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이야기04/ 푸드 칼럼1/ 김성윤 의 맛 세상1/ 2012.01.26 태조 이성계는 순창고추장을 맛봤을까 - 2014.12.17 북한이 러시아 대통령 주방을 뒤진 이유?
식품 이야기04/ 푸드 칼럼1/ 김성윤 의 맛 세상1/
■ 김성윤 의 맛 세상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2012.01.26 태조 이성계는 순창고추장을 맛봤을까
스타 마케팅'이란 게 있다. 연기자나 가수 등 유명인사가 먹거나 입거나 쓰는 물건이라면서 홍보하고 광고하는 것이다. 스타의 유명세를 이용해 상품을 더 쉽고 빠르게 대중에게 알리고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기법이다. 한국만의 현상도, 최근 현상도 아니다. 서양에서는 더 오래전부터 스타 마케팅을 적극 활용해왔다.
유럽 요리업계는 스타 마케팅을 특히 활용한다. 서양요리 체계를 확립한 프랑스의 전설적인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Escoffier· 1846~1935)를 포함한 여러 요리사들은 새로 만든 요리를 유명인사에게 '헌정'한다며 그들의 이름을 요리에 붙였다. '피치 멜바(Peach Melba)'는 에스코피에가 당대 최고 소프라노 가수였던 넬리 멜바를 위해 1892년 만든 디저트이다. '투르느도 로시니(Tournedos Rossini)'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활동한 프랑스 요리사 앙투안 카렘(Careme)이 작곡가 로시니를 위해서 만든,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을 넣은 스테이크 요리이다.
와인업계도 스타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샴페인의 경우 돔 페리뇽(Dom Perignon)이 스타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샴페인은 가톨릭 사제로 프랑스 오비에(Hautvillers) 수도원 와인저장고 책임자였던 돔 페리뇽이 처음 만들었다고 흔히 알고 있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고급 샴페인도 있다. 하지만 페리뇽 신부는 샴페인을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가 샴페인 발전에 기여하기는 했다. 두꺼운 유리병을 도입하고 코르크 마개를 끈으로 고정시켜 기포로 인한 압력 증가로 터지기 일쑤였던 샴페인병 파손을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병이 계속 터져 페리뇽 신부가 관리하는 샴페인의 절반을 버렸다고 한다.
프랑스 샴페인업계는 돔 페리뇽이 샴페인을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굳이 알리려고 나서지 않는다. 가톨릭 수도사가 와인에 기포가 생기게 했다는 전설이 샴페인의 탄생 배경에 신비함을 더하기 때문이다. 홍보대사를 선발하거나 마스코트를 일부러 만들기도 하는 마당에, 페리뇽 신부만큼 샴페인을 대표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다시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우리나라에서도 음식계는 스타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순창고추장을 맛보고 극찬했다는 이야기다. 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마을 홈페이지는 '순창고추장의 유래'를 이렇게 소개한다. "고려말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고 있던 순창군 구림면 만일사를 찾아가는 도중, 어느 농가에 들러 고추장에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그 맛을 잊지 못하다가 조선을 창건·등극한 후 진상토록 하였습니다. 이후에 천하일미의 전통식품으로 유명해졌으며 지금까지 그 명성과 비법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안정마을뿐 아니라, 많은 순창고추장 제조·판매업체가 이 설화를 내세운다. 인터넷에서 순창고추장을 검색하면 이런 내용이 무수히 뜨고, 언론도 사실처럼 전한다. 최근 한 일간지는 '순창 장류 축제' 기간에 열리는 '순창고추장 임금님 진상행렬'을 소개하면서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던 순창군 구림면 만일사를 찾아가는 도중 농가에서 먹은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진상하도록 해 유명해졌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성계는 고려말인 1335년에 태어나서 1392년에 조선을 세웠고, 1398년까지 통치하다 1408년에 사망했다. 설화에 따르면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찾아오다가 고추장을 맛본 건 늦어도 1391년 이전이라야 한다. 그런데 고추장의 주요 재료인 고추는 17세기 초 일본에서 한반도에 전해졌다고 한다. 고추장이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건 1766년 발간된 '증보산림경제'로, '만초장'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성계는 고추장을 맛보기는커녕 고추장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계가 순창고추장을 맛보고 극찬했다는 설화의 진실은 무엇일까. 순창군청 웹페이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만나러 만일사에 오다가 농가에서 맛있게 먹은 건 고추장이 아니라 '초시(椒�f)'라고 순창군은 설명한다. 초시는 산초(山椒)나 호초(胡椒·후추나무 열매껍질)를 넣은 된장류로, 고추장의 전신으로 여겨진다. 고추가 전래된 후 산초나 호초 대신에 고추를 넣은 것이 고추장이다.
순창군은 이성계가 고추장이 아니라 고추장의 전신을 맛보았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하지만 굳이 이런 사실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일개 연예인이 아니라 임금님이 맛있게 먹었다니, 이보다 더 환상적인 스타 마케팅 소재가 또 있겠는가.
김성윤
문화부 기자
E-mail : gourmet@chosun.com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그림일기에 만날 뭘 먹었나 얘기를 쓰더니, 이제 신문에 음식 얘기를 써서 밥벌이 하는구나”라며 기특해 하신다. 어려서부터 음식 만들기와 글쓰기를 즐겼다. 대학 3학년 때 한 창작요리대회에 나가 3등을 했다. 신문사 입사 시험 때 자기소개서에 이걸 썼더니 면접에서 “요리대회 나가서 뭘 어떻게 만들었냐”만 묻길래 떨어진 줄 알았는데 합격했다. 그래서 입사할 때부터 ‘음식 좋아하는 특이한 놈’으로 알려졌다. 2000년 입사해 국제부와 경영기획실, 산업부를 잠깐씩 거쳐 대중문화부에서 음식 담당 기자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요리사가 날재료를 가공해 먹음직스런 요리로 만들어낸다면, 기자는 단순한 사실들을 의미 있는 기사로 요리해내는 일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믿는다
2012.02.23 빈대떡도 올리브오일로 부치면 더 맛있나
폐백·이바지 가게를 하는 김순자(가명)씨는 요즘 작은 고민이 있다. 올리브오일로 전을 부쳐달라고 주문하는 손님이 있는 거다. "서울 강남 사모님들 중에 특히 그런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올리브오일로 전을 부쳐보니까 맛이 이상해요. 풋내랄까 들내랄까, 올리브오일 특유의 냄새가 전에 배어들어서 전 고유의 맛이 나지 않는 거예요. 손님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그래도 올리브오일로 부쳐 달래. 몸에 좋은 기름이라고."
50년 전만 해도 올리브오일은 유럽에서도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식용유였다. 지중해 연안에서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의 열매를 압착해 나오는 즙인 올리브오일이 지구 반대편 아시아 끄트머리에 있는 한반도에서까지 유행하게 된 건 '지중해 식단' 덕분이다. 현대인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흉으로 떠오른 고혈압·심장병 등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데 지중해 식단이 이상적이고, 이 지중해 식단의 핵심이 올리브오일이라고 알려지면서 올리브오일 소비가 세계적으로 급증한 것이다.
지중해 식단의 신화(神話)가 시작된 곳은 지중해 한복판에 있는 섬 크레타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그리스정부는 미국 록펠러재단에 "그리스 국민의 식생활과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컨설팅해달라"고 부탁했다. 록펠러재단 연구진은 그리스에서도 가장 못살던 크레타 섬 주민을 연구표본으로 삼았다. 여러 달 동안 크레타 주민들을 만나서 면접과 가정방문 등으로 이들의 식생활을 꼼꼼하게 조사했다. 록펠러재단의 연구결과는 "개선할 것이 없다"였다. 1948년 록펠러재단이 그리스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비록 이들이 가난할지는 모르나 건강한 식단으로 미국인보다 나은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록펠러재단의 조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안셀 키즈(Keys) 교수는 그 유명한 '7개 국가 연구(Seven Countries Study)'를 시작했다. 키즈 교수는 세계 22개 국가 국민들의 식생활과 심혈관 질환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프랑스·그리스·이탈리아 등 대비가 큰 7개 나라 국민들의 조사결과를 비교 분석했다. 조사결과는 놀라웠다. 크레타와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남부 프랑스 등 지중해 연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하루 열량의 40% 이상을 지방에서 섭취했다. 미국인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도 심장병 사망률은 미국인보다 훨씬 낮았다. 특히 크레타 고지대 주민들은 미국인보다 지방을 3배나 더 많이 섭취하는데, 심혈관 관련 질환은 10만명 중 9명에 불과했다. 미국인은 이보다 40배가 높았다.
키즈 교수 연구팀은 이 '모순'의 원인을 식단이라고 지목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올리브와 올리브오일을 즐겨 먹는 지중해 연안 사람들의 식단이 심장병을 크게 줄였다고 분석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올리브였다. 지중해 연안 사람들이 지방을 엄청나게 섭취하지만 그 지방은 대부분 올리브와 올리브오일이다. 키즈 교수의 연구결과는 미국과 유럽 등 서구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고, 곧 '지중해 식단'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알려졌다. 지중해 식단의 핵심인 와인과 올리브오일이 세계 곳곳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올리브오일은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이다. 콜레스테롤과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혈중지방성분인 트리글리세리드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크레타 사람들은 한 해 평균 31㎏의 올리브오일을 섭취한다고 한다. 실제 크레타에서 그들이 먹는 음식을 보면 음식에 올리브오일이 들어간 정도가 아니라, 음식이 올리브오일에 빠져 있는 것처럼 흥건하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양의 올리브오일을 섭취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견디지 못한다. 설사를 하고 속이 좋지 않다. 심지어 그리스 본토 사람들도 크레타 사람들처럼 대량의 올리브오일을 먹지는 못한다. 크레타 주민들이 이렇게 많은 양의 올리브오일을 먹어도 멀쩡한 건 수천 년 동안 올리브오일을 먹으면서 그네들의 체질이 대량의 올리브오일 섭취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맵게 먹어도 속이 쓰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미국의 음식인류학자인 개리 납한(Nabhan)은 "진정한 웰빙은 음식뿐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살면서 그 환경에 적응한 인체 유전자,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문화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올리브오일이 몸에 좋지만, 맹목적으로 먹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도 참기름, 들기름이라는 훌륭한 식용유가 있다. 빈대떡을 굳이 올리브오일에 부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12.03.21 평생 피자 한번 안 먹어 본 81세 이탈리아 할머니
카테리나(81) 할머니는 내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파르마에서 일 년 연수하는 동안 임차했던 집주인의 어머니이다. 카테리나 할머니는 "여태 피자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피자는 요즘이나 먹지, 내가 젊었을 때는 별로 먹지 않았다"고 했다. 카테리나 할머니는 물론 이탈리아인이다.
피자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카테리나 할머니처럼 아직까지 피자를 먹어보지 않은 이탈리아인도 상당수이다.
피자라고 하면 얇고 둥그렇게 편 밀가루 반죽에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치즈를 올려 화덕에 구운 음식을 떠올린다. 우리가 아는 이런 피자는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다. 모차렐라치즈가 피자에 처음 사용된 건 공식적으론 1889년부터다. 그해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2세와 마르게리타 왕비가 나폴리를 방문했다. 나폴리의 피자집 '브란디(Brandi)' 주인인 라파엘레 에스포시토는 국왕 부부를 위한 만찬에 올릴 피자를 개발하라는 명을 받았다. 마르게리타 왕비는 에스포시토가 만든 여러 가지 피자 중에서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치즈, 바질을 얹은 피자를 좋아했다. 이것이 '피자 마르게리타'이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하지만 피자는 여전히 나폴리가 있는 이탈리아 남부 일부 지역에서만 먹었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피자가 이탈리아에서 대중화된 건 미국 덕분이다. 19세기 후반 미국으로 이탈리아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나폴리·시칠리아 등 대부분 가난한 남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대단위 주거지를 이뤄 살았던 미국 북동부 대도시들에 피자집이 생겨났다. 1905년 뉴욕에 문을 연 '롬바르디스(Lombardi's)'가 미국 최초의 피자집이다. 하지만 피자는 이탈리아 이주민들이나 먹었지, 앵글로색슨 계열로 구성된 미국 사회의 주류는 먹지 않았다.
피자의 팔자가 바뀐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 병사들은 피자에 열광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간 병사들은 미국에도 피자집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들이 먹으면서 피자가 미국 사회 전반에 알려졌다. 그리고 이탈리아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들이 피자를 찾았다. 이들의 요구에 맞춰 피자집이 로마·밀라노·피렌체 등 이탈리아 전역에 들어섰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피자 먹는 미국인을 보면서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도 피자를 알게 됐다. 특히 미국 문화를 선망하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외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늘어난 1960~70년대부터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본격적으로 소비됐다. 피자가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이 된 것은 5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통음식들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한식 세계화 전도사'인 조태권 광주요그룹 대표는 "우리가 전통한식이라고 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만들어진 지 100여 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치라고 하면 보통 통배추 김치를 떠올린다. 우리나라에서 통배추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건 조선후기부터다. 속이 찬 배추가 1800년대 말 나왔다지만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이파리가 성글게 벌어진 '조선배추'다.
1960년대까지도 김치는 대개 이 조선배추로 담갔다. 요즘 김치 담글 때 사용하는 알이 꽉 찬 결구종 배추를 '호(胡)배추'라고 지금도 부르는 걸 보면 중국이 아닐지는 몰라도 외래종인 듯하다. 김칫소는 또 어떤가. 일제강점기인 1924년 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통김치 레시피를 보면 김칫소 재료로 쇠고기(양지머리·차돌박이)와 삶은 돼지고기 따위 육류가 들어간다. 고추는 가루 내지 않고 실처럼 가늘게 썰어서 사용하라고 돼 있다. 우리가 지금 전통적이라고 생각하는 김치는 50여 년 전에야 현재의 맛과 모양을 갖춘 셈이다.
피자 이야기로 돌아가자. 피자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자 이탈리아, 특히 피자의 본산 나폴리에서는 '피자가 원형을 잃어간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유서 깊은 피자집 주인들이 1984년 정부에 '정통 나폴리 피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 협회가 수여하는 '정통 나폴리 피자 인증'을 법률로 통과시켰다. 이렇게 피자 맛을 지키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일부에선 피자가 발전하는 길을 막았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탈리아 미식학대학 파비오 파라세콜리 교수는 "피자를 고작 100년 전 만들어진 대로 박제시키면 문화와 사회의 변화에 적응 못하고 도태돼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음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현대의 요구와 미감(美感)에 맞춰 재해석·재창조되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한식에 접목한 음식을 '퓨전'이라며 무조건 배척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어차피 전통한식의 상당수가 어떤 의미에선 퓨전이다. 어떤 식재료건 요리법이건 한국 사람이 주체적으로 수용하면 한식(韓食)이 아닐까.
2012.04.18 선인장은 나바호족의 '身土不二' 음식이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몸과 땅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으로,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먹어야 우리 몸에 좋다는 말이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히 그렇겠지"라고 막연히 수긍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무조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믿어도 되는 걸까.
북미대륙의 사막지대에 사는 원주민(인디언)들은 당뇨·고도비만 등 현대 성인병이 심각하다. 특히 당뇨는 미국 나바호 원주민들과 멕시코 세리 원주민들의 3대 사망원인 중 하나이다. 그런데 불과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원주민들은 당뇨가 뭔지도 몰랐다. 매년 뱀에 물려 죽는 사람이 당뇨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고 할 정도였다. 도대체 지난 50년 동안 이들 원주민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미국 보건학자들은 원주민들이 당뇨에 유난히 취약한 원인을 한참 동안 찾지 못했다. 그때 음식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들이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 '현대적·서구적 식단(食單)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원인은 아닐까.' 학자들은 북미 원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먹어온 전통식단을 조사했다. 사막지대에 사는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다양한 종류의 선인장을 섭취했다. 세리족은 프릭클리 페어(prickly pear) 등 22가지나 되는 선인장을 섭취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선인장은 건조한 사막에 적응해 살기 위해 끈끈한 섬유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이 점액질 세포는 물을 오랫동안 강력하게 붙들고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인 당분을 천천히 배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선인장뿐 아니라 사막에 사는 수십 가지 다른 식물들도 이 점액질을 가지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미국 원주민들은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막지대라는 자연환경 속에 살면서 채집과 수렵으로 생존해왔다. 선인장 등 사막에 자생하는 식물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선인장에 포함된 점액질 세포가 인체에 들어가면 위와 장에서 음식물 소화와 당분 흡수를 늦춰주는 기능을 한다. 외부세계나 다른 문명과 멀리 떨어진 사막지대에서 수천년 이상 살아온 원주민들의 몸은 서서히 사막 식물로 구성된 식단에 적응했다. 이들 원주민들은 유럽이나 아시아는 물론 같은 북미대륙에 살지만 농사를 지어온 다른 지역의 원주민들은 갖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사막지대에 자신들의 몸을 최적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물과 당분을 쉽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구할 수 없는 사막에서 수분과 당분을 최대한 천천히 사용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면 생존에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막 환경에 적응한 몸은 현대사회에 반강제적으로 편입된 뒤에는 원주민들에게 약(藥)에서 독(毒)으로 변했다. 원주민들이 음식물을 구하는 수단은 수렵과 채집에서 '쇼핑' '구매'로 빠르게 변했다. 수퍼마켓이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으로 식단은 바뀌었지만, 수천년에 걸쳐 선인장 등 사막식물에 적응한 몸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당분이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지만, 이를 제때 적당히 배출하지 못해 당뇨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토불이 식단으로 돌아가면 건강도 돌아올까. 미국 유타주에 있는 국립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Fitness)에서 실험을 해봤다. 피마·파파고·호피·파이우트 부족 출신 당뇨환자 8명에게 열흘 동안 전통식단과 비슷한 당분을 천천히 배출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운동을 하도록 했다. 쉽게 말해서 원주민 조상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랬더니 열흘 만에 체중과 혈당수치가 크게 호전됐고, 원주민 스스로도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고 느꼈다. 호주 원주민들 역시 급격히 바뀐 식단으로 인해 성인병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데 이들도 1개월 동안 조상들처럼 유랑하며 채집한 음식을 먹도록 하자 혈당수치가 크게 떨어졌다.
서울 본디올 한의원 최철한 원장은 "사람은 자신이 거주하는 환경에 잘 적응한 곡식을 먹음으로써 그 환경에 더 잘 적응해 나갈 수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신토불이"라고 말한다. 선인장을 먹으며 몸을 이러한 식단에 적응시킨 것은 북미대륙 사막지역 원주민 나름의 신토불이였다. 요즘 미국 원주민들이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건 신토불이를 지키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은 어떠한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 미국 원주민 못지않게 급격한 식단의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인들도 '신토불이'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2012.05.16 '노쇼(no show)'는 '노 매너(no manner)'다
서울 신라호텔의 경우 식당 예약을 하면 휴대전화로 예약 확인 문자메시지가 바로 들어온다. 저녁 식사하기로 한 날 오후 3시가 되면 예약한 손님에게 확인 전화를 건다. 프런트 데스크를 담당하는 직원은 예약을 확인하고, 변동사항은 없는지 묻는다. 이곳뿐 아니라 서울의 거의 모든 특급호텔은 물론이고, 예약이 필요한 시중 고급 레스토랑들은 대개 미리 확인 전화를 한다. '노쇼(no show)'가 최근 들어 심해졌기 때문이다. 노쇼란 예약한 손님이 미리 취소하거나 통보하지 않고서 식사하러 나타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노쇼는 미식(美食)이 유행하면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레스토랑가이드 '블루리본' 김은조 편집장은 "소위 '뜬다'는 식당들은 예약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손님들이 몰리는데, 이런 인기 높은 식당 여러 곳을 동시에 예약해놨다가 식사 당일 가장 가고 싶은 곳만 제외하고 나머지 레스토랑 예약을 취소하거나 아예 취소 통보도 하지 않는 미식가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예약이라는 기본 에티켓은 체득하지 못한 어설픈 미식가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소리다. 김 편집장은 "크리스마스 이브나 밸런타인데이 등 대목에도 노쇼가 많다"고 덧붙였다.
예약했다가 사정이 생겨서 오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지 못하게 됐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식당 입장에서는 손해가 크다. 음식점에서는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식재료를 정확히 구매해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의류매장이야 팔리지 않은 옷은 반품하거나 찾는 손님이 나타날 때까지 창고에 쌓아둘 수 있다. 하지만 식재료는 선도(鮮度)가 최우선이라 그날 팔리지 않으면 버려야 하는 것들이 많다. 아무리 냉동시켜 둘 수 있는 음식이라도 보관 가능한 시간적 한계, 즉 보존기한이 있다. 그래서 식자재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식자재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예약이다. 그날 예약된 손님 숫자에 따라서 식재료를 구매한다. 식재료뿐 아니라 필요한 종업원 숫자 등 모든 것을 예약에 따라 준비한다. 그런데 예약한 손님이 예약을 취소하거나 심지어 아무 말 없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최악이다. 테이블이 적고 한정된 숫자의 손님만 받는 고급 음식점일수록 손해가 크다. 그래서 노쇼가 많은 한국의 레스토랑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하지 않는 예약 확인이 필수로 자리 잡은 것이다.
노쇼에 지친 식당들은 예약 확인을 넘어 더욱 적극적인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서울 연남동에서 지난달 말까지 영업하다 이달 말 강남구 신사동으로 이전하는 일본 음식점 '이타찌'는 예약하려면 2만원을 식당 은행계좌로 입금해야 한다. 입금이 확인되면 비로소 예약이 완료된다. 이타찌는 가이세키 요리코스만을 1인당 7만원에 내던 식당이다. 그러니까 식사 가격의 약 30%를 미리 지급하지 않으면 예약이 불가능했다는 소리다. 이를 업계 용어로는 '개런티(guarantee)'라고 한다.
