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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6/ 바둑 이야기 - 변호사 잉여시대 - 시계의 예술성 - 명절 풍경

상림은내고향 2022. 3. 11. 21:08

 

■ 바둑 이야기

■ 2016-11-13  현대바둑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

https://www.youtube.com/watch?v=fKV6X-yLRno&feature=player_embedded

 

위대한 여정이란 이름을 붙인 한국 현대바둑 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가 11일부터 17일까지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탄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둑은 한국과 일본에 전파된 후 수 천 년 간 사랑받아 왔다. 금기서화(琴棋書畵)의 하나로 불리며 상류층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으로 여겨지던 바둑은 근대로 오면서 두뇌게임으로 발전했고,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인들의 취미와 오락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400년 전부터 정책적으로 바둑을 장려한 일본을 중심으로 바둑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문화의 격변기였던 20세기에 이르러 일본에는 협회와 프로제도가 탄생했고, 신문사들이 기전 스폰서로 나서면서 현대바둑의 기틀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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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초반까지 우리 고유의 순장바둑이 성행하던 한국은 1945년 조국 광복을 깃점으로 조남철 선생이 현대 바둑 보급의 전령 역할을 맡았다. 한량들의 잡기 취급을 받던 바둑이 오늘날 본격 정신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땅에 현대바둑이 보급된지 올해로 70. 지금 한국 바둑은 중국과 일본을 넘어 세계 최강국에 우뚝 자리하고 있다.

한국현대바둑 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는한국현대바둑의 이해유물전한국현대바둑 70년의 기록한국현대바둑의 계승 등 4개 코너로 구성돼 있다. ①에선 한국현대바둑이 갖는 의의와 연표를 담았고는 한국기원 소장품전, 조남철 유품전, 안영이 컬렉션 등 3개 전시 부스를 통해 바둑 관련 희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한국기원 소장품전 코너 전시품 중에서도 각종 국제대회 우승 트로피와 김옥균 바둑판, 조남철 선생의 육필 원고 등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한편 11일부터 14일까지엔 한국바둑의 영광을 이끌어 온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서봉수 등 ‘4대 천왕이 차례로 오후 2시간 동안 사인회를 진행한다.

 

조선닷컴

 

■ 바둑인생 58년…'戰神' 조훈현 (1)(2)(3)(4)

15세 바둑 신동(神童) 스승 조훈현(曺薰鉉) 꺾었다.

1990 2 3, 전국 조간신문에 일제히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그 시절 ‘바둑 황제’ 조훈현(당시 37)의 이름이 신문에 등장하는 건 일상다반사였지만, 이날 뉴스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제자 이창호에게 쏟아졌다. 전날 열린 제29기 최고위전에서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반집 차이로 졌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같은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이창호는 조훈현의 내제자(內弟子·스승과 함께 살며 배우는 제자) 7년째 한집에 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조훈현의 마음은 복잡했다. 제자에게 졌다는 고통과 제자를 잘 키웠다는 기쁨이 동시에 밀려왔다.

조훈현이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잉창치배(應昌期杯)에서 중국의 녜웨이핑(聶衛平)을 꺾고 ‘바둑 세계 챔피언’에 등극, 김포공항에서 종로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며 개선 행진을 벌인 것이 겨우 5개월 전인 1989 9월이었다. 최정상에 오른 직후 맛본 패배라 그가 느낀 낙차(落差)는 더욱 컸다.

한 번 미끄러지자 추락하는 건 순간이었다. 그 후 스승 조훈현은 제자 이창호에게 판판이 졌다. 1990 9월 국수전에선 30으로 졌고, 1991년엔 대왕전, 왕위전, 명인전 등 타이틀 세 개를 이창호에게 빼앗겼다. 1991년 말이 되자 이창호는 7관왕으로 올라섰고, 조훈현은 4관왕으로 내려앉았다. 1995 2월 그는 이창호에게 마지막 남은 대왕 타이틀마저 빼앗겼다. 1974년 최고위전에서 우승한 지 20년 만에 그는 아무런 타이틀도 없는 무관(無冠)의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데 신기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화로웠다. 모든 걸 잃어버렸는데도 기이하게 홀가분했다. 며칠간 실컷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가진 게 없으니 더 이상 내려갈 일이 없잖아.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거야’ 긍정적인 생각이 마음속에서 마구 솟아올랐다.

 

▲조훈현은 지금까지 2700판이 넘는 대국을 치렀고, 그 중 1900판 정도를 이겼다. 그는 "사실 내가 이기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지는 거다. 프로 기사들의 경우 실력은 비슷하다. 누가 자신의 100%를 다하느냐에서 승패가 갈린다. 인간이 100%를 다하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상대가 무너지게 돼 있다"고 했다. 지면 우측 상단의 '無心'은 조훈현의 좌우명으로 자신이 직접 쓴 휘호이다. /이태경 기자

 

지난 16일 서울 평창동 자택, 백발이 성성한 조훈현(62)이 편안한 표정으로 웃었다. 오른쪽 볼에 보조개가 팼다. 면바지에 남방셔츠 차림의 그는 반상(盤上)을 호령하는 매서운 승부사라기보다는 온화한 노()학자처럼 보였다. 조훈현은 지금까지 2700판이 넘는 대국을 치렀고, 그중 1900판 정도를 이겼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이긴 대국보다 진 대국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잉창치배 같은 세계적인 바둑 대회에서 승리한 기쁨보다 제자 이창호한테 반집 차이로 패배한 기억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는 패했을 때의 소회와 깨달음을 돌이켜 최근 에세이집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냈다.


“살려고 패배를 인정했다”

-바둑계에서 당신에게 붙인 별칭이 ‘전신(戰神)’이다. ‘전쟁의 신’이 승리보다 패배를 더 오래 기억하다니 의외다.
“이기면 후회가 없다. 결과가 좋은 거니까. 지는 건 다르다. 지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아팠거나, ‘농땡이’를 쳤거나,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거나…. 왜 졌는지 생각하고 후회하고 다음 대국을 위해 새로운 다짐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긴 대국보다는 진 대국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한창 나이인 37세 때 15세 제자 이창호에게 패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참담하지 않았나.
“충격이 컸다. 당시 나는 최고수였다. 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서로 바둑판 위에서 ‘죽이냐 살리느냐’ 하는 사이인데 아침마다 집을 같이 나서는 것도 고역이었다. 1990년대 초 창호가 독립해서 나갔다. 그 무렵 창호와 경기를 할 때면 힘들어서 쓰러질 지경이 되곤 했다.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의자에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바둑을 뒀다. 언론에선 이를 ‘와기(臥棋·누워서 바둑을 둠)’라며 점잖게 표현해 주었지만, 사실 나는 창호를 방어하느라 몸이 무너져내릴 지경이었다. 내가 쌓은 모든 관록과 경험이 젊음의 힘과 패기 앞에서 무기력했다. 젊음이 가장 무섭다.

<②편에 계속>

 

<①편에서 계속>
-바둑은 ‘사유(思惟)의 승부’ 아닌가.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수를 내다보는 사유도 깊어질 텐데 젊은 사람에게 밀린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
(웃으며) 나도 이해가 안 간다. 예술에선 연륜이 중요하겠지만 바둑엔 묘하게 체력적인 게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승부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 안에 자기 안의 모든 걸 끌어올릴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나이가 들수록 힘들다. 10대 땐 스펀지로 빨아들이듯 받아들이고, 20대 때 절정에 오르게 된다. 이후론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달까, 좀처럼 쌓이지 않는다. 나만 해도 옛날엔 신수(新手)가 나오면 혼자 터득했지만 요즘은 후배한테 물어봐 익힌다. 그런데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정신력도 차이가 난다. 10대 땐 꿈속에서도 바둑 생각밖에 안 한다. 그런데 20대가 되면 어디 그런가. 술 생각도 나고, 돈벌이 걱정도 해야 하고…. 거기다 데이트라도 하게 됐는데 상대 여성이 예뻐 봐라. ‘내일 또 만나야 하나, 어떻게 잘해줄까’ 생각하게 되는 게 청년으로서 당연한 게 아닌가. 100% 바둑에만 전념하는 사람과 다른 생각 할 것이 많은 사람이 맞붙는다면 나이가 어리더라도 집중하는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

 

▲조훈현은 "젊은 시절의 나는 패배가 싫었다. 울었던 적은 없지만 울고 싶었던 적은 많았다. 바둑에 진 날이면 혼자서 밤길을 걷다가 지칠 무렵에야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그래도 모든 타이틀을 다 빼앗기고 나자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살려고 그랬겠지. 계속 고통과 분노에 싸여 있으면 죽는 길밖에 없으니까 마음을 그렇게 먹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바둑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랬을 거다. 창호한테 졌다고 해서 내가 평생을 바친 바둑을 두고 딴 길을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계속 바둑을 두며 살아야 하니까 그랬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그렇게 마음을 먹은 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곤란한 상황에서 ‘나는 안 돼’ 하고 좌절해 버리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내가 당시 ‘나는 끝이야’ 했다면 인생이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따는 일만 남았다’라고 마음을 바꿔 먹었기 때문에 재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긴 건가.
“그렇다. 타이틀을 지키려고 애쓸 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막상 다 잃어버리고 나니 자유로웠다. 무관이 된 후 예전보다 더 열심히 대회에 나갔다. 1996년 한 해에만 110국을 치렀다. 사흘에 한 번꼴로 바둑을 둔 셈이었다. 예전처럼 타이틀 방어자로 꼭대기에서 도전자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본선부터 시작해 토너먼트를 모두 거치고 올라가야 했다. 예전에도 이기고 지는 걸 반복했지만 승패에 정말로 초연해진 건 바로 이 시점부터였다. 수많은 판을 싸우면서 나는 내가 언제든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조훈현은 1998년 국수전에서 도전자로 이창호와 다시 맞붙었다. 결과는 조훈현의 승리였다. 그는 “창호에게 이기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다시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4
세 때 훈수 둔 바둑 신동

조훈현은 바둑 신동(神童)이었다. 1957년 전남 목포. 4세의 조훈현이 사촌 매형과 바둑을 두고 있던 아버지의 손을 막으며 “아버지, 거기 놓으면 안 돼요!” 하고 제지했다. ‘어린아이가 뭘 알겠나’ 했던 아버지는, 나중에 복기를 하면서 바로 훈현이 막았던 그 수가 패착에 가까운 수였다는 걸 알게 됐다. 혹시나 하여 바둑돌을 쥐여주었더니 꼬마 조훈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집이 많으면 이긴다는 바둑의 이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내 아버지를 이기기까지 했다. 어느새 목포 바닥에 ‘바둑 신동’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1958
년 겨울 아버지 조규상은 조훈현을 데리고 무작정 상경했다. 갓 결혼한 큰딸의 보문동 셋방에 임시 거처를 정하고, 아들의 손을 잡고 당시 한국 바둑의 중심이었던 명동의 송원기원으로 매일 출근했다. 당시 송원기원의 주인은 한국 현대바둑의 대부로 통하는 조남철(1923~2006). 목포에서 온 바둑 신동에게 흔쾌히 지도 대국을 허락한 조남철은 두 판을 연달아 두며 조훈현의 기력(碁力)을 시험한 후 ‘강한 8급’으로 급수를 인정해 줬다. 상경한지 4년이 지난 1962 10, 조훈현은 9세의 나이로 제16회 프로 입단(入段) 대회를 통과하며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4세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바둑을 깨우치는 게 어떻게 가능했나.
“나도 궁금하다. 아버지가 바둑 두는 걸 우연히 보고 ‘포위되면 죽고, 집을 내면 산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음악 분야에서도 스스로 깨치는 신동이 있지 않나. 나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③편에 계속>

 

<②편에서 계속>
4세 때 훈수 둔 바둑 신동
10
세 때 바둑유학 떠나
日 바둑계의 영웅 세고에
마지막 內제자로 들어가

내기바둑 뒀다 파문당할 뻔
“인격·인성·인품 갖춰야”
실력 좋아도 인성 없으면
정상의 무게 견딜 수 없어


-집중 시간이 짧은 어린아이가 바둑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승부욕 때문이었나.
“이기고 싶다기보다는 강해지고 싶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하루에 4시간이든 6시간이든 공부를 한다. 그중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과목이 생기면 몰두하고, 전교 1등도 하는 거다. 내 경우엔 좋아하는 과목이 바둑이었던 셈이다.

 

▲10세 때 1963년 조선일보에 일본 유학 소식을 알린 '소년 기사' 조훈현. /조선일보DB

 

소년 프로기사의 탄생 소식에 후원자들이 열광했다. 국회의원 정해영이 조훈현을 자신의 집에 기거시키며 뒷바라지를 했다. 바둑계 원로 이학진은 조훈현의 일본 유학을 추진했다. 1963 10월 조훈현은 일본으로 떠났다. 항공료는 조선일보사에서 부담했다. 조훈현의 일본 스승은 당시 74세였던 세고에 겐사쿠(越憲作·1889~1972). 현대 일본 바둑을 태동시킨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조훈현은 세고에의 마지막 내제자로 9년간 그와 함께 살았다.

-재일교포 후원자가 인사치레로 입문을 청했는데 세고에가 두 판을 둬 본 후 제자로 삼았다고 들었다. 세고에로부터는 뭘 배웠나.
“바둑보다는 마음가짐을 배웠다. 선생님은 내게 ‘고수가 되기 전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셨다.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인격, 인성, 인품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금한 내기바둑을 두었다가 파문당할 뻔한 적도 있다. 어릴 땐 계속 ‘사람이 돼라’고 하시길래 속으로 ‘내가 사람이지 그럼 짐승이야’ 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선생님의 뜻을 알겠다. 잔꾀를 쓰는 프로기사들이 추락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이 없으면 잠깐 올라섰다가도 곧 떨어지게 되더라.

-세고에는 제자를 평생 딱 세 명만 받았다. 세계 바둑의 흐름을 바꿨다고 평가받는 중국의 우칭위안(
)과 일본의 바둑 천재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郎), 그리고 조훈현이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이류는 서러워. 쿤겐(훈현의 일본식 발음), 네가 이 길을 가기로 했다면 일류가 되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 불쌍해.’ 선생님이 제자를 단 세 명밖에 받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불쌍한 인생을 만들까 봐 오직 일류가 될 사람만 뽑아 받으신 거다.

세고에는 1972년 조훈현이 병역 문제로 귀국한 지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구와 후배들 앞으로 남긴 유서에 “한국으로 떠난 조훈현을 꼭 일본으로 다시 데려와 대성시켜주기 바란다”라고 적혀 있었다.

 

“생계를 위해 뒀다.

한국에 돌아와 군입대를 기다리던 조훈현이 어느 날 “기원에 가야 하니 차비를 달라”고 하자 어머니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어머니가 옆집에서 꿔온 돈으로 택시를 타고 나가면서 조훈현은 ‘내가 벌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조훈현은 “그전까진 바둑만 두느라 현실을 몰랐는데, 그때 주변을 돌아보니 집안에 돈을 벌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더라. 바로 그 순간 바둑이 내 직업이고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 사무쳤다”고 했다.

-입대 직전 부산일보에서 주최하는 최고위전에 출전해 우승했다. 당시 상금이 꽤 됐을 텐데.
30만원 정도였는데 당시로선 거금이었다. 그 돈을 몽땅 어머니께 드렸다. 마침 여동생이 미대에 합격해 등록금이며 화구(畵具)며 돈 들 일이 많았는데 가계에 꽤 보탬이 됐다. 그 이후로 나는 생계를 위해 바둑을 둬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④편에 계속>

 

<③편에서 계속>

꿈과 현실 사이서 갈등?

더 중요한 건 먹고사는 것
생계가 막히면 꿈도 없어
치사해도 그게 현실


-생계를 위해 바둑을 두다니?
“프로란 이겨서 돈을 버는 사람이다. 한판이라도 이겨야 돈이 된다. 자식으로서, 결혼한 이후엔 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내겐 바둑밖에 길이 없었다. 이겨야만 여유가 생겼다. 그 책임감 때문에 더 열심히 뒀고, 그러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직업이란 기본적으로 생계를 위한 것이다. 내가 바둑을 열심히 해서 타이틀이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집안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다. 부모님은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셨고,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달동네의 아주 허름한 집에서 살았다. 그렇게 가난한 집 아이였던 내가 바둑을 통해 내 영토를 넓혀가면서 차차 삶의 영토도 넓어졌다. 달동네에서 화곡동 양옥으로, 연희동 2층 양옥으로, 그리고 지금 집으로 옮겨올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더 많이 가지고 더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큼 가장 확실한 동기 부여가 있을까.


-직업을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달라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그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당장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해서 못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더 중요한 건 먹고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먼저 먹고사는 길부터 뚫어야 한다. 생계가 막히면 꿈이고 뭐고 없다. 치사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게 현실이다.

조훈현은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의 꿈속 스승으로 깜짝 출연했다. 그는 “‘미생’을 보니 살아남는다는 것은 바둑판 위에서나, 사회에서나 쉽지가 않더라”고 말했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인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매일 퇴근 후 하루를 복기(復碁)한다. 바둑에서 ‘복기’란 어떤 의미가 있는 행위인가.
“복습이자 미래를 위한 설계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조훈현의 좌우명으로 자신이 직접 쓴 휘호 무심(無心).

 

-이미 승부가 결정된 대국을 다시 펼쳐보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겠다.
“진 사람은 쓰라리다. 그게 복기의 가장 어려운 점이다. 프로기사들의 경우 지고 이기는 것이 일상이라 어느 정도는 면역이 돼 있지만 사람인 이상 쉽지 않다. 3자의 눈으로 흔들림 없이 판을 바라보는 일이다. ‘무심(無心)’으로 복기하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마음가짐만 가질 뿐이다.

-좌우명이 바로 ‘무심(無心)’이다. 무슨 뜻인가.
“사심 없이 두는 것. 굉장히 어려운 경지다. 이겨야겠다는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 다만 최선을 다해 임하는 거다. 최선을 다해 평상심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를 여러번 부인했다.
“나뿐 아니라 ‘천재’라 불린 사람은 대개 ‘너 천재냐’ 물으면 절대 아니라고 한다. 아마 스스로는 자기를 바보라고 생각할 거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천재’라는 호칭이 합당할 만큼 자신에게 만족을 못 하기 때문에 그렇다.

-앞으로 어떤 바둑을 두고 싶나.
“정상에서 내려오면 승부사로서는 끝난 거다. 내가 정상에 있다면 ‘앞으로 이러이러한 바둑을 두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쓸데없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바둑을 보급하고,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팬들께 돌려드리고 싶다. 재주 있는 아이가 혹 있다면 한둘쯤 키우고 싶기도 하다.

조훈현은 “4세에 바둑을 시작해 다른 길을 모르니 방향을 틀 수도 없었다. 60이 넘은 지금도 가끔씩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지만 그저 지나가는 꿈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 않느냐”며 웃었다.

 

/이태경 기자

 

-당신에게 바둑이란 뭔가.
“인생의 길인 것 같다. 바둑을 통해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됐다. 내게 바둑은 길이다.

 

조선일보 곽아람 

 

■ 2015-04-22  인생의 묘수를 알려주는 바둑 6 대 고전은?

바둑을 동양철학의 집대성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겠지만 동양문화의 정수란 수식에는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둑의 발원과 중국 고대왕조의 창세기 신화가 맞닿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둑의 신비는 쉽게 베일을 벗을 것 같지 않다. 현대과학의 총아라는 컴퓨터가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분야 또한 바둑이다.
   
