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사회가 아직 건강하고 잘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라면 다문화가족이 한국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인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02-21 한국에서 ‘빨리빨리’에 적응하기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최근 몇 년간 세월이 참 얄밉게도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시간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산 것 같다. 벌써 한국에 온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느낌에는 1, 2년 정도밖에 안 지난 것 같다. 귀여운 우리 아이가 이만큼 자란 것을 보면 빨리도 지나갔지만, 한편으로는 오래도 됐다는 생각이 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세월이 참 빨리 흐른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 10대였을 때, 몽골에서는 시간이 참 느리게 갔다. 왠지 모르지만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지루하고 지쳤던 기억을 돌이켜 보니 그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그때 제일 좋아하는 요일은 월요일이었고, 싫은 요일은 주말이라고 했을 정도로 쉬는 것이 싫었다. 그땐 왜 시간이 그리 안 갔던 것처럼 느껴졌을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몽골에서는 해가 일찍 뜨고 늦게까지 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일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빨리빨리 움직이는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처럼 모든 서비스가 이렇게 신속한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빨리빨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표현 중 하나일까. 특히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려고 구청에 갔을 때 피부로 느꼈다.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하고 뜻깊은 일인데 아무런 감정 없이 신속하게 처리되어 몹시 속상했다. 반면 몽골에서는 혼인신고서에 서로 사랑하고 평생 함께하겠다는 서명과 사인을 하고, 담당 직원의 축하와 행복하게 잘 살길 빌어주는 말과 함께 혼인신고가 접수된다. 어떨 때는 빠른 것도 좋지만 인생에 있어 흔하지 않은 기쁜 일은 조금 더 느긋하게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가게가 없어지고 다른 간판이 들어서는 것을 볼 때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은 알지만 말이다. 간판 하나 새로 달기 위해서 힘이 안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모든 재산을 내놓는다. 그러나 대단한 창의력과 아이템이 없을 경우 얼마 가지 못해 문을 닫기 십상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한번 자리를 잃게 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고 고통스럽다. 반면 몽골에선 전 재산을 인생 게임에 걸다가 실패를 맛보아도 대초원의 원하는 곳에 몇 마리 가축을 키우기만 하면 삶은 지속된다.
물론 빠른 것이 모두 안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체코에서 유학하는 친구가 유학생 비자를 기한 안에 연장하지 못해서 몹시 곤란한 상태에 처한 적이 있다. 그는 벌금이라도 내고 비자를 정상적으로 연장 신청하고 싶어 했지만, 체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자꾸 2주 후에 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체코출입국관리사무소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 처리를 할 것인지 결정하기 어려워 논의만 계속하는 통에 내 친구는 반년이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 오래 산 내겐 그저 답답한 이야기로 들렸다. 어떻게 그렇게 일 처리를 느긋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학교 외국인 담당 선생님을 통해서라도 일이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후부터 한국 사람처럼 일이 빨리빨리 안 되면 답답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특히 몽골에 있는 가족과 전화 통화를 할 때 말을 빠르게 하자 부모님께서 “누구한테 쫓기고 있는 것처럼 왜 그러냐” 하신 적이 있다. 이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때론 놀랍고 신기하다.
누구나 행복하고 좋은 것들은 오래오래 천천히 느끼고 싶고, 두려운 것들은 최대한 빨리 지나가길 바라겠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느긋함과 빠름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면 바쁜 한국 사회에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03-21 배려가 아쉬운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얼마 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이 일을 몽골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에게 알렸더니 돌아오는 답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정말 놀랍게도 그것이 맞는 말이란 것을 일상생활에서 늘 경험한다.
한국에서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울기도 했다. 언젠가 네 살 난 딸하고 지하철을 탔을 때다. 자리도 양보해 주지 않고 눈을 꼭 감고 있는 승객들을 보고 양심과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많이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특별시, 그중에서도 사람이 제일 많이 밀집된 곳 가운데 하나인 서울역 근처에 산다. 여기로 이사 온 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가끔씩 조용한 시골 생각도 나지만, 매일매일 바쁜 발걸음을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더욱더 삶에 대한 가치와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깨치는 것 같다.
물론 안 좋은 점도 있다. 휘황찬란한 불빛과 달리 서울역 부근에 있는 노숙인들을 볼 때마다 우울해지고 힘든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가 “아저씨들이 왜 누워 있어?” 하고 물어볼 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차라리 보여 주지 말 것을 괜히 보여 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들도 사회 구성원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마저 공공장소에서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이것도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이를 동반하고 있는 사람들과 임산부,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분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눈감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다.
지하철에서도 임산부 좌석에 멀쩡한 남성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양심과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나의 경험에 불과하다. 몽골에서는 이런 노약자들에게 자리 양보를 잘해 주고, 무거운 짐도 들어주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걸어 다니는 사람과 술을 마시고 식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은 최대한 그런 사람들 옆을 멀리 피해 가려고 노력한다. 단지 담배 냄새 때문이 아니라 담뱃불이 아이 얼굴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 하나하나를 체크하며 고민하고 다니면 벌써 머리와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안타까운 것이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적응하고 있고 잘 피해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안하게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여러 번 했다. 다소 엉뚱하고 재미있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서울역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나 자원봉사자를 두면 어떨까 한다. 마음속 상처가 많은데도 치료할 여유도 없이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을 위해 귀여운 캐릭터 인형복을 입고 안아주고, “힘내요” 하는 말을 들려주면 외롭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멈춰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 너무나 비슷하다.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대하듯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모두가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04-18 외국인 근로자들도 금-은-흙수저로 나뉜다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얼마 전 한 청취자로부터 편지가 왔다. 내가 진행하는 음악방송을 열심히 듣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을 잘하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단다. 그 청취자는 한국어를 어느 정도로 공부해야 취직이 빨리 되는지 궁금해했다.
솔직히 나도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취업은 어느 한 가지만 보고 뽑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취업이란 과정은 내가 들어본 나라 중에서는 가장 복잡하며 힘든 과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한국어를 잘하는 것 외에도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약 운 좋게 취업했다고 하더라도 한국 직장 문화와 한국인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인 중에서도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업무보다 사람 때문에 퇴사했다는 경우가 더 많다.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눈치게임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유형을 3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유형은 굳이 회사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재미로 회사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 “대박, 역시” 정도만 말해도 분위기를 ‘업’시킬 수 있는 친구들이다.
상상해 보자. 만약 한국인하고 구별이 잘 안 되는, 몽골 출신의 나 같은 사람이 “대박” “역시”라고 사무실 사람들 앞에서 외친다고 해보자. 나에게 반응을 보여줄 한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외국인같이 생긴 백인이나 흑인이 “대박” “역시”라고 외친다면 그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 그 외국인이 마치 엄청난 일을 해낸 것처럼 한국인들이 바라볼 것이다.
그들은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며 알아도 잘 모르는 척하는 게 더 유리하다. 그들은 한국 문화와 언어를 잘 알려고 노력하면 잦은 야근과 술자리가 따라온다고 한다. 결국 할 것만 하고 근로계약서에 따라 정시에 퇴근한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친구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을 ‘금수저’라고 말한다. 내 주변에 이 같은 금수저들이 몇 명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영어를 모르고 한국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외국인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편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일만 하는 것이다. 회사 동료들과 굳이 대화를 많이 할 필요 없이, 누가 눈치 주면 모르는 척하고 퇴근 시간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어렵긴 하지만 사무실에서 외국인에게 기대하는 건 한국인에 대한 기대치와는 다르다. 이 들이 만약 한국 회사에서 일한다면 한국인과 같아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친구들은 ‘은수저’에 속한다.
마지막 유형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막노동 시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어쩌면 제일 약자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한국 문화를 열심히 배울 수밖에 없다. 모르면 당하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악착같이 배워야 한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내가 하는 방송을 통해 할 수 있는 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특히 한국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한국어 수업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해 전달한다. 처음엔 몇백 명, 며칠 후에는 몇십만 명이 방송을 조회한 것을 보고 일하는 보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대한민국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근로자들의 인권 침해는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지원센터가 지방자치단체마다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외국인이 많다. 홍보가 부족한 것도 또 다른 문제점이다. 다국어로 지원되는 언어 서비스를 더 늘리거나 통합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면 정책을 좀 더 효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자체 간에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한민국엔 현재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생활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문제는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본다.
05-16 몽고라 부르면 섭섭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한국에 살며 한국인과 처음 만났을 때 듣는 말은 대부분 비슷하다. 제일 먼저 듣는 말은 ‘한국어 잘하네요’이며, 다음으론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이다. 물론 모든 대화의 마지막은 ‘그런데 한국어 진짜 잘하네요’이다. 재미난 점은 내가 몽골 사람이라는 사실을 또박또박 말했을 텐데 한국인은 ‘몽골’을 ‘몽고’로 발음하는 것이다. 처음엔 몽고에 대한 정확한 뜻을 몰라 그러려니 했다.
얼마 전 학과 교수님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교수님은 몽골과 관련한 질문을 할 때마다 몽고라고 발음했다. 몇 년 전부터 몽고와 몽골에 대한 정확한 뜻을 알게 돼 가급적 잘못된 발음을 고쳐주고 있다. “교수님께도 ‘몽고’가 아니라 ‘몽골’ 이렇게 말씀해 달라”고 부탁했다. 몽고와 몽골의 뜻이 많이 달라서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이 조선인을 비하해 ‘조센진’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몽고 또한 이와 비슷한 느낌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몽골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몽골(Mongol)의 국가 이름은 영어로 ‘Republic of Mongolia’로 표기한다. 단어 속에 알파벳 ‘L’이 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은 ‘L’ 발음을 하지 않고 몽고로 부른다. 이 경우 단지 글자 하나만 사라졌을 뿐이지만 의미까지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은 몽골과 달리 한자를 쓰는 나라이며 대부분의 단어를 중국에서 표기한 대로 쓸 것이다. 중국은 수천 년 전 흉노시대 때 몽골로 인해서 수많은 전쟁에 시달려야 했고 고생도 많이 했다. 만리장성도 결국 흉노가 무서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민족이니 과거의 중국 입장에선 몽골이 싫고 비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몽고(蒙古)다.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조합한 단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뜻도 뜻이지만 발음도 이상하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몽골 사람 앞에서 ‘몽고, 몽고’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면 같이 있는 몽골 사람이 불쾌할 수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몽골에선 배우지 않은 무식한 인간 혹은 행동과 생각에 장애가 있거나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을 ‘망고(manguu)’라고 칭한다. 듣는 사람에 따라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언어라 하더라도 듣기 편하거나 말하기 쉬운 표현으로 무의식적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몽골 사람과 만나게 될 땐 몽고라는 표현을 지양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몽골이란 말은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 사실 역사학자들은 어디에서 몽골이란 단어가 왔는지 현재까지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몇 가지 가정이 있다. 그중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그럴듯한 세 가지를 골라 소개하겠다. 첫 번째 가정은 13세기 몽골 제국을 세웠던 위대한 지도자 칭기즈칸이 직접 몽골이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여기서 ‘몽’은 고생 수고란 뜻을, ‘골’은 중심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가정은 몽골에서 강을 따라 유목하면서 생활했던 5세기에 가장 강했던 부족명이 ‘몽’이었다는 것이다. ‘골’은 몽골어로 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monka tengri gal(영원한 하늘과 불)’이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과거 몽골에서 하늘을 신으로 모셨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종교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은 하늘과 자연이었다.
왜 몽골을 몽고로 부르면 안 되는지 많은 이유를 알려드렸다. 만일 독자 여러분 주변에 몽골을 몽고라 부르는 사람이나 그렇게 표현하는 신문, 잡지가 있다면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사실을 적극 알려주면 좋겠다. 나 또한 몽고라는 명칭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라며 주변의 있는 많은 사람에게 알릴 것이다. 몽고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오로지 ‘몽골’만 존재한다.
06-13 가장 평등한 공간, 한국의 커피가게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한국에서 산 지 수년이 되는 나에겐 유일한 낙이 바로 커피다. 처음 유학 왔을 때와 비교하면 커피 값이 많이 떨어졌다. 전에는 커피가 비싸면 맛있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저가임에도 불구하고 맛이 뛰어난 커피 가게들이 늘어나 커피 애호가들을 즐겁게 한다. 그 덕분에 나 같은 커피 마니아들이 커피를 전과 달리 부담 없는 가격에 마실 수 있어 행복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커피숍을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이유도 이제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뷔페에 가려면 옷을 어느 정도 갖춰 입고 가야 하지만 커피숍은 다르다. 내가 편한 복장을 입어 내 지갑 속에 들어있는 돈과 상관없이 좋은 분위기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고마운 곳으로 변했다. 즉,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것 같다. 그 공간에서 미화원, 사장, 공무원, 회사원, 변호사, 교수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우리 집 근처에 작은 마트가 있다. 그 가게에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녀는 평상시에 표정이 하나도 없다. 아이 손을 잡고 그곳에 가서 간식을 사는 일이 흔하지만 그녀가 밝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아주머니의 출퇴근 시간에 가끔 마주칠 때도 있지만 그 사람은 세상에 관심이 없는 듯 항상 무표정이다. 입는 옷도 변함없고 표정도 변함없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우울함도 보이곤 한다.
그런데 최근 그 아주머니를 유명 브랜드 커피숍에서 봤다. 바로 내 옆자리였다. 그분은 나를 알아볼 것 같지 않지만 나는 잘 알아봤다. 평상시 얼굴과 달리 편안함과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분이 주문한 음료와 간식비를 최저임금으로 따지면 두 시간은 일을 해야 나올 것 같았다. 그분을 발견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커피가게라는 곳이 보이지 않는 차별 없이, 출신 및 소속과 상관없이 사회 모든 계층이 모일 수 있고 또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차를 즐겨 마셨던 한국에 처음 커피가 들어온 것은 고종 때인 1882년이라고 들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 잠시 머무는 동안(아관파천) 커피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1902년쯤에 백성들을 위한 최초의 커피가게가 열렸다는 이야기를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한국 경제 성장이 급속했던 것처럼 커피문화 또는 커피와 관련한 모든 것도 급성장하였다. 물론 그 가운데에 많은 사건이 있었겠지만 1999년에 서울 이화여대 근처에 세계 유명 브랜드 커피가게가 1호점을 열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성숙된 커피시장과 문화가 등장했다. 오늘날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이 보편화되는 데 20년 정도의 기간이 걸렸던 것이 아닐까. 그동안 커피라는 존재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고마운 것으로 변했다. 특히 나같이 커피가 너무 좋아서 커피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을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된다.