개런티에 대해서 항의하는 손님들이 많다. "우리 정서상 너무 야박하다" "기본적으로 식당이란 서비스업인데 오만한 태도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타찌 오너셰프(주인 겸 주방장) 김건씨의 입장은 확고하다. "우리 식당은 좌석이 8개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약을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손님이 너무 많습니다. 저녁에만 영업했으니 일주일에 손님 48분만 받을 수 있었는데, 많을 때는 절반 가까운 20명이 아무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노쇼는 식당 입장에서도 손실이 크지만, 우리 음식을 맛보고 싶었던 다른 손님들의 기회를 빼앗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런티를 고집했습니다."
개런티를 시도한 식당은 이타찌가 처음은 아니다. 청담동 프랑스레스토랑 '팔레 드 고몽'이 몇 해 개런티 제도를 실시했다가 지금은 특정한 날에만 하고 있다. 팔레 드 고몽 서현민 사장은 "프랑스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개런티 제도를 시행하는 곳이 상당수"라면서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국 손님들의 항의가 심해서 크리스마스 이브 등 특별한 날에 예약금액의 30%를 받는 것 말고 평일에는 개런티를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런티 제도가 한국에선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타찌 김건 사장도 "이달 말 신사동 새 매장으로 이전하면 50석으로 받을 수 있는 손님이 대폭 늘어난다"면서 "새 식당에서는 개런티를 받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님들의 항의나 거부감 때문이 아니라 그런 자구책이 필요하지 않아서 개런티를 받지 않는 식당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2.06.20 美食은 과연 '죄악'인가
중세 가톨릭 교회는 탐식(貪食)을 '일곱 가지 큰 죄(Seven Sins)' 중에서 두 번째로 꼽았다. 14세기 말~15세기 초의 네덜란드 신학자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음식과 술로 배가 터질 듯 차 있을 때 방탕이 문을 두드린다"며 탐식을 경계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시도 때도 없이 먹는 것, 너무 섬세한 음식(맛)을 추구하는 것, 너무 호화롭게 먹는 것, 절도 없이 게걸스럽게 먹는 것, 너무 과하게 먹는 것"을 탐식의 다섯 유형으로 꼽았다. 중세 기독교가 탐식을 죄악으로 규정한 건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 모자라 대다수 사람이 굶주리는 상황에서는 귀족과 성직자 등 기득권층의 식탐을 제어해야 사회와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탐식을 다시 죄악으로 규정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22일부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유엔 지속가능개발회의 '리우+20'에서 비만이 주요 어젠다(주제)로 선정됐다. '리우+20'은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었던 환경을 위한 첫 국제회의인 '유엔 지구 정상회의'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회의이다.
환경과 지속 가능한 개발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비만이 어젠다로 부각된 까닭은 비만이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의 웰빙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 보건대학원이 리우+20에서 발표할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에 사는 성인 체중의 합은 2억8700만t이며 이 중 350만t이 비만, 1500만t이 과체중으로 인한 무게이다. 런던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뚱뚱한 사람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는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비만은 이제 환경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 환경론자들은 온난화 방지를 위해 지나친 육식(肉食)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상당하다. 소가 사료를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메탄이 생성된다. 소는 이렇게 생산된 메탄을 방귀와 트림으로 배출한다. 축산과학원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메탄 양은 연간 47㎏으로 이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1109㎏이 된다. 자동차 1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4700㎏이라니까 소 4.2마리가 자동차 1대와 맞먹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셈이다. 게다가 공장식 축사에서 대량 사육되는 소와 돼지, 닭이 배설하는 분뇨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렇다면 환경 보호를 위해 음식의 쾌락은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보다는 탐식은 지양하고 미식(美食)을 지향하는 자세가 필요할 듯하다. 사실 탐식과 미식은 경계가 애매하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탐식가는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고, 미식가는 '음식에 대하여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 또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탐식가가 다소 부정적이고 미식가는 긍정적이지만 구분이 쉽지 않다. '미식의 나라'로 꼽히는 프랑스어로 '구르메(gourmet)'는 미식가를, '구르망(gourmand)'은 탐식가 또는 대식가(大食家)를 말하지만 철자와 발음이 비슷할 뿐 아니라 그 뜻이 뒤섞여 사용된다.
최근 출간된 '논어로 논어를 풀다'(해냄)를 읽다가 오늘날 사회와도 어울릴 만한 미식가를 찾았다. 공자(孔子)이다. 이 책의 저자는 "흔히 '군자가 되려는 자는 먹을 때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다(君子食無求飽)'(논어 학이편 14장)고 했다고 해서 공자가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풀이하지만, 공자가 강조한 것은 음식을 먹을 때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지 배부르게 먹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향당편 8장'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장을 살펴보면 공자는 '밥은 잘 찧은 쌀로 지은 것을 싫어하지 않았(食不厭精)'고, '제때가 아닌 곡식이나 과일을 먹지 않았(不時不食)'으며, '고기나 생선을 먹을 때도 거기에 맞는 장이 아닐 때는 먹지 않았다(不得其醬不食)'. 잘 도정한 고급 흰쌀밥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고, 가장 맛있을 때를 맞은 제철음식을 즐겼으며, 음식에 맞는 양념이나 소스를 곁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기를 많이 먹었으나 밥의 기운을 이기지 않게 했고, 술 또한 양을 정하지 않았으나 만취에는 이르지 않았다(肉雖多不使勝食氣 唯酒無量不及亂)'는 말은 육류를 좋아했지만 과식하지 않았고, 음주를 즐겼으나 폭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음식을 가려먹을 줄 아는 기호, 즉 취향이나 미각을 가졌으면서도 탐식하지 않는 절제력을 갖춘 이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미식가 아닌가.
2012.07.11 '기름진 간'의 판매를 禁(금)하라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기름진 간' 때문에 시끄럽다. 기름진 간이란 송로버섯(트러플), 캐비아와 함께 서양 요리의 3대 진미(珍味)로 꼽히는 푸아그라(foie gras)의 본뜻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1일부터 거위나 오리의 간으로 만든 푸아그라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법률을 시행했다. 푸아그라금지법을 어기다 적발되면 하루 최대 1000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동물보호론자들이 벌여온 반대운동의 결실이다.
이로써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푸아그라를 금지하는 첫 번째 주(州)가 됐다. 이 법안은 8년 전 당시 캘리포니아주지사였던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서명했다. 푸아그라 제조과정에서 거위와 오리가 엄청난 스트레스와 끔찍한 고통을 받는다는 동물보호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슈워제네거 전 주지사는 2004년 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법률 시행은 2012년 7월로 미뤄뒀다.
푸아그라는 특별한 사육방법을 통해서 거위나 오리의 간을 비정상적으로 키워서 만든다. 비록 가금류(家禽類)로 길들여지기는 했지만 거위와 오리는 본래 철새였던 조상들의 DNA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낙타에게 혹이 있듯, 철새는 간을 살찌워 이동에 필요한 영양을 축적한다. 푸아그라 생산자들은 이것을 이용한다. 거위나 오리의 식도에 깔때기가 붙어 있는 관을 꽂는다. 그리고 여기에 옥수수 따위의 곡물사료를 하루 여러 차례 먹인다. 그러면 간이 정상보다 최대 10배 가까이 커진다. 이렇게 간을 키우는 사육방식을 프랑스어로 '가바주(gavage)'라고 부른다. 동물애호가들은 가바주가 동물 학대란 주장이다. 튜브를 거위나 오리의 식도에 꽂고 사료를 강제로 밀어넣는 과정에서 긁히고 상처 나고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푸아그라금지법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러한 동물애호가들의 주장이 과도하다고 말한다. 너무 인간적인 입장에서 거위나 오리의 고통을 헤아리고 있다는 반론이다. 푸아그라 옹호론자들은 "거위나 오리는 인간에게 있는 교액반사가 없다"고 말한다. 구토반사라고 부르기도 하는 교액반사(gag reflex)는 식도 등에 자극이 가해지면 구역질을 일으키거나 토하는 반사작용이다. 필자도 몇 해 전 프랑스에서 푸아그라를 생산하는 거위농장을 방문해 가바주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거위나 오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농부가 가바주를 하려고 하면 거위들이 몰려드는 장면을 목격했다.
푸아그라는 맹렬히 반대하면서 공장형 대량 생산체제에 속해 있는 소나 돼지·닭의 고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건 위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꽃등심, 즉 마블링이 잘된 쇠고기를 생산하려면 소가 본래 먹는 풀 대신 곡물을 먹여야 하고, 살과 기름이 빠지지 않도록 운동량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육우(肉牛)는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좁은 우리에 갇혀 짧은 일생을 마치고 도축된다. 자연 상태에서는 하루 한 번 낳는 달걀의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양계장에서는 24시간 불을 밝힌다. 닭이 계속 낮이라고 착각해 자주 달걀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다. 돼지는 본래 잠자리와 대소변 보는 자리를 가리는 깔끔한 동물이지만, 역시 살을 찌우기 위해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다 보면 온몸이 자신이 싼 오물로 뒤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의 푸아그라 애호가들과 식당들이 반격에 나섰다. 지난 5일 오리사육협회와 미국요식업자모임, 푸아그라 애호가들이 캘리포니아주 제리 브라운 주지사와 카밀라 해리스 주 법무장관 등을 상대로 푸아그라를 금지한 조류사육법이 헌법을 위반했다며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어떤 조류에게도 간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해당 조류가 자발적으로 먹을 수 있는 적정 분량 이상의 사료를 먹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너무 애매하고 과도한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악법이라는 주장이다. '조류가 자발적으로 먹을 수 있는 사료의 양'을 측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푸아그라금지법이 얼마나 지켜지고 유지될까. 캘리포니아 식당들은 푸아그라금지법을 우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며 자신만만이다. 푸아그라의 판매만 금지사항이므로 토스트를 매우 비싸게 손님에게 팔면서 거기에 발라 먹을 푸아그라는 공짜 서비스로 제공한다든가, 손님이 푸아그라를 가져오면 일정 비용을 받고 요리해주는 식이다.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푸아그라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카고 시정부가 지난 2006년 푸아그라금지법을 시행한 적이 있지만, 2년 만에 철폐됐다. 물론 동물보호론자들은 '철저히 감시하겠다'며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다.
2012.08.08 설렁탕·곰탕·갈비탕·국밥과 세계 최고 레스토랑
'탕·탕·탕…'. 지난 7월 한식재단이 펴낸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이 책은 현재 영업 중인 국내 한식당 중에서 50년 이상 역사를 가진 100집을 모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봤다. 설렁탕, 곰탕, 갈비탕, 삼계탕, 꼬리곰탕, 추어탕 등 탕을 내는 식당의 비율이 유난히 높았다.
올해로 개업 108년을 맞아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음식점인 서울의 이문설렁탕(1904년 개업)부터 나주곰탕 명가인 전남 나주 하얀집(1910년), 개장국으로 이름 높은 부산 박달집(1920년), 경기도 안성 설렁탕집 안일옥(1920년), 서울 형제추어탕(1926년) 등 최고령 한식당 10곳 중 절반이 탕반(湯飯)을 내는 식당이다. 고기나 뼈 따위를 끓인 국물음식이 우리의 외식(外食) 메뉴 중에서 역사가 가장 긴 셈이다.
국물 음식이 외식 메뉴로 가장 먼저 등장한 건 우리만이 아니다. 176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업한 '불랑제'라는 식당은 '우리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판매합니다'라는 선전 문구를 간판에 적어넣었다. 음식점에서 '음식점'을 뜻하는 '레스토랑'을 판매한다? '레스토랑'은 원래 수프, 즉 탕을 일컫는 말이었다. 양(羊)의 발 부위를 화이트소스로 끓였다. 한국에서 팔았다면 '양족탕(羊足湯)'이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피곤하고 기운이 없거나 한여름 무더위에 지쳤을 때 찾는 음식이 곰탕이나 삼계탕, 추어탕 따위의 탕요리이다. 프랑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18세기 파리 사람들은 기운을 내기 위해 '레스토랑' 한 그릇을 먹으려 불랑제를 찾았다. 레스토랑은 일종의 보양식(補養食)이었다.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먹는다고 해서 '(체력을) 회복시킨다'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레스토레(restaurer)'에서 '레스토랑(restaurant)'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이 보양탕 레스토랑은 큰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각종 음식을 손님에게 돈 받고 제공하는 외식업체를 총칭하는 일반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은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보틴(Botin)'이다. 1725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무려 287년째 영업 중이다. 이 식당을 지난 1월 방문했다. 보틴을 찾아가기 위해 투숙하던 호텔에서 식당의 주소와 가는 길을 묻자 "요즘 그 식당에 마드리드 사람들은 거의 가지 않는다"며 "굳이 음식 맛을 위해 찾아가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30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식당은 어떤 맛과 모습일까 궁금해 보틴을 찾았다.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gee@chosun.com
레스토랑 보틴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그런데 뛰어난 음식 맛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명성을 팔아서 먹고사는 듯했다. 웨이터들의 서비스는 불친절하지는 않았지만 타성에 젖은 듯 무성의했다. 첫 코스인 전채요리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을 넘지 않았다. 미리 만들어놓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속도와 신속함이었다. 그리고 전채를 다 끝내기도 전에 웨이터가 메인 요리를 들고 나왔다. 각 코스의 요리를 충분히 즐기도록 손님이 접시를 비우면 다음 요리를 내는 것이 일반적인 유럽의 고급 레스토랑들과는 달랐다. 세계 최고(最古)일지는 몰라도 최고(最高)는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을 위해 찾는 레스토랑이라기보다는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는 명성에 이끌려 찾아가는 관광 명소로 전락한 듯했다. 왜 현지인들은 이 식당을 찾지 않고 미국·일본·한국·중국 등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들만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이 레스토랑이 과연 언제까지 명성과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이 출간된 후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이 책과 책에 등장하는 음식점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소개된 일부 음식점에 대해 '음식이 예전 같지 않은데 단지 오래됐단 이유로 포함된 식당이 있다' '비싼 요리를 주문하지 않고 식사만 시키면 퉁명스럽게 손님을 대해 불쾌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식재단 양일선 이사장은 '펴내는 글'에서 '우리나라에 100년 이상 된 한식당은 거의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80년, 90년 이상 된 식당들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역사라고 부를 만큼 오랜 시간 국민에게 사랑받아 온 식당이 세계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드물다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입니다'라고 했다. 이 책에 소개된 식당들이 앞으로도 '역사'라고 부를 만큼 오랫동안 국민에게 사랑받으며 명성을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 좋겠다.
2012.09.05 인공 조미료(MSG)가 한국 음식의 전통 양념인
주부 경력 20년차인 장문자(가명)씨는 결혼한 이후 줄곧 남편의 "당신은 음식 솜씨가 없다"는 핀잔을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 남편이 "당신은 김치찌개를 정말 못 끓인다. 사 먹는 김치찌개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바람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김치찌개쯤이야.'
김치는 시골에 계신 시어머니가 부쳐주신다. 남편이 평생 길들여져 극찬하는 김치이니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국물이 문제였다. 장씨는 쇠고기부터 돼지고기, 멸치 다시마 등 각종 재료로 우린 육수로 매일 김치찌개를 끓였다. 하지만 남편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남편은 "당신이 만드는 김치찌개는 뭔가 부족하고 밋밋하다"며 시큰둥했다. 좌절하고 포기하기 직전, 장씨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김치찌개에 인공 조미료(MSG)를 넣어봤다. 남편은 "이제야 김치찌개가 제맛이 난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그날 이후 장씨는 남편이 아무리 자신의 요리 솜씨를 타박해도 피식 웃는다. '맛도 모르면서.'
우리는 우리가 한국 음식 맛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특히 MSG에 대해선 민감하다고 믿는다. MSG가 들어가면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1년 동안 이탈리아로 연수를 다녀온 뒤 한동안 한식당에 가지 못했다. 그 대신 스파게티 따위 이탈리아 음식을 주로 먹었다. 입맛이 갑자기 서구화한 건 아니었다. 한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이상하게 몸이 불편하거나 아팠다. 졸음이 쏟아지거나, 뒷목이 뻣뻣하거나, 특별히 짜게 먹지 않았는데도 갈증이 심해 물을 계속 들이켜야 했다. 그런데 이탈리아·프랑스 등 서양 음식을 먹으면 그런 증상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한식당 음식에 들어있는 MSG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MSG에 '중독(中毒)'됐던 몸이 1년 외국 생활을 통해 '해독(解毒)'됐던 모양이다. 음식담당 기자로서 맛에 꽤 민감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미각과 몸은 MSG에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길들여졌고 둔감해졌던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한 방송사가 최근 내보낸 '냉면육수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됐다. 싸구려 냉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 그릇에 1만원이 넘는 비싼 냉면전문점까지 MSG를 사용하고 있었다. MSG를 사용하지 않는 냉면집을 단 한 곳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방송에 나온 냉면집 중 하나는 자타가 '한국 최고 냉면집'으로 인정하는 곳이었다. 이 냉면집 주인은 MSG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 제작 PD가 MSG를 사용하는 이유를 묻자 그 주인은 "(MSG를) 넣지 않으면 손님들이 불평한다"고 말했다. MSG를 넣지 않고 고기로만 육수를 뽑으면 뒷맛이 밋밋하다. 그게 자연스러운 맛이다. 하지만 손님들은 "고기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것 아니냐"면서 불만스러워 한다고 냉면집 주인은 설명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MSG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다.
제대로 만든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최근 식당을 연 이가 있다. 그는 "천연 재료만 가지고 음식을 만들면 원가(原價)가 훨씬 많이 드는데, 그렇게 애써서 만들어도 훨씬 값싸게 MSG를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식당으로 손님이 몰리는 모습을 보면 자괴감이 든다"면서 "MSG를 사용하고 싶다는 유혹에 나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단지(Danji)'는 한식당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레스토랑 안내서 미슐랭으로부터 별 하나를 받았다. 미슐랭으로부터 별을 획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퓨전 한식 등으로 외국인 입맛에 타협하지 않고 냄새 나는 한식을 고집하는 식당이 권위있는 레스토랑 안내서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었다. 이 식당 주인이자 총주방장인 후니 김씨가 지난 4월 식당에서 쓸 간장이며 된장 등 장류를 찾으러 한국에 왔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김씨가 "우리 식당에서 내는 부대찌개에는 MSG를 넣는다"고 말했다. 서양인들은 MSG에 특히 민감해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서양인 손님이 많은 그의 식당에서 MSG를 사용한다니 그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김씨가 말했다. "한국에서도 부대찌개에 MSG를 넣잖아요? 전통으로, 아니 정통으로 만들려면 MSG를 써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MSG가 한식의 전통 양념으로 외국인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착잡했다. 아니면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까.
2012.10.03 어민들의 골칫거리 해파리떼, 먹어치울까?
한안자(73)씨는 전라남도 해남에서 가문 대대로 전해오는 방식을 지키며 간장·된장 등 장류(醬類)를 담그는 이다. 지난 2010년 정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名人) 제4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요즘 장 담그기보다 더 신경 쓰는 일이 있으니, 바로 해파리 박멸이다. 한씨의 주장은 '해파리를 먹어 없애자'는 것이다.
전통식품 명인인 한씨가 해파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해파리 때문에 김장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젓갈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바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해파리가 급증했습니다. 해파리떼가 바다를 뒤덮고 새우와 멸치를 먹어치워 버리고 있습니다. 그 피해가 올해처럼 심한 적이 없었어요. 새우와 멸치가 잡히지 않으니 젓갈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젓갈장사들은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면서 젓갈을 감추고 내놓지를 않아요. 춘젓도, 육젓도, 추젓도 구하기 어려워 김장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민들의 피해가 급증하자 정부는 해파리떼를 제거하는 로봇을 개발하거나 그물에 걸린 해파리를 수매하는 등 구제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한씨는 "해파리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쉽게, 그리고 국민이 기뻐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파리를 식용(食用)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해파리를 식용화한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해파리 숫자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한씨의 주장을 들었을 때, 조금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씨가 음식에 대해서 허튼소리 할 분은 아니다. 그리고 중국집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냉채의 주재료가 해파리 아니던가. 한씨는 해파리로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 고향인 해남 바닷가에서는 해파리를 오래전부터 먹어왔다"고 말했다. 해파리가 한국 전통음식이라는 것이다.
"해남 사람들은 옛날부터 해파리를 즐겨 먹었어요. 특히 머리가 어지러울 때 많이 찾았지요. 어부들이 끌어올린 그물에 들어 있던 해파리를 모래에 버리면, 아주머니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간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시장에 나가면 바다에서 해파리를 잡아다가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식당에서 해파리를 반찬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막걸리 식초를 넣어서 무친 해파리는 절묘하고 깔끔하고 행복한 맛입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해파리 무침을 먹어본 적이 없는지라 도무지 그 맛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씨는 "직접 맛을 보여 주겠다"면서 해파리와 각종 양념을 싸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한씨가 큰 양푼에 담아 보여준 해파리는 흔히 '스지'라는 일본말로 더 익숙한 소의 힘줄처럼 약간 뿌옇게 투명한 젤라틴 덩어리처럼 보였다. 한씨는 "해파리를 잡아서 물을 빼고 소금과 백반에 절여 보관 가능한 상태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름 2m짜리 해파리는 무게가 150㎏쯤 나가요. 이놈을 잡아서 물을 빼면 50㎏쯤 될 거야. 이걸 다시 소금과 백반에 절이면 30㎏ 정도로 줄어들어요. 유통기한이 3~4년은 되지요. 여름 해파리는 물렁거리고 독성이 강하며 맛이 없어 저장하지 않고, 봄과 가을에 잡은 해파리가 먹을 만해요."