   4000
년이 넘는 것으로 짐작되는 바둑은 확률이나 운에 의존하는 게임이 아니라 수()로 표현되는 과학이자 학문이다. 수백 년 전 쓰였던 바둑 고전(古典)들의 수준이 오늘날 바둑과 별 차이를 못 느낄 만큼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건 놀랍다. 그 같은 사실이 사활집(死活集)이라고 불리는 실전적 묘수 책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현현기경(玄玄棋經)’ ‘관자보(官子譜)’ ‘발양론(發陽論)’ ‘현람(玄覽)’ ‘기경중묘(棋經衆妙)’ ‘사활묘기(死活妙機)’는 바둑 사활의 6대 고전으로 꼽힌다. 출간 시대와 저자가 모두 다르고 작품성이나 난도(難度)도 들쑥날쑥이지만 저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현대 최고수급 프로기사들도 어린 시절 이 고색창연한 옛 문헌들을 통해 바둑을 배웠고, 고수로 성장한 오늘날까지도 문제들을 놓아보고 공부하며 행복해한다.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 느끼는 향기, 절묘한 수순으로 씨름을 거듭하다 미로를 뚫고 답을 찾았을 때의 희열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바둑 불모지인 서구에 대한 보급 효과 측면에서도 동양의 사활 고전들은 매우 좋은 수단이다. 중국과 일본이 꾸준히 그 작업을 해왔는데 한국에선 최근 조혜연(30) 9()단이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권의 창작사활집을 펴낸 그는 현현기경과 관자보 2권의 영역을 마쳤고, 앞으로 남은 4권을 마저 번역해 6개 바둑 고전의 영어 완간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9단이 꼽는 최고의 바둑 고전은 발양론이다. “문제의 난도(難度)와 수준이 매우 높아 앞으로 이를 능가할 저서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9단은 이미 발양론의 영어 제목을 ‘Genesis’라고 정해 놓고 번역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Genesis’는 기원(起源), 발생 또는 창세기를 의미한다.
   
   
발양론은 일본의 제4세 명인 이노우에(井上因碩)의 저술로 돼 있지만 그의 편서(編書)일 뿐 본래 출전은 중국 묘수집이란 게 정설로 전해진다. 가문의 비전(秘傳)으로 내려오면서 심지어 문하생들에게까지도 열람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노우에는 “두드러진 수단은 양(), 포석 등 형태가 확연하지 않은 것은 음()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첫 수는 18급도 둘 수 있으나 그 다음 수부터는 도무지 불가측(不可測)의 연속일 만큼 난해한 내용이다. 1713년 출간된 이후 후대들에 의해 해답이 부단히 정정돼 왔다. 문용직 프로는 “오류가 많고 불완전한 것이 발양론의 매력이다. 나는 발양론을 대하면서 비로소 바둑의 깊이와 어려움을 알았다”고 토로하고 있다.
   
   
바둑 사활집의 바이블로 불리는 현현기경은 발양론보다 300여년 앞선 1349년 발표된 책이다. 원나라 때의 국수(國手)급 강자 엄덕보(嚴德甫)와 안천장(晏天章)이 공저자이고 우집(虞集)이 서문을 썼다. 바둑에 대한 전술·정세(定勢·定石)와 포석·행마법 등과 함께 진롱(珍瓏)이라고 불리는 376개의 주옥 같은 사활 문제들이 수록됐다. 현현기경 사활 문제들의 특징은 각 문항마다 흥미로운 제목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삼호출산세(三虎出山勢)’ ‘칠자지모세(七子之母勢)’ ‘팔선과해세(八仙過海勢)’ 하는 식이다.
   
   
관자보는 현현기경이 출간된 지 300여년 후인 1690년 빛을 본 책이다. 명나라 때의 국수 과백령(過伯齡)이 수집한 사활 묘수나 맥점들을 청대(淸代)의 도식옥(陶式玉)이 집대성했다. 관자보의 특징은 바둑의 오묘한 기수(奇手) 맥점들과 함께 이례적으로 끝내기 문제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는 점이다. 관자(官子)의 자()는 바둑돌을 뜻하므로 관자는 바둑돌을 관리하는 일체의 기법을 의미하는 동시에 좁게는 끝내기의 영역을 뜻한다.
   
   
기경중묘는 바둑 고전들 중 가장 대중적인 내용을 담아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저자는 일본 4대 바둑가문 중 하나인 하야시() 가문의 11대 가원(家元) 하야시 겐비(林元美). 1812년 발간된 원본은 문제집 3권과 해답 1권 등 총 4권으로 구성됐다. 저자 하야시는 저서 기경중묘의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어 이채롭다.
   
   
“바둑이 늘고 싶다면 바둑의 본질을 생각하며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쓸쓸하고 무료할 때는 이 책을 펼쳐라. 그러면 모든 망상이 사라지고 마음을 깊고 그윽한 세계로 인도해 줄 것이다. 범인(凡人)들은 유현(柳峴)의 경지에서 노니는 심정을 모를 것이다”라고 썼다. 자신의 저서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하야시는 바둑 외의 분야에도 박학다식해 많은 저서를 남겼다. 바둑 책으로는 기경중묘 외에 맥과 정석을 집대성한 기경정묘(棋經精妙)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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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바둑 고전들 중 저자의 지명도가 가장 높은 책을 꼽는다면 ‘사활묘기’일 것이다. 일본에 망명 중이던 풍운아 김옥균이 당대 최고수 본인방(本因坊) 슈에이(秀榮)에게 천거, 훗날 본인방 위를 계승하고 마지막 ‘본인방’ 자리를 지켰던 슈사이(本因坊秀哉)가 이 책의 저자다. 1910년 세상에 나왔으니 불과 100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을 뿐인 최신(?) 서적이다.
   
   
현람(玄覽)은 비극의 기사 아카보시(赤星因徹)가 남긴 유저(遺著)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독자들을 아릿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아카보시는 스승 겐안 인세키(幻庵因碩)를 대신해 본인방 조와(丈和)와 격돌한 바둑에서 결사적으로 싸우다 피를 토하며 쓰러져 며칠 후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전설적 기사다. 아카보시가 1833년 쓴 ‘기보현람’, 1835년 펴낸 ‘수단50(手段五十圖)’를 그의 사후 12년 뒤 이노우에(井上秀撤)가 묶어 정리한 책이 현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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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대표 고전을 시대 순으로 나열하면 현현기경(1349)·관자보(1690)·발양론(1713)·기경중묘(1812)·현람(1833)·사활묘기(1910)의 순이다. 최고(最古) 2권이 중국에서 나왔고 이후 4권의 저자는 일본이다. 중국은 기대조(棋待詔)란 이름의 황제 바둑 비서관제를 두었고 일본도, 막부(幕府) 장군들이 바둑 고수들에게 어성기(御城碁)를 두게 하고 녹()을 주며 바둑을 장려했다. 한반도에서 이들에 견줄 만한 바둑 고서가 탄생치 않은 것은 이 같은 배경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고의 고전 현현기경이 육당 최남선에 의해 ‘기보(棋譜)’란 이름으로 조선에 처음 소개된 것은 원전이 출판된 지 무려 563년 뒤인 1912년이었다.
   
   
바둑의 기술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언제나 돌의 사활로 귀결된다. 박정환·김지석·목진석 등 세계적 고수들이 틈날 때마다 사활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감각 단련과 기본기 단련에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13세 때 우연히 현현기경을 입수한 뒤 무아경 속에서 문제풀이에 열중했다. 고작 6급 실력이었던 나는 그 후부터 사활에 엄청난 자신감이 생겨 고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영원한 국수’ 김인(72) 9단의 회상이다.

 

출처 | 주간조선 2352    | 이홍렬 조선일보 바둑전문기자  

 

■ 2015.09.08  세계 바둑 '절대 스타'가 사라졌다

2년간 多冠王 실종… '춘추전국', 21번 우승한 이창호 시대는 옛말
이세돌·커제·박영훈 등 도전 중… 7일 개막 삼성화재배도 변수

영웅의 실종. 세계 바둑을 휘어잡는 스타가 안 보인다. 메이저급 7개 타이틀의 주인이 제각각이다. 이세돌이 2013년 말 춘란배에 이어 삼성화재배서 우승, 2관왕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2년 가까이 다관왕(多冠王)이 자취를 감췄다.

과거 전성기의 이창호는 4관왕과 3관왕에 두 번씩 오르며 총 21개의 세계 타이틀을 따내 일세를 풍미했다. 이세돌은 2007 1월부터 2008 2월 사이 도요타덴소배, TV아시아, 삼성화재배, LG배를 차례로 따내 4관왕을 구가했다. 구리(古力)가 제1회 비씨카드를 품에 넣은 시점(2009 5) 세계 타이틀 재고(在庫) 5개에 달했었다. 쿵제(孔杰)도 한 차례 4관왕으로 군림했다.

 

▲국제 바둑계에 1인 독주 시대가 사라지고 춘추전국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다관왕에 가장 근접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커제(왼쪽)와 이세돌. /한국기원 제공

 

7대 메이저 타이틀을 7명이 분점한 현재 지형도는 '춘추전국', '백가쟁명(百家爭鳴)'인 동시에 '절대 스타 부재(不在)'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상권이 평준화된 집단지도체제(?)는 뭔가 허전하다. 강력한 패자(覇者)가 지배하고 그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구도가 승부 세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멀티 타이틀'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기사는 누구일까. 중국의 신예 커제(柯潔)가 일단 선두 주자로 꼽힌다. 18세에 불과한 그는 올해 제2회 바이링배 제패로 세계 우승자 클럽에 등록한 뒤 몽백합배 4강과 LG 8강에도 진출, 타이틀 추가가 멀지 않아 보인다. 현재 자국 랭킹 2위로 9월 중 1위 등극이 유력하다.

한국에선 요즘 이세돌(32)의 기세가 가장 좋다. 최근 TV아시아대회 2연속 우승에 이어 지난주 몽백합배 4강에 안착했다. 반면 19 LG배 보유자 박정환(22)은 차기 LG배와 몽백합배서 연속 중도 탈락해 주춤한 상태. 19회 삼성화재배 보유자인 김지석은 LG 8강에 올라 다관왕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박영훈(30)은 현재 무관(無冠)이지만 LG 8, 몽백합배 4강 등 쾌조 속에 다관왕 사정권에 진입했다.

이 시점에 7일 베이징서 개막한 제20회 삼성화재배도 변수다. 올 연말까지 우승자가 가려질 이 대회 본선 32강전에 올라 있는 현역 타이틀 홀더는 박정환(LG), 구리(32·춘란배), 이세돌(TV아시아), 커제(바이링배) 등이다. 디펜딩 챔프 김지석과 박영훈도 출전한다. 세계 우승 경험자인 스웨(時越·24)와 탕웨이싱(唐葦星·22) LG 8, 삼성화재배 32강에 올라 2개 국제기전을 조준 중이다.

세계무대 다관왕을 향한 열망은 한국보다 중국이 더 간절하다. 최근 2년여 동안 10명 가까운 세계 챔프를 무더기로 배출했지만 그 중 단 1명도 복수(複數) 지배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 세계 바둑 천하를 양분 중인 한·중 두 나라 중 어느 쪽에서 먼저 새로운 '문어발'이 탄생할지 팬들의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 2016.01.23 '한국바둑의 전설' 개막

▲다섯 명의 전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훈현(63)·서봉수(63)·조치훈(60)·유창혁(50)·이창호(41) 등 한국 바둑의 전설 다섯 명이 맞붙는 '2016 전자랜드 프라이스킹배 한국바둑의 전설' 개막식이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그랜드힐튼서울에서 열렸다.

이날 개막식에는 출전 선수 다섯 명과 전자랜드 프라이스킹 홍봉철 회장, 한국기원 박치문 부총재, 한국기원 이사인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 ㈜나남 조상호 회장, ㈜메지온 박동현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후원사인 전자랜드의 홍봉철 회장은 축사에서 "음악 프로그램 '쎄시봉'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서 이번 대회를 구상하게 됐다"며 "많은 분들이 추억을 회상하며 즐길만한 대회"라고 설명했다.

출전 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입담 대결을 펼쳤다. 먼저 우승 후보를 묻는 질문에 조훈현 9단은 "내가 한창일 때면 내가 우승할 거라고 말했을 텐데 지금은 제일 젊은 사람이 우승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서봉수 9단은 "프로기사라면 모든 대회에 나갈 때 당연히 우승이 목표"라면서도 "내가 실력이 조금 약한 게 문제"라고 웃으며 말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이창호 9단은 "내가 유리한 건 맞다. 그런데 지금 돌이 안 된 아이가 있어서 그 쪽에 체력을 쓰다 보니 균형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재치있게 응수했다.

 

근황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조치훈 9단은 "요즘 골프를 자주 치는데 내가 선배들보다 골프는 자신 있다"며 "다음부터는 아침에 골프를 치고 오후에 바둑을 두는 대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웃음을 자아냈다. 유창혁 9단은 "한국 바둑국가대표 감독으로 있는 지금보다 승부사로 뛰었을 때가 훨씬 좋았던 것 같다"면서도 "이제는 후배들의 발전을 위해 내가 도와야 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개막전은 23일 오후 7시 조훈현 9단과 조치훈 9단의 맞대결로 막이 오른다. 다섯 명은 풀리그 총 10경기로 우승자를 가린다. 제한시간은 각자 1시간에 1분 초읽기 1회씩이다. 우승상금은 5000만원, 준우승상금은 2000만원이다. 3~5위는 각각 1200만원, 800만원, 600만원을 받는다. 모든 대국은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TV에서 생중계된다. JTBC에서도 30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7시30분에 방송된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 한국기원 제공]

 

■ 2016.05.19  바둑 이세돌, 프로기사회 돌연 탈퇴

인기 절정을 구가 중인 바둑기사 이세돌(33) 9단이 프로기사회를 탈퇴했다. 9단은 지난 17 63스퀘어서 열린 한국바둑리그 개막식장에서 양건 프로기사회장을 만나 미리 준비해 온 탈퇴서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세돌의 친형이자 매니저 역할을 담당해온 이상훈(41) 9단도 동생과 함께 탈퇴서를 냈다.

 

이세돌 형제는 기사회를 탈퇴하더라도 기사 생활은 종전과 다름 없이 수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탈퇴 사유에 대해 "친목 단체에 불과한 프로기사회가 불합리한 조항들로 기사들을 구속하는 관행을 탈피하려는 것"이라며 "한국기원 구성원으로서 기사직까지 떠난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사회에 속하지 않고 한국기원 소속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구상은 한국기원과의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세돌 측이 기사회 규정 가운데서 꼽은 대표적인 독소 조항은 ▲기사회 탈퇴 시 한국기원 주최 기전에 일절 참가할 수 없다 ▲기사들의 수입에서 3~5%의 적립금을 일률적으로 공제한다는 것 2가지다. 적립금의 경우 퇴직 시 위로금 상한선이 4000만원에 묶여 있어 고소득 기사들에게 특히 불만 요인으로 잠복해 왔다. 이세돌 측은 이들 조항의 절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법적 판결에 의지할 뜻을 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세돌 형제는 표면적으론 "한국기원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외국 주최 대회 출전 수익 중 10%를 납부하는 기원 발전기금 등 기원의 다른 정책은 대부분 그대로 따를 작정"이라고도 했다.

 

 

이번 사태가 빚어진 근본 원인으론 기사회란 조직에 대한 법적 근거 또는 기능을 명문화해 놓지 않은 점이 꼽힌다. 한국기원 정관엔 프로기사회와 관련해 '소속 기사의 품위 향상과 기력 연마를 촉진하고 본원 운영에 참여케 하기 위해 기사회를 둔다'고 딱 한 줄 나올 뿐. 조직의 법적 위상이나 권리 및 의무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이세돌 측은 "탤런트협회, 가수협회처럼 기사회도 단순한 친목 단체이므로 가입이나 탈퇴는 자유"라고 말하고 있다. 기사회에 대한 인식이 180도 다른 것이다.

소속 기사 20~30명으로 운영되던 시절의 기사회 운영 시스템을 300명을 넘긴 지금까지 답습하고 있는 게 문제란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이세돌 측의 문제 제기를 비판만 하기보다는 한국기원의 오래된 규정들을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당혹스럽기로는 한국기원보다 기사회 측이 더 해 보인다. 이세돌의 탈퇴를 허용할 경우 그의 비중으로 보아 타격이 너무 큰 데다 일부 기사의 동조 탈퇴 현상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반대하자니 명분이나 배경이 녹록하지 않다. 양건 프로기사회장은 19일 오전 기사 대의원회를 소집, 대책을 논의할 계획인데 격론이 예상된다.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 2017.01.17  프로바둑계 '재벌' 이창호, 총상금 100억 돌파

국내 최초… 1승당 630만원꼴… 2위 이세돌, 8억원 차 맹추격
현역 1인자 박정환은 36억 벌어… 인기스포츠와 큰 차, 세계화 시급

지난해까지 누적 상금 1004500만원을 벌어 한국 기사 중 최초로 100억원을 돌파한 이창호 9. /한국기원

 

프로바둑계 통산 최고 재벌(?)은 이창호(42) 9단이고, 그의 누적 수입은 한국 바둑 사상 최초로 100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원이 2016 12 31일 기준으로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이창호는 평생 기전(棋戰) 상금으로만 1004500만원을 벌었다. 2015년까지 누계 99500만원에 2016년 수입 14000만원을 보탠 금액이다.

이창호는 86년 입단, 작년 여름 기사 생활 30년을 넘겼지만 이번 통계에선 초기 2년가량이 빠졌다. 한국기원 전산화가 1988년 이뤄져 이전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 28년 동안 이창호는 세계 최다인 23회의 국제 대회 우승(비공식 2회 포함)을 포함해 총 140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89년 이후 총전적이 2204 1595 609패로 1승당 평균 630만원꼴의 수입을 올린 셈이다.

이창호를 맹추격 중인 기사가 여덟 살 아래 후배인 이세돌(34) 9단이다. 이세돌은 2016년 한 해 알파고전 대국료로만 2억여원을 챙겼고 국내 3관왕에 오르는 등 총 8억원을 확보, 연간 상금왕에 올랐다. 이세돌의 누적 수입은 921200만원으로 이창호와 차이는 8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수년 내 역전도 가능해 보인다.

이세돌은 단일 연도 대국료 수입 국내 최고기록(141000만원) 보유자이기도 하다. 2014년 수립한 기록으로, 그해 구리(古力) 10번기서만 89000만원을 벌었었다. 95년 프로에 데뷔한 이세돌은 총 49(국제 대회 18회 포함) 우승하면서 통산 1223(514 3)을 기록 중이다.

 

 

64세의 '바둑 황제' 조훈현은 정상권의 절반 수준인 437000만원으로 3위에 그쳤다. 전성기가 지난 뒤 거액 상금 국제 대회가 본격화된 이유가 크지만, 그가 국내 무대를 석권했던 88년 이전 기록이 빠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38개월 연속 국내 톱 랭커인 박정환(24) 9단은 대선배들을 제치고 데뷔 11년 만에 통산 5(368000만원)에 올랐다. 박정환의 2016년 상금 순위는 2(58000만원)였다.

이 밖에 50대인 유창혁, 30대 최철한·박영훈·조한승, 20대인 김지석·강동윤 등이 10위권에 들었다. 11~13위엔 목진석(37)·원성진(32)·서봉수(64)가 자리 잡았다. 통산 상금 10억원을 넘긴 기사는 이 13명뿐이다.

'
상금 100억원'은 일반 서민들에겐 엄청난 거액이지만, 한 분야 세계 최고 스타의 평생 수입으론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는 말도 나온다.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은 현역 시절 총연봉만도 9300만달러( 1100억원), 광고 수입 등을 합하면 전체 재산이 물경 17억달러에 이른다. 이창호와 동갑인 타이거 우즈도 상금으로만 합계 11000만달러( 1300억원)를 벌었다. 세계화를 이루지 못한 바둑으로선 모두 꿈같은 얘기다.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 사람과 알파고의 대결

2016.03.09  알파고, 인공지능의 초파리되나

체스와 비교 안 되는 바둑의 수… 인간은 4000여년 바둑 뒀지만 
여전히 바둑의 10%만 알 뿐… 학습 넘어선 창의성 여지 많아 
알파고 ‘열공’한들 따라잡을까… 바둑에서 돌파구 마련해야 
인공지능 연구의 새 장 열린다

페이자오는 프랑스에 사는 중국 여성이다. 그녀와 파리의 카페에서 바둑을 둔 적이 있다. 9점을 깔고도 졌다. 그녀는 바둑대회에 출전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기도 한다. 며칠 전 페이스북으로 구글 알파고에 진 판후이 2단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친구 사이라고 한다. 오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기대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바둑은 4000여 년 전 중국에서부터 시작됐으나 15세기 이후 일본에서 체계화했다. 알파고의 고(go)는 영어에서 바둑이란 뜻으로 일본어 이고(위碁)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중일이 바둑을 겨루기 시작한 1980년대 말 이후 챔피언은 대개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졌다. 9단이 최근 중국 커제 9단에게 지고 있지만 커제를 대세라 부르기는 이르다. 인류를 대표해 알파고를 상대하는 사람이 한국 기사라는 데 자부심도 느껴진다.