맛있는 커피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못지않은 일상의 행복으로 변했다. 필요한 것을 찾으러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내게는 커피숍이 제일 적합한 장소인 듯하다. 몇 년 전부터 커피가게 공간들이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 집보다 편하고 좋을 때가 많다. 커피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에 있어서 고마운 존재이다. 커피가게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계층이 한 공간에서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닐까. 커피가게 같은 장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어질 듯하다.
■ 팀 알퍼 영국 칼럼니스트
1977년 영국 출생. ‘런던 스쿨 오브 저널리즘’, 켄터베리 소재 켄트대학 졸업(철학·영화 전공). 런던에서 프리랜서 번역가, 스포츠 기자로 일함. 서울에서 ‘korea IT’ 편집자,
동아일보 김도원 화백
2015.09.30 이름 농담, 이제 그만
내 성씨(姓氏)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리얼 브랜드인 알펜과 비슷하다. 그래서 어릴 땐 "알퍼야, 오늘도 알펜 먹었니?" "네 아버진 알펜 만드는 회사에 다니시니?" 라는 식의 놀림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계속 이렇게 놀리면 당하는 사람도 처음엔 웃을진 몰라도 나중에는 화가 나기 마련이다. 유명인(아니면 나처럼 유명 브랜드)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에겐 그만의 고충이 있다.
영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는 마이클 잭슨이다. 마이클이란 이름은 영미권에서 언제나 인기 있는 이름이다. 그리고 잭슨이란 성씨는 한국의 박씨나 이씨처럼 영국에선 아주 흔하다. 가수 마이클 잭슨이 한창 인기있던 1980년대에는 영국에 사는 수많은 마이클 잭슨 역시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마이클 잭슨이 점점 몰락하자, 영국의 마이클 잭슨들은 자신의 이름을 다른 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예컨대 '믹' 잭슨이나 '마이크' 잭슨이란 이름이 갑자기 많아졌다.
아마 이런 유의 이름으로 영국에서 가장 끔찍한 건 해리 포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이름은 사실 영국에서 마이클 잭슨만큼이나 흔한 이름이다. 다행히 해리는 보통 해럴드라는 이름을 줄여 부르는 것이니, 누가 물어보면 "나는 해럴드 포터"라고 둘러대는 게 가능하다. 아니면 영미권에선 해럴드 존 포터라는 식으로 즉석에서 중간 이름을 만들어도 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 한번 이름을 부여받으면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지 않는 한 그 이름으로 평생 살아야 한다. 내 친구 중에는 이대호나 박찬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물론 김연아나 김태희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다. 내 친구 김태희씨 같은 경우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종종 "가수 비(배우 김태희의 연인)는 잘 지내나요?"라고 농담을 건다고 한다. 그런 농담을 120번쯤 들은 내 친구 김태희씨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보라.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이럴 때 필요한 배려다.
2015-09-30 중국인들의 한국 땅 매입 손익계산서 따져보면...
▲ “중국인에게 호텔 안 팔았수다” 제주시 연동의 한 호텔 외벽에 ‘중국인에게 안 팔았으니, 헛소문 내지 마세요’라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종현 객원기자
제주도 땅의 1.2%가 비한국인 소유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뿐만 아니다. 필리핀 복합리조트 회사 블룸베리(Bloomberry)그룹의 엔리케 라존(Enrique Razon) 회장이 올 초 12만2000㎡(약 3만6000평) 넓이의 무의도를 매입했으며, 그로부터 몇 달 뒤 다수의 외신은 라존 회장이 실미도 땅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이런 뉴스를 들으면 많은 한국인이 조금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한국은 땅덩어리에 비해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나라인데, 안 그래도 한정된 토지를 이런 식으로 매각할 여력이 과연 있을까.
라존 회장은 사들인 땅에 카지노들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제주도의 땅도 구입했으며, 역시 카지노를 세운다. 2014년 미국 호텔카지노 회사 시저스는 인천국제공항 근처의 영종도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카지노를 개발할 것이란 계획을 발표했다.
라존 회장의 카지노는 5년 내에 완공될 예정이다. 한국인은 법적으로 한국에서 카지노 출입이 금지돼 있다. 그러니 이런 카지노의 주요 고객층은 비한국인일 테다.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소식을 반길 것이다. 관광객과 카지노의 증가는 과세가 가능한 정부 수입의 증가를 의미한다. 혹자는 한국에 제2의 마카오가 생길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기도 한다. 한국 경제로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된다는 발상 자체는 훌륭하지만, 여전히 이런 상황이 탐탁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땅을 중국인에게 판다고 해서 그게 중국 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일단 살기 시작하면 그곳을 떠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한국 정부가 영종도, 실미도, 무의도 혹은 제주도에 군사시설을 세우거나 이곳에 어떤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 그곳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땅의 주인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제주도의 경우 비한국인이 매입한 대지의 약 42%가 중국인 소유다. 즉 제주도의 0.5% 정도가 중국인 소유란 것이다. 0.5란 수치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수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한국인이 한국에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을 무슨 은밀한 침략처럼 생각하는 건 불필요한 망상이다. 그러나 오늘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외국인 부동산 소유 문제가 소유주에게나 각국 정부에나 골칫거리란 점은 분명하다. 호주 정부는 최근 법을 고쳤다.
개정법에 따르면 호주에서 주거용 부동산이나 농지 구입을 하려는 모든 비호주인 구매자는 중앙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비호주인은 부동산 구입 시 추가적인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올 12월부턴 최소 5000호주달러(약 434만원), 최대 1만호주달러(약 868만원)를 정부에 내야 한다.
극심한 주택난을 겪고 있는 영국 런던을 보자. 런던에만 빈집이 5만여채 있지만 정작 도시의 빈민층이 살 곳은 없다. 부유한 비영국인이 부동산 투자 명목으로 런던에 집을 구매해 왔지만 이들 대부분은 런던에서 살 생각이 없다. 그들에게 런던의 부동산은 자국의 금융위기로부터 그들의 돈을 보호해줄 수단일 뿐이다.
영국의 한 부동산 업체는 2013년 런던에서 발생한 부동산 거래 가운데 15%만이 영국인 구매자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런던의 올림픽 빌리지 일대는 거의 다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부동산 투자 그룹이 차지했다. 영국의 부동산시장과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이곳을 소득수준이 낮은 런던의 시민들에게 돌려달라고 간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런던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영국 일간지들은 셰필드(Sheffield)나 리버풀(Liverpool) 같은 런던보다 더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있는 웨일스식 작은 집들과 아파트들이 중국과 러시아 부동산 박람회에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경제가 계속 실패를 거듭하자, 부유한 러시아 시민들이 기회만 되면 영국 부동산을 사들인다는 것이다.
외국인 구매자 전문 프랑스 부동산 업체들도 지난해 외국인의 관심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확인한 바 있다. 2013년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지역에서 일어난 모든 토지 거래의 20%가 중국인에 의한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서유럽은 스스로 문제를 자초해온 측면이 있다. 영국 야당인 노동당의 사디크 칸(Sadiq Khan) 의원은 토지소유 문제에 대해 “완전 미쳤다. 가족들의 거처로 만들어진 주택이 세계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은행계좌로 사용되는 것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 중국 지인은 중국의 주식시장이 심하게 요동치면서 베이징의 거부(巨富)들이 최근 한국 대도시에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우린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정부의 역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이런 상황에 대해 겁을 먹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토지 소유란 게 복잡한 문제이긴 해도 한국 땅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통치권을 갖고 있다. 한국의 섬을 산다고 해서 소유주가 그 섬에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호주의 전례를 따른다면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매년 점점 더 많은 비한국인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 더 오래 머물며 한국에 정착하고 집을 갖는 꿈을 꾼다. 한국에 살면서 부동산을 사서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주택 매입을 권장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있어 잠재적 경제활동인구이자 이 나라의 출산율에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한국인으로서 이들이 한국에서 그 어떤 자유 민권도 없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단 사실이 매우 우려스럽기는 하다. 대부분의 민주 자본주의 국가에서 재산권은 법에 의해 살벌하게 지켜진다. 완고하게 한국의 통치권만 주장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은 해법이 아니다.
국가적 조화를 위해 정부 또는 다른 한국 내 집단이 새롭게 등장한 외국인 토지 소유주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해야 한다. 이들은 지금은 제주도의 1%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언젠간 한국 전체의 50%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법이 비한국인의 총선 투표권과 특정 정당 공개 지지 등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특히 중요하다. 비한국인 토지 소유주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은, 비한국인 거주자들과 당국과의 접촉을 늘리고 상호 간의 의사소통 라인이 늘 열려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 제주도의 0.5%가 중국인 소유라면 제주시 당국은 중국어를 배우거나 중국 거주민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비한국인 거주자들이 부동산을 사는 것은 한국에 좋은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서울, 부산, 대전 등에 빈집이 넘쳐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른 나라의 부자들이 한국에 집을 사놓곤 그들의 돈이 안전하게 묶였다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한국 정부는 법 개정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러니 일단은 진정하도록 하자.
한국이 인구과잉 국가는 아니기 때문에 호주식의 반사적인 자기방어식 법을 도입할 필요는 없다. 비한국인이 거주 목적으로 한국에서 땅을 사고 싶어한다는 건 사실 좋은 신호다.
비한국인이 한국을 꽤 괜찮은 장소로 여겼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다음 목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비한국인들이 이곳 한국에서 환영받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출처 | 주간조선 2374호 팀 알퍼
2015.10.20 공짜 선물을 조심하라
서양엔 이런 속담이 있다. "선물을 들고 온 그리스인을 조심하라." 이유 없는 호의를 베푸는 이를 경계하란 뜻이다. 목마로 트로이를 함락한 그리스군을 빗댄 이야기다. 이 속담을 한국 버전으로 바꾸면 "세탁용 세제를 들고 온 손님을 조심하라" 정도가 될 것 같다. 세탁용 세제나 두루마리 휴지는 인테리어 공사나 건물 개·증축을 면피(免避)하기 위한 작전일 수 있으니. 숙취로 맥 못 추는 토요일 아침 7시, 귀를 뚫는 드릴 소리에 눈을 떠 봤다면 알 것이다. 쉬는 날 잠을 제대로 못 자겠는데 공짜 세제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러고 보면 한국과 내 고향 영국의 건물 공사 문화는 판이하다. 한국에서 몇 달이면 끝날 일이 영국에서는 서너 해가 걸린다. 한국에서는 그날로 '훌리건'을 연상케 하는 인부들이 나타나 건물 내부를 박살 낸다. 유리와 타일을 부수는 소리는 '로마 대약탈'을 연상케 할 정도다. 오후에는 중장비를 몰고 와 건물 외벽을 부스러기로 만든다. 현장은 곧바로 담장과 천으로 가려진다.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귀가 먹을 것 같은 소음이 한 달가량 이어질 뿐이다. 소음이 사라지면 '짜잔'하고 새 빌라가 나타난다.
영국은 정반대다. 관료주의에 빠진 공무원이 건축 허가를 안 내준다. 1년이 지나 어찌어찌 허가를 받아도 이웃 주민이 "새 건물이 햇볕을 가린다"며 신축에 반대한다. 이웃을 설득하다 한 해가 흐른다. 첫 삽을 뜨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만 여차하면 2년이다. 영국도 한국의 선물 작전을 도입하는 걸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설득이 조금이나마 쉬워질 텐데.
여하튼 언젠가는 공사가 시작된다. 한국의 소음이 지옥문을 두드리는 성난 악마를 연상시킨다면 영국의 공사 현장 소리는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 나올 때 나는 '똑똑똑' 소리와 닮았다. 일정한 박자로 들릴락 말락 한 소리가 '끊임없이' 2년 정도 들려온다.
세제 한 통을 받고 한 달의 지옥을 견딜지, 희미한 소음에 2년 동안 스트레스를 받을지 선택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두 나라의 국민성만큼은 분명히 보여주는 것 같다.
2015.11.03 '구루프'가 패션 소품?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서 파마를 한 것처럼 부풀려주는 기구인 '헤어롤(일명 구루프)'은 영국에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다. 내가 어릴 때 동네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으면 머리를 말고 있던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야단을 치던 기억이 난다. 머리엔 항상 헤어롤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였다. 하지만 이젠 영국 여성들은 헤어롤을 쓰지 않는다.
기묘한 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줄로만 알았던 헤어롤을 요즘 한국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단 점이다. 앞머리를 기른 여자들은 모두 이 독특한 외양의 물건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애지중지하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헤어롤로 머리를 말고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헤어롤로 머리를 곱게 말아올리고 손거울을 보며 완벽하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쯤 되면 묘기 수준이었다.
지하철에서만 이런 여성이 목격되는 건 아니다. 농구장이나 야구장, 학교 교실, 회사 화장실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심지어 서울 광화문 대로 한복판에서 남자 친구의 팔짱을 끼고 걷는 여성의 머리에 헤어롤이 달려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방송이 이런 헤어롤 사랑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올해 초 한 지상파 방송에서 인기 걸그룹 EXID의 하니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공장소에서 헤어롤로 머리를 마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땐 "저렇게 예쁜 연예인이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마는 모습이 참 털털해 보여서 좋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니는 그 후 '예쁜데 털털한 여자아이' 캐릭터로 승승장구 중이다. 그런데 정말 그 모습이 털털해서 보기 좋은 건가.
한국 여성들이 정말로 그렇게 헤어롤로 부풀린 머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아니면 헤어롤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유행하는 패션이 된 것일까. 이러다가 결혼식에서 머리에 헤어롤을 단 신부를 보게 되는 날이 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2015.11.10 목욕탕 찬가
겨울이 찾아오면 대중목욕탕 생각이 간절해진다. 시베리아에서 온 찬 바람이 부는 한국 겨울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든 목욕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욕탕이 없는 고향 영국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즐거움이다. 런던에도 간판에 '사우나'라고 쓰인 곳이야 있지만 여기는 성매매 업소거나 범죄조직의 돈세탁 창구다. 반쯤 쓰다 남은 샴푸, 칫솔, 그리고 이태리타월을 들고 맘 편히 찾을 수 있는 한국식 '목욕탕'은 영국에 없다.
일부 서구인들에게 목욕탕은 여전히 낯설다. 몇 년 전 친한 영국 친구가 한국을 찾아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탕에 들어가는 순간 시선에서 그를 놓쳤다. 온탕에 들어가 해물탕 속 새우처럼 잘 익혀지고 있겠거니 했다. 착각이었다. 내가 느긋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친구 녀석은 옷을 모두 차려입고 탈의실 의자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긴 노출이 너무 과해. 어서 돌아가자"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그제서야 영국에서는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의 거시기(?)를 볼 일이 별로 없다는 게 생각났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발가벗고 다니는 민망한 장면에 그는 꽤나 문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 잠시 우크라이나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목욕탕 사랑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영하 30도의 거리를 걷다가 목욕탕에서 몸을 풀면서 그 매력에 빠졌다.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목욕탕·찜질방·사우나가 있다는 걸 듣고 가장 기뻐했다.