이렇게 처리한 해파리는 요리하기 전 물에 서너 차례 씻고 뜨거운 물을 끼얹어 소독한 다음 바구니에 밭쳐 물기를 뺀다. 가늘게 썰어서 막걸리를 발효시켜 만든 식초와 고추·쪽파·설탕·배 따위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다. 이 해파리 무침을 맛봤다. 쫄깃하지만 중국집 냉채에 들어간 해파리보다 식감이 한결 말랑말랑 부드럽다. 질긴 청포묵 같달까. 새콤달콤한 양념과 썩 잘 어울렸다. 몰라서 먹지 않았지, 알았다면 일부러라도 먹을 만한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씨는 "어민은 해파리를 잡고, 요리연구가들은 조리법을 개발해 홍보하면 정부 지원 없이도 해파리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씨가 만든 해파리 무침을 먹으면서 아귀찜을 떠올렸다. 한때 아귀는 '물텀벙'이라고 불렸다.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올리다 아귀가 걸려 있으면 "에이, 재수 없어" 하면서 아귀를 그물에서 떼어내 도로 바다에 텀벙 던져 넣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아귀를 먹지 않았다. 먹지 않으니 당연히 아귀를 내다 팔 수 없었다. 게다가 생김새마저 흉측했으니, 어부들이 아귀를 잡으면 짜증을 낼 만도 했다. 그러다 50여년 전 경남 마산에서 아귀로 찜 요리를 만들어냈다. 이후 아귀는 가격이 급등했고, 천대받던 물텀벙에서 고급 생선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해파리라고 아귀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나.
2012.10.31 맛집 감별법
음식 담당 기자를 하면서 꽤 많은 식당을 맛보러 다녔다. 하루에 음식점 열 곳을 찾기도 했고,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곱 곳을 이틀 동안 돌면서 파스타 열네 그릇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차츰 맛있는 식당은 공통점이 있는 듯했고, 맛없는 식당도 그 나름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식 업체 경영자와 식당 주인, 요리사, 레스토랑 가이드북 출판인, 음식 전문지 편집장, 자칭 타칭 미식가와 대식가 등 음식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 역시 맛있는 집과 그렇지 않은 식당에 각각 공통점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일단 목소리다. 식당에 가볼 필요도 없다. 목소리만 들어봐도 그 식당이 괜찮은지 괜찮지 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목소리란 식당에 전화를 걸었을 때 응대하는 카운터 종업원을 뜻한다. 마치 준비하고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지도를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술술 잘 설명해주는 식당은 맛집이거나 적어도 잘되는 식당임이 거의 틀림없다. 위치를 물어보는 전화를 많이 받고, 여러 번 설명해주다 보니 설명을 잘할 수밖에 없다.
목소리가 믿을 만하다 싶으면 다음은 간판이다. 낡고 지저분한 간판이면 맛집일 가능성이 높다. 식당의 얼굴이랄 수 있는 간판에 옛 글씨체로 상호(商號)가 적혀 있으면 믿음이 간다.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망하지 않고 대를 이어가며 영업하고 있다는 힌트이다. 해장국이나 순댓국처럼 단순한 음식이라도 대를 이은 집은 뭔가 다르지 않던가. 구체적으로 어떤 글씨체라고 꼭 집어서 얘기하기는 어렵고, 느낌으로 파악해야 하는 부분이다.
상호와 음식이 어울리지 않는 식당은 대개 맛도 그저 그렇다. '전주집'에서 냉면을 판다고 생각해보라. 하지만 같은 '전주집'이라도 비빔밥이나 한정식을 판다면 일단 시식해볼 만하다. 전라도 지명이 들어간 한식당은 일단 믿어볼 만하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면 간판이나 가게 외벽에 적힌 글씨와 문구 따위를 유심히 살핀다. 메뉴판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감별법이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에는 여성형과 남성형이 있다. 명사와 그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의 성별이 맞지 않으면 의심해볼 만하다. 철자가 틀린 경우도 그렇다. 음식은 특정 국가의 문화 중 일부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 음식에 정통한 주인이나 요리사라면 언어도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주인이나 요리사가 철자 따위 실수를 하거나 그냥 놔뒀을 가능성은 낮다. 물론 요리 솜씨는 뛰어나지만 일자무식인 요리사도 있기는 하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식당에 들어가면 카운터에 캐시어(cashier)가 앉아있다. 손님을 처음 맞아 인사하고, 나갈 땐 돈을 받고 계산해주는 종업원이다. 이 캐시어를 따로 보는 직원이 있다면 맛집일 가능성이 높다. 쓰러질 듯 허름한 밥집이라도 잘되는 식당은 대개 계산원이 따로 있다. 손님이 많으니 돈을 자주 받고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안 되는 집은 캐시어가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캐시어가 먹고 난 식탁도 치우고 심지어 부엌에 들어가 음식까지 만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불안하다.
또 잘되는 식당에서 일하는 캐시어는 당당하다. '우리 식당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기보다 '진짜 바쁘지만 특별히 음식을 팔아준다'는 태도이다. 물론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맛이 있으니 손님들도 저자세가 된다. 특히 계산원을 주인의 아내나 딸·며느리가 맡아 본다면 돈을 긁어모으는 식당이다. 가족보다 더 믿을 만한 이가 어디 있겠는가.
자리에 앉았다면 메뉴판을 훑어볼 차례다. 한식집인데 메뉴가 너무 다양하면 맛없을 확률이 90%쯤 된다. 전문성이 떨어진다. 온갖 음식을 다 파는 '역전(驛前) 앞' 식당을 떠올려보라. 물론 서울 '진고개'나 '한일관'처럼 예외도 더러 있다. 메뉴가 많지는 않지만 '부적절한 관계'인 메뉴들이 함께 메뉴판에 올라있다면 의심해볼 만하다. 예를 들면 설렁탕과 자장면을 함께 파는 식당, 회덮밥과 돈가스를 함께 파는 식당이다.
성형이 필수가 돼 자연 미인을 가려내기 어려워진 것처럼 요즘은 맛집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신사동·가로수길·압구정동 등 서울 강남에 생겨나는 식당들은 성형수술, 즉 인테리어에 많은 돈을 쓴다. 또 레스토랑 컨설턴트에게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식당의 전체 콘셉트와 메뉴 등 모든 것을 코치받아서 개업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진짜 맛집인지 감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문을 열고 두세 달 정도 지난 다음에도 맛이 유지되고 있는지 뜸을 들여볼 필요가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새 맛집이 문을 열면 최소한 두 달이 될 때까지 여러 번 맛을 본 다음에 소개한다. 최근 국내에선 일부 맛집 블로거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새 식당을 소개하는 것이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여 너무 일찍 맛집을 소개하는 경우가 늘어서 아쉽다.
2012.11.28 한국서 김장 담글 때, 유럽선 돼지 잡는다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면 김장 담글 때가 됐다는 신호이다. 한반도에서 김장이 한창일 무렵, 유럽에서는 돼지를 잡았다. 돼지의 여러 부위를 소금에 절이고 훈제하고 건조해 햄·베이컨·소시지 따위 보존식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겨울을 나기 위해 보존식품을 준비하는 건 우리나 유럽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럽 사람들이 겨울이 닥치기 전에 돼지를 잡은 가장 큰 이유는 식량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였다. 과거에는 겨울이 되면 먹거리가 모자랐다. 인간이 먹을 것도 부족하니 가축을 키우기는 더 힘들었다. 초식 동물인 소는 건초(乾草)를 먹으면 된다. 게다가 소는 농사지을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축이라 쉽게 잡아먹을 수 없었다.
문제는 돼지였다. 돼지는 소와 달리 잡식성이다. 건초만으로는 살 수 없고, 인간과 비슷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식량이 풍족할 때는 문제 되지 않지만 먹거리가 부족할 때 돼지와 인간은 부족한 식량 자원을 놓고 경쟁 관계가 된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유럽 사람들은 돼지를 잡았다. 그리고 도축한 돼지의 고기를 최대한 오랫동안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존식품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겨울이 닥칠 시기가 되면 돼지를 잡아서 햄과 소시지와 베이컨을 만드는 전통이 자리 잡았다.
그 재료가 배추냐 돼지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한국의 김장 담그는 날과 유럽의 돼지 잡는 날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한국에서 김장 담그는 날은 마을 잔칫날이었다. 김장은 배추를 다듬어 소금물에 절이고 소를 채우는 등 일이 많다. 그래서 동네 아낙들이 김장하는 집에 모여 서로 돕는 품앗이를 했다. 김장 담그는 집에서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삶아 김장하고 남은 배추와 소에 싸서 먹도록 동네 사람들에게 내놨다.
유럽 시골 마을에서도 돼지 잡는 날은 흥겨운 축제날이었다. 100㎏이 넘는 거대한 돼지를 도축하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돼지를 해체했다. 보존식품을 만들 수 있는 부위를 제외한 돼지의 나머지 부위는 굽거나 삶아서 온 마을이 포식했다.
김치를 만들려면 우선 배추를 소금에 절여야 한다. 배추를 절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분을 가능한 한 제거해 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과정이 김치 맛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금에 절이면 배춧잎에 들어있는 펙틴 성분이 경화(硬化)된다. 쉽게 말해 물이 빠지면서 배춧잎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김치만의 매력적 식감(食感)인 아삭한 씹는 맛을 만들어낸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햄이나 소지지 따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 단계가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염장(鹽藏)이다. 김치 담글 때와 마찬가지로 수분을 최대한 제거해 부패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염장하면 보존성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맛도 좋아진다. 소금이 돼지고기 단백질의 분해를 촉진해 감칠맛이 생겨나는 것이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소를 채워넣어도 숙성시키지 않으면 진정한 김치라고 부를 수 없다. 배추를 양념과 버무려 발효시키면 원재료의 맛과는 다른 김치 특유의 맛과 향이 생겨난다. 이때 온도·습도 등 자연조건에 따라 미생물의 활동과 번식이 달라진다. 최근 전국 지역별 김치맛을 비교해봤더니 놀라울 정도로 맛 차이가 확연했다. 김치를 어느 땅에서 담그느냐에 따라 김치 맛도 크게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연환경이 맛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돼지를 잡아 만드는 유럽의 보존식품도 마찬가지다.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급 햄으로 이탈리아 프로슈토(prosciutto)가 꼽힌다. 돼지 뒷다리를 그대로 염장한 다음 공기 중에 건조해서 만드는 생햄이다.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서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부드러운 데다 달다고 할 정도로 감칠맛이 강하다. 대표적인 프로슈토 생산지 중 하나가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파르마(Parma) 지역이다. 파르마는 겨울이 길고 비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이 습한 겨울이 프로슈토를 숙성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2012.12.26 인간은 꼭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할까
극(極)과 극은 통하는 걸까. 식도락(食道樂)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도 ‘1일1식(一日一食)’이 화제다. ‘공복(空腹) 상태일 때 생명력이 솟구친다’고 주장하는 일본 의사 나구모 요시노리가 쓴 책이 출간되면서, 한국에서도 하루에 한 끼만 먹어 다이어트와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자는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가 ‘하루 세 끼라는 전통 식사법에서 벗어나도 과연 괜찮을까’ 의심하고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과연 전통적인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류의 식사 시간을 조사해봤다.
결론적으로 하루 세 끼는 그리 긴 전통이 아니었다. 비교적 최근에 정착된 식습관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보통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로마인들은 소화가 잘 돼야 건강하다고 봤다. 하루에 두 끼 이상 먹으면 해롭다고 생각했다. 흔히 ‘저녁 식사(dinner)’로 번역되는 ‘세나(cena)’를 푸짐하게 먹고 나머지 두 끼는 먹지 않거나 빵 조각 따위로 간단히 때웠다. 저녁 식사라지만 지금처럼 오후 늦게 먹지 않고 정오쯤에 먹었다. 한 끼로 절제하는 건 귀족 등 부유층에 해당하는 이야기였고, 절대다수였던 평민은 아마 한 끼밖에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식습관이 그대로 이어졌는지, 이탈리아에서는 지금도 아침 식사를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과 비스킷 또는 빵 한 조각으로 가볍게 때운다. “아침 식사를 거하게 하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9세기까지 대개 조석(朝夕)으로 하루 두 끼 식사가 일반적이었다. 먹을 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너무 먹어서 비만을 고민한 시기보다 먹거리가 부족해 기아에 허덕였던 시기가 훨씬 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식사 시간은 다른 생활 습관과 마찬가지로 태양에 의해 정해졌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니 해가 지기 전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 등잔불을 밝히려면 값비싼 기름이 필요할 뿐 아니라, 등잔불을 켜더라도 그리 밝지 않아 햇빛이 훨씬 나았다. 해가 뜨면 일어나 간단히 요기하거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로 밭에 나가 일했다. 저녁은 해지기 전에 먹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조선시대 농부들은 새벽 일찍 아침을 먹고 해질 무렵 저녁을 먹었다. 보리밥에 묽은 된장국, 나물 따위가 식사 내용이었다. 노동량이 많은 농번기에나 새참을 낮에 먹었다. 점심은 ‘마음(心)에 가볍게 점을 찍는다(點)’는 본뜻처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는 가벼운 식사 또는 간식이었다. 하루 두 끼 식사는 왕이나 양반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왕들이 하루 다섯 번 먹었다지만, 정식 수라는 오전 10시경 아침 수라와 오후 5시경 저녁 수라 두 번이었다. 두 끼 식사는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일부에선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된 건 보릿고개가 사라진 1970년대 이후라고 말한다.
유럽의 사정도 그리 낫지 않았다. 중세 농부들은 아침에 일어나 거의 먹지 않고 밭에 나가 대여섯 시간 일하다 오전 10~11시쯤 집에 돌아와 식사했다. 가장 풍성하게 먹은 게 이때였다. 그러곤 다시 일하다 오후 4~5시쯤 대충 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홍차에 과자나 샌드위치 따위 스낵을 곁들여 먹는 영국의 티타임(teatime)도 두 끼만 먹었기에 탄생했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허기를 참지 못한 베드포드(Bedford) 공작 부인이 1840년쯤 시작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랍 문화권도 식사 시간은 비슷했다. 다만 과학이 발달했던 지역답게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식사 시간을 연구했고, 그 결과 ‘2일3식’ 즉 이틀에 세 끼를 먹거나 16시간마다 조금씩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주장하는 의학자들도 있었다.
하루 세 끼 식사가 보편화한 건 19세기부터였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식사 시간은 자연이 아닌 ‘공장’에 의해 규정되었다. 노동자들은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게 됐다. 온종일 일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했다. 아침 일찍 식사하고 출근해 일하다가 점심을 간단히 먹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 식사 시간이 정착됐다. 가장 여유 있는 저녁 식사가 자연스럽게 가장 중요해지고 풍성해졌다.
하루 세 끼 식사가 절대적으로 옳거나 이롭거나 지켜야 하는 건 아닌 듯하다. 미국 예일대의 음식 사학자 폴 프리드먼은 “인간이 반드시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할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1식’ 또는 ‘2식’이란 숫자에 집착하면 위험하다. 짧다 해도 수십 년 이상 하루 세 끼 식습관에 익숙해진 몸을 다이어트를 위해 갑자기 한 끼, 두 끼로 줄이면 폭식·과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번만 먹더라도 열량만 높고 영양이 고르지 못한 패스트푸드 따위를 먹는다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 1일1식 유행의 주인공 나구모씨도 “소식(小食)하는 게 중요하지 하루 한 번만 먹으란 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외할머니는 과식하는 손자에게 “모자란 듯싶게 먹으라”며 절제를 강조하셨다. 옛 어른들의 지혜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3.01.23 외교의 강력한 무기, 음식
요리사들이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됐다. 미국의 일이다. 미 국무부는 유명 요리사 80여명을 '국가 요리사(State Chef)'로 선정했다. 국가 요리사로 임명된 이들은 미국 국기와 국무부 문장이 수놓인 감청색 요리복을 입고 국가 행사 때 내놓을 음식을 만들거나 해외에 파견돼 미국 문화를 알리고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역할을 맡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요리 외교'를 펼치겠다는 말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임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열린 국가 요리사 임명장 수여 행사에서 "요리는 가장 오래된 외교 수단"이라고 말했다. "국무장관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대국 관계자들과 나눈 가장 의미 있는 대화는 식사하면서 나눈 것이었다. 음식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장벽을 뛰어넘어 서로 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 또 힐러리 장관은 워싱턴포스트에 "다른 이들의 입맛과 격식과 가치를 고려하는 것은 간과되고 있지만 외교의 강력한 일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인도 외교사절이 찾아왔을 때 그들에게 익숙한 향신료인 카르다몸(cardamom)이 들어간 차(茶)를 내놓는 등의 배려가 대화를 더욱 부드럽게 진행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클린턴 장관이 요리를 가장 오래된 외교 수단이라고 말했을 때,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빈 회의(Congress of Vienna)를 떠올린 건 아닐까. 세계사를 조금만 배웠다면 알겠지만, 빈 회의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열린 국제회의였다. 회의를 주도한 건 연합을 결성해 나폴레옹을 격파한 오스트리아·영국·러시아·프로이센 등 4대국과 프랑스였다. 어떻게 패전국인 프랑스가 승전국들과 함께 회의를 주도할 수 있었을까. 프랑스 대표이자 외무장관이었던 샤를 모리스 탈레랑-페리고르가 탁월한 외교 수완을 발휘해 4대국과 똑같은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강대국에 의해 쪼개지는 비운을 막고 승전국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협상하도록 만든 탈레랑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당시 유럽 최고 요리사였던 마리-앙투안 카렘이었다. 카렘은 '세계 최초의 스타 셰프'로 불린다. 나폴레옹은 물론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등 유럽 왕실과 지도자들을 위해 요리했고, 지금 우리가 아는 프랑스 요리는 물론 서양 요리의 맛과 모양을 확립한 인물이다. 카렘은 다양한 프랑스 소스를 큰 범주 4개로 분류했는데, 그가 정한 소스 체계는 여전히 서양 요리의 기본이다. 요리사의 상징인 토크(toque·높고 흰 모자)와 흰색 유니폼도 권위와 위생을 강조한 카렘이 처음 주방에 도입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노회한 외교관이자 까다로운 미식가였던 탈레랑은 매일 아침 한 시간씩 그날 먹을 음식들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는 음식과 접대가 얼마나 외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프랑스의 운명이 달린 빈 회의에 그는 카렘을 데려갔다. 빈으로 떠나기 전, 프랑스 왕 루이 18세가 이런저런 주문으로 탈레랑을 귀찮게 했던 모양이다. 탈레랑은 왕에게 "전하, 저에게는 지시보다 냄비가 더 필요합니다. 제가 저의 일을 하게 하옵시고, 카렘을 믿으시옵소서" 하고 말했다.
빈 회의는 정식 총회가 열리지 않았다. 강대국 대표끼리 비공식적인 1대1 회담을 통해 사안 대부분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미팅도 그렇지만, 이런 회담에서는 어떤 음식과 술로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특히 중요했을 것이다. 패전국인 프랑스로서는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감동시킬 필요가 있었다. 카렘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유명 요리사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데,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카렘의 요리가 나오는 탈레랑의 초대를 어떤 외교관이 거부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음식이 외교에 기여해 왔지만, 외교가 음식에 기여하기도 한다. 일본 음식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일본 외교부의 노력이 컸다. 일본 정부는 일식(日食) 교육을 받은 요리사를 재외공관에 전속 요리사로 파견했다. 일본 대사관에서는 그 국가의 상류층 인사들을 초대해 일본 고유의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대접했다. 이를 통해서 일식을 그 국가에 알리고 친숙해지게 했다. 일식 세계화를 위해 해외 각국의 일본 대사관을 전진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한식 세계화에 활용하고 있다. 요리사들에게 한식을 교육해 해외 공관에 파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 한식당의 요리사를 보내 한식을 홍보하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탈레랑이 카렘이 만든 프랑스 요리로 프랑스를 구한 것처럼, 미국이 자국 요리사들을 외국에 파견해 미국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있는 것처럼, 한식이 한국의 외교를 돕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드라마에 이어 한식(韓食)이 해외에서 인기를 빠르게 얻고 있으니 아마 곧 그렇게 될 듯싶다.
2013.02.21 다르지만 비슷한 문어와 홍어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경북 안동에 갔다가 시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문어를 보고 놀랐다. 그랬다가 시장 상인에게서 "안동과 영주 등 경북 내륙 지방이 문어의 최대 소비처"라는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바닷가에서 먼 경북 내륙 지방에서 왜 문어를 즐겨 먹게 됐을까? 무엇보다 문어가 다른 해산물처럼 쉽게 상하지 않는다는 덕목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은 문어를 찐 다음 등짐으로 울진·영덕 등 동해안 항구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안동과 영주로 가져다 팔았다. 험한 산들을 넘는 데 성공한 문어는 그 이름 덕분에 더욱 인기를 끌게 된다. 안동과 영주는 선비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지역이다. 문어는 선비들이 숭상하던 '문(文)'이란 글자가 이름에 들어있다. 검은 먹물을 몸속에 품고 있기도 하다.