구글이나 일부 과학자들이 알파고가 이길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건 흥정을 붙여야 재미를 보는 측에서나 하는 소리다. 알파고와 판후이의 대국을 보면 알파고의 실력으로는 이 9단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 바둑계의 중론이다.

바둑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복잡한 보드 게임이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많다고 한다. 체스와는 비교도 하지 말자. 19년 전 컴퓨터가 체스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겼지만 인공지능의 발달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이란 말을 만들어낸 미국 과학자 존 매카시는 “바둑이야말로 인공지능의 초파리”라고 말했다. 유전학의 초파리처럼 바둑은 인공지능이 여기서 가장 먼저 성과를 보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야다.

알파고 소식은 갑작스러웠다. 알파고와 판후이의 대결은 지난해 10월 밀실에서 진행됐고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올 1월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프로 기사들은 그동안 컴퓨터에는 4점을 깔아주고 뒀다. 알파고는 호선(互先)으로 프로 기사를 이겼다. 전문가들은 인공신경망이 출현하고 인공신경망을 가동할 엄청난 컴퓨터 파워가 이용 가능해지면서 비약적 발전이 이뤄졌다고 본다. 알파고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라는 신기술을 통해 스스로 수를 익히고 형세 판단 능력을 키운다고 한다. 


하지만 바둑의 세계는 학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습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인간은 4000년 이상 바둑을 둬왔지만 여전히 바둑의 10%만을 알 뿐이라고 한다. 조훈현 9단이 최초의 한중일 통합챔피언이 된 1989년 응씨배에서 통상 기피되는 ‘빈삼각’을 두 번이나 둬 이겼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두기 전에는 그 수가 보이지 않았다. 수학자 가우스가 어린 시절 1부터 100까지의 더하기를 반으로 접어 50×101의 곱하기로 만들기 전에는 그 간단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과 같다. 프로 기사라도 9단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은 드물고 9단 중에서도 최고수의 자리는 몇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올라갈수록 결국은 미묘한 창의성 경쟁이다. 


알파고가 이번에 이 9단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람도 알파고가 인간을 이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체스에서 딥블루(Deep Blue)가 인간 챔피언에게 졌다가 디퍼블루(Deeper Blue)로 개량돼 몇 년 만에 이기는 식은 아닐 것이다. 무리하지 않는 포석과 행마에 상대방의 패착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면서 끝내기에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 세계 바둑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프로 기사라고 알파고를 생각해 보자. 이 기사는 심리적 동요 같은 건 모르고 체력의 한계도 없다. 하지만 그도 최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열공’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창의력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창의적인 수도 결국 경우의 수 중 하나일 뿐이다. 언젠가 알파고가 인간을 이긴다면 그날은 인공지능의 초파리 연구가 완성된 날로 기록될 만하다. 바둑의 운명은 그날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를 신이라고 정의해 보자. 알파고는 바둑의 신이 된다. 고대 그리스인이 신전에서 신탁을 구하듯이 사람들은 바둑의 다음 수를 알파고에게 묻게 될 것이다. 이미 인간이 컴퓨터에 패한 체스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2016-03-09  이세돌,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 시작…흑돌 선택한 의미는?

이세돌 9단은 돌가리기에서 흑번을 선택했다. 한국 룰보다 덤이 1집 많은 상황에서 백을 잡는 것이 보통인데 흑을 선택한 것은 포석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9단은 짙은 감색 양복에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딸 혜림이와 함께 낮 12 55분경 대국장으로 향했다. 평소 이 9단은 딸 바보로 불릴 정도로 끔찍하게 딸을 아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단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요일부터 대국장이 있는 포시즌스호텔에서 아내 딸과 함께 묵어왔다. 9단은 대국이 끝날 때까지 이 호텔에 묵을 예정이다.

9단은 흑 6의 수를 평소 프로들이 전혀 두지 않는 수법으로 구사했다. 김성룡 9단은 “이 9단이 미리 준비해온 수 같다”며 “패턴에 의해 두는 알파고를 상대로 혼란을 주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실제 불리하지도 않는 수”라고 해석했다. 

 

알파고는 백 10의 수 역시 프로로서는 두지 않는 수였다. 이 수는 좋은 수가 아니라는 평가로서 두지 않는 수. 이어 16역시 프로 감각으로는 악수로 평가받는 수였다. 김성룡 9단은 “실망스럽다. 지난해 10월 이후 실력이 늘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1국 심판위원장인 한철균 9단은 “알파고가 해킹 등으로 낙아웃이 되지 않는 것 외에는 반칙패 규정이 없는 것으로 구글 측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9단은 “알파고 대신 착수를 하는 아자 황의 실수로 잘못 놓으면 다시 무르고 둘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국장에는 지난해 10월 알파고와의 공식대국에서 50으로 진 판후이 2단도 심판단 일원으로 들어갔다. 2단은 중국 룰로 두는 이번 대국을 위해 중국식 계가를 해주는 심판 역할을 맡았다. 중국식 계가는 대국자 본인이 하지 않고 심판이 한다

이날 대국에 앞서 국내 정치인들도 이 9단 격려를 위해 포시즌스호텔을 찾았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원유철 의원,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박영선 의원 등이 찾아와 대국 전 환담을 나눴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9단과 같이 호텔에 묵고 있는 부인 김현진 씨는 “남편이 대국 전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속내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김성룡 9단 “알파고 실력에 깜짝…이세돌 67수 그곳에 놨으면 바둑 끝” 

알파고는 초반 포석에서 두 세 수 정도 프로가 두지 않는 완착성 수를 뒀지만 이세돌의 강수에 같이 강수로 맞받아치면서 초장부터 큰 전투가 벌어졌다. 우상에서 시작된 전투는 바둑판 전체로 번져나갈 조짐이다. 알파고는 포석보다 부분적 전투에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 9단 역시 전투에 있어서 세계 최강 실력이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지 않고 있다.

알파고는 대국 상황과 관계없이 거의 1분에서 1 30초 안에 착수를 했다. 이는 제한시간을 고려해 개발진이 세팅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경우 당연히 둬야할 수는 빨리 두고 어려운 대목은 오래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셈. 

기존 예상대로 전투가 벌어지자 알파고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바둑을 지켜본 프로기사들의 말이다. 김성룡 9단은 “60수까지 봤는데 초반 완착이 있었지만 결코 이 9단이 유리하지 않다”며 “알파고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9단은 “알파고의 실력을 파악하려면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초반 실망스런 모습과는 사뭇 대비되게 전투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해설을 하던 김성룡 9단도 알파고의 전투 실력에 놀란 듯 “앉아서 해설하던 저를 일어서게 하네요”하며 얼굴을 붉혔다.

9단은 흑 67 수 때 바둑 판 위에 돌을 거의 놓았다가 황급히 거둬들인 뒤 멋쩍게 웃기도 했다. 9단이 두려고 했던 자리에 뒀다면 대실착이었다. 김성룡 9단은 “이 9단이 알파고의 전투 실력에 당황해 순간 착각한 듯 하다”며 “실제 그곳에 놨으면 바둑은 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가인기자 comedy9@donga.com

 

2016.03.10  [인간 對 인공지능 두뇌전쟁] 이세돌·알파고 5번기 1국 리뷰

알파고, 중반 위기 맞자 '깜짝 수
국가대표 검토진도 놀란 승부수… 한순간에 판세 뒤집고 승기 잡아
이세돌, 초반 주도권 쥐려 흑 선택… 비틀기 전략 썼지만 팽팽한 접전
알파고, 침착한데다 전투력 강해 
최규병 9 "초기 이창호처럼 두텁게 두며 상대 실수 받아먹어"

사람과 기계의 '신경전'은 초반부터 팽팽하게 출발했다. 상대가 홀짝을 틀려 흑백 선택권을 잡게 된 이세돌은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흑을 선택했다. 작전의 주도권을 자신이 행사하겠다는 의도였다. 이세돌은 소목(小目)에 첫 돌을 놓았고, 알파고는 유럽 챔피언 판후이와의 다섯 번 대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화점(花點)에 첫수를 두었다.

이세돌의 비틀기 전략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 7에서부터 등장했다. 10은 평범하다. 포석에 다소 약하고, 알기 쉽게 판을 짜 나가겠다는 알파고의 작전이 감지됐다. 주변의 중앙 흑이 강한 환경인 만큼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16에 대해 한국기원에 차려진 국가대표 바둑팀 검토진은 처음엔 중급자가 범하는 실수로 규정했지만, 이후 18의 갈라침이 그럴듯해 그런대로 일리 있다는 평으로 바뀌었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한국의 이세돌(오른쪽) 9단의 대국에서 알파고 대역을 맡은 구글 측 아자 황 박사가 첫 수를 놓고 있다. 이날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흑돌을, 알파고는 백돌을 선택했다. /구글 제공

23에 대한 24, 26은 얼핏 무리인 것처럼 보여도 적극적 수법이었다. 전투는 이후 중앙으로 번져갔다. 66으로 흑의 요석(要石) 두 점을 잡게 돼선 백 우세의 국면이 됐다. 64의 붙임에서 고수(高手)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는 말이 국가대표 검토진으로부터 나왔다. 사이버오로 해설자 홍민표 9단으로부터 "지금까지 알파고에게서 실수가 전혀 안 보인다. 대단하다"는 감탄이 나왔다.

알파고는 형세가 좋다는 확신이 선 듯 76까지 쭉쭉 밀어붙였다. 그러나 그 직후 80이란 문제의 수가 등장한다. 80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81의 양 걸침을 허용해 주도권이 흑에게로 넘어갔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좌상귀에서 흑이 준동할 수 있는 다양한 맛을 봉쇄한 침착한 호착이란 의견도 나왔다.

뭔가 위기를 감지한 알파고는 84부터 92까지 변화를 구한다. 89로 중앙을 크게 봉쇄해선 주도권이 다시 흑에게 넘어갔는데, 그러나 이상하게도 형세는 크게 기울지 않았다. 이창호 9단은 "아직 낙관하기엔 이른 국면"이라고 했다.

92
로 임시변통 후 선수(先手) 행사 뒤 달려간 102가 놀라운 한 수였다. 처음엔 국가대표 검토진에서도 불리해서 던져본 승부수라고 보았는데, 상세한 검토 결과 감탄을 자아낼 만한 호착이었다. 선수로 수를 낸 뒤 116으로 좌상귀를 지켜선 한순간에 균형을 되찾았다. 역전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목진석 해설 참조).

둘의 시간 사용량은 비슷하게 흘러갔지만, 이때부터 알파고의 착점이 눈에 띄게 느려지면서 승세를 다져나갔다. 국내 기자용 해설장에 선 김성룡 9단의 형세에 관한 질문에 객석에 있던 양건 9단은 "어려운 형세"라며 단정적인 말을 삼갔다. 하지만 복도에 있던 이상훈 9, 한게임 해설자인 조한승 9단 등은 조심스럽게 "덤이 부담스러워질 것 같다"며 걱정을 쏟아냈다. 124로 붙여 넘는 큰 끝내기 수단을 남기고 126부터 140까지 우하귀에서 크게 살아선 백의 우세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외국 취재진용 해설장에서 해설을 맡은 미국 출신 일본기원 9단 마이클 레드먼드도 알파고에게 승산이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순간 알파고에게서 작은 실수가 나왔다. 141로 뛰었을 때 142로 둔 수는 1 4 자리로 한 칸 뛰어 사는 것에 비해 2집 이상 손해였다.

그래도 흑의 열세설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현 세계 1인자인 커제(柯潔)도 같은 의견을 밝히고 있다고 현장에 취재 온 중국 기자가 전했다. 150으로 좌변의 큰 곳을 백이 차지해선 7집 반에 달하는 큰 덤을 부담할 길이 없어졌다. 김성룡 9단은 몇 번이나 계가를 거듭하다 "많이 졌다"고 탄식했다. 이후는 그냥 두어본 수순. 186을 본 이세돌이 패배를 선언했다. 계가를 했다면 흑이 반면(盤面)으로 4집쯤 남는 형세. 덤을 제하면 백이 3집 반 정도 이긴다는 계산이다.

이날 바둑을 검토한 국내 프로들의 생각을 종합하면 이렇다. 첫째 알파고는 침착했다(10, 80). 둘째 완급 조절 능력과 전투력도 돋보였다(24~28, 82~86,102~114). 셋째 찬스가 찾아왔을 때 승부처에서 기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122, 124). 넷째, 간혹 실수를 해도(142) 감정이 없는 기계답게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다음 착점에 임한다. 최규병 9단은 "1국만 놓고 보면 두텁게 두다가 상대 실수를 받아먹고 쉽게 이겨가던 초기 이창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바둑에서 이긴 쪽의 중종반 느슨함은 승리를 위한 안전 운영으로 미화되곤 한다. 그 주체가 기계일 때는 이 같은 해석이 더욱 실감 난다. 알파고는 이날 그런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2016.03.11  알파고가 할 수 없는 것들

충격적인 사태다. 전 세계가 주시한 세기의 대결, 즉 인간과 기계의 바둑 5번기 대결 1, 2차전이 기계의 파죽지세(破竹之勢). 현존하는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딥 마인드가 만든 바둑용 인공지능(AI) 알파고가 겨뤄 이세돌이 완패했다. 이세돌이 누구던가. 12살에 입단, 1000번 이상 공식 대국에서 승리했고 세계 대회에서 18번 우승한 바둑 천재다. 명실상부한 세계 바둑계 일인자다. 3번의 대국이 남아 있지만 지금의 결과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19
줄×19줄 바둑판에 두 대국자가 둘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대다. 그 숫자가 전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수보다 많다. 바둑 팬들이 바둑을 우주와 인생살이의 축소판이라고 칭찬하는 까닭이다. 경우의 수가 훨씬 적은 체스에서 IBM의 수퍼컴퓨터 딥 블루가 세계 챔피언 카스바로프를 이긴 게 1997년임에도 이세돌·알파고 대결 전까지 최고 수준의 바둑은 인공지능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알파고에게 2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마친 뒤 경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알파고 2연승 했지만 바둑 두는 
근본 이유 이해하지 못해

인공지능 발전해도
 
인간만의 영역 분명히 있어

서로 보완하면
 
멋진 신세계 가능할 것

알파고가 중요한 건 그 함의가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포함한 우리네 삶 전체와 인류의 미래가 함께 걸려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연산(演算)해 추론하고 문제를 푸는 '약한 인공지능' 수준에서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는 '강한 인공지능'으로 발전해 갈 것으로 예측된다.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은 인간 수준의 강한 인공지능이 2040년은 되어야 출현할 것으로 보았는데 알파고는 그걸 10년 이상 앞당겼다. 힘들거나 복잡하거나 위험한 일을 모조리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가까이 왔다. 무인 비행기·자율주행 자동차·전투로봇 등의 약한 인공지능은 이미 운행하고 있거나 실험 중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원격 진료나 금융 투자 등도 곧 현실화한다.

결국 인간이 해오던 전통적 직업 대부분을 기계가 대체하는 흐름은 불가역적이다. 이는 세계경제를 이끄는 경영인·학자 등 수천 명의 전문가가 모여 지구적 현안을 다루는 2016년 다보스 포럼의 진단이다. 포럼 핵심 의제인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기'가 정확히 이 지점을 짚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인 정보기술 혁명이 많은 중간관리직 일자리를 없앤 데 이어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연결된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 지능 시대에는 수많은 전문직이 사라지게 된다. 옥스퍼드대 연구에선 미국 일자리의 47% 10년 내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실업이 폭증하고 양극화가 심화할 4차 산업혁명의 여파가 한국 사회를 강타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알파고 사건'의 최대 도전은 강한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인류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데서 온다. 자의식과 자기복제 능력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 인류의 보조자를 넘어 경쟁자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일방적 5연승을 자신하던 이세돌 9단과 프로 기사들은 최고수처럼 수를 읽고 판세를 짜는 알파고의 능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거나 파괴하는 공상과학영화가 현실이 되는 시나리오가 성큼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따라서 자의식을 지닌 최초의 강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적대하지 않도록 하는 게 인류에게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알파고는 삶의 지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시발점이다. 그러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기 마련이다. 역대 산업혁명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해 온 인류의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함으로써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멋진 신세계'는 한낱 공상(空想)이 아니다. '알파고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상기해 보면 더욱 그렇다. 충격적인 1차전 패배에 놀라면서도 '아름답고 좋은 경기인 바둑을 즐겁게 두었다'고 한 이세돌 9단의 마음을 알파고는 이해할 길이 없다. 아름다움과 선함과 기쁨을 알파고는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로 기사가 매해 1000판씩 40년을 둔다 해도 평생 4만 번에 불과한 데 비해 한 달에 100만 개의 기보(棋譜)를 학습하는 알파고지만 본질적으로 할 수 없는 게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을 가르는 결정적 지점이다. 1202개의 뇌(CPU·중앙처리장치)로 세계 바둑계 최고수가 되었건만 알파고는 자신이 바둑을 두는 이유 자체를 모른다. 그렇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지능을 갖게 되겠지만 그런 자신이 살아가는 존재 이유는 결코 알지 못한다. 삶을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사랑과 우정, 연민과 공감을 인공지능은 실행할 수 없다. 인간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그 삶의 의미를.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2016.03.11  [알파고 2연승] '크게 이기는' 대신 '확실히' 이기는 알파고, 해설자들은 패닉

10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두 번째 대국이 진행됐다. 대국 초반, 현장 중계 진행을 맡은 김여원 캐스터는 유창혁 해설에게 “알파고의 기풍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잠시 생각하던 유 9단은 “잘 모르겠다”며 “어제와 오늘 두는 걸 봤는데, 알파고의 기풍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알파고 분석’을 어려워한 것은 유 9단 뿐이 아니었다. 바둑TV 해설을 맡은 김성룡 9단도 알파고가 특이한 수를 두자 “한중일 프로기사가 1300명 정도 되는데, 모두 모아놓고 알파고의 다음수를 예측해보라고 해도 저 수는 맞추지 못할 것”이라 평했다

 

 10 2국 공식 해설위원을 맡은 유창혁 9(왼쪽)은 이세돌 9단이 중반전에서 승리 가능성이 있다고 해설했다. 그러나 막판 끝내기 상황으로 몰고간 알파고는 이 9단을 압박하며 2번째 승리를 거머줬다./류현정 기자

 

알파고가 해설자들의 예측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김석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사람은 최대한 크게 이기는 길을 찾으려 하지만, 알파고에는 최대한 안전하게 이기는 길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바둑판에서 일어나는 경우의 수는 10 170승으로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다. 프로 기사들은 자신이 바둑판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수를 예측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상대방과 최대한 격차를 벌려 승리를 얻으려 한다. 알파고는 초당 10만개의 수를 계산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모든 경우의 수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알파고는 ‘변수’를 최대한 줄이는데 집중한다. 김 연구원은 “크게 이기고 변수가 많은 수와, 적게 이기고 변수가 적은 수가 있다면 알파고는 후자를 택하도록 설계됐다”며 “프로 기사와는 다른 길을 가기 때문에 ‘실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는 알파고의 ‘계산’의 결과”라고 말했다

조혜연 9단은 “이 9단은 실수를 하지 않았고, 알파고는 몇 번의 실수가 있었다”며 “완벽한 이세돌이 실수한 알파고에게 진 형국”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알파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실수가 아니라 ‘안전하게 이기는 수’일 뿐이다

이런 알파고의 특성 때문에 해설자들은 대국을 중계하는 동안 몇 번이나 말을 바꿔야 했다. 끝내기 국면에서 알파고가 이 9단에게 돌을 잃자 김성룡 9단은 “저 수는 명백한 실착이다 이 9단이 역전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가 이후 이 9단의 패색이 짙어지자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

생각하는 기준부터 다른 만큼, 남은 3번의 대국에서도 해설자들은 알파고가 놓는 포석을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는데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의료영상연구실 선임연구원은 “사람에게는 알파고의 수가 애매하게 느껴지지만, 알파고는 1수를 둘 때마다 조금씩 이득을 얻는 바둑을 둔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이진희 디자이너.