한국 목욕탕 문화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때밀이 문화다. 피부 아래 황금이 숨겨져 있고 그걸 캐내려고 저렇게 열심히 살갗을 밀어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 신기했던 것은 성질 급한 목수가 거친 나무 표면을 사포로 밀어내듯 아이들의 때를 밀어주는 아버지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중년이 된 그 아들이 늙어버린 아버지를 목욕탕에 데려 와 때를 밀어줄 것이다. 이 풍경이야말로 한국 목욕탕에 숨겨진 황금이 아닐까.
2015.11.17 직함 넘치는 사회
나 같은 유럽인에게 한국 직장의 직급 체계와 위계 문화를 이해하는 건 헛수고나 마찬가지다. 이해하려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한국서 10년 넘게 일했건만 아직도 주임과 대리 중에 어떤 직급이 더 높은 것인지 모른다.
예전 직장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중년의 남자 직원 하나가 오더니 "영어 명함을 만들어야 하는데 '인사 차장'을 영어로 뭐라고 써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 'HR 매니저(Human Resource Manager)'라고 쓰면 됩니다"라고 친절하게 답해줬다. 두어 시간 뒤 그 남자 직원보다 약간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 직원 하나가 오더니 "영어로 '인사 실장'을 뭐라고 하나요?"라고 물었다. 역시나 'HR 매니저'라고 답하려 했지만, 그 여성의 직급이 더 높아 보여서 'HR 디렉터(Director)'라고 말해줬다. 한 시간 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앞선 두 사람보다 더 높아 보이는 사람이 와서 물었다. "'인사 부장'은 영어로 어떻게 쓰는 거요?" 그때 나는 인사부로 뛰어가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전부 다 '매니저'라고 하면 돼요! 당신들 직급이 뭐든 간에 영국에선 전부 매니저라고 부른다고요!"
영국을 비롯한 유럽 회사에선 각 부서 책임자와 CEO 외의 직원은 별다른 직급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기업은 사뭇 다르다. 모든 직원에게 각각의 직함을 부여하는 걸 좋아한다. 직원 5명짜리 회사에서도 그 5명의 직급이 위계별로 정해져 있다. 직원 2명짜리 회사에서 1명은 사장이고 다른 한 명은 이사라고 말하고 다니는 걸 본 적도 있다. 조기 축구회만 가도 회장이 있고 그 밑에 부회장, 고문, 총무 등이 위계 순으로 도열한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일한 덕분인지 나도 '과장님'이나 '팀장님' 소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직함에 집착하는 게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중요한 건 실질이다. 과장이든 팀장이든 그 과나 팀에 속한 직원이 하나도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국민 한 명 없는 나라의 왕으로 군림할 바에는 수많은 동료와 부대끼며 일하는 게 좋다
2015.11.24 포인트 카드의 천국
내 조국 영국인들을 볼 때마다 불쌍하단 생각을 한다. 포인트 카드 때문이다. 물건을 살 때마다 포인트(또는 아예 현금을 적립해주기도 한다)를 쌓게 해주는 포인트 카드 제도는, 단언컨대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운용하고 있다.
평소 나는 지갑 2개를 들고 다닌다. 하나는 신용카드나 명함 같은 걸 넣고 다니는 지갑인데 두께가 0.5㎝ 정도밖에 안 된다. 다른 하나는 백화점, 커피숍, 옷 가게 등에서 주는 각종 포인트 카드만 넣고 다니는 지갑이다. 그 두께가 과장 좀 보태서 벽돌만 하다. 길 가다 깡패라도 만났을 때 그걸 휘두르면 호신용으로 그만일 것 같다.
포인트 카드의 마력은 이런 것이다. 오늘 아침에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자 점원이 스탬프 하나가 찍힌 종이 카드를 주며 "10잔 마시면 머핀 하나를 공짜로 드립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진 머핀을 전혀 먹고 싶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어서 커피 10잔을 마시고 공짜 머핀을 받고 싶단 욕구를 참기 힘들다. 커피 10잔을 마실 때까진 그 커피숍만 갈 작정이다.
한국의 식당이나 커피숍, 화장품 매장 같은 곳에서 포인트 카드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건 장사 그만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같다. 처음 가는 가게에서 계산을 하고 나올 때 포인트 카드 같은 게 없다고 얘기하면 '여긴 다시 안 와야겠군' 하고 생각하게 된다. 식당 같은 걸 하겠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조언한다. "하다못해 쿠폰이라도 꼭 제공하세요."
가끔 포인트 카드 지갑을 잃어버리는 악몽 같은 상상을 하곤 했는데, 지난주 토요일 그 악몽이 실현되고 말았다. 나는 '포인트를 쌓지 못할 거야'라는 두려움에 떨며 쇼핑에 나섰지만, 가게 점원들은 친절하게 말해줬다. "괜찮습니다. 포인트 카드를 재발급받으신 뒤 1주일 안에 영수증과 함께 제출해주시면 적립이 됩니다." 나의 기우는 곧바로 끝났다.
2015.12.01 요절복통 서울 지하철
일요일 아침이면 지하철을 타고 한강으로 조깅을 하러 간다. 매주 지하철에서는 한 편의 희극이 펼쳐진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독실한 교회 신자들은 손에 성경을 들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 곁에 딱 봐도 하룻밤 내내 술 마시고 광란의 파티를 즐기다 첫차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올빼미족이 드러누워 있다. 한쪽은 성경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는데, 다른 쪽은 지하철에 타자마자 신발을 벗어던지고, 곧바로 코를 골며 곯아떨어진다. 자리 서너개를 차지하고 드러눕는 건 예사. 분명 제 정거장에서 못 내리고 수원·인천쯤에 도착해야 깨어날 것이다. 한겨울 아침 댓바람부터 무릎이 훤히 보이는 조깅용 짧은 반바지와, 형광 안전조끼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있는 외국인도 있다. 바로 나다.
때로 서울 지하철은 달리기 시합이 벌어진 운동장, 또는 헬스장을 연상시킨다. 뜀박질하는 승객들 때문이다. 집이 북한산 근처라 주말이면 지하철에서 숱한 등산객을 만난다. 이들은 해발고도 836m인 북한산 백운대는 거침없이 오르면서 지하철 계단은 걸어 올라가기 싫어한다. 꼭 노약자용 승강기를 타려고 든다.
지난주에는 노약자용 승강기를 향해 뛰어가는 등산객들에게 휩쓸렸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승강기를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렸다. 승강기 앞에서 걷고 있던 나는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밀려 넘어질 뻔했다. 세렝게티 초원의 배곯은 사자에게 쫓기는 한 무리 영양 떼도 이렇게 뛰진 않을 것 같다. 빈자리 경쟁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줌마들이 남자 1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도 놀랄 만한 움직임을 보인다.
19세기부터 지어진 런던 지하철은 도시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비좁다. 폐소(閉所)공포증을 느낄 것 같은 좁은 열차 안에서 사람들은 몸만 살짝 부딪혀도 서로 미안하다고 한다. 조용하고, 그래서 지루하다. 상대적으로 신식 인 한국 지하철은 현대적이고 널찍하다. 코미디와 스포츠가 펼쳐지는 역동적인 장소다. 두 나라 사람들의 지하철 문화가 다른 건 이 공간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2015.12.08 립스틱을 살 뻔한 이유
한국의 TV프로그램 중 가장 즐겨 보는 건 홈쇼핑 방송이다. 그걸 보며 물건을 사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즐겨 보는 건 사실이다. 홈쇼핑 방송의 가장 큰 장점은 물건을 안 사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홈쇼핑에서 파는 물건을 구경하려고 보는 게 아니다. 홈쇼핑에서 많이 파는 보험 상품이나 다용도 주방기구 같은 건 아무리 봐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나 같은 외국인도 홈쇼핑 방송을 보는 건 '쇼호스트(홈쇼핑 방송 진행자)' 때문이다.
쇼호스트라는 (약간 어색한) 영어 이름부터 흥미를 끈다. 사실 홈쇼핑 방송 진행자를 영어로 옮기면 'Home shopping presenter(홈쇼핑 프레젠터)'라고 하는 게 맞는다. 하지만 그런 지루한 이름보단 쇼호스트란 명칭이 훨씬 매력적으로 들린다. 게다가 영국의 홈쇼핑 프레젠터들은 그 이름만큼이나 지루하게 방송을 진행한다. 나 같으면 거기서 파는 물건을 공짜로 준대도 영국 홈쇼핑 방송을 보진 않을 것이다.
한국의 쇼호스트는 영어권 사람들에겐 마치 쇼나 서커스 진행자와 비슷한 직업으로 들린다. 뭔가 흥분으로 가득하면서도 이국적인 매력까지 갖춘 일을 하는 사람 같다. 게다가 쇼호스트들은 그 이름이 주는 감흥 이상으로 재밌는 일을 한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상품을 팔 때도 주눅 드는 법이 없다. 그들의 눈과 목소리엔 '이 제품은 정말로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이다'라는 확신이 가득하다.
지난주에 한 홈쇼핑 방송에서 립스틱을 파는 쇼호스트를 봤다. 그녀는 그 립스틱을 직접 발라보더니 연신 웃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이걸 바르니 한 5년, 아니 10년은 젊어 보여요." 내 눈에는 립스틱 색깔이 별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니 정말 그런 것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하마터면 그 물건을 살 뻔했다. 한국에 홈쇼핑 채널이 그렇게 성업 중인 것도 바로 이런 유능한 쇼호스트들 덕분이 아닐까.
2015.12.15 패션쇼하러 山 가세요?
'등산'을 영어로 옮길 때 'mountain climbing(마운틴 클라이밍)'이라고 쓰는 걸 종종 본다. 내 생각에 이는 오역이다. 한국식 등산을 영어로 옮기면 'hiking(하이킹)'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마운틴 클라이밍은 보통 엄홍길 대장처럼 알프스나 히말라야 산맥에서 하는 본격적인 등반을 가리킨다.
그런데 주말마다 한국의 온 산을 점령하는 등산객들의 옷차림이나 장비를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건지 헷갈린다. 그들 대부분은 에베레스트산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장비와 옷을 갖추고 있다. 아마 한국 등산객 대부분은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던 에드먼드 힐러리 경(卿)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힐러리 경이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라. 요즘 한국에서 힐러리 경처럼 입고 등산하면 비웃음당하기 딱 좋다.
영국에서 하이킹(한국식으로 등산!)에 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국 사람이 본다면 비웃을 것이 틀림없다. 보통 영국 사람들은 낡은 운동화에 코트 한 벌 걸친 허름한 옷차림으로 하이킹하러 간다. 영국의 야외에는 진흙탕이 많아서 좋은 옷을 입고 나갔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거기 비하면 한국의 등산로는 패션쇼 런웨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등산족(族)만 그런 게 아니다. 주말이면 서울 한강 둔치를 점령하는 자전거족을 보라. 그들은 한 대에 100만원이 넘을 것 같은 멋진 자전거에 LED 야광등(낮에 타는데 왜?)을 달고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쓸 것 같은 헬멧을 쓰고 질주한다. 조기축구회는 또 어떤가. 2년쯤 전 처음 조기축구회에 가입했을 때 이름이 적힌 유니폼 상하의 두 벌과 축구 전용 양말 세 켤레, 겨울철 운동용 패딩코트까지 지급받았다. 영국에서 조기축구회를 할 땐 보통 이런 식이었다. "내일 경기 있는데, 웬만하면 하얀색으로 입고 와."
영국에서 축구나 하이킹을 할 땐 '어디 자선단체에서 기부하고 남은 옷이나 장비 없나' 하고 찾아다닐 때가 많았다. 반대로 한국에서 축구나 등산을 하려면 반드시 지갑 사정부터 체크해야 한다.
2015.12.22 은은한 촛불이 그립네
"저렇게 작은 촛불이 어쩌면 이토록 멀리까지 빛을 비출까!"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이 대사를 보면 셰익스피어가 확실히 영국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영국에 가본 한국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한국에 비하면 영국은 암흑천지다. 거리도 어둡고 실내조명도 그리 밝지 않다. 그래서 촛불이 그렇게 멀리까지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이다.
영국에선 저녁이 되면 거리가 어둠에 잠겨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행인도 잘 안 보일 정도다. 한국의 저녁은 휘황찬란하다. 가로등은 물론,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간판이 거리를 환하게 밝혀준다. 처음 한국의 저녁 풍경을 본 나는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온 미래 도시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 한국의 가로등이나 실내등은 모두 엄청나게 밝은 LED 등을 쓴다. 영국에서 그만큼 밝은 조명을 쓰는 곳은 병원 수술실 정도일 것이다. 우리 집에도 LED 등이 있지만 나 혼자 있을 땐 잘 켜지 않는다. 너무 밝기 때문이다. 대신 셰익스피어의 촛불 정도 밝기인 램프를 켠다. 그게 내 눈엔 편하다.
사무실의 내 책상 한쪽에는 LED 등이 들어간 탁상등이 있다. 이 탁상등 조명도 내 눈엔 너무 밝았다. 다행히 몇 달째 전구가 고장 나 있는데 지나가는 직원들이 꺼진 탁상등을 보고 "고장 났나 봐. 고쳐야 하지 않아?"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괜찮다"며 손을 내젓는다. 언젠가 그들이 내 탁상등을 고쳐버릴까 봐 불안할 지경이다.
사무실에 사람이 없을 때면 형광등을 한두 개쯤 꺼버린다. 그 정도 밝기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사무실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이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어두워?" 그러곤 이내 사무실의 모든 형광등에 불이 들어온다. 사무실은 공항 활주로처럼 밝아진다. 그렇게까지 밝아야만 할까 하는 의문은 여기선 소용없다. 셰익스피어의 촛불이 그리워진다.
2015.12.29 '백세인생'이 웃긴다고?
요즘 트로트 가수 이애란의 '백세인생'이란 노래가 인기다. "못 간다고 전해라"는 가사와 공연 사진이 SNS를 중심으로 전파되면서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요즘 어느 송년회를 가나 이 노래가 꼭 화제에 오른다. 사람들은 이 노래가 웃겨서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물론 노래는 유쾌하고 듣기 좋다. 그래도 들으면서 웃진 못했다. 오히려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6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는 가사는 삶에 대한 아름다운 철학이 담긴 한 편의 시처럼 들렸다.