문어가 인기를 얻게 되자 온갖 의미와 상징성이 부여됐다. '문어의 빨판이 과거에 철컥 붙으라는 의미다' '문어가 팔족(八足), 즉 다리가 여덟인 것은 부계·모계·처가·진외가·외외가 등 팔족(八族)을 상징한다' '깊은 바다의 바위틈에 몸을 낮춰 사는 것은 수졸(守拙)하며 살아가는 선비의 표상이다'…. '뼈대 없는 집안 자손인 문어는 뼈 있는 멸치에게 절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그러면서 문어는 이 지역의 잔치나 상가에서 빠지지 않으며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차례상이나 생일잔치·제사에 얼마나 크고 좋은 문어를 내놓느냐에 따라서 가문의 재력과 명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경상도에 문어가 있다면 전라도에는 홍어가 있다. 문어와 홍어는 서로 매우 달라 보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문어가 영남 지역의 잔칫상에서 빠지지 않는 것처럼 홍어 역시 호남에서는 최고로 귀한 대접을 받는 생선이다. 얼마나 좋은 홍어가 나오느냐에 따라 잔치의 품격과 수준이 치솟기도 하고 추락하기도 한다. 아무리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내도 홍어가 없으면 "차린 게 없다"는 소릴 듣는다.
문어와 홍어 둘 다 쉽게 상하지 않아 즐겨 먹게 됐다. 홍어는 깊은 바다에 산다. 거기서 생존하려면 염도 높은 바닷물에 체내의 수분을 빼앗기지 않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요소이다. 홍어가 죽으면 요소가 다른 물질로 분해되는데, 그중 하나가 암모니아다. 암모니아는 잡균의 번식을 막아주고, 덕분에 홍어와 상어는 죽어서도 부패가 더딘 것이다.
문어와 홍어 요리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문어숙회와 삭힌 홍어는 내륙에서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어를 삶아 얇게 썰어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문어숙회는 문어의 최대 소비지인 안동이나 영주에 가야 맛볼 수 있다. 울진 등 해안 지역에서는 싱싱한 문어를 삶아서 바로 먹는다. 반면 경북 내륙에선 삶은 문어를 냉장고 등 서늘한 곳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숙성시켜 먹는다. 대단찮아 보이는 이 숙성이 큰 맛 차이를 낸다. 삶아서 바로 먹었을 때는 부드럽고 촉촉하기만 하지만, 숙성시키면 물이 빠지면서 육질이 한층 쫄깃해지면서 더욱 깊고 복잡 미묘한 감칠맛을 품게 된다. 막 삶은 문어가 잘 버무린 겉절이라면, 숙성시킨 문어숙회는 제대로 익은 김장김치 정도의 차이랄까. 처음부터 일부러 숙성시켰다기보단 삶은 문어가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동안 자연 숙성됐고 요리 과정의 하나로 정착된 듯하다.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는 홍어를 삭혀 먹는 생선으로 알지만, 전라도에 가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회로 먹는다. 반면 목포에서는 홍어를 살짝 삭혀서 먹는다. 목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올라가면 도착하는 나주에선 '징하게' 삭힌 홍어를 비로소 만나게 된다. 이런 차이는 예전부터 그랬던 듯하다. 흑산도 유배 당시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Z山魚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홍어를 썩혀 먹는 것을 좋아하니, 지방에 따라 음식을 먹는 기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홍어 삭힘 정도의 차이가 생겨난 원인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 말 왜구들이 흑산도 일대 섬들을 노략질하는 일이 잦았다. 정부에서는 피해를 막으려고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했다. 흑산도 주민들이 육지로 이주한 곳이 나주 영산포였다. 지금은 댐으로 강 입구가 막혀있지만 옛날에는 돛단배로 열흘에서 보름이면 흑산도를 출발해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가 영산포에 닿았다. 흑산도 사람들은 항해 기간 먹을거리로 홍어를 실었던 모양이다. 냉장 시설이 없던 당시로선 홍어가 긴 항해 동안 그나마 덜 상해서 먹을 만한 생선이었다. 상온에서 열흘이면 홍어가 자연 발효되기에 알맞은 시기였고, 그렇게 해서 삭힌 홍어가 나오게 됐다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문어와 홍어는 부패가 더디다는 장점 덕분에 내륙 지방에서도 사랑받게 됐다. 운반 과정에서 자연히 또는 우연히 숙성된 것이 각각의 가장 독특한 식감을 지니게 됐다. 그러면서 문어숙회는 경북 내륙의 유교·선비 문화와 그 식감을, 삭힌 홍어는 전라도의 깊은 맛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언뜻 달라 보이지만 먹거리와 사람들이 먹고사는 모습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2013.03.21 '양념 치킨'도 이제 한국 대표 음식이다
맛보고 싶은 한식이 '고작' 양념 치킨이라니. 전혀 예상 못 한 음식이었다. 뉴욕에 있는 캐리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양념 치킨? 그게 먹고 싶어?"
"당연하지! 양념 치킨이 뉴욕에서 얼마나 난리인데! 한국 음식 중에서도 제일 인기일 걸?"
내가 놀란 건 양념 치킨을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대부분 양념 치킨을 한식으로 여기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캐리를 포함한 외국 사람들에게 양념 치킨은 한식, 그것도 가장 맛보고 싶은 한국을 대표하는 맛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치킨이란 영어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양념 치킨은 그 기원을 미국에 두고 있는 음식이다. 기름에 튀긴 닭은 1950년대 이후 미군을 통해 알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본래 한식에는 튀김이란 전통이 없다. 당시만 해도 기름에 튀긴 닭 요리는 엄청나게 낯설고 이국적인, 그래서 닭이 아니라 치킨이라고 불러야 어색하지 않았으리라.
1960년대 전기구이 통닭과 쇼트닝에 튀긴 이른바 '시장 통닭'이 등장한다. 1970년대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하면서 프라이드 치킨은 '프라이드'를 떼고 그냥 '치킨'으로 통할 정도로 대중화된다. 양념 치킨은 1980년대 초 등장했다. 매콤달콤한 맛을 좋아하고 익숙한 한국인 입에 꼭 맞는 양념 치킨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치킨이 '국민 야식'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한다.
1980년대 등장해 1990년대부터 대중화됐으니, 양념 치킨의 역사는 길어야 30년 정도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계적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 중 외국에서 들어왔거나 역사가 짧은 것이 의외로 많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쌀국수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아서 웬만한 나라에서는 쉽게 맛볼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07년 쌀국수를 뜻하는 베트남어 퍼(pho)를 영어 단어로 포함했다. 그런데 옥스퍼드사전은 퍼의 어원을 "아마도 프랑스 포토푀(pot-au-feu)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음식 포토푀에서 '푀'만 떨어져 나와 '퍼'로 변했다는 것이다.
대중적인 음식이 대개 그렇듯, 쌀국수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가 아리송하다. 20세기 초 베트남 북부 하노이 주변에서 처음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전부다. 지난 2007년 하노이에서 쌀국수의 탄생을 밝혀보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 참가한 음식 전문가들은 쌀국수가 포토푀에서 왔거나 최소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데 동의했다.
포토푀는 소·닭 등의 뼈와 고기를 여러 채소와 함께 푹 끓인 프랑스의 서민적인 음식이다. 부드럽게 삶은 고기를 일품요리로 먹기도 하고, 국물만 떠서 수프로 먹거나 육수로 사용한다. 포토푀에 들어가는 양파 등 채소를 불에 그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잡내를 없애고 풍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쌀국수 국물도 포토푀와 만드는 방식이 같다. 소의 뼈와 고기를 각종 채소와 함께 끓인다. 양파, 파 등은 그슬려 사용하는데, 역시 포토푀와 같다. 향신료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덴푸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음식이다. 하지만 덴푸라는 17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외국인 거주가 유일하게 허용된 나가사키에 살던 포르투갈 사람이 튀김 요리를 하자, 이를 본 일본인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단다. 포르투갈 사람은 "템페랄(temperal)"이라고 답했다. 포르투갈어로 '조리하다' 또는 '(약을) 조제하다'란 뜻이다. 일본 사람은 이 말을 요리 이름으로 잘못 알아들었고, 그때까지 일본에 없었던 이 튀김 요리를 덴푸라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 라멘 역시 우리는 일식이라고 여기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면 요리다. 한국의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들어와 일본의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식 세계화를 선도해온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은 "한국 사람들은 퓨전 음식이라고 하면 대단히 노이로제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외국 식재료와 요리법을 얼마나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외국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양념 치킨을 한식으로 떳떳하게 소개해도 괜찮을지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캐리가 서울에 오면 어느 치킨집을 데려가 양념 치킨을 맛보일지가 고민이다.
2013.04.24 나는 미술관에 먹으러 간다
더 모던(The Modern)은 뉴욕현대미술관 모마(MoMA)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이 식당을 다시 평가하면서 기존에 줬던 별 2개를 3개로 격상시켰다. 깐깐한 뉴욕타임스 레스토랑 평가에서 3스타(최고 4스타)는 대단히 높은 평점으로, 뉴욕에서 이만한 평가를 받은 식당은 몇 되지 않는다. 더 모던은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으로부터 별 하나를 받기도 했다.
'뮤지엄 레스토랑', 즉 미술관이나 박물관 부속 식당의 고급화가 세계적인 트렌드다. 빳빳하게 다린 하얀 리넨 테이블보가 깔린 자리에 앉아 창 너머 미술품을 눈으로 즐기면서 입으로는 도자기 접시에 담겨 나오는 최첨단 요리를 맛보는 세련된 레스토랑이 늘었다. 마른 목과 허기진 배를 달래주는 최소한의 음료와 음식을 내던 간소한 카페나 카페테리아는 그 자체가 박물관에 소장돼야 할 유물이 되고 있다. '뮤지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위해 간다'는 관람객도 있고, 뮤지엄 레스토랑의 수준이 그 미술관과 박물관의 수준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런 트렌드는 뉴욕이 이끌고 있다. 뉴욕 아트디자인미술관(MAD)은 스카이라인 전망이 탁월한 로버트(Robert), 구겐하임미술관은 미술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이름에서 따온 더 라이트(The Wright)를 운영하고 있다. 뉴욕뿐 아니다. 스페인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스타 셰프인 호세안 알리하를 영입해 네루아(Nerua)라는 레스토랑을 만들더니 6개월 만에 미슐랭으로부터 1스타를 획득했다. 일본 국립신미술관은 지난 2007년 도쿄 롯폰기에 개관하면서 프랑스의 전설적인 요리사 폴 포퀴즈를 초청해 브라세리 폴 보퀴즈(Brasserie Paul Bocuse)를 열어 전통 프랑스 요리를 내고 있다.
뮤지엄 레스토랑의 고급화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물론 수익이다. 뮤지엄을 운영하려면 입장료와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새로운 작품을 사들여 컬렉션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화제가 되는 야심 찬 전시를 기획하려면 더욱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동안 세계의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은 기업이나 개인 기부에 상당히 의지했다. 하지만 2008년 뉴욕에서 퍼져 나간 경기 불황으로 기부 금액이 크게 줄어들었다. 줄어든 수입을 메우기 위한 새로운 수익원을 식당 고급화에서 찾았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또 다른 이유는 더 나은 관람 경험 제공이다. 작품 관람이라는 시각적 자극은 물론 청각·후각·촉각·미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총체적인 경험을 관람객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것이다. 또 소장한 작품, 나아가 뮤지엄 전체의 수준에 맞는 음식을 관람객이 맛보게 함으로써 더 큰 만족을 얻도록 뮤지엄 레스토랑의 맛과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모마 더 모던에서 나오는 요리는 그 자체가 작품이다. 오렌지와 양겨자로 만든 진한 주황색 소스를 흰 아귀살 주위에 두르고 선명한 초록색 라임오렌지 가루를 붓자국처럼 길게 뿌려 나오는 접시는 모마에 전시된 어떤 현대미술품 못잖게 아름답다. 구겐하임 빌바오의 네루아는 미술관이 있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신토불이 식재료를 이용하되 전에 보지 못했던 창조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요리해 낸다. 전시실에서 눈으로 느꼈던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입에서 다시 느끼도록 했다.
뮤지엄 레스토랑은 대개 외부 외식업체가 위탁 운영한다. 외식업체가 뮤지엄 레스토랑 운영에 나서는 건 음식을 팔아 돈을 버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외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뮤지엄 레스토랑 운영과 함께 이런 행사에 나가는 음식과 음료를 독점적으로 케이터링 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널리 알려진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함께 언급되면 회사 이미지가 격상된다는 이점도 있다.
미슐랭이 한국에 들어온다면 별을 받을 만한 뮤지엄 레스토랑이 있을까?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그래도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콩두' 정도가 꼽을 만하다. 보리굴비나 간장게장 같은 전통 한국 음식도 있지만, 한식을 새롭게 해석해 내놓는 이른바 '모던 코리안 레스토랑'이다. 경희궁을 올려다보는 전망이나 각종 도자기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으로 꾸민 실내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한국을 찾는 외국 문화 인사들에게 한식을 소개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 식당이 4월 말까지만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영업하고 새로운 장소로 이전한다. 박물관 측에 문의하니 "박물관 직원 교육·연수실을 만들기 위해 나가달라고 했다"며 "새 식당과 카페가 박물관 내 다른 장소에 다시 들어설 예정이나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했다. 직원 연수실 만들 공간이 필요하다니 어쩌겠느냐만, 그나마 먹을 만했던 뮤지엄 레스토랑이 사라진다니 아쉽다.
2013.05.30 음식 맛의 절반은 추억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안도 의주로 몽진(피란)했다. 전란의 와중에 백성은 그래도 나라님을 생각해 생선을 임금에게 올렸다. 배고프고 지친 선조는 그 생선이 무척 맛있었다. "이 생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생선 이름이 '묵'이라고 하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고작 묵이라고 부르다니 당치 않다. 앞으로 은어(銀魚)라 부르라"고 명했다. 그렇게 묵이라 불리던 하찮은 생선은 은어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몽진 중 먹었던 '은어'가 자꾸 생각났다. 은어를 진상하게 해 먹어보니 맛이 없었다. 옛날에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선조는 "은어라는 이름을 취소하고 예전대로 도로 묵이라고 하라"고 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도루묵'이라 부르는 생선이 이름을 얻게 된 유래라고 한다.
선조가 아니라 고려의 한 왕이라는 설(說)도, 조선 인조 때 일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음식, 그리고 음식의 맛에 대해서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어떤 음식을 맛있다 또는 맛없다고 할 때 그렇게 판단하는 기준의 상당 부분이 과거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억, 즉 추억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는 지난해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나는 '음식 맛의 절반은 추억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추억은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지도 모르겠다.
외식업자들은 한국에서 팔기 가장 어려운 음식이 한식이라고 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중국, 일본 따위 외국 음식은 웬만큼 만들면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단다. 하지만 한국 음식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평범한 한식일수록 더 그렇다고 한다. 손님들이 "이 음식은 원래 이런 맛이 아니다"고 할 때의 기준은 추억이다.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은 이런 맛이 아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엄마마다 손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솔직히 요리 솜씨가 영 형편없는 엄마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은 엄마가 해주던 음식에 길들여진다. 손님이 '엄마 손맛'을 기준으로 불평할 때 요리사는 난감하다. 이에 비해 어려서 먹어보지 않은 외국 음식에는 이런 추억이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맛있기만 해도 만족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대전역이라고 하면 가락국수(우동)를 떠올리는 이가 많다. 대전은 특별히 가락국수를 즐기는 도시가 아니다. 대전 사람들은 가락국수보다 칼국수를 훨씬 더 즐겨 먹는다. 그런데 왜 대전역이 가락국수로 유명할까. 역시 추억 때문이다. 과거 서울역에서 저녁 8시 30분 출발한 호남선 완행열차는 자정을 지나 0시 30분 대전역에 도착해 기관차를 바꿔 0시 50분 다시 출발했다. 열차 승객들은 기관차를 교체하는 이 20분 동안 승강장 간이 식당에서 가락국수를 후다닥 먹고 열차에 다시 올라탔다. 이 가락국수 맛을 잊지 못하는 이가 많아서 대전시에서는 대전역사 3층에 옛 맛을 재현한 가락국수집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대전역에서 팔던 가락국수가 진짜로 맛있었을까. 굵은 가락국수 면발은 빨리 익지 않는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엄청나게 밀려드는 승객들에게 가락국수를 팔려면 국수를 미리 삶아 놨어야 했을 것이다. 퉁퉁 분 면발에 미지근한 국물을 부어 후딱 낸 그때 그 가락국수를 지금 다시 맛본다면 아마 그렇게 맛있지는 않을 듯싶다.
지난달 소위 '라면상무' 사건이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탄 한 대기업 임원이 "라면이 짜다" "덜 익었다" 등 불만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결국 승무원을 잡지로 때리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 사건을 접하고 군 복무 시절 즐겨 먹던 '뽀글이'가 떠올랐다.
뽀글이 만드는 법은 이렇다. 우선 라면 봉지 윗부분 중간을 살짝 뜯어 분말 양념 봉지를 꺼낸다. 라면 국수는 봉지에 든 채로 2등분 또는 4등분으로 부순다. 분말 양념을 라면 봉지에 털어 넣고 잘 흔들어 고루 섞이게 한다. 뜨거운 물을 봉지 안으로 붓고 윗부분을 접어서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한다. 손으로 쥐어도 되지만, 분리하지 않은 1회용 나무젓가락을 집게처럼 물려 놓으면 편리하다. 3~4분 정도 지나면 뽀글이가 완성된다. 가스불이나 냄비 따위 조리 도구가 없어도 만들 수 있어서 야전 등에서 사랑받는다.
뽀글이가 맛있는 라면인지는 모르겠다. 컵라면이 아닌 일반 라면은 아무리 뜨거운 물을 부어 오래 둬도 익지는 않는다. 결국 뽀글이는 씹을 수 있을 정도로만 불린 라면이다. 물도 충분히 붓지 못하니 짜고 간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배고프고 힘들었던 그때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뽀글이를 잊지 못하고 다시 먹어보고 싶다는 예비역 남성이 많다. 군 생활의 추억 때문이다. 라면상무는 뽀글이를 드셔 봤을까
2013.07.04 누가 肉食을 두려워하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국내 육류소비량 조사 결과가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육류소비량은 217만7900t. 이를 우리나라 인구로 나누면 지난 한 해 국민 1인당 평균 고기 섭취량은 43.7㎏이 된다. 실생활에서 정말 이만큼이나 고기를 먹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건 이를 365일로 나눠보니 1일 섭취량이 120g쯤이다. 하루에 필요한 단백질은 성인 남성은 70g, 여성은 60g 정도다. 한국인 1인당 육류 섭취는 2009년 36.8㎏에서 2010년 38.7㎏, 2011년 40.4㎏으로 매년 크게 늘어나는 추세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먹는 고기는 삼겹살로 대표되는 돼지고기로 총 108만1900t이었고, 닭고기가 60만8000t으로 2위, 쇠고기는 48만8000t으로 뒤를 이었다.
이번 식약처 발표가 화제가 된 건 한국인의 육류 섭취량이 생각보다 많은 데다, 건강을 지키려면 고기를 멀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육식이 건강에 해롭다고 보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 중에서 "건강을 위해 고기는 먹지 않고 채식만 한다"는 분도 주변에 꽤 있다. 하지만 육식을 병행해야 건강에 이상적이라는 게 대부분 영양학자의 견해이다.
인체는 단백질로 구성됐고, 단백질은 다시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인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아미노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렇게 인체가 합성할 수 없는 10가지를 '필수아미노산'이라고 부른다. 필수아미노산은 음식을 통해 보충해야 한다.
필수아미노산은 콩이나 콩으로 만든 두부처럼 식물성 단백질 음식을 통해 섭취할 수 있다. 하지만 식물성 식품에 들어 있는 필수아미노산 비율은 사람의 몸이 필요로 하는 필수아미노산 비율과 다르다. 인간이 더 필요로 하는 필수아미노산은 적고, 덜 필요한 필수아미노산은 다량인 경우가 많다. 또 식물성 단백질은 부분적으로 필수아미노산이 1~2가지씩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곡물과 콩을 배합해 추가로 단백질을 얻으려고 한다면 배가 터질 지경까지 먹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이 왜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가'의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인간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건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인류학자도 있다. 인간의 두뇌는 용량이 1400㏄가 넘는다. 유인원보다 훨씬 크다. 남캘리포니아대학 인지뇌과학센터에서 일하는 신경문화인류학자인 존 앨런은 '미각의 지배'에서 "인류의 조상은 다른 경로로 숲에서 나왔고, 훗날 식물성 음식뿐 아니라 동물성 음식도 섭취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매우 큰 두뇌를 가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두뇌는 항상 '배가 고픈' 기관이다. 대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뇌는 신경세포인 뉴런으로 구성돼 있는데, 뉴런이 서로 소통하려면 에너지를 다량 소모해야 한다. 같은 두개골에 있는 근육보다 16배나 많은 에너지를 쓴다고 한다. 잎이나 줄기 따위 식물성 음식은 칼로리가 낮다. 또 소화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앨런은 "인류의 조상은 고기를 섭취함으로써 두뇌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일부 조상들은 고칼로리 식물성 음식을 먹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랄 수는 없을 것 같다. 중앙아시아 위구르족은 고기를 하루 평균 200g이나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성인병 발병률은 낮다. 오키나와도 일본의 대표적 장수 지역이지만,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고기 섭취량이 2.5배 많다.