류현정 기자

 

2016.03.14   resigns… 인공지능이 항복했다

resigns… 인공지능이 항복했다

이세돌, 4국서 혼신의 반격… 바둑史에 남을 묘수로 1202 CPU 가진 알파고 제압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인간이 자존심을 되찾으며 반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전체 시리즈의 패배는 결정됐지만, 이세돌은 오히려 힘을 내는 양상이다. 인간 대표, 국가 대표, 개인의 명예에 거액의 상금까지 걸린 일생일대 승부에 억눌려 있던 이세돌(33) 9단이 마침내 일어섰다.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서 벌어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서 이세돌은 알파고를 180수 만에 백 불계로 꺾었다.

 

그가 대국을 끝내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났을 때 내외신 기자들이 일어나 "이세돌"을 연호하며 박수로 맞이하는 흔치 않은 풍경이 연출됐다.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 알파고 제작 총책임자였던 데이비드 실버 등 구글 측 관계자들도 이세돌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번 시리즈서 내리 3연패에 몰려있던 이세돌의 혼신의 반격이 통했다. 전날 3국을 알파고에 내줌으로써 이번 행사는 알파고의 승리로 결정이 났지만, 인간 측 입장에서 이 한판은 역경 속에 건져올린 값진 1승이었다. 1202 CPU(중앙처리장치)로 무장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눌러 인간의 창의성을 과시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전날까지 충격에 휩싸여 있던 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통산 18회 세계대회를 포함, 47회 우승 관록의 이세돌도 체면을 되찾았다.

 

▲돌 던진 알파고 - 알파고가 착점을 표시하는 모니터 화면에 ‘AlphaGo resigns(알파고는 포기한다)’라는 팝업 창을 띄워 불계패를 선언한 모습. /바둑TV

 

특히 이세돌이 이날 중앙에서 보여준 끼움수(78)는 바둑 역사에 남을 만한 '신의 한 수'로 격찬받았다. 반대로 알파고는 중반전부터 난조에 빠져 이번 5연전 중 가장 저조한 기보를 남겼다. 컴퓨터의 한계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였다. 이날 바둑은 초반 흑 11수까지 2국과 똑같은 수순이 이어져 화제가 됐다.

최종국인 5국은 하루를 쉰 뒤 15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다.

3連敗 날이 결혼 10주년… "잠들다 깰때마다 바둑판 보며 한숨"

[인간 對 인공지능 두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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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세계 정상 섰을 때도 볼 수 없었던 미소 지은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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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패 후 1승을 하니까 이렇게 기쁠 수 없군요. 앞으로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정말 값어치 있는 1승입니다." 승리 인터뷰에 나선 이세돌(33) 9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18번이나 세계 정상에 섰을 때도 볼 수 없었던 안도의 표정이 얼굴 전체를 덮었다. 당초 장담했던 것과 거꾸로 알파고에 연패를 거듭하면서 쏟아졌던 비난은 천하의 '센돌'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 사이 한국 관계자들과 마주칠 때마다 이세돌은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하곤 했다. 이세돌이 겪었던 마음고생을 옆에서 지켜봐 온 가족들도 이날 회견에서 이세돌이 쏟아내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목이 메었다.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오른쪽)이 대국 종료 후 이세돌 9단을 찾아 축하 인사를 건네는 장면. 브린은 “흥미진진한 대국에 감사한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서 마지막 대국을 꼭 보겠다”고 말했다. /구글 제공

3국을 져 알파고의 우승이 결정된 12일은 하필 이세돌·김현진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파티는 열리지 않았다. 아내 김씨는 "세돌씨가 우승 좌절이란 큰 아픔 속에서도 기념일을 기억하고 손을 꼭 잡아주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 주말로 예정된 제주도 가족 여행 때 축하 케이크를 자르자는 말을 나누고 있을 때 방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호텔 직원의 손엔 봄 냄새를 함빡 머금은 꽃과 예쁜 라벨의 샴페인, 그리고 축하 카드가 들려 있었다.

"
이세돌 9단의 결혼 10주년을 축하하며 두 분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합니다"는 글 밑에 데미스 허사비스 알파고 CEO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잠시 뒤엔 친누나 이세나(38·월간 바둑 편집장)씨가 방문을 노크했다. "위로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어요." 이세돌은 평소와 다름 없이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딸(혜림·10)과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누나를 향해 "내일은 무조건 이길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세돌은 이번 대결 기간 초반 세 판을 두는 동안 거의 밤잠을 못 이뤘다. 완승을 다짐하다가 거꾸로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익숙지 않은 상황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마주 앉은 상대가 사람 아닌 기계라는 것, 그 기이한 괴물에 연패를 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특히 세계 3관왕이자 자신의 천적이기도 한 중국 커제(柯潔) "처참하게 패한 이세돌은 인류 대표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의 충격은 극에 달했다.

"
잠깐 잠들었다 깰 때마다 베란다에 혼자 앉아 바둑판 위로 한숨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세돌씨가 가족들한테 힘들다는 내색을 하는 적은 평소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없었어요. 10년 살다 보니 눈치로 다 느끼게 됐지만…. 특히 혜림이에겐 어두운 얼굴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고합니다." 아내 김씨의 얘기다.

3
국서 패해 우승이 날아간 뒤 가진 회견에서 이세돌의 첫 마디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 드려 너무 죄송하다"였다. 그리고 "기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심한 압박감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세돌을 향한 팬들의 반향은 바로 이날 패배가 확정되면서부터 응원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인간을 대표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는 모습에 감동한 것이다.

4
국이 한창 중반을 넘어가던 13일 오후 3시 무렵 이세돌의 친형 이상훈(41)씨와 형수 박지이(37)씨가 대국장에 도착했다. 역시 프로기사인 이상훈 9단이 모니터를 살피더니 함성을 내지른다. "오늘은 무조건 이기는 형세입니다. 그런데 어제 나와 약속했던 작전 그대로 두고 있어요." 전날 이세돌과의 통화에서 "알파고에 큰 모양을 내주고 그 안에서 타개하는 작전을 펼 것"을 권했는데 그 전략이 적중했다는 얘기였다. 충남 당진에서 교사로 활동 중인 형수는 "선생님들께 들려줄 얘기가 많아졌다"며 동서를 얼싸안았다.


이세돌은 4국 기자회견을 마친 뒤 딸 혜림양의 손을 잡고 숙소로 향했다. '인류 대표'라는 무거운 짐은 이제 벗어부치고 내일의 마지막 한 판을 다짐하는 힘찬 발걸음이었다.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알파고가 일부러 져줬다는 말도 있는데…

[‘인간’ 이세돌 3패 뒤 첫 승]“이기게만 세팅돼 무리수 둔 듯” 
Q&A
로 본 ‘이세돌 vs 알파고’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국민들을 기쁘게 했지만 일각에선 13국에서 거의 완벽했던 알파고가 갑자기 초보자급 실수를 연발한 것에 대해 ‘구글 측이 알파고의 바둑 실력을 조정해 패하게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처럼 이번 세기의 대결을 통해 나왔던 의문이나 궁금증에 대해 문답 풀이로 알아본다

Q. 4
국에서 알파고가 이 9단에게 져줬다는 루머도 있다. 워낙 잘 두던 알파고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다 

A.
 알파고는 이기는 길로만 세팅돼 있다. 그래서 한 번 실수로 자신이 지는 상황이 꾸준히 이어지면 이기려고 무리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판후이 2단과의 대결에서도 자신이 불리해졌을 때 엉뚱한 수를 두기도 했다. 이번에도 이 9단의 예상 못한 수가 나오면서 갑자기 완벽하던 알파고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구글 측은 알파고의 약점을 발견했다며 이를 보완하겠다고 했다 

Q.
알파고가 패를 하지 않는다, 9단이 패를 하지 않기로 이면 계약을 했다는 주장이 나돌았다 

A.
 알파고가 패를 즐겨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패를 가급적이면 안 만들 뿐이지, 패를 못하는 건 아니다. 2단과의 5, 9단과의 3국을 보면 패를 하는 수준이 정상급 기사 못지않다. 또 이 9단이 1, 2국에서 불리한 데도 패를 만들지 않았던 것은 패를 해도 승산이 없다고 본 것이다. 9단은 3국에선 하변에 침투해 적극적으로 패를 만들었다

 

Q. 9단이 4국 후 알파고는 백번보다 흑번이 안 좋은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무슨 뜻인가 

A.
  7집 반은 흑에 부담스럽다. 그래서 초반에 흑이 적극적으로 둬야 하는데 알파고는 포석이 약하고 주도적으로 뭘 만들어 내기보단 상대가 두는 수를 받아치는 데 능하다. 그래서 흑을 잡으면 어설픈 진행이 나온다. 알파고가 흑이었던 2국도 이 9단이 한때 유리한 적이 있었다. 9단이 4국 대국 뒤 흑을 잡겠다고 한 것은 이 9단이 흑번으로도 승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Q.
한국기원이 구글 측에 ‘알파고는 이세돌의 기보를 모두 파악했는데 이세돌도 알파고의 기보를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보를 요청했다는데…

A.
 한국기원 내에서 알파고 기보를 봐야 한다는 얘기가 돌았던 것은 맞다. 구두로 구글 측에 기보를 보여 달라고 했으나 구글이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는 이 9단이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강하게 요구하진 않았다고 한다. 

Q.
9단이 구글 측의 대국 요청을 3분 만에 수락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빨리 결정했나

A.
  9단은 알파고라는 인공지능과의 대결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중국 프로인 판후이 2단을 이겼다는 인공지능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기심’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2016-03-15  2016년 알파고와 1997년 딥블루의 대리棋士가 동일인물?

▲알파고’의 대리기사(棋士) 아자 황 박사

 

▲체스 머신 ‘딥 블루’의 개발자 펭쉬엉 수 박사(왼쪽)

 

‘알사범’ 알파고(AlphaGo)의 바둑을 대신 둔 동양계 인물과 1997년 세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누른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의 대리인이 인터넷과 SNS 상에서 동일인물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들을 ‘기계제국 앞잡이’로 부를 만큼 별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다.

 

알파고의 ‘아바타’인 아자 황(Aja Huang)은 국립대만사범대 출신의 공학박사로 현재 구글 ‘딥 마인드’ 연구과학자(research scientist). 반면 ‘딥 블루’의 대리인인 펭쉬엉 수(Feng-hsiung Hsu)는 국립대만대를 나와 카네기멜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IBM을 거쳐 지금은 MS에서 근무하고 있다. 별명은 ‘미친 새(Crazy Bird).

 

아자 황과 펭쉬엉 수는 타이완계 공학박사라는 공통점에다 무뚝뚝한 표정, 통통한 외모, 금테안경, 입 주변이 두터운 얼굴 하관여기다 머리모양까지 판박이 인물. 네티즌들은 두 사람을 “복제인간 1, 2호가 아니냐”고도 했다. 얼핏 보면 옆모습이 많이 닮았다.

 

체스에 빠진 '미친 새', 펭쉬엉 수

 먼저 1959년생(한국나이 58)인 펭쉬엉 수는 1985년 체스를 두는 컴퓨터 ‘칩 테스트’를 만든 인물. 대학시절부터 줄곧 컴퓨터 체스연구에 몰두했고 박사학위도 ‘체스를 위한 컴퓨터 알고리즘 및 하드웨어 디자인’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대결이라는 프로젝트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카네기멜론대의 대학원생이었던 펭쉬엉 수는 대학원 동기생 머레이 캠벨(Murray Campbell)과 ‘체스 머신’을 제작키로 의기투합한다.

 

처음엔 ‘깊은 생각(Deep Thought)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나 IBM이 두 사람의 재능을 간파하고 스카웃해 체스에 특화된 수퍼컴퓨터 ‘딥 블루’가 완성됐다.

 

‘깊은 생각’이란 이름은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컴퓨터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가스 제닝스 감독에 의해 2005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어느 날, 우주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지구별이 철거되면서 주인공(아서 덴트)과 외계인 친구(포드 프리펙트)가 우주 이곳저곳을 여행한다는 내용이다.

 

‘깊은 생각’에서 출발한 체스 프로그램은 ‘딥 블루’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수 천 대국을 학습한 ‘체스 황제’로 거듭나게 됐다. 1997년 ‘딥 블루’와의 대국에서 패한 카스파로프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기계의 창의성을 보았다. 그 녀석(‘딥 블루’)은 경기를 두는 동안에도 계속 학습했다”고 주장하며 재경기를 원했지만, IBM은 거부했다. 

 

아마 6 '친알파', 아자 황

반면, 올해 41(1976년생)인 아자 황은 2011년 국립대만사범대에서 컴퓨터과학 및 정보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11월 ‘딥 마인드’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한 뒤 지난 2014년부터 구글 본사에서 연구과학자로 재직 중이다. 아마 6단의 바둑고수라고 한다. 바둑실력이 뛰어나 작년 10월 판후이 2단과 겨룰 때도 알파고의 대리 기사로 나왔었다.

 

이세돌 9단이 연거푸 패하자 일부 네티즌은 ‘친일파’에 빗대어 인간 최초의 ‘친알파’”라 부르거나 ‘빵 셔틀(심부름꾼)’에 견줘 “알파고 돌 셔틀(심부름꾼)”이라 비꼬았다.

 

두 사람이 어떤 인연인지 알 수 없다. 전혀 만나지 못했을 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인간과 겨루는 감정없는 AI의 대리인이란 점에서 애증이 교차한다.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는 비호감(?)이다.

김태완 조선pub 기자

 

2016.03.16  '지옥의 길' 뛰어들어간 이세돌… 알파고 한계치를 시험하다

[인간 對 인공지능 두뇌전쟁]

피말렸던 마지막 승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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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초중반 우세
초조한 허사비스, 트위터에 "나는 지금 손톱 물어뜯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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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도 초읽기
이세돌 완착에 형세불명으로 회로속에서 돌 놔보며 수 읽는 알파고와 불리한 '계산싸움'
, 마지막까지 혼신의 투혼

 

▲'명예 9' 알파고 - 한국기원은 15일 시상식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에 사상 최초로‘명예 9단’단증을 수여했다. 처음엔 한자 위주로 쓴 단증을 마련했으나 너무 어렵고 한국인과 영국 회사의 인공지능 간 대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한글과 영어로 적힌 단증을 새로 제작했다.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은 이번 대국을 앞두고 지인들에게 "미세한 바둑이 되면 지옥이다"라는 말을 했다. 알파고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종반 계산력은 이미 1~4국에서 경험한 이세돌이다. 계산의 귀신인 기계를 종반에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간의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중반 이전에 승세를 구축해야 한다." 이세돌은 주변 사람들과 대회 기간에 몇 번이나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이세돌은 모든 기사 중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기풍의 소유자다. 가능한 한 복잡하게 판을 이끌며 난전을 유도한다. 바로 이 '이세돌 스타일'로 이끌어야 한다고 모두 입을 모아 조언했다. 이세돌은 유일하게 이긴 4국에서 일단 확실한 집을 확보한 뒤 상대의 세력권 안으로 뛰어들어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선택했고, 이것이 통했다.

이날 5국도 초반은 그런 흐름이었다. 우하귀에서 40집에 이르는 실리를 챙기며 만족스럽게 출발했다. 게다가 알파고가 보기 드문 수읽기 착오를 범했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지금 (알파고의 실수에 속이 상해)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하지만 지금 열심히 만회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흑의 순항이 계속됐다. 각 방송과 인터넷 사이트 해설자들은 입을 모아 이세돌의 출발이 마음에 든다고 합창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5시가 가까워지면서 미세하게 이세돌의 작전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황소처럼 묵묵히 따라오며 조금씩 차이를 좁혀갔다. '알파고 타임'이 시작되는가. 서봉수 한철균 등 선배 기사와 이세돌의 친형인 이상훈의 미간이 약간씩 찌프러지기 시작했다. 미세하지만 형세 역전이란 말이 돌았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비대칭' 하나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있다. 인간끼리의 바둑 대결에선 앞으로 둘 수를 미리 놓아 보면서 대결하는 경우가 없다. 그건 반칙이다. 이세돌도 머릿속으로 돌의 위치를 '그려 가면서' 바둑을 둔다. 하지만 컴퓨터도 그런가. 컴퓨터는 회로 속에서 돌을 미리 놓아보면서 바둑을 두는 것 아닌가. 다만 이 모습이 사람들이 보는 화면에 비치지 않을 뿐이다. 이세돌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 분투하고 있었다.

TV
조선 자막에 '바둑 신들이 벌이는 최후의 전투…전장은 중앙'이란 문구가 떴다. 그 위로 김영삼 해설자, 정다원 진행자의 목청이 높아졌다. 해설자 백홍석 9단이 "어쩌면 이번 시리즈에서 처음 계가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이건 이세돌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바둑은 어느새 끝내기 싸움 양상으로 가고 있었다. 이세돌에게서 X자로 꺾인 양 손목으로 머리를 괴는 특유의 동작이 나왔다. 심각할 때 등장하는 제스처다. 현장의 프로들은 "미세하지만 덤이 부담스러운 형세"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왜 그토록 위험하다던 집싸움의 길로 걸어 들어 갔을까. 그 길을 택하도록 강제한 건 바로 알파고였다. 그래서 알파고의 힘이 더욱 무서워 보였다.

마침내 알파고도 201을 두면서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둘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이세돌은 눈을 부릅뜨고 역전의 실마리를 찾아 나섰지만 알파고의 계산은 철통같았다.

어찌 보면 이세돌이 알파고를 시험대에 세운 한 판이었다. 이세돌은 알파고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래도 알파고는 넘어가지 않았다. 쇳덩이 컴퓨터는 무표정하게철저한 수지타산 능력으로 인간 대표의 시험을 받아냈다. 이세돌은 그토록 넘지 않으려 애쓰던 계가의 영역, 지옥의 땅으로 속절없이 끌려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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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백돌 하나를 반상에 내려놓아 항복을 표시한 이세돌의 시선엔 후회와 자책, 아쉬움이 뒤섞여 있었다. 옥쇄할 기회도 잡지 못하고 마지막 판을 내준 '인간 대표'는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 변호사 잉여시대

2015.12.05  변호사는 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매일 구치소로 출근했나

변호사 2만명 시대의 불편한 자화상


웃음 파는 '접견녀'
돈 많은 재소자 요구로 함께 시간 때우는게 업무
월급은 250~300만원 의뢰인이 심사후 고르기도

돈 욕심에 잡범 전락
보석·공탁금 가로채고 사기·횡령에 성추행까지
변협 징계 건수 매년 증가

머슴 변호사로 전락
젊은 변호사들 고용한후 법조 브로커가 로펌 운영
500만원 정도 받고 아예 명의 빌려주기도

어쩌다 이렇게 됐나
로스쿨 출신 대거 배출 치열한 수임 경쟁 벌여
5만원 회비 체납하는 변호사만 1000명 육박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변호사가 많은 미국에서 유래된 속담이지만 이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사기·횡령 등 잡범(雜犯)으로 추락하는 변호사가 속출하고 있고, 구치소에서 법률서비스 대신 웃음을 파는 변호사까지 생겨났다. 변호사가 2만명에 이르는 시대, 그 그늘도 점점 넓어지는 셈이다.