'백세인생'이 인기를 얻는 걸 보며 새삼 깨달은 게 있다. 10년 넘게 한국에 살았고 한국어로 제법 대화도 무리 없이 하게 됐지만 여전히 나는 대다수 한국인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렇다. 방송 중 꼭 한 번은 여장을 한 남자가 이상한 목소리로 말하거나 뚱뚱한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해 놀림감이 되는 게 나온다. 그걸 보면 웃기기보다 불쾌하다. 그래서인지 코미디 프로그램을 끝까지 본 적이 없다.
반대로 꼭 챙겨 보는 건 KBS '전국노래자랑'이다. 살면서 본 그 어떤 TV쇼보다 재밌다. 매주 노래도 못하고 춤도 이상하게 추는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주체 못 할 끼를 발산한다. MC인 송해 할아버지가 그들과 흥겹게 어울리는 모습도 보는 이를 웃게 만든다. 또래 한국인들에게 이걸 얘기하면 비웃음당하기 일쑤다. 그들은 "우리 엄마도 안 보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유행어 중에도 정말 웃기는 게 많다. 예를 들어 '쩍벌남'. 지하철에서 매너 없게 다리 벌린 남자를 저렇게 재치 있는 말로 표현하다니! 금수저의 반대말로 쓴다는 '흙수저'라는 단어나 거기서 착안한 '흙수저 빙고' 같은 것도 수준 높은 자학이 담긴 유머 같다. 그런데 이 얘길 하면 주변에선 그게 왜 웃기느냐는 반응이다. 물론 내가 이상할지도 모른다. 원래 영국인들은 이상한 유머 감각으로 유명한 민족이니까.
2016.01.05 '빨리빨리' 중독
한국에 온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빨리'라는 건 오래된 농담이다. 사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한국 어디에서 누굴 만나든 "빨리 주세요" "빨리 와" "빨리해" 같은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누군가를 '조금 느린 스타일'이라고 평한다면 그건 대체로 그이를 욕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빨리빨리' 문화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예전엔 내 동료가 일을 맡기면서 "최대한 빨리 해달라"고 하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엔 나도 그 "최대한 빨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상대에게 "천천히 해도 돼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싫어진다.
한국에 정착하기 전 스페인에서 1년 정도 산 적이 있다. 한국과는 반대로 아주 느긋한 국민성으로 유명한 나라다. 그 나라에선 '빨리빨리'라는 말 대신 'manana(내일)'라는 말을 자주 쓴다. 보통 이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다음 주'나 '다음 달'이라는 의미로 쓴다. 가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내일' 문화도 중독성이 있었다. 스페인에 살 때 보통 지각을 했고, 해변에 나가 노느라 일을 팽개친 적도 많았다. 스트레스란 단어 자체를 잊고 살았다. 대신 거기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 기억도 없다.
한국에선 항상 '빨리빨리'라는 말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그 결과 내가 해낸 일의 성과에 놀라게 된다. 이젠 사람들이 "혹시 언제쯤 끝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묻기도 전에 폭풍 같은 속도로 일을 마치는 법도 배웠다
부작용도 있다. 스페인에서 살 때와 달리 난 너무나 조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빨리빨리' 문화와는 거리가 먼 나의 모국 영국에 가도 변함없다. 가게에 가면 계산대 점원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그 점원에게 "좀 빨리하면 안 돼요?"라고 소리지르고 싶어진다. 한국이 날 망친 걸까. 그래도 난 남은 생을 이 나라에서 살 것이니 괜찮을 것 같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 팀 알퍼의 한국 일기 - 조선일보
2016.03.29 한국 선거는 재미있다
한국 선거 유세, 재미·활기 넘쳐
후보자는 옆 트인 유세 차량서 지지대 붙잡고 위태로운 연설
등산로마다 흰 장갑 낀 아줌마들 선바이저 쓰고 열심히 율동
따분한 서양선거와 확연히 달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선거가 별로 흥미롭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넘게 한국에 살고 있는 영국인인 내게 한국 선거는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이번 4·13 총선도 고대하고 있다.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대한민국 영주권자인 나는 선거권을 갖고 있지만 지방선거에 국한된다. 대한민국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지방자치 선거가 있을 2018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 선거일이 즐거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날이 공휴일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이제껏 선거일이 공휴일이었던 적이 없었다. 선거일에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나는 무척 사랑한다. 선거일이 공휴일이 아니라면 한국의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 같다. 아마 한국 사장님들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소리를 치지 않을까 싶다. "선거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민주주의도 좋지만, 우리는 지금 할 일이 태산이야!"
물론 한국의 선거가 즐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단지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선거 유세를 지켜보는 재미 또한 무척 쏠쏠하다. 유럽의 선거 유세는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다. 나이 지긋한 후보자가 비몽사몽 상태인 기자들로 꽉 찬 홀에서 연설하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의 선거 유세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활기가 넘친다. 후보자는 옆이 트인 선거 유세 차량에 올라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손으로 위태롭게 지지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천천히 손을 흔들며 거리를 돈다. 롤러코스터보다 더 아찔하고 불안해 보인다.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미소 짓고 서 있는 후보자는 십중팔구 중년을 넘긴 남성이다. 이들은 대개 풍채가 좋고, 머리가 벗어졌거나 혹은 가발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가발을 썼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부분 MC를 동반하는데, 이 MC들은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을 더욱더 모양새 없어 보이게 하는 수려한 외모의 젊은이들이다.
▲이철원 기자
선거철이 되자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후보자 한 명이 평일 퇴근시간에 맞춰 직장인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인근 지하철역 앞에 서 있다. 사람들이 쏟아져나올 때마다, 그녀는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인사한다. 그녀는 거의 매일 늦도록 미세 먼지와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 가득한 도로에서 유세 활동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외면한 채 자신의 갈 길을 바삐 걸어간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저희보다 훨씬 수고가 많으십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선 외국인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내 존재는 후보자들을 자주 혼란에 빠뜨린다. 온종일 허리 숙여 인사를 하다가 내가 등장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하다. '저 서양인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하나? 저 서양 사람이 투표권은 있을까?' 이렇게 자문하는 동안 땀 한 방울이 그들의 관자놀이 부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들은 대개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내가 빨리 사라지기만 기다린다.
선거 유세에 동원된 '알바생'들은 더 흥미로운 존재다. 선거철이 되면 유명한 등산로 입구마다 흰 장갑(왜 반드시 흰 장갑이어야만 하는 것일까?)과 커다란 선바이저를 쓰고 열심히 율동을 하는 아줌마들을 볼 수 있다. TV 방송도 선거의 재미를 배가한다. 2012년 대선 당시 Imgur나 9gag와 같은 세계적인 유머 사이트는 한국의 개표 방송을 캡처해서 올린 사진들로 가득했다. 한 채널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대결을 두 후보가 구르는 바위를 피하고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는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로 구성해서 보여줘 서양 네티즌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런 사진의 댓글에 한국인들은 "우리나라가 부끄럽다" 는 반응을 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인이 아닌 경우 "우리나라 선거도 이렇게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꽤 많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율동하는 아줌마 부대를 섭외하거나 음악을 커다랗게 틀거나 유세 차량 위에서 어색한 미소를 하고 거리 유세를 하지 않는다. 영국 사람들은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과장되고, 시끄럽고, 눈에 띄게 행동했다간 남들이 진지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러 번 선거를 지켜본 나로서는 영국 방식이 더 낫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맞다. 영국식 유세는 좀 더 진지해 보인다. 그러나 따분함을 피할 길이 없다. 전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정치를 지루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한국의 선거 유세는 놀랍도록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재미와 활기로 넘친다.
05.10 한국의 쿡방·먹방엔 특별한 게 있다
입안 가득 음식 넣고 씹는 모습, 초근접해 보여주는 한국 먹방
서양인들 눈에는 곤혹스러워… 영국 쿠킹쇼는 지나치게 따분
한국 먹방의 장점인 소통과 서양 먹방의 실용성 서로 배워야
최근 서양에서 한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의 음식 관련 프로그램도 서양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BBC와 CNN, 프랑스의 TF1 등은 쿡방의 남성 셰프들이 얼마나 많은 한국 남자들에게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잡게 했는지 보도하기 위해 많은 방송 인력을 한국에 파견했다. 영국, 스페인, 독일, 미국의 TV·라디오·신문·잡지 등도 유튜브 등을 통해 전파된 한국의 '먹방'이라는 경이로운 현상을 다루었다.
그렇다면 조만간 영국이나 미국 방송에서도 우리가 좋아하는 쿡방이나 먹방과 흡사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까.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미국·영국·프랑스 TV는 이미 음식 프로그램이 포화 상태이며 한국 사람이 즐겨 시청하는 프로그램들과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다.
우선 한국의 먹방은 서양인들이 시청하기에 충분히 곤혹스럽다. 서양인에겐 다른 사람이 먹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이 꽤 비위 상하는 일이다. 영국 TV의 푸드쇼에도 마지막에 잠깐 시식 장면이 등장하지만 상반신이 다 보일 정도로 좀 거리를 두고 촬영한다. 그런데 한국 요리 프로그램은 카메라를 출연자 얼굴에 바짝 들이대고, 그들이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입안 한가득 담긴 음식을 씹는 모습을 초근접 촬영해 보여준다.
대부분의 한국 음식 프로그램에서 포인트는 음식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인 것 같다. 필자의 미국인 친구 한 명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사실 그때는 한국에 먹방, 쿡방이 대세가 되기 훨씬 전이었다)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TV 켤 때마다 사람들 먹는 모습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계속 나와."
한국에서 꽤 오랜 기간 음식에 관한 글을 써 온 나는 그 시간의 절반을 한국 편집자들이 내 글에 시식하는 사진을 사용하지 못하게 말리는 데 써야 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장면이 담긴 사진을 고르는 것 같았다. 반면 서양 독자들에겐 사람들이 음식을 바라보거나 만드는 장면은 전혀 문제될 게 없지만, 국수를 후루룩 먹거나 두꺼운 스테이크 조각을 우물우물 씹는 사진을 마주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영국의 쿠킹쇼가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집에서 써먹을 수 있는, 손님을 초대해서 마치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인 양 선보여도 무방한 요리법을 알려주는 아주 실용적인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사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요리책의 TV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농담도, 어떤 화려한 의상도, 어떤 편집 효과도 그리고 어떤 걸그룹 멤버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쿠킹쇼는 의도적으로 매우 느리게 만든다. 많은 시청자가 집에서 펜으로 레시피를 받아 적고 가끔 방송국에 전화도 해서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불평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 쿡방의 열렬한 팬이라면, 아마도 영국의 쿠킹쇼는 (물리학자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금요일 밤에 물리학 강의를 듣는 것만큼 따분하게 느낄 것이다.
반면 영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쿡방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 산만하게 느껴진다. 영국과 한국의 쿠킹 프로그램을 비교하는 것은 마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영국 요리 프로그램은 주로 다큐멘터리와 같은 포맷이지만, 한국의 쿡방은 서양에는 존재하지 않는 예능 포맷으로 제작된다.
서양과 한국의 음식 프로그램이 이렇게 매우 다르긴 하지만, 양쪽 문화권 모두 서로의 방송에서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이 있다. 요리를 즐기는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요리 프로그램이 속도를 조금 늦추고 요리 테크닉이나 레시피 등 좀 더 실용적인 면을 부각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요리는 서커스 공연이 아니다.
서양인들도 한국의 쿡방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많다. 무엇보다 요리는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고 심각하기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서양 미디어는 다른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을 '기괴하다'는 관점 아래 먹방에서 다룬다. 서양 언론은 먹방의 긍정적인 면은 간과한 채, '푸드 포르노'라고 얕보며 먹방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해왔다. 그러나 PD나 전문 셰프들에 의해 메뉴가 결정되고 MC들이 허공에 대고 떠드는 서양의 요리 프로그램과는 달리, 한국 먹방에는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존재한다. BJ라고 불리는 비전문 호스트들은 먹방이 진행되는 내내 채팅방을 통해 올라오는 시청자 질문이나 댓글에 실시간으로 일일이 응답한다.
이것은 음식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며, 먹방 BJ들은 돈 많은 방송국과 상아탑에 살고 있는 PD나 국장으로부터 힘을 빼앗아 와서 대중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들이야말로 음식 방송계에 새롭게 등장한 홍길동이다. 영국에도 같은 일을 해낼 몇몇 로빈 후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06.21 코 세우려는 한국인, 코 깎으려는 영국인
성형수술 기술 진보하고 국제결혼 늘어난 미래에는
동서양이 비슷한 얼굴일 수도… 글로벌한 미적 가치에서 보면
무엇이 정말 아름다움인지를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한국인은 비교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 한국 사람들이 서양인에게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의 하나는 "연예인 중 누구의 외모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질문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지 꽤 오래다. 내 답변이 질문한 사람을 당황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들을 한국인들이 매력적이라 여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당신네 서양 사람들은 취향이 정말 독특해"라는 뉘앙스가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내가 모든 서양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김태희나 수지, 김수현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얼굴에 큰 매력을 느끼는 서양인들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이 세 명의 스타는 유럽이나 남미에서도 두꺼운 팬층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문화적 차이에 따라 미(美)의 기준이 엄청나게 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나의 모국 영국에서는 돌팔이 점쟁이들이 미혼 여성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던진다. "당신은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을 만나겠어." 이런 예언은 그녀들의 입가를 올라가게 한다. 일반적으로 영국인은 피부가 매우 창백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햇볕에 그을린 가무잡잡한 피부를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낀다. 조지 클루니나 제니퍼 로페즈의 인기 비결에는 그들이 가진 어두운 톤의 피부도 한몫한다.
하지만 서양에서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원래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한때 서양에서 이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꼽혔지만, 오늘날 그녀는 최고의 미인이 되기에는 너무 창백하고 다리가 짧다. 루벤스의 화폭에 담긴 여성들도 대개 창백한 피부와 통통한 몸매를 지녔다. 오늘날 영국에서 뚱뚱하고 창백한 피부는 가난과 관련이 있다. 식단은 저급하고 햇살이 가득한 나라로 휴가를 갈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나이 든 사람들은 더욱― 까무잡잡한 피부를 선호하지 않는다. 여기선 이영애처럼 하얀 피부를 지닌 미녀를 좋아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얼굴형의 호불호에도 큰 차이가 있다. 서유럽에선 동유럽 슬라브 여성을 미인으로 여기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높은 광대뼈를 지녔기 때문이다. "He has cheekbones you could hang a coat on(그 남자 광대뼈는 코트를 걸어도 될 만큼 높아)"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욕처럼 들리겠지만, 영어에선 아름다운 얼굴형을 가진 것에 대한 큰 칭찬이다. 내 부모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나는 광대뼈가 꽤 많이 튀어나온 지인을 소개해 드렸다. 한국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웠던 부모님은 그 후로 그녀를 "예쁜 친구"라고 불렀다. 정작 그녀는 "솟은 광대뼈 때문에 예쁘다는 소리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서양에서는 광대뼈 확대술이 매우 흔한 성형수술 중 하나다. 광대뼈에 하이라이트를 주어 강조하는 메이크업 또한 매우 인기가 높다. 한국에서는 정반대다. 한국 여성들에겐 광대뼈 축소술과 광대뼈를 감추는 이른바 컨투어링 메이크업이 인기다.