고기 섭취량보다 어떤 부위를 어떻게 먹느냐가 문제다. 한국 사람이 가장 즐겨 먹는 육류는 돼지고기인데, 특히 삼겹살을 선호한다.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유난해서, 국내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삼겹살을 수입하고 있다. 삼겹살은 기름, 즉 지방이 잔뜩 붙은 부위다. 지방은 우리 몸에 특별히 좋을 게 없다. 쇠고기는, 섭취량은 3위로 나왔지만 선호도에서는 1위일 것이다. 쇠고기 역시 한국에서는 지방이 고루 끼어 있는 이른바 '꽃등심'을 고급 부위로 쳐준다. 쇠고기의 지방 함량이 높다고 좋은 등급을 받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미국·일본 외에는 없다. 유럽 등 대부분 지역에서는 살코기를 선호한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삼겹살이나 쇠고기를 대개 불판이나 숯불에 구워 먹는다. 고기를 구우면 먹음직스럽게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일어나면서 맛과 향이 좋아지지만, 발암 물질이 생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기는 물에 삶아 먹는 것이 이상적이다. 오키나와식 돼지고기 요리는 약한 불에 여러 번 오래 삶아 만든다. 이렇게 조리하면 지방이 거의 없이 단백질만 남게 된다. 육질도 부드러워지면서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소화되기 쉬운 상태가 된다. 위구르족과 오키나와인들이 고기를 많이 먹지만 문제가 없는 것도 삶아서 먹기 때문이다. 마블링 잘 된 고기를 노릇노릇 구워 먹는 걸 선호하는 입맛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아쉽지만 말이다.
2013.08.08 人造 소고기와 영양가 높은 곤충 드시겠습니까
인조(人造) 소고기' 시식 행사가 영국 런던에서 지난 5일 열렸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 마크 포스트 교수 연구팀이 만들었다. 연구팀은 다 자란 어른 소의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접시에 키워 근육세포를 만들었다. 이 근육세포에 식물성 단백질과 영양소를 주입해 고깃덩어리를 만들었다. 이걸로 영국의 유명 요리사가 햄버거 패티를 만들었고, 미국과 호주 음식 평론가가 시식했다. 전반적인 평가는 '소고기 같지만 맛은 없다'였다. 씹을 때 식감은 고기와 비슷하지만, 풍미와 기름기가 부족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인조 소고기 개발이 큰 관심을 끈 건 육류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030년 육류 소비가 1999년 대비 72%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중국과 인도 등 인구(人口) 대국들의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고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기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가격도 폭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조 고기는 육류 생산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도 여겨진다. 고기를 생산하려면 콩이나 옥수수 따위 곡물을 가축에게 먹여야 한다. 이 곡물을 가축 대신 기아로 허덕이는 지역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편이 훨씬 낫지 않으냐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육류 생산에는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오염·파괴 문제도 따른다. 소나 돼지가 하루에 분출하는 방귀와 트림의 양은 의외로 많다. 가축의 방귀나 트림에 섞인 메탄가스는 전체 온실가스의 15~24%나 된다고 한다. 마크 포스트 교수 연구팀이 인조 쇠고기 개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소 사육을 줄이고 싶어하는 개인 독지가의 지원으로 시작됐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육류의 대안으로 곤충을 주목하기도 한다. 유엔은 지난 5월 곤충을 새로운 식량원으로 추천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에서 "곤충은 단백질과 지방, 미네랄 함량이 높은 훌륭한 식량"이라며 "곤충 섭취는 특히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 음식으로서 곤충은 영양이 매우 풍부하다. 메뚜기 100g에는 단백질 20.6g, 철분 5㎎이 들었다. 같은 양의 소고기가 단백질 27.4g, 철분 3.5㎎인 것과 비교하면 거의 비슷한 수치이다. 애벌레는 100g당 단백질 28.2g, 철분 35.5㎎으로 쇠고기보다 단백질 함량이 오히려 높다. 게다가 곤충은 소나 돼지를 사육하는 것보다 이산화탄소·암모니아 배출량이 훨씬 적어 친환경적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서식이 가능하고 번식도 빠르다.
문제는 곤충 식용에 대한 선입견과 거부감이다. FAO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20억명이 곤충을 먹고 있지만 서구 소비자들이 혐오감을 가져 곤충 식용의 장벽이 되고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레스토랑 메뉴에 곤충을 포함하고 곤충을 이용한 요리를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인조 소고기도 떨어지는 맛과 거부감이 대중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맛은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 가격도 대량생산이 이뤄진다면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선호도나 입맛이라는 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도다.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이다.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하고 도살 금지를 주장한다. 소 숭배와 보호가 힌두교의 중심을 이룬다고까지 말한다. 힌두교에서는 악마로부터 소에 이르려면 86번의 윤회를 거쳐야 하고, 여기서 한 번 더 윤회를 거치면 인간이 된다고 한다. 암소를 죽이면 그 사람의 영혼이 가장 낮은 단계로 되돌아가 모든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힌두교 고대 경전(經典)인 베다(Veda)를 보면 암소를 보호하지도 않고 소고기 식용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카스트 제도에서 최고 계급인 브라만은 원래 희생(犧牲)에 필요한 소를 도살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이들이었다. 인도대륙을 석권한 아리안족은 원래 반유목민들이었다. 이들이 정착해 초지를 경작하게 되자 숲이 줄어들고 소 떼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은 더 이상 소고기를 먹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는 브라만은 육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고기를 포식했다.
불평등은 사회 갈등으로 나타났다. 불교와 자이나교처럼 살생을 금지하는 신흥 종교가 득세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브라만 계급이 마침내 육식을 포기했다. 심지어 자신들을 '소의 보호자'로 자처하기 시작했다. 소는 신성시됐고, 인도는 대표적인 채식 사회가 됐다.
그러니 인조 소고기·곤충 식용도 어쩌면 쉽게 현실이 될 수 있다. 대형마트 소고기 진열대에 '한우' '미국산' '호주산' 옆에 '인조'라고 적힌 라벨이 놓이고, 시식대에 잘 볶아 바삭한 메뚜기가 오르는 날이 곧 올지 모른다.
2013.09.12 수리취떡·준치만두·앵두편을 아시나요
송편은 추석에 빠질 수 없는 명절 음식이다. 그런데 기사를 쓰려고 취재하다 보니, 송편은 추석에만 먹던 떡이 아니었다. 정월 대보름날 송편으로 차례를 지냈고, 중화절(음력 2월 1일)에도 송편을 먹었다.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과 초파일(석가탄신일),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 6월 15일 유두절(流頭節)에도 송편을 빚었다는 기록이 있다. 명절이나 잔칫날에 흔히 준비한 떡이었다. 내친김에 절식(節食), 즉 명절에 먹는 음식을 찾아봤다.
설날을 대표하는 절식은 떡국이다. 떡국 국물은 본래 꿩고기로 뽑았다. 하지만 사냥을 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면 꿩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서민들은 닭고기를 썼다. 여기서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유래했다고 한다. 음력 1월 15일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 약식을 먹었다. 찹쌀·차수수·차조·콩·팥으로 지은 오곡밥을 이웃과 나누었다. 부자들은 오곡밥보다 고급인 약식을 먹었다. 약식(藥食)은 찹쌀과 밤, 잣, 대추 따위를 섞고 간장과 참기름, 꿀로 양념해 만든다. 일반 멥쌀도 구경하기 힘든 시절 찹쌀을 주재료로 한 데다 약으로 치던 꿀까지 넣었으니, 약식이라 부른 건 과장이 아니었으리라. 대보름엔 부럼도 했다. 잣, 호두, 밤 등 견과류와 엿을 깨물며 일년 내내 무탈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기원했다.
한식(寒食)은 설이나 추석만큼 큰 명절이었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는 모함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나자 어머니와 산에 숨어 살았다. 진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관직에 부름 받았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불을 놓으면 산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끝내 그는 나오지 않고 타 죽었다. 미리 준비해둔 차가운 음식, 즉 한식을 먹으며 그의 혼령을 위로하게 됐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단오에는 수리취떡과 도행병, 도미면, 준치 만두, 앵두편, 앵두화채 따위를 먹고 마셨다. 수리취떡은 수리취나 쑥을 멥쌀과 섞어 만든 절편이고, 도행병은 복숭아·살구가루에 꿀이나 설탕을 버무리고 꿀 팥소를 넣고 잣가루를 묻힌 단자떡이다. 도미면은 도미살을 전유어로 부쳐 고기와 채소, 당면과 함께 끓인 고급 전골이고, 준치 만두는 준치의 살을 넓게 포 떠서 다진 쇠고기 소를 넣고 동그랗게 빚은 만두다.
앵두편은 앵두즙에 설탕이나 꿀을 넣고 조린 일종의 젤리이고, 앵두화채는 앵두 씨를 빼고 꿀이나 설탕에 재웠다가 끓여서 식힌 물을 부어 만든다. 상류층에서는 앵두화채보다는 제호탕을 마셨다. 오매육(烏梅肉)과 사인(砂仁), 초과(草果), 백단향 등 한약재를 꿀에 재워 끓여뒀다가 냉수에 타 마시는 음료로, 임금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먹었을 정도로 몸에 좋은 음료이다.
음력 6월 15일 유두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밀가루로 만든 유두면(流頭麵)을 먹었고, 7월 7일 칠석(七夕)에는 복숭아화채나 수박화채를 마시며 더위를 잊었다. 칠석에도 밀국수나 밀전병을 먹었는데, 밀의 수확이 여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복(三伏)에는 지금처럼 민어탕, 개장국(보신탕), 계삼탕(삼계탕) 등 복달임 음식으로 지친 몸을 보했다.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에 먹던 음식은 복날과 비슷하다.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22일쯤 찾아오는 동지(冬至)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를 지나면서부터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데, 우리 조상은 이를 '태양의 귀환'으로 여겨 반가워했다. 해를 본떠 동그랗게 빚은 새알심을 넣고 팥죽을 쑤었다. 동지를 '작은 설날'이나 아세(亞歲)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자기 나이와 같은 수로 새알심을 팥죽에 넣어 먹었다.
절식이 그렇게 다양했다는 게 놀랍고, 송편과 떡국 등 소수를 제외하면 보기도 힘들 만큼 사라졌다는 게 놀라웠다. 한반도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제철 음식이며, 그렇기에 요즘 각광받는 이른바 '로컬 푸드'이기도 했다. 음식마다 재미난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재료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드러낸다는 점에서 현대인 입맛에 오히려 더 부합한다는 장점도 있다.
요즘 전국 지자체마다 향토 음식을 개발하느라 애쓴다.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관광의 낙(樂)은 결국 경치 그리고 음식으로 이뤄지는데, 어쩌면 경치보다 음식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솜씨가 조상만 못해서인지 새로 개발했다는 음식이 전통 음식보다 나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같은 요리 선생에게 배운 듯 지역 특색이 없고 천편일률적인 '퓨전 향토 음식'이라 실망스러웠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비빔밥과 불고기를 먹고 나면 그다음은 뭐가 있느냐고 궁금해한다. 잊힌 절식을 되살려낸다면 여러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2013.10.17 파리지엥이 덜 구운 바게트 빵을 씹는 이유는
프랑스는 대통령이 나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프랑스 요리가 지정되도록 애쓸 정도로 자국 음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식을 단 하나 꼽으라면 바게트(baguette) 빵일 것이다. 우리 눈에 몽둥이 또는 홍두깨처럼 보이는 바게트는 프랑스말로 '작은 막대'를 뜻한다. 이 바게트의 맛을 지키기 위해서 프랑스 정부는 법까지 만들었다. 이 법에 따르면 바게트는 기본적으로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만을 사용해야 한다.
프랑스 정부가 '바게트 법'을 제정할 때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바게트를 얼마나 굽느냐이다. 대체로 바게트는 20~25분 오븐에 구워야 한다. 그런데 요즘 프랑스에서는 이보다 훨씬 짧은 17분 정도 구운 바게트가 대부분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8월 보도했다. 먹음직스러운 황금빛 껍질이 아닌, 허옇게 덜 익은 바게트가 파리 대부분의 빵집에서 팔리고 있다는 말이다.
덜 구운 바게트를 손님이 원하기 때문이다. 바게트 먹다가 입천장이 벗겨졌다느니, 턱 빠질 뻔했다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그만큼 바게트는 빵 껍질이 딱딱하고 두껍다. 한국 사람들만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프랑스 사람들도 두꺼운 바게트 껍질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갈수록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는 경향은 프랑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프랑스인의 생활방식이 달라진 것도 덜 구워진 바게트를 선호하는 이유다. 과거 프랑스인들은 끼니때마다 갓 구운 빵을 사왔다.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다. 빵을 미리 사뒀다가 식사할 때 오븐이나 토스트 기계에 데워서 먹는 경우가 많다. 바로 먹을 때는 제대로 구운 바게트가 더 맛있지만, 데워 먹기에는 덜 구운 상태가 낫다. 게다가 완벽하게 구운 바게트는 하루만 지나도 묵은 맛이 나기에 허여멀건 바게트를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제빵사들이나 음식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달갑잖다. 겉껍질은 구수하고 바삭하면서 속살은 보드랍고 촉촉한 바게트 고유의 맛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위대한 프랑스 문화유산의 손실이자 정체성의 훼손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생존하려면 변화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프랑스마저도 변화를 맞고 있으니, 다른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굴비 맛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쉬워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조기를 얼만큼의 소금에 얼마 동안 절이느냐가 달라졌다. 요즘 굴비는 수분 68%, 염도 1.25~1.5% 정도다. 옛날에는 수분이 50% 미만에 염도는 3~5%였다. 석 달씩 바싹 말리던 걸 7~14일 정도만 말린다. 이걸 '물굴비'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굴비가 상하지 않도록 짜게 바싹 말렸지만, 냉장·냉동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 게다가 소비자는 건강에 해롭다고 짠 음식을 꺼리고, 덜 말려 더 통통하고 촉촉한 굴비를 선호한다. 원래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옛날식으로 말린 굴비가 있기는 하다. '마른굴비'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물굴비를 선호하는 대세는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굴비뿐일까. 한국식품연구원 부설 세계김치연구소에서 시판 배추김치의 소금 함량을 조사했다. 소금 함량 평균은 1.87%였고, 이 중 73.5%가 1.5~2.0% 범위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김치의 소금 함량 2.5%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김치가 싱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입맛 변화에 맞춰 많은 연구기관에서 김치 고유의 맛은 지키되 소금 함량은 낮추는 방법을 연구하지만 쉽지 않다. 한 김치 전문가는 "배추김치의 최저 염도를 1.5% 정도로 본다"며 "그 이하가 되면 제대로 절여지지 않아 김치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전통 음식 본래의 맛을 지켜야 할까, 아니면 시대의 변화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진화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음식은 과거에도 그런 맛이었을까? 사실 바게트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으로 자리 잡은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은 커다랗고 둥그런 빵을 먹었다. 1920년대 프랑스 정부가 제빵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근무를 금지했다. 그러자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둥그런 빵을 구워내기가 불가능해졌다. 제빵사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가늘고 길어서 굽는 시간이 훨씬 짧은 빵이 바게트이다. 김치는 어떤가. 1960년대까지도 속이 꽉 찬 결구배추가 아니라 성글게 벌어진 '조선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1924년 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김치를 담글 때 고추는 가루를 내지 않고 실처럼 가늘게 썰어 사용하라고 돼 있고, 쇠고기와 삶은 돼지고기 같은 육류가 들어간다고 나온다. 우리가 아는 김치는 50여 년 전에야 현재의 맛과 모양을 갖춘 셈이다. 음식은 알수록 어렵고도 재미나다.
2013.11.21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끓이려거든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다. 라면이 그 중 하나다. 평소에도 즐겨 먹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뜨겁고 얼큰한 라면 국물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키게 된다. 때마침 ‘라면천국’(리스컴)이란 책이 발간됐다. 저자는 라면업체 팔도 개발팀장으로 17년 동안 면과 수프를 개발했고, 국내 최대 라면 동호회인 다음카페 ‘라면천국’ 회장을 맡고 있는 최용민씨다. 책에는 라면의 탄생과 역사, 종류, 라면으로 만드는 요리, 세계 각국 라면 맛 비교 등 그야말로 라면에 대한 백과사전적 정보가 담겼다. 방대한 책의 내용 중 ‘어떻게 하면 라면을 맛있게 끓일 수 있는가’만을 골라내 소개하려 한다.
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끓이는 비법은?
라면을 가장 맛있게 끓이는 비법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진리는 평범하다. 그리고 가까이 있다. 최고의 라면 조리법은 라면 봉지 뒷면에 있었다. 최용민씨는 “라면 조리의 정석은 바로 라면 봉지에 적힌 조리법대로 따라 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라면 조리법은 라면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업계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수없이 라면을 끓이면서 한 번도 봉지 뒷면의 조리법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저 감으로, 어림짐작으로 물을 맞췄던 것같다. 봉지 뒷면에 적힌 가장 일반적인, 더 정확히는 표준적인 라면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 550㎖(3컵 정도)를 끓인 뒤 면과 분말수프, 플레이크(flake·흔히 ‘후레이크’로 표기)를 같이 넣고 4분 30초 더 끓이세요.”
최용민씨는 “조리법대로 하면 면은 꼬들꼬들하고 더 맛있다”면서 “한층 좋아진 라면 맛에 놀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냄비에 라면을 끓이느냐도 중요하다. 양은 냄비는 얇아서 라면을 금방 끓일 수 있는만큼 국물이 식는 속도도 빨르다. 면을 다 먹고 밥을 국물에 말아 먹기 좋아한다면 적절치 않단다. 뚝배기는 물 끓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오래 온기가 지속된다는 장점이 있다. 스텐리스 냄비는 양은 냄비와 뚝배기 중간쯤이다. 자신의 라면 먹는 스타일에 맞춰 냄비를 선택하면 되겠다. 냄비 입구가 좁으면 면과 공기가 닿는 면적이 줄어들어 면이 붓기 쉬우니, 입구가 넓은 냄비가 더 낫다.
라면에 식초?
이 책은 이밖에 라면 마니아들의 라면 끓이기 노하우를 소개한다. 라면에 식초를 넣으면 잡냄새가 사라진다고 한다. 최용민씨는 “끓는 물에 면을 넣고 식초 2방울 정도 더하면 밀가루 냄새와 잡냄새가 사라지고 깔끔한 라면 향만 남는다”면서 “라면을 다 끓이고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라면이 쫄깃쫄깃한 상태로 오래 지속된다”고 알려준다. 가루 커피(인스턴트 커피)도 넣어보자. 면이 반쯤 익었을 때 커피를 2분의 1 작은술 정도만 넣으면 밀가루 냄새가 사라지고 국물도 깔끔해진다고 한다. 가루 커피를 너무 많이 넣거나 원두 커피를 넣으면 맛이 이상해지니 주의해야 한다. 면을 꼬들꼬들하게 익히려면 끓이는 도중 면을 위아래로 들었다놨다를 반복한다. 조금 설익었다 싶을 때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30초~1분쯤 뜸 들인다.
책에는 컵라면을 맛있게 먹는 법도 나온다. 첫 번째 방법은 컵라면을 봉지라면처럼 냄비에 끓이는 것이다. 조리도구 없이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컵라면이 가진 최대의 미덕일텐데, 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방법이긴 하다. 최용민씨는 “컵라면의 면은 과자처럼 꼬들꼬들하고 잘 붇지도 않아 맛도 좋다”고 한다. 두 번째는 과자를 컵라면에 넣는 것이다. “새우깡, 에이스(크래커), 건빵 등등의 과자를 아주 조금 뜯어 넣으면 예상 외로 괜찮은 맛이 납니다. 대신 국물은 좀 걸쭉해진답니다.” 이밖에 면이 다 익었을 때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주면 중국 면요리 같은 맛이 나며, 파마잔 치즈 가루를 조금 뿌린 뒤 뚜껑을 덮어 익히면 ‘치즈 컵라면’이 된다고 한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라면을 덜 짜게 먹으려고 분말수프를 다 넣지 않는 이들도 있다. 남은 분말수프를 알뜰하게 활용하는 방법도 책에 나온다. 돼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양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삼겹살을 구울 때 소금이나 후춧가루를 뿌리듯 라면 수프분말을 살살 뿌려주란 것이다. 최용민씨는 “라면 수프는 각종 요리에 조미료로 이용해도 좋다”고 썼다. 라면 분말수프로 양념해 구운 삼겹살, 어떤 맛일지 기대된다.
2013.11.21 英여왕이 朴대통령에게 '꿩요리' 대접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달 초 영국을 국빈 방문했다. 대통령이나 총리 등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특정 국가를 방문하면 정상회담 직후 국빈 만찬이 열린다. 국빈 만찬은 초청국이 외빈에게 베푸는 가장 정중하고 호화스러운 연회로, 방문 일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박 대통령에게 베푼 국빈 만찬 메뉴가 궁금해 찾아봤다.
런던 버킹엄궁 볼룸에서 열린 이날 저녁식사에서 첫 코스인 전채로는 채소크림 소스를 곁들인 송어찜이 나왔다. 이어 둘째이자 메인 코스에는 포트와인에 오렌지와 버터를 넣고 졸여 만든 달착지근한 소스를 끼얹은 꿩 구이가 서빙됐다. 요리에 사용된 꿩은 여왕이 윈저성 왕실 소유 숲에서 직접 사냥해 잡은 것이라고 한다. 후식으로는 초콜릿 타르트(케이크)와 배가 나왔다. 식사에 곁들여진 와인은 모두 다섯 가지로, 국빈 만찬에 걸맞은 수준이었다. 영국산 로제와인인 '카멜 밸리' 2010년산과 최고급 화이트와인인 프랑스 부르고뉴 '퓔리니 몽라셰' 2004년산, 프랑스 보르도 지역 레드와인 '샤토 레오빌 라스카스' 1989년산과 '샤토 시뒤로' 1997년산이 전채와 메인 코스에 맞춰 나왔다. 후식과 함께 역시 포트와인(Port wine) '폰세카' 1977년산이 등장했다. 포트와인은 포르투갈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단맛이 강해 주로 디저트와 함께 나오거나 식후 따로 마신다.