돈 욕심에 사기 횡령범 되는 변호사

부장판사 출신 정모씨는 개업 4년 차 변호사다. 2013년 서울동부지법의 한 사기 사건 피의자의 변호를 맡은 그는 피해자를 만나 3억원을 대신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피의자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받아내 재판부에 냈다. 합의서 덕분에 피의자는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피해자가 정 변호사와 피의자를 찾아가 약속한 3억원을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오히려 정 변호사와 피의자는 "3억원을 갚아야 하기는커녕 우리에게 오히려 채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까지 냈다. 정 변호사는 최근 대한변협에서 정직 6개월 중징계를 받았다. 이뿐 아니다. 정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에게 증인신문 비용, 출장비, 재판진행비용 등 각종 추가 비용을 요구하다 과태료 200만원, 재판부와의 친분을 과장하고 의뢰인에게 승소를 장담하다가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2년 새 세 차례 징계를 받게 된 그는 법무부에 징계가 과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의신청을 냈다.

수일 전 강원도 춘천에선 유모 변호사가 사기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모 종중 토지와 관련된 민사소송을 맡은 그는 승소하면 수임료 명목으로 일부 토지를 받기로 했다면서 그 땅을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 3억원을 챙겼다. 하지만 그는 소송에서 졌고, 땅 매입자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사무장이 한 일로 나는 모르겠다"고 버텼다.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춘천지법은 "피해 금액이 크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춘천 인근에선 유 변호사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변호사의 비리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법원에 낸 보석금이나 공탁금은 확정 판결이 나오면 돌려받을 수 있지만 의뢰인 몰래 이를 챙기는가 하면, 주가 조작에 가담했다가 구속된 변호사도 있었다. 한 변호사는 세금을 적게 나오게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의뢰인에게 세금을 받아 자신의 용돈과 미국에 사는 아내 생활비로 썼다가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변호사 비리 유형이 사기, 횡령, 배임, 주가 조작, 성추행 등 일반 잡범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변호사에 대한 비위가 접수돼 징계 절차에 들어간 징계개시신청 건수는 2013 73, 2014 185건이었고, 올 들어 지난 11월 현재 245건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 중엔 수임료만 챙기고 일은 하지 않는 '먹튀' 변호사도 있었다. '성실의무 위반' 징계 받은 변호사는 2008 3건에 그쳤으나 2010 8, 2012 8건으로 늘었고 지난해 11건이었다.

 

▲일러스트 = 김성규 기자

 

법률 자문 대신 웃음 파는'접견변호사

변호사 2만명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속칭 '접견녀'의 출현이다. 일부 로펌들이 용모 단정한 여자 변호사를 뽑아 피의자 접견권을 이용해 구치소 접견실에서 재소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다. 과거에도 기업인 재소자와 회사를 오가며 심부름을 맡았던 '집사 변호사'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젊은 여자 변호사들이 집사 변호사로 대거 진출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일부 중소 로펌은 아예 로스쿨 출신의 여자 변호사들만 채용한다고 한다. 접견 변호사들은 구치소에서 의뢰인과 하루 종일 이른바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 보내주는 게 주된 업무라 사건 내용은 몰라도 된다고 한다. 이들은 때로 의뢰인이나 로펌 요구에 따라 짙은 화장을 하거나 짧은 스커트를 입기도 한다. 일부 재력가 재소자들은 여러 명을 면접한 뒤 자신을 전담할 접견 변호사를 선택하기도 한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룸살롱에서 여종업원 파트너 선택하듯 접견 변호사를 고르는 사례까지 있다"면서 "한 젊은 변호사는 로펌 입사 후 한 달간 사무실에 가지 않고 구치소에서 재소자들 접견만 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보수가 다른 변호사보다 많은 것도 아니다. 이들 급여는 대략 월 250~3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취업이 안 되는 점을 이용한 일부 로펌과 재력가들에게 떠밀려 로스쿨 출신 여자 변호사들이 말하기도 민망한 업무에 내몰리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접견실을 차지하다 보니 실제 접견이 필요한 재소자를 위한 공간이 부족해질 정도다. 서울구치소 측은 지난 여름 대한변협에 10여 명의 변호사 명단을 통보하고 징계를 의뢰했다. 일부 접견 변호사들은 재소자에게 사탕이나 과자, 초콜릿 등 금지 물품을 전달하다 적발됐으며, 이런 물건들은 부적절한 접견 과정에 사용된 일종의 '데이트 용품'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브로커에게 고용된 머슴 변호사

법조브로커에게 고용된 이른바 '머슴 변호사'도 늘어나고 있다. 법조브로커들은 '변호사가 아닌 자는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현행 규정 때문에 변호사를 '바지 사장'으로 앉히고 여러 명의 젊은 변호사들을 고용해 실질적인 로펌 사주 역할을 한다. 검찰·법원에 발 넓은 브로커가 사건을 가져와 자신의 부하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나눠주는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변호사가 브로커의 을()이 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일감이 없는 변호사들은 아예 브로커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챙긴다. 최근 인천지검은 개인회생 사건을 수임해 480억원을 챙긴 법조브로커 77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에게 명의를 준 변호사 57명도 적발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명의 대여료로 매달 500만원가량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브로커들은 변호사가 직접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파산·회생이나 등기 사건을 자신들이 수임해서 처리했다고 한다. 로스쿨 출신 박모 변호사는 "불법인 줄 알지만 월 500만원만 준다면 명의를 빌려줄 변호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위와 탈선 더 심각해진다

문제는 변호사들의 비리와 탈선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국내 변호사는 1906 3명으로 출발해 2008 1만명을 넘어섰다. 1만명 돌파에 102년 걸렸다. 하지만 2만명을 넘어선 것은 지난 9 16일이었고, 11월 말 현재 대한변협에 등록한 변호사는 모두 2406명이었다. 7년 만에 다시 1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2004년부터 사법시험 합격자를 1000명으로 늘린데다, 2012년부터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매년 1500명 이상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2050년 변호사 수는 7만명을 넘게 된다.

변호사업계는 지금도 변호사 포화 상태라고 아우성이지만, 변호사의 보릿고개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초동에서 개업한 8년 차 변호사는 "한 해가 다르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배고픈 변호사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변호사 한 명이 맡는 사건은 20년 전만 해도 한 해 평균 50건이었으나, 요즘은 20건대로 떨어졌다. 여기에 최소 300만원 받던 수임료도 이젠 10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지방변호사회에 매달 5만원씩 내는 회비를 체납하는 변호사가 1000명에 육박하고, 그 회비 내기도 아까워 아예 휴업 신고를 내는 변호사도 400명이 넘는다. 로스쿨 출신 이모 변호사는 "변호사라고 하면 주변에서 다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지만 막상 동기들 중 상당수가 취업을 못 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범죄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어쩔 수 없이 비리를 저지르게 된다"고 했다. 이러다보니 의뢰인을 부추겨 억지 소송을 유도하는 기획 소송이 늘어나고, 변호사 불법 과장 광고도 판을 치고 있다.

지난 7월 취임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법조 비리 척결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최근엔 법 원과 검찰, 변호사 단체 등 이른바 법조 3()이 모여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맑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직업 윤리를 저버리고 불법·탈선을 저지르는 변호사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그럴수록 징계 수위를 더 높이는 등 자체 정화를 위한 여러 대책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훈 기자

 

2016.05.04  로스쿨 ‘금수저 입학’ 논란, 美·英·佛·獨은 어떻게 변호사되나

▲영국의 법정 모습

 

한국의 법조는 조직과 기수 중심의 관료주의적 법조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폐쇄적 법조 카르텔을 깨는 새로운 물결로 노무현 정부 당시 전격 도입됐다.

 

그러나 최근 로스쿨 ‘금수저 입학’ 논란이 불거지면서 로스쿨은 ○○○대법관 ○○○법원장 아들딸 등 특수층 자제가 입학하는 곳임이 확인됐다. 경북대 등 몇몇 대학은 아버지의 직업을 자기소개서에 담지 못하도록 원칙을 정해 놓고 이를 어긴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당초 취지는 학부 때 학생운동을 한 사람도, 사회(직장)생활을 체득한 나이 많은 이도 ‘리걸 마인드’(legal mind)가 있다면 변호사가 되는 길을 열어두려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지 않다.

 

 해가 갈수록 로스쿨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얘기가 들린다. 입학하는 학생들의 다양성이 로스쿨 출범 초기보다 엷어지고 있고, 다양성보다는 수월성 쪽으로 입학 전형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로스쿨 입학연령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2009년 로스쿨 1기 입학생 가운데 25세 이하 비중이 28.3%였으나 2013년엔 35.2%로 늘었다. 졸업 후 다른 경력을 거쳐 로스쿨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준다는 의미다.

 

외국의 변호사제도는 한국과 얼마나 다를까. 어떤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할까. 한국법학교수회가 작성, 2015 9월 법무부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살펴보자.

 

◇미국=로스쿨 거쳐 각 주 변호사 시험 통과해야

20세기 미국에서 변호사는 대표적인 ‘성장 직업군’이었다. 20세기 초 11만 명의 변호사가, 세기말에 이르러 100만 명에 육박하게 됐다. 2015년 현재 등록 변호사 수는 130만 명.

 

1905 1900여명의 필라델피아 지역 변호사 중 3명만이 여성이었으나 2015년 현재 여성 변호사는 전체 35%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흑인은 5%. 성별보다는 인종적 진출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내 인가된 로스쿨은 206개교다. 205개 학교는 J.D.학위를 수여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US ARMY Judge Advocate General's School’인데 J.D.학위 이상의 특별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로스쿨간의 순위를 매기는 대학평가는 공식적으로 없다.

 

입학전형은 졸업학부의 내신 성적, 추천서, 자기소개서, 로스쿨 수학능력인정시험인 LSAT(law school admission test)을 쳐야 한다.

 

학부성적이 우수하고 ‘미래에 자기계획이 확실한 학생’이 합격 가능성이 높다. 저소득층 특별전형은 공식적으로 없으나 출신지역의 학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뽑는다.

 

미국은 한국처럼 학부과정의 법학과가 없어 판검사 그리고 변호사 등의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J.D. 학위를 취득한 후 각 주()의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J.D.는 일반적으로 미국변호사협회(ABA)에서 인가한 로스쿨의 J.D.를 의미한다.(앨라배마,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테네스 주 등은 ABA가 인가한 로스쿨이 아니라 주()가 인가한 로스쿨을 졸업한 학생도 시험자격을 부여한다.)

 

캘리포니아, 버몬트, 버지니아, 워싱턴 주 등은 로스쿨을 나오지 않았을지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판사나 변호사로부터 학습을 받은 경우, 변호사 시험 자격을 부여하며 뉴욕주는 미국의 로스쿨에서 최소 1년 동안 수학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법조윤리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영국=변협(배리스터협회, 솔리시터협회)이 주관해 독자적 변호사 양성

영국의 법률서비스 시장은 전 영국 국내총생산의 1.6%를 차지한다. 2013년 법률서비스로 인한 순 국제수지 흑자가 31억 파운드(한화 57000억원 상당), 세계 10대 법률회사 중 5곳이 영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심지어 전 세계 법률서비스 시장의 수임료 기준 약 7%, 유럽시장 기준 20%가 영국이 차지하고 있다.

 

영국 법조시장의 국제적 경쟁력은 국제거래나 중재 등의 준거법으로 채택되는 영국법이 가지는 기득권, 세계 공용어로서의 영어의 위력이 주요한 근거가 됨을 부인할 수 없다. 2014년 기준 개업변호사는 15716명이다. 이중 80% 이상인 12709명이 개인사무소를 운영하는 자영 배리스터다. 총 개업변호사의 35%가 영국 배리스터인데 2010 5163명 대비 약 7% 증가했다.

 

영국 변호사제도는 배리스터(barrister)와 솔리시터(solicitor) 두 종류의 변호사가 존재한다. 보통 법률가(lawyer)라는 일반 명사는 이런 두 종류의 변호사를 통칭하지만 일상에서는 양자 중 하나를 특정하게 사용한다. 과거 배리스터는 법정변호사로, 솔리시터는 사무변호사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현재는 양 직역(職域)간 구별이 줄고 있다고 한다.

 

배리스터와 솔리시터는 각각의 전문직업조합인 배리스터협회(Bar)와 솔리시터협회(Law Society)에서 주관하여 양성된다. 양자 모두 기본적으로 법학교육과정, 직업교육과정, 실무수습과정 등 3단계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어떤 경우든 최소한 대학에서 학사학위 혹은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법률기본과목을 이수해야 변호사의 꿈을 꿀 수 있다.

 

정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법학사를 취득하면 법학교육과정을 자동적으로 이수한 것이 된다. 정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영국 법학원(College of Law of England and Wales) 혹은 기타 인증된 교육기관에서 집중법학교육과정을 이수해 법학교육이수증(Graduate Diploma in Law)을 취득하거나 공통자격인증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배리스터가 되려면배리스터협회에서 관장하는 1년짜리 배리스터전문연수과정(BPTC)을 이수해야 한다. BPTC를 이수하기 전 반드시 인성검사(aptitude test)를 통과해야 한다. 배리스터 후보자는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4곳의 법학원(Inns of Court)에 소속돼 각 법학원에서 제공하는 주말강좌나 초청만찬 등에 참석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배리스터 자격을 획득하지만, 실무를 담당하기 위해 별도의 1년간의 실무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솔리시터 역시 솔리시터협회가 관장하는 1년짜리 솔리시터전문과정(Law Practice Course, LPC)을 이수한다. 이 전문 과정에서는 의뢰인상담, 협상 및 변론기술을 연수하게 된다 2년 동안의 실무수습을 거쳐야 독자적인 솔리시터로 활동할 수 있다. 실무수습은 로펌, 검찰, 지자체 법무과에서 이뤄진다.

 

◇독일=대학에서 법학전공하고 1, 2차 국가시험 합격해야

독일 변호사회는 2015 1월 현재 164565명이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변호사는 163540명이다. 독일 변호사는 2010년 이래 매년 평균 2%씩 증가하고 있다. 여성변호사는 54912명으로 전체 변호사의 33.6%. 여성 변호사는 1970 1035명이었으나 1970 22882(4.5%), 1984 10%를 넘었고, 1996 20%를 넘었다.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독일 법관법’에 따라 법관자격을 가지고 있거나, ‘독일내 유럽 변호사의 활동에 관한 법률’의 편입조건을 충족한 경우 적성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독일 법관법에 따라 독일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실무연수와 함께 2차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때 법과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응시하는 1차 국가시험은 ‘대학’에서 정하는 전문과목 시험과 ‘국가’에서 정하는 필수과목 시험으로 구성된다.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모습.

 

◇프랑스=공직·사기업·지방의원·지방직공무원 등 다양한 외부 인사, 판검사로 임용

프랑스에서 변호사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을 해야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있고, 판검사는 국립사법관학교를 졸업해야 임용될 수 있다. 판검사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나 변호사가 판검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사법체계는 이원화되어 있는데 일반 사법권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사법부가 있고, 행정소송은 행정최고재판소를 최고법원으로 하는 행정법원이 담당하고 있다.

  

▲행정법원 법관이 되는 길=프랑스는 지방행정법원과 항소행정법원의 법관이 되는 방법은 크게 4가지다. 첫째는 가장 일반적 방법으로 ‘국립행정학교’ 졸업생 가운데 선발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외부선발, 셋째는 파견 후 선발, 넷째는 추가선발을 통해 선발한다.

 

국립행정학교는 프랑스 고위 공무원 양성학교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행정법원의 법관이 되거나 아니면 일반 공무원 혹은 외교관 등으로 근무하게 된다. 국립행정학교가 국립사법관학교와 다른 점은 국립사법관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사법관에 임용되지만 국립행정학교는 모두 행정법원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립행정학교는 27개월 과정의 이론과 실무과정을 거쳐 졸업하는 데 선발방법은 크게 3가지다.

 

①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거쳐 선발한다. 대학졸업자가 대상이다. 매우 치열하다. 2013 40(여성 11)을 뽑았다.

 

②공무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데 4년 이상 공무원 경력자가 대상이다. 2013 33(여성 9)을 선발했다.

 

③일반인 대상으로 하는 시험으로 8년 이상의 공직 혹은 사적 영역에서 활동을 했거나 지방의회 의원 경력자가 대상이다. 2013 8(여성 3)을 선발했다.

 

외부선발을 통해 행정법원의 법관을 선발하기도 하는데 대상은 일반 공무원, 군사공무원, 지방직 공무원이다. 또 일정한 직 이상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 중에서, 혹은 사법법원의 사법관 중에서 지방행정법원과 항소행정법원의 판사를 선발한다.

 

▲사법관이 되는 길=프랑스에서 일반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은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사법법원이다. 일반 법원의 사법관이 되는 길은 두 가지다. 첫째 국립사법관학교를 통해 법관이 되는 것이고, 둘째는 경력을 가지고 법관에 임용되는 것이다.

 

일반 법원의 사법관이 되고자 하는 이는 31개월 과정의 국립사법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국립사법관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나 소송대리인, 법무부에서 근무한 경력 공무원 중 일정 경력을 지닌 자를 대상으로 사법관을 뽑는다또한 집행관이나 대학의 법대 교수 중에서 임기를 정해 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기도 한다.

 

국립사법관학교에 입학하는 길은 두 가지다. 첫째 공개경쟁 입학시험을 거치는 것과 둘째 입학시험이 아닌 절차를 거쳐 입학하는 경우다.

 

경쟁시험을 통해 입학하는 경우는 3가지인데 ①학생들의 입학시험(1시험), ②공무원의 입학경쟁(2시험), 8년 이상 직업경력자 혹은 선거직 경력자가 응시할 수 있는 경쟁시험(3시험)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뽑는 전형이 것이 ‘제1시험’이다. 응시횟수는 3회로 제한된다. 2015 1~3시험을 통해 각각 201, 51, 14명 선발했다.

 

1시험을 칠 수 있는 일반 학생들은 대학에서 4년의 교육을 받은 자다. 프랑스에서는 4년의 대학교육을 받게 되면, 석사과정을 1년 만에 수료할 수 있다. 따라서 석사과정 1년을 수료한 경우 입학자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변호사가 되는 길=프랑스에서 변호사는 2014 1월 기준으로 6223명이 있다. 프랑스 인구(6600만명) 기준으로 10만 명 당 92.7명의 변호사가 있는 셈이다. 프랑스에서 변호사는 사법보조자의 역할을 하는데 사법보조자의 8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변호사의 41%가 파리변호사회 소속이다. 변호사 남녀비율을 보면 여성비율이 더 높아 54%에 이른다.

 

행정최고재판소·대법원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행정최고재판소·대법원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 시험은 1년에 한번 시행되는데 연말에 치른다.

 

시험은 필기와 구술로 나뉘는데 필기에 합격해야 구술을 볼 수 있다. 필기는 3과목이다. 행정최고재판소에서의 의견서와 대법원에서의 민사 의견서, 대법원에서의 형사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각각 5시간을 본다.

 

구술도 3과목이다. 첫째는 2시간의 준비시간 후에 10분 동안 변론에 대한 구술을 하고 시험위원과의 토론이 이어진다. 둘째는 제비뽑기로 주제를 정하는데 1시간의 준비 후 질의응답 시험이 10분간 진행된다. 셋째는 15분 가량 진행되는 법조윤리, 직무규율, 사무실 경영 등에 관한 질의응답 시험이다.

 

일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변호사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 변호사학교의 연수를 거쳐야 한다. 변호사 학교의 수업연한은 18개월이다.

 

변호사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학위가 있어야 한다. 법학석사 1년 수료나 이와 동등한 학위가 필요하다. 시험은 3번까지 칠 수 있다. 변호사학교는 전국에 16곳이 있는데 파리에 있는 변호사학교가 프랑스에서 제일 크다. 등록비용은 1600유로로 적은 비용이 아니다. 파리 변호사학교 입학생 수가 2007 1169명이었으나 2015 1727명으로 늘었다.