미국 성형수술협회에 따르면, 작년 미국에서 얼굴 중 성형수술이 가장 많이 행해진 부위는 코라고 한다. 서양인들의 경우 코 성형수술은 대개 코의 크기를 줄이는 수술이다. 나 또한 이 통계에 아주 공감한다. 어렸을 때 나는 커다란 코 때문에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당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많은 사람이 내 높은 코를 칭찬하는 것 아닌가! 한국인도 코 성형을 많이 하지만 축소술이 아닌 콧대나 코끝을 높이는 수술이 일반적이다. 2013년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코 세우기 수술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시술되는 성형수술이라고 한다.
내가 한국인에게 어떤 한국 사람이 예쁘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면, 그들은 대부분 쌍꺼풀이 있는 동그란 눈을 가진 얼굴을 꼽는다. 서울 강남은 이런 눈을 갖게 해주는 성형외과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서양인은 절에 앉아 있는 부처님 눈처럼 작고 가는 눈을 가진 한국 여성을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동양 미인으로 여긴다.
서양인들은 코를 줄이려고 하고, 한국인들은 코를 높이려고 하는 현대는 정말 이상한 아이러니의 시대인 듯하다. 서양인들은 작고 가는 눈에 매력을 느끼지만, 한국 사람들은 크고 동그란 눈을 원한다. 아마도 미래에는 성형수술 기술의 진보와 국제결혼 증가로 서양인과 동양인이 비슷한 얼굴을 하고 다니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중용의 미덕에 접근하는, 전통적인 동·서양 얼굴의 완벽한 중간 지점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글로벌한 미적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정말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08.02 영국에는 뉴맨, 한국에는 셔터맨
다정다감하나 소심한 英 뉴맨, 매사에 도움 안 되는 韓 셔터맨
영국이나 한국이나 대부분 남자는 여성을 진심으로 돕고 싶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몰라
남자들에게 한 번만 기회를
나는 남자다. 남자로서 내가 집에서 맡은 역할은 모기 잡기, 막힌 변기 뚫기, 헐거워진 나사 조이기, 그리고 분리수거 등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가끔 스스로 반문하곤 한다. "만약 여자들이 침팬지를 잘 훈련해 이런 일을 시킬 수 있다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이런 일을 맡길까? 잘 훈련된 침팬지를 찾는 순간, 혹시 우리를 버리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저명한 조사 기관인 가너 서베이가 몇 년 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자들이 생각하는 남자는 '다림질을 할 줄 모르며, 아내나 여자 친구에게 항상 잘못된 사이즈의 옷을 사다 주고, 춤에도 전혀 일가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근본적으로 여자는 우리 남자들이 다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지구 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 생각이 옳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증명하는 남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고향 영국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다. 그곳에서 영국 남자들의 무능력한 모습에―특히 대형 마트에서―무척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영국 남자들은 쇼핑한 음식을 차 트렁크에 어떻게 실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들은 달걀, 토마토, 그리고 얄팍한 통에 든 요구르트로 밑바닥을 채운 후 그 위에 무거운 것을 올린다. 여자들은 이런 영국 남자들의 어리석음을 즉시 감지하고 쇼핑한 것들을 신중하게 다시 트렁크에 채우기 시작한다. 그동안 남자들은 차 옆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어떤 마트를 가더라도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시켜 주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마트에 홀로 남겨진 남자들은 마치 세렝게티 공원 한가운데서 무리를 놓치고 길을 잃은 한 마리 가젤처럼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몇 십 년 전부터 '뉴맨(New Man)'이 등장했다. 뉴맨은 기성세대의 남자들과 매우 다르다. 요리에도 꽤 일가견이 있고, 여성에게 다정다감하며 가사를 즐겨 돕는다. 문제는 뉴맨들 또한 기성세대의 남자들과 똑같이 쓸모없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을 너무나도 두려워하는 그들이 여자들에게 치근덕거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미국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 "뉴맨들은 여자에게 사귀자는 말을 꺼낼 줄도 모른다"고 불평했다. 아마도 여자들에게 뉴맨과의 결혼 생활은 행복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과의 연애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을 것이다.
▲/이철원 기자
한국에서 십여 년을 사는 동안 나는 무능한 남자가 되는 한국만의 독특한 방식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셔터맨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셔터맨이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셔터맨이 되는 것을 목표로 그들의 인생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식당에서 아내를 돕고자 할 때마다, 자신들이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증명하게 된다.
손님이 김치를 더 달라고 부탁하면, 셔터맨은 일단 주방으로 들어간다. "김치 어디 있어?" 주문 들어온 세 가지 음식을 마무리하느라 분주한 아내에게 질문을 던진다. "선반 위에 있는 통에 있는데." 아내가 대답한다.
"어떤 선반?" "맨 위에 있는 선반."
"무슨 색 통에 들었어?" "빨간 통."
"이거? 어떤 접시에 김치를 담아야지?"
결국 계속되는 질문에 참다못한 아내는 김치가 들어있는 통을 재빨리 낚아채서 접시에 김치를 담아 손님에게 가져다주고 다시 김치통을 원래 자리에 돌려 놓는다. 그리고는 레이저가 나올 듯한 눈길로 남편을 쏘아본 후, 주방으로 들어가서 빠른 손놀림으로 일을 계속한다. 낙담한 셔터맨은 이미 열받은 아내를 성가시게 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TV 리모컨을 만지작대며 채널을 돌려댄다.
물론 약삭빠른 남자라면 이 점을 교묘히 이용할 것이다. 그들의 은밀한 공식은 바로 이것이다. '여자들이 무엇을 부탁하든지, 완전히 엉망을 만들어 놓는다.' 아내가 설거지를 부탁하면 접시 뒷면에 세제 거품을 고스란히 남기고, 청소기를 돌리라는 부탁을 하면 진공청소기를 망가뜨리고, 음식을 해달라고 하면 이제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고약스러운 화학 실험의 결과물을 만들어라. 만약 제대로 해낼 수만 있다면, 당신의 남은 일생 다시는 이런 귀찮은 일을 떠맡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대부분의 남자는 이렇지 않다. 진심으로 여자들을 돕고 싶지만,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잘 모를 뿐이다.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그리고 훈련한 침팬지로 우리를 대신할 생각은 제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09.06 유행대로 한국인, 내 멋대로 유럽인
한국엔 뭉크 같은 예술가 없고 유럽엔 엑소 같은 예능인 없어
독특한 개인주의자 많은 유럽, 본능적으로 유행 거부하고
조직·팀워크에 탁월한 한국, 옷에서도 유행·주류 추구해
한국은 왜 톨스토이나 뭉크 같은 독창적인 예술가를 배출하지 못했을까? 반면 유럽에서는 왜 엑소나 트와이스같이 완벽한 춤 실력을 보여주는 예능인이 탄생하지 못했을까? 한국인과 유럽인의 패션에 대한 너무나도 다른 접근 방식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올가을 인천공항에서 런던까지 갈 계획이 있다면 패션에 관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인천공항에 나온 사람 대부분은 카키 외투, 청바지, 긴 팔 티셔츠 등을 입고 있다. 하지만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앞에 지나가는 여성은 두꺼운 겨울 외투에 스카프를 두르고 털 달린 부츠를 신고 있다. 그 뒤로 지나가는 남녀 커플 중 남자는 두꺼운 니트 스웨터를 입고 있고 여자는 손바닥만 한 탱크톱 차림에 여름 샌들을 신고 있다.
한국 공항에서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날씨를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날씨와 계절에 적합한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꺼운 양모 스웨터와 비치 웨어가 혼재한 영국 공항에서 사람들 옷차림만으론 바깥 날씨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공항을 벗어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밤처럼 어두컴컴하고 구름이 가득한 회색 하늘 아래로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지나가고,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데 검고 긴 코트와 두꺼운 블랙 진 아래로 군화를 신은 10대와 마주칠 것이다.
서양, 특히 유럽에서 '무엇을 입느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도구다. 내가 영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의 일화다. 내 동료 한 명은 언제나, 심지어는 추운 겨울에도 반바지만 고집했다. 그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그는 칼바람 부는 날에도 절대 긴 바지를 입지 않았고 춥다는 사실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에게 춥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그는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전혀요. 오늘 같은 날씨가 반바지 입기에 딱 좋죠."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한국은 다르다. 겨울에 짧은 여름옷을 입고 다녔다간 "오, 스타일 독특하네"라는 평가 대신 뭔가 잘못된 사람 취급당할 게 분명하다. 어떤 패션 아이템이 인기를 얻으면, 한국의 거의 모든 패션 브랜드가 앞다퉈 그 상품을 카피해 출시한다. 한국인 대부분은 개성 있는 스타일로 트렌드 리더가 되기보다는 최근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주류에 속하길 원한다.
두 집단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패션에 접근한다. 한국인은 새로운 패션 아이템이 유행을 타면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한다. 반면 유럽인은 본능적으로 유행을 거부할 방법을 찾는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와 서양 사회가 다른 방식으로 조직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조직을 만들어 일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팀워크를 발휘하는 데 탁월하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수많은 한국 보이 밴드와 걸그룹이 바로 그 예다. 소위 칼군무라 불리는 일사불란하게 맞아떨어지는 춤 동작은 서양 팝그룹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세계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회사의 각 부서는 소그룹을 만들어 업무를 매끄럽게 진행한다.
반면 유럽의 사무실에서 소그룹을 만들었다간 언쟁만 벌이다가 끝내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할 것이다. 유럽인들은 개인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니체는 삶 대부분을 은둔자로 살았다. 그는 '실스 마리아의 은자(隱者)'를 자칭하며 작품 대부분을 스위스의 깊은 산 속 외딴 오두막집에서 집필했다. 독창적인 팝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 소설가 톨스토이와 마르셀 프루스트, 화가 뭉크 또한 은둔형 인간들이었다.
한국은 아직 니체나 보위, 뭉크 등을 배출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배출하기 힘들 것 같다. 한국인이 창의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유럽인과 달리 혼자인 상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베토벤이나 반 고흐처럼 광기 넘치는 고독한 천재가 유럽인의 전형이다.
독특한 개인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때때로 내가 남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외롭게 찾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인에게 홀로 작업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달갑지 않은 경험이다. 한국인들은 함께 일할 때 더 많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이 단체의 일부에 속하는 것은 비슷한 옷을 입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아마도 어떤 잠재의식이 한국인에게 작용하는 것 같다. 반면 서로 다르게 옷을 입으려는 유럽인들은 옷을 통해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 무리에서 분리될 수 있다.
유럽인들의 개인주의적 사고와 한국인들의 집단주의적 사고는 양쪽 문화권의 생활 방식에서 다양한 측면을 통해 드러나지만,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해 주는 것은 '옷'이다.
10.18 비를 향한 한국인과 영국인의 은밀한 사랑
영국엔 끊임없이 비 오지만 대부분 우산 안 갖고 다녀 "비야 그냥 말리면 되지…"
한국인은 비오는 날이면 발라드·부침개 떠올리며 혼자만의 고독 즐기는듯
내 할아버지는 걷기를 무척 좋아하셨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하자 숲으로 골목길로, 긴 산책길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우리가 집을 나서기 전 하늘에 잿빛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나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봤다. "할아버지, 비 오면 어떻게 해요?" 할아버지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럼 빗속을 걸어보자꾸나!"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내 할아버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할 것이다. 한국에서 근무 시간 중에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사무실 전체가 술렁인다. "어머, 나 우산이 없는데!"라고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어떤 이들은 동료에게 간절히 애원한다. "혹시 남는 우산 있어?" 아니, 이 나라 사람들은 몸이 설탕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거야? 왜 이리 비를 무서워해?
영국에는 정말 여러 종류의 비가 있다. 맑은 날 갑작스럽게 지붕을 뚫을 기세로 쏟아지는 비, 며칠간이고 계속되는 이슬비….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즐겨 보는 이라면, 영국 날씨가 어떤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선수들은 대개 빗물 때문에 쩍 들러붙은 유니폼 차림의 물에 빠진 생쥐 몰골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비가 오는데도, 영국인 대부분은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중절모를 쓴 정장 차림에 검은 장우산을 든 '영국 신사'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 이미지 속의 모습은 몇십 년 전까지는 사실이었다. 그때 런던에서는 이런 차림의 남성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멋진 신사에 대해 한국인이 잘 모르는 게 있다. 영국 신사의 우산이 사실은 액세서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접은 장우산이 정장과 모자에 어울리지만, 펼쳐든 우산은 전체적인 실루엣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영국 신사들은 우산을 펴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비가 쏟아질 때 영국 사람들의 대처법은 '그냥 흠뻑 젖는다'이다. 지금 영국 사람들에게 왜 우산을 안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비는 그저 물인데, 젖는다고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그냥 말리면 됩니다."
11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만큼 비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그 어디서도 본 적 없었다. 한국인은 우산이 없으면 신문으로 머리라도 가린다. 내게는 어처구니없다고 느껴지는 상황이다. 신문은 읽기에는 좋지만 방수 기능은 없으니까. 신문이 없으면 손바닥을 펴서 머리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젖지 않게 가린다. 한국인들은 종종 내게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는 산성비가 많이 내리는데 그냥 맞았다가는 대머리가 될지도 몰라." 과연, 그럴까? 나는 한국에 온 이후 비 오는 날 달리기를 자주 하는데 머릿속까지 흠뻑 젖은 적이 셀 수 없지만, 탈모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비를 대하는 한국인과 영국인의 태도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르다.
영국을 떠나 한국에서 오래 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나를 포함한 영국 사람들은 절대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벌린다는 것이다. 비에 젖는 것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자신이 결코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영국 국가는 '나는 우산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가 자랑스럽다'가 되어 마땅하다. 영국인들은 어떤 스포츠이건 쏟아지는 빗속에서 하는 경기를 좋아한다. 비가 내리면, 영국인들은 공원으로 몰려나가 축구공을 차며 흥분한 오리처럼 진흙탕에서 슬라이딩을 해댄다. 우리는 비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맨유에서 뛴 박지성은 이미 알겠지만, 맨체스터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도시 중 하나다. 그 맨체스터에는 이런 민요가 전해져 내려온다. '비가 오는 날 맨체스터로 나를 데려가 주오/ 앨버트 광장에서 내 발을 씻고 싶소/ 나는 자욱한 안개가 너무나 그립소/ 나는 비가 쏟아질 때만 진정으로 행복을 느낀다오."