만찬 메뉴에서도 핵심이랄 수 있는 메인 요리로 꿩 요리가 나왔다는 게 한국인에게는 익숙지 않다. 물론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꿩을 꽤 먹었다. 이북 지역에서는 냉면 육수의 재료로 꿩을 최고로 쳤다. 하지만 요즘은 꿩이 많은 제주도에 가지 않는 한 꿩요리를 내는 식당도 보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 지난 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여왕이 베푼 만찬에도 꿩이 나왔다. 이때는 꿩이 첫 코스의 수프로 나왔다. 메인 코스로는 버섯을 곁들인 사슴 고기가 제공됐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영국 여왕은 왜 한국의 두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꿩 요리를 내놨을까. 서양 요리계에서 꿩고기는 '게임(game)'의 하나로 분류된다. 게임은 오락이나 놀이로 흔히 사용된다. 하지만 음식으로서 게임은 인간이 사육해 기른 동물 즉 가축의 고기가 아닌, 사냥을 통해서 구하는 육류를 통칭하는 단어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접대한 만찬의 메인 요리 재료인 사슴 고기도 게임의 한 종류이다. 요즘은 게임 고기를 구입해서 내놓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이번 만찬 때 사용된 꿩을 여왕이 사냥해 구했듯, 호스트가 잡은 게임 고기를 손님에게 접대하는 것이 유럽의 전통이었다.
서양에서는 꿩이나 사슴 같은 사냥해 잡은 고기를 고급 식재료로 여긴다. 과거 유럽에서 사냥은 왕과 귀족들만 즐길 수 있었다. 평민들은 사냥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했고, 이를 어길 때는 엄격하게 처벌했다. 지금은 누구나 원하기만 한다면 사냥할 수 있지만, 여전히 시간과 돈이 풍족해야만 즐길 수 있다. 사냥은 자연스럽게 특권층·부유층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그리고 사냥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게임 고기는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 귀한 식재료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꿩고기는 사냥해 얻은 고기 중에서도 상위 계층에 속한다. 기독교에 근거한 중세 세계관에 따르면 모든 사물과 인간은 신(神)이 정한 질서 안에 존재한다. 이 위계질서의 꼭대기에는 신이 있고, 바닥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무생물인 바위가 있다. 음식의 가치도 이 위계에 따라서, 즉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얼마나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과 가까우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졌다. 땅에 근접할수록 저급하고, 멀어질수록 고급 식재료로 인정됐다. 식물의 경우는 위계를 나누기가 비교적 쉬웠다. 당근, 감자, 무 따위 뿌리채소가 최저급이고 그 위가 땅 위에서 자라는 채소, 나무에서 자라는 과일은 귀족에게 어울리는 고급 식품으로 봤다.
땅에 뿌리를 내린 식물과 달리, 동물성 식품은 등급을 나누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하늘을 나는 새는 고급 식재료로 대접받았다. 꿩이나 자고새(partridge)는 귀족 연회 주요리 재료로 특히 사랑받았다. 중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자고새는 평민이 먹기에는 너무 섬세한 맛이니 식용을 금한다'는 법까지 제정했을 정도다. 육류의 경우 돼지는 가장 미천한 부류로 평민에게나 적합하며, 송아지나 양은 중위권, 덩치가 크고 사냥해서 먹는 사슴 따위는 고급 고기로 분류됐다. 같은 재료일지라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졌다. 예를 들면 로스트(roast) 즉 뜨겁고 건조한 공기로 조리하면 신에게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식품의 위계'가 요즘은 서양에서 거의 잊히고 사라졌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 기준은 관습과 전통으로 굳어져 문화와 생활에 깊게 박혀 있다. 이러한 관습과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영국 여왕이 박 대통령에게 대접한 국빈 만찬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4.04.10 오너 셰프(레스토랑 주인 겸 주방장),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職業
호주 요리사 벤 슈리(Shewry)를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음식 관련 행사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가 "음식 팔아서 남는 수익이 3%에 불과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가 오너셰프(주인 겸 주방장)로 있는 호주 멜버른의 '애티카(Attica)'는 요즘 세계 미식가들 사이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레스토랑으로 꼽힌다. 이곳 음식이 워낙 독특하기 때문이다.
식재료부터 남다르다. 그는 매일 이른 새벽 요리사들을 끌고 식당 주변 공원이나 철로변, 바닷가로 가서 거기 자라는 풀과 해초를 채집해다가 요리에 사용한다. 자신의 성에 차는 채소를 확보하기 위해 식당 뒤 주차장을 텃밭으로 개조해 농사를 짓기도 한다. 권위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당연히 별 셋을 얻었고, 최근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21위에 오르는 동시에 '호주 최고의 식당'에 뽑혔다. 5코스 식사가 1인당 12만원이 넘지만, 3개월 전 예약해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 하는 전 세계 미식가들의 예약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그가 떼돈을 벌고 있을 줄 알았다.
"최고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식재료에 아낌없이 돈을 씁니다. 요리 가격에서 식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입니다." 외식업계에는 식재료 비중이 30%를 넘으면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40%라니, 망하지 않는 게 용하다. 그는 "파산과 현상유지의 미묘한 경계 선상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다"고 했다.
더 놀란 건 그가 얼마 전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식당을 열고 한동안 손님이 없었어요. 미슐랭으로부터 별을 받기 전까지 손님이 한 분도 찾지 않는 날도 많았지요. 현재 주방과 서빙 스태프가 27명인데, 저를 포함해 4명으로 줄여야 할 정도로 어려웠지요. 그랬더니 불안과 우울이 찾아오더군요."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젊은이들 사이에서 요리사가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특히 자기 식당을 운영하는 오너셰프는 선망의 대상이다. 신문과 잡지, TV에 자주 등장하며 연예인 버금가는 유명세를 탄 오너셰프도 탄생했다. 하지만 실제 오너셰프의 삶은 화려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그건 음식을 진정 사랑하는 진지한 요리사일수록 더하다.
일단 오너셰프는 떼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슈리처럼 손님이 없어서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가거나 아예 완전히 파산하는 오너셰프도 상당수다. 몇 년 전까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던 스페인 '엘 불리(El Bulli)'의 오너셰프 페란 아드리아(Adria)는 "음식 연구·교육기관으로 변신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레스토랑의 적자가 너무 심해 문을 닫은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미슐랭 가이드 스타(별)가 반드시 오너셰프에게 금전적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사 중 하나로 서울에도 지점을 낸 피에르 가니에르(Gagnaire)는 1986년 별 둘, 1993년 별 셋을 받았음에도 1996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이후 파리에 다시 레스토랑을 열어서 별 셋을 되찾으며 간신히 재기했다. 최고의 맛을 위해서는 값비싼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해야 한다. 극진하고 여유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없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갖추려면 포크·나이프·접시·테이블·의자도 최고급이라야 한다.
오너셰프는 위험한 직업이기도 하다. 슈리처럼 우울증뿐 아니라 자살 위험에도 노출된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별 셋에서 별 둘로 강등될 것이라는 루머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라 코트 도르(La Cote d'Or)'의 오너셰프 베르나르 루아조(Loiseau)가 목숨을 끊었다. 루아조는 식당을 확장하기 위해 은행에서 수십억원을 대출했다. 평점이 하락하면 매출이 떨어져 빚을 갚지 못하게 될까 봐 괴로워하다가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가 자살하고 나흘 뒤 공개된 미슐랭 가이드에서 그의 레스토랑은 별 셋 그대로였으니, 가족·친지와 그를 아끼던 단골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그러니 요리사로서 안락한 삶을 원한다면 대기업 계열의 외식사업체나 대형 외식기업에 취직하면 된다. 하지만 아직도 젊고 야심 찬 요리사들은 오너셰프를 꿈꾼다.
왜일까. 우울증 치료 경험을 털어놓은 뒤 벤 슈리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원하는 요리를 원하는 대로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독립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식당에 취직하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나만의 독특한 음식세계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힘들어도 참고 또 참으면서 오너셰프로서의 삶을 견뎌내는 겁니다."
그 말을 들으며 오너셰프는 배고프지만 야성(野性)을 잃지 않은 맹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수가 거대한 사냥감을 포획하듯 헝그리 정신을 잃지 않은 오너셰프라야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맛을 창조할 수 있다. 더 많은 '주방의 야수(野獸)'들이 레스토랑 업계에 나타나면 좋겠다.
2014.06.17 밥차, 네 덕에 촬영할 맛 나는구나
▲(위 사진)지난 11일 전북 임실 옛 임실보건의료원에 마련된 영화‘내 심장을 쏴라’의 촬영장에서는 오전 촬영을 마친 오후 1시 15분쯤 점심이 시작됐다. 이번 촬영장은 공간이 넉넉해서 밥차에서 밥을 타 먹는 대신 밥차 앞에 간이식탁을 펼쳐놓고 밥과 반찬을 뷔페처럼 차려놓고 마음껏 직접 퍼서 먹게 했다. (아래 사진)1식 6찬으로 차려진 밥차의 점심식사. /김영근 기자
이에 대해 김영하씨는 "식재료 값이 워낙 올라서 식대를 안 올릴 수가 없다"고 했다. "식사 퀄리티(품질)는 영화(촬영장)가 제일 높아요. CF 촬영장도 비슷한 수준이고. TV드라마는 조금 떨어져요. 1인당 식사 단가는 같은데, 음식을 더 많이 준비해야 하거든요. 영화 촬영장은 간식이 항시 준비돼 있어요. 드라마 촬영장은 보조 촬영자들이 엄청 많은데, 간식도 없이 식사만으로 배를 채워야 하니 훨씬 더 먹죠."
식단이 톱스타 입맛대로 꾸려지지는 않을지 궁금했다. 이 PD는 "워낙 인원이 많아 누구 한 사람 입맛에 맞출 수 없다"고 했다. "젊은 스태프들은 고기, 햄 주면 잘 나온다고 생각하죠. 반면 현장 경험 많은 스태프들은 건강에 좋은 채소나 샐러드를 선호합니다. 예전에는 감독이나 '선생님(원로 배우)'들께 식사를 타다 드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본인들이 줄 서서 드십니다. 철저히 오는 순서대로 먹고요."
음식 만드는 사람이 선호하는 건 역시 유명 톱스타보단 잘 먹는 배우였다. "유오성씨는 참 서글서글하고 잘 드세요. '맛있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김정태씨도 '힘들죠'라며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챙겨주고요."
오후 1시 25분이 되자 접시와 잔반을 처리하고 나가는 이들이 하나 둘 보였다. 이민기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벌떡 일어서더니 칫솔과 치약을 꺼내 양치질을 시작했다. 이민기의 접시와 잔반은 매니저가 자신의 것과 함께 대신 처리해줬다. 이민기는 주방으로 가더니 수돗가에 시골 아낙처럼 쪼그리고 앉아 칫솔질을 했다. 주방에 널린 식재료들을 보면서 "이건 뭐예요"라고 김원철·김영하씨 부부에게 스스럼없이 물었다. 오후 1시 30분 모든 스태프가 식사를 마치고 사라졌다. 밥차 주변엔 다시 스산한 정적이 찾아왔다.
2014.07.24 밥맛 모르는 요즘 한국인
'밥심으로 산다'고 말하는 민족답게 우리 조상은 밥을 많이 먹었다. 조선후기 기록을 보면 당시 한 끼 식사로 성인 남자 7홉, 여자 5홉, 아동 3홉, 어린아이 2홉을 먹었다. 1홉이 약 180mL니까 남자 어른의 한 끼 밥양이 무려 1260mL, 즉 1.2L나 된다. 콜라나 사이다 따위 탄산음료를 담는 대형 페트병을 가득 채울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물론 당시에는 하루 두 끼가 보통인 데다 다른 반찬이 별로 없고 간식이 부족했으니 밥을 대량 섭취한 건 당연하달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시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성인 남성이 2홉쯤 먹었다. 그러니 일본인과 중국인이 조선에 왔다가 밥 먹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모양이다. 이익이 쓴 '성호사설'을 보면 "유구국(琉球國·오키나와) 사람들이 '너희 나라 풍속에 항상 큰 사발에 밥을 퍼서 쇠숟가락으로 퍽퍽 퍼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냐'고 비웃었다"는 구절이 있을 정도다.
이렇게 밥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 밥 짓는 기술이 예술의 경지로 발달했고 이 역시 주변국에 소문이 났다. 중국 청(淸)나라 때 장영(張英)이라는 학자가 쓴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이란 글이 있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한 열두 가지 조건'을 소개한 글인데, 여기서 그는 "조선 사람들은 밥 짓기를 잘한다. 밥알에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또 솥 속의 밥이 고루 익어 기름지다"며 한민족의 밥 짓기 솜씨를 극찬하고 있다. 밥을 맛보고 소나무·참나무·밤나무 등 어떤 나무 장작을 사용했는지 맞히기도 했다니 밥 짓는 솜씨뿐 아니라 밥맛을 감정하는 미각도 오늘날 와인 소믈리에 뺨쳤던 모양이다.
요즘 우리는 어떤가. 일단 밥양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밥그릇은 점점 작아져서 요새 식당이나 가정에서 흔히 쓰는 밥공기 용량이 290mL다. 성인 밥 한 그릇이 조선 후기 갓난아기의 그것보다 작다. 최근에는 '반공기 밥그릇'도 나왔다. 이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우면 190mL니까 1홉 정도 밥이 담기는 셈이다. 밥 먹는 양이 줄어들면서 작은 밥공기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소주잔에 소꿉장난하듯 밥을 먹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더 한심한 건 밥맛을 모른다는 거다. 무슨 땔감으로 밥을 지었는지 맞히는 수준은 바라지도 않는다. 제대로 된 밥인지도 구분 못한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는 잘 지은 밥은 "윤기 있게 반짝이면서 한 알 한 알 살아있다. 동시에 적절하게 끈기를 유지하면서 옆에 있는 밥알들과 조화롭게 어깨를 겯고 있다. 젓가락으로 살짝 뜨니 딱 먹기 좋은 양의 밥알들이 모여서 딸려온다"고 설명한다.
밥맛을 모르게 된 이유는 맛있는 밥을 먹을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식사보다 밥이란 말을 더 흔하게 사용할 정도로 밥이 중심이 되는 한국의 밥상이건만, 밥이 식탁의 주인공에서 초라한 엑스트라로 밀려난 지 오래됐다. 요새 식당에서 나오는 밥은 밥과 떡의 중간쯤 되는 묘한 음식이다. 한국 손님들이 워낙 급하고 기다리길 싫어해서인지 대부분 한식당에서는 스테인리스 주발에 밥을 미리 퍼담아 놓는다. 그리고 이 주발을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저장해둔다. 여기서 손님상에 나갈 때까지 대기하면서 밥은 서서히 떡으로 변신해간다. 부산 레스토랑 '메르씨엘' 오너셰프 윤화영씨는 "여기에 익숙한 신세대들은 적응 내지는 진화를 통해 밥주발을 흔들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신공(神功)'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고 냉소(冷笑)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가정에서도 심지어 며칠 전 지은 밥을 전기밥솥에 보온 상태로 두고 먹는 경우가 많다. 미지근하게 오래 보관된 밥은 윤기와 촉촉함을 잃는다. 쫀득하고 차진 식감이 사라지며 퍼석해지고 불유쾌한 군내가 난다. 밥을 적게 먹는 건 어쩌면 요즘은 밥이 맛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밥맛'이라는 단어가 '밥의 맛' '밥이 먹고 싶은 마음'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재수 없다'는 뜻으로 더 널리 통한다.
쌀 시장이 내년에 개방된다. 국산 쌀이 외국 쌀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유력한 해법으로 쌀 품질의 고급화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다행히 소비자들도 국산 쌀에 대한 신뢰도와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밥맛을 제대로 모르면서 쌀을 구분해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을 대상으로 미각교육을 진행한다. 국가 차원에서 하기도 하고 민간단체나 기업에서 하기도 한다. 캐비아나 송로버섯처럼 값비싼 고급 음식을 맛보는 미식(美食) 차원의 미각교육도 있지만, 와인이나 치즈처럼 그네들에게는 전통적인 음식을 맛보고 그 맛을 혀와 뇌에 새겨지도록 한다. 기준을 가져야 판단하고 평가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미각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미각교육을 진행하는 기관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쌀을 주제로 하는 미각교육은 거의 없고, 있다 해도 밥의 맛이 중심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밥이 주인공이 되는 미각교육과 식탁을 보고 싶다.
2014.08.27 상자 속 '집밥천국'
[손질된 재료·요리법 집으로 배달하는 '레시피 박스' 인기]
번거롭게 장 볼 필요없이 집에서 요리만 하면 완성
대부분 30~40대 맞벌이 부부 이용
사진가 강진주(39)씨는 한 달에 서너 번 '테이스트샵'으로부터 흰색 스티로폼 상자를 배달받는다. 상자에는 깨끗이 씻고 다듬어서 2인분, 4인분씩 진공 포장한 식재료와 요리 레시피가 들어 있다. 서울 가로수길 '류니끄'의 류태환 오너셰프나 경기도 판교 '로네펠트 티하우스' 이찬호 총괄셰프 등 유명 요리사들이 개발한 레시피다.
싱글인 강씨는 "장 보고 재료를 다듬는 번거로움 없이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먹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평소에는 바빠서 외식을 엄청 많이 해요. 그렇다고 모처럼 주말에 집에서 먹는데 배달음식이나 완제품을 사다가 먹는 건 너무하다 싶었죠. 평소 내가 먹을 음식은 요리 선생님이 개발한 일상적인 음식을, 손님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 때는 유명 음식점 요리사들이 개발한 좀 더 특별한 음식을 주문하는 편이에요."
▲유명 레스토랑 음식을 집에서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일류 요리사들이 만든 레시피와 식재료를 스티로폼 상자에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가 인기다. /테이스트샵 제공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식재료와 레시피를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재료를 사다 다듬어서 요리하는 '집밥'과 짜장면·피자·치킨 등 배달음식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서비스다. 지난 6월 서비스를 시작한 '테이스트샵'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 매주 수요일까지 신청하면 금요일에 집으로 '레시피 박스'를 배달해준다. 지난해 9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한 '푸드마스'는 정기구독을 1주일·3개월·4개월 단위로 신청하면 매주 2가지 또는 3가지 메뉴로 구성된 '정기구독 상자'를 보내준다. '레시피패스'는 매일 오후 7시까지 주문하면 2~3일 뒤 손질된 식재료와 레시피를 보내준다.
외국에서는 3~4년 전 등장해 급성장한 시장이다. '레디 투 쿡 밀(ready to cook meal) 딜리버리 서비스' 또는 '쿡앳홈 밀 키트(cook-at-home meal kit)'라고 부른다. 3년 전 등장한 헬로프레시(HelloFresh)는 매달 100만 개 식사를 미국과 유럽에서 배송한다. 미국 '블루에이프런(Blue Apron)'은 창업 2년 만에 매달 60만 개 식사를 주문받는다.
국내에서는 강진주씨 같은 싱글족보다는 30~40대 '젊은 엄마'들이 애용한다. '푸드마스' 이현구(28) 대표는 "처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싱글족을 주 타깃층으로 잡았지만, 구매자 조사를 해보니 2인 가구 즉 맞벌이 부부나 어린 자녀가 있는 3인 가구의 주부가 대부분이었다"며, "식재료와 조리 과정의 안정성에 관심이 커지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이스트샵' 김규민(29) 대표는 "1인 가구는 요리에 관심은 있지만 직접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두 달 전부터 이용하고 있다는 맞벌이 부부 곽예진(29)씨는 "소량의 재료로 요리해 남김없이 먹게 되니 오히려 경제적이라 계속 주문해 요리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비용은, 재료를 마트에서 사다가 만들어 먹을 때보다는 비싼 편이지만 외식보다는 저렴하다. '테이스트샵'에서 판매하는 류태환 셰프의 '생강간장소스와 돼지삼겹 샤부샤부'는 2인분 기준 1만6400원이다. 요리연구가 강지영씨는 "요리가 단순히 끼니 해결 차원을 넘어 트렌디한 '취미' 또는 '여가생활'로 인식되고 있다"며 "요리의 번거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극대화시키는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2014.08.28 敎皇이 드신 치아바타라는 빵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다음 "치아바타(ciabatta)가 어떤 빵이냐"고 묻는 분이 많아졌다. 방한 기간 교황이 주한 교황청 대사관에서 먹은 식사 때 제공된 빵이 이탈리아 치아바타와 프랑스 바게트라고 소개됐기 때문일 것이다. 두 가지 빵 중에서 바게트는 몽둥이처럼 생긴 빵으로 꽤 알려진 반면, 치아바타는 아직은 그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치아바타가 무슨 빵인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치아바타를 먹어본 경험은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파니니 때문이다. 파니니는 빵 사이에 햄이나 치즈,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등 여러 재료를 집어넣고 뜨거운 철판으로 위아래에서 눌러 뜨겁고 바삭하게 구운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다.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파는 파니니는 대개 치아바타로 만든다.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식전빵으로 올리브오일과 함께 자주 제공되기도 한다. 이제 파니니가 어떤 맛인지 알 것 같지 않은가.
치아바타는 이탈리아말로 슬리퍼란 뜻이다. 자르지 않은 파니니는 약간 길쭉하면서 도톰한 직사각형으로, 언뜻 보면 슬리퍼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대개 겉에는 허연 밀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밀가루를 털어낸 파니니를 칼로 잘라보면 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게 한국 떡 증편을 연상케 한다.
이제 파니니를 작게 잘라 입에 넣고 씹어본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껍질은 쫄깃한 듯하면서 바삭하다. 속은 부드럽게 쫄깃한 것이 모양뿐 아니라 씹는 맛도 증편과 비슷하다. 증편보다 약간 더 차지달까. 쫄깃한 식감을 선호하는 한국인 입에 썩 맞는 빵이다.