 

프랑스 변호사학교 입학시험은 1차 필기, 2차 구술로 나뉘는데 1차 시험은 종합요약시험, 법적사고시험과 법률사례시험으로 이뤄진다.

 

①종합요약시험은 현대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또는 문화적 주제에 관한 법적 측면을 담고 있는 50~60쪽 분량의 자료를 제시하여 이를 종합적으로 요약하는 시험이다. 5시간에 걸쳐 진행되며 만점은 20.

 

②법적사고시험은 법적사고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채권법과 소송법이 그 대상이다. 소송법은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행정소송법 중에서 택 1한다. 시험은 5시간. 두 개의 작문을 작성하고 각 작성은 10점으로 합계 20점이 만점이다.

 

③법률사례시험은 형법 민법 행정법 등 11개 법률과목 중 1과목을 선택해 해당법 관련 사례를 법적 지식에 맞게 서술해야 한다. 또 하나 또는 둘 이상의 관련된 판례에 대한 평석을 요구하거나 법령조문을 분석하여 서술할 것을 요구한다.

김태완 조선pub 기자

 

2017-07-07  수감자 담배 심부름하는 변호사

구치소 접견실에서 의뢰인에게 담배 가루가 담긴 볼펜을 몰래 건넨 변호사가 징계를 받게 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찬희)는 지난달 8일 서울구치소 접견실에서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41)에게 담배 가루가 든 볼펜 등을 전달한 A 변호사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에 징계신청을 했다고 6일 밝혔다. 서울변회는 앞서 구치소로부터 A 변호사의 비위사실을 통보받고 조사를 벌여왔다.

교정당국과 서울변회에 따르면 A 변호사는 지난해 11 30일 서울구치소 민원인 주차장에서 송 씨 회사 직원으로부터 재판 관련 서류가 들어 있는 봉투를 받아 이를 접견실에서 송 씨에게 전달했다. 송 씨에게 전달된 봉투에는 담배 가루가 들어있는 볼펜이 숨겨져 있었다. 


A
변호사는 서울변회 징계위원회에서 “소송자료를 건네준 것은 맞지만 볼펜이 들어 있는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변회는 접견 당시 상황 등으로 볼 때 A 변호사가 봉투에 담배 가루를 숨긴 볼펜이 들어 있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대한변협이 서울변회의 징계 요구를 받아들이면 A 변호사는 변호사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정직이나 과태료, 견책 처분 등을 받게 된다

이 일로 송 씨도 구치소로부터 30일 동안 TV 등 편의시설이 없는 독방에 수용하는 금치결정을 받았다. 송 씨는 해외선물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주겠다며 투자자들로부터 1380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징역 13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송 씨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15 8월 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47·구속 수감)를 선임하면서 “보석이나 집행유예를 받도록 재판부에 로비를 해 달라”며 50억 원을 건넸다. 이 일은 지난해 초 법조비리 사건 ‘정운호 게이트’ 과정에서 문제가 됐다

 

동료 변호사와 말다툼 중에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퍼부은 B 변호사에 대한 징계 논의도 진행 중이다. B 변호사는 자신이 소송을 맡고 있는 기업의 사내 변호사에게 “×도 모르는 게” “재판 한 번도 안 해 본 것이” “78(사내 변호사는 1978년생)” 등 막말을 2분 동안 쏟아부었다고 한다. 피해자인 사내 변호사는 B 변호사의 욕설이 담긴 녹음파일과 진정서를 최근 서울변회에 제출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녹음파일을 들어 보니 변호사의 품격이 땅에 떨어진 것 같아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계의 경쟁이 팍팍해지면서 각종 비위로 징계를 받는 변호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변협은 수임료로 2000만 원을 받은 뒤 세무당국 등에는 1000만 원으로 축소 신고한 C 변호사에게 과태료 200만 원을 부과했다. 또 사건을 수임하고도 변론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 의뢰인과 갈등을 빚은 D 변호사에게도 과태료 200만 원이 부과됐다 
배석준 eulius@donga.com·전주영 기자

 

 

■ [시계의 예술성] 

□시계 속에 구현된 신기술①

▲롤렉스 파라크롬 헤어스프링

 

소위 말하는 명품 시계는 대부분 기계식 시계를 말한다. 그리고 시계 애호가들은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오랜 역사와 장인정신 그리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에서 찾는다. 그러나 시계의 내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지 오래된 물건을 현대에 맞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닌, 최첨단 기술력이 집약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계 업계에서 2015년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스마트워치다. 3월에 열린 바젤월드에서 브라이틀링, 불가리, 구찌, 프레드릭 콘스탄트 등 많은 시계 브랜드가 스마트 워치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전통만을 고수하기보다는 첨단기술을 접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시계 제작자들은 당대의 첨단기술을 시계 속에 구현한 용감한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다.

시계에 있어 첨단기술은 시계의 정확성뿐 아니라 사용의 편리함을 제공한다. 견고함 또한 신기술에 달려 있다. 기계식 시계의 경우, 오실레이터는 정확한 시간을 보장하는 부품이다. 헤어 스프링과 밸런스 휠로 이루어진 오실레이터는 왕복 운동의 일정함에 따라 시계의 정확도를 결정짓는다. 시계 브랜드들이 무브먼트 속 핵심 부품인 헤어스프링에 가장 큰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헤어스프링은 현대 금속공학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메가는 지난해 15000가우스(G·자기장의 단위)의 강한 자기장에도 견딜 수 있는 최초의 항자성(抗磁性) 시계 무브먼트를 산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기계식 시계에 있어 항자성은 영원한 숙제와도 같다. 각종 전자기기와 스마트폰 등 우리 주변에는 강한 자기장을 띤 물건이 많고 또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메가는 자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Si14 소재의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과 니바가우스(Nivagauss) 소재의 플레이트 개발에 성공했고, 이를 사용한 무브먼트를 장착한 시계를 이번 바젤월드에서 선보였다.

 

1. 브레게 클래식 크로노메트리 7727 2. 라도 플라즈마 하이퍼크롬 타키미터 3. 오메가 마스터 코-액시얼 밸런스 휠  

 

자성 관련 기술 개발 박차 가하는 시계 업계

롤렉스는 5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하고 특허를 획득한 블루 파라크롬(Parachrom) 헤어스프링을 사용한다. 롤렉스가 개발한 합금은 파라크롬 헤어스프링이 강자성(强磁性) 헤어스프링의 주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파라크롬 헤어스프링은 온도 변화에도 높은 안정성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자기장에 반응하지 않으며 충격에 대한 저항도가 최대 10배 높다.

브레게는 기계식 시계의 ‘적()’인 자성을 오히려 역이용해 시계의 정확성과 안정성을 개선했다. 클래식 크로노메트리 7727 모델에 적용한 이 기술의 가장 혁신적 측면은 자성을 지닌 피봇 시스템에 있다. 자성 피봇을 통해 시계에 미치는 자성의 효과를 상쇄하는 동시에 밸런스의 안정성과 직결된 회전력(pivoting), 로테이션 측면을 개선시킨 것이다.

자성이 일종의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중력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밸런스는 시계 위치가 어떻든 간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회전력 역시 일정할 수 있다. 자석이 최대의 자성이 흐르는 곳으로 밸런스를 다시 위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밸런스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좀 더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물론 충격에도 강하다. 이러한 혁신적인 발명품 덕분에 7727의 평균 오차는 하루에 -1~+3초 범위이다(COSC 크로노미터의 오차 기준은 하루에 -4~+6).

<②편에 계속>

 

□ 빛 에너지만으로 구동하는 명품 시계②

<①편에서 계속>
쿼츠 시계, 빛 이용해 동력 얻는 기술 개발에 집중

기계식 시계가 더 정확한 시간을 위해 헤어스프링과 이스케이프먼트 같은 주요 부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면, 쿼츠 시계는 수은 건전지가 아닌 빛 에너지를 이용해 동력을 얻는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기본 2년 정도인 쿼츠 무브먼트의 배터리보다 5배 이상 오래 가고 미량의 빛에도 배터리가 충전되는 방식을 사용하는 브랜드는 세이코, 시티즌, 티쏘가 대표적이다.

1969
년 세계 최초의 쿼츠 시계를 출시한 바 있는 세이코의 아스트론 GPS 솔라 듀얼 타임은 빛 에너지만으로 구동한다. GPS 신호를 수신해 사용자의 타임존을 인식하며 10만년에 1초 오차 수준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시티즌도 멀티기능이 탑재된 저전력(低電力) 위성 GPS 시계 에코드라이브 새틀라이트 웨이브 F900을 이번 바젤월드에서 선보였다. 에코드라이브는 태양열을 포함한 모든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여 시계를 작동시키는 시티즌만의 고유 기술이 탑재된 컬렉션으로, 친환경적인 기능과 혁신적인 기술로 손꼽힌다. 에코드라이브 새틀라이트 웨이브 F900은 에코드라이브뿐 아니라 3초의 GPS 수신 속도, 크로노그래프 기능과 듀얼타임 디스플레이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티쏘의 T-Touch 엑스퍼트 솔라는 태양열로 전력을 공급받는 최초의 터치 스크린 시계다. 날짜와 주(week) 수를 알려주는 영구 캘린더, 2개의 알람, 투 타임 존(두 시간대 표시), 상대 압력을 적용한 기상예보, 고도 편차가 적용된 고도계, 크로노그래프(분리 및 누적 시간 측정), 나침반, 타이머, 방위각, 레가타 기능(요트 경기 시 출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및 백라이트 등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20가지 필수 터치 기능을 구현하는 동력은 다이얼에 장착된 솔라 에너지 집열판을 통해 생성된다.

무브먼트뿐 아니라 시계를 구성하는 케이스나 브레이슬릿 소재에 있어 신기술을 선보이는 브랜드도 많다. 기계식 시계뿐 아니라 쿼츠 시계까지 더 아름답고 편안한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라도와 시티즌이다.

시계 브랜드 ‘라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세라믹인데, 세라믹 제조에 있어 라도를 따라올 브랜드는 아직 없다. 라도는 신비한 메탈 컬러의 하이테크 세라믹인 플라즈마 하이테크 세라믹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같은 하이테크 세라믹이지만 앞에 ‘플라즈마’라는 이름을 덧붙인 이유는 제작 과정에서 라도의 전매 특허 공정인 ‘플라즈마 공정’을 통해 컬러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하이테크 세라믹은 블랙&화이트 단 두 가지의 컬러만 제조가 가능했는데, 라도는 플래티넘 컬러와 초콜릿 컬러 등 다양한 컬러의 세라믹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플라즈마 공정은 화이트 하이테크 세라믹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고온의 오븐에서 구워내는 공정에서 이뤄진다. 컬러만 변화했을 뿐 하이테크 세라믹의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플라즈마 하이테크 세라믹 또한 가볍고 스크래치에 강하고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으며 소재의 온도가 착용자의 체온에 맞춰진다.

이은경 시계 컨설턴트

 

2016.02.12  신기술·첨단소재·뉴 디자인 삼박자 … 시계, 예술로 승화하다

제네바 고급시계박람회 보니

 

까르띠에는 주요 기능이 시계판 중간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유의 기술인 ‘미스테리’를 적용한 시계를 선보였다. 고급 기능을 적용해 시계의 본분에 충실하면서 그 어떤 기계적 요소도 눈에 보이지 않도록 숨겨 미(美) 적인 완성도까지 갖췄다. ‘아주레 펜던트 미스터리 투르 비옹 워치‘(사진 위)는 투르비옹이 다른 부속과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며, 25.93캐럿의 사파이어는 분리할 수 있다. ‘로통드 드 까르띠에 아스트로미스터리’(사진 왼쪽)는 시계 바늘이 무브먼트와 연결되는 부분을 보이지 않게 처리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냈다.

 

해마다 1월 중순이면 스위스 제네바는 시계의 도시로 변한다. 워낙에 고급 시계 부티크가 많은 도시지만,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가 열리는 일주일간은 그 성격이 더욱 도드라진다. SIHH는 까르띠에·피아제 같은 고급 시계 브랜드들이한해 판매할 신제품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자리다. 올해도 제네바 중심가 도로에는 시계 브랜드들이 내건 광고가 나부꼈고, 시내버스는 SIHH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팔렉스포’와 각 호텔을 잇는 셔틀 버스로 운행했다. 시계회사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고위 임원들, 각국에서 온 큰손 바이어 등 시계를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현장에 다녀왔다.

지난달 18일 스위스 제네바국제공항 근처 ‘팔렉스포’에서 SIHH가 개막했다. 까르띠에·피아제·바쉐론 콘스탄틴·예거 르쿨트르를 비롯한 고급 시계업체 24개가 전시 부스를 세웠다. SIHH는 시계 애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행사다. 새해 열리는 첫 전시회인데다, 최고 업체들이 몇 년간 갈고 닦은 첨단 기술력과 최신 디자인을 뽐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업체별 프레젠테이션룸에서는 쉴새없이 신제품 설명회가 열렸고 별실에서는 바이어들의 주문 상담이 이어졌다.


▲피아제 ‘라임라이트 갈라 밀라니즈’. 천 조직처럼 짠 느낌의 밀라니즈 메쉬 스트랩이 흐르는 듯한 곡선을 연출한다.


브랜드마다 개성은 제각각이지만 몇몇 줄기의 트렌드도 감지됐다. 올해 고급 시계 브랜드들은 여성을 위한 시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예술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창의적인 디자인도 등장했다. 첨단 기술 경쟁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시계 속이 훤히 보이는 스켈레톤 스타일과 블루 컬러의 인기는 지난해에 이어 계속됐다.


기계식 시계, 여성에게 손내밀다

▲명품 시계들이 해의 신제품을 선보이는 국제고급 시계박람회(SIHH). 올해는 12500명이 참가했다.

 

▲로저 드뷔 ‘벨벳 컬렉션’의 ‘블로썸 벨벳’. 에나멜 플레이트를 정교한 상감세공기법으로 조각하고 보석을 세팅했다.

 

SIHH에서 공개된 고급 시계들은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십억원씩 하는 초고가 제품이다. 대부분은 태엽과 톱니바퀴, 스프링 같은 기계 장치를 통해서 움직이는 ‘기계식 무브먼트’를 사용한다. 기계식 시계는 동전만한 크기의 작은 무브먼트에 얹어진 수 백개의 부품이 질서있게 움직이며 각종 기능을 구현하는 매력 덕분에 오랜 기간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업체들이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피아제는 독특한 비대칭 모양의 둥근 케이스가 자연스럽게 시곗줄로 이어지는 ‘라임라이트 갈라 컬렉션’으로 호평받았다. 옐로·화이트 골드를 천 조직처럼 짠 느낌의 ‘밀라니즈 메쉬 스트랩’은 손목에 부드럽게 감기면서 흐르는듯한 곡선을 연출했다. 다이아몬드가 시계 케이스에만 세팅됐는데도 마치 시곗줄 전체에 박힌 것처럼 화려하게 빛났다.

예거 르쿨트르는 처음으로 여성 전용인 ‘리베르소 원’ 컬렉션을 선보였다. 1930년대에 나온, 폭이 좁고 긴 형태를 되살리면서 현대적인 트렌드를 반영해 젊은 여성들을 위한 디자인을 만들었다. 세계적인 슈즈 디자이너인 크리스찬 루부탱과 공동으로 디자인한 ‘아뜰리에 리베르소 바이 크리스찬 루부탱’도 내놓았다. 까르띠에는 가장 자리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우아한 타원형 시계 ‘입노즈 컬렉션’을 처음 공개했다.

로저 드뷔는 아예 올해를 ‘벨벳 디바의 해’로 선포했다. 신제품 10개 중 9개가 여성용이었다. 알바로 마지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영화제 시상식장의 화려한 무드를 부스로 옮겨왔다. 알렉산더 매퀸, 마틴 마르지엘라, 클로에 같은 명품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들이 로저 드뷔 시계를 차고 레드 카펫을 밟는 설정으로 꾸몄다.

2011년 탄생한 ‘벨벳 컬렉션’을 여성의 다섯 가지 면모를 담은 5개의 세부 라인으로 제안했다. 여성 컬렉션에 처음으로 컴플리케이션을 적용한 ‘벨벳 시크릿 하트’ 등이 눈길을 끌었다.


더 정교하게, 가볍게, 아름답게

가장 많은 110개의 신제품을 들고 온 까르띠에는 아스트로미스터리라는 신기술을 처음 선보였다. ‘로통드 드 까르띠에 아스트로미스터리’는 시계 바늘이 무브먼트와 연결되는 부분을 눈에 보이지 않게 처리해 투명한 본체 위에 가볍게 떠 있는 듯 보이는 디자인이다. 무브먼트 기술력과 디자인 미학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시계 바늘을 무브먼트에 직접 연결하는 게 아니라 가장 자리에 톱니 모양 금속이 부착된 두 장의 크리스탈 디스크에 고정한다. 한 장은 분(分)의 속도로, 다른 하나는 시(時)의 속도로 돌아가면서 바늘을 움직이는 원리다.

 

▲바쉐론 콘스탄틴오버시즈 III 컬렉션오버시즈 크로노그래프

 

바쉐론 콘스탄틴은 ‘오버시즈 III’ 컬렉션 출시 20주년을 맞아 무브먼트와 디자인을 확 바꾼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다. 특히 ‘오버시즈 크로노그래프’는 개발에만 5년이 걸린 새로운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적용했는데 무브먼트 주위에 연철 소재 링을 둘러 시계를 자성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항자기성(anti-magnetic) 기능을 구현했다. 시계 뒷면에서 보이게 처리해 미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특별한 도구나 기술 없이도 직접 시곗줄을 갈아끼울 수 있는 ‘이지 핏’ 시스템도 특허를 받고 처음 공개했다. 모델마다 메탈·가죽·고무 3가지 타입의 시곗줄을 제공해 3개의 시계를 가진 효과를 낸다.

 

▲기존보다 30% 얇아진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트리뷰트 자이로투르비옹’

 

예거 르쿨트르는 ‘리베르소’ 컬렉션 탄생 85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라인을 정비했다. 특히 ‘리베르소 트리뷰트 자이로투르비옹’이 눈길을 끌었다. 기존 모델보다 기능을 높이면서 폭과 두께를 30%씩 얇게 만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다. 자이로투르비옹은 공기의 저항을 줄여 시계의 정밀성을 높여주는 혁신 기술이다.

랑에운트죄네는 세 가지 컴플리케이션에 다섯 가지 기능을 추가로 장착한 ‘데이토그래프 퍼페추얼 투르비옹’을 소개했다. 세 가지 컴플리케이션은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옹, 크로노그래프를 말한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날짜뿐만 아니라 윤년을 자동으로 구별하는 기능이다. 투르비옹은 중력으로 인해 생기는 시간 오차를 보정하는 장치다. 이 회사 관계자는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지닌 시계를 개발할 때 가장 큰 도전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메커니즘이 서로 완벽하게 맞물리게 배열하고 기능적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어버스와 협업해 항공기 신소재를 적용한 리차드 밀 ‘RM 52-02’

 

 소재에 관한 혁신도 계속됐다. ‘리차드 밀’은 에어버스와 협업해 최첨단 항공 소재와 기술을 시계에 적용했다. 시계업계 최초로 비행기 터빈 날개에 쓰이는 신소재인 티타늄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시계 ‘RM 52-02’를 공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 소재는 티타늄보다도 약 15% 무게가 덜 나가고, 스트레스 내성이 뛰어나다”며 “용해점이 다른 두 금속을 섞는 작업인 만큼 무척 까다로운 공정을 거쳤다”고 소개했다. 비행기 창문을 닮은 시계 케이스도 재치를 더했다.