한국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야구 경기, 야외 콘서트, 간혹 친구와의 약속까지 모든 일정이 취소된다. 그러나 나는 사실 많은 한국인이 비 오는 날 집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긴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살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한국인과 영국인의 비에 대한 집착이 희한하게도 아주 닮았다는 것이다. 영국인은 비에 마초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즐긴다. 물웅덩이에서 첨벙대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지를 자랑한다. 반면 한국인은 비 오는 날이면 집에 들어앉아 감성적인 발라드를 틀어놓고 부침개를 떠올리며 멜랑콜리한 혼자만의 고독을 즐긴다. 그러니 비에 대해서만큼은 영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모두 은밀하고도 치열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밖에.
2016.11.29 마늘과 감자, 한국과 영국의 소울 푸드
한국은 마늘의 메카… 1인당 소비량 전 세계 최고일 것
영국인은 감자에 집착… 끼니마다 먹으며 안정 찾아
마늘과 감자는 가슴으로 전달… 열정 일깨우고 영혼 어루만져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먹어본 적 있는가? 아직 못 먹어본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것은 올리브 기름과 고추, 마늘을 넣어 만든 아주 간단한 파스타 요리다. 나는 한국에서 먹는 이탈리아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알리오 올리오만은 꼭 한국에서 맛볼 것을 추천한다.
이탈리아에서 이 음식을 주문하면 큰 실망을 하게 될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인들은 4~6인분의 파스타를 만드는 데 마늘을 고작 두 쪽 정도 사용한다. 한 접시에 많아야 마늘 반쪽이 들어가는 셈이다. 반면 한국에서 먹는 알리오 올리오에는 파스타만큼이나 많은 양의 마늘이 들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 만드는 방법을 잠깐 살펴보자. 먼저 기름에 마늘 한 쪽을 넣어 삼분 정도 볶은 뒤 마늘을 제거한 기름에 파스타를 요리한다. 솔직히 파스타에 마늘이 들어갔는지도 알아채기 어렵다.
나는 입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라, 영국 출신이다. 내 유년 시절, 치과 의사인 아버지는 평일에는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피하셨다. 환자 입을 들여다보며 마늘 냄새로 그들을 불쾌하게 할까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연인들은 데이트 전날부터 마늘을 멀리하고 직장인들도 중요한 미팅 전날엔 마늘을 피한다.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이탈리아인들만큼 적은 양의 마늘을 쓴다―을 '마늘 중독자'라 부르는데 사실 프랑스 사람들은 요리하기 전에 마늘의 강한 맛을 줄이기 위해 마늘 안에 들어 있는 녹색 줄기를 제거하는데도 그렇게 부른다.
마늘의 메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이다. 한국은 지구 상에서 1인당 마늘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런던에 살던 시절, 한국 친구들이 닭볶음탕을 만드는 것을 처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친구가 마늘을 까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다섯 사람 먹을 음식에 쓴다며 마늘을 무려 한 통이나 깐 것이다. 영국인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김성규 기자
한국 음식이 맛있는 이유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듬뿍 들어간 마늘이다. 한국에는 마늘 냄새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다. 한국에서 11년을 산 나 또한 이제 여느 한국인처럼 마늘 없이는 못 살게 됐다. 나는 큼직하게 자른 생마늘을 쌈장에 찍어 깻잎에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영국에서라면 이런 음식을 먹고 밖에 나가도 되는지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늘을 먹고 있노라면, 마늘의 조용한 속삭임을 느낄 수 있다. "마음껏 드세요. 이곳에 마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어서 마늘을 먹어요!"
영국 사람들 또한 나름대로 집착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감자다. 영국을 방문한 적 있는 한국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영국 대표 음식인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를 먹어봤지만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어." 이 말은 언제나 나를 서글프게 만든다. 그들은 고작 여행객들로 붐비는 런던의 어느 펍(pub)에서 칩스를 먹어보고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청소년 시절, 피시 앤드 칩스 전문점에서 갓 튀겨낸, 입천장을 델 정도로 뜨거운 감자튀김을 먹어봤다면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식당들은 대개 감자튀김에 소금과 식초를 뿌린 후 신문지에 둘둘 말아 준다. 쌀쌀한 일요일, 축축하게 젖은 공원에서 친구들과 세 시간 내내 공을 찬 후 빨개진 코에서 콧물이 떨어질 때 맛보는 뜨거운 감자튀김. 식초의 시큼함이 느껴지는 그 포슬포슬한 감자의 온기는 손가락을 타고 입으로 전해서 목구멍을 넘어갈 때 온몸을 훈훈히 덥힌다.
영국인은 끼니마다 감자를 먹어야 한다. 따뜻한 감자는 우리 영국인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감자를 삶아 으깨든, 튀기든, 오븐에 익히든 요리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감자 한 포대가 부엌에 있기만 하면, 영국인의 삶은 그런대로 흘러간다. 히틀러는 2차대전 중 해군으로 영국을 봉쇄해 식량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영국인들에게 굶주림의 고통을 주려 했다. 그 계획은 실패했다. 영국의 밭에 감자가 자라기 때문이다. 감자가 있는 한 영국인들에게 생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빨갛게 익은 이탈리아 토마토, 섬세한 맛의 프랑스 치즈를 영국인들에게서 빼앗아간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우리에게 감자만 있다면, 브렉시트를 강행하든 말든 영국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감자는 주목받는 식재료는 아니다. 감자라는 이름이 들어간 몇 안 되는 음식 중 '감자탕'조차 실은 감자가 주인공이 아닌, 돼지 등뼈와 엄청난 양의 마늘이 주인공이다. 감자와 마늘은 영국인과 한국인의 열정을 채워주는 음식이다. 감자와 마늘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위를 건너뛰고 곧장 가슴에 전달돼 삶을 향한 열정을 일깨운다. 한국인의 마늘과 영국인의 감자는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2017.01.10 한국과 영국의 미신, 그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한국에서 반가운 손님인 까치, 영국에선 불행과 不妊의 징조
갖가지 금기에 흔들리는 게 인간… 손흥민도 골 넣은 축구화만 신어
"미신은 원시적 사고" 비난보다 문화 다양성의 보루로 존중해야
최근 몇 달간 한국 언론사마다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수많은 국민의 이메일과 전화, 투고가 빗발쳤다. 그중엔 무속인들도 최씨에게 분노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한국 무신교연합회 이원복 총재는 "최씨가 우리 무속인들을 부정한 사기꾼 집단으로 보이게 했다. 생업으로 열심히 무속에 종사하는 무당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지적했다.
무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에서 나는 이 말에 꽤 공감한다. 나는 무속인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곳이 미신을 따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노란색을 불행과 결부하는 스페인에서 살았다. 지금도 노란색 옷 입기가 어쩐지 꺼려진다. 그 후 오래 거주했던 러시아에서는 실수로 옷을 거꾸로 입으면 액운을 쫓아내기 위해 재빨리 그 옷을 벗고 자기 맨살을 찰싹 때린다. 어린 시절 살았던 프랑스는 개똥을 오른발로 밟으면 불행이, 왼발로 밟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 나라다. 지금 내가 사는 한국은? 사람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면 안 되고, 밥공기에 젓가락을 수직으로 꼽지 말아야 한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걷지 말라는 새로운 금기도 마음에 새긴다.
미신적 징조는 우리가 사는 장소에 따라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까치는 한국에서 반가운 손님을 상징하지만 내 고향 영국에서 홀로 있는 까치는 불행의 징조다. 'One for sorrow/ two for joy/ three for a girl/ four for a boy.' 중세로부터 전해지는 이 영국 민요의 가사는 '까치 한 마리를 보면 곧 불행이 찾아오고, 두 마리를 보면 행운을 기대해도 좋고, 세 마리는 딸을, 그리고 네 마리는 아들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철원 기자
영국에선 황새가 임신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영국의 젊은 부부는 황새를 보면 기뻐한다.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준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아기의 탄생을 기대하며 가슴 설렌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이런 미신이 "나는 어떻게 태어났느냐"고 묻는 자녀에게 "황새가 물어다 주었다"고 대답하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지금도 서양 유아용품에는 황새가 아기를 면 보자기에 싸서 뾰족한 부리에 물고 다니는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그럼 한국에선? 우리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콩나물을 씻는데 뿌리가 하늘을 향하네. 조만간 아기 소식이 있겠는데."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과학 이전 시대에는 미신이 정당하고 타당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미신은 매우 부적절하다." 나는 프로이트의 논리에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축구 팬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지금 바로 축구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려 교체 투입 직전의 선수를 보자. 반지에 키스하거나 하늘을 향해 중얼대며 손짓을 하고는 가슴에 십자가를 수없이 그어댄다. 그러고는 경기장을 밟기 직전 허리 숙여 손으로 땅을 만진다. 미사를 집전하는 천주교 사제도 이렇게 길고 복잡한 절차를 밟지는 않을 것이다. 맨유의 주장이었던 폴 인스는 경기장 입장 때 반드시 모든 사람이 들어간 후 마지막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잔디를 밟기 직전에 유니폼을 입었다. 영국 대표팀 주전 골키퍼였던 데이비드 제임스는 자신이 경기 전에 행하는 의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 머릿속에서 기계처럼 작동하는 그 의식의 모든 절차는 너무나 복잡해서 한 페이지는 족히 채울 것이다." 그는 경기 전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화장실에 가서 사람들이 다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벽에다 침을 뱉고 경기장에 나갔다.
한국 축구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중 몇 명만 예를 들자면, 김신욱은 경기가 진행되는 90분 동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의 영적인 존재와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독일 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손흥민은 인터뷰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득점한 다음 경기에 같은 축구화를 신고 나간다. 하지만 몇 경기 동안 득점하지 못하면 다른 축구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인간은 미신에 연연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오늘날 우리는 조상의 원시적인 사고 체계와 많이 다르게 생각한다고 믿는다. 종교와 과학이 그렇게 믿게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제자인 칼 융은 우리가 '원시적 사고 체계'라고 말하는 것이 현대인의 잠재의식 속에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것은 변치 않고 전해오는 미신들을 통해 드러난다고 했다. 미신은 지역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지구의 거리가 좁혀지며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가 쇠퇴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그것을 나쁘고 비과학적이라 비난할 게 아니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02..28 '나 홀로 집에'를 꿈꾸는 남자들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집안 질서 잡는 건 여자들
어머니, 아내가 집을 비우면 규칙 탈출을 꿈꾸던 남자들은
똥밭을 뒹구는 돼지처럼 '지저분한 평온'을 즐긴다
인기 방송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많은 한국인에게 싱글 라이프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여기 등장하는 남자 연예인들은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혼자서 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귀가 당당하게 적혀 있다. '대한민국 1인 가구 453만 시대, 이제는 1인 가구가 대세! 연예계 역시 3분의 1은 1인 가구.'
한국의 트렌드를 쥐락펴락하는 남자 연예인들이 혼자 산다면, 아마도 미래에는 더 많은 젊은 남자가 혼자 살게 되지 않을까. 나 또한 인생의 많은 시간을 혼자 살았는데 한국의 독신남과 내 모국인 영국의 독신남에겐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영국인은 대개 18세부터 혼자 산다. 대학에 진학할 때, 고향이 아닌 다른 도시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대다수는 그렇게 3~4년을 살고 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남자에게 부모의 집을 떠나 혼자 사는 첫해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의 나날이다. 내가 처음 혼자 살았던 곳은 작은 기숙사의 손바닥만 한 방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방은 1년 내내 여기저기 벗어 던진 옷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고 침대는 어수선하며 언제나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벽에는 반쯤 벗은 여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에 두 번씩 청소기를 돌리면서 내게 방 좀 치우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셨다. 내가 반쯤 벗은 여자들 사진을 벽에 붙이면 어머니는 그것을 떼어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10대 시절 테크노 뮤직을 즐겨 들었는데, 어머니는 내 방 문을 열고는 시끄러운 음악 좀 끄라고 하셨다. 그러니 대학 시절을 보낸 시끄럽고 지저분한 그 방은, 마치 자기 똥 위를 신나게 뒹구는 돼지처럼, 부모님의 규칙을 거부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던 반항의 소굴이었던 셈이다.
엄마이든 아내이든 가족과 함께 사는 모든 남자는 잔소리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한다. 산더미 같은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다. 사실 많은 남자가 옷가지가 구겨지거나 말거나 구석에 쌓아 놓고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영국이나 한국이나 모든 집은 여자가 통제한다. 그래서 만약 어머니가 며칠 여행을 가시거나 맞벌이 아내가 출장을 가게 돼 갑자기 혼자 있게 되면, 우리 남자들은 자유로움을 만끽할 드문 기회에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집에 홀로 남겨진 남자는 10대 시절로 돌아간다. 우리는 속옷 바람으로 소파에 앉아 맥주를 병나발 불며 "꺼억~!" 하고 시원하게 트림할 수 있다. 유혈 낭자한 UFC(종합격투기)를 마음껏 봐도 "그걸 꼭 봐야 해?"라는 핀잔도, 언짢아하는 한숨 소리도, 쯧쯧 혀 차는 소리도 들을 일 없다. 한국에서 집에 홀로 남겨진 남자는 대개 라면을 먹는다. TV나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냄비째로 라면을 먹는 장면은 "내게 여자 따위는 필요 없어"라는 피켓 시위라도 하는 것 같다. 라면 먹은 설거지조차 귀찮다면 컵라면과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선택하면 된다.
영국 남자에게는 '치즈 샌드위치'가 라면 노릇을 한다. 잘라진 빵, 칼, 체다 치즈 덩어리, 접시만 있으면 된다. 샌드위치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30초 정도 돌려서 치즈를 약간 녹여 먹으면 더욱 맛있지만 그냥 먹어도 된다. 영국의 한 일간지가 40년간 오직 치즈 샌드위치만 먹었다고 주장하는 노년의 독신 남성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다. 그의 건강 상태가 궁금했는지 어느 의사가 검사해봤더니 남자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컵라면에 해당하는 음식도 있다. 바로 토마토소스로 조리한 콩 통조림(baked bean)이다. 약간의 호사를 떨고 싶다면 콩 통조림을 냄비에 데워 버터 바른 빵에 올려 먹으면 된다. 영국에서 알고 지내던 한 독신남이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버터 바른 빵에 콩 통조림을 올리고 오렌지 주스를 곁들이면 우리가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 비타민, 무기질을 모두 섭취할 수 있어."