치아바타가 파니니에 흔히 사용되는 건 이 빵이 파니니용(用)으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빵의 대표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지만, 치아바타가 탄생한 건 겨우 32년 전인 1982년이다. 베네치아 부근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빵집을 하던 아르날도 카발라리(Cavallari)라는 40대 중반 사내가 동료 제빵사 대여섯 명과 '대책회의'를 위해 모였다. 회의 주제는 '프랑스 바게트의 침공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였다.
1980년대 이탈리아는 미국과 영국, 독일은 물론 일본에서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싸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찾았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샌드위치를 만들기에 적당한 빵이 없었다. 원래 이탈리아에는 빵 사이에 뭘 끼워서 먹는 샌드위치 문화가 없었다. 빵은 두 손으로 한입 크기로 쪼개서 먹었을 뿐이다. 이 빈틈을 바게트가 잽싸게 파고들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카발라리와 그의 친구들은 "이탈리아 땅에서 프랑스 바게트가 득세하는 꼴은 볼 수 없다"며 "샌드위치에 어울리는 이탈리아 빵을 개발해 관광객들이 흘리는 돈을 이탈리아 빵이 차지하도록 하자"고 결의했다. 그날부터 이들은 새로운 빵 만들기에 돌입했고, 카발라리가 샌드위치용으로 이상적인 빵을 개발했다. 무슨 이름을 붙일까 고민하다가 쳐다본 빵은 슬리퍼처럼 보였고, 카발라리는 자신이 살던 지역(폴레시네) 이름을 붙여 '치아바타 폴레사노(Ciabatta Polesano·폴레시네의 치아바타)'라고 상표등록을 했다.
성공에는 시샘과 질투가 따라붙게 마련이다. 치아바타도 그랬다. 많은 이탈리아 사람이 "옛날부터 있던 빵을 마치 새롭게 탄생시킨 것처럼 공치사한다"며 카발라리를 비난했다. 카발라리는 "비슷한 맛의 빵이 예전에 있었을 수는 있지만 정확히 이런 모양과 맛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면서 "원래 있었다는 근거를 대보라"고 맞받아쳤다. 논란과 상관없이 치아바타는 널리 퍼져나갔다.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치아바타를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카발라리는 1989년 '치아바타 이탈리아나(Ciabatta Italiana·이탈리아의 치아바타)'로 이름을 고쳐 재등록했다. 그리고 불과 10여년 만에 치아바타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빵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이탈리아에 가서 "치아바타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빵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 같다. 해외에서 어느 나라를 대표한다고 이름난 음식 중에는 정작 그 나라에서는 대단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나라 사람들의 식습관이나 선호도와 관계없이 외국인 식성에 맞아떨어지면서 '식도락계 국가대표'가 된다.
이번에 교황이 먹은 치아바타를 제공한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은 원래 '튀긴 소보로빵'과 '부추빵'으로 이름났다. 한국 전국은 물론 일본 관광객까지 일부러 찾아와 이 빵들을 사갈 정도다. 하지만 이 빵들은 동양인 입에는 맞지만 서양인에게는 낯설고 희한한 스낵일 뿐 '일용할 양식(daily bread)'으로서의 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황이 먹을 빵으로 선택되지 않았다. 동남아와 중국은 물론 미국 등에서 양념치킨이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한국 대표 음식 행세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음식에도 타고난 팔자가 있는가 보다.
2014.10.02 소비자 현혹하는 글루텐프리(gluten-free)
얼마 전 출근길에 시내버스 옆구리에 붙은 광고를 보았다. 험악하지만 익살스러운 표정의 여성 코미디언이 금방이라도 때릴 듯 오른손을 뒤로 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다음과 같은 카피가 인쇄돼 있었다. "글루텐프리! 아직도 몰라? 귓방망이 짝! 짝!" 글루텐(gluten)이 들어간 음식은 몸에 이롭지 않으며, 그걸 여태 모른다면 귓방망이를 얻어맞아야 한다고 코믹하게 풀어낸 광고다. 그러면서 글루텐이 들어가지 않은 식품, 즉 글루텐프리(gluten-free) 제품을 사 먹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글루텐이 뺨을 맞아야 할 정도로 해로웠던가? 미식가(美食家) 입장에서 글루텐은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고마운 존재다. 밀에는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라는 두 단백질이 들어 있다. 밀가루를 반죽하면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 만나 단단한 그물 구조의 단백질 복합체를 형성한다. 이것이 글루텐이다.
글루텐이 아니었다면 쫄깃하고 매끄러운 면발과 폭신하고 부드러운 빵을 즐길 수 없다. 글루텐이 국수를 뽑을 때 끊어지지 않게 잡아주고, 구울 때 생기는 기체(이산화탄소와 에탄올)가 빠져나가지 않게 가둔다. 메밀이나 쌀, 옥수수는 밀만큼 글루텐이 많지 않다. 그래서 밀처럼 국수나 빵을 만들기 어렵다. 밀이 옥수수·보리·호밀보다 재배하기 어렵고, 쌀보다 같은 면적당 생산되는 칼로리가 낮은데도 세계 3대 작물에 낄 수 있는 건 글루텐 덕분이다.
최근 글루텐이 기피 대상이 된 건 '글루텐 민감성' 증상 때문이다. 글루텐 소화흡수율이 낮아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소화기질환을 비롯해 자가면역질환·천식·비염·두통 등 각종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심한 경우를 셀리악병(病)이라고 하는데, 두통·근육통·관절통부터 우울증·골다공증·불임·림프종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 심각한 병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 지난 29일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최명규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셀리악병은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병인데 셀리악병 환자의 95%가 보유한 HLA-DQ2 유전자를 지닌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셀리악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백인은 30~40% 보유하고 있지만 동양인이나 흑인에게선 찾기 어렵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럼 왜 빵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사람이 한국에 많을까. 그건 글루텐보다 현대화된 제빵 기술 탓일지 모른다. 과거에는 빵을 천연효모로 만들었다. 요즘은 대개 이스트를 사용한다. 환경운동가이자 음식작가인 마이클 폴란은 '요리를 욕망하다'란 저서에서 이스트는 빵을 부풀리는 데 필요한 효모 하나뿐이지만, 천연효모는 효모뿐 아니라 수십 가지 세균이 섞여 있는 상태라고 했다. 게다가 천연효모를 이용한 발효는 천천히 이뤄진다. 깊은 풍미를 내는 빵이 만들어진다. 반면 이스트 발효는 시간이 짧아 빵을 대량생산하기 쉽고 경제성이 높다. 대신 풍미가 떨어진다. 이를 보충하려고 첨가물을 추가한다. 폴란은 "발효종(천연효모) 발효는 글루텐을 분해하여 소화를 돕기도 한다"며 "어떤 연구자들은 글루텐 불내증과 셀리악병의 증가 원인이 현대의 빵들이 긴 발효 시간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식품업계에서 이걸 몰라서 글루텐프리 제품을 대대적으로 내놓는 건 아닐 것이다. 식품업체는 색다른 제품을 끊임없이 내놓아야 한다. 약간 낯설면서도 이국적이고 서구적인, 그래서 세련된 느낌의 '글루텐프리'라는 단어가 매력적이었을 듯하다. 요즘 유행인 '무첨가 마케팅'에도 딱 맞는다. 소비자들도 무첨가 제품을 신뢰하고 안전하게 생각한다. 소비자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공포 마케팅'이라 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기업이 무첨가 마케팅을 벌이지만 실제로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첨가물 대신 소비자가 잘 모르는 대체 첨가물을 넣는 '꼼수'를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커피업계의 '카세인나트륨 논쟁'이 대표적이다. 우유는 지방·단백질·젖당으로 구성된다. 이 중 유단백질은 카세인 80%와 유청단백질 20%다. 카세인나트륨은 카세인을 분리해 나트륨을 결합한 것으로 인체에 해가 없다. 하지만 한 기업이 자사의 커피믹스가 크림에서 카세인나트륨을 빼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고 선전했다. 카세인나트륨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됐다. 이 기업의 커피믹스는 2위로 급부상했다. 무지방 우유에도 당연히 카세인이 들었는데 말이다.
식품에서 특정 성분을 빼면 맛도 빠진다. 소비자는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집어 들지 않는다. 다른 첨가물로 부족함을 채울 수밖에 없다. 과거 저지방 식품은 지방을 줄이는 대신 설탕과 소금을 더 넣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6월 글루텐프리 식품이 글루텐 성분만 낮췄을 뿐 비타민이나 섬유질처럼 이로운 영양소는 부족하고 탄수화물이나 당분은 일반 제품보다 높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식품회사의 집요한 공세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야 할까.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의 저자 하비 리벤스테인은 "새로운 영양학적 발견이 뉴스로 나오면 일단 충분히 기다려보라"고 충고한다. 마이클 폴란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되 과식하지 말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라"고 한다. 뺨 맞을 소리는 아닌 것 같다.
2014.10.08 고소하지 않아 몸에는 더 좋다?
볶지 않고 짜서 먹는 '생기름'
참깨·들깨 고온서 과하게 볶으면 오메가3·항산화 물질 등 손상
독소 빼주는 '오일풀링'에 활용… 공복에 먹으면 배변도 원활해져
한의사 박성진씨는 생들기름을 매일 아침과 저녁 공복(空腹)에 한 숟가락씩 마신다. 벌써 5개월째다. 박씨는 "예전에는 오메가3가 많이 든 올리브오일을 먹었는데, 아무래도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의 들기름이 더 맞기 때문에 생들기름으로 바꿨다"고 했다. "음식물과 같이 먹을 때보다 공복에 섭취해야 흡수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생기름을 '오일풀링(oil pulling)'에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오일풀링이란 기름 한 모금을 입에 5~20분 동안 머금었다가 뱉으면 몸 안의 독소가 빠져나간다는 건강법이다.
▲참깨와 들깨를 볶지 않고 기름을 짠 생참기름·생들기름은 일반 참기름·들기름보다 색이 훨씬 옅다. 왼쪽부터 생참기름, 일반 참기름, 생들기름, 일반 들기름.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볶지 않은 참깨와 들깨에서 짜낸 '생(生)참기름'과 '생들기름' 등 '생기름'이 관심을 끌고 있다. 보통은 참깨와 들깨를 볶은 다음 그 기름을 짠다. 맛과 향, 색이 진해지고 추출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참기름과 들기름이 열기에 취약하다는 점. 항산화 물질인 세사몰, 콜레스테롤 생성을 방지하는 불포화지방산, 필수지방산인 올레인산·리놀렌산, 오메가3 지방산, 로즈메리산 등 몸에 이로운 성분이 손상되거나 파괴된다. 너무 높은 온도에서 과다하게 볶으면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생성되기도 한다. 생기름이 새삼 각광받는 이유다.
지난해 3월 서울 역삼동에 문 연 '쿠엔즈버킷(Queens Bucket)'은 생기름 전문점이다. 볶지 않은 참깨와 들깨를 냉압착(cold pressing)' 방식으로 기름을 뽑는다. 추출 온도가 섭씨 40도로 차갑다기보단 따뜻한 수준이나, 기존의 참기름·들기름을 200~300도에서 뽑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편이다.
"10년 전부터 생들기름을 생산해온 충북 음성의 '코메가'에서는 콜드 프레싱으로 3일 동안 한 번 짜낸다. 코메가 대표 정훈백씨는 "이렇게 해야 몸에 좋은 보약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기름은 불로 조리하는 요리에 사용하기보다는 샐러드 드레싱 등 날것으로 먹는 요리에 사용하는 편이 더 유익하다. /유창우 기자
이렇게 추출한 생기름은 '과연 참기름·들기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맛과 향이 약하다. 생참기름은 황금빛이 아니라 밝은 노란빛을, 생들기름은 짙은 갈색이 아니라 부드러운 황갈색을 띤다. 병뚜껑만 열어도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기존의 참기름·들기름과 달리 향도 옅다. 생기름을 입에 넣고 오물거려야 비로소 풍미가 느껴지는데, 그것도 참깨를 씹거나 들깨차를 마실 때 정도로 부드럽다.
게다가 생기름은 유익한 성분이 풍부한 대신 변질되기 쉽다. 상미기간(맛있게 먹을 수 있거나 품질 변화가 없는 기간)이 3~6개월 정도로 기존 참기름·들기름(1년 이상)보다 훨씬 짧다. 쿠엔즈버킷 박정용 대표는 "참깨를 볶으면 참깨의 약리 성분이 방부 성분으로 바뀌어 부패를 막아준다"고 말했다. 가격도 비싼 편. 맛과 향이 약해 일반 참기름·들기름보다 훨씬 많이 넣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6개월 전부터 생기름을 먹고 있다는 김정은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교수는 "생기름은 맛과 향이 강하지 않아 오히려 많이 섭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샐러드에 드레싱처럼 뿌려요. 나물은 볶은 다음 넉넉하게 붓고 버무리듯 해서 먹어요. 여름에는 현미와 귀리를 많이 섞어서 지은 잡곡밥에 열무김치 넣어 비벼 먹기를 즐기는데, 생참기름을 한 큰술 이상도 먹겠더라고요. 전날 섬유질 섭취가 부족하거나 밀가루를 많이 먹어서 배변이 원활치 않다 싶으면 아침 공복에 먹는데, 그러면 바로 '신호'가 오죠."
2014.11.06 '8억원 파스타' 먹다가 떠오른 생각들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이어지는 정동길을 따라 걷다가 예원학교 옆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올라가면 정동공원이 나타난다. 대한제국 시절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자리다. 한산하고 조용한 공원 맞은편에 최근 지은 현대식 건물이 보이고, 입구 왼쪽에 음식점이 하나 있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때는 월요일 점심시간이었지만 정동길에서 약간 벗어난 입지 때문인지 총 80석인 좌석은 절반 넘게 비어 있었다.
이 식당은 올 국정감사에서 '8억원 파스타'로 화제가 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 임직원들이 2011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법인카드로 8억2253만원을 이 식당에서 결제했다고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평가원은 "회의가 부서별로 하루 평균 10여회씩 열린다"며 "대부분 외부 인사들과 회의 후 식사를 함께 한 비용"이라고 해명했다.
식당이 세간의 관심을 끌면서 이름을 알게 됐지만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어떤 식당인지 궁금해 찾아가 봤다. 파스타 전문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알려졌지만 메뉴를 보니 '전문'이라기엔 부족했다. 예를 들면 '제노베제(Genovese)'란 파스타가 있었다. 이탈리아에 제노베제란 파스타는 없다. 굳이 유추하면 '제노바(Genova)식 파스타'일 듯하다. 제노바식이라면 페스토(pesto) 소스가 들어간 파스타가 있다. 페스토는 바질이라는 허브에 마늘과 잣, 올리브오일을 더해 만드는 초록빛 소스로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탄생했다. 이 식당의 제노베제 파스타는 크림소스에 바질 가루와 새우, 관자 등 해산물이 들어간 퓨전 파스타였다. 대부분 음식이 퓨전 스타일이었다.
전문 또는 정통 파스타랄 순 없지만 나쁜 식당은 아니었다. 파스타만 단품(單品)으로 주문했지만 세트처럼 샐러드와 빵이 나왔다. 샐러드의 채소가 약간 시들하긴 했지만 주문하자 바로 등장하는 신속함은 성미 급한 한국 손님들에게 만족스러울 듯했다. 식사를 마치자 "후식으로 커피와 녹차가 있다"며 "뜨거운 것과 찬 것 중 선택 가능하다"고 했다.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줘 들고 나올 수 있었다. 맛집이라기엔 부족하지만 한국인 입맛에 맞춘 음식과 서울 시내 평균 수준인 1만5000~2만원대 파스타 가격 등 별 불만 없이 한 끼를 해결할 정도는 됐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커피를 들고 나와 정동길을 걷다가 13년 전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2001년 페트뤼스(Petrus)라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바클레이즈 캐피털(Barclays Capital) 소속 금융인 6명이 증시에서 '대박'을 낸 뒤 자축 만찬을 가졌다. 식사가 끝난 뒤 이들이 지불한 금액은 무려 1억7000만원이었다. 이날 먹은 코스 요리는 1인당 50파운드로,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10만원 정도였다.
문제는 이들이 주문한 와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유명한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를, 그것도 1940년대에 생산된 것으로 세 병이나 마셨던 것이다. 와인은 포도 작황이 좋은 해(빈티지)에 생산된 와인일수록 비싸고, 우수한 빈티지의 고급 와인은 오래될수록 가격이 폭등한다. 이들이 마신 페트뤼스는 역대 최고 빈티지로 평가받는 1945년·1946년·1947년산이었다. 2001년 당시 각각 1만1600파운드, 9400파운드, 1만2300파운드를 호가했으니 지금은 훨씬 비쌀 것이다. 여기에 프랑스 부르고뉴산 최고급 화이트와인 '르 몽라셰(Le Montrachet)' 1982년산(1400파운드)과 최고급 디저트 와인 '샤토 디켐(D'Yquem)' 1900년산(9200파운드)까지 마셨다.
금액 자체는 런던 금융가에서 화제였을 뿐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가 식대를 손님 접대비로 회사에 청구했음이 밝혀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됐고, 결국 해고당했다.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비싼 식사는 어떤 것일까. 아무래도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대접한 만찬을 꼽아야 할 듯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연회로 접대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내기를 제안했다. 만찬 당일, 클레오파트라는 "두 번째 코스를 내오라"고 명령했다. 시종은 유리잔 하나만 달랑 내왔다. 클레오파트라는 귀에 달았던 진주를 떼어 잔에 떨궜다. "15개 나라를 살 수 있다"고 평가받던 엄청난 크기의 자연산 진주였다. 잔에는 식초가 담겨 있었고, 진주는 천천히 녹아 사라졌다. 클레오파트라는 이 '진주 칵테일'을 단숨에 삼켰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재치와 대담함에 매료됐고, 결국 아내를 버리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했다.
전설로만 알려졌던 이 일화가 실제로 일어났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실험이 2012년 미국에서 있었다. 뉴저지 몬클레어 주립대학 연구진이 일반 수퍼마켓에서 파는 식초에 진주를 넣어보니 용해된 것이었다. 연구진은 "산도 5%인 식초 용액에서 무게 1g짜리 진주가 녹는 데 24~36시간 걸렸다"며 "식초 용액을 데워 온도를 높이고 진주를 부숴서 집어넣으면 10분 안에 충분히 녹일 수 있다"고 했다.
파스타 한 접시 먹고 나오면서 별 거창한 생각을 다 해봤다.
2014.11.19 뜨거운 물과 만나면 채소가 숨을 쉰다?
[과일부터 고기까지… '50℃ 세척법']
오염물질 제거되고 식감 좋아져… 생선·고기도 본래의 맛 살아나
"찬물 세척이 더 안전" 주장도
섭씨 50도의 물은 꽤 뜨겁다. 국내 온천 중 물이 뜨거운 편이라 고(高)온천으로 분류되는 수안보가 53도다. 그런데 이 뜨거운 물에 채소와 과일은 물론 고기와 생선까지 씻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른바 '50℃ 세척법'이다.
◇채소·과일 뜨거운 물에 씻어라?
50℃세척법을 처음 제안한 건 일본인 과학자 히라야마 잇세이(平山一政)씨다. 최근 국내 발간된 그의 책 '기적의 50℃세척법'(산소리)에 따르면, 증기 기술자로 고기완자 공장에서 일하던 히라야마씨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증기 온도를 낮추는 실험을 계속하던 중 섭씨 50도 증기에서 찐 채소에 생기가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50도로 찐 음식이 맛있다면 50도 물로 씻어도 같은 효과가 나지 않을까'란 생각에 50℃세척법을 고안했다.
▲/유창우 기자
히라야마씨의 주장에 따르면 50℃세척법은 기적에 가깝다. 찬물로 씻을 때보다 오염 물질이 잘 제거돼 더 깨끗해지고 더 아삭아삭 맛있다고 한다. 식감이 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히라야마씨는 "뿌리가 뽑힌 채소는 수분을 잃고 건조되는 걸 최대한 늦추려고 잎 표면의 기공을 스스로 막는데, 이를 50도 물에 넣으면 '열 충격'으로 기공이 열리며 잃었던 수분을 한순간에 흡수한다"고 설명한다. 과일은 따뜻한 열기로 효소 작용이 활성화되고, 숙성이 촉진되어 당도가 높아진다.
◇뜨거운 물 半, 찬물 半
고기나 생선도 50도의 물로 씻으면 더 깨끗하고 맛이 좋다는 게 히라야마씨의 주장이다. 그는 "생선 비린내는 생선살에 포함된 지방산이 공기에 닿아 생기는 산화물이 원인"이라며 "그 산화물을 50℃세척으로 없애주면 생선 본래의 맛이 살아난다"고 주장한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50도 물에서 2분 정도 씻으면 더 부드럽고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50도로 물 온도를 맞추려면 볼에 끓는 물을 붓고 찬물을 더하면서 온도계로 확인하는 방법이 제일 정확하다. 뜨거운 물과 찬물을 1대1로 맞추면 대충 맞다. 히라야마씨는 "대부분의 부패균도 50도의 뜨거운 물로 씻으면 죽는다"며 "단 식중독을 일으키는 O-157 같은 대장균을 살균하려면 75도 이상으로 가열해야 한다"고 했다. 43도 이하로 물 온도가 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할 것. 식품을 부패시키는 세균이 35~40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60도 이상으로 뜨거우면 채소가 익는다.