지난해 고무 베젤 위에 보석을 세팅하는 신기술을 보여준 로저 드뷔는 올해는 카본 소재 위에 보석을 세팅하는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블랙 벨벳’은 카본 소재 베젤에 1캐럿 안팎의 파라이바 전기석 66개를 세팅했다. ‘엑스칼리버 오토매틱 스켈레톤’에도 카본 소재를 적용했다. 로저 드뷔 관계자는 “카본은 금보다 10배, 백금보다 2.5배 가볍기 때문에 착용감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예술작품을 품은 시계

▲몽블랑 ‘4810 컬렉션’의 ‘엑소 투르비옹 슬림 110주년 한정판’ 아시아 모델

 

고급 시계의 경쟁력은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에나멜 페인팅, 조각 같은 예술적 기법들을 활용해 장식과 기교가 많이 들어간 시계가 등장했다. 몽블랑은 창립 110주년을 맞아 ‘4810 컬렉션’의 세 가지 한정판 모델을 선보였다. ‘엑소 투르비옹 슬림 110주년 한정판‘은 각각 아시아·북미·유럽 대륙의 지도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다이얼에 담았다. 장인이 손으로 직접 페인팅하는데 꼬박 1주일이 걸리는 공정이다. 피아제는 시계에는 잘 쓰지 않는 공예 기법으로 장미를 그려넣은 ‘우드 마케트리 다이얼의 알티플라노’ 등 3개 모델을 선보였다.

제네바=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SIHH, 각 브랜드

 

2016.02.17  불편해도 괜찮아, 시간의 가치 알려주니까

- 제네바 시계 박람회 살펴보니
여전히 태엽 쓰는 시계 많아

"정확도는 스마트워치에 밀려도 태엽만이 시간의 가치 알려줘"

 

중국에선 19세기까지 향인(香印)이란 시계를 썼다. 향을 피워놓으면 재의 흔적과 방에 가득한 향기로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있었다. 이제 시간을 알기란 너무 쉽고 편하다. 스마트 워치와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냉장고에도 시간이 숫자로 나타난다. 시간(時間)보다는 시각(時刻)이라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시간의 위기이자 부재다.

오늘날 시간을 느끼려는 노력은 태엽으로 작동하는 기계식 무브먼트(시계 동력장치)를 장착한 시계를 통해서 이뤄진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SIHH(Salon de Haute Horlogerie) 2016'에선 왜 불편하고 비싸기까지 한 동력장치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SIHH는 까르띠에, 바쉐론 콘스탄틴, 피아제, 예거 르쿨트르 등 세계의 최고급 시계 브랜드들이 매년 새로운 시계를 발표하는 자리다.


나비가 날고, 판다가 뛰자 시간이 보인다

흰 나비가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나면 노란 나비가 어느새 구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노란 나비가 안 보이면 이제 빨간 나비가 나타날 차례다. 제비는 날갯짓을 하는 둥 마는 둥 굼뜨게 날아간다. 나비의 날개 끝이 가리키는 숫자는 분(), 제비의 꼬리 끝이 가리키는 숫자는 시(). 반 클리프 앤 아르펠이 내놓은 '레이디 아펠 롱드 데 빠삐옹 워치'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기계식 무브먼트로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①어미 표범 품에서 새끼 표범이 튀어나오면 벌새가 놀라서 움직이도록 만든‘판다 에 콜리브리 워치’. ②‘레이디 아펠 롱드 데 빠삐용’. 세 마리 나비와 제비가 각각 분과 시를 알려준다. ③기계식 시계의 동력장치를 장착한 만년필. 57가지 기능을 가진‘Ref.57260’은 시계 이상의 시계라고 할 수 있다. /까르띠에 제공·반 클리프앤 아르펠 제공·리처드밀제공·바쉐론 콘스탄틴 제공

 

까르띠에의 '판다 에 콜리브리 워치'에서는 새끼 판다가 뛰논다. 평소에는 어미 판다의 품 안에 있어 보이지 않다가도 크라운(용두·대부분 시계의 우측에 있는 돌출된 부분)을 누르면 튀어나온다.

두 시계 모두 선명한 숫자 대신 나비와 새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나타낸다. 시간을 숫자로 '표시'하는 게 아니라 흐름을 '표현'하는 셈이다.


시간의 가치를 알려주는 태엽

이탈리아의 유명 경제사학자 카를로 M 치폴라는 중세 유럽의 기계식 시계 발전이 중국보다 뒤처졌던 유럽을 근대 강대국으로 만들어준 공신이라고 했다. 서양 기계 문명의 태동이 태엽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로 바뀌었지만 기계식 시계를 내놓는 시계 명가들은 태엽이 시계 동력장치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회중시계 Ref. 57260은 기계식 시계 기술의 집약체다. 세 명의 장인이 8년에 걸쳐 만든 이 시계엔 총 57가지 기능이 담겨 있다. 시간과 양력은 물론 음력, 히브리력(), 절기(節氣), 별자리, 항성시(춘분점을 기준으로 한 시간) 등을 표시한다. 100억원이 넘는 이 시계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의뢰인의 주문으로 만들어졌다.


리처드 밀은 시계의 동력장치를 넣은 만년필을 내놨다. 펜 끝의 버튼을 꾹 누르면 태엽이 돌아가면서 펜촉이 나온다. 10초가 걸린다.

그리스의 철학자 테오프라토스는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태엽은 21세기의 동력에선 밀려났지만 기계식 시계 안에서 시간의 가치를 알려준다.

제네바(스위스)=변희원 기자

2017년 12월 08일 남자의 시간 百年의 佳約

 

-예거 르쿨트르 

180년 역사… 지난해 예물시계 판매 1 
‘울트라 씬 문’ 얇고 순수한 디자인 인기 

-
태그호이어 
드라마 ‘도깨비’ 서 선보이며 인기몰이 
세련된 스타일의 ‘2017 뉴링크 맨워치’ 

-
브라이틀링 
60
년간 탐험 꿈꾸는 강한 남자들의 로망 
최첨단 세라믹 베젤…충격·긁힘에 강해 

-
오메가 
씨마스터 아쿠아 테라 마스터 크로노미터 
호화 요트의 ‘덱 디자인’에서 영감 얻어
 


남자들이 결혼에 대해 설렘을 갖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예물시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웨딩마치를 울린 새내기 부부들의 선택, 가장 인기 있는 예물시계를 살펴본다.                                                 

                                          
◇예거 르쿨트르 =

국내 한 백화점의 예물시계 판매율 조사에서 지난해 1위를 차지한 제품이 바로 예거 르쿨트르다. 18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위스 파인 워치메이킹 예거 르쿨트르는 품격 있는 마스터 컬렉션으로 남성을 위한 개성적이면서도 세련된 라운드 시계들을 선보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함께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우아한 매력이 특징인 마스터 라인은 과하지 않은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그랑 메종의 정수를 담아낸다.

 

특히 마스터 울트라 씬 문은 매혹적인 스틸 톤과 순수한 디자인으로 많은 예비 신랑이 찾는 모델이다. 도피네 핸즈를 장착한 다이얼, 날짜 인디케이터, 문페이즈까지 스틸 톤으로 장식돼 있고, 울트라 씬이라는 이름답게 직경 39, 두께 9.9㎜의 얇은 케이스의 순수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문페이즈 공간을 위해 다이얼 5시와 6, 7시 방향에는 다른 인덱스보다 작은 인덱스가 자리하고 있다. 리베르소 트리뷰트 라인도 오직 수공 작업을 고수하는 시계 장인들의 탁월한 기술력을 증명하는 모델로 각광 받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파인 워치메이킹 방식을 따르면서 다양한 컴플리케이션을 장착하고 있다. 다이얼 중앙에 달 모양이 위치해 마치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창문과 같은 인상을 준다. 또 해와 달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낮·밤 인디케이터를 통해 무한한 영감을 선사하는 이 모델만의 독특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듀오 콘셉트가 적용된 트리뷰트의 모든 라인은 등을 맞댄 두 개의 다이얼이 두 개의 타임존을 제공한다. 케이스 역시 독특한 패턴으로 케이스를 회전시킬 때마다 우아한 매력을 엿볼 수 있다.                                  


◇태그호이어 =

태그호이어의 까레라 칼리버 16 엘레강스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도깨비’에서 선보여 화제가 되면서 올해 가장 핫한 예물시계로 떠올랐다. 전국적으로 품절 사태까지 일으킨 이 모델은 태그호이어의 대표 컬렉션인 까레라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클래식하고 우아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동시에, 브레이슬릿뿐만 아니라 레더스트랩으로도 호환이 가능해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현재 출시되는 까레라 라인 중 가장 기품 있는 스타일을 선보이는 제품으로 클래식과 모더니즘이 조화를 이룬 태그호이어만의 헤리티지를 반영한다. 이 제품은 블랙 컬러 다이얼 위로 강렬하게 자리한 로즈골드의 숫자 인덱스를 통해 고고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뽐내며, 태그호이어의 금장 로고를 통해 블랙&골드 스타일을 완성한다. 까레라 라인은 모터레이싱의 열렬한 팬이었던 잭 호이어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경주인 ‘까레라 파나메리카나 멕시코 로드 레이스’에서 영감을 받아 전문 레이싱 드라이버를 위해 제작한 시계들이다. 까레라 컬렉션은 스포티함과 클래식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불변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귀환한 태그호이어의 2017 뉴 링크 맨 워치 역시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신랑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7년 ‘S/el’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된 이래 지난 30년에 걸쳐 브랜드의 입지를 굳힌 태그호이어의 전설적인 컬렉션이었으나 잠시 단종됐다가 이후 새로워진 디자인과 함께 더욱 젊고 세련된 무드를 갖추고 돌아왔다. 태그호이어 관계자는 “국내에 출시되기 전부터 많은 문의를 받았고, 출시 직후 좋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가 스틸 소재로 제작된 2017년 새로운 링크 컬렉션은 러그가 제거되고 브레이슬릿이 온전하게 케이스와 결합되면서 더욱 부드럽고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절묘한 코너 디자인을 통해 원형과 쿠션의 중간 형태를 띠는 케이스는 부드러우면서 절제된 디자인을 자랑하고, 브레이슬릿과 함께 폴리싱 및 브러싱 처리를 통해 매우 섬세하게 마무리됐다. 브레이슬릿의 S형의 전체 윤곽은 완벽하게 브러싱 처리된 각 링크의 표면 위로 눈부신 광택을 선사한다. 


◇브라이틀링 =

‘탐험을 꿈꾸는 강한 남자들의 로망 브라이틀링’에서는 올해 슈퍼오션 헤리티지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슈퍼오션 헤리티지 Ⅱ 46이 화제가 됐다. 브라이틀링은 현대 탐험가들을 위한 헌정으로, 슈퍼오션 헤리티지 라인을 재설계했다. 2017 60주년을 맞이하는 이 성공적인 컬렉션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통성과 완전성, 역동성을 새로운 얼굴에 담았다. 주요한 특징은 긁힘과 충격에 매우 강한 초강도 최첨단 세라믹 소재로 만든 링을 탑재한 새로운 스틸 베젤이다. 다이얼을 둘러쌌던 메탈 링을 제거하고 오리지널 슈퍼오션 로고로 장식된 다이얼과 베젤은 배색을 맞춰 전체가 매끄럽게 어우러진다. 어벤저 Ⅱ GMT 코리아 스페셜 에디션도 최초로 ‘비밀스러운(Stratos·스트라토스)’ 그레이 색상을 입혀 애호가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국내에서만 선보이는 150개 한정판 시리즈인 이번 에디션은 제품마다 1부터 150까지 숫자가 백 케이스에 인그레이빙돼 한정판 시리즈의 특별함을 더했다. 양방향 회전 베젤 위에 세 번째 타임존을 표기해 극도의 실용성을 갖췄다. 특히 이 세 번째 타임존 기능은 1시간 단위로 돌아가는 베젤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 



◇오메가 =

오메가에서는 씨마스터 아쿠아 테라 마스터 크로노미터 컬렉션이 세련된 스타일과 신선한 느낌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새로운 마스터 크로노미터로 선보이는 모델들은 가장 대표적인 기능을 개선하는 등의 방식으로 시계에 색다른 스타일을 부여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쿠아 테라의 티크(teak) 콘셉트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호화 요트의 덱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티크 패턴이 종래의 수직이 아닌 수평 형태로 펼쳐진다. 날짜 창을 3시에서 6시 방향으로 옮기면서 전체적인 디자인에 있어 대칭적인 느낌이 강해졌다. 오메가가 기존 다이얼의 ‘Water-resistance’ 글자를 뒤로 옮겨 케이스백에 인그레이빙한 덕분에 다이얼은 더욱 깔끔하고 미니멀해졌다. 태양광 패턴의 블루 다이얼은 최고급 보트의 나무 덱을 연상시키는 가로 형태의 티크 패턴을 비롯해 6시 방향 날짜창 그리고 슈퍼 루미노바를 채운 로듐 도금 핸즈와 인덱스가 탑재돼 있다.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타임피스는 폴리싱 및 브러싱 처리된 브레이슬릿과 함께 제공되며, 스위스 계측학연방학회(METAS)에서 실시한 업계 최고 수준의 테스트를 통과한 오메가 마스터 크로노미터 칼리버 8800으로 구동된다. 최근에는 영국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모델로 선정돼 자신만의 감각적인 스타일과 아쿠아 테라의 정교한 테일러링, 과감한 컬러 등과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 명절 이야기

2016.09.14  추석 풍경

 

폭염이 이어지는 탓에 한여름을 나는 기분이지만,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으며 조상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사람들과 음식과 정을 나누는 우리의 대명절, 추석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어울려 놀며 즐기던 추석의 기원

추석 명절의 유래는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시대 초기, 신라 유리왕이 두 명의 왕녀에게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게 해 길쌈 짜기 대회를 열었다. 일과를 마친 저녁부터 시작된 베 짜기 대회는 7 16일부터 무려 한 달 동안 이어졌다. 승패는 8월 중순이 되어서야 판가름 났다. 진 편은 이긴 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노래와 춤, 각종 놀이를 선보이며 즐겁게 해주었다. 이때는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기였던 만큼 먹을거리가 풍성해 덩달아 사람들에겐 푸근한 인심이 넘쳐났다.

 

수확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제사상을 차려 조상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차례상에는 내년 농사도 풍년을 이루도록 기원하는 바람이 함께 담겼다. 농경사회에서 결실의 기쁨을 만끽하고 다음 해의 풍년을 바라는 행위는 무척이나 중요했을 터. 달이 유난히 밝은 명절인 추석은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길쌈놀이라는 뜻을 가진 가배, ‘크다’와 ‘가운데’라는 뜻의 한가위가 그것이다.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의 석 달로 구분해 그중 가장 수확물이 풍성한 가운데라는 의미로 중추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달콤한 결실의 맛, 추석 먹을거리

추석은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명절이다. 차례상을 차려 조상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명절 음식을 가족과 이웃들이 나눠 먹으며 덕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설날과 구별되는 차이점은 그해 수확한 햅쌀과 햇곡식, 햇과일로 조상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갖춰 차례상을 차린다는 점이다. 술도 햅쌀로 빚은 신도주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먹을거리가 풍성한 결실의 시기이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도 추석은 특별한 가치를 갖는 명절이 된다.

 

이때는 무엇이든 크고 두껍게 만들어 그릇에 가득 차도록 담아냈다. 모자라지 않도록 넉넉하게 만들어두었다가 돌아가는 친지와 자식에게 나눠주는 게 미덕이었다. 먹을거리가 다양하지 않던 시대였던 만큼 추석은 남녀노소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이었다. 평소에 입도 대지 못하던 기름진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날지언정. 배가 볼록해지는 포만감을 느끼며 봄부터 농사짓느라 고생했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 보람과 성취감은 다가오는 모진 추위를 견디고 다음 해의 힘겨운 농사일을 견디게 할 에너지가 되어 몸속에 쌓였을 것이다.

임상범 여성조선

 

■ 한국 중국 일본의 추석

2016-09-10  음식이 곧 하늘, 중국인 추석에 뭘 즐겨 먹나?

저우위보

추석은 중국의 전통 명절이다. 이날이 되면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맛난 음식을 먹으며 달을 구경한다. 속담에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은 자고로 음식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이 점은 몇 년 전 한국에서 방영된 ‘혀끝의 중국’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가오는 추석, 중국인들은 뭘 먹을까? 지방별로 대표적인 추석 음식을 알아보면 아주 흥미롭다.

 

월병(月餠)

 

 

중국의 한 백화점에 진열된 1,200kg에 달하는 초대형 월병

 

추석 음식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단연 월병이다. 추석에 보름달을 구경하며 월병을 먹는 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중국인들의 풍습이다. 월병이란 말이 처음 사료에 등장한 것은 남송 시기의 문인 오자목(吳自牧)이 작성한 몽량록(夢梁錄)에서다. 그때 월병은 그냥 일종의 딤섬(간단한 요깃거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달구경과 연결지어져 온 가족의 화목과 그리움을 나타내는 음식이 되었다. 오늘날 월병은 추석 때 가장 많이 주고받는 선물로 그 종류도 부단히 개량되어 다양해지고 있다.

 

계화주(桂花酒)

옛날 그림을 보면 추석 밤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계수나무 밑에 모여 계화꽃으로 만든 딤섬, 사탕, 과자 등의 음식을 먹으며 환담을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때 꿀 같은 계화주 한 잔을 곁들여 마시면 하늘에 사는 신선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맑은 밤하늘에 떠 있는 동근 달에 비친 계수나무의 그림자를 감상하며 계화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은은한 향기가 가득한 계화주

연근

연근의 모양은 원만한 동그라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한데 모이는 것을 상징한다. 추석에 연근 음식을 즐겨 먹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장쑤(江蘇)성과 저장(浙江)성 일대의 사람들은 추석이 되면 얇게 썬 연근 두 개 사이에 고기나 대합으로 다진 소를 넣어 들끓는 기름에 노랗게 튀겨 만든 ‘우병(藕餠)’이란 음식을 먹는다. 그 모양은 월병과 흡사한 면이 있다. 중국 전통 의학에서 연근은 삶은 후 그 성상이 차가움에서 온화함으로 변화하여 위경(胃經)의 기운(氣運)을 도와서 보양(補養)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는다.

 

▲연근 튀김은 중국 장쑤 및 저장 성 일대의 대표 음식이다.

 

우렁이

청나라 함풍(咸豊)제 때 편찬된 순덕현지(順德縣誌)에는 ‘八月望日,芋食螺(8월 보름날 토란과 우렁이를 즐겨 먹는다)’ 라는 기록이 전해 온다. 민간에서도 추석 때 우렁이를 먹으면 눈을 밝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추석 전후가 되면 마침 우렁이 뱃속에 새끼가 없어 육질이 쫄깃하고 맛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 중국 광저우(廣州)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추석날 우렁이를 볶아서 식탁 위에 꼭 올린다.

 

▲우렁이볶음은 군침을 돌게 한다.

 

 다쟈셰(大閘蟹 ·다리에 솜털이 나 있는 민물 게)는 장쑤 성과 저장 성 지역 사람들의 추석 식탁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다. 원형 식탁에 모여 솜털게 하나씩을 생강과 식초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으며 환담을 나누는 것은 그 지방 사람들의 ‘최고의 낙’이라고 여겨진다. 다만 솜털게는 차가운 음식에 속하기 때문에 먹을 때는 황주(黃酒)를 가반주로 곁들여 마시는 것이 좋다. 식사 후 생강차를 한 잔 더 먹으면 건강에는 매우 유익하다고 한다.

 

▲따쟈씨에, 다리에 솜털이 나 있는 민물 게.

 

석류

추석 전후는 석류의 성숙기다. 빨간 마노(瑪瑙)와 하얀 수정(水晶)을 연상케 하는 석류는 추석 식탁에 특별히 사랑을 받는 과일이다. 무병장수와 가족의 화목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석류는 추석 식탁에 특별히 사랑을 받는 과일이다.

 

2016-09-12  중국인들 어떻게 추석 쇠나?

김보형 킹앤우드맬리슨스 파트너

“아들! 추석에 서울 못 오제(오지)?

“조금 애매하네. 추석연휴가 사흘인데, 그 주 일요일은 또 대체 근무일이라네요.