우리 중 누군가는 자신이 원해서, 또 누군가는 우리 같은 남자를 견뎌줄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다른 누군가는 운명에 의해 혼자 산다. 나머지 남자들은 사랑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우리 어머니처럼 변해가는 잔소리꾼 아내에게 적응하며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남자는―한국인이든 영국인이든, 유부남이든 독신남이든―때때로 마음속에 갇혀 있던 돼지를 풀어줄 수 있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혼자만의 지저분한 평온' 속으로 탈출을 꿈꾼다. 저속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서 라면이 가득한 양은 냄비, 혹은 통조림에서 막 꺼낸 차가운 콩이 주는 요상한 편안함을 즐기고 싶어 한다.
04.11 마흔이 되어 찾은 즐거움
걸 그룹 흥미 시들해지고 근육도 빠져나가 우울해져
중년의 위기 탈출 꿈꾸며 英 남자들 오토바이 타고 韓에선 머리 눈썹 염색
40세, 나쁘지만은 않더라!
나는 올해 40세가 됐다. 사실 한국 나이로 따지자면, 진작에 40세가 됐다. 하지만 나는 영국 출신이라 한국 나이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아직은 40세가 안 되었노라고 지난해 내내 되뇌었다.
내 또래, 또는 나보다 먼저 겪은 이들은 잘 알겠지만, 40세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아버지의 40세 생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아버지는 동업으로 치과를 꽤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계셨다.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적당한 크기의 집과 자동차 두 대를 소유했고 가끔 가족끼리 휴가를 떠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아버지에 비하면 40세 되도록 내가 이룬 것은 참으로 보잘것없게 느껴진다. 물론 당시 아버지에게도 세상이 온통 장밋빛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청춘을 떠나보내고 40대에 접어든 여느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빚을 갚느라 정신없으셨을 테고, 많은 스트레스와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이다.
30대는 그런대로 잘나가는 시기이다. 한 결혼 정보 회사는 회원의 평균 연령이 남자 36세, 여자 33세라고 한다. 현대사회의 결혼 적령기는 외모는 아직 젊어 보이지만 충분한 인생 경험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만큼 축복받은 30대이다. 그러나 40세가 되고 보니 모든 게 빠른 속도로 변하기 시작한다. 근육은 약해졌고, 피부는 처지기 시작했다. 정치적 성향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10년 전 입었던 옷은커녕 지난해 입던 옷도 몸에 맞지 않고,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 우울하게도 엄청난 양의 새치가 머리뿐 아닌 몸 여기저기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총알도 튕겨낼 것같이 느껴지던 30대 때는 몰랐던 세상이다.
40세가 되니 회사 생활 또한 매우 이상해진다. 갑자기 신입 사원들이 너무 어려 보이고, 그런 학생 같아 보이는 동료와 지지한 업무 대화를 나누기가 어색해진다. 매번 그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사원들이 무언가를 요청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외침이 들린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너희가 감히 뭘 알기나 한다고!"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이제 더는 걸 그룹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관심을 주던 모든 걸 그룹은 이미 해체됐고 새로 생겨나는 걸 그룹은 내 딸뻘이라 할 만큼 어리다.
영국의 40대는 악명 높은 '중년의 위기'를 경험한다. 중년의 위기는 본인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나이 듦과 관련된 자기만의 행동이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불쑥 할리 데이비드슨을 사거나 처박아 둔 전자 기타를 다시 꺼내 록밴드에 들어가겠노라 선언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에서 중년의 위기는 일반적 현상 같지 않다. 중년의 위기를 드러내놓고 겪는 한국 40대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이 듦을 거부하는 것은 한국 중년도 마찬가지이다. 증거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목에 수건을 두른 아저씨가 머리와 눈썹에 염색 거품을 잔뜩 묻히고 이발소 밖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멍하니 무엇인가를 바라다보는 광경보다 더 한국적인 것은 없다. 나는 머리에 염색 거품을 잔뜩 묻힌 한국 중년 남자들을 보며 속으로 낄낄대곤 했다. 그런데 이제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나 또한 그 염색 거품을 묻혀야 할 것 같다.
최근 40대로 진입한 우울함을 벗어날 방법을 찾고자 인터넷을 검색했다. 영국 여러 사이트에서 찾은 것은 내 40대를 더욱 우울한 시절로 만들었다. 폐경기, 전립선 검사, 학비, 그리고 연금 등에 대한 절로 탄식이 나올 내용이 전부였다. 낙담하고 한국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뉴스 사이트 기사 아랫부분에서 어떤 연령대가 해당 기사에 댓글을 달았는지를 보여주는 통계 자료를 발견했다. 연령대별 인기 기사 리스트를 보여주는 포털 사이트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40대가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목록 상위권에 있는 내용이 내게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한 40대에게 가장 많은 댓글을 받은 기사에서 가장 공감이 가고 흥미로운 댓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20대가 주로 읽은 기사는 재미없고 댓글마저 지루했다.
40대가 된다는 사실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20대, 그리고 30대까지도 신경 쓰고 관심 갖던 것들은 이제 더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흥미로운 기사에 댓글을 달았던 40대 한국 남자들이 여가를 어떻게 즐기는지 갑자기 떠올랐다. 사우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조기 축구회에 가입하거나 당구를 치고, 패션 따위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소주를 즐겨 마신다. 이제 이런 일은 내게도 너무나 큰 즐거움이 되어간다. 40대 클럽에 가입할 준비가 된 것이다. 영국인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인생은 40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볼 시간이다. 자, 이제 40대를 신나게 달려보자!
05.23 한국의 傳貰가 창조한 세계 최고의 이사업체들
집값 살인적인 런던에 살 때 월급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내
한국 전세는 저축 꿈 갖게 해… 대신 2년마다 이사하는 고충
한국의 이사 업체는 세계 최고… 유튜브엔 神技의 이사 동영상도
한국에 거주한 11년 동안, 이제껏 내가 만나 온 한국인 대부분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전세요"라는 내 대답은 언제나 질문하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내가 알기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세(傳貰) 제도를 가진 나라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전세금은 고공행진하며 수요 또한 줄고 있으니, 어쩌면 내 오랜 대답도 조만간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게 전세 제도는 일종의 혁명과도 같았다. 내 모국인 영국에선 두 가지―비싼 월세로 집을 임대하거나 이자는 적지만 아주 오랜 기간(35~40년 정도)에 걸쳐 상환하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나는 신발 상자만큼이나 작은 런던의 원룸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달치 급여의 60%를 월세로 내야만 했다. 그런 내게 한국의 전세는 인생에서 돈을 모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로 느껴졌다.
런던 주택의 평균 가격은 10억원 정도다. 부유하지 않은 사람은 현실적으로 런던에서 내 집 마련이 쉽지 않다. 만약 내가 이십대 후반에 대출을 받아 런던에서 집을 샀다면, 아마 일흔이 될 때까지 대출에 발목 잡힌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 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전세 제도 때문에 이사를 무척이나 자주 해야 했다. 2년 단위 전세 계약을 하는데 전세금이 빠른 속도로 오른다는 것은 세입자들이 그만큼 이사를 자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세가 없는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모기지를 택하기 때문에 이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최근 한 조사로는 영국 성인의 60%가 15년 이상 이사한 적이 없다고 하며, 10%는 30년 넘게 같은 집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과 한국의 이러한 차이는 봄이 되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봄철 한국의 주택가는 소파, TV, 옷 상자들을 수십m 높이로 올리고 내리는 거대한 사다리차들이 만들어내는 끝없는 소음으로 무척 시끄러워진다.
/이철원 기자
포장이사 같은 건 영국에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사가 하나의 큰 비즈니스로 자리 잡고 이사에 대한 각종 속설과 금기도 많다. 이사하기에 특별히 좋은 날인 '손 없는 날'만 봐도 그날은 악귀가 돌아다니지 않아 사람들이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손 없는 날을 미리 알진 못해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이른 아침부터 울려 퍼지는 사다리차가 거대한 팔을 뻗치는 소리로 그날이 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번 아들을 보려고 한국에 온 아버지는 이사 업체가 짐을 옮기는 장면을 거의 한 시간 내내 경이롭게 바라보셨다. 유튜브엔 서양에서 온 여행자와 거주자들이 한국 이사 업체가 얼마나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작업하는지 놀라워하며 찍어 올린 수많은 동영상으로 가득하다. 이 중 일부는 12만번 넘는 뷰와 수백건의 댓글 기록을 자랑한다. 영국 사람들은 한국인의 이사 장면에 마치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 한 장면 보듯 감탄하는 눈길을 보낸다.
영국에서는 이사를 대부분 스스로 해결한다. 작은 짐은 일일이 손으로 상자에 넣어 포장하고 커다란 가구는 친구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여 나른다. 이사를 마치고 나면 온몸이 쑤시니 영국의 이사는 이사 업체 대신 물리치료사들에게 많은 일거리를 제공한다. 이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큰 트럭을 빌려 이삿짐을 직접 옮긴다. 이는 시간과 노력, 고통이 수반되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방법이다. 이런 이유로 내 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서양인은 기다란 사다리차와 함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인 한국 이사 업체의 작업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국에 나만큼 오래 거주한 이방인이라면 왜 한국 사람들이 무서울 만큼 효율적이고 빠르게 이사 능력을 진화시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사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업계 최고를 목표로 하는 이사 업체들이 꼼꼼하고 숙련된 사람만을 고용하고 최고의 사다리차 기사들의 조력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은 깔끔하고 빠른 작업과 친절함으로 좋은 평판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다시 선택을 받아야 하는 압박 속에 작업한다. 한국에 살면서 나는 온갖 종류의 이사를 경험했다. 대충 2년에 한 번씩 이사하면서 건드리는 물건 대부분을 망가뜨리는 싸구려 이사 업체부터 최고급 서비스를 하는 업체까지 모두 거쳐봤다. 비싼 업체들은 거실 바닥 떨어진 음식을 집어먹어도 될 정도로 새집을 깨끗하게 정리정돈했다. 그런 업체에는 성수기에 영국을 다녀올 비행기표를 사고도 남을 정도의 비용을 내야 했다.
일사불란한 이사 업체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경비 아저씨와 이사 업체 직원 간에 종종 벌어지는 열띤 언쟁을 목격하는 것이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경비 아저씨는 커다란 이삿짐 트럭 2대가 주민 차량 8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점령한 것과 자신이 아침 내내 공들여 청소한 공터에 널브러져 있는 이사 박스를 발견하고 화가 치민다. 하지만 두 팔 가득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이사 업체 직원들 역시 성난 경비 아저씨의 고함을 좋게 받아줄 기분은 아닐 것이다.
2017.07.04 열정의 개굴개굴 나라, 대한민국
'아들 손자 모여 밤새 우는' 개구리는 한국적 열정의 표상
영국인은 일에서 의미 찾지만… 한국인, 의미보다 근면 앞세워
함께 밤 지새우는 팀워크 발휘…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동요 '개구리'. 한국에서 자랐거나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아는 노래다. 인생의 4분의 1이 넘는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음에도,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그런데 처음 듣자마자 나는 이 노래에 홀딱 반해버렸다. 노래를 듣는 순간, 내가 그 동요 속 개구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국 출신 글쟁이로 한국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것은 마냥 화려하고 흥미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에 있는 동안 나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가치 있는 일도 많이 해왔지만, 내 직장 생활의 절반은 한국의 큰 회사들을 위한 보도자료나 마케팅 자료를 영어로 작성하거나 잡지사와 라디오 방송국에서 아무도 읽지 않을 듯한 글을 쓰고 아무도 듣지 않을 법한 그런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쓰는 글의 절반은 듣는 사람이 없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밤새도록 노래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한국에서 배웠다. 이는 결코 내 개인적인 성취욕 때문이거나 내가 직장 동료의 롤 모델이 되려 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작업을 할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곁에는 언제나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인 듯 반드시 팀원들이 함께한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내가 열심히 개굴개굴하며 쓴 글을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독자가 원하는 글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때때로 클라이언트 측 요구에 의해, 팀 전체가 밤새도록 작업할 때도 있다. 독자들이 글을 빨리 읽을 수 있게 서두르라는 강력한 요청 때문이다.
이 개구리 동요가 한국에서 보낸 내 직장 생활의 많은 부분에 대한 완벽한 비유이긴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내 지인의 절반 이상이 이렇게 밤새 개굴개굴 노래해야만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한 친구는 온종일 보고서를 만드느라 텍스트 상자를 이리저리 옮기며 하루를 보낸다. 또 다른 친구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 회의록을 작성하느라 각종 회의에 참석해 글을 쓰며 하루를 보낸다.
/이철원 기자
사실 이 노래는 한국 직장 생활의 많은 부분을 보여주는 절묘한 비유다. 한국에서는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담긴 두툼한 인쇄물이 배달된다. 거기에는 때때로 후보들의 직장 경력이 포함돼 있다. 당선 확률이 없어 보이는 후보라도 ○○전자 차장으로 얼마 동안 일했으며 ○○대학을 나왔다고 반짝이는 종이에 컬러 인쇄로 보내온다. 나는 이 인쇄물들을 주로 쓰레기통 밑바닥에 깔아두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바쁘게 개굴개굴 대며 이 인쇄물을 만든 팀이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빠듯한 마감 일자를 맞추기 위해 아마도 밤샘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인쇄물이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순간, 나는 크나큰 죄의식을 느낀다. 의미 없는 내용이지만 이 인쇄물을 읽어야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나는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해야 할 설거지와 놓치고 싶지 않은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그렇게 해서 인쇄물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지난 대선 때, 아들, 손자, 며느리로 가득한 선거운동원들은 아침 8시 30분까지도 지하철 입구에 서서 부지런히 인사하고 피켓을 흔들며 유세전을 펼쳤다. 하지만 그 시간 지하철 입구는 지각해서 허둥지둥 정신없는 직장인이나 스마트폰에 머리를 파묻고 걸어가는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개 개구리 부대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기의 갈 길을 바쁘게 걸어간다. 케이블TV나 라디오 방송의 채널 서핑을 해보면, 시청률이나 청취율이 0.1%도 되지 않는, 이제껏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수많은 개구리 채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프로듀서, 엔지니어, 작가로 구성된 팀들은 아마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오직 '무한도전'이나 박보검이 출연하는 드라마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런 프로듀서나 엔지니어, 작가 등의 노력을 완전히 헛수고로 만든다.
만약 이것을 한국 사회에 대한 장황한 비난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오해다. 내게 밤새도록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한국인의 능력은 무척 인상적이다. 영국의 많은 기업이 망하거나 다른 나라에 매각됐다. 영국인은 회사나 팀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자기만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인은 자신이 맡은 업무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따지기보다 날이 밝도록 열심히 일한다. 너무 지나친 자기반성과 평가는 종종 긍정적인 결과 대신 무기력한 정체(停滯)를 빚을 수 있다. 반면 에너지는, 심지어 혼자 개굴개굴 우는 에너지조차도, 더 큰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다.