◇찬물로 천천히 씻는 게 낫다는 주장도
▲/산소리출판사 제공
50℃세척법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한국채소소믈리에협회 김은경 회장은 "50도로 정확히 맞춘다면 괜찮지만, 이보다 낮은 애매하게 따뜻한 물일 경우 미생물 활동을 오히려 촉진시켜 덜 위생적일 수 있다"며 "50℃세척법이 순간적으로 과일을 숙성시키거나 수분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나, 맛을 좋게 하거나 오래 보관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약간 시든 채소도 50도 물에 담그면 빠르게 살아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원한 물에 담가도 채소는 수분을 흡수해 싱싱해집니다. 20분 정도로 시간이 더 걸릴 뿐이죠. 맛은 천천히 찬물에 담가둔 편이 50도 물로 급하게 싱싱하게 만든 채소보다 낫습니다. 급하게 발육시킨 채소가 맛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김 회장은 "세척과 보관은 각 채소나 과일의 생육 조건과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라"며 "여름 채소는 너무 차가운 물에 담그면 오히려 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4.11.20 세계 1등 맛집의 비결… 딴 곳과 색다른 '덴마크式 신토불이(身土不二)'
[年100만명이 예약 시도하는 덴마크 레스토랑 '노마'… 주방장 겸 사장 레드제피 인터뷰]
- 창조 요리
"파리에서도 맛볼 수 있다면 누가 덴마크까지 오겠습니까"
- 식재료는 수렵·채집
"북유럽엔 레몬이 안 나요… 우연히 개미 먹어봤더니 아삭, 톡 터지는 새콤한 맛"
- 하루 대기명단 1500명
테이블 11개뿐인 작은 식당이 코펜하겐 관광산업 11% 키워
- 韓食의 매력은 발효
"된장·간장 등 연구중입니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부둣가에는 낡은 창고를 개조한 노마(Noma)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테이블 11개에 불과한 작은 식당이지만, 덴마크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노마로 인해 코펜하겐 관광산업이 11% 성장했으며, '노르딕(북유럽) 식재료만 사용한다'는 요리 철학 덕분에 덴마크 농업·어업·낙농업까지 부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노마는 세계 요리업계 전문가들이 선정하는 '세계 50대 식당'에서 2010~2012년과 2014년 1위로 선정됐다. 이 식당 오너셰프(주방장 겸 주인) 르네 레드제피(Redzepi·37)는 201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예약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매년 100만 명이 예약을 시도하며,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취소된 자리를 기다리는 이들이 하루 1500명을 넘는다.
▲한국 온 레드제피, 글로벌 리더스 포럼서 강의 - 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회 글로벌 리더스 포럼 ‘세계 3대 셰프에게 음식의 길을 묻다’ 세션에서 레드제피가 자신의 요리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TV조선 주최 '글로벌 리더스 포럼'에 참석해 '한식: 세계 3대 셰프에게 음식의 길을 묻다' 세션에서 강의한 레드제피를 19일 만났다. 레드제피는 "다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음식을 선보인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11년 전 노마를 열기 전까지 코펜하겐의 최고급 식당들은 정통 프랑스 요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파리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맛보러 춥고 우울한 덴마크까지 오겠습니까?"
그가 요리사가 된 건 친구 덕분이다. "부모님은 발칸반도 마케도니아 출신의 농부였죠. 15세 되던 해 제일 친한 친구가 요리학교에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요리가 저의 천직임을 깨닫게 됐답니다(웃음)."
▲발효 연구실 - 레드제피가 만든 발효연구실. 그는 “발효는 버려질 수밖에 없는 식재료를 맛있는 음식으로 변신시킨다”고 말한다. /Ditte Isager
코펜하겐의 여러 식당에서 일하던 레드제피는 '재미있고 창의적인 요리를 하고 싶어' 2003년 노마를 열었다. 그는 노마만의 맛을 만들기 위해 식당 주변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만을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서양 요리의 필수 재료인 올리브오일도 노마에는 없다. 올리브오일이 북유럽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코펜하겐 주변 산과 들, 바다와 강에 자생하는 동식물을 수렵·채집했다. 레드제피는 "비행기로 3일 걸려 날아온 냉동 고기와 30분 전 도축한 순록고기, 어떤 것이 더 신선하고 맛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타임지가 레드제피를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한 건 그가 식재료의 지평을 넓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샐러드에 말린 개미를 뿌려 낸다. "북유럽에서는 레몬이 나지 않아요. 우연히 개미를 먹어봤어요. 아삭하면서 톡 터지는 새콤한 맛이더군요. 새로운 세상이 열렸죠. 개미를 먹는 게 이상할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중요한 단백질원으로 쓰여 왔어요. 개미와 새우가 비슷하지 않나요? 새우는 되고 왜 개미는 안 될까요? 꿀은 벌이 꽃의 수분을 먹고서 게워낸 토사물입니다."
▲(사진 위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북유럽에서 자라는 토종 과일과 채소로 만든 ‘노마’의 전채요리, 개미를 얹은 육회, 메뚜기로 만든 전채요리, 아이스크림과 소르베 등으로 만든 디저트 ‘눈사람(Snowman)’. /Ditte Isager
수렵과 채집에 이어 레드제피가 세계 정상급 요리사들 사이 유행시킨 전통 요리법은 발효다. 레드제피는 '발효연구실(Fermentation Lab)'을 만들고 다양한 발효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빵·초콜릿·와인·맥주·커피 등 인류가 먹고 있는 수많은 음식이 발효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발효는 버려질 수밖에 없는 식재료를 맛있는 음식으로 변신시킵니다."
발효에 대한 관심은 레드제피를 한식으로 이끌었다. 그는 "김치는 매우 훌륭하고 흥미로운 발효 음식"이라며 "유럽에도 양배추를 발효한 '사우어크라우트'가 있지만, 백김치·통김치·무김치 등 수백 가지 김치를 개발한 한국만큼 다양하지 않다"고 말했다. "된장·간장을 중심으로 한식을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 메주를 들여와 요리에 활용하는 법을 연구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서울에 와서 청국장을 먹어봤는데, 아주 좋았어요. 매콤하게 무친 작은 뻘게(양념게장)도 맛봤죠. 아삭아삭 씹는 맛이 기막히더군요."
최근 미식가들 사이 최대 화제는 '노마 도쿄 이주'다. 레드제피는 내년 1~2월 모든 요리·서비스 인력을 끌고 도쿄로 이동, '노마 도쿄'를 2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레드제피는 "코펜하겐에서 했던 것처럼, 도쿄에서는 일본에서 나는 식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음식을 창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 좀 더 아는 것일 뿐 아시아 식문화 전반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도쿄는 첫 시도입니다. 앞으로 다른 대륙·도시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식 세계화에 대해 묻자, 레드제피는 자신의 경험을 인용하며 "당신 주변에 있는 것들을 포용한다면 엄청난 가능성과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지루하고 평범해 보이겠지만, 곧 놀라게 될 겁니다. 단, 완전히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유행을 좇거나 그래야만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직관을 무시하는 것만큼 실망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찮아 보이는 평범한 한국의 음식과 재료를 자신만의 요리로 재창조한다면 세계 미식가들에게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2014.11.26 김치, 文化로 끌어올려야 세계로 퍼진다
[인문학적 관점으로 본 김치와 김장… '김치학 심포지엄' 열려]
사스 이후 건강식품으로 명성 높여
세계 입맛 맞춰 유연하게 변화해야
100년 뒤 완전 다른 김치 나올 수도
호주 최남단에 있는 섬 태즈메이니아. 지난주 출장길, 이 '지구 끝'에 있는 섬 꽤 큰 식당 메뉴판에서 'Kimchi(김치)'를 발견했다. 한식당이 아닌 현지 호주인이 현지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주인은 "태즈메이니아 사람들도 김치를 잘 알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세계화된 김치를 학문으로 탐구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26일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세계김치연구소가 주최하는 '김치학(Kimchiology) 심포지엄'이 열린다. 김치와 김장 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마시모 몬타나리 교수, 네덜란드 레이덴대학 카타지나 취에르트카 교수,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이시게 나오미치 명예교수 등 해외 유명 학자들도 참여한다.
◇'사스'를 물리친 김치, 세계로 세계로!
김치가 세계화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 이후다. 임재해 안동대 교수는 "김치는 건강식품답게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선수촌 공식 음식으로 지정된 데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제공됐다. 2003년 사스(SARS)가 중국에서 발생해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감염자가 거의 없고 감염자들조차 모두 회복해 사망자가 없었다. 해외 언론들은 '한국인들이 김치를 먹어 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건강식품으로서 김치의 명성이 확고해졌다.
◇일본에서도 다쿠앙보다 김치 잘 팔려
일본에서 김치를 상식(常食)하게 된 건 1990년대 중반부터다. 이시게 명예교수는 "1960년대 한국풍의 야키니쿠 요리가 유행하면서 일본인도 김치를 먹게 됐다"며 "현재는 김치 소비량이 전통 절임인 다쿠앙을 훨씬 웃돈다"고 했다. 취에르트카 교수는 "김치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이 바뀐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라며 "일본에서 김치 생산이 거의 4배 늘어났고, 한국으로부터 김치 수입은 3432t에서 3만t으로 거의 10배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김치의 세계화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임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 먹는 김치만 옳다'는 고정관념은 "코카콜라의 제국주의적 세계화와 다르지 않다"면서 "한식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음식·식문화와 어울리도록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몬타나리 교수는 "수백 가지 치즈 중 파르미자노(파마잔)치즈가 유독 성공한 이유는 이 치즈가 갈아서 파스타에 뿌려 먹는 양념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라며, "그냥 맛(음식)만이 아니라 맛을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음식문화)을 팔고 수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추김치가 김치의 대명사 된 배경
김치라고 하면 흔히 통배추김치를 떠올리지만 역사는 길지 않다. 음식문화 저술가 윤덕노씨는 "짧게는 100년, 길어도 250년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18세기 중반 발달하기 시작해 19세기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등장하면서 지금과 같은 통배추김치의 모습을 갖췄다는 것이다.
윤씨는 18세기 조선의 경제 발달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부유층은 물론 서민도 쌀밥을 먹게 되자 부식도 자연 '업그레이드'됐고, 고급 채소였던 배추가 김치의 주재료로 선호됐다는 것. 양념으로 들어가는 새우젓이나 마늘·생강은 당시엔 값비싼 조미료였다. 윤씨는 "앞으로 100년 후 200년 후에는 18~19세기 그랬던 것처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김치가 등장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21세기에도 김장은 여전히 중요한 연례행사로 전승되고 있다. 함한희 전북대 교수는 김장 담그기가 계속되는 이유로 김장의 문화적 관념과 실용적 필요성을 들었다. "부모는 아들과 며느리를 본가로 불러들여 가족 정체성을 재확인시킨다. 김치와 각종 곡식·채소가 분배되는 한편 자식들의 효와 현금과 선물이 교환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도시의 며느리들도 겨우내 김치 걱정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이고 김장의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면 마다할 수 없는 실정이다."
2014.12.03 보기에 아름다운 에스프레소는 맛도 완벽하다
'일리카페' 회장 안드레아 일리 "구멍 없는 적갈색 크림 덮여있어야"
▲안드레아 일리 회장이 서울 서초동에 새로 문 연 ‘에스프레사멘테 일리’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일리카페코리아 제공
안드레아 일리(illy·50)는 커피를 말하다 난데없이 '에우데모니아(Eudemonia)'를 이야기했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에우데모니아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행복' '복리'를 뜻하는 철학 용어로 행복주의(Eudemonism)의 어원이다.
그는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일리카페(illycafe)의 회장이다. 철학을 논하는 '커피업자'에게 좀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커피가 지닌 수백 가지 맛과 향은 마시는 이에게 미각적·후각적 쾌락을 선사하는 동시에 영육(靈肉)의 긴장을 풀어주고 창조적 영감을 일깨웁니다. 카페인은 이러한 효과를 더욱 길게 지속시키지요."
일리는 본래 과학·공학도 집안이다. 일리카페의 창업자이자 안드레아의 할아버지인 프란체스코 일리는 1934년 최초의 근대화된 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했다. 안드레아 일리 회장은 화학을 전공했으며 전 세계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커피 저서를 여럿 출간했다.
일리 회장이 정의한 '완벽한 에스프레소'는 다음과 같다. "커피 원두 50개를 분쇄해 얻어지는 6~7g의 커피 가루에 섭씨 90도 이상의 물을 9기압의 압력을 가해 25~30초 동안 추출한 30㎤ 분량의 커피입니다. 에스프레소란 당질, 유기산, 단백질, 카페인 등이 녹아 있는 추출액 위에 미세한 기름방울이 유화 상태로 거품층을 이루고 있는 음료죠."
그는 "선(善)과 미(美)는 곧 하나"라며 "훌륭한 에스프레소는 마셔보기 전 눈으로 보기에도 아름답다"고 했다. "붉은색과 갈색의 중간쯤 되는 두툼한 크레마(거품층)로 에스프레소 표면이 완벽하게 덮여 있어야 합니다. 크레마의 색이 옅으면 추출이 덜 된 것이고, 짙거나 중간에 구멍이 나 있으면 커피 입자가 너무 곱거나 입자의 양이 너무 많았다는 증거죠. 크레마에 흰 거품이 있다면 커피를 추출할 때 사용한 물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고요. 쓴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완벽한 에스프레소는 커피 자체의 단맛이 우러나 굳이 설탕을 추가할 필요가 없지요."
'에스프레소 커피보다 드립커피(뜨거운 물을 커피가루에 부어 추출하는 커피)가 더 낫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커피에는 1000가지 풍미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풍미가 다 좋은 건 아닙니다. 드립커피는 비등점에 가까운 물을 사용하는데, 95도 이상의 물을 사용하면 불유쾌한 풍미가 우러납니다."
일리카페는 국제커피협회(ICO) 의뢰를 받아 내년 열리는 '밀라노 엑스포'에서 커피관을 기획·운영한다. 일리 회장은 "커피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보여준다. 음식 분야에서 커피가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14.12.11 맛집의 완성, 서비스에 달렸다
위대한 레스토랑은 요리사 혼자서 만들지 못한다. 뛰어난 음식 맛은 기본이지만, 여기에 훌륭한 서비스가 덧붙여져야 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요리사 미셸 루(Roux)는 "형편없는 음식 맛에 너그러운 손님도 형편없는 서비스는 용서 못 한다"고 말했다. 식당에서의 한 끼라는 총체적 경험에 미치는 영향은 어쩌면 서비스가 음식 맛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지배인과 종업원은 매우 중요하다.
서비스 분야에서 전설로 꼽히는 이가 있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자살한, 17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프랑수아 바텔(Vatel)이라는 남자다. 1671년 4월 24일 금요일 콩데(Conde) 공(公)은 자신의 영지인 샹티이(Chantilly)성(城)에서 프랑스왕 루이 14세와 3000명의 베르사유 궁전 사람들을 초청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루이 14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요리사 출신인 바텔은 콩데 공의 궁정 음식 총감독인 '마조르도모(majordomo)'였다. 요즘 레스토랑 총지배인과 비슷한 자리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연회가 매우 중요했다. 연회를 얼마나 잘 차려내느냐에 따라서 연회 주최자의 명성이 높아지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기도 했다. 바텔은 콩데 공 이전에도 여러 주인을 모시며 훌륭한 연회를 매끈하게 진행해 명성이 자자했다.
바텔은 2주 동안 밤낮없이 연회를 준비했다. 연회 당일 예상보다 많은 손님이 참석한다는 연락이 왔다. 준비하는 데 며칠이 걸리는 로스트비프는 더 이상 추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2개 테이블에 로스트비프가 나가지 못하게 됐다. 바텔은 상심하기 시작했다. 연회 당일 새벽 기다리던 식재료 일부가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당황했다. 결정적으로 메인 요리의 주재료인 생선이 오지 않았다. 바텔은 절망했다. "이런 망신을 당하고도 살 수는 없다. 내 명예와 평판을 완전히 더럽혔다."
바텔은 비통한 심정으로 주방에서 사라졌다. 때마침 기다리던 생선이 주방에 도착했다. 이 소식을 알리러 바텔의 방을 찾은 하인은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러 자살한 그를 발견했다. 연회에 참석한 손님 누구도 바텔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생선요리에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바텔의 후예들도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들은 요리사만큼이나 서비스 인력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데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다. 뉴욕의 '다니엘(Daniel)'은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셋, 뉴욕타임스로부터 별 넷을 획득한 미국 최고 레스토랑 중 하나다. 최근 이곳을 찾은 지인은 "나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알기도 전에 종업원들이 먼저 알아서 서비스해 주는 듯했다"며 "태어나 받아본 최고의 서비스"라고 감탄했다. 손님이 요구하기 전에 제공하는 궁극의 서비스를 위해 이곳 종업원들은 현장 실습은 기본이고 세미나에 참석해 공부한다. 매일 영업 시간이 끝나면 마련되는 세미나에는 와인·치즈·리큐르 등 분야별로 전문가가 교육을 담당한다.
뉴욕의 또다른 고급 레스토랑인 '퍼세(Per Se)'의 신입 종업원은 125쪽에 달하는 서비스 매뉴얼을 달달 외워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퍼세는 발레 무용수를 불러 종업원들에게 기본 발레 동작을 가르친다. 지난 2012년 한국을 방문한 퍼세의 오너셰프(주인 겸 주방장) 토머스 켈러(Keller)에게 "식당 종업원이 왜 발레까지 배워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는 종업원이 발레 무용수처럼 우아해 보이기를 원한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세와 손동작으로 서빙하는 것도 훌륭한 서비스의 일부"라고 대답했다.
뉴욕 명소인 '포시즌스(The Four Seasons)'는 세계를 움직이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즐겨 찾는 식당이다. 이곳의 지배인 겸 공동 소유주인 줄리안 니콜리니는 최고의 서비스로 '즐거움'을 꼽았다. 그는 손님을 격의 없이 대하는 것을 넘어 짓궂은 농담과 장난까지 친다. 지난해 인터뷰 당시 그는 "아무리 단골이 요구해도 늘 같은 자리를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뭐든 원하는 대로 된다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우리 손님들은 세상일을 뜻대로 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최상류층이죠. 그런 분들에게 원치 않았던 나쁜 자리를 드리면 오히려 즐거워합니다. 그렇다고 손님이 기분 나빠할 정도로 선을 넘지는 않아요. 그러려면 손님과 친하고 잘 알아야 하죠."
며칠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 서비스에 불만을 갖고 책임자를 항공기에서 내리게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과연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기내 서비스 담당 임원으로서 할 수 있는 지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항공기를 탑승구로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하는 바람에 항공기가 도착 예정 시간보다 11분 늦게 인천에 도착했다. 승객 250여 명이 11분씩 손해 봤다. 안내방송도 없이 항공기를 돌려 잠시지만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항공사가 탑승객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 아닌가. '작은 서비스'를 바로잡으려다 '큰 서비스'를 실수한 건 아닌가 싶다.
2014.12.17 북한이 러시아 대통령 주방을 뒤진 이유?
전세계 '대통령의 요리사'가 들려주는 식탁 뒷이야기
▲1996년 미국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국가 정상들의 셰프 클럽(CCC) 회원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국가 정상들의 셰프 클럽 홈페이지
진정한 고수(高手)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 음식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요리사는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누리는 스타 셰프가 아니라, 대통령·총리·국왕 등 세계 지도자들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전속 요리사들이다. '국가 정상들의 셰프 클럽(CCC·Club de Chefs des Chefs)'은 국가 정상의 수석 요리사만이 가입할 수 있는 '요리계의 G20'이라 불리는 모임. 아쉽게도 청와대 수석 조리장은 여기 가입해 있지 않다.
최근 출간된 '대통령의 셰프'(알덴테북스)는 CCC 전·현직 멤버들이 음식을 통해 들려주는 세계 정치·외교계의 뒷이야기를 전한다. 세계 각국 지도자를 모시는 요리사들은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식탁에선 실수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은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만찬 메뉴를 결정할 때 후보안을 보통 3개 올리는데, 미테랑 대통령 재임 시에는 후보안을 6개 올려도 여섯 개 전체에 검은 줄이 그어져 되돌아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반면 큰 실수에도 너그러운 지도자도 있다. 일왕(日王)의 수석 조리장인 긴지로 야베는 식사가 나가기 직전에야 밥솥에 불 켜는 걸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이 흙빛이 된 지배인이 일왕에게 머리를 땅까지 숙였지만, 일왕은 화내기는커녕 "밥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중에 긴지로 조리장은 "할복을 할까 고민했다"고 농담했다.
독극물 암살 테러가 적지 않은 러시아의 크렘린궁에서는 연회에 사용될 모든 식재료의 성분 검사를 실시한다. 대통령과 귀빈 식사에 나가는 모든 음식은 대통령 주치의가 지켜보는 가운데 별도 공간에서 따로 준비한다. 완성된 요리는 곧바로 밀봉해 서빙 직전까지 삼엄한 경계하에 보관된다.
독살 공포는 독재 정권일수록 심해서,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검식관을 대동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크렘린궁 수석조리장 리고는 2011년 북한 김정일의 마지막 러시아 방문을 잊지 못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만찬은 시베리아의 한 군사기지에서 열렸다. 북한 경호팀은 주방을 뒤지고 감시한 건 물론이고 주방 직원들의 사진까지 찍어두려 했다.
세계 정상들은 한때 프랑스 출신 요리사를 선호했으나, 자국 요리사가 자국의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로 공식 만찬을 준비하는 것이 최근 트렌드다. 정상의 식탁을 자국 음식 홍보에 활용하려 애쓴다. 과거에는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으로 힘과 부를 과시했다면, 요즘은 건강과 비용 절감을 목표로 코스와 양을 줄이고 고급 식재료를 자제하는 분위기다.◎