“길지도 않은데, 얼라(어린애)들도 힘들고 고마(그만) 아서라(놔둬라). 내도(나도) 아부지(아버지)랑도 어데(어디) 놀러나 갈란다.

“그럼, 국경절 연휴가 10 1일부터 7일이니, 그 때 애들 데리고 찾아뵐게요.

“그래. 우짜든(어쨌든) 얼라(어린애)들 편하도록 해라.


◆중국인들에게 추석 연휴 3일은 ‘너무 짧아’

얼마 전 모친과의 통화 내용이다. 중국에 사는 적지 않은 현지 교민들도 비슷한 통화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외국에 살다보면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사흘 연휴에 아이들 데리고 한국을 다녀오는것도 쉽지 않고, 성수기라고 몇 배나 치솟는 항공료도 또 다른 고민이다. 때문에 교민들은 추석과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나, 상대적으로 휴가기간이 긴 국경절에 고향을 찾는 경우가 많다.

 

올해 추석은 15일부터 17일까지 휴일이고, 18일 일요일은 대체 근무를 한다.

 

◆중추(仲秋)-가을의 2번째 달이라는 의미

 중국에서는 춘절(节, 춘제), 단오절(端午节, 돤우제)과 함께 3대 명절로 꼽히는 추석을 중추절(中秋节, 중추제)이라고 부른다. ‘중추’라는 단어는 주례(礼)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중국의 고대 역법은 일년을 사계로(,, , ), 또 매 계에 속한 세 달을 각각 맹월(孟月), 중월(仲月), 계월(季月)로 불렀다.

 

때문에, 추계의 두 번째 달인 음력 8월을 중추(仲秋)라 하고, 추계의 중간인 음력 8 15일을 중추(中秋)라 불렀다. 중추절의 기원은 춘추전국시대 황제가 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과, 가을의 풍농을 기뻐하며 축제를 지낸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까지 여러 설이 있지만, 정식 명절로 자리 잡은 것은 당대에 이르러서고, 실제로 민간에 성행하게 된 것은 송대 이후라고 한다.

 

◆고향 방문보다 주위 지인과 달구경 많아

중추절의 또 다른 이름은 단원절(团圆节, tuanyuanjie). 단원은 ‘흩어졌다 다시 모이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생업을 위해 객지 흩어져 생활을 하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화목하게 보내는 명절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런 단원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 대도시로 나와 타지생활을 하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연휴기간이 일주일 이상인 춘절과 달리, 짧은 중추절 기간에 멀리 떨어진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중추절은 2008년에 이르러서야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특별히 휴가를 신청하지 않고는 고향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추절에는 가까이 사는 가족, 친지와 식사 한 끼 하거나, 연인 또는지인과 근교 나들이를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 이번 중추절 기간 고향 방문 계획을 가진 친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추절의 전통 풍습 중 하나가 달구경을 뜻하는 상월()이니, 지인과 교외로 나가 달맞이를 하며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 역시 중추절 풍습의 현대적 계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향을 찾지는 못하지만, 함께 나누고자 하는 한가위의 넉넉한 마음만은 중국인도 한국인에 뒤지지 않는다. 중추절 선물로 단연 손꼽히는 것이 월병이다. 월병은 밀가루, 달걀, 설탕 등으로 만든 피에 팥 또는 말린 과일 등의 소를 넣어 만든 빵이다. 월병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지만, 월병이 선물로 주고받는 것은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을 필두로 한 한족 반군이 음력 8 15일 봉기한다는 정보를 전파하기 위해, 월병 안에 쪽지를 숨겨 전달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월병 구매의 목적이 선물용이다 보니, 그 가격도 수십 위안부터 수천 위안까지 천차만별이다. 가끔은 도를 넘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의 월병이 판매되기도 하고, 황금월병을 선물하는 사례도 있다.

 

▲황금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황금으로 월병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한다.

 

◆방부제 많은 월병 인기 시들…요즘엔 인터넷 상품권 선호

월병이 여전히 대표적 중추절 선물로 자리 잡고는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월병에 대한 인기가 시들하다. 사실 중국인들이 평소 월병을 즐겨먹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중추절 기간 외에는 시중에서 월병을 찾아보기도쉽지 않다. 또 중추절 한 달여 전부터 선물용으로 판매되다보니 장기간 보존을 위해 엄청난 양의 방부제가 첨가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월병의 인기 하락에 큰 역할을 했다. 실용적인 젊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최근 월병대신 각자가 원하는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권 등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웨이신 홍빠오() SNS를 통해 아예 현금을선물하기도 한다.

 

▲실용적인 중국인 사이에서는 잘 먹지도 않고, 방부제가 많은 월병보다는, 원하는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상품권을 선호하고 추세다.

 

2016-09-14  한중일 3국의 추석 어떻게 다를까?

주열 현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추석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외교관으로서 이웃 양국에서 근무한 필자로서는 같은 동양문화권으로서 ‘같은 듯 하면서도 서로 다른 추석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 중국 중추제(中秋節·仲秋節)-2008년부터 공휴일로

중국은 추석을 중추제라 부른다. 춘하추동 4계절을 초() () ()으로 구분하여 가을의 경우에도 초추(初秋) 중추(仲秋) 만추(晩秋)로 나눠 부른다. 중추제는 음력 8 15일 가을의 한 가운데를 기린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때가 농업사회에서는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중추제는 설날(1.1 春節·춘제) 정월대보름(1.15 元宵節·위안샤오제)과 함께 3대 명절 중 하나다. 춘제(春節)는 과거부터 3일 연휴였지만 중추제는 2008년에서야 비로소 하루 공휴일로 지정됐다.


◆ 한족을 단합시킨 웨빙(月餠)

민족 대이동을 하는 춘제와는 달리 중추제에는 비교적 간소하게 웨빙을 주고받으며 명절 기분을 낸다. 중국에서 근무할 때 중국인 지인에게서 웨빙을 선물받곤 했는데 단팥소가 너무 달아 맛있게 먹지는 못했던 기억이 난다.

 

웨빙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가끔 뇌물로도 사용돼 중국 정부는 최근 부패 근절 방침을 내려 고급 웨빙을 못 만들게 금지했다. 웨빙의 기본은 밀가루 빵에 단팥소, 대추 등 말린 과일을 넣어 둥글게 만든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의 송편처럼 웨빙을 먹어야 중추제를 제대로 지낸다고 느낀다. 우리의 송편과 중국의 웨빙은 달()의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웨빙은 둥근 달이고 송편은 반달이다.

 

중국 사람들은 가득 찬 것을 좋아하여 달도 보름달(滿月 full moon)을 좋아한다. 중국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술잔의 술이 줄어들면 반드시 누군가가 첨잔을 해서 채워 놓는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원만(圓滿)’라는 말은 둥글고 가득 찬 모습을 말한다. 가족의 화목이나 회사의 발전도 원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중에서도 벤츠나 아우디가 특히 인기 있는 것은 상표가 원()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웨빙은 한족(漢族)의 저항정신과 연결돼 있다. 몽골의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고 있을 때 끊임없는 한족의 저항을 받아 결국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했다. 당시 몽골의 압제에 신음하던 한족들은 몽골인은 먹지 않는 웨빙 속에 반원거병(反元擧兵)의 비밀메시지를 넣어 몽골 관헌의 눈을 피해 봉기를 하였다고 한다.

 

◆ 일본의 추석, 오봉-음력 대신 양력으로 쇠어

주일 도쿄대사관에 근무할 때 8 15일 광복절을 끼워 여름휴가를 준비했다. 자동차로 일본의 주요 역사 유적지를 둘러볼 요량으로 일본인 지인과 상의했더니 그는 “오봉데스요! 오봉! (오봉입니다! 오봉!)”하고 놀랜다.

 

일본은 추석을 양력 8 15일 전후에 지내면서 ‘오봉’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추석처럼 민족대이동이 이루어지는 기간이다. 도로가 막히기 때문에 자동차 여행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이때는 항공기 기차 등도 예약이 꽉 차서 외국인들은 이 기간에는 움직이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오봉 때에는 흩어진 가족이 모여 ‘하카()마이리’라고 부르는 성묘를 하고 지역에 따라 조상신을 위로하는 ‘봉오도리’라는 축제를 준비한다. ‘봉오도리’에는 가벼운 여름옷을 입은 남녀노소가 함께 춤을 추면서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것 같았다.

 

지인에 따르면 오봉은 우란분회(盂蘭盆會)을 줄여 말하는 것으로 우란분회는 불교행사의 하나라고 한다. ‘우란’은 고대 인도 페르시아어의 음역으로 본래의 의미는 ‘조상의 영혼’이라고 한다. ()은 조상에게 드리는 음식을 담는 용기를 말한다.


◆ 불교행사로 바뀐 일본 추석

과거 일본에서는 음력 7 1일이 되면 저승 문이 열렸다가 중원(中元)으로 부르는 7 15일에 다시 닫힌다고 믿었다. 그 기간에 조상의 영혼이 외출할 수 있어 이때 각 가정에서는 조상을 맞이하여 음식을 공양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조상 공양의 풍습이 친지나 거래처 등 평소에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관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러한 선물을 중원(中元)을 전후하여 주고받는다 하여 일본 사람들은 이를 ‘오주껜(お中元)’이라 부른다.

 

일본에 살다가 느낀 것은 메이지(明治)유신 이래 과거 음력을 모두 양력으로 바뀌어 달()과 관련되는 전통 행사도 양력으로 바뀌어 필자가 보기엔 혼란스러워 보였다. 추석은 본래 음력 8 15일이지만 양력으로 맞춰 쇠다 보니 달과 관련이 없게 된다. 우리와 같은 추석의 개념이 없어진 것이다.

 

한반도의 추석은 과거 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 신라의 문화가 일본에 전달되어 일본에도 추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실한 불교신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일본을 260년간 지배하면서 일본이 불교국가로 되다 보니 민속적인 추석보다 불교의 행사의 일환으로 바뀐 것 같다.

 

추석은 음력에서 나온다. 음력을 제한적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중국은 보름달의 추석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음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일본은 사실 추석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보름달이 뜨고 다소 시원해진 이맘 때 일본 어디에서도 추석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2016-09-14  한국과 중국 추석 이것이 다르다

장페이 군산대 국제교류원 중국어 강사

10년째 한국에서 생활하는 중국인 주부 장페이(張沛) 씨가 느끼는 양국의 추석은 어떻게 다를까? 전북 군산에 사는 장 씨가 추석을 맞아 중국의 창에 특별기고문을 보내왔다. 한국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둔 장 씨는 군산대 국제교류원 중국어 강사다.


중국의 중추절 이야기

추석(秋夕)은 중국에서는 중추절 (中秋節), 추절(秋節), 퇀위안제 (团圆节)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그 중에서도 중추절 (中秋节) 이 가장 보편적인 명칭이다. 중추제는 춘제(春節·중국 설날), 단오절(端午節)과 함께 중국의 3대 전통 명절 가운데 춘제 다음으로 큰 명절이다. 중추절이라 불리는 이유는 예로부터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는데 음력 8 15일은 가을의 한가운데이기 때문이다.


◆ 항아분월(嫦娥奔月)의 이야기

중국 고대신화에서 중추절이 기원했다는 전설이 있다. 달이 신 상아(嫦娥)는 남편 후이(羿 중국고대 하()왕조의 국왕으로 활쏘기를 즐겨했다. )가 야박함을 원망하여 음력 8 15일에 남편의 불로장생약(不老長生藥)을 먹고 달나라로 날아갔고 후이는 뒤늦게 후회하여 매년 음력 8 15일 밤에 달을 보며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식구가 모두 모이기를 빌었다는 비참한 전설이 전해진다. 이때부터 인간 세상에서는 달에 제사를 지내면서 온 가정이 화목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중추제의 풍습

최초 중국의 고대 제왕들이 가을에 달에게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 점차 민간에게까지 전해져 민간에도 달을 향 해 절하고 (拜月) 달에게 제사를 지내는 (祭月)풍속이 형성됐고 매년 중추절이 되면 사람들은 정성들여 만든 월병(月餠)을 차려서 달에게 제물로 바치고 제물을 바친 후에 온 가족이 그것을 나눠 먹는데 이것은 온 가족이 즐겁게 한자리에 모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은 달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월병을 먹으면서 밝고 둥근 달을 감상하고 등롱을 구경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 대표음식 월병(月餠)

월병, 중국 남송시대부터 전해지는 과자로, 음력 8 15일에 둥근 달의 모양을 상징해서 만든다. 밤 · 수박 · 배 · 감 등 둥근 과일과 함께 달에게 바쳤으며, 가까운 이웃과 서로 나눠 먹고 행복을 빌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재료는 밀가루, 라드(돼지기름), 설탕, 물엿, 달걀, 팥소, 말린 과일, 둥근 나무틀이 필요하다. 만드는 방법은 밀가루에 라드 · 설탕 · 물엿 · 달걀 등을 섞어 뜨거운 물로 반죽해서 껍질을 만들고, 안에 팥소 또는 말린 과일 등을 넣은 다음 무늬가 있는 둥근 나무틀에 끼워서 모양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표면에 광택을 내는 액(난황 · 설탕 · 캐러멜 등으로 만든다)을 바르고 굽는다. 우리가 추석에 송편을 먹듯 중국에서는 월병을 먹는다고 한다. 송편에 콩, , , 꿀 여러 가지 재료가 있는데 중국에서도 월병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을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인 술잔은 100% 채워야, 한국인은 80% 적당

 중국에서 이 날을 표현하는 "月到中秋分外明“(월도중추분외명, 해석: 달이 가을의 가운데 오니 특히 밝도다)” 라는 구절이 있다. 구절은 명백한 과학적 이치를 담고 있다. 겨울은 춥기 때문에 집에 밖에서 달을 구경하기에 적당치 않고, 여름 하늘엔 항상 구름이 떠 있어, 달빛을 가릴 수도 있고, 봄날에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오로지 하늘이 높고 맑은 가을의 8 15일이어야, 달을 구경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기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지 않고 8부 정도를 채우지만 중국인은 술잔에 술을 가득히 채워야 한다. 잔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큰 실례가 된다. 첨잔을 해서라도 반드시 가득 채워 놓아야 한다. 달도 둥글고, 식탁도 둥글고, 음식을 담는 접시도 둥글고, 월병도 둥글고, 둥근 술잔은 가득 채워야 하고...

이런 것들은 원만(圓滿)함을 추구하는 중국의 민족성 발로가 아닌가 싶다.

 

■ 한국의 중추절 이야기

 ◆추석의 유래

8 15일 길쌈 내기를 해서 그 성과를 살펴 진 편이 술과 음식을 내놓아 이긴 편을 축하고 가무와 놀이로 즐겼으며 이를 ‘가배(嘉俳)’라 했다. 가배의 어원은 ‘가운데’라는 뜻으로 8 15일이 한국의 대표적인 만월 명절이기 때문에 붙여졌거나, 오곡백과가 풍성하여 1년 가운데 가장 넉넉한 때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한국에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추석은 여름처럼 덥지도,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 1년 중 가장 생활하기 좋고, 온갖 곡식과 과일이 무르익어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풍족한 시기이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는 좋은 날을 두고 이렇게 한가위에 빗대어 말하곤 한다. 음력 8월 보름, 가을의 한 가운데 위치한 ‘한가위’는 명절 중의 명절이다. 오곡백과가 가득한 계절인 이유로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한 해의 풍성함을 함께 즐기기에 딱 좋기도 하고요. 더위가 점차 물러갈 즈음인 선선한 날씨도 가족들과 둘러앉아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고 명절놀이를 즐기기 안성맞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갓 시집 온 며늘아기의 얼굴처럼 둥글고 훤한 보름달이 떠오르면 손을 모아 소원을 비는 것도 추석의 즐거움 아닐까요. 5월 농부, 8월 신선”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추석이 속해있는 음력 8(양력 9)은 농사를 지어온 한국 민족에게 신선과도 같은 날이었다. 온갖 곡식과 이야기꽃이 풍성한 명절, 추석. 그 추석만큼 이야기도 풍성하다. 왜 우리는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할까?

 

추석(秋夕)은 가을저녁,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란 뜻이다. 중추절(仲秋節) 혹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불리는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 ‘가을 중의 가을’입니다. 추석이 지금의 명절로 자리한 유래는 많이 전해오지만, 그 중 <삼국사기>에 전해오는 ‘길쌈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게 인정받는다. 신라 유리 이사금 9, 왕이 왕녀 두 사람에게 마을 내의 여자들을 거닐게 하여 편을 짜고 길쌈 대회를 개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7 16일부터 날마다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진편이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을 추며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이 시합이 8월 보름에야 끝났기 때문에, 이것이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한다. 신라시대부터 세시명절로 자리 잡은 추석은 고려에서도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등과 함께 9대 속절(俗節)로 포함될 정도로 의미 있는 날이었다.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이 되었다고 한다.

 

◆중추절의 풍속

한국 민족은 예로부터 농경민족이었다. 농사가 한 해의 먹고사는 문제를 결정지었기 때문에 농사 일정과 함께 삶을 꾸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확기가 시작되는 시기의 보름 명절인 ‘추석’은 그렇기에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명절이었다. 둥그렇게 꽉 찬 달 ‘만월’은 농민들에게 풍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수확하기 직전 알이 꽉 찬 곡식처럼, 누렇게 환히 뜬 달은 농민들에게 올해 농사도 풍작이라는 상징이다. 또한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듯, 둥근 보름달은 어느새 반달, 초승달, 그믐달, 그리고 삭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이처럼 달의 모습이 변화하는 것은 농사의 순환과도 닮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달에게 소원을 비는 것 아닐까? 각자의 소원은 다르겠지만, 추석을 맞는 옛 농민들의 소원은 ‘올해도, 내년에도, 우리 가족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풍년’이 아니었을까? 달을 닮은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거로 추정한다. 올해 농사에 대한 감사를 드리며 다음 해의 풍작을 부탁드리는 마음 말이다.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내 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가을의 명절인 추석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하면 송편이지요. 송편은 쌀가루를 반죽한 뒤 깨, , 대추, 계피가루 등을 소로 넣어 빚어 만든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한 가득 넣고 함께 찌기 때문에 송편 맛은 솔내에서 온다는 말이 나온 것 아닐까?

 

◆예의와 격식을 갖춘 차례 상차림

그럼 본격적으로 차례상을 차리는 법을 알아보자. 조상의 사진이나 지방을 놓는 자리인 ‘신위’를 기준으로 상차림을 알아보자. 상차림을 앞두고 먼저 음식을 준비한다. , , 숭늉은 신위 수(모시는 조상 수)대로 준비한다. 보통 추석에는 송편으로 대신한다. 술과 ‘청장’이라 불리는 간장, ‘편’이라 불리는 떡, ‘탕’이라 불리는 찌개를 비롯해, 부침개(), 구이(), (어포, 육포 등의 말린 고기), 식혜, 나물, 김치, 과일 등도 필요하다. 술은 아무거나 되는 것은 아니고, 맑은 것이어야 한다. 부침개는 고기전과 생선전 등 보통 다양하게 준비한다. 모든 음식에는 마늘이나 고춧가루, 파 등 향신료를 쓰지 않고 간장과 소금만으로 조리한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추석 인사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풍요로운 한가위가 되길 바랍니다.
“중추절(중추가절),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한가위 보내세요.
“둥근 보름달 보며 소원 꼭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추석 귀성 풍경

▲ 추석 풍경 16.9.13 경부고속 하행선 천안 부근

 

 

 

 

 

 

 

 

 

◆설 풍경

▲1956년 연날리기 하는 아이들

 

▲1958년 새해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일선 장병들 

 

▲1958년 새해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일선 장병들

 

▲1968년 구정 귀성객들

 

▲1970년 구정 귀성객들

 

▲1971년 구정 귀성객 기차역에서 대기 모습

 

▲1972년 서울역 신정 귀성객들

 

▲1974년 신정 귀성객들

 

▲1977년 구정 귀성객

 

▲1977년 서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