08.22 안주의 나라 한국, 술만 마시는 나라 영국
영국인은 오직 술만 마시는데 한국인 "새우깡이라도 있어야"
신윤복·김홍도 풍속화엔 주막… 애주가의 나라임을 증명해
셰익스피어·디킨스 작품에도 맥주 넘치지만 안주는 없어
영국을 떠나 한국에 정착해 살아온 12년 동안 내가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영국 사람들이 맥주를 마실 때는 어떤 안주를 즐겨 먹나요? 피시 앤드 칩스인가요?"였다.
나는 이 질문이 정말 순수한 호기심 차원인지 아니면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 음식을 빗댄 은근한 조롱인지 아직도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은 결코 영국 정통 피시 앤드 칩스를 경험해 본 적이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영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정통 피시 앤드 칩스 전문점에 들러 주문해 보라. 큼직하게 썬 감자에다 두꺼운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성인 남자 팔뚝은 족히 될 법한 크기의 대구를 얹은 후 버터, 크림, 소금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 머시 피(mushy peas·삶아서 으깬 완두콩)를 곁들인 정통 영국식 피시 앤드 칩스를 다 먹고 맥주까지 마셨다간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피시 앤드 칩스는 1년에 한두 번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음식이라는 정도로만 설명한다. 그러면 대개의 한국인은 "그럼 영국인은 어떤 안주로 배를 채우느냐"고 다시 묻는다. 내 대답은 언제나 그들을 놀라게 한다. 사실 영국에는 안주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안주에 해당하는 적절한 영어 단어조차 없다. 이런 정황은 한국 사람들에게 영국 음주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더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영국사람들은 이렇게 술을 마신다. 오후 5시나 6시쯤 퇴근하고 곧장 펍(pub)으로 향한다. 아무 안주 없이 펍이 문을 닫는 밤 11시까지 마시고 또 마신다. 그러다 술에 흠뻑 취할 때쯤 펍을 나와 기름진 케밥으로 허기를 달래거나 종종 주먹 싸움에 휘말린다. 아니면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어떻게든 집을 찾아 돌아가 소파에 대자로 뻗는다. 빈 위장에 술을 퍼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증거가 바로 영국인들이다. 만약 영국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술잔을 멈추고 위장을 조금이라도 안주로 채울 수 있었다면 이런 엉망진창 상황까지는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한국에선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낯설다. 만약 한국에서 술자리가 5차까지 이어진다면, 일개 소대를 먹이기에도 충분한 양의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1차에서 술과 함께 푸짐한 안주로 잔뜩 배를 채우고, 2차로 골뱅이집이나 족발집을 향한다. 그 후에는 맥주에 프라이드치킨을 곁들여 3차를 하고, 다음은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저런 정크 푸드를 섭렵한다. 그리 튼튼하지 않은 위를 가진 나는 언제나 2차쯤에서 자리를 빠져나올 궁리를 한다.
안주를 대하는 자세는 거리, 언어, 종교 등 그 무엇보다도 한국과 영국, 두 나라의 차이를 벌려 놓는 것 같다. 진짜 영국 토박이는 맥주를 마실 때 절대로 안주를 먹지 않는다. 그들은 음식 맛이 맥주의 풍미를 망칠 것이며 술을 마시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을 완전 별개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노숙자조차도 소주를 마실 때 새우깡 한 봉지쯤은 곁들이려 할 것이다.
최근 한국의 많은 TV 드라마가 유교를 바탕으로 금욕적이고 청빈한 삶을 동경하던 조선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신윤복과 김홍도의 화폭에는 그와는 아주 다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들의 그림에서 주막은 당시 일상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심 소재들이다. 만취해 나무 아래 늘어져 있는 사람, 점심을 먹으며 커다란 사발에 담긴 술을 들이켜는 농부, 마당을 드나드는 아이와 아낙들, 주막에서는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을 볼 수 있다. 한국은 한때 방방곡곡에 주막과 애주가들로 가득한 나라였던 듯하다.
영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국이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절, 영국에서는 누구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물을 위험하고 더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모두 '스몰 비어(small beer)'라고 불리는 맥주를 마셨다. 스몰 비어는 여과되지 않아 걸쭉하고 포만감을 주는 죽 같은 형태의 음료로 알코올 함량은 0.75%에 불과했다. 당시 영국 노동자와 선원들은 하루에 6L가 넘는 스몰 비어를 마시는 날도 많았다.
한국의 주막처럼 영국의 고전 문학에서도 펍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소재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순례자들이 처음 만난 곳도 펍이었고 디킨스의 소설과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도 지독한 맥주 냄새로 가득한 시끄러운 펍은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분주한 술집에서도 안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조선 시대 그림에서 술과 안주는 바늘과 실처럼 항상 어울린다. 음식이 등장하는 그림에는 반드시 술이 있고, 술이 담긴 커다란 사발 옆엔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안주가 잔뜩 담긴 소반이 함께 있다. 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두 나라가 안주에 대해서만은 왜 이토록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을까.
10.10 수염을 기르느냐 미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한국 남자, 면도 쉽게 쓱쓱… 털 많은 서양인은 30분 걸려
시대·종교 따라 수염도 변화, 이슬람은 턱수염 기르지만
세속주의 중동인은 콧수염만… 가톨릭·정교회 분열도 일으켜
드디어 기나긴 여름이 끝났다. 한국의 여름은 긴 일조 시간과 시원한 수박이 있는 매력적인 계절이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목욕탕 저리 가라 할 후텁지근한 습도다.
이제 정기적으로 목욕탕에 갈 수 있는 계절이 돌아왔다. 나는 한국 대중목욕탕의 열렬한 팬이지만 목욕탕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 남자들이 면도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면도는 무척 쉬운 일처럼 보인다. 셰이빙폼도 없이 플라스틱 일회용 면도기로 쓱쓱 대충 몇 번 밀면 그만이다. 몇 초도 걸리지 않고 거울을 볼 필요조차 없다. 기회가 있다면 나처럼 얼굴에 수염이 잔뜩 난 서양인의 면도 장면을 관찰해 보라. 우선 우리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소품처럼 생긴 배터리를 장착한 고성능 면도기가 필요하다. 거품이 잔뜩 나는 대용량 셰이빙폼도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면도를 하면 면도기에 베인 자국과 면도로 인해 생긴 뾰루지들로 가득한 얼굴이 될 것이다. 가끔 면도하면 완전히 수염을 깎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
수염은 내가 글쟁이란 직업을 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나처럼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컴퓨터 모니터 뒤에 산다. 몇 주 동안 면도를 안 하고 수염을 마음껏 기를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털 많은 서양인이 면도하지 않은 얼굴로 돌아다녔다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위협을 느낄 것이다. 대중목욕탕에서 무성하게 자란 수염을 밀기라도 한다면 배수구가 막혀 영원히 출입금지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수록 몸단장에 게을러지고 있는 나는 자신에게 묻곤 한다. 수염을 한번 길러보면 어떨까? 헤밍웨이, 프로이트,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디킨스 등 수많은 유명 작가가 수염을 기르지 않았던가. 한국의 옛 위인들도 마찬가지다. 세종대왕, 율곡, 원효대사가 수염을 길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아시아 남성과 서양 남성의 수염엔 큰 차이가 있다. 서양인의 수염은 굵고 곱슬기가 있어 수염이 덥수룩해 보인다. 반면 한국 남성의 수염은 아래를 향해 자라며 대개 입술과 턱 주변에만 있다. 마르크스 스타일의 덥수룩한 수염과는 전혀 다르다. 서양인이 보기에 한국 남자의 수염, 특히 나이 든 한국 남자의 수염은 주옥같은 명언을 쏟아내는 공자 같은 현인 이미지를 풍긴다.
한국인은 대부분 깨끗이 면도한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예외가 있다. 차승원에게 수염은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존재이다. 조각처럼 잘 다듬은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면서도 수염을 기른 이를 마주칠 때도 있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수염을 기를지 말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된다. 일부 종교의 수염에 대한 지침은 해당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독단적이거나 완전히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다. 부처는 제자들에게 몸에 난 모든 털을 밀라고 했다. 다수 이슬람교도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따라 수염을 길게 기르지만 콧수염만큼은 밀어버린다. 반면 세속주의를 따르는 중동인들은 오히려 콧수염을 길게 기르고 뺨과 턱의 수염을 깨끗하게 미는 것으로 이런 지침을 강하게 거부한다. 군부대에 콧수염만 기르라고 명령했던 사담 후세인이 바로 그 예다.
기독교와 수염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초기 교인들은 수염을 기르는 것을 덕목이라 생각했고 당시 묘사된 예수는 대부분 휘날리는 수염을 갖고 있다. 그러나 9세기 기독교 내부 갈등이 깊어지자 수염이 분열의 한 가지 원인을 제공했다. 서쪽의 로마 가톨릭은 수염 없는 모습을 선호한 반면 동쪽의 그리스 정교회는 수염 있는 얼굴을 경건함의 징표로 여겼다. 이들의 갈등은 11세기에 이르러 극심해졌다. 서방 교회의 추기경이 수염을 문제 삼아 동쪽 비잔틴제국 전체를 파문하려 하자 비잔틴 또한 수염 없는 얼굴을 이단으로 지목하며 서쪽 세계 전체를 파문했다.
최근 영국에서 수염은 다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사실 영국에서 수염은 몇 년마다 유행을 타고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반면 한국에서 수염 기른 한국 남성을 마주친 횟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내 결론은 일반적으로 한국 남자는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수염을 기른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릴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남성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를 만큼 털이 많지 않다. 그러니 면도기로 쓱쓱 몇 번 긁어주면 깔끔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그 반대다. 수염을 기를 수 있지만 내게 면도는 길고 지루한 작업이며 수염을 기르는 동안 수염은 끊임없이 내 얼굴을 간질인다. 그럼에도 어느 쪽이 내게 더 나을지 결정할 수 없다.
12.05 한국에서 지옥 같은 직장 생활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
12년 다닌 한국 직장 그만두니 자유롭기보다 그리운 건 왜일까
상사 눈치 보고 억지 술 마시는 직장 생활은 감옥살이 같지만
개인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재미도 줘
지난 5월 나는 한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데에 마침표를 찍었다. 개인적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12년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팔꿈치가 내 신장을 찌르고, 얼굴과 불과 몇 밀리미터 떨어진 남의 겨드랑이 땀 냄새를 애써 외면하며 출근해야 했던 나는 직장 생활에서 해방되어 갑작스럽게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이제 월차를 낼 때마다 수프를 구걸하는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두 손으로 결재 서류를 공손히 들고 뭔가 잘못이라도 한 듯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상사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된다. 딱히 할 일이 없는데 괜히 바쁜 척 연기할 필요도 없다. 나른한 오후, 쏟아지는 잠과 씨름할 것 없이 피곤하면 얼마든 낮잠을 청할 수 있다. 나는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바위를 던져버리고 지옥을 탈출한 현대판 시시포스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자유를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것일까? 사실 예상과 달리 한국의 직장 생활이 그립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도 무척이나 놀랍다.
얼마 전 나는 점심시간 무렵 광화문에서 양복 차림 직장인 4명을 지나쳤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가을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사무실로 돌아가는 듯한 그들은 자신의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중간쯤 되는 규모 회사에서 중간쯤 되는 연봉을 받는 중간 관리자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궁금해져 속도를 늦춰 걸었다. 대화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일상적 잡담이었다. 하지만 나는 잠깐 그들과 그들의 동료애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꼈다.
서양에서 업무 개념은 단지 계약일 뿐이다. 일하고 급여를 받고 퇴근하면 그만이다. 원하면 점심은 얼마든지 혼자 먹어도 되고, 회식 또한 없다. 주어진 작은 공간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가 맡은 일을 하다 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반면 한국에서 직장 생활은 공동체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팀 전체가 업무를 마쳐야 퇴근하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술 마셔야 하고, 길고 쓸데없어 보이는 회의를 하며 함께 고생한다. 서양의 오피스가 개인적이고 고립된 지옥이라면 한국의 사무실은 모든 창문과 문이 열려 있는 개방형 지옥이다.
▲이철원 기자
한국의 직장은 사회적 유기체다. 인간 사회가 초기 부족사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랬던 것처럼 회사에선 얼굴을 맞대고 직접 의사소통한다. 종종 우리를 좌절시키고 짜증 나게 할 때도 있지만, 한국의 직장은 사회적 결속과 함께 공동체적 생활 기회를 주는 매우 소중한 역할을 한다. 사실 요즘 한국인은 서로 너무도 격리된 채 산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과 독보적 스마트폰 사용자 수, 그리고 꽤 높은 GDP를 자랑한다. 이 모든 것이 무척 좋긴 하지만 한국적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과거 한국은 공동체가 모든 일을 함께했지만 이제는 혼자 하기를 선호한다. 혼자 있어도 '왕따'로 낙인찍히지 않으며 왕따가 된들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혼자 있는 것이 멋있다고 인식된다. 남과 교류하지 않고 IT 놀이터에서 게임과 웹툰, 스마트폰에 푹 빠질 수 있다.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연애를 할 필요도 없다. 데이트 앱에서 낯선 이들과 만나면 그만이니까. 사실 웹툰, TV 드라마 캐릭터, 아바타로 가득 채워진 가상의 4차원, AR(증강 현실)의 삶은 현실의 인간관계보다 훨씬 재미있고 자극적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면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한국을 점령한 개인주의에 역행하겠다는 선택이다. 한국의 회사는 키보드나 터치 스크린을 만지기보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라고 하며 아날로그적 오프라인의 생활 방식을 요구한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지난 주말 골프를 얼마나 잘했는지 자랑하는 것을 얼굴에 가짜 웃음이란 탈을 쓰고 듣게 한다. 내일 아침 '9시 30분' 회의를 걱정하면서도 선배가 억지로 강요하는 술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게 한다. 대신 상사가 늘어놓는 끝없는 자랑에 동료들과 '안물안궁'(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다)을 귓속말로 주고받으며 유대감을 느낀다. 이런 순간만큼은 기가바이트의 비디오보다도 메가픽셀의 게임보다도 통쾌하다.
한국의 직장 생활은 감옥살이와도 같다. 보고서를 만들고 자료를 챙기느라 삶이 메마르고 우리의 꿈은 천천히 사라진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직장은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이 유지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직장이라는 감옥은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개인주의와 건강하지 않은 혼자만의 자유에 한국인들이 굴복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보루 아닐까.◎
팀 